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주후 2024년 7월 21일)
제목: “임재, 항상 그곳에 계신 하나님”(1,2부), “은혜 속으로”(3,4부)
말씀: 에스겔 48:35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이선복 부목사님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
 
설교자:
-김학진 목사님(1,2부-“임재, 항상 그곳에 계신 하나님”),
-윤대혁 목사님(3,4부-“은혜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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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48:35,
35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베드로후서 1:2-4,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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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진 목사님(1,2부-“임재, 항상 그곳에 계신 하나님”),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저에게 사랑의 교회는 마음의 영적 고향 갈릴리와 같은 곳입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돌아오면 마음의 위로가 있고, 포근한 사랑과 격려가 있는 친정집과도 같습니다. 제가 200년부터 2009년까지 이곳 사랑의 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었던 시간은 저게 가장 큰 영광의 시간이었습니다. 특별히 오늘 여러분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나눌 수 있다. 라는 것이 저에게는 너무나 이는 너무나 큰 영광이고 기쁨입니다.
 
이 귀한 강단을 허락해 주신 사랑하고 존경하는 우리 오정현 담임 목사님과 당회, 그리고 교회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저는 제가 섬기고 있는 뉴욕 장르교회에서 벌써 7년차가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배려를 해주셔서 2개월 좀 넘는 시간을 안식월로 이렇게 허락해 주셔서 잠시 한국에 나오게 됐습니다.
 
하나님 이 기간 동안에 혹 하나님께서 말씀을 증거 할 수 있는 영광의 시간을 주신다면 무슨 말씀을 전할까요? 그런 마음으로 기도를 했는데요. 하나님께서 제 마음속에 주신 감동의 말씀이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함께 읽었던 이 에스겔서가 가장 마지막 절 말씀이었습니다. 특별히 저에게는 개인적으로 지난 2~3개월 동안 저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었던 그 약속의 말씀이었거든요. 바라기는 오늘 전하는 저나, 듣는 우리 서울 사랑에게 모든 성도님들, 제가 받았던 하늘의 위로와 그 평안보다 더 큰 은혜를 받는 이 시간 그리고 돌아가신 시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이 땅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언제가 가장 힘드세요? 언제가 가장 힘든 시간이십니까? 저는 하나님의 임재성에 대해서 의심이 생기는 그런 시간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하나님 분명히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믿는데 그런데 이런 질문이 생기는 것이죠. 과연 하나님이 정말 나와 함께 계시는가? 라고 하는 에 그 정도로 참 아린 가슴, 아픈 가슴, 긴 터널을 지나가는 듯한 그런 시간이 가장 힘든 시간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힘들어하는 것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서 별로 나와 힘든 것과 연결시키지 않죠. 그렇지만은 하나님을 정말로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이 부분이 정말 힘든 부분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 우리는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정말로 선하신 하나님이라는 것, 믿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라는 것을 우리가 믿죠. 그런데 왜? 그런데 내게 왜? 또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시간들이 주어지는 것일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어떻게 저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기는 것일까? 등등, 이런 시간들이 실질적으로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참으로 힘든 시간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참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오늘 이 본문 말씀은 실은 에스겔서의 결론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 이러한 아린 질문들에 대한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통찰(通察)력이 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귀한 믿음의 에스겔의 신앙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결론이 될 때에, 우리의 모든 질문들이 주안에서 평안함으로 해결될 줄로 믿는 것입니다. 자, 오늘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면은 이런 말씀 아닙니까?
 
*에스겔 48:35,
35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이 말씀을 조금 더 이해하기가 쉬운 우리 현대인 성경 버전으로 보게 되면 이렇게 번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의 전체 둘레는 약9.5킬로미터이다. 사람들은 그 성을 여호와께서 계시는, 여호와께서 계시는 성이라 부를 것이다. 말씀했습니다. 에스겔서는 전체 48장이나 되는 예언서(豫言書)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말씀 아까 말씀드린 거와 같이 가장 마지막 절 말씀이고 결론의 말씀입니다. 에스겔 선지자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이 마지막 말씀은 긴 그의 눈물에 신앙의 여정(旅程)을 결론짓는 그리고 결론으로 신앙 고백, 귀한 말씀인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 삼마’라고 하는 이 하나님의 귀하신 그 이름을 기록하면서 에스겔서를 마무리합니다. ‘여호와 삼마’ 성경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약속의 이름이죠. 여러분 ‘삼마’라고 하는 이 뜻은 영어로 말하면 데얼(There), ‘그곳’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로 삼마는 그곳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직역한다면, ‘그곳에 계시는 하나님’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이 임재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것이죠. 그곳에 계시는 하나님, 이렇게 어 제목을 다룬 곳입니다. 여러분 이 에스겔 선지자가 성령의 감동으로 에스겔서를 기록하고 특별히 마지막 부분에 있어서 그의 신앙의 고백 결론으로 이 말씀을 하는 것에 대한 무게라고 할까요?
 
그 무게를 우리가 좀 더 알려면은 이 에스겔 선지자라고 하는 개인에 대한 뒷배경, 그거 어떠한 역사 어떤 배경 가운데에 있었는가, 또 그런 부분들을 우리가 좀 알 때에 에 좀 더 우리가 아 이 말씀의 은혜의 무게를 알 수 있는 것인데, 자 성경은 실은 이 에스겔이라고 하는 개인에 대해서 많이 기록돼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에스겔서, 여러분 처음 등장하는 1장 첫 구절인 1절부터 3절까지를 보게 되면은, 어느 정도 아 이런 시기에 에스겔 선지자가 존재했고, 아 이런 일을 그가 당했고, 아 그는 이러한 개인적인 뒤 배경에서 자라났구나, 아 그래서 이러이러한 사명과 소명이 있었던 자였구나, 라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자 우리 그러면은 에스겔서 우리 1장으로 한번 돌아가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읽어드릴게요. 1절에 보니깐,
 
*에스겔 1:1,
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서른째 해, 넷째, 딸 초닷새해라고 시작을 합니다. 자 여기서 30째 해라고 하는 것은 에스겔 선지자의 나이를 말하는 것이에요. 나이, 에이즈 오브 더 리브(Age of the live) 그러니까는 그가 30세 되던 해에, 이렇게 여러분께서 이해하시면 쉽겠습니다. 그가 머물었던 곳입니다. 내가 ‘그 발 강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발 강가는 바벨론 어느 한 외지에 있는 강의 이름입니다.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그러니까 너무나 쉽죠. 에스겔이 바벨론 포로가 되었어 그발 강가라고 하는 그곳에 이렇게 거하게 된 노예(奴隸)로 거하게 된 그때를 말하는 그의 나이가 그때 30세였다. 이렇게 우리는 볼 수가 있는 것이죠. 조금 더 역사적인 배경을 2절에 말씀합니다.
 
*에스겔 1:2,
2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유다 왕의 이름이죠. 여호와 긴 왕이 사로잡힌 지 5년 그달 처닷새라. 여호와긴 왕이 정확하게 BC 597년에 에스겔과 많은 유다 백성들이 바빌론에 의해 가지고 포로로 잡혀가서 그 발 강가로 끌려가는 것이죠. 그래서 여호와긴 왕이 잡혀서 함께 당신도 이 그발 강가로 노예로 끌려온 지 5년이 지난 해였다. 5년의 지난해였다. 그러니까 그가 25살 정도에 포로로 잡혀 와서, 5년 정도 그곳에 지내면서 30세가 되던 해에 어떤 일이 벌어졌다고 그러는 것이죠.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하나님의 놀라운 살아있는 말씀이 하늘이 열리면서, 그에게 소명과 사명과 비전과 예언의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자 3절을 보게 되면,
 
*에스겔 1:3,
3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그의 뒤 배경에 대해서 어떻게 자라난 패밀리 백 그라운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대아 땅 그 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그러니까 제사장 가정 레위 지파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제사장 부시라고 하는 분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라고 말씀하고 이 당시 비슷한 연대였죠. 이 남유다 이스라엘 가운데 미래가 촉망이 되는 두 청년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다니엘’이라고 하는 청년이었어요. 다니엘은 에스겔과 받은 소명과 사명의 결이 좀 다릅니다. 둘 다 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말 귀한 믿음의 청년들이었지만 다니엘은 제사상 쪽이 아니죠. 다니엘은 신앙이 정말 좋았지마는 다니엘은 정치가 쪽입니다.
 
요즘 말로 말하면, 아주 탁월한 평신도로서 이 정치 계열의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는 지혜로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애하는 그러한 능력 있고 탁월한 자였었어요. 에 그래서 그는 느브갓네살 왕이 있는 왕궁 쪽으로 아 그가 인제 잡혀가게 되고 이 에스겔은 이제 제사장 결이에요. 그러니까는 미래의 촉망이 되는 청년이었는데, 이 사람은 우리말로 말하면, 미래의 좋은 목사 감이에요. 저 목사감, 그러니까 이 교회와 세상 얼마나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나라 차원에서 볼 때에 이렇게 참 촉망(囑望)이 되는 기대가 되는 그러한 청년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이 에스겔이에요.
 
우리는 다니엘 하면은 워낙 다니엘 12장을 통해서 주일학교 잘 다니신 분들이라면 얼마나 스펙티컬하고 자꾸 용어가 나옵니다. 죄송합니다. 스펙테컬하고, 이 표현이 이것밖에 안 돼요. 제가 예 얼마나 우리 에피컬한 그런 스토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다니엘 하면은 아 이런, 이런 사건들을 통해서 다니엘이 어떤 인물인 것을 알지만은 에스겔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적어도 우리가 이 정도만 보더라도 에스겔이 참 귀한 청년이었구나, 미래의 이스라엘의 영적인 모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얼마나 중요해요. 이런 모든 영적 일에 참 준비된 자였구나, 생각할 수가 있는 것이죠.
 
민수기 4장에 보게 되면, 레위지파에서 자라난 제사장 가정에 자라난 자녀들, 특별히 아들들은 어렸을 때부터 이제 어깨 너머로 아버지가 하는 이 성전에서 봉사한 모든 일들을 보고 배웁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어떻게 섬겼는지에 대해서, 그런 어떤 영적인 그런 가문 가운데에 레기스가 있어요. 그 에스겔도 어렸을 때부터 솔로몬의 영광스러운 그 성전 가운데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아버지와 같이, 할아버지와 같이, 거룩한 의복을 입고 하나님을 섬기겠구나, 이것이 내가 받은 소명이고 사명이구나, 그런 떨리는 가슴, 두근거리는 가슴, 어떻게 보면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 어렸을 때부터 잘 자랐을 거예요. 훌륭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격려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보면서 아 이런, 이런 부분들은 하나님 앞에 내가 더 정결하게 나아가야 되겠구나. 그리고 이 민수기 4장에 또 보게 되면은 25살이 될 때부터 우리말로 말하면 전도사가 될 수가 있어요. 거룩한 의복을 입고, 정으로서는 아니지만, 부로소 성전을 섬길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30세가 되면은 이제는 정식으로 정이 되어서 제사장 모든 역할들을 감당할 수 있는 준비된 자로 사역을 하기 시작한 것이죠. 목사가 되는 것이죠. 당연히 목사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이제 25살,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전을 위해서 내가 사역을 할 수 있겠구나. 라고 하는 그 기대감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립니다. 그의 순수하고 맑은 거룩한 그의 눈빛 눈에서 보여주는 사건들은 그렇게 영광스러웠던 솔로몬의 전이 불에 타고, 거룩한 괴물들이 짐승과 같은 저 바빌론의 고악스러운 손길에 의해서 다 빼앗기고, 허리 큰 하나님의 백성들이 죽어 나가고, 이런 비참한 일들을 에스겔 순수한 그 25살에 목도(目睹)하게 된 거예요. 현실은 여호와긴 왕과 함께 잡혀서 그 발 강가로 던져지게 됩니다.
 
그렇게 1년, 2년, 3년, 4년, 5년 서러운 시간들을 보내는 것이죠. 그 당시 여러분 이 시편 137편 1절과 몇 구절을 보게 되면은 참 우리가 아 좀 이렇겠구나, 서럽겠구나. 라고 하는 그 마음을 느낄 수가 있죠.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때 그 당시에 상황의 모습이며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노래를 청하며, 우릴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라. 여러분 상상이 됩니까? 야 너희들 히브리 찬송가 있잖아. 18번 불러봐 당신들의 기쁨을 위해서 술에 만취가 되어, 농락하는 그 어조로 자신들의 기쁨을 위하여 찬성을 부르래요.
 
저와 여러분이 그 상황 속에 누워 있었다면은 마음이 어땠을까요? 그래서 4절에 보니깐 우리가 이방 땅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좀 아르덴티파이(Identityify)가 되죠.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열어주시고 에스겔에게 귀한 말씀으로 함께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이 임하기 전까지는 에스겔의 마음 깊은 곳에 아린 마음속에 한 가지 질문이 있었을 것입니다. 여호와 삼마 하나님은 과연 살아 계시는가? 5년 전 트라우마와 같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모든 눈을 감을 때마다 나임 미호와 같이 계속 나타나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그 일들 가운데에, 여호와 삼마, 하나님은 과연 그곳에 계셨는가? 내가 믿는 하나님, 내가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 분명히 나를 사랑하사 집합 가운데 태어나게 해주시고 비전을 주시고 소명을 주시고 사명을 주셔서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하는 나에게, 단 한 번도 성전을 제대로 섬길 수 있는 기회를 다 앗아 가버린 그 사건을 놓고 과연 하나님은 그때 그곳에 계셨는가? 질문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 그 하나님은 지금 나와 함께 계시는가? 도대체 나에게는 어떠한 영적 존재 가치가 한 가닥이라도 남아있는가? 나는 뭐 하면서 사는 것이지, 뭘 위해서 살아야 되는 것이지. 여러분 좀 느껴지나요? 저는 이 말씀 북상하면서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은혜를 많이 받았어요. 바로 그때에, 하나님이 하늘의 문을 열어주시고 권능의 말씀으로 ‘나 살아있다.’ 약속에 미래에 영광스러운 회복의 비전에 계시의 말씀을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가 보았던 여러 환상들 예언의 말씀들이 있지만 때로는 왜 심판을 받아야 되는지, 다 사랑의 음성이죠.
 
특별히 그가 보았던 이 환상 중에 분명한 귀한 환상은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복되는 것이죠. 그리고 성전 이 무너진 성전이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전으로 회복이 되는 그 놀라운 비전을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주신 것입니다. 마른 뼈와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 두 손을 다 늘어뜨리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누워 있고 자빠져 있고 아무 힘도 발휘 못하는 과연 저들이 살겠는가, 인자야 저들이 살아날 수 있겠는가, 하늘의 생기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심령 속에 불어 들어가죠. 힘을 얻고 강력한 하나님의 군대로, 일어서는 환상을 보았어요.
 
그리고 그 성전 가운데에 성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와 같은 그 물들이 범람(汎濫)하고 범람해서 47장에 나오죠. 발목에 찼다가 무릎에 찼다가 허리에 찼다가 도저히 헤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성전에만 머무는 것이 이것이 성전 밖으로 흘러가서 가는 흘러가는 곳곳마다, 모든 생물이 살아나고 흘러가는 곳곳마다 열매를 맺고 흘러가는 곳곳마다, 가는 곳곳마다 물이 바다 덮음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살아나는 놀라운 이 회복의 영광을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이 일이 이루어졌을까요? 안 이루어졌을까요? 이루어졌죠. 누가 오시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므로 이루어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우리가 갈 천국을 가지고 오신 것이 아니라, 물론 구원을 통해서 죽음은 천국까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구약에서 말쿠트라고 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이 바슐레라고 하는 신약에서의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으로, 예수님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의 왕으로서 오신 것입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의 삶에 왕이 되어 주시고 주인이 되시므로 말미암아 내 삶 자체가 어떤 상황이든지 간에 상관없이 이미 천국이 되는 놀라운 은혜를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의 성취로 예수님이 오신 것이죠.
 
그래서 이 구약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놓고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이름을 뭐라구요?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왜 임마누엘이라고 할까요? 여호와 삼마, 하나님의 약속에 성취,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실체고, 보고 만지고 듣고 우리의 모든 아픔, 고난, 배고픔, 육신의 질병, 이 땅에서 겪는 모든 억울함, 거절감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이 홀로 다 담당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그래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죠. 파라클라이토스 파라 곁에 내재하셨어요.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로, 절대로 떠나지 아니하시는 그 성령님이 위로자가 되어 주시고, 그 성령님이 우리에게 상담가가 되어 주시고, 흔들릴 때마다 능력이 되어 주셔서, 내가 너와 함께한다. 함께한다. 함께함을 증거 해주고 함께함이 실체가 되도록 성령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내 교회를 세워오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가 없는 물론 우리의 육신의 생명은 순교를 통해서도 죽을 수가 있고, 암에 걸려서 우리가 일찍 세상을 떠날 수 있지만, 우리의 영혼은 절대로, 절대로 뺏어갈 수가 없는 그러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신앙이 저와 여러분의 어떤 상황 가운데서 결론이 되는 믿음의 고백 신앙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때, 그때도 계셨습니다. 지금도 계시고 영원토록 함께 계십니다. 믿으시면 안면해주십시오. 현실은 어때요? 절대로 쉽지가 않죠. 예 우리 다 믿지만 현실은 쉽지가 않습니다. 제가 1984년도에 전도사가 됐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캠퍼스 사역하고 열심히 달려와서 달려와서 달려와서 올해가 몇 년도죠 2024년인가 몇 년 됐습니까? 40년이 됐어요.
 
저도 나름 주의 종으로 헌신해서 40년 됐어요. 살기 점점 갈수록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어떻게 이렇게 잘하세요. 왜냐하면,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기 때문에 감당하라고, 감당하라고 감당을 주시는 십자가 더 무겁구나, 무겁구나 하는 것을 많이 깨닫습니다. 아무튼 40년 동안 달려오면서 깨달은 진리가 하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을 만났거든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죠. 더군다나 서울 사랑의 교회의 10년 정도 사역하면서 얼마나 많은 분들을 만났고, 저의 전도사 사역부터 우리 학생들 지금은 다 어른들이 되고, 예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야 뒷문으로 들어가면 기가 막힌 기도 제목이 없는 가정에 단 한 가정도 없구나!!! 라고 하는 것이에요. 뭐 저를 포함해서 모두가 다 그렇습니다. 저도 오늘 예배 바로 오기 전에 너무나 들으면 안 되는 소식을 또 가정 가운데 들어서 걱정하더라고. 설교하는 데 지장이 될까 봐, 바로 오늘 아침까지도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현실이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현실은 쉽지 않겠지만, 이 신앙이 절대로 저와 여러분의 결론이 되는 여호와 삼마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하는 것입니다.
 
1956년이요. 미국 전역, 특별히 시카고가 가장 핫 이슈가 되었죠. 미국 전역에 큰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짐 엘리엇이라고 하는 아주 신실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준비된 청년이었죠. 그와 그의 베스트 프렌즈, 하나님의 나라에 100프로 헌신을 하고 이 4명이 전체 5명이 에콰도르라고 하는 여러분 잘 아시죠? 이 내용 아오카 족속에게 미전도 족속에게 이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너무나 많은 시간 동안 준비를 하고, 기도로 그리고 그들에게 나아갔던 자들이었어요. 이미 잘 하시는 대로 그들의 경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그들에 의해 가지고 비참하게 창에 찔려 단 한 마디도, 단 한 번도, 한순간도, 복음을 전하지 못한 채, 비참하게 창에 찔려 여기저기 5명의 전체 다 죽게 된, 이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언네세서리 웨이스트다. 얼마나 불필요한 낭비인가? 비아냥 하고, 시카고 이 뉴스 페이퍼 헤드라인에는 그렇게 저희들의 무모한 선교를 비판하는 기사의 내용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에 하나님 의심하게 된 것이죠.
 
그럴 만한 것이 다른 친구들도 너무나 탁월한 친구들이었지만, 특별히 짐 엘리엇이라고 하는 이 친구는 재능도 많고, 은사도 많고, 탁월한 친구들이었어요. 아 짐 앨리엇 친구는 위튼 명문대학에서 수석으로 공부를 했었고, 또 수석으로 졸업한 친구였어요. 탁월한 연설가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고 경외하는 그런 청년이었어요. 그가 연설을 하면은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그가 살아 있었더라면 빌리그레함을 능가하는 최고의 전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할 정도로,, 그러니까 정신적으로도 육신적으로 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레슬링 스포츠가 굉장히 어렵거든요. 레슬링, 강인한 사람이어야지만 감당하는데 이 디비전 챔피언까지 갔던 친구였어요. 레슬링으로서, 얼마나 참 감동 있게 글을 잘 썼는지, 지금도 그가 쓴 글들이 이 파블릿 시대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야 도대체 젊은 이 친구가 어떻게 이렇게 깊은 영성을 가지고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쓸 수 있을까? 그의 저널을 보고 다들 놀래요. 이랬던 짐 엘리엇, 미래가 촉망이 되는 짐 앨리엇, 그리고 그의 4명의 친구들 단 한 번도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저희들이 비참하게 죽어난 것이고. 그러니깐 언 내세서리 웨이스트다 그 5명의 얼굴을 한번 보시겠어요. 제가 사진 카톡을 준비했는데 나오죠? 예 라지얼 유 더 리온 페이트 플레이미 가운데 짐 엘리엇, 네이트 세인트 또 네이트 세인트 간증했어요. 나중에 애드 맥컬리 다 훌륭한 친구들 인상들 좋죠? 예 저 5명이었습니다. 내려주시죠. 그들은 총들이 있었어요. 죽는 순간에까지도 단 한 명도 총을 잡고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반항하지도 않고 죽어나간 것이에요. 근데 가장 좀 힘들었던 부분은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이 사건을 해석하느냐에 있었어요. 문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의문을 품었으며, 어떤 의문이요. 네, ‘여호와 삼마,’ 하나님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그 자리에 계셨는가? 계셨더라면 또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선하신 하나님이라면, 분명히 저희들을 사랑하는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저렇게 비참하게 단 한순간도 복음을 전하지 못한 채 죽어가도록 무능하게 내버려 둘 수가 있는가? 이 여호와 삼마, 하나님에 대한 의문이었어요. 그리고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믿어봤자 소용없어. 저런 무능한 하나님이라면 믿어 봤자 소용없어. 나가 내가 힘들어하는 거와 상관없는 하나님이야. 이러한 회의적인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이 모든 정황을 놓고 남편이 창에 찔려서 고통 가운데에 죽어갔던 그 아픔보다 더 가슴을 도려내듯 아파하는 한 여인이 있었는데, 그분이 바로 이 짐 엘리엇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엘리엇이라고 하는 신앙이 좋은 아내였어요. 그에게는 한 살 난 딸이 있었어요. 원어 웨이스트, 네세서리 웨이스트, 여호와 삼마 하나님, 이 부분에 대해서 이 여인이 이렇게 그대로 기사화합니다. 통역 번역한다면은 얼마나 불필요한 낭비라며 말씀을 삼가십시오. 낭비라니요. 내 남편의 죽음은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전 생애를 이것을 위해 준비했던 사람입니다. 바로 이 시간을 위해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그 다음엔 너무나 귀한 신학적이고도 성경적인 하나님 나라 차원에서 이 말을 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사명 그 책임을 수행하고 생애 목표를 달성하고 죽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너무나 귀한 말씀이에요.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느냐,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분명한 사명을 가지고 썩어 없어지는 긴 인생이 아니라, 짧더라도 닳아 없어지는 그 인생을 담아요. 행복한 사람이라고,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지죠. 성령의 감동으로 이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간호사 훈련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아오카 부족에게 가기 위한 것이었어요. 네이트 세인트, 아내와 친척들 누이 뭐 이렇게 다 갈 수 있는 사람들 모아서 그 아오카 부족으로 이 여인들이 들어갑니다. 2년 후에 들어갑니다. 다행히 아오카 부족은 남자를 죽이지, 여자는 건드리지 않는 부족이었습니다. 정성껏, 정성껏, 남편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주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런 사랑 복음 십자가의 희생과 정신을 가지고 저희들을 정성껏 돌보고 섬깁니다. 그렇게 5년을 섬기죠. 그리고 이제 일단 미국으로 나오게 되는 그 순간 추장이 묻습니다. 도대체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당신들은 누구시길래, 이렇게 와서 지난 5년 동안 이렇게 희생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줘서 그때 엘리자베스 엘리엇이 말을 합니다. ‘저희는 5년 전에 이 강가에서 비참하게 죽은 5명의 미국 사람들의 아내, 남편이 전하기 원했던 바로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섬김으로 한 것뿐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추장의 마음에 감동이 옵니다. 저도 그 미전도 종족에서 추장 이런 비슷한 복음을 전하고 그랬었는데요. 성령의 감동 준비된 추장은 하나님의 때,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세례를 받습니다. 추장이 예수님 영접 세례 받으면 모든 부족 사람들이 받아야 돼요. 오인가 뭔가 안 받으면 죽어 그러면 죽어요. 예, 그러면 다들 겁나서 다 예수 믿고 세례를 받아 할렐루야!!~ 그다음에 역사들이 일어났는데 비슷한 케이스가 일어난 것이죠.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께서 놀라운 복음의 역사를 그때부터 하기 시작하는데, 잘 알죠?짐 엘리엇과 친구들을 죽였던 5명의 아오카 부족 사람들, 4명이 목사가 되고, 한 명의 전도자가 되죠. 그래서 교회를 세우고, 특별히 네이트 세인트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샘이죠. 샘 세인트 한번 사진을 보여주시죠. 지금 저기에 나오는 이 민카이라고 하는 아오카 목사예요. 저분은 누구냐 바로 이 네이트 세인트의 아들이거든요. 저분이 샘 사무엘 세인트인데 그 스티브죠 스티브 세인트의 아버지인 네이트 세인트를 죽인 사람이에요. 죽인 사람이 저렇게 목사가 돼서 나중에 아들도 그곳에 자랄 때의 세례를 베풀고, 그리고 동생인 이 캣디도 강가에서 세례를 베푸는 너무나 훌륭한 목사가 된 것입니다. 내려주시죠.
 
