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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새벽부흥기도회(19차)(주후 2021년 4월 12일)
제목: “그리스도가 왕이 되게 하라”
*조엘 비키 목사님-(스스로 분발하열 하나님을 붙잡는 기도)(이사야 64:7, 야고보서 5:17절),
*권성수 목사님-(부활의 주님, 우주 대통령)(시편 2:7-12절)
말씀: 이사야 64:7, 야고보서 5:17절, 시편 2:7-12절.
설교자: 조엘 비키 목사님, 권성수 목사님(대구 동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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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비키 목사님
야고보서 5:17절을 읽었다.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본문을 보면, 엘리야는 마음을 다하여 간절히 기도했다. 그의 기도는 단순한 l기도 행위가 아니었다. 그의 마음을 쏟아 기도했다. 그의 기도는 진심어린 기도였다. 오늘날, 우리는 자주 형식적인 기도를 드리고는 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나의기도 생활은 어떠한가?’ ‘과연 나는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있는가?’

‘표면적인 기도는 아닌가?’
‘의례적인 기도는 아닌가?’
아니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뿜어 나오는 기도인가?’

한때는, 진심어린 마음으로 기도했지만 지금은 무어졌을 수 있다. 기도하는 시간을 사모하기도 했고, 사모하는 영 가족 여러분, 우리는 형식적인 기도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회개(悔改)하며, 우리 영혼(靈魂)을 소생(蘇生)시켜 달라고 간구(懇求)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형식적인 기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해결책은 바로 ‘진심어린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이제 두 가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스스로 분발하여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첫째는
둘째는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다.

*이사야 64:7절에 보면,
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여러분들이 스스로 분발하여 더욱 열정적이고 신실한 기도 생활을 하게 되기를 소원한다. 스스로 분발하여 하나님을 붙잡으시길 소원한다.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 분발하여 기도할 수 있을까?

▶기도에는 7가지의 원리가 있다.

첫째, 기도의 가치를 기억하라.

-우리는 다니엘과 같이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기도하기를 포기(抛棄)해서는 안 된다. 기도는 우리 영혼이 잘 되는 비결(秘決)임을 기억하여야 한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을 가장 그리스도인답게 한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다고 해서 기도의 가치를 잊어서는 안 된다. ‘기도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도 절망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성령님께서 그를 위해 간구하시고, 예수님께서 그의 편이 되어 주시며 하나님께서 기도를 흠향(歆饗) 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의 응답이 없어도 기도하는 자체가 하나님의 자비(慈悲)인 줄로 믿어야 한다. 어렸을 때, 저희 아버님께서 제게 중요한 교훈을 하나 주셨다. “하나님의 보좌는 언제나 열려 있다”라는 사실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울부짖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응답받지 못한 기도도 귀한데 응답 받는 기도는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요셉 홀은 이러한 말을 남겼다. “참된 기도 자는 결코 울며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가 간구한 대로 응답 받든지, 아니면 우리가 마땅히 간구했어야 하는 대로 응답 받을 뿐이다. 그러므로 기도의 가치를 기억해야 한다.

 

둘째, 기도에 우선순위를 두라.
*요한복음 15:5절에 보면,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죤 번연은 이러한 말을 남겼다. “기도하면 기도한 그 이상의 일을 해낼 수 있지만, 기도하기 전까지는 그 이상의 일을 해낼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도 시간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한다. 이는 다른 모든 것보다 기도를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 우선순위의 문제로 인해 기도생활이 약화되지는 않았나? 혹시 디지털 기기나 미디어가 여러분의 귀한 시간을 빼앗고 있지는 않는가? 그 외 다른 것들도 여러분의 기도생활을 막을 수 있다. 기도가 점점 약해지고 차가워지고 자기중심적인 기도가 되도록 말이다. 기도를 우선순위에 둔다는 것은 다른 모든 것들의 순서가 기도 이후로 밀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도가 우선이 되어야 하니까...

 

셋째, 진정성을 가지고 기도하라.

*시편 62:8절은,
8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
-시편 119편 같이 아주 길고도 정교한 진정성 있는 기도도 있지만, 시편 86편 11절과 같이 짧으면서도 진정성 있는 기도도 있다.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누가복음 18장 13절과 같은 기도도 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기도의 분량이 어떠하든지 우리의 기도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토마스 브릭스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세련된 지, 얼마나 논리정연한 지, 얼마나 기하학적이며 산술적인지, 얼마나 듣기에 좋은지, 또 어떤 목소리로 구하는지, 기도의 논리가 있는지를 보시지 않으신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기도가 진정성이 있는지 우리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지를 보신다.”

넷째, 지속적으로 기도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17절에는,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 말씀은 행위로서의 기도가 아니라, 기도의 본질, 습관,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의 상태를 가리킨다. 우리가 끊임없이 기도하려면 시간을 따라 계절을 따라 해야 한다. 끈질기게 열정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하루하루 계속 대화하듯이 해야 한다. 동료 목사님들과 가진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 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죤 뉴튼 목사님 외에 다른 분들이 함께 한 자리였다. 한 젊은 여자 성도가 목사님들을 대접하는 자리에서 목사님들이 그 성도에게 ‘쉬지 않고 기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성도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오늘 저는 아침에 일어나 옷을 입으며 오늘도 제게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입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내 마음의 모든 때를 씻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오늘 이 음식과 음로를 준비하면서 주님이 내 일용할 양식이 되어 주시고 내 삶에 생수가 되어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저는 그냥 이런 식으로 하루 종일 기도하곤 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다섯째, 중보 하는 기도 자가 되라.

-사도 바울은 지속적으로 여러 동역 자들과 기도를 위해 중보 했다. 그는 매우 바쁜 사람이었다. 삶에 여러 어려움도 많았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중보기도가 체질화 된 사람이었다. 그의 중보는 단지 서신에 기록된 기도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기도였다. 하나님께서는 중보기도 하는 자에게 열정적으로 기도할 마음을 주신다. 그리고 기도하기 싫을 때라도 기도의 자리로 나아오도록 도우신다. 저는 여러분들의 중보기도제목을 세 가지 부류로 분류하기를 권한다. 날마다, 한 주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각각 기도해 주어야 할 사람들로 나누어 기도하기 바란다. 그리고 이 리스트를 계속 수정하고 업데이트 하라.

 

여섯째, 기도를 위해 성경을 읽으라.

-우리의 기도가 힘이 없는 한 가지 이유는 기도에 말씀이 빠졌기 때문이다. 기도는 쌍방향ㅇ로 움직이는 대화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우리의 기도를 통해 서로 대화를 나누신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이야기만 쏟아내지 않고, 말씀으로 채워주시기를 바라며,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주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하면 응답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따라서 여러분이 말씀을 읽을 때, 표현을 많이 하라.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기도하라. 약속의 말씀이 여러분의 기도가 타오르게 하는 연료(燃料)가 되게 하라.

 

마지막으로,
일곱째, 성경적으로 균형 잡힌 기도를 드리라.

-기도는 대략 4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1-찬양(A), 2-죄 고백(C), 3-감사(T), 4-간구(S). 이다.- (ACTS).

그런데, 이건 더 세부적으로 나뉠 수 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기도가 나온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죄를 고백하고, 우리의 영과 육에 필요한 것들을 간구하고, 하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다른 이들을 위해 중보 하는 기도 등이 나오는데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을 확신함으로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성경에서는 여러 가지 기도의 상황들이 나온다. 개인적인 은밀한 기도, 가족이 함께 하는 기도, 친구들과 함께 하는 기도, 기도 모임에서, 그리고 공적인 예배에서 하는 기도 등을 말한다. 따라서 성경 속 기도들을 살펴 여러분의 기도와 비교해 보고, 균형을 잡아가야 한다. 부족한 기도의 영역이 있다면, 그 부분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붙잡을지에 대해 3가지 원리를 나누겠다.

첫째는, 하나님의 하신 약속을 붙잡으라.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주권 안에서 약속을 베푸셨다.

▷토마스 멘톤은 “우리가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을 내밀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분이 위라고 쓰셨는지, 자신께서 말씀을 상기시켜 드리라“는 것이다.

