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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4월 07일)
제목: "예수 그리스도, 이 시대의 도피성"

♣주일예배(주후 2024년 04월 07일)
제목: "예수 그리스도, 이 시대의 도피성"
(Who is JESUS") ⓼번째
말씀: 여호수아 20:1~9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최민규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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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20:1~9,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해 정하여.
3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4 이 성읍들 중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의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성읍에 받아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게 하고.
5 피의 보복자가 그의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였음이라.
6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7 이에 그들이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8 여리고 동쪽 요단 저쪽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 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구별하였으니.
9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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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난 한 주간 동안 22차 봄 특새에 은혜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22차가 되다 보니까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그렇게 힘들지 아니하고, 물론 힘든 사람 몇 명은 있었지만 힘들지 아니하고 자연스럽게 새벽에 일어나는 것 훈련이 되어 있어 가지고 물 흐르듯이 해서 자연스러웠습니다. 주의 영이 많은 곳에 주시는 자유를 능력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번에 22차 특세니까 22차 총선도 지켜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나라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것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첫 번째 오늘 생각할 것은 오늘 제목이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 그리스도, 이 시대의 도피성” 이라고 그랬는데 성찬을 앞에 놓고 우리가 아 좀 말씀 앞에서 우리가 좀 생각을 해야 하는데 먼저 생각할 것은 정글 같은 이 세상입니다. 여러분 3절에 보니까 도피성이 왜 생겼는가 보니까, 어떻게 실수했다고요?
 
I. 첫째, 정글 같은 세상.
 
*여호수아 20:3,
3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 자를 피할 곳이니라.
-이게 뭐 이렇게 소위 과실치사죠 그 이유는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 자를 피할 수 있도록, 그리고 9절에서도 오늘 보니까,
 
*여호수아 20:9,
9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
-오늘 여러분들 그 구절 그쪽에 좀 뭔가 좀 어리버리 하게 합독을 하시는데 마지막에 뭔가 9절에 제 보니까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리고 마지막 구절 뒤에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마지막에, 이 땅의 삶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부지중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당시에 예를 들어서 나무 하다가 어떻게 도끼날이 날아가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이웃과 서로 다투다가 어떻게 상대편을 밀쳤는데 벽에 머리를 부딪쳐서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의도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살인이 되어서 과실치사(過失致死)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앞에는 가나안 전쟁을 7년 동안 수행을 했습니다. 외부적 전쟁이죠. 지금 우리나라에도 이 근처에도 현실적으로 우크라이나나 팔레스타인 전쟁 또 이 북한에 있는 탈북자들, 또 북한에 지금 그 전쟁 같은 삶을 사는 분들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갑작스러운 지진이 난 대만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겠죠.
 
그래서 이 세상은 뭐 이것도 어렵지만 아주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이 세상은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탈락하고 이긴 자만 살아남는다는 승자 독식의 논리가 타락한 세상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어떤 철학자는 삶이 너무 무한한 치열한 경쟁과 끊임없는 갈등이 있으니까, 남을 짓밟지 않으면 짓밟히는 인간의 모습에 대해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무슨 말입니까?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처럼 언제 뒤처져 낙오될지 모른다는 그 논리에 코뚜레를 꿰어서 끌려가는 그런 삶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참 짐이 있잖아요. 그거는 외부적인 전쟁도 그렇지만, 내면의 전쟁도 만만하지 않죠. 가장 극복하기 힘든 대상이 나 자신이에요.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나 젊은이들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나, 내 자신이 정글이고 내 자신이 가장 큰 적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소위 중독,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성 중독, 게임 중독, 소위 어딕션(Addiction), 유튜브도 들었는데, 들었다 하면 그냥 1시간 2시간 3시간 쭉 가는 거지. 이것이 일상을 정글같이 옭아매어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도록 그리고 우리의 내면 가운데 나도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상처 난 부분들 그리고 부지중에 나는 모르지만 상대방을 말로써 죽이는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죠. 자, 외적으로, 내적으로 다시 본문으로 들어가서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외부적으로 살인을 했을 때 당시 이스라엘 사회는 특별한 사법 조직이나 경찰 조직이 없었어요. 그래서 피해자 가족들이 살인자를 조사하고 보복하는 시스템이었어요. 소위 피해 보복의 관계였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피해를 입으면 대체적으로 감정적이 되고 판단력이 흐려져 가지고 같이 망하거나 무고한 사람들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그런 비극이 있었어요. 이런 경우 이 정글 같은 사회 내 외부적으로 이런 경우 그 당시에 이스라엘 사회 무슨 해결 방법이 있었을까? 3절에 보니까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가게 해라.” 그리로 도망가게 해라. 그러니까 그리로 라는 말이 이 도피성에, 도피성을 만드시고 그리로 도망가게 하라. 부지중에서 있던 사람들 무슨 우리 찬송은 피난처에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오라
 
주 여호와 피난처요. 세상의 날 리을 다시 그치게 하시는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의 피난 도피성 피난처가 이 도피성이라는 말이에요. 도피성 피난처라는 말인데 refuge(도피), shelter(대피소), 그래서 오늘 저나 여러분이나 우리 가운데 이런 삶의 도피성이 필요 없을 만큼 완벽한 사람도 없고 또 도피성에 가지 못할 만큼 저주 받은 사람도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정글 같은 세상을 다 피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한 가지 정글 속에서도 예수 믿는 사람들은 우리가 정체성을 잃지 않고 힘 있게 살아갈 비결 중의 하나가 오늘 도피성이라는 사실이에요. 정글의 늪에 빠지지 않고 저와 여러분이 꿋꿋하게 우리의 삶을 걸어갈 수 있는 그 장소가 도피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조금 더 나중에 깊이 들어가면 이 성찬이 우리의 삶의 도피성이 되는 것입니다. 예배가 도피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배와 성찬이 도피성이 되기 위하여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II. 도피성이라는 해답.
-도피성이라는 해답을 주님이 허락해 주셨는데 구약의 도피성은 아까 말씀한 대로 피해 보복자가 따라와서 죽이려고 하는 순간 그 그걸 이렇게 피할 수 있도록 레퓨지로서 쉘터로서 피난처로서 만들어 놓은 것인데 요단 서편의 3개 요단 동편의 3개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디에 있든지 하루길이면 뛰어갖고 하루 만 4-50km, 한50km 정도만 48km에서 50km 정도만 뛰어가면 대체적으로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제가 한번 도표를 한번 만들어 드려서요. 한번 보시겠습니다. 이스라엘 지도를 한번 보시겠습니다. 보이십니까? 이스라엘 왼쪽은 지중해고 밑에는 사해고 위에는 요단강이죠? 저기 뭐야 위에 갈릴리 바다죠 사인의 요단강이 있고 요단 서편에, 서편에 보세요. 오늘 성경 보니까 7절 8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면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납달리 산지에 갈릴리에 아니 보여줘요 예 갈릴리에 뭐예요? 게데스 갈릴리에 어디에 어 저 위에 저 위에 게데스 보입니까? 그 다음에 에브라임 산지에 3개보입니까?
그 다음에 유다 산지에 헤브론 보입니까? 저 근처에 예루살렘이 있죠? 요단 딱 잘라고 오른쪽에 이제 동쪽 동편에 뭐야 요단강 베셀 보입니까? 밑에 그다음에 길르앗 라못 보입니까? 중간에 저희 므낫세 지파 바산 골란이 보입니까? 제가 이걸 이런 걸 제가 잘 안 보여드리는데 이 보여드리는 거는 어디에 있어도 하룻길이면 갈 수 있도록 그리고 저 도피성은 언덕 위에 산지에 있었어요. 접근이 늘 보일 수 있도록, 사람들의 도피성을 향하여 잘 찾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문은 항상 열려 있었고, 계곡마다 다리를 놓고 또 안전판이 있었고, 그래서 결과 죽을 목숨이 구원받는 것이 도피성이다. 그리고 6절 그리고 이제 중요한 도피성으로 도망간 사람은 오늘 6절 시작.
 
*여호수아 20:6,
6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오늘 6절을 여러분, 2절 3절과 함께 잘 기억해야 되고,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도피성에 돌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고 그다음 그 살인자가 도피성에 들어갔을 때에,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그 당시의 대제사장이 뭐예요?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살인자는 그 성읍 고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을 자기 집으로 돌아갈 지이라 하시니라. 그 성 자기 집으로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도피성에 들어가면 이제 먹을 양식을 주고 거기에 살도록 되어 있는데 그래도 큰 감옥이죠. 감옥 같이 있는데 그 그가 자유의 몸을 받을 수 있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당시에 대제사장이 죽으면 자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제사장의 죽음과 도피성에서 편안했던 그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자유와 바꾸어지는 것이에요. 그러면 제가 이 말씀을 드리면 어떤 사람은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대제사장이 1년 만에 죽을 수 있으면 1년 만에 나오는 거고, 수십 년 동안 제 세상에 죽지 않으면 수십 년 동안, 거기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제사장 오래 살면 도피성 있는 사람이 ‘주여! 대제사장을 빨리 데려가 주옵소서.’ 그건 여러분 쓸데없는 상상이고 복음의 핵심을 깨닫지 못하는 거예요.
 
자, 지난주에 지난 아론의 싹 난 지파이가 예수님이 뭘 예표 했다고요? 부활을 예표 했다. 그러면 오늘 여기에서 구약의 대제사장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것이에요. 히브리서를 보면 예수님이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라고 그랬고 그래서 여러분 제가 자막을 해 놓으면요 같이 보겠습니다.
 
*구약의 대 제사장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구약의 대 제사장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한다.
-훌륭합니다. 자막 팀 훌륭합니다. 정말 내가 감사드려요. 이번에 우리 그 특사 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하고 저하고 19년 20년 영상 팀은 나하고 12년 발맞추어 왔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정말 오늘 이 말씀은 말씀도 안 봐도 여러분들 다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이에요. 다시요. 아까처럼 잘못된 상상하지 말고요. 대제사장이 죽어야 뭡니까? 도피성에 피한 사람이 자유롭게 된다. 이거 어떤 뜻입니까? 사실 도폐성에 들어간 사람은 과실치사로 죽어야 되는 거예요. 실수여도 고귀한 생명을 죽인 범죄자예요. 그런데 그가 대제사장이 죽었을 때, 나왔다는 말은 그와 대제사장의 목숨과 바꿨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이것은 마치 영적인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목숨을 버리시고 우리의 죽을 목숨과 바꾼 거예요. 복음적으로 생각을 해 보면 살인자가 도피에 들어갔다고 해서 살인자의 죄가 다 없어진 것이 아니에요. 모든 죄는 마땅한 형벌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죗값을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대속한 거예요. 대신 바꾼 거예요. 썹스티투션(substitution-치환, 대체) 된 거예요. 여기에 십자가의 깊은 사랑이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범죄(犯罪)는 값을 치러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진노(震怒)가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 진노가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도피성(逃避 城))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다 퍼부어 쏟아 부어진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과 저의 죄를 지우개로 지운다고 다 지워지는 게 아니고, 우리의 죄를 지우개로 지운다고 다 지워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죄를 내가 지어야 할 죄를 예수님께 다 쏟아 부으셨다. 그 말이에요. 그것이 도피성에 나타난 복음의 진리예요. 사도바울은 이걸 깨닫고 하나님께서 진노를 나타내신 것을 하나님의 의라고 했고 로마서 3장 26절에
 
*로마서 3장 26절
26 곧 이때에 자기 의로우심을 나타내 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의가 사라지지 않으려면 뭐냐 하면 누군가가 형벌을 받아야 되는 거예요. 누군가가 죗값을 치러야 되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도피성 되신 대제사장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은혜인 줄 믿으셔야 되는 거예요. 이건 참 값비싼 은혜예요. 값비싼 은혜, 한 단계 더 올라가 가지고 구약의 도피성은 우발적으로 살인한 사람들을 정글 같은 세상에서 보호해 주시지만, 오늘 성령 시대에 사는 우리가 믿는 이 참된 복음은 우발적인 살인자뿐만 아니라, 고의 적으로, 고의적으로 죽인 악질(惡質) 죄인까지도 구원(救援)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구약에서는 대 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성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지만 신약 시대에 지금은 우리가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리고 부활하신 그 은혜의 복음을 우리가 믿고 그분이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에 지금 당장 우리의 삶을 의탁하면 우리에게 영원한 자유의 몸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걸 너무 놀라워 가지고 히브리서 기자가 히브리서 6장 18절부터 20절까지 또박또박 기록하고 있는데 뭐라고 그랬냐면 18절에,
 
*히브리서 6:18-20,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도피성을 찾은 우리에게 뭘 주신다고요? 아니라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았는데, 이것이 도피성이라는 거예요. 도피성을 찾은 우리에게 뭘 주신다고요? 아니라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았는데 이것이 도피성이라는 거예요. 도피성을 찾는 우리에게 큰 용기를 주시는데 그리고 이 도피성 안전한 곳에 누구 때문에 들어갈 수 있는가? 그다음에 20절 보겠어요. 20절 시작.
 
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아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대사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 보좌, 하늘 지성소로 들어가셨다 그 말이에요. 예수님께서 이런 길을 열어주시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은혜의 보자 앞에 지금도 나아갈 담력을 얻게 되는 겁니다. 그럴 때 무슨 은혜가 있는가, 오늘 히브리서 6장 19절에
 
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무슨 말인가? 이 시대의 정글 같은 세상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시대의 파도에 흔들림이 없이 도피성 되시는 안전한 영혼의 닻을 경험하신 주님께 이 시간 영광과 감사를 올려드리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우리가 주중에는 어떻게 보면 정글과 같은 세상 고통스럽고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주일마다 예배에 이 예배가 도피성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와서 우리가 내 삶을 올려드리고 이럴 때, 진짜 이 시간이 여러분들 파도 많은 이 세상 가운데 영혼의 닻을 내린 안식(安息)을 누리게 되는 것이에요. 이게 얼마나 이걸 모르고 말이에요. 정글 같은 세상에 날마다 살다가 뭐 겉으로 평안하다. 하지만 뭐가 평안 하겠어요? 정글,,, 그러니 여러분 주중에 정글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이와 같이 주일 나와서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이 도피성 되신 예수님 앞에서 우리가 영혼의 닻을 경험하는 겁니다.
 
안전한 영혼의 닻을 경험하는 거예요. 안식의 항구에 들어가는 거예요. 피난처(避難處)에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 와서 주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예수 그리스도가 도피성인 신약 적 의미를 제가 도표를 만들었어요. 오늘 성찬식이니까 제가 길게 못 하니, 신약의 도피성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오른쪽에 어떻게 돼 있죠?
 
첫 번째, 남의 피가 아니라, 예수님 당신의 피를 흘리시고 도피성이 뭐예요? 되어 주신 거예요.
두 번째, 구약의 도피성은 신약의 도피성 예수 그리스도는 찾아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일방적으로 주어진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 구약의 도표성은 범죄자가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오른쪽에는 뭐예요 여러분 이 복음의 차이를 이해하시겠습니까? 오히려 예수님이 오래 기다려 주신다.
네 번째, 구약의 도피성은요. 일회성, 신약의 도피성은요. 영구적
다섯 번째, 구약은 도피성에서 해방 받았다. 하더라도 평생 짓눌림 있는 거예요.
그런데 신약은 도피성에서 완전히 새 생명의 소유자가 되고, 영적인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고아도 과부도 기댈 것 없는 인생도 과부도 도피성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면 룻기 2장 12절에 뭐라고 되어 있는가?
 
*룻기 2:12,
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이번에 보아스 우리가 배웠는데 보아스가 룻에게 그 과부에게, 그 정글 속에서 사는 과부의 룻에게 그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너에게 온전한 상주시기를 원하노라. 놀라운 피난처입니다. 시편 61편 1절로 3절에 보니까,
 
*시편 61:3-4,
3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이다.
4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셀라).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주 날개 이 즐겁도다. 이 세상에 수많은 파도가 있어도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피난처와 견고한 망대와 장막과 과부들과 고아들에게 날개가 되는 줄 이 시대에 도피성 되는 줄 믿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찬을 앞에 놓고 도피성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냥 거기서 먹고 마시고 그냥 산만 지탱해야 합니까? 소울 바이브 라이프로 살아야 합니까? 아닙니다. 도피성에 있는 사람들이 잘 되기 위해서 두 가지를 해요.
 
-거기서 무장을 하고 변화를 받아야 돼. 변화만 받으면 안 되고 거기서 세상 앞에서 살아갈 힘을 얻고 사명을 갖고 나와야만 하는 것이에요. 삶의 변화를 거기서 자기의 삶에 대한 재조명과 재정비를 하고, 삶을 점검(點檢)하고, 회개(悔改)하고, 평가(評價)하고, 오늘 우리 교회로 말하면 이 도피성 대신 주일마다 나와 가지고 여러분의 삶을 재정비하고 여러분이 타고 다니는 인생의 자동차를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 오늘 찬송하면서 말씀 듣고 성찬에 참여하면서 우리의 삶을 재정비하고 재점검하고 우리의 삶의 변화를 가는 그리고 동시에 재정비할 뿐만 아니라, 소명자로 준비되고 사명자로 나와야만 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때, 역사가 나를 부를 때 시대가 나를 부를 때 내가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할 것인가 도폐성 안에서 회계와 변화를 갖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라 사명자로 나아가야 하는 거예요. 사명자로, 우리가 마틴 루터처럼 종교 개혁은 못한다 할지라도, 손양원 목사님처럼 그렇게 살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우리가 7천기도 용사를 은혜를 가지고 세상을 바꾸는 하나님의 기도 군대가 돼야 하는 것이에요.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구원하겠느냐?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가르치겠느냐? 주의 마음을 알아서 사명 자가 되겠는가? 이 시간 우리가 주의 마음을 알아 들이는 하나님의 신신한 남녀종들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누가복음 15장에 돌아온 탕자는 탕자로서 살 때, 그가 저 멀리 가가지고 향락, 사치 방탕하고 허랑 방탕 하고 그럴 때 그것은 정글이었어요. 수많은 중독과 아픔과 결국은 돼지 쥐엄 열매를 먹는 엉망진창의 삶이었어요. 이리 살다가는 내가 죽겠구나! 이리 비참하다가는 인생도 아니구나! 개돼지처럼 살구나! 우리 아버지 집에 가면 우리 아버지 집에 가면 지금보다 낫지. 그 아버지의 품이 돌아온 탕자에게는 도피성이 된 것이 그럼 그걸로 끝인가? 아니에요.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 품에 들어가 가지고 자기를 돌아봤어요. 내가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면 귀하게 살 수가 있는가? 어떻게 하면 내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이제는 내가 마음대로 살았는데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고, 아버님을 더 사랑하고 아버님께 더 영광을 돌려야지, 그 마음을 품는 순간 제대로 도피성에서의 준비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그리고 신명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피성을 매년 한 차례씩 보수를 했습니다. 가는 길도 새로 닦았고 뒤에서 피의 보복 자가 따라와도 빨리 뛸 수 있도록 다리도 새로 놓고 잡초도 제거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매년 닦고 수리하고 보수하고 점검했습니다.
 