엘리자벳 엘리엇도 책을 잘 썼죠 ‘고통은 헛되지 않아요.’라고 하는 이 책자가 있습니다. 식스 체프트로 돼있는 책잔데, 제 아내가 지난 4개월 전부터 이 책을 붙들고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어요. 저도 함께 읽었어요. 그리고 저희들은 인제 북클럽 그래 가지고 신앙 서적 읽기, 나이 드신 권사님도 상관없이 인생이 힘드신 분들 같이 함께 이 책부터 매주 읽으면서 울음바다가 되고, 큰 은혜가 임했어요. 이 엘리자베스 엘리엇이 고통에 대해서 너무나 잘 썼고, 이 여인의 삶은 계속해서 어려운 일이 있었거든요. 거기에 보게 되면은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이렇게 기록을 했어요. 라틴어를 공부한 사람이라면은 라틴어에서 CRUX, 라고 하는 이 단어가 핵심이라는 단어이고, 이것이 곧 플러스 CROSS, 십자가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우리 모든 고통에 대한 질문의 십자가 위에서만 우리는 고통과 사랑의 모순을 녹여낼 수 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절대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 계속 파도와 같이 밀려올 때에 이 여인은 또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내 삶이 영원하신 팔에 안겨 있다고 믿든가, 우연에 달려 있다고 믿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중간 지점은 없다.’ 이것은 팀 켈론 목사님의 고통에 대해서 얘기할 때 말씀하는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거죠. 그분도 고통은 하나님과 가까워지거나, 고통은 또 멀어지게 하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라고 하는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에스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강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힌 이 에스겔의 삶 가운데 무엇이 그로 하여금 강하게 하고, 결국 끝에 모든 트라우마, 모든 아픈 고통을 위해서 결국은 의심치 않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결론을 낼 수가 있을까요? 오직 하나님의 약속에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믿음이 되고, 미래의 영광이 이미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를 가지고 오신 예수 안에서 그분이 나의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시고, 통치할 때에 우리는 비로소 여호와 삼마 하나님, 나와 항상 함께하신 하나님을 의심치 않고, 힘을 얻고 미래의 영광이 지금의 나에게 힘과 평안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말씀을 이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실은 한 3~4개월 동안 많이 힘들었어요. 개인적으로도 많이 힘들었어요. 목회 적으로 힘든 것은 얘기를 안 하고 정말 힘들었어요. 근데 제가 개인적으로 힘든 이야기를 뉴욕 장로교에서 여러분 나 너무 이렇게 말하는 목사는 미성숙한 목사죠. 절대로 제 자존심이 목사라고는 자존심 허락 주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래요. 힘든 성도들 이런저런 어려움 있는 성도를 위해서 기도해 줘야죠. 목사는 힘든 척 해서도 안 되고, 힘들어서도 안 되지만 힘들면 어떡해, 참 힘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친정집이잖아요. 여기가 예 친정이니까. 에 말을 좀 할 수가 있는 것이죠. 그치만 뭐 개인적인 왜 힘들었고, 정말 힘들었어요. 구체적인 말씀을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네 정말 힘들었어요. 쉽게 말씀드린다면 프라우드 그 스캠 당해 가지고 보이스피싱을 좀 아니 은행에 다 털렸어요. 예 놀라지 마세요. 얼마 없어요. 예 그렇지만 다 털렸어요. 얼마 없는 사람이 털린 거 되게 아픕니다.
 

♣요약

그것은 그것과 같이 평화의 터라는 의미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 우지 않고 원래의 의미인 `여호와삼마` 즉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라는 의미로 불리 우고 있다. 이것은 다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포로들은 돌아온 후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하시고, 자기들 중에 거하신다는 확실한 증표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복음 교회도 이와 같이 그 안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데, 이전에 임재 하시던 것처럼 쉐키나로서가 아니라, 그의 성령으로 임하신다는 것이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 때까지 너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어떤 영혼이라도 그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은혜의 원칙을 갖고 있기만 하면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고 하시니,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는 하늘의 영광과 축복이 거기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며, 이는 곧 과거 범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신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돌아 오셔서 함께 교제하시며 거룩한 친교를 나누심에 감사하며,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이런 아름다운 교제가 이루어지도록 우리는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









 



♣주일예배(주후 2024년 7월 21일)
제목: “은혜 속으로”(3,4부)
말씀:*베드로후서 1:2-4,
사회: 유선비 부목사님

설교자: 윤대혁 목사님(3,4부-“은혜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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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1:2-4,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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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함이 우리에게 넘치게 되시길 믿습니다. 우리가 쓰는 물건들 가운데 우리가 100%를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이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한다면, 아마 우리는 한 결 같이 없다. 라고 이야기를 하게 될 겁니다. 99년도에 처음 노트북을 구입을 했는데 그때 노트북의 하드 용량이 4GB였습니다. 지금은 2테라바이트(Tera byte), 그때 얘기하면 200배가 더 넘는 2테라바이트(Tera byte)의 용량을 갖고 있는데, 특별히 영상이나 이런 걸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순수한 작업이라면 그 노트북의 역량을 채울 사람도 없는 게 일반적인 거죠. 그래서 노트북 처음 샀을 때 4기가를 채우지 못하고 새로운 노트북을 샀던 경험이 있는데요. 우리가 갖고 다니는 태블릿이나 또 전화기 역시도 우리가 만든 사람 역시도 그 기능을 다 알지 못해서 나오는 소프트웨어에 의해 내가 만든 이 기계가 이런 능력과 기술이 있다. 하더라도 만든 일마저도 역량과 한계를 측정하지 못한 애들을 경험하게 되는데요. 이런 일을 겪으면서 이런 질문을 한번 해봅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내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이와 같이 잘 활용하고 누리고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 앞에 여러분 어떻게 답을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만약에 그 은혜를 누려야 되는 것이 당연한데 그 은혜가 마치 우리의 삶의 과거가 되어서 그래 옛날에 예전에 좋았었지, 그때는 참 운해가 넘쳤었어. 라는 과거를 추억하고 회상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여러분 그 신앙은 언제 위험에 빠질지 모르는 위기의 신앙에 빠졌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은혜는 날마다 순만하게 날마다 풍성하게 누려야 되는 은혜가 돼야 될 줄 믿습니다. 왜 그러하냐면 그것은 그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에베소서 2전 8절에는 이런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2:8,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뭐라고 말하고 있죠. 우리가 받은 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라고 말합니다. 아니 선물을 주고 나서 그 선물을 뭐 잘 썼니, 안 썼니. 이렇게 따져 묻는 건 너무나 속이 좁은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겠지만, 만약에 그 선물이 어떤 사람이 나에게 선물을 줄 때 가장 소중한 것을 바꿔서 준 거라면 그의 생명과 바꾸어서 나에게 준 선물이라면 그 선물을 쓰지도 않고 저 구석에 처박아 놓는다 반면, 그 준 사람의 마음은 결코 기쁘지 않을 겁니다. 아마 많이 속상할 거예요.

제가 중학교 중등부 사학을 처음 시작을 할 때, 그때 중등부 선생님들이 제가 생일이라고 넥타이 선물을 하나 해 주었습니다. 그 선물을 담당했던 총무 집사님은 패션이 남다른 분이셨습니다. 옷을 입어도 대체 저 옷은 어디서 구입해서 입으신 거야. 나눌 정도로 화려한 옷이었고, 화장과 헤어스타일 역시도 80년대 미스코리아를 연상하는 그런 화장법과 그런 헤어스타일을 가진 정말 패션의 선두주자 같은 분이었는데요. 그분이 고른 넥타이다. 보니 24살 된 청각 또 학생 전도사에게는 그 넥타이가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칼라였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단벌의 양복 가지고는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넥타이였고, 그 넥타이에 맞춘다고 해서 양복을 새로 살 수도 없고, 제가 그때 용기를 내서도 했었어야 되는데 도저히 용기가 나지 못해서 그 넥타이를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요.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선생님들과 그 총무지사님이 저를 보는 눈빛이 좀 이상한 겁니다. 저를 볼 때마다 계속 이렇게 말씀하는 것 같았어요. 넥타이, 넥타이, 이런 느낌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용기를 내서 했었어야 되는데 차마 하지 못해서 그때 아마 했었다면 아마 새로운 패션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했는데 도저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선물은 이와 같은 거죠. 우리가 선물을 받을 때 여러분 감사합니다. 라는 말도 좋지만 그와 함께 그 선물을 잘 쓰고 잘 활용한다면, 준 사람이 기쁘고 즐거울 수밖에 없어요. 근데 그 선물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쓰지도 않고 저 구석에 처박아 놓고 받았는지 안 맞는지 모르고 산다면 그 준 사람의 마음이 약간 속상할 수밖에 없는 거죠. 하나님께서 우리 계신 선물도 이와 같은 겁니다. 이와 같은 거 그 은혜를 받아서 그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거고, 그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가 과거의 기억이 되어서 언제 그네가 있었어. 라고 말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우리들의 신앙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이죠. 요즘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위에 계신 은혜의 선물은 어떤 은혜이고 어떤 선물일까요? 고린도전서 15장 10절은 우리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씀 함께 읽어볼까요?

*고린도전서 15:10,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 받은 그 은혜를 2가지를 설명합니다. 첫 번째는 내가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가뒀던 사람이고 그를 죽였던 사람입니다. 그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제면시키기 위해서 나의 모든 젊음을 내 모든 면적을 다 쏟아 부었던 사람인데, 이런 나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고, 하나님의 백성 삼아주시고, 구원해 주신 것은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말하고 있는 은혜는 그런데 내가 사도를 부름 받아 삶을 할 때 많은 죽음의 위기가 있었고, 어려움이 있었고, 많은 유대인들이 ‘너는 예수님을 핍박한 사람이잖아!’ 누가 무슨 하나의 말씀을 가르쳐! 온갖 모함과 온갖 많은 어려움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이 자리에 와서 사도로써 교회를 세우고, 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내 노력과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이거 역시도 하나님의 은혜가 된 것이다. 라는 그 2가지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은혜는 사돈마을만의 은혜일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저와 여러분이 지금 누리고 있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그것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죠. 내 힘과 내 노력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오게 된 그 모든 가정도, 내가 지금 두 발로 서 있고, 오늘 이 시간까지 온 것도 내 힘과 내 노력으로 도저히 오지 않았고. 설명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어 주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의 능력이 되었었기 때문에, 하나님 나의 모든 것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우리들의 고백일 줄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는 단번에 1번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죠. 여러분께서 베드로 오늘 본문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절의 말씀에,

*베드로전서 1:2,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라고 말하고 있고, 우리에게 더욱 많을 것이다. 라고 하며,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서 4장6절에서,

*야보고서 4:6,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더 큰 은혜를 주시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더 많은 은혜, 더 큰 은혜를 이야기하니까 마치 내가 받은 은혜가 부족하고 완전하지 않고 뭔가 더 필요한 것처럼 우리가 표현되기도 하는데요. 여러분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는 단번에,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내게 주신 그 은혜는 하나님 날마다 부어주신 은혜고 그 은혜가 끝이 없으며 완전하고 날마다 우리에게 넘치는 은혜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임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 된 저와 여러분은 그 은혜를 누리며 그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며 살아가야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누려야 되는 더 많은 은혜 더 풍성한 은혜는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지금보다 나은 경제적인 삶, 지금보다 더 나은 삶, 보다 풍성한 삶을 말하는 것만은 여러분 아닐 겁니다. 왜냐면, 우리가 과거보다 더 좋은 삶을 누리고 있었더니, 그때 신앙을 잃어버렸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게 되고, 지금보다 더 어려운 현실에 건강의 위험에 빠졌을 때, 그제서야 더 하나님의 애들을 붙들고 사는 분들이 있는 걸 본다면 환경적인 거나 상황적인 거에 의해서 더 좋아졌다고 해서 그것을 꼭 더 많은 은혜가 더 풍성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이제 목회를 하면서 이제 심방을 잡는다. 비즈니스라고 있는 우리 권사님의 댁에 심방을 가게 되죠. 심방을 다 하고 나서 권사님께 묻죠 권사님 무슨 기도를 하면 좋겠습니까? 기도 제목을 알려주십시오. 말하면 어떨 땐 좀 충격적인 기도 제목을 나누시는 권사님들이 계십니다. 목사님, 우리 남편 이 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 사업 망해야 됩니다. 망하기 위해서 제대를 달라는 거예요. 그 남자 짓을 한 남편은 옆에 둘이 많습니다. 망하게 가라고? 아니 무슨 기둥을 세우고 그러겠습니까? 이상해 우리 남편이요. 사업이 힘들고 어렸을 때는요 예배 한 번 빠진 적 없습니다. 얼마나 하나님 매달리고 얼마나 하나님 찬양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제 사업이 좀 될 만하고 조금 나올 만한 하니깐 교회도 안 가구요. 놀기 바쁘구요. 우리 사업 남편 망해야 되는데 안 가고 그래요. 기도해 달라는 겁니다. 제가 너무나 난감했습니다. 어떻게 기도를 해야죠 그분의 심정은 아니에요. 어렵고 힘들었을 때는 하나님 은행 가운데 있었는데, 뭔가 조금 나아졌더니, 하나님과 벌어진 그 남편의 신앙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서 나는 그런 기도 제목이었는데, 이건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구해야 되는 정말 더 많은 은행 더 넘치는 은혜는 어떤 은혜일까요?

오늘 베드로후서에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설명하고 이별을 말씀해 보면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삶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에게 더욱 많은지, 3절 4절이면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후서 1:3-4,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지금 우리가 예수를 믿은 이후에 우리가 누려야 되는 더 많은 더 넘치는 은혜는 무엇이냐면 예수를 아는 은혜요. 조님을 닮아 가는 은혜임을 믿습니다. 그래도 우리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셔서 우리를 계속해서 변화시키시죠. 주님을 알아가게 하시고, 주님을 닮아가게 하시고, 그때마다 더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서 우리에게 넘쳐난 은혜의 삶을 살게 되고, 또 그 은혜로 말미암아 예술을 알게 되고 예술을 닮아간 은혜를 얻게 되고, 그러면 더 많은 은혜가 넘치고 계속 피해서 은혜의 선순환들이 우리의 삶에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를 닮아감으로 얻게 되는 큰 은혜는 대체 우리 삶에 어떤 은혜의 역사로 나타나게 된 것일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크게 2가지를 우리가 함께 나누길 원하는데요. 우리가 은혜 속으로 들어감으로 얻게 되는 영적인 역사와 은혜는 첫 번째는 우리 모두가 죄를 이기며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닮아감으로 누리게 되는 은혜는?
I. 첫 번째는, 우리 모두가 죄를 이긴다.
-사단 마귀는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합니다. 우리의 삶에 은혜가 멈추도록 하기 위하여 죄를 유혹해 만들고, 유혹이 빠져 넘어가 하나님과 상관없는 인생을 살게 할려고 하죠. 하지만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죄가 우리 가운데 역사하지 못하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로마서5장 21절의 말씀을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 5:21,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이는 제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하는 것 같이 계속해서 죄는 우리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은혜에는 그 죄의 길을 다 끊어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시에스 루이스 기독교 작가인 시스루이스는 ‘스크루테이프’라는 편지에서 이제 각 사단의 일을 시작하는 조카 워무두에게 사단의 전략을 그 편지로써 쓰게 되는데요. 그 삼촌인 스크루테이프가 조카 워무두에게 이런 말을 하나 했습니다. 믿는 성도를 환자라고 표현했는데요. “니가 지금 맡고 있는 환자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니 참으로 내 마음이 착잡하다. 그렇다고 실망하거나 낙심할 필요는 없다. 그 환자의 정신적인 신체적인 습관은 항상 우리 편에 있으니 말이다.” 이게 말 무슨 말이에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육체의 본능과 유혹을 받으면 쉽게 넘어지고 쉽게 쓰러지는 그 습관들을 우리가 갖고 있다. 라는 것이죠. 우리의 본성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그 가는 길을 끊어버리기 시작하죠. 또 로마서 5장 21절의 말씀에, 우리 한번 다시 한 번 이 말씀 듣겠습니다.

*로마서 5:21,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아무리 제가 힘이 있다. 할지라도 아무리 제가 우리 가운데 왕 노릇하려고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들어가면 그 의외의 진리가 우리를 다스리기 시작하는 줄 믿습니다.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는 거예요. 죄 영향력이 저와 여러분의 삶을 절대로 다스리지 못하게 되는 것을 믿습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그마다 큰 겁니다. 그 죄의 뿌리와 죄 영향력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이지요. 로마서 6장 15절에 말씀에,

*로마서 6:15.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은혜 안에 있는 자들은 절대로 죄를 지을 수 없고, 은혜 안에 있는 자들은 절대로 죄 사막 가운데 있을 수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요 은혜 속으로 들어가면 되는 거예요. 많은 경우 이렇게 생각합니다. 죄와 싸워야 됩니다. 여러분이 죄와 싸우는 존재가 아닙니까? 우리가 은혜 가운데 들어가면 죄를 떠나가기 시작하는 겁니다. 빛과 어둠은 싸우지 않아요. 빛이 임하면 어두움은 떠나가게 되는 겁니다. 빛과 어둠은 절대로 싸움의 대상이 되지 않아요. 최근에 인터넷에 보면 하나님과 사단의 그림을 그려놓고, 그 중간에 VS 하나님과 사단이 마치 견주어 싸우는 것처럼 표현된 그림이 있는데, 정말 비성경적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은 사단과 싸우지 않습니다. 사단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우린 죄와 싸우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임하면 우리 세상에 재와 역사가 떠나가게 되는지 믿습니다. 빛이 임하면 어둠은 떠나가기 시작합니다. 1700년 전에 여러분 다니엘 게이 루이라는 사람이 발견한 자연의 법칙이 있는데요.

이 법칙을 게이루이 법칙으로 얘기하는 건데, 한국말로 얘기하면 양력입니다. 양력은 뭐냐면 비행기가 뜰 때 기상을 쓰이는 힘이죠. 세상의 모든 자연 만물들은 여러분 지구의 중력의 지배를 받죠. 그래서 땅에 2발로 서 있게 됩니다. 근데 비행기를 날 때, 그 양력에 의해서 중력을 이고 하늘을 날죠. 여러분 비행기가 하늘을 날 때 사람들은 중력이 없어졌다라고 말하지 않아요. 중력은 있으니까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 하지만 그 중력을 이기는 힘이 있는 거예요. 양력이 있으니깐 비상할 수 있는 거예요. 우리들의 삶에 죄 유혹과 죄 지배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거 앞에 우리가 지배를 당하지 않고, 우리가 그거 앞에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 안에 뭐가 있어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그 은혜 힘으로 우린 날마다 승리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심 있는 사람들을 믿었다고 해서 문제와 어려움이 없어지나요?

여전히 동일한 문제와 어려움과 고민과 환란을 겪게 되죠. 하지만 그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뭔데 뭐 문제없는 교회 없고, 문제없는 가정 없고, 문제없는 인생 있죠. 하지만 그 문제를 만날 때 문제를 넘어서는 인생이 있고 문제 앞에 넘어지는 인생이 있는데, 그 문제를 넘어서게 하는 게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다. 라는 것이죠. 그 은혜 속으로 날마다 들어갈려면,,, 자 어머님께서 지금 목사 이렇게 목회자 사모님이신데, 목회하는 아들에게 항상 목회 하면서 저한테 누누히 말씀하시는 몇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항상 이렇게 말씀하세요.
“대혁아, 사람은 말이다. 은혜를 받으면 순한 양이 되지만, 은혜가 마르면 사나운 늑대가 된다. ”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목회자인 저는 항상 교회 안에 성도들에게 은혜가 넘치도록 교회의 은혜가 가득하도록 항상 말씀을 준비해야 되고, 항상 그렇게 살아야 됩니다. 은혜가 넘치면 순한 양이 되지만 은혜가 메마르면 사나운 늑대가 되는 길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면 문제가 문제로 보이잖아요. 하지만 하나님 은혜가 메마르면 모든 것이 다 거친 광야처럼 느껴지는 게 우리들의 인생이라는 거죠.

남가주 사랑의 교회 20년 전에, 이제 선교부 사역자로 사역을 시작했을 때, 그때 오정현의 사랑의 교회 담임 목사님이 담임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때 한 8개월 정도 목사님을 모시고, 배우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이민자의 삶을 옆에서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저 역시도 유학생으로 이민자의 삶을 살면서 왜 이렇게 모르는 게 많고, 왜 이렇게 막막하고 왜 이렇게 힘든지 하루하루 사는 것이 참 벅차고 힘겨웠던 때가 있었어요. 근데 그때 이 주일 예배 때마다 그리고 토요예배 때마다, 그때 담임 목사님이셨던 오정현 목사님께서 기도할 때, 이런 기도를 늘 외치게 하셨어요. 늘 이렇게 외치셨어요.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저는 그 외침의 지도가 저한테 그때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나의 산에 확 불어오는 겁니다. 그 은혜의 힘을 입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과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죠. 그래서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정말 그거 외치고 싶어서 그거 부르짖고 싶어서, 왜요 그러며 살거든요.

지금도 목회를 하면서 저희 교육을 하고 준비한 레벨 레이트 드릴 때 항상 선생님들에게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능력해 당부하면서 말씀드리는 게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하는 사람인데 주님 앞에 기도하고, 예배할 때, 주님, 주님 내게 오늘 은혜주지 아니하시면 내가 이 자리 떠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주의 이름을 불어주십시오. 오늘 주님 내게 은혜주지 아니하시면 내가 주님 붙잡은 손 절대로 놓지 않겠습니다. 라는 마음으로 주님, 은혜를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래야 힘든 삶 가운데 우리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게 답입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요? 사람의 지혜요? 사람의 능력이요? 많은 것을 가진 거?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은혜 가운데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 문제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우리 모두가 보게 되죠. 사랑의 교회가 내일 주일 그리고 토요 비전 새벽 예배 때, 또 서요 성경 집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군대 7천 용사들이 모여서 주여, 은혜를 주시라고 외칠 때, 교회 안에 하나님의 풍성이 넘쳐서 한국교회를 섬기는 역사가 넘치게 임하게 될 줄 믿고 그곳에 부르짖는 성도들마다 가정들마다, 자녀들마다 사업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놀라운 역사가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빛이 임하면 어둠이 떠나듯이, 하나님 은혜 가운데 돌아가면 모든 문제와 모든 어려움은 떠나가게 됩니다.

그 은혜 가운데 들어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예수를 알아감으로 또 지금을 닮아감으로 누리게 된 은혜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죄를 이기는 것이라면, 문제를 뛰어넘게 하시는 승리라면 두 번째는 저와 여러분을 낙심치 않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닮아감으로 누리게 되는 은혜는?
II. 두 번째는, 낙심하지 않는다.