얼마 전에 어느 장로님이 저를 찾아오셨는데 저의 부친이 직접 쓴 편지를 들고 오셨다. 참고로, 저의 아버지는 1993년 설교 중 소천 하셨다. 이 편지는 장로님께서 회심하신 1950년대에 저희 아버지께서 장로님께 전해드린 것이었다. 장로님께서는 제가 이 편지를 읽어 보고 싶어 할 것 같다며 가지고 오신 것이다. 당연히 읽어보고 싶지 않겠는가? 저는 바로 앉아 그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제 부친이 친필로 쓰신, 그분의 영적인 경험이 담긴 편지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어떻게 하실까? 여러분들이 기도 가운데, 그분의 친필을 내밀며 “말씀하신 대로 이루소소”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하실까? 청교도들은 이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했다. 존 트레이는 “하나님의 약속은 꼭 기도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러면 부담을 느끼시는 것을 좋아하신다.” 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근거하여 드리는 긴급한 기도를 들어주신다.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일이다. 이는 교만하거나 분수에 지나친 것이 이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어야 한다. 그런 기도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거부하실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부정하실 수 없으시기 때문이다.

 

둘째는, 삼위일체의 영광을 바라보며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기도가 약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생각없이 기도하기 때문이다.
당장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기도가 잘 된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다. 우리 기도가 약한 이유는 우리가 습관에 따라 기도하기 때문이기도 한다. 우리가 제대로 기도하려면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향해야 한다. 진정한 기도는 자신을 치켜세우거나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자랑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 어떻게 복음이 우리와 같은 죄인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로 인도했는지 묵상해야 한다. 우리는 기도할 때, 기도제목부터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우리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나아가야 한다.

*에베소서 2장 18절에 보면,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 기도를 통해 역사 하시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성령님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기도는 매우 삼위일체적이다. 마치 금목걸이처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서로 내재하고 계신다.

셋째는, 하나님의 응답을 믿으라.

-이러한 믿음으로 우리는 그분을 붙잡을 수 있다. 미국의 어느 교회 바로 옆에 술집이 개업했다. 술집에서 밤마다 시끄럽게 파티가 열렸고 길거리는 죄악들이 난무(亂舞)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온 쓰레기들은 아침마다 교회 주차장(駐車場)에 쎃였다. 그래서 교인들은 하나님이 이 일에 개입해 달라고 기도하게 되었다. 얼마 후에 이 지역에 거대한 허리케인 폭풍이 지나갔는데 교회는 괜찮은데 교회 옆에 있는 그 술집만 휩쓸어 버렸다. 그러자 술집 주인이 교회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법적 소송을 걸었다. 술집이 허리케인에 휩쓸려 간 것은 교인들이 기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교인들은 우리는 술집이 허리케인에 휩쓸린 것과 상관이 없다며 손해배상을 할 의무가 없다고 했다. 판사는 이런 소송을 담당하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여러분,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은 기도의 능력을 믿는데 믿음의 성도들은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았다. 여러분 믿음 없는 기도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우리가 만약 응답의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면 과연 우리가 그분의 자녀인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 우리 아버지가 되셨기에 우리는 그리스도가 이미 이루어 놓으신 업적을 의심할 수 없는 응답의 하나님을 믿는 존재가 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기도를 의심하지 않는 믿음의 성도가 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엘리야 같은 기도를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하여야 한다. 불신앙과 절망과 싸우길 바란다. 하나님과 소통하는 기도에 더욱 성장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야고보가 엘리야를 언급하는 것이 흥미롭지 않는가? 그는 여러분과 저같이 연약한 존재이다. 엘리야는 그의 기도를 ‘기도로’ 가득 채웠다. 그는 절망 속에 절망할 수 있던 존재였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태만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기도할 제목을 주시고, 그 기도를 들어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한다. 여러분, 정말 주님을 믿으신다면, 우리가 이런 아름다운 기도의 여정(旅程)을 떠나는 것에 더 큰 동기(動機)를 부여(附與)받을 것이다. 기도 없는 삶의 여정이 기도로 가득한 인생으로 바뀐다. 여러분, 위대한 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도의 삶을 사는 이 시대의 엘리야ㅇ가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우리의 찬양과 경외와 사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미셀 마르빈 목사님. 사랑의 교회 성도 여러분, (영상)

-프랑스가 현재 세계에서 신앙적으로 가장 열악한 환경에 놓인 1% 미만의 개신교도들이 살고 있는 나라임을 상기 시켜드리고 싶다. 여러분의 중보와 도움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16개의 교회를 개척했으며, 현재 4개의 교회 개척을 준비하고 있다. 여러분의 도움과 가도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사역이기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디종 베르나를 교회와 사랑의 교회의 파트너쉽이 더욱 견고해지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함께 유럽을 위해, 프랑스를 위해, 그리고 프랑스어권 교회를 위해 일하기를 소망한다. 주님의 축복이 사랑의 교회와 성도님들께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

 

▶주님 앞에서 전력투구로 찬양하라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자 되어야 한다.
이 코로나 가운데에서 19차 새벽부흥회를 하게 하심을 감사한다. 찬양, 말씀 기도가 잘 되어 포스트코로나를 이기를 바란다. 거룩한 은혜의 잔치이다. 기도에 대한 17분만에 마쳤다. 이제 권성수 목사님의 말씀을 듣도록 미래자립교회가 참여하고 있다.귀한 교회들과 영어권 불어권도 참여하고 있다. 북미, 남미, 브로큰과 미센 마르벤 목사님, 복음의 사역의 16개의 교회가 지금 개척이 되고 있다. 미셀 마르반 목사님이 우리 교회도 방문했다. 봉쥬르!~~ 50여개 교회를 개척하기를 바라고 있다. 환영합니다. 할렐루야, 갓 블레스 유!~~ 순서지 보세요. 사랑의 교회 은혜의 폭포가 되었다. 온 교회 성도들이 폭포수로 경험하길 바란다. SAGA와 함께 모든 사역자들과 특새 주제를 보세요. 기도 제목을 써두길 바란다. 주차장 7시 이후 출차, 은혜게시판 활용 스마트폰을 나눈다ㅣ 쏟아지는 주의 은혜, 쏟지 말고 담아두자. 은혜의 보따리 싸가세요. 말씀 받고 받쏟 말고 은혜라야 !! 특새 방역지침 특새 이모티콘 엎드림 온전할 온 -납작 기도할 때 응답하신다. 은혜의식-황금사다리. 은혜를 사모하자.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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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수 목사님.
제목:부활의 주님 우주 대통령
권성수 목사님(대구동신교회)
말씀: 시편 2편-2:7-12절

I 반역의 현실, 우주 대통령 거절.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체험하길 바란다. 모두가 이번 기회가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라.
미국 대통령 선거에 관심이 많았다. 내년에는 누가 우리나라 대통령이 될 것인가에 관심이 많다. 선거 마치면 좀 상당히 실망한다.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소원하는 완전한 대통령이 없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인간의 근본적 문제를 죄의 문제 해결과 낙원을 알게 하는 대통령이 없을ㄹ까를 생각해보니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죄의 근본을 해결해야 한다. 죄를 짓지 않고 완벽하게 살아야 한다. 국민들의 죄를 처리하고 죽어야 한다. 또한 부활을 해야 한다. 예수님은 왕중의 왕이시고 증명해 보이신다. 그것이 부활이다. 세계의 대통령, 우주의 대통령인데 사람들이 싫어한다. 시편 그의 기름 부은자. 하나님께서 왕 중 왕, 세계의 대통령이 우리 예수그리스도이시다. 결박을 다 끊어버리고 마음대로 살자 한다.

 

크리스토포비아- 현재 온 대학 캠퍼스에 크리스토포비아로 변해가고 있다. 그리스도 혐오증이 있다고 한다. 미국의 좌파 교육으로 신앙을 거의가 다 포기한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대학에서 교회를 그만 둔다고 한다. 간섭받기 싫어한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말씀을 버리고 맘대로 산다고 한다. 여러 분야에서 그렇지만 동성애가 문제가 바로 그렇다. 바로 동성애가 계속 예수 믿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는다. 법을 통해서 계속 그렇다고 한다. 그리스도 혐오현상이다. 이런 것을 어떻게 보시는가? 주께서 비웃으신다. 지구상에 모든 자연에 일곱 배 이상 많은 별들이 떠있다. 우주 공간에서 보면 인간들이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전세상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을 마음이 꺾이는 것을 느꼈다. 시편 2편을 붙잡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시편 2편을 붙잡지 않으면 성도들이 꺾여 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가 코로나 주범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방역지침을 잘 지키면 된다. 직장, 학교에서도 교회를 거절하고 반역한다. 말씀 중에 심령이 새롭게 되길 바란다. 감격과 감탄이 들어온다. 여호와와 그 기름 부음 받은 자, 머리카락 하나도 세시는 하나님, 그 옆에 예수님은 위로하시고 치료하시는 분이시다.

