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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4월 6일)
제목: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Blessed Are Those Who Wait)“
-<새로운 길> 이사야 시리즈 ⑩
말씀: 이사야 30:18~21,26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먹사님), 호산나 찬양대
대표기도: 김인용 장로님
사회: 문진호 부목사님(2부)
세례식 간증: 백기열 성도, 김은영 성도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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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0:18~21, 26,
이사야 30:18~21,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19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20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21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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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고 담대하라. 귀한 찬송 하나님께 받으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 여러분, 회중 찬송 하셨는데 - 성령이 스승 되셔서 진리를 가르치시고, 그 말씀 한 줄 한 줄이 내 마음의 교훈 되도다. ~~
 
오늘 한 줄, 한 줄 한 단어 한 단어가 여러분들에게 다 와닿기를 바라는 겁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렇게 했습니다. 기다리는 자는 보기 있도다 오늘 18절 뒷부분에 보니까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 30:18,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여호와는 어떤 하나님 이시니요. 정의의 하나님이시라 그렇기 때문에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그랬습니다. 정의의 하남이라는 뜻은 억울함을 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통한의 심정을 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니까 그러기 때문에 그를 기다리는, 믿고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래서 오늘 이 주님의 말씀을 기다릴 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387명의 우리 성도들이 학습과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오늘 세례받는 분들 가운데 참 특별한 분이 하나 있는데, 92세 되시는 어머님이 세례를 받으세요. 야, 대단하십니다. 92살까지 안 받으셨습니다. ㅎㅎ~ 그런데 근데 사실 앞 예배 때 받으셨는데요. 내가 가슴이 찡한 거예요. 진짜 이 세례도 너무 미루지 마시고, 가능한 빨리 받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까 기다림에 대해서 18절 앞부분에 보니까,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신다고 그랬어요. 앞에 이 접속자 그러나가 중요한데요.
 
*이사야 30:18,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그러나를 중심으로 전과 후가 완전히 바뀌는데 주님은 좀 문제가 있더라도 주님은 기다리시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거예요. 어떻게 기다리시는가 이게 어떤가 하면 16절을 보니까,
 
*이사야 30:16a,
16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하였으므로 너희를 쫓는 자들이 빠르리니.
-우리가 말 타고 도망가리라. 그랬어요. 앞에 이 말 타고 도망간다는 말 탄다는 건 애굽을 상징하는데 애굽으로 돌아가자. 옛날에 광장에 있는 백성들 죄송합니다. 뻑 하면 사투리죠 걸핏하면 말이죠. 애굽으로 돌아간다고 패역(悖逆)한 백성이에요. 그런데 그 패역한 백성이라도 주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그리고 세상 나라, 세상 제국을 신뢰하는 사람들도 주님은 기다리고 계신다. 그러니까 그런 날을 이 분기점으로, 도망하는 자들,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자들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통하여 기다리신다. 아주 격렬하게, 강하게 대조가 되어 어떻게 기다리시는가, 19절에 보니까,
 
*이사야 30:19,
19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통곡할 만한 상황이 되었는데, 돌아오게 하나님께서 기다리시고 기다리는 자에게 다시 통곡하지 아니하게 하실 것이라. 우리가 이 참 수많은 일들을 우리가 경험하잖아요. 지난 한 주간에도 수많은 우리 주위에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어요. 통곡하는 자에게 다시 통곡하지 아니하게 하실 것이라 20절에 보니까,
 
*이사야 30:20,
20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주께서 너희에게 오늘 여러분들 봉독했습니다마는 환란의 덕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그러나 내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겠다. 전에는 환란의 떡과 고생의 물 물리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이제는 주님이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스승이 되어 주시겠다. 그리고 앞에 이사야 29장 11절에 보니까,
 
*이사야 29:11
11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 계시의 말씀이 봉해졌지만 계시의 말씀이 묵시의 말씀이 다 이렇게 닫혀져 있었지만 그러나 이제는 계시의 말씀을 밝혀 주시겠다. 그러니까 오늘 이 우리 모두에게 그러나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오늘 제가 이 세례식 때문에 이렇게 아주 압축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다시 말씀 한 줄, 한 줄을 깨닫는 지혜와 눈을 여러분들에게 열어주시길 바랍니다. 자 다시요. 18절에,
 
*이사야 30:18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훌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뭐가 있도다. 복이 있도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인들의 기다림은 무턱대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에요. 이거는 능동적인 기다림이에요. 말씀을 확신하고, 말씀은 씨앗이 내게 뿌려줬을 때, 이 씨앗이 반드시 추수를 할 것이다. 그걸 믿고 기다리는 것이에요. 따라서 여러분 기다림도 용기예요. 저희 집사람은 저한테 맨날 그래요. 나는 당신 기다리다가 평생 산다고 내가 그래서 ‘기다리는 것도 용기야’ 그리고 기다리는 것도 사역(事役)이에요.
 
여러분 많이 기다리는 분들 많이 계시잖아요. 그런데 우리의 기다림은 능동적인 기다림이에요. 그리고 기다림 동안에 우리가 뭘 깨닫는가 하면, 역사의 상선에서 구원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에요.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에 말씀을 통하여 기다리게 되면 역사의 하선 우리 인생 밑바닥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이 있지만 그건 눈에 보이는 것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역사의 상선에서 하나님의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게 되는 것이에요. 주권적인 섭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기다리게 하신 이유가 뭘까? 18절을 보니까 이렇게 나와 있어요.
 
*이사야 30:18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훌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이는 여호와께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뭘 베풀겠다고요. 은혜를 베풀게 하시냐 왜 기다리게 하시는가? 은혜를 베풀기 위하여 왜 기다리게 하시는가? 너희를 긍휼히 여기기 위하여, 그러니까 이해가 안 되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호의가 우리의 기다림을 통하여 베풀어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특별히 제가 오늘 세례식이니까,. 두 가지만 오늘 세례 받는 분들, 학습 받는 분들, 그리고 오늘 방송에 들어오시는 분들, 그리고 우리 본당에 계시는 모든 우리 성도들 별관에 계시는 모든 분들, 하나님께서 오늘 기다리는 자에게 능동적으로 기다리는 자에게 말씀의 씨가 뿌려져 가지고, 이 말씀을 확신하는 주의 백성들에게 저는 지금 이사야서를 강의하면서 하나님께 너무너무 감사를 드리고 있어요.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딱 맞을 때, 이사야서를 하게 하셨는가? 나는 이사야가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지금 정말로 있잖아요. 이사야의 말씀을 너무나 놀라운 말씀을 주시는 겁니다. 앞 예배 때, 우리가 이 말씀을 받고 어떤 장로님이, 목사님은 오늘 이 말씀은 저에게 주시는 겁니다. 왜 그렇게 반응을 할 수 있었는지,,, 두 가지 축복을, 두 가지 은혜를, 기다리는 자에게 주신 두 가지 축복을 지금부터 말씀을 드릴 테니까,. 여러분들 잘 말씀을 여러분의 것으로 확인하시고 능동적인 기다림의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첫 번째는 20절에 보니까 뭐라고 하냐? 20절에 보니까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 30:20
20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그러니까 첫 번째 축복은 뭐냐면 올바른 길을 가르치시는 스승의 축복을 받는 것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수많은 길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만 올바른 길을 가르쳐주시는 스승의 축복을 능동적으로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I. 올바른 길을 가르치시는 스승의 축복 (20~21절).
-올바른 길을 가르치시는 스승이 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바로 뒤에 21절에,
 
*이사야 30:21,
21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누가 이제 어떤 분들은 이거 놓고 정치적으로 해석합니다. 우리는 좌파도 아니고 우리는 우파도 아니고 우리는 중도입니다. 그런 얘기를 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고 하나님은 우리가 오른쪽, 왼쪽으로 가지 아니하고, 우리가 올바른 길을 가게 해주시는 것이에요. 바른 길을 가게 해주시는 것이 우리에게 틀린 길이 아니라,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대표적으로 우리가 받는 이 스승의 축복은 뭡니까? 목자가 양떼를 인도하여 우리 앞을 인도하시는 것처럼 목자 스승의 은혜를 받는 것이에요. 왜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후 남유다 왕국에는 왜 당시의 올바른 스승이 필요했을까요? 앞의 9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는가,
 
*이사야 30:9.
9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
-패역하고 하나님 말씀 듣기를 싫어하는 이런 백성들이기 때문에 이런 백성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참된 스승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 참된 스승은 목자이시고 참된 스승은 하나님이시고 참된 스승은 선지자의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말씀이 될 수 있고, 오늘 우리 입장에서는 오늘 줄일 말씀이 될 수도 있고, 또 우리 다락방마다 주신은 공동체의 은혜가 될 수도 있고 다 포함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스승은 세상의 스승과 같이 아니하고, 신실한 목자이며, 또 집에서는 말씀을 가지고 자녀를 가르치는 신실한 부모가 될 수가 있고, 좋은 목자 경건한 부모 다 포함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스승의 역할을 제대로 하니까 앞에 29장 18절에 보니까, 그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고. 말씀을 들을 것이고. 어둡고 캄캄한 데서 맹인이 눈을 뜰 것이다. 눈이 열릴 것이다. 그러니까 참된 스승의 은혜가 있으면 눈이 열리고, 바른 길을 가게 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바른 길을 가게 되는 단적인 예가 오늘 20절 21절 22절에 뭐라고 나와 있는가,
 
*이사야 30:22,
22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 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 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아멘, 무슨 뜻입니까? 올바른 스승의 은혜가 있고, 올바른 올바른 길을 가게 되면 그동안 하나님 아닌 우상을 의지하고 그 뭐 의지하던 잘못된 것들 다 던져버리고, 온전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에요. 오늘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충만하게 있기를 바랍니다. 이걸 신약의 창으로 해석하면 예수님이 참된 스승이시라는 거예요. 요한복음 13장 13절을 보니까
 
*요한복음 13:13,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뭐예요? 옳도다 왜냐하면, 그 선생님의 가르침이 영적인 권위와 능력이 있어서 일반 사람들과 다른 거예요. 마태복음 7장의 29절에 뭐라고 나와 있으니까,
 
*마태복음 7:29,
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진짜 하나님의 강력한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우리가 이 말씀을 받을 때 여러분 이 말씀을 아까 제가 말씀을 드렸죠 어떤 말씀이라고요. 능동적인 기다림으로 이 말씀을 드릴 때,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권위 있는 권세 있는 말씀이 될 줄로 믿습니다. 자 ①스승의 축복이 있었고, 두 번째로는 ②참된 영적 의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참된 치유를 주시는 거예요.
 
II. 참된 의사를 통한 치유의 축복 (26절).
-오늘 26절을 여러분들이 읽었는데, 26절을 다시 한번 크게 합동하도록 크게 보겠습니다.
 
*이사야 30:26,
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①달빛은 햇빛 같겠고 ②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두 번째 뭐예요? 햇빛은 7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할렐루야!~~ 정말 기가 막힌 표현이에요. 이사야는 궁정 시인이라고 그랬습니다. 로얄 포이트(Royal Poet), 정말 궁정 시인이 얼마나 표현이 지금도 이런 어떤 시인이 이런 표현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달빛같이 어둡고 힘들고 그리고 좀 희끄무레한 이런 상태의 그런 사람들이, 햇빛 같겠고 또 적당한 햇빛은 적당한 햇빛이 아니라,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그랬어요. 여러분 우리 일반적으로 낮에 2만 룩스라고 그래요. 2만 룩스가 7번이 되면 14만 룩스가 되는데, 정오의 햇빛은 10만 룩스라고 그래요. 그 10만 룩스가 7배가 되면 70만 룩스가 되는 거예요. 우리의 어둡고 한탄스럽고 힘든 상황이 70만 룩스의 밝은 빛을 받게 된다. 이겁니다. 그야말로 어두운 인생 가운데 별이 빛나는 밤을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밝은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아주 밝은 은혜를 그러니까 어두운 인생, 어두운 아픔, 여러 가지들이 있잖아요. 해보다 더 밝은 빛 그걸 받는다는 것이에요. 여기에는 치유의 은혜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 우울증 있는 사람들 또 외상 외상증후군들, 정신적인 상처 이런 분들에게는 따뜻한 햇볕이 좋다고 합니다.
 
햇볕은 엄청난 치유의 힘이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것들을 지금 뭐 꼭 7배라기보다도 아주 그냥 아주 상징적으로, 이상적으로 표현하는 거예요. 진짜 말씀을 제가 기다리는 자에게는 결국은 세상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확실한 치유를 주신다 그 말이에요. 확실한 치유(治癒),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빛 대신 하나님께서 일곱 배의 이 새 하늘과 새 땅을 허락하실 그 날은 모든 상처가 치유되는 날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은 과거에 출애굽 때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어요. 출애굽 때 열 재앙(災殃) 가운데서 고통당하는 그들에게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출애굽 15장 26절에 잘 아시는 대로 크게 우리 합독합니다.
 
*출애굽기 15:26b,
26b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임이라.
-소위 여호와, 여호와 라빠!! 선한 의사처럼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맞은 자리는 터진 자리, 그 다음에는 트라우마, 상처, 우울 다 포함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것은 여러분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수많은 치유도 주시고 그리고 이민족에게 임하는 수많은 우울증, 트라우마, 상처 모든 아픔들을 주님이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어떻게 달빛은 햇빛이 되겠고, 적당한 햇빛은 7배의 햇볕의 은혜를 주신다는 것이에요. 은총의 햇빛 상처를 치료하는 힘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우리 마음속에 아까 능동적인 기다림이 있는 사람에게는 우리의 마음속에 아 주님이 주시는 치유를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라는 간절한 소망을 갖는 것이에요. 앞에 예레미야에 보면 예레미야는 그 어둡고 슬픈 상황 가운데서 다른 길이 없어요. 예레미야 17장 14절을 보니까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예레미야 17:14,
14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그러니까 치유하시는 이 주님, 우리를 고쳐주십시오. 사모해야 되는 것이에요. 여호와 라파, 아빠 되신 하나님 우리 가정을 고쳐 주십시오. 지금 사모해야 되는 것이 오늘 세례받는 모든 분들 내 인생의 어두운 과거를 다 새롭게 고쳐 주십시오.
 
그리고 대한민국에 임한 수많은 어려움들의 상처를 주님이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오늘 두 가지 첫째는 뭐예요? ①스승의 은혜, 두 번째는 뭡니까? ②치유의 은혜, 본래 하나 추수의 은혜까지 있는데, 제가 시간이 없어서 그건 다 말씀 못 드리고, 이 스승의 은혜와 치유의 은혜가 있으면 하나님이 추수의 축복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어렵지 않습니다. 단순(單純)명료(明了)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용기를 가지고 능동적으로 기다리는 주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올바른 길을 가르치시는 스승의 축복을 허락해 주시고 그다음 참으로 앞 어렵고 상황이 안 되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주님 나 치유해도 나를 고쳐 달라고 사모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적용,
-그렇다면 이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접목이 돼야 됩니까? 여러분 힘들고 어려울 때, 또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스승 내신 주님 앞에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제가 오늘 두 가지 질문을 드릴 텐데 물어봤어 물어봤어?? 그리고 고쳐 달라고 치유를 기도해 봤어? 치유를 요청해 봤어요? 오늘 이 말씀이 탄핵정국 이후에 대한민국의 주신은 은혜가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제가 신학교 시절에 듣던 영어 중에 하나인데 제가 영어로 그대로 해서 죄송합니다.
▷God makes everything beautiful in His time!
-하나님께서는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의 때에 모든 것을 아름답게 이루신다.
 
하나님께서는 기다리는 자에게 모든 것을 아름답게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중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하셨죠. 다들 완료형 계속 해오신 거예요. 계속 해오신 거예요.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지고, 갓 메익스 에브리씽 뷰티풀 인 히즈 타임!!~~ 지금 이걸 믿고, 기다리는 자에게 그의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한국 교회만 똘똘 뭉치고, 정신 차리면 하나는 이 길을 새롭게 해 주시리라고 믿습니 정치 상황에서도 주님이 스승 되어 주시기를 바라고 상처 난 한국의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의사가 되어 주셔서 싸멤과 고쳐주심과 만져주시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또한 산불 피해를 입은 우리 모든 분들에게도 하나님이 만져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이 마음을 가지고 오늘 세례식 거행하고 우리가 마음을 더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말 다시 이 나라를 새롭게 하시고 이 나라를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나 속좌함을 받은 후 3절 4절에 나속좌함을 받은 후 보혈의 공로로 나주의 은혜 이분이 늘 평안합니다. 오늘 이 말씀 그대로 믿고 의사의 축복 스승의 축복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찬양하고 세례식거행 가겠습니다.

요약
우리가 걸핏하면 과거의 습관으로 돌아가겠다 하던 우리에게 '그러나' 의 계기를 베푸시니,,, 강력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끝까지 기다려야 한다. 주님께서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치유하시는 ‘영적 스승이요, 영혼의 의사’가 되어 주실 때, 가정과 일터와 이 민족의 통곡할 만한 모든 아픔이 다 씻음 받게 됨을 확신하며, 우리 사랑의교회가 ‘제124기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를 전심으로 섬길 때, ‘온전한 제자훈련의 비전과 목회철학’을 통해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영적 지형도가 완전히 새로워지기를 소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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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3월 30일)
제목: "슬기로운 새판짜기"(Wise Spiritual Renewal)-이사야 시리즈 ⑨
말씀: 이사야 28.23~29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호산나 찬양대
대표기도: 권순환 장로님(2부)
사회: 문진호 부목사님(2부)
헌금찬양: 신상근(테너)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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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28.23~29,
23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24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쉬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자기 땅을 개간하며 고르게만 하겠느냐.
25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소회향을 뿌리며 대회향을 뿌리며 소맥을 줄줄이 심으며 대맥을 정한 곳에 심으며 귀리를 그 가에 심지 아니하겠느냐.
26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
27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에는 수레 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
28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
29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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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우리 온 성도들 수많은 삶에 짐을 지고 있고 또 상처도 있고 트라우마도 있지만 상처가 변하여 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오늘 모두가 다 삶의 패자부활전이 가능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이사야서 우리 아홉 번째 강해, ‘슬기로운 새판짜기’ 이런 제목입니다. 새판짜기란 말은 현재 판이 흔들려 있고 혼돈(混沌)스럽다 이런 뜻입니다. 인생이나 국가나 새판 짜기를 위하여 하나님은 한 번씩 우리를 흔드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요, 한번 흔들어보면 아는 것입니다.
 