-어떤 일을 만나든, 어떤 일을 겪든, 우리가 낙심하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의 말씀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4:16,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왜, 내 눈에 보이는 내 주변의 환경은 사람들이 볼 때 이전보다 안 좋은 것 같은 거예요. 막막하고 힘들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참 두렵고 걱정이 되는 건 많겠지만, 겉 사랑은 그렇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날로 새로워집니다. 어떻게 돼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역사가 시작된다. 라는 거죠.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저와 여러분의 삶을 반드시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선한 길로, 가장 완전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믿음으로 걸어가셨던 그 길이 십자가의 고난의 길이었지만, 그 길 끝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부활시켜 살리시고, 모든 이름이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모세가 40년 동안 여러분 광야로 쫓겨나 살인자로서 이제 숨어 지낼 때, 다시 하나님께서 그 마지막에는 그 모세를 다시 세워서 애굽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하나님이 지도자로 세웠던 일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가고자 했지만, 풍랑을 만났습니다. 큰 물고기에 삼킴을 당하여 세상에 지옥이 있다면 이곳이 지옥으로 말했던 이 요나 인생이었지만 그를 다시 회복시키고 그를 다시 하나님의 사명자로 쓰였던 손길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고 나서 장인인 사울의 손에 죽음의 위엄을 받아 광야로 쫓김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저 정신병자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 광약 가운데서 이스라엘을 재건할 수 있는 많은 믿음의 동력 자를 만나게 하시고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 영광을 보게 하셨던 하나님의 마지막 결과가 있었습니다. 사도바울 역시도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는 실종자로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의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사울 봤어? 사울 봤어? 어디 있는지 몰라, 죽은 거 아냐? 실종된 거 아냐? 무명으로 끝날 수 있는 그 인생을, 한 해 3년의 걷는 시간 그를 다시 살리셔서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 말씀을 가지고 신학을 집대성할 수 있는 하나님이 귀한 믿음의 종으로 쓰였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우리의 삶에도 마찬가지에요. 어떤 이를 만나도, 어떤 어려움을 겪어도, 낙심하지 말 것은 하나님 우리 안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삶에 새 일을 행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낙심하지 않아야 됩니다.

※저희 교회에 참 믿음이 귀한 한 형제가 있습니다. 너무나 귀한 형제인데요. 형제의 아버지는 선교사로서 또 인도에서, 중국에서 평생 선교사의 삶을 사셨습니다. 이 형제 역시 또 아버지를 따라서 한국에서 살지 못했고, 또 인도에서, 이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하고 아버지가 이제 안 10년째 미국에 와서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이제 시작할 계획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이제 교회 조명 파트타임 간사를 뽑는다고 하니까, 이 형제가 지원을 했어요. 그 이유로 경제적으로 도와야 될 형편이었기 때문에 낮에는 학교에 가서 이제 2년제 대학교에 가서, 이제 4년제 대학 갈 수 있는 편입을 준비하고 있었고, 또 평일에는 일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일하고 있었고, 또 주말에는 교회 와서 우리 조명 간사로 이 사약을 열면 귀환 환자였는데요.

조명 간사할 때, 이제 예배 때 키고 끄고 이런 정도의 아주 단순한 작업이었지만 이 형제가 유튜브를 통해서 그 기계법을 알고 교회 안에 예배를 정말 조명으로 편성하기 위해서 많이 원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들을 감당해 줬던 대한 형제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부모님을 통해서 진행되던 영주권이 거절이 됐어요. 신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미국에 있지만 유학생으로 공부하기에는 1억에 가까운 학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 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문제는 한국에 가자 이 고등학교까지 나온 기록이 없는 거예요. 제가 다녔던 인도와 중국에 다녔던 현지 학교에서 학적 끈을 띄울 수 없다 보니까, 불가피하게 검정고시를 가야 되는데 한국에서 공부를 안 했으면 이 검정고시 볼 수 있겠어요.

그리고 유일하게 검정고시를 보고 이제 직업군인을 하는 게 이 형제가 갈 수 있는 부모님께 이제 경제적 도움이 돼야 되니까. 그런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런 가운데서 한국에 가기로 결정하고 이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교육, 조명, 간사를 열심히 열심히 수고하고 있습니다. 20살 이 젊은 청년이 감당하기에는 인생의 너무나 큰 위기 있고, 막막함이었습니다. 아버지 선교사를 따라 여기까지 왔는데 마치 자신의 인생이 안개처럼 사라져 버린 듯한 그 현실 가운데서 그래서 참 나름대로 열심히 수고하고 성실한 형제로 그러다가 형제가 이제 이곳저곳에 트랜스포 할려고 이제 어 이력서를 학교에서 입학 모집서를 넣는데, 이제 영주권이 안 되니깐 지원했던 뭐 리셑을 당한 겁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이 학생에게 한 학교가 너를 학생으로 받아주겠다고, 입학허가서를 준 거예요. 그 대학교가 유시버클리 대학입니다. 굉장히 좋은 대학입니다. 근데 대학생이 아니라 영주권자처럼 학비를 내걸어 다닐 수 있도록 그런 기회를 주는 거예요. 사실은 그럴 수 없거든요. 근데 저는 여기서 이런 어려움을 겪고 나서 그 대학에 갔다. 라는 것으로 간증이 마무리되는 게 아닙니다. 더 놀라운 사건이 뭐냐면, 그 형제가 UC 버클리에 무슨 과를 들어보느냐가 중요해요. UC 버클리 엔지니어링은 미국에서 전미 2등 상위 정도 하는 일을 하는데, 그 형제가 전공했던 지원했던 합격했던 과가 뭐냐면 음향, 조명 엔지니어 꿈이 없었어요. 그냥 아버지 따라왔던 인생 가운데 뭘 해야 되게 막막했어요.

근데 인생의 마지막과 같은 정말 막다른 그 현장에서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해서 했던 조명을 하면서 이 여기서 꿈을 꿉니다. 하나님,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라고, 엔지니어인데 미국에서 전위 2등 3등 하는 그 학교에서 이렇게 학생으로 오라는 겁니다. 남의 교회 이야기를 그렇게 놀리지 않나요? 엄청난 사건이에요. 아하, 진짜 뭘 깨달았냐 그렇다 인생의 마지막 같지만 마지막 순간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마냥 기다려야 되는, 막다른 길 같지만 포기해야 될 것 같지만, 그곳에서 내가 낙심하지 말고 실망하지 말 것은 하나님 반드시 일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8월에 이제 샌프란시스코로 올라와요. 그럼 이런 일들이 이 형제만 있는 일일까요?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 우리의 삶을 마치 벼랑 끝으로 막다른 길로 인정하시죠. 그 길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깨우는 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주님, 그래서 뭐가 필요해요. 나는 주님 은혜밖에 없습니다. 주님 내게 은혜주지 아니하시면 나는 길이 안 걸고 주님 내게 은혜 주지 않으시면 나는 하나도 살지 못해요. 이때 하나님의 그 은혜가 시작되는 거죠. 새 일을 향하시는 일, 길을 여시는 게 가장 좋은 길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선한 길로 임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그리고 여러분, 우리가 날마다 넘치는 은혜 가운데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신앙 생활하면서 그 은혜가 먼 기억의 외계인가요? 가끔 권사님 장모님들 만나 이럴 때가 있습니다. 목사님 제가 이래 봬도요 젊을 때는요. 30년 전에는요. 20년 전에는요. 힘이 있었을 땐요. 그대로 달랐습니다.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지금이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도 나에게 있습니다. 마치 갈렙이 얘기했던 것처럼 그때나,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라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먼합니다. 그 은혜를 바라보며 사모하며 나아갈 때, 주님께서 죄를 이기게 하시고, 우리의 삶에 있는 모든 문제를 넘어서게 하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신실한 길로, 은혜의 길로 생명의 길로 열어주시는 그 은혜가 더욱은 삶 가운데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때마다 은혜 가운데 나아가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약
우리에게 주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아, 주님의 은혜 외에는 아무것도 아님을 날마다 고백하면서, 그 은혜를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우리들의 연약함을 주님 앞에 엎드려서 내려놓고, 날마다 주의 은혜 가운데 돌아가기를 원해야 한다. 더 많은 은혜, 더 넘치는 은혜로 주님을 알아가고 주님을 닮아가 그 은혜를 통해서 죄를 이기고, 문제를 뛰어넘는 환경과 상황을 압도하는 승리하는 길을 걷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삶에 막다른 길과 같은 어려움과 벼랑 끝에 서는 시간이 있다할지라도 그때 내가 부른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밖에 없음을 확신하여 주님의 그 은혜를 붙들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선한 뜻을 날마다 기대하고 소망하며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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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7월 14일) 1부, 4부
제목: "죽음을 뚫고 생명으로"
말씀: 사무엘 상 2:10, 사무엘하 22:50-51,
누가복음 1:46-48
대표기도: 유종성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김정우 목사님(한국신학정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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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10,
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사무엘하 22:50-51,
50 이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모든 민족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51 여호와께서 그의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하도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하였더라.
*누가복음 1:46-48,
46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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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우 목사님
-한나의 인생에는 모순이 많았습니다. 그 이름은 한나인데 은혜를 뜻합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그녀의 태를 닫아서 임신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미 생명의 문이 닫혔는데, 주님의 은혜가 어디에 있습니까? 한나는 거의 남편 엘가나의 첫째, 아내입니다. 첫째는 창세기 일장의 첫째, 날처럼 특별하고 유일하고 유니크한 날인데 첫째인데 넘버원인데 둘째, 브닌나에게 습관적으로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온 나라가 축제를 맞이하면 모든 사람들이 가정들이 실로 성소로 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1년 중에 가장 맛있는 것을 먹는 날인데 브닌나는 주님의 집에서도 한나를 괴롭혔습니다. 한나 너 안나 하나님이 너희 태를 닫았는데 무슨 한나 그때 남편 엘가나가 한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한나 보고 왜 우세요. 왜 안 막으세요? 왜 슬퍼하세요? “내가 당신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않소?” 웬 근거 없는 자신감? 자식을 낳을 수 없어서 고통당하는데 내가 당신에게 10아들보다 낫다 이 말이 무슨 도움이 되죠. 엘가나는 한나의 깊은 고통에 신체적이고 영적인 고통에 공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나를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여자의 정서에 대해서 반응하는데 늘 서툴러요 의도는 좋은데 결과는 늘 나빠요 나는 나의 아내에게 사과를 하거나 위로를 할 때면 늘 더 화내게 하는 특별한 의사가 저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한나는 마음이 너무나 괴로워서 성전에 들어가서 간절히 기도하는데 대제사상 앨리가 한나를 보고 술을 그만 마시게나. 포도주 끊으세요! 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 제사장께서 이렇게 피상적으로 단정적으로 나를 볼 수 있을까? 우리는 인생에서 모순에 부딪치면 어떤 반응을 합니까? 당황스럽고 화가 나고 좌절스럽고 다 포기해버리고 싶습니다. 또 때로는 지나치게 방어적이 되어서 오히려 공격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생을 좀 살아보니까 모순이 인생의 기회구나! 아이러니가 패러독스의 기회구나! 모순이 역설의 기회구나! 아 이 모순은 나로 하여금 성숙하게 하라고 하는 현실로 내게 다가온 것이구나! 한나는 자신의 모순을 방치하지 않고 대면하였습니다. 직면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뚫고 생명으로 나아갔습니다. 한나는 태가 닫혔지만 아들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문이 꽉 닫혔는데 열어달라고 두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닫았으니 하나님이 여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한나는 믿음을 선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직선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힘을 준만큼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원인과 결과를 방정식대로 만드시는 분이 하나님은 곡선으로 일하시는 분이고, 변화구를 던지시는 분이고 바나나킥을 차시는 분입니다. 김중권 목사님의 말씀대로 변장된 축복으로 늘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한 나는 하나님께서 만약 나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 아들을 바치겠다고 서원을 하고 있습니다. 역설입니다. 평생 갖고 싶은 것을 주시면 내가 그것을 드리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상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모든 권리를 내가 포기(抛棄)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한나는 유일한 아들 사무예를 하나님께 평생 동안 드리기로 서원하고 있습니다. 평생 드릴 필요는 없었습니다. 어머니와 자식의 연대감은 우리 남자들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여자들에게 자식은 분신과 같습니다. 살이 떨어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인데 평생 드리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날 한나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오래 기도 했습니다. 기도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기도가 기도를 이어갔습니다. 그동안 쌓였던 것들이 폭발했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생명 체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불임의 태, 생명이 꿈틀거렸습니다. 죽은 태가 살아났습니다.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뭔가 약동했습니다. 어렵던 마음이 녹았습니다. 막혔던 것이 뚫렸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위축되었는데 영원히 팽창하고 감각이 살아났습니다. 노래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한나의 노래는 대작은 아니지만, 아주 강력한 노래입니다. 이미지도 강력합니다. 플롯도 탄탄하고 주제가 선명합니다. 한나는 내 뿔이 높아졌다. 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한나는 그동안 너무나 뿔이 없어 가지고 치이고 살았습니다. 조롱과 모욕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뿔이 솟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나의 내면에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만나니까 내면에 힘이 생겼습니다. 기세가 생겼습니다. 기력이 회복되었습니다.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자신 속에 권위와 위엄이 생겼습니다.
 
뿔이 솟으니까, 추위의 다른 짐승들이 감히 덤비지를 못했습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들에게도 뿔이 솟아나기를 축원 드립니다. 자신의 뿔을 높여주신 주님을 한나는 찬양했습니다. 여호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다. 주님밖에 다른 이가 없다. 우리 하나님과 같은 반석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비교 불가능한 분이었습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이었습니다. 거룩하신 주님께서 우리 역사와 인생에 개입 하시고야 만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로 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이 세상의 질서는 영원한 것 같지만 주님은 권력의 도치를 만드시는 분입니다. 용사의 활이 어느 날 꺾여버리고 넘어지는 자가 힘으로 뛰뛰는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경제력의 도치를 만드시는 분입니다. 늘 부익부 빈익빈의 원칙이 역사의 철칙이 되지 않도록 하시는 분이십니다.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해서 품을 팔고, 줄이던 자들은 다시는 줄이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생명력과 생산력과 영향력의 도치를 만드시는 분이라고 노래합니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가 히브리어로 아카라, 아카라 가슴 아픈 단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로 가 일곱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많은 자녀를 낳았던 자는 쇠약하다. 한나 자신의 체험이었습니다. 어떻게 세상에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요?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한나는 이 시의 정중앙에서 이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6절예요.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신다 살리시기도 한다. 죽이시기도 하고 살리시기도 하고 서울에 내리기도 하시고 거기서 올리기도 하시는 도다. 이 시에서 한나의 시에서 가장 놀라운 말씀입니다. 정중앙에서 터닝 포인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왜 이것이 한나의 시에서 정말 놀라운 말씀입니까?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주님에 대한 찬양이 왜 놀라운 말씀입니까? 왜냐하면, 이 말씀은 모세의 노래를 인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32장 39절에 모세가 한 말씀입니다.
 
*신명기 32:29,
39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구원 사를 총정리하면서 모세가 마지막으로, 했던 것은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 시도 하는 주님에 대한 고백이었습니다. 한나는 모세의 고백과 정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의 탄생과 소멸은 단순한 자연적 과정만은 아니다. 주님은 인생과 역사에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일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한나가 연이어서 7가지를 분사 형으로 말하는데 하나님이 늘 하시는 일, 지금도 하고 계시는 일, 일곱 아들을 얻은 한나가 7가지 찬양을 하시는데,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고 내리기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이 모든 일을 주님께서 하신다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한 민족과 나라와 가정과 개인이 높아지고 낮아지는 데는 주님의 주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높아짐과 낮아짐은 인셜라도 아니고 별자리도 아니고 묘 자리도 아니고, 주님의 주권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주님은 가난한 자라.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 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 도다. 비로소 한나가 부자가 아니라 귀족이 아니라 가난한 자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빈궁한 자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일차적으로 물질적이고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회에서 궁핍한 사람들에게 1차적인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 교회는 교회 정치적으로는 장로교입니다. 신학 사상으로 말하자면, 개혁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실천에 있어서는 복음주의라고 합니다. 복음주의운동은 1846년 영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한참 산업혁명이 일어나서 사회적 모순이 너무 많이 일어났고 어린아이들을 일찍 공장에 보내고 하루 종일 일하게 하는 그런 모순이 있었습니다. 사회적 모순이 극심했고 그래서 1948년에는 칼 막스와 앵겔스가 커뮤니스트 매니페스토, 공산당 선언을 하는 그런 역사적인 배경 가운데 복음주의가 우리의 믿음은 복음 증거뿐만 아니라, 사회 참여요. 사회 개혁에 있다는 것을 선언하면서 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복음주의 사상을 이어받은 로잔 언약은 복음 전도와 사회적 관심은 상호 배타기적이지 않고 교회는 이 두 가지 의무를 늘 같이 수행해야 한다고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1년에 한 번씩 한교섬도 하고 사랑 광주리도 하고 열심히 이 사회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1차적으로 주님은 빈궁했던 우리 가난했던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 대한민국을 이렇게 부강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에서 가난한 자 빈궁한 자는 본질적으로 영적입니다. 주님께서 가난한 심령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을 영광의 자리로 기어이 인도하십니다.
 
한나는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 받은 저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로 맞히고 있습니다. 아직 왕이 없습니다. 사사시대 말기입니다. 그렇지만 한나는 왕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 메시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메시아는 구약성경에서 여기에 처음 나오고 있습니다. 한나는 이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를,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를 누가 이룰 것인가? 가난한 자를 진토해서 일으켜서 영광의 자리로 인도할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를 실현할 자가 누구인가? 메시아가 와야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나의 뿔을 높이신 주님께서 메시아의 뿔을 높이셔서, 이 사사 시대의 마지막 대혼란을 정리해주실 것을 한나는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나는 죽음을 뚫고 생명으로 나아갈 자신뿐 아니라 메시아 왕을 통하여 온 나라가 영광의 자리로 나아갈 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한나의 기도는 어떻게 성취되었을까요? 사무엘서는 한나의 노래로 시작을 하고, 다윗의 노래로 마치고 있습니다. 한나의 노래가 사무엘서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한나의 기도를 붙들고 그 꿈을 이룬 사람은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한나의 기도가 예언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이 한나의 노래를 꽃피우고 확장하였습니다. 사무엘하 22장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하면서 51절 52절, 대작은 시를 썼습니다. 왜 시인들은 이런 대작은 시를 쓸까요? 다윗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감사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모순을 역설로 만드신 하나님께 큰 감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 전체를 돌아보았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가, 그 수많은 죽음을 뚫고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가, 다 짚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후세에 꼭 남기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시인으로서, 내 시가 얼마나 멋지겠어요. 저 있는지 여러분들 알기나 하시오? 이런 걸 또 좀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큰 그림을 우리에게 큰 그림을 그려줘서, 우리가 너무 작은 그림을 그리고 살면 모순 속에 빠져서 나오지를 못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늘 큰 그림을 우주적인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받은 구원이 큰 구원이었다고 마지막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그런데 놀랍게도 한나의 노래를 계속해서 가져오고 있습니다. 한나는 자신의 뿔을 높이신 주님의 능력을 찬송하다가 마지막으로, 주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뿔을 주님께서 높이 들릴 것이라고 바라보았습니다. 다윗이 이제 뭐라고 찬송합니까? 3절에 보니까, 주님은 너의 구원의 뿔이시다 주님이 내 구원의 뿌리시다. 한나가 바라본 그 뿔이 다윗에게 난 것입니다. 한나는 내가 주님의 구원을 기뻐한다고 노래했는데 다윗은 주님께서 나를 기뻐하시므로 나를 구원 하셨도다,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한나의 구원에 있어서 아주 강력한 이미지는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다. 라는 노래였는데 다윗은 이 반석 이미지를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구원의 피난처가 되는 이 반석 이미지를 이 시에서 계속 뿌리고 있습니다. 주님이 영원한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내가 피할 피난처시여 나이 망대시오. 32절에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여호와 왜 누가 하나님이시며, 우리 하나님 왜 누가 반석이시냐? 47절에,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인생은 너무나 가변적이고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나는 늘 흔들리고 나는 마음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지만 주님이 나의 반석이시다. 거대한 삼각산 같은 인수봉 같은 마사달 같은 영원히 피할 반석이라고 한나는 노래하고 있습니다. 한 나에게 원수가 있었고, 대적이 있었는데, 다윗에게 대적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내 대적이 강한 원수들이었다. 그들은 프로들이었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었다. 사악한 자들이었다고 원수들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한나의 노래의 핵심 주제는 여호와는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신다. 고 노래했는데 다윗은 28절에서 주께서 권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라. 사무엘서 전체 주제가 높이시는 하나님, 낮추시는 하나님, 교만한 자는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아무리 센 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주님이 기어이 낮추고 마시는 엘리를 낮추시고, 사울을 낮추시고 이스라엘을 낮추시고, 겸손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무엘을 높이시고 다윗을 높이시는 이 운명의 역전을, 사무엘에서는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데, 곤고한 백성을 구원하시는 주님을 그러니까 다윗은 늘 마음의 자리가 영광의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곤고한 백성들의 신음에 그들의 고통에 그들의 토탄에 그들을 어떻게 새롭게 하고 갱신할 것인가에 다윗은 있었습니다.
 
한나가 마지막으로, 여왕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며, 자기 왕에게 힘을 주소서! 라고 기도를 했는데 바위선 44절에 “주께서 또 나를 내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나를 보전하사 모든 민족의 으뜸으로 삼으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들이 나를 섬기리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나는 주님께서 다윗을 모든 열방의, 모든 민족의, 모든 언어의 머리로 대표로 세우실 것까지는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모든 열방의 메시아로 세울 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도 한나도 못 본 부분이 있었습니다. 한나의 핵심 주제는 영원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고 서울에 내리기도 하시고 거기서 올리기도 하시는 분이었는데.,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원수를 다 물리쳐 주실 것을 바라보았고, 거의 원수들을 스올에 던질 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자신은 영광스러운 메시아가 될 것으로 착각했는데, 이 스올에 던져진 사람은 거의 원수가 아니라, 다윗 자신이었습니다. 사망의 물결이 나를 에우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다. 다윗도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죽음의 물결이 죽음의 물결 가운데 다윗은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스올의 포승줄이, 죽음의 사자의 포승줄이, 나를 꽁꽁 매어 싸고 삼왕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메시아가 스올에 던져졌습니다. 다윗은 온갖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어디에 있는가, 하느님의 섭리가 어디에 있는가, 다윗은 하나님의 비선형적 통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윈이 거기에 자신이 이렇게 내가 열심히 사는데 어찌하여 내가 죽음을 당해야 하는가?
 
그러나 그는 죽음 가운데서 기도했고, 다윗이 스올에서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다윗을 건지시기 위해서 하늘 성전에서 친히 내려오시는데, 하늘장막을 찢으시고 친히 천군천사와 바람 날개를 타고 걸음을 타고 내려오시면서 흑암을 뚫고 내려오시고 그러니까 땅이 막 뒤흔들리고 지진이 일어나고, 우뢰 소리를 발하고, 그 깊은 죽음의 물 가운데서 다윗을 구원하는 이야기, 하나님의 구원, 우리는 예수 믿어 재산 받는 구원만 생각을 하는데 우리가 받은 구원은 우주적인 전쟁 가운데 하나님께서 물에 빠져 죽음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교회와 성도들을 건져 주시는 어마어마한 우주적 전쟁의 사건 가운데서 다윗을 구원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대한민국을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이렇게 자유 민주주의적인 헌법도 주시고 제헌절도 주시는 이런 하나님을 다윗은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다윗이 내가 받은 구원이 큰 구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50절에 다윗은 이름으로 여호와여 내가 모든 민족 중에 죽게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다. 로 마치고 있습니다. 18장 50절 “내가 모든 열방 가운데서 주님을 찬양하겠다. 주의 이름을 찬양하겠다.” 그런데 바울이 이 말씀을 하나님의 구원 사를 쭉 이야기를 하다가 바울이 이 말씀을 인용하네요. 로마서 15장 9절에,
 
*로마서 15:9,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세계 선교의 핵심적인 구절이 되겠습니다. 복음주의 신앙고백을 이렇게 정수로 만든 로잔 언약에서는 이 구절을 가지고 해석을 할 때, 세계의 모든 교회가 홀 처치가, 홀 가스팰을, 온전한 복음을 홀 월드의 온 세상에 전해야 한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한나의 기도를 통해서 다윈을 통하여 이렇게 확장되고 전개되면서 전 세계적인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의 나라는 망했습니다. 다윗의 후손들은 왕권을 잃었습니다. 수백 년 동안 다윗의 꿈을 가슴속에 품고 살았던 한 여자가 있었는데, 나사렛에서 살고 있는 마리아였습니다. 마리아가 이 한나와 다윗의 노래를 가져오면서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이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몇 절 되지 않습니다. 참 소박합니다. 수수한 노래입니다. 모짜르트도 여기에서 매그니피컷을 노래했는데, 세바스찬 바흐도, 슈베르트도, 리발디도 누가 복음의 첫 찬양이 되겠습니다. 그렇지만 이 노래 자체는 너무나 소박합니다. 한나의 기도와 다윗은 노래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참 담백한데 특별합니다. 유니크하죠.
 
