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주후 2022 11 27)
제목: "무엇이 부흥을 가능케 하나?"
말씀: 사도행전 4:7~20
찬양인도: 쉐키나(이원준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박인기 부목사님(1)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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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4:7~20,
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9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14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15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16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17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하고.
18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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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오늘 ‘무엇이 부흥을 가능케 하는가?’ 부제로는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겠다. 오늘 여러분들이 회중 찬송을 불렀는데 ‘천지의 있는 이름 중에’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하셔서 그 이름을 부르는 그 이름으로 우리에게 참 복을 내리신다고 하신다.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 모두에게 참된 복이 임하는 주일이 되길 바란다. 저희 교회는 지난 한 주간 새 생명축제, 다섯 번의 집회를 통하여 2001명의 영혼들이 주님 앞에 결신하고 새 생명을 얻는 은혜를 받았다. 지금 복음이 이제는 선포가 안 된다. 이제는 전도해도 잘 안 된다. 하는 그런 어떤 패배주의가 좀 있는데 한국교회 복음은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다. 2000여명이 주님 앞에 돌아올 정도로 사랑의 교회는 계속적으로 매력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발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2:15,
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그리스도의 향기로서 매력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고 잃어버린 영혼들이 나와서 하나님 앞에 예배할 때, 하나님은 정말 기뻐하신다. 그리고 오늘은 새 생명축제 이후에 우리 성도들, 기존 성도들과 새롭게 구원 받아 오신 분들이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하면 좋으며 어떻게 신앙의 방향을 정해야 하나에 대해서 그런 차원에서 본문을 가지고 부흥을 지속하며 예수님의 능력이 어떤 식으로 우리가 체험되어야 하는지에 함께 나누겠다.
 
*사도행전 4:4,
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이 본문은 얼마나 대단했는지, 오늘 앞에 3장에 보면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자가 기적적으로 치율ㄹ 받았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사람은 나이가 40세쯤 되었다. 여러분 법칙을 초월할 수 있다. 우리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니 나면서 걷지 못한 자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니까 하루에 본문에 보면 5천명이 예수를 믿었다. 그것도 남자만 오천 명이다. 그러니까 여자 분들과 아이들을 합치면 약 2만 명 정도의 놀라운 부흥이 일어난 것이다.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그 앞에 2장에 보면 베드로의 설교를 보면 하루에 3천명이 주님 앞에 결신하는 부흥도 일어났지만 오늘 사도행전은 남자 장정만 오천 명이었다. 그러니까 부흥의 보고서 가운데서도 노른자위의 노른자위이다. 부흥의 최고로 집중되는 노른자위이다. 그래서 이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 다음은 이제 부흥이 일어나면 항상 두 가지가 온다. 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흥이 일어나는데 예수님의 이름을 말하지도 못하게 하고 박해가 있었다. 그 다음에 5장에 보면 내부분열이 일어난다. 부흥이 일어나는 곳에, 역사가 일어나는 곳에 항상 두 가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예견을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내부 분열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나 개인이나 가정에 어려움이 있기 전에 우리 하나님이 돌이켜 보면 지난 8월 13일에 청계산 산상 기도회에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한 달 동안 강단 기도도 은혜 주셔서 9.26 한국교회 섬김의 날, 하나님께서 부흥을 주실 줄로 확신한다. 조금 여러분들 9월 26일 한국교회 이틀 동안 한국교회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줄 확신한다. 대단하다. 새벽에도 일어났고, 특별부흥회에도 부흥의 은혜를 주신 줄로 믿는다. 칼 세미나, 지난주일 새 생명축제에서 2천여 명이 결신을 하는 이런 은혜를 주셨는데 그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갖는 예견, 통찰력이 어려움을 당하기 전에 박해도 있을 수 있고, 어려움 당하기 전에 내부분열도 있을 수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미리 잘 생각하고 계속해서 부흥을 지속하는 것은 참으로 가치 있는 줄 믿는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부흥과 함께 따라오는 박해와 내부분열을 이겨낼 수 있는가?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어떻게 감당 할 것인가?
 
I.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부흥을 가능케 한다.

*사도행전 4:7,
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사도행전 4:10,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초대교회의 성도들, 뭔가 이 부흥의 은혜를 계속 지속할 수 있는 무언가 원인이 무엇인가?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계속 유지 하는 한 개인이나 가정이나 올 수 있는 수많은 예견들, 수많은 일들을 극복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일 때마다 모든 대화가 삶의 주제였다. 그들은 모일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을 찬양했고, 그들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을 증거했고, 심지어 핍박을 받을 때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싸웠고, 병자들을 앞에 놓고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벌떡 일으켰고, 귀신과 악령의 역사 앞에서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영적 전투를 한 것이다. 한 마디로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빼놓고는 할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예수님의 이름을 빼놓고는 할 말이 없다. 예수님의 이름이 그 분들의 주제였다. 예수님의 이름을 통하여 권능을 일으켰다. 오죽하면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빌립보서 2:9~10,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예수님의 이름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바울은 아예 선포를 하고 자기의 체험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늘에 있는 자들도 예수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과 구원을 선포한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이미 예수님 믿고 먼저 구원 받아 주님에 품에 안긴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 우리 먼저 간 신앙의 선대, 모든 분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는 줄로 확신한다. 땅에 있는 자들, 저와 여러분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 예수님 이름 앞에 무릎을 꿇도록 그리고 땅아래 있는 자들은 누구인가? 사탄에 있는 모든 자들, 모든 잘못된 사탄의 궤계 그리고 사탄의 속아서 모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하늘에 있는 자들이나, 땅에 있는 자들이나, 땅 아래 있는 자들이나 모두가 다 예수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이다. 놀라운 그 이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 앞에 누구든지 무릎을 꿇기만 하면, 여러분과 제가 예수님을 높여드리고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영광을 돌리기만 하면 예수님 이름 앞에 부복(俯伏)하기만 하면 웬만하면 다 은혜를 받는다. 웬만한 어려움을 주님이 다 해결해 주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부간의 갈등, 예수님을 이름을 부르면,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응답하시리라. 하셨다. 가족 간의 갈등, 혹은 병고나 재정적인 문제로 어려울 때, 인생의 사면초과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오늘 예수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기만 하면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는 결말을 하나님은 허락해 주실 것이다.
 
예수님이 이름에는 인격이 담겨있다. 너무나 이것은 신비한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적인 치유를 받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가 어떻게 베드로와 요한이 알겠는가? 예수님의 이름을 전혀 모르는 사람을 인격적으로 서로 알 수도 없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 앞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베드로와 요한을 알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이 사람들과 네트워킹 되게 하신 것이다.
 
*사도행전 4:4,
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예수님의 이름 앞에 모든 오천 명이 네트워킹 된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21세기 현재에도 그대로 통하는 것이다. 우리가 동남아시아, 미국, 유럽 같은 곳에 이 복음을 전하고 난 다음에 우리가 특별히 예수님 안에서 신앙을 같이 갖은 사람들이 처음 만나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같이 기도하고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처음 만나도 지역을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하고, 문화를 초월해서 한 형제, 한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이게 예수님의 이름이 가진 능력인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름을 중요시 생각한다. 아브람➔아브라함으로, 야곱➔이스라엘, 시몬➔베드로로 이다. 우리 동양에서도 입신양명이라는 말이 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말씀은 예수님의 이름의 소중성,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 그래서 오늘부터 대강절이 시작되었다. 오늘부터 예수님 탄생까지, 25일까지, 예수님을 목상하고, 예수님을 특별히 묵상해야 하는 것이다. 이사야 9장 6절에 보면,
 
*이사야 9:6,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정사를 매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통치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삶을 통치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에 담긴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Wonderful). 모사라(counceller), 어떤 어려운 형편에서도 우리에게 필요한 상담도, 방향도 제시해 주신다. 전능하신 하나님(Allmight God), 오늘날 변화무쌍하고 앞뒤가 힘든 이런 상황에서도 주님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시다(Everlasting Father). 그 다음에는 예수님의 이름이 가는 곳마다, 주님은 우리에게 평강의 왕(Prince of Peace)의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이시다. 그러니 오늘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주시는 이 방향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으로서 확인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놀라운 예수님의 이름의 존귀함에 존재를 또 다른 자가 알고 있는데 그는 바로 사탄이다. 사탄은 어떠하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말하지 못하도록 박해한다. 예수님의 이름이 전파되는 것을 너무 싫어한다. 17절에 보면
 
*사도행전 4:17,
17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하고.
-그들은 지금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에 바리새인과 대 제사장들이 대단한 것 같지만 그 순간에는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지 못했다. 더 퍼지지 못하도록 위협을 가했다. 그럴 때 우리는 중요한 요절이 있는데 20절을 보면,
 
*사도행전 4:20,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참 대단한 고백이고 선포이다. 그리고 오늘 요절, 주보에 나와 있다. 12절에,
 
*사도행전 4:12,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예수님의 이름만이 우리에게 유일한 구원자가 된다는 것이다. 오늘 새 생명축제를 통하여 구원받은 분들과 우리 온 교우들이 평생을 확인하고 지속하고 우리 것으로 고백되어야 한다. 그 이름에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름은 비길 데가 없다. 예수님의 이름은 놀라운 그 이름이다.-His name is wonderful.!!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II 예수님의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저는 어릴 때부터 저의 부친이 “젊은 아이들은 요즘 예수라고 부르는데 너는 예수님이라고 하라.”고 하셨다. 이왕이면 예수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식사 기도하는 것조차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을 망설이는 자도 있다.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능력에 확신이 없다. 예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고 약해진 사람들도 있다. 왜 그런가? 예수님의 이름을 잘 모르거나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머리로만 알고 가슴까지 내려오지 않았거나 이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끄러워하는 분들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2천 년 전에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끄러워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 이유는 누가복음에 있다.
 
*누가복음 9:26,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무슨 말인가? 예수님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예수님도 아셨다. 초대교회에도 예수님을 부끄러워하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당시 로마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우습게 알았다. 아주 가난한 식민지에 예수님은 가난한 여인의 아들이었고, 목수였고, 십자가에 못 박힌 어떤 범죄인이었고, 강도들과 함께 처형된 정도로 생각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자들이었다. 헬라인들은 헬라 철학을 가지고 헬라철학 차원 앞에 예수님이 전한 복음이 어리석고 유치하고 미련한 것이라고 경멸했다.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복음을 그는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지난 토요비전새벽예배 때에 간증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왔다. 와서 “나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는 보수적이고 공화당이라고 했다. 그분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나라 대통령, 여러분 지금 우리는 회사에서 학교에서 비지니스에서 사회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하고 우리 자녀들이 학교에서 기독교인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 과학시대에 어떻게 예수 믿고 너 성경이 답이라고 할 때마다 이렇게 말해 주어야 한다. “너 과학을 적당이 알면 무실론 자가 되지만, 과학을 깊이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게 된다.”라고 하라. 우리는 당신 같은 지성인이 성경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아직 모른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해야 한다.
 
III.예수님의 이름이 지금도 세계역사도 바꿔놓는다.
-예수님의 이름은 세계역사를 바꾸었다. 멀리갈 것도 없이 100년 만에 수많은 종교들 가운데 백 년 만에 민족 종교 가운데 유일하다. 대한민국에 예수님의 이름이 들어와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예수님의 이름을 빼놓고 우리나라가 역사를 해석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의 예수님의 이름이 들어오고 난 다음에 한글 성경이 들어오고 한글 성경에 띄어쓰기 제대로 되어서 글 답게 만들었다. 한글이 제대로 정리되고 교육이 제대로 실천되고, 제대로 들어와서 연세대학, 숭실대학, 이화여대, 배제, 경신 등이 신학교가 되었고, 예수님의 이름이 들어와서 병원, 병원다운 병원이 되었다. 광주에는 기독병원, 전주에는 예수병원, 부산에는 일신병원, 대구에는 동산기독병원, 기독이라는 예수 이름의 병원이 되었다. 곳곳마다 학교, 병원, 대학 모든 것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특별히 여성들의 권익이 신장되었고 미국에 노예들의 해방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되었다. 그래서 그 전에는 고려는 귀족의 사회, 조선은 유교의 나라였지만 1946냔 대한민국 건국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건국되고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 처음으로 대한민국이 귀족과 양반들의 나라에서 국민들과 백성들의 나라가 되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1886년에 이화학당을 개설한 스크랜트 부인이 있다. 이분은 이화학당을 52세에 며느리랑 와서 선교를 했다. 처음에는 이화학당을 시작할 때, 1889년에 20여명이었다. 스크랜튼 부인이 전국을 다니면서 아이들을 모았는데 한국의 아이들에게 영어와 기초과목을 고등과목을 가르쳤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자랑스런 한국인이 되라고 했다. 양화진에 안장되어 있다. 사랑의 교회의 이대 나온 사람은 겸손하여 예수님의 이름이 대한민국을 변화시켜야 한다. 강화도에 홍의 마을에 복음이 처음 들어왔다. 마을 전체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처음 믿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은 후에 이름을 바꾸었다. 예수 믿고 교인 된 것은 마치 옛 자아가 죽고 새 사람이 된 것을 의미하는데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듯이 거듭난 우리가 새 이름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성은 못 바꾸어도 이름은 바꾸자고 했다. 그래서 예수 믿고 믿을 신, 그리스도의 사랑 애, 능력 능, 은혜 은, 은혜 혜, 충성 충, 봉사할 봉, 거룩할 성, 바랄 희 등으로 족보에도 이름을 새롭게 올렸다는 것이다.
 
Ⅳ. 예수님의 이름은 어떤 핍박도 뛰어넘는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박해가 온다고 했다.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하는 자들에게는 오늘 날에는 좀 교묘한 형태로 나타난다. 한국 그리스도인이 받는 초대교회처럼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반기독교적인 정서, 반기독교적인 문화, 반기독교적인 교육, 특별히 대학 강단에서 교수들이 잘못된 가르침과 잘못된 반기독교적인 것과 잘못된 언론들이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럴듯한 말로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도 나사렛 사람 목수로 비하했다. AD4세기 기독교가 공인 될 때까지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어마한 핍박을 받았다. 네로 황제부터 시작으로 디오크렌티아노스 황제까지 오죽하면 10대 박해가 있을 정도로 어마한 핍박이 있었다. 요즘 서양에서도 하다가 힘들면 f자로 욕을 한다. 예수님의 이름을 막 말한다. 어느 수도원에 하다가 무엇이 안 되면 막 예수님의 이름을 막욕을 하기도 한다. 우리 주위에 기독교를 핍박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His name is wonderful.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능력을 회복하자. 예수님의 이름은 능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 예수님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소원한다. 그 이름이 우리에게 역사하신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할 때, 역사가 일어난다.
 