 

II. 부활의 증거: 우주 대통령 증거.

①정황근거
시편 2:7-8절에 오늘 내가 낳았도다,,, 사도행전과 부활하고 연결되어 있다. 부활이 우주 대통령이라는 것을 증명하시고 계신다. 보여드릴 수는 없지만, 증거는 정황증거, 빈 무덤, 그 당시 세계 최고의 로마 군인들이 지켰는데 무덤이 비어있었다. 두건이 그대로 있었다. 수의도 그대로 있지만 시신은 없었다.

②목격증거
500여명이 한 자리에서 보았다. 바울사도가 삼백 여명이 보았다고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말했다. 하버드 법과대의 사이먼 자기가 법적 증거를 연구했지만, 예수 그리스도 부활을 증거는 확신한다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역사 속에 정확한 것은 없다고 한다. 신약 성경만큼 고대 문헌 중에 정확한 것은 없다고 했다. 신약 성경은 헬라어로도 어마하다. 고대 문헌 중에 뒷받침을 받는 것은 없다. 성경보다 확신되는 것은 없다. 역사적 사건이다. 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사람들이교회에 40일 계셨다.

③교회 증거
전 세계 23억 정도가 기독교 채팅을 한다. 거기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언한 사람들이 순교하면서 증거하고 있다.

➃개인 간증
존 레녹스-옥스포드 수학교수는 무실론 자가 꼼짝을 못하게 한 사람이다. 이 존 레녹스가 화학교수와 토론 중에 예수를 믿는다고 하고 부활이 확실한 증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렇게 증언했다. 못 믿겠다고 했다. 그러면 테스트를 해보라고 한다. 확실하게 신약 성경을 읽고 나서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한다고 증명한다. 1909-2000년까지 예수님의 부활을 증명한다.

⑤성령증언
눈에 보이지 않으시고 귀에 들리지 않고 손으로 만들어지지 않지만, 우리 인생에 더 확실한 것은 어떤 인격체보다도 우주의 대통령으로 나를 다스리고 계심을 믿는다. 미국의 시인 새 힘을 얻어서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왕 중 왕으로 세계 대통령으로 살아계심을 믿는다. 증거가 된다.

 

III. 통치의 축복: 우주 대통령 통치

①큰 믿음(Great Faith)
왕 앞에서 굴복해서 왕으로 모시는 것이다. 우리의 왕 중 왕 나의 대통령으로 모실 때에, 억지로 모시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모셔야 한다. 우리를 위해서 다스리시고 계시기에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시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하나님이 정말 싫었었다. 아들을 일곱을 낳으시고 하나님 앞에 목사로 바치셨다고 했다. 아버지 혼자 자식들을 끌고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 두 명의 형제는 죽고 다섯 명이 다 목사님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예수님께서 왕 중 왕으로 계셔서 완벽한 낙원으로 제공해 주실 것을 믿는다. 기쁘게 굴복하고 그분 앞에 왕으로 통치시게 고난을 통해서 낮추시고 시험하사 높이신다. 훈련후에 세상에 대한 애착을 끊게 하신다. 그것으로 인해 나를 만드시는 것이다.
기도하며 성경을 통해 ,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확신을 믿는다. 낮추시고 신명기 3:8절에 사랑하시기에 시험하신다. 마침내 복을 주신다. 메카톤 급으로 복을 주실 것이다.

 

*갈라디아서 2:20절에,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②산 소망(Living Hope)
-성령을 통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셔서 다스리신다. 이 분이 살아계신다. 내 안에 살아계신다. 자기 몸을 나를 위해 버리시고 믿으셔야 한다. 현실이 아무리 반대로 간다 해도 우주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심을 믿는다. 주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기도하라. 마침내 응답하실 줄 믿는다. 울면서 고백하고 믿어서 절망 중에 점점 강해질 것이다.

③큰 능력(Great Power)
-우리를 지금도 다스리신다. 우주의 대통령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산 소망, 큰 능력, 큰 사랑의 삶!
우리 몸속에 세포가 60조개이다. 하나의 세포가 너무도 정교하다. 보잉 747의 15만 6천 배나 된다고 한다. 이 말씀으로 인해 모든 성도들의 마음에 새겨져서 내 눈에 내 손에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확신하여 복되게 체험하는 자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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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님께서 특새를 통해 영적인 기름 부음심과 강력하게 무장된 것과 잘못 된 크리스토피아 등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찬양대에 앉아있는 자리도 아름답다. 필요한 은혜를 주실 것을 믿는다. 낮추시고 시험하시지만 마침내 필요한 은혜를 주실 것이다. 내일은 존 파이프 목사님과 이동원 목사님이 설교하신다. 맞춤형 은혜를 주실 것이다. (담임 목사님.)

찬양 위대하신 주.~~ 예수 산을 옮기신는 주

 

♣요약
기도하는 데 힘을 쓰고, 기도의 가치, 기도에 우선순위, 기도의 진정성,  지속적 기도, 중보기도,성경읽기,균형잡힌 기도를 순서대로 잘 기도하여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며, 은혜 받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 또한 날마다 내 삶의 대통령으로 통치하여 주시길 간구하며, 낮추시고 시험하시는 중에도 믿음이 견고하여져서 영적인 메가톤급의 복을 받기를 소원하고, 썩은 동아줄이 아닌 황금 사다리로 올라가는 이번 부흥의기도회를 통해 하나님의 보좌는 언제나 열려 있을 것을 믿고 온전함의 고봉으로 올라가도록 기도하고 말씀과 예배와 찬양으로 무장하여 21세기 엘리야가 되어 위대한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자녀가 되어야 한다. 기도의 응답을 위해 간절하게 기도하고 복음의 100배의 추수를 기대하면서 시종일관 주님과 동행하고 집중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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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1년 4월 11일)

제목: "은혜는 성도를 온전케 한다
말씀:요한복음1:14-18, 에베소서 2:8-9.  
찬양인도: 이원준 부목사님
기도: 양은규 부목사님
사회: 윤하중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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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4-18절)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에베소서 2:8~9)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과 진리가 너무나 놀랍고, How can be!~~놀라워라 주 사랑이!~ 놀라운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의 머리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실체로 체험되기를 사모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렇게 놀랍도록 은혜가 넘쳐야 한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은 이 배경에 오기까지 요한이 이 은혜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 율법, 이런 모든 내용을 오래된 신자나 초신 자들에게 동일하게 깨달아지는 것이다. 은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온전함 시리즈 아홉 번째이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 은혜가 되고 은혜가 무엇인지를 잘 영적으로 깨달아져야 한다.

상 하 노소를 물론하고, 모든 분들이 은혜가 은혜 되길 바란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구원역사를 위하여 제일 먼저 하신 일은 마리아에게 가브리엘이 먼저 수태고지를 하는 것이다(受胎告知는 예수 탄생의 일화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 잉태를 예고한 부분임).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라고 한다. 은혜를 입은 자여! 처음 접한다. 마리아뿐 아니라 모두가 다 처음 접한다. 사도요한은 은혜가 충만하다고 말한다. 16절에 보면, 은혜가 은상가은이다. 은혜가 풀 패키지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위대한 성경에서 요한복음 마지막 부분에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성도들에게 있을지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은혜를 받은 자여, 은혜가 있을지어다” 라고 한다.

생애 순간순간 일마다 모두 인생의 순례의 역사 가운데 은혜의 큰 역사가 있어지기를 바란다. 이것을 사도 바울도 깨달은 다음에 늘 은혜를 깨달았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 은혜로 깨달아짐을 말하고 있다. 정말 은혜 속에서 더 강했다. 사도 바울이 은혜 받은 것에 대하여 모든 평강을 자랑한다.

