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월 4일)
제목: "감란산 기도의 지팡이 1"
말씀: 마태복음 26:36~41
대표기도: 
찬양인도: 여직장순장반
말씀읽기: 전겸의 학생(고등 1,2부), 차예림 학생(다니엘 중등부)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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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6:36~41,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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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담임목사님-"감란산 기도의 지팡이 1”
-할렐루야!!!~ 이걸 제가 들고 있다. 여러분 너무 놀랍다. 제가 마스크를 벗었다. 여기 다 마스크를 끼고 온 분들도 있지만 마스크를 안 끼고 찬양을 하니까 익숙하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얼굴 모습이 그 모습이었나!! 한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마스크 3년 동안 끼고 있으면서 아이들의 얼굴이 마스크 있는 게 그대로의 얼굴인지 알았다고 한다. 우리는 처음으로 마스크를 벗고 이제 진짜 오랜만에 찬양을 하는데 직장 반 순장님들이 이렇게 토요일에 이와 같이 먼저 하나님 앞에 찬양함을 주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신 줄 확신한다. 아마 한국교회 많은 교회들이 아마도 내일부터 마스크 벗는 교회가 반반 될 것이다. 우리가 이 모든 것들도 남들이 생각할 때는 그냥 된 것 같지만 우리가 매 3년 동안 예배 시작할 때에 “주여, 하나님의 은혜로 코로나를 종식시켜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기억이 날 것이다. 이번 주부터 코로나를 종식시켜 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를 올리는 기도를 하게 될 것이다.
 
토요일 아침 뭐든지 될 때까지 해야 된다. 뭐든지 전에 숭실대학에 안병욱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 분이 철학과 교수인데 그분이 하신 말씀이 “사람이 무슨 일이 되려면 10년은 해야 한다.” 고 하셨듯이 10년을 해야 그 일이 무언가 이루어진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이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간다는 이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주님 앞에 집중하는 이유가 우리가 계속 하면 하나님께서 은혜 주실 줄 믿는다. 지금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계속 기도하는데 우리 교회 오시는 여러 손님들이 깜짝 놀란다. 무언가???!! 속으로 될 때까지 가는 것이라고 하며 기도의 응답을 주님이 주실 때까지, 이번 6월 3일에 상암 경기장에서 10만 명의 기도자들이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기도할 때, 반드시 남북문제가 해결되고, 우리 한국교회가 다시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영광스러운 방향이 잡히리라고 확신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매주 토요일마다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이 번호까지 있듯이, 이 기도의 지팡이는 넘버 0001이다. 이것은 강단용 1번이다. 우리가 될 때까지 기도를 하는데 우리가 시내 산 기도를 하고, 갈멜 산 기도도 하고, 오늘은 한국교회가 갖는 수많은 자본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감란 산의 기도, 겟세마네 기도의 이 은혜를 본받아서 한국교회 성도들이 새벽에도 기도하고 그 다음 철야기도, 금식기도, 산 기도도 이렇게 하는데, 오늘 이 자리가 우리가 안아주신 본당, 서초동 반포대로 121번지이지만, 이 자리가 기도의 자리가 되길 소원한다. 여러분, 각자의 마음의 방향과 여러분들이 기도의 제목과 또 어떤 분들은 시내 산이 될 수 있고, 어떤 분들은 감란 산이 될 수 있고, 어떤 분들은 모리아 산이 될 수 있고, 어떤 분들은 갈멜 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우리가 기도의 산에 올라갈 때마다 하나님은 맞춤형 은혜를 주시리라 확신한다.
 
오늘 감람산에 관한 것은 감람산 아래 겟세마네 동산이 있다. 그러니까 크게 보면 감람산이고, 그 아래에 겟세마네 동산이 있는데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의 기도에 대해서 오늘 좀 살피겠다. 저희 한국의 캠퍼서 선교를 할 때에 어느 모 대학의 대학생들이 제대로 기도를 한 번 하자고 그렇게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 동아리를 만들었는데 그 기도 동아리의 이름이 ‘겟세마네기도 동아리’였다. 겟세마네기도 동아리를 통하여 간절히 기도했는데, 성균관대학에서 정말 기도하는 기도 팀들을 통하여 인물들이 굉장히 많이 배출되었다. 그러니까 오늘 이 자리가 겟세마네 기도의 핵심을 우리가 잘 가질 때, 여기를 통하여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배출될 줄 믿고 기도의 신실한 종들이 배출될 줄로 확신하는 것이다. 확실하게, 지난주일 날 사무엘을 통하여 라마 나욧에서 사무엘은 마지막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었던 그 사무엘에게 그 사역을 라마 나욧에 있는 선지자, 선지 생도들이 제대로 훈련을 하고 기도를 배우고 그렇게 하니까 그 라마 나욧을 통한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을 통하여 다윗왕국의 놀라운 물고를 텄다고 거기에 제사장도 나오고, 거기에 선지자도 나오고, 예배 인도자도 나오고, 이스라엘 정치 지도자들도 나오고 이렇게 한 것처럼, 토요비전새벽예배가, 오늘 이 자리가 기도의 동산이 하나님의 나라의 놀라운 인물들이 배출되기를 바란다. 오늘 보문에는 37-38절을 보니까,
 
*마태복음 26:37-38,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 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예수님이 십자가 사역을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얼마나 힘이 드는지, 그렇다. 아무리 예수님 신성을 가진 예수님이지만 예수님이 전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가실 주님이시지만, 예수님은 완벽한 신성을 가지셨지만 또 완벽한 인성을 가지고 계셨다. 또 인성을 가지신 분이시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내 마음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신다. 그것이 예수님이 기도하시기 전의 상태였다. 그런데 이유는 모르지만 감람산 겟세마네에서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마태복음 26: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그러니까 일어나라 함께 가자하신다. 모든 문제들이 다 해결되고, 기도를 통하여 모든 문제들이 다 해결되고, 이제는 다 평강을 가지고 됐다고 이제 가자고 하신다. 십자가를 질 수 있다고 하신다. 그러니까 사람은 살다보면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마음에 고민이 되어 죽게 될 정도로 수많은 일들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유를 모르지만 감란 산에 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데 이제 되었다. “일어나 함께 가자.” 하신다. 우리가 이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어떨 때는 깊은 고민과 짊을 지고 간절히 기도하는 그런 상황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기도의 동지들과 함께 간절히 기도할 때, 딱 마음의 평안을 주셔서 “일어나 함께 가자.” 하신다. 그 이유가 오늘 두 세가지 말씀을 하겠다.
 
첫 번째 –기도의 자리.

-겟세마네는 예수님의 기도의 자리였다. 무슨 자리인가? 기도의 자리이다. 겟세마네는 감람산 하단에 있다. 감란 산의 일부였다. 감란산은 예수님께서 습관을 쫓아 기도하셨던 장소이다. 그래서 누가복음 29장 39절을 보면,
 
*누가복음 22:39,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습관을 따라, 그러니까 겟세마네 이 지역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앞에 마음을 다 털어놓고 기도하는 장소이다. 늘 함께 기도하는 하나님 만나는 장소였다. 생애에 가장 위기를 닥친, 십자가를 짊어져야할 그 상황에서 그 어려움을 당하실 때도 주님은 서슴지 않으시고 늘 습관에 따라 기도하는 장소에 가시는 것이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온 여러분들은 삶의 지치고, 삶의 수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있을 때, 습관을 좇아 기도하는 겟세마네가 되기를 바란다. 아니 습관을 쫓아 기도하는 우리의 장소가 있냐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할 때, 토요비전새벽예배, 이 자리가 내 생애의 가장 큰 짐이나 어떤 기도의 제목이 있을 때, 그 기도의 제목으로 해결할 수 있는, 습관을 따라 갈 수 있는 그런 은혜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평소에 그런 기도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겟세마네 기도의 장소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어떨 때는 습관을 따라 기도하는 마음가짐 장소가 될 수 있고, 환경이 될 수 있고, 장소가 될 수 있겠다.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는 자는 반드시 삶의 환경의 자리에서 겟세마네 기도의 장소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아니 토요비전새벽예배, 이 자리가 여러분이 습관을 좇아 기도하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의 장소처럼 여러분도 이 자리가 기도의 장소가 되기를 소원한다. 아멘. 습관을 따라 기도해야 한다. 삶이 만만하지 않고, 인생도 만만하지 않다. 그 만만하지 인생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힘,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하나님이 주시는 깊은 영적 교제, 그것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있겠는가? 고통의 골짜기를 통과할 수 있는 평안과 힘과 영적교제를 누릴만한 그런 기도의 장소가 있을 것인가? 매주 토요일마다 힘과 평안과 영적교제를 누릴 수 있는, 습관을 따라 기도할 수 있는 이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멘. 습관을 따라 기도할 수 있는 장소, 겟세마네 동산 기도의 장소처럼, 우리의 삶이 모든 기도의 제목들을 평소에 기도하던 대로 기도하는 장소가 바로 이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기도의 장소가 중요하다.
 
두 번째는 –함께 기도하는 동지.

*마태복음 26:37,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 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두 아들이 누구인가? 야고보와 요한이다. 이들은 기도의 동지들이다. 기도의 최측근이다. 예수님의 마음 그대로 그 마음에 주님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상처, 조각, 마음의 수많은 짐들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최측근들이었다.
 
*마태복음 26:38,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얼마나 최측근이었으면 예수님의 마음의 상태, 어떤 주님의 아픔, 기도의 제목을 같이 나눌 수 있는 그런 최측근이 있었다는 것이다. 내 마음이 고민하였다고 하셨듯이, 그런 기도를 나눌 수 있는 최측근이다. 기도의 용사, 기도의 동지들, 저는 토요비전새벽예배에 지팡이에 번호가 다 있듯이, 7천 번까지이다. 그리고 혹시 없는 분들은 이 번호가 없는 분들은 꼭 받아가야 한다. 1-7000번까지가 기도의 최측근이 되기를 바란다. 될 때까지 할 것이다. 진지하게 말씀을 드린다. 될 때까지 할 것이다. 뭐든지 10년을 해야 일이 된다고 했다. 한국교회가 앞으로 10년을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집중을 해서 정말 세계선교를 마무리 하는 그런 한국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될 줄 믿는다. 우리가 이 자리가 겟세마네 장소가 되기만 한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기도의 최측근, 우리가 마음에 안타깝고 힘들 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기도의 동지가 확보되어야 한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이 자리가 굉장히 상징적인 자리이다.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씩 이렇게 마음을 모아서 토요일에 이 자리가 오고 싶어서 막 뛰어올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특새 할 때 보았듯이 수많은 사람들이 밀려온다. 그렇게 와서 특새를 하고 하면, 일주일씩 하게 되면 다 동지가 된다. 그리고 그냥 이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동지의식을 가지고 세목 골 눈이 그냥 편안한 눈으로 바뀌기를 바란다.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하지 말고 토비새 나온 분들은 동지가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도 맨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맨날 평가하고 지적 질하고 비판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기도의 동지가 되어야 한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왜 그러한가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격려하라. 같이 마음을 품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 교회는 그런 사람이 없다. 교회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 같이 아파해주고 같이 마음을 해야 한다. 물론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가 부족한 것도 있지만 그래도 예수님의 감란 산에 최측근 동지가 된 것처럼 사랑의 교회 토비새에 나온 여러분들은 최측근 동지가 되길 바란다. 동지적 안목을 가지고, 동지적 눈을 가지고 쳐다보라. “우리는 기도의 동지입니다.”하면서 기도하기를 바란다.
 
세 번째는 –기도의 자세(아빠 아버지).

*마태복음 2:39,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거기에는 다음에 다시 또 설교하겠다. 예수님께서 기도할 때에, 신성을 가지신 분이시기에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가신다. 십자가를 지시는 그 놀라운 신성을 가지고 하시는데, 또 하나는 예수님의 인성은 측근과 함께 고통을 나누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주님의 기도의 놀라운 기도의 자세가 있다. “내 아버지여!”하신다. 오늘 토비새에 나오신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 앞에 나와서 기도할 때에, ‘내 아버지여!’는 호칭이 거창하고도 형식적인 아버지가 아니다. 격식이 있는 그런 호칭이 아니라 ‘아빠 아버지’이다. 집에 아버지께 이야기 할 때, 존경하는 아버님 하지 않는다. 온갖 수식어를 붙이지 않고 ‘아빠!!’~ 하듯이 그렇게 한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에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복음적 신학자, ‘죠하킨 제네미야’가 계신데, The Sun of man. as The Sun of God!=하나님의 아들, 그 사람의 아들, 인자신학이라고 유명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주님께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신, 그 십자가를 지고 가신, 그 일을 앞에 놓고 “내 아버지,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다. 무슨 거창하고 공식적인 이름이 아니라, 아주 친근하게, 어린 아이가 아버지를 부를 때, “아빠!” 하듯이 같다. 토요비전 새벽예배 나와서 이렇게 헌신 기도이 지팡이를 들고 와서 기도할 때마다, 우리는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해야 한다. 정말 내 마음의 아픔과 한국교회의 짐과 이 민족이 해결해 나아가야 할 짐을 놓고 하나님 앞에 우리가 “아바, 아버지”, 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아주 독특한 관계이다. 여기서 제네미야’는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그냥 부르는 것이 아니라, 어린 아이가 아버지 앞에서 응석 부리는 용어라고 말한다.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가 된다. 그래서 나이가 70-80이 되어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면 그 순간 다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토요비전새벽예배 때마다 우리가 간절하게 사모하는 것은 이 자리가 순도 높은 기도의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 순전함을 회복하는 장소가 되기를 소원한다. 우리가 폼 재는 것이 아니라, 친근하게 하나님을 부르는 순간 이 기도는 신앙의 순도를 만들게 된다. 우리는 앞으로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주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면 평생의 신앙의 순도, 신앙의 순전함의 은혜를 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기도의 순도를 유지하라. 거룩한 기도의 장소가 이 토비새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 인물들이 배출되고 기도의 인물들이 나오기를 소원하며, 모두가 다 기도의 최측근이 되기를 바란다. 기도할 때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길 소망한다.
 
▶메튜 암스토롱 목사님(Mattew Amstrong)-초빙(통역 김성태 목사님).
-옥스포드 대학에서 왔다. 정말 반갑게 초청해 주셔서 감사하다. 특별히 오정현 목사님께 감사하다. 옥스퍼드 대학에 있는 위클리프 신학대에서 대외 협력 디렉터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옥스퍼드 대학이 처음으로 이렇게 오게 되었다. 오정현 말씀하신대로 전 세계가 복음으로 변화 되어야 한다고 말씀했듯이 옥스퍼드도 그렇게 변화하고 있다. 정말 어떻게 변화하고 있냐면 리더 자분들의 기도와 말씀, 옥스퍼드의 많은 리더 자들이 정말 성경적으로 든든히 서가며, 복음으로 많은 변화를 시키기를 위해서 사역하고 있다. 전에도 오고 싶었지만 못 왔다. 어쨌든 팬데믹이 지났기 때문에 옥스퍼드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 글로벌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 같이 하기를 원하며 계속해서 파트너 십을 이루고 같이 사역을 하기를 원한다. 옥스퍼드 대학교가 여러 가지 단과 대학이 모였는데 그 중에서 위클리프 신학대가 유일하게 복음과 성경으로 전 세계적으로 글로벌 미니스트리를 말씀 중심으로 사역하기를 원하는 그러한 대학이다.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며, 사랑의 교회와 옥스퍼드가 같이 연합해서 글로벌 미션을 감당하는 좋은 관계로 이어기를 소망하며 기도한다.
 
