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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4월 13일)-聖餐式 제목 “세상을 변화시키는 치유자 (The Wounded Healer Who Transforms the World) -<새로운 길> 이사야 시리즈 ⑪ 말씀: 이사야 53:1~6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이윤기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 ---- *이사야 53:1~6,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사회: 아멘, -이제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서 새로운 길 이사야 시제 11번째 ‘세상을 변화시키는 치유자’라는 제목으로 주님 말씀을 전해주시고 이어서 성찬식을 해 주시겠습니다. ▶오정현 담임목사님 설교 -우리 찬양대가 지금 본향을 향하는 순례자의 고백을 했는데, 주님이 받으신 줄로 확신합니다. 박수 하나님께 영광!!~~ 세상이 참 너무 변화무쌍(變化無雙)하고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변화 많은 세상 가운데서도 우리 주님의 은혜는 변함없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이제 다음 주일날 부활 주일 앞에 놓고, 오늘 이 종려주일 날 이 팜선데이, 주 앞에 변함없이 드리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 예배를 통하여 삶의 모든 무거운 짐들이 다 벗겨지게 하시고, 무엇보다도 말씀의 생수를 경험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이사야 강의 11번째인데. 오늘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치유자’ 그리고 이사야 53장 이 본문을 앞에 놓고, 고난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위하여 질고를 당하시는 주님에 대한 내용들을 오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이사야 53장의 본문은 구약의 복음이다. 구약의 복음의 문을 여는 것이다. 구약의 골고다이다. 이렇게 얘기도 하고, 오늘 이 본문은 예수님의 어떤 구약을 통한 복음의 선명함 그리고 복음의 기품, 신성, 또 능력 이런 것들이 본문에 많이 나와 있어 나와 있는데, 우리는 흔히 1절부터 오늘 6절까지 본문 내용을 압니다마는 사실은 고난받는 종에 관해서 이 본문은 이사야 53장 앞에 52장 13절 말씀부터 쭉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고난받는 예수님에 대한 이미지가 있는데, 고난받는 예수님은 본래 어떤 분이셨나? 아니 고난 받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이 예수님을 어떻게 하셨는가? 오늘 13절에 보니까, 52장 13절에 보니까 같이 보겠습니다. *이사야 52장 13절, 13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아멘, 여기 고난받는 예수님에 관한 놀라운 형통의 선언이 선포됩니다. 무슨 말이냐 고난 받으시지만 주님께서 이 고난받는 예수님을 이 메시아를 어떻게 하는가, ①첫째는 받든다. ②두 번째는 높이 들린다. ③세 번째는 지극히 존귀하게 된다. -벌써 여기에 복선으로 반전의 역사를 넣어놓은 것입니다. 수많은 고난과 고통이 있지만 하나님은 이 고난받는 종을 통하여 첫 번째 뭐 한다고요? 받드신다. 두 번째 뭐 한다고요? 높이 들리신다. 세 번째 뭐예요? 지극히 존경 받든다는 말은 다시 일어나신다. 다시는 어떤 사람도 경험해 보지 못한 받들림을 특별히 부활을 상징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닌 것입니다. 고차원적인 존재로 승격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높이 들렸다는 이 말씀은 빌립보서 2장 9절 잘 아시는데 같이 보죠. *빌립보서 2장 9절, 9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 -아멘, 이거 높이 들린 것이고 그다음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그다음 마지막에는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지극히 존귀하게 된다. 지극히 존귀하게 된다. 소위 우리 조직신학 할 때, 이 지극히 존귀하다는 말을 승리하셨다. 승천하셔서 귀하게 되셨다. 아니면 정말 주님이 높이 들림 받으시고, 귀하신 분이 되셨다. 그러니까 복음 안에는요. 이런 승리가 있고 지극히 존경하게 되는 은혜가 있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반전이 있지만 전에는 14절 보세요. 그러니까 전에는 그런데 이 고난받는 종이 이렇게 높이 들림 받지만 사실은 14절에, *이사야 52장 14절, 14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거니와.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어떻게 됐고요.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뭐예요?