오늘 성찬식을 통하여 이 성찬식 자체도 도피성이 되게 하여 주셔서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 다시 사명을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군대로 준비될 수 있는 그런 축복이 저와 여러분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도피성 근처 가까이 가가지고 그 성 밖에서 천막을 친다고 해서 보호받지 못했습니다. 도피성 안에 완전히 들어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혹 우리 가운데 예수 믿는 아내를 만났다고 해서, 예수 잘 믿는 친구를 뒀다고 해서, 예수 믿는 아내의 치맛자락을 붙든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 교회는 남편들이 식구들을 교회에다 데려다 주고 본인은 안 들어오고 데려다 주고, 본인은 옆에 골프 연습장 가 골프 연습하고 소위 제가 이름을 붙여 성도라고 맴맴 성도, 맴 맴 맴 가운데서 그러다가 어느 날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들어와 가지고 이 안에 들어와 가지고 도피성 대신 이 안에 들어와 가지고 말씀을 깨닫고 피해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줄로 믿습니다. 그런 분들 가운데 순장되는 분들 많이 계세요. 다시요 도피성을 향해 힘차게 달린다고 하더라도, 그 성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달리기 자체가 당신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펄전 목사님은 겉으로 도는 신앙 제가 표현한 말로 맴돌기만 하는 신앙,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신앙 이런 신앙, 은혜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신앙을 달팽이 신앙, 이라고 했어요. 수년 동안 심지어 수십 년 동안 신앙생활을 출발했는데 여전히 같은 지점에서 뱅 뱅 뱅 뱅 맴도는 신앙이 무슨 신앙이라고요? 달팽이 신해 오늘 성찬을 우리가 참여하면서 은혜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헌신의 수준이 뭔지를 모르는 그런 수준이 되지 말고 오늘 모두가 다 우리가 이 시간 맴 맴 성도 달팽이의 신앙을 처리할 수 있도록 은혜의 문턱을 넘어가는 귀한 성찬식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오늘 성찬에 참여해야 되는데 성찬에 참여한다는 것은 예수님 예수님의 몸과 보혈의 우리의 몸을 피한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우리의 삶에 뭐가 된다고요? 도피성이 되는 것입니다. 도피성이 되는 그래서 오늘 이 성찬이 최고의 도피성이 되는 것입니다. 도피성 대신 떡과 보혈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것이 그리고 도피성에 참여할 때에 오늘 마음의 소원을 하세요. 아까 제가 그 지도를 보여드렸는데 7절 8절에 요단강 서편의 3개, 그다음에 요단 동편의 3개, 그 6개가 그냥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각 이름 하나하나가 지닌 뜻이 있어요. 그래서 그 이름 하나하나 지닌 그 뜻의 도피성을 향하여 온 그 뜻이 여러분들에게 그대로 이번 성찬을 통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게데스는 어떤 뜻이에요? 거룩한 곳이다. 성소다. 거룩한 곳이다. 여러분의 삶이 오염되었다고 생각한 분들 주여, 내 성찬을 통해 내 삶을 정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두 번째 뭐가 있어요? 어깨 견고함입니다.
세 번째는 뭐예요? 헤브론 헤브론에 있는 그 뜻이 뭐라고요? 교제라는 뜻이에요. 주님과의 교제가 뭐든지 오늘 성찬을 통해 주님과 더 나은 교재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외롭고 친구가 필요한 분들에게도 교제의 은혜를 허락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 다음에 오른쪽에 뭐예요?
베셀은 요새다 포트리스다. 안전하다.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시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오늘 그대로 여러분들이 이걸 그대로 되게 그다음에 골란은 어떤 뜻이에요? 기쁨이라는 그 앞에 라못 이라는 뜻은 높은 곳 보호자라는 뜻이에요. 은혜의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게 하여 주옵소서. 골란은 기쁨을 오늘 성찬식에서의 시간을 통해서 여러분 참된 기쁨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여기에 대한 어떤 글들에 대한 문턱만 문턱 앞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문턱을 넘어가세요.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시네....♩!!~~
 
♣요약
우리는 보복이 두렵고 중독으로 가득 찬 정글 같은 세상에서 도피성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피하기를 소원하며, 매주일 성전에서 온전한 치유와 안식을 경험해야 한다. 가장 강력한 도피성인 성찬을 통해서 맴맴 신앙, 달팽이 신앙을 재정비하고, 세상을 바꾸는 하나님의 기도 군대가 되어서 뚜벅뚜벅 걸어가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2033-50 비전’을 이루어 가야 한다. 제22차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우리나라에 좋은 지도자의 복을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자.
-도피성은 극단적인 피의 복수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부지중에 살인한 사람들이 도피할 수 있는 은신처였다.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고 그 죄를 용서해 주신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신 사랑 속에서도 발견된다. 모세의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행해야 할 많은 일들을 지시해 주었다. 그 중 하나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하게 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성역을 지정하는 일이었다. 마음에 계획한 바 없이 단지 손으로만 죄를 범한 사람의 피가 그 피의 복수자에 의해서일지라도 흘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그 땅을 위해서였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 율법이 그들에게 크게 유익이 되는 것임을 상기시켜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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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3월 31일)
제목: "나의 지팡이에 생명의 싹이 날 수 있는가
(Can My Sprout with Life)?"-(부활절 특별 메시지)
말씀: 민수기 17:1~8, 히브리서 9:4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조이키즈(joy kids),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장명철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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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7:1~8,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 중에서 각 조상의 가문을 따라 지팡이 하나씩을 취하되 곧 그들의 조상의 가문대로 그 모든 지휘관에게서 지팡이 열둘을 취하고 그 사람들의 이름을 각각 그 지팡이에 쓰되.
3 레위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쓰라 이는 그들의 조상의 가문의 각 수령이 지팡이 하나씩 있어야 할 것임이니라.
4 그 지팡이를 회 막 안에서 내가 너희와 만나는 곳인 증거 궤 앞에 두라.
5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에게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
6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매 그들의 지휘관들이 각 지파대로 지팡이 하나씩을 그에게 주었으니 그 지팡이가 모두 열둘이라 그 중에 아론의 지팡이가 있었더라.
7 모세가 그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더라.
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히브리서 9:4,
4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 들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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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대가 오랫동안 준비한 귀한 찬송을, ‘그는’ 찬양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 줄로 확신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참 잘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봄에는 부활절을 주시고, 여름의 문턱에는 성령 강림절을 주시고, 가을에는 뭘 주시죠? 추수감사절을 주시고, 겨울에는 뭘 주시죠? 성탄절 주셔갖고 은혜의 신선도, 신앙의 신선도를 유지하게 하시고, 그리고 영적인 힘을 잃지 않도록 은혜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전 세계가 지금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리고 있고, 한국교회 6만여 한국교회가 또 이와 같이 부활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모든 한국교회가 다 이렇게 복음을 믿고 삼위일체 하나님 믿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모든 한국교회는 다 지난해 2천년 동안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세계 교회가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가만히 계실 겁니까?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수없이 증가하는 거야. 수없이 성경과 수없이 수많은 파치먼트, 양피지와 파파일러스, 파피루스를 통한 수많은 증거를 가지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그냥 조금 몇 개 있어요. 근데 부활에 대한 증거는 수 천, 수만 개가 있어요. 아멘 역사적 사실을 믿으면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기쁨이 충만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 아까 아이들 찬송하는 거 보셨죠? 물론 몇 명은 이라고 불렀지만 내가 좀 걱정되더라고요. 이분은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빅토리, 빅토리! 애들이 기쁨이 충만하고 이 기쁨이 있으면 자동적으로 부활의 은혜와 부활의 진리와 능력을 자연스럽게 이웃에게 전하는 사명 자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 또 기쁨 그리고 사명 자가 되는 것이에요. 전 세계 교회가 부활주의를 맞이할 때마다 다시 한 번 확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이라는 것은 너무 우리가 다 부족한 인생이지만 이 부활의 능력을 통하여 영적인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가게 되는 것이에요.
 
오늘 제가 말씀의 제목을 “나의 지팡이에 생명의 싹이 날 수 있겠는가? 라고 이렇게 붙이고, 오늘 여러분들이 본문을 읽었습니다마는 오늘 이 지팡이는 증거 궤(證據 櫃) 안에 있는 구약의 언약교회 안에 있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말씀하고 있는데, 오늘 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성경 전체로 또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전체 시각을 갖고 볼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 하는 것이에요. 뭘 예표 한다고요?
 
예수님의 신뢰할 만한 우리 성경학자들, 신학자들은 대체적으로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뭔가 읽어보겠습니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생명으로 꼽힌 예수님의 부활의 모형(Typology)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모시는 모든 사람들도 앞으로 부활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또 인생에 있어서도 메마른 막대기, 바싹, 마른 막대기 같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부활의 은총을 입을 것이다. 장래도 그러고 현재도 메마른 인생, 그래서 이 부활에 대한 중요한 하나의 구약의 에스겔 37장에 보면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거 기억나시죠? 마른 뼈도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것 중에 하나가 오늘 마른 막대기 같은, 마른 막대기도 살아날 수가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그리고 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지성서 법계 안에 그 언약궤, 증거 궤, 언약궤 그러는데 이 언약궤 안에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두 개 하셨어요. 여기에 대해서는 신약에서 가장 잘 신학적으로 해석한 히브리서에서 오늘 여러분들이 히브리서 본문도 읽었잖아요. 히브리서 9장 14절, 9장 4절에 다시 한 번 또박또박 같이 읽습니다.
 
*히브리서 9:4,
4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 들이 있고.
-잠깐 지성소 안에, 지성소 안에 뭐가 있다고요? 언약계가 있고, 그다음에 그 언약 궤, 아니 그 안에 시작,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 판들이 있다. 그리고 세 가지가 있는 거 언약교회 안에 그 언약궤 안에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뭐냐? 두 돌비가 있다. 두 돌비는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매일매일 삶의 현장에서 말씀으로 영적으로 인도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돌비를 가지고 그다음에 거기에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가 있다. 이것은 매일매일 우리의 삶은 육신의 현장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먹여주시는 것이다. 특별히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생명의 떡이 되시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뭐가 있는가?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통하여 믿는 사람의 구원이다. 크게 보면 부활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성령의 권능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게 이 정통 신학이에요. 세 가지,
 
⓵성부 하나님 두 돌비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언약과 공의로,
성자 예수 그리스도 만나 항아리로 생명의 떡으로 우리를 먹여주시고,
⓷성령 하나님께서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의 삶을 부활시키는 은혜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오늘 말씀 가운데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오늘 이 부활을 믿고 여러분 개인적으로도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이 부활을 믿고 확신할 때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오늘 요절이에요. 요절 오늘 앞에 요절 8절, 오늘 민수기 17장 8절에 다 같이 보겠습니다.
 
*민수기 17:8,
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첫째 뭐가 뒀고요. 오늘 8절은 거의 말씀 마칠 때는 거의 다 외우고 갈 것입니다.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왜 주셨는가 8절에 이 말씀을 주신 이유가 뭐냐 하면 오늘 17장인데 민숙이 16장에 보면 참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어요.
 
무슨 사건이 있었냐면 고라, 다단 아비납이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대적을 하여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으로만 말씀하셨는가? 그러니까 소위 원망을 하고 또 그 모세와 아론의 지도력에 대해서 항의를 하고, 그러니까 모세와 아론에 대해서 고라, 라든지 그런 그 고라도 같이 같은 레위 지파예요. 같은 레위 지파, 그런데 우리 같은 다 레위 지파인데 모세도 레위 지파고 아론도 다 레위 지파인데 자기들만 하냐, 우리는 안 되냐 하나님이 나 한 사람만 뽑았냐,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똑같이 아니 그러면 그 사람들만 일하느냐? 모세 모세와 아론만 일하느냐? 막 이런 식으로 똑같이 했는데 겉으로 볼 때는 별로 이게 리더십이 한 사람만 있나? 다 같이 나누면 괜찮지,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 어느 정도 괜찮을 것 같았는데,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본 거예요.
 
그 중심의 바탕에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게 뭐예요? 모릅니까? 병 이름이 원,불,비라는 병이 있는 거예요. 원불비가 뭐예요? 성이 원씨고, 이름이 불비야? 원망과 불평과 비난(원불비)이 그 속에 이게 잠재되어 있는 걸 보시고, 그 속에 고라, 그다음에 다단, 아비납 그래가지고 그걸 보시고,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어요? 겉으로 볼 때는 이들이 뭐 별로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속에 보니까, 하나님이 주신 권위에 도전을 하고 원,불,비에 근성에 있어가지고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하세요. 바로 앞에 17장 1절 바로 앞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이 반적을 한 주동자들이 고라이제 고라를 중시한 주동자들을 그냥 땅이 갈라져 가지고 삼켜버리시고, 불을 보내셔 가지고 250명을 태워버리셨어요. 어마어마하게 긴장되는 장면이에요. 이거는 우리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지만, 우리의 삶의 형편을 볼 때에 많은 걸 도전받을 수 있는 것이고, 또 상황이 이렇게 되면 일반 백성들은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더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의 온 회중인 모세와 아론을 또 원망하는 거예요. 민수기 16장 바로 앞에, 그래가지고 무슨 일을 있냐면, 하나님께서 이 화중의 회중들의 이 반역, 그러니까 광야 시대부터 나타났던 이 참 잘못된 DNA 이 원,불,비 여기에 대해서 전염병을 주셔가지고, 심판을 내리셨는데 하루아침에 염병(染病)으로 1만 4,700명이 죽어버렸어요. 바로 앞이에요. 그러면, 그러면 이게 끝인가? 하나님께서는 고라 다단 아비납, 이런 사람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목표인가? 1만 4,700명을 염병(染病)으로 하루아침에 죽이는 것이 하나님 뜻인가? 그게 아닌 거예요. 근본적으로 그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잘못되어 있는 어떤 원망과 불평과 비난이란 뭡니까? 이 병을 좀 고쳐야 되겠는데, 이 병을 어떻게 고치면 좋겠나, 여기에 안타까운 심정이 담겨 있는 거예요. 그리고 이 병을 고쳐야 비상을 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본문 11장 1절 8절 읽었습니다마는 10절이 중요한데 17장 10절을 다 같이 또박또박 같이
 
*민수기 17:10,
10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 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반역한 자에 대한 표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하나님의 관심은 그들을 죽이고 그들을 무덤에 장사 지내는 것이 하나님의 관심이 아니고, 그들이 더 이상 원,불,비(원망 불평 비난)에 이 잘못된 이 병에 걸려 있는 이 불치의 병에 걸린 이들을 고쳐야 되겠는데, 어떻게 하면 고치겠는가? 오늘 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통하여 그걸 고쳐야 되겠다. 그래서 그 아론의 싹 난 지팡이의 기적을 가지고 그들이 나에 대한 내게 대한 뭘 그치고요. 원망을 거치고, 아론과 모세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그 사람들의 그 중심을 아시니까, 그래서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도록 오늘 이 사건을 가지고 은혜를 주신 것이에요. 아무쪼록 우리 속에 있는 많은 부족한 것들이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 마음속에 사람들이 되게 다 어렵잖아요. 다 힘든 부분들이 있어요. 오늘날 우리 이 사회에 만연한 이 사회의 가장 만연한 병이 원,불,비 라면 우리 속에도 그 부부 사이에도. 부모와 자녀 간에도. 교회 내에서도, 수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데 하나님은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주님의 음성으로 이 부활절 날 각자에게 주신 음성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원망을 그치게 한 증거가 뭔가, 그러면 어떻게 원망을 거치게 한 증거를 주시는가? 첫 번째, 레위 지파만 지팡이 이름에다가 아론이라고 이름을 쓰게 했다. 두 번째 뭐라고요? 움이 트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맺혔다.
 
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⓵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⓶움이 돋고 순이 나고 ⓷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하나님께서 각 지파에게 지팡이를 하나씩 가져오게 해가지고 거기다 이름을 다 쓰라고 그랬어요. 유다는 유다 지파 다 쓰게 하고, 레위 지파만 지팡이 이름에다가 아론이라고 이름을 쓰게 했어요. 그 12개 지팡이를, 지팡이를 가져오라고 그러고 그리고 지성서 언약궤 앞에 들어와 밤새도록 언약궤 기 위해서 밤새도록 언약 궤 앞에 있게 했고, 그 지팡이가 보니까 이튿날 보니까 이튿날, 8절에 아까 이튿날 보니까, 첫 번째 뭐가 되고요? 움이 트고 두 번째 뭐라고요? 순이 나고 세 번째 뭐라고요? 꽃이 피어서 그다음 뭐가 됐다고요? 살구 열매가 맺혔다. 이 놀라운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난 거예요. 부활절 용어로 말하면 오늘 부활의 기적과 능력이 임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너무 참 기가 막힌 게 왜? 나머지 11지파의 막대기에는 메마른 거 그냥 그대로 두었는데,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이 났는가? 왜 그랬을까? 오늘 5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5절에 답이 있습니다. 함께요.
 
*민수기 17:5,
5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에게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
-자, 이해가 됩니까? 우리 속에 기본적으로 어떤 병이 있다고요? 원불비의 병이 있다. 그 원불비의 병을 거치게 하는 것이 뭐라고요? 택한 자의 지팡이에 싹 난 지팡이를 통하여, 오늘 우리가 메마르다고 하는 거, 희망이 없다고 하는 거, 이제 끝이라고 하는 거, 거기에 하나님께서 싹이 나게 하셔가지고 근본적인 저와 여러분의 우리의 근본적인 잘못된 속성을 고쳐주시는 것이에요. 이유를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아론을 선택하시고, 아론을 통해서 일하신 걸 보여준 거예요. 그래서 옛날에 요즘에 있습니다. 옛날에는 우리 한국교회 부모님들이 자녀들 이름 붙일 때 박아론, 김아론 그다음에 정아론 이름이 있죠. 이런 이름들이 있죠? 그리고 또 이게 하필이면 왜 살구나무인가? 살구나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살구 정도가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몬드 나무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봄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이에요. 그러니까 희망과 약속을 상징하는 나무에요. 봄의 전령사예요. 지난주에 갑자기 개나리와 진달래가 핀 거 여러분 보셨죠? 우리나라에도 개나리와 진달래가 봄을 알려주는 것처럼, 이스라엘에서는 아몬드 꽃이 봄이 왔음을 말씀하는 거예요. 죽은 것 같은 겨울에 모든 상황이 봄에 꽃피움으로 부활을 나타내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살구나무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단어 ‘샤케드’라는 단어는 ‘깨어 있다.’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약속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 한다. 희망이 도래 한다. 그런 뜻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희망 없고 힘들고 어렵고 모든 것이 다 어둠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가끔 강력한 희망의 상징으로 보여주는 것이 뭐냐 하면 이 살구나무였어요.
 
예레미야 시대 때는 눈물의 통곡하는 시대이고, 예레미야 선지자가 눈물로 하나님 앞에서 정말 그 상황 자체가 어려운 시대인데,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뭐라고 하면, 다 안 된다고 그래 예레미야 1장 11절 12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예레미야 1:11-12,
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
-예레미야야, 슬프냐, 힘드냐, 희망이 없냐? 내가 너에게 증거를 하나 보여주겠다. 그것이 살구나무니라. 그리고 살고 나무를 볼 때마다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는 것, 이스라엘 백성들이 1만 4,700명이 하루아침에 염병으로 죽고 250명이 불타 나가 죽지만, 더 이상 죽지 않도록, 더 이상 원불비에 전염이 돼가지고,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하지 않도록, 살구나무의 씨를 가지고 살구, 살구나무의 싹을 가지고, 살구나무의 꽃을 가지고 살구나무 열매를 맺게 해 주시리라.
 
그리고 출애굽기 25장에 보면 성소에 있는 등대, 항상 불이 어두워 있어요. 항상 어둡죠. 밤에는 깜깜 어둡죠. 어둠을 밝히는 등대, 그 유일한 등대, 어둠을 밝히는 등대를 무슨 꽃 모양으로 만들라 살구꽃 모양으로 만들라. 살구나무는 어려운 시대에 희망이 없던 시대 가운데서 살구나무 그리고 살구나무 열매와 꽃을 가지고 부활의 소망을 주시려고 하는 주님의 목자의 심장이 담겨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살구나무 지팡이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받습니까? 올바른 생명의 씨는 살고 열매를 맺히게 하는 줄로 확신합니다.
 