♣요약
모두가 다 무한한 기도의 헌신 자가 되어서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회복을 넘어 부흥’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이 감동을 주심을 믿고 기도하여 열매를 맺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는 자는 반드시 삶의 환경의 자리에서 겟세마네 기도의 장소가 있어야 하며, 예수님의 감란 산에 최측근 동지가 된 것처럼 사랑의 교회 토비새에 나온 여러분들은 서로 최측근 동지가 어서 예수님과 친밀하여서 마음의 거룩한 자세를 가지고 주님께 온전한 기도를 하기를 소원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수난이 가까이 다가오자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로 가셔서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할 수 있거든 잔을 옮겨주시기를 간구하면서도 그 분의 뜻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셨다. 주님도 인간적인 약점과 연약함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열심이 온전히 모든 일을 이루게 한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간절히 기도하실 때 제자들은 잠을 자고 있었다. 이처럼 영적으로 잠든 제자들의 모습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늘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깨어있어야 한다. 이밖에도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기 위해, 믿음에 굳게 서기 위해, 마귀를 물리치기 위해, 찬송하기 위해, 세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깨어 있어야 한다.
 



















주일예배(주후 2023년 1월 29일)
제목: "영적 기백(氣魄)"
말씀: 열왕기상 18:20~29

찬양인도: 쉐키나(이다니엘 부목사님),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유이삭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옥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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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8:20~29,
20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로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23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24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25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붙이지 말라. 
26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27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28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29 이같이 하여 정오가 지났고 그들이 미친 듯이 떠들어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르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추운 날씨에 이렇게 나올 수 있는 환경과 믿음 주시고 건강 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축복이다.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시리즈 11번째이다. 지난주에 고향 교회를 가니까 제목이 거기도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였다.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사랑의 교회를 따라 하는 것은 아니냐고 하고, 좀 창의력이 없는 것이 아니냐고 그 담임 목사님이 기가 막힌 대답을 하셨다. “이것보다 더 좋은 표어가 어디 있습니까?” 하시며 그리고 “한국교회 모든 교회들이 가장 절실하게 기도해야 할 제목입니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시니 그 반을 듣고 제가 너무 감사했다. 오늘 이 회복을 넘어 이 시리즈는 우리 개인의 어떤 공동체 사고일 뿐만이 아니라, 우리 개인도 이 제목을 통해 많은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 오늘 제목은 영적기백(氣魄)이다. 찬송할 때, ‘믿는 사람들은 주의 권세이니’ 할 때 어떤 분들은 기운 있게 ‘앞서 가신 주를 따라갑시다.’ 라고 하는데 어떤 분들은 이게 무슨 찬송인지도 몰라 하신 분들도 있다. 하여튼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완전한 기백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회복으로 넘어 부흥’으로 가는 이 과정에 꼭 필요한 것은 바로 영적 기백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신앙의 엔진이라 말할 수 있다. 여러분, 20-30년 된 차라 할지라도, 오래된 차라 할지라도 엔진이 좋으면 그냥 끄떡 없이 잘 나간다 맞는가? 우리가 개인적으로 나이가 들어가고 또 환경도 바뀌고 시절도 변하지만 영적기백이라는 이 신앙의 과업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영적기백을 소유하면 나이가 들어가도 환경이나 지역이나 시대나 상관이 없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 기백이 왜 이 단어가 필요한가? 우리 입장에서 당장은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엔진이기도 하지만 왜 필요하냐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신앙인이 되는 그 순간부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영적기백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예수를 믿는 그 순간부터 그리스도인은 예외 없이 영적 전쟁터에 발을 들여놓기 때문인 것이다. 다 영적 전쟁터이다. 여러분들은 신앙생활을 잘하면 우리는 유람선을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전투함을 타고 전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귀는 우리 믿는 사람들을 향하여 날마다 우는 사자와 같이 달려드는데, 우리는 만약에 패잔병(敗殘兵)처럼, 정말 당나라 군사들처럼 가만히 있다면 안 된다. 오합지졸(烏合之卒)처럼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적 전쟁을 우리가 해야 되는데 우리가 막무가내로 아무런 준비가 없이 뛰어들면 안 되고, 그래서 영적기백을 가져야 한다. 이번 주와 다음 주에 걸쳐서 위해 너무 중요하다. 영적기백과 담력을 회복하고 우리 것으로 무장(武將)되는 영광스런 신앙이 되기를 바란다.
 
저는 오늘 구약의 열왕기상 18장, 여러분이 잘 아는 말씀이지만, 여러분 저는 신구약, 특별히 구약 말씀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실히 믿는다. 이 21세기의 한국과 서울에 사는 우리들에게 인생의 나침반으로서 이 말씀을 주셨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의 삶의 현장과 직결(直決)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 본문을 보겠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 다스린 지 100년 정도 지난 구약 스토리이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듯이 솔로몬 이후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졌는데 북이스라엘이 아합 왕이었고, 이런 하나님을 버리 바알 신을 섬겼다. 그리고 아합 왕은 악명 높은 이세벨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선지자는 엘리야 선지자였다. 아합 왕이 잘못된 것에 3년간의 기근(饑饉)이 들었다. 온 나라가 고통 했다. 고토이후에 갈멜 산의 영적 전투가 벌어진다. 만약에 이 갈멜 산의 전투를 누가 영상으로 촬영을 했다면 참으로 드라마틱한 장면이 나올 것이다. 소위 이 신들의 전투, 우리가 이렇게 설명하지만 이 신들의 전투를 보게 된다. 여호와냐? 바알이냐?를 보게 된다. 이것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떼를 지어 갈멜 산으로 다 올라갔다. 한쪽 편에는 바알 선지자들이 화려한 예복을 입고 서 있다. 바알과 이스라엘 선지자 850명이 서 있다. 그리고 그들은 태양신을 그들은 숭배했기 때문에 태양의 빛을 발하는 금송아지를 목에 걸고 있었다. 그 빛에 눈이 부셔서 눈을 뜨기 힘들었을 것이다. 폭군이 왕이 화려한 옷을 입고 왕실 침대에 서 있다. 그런데 맞은편에는 광야출신 엘리야가 초라한 옷을 입고 수염을 길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서 있다. 지팡이... 우리는 무얼 하든지 제대로 한다. 객관적으로 볼 때, 한 쪽은 너무나 위세가 등등해 보이고, 한 쪽은 너무나 초라해 보인다. 한 쪽은 찬란해 보였고 한 쪽은 불쌍해 보였다. 오늘 본문 앞에를 보면 아합이 뭐라고 하냐면,
 
*열왕기상 17~18,
17 엘리야를 볼 때에 아합이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아합 왕이 그 권위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가 너냐고 묻는다. 그러니까 엘리야가 기가 죽지 아니하고 18절에 보면,
18 그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
-그러니까 이스라엘을 괴롭힌 자 너라고 한다. 내가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 집이 우리를 괴롭힌다고 눈동자도 하나 흔들리지 않고 자기가 기가 죽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소위 영적 기백이 있는 것이다. 그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바알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갈멜 산으로 나오게 한 것이다.
 
I 영적 기백이 있는 교회.
 
*열왕기상 18:19,
19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
-여러분 제가 이렇게 왕 앞에서 담대한 기백을 가지고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가? 엘리야는 광야의 고난을 경험했다. 그리 시냇가에서 배고픔도 체험했다. 엘리야의 기백은 왕실의 산해진미와 안락함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다. 목마름도 경험하고 환경적 고통과 가난한 백성들과 가뭄과 기근을 경험하면서 소위 고난의 과정을 거친 영적 기백인 것이다. 광야를 거친 광야에서 체득된 기백인 것이다. 이런 영적 기백이 우리 교회와 개인도 있을 수 있지만 한국교회가 이런 광야의 경험을 거치고 한국교회가 영적기백이 있는 주님 주시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한다. 구약의 말씀과 오늘 신앙생활의 우리가 연결이 되어야 한다. 영적 기백의 한국교회가 되어야 한다. 과거에 고난의 길을 경험했다. 저는 지금도 고난의 길에서 은혜 받았던 장소나 길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시골에 기도원이나 교회 마룻바닥에서 새벽에 아무도 오지 않은 시간에 혼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시간들과 한 두 명의 성도들이 모여 통회하며 주님께 매어 달리고 기도하는 그 시간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안아주심의 본당도 겉으로는 귀하고 아름다운 그런 본당이지만 이런 고난의 정신이 차곡차곡 쌓여서 우리가 오늘 이와 같이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 믿는다. 본당에 들어올 때마다 한국교회의 기도원의 야성과 고난을 이겨낸 야성이 여기에 축적된 줄로 믿는다고 기도하며 오죽하면 토비새(토요비전새벽예배)마다 이곳이 하나님 아버지 갈멜 산의 전산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이곳이 모리아 산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며, 감람산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며, 시내 산이 되게 하여 주시라고 기도한다. 이 자리가 한국교회의 영적기백의 토대가 되게 하여 주시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도록 공동체와 개인에게 허락하실 것이라 믿는다.
 
저는 한국교회사를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한국교회의 혈관에는 고난의 영적기백의 DNA가 흐르고 있다. 한국에 전해지는 복음은 영적전투를 통해 처음 강하게 들어왔고, 강력한 유교에 대치해서 한국교회 선교사를 보니 이런 내용이 나와 있다. ‘보름을 기하여 한국교회의 외국인 가옥을 불태워 훼파하라.’ 외국인 가옥과 교회당을 다 불태우고 파괴하라고 하는 것을 보았다.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 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할 것 없이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훼파하라고 탈취하라고 하만이 유대인을 죽이도록 전국에 내린 조서였다. 지금으로부터 123년 전에 1900년에 이용익이나 김영준 같은 수구파들이 전국에 선교사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일시에 박멸하는 계획을 비슷하게 세워가지고 선교사의 집과 교회당을 불태우고 파괴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마치 이 내용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에스더서를 보면,
 
*에스더 3:13
13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맡겨 왕의 각 지방에 보내니 열두째 달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하였고.
-지금부터 125년 전 1898년에 유교의 이름으로 부상들을 부추겨서 우리가 국사 공부할 때 배웠을 것이다. 황국협회라는 것을 내 세워서 반기독교 적 운동을 조직했다. 보부상들은 1898년에 10월에 기독교 학교와 교회당에 경고장을 보내면서 교회를 박멸하려고 협박했다.
1898년에 10월9일자 황성신문에는 보부상들이 교회당들을 훼파하고 교회 신도들을 도륙했다.
-이후 한국교회는 3.1운동에서 첫 3개월 동안 오만 명 이상이 처형되거나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재암리교회 학살 사건을 알 것이다. 교인들이 예배드리고 있는데 다 불태워 죽였다. 절대다수가 기독교인들이 3.1운동에 고생한 것이다. 6.25전쟁, 전쟁초기 6개월 동안 508명의 목사님들이 순교를 당했다. 2천 여개 교회들이 파괴가 되었다. 우리교회 가끔 오셔서 말씀하시는 박영규 목사님, 한국교회사 전문가이신 박영규 교수님은 한국교회 박해 사를 이렇게 정리했다.
*복음은 신분과 민족과 성을 초월하고 그 안에 있는 자들은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 그것 때문에 교회는 박해를 통해 더욱 성장해 왔던 것이다. -김용규 교수-
고난이 한국교회 영적기백을 가져온 것이다. 오늘 이러한 한국교회의 역사와 또 엘리야의 역사와 이것이 우리에게 연결되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럼 어떻게 영적기백을 회복할 것인가? 아니 영적기백을 놓친 우리가 어떤 식으로 이 영적기백을 회복할 것인가이다. 21절부터 두 세가지 정리를 해보겠다.
 
II. 어떻게 영적 기백을 회복할 것인가?
 
*열왕기상18:21,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진정한 영적 기백은 머뭇머뭇 하지 않는 것이다.
 
▷첫째 진정한 영적 기백은 머뭇머뭇 하지 않는 것이다.
-머뭇머뭇 하지 않는 것이다. 엘리야가 백성들을 질타했다. 기회주의 어정쩡한 자세를 취해가지고 양다리를 취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느냐고 묻고 있다. 여기서 히브리어로 머뭇머뭇거리다는 본래 원어에서는 절뚝거리는 것이다. 그리고 26절에 보면 단 이스라엘 백성들이 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하고 한 말씀처럼 춤을 추며 뛰놀다의 동사와 똑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과 같은 단어이다. 백성들이 머뭇거리는 것과 우상에서 뛰 노는 것과 같은 단어로 사용된다. 왜 같은 단어라고 성경기자는 사용하고 있냐면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전히 바알을 섬기지는 않았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는 소위 회색(灰色)지대(地代)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러하니까 영적 담력과 기백이 안서는 것이고, 소위 종교다원주의 가운데서 담력이 안 생기는 것이다. 혼합주의 밑에서 신음하고 맥아리가 없다. 오늘 우리 마음속에 영적기백의 DNA가 흐르게 하려면 머뭇거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 마음속에 머뭇거리는 것이 무엇인가?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에 우리가 민감해져야 하는데, 다른 신들을 따르지 않고 주저하지 말고 하나님과 우상 사이를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오늘 결단할 것이 무엇인가? 회색지대는 없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을 바르게 선택하라. 둘 중에 하나를 결정하라고 한다. 지난 수천 역사에서 하나님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바알을 선택할 것인가? 이다. 태양신, 지금도 미국에도 ‘조르아스터교=배화교’를 섬기는 자들이 있다. 중동에도 있다. 태양이나 불을 섬기는 자들이다. 일본의 식민지 시대는 천조대 신이다. 그때도 태양신과 같다. 그 태양신을 섬기지 않는다고 해서 일제 강점기 우리도 순교를 당했다. 주기철 목사님이 감옥가기 전에 장로교 목사님들과 함께 금강산 수양 관에서 총회 수양회를 했는데 그 때 설교가 지금 남아있다. 그 제목이 뭐냐면, ‘예언자의 권위’였다. 한국교회가 엘리야처럼 영적권위를 회복할 것을 주 목사님이 설교하신 것이다. 주 목사님은
“여러분들도 엘리야의 신앙, 엘리야의 기도가 있으면 엘리야의 권능과 선지자의 권위와 담대함을 회복할 수 있다. 생사여탈의 대권을 잡은 임금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그 죄를 책망하는 엘리야는 일사각오의 기백을 가졌다.” -주기철 목사-
-오늘 이 예배를 드리면서 이런 설교가 쉽지는 않은데 여러분과 제가 이 시대를 향하여 영적기백을 가지고 일사각오를 가진다면 수많은 강들이 돌파가 될 것이다. 어정쩡한 상태에 있는 자들이 지금 이 자리에 계신다면,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겠는가? 여호와이냐? 바알이냐?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부흥이고 영적 기백이고 일사각오가 되는 것이다. 엘리야의 기백이 있으니까 여유가 있는 것이다. 여유가 있으니까 유머가 있고 담력이 있는 여유가 있다. 바알의 응답이 없으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열왕기상 18:27,
27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그런 식으로 조롱한다. 이런 것이 다 여유가 있는 것이다. 오늘 엘리야가 조롱이라는 말을 쓰지만 사실 신앙적으로 볼 때 우리가 하는 단어가 아니다. 그러나 영적기백이 있을 때는 장소에 따라서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거짓 신을 섬기고 자신을 망가뜨리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러한 거룩한 조롱도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30절에 보면,
 
*열왕기상 18:30,
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증인이 되라고 요청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영적기백으로 확신했기 때문에 하늘의 불이 떨어지도록 해서 엘리야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시고 돌과 흙까지 태운 줄로 확신한다. 어느 시대에 돌과 흙까지 태우지는 시기가 어디 있는가? 자, 이런 내용을 가지고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않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한 가지는 세상의 숫자보다도 하나님의 숫자에 더 민감하면 된다.
 