겉으로 멀쩡하게 다 괜찮아 보이지만 품위가 있고, 다 이렇게 신사처럼 보이지만 한번 흔들어보면, 여러분 그 물병에 침전물이 막 이렇게 돼 있는데, 물병에 침전(沈銓)물이 있다 하더라도 가만히 두면 물병이 위가 깨끗하게 보여요. 근데 한번 탁 흔들면 밑에서부터 올라오는데 콩나물 대가리 꽁치 찌꺼기 멸치 대가리 다 올라오는 거예요. 사람이 안 흔들어 보면 모르지만 한번 흔들어 보면 그가 어떤 인격인지 그의 삶이 어떤지가 다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벼락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하나님이 흔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 흔드시는가 하나님은 우리나라를 벌 주시고 심판하기 위해서 흔드시는가? NO! 우리 성도들 기도를 통하여 이 흔드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향한 새판 짜기를 위하여 흔드는 것이라고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게 잘 감당이 되면 다시 한번 대한민국은 거룩한 황금(黃金)기(期)를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흔드시는 이유는 온전한 사람 더 이렇게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빚어주시기 위하여 국가적으로도 더 온전한 나라를 위하여 만드시기 위하여, 어떻게 보면 그래서 오늘 주님이 우리를 흔드실 때, 우리가 잘 감당(堪當)하면 이게 우리의 삶의 골든타임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I. 온전함을 위한 흔드심.
 
-여러분 아브라함을 한번 보십시오. 제가 아브라함을 보면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마음이 좀 찡한 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흔드셨어요. 어떻게 흔드셨는가? 그리고 ‘너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 그랬어요. 그냥 적당한 거 바치라. 그러면 뭐 흔들릴 거 있습니까? 그냥 바치면 되죠. 근데 정말 사랑하는 독자 이상을 바치라 그랬을 때, 아브라함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그렇게 흔들지 않으셨다면 그는 결코 한계를 돌파(突破)하지 못했을 것이고. 믿음의 조상도 되지가 못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을 흔들 그때가 온전한 믿음으로 새판짜기로 올라가는 시간이에요. 그래서 야고보는 우리가 실연당하고 흔들릴 때, 그 이유가 뭐냐 우리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야고보 1장 사진을 보니까 뭐라고 나왔냐, 시작
 
*야고보서 1:4,
4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아멘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고, 더 부족함이 없게, 우리 인생에 우리 국가의 완성도를 높이시기 위하여, 제가 이 말씀드리면, 어떤 분들은 목사님, 그래 나 믿음의 의사는 안 해도 좋으니까 나 흔들지 마세요. 그런 분이 계시다면 그런 분이 오늘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반응도 안 하시고,,, 여러분 우리는 신앙의 참새가 아니고 신앙의 독수리가 돼야 합니다. 독수리가 되려면 하나님이 그 독수리답게, 독수리답게 키우시도록 하나님이 독수리를 한번 흔드는 거예요. 어릴 때부터 독수리 훈련을 하게 돼요. 독수리가 제대로 날 수 있도록 그 보금자리를 흔들어 던져버리고 던져버릴 때, 떨어지는 새끼를 나중에 업어 가지고 제대로 훈련을 하는 거예요. 제 얘기가 아니고, 신명기 32장에 보니까 나와 있어요. 크게 합독 하십시다.
 
*신명기 32:11,
11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엎는 것 같이. 아멘
-주님은 우리를 참새 신앙이 아니라, 독수리 신앙 만들기를 원하시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 우리를 한번 흔드시는 거예요. 이 나라도 하나님께서 흔드시는 거예요. 교회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박해(迫害)로 흔들어버렸어요. 그러면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교회는 소위 로컬리즘(Localism), 어떤 그 예루살렘이라는 그 지역주의 한계를 벗어나기가 힘들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흔들어버려 가지고 예루살렘 스테반의 핍박을 통하여 예루살렘 교회가 글로벌 교회로 온전히 성장하도록, 하나님이 예루살렘 교회도 흔드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신 거예요.
 
그러니까 반드시 하나님의 교회나 무형교회나 유형교회는 우리들이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온전케 되기 위서는 하나님이 흔드실 때가 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이 배경을 가지고 오늘 본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이사야 오늘 제가 아홉 번째 강의를 하는데, 이사야는 우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 시대를 거칩니다. 그런데 지금 오늘은 히스기야 왕 시대에 대한 내용인데, 특별히 남유다 왕국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警告)였습니다. 그리고 북쪽이 망하는데 북쪽 에브라함 북쪽이 다 망하는 걸 보면서 너희들이 에브라함을 빗대어 가지고 남쪽 유다 왕국을 경고(警告)하시는데, 특별히 어떻게 경고하시는가, 야 이 말씀대로 안 하면 너희는 화 있을 진저,,, 그래서 지난번에 27장까지는 소 묵시록이라고 그랬고 28장부터 35장까지 하나님의 폭풍 같은 경고와 심판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게 보니까 28장에도, 29장에도, 30장에도, 31장에도 33장에도 계속 ‘화 있을진저’,~ 예를 들어 28장 1절을 보니까,
 
*신명기 28:1,
1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 진저.
-30장 일절을 보니까,
*신명기 30:1,
1 폐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 진저,.
-하나님이 왜 이렇게 화 있을 진저, 라고 말씀하실까요? 우리가 온전케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경고(警告)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28장을 보면 앞부분 보면 남 유다 왕국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경고하시는 거예요. 특별히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을 전하시는데, 선지자의 경고를 하게 하셨는데,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이라든지, 권력층 지도자들이 그 말씀을 드리려고 하지도 않고 백성들도 마찬가지예요. 오히려 이사야 선지자를 조롱하고 선지자가 전하는 말씀을 어린아이들의 옹알거리는 하찮은 잡소리로 들었어요. 자꾸 잔소리하고 같은 말 다시 반복한다. 그러면서 이사야 28장 9절 10절에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이나 백성들이 뭐라 하면 그들이 이르기를 그가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며 누구에게 도를 전하며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은하에게 말하려는가, 하면서 교만해 있었어요. 한국이 지금 어떤 사람 복음을 잘하면 세상에 똑똑한 사람들 뭐 그런 얘기 다 하냐? 이런 식이에요.
 
그러면서 그들이 하는 얘기가 십절 대저 경계의 경계를 더하며, 경계의 경계를 더하며, 교훈의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더라도 조롱하는 거예요. 경계의 경계를 더하고 교훈의 교훈을 더하고 교훈의 교훈을 더하고 그러니까 자꾸 같은 말 잡소리 하지 말라. 그러듯이 그만큼 교만해 있었어요. 그니까 하나님께서는 이걸 다 듣고 계시는 거예요. 그런 지도자 타락한 백성들의 조롱 소리를 하나님이 다 듣고 계신다는 거에요. 다 듣고 계셔 가지고, 그들이 조롱한 대로, 하나님의 귀에 들린 대로 똑같이 하나님이 경고하시고 호통을 치셨어요. 28장 9절 10절 그 다음에 13절에는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신명기 28:13,
13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의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의 교훈을 더하며 교훈의 교훈을 더하며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붙잡히게 하시리라.
-그랬습니다. 하나님도 알고 계신다. 정신 차리라고 하나님이 강력하게 도전하신 것이에요. 이런 뜻입니다.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가 망할 때에 롯의 그 사위들이 장인어른이 하는 그 말을 아주 우습게 여겼어요. 농담으로 여겼어요.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 교회나 여러분 개인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어요. 이제 더 자세하게 하시는 말씀이 있을 거예요. 이 말씀을 우리가 세상의 어떤 그런 뭐 어린아이들이 하는 반복적인 말이 아니라, 주님의 강력한 말씀으로 드려야만 하는 것이에요. 왜 롯에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는가 오만해져 가지고, 교만해져 가지고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는 거예요. 이렇게 하나님은 28장에서 앞부분에서는 하나님께서 북풍한설(北風寒雪), 일진광풍(一陣狂風)의 회오리 같은 경고(警告)의 폭풍 언어를 선포 하시 사,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충격을 받아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주님은 사람들을 경고하고 심판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고, 목자의 심정을 주님이시니까 다시 한번 이제는 폭풍의 언어 대신에 따뜻한 봄바람 같은 그런 미풍 같은 메시지를 가지고 깨닫게 해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폭풍 같은 경고를 넘어 따뜻한 목자의 심정의 메시지를 전하시는데 그 핵심이 뭔가, 오늘 본문에 보니까 농부의 지혜를 배우라. 는 것이 농부의 지혜를 배워가지고 새판 짜기를 하라 농부의 지혜를 배워라.
 
여러분, 이사야서에 그러니까 소위 이제 농부의 지혜와 농부 신학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오늘도 앞 얘기를 마치고 많은 분이 그러더라고요. 아!! 제가 이사야의 여러분 ‘토기장의 비유’ 이런 거는 우리가 잘 알아요. 그런데 농부가 있다는 말을 성경을 많이 읽었지만 오늘 이사이에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런 얘기를 해요. 아마 이 말씀이 농부의 지혜와 농부의 신앙이 여러분 생애(生涯)에서 오늘 이것이 마지막이 될지 몰라요. 그러니까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확인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이 말씀을 듣는 귀와 눈을 열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는 ‘슬기로운 모략으로 농부의 지혜’를 말씀하시는 그 내용들이 23절부터 29절까지 나와 있습니다.
 
II. 슬기로운 모략, 농부의 지혜(23-29절)
 
-오늘 본문에 이 말씀을 주신 이유는 새판짜기를 가지고 우리가 온전해져야 한다. 그런 뜻인데요. 먼저는 파종하는 농부의 지혜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23절부터 26절까지, 이 내용이 나와 있는데, 23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사야 28:23,
23 너희는 귀를 기울여 네 목소리를 들어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그랬어요. 무슨 말인지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는 말은 잘 말을 잘 안 듣는다. 그거예요. 백성들이 말을 듣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또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뭐냐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춤형으로 이 말씀을 주신다. 그런 뜻이 되어 있어요. 그리고 14절에 보니까,
 
*이사야 28:14,
14 이 백성을 다스리는 너희 오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그랬어요. 하나님 말씀을 거부하고 선지자를 조롱하는 미성숙한 자들이니까. 제발 이제는 이 농부의 지혜를 좀 배우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배우느냐 24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사야 28:24,
24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쉬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자기 땅을 개간하며 고르게만 하겠느냐
-이 말씀의 뜻이 뭐냐면, 파종하고 씨를 뿌리는 자의 지혜를 배우는데 씨를 뿌리기 전에 여러분 개간(開墾)하고 땅을 고르고 그 다음에 땅을 갈고 그렇게 하지 않겠어요? 근데 땅을 고르고 그다음에 땅을 개간하고 땅을 가는 이유는, 씨를 뿌리기 위함이지 그것만 위하여 개간하고 고르고 땅을 가는 것 그것만을 위하여 계속 하지는 않는다. 이 말이에요. 그게 농부의 지혜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땅을 고르고 개간하고, 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씨를 뿌리는데 씨를 뿌리는데 어떻게 뿌리는가, 25절을 보니까,
 
*이사야 28:25,
25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소회향을 뿌리며 대회향을 뿌리며 / 소맥(밀)을 줄줄이 심으며 / 대맥(보리)을 정한 곳에 심으며 / 귀리를 그 가에 심지 아니하겠느냐.
-이 소회향은 지금 허브예요. 허브고, 대회향 비슷한 파슬리 비슷한 것인데, 대회향은 신약의 근처라고 말할 수 있어요. 소회향과 대회향 그다음에 소맥을 줄 수 있어요. 소맥, 소주 맥주가 아닙니다. 소맥은 소맥은 밀이에요. 밀 소맥을 어떻게 심어요? 줄줄이 심으며, 그 다음에 대맥 보리는 정한 곳에 심으며, 귀리를 그 가에 심지 아니하겠느냐, 농부의 지혜가 뭐냐 하면 이 네 가지 소회향과 대회향은 그 그냥 뿌리면 되는 거예요. 평평한데 그냥 뿌리면 나는 거예요. 그런데 밀은 그렇게 하면 안 돼요. 밀은 줄줄이 줄줄이 심어야 돼요. 줄을 해가지고 심어야 되는 거예요. 맞습니까? 그다음에 대맥, 보리는 특정한 곳에다가, 거기에 보리를 심어야 되는 것이고, 그 다음 귀리는 가장자리 밖에다가, 귀리를 심는 거예요.
 
그러니까 모든 씨가 씨 뿌리는 것이에요. 그 씨의 종류에 따라서 다르게 해야지, 두 종류를 같이 뿌리고 이렇게 하지 않는 거예요. 그게 정한 곳에, 대맥 같은 경우 줄줄이 소맥 같은 경우 그다음에 평평한 곳에 소회향과 대회향을 뿌리고 귀리는 그 가장자리 밖에다가 가에다가 이렇게 그러니까, 이사야가 궁정 시인이었지만 왕궁 서기관이었지만 농사법에도 익숙한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26절에 보니까 놀라운 말씀을 선포하는데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치셨다고 했어요.
 
*이사야 28:26,
26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
-사람마다 농사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적당하게 해주셨다는 것이에요. 그러니 신앙도 비슷한 거예요. 어떤 신앙은 어떤 신앙은 아무 데나 뿌려도 야성적인 그리스도인들, 웬만해도 뭐 폭풍 북풍 한설을 견디는 소나무와 같이 굳게 견디는 그런 신앙인들이 있어요. 그런데 어떤 신앙들은 거기 다 어떤 데 이렇게 이게 이게 뭐라 전투력이 좀 약해갖고 좀 이 연약한 성도들은요, 보호해 주셔야 되는 거예요. 소맥 같은 경우는 줄줄이 심으라고 그러시고, 그리고 이 줄을 재고 맞춰서 뿌려주고, 관심을 기울여줘야 되고, 뭐 관심 안 길어줘도 막 자라는 성도들이 있어요.
 
이렇게 이렇게 이제 씨앗을 지혜롭게 적당하게 잘 심는데, 그 심는 것이 목표가 아니고, 올바로 추수하고 올바른 알곡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돼요. ①첫 번째는 농사를 파종하는 지혜가 있고, 두 번째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냐, 농부에게 지혜를 배우는데 ②두 번째로는 추수하는 지혜가 있다는 것이에요. 그게 27절부터 29절까지 나와 있어요. 무슨 지혜라고요? 다시요. 무슨 지혜라고요? 추수하는 지혜, 씨앗의 종류에 따라 심는 방법이 다르듯이, 씨앗이 자랐을 때 추수하는 방법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소회향 대회향은 보십시오.
 
*이사야 28:27,
27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에는 수레 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
-젊은 분들은 도리깨가 뭔지 잘 모르더라고요. 옛날에 우리 할 때 도리깨 있잖아요. 도리깨 들깨 같은 거 털 때 근데 소회향은 아주 적은 씨고, 아주 적기 때문에 도리깨질로 하면 그냥 다 납작해서 없어져 버려요 그러니까 아주 도리깨질을 하지 아니하고, 또 대회향에는 수레바퀴를 가지고 막 굴리거나 이렇게 하지 않는 거예요. 소회향은 그냥 작대기로, 조그마한 작대기로,,, 탁탁 털고, 대회향은 또 막대기로 아주 가는 씨니까 탁탁 털면 되고, 그게 추수예요. 근데 이제 28절에는 뭐냐, 심각해지는 건데
 
*이사야 28:28,
28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
-또 아까 말한 대로 도리깨질을 하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한다. 그런 뜻이에요. 자 밀이나 보리나 우리가 추수할 때에 수레바퀴를 굴리지 않아요. 곡식은 도리깨질과 수레바퀴를 굴려서 이렇게 부수지만 어느 상태까지만 부수고, 완전히 부수지는 않는 거예요. 밀보리는 도리깨질도 하고, 호두 같은 딱딱한 껍질이 있는 것들은 말발굽으로 이렇게 추수를 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소회향 같은 성격의 영적으로 좀 접목을 하면 소회향 같은 그런 성도들은 말발굽으로 고생을 안 시켜도 성질 머리대로 하나님 우리를 다루시는데, 그 소회향, 대회향 같은 적은 씨앗으로도 추수하는 그런 분들은 아까 막대기와 작대기로 다루신다고 그랬잖아요. 적당한 작대기 적당한 막대기만 탁탁 해도 경고를 받아 가지고, 고치는 거예요.
 
근데 성질이 좀 강해 가지고 호두 같은 이런 것들은 그냥 말발굽으로 추수를 하는 것이에요.. 그냥 또 뭐예요? 수레바퀴로 그냥 굴러야 되는 거예요. 어느 걸 선택하시겠어요. 어느 걸 선택하시겠어요? 어떤 성도들은 목사님들 성질이 좀 세고 고약해 가지고 하나님 나를 다루시는데 말발굽 떼거리로 나를 다루십니다. 말발굽 떼거리로 자기가 살아있고 좀 딱딱하고 고집이 센 교우들은 와장창창,,, 도리깨질이나, 수레바퀴를 굴려야 성숙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내가 소회향 교인인지 대회향 교인인지 내가 소맥인지, 대맥인지, 호두 교인인지, 귀리인지, 나는 어떤 종류의 교인인지 한번 생각 저는 다시 목회자로서 여러분들은 다시 작대기만 살살 대도 오늘 이런 말씀 드리면, 하나님이 여러분들과 개인에게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하나님이 경고하시는 것이 있어요.
 
말씀을 통하여 주님이 계속 집중적으로 경고하시는 게 있어요. 물질 문제라든지, 이성 문제라든지, 아니면 내 어떤 인격이라든지, 아니면 가정 문제 라든지, 이런 면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작대기하고 막대기만 될 때 알아서 하세요. 그게 안 되면 말발굽이 나오는 겁니다. 그게 안되면 수레바퀴가 나오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고마운 것은 여기에 복음이 있는 거예요. 그 말발굽을 사용하고, 그다음에 수레바퀴를 사용하고 도리깨질을 하더라도, 그 곡식 자체를 완전히 보호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에요. 그걸 무너뜨리거나 그걸 어깨거나 없애버리는 것이 하나님 뜻이 아니에요. 그것은 뭐예요? 그걸 하나님께서 그 도리깨질, 곡식을 추수할 때 곡식알 자체를 결코 부수지는 않아요. 완전히 그냥 없애버리지 않으세요.
 