이런 노래가 없죠. 왜요 왜 그렇습니까? 배경이 놀랍습니다. 이 찬양의 배경이 뭐냐 하면,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아기예수를 잉태하고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에게 문안을 갔는데 엘리사벳과 마리아가 만나자마자 태중에 있던 태중에 있던 요한이 태 안에서 태 안에서, 기쁨으로 내 복 중에서 뛰놀았도다. 태 속에 있는 아이가 복중해서 뛰놀았다. 이 뛰놀았다는 이 헬라의 단어는 히브리어로 번역을 하자면 춤추다. 의 춤추다 아이가 태속에서 춤을 추는, 아 하나님의 임재를 하나님의 임재를 태속에 있는 아이가, 아기 예수 앞에 6개월 늦게 생긴 아기 예수 앞에서, 임재를 느끼면서 춤을 추는 성령으로 부른 찬양입니다. 성령의 감동 가운데 마리아가 찬양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약동과 충만, 성령께서 직접적이고 전인격적인 감동을 주시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송가는 본질적으로 여기에 있는 모든 구절들이 대부분의 구절들이 하나의 노래에서 온 것이고, 다윗의 노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나가 내 마음이 여호와를 즐거워하며 내가 주의 구원을 기뻐합니다. 라고 찬양했는데 마리아는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내 구주을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나 노래의 중심 사상은 48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다 비천하다. 한나는 이 마리아는 자신의 상황뿐만 아니라, 온 이스라엘의 상황을 비천(卑賤)하다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한나가 말하던 주리던 자, 임신하지 못 하던 자, 가난한 자, 빈궁한 자, 걸음더미에 있는 자, 이것을 추상적으로 표현하자면 한마디로 비천하다 우리가 지금 참 비천하게 되었다. 이것은 마리아 자신의 상황이라기보다는 온 이스라엘의 공동체적인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나가 느끼는 비천함은 영적이었을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리에 설 때, 우리는 늘 우리가 한없이 비천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비천한 나에게 비천한 나에게, 능하신 이가 큰일을 내게 하겠다.
 
다윗은 큰 구원을 바라보았는데, 그의 후손을 통해서 큰 구원을 바라보았는데, 주님의 큰 구원이 나사렛에서의 처녀 마리아에게 큰 일로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너무나 큰일을 이루시기 때문에 만세에, 만세의 나를 복이 있다. 행복하다고 일컬을 것이다. 마리아는 만세에 복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신을 온전히 버렸기 때문입니다. 헤르만 바빙크라고 하는 이 개혁주의 조직 신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가운데 특별한 선택과 은혜를 입었다. 하나님은 마리아를 성자의 어머니가 되도록 준비하셨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마리아가 자신의 어머니 되기를 원하셨다.
-헤르만 바빙크-
 
구원사의 정점이 하나님이 인류 역사에서 이루실 가장 큰 사건이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임마누엘이 되는 이 사건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육신의 영광이 이제 마리아에게 나타났습니다. 마리아를 통해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냥 신이 인간이 된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견줄 바 없는 하나님이 영광의 모든 속성을 가지신 그 하나님께서 비천한 인간인 우리와 같이 되신 것입니다. 무한히 유한이 되셨습니다. 영원히 시간 속에 들어왔습니다. 불변이 가변이 되었습니다. 창조주가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지존 자께서 엄마의 태속에 있고 어머니를 젖을 파는 완전한 의존 자가 되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었습니다. 초자연이 자연 속에 들어오셨습니다. 신비입니다. 초월입니다. 비선형의 극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고 있는 믿음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공로로,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의 선행으로 우리의 도덕적인 노력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하고 똑같은 혈육을 입으시고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받으시고, 모든 시험을 이기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 성육신의 은총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이제는 대대로 있을 것이라고 마리아가 말하고 있습니다. 성육신을 통하여 주님의 자비로움이 은총이 우리에게 캐쉬가 된 것입니다. 성육신의 하나님께서 이제는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원히 평생 우리가 어떤 인생의 과정을 통과하든지 간에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53절에 주리는 자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다. 이제는 주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경건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이 더 이상 해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이 성육신의 약속은 다윈에게 약속한 것 정도가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그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마치 3명의 오페라 가수들이 각자의 아리아를 부르는 것 같은 한나가 자신의 아리아를 불러 거대한 오케스트라와 함께 51절에 걸치는 찬양을 드리고, 마리아의 그 청순하고 아름다운 이 매그니픽 컷을 우리는 들었습니다. 이 세 사람 다 인생으로 말하자면, 모순의 극치 가운데 살았습니다. 극한 모순 가운데 살아서 극단적 모순 가운데 살았지만 이 인생의 모순을 대면하고 역설로 디바인 패러독스로 하나님의 패러독스로 만들어서 주님의 구원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세 사람 다 각자의 많은 죽음을 뚫고 생명으로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 생명으로 나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몸을 입고 오신 이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우리도 너무나 많은 모순들, 문명사적인 선언 속에서 우리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돈과 모순 가운데 있지만 우리의 수많은 모순을 맞닥뜨리고 받아들이고, 패러독스로 만들고 주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의 뿔이 높아질 수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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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3부.
▶설교자: 김장한 목사님(극동방송 이사장)

2부ㆍ3부
제목: "이상적인 교회"
말씀: 사도행전 2:41~47
설교자: 김장한 목사님(극동방송 이사장)
ㅡㅡㅡㅡㅡㅡ
*사도행전 2:41~47,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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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한 목사님(극동방송 이사장)
▶조금 아까 오정현 목사님 전화를 주시면서 거기 지금 몇 시입니까? 그러니까 토요일 날 저녁 한 7시 반, 8시 됐다고 그러시더라구. 내일 주일날 아마 거기서 설교하시는 것 같은데, 저더러 떠나시기 전에도 목사님 예배 좀 잘 드려주세요.
 
그러고 떠나시더라구 그래서 2부 예배 잘 드렸는데 3부 예배도 잘 드릴 것을 믿습니다. “이상적인 교회”, 오늘 초대교회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초대교회하고 사랑의 교회하고 비교를 해 봤는데 그때 피 예배당은 이렇게 아름답지 않았을 거라고 느껴지지만 하루에 3천 명이 더해주는 걸 보면은 거기도 많이 모였구요. 그때 찬양대가 여기 찬양대 만큼 했는지, 난 잘 몰르는데 그래도 찬양을 그때 했을 것 같고, 사실 교회는 빌딩이 아니라 오늘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교회인 줄 믿으시면 알면 아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까 2부 예배에 ‘이상적인 교회’ 만약 규정한다면, 오늘 본문에 난 말씀을 근거로 성장하는 교회 그로잉 러치, 어린애가 자라서 성장해야지 정상적이죠. 교회가 개척해 가지고 계속 성장해야 이상적인 교회가 되고 두 번째로, 2부 예배 말씀드린 게 선교하는 교회 고잉 처치, 제가 중앙교에 목회할 때 장기 선교사는 안 되더라도 단기 선교사로도 1번 다녀오라고 내가 목회하는 동안에 우리 중앙 교회 성도들은 다 선교 지를 1번 다녀오라 그랬어요.
 
선교하는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다. 그래서 오늘 세 번째로는 빛나는 교회, 글로잉 트러치 네 번째 눈물 있는 교회, 이제 이렇게 마감이 될 텐데 만약 2부 예배 안 나오신 분들은 아마 카세트 사시면은 2부 예배 설교가 나올 거예요. 자 어느 날 3부에 빛나는 교회가 글로잉 처치, 사도 행전 2장 44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모여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 이것이 빛나는 교회, 사실 글로잉 처치, 사랑의 교회 어디서 봐도 빛나는 교회예요.
 
사람들이 많아서도 아니고, 건물이 좋아서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상적인 교회로 인정하시기 때문에 빛나는 교회예요. 울리엄 캐리, 소년이죠.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꿈과 소망 없이 살아가던 울리엄 캐리, 예수님을 믿고 인생관이 완전히 변했어요. 가치관이 달라졌고 꿈을 가진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변화를 시켰어요. 울리엄 캐리, 그는 구두 수선 가게를 차려놓고 그 앞에다가 세계 지도를 펴놓고 거기 3가지 표현을 써놨어요.
 
큰 비션을 가져라. 그레이피션, 두 번째로, 큰 기도를 해라. 그레이트 프레이, 세 번째로, 큰 기대를 걸라. 그레이트 익스펙테이션, 그 3가지를 써놓고 매일 구두 수선을 하면서 선교의 꿈을 접지를 않았습니다. 남의 구두 수선 가게에서 수선을 하나 사람이 꿈을 품어 봤자 수선 가게 하나 정도 차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했지만은 윌리엄 캐리의 꿈은 그거하고 달랐습니다. 그는 세계 지도를 품에 넣고 그 당시 아무도 외국 선교로 나가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을 때, 선교사로 나가겠다는 자원을 했습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습니다. 후원자도 없을 텐데 아내까지도 선교사 나가는 걸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도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선교의 아버지, 선교의 원조 윌리엄 캐리,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는 꿈을 가졌기에 아무나 할 수 없는 그 일을 해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꿈을 포기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지라도 그리스도인은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분 때문에 오늘도 희망차게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 번째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빛나는 교회는 꿈과 환상을 가졌다고 하죠.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실천하는 교회, 사자행전 11장 26절에, 만남의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1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실천하는 교회, 행하는 교회 무엇이 달라도 다릅니다. 자기만 위한 교회가 아니라 이웃과 남을 위한 교회, 사회에서 큰 빛이 되는 교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했습니다. 기도하는 교회, 사도행전 4장 13절에,
 
*사도행전 4:13,
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우리 한국 부흥의 역사를 볼 것 같으면, 김익두 목사라는 분이 계셨어요. 깡패가 그 동네 친구의 권유로 이웃동네 금산교회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울리엄 스왈론이라 하는 선교사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사람이 변합니다. 김익두 얼마나 개망나니였냐고 할 것 같으면은 교회 부흥이 하고 있는데, 거기 신발을 다 걷어다가 화장실에 집어넣는 사람이었고, 그는 산으로 나무를 해러 한 게 아니라 시장으로 나무를 하러 가가지고 제일 보기 좋은 장작은 자기가 지고 갑니다. 누구도 말하는 사람도 없죠. 그러다가 울리엄 스왈론의 설교를 듣고 김익두 전도사는 다시 태어납니다. 어느 날 신방을 다녀오던 중 김익두 전도사는 거지 앉은뱅이를 만났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고쳐봐 고쳐보겠다고 생각을 하고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과수원 돌담 밑으로 거지를 데려가 가서,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내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 했는데 아무 사건이 일어나질 않았습니다. 너무나 부끄럽고 그 자리 도망칠 수밖에 없어서 김 전도사는 자식의 무능함을 탄식하다가 담요를 싸들고 산으로 올라가서 금식과 철화를 하며 능력을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합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나니까 기도하는 가운데 불같은 성령이 그에게 임했고, 전도사님은 성령의 능력이 충만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산에서 내려오다가 김 전도사는 얼마 전에 앉은뱅이를 다시 만났습니다. 이제 부끄러움도 없이 그의 손을 잡고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자 앉은뱅이가 벌떡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김익두 목사의 첫 번째 기적이라고 합니다.
 
그 후 2만 명의 난치병 환자들을 안수해 기도해서 고쳐 주었고, 208개의 교회를 개척했고, 200여 명의 신학생들을 공부시켰습니다. 김익두 목사님과 한국교회 성도들은 정말 군산 천막 교회 집회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고, 교회가 급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다가 6.25 사변이 터짐으로써 공상군에 맞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했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의 이런 큰 능력은 기도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했죠. 김익두 목사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마가복음 9장 27절 이하에 보면,
 
*마가복음 9:29,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2:39,
39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기도하러, 기도하는 가정은 변화됩니다. 기도하는 개인도 변화합니다. 기도하는 교회도 변화가 됩니다. 기도하는 나라는 반드시 변화가 오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영국의 노예 해방에 운동하였던 울리엄 웨어포스는 자기 아들에게 새벽 기도의 중요성을 관하여 편지를 써서 보낸 적이 있다고 합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니게 원하는 것이 하나 있단다 그것은 결코 아침 기도를 무시하거나 짧게 해버리거나 성급하게 마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특히 골방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등한이 하지 않도록 주의했으면 한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달리 없다. 만약 내가 아침부터 하나님과 친근한 교제를 하게 된다면 너는 지금보다 더 훌륭하게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울리엄 웨어포스-
 
- 노예 해방을 지지하고 살아있는 신앙을 행동으로 보여준 투사의 삶이 올리엄 웨어포스라고 하지요 하루에 첫 시간을 어떻게 시작하는가에 따라서 하루의 결과가 어떠리라. 는 것을 예상해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새벽을 여는 사람은 충만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네 번째로, 어떤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냐, 눈물있는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로잉 처치, 사도행전 2장 44절 45절에,
 
*사도행전 2:44-45,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허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람과 함께 울지 않고 배고프고 헐벗은 사람과 나누지 못하는 교회는 이상적인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적어도 3번이나 우셨다고 했습니다. 어떠한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냐, 새벽마다 나와서 하나님 앞에 울부짖으면서 통행하는 그런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
 
여집사님이 남편의 무지한핍박을 가두면서도 새벽기도 빠지지 않고 주위를 성소하고, 수요일날 저녁 예배 꼭 참석을 했는데 그 남편은 부인이 교회 다닌다고 얼마나 하루는 그 여집사님이 자기 남편 신발 한 짝을 가지고 새벽 기도에 가서 앞에 남편의 구두를 놓고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신발 임자가 예수 믿고 구원받고 이 교회 장로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통곡으로 기도를 합니다. 남편이 벌떡 일어나 보니까, 아내가 없어졌어요. 틀림없이 교세 교회 갔을 거다. 교회를 갑니다. 암만 신발을 찾아도 한쪽밖에 없어. 그래서 다른 신발을 신고 교회 가보니까 자기 부인이 자기 구두 1짝을 갖다 놓고 통곡을 하면서 울면서 이 사람이 교회 나와서 회개하고, 교회가 열심히 봉사하고 교회에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장로가 되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하는 그 부인의 기도소리를 들으면서 감동을 받은 거예요. 다음 주일부터 교회 나가야지. 부인을 따라서 교회 나가기 시작해서 몇 년 후에 그 교회의 수석 장로가 됐다고 하죠.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그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사도행전 20장 31절에,
 
*사도행전 20:31,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그랬습니다. 제가 중앙교회 45년 목회를 하면서, 헌금봉토에 기도 제목을 쓰라 그래요. 우리 교회의 기도 제목 90프로가 남편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해 달라고 하는 기도 제목이에요. 그런 분들이 새벽 예배에 와서 눈물로 통회하면서 남편, 시부모, 예수 믿게 해달라고 통곡하는 사람들, ‘구하라 그러면 너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믄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잃은 영혼을 위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습니까? 여러분 사랑하는 식구들 중에 아직 믿지 않는 사람 사랑하는 친구가 아직 믿지 않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눈물을 흘리면서 그 사람들을 위해서 통곡을 하며 기도를 했나 두 번째로, 잃어버린 영혼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잠언 10:12에,
 
*잠언 10:12,
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운다. 고 했습니다. 1997년 9월에 소천한 테레사 수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성녀입니다. 그녀가 그와 같이 헌신하게 된 삶을 살게 된 경위는 기차를 타고 가는데 도중에 테레사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고 합니다.
 
테레사야, 너는 5만 명의 거지와 2만 명의 문등 환자가 있는 칼카다에 가서, 그들은 길가에서 나서 길가에서 살다가 길가에서 죽는다. 네가 그들에게 잠자리를 주고, 죽을 때 무덤을 만들어줘라. 테레사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면서 2년 동안 인도 여행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48년 8월 8일 마침내 인도 켈커다로 향합니다. 그때 그녀의 팀은 찬송가 1권, 성경책 1권, 입고 있는 수녀복 1벌이 전부였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이 1벌의 옷이 헤어지면 저는 무슨 옷을 입을지 모릅니다. 오늘 밤 어디서 잘지도 모릅니다. 내일 아침 어디서 먹게 될 지도 모르고 떠납니다. 내 일생을 당신에게 책임져 주시옵소서. 그후 30년이 지난 오늘날 그녀의 수고로 100여 곳에 고아원이 세워졌고, 세계 각처의 사랑의 선교회 미셔너리 오브 처치가 세워졌습니다.
 
저는 캘커다에 가서 테레스 수녀를 두 번 만났습니다. 가서 만나보니까 키가 작은 할머니 양로원도 하고 고아원도 하고 참 굉장히 서민적으로 사는데, 내가 인도 동북부에서 부흥회를 하고 나오다가 갈 거 다 해서 비행기 타고 서울로 돌아와야 되는데 내 가방에 있던 옷 다 넣고, 그때 선물을 15개를 받았어요. 그게 뭐냐, 사람들이 손으로 짠 셔라고 하는 게 있어 담요 비슷한 거, 각 집하에서 나한테 선물 1 주는데 15장을 받았어요. 제가 그걸 갖고 나와서 테레사 수녀한테 혹시 이게 당신에게 필요하면 내가 다 주고 가겠다. 그게 절대 필요하다고 그래서 내가 지갑에 있던 돈 그때 딸라 가져갔죠. 다 넣고 내가 입고 없던 1벌만 남기고 다 주고 그 샤 15개를 거기다 다 주고 왔는데, 참 자기 고국을 떠나서 30년 동안 캘카다에 살면서 그 죽어가는 사람들하고 함께 생활을 하면서 세계적인 우인이 됐다고 하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에 어떤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냐? 고린도전서 10장 33절이라는 말씀 그대로
 
*고린도전서 10:33,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오늘 이 설교를 마치기 전에, 예화 하나를 드리고 마칠게요. 열광적인 샘보다 제자가 쉽다는 윌리엄 볼드의 선교적 생애입니다. 윌리엄 볼드라고 하는 학생은 어마어마한 부잣집 아들이었습니다. 남들은 국내에서 수학여행을 하는데 올리엄 볼드는 그 부모님이 고등학교 졸업 예물로 세계 여행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윌리엄 볼드는 세계 여행을 하던 중에 예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이 고통 하는 모습을 보고 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선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하는 결심을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회사의 후계를 포기하고 자신의 성경책을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노 리설(No reserve), 남김이 없이 모두 바친다. 실크 로드로 갔던 이슬람 문화가 많이 자리 잡고 있었을 때의 윌리엄 볼드는 이집트 카이로를 떠나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게 됐습니다. 극에서 위생 비 위생적이지요. 한센 병 가진 사람들을 보면서 윌리엄 볼드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은 척수막염이 걸려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성경책에 이러한 글을 써놨습니다. 노 리트릿(No retreat), 후퇴하지 않겠다. 한 달 뒤에 25살의 나이에 결국 윌리엄 볼드는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사망하기 전에 자신의 성경책에 유언처럼 다음과 같은 문장을 실렸습니다. 노 리트릿(No retreat), 노 리그렛(No regrets), 노 리서브(No reserve), 마지막에 후회 없는 삶이었다고 합니다. 아들을 먼저 보낸 후 그의 어머니는 한센 병 환자들을 위해서 복음 병원을 차려줍니다. 복음병원은 현재 제2 인민 병원으로 이름이 바꿔졌습니다. 윌리엄 볼드는 기린은 작은 역사관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대부호의 자제로서 태어난 남부럽지 않은 편안한 삶을 얼마든지 살 수가 있었던 윌리엄 볼드는 자신의 모든 기회, 권리, 소유, 즉 자기 자신을 모두 버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치고 예수님을 따라간 사람입니다. 자신이 남긴 말처럼 노 리서브(No reserve)-남김없이, 노 리트릿No reserve)-후퇴 없이, 노 리그렛(No regrets)-후회 없이, 그 수첩에 적어놓고 실천해 옮겼다고 합니다.
 
언제나 자신에게는 노!라고 말하고 예수님에게는 예스! 라고 말을 하면서 살아온 울리엄 볼드, 그가 세상을 떠나 이집트에 있는 그의 묘비에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져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그는 일어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으며 형제 사랑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품고 주님을 섬기는 마음속에 열정이 불타오르며 소망으로 기뻐하고 고난을 인내하며 기도에 힘쓰며 성도와 교통하다가 세상을 떠났느니라.”
 
-참 하나님께 그만큼 바칠 수 있는 윌리엄 볼드를 보면서 오늘 내가 사는 삶이 어떠한 삶인가? 이 교회가 대한민국의 아니 전 세계에 이상적인 교회가 되고, 한국에 있는 많은 교회가 사랑의 교회를 본받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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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6월 30일)
제목: "성령님의 선교"
말씀: 사도행전 13:1-5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오우진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헌금특송: 김제니, 피아노-최혜진집사님

설교자: 브라이언 채플 목사님(미국 장로교회 PCA교단대표,커버넌트 신학교 총장) -초빙(통역: 김인기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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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1-5,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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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에게 제가 좋은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오늘날 이 시간 중국에서, 중국에는 예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이 미국보다 많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전체 인구 중에서 퍼센테이지로 보면 작지만 너무나 인구가 많기 때문에 총 숫자로 본다면 중국이 미국보다 더 많은 예배 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아프리카에서도 더 많은 사람들이 미국보다도 예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아프리카 인구의 아주 작은 소수의 민족들만 예수님을 예배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아프리카에서는 50프로에 넘는 사람들이 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얘기하고 다닙니다. 아프리카에만 5억 명이 넘는 그리스 돈들이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모든 인구보다도 더 많은 숫자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지난 15년 동안 그리스도로 돌아온 무슬림의 숫자는 지난 14세기 동안 돌아온 숫자보다 더 많습니다. 이란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는 아프가니스탄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들을 억압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하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도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기독교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종교가 되었습니다.

2050년에는 또 10억 명의 기독교인들이 추가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단순히 놀래 키려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살아계시고 역사 하신다는 것을 증거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다른 분들이요.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 근데 성경 이야기 그거 오래된 이야기 아니야. 라면서 그리스도의 역사 역사성을 훼손시킵니다. 다시 말씀드려 성령님은 살아계시고 역사하시고 이 자리에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교회들의 목표는 성령님께서 어디로 이끌 수 있는지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언제나 성령님께 간구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돛을 올리고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성령님 새바람을 불어 주시옵소서! 우리가 가야 될 길로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어떻게 해야 될까요? 어떻게 주님께 전적으로 위탁할 수 있습니까? 오늘 13장에서 우리 발견을 방법을 확인합니다. 사도행전 1장이 시작될 때, 성령님의 바람에 큰 권능으로 교회에 불어왔습니다. 특별히 오순절 날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그 오순절 날, 3천 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그러나 그의 일이 끝나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킵니다. 성령께서는 매일 예수님을 구조로 믿게 된 사람들을 더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나중에는 유대인 제사장들까지도 예수님을 따르게 됐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유대 권위자들은 아 이젠 충분하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교회를 무너뜨릴 때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젊은 청년, 아주 젊은 종교적 광신도 그중에서 사울이라는 사람을 고용하기로 합니다.

이 사울이란 사람은 교회 무너뜨리는 데는 아주 재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크리스천 남녀를 감옥에 넣었고, 끝까지 신앙을 지킨 사람들은 사울이 죽여 버렸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그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계속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사월이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할 때에도 모든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복음이라는 씨앗을 가지고 날아가는 발걸음들이 되었습니다.