▷둘째 세상의 숫자보다 하나님의 숫자에 더 민감한 사람이 되어야.
-이제 중요하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엘리야가 850대 숫자만 생각했으면, 아마 어떻게 담대함과 영적기백을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사람들은 850:1을 가지고 엘리야 850:1(엘리야) 하나 밖에 없는 엘리야를 불쌍하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엘리야는 오히려 반대로 하나님 없는 850명을 불쌍히 여긴 것이다. 850×하나님 없음(zero)=0, 이 원리는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세상은 100명이 천 명을 당하고 작은 자가 강국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의 천을 이루는 것을 잘 모른다. 신명기에 보면
 
*신명기 32:30,
30 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팔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주지 아니하셨더라면 어찌 하나가 천을 쫓으며 둘이 만을 도망하게 하였으리요.
-영적기백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은 모른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는 하나가 열이 둘이 만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적기백의 공식이다.

※850×하나님 없음(zero)=0, -바알신을 섬기는 자,
▷1명의 엘리야X성삼위 하나님(3)=3(만군의 하나님)-이스라엘 백성들. 영적 기백이 된다.
-그래서 저는 3을 좋아한다. 마음 맞는 세 명만 있으면 나라도 세운다고 했다. 이런 3위 은혜가 열두 명이 되고, 이 열두 명 문도가 70명이 되고, 120명이 되는 것이다. 300명의 기도의 용사가 되고, 500명이 예수님 승천의 형제가 되고, 그 다음에 3천 명의 변화가 된 사람이 되고, 7천명이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게 영적 기백을 향한 독특한 공식이다. 변화 산상에서 예수님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 3명을 데리고 변화 산상에 올라갔다. 세 명씩 열 두 제사를 나누게 하신 것이다. 850×하나님 없음(zero)=0가 된다. 꽝이다.
우리 자신X성삼위하나님(3)=3이 되면 세상의 어떤 숫자보다도 압도적인 능력을 가지고 영적 기백의 현장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저 그런 사람의 다수의 사람을 쓰신 것이 아니라 영적기백으로 무장된 몇 명의 사람들을 쓰신다. 자신X성삼위하나님(3)=3이 된다.
 
*사도행전 17:6,
6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그 바울의 초대 교회 그 강력한 복음 앞에 대로마제국이 항복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일으켜서 히브리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히브리서 11:38,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여러분, 영적기백을 가지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영적인 핵심 중에 하나이다. 이 한 해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도 그런데 우리는 영적기백으로 또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야 한다. 다시 한 번 우리는 한 알의 사과 씨를 가지고 수백 개의 열매를 볼 줄 아는 하나님의 사람의 눈, 영적기백이 필요한 것이다. 수천 구루의 나무로 울창해진 숲도 한 톨의 도토리로 시작된다. 도토리 가운데서 수천 구루의 나무를 보고 한 통의 도토리에서 울창해진 숲을 보는 기백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한 알의 사과 씨를 가지고 수백 개를 볼 수 있는 기백을 가진 사람들을 주님은 지금도 찾고 계신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오늘 우리 가운데 남모르는 큰 고통을 가지고 계시면, 오늘 이 영적기백의 회복을 주시길 소원한다. 기백을 회복해야 한다. 영적기백의 독특한 공식,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크라이막스가 있다.
 
엘리야가 만약에 “나만 홀로 남았네!” 바알에게 무릎 꿇는 자가 7천 명이 있다하더라도 이 시대는 지금 다 동굴에 숨어있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고 ‘나만 홀로 남았네.’ 라고 했으면, 그리고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그냥 그대로 쓰러져버렸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그 때 엘리야는 이 순간에 문제 지향이 아니라 가능성 지향의 사람이 되었다.
 
▷셋째 문제 지향이 아니라 가능성 지향의 사람이 되어야.
-그래야 영적기백을 가진 것이다. 나 혼자만이 아닌 엘리야는 문제보다도 가능성의 지팡이를 들었다.
환경이 물론 어렵다. 나 혼자만 갈멜 산에 왔다고 탄식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보다도 더 큰 은혜를 사모했다. 문제보다도 가능성에 눈을 뜬 것이다. 요즘 2023년에 들어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모든 환경들에 대해서 모두가 다 어렵다. 물론 상황이 어렵다. 진짜 문제는 우리들의 신앙이 어떤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문제만을 계속 집중하면 우리는 엎어진다. 우리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problem finder, ●problem magnifier, ●problem maker. 이 세 가지 중에 -기도제목을 빙자한 수(기빙수), 계속 문제를 확산시키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문제 증후군에 걸리고 문제 지향의 사람이다.
 
▷우리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1) 문제 발견하는 자=problem finder,
2) 문제 확대하는 자=problem magnifier,
3)문제를 해결하는 자=problem maker.
문제를 가지고 해결하는 자는 가능성을 바라보는 자이다. 이 자리에 모두는 문제를 해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 세상의 문제없는 교회, 문제없는 성도,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살아가고 이 땅을 영위하는 동안에는 모둔 사람들은 문제를 갖고 있다. 아무 일도 안하면 아무런 문제가 안 생긴다. 지난 3천 년 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도 있다. 누구인가? 이집트 미이라는 아무 문제가 없다. 다 아는 것 아닌가? 미이라는 누워있으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야 하고 자식을 키워야 하고 매일 우리는 삶의 현장에 부딪혀야 하는데 왜 거기에 문제가 없겠는가? 교회도 이 귀한 공동체가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앞으로 수많은 우리에게 주신 어떤 사명을 가지고 감당을 하려고 하면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문제 앞에서 문제의 지향성이 될 것인가? 아니면 가능성 지향이 될 것인가?를 우리에게 달려 있고 거기에 영적기백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잘 아시듯이 faith report, 믿음 보고를 한 여호수아, 갈렙은 무엇을 보았는가? 문제를 바라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 한다.
 
*민수기 13:30,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 이것은 문제의 지향이 아니라 가능성 지향이다. 방향을 잡은 것이다. 그런데 열 정탐꾼은 환경과 아낙 자손을 바라본 것이다. 믿음 보고를 못하고 환경보고를 한 것이다. 우리는 다 메뚜기 같다고 한다. 우리가 다 그들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여호수아 갈렙도 환경도 보고, 거인들도 다 보았지만 문제가 아니라 가능성을 보았고, 먹구름 위에 은빛 광채를 본 것이다. 오늘 예배에 와서 예배와 찬송을 하면서 주님을 집중하면서 여러분 모두가 다 하나님이 열어놓으신 영적 가능성에 확 열리기를 바란다. 아멘!!~~ 지금 한국의 상황이나 인터넷 댓글들을 보라. 너무나 고통스럽고 문제 지향적이다. 이 문제 지향적인 것들이 사람들을 공격하고 화살을 쏘아 대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다짐하고 가야 될 것이 있다.
 
우리 교회는 신학적 바탕인가? 정통보수주의인가? 정통보수주의이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수천 년 동안 우리의 신앙의 흐름이 있다. 이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의 지식, 지혜, 인간의 판단, 인간의 능력을 더 인정하고 인간의 이성의 틀 안에서 이것을 판단하는 것이다. 성경이 그래서 안 믿어진다. 예수님의 부활도 안 믿어진다. 성경에 능력도 안 믿는다.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인간의 긍정적인 마인드와 적극적인 사고를 다른 차원으로 말씀을 드리는 것이다. 적극적 사고방식이나 긍정적인 것은 내가 중심이 되어서, 내가 힘을 내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행운을 얻는 이 아니다. 우리는 그 가능성이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가?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영적기백을 갖는 것을 박탈한 것이다. 사랑의 교회 신앙적 바탕은 우리는 정통보수주이 신학의 바탕에 서 있다. 우리는 성경의 기적을 믿는다. 구약의 기적을 믿는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는 오늘도 이 자리에 임한다는 것을 믿는다. 우리는 너무나도 과학의 발달로 있지만 우리의 프레임은 안 된다는 것은 많지만 똑똑한 사람일수록 문제의 대해서 예민하다. 그러니까 똑똑한 사람에게는 기적이 안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문제의 지향이아니라 가능성을 열어 놓고 우리는 자유주의 신학이 아니라, 정통 보수 주의인 하나님의 가능성에 대한 귀의 문을 열고 영적기백을 회복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가능성 지향은 세상의 적극적 사고방식이나 긍정의 마인드가 아니라, 우리는 가능성 지향은 예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마태복음을 보면 대표적인 인물은 예수님이시다.
 
*자유주의 신학 (인간의 이성의 틀 안에서..내가 좋으면 하는 것)=Liberal theology
*정통주의 신학 (나보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믿는 것)=Orthodox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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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3:58,
58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나병환자, 어떻게 나았는가? 주님이 하시면 가능하다. 가능성을 주님께 두는 것이다. 마가복음을 보면,
 
*마가복음 5:28,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 혈루병인 여인이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 그 자체가 어려웠지만 그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고 뭐라고 이야기 하는가?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라고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제자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어도 경호하는 사람들이 못 오게 해도, 그 여인은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라고 하듯이 그녀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이다. 오늘 주님의 옷자락에게만 손을 대어도 낫는다는 것이 여러분에게도 주어지기를 바란다.
 
*마가복음 7:26~28,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귀신 들린 딸의 귀신을 쫓아내기를 간구한다. 어떻게 보면 이런 모욕(侮辱) 중에 모욕이다. 그러나 가능성 지향의 극치이다. 오늘 우리 가운데 나병환자나 혈루증인 여인이나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자기 딸이 귀신 들었다. 이것 보다 더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오늘 영적기백을 가지고 놀라운 가능성 회복하자. 저희들은 원래 6월 3일에 한국교회가 상암 경기장에서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의 표어로 사람에게는 진심으로, 하나님께는 전심으로, 그렇게 해서 그날 참여해서 기도의 지팡이를 다 들고 10만 명이 모여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적 가능성을 가지고 믿음의 눈으로,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고 외치는 이 민족의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 성은 무너지리라 믿는다. 오늘은 영적 기백이 필요하니까 마음의 지팡이를 들고 기도용사 된 나에게 주의 일을 맡기는 찬양을 하자. 지금 2023년을 앞에 놓고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과학, 우리 모든 분야에서 예측이 있지만 그러나 오늘 영적기백을 가지고 그들의 전망이 어떻든 환경이 어떠하든 우리 모두는 믿음의 기백을 가지고 담대함으로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이 한 해 전문가가 무어라고 이야기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정통신학을 따라서 가능성 지향을 가지고 이 시대를 주의 삶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요약
영적 전쟁터에서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머뭇거리지 말고 영적 기백을 회복하여 강력한 부흥으로 나아가며 850:1의 심각한 위기 앞에서도 문제의 지향의 사람이 되지 말고 하늘의 불이 임하는 가능 지향의 사람이 다 되어야 한다. 6월 3일 상암 경기장 집회에 모두가 영적기백으로 충만하여 10만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우리 민족의 홍해가 갈라지는 시대의 여리고 성을 무너지는 기도를 올려드리자.
 

























토요비전새벽예배(2023년 1월 28일)-부흥헌신토요비전새벽예배

제목: “시대를 섬기는 기도의 지팡이”
말씀: 사무엘상 1:26-2:1
대표기도: 조현숙 권사님(여자포에버 회장)
찬양인도: 포에버 찬양(김원준 부목사님 지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말씀읽기: 백세현 형제(대학7부), 김의인 자매(대학7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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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26-2:1,
26 한나가 이르되 내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내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27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2:1
1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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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12℃도가 넘는데 이 시간, 이 기도회에 주신 우리의 믿음과 환경과 건강과 은혜를 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감사함을 올려드리자. 특별히 고마운 것은 오늘 이 교통봉사가 정말 감사하다. 영하 12℃에 너무 감사하다. 영하 12℃가 넘는 이 시간에 또 한 가지는 오늘 포에버 내 예상보다는 밖에는 안 나왔지만 그래도 정말 고마운 것은 여러분 나이가 들면 넘어지는 것이다. 이 새벽에 넘어지는 것도 불사하고 “그 모든 환경을 뚫고 나오신 포에버 감사합니다.!!~하나님께서 평생 건강 주시기를 바라며 넘어지기 않고 주님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도 기도의 제목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두 가지이다. 응답 받는 기도,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가 있다. 오늘 새벽에 ‘시대를 향한 기도의 지팡이’의 제목으로 이렇게 나왔는데 우리가 일단 기도의 지팡이를 들었으면 응답을 받아야 한다. 새벽에 정신 차리자.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방송으로 들어온 모든 성도들, 사정상 너무 추워서 못 오신 모든 성도님들, 모두가 마음을 같이 해서 하나님 앞에 응답 받는 기도를 해야 한다. 응답 받지 못한 대표적인 기도의 예는 가인의 제사이다. 가인은 자기중심으로 해서 응답 받지 못했다. 그런데 응답 받으려면 확실한 세 가지가 필요하다. 우리는 누구의 이름으로 기도하는가? 바로 예수님 이름으로, “지금까지 네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안 하였으니 구하라 내 이름으로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의 기쁨이 충만하리라.”
 
누구의 이름으로 기도하는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누구에게 기도하는가? 하나님 앞에,
기도의 대상은 누구인가? 하나님,
우리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 하나님은 설악산의 주인이시고, 우리 하나님은 한 강의 주인이시다. 우리 하나님은 대한민국의 전체 장래를 인도하시는 주인이시다. 우리 하나님은 삼라만상의 모든 조물주이시며, 그 하나님의 우리는 영적인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어마어마 한 것이다. 그분 앞에 기도하는 것이다. 아멘!!~~
 
제가 어릴 때, ‘우리 하나님은 나이아가라 폭포 주인이시다.’라고 했다. 한 번 말씀 드렸듯이 일본의 누가 와서 전도를 하는데 포스터의 제목이 뭐냐면 ‘나이아가라 폭포 주인의 아들’이 와서 설교한다. 그러니까 일본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세계에서 가장 멋있는 폭포중의 하나인데 그 주인의 아들이 와서 설교를 하는데 얼마나 대단한가? 그래서 갔더니 목사님이 설교했다. 자 우리 모두가 다 이 한반도의 주인의 아들이다.
 