오늘 이 말씀의 배경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특별히 남 왕국 유다 왕국이 앗수르 라는, 어떤 돌이 깨질 앗수르 라는 막대기 아수르라는 말발굽을 가지고 그들을 훈련하시는 거예요. 그니까 하나님께서 없애는 것이 목표가 아니고 알곡이 제대로 보호해 가지고, 제대로 알곡으로 남는 것, 그것이 목표인 줄 믿으셔야 되시는 것이에요. 하나님 앞에 알곡으로 남기는 거, 말씀 가지고 우리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이고,. 어떤 집사님이 그런 얘기 해요. 이 집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제가 우리 시어머니가 얼마나 센지 모릅니다. 그 시어머니가 정말 강하고 쎄시는데, 그 시어머니의 막대기와 시어머니의 짝대기 앞에서도 나는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변화되지 않았는데, 그냥 ‘내가 잘났습니다.’ 자식이라는 이 말발굽이 말이야. 자식이라는 수레바퀴와 말발굽으로 나를 밟으시니까, 내가 꼼짝없이 무너지고 변화되고 성숙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볼 때는요. 어머니들에게 최강의 말발굽은 자식들이에요. 최강의 수레바퀴도 자식들이고, 최강의 막대기도 말 안 듣는 자식들이에요. 이런 말발굽 자식들 때문에 엄마는 눈물로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그 우리 주일학교에 보면요. 주일학교 학부모 기도가 있는데, 그 주일학교 말발굽 부모 기도회에요. 지금 다들 열심히 기도합니다. 열심히 열심히, 얼마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농부의 지혜를 가지고, 우리를 부수되 완전히 부수지 않고, 알곡으로 남기시고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소회향 대회향, 허브, 근채, 이런 거 할 때는 씨가 작으니까,,, 하나님은 알아서 조금 하시지만 막대기 정도 사용하시지만 호두라든지 강하고 그다음에 딱딱한 이런 곡식들이 딱딱한 것 될 때는 하나님께서 강하게 강하게 맞닥뜨리시는 거예요. 그래서 방법은 우리 모두는 방법이 없어요.
 
대형교회도 대형교회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하나님께서는 대형교회가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하나님의 방법을 갖고 하는 거예요. 방법은 뭐냐 환경적인 어려움, 환경적인 말발굽, 환경적인 수레바퀴를 가지고 우리를 치시든지, 아니면 이런 말씀을 듣고 미리미리 경고를 받아 가지고, 알아서 자발적 권한을 감행하시든지, 둘 중에 하나예요. 그래서 우리 교회 같은 경우는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 환경적 어려움을 당하시겠어요. 아니면 자발적 고난을 하시겠어요? 두 개 다 안 할 거예요? 이런 성도들은 아까 말씀의 은혜가 뭔지 모르는 분이에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성숙시키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새 판짜기를 가지고 신앙의 새 차원으로 올라가기를 원하는 거예요. 거룩한 영적인 황금기에 갖고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기를 원하시는 것이에요.
 
그러면 예외 없이 환경적 권한 환경적 말발굽이 있을 수 있고, 아니면 이 말씀을 미리 깨달아 가지고, 주님 제가 자발적 권한을 감행하겠습니다. 자발적 권한이 뭡니까? 자발적으로 제자훈련 받는 거, 자발적 권한이에요? 일주일에 여러 시간 들을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훈련받는 거 아니에요? 자발적 권한이다. 이 말이에요. 그리고 특새할 때, 우리가 새벽에 일찍 나와 가지고, 자발적으로 했잖아요. 기도할 때, 마귀(魔鬼)를 향한 선제공격(先制攻擊)을 하는 거 아닙니까? 원래 원래 저기 뭡니까? 우리 특새, 이제 4월 20일부터 할 텐데, 그 특새는 뭐냐, 특새 제목이 뭐냐면 기도 불패, 자발적 권한을 위하여 영적 전투를 시작하는 거예요. 기도 그리고 기도가 답이다.
 
그랬는데 여기는 지금 그러니까 이게 영장이 선제공격이고 특새를 통하여 기도 대첩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새판 짜기 하고, 알곡이 되려면 작대기로 맞든지, 아니면 수레바퀴와 말발굽과 이런 도리깨질을 당하든지, 그래야 되는데 이걸 환경 적으로 당하든지, 아니면 내가 자발적으로 하든지, 이렇게 하자면 우리는 성숙할 수가 없는 것이에요.
 
따라서 하나님은 때로는 작대기와 막대기로 떨기도 하시고 수레바퀴와 굴리면서 알곡을 만드시고 성숙하게 하신 새판짜기를 하게 하시는데, 어떤 방식을 사용하시든 간에 그 목적은 아모스 9장 9절, 아모스 시작,
 
*아모스 9:9,
9 보라 내가 명령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서 체질하기를 체로 체질함 같이 하려니와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거기서 만국 중에서 체질하기를 채로 체질함 같이 하려니와 농사의 지혜를 가지고 추수를 위하여 주님께서 어떤 사람은 도리깨질로 어떤 사람은 막대기로 어떤 사람은 수레바퀴로 어떤 사람은 말발굽으로 채질하겠는데, 그러나 방법은 뭐냐 목표는 뭐냐,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그 목적은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연단해 주시는 것이에요. 고난이나 역경이 성도들을 보호하시는데, 적극적인 하나님의 방식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계시는데, 이걸 깨닫는 것이 온전한 성숙으로 가는 길이에요.
사도 바울 같은 경우도 그 좋은 분에게 가시를 줘서 계속,,, 그러나 가시가 가시로 있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은혜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시는 거예요. 베드로 같은 경우는 부끄러움과 수치 그것조차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성숙하기에는 온전한 도구로 사용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써놨느냐 보세요.
 
말발굽의 고난과 역경은 성도를 알곡으로 성숙시키고 지키는 보호막이 된다.
-이제 기가 막힌 거예요. 드디어 오늘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 29절의 말씀, 보호막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29절 크게 우리 합독 하겠습니다.
 
*이사야 28:29,
29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
-할렐루야!!~ 그의 경력은 뭐하며 기묘하며, 그의 지혜는 광대하니라. 이사야는 궁정 시인이었어요. 이사야의 워딩, 말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너무 놀라요. 이 용어 자체가 이거 벌써 2700, 2800년 전 얘긴데, 너무나 놀라워 지금도 이런 단어 쓰기가 쉬울까요? 여러분 오늘 이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작대기와 막대기와 하나님의 말 발굽과 하나님의 수레바퀴와 하나님의 이게 뭐예요? 도리깨질,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기묘하고, 하나님의 지혜의 광대함을 여러분들의 생애 속에서 체험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온전하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자주자주 얘기하는 거예요. 뭡니까? 2천년 교회 역사에는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답이 있다는 것이에요. 반드시 답이 있다. 여기 공직에 계시는 분들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보시라고,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경영은 뭐라고 그랬어요. 예 기묘하고 하나님의 지혜는 뭐예요? 광대하다 우리가 갖고 있는 제한된 것 같고,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경영을 함부로 평가하면 안 되는 것이에요.
 
자 이번에 이 탄핵 정국 한번 보세요. 여러분 제가 국가를 이끌어간 중요한 위치에 계신 분들하고 대화를 해보면 요즘 말이죠. 목사님 답이 없습니다. 답이 없습니다. 그럼 어떡하실 거예요? 기도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나는 거기에 하나님의 경영의 뭐에 기묘함과 거기에 하나님의 지혜의 뭐에 광대함에 들어갔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어떤 성도들은요, 저 헌법재판소 앞에 가 갖고 밤새워서 기도를 해요. 움막을 치고 밤새워서 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 기도를 못하는데 어제 내가 누구를 만났는데 자기는 어릴 때 별명이 공주였대요. 공주 다 해주고 집에 공주야 공주인데 밤새워서 한 달 동안 계속 가서 밤새워서 기도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때요 그러니까 목사님 제가요 공주가 노숙자가 되었습니다. 이 어려운 정국 가운데서 기도에 무릎을 꿇고 밤새워서 기도해 가지고 공주가 노숙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지혜는 뭐하고 광대하시도다. 국가만 그렇겠습니까? 하나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형 교회는 알아서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경영에 하나님의 지혜의 광대함을 믿고, 하나님이 주신 그래서 우리에게 예를 들어서 많은 일을 맡긴다 그랬을 때 그것은 무슨 뜻이에요. 그 공동체가 살아있고 그 공동체가 뭐예요?
 
사명이 있고 그 공동체가 감당해야 할 영적인 비전이 있으니까 하나님이 맡기시는 것이에요. 아무쪼록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알곡 작전이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의 경영과 주님의 지혜는 너무나도 기이하고 놀랍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되시는 것이에요. 우리가 갖고 있는 요 제안 가지고 아까 이스라엘의 지도자, 하나님의 말씀을 경계에 경계를 다하고, 교훈을 다한다고 함부로 폄하하고 그러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는 광대하시고, 하나님의 경영은 기묘하시도다. 결론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 있어요. 오늘 12절에 뭐라고 나오느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이사야 28:12,
12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의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의 상쾌함이니라.
-너무 놀라운 말씀이에요. 안식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주님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특권이에요. 상쾌함은 그리스도 내 삶에 우리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우리는 오늘도 예배를 통하여 주님 안에서 안식을 얻어야만 하는 것이에요. 이 예배를 통하여 줄이고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의 상쾌함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에요. 리프레시(Refresh) 해야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뜻은 우리 안식이요. 상쾌함이고 하나님의 지혜는 뭐예요? 무궁하고 그의 경영은 무궁하고 하나님의 지혜는 광대하시도다 예수님께서 신약의 창으로 해석을 할 때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마태복음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그 다음에 그리하면 너의 마음이 뭘 얻는다고요? 쉼을 얻으리니... 오늘 이 말씀을 배우고 이 말씀을 적용하고, 이 말씀을 묵상하고, 이 말씀을 암송할 때에 우리의 마음이 쉼을 얻는데, 두 가지를 주는 거예요. 하나는 안식이고 하나는 상쾌함이에요. 그 안식과 상쾌함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찬송가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시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시옵소서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쉽지만 주님 나 알곡으로 만드셔 가지고 그 크신 역사 이루게 날 받아주시옵소서 아멘 다시 한번 그 크신 역사에 이루게 날 받아 주소서. 내 모습 이대로 날 받아주소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영적 가족 영 가족 여러분 은혜를 받되, 은혜도 후유증이 없어야 합니다. 끝까지 은혜가 유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에요. 인간의 지혜는 한때는 반짝하는 것 같지만 후유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이 농사의 지혜는 요대로, 우리가 하면 이 민족을 후유증 없는 은혜로 하나님이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주님이 지금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음성이 있습니다. 경고를 주십니다. 그럴 때 작대기 막대기로 끝내야지, 수레바퀴 말발굽으로 끝내지 말고, 아니면 자발적 고난을 통하여 주님을 온전히 닮아가는 신실한 제자로 한 분, 한 분 맞춤형 은혜를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요약
주님이 우리를 흔드실 때에 온전함을 위한 새판짜기임을 믿고, 자기 독자를 바치게 하기 위해 아브라함의 믿음을 흔드셔서 믿음의 조상 되게 하신 것처럼, 예루살렘 교회를 흔드셔서 지역주의를 탈피하여 글로벌 교회 되게 하신 것처럼, 막대기와 도리깨질과 말발굽과 수레바퀴로 이 나라와 우리를 흔드실 때에, 오히려 대한민국의 황금기를 예비하고 계신 줄 믿고 기도하게 하여야 한다. 우리 개인과 가정과 일터와 한국 교회와 대한민국에 다시 한번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하나님의 놀라운 경영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온 한국 교회가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가기를 간구하며, 개인적으로는 안식과 상쾌함에 무한 지평이 활짝 열리기를 기도하자.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와 나라에 거룩한 황금기를 예비하실 것을 확신하며, 우리는 주님 앞에 납작 엎드려 거룩하고 슬기로운 새판짜기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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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3월 23일)
제목: "의로운 나라, 견고한 성읍(A Righteous Nation, A Strong City)”-
-<새로운 길> 이사야 시리즈 ⑧
성경본문: 이사야 26:1~7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외
대표기도: 최민규 부목사님(1부) 외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외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


*이사야 26:1~7,
1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2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
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4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 이심이로다.
5 높은 데에 거주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6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
7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
ㅡㅡㅡㅡㅡ

▶흔히들 인생을 방향이냐 아님 인생의 속도냐 이런 얘기를 합니다. 여러분 인생은 속도도 아니고 방향도 아니고 인생은 관계입니다. 인생은 속도도 아니고 방향도 아닌 인생은 뭐라구요. 관계라고,,, 제가 왜 얘기를 하냐면 누가 우리의 인생을 지휘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2부 예배 지휘자가 오늘 바뀌었습니다. 그런 거 아십니까? 2년에 한 번 우리 교회 지휘자 네 분이 미국의 연수도 가고 세미나를 가는데, 오늘 1 2 3 4부 지휘자가 다 바뀌었는데 일부도 지휘자가 바뀌니까 그 좀 이렇게 그 찬양대 그 뭐 좀 달라졌어요. 그러니까 뭐 더 잘 됐는지 더 못 됐는지 그건 얘기 안 하겠어요. 참 그래서 여러분 누가 우리를 지휘하느냐, 나는 방향이요. 속도가 아니라 누구와 관계를 맺고 있는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저는 지금 이사에 와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지난주 25장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적 무지와 그 다음에 ‘사망의 덮개와 수치를 제거해 주시리라’. 그랬어요. 그 말씀을 하시고 오늘 26장은 오늘 키가 뭐냐면 의로운 나라 견고한 성읍 그러니까 그 수치를 제거하시고 영적 무지를 벗겨내시고, 그다음 사망의 덮개 사망의 이 휘장을 갖다가 다 벗겨주신다는 것이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느냐, 그래서 오늘 제목을 제가 ‘의로운 나라, 견고한 성읍’이라고 붙이고 오늘 1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1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사야 26:1,
1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견고한 성읍이 있다. 이 견고한 성읍에서, 여기에서 뭐가 나왔냐면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한 400년 동안 대영제국과 네덜란드 같은 데 이런 나라에서 기독교 국가였죠 그런 나라들이 도시를 건설할 때에 미국도 마찬가지고 여러 도시를 건설할 때 이 말씀이 근거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 이 도시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견고한 성읍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랬어요. 그렇게 하면서 그 항상 도시 중앙에 메인스트리트가 curch street로, 해 가지고 먼저 교회 거리를 세우고 중심지에 이쪽에 교회가 세워지고, 맞은편에 시청이나 대법원이 세워졌어요. 좀 어디하고 비슷하죠? 그렇죠.

그래서 그 항상 키가 뭐냐 하면 그 시청이나 법원이나 이런 데서 교회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광과 기름 부심과 축복과 평강이 뿜어져 나와 가지고, 시티에 영향을 끼쳐서 그 city가 복되게 해주십시오. 영국이 옛날에 각 그 지역마다 교회를 도시를 세울 때, 이런 기준을 갖고 세웠어요. 우리가 오늘도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가 말씀을 듣는 우리들을 통하여 또 교회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교회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교회 우리 다 포함하고 있는데, 우리에게 주신 이 은혜가 뿜어져 나와 가지고, 우리가 갖고 있는 평강과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사명이 뿜어져 나와 가지고, 우리 주위를 새롭게 하는 그런 축복을 여러분 각자에게 또 우리 모두에게 허락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근데 이제 이걸 깨닫기 위하여 오늘 한 세 가지를 정리할 건데요.

I. 첫 번째, 견고한 성읍 vs 솟은 성.

*이사야 26:1,
1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우선 1절에 보니까, 우리에게 무슨 성업이 있다고요. 견고한 성을 믿고 이 세상에 타락한 성읍은 황폐하게 무너뜨린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어요. 이사여 25장 2절에,

*이사야 25:2,
2 주께서 성읍을 돌무더기로 만드시며 견고한 성읍을 황폐하게 하시며 외인의 궁성을 성읍이 되지 못하게 하사 영원히 건설되지 못하게 하셨으므로.
-앞에 있는 성경 구절을 보면 주께서 성읍을 뭐로 만드시고 돌무더기로 만드시고 그랬어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견고한 성음을 주실 것인데, 영어로 볼 때 견고한 성업을 스트롱 시티다. 여기 견고한 성업의 특징은 뭐냐면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하나님의 지위가 있고, 하나님 통치가 있고,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세워진 도시라고 말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견고한 성읍을 하나님이 어떻게 아시는가 1절 뒤에 보니까,

*이사야 26:1b,
1b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우리가 성을 지을 때 견고하게 세우시면 돌을 가지고 짓기도 하고, 시멘트로 짓기도 하고, 그다음에 또 나무라든지 이런 여러 가지 벽돌이나 이런 걸 가지고 성을 짓지만, 주님께서 뭐로 성읍을 지으시겠다고요? 구원을 가지고 이것은 마치 스가랴서에 보니까, 불 성곽으로 지켜주시겠다. 불 성곽이 되어 주시겠다. 그러니까 참된 구원이라는 것은 참된 성벽은 우리 인간의 힘과 능력과 지혜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이 세워주시는 선물이다. 하나님께서 성벽을 쌓아주시겠다. 반대로 인간이 노력해서 인간이 구원을 획득하고 인간이 어떤 우선순위가 되어 가지고 그런 성을 인간이 세우는 성은 어떤 성인가, 5절에 조금 전에 말씀한 대로 5절의 ‘솟은 성’이다.

*이사야 26:5,
5 높은 데에 거주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솟은 성은 자기 스스로 세우고, 자기 스스로 구원하고, 하나님이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니라, 소위 여기 인본주의가 들어있고 여기는 세속도시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없는 도시가 되고, 소위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세워지는 도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뭐냐면 창세기 11장 바벨탑 사건이 나오는데, 당시 최고층 빌딩인 바벨탑을 건설한 이유가 뭐냐, 창세기 11장 4절을 또박또박 같이 보겠습니다.