*사도행전 4:30,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몸이 아픈 자, 인생살이에도 짊을 지고 있다면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의 영적 마패를 사용하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길 소원한다. 놀라운 그 이름 찬송을 할 때, 치유가 있기를 원한다. 내 삶의 애환과 기도의 제목을 이 찬양에 올려라. 이 찬송이 강력한 기도의 제목이 된다.
 
*요한복음 16:24,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약
박해와 분열도 통치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확신하며,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우리 모두가 삶의 현장에서 나는 예수 믿는 자라고 고백하여야 한다. 우리가 영적인 거룩한 기백을 회복하여 수많은 난제들이 해결되길 기도해야 한다. 역사를 바꾸신 예수님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받들어서 다음 세대를 세우고, 온전한 믿음으로 우리가 예수님의 전권대사로서 살아가기를 실천하여 주님을 기쁘게 하는 자녀로 살아야 한다.
-베드로가 성령 충만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담대히 선포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박해하여 복음 전파를 막으려 했으나 베드로는 오히려 이것을 복음 증거의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성도들도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낙심하거나 두려워 말고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선용해야 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생애를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비유했다. 집 모퉁이의 머릿돌은 승리하신 예수님, 곧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리킨다. 사도들을 위협한 장로들-그들은 사도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도, 가르치지도 말라’고 협박했다. 공회원들은 정당한 방법으로는 사도들의 답변에 반박할 수 없으므로 사도들을 부당하게 위협했던 것이다. 이처럼 진리를 위협으로 막아 보려는 생각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들에 대하여 베드로와 요한은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 옳다고 말하였으며, 또 자신들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답변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명령에 어긋난 법률을 단호하게 거부한 베드로의 태도는 초대 교회 이후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으며,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견지(堅持)되어야 할 황금률이 되고 있다.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2년 11월 26일)-신생아강단축복기도&포인세티아봉헌식

제목: "평생의 기도제목"
말씀: 시편 25:12~14
대표기도:
찬양인도: 목양3팀 찬양(‘아름다운 우리교회’ 찬양)
말씀읽기: 이미란 자매(청년2국), 이의택 형제(대학7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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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5:12~14,
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13 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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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벽 기도시간에 교회로 신생아들이 나왔다. 코로나 이후에 처음으로 오늘 이 신생아 강단 기도를 하게 되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하나님께 감사영광 돌리자. 우선 우리가 토요비전새벽예배인데 토요비전 새벽예배의 목적 중에 하나가 믿음을 다음 세대에 계승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세대 믿음을 계승하는 것 자체가, 오늘 아이들을 강단에 올라와 있는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6개월 전에 주한 이스라엘 대사의 안식일 초대를 받아서 갔는데 거실에 중동 부인이 앉아있었다. 이스라엘 대사 집에 중동 부인이 앉아있었다. 그런데 예멘 출신의 이스라엘 사람이다. 대사는 미국출신인데 부인은 예멘 출신 중동 사람이다. 완전히 얼굴도 다르지만 대사의 부인이다. 유대인으로서 달리 살았지만, 서로 유대인들이라 세대차이, 신앙차이, 문화차이를 못 느끼고 산다고 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같은 구약성경 토라로 공부하고 그렇게 훈련을 하니까 다른 곳에 살아도 문제가 없는 것이다.

 
자, 오늘 이 시간, 신생아 기도회를 하는 동안에 여러분들의 자녀들도 믿음이 계승되기를 기도한다. 그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사랑의 교회는 토비새를 통하여 신앙차이, 세대차이, 문화차이가 없게 하여 주시길 기도한다. 간절한 기도의 현정이 될 것이다. 오늘 우리 아이들 가운데 20명 정도 신생아가 강단에 올라와 있다. 여러 가지 사연들이 많다. 최윤동, 종로구에서 왔는데, 한 달 밖에 안 되었다. 그 다음에 보니까 김예덴도 있다. 그 다음에 김연우도 있다. 연우는 충남 천안시에서 왔고, 그 다음에는 김라엘이 있는데, 라엘이는 47세에 첫 아기를 낳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태어났다. 결혼하고 6번의 유산으로 희망이 안 보였는데 하나님께서 사라처럼 47세에 자녀를 주셨다. 그 다음에 20번 윤서린 부흥헌신 새벽기도회가 시작된 10월 8일부터 지하철을 타고 와서 계속 예배드린 후 태어났다. 그러니까 교회 근처에서 있는데, 기도의 지팡이까지 받았는데도 안 오는 것은 안 된다. 시골에 군 단위 마을에서는 일 년에 한 명도 안 태어난 곳이 많다. 우리 교회는 상당히 많이 태어난다. 남자애가 이렇게 예쁘다.
 
♪최윤동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김예덴에게 향하신, 진하은에게 향하신, 김은빈에게 향하신, 신하송에게 향하신, 김연우에게 향하신, 김예서에게 향하신, 최하은에게 향하신, 김라엘에게 향하신, 전은솔에게 향하신, 최지아에게 향하신, 이선우에게 향하신, 김소하에게 향하신, 이상윤에게 향하신, 방은송에게 향하신, 김예야에게 향하신, 이시연에게 향하신, 배지영에게 향하신, 윤서린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 영원 영원하시도다!!~~영원 영원 영원하시도다!!~아멘, 한국교회는 주일학교가 문 닫으면 안 되는 것이다. 다음 세대는 아이들이 이어가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 계속 이런 은혜를 받는 한 한국교회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전 세계 기독교 리더쉽은 이런 아이들을 통하여 배출되게 될 것이다. 새벽에 하필이면 나오게 하느냐면, 새벽에 나와야 야성을 갖는 것이다. 어떤 난관도 돌파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다. 우리 기도하자.
 
하나님, 이 새벽에 우리 아이들, 이렇게 나와서 신생아강단기도회에 축복을 받게 하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이 아이들이 평생 부모의 믿음 안에서 이 아이들이 세대가 계승되게 하시고 이 아이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의가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며, 이 아이들 가운데 평양시장도 나오게 하시고, 이 민족의 지도자들이 배출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할렐루야!!~ 우리 교회의 수천 명의 성도가 올려 드리는 기도가 반드시 상달될 줄 믿습니다. 이 아이들이 자라가매 사무엘이나 예수님처럼 지혜와 믿음이 자라가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사랑 받는 평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 있는 줄 믿사오니 이 아이들이 평생에 하나님의 능력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부모들이 이 아이들을 키울 때에 내 자녀이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키우게 하시옵소서, 모든 교구 식구들, 이 아이들을 축복하게 하시고, 모든 교구 담당자들이 사명으로 이 아이들이 잘 자라 수 있도록 기도의 후원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토요비전새벽예배에 귀한 은혜를 주신 주님을 찬양하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 올려드립니다. 아멘!!~ 오늘 선물들도 잘 받아가길 바란다.
 
 
▶오정현 담임목사님-“평생의 기도제목”-산상기도회.
 
*시편 25:12~14,
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13 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여러분들이 받으신 순서지를 보자. 보면 제일 위에
*토비새에 나오면 평범한 인생이 신적개입을 통하여 비범한 인생이 된다.
*토비새에 나오면 세대차이가 없다.
*토비새에 나오면 거룩한 습관과 환경이 변화되고 조정된다.
-제가 이 토비새를 여러분들에게 말씀하고 강조를 하고 중직자들에게도 그러하고, 사랑의 교회가 주님 앞에 계속 주님 앞에 쓰임을 받으려면, 계속 가는 동안 토요비전새벽예배(토비새)가 영적인 중요한 토대와 뒷받침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왜 그러하는지를 보면 일단 신앙의 믿음의 계승이며, 이것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적당한 것 가지고 세상을 못 바꾼다. 이제는 적당히 해서는 안 된다. 전에 선대 목사님이 “오목사가 불쌍하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그 옥목사님의 시대만 하더라도 강남에 설교만 열심히만 하면 교회에 열심히 하면 교회가 다 부흥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는 SNS가 발달되고 인터넷 시대가 되어서 우리 시대는 다 까발려지는 시대라서 어떤 영권과 능력과 기름부음이 없이는 신앙은 목회를 못한다는 것이다. 저는 지금 현 시대의 목회자들의 30대 40대를 보면 정말 불쌍하다. 최고 불쌍하다. 옛날에는 책을 좀 읽으면 감동이 되고 시를 읽으면 감동이 되고 무언가 이렇게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고, 또 거룩한 이미지네이션이 일어나고 이런 것이 다 있는데, 지금 아이들은 스마트폰이 다 노출이 되어서 거룩한 상상력이라든지 어떤 문학 사학 역사, 철학에 이런 깊이가 있다든지, 이런 것들이 많이 없기 때문에 이런 다음 세대들을 앞에 놓고 변화를 일으키고, 비전을 갖게 하고, 세상을 바꾸고, 능력을 갖게 한다는 것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적당히 흘러가는 일도 안 되고 적당한 생각 가지고는 안 되고 무언가 달아야 한다. 그래서 이 지팡이를 왜 가져오라고 하는가? 이 기도의 지팡이를 왜 가져오라 하는가? 무언가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충분히 감사하고 충분히 귀하고 충분히 은혜 받고 우리 교회만으로는 모두가 축복이고 모두가 너무 좋다. 우리 교회만으로 너무 좋다. 그런데 왜 이렇게 거룩한 최선과 몸부림을 다하는 이유가 무언가 하면, 이제는 적당히 해서는 안 되는 시대이다. 앞으로 각 자리마다 자리를 지정해 드릴 것이다. 우리는 적당이가 아니다. 우리는 무언가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의 지팡이를 들자고 하는 것이다. 기도의 지팡이, 말씀의 지팡이, 비전의 지팡이를 들게 되는데, 이것을 들고 기도를 하겠지만 여하튼 우리에게는 적당한 것으로 안 되고 이제는 토요일마다 은혜 주시는 이 현장에서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여러분에게 보여주시는 큰 기름 부으심과 신적 개입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 숭실대학교에 가면 기독교 박물관이 있다. 거기 가면 숭실대학만 갖고 있는 중요한 국보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 안중근 의사가 휘호를 쓴 게 있다. 대부분 안중근 의사를 보면 옛날에 ‘일일 부독서 구중생극형’(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아난다)라는 말이 있다.
 
그 기독교 박물관에 가면 또 딱 하나만 있는 게 있다. 뭐냐면, ‘인무원녀 난성대업((人無遠慮 難成大業-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사람은 큰일을 이루기가 어렵다), 멀리 앞을 보지 못하면 큰일을 이루기가 어렵다. 여순 감옥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쓴 글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멀리 생각하고 크게 생각하지 않으면 무언가 이루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니 토요비전새벽예배에 나오면 여기에서 기도하고 매어달리고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은혜의 산에 올라가서 우리의 삶에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무언가 갖고 있어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주 한 시대가 끝나고 또 한 주가 다가오고 피니쉬, 스타트 이렇게 해야 되는데, 지난 주까지 무엇을 했는가? 우리가 달려오면서 새생명축제를 다 했다. 새생명축제의 결신을 2010명 정도이다. 2001명이 내가 구세주를 믿겠다고 결신하는 하는 것은 어마한 일이다. 지금 이런 기독교에 대해서 문화, 정치, 상황 가운데서 이천 여명이 주일 저녁, 4번에 걸쳐서 집회를 하면서 이런 은혜를 받은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제 새생명축제 끝나고 이제는 양육하고 더 철저히 해야 된다. 우리는 이것을 감당할 영권의 능력이 없이는 감당을 못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연말연시에 가져야 할 기도의 제목은 이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본문을 보자 시편이다. 기도의 제목을 갖고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응답하시리라 믿는다.
 
자, 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 없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멀리 내다보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명이자 기도의 제목이다. 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 없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 그렇게 되려면, 적어도 평생 기도하는 제목이 있어서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오늘 시편 25편은 다윗의 시이다. 다윗이 한 생애를 살아가고 난 다음에 그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마치 시편 23편 정도의 수준으로 깊이 있는 내용이다. 그 깊이 있는 내용 가운데에 시편 25편 7절에 보면,
 
*시편 25:7,
7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지금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에 허물들이 많다. 수많은 약점과 부정한 점들이 다 있다. 젊은 시절부터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말아주시고, 다윗도 젊을 때, 많은 허물이 있었고 부족함이 많았다. 주님은 다 강물에 다 떠나보내게 하시고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겠냐고 묻는다.
 
.*시편 25:10,
10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삶에 매일 순간마다 인자하심과 진리의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선포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신앙의 모든 삶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언약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 이것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멀리 내다보아야 한다. 지금 적당한 것으로는 안 된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어떤 하나님이 주신 길과 비전과 큰 소명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데, 그걸 할 수 있도록 우리의 어떤 토대와 기초가 무엇이냐면, 언약과 증거가 있어야 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강단에서 외쳐지는 것이 여러분들에게 기도의 지팡이들만 한 언약과 증거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언약과 증거, 오늘 우리 아이들이 올라와서 축복을 받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훈련을 받는 것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 노회 출전할 아이들이 있다. 다 일어나서 주일학교 이 아이들이 성경고사를 주님께 영광 돌리는 귀한 아이들이다. 전국 성경고사대회가 곧 있을 것이다. 목요일에 전국에서 온 아이들, 전국의 5천명의 아이들과 학부형, 교사, 만 명이 모여서 여기에서 전국성경고사대회와 찬양대, 암송대회를 하는데, 참 특별하다. 언약과 증거가 있을 때, 우리 이 시대 앞에 인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단, 언약과 증거가 있도록 확실히 되도록 기도해주고 격려하자.
 
오늘 다윗에게는 자신의 인생을 평생 지속시키는 시편 23편에 말씀도 있지만, 자신의 평생을 지속시키는 언약과 증거가 있었다. 흔들림 없는 언약의 말씀, 다윗의 평생을 운전해 가는, 우리로 말하면, 우리를 평생 운전해 갈 수 있는 평생의 언약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 언약의 말씀을 가지고, 내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응답하시리라 믿는다. 자 제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적당이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거듭 강조한다. 다윗이 오늘 가졌던 그의 인생을 운전해 가고 인생을 이끌어가게 하는 그의 인생의 토대가 되고 붙잡는 말씀이 있다. 12절부터 오늘 보면 첫째,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이냐, 마지막 14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라.
 
다윗의 한 평은 언약과 증거의 인생이었는데, 25장 12절에 앞부분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누구이냐? 14절에 보면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라. 하신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반드시 언약의 말씀이 필요한 것이다. 토요일에 나오면 좀 부담스럽지만 성경 암송하면 더구나 열 구절이다. 오늘은 열 구절을 암송하는 게 처음 오시는 분은 좀 부담스럽다 할지라도 훈련이 되면, 그것은 평생 언약의 말씀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 말씀이 여러분을 지켜 주실 것이다. 다윗을 지켜 주시는 언약의 증거가 무엇인지를 보자.
 