왜? 다른 지팡이 열한 지팡이 지팡이에는 싹이 전혀 나지 아니하고, 생명도 없고 열매도 맺지 못하는데 왜 아론의 지팡이에는 하룻밤 사이에, 밤새 하룻밤 사이에, 다시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가? 거기에는 하나님이 위로부터 선택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차이가 뭐냐 면요. 생명이 있고, 없고 차이인 줄로 확신하셔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론의 지팡이에는 아론이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하셔가지고 위로부터 온 생명의 역사가 그 지팡이에 임하게 된 것이에요.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에게는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 생명의 씨에 대해서 눈이 열리도록 만들어주신 하나님이신 것을 이 부활 주일날 찬양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의 현장은 메마른 막대기예요. 우리의 삶의 현장은 원망과 불평도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삶의 지팡이에 생명의 씨가 있으면, 반드시 우미 돋고 순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자라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생명이 있으면 자라게 돼 있는 것이에요. 어떤 경우에도 이 사실을 여러분들이 약화시키지 말아야만 하는 것이에요. 다시요. 따라가서 생명이 있으면 생명의 씨가 있으면 꽃이 핀다. 열매가 맺힌다. 아멘 생명의 씨가 있으면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고, 움이 돋고 그다음에 자라게 되어 있는 거예요. 생명이 있으면 자라게 되어 있는 것이 너무너무 중요한 것은 그러니까 포인트는 이겁니다.
 
삶의 현장에 메마름이 있고, 수많은 원망이 있고, 수많은 아픔이 있고,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염병이 있고 다 있다 할지라도 오늘 신약시대에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은 이 말씀을 통한 말씀의 씨와 생명의 씨가 우리 속에 잠재되어 있는 것이에요. 우리 주위에 지금 당장은 메마르고, 당장은 어렵고, 당장은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고 부활의 능력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 속에 강력한 생명의 씨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에요.
 
오늘 이 말씀을 듣고 그렇습니다. 주님!! 하고 소망도 없고 빛도 없는 어두운 세상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하고 믿고 구하고 하나님께 손을 들면 그 잠재력이 확대되어 가지고 움이 돋고,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이게 너무 중요한 겁니다. 그리고 이 은혜는 나 혼자만이 아니라 나 혼자만이 아니라, 이사야 27장 6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는가 너무나 중요한 다 같이 함께요.
 
*이사야 27:6,
6 후일에는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그들이 그 결실로 지면을 채우리로다.
-오늘 이사야에서 말하는 자 27장에 말하는 이스라엘은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말씀을 믿고 따르고 확신하고 이 말씀을 이 말씀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지면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동일하게 움이 돋고 꽃이 피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 이 말씀을 어떻게 우리가 적용하겠습니까? 오늘 여러분의 삶의 지팡이가 생명의 지팡이가 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지팡이가 내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의 시작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어디서 왔냐? 이게요. 모세의 지팡이였다는 거예요. 모세의 지팡이를 아론이 가져가고 거기에다 갖다 놓고 아론의 싹 난 지팡이 되었다는 것이에요. 그렇게 무리한 해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모세의 지팡이가 어떻게 생명의 지팡이가 되고, 어떻게 아론에서 싹 난 지팡이로 변할 수가 있었습니까? 본래 모세는 자기 생업에 지팡이가 있었어요. 자기가 양치는 지팡이가 있는 거예요. 그 양치는 지팡이가 나중에 하나님께서 이 지팡이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라. 여러분들 이해가 되십니까? 그랬을 때 모세의 지팡이가 단순히 모세의 지팡이, 본래 모세는 그 지팡이 양치고 생업을 유지하고 그런 지팡이였어요. 그 지팡이가 출애굽기 4장 20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는가 이렇게 나와 있어요. 같이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4:20,
20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할렐루야! 자기가 모세가 양치는 지팡이였어요. 그 지팡이가 무슨 지팡이로 변화되었다고요 하나님의 지팡이로요. Key는 이거예요. 살구나무의 싹이 나고, 원불비를 그치게 하는 생명의 싹이 우리 속에 잠재되어 있는 것을 믿고, 부활의 이 귀한 축복을 가지고 고백하고 확신하고 찬양하면, 여러분의 손에 들려 있는 일상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는 것이에요. 내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해 주시는 거예요. 내 삶이 아니라 주님이 내 삶을 이끌어가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이에요. 우리는 우리의 삶의 지팡이, 공부의 지팡이도 있고, 직업의 지팡이도 있고, 가정의 지팡이도 있고, 내 삶에 수많은 지팡이들이 있어요. 그것을 내 것으로만 끝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할 것인가? 모세의 손에 들렸던 그 단순한 지팡이가 아론의 손을 거쳐서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됐는데, 기적의 지팡이가 됐는데, 일상의 지팡이가 기적의 지팡이가 되고, 일상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고, 일상의 지팡이가 생명의 지팡이가 되고, 기가 막힌 일들이 벌어진 거에요.
 
내 공부가 내 몸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내 사업이 내 사업으로만 끝나지 아니하고, 내 가정에 내 가정으로만 끝나지 아니하고, 이 가정이 하나님의 가정의 지팡이가 되게 하시고, 내 사업이 하나님의 사업의 지팡이가 되게 하시고, 내 공부가 내 공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업에, 하나님의 공부에 지팡이가 되게 하시고, 그럴 때 가슴이 뛰는 것이에요. 남들보다 더 큰 지혜를 주시는 것이고, 여러분의 손에 든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손에 든 지팡이가 무엇입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자주 “네 손에 든 게 뭐냐?” 너의 일, 너의 공부, 너의 사역, 너의 가정,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야. 너는 사명의 지팡이를 가진 거야. 너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이것이 신약 적 해석은 요한복음 6장에 오병이어(五甁)二魚)의 사건을 통하여,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초라한 어린아이 도시락 하나,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지만, 이게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하면 그것이 오병이어(五甁)二魚)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에요ㅣ 축복의 근원이 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에요.
 
제가 우리 교우들 작년부터 ‘2033-50 비전’을 얘기하면 어떤 분들은 아이고야! 아이고야! 이래 할지 모르지만, 여러분이나 저나 우리가 다 부족하지만 우리 속에 잠재되어 있는 생명의 씨앗이 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통하여 기적이 일어날 때, ‘2033-50 비전’을 통하여, 여러분도 살고 우리 교회도 살고 한국교회도 사는 것이에요. 세상에 10년 내로 대한민국의 50%가 예수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강력한 하나님의 지팡이에 대한 하나님의 사역과 꿈에 대한 우리의 간절한 소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주보 안에 여러분들 태신자 카드가 들어있어요. 나는요, 깜짝 놀랐어요. 어저께 저한테 우리 교회 권사님들이 이제 부활 주일을 위하여 준비하는 권사님 팀이 있는데요. 뭐 했어요? 그러니까 목사님 부활절 계란 만들었어요. 그럼 몇 개를 만들었어요? 5천 개? 아니에요. 목사님, 몇 개 만 개 아니에요 몇 개? 아니에요 몇 개를 만들었는데요? 3만 개요. 내 속으로 ‘간도 크다.’ 그렇지만 산더미처럼 있잖아요. 저 밖에서 스쳐 지나려면 지나가세요. 그러나 주님 저 태신자를 향한 저 달걀을 가지고, 뭡니까? 달걀을 가지고(전도용으로 판매함) 우리의 메마른 지팡이가 생명의 지팡이가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시대를 가르는 지팡이가 되게 도와주옵소서. 그래서 여러분의 삶의 지팡이를 하나님께 올려드리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여러분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될 때 여러분의 직업도, 주님이 주인 되어 주시고 가정에도, 주님이 되어 주님 되어 주시고, 우리의 수많은 삶의 어려운 환경들도,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한국에 좀 큰 사업을 하시는 어떤 장로님을 만났어요. 이분이 저한테 이제 간증을 하셨는데, 20몇 년 전에, 20여 년 전에 하루는 그 장로님 그 공장에 불이 났어요. 불이 나가지고요. 완전히 다 타버렸대요. 공장이 근데 이분은 본래 치밀하고 눈빛도 강하시고 철저한 분이었어요. 그러니까 예수를 믿는 좋은 장로님이셨지만 불나기 전까지는요. 눈에 불이 번쩍번쩍 나고 말이 좀 이상하네요. 불나기 전까지는 눈에 불이 번쩍번쩍 나고 그래갖고 직원들이 벌벌벌 떨고 그랬대요. 그리고 눈물을 거의 흘려본 적이 없대요. 그런데 불이 나가지고 완전히 공장이 다 무너지고 완전히 망해놓으니까 이분이 이제 경비실 밖, 경비실 옆에 망한 공장 앞에 있는 경비실 옆에서 어떤 그 옆에 그 벽에서요. 이 장로님이 사장인데 오는데 눈물을, 눈물을 처음으로 처음 울었다는 거야. 그래서 경비원이 ‘아이고 우리 사장님 울 때가 다 있으시네요.’ 그러면서 사장님 하면서 위로했다는 거에요. 경비원이. 근데 이제 이 장로님이 그런 생각이 들었대요. 나는 예수님 잘 믿고, 열심히 하려고 그러는데, 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이 생기는가? 그런데 왜 이런 어려움이 생기는가? 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갑자기 하나님께서 딱 깨닫게 하시는 건 뭐냐 하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나쁜 일이 있겠는가?’ 왜 이런 어려움이 생기는 그런 원불비죠? 그렇죠.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이 하신 일에 나쁜 일이 있겠는가? 그건 지금 그분의 속에 잠재된 생명의 씨앗이 움트는 것이 맞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하신 나쁜 일 있게 다 하니까 갑자기 막 얼굴이 굳어지고 막 눈물이 나고 그런 상황이 갑자기 얼굴이 평안해지더래요. 얼굴이 막 밝아지더래. 얼굴이 바뀌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은행에 외국인 행장이 그 얼굴을 보면서 장로님이 바뀐 얼굴을 보고 돈을 빌려줬대요. 그래갖고요. 딱 8개월 만에 딱 8개월 만에 완전히 망한 공장을, 8개월 만에 완전히 새롭게 지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지울 수 있냐 그러니까, 불이 나도 터는 그대로 있다는 거예요. 불이나 터는 그대로 있으니까, 기초는 바로 돼 있으니까 그냥 세우기만 하면 된다는 거에요. 매섭고 철저한 성격이 바뀌어 가지고, 밝은 얼굴 가지고 이 풍랑~~ 더 빨리 갑니다. 라고 찬송하고 그리고 본인만 바뀐 게 아니라, 회사 직원들도 바뀌었대요. 그러고 난 다음 8개월 만에 불난 곳을 다시 완전히 다 지어가지고, 그다음부터 사업이 불처럼 일어났대요. 불처럼요. 큰 사업을 해 다시 그분이 그래요.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에는 절대로 나쁜 것이 없다’. 그럴 때 얼굴이 바뀌고 삶의 환경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불이 나서 완전히 망했지만, 하나님께 전적 위탁하니까 그 생명의 씨앗이 불처럼 일어난 거예요. 그래서 이분이 바뀐 게 뭐냐 하면, 이전에는요 다 똑똑하시니까 설교를 들을 때마다 항상 비판을 했대요. 뭔가 항상 비판했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 사건 이후에 20년이 넘도록 설교 시간에 졸은 적이 없대요. 설교 시간 모든 설교가 은혜가 된 거에요. 그리고 이분의 목표가 인생이 바뀌었대요. 목표가 단순함을 주고, 심플, 그래서 그 회사의 모토가 심플 이에요. 심플, 어떤 회사들은 정직, 근면, 성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복음 사업하자, 이런 거 다 있는데 이번은 단순하게 ‘우리 회사는 단순함을 추구한다.’ 단순한 뭐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창조 질서의 은사가 있으면, 그 창조 질서의 은사대로 나는 봉사하면 된다. 누군지 궁금하시죠? 나중에 주님께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완전히 망한 지팡이가 부활의 지팡이가 된 줄로 믿습니다.
 
제가 하나의 사업을 설명을 드렸는데요. 내일부터 특새가 시작됩니다. 이번 특새의 주제가 뭐죠? 어디 안 써놨습니까? 엘리베이터고, 뭐고 가는 곳마다 써놨는데, “사는 날 동안에 능력이 있으리로다.” 사는 날 동안 어떻게 능력 같습니까? 여러분과 저는 우리 근본적으로 원불비의 인생이에요. 자녀는 자녀들대로, 부모 원망하고 부모는 부모대로 요놈의 자식들을 죽도록 키워놨더니, 요따위로 행하고, 성도는 성도대로 한국교회의 이 가나안 성도들, 왜 가나안 성도라는 말이 되냐고? 가나안 성도들, 나는 교회가 이러이러니까 나는 안 나가 안 나가, 거꾸로가 가나안 아닙니까? 여러분 그거 어떻게 이 병을 어떻게 고칩니까? 오늘 하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셔가지고, 더 이상 안 죽도록, 더 이상 전염병 안 들도록, 더 이상 땅이 갈라져 죽지 않도록, 아론에서 싹 난 지팡이를 통하여 우리의 지팡이가 생명의 지팡이, 부활의 지팡이, 역사의 지팡이 되도록 만들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오늘 찬송가 각사 가운데 삼위 일체 하나님 찬양할 때, 소망 없고 빛도 없는 어두운 세상을 하나님이 사랑하사 우리에게 오셨고, 예언하신 약속대로 말씀이 오신데, 그리고 2절이 중요해 부활하신 그 아침 밭의 문이 열리고, 죽임 당한 어린 양이 죽음을 이기셨네. 생명의 길 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께 오는 자 모두 회복되리. 모두 부활되리.
 
-내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로 바뀌니, 오늘 이 부활의 능력을 저와 여러분이 다 체험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굉장히 신비하게 들려질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이것이 모세의 지팡이가 그렇게 변화되었다고 생각할 때, 우리에게는 무리함이 없는 깨달음과 은혜를 받게 되는 겁니다. 그 지팡이는 홍해를 가르게 되었습니다. 반석에서 샘을 터뜨리게 되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지팡이가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메마른 여러분들과 저의 삶의 지팡이에 생명의 씨앗이 잠재된 것을 믿으시고, 오늘 이 말씀 그대로 기억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의 모든 원불비가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오늘 이런 마음에 아멘만 하면 안 되고, 오늘 3만 개 우리가 달걀을 우리가 앞에 놓고 또 태신자 작정을 하고, 아까 말씀한 대로, 움이 트고, 싹이 나고, 열매가 맺히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이것이 나 혼자만 있으면 안 되고, 같이 역사를 해야 되는 것이에요. 같이 역사를 해달라고 그래서 주보 안에 태신자 작정 카드가 있죠? 보시고, 하나님 아버지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에 꼭 이분도 인생에 메마른 막대기가 싹이 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생에 메마른 그 삶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 태진 작정 카드 기도하시고 쓰고, 그다음에 우리 헌금할 때, 같이 내고 오늘 부활절 헌금도 소중합니다마는 그 이상으로 새 생명 축제 태신자 작정까지도 오늘 부활절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하나님께 드릴 예물이 되게 될 것입니다.
 
♣요약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으로 원망과 불평과 비난의 병을 치료받는 자들이 다 되어, 나의 지팡이의 생명의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나의 삶의 지팡이에 이제 메마른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을 믿고, 지금은 바싹 마른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 안에 생명의 씨의 거룩한 잠재력이 사명의 지팡이로 꽃이 피어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구하고, 특별히 나의 인생, 나의 직업, 나의 공부의 지팡이, 나의 모든 삶의 지팡이가 살아있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특새에서 간구해야 한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글로벌 봄 특별 부흥회를 통하여 ‘사는 날 동안 이 능력을 체험’하는 자가 되어서, 다시 한 번 나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을 수 있도록 충만한 은혜를 소망하며, 복음의 씨앗을 심는 특새가 되고, 우리의 사명인 지상명령을 순명하는 자가 되어 주님의 기뻐하시는 자녀로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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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3월 17일)
제목: "하나님의 자비로-(My Mercy)"
말씀: 로마서 12:1-2
대표기도: 고영민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1-3부
설교자: 브라이언 채플 목사님(미국 커버넌트신학교 총장, 현 미국PCA교단 총무):1-3부
-통역: 정상익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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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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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예배 :
제목: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Overflowing with hope)
말씀: 로마서 15:8-13
대표기도: 김정현 권사님
사회: 임상규 부목사님(4부)

설교자: 덕 버셀 목사님(전 로잔국제 총재)-통역: 김인기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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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5:8-13,
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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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 버셀 목사님(전 로잔국제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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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채플 목사님-통역: 정상익 부목사님.
-안녕하세요!.
여러분과 다시 한 번 함께할 수 있어서 참 기쁩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사랑의 교회를 방문했을 때는 굉장히 지하 밑에 깊은 구멍이 계셨던 걸로 기억을 해요. 그런데 이제는 교회 건물조차도 하늘 위로 솟아오르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전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계시는 사랑하는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아주 깊은 사랑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세요. 여러분의 담임 목사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는 것을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담임 목사님이 그러신 것처럼 저도 여러분을 오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많은 분들께서 이 로마서 말씀을 잘 알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게 됐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필요한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는데요. 여러분 지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을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어요. 생각한다면 어떤 지역이 떠오르시겠습니까? 아마 중동 지역일 거예요. 굉장한 어두움이 가득한 곳입니다. 그리고 많은 고통이 있는 지역이죠. 그리고 많은 아픔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전 세계가 중동에서 전쟁이 시작돼서 전 세계로 퍼져날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제가 소속돼 있는 우리 국가에 있는 많은 분들이 뉴스를 통해서 굉장히 내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중동에서 과연 선한 것이 나올 수 있을까? 다들 이렇게 생각을 하죠. 그런데 이 기독교 뉴스 저널리스트가 이런 대답을 합니다. 이렇게 글을 적었어요.

최근 몇 년 동안에 많은 무슬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어서, 정말 많은 사역 단체들이 이 이집트 신문에 이런 광고를 적고 있습니다. 광고 문구를 통해 이런 질문을 던지는데요. 꿈에서 흰 옷을 입은 그 사람을 보셨습니까? 라는 질문을 이 광고를 통해 하고 있습니다. 질문은 이 중동 국가에 있는 수많은 정말 많은 무슬림들이 동일하게 경험하고 있는 것에 대한 질문입니다. 수 천 수만의 달하는 이 무슬림들이 동일한 꿈을 꾸고 있어요. 그들의 꿈 안에서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는 현상이 일어난 겁니다. 그 흰 옷 입은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라고 꿈 안에서 이야기하는 걸 수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거예요. 그리고 그 수많은 무슬림들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께 한 가지를 고백하고 싶어요. 저는 이 현상에 대해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전문 영역이 아니라서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근데 이 사실 하나는 명확히 알고 있어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놀라운 자이를 드러낸 것이라고요. 이 어둠 가운데서 그리고 고통, 그리고 그 부끄러움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늘 복음이 해왔던 바입니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계속 계속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교회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란에 있습니다. 굉장히 놀라운 사실이죠. 그렇죠? 사실 불가능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거기에 있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고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결국 지하로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가 계속해서 성장하는 걸 보면, 고통과 부끄러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고 계신 겁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가 임함. 여러분이 이 이야기를 잘 아실 거예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이 선교사 토마스께서 이 한국 땅에 성경책을 들고 오신 분이죠. 토마스 선교사가 성경책을 들고 왔을 때 그 성경책을 들고 그곳에서 순교하게 됐습니다. 그때만 해도 이 땅에 어둠과 고통과 그리고 부끄러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기서 일을 멈추시지 않으셨습니다. 복음이 이곳에서 흥왕(興旺)하게 돼서 그리고 여러분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그 자비의 증거라고 할 수 있어요.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이 늘 일하시는 바입니다. 여러분이 십자가 앞에 바로 서게 된다면 이거 정말 잘못됐어요! 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정말 수많은 어둠 가운데서, 그리고 정말 큰 고통 가운데서, 그 어둠 가운데서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며 그 자이를 보여주고 계신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전하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읽은 이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 11장에 걸쳐서 바울은 이 세상 가운데 임한 어두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아담이 처음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타락(墮落)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어두움과 고통과 부끄러움이 이 땅 가운데 임했다고 이야기를 하죠. 우리 주님께서는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땅에 복음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바울이야말로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어둠을 통해서 그 경험을 통해서 복음이 어떻게 전해졌는지를 이야기를 하죠. 이 바울이 자기 자신의 마음 가운데 있는 것을 가지고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저는 하지 않았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 이렇게 이야기했던 것에 대한 답을 여러분들은 알고 계시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야말로 이 말씀에 설득이 되었다. 라고,,, 이 죽음이든 생명이든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또 사망이나 생명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그리스도의 그 사랑 안에 있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끊을 수 없다.” 고 사도바울은 고백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보여주신 놀라운 자비(慈悲)입니다. 우리 삶의 어둠으로부터 이 자이가 흘러들어오는 것을 봅니다.