초대 기독교인들 중 일부는 지금 우리가 소아시아라고 부르는 지역들,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을 잇는 교량지역으로 떠나갔습니다. 그 소아시아 지역에서 기독교인들이 모였을 때, 그들은 비로서야 그곳에서 크리스천이라고 처음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여 안디옥이란 곳에서 모여서 첫 번째로,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합니다. 사도행전 13장 첫 구절에서 우리는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이 구절을 볼 때, 아, 어떻게 해야 성령께서 일하심과 강권하심을 우리가 느낄 수 있고 체험할 수 있구나! 를 배울 수 있습니다. 바로 교회에 있는 모든 리더들이 겸손으로 무릎을 꿇고 주님 앞에 하나 됨을 간구했던 것입니다. 특별히 리더들이 하나 됨을 위해 기도할 때, 성년께서 어떻게 교회를 사용하시는지를 보게 됩니다. 특별히 13장에나 1절에 나오는 이름들에 우리가 주목하길 원합니다. 첫 번째로, 바나바라는 이름으로 시작합니다. 바나바 이름의 뜻은 격려의 아들 위로의 아들입니다.

*사도행전 13:1,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엄청나게 아름다운 유대식 이름입니다. 정말로 바나바가 사도바울에게 큰 위로 자였습니다. 사도바울이 첫 선교를 떠났을 때, 바나바를 데려간 것으로 기억하시죠. 바나바는 위로 자였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복음을 들고 나아갈 때 선교를 나아갈 때 그는 위로 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어진 스토리는 더 아름답습니다. 바나바랑 사울이 처음으로 갔던 곳이 어딘지 기억하시죠? 첫 번째 선교 장소는 바로 헬라의 섬 중 하나인 구브로란 섬입니다. 사실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바나바는 유대인이었지만 그리스 헬라문화에서 자랐습니다. 이제 바울은 헬라 문화의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나바는 위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에게,,, 바나바는 사도바울에게 헬라 문화권에 대해 알려주면서 사역을 돕도록 주님께서 준비시켰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나바 가족에게 한 세대 전에 구브로 섬으로 이동시키셨습니다. 그래서 바나바가 바울을 돕도록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지혜로우신지요? 그리고 성령님께서는 계속해서 세대(世代)를 건너서 일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스토리는 더욱더 아름답습니다. 사도바울과 바나바에 관한 일입니다. 바나바의 조카가 이 선교회 같이 따라갔었습니다. 5절 마지막 부분에 나와 있는데요.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사실상 그의 풀 네임이 아닙니다. 다른 구절을 보면 이 요한은 ‘마가라 하는 요한’(마가 요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라는 요한 또한 구부로 출신이었습니다. 그가 사실 바나바와 그리고 사도바울을 도울 수도 있었지만 그러나 굉장히 다르게 반응을 하기 시작합니다.

마가가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걸 알았을 때, 아! ‘근데 그러면 내가 돌아가면 내 친구들에게 내가 이제 예수님의 사람이 됐던 걸 얘기해야 되잖아!’. 그게 너무 싫어서 마가는 무엇을 했습니까? 도망가 버립니다. 친척들과 모든 가족 친구들을 보기 싫었습니다. 겁쟁이였습니다. 너무나 끔찍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과 바나바가 두 번째 선교 여행을 가기로 작정했을 때, 바나바가 사도바울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어, ‘우리 마가를 데려가지 않을래?’ 바울이 뭐라고 했을까요? ‘절대 안 돼!!! 데려갈 수 없어’ 아 그리고 격렬한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끔찍한 이야기로만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이야기로 마무리가 됩니다. 사실 이 마지막 부분 엔딩은 어떻게 되냐면, 우리가 신약 복음을 읽을 때마다 시작이 됩니다. 신약 성경에서 첫 번째로, 나오는 책은 무엇이죠? 마태복음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두 번째로, 나온 책은 무엇일까요? 마가복음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마가가 마가복음을 쓴 저자이기도 합니다. 존 머크, 바로 마가라는 요한입니다.

바로 구부로의 겁쟁이입니다. 주님께서는 마가라는 사람을 사용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도 훨씬 더 지혜로워하십니다. 그리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가복음을 펼 때마다 주님의 자비를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마가복음을 볼 때마다 무엇을 배워야 될까요?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을 구원하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회복한 하나이시며, 이것이 바로 복음의 본질인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바나바라는 인물을 공부할 때 이 모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우리가 공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일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또 누가 안디옥 교회 리더 들이었을까요? 두 번째 이름은 바로 시므온이라는 사람입니다. 시므온이라고 이름 낸 이 사람입니다. 니게르란 뜻은 ‘검다’ 라는 뜻입니다. 실질적으로 아마 피부가 검었을 것입니다. 사실 유대인 민족 가운데 피부가 검었다는 것은 그 사람은 배척당해야만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유대식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흑인 피부였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조상 가운데 어떤 시점에 비유대인과 그의 조상이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 기준으로 볼 때, 그는 불순하며 멀리해야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교회 안에서 그는 멀리 드는 사람이 아니라, 이론으로 받아 리더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이야기는 더 아름답습니다. 이 유대인들이 어디서 그럼 이 검은 피부를 가지게 됐을까요? 실질적으로 당시의 예수님과 사도바울 시기에 북아프리카 지역의 유대인들이 다스리던 식민지가 있었습니다. 그 북 아프리카를 유대인들이 뭐라고 불렀는지 아십니까? 바로 그들은 그 지역을 ‘구레네’라고 불렀습니다. 이 사람은 구례네 시몬입니다. 혹시 이름이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갈보리 언덕으로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셨을 때, 채찍질로 인하여 너무나 크게 피를 흘리셨을 때, 그리고 너무 힘들어서 십자가의 무게에 짓눌려 넘어지셨을 때, 그때 로마 병사 중 한 명이 사람들 중 한 명을 끌어내어, ‘네가 이 사람의 십자가를 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졌던 사람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구레네 사람 시몬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다시 등장합니다. 이제는 그가 안디옥 교회의 리더로서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가 교회 왔을 때 다른 크리스천들이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왜냐하면, 우리 구주를 괴롭게 했던 십자가를 지었던 사람이라니,,, 어떻게 그런 사람이 우리 교회에 들어올 수 있냐고, 그러나 그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리더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얼마나 놀라우신지,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하나님은 구원하시고, 하나님은 회복시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는 교회 안에서 연합되고 하나 되어서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한 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야기는 계속해서 진행이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사람이 누구십니까 구레네 사람 루기오입니다. 첫 번째로, 로마 이름이 등장하는 장면인데요. 루기오는 로마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로마 사람이 교회에 있습니다.

심지어 리더 입니다. 근데 그게 왜 이상한 일일까요? 왜냐하면, 로마의 압제 가운데 주님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압제(壓制) 가운데 교회들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으로 안디옥 교회가 생긴 이유는 예루살렘에서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집을 잃었고, 직장을 잃었고, 가족을 잃었고, 그리고 로마인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로마인이 교회에 있습니다. 그러면 그의 집은 어디일까요? 고향은 어딜까요? 그는 구레네의 루기오입니다.

북아프리카 출신의 로마 시민권자입니다. 아, 이제야 우리가 좀 깨달음을 얻는 것 같습니다. 초대 교회 크리스천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은 초대 교회에서 다른 곳으로 선교사를 보냈던 그 사람들은, 사실 모든 나라에서 사람들이 와서 모인 교회였습니다. 유대인이었고, 로마인이었고, 아프리칸이었고, 다민족 교회였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상상을 초월하여서 인종의 벽을 묻으시며 일하고 계셨습니다. 여기에 있는 모든 크리스천은 정말로 겸손하게 주님 앞에 무릎 꿇고 나아갑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그들을 기억 기도합니다.

하나님, 주님이 우리를 용서해주시면, 우리도 그들을 용서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우리가 붙들고 나아가겠습니다. 하나 된다는 것은, 엄청 엄청난 겸손함을 드러냅니다. 사실 하나 된다는 것은 얼마나 겸손이 어려운지도 드러냅니다. 그 다음 이름이 무엇일까요? 그 다음에 등장한 리더의 이름은 마나임 이라는 리더 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헤롯왕의 궁정의 일원 헤롯의 젖동생이라고 나옵니다. 사실 헤롯왕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이 헤롯왕이 어떤 왕인지 햇갈리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그렇기 때문에 이 헤롯왕이 어떤 헤롯왕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이 헤롯왕의 아버지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베들레헴에서 아기들을 학살한 왕입니다. 그러나 이 헤롯왕도 자기 아버지와 같이 자기 손에 피를 묻혔습니다. 세례요한의 목을 베었습니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죽여 버렸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헤롯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빌라도에게 넘겨버린 그 헤롯입니다. 그리고 지금 교회의 마나임이란 사람이 있는데, 헤롯왕의 젖동생이라뇨? 영어로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원수의 친구는 나의 원수다.’ 지금 헤롯왕보다 더 큰 적군은 원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친구가 마나임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나임은 용서를 받았습니다.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리더로 세워졌습니다. 이게 얼마나 그 교회를 같이 다니는 사람들에게 어려웠을지 상상되십니까? 아마 이렇게 기도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아니 유대인 중에 겁쟁이 유대인 우리 교회 오는 거 괜찮습니다. 검은 피부를 가진 유대인도 제가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 심지어 로마 시민권인 아프리카인도 제가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나 마나임은 안 됩니다. 하나님, 너무 어렵습니다. 마나임은 안 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려면 성령께서 내 마음을 만져주셔야만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일하셨습니다. 이것도 초인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크리스천은 모든 일에 성령님의 일에 정말로 무릎 꿇고 경배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마나임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사람만큼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 사람 이름 무엇입니까? 바로 사울입니다. 지금 안디옥에 왜 기독교인일가요? 왜냐하면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쫓아냈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사울이 그들의 집을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가족들을 감옥에 넣었고, 사울이 그 가족들 중에 몇 명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안디옥교의 리더 라구요? 그리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선교사로 파송됐다고요? 얼마나 안디옥교회에서 하나 되기가 어려웠을까요?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크라이나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군대의 우리 마을이 완전히 포격 당했습니다. 우리 가족도 죽어버렸고 그리고 이제는 우크라이나를 떠나서 이제 미국으로 망명을 가, 그곳에서 교회를 다니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들어갔는데, 근데 교회 중에 리더 분들이 앉아 계시는데, 만일 그곳의 리더가,,, 러시아 장군이고, 우리의 마을을 포격했던 장군이라면, 그 교회에 계실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바로 그 교회를 떠나시겠습니까? 이 기독교인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그들은 이렇게 묻겠습니다.

만일 이것이 성령님이 하신 일이라면, 우리는 겸손히 순종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받아들인 자들을 우리도 받아들이겠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모두 죄악 넘어서까지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쓴 뿌리를 넘어 일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과거와는 상관없이 예수님을 사랑 안에서 우리가 하나 되고 연합돼야 된 줄 확신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아름다움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이러한 겸손을 통해 가장 끔찍한 죄에 대한, 용서가 있음을 복음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최악의 죄인들에게도 소망이 있습니다. 복음 안에는 가장 쓰라린 분열에 대한 치유가 있습니다.

근데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 그거 그냥 오래된 이야기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는 오늘 이 시간 확신합니다. 만일 모든 교회가 전교회가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면, 우리가 겸손함으로 무릎 꿇고 나아갈 때, 성령의 새바람이 이 교회 부를 줄 믿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 됨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우리가 또 보게 됩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 무엇을 하였습니까? 2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사도행전 13:2,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그들은 멈추지 않고 예배하였다. 왜 예배했을까요? 집을 잃어버렸고, 그리고 가족을 잃어버렸고, 심지어 미래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다 같이 모여 예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예배했을까요?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악을 용서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해서 예배합니다. 멈추지 않고 예배합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금식(禁食)합니다. 그리고 그게 3절입니다.

*사도행전 13:3,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금식하고 기도한 이후에 그들이 첫 선교사를 파송합니다. 왜 그들이 기도해야 했을까요? 왜냐하면, 기도야말로, ‘하나님 나는 하나님이 필요한 합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능력으로 할 수 없습니다. 나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일 해주시옵소서. ‘주님 나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고 영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금식이란, 우리의 실질적으로 나타나는 표현입니다. 금식할 때, 우리는 스스로 약하게 만듭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왜냐하면, 우리가 약할 때 주님께서 강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약할 때 주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님의 권능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끊임없이 예배해야만 합니다.

그를 예배하는 중에 우리가 기도함으로 나아가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됩니다. 왜냐면, 성령님께서 요청하시는 일은 우리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코로나19 기간 동안 우리가 예배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코로나 기간 동안, 누군가 너 왜 예배드리러 가냐? 라고 조롱한다면, 사실 예배드리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심지어 우리 믿지 않는 가족의 우리를 너 왜 교회 가냐고 라고 조롱한다면,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기간 가운데도 우리가 하나로 모여 예배할 때, 전 세계를 향해 우리가 이렇게 공포하는 겁니다. 성령님께서 이 자리에 일하고 계신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럼 도대체 주님께서 주신 사명과 숙명이 무엇일까요? 계속되는 예배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용기를 가지고 담대함으로 증거 해야 됨을 믿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계속해서 증거 해야 됐습니다. 성령님의 능력 안에 그들은 증거 해야 됐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두 명이 어디로 갔는지 아십니까? 처음으로, 바로 이 회당으로 갔고, 왜냐하면,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신 것을 증거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도바울에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어요. 왜냐하면, 다시 그의 교회 가족들에게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나바에게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이었지만 그 두 명 다 민족에게 복음을 제안해야 되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민족 아니면 같은 가족에게 전할 때, 왜 성령님의 도움심이 필요할까요? 혹시 여러분, 누가 제일 여러분 잘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의 약점을 누가 제일 잘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의 결정, 여러분들의 연약함, 여러분들의 고등학교 때 한 일 누가 제일 잘 알고 계십니까? 우리 가족입니다. 우리 가족에게 증거 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우리 가족들이 우리 알고 있는 모든 연약함들, 나의 연약함, 나의 결점, 나의 위선까지도 모든 것들을 우리가 가족들이 우리에게 얘기 할 때, 맞습니다. 그렇게 나쁜 사람 맞습니다. 나를 용서하셨습니다. 나를 구원하셨고, 나를 회복시키셨고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 분들 주님께서도 당신들에게 권할 수 있음을 증거 해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될 사명입니다. 우리 가족들에게 그러나 가족과 민족뿐만 아니라 우리 적군들에게도 적들에게도 전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사실 13장 전체를 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3장을 본다면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어떻게 진행했는지 아실 겁니다. 구브로 이후에는 이 바울과 바나바가 마술사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이 사람은 자기를 바 예수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그를 꾸짖었습니다.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마술사는 로마 총독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들이 그에게 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마술사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로마 총독이 믿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바로 성령님이 일하심입니다. 바로 우리의 역량을 넘어서 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지혜를 넘어 일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 일하심을 믿고 나아간다면, 그리고 저는 이걸 확신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저는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삶에서도 성령님의 능력이 증거 됐습니다. 제가 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지난달 100년 동안 매년마다 홍콩 성경 컨퍼런스에서 25만 명이 모여 성경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3년 전에 홍콩 성경 컨퍼런스가 완전히 캔슬(Cancel) 됐습니다. 코로나 19가 캔슬 시켜버린 것입니다. 사실 제가 3년 전에 강사로 서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게 닫아버렸기 때문에 그쪽 리더가 저에게 편지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보내왔습니다. ‘브라이언 채플 박사님, 아시다시피 코로나가 중국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수만 명의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모든 공공 활동들이 정지되었으며 교회 모임도 중단되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께서 이미 예정되었던 강사로서 짧은 메시지를 써주신다면 우리가 위로받고 격려 받고 영감을 얻을 것을 확신합니다.’ 근데 제가 이 편지를 받았을 때, 내가 과연 이 편지에 답장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홍콩에 계신 크리스천 분들은 너무나 큰 억압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 억압과 탄압(彈壓) 가운데서도 신실함을 지켰던 분들입니다. 저는 인생 가운데 그러한 억압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그런데 어떻게 그들을 격려하고 독려할 자격이 있는가? 그렇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령의 역사에 대해 쓰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썼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중국에서 여러분들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읽으면서 전 세계 교인들이 여러분들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 이 편지를 있습니다. 천사들이 여러분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불 꽃 같은 눈동자가 여러분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탄식으로 여러분들을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심지어 모든 걸 코로나마저도 함께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어 이 잠깐의 고난을 우리가 곧 받게 될 영광의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장치일 뿐입니다.’

사실 제가 이 편지를 보내고서도 어떠한 영향이 있을 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받고 나중에 홍콩 리더 들이 이 편지를 가지고 기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기도했습니다. 이 코로나 19가 끝난 이후에 다시 한 번 홍콩에서 성경 컨퍼런스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코로나 전과 같이 25만 명이 모일 수 있도록 하여 주십시오. 라고 그들은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다시 8월에 성경 컨퍼런스가 열리게 되어서 제가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다시 한 번 강사로 초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사실 고백할 게 있습니다. 작년 컨퍼런스에 25만 명이 모이지 못했습니다. 110만 명이 모여 함께 예배하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시고 역사함을 믿습니다. 성령님은 전 세계 각국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은 북한에서도 일하시며, 그리고 우리의 이웃 가운데서도 일하시며,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 가운데 일하시는 분을 믿습니다. 우리의 고난은 성령께로 가는 문입니다.

우리의 장애물을 성도님이 사용하실 기회를 드립니다. 우리가 주님께 전적위탁하면서 손을 들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성령의 새바람 이 땅에 불어오시옵소서. 주님의 권능이 우리에게 삶을 전적 부탁드립니다. 성령의 새바람 이 땅에 불어오시옵소서. 성령의 새바람 불어오시옵소서. 우리의 고백 예수 그리스도로 간구합니다. 성령의 새바람이 땅에 불어오소서. 예수 그리스도로 기도드립니다.’

♣요약
성령님께서 겁쟁이와 적대자를 초월하는 대반전의 기적으로 임하시기를 간구하며,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겸손으로 날마다 예수님을 구주로 전하며, 기도와 금식으로 주님의 능력을 구하며 전적으로 순종할 때, 가족과 이웃과 그리고 대한민국과 북한과 열방에 강력한 성령의 새 바람이 불어오기를 소망해아 하며, 우리 교회가 사랑글로벌 아카데미(SaGA)와 로잔 글로벌 파트너스와 함께 성령님의 능력으로 연합할 때, 세계 복음주의의 쇠퇴를 압도하는 2033-50 비전으로 21세기 사도행전을 집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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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6월 23일)
제목: “시험 들지 말고 예배하라”
(Worship the Lord Your God Instead of Folling into Temptation).
-(예수님은 누구신가? ⑭)

말씀: 마태복음 4:5~11,
찬양인도: 쉐키나(이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이기원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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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4:5~11,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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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25 발발 74주년이자, 사랑의 교회는 복음적 평화통일을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1년에 몇 차례만 우리 강단 위에 국기, 태극기와 또 교회 깃발 2개가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두 나라 백성입니다. 대한민국 백성입니다. 첫째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고, 그 다음에는 대한민국 백성입니다. 맞습니까?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릴 것인가? 이것이 Key이고, 대한민국 백성으로서는 우리가 이 말씀을 받은 사명자로,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로, 시대 앞에서 어떻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Key인데, 오늘 ‘예수님은 누구신가?’ 열네 번째(⑭) 말씀, “시험 들지 말고 예배하라.” 이 마음 이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말씀으로 여러분들에게 잘 씨앗이 떨어지게 하시고, 말씀의 씨앗이 또 발아(發芽)되고, 또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지는 그런 축복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오늘 마태복음 4장에 본문을 가지고 계속 To be Continued.~ 계속 이어서 말씀하셨는데, 지난주를 2번에 걸쳐서 처음 광야에서 육신의 시험을, 배고픔으로 시험하게 하시고, 그다음에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라. 이생의 자랑 그렇게 시험하고, 오늘 이제 세 번째 핵심인데 오늘 이 세 번째 시험을 여러분들이 잘 확인하고, 승리하면 여러분의 가정도, 우리 민족도, 이 시대도 하나님 주신 은혜를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핵심은 예배에 관한 것입니다. 10절에,
 
*마태복음 4:10,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아멘 신구약에 보면 경배란 말은 여배와 연결돼 있을 뿐만 아니라, 섬긴다 할 때도 여호수아가 너희는 너의 택할 자를 택하라. 나는 나와 우리 집은 여호와를 뭐 하겠노라 섬기겠노라. 예배와 그대로 직결되어 있습니다. 나와 내 집은 예배하겠느니라. 이런 뜻으로 나와 있습니다. 자 포인트는 우리가 시험 들 때마다 예수님은 먼저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를 했습니다. 뭐로 승리했다고요? 기록된 하나님 말씀으로,,,,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마귀를 대적한다. 그랬을 때에 마귀와의 영적 전쟁을 감당한다고 그랬을 때 무얼로 승리할까요? 우리가 무슨 능력이 있어요? 무슨 불을 받아 가지고 그럴 수도 있지만,
 
진짜 우리가 한 결 같이 꾸준하게 승리하는 비결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을 우리가 야고보서 4장 7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런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야고보서 4:7,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이겼는데, 주님이 야고보를 통하여 뭐로 말씀하시냐면, 하나님께 복종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이런 말이 나오는데, 마귀를 대적한다. 할 때 우리가 어떻게 마귀를 막 대적하겠어요? 마귀를 대적하는 길은 하나님을 복종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복종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주기도문 하면서 우리가 시험 악에게 시험 들지 말게 해달라고,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악에게 시험을 들지 말게 해달라고, 우리가 기도하잖아요?. 뭐라고 기도합니까? 우리가 범죄하지 말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게 해달라고, 그건 사실은 우리를 보호해달라는 간구이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겠다는 선언이 들어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겠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겠다는 것을 우리가 무슨 복종의 관계다 순종의 관계다. 그랬을 때 이것을 무슨 우리가 꼼짝도 못하고 노예 상태가 돼 가지고 뭐 이렇게 아주 그냥 굴복하고 이런 뜻이 아니에요. 프란시코 박사 같은 경우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그냥 순종이 아니고, 이거는 능동적 수동형이다. 다시 한 번 뭐라구요. 능동적 수동성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수동적으로 순종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능동적인 것이다. 능동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세상에 무슨 억지로 포로가 되어 가지고, 그냥 참 굴복하고 막 이거는 그런 것들은 좀 어렵지만, 진짜 제대로 된 영광스러운 위대한 대상이 우리 앞에 있을 때 그 대상을 따라 그 승리의 깃발을 우리가 같이 붙잡고, 그 대상의 길을 순종하는 것은 그것은 영광스러운 것이에요. 맞습니까? 그러니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다는 것은 단순히 굴복하고 이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마귀(魔鬼)의 시험을 이겨낼 수 있는 영광스러운 선제공격(先制攻擊)이 되는 것이에요. 인제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하나님 말씀을 그만큼 가까이 두느냐, 그러니까 말씀을 가까이 두느냐, 시편 119편에 보면 뭐라고 나와 있냐면요, 이렇게 나와 있어요.
 
*시편119:11,
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내 마음에 가까이 두었다고 그랬는데 기록된 하지만 가까이 두는데, 제가 한번 우리 옛날 어른들 얘기 한번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오늘 이와 같이 예배를 드리러 나오시지만 오늘 주일날 나올 때 어떤 분들은 일주일 내내 이걸 성경은 또 성경 밑에 성경 위에는 다른 책 두지 말라 그랬으니까 위에 딱 얹어 놓아요. 그러면 일주일 내내 여기에 안 보면 먼지만 파박 쌓이는 거예요. 그래서 주일날 올 때 먼지를 그걸 옛날에 후후 불어서 가지고 옵니다. 그걸 예전에는 후탁교인이라고 했어요. 예,,, 우리 가운데는 그런 교인이 없는 줄로 믿습니다.
 