*시편 25:14,
14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시편 25:12,
12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첫 번째 택할 길을 가르쳐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오늘 첫 번째 기도의 제목은 하나님, 오늘 이 자리에 모든 분들이 삶에 하나님이 택할 길을 보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삶은 선택의 결과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남편, 아내, 진로, 만남...인생은 결정의 순간순간들이 택할 길을 잘 모아 놓는 것이 그게 인생인 것이다. 여러분들의 삶의 이력서가 무어냐면, 과거에 무엇을 선택하는 것에 따라서 결정되었다.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아내를, 남편을 어떻게 선택하고, 내가 어떻게 내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고, 모든 순간마다 택한 길이 인생이 역사이다. 저와 여러분의 삶은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달려있다. 오늘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택할 길을 보여주시옵소서! 해야 한다.
 
 
*시편 25:13,
13 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두 번째, 영혼이 평안하고 마음이 평안하게 해주길 원한다.
-두 번째로 다윗이 가졌던 언약의 중요한 토대는 내 영혼이 평안히 살기를 소원한다. 영혼이 평안해야 마음이 편하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되어야, 어떤 고위 정치인이 저에게 잠이 안 온다고 했다. 마음이 좀 편안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누가 거기를 가라고 했나? ㅋㅋㅋ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고위 정치인은 사실은 매일 수많은 짐들이 많다. 여러분들에게는 마음 편안함을 주시길 소원한다. 샬롬의 평강이 있기를 바란다. 마음이 아무리 편 하려고 해도 편해지지 않는다. 마음은 영혼이 편안해야 편안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내 평생에 가는 길이 힘들어도 문제가 있어도 상관이 없이 내 영혼이 평안해!! 영혼이 평안하면 삶에 수많은 환경이 어려움이 있다할지라도 마음이 평안해 지는 것이다.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은 이 본당에 들어오는 순간 영혼의 평안함과 마음의 평안함을 주시길 바란다. 여기서 마음의 평안함을 가지고 우리의 기도제목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 내 마음이 평안함의 축복을 주시길 소원한다. 다시 한 번 영원히 편해야 마음이 편하다는 말은 내 인생의 하나님과의 관계가 발라야 나머지 사람과의 관계도 편안한 것이다. 너무나 잘 알겠지만 그래도 이 아침에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내 마음이 평안한 평생이 되기를 기도한다.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시편 25:13,
13 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세 번째, 우리 자손의 땅을 상속받으며, 믿음의 세대 계승이 이루어져야 한다.
-언약의 말씀이다. 땅의 상속은 구약적인 개념에서는 땅을 상속한다는 것은 자손이, 네 자녀가 하나님이 예배하시는 분복을 누리는 것이며 하나님이 그 아이에게 이렇게 나누어주는 그 복을 누리는 것이다. 야곱은 야곱에게 그 다음은 이삭은 이삭에게 요셉은 요셉에게, 에브라임은 에브라임에게, 요셉은 요셉에게, 요셉에게 허락하신 분복이다. 구약의 그 분복의 대명사는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하나님이 예배하시는 땅을 받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자손이 땅을 상속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예배하시는 땅과 분복을 우리 자녀들이 누리는 것이다. 부모의 소원은 내 자식이 나보다 잘 되는 것이다. 저 같은 경우는 4대인데 5대인 손녀딸이 되면, 부모의 3대에서 이루지 못한 기도의 제목을 이들의 세대에서 이루어지기기를 소원한다. 내 세대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을 이다음 세대가 이루게 하시고, 그 다음 세대에 이루어지게 하시고 우리 할아버지 시대에 어려웠던 것이 그 모든 신앙생활의 순탄함과 부모 세대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을 다음 세대에게 글로벌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우리 자녀 세대가 선대보다 더 많은 은혜를 받는 것이다. 선대에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다음 세대는 더 큰 은혜를 주시길 소원하며 우리의 삶의 수많은 영적 전투를 해야 한다.

*시편 25:14,
14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네 번째, 여호와의 친밀함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친밀함이 있어야 한다. 그 친밀함이 무엇인가? -친밀함(.knowing God), 어쩌면 택할 길도 중요하고, 자손이 영원히 평안한 것도 중요하고, 자손이 영원한 땅을 상속 받는 것도 중요하고, 사실은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친밀함이다. 하나님의 관해서가 아니라, knowing God! 하나님 자체가 친밀함이다. 여러분 얼마나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 오늘도 이아침에 우리가 미리 나온 분들은 디딤돌 기도회가 있다. 마중물 기도회가 있듯이 주님과 더 일찍 만나고 싶어서 일찍 나온다. 주님이 기다리시니까 매일 아침 우리가 큐티도 하듯이 주님과 친밀한 것이 더 중요하다. 저는 말씀을 읽고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임재 속에 저는 조금 빨리 들어간다. 저는 어릴 적부터 주님과의 관계에 그렇게 저는 어색하지 않았다. 초등 5학년에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십자가의 설교를 들고 주님을 영접하고 죄를 회개했다. 초등학교 죄를 얼마나 많이 지었는지, 마음이 청정지역이 된다. 하나님 앞에 부족하지만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비교적 주님과의 어떤 그 은혜 가운데 임재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토비새에 나와 기도할 때,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속에 빨리 들어갈 수 있도록 영적인 공간운동이 빨리되고 주님과의 친밀함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님과 친밀한 하루하루 되게 하시며, 토비새에서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빠른 시간내에 주님의 임재 속에 다 들어가기를 바란다. 확인되고 회복되기를 바란다. 이 기도의 4가지 기도제목으로 지팡이를 들어라.
 
미국의 리처드 하버슨이라고 미국의 상원의원이 있다. 이분이 미국에서 영향력이 있는 분인데 어느 날 서재에서 이제 책을 읽고 있는데 밖에 아이들이 친구들끼리 떠들고 놀더란다. 아이들끼리 노는 장면을 들어보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우리 아버지는 주지사와 친하다.”.며 자랑을 한다. 또 한 아니는 “우리 아버지는 대학총장하고 친하다.” 한다. 옆에 있던 아이가 하는 말이 “너희 아버지는 주지사, 너희 아버지는 대학총장과 친하냐? 나의 아버지는 은행장이다.” 한다. 그래서 자랑을 하고 하는데 그럼 자기 아이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를 가만히 들어보았다고 한다. “너희 아버지는 주지사, 너희 아버지는 대학총장, 너희 아버지는 은행장과 친하다고 했는데,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지와 친하다.”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리처드 하버슨이 눈물을 펑펑 쏟았다는 것이다. 만약에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여러분들이 평가할 때, 우리 부모님은 하나님과 친하다. 하면, 찬송 하나를 하더라도 그 은혜의 임재 속에 들어가고 기도하나를 하더라도 거룩한 임재 속에 들어가고, 예배를 드리더라도 하나님과 살아있는 영적 교제의 예배를 드리고, 여러분 다른 차원이다. 서두에 말씀 드렸듯이 적당이로는 이 세상을 못 이긴다. 우리 세대는 좋은 책을 읽으면 은혜가 되었다. 그런데 출판사 모든 분들의 이야기이다. 옛날보다도 서너 배 더 강하지 않으면, 이제 책도 팔리지 않는다. 적당한 것으로는 안 된다. 우리 아이들이 알 것 다 안다. 좋은 것도 다 안다. 제가 월드컵을 하는데 정국이라는 방탄 소년단에 있는 멤버를 알 것이다. 전정국, 나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는 ‘드림어스’(꿈꾸는 자들)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매력이 있더라. 나는 엄청 회개 했다. 담임 목사가 정국보다는 나아야 되는데, 다음 세대에 내 설교와 내 비전과 내 사명이 정국보다는 나아야 하는데 그는 저 세계,, 내가 홀리겠더라. 내가 육십이 넘은 나도 홀리는데, 2-30대는 말할 게 있겠는가? 기도를 했다. 정국이를 우리 교회 인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BTS 멤버들 가운데 몇 명을 우리 교인으로 만들면 하고, 한국교회의 성도가 되기를 기도했다. 어느 교회를 나가든지, 그런 마음이 들었다. 우리 다음 세대의 아이들이 부모가 하나님과 친밀한 것을 보고 체험해야 아이들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은혜를 느껴야 한다.

요약
이번 ‘새생명축제’를 성대히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오늘 신생아강단축복기도를 통해서 가정마다 믿음의 명문 가정으로 세움 받고 세대계승의 은혜가 되어야 한다. 택함을 받고, 영혼이 평안하고, 하나님의 땅의 상속으로 분복된 기업을 이루며, 영원히 하나님과 친밀함으로 시 세대를 극복하고 다음세대를 계승하는 은혜가 넘쳐나기를 바란다.
-이 약속들은, 비록 과거에는 죄인이었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있는 자들에게 확실한 것이다. 그들은 비록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때때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지만 그러나 잘못을 범했을 때는 언제고 진실하게 회개하고 항시 믿음으로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모심으로써 그 언약을 깨뜨리지 않고 지키는 자들이다. 그를 경외하고 그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경의를 가지고 그를 예배하는 자들은 그의 권위에 복종하고 그에게 즐거이 순종한다.
















 


주일예배(주후 2022년 11월 20일)-추수감사주일

제목: "(부흥을 위한) 마음 지킴이"
말씀: 사무엘하 7:12~16,
시편 116:12-14
찬양인도: 쉐키나(이원준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김은규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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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7:12~16,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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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6:12-14.
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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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대의 찬양을 기뻐 받아 주신 줄 믿는다. 이렇게 영광스런 추수감사주일을 보낼 수 있도록 환경주시고, 믿음주시고 건강주시고, 은혜주심에 주님 앞에 모든 영광과 감사를 올려드린다. 예배가 회복된다는 말을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에 무너진 것, 무너진 가정들, 무너진 공동체가 오늘 예배를 통하여 회복되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도 회복되고, 절대감사, 초월적 감사, 평생감사, 역설의 감사의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오늘은 코로나를 지나오는데 3년 만에 처음으로 추수감사예배를 드리게 됨에 감사와 영광 돌린다. 오늘 저녁부터 사랑의 교회는 예배 1,2,3,4부 예배를 다 드리고 오후 5시 30분부터 ‘부활절에 품은 생명 대각성에서 추수하자.’는 새 생명축제가 진행된다. 너무나 소중한 시간들이다. 할렐루야!! 먼저 질문을 하나 하고 말씀을 시작하겠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도시를 적군들이 둘러싸고 공격하고 화살을 쏘아대고 함락시키려고 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또 밖에서 공격하는 외부의 적뿐만이 아니라, 소위 내부의 적, 내부의 동조자, 그 안에 살면서 음모(陰謀)를 꾸미고 내가 사는 도시에 방어(防禦)체계(體系)를 무너뜨리려고 한다는 것을 상상해 보라. 그리고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어려움이 있을 때에 어떤 특별한 노래 하나를 부른다면 그 노래를 부를 때에 외부의 공격과 내부의 적이 혼비백산(魂飛魄散)이 되어 도망갈 수밖에 없다는 그런 노래가 있다는 것을 한 번 생각해보자. 여러분, 그 노래를 배울 것인가? 천 번이라도 배우겠다고 할 것이다. 그 노래를 다 배우고 싶어 할 것이다. 인생살이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삶을 걸어가면서 다 안다. 수많은 외부의 공격 앞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고 늘 시험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또 우리의 영혼 안에는 사탄의 동조하려는 육신의 부패한 본성들이 있다. 옛 자아가 부추기는 어떤 욕심들, 좌절들, 낙심들, 불평들 이런 것들이 우리를 어렵게 하는 것이다. 외부의 적도 있고, 내부의 연약함도 있다. 이런 것들로부터 다 지켜줄 수 있는 특별한 노래가 있다면 그 부르지 않겠는가? 저는 저의 삶에 내우외환의 그런 어려움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것은 신령한 노래가 무언가를 생각해보았다. 지난 한 생애를 통한 그런 노래도 있지만 지난 6개월간의 마음에 있던 노래가 바로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을 이기네!!... 주 예수의 말씀이 온 세상 이기네.’~~이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이니까 다른 설교와 다르게 이 찬송을 할 때, 내 안에 내우외환과 내, 외부 적들로부터 연약함과 부딪히는 어려움으로부터 승리케 하는 노래가 되기를 소원한다. 이런 평생 부를 특별한 노래를 뒷받침하는 두 가지가 있다. 두 기둥이 있다. 외부의 적을 이겨낼 수 있는 것과 내부의 적을 이겨낼 수 있는 것과 두 가지이다. 그것은 한 평생 어떤 경우에도 흔들릴 수 없는 약속의 말씀이다. 어떤 경우에도 그 약속의 말씀이 인생을 지키신다.
 
<믿음이 이기네(397장)>
1.주 믿는 사람 일어나 다 힘을 합하여 이 세상 모든 마귀를 다 쳐서 멸하세
 저 앞에 오는 적군을 다 싸워 이겨라 주 예수 믿는 힘으로 온 세상 이기네
 
2.온 인류 마귀 궤휼로 큰 죄에빠지니 진리로 띠를 띠고서 늘 기도 드리세
 참 믿고 의지하면서 겁 없이 나갈 때 주 예수 믿는 힘으로 온 세상 이기네
 
3.끝까지 이긴 사람은 흰 옷을 입히고 또 영생 복을 주시니 참 기쁜 일일세
 이 어둔 세상 지나서 저 천성 가도록 주 예수 믿는 힘으로 온 세상 이기네
 
<후렴>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신다.
 