우리 안에 여전히 고통이 있고 부끄러움이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자비가 임하는 것입니다. 근데 우리가 받은 이 자비를 가지고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이 장식장에다 그저 올려놓고 ‘아, 멋있다!’ 하고 바라보면 되는 걸까요? 사도바울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자비를 우리의 동기로 바꿔야 된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12장을 이렇게 사도바울이 시작합니다. 사도 바울이 12장 1절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한다.

*로마서 12:1,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여러분을 권합니다. 여러분을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여러분, 이 사도 바울이 말씀하신 바의 이 힘과 능력을 이 미가가 이야기한 거를 통해서만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데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사도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했다면 ‘여러분이 느끼는 죄책감으로 여러분을 권합니다.’ 라고,,, 아니면 이렇게 ‘너희가 실패하는 그 경험을 통해서 너희를 권하노니.’ 라고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여러분을 권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야말로 우리 삶의 동기가 되어야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여러분이 머릿속으로는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고 계 여러분 가슴으로 느끼기에는 어려움을 겪으실 수 있어요. 특히, 여러분이 저처럼 이 교회에서 생활을 시작하게 된 그렇게 자라나게 된 사람이라면 더 그러실 것 같아요.

제가 이 주일 학교에서 자라나면서 한 가지 클럽을 들었었는데요. 제가 함께하게 된 그 클럽이 소속되어 있는 단체가 ‘성경암송 협회’라 불리는 미국에 있는 협회입니다. 그 협회에 소속되어 있었어요. 성경 말씀을 어느 정도 암송하게 되면 선물을 받게 됐습니다. 제가 성경 말씀을 많이 외워서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그 십자가 모형을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근데 그것이 제 마음 가운데 어떤 영향을 끼치는 걸 깨닫게 됐어요. 하나님을 섬기면서 선물을 받게 되면요. 하나님께서 내가 했던 일에 대 일을 통해서 나에게 무언가를 주신다는 그런 동기를 가지게 됩니다. 제가 열심히 성경 말씀을 암송했지만 그 암송한 말씀조차도 제 마음 가운데 심어진 건 아니었어요. 제가 이 로마서12장 1-2절에서 말씀을 통해서,

*로마서 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제 가슴으로 깨닫게 되는 바를 한번 말씀드려볼게요. 여러분을 권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여러분을 권합니다. 여러분의 이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드려야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또 좋게 여기시는 그런 존재가 될 겁니다. 라고요. 성경 말씀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이 보통 우리가 가슴으로 ‘너 정말 거룩한 좋은 선한 제물이 돼야 돼!. 그래야 네가 거룩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존재가 될 수 있어,’ 성경 말씀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거룩히 여기신다는 것이 여러분이 미래에 될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거룩하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지금 바로 지금의 모습을 하나님이 이미 선포하신 겁니다. 여러분은 이미 거룩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받아들이기에 굉장히 어려워합니다. 나는 거룩하지 않아. 나는 내가 지은 죄를 아는데 그리고 내 약점도 난 너무 잘 알아, 어떻게 나 같은 존재가 거룩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이 될 수 있을까? 여러분 이 말씀이 시작하는 포인트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여러분을 권합니다. 무엇으로요?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요. 이 사도바울은 이미 지난 11장에 걸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서 명확히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존재로 만드신 겁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이 예수님의 자비가 우리 안으로 흘러들어오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우리가 거룩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존재라고 선포하시는 거죠. 이것이야말로 이 하나님의 자비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했던 어떤 일들을 통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일이 일어나게 된 거예요.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를 완전히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쁨을 드리고 또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게끔 만드는 그런 자비이죠.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를 축복하사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끔 만듭니다.

여러분, 그 하나님의 자비가 여러분을 얼마나 강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한번 잠시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사랑하는 오정현 담임 목사님 사모님의 친구인 제 아내를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제 아내를 정말 존경합니다. 굉장히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저의 자녀들이나 또는 저의 손자들을 대할 때 손녀, 손자들을 대할 때, 정말 끝없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 자비가 자꾸 자꾸 떨어질 때 제 아내는 여전히 자비로 가득 찬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걸 보죠. 그런데 제 아내가 가지고 있는 그 따뜻한 마음이 때로는 제 아내를 어렵게 만드는 걸 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제 손자들 중에 한 명이 잘못 행동하는 걸 볼 때, 제 아내가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예요. 내가 조금 더 나은 엄마였다면, 내 자녀들이 좀 더 나은 부모가 됐을 텐데,,, 내가 내 자녀들을 조금만 더 잘 양육했다면 내 손주들이 이렇게 되지 않을 텐데,,, 그리고 이 한 수십 년 전에 했던 실수를 다시 떠올리는 겁니다. 그럴 때 갑자기 그 고통과 부끄러움이 제 아내를 덮는 거를 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그 슬픔에 골짜기로 들어가는 걸 보죠. 어떻게 제 아내의 마음을 좀 더 낫게 만들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자비를 기억할 때,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제 아내가 젊은 어떤 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나는 이 굉장히 기억하기 싫은 여러 가지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가득 찬 캐비넷에 가지 않아요. 정말 내가 이 캐비넷을 열 수 있는 한 가지 열쇠를 들고 있지 않다면 그 캐비넷을 절대 열지 않습니다. 이 열쇠는 하나님의 자비라고 불리는 열쇠예요. 하나님이 얼마나 나에게 자비로우셨는지 몰라요. 어둠으로부터 또 고통으로부터 부끄러움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비를 보여주셨습니다. 이 메시지는 단순히 제 아내가 젊은 엄마에게 전해주는 그런 메시지는 아닙니다. 이 메시지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교회 지도자들도 동일한 메시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필요하죠. 우리 오정현 담임 목사님과 제가 함께 하는 아주 유명한 목사님이 한 분 계십니다. 알렉산더 화이트라는 이 알렉산더 화이트라는 목사님은 스코틀랜드에서 굉장히 유명한 사역자였습니다. 굉장히 비극적인 일이 이 화이트 목사님이 계시던 동네에 일어났어요. 그래서 화이트 목사님의 이 집에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비극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야기를 나누게 됐어요. 계획을 세우고 나서 모두가 이 집을 떠나게 됐는데요. 한 분의 나이가 더 많은 사역자가 그 자리에 남게 됐습니다. 그 연로한 사역자가 그 집을 떠나지 않고 계속 기다리고 있는 걸 봤어요. 사역자께서 화이트 목사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그냥 마치 지나가는 농담처럼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데요.

“화이트 목사님, 저 같은 오래된 죄인을 향한 말씀이 혹시 있으세요?” 화이트 목사님은 이후에 이 일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한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고요... 굉장히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셨던 성인과 같은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연로한 사역자가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시선을 완전히 잃어버린거에요. 화이트 목사님이 이렇게 기억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 나는 이분께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랐어요. 그때 화이트 목사님이 이 질문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방을 건너서 그 연로한 사역자가 있는 곳을 직접 걸어가서 그분의 손을 잡았습니다. 제가 당신을 위로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 말밖에 해드릴 게 없을 것 같아요. 우리는 자비를 기뻐하시는 그분을 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이 화이트 목사님이 하셨던 말씀은 우리가 알고 있는 구약의 미가 선지자가 했었던 말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자비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이상으로 더 이야기한 건 없어 그 이후에 이 화이트 목사님과 대화를 나눴던 연로한 사역자가 그런데 그다음 날 전보가 전해졌어요. 이렇게 그 연로한 사역자가 화이트 목사님께 편지를 보낸 겁니다.

*화이트 목사님, 어제 저에게 전해주신 말씀이 제 영혼의 힘이 되었습니다. 저는 희망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당신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다음에 혹시 사탄이 저에게 ‘너 이런 죄를 지었잖아!’ 하고 죄를 제 얼굴에 던진다면 제가 사탄에게 이렇게 반박하겠어요. ‘그래 맞아 내가 지은 죄 맞아, 너 사실 모르는 거야, 더 중요한 사실을 네가 하나 알 게 있어. 나에게 자비를 보여주시는 그분을 나는 따른다.’,,, 고 저도 그렇고요.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우리야말로 우리에게 자비를 보여주시고 기뻐하시는 그 하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능력이죠.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는 방법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우리에게 능력이 되는 바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비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자비로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해 주십니다. 그 자비로 우리에게 힘을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비로, 하나님의 자비로, 하나님의 자비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임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더 아름답게 만들도록, 그리고 우리의 영혼이 더 튼튼해지게 만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왜 섬기십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는 이유가 하나님의 자비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야말로 그 자비로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존재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자비에 감사를 올려드립시다. 아멘

♣요약.
예수님의 자비의 물결로 전쟁의 어둠과 고통과 부끄러움을 덮어주실 때, 억압과 고난의 땅에서 수천수만의 영혼들이 그리스도께로 나아올 줄 믿고, 하나님의 자비로 우리의 죄와 실패와 결점을 용서받고 오직 자비의 복음으로 우리의 마음과 주님의 교회를 강력하게 세워가야 한다. 우리의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제22차 글로벌 특새로 달려 나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우리나라를 덮어주시고 구원주시는 주님의 기쁜 지도자로 인도해 주시길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놀라운 자비를 본받아서 우리가 달성했던 바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아님을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그 자비로 덮어진 우리가 주님 앞에 서야 하며,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늘 기억하여, 우리의 거룩은 우리가 잘하고 애써서 생긴 거룩보다도, 주님의 거룩 때문에 주어진 은혜이고 축복이라는 것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야 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도 고통과 어려움 중에 있는 자들이 최고의 열쇠를 가졌음도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열쇠를 주신 주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오정현 담임목사님.
이제 교단 총무님이세요. 그래서 세계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치시고 또 1 2 3부 설교하시고, 4부는 또 덕 버셀, 전 로젠 총재께서 설교하시고 하여튼 오늘 우리 교회가 축복이 많은 줄로 믿습니다. 저는 너무 고마운 게 탓이요. 내가 설교 안 하고 오늘 설교 듣는 사실이 좋습니다. 우리 교회가 한국교회가 여러분들이 바로 가면 이 민족이 바로 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중요한 메시지 기억나시죠? ‘우리의 거룩은 우리가 막 잘하고 애써서 생긴 거룩 보다도 주님의 거룩 때문에 주어진 은혜이기 때문에 축복이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오늘도 고통과 어려움 중에 계신 여러분들이 최고의 열쇠를 가졌는데 그 열쇠가 뭡니까?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열쇠를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17일이에요. 이제 봄이 시작되는데, 다시 한 번 ’은혜의 봄 동산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이번 봄에 모두가 다 은혜의 봄 동산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이제 계속해서 우리 토요일 일요일 새벽 예배 토요일 날, 은혜가운데 지금 잘 감당하고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사명과 기적과 간절함의 지팡이를 들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응답으로 채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번 토요일 날 기대하고 나오시고 그다음 다음 주일에는 학습과 세례식, 입교 한 300여 명의 우리 학습 세례를 받게 되는데, 큰 우리 교회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감사드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4월 1일부터 4월 6일 한 일주일 동안 우리 봄 글로벌 특별히 새벽 봉인데 본래 우리 3월 한 중순 하순 이렇게 하는데, 올해는 한 2~3주 늦춘 이유가 4월 10일, 우리 선거를 앞에 놓고 우리 교회의 기도가 이 민족의 방향을 바꾸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 교회 성도들 매일 새벽마다 수만 명이 모여서 기도할 때, 또 전 세계적으로 들어와서 많은 분들이 기도할 때 한국에 또 한 천여 교회 지방 교회들 같이 참여하고 그럴 때 우리의 기도가 이 민족의 장래를 결정하는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본 글로벌 특별 세계 부흥회에 이번 국내 강사님들 나를 애국 애족을 하는 박명수 목사님, 또 이용기 교수님, 그다음에 미국에서 우리 강주민 목사님, 여러분 잘 아시죠? 강주민 목사님도 이틀 동안 하시고, 또 최병 목사님, 이렇게 해서 이분하고 또 브라이언 체플 목사님, 또 제이미 듀 또 크리찬 소니아, 필리블라이큰 오스니 지니스 미첼리 여러분들이 또 글로벌로 들어오셔 가지고 같이 이렇게 메시지를 전하게 되는데, 너무 감사하고 하여튼 제가 우리 브라인 채플 목사님 십 이년 만에 뵙는데요. 목사님들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서 드셨어요. 하여튼 우리가 다 나이가 들어가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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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예배 :
제목: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Overflowing with hope)
말씀: 로마서 15:8-13
대표기도: 김정현 권사님
사회: 임상규 부목사님(4부)

설교자: 덕 버셀 목사님(전 로잔국제 총재)-통역: 김인기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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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5:8-13,
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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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 버셀 목사님(전 로잔국제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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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의 주제는 로마서 15장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바로 소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모인 이 자리에서 저의 기도 제목은 우리 모든 사랑의 교회 위해 성도님의 삶 가운데 소망이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오늘 이 날이야말로 주일이 바로 이 한 주의 첫 시작인데요. 그리고 이 날이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 이 자리에 모든 성도님들께 가장 큰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그리고 이 자리에 제가 다시 오게 돼서 너무나 기쁩니다. 제가 이 사랑의 교회를 너무나 사랑하는데요. 저는 사실 사랑의 교회에 올 때마다 참 명예직을 받은 사람이구나! 라는 마음을 많이 느낍니다. 제가 사실 사랑을 성도님들 아무도 이름은 알지 못하지만 그리고 저랑 개인적으로 만남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됨을 그러고 이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심을 저는 느낍니다. 그리고 여러분 옆에도 앉아 계시고요. 그리고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이름을 한 분 한 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모든 우리의 일생을 아시는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이야말로 어마어마한 선물인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지금 이 시각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기를 사망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들과 그냥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되었다는 것 이상인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서 아시듯이 저는 사실 여러분들의 친척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한국의 가장 유명한 섬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인데요. 혹시 여기에 이 씨 성을 가진 분들 계십니까? 이 씨 성을 가진 분들 계십니까? 이 씨 성을 가진 모든 분들은 저와 한 가족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3명의 저희 자녀들이 있는데요. 첫 번째 딸이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을 했습니다. 정말 너무나 멋진 청년이고요. 프리스턴에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버드 로스쿨을 나왔습니다. 아주 똑똑한 우리 사위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정말로 우리 사위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따르는 자입니다. 저의 딸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제 딸을 너무나 사랑하고, 제 아내도 장모님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딸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그리고 자기 아내와 그리고 저의 장모인 저의 아내를 사랑합니다. 제 딸을 사랑하고요. 그리고 이제는 자식을 낳아서 자녀들도 사랑하는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과 한 가족이 됨을 너무나 큰 축복으로 여깁니다.

특별히 사랑의 교회는 많은 게스트 우리 목사님들께서 오시는데요. 여기에 초청받은 목사로서, 이 자리에서 설교한다는 것이 얼마나 저에게 영광스러운 일인지 말로 형언할 수 없습니다. 먼저 이 사랑의 교회의 어마어마한 장엄함과 영광스러움에 큰 감동을 느낍니다. 우리 성가대의 아름다운 또 찬양에도 너무나 큰 감동을 받고 정말 천사들이 찬양하는 것 같은 그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정말 천국을 더 사모하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매 예배 시간마다 이 모든 자리에 정말로 성도님들이 함께하심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특별히 성도님들이 이 자리에 꽉 차 있는 모습은 저에게 미국인으로서 너무나 큰 격려를 줄 뿐 아니라, 선교사로서, 특별히 제가 일본에서 20년을 선교사로 지냈는데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앉아주실 분들이 꽉 차 있는 모습이 저에게 너무나 큰 감동과 격려를 줍니다. 제 아버지는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도 목사님이셨습니다. 아버지도 목사님이 그 아버지도 목사님이셨습니다. 저는 자라면서 정말 교회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저희 교회에 많은 귀한 설교자 분들께서 오셨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갈 때 저의 꿈이 있었습니다. 제가 정말로 신학교를 다니면서 가졌던 꿈은 내가 나중에 나이가 들면, 천 명을 목회하는 교회를 섬기는 담임 목사가 되고 싶다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비전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저의 그냥 단순한 자만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24살에 그 꿈을 가진 어린이 청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카고 제가 자란 곳에서 저는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를 하나님께서 일본에서 저는 교회를 개척하는 사역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저는 30살이 되었습니다. 제가 30살이 된 그날 주일, 제가 설교를 하고 있었을 때, 제가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고 제가 어떠한 오버를 하는 것이 아니고요. 허풍을 떨거나 제가 어떠한 저의 자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면서 숫자를 세는 것을 같이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말하면서도 사실 수학 공식을 머릿속에 풀 수 있습니다. 천 명을 목회하는 이 교회를 꿈꾸고 있었을 때, 제가 30살이었을 때, 제가 설교를 하면서 사람 숫자를 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988명이 천 명에서 부족한 것을 제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12명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12명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이었습니다. 저의 리더십 아래 그 교회는 15명으로 시작했는데, 12명으로 끝나버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교회의 성장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거를 교회의 성장이 아닌, 그러나 저는 주님 안의 소망이 있습니다.

저는 하박국 선지자를 참 좋아합니다. 외양간은 송아지가 없고, 정말 양떼가 없고, 아무 정말 가축도 없고 아무 과실도 없을지라도, 그러나 나는 예수 그리스도 주 하나로 말미암아 나는 기뻐하리로다. 정말 그 하박국의 기쁨은 이곳이 아닌 정말 더욱 높은 고차원적인 레벨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40년 전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제가 30살이었었습니다. 이제는 저는 74를 맞이했습니다. 정말로 여러 가지 광야를 저는 거쳤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야말로 약속의 땅에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자리에 이 약속의 땅에 우리 사랑하는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정말 주님의 임재 안에서, 주님의 천국을 맛보며, 우리의 상황이 어떻든 상관없이, 정말 교회가 크던 작던 우리 삶에서 성공을 직감한 실패를 체험했던, 우리가 기쁨을 체험했던, 환란을 체험했던,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인 줄 믿습니다. 정말로 소망을 채워주시는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님들에게 소망을 부어주시는 분을 믿습니다. 저에게 할 말씀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 지금 사실 아무것도 없이 다시 저에게 주신 그게 얻는 내용이었어요. 이제부터 메시지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인트로를 소개입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으로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을 충만케 하시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우리의 소망이 삶 가운데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정말로 소망이 우리 삶 가운데 차고 넘치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 자리에 정말 소망이라는 이 작은 인공눈물방울을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소망이라는 사이즈에 이 물 컵에 담긴 정말 이 정도의 소망만 가지고 계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 소방차를 끌고 오셨습니다. 소방차 소방 호스로 정말 우리에게 소망을 부어주시는 분입니다. 정말로 생명의 강으로, 우리 모인 모든 분들은 우리 장로교 교인들인데요. 정말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교단이 어떠하듯이 내일의 삶에서 소망이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오늘 사랑 계신 성도님께 한 가지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의 마음에 기쁨과 평안과 소망이 충만하십니까? 정말로 마음 가운데 기쁨과 평강으로 충만하십니까? 만일 그러시다면 그거는 초자연 그거는 기적입니다. 그거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오늘 이 시간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소망이 없다면 이로 해야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거를 우리도 놓치고 있는지 모릅니다. 만일 오늘 이 자리에 오셨는데 정말 삶 가운데서 마음 가는 소망으로 충만하지 않으시다면, 어떠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체험하고 계시다면 염려하지 마십시오. 성도님들은 혼자가 아니고, 성도님들은 우리와 함께하는 영 가족임을 믿습니다. 이 시간 요한복음 16장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듣는 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정말 끝까지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6:33,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염려 가운데 살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로마서 5장 1절에서 5절에 사도 바울이 하는 말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5:1-5,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의 마음이 메마르시다면 감정적으로 메말라 버리셨다면, 영적 저수지가 비어 있으시다면, 오늘 이 시간, 그리고 매일 아침,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마음과 삶을 넘칠 정도로 차고 넘치는 소망으로 채우시길 원하시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정말로 소망으로 채우시길 바랍니다. 정말로 소망으로 우리 삶을 충만케 하시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 가운데 스스로에게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볼 때, 우리의 상황을 되돌아볼 때,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그러나 하나님 말씀과 내 마음의 소리를 같이 듣고 있는 분이 계신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우리는 시편 42편에, 다윗이 스스로에게 했던 말을 우리가 다시 한 번 보길 원합니다. 다윗이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시편 42:11,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다른 말로 하면 나의 문제가 무엇이며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내 문제가 무엇인지? 다윗이 물었습니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고 있는가!’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고 있는가! 다음 장면으로 가져오기 전에 잠깐 한마디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정말로 하나님께 감사드린 것은 사랑의 교회가 소망의 근간(根幹)이 됨을 감사드립니다. 그냥 이 사랑의 교회뿐만 아니라, 특별히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교회들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모든 유럽에 있는 교회들의 감사 그리고 전 세계 교회들을 감사드립니다. 조금 전, 오정현 담임 목사님과 식사를 하면서 곧 올해에 7천여 명의 목사님들을 초대하는 컨퍼런스 한교섬(한국교회섬김)이 있을 거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한국교회 섬김의 날’이야말로 정말 사랑이가 받은 축복을 더블 링하고 더 많은 축복을 누리게 됨을 믿습니다.