근데 문제는 요새는 전부 다 휴대폰 안에다가 성경을 갖고 다니니까, 요새는 후탁교인이 아니라, 주일 예배 와가지고 그때 말씀을 꺼내니까, 그거는 후딱교인이에요. 후탁이든, 후딱이든, 우리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주님을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과 연결이 되어 있다. 그래 생각해 가지고,,,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능동적 수동성을 가진 대장되신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그런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리고 다 이거 이제 승리하고 나니까 11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면,
 
*마태복음 4:11,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아멘 기진맥진(氣盡脈盡)한 예수님의 몸을 붙들어 일으켜 드리고, 천사들이 인성으로 굶주리신 예수님을 하늘과 땅의 신령한 양식으로 채워 주신 원기를 회복시켜 주신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자, 이 전체적으로 제가 지금 그림을 그려드렸고,
 
본격적으로 왜? 주님께서는 주 네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왜 그렇게 했을까요? 이 모든 시험의 마귀 마귀의 시험의 마지막 결론을 이렇게 내리신 이유가 뭘까? 한 번 더 보겠습니다. 8절에 보니까,
 
*마태복음 4:8,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마귀가 예수님을 어떻게 해요?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고, 근데 이걸 멀리서 보여줬어요. 멀리서 이렇게 멀리서 보여준 이유가 뭐냐 하면, 그 멀리 보니까 거기에 로마 제국의 찬란한 문화가 있고, 아테네 멋있는 신전이 있고, 예루살렘 성전의 영광스러운 모습과 헤롯의 금빛 도움들이 있었어요. 휘황(輝煌) 찬란(燦爛)한 매력 있는 것들을 보여줬어요. 근데 많은 것들이 세상 것들은 멀리서 보면 다 멋있어요. 근데 가까이 가보면 실망하는 것이에요.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 경치도 조금만 숲을 헤치고 들어가면 무서운 살생이 벌어지는 거예요. 멀리 봤을 때는 아름답지만 그 안에 무서운 야생 짐승이 있고, 뱀이 있고, 자연도 겉으로 볼 때는 멀리서 아름답게 보이지만 들어가 아주 거친 가시가 있고 그런 게 있잖아요?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것 같지만 그러고 난 다음에 이제 중요한데 9절에,
 
*마태복음 4:9,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게 얼마나 간교(奸巧)하고 교묘(巧妙)한 시험(試驗)인지 모릅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敬拜)하면, 이 내용은 이것입니다. 사탄의 마지막 시험은 예배(禮拜)에 대한 시험이었어요. 누구를 경배하느냐? 누구를 예배하느냐? ‘만일 내게 엎드려 내게 경배하면, 예수님께서 인간의 대표로 받으신 마지막 시험인데 이런 뜻이에요.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예배하는 자로 취임 받았어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 다른 무엇인가를 예배하게 되어 있어요. 하다못해 요새는요, 나 수많은 우리 여러분들 수많은 것들을 예배하는 인생이 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 다른 무언가를 예배하는 이런 상태를 보시고 마귀의 가장 강력한 이 시험, 이 예배에 관한 시험을 가지고, 공격해 왔을 때, 예수님께선 단호하게 사탄아 물러가라!!! 그래서 여러분 인류의 역사는 예배 문제로, 예배 전쟁이다.
 
제가 오늘 좀 이 뒷부분이 중요하기 때문에 앞부분을 제가 요약해서 말씀을 드리는데, 인류 역사에서 예배의 문제는 항상 갈등(葛藤) 구조였어요. 자 보세요.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교제를 통하여 아담과 하오가 하나를 예배하게 돼 있어요. 근데 그 불순종을 해 가지고 예배가 파괴되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마지막 요한계시록 22장이 마지막에 온 백성과 방언과 족속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알파가 예배로 시작하고, 오메가가 예배로 마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걸 알고 사탄은 인간이 예배하는 자로 지어졌다는 것을 이걸 자기를 예배하게 만드는 아닌 다른 걸로 대체해 가지고 예배하도록 그렇게 교묘(巧妙)하게 난리를 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간의 역사는 예배에서 시작해서, 예배로 끝나게 되는데 예배 인류 역사에서 예배의 문제는 항상 갈등 구조가 있었어요. 아담이 그랬지만 아담이 에덴동산에 쫓겨나고 난 다음에 예배 전쟁으로 드디어 살인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예배를 받아주시지 않고, 아벨 예배를 받아주시니까 가인이 동생을 살인해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노아는 방주에서 구원받고 나서 한 첫 번째 행동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아브라함의 사명을 받고 난 다음에, 너는 축복의 근원이 되라 사명 받고 난 다음에, 제일 먼저 한 것이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예배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출애굽기 할 때에 왜?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시켰는가? 얘기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에굽 땅에서 이방신을 섬기는 한 아주 힘든 그런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뭐 육신적으로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이 백성을 광야론 나오게 해라. 저들이 나를 섬기게 하라.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이 예배란 말과 동일하다는 것이에요. 말씀한 대로 여호수아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너희 백성들이 택할 자를 택하라. 나는 나와 우리 집은 여호와를 예배하고 섬기겠노라.’
 
예수님의 탄생(誕生) 스토리도 예배로 시작했습니다. 천사와 동방박사와 목자와 시몬과 반나가 예수님께 예배하고 경배한 것입니다. 예배가 인류 역사의 시작이요. 마지막이요.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겁니다. 자, 우리는 이런 의미에서 이제 삶의 현장에서 오늘 지난주, 이번 주에 걸쳐서 예수님의 시험을 거치면서 예수님이 오늘은 우리의 참예배자이시고, 또 참예배자를 만드시는 예수님이신 줄 믿으셔야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뜻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우리 교우들이 성숙했다는 걸 뭘로 표현합니까? 사랑의 교 입장에서는 성숙한다고 그랬을 때 우리가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로 주님을 더 닮아 가는 것, 그 다음에 우리가 또 주님을 닮아가고 난 다음에 다른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거, 가치 있고 귀한 일이에요.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주님을 닮아가고,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이것은 궁극이 아니에요. 이거는 과정이고, 이건 이거는 이 일들을 통한 무장되는 것이에요. 궁극의 목적은 뭐냐 하면 우리 인생은 이런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참으로 예배하는 자가 돼야 되는 것이에요. 선교사들이 가끔 와서 선교하잖아요? 선교지에 선교지의 제일 중요한 것이 선교의 목표가 뭐냐? 선교지의 영혼 구원하고 복음전도 다 하는 것이지만 결국은 그 선교지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땅으로 바뀌어야만 되는 것이고, 그 선교지의 백성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에요.
 
오늘 우리는 6.25 발발 74주년, 이 남북의 문제를 얘기할 때 뭐 여러 가지 해석을 합니다마는 남북의 문제에 가장 심각한 것은 뭐냐? 예배의 문제예요. 북한이 공산주의가 이제 이북을 점령하고, 난 다음에 제일 먼저 한 것이 뭐냐 하면, 교회를 파괴했습니다. 예배의 대상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북한의 신실한 평양의 장대연 교회나 산자연교회나 신의주제일교회나 청진이나 곳곳마다 하나님의 2850교회 그 3천여 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가 하나님을 다 다 여배가 일본 시대에도 그 의무관시대에도 예배를 다 드리고 있는 그걸 다 파괴를 하고, 김일성과 요즘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예배하게 만드는 것이에요. 남북의 문제는 사실은 남남 갈등도 있지만 남북의 문제는 사실 예배의 문제예요.
 
그러니까 오늘 우리는 오늘 예배를 통하여 북한에도 예배가 회복되게 하여 주십시오. 여러분 예배가 없이 공적 예배나 이런 예배가 없이 10년을 지나고, 20년을 지나고 30년이 지나면, 그 땅들이 다 피하게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북한은 겉으로는 뭐 평양의 멋있기가 보이지만 사실은 그 땅이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너무 황폐해진 것이에요. 70년이 지났기 때문에,,, 그러니까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주님, 북쪽에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 될 수 있도록 변화시켜주옵소서. 그리고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영적 성숙의 장에 있어서, 진짜 우리의 성숙의 궁극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할 수가 있는가? 오늘 이 모든 시험을 이겨내는 마지막 궁극은 하나님을 향한 참된 여배자가 돼야 되는데 세상에 우리는 세상을 하여튼 하나님이 예배하지 않으면, 다른 걸 예배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이런 상황이 되어 있는데, 첫째,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I. 첫째, 마음이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오늘 사랑의 길에 속한 모든 성도들과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죄 권속들은 예외 없이 여러분들의 마음을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마음이 참된 예배를 드려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고백한 대로 이 백성의 입술로는 존중한다고 하지만, 마음은 다 떠나 있다고 그랬어요. 마태복음 15장 8절, 9절에 보니까,
 
*마태복음 15:8,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자 주님을 참되게 예배하고 경배를 해야 되는데, 마음이 떠나 있는 거예요. 마음이 참된 예배를 드려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참된 예배는 마음을 드리는 것이고. 입술이 아니라, 마음으로 주님을 집중하는 것인데 그러니까 오늘도 이 예배를 드리면서 오늘 우리 회중 찬송했잖아요.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오늘 여러분들의 마음을 실어가지고, 지금 즉시,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주님께 예배드릴 것인가? 우리의 참된 마음으로 어떻게 예배를 드릴 것인가? 우리의 마음이 날마다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나와야 하는 것이에요.
 
지 지난주 우리 46주년 예배를 드릴 때, 그때 회중 찬송할 때 조금 우리가 다른 때와는 다르게, ‘기뻐하며 경배하세, 영광의 주 하나님, 그 찬송하고 내 주의 나라와 주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찬송을 할 때에 많은 회중들이 할 때에 많은 분들이 눈물을 훔치더라고요. 그러니까 그것이 뭐냐 하면, 마음의 주님께 올려 져 있는 거예요. 제가 다시 보겠습니다. 지지난주 예배할 때 무슨 찬송한지, 기억나십니까? 벌써 뭐 옛날에 금잔디 동산으로,,, 이런 마음이 추님 앞에 올려드려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늘 말씀드리지만, 예배는 예배드리기 전에 결정되는 거에요. 마음이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 것이에요. 마음이 매주일 마다 새 마음으로, 새로운 기대감으로 간절히 예배를 드리라는 거예요. 이런 차원에서 토요일 저녁과 주일 아침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미리미리 마음으로 기대하고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토요일 밤 잠들기 전에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기대하면서 준비해야 되는 거예요.
 
주일 날 예배 나오셔가지고, 오늘도 창조의 아버지 찬양할 때, 또 웨이 메이커(Way Maker), 찬양할 때 우리의 마음이 거룩한 기대감으로 터질 듯해야 되는 것이에요. 이런 마음으로 예배를 잘 드릴 때마다 시편 29편 이전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시편 29:2,
2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너희가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우리가 새로운 옷을 입을 때는 아무런 감정 없이 새로운 옷을 입는 사람이 없어요. 새로운 옷을 입을 때 뭔가 기대감을 가지고 옷을 입는 거예요. 우리가 예배 올 때마다 거룩한 옷, 거룩한 새 옷을 입고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매주 나올 때마다, 새로운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나온다는 것은 거룩한 옷을 입고 나오는 겁니다.
 
우리가 각양의 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고 나오지만, 내면으로는 모두가 다 신령에 새로운 거룩한 새 옷을 입고 참여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주일마다 멋있는 옷이 아니라, 마음의 새로운 옷을 입고 단장하는 그런 축복 입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저는 참 예배를 많이 드린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우리 아버님은 가정 예배를 드리는데, 세상에 아침에도 가정예배, 저녁에도 가정예배, 그리고 또 예배를 드리는데, 그것도 아침에도, 예배 형식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여튼 그냥 가정 아침, 저녁에 드리는데, 주여,!! 은혜를 받기도 하지만 어린아이들이 뭐 어떻게 다 알겠어요. 철들었어도 예배, 제가 매주일 마다 여러 번 예배를 드리고, 처음 부임해가 10년 동안은 제가 5번, 6번씩 주일예배, 그리고 제가 늘 말씀드렸지만 시작할 때는 타오르는 불이 되다가 마칠 때는 타다 나면 재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예배를 드렸는데 어떤 분이 편지가 와요. 목사님, 나는 뭐 이런 일들이 뭐 어떤 사업하는 분 어떤 법조계에 계신 분들이 편지가 오는데 대법원에서 일하시는 어떤 판사께서 연락이 온 거에요. 저한테 편지가 옵니다. 저는 주일 예배가 너무 중요한데 주일 예배에서 은혜 못 받으면 나는 죽습니다.
 
나는 그 편지를 받고 내가 죽고 싶었어요. 여러분, 이게요. 내가 무슨 능력이 있어요. 저는 도구일 뿐이고, 여러분과 제가 사는 길은 매주일 마다 거룩한 새 옷을 입고 새 마음을 가지고, 기대감을 가지고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 거예요. 아멘!!!!~
 
그리고 이렇게 마음을 드리는 이런 여러분들과 저의 모습이 우리 가족들에게 사랑하는 영 가족들이나 우리 가족들에게 우리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파되고 그래서 저는 수많은 신앙의 위인들 신앙의 소중한 쓰임 받았던 분들 제가 그분들의 삶과 손길을 잃는 가운데 많은 경우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부모님이 참 기대감을 가지고 예배를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주일날 아침에 뭐 3키로 4키로 옛날에 부모님과 함께 걸어가면서, 너 오늘 예배를 어떻게 준비하고 걸어가니? 오늘 공동체 예배를 드릴 때 넌 어떤 기대를 갖고 가니? 예배를 마치고 난 다음에는 돌아오면서 너 오늘 말씀을 듣고 어떤 은혜를 받고 어떤 생각을 했니? 마치 우리가 지금 주일 1부 2부 3부 4부 특별히 2부 3부 예배 같은 경우는 주일날 가족들이 같이 나와 가지고, 같이 예배를 드리고, 그다음에 같이 식사를 하면서 자녀들과 함께 대화를 하는데 오늘 너는 예배를 통하여 무슨 은혜를 받았니? 이런 내용을 나누는 그것을 통하여 삶의 수많은 난관(難關)과 질곡(桎梏)과 고통(苦痛)을 이겨냈다는 것이에요. 부모님과 함께 걸어가면서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교회에 오가는 길 예배를 드리면서 기대감을 가지고, 그것이 즐겁고 그것에 감사하고 그때 어른들과 깊은 신앙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신앙의 자본이 되었다는 것이에요. 이것이 자기 신앙의 형성에 뼈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이런 것들이 삶의 고난이 닥쳐와도 끝까지 감당(堪當)할 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영적 가족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이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교회를 오가는 길이 귀한 신앙의 선배들처럼 이 길이 참 기쁨의 길이요. 충만한 기대감에 거룩한 여정(旅程)이 되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가지고 자란 우리 자녀들은 어떤 인생의 곤란과 고통 속에서도 능히 돌파(突破)하면서 감사와 기쁨으로 사명(使命)을 감당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일주일에 168시간 가운데서, 주일 이 예배 시간이, 이 시간 2시간이면 2시간 3시간이면 3시간 왔다 갔다, 요 시간이 요 2~3시간이 여러분들의 생애에서 일주일 168시간 가운데서,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정서적으로 피크가 돼야 되는 것이에요. 최고의 피크가 돼야 되는 것이에요.
 
주님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지키라. 그랬잖아요? 우리가 흔히들 안식일(安息日)을 교육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지키라. 고 그랬을 때 우리는 쉼에다가 많은 방점을 두는 거예요. 쉬어야죠. 주일은 쉬어야 되고, 구약의 안식일의 시작일은 주일날로 바뀌었는데, 그러나 여러분 참된 쉼이 뭐예요? 육신이 쉰다고 쉬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의 마음이 주님 앞에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주일마다 참된 영적인 기름 부음과 능력을 받아가지고, 우리의 마음이 거룩한 새 옷을 입고 단장을 할 때, 그때 진짜 쉬게 되는 것이에요. 이런 쉼이 없이 이제 여러분 휴가도 있을 것이고, 앞으로 하겠습니다마는 여러분들 갈 때 육신만 쉰다고 쉬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의 마음이 주님 앞에 거룩한 예배 자가 되어 가지고, 기대감을 가지고 휴가지에서도 예배를 드리고 이렇게 할 때에, 여러분 진짜 참된 힘이 되는 겁니다.
 
그런 것 없이 2주, 3주, 1주 쉬기만 하고 오면요. 너무너무 피곤해갖고 너무너무 힘들어 가지고 다시 또 휴가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오늘 첫 번째는 우리의 마음이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오늘 더 중요한 겁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 것이에요.
 
II. 둘째, 혼자가 아니라 함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사탄과의 시험에서, 광야의 시험에서 마지막 부분, 어떻게 하면 근본적으로 확실하게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사탄아 물러가라. 하나님만 경비하고 예배하라. 다시요. 궁극적인 승리의 핵심은, 우리가 참된 예배자가 돼야 하는 것인데,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뿐만 아니라, 함께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에요. 시편 95편 1절에,
 
*시편 95:1, 2, 6,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내가 노래하고 내가 갈 정도가 아니에요. 95편 2절에,
2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아멘 여기 우리라는 말은 우리 모두는 함께 예배드리는 것을 참으로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함께 예배를 제대로 드리면, 사탄의 시험에서 승리할 수가 있는 겁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숲이나 호숫가에서 혼자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또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큐티 하면서 홀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만남과 혼자서 인격적으로 하나님과 교제를 한 그 결과가 공동체에서 함께 예배를 더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마음은 잘못이 될 수가 있는 것이고, 그러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뭐라고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만남과 혼자서 인격적인 교제를 하는 결과가 공동체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싶은 소중한 마음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
 
-여러분, 여기에 동의하십니까? 어떻게 보면, 신앙 세계에서 어릴 때부터 은혜를 많이 받고 또 많은 영적인 부요함이 있어 가지고 자기 스스로 자기 신앙을 유지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래서 좀 과하게 어떤 분 이런 얘기 나는 예배 참석 안 해도 나 혼자서 내 신앙생활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기도 하지만, 뭐 그렇게 아는 분들 괜찮은 분들 가운데 대단한 분들 가운데 그런 분들 많이 계세요. 자기 나름대로 영적으로 성숙하다고 하시는 분들 가운데 자기 혼자서 신앙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는 이런 분들이 혹시나 이런 분들 가운데,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를 등한시 한다면, 그 신앙은 균형이 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자칫하면 무교의 주의자가 되어 가지고, 한국 교회 전체에 피해를 끼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일본 선교에 대한 관심성도 많고, 우리가 일본을 스케줄라고 했는데 여러분 일본은 대한민국보다도 훨씬 더 선교역사가 깁니다. 근데 왜 일본 교회가 저렇게 1프로도 채 되지 않는 약한 이 약한 그런 일본교회가 되었을까? 몇 주 전에 우리 토비새 그 일본의 오신 목사님 얘기 들으셨잖아요?
일본에는 2대 사상적인 2대 목사님이 있다고 하나는 내촌감삼(內村鑑三), 우찌무라 간조, 너무 훌륭한 분이고, 저는 그분의 로마서 주석을 읽으면 야! 어떻게 이렇게 대단하실 수 있나! 이렇게 할 수 있는데, 일본이 사상적으로 그렇게 하다 보니까, 어떤 일 벌어지는가? 무교주의자들이 많이 나온 거예요.
혼자 신앙은 너무 좋은데 내촌감삼(內村鑑三), 우찌무라 간조(일본 메이지 시대의 그리스도교 지도자), 그다음에 또 그러니까 무교유주의 또 1분은 하천풍언(賀川豊彥)으로, 가가와 도요히코, 라고 해서 사회적으로 섬기고, 구제하고 어려운 삶을 돕고 하는 소위 사회복음, 이래 하다 보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함께 예배드리는 공동체 예배에 대한 인식이 많이 약화가 되어 가지고, 일본 교회는 힘을 잃어버려 지금 1억이 넘는 인구 가운데 구원받아야 할 수많은 영혼들이 지나간 100년, 200년 동안 함께 모여 드리는 공동체 예배를 등한시한 그 결과 일본 교회가 약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훌륭합니다. 제가 내촌감삼(內村鑑三), 우찌무라 간조, 하면 우찌무라 간조, 가가와 도요히코를 제가 존중합니다. 그러나 함께 드리는 예배에 대한 인식은 약한 것이었습니다.
 
그걸 한국교회는 김교신 성서조선, 류영모, 함석헌 위대한 분들입니다. 다 훌륭한 분들입니다. 근데 그분들은 무교주의에 전통을 이어받아 있는 것입니다. 아마 이런 무교주의를 따라가다 보면 한국 교회는 엄청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서는요. 한국 교회는 남북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남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래서 결국 남남 문제나, 남북문제는 예배의 문제가 해결돼야 할 만한 것이에요. 예배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에요.
 
여러분 개인 예배의 불씨는 늘 사그라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장작이 하나만 있으면 금방 타버리고 식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동체 예배에 나오면, 개인 예배의 불씨가 더 활활 타오를 줄 믿는 것입니다. 소멸된 불씨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 예배의 불씨를 가지고 모여 공동체 예배의 불기둥이 되어야 생활예배에서 승리할 수가 있는 거죠.
 
저는 오늘 이 얘기를 코로나 끝나고 난 다음에 2년 동안 제가 이렇게 뭐라 그럴까요? 말씀하면서 언젠간 해야지,,, 하면서 제가 준비해 놓은 것이에요. 한국은 지금 코로나 이후에, 온라인 예배 이런 것들을 통하여 예외 불씨는 살아있지만 불씨가 활활 타오르지 못해 가지고, 가나안 교회, 가나안 교회가 뭔지 알죠??? 거꾸로 안나가교회, 가나안 교회 안나가교회,,, 교구들이 많이 생성이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제가 2년을 참고 있다가 오늘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우리가 함께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다시 한 번 예배 불씨가 회복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코로나에 강을 건너면서 수많은 가나안 교회 성도들이, 안나가교회 성도들이, 꺼져가는 불씨들이 다시 한 번 현장에서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제가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을 얘기할 때에 단순히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이 아니라, 무너진 북한의 예배가 회복되게 하여 주십시오. 황페함과 예배드리지 못한 74년에 아니, 1945년도부터 지금까지 거의 80년을 제대로 80년 맞죠? 그 79년 80년을 제대로 예배드리지 못한 저 황폐한 곳에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함께 예배할 때, 공적예배를 드릴 때, 우리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은혜를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함께 찬양할 때 함께 기도하고, 죄를 고백할 때, 함께 나누고 묵상할 때, 함께 헌신할 때에 함께 교제할 때, 함께 우리 믿음을 재확인 할 때, 그럴 때에 우리의 믿음이 더 강화되고 우리의 소망이 힘을 얻게 되고, 우리 사랑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함께 예배할 때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재확인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공동체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함께 예배할 때 무엇보다도 사탄과의 시험에서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주 말씀드리지만 성령 충만은 함께 전심으로 기도하고, 공동체가 예배할 때 나타나는 중요한 현상 중에 하나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성령충만은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고, 함께 나아갈 때 성령 충만의 기름 부심이 더 강하게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큐티를 통하여, 개인적으로 예배할 수 있지만 공동체에 함께 드리는 예배와 반드시 연결돼야만 합니다.
 
오늘은 다시요. 복음적 평화통일 주일입니다.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을 제가 영적 슬로건으로 삼고 지금까지 기도해 왔습니다. 40년 전부터 복음적 평화 통일을 기도해왔고, 10여 년 전부터 아 복음적 평화 통일을 하되 피 흘림이 없어야 되겠구나! 피 흘림이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을 가지고 기도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하나 좀 더 깊이 예민하게 살펴봐야 할 것, 다시 한 번 제가 정리해 드리는 것은 6.25 동족 전쟁은 이념 전쟁이었지만,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자본주의 전쟁이었지만, 사실 그것을 구름 위에, 저 영적인 구름 위에 역사적 상선에서 보게 되면 저 위에서 내려다보게 되면 특히 6.25 동족 전쟁은 이념 전쟁 정도가 아니라, 이것은 영적 전쟁이었어요. 특별히 어떤 영적 전쟁이었는가? 예배전쟁이었어요. 우선 사탄이 북한 지역의 공산주의를 통하여 교회들을 말살하면서 평양에 산정형교회 장대현 교회, 신의주제일교회 이런 교회들 아까 말씀한 대로 전부 다 다 파괴시키고 예배를 못 드리겠습니다.
 
제가 이북에 몇 번 가봤지만 저 제가 신의주 쪽 지나갔는데 보니까 옛날 교회야, 그 교회가 뭐로 쓰여서 왔느냐 농업 창고로, 교회 예배를 드리지 못합니다. 대신 인간 김일성에게 예배를 하도록 그리고 남한까지 침공해서 예배를 드리는 모든 교회를 핍박하고 목사님들을 죽이고, 동족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동족을 죽여서라도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까, 이것은 동족전쟁 정도가 아니라 영적 전쟁이요. 예배 전쟁이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나타나는 수많은 예배 과정 가운데, 지금도 주체사상을 예배하고 지금도 지하에서 사탄이 공산당에 탈을 쓰고 한반도에서 온전한 예배가 사라지도록 하는 작전했어요. 그런데 목숨 걸고 예배를 지키겠다는 우리 신앙의 선배들 때문에, 오늘 한국이 이만한 은혜를 받은 것이에요. 북한에서 내려오신 피난민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크리스천이에요. 그분들이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맡게 하니까, 예배를 드려야 되겠다고 생각하면 내가 많이 내려와 가지고 영락교회를 세우고, 충현교회를 세우고, 성동교회를 세우고, 내성교회를 세우고 이런 한국에 내려와 가지고, 남한에 내려와 가지고 예배들을 예배를 드려야 되겠다고,,, 그래서 오늘 우리는 6.25 전쟁의 본질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것, 참된 마음으로 예배하는 것, 함께 예배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계교(計巧)를 이겨낼 때 진정한 동족 평화 통일이 오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적 평화통일이라는 말은, 오늘 국기를 다 해놨습니다마는 남북이 참되게 예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 예배야말로 사탄의 모든 궁극적인 세력을 무너뜨리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이 예배야말로 남남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입니다. 뭘 가지고 해결하겠어요? 여러분, 남남의 지극한 이 진영갈등을 어떻게 해결하겠냐, 하나님을 참되게 마음으로 함께 모여 예배할 때 회복될 수가 있는 것이에요.
 