I. 승리선포
 
*사무엘하 7:12,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다윗의 평생의 말씀이 이 견고하게 하리라는 것이다. 16절에도 보면
*사무엘하 7:16,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다윗의 육신의 나라는 견고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윗에게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고 너의 자손까지 영원하리라. 하신다. 우리 식으로는 이겨놓고 싸우는 것이다. 이 놀라운 은혜를 받으니까 시편에도 이런 말씀이 나온다.
*시편 131:2,
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세상에서 가장 평온함을 누린 상태가 어떤 상태이냐면 젖 뗀 아이가 먹고 평안을 유지하는 상태이다. 다윗이 이것을 견제한 것이다. 이것이 여러분이 다 아는 것처럼 어릴 적부터 고생은 말할 것도 없고 내우외환이 얼마나 많았는가? 오랜 생활 정치 망명을 다니면서 갖가지 수모를 당하고 다윗을 죽이기 전에는 밥도 안 먹겠다는 특공대가 수천 명씩 다니고 광야에 아둘람 굴과 엔게디에서 당한 고난은 말도 도 못했고, 늘 전쟁으로 다윗의 손에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절박한 시간들이었다.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아우성 속에서 항상 긴장하면서 살고 내우외환의 영혼의 공격 때문에 다윗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젓 뗀 아이의 평온이 있을 수 있는가? 그것은 딱 하나이다. 하나님이 주신 다윗에게 약속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너의 나라가 견고하리라, 너의 나라가 영원히 보존되고 견고하리라.”. 완전한 승리의 선포와 약속의 말씀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늘 추수감사절에 우리에게도 모든 공격으로부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통해 확인되기를 소원한다. 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말씀이냐면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소문자가 아니라 대문자로 표기한다. 하나님 말씀은 영어로 표기할 때 (The Word of God)이다.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에 대문자로 표기한다. 이 약속의 말씀은 지식과 지성을 초월한다. 그리고 이 약속의 말씀은 세상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숨결과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있는 살아있는 약속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약속의 말씀이 분명하면, 어떤 막다른 골목에 놓여도 반드시 길이 열리게 되어 있다.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이다. 하나님 앞에 한 분, 한 분 약속의 말씀 받는다. The Word of God이다. 여러분은 어떤 약속의 말씀을 갖고 계시는가? 저는 “물 댄 동산 같이 물이 끊어지지 않는 인생 같은 사람이 되라.” 는 말씀이다. 최근에는 살전 5장 23-24절을 보면,
 
*데살로니가전서 5:23~24,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
-교통사고 난 장로님의 기도를 하게 되었다 갑자기 터져 나온 말씀이 기도가 되었다. 영과 혼과 몸을 지켜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했다. 이게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주는 것이다. 어떤 분은 사무엘상 3장에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라.” 라는 말씀을 가지고 계신다. 약속의 말씀이다. 이 약속의 말씀이 승리로 선포될 때에 자기도 모르게 주체할 수 없는 감사가 뿜어져 나올 줄로 믿는다. 그러니까 외부의 적은 약속의 말씀으로 견고하게, 흔들림 없이 우리가 붙잡게 되고 우리에게는 감사의 선포가 있을 때이다. 내부의 나를 부추기는 내부의 적으로부터 우리가 인생살이서 이상한 이야기를 할 때, 그런 거 하지 말을 하지 말고 오직 감사의 말을 하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떠들고 그러할 때에 가쉽 거리는 말고, 쑥떡도 하지 말고 감사의 말을 해야 한다. 다윗은 그런 과정을 다 지나고,
 
II. 감사선포
 
*사무엘하 7:1,
1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어려움을 다윗이 잘 나가게 되고 환경이 평안하게 나름 되었다. 다윗이 그동안에 겪었던 모든 수모와 고통과 아픔의 골짜기를 지나서 다윗이 개인적으로 인생의 전성기에 들어가게 되었다. 건강도 하고 그의 예리한 지성이 있고, 하나님 앞에 참 예배자로서 겸비와 순종을 하고 더 뜨거워지는 영혼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참으로 성숙해진 시대였다. 백성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왕이었다. 이때가 중요한 것이다. 이때에 너무 내가 잘나간다, 폭풍우에서는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되는데 다 잘 나가고 모든 것이 평안하면 쉽지가 않다. 그럴 때, 다윗은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까!! ”했다. 이것이 내 내부의 어떤 교만함을 다 처리하고 사탄의 어떤 내부에서 나오는 육신의 정욕이나 부패를 이겨내는 것은 진심으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한다는 것은 영적인 토대이다. 여러분 잘 나갔을 때 잘하는 것이 주님은 아신다.
 
*시편 116:12,
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이것이 내 내부의 어떤 교만함과 잘 난 것을 다 처리하고 내부에 어떤 부추기는 사탄의 모든 시험으로부터 이겨내는 놀라운 것은 진심으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이게 내면의 중요한 영적인 토대이다. 예를 들어 수능 만점자가 좀 교만한 말을 하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그 잘 나갔을 때,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를 생각했다. 또한 압살롬의 사건을 경험한 다음에 성경학자는 무지하게 고난당했다. 그런데도 다윗은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까를 생각한다. 이것이 내부의 적으로부터 이길 수 있는 영광스런 말씀의 토대인줄 확신해야 한다. 이 모든 은혜 안에는 인생이 단맛, 쓴맛, 단 것을 체감하도록 돕는 쓴 것도 모든 은혜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단맛과 쓴맛이 다 포함된다는 것이다. 지금 나를 꼼짝 달싹 못하게 하는 구덩이도 모든 은혜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구덩이에 빠져버렸다. 어떻게 하는가? 나중에 요셉이 인생을 지나면서 어느 날 청소년 시기에 그 구덩이에 빠져서 그 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는데 형들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그런 비참한 구덩이였는데 그 구덩이도 요셉의 비탄 어린 외침을 갖게 하는 그 쓴맛 나는 그 구덩이도 요셉에게는 나중에는 모든 은혜에 포함되었다. ‘아! 나를 애굽의 선봉장으로 보내기 위하여 하나님은 나를 구덩이에 던지시고 나를 미디안 상인에게 팔리게 하셨네.’ 라는 이런 생각이 들게 했다. 다윗은 이것을 깨닫고 나서 이런 어려운 가운데서 모든 은혜에 다 포함시켜서 시편에도 다윗이 말씀한다.
 
*시편 40:2,
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이사야에도 나온다. 건축으로 어려울 때
*이사야 51:1,
1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구덩이도 모든 은혜 가운데 포함된다는 것이다. 지금 구덩이에 갇혀있는 우리도 언제나 구덩이가 모든 은혜가 될 수 있다. 제가 한 참 어려울 때 인도네시아 집회가 있어서 갔는데 밤에 산책길에 가는데 그 옆에 구덩이 빠졌다. 그냥 구덩이가 아니고 안경이 다 깨지고 응급실에 갈 정도였다. 그래서 완전 기가 막힌 상태에서 갑자기 하늘에 별이 보였다. 하늘이 보이면서 내 마음속에 하나님이 말씀하심이 ‘오목사 고난의 시기는 끝났다.’라는 신호를 주시는 것 같았다. 그 마음이 들었는데, 그 때 어떤 말이 나왔냐면, You foundation for new future. -새로운 미래를 향한 새로운 토대, 나의 구덩이에 빠진 것 같이 힘든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별을 보게 하시고 그 가운데서 섬광처럼 새로운 미래를 향한 새로운 토대를 주신 것이다. 그러니까 그 구덩이도 모든 은혜 안에 포함되는 줄로 확신한다. 그러니
 
‘모든 은혜는 ⓵실패하고 깨어질 때 용기를 주시고, ⓶지체 될 때는 기다려주시고 안아주시고, ⓷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는 붙잡아 주시고 ⓸필요할 때는 징계도 주시는 것이 모든 은혜 안에 포함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실패하고 깨어질 때는 용기도 주시고, 지체할 때는 기다려주시고 안아주시며, 그릇된 방향으로 갈 때는 붙잡아 주시고 필요할 때는 징계도 주시는 그 은혜가 모든 은혜 안에 포함되는 줄로 확신한다. 약속의 말씀을 통한 승리 선포와 아무리 어려워도 모든 은혜 안에 포함되는 감사선포 이양면이 우리의 비밀병기이다. 하나님이 이런 비밀병기를 주심에 하나님을 찬양 드린다. 그런데 이 병기가 부어졌을 때, 나 혼자만 가지고 있으면 되는가? 이 양손에 떡을 가졌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때가 있지만, 첫째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승리를 선포할 수 있도록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그리고 내부의 수많은 시험과 어려움 가운데서는 우쭐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구덩이를 주시고 그 안에 모든 은혜에 포함하게 하셔서 양손의 떡을 가지고 이 비밀병기를 자기 혼자만 나누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신선하고 좋은 것을 갖게 되면 함께 나누어야 한다.
 
*이사야 59:21,
2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⓵네 입에서와 ⓶네 후손의 입에서와 ⓷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이 언약의 말씀과 초월적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에 이 신비한 병기를 체험하고 경험한 사람들은 그것을 그냥 자기 혼자만 누리는 것이 아니고 후손의 입에서,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이 역할을 은총의 통로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신한다. 소위 오늘 저녁부터 새 생명축제를 놓고 있다. 6개월간의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품고 복음을 전하게 된다. 생명의 역사, 구원의 역사를 전한다. 이 생명의 역사는 늘 새롭다. 어제 들어도 오늘 또 새로운 것이다. 왜 한 결 같이 저에게 모든 은혜에 감사하도록 하신 것은 그중에 이 생명의 은혜를 같이 나눈다고 할 때, 하나님은 늘 신선도를 유지하게 했다. 제가 대학부 새가족 팀을 맡았다. 이런 것으로 계속했다. 매주일 마음속에 달랐다. 늘 신선도를 유지하도록 주님은 인도하셨다. 이 복음의 은혜를 같이 나누는 것이 인간성 복음과 생명의 역사는 늘
 
※수천 번이나 무지개를 보았다고 해서 무지개가 보여주는 광경의 장엄함까지 다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정원 가까이 살면서도 꽃의 아름다움에 취해보지 못할 수도 있다. 한 여인과 평생을 살면서도 다나 한 번도 영혼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지 못할 수도 있다. –멕스 루케이도-
-우리가 익숙하다고 다 익숙한 것은 아니고, 다 안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니다. 복음은 새롭다. 날마다 새로운 것이다. 여러분 복음을 이야기 할 때, 하늘의 황태자께서 인간의 육신의 몸으로 오신 것이다. 그것을 성육신이라 한다. 성육신은 복음의 아주 중요한 핵심의 교리중의 하나다. 지금으로부터 1600년 전에 니케아 종교에서는 이런 말을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시고 성령으로 성육신 되셨다.
-니케아 신조 중-
 
-천 육백년간 내려온 것이다. 그러면 성육신 한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것이 과연 어떤 뜻인가? 이것이 날마다 새로워져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신 이 사건, 성육신이 오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것은 수많은 지성인, 수많은 사람들도 하나님이 인간의 모믐을 입고 오신 것과 무슨 소용이 있는가를 날마다 물어보는 것이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신 성육신이 갖는 중요한 의미가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셨다는 것은 성육신
 
※하나님은 멀리서 지켜보는 수동적인 관찰자가 아니라 우리 곁에 임재하셔서 우리를 돌보신다는 것이다.
-제가 성육신에 대해서 쉽게 여러분들에게 정리를 해드리자면 성육신의 신비한 하늘의 황태자가 인간의 몸으로 입고 오셔서 하나님은 과찰자가 아니시고 우리 곁에서 돌보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새로운가? 예수 믿고 최고의 축복은 성육신 하신 주님이 오늘도 동행하시고 지켜주시고 함께 하시는 것이다. 반대로 이 임재를 느끼지 못했으면 아직 성육신을 깨닫지 못한 사람이다. 아직도 도마 같은 사람, 그 의심을 잘 하는 사람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했다. My Lord, My GOD! 굉장한 이야기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 생명의 주님을 뵙자마다 ‘내가 주님을 보았다.’ 했고, 사도요한은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은혜가 충만하더라.’ 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이 복음의 은혜를 깨닫고 나니까 구약을 풀어놓는 것을 듣고 나니까 너무 좋아가지고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했으며, 그중에 특별한 고백은 베드로의 고백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했다. 사람마다 고백들이 다 독특하다. 성육신의 은혜가 되는 것이다. 오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마음에 제자들처럼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이 말씀을 풀어줄 때에 ‘우리의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그런 마음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부여되기를 바란다. 오늘 이 마음을 가지고 내우외환의 시대 가운데서 주님이 주신 비밀병기를 나만 소유하지 말고 오늘부터 영광스런 새 생명축제에 귀한 지킴이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복음을 펼치면 주님은 여러분들의 마음을 지켜주실 것이다. 할렐루야!!
 
♧요약
우리는 내우외환의 인생길에서 평생 붙잡을 약속의 말씀으로 온 세상을 이기고 젖 뗀 아이의 평온함을 경험하며, 인생의 전성기뿐만이 아니라 쓰디쓴 인생의 구덩이 속에서도 모든 은혜로 변하여 겸손히 엎드려서 초월적 감사를 올리는 자들이 다 되기를 소원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왕국을 견고케 하시고 솔로몬이 다윗이 건축하지 못한 성전을 건축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하셨다. 그리고 죄에 대한 징벌은 받아도 은총은 영원할 것이라는 복을 주셨다. 인간의 왕국은 멸망되고 말았지만 이 약속은 그리스도로 인해 궁극적으로 성취되었다. 개인적인 구원을 체험한 뒤에 하나님께 지극한 감사를 올리는 시편이다. 시편 기자의 생명을 위협했던 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마 질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편 기자는 고통의 와중에서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이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신 것을 감사하고 있다.
 





















♣토요비전새벽예배-부흥헌신(주후 2022년 11월 19일)
제목: "평생 들어야 할 감사의 지팡이"
말씀: 시편 103:1-5
대표기도: 장준영 집사님(목양2팀 남자대교구장)
말씀읽기: 박연서 학생(고등 1,2,부), 이태경 학생(다니엘 중등부)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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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3:1-5,
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3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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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젊어야 한다. 교회는 역사가 깊어가고 교회 중직 자들은 나이가 들어가도 교회는 젊어야 한다. 젊게 일해야 교회도 젊다. 목양2팀, 오늘 지팡이의 위력을 한 번 보여주자. 감사 3번, 만세 3번하자. 감사! 감사! 감사! 만세! 만세! 만세!!! 이 지팡이로 하자.
 
여러분, 이게 뭔가! 하지 말고 젊게 하자. 정말 이 자리가 산상 기도회 같은 곳이 되어야 한다. 산상 기도회 올라가는 것 같이 시내 산에 올라가는 것 같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것을 짚고 올라가야 하듯이 말씀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이 자리가 정말 모리아 산이 되어야 한다. 이 자리가 850:1인 갈멜산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이 자리가 정말 예수님 변화 산 같이 은혜가 된 것처럼 변화 산이 되어야 한다. 이 자리에서 기도하고 씨름했던 주님 감람산이 되어야 하고 그리고 갈보리 산의 은혜가 이 자리에 나타나기를 간절히 원한다. 제 마음 속에 간직되어 온 산상 기도회의 여섯 산의 은혜가 되기를 원한다. 여기에 사랑의 교회에 청계산, 삼각산, 하늘산, 무척산, 강림산, 여러 산에 이 자리가 영적인 산상기도회가 될 수 있도록 감사 3번, 만세 3번 하고 예배를 드리자. 교회는 역사가 깊어가도 교회는 젊어야 한다. 이런 것 왜 하냐고 하게 되면 늙은 것이다. 이것 왜 하냐고 하면 벌써 늙은 것이다. 우리는 항상 젊어야 한다. 그런 기백을 가지고 예배드려야 한다. 고등부 박연서, 중등부 이태경 용감하다. 그동안 성경봉독 잘했다. 그 너무 감사하다. 박수....
 