*무슨 힘으로 기도하는가? 성령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세 가지,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응답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의 평생의 기도제목이 응답되기를 바란다. 기도의 지팡이를 든다는 것은 보통의 일이 아니다. 제가 꿈을 꾸고 있는데 무슨 꿈이냐면 ‘6월 3일 날,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 이 지팡이가 10만개를 들고 올라가서 주님 앞에 올라가는 것이다. 이 10만개, 하나에 만원만 해도 10억이다. 이것을 어떻게 할까? 여러분들 보고 이것을 내라고 안 할 것이다. 우리교회 밖에서 내라고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다. 하여튼 이 10만개를 가지고 모두가 다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성령의 능력으로 외칠 때, 저 여리고는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남북문제가 통일되고 해결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의 그것을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가 상암 경기장에 이 10만개 기도의 지팡이를 갖고 간다는 것이 이게 보통일이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도할 수 있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도 토비새(토요새벽기도회) 기도하게 되니까 그게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것을 지금 제가 빌리그래엄 총 집회 제가 책임을 맡았는데 지금 준비위원장이 통합 측에 김의식 목사님이신데 지난번에 작년에 특새(특별새벽기도회)에 오셔서 을 설교하셨다. 기억이 날 것이다. 약국 하시는데 기도하시는 대로 다 되었다고 하시는 분 기억 날 것이다. 그 누님이 우리 교회 권사님이시다. 그런데 이 말을 듣더니 기가 막힌다고 하셨다. 다시 “목사님, 기가 막힙니다.”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는 줄 믿는다.
 
여러분, 조그만 한 기도지팡이를 다 가지고 와서 기도해야 한다. 그 다음에 오늘 같이 이 추운 날 야성을 가지고 내가 받는 기도의 지팡이를 갖고 올 때, 그 때에 눈물이 나는 것이다. 눈물 나다가 얼어도 상관이 없다. ㅋ 그게 야성이고, 능력이고, 기백이다. 할렐루야!!!~~
 
오늘 저는 엄마의 기도가 자녀의 기도로 연결되는 것이고, 그 연결된 자녀의 기도가 시대를 살렸다는 것을 말씀을 드릴 것이다. 오늘 “시대를 섬기는 기도의 지팡이”를 말씀하겠다.
 
한나의 기도가 기도하는 사무엘을 낳았다. 자 오늘 새벽에 공부를 좀 하겠다. 구약에 있어서 구약 성경에는 크게 세 번 역사의 대 전환기가 있었다. 무엇인가?
 
※구약시대 세 번의 역사의 전환기
첫 번째 –출애굽이다:모세
두 번째 –이스라엘 왕정시대:사무엘
세 번째 –포로귀한 시대:에스라
-이 세 가지가 구약 이스라엘 역사의 아주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는데 그런데 이 세 시대마다 하나님께서는 강력한 지도자를 주셨다. 출애굽 시대에는 모세를 주셨다.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그 광야를 건너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렸고, 그 다음에는 왕정시대를 여는데 왕정시대를 여는 지도자를 주셨는데 사무엘을 주셨다. 사무엘에 사울도 기름 붓고, 다윗도 기름을 부었다. 사무엘의 역할은 이스라엘의 왕정시대를 열었다. 마지막 사사이자, 제사장이고 선지자이다. 이 3권을 가졌던 그러니까 사사와 제사장과 선지자, 사사의 역할인 왕권을 가졌다. 사무엘이 사사시대에서 제사장 왕정시대로 전환할 때에 그 놀라운 역할을 감당했다. 나중에 포로귀한 시대에는 학자 겸 제사장이었던 에스라가 있었다. 에스라는 바벨론 포로 기에서 귀한 해서 다윗왕국의 회복과 재건을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는 나중에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시리즈’의 말씀을 할 때, 학사 에스라도 보고,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에스라를 통하여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며 수문 앞에, 워터게이트 앞에 부흥이 일어났을까? 이 세 사람 가운데 어머니의 기도를 통하여 그 자식에게 그 기도의 능력이 그대로 전달됨으로 말미암아 어머니의 기도의 응답을 통해 그 왕정시대를 통해 하나님은 어떻게 사무엘을 쓰시는가? 3권을 가진 왕권과 제사장 권과 선지자 권을 가진 어떻게 사무엘일 이런 놀라운 권리를 갖고, 사무엘이 마지막 사사로서 14번째로 일을 한 것이다. 어떻게 그런 강력한 아들이 나올 수 있었는가? 어떻게 그렇게 시대를 섬기고 새로운 시대를 대 전환한 이스라엘의 제2의 전환을 하나님께서 인물을 주시고 사무엘에게 주셨는가? 이다. 한나, 그 어머니가 기도를 통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모든 기도는 기도의 패턴이 있다. 한나의 기도의 패턴은 하나는 하나님께서 한나의 태의 문을 열어주셨다. 브닌나가 한나를 격동하게 했다. 그러니까 한나에게는 고통이 기도에 대한 초청장이 된 것이다. 기도하게 하셨다. 여러분 모든 것이 잘되고 모든 것이 편안한데 새벽 기도 누가 나오는가? 모든 것이 잘 되고 모든 것이 완벽한데 새벽 기도를 왜 나오겠는가? 누가 기도하겠는가? 대부분 안 나올 것이지만 우리 사랑의 교회의 성도님들은 나온다. 잘되어도 나온다. 잘 되어도 몸부림을 치면서 나온다. 잘 되어도 은혜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난과 고통과 어려움이 있어야 이 기도의 자리에 나온다. 그래서 고난과 고통이 절대로 나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기도의 자리에 자꾸 나와서 기도를 하다보면 기도가 성숙해진다. 기도가 성숙해지면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한나가 기도할 때, ‘아 자식 달라고 하는 것은 두 번째이구나!!’를 깨닫고 ‘이 자식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기도를 성숙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한나는 하나님께 이 자식을 드리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 앞에 성숙한 기도를 드리니까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셨다. 그래서 한나가 더 이상 수색이 없어졌다. 기도는 지난 주일에 말씀했듯이 하나님이 나를 기억해 주시는 것이라고 했다. 수색이 없게 하신다. 기도의 패펀이 마음의 평안을 주신다. 그런 후에 기도에 대한 초청, 기도에 대한 성숙, 기도에 대한 응답, 그리고 기도의 대한 수준이 오늘 이 2장 1절처럼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하나님을 찬양한다. 놀랍게 한다.
 
*사무엘상 2:1,
1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기도의 찬양이다. 하나님을 찬양한다. 놀라운 찬양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한나에게 이 기도의 패턴을 통하여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주셨는데, 기도하는 어머니가 기도하는 자식을 얻고 기 도 하는 자식을 통하여 구약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두 번째 강력한 터닝 포인트였던 이스라엘 왕정 시대를 열도록 하나님은 사무엘을 사용하여 주신 줄 확신한다.
 
오늘 우리의 기도가 사무엘을 낳았다. 또 우리의 기도가 새로운 시대의 패턴을 연다. 지난 주일에 말씀 드린 것처럼 우리는 다른 길이 없다고 했다. 오직 한국사회는 이제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가야 한다. 의 이 치열한 구도에서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다른 길이 없다. 제사장 나라가 되고, 이집트도 앗수르도 우리 때문에 복을 받아야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허락하시는데, 사무엘은 기도의 아들이었고,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역사를 하시는데 사무엘이 기도의 아들로서 어떻게 새 시대를 열었는지를 보자.
 
사무엘은 세 가지 사역을 했다.
-첫째는 마지막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3권을 가지고, 왕권과 제사장 권과 선지자 권을 다 가지고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특별히 엘리 제사장 시대에 법궤를 빼앗고 회막에 있는 실로라는 중앙 성소가 거기에 성소의 기능을 다 상실해 버렸다.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가 해체 위기에 처했다. 그때 사무엘이 미스바 대각 성 운동을 주선해서 우상(偶像)을 척결(剔抉)하고 오직 여호와만 섬기는 종교개혁을 감행했다. 그리고 다른 사사들처럼 블레셋을 물리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존심을 회복했고, 백성들은 평안하고 행복한 생활을 사무엘의 리더십을 통하여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사무엘은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를 순회하면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자기 집에 있는 라마로 돌아오는 이러한 사역을 계속 반복했다. 이스라엘 지도를 보면 알 수가 있는데 사무엘상 7장을 보면,
 
*사무엘상 7:16-17,
16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17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에 자기 집이 있음이니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그러니까 그 순회 정치를 한 것이다. 벧엘과 미스바로 순회하고 그 다음에 자기 있는 곳이 라마인데 돌아와서 이 순회 정치가 단순한 순회정치가 아니라 사무엘은 두 가지 정책을 갖고 사람을 키우고, 기도하는 것을 통해서 기도정치, 순회정치를 하게 된 것이다. 순회(巡廻)기도(祈禱)정치(政治)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무엘은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전환할 때, 중재역할을 했고, 다윗 왕조의 기반을 마련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왕을 통해 다스리는 신정왕국을 세우겠다고 하셨지만 사무엘이 50세쯤 되어가지고 사울을 세웠고,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고, 사울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니까 실패했다. 나중에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다시 기회를 얻었는데, 75세 때쯤에 소년 틴에이저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다윗 왕조의 기반을 준비했다. 그러니까 사무엘은 다윗에게 있어서는 살아있는 교과서, 어떤 살아있는 메토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 것이다. 사사시대의 전체의 순회기도정치를 통해서 역사했고 그 다윗 왕국시대를 열게 되었다. 사무엘이 제일 잘 한 것 중에 하나가 라마 나욧이라고 하는 것인데 라마 나욧이라는 거기에 자기집이 있는 선지자 학교를 세웠다. 그 라마는 지명이름이고 나욧은 기숙사라는 뜻이다. 라마의 선지학교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이 선지자 학교, 요즘 말하면 신학교를 말한다. 신학교의 기원은 어디인가? 바로 사무엘의 라마 나욧이 아닌가 한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행전 3:24,
24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그러니까 사무엘 때부터 선지학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사무엘 시대에 선지학교가 있었다. 어디인가?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서 도피한 곳에 사무엘을 찾아가서 라마 나욧에 가기도 했다.
 
*사무엘상 19:19-20,
19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더이다 하매.
20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가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영이 사울의 전령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그래서 죽이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 버렸다. 놀라운 일이다. 라마 나욧에는 선지학교가 있었고 주의 영이 임해서 예언하는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까 사무엘은 젊은 생도들을 모아서 토라, 말씀을 읽고, 말씀을 기록하고, 말씀을 쓰고, 말씀의 능력을 찬양하고,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를 배우고, 전문적이고도 집중적인 신앙교육을 했다. 그리고 나중에 이들이 라마 나욧 출신의 선지자들이, 요즘 말하면 신학생들이 이런 사람들이 사무엘의 사람들이 나중에 다윗 왕정시대에 선지자로, 찬양사역자로, 제사장으로 활동을 해서 다윗 왕조의 기둥 같은 역할을 했다.
 
저는 사랑의 교회 주일학교가 이런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사랑의 교회의 대학부, 청년부가 이런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이 토요비전 새벽예배가 라마 나욧의 능력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토요비전 출신이 우리 교회의 중직을 감당하기를 바란다. 중직을 감당한 분들은 이 토요비전 새벽예배에 나와서 오늘 이 사무엘이 가르쳤던 감당했던 라마 나욧에서 가르쳤던 기도의 능력과 찬양의 역사와 이스라엘의 역사와 토라의 말씀을 읽고 쓰고 듣고 퍼블릭 리딩 어브 스크립쳐, 말씀을 암송하고 이 자리가 하나의 역사의 흐름을 주조하고 깊이가 스며있는 그런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토요비전새벽헌신 기도회가 21세기의 라마 나욧의 능력을 발휘하기를 기도한다. 이 자리가 기도 자체가 기도는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현장이 되어야 한다.
 
사무엘이 시작한 선지자 학교에서 배출된 수많은 선지자들과 생도들이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왕과 백성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감당했고, 이런 선지자들의 최고의 역할 모델이 누구인가? 기도로 태어났던 사무엘이었다. 저는 토비새 나오는 여러분들이 토비새에서 말씀을 전하는 여러 귀한 종들이 모두가 다 이 시대의 기도의 역할 모델이 되기를 소망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SaGa, 사랑글로벌 아카데미인 SaGa를 이 코로나 시대에 세우게 하셨다. 남들은 코로나 기간에 남들은 다 문을 닫는데 우리는 SaGa의 문을 열었다. 코로나이후에 모든 것이 변화가 되고 코로나 이후 역사의 대 전환 시기에 하나님의 관점을 지닌 사무엘과 같은 시대의 인물들이 많이 배출하기 때문에 이 시대를 통해, SaGa를 통해, 사랑의 교회를 통해, 이런 인물을 배출하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뜻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나중에 이 선지학교는 엘리야, 엘리사 시대에 다시 언급 되는데 열왕기하 2장에 길갈, 벧엘, 여리고 같은 도시에 선지자 학교가 있었다고 나온다. 지난번에 말씀을 한 번 드렸다. 남들은 이 문을 닫는 이 코로나 이 시기에 하나님은 SaGa를 열게 하시고 SaGa를 통하여 이 시대의 라마 나욧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소원한다. 이스라엘 다윗 왕국 시대에 놀라운 영적 왕국 시대에 역할을 했던 강력한 선지자들, 정치 지도자들, 찬양인도자들, 제사장들을 배출한 그곳처럼 SaGa, 우리 일터 선교학교, 일터에서 주님을 섬기는 중요한 분들이 80여명이 넘게 등록을 했다. 여러분, 한국의 모든 신학교가 지금 미달이다. 그런데 지금 거의 다 미달이라고 한다. 지금 글로벌 아카데미에 80여명이 온 것이다. 복음 아카데미에도 50여명이 들어왔다. 예배 아카데미, 제자 아카데미 다 열심히 하고 있다. 이미 다 되어 있지만 SaGa가 가슴이 더 뜨거워 진 분들은 라마 나욧이 되게 해달라는 분들이 있으면 몇 명은 더 오픈해서 예배아카데미와 제자아카데미에 내일까지만 더 받을 예정이다. 하나님의 일은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진 줄로 믿어야 한다. 기도의 어머니 한나를 통하여 시대의 터닝 포인트를 새로운 전환점을 갖게 했던 사무엘의 귀한 응답을 통해서 사무엘이 감당했던 세 가지, 마지막 사사로서 시대의 최고의 지도자로, 새로운 변혁을 일어나게 하는 그 모든 역할을 하며 특별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교육을 해서 배출하는 일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이것이 한나의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나온 줄 믿는다. 그 결과 사무엘 상 2:1절을 보면 하나님은 축복하셔서 무슨 일이 벌어지냐면,
 
 
*사무엘상 2:21,
21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이런 은혜를 주셨는데 찬양하고 이제 기도 응답의 패턴 가운데 고통 초청장, 그 다음에 기도하면 성숙하게 되고, 지난 주일에 이야기 한 것처럼 하나님의 심정은 네가 나에게 좋은 것 원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은 준비만 되면 나에게 더 좋은 것을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 그리고 마음이 평안하고 응답 받고, 이 사이에 무엇이 있냐면, 그 한나는 서원을 했기 때문에 아이가 젖 땔 때에 아이를 성막으로 보낸다. 주의 전에서 수종 들도록, 한나의 입장에서 아무것도 없는데 마지막 남은 이 사무엘을 그의 모든 것을 드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아들을 4-5세 때에 하나님께 아들을 올려드렸듯이 너무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눈물을 대신해서 찬양을 했다. 다시 말하면
 
*사무엘상 2:1,
1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기도의 선순환, 응답(應答)의 선순환이다. 이런 찬양을 모두가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쉬운 일은 아닌데, 서원을 눈물로 하지 않고 찬송을 한 것이다. 기도와 찬양은 하나님 앞에 무장(武裝)이 되고 생각이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과 그 다음에 영적인 깊은 세계를 알아야 하는데 우리가 대부분 똑똑한 사람들이 많지만 세상 것을 너무 많이 아니까 세상 적인 판단과 방향을 가지고 하나님의 도움과 기름 부으심을 자꾸 이렇게 대치를 하고 자기 생각을 가지니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 것을 많이 알아도 순전(純全)하게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깊은 영적 진리 세계에 집중할 때, 내가 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우리를 통해 이루어 주실 것이다.
 