우리도 은혜를 깨닫지 못하면 절대로 은혜를 받지 못한다. 은혜가 없으면 신앙이 정체된다. 은혜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은혜를 오해하게 된다. 은혜가 없으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며 은혜가 없으면 풍성한 은혜를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은혜는 내일부터 은혜의 잔치를 은혜의 선봉장이 되게 하시고, 이 은혜가 온전케 하는 역사가 이루어지길 소원한다. 신앙생활 오래하면 은혜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들었을 것이다. 익숙하다. 익숙하기에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냥 당연히 여길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중요한 것을 절실하게 하기 위해 가끔씩, 환경적으로, 인간관계를 통해, 와장창 뒤집어 업을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도록, 아니면, 특새나 자발적인 은혜를 사모함으로 말미암아 은혜의 신선도를 유지케 하신다. 우리가 살다보면 범죄함으로 징계를 받는다. 그러나 믿는 사람의 징계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가 징계 받기 전에 우리가 은혜에 대해서 성숙해지고, 은혜에 대해서 온전해지면, 굳이 채찍과 회초리를 맞지 않는다 할지라고 은혜에 대해서 우리의 은혜의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I. 은혜가 무엇인가?
*요한복음 1:17절,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은혜는 “은혜의 원천지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얻어진 ‘하나님의 부요하심과 선물이다” 그리스도이시다. 이것은 죽으나 사니 고백해야 한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았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 은혜가 나오는 것이다. 예수님으로부터 얻어진 하나님의 부요하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 은혜는 카리스라고 한다. 카리스의 단어는 자격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파격적 호의이다. 선물이라는 묶음이 포함되어 있다. 자격이 전혀 없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놀라운 선물이라는 것이다.

 

*로마서 5:15,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요한복음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ㅡ은혜는 최고의 선물이다. 따라서 이 모든 이 파격적 선물은 이 세상에서는 없는 것이다. 세상은 절대 알 수 없고 이 은혜를 줄 수도 없다. 세상적인 방식으로 깨닫지 못한다. 이 은혜는 세상에는 없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은혜의 원천이신 예수님만이 주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교회와 세상의 차이이다. 이것이 은혜의 저수지, 은혜의 진원지가 되어야 한다. 은혜의 병참기지, 물류센터가 되어야 한다. 은혜가 넘침은 한국교회가 퇴보하지 않는다. 이 은혜를 붙잡으면 넘어져도 다시 붙잡을 수 있으며.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은혜의 원천이 예수님으로부터 오기에 예수님 영접 순간 은혜를 소유한다.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것이며, 예수님과 함께 되었다는 것이며, 인성 신성을 깨닫고 소유하기에 참된 은혜이다. 이것을 깨달으면 죽은 송장도 순간 벌떡 일어난다. 우리가 허물로 죽었다면, 영적으로 죽어 있음 일어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었더라도 눈과 귀가 열리지 않으면 그렇다 내 힘으로 일어날 수 없다. 믿어도 눈귀가 여리지 않음 은혜가 아니다. 은혜로 온전한 것은 은혜와 행함의 함수관계이다.

 

▶은혜를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은혜는 행 함고 함수관계이다. 행함의 열매이며 결과이다. 은혜로 시작해서 행함으로 마쳐야 한다.

 

*에베소서 2:8~9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ㅡ이것은 무슨 뜻인가? 바울이 깨달은 진리가 로마서 4장 4절에 나오고 있다.

*로마서 4:4절에 보면,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만,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에 그것이 행위가 되고 대가가 되면, 그 순간 공로의식이 된다. 그 순간 은혜가 싸그리 사라진다. 행위는 은혜의 열매가 되어야 한다. 행위가 대가가 되면 우리는 은혜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만 오래 믿었다는 사람이 은혜를 은혜로 받지 못하고, 은혜를 대가로 보기에 그렇다. 행함이 은혜의 열매가 되어야 한다. 행함이 없는 것은 죽은 것이다. 은혜를 받으면 행함이 자동적으로 따라가야 한다.

 

*야고보서 2:22절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ㅡ야고보서에 말하는 행위는 대가가 아니라 은혜의 결과로 나타나는 행위이기에 그 행위는 자동적으로 따라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혜를 받으면, 행함이 따라와야 한다. 열매로 행위가 온전하게 된다. 우리가 보수로 받은 대가로 온전하게 된 것이 아니고, 은혜의 결과인 그 행위로 은혜가 되는 것이다. 행함이 은혜의 열매이다. 은혜를 깨닫고, 알게 되면 자동적으로 선함이 따른다. 은혜의 관점에서 따라오는 열매인 것이다. 그래서 잘 정리해서 로마서와 야고보서가 충돌하지 않아야 한다. 온전 론의 기준이다.

 

이런 의미에서,,,▷선행(善行)은 은혜가 선행(先行)되면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
선행은 조건이 아니라 열매로 얻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온전해져서 선한 일을 하라. 이 함수관계가 우리에게 깨달아져야 한다. 은혜를 받으면, 자연스럽게 선한 일을 하는 것이다.

 

내면이 왜 시끄럽겠는가? 은혜의식과 공로의식이 부딪혀서 그렇다. -은혜의 반대말은 무엇인가? 공로의식이다.

은혜 ↔ 공로의식
-이 은혜의식은 온전함 이루는 황금사다리이며, 공로의식은 썩은 동아줄이다. 교회가 시끄러운 것은 섭섭함과 공로의식이 충돌하거나 부딪혀서 그렇다. 오랫동안 깨달은 신앙생활에서 온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진짜 은혜를 알면 무익한 종이라고 고백해야 한다. 그렇지 않음 실족한다. 은혜가 되면 생각이 바뀐다. 그러나 우리는 늘 받고 있는 것이다. 은혜로 시작해서 은혜로 마쳐야 한다. 은혜가 신앙의 원동력이다. 이 신앙과 깊이 있다. 은혜 속에서 자라가야 한다. 은혜가 선행되어야 한다.

 

*베드로후서 3:18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이미 구원받은 자는 은혜가 더 필요하다. 주님을 닮아가야 한다. 우리가 어느 순간 신앙이 무디어져 공로의식만 남아있다. 그러나 제대로 회심하면 은혜가 된다 온전함의 등정에 필요한 것은 은혜의 식단이 필요하다. 날마다 식단을 짜고 계발해야 한다. 제일 많이 먹어야 하는 음식이 은혜이다. 계속되는 은혜가 투입되어야 한다. 은혜와 행함은 서로 함께 가야 한다. 그래서 야고보서 로마서는 충돌하지 않는 것이다. 주님 닮아가기 위한 은혜의 식단 필요하다.

 

▷적용은혜는 계속 유통기한 지나면 안 된다. 날마다 사모하라 은혜 없이 하루라도 없음 병난다.
▶은혜는 말씀과 찬양과 기도이다. - 특새 예배가 은혜의 보배이며 선물이다.

 

요약
은혜의 원천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부요하심과 선물을 은혜로 주셨으니 우리는 오직 모든 선한 일을 행하고 능력을 받는 삶이 되어야 한다. 썩은 동아줄과 같은 공로의식을 버리고, 은혜의 황금사다리를 붙잡고 올라가는 은혜의 충만함을 채워가야 하며, 이번 특새에서 크고 놀라운 은혜로 충만해져서 이 시대에서 온전히 치유 받는 자로 살아서 복음의 산 증인이 되어야 한다.