하루 전에 저에게 연락이 왔다. 제가 아는 목사님이시다. 목사님, 갑자기 할렐루야!!! 하셨다. 어제 목요일 밤 전에 아니 건초더미 기도운동을 참석했다고 하신다. 너무 쇼크를 받았다고 하시면서 한국교회 희망이 없는 줄 알았는데 한국교회 진짜 희망이 있다고 하신다. 목요일 밤에 건초더미 운동에 너무 감격했다고 유뷰브에 곳곳마다 한국교회 망한다고들 하는 인간들이 있고 핍박하고 온갖 류머로 교회를 뚜드리고 있지만 우리 목요일 밤에 목사님들이 영적인 통찰력이 없이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목요일 밤에 특별한 날이 되었다. 목요일 못 오신 분들을 위해서 잠시 보겠다. 9.26 한국 섬김의 날, 프랜카드도 아직 붙어있다. 그 이유는 지난 3년 동안 2020년 코로나부터 지난난한 고생을 해오면서 이러면 안 된다고 한국교회의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게 해달라고 했다. 한국교회 부흥으로 가게 해달라고 섬김의 날을 가졌고, 한 달 동안 강단 기도회를 하면서 9.26 섬김의 날에 선포한 것은 문 닫는 한국교회에 다시 문 열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다음 세대에 희망이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니까 주일학교에서 바짝 정신을 차려가지고 건초더미 담당인 이민형 목사님을 비롯하여 다음 세대 기도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다음세대 주일학교, 사역자들 전체와 함께 실체 있는 대안을 준비하자고 해서 다음세대 기도운동을 준비하고 한 달반 동안 서울, 경기를 포함한 수도권에 사랑의교회 주일학교와 함께 이 운동을 감당해왔다. 그래서 10월 16일부터 서울, 경기, 사랑의교회 목회자 분들과 총대신대원에 홍보와 인타그램에 홍보를 시작했다. 그리고 9.26일 섬김의 날, 강단 기도회와 똑 같이 30일을 기점으로 우리 강단 기도회처럼 매일 기도했다. 주일학교 모든 교사들과 함께 11월 17일 더라이트(The Light),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매일 오전 11시 17분에 한 달 동안, 그래서 목요일 저녁에 참여 교회가 468교회가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 교단을 물론 교단을 초월하여 했다. 참여 학교가 511개 중고등학교였다. 참석자 수가 3854명이며 모두 온라인과 함께 4천여 명이다. 너무 큰 집회가 되었다. 청소년들이 집회를 했다는 것이 최근 들어서 대한민국의 가장 강력한 집회이다. 그래서 여기에 참석한 어떤 분이 믿음 보고를 올려놓은 분이 있다. 너무 감동 받았다. 무엇인지를 읽어 주겠다. 놀랍다.
 
어젯밤 안아주심의 본당에 있었던 건초더미 기도운동(The Light),
-입장 안내에 따라 우리 부부는 본당 1층 중앙에 자리했다. 저녁 7시부터 안아주신 본당은 드디어 시작된 기도운동 불씨, The Light!!은 10시를 넘겨 마쳐졌다. 담임 목사님의 건초기도더미 운동 선포 이후에 이런 정성스럽게 준비한 청소년 주일학교 교역자님들과 관계자 및 온 성도님들이 마음을 모아 간절히 기도로 준비하였기에 더욱 큰 반향을 일으켰고, 기존 청소년 집회와는 사뭇 다른 패러다임 시트, 패러다임 청소년 기도회로 자리매김 되었다. 어젯밤 3시간이 넘도록 안아주신 본당에서 3천여 명의 기도와 지칠 줄 모르는 청소년들의 열기와 힘이 합력하여 한국교회의 미래를 바라볼 수 있었다. 어쩌면 사랑의 교회와 한국교회 청소년 주일학교가 나아가야 할 정확하게 제시한 모범적 집회였다고 평가되기를 소망한다. -어느 성도-
 
어제 집회는 사랑의 교회 45년 역사 중에 제가 함께 했던, 30년 우리 교회 역사 중, 본당에서 개최 된 집회에서 단순한 간증만이 아닌, 중고등 학생들이 강단으로 뛰쳐나와 직접 마이크를 잡고, 자신들의 관점에서 대두되는 이슈들, 기도의 불씨운동의 당위성과 필요성, 혼탁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도의 영적동지의 필요성, ‘동성애옹호 및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할 명백한 이유, ‘하나님의 창조질서 보존’ 등을 직접 그들만의 언어로, 그들의 의해 제한되고 군중들로 하여금 기도의 전심으로 동참케 한 것은 지금까지 시도하지 못했던 전혀 색다른 형태인 기도의 불씨 운동이었다. 우리가 매번 다음 세대를 말하면서도 진정 다음 세대의 언어와 그들의 니드(need),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았는지 기성세대인 저부터 지난 주일학교 30년을 성찰하며 반성하기로 결단한다. 어제 청소년 집회 ‘THE LIGHT’에는 서울, 경기 수도권에서 468개 교회와 511개의 학교가 참여한 역사적인 현장에 청소년들과 학부모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였다는 것이, 또한 이런 은혜의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또 이를 추구하는 교회가 우리 ‘사랑의 교회’라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고 자랑스럽고 감격스러운지 모른다. 우리 사랑의 교회 주일학교가 대한민국의 미래이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는 말에 있지 않고 실천에 있다. 이 지팡이를 다시 한 번 들고 우리 “사랑의교회가 한국교회의 미래입니다.” 하면 “할렐루야!!!” 하자. 이 기백이 넘치기를 바란다. 이곳이 여섯 개의 성경에 나오는 산 기도의 은혜와 한국교회의 산 기도의 은혜가 합쳐져 있기를 원한다. 어젯밤에 제가 1분 30초로해서 이 영상인 The Light 영상을 만들라고 했다. 어젯밤 제가 8시, 9시쯤에 요청했다. 그런데 못할 것 같았는데 해놓았다. 아침 새벽에 나오니까 이미 만들었다고 한다. 보자. 어떤지 보자. 영상을!!~~영상 감상,,,
-감사의 지팡이, 저는 뭔가 영적 에너지, 힘을 얻어야 해서, 어떻게 힘을 얻을까를 생각해보니 어떤 사람은 책을 읽고, 어떤 사람은 좋은 음악을 듣고, 어떤 사람은 영적교제를 통해서, 어떤 사람은 기도를 통해서, 어떤 사람은 예배를 통해서도 있는데 저 같은 경우는 시종일관, 한 결 같이 힘을 얻는 것이 뭐냐면, 이 시간, 과거부터 이 순간까지 무조건 감사이다. 요시간 전까지 무조건 감사이다. 제가 부족하고 약한 것도 있지만 오늘 이 순간까지 온 것 자체가 감사이고, 나를 꺾지 않으시고 무너지게 하지 않으신 것이 감사한 것이고, 이 자리에 서서 이 말씀을 나눈 것도 감사한 것이고, 무조건 이 자리까지 감사이다. 그다음은 짐작된다. 내가 어느 시험을 받을 것인가? 담임 목사로서 감당해야 할 몫이 무언지? 이런 것도 짐작되고 어려운 점이 다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믿음으로 모험할 때는 하나님이 내 인생을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이 있다. 말세에 믿음을 보신다고 하셨다. 이 두 가지가 늘 지금까지 감사, 믿음, 이 두 가지가 여러분들에게 딱 저 이상으로 각인되어 있어야 이와 같이 기백을 가지고 주님과 평생을 살아갈 수 있다. 다시 한 번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대해서 감사이다. 거기에 대한 것이 그냥 아무렇게나 되는 것이 아니다.
 
※제가 생각해보면 만23세에 내수동교회 대학부를 맡아서 할 때인데, 하루는 박희천 목사님께서 저에게 설교를 하라고 하셨다. “수요일 저녁에 오 전도사가 설교를 해”, 라고 하셨다. 그래서 제가 알겠습니다. 어른들 앞에서 설교를 하라고 하셨다. 만23세에, 어떻게 하나 고민했다가 그래서 덥석 받아서 속으로 ‘박희천 목사님과 같이 설교를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없이, 빌립보서 1장 1-6절을 생각하면서 지금도 잊지 않는다. 나가자마자, “바울은” 시작했다. 그리고 설교 죽 썼었다. ㅋㅋㅋ 그때 생각했다. 완전히 죽 썼다. ‘내가 박희천 목사님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스타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러면서, 제가 미국을 가서 ‘Lh 침례교회’라고 있는 김동명 목사님과 안일순 사모님의 교회, 섬기는 교회에서 어느 날 저보고 주일설교를 하라고 하셨다. 전도사시절이다. 무얼 할까 생각하다가 오늘 본문 시편 103편 1-5절이다. 이건 외울 수도 있다. 그 하나님이 내게 주신 다섯 가지 축복들, 하나님이 모든 성도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고, 피에 복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 된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가지고 우리는 도저히 우리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데, 우리 실력으로는 안 되는데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 사람, 트랜스퍼 된 사람에게는 다섯 가지 축복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게 너무 감사해서 본능적으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그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여호와를 송축하라. 103편 1절로 잊을 수가 없다. 이게 저에게는 아마 그냥 저의 삶의 체화가 되고 라이프 스타일이 되었기 때문에 이 시점까지는 감사이고 그 다음은 앞으로는 믿음의 모험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들고(지팡이) 오늘은 마치고 난 다음에 번호를 부를 것이다. 1-7000번까지 번호가 있다. 다 있는데 오늘 부르면 벌떡 일어나서 “감사와 믿음의 고백!!!” 이렇게 해야 한다. 감사합니다.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외치는데, 그분들은 이 머그컵을 줄 예정이다. 당첨된 다섯 사람에게다.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리본도 중요한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의 이름, 이것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처럼 그래서 좀 얼마 동안 우리 사랑의 교회가 이 산상교회 7천 기도용사, 우리 모두가 믿음의 모험을 하겠다는 마음의 각오를 가지고 한국교회의 회복과 부흥을 위해서 마음이 좀 힘들어도 얼마 동안 이것을 가지고 나오길 바란다. 이것을 갖고 들어오는 순간 무언가 이런 분들이 영적 기백이 생기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데 서초역에 이것을 들고 다 내리더라고 한다. 그걸 보는 순간 영적인 전율이 왔다고 한다. 아는 사람은 안다. 어제 한국의 빈 살만(사우디 총리-왕자)가 다녀갔다. 그 사람이 뭐 2,800조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 사람보다 영적으로 더 부자이다. 한국하고 잘 지내는 것은 좋은데 더구나 이슬람에게 돈이 다 들어와서 또 이슬람에게 갈까 걱정도 되지만, 우리는 그것 하나도 부럽지 않듯이 우리는 기백을 가지고 우리 장래를 이끌어 가는 자가 도고 믿음 안에 올바로 서기를 바란다. 자 다시 한 번, 시편 103편 1절을 보자.
 
*시편 103:1,
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자 무슨 말인가? 그냥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에게는 거룩한 본능이 생기는데 그 본능이 뭐냐?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주님을 찬양하는 것, 그리고 나머지 2절에 내 영혼아 송축하는 그 이유가 다섯 가지이다.

첫째는 내 모든 죄악을 사해주신다.
-과거, 현재, 미래의 죄악을 다 사해 주신다. 다 사(赦)해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다음
둘째는 내 모든 병을 고쳐 주신다.
-모든 병, 모든 병을 고쳐주시고 이 모든 병 안에는 영적인 질병, 육신의 질병, 이 모든 질병 안에는 뭐가 들었냐면, 히스기야의 질병도 치유하시고 나만의 나병도 낫게 하시고 이게 다 포함되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다 아픔들, 혈루 증, 이런 모든 것들이 다 포함된다. 우리에게는 이런 것을 볼 수 있는 믿음을 보여주신다.
셋째는 내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신다.
넷째는 속량하셨다.
다섯째는 인자와 긍휼의 관을 씌우셨다.
-우리가 예수 믿는 그 순간 인자와 긍휼의 관을 씌우셔서 하나님의 왕자의 신분을 가졌다. 그래서 시편 8편 5절을 보면,
 
*시편 8:5,
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너무나 놀라운 관을 씌워주시고, 그 다음은 좋은 것으로 내 소원을 만족케 하시고, 영적으로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만족하게 하신다. 마지막으로 독수리 날개 같이 새롭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 설명할 시간이 없지만 이 다섯 가지가 여러분과 저에게 주어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러한 것이 자연스러워서, 영적 기백을 가지고 하나님의 기도의 산에 올라가서, 복음의 영광위하여 쓰임 받는 거룩한 종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제가 2022년 추수감사절을 하루 앞에 두고 우리 성도님들과 함께 시편 103편 1-5절이 다 통하는 찬송하나가 없을까를 생각해보니 찬송 138장 ‘햇빛을 받는 곳마다’ 이 찬송을 보자. 악보를 보면서 햇빛을 받는 곳마다!~~ 찬송하자. 아이삭워치라는 분이 작사한 곡이다. 1719년에 지었다. 지난 400여 년 동안 한 결 같이 조금도 지치지 않고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인자와 긍휼을 만들어 주신 찬송이다.


 -이 찬송을 다 부르자. 다 마음속에 영혼의 햇빛이 비춰지기를 바란다. 본래 알았던 분은 거의 없다. 우리가 무식하기 짝이 없다. 굉장히 유명한 찬송이다. 미국의 오래된 교회들이 이 찬송을 한다. 온 교회가 오늘과 내일에 가사가 가정마다 그대로 접목되기를 바란다. 이 찬송이 평생 간다. 아이들과 내용을 보면 그 감사 찬송하도다. 이다. 어린이들도 기뻐서 구주를 찬송하고 이 고백이 현장이 되는 것이다. 이 순간 감사로 하늘의 은혜와 능력이 막 떨어지는 은혜가 있는 것이며 그것을 믿는 게 믿음이다. “주님께 감사해라. 주님께 감사해라.!!~~” 감사절을 놓고 하나님께 어떻게 했는지를 보자.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면서 지팡이를 들고 하자.

마무리이다. 시편 136편을 하겠다.

 
*시편 136:1-26,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4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5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6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7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8 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9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0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1 이스라엘을 그들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2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4 이스라엘을 그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5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6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7 큰 왕들을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8 유명한 왕들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9 아모리인의 왕 시혼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0 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1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2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3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4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5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6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제가 이스라엘 회당은 아무나 못 들어간다. 그런데 어떻게 들어갈 기회가 있었다. 그 사람들은 구약만 믿어도 은혜를 받는데 우리는 구약 신약을 다 믿기에 더 은혜가 될 것이다. 오늘 위로부터의 은혜가 떨어지기를 바란다.
 