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해 놀랐다. 그랬어요. 고난받는 종으로서 높임 받으시지만 높임 받으시기 전에 주님의 모습은 어떻게 되느냐 너무 상하셨어요. 그의 모습이 너무나 처참하셨다. 이 말이에요. 무슨 뜻인가 하면, 로마 군인에게 채찍질을 당하시고, 가시 면류관 쓰신 것 때문에 찢겨진 예수님의 얼굴과 몸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 못 박혀 가지고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셨어요. 그래서 이사야가 본 모습이 바로 오늘 이 모습이에요. 이 모습이 너무 처참해지고 망가져가지고 사람들이 놀라고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에요. 근데 이렇게 비참한 예수님의 모습에 사람들이 충격받았지만, 그다음 또 15절에 뭐라고 돼 있느냐 15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이사야 52장 15절, 15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이제 이 처참한 예수님의 모습이 있지만 다시 이 고난받은 종이 메시아가 될 때에 왕들이 너무 놀래가지고 입이 딱 닫히는 거예요. 소위 입틀막, 입이 딱 봉해지는 입틀막, 여호와의 종 메시아가 회복 불능 수준의 치명상을 입고, 얼굴이 비참하게 짓이겨져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지만 그러나 후로는 찬란(燦爛)하고 눈부시게 회복된 모습을 보고 열방의 왕들이 입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그 권위가 너무 대단하셔서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들 왕들을 놀라게 하실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복음의 말씀을 오늘 제가 이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마는 이 복음의 말씀을 여러분들이 제대로 믿고 확신하고 여러분 것으로 고백이 되면 반드시 이런 대반전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처참하고 피투성이가 되고 망가지고 회복 불가능한 치명상을 입는다 하더라도, 너는 피투성이라도 오늘 이 말씀으로 다시 살아나라. 다시 시작하라. 다시 회복하라. 오늘 말씀으로 기름 부음 받음으로 치유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복음의 선명성에 대해서 전에는 잘 몰랐는데, 마치 희미한 어두운 방 안에 희미한 그림자처럼 되어 있는데 이제는 오늘 이 말씀의 빛이 확 비춰지고 조명이 되면 갑자기 어두운 방에 밝은 빛이 확 비춰져서, 그 모든 사물이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것처럼 오늘 말씀이 여러분들을 그렇게 만들어 주실 것이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오늘 이 말씀은 교회 생활 오래 하신 분들 이사야 53장이 구약의 복음이라는 내용 많이들 알고 계세요. 그렇지만 오늘 제가 부탁하는 것은 이 말씀이 마치 여러분들이 처음 대하는 말씀처럼 그런 거룩한 낯섬과 새로움이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특별히 오래되신 분들 가운데 이 앞 예배는 중직자들 오래되신 분들 많이 계시잖아요. 신앙생활 오래 하신 분들일수록 오늘 이 말씀을 새로움과 낯섬으로 한번 대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본문 1절부터 3절은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예수님을 사람들이 거부하고 버리는 내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주 그릇된 평가가 나오는 겁니다. 2절에 보니까, *이사야 53:2,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예수님이 버림받은 자, 실패자처럼 보였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가 3절에 보니까, *이사야 53:3,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멸시받는다는 말은 얕보였다 이 말이에요. 사람들에게 얕보임을 받아가지고 사람들에게 버림 바 되었으며, 그다음에 간고(艱苦)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疾故)라는 사람 이 간고라는 말은 이 간고라는 말은 어떤 뜻인가, 정말 이 어렵고 고통스럽다. 이 질고(疾故)라는 말은 어떤 뜻인가 질병으로 인한 괴로움이다 이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네 가지 멸시받고 얕보이고, 그다음에 버림받고, 그다음에 간고를 겪고, 그다음에 질고를 겪고, 고통과 그다음에 수많은 질병으로 인한 괴로움 이 네 가지 이 네 가지는 다 상처의 용어들이에요. 이 네 가지 주님이 이 네 가지를 다 당하셨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왜 주님이 다시 한 번 뭘 받았어요? 