올해 6월 3일 날 상암 경기장에 주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이 이 시대를 바꾸시고 북한 김정은을 만져주셔야 한다. 우리는 방법이 없다. 우리끼리 싸우면 남북이 와장창해진다. 그래서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가버려야 남북의 갈등이 해결되는 것이다. 우리는 더 큰 차원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주님 앞에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오늘 2장 21절에 보면,
 
*사무엘상 2:21,
21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한나가 기도를 통해서 얻은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니니까 또 다시 세 딸과 다섯 아들을 더 주셨다. 저는 이렇게 한나에게 아이들을 하나님께서 더 주셨을 때 브닌나의 표정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본다. ㅋ ㅋ ㅋ 나는 그게 늘 궁금하다. 우리를 조롱하고 우리를 어렵게 하는 표정이 어떨지 우리가 그걸 기대해 보자. 그런 날이 올 것이다. 그래서 오늘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시대를 섬기는 하나님의 놀라운 주의 종들이 되기를 바란다. 시대의 어려움, 시대의 어려운 문제, 시대의 어려운 고통, 시대의 어떤 부조리, 이런 것들을 탓하지만 말고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자. 찬송하자. 강단기도 할 때 찬양이었다.
 
★찬송 361장,
♬기도하는 이 시간♪
 
1. 기도하는 이시간 주께 무릎 꿇고
우리 구세주 앞에 다 나아가네
믿음으로 나가면 주가 보살피사
크신 은혜를 주네 거기 기쁨 있네
기도 시간에 복을 주시네
곤한 내 마음속에 기쁨 충만하네
 
2. 기도하는 이시간 주가 곁에 오사
인자하신 얼굴로 귀기울이네
우리 마음 비우고 주를 의지하면
크신 은혜를 주네 거기 기쁨 있네
기도 시간에 복을 주시네
곤한 내 마음속에 기쁨 충만하네
 
3. 기도하는 이시간 주께 엎디어서
은밀하게 구할 때 곧 응답받네
잘못 된것 아뢰면 측은히 여기사
크신 은혜를 주네 거기 기쁨 있네
기도 시간에 복을 주시네
곤한 내 마음속에 기쁨 충만하네
 
4. 기도하는 이시간 주를 의지하고
크신 은혜 구하면 꼭 받으리라
의지하는 마음에 근심 사라지고
크신 은혜를 주네 거기 기쁨 있네
기도 시간에 복을 주시네
곤한 내 마음속에 기쁨 충만하네.

♣요약
하나님의 초청장을 받아 기도의 자리에 달려나온 부모 세대가 부흥헌신 토요비전새벽예배에서 가정을 위한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간구할 때, 우리 자녀에게 기도의 지팡이와 믿음의 용량이 함께 계승되는 영적 변화산의 은혜를 체험해야 하며, 올해 다가올 6월 3일에 진행될 2023년 빌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 기념집회를 통해 한국교회에 생명 사역이 새롭게 일어나는 역사 이 나라, 이 민족이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 나라로 시대 가운데 우뚝 서는 나라가 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믿음의 포에버 1세대가 간절한 기도의 지팡이를 들 때, 다음 세대를 새 은혜, 새 역사, 새 언약의 거룩한 부흥의 공진을 일으키는 중심으로 쓰임 받기를 소망한다. 
-한나는 그것을 엘리에게 표시하였다. 왜냐하면 엘 리가 그녀에게 용기를 주어서 안심하고 기도의 응답을 바라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한나는 이 아이에 관한 모든 권리를 하나님께 바쳤다.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린다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먼저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여 얻은 것이다.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빌려드리는 것이라고 한다. 세례를 통해 우리의 자녀를 하나님께 바칠 때는 그들이 엄연히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먼저 기억하도록 하자. 게다가 그들이 여전히 우리의 위로가 되는 우리의 자녀란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자. 한나는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어 주시사 감사하고 찬양함으로써 그 사실을 시인하였다. 감사는 우리가 마땅히 바쳐야 할 세금과도 같은 것이다. 한나가 받은 자비는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래서 한나는 특히 그것에 대핸 감사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한나의 감사를 여기서는 기도라고 한다. 한나가 기도하여, 왜냐하면 감사는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앞에서 간구했을 때는 그 음성이 들리지 않았으나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는 모두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나는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간구했으나 이제는 입술을 열어 하나님께 찬양을 올린 것이다.



















♣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1월 25일)
제목: "광야를 장막으로 바꾸시는 은혜"
말씀: 출애굽기 13:17-22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사회: 문진호 부목사님

설교자: 설성환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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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애굽기 13:17-22,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20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우리가 운전을 하게 되면 우리의 길을 안내 해 주는 네비게이션이 있다. 네비게이션은 우리가 길을 안내 받게 되면 때로는 평소에 다니지 않았던 생소한 그러한 길을 안내하는 경험을 종종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생소한 길로 우리를 안내하게 되었을 때, 그 네비게이션에 따르지 않고 내가 평소에 가던 길을 고집하면서 그렇게 가고자 할 때가 우리 가운데 분명하게 있다. 그렇게 내 고집대로 내가 지금까지 운전했었든 길로 우리가 가게 될 때, 어떠한 경험들을 했는가? 제 개인적으로는 내가 익숙한 대로 그 네비게이션을 따르지 않고 갔더니 어김없이 공사 현장이 나온다든가 때로는 접촉 사고로 인하여 차량이 상당히 막혀져 있는 그런 상황이 놓여 져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의 길을 안내해주는 이 네비게이션은 도로의 상황과 도로의 환경들과 여러 가지 데이터를 취합해서 그렇게 안내자 역할을 보게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더 편하게 갈 수 있는 길로, 더 쉬운 길로 이 네비게션이 안내를 해주지 않게 되면 때로는 어떤 생각이 들게 되는가?


여러분, 우리는 그 마음 가운데 그 네비의 말을 듣기보다는 그냥 내가 운전했던 길로, 내가 익숙한 대로, 이렇게 운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들의 모습일 때가 더 많다. 이와 비슷하게도 오늘 본문 말씀에도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나오게 하시고 약속의 땅, 그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때, 더 편한 길, 그 지름길로 인도하셨던 것이 아니라, 결코 예상할 수 없었던 그 홍해의 광야의 길로 돌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고 계시는 모습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실적인 상황을 봤을 때, 눈앞에 보이는 그 바닷길을 따라가는 것이 어찌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좋은 길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 길이 오늘 본문 말씀의 17절에 말씀하고 있는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이었다.


* 출애굽기 13:17,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이 길은 상업도로였다. 가는 길이 험하지 않고 잘 닦여진 그러한 길이었다. 그래서 대략 빠르게 걸으면 5일정도 소요가 되기도 하고 조금 천천히 이렇게 걷는다고 할지라고 대략 7일 정도의 소요가 걸린다고 한다. 그러한 짧은 지름길이었다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했을 때, 이 지름길은 어떠한 길로 보였을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러한 길이다. 라고 분명히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러한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왜 그러한가? 하나님께서 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라고 말씀하신 그 가나안 땅으로 최대한 빨리 갈 수 있는 길이 어디인가? 바로 이 지름길이었다. 그런데 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기대와는 다르게 본문 말씀에서는 이렇게 17절에 말씀하고 있다.


* 출애굽기 13:17,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그 지름길로 인도하지 않으신 것인가? 누가 보더라도 이 지름길로 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가나안 땅으로 빨리 들어갈 수 있는 그러한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길로 인도하지 않고 왜 광야 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도하셨던 것인가? 마치 네이게이션이 도로의 상황을 다 파악하고 막히는 길로 인도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상황과 모든 형편을 아시는 그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지름길로 인도하지 않으셨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저와 여러분들은 이 시점에서 광야를 장막으로 바꾸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 첫 번째로 주목해야 할 것을 발견할 수 있다.


I. 하나님의 인도하신대로 순종해야 한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애굽에서 탈출하고 난 후에 그들 스스로 길을 정하여 갈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다면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코 그 광야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선택권이 있었다면 그들은 광야의 길을 선택하지 않고, 당장 누가 보더라도 가기 편한 길, 가기 평탄해 보이는 그 지름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발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빨리 가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선택하고 나아갈 수 있는 그 선택권이 없었던 것이 오히려 은혜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때로는 저와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우리의 선택권이 없는 것이 오히려 더 은혜의 순간인줄로 믿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 뜻으로 내 경험으로 내 생각으로 그 길을 선택했다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길로 가지 않을 확률이 더 높았을 것이다. 우리의 본능이 그렇다. 더 좋은 길, 더 편한 길로 가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연약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저는 목회자 자녀로 소위 PK로 태어났다. 부모님께서 교회를 개척하셨기 때문에 실제로 교회는 저의 집이었고, 저의 놀이터였다. 저는 살면서 이 교회를 빼놓고는 절대로 저의 삶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교회는 저에게 특별한 그런 장소였다. pk로서 어렸을 때부터 목회자에 준하는 그러한 신앙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예배에 빠짐없이 필수적으로,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것이 저의 가정의 모습이었다. 사실 복음을 완전히 깨닫기 전의 저의 모습은 모든 예배를 빠지지 않고 드리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특별히 주일 날 낮 예배드리고, 청소년부서 예배를 드리고, 저녁예배를 드리고, 심지어 부흥 예배가 있는 날이면 예배를 네 번이나 드렸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마음 가운데 만약에 선택할 수 있다면 예배를 이렇게 많이 드리지 않았을 텐데, 라는 그러한 부끄러운 마음이 그때 저의 마음이 들었었다. 예배를 자율적으로 드릴 수 있는 선택권을 부모님이 저에게 주셨을까? 절대로 주시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이 복음의 능력을 완전하게 깨닫고 난 저의 모습은 목회자 자녀로서 이 예배에 드릴 수 있는 그 환경이 너무나도 은혜였다는 것을, 너무나도 감사의 조건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적이 있었다. 우리가 선택권이 있는 선택권이 없어서 심지어 억지로 하는 것이어도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순종하게 될 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줄로 믿는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저와 여러분들의 삶의 현장 가운데서 그 어떠한 선택권 없이 하나님이 전적인 인도하심을 받아 우리가 전진하며 나아갈 때에 광야와도 같은 그 장소에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놀라운 은혜가 우리의 삶 가운데 있게 될 줄 믿는다.


* 출애굽기 13:17-18,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아갈 길을 선택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름길이 아닌 그 광야 길로 인도해 주셨기 때문에 그 광야를 장막으로 바꾸시는 그러한 은혜를 맛볼 수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이 그 광야 길로 인도해 주시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은혜를, 그 기적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다 지름길이 아닌 홍해 광야 길로 인도하셨을 때에는 그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과 목적이 있으셨다. 오늘 본문 말씀 17절에 보면,


* 출애굽기 13:17,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하나님께서 그 길로 인도하시지 않은 이유가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지름길로 가게 되면 어떻게 된다고 말하는가?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하게 될 텐데, 애굽 땅에서 힘겹게 탈출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그런 전쟁을 하게 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명히 마음을 돌이켜서 애굽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않았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간다.’ 라는 이 말씀에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시금 노예(奴隸)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인도함을 받는 그러한 인생이 아니라 애굽에서 종살이 했던 그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것을 영적인 의미로 보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그런 인생에 머무르지 않고, 죄의 종노릇하며 살던 그런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애굽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광야 길로 인도하셨다는 것은 고난의 길처럼 보이는 그 험난하고 그 힘든 광야의 길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더라도 죄의 노예로는 결단코 다시금 돌아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그 하나님의 선한 마음이 담겨있다. 라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 애굽의 노예, 그 죄의 노예로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원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지 않은 우리의 눈에 좋아 보이는, 빠르게 갈 수 있어 보이는 길은 결코 주님께로 가까이 가는 길이 아니라 결국 과거의 애굽으로, 다시 죄의 노예 상태로 돌아가게 만드는 그런 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저와 여러분이 분명하게 기억하길 소원한다. 신명기 8장 2절 말씀을 보면,


*신명기 8:2,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지름길로 인도하지 않으신 것에 대해서 넓은 의미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그 광야 길로 인도하셨다고 하시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며 시험하시려고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셨다는 것은 그들을 겸손(謙遜)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또한 시험(試驗)하셨다는 것은 훈련(訓練)의 시간을 의미하고 있다. 40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그 광야의 삶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선택들을 내려놓고 전적으로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님을 붙들게 되는 그러한 훈련의 시간이었다는 사실이다. 주님만을 의지하는 이 훈련의 과정들을 통하여서 내 주장과 내 생각은 철저히 낮아짐은 통하여서 겸손하게 되고 주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따르는 그런 겸손함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시간들을 통하여서 이 40년이란 광야의 시간들을 통하여서 배우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우리들의 상황과 환경이 끝까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광야와도 상황이 우리의 현장 가운데 펼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하셨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그곳에서 망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광야와도 같은 그 상황과 그 환경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게 하시고 하나님과 우리의 영적인 추억으로 가득한 그러한 추억의 장소로, 그러한 은혜의 장소로, 그 광야의 자리를 만들어 가실 줄로 믿는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저와 여러분이 붙들어야 할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대한 전적인 신뢰이다.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그 신뢰와 그 믿음 가운데 우리가 있을 때, 그 광야를 장막으로 보게 되고 험난하고 어려움으로 가득한 그 광야를 하나님이 인도하심으로 가득한 은혜의 장소로 고백하게 되는 놀라운 믿음의 고백이 우리들의 삶의 현장 가운데 경험되고 고백되어지고 회복되어 질 줄로 믿는다. 광야를 장막으로 바꾸시는 그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II.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늘 경험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 우리는 그 모습을 오늘 본문 말씀 21-2절 말씀에서 확인하자.