-세례 요한의 증거의 내용은 무엇인가 :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기리킴이니라. 세례 요한은 자기의 사역 초기에 자기 뒤에 올 자를 기대하라고 말했던 그 사실을 듣는 자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요한은 그분의 길을 예비하는 자에 불과했다. 지금 이 구절에서 세례 요한은 자기가 과거에 말했던 그 사실을 최근에 자신이 세례를 베푼 이 예수라는 사람에게 적용시키고 있다. 세례 요한은 자기의 뒤에 오시는 이가 자기보다 더 높으시다고 말하고 있다. 지극히 높으신 자의 아들이라 일컫게 될 그리스도 예수(눅 1:32)께서는 세례 요한보다 앞선 분이셨다. 세례 요한 역시 위대한 인물임에 분명하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고 높으신 그분께 그 높으심을 돌려드리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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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 새벽예배
(주후 2021년 4월 10일)
제목: “하나님의 임재지수 훈련”
말씀: 사무엘상 17:37절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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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7:37)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주님께서 은혜 주시길 것을 기대하면서, 월요일부터 있을 19차 새벽예배에 모두가 다 집중해서 은혜를 받기를 바란다. 모든 영광과 감사를 하나님께 올려드리자. 오늘은 용량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모두가 준비가 되어야 한다. 훈련이라는 말은 준비라는 말과 연관되어 있다. 믿음의 용량을 모든 성도 다 함께 믿음의 용량과 목자의 심정을 주시길 소망한다. 특새에 별관을 다 채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예배로 모이는 것은 부흥을 위해서 특별예배로 여기고 거리 잘 지키고 마스크를 잘해야 한다. 그것도 믿음이다. 믿음의 소원을 보시고 인도하신다. 이번 설교자를 초청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성경을 실천적으로 훌륭한 사역하신 분들이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자, 성경의 최고봉이며 개혁주의의 훌륭하신 분들이 설교를 하신다. 죠엘비키 목사님(월요일), 죤 파이프 목사님(화요일), 마이클 리브스(수요일)-유럽의 복음주의 신학자이시다. 짐 심벌리 목사님-뉴욕에 브로콜린터버너(목요일), 오스 기니스 교수-소명저자(금요일), 폴 칠더스 목사님(토요일), 등이 영상으로 예배 하실 것이다 죤 파이브는 해도니스트(Hedonist, Hedonism). 희락주의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예수님 때문에 기뻐한다는 것이다. 인생이 굴곡이 많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결과와 은혜를 주신 것이다. 팬데믹으로 모셨으니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롭게 되길 현장을 경험하라. 훈련 자들이 기백을 가지고 선봉장으로 집중해서 모두 다 집중해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순전함으로 예배하고 임재지수를 훈련해야 한다. 참된 예배 자, 참된 훈련 자, 세상에서는 선포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참된 예배 자, 선포 자가 되려면, 훈련이 중요하다. 훈련은 준비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패배의식 극복이다. 내일 은혜를 성도를 온전하게 한다.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수 없다. 우리가 그래서 훈련이 필요하다. 신앙생활은 영적인 쾌거를 이룩하는 것이다. 다윗은 칼도 들기 전에 이미 준비된 훈련자였다. 하나님을 철저하게 믿어서 두렵지 않고 물리쳤다. 다윗의 임재지수는 언제부터 비롯되었는가를 생각해보자. 어디로부터 결정되었는가를 보면 성경에 나와 있다. 삼상 17:37절이다. 다윗은 목자의 심정이었다. 내양은 사자로부터 지켜야 했고 한 양도 잃지 않으려고 했다. 그 간절함으로 물맷돌 연습을 한 것이다. 매일이 하나님의 은혜의 물맷돌을 경험하여야 한다. 우리도 모르게 패배의식을 되는 것들을 정리하라. 훈련생들은 어떤 간절함을 지혜로 깨달아서 부족한 것이 모두가 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물맷돌을 경험을 하면 은혜가 충만할 것이다. 아침마다 멘토링을 하는 것은 이 시대 앞에 쓰임 받게 하려고 한다. 하나님의 임재지수로 능력을 이겨내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기억했다. 우리의 특새의 19차에 은혜가 넘쳐서 신앙생활의 승리자가 되어 복음의 헌신자로 거듭나기를 소원해야 한다. 한국교회와 함께 하시길 기대감으로 가지고 기도하고 영적용량을 넓히고 높여야 한다. 아침마다 멘토링을 하는 것은 이 시대 앞에 쓰임 받게 하려고 한다.

 

*본문에 홍해에서 엘라 골짜기까지 왔다. 싸우기도 전에 이스라엘 민족의 루즈 의식으로 메뚜기 의식이 있기에 다윗의 임재지수와 맨탈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골리앗을 쳐부순 것처럼...너는 내 밥이라 했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함을 믿고 철저하게 훈련되어 있었고, 하나님의 임재지수가 준비되어 있었다. 영적 용량을 넓힌 자이다.

 

*삼상 17:37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영적 임재지수, 목자의 심정이다. 사자로부터 내 양을 지키겠다는 마음이 간절함이 물맷돌 연습을 하고 흉학한 동물들이 다 나가떨어졌고, 골리앗을 쳐서 죽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훈련은 하나님과 함께 하셔서 어린양 하나라도 삼킴을 받는 것에서 지켜야 했다. 특새를 간절하게 지켜서 은혜로 충만하여야 한다. 열악한 환경으로 코로나로 인해서 단계로 올리려고 하지만 방역지침을 잘 지켜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기대감으로 영적임재지수를 높여야 한다. 말씀의 은혜와 찬양의 적절하게 주셔서 우리에게 필요한 적소에 맞춤형 찬양이다. 여호사밧이 임재지수 선봉장이 되고 하나님께서 주실 21세기 시대에 맞게 우리를 쓰임 받게 하실 것이다. be still 찬양이 있다. 하나님의 임재지수를 높일 수 있도록 은혜의 인천상륙 작저이 되고 영적으로 잘 무장 되길 바란다. 찬양,,,, Who you say I am 날 주의 자녀라 하시네~I am chosen, not forsaken~You are for me, not against me.


*역대하 32:7-8,
7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8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

♣요약
마음의 정신과 맨탈이 준비되어야 훈련이 온전하며 어떤 환경이라도 극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순전함으로 예배하고 임재지수를 높여야 한다. 참된 예배 자, 참된 훈련 자, 세상에서는 선포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참된 예배 자, 선포 자가 되려면, 훈련이 중요하다. 훈련은 준비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패배의식 극복이다. 내일 은혜를 성도를 온전하게 한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은혜로 영적인 쾌거를 이루는 것이며 생각하는 것을 뛰어넘는 것이다.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수 없다. 우리가 그래서 훈련이 필요하다. 영적인 쾌거를 경험하는 것이다.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지수(臨在指數)
를 높여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의 능력을 가지고 홍해에서 엘라 골짜기까지 온 것처럼, 골리앗에서 다윗이 물리치는 것처럼, 다윗의 준비된 훈련과 간절함은 내 양을 지키기 위함이다. 우리는 매일이 은혜의 물맷돌을 경험하여야 한다. 우리도 모르게 패배의식을 되는 것들을 정리하라. 훈련생들은 어떤 간절함을 지혜로 깨달아서 부족한 것이 모두가 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물맷돌을 경험을 하면 은혜가 충만할 것이다.  우리의 특새의 19차에 은혜가 넘쳐서 신앙생활의 승리자가 되어 복음의 헌신자로 거듭나기를 소원해야 한다. 한국교회와 함께 하시길 기대감으로 가지고 기도하고 영적용량을 넓히고 높여야 한다. 


-여호와의 함께하심에 대한 다윗의 확신은 사울로 하여금 막강한 블레셋을 대항하여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용기와 확신을 주었다. 우리는 어떠한 강대한 것이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고 그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라는 용기와 확신이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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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주후 2021년 4월 7일)

제목: "하나님의 처방전"
말씀: 미가 6:6-8
찬양인도: 이원준 부목사님

설교자: 김대규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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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 6:6-8)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은혜를 사모하며 안아주심 본당과 성도의 온전함 블레싱 수요저녁기도예배에 참여하신 분들을 환영하고 축복한다. 풍성한 기쁨을 나누기를 바란다. 큰 은혜 받고 돌아가기를 바란다. 우리는 몸의 이상이 생기면 병원에 간다. 거기에서 필요한 검사와 의사의 진단과 처방에 따라 치료하고 약을 먹는다. 의사의 정확한 진단과 처방에 따라 치료를 진행해야지만 몸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 그런데 간혹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을 만나지만 자신의 병을 잘 안다고 말한다. 자신이 처방을 해달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 때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본인이 그렇게 잘 알면 병원에 뭐하려고 왔냐고 속으로 말할 것이다. 병원에 오지 말고 자신이 고치지 라고 할 것이다. 본인 생각대로 약을 먹고 치료를 한다면 운이 좋아서 그 병이 고쳐지기도 하겠지만, 대부분 자기 판단대로 처방내리고 약을 먹을 경우 도리어 병이 악화되고 건강을 해칠 가능성이 높다. 의사의 정확한 진단과 처방, 그의 맞는 치료가 이루어져야만 병을 고칠 수 있다.