♣요약
우리의 모든 인생의 은혜를 주시길 원하며 지금까지 인도하심에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자.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를 우리가 다 모르지만 그러나 예측할 수 있는 믿음으로 사명을 감당하여야 한다. 우리의 본능을 가지고 우리 인생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내 모든 병을 고쳐 주시고, 내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의 관을 씌우셨으니 내 인생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해주시길 기도해야 한다. 새생명축제에 모든 영 가족이 부활절부터 품었던 4만명의 태신자들이 생명의 길, 구원의 길로 나아와서 결신하여 구언의 잔치가 되고 내일 추수감사주일을 정성스럽게 준비해서 올려드리며 회복에서 부흥으로 비상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하며 다음 세대가 건초더미 기도운동(The Light)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해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을 체험한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늘의 천사와 땅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도록 촉구하는 내용이다.
 















 


♣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2년 11월 16일)

제목: "지붕에서 내린 사랑"
말씀: 마가복음 2:1~12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강도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김대규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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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1~12,
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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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규 부목사님
-딸 셋과 함께 아주 평온하게 화목하게 살 던 어느 가정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가정에 고난이 찾아온다. 둘 째 딸, 딸아이에게 원인 모를 병이 찾아오고 아이의 배가 아파서 점점 부풀어 오르게 된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검사한 결과 이 아이가 나을 수 없는 불치병이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골에 살던 엄마와 딸은 어떻게든 치료를 해보기 위해 멀리 떨어진 보스톤의 한 병원에 찾아간다. 수많은 환자로 인해서 병원은 많은 사람이 있었고, 의사조차 만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엄마는 병원을 찾아가 호소하게 되고 불행 중 다행히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진료를 받게 된다. 비행기로 오고가는 거리가 멀고 또 병원비가 만만치 않고 마련해야 되는 병원비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보험 한도가 넘어선다. 많은 경제적 부담이 있지만 부모는 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큰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병을 보이고, 진료를 하고 수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그 병을 치료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더 이상 딸의 병은 차도가 없다. 엄마는 절망에 빠졌고, 엄마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지만 점점 신앙을 잃어가게 된다. 병을 고치지 못한 채 돌아온 아이는 어느 날 언니와 함께 그 아이는 집 앞 큰 나무에 오르게 된다. 그 나무는 그 아이가 아프지 않을 때, 늘 언니와 함께 오르며 놀던 나무이다. 나무에 오르던 중 나뭇가지가 부러지게 되고 아이는 나무 사이 구멍 속, 나무 아래로 추락하게 된다. 소방차가 출동하고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커다란 나무 중앙으로 떨어진 아이를 구조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아이의 생사를 알지 못한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엄마는 다시금 하나님께 매달려 간절히 기도한다. 몇 시간이 지난 후에 아이는 구조되었고, 의식을 잃은 아이는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런데 병원으로 이송된 아이의 검사 결과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된다. 아이가 추락하면서 긁힌 상처 외에는 뇌에도 이상이 없고 뼈도 한 군데도 부러진 데가 없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추락 후에 검사 결과, 아이의 불치의 병이 깨끗이 나았다는 것이다. 엄마는 다시금 신앙을 회복하게 되고 아이와 함께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간증을 하면서 이야기가 마무리 된다. 제가 드린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미라클 프롬 헤븐’이라는 영화의 내용이다.
 
오늘 이와 같은 기적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본문에 등장한다. 그곳은 가버나움이다. 오늘 가버나움 한 집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성경은 문 앞까지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 것인가? 한 사람, 한 분 때문이다. 당시 유명인이었던 요즘 젊은이들의 말로는 핵 인 싸, 핵인싸 인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집 앞에 모여든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던 이유는 참 다양했다. 예수님에게 병을 고치기 위해서 그 예수님이 기적을 한 번 누려보기 위해서 온 사람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기적의 현장을 내 눈으로 목격하자는 마음에 온 사람들도 있다. 또한 그 중에는 예수님의 허물을 찾기 위해 몰래 숨어들었던 서기관 같은 자들도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친구와 같이 가자고 하니까 아무 생각 없이 따라왔던 사람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모인 곳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성경대로 도를 말씀하고 계신다. 설교를 하시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을 선포하고 계신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에 놀라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전히 또한 예수님의 말씀에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목적은 분명하다. 자신이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심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셔야만 한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권위 있는 말씀에 놀라며 그가 누구인지를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 때 몇 명의 무리들이 도착한다. 네 사람이 한 사람을 침상에 누인 채, 들것에 들어서 그 집 앞까지 왔다. 네 사람이 직접 자신들의 수고로 이곳까지 그 사람을 옮겨와야만 한다. 침상에 누워있는 사람은 중풍 병(中風病)자(者)이다. 움직일 수 없었고, 말하는 것조차 힘든 사람이다. 성경이 이야기 하는 것은 이 네 사람이 누구의 강요나 의무 때문에 이 사람을 매고 예수님이 계신 이곳까지 온 것은 아니다. 이 사람들은 자발적 의지를 가지고 이 사람을 스스로 메고 왔다. 이렇게 이 사람들이 자발적 의지를 가지고 이 중풍 병 걸린 사람을 메고 예수님이 계신 집 앞까지 온 목적, 기대는 분명하다. 예수님께서 침상에 누워있는 이 사람을 고쳐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소망이 이 네 사람과 중풍 병자에게는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이 계신 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마주한 상황이 어떠했는가? 사람들이 문 앞까지 가득 들어차서 예수님의 얼굴조차 볼 수 없는 아주 난감한 상황을 대하게 된다.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보기를 드려볼까?
 
1번 사람들이 다 빠질 때까지 기다린다.
2번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군중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간다.
3번 포기하고 다음 기회에 다시 한 번 찾아온다.
여러분 몇 번 선택을 하겠는가? 각자 선택한 것이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사람들이 다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예수님을 만난다. 여러분 쉽지 않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다 나올 때까지, 언제 나올지 기다리는 것, 장담할 수가 없다. 오늘 예수님이 뭐하고 계셨는가? 도를 말씀하고 계신다. 설교하시고 계신다. 여러분 우리는 보통 한 20-40분의 설교를 듣는다. 요즘은 길어도 한 시간 넘어가는 설교를 듣는 것이 쉽지가 않다. 어느 교회에서 한 시간 넘게, 두 시간씩 설교하면 사람들이 그 교회에 많이 가겠는가? 쉽지가 않을 것이다. 제가 어릴 적 상황을 떠올려보면 부흥회 때는 예전에 길게 설교하시는 목사님들이 계셨던 것 같다. 목사님들이 앞에서 설교하시는 것을 막 은혜를 받다가 30분이 넘어가면 조금씩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 시간이 넘어가면 입으로는 아멘 하는데, 머릿속으로는 목사님께서 ‘언제 과연 설교가 끝나시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끝나지 않으면 뒤에 있는 어머니들께서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운다. 그리고 울게 만든다. 그리고 아이들을 풀어놓는다. 설교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어지고,,, 그런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설교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예수님은 절대로 한 시간 이내에 끝내셨던 것 같지가 않다. 한 번 말씀을 전하시면 반나절씩, 몇 시간씩,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말씀에 대해서 전하셨다. 그러니까, 오병(五甁)이(二)어(魚) 같은 기적이 있지 않은가? 때문에 예수님께서 설교를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고 하는 것은 참 쉬운 일은 이 사람들에게 아니다.
 
두 번째는 군중 속을 비집고 양해를 구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혼자 왔다면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어떻게 왔는가? 이 중풍 병 걸린 사람을 네 사람이 메어가지고 왔다.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비켜 주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각자 자기의 필요와 자기의 간절함으로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이다. 가버나움이란 동네가 예수님의 사역에 본거지와 같은 곳이다. 물론 가버나움 동네에서 온 사람들도 있겠지만 필경은 멀리서 불치병에 걸려서 극심한 아픔 때문에 아침 일찍, 자신 스스로, 또한 자녀들을 업고, 부모님을 모시고 먼 길을 걸어서 온 사람들도 아주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앞에 있는데 이 네 명의 사람들이 여기 중풍 병 걸린 사람이 있으니까 제발 길 좀 비켜주세요. 라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이 사람만 힘든 게 아니고 나도 힘들어서 왔으니까 순서 지키라고 분명히 이야기 했을 것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세 번째는 일단 포기하고 다음 기회에 다시 온다. 제 생각에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며 우리가 모두 선택할 수 있는 대안 같다. 중풍 병 걸린 사람과 함께 이곳에 열심히 왔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들 보다. 아주 많이 늦었다. 아마도 들것을 들고 오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늦었을 것이다. 늦어서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렵고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들이 포기하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중풍병자에게 아쉽지만 다음에는 좀 더 일찍 먼저 와서 우리가 기다려보자고 하면서 돌아갈 수 있다. 여러분 그렇게 말하더라도 중풍병자는 이미 자기를 메고 여기까지 온 네 명이 사람들이 고마워서 충분히 감사한 마음을 표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1번도, 2번도, 3번도 아닌 창의적인 4번에 답을 누군가 제시하게 된다. ‘우리가 지붕으로 올라가자.’ 당시 가버나움의 집 구조를 보면, 외부로 난 계단이나 사다리가 지붕위로 나 있어서 올라가는 것이 가능은 했다. 하지만 이 네 명이 한 침상을 들고 올라가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나무로 된 대들보 집을 덮고 더 빡빡하게 엮인 진흙으로 된 진흙 구멍을 뚫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자만 지붕위로 올라가자는 누군가의 제안에 그들은 한 마음이 되어서 지붕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굉장히 힘들고 위험한 일이지만 지붕위로 올라온 이들을 진흙을 파내고 지붕을 뜯기 시작한다. 예나 지금이나 굉장히 창의적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네 사람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인 방법을 생각해 내고 이 방법을 실행해 낸다. 하지만 이 지붕을 뜯어냈을 때에 여러분 지붕 밑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 말씀에 집중하면서 아멘! 아멘! 하면서 듣던 사람들의 머리로 흙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소동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들보 사이에서 줄이 달아내려지는 중풍 병에 걸린 사람을 보았을 것이다. 지붕위에 있던 네 사람들은 분명히 예수님을 향해서 지붕위에서 소리쳤을 것이다. “이 사람이 얼마나 불쌍하고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예수님,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우리를 이해해 주시고, 이 사람을 꼭 고쳐 주십시오.” 라고 예수님께 간청했을 것이다. 예수님과 별개로 이 장면을 밑에서 보던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사람들을 향해서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험한 말로 이들의 행동을 사람들은 질책했을 것이다. 성질 급하고 또 왕년에 한 가닥 했던 분들은 욕하면서 협박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꼭 고쳐 주시기를 바랐을 것이다.
 
여러분 이 네 사람들, 정말 용기 있지 않은가? 이 사람들의 용기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이들이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한 번 비교해 보자. 새 생명 축제를 앞두고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그분들이 예수님께로 가기를 바라고 기도하고 있다. 비단 새 생명 축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일에 예배를 드리면서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내 가족들, 내 친구들, 내 이웃들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예수 믿고 구원 받기를 소망할 것이다. 우리 남편이, 우리 형제가, 우리 자녀가, 우리 부모님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우리 가운데 있다. 그리고 그들을 이곳으로 안아주심의 본당으로 함께 와서 예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 데려오는 것이 쉬운가? 어렵다. 쉽지 않다. 그들 교회 모셔 와서 예수님 만나게 하는 것 너무 힘든 일이다. 중풍 병 걸린 일을 예수님께서 계신 곳까지 데려왔지만 문 앞까지 들어 선 사람들로 인하여서 예수님 만나는 것조차 힘든 어려운 상황처럼, 한 영혼을 교회로 인도하는 것 역시, 수많은 어려움들이 기다리고 있다. 많은 경우 ‘그들에게 교회 와야 한다.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라고 입을 떼는 것조차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이 있다.
 
여러분, 우리는 왜 이렇게 초청하고 교회로 데려오는 것이 어려운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작정한 태신 자들을, 우리가 마음에 품은 가족, 형제들, 부모님, 이웃들을 주님 앞으로 데려올 수 있겠는가?
 
이 네 명의 친구들 모습 속에서 답을 한 번 찾아보겠다.
 
첫 번째, 믿음이 있었다. 먼저 이 네 명의 친구들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자신 앞에 내린 중풍 병자를 만나셨을 때에 가장 먼저 하셨던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무엇인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보신 그들의 믿음이 무엇이었을까? 예수님께서 보신 그들의 믿음은 이 중풍 병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예수님에게 있다는 믿음이다. 그 믿음이 있었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수 있었다. 반드시 확실히 예수님만 만나면 된다. 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만일 그들이 100% 확신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지붕까지 힘들게 중풍 병 걸린 이를 메고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에 조금의 힘든 수고, 사람들의 비난, 이 모든 것들을 충분히 감내해 낼 수가 있었다. 다른 사람의 지붕을 뚫는 것, 사람들에게 욕먹는 것, 조롱 받는 것, 그런 것들은 자신의 아픈 친구가 예수님 만난 후에 생각해 볼 문제라는 확실한 생각이, 믿음이 이들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이들만큼 확고한 믿음이 있는가? 예수님만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는 믿음,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이다. 먼저 나의 인생에 대해 이와 같은 믿음이 있어야지만 모든 문제의 해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확신이 들 것이고, 그 확신이 우리를, 여러분들을 움직이게 할 것이다. 그와 같은 확신이 없다면 누구에게도 예수님을 담대히 전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왜? 나도 확실히 믿지 못하는 것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안에 먼저 온전한 믿음이 있기를 소망한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인가? 온전히 맡기고 믿는 것이다. 모든 것을 의지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그와 같은 분이신가? 그 믿음이 우리를 움직이게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영혼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이들이 중풍 병자에게 가진 마음, 그 사랑이 무엇인가? 이 사람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고, 이 사람의 간절함이 곧 나의 간절함이다. 여러분, 사랑은 나를 넘어서는 것이다. 사랑은 그의 아픔에 함께 울고 함께 아파하는 것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가? 부모가 그 자녀를 사랑하는 것과 같다. 자녀가 아파할 때, 부모는 더 마음 아파하고 그 아픔이 온전히 내 아픔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자녀가 가슴아파하고 눈물 흘릴 때에 그 아픔을 끌어안고 나만 아픔을 바라는 것이 부모의 간절한 마음이다. 나를 넘어서는 사랑, 하나님의 온전한 마음과 사랑으로 누군가를 바라볼 때에 안타까움과 간절함, 그 사랑이 우리 가운데 부어질 수 있기를 믿어야 한다. 여러분
 