*출애굽기 13:21-22,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 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매순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결코 떠나지 않으시고 그들과 함께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한 순간도 1분 1초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혼자 버려두지 않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그런 홍해 길을 만났을 때에도 그 광야 길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 막혀버린 바닷길이 갈라지게 되었고, 그 막다른 길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명의 길이 되었고, 구원의 길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 순간 여러분들 각자에게 허락하신 그 바닷길은 무엇인가? 그 광야의 길은 무엇인가? 그 바닷길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서 막막해 보이지만 결국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기적을 경험하는 자리가 될 줄 믿는다. 저와 여러분이 마주하게 될 막혀버린 것 같은 그 홍해 바닷길은, 그 광야의 자리는 우리가 주님을 더욱 더 간절하게 찾아야 되는 그러한 자리인 줄 믿는다. 사방이 막혀버린 것 같은 그런 환경 가운데서 오히려 그 상황이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되고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그러한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저와 여러분들이 분명하게 되기를 소원한다. 인간적인 눈으로 이 광야를 보게 되면 광야라는 공간은 수시로 야생동물을 만나게 되는 너무도 위험한 공간이다. 의식주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그런 정착되지 못한 그런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일 수밖에 없다. 인간적인 눈으로 이 광야라는 공간을 보게 되면 절대로 우리들이 머물면 안 되는 그런 공간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믿음으로 눈으로 그 광야를 보게 되었을 때, 오히려 그 광야가 위험한 곳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광야가 사람이 정착하여 살 수 없는 그런 환경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과 함께 해야만 하는 그러한 장소가 되게 된다는 사실이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광야를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로 해석되는 그런 믿음의 눈이 날마다 경험되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광야로 해석되는 히브리어 단어는 ‘미드바르’ 히브리어 단어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되어지는 히브리어 단어는 ‘다바르’ 단어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지성소로 해석되고 있는 히브리어 단어는 ‘드비르’ 단어이다. 광야와 또 하나님의 말씀, 또 지성소라고 해석되어지고 있는 이 세 가지 히브리어 단어의 어근이 모두 같다라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을 통하여서 영적으로 깨달음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살게 하신 광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신 그런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는 장소였고, 하나님을 만나는 지성소와 같은 장소였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아니 하나님께서 광야라는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주하고 있는 그 홍해 바다로 막혀버린 그 광야 길은 애굽 군대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무덤이 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물렀던 그 광야는 먹을 음식을 찾지 못해 굶어죽거나 마실 물이 없어서 목말라 죽을 수밖에 없는 죽음의 장소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부재는 아무리 좋은 환경도 죽음의 광야로 만들게 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아무리 열악한 광야의 환경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자리 가운데 함께 하시면 생명의 샘으로 바뀌어 지고 구원의 방주로 바뀌어 지게 되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로 믿는다. 시편 4편 8절 말씀을 보면

*시편 4:8,
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다윗의 평생의 삶에서 그의 고백은 어떠한 고백인가? 나를 안전하게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하나님 밖에 없다. 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다윗이 이 시를 썼을 때가 언제인지를 우리는 주목해 보아야 한다. 이 순간은 바로 다윗의 셋째 아들이었던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서 이 아버지를 죽이려고 쫓아오고 있는 그 때에 다윗이 자신의 아들의 반란으로부터 도망가면서 이 시가, 이 고백이 바로 이 하나님을 향한 이 고백이었다. 다윗이 지금 마주 하고 있는 그 상황은 누가 봐도 암울해 보이는 상황이다. 누가 보더라도 절대로 안전해 보이지 않는 그러한 환경이다. 인간적인 눈으로 수백 번 보아도 다윗은 현재 상황은 절대로 안전하게 볼 수 없는 그러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고백은 무엇인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내가 안전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친 아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오는 그때에 다윗은 자신을 안전하게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것을, 이 놀라운 고백을 주님 앞에 올려드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윗의 그 고백처럼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모드 어려움 가운데서 안전한 길로 인도하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의 입술로 날마다 고백하게 될 때, 다윗이 경험했던 그 진정한 평안, 그 진정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저와 여러분의 삶의 현장 가운데서 경험하게 될 줄로 믿는다.


사람은 편한 길, 그리고 빠른 길을 선택해서 가려고 하는 것이 어찌 보면 본능적인 모습일 것이다. 왜 그러한가? 편한 길과 빠른 길이 우리들의 인생 가운데서 가장 좋은 길이다. 라고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편한 길로만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우리들에게 편한 길이 아닌 불편한 길로, 때로는 울퉁불퉁한 그러한 길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때가 있다. 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선하신 그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 우리에게는 가장 좋은 길이라는 그 믿음으로 그분을 신뢰함으로 그분을 따라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현장 가운데 늘 베풀어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할 줄로 믿는다. 어떻게 하면 내가 빨리 갈 수 있고, 성공하는 길로만 갈 수 있을까? 내가 가야될 길에 상태와 그러한 길이를 보는 그러한 인생이 아니라 나의 길을 인도하시는 분이 누구이신지, 내가 함께 하시는 분이 누구이신지, 그 질문을 날마다 내 삶 가운데 되새겨 보면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우리의 길 위에서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을 끝까지 붙잡고 의지하며 나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요약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맡겨진 그 값진 삶을 하나님의 자녀답게 온전히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 말씀이 우리의 삶에서 실재가 되므로 예수님의 흔적을 드러내어 살며, 어떠한 선택권도 없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은혜임을 깨달아서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는 믿음의 선택을 하며 광야와도 같은 인생의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끝까지 보호해 주시고 버리시지 않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야 할 길을 선택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의 인도자이셨다. 직접적으로는 모세가 그들을 지휘하였지만 그는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그대로를 지시하였던 것이다.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는 데에는 두 가지의 길이 있었다. 하나는 애굽 북부에서 가나안의 남쪽을 향해 가는 지름길로서 아마도 4,5일 정도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다른 하나의 길은 광야를 통해서 가는 훨씬 먼 길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실 때 바로 이 길을 선택하셨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실 때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않으셨다. 이런 인도 방법은 사막을 행진할 때 꼭 갖추어야 할 조건이다. 즉 하나님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기 백성을 돌보시며, 어려울 때마다 힘이 되어주시고, 슬플 때 위로해 주시며, 기쁠 때 함께 기뻐해 주신 것이다.















주일예배(주후 2023년 1월 22일)-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시리즈 10번 째.
제목: "제사장 나라, 크리스천 팍스(peace) 코리아나"
말씀: 출애굽기 19:3-6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이의수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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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9:3-6,
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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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주일 날 우리는 이 예배당에 불러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오늘 오른쪽에 보면 새해, 새 은혜, 새 역사, 이렇게 해 놓았는데 여러분은 어느 단어가 제일 마음에 닿는가? 올 한 해 새 은혜와 새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자 오늘 온라인과 지방과 가족과 내려간 모든 성도님들 마음을 따뜻하게 해가지고 함께 하자. 오늘 본당에 들어오니 무언가 있지 않은가? 천장에 방패가 있다. 방패도 있고 우리 앞 뒤 ‘새 역사를 경험하기를 서로 바란다.
 
저는 명절 주일 마다 평소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목회적인 풀이랄까? 튼실하게 좀 세워야 할 것을 제가 강조를 하고 있는데 여러분, 교회 사역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사랑의 교회가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교회가 다 있는데, 교회 사역에 제일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핵심은 뭐냐면 생명사역인 줄 믿는다. 생명의 역사, 생명의 변화, 라이프 체인지이다.
 
오늘 본문에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6개월 정도 경험을 하고, 출애굽을 이제 해서 홍해를 지나고 17장에 보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이기고 이렇게 해서 아마 9개월 정도, 그러니까 모세 입장에서는 1년이지만 지팡이를 들고 난 다음에 일어났던 사건, 지팡이를 들고 한 일 년쯤 지나서 9개월-1년 쯤 된 경험이 나와 있다. 그게 4절에 보면,
 
*출애굽기 19:4,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주님께서 독수리 날개로 업은 것처럼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그 홍해를 건넌 역사는 기적의 역사이고 죽을 사람이 사는 것이다. 생명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홍해를 건너는 생명의 역사가 지속 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 사역의 제일 핵심은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속에서 확대되는 것이다. 생명의 은혜가 계속 확대되어야 하는 것이다.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한 은혜가 확대가 되어야 한다. 헬라어로 이 생명이란 풍성한 생명, 영원한 생명, 그 놀라운 어떤 영적 신비의 생명, 이것을 ‘조에’라고 이야기 한다. 물리적인 생명, 육신의 유한한 생명, 이런 생명은 ‘비오스’이다. 제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는 일단 여러분이나 사랑의 교회나, 오늘 지방에 가서 오늘 온라인으로 들어온 성도님들, 느낌에 하여튼 가신 곳에서도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조에’의 생명의 역사를 이야기 하려고 한다. 영원한 생명, 신비한 생명, 풍성한 생명, 이 생명이 교회는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다들 하지만 우리가 사회적인 이미지가 더 좋아지기도 다 있지만 결국은 그런 것들은 하나의 방법론이고 핵심은 교회 사역을 통하여 계속되는 생명의 역사가 재생산 되고 확장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교회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창세기 1장에 보면,
 
조에(풍성한 생명, 영원한 생명, 그 놀라운 어떤 영적 신비의 생명)
*비오스(물리적인 생명, 육신의 유한한 생명, 죽을 수밖에 없는 육신의 생명)
 
I. 교회는 생명 사역이다.
*창세기 1:28,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
-단순이 육신의 생명의 정도가 아닌 충만한 생명, 영적인 생명의 어떤 번성(蕃盛),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영원한 생명-‘조에’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만나고 난 다음에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신다. 영원한 생명의 역사의 주인공으로 참여시켜 주신다는 것이다. 이거는 너무 신비한 것이다. 육신의 눈 갖고는 이해를 못한다. 이것은 천사라도 이해하지 못하는 신비한 것이다. 그래서 경건과 생명의 관한 놀라운 것은
 
*에베소서 3:10,
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이거는 천사들도 알지 못하는 신비한 것이다. 이제 뭐로 말미암아, 교회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너무 신비하다. 흔히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한다.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몸의 관계는 무슨 관계인가? 생명의 관계이다. 생명의 역사가 교회 사역을 통하여 계속 확산 되어가는 것이다. 이게 믿음의 뿌리이고 사역의 뿌리이다. 사랑의 교회가 회복을 넘어 부흥의 뜻이 다른 뜻이 아니라, 이 생명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확산되게 하여 주시고 더 확장 되어서 단순한 ‘비오스’의 어떤 생명이 아니라, 육신의 유한한 생명 정도가 아니라, 영적인 신비한 생명, 영원한 생명, 풍성한 생명의 역사가 사랑의 교회를 통해 계속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어떻게 보면 2차적인 것이다. 제가 과격하게 말하면 나머지는 다 데코레이션이다. 우리가 교회 사역을 해야 된다. 문화 사역도, 여러 가지 다 해야 되지만, 교회의 핵심 사역은 생명사역이며 이것보다 우선 되는 것은 없다. 맞지 않은가? 우리 교회는 이 뿌리를 튼실하게 견지하여 세워 나가야 한다.
 
II.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이다.

-사명을 깨닫는 것이다. 주님께서 가장 섭섭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내 뜻을 하나님의 생각이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내 뜻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이 이제 하나님께서 풍성한 생명을 주신. 영원한 생명을 주신. 신비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요청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오늘 5절에 나와 있다.
 
*출애굽기 19:5,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우리는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나?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내 평생에 내 삶을 통하여 계속 펼쳐질 것인가를 뭐라고 말씀 하냐면, 하나님이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의 언약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언약, 우리에게는 생명의 역사가 확산 되어야 한다. 이 신비한 세계를 사람들은 모르고 적당히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차원이 아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풍성한 생명, 영원한 생명, 신비한 생명에 대해서 눈이 열린 하나님의 백성인 줄 믿는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며, 어린 양의 피로 되는 것이다. 이제 그렇게 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내 삶 속에 펼쳐져야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내 삶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언약으로 나타날 때, 언약은 두 종류가 있다. 무조건적인 언약, 조건적인 언약이 있다.
 
무조건적인 언약- 대표적인 것은 창세기 핵심 요절인 창세기 12:1-3절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그냥 아브라함이 무슨 자격이 있고, 아브라함이 무얼 잘하고 이게 아니고 그냥 불렀다. “너는 조상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한 땅으로 가라 내가 너를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
 
창세기 12:1-3,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언약이다. 너는 축복의 근원이 되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를 하신다는 것이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통해 복이 되게 하신다는 것이며 다 아는데 저는 그 말씀을 읽으면서 큰 감동도 있지만 한편으로 두려워하는 마음이었다. 왜냐하면 너를 축복(祝福)하는 자에게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咀呪)를 한다는 무조건적인 언약을 주신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들을 함부로 폄하가 되는가? 무서운 것이다. 어마하다. 이게 축복 권과 저주권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이유는 모르지만 이 하나님의 놀라움은. 그래서 땅의 모든 족속은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한다. 축복의 모든 족속이 우리 식으로 하면 이웃이 축복의 대상이고 우리는 축복의 근원이다. 우리는 축복의 대상이 아니고 우리는 축복의 근원이고 축복의 대상은 땅의 모든 족속이다. 평소에 늘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잘 못 알아듣는다.
 
그래서 오늘 다시 한 번 시내 산 언약을 통하여 이제 출애굽하고 난 다음에 한 9개월 쯤 지나서 시내 산 언약을 통해서 도장을 찍는 것이다. 6절에 보면,
 
*출애굽기 19:6.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특별히 창세기에서는 무조건적인 언약이었지만 출애굽기 여기서는 언약을 지키면,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약간의 조건적인 느낌이 있지만 그러나 크게 보면 그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인데, 너희는 내 제사장이 되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미션스테이트먼트(mission statement)이다. 오늘 사랑의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기를 원하는 우리 한국교회 모든 주의 권속들이여, 우리 마음속에 주님의 주시는 아주 확성기 같은 음성을 듣기를 바란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라. 기가 막힌 말씀이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이 나라가 되라. 아니 이럴 수가 있는가? 이 사람들은 지금 겨우 노예생활을 면한 사람이다. 겨우 노예생활을 면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무슨 제사장 나라, 축복의 근원, 이런 것 아직은 어울리지도 않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앞에 놓고 “너희는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라”고 하신다.
 
제가 오늘 말씀을 설교제목을 쓰면서 제사장 나라?, 크리스천 팍스 코리아나? 벌써 어제 누가 목사님, 팍스는 너무 ‘제국주의적’입니다. 라고 했다. 그러면 샬롬으로 할까? 크리스천 샬롬 코리아나? 팍스라는 말은 라틴어로 피스(peace)라는 말이다. 이것이 남용(濫用)이 되어서 그렇지 사실은 좋은 뜻이다. 아니 어떻게 이런 제목을 붙일 수가 있는가? 아니 하루살이 밥벌이도 힘들고 사람들과의 갈등도 일으키고 마음에 짐이 있고 고통이 있고 수많은 기도의 제목이 있고 내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든 우리들에게 어떻게 이런 제목, 제사장 나라? 크리스천 팍스 코리아나? 샬롬 코리아나? 여러분, 오늘 이 말슴을 여러분들과 같이 나누는데 여러분들과 저의 환경은 그래도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 나은 줄로 믿는다. 시내 산 언약을 받을 때에 이 말씀의 대상인 이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우리는 열 배, 백 배도 더 낫다.
 