 

미가 선지자가 살던 지금으로부터 약 2천 800년 전 남 유다는 굉장히 병들어 있었다. 미가 선지자는 요담 아하스, 히스기아 왕이 통치하던 시대에 활동하던 선지자이다. 기원전 8세기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경제적, 군사적, 사회적으로는 안정되고 풍요를 누리던 때였다. 다윗 이후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앗수르 제국이 등장하면서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히던 아람 군대가 일시적으로 물러가면서 이스라엘에게 평화의 시대가 온 듯 했다. 하지만 앗수르 제국의 팽창은 결국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게 되고 남 유다도 예루살렘을 제외한 거의 모든 성읍들이 초토화 되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에서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떠나 형식적인 신앙을 유지한 채 가나안 땅에서 들어온 우상을 늘 함께 섬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사회 지도자들은 약자를 괴롭히고 그들의 토지를 빼앗는 일이 빈번히 자행되었다. 상거래에서는 도덕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사기 치는 것이 일상적이 되었다. 가족 간의 윤리도 없고 지도자들은 악한 음모를 꾸미고, 거짓 선지자들은 예언을 남발했다. 종교, 사회, 가정, 모든 곳이 총채 적으로 병들어 있었다. 이러한 시대에 미가 선지자는 남 유다에서 유다를 향하여서 여호와 심판을 선포하게 된다. 선포만이 아닌 하나님의 회복(回復)과 구원(救援)의 약속도 함께 선포한다. 하나님께서 유다를 향해 경고(警告)하는 것은 무엇인가?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시고, 남 유다가 멸망할 것을 경고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이 하나님 앞에 죄(罪)를 범(犯)했기 때문이다. 남 유다의 지도자들은 공의(公義)를 멸시(蔑視)하고 정의를 무너뜨렸다. 인간의 존엄성(尊嚴性)은 사회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하고 하나님을 찾으며 종교적인 행사를 열심히 열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응답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그들의 죄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啓示)하신 백성들이다.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 가운데 구속(救贖)하신 백성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이들이 이스라엘이다. 그런데 그들이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이 계신 듯 했으나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 하나님 대신에 병거(兵車)와 성(城)을 의지 한다. 그들은 구름을 관찰하고 닭의 내장을 판독하면서 점(点)을 치기도 한다. 우상(偶像)을 좋아한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고 없애라고 하신 우상들이 남 유다 곳곳에 세워져 있다. 하나님이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드셨을까? 금이야 옥이야 모든 것을 희생(犧牲)해서 키운 자식이 기대와 바람과는 정 반대로 탈선(脫線)하고 자기 멋대로 살면 우리는 자녀에게 어떻게 말하는가? 내가 너 같은 자식을 낳고 미역국을 먹었다니... 하면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그렇게 한탄(恨歎)하셨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 아프셨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죄를 떠나서 하나님에게 가야했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떠나 죄를 선택(選擇)했다. 그들이 죄를 선택했기에 그 선택의 대가(代價)를 치러야만 한다. 죄를 지을 때 우리는 반드시 그 결과를 생각해야 한다. 죄가 가지고 오는 결과, 그 엄청난 파괴력(破壞力)의 끝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결과는 정해져있다. 분노(憤怒)의 결과는 무엇이며, 뇌물(賂物)을 주고받았을 때, 그 결과는 무엇인가? 누군가를 미워했을 때, 그 결과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사랑하며,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무관심한 결과가 무엇인가? 모든 죄의 결과는 진노(震怒)이다.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 반드시 진노하심으로 반응(反應)하신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에 대해서 오늘 본문 6장 앞에 1-5절을 다음과 같이 변론(辯論)하신다.

 

*미가 6:1-5절,
1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는 일어나서 산을 향하여 변론하여 작은 산들이 네 목소리를 듣게 하라 하셨나니.
2너희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변론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변론하시며 이스라엘과 변론하실 것이라.

-하나님은 변론을 하시면서 하나님의 의를 기억케 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복을 기억케 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의를 향하셨고, 그들이 그 의와 하나님께서 베푸신 그 복을 기억하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3절에 보면

 

3 이르시기를 내 백성아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슨 일로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너는 내게 증언하라

- 과거를 되돌아 볼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고 은혜를 내려 주시고 그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신 적은 있어도, 한 번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무리한 부탁이나 강요로 그들에게 짐을 주신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노예(奴隸) 생활에서 해방시키신 분이시다. 그들이 노예가 되어서 이집트 땅에서 고통당하던 곳에서 그들을 데리고 나오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때까지 보호하시고 인도하셨다.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의 서곡이었다. 4절에 보면,

 

4 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종 노릇 하는 집에서 속량하였고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네 앞에 보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보내어 율법을 주시고, 아론을 그들의 제사장으로 삼으심으로 은혜의 복을 구하게 하셨다. 여선지자 미리암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셨고, 그분께 부를 노래를 주셨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의 표본이며 하나님의 은혜의 절정이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출범하는 것, 나라 자체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이스라엘은 출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만 지속되어 온 국가이다. 5절에 보면,

 

5 내 백성아 너는 모압 왕 발락이 꾀한 것과 브올의 아들 발람이 그에게 대답한 것을 기억하며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기억하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공의롭게 행한 일을 알리라 하실 것이니라.

-주변의 열강의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은 늘 그들의 방패가 되어 주셨고, 악한 적들의 계략이 도리어 축복이 되도록 바꾸셨다. 이것이 6장을 시작하면서 1-5절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서 변론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과거의 일들을 기억하면서, 현재 그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꼭 붙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잊은 채,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의를 자신들의 짐처럼 여기며, 하나님을 떠나 살아갔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향해 자신들의 억울함을 토로한다. 자신들에게 분노하시면서 징계하시겠다는 하나님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들이 여전히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으며,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께 예배한다고, 섬긴다고 말한다. 하나님도 이스라엘도 함께 동의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 예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처방전(處方전)은 분명하게 다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들고 나온 것은 그들이 1년 된 송아지를 번제물(燔祭物)고 들고 나온다. 번제물은 모든 제사 중에서 가장 값비싼 대가의 제사를 치르는 제사이다. 다른 제사들은 남은 것을 가지고 집에 가서 먹을 수 있는데, 번제물은 완전하게 태우기 때문에 가장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 대가를 치르는 것 역시, 송아지 중에서 가장 최상의 송아지 1년 된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그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원하시는가? 이스라엘은 천 천의 숫양과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가지고 나아간다. 하나님께 귀한 제물에 만족하지 못하시면 더 많은 제물을 들고 나가면 되냐고 하나님께 질문한다. 하나님의 대답은 아니라고 하신다. 세상 제물도, 엄청나게 많은 제물도 아니라고 하신다. 이제 그들이 하나님 앞에 들고 나아가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맞아들이다. 내 허물을 위하여 맞아들을 드릴까요? 한다. 엄청난 희생과도 같다. 자신의 인생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모든 것들을 포기(抛棄)하고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은 것 같지만, 인생의 끝 날까지 포기가 안 되는 것은 무엇인가? 자녀일 것이다. 훈련을 하면서 훈련생들에게 하나님께서 귀한 것을 바치라고 하면, 가장 먼저 기쁨으로 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가장 기쁨으로 바치는 것은 배우자라고 한다. ㅋㅋㅋ 하나님, 배우자는 얼마든지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드린다고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끊임없이 요구하시며 내려놓으라고 하실 때, 마지막까지 안 되는 것이 자녀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 앞에 아들을 내려놓는 것은 참으로 귀한 헌신 같아 보인다. 자신의 기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맏아들, 장자를 바치는 것은 가장 귀한 헌신, 가장 귀한 드림인 것 같다. 하지만, 당시 장자를 제물로 바치는 것은 이방 우상을 섬기는데 자행된 일이다. 하나님께서 율법에 엄격히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최성의 헌신으로 생각하면서 제물로 바치는 일이 빈번이 자행 되었기에 네 맏아들을 드릴까요? 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허물 때문에 희생을 자신이 해야지 왜 죄 없는 맞 아들이 하여야 하는가요? 이런 일이 화가 나는 것은 이방의 우상을 섬기는 풍습이기도 하지만, 하필 맞 아들인지요? 이스라엘을 최상의 제물로 상상하기 힘들 많은 양의 제물도 혹은 자신들이 가장 최상의 헌신이라고 생각하는 맏아들로 경배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만족하실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경배의 시작, 예배의 시작 자체가 잘못되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본문에서 내가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께 경배할까라고 물을 때, 경배하다는 비굴함이라는 뜻을 가진 카파프라는 단어로 사용된다. 진정한 복종과 경외심을 담은 서하흐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굳이 비굴하다는 단어를 가지고 사용하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이 드리던 예배자체가 진정한 인격적 교제, 자발적 복종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단순한 두려움과 종교적 의무감으로 드렸던 형식적인 예배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진실 된 마음이 아닌 형식과 제물에 치중한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 이스라엘이 그들의 죄를 용서받고 화복할 수 있는 예배, 제사는 무엇인가?