멸시(蔑視), 그다음에 버림, 그다음에 간고, 그다음에 질고, 이 네 가지를 왜 이런 상처를 왜 입으셨을까, 그 이유가 뭘까? 4절 앞부분을 보니까, *이사야 53:4,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여 거늘 이 질거란 말은 아까 수많은 병들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슬픔이란 말은 실로란 말은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의 약자인데, 진실로 참으로 주님은 우리의 즐고, 겉으로 드러나는 질병을 지시고, 또 우리의 슬픔은 우리의 내적인 정신적인 고통, 그러니까 내적의 고통을 다 짊어지셨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수많은 육신적인 고통과 질병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적인 고통도 주님이 다 짊어지셨다. 할렐루야!!~ 외부 내부 겉과 속에 수많은 상처와 보이지 않는 상처들을 주님이 다 짊어지셨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이 왜 그렇게 하시는가 사람들은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4절 뒷부분 보니까, *이사야 53:4,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우리가 생각하기를 그는 마땅히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이렇게 우리가 오해를 하는 거예요. 여기에 대해서 이제 제대로 된 평가, 이사야가 명확한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5절 앞부분에 뭐라고 나와 있는가? *이사야 53:5,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뭐 때문이오 그가 사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예수님의 몸에 당하신 이 채찍 자국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라는 거예요. 여기에 허물이라는 말은 율법을 의도적으로 깨뜨린 죄악이고, 그다음에 여기에 죄악은 우리의 내적, 외적 죄를 다 통칭하는 것이에요.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짊어지고 가시기 위하여 주님은 상하시고, 찔리시고, 징계 받으시고. 채찍 받으셨다는 것이다. 제가 오늘 성찬식이 있기 때문에 핵심만 말씀드리니까 말씀을 이리 할 때 알아듣기는 찰떡같이 알아들으시기를 바래요. 그 결과 우리가 상처받아야 할 것들, 우리가 상해야 할 것을 주님이 대신 상처받으시고 상하셨어요. 우리의 허물은 날카로운 창처럼 주님의 옆구리를 찔렀고, 우리의 죄악은 단단한 못처럼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을 박고, 납덩이 채찍처럼 예수님의 몸을 무자비하게 내리친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의 범죄 때문에 주님은 뚫리시고, 산산이 부서지셨다는 것이에요. 저는 어릴 때 이 고난주간 될 때마다 항상 이 성찰을 앞에 놓고 들은 얘기가 니가 머리로 지은 죄 때문에 예수님이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니가 못되게 허리로 지은 죄 때문에 주님이 허리에 창 자국을 받으시고, 니가 손발로 지은 수많은 죄 때문에 주님은 손발에 못을 박히셨다. 이런 말 들어보셨어요? 앞 예배 듣다 보니까 많이들 안 들어보셨더라고요. 저는 어릴 때부터 이런 말을 들었으니 얼마나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겠어요. 그 주님의 당하신 상처에 대해서 조금 더 저는 조금 더 실감이 간 거예요. 주님은 불의한 재판 받으시고, 벌금 없는 수치를 당하시고, 주님은 메시아의 권리를 박탈당하시고, 조롱당하시고, 다른 사람의 분노의 표적이 되시고, 거부당하시고, 육신의 허기짐과 갈증과 고통과 고뇌와 수치 가운데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되신 거죠. 그러니까 예수님의 십자가(十字架)는 인간 존재가 갖는 모든 상처의 수치(羞恥)스러운 운명, 수치스러운 역설이 여기에 다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역설이에요. 예수님의 생명 자체인데 그 생명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이 죽임을 당하신 것이에요. 예수님은 생명의 떡 이신데, 주님은 허기짐을 가지신 거예요. 주님은 세상의 빛 이신데 어두움에 삼킨 바가 되셨어요. 예수님은 나는 생수라. 생수라고 하셨는데 주님 목이 마르다고 하셨어요. 이거 얼마나 역설입니까? 율법의 주인이신 분이 율법에 의해 부당하게 처형되시고, 거룩하신 분이 거룩하지 않는 자와 동일시 되시고, 세상을 창조하시고 죽은 자를 일으키신 그분이 생명을 잃어 뻣뻣해질 때까지 못 박혀 있으셨어요. 뭘 말씀하는 겁니까? 십자가의 고통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아니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상처와 고통까지도 다 포함된 것이다. 