7년 내로 평양에서 특새하게 달라는 것도, 다른 게 아니에요. 공적 예배가 사라진 그 땅에 황폐한 그 땅에, 주여 다시 예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교회 성도들은 영아부터 포에버에 이르기까지, 한 생년 동안 마음으로 거룩한 기대감으로 함께 예배되려는 승리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좀 조심스럽지만 자, 90년대 중반에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여러 과정들은 다 제가 정리하고, 어떤 분이 저에게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 여 성도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숙소의 커피숍에서 그분과 대화를 하는데, 우리는 손을 잡고 감시원에 있었기 때문에 예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근데 그분이 평양 산정현교회 주기철 목사님 교회 성도였습니다. 그때 그 당시에, 90년대 중반에, 80정도 되시고, 조그만 하시고 정말 둥그스름한 얼굴을 갖고 계셨습니다
내가 목사라니까 너무 반갑다. 그러고,,, 자기는 평생소원이 뭐냐? 했더니, 산정현 교회에서 주기철 목사님과 예배한 만 분의 일이라도 맛보고 싶다. 한 번이라도 맛보고 싶다. 그때가 뭐가 좋았습니까? 그러니까, 성도들의 구름떼처럼 모여 가지고, 이처럼 모여서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주 예수 얼굴 영광 해같이,,, 주님의 보좌 있는데, 천한 몸 이르러 그 영광 몸소 배울 때, 찬양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께 옛날 가사는 영세무궁하기까지 영광을 돌리세. 영세무궁하기까지 예배를 드리세... 우리가 그 찬성을 마음으로 했어요. 소리를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못하고 눈을 못 감았어요. 서로 그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기도를 하고 차마, 기도와 찬양을 하는데, 눈물을 줄줄줄 흘렸어요. 아마 그 할머니는 돌아가셨을 거예요.
 
오늘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수많은 우리의 삶에 시험이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인 수많은 시험이 있습니다. 이 시험을 이겨내는 유일한 비결 마지막 방점은 뭐냐? 주 너의 하나님을 예배하라,!!! 예배하라. 마음으로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함께 공동체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에요. 오늘 이 찬송을 하면서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수많은 실험과 아픔의 기도들을 이 예배를 통해 치료받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자리가 놀라운 은혜의 응답의 자리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약
우리가 터질듯한 마음으로 참된 예배를 드리며 시험을 이길 때, 모두가 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으로 말씀을 순종하며, 마귀의 심장을 공경하며 승리하는 평생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들풀처럼 가녀린 예배 자에서, 참나무처럼 굳건한 예배자로 성숙하게 성장해야 한다. 온라인 예배로 꺼져버린 불씨들이 있다면, 현장예배의 공동체 예배에 함께 나와 예배의 전쟁을 극복하고 다시 불이 붙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사랑의 교회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교회가 예배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흘림이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의 그날을 속히 오는 날을 경험하게 하여 주시길 간절히 간구하자. 7년 내에 평양에서 예배드리는 날이 오는 기대감을 가지고, 사랑의 교회 7천 기도용사가 피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의 그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할 때, 그 고난의 강을 돌파한 수많은 북한에 귀한 선교사님들 앞으로 북한이 수많은 10만 명의 선교사들 파송하여 세계 선교를 마무리하는 이민족 되기를 소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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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6월 9일)
제목: "사역의 참 모델이신 예수 그리스도" (Jesus Christ, The True Model  of Ministry)
-(예수님은 누구신가?
 )

   
말씀:마태복음 3:13-17
대표기도: 강경식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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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3:13-17,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 5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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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탄생 46주년을 맞이하여 광야(廣野) 같은 우리 삶의 여정(旅庭) 가운데서도 은혜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우리를 지켜주신 주님을 찬양(讚揚)합니다. 우리가 목마를 때, 광야에 생수(生水)를 터
드려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헐벗었을 때는 옷이 헤어 지지 않게 하시고, 진리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와 찬양드립니다.
 
저는 오늘 찬송 듣는 가운데 목이 메어 가지고 정말 46년 교회적으로도 그러고,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수많은 과정들이 있었지만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리를 인도하신 것, 하나님께 진심으로, 진심으로 영광과 감사와 존귀를 올려 드립니다. 우리 감사의 박수 한번 올려드리겠습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만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46주년을 맞이하는 오늘은 어떻게 보면 종착역이 아니라, 계속되는 사역의 진행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6년이 되어 이제는 안주하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 계속 주님이 주시는 꿈과 사명으로 우리의 사명과 비전의 수레를 그리스도에 메고, 온 성도들이 눈에 보이는 유형 교회인 사랑의 교회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걸어 다니는 여러분 한 분, 한 분 무형 교회인 우리가 포부(抱負)의 수레를 그리 속에 메고, 믿음의 경주(競走)를 뚜벅뚜벅 한 결 같이 할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46년간의 역사는 이 민족의 역사 앞에 비추어 볼 때에, 우리는 1978년도 강남의 도곡동에 그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고 질척거리는 상가 2층 건물에서 교회를 시작하고, 또 조금 옮겨가지고 짜장면 집 2층에서, 그래서 주일 예배를 드릴 때마다 짜장면 냄새로 하여금 어 참 쉽지 않은 그런 일도 있었습니다마는 그때는 우리가 개발도상국 그리고 이제 중진국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그 시대를 그 시대 때 태어난 교회가 오늘 46년이 지난 지금은 세계 최첨단의 이 도시인 강남에 테헤란의 서초 입구에서 오늘 46주년을 맞이하게 된 것은 감회(感懷)가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46년이 되었다. 하는 이 내용보다도 앞으로 우리의 사역을 어떻게 감당(堪當)할 것인가? 오늘 사역의 참 모델이신 예수 그리스를 통하여 눈에 보이는 사랑일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삶으로 빚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공무 3장의 본문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그런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지난주에 임마누엘 예수님 이 땅에 오셔서 오늘과 다음 주를 거쳐서 두 번에 걸쳐서 한 번은 세례를 받으시고, 또 광야의 시험을 이기시고, 이제 드디어 공생애를 시작하시게 되는 겁니다.
 
오늘 이 내용은 너무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공관복음인 마태, 마가, 누가복음뿐만 아니라 요한복음에도 포괄적(包括的)으로 오늘 이 내용이 다 공통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도(聖徒)라면 또 교회를 섬기는 주의 진실한 종(從)들이라면 반드시 이 내용이 무엇인지를 핵심(核心)을 정확하게 알고, 주님을 섬기는 것이 복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이 내용들을 통하여 사랑의 교회 미래를 향한 새로운 토대 새로운 패러다임 시프트를 가질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13절을 보겠습니다. 뭘 우리 교회의 토대로 삼아야 할 것인가? 뭘 우리 신앙생활(信仰生活)에 토대(土臺)로 삼아야 할 것인가? 13절에 보니까 같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3:13,
13 이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첫 번째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 요한의 세례를 받으신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여기에는 복음의 깊은 신비(神祕)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난주에 제가 자세히 좀 더 설명을 다 안 드렸습니다마는 이 땅에 완전한 사람으로 오셨지만 예수님은 신성(神聖)을 가지시고 전혀 죄가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전혀 죄가 없으신 그분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다. 라고 가까이 세례를 받으시러 나가실 때에, 14절에, 세례요한이 깜짝 놀라가지고 요한이 말려 이르되 아니 주님 내가 주님께 세례를 받아야 되는데, 왜 주님이 나한테 세례를 받으십니까?
 
*마태복음 3:14,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이거는 이건 말도 안 되는, 너무나 당황스러운 것입니다. 아닙니다. 이거 아닙니다. 이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요한의 예수님을 너무 잘 알거든요. 요한과 예수님은 친척관계입니다. 당시 씨족사회 혈연 사회에서는 친척이면 그 집안의 밥그릇이 몇 개가 있고, 숟가락에 몇 개가 있고, 양이 몇 마리나 있는지 그 집안의 내용을 환하게 알고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인 걸 요한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확실하게 내가 세례를 받아야지 어떻게 예수님이 제가 세례를 받냐고, 말이 안 됩니다. 그럴 때 주님 뭐라고 말씀하셨느냐, 15절에 오늘 본문 1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I. 복음의 신비.

*마태복음 3:15,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요한은 안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허락하라. 왜? 이와 같이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와 같이 해 가지고 모든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아니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까?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는 윤리적 차원 정도가 아니라, 이거는 하나님의 거룩한 신령한 정말 하나님의 구원(救援) 역사의 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것이 왜 큰 의미가 있냐 하면, 이 요한의 세례를 마가복음에 보면 뭐라고 나와 있냐 하면, 요한의 세례는 회개(悔改)의 세례다. 이렇게 나와 있어요.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제3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다. 이래 나와 있어요.
 
예수님은 완전한 신성(神聖)을 가지시고 죄(罪)가 없으신 분이시고 육신의 몸을 입었지만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제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悔改)의 세례(洗禮)를 받을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근데 그 주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다는 말은 그리고 그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그 일을 통해 하여 하나님의 모든 의(義)를 이룬다는 뜻은 깊은 복음의 신비가 내재(內在)되어 있는 것이에요. 그것은 무슨 뜻인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하나님의 공의(公義), 하나님의 의는 우리가 마땅히 형벌(刑罰)을 받아야 되고 우리는 영원한 심판(審判)을 받아야 되고 우리는 영원한 멸망(滅亡)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罪人)인데 예수님인 내가 받아야 할 그 처참(悽慘)한 죄의 형벌(刑罰)일 자리에 예수님이 대신(代身) 서 주셨다 이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는 분이신데, 죄(罪)의 대표자(代表者)가 되어 주셨다 그런 뜻이 그리고 이걸 깨달을 때마다 복음(福音)의 신비와 능력을 깨달을 때마다 가슴에 벅찬 감격(感激)이 있는 것이에요. 사랑의 교회는 앞으로 50주년, 60주년 계속되어가는 그때까지 70주년 계속될 때까지, 이 복음의 깊은 신비가 철철 흘러넘치는 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야 할 자리에 주님이 대신 서주셨으니 우리가 어떻게 큰소리를 치를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대신 서야할 자리에 주님이 형벌을 받으셨는데, 그 형벌이라는 것은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주님이 죄의 값을 치르신다고 그랬을 때, 주님은 오늘 죄의 값 정도가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모든 연약(軟弱)한 것을 주님이 져 주신 것이에요.
 
우리 삶의 아픔과 우리 삶에 트라우마와 우리의 삶에 모든 고통(苦痛), 죄를 대신 져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 연약(軟弱)함을 담당해 주시고, 우리의 병(病)도 짊어주시고, 죄로 인한 고통과 징벌(懲罰)도 담당하셔서, 결과적으로 오늘 우리를 위하여 죄의 대표자가 되셔서 영안의 세례를 받으셨다는 뜻은 오늘 우리를 치유(治癒)하시고 우리에게 샬롬의 평강(平康)을 주신다는 것을 선포(宣布)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매일매일 삶을 살아가면서 안타까운 일들이 많습니다. 제가 한 번씩 말씀드리지만 어느 집안이든지 그 집안의 삶의 커튼을 살짝 열고 그 집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기도 제목 없는 집안이 없고, 많은 가정, 가정 가정들이 예수님을 믿어도 수많은 삶의 애환(哀歡)과 질고(疾苦)를 갖고 있습니다.
 
오늘 이 귀한 예배에 겉으로는 우리가 정장을 하고 나름대로 평안한 삶을 사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러나 그 내면은 감당 못할 일로 엎어진 마음으로 오늘도 ‘천부의 의지 없어 손들고 옵니다.’ 라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오신 그런 분들도 여러분들이 계실 거예요. 제발 맞아요. 틀려요? 오늘 주님이 요한의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은 엎어진 마음으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라는 그런 안타까운 심정으로 오신 그분들의 삶에 모든 애환(哀歡)과 질고(疾苦)와 연약(軟弱)함과 병(病)을 다 짊어지셨다. 그 뜻이에요. 그래서 오늘 내가 받아야 할 그 엄청난 죄의 형벌을 주님이 오늘 받으셨다. 회개의 세례를 통하여 받으셨다. 내 대신 그 자리에 주님이 서셔서 회개의 세례를 받으셨다. 그걸 생각하는 순간 저와 여러분 복음에 깊은 신비가 깨달아지고 나도 모르게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듣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 하도다.’ 할렐루야!!~

슬픔만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 하도다. 오늘 찬양대 찬양은 본래 따라라 라라 딴딴 그 솔리스트가 팍 나와야 되는데 방송이 좀 약하게 해 가지고 그 감격(感激)과 고백(告白)은 말로도 할 수 없는 거예요. 천성을 향하여 한 번 더 하실래요? 나중에 마치고 한 번 더 들어보세요. 마치고 나면 그 마치고는 방송할 때, 우리 솔리스트를 크게 틀어줘야 돼요. 주여 듣는 귀를 주시옵소서. 얼마나 감동이 되는지, 제가 이 찬송을 한 30년 전에 뉴욕에서, 뉴욕의 ‘리버사이트 교회’ 라는 그 당시에 유명한 교회가 있었어요. 거기가 CD를 하나 사 가지고 이걸 듣는데요. 귀가 막히는 거에요. 저 찬송 들으면서 토론토의 집회를 올라가는데, 뉴욕에서 집회로 올라가는데 하면서 밟다가 그냥 뒤에서 경찰이 잔잔잔 따라와 가지고 티켓 1장, 280불 딱 내고, 그 다음에 또 집회마치고 내려오니 듣고, 너무너무 좋아 내려오는데 또 잔잔잔,,, 하여튼 하루 이틀 사이에요. 제가 티켓(벌칙금)을 2장 떼었어요. 그래도 아무런 마음의 짐이 없었어요. 이 찬송이 너무 좋아 가지고 자 이렇게까지 말씀드리면, 우리가 수많은 티켓도 떼고 수많은 어려움도 있고 수많은 확률도 있고 다 있지만,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새, 하는 동안에 삶의 모든 애환(哀歡)이 물러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탄생 46주년을 감사하면서 예수님의 탄생(誕生) 예수님의 세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끊임없이 사랑 이루는 진행(進行)형으로 그리고 진행하여야 하는 시대가 변해도 이 복음의 능력은 계속 이어가야 할 줄로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가운데 세례 안 받으신 분이 계시면 오늘 세례 신청서 다 만들어 놨으니까 밖에 나가다가 세례 신청서 신청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나라는 말했지 않고 능력이 있는 것이고. 실체에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랜만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46주년을 맞이하여 오늘 복음 때문에, 예수님의 회개 세례 때문에, 예수님이 연약한 짐을 지어 주시는 것 때문에, 여러분 어떻습니까? 라고 물어보면 여러분들 어떻게 합니까? 적당이가 아니라 마음과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하여 “좋습니다!!!”~~~. 한번 해보십시오. 무슨 일이 벌어질지, 한번 할까요? 자 본당에 계시는 분들, 별관에 계신 분들, 저 대부도에 계시는 분들, 또 SNS로 또 방송으로 전 세계 들어오시는 모든 분들, 오늘 이 내용 오늘 이 예배는 저 미국에는 현장 중계가 되는데, 현장에 지금 참여하시는 모든 분들 제가 물을 때 “좋습니다.!!!” 물론 운전하는 분들은 운전대를 들고 해야 되고 붙잡고 해야 되고 여러분들은 좋습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한번 고백해 보십시오. 무슨 일이 날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영 가족 여러분, 사랑의 교회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 여러분, 오늘 46주년을 맞이하여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죄인의 대표자로서 대신 회개 세례를 받으셨다고 그랬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신비를 깨달았습니다. 오늘 이것 때문에 우리 연약함을 주님이 다 돌봐주신다고 그랬습니다. 이것 때문에 오늘 예수님 때문에, 봄 때문에 여러분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할렐루야!!~ 다시 한 번, 여러분 제 예상을 뛰어넘으셨어요. 다시 한 번 여러분 예수님 때문에 복음 때문에, 주님의 몸 된 교회 때문에, 주님의 신비한 복음의 때문에 여러분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의 삶에 모든 짐들이 벗어지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의 애환들이 다 벗겨지기를 바라고 삶의 복락(福樂)의 강수(江水)를 체험(體驗)하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설교 그만하고 싶습니다. 복음의 신비는 놀라운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보니까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16절에 보니까,
 

II. 성령의 능력.

*마태복음 3:16,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그랬습니다. 너무나 장엄(莊嚴)한 장면(場面)입니다. 너무나 고귀(高貴)하고 영광(榮光)스러운 장면입니다. 소위 매제스틱 씬(Majestic Scene)입니다. 매제스틱 하다그요. 성경의 성자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 성부 하나님이 완전히 한 장면에서 그대로 그림 언어로 이와 같이 우리가 그대로 확인할 수 있는 아주 거의 유일한 장면입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세례를 받으시고, 오늘 이 시간 세례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 누가복음에는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臨)했다. 그리고 17절에 승부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마태복음 3:17,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16-17절에 걸쳐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 성부의 하나님, 성부 하나님이 아주 그냥 장엄하게 나타나고 계십니다. 우리는 사랑의 교회는, 한국 교회는 계속해서 하늘이 열리는 능력을 받아야만 합니다. 하늘이 열리는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신비를 깨달을 뿐만 아니라, 하늘부터 내려오는 능력을 입히 우는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오늘 이 자리 오늘 서초동의 하늘 문이 열려야만 하는 겁니다. 오늘 1부, 2부, 3부, 4부에 하늘 문이 열려야만 하는 것이고. 반포대로 121번지에 하늘 문이 열려서 성령이 위로부터 임하셔야 되는 것이죠. 성령의 능력이 위로부터 임해야 되는 것이에요. 이걸 누가복음에서는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능력이 입히올 때까지 기다리라 그랬어요. 소위 영어로 임파워링 모우먼트(Empowering Moment)가 필요합니다. 능력이 위로부터 임해지는 거예요. 업폰(Upon), 위로부터, 헬라우르는 에피라고 부르는데, 위로부터 임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랑의 교회는 끝까지 인격적 성령사역에 민감(敏感)한 교회, 하늘 문이 열리는 능력을 체험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어제 아침의 노래는 기도하면, 응답 받는다.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없도록 만들어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종교와 기독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세상에 종교는 네가 갖고 있는 잠재력(潛在力)을 계발(啓發)하라. 너 정신력(精神力)을 일깨우라. 그렇게 세상 사람들은 말합니다. 깨달아야 됩니다. 가계 종교입니다. 다 애를 써야 합니다. 면벽(面壁) 구면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신비를 깨닫고 난 다음에는 신앙인은 예외 없이 위로부터 능력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종교는 내가 근거가 되고, 내가 무엇을 하는 건데, 복음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종교와 기독교의 차이가 되는 것이고, 이것은 마치 상한 사자와 강아지 비유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강아지는 아무리 큰소리를 쳐도 사자 앞에서는 감당(堪當)이 안 됩니다. 사자 앞에 있는 강아지를 벌벌 떨고 있는 강아지를 보면서, 너 안에 있는 잠재력, 너 안에 있는 포텐셜, 너 안에 있는 힘을 분발하라. 아무리 그렇게 해도 사자를 이길 수가 없는 거예요. 사자를 이기려면 사자를 이길 만한 그 무언가를 위로부터 받아야만 하는 것이에요. 왜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까?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오늘도 마귀(魔鬼)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성도들 가운데서도 우는 사자가 강아지를 찾고 있듯이 우는 사자가 삼킬 자를 찾고 있듯이 그리스도인들을 이렇게 유혹(誘惑)하고 공격(攻擊)하는 것을 모르는 그리스인들이 너무 많아요. 모르고 신앙생활(信仰生活)을 하면서도 자기 희망으로 살겠다. 라고 한 사람들 너무 많아요. 어떻게 강아지가 사자를 이기겠습니까? 생각을 해보십시오. 아무것도 손에 진 것이 없이, 적의 칼날이나 총알이 난무(亂舞)하는 전쟁(戰爭)터에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정신 나간 사람이에요. 전쟁(戰爭)을 위해서는 전신(全身) 갑주(甲冑)를 입어야 합니다.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무언가 전쟁을 할 만한 도구가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나마 아무것도 없다면 하다못해 물맷돌이라도 있다면 하는 것입니다. 그 물맷돌은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가 무장(武裝)하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제가 그렇게 왜 그렇게 토요비전새벽 예배(禮拜)를 강조합니까? 토요비전새벽 여배는 강아지가 사자를 이기는 시간인 것입니다. 강아지같이 부족(不足)한 우리 인생이, 사자(獅子)같이 우는 사자같이 우리를 시험(試驗)하려고 하는 마귀(魔鬼)의 세력(勢力)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뭐 나오는 데 관심도 없는 분들이 많아요. 강아지가 사자를 이기는 시간이 토요비전 새벽예배에요. 우리 가운데 아침마다 일어나서 여러분들은 샤워를 하고,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서 하루의 삶을 시작하시는데, 뭐 살면 허겁지겁 해가지고 아침마다 일어나갖고, 그냥 허겁지겁 그냥 강아지가 사자 앞에 밥이 되는 거예요. 아침마다 일어나 가지고 샤워를 하면서 ‘하나님 아버지, 나에게 전신갑주를 입혀주시옵소서.’ 매일 매일마다 하늘로부터 능력을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로부터 능력을 받아야 새롭게 되고 그래서 사랑의 교회 성도들은 46주년을 마치고, 이제부터 매일매일 매일 아침마다 성도들은 하늘로부터 능력을 받아야 할 줄로 확신하는 것이에요. 세계를 품고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은혜를 받아야만 되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사랑의 교회 성도들은 어떤 경우에도 기도보다 앞서지 말게 하여 주시옵시고, 성령보다 앞서 나가지 않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작년과 재작년에 ‘한국교회 섬김의 날’ 작년 2차에 걸쳐서 특별히 작년 같은 경우는 7천여 명의 목회자가 모여서 기도를 하는데, 여러분 그 기도하는 첫날 저녁 기도를 하는데 천장이 울리고 천국의 물소리 같고 그야말로 천둥소리 같은 그런 기도를 하는 거예요. 제가 가만히, 저희가 같이 제가 기도를 인도하면서, 제 마음을 떠오르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 이 목사님들이, 목회자들이 감당해야 할 귀한 사역들은 마귀와의 전쟁을 해야 되는 거에요. 대부분의 교회가 크지 않는 교회 목사님들이 많이 오셔 가지고 이제는 내가 교회 문 닫아야 되나?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되나? 이 전쟁터와 같은 이 사역 가운데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되나? 그러니까 하늘로부터 능력을 입히지 않으면, 입지 않으면 감당이 안 되니까.

너무나, 너무나 간절한 절박(切迫)함을 가지고 주님 앞에 기도하니, 그 기도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 같은 기도요, 천국의 물소리와 같은 기도에요. 우리 천장을 울리는 기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이번 10월 21일도 제3차 한국교회 섬김의 날 나왔는데 말씀한 대로 하루도 안 돼 가지고 7천 명의 목회자가 등록을 했습니다. 그게 많은 분들이 뉴스를 못 듣고, 하고 싶었는데, 등록을 못 했다고 그래서 우리는 그러면 좀 젊은 분들이 좀 더 기회를 드리겠다 대신 본당에는 못 들어온다. 본당에는 막 미우치고 하고 막 그냥 오만 데 다 앉으면 7천 명 왔는데 본당에는 못 들어온다. 밖에 은혜채플, 사랑채플하고, 밖의 별관에서 집회를 해도 되겠냐? 상관없다고 그것도 하루 만에 또 1044명이 또 젊은 사역자들 중심으로, 8044명이 10월 21일 날, 하늘로부터 부어주신 성령(聖靈)의 능력(能力)을 기대(期待)하며 사모하고 메어 달릴 때 하나님은 반드시 이 민족을 살려주실 것입니다.