*창세기 11장 4절,
4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내고.
-거기에 바벨탑을 쌓는데 우리의 이름을 낸다고 했어요. 우리의 이름을 내고, 내가 나의 주인이 된다 그런 뜻이에요. 지난번에 말씀하신 대로 I will, 내가 인간이 중요한 내가, I will, 내 의지가 중요하다고, 내 인생을 내가 다스린다는 것이에요. 이게 솟은 도시의 특징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기독교적 세계관과 가치관과 복음적 가치관이 없는 도시가 된다는 겁니다. 여기는 자신을 높이고 물질과 권력을 추구하는 문화가 대세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인간의 오만(傲慢)과 무지와 억압과 방자(放恣)함과 폭력으로 가득 찬 도시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솟은 성은 이런 의미에서 이사야판 바벨탑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 솟은 성에 나타나는 것이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 뭐냐? 피곤(疲困)과 억압(抑壓)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항상 내 이름을 낼 거야. 내가 중심이야 내 주장이야, 이렇게 인간 스스로 다스리는 도시는 인간 자신의 생각과 사고방식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지침과 피곤함과 억압과 압박과 갈등(葛藤)이 충만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오늘 3절에 나온 것처럼 평강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평강이 존재하지 못하고 자기 정의 자기 발전 자기 추구 I will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안절부절하고 지쳐있고 불안하고 그리고 이런 도시에서는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불안하고, 우리 교회도 정치적으로 우리나라에 또 여러 가지 또 국가적으로 나름대로 고위공직에 계신 분들 많이 계시지만 사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긴장(緊張)이 되고 올라갈수록 어떻게 하면 내가 갖고 있는 걸 유지(維持)할 수 있을 것인가? 그 고민(苦悶)하면서 경쟁(競爭)하고 투쟁(鬪爭)하고 남을 눌러야 올라갈 수 있고 그러니까, 늘 긴장하고 불안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인간이 만든 성에 대해서 하나님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5절에 보니까, 오늘 본문 5절을 보니까 뭐라고 말씀하시느냐,

*이사야 26:5,
5 높은 데에 거주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자신의 솟은 성을 건설하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그들의 교만을 낮추시고, 솟은 성을 허물어뜨리시는데 땅바닥까지 주저앉히시고 흙바닥까지 닿게 하신다는 거예요. 더더구나 6절에 보면 누구를 통해서 그러 하시는가,

*이사야 26:6,
6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
-빈궁(貧窮)한 자, 곤핍(困乏)한 자의 걸음걸이 남들이 볼 때, 대단하지 않은 사람들을 통해 그런 일을 하신다는 거예요. 자 이거 제가 일차적으로 제가 어느 정도 성경을 해석해 드렸어요.

-오늘 저가 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음성이 여러분들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자 이런 제가 배경을 말씀을 드렸고,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은 뭐냐, 오늘 이런 인간이 만든 솟은 성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시는 견고한 성, 의로운 나라가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거기에 우리가 토비새 때마다 너무나 반가운 말씀 26장 3절, 너무나 잘하는 말씀 이거 이거는 우리 교회 수준에서는 안 보고 해야 되는데 그렇다 해봅시다. 3절 크게 우리 합독 합시다.

*이사야 26:3,
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하면 이이다.
-오늘 우리는 주님이 우리 인생을 지휘(指揮)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삶의 방향과 속도보다도 관계가 더 중요한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주를 신뢰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신지가 경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이 평강하고 평강하다는 말은 완벽한 평강이다. 퍼펙트 피스다.

II. 두 번째,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는 곳(He will).

-perfect peace, 누구를요? 심지가 경고한 자를 목사님 호롱불의 심지(心地)입니까? 그 심지가 아니고, 우리의 마음이 오늘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뜻을 깨닫고, 우리의 심령이 마음이 한결 같으면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켜주신다. 오늘 예배는 여러분들을 완전한 평강으로 지켜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이 민족을 그렇게 지켜 주실 줄로 기대하고 우리가 마음을 모아야 되는 것이 그러니까, 구약에 보면 도피성이 있어요. 도피성(逃避城)을 여러 곳에서 해 가지고, 정말 가장 불안한 인간들이 그 도피성에만 피해 있으면 보호해 주시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심지가 견고한 자를 견고한 성음, 의로운 나라에 대한 눈이 열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오늘 26장 3절의 말씀이 그대로 접목(接木)이 될 것이에요. 그대로 이 하나님이 세우신 완벽한 평강과 견고한 성을 도피성에 있으면 그 누구도 저와 여러분을 해칠 수 없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이게 확신이에요. 확신, 로마서 8장 31절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로마서 8:31,
31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오늘 이 말씀을 그대로 여러분들이 확고하게 받아들이기를 원합니다. 조금 더 깊이 설명하면 평강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한가, 주께서 세우신 견고한 성읍 때문에 우리를 공격(攻擊)하는 모든 것들이 무력화(無力化)된다. 그런 뜻이에요. 이걸 구체적으로 이사야 뒷부분에 이사야 54장 17절에, 참 놀라운 말씀이에요. 같이 보겠습니다.

*이사야 54장 17절,
17 너를 치려고 제조된 모든 연장이 쓸모가 없을 것이라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모든 혀는 내게 정죄를 당하리니...
-저는 이게 너무 좋은 거 있죠. 우리를 치려고 하는 모든 그 기구가 다 쓸모가 없게 되게 만들고, 우리를 대적하여 송사(訟事)하는 모든 혀들이 오히려 정죄(定罪)를 당하게 되겠다. 한국의 하나님과 기독교의 모든 복음의 능력을 함부로 폄하(貶下)하고 함부로 모욕(侮辱)하는 모든 혀를 주림이 처리해 주실 것이다. 오늘 여러분이 축복을 여러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견고한 성읍에서 평강의 평강을 미친 이유가 뭘까? 다시 한번 심지가 견고한 자가 있지만 3절 뒷부분에

*이사야 26:3b,
3b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다 알 수는 없지만, 주님과 나만이 아는 은밀한 감탄사를 가지고 우리가 주님을 끝까지 신뢰(信賴)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굳게 믿어 굳게 의지하면 폭풍 가운데서도 단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에요. 폭풍 같은 환경 생태계 가운데서도 심령의 평안을 유지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욥기 13장 15절에 같이 읽겠습니다.

*욥기 13장 15절,
15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네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리리라.
-무슨 말이냐면 욥기 이 말씀은요,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신뢰하겠다. 그 말이에요. 하나님의 이 은혜에 결박(結縛)돼 있어 가지고 하나님의 깊은 편광을 내게 체험되어 있어 가지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남들이 볼 때 참 어렵다. 아니 하나님의 처분이 어떠하든지 간에 나는 흔들리지 않겠다. 여러분 하나님의 처분이 어떡하든지 간에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겠다. 그럴 때 하나님은 이 민족을 ‘견고한 성읍, 의로운 나라’가 되게 해 주시는 것이에요.

목숨 걸고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결국은 평강의 편강이 되도록, 퍼펙트 피스를 완벽한 평강을 주실 줄로 믿는 것이에요. 오늘 이 마음을 여러분 변개(變改)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은혜가 우리들에게 있어야 되는데, 오늘 이 은혜가 우리만 있으면 안 되고 이런 은혜에 다 같이 참여하자고 우리 서로 서로 평강으로 초대를 해야 돼요. 여러분이 가는 것보다 또 사랑의 교회나 한국 교회가 하는 일마다 하나님께서 평강의 평강으로 지키시는 흔적(痕迹)이 나타나야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2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2절에 뭐라고 했냐 함께요.

*이사야 26:2,
2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이다.
아멘 오늘 우리가 오픈을 하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 무슨 뜻입니까? 여기에 의로운 나라라는 말은 나라 영토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민족 겨레의 백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라는 말은 오직 구원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다고 믿는 하나님의 지휘와 통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진 그런 민족과 겨레와 백성들이 들어올 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라는 것이에요. 신의를 지키는 겨레와 민족 백성의 이 의미가 오늘 우리에게 확인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이런 은혜를 주실 때 4절에 뭐라고 말씀하느냐,

*이사야 26:4,
4 너희는 영원히 여호와를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주 여호와는 너희의 영원한 반석이 된다. 이것은 아까 창세기 11장에 내 이름으로 우리 이름을 내겠다는 바벨탑의 그 내용과는 너무나 대조(對照)가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과 제가 머무는 곳마다 인간의 교만(驕慢)이나 자기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늘 주님의 평강이 우리 주위에 임해야 되는 것이에요. 주위가 바뀌어야 되는 것이에요. 평강으로 임하니까 먼저 개인적으로는 마음의 여유가 좀 생기는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처분을 내리시더라도 주님과 나는 완벽한 이런 관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믿기 때문에, 제가 어디 갔다 오면 제가 얘기를 잘 안 하는데 이번에는 좀 스토리가 전부 롱 스토리예요. 지난 주간에 중앙아시아의 우리 탄탄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그다음에 타지키스탄, 그 다음에 키르기스탄, 그다음에 투르크메니스탄, 이거 한 번 듣고는 다 몰라요. 그다음에 옆에 아제르바이잔까지 이렇게 중앙아시아의 선교사들이 함께 300여 명 이상 모였어요.

우리 교회는 좀 신경을 써가지고 이번에 20여 명 이상의 자원봉사자들이 가 갖고 계속 섬기고, 또 저희 교회 목사님들 세 분이 가 갖고 거기에 선교사 자녀들, 고등부 중등부 주일 학교를 인도를 했어요. 뭐 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주일 학교 고등부 중등부 아이들이 어마어마한 은혜를 받았대요. 어제 어제 같은 경우 어제 이제 마지막 폐예배를 드리고 그 이스쿨 호수라는 우리 한민족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그 키르스키스탄의 이스쿨 호수 해석을 했는데, 거기서 이제 집회를 하고 카니발을 타고 이제 한 5시간 정도 이렇게 수도에 와 비행기를 타고 5시간 동안 오는데, 갑자기 날씨가 더워져 25도가 넘는데 차 안에 에어컨이 고장이 났어요. 땀을 팍팍 흘리면서 이제 와 가지고 또 거기서 이제 밤 비행기를 타고 한 1시간 정도 알마트라는 곳에 가가지고 알마트에서도 이제 또 이제 비행기를 타고 6시간 밤새웠어요. 근데 그 뭔가 이게 만약에 누가 와서 일해라. 그러고 뭐 이렇게 하면 인간의 일이라면 피곤한 일일 텐데, 오늘 아침에 그래도 주님 앞에 기도하면서, 주님 제가 자는 순간 주님은 나오셔서 행동하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밀실에 들어가더라도 주님은 나오셔서 행동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생각하고 뭐 육신은 피곤하죠. 그런데 제가 한 번씩 얘기하잖아요. 은혜는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받는다고, 근데 오늘 1부 예배를 드렸는데 갑자기 쌩쌩하게 힘이 막 솟아나는 거예요.

2부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여러분 이게 하나님이신 어떤 특별한 평강이 있는 거예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다시요. 우리가 자는 순간 주님은 나오셔서 우리 대신에 행동하신다. 또 예수 믿지 않는 남편을 모시고 사는 우리 아내들 가운데, 그래도 좀 이게 그 남편이 모르는 평강이 있기 때문에 맨날 남편 술 마시고 밤 늦게 들어오고 말이지 밤 10시 11시 맨날 늦게 들어오면 그런 데로 들어오면 그래도 우리 마음의 평강이 있으면 어떻게 되느냐 남편 동지, 남편 아직 12시도 안 됐는데 벌써 들어오시느라고,,, 뭔가 마음이 있잖아요. 좀 여유가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 아멘. 에 뭔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하나님의 평강으로 주님을 신뢰하는 하나님 백성들이 있는 그 단체나 그곳이나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을 바꾸는 거예요.

대한민국이 그 어려웠을 때, 대한민국의 참 자유의 가치를 이 나라에 처음 제대로 참자유의 가치가 뭔지 선포하는 데가 교회예요. 이 나라가 암흑 가운데 있을 때, 선교사님들이 들어왔고 근대 참 제대로 된 교육의 방향을 채워준 것이 하나님의 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끼리 이 반도 안에서 갈등하면서 난리 칠 때 그래도 아니야. 세계를 향하여 글로벌 스탠다드를 가지고 지금 전 세계에 우리 성도 수당 선교사 파송률이 세계 1위에요. 대한민국이 그래갖고 오늘이 이만큼 된 거예요. 지금 지금 뭐 180개국 이상 전 세계에 지금 디아스포라 우리 교민들이 흩어져 있는데, 그 나라 비율로 보면 나라보다 우리가 거의 세계 제일 많이 디아스포라로 각 나라 흩어져 있어요.

숫자로 보면 중국보단 적지만 그러나 많이 흩어져 있고, 그다음에 우리 또 많은 인구의 거의 15% 이상이 나가 있으니까, 이것도 적은데 한국 교회가 선교적 마인드를 가지고 나갈 때, 여러분 거기서 수많은 일들을 하는데 세계 교회 갖고 제일 먼저 세우는 거 일본 사람들은 상사지사 세우고, 중국 사람들은 중국 식당 세우지만, 한국 사람들은 나가서 뭘 하는 거예요. 교회부터 먼저 세우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이민 사회 뭐야? 수많은 2세 3세들 가운데 인물들이 많이 나오는 거예요. 그 정도가 아니라 오늘 이 자리가 서초동 안에 안아주시는 본당, 이 자리도 본래 서초동 꽃마을 여기 맨날 데모하는 곳이었어요. 대법원은 우리한테 감사해야 돼 이 데모하는 자리가 다 없어졌어요. 지금 여기가 견고한 성업 의로운 나라가 된 것이에요. 저 강남 예배당도 이번에 옛날에는 우리 마지노선이었어요. 저기가 강남 술집의 마지막 마지노선이었어요. 거기에 특새를 가면 특세 자체가 견고한 성읍이었고, 의로운 나라가 됐어요. 특새 들어 갈려면 우리 보통 평균 입장률 4대1 5대1 그러니까 새벽 2시 3시에도 막 뛰잖아요. 본당에 들어 갈려고 막 뛰는데 옆에 강남에서 밤새도록 술 마시고 말이죠. 술집에서 나온 조폭들이 사람들이 막 뛰니까 자기들도 막 뛰었어요. 옆에 조폭이 너 왜 뛰어 그러니까 나도 몰라... 그래서 막 뛰는 거예요. 뛰다가 우리 교회 안에 들어와서 예수 믿고 구원받고 말이죠. 이게 희한한 일이에요. 견고한 성읍, 의로운 나라가 된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보세요. 그 강남에도 보면 옛날에 우리 그 목욕탕 제일 목욕탕이 우리 은혜 채플 1500석으로 바뀌었고, 그 바뀌는 거예요. 맥주집 호프집 그 지하 그 술집이 800석짜리 교회로 바뀌고, 채플로 바뀌고 그래서 오늘 7절에 보니까 뭐라고 돼요. 7절을 또박또박 잘 보겠습니다.

*이사야 26:7,
7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판하게 하시도다.
길은 어떻게나 정직한 주께서 뭐예요?
-하나님의 백성들 의인을 통한 정직함이 첩경을 평탄케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시(City of God)시티 오브 갓, 기쁨과 정의와 평강과 화목과 소망이 생기는 것이에요. 대법원 앞에 교회가 있다는 사실이 감사한 줄로 믿습니다. 제가 이 말씀과 연결해 가지고 제가 정말 좋아하는 구절이 잠언 11장 11절, 시작

*잠언 11장 11절,
11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
-아멘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어떻게 된다고요. 지능하고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가는 곳마다 진흥 진정한 부흥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흥 아파트 이름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남이 있든지 말든지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옛날에 우리 진흥 아파트가 우리 교회 성지였어요. 지금도 진흥 아파트에 사시는 분들이 여기 좀 오실 거예요. 무슨 말 우리 성도들 때문에 진정한 부흥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저와 여러분이 갖고 있는 기쁨과 평강과 화평과 소망이 막 뿜어져 나가니까 뿜어져 나가니까, 의인의 길은 좁고 협착하다 할지라도, 결국은 결국은 하나님께서 첩경(捷徑)을 평탄케 하시기 때문에 우리 앞에는 복병과 아주 음모가 있다 하더라도 그 음모와 복병들이 우리의 역할을 못하는 거에요. 결국은 우리가 갖고 있는 이 의인의 정직한 자가 갖는 첩경이 평판케 하는 첩경이 있기 때문에 다시요.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을 해내려면 어떻게 된다고요. 진흥한다.

그래서 오늘 제가 여러분들 부탁하는 것은 이 예배를 드리고 나고 오늘 이 은혜를 받고 나가는데 이 은혜를 받는 것만 갖고는 2%가 모자라요. 여러분들이 가는 곳마다 무언가가 거기에 축복의 일이 일어나야만 되는 것이에요. 다시 성업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이 된다고 그랬어요. 의로운 나라 견고한 성업의 어떤 뭔가가 보여지는 것이에요. 저는 지금 아파트 몇 층에 사는지 말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예 저 같으면 9층, 10층이라 살아요. 근데 우리 아파트 15층까지 있어요.

런데 제 아파트 제 이 계단 이 제 아파트 열에 저는 이제 주로 걸어 올라가는데 다 보면 교패들이 많아 그러니까 사랑의 교회 교폐도 있고 뭐 또 이웃 교회 교패들도 있고 교패들인데 제가 그 교패를 오면 저 사람 왜 우리 교회를 안 나가고 저 교회를 나가나?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고,,, ‘주님 이 예수 믿는 집안에 이 집이 평강과 은혜를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그 간절한 마음을 갖는 거예요. 그러니까 옛날에는 여러분 그냥 스쳐 갔지만 여러분들이 이제는 교폐가 있는 집집 마다 여러분들이 축복을 하세요. 더 큰 은혜가 있도록 축복을 하세요. 그리고 혹시 교폐가 없는 집들은 올라오면서 주님 이 집안들이 은혜를 주시되 특별히 가장 큰 은혜인 예수님 믿게 알려주십시오. 그러니까 정직한 자의 축복이 그 집을 흥왕(興旺)하게 시켜주는 것이 어떤 집은 보면 이런 거 있죠. 우리 아이가 있으니까 벨을 놀리지 말고 노크를 해 주세요. 이런 집도 있어요. 그러면 주님 이 아이가 이 집안의 아이가 앞으로 큰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알려주십시오. 이 아이가 정말 주님께 쓰임 받게 해달라고,,, 그런 기도를 하면서 아파트를 오르내리면 벌써 여러분들의 삶을 통하여 모자라는 2%가 해결이 되는 것이에요. 작년 10월 27일 날, 10월 27일 날 저희가 정말 차별금지법 반대하면서 한국 교회나 한국 사회가 하나님 없는 나라 되지 말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나라가 되게 해 달라고, 그 증거가 뭐냐 여러분 차별금지법을 동성애 법이라는 건 뭡니까? 인간이 내가 내가 내가 주인이 되겠다는 거 아니에요? 창조주 하나님의 질서를 거스른다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는 그 레인보우 무지개, 자체는 좋은 거지만 그게 의미하는 바가 정말 조심스러운 거 아닙니까 저 공산주의 나라는 핵심이 뭐예요? 공산주의는 하나님 없다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있는 도성으로 만들어야 돼. 그래서 우리는 국가주의 전체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싫어하는 거 아니에요. 대한민국이 이런 면에 있어서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다음 더 중요한 거 하나님 없다는 저 공산주의 유물론 사상이 감히 발도둑이지 못하게 해달라고 했잖아요. 그게 이 나라를 지키는 거예요. 그렇게 마음을 먹는 그러니까 그것이 ‘견고한 성읍과 의로운 나라’가 되는 것이에요. 제가 중앙아시아를 가보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거기에 기독교로 개종하는 순간 이슬람이 있다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순간 그 공동체에서 다 퇴출이에요. 직업도 사라지고 가정으로부터도 다 퇴출 되고,예수 믿는 순간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죽음도 당하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그래서 제가 마음에 이번에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무슨 생각을 드렸냐면 하나님 아버지 구약의 도피성이 있듯이, 이번 10월 27일 날 세계복음주의연맹총회 이후에 세계복음주의 교회가 똘똘 뭉쳐 가지고, 예수민이기 때문에 이슬람 공동체에서 아픔을 당하고 쫓겨 나가고 심지어 죽음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에게 도피성을 건설하게 하여 주십시오.