세 번째는 문제의식이다. 이 네 명의 사람들은 중풍 병에 걸린 이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잘 알고 있었다. 이 병 때문에 생긴 어려움, 이 병 때문에 희망 없이 살아가야 하는 아픔, 심각한 절망, 그 절망감을 이 네 명의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움직였고,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복음을 듣지 못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에 그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심각한 문제인지,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여러분 제가 묻겠다. 중품 병이 중한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없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인가? 그렇다. 우리는 입으로는 예수 생명 없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중풍 병 걸린 우리 가족은 우리가 바라보지 못한다. 당장에 병원에 데려간다. 하지만 예수 생명 없는 가족들은 1년, 2년 5년, 10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 그런가? 그것은 주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 중풍 병보다 심각한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수많은 장애물과 어려움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이유가 어디 있었는가?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 중풍 병에 걸린 사람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에 대한 인식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전도를 하는 것에 있어서 새 생명 축제를 앞두고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며 이 자리에 초대하는 것, 예수 생명을 이 본당으로 오게 하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환경과 제약이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어려움, 장애물을 뛰어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저는 앞서 말씀드린 세 가지라고 분명하게 이야기 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나의 굳건한 믿음, 그 영혼을 향한 나의 간절한 사랑, 예수 사랑이 없는 것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이 우리 안에 있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이 중풍 병자에게 예수님께서 첫 번째 하신 말씀하신 일이 무엇인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죄 사함을 선포해 주신다. 이 사람이 중풍 병에 걸린 것인지를 성경에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고 있다. 성경은 병에 직접적인 문제가 죄로 온다라고 하는 본문도 있다. 또 이 본문을 해석할 때에 이 사람이 중풍 병을 걸리기 전에 죄를 아주 많이 지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만났을 때에 죄 사함을 먼저 선포하셨다. 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땅에 모든 아픔, 모든 고통의 문제, 고난의 문제는 우리의 죄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의 아픔, 우리 사회의 고통, 현실의 어려움에 있어서 가장 먼저 해야 되는 것은 회개(悔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중풍 병자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가장 먼저 기대했던 이 중풍 병자를 위해 지붕을 뚫고 내려 보낸 이 네 명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기대했던 것, 이 사람과 예수님을 만나는 것을 보면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가장 기대했던 것이 무엇인가? 이 사람의 병을 단번에 고치시는 예수님의 기적(奇蹟)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왜? 이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다급한 문제, 이 중풍 병자에게 가장 큰 고난, 그 고통이 바로 중풍 병이라고 모두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사람에게 있어서 우선순위의 문제의 고통은 그것이 아니다. “이 중풍 병자에게 가장 급한 것, 가장 필요한 것,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죄(罪) 사(赦)함이다.” 라고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사람의 고통의 근원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죄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는 죄 용서(容恕)가 먼저 필요한 것이었다. 자신의 죄를 먼저 바라보는 것, 그것이 그 어떤 것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만일 이 사람이 여러분, 죄 용서를 받지 않은 채,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의 기대대로, 친구들의 기대대로, 모인 사람들의 기대대로, 그의 육신만을 치료받고 돌아갔다면 이 사람의 삶은 어떠했을까? 오히려 중풍 병에 걸려서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 더 나을 뻔한 인생이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가? 왜 예수님을 아무도 보지 못하는 문제를 우리는 보게 된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 인생에게 직접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여러분, 새 생명축제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에 아무도 알지 못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 그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은혜를 통해서 보게 될 것이며, 그 문제가 해결함을 받을 때에 그 인생의 진정한 자유 함을 얻게 될 것이다. 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가? 예수님을 통해서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 인생에게 직접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여러분 새 생명축제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에 아무도 알지 못하고 예상하지 못한 문제, 그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은혜를 통해서 보게 될 것이며, 그 문제가 해결함을 받을 때에 그 인생에 진정한 자유 함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라고 말씀하신다. 이 사람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의 육신, 삶의 어려움, 환경의 어려움, 아픔, 이 모든 것들을 온전히 회복시키신다. 중풍병자를 만난 예수님은 세 가지 명령을 하신다. “일어나 걸어라. 네 상을 가지라. 집으로 가라.”이다.
 
첫 번째는 일어나라이다. 회복이다. 주저앉은 곳에서 일어나라, 누워있는 곳에서 일어나라. 이것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얻을 수 있는 소망이다. 복이다.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 생명이 없는 인생은 그대로 누워있을 수밖에 없다. 죽은 자는 움직일 수 없다. 살아있는 듯하나, 예수 생명이 없으면 죽은 자요, 죽은 그 인생은 의미 없이 누워있는 인생과 같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생명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인생은 의미가 없고 허무하며 목적지가 없는 것이다. 목적지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움직일 필요가 없다. 열심히 움직이며 사는 것 같으나 그 인생을 늘 제 자리이다. 그러한 인생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신다. 생명을 주시며 “네 자리에서 일어나라.” 이다. 새 생명 축제에서 말씀을 들은 영혼들, 예수 새명을 얻게 된 영혼들은 그 자리에서 일어날 줄 믿는다.
두 번째는 네 상을 가져라. 예수님께서 굳이 “일어나서 가라” 하시면 되시지, 왜 굳이 “네 침상을 들고 가라.”고 하셨는가? 여러분 그 침상은 중풍 병자에게는 아픔의 장소이다. 죽고 싶지 않은 장소이다. 자신이 의지했던 곳, 자신의 아픔이 있던 곳, 절망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제 그 침상은 더 이상 아픔과 절망의 장소가 아니다. 같은 침상이지만 이제는 자신이 당당히 들고 걸어갈 수 있는 침상이 된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변화가 무엇인가?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도 여전히 문제는 곁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그곳에 누워있지 않는다. 우린 더 이상 그곳에 기대하지 않는다. 우리가 머문 곳은 더 이상, 아픔의 장소, 절망의 장소로 남아있지 않는다. 우리는 그곳을 복음의 장소로, 희망의 장소로 바꿀 수 있다. 극복할 힘이 우리 가운데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제 그곳은 절망의 장소가 아닌 희망의 장소이다. 수많은 삶의 고통의 문제 속에 누워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네 상을 들고 일어나라, “네 상을 눕지 말고 그것을 들고 나아가라.” 라고 말씀하신다. 이제 당당히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능력, 이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복음이다. 그 복음의 능력을 전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요, 새 생명축제임을 믿는다.
 
세 번째는 집으로 가라. 이제 그는 스스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집은 그에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늘 머물 수밖에 없는 곳이다. 그 집을 벗어날 수만 있으면 벗어나고 싶은 곳이 집이었다. 그러나 이제 집은 그가 돌아갈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다른 이들과 같이 지치고 피곤한 일상에 쉼을 주는 곳이 되었다. 같은 장소인데 다른 장소가 되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변화가 무엇인가? 같은 대상을 보고 같은 곳을 보더라도 벗어나고 싶은 곳, 그곳이 아닌 내가 가야할 곳, 내가 있어야 할 곳, 내가 쉬고 싶은 곳이 되는 곳이다. 소망의 장소로 다가온 것이다. 다른 의미로 내 삶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지체 없이 자신의 침상을 들고 일어났을 때에 여러분,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12절에 말씀을 함께 읽어보다.
 
*마가복음 2:12,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도무지 못한 모든 일을 모든 사람이 보게 되었고 모든 이가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게 된다. 2022년 11월 22일부터 시작될 새 생명축제를 통해 도무자 보지 못한 이곳에서 일어나기를 믿으며 소망한다. 중풍 병자와 같은, 아니 그보다 더 지치고 절망적이고 소망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심기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자신의 문제거리인 침상에 누워 이곳으로 올지라도 예수 복음 듣고 그 침상을 들고 당당히 일어나 생명을 소유하고 돌아가는 일들을 우리가 많이 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 일을 통해 우리 모두가 놀라게 될 것이며, 우리 모두가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우리 사랑의 교회를 향하신 온전하신 뜻이며, 우리 교회에게 주신 온전한 사명임을 우리 모두가 꼭 기억해야 한다. 온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사랑의 교회의 축제가 될 기대를 기대하고 소망하며 지붕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사랑을 달아 내린 자들처럼 우리 모두가 주의 사랑을 달아 내리는 신실한 주의 종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요약
한 영혼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지금 이 시간에도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으시는 주님을 생각하고 의지하여서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올 때만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주실 줄 믿고, 한 영혼의 안타까움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사랑으로 우리의 가족과 친지들이 주님을 알지 못하는 것에 문제의식이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향하여 강한 촉매제가 되어야 함을 기도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주님을 만나 옛 것을 떨쳐내고 주님 안에서 새로운 역사가 일어날 것을 확신해야 한다.
-이들의 믿음은 장애물을 극복한 불굴의 믿음이었고, 위험을 감수한 담대한 믿음이며, 타인을 위한 이타적 믿음이요, 구원의 열매를 맺은 결실의 믿음이었다.
 











 

  
주일예배(주후 2022년 11월 13일)-성찬식
제목: "부흥을 잉태하는 마음"
말씀: 창세기 42:12-15
대표기도: 백승준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헌금송(영광여성중창단-생명의 양식)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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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2:12-15,
12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아니라 너희가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느니라. 

13 그들이 이르되 당신의 종 우리들은 열두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막내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14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 
15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막내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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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43장 14절부터 본문을 보겠다. 주보를 보라.

*창세기 43:14,
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오늘은 성찬을 앞에 놓고 부흥 시리즈, 회복과 부흥의 세 번째에 ‘부흥을 잉태하는 마음’이 오늘 이 말씀이 부흥의 문을 여는 은혜의 비밀 패스워드가 되며 비밀 열쇠가 되길 바란다. 제가 이 부흥 시리즈를 하면서 오늘 야곱에 대해 마무리를 하는데 야곱의 인생 여정에서 커튼을 열어보았다.
 
여러분, 야곱의 인생 가운데 영적으로 언제가 최고의 순간인가? 야곱의 영적인 깊이의 최고의 수준이 도달할 때가 언제였는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생을 살아가는데,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어떤 높은 순간, 어떤 높은 고지에 올라갔을 때가 언제였을까? 형에서를 만나기 전에 얍복 강가에서 철야기도하고 철야 씨름할 때가 그때였을까? 아니면 세겜에서 집안 전체가 멸문치하를 당할 때, 절체절명의 위기 때에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엘벧엘 하나님을 경험할 때였을까? 뭐 그런 순간도 다 좋았지만, 제가 볼 때는 42장, 43장 이 부분에서 야곱의 영적인 최고의 순간, 최고의 신앙고백을 하는 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본문에 42장 43장의 배경은 야곱의 나이가 130세 때이다. 야곱은 그의 고백대로 창세기 47장에 보면, “내가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 “지극히 어려움의 세월을 보냈다.” 야곱이 지난번에 벧엘에서 서원을 지키고 아버지 이삭이 살았던 고향 땅에 헤브론으로 돌아온 이후에 그 다음부터 엘벧엘 하나님을 만나고 모든 것이 순적해지니까 인생은 그렇지 않다. 자기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인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고향에 돌아온 지 일 년 정도 지난 후에 야곱이 그렇게 애지중지 하던 아들 요셉을 형들의 묘략 때문에 잃어버렸다. 요셉이 죽은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은 20년쯤 지나서 요셉을 그 20년의 세월을 사랑하는 아들을 잃어버린 그 아픔을 부여잡고 고통을 했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지난 2년간 그 애굽의 요셉이 총리가 되고 난 다음에 7년간 풍년이 지났고, 흉년을 7년을 지나게 되는데 그 7년 가운데 2년이 지나가는 중에 극심한 기근(饑饉)이 들어서 애굽 뿐만이 아니라, 고대근동 사회가 다 먹을 것이 없었다. 야곱에게는 수많은 가축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축들도 굶어 죽어가는 모습을 봐야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풍년 기간 동안에 창고를 만들어 쌓아놓았다는 그 정보를 듣고 자식들을 애굽으로 보내어 양식을 사오게 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이다. 그리고 자식들을 보내는데 10명을 보내가지고 애굽에서 곡식을 사오게 하는데, 한 명은 예외였다. 한 명이 누구인가? 주일학교를 잘 나와야 한다. ‘베냐민’이라는 막내를 야곱이 너무 애지중지 했다. 야곱은 베냐민을 분신보다 더 사랑했던 아들이었다. 요셉까지 없으니까, 야곱게 사랑했던 아내는 라헬이었다. 라헬이 낳은 두 아들은 요셉과 베냐민이다. 요셉은 죽은 줄 알았고, 베냐민은 늘 품에 안고 있었다. 그리고 야곱의 아들 열 명이 애굽에 가서 곡식을 얻기 위하여 애굽의 총리 앞에 넓적 절을 했을 때, 요셉은 형들인 줄 단숨에 알아보았지만 형들은 요셉을 못 알아보았다. 애굽의 그 궁전의 위엄과 떨어져 있어서 못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요셉은 모른 척하고 너희는 곡식을 사러온 것이 아니라, 정탐(偵探)하러 온 것이라고 몰아세웠다. 열 명의 형제들이 우리는 정탐꾼이 아니라고 정탐꾼이라면 어떻게 열 명의 형제들이 다 올 수 있냐고 하면서 그건 아니라고 한다. 가족 전체가 정탐꾼이 될 수가 없다고 하니까, 진짜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형들에게 동생을 물었다. 동생은 집에 있다고 했다. 그러면 그 막내가 있다고 했는데 그 막내까지 데려오면 내가 믿어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시므온만 볼모로 잡아 놓는다. 보면서 ‘요셉도 뒤끝 작렬이다.’는 생각을 했다.
 
이 후에 곡식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서 애굽에서 갖고 온 그 곡식을 가지고 얼마간 버텼지만, 곡식이 다 떨어지니까,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라. 곡식자루에다 요셉이 곡식자루에 돈 같은 것을 다 넣어버렸다. 그리고 야곱이 다시 자식들에게 곡식을 사오라고 한다. 그러자 자식들이 “아버지, 베냐민 데리고 가지 않으면, 곡식을 못 사옵니다.”라고 한다. 야곱이 베냐민은 내 생명처럼 아끼는데 안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나마 넷째 아들 유다가 인격적 신뢰를 받았다. “아버지, 제가 생명을 걸겠습니다.” 생명을 걸 테니까, 베냐민을 데리고 가게 해달라고 한다. 이런 벼랑끝 상황에서 야곱의 결단을 보는 장면이 오늘 본문이다.
 
*창세기 43:14,
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야곱은 베냐민을 앞에 놓고 내가 자식을 잃으면 잃게 되리로다. 한다. 제가 보기에는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야곱의 인생에서 이 순간만큼 장엄한 시간이 없다. 이 야곱의 벼랑 끝 한계 상황에서 고백하는 이 내용은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이것은 자포자기의 고백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완전히 빼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긴다는 절대적 신뢰의 결단이 된 것이다. 그래서 한 마디로 야곱이 하나님께 전적 위탁하는 장면을 보고 있는 것이다. 아시는 대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라헬의 큰 아들 요셉도 잃고 이제 마지막 남은 베냐민만 겨우 살았는데, 44장 뒤에 보면, 아버지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있다. 베냐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버지의 생명과 묶여 있다며 서로 하나다. 라고 그렇게 목숨처럼 사랑하는 베냐민을 잃게 되면 잃겠다. 는 것이다. 이것은 생명 같은 베냐민을 포기하는 포기선언이다.
 