1, 2, 3차 다 합치니까, 교회가 만 4천교회입니다. 여러분, 만4천교회의 한국교회 4분의 1 변화되면, 이민족이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성령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인데, 그게 뭐냐 16절에 성령이 어떻게 내려왔는가? 보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뭐와 같이 내려왔다고요. 비둘기같이 내려왔어요. 강한 성령의 능력을 받는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살고, 내가 그냥 막 휘두르며 사는 것이 아니에요. 성경에 찬송에 있는 거 같이 “비둘기같이 온유한 은혜의 성령 오셔서 그다음에 가사가 거친 마음으로 어루만지사 위로와 평화 주소서.” 성령의 비둘기 같이 오시는 것이에요. 그럴 때 거친 마음이 어루만져져 가지고 위로와 평강의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은혜를 받으면 위로부터 능력 받으면 여러분만 평안과 여러분들이 여러분들만 평강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도 그런 은혜를 같이 받아 누리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모세는 민수기, 또 신명기에 보면, 모세는요 120세가 될 때까지 기력(氣力)이 쇠(衰)하지 아니하고, 모세는 120세 될 때까지 눈이 흐려지지 않았더라. 전 요즘 갈망(渴望)하고 있어요. 그걸 120세가 아니라 나이가 들어도 기력이 쇠하지 않고 그다음 뭐가 있어요. 눈이 흐려지지 않는다. 여러분 눈이 흐려지지 않는 노년(老年)이 되기를 바랍니다.
 
근데 어떻게 그렇게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고 눈이 흐려지지 않는가? 모세가 성령 충만 해서 그래요. 증거가 뭐냐 민수기 12장의 3절에 보면,
 
*민수기 12:3,
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모세의 온유함이 최고였다. 여러분, 온유하면 오래 삽니다. 120세까지 살 거예요. 5년 물론 대신 광년 40년을 걸어야 합니다. 걷고, 40년 걷고, 그다음에 온유하면, 다 백수 누릴 겁니다. 이 말을 그대로 받는 분들은 100살 때, 인사할 거고, 예 서로가, 그 성경은 세상은 정의는 강자가 이기고, 강자 생존이지만 성경은 성령 충만한 사람들을 통하여 겸자생존(謙者生存)이 되는 겁니다. 이런 성령의 역사가 사람을 어떻게 겸손 하는가? 대표적인 사람 하나 있고, 대표적인 나라가 하나 있어요. 여러분 바울은요, 얼마나 강한 사람이었는지 몰라요. 난 지 8일 만에 할례(割禮)를 봤고 율법으로는 흠(欽)이 없는 사람이고, 율법(律法)으로는 바리새인이고 바리새인 중에 최고의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베냐민 지파로서 있잖아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요. 흠이 없는 자요. 그때 그가 성령 그리고 얼마나 강한지 돌멩이 들고 스테반 때려 죽여도 괜찮은 막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그다음에 살인 면허장 받아 가지고 다마스커스를 갔는데 그것도 막 이런 사람이었는데, 성령 충만 해 가지고 바울이 뭐라고 얘기합니까? 그리스도 안에 내 생명의 능력의 법이 그리스도인의 생명의 성령의 능력이 나를 죄와 사망의 능력에서 해방하였습니다. 할렐루야!!!
 
그러고 난 다음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바울이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고 그런 사람은 큰소리치던 사람이 나는 만삭(滿朔)되지 못하게 태어났다. 얼마나 겸손(謙遜)한지, 또 바울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나는 죄인 중에 괴수(怪獸)니라. 기가 막힙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직분을 받습니다. 근데 직분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완장(腕章)을 찬 것처럼 생각해 가지고 받기 전과는 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교회 그것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다. 사랑의 교회는 직분을 받아도 하나님 앞에 신실(信實)하게 섬기는 섬김의 종이 되기를 원하는 겁니다.
 
우리 교회는 그래서 직분 받을 자에게 딱 하나 묻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섬기는 자가 되겠느냐?’ 이게 성령 충만의 하나의 실체적인 증거가 되는 겁니다. 50주년, 60주년을 향하여 섬김의 역할을 잘 담당하는 교회와 공동체(共同體)가 되기를 원하는 겁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비둘기 같이 겸비(謙卑)하고 겸손(謙遜)한 마음은 성령이 기름 부으시면, 채널이 되는 것이고. 그리고 또 서로 선수는 겸손하면 또 성령의 역사도 겸손 화되고 하 서로서로 이렇게 에 서로 영적인 우리의 선순환이 되는 것이에요. 성령의 역사를 통한 겸비함은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적으로 나타납니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였고, 니느웨는 정말 크고 폭력적이고 가장 강한 나라였어요. 근데 요나가 회개(悔改)하지 않으면 너 다 죽는다. 그러니까 성령 역사가 있으니까 요나는 그 말을 전하면서도 회개 안 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으로 전했어요. 그런데도 그 앞에 요나서3장에 보니까,
 
*요나 3:6-7,
6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요나 3:7~8
7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온 국가가 다 망할 수밖에 없는 국가가, 변화된 것이에요. 한국 교회의 인격적 성령사역의 은혜가 충만히 복음적인 토대와 성령의 은혜가 있어 가지고 대한민국의 역사가 하나님을 기뻐하신 역사로 바뀌게 되기를 원하는 겁니다. 이 민족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백성으로서 성령 충만한 역사를 이루어 가지고 제사상 나라가 되고, 축복의 근원이 반드시 돼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주님은 이 은혜를 가지고 이사의 61장에 있는 말씀처럼 그걸 누가 보면 사장의 인용해서,
 
*누가복음 4:18,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오늘 이 내용 그대로 하나도 남김없이 여러분의 가정과 삶에 그대로 접목(接目)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가난한 사람의 기쁜 소식을 포로(捕虜)된 자에게 석방(釋放)하게 하시고, 시각(始覺)장애(障礙)는 시력(視力) 회복(回復)을 하게 하시고, 억압(抑壓)받는 자들은 자유롭게 하시고, 첫 번째 질문을 아까,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 때문에 어떻습니까?
모르는데 여러분 다 ⓵예수님을 영접 하셨습니까? 두 번째 ⓶여러분 성령 충만하십니까?

아멘!!! 그 아멘이 그대로 역사가 일어나기를 줄로 믿습니다. 두 가지 사랑의 교회는 끝까지, 복음과 성령, 이제 마지막에 중요한데 17절을 다 같이 보겠습니다. 17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III. 자녀의 사명.

 
*마태복음 3:17,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증(人證)서를 주시는 거예요. 예수님은 내 아들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라. 거룩한 정체성을 확신(確信)시켜 주시는 거예요. 소위 자녀의 사명을 주시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었다는 그 사실을 깨닫고 확인하고 기뻐하는 그 순간부터 여러분의 삶에 아우라와 기쁨과 능력과 존귀함이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아마 이것이 예수님 앞으로 공생애 할 때에 수많은 난관(難關)과 어려움과 십자가와 섬김과 고통과 상처(傷處) 가운데서도 나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야, 하나님의 아들이야, 나는 하나님의 사명 받은 하나님의 성자 예수 그리스도야. 이걸 깨닫는 순간 계속 이걸 마음에 간직하고 계속 집중하는 순간 어떤 경우에도 약화되자 아니하고 주님이 주신 하나님이 주신 아버지가 주신 사명을 묵묵하게 감당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 다 똑 같아요. 우리가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어야 돼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녀가 된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엉터리 정체성이 아니에요. 우리는 매일 매일 마다 너무나 엉터리, 엉터리 매일 아침마다 유튜브하고, 너무나 엉터리 정보들을 많이 듣고 있어 수많은 정보들이 귀를 막고 들어서는 안 되는 내용들이 너무 많아요. 특히 SNS에는 부정적이고 영혼을 해치는 독을 뿌리는 정보가 난무(亂舞)하고 있어요. 극단적 팬덤들이 하는 유튜브를 보면 안 되는 거예요. 이것은 마치 열 정탐(偵探)꾼이 가나안에 대한 보고를 할 때, 엉터리 겉으로는 맞는 것 같은데, 다 맞는 것 같은데, 여러분의 영혼(靈魂)을 좀먹는 그런 것들이 너무 엉터리들이 많아요. 그런 엉터리 정보(情報)를 통하여 여러분들의 정체(正體)성을 확인하지 말고 오늘도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자야, 내 기뻐하는 자야, 너는 하나님의 자녀에 사명이 있는 자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딸이야, 오늘 이걸 깨닫는 순간 우리는 종합적으로 볼 때 하나님 나라의 왕자가 되고 공주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자와 공주는 함부로 몸을 굴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認定)받는 그 정체성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 아부할 사람들이 아닌 것입니다.
 
-후 유 알 디터민스 왓 유 두?(Who you are dietermins What you do?) 네가 누구냐가 내 행동을 결정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구걸(求乞)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상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구걸(求乞)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왕(王) 같은 제사장(祭司長)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몸을 함부로 내팽개쳐서 강남의 한 골목에서 술 취해 가지고 흐느적, 흐느적거릴 사람들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 저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왕자와 공주인 것을 선포(宣布)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런데 현실은 하나님 나라의 왕자와 공주가 아니라, 이 세상 세상에서 노예(奴隸)처럼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 마음속에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야,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야, 너는 내 기뻐하는 자야,’ 이 정체성이, 이 사명이, 이 직분이 우리를 존귀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때 우리 눈빛이 달라질 것이고, 우리 표정(表情)이 새로워질 것이고, 우리의 음성(音聲)이 밝아질 것입니다. 앉아있기만 하더라도 여러분들에게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생길 것입니다. 거룩한 정체(正體)성과 거룩한 정체성과 거룩한 품위(品位)를 하나님이 회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목회자(牧會者)자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이 있었죠. 그러니까 제가 볼 때, 목회자의 아들이 술 마시면 되겠어요? 안되겠어요? 목회자 아들이 쌍욕을 하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묵회자의 아들이 고고 추면 되겠어요? 안되겠어요? 그래서 저는 춤을 모르고, 저는 술을 모르고, 저는 제 생에 아직까지 찰진 욕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쌍 시옷자를 발언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야,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야, 너는 내 기뻐하는 자야,’ 오늘 17절의 내용을 다시 고백해 보겠습니다.
 
오늘 17절의 내용을 우리가 한 번 같이 합니다.
OOO, 내 사랑하는 아들이야, 내 기뻐하는 자라.
여러분 이름을 넣었습니다. 시작 오정현은 내 사랑한 아들이야, 크게요~ 우리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야, 할렐루야!!!~
 
이거 계속 여러분들 집중하는 한 여러분들의 음성, 표정, 얼굴 표현, 모든 것이 다 달라지고 아우라가 있게 돼 가지고 여러분들의 남은 미래(未來)가 더 이상 수치(羞恥)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주님이 이걸 믿는 것이 믿음인 거예요.
 
오늘 이 3가지 복음, 사명, 정체성, 예수님은 오늘 요당 강물을 갈라가지고 이거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과거에 여호수아는 요단강물을 똑같이 요당강물을 갈라가지고 가나안에 입성(入城)을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요단강물을 갈라 가난을 입성하듯이, 오늘 우리는 이 시대에 이 말씀을 듣고 이 시대의 요단강물을 갈라가지고, 복음과 사명과 정체성을 가지고, 사랑의 교회는 롤 모델의 이신 주님을 닮아, 계속 쓰임 받는 은혜가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제가 윌리엄 윌버퍼스 말씀을 하고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46주년을 맞이하여, 하나님 뭐 좀 도움 되는 것이 없습니까? 아마 제가 연구를 하고 찾다가 제가 받은 어떤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윌리엄 윌버폴스 라는 영국의 의회 의원이 있었습니다. 제가 초창기(草創期)에 한 5년 동안 많이 강조(强調)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프랑스의 윌리엄 윌버폴스는 1759년에 태어나 가지고 1833년 그러니까 18세기와 19세기, 2~3기를 산 인물인데, 그 당시 프랑스 대혁명이라 프랑스에는 그냥 피가 강체로 흘렀습니다. 프랑스 혁명 별로 좋은 거 아니에요. 영국은 그러면 안 된다. 영국은 명예 그러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라가 되려면 우리가 제일 잘못한 게 뭐가 있냐, 노예제도(奴隸制度)였어요. 그런데 그 노예 제도가 우리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폐지(廢止)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당시의 18세기 19세기 영국 기관 산업의, 산업의 제일 중심축이 노예제도였어요. 노예 제도, 노예무역 그걸 철폐(撤廢)한다는 것은 영국의 산업의 발전(發展)을 포기(抛棄)하는 거, 비슷해 가지고 5년, 10년, 20년, 40년을 얘기해도 해결(解決)이 안 되는 거예요. 윌리엄 윌버포스가 정말 마음에 사명을 가지고 한두 대결이 안 되는데, 외롭고 홀로 악한 세력을 대적으로 싸웠다. 그러나 45년 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가 죽기 3일 전에 46년이 지나서 노예제도와 노예무역제도가 영국 의회에서 폐지(廢止)된 줄로 믿습니다. 남들은 안 된다. 안 된다고 하는데 46년 만에 기도가 응답(應答)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수많은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5년, 10년 마음을 집중(集中)할 분이 계시다면 오늘 46주년 이후로 응답 받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제가 그렇게 46년 동안 그렇게 한 결 같이 흔들림 없이 부르심의 길을 한 결 같이 달려 나갈 수 있었던 윌리암 윌버폴스의 비밀이 뭔가? 보니까 윌리엄 윌버폴스를 뒤에서 밀었던 놀라운 공동체(共同體)가 하나 있었어요. 그것이 뭐냐면 클랫폼 공동체라고, (CLAPHAM)클랫폼 공동체라고, 공동체는 기독교 형제단이라는 이름을 가진거에요. 이름을 가진 공동체였는데, 이 공동체가 윌리엄 윌로폴스의 뒤에서 밀었어요. 그래서 그것이 뭐냐면, 그래서 밀어준 윌리엄 윌버폴스가 실제적으로 행동대로 나서게 되고, 꼭 이것은 마치 무엇 같냐면, 활과 화살과 같은 기능이었어요. 윌버폴스는 화살의 기능을 하고, 클래폼 공동체는 활의 기능을 하고, 여러분 아무리 날카로운 화살이라 할지라도 활이 쏘아주지 않으면 과녁을 맞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활이 멋있고, 장군 멋있어도, 화살이 제대로 없으면 마공(磨工)한 화살, 갈고 닦은 화살이 없이는 그 활은 아무리 활을 좋아도 아무런 역할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사랑의 교회는 사랑의 교회라는 공동체 이 공동체(共同體)가 있기 때문에,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이 시대의 화살이 돼야만 하는 것이에요. 사랑의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 갖는 ‘2033-50 비전’이라는 과녁을 앞에 놓고 여러분과 저는 화살이 되고, 우리 온 교회는 활의 역할을 감당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주신 사명(使命)을 잘 감당(堪當)할 수 있도록 한 분, 한 분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 시대의 화살을 알리는 활과 시위의 공동체가 되어 하나님이 개인과 우리 온 교회에 허락하신 하나님의 비전을 복음과 성령과 사명으로 잘 감당하는 신실한 주의 종이 될 수 있도록 은혜 위에 은혜를 덮입혀 주시도록 축원합니다.
 
요약
중한 죄 짐 지고 가는 우리 인생의 고통과 형벌의 자리에 예수님께서 대신 서 주셨으니, 우리 가정과 일터의 수많은 아픔과 상처가 복음으로 다 치유되고, 나의 절박한 심령 위에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부음 받을 때,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은 겸손한 자가 표효하는 세상을 이기는 강력한 영적기백으로 무장하여 주님이 사랑하시고 기뻐하심을 받는 제자훈련 선교 공동체의 거룩한 정체성과 2033-50 비전과 사명 위에 설 때, 세계복음주의의 쇠퇴를 막는 시대의 화살로 쓰임 받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
-오늘 사랑의 교회가 46주년을 맞이하여 하나님 주신 사명을 꿈꾸며, 힘차게 달려가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며, 죄 없으신 주님께서 내가서야 할 그 자리에 서 주셔서, 중한 우리의 삶에 죄 짐을 벗고 고통을 치유하고, 찬양하게 하신 것을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드려야 한다. 성령께서 서초동의 하늘 문을 열어주시고, 절박(切迫)한 벼랑 끝에 서 있는 성도들에게 능력을 입혀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며,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전신(全身)갑주(甲冑)를 입고 매일 아침마다 성령(聖靈) 충만(充滿)하여 달려 나가는 은혜가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이 시대의 마광(磨光)한 갈고 닦은 화살이 되는 사명자로 사랑의 교회는 강력한 활시위로 서로 돕는 공동체가 교회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기도보다 앞서지 말고, 성령보다 앞서지 말아야 한다. 직분이 아니라 성령과 섬김으로 살아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21세기 클레팜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하자.
 
-요약
1. 창립 46주년 말씀과 기도.
- 교회의 시작은 교회의 창립 46주년을 기도로 시작함
- 46년 동안의 사랑의 교회의 역사를 찬양하며 은혜와 찬송을 올려드림.
- 목사님의 역할을 참 모델로서 예수 그리스도로 세상을 압도하는 제자가 되는 것을 다짐.
- 교회의 새 시대적 사명에 대해 기도하며 간절히 바라봄.
- (중요) 국정 수행을 지혜롭게 하여 나라가 강력해지도록 기도함.

1-2.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교회의 역할.
- 80년 간 북한의 정권 폭증으로 고통 받는 북한 백성들에 대해 불쌍히 여김.
- (중요) 모든 공의와 진리를 통해 북한 백성들이 속히 자유와 평화를 이루도록 기도함.
- (중요) 사회적 약자들과 이웃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며 공동체로서 쓰임을 다짐.
- 이를 위해 교회가 사회적 역할을 더욱 강화해야 함을 강조함.

1-3. 기도를 통한 은혜의 찬양
- 찬양과 찬양대를 통해 예배를 드림.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의지를 다짐.
- 이를 위해 찬양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며 신령과 진정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함.
-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함을 긍정하며 찬양을 올림.
- (중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베푸시며 열심히 기도함.

2. 복음과 신앙생활의 깊이.
2-1. 예수님의 세례와 신성.
- 예수님은 신성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가 없음.
- (중요)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함.
- 요한과 예수님은 친척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신성을 확실히 알고 있음.
- 요한이 세례를 받게 된 시점에는 예수님이 이미 완전한 신성을 가지고 있음.
-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것은 모든 의를 이룬 것의 표시.

2-2. 세례의 의미와 중요성
- (중요)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 즉 복음을 전파하는 역할을 의미함.
-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는 분이지만, 요한에게 세례를 받음으로써 모든 의를 이룬 것.
-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은 죄의 대표자가 되어주기 위한 것.
- 복음의 깊은 신비는 세례를 받아야 죄의 대표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을 말함.
- 이 깨달음은 사랑의 교회가 되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
- 사랑의 교회와 복음의 실천.
- 사랑의 교회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
- 사랑의 교회는 눈에 보이는 사랑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사람을 포괄적 사랑을 의미.
- 46년 동안의 사역을 통해 사랑의 교회가 됨을 증명함.
- 이를 통해 우리는 복음의 깊은 신비와 사랑의 교회를 향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얻게 됨.
- (중요) 이 패러다임은 사랑의 교회가 46년 동안 지속되는 사명과 비전의 수레를 계속 추구함으로써 성취됨.

3. 죄의 대표자로서의 예수님 세례에 대한 깊은 이해.
- 죄의 대표자로서 예수님 세례에 대한 이해.
- 예수님은 죄의 값을 치르며 모든 삶의 고통과 병을 짊어줌.
- 예수님의 세례를 통해 우리의 죄가 짊어짐.
- (중요) 예수님은 우리를 죄의 대표자로 서며 그 자리에 우리를 치유함.
- 죄의 대표자로서 예수님은 모든 애환과 고통을 짊어지고 징벌을 받음.
- 예수님의 세례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함.

4. 사랑의 교회 창립 46주년 감사예배.
- 사랑의 교회 창립과 개인적 신앙성
- 목회자의 아들에 대한 신앙성과 정체성에 대해 언급함.
- 여러분이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 아들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을 말함
- 그러므로 주님이 이 시대의 요단강물을 갈라가지고 복음과 사명을 말씀하심
- (중요) 믿음의 정체성은 주님이 개인의 남은 미래를 수치와 부끄러움에서 벗어나게 하심
- 개인의 아들에 대한 신앙성이 어떻게 정체성을 형성하는지 설명함

5. 윌리엄 윌버 폴스의 공동체와 그 역할
- (중요) 윌리엄 윌버 폴스가 46주년 이후로 노예제도와 노예무역제도가 폐지된 사실을 언급함
- 윌리엄 윌버폴스를 사랑의 교회와 화살의 역할을 하는 공동체로 설명함
- 공동체는 윌리엄 윌버폴스의 화살과 활의 공동체 기능을 맡고 있음.
- 공동체는 믿음의 교회로 성장하고, 사명을 감당하는 신실함을 강조함.
- 윌리엄 윌버폴스의 공동체는 클랫폼 공동체로 설명하고 그 중요성을 강조함.

6. 예배에 앞서의 기도와 감사의 말씀
- 사랑의 교회는 활과 화살의 기능을 맡는 공동체임을 말함.
- 사랑의 교회는 시대의 화살을 알리는 역할을 하며, 이에 따른 기도를 강조함
- 하나님을 통해 온 교회가 활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비전을 복음, 성령과 사명으로 감당함
- (중요) 하나님을 감사하며 그 찬양을 드림
-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함으로써 우리의 삶이 더욱 행복해짐을 강조함

7. 새로운 시대를 위한 기도와 선교 전략.
- 46년 동안의 은혜의 감사와 고백. 새로운 시대를 기도.
- 토비새를 통해 기도의 터 위를 올려놓음.
- 무릎 꿇어 고백하는 믿음과 기도의 중요성 강조.
- (중요) 사랑의 교회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위한 새로운 선교 전략을 준비하고 실행.
- 성도들이 민족과 열방을 섬기는 제자로 성장.

8. 선교의 중요성과 선교 훈련
- 2024년 전문인 선교학교 기본 훈련 과정 시작.
- 코로나 시대에 선교 방향 모색을 위한 선교훈련 진행.
- (중요) 예배를 세우는 사역과 진리에 대한 성경적 의미를 공유.
- 신앙을 통해 즐거움을 닮고 은혜에 빚진 삶을 변화시키는 생명공동체 구축.
-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을 추구.

9. 창립 46주년 축하와 간절한 선교 꿈.
- 창립 46주년을 감사한 날로 기뻐하며 선교의 중요성을 고백.
- (중요) 2033년까지 대한민국 전 국민의 50프로가
하나님께 돌아오는 민족 복음화를 위한 선교 꿈 설정.
- 기도의 힘으로 하나님에게 간절히 기도하며 창립 46주년을 축하.
- 임마누엘 신앙으로 새로운 눈을 열고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시대의 별, 생명의 별이 될 것을 간절히 바람.
- 46년 동안 사랑의 교회의 심정을 담당해온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함.

10. 하나님의 소명과 선교의 중요성.
- 하나님의 소명과 사회적 책임
- 성도들이 화살이 되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길 기도함.
- 우리의 책임을 다하는 성도를 소명자라 칭함.
-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죄를 용서하신 것을 기억해야 함.
- 예수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대신에 우리에게 화해를 청함.
- (중요) 우리는 죄를 다하여도 성도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음.

11. 공동체의 역할과 선교의 중요성.
- 클레팜 공동체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축복임.
- 우리의 역할은 화해자가 되는 것, 사회에 기여하는 것임.
- 이민교회와 세계 교회도 함께하는 것이 중요함.
- 성도들은 선교팀에 파송되며, 이는 주님의 일임.
- (중요) 선교는 성도들에게 주님의 일임을 감당하는 것임.

12. 선교의 실행과 전투.
- 성도들이 영적 군사의 자위대가 되어 선교활동을 함.
- 국내, 해외에서 아웃리치 선교 활동이 이루어짐.
- (중요) 성도들이 1800여 명으로 진행되는 선교팀으로 구성됨.
- 예수님의 말씀은 싸움의 지침이 됨.
- 선교는 거룩한 전쟁이라는 견해를 지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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