십자가의 고통,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얻어맞아야 되고, 우리가 죄지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일격을 당해야 되는데 우리 대신 예수님이 결정적인 타격을 받으신 것이에요. 그렇게 해서 주님이 그 십자가를 지신 결과가 무엇일까요? 오늘 5절 뒤에 보니까, *이사야 53:5b, 5b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뭘 누리고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면 우리가 뭘 받았다고요? 나음을 입었다. 이 적당한 평화가 아니에요. 적당한 나음이 아니에요. 온전한 평화 샬롬의 경지에다가 참된 치유를 회복을 주님이 허락해 주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5절을 가지고 저는 이 5절을 가지고 이게 야!!! 이게 얼마나 나이가 어릴 때의 기억이 나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가 찔림은 우리의 뭐에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아 우리가 뭐 했어요? 나음을 입었도다. 그런데 이거는 그냥 일반적인 것이고 이것이 여러분과 저에게 지금 접목이 되어 가지고 우리가 여기에 있는 복음의 신비의 능력을 우리가 지금 체험한다고 그랬을 때, 우리라는 말에다가 여러분 괄호를 하고 거기다가 여러분 이름을 한번 넣어보시라고요. 정말 우리 영상팀 상 받아야 됩니다. 그가 찔림은 누구의 우리의 사실은 우리가가 아니라 누굽니까? 나의 허물 때문이야. 조금 더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실감이 가기 위하여 그가 찔리면 땡땡땡의 허물 때문이야. 땡땡땡도 해줄 수 있어요. 양옆에 들어가는 거예요.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OOO)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OOO)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OOO )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OOO )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가 찔림은 뭐예요? 땡땡땡의 허물 때문이요. 오정연의 허물 때문이오. 그가 상함은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이런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나는 이름을 내 이름을 넣고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누구누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 한번 본당 또 별관 여러 군데서 예배드리는 분들 또 저기에 대부도도 그러고, 그리고 여기 방송으로 듣는 모든 분들 또 미국에는 지금 현장 방송이 토요일 오후에 되고 있는데, 모든 분들이 한번 고백을 한번 해보세요. 그가 찔리면 땡땡땡, 나의 허물을 들고 내 이름을 넣어 가지고 그럴 때 복음이 주는 신비한 치유와 능력이 여러분의 것으로 접목이 될 것입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제대로 선포할 때, 세상이 알 수 없는 이상하고도 특별한 치유(治癒)가 여러분들에게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저에게는 이 말씀이 내게 어떤 은혜가 있었던가 저는 어릴 때부터 이렇게 제가 이제 사역 시작하고 지금 한 45년 좀 넘었는데요. 79년도에 부활절 때, 대학부에 제가 책임을 맡아 갖고 사역을 지금까지 이제 한 한 45년이 넘었네요. 저는 주신 은혜가 늘 비해서 제가 잘 메모를 잘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1년에 제가 메모 수첩을 많을 때는 한 5권, 적을 때는 한 3권, 평균 한 4권 정도,,, 저는 기억이 기록을 대신할 수 없다. 를 믿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역사를 창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사를 기록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저는 적자, 생존을 믿는 사람이에요. 아직까지 못 깨달으셨죠? 적자(기록) 생존이에요. 적자, 그걸 제가 믿는 사람인데 그래서 제가 지난 보니까 거의 한 180권 정도 메모 수첩이 있어요. 요즘 컴퓨터에도 이걸 입력을 해놓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그 어떤 어떤 독특한 그 느낌을 컴퓨터가 못 해줘요. 내가 언제 이사야 53장 이 말씀의 은혜를 받았던가 하고 적었던 것 보니까 제가 사역을 초창기에 개척하고 한 1년쯤 뒤에 참 마음이 짐이 많았어요. 31살 때 교회를 개척해가지고 할 때 나이도 내가 어렸을 뿐만 아니라 그 개척해서 오는 수많은 참 간난신고의 어려움도 많이 있었고 또 내가 갖고 있는 부족함 때문에 갖는 연약함도 있었고, 여러 가지들이 이렇게 축적이 돼 가지고 나를 억눌렀어요. 제가 이 자세한 사건을 다 말할 수 없지만 그런데 제가 그래서 아 내가 기도원을 좀 가야 되겠구나!~~ 그래서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오렌지 카운터에서 한 80마리쯤 떨어진 데 헤멧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 기도원이 있었어요. 