-지난주에 제가 로잔 대회 관련하여서 제가 일본에서 많은 젊은 리더 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마지막 끝나고 Q&A 세션을 가졌었습니다. 그리고 Q&A 세션을 가지는 와중에 어떠한 자매가 저에게 왔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저 스스로가 제 아버지가 목사님이라고 얘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와서 그 자매가 말하길 자기 아버지도 목사님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기 아버지가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말로 교회를 사랑하고 있지만, 아무 부교역자도 없고, 작은 교회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섬기시는데, 성장도 안하고 있답니다. 정말로 힘겨운 가운데 아버지가 계심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딸이 말합니다. 아버지가 너무나 큰 욕을 많이 먹고 있다고요.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은 일이 없다고 딸이 이야기 했습니다. 그 자매는 정말 교인으로부터 단 한 번도 우리 아버지가 감사의 인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자매님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친구 분이 같이 있었는데요. 친구 분도 같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같이 왔던 친구 분의 아버지도 목사님이신데, 정말 작은 교회의 목사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이 자매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두 자매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아버지를 이해하고 여러분들의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위로해 달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하나님께서 자매님들과 그리고 아버지를 사랑하신 걸 꼭 알라고 일러주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위해 섬기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천국에 예비 된 상급이 있음을 기억하라고 제가 전해주었습니다. 정말로 큰 상급입니다. 정말로 이 사랑의 교회는 다른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교회입니다.

다시 한 번 시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시편에서 다윗이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내 영혼을 어찌 낙심하며’ 자기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이시라.’ 이것이야말로 마르지 않는 생수의 원천임을 믿습니다. 정말로 강력한 물살이며, 아주 깨끗한 물의 호수이며, 고요한 물결의 평화와 희망이 소리를 내는 샘물임을 믿습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소망이란 무엇일까요? 소망이라는 단어를 얘기할 때마다, 아마 불확실성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러나 성경은 소망이란, 불확실성이 아닌 확실성이라 말하죠.

저는 보스톤 셀틱스의 농구팀의 팬인데요. 셀틱스가 챔피언십에서 이기기를 전합니다. 정말로요. 그러나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소망합니다. 제 손자들이 좋은 대학에 붙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제 딸이 참 똑똑한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을 했습니다. 저희 전략이었습니다. 특별히 미국, 제 조국이 주님 안에서 자유 한 나라로 있기를 소망합니다. 정말로 소망합니다. 그러나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성경에서 말하는 소망이란, 불확실성이 아 정말로 확실한 믿음입니다. 정말로 확실한 미래입니다. 나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노라. 나는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분명히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도님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계획이 있습니다. 정말 우리 모두에게 밝은 미래를 가지고 계십니다. 정말로 놀랍게도 제 친구, 우리 브라이언 박사님께서 1부부터 3부 예배 때까지 로마서 12장을 가지고 강의를 했습니다. 정말 12장을 가지고 강의 하셨는데요. 정말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는 신학적으로 굉장히 묵직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정말로 최고의 신학의 책이라 불려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말 우리 모두는 로마서의 신학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로마서 12장부터 15장까지는 묵직한 어떠한 신학적인 용어들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우리에게 적용이 가능한 이야기를 12장부터 15장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브라이언 박사님이 첫 번째 나오셨고, 저는 마지막 부분에 다룹니다. 근데 사실 우리 서로는 이 자리에 있을지 몰랐습니다. 정말 성령님께서 우리 두 사람을 이 자리에 불러주신 것을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이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아직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조금만 더 우리가 이야기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로마서에서는 우리 모두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핵심 가치가 있습니다. 정말로 사도바울은 확신을 가지고 시작을 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정말로 사도 바울은 이 복음에 대해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정말로 이 복음이 오히려 유대인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면 부끄러웠을 겁니다. 사도바울은 이 복음이 정말 진실인 것을 알았습니다. 정말로 이 복음은 진실입니다. 정말로 이 복음은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어서 정죄와 칭의와 성화에 대해 나열을 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마지막 우리 9장으로 오게 됩니다. 바로 로마서 15장입니다. 그리고 13절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모든 신학을 다 가르친 후에 모든 기독교적인 조언들 이후에, 그리고 15장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제가 대학에 들어가려고 이제 18살 때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부르시고 이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이제 나이가 들어서 아버지 했던 걸 생각해 보니까, 아버지가 정말 이 말을 오랫동안 생각하셨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일 날 오후였는데요. 전 18살이었습니다. 대학을 갈 일만 남았습니다. 제 친구가 저녁 먹을 시간에 저희 집 앞에 주차를 하고, 그리고 우리가 같이 이제 시카고로 가서, 저는 이제 위튼 칼리지로 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가 그때 제 방에 들어오셔서, 아버지의 얼굴에 슬픔과 기쁨을 같이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장남입니다. 저에게 두 명의 어린 동생이 있고 그리고 누님이 한 분 계십니다. 그래야 첫 번째로 제 아버지가 저를 안아주시고,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정말로 기독교적인 크리스천 신사가 되거라.” 그 말은 정말 5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 마음과 제 머릿속에 있습니다. 정말로 그러나 아버지는 제가 태어난 그날부터 이 말씀을 마음에 두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하나님 아버지, 이 아이가 주님을 위해 일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정말로 이 아이가 주님을 위해 일한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아이가 주님 안에서 아름다운 신사가 되길 원합니다.

사도 바울의 마지막 말은,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저는 이 생각을 몇 가지 정리하고 싶습니다.

보스턴에서 기독교 컨벤션이 있었습니다. 500명의 크리스천 학생들이 그 자리에 모여 있었었는데요. 그는 그 자리에서 많은 이 강사 분들께서 불안과 염려에 대해서 강의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 제가 저희 자녀들에게 말했습니다. 제 자녀 세 명이 다 교수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학생들과 매일 만납니다. 그래서 제가 자녀들에게 묻습니다. 정말로 너희들 학생들도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나? 그리고 그들이 핸드폰을 꺼내고 그리고 학생들에게 받은 메시지들을 저에게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오후에 강의를 올 수 없고, 오늘 SE도 낼 수 없습니다. 제가 저의 두려움을 인하여 굳어버렸습니다. 제가 염려로 인하여 일을 못 하게 됐습니다. 이런 메시지들이었는데, 저는 생각하기는 정말 이 문제들이 젊은 층에만 일어나는 것인가? 그리고 얼마 후에 저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이러한 글을 읽었습니다. 가장 위대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상들이었는데요. 다보스 세계 경제포럼에서는 불안과 우울증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1순위 원인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것을 바로 불안과 우울증의 그들을 위협하는 건강의 순위라고 그들은 얘기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는 너희가 소망으로 충만하기를 원하노라.’

뉴욕에서 제 손자와 최근에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손자들이 잠에 들 때, 제 딸이 우리 손자들에게 가서 교리 문답을 읽어주었습니다. 11살부터 우리 3명의 우리 손자들이 한 아파트 안에서 같이 살고 있었는데요. 그리고 그들의 엄마의 제 딸인 그들의 엄마가 이 바로 질문들을 읽어줬습니다. 아이들에게 이 질문을 읽어주었습니다. 삶과 죽음에서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무엇이니? 그리고 3명의 제 손주들이 이 대답을 하였습니다. ‘어머니,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어머니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셨고 이 마음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그 우리를 위한 피난처를 확보하셨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내게 힘을 주시고,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아시고, 나의 소망은 주님께 있습니다. 어머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 있기에 이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삶을 소망으로 충만케 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 사용하시길 원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아멘.

♣요약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계시하신 소망의 하나님께 두어야 하는 것은 소망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고난 가운데에서도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면 진정한 기쁨과 평강을 얻을 수 있으며 내적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소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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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3월 10일)
제목: "멜기세덱을 아십니까?
(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⓺-(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Do you know Melchizedek?(Jesus Chirst th eternal high priest))”
말씀: 창세기 14:17~20, 히브리서 7:1-7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김지수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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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4:17~20,
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히브리서 7:1-7,
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자라.
2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4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5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6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7 논란의 여지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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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꼭 필요한 은혜를 복락의 강수로 채워주기를 바랍니다. 오늘 회중 찬송하셨는데, 예수 앞에 나오면 영생 복락 면류관 그다음 뭐예요? 확실히 바뀌었네!!~~ 복락의 강수 영생복락 면류관(冕旒冠) 아마 예수님 믿지 않는 세상에서 이런 용어를 한번 평생 한 번도 안 써봤을 거예요. 그래서 주님 믿는 것은 너무나 신비하고 깊이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한 진리 지식에 눈을 뜨는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7절을 여러분들이 히브리서 7장 7절에 읽었는데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렇게 나오죠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히브리서 7:7,
7 논란의 여지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그래 돼 있는데 우리는 주님 앞에 다 엎드려서 부복하고 항복하고 주님만이 나의 전부입니다. 라고 고백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독특한 축복이 있는 것이 그게 논란의 여지가 없어요. 말할 것도 없이, 의심할 여지가 없이, 영어로 말하면,,, Without doubt!!!, 의심할 여지가 없이, 오늘 의심할 여지가 없이 진리 지식을 깨닫는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예수님은 누구신가 여섯 번째, 그리고 오늘은 특별히 멜기세덱? 아마 우리 가운데 멜기세덱이 누군가 ‘멜기세덱을 아십니까?’ 입니다. 그랬는데 “목사님. 새댁 이름입니까?” 여러분 그런 게 아니고 오늘 멜기세덱은 오늘 여러분들이 귀를 좀 쫑긋해가지고 진리 지식에 대해서 눈이 열리는 시간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오늘 배경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여러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이제 소식을 들었어요. 뭐냐 하면 자기 조카 앞에 13장에 자기 조카 롯이 소돔성에 거했는데 그돌라오멜이라는 당시 그 근동 사회에서는 동방의 제일 강력한 군주였고, 동방의 패자였어요. 그 당시로 말하면 그 당시에 알렉산더이고 또 그 당시의 어떤 징기스칸 같은 그런 아주 강력한 군사력인 힘을 가진 왕이었는데 이 왕이 이제 늘 주위에 여러 나라들로부터 조공을 받는데, 소돔으로부터 받고 그러는데 이 몇 나라들이 이 왕에게 종을 안 바치고, 이제 약간 반역 비슷하게 하니까, 이것들 가만히 두면 안 된다 해가지고 그 당시에 최고의 거돌라멜이 소돔성에 쳐들어와 가지고 모든 다 붙잡아 가고 특별히 소돔성에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있었기 때문에 롯을 붙잡아 갔어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그 소식을 듣고 야 이거 내 조카가 저렇게 잡혀가면 되겠나! 라고 생각하고 아브라함은 특전사 그러니까 특공대를 길렀어요. 318명의 특공대를 길렀는데 이 특공대를 데리고 그돌라오멜의 왕과 그 강력한 군대를 쫓아갔어요. 말도 안 되죠. 사실은요. 그 숫자도 마음이 말도 안 되고 그런데 이 사람들은 전승에 취해가지고 밤에 그냥 술 마시고 무방비 상태로 널브러져 있었어요. 그러니까 강력한 특공대 1당 100이 쳐들어가니까 318명 앞에 나가떨어지고 그냥 다 완전히 패전하고 도망가 버렸어요. 그러니까 이제 그 전리품하고 이제 이런 것들을 가져오는데 가져오면서, 두 왕을 만났어요. 두 왕을 만났는데, 먼저는 누구를 만나 소돔 왕을 만났어요? 소돔 왕 21절에 보니까 나오죠?
 
*창세기 14:21,23,
21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져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23절에,
23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오늘은 좀 쎈 말들이 많이 나와요. 그러니까 논란의 여지없이 그다음에 실오라기 하나도 내가 놓치지 아니하고 들메끈이라는 것은 여러분 신발을 묶는 끈이에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신발 끈 하나라도, 실로라기 하나라도, 소돔 왕이 주는 거니까, 주는 거 내가 안 받겠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마치 소돔 왕이 자기가 아브라함에게 재산을 주는 것처럼, 그렇게 이제 자기 걸 가지고 생색내는 것처럼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이 전리품을 받아가지고 아브라함이 치부하였다. 그 전리품을 다 받으면 그 당시에 고대 근동 사회에서는 아브라함이 가장 강력한 부자가 되는 것이에요. 어느 정도 부자가 되는가? 요즘 우리 식으로 하면 일론 머스크라든지, 빌게이츠 같은 그런 부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그런 물품이었는데, 아브라함이 “NO, 안 받겠다!!”! 그 이유는 ‘내가 사람으로부터 내가 받아가지고 내가 부자가 되겠냐? 그렇게 하지 않겠다.’ 그래서 소돔 왕의 제안을 깨끗하게 거부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지금 외적 전쟁에서도 승리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보면 아브라함도 욕심이 있을 거고, 유혹도 있을 거고, 그런데 내면의 어떤 전쟁으로부터 승리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니까 하나님께서 놀라운 축복을 주시는데 첫 번째 뭐냐 하면, 내면의 유혹을 승리하니까 하나님이 누구를 만나게 해 주셨다고요? -멜기세덱을 만나게 해주셔 또 다른 왕이 있는데 멜기세덱에 대해서 18절에 보면,
 
I. 유혹에 승리하니, 멜기세덱을 만나게 해 주셨다.
 
*창세기 14:18,
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이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러니까 멜기세덱은 무례한 예의가 없는 어떻게 보면 좀 저열한 그런 소돔 왕과는 완전히 다르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완전히 아브라함에 대해서 정말 따뜻한 태도를 가지고, 전쟁으로 수고한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멜기세덱은 우리 모든 신학자들이 신비한 인물인데, 구약에서 예수님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인물이다 이렇게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멜기세덱은 대부분 여러분 잘 모르신다고 그랬잖아요. 잘 모르시는데 성경에 세 번 나옵니다.
 
오늘 창세기 14장에 나오고, 그다음에 다윗이 시편 10편에서 또 나오고, 그다음에 구약을 해석한 신약에 히브리서가 있는데 히브리서 5장, 6장, 7장에 걸쳐서 아주 다양하게 나오면서 우리에게 멜기세덱이 어떤 분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나오는데도 우리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히브리서에서 멜기세덱에 대해서 어떻게 제대로 표현하고 있느냐, 여러분들이 아까 봉독했습니다마는 히브리서 7장 1절부터 3절까지, 우리가 한 절 한 절 한 절을 보면서 오늘 아브라함 창세기 14장 이 사건이 히브리서 기자가 어떤 식으로 해석을 하는지 같이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7장 1절을 다 같이 봅니다.
 
*히브리서 7:1-7,
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자라.
2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평강의 왕이요.
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아멘 이 에 대해서 3절에서는 설명하는 것이 누구에게 설명 하냐면 멜기세덱에 대한 설명이에요. 그는 뭐가 없고요. 아버지도 없고 그다음 뭐예요? 어머니도 없고, 그다음 또 보니까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뭐로 있다고요?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시간 지금부터 약간 한 3분 정도 제가 여러분들에게 신학적으로 멜기세덱이 왜 중요하고 멜기세덱은 우리에게 누구인가, 에 대해서 좀 정확하게 좀 말씀을 드릴 테니까 조금만 공부하듯이 좀 집중해 주시겠습니다. 할 수 있겠습니까? 멜기세덱이란 말은 첫째 복합어예요. ‘멜렉’, 이라는 말과 그다음에 ‘세데키’ 라는 말 세데라는 이 두 단어가 복합돼 있는데 그래서 멜기 세대가 있는데 멜렉 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왕이라는 뜻이고 세데키 라는 이거는 뭐냐 하면 -정의다 이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말기 세력은 복합으로 뭐라고요? 정의의 왕이시다. 의의 왕이시다. 그랬죠? 그다음에 또 살렘 왕이요. 그랬죠? 살렘은 여러분 샬롬, 예루살렘 할 때 예루살렘의 평화의 성 아닙니까?
 
※멜렉=왕, 세데키=정의, 샬렘 왕=평강의 왕.
 
샬롬, 할 때 평화라는 평강이란 말이죠. 평화 평강 그래서 여러분 프린스 오피스, 이사야 9장에 보면 예수님에 대해서 그는 우리에게 평강의 왕이요, 기억나시죠? 우리 예수님에 대한 예언할 때 평강의 왕이요 의의 왕이다. 멜기세덱의 이름 자체가 뜻하고 있는 것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우리에게 이제 예수님을 예표 하는 것 중에서 평강의 왕, 그다음에 의의 왕, 그리고 다시 한 번 3절에서 뭐라고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은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닮아서 그다음 뭡니까?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그러니까 앞에 멜기세덱은 평강과 의의 왕, 일 뿐만 아니라 항상 제사장으로 있다. 성경에서 완벽하게 왕 직과 제사장 직을 겸임한 분은 예수님이 메시아인데 메시아밖에 없는데 ‘멜기세덱’이 예수님의 예표로, 왕 직과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제사장직을 완벽하게 겸비한 줄로 믿습니다. 멜기세덱의 뜻 그다음 멜기세덱이 가진 그 역할 두 가지, 왕 직과 제사장은 바로 예수님을 예표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다윗이 깨닫고 여러분 다윗은 다윗도 예수님을 예표라고 그랬는데 다윗에 대해서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가 다윗에 대한 설교할 때, 그는 선지자 중에 하나라고 그랬어요. 다윗도 보면 선지자 역할도 하고 왕의 역할을 했는데 이제 이건 여러분들이 이걸 좀 나중에 이제 그냥 기억하시고 다윗이 110편 4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느냐 이렇게 하고 왔습니다.
 