우리가 정신 바짝 차리고 오늘 이 말씀을 우리의 사명 선언문으로 받아들이면 여러분의 길이 열리게 되어 있다. 오합지졸 같은 인생인데.. 이 명절 주일에 이 말씀을 하냐면 여기에 하나님의 거룩한 지혜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종살이 한 지, 노예생활에 익숙한 자, 이제 겨우 풀려난 자들이다. 마치 오합지졸 같은 사람들을 놓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는 내게 대하여 제사장의 나라가 되라.”고 하신다. 창세기 12장에 축복의 근원이 무엇인가?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시고 계신다. 왜냐면 제사장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제사장은 자기 배를 두드리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들을 위해 사는 것이 제사장 몫이다. 종살이 익숙한 자, 오합지졸 같은 사람, 겨우 이제 어린 양의 피로 생명의 역사를 경험한 자, 기적과 같은 사람들이 홍해를 건넌 자에게 주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창세기에서 제 1언약을 주신 것을 출애굽기에 제2언약을 통하여 다시 한 번 확증시켜 주시는 것이다.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기 위한 우리의 마음의 소원이 있다면 여러분에게 기도의 제목이 되기를 바란다.
 
이 제사장 나라는 세상의 제국이 아니다. 오늘날 세상은 제국을 세우기를 원한다. 자기민족만 잘 되기 위해서 사는 나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땅에 제사장 나라를 세우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하여 제국을 세우시기를 원하신다면 이스라엘은 이미 끝났고 멸절되었을 것이다. 제사장 나라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것을 근거한 거룩한 나라이다. 어떤 거룩한 나라인가 세상의 풍요로운 나라가 아니다. 이 세상 나라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시작된 나라인줄로 확신해야 한다. 어린양의 생명의 피가 이 장자들의 생명을 지켜 주었고 여기에서 제사장 나라가 시작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오늘 우리 주위를 살펴보라. 우리의 가족과 이웃을 보면 우리는 제사장 역할을 해야 하는데 가족과 이웃과 사회는 평화와 샬롬과 구원에 복을 하나님이 주시길 원하시는데 그런데 현실은 남북도 둘로 쪼개져 있고, 또 남쪽도 갈등 가운데서 정치적 이념에서 여러 가지 갈등 때문에 어떻게 해결점을 찾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저와 여러분이 오늘 날 제사장 역할을 잘 감당하면 되는 것이다.
제가 ‘제사장 나라, 크리스천 팍스 코리아나’라고 했듯이. 라틴어로 피스라는 뜻이다.
*Christian Pax Koreana=(pax=peace, salom) 제가 바라는 팍스 코리아나는 샬롬의 평가이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깃발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백성이 가는 곳마다 거기에 진정한 샬롬이 임하기를 은혜와 평강을 주시길 소원한다.
 
찢어진 나라가, 갈라진 진영이 서로 하나 되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원한다.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제사장 나라로 삼아 주셨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나서 잘 해서 그들이 제사장 자격을 갖고 제사장이 된 것이 아니다. 쟁취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보면,
 
*요한계시록 1: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신구약 전체를 통틀어서 마지막 사도 요한이 환상을 보고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면 그 사도요한이 영적인 영안이 열려서 깨달은 것은 우리가 제사장이 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제사장 자격이 있어 가지고 된 것이 아니고 쟁취한 것도 아니다. 우리가 제사장이 되고자 어떤 능력이 있어서 된 것이 아니다.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아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 용기를 가지고 마치 노예생활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제 금방 나온 것처럼, 마치 오합지졸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의 부족함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이 내게 주신 레마의 말씀인 줄 확신한다. 오늘 이것을 마음에 다짐해서 하나님이 나를 제사장 나라로 삼아 주셨음에 너무나 감동이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냐면,
 
*요한계시록 1:5,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나를 하나님이 나를 제사장으로 삼아 주신 그 은혜가 내게 너무 확신하게 되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축복이 은혜와 평강의 열매를 주시는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은혜와 평강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이것을 날마다 감격하고 감사하기를 바란다. 무슨 뜻인가? 나는 자격이 없고 오합지졸이지만 나는 노예 같지만 하나님께서 생명의 피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면 여러분과 저의 삶에 무엇이 있겠는가? 바로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것이다. 아멘!!!~~ 여기에 눈물이 나와야 한다. 부친은 “눈물은 아꼈다가 뭐하게?”하셨다. 영웅을 보러 가셔서 울었다고 하셨다. 진짜 마음속에 아무것도 아닌 나를 제사장 삼아 주신 것에 감격해야 한다. 눈물을 두었다가 뭐하게??? 우리에게 날마다 있기를 바란다.
 
III. 우리나라는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인 줄로 확신한다. 데이바이데이, 이어바이 이어가 있으면 역사가 일어날 줄 믿는다.
Christian Pax Koreana, Christian salom Koreana,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샬롬의 평강을 이웃들에게 나누시며 축복하게 되기를 바라신다. 오늘 여러분들이 들어오면서 앞으로 45주년을 사랑의 교회를 놓고 한국교회와 함께 우리는 부흥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한 달 전에 미국 워싱턴 D.C와 뉴욕을 다녀오면서 제가 워싱톤 D.C는 자주 가봤고, 뉴욕은 열다섯 번 정도 가보았다. 제가 오랜만에 워싱턴 D.C를 가니까 워싱톤이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정치 1번지 수도이고 뉴욕은 경제 1번지 수도이다. 그런데 뉴욕에 가니까 좀 불편하고 올드 했다. 여전히 정치 1번지이고, 뉴욕은 경제 1번지이다. 여전히 두 도시 영향력은 같다. 변한 게 없다. 그런데 내가 변했다. 여러분 인천공항을 가보면, 세계 여러 나라에 비하면 최고에요. 일본이나 미국이나 창이 가보아도 올드 한데 인천공한은 미래 지향적인 공항이다. 세상이 뭔가 달라졌다.
 
그러니까 서울이란 도시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이며 산이 있고 강이 있다. 그것도 큰 강이 있고 큰 산이 있다. 세계 어느 나라가 토요일 날 느즈막에 일어나서 브렌치 먹고 오늘 산에 가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30분 만에 산에 갈 수 있는 곳은 서울 밖에 없다. 서울뿐만이 아니라, 다른 도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런 배산임수도 있을 뿐 아니라 서울은 역사까지도 있다. 독특한 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래서 지금 폴란드나 UA라든지 이런 곳에서 몇 조씩 한국에 투자하고 방산, 원전, IT에 투자하지 않은가? 왜 이렇게 해외에서 한국에 투자하는가? 나름대로의 한강의 기적이라는 나름대로의 기적으로 서울로 모여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지만 그런데 동시에 안타까운 것은 겨우 저 출산율이다. 전 세계적으로 출산율이 낮고 아직도 고아수출국이다. 정치적 입장은 말도 못하고 얼굴도 서로 안 보려고 하고 견해가 다르면 부모 자식 간에도 식사를 함께 하지 않으려고 한다. 심지어 결혼은 앞둔 커플이 견해가 다르다고 파혼이 되는 경우도 있고 지역, 세대, 이런 갈등보다도 정치이념이 더 심각하다. 한쪽은 한류가 있고 한쪽은 글로벌 스탠다드로 올라가고 있는데 또 하나는 너무나 그렇다. 이 두 가지가 너무 큰 벽이다. 여기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을까? 그냥 이대로 놔두어야 할 것인가? 제가 볼 때는 새로운 차원의 특별한 비전과 놀라운 새 길과 새로운 방향이 잡혀지지 않으면 나라는 길이 없다. 한쪽은 너무 자랑스러운데, 한쪽은 너무도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래서 여기에 무언가가 새로운 길, 새로운 방향을 하나님이 주셔야만 한다. 아니 우리가 말씀 속에서 우리가 그 말씀을 삼아서 집중을 해서 나아가야 한다. 영적인 새로운 길이 열리려면 우리 민족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우리 민족은 조선시대 말기에 비참했다. 관료주의의 득세가 말도 못했다. 그리고 한일의약조약으로 관료들의 보신조약으로 관료들이 자기를 보호하려고 일반 백성들은 안중에 없고 또 일본은 우리를 식민지로 삼고, 그 사이에 우리는 무슨 길이 있겠는가? 국가의 지도자는 엉망진창이고 일본은 식민지 정책을 쓰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생명의 복음으로 주심으로 말미암아 학교를 짓고, 중고등학교를 짓고, 기독교 민족 사업을 짓고, 병원을 짓고, 이렇게 해서 이민족에게 복음으로 유일한 길을 열어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시려고 그야말로 역사적인 오합지졸들을 노예 살이 하던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들처럼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좋은 면에 있어서 서울과 한국의 어떤 약진을 말씀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적은 의미의 팍스 코리아나가 된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팍스 코리아나를 진보지식인들이나 거부감이 있는 분들은 샬롬 코리아나로 여기면 되고 두 가지 다 평화와 질서, 새 시대를 여는 것이다. 과한 것이 아니다. 아시아나를 살펴보자. 중국은 지금 저대로 가면 희망이 없다. 공산주의이며 희망이 없다. 일본도 겉으로는 선진국이지만 아직까지 신민주의이고, 인도는 계급제도이다. 카스트 제도이다. 그러니까 동아시아의 유일한 희망은 대한민국이다. 본래 성경이 들어와서 번역될 때에 한자, 일본말, 한국말에 ‘자유’라는 개념을 가지고 이 자유라는 말을 번역할 말이 없었다. 수천 년 봉건사회에서 중국도, 일본도, 한국도, 자유라는 성경적 개념의 이름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이 들어와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해서 그 자유가 들어와서 우리나라가 자유민주공화국이다. ​이것이 오늘 이만큼 안아주시는 본당에서 예배드리는 축복이 있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우리만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하여 동아시아, 아시아, 샬롬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축복을 주시길 바란다.
 
*이사야 19:24~25
24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25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여러분 애굽은 이스라엘을 종살이 시킨 나라이며 못 된 나라이다.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원수이다. 잔인한 나라이다. 어떻게 애굽과 앗수르가 함께 복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 나라의 삶을 제대로 살게 되면 주위에 있는 애굽과 앗수르도 함께 샬롬의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중국은 수많은 나라들 가운데서 우리를 괴롭힌 나라이고, 일본도 괴롭혔지만 우리가 잘 하면 중국도 복을 받고, 일본도 복을 받는 것이다. 세계 선교 마무리는 중국 사람들이 떼거리로 선교를 나가야 세계 선교 마무리가 되는 것이다. 중국 교회가 새로워지려면 우리가 잘하면 된다. 중국교회가 뷰흥을 가져올 수 있도록 우리가 축복의 근원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앗수르 같은 일본, 중국 이스라엘 같은 한국이 같이 축복을 받아서 다 같이 평강을 누리기를
Christian Pax Koreana 길이 열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제가 말하는 Christian Pax Koreana는 어린 양의 피로 세워진 나라이다. 이 제사장 나라는 어린양의 피로 세워진 거룩한 나라이다. 올해 45주년에 6월 3일에 빌리그라함의 50주년 기념으로 다시 한 번 이 나라가 부흥으로 임하시길 원한다. 9월 25일 한국교회 섬김의 날에는 교회마다 이 사명을 확증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기를 원한다. 오늘 명절에 개인적으로 적용하자. 이 말씀이 나와 어떤 연관이 있고 나는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첫째 적용은- 과거 현재형을 누려야 한다.
-과거의 은혜가 현재화로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다 제사장나라를 감당하기 위하여 첫째 우리는 과거에 은혜가 우리의 것으로 접목되어야 한다. 과거의 은혜가 현재화 되는 것이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길이다. 과거에 이스라엘의 백성이 받은 축복을 우리가 받는 것이다. 인생의 진퇴양난,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광야 생활에서 받은 축복을 오늘도 받게 하시고 그 이유는 5절이다.
 
*출애굽기 19:5,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하나님께 속한 것은 우리 모두에게 속한 것이다. 과거의 은혜가 현재화가 된다. 여기에 우리가 집중하면 하나님은 베풀만한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두 번째 적용은- 사명선언문 개인적으로 쓰는 것이다.
-제가 출애굽기 19장은 사명 선언이라고 했다. 오늘날은 많은 젊은이들이 보는 것이 많아서 개인적으로 사명선언을 쓴다. 비전을 쓴다. 이런 것들을 안 한다. 저희들 시대 때는 아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이 무엇인가를 그걸 써보고 비전선언으로 전략도 만들고 했다.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 것으로 접목이 되어서 여러분의 것으로 사명선언으로 쓰면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과거의 은혜가 오늘 우리의 것으로 되길 확신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은혜가 우리에게 과거가 현재형으로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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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적용은- 거룩한 공진이 일어나는 것이다.
-파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장이 일어나는 것처럼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하나를 던지면 파장이 일어나고 두 개들 던지면 더 크게 파장이 되고 여러 개를 던지면 큰 파장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 한 사람의 제사장적 사명이 과거의 현재형 사명을 만들어서 하나님 앞에 집중하면 그것을 같이 할 때, 거룩한 파장과 공감대가 일어난다. 전체가 영향을 끼치고 작은 파문이 점점 커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 온 성도님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런 마음으로 집중할 때, 이 파장이 우리 주위에 그대로 영향을 끼치리라고 확신한다. 얼마나 파장이 커지냐면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기도했듯이 전국 교회가 파장이 일어나서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교회가 되고 있다. 여러 교회들이 사람에게는 진짐으로 하나님께는 전심으로가 파장이다. 여러분이 제사장 나라가 되면 된다. 내 인생이 오합지졸 같고 아직까지 노예근성이라 할지라도 파동을 일으킬 때, 우리 가슴을 뜨겁게 하시며 움추림을 하나님은 펼치게 하시고 갈 바를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불태울 수 있는 방향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거룩한 진동이 있기를 축복한다.
 
♣요약
초라하고 노예 살이 한 우리를 어린양을 통해 생명주심에 감사하며 거룩한 백성 삼아주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이새 해에는 새 은혜, 새 역사, 새 언약을 사모하며 엎드려서 풍성한 생명, 영원한 생명의 역사가 확산되는 생명사역의 부흥이 되기를 소원하며 우리 공동체가 모두 한 마음으로 제사장 나라가 되어 사명 선언문을 올려 드릴 때,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고 거룩한 보혈의 제국을 이루어가기를 소원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언약을 지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 성도가 제사장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신약의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직접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 즉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을 믿고 말씀에 순종할 때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과 불신자 사이를 중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제사장이 되려면 먼저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기로 맹세해야 한다. 이 계약의 제정자, 즉 최초의 제안자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었다.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선하신 축복들은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이며 또한 우리가 받는 모든 위로도 우리가 하나님께 알려진 바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1월 21일)
제목: "가족을 위한 기도 지팡이"
말씀: 사무엘상 1:26~2:1
대표기도: 노영훈 장로님(당회서기)
찬양인도: 창목회
말씀읽기: 천예준 어린이(소년부), 김예린 어린이(초등부)
사회 : 김도훈 부목사님(예배)

사회: 조성환 부목사님
(SaGA 사역, 찬양사역부-설날 찬양 음악회)
사회: 이민형 부목사님(주일학교 팀장)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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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26~2:1,
26 한나가 이르되 내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내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27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2:1
1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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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담임목사님(가족을 위한 기도 지팡이)
-할렐루야!!!~
영하 12도에 최근 들어서 토비새에 제일 추운 날인 것 같은데 다를 그대로 이 새벽에 우리를 불러주신 주님을 우리는 찬양한다. 오늘 찬양대가 그 모든 민족을 찬양을 했는데 교역자인 창목회가 찬양을 했다. 사랑의 교회 한 해 교역자들의 섬김을 통해 수많은 영혼들이 주님 앞에 돌아오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오늘 이 성경 봉독을 또박또박하게 한 어린이를 축복한다. 하나님께서 맞춤의 은혜를 주시를 바란다. 오늘 새벽에 제가 나오면 이 교회 교통봉사 사역을 위한 분들과 인사를 하는데 오늘은 교통봉사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오늘은 순장님들이 거의 나오셔서 봉사를 하셨다. 일부러 다 나오실 뿐만이 아니라 가족들과도 다 왔다는 것이다. 우리 순장님들과 이 새벽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성도님들을 한 분 한 분도 축복한다. 오늘 성경고사 대회에서 드디어 처음으로 전국성경고사 대회에서 저희 교회가 1등을 했는데 제가 새벽에 나와서 이렇게 인사를 하니까, 아이들이 “목사님, 가까이서 뵈니까 더 감사하네요.” 한다. 아이들이 그렇게 말하니 제가 깜짝 놀랐다. 그래서 제가 “나도 그렇다. 이 새벽에 너희들 이렇게 나오니 너무 감사하다.”라고 했다. 우리 아이들 가운데 평양시장, 각국 각처의 유능한 인재들이 나올 줄 믿는다. 자, 우리는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을 산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가? 작년 가을부터 하나님께서 아주 중요한 슬로건을 주셨다. ‘사람에게는 진심으로, 하나님께는 전심으로’, 그리고 
Sincere heart to people-사람에게는 진심으로, 
Wholeheartedly to God.-하나님께는 전심으로.
 