미국식으로 수양관인데 크지 않는 조그마한 수양관인데 수양관 이름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 수양관’이었어요. 이름 멋있죠? 그렇죠. 그리고 부재가 뭐냐 하면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 일하는 수양관이었어요. 그리고 그 수양관에 나지막한 이렇게 이게 이제 광야에 있었는데 그 광야에 자그마한 언덕이 있었는데 그 수양관 하고 언덕이 있는데 언덕에다가 큰 나무 십자가가 있었어요. 나무 십자가가 있고 나무 십자가 밑에 돌무더기를 쌓아놓고, 그래서 제가 어느 이른 새벽에 일어나 가지고 그 큰 나무 십자가(十字架) 밑에서 무릎을 꿇고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기도하는데 마음속에 놀라운 말씀이 저를 비춰주셨어요. 그 본문의 말씀이 그 비춰 진 말씀이 오늘 이사야 53장 5절이었어요. 그게 뭐냐 하면, 그걸 이제 제가 사역 일기에 적어놓았는데, *이사야 53:5b, 5b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러면서 제가 깊이 깨달은 게 뭐냐 하면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나의 십자가의 상처를 통하여 너의 상처가 치유되리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상처를 통하여 저의 상처가 치유되리라. 이게 그냥 아주 심플하고 단순하지만 분명하게 이 말씀이 제게 깨달아졌어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상처 위에서, 너가 나음을 입으리라. 이게 하루 종일 묵상이 되었고 계속 반복을 하면서 암송을 했고, 그래서 주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주님이 상처받으심으로 내가 나음을 받았구나 그걸 그냥 계속 반복을 하는데 제가 가진 수많은 상처들 수많은 짐들 제가 다 설명을 못하지만 또 뭐 뭐 뭐 사람들이 자라나 보자부터 시작해 가지고 수많은 일들, 그리고 그날 밤에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의 십자가의 상처를 통하여 너의 상처가 치유될 것이다.’ 그래서 일어나고 또 언덕 위에 십자가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산등성에서 아침에 태양이 막 떠오르는데 말라기 4장 2절 말씀이 제 마음에 떠오르면서 막 막 기쁜 거예요. 볼까요? *말라기 4장 2절,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할렐루야 그때부터 제가 뛴 것 같아요. 특새하면 뛰기 시작하고, 마치 송아지처럼 뛰는 힘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돌 무더기 위에 있는 큰 나무 십자가는 산등성 위에 있는 십자가 정도가 아니라, 내 앞에, 아니 내 안에 들어온 십자가가 되었고, 돌무더기 위에 십자가의 빛은 그 그림자를 통하여 나를 덮어버렸는데 단순히 그림자가 아니라, 그 십자가가 내 마음속 속에 들어오는 것 같았고, 저를 품어주신 것 같았고,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이 내 속에 역사함을 느꼈습니다. 그 이후로 그 십자가는 서 있는 십자가가 아니라, 두 팔을 벌리고 저를 포용하는 십자가 저를 안아주는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마 우리 본당이 안아주심의 본당이라는 말이 아마 그때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제가 그렇게 생각이 되었습니다. 이걸 제가 기록을 해놓았었어요. 저만 그렇겠습니까? 우리 모두도 동일한 십자가의 은혜와 광선의 능력이 우리 속에 역사하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우리 교회 본당 앞에 약간 저 오래된 나무로 된 십자가(十字架)가 있습니다. 저 십자가의 스토리를 여러분 잘 모르실 겁니다. 저 십자가는 2천 년 된 십자가입니다. 봐요. 안 믿는 거 봐요. 저거는요. 갈릴리 바다에 배가 파선된 배가 가라앉았는데 그 가라앉은 배에서 나온 나무를 가지고 십자가를 만들었어요. 진짜가 그러지 말고 탄소 동위원서에 보면, 2천전자가 나옵니다. 그 이유가 뭐냐? 2천 년 전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상처가 오늘 수많은 우리 교우들의 상처를 치유하게 하여 주옵소서. 앞 예배때부터 얘기하니까 갑자기 사람들이 저기 나와서 만지려고 그러고 그러더라고 만지지는 마시고 여러분 확신하세요. 2천 년 전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상처가 오늘 나의 상처를 치유할 것이다. 그게 십자가의 신비예요. 그 십자가의 그늘이 오늘 내 삶을 덮어주시고, 십자가의 빛이 오늘 나를 비춰주시옵소서. 그래서 그 십자가를 통한 저의 상처가 치유되고, 저를 새롭게 하는 느낌을 받고 난 다음에 그때 이후로 저는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고통스럽고 힘든 거 많아도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다시 주님이 제 마음을 한결같이 치유해 주시는 것을 느꼈어요. 