각 나라마다 그런 간절함과 기도의 제목이 생기는 것이에요. 그게 불가능한 게 아니고 실제가 되는 것이 저희가 첫 번째 특새 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 우리가 뿜어져 나오는 편광과 기쁨과 감사함을 가지고 중앙아시아에다가 우리가 명문학교를 하나 세웠어요. 그때 특새에 우리가 헌신해 가지고 그게 지금 20년이 지나 21년이 지나갔고, 지금 키르기스탄이라는 곳에서 최고의 명문 학교가 됐어요. 유치부도 줄 서 있고, 유치부 한 뭐 한 수십 명 그다음에 장애인 학교 장애인 학교 교사까지 쳐서 100명, 그다음에 1학년부터 11학년까지 한 400명에다가 교사들 100명이라고 한 6, 700명의 커뮤니티가 생겨 갖고 그 지역에서 아주 명문 학교가 됐어요. 거기가 어떻게 보면 제가 볼 때 견고한 성읍, 의로운 나라, 평강의 시티 오브 가드가 된 것이에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한국 교회가 이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한국 교회가 견고한 성업 의로운 나라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그리고 심지어 세계복음주의 총회 이후에 이슬람 지역에서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풀어주셔 가지고 의로운 나라 견고한 성읍, 거룩한 도피성이 세워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이거는 시티 오브 가드가 어떤 지역만 이것만 되는 것이 아니라, 또 제가 하나 기도하는 것은 우리나라 기업도 그렇게 되게 하여 주옵소서 기업도 시티 오브 가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지금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있지 않습니까? 옛날에 한국의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유명한 장로님이 기업하신 장로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저한테 부탁을 했어요. 목사님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기업도 잘 돼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조선업을 지켜주시고 it와 반도체를 지켜주시고, 자동차를 지켜주시고, 중소기업도 지켜달라고 k컬쳐도 지켜달라고,,, 누가 뭐라든가 제가 그때 우리 모두가 열심히 기도해 지금 조선이 1등 하고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대신 그 기업들이 솟은 산이 아니라, 견고한 성읍이 될 수 있도록 인간이 하는 솟은 산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견고한 성읍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패스트 팔로워로서 따라가기만 했지만, 이제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세계 교회를 세계 복음주의 교회를 이끌어갈 수 있는 포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이 뜻깊은 날 여러분 주일 예배에 나오셨습니다. 이제 나가면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국 교회가 하나님 주시는 이 능력 이 말씀을 다시 회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 말씀 듣고 그냥 말씀 듣고만 끝나면 안 되고, 오늘 이 말씀을 가슴에 간직해 가지고 오늘 지하철을 타시든 버스를 타시든 차를 운전하시든, 탄핵 정국 이후의 이 나라를 위하여 기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 견고한 성읍, 의로운 나라가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 탄핵 정국 이후에 이 어려운 과정을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대반전으로 삼아 주실 것입니다. 이런 사명을 가지고 우리가 발을 딛는 곳마다 운전해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를 바라고 여러분들 때문에 우리 주의가 평강의 평강으로 이를 수 있도록 하나님 여러분들을 사명자로 은총의 통로로 사용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당뿐만 아니라 오늘 방송으로 듣는 모든 분들, 별관에서 또 여러 sns로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에게 예배만 드리고 나가면 안 되고 나머지 모자란 2%를 오늘 이 기도를 통하여 우리 주위를 향한 우리 모두가 다 정직한 자가 축복하는 진흥, 진정한 부흥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체험되기를 소망합니다.

♣요약
인간이 중심이 된 인본주의 세상에서 인간의 정의와 자기 추구를 일삼는 그런 허망한 바벨탑을 쌓다가 경쟁으로 지치고 불안과 긴장으로 안절부절 하다가 흙더미에 넘어질 수밖에 없는 그런 인생들이 오늘 말씀으로 보혈 복음의 능력 때문에 교회와 가정과 일터와 도시가 변화되어야 한다. 우리 개인과 사랑의 교회로 인하여, 한국 교회로 인하여 서울이 영적 청정 지역이 되고, 우리를 통하여 전 세계 대륙마다 견고한 성읍, 거룩한 도피성이 세워지는 축복까지도 허락받는 주님의 귀한 자녀로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 없이 인간이 주인인 솟은 성을 추구하다가 지쳐 쓰러질 때, 날마다 심지가 견고한 믿음을 새롭게 하여, 폭풍 속에서도 완벽한 평강으로 인도되어, 우리 영 가족 공동체가 영원한 반석 이신 하나님을 굳게 믿을 때, 살고 있는 동네와 일터는 거룩한 성지가 되고, 대륙마다 강력하고 거룩한 도피성이 세워지기를 간구하며, 우리 사랑의 교회의 눈물의 기도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첩경을 평탄케 할 때, 이 겨레와 민족이 견고한 성읍, 의로운 나라로 진흥하게 하기를 소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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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3월 9일)
제목:1,2부: "불확실한 시대에 하나님 신뢰하기"(Tnusting God in Uncertain Times),
제목: 3,4부-"인생의 고통중에 주시는 말씀의 위로"(The Comfort of the Scriptures in the Heartaches of Life)
말씀: 고린도후서 4:8-9,16-18, 이사야 40:1-31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외)
대표기도: 오소협 부목사님(1부 외)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외)

설교자:베리 코리 목사님(Dr.Bary Corey):통역(김인기 부목사님), 피터 릴백 목사님(Dr. Peter A, Lilback):통역(정상익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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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4:8-9, 16-18,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이사야 40:1-31,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12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 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
13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14 그가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정의의 길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
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16 레바논은 땔감에도 부족하겠고 그 짐승들은 번제에도 부족할 것이라.
17 그의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
18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
19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은 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20 궁핍한 자는 거제를 드릴 때에 썩지 아니하는 나무를 택하고 지혜로운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세우느니라.
21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22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에 사는 사람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주할 천막 같이 치셨고.
23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24 그들은 겨우 심기고 겨우 뿌려졌으며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이 입김을 부시니 그들은 말라 회오리바람에 불려 가는 초개 같도다.
25 거룩하신 이가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교하여 나를 그와 동등하게 하겠느냐 하시니라.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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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부-베리 코리 목사님(Dr.Bary Corey):통역(김인기 부목사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다시 사랑의 교회에 오게 돼서 큰 영광입니다. 이 사랑의 교회가 가진 정말 아름다운 영성에 다시 한번 감격을 느낍니다. 특별히 오정현 담임 목사님 함께해서 너무나 큰 영광입니다. 탈보 신학대학교를 우리 담임 목사님께서 졸업하셨습니다. 사모님께서도 졸업하셨고요. 아드님께서도 졸업하셨고, 그리고 며느님께서도 우리 바이올라 대학을 졸업하셨습니다.

사랑의 교회에 올 때마다 그래서 우리 바이올라 신학대학교에 있는 모든 가족분들을 만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도 탈보를 졸업했습니다. 33년간 결혼한 우리 와이프 파울러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딸이 한국에 2번을 방문했었는데요. 고등학교 때와 대학교인데 여러분들에게도 문안 인사를 올려드립니다.

바이올라는 남가주에 있고요. biolla가 성경 공부하는 대학교라는 이름으로 지어진 이름입니다. 5,300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에 있으며 대학원, 학부, 석사, 박사까지 과정을 제공하고 있고 33개 학부와 8개의 석박 과정이 있습니다. 특별히 탈보 신학대학원 많은 목사님들께서 한국에서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많은 학생들이 저희 바이올라 학교로 유학을 오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함께 되어 너무나 큰 영광입니다.

너무나 초대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인스타그램에도 저 팔로우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몇 주 전 한국에서 말씀을 준비하며 어떠한 말씀을 전할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불확실함 때문에 제 마음의 염려가 생겼습니다. 여러분 혹시 미국 정치를 알고 계시다면 미국 정치가 분열돼 있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엄청나게 많은 불안과 미국과 한국이 참 비슷한 양상을 지금 정치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시대 가운데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제자로서 살 수가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 주제를 가지고 몇 주 동안 계속 고민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말씀은 우리 사랑의 성도님뿐만 아니라 제 자신에게도 주님께서 주신 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미국에 있는 교회들에게도 주신 말씀입니다. 전 세계 교회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이 바로 선교 하나님의 말씀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성경책이 우리가 믿고 확신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기반은 말씀 위에 서 있어야 되는 것을 믿습니다. 조금 전 우리가 읽은 말씀은 고린도서 4장 말씀입니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겪는 어려운 시간들입니다. 우리가 도대체 풀 수 없는 문제들입니다. 그리고 8장과 9절을 제가 요약하자면, 우리가 우겨 싸움을 사방으로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쌓이지 아니하며 버림받은 죄 되지 아니하며 거꾸로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을 것이라 성경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혼란스러움을 당할 때에도 우리가 절망 가운데 서 있지는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답답함 바로 혼란스러움에 대해 포커스 하길 원합니다. 지금 이 시대의 많은 것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바로 바울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과 어려운 상황들입니다.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 지금 이 시대에도 사실 혼란스러운 일이 많지 않은가요? 정치적 분열과 불안정성입니다.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사람들을 억압당하고 있으며 지금 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고 고용시장과 인플레이션이 있으며 정치적 분열과 경제적인 불안정성 때문에 우리는 더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교회 내에서도 혼란스러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교회들이 성경이 아닌 비본질적인 문제들로 인해 나뉘고 있습니다. 정치적 이슈로 그리고 교회 내부적인 정치적인 문제로 돈 문제로 그리고 작년 세대는 또 다음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불확실성도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기도 제목은 주님 저의 장년 세대 저를 비롯한 모든 장년 세대들이 주님께서 젊은 세대를 통하여 하시는 역사를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라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우리 바이올라 학교에는 많은 젊은 세대들이 있는데요.

그들은 정말로 신선한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옵니다. 한 학생이 저의 오피스에 왔었습니다. 그녀는 아주 엄청난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그건 되지 않을 거야. 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크레이지한 생각이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면은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어 도대체 이걸 언제 시작해야 되지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님들 우리 젊은 세대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역사의 현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기성세대들에게는 우리에게 참 혼란스러움을 가중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젊은 세대를 통해 역사하시는 새로운 방식들을 우리 장년세대들이 이해하는 날이 속해 오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사야 43장을 자주 방문하곤 합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태어날 것이라 그리고 말합니다. 너는 그것을 보지 못하느냐, 그렇기 때문에 저는 주님께 기도합니다. 주님 다음 세대를 통해 일하시는 그 역사를 보게 하옵소서. 그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4장에서 얘기했던 이야기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혼란스러움을 우리 삶 가운데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확신할 수 없는 상황들 정치적인 상황들일 수 있고 경제적인 상황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어떤 일을 하시려나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삶 속에서도 혼란스러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람이 갑자기 큰 건강상의 문제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의 자녀가 올바르지 않은 선택을 할 때 혼란스럽습니다. 가족 내 갈등으로 인해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게 될 때, 재정적인 어려움이 닥쳐 앞이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님들 안심하십시오.

고린도전서 4장은 우리가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일을 당하여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주권자 되시며,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지금 일어나는 모든 ai 상황들 ai 때문에 혼란스러우신 분들이 계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런 트렌드의 우리 크리스찬들은 정말 어떤 것이 도덕적인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새로운 기술들에 우리가 도망가거나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나 이것들을 잘 활용해서 주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가야 됩니다.

지금 교회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나 새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행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베러스 윌러드 교수님은 바이올라대학교 이사회 멤버였고, 미국 남가주대학교 철학 교수셨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들에게 그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조언들을 우리에게 해 주셨는데요. 첫 번째는 절대 염려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 가운데도 걱정하지 말라고 교수님은 얘기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충만합니다. 또한 교수님 말했습니다.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과거의 방식만을 고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주권자 다 되시며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무엇을 하시는지 분명히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답답함과 혼란스러움을 느껴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허락하지 않는 것은 바로 절망(絶望)입니다. 포기(抛棄)하는 것을 허락치 않으셨습니다.

상황이 절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허락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새로운 일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전 세계 가운데 참 놀라운 역사들을 하고 계십니다. 바로 10월 사랑의 교회에서 WEA 총회가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 현장인 줄 믿습니다. 바로 전 세계에서 가장 가장 큰 지하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 현장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정말 말로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부흥을 위해 기도할 때 다시 한번 부흥을 위해 기도할 때,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서 제자화를 이뤄가실 때, 사랑의 교회를 하나님께서 사랑의교회를 통해 세계선교의 마무리를 이룰 것을 확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늘 사랑의교회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교회를 통해 새 일을 새 역사를 행하겠노라!~~ 바로 이 자리에서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님들이 보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혼란스러움이 아니라, 주님 두려움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전적 믿음으로 위탁함으로 말미암아 나아가길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도 일하고 계시는 것을 확신하시길 바랍니다. 바로 정치와 경제와 문화 모든 영역에서 교회와 가정과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주님은 역사하고 계십니다. 제가 한국에 올 때마다 새로운 단어들을 배우게 되는데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라는 예전에 배웠습니다. 김치, 목사님, 목사님, 사모님 그리고 제가 한국에서 또 배운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단어들이 오늘 설교의 핵심 본문입니다. 확실과 확신의 차이점에 대해 배우게 됐습니다. 제가 이 두 단어들의 차이를 알게 되었는데요. 확실이라는 뜻은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확실히 알고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확신은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확신하는 믿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확실은 확실히 일어날 일이라고 영어로 번역이 되고 확신은 주님 안에서 가지고 있는 믿음입니다. 확실은 눈에 보이는 것에 의지해서 사는 삶이고, 확신은 믿음 안에서 사는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혼란스러울 때 우리가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마주할 때,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확신의 믿음인 줄 믿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주권자 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어려움과 질문들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주권자 되심을 확신합니다. 우리의 불안정성에서도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붙잡고 계십니다. 우리를 은혜 안에서 보듬어주십니다. 바로 은혜란 우리가 어떤 것을 해도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보다 더 크게 사랑을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우리가 더하거나 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최고로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그만큼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주님께서 저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혼란스러워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절망은 하지 말라고 그리고 바로 사도 바울은 당시 교회 지금 우리와 같은 그 교회들에게 이 편지를 전했습니다. 두려움이 있었고, 교회 내 그들은 소수자였고 그리고 함께 하길 너무나 힘들어하는 상황 가운데 있었지만 바로 우리 모두가 교회의 공동체에 속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사랑의 교회 같이 성도의 교제라며 공동체에 속해 있는 아름다운 교회로 빚어 가라고 했습니다.

바로 사랑의 교회가 하나님의 몸 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나타내 주는 가장 좋은 예시입니다. 우리 콰이어 오케스트라 참 아름다운 찬양해주셨는데, 함께 찬양하게 돼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함께 배우고, 함께 사랑하고, 서로를 도우고 세워주며, 바로 이것이 우리가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겨내는 방법들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사도 바울이 기도에 전념하라고 합니다. 바로 기도의 힘을 무시하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바로 서로를 향해 기도하라.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고 얘기하고, 저는 특별히 전 세계 교회들이 한국 교회 성도님들의 기도의 영성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오정현 담임목사님께서 이 기회를 시작하셨을 때 바로 엄청 40일 특별 기도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있습니다. 새벽 기도이고 열정적인 기도이고 오정현 담임 목사님 전 세계 교인들이 어떻게 기도해야만 됐는지, 예시를 보여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발언 얘기합니다.

공동체에 속하라. 기도를 전념하라. 그리고 성경의 권위에 우리가 정말 존중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그대로를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권위가 있고, 믿을 만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다른 길로 새는 것을 방지합니다. 그리고 정말 좋지 않은 트렌드로부터 우리를 지켜줍니다. 우리 삶에서 정말 들어오는 모든 나쁜 것들을 제하여주는 유일한 소망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이 말합니다. 우리가 비주류고 소수여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지금도 전 세계 많은 교인들이 소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강력합니다.

우리는 어떤 어떨 때로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미국에서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우리 바이올라 대학교에서는 결혼이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는 것이라 가르칩니다. 그리고 저희 기숙사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해서 지금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관점으로 이 정의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우리가 분노로 대답하거나 아니면 두려움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분노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주님 안에서 온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고, 우리의 원수를 사랑하고, 그리고 세상 가운데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우리가 먼저 다가가고, 심지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도 사랑하게 되는 것이 바로 성경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인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살아가셨듯이 사랑하는 교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혼란스러우시다면 건강한 교회에 속해 있으시길 바랍니다. 기도에 전념하시길 바랍니다. 성경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서로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살아있게 사는 모든 사역들의 본질인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바이올라대학교에서 하는 일들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세계가 전 세계가 필요한 사랑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8절에서 9절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싸움을 당하여도 우리는 쌓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우리가 정말 넘어져도 우리의 주님 안에서 절대로 제하지 아니하며 우리가 거꾸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을 것을 확신합니다. 몇 절 뒤에서 바울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에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오.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어라.’ 이것이 바로 우리가 혼란스러운 시대 가운데 대응해야 되는 방법인 것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삶에 다가올 것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될 것들에 대해서도 바울은 서술합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할 것을 예측해야 합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망하지 않게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박해 받을 수 있지만, 하나님 안에서 절대 버림 받지 않을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넘어질 때도 있지만 그리고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권자 되심을 믿으시길 소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절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사도 바울이 빌립 보서 1장 6절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우리는 확신하노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룰 수 있는 우리는 확신하노라.’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 가운데 갖고 가야 되는 약속인 것입니다.