*시편 110:4,
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아멘 여기는 너라고 그럴 때, 이거는 예수님의 메시아이심을 얘기하면서 그 메시아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 되셨도다. 그랬어요. 이 서열이란 말은 오더(Oder)인데 요즘 반차, 그러니까 뒤에 이제 반차란 말이 나오는데, 내가 또 반차니까 일본말처럼, 젊은이들은 목사님, 휴가 내는 반차입니까? 또 그러더라고요?.... 여러분 그 반차가 아니고 서열이다. 서열이다. 크게 보면 족보이다. 이런 것도 포함 다 되는 건데요. 그러니까 메시아가 멜기세덱의 반열에서 제사장으로 온다는 뜻인 거예요. 무슨 말인가 하면 여러분 율법에서는 제사장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죠? 좀 신경 좀 써야 됩니다. 율법에서는 누가 제사장이 되는 겁니까? 레위지파,,, 레위지파가 제사장이 됩니까? 사랑의 교회 성도들은 다 아시죠? 누가요? 레위지파,
 
※레이지파에서 제사장이 나오고, 대제사장은,,,,
레위지파 가운데 아론의 자손들이 대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 율법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오늘 멜기세덱은 아브라함 시대니까 그 레위 지파보다도 훨씬 위 세대예요. 이해가 됩니까? 아브라함 시대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은 레위지파입니까? 유다지파입니까? 예수님은 유다지파예요. 근데 유다지파인 예수님이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고, 영원한 제사장이 되셨다는 건 여기에 특별한 구약의 예수님의 메시아 됨에 대한 예언을 하고 있는 것이에요. 조금 이해가 가십니까? 이제 다 이해 못해도 괜찮아요. 그다음 내가 설명을 드릴 테니까 그러니까 이 말씀을 히브리서 기자가 완전히 이해를 해가지고 우리보다 더 많이 완벽하게 이해해가지고, 히브리서 6장 20절에 놀라운 말씀을 하고 있어요.
 
*히브리서 6:20,
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아멘, 자,,, 예수님께서 뭐가 되셨다고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반차한 서열입니다.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히 뭐가 되셨다고요? 대제사장이 되셨다. 이 반차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가문을 계승하고 뒤를 잇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리고 히브리서 7장 3절에,
 
*히브리서 7:3,
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아까 얘기한 대로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특별히 뭐가 없다고요 족보가 없다. 창세기는 주요 인물들에 대한 내용들 누구, 누구를 낳고 자세히 나오지만 이 멜기세덱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족보를 기록하지 않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제 무슨 뜻이 있는가? 이제부터 중요합니다. 멜기세덱에 대해서 족보를 누락시킨 것은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섭리적인 의도성을 보여주고 있어요. 이 용어는 이제 오늘 매주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대해서 알 때마다 새로운 용어들을 하나씩 여러분들이 봤는데 오늘은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섭리적인 의도성, 이 섭리적인 의도성,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멜기세덱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시고 멜기세덱에게 하는 그 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이심을 상징하고 예수님은 그것 때문에 유다 지파에서 제사장이 되시고, 레위 지파가 아니고,,,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은 축복 없는 분이시다. 이해가 됩니까? 하나님이시니까.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을 통하여 섭리적인 의도성을 보여줬다는 것 어떤 뜻인가 하면, 멜기세덱에서 예수 그리스도까지 그 긴 기간 동안 아무런 반차와 개성이 없다는 것이고, 이 반차가, 반차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에게만 영원히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 하고, 그래서 멜기세덱에게 예수님의 예표를 말씀할 때 예수님이 의의 왕이시고, 평강의 왕이시고, 하나님의 사람 사이의 중보자, 이시고 실질적으로는 아브라함에게서 참된 복을 주시는 예수님을 예표 하는 것인데, 그래서 제가 이제 섭리 적 의도성을 가지고 설명을 하는 건데 자막을 만들었어요.
 
▷그분은 의의 왕, 평강의 왕이시고 시작과 끝이 없는 분이시고 특별 불멸의 생명을 가지신 분이시고 계속요. 결코 죽지 않아 교체될 필요가 없는 분이시고, 아브라함보다 높고 레위보다 더 위대하신 분(4-5), 그리하여 아브라함을 축복(7절)하고,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았던 분이시다(5,6,8-10). 더 이상 이런 완벽한 대제사장이 없다.
-이런 모든 내용들은 하나님의 섭리 적 의도에 포함된 것이에요. 그리고 여기에 나온 이런 내용과 용어들이 옛날에 예수 믿지 않았을 때 나하고 전혀 상관없는 용어였어요.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깨닫고 이 용어들을 믿을 때, 오늘 이 용어들이 여러분의 것으로 체화될 수 있도록 놀라운 하나님의 신비와 섭리적인 의도가 있다는 사실이에요.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섭리적인 의도를 우리식으로 얘기하면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맞이하러 나온 것은 예수님이 오늘 저와 여러분을 만나주시는 것이에요. 둘째,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장면은 오늘 우리에게도 영원한 축복을 주시는 것이에요.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축복한 것은 주님과의 이제 얼마나 있으면 오늘 성만찬을 할 터인데, 성만찬 떡과 포도주 그와 연결이 되고, 주님이 주시는 영적인 양식과 구원의 축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섭리적인 의도가 얼마나 대단하냐 하면, 제가 지난주에는 큰 인생의 전쟁을 앞에 놓고 있는 여리고를 앞에 놓고 있는데, 이 여호수아가 군대 장관을 만나가지고 이제 전쟁을 잘 준비하도록 용기를 주신 것이 나와 있잖아요? 그것이라면 오늘은 전쟁에서 싸우고 돌아온 아브라함에게 멜기세덱 제사장으로 나타나셔가지고 복 주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이런 뜻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섭리적인 의도는 뭐냐 하면 여러분과 저의 삶에 전쟁터 같은 고단한 생활 전선에서 지난 한 주간도 우리는 수많은 일들을 겪었어요. 예상하지 않던 일들, 어려운 일들, 마음으로 밖으로 환경으로, 마음으로 내면으로 수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그런 수많은 일터에서 우리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싸우고 오늘 예배를 온 줄로 믿습니다. 그러고 왔는데 주님께서 오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영원한 제사장이 되신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위로하시는 그 주님의 섭리적인 의도가 여기에 포함돼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레위기는 제사 제도를 말씀하고, 거기에 우리의 죄가 어떻게 지키는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의 내용이 나오고 이스라엘 백성, 레위 지파 얘기합니다마는, 히브리서의 *오늘 이 내용은 하늘 성소, 예수님이 대제사장 되시고, 그의 피로 한 분의 영원한 속죄가 되어 주셔가지고, 하늘 성소의 눈이 열린 자마다 오늘 섭리적인 의도를 가지고 멜기세덱을 만나 축복을 받았던 전쟁 후에 축복을 받았던 아브라함의 축복을, 오늘도 우리가 그대로 누릴 수가 있다. 이것입니다. 이거는 너무 신비한 것이고 조금 더 깊이 다면 은혜의 성층권에 올라가는 것이에요. 밑바닥에서 일어난 일들, 이 땅에 일어난 수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에 여러분들이 신비한 은혜의 눈을 뜨게 되면 이 진리 지식의 깊이의 눈을 뜨게 되면 하나님의 섭리 적 의도에 의한 영적인 거룩한 성층권에 올라가는 축복이 여러분과 저에게 있는 것이에요. 무슨 말이냐,
 
아무것도 아닌 인생이 연약한 인생이 부족한 인생이 초라한 인생이, 어떻게 보면 비참하고도 참담한 인생들이라 할지라도 이 섭리적 의도에 의한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를 깨닫고 하나님의 신비에 눈을 열면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대제사장 되시고 축복하신 그 은혜를 우리의 것으로 채워할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지금 다시 한 번 더 강조합니다.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대제사장이요.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히브리서 7장 본문에 마무리 뒤에 7장 25절에,
 
II.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대제사장이요,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되는 것이다.
 
*히브리서 7:25,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제가 시간이 없어 다 못하지만 7장 25절에 또박또박 결론 부분에, 아멘, 잘 보세요. 그러므로 라는 말이 너무 중요하고 이 모든 것을 몽땅 모은 것., 또 하나는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느니라.’ 무슨 말이냐 여기에 ‘온전한 구원’이라는 말이 나오고 ‘온전한 제사’라는 말이 나오는데, 구약의 레위 지파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단편적으로 파편적으로 일부 부분적인 구원이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오늘 이 시대에 완전한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항상 살아계신 그분의 능력을 통해 이루는 온전한 제사를 주님 앞에 올려드릴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라는 단어와 이 종합적으로 또 하나는 항상 살아계셔서, 항상 살아계셔서라는 이 단어가 얼마나 박진감 있고 얼마나 역동적인지 몰라요. 여러분 항상 살아서 전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 신비함을 저와 여러분이 깨닫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이걸 깨달으면 이 땅에 살면서도 하늘의 부유와 능력에 눈이 열리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항상 살아계셔서 이 예배를 받으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숨 쉬고 호흡하고 생명을 유지하고 오늘 이와 같이 예배를 드리는 것은 주님이 항상 살아계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항상 사랑에서 어떻게 하느냐, 두 가지, -그러니까 살아계신 주님은 우리에게 완벽한 구원의 표상이 되시고, 또 하나는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는 분이세요.
 
▷ 영원한 구원을 주시고 영원한 중보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대 제사장이신 예수님께 나아가는 주니의 모든 백성을 위하여 예비 된 것이다.
-아멘, 아멘! 그래서 오늘도 하늘 성서를 사모하여 이 예배에 나온 여러분들은 멜기세덱을 만나기를 바라고, 멜기세덱을 제대로 깨닫기를 바라고, 예수님을 예표 하는 멜기세덱에게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 오늘 우리의 것으로 체화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이걸 깨닫는 사람들은 히브리서 4장 14절부터 16절에, 14절 함께 선포 합니다
 
*히브리서 4:14-16,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 믿는 도리를 굳게 잡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섭리 적 의도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은혜의 성층권에 올라가야 합니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동정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슨 말입니까? 먼저 우리가 축복받는 것은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알고 계신다 이거예요.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무슨 말입니까? 먼저 우리가 축복받는 것은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알고 계신다 이거예요.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16절 다 같이,, 아멘, 어떤 환경과 경우, 어떤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보좌에 나가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섭리 적 의도라는 것이에요. 이런 뜻입니다. 가정에 무거운 짐을 지고 고통하고 괴로워하는 어머님들의 모든 탄식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에요. 압제 받는 자들의 모든 슬픈 하소연을 들어주시는 대제사장이시라는 거예요. 괴로움 가운데 있는 모든 자들의 신음 소리를 새겨들으시는 멜기세덱이신 거예요. 특별히 가난한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분이시고, 과거에 50년대, 60년대, 70년대 우리나라 가난했을 때, 그때, 예수 믿고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돌아 와가지고 하나님 나는 너무 가난합니다. 나는 먹고 살 길이 없습니다. 나는 주님밖에 없습니다. 라고 주님 앞에 매어달리고 기도하고 나아가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보좌를 믿고 나아가는 그분들의 삶을, 하나님은 정말 삶을 정돈시키시고 안정시키시고 경제적으로도 안정하게 하신 주님이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알겠습니다. 내가 수많은, 수많은 그런 간증을 하는 우리 주위에 옛날에 있었던 그런 신앙의 선배들이 많이 계세요. 그분은 마음이 상한 자들의 모든 슬픔을 들어주시는 멜기세덱이에요. 이 모든 것들은 그분 자신이 제물 되어 하늘 성서에서 희생, 온전한 희생, 제물로 올려드린 그 대제사장적 사역에 근거하여 받은 은혜라고 믿어야 되는 것이에요. 따라서 우리는 때를 따라 덮는 은혜를 주시는 주님 앞에 나아가는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 적 의도를 우리가 깨달은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특별히,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우리를 섭리 적 의도로 도우시는가? 히브리서 5장 2절 바로 이어서 히브리서 5장 2절에 다 같이 봅니다.
 
*히브리서 5:2,
2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놀라운 말씀이에요. 저는 성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 그런 그가 어떤 사람 첫 번째 어떤 사람이에요? 무식한 사람들, 진리 지식도 없는 사람들, 또 날마다 실패하고 미혹된 자들, 그들조차도 이 하나님의 섭리 적 의도에 눈을 뜨고 대제사장 되시는 멜기세덱 되시는 그분 앞에 나오기만 하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보좌에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이 베풀 만한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에요. 미혹된 자들, 무식한 자들을 용납한다는 어떤 뜻입니까? 그는 부족한 사람도, 곤고한 사람도, 참담한 사람도, 또 연약한 사람도, 또 위대한 사람도, 선한 사람도, 유혹에 빠진 사람들도, 고통의 중에 있는 사람들도 다 예외 없이 맞춤형 은혜로 다 도와주신다는 것이에요. 나이가 들고, 초라하고, 나이 늙고, 연약하고, 병들고, 참혹하고, 치매 때문에 고통당하고, 가족들이 고통당하고 이런 상황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어떨 때는, 정말 벌레 같은 상황이 된다 할지라도,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적 의도에 눈을 뜨면 우리는 다 알 수 없지만,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갈 때 하나님이 베풀어 주실 만한 은혜가 있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히브리서 5장 5절, 6절에 바로 이어서 5장 5절, 6절 크게 여러분 선포합니다.
 
*히브리서 5~6,
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할렐루야! 여러분과 저는 영원히 멜기세덱의 서열과 반차를 따르는 왕 같은 제사장이 된 줄로 확신합니다. 주님 과거의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제사장들은 가슴에 이렇게 흉배를 붙이고 어깨에는 포만으로 장식하고 그러는 게 있어요. 지금도 주님은 우리를 위해 완벽히 중보하시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의 은혜를 깨닫는 하나님 백성들에게 여러분과 저의 이름을 오늘 흉배에다 다 붙이시고, 그 제사장 어깨에 호마노에다가 거기다 여러분 저의 이름을 다 새기고,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항상 살아서 중복 기도하시는 그 주님이심을 믿을 진데, 우리는 멜기세덱에게 받은 아브라함에게 받은 축복을 우리의 것으로 삼을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특별히 우리의 이름을 새기시고 마귀의 참소를 변호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변호하시고 우리를 도우시는데, 우리를 도와주시는데, 적당히 도와주시는 것이 아니에요. 아까 소돔 왕 재물 던지듯이, 적당히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큰 대제사장이신 주님은 오늘도 지혜롭고 인격적으로 예의를 갖추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깊이 있고, 감동 있고, 고귀하게 우리를 도와주시는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믿습니다. 그렇게 도우실 때, 우리에게는 꿈을 주시고, 이 사람에도 지혜가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우리는 누추하고 부족하지만 영광스럽고 은혜롭게 우리의 삶을 살아가도록 섭리적인 의도를 가지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오늘 이 멜기세덱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오늘 다 이렇게 좀 이해가 안 되면, 나중에 이 내용을 다시 한 번 여러분들이 들어보시고 여러분 것으로 소화하실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하늘에 부요가 여러분의 것으로 체득되는 것이에요. 하늘의 부요가 놀라운 하늘의 부요에 눈을 뜨게 해주세요. 창세기 14장 19절에 아까 본문에 같이 보죠. 그가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제이시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옵소서. 할렐루야 천지의 주제이시오.
 
III.참된 하늘의 부요에 눈을 떠야 한다.
 
*창세기 14:19,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지극히 높다는 말은 엘, 엘리온 이라고 그러는데, 이 엘 엘리온이라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엘리온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왕 같은 제사장의 삶을 살게 하신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은혜의 성층권에 올라가게 하신 하나님 하늘의 부유의 눈이 열리도록 하늘의 부요가 너무 크니까 아브라함은 세상의 유혹에 조금 초연할 수 있었어요. 오늘도 이와 같이 하늘의 보에 너무 눈이 열리니까 세상 세상에 대해서는 조금 우리가 차원이 다를 수 있어요. 하늘의 부요에 눈이 열리니까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세상 사람들이 보는 어떤 수준과 우리가 보는 수준이 달라요. 예를 들어서 하늘의 부요에 눈이 열린 사람은 자연도 그냥 안 보이는 거예요. 하나님의 부요에 눈이 열린 사람은 야생화하더라도 그냥 안 보이고, 이거 하나님의 부요가 너무 크네. 너무 신기하게 보이는 거예요. 물질 하나라도 하늘의 부유 눈이 열린 사람은 세상에 저 도박해가지고 1억 딴 사람과 우리가 하늘에 부요에 대해서 눈이 열려가지고 100만 원을 얻은 사람과 그 1억보다도 하늘의 부요에 눈이 열린 사람 100만 원이 훨씬 더 소중한 것이에요. 훨씬 더 가치가 있는 것이에요. 수준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 족보도 없고 모든 것이 없지만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메시아의 족보를 가지시고 우리에게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 때문에 아브라함이 멜개 세대를 통하여 받았던 하늘에 지극히 높으신 엘 엘리온의 하나님, 엘리사다의 하나님 축복을 받고, 또 구체적으로는 육신적으로는 떡과 포도주 전쟁에서 피곤하고 지치고 돌아온 그 영혼에게 떡은 목숨을 위하여, 포도주는 다시 마음의 환희와 기쁨을 가져오게 하는 것인데, 뜻과 포도주의 축복을 주시는 그 주님이 오늘도 우리의 삶의 주인이심을 믿어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과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주님 앞에 기도하는 것 중에 하나는 하늘의 부요의 눈이 열리는 이 하루가 되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 가운데 오늘 하루도 하늘의 부요를 점점 많이 배워나가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고, 특별히 저뿐만 아니라, 우리 온 성도들이 오늘 하루 하늘의 부요를 더 많이 발견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만나는 사람마다 제가 읽는 성경마다, 제가 접하는 책마다, 수많은 과정들을 통하여 하늘의 부요를 깨닫게 하여 주십시오. 밤에 잠자기 전에 “하나님, 이 하루도 더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늘의 부요에 눈이 열리게 하고, 하늘의 부여에 대해서 은혜 주신 이 하루가 되게 하신 거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저는 잠잘 때 꼭 남북통일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 민족이 만주까지, 만주까지 우리의 영향을 끼치게 하여 주십시오. 한국이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세계 복음주의 교회의 쇠퇴를 맞고 대한민국이 복음주의 교회의 허브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를 위해 우리 성도들이 다 쓰임 받게 해달라고, 하나님 나라의 꿈에 대한 부여에 대한 꿈을 가지고 그렇게 하게 될 때 숙면을 취하게 되고 그리고 그 결과 하늘의 부요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니까 하룻밤도 끝없이 잠들지 아니하고 하룻밤도 꿈 없이 깨지 아니하고 세상에서도 부요가 많이 있어요.
 
저는 가끔 머리가 아프면 뮤지엄을 가는데 박물관을 가는데 박물관에 가면 도록이 있어요. 공예품이라든지 훌륭한 작품들 보면 도록이 있어요. 그걸 보면 어떻게 보면 하늘의 부여에 대한 이 땅에서 약간의 예고편이거든요. 세상 사람들 이렇게 할 수 있는데 하늘의 보유를 받은 사람들은 얼마나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많을까? 우리 온 성도들 예상치 않듯 하나님의 부요와 능력을 날마다 체험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의 보요의 눈이 열린 사람들이 될 때에, 세상에 너무 흔들리지 아니하고 너무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아니하고 영적인 품위와 거룩한 고품격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이것은 단순히 어떤 수고 후에 받는 적당한 보상 정도가 아니라, 영적 전투 이후에 주어지는 환희와 기쁨과 품위를 말하는 것이에요. 삶의 가혹한 삶의 전투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준비하신 이 섭리 적 의도성을 가진 하늘의 부요에 눈이 열리는 축복이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이럴 때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습니까?
 