 

미가 선지자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하나님께서 선한 것을 보이셨다. 선한 것이 무엇인가? 마가복음 10:18절에 보면, 하나님보다 선한 이는 없다 라고 말씀하신다. 선한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분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선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분명하게 보이셨다. 그 선의
*첫 번째는 정의를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정의는 이것을 뛰어넘는다. 하나님의 정의는 누군가의 잘못에 상응하는 것을 뛰어 넘어서 스스로 설 수 없는 사람들, 힘없고 상처입은 자, 영향력이 없고 존재감이 없는 이들을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고 그들을 돕고 그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도우라고 하신다. 누군가 넘어져있는데 그냥 가는 것은 불의이다. 그 넘어진 자에게 몸을 굽혀서 일으키는 것이 바로 정의이다. 강도 만난 자를 보고 그냥 가는 것이 불의이고, 자신의 것을 내어주고 그들 위해 희생하는 것이 정의라고 이야기 한다. 이스라엘은 왜 불의한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가난한자들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자들을 더 짓밟고 빼앗았기에 그들이 불의했던 것이다. 그렇게 빼앗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올 때, 하나님께서는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

 

*두 번째는 인자를 사랑하는 것이다.
-인자는 히브리어로 ‘해쎄드’이다. 이 말은 자비를 일컫는 말이며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해쎄드는 아가페적인 사랑이다. 무조건적, 무제한적, 끊임없는 사랑이다. 이 해쎄드는 하나님의 언약에서 나온 사랑이다. 이스라엘에서 나온 어떤 조건도 어떤 의무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압제당한 이들을 사랑하시고, 애굽에서 그들을 구출하시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사랑하시며,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 평생에 보호자가 되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해쎄드이다. 이것이 인자를 사랑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너를 포기해도 나는 너를 포기할 수 없다 라고 하신 것이 해쎄드이며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원하시는 예배가 이것이다. 너희와 언약을 맺으며, 나의 마음을 보았다면, 나의 자녀 된 너희가 서로를 이렇게 서로 사랑해야 된다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달랐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 사랑을 사랑했다. 손해가 되거나 내게 이로움을 주지 못하는 사람은 돌아볼 가치가 없는 사회였다. 비참하게 우는 자가 넘쳐나도 국가를 위해서 인권과 아픔을 철저하게 짓밟히는 것이 이스라엘의 사회였다. 이러한 이스라엘을 향해서 하나님은 인자를 사랑하라고 하신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이 예배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세 번째는 겸손이 네 하나님과 함께 하라고 요구하신다.
-겸손한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가?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겸손한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절대 앞서가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조심스럽게 살피고 그 뜻대로 행하기 위해서 애쓴다. 그렇다면 반대로 겸손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생각이 하나님보다 앞선다. 내가 너무 잘났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 없는 것이다. 자기 판단이 중요하다.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이 아예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아쉽거나 내가 부족한 것을 하나님이 채워주시면 된다 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인맥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재물로, 내 삶을 결정하고 채워가고, 그것이 부족할 때, 하나님이 그 부족한 부분만 채워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교만한 사람이다. 이스라엘이 꼭 그랬다. 하나님이 필요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할 때, 우리를 도우면 된다 라고 행동했다. 교만한 사람들은 하나님과 동행할 필요가 없고 자신들이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다.

그러나 겸손한 자들은 하나님을 앞에 두고 그분의 발자국만 따라간다. 왜냐하면 그것이 삶에 있어서 가장 안전하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내리신 처방은 일 년 된 송아지도, 천 천의 숫양도,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도 맏아들도 아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내린 처방이었다.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내린 처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삶의 정의를 행해야 한다. 시시비비(是是非非) 잘잘못을 가리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우리는 서로 미워하고 분노하며 내가 정한 기준을 정의라고 생각하고 상대방을 정죄하는 것이 우리의 사회이다. 힘없고 연약하고 우는 자들,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예배 시간에 그들을 위해 잠시 기도할지는 모르지만, 교회에 와서 그들을 위하여 가끔씩 헌금하는 일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누가 힘들어 하는지, 누가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우리의 몸을 숙여 찾는 모습은 찾기가 힘들다. 우리는 정의를 회복해야 한다. 몸을 숙여서 강도만난 그들이 누구인지 찾아내야 하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 주는 것이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것이 정의이다. 우리는 인자를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살았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가 육신을 입고 오신 성탄절을 우리는 기뻐하고,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살아나신 예수님을 기뻐하고 감격한다. 가장 기쁘고 가장 감격스러운 날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 사이에 그가 사셨던 삶이 없었다면 그의 탄생도 그의 부활로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온몸으로 바라보면서 우리가 그 사랑을 따라가야 한다. 예수님은 우는 자들과 함께 오셨다. 사람들에게 외면 받고, 죄인 취급 받고, 어울리지 못한 자들과 친구가 되셨고, 그들의 병을 고치셨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셨다. 그것이 인자를 사랑하는 것이다. 나와 상관없지만 그들의 아픔에 함께 울고 함께 아파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가나에서 선교하시다고 순교하신 류승렬 선교사님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함께 울었다. 평생에 동역자이며, 남편을 잃고서 자신도 코로나에 걸려서 어찌할 수 없는 김경옥 선교사님을 에어엠브란스를 띄워 모셔왔다. 그 장면을 교회가 함께 지켜보면서 함께 아파하며 함께 울었다. 올해 교회의 사역들 중에서 가장 귀하고 가장 아름다운 사역이었을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울었고, 사랑하기 때문에 온 교회가 힘을 다해 에어엠브란스를 띄워서 김경옥 선교사님을 모셔왔다. 이것이 진정으로 기뻐하는 임무이며, 그것이 예배인 것이다. 이러한 일은 삶의 현장에서도 계속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겸손이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겸손한 사람은 기도할 수밖에 없다. 겸손한 사람은 말씀을 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나는 철저하게 무능력하고, 철저하게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능력과 권세를 가지신 주님 앞에 묻고, 온전하신 주님의 말씀으로 서야 하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보다 앞서가지 않으며, 삶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잊지 않고 모든 순간에 코람데오의 마음으로 행해야 한다. 이 세가지를 기억하여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앞에 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를 바라볼 수가 있고, 하나님의 인자를 우리도 사랑할 수 있으며, 우리가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을 우리의 죽으로 여기신 하나님의 정의 앞에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을 우리의 생명으로 여기신 하나님의 인자 앞에 반응해야 한다. 그 하나님의 정의와 인자하심에 겸손히 행동하는 인생,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이 되기를 소원한다.

 

요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분명하게 보이셨다. 그 선의는, 
정의를 행하는 것이며, 인자를 사랑하는 것이며, 겸손이 네 하나님과 함께 하라고 요구하신다. 우리는 겸손이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받기 원하시는 예배는 우리의 삶 모두를 드리는 것임을 고백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정의로우심 앞에 인자를 사랑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며, 우리의 삶 가운데,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드리는 자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로 이어져야 하는 이웃사랑을 겸손히 실천하여야 한다. 온전한 예배 자는 주님의 뜻대로 구하고, 주님의 뜻대로 돌아보는 자이니, 겸손히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과 동행하며, 우리의 이웃을 돌아보는 자 되어야 한다. 돌아보아야 하고 함께 살펴서 도와야 한다. 이 나라에 지도자의 복을 허락하시기를 기도하며, 코로나를 이길 힘을 주시고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모세가 광야에서 오랜 기간 기도했던 것처럼 모두가 회복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여기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화해를 위한 제안이 나타난다.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은 이제 기정 사실이 되었음으로 이스라엘은 자기의 뜻을 밝히고, 하나님 역시 뜻을 밝히신다.

(1) 이스라엘로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겠다는 뜻을 표현한다(6,7절). 모든 사람은 각자가 죄값을 감당해야 함을 인식하고,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하고 묻지않고 "내가 어떻게 하여야 할까? 여호와께서는 무엇을 기뻐하실꼬? 내 허물을 속하기 위하여 무엇을 드릴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2)그들은 비록 열심은 있었지만 무심코 자기들의 무지를 드러낸다.
1) 그들은 높은 것만을 생각한다. 그들은 '천천의 수양'을 드릴까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속되 제물로 한 마리의 수양을 요구하셨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전체 재산을 다 드려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기를 바란다. 그들은 만일 용납되기만 한다면 자기들의 허물을 위해서 맏아들을, 그 영혼의 죄를 위해서 자기 몸의 열매를 드려야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지로 생각이 허망하여진 자들에게는 자녀들이 자신들의 분이시기 때문에 죄값을 치를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2)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바른 것이 아니다. 이러한 제물 중에 어떤 것들은 하나님께서 제사법으로 제정해 놓으신 것이 사실이지만 이러한 제물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오산이 아닐 수 없다. 율법이 제정한 희생 제물은 중재자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그 재물만으로는, 즉 염소와 수소의 피로는 죄를 없이 할 수 없다. 복음에 맞지 않는 화목 제물은 모두 불합리한 것이다. 더욱이 장자와 몸의 열매를 죽여 제물로써 드린다는 것은 대단히 사악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식들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단 말인가? 자식들은 이미 태어난 자들이 아닌가? 어떻게 그들이 죄값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자식들을 바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조건을 만족시키지도 못하며, 마음의 성결이나 생활의 개혁을 위해 바쳐질 수도 없는 것이다.