그러면 어떻게 하면 진심과 전심을 담을 수 있는가? 어떻게 진심과 전심의 사람이 되는가? 그렇게 기도하면서 보니 진심과 전심을 다음을 만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 진심과 전심을 담을 만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 믿음의 용량이 준비되어야 한다. 새벽이니까 더 잘 쏙 쏙 들어올 줄 믿는다. 그릇이 준비되어야 하는데 그릇은 고난과 믿음의 용량(用量), 이 두 가지가 같이 가야 강하고 믿음의 용량을 같이 가야 이 그릇이 준비되는 것이다. 아멘, 고난과 믿음의 용량이 같이 가는 핵심, 우리가 평생 붙잡을 만한 뭐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그것이 바로 모세가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시고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는 출애굽에 대한 엄청난 사명이고 엄청난 그릇의 준비인데 그것을 위해 수많은 고난을 겪에 하시고 심지어 뱀 꼬리 잡으라고 하시고, 그렇지 않은가? 뱀 꼬리 잡으면 그 당시 살모사, 죽는 것이다. 죽음을 각오한 그 전력투구(全力投球)를 하니까 뱀 꼬리를 잡으니 뱀 꼬리가 지팡이가 되었다. 그 지팡이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지팡이를 가지고 아멜렉도 승리하게 하시고, 지팡이를 가지고 반석에서 샘물도 터트리게 하시고, 그 지팡이가 단순한 지팡이가 아니라, 고난과 믿음의 사명이 같이 결합된 지팡이가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새벽에 적게는 이런 지팡이를 가지고 나오고 크게는 이런 지팡이를 가지고 나온다. 제가 앞으로 무얼 할 건가 싶은가하면, 컬렉션을 해보고 싶은데, 지팡이만 한 번 해볼까? 한다.
 
제가 몇 년 전에 덴버신학교에 가니까 창설하신 유명한 닥터 버넌이란 분이 유명하셨는데 그분은 그 컬렉션, 그분은 지팡이를 모으는 취미를 가지고 계셨다. 전 세계적인 양과 목자의 지팡이를 가져다가 딱 서재에 걸어놓았다. 여러분, 지팡이를 한 번 수집해 보겠는가? (가장 강하고 튼튼한 지팡이가 가장 비싸다-대추나무에 번개 맞은 지팡이가 가장 상품)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지팡이가 무얼 상징하는가? 고난과 믿음의 용량이다. 하나님은 항상 고난과 믿음의 용량을 가지고 그 사람을 쓰시고, 민족을 구원하시고 시대를 새롭게 하신 줄 확신한다. 제가 새해 많은 분들에게 이렇게 인사가 오면 저도 간단한 답을 드리는데 거기다가 꼭 쓰는 이야기가 새 한 해에, 새 은혜에, 새 역사가, 일어나게 해달라고 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 우리가 마음에 갖고 있는 이 지팡이를 통하여 기도의 지팡이를 통하여 새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오늘 기도의 지팡이의 예를 사무엘상 1:26-2:1절까지 한나의 기도의 지팡이를 이야기 하겠다. 앞으로도 더 이야기를 할 텐데, 한나의 기도의 지팡이의 오늘 핵심은 사무엘상 12장에 보면 사무엘이 뭐라고 하냐면 한나는 기도의 어머니로 기도의 지팡이로 본을 하나 보여주었다. 그 때 한나로 끝난 게 아니라 이 기도의 지팡이가 누구에게 전수가 되었는가? 사무엘에게 전수되었다. 사무엘이 기도의 지팡이를 가지고 은혜를 받고 난 다음에 나중에 기도의 응답을 가지고 이제 예루살렘 성막에서 그 사명을 감당하는데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아니하였다. 그러니까 사무엘이 성막에서 수종들 때는 불이 꺼지지 아니하였고 그것이 연계 되어서 사무엘상 12:13절을 보면.
 
*사무엘상 12:23,
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기가 막힌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한나의 기도의 지팡이가 사무엘에게 기도의 지팡이와 연결되고 반대로 한나의 기도의 지팡이가 사무엘의 강력한 기도의 지팡이로 계승이 된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 모든 기도의 지팡이, 앞으로 여러분들의 기도의 지팡이를 가지고 올 때마다 먼저 이제 한나를 생각해 보고 그리고 한나에게 이 기도이 지팡이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전수가 되었는데, 이 기도의 지팡이는 한나에게도 꼭 같다. 모세에게도 고난과 믿음의 용량이라는 믿음의 용량이라는 그 두 가지로 사람에게는 진심, 하나님께는 전심으로 쓰임 받도록 만들어 주셨는데 한나에게도 기도의 지팡이를 들도록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고난을 주셨다. 오늘 사무엘상 6절을 보면, 어떤 고난을 주시는가? 
 
*사무엘상 1:6,
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그 당시 히브리 사회, 이스라엘 사회에서 자식이 없는 것은 하나님이 너를 축복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니까 한나 입장에서는 너무 괴로웠고 더더구나 다시 5절에 보면,
*사무엘상 1:5,
5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妊娠)하지 못하게 하시니. 
-기가 막힌 것이다. 뭐 브닌나를 어떤지 잘 알 것이다. 남편이라고 있는데 자기가 애를 못 낳으니까 ‘브닌나’라는 여자를 데려와 아이를 척척 낳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는 못 낳고 그것도 한나에게 태(胎)의 문을 안‘열어 주시니까 어떻게 보면 고난도 이런 고난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핵심(核心)은 모든 고난(苦難)은 기도(祈禱)의 지팡이를 들게 하는 초청장(招請狀)이다. 여러분이나 저나 우리의 삶의 모든 일이 다 순적하기만 하겠는가? 그런데 모든 종류의 고난은 기도의 지팡이를 들게 하는 초청장이다. 그래서 기도하는데 한나가 처음 기도할 때는 “하나님, 아들을 주시옵소서!” 기도했다. 그러다가 한나가 나중에는 기도를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냐면, 내가 억울하고 힘드니까 나에게 아들을 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기도하다가 가만히 보니까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사명을 주신 것이다. ’아. 이 아들을 주실 때에 내가 이 아들을 드리겠나이다.’ 라고 한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사람에게는 진심, 이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는 전심으로 기도의 지팡이를 들어야 하는데 기도가 통곡할 정도로 기가 막혔지만 11절에 보면 이 말씀이 핵심이다. 
 
*사무엘상1:11,
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제는 한나의 아들을 자녀를 달라고 이전에도 기도를 했을 것이다. 기도하는데 어느 순간 기도의 깊이와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주님 앞에 기도하나까 영적인 통찰력과 쉽게 이야기 하면 영적인 물미가 터진 것이다. ‘아, 이 자녀가 내 자녀가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자녀이네. 하나님이 주실 자녀이면 정말 귀하겠다.’라고 생각하면서 한나의 마음속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지만 ‘나보다도 하나님이 나에게 더 주시기를 원하시겠구나.’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이해가 되는가? 여러분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지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며 내가 원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이 더 주시기를 원하신다. 다시 말하면 내가 주시기를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더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것이 확신이 되는 순간 한나가 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어졌다. 
 
*사무엘상1:18,
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수색이 없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기도의 지팡이를 들 때 한나는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한다. 저는 한나는 자기를 생각해 달라는 것이다.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 여러분 기도는 기억해 달라고 해야 한다. 내가 내게 소원하는 것을 요청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이 나에 대한 더 귀한 것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 여러분 이 자녀는 나중에 내 자녀이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부모들은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께 렌트하신 것이다. 깊은 내용들은 오늘 다 못할 것 같고 오늘 명절 특별 음악회가 있기 때문에 이정도로 마치려고 한다. 전심과 진심은 고난과 믿음의 용량의 핵심중에 하나가 기도의 지팡이이다. 기도의 지팡이를 들때는 한나가 기가 막히게 고통스러웠다. 그게 초청장이다. 그래서 깊은 기도의 경지에 들어가면 내가 요청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이 나에게 필요한 것을 더 잘 알고 계신다. 그리고 얼굴에 수색(愁色)이 없는 것이다. 나중에는 욥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자. 가지고 온 지팡이를 들고 내 영혼 주 찬양하자. 2장 1절을 보면, 한나가 너무 감사해서 
 
*사무엘상 2:1,
1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오늘 영하 10도 넘는 이 어려운 가운데 새벽에 이렇게 나와서 명절 특별기도회를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있는 우리를 하나님은 응답해 주시리라 믿는다. 오늘 기도할 것은 사람에게는 진심, 하나님께는 전심으로 되어 고난과 믿음의 용량을 가지고 우리의 믿음의 용량을 키워주시는데 거기에 맞는 것이 기도의 지팡이이다 오늘 모세에게도 기도의 지팡이를 들게 하셨듯이 한나에게도 이런 기도의 지팡이를 들게 하시는데 한나에게는 고난과 어려움이 기도의 초청장이었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게 되고 아,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더 귀한 것을 주시길 원하시구나!’ 를 깨닫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그 얼굴에 수색이 없고 하나님께 맡기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 맡기게 되니까 사무엘이 태어나고 한나의 기도가 사무엘에게 전수가 되어서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 기도의 쉬는 죄를 범치 않았다. 
 
♩내 영혼 주 찬양하며~♬~~~
♣요약
여기서는 기도의 영과 아울러 예언의 영으로 감동받은 한나의 감사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한나는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어 주시사 감사하고 찬양함으로써 그 사실을 시인하였다. 감사는 우리가 마땅히 바쳐야 할 세금과도 같은 것이다. 
둘째, 한나가 받은 자비는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래서 한나는 특히 그것에 대한 감사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셋째, 한나의 감사를 여기서는 기도라고 한다. 왜냐하면 감사는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앞에서 간구했을 때는 그 음성이 들리지 않았으나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는 모두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나는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간구했으나 이제는 입술을 열어 하나님께 찬양을 올린 것이다. 한나의 감사에서 세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람에게는 진심, 하나님께는 전심으로 되어 고난과 믿음의 용량을 가지고 우리의 믿음의 용량을 키워주시는데 거기에 맞는 것이 기도의 지팡이이다 오늘 모세에게도 기도의 지팡이를 들게 하셨듯이 한나에게도 이런 기도의 지팡이를 들게 하시는데 한나에게는 고난과 어려움이 기도의 초청장이었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게 되고 아,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더 귀한 것을 주시길 원하시구나!’ 를 깨닫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그 얼굴에 수색이 없고 하나님께 맡기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 맡기게 되니까 사무엘이 태어나고 한나의 기도가 사무엘에게 전수가 되어서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 기도의 쉬는 죄를 범치 않았다. 우리도 그러한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주님을 간절하게 사모하여 현장예배와 헌신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 설날 찬양 음악회 ☆---------------
●소프라노:-최재연(입맞춤) 
●테너:이정명(그대는 나의 모든 것)
●메조 소프라노: 양송미(내 마음은 당신의 목소리에 열리고, 믿음의 고백)
rㅏ 사무엘 윤(더 이상날지 못하리)
●사무엘윤, 이정명(믿음의 고백)
●사무엘윤, 이정명, 최재연, 양송미(물 위를 걷는 여자)
●피아노:???

♧요약
한나가 어떻게 아들을 바쳤는가 보자. 첫째, 제물과 함께 : 수소 셋과 소제물을 바쳤다(24절). 어린 아이의 나이 한 살마다 수소 한 마리씩 바친 것인지도 모른다. 또는 수소 한 마리는 번제로 또 한 마리는 속건제로 드리고 마지막 한 마리는 화목제로 드린 것인지도 모른다. 둘째,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은 선하심에 감사함으로 : 한나는 그것을 엘리에게 표시하였다. 왜냐하면 엘 리가 그녀에게 용기를 주어서 안심하고 기도의 응답을 바라게 되었기 때문이다(26,27절).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27절). 셋째, 한나는 이 아이에 관한 모든 권리를 하나님께 바쳤다.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28절).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먼저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여 얻은 것이다.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16). 이 기사에 의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빌려드리는 것이라고 한다. 세례를 통해 우리의 자녀를 하나님께 바칠 때는 그들이 엄연히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먼저 기억하도록 하자. 게다가 그들이 여전히 우리의 위로가 되는 우리의 자녀란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자.
(5) 어린 사무엘은 그 또래의 아이들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일을 하였다.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28절). 즉 그는 기도를 하였던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일찍부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하며 예배드리도록 인동해서 가능한 한 그들이 예배에 동참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예배를 기쁘게 받으실 것이며 그들이 더 훌륭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가르쳐주실 것이다.


ㅡ여기서는 기도의 영과 아울러 예언의 영으로 감동받은 한나의 감사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한나는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어 주시사 감사하고 찬양함으로써 그 사실을 시인하였다. 감사는 우리가 마땅히 바쳐야 할 세금과도 같은 것이다. 둘째, 한나가 받은 자비는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래서 한나는 특히 그것에 대핸 감사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셋째, 한나의 감사를 여기서는 기도라고 한다. 한나가 기도하여(1절). 왜냐하면 감사는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앞에서 간구했을 때는 그 음성이 들리지 않았으나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는 모두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나는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간구했으나 이제는 입술을 열어 하나님께 찬양을 올린 것이다. 한나의 감사에서 세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 설날 찬양 음악회 ☆-----------------------------

●소프라노:-최재연(입맞춤) 
●테너:이정명(그대는 나의 모든 것)
●메조 소프라노: 양송미(내 마음은 당신의 목소리에 열리고, 믿음의 고백)
●베이스: 사무엘 윤(더 이상날지 못하리)
●사무엘윤, 이정명(믿음의 고백)
사무엘윤, 이정명, 최재연, 양송미(물 위를 걷는 여자)














































                                                                                     ☆성경고사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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