*창세기 14:20,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여기에 구약의 열의 하나를 구별해 드리는 내용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아브라함이 열에 하나를 구별해 드렸는데 제가 질문하겠어요. 겨우겨우 들었을까요? 그다음에 의무적으로 들었을까요? 아니면 억지로 들었을까요? 아니면 기쁨과 감사로 드렸을까요? 감사함으로, 어떻게 그래 사랑하십니까? 아브라함은 오늘 이 열의 하나를 구별해 드릴 때 겨우겨우 억지로 의무적으로 강제적으로 드린 것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로 드렸어요. 이걸 일컬어 뭐라고 그러냐? 예배로 드렸다 그것이에요. 예배로 드리는 것이에요. 오늘 여러분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데 찬양을 통한 예배 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열애한 나를 구별해 드렸는데 이거는 율법 이전이에요. 이걸 여러분들이 열의 하나로 하나님 앞에 예배로 드릴 때에 기쁨과 감사로 드릴 때 하늘의 부요가 여러분 것으로 채워지는 것이에요. 너무나도 이거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 그다음에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은 오늘 명심을 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열이 하나 구별하는 이 모든 것은 하나님 앞에 하늘의 부요에 눈이 열려가지고 기쁨과 감사로 예배로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게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의도성에 대해 감격하는 하나의 증거로 드리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운동에 승리하면 트로피를 주잖아요. 그러니까 예배와 주님 앞에 드리는 이 예물은 하나님 앞에서 승리의 트로피가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 트로피를 매 주일마다 드릴 때, 여러분의 삶이 승리에 대한 감사일뿐만 아니라 앞으로 승리하게 하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면서 드리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아는 어떤 신실한 분들은요. 예배드릴 때마다 찬양과 할 때마다, 오늘 영생복락 면류관 너무 감사한 것이고, 말씀으로 축복이지만 헌금 드릴 때 미치게 감사하고 기쁘고 너무 즐겁고 너무 축복이 돼가지고 너무 설레 가지고 헌금을 드린다는 것이에요. 여러분 이 사원을 이해만 하면 하나님은 말로도 할 수 없는 주님의 부요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앞으로 사랑의 교회뿐만 아니라 오늘 한국교회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우리가 물질이나 예배를 드릴 때 승리의 트로피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부요로 여러분들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어떤 부여로 채워주십니까? 예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땅의 삶의 모든 삶은 다 우연에 의해서 일어난다. 인생의 90%가 우연히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우연에서 일어나니까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점쟁이한테 가고 뭐 점 보러 가고 어떻게 될 것인가 사람이 다 우연이라고 생각하니까 심지어는 똑똑하다는 사람들도 그것은 하늘의 부요가 뭔지를 모르는 사람들, 승리의 트로피가 뭔지를 모르는 사람들, 멜기 세덱의 반차를 따라 멜기세덱을 만나는 것 하나님의 섭리 적 의도가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얘기고, 하나님의 섭리적 의도를 아는 사람들은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인생에 우리는 90% 100% 하나님의 섭리 적 의도에 의해서 우리 인생은 결정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부모를 누구를 만나는 거 여러분 하나님의 성적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이 아내를 만났을 때 여러분들이 결심하고 만났습니까? 라일라 꽃이 피는 어느 날 만난 거예요. 너무나도 내가 우리가 알았던 것이 너무나도 신비하게 만난 거예요. 여러분들의 신실한 교수들 여러분 생애에 특별한 분들 여러분들의 자격 있어서 만났습니까?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것이에요. 저는 지금도 지방에서 올라와가지고 제가 그때 신복임 목사님이라고 계셨어요. 내수동교회에 그리고 박희천 목사님 나중으로 옥하는 목사님 제가 그분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거예요. 그분은 내 인생에서 볼 때 성층권에 계시는 분이에요. 나는 그분들은 화장실도 안 가는 줄 알았어요. 어떻게 감히, 얼굴이든 어떻게 감히,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적인 의도를 믿는 사람들은 하늘의 부요를 믿는 사람들은, 우리의 예배와 우리의 물질이 주님 앞에 승리의 트로피로 올려드리고, 아니 승리를 주님 앞에 기대하면서 드리는 그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늘의 부요와 하나님의 섭리 적 의도를 가진 100% 하나님의 만남을 허락해 주시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이 좀 부족하면 여러분들 자녀를 통하여 그 일을 이루어 주시는 것이에요. 하다못해 여러분들의 손자를 통해서라도 그 일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충만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지난 주일은 제가 신비하고 경이롭고 아름답고 이런 말씀을 드렸죠. 오늘은 진리의 깊이가 있고 섭리적인 의도가 있고 하늘에 보유가 있고 감동적이고 오늘 저는 이 예배에 아마 처음 오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오늘 내가 초청하고 싶어요. 오늘 이 우리의 삶의 완전한 대제사장 되시는 메시아 되시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생애와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여러분들의 생애는 떡과 포도주를 주님이 채워주시고 겉으로는 힘들고 어려운 게 있다 할지라도, 그 내면의 풍성함은 말로 다 할 수 없고, 하늘의 부여로 체험 받는 여러분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집필 하는 하룻밤도 꿈 없이 잠들지 아니하고, 하룻밤도 꿈이 깨지 않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로 만들어 주실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요약
아브라함처럼 참된 하늘의 부요에 눈을 떠 세상 유혹을 거절하며, 예수님께서 21세기의 멜기세덱의 모습으로 찾아오셔서 주님의 영원한 떡과 포도주로 위로하시니, 이 처절한 전투에서 지치고 힘들 때, 항상 살아계시는 예수님께서 섭리적 의도성과 신적개입으로 중보해 주심을 확신하여 날마다 담대하게 은혜의 성층권으로 올라가야 한다. 우리는 믿는 도리를 굳게 잡고 열에 하나를 승리의 트로피로 올려드리고 이번 4월 총선에도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보좌 앞에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는 예배가 되기를 소원한다.
-아브라함이 동방의 군주 그돌라오멜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그는 먼저 소돔 왕을 만났다. 소돔 왕은 물품을 모두 가져오라고 제안했지만 아브라함은 이를 깨끗하게 거부함으로 내면의 유혹에서 승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브라함에게 살렘 왕 멜리세댁을 만나는 축복을 주셨다. 살렘 왕 멜리세덱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며, 의의 왕 평강의 왕이시고, 시작과 끝이 없는 분이시고, 불멸의 생명을 가진 분이시고 결코 죽지 않아 교체될 필요가 없는 분이시고, 아브라함보다 높고 레위보다 더 위대하신 분이셨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았던 분이시다. 히브리서는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고 하였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났던 것처럼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주신다. 그는 우리를 축복하여 떡과 포도주를 베푸시는 분이시며, 이는 성만찬을 나타내며 영적인 양식과 구원의 축복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대제상이요,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나아가 참된 하늘의 부요에 눈을 떠야한다. 섭리적 의도로 주시는 하늘의 부요함에 눈을 뜬 사람은 꿈이 있고, 지혜로우며,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살렘은 ‘평화’라는 뜻으로 예루살렘의 옛 명칭이며,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라는 뜻이다. 그는 동시대의 타락했던 가나안 족속처럼 살지 않고 순전하며 신실한 믿음을 소유한 평강의 왕이었고, 왕이면서도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는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 아브람이 롯을 구출하여 돌아올 때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람에게 축복하자 아브람은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다. 이것은 최초의 십일조의 유래로서 성도와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말해 준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떡과 포도주로 상징되는 살과 피를 드리셨다. 따라서 우리는 십일조로 상징되는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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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3월 03일)
제목: "극한 상황은 절호의 순종기회“
(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⓹-(군대 대장이신 예수님))
Critical situation is golden opportunity for obedience(Jesus the Commander)
말씀: 여호수아 5:13~15
대표기도: 오정호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
 
*여호수아 5:13~15,
1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14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15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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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교회 찬양대 찬양을 주님이 기뻐 받으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이 우리 3.1절 105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잿빛 어둠이 없고 희망이 없는 역사였는데 그 가운데 3.12 독립선언서는 자주독립 때문에 그중에 34명이 민족 지도자 가운데 16분, 반이 크리스천입니다. 놀라운 일이죠. 오늘 우리가 귀한 주일날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을 모으고 기도하면 이 나라를 살릴 줄로 믿습니다. 동시에 오늘 이 말씀 듣고 여러분 개인도 살고, 교회도 살고, 다시 한 번 이 나라도 살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극한 상황은 절호의 순종의 기회’에 있다. 라는 제목으로 ‘예수님이 누구신가?’ 시리즈 다섯 번째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첫 번째는 예수님은 완전한 신성과 인성을 갖추신 분이시다.
*두 번째는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나무가 되셨다.
*세 번째는 주님은 우리에게 반석이 되신다.
*네 번째는 주님은 성막 되신 예수님
*다섯 번째는 주님은 군대대장 되신 예수님.
 
지저스 크라이스트 이즈 더 커멘드(Jesus Christ is the Great Commander). 예수님은 큰 군대 대장이시다. 오늘 이 여호수아 이 본문의 말씀은 무슨 뭐 옛날 얘기 무슨 전설이 아니고, 인류 역사의 실제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때가 이집트는 한참 고대 근동사회에 피라미드를 짓고 있었고 중국은 주나라 시대였고 또 앗수르 제국은 함무라비 법전을 통하여 세계를 호령할 준비가 되어 있던 실제적인 그런 역사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사건은 실체적인 역사가 되면 그때도 실제적인 역사 뿐만 아니라 오늘 이 순간 오늘 21세기 이 순간 우리의 삶에도 실제적인 현상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 13절에 보니까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3절에,
 
*여호수아 5:13,
1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다 이랬습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지도자 모세 지도력으로 바통을 받고, 가나안에 들어가야 되는데 가나의 첫 성이 여리고 성이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지금도 우리 성지 순례 가보면 여리고성은 아주 그 성 자체가 성벽의 두께가 얼마나 두꺼운지, 자동차가 몇 대 지나갈 정도로 그런 성벽의 두께가 있었습니까?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슨 철 병거를 무장한 것도 아니고 무슨 이렇게 뭐라고 그럴까요? 공성기가 있었던 것들은 성을 공략하는 강력한 이렇게 돌로 막 날리는 거라든지, 무슨 강력한 사다리차가 있다든지, 이런 것들 축성 기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여호수아 입장에서는 기가 막힌 거예요. 저 강력한 여리고성, 저 강력한 금성철벽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첫 성부터 완전 딱 맞닥뜨려가지고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황,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성(城), 마치 여호수아 자체가 낭떠러지 앞에서 떨어져 죽을 것 같은 그런 지도력의 위기(危機)가 오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수아 자체는 특별하고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그가 이 여리고성을 앞에 놓고 그걸 공략할 만큼 그 정도의, 그 정도의 어떤 저기 모든 걸 가진 사람은 아니었고, 또 여호수아가 강력한 어떤 전투력이 있었지만 이 상황을 감당할 만큼 그의 어깨가 단단하고 튼튼한 것도 아니었어요. 짐이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그 짐을 다 지고 갈 만한 그런 어깨는 아니었어요. 그의 어깨가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그가 짊어진 짐을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힘들어가지고 혼자서 지도자가 그럴 때 있잖아요. 혼자서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밤에 여리고성을 이렇게 혼자서 이렇게 가서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마치 옛날에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전 훼파되었던 것을 ‘이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다시 세워야 할 건데’ 고민하면서 도는(여리고 성을 돌게 되는 상황) 거랑 비슷한 그런 상황이었어요. 아무것도 없는 상황, 그리고 그 앞에 보면 오늘 본문 앞에 보면 무슨 일이 있었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물론 그렇게 하셨습니다마는 실제 현장은 남자들에게는 할례를 행하려 했어요. 남자가 할례를 행하고 나니까 아무런 힘도 없고 그냥 아파서 회복을 기다리고 있는 그런 상황에서 남자, 남자 장정들은 전쟁할 수 있는 지금 그런 상황이 아니었고, 앞에 떡 붙어서 여리고성이 견장(肩牆)하고 있는 이게 난공불락이고, 마치 이것은 오늘 우리도 비슷한 상황이 있을 수 있잖아요. 물리적인 여리고 뿐만 아니라 마음이 여리고도 있을 수가 있고, 어떤 분들은 가정에 대한 책임감으로, 회사에 대한 책임감으로, 나라에 대한 염려 때문에 마치 여호수아가 난공불락의 여리고 앞에서 걱정하는 것처럼 어깨가 짓눌려 있는 분이 있을 수 있어요.

오늘은 3.1절 기념주일이고 특별히 우리나라의 향방을 결정하게 될 4월 총선이 앞으로 한 달 남았어요. 지난 20년간의 이 사회가 이상하게도 거짓의 아들인 저 마귀의 이 엉터리가 있어갖고, 이 어떤 잘못된 견고한 진이 우리 앞에 있는 격렬한 진영 싸움은 마치 난공불락 같은 그런 상황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오늘 13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13절 보니까,

 
*여호수아 5:13,
1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그렇게 묻는 것이에요. 그 어려운 상황 가운데 여호수아가 이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상황 가운데 이 군대 대장이 나타나가지고 칼을 들고 너는 적구이냐, 아군이냐, 거 쉽게 말하면 이제 좀 이따 나오겠습니다만 이 군대대장이 예수 그리스도시거든요. 그러니까 이 상황을 우리가 잘만 극복하면 그 어려운 극한 상황이 너무나 경이롭고, 아름답고, 신비롭게 해결되는 그런 길이 열리는 줄 믿으셔야 되시는 것이다. 오늘 여러분들이 아주 상상을 하셔야 돼요. 너무나 경이롭고 신비하고 너무나 아름답기까지 한 그런 상황을 우리가 경험할 수가 있다는 사실에 그래서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느냐, 너 신발을 벗어라 거룩한 곳이니까 그러니까 그 말씀을 군대대장한테 순종한 신을 벗는 모습이 다시 아름답고, 장엄하고, 신비롭고, 경이로운 그런 상황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마치 이것은 과거에 모세가 하나님을 처음 만나가지고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에 심은 것을 하는 그때와 아주 뭐라 그럴까를 좀 수십 년이 지난 오랜 세월이 흘러갔고 여호수아도 똑같은 상황을 맞이하고 그리고 힘을 벗고 얼굴을 땅에 대고 칼을 빼고 서 있는 그분 앞에 경계하고 있는 이 모습은 다시오, 놀라운 상황이고 너무나 신비한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먼저
 
*첫 번째 생각할 것은, 이 군대 대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신학자들에게 이 군대 대장이 누군가라고 이렇게 물어보았을 때, 어떤 사람은 천사라고 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정통적인 신학자들의 해석은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군대 대장은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선제, 성육신하기 전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이거는 제 얘기가 아니고 초대교의 교부들도 그렇게 해석을 했고, 개혁 신학자들은 요한 켈빈을 여러 사람들이 이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제이시다. 그러니까 이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신 것임을 뭘로 증명하는가? 이제 한두 가지 증명을 하겠습니다. 이 군대 대장은 단순히 천사장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그 이유는 뭐냐 하면 천사는 우리에게 경배를 받는 대상이 아니에요. 만약 사람이 천사한테 엎드려 경배할 경우에는 천사가 뭐라 그러냐면 야 나한테 경배하지 말고, 경배는 오직 하나님께만 하는 것이야. 제가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요한계시록 21장 마지막에 보니까, 사도요한이 천사 앞에 엎드려 경배 버릴 때 요한계시록 22장 8절에,
 
*요한계시록 22:8~9,
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9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그런데 오늘 여호수아 오늘 이 5장에서는 어떻게 됐죠? 군대대장 앞에 여호수아가 납작 엎드려 경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 1장 17절에,
 
*요한계시록 1:17,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니까, 처음과 마지막의 역사의 현장 가운데, 구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 군대대장으로 나타난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신학적으로 좀 정교하게 들어가면 여호수아 앞에 나타난 하나님은 인간의 모양 즉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이에요. 그리고 인간의 모양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시는 이 사건은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과 그대로 관련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정리를 한 것이 예수님이 구약에 나타난 이 사건을 여러분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 라는 말은 하나님의 현현이라고 그러는데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 라는 말이 있어요. 우리 신학적으로, 크리스토파니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1세기에 초림으로 성육신하시기 전에 구약에 예표로 나타나신 것이다.
-
아멘,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니까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아마 오늘 이 군대 대장뿐만 아니라, 나중에 다니엘과 함께 다니엘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 속에 들어갔을 때, 거기에서도 구약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아들 같은 예수 그리스도, 그걸 크리스토파니, 구약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또 이제 우리가 다 얘기했습니다마는 멜기세덱이라고 했어요. 구약의 아브라함 시대에 멜기세댁이 있었는데 히브리서 7장에 보니까 이 멜기세덱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그걸가지고 전문적인 용어로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라고 그러는데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 예수 그리스도 1세기에 초림 때에 나타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의 예표로 나타나신 것이 바로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 구약이나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죠. 그러니까 오늘 군대대장은 구약의 예표로 나타나신 예수님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그걸 믿고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여리고성에서 극한 상황에 서 있던 여호수아를 만나주신 그 주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과 우리 민족의 위기일 때에 직접 칼을 들고 우리 앞에 서 계시는 주님이시다. 이 말입니다. 우리 주님은 늘 겸손하시고 온유하시고 섬길 수 있는 예수님이셨지만, 때로는 영적 전쟁의 때는 칼을 들고 군대대장으로 서 계시고, 우리에게는 철저한 권세를 통하여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여호와의 군대대장은 단순히 군대대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천상군대를 이끌어 주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 19장 11절 16절 정리를 한 이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같이 읽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9:11~16,
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아멘! 중요한 건 이겁니다. 우리가 떡 한 상황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리고 같은 난공불락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도저히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직장으로 사업으로, 여러분 개인으로, 건강으로, 여러분 삶으로 여러분의 내면의 정신적 고통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구성이 있을 때에 우리의 마음속에 간절한 마음은 주여 알파와 오메가 역사의 시작과 끝 가운데서 구약의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어 주시면, 군대의 장이 되시고 천사의 군대를 이끌고 우리를 승리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여호와의 본질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여호수아가 어떻게 반응을 했는지, 이 반응한 것 이 세 가지만, 딱 여러분들이 적용을 하면 오늘 이 시대에도 우리 민족으로 살고, 여러분 가정도 살고 개인도 살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 군대대장이신 예수님 앞에서 어떻게 반응해야할 것이냐면,
 
☞첫 번째는 나는 혼자가 아니다.
 
-오늘 고통 하는 여호수아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은 군대장관 컴멘드( Commander)로 나타나신 것은 삶의 위기 때에, 너 혼자가 아니냐 하고 격려하시는 군대 대장으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가 되셨다. 마귀의 가장 큰 전략은 삶의 극한 어려운 상황을 당하게 될 때, 우리에게 고립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에요. 마귀의 가장 큰 전략은 우리가 사방에 우겨 쌈을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해가지고, 천상천하에 ‘나 혼자밖에 없다.’고 이게 마귀의 작전이에요. 인생의 위기를 당할 때, 제일 좋지 않은 태도는 나 혼자밖에 없어, 나뿐이야, 자신을 스스로 분리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고독이 암보다 더 무섭다. 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도 이런 고립감을 느낄 때가 있어요.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엘리아 같은 경우는 대단한 갈멜 산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환경적으로 좀 힘드니까 열왕기상 18장에서 850대 1로 갈멜 산에서 승리한 그가 바로 19장 1절에서,
 
*요한계시록 19:1,
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바로 앞에서 혼자 광야에 가가지고 처절하게 외로워 갖고 몸부림치며 가슴 아파하고 그 순간 엘리아의 마음이 곤두박질치면서 나 혼자밖에 없습니다.시험에 든 것이에요. 심지어 영적으로 성숙했던 욥 같은 경우도 욥기 19장 13절, 14절에 욥도 시험이 드니까,
 
*욥기 19:13-14,
13 나의 형제들이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낯선 사람이 되었구나.
14 내 친척은 나를 버렸으며 가까운 친지들은 나를 잊었구나.
-그래서 여러분 진짜 어려운 사람들, 힘든 사람들, 고통당하는 사람들, 삶의 어떤 벼락같은 어떤 고난을 경험한 사람들이 하는 얘기들이 있잖아요. 갈 데가 없고 만날 사람이 없다고, 이게 고립감을 갖게 하는 것이에요. 우리의 삶의 전쟁 의식이 만들어진 극한의 시기에 나밖에 없다고 느끼는 건, 이것은 마귀의 가장 큰 작전이고, 이것이 우리를 실패하게 하는 거고, 우리 한국인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나 혼자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나이 든 분들도 그러고,나는 혼자밖에 없어, 이것이 정신적으로 우리에게 치명성을 가져오는 거예요. 나는 지금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 고립감, 사실 이것이 우리에게 정신적으로 치명상을 가져옵니다. 인생의 일부를 만나고 극한 상황 가운데 여러분들은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평생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군대대장을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셔야겠습니다. 오죽하면 사망의 음치는 골짜기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셔서 히브리서 13장 5절에 있는 것처럼,
 
*히브리서 13:5,
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와 닿아야만 하는 것이에요. 오죽하면 여러분 사도바울은 그의 생애가 닿을 때 마지막 썼던 성경이 디모데후서였고, 디모데후서는 마지막 4장 마지막에 그 4장 가운데 마지막 부분에 뭐라고 돼있는지 아세요? 기가 막히게, 그 위대한 바울 사도도 디모데전서 4장 16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디모데후서 4:16,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대마도 버리고 다 버렸습니다.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쉽게 말하면 손 볼 OOO가 좀 있는데,,, 볼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거 바울도 인간이니까 마음에 치명상도 있는 것이에요. 근데 방법은 딱 하나야. 방법은 다른 게 없어요. 디모서후서 7장 17절이 뭐냐 하면 17절 다 함께 읽어요.
 