두 달 전 큰 산불이 로스앤젤레스를 강타했습니다. 모든 것들이 참 말라있었을 있습니다. 나무들이 그리고 정말 큰 강풍이 불어왔는데 초속 160km의 강풍이 불어왔고, 퍼지는 불길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로 산불이 계속 퍼졌고, 29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1만 8천 채 이상의 집과 건물을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불이 난 그날 밤 바이올라대학교의 한 교수님이 소방서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불 때문에 빨리 대피하라는 연락이었습니다. 교수님은 레바논에서 오신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몇 시간 뒤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시겠지 하고, 여권과 야근 챙겨서 차를 타고 집을 조금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그러나 다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그녀가 다시 집에 돌아갔을 때, 집이 다른 모양으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교수님의 집이었는데요. 불이 나기 전날 사진입니다. 남가주에 있는 참 아름다운 전형적인 집입니다. 그리고 이게 바로 다음 날,,, 우리 교수님의 집입니다.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하루 만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모든 사진들, 모든 일기장들, 모든 노트들, 모든 편지들, 그녀가 적었던 노트들,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교수님과 다음 날 얘기했습니다. 정말로 교수님 이겨내려고 했지만, 결국 눈물을 흘렸습니다. 너무나 충격을 받았고, 또 부모님도 케어해야 됐습니다. 저에게 말했습니다. 이거는 너무나 큰 상처로 남을 것이라고, 그러나 교수님께서 이 사연설을 인용하며 저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바로 재에서 화산을 만들겠다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이겼어요.

총장님 그게 어떤 모양으로 나타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하실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총장님 오래 걸리겠죠? 살아가는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우리를 오랫동안 괴롭힐 때가 있습니다. 삶을 살면서 영원히 해결 받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그리스도 영원한 우리의 왕이시라고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지금 그 교수님께서는 참 혼란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총장님, 저는 절망 가운데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께서 내 삶에 일하실 것을 믿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그 교수님께서 다시 한번 일어날 것입니다. 이 불길을 뚫고 나올 것입니다. 어떻게 제가 확신하냐고요. 왜냐하면, 교수님이 섬기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제가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굽은 길을 곧게 만드신 분인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거친 파도를 잠잠케 하시는 분인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의를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재에서 화관을 만드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이 화마로 모든 것이 집어삼켜졌을 때 이 말씀을 떠올리셨습니다. 이사야의 말씀입니다.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너를 지으신 이가 너를 말씀하시느니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도 타지 아니 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리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이니 내 하나님은 내 구원자이니라.’ 그러므로, 살아가는 여러분 우리의 모든 혼란들 교회 가운데서 그리고 개인적인 삶에서도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상한 마음을 고치시며, 고통과 혼란 속에서도 소망을 주는 분임을 믿습니다.

저를 위해서도 역사하셨고, 사랑하는 성도님들을 위해서도 주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확신하며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것을 우리는 확신 하노라. 감사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주님은 성난 파도를 잔잔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지금 이 가운데 성남 파도 가운데 서 있는 성도님들이 계십니다. 주여,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부으시는 주님, 지금 성도님들 가운데 그 생수의 강물이 필요한 분들이 계십니다. 주요 우리를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상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예배 가운데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분들 가운데서도 주님께서 만져주시고,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소망 가운데 거하게 하여주시고, 절망 가운데 기쁨을, 예수님을 우리 가운데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아멘

요약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는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현실'을 직면할 때, 주권자이시며 지금도 통치하시는 왕이신 주님을 끝까지 신뢰하여야 한다. 우리가 절망하며 포기하고 싶을 때, 확실하게 새 일을 행하시는 주님을 확신하여,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모든 좌절에서 일어나야 한다. 우리 사랑의교회가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서울총회(10.27)를 위한 특별기도회(3.15 토요일 새벽 6시)로 엎드려, 강력한 눈물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과 세계 교회의 심장을 울리는 간절한 기도를 올려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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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부-피터 릴백 목사님(Dr. Peter A, Lilback):통역(정상익 부목사님)
사랑의교회에 다시 오게 돼서 참 기쁩니다. 여러분의 담임 목사님이신 오정현 목사님께서 다시 초대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미국에 있는 주안의 형제 된 우리 많은 사람들의 인사를 대신해서 전해드립니다. 특별히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인사 문안 인사를 여러분에게 드립니다.

오늘 특별히 성경 말씀에 나오는 위로에 대해서, 또 우리가 느끼는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드리고자 해요. 우리의 영혼 가운데 어려움이 고통이 찾아올 때를 경험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제가 여기서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만약 여러분과 대화를 나눈다면 각자 각자의 마음 가운데 상처와 또 고통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타락한 그리고 무너져 내린 세상 속에서 살면서 고통을 경험하고 있죠. CS루이스가 자신이 썼던 저서인 고통의 문제라는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런 어려운 세상 가운데 해서 이런 고통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하나님을 반대하는 논거는 이 우주가 너무나도 가혹하고 불공평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공평함과 불공평함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까?”

만약 어떤 사람이 선이 휘었다고 이야기를 하려면 선이 바르다는 개념을 알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다시 이야기하면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여 주신 공평함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어야만 우리가 공평함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거죠. CS루이스는 계속해서 이 저서 안에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 가운데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들려주시고 계신지에 대해서 계속해서 설명해나갑니다. 하나님께서 기쁨 가운데 속삭여 주신다고 이야기 해요. 그런데 우리의 양심 가운데서 직접적으로 말씀을 주신다고도 언급합니다.

그런데 CS루이스가 특별히 우리의 고통 가운데 하나님이 외치신다. 라고 이야기해요. CS루이스는 고통은 하나님께서 귀먹은 세상을 향해 쓰고 계시는 확성기다.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겪고 있는 개인적인 또는 관계적인 특별히 나라 적인 국가적인 문제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지도 몰라요. 우리는 믿는 자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의 말씀을 통해서 얼마나 명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특별히 말씀을 볼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셔서 오늘 우리가 살펴봤던 이 이사야 40장 말씀을 통해 위로를 받게 됩니다. 첫 번째 구절이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니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위로하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위로하라. 두 번이나 위로해 주신 것 보고 계십니까? 왜 하나님께서 위로, 위로 두 번이나 말씀하셨을까요? 제가 한 장로님께서 주일 학교에서 아침에 아이들에게 말씀을 전했던 이야기를 들은 게 있어요. 그 장로님께서 사도바울이 했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셨어요.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그렇게 말씀을 전하고 나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우리 아이들에게 장로님이 물었습니다. 왜 바울이 두 번이나 기뻐하라고 얘기했을까? 그러자 어린 소녀가 손을 들고 대답했어요. 저희 엄마가 저한테 늘 두 번이나 반복해서 얘기하실 때는 제가 엄마 말을 안 들을 때예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안 듣는지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삶 가운데 어떤 고통을 겪고 있던지, 어떤 상황 가운데 있던지, 말씀하십니다. 위로한다. 너를 위로한다 라고요.

여러분이 어디에 속해 있으시든지 간에 여러분의 영혼을 위로하시고자 합니다. 창세기 37장 35절에 나오는 야곱과 요셉의 이야기에 나오는 모습을 우리가 가지고 때도 있어요. 야곱이 요셉을 잃고 위로하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시편 69편 20절 말씀에 이와 같이 나와요. “불쌍히 여길 자를 바라나 얻고 긍휼이 여길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그런데 스가랴 10장 2절 말씀은 이와 같은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거짓된 위로가 존재한다는 걸 알려줘요. 명성 성이나 재물이나 또 내가 가지는 수많은 이 유혹들에 대한 마음들을 채울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 가운데 성경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우리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진정한 위로자가 계시다면, 하나님의 임재 자체가 진정한 위로자가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너무나 사랑하시는 10편 23편의 다윗이 이야기하는지 아시죠? “내가 사망에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성경 안에서 특별히 구약 안에서, ‘위로’라고 표현된 단어의 뜻을 좀 더 살펴보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구약성경에서 위로라고 쓰였던 히브리어 단어 자체가 구약성경에 있는 성경책 이름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어로 나흠이라고 되어 있는 그 단어를 따서 나흠서가 기록됐죠. 우리 자녀들 중에 나훔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이 위로해 주신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요. 이 구약성경의 히브리어에서 헬라어로 번역된 70인경 안에서는 그 헬라어 단어가 새롭게 쓰였습니다. 제가 신학교 총장이다 보니 설교하면서 히브리어 헬라어 정도는 써야겠죠. 그렇죠.

일단 히브리어로 나흠, 하면 위로한다는 뜻이고요. 위로 예전에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히브리어와 또 헬라어에서 한 번의 헬라어로 번역했을 때, 사용되었던 ‘위로’란 뜻을 가진 헬라어 단어도 알려드릴게요. ‘파라클레이테’라는 헬러 단어입니다. 헬라어로 ‘위로’를 뜻해요. 바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성년 대해서 묘사하실 때 사용했던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신다고 하셨을 때, 그 보혜사가 위로자이시잖아요. 그 위로라는 단어가 거기에서 쓰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셨던 이 페라클레이트라는 단어 파라클레이토스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찾아보다 보면,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드러내는 단어임을 알 수 있게 돼요. 요한일서 2장 1절 말씀에 이와 같이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을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다’ 여기에 그 단어가 쓰입니다.

예수님이 의로우신 분이고, 대언자 이시며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분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는 본문입니다. 그리고 이 요한복음 14장 16절 말씀에, 다락방에 계셨던 예수님이 이 단어를 또 언급하시는 걸 볼 수 있어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 위로자를 말씀하시죠.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또 다른 이라고 표현하셨을 때 사용되었던 단어는 정확히 동일한데 다른 존재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의 위로자라고 말씀하세요. 그리고 너희와 영원히 함께할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겠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위로하시고 힘을 더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죠. 우리 함께하시는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그것이 가능하게 된 겁니다.

또 사도 바울이 작성한 고린도후서 1장 3절에서 4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로해주시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3절 4절 말씀 이와 같이 나옵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란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서 모든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로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로를 주신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읽었던 이사야 40장을 보시면, 위로, 위로로 시작이 되는데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위로하시는지 세 가지 큰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는데 왜 위로를 주시냐,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절에서 4절까지 말씀을 읽겠습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워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으로 엄청나게 큰 고속도로를 주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있는 산과 바다를 다 물리치셨어요. 그리고 깊이 파여있던 계곡을 다 채우셨습니다. 막고 있던 모든 장애물을 치우고 바로 우리에게 달려와주셔서 너를 위로한다. 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세요.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로 인해 무너져 내리고 깨져 있는 것을 다 아시고 우리에게 다가오셔요.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받게 하셨다” 라고 말씀하셨죠.

하나님의 사랑이 이 세상으로 침투해 들어와서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단순히 우리를 돌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정말 우리를 위로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하나님 되었기 때문에 우리를 위로하실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로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뒤에 이어지는 9절부터 11절 말씀을 보면, 목자의 심정으로 우리에게 오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의 위로를 주시는 거예요. 9절에서 11절 말씀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위에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그 능력을 본문을 통해서 보여줄 주시는 걸 봅니다. 이 모든 만물에 특별히 이 바다와 궁창과 모든 것을 손아귀로 쥐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모든 황제와 또 모든 대통령과 모든 나라를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단순히 우리를 돌보실 뿐만 아니라, 전능하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 한 명, 한 명을 위로해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과 시작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시작 전부터 이미 알고 계십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다람쥐의 모습을 또 새의 모습을 볼 뿐만 아니라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나를 위로해 주는 사람이 없어요. 라고 말하는 그 순간에도 여러분을 위로하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내 문제가 너무 커서 도저히 위로받을 수 없는 상황이에요. 라고 말하는 그 순간에도 그것을 뛰어넘는 여러분을 위로하는 위로자가 계십니다. 물론 여러분들에게 그 위로는 나를 위한 위로는 아닌 것 같아요. 라고 말하는 여러 가지 이유 들이 아마 있으실 것 같아요. 여러분 이렇게 얘기하실 수도 있어요. 하나님 보시기에 난 너무 미물이라서 위로 못 받을 것 같아요. 저는 너무 피곤해서 그 어떤 사람도 나를 도와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저는 너무 힘들어서 다 내려놨기 때문에 아무도 저를 도울 수 없어요.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분이 단순히 돌보실 뿐만 아니라, 돌볼 능력이 있는 분이라는 것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더 나아가서 그분이 그렇게 상처받고 힘든 사람을 사랑하셔서 위로하는 이라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27절부터 31절 말씀에 이사야 40장 27절부터 31절 말씀에 이와 같이 나옵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야곱아 어찌하여 내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내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시는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이것이야말로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여러분이 나는 외로워요. 라고 말할 때 하나님이 나는 너와 영원히 함께한다. 라고 말씀하세요. 저는 연약해요. 라고 말하는 여러분에게도 하나님께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가운데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는 말씀을 주시면서 예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물가에서 베데스다 못 옆에서 마비된 채로 가만히 있었던 사람도 생각해볼 수 있어요. 여러분이 그와 같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혜의 말씀을 듣고 찾아오십니다.

그 ‘네가 들고 있는 그 침구를 들고 일어서라’ 라고 예수님 말씀하세요. 그런 것처럼 여러분의 그 연약한 가운데서 하나님이 힘을 더해 주십니다. 어 말씀을 보다 보면 젊은 사람들조차도 지쳐 하고 또 쓰러지는 걸 봅니다. 여러분, 30절에 나오는 장정과 같은 젊은이더라도 너무 연약하고 힘이 없어서 다 포기하고 싶다. 라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의 위로자 되신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도전해봐 일어날 수 있어 할 수 있어. 라고 말씀하십니다.

윗 세대와 아랫세대가 갈등으로 인해 나눠진 그런 가정에 있는 여러분도 계실 거예요. 그런데 그런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위로자께서 찾아오셔서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너 안에서 일할 거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죄악 때문에 너무나 패역한 자신의 모습 때문에 완전히 가라앉아 있을 때 여러분을 위해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여러분도 함께 부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여러분, 정말 어려운 시국 가운데 우리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계시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어려운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일어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리우게 되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 31절 말씀을 다시 보셨으면 좋겠어요. 있습니다.

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은 것이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 들 것이오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않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 말씀이야말로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교회와 또 여러분이 속한 모든 공간을 위한 말씀이에요.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제가 한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데요. 독수리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드리고 싶어요. 독수리가 어렸을 때는 굉장히 멀리 높이 납니다.

그런데 독수리도 나이가 들어서 또 연약해질 때가 있겠죠. 날개가 빠지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점점 힘을 잃어버리는 걸 봅니다. 그래서 자기가 날던 그 하늘에서 점점 자리를 비켜줘야 될 때가 오는 거예요. 예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을 때, 그 독수리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겠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독수리에 이미지를 사용하셔서 새롭게 부활시켜 주시는 새로운 힘을 주시는 그 사역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는 겁니다.

이 고통의 순간이 지나가면, 새로운 날개가 돋고, 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높은 곳으로 날게 될 것이라고 말씀 주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이 구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의 새로운 날, 깃털이 자라나는 시간을 가지고 계신지도 몰라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새롭게 해주실 것입니다.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입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달음질하여도 곤비하지 않을 것이고. 걸어가 피곤하지 않을 줄 믿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약속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이야말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에게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패배하지 않았다. 그리고 힘을 얻어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알려주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가운데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땅과 하늘은 지나갈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줄 믿습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한국에 주신 그리고 교회와 온 세계의 만물에게 주신 약속인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런 위로야말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위로예요. 위로하라.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여러분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확장돼 나가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왜요? 예수님께서 그 나라의 왕이시고, 예수님은 절대 패배하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옵소서. 오늘 너무나 연약하고 또 힘들어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말을 들어주옵소서. 고통 가운데 있는 영혼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단순히 돌볼 뿐만 아니라 돌볼 능력이 있음을 알려주옵소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독수리가 날개 쳐 올라감 같이 힘을 더해주셔서 보내주신 사명을 달성할 수 있게 해주심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특별히 시랑의 교회에 함께 해주 주시길 기도합니다. 오정현 목사님과 함께해 주시길 원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살려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힘이 필요한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성도 한 명 한 명을 위로하시고 힘 더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를 위로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요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참된 위로를 주시기에, 우리는 고통과 어려움을 경험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위로하신다고 말씀하신다. CS 루이스는 고통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고 했듯이, 성경도 하나님이 진정한 위로자이심을 믿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시며, 죄에서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고, 전능하시기에 참된 위로를 주실 수 있으니, 또한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힘을 주시고 함께하시기에 두려워할 필요 없다. 그 약속을 통해 우리의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니 다시 일어나, 우리 인생의 고통 중에 주시는 말씀의 위로를 늘 주심을 믿고, 우리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니, 굳게 일어나서 주님 앞에 나아가 헌신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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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32)
제목: "역사를 보는 눈, 분별력(Perspective on History, Discernmen)"
-이사야 시리즈
말씀 : 이사야 14:12~15
대표기도: 홍진기 부목사님(1)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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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4:12~15,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15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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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대가 너무 귀한 찬송을 해주셨어요. 오늘 찬양대가 고백한 저 찬송 가사 그대로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가 이 민족에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혹시 마음이 오염된 분이 계시면 오늘 새 마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바라고, 오늘 예배를 통하여 우리 모두가 다 주님의 깊은 심정을 깨닫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역사를 보는 눈, 역사를 보는 분별력에 관한 것입니다. 여러분 역사에는 이 시대에는 분기점이 있죠? 오늘 우리는 3.1절을 맞이했는데 3.1절 주일 예배인데 106주년인데요. 우리가 3.131, 또 혹은 4 19, 혹은 5 16, 5 18, 6 29, 이런 걸 쭉 하지 않습니까? 하는데 이게 뭔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러면 좀 그렇죠. 근데 저는 작년 1027일도 역사의 분기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참 한국 기독교인들이 광화문과 시청, 서울역까지 완전히 골목까지 다 모였고 또 여의도에도 우리 여의도 모든 도로와 그다음에 공원 안에도 사람들이 다 차 가지고 아마 대한민국 역사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날 정도로 그런 시간이 있었는데, 하나의 역사의 분기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하는데 오늘 여러분 오늘 이 3.1, 오늘 이 기념 예배를 통하여 3.1절이 말씀의 부흥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어제 우리 기도한 대로 오늘 이 예배를 통해 나만의 기도가 나라를 위한 기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또 나만의 예배가 그야말로 나라를 살리는 예배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제가 대표 본문은 14장 오늘 여러분 읽은 것이 대표 본문이고 전체적으로는 13장부터 23장 전체까지가 배경이 될 수가 있겠습니다. 첫 번째 우리가 생각할 것 우리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I.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역사의 주관자는 누구시라고요? 하나님이시다. 131절을 보겠습니다. 131절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사야 13:1,
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바벨론에 대하여 받은 경고라.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바벨론의 어디에 대한 경고라고요? 바벨론에 대하여 받은 경고라 이사야는 전반부가 39장까지 있는데 39장까지의 대표적인 세 단어가 있어요. 이게 뭐냐 심판과 경고와 위로가 있는데, 오늘은 특별히 13장부터 23장까지는 하나님의 심판과 경고에 대해 특별히 경고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쭉쭉쭉 보면요. 제가 이게 시간이 없으니까 13장부터 23장까지 먼저 바벨론에 대한 경고가 나오고, 그다음에 모압에 대한 경고가 나오고, 다메의 경고, 구스 경고, 애굽에 대한 경고, 또 바벨론 두마 아라비아에 대한 경고를 하고,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를 하고 마지막 드로에 대한 경고를 하는 것입니다.