여러분,
어떻게 보면, 자식을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생에서 끝까지 붙잡고 있던 것, 이것은 절대로 안 되는 것, 그것을 내려놓는 것이다. 제가 야곱의 신앙여정 가운데 영적으로 최고의 순간이 이 순간이 아닌가 한다. 피 말리는 아픔이 있고, 자신을 죽이는 아픔이 있고, 그리스도께 전적위탁이다.
 
지난 한 주간 우리는 제자훈련 세미나를 했다. 전 세계 14개국에서 오신 목사님들과 씨름을 하는데, 제자훈련은 단순히 교회 성장, 반복이 아니고, 목회의 본질이며 교회 론이다. 교회가 뭐냐? 교회는 ㅔ상을 향하여 부름 받은 특권이 아니라, 안주하지 말고 세상을 향하여 보냄 받은 제자들, 사명자로 키워야 하는데, 어떤 전략적 표준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제자의 전략적 표준, 그 표준이 없다면, 이탈하게 되고, 이탈하게 되면 어긋나게 되고, 어긋나게 되면 사역의 열매가 없다. 자기 잘못된 방향이 된다.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마음인데 온전한 제자의 표준, 넘버원이 무엇이냐면, 전적 위탁이다. 종의 마음, 증인의 마음, 다 필요하지만 전적위탁의 마음, 첫째이다. 우리가 제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려면,
 
▷부흥을 잉태하는 마음- 첫 번째 전략적 기준이 전적 위탁이다.
그래서 야곱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자기 버림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이나 저의 인생에 반드시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의 고백이 없는 생활은 사실은 다 껍데기이다.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의 고백은 그냥 겉만 좋은 것이다. 제가 저도 어려움을 겪어보니까, 조언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냥 편하게 살고 잘나가고 좋은 평판 받고 자기 이름 지키는 분들이 조언하는 것과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하는 죽음을 통과하는 분들의 조언이 달랐다. 저는 죽음을 통과한 분들의 기도가 없었으면,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설교를 못한다. 그러면 죽음을 통과했다.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이게 평생의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하는 고백을 한 번도 안했다면 피상적이고 퇴패 적인데, 그냥 신앙생활하고 적당히 자기 힘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다. 신앙은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사는 것인 줄 확신한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면서 이것을 체험해야 한다.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이 고백을 가지고 나중에 이 보혈의 잔을 높이 들 때에 오늘 주님 은혜 주셔서, 정말 하늘에 불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고, 영적으로 깊은 은혜를 체험하기를 바란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아이구야!! 너무 쎈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게 쎈게 아니고 신앙생활의 정상적인 것이다. 이렇게 될 때에 여러분과 제가 주의 신앙이 더 깊어지고 목자의 심정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의 사건이 무엇인가? 예수님이 “엘리엘리 사박다니 하나님이 나를 어찌하여 버리셨나이까?” 그런 우리의 죄악이 깊기 때문에 주님의 그 고통의 외침이다. 주님은 결국 “내가 내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 결국은 우리가 복음적 깨달음은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이 사건이 예수님의 입장에서 내가 내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 일맥상통하고 있다.
 
제 생애 가운데 직접 만나지는 않았지만, 책을 통하여 좋은 영향을 끼친 분 중에 한 분이 ‘폴 드로니에’이다. 스위스의 좋은 신학자이다, 신앙인이었다. 그는 기독교와 심리학을 통합했다. 그리고 그가 말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인격의학’이란 말이 있다. 인격의학이란(Medicine of the person), 이것을 인격의학을 이야기 하면서 세계 의학계와 크리스천 상담학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아버지가 목사님이셨고,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어릴 적부터 기독교 신앙을 가졌지만 그의 삶에 예수 믿겠다고 회심만큼이나 그의 신앙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이 있었다. 그의 고백이다.
-30년 전 나를 바꾸는 새로운 발걸음을 내 디뎠다. 그때까지 나의 신앙은 지적인 면이 강하였다. 하나님 그리스도, 우리 인간의 삶의 영역에서 지적인 면을 중시하는 사고의 세계를 갖고 있었다. -‘폴 투르니에-

-오늘 앞 예배는 지성인들이 많이 계실 것이다. 이런 분일수록 우리가 지성신앙이 더 많다. 그것도 귀하다. 그런데 ‘폴 드로니에’가 이야기 한 것은 지성중심의 신앙은 늘 한계에 부닥쳤다. 그래서 지성중심의 신앙이 아니라, 영성의 은혜로, 지성에서 영성으로 옮기는 큰 계기 있었다. 뭐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이런 글을 썼다.
 
내 신앙에 없던 것이 내 뜻을 포기하고 매일 실제의 삶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일이었다. 나는 어느 날 스위스 제네바 근교 어느 숲으로 가서 전심으로 진심으로 나를 포기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날 하나님과 맺는 포기의 약속은 내 인생길에 수많은 굴곡의 역사 가운데 최고의 버팀목이 되었다.
-‘폴 투르니에-’



-지성중심의 신앙이 다시 하나님이 원하시는 전인격적인 소위 인격의학, 자기를 포기하는 전적위탁의 선언이다. 오늘 야곱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와 같다. 그가 남은 인생에 최고의 버팀목이 되었다는 것이며 제네바 숲 속에 가서 나를 포기하는 기도를 드렸다는 것이 그의 신앙을 질적으로 한 단계 올라가게 한 것이다. 이 내용이야 말로 폴 드로니에의 하나님의 전적 위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 그리스도인들이 단조로운 신앙생활을, 왜 생기 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가 무얼까? 왜 결혼 생활이 권태인가? 자기가 갖고 있는 보화를 내려놓고 진정으로 하나님께 위탁하는 신앙생활을 한다면 모든 권태의 신앙에서 생기의 신앙으로 거듭날 수가 있다. 그래서 마태복음 11장에서도 말씀하신다. ‘자기의 생명을 얻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자기 생명을 잃고자 하는 자는 얻을 것이다.’ 십자가 보혈의 사건이 우리가 경험되는 것인데, 여러분, 이런 위탁의 은혜가 주님 앞에 진실 되게 있을 때 우리의 권태롭고 메마르고 단조롭고 답답한 이 신앙생활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줄 믿는다. 우리가 갖고 있는 보화를 다 내려놓아야 한다는 무슨 뜻인가 이냐면, 내가 중요하다고 움키고 쥐고 있는 것을 힘 빼기를 통하여 내려놓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위탁한다는 것이다.
 
야곱이 베냐민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내려놓을 수 있는 마지막 한 방울을 내려놓은 것이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삶이 메마르고 답답한가? 왜 그런가? 왜 풍성한 신앙의 단비를 경험하지 못하는가? 복잡한 것 다 정리하면 주님 앞에서 저와 여러분의 포기각서를 못써서 그렇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폴 드로니에’가 제네바 숲 속에 그 기도의 장소에 가서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위탁을 하겠다는 결단의 기도를 드릴 때, 이 메마른 신앙생활을 탈피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제네바까지 안 가도 된다. 오늘 성찬식일 때, 하나님의 은혜의 품안에 전적으로 위탁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전적 위탁이란, 하나님 앞에서 전적위탁이다. 오늘 이 잔과 떡을 기념하면서, 우리가 전적 위탁이 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하실 것이다. 여러분이 중요하다고 여기고 움켜쥐고 있는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힘 빼기 작업을 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위탁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언제나 예!!! 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순종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해가 안 가겠지만 고린도교회가 하도 답답하니까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말씀한다.
 
*고린도후서 1:18-19,
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지금 이야기 한 그 내용이다. 예, 만 있다는 것이다. 힘 빼기 작업이다. 잃으면 잃게 되리라. 그렇게 한 뒤에 전적 위탁의 결과는 무엇인가? 자신의 생명과 같은 베냐민을 내려놓는 그 야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창세기 43:14,
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야곱은 마침내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야곱이 자기 입으로 고백을 한 번도 못했다. 처음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의 입술로 처음 고백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지성으로 알던 하나님을 드디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진정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진정한 자유 함을 얻게 되었다. 자유 함이 찾아왔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성찬을 통하여 진정한 자유 함을 얻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런 내면 적 변화와 함께 자유 함을 가지고 변화가 따라온 것은 무엇인가? 전능하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긴 야곱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본문 뒤에 보면 애굽에 갖다온 아들들이 뭐라고 하냐면, “아버지, 요셉이 아직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잃으면 잃으리로다. 라고 진실로 고백할 때, 요셉이 아직 살았다고 이 소식을 들은 야곱은 45장에서 보면,
 
*창세기 45:26,
26 알리어 이르되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 야곱이 그들의 말을 믿지 못하여 어리둥절 하더니.
-그걸 믿지 못해가지고 그들의 말을 믿지 못해 어리둥절하고 볼을 꼬집으면서 꿈이냐 생시냐 했다. 그런데 어떻게 믿었냐면 요셉이 보낸 수레를 보고 믿었다.고 한다. 요즘 말하면 금장 딱지 롤스로이드를 보낸 것이다. 그제서야 기운이 소생했다. 수레를 보고 기운이 소생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을 다시 얻었다. 거의 부활을 체험했다.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라고 하나님께 완전히 의탁했더니 잃었던 자식까지 찾게 된 것이다. 여기서 닭이 먼저이냐? 닭 알이 먼저이냐? 라고 이야기 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이런 일을 기대하기 때문에 전적 위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순전하게 이렇게 할 때에 하나님이 그것이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하신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우리 하나님은 내 전적 위탁이 필요 없다. 내가 전적 위탁을 하면 여러분과 제가 전적위탁을 하게 되면 내가 좋은 것이지 하나님이 달라지는 게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순전한 마음으로 전적으로 위탁을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들을 다시 돌려주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야곱은 너무나 은혜가 되어서 45장 28절에
 
*창세기 45:28,
28 이스라엘이 이르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하니라.
-그리고 내려가서 ‘족하도다.’ 라고 한다. 진심으로 ‘잃으면 잃으리로다.’라고 하나님 앞에 하면 하나님은 ‘족하도다.’는 그런 단어를 주실 것이다. 여러분 이게 믿음이다. 드디어 부자 상봉을 하게 된다. 그리던 요셉을, 내면은 하나님을 통하여 자유 함을 얻고, 그의 열매는 이제 부자는 끌어안고 한 참을 울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창세기 46:30,
30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 ‘죽어도 족하도다.’ 한다. ‘잃으면 잃으리로다.’라고 전심으로 하면, 우리가 믿음이 있으면, 죽어도 족한 것이다. 지금 죽어도 족하다. 지금 오늘 성찬을 통하여 이런 은혜가 되길 바란다. 17세에 잃어버린 요셉이 이 순간 39년의 세월이 흘렀다. 39년의 중년이 되었다. 야곱은 23년 동안 17세에 잃어버리고, 요셉이 애굽의 총리 될 때가 30세이니까 13년에다가 7년 풍년이 지나고 2년 흉년이 더하고 일 년이 지났다. 23년이 지난 것이다. 야곱의 23년 동안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을 것이다. 요셉도 17세 때는 철부지였다. 자기 마음에 있는 생각을 품지 못하고 형들에게 막 이야기 하다가 시기 질투를 받았는데 그 때 하나님이 내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나를 먼저 보냈다고 이제는 형들을 위로하는 큰 그릇이 되었다. 여러분 이런 것들이 부흥인 줄 믿는다. 그리고 요셉은 젊을 때부터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아마 요셉이 감옥에서 자기가 꿈 해석해준 사람이 2년 동안 아무 끔쩍도 안 했을 때, 하나님 앞에 섭섭함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했다. 만약 평탄했으면 요셉은 애굽에서 감옥에서 하급 관리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보디발의 집안에서 그렇게 모함 당하고 어려움도 있었을 때, 화가 나서 난리 치지 않고,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그렇게 하니까 가정 총무 정도의 수준에서 하나님께서 이 시간, 형들 앞에서 형들에게 복수도 할 수 있었지만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라는 마음이 있어서 아마 하나님 앞에서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그런 요셉의 환경 환경이 늘 추워졌지만, 그걸 잘 감당을 안 했으면, 그 당시 고대 근동에 큰 기근이 있을 때에 자신도 형제 가운데 끼어 있을 것이다. 마지막 야곱은 그가 부흥을 경험하고 유명한 49장 22절에 자식을 축복할 때, 특별하게 요셉에게
 
*창세기 49:22,
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요셉으로 말미암아 주위를 다 살렸다. 자식 교육에 있어서 답답한 게 많다. 자녀를 양육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우리는 성공하기 위하여, 행복을 위하여 자식을 키우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다. 대부분의 교육의 목적은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하여, 부모와 자녀 간에 친밀한 관계를 가지 위해서, 남편과 아내의 다리역할을 하기 위하여, 혹은 노년에 부양할 노년을 위하여, 그것 다 일리가 있다. 그래서 행복하고 성공하고, 그러나 여러분 자녀 양육은 달라야 한다. 그리스도인 부모는 전적으로 자녀를 위탁하는 자녀로 키워야 한다. 요셉처럼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해야 한다. 그리하려면 우리 자녀들 그런 환경을 갖게 해야 한다. 야곱의 가장 문제 중에 하나가 편애였다. 하나님께서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하고 이렇게 용광로로 집어넣는 이유가 뭐냐면, 야곱의 엄마가 리브가가 이삭은 에서를 더 좋아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더 좋아했다. 그 편애가 야곱에게도 그대로 흘렀다. 그것을 요셉과 베냐민을 처리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들을 처리하기 위하여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라는 환경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전적 위탁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요셉의 아들의 축복도 누리시길 바란다. 우리가 그런 꿈을 가지고 성찬에 참여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토비새에 교회를 데리고 나오면 아이들은 달라진다.
 
♣요약
십자가의 보혈의 잔을 높이 들고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였으니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는 전적 위탁을 하여 시대의 요셉을 키우는 평생이 되고 내 인생의 힘을 빼 내는 포기각서를 하나님 앞에 내어 드릴 때에 내가 애지중지 하던 베냐민을 해결해 주신 것처럼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로 하나님 앞에 나도 전적 위탁을 하여 순전한 신양생활로 주님 기뻐하시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요셉은 자기에게 절하는 형들을 알아보았지만 모른 체하고 그들을 정탐꾼으로 몰아치면서 혐의를 벗으려면 막내인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했다. 요셉은 자기를 죽이려고 한 형들이 베냐민에게는 어떻게 대했는지 알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형들의 잘못을 기억케 함으로써 회개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사흘 간 가둠으로써 형들의 본심을 알아보고 과거를 반성할 시간적 여유를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형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할 수 있었고 더욱 진실한 회개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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