*디모데후서 4:17,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다시요. 저 성경은 바울 사도의 생의 마지막 순간, 마지막 부분이에요. 다 떠나고, 이것이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셔가지고, 그때대로 나타나신 그 모습이 바울에게 이렇게 나와요. 그리고 바울의 생애에서 물리적으로 가장 힘들 때 중에 하나가 사도행전은 28장까지인데 27장에 유라글로 광풍을 만났어요. 사도행전 27장에 보니까 뭐라고 나오냐면요. 누가 보는 광풍을 만나가지고 완전히 다 죽을 판인데 딱 하나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는 거에요.
 
*사도행전 27:23-24,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니까 바울 사도의 생각은 딱 두 번 나와요. 바울의 유라굴로 광풍이 가장 힘든 극한 상황에서 또 모든 사람이 다 떠난 것 같은 그런 위기감 가운데서 딱 하나 위로와 하나의 해결 방법은 뭐냐?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내게 힘을 주시는 너는 혼자가 아니야. 오늘 이 예배에 오신 여러분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오늘 이 방송을 듣고 예배하는 모두도 혼자가 아닙니다.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 구약의 군대 대장으로 나타나신 그 예수님이 우리 곁에 서 계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경주, 삶의 영적 전쟁에서 제일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 곁에 서 계신 분이십니다. 독생자 예수 내 곁에서 서셔가지고 주의 자녀를 지켜 주실 줄 믿습니다. 놀라운 것은요. 주께서 내 곁에 서서 군대대장으로 함께 하실 때에 예수님 안 믿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는 놀라운 축복이라는 데 그것이 뭐냐,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모르는 천상의 군대가 호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어려울 때 숨은 어려움들을 경험하고 있을 때 주님 곁에 계실 때에 저에게 주신 은혜가 눈을 열어보면 천상의 군대가 우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에요. 다시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예수 믿지 않는 분들은 전혀 깨닫지 못하는 천상의 군대가 여러분들을 호위하고 있는 줄로 믿으셔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족해도 천사의 군대가 있는 거예요. 구약에서는 영안이 열린 사람들에게는 이 천상의 군대를 보여주셨어요. 대표적으로 누구에게 엘리사 선지자, 하늘의 군대가 도단 성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 천상의 군대가 오늘 이 예배에 오신 여러분들과 가정과 개인과 공동체를 지켜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마음에 여호와의 군대 대장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 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천상의 군대가 있는 것을 믿을 진데, 우리가 이 지상에서 하늘나라의 천군, 천사들의 호위를 받는 우리도 천상의 군대가 되어만 하는 것이에요. 21세기에 하나님의 군대가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사랑의 교회 칠천 기도 용사 우리가 얘기하는데 기도 용사 얘기할 때는 ‘주여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천상의 군대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천상의 칠천구도 기도 군단이 되고 7천기도 군단이 말씀의 칼과 기도의 불 칼을 들고 이 시대를 지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군대의 대장이 되셔가지고, 우리를 지켜주실 때, 우리가 영안을 열어가지고, 우리도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천상의 군대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따라서 오늘 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 다섯 번째 중요한 핵심은 뭐냐 우리의 인생의 위기 가운데 성령의 불 칼과 말씀에 검을, 그리고 우리를 지배하시는 천상의 분리 대장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을 믿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그 어려운 극한 상황의, 그 상황이 여러분들의 천상의 군대 대장을 만날 수 있는 전화의 기회가 된다는 것도 허락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또 우리의 극한 상황이라 여겨지는 그 상황이 천상의 군대 대상의 지위를 받을 수 있는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함께하신 것을 깨달을 수 있는 놀라운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이 천상의 군대에 천부장가 되시고 백부장이 되시고 오십 부장이 되시고 십부장이 되는 축복을 주시기 바랍니다. 군대 대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첫 번째 너는 혼자가 아니라, 너는 혼자가 아니야, 칼을 들고 서셔서 우리를 보호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시는. 두 번째로는 15절에 보니까,
 
☞두 번째는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입니다.
 
*여호수아 5:15,
15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우리가 오늘 천상의 군대대장을 만났을 때 듣는 말씀이 뭐냐,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 우리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 되면 되는 것이에요. 인생의 위기와 극한 상황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가 발을 딛고 선 곳이 거룩한 장소로 바뀌면 그것을 극복하게 되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능력이 있어서 거룩한 곳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천상의 군대대장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있는 곳이 거룩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의 거룩은 우리의 능력으로 취득한 것이 아니고, 거룩하신 주님의 강력한 임재 때문에 우리가 사는 것이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래 이 가나안 땅은 거룩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은 패역한 곳이었고 음란하고 사악한 장소였습니다. 거룩하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은 타락한 문화 때문에 부패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느냐 그 타락하고 부패하고 사악한 땅이 네가 서 있기 때문에 그곳이 거룩하게 될 것이라. 천사의 군대대장은 보호하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가지고 네가 천사의 군대대장이 되었으니 너희가 선 곳이니까 그곳이 거룩한 땅이 된 것이라. 그것도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래 우리가 서 있는 이 장소가 객관적으로 볼 때는 엉터리고 문제가 많아도, 우리가 서 있기 때문에 그것이 거룩한 장소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지금 여호수아는 과거에 애굽에서 노예로도 있을 보았고, 모세와 함께 시내 산으로 올라가 보았고, 거룩하지 않은 애굽 땅에 있어도 보았고 홍해의 마른 땅으로 건너가 보기도 했고, 또 여러 번 타락한 장소든 거룩한 장소든 모세가 있는 곳이면 모세가 있는 곳이면, 여호수아 앞에 모세에 한 곳은 거룩한 장소가 되었구나. 그리고 성막이 가는 곳마다 쉐키나 영광이 나타난 것을 이 여호수아가 깨닫고, 그래서 가나안 땅은 원래 거룩한 땅이 아니지만 군대의 제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임재를 믿고 순종할 때, 그 장소가 거룩한 땅이 되는 줄로 확신합니다. 우리 제자 훈련 용어로 말하면 우리가 하는 일들이 세상의 일들이 다 문제도 있고 뭐 어려운 것도 있고, 우리 자녀들도 그러고 우리 가정도 그러고 수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오늘 이 사실을 믿고 여러분들이 그 자녀와 또 가정과 여러분의 이 사업들을 위하여 거기에다가 이 말씀을 믿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기도와 찬송으로 그것을 보호하는 그 장소가 거룩한 땅, 거룩한 곳이 되는 것이에요. 참 놀라운 것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다 거룩하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장소가 되는 하여 거룩한 장소가 돼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군대 대장 앞에서 천사의 군대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그 순간,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앞뒤가 꽉꽉 막힌다 하더라도 여러분 부부가 손을 잡고 간절히 예배하고 가정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눈물로 기도하고 매어 달리면, 이런 그 장소가 하나님이 천상의 장소가 되게 하시고, 앞뒤가 꽉꽉 막히고 꼬여가지고 풀어지지 않는 그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 상황에서 기도하고 찬양하며 매달릴 때, 하나님은 그 자리를 거룩하게 하여 주시옵시고, 가정을 승리하게 하시고, 국가가 힘들어도 국가가 회복될 수 있도록 하나님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들이 하나님 나라의 천상 군대, 거룩한 군대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하면 단순히 내가 그것만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가 거룩한 장소가 능동적으로 훨씬 더 확산되고, 또 이렇게 더 발전 또 이렇게 커지는 그런 경향도 있다는 제가 첫 번째 군대대장 되신 예수님 앞에 우리가 만날 때에,
 
*첫 번째 너는 혼자가 아니다.
*두 번째는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입니다.
*세 번째가 셋째,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
 
*여호수아 15:14,
14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세 번째가 셋째,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

-어려운 극한 상황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종의 위치라는 사실입니다. 이걸 제대로 깨달으면 여호수아가 가진 승리를 저와 여러분에게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아닙니다. 우리는 종입니다. 그런데 대단한 사람도 종입니다. 여러분 여호수아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입니까? 여호수아 당신 200만을 거느리고 가는 최고의 지도자입니다. 여호수아가 이 전쟁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아말렉과의 전투를 하고, 그리고 태양아, 머무르라. 그야말로 무슨 칼도 제대로 없는 그런 군대를 데리고 철기 부대를 쳐부수고, 이길 수 있는 강력한 전쟁 선봉장이었고 승리자였어요. 알렉산더나 죄송합니다만 이순신 장군도 게임이 안 될 정도로 강력한 군대 지도자였어요. 리더였어요. 굉장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가 하나님한테 뭐라고 했냐, '내 주여 군대대장 앞에서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쉽게 말하면, 고대 근동의 인류 역사상 최고의 장군이 여호수아,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납작 엎드려가지고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이 고백에서 고백한 기도가 하나님의 기가 막힌 승리를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책임을 지시는 분이 계시고 집안의 가정들도 있고 리더들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어제 저희 교회 어제 저녁에 이제 전화들을 해주시는데 우리 교회 지금 국회의원 출마한 분들이 7명이에요. 여당 5명, 야당 2명, 내가 다른 얘기를 안 했어요.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리면 종만 되면 하나님 인도하실 것이다. 제가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이 자리에 계시면 자매들 계시잖아요. 자매들은 나는 여호수아 장군과 나는 상관이 없고, 나는 이렇게 지도력 지도력하고는 무슨 상관이 있겠나 그렇게 자매들은 얘기할지 모르겠어요. 우리 여자분들, 여성 성도들. 그런데 대한민국은 나이가 들수록 아내들이 지도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ㅋㅋㅋ!!~~ 이게 잘 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사실 그렇다는 것입니다. 많은 시간이 나이가 들수록 아내가 리더십을 갖습니다. 우리 집도 비슷합니다.
 
제가 뭘 말하려고 하는가 하면, 남자든 여자든 다 또 세상 적으로 지도력을 갖거나, 갖지 않든, 어떤 게 평범한 소시민적 삶이라 할지라도 다 우리는 지도력을 갖고 있습니다. 근데 우리 모두가 다 삶의 어려운 극한 상황을 만났을 때, 우리가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종의 위치에 정확하게 서 있기만 하면 주님은 저와 삶을 인도해 주실 것이에요. 더 좋은 것은 우리가 종의 자리에 설 때 주님이 우리 주인의 자리에 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종의 자리에 서 있지 않으면, 주님이 우리 주인의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신앙 세계는 누군가가 우리를 슈퍼바이징을 해야 돼요. 나이가 들더라도 누군가 우리를 제대로 가져야 돼요. 중요한 것은 지도자는 반드시 누군가의 지도력을, 그리스도인들은 누군가의 지도를 받아야만 하는데 평생동안, 저와 여러분은 평생 동안 누군가의 지도를 받기를 바랍니다. 그 지도라는 게 뭐냐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 신발을 벗으라.'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당시에 애굽의 궁정이나 노예들은 신발을 신지 않고 있어요.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내가 주님의 노예입니다. 주님의 종입니다. 라는 그런 하나의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발을 벗으라고 했을 때, 여호수아는 일체 대구를 하지 아니하고 그냥 그대로, 그대로 신발을 벗게 되었습니다. 그 신발을 벗고, 내가 주님의 종입니다. 라고 말하는 그 순간, 40여 년 동안에 애굽에서, 오랫동안 애굽에서, 노예 체제로 살았던 그 모든 모의 체질에 그 모든 성령이 하나님 나라에 약속의 땅 체질로 무장되게 되는 줄로 믿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도력을 가지고 힘들고 어렵고 여호수아의 어깨가 단단하다 하더라도 감당할 수 없는 그 짐 가운데서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 라고 진심으로 고백하는 그 순간 그 큰 짐들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것이에요. 아멘
 
오늘 뒤에 나와 있을 실오라기 하나도, 그러면서 드디어 애굽땅 체질이 약속의 땅 체질로 바뀌면서 저 자들 앞에 있는 그 놀랍고 어마어마하고 난공불락을 그 여리성을 어떤 식으로 공략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지혜를 하나님이 종 된 여호수아에게 보여주실 것이다. 뭐라고 말씀합니까? 저거 사다리 타고 올라가지 말라, 막 군대 동원해가지고 막 공격하다가 얻어 받지 마라. 저거 그냥 뭐 그냥 어떻게 막 그 축성기를 가지고 공수를 공략하고 네가 종이니까 내가 주인으로서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주겠다. 내가 한번 해보겠다. 너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매일매일 하루에 한 바퀴씩 여리고성을 돌아라. 그리고 마지막 날 7바퀴 돌아라. 13바퀴 돌 때, 크게 외치라. 여러분, 뭐라고 외쳤겠어요? 마지막 다른 거 없어요. “주님이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주님이 우리의 군대 대장이십니다.” 기가 막히게 선포하라. 그럴 때 무슨 일을 졌는가 생각도 못하고 상상도 못한 여리성이 와장창창창 무너지게 될 것이에요. 할렐루야!!!~
 
그다음에 우리가 이 우리의 주제 파악, 우리의 위치 파악을 우리는 주님의 종이라는 것을 믿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이 주인 되어 주시면,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거룩한 비대칭 전략을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다윗도 물맷돌을 하나 들고 나가고, 기드온도 뭐 어떻게 할 수 없는데 300명 용사로 나가게 되고, 여호사밧은 찬양대에 이끌고 나가게 되고,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오늘 여러분 난공불락, 그다음에 금성철벽, 우리의 어깨를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는 힘, 그 고립감 때문에 치명상을 입어가지고 눈물이 철철 흘리는 이 상황, 다른 거 없어요. 주님이 내 주인이 되어 주시옵소서!~~. 말로, 찬양으로, 우리의 고백으로, 말씀으로, 확신하고 선포할 때에 우리 앞에 있는 이것은 상상도 못했던 방법으로 누가 와장창창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깨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군대대장 되신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행함과 보호하심 거기에 실제적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말씀 정리하겠습니다.

오늘은 105주년 3.1절 기념 주일입니다.지금으로부터 105년 전에는 희망이 없었고 잿빛이었어요. 그때에 하나님이 군대대장이 되셔서 대한민국의 장래는 그 당시 여리고보다도 더 큰 아무런 희망이 없었어요. 그런데 평양신학교에 마포삼열 박사, 영어 이름으로 사무엘 마테트, 한국이름 마포삼열,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아무런 국가적으로 희망이 없다고 했어요. 일본에게, 러시아, 중국에게 둘러싸여가지고 있을 때, 1907년 일제시대에 희망이 없을 때, 평양부흥이 있을 때, 영적으로 희망만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당시 아시아의 최고 신학교, 마포삼열 박사가 천상의 군대대장이 되어가지고 바로 옆에 숭실대학교를 세웠던 윌리암 베어드 선교사가 한국에 이름 배이량 선교사에요. 친구였어요. 이길암 선교사님, 평양장대현 교회 선교사님, 팀웍을 이루었어요. 

 
여러분, 그런 전투력과 그런 마음들 때문에 나중에 주기철 목사님이나 우리 한경직 목사님이나 이를 통해 계속 이어져 와가지고 의 전투력을 가지고 이 나라를 이만큼 우리가 지키고 나온 것입니다. 아멘, 제가 19세기 말인 전 세계에서 수많은 제목들이 있지만 대영, 영국이 말이 그 당시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어요. 19세기 말에는 저 영국이 아메리카 대륙은 남부보다 캐나다 미국 아르젠티나 남쪽까지 또 아프리카는 사고사부터 시작해서 중요한 자리 또 아시아 쪽에는 인도부터 시작해서 버마 심지어 홍콩까지 전 세계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어요. 그럴 때 19세기 말에 가장 강력한 영적인 뒷받침 되에 있었어요. 그걸 제 큰 땅 떨어 차지라 그런 뜻이 아니라, 여러분 그때 영국이 그때 역사를 안 했으면 무슨 아메리카에 복음이 들어가겠고, 지금 그 힌두교와 불교로 꽉 채워진 인도에 무슨 금이 가겠어요? 복음이 들어가 영국의 그때 영국의 최고의 설교자가 스펄전 목사님 그리고 영국의 구조와 봉사의 기 기도의 용사, 조지 뮬러, 그리고 그 당시 영국이 파송한 최고의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 들어보셨죠? 스펄전 목사님, 죠지뮬러, 허드슨 테일러 이 사람들이 용사들이었어요. 아주 친한 친구들이었어요.

오늘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다락방 사랑이 오늘 여러분들 다락방 수들 가운데도 이 기도의 3용사들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천국에 우리 다락방마다 주일 학교도 천국의 삼용사, 교사들이 나오길 바라는 것이에요. 제가 지금 마음이 너무 간절하니까 마음만 간절하고 마음은 자꾸 늦게 나와요. 지금 여러분 정말 중요한 얘기 여러분 가슴에도 오늘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여러분들의 삶에 큰 무거운 점들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축복을 허락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 교회 토요일마다 7천기도 용사이고, 거룩의 용사이고 정말 우리의 마음속에 주님 주신 은혜를 가지고 우리가 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할 우리나라가 다시 살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극렬한 진정 논리의 싸움 가운데 이 우리 민족 가운데 예수 믿는 여러분들과 교회가 유일한 소망인 것입니다. 이 마음 가지고 이 시대에 군대 대장이신 천상의 군대대장이신 예수님을 의뢰하면서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용사되기를 소망합니다.
 
♣요약
우리 앞에 전쟁 같은 난공불락(難攻不落)의 극한 상황(狀況)에서 칼을 든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찾아오실 때, 거룩하시고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 앞에 죄의 신발을 벗고 납작 엎드리며, 나는 혼자가 아니니, 나밖에 없어라고 극한 고립감을 버려야 한다. 천상의 군대대장이신 예수님이 강력한 전투력으로 세 사람을 보내주실 것을 온전히 믿고, 우리는 기도용사로서 순종하여 극한 상황을 군대대장이신 주님을 의지하여 치유와 극복의 경험을 체험해야 한다.
-우리가 전쟁 같은 인생의 극한 위기 때에 군대의 대장이신 예수님께서 칼을 빼고 철장권세를 가진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심을 확신하고, 그 은혜와 사랑을 만만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여호수아처럼 진정한 대장이신 예수님 앞에 내가 주인 삼은 나의 삶의 신발을 벗고, 납작 엎드려 경배하고, 사망의 골짜기도 너는 혼자가 아니야. 라는 믿음으로 주께서 내 곁에 서서 천상의 군대를 보내주시는 것을 경험하는 자들이 다 되어야 한다. 천상의 군대를 우리에게 함께해 주신 것을 경험하고 승리하는 자들이 되기를 간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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