바벨론 경고(13~14), 모압 경고(15~16), 다메섹 경고(17), 구스 경고(18), 애굽 경고(19~20), 바벨론, 두마, 아라비아 경고(21), 예루살렘 경고(22), 두로 경고(23).

-이것이 어떤 뜻이 있는가? 이것은 그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그때 일어난 이런 일을 통하여 오늘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한 본보기가 되고 우리에게 대한 각성을 위한 하나님의 어떤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서 바벨론 경고다 그랬을 때 그 바벨론 경고는 거짓 종교로 사람들을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속임수에 대한 분별력(分別力)을 주시는 것입니다. 신약의 창으로 해석을 하면 요한계시록 182절을 보면,

*요한계시록 18:2,
2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이 바벨론을 통한 경고를 뭘 받는가 하면 바벨론은요. 아주 그 당시에 아주 혼란스러운 세상을 말하는 거예요. 그냥 아주 그냥 뭐라고 그럴까요? 뒤죽박죽이 되었어요. 뒤죽박죽이 된 세상, 혼란스러운 세상에 대해서 주님이 경고하시는 것이고, 애굽에 대한 경고는 세상의 부패에 대한 것을 경고하시고, 두로에 대해서는 앞으로 이 물질주의 세상에 너무 그 물질에 탐닉하는 것을 경고하시고, 모압과 암몬과 아라비아와 같은 나라들에 대한 경우 특별히 모압과 암몬은 여러분 모압과 암몬은 근친상간(近親相姦)으로 태어난 그 족속이죠.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오늘날의 우리가 깨닫는 것은 성적인 문란(紊亂)함에 대한 경고를 주신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말할 수가 있고 그래서 이런 내용들을 보면서 여러분 역사가 무언가 역사를 보는 눈에 있어서 우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철저한 주권 속에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이에요. 아주 이거는 이거는 이거 흩뜨려 버리면 안 되는 거예요. 다시 한 번 이 세상의 모든 일 우리가 우리 세상 사람들, 세상의 세속 왕들과 정권과 파워가 막 움직이는 것 같지만, 결국은 이 세상의 모든 역사의 흐름은 하나님의 철저한 주권 속에 있음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열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열국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이 인간의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철저(徹底)한 주권 속에 있다는 말은 어떤 뜻인가 하면, 모든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구원(救援) 역사와 밀접(密接)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 참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뜻입니다. 대한민국이 우리가 세계에서 제일 큰 땅 덩어리를 가진 저 러시아하고 붙어 있습니다. 6.25 때도 우리 러시아로부터 큰 핍박(逼迫)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수천 년 동안 저 중국 대국 중국은 철저히 자기 중심 자국 중심 중화사상 아닙니까? 중국의 별이 5개인데, 동서남북의 별이 중국의 별을 향하여 다 들어온다 이겁니다. 그게 별 5개예요. 그런 건 아십니까? 중국 국기에 그런 게 있어요. 그리고 일본이 일본에 옛날에 외국부터 시작해 얼마나 우리가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까? 그 큰 나라 중국과 러시아와 일본 속에서도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살아남았다. 우리나라가 살아남았다 하는 이것은 하나님의 철저한 주권과 구원 역사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가 있다. 없다 없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이거는 이제 이거는 나가면 안 되고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돈이고 뭐고 우리가 싸울 때는요. 우리는 물불을 안 가리고 그냥 같이 죽자, 동기(動機) 어진(御眞)이에요. 우리나라 같이 죽자 살자 싸우는 나라가 아직까지 공산화가 안 되고 이게 기적이에요.

이게, 이 세속 역사가 이렇게 나오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철저한 주권 속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여기에 담겨 있는 것이에요. 늘 얘기하지만 새벽마다, 전국에 100만 명 이상의 성도들이 천만 가운데 10분의 1, 100만 명 이상의 성도들이 새벽마다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의 구원 역사를 펼쳐주신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제가 제 생각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하나님 없는 문명 역사는 착시 현상에 불과하고 인류 역사의 실제적인 중앙선은 역사의 절대 주권을 갖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이다-
-아멘 이거 여러분 동의가 되십니까?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이 정치적인 격변(激變)과 사회적인 사건들에 대해서도 여기에 해석을 하나님의 주권적인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배제한 채 이념이다. 혹은 우리 인본주의 관점에서 정치적인 관점에서만 일희일비(一喜一悲)한다면 그것은 제가 자주 말씀드리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 나라의 역사의 상선을 보지 못하고, 역사의 새 속의 하선에 매몰되어 가지고 역사의 상선이 아니라 하선에 매몰되어 가지고 역사의 상선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저는 이 어려운 과정이 있지만 하나님의 통치를 믿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사모하면서, 이 과정을 잘 지나면 현재는 메마르고 현재는 사막(砂漠) 같은 것이지만 어제 아침에 우리가 순장님들 3천여 명이 모여 가지고 순장교육 수행을 하면서,,, 주여, 이 기간이 하나님의 거룩한 과정이 되게 해 주십시오.

우리끼리 서로 고통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이 기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가 살아 있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나타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철저한 주권이 통치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 기간에 신성한 과정이 되게 해 주시면, 사막의 강이 있어 지게 되는 것이요, 광야의 길이 열리는 하나님의 역사가 될 것임을 믿습니다.

이런 거예요. 이런 여러분 역사 그래서 광야에는 길이 없고, 사막에는 물이 없지만, 이 과정들을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관점을 가지고 바라볼 때 우리가 집중할 때에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우리가 믿고 찬양할 때 이 과정에 신성한 과정이 되게 하여 주셔서 하나님이 우리 역사 가운데 일하시는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거예요. 우리가 이걸 이미 경험했어요. 6.25 때도 경험하고 815 때도 경험하고 우리 지난 근대 역사에 많이 경험을 하게 된 것이에요.

월남전에 있어서 월남이 패망하고 우리가 망할 거다 이렇게 생각했지만 그때 우리 74년도에 그 어려움 가운데 74년도 73년도에 엑스폴로 대회를 통하여 나는 찾았네. 그다음에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해서 전력 투구하고 80년도 위험했지만, 80년도 세계 복음화 대해 여의도에서 100만 명이 모여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이 민족의 역사를 하나님의 주권적으로 구원 역사로 바꾸어 주신 것이에요.

여러분, 제가 이 역사를 얘기할 때에 성 어거스틴이 있어요. 아구스트노스 성 어거스틴이 있는데 섬 어거스틴의 놀라운 책 중에 하나가 신국이라는 책이 있어요.( 성 어거스틴-신국-City of God)

시티오브 거드, 하나님의 도성이라는 책이 있어요. 그 책을 왜 썼느냐 하면 13년에 걸쳐서 신국을 썼는데 그 쓴 이유가 뭐냐면 당시에 역사를 사로잡고 있는 역사관은 뭐냐 하면, 희랍의 역사관이었어요. 소위 순환(巡還) 주의 역사관이었어요. 돌고, 돌고, 돌고 그런 어떤 순환주의 역사관이, 윤회(輪迴), 이런 비슷한 것이죠. 이런 역사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역사관 이건 아니다. 이건 하나님의 주권(主權)과 하나님의 통치(統治) 이건 아니다.

하나님이 그러면 이 시티오브가드-City of God, 하나님의 도성의 역사는 뭔가 역사는 출발이 분명하고, 역사는 종말이 분명하고, 역사는 알파 포인트가 있고, 역사는 오메가 포인트가 있고, 그래서 하나님의 도성의 역사는 역사의 종말을 향하여 우리가 태어난 것이 마지막 인생의 종말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역사도 시작과 끝이 분명한 역사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도성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종말적 역사관을 가지고, 역사의 마지막을 향하여 우리의 생애를 이렇게 잘 무장(武裝)하고 마지막을 향하여 준비하고 나가야 될 것이다. 여러분 우리나라는 지금 잘못된 무신론적 이념에 기초한 수많은 역사적 시각의 시각이 도배(塗排)처럼 되고 있어요. 잘못된 무신론적인 이념이, 예를 들어서 여러분 우리나라는 이 역사관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의 중심으로 한 철저한 하나님의 통치 역사관과 아니면 인간이 중심이 된 예를 들어서 극단적인 환경주의 이것도 인간이 주인 되는 범신론적인 것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환경론자들의 거기 가보면요. 어떤 데로 그 공산주의 혁명가(革命歌)를 막 부르고 있는 거예요.

아주 또 어떤 경우는 아주 아주 약자를 배려한다 그러면서 하나님 없는 사회주의 전체주의 이런 것들은 약자를 배려하는 것처럼 포장하지만, 사실은 하나님 없는 이런 역사관은 어거스틴처럼 세상은 하나님의 주권적으로 통치되고 있고 결국 종말의 심판대에 설 것임을 믿는 이런 것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런 역사 흐름 속에서 하나님 없는 무신론적 역사관 가운데서 우리는 어거스틴처럼 매일매일 21세기에 신국론을 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매주, 매주, 주일 예배를 참석하면서, 저와 여러분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 민족 가운데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말씀을 드리면 지금 이 탄핵(彈劾) 정국 속에서 주여 이 가운데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나타나게 하여 주십시오. 그럼 우리가 기도하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고 어제도 구국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했어요. 그럴 때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 이런 역사관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기도의 제물로 기도의 향으로 반드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기도를 통하여 어마어마한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 우리가 기도한 대로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간절히 기도했잖아요. 하나님 아버지 주여, 이 탄핵 정국 가운데 대반전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하만의 악한 계궤를 이기게 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대적하는 인간의 모든 악한 꿰는 산산이 부서지게 하여 주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하나님의 통치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역사 책이 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부터 시작해 가지고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부터 시작해서, 최근에는 역사의 연구, 아놀 토인비까지 수많은 역사의 책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런 두꺼운 역사 책이 많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역사 책이나 역사관은 세상적으로 볼 때는 대단한 PHD이고, 세상적으로 볼 때는 대단히 똑똑하다 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빈 껍데기라는 것이에요.

다른 말로 하면 역사를 절대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로 바라보는 어릴 때부터 그것으로 훈련받은 어린아이 청소년의 역사관이 세상에 어떤 무신론적인 역사관으로 똘똘 뭉쳐서 무장된 PHD이나 박사들이나 아주 그냥 박식한 철학자들보다도 엄격하게 얘기하면 어린아이들, 청소년들의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그 역사관을 가진 그 아이가 하나님 없는 무신론자 PHD보다도 더 낫다 안 났다? 다시요 낫다 안 났다 더 나은 줄로 확신합니다. 누가 더 올바른 영적인 깊이를 가지고 있는지를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우리가 무슨 대학의 역사 철학 PHD를 안 받았다 할지라도 우리는 오늘 확신하는 말씀을 통하여 주님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는 하나님이 절대 주권을 가지고 통치하시고, 결국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통하여 역사의 종말을 향하여 가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든 나라를 경고하시고, 주관하시고, 결국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기뻐하시는 뜻대로 절대 주권을 가지고 방향을 잡을 것입니다.

이건 세상에 박식한 사람도 잘 모르는 일들입니다. 여러분 죽어보면 압니다. 나이가 들어보면 다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역사의 맷돌을 천천히 돌리시는 것 같아도 결국은 하나님의 맷돌에 의하여 세상 역사는 산산이 부스러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이런 일들을 놓고 제가 좀 구약의 어떤 쌩쌩한 예가 좀 없을까 저 구약을 보다가 아 그렇구나! 아마 공감대를 가진 내용이 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엘리야가 바울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영적 전투를 갈멜 산에서 하고 난 다음에, 그 참 대단했지만 그 여자가 한을 품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고 이세벨이 말이에요. 참 독기(毒氣)를 품고 엘리야를 죽이려고 하니까, 엘리야가 어마 뜨거라 깜짝 놀라 가지고 도망을 가버렸어요.

그래 갖고 호렙산의 어느 굴 속에 들어가 버렸어요. 혼자 숨어버렸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는 어떻게 나갈 길이 없는 것 같아요. 자기가 살 길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찾아 오셔갖고 엘리야야 너 어디 있냐?’ ‘엘리야 너 있냐? 네가 어찌하여 홀로 여기 있느냐?’ 열왕기상 19장에 보니까 엘리야가 뭐라고 대답하느냐,

*열왕기상 19:14b,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오직 나만 남았다고 여러분 개인의 역사도 그러고, 우리 민족의 역사도 그러고, 어떨 때는 순간순간 오직 나만 남았다고, 기독교가 수치를 당하고 그리스도인의 수치를 당하는 것 같고, 기독교 정신을 가진 아이들이 공격을 당하는 것 같고 오직 나만 남은 것 같다고, 가정에도 여러분들 가정의 역사가 순탄해야 되는데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마음에 나만 남았다고 저기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는 줄 아세요? 절대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신묘막측한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II. 절대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신묘막측한 말씀을 하신다.

*열왕기상 19:15
15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열왕기상 19:16,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아니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그다음 구절에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그다음에 또 뭐 하냐면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할 것이다. 역사의 흐름 속에 나만 남았다고, 나만 외롭다고, 지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그런 상황 가운데 이방의 통치자를 세워서 하나님의 심판의 막대기 역할을 하게 하고, 하사엘에게,,, 그다음에 북쪽 이스라엘 왕국이 엉망이니까 그 북쪽 이스라엘 왕에는 혁명가 예후를 세워 가지고 악한 아방의 모든 집안을 도륙(屠戮)하게 만들고 싸그리, 싸그리 도륙(屠戮)하게 하고, 그다음에 역사를 이어가도록 엘리사를 세워가지고 하나님의 사람을 계속 세워가게 하고, 엘리야는 이런 이런 일을 생각도 못하고 있는데, 자기 홀로 남았다고 자기 죽는다고 하면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하나님은 아니야, 아람 왕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의 심판자 막대기가 되게 하고, 예후를 시켜서 그 강력한 혁명을 일으키게 하고, 엘리사를 통하여 다음 세대를 세워갈 것이다.

그런데 더 좋은 것이 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열왕기상 1917, 18절에 특별히 18절에 뭐라고 말씀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같이 보겠습니다.

* 열왕기상 19:17~18,
17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끓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할렐루야 하나님 나라 역사의 흐름에는 너무 신묘막측한 것이 있는데, 하사엘도 있고 예후도 있고 엘리사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자리에, 하나님께서 7천 명을 남기셔 가지고 우리 교회로 말하면 7천 기도 용사를 남기셔 하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가게 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인격이 없는 힘과 사건, 어떤 세상의 권력과 이런 것들이 세상을 통치하고 이 세상을 이끌어간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이런 역사의 뒤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요. 하사엘, 시대의 하사엘 시대의 예후, 그걸 그 역할을 누가 할지 모르겠어요.

시대의 엘리사의 역할, 시대에 7천 기도의 용사 역할, 우리는 적어도 우리는 예후도 못 되고, 우리는 엘리사가 못 될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우리는 7천 기도 용사의 역할은 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이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절대 통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해서 눈이 열린 사람들이 분별할 수 있는 역사의 흐름이에요. 오늘은 3.1절 기념주일 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의 3.1절은 3.1운동의 핵심 인물이 누굽니까?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유관순 누나입니다. 유관순 열사입니다. 근데 우리는 그거는 겉으로 드러나는 역사예요.

우선 3.1 운동의 33인이 3.1운동의 독립운동가, 우리 선언문에 우리가 사인한 34명의 민족 대표가 있는데 그중에 얼마가 기독교인이죠? 거의 절반이 절반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에요. 근데 사실은 3.1 운동의 큰 어떤 준비와 어떤 조직과 이런 것들은 사실 기독교인이 대부분 다 했어요. 70% 이상 했을 거예요. 불교나 천도교나 이런 내용은 우리끼리만 하면 그거 하니까, 좀 이렇게 같이 하자고 이렇게 한 건데 사실은 우리가 앞장서 서게 된 것이고, 33인의 아주 그냥 그중에서도 키맨 중에 하나가 누군지 아십니까? 길선주 목사님이세요? 그런 거는 알고나 지납시다. 길선주 목사님이에요. 평양 부흥운동의 그 참 주축 인물이 됐죠.

그 평양 부흥 운동은 1907년도에 그 힘을 가진 것이 겉으로는 19193.1운동이라고 그러지만 하나님 나라 역사의 비밀의 역사의 밑바닥에는요. 평양 부흥 운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곳곳마다 교회가 거점이 된 것이에요. 그리고 유관순 열사가 유관순 누나가 3.1 운동에 정말 아우네의 장터에서 그렇게 만세를 부르다가, 순국을 했지만 사실은 그 뒤에 보면요. 엘리스 샤프라는 캐나다 출신의 선교사님이 32세에 와 가지고 그 남편이 3년 만에 남편 선교사님이 장티푸스로 죽어버렸어요. 그럼 그걸로 자기가 끝내야 될 텐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그 엘리스 선교사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이 어떤 뜻인지를 자기가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이 조선 땅에 펼쳐지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20여 년 동안 1905년부터 20여 년 동안 어떻게 했냐면, 충청도 지역에 특별히 공주의 영명학교를 세워가지고 거기서 초등 교육을 했어요. 그 초등 교육을 받은 사람이 누구냐 하면 유관순이에요. 그리고 거기서 영명학교에서 초등 교육을 받고 난 다음에 그다음에 바로 이화학당의 고등과로 올라갔어요. 지금 하면 중고등학교로 올라간 거죠. 그러니까 3.1운동의 유관순 열사의 뒷배경은 엘리스 샤프라는 선교사의 헌신과 그 선교사를 통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어떤 훈련, 그리고 신학문과 그리고 애국사상이 그 유관순에게 그대로 심겨지게 돼 가지고 그것이 동일이 되어서 오늘 3.1절 예배를 우리까지 드리면서 말씀을 드리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이거 전혀 가르치질 않아요. 세상 역사가들은 전혀 가르치지 않고 그냥 이런 거는 그냥 언급도 안 해요. 변질된 역사관으로 왜곡시키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너무 많아요. 그리고 역사 역사의 역사관의 역사의 눈과 시선에 대한 이 싸움의 전쟁터인데 여기 전쟁터 현장에 대한 교육 현장이에요. 인본주의의 급급한 대학에서 이걸 계속 가르치게 될 때에, 이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는 대학이 아주 그냥 잘못된 오염된 역사관을 배출하는 공장이 되고 있고, 잘못된 역사관을 계속 퍼뜨리는 이 메디아(Media)들이 아주 아주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그런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에요.