(3)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요구하는 바를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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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1년 4월 4일)
제목: ''죽음을 죽이시다''
말씀: 디모데후서 1:10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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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1:10)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죽음을 죽이시다
2021년 부활주일은 우리에게 평생에 부활 주일이 될 것으로 기억될 줄 확신한다. 오늘 우리의 찬양을 주님 받으셨을 것이다. 영 가족 모두가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셔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생명이 말씀, 꼭 필요한 맞춤의 말씀, 지나간 것 다 씻으실 줄 믿는다.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고 하는 것은 무엇으로 증거 할 수 있는가?
-부활 사건, 부활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믿어지면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이다. 부활 사건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에 자연법칙을 만드시고 그것 또한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베풀어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부활 사건이다. 모든 죽음을 폐하신 것을 말씀하신다. 모든 인생은 살다가 죽는다. 그러나 예수님만이 죽으시고 살아나셨다. 예수님처럼 살다가 죽지 않으시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모든 희망과 소망의 회복의 보증이 되시는 것이다. 기도하기를 부활절 이후로 전 세계가 은혜가 되어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길 기도한다. 죽음을 죽이시다는 내년도 부활절에는 마스크가 없어지길 기도하자. 마스크를 죽이게 하게 하자고 기도합시다. 마스크에 나누어준 것을 지금 새롭게 사용하라. 로고를 -He is a life-라고 했다.


1.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확실성.
-모든 인생에 꼭 찾아오는 것은 하나는 죽음이며, 또 하나는 세금이다.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죽음은 아무도 피할 수 없다. 누가 죽음을 죽일 수 있겠는가? 오늘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바울은 본문에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바울은 영적으로 예민해서 로마감옥에서 살아남지 않겠다고 예견했다. 죽음을 맞이하면서 무엇이라고 하는지를 보자.


디모데후서 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Death of death.
-그런 사망을 폐하셨다 죽음을 멸하셨다는 이유는 아무리 백세 시대라고 예나 지금이나 모든 인생의 사망률은 100%이다. 누구나 다 죽는다. 사망을 폐하셨다고 바울이 말하고 있다.



*히브리서 2:14-15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첫째는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마귀를 멸하시며, 두 번째는 또 죽음을 한평생 죽음 앞에 벌벌 떠는 자를 위해 자유 함을 선포하기 위해 죽음을 폐하셨다.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려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다. 우리 주위에 신앙생활 하지 않는 자가 있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깊이 들어가 보면 죽음의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인 도스토에프스키가 총살 직전에 구출된 일이 있다. 그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확실성’과 죽음 뒤에 무엇이 올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은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불안이다. -도스토엡스키-


그래서 죽음 너머에 불확실성 때문에 두려워한다. 이 세상과 불신자들은 죽음이 끝이 아닐까봐 두렵고, 예수 믿는 자는 죽음 끝이 아니기에 두렵지 않다. 크리스쳔은 죽음 이후에 대한 확신이 있다. 우리는 죽음 이후가 확신해서 두렵지 않다.
※대만에서 페러글라이딩을 탄 기억이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죽음이후에 대한 확신과 산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부활에 대한 산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죽이신 예수님을 믿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만한 것을 전하라 한다.


II. 죽음을 폐하신 부활절
예수님은 인간이 수천 년 동안 풀지 못했던 죽음에 대한 수수깨끼를 풀어주셨다. 죽음을 돌파하시고, 죽음을 폐하셨다. 죽음의 힘과 두려움의 능력을 주신다. 부활에 대한 확실한 말씀이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죽어도 좋다는 확실성으로 믿어야 한다. 죽음을 폐하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더 믿고 결연하여 내 속이 믿음의 확신으로 펄펄 끓어올라야 한다.


III. 예수님은 어떻게 죽음을 폐하셨나?
-첫째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심으로 죽음을 이기에 하신다.
정말 이 죽음이후에 우리의 죄 문제 해결을 하셨다. 심판을 해결하셨다. 모두가 죄로 인해 괴로워한다. 근본적으로 죄를 가지고 태어났기에 그렇다.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우리의 죄를 해결해 주셨는데, 이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지만, 성경을 확실하게 말씀하신다. 인간의 죄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밖에는 해결 방법이 없다. 어떤 대단한 권력자도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지 못한다. 대통령도 죄를 용서하지 못한다. 어떤 죄도 예수님 피로만 용서가 되는 것이다. 모든 인간들은 그래서 예수님 앞에 죄를 용서받기 위해 영접한다. 십자가를 통해서 용서받는 순간 모든 짐들이 홀가분해진다. 우리가 죄를 용서받게 되고 십자가를 통해 용서를 받으면 은혜의 강에 들어가게 된다. 십자가의 강을 체험하면 더 이상 우리에게 마귀가 추적을 못한다. 마귀와 사탄은 우리의 죄의 냄새를 맡는다. 사탄은 하이에나와 같이 달려들고 추적한다. 시달리게 하고 압박하고 탄식하게 한다. 십자가의 강, 은혜의 강으로 들어가는 순간 더 이상 우리를 추적할 수 없다. 용서의 강에 들어가는 것이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십자가의 강, 생명의 강, 용서의 강에 들어가서 은혜를 받아야 한다.


-두 번째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심으로 죽음을 이기게 하신다.
그래서 죽음을 이긴다. 영생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영생을 주셨다. 해방되었다. 자유함의 존재이다.



-세 번째는 예수님이 죽음의 수의를 벗고 생명의 새 옷을 입는다.
현실에서는 일상에서도 누리지 못하고 죽음의 수의를 입고 사는 자가 많다.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죽음의 수의를 벗고 생명의 새 옷을 입는다. 현실에서는 일상에서도 누리지 못하고 죽음의 수의를 입고 사는 자가 많다.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11: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영생을 삶을 맛보기를 바란다. 모든 수의 옷을 벗고 생명의 옷을 입고 걸어 다녀야 한다. 주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어야 한다.

*고전 15: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죽음의 권세를 철저한 권세를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나의 잘못된 수의를 벗어던져라.

성도의 죽음이 올 때에 고통이 와도, 주님의 품에 안는 것을 믿고 육신으로 슬픔은 버리고 그리스도의 죽음은 영광의 문이다. 그의 죽음으로 우리가 담대하고 평안해졌다. 임종에 있어서 인생에서 가장 편안한 잠자리이다. 죽음이 최고의 순간이다. 성도의 임종의 순간은 인생에서 가장 평안한 잠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께 올라가는 불 마차 불 병거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독수리의 날개, 천국의 황금 문으로 가는 은혜의 통로이다. 그래서 믿는 자는 임종이 가장 평안한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의 확신으로 살아가야 한다.


요약
부활 사건, 부활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믿어지면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음을 한평생 죽음 앞에 벌벌 떠는 자를 위해 자유 함을 선포하기 위해 죽음을 폐하셨다.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려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다. 인간의 죄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밖에는 해결 방법이 없다. 어떤 대단한 권력자도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지 못한다. 대통령도 죄를 용서하지 못한다. 어떤 죄도 예수님 피로만 용서가 되는 것이다. 모든 인간들은 그래서 예수님 앞에 죄를 용서받기 위해 영접을 해야 한다. 십자가를 통해서 용서받는 순간 모든 짐들이 홀가분해진다. 우리가 죄를 용서받게 되고 십자가를 통해 용서를 받으면 은혜의 강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위해서 고난 당하시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복음을 위해서 고난 당하는 것이 무엇이 그리 대단하겠는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서 사망은 폐지되었다. 한때 원수였던 사망이 이제는 친구가 된 것이다. 사망은 우리를 고난과 죄가 가득찬 세상에서 완전한 평화와 순결의 세계로 데려다 주는 문인 것이다. 사망은 복음을 믿는 사람들을 이기지 못하지만, 반대로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사망을 이긴다.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다'(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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