그러니까 힘들어도 이 십자가의 능력과 은혜 때문에 거룩한 낙관주의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 우리나라가 좀 시끄럽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개인과 가정의 삶에도 수많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은요. 가정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가정 천국이더라고, 가정은 이 땅에 천국 예고편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은 다 자기 잘 나고 자기 주장하고, 자기 권한 쓰고 이래 갖고, 가정이 지옥의 예고편이 되고 있는 거예요. 그런 가정들 마다 온 이 상황이 어려운 상황들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오늘 십자가의 능력을 주시면 하나님이 이 민족을 그래도 거룩한 하나님의 방법으로 치유할 것을 믿어야 되는 것이에요. 우리 모두에게는 누구에게 누구 우리 모두에게는 상처가 다 있어요. 우리가 상처를 줄 수도 있고 받을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런데 다시 한 번 예수님의 십자가의 상처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수많은 상처 보이는 상처, 보이지 않는 상처, 우리가 참 앞에서 제가 처참하고 피투성이가 되고, 치명상을 입는 말씀을 드렸는데요. 우리가 이 말씀을 순종할 때 다시 우리의 대반전의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그걸 제가 증거를 드리겠습니다. 오늘 53장 이 선명한 복음에 대한 구약의 복음서를 하고 난 다음에 바로 이어서 54장 1절에 무슨 말씀이 이사야 54장 1절에 무슨 말이 나와요? 제가 좀 미리 당겨서 말씀을 드리는 건데요.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사야 54장 1절, 1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무슨 뜻입니까? 당시 고대 근동 사회에 여자분이 잉태하지 못하고 출산하지 못하는 엄마는요. 이거는 끝나는 거예요. 인생 고난 시작이에요. 정말 너무나 고통스러운 거예요. 자식을 갖지 못하는 엄마가 갖는 그 비애가 있어요. 비탄한 외침이 있어요. 그런데 그 비탄한 외침이 아니라 찬양하고 노래할지어다. 수많은 아이를 낳지 못한 아픔은, 창세기 30장 라헬이 뭐라고 그러냐? 라헬이니 “라헬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겠노라” 죽을 만큼 힘들다. 그런데 오늘 십자가의 상처를 통하여 우리의 상처가 치유되면, 54장 1절에 가장 가장 우리가 쉽게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잉태하지 못하고 고통당하고 죽음 같은 힘든 일이 있다 할지라도 너는 노래할지어다 하나님이 그걸 처리해 주신다는 것이 ‘너는 외쳐 찬양할지어다’. 이걸 믿을 때,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이 필요한 치유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런 고백을 믿음으로 주님 앞에 선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십자가의 상처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상처가 치유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질문합니다.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만이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인 줄 믿으셔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굳게 믿어져야 되고, 이 복음의 핵심이 잘 이루어지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당시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다 이 복음을 가지고 논쟁을 하시고 목회를 하는 그들에게, 바울은 나중에 이걸 가지고 당시에 갈라디아 교회 율법주의자들과 함께 대 피투성이의 논쟁을 하고,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라고 해서 우리 교회사에 보면 ‘도덕적 구원론’을 갖는 어떤 그런 행위 구원 비슷한 이런 사람들과 함께 어거스틴은 어마어마한 싸움을 하고 십자가만이 승리요. 십자가가 복음의 핵심이고 우리의 의로움이 아니라 십자가의 피해 보혈의 능력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그 사실 앞에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 심지어 여러분 중세 시대에 프로테스탄트와 캐톨릭의 행위 구원과 아주 그냥 피 튀기는 전쟁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주님께서 은혜 주셔 가지고 16세기에 그 구원론에 관해서 오직 솔라 피데, 할 때에 그 은혜가 이 십자가의 복음의 은혜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걸 구원론이라고 소테리얼라이즈라고 구원론을 하는데, 이 구원론 십자가의 복음의 은혜 십자가가 생명이고 십자가가 복음의 핵심이라 이걸 하기 위하여, 지나가는 교회사에 수많은 사람들이 피 흘리면서 이 진리를 지킨 줄로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10월 27일 날, WEA, ‘세계 복음주의총회’ 첫날, 우리 세계 복음주의 교회가 나가 가리키는 핵심이 뭔가? 