따라서 우리는 오늘 우리는 확실히 하나님 나라의 중심이 되는 역사관으로 똘똘 뭉쳐야 되는 것이에요. 우리 아이들을 잘못된 세속 역사관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구원해야 되는 것이에요. 우리 대학부 청년부 우리 아이들 제대로 훈련받아야 되는 것이고 예를 들어서 어제만 하더라도 광화문이다 여의도다 전국에 많이들 모였어요. 아마 광화문 여의도 100만 이상 모였을 거예요. 그런데 100만 명 이상 모였다고 하는 레가시 주요 메디어들이 한 군데 없어요. 이게 지금 그러니까 여러분들께서는 똑바른 역사관의 눈이 열려 있어야 되는 것이에요.

그럼 예를 들어서 100만 명이 모였는데도 메디아들이 다루지도 않는다. 왜 그럴까? 그 배경에는 속이는 영이 역사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 배경에는 좀 거창하게 말하면 사탄 루시퍼가 작동을 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먼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생각했고, 그다음에 우리가 본격적으로 생각할 것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잘못된 역사관을 조장하게 하는 사탄 루시퍼의 전략을 조심해야 되는 것이에요.

오늘 본문에 보니까, 오늘 본문 우리 오늘 14장에 여러분들 12절부터 15절까지 읽었습니다마는 12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오늘 12절 같이 한번 보겠습니다.

*이사야 14:12,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너 아침의 아들 뭐라고 그랬어요? 계명성이다. 계명성이란 말은 새벽 별빛이. 그 말이죠. 그런데 본래 이 계명성 오리지널 계명성이 누구냐? 요한계시록 22장에 보니까,

*요한계시록 22:16,
16 예수는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나 예수는 광명한 새벽별이라 그랬어요. 그런데 이 광명한 새벽 별인 예수님에 대해서 이 하나님에 대해서 이 사탄의 기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루시퍼가 어떻게 되느냐, 오늘 14절에 보니까, 루시퍼에 대해서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 14:14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여기에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루시퍼가 모방자라는 거예요. 모방(模倣)자라는 거예요. 그리고 조금 더 들어가면 모방자일 정도만 아니라, 광명(光明)한 새벽별 이신 예수님의 영광(榮光)을 찬탈(簒奪)하려고 그랬어요. 도둑이요 모방자요 찬탈자였어요. 그런데 도둑이요, 모방자요, 제가 이 내용을 천사장 미가엘이나 루시퍼 얘기를 다 못합니다. 다 못하는데 한 가지 핵심만 하나님이 얘기하세요. 어떻게 루시퍼가 됐나 어떻게 모방자와 찬탈자와 도둑질을 하고 있느냐 왜 그럴까? 그 힘이 그 근원이 뭘까 오늘 루시퍼에 대해서 본문에서 루시퍼에 대해서 루시퍼를 뭐냐 하면, 자기 힘을 의지하는 내가 무엇을 하겠다 내가 뭘 하겠다 자기가 내가 뭘 하겠다. 영어로 아 윌(I will), 아 윌 내가 뭘 하겠다. 그래서 13절에 보니까,

*이사야 14:13,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You said in your heart, "I will ascend to the heavens; I will raise my throne above the stars of God; I will sit enthroned on the mount of assembly, on the utmost heights of Mount Zaphon)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내 자리를 뭐 하리라 높이리라 합니다. 그다음에 내가 북극 지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그다음 14절에 보니까,
*이사야 14:14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가장 높은 구름 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이와 같아지리라. 내가 아윌 아윌, 이 짧은 구절에 아 윌, 내가 뭘 하겠다는 것이 다섯 번 나와요. 다섯 번, 그러니까 우리가 속는 것, 역사에 대해서 속는 것, 하나님의 철저한 주권과 통치에 대해서 속는 것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내가 무엇을 하겠다 아 윌 윌이, 역사 우리 하나님 나라 역사를 속이는 찬탈하고 그다음에 도둑질하는 것이에요. 소위 내가 뭘 그래서 모든 죄와 악과 교만의 뿌리는 내가 무엇을 하겠다는 소위 미이즘(Meism), 우리는 아 윌이 아니라, 히 윌(He Will) 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가 통치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가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영 가족 여러분,
우리가 성도이든 성도 간이든 상관이 없이, 내가 내 운명을 다스린다. 내 삶은 내가 알아서 한다는 것, 여기서 모든 부정적인 것들 어려움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이것이야말로 내가 내 운명을 다스린다는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흐름에 대한 눈을 닫게 하고 역사의 흐름에 대해서 까만 눈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역사에 대한 분별력이 내가 내 자리에서 왕 노릇할 때 생기는 것이에요.

여러분, 개인적으로 내 운명을 내가 스스로 결정한다고 하고, 내 삶을 내가 운영한다고 그러고 내가 알아서 꾸려간다고 하면 겉으로 보면 못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에요. 여러분, 우리는 다시요 아윌이 아니라 히 윌(He Will)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이 될 때는 내 인생의 역사는 끝장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용어를 만들어 봤어요.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이 될 때 내 역사는 끝이다.-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이 아니라, 히 윌(He Will)이 되어야 할 것이에요. 하나님이 내 운명의 주인이 돼야만 하는 것이에요. 여러분 어린아이가 조금만 중2까지, 갑시다. 2, 겁나는 중2, 엄마가 뭐라 말 그러면 엄마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엄마 내일은 내가 알아서 해. 엄마 돈 받으면 나한테 잔소리하지 말라고. 엄마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어린아이가 혹은 중2, 내가 다 알아서 한다고 그러면 엄마가 저하고 싸울 수도 없고 그냥 니가 알아서 하라. 그걸로 그 인생 끝이에요. 걔는 걔가 뭘 알겠어요?

그 세계 가문으로만 끝나니까 그 인생 끝이에요. 세상에 엄마와 어린아이와의 관계하고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거는 상대가 안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아이윌이 아니라 히 윌(He Will)이 되기를 바랍니다. I will이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결과가 너무 비참해 1419절에,

*이사야 14:19,
19 오직 너는 자기 무덤에서 내쫓겼으니 가증한 나무 가지 같고 칼에 찔려 돌 구덩이에 떨어진 주검들에 둘러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
-정말 밟힌 시절이 그냥 시체도 아니에요. 너무 비참한 거야. 그러니까 아윌이야, 결과가 그런데 히 윌(He Will)이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1424절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1424절 이렇게 나와 있어요. 24절에 보니까,

*이사야 14:24,
24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은 나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는 것 자체가 교만이고, 이것은 어둠의 영에 속하는 루시퍼에게 속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런 인간의 실수와 잘못된 행동 뒤에는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역사의 눈, 역사의 분별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이걸 사도 바울이 오죽하면 에베소서 612절 잘 하는 말씀인데 신약의 창으로 해석합니다. 같이 보겠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을 상대함이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우리가 역사를 보는 눈에 있어서 이런 시각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수많은 오류, 어둠, 인본주의, 악함, 수많은 어떤 이 세상 우리가 볼 때 말도 안 되는 저런 일들의 뒷배에는요. 악한 영들의 궤계(詭計)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이에요. 이건 제 얘기가 아니에요.

누가복음 22장에 보면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파는 장면 그 어마어마한 참 안타까운 장면 아닙니까? 거기 보니까 누가복음 223절에 보니까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고 그랬어요.
*누가복음 223,
3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가롯 유다의 범죄 뒤에 악한 형이 있다는 것이에요.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부부가 위선과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사도행전 53절에 뭐라고 얘기하느냐,

*사도행전 5:3,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이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우리가 조심을 하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우리가 믿고 I Will이 아니라 He Will이 되도록 우리의 마음을 기도의 마음으로 모아 갖고 He Will이 될 수 있도록 은혜를 받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I Will의 핵심은 내가 뭘 한다, 내가 뭘 한다. 그런데 히일이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오늘 13장부터 23장 사이에 제가 여러 중요한 내용들은 그중에 또 중요한 내용 하나가 20장에 나타나는 것인데, 거기 보면 하나님께서 He Will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이 이사야에게,,, 뭐라고 보여주시는가 이사야 2023절에 이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이사야 202-3,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니라.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와 예표가 되었느니라.
-이렇게 나와 있어요. 병원 시술 이것저것 다 해도 안 됐던 나잇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종 이사야가 몇 년 동안? 3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徵兆)와 예표(豫表)가 되었느니라.

옛날에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하는 분들은 최춘선 할아버지라고 들어보셨어요. 옛날에 지하철에 맨발로 다니면서 전도하신 분 그분이 왜 맨발로 다니십니까? 할 때에 그때 내용이 이거예요. 3년 동안 이사야가 누굽니까? 왕족입니다. 이사야는 귀족(貴族)입니다. 이사야는 품격(品格) 있는 언어(言語)를 사용한 사람이고, 이 이사야에게서는 범접(犯接)할 수 없는 기품(氣稟)이 흐르는 사람입니다. 이 이사야에게 하나님께서 너 빨가벗고 3년 동안 다니면서,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선포(宣布)하라. 물론 그 당시에 벌거벗었다는 말은 그냥 우리 식으로 팬티 하나만 입고 다녔다 그 말이에요. 이사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어려운 명령이었어요. 사람들이 수근 거리고 사람들이 조롱하고 사람들이 얼마나 얼마나 희덕거리고 조롱(嘲弄)하고 그렇게 해서 했겠어요.

역사 앞에서 하나님의 주권 I Will이 아니라 내가 내 마음대로 하고 그러면 내 근사하게 내 식으로 막 지금 한국 사회에 있는 일어나 수많은 일들 가운데 정말 무신론적 입장에서 폼나게 또 폴리티컬 PC 정치적 올바른 주의를 해 가지고 난리 치고 있잖아요. 멋있게 보이는 거지. 근데 하나님이 뭐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통치에 의하여 너는 벌거 벗고 3년 동안 다녀라. 어떻게 보면 한국 기독교가 모욕을 당하고, 수치를 당하고, 개인적으로 여러분 주님 제대로 섬길 때에 수많은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 이거 다 이사야가 3년 동안 벌거벗고 하나님이 He Will, 하나님이 통치하시는데 너는 벌거벗은 몸으로 순종(順從)하라. 벌거 벗고 다닐 때 무신론자들의 하나님 조롱하는 것들, 이 시대의 애굽과 모압과 바벨론의 모략과 공격들, 이사야처럼 모욕(侮辱)과 수치(羞恥)를 당하는 그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거예요. 그래 있는데 이제 여기에 끝이 아니라 진짜 중요한 것이 있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아윌(I will)이 아니라 희율(He Will)이 되고, 하나님 앞에서 이걸 순종할 때에 다시 3절 뭐라고 말씀하는가? 시작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다음에 뭐예요?

*이사야 20:3,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와 예표가 되었느니라.
-나의 종,,, 이사야가 3년 동안 됐습니다. 누구의 종이라고요? 나의 종, 이거는 어마어마한 칭호입니다 어마어마한 침입입니다. 구약에요. 하나님께서 아주 노골적으로 니가 나의 종이다. 나의 종이라고 일컫는 사람은 5명밖에 없어요. 아브라함 모세가 나의 종이다. 여호수아가 나의 종이다. 그리고 다윗 왕이 나의 종이다. 그리고 이사야가 나의 종이다. 이거는 그 하나님 나라 전체 역사에서 너무나 특별한 하나님께서 부여하시고 쓰시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포인트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고 아윌(I will)이 아니라 희율He Will)이 되어서, 하나님의 종이 되면 역사를 분별하는 역사의 종이 될 것입니다.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이여,
여러분의 가정마다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가정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고 우리 가정에 희율이 되게 하시고 주님 어떨 때는 이거 지키는 것 때문에 내가 부끄럽고 힘든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거 잘 감당하게 될 때에 여러분들의 섬김을 통하여 여러분들의 가정에서는 여러분들이 역사의 종이 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이 수많은 일들 앞에, 지금 일어나는 수많은 이 대한민국의 격변 속에서도 주여,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믿습니다. 이 일을 통하여 신성한 과정을 가지고 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이걸 생각하고 우리가 헤일 하나님의 종이 될 때에, 우리는 역사의 종이 될 것이고 역사의 종이 역사의 종이 되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를 역사의 주인처럼 일하도록 역할을 만들어 주실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역사의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종 역사의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가정도 이 민족도 하나님께서 놀랍게 기적(奇蹟) 같은 방향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설교에 잘 안 하지만 오늘은 중요한 거니까 하나님의 종 역사의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 번 서로 격려함 합시다. 모두가 다 한 번 더 하나님의 종 역사의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의 종, 역사의 종,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서 마음을 드리면 역사의 주인처럼 일하도록 만들어 주실 것이에요. 그리고 아까 말한 대로 시티 오브 가드(City of God), 하나님의 도성, 어거스틴의 역사의 역사의 시티 오브 가드, 하나님의 도성을 우리가 매일매일 써내도록 만들 겁니다. 저는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가지고 EHK라는 역사란 무엇인가 에드워드 카라는 유명한 역사를 책을 쓰고 그분은 이렇게

*‘현재의 눈을 가지고 과거를 해석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애드워드 카라-
-역사가 무엇인가? 역사는 현재 현재의 눈을 가지고 과거를 해석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 그랬어요.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 오늘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고, 하나님이 통치한다는 건 이걸 가지고, 우리가 이 과거를 해석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준비 하십시다.

저는 제 인생의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저는 인생의 역사에 저도 엎어질 만한 일들, 수많은 부끄러운 일들, 힘든 일들 많이 있을 수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저에게 큰 약속의 말씀이 되었던 것이 뭐냐 하면 시편 427절이었어요.

*시편 42:7,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인생의 역사의 바다에 우리 인생의 조각배 같은 배를 띄우는 겁니다. 띄워서 항해를 하다 보면 수많은 파고를 가지고 엎어질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고, 그다음에 그냥 완전히 그냥 파산할 수도 있고 이런 수많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요.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 도와주십시오. 저는 마음속에 하나님 아버지 삶이 메마르고 힘든 과정이 많이 있지만, 주의 은혜의 파도와 주의 물결이 저의 생애를 휩쓸고 절대 주권자로서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앞으로 인생의 혼란스럽고 절망스러운 모든 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파도와 물결이 나를 완전히 압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우리 성도들 우리의 믿음과 인생의 조각배가 이렇게 왔다 갔다. 하지만, 전복되지 않도록 하나님이 하나님의 압도하는 그런 하나님의 파도와 물결이 여러분들을 덮어주시기를 바라고, 대한민국의 배가 대한민국이라는 이 배가 파도 속에서 전복되지 아니하고, 대한민국에게 주신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의 사명과 대한민국이 은혜의 항구(港口)로 도달(到達)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대한민국이라는 이 배를 이 파도 속에서도 하나님이 압도하는 물결로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제가 좀 찬송도 하고 싶지만 제가 오늘 찬송은 좀 나중에 할 것이고 일단 오늘 기도할 터인데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정말 기도할 때 성도들이 마음을 다해 기도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역사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우리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고, 하나님이 이 민족의 주인이 되어 주시옵소서 주여 대한민국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그 가운데는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고, 그다음에 우리 가정의 주인 되심을 선포하고 I will이 아니라 He Will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마음으로 주여, 대한민국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오늘 3.1절인데 두 번 크게 외치고 합심해서 한번 기도하겠습니다.

요약
이 민족의 혼란 위에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나타나게 하셔서, 모든 악한 꾀가 산산이 깨어지고 부서지는 역사의 대반전'이 일어나기를 간구한다. I willHe will의 영적 전투 현장'에서, 우리는 He Will의 온전히 하나님의 역사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파도와 물결이 나의 인생과 우리 민족'을 압도하는 기적을 맛보아야 한다. 주가 하심을 믿고, 우리는 사랑의교회와 사랑글로벌아카데미(SaGA)가 물 떠온 하인의 그림자의 헌신으로 세계복음주의연맹 서울 총회(10.27)를 섬길 때,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부흥의 새 차원'으로 비상하는 주님의 귀한 인생이 되어야 한다.

1.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성경 이사야 13~23장을 통해 바벨론, 애굽, 두로 등 여러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을 설명한다. 이는 단순한 과거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세상의 혼란과 죄악에 대한 경고로 해석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이 러시아, 중국, 일본의 영향 속에서도 살아남은 것은 하나님의 주권 덕분이며, 한국교회의 새벽기도가 나라를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인간의 역사.
역사는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성 어거스틴의 신국론(City of God)을 통해 알 수 있다. 세상의 역사는 표면적으로는 인간의 이념과 정치로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정치적 격변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진행되는 과정이며, 믿음의 사람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3. 사탄의 전략과 역사적 분별력.
이사야 14장에서 **루시퍼(사탄)가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하려 했다는 점을 들어, 잘못된 역사관이 사탄의 전략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역사를 인간 중심으로 보는 무신론적, 인본주의적 사고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왜곡하며, 우리는 이러한 잘못된 역사 해석을 분별해야 한다.

4. 하나님의 종이 되어 역사의 도구가 되라.
이사야 선지자가 3년 동안 벗은 몸으로 다니며 순종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희생할 때 진정한 주님의 종이 될 수 있다. 과거 3.1운동의 배경에도 기독교인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으며,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아야 한다.

5. 결론: I Will이 아닌 He Will!!!~~
루시퍼는 "내가 하겠다"(I will) 라고 외쳤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다"(He will) 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가정과 민족이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대한민국을 은혜의 항구로 인도하실 것이기에,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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