여러분 우리 이번 특새는 기도가 답이라고 그러는데 복음이 답인 줄로 믿습니다. 십자가가 답인 줄 믿습니다. 이거예요. 다시 한 번 교회 부흥과 세계 선교회의 추진력을 이걸 통하여 확보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사야가 깨달았던 그 지리를 깨닫습니다. 이제 결론이 뭐냐 결론은 이사야 53장 6절에 뭐라고 되어 있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 53:6,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아멘 너무나 놀랍죠. 그 결과 우리 모두의 죄악을 했을 때, 우리 우리 우리 여러분과 저의 모든 죄악을 예수님께 담당시키셨도다. 죄가 전가가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누가 종이 주인을 위하여 죽고, 신하가 왕을 위하여 죽는데 우리 복음은 거꾸로예요. 주인이 종을 위하여 죽고, 또 이 복음은 왕의 신하를 위하여 죽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의 죄가 주인에게 전가되었던 우리의 죄가 메시아이겠죠. 그런데 복음은 죄가 전가된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 예수님의 의가 또 우리에게 전가가 된 것이에요. 복음의 신비예요. 로마서 4장에 뭐라고 돼 있냐 이렇게 되어 있어요. *로마서 4:25,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 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십자가를 보면 우리가 늘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우리의 죄가 주님께 전가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의가 우리에게도 트랜스퍼 된 줄로 믿습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너무 감동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이 의는 내재적인, 내가 갖고 있는 어떤 그런 의가 아니에요. 우리의 도덕적 의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한 십자가의 상처를 통한 놀라운 의로움이 우리의 것이 되느니라. 여러분 이것이 이 민족이 살 길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성찬식에 참여하면서 이 마음을 가지고 오늘 같이 성찬에 참여할 때 하나님께서 내려주십니다. 이 십자가의 신비를 제일 잘 깨달았던 분 중에 한 분이 제가 존경하는 김준곤 목사님의 십자가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같이 한번 보겠습니다. ◎“십자가는 사랑의 심장 파열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한 손으로는 내 손을 붙잡고, 또 한 손으로는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사랑의 심장이 터진 것이 십자가입니다. -故 김준곤- 할렐루야!~~ 온전론이라는 책에도 이걸 인용했습니다마는 한 손으로는 예수님의 손을 붙잡고, 한 손으로는 내 손을 붙잡고, 한 손으로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사람의 심장이 파열된 것이 십자가였다는 거예요. 그 십자가가 우리에게 참된 치유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이 마음 가지고 우리 같이 성찬에 참여하도록 하십시다. ♪찬송, 갈보리 십자가의 주님을 생각할 때 하나님 크신 사랑 너무나 고마워라. 예수님의 십자가 이제는 나도 지고, 이 생명 다 바쳐서 주님을 따르리라. 예수님의 십자가 이제는 나도 지고, 예수님 십자가 이제는 나도 지고, 이 생명 다 바쳐서 주님을 따르리라.~~~♩ ♣요약 우리는 회복 불가능해 보이는 치명적인 현실 앞에서도 보혈 복음에 눈이 열려 말씀을 확신할 때, 깜짝 놀랄 만한 대반전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구하며, 십자가의 상처로 나의 모든 상처를 치유해 주셨으니, 가정과 직장과 민족 앞에 "십자가 복음이 답이다!"를 선포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치유자로 쓰임 받아야 한다. 우리 사랑의교회가 부활주일(4.20)에 태신자를 작정하여 ‘2033-50 비전’의 씨앗을 심고, 봄 특새(4.21~26, 월~토)를 통해 '기도 불패! 확신의 심장이 뛰는 응답의 은혜를 기적을 체험하자. ![]() ![]() ![]() ![]() ![]() ![]() ![]() ![]() ![]() 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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