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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10월 04일) 제목: "다시, 처음처럼(Starting Over, Back to the Beginning)" 말씀: 마태복음 18:1-4 준비찬양: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1,2부), 이동선 부목사님(3,4부). 찬양인도: 영광(1부), 호산나(2부), 할렐루야(3부), 시온(4부). 대표기도: 백창록 1부), 김동현 (2부) ,성낙송 (3부) , 빈옥인 (4부) . 사회: 임상규 부목사님(4부)--- 임병영(1부), 이기호(2부), 장단희(3부). 설교자: 윤대혁 후임목사님 ----- * 마태복음 18:1-4,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 ▶할렐루야! 네.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옆에 분과 밝은 얼굴로 인사하겠습니다. 평안하셨습니까? 인사하겠습니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평강이 안아주신 본당에 오신 또 각자에서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님들의 삶에 현장에 은혜와 평강으로 임하여 주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대접받기를 원합니다. 누가 나를 대접해 주는 거를 마다할 사람은 없죠. 존경이란 대접을 받길 원하고, 사랑과 관심이라는 대접을 받기를 원하고, 누군가 나를 섬겨주는 대접을 받는 것을 원하고 좋아합니다. 부부관계 가운데서 또 가정에서 또 직장에서 또 교회에서 식당에서도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대접을 받기를 원하죠. 또 식당 사장님이 우연히 ‘손님 인상이 좋아요.’ 라고 말하면서 간혹 계란말이를 서비스로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나에게 준 계란말이기 때문에 너무나 기뻐서 어디 가서 나 이런 서비스 받았다. 대접받았다는 것을 자랑하고 이야기를 하죠. 반면에 누구는 주고 나는 안 주면 그때부터 우리는 마음 안에 다시는 그 식당을 가지 않겠다는 마음의 결단과 각오를 하게 됩니다. 뭐 계란말이가 대단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나를 그렇게 대접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실망하고 나를 다른 사람보다 더 특별하게 대우해 줬기 때문에 사람은 기뻐하고 즐거워하죠. 착했던 3살 난 아이가 그 동생이 태어나고 나서 엄마 몰래 아이를 발로 차고 엄마 몰래 꼬집는 그 이유도 그 자기에 대한 엄마 아빠의 대접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운 감정이 생기고 싫은 감정이 생기는 거겠죠. 오늘 본문에도 대접받기를 원했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이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와서 질문합니다. “예수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천국이 임하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천국이 임하면 그 천국에서 누가 큰이일까? 누가 큰 사람입니까? 누가 더 대접을 받겠습니까?” 혹시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사랑하는 요한입니까? 아니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우리도 예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사람인가요? 제자들의 관심사는 누가 더 많은 대접(待接)을 누가 더 크냐에 대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제자들뿐만 아니라 제자들의 가족들도 이것이 큰 관심이었죠. 예수님은 2년, 3년 동안 따랐던 자신들의 아들을 보면서 왜 이렇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싶어가지고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직접 와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나라가 임하게 되면 당신의 오른편에 나의 큰아들인 야고보를 당신의 왼편에 나의 둘째, 아들인 요한을 세워달라고 말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하나는 국무총리요, 하나는 비서실장으로 세워달라고 청탁(請託)을 하게 되죠. 이렇게. 누가 크냐에 대한 그 관심을 제자들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말씀으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이야기하십니다. 2절과 3절 말씀인데요.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8:2-3,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귀를 쫑긋 세우고 예수님께서 누가 더 클까를 말씀하시길 기다리고 있는데, 저기 놀고 있는 한 아이를 부르더니, 이 아이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들이 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라고 말했어요. 제자들에겐 큰 충격(衝擊)이었을 겁니다. 나보다 못한 나는 예수님을 2년, 3년 동안 따랐는데도 불구하고, 평범한 아이보다 못하다니 아마 자존심이 상한 말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누가 많이 배웠던 누가 많이 알고 누가 많이 가졌던 누가 많은 어떤 일을 했던 상관없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이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갖지 아니하면 결단코 너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라고 말씀하고 있죠. 그렇다면 여러분 제자들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이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은 아니었다. 라는 겁니다. 대접받기를 원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는 절대로 너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거야. 라는 경고(警告)의 메시지를 하셨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제자들이 처음부터 그랬을까요? 제자들이 처음부터 대접받길 원했을까요? 그렇진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그가 메시아인 줄 알고 나고, 그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따랐을 때는 그들의 마음이 이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이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제자들의 마음은 변화되었고, 변질되었고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3절에 그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3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8:3,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러분 돌이켜, 라는 말에 주목을 하셔야 됩니다. 이 돌이켜 라는 말은 헬라어는 ‘스프라 테페’라는 말인데 이 말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돌이켜 의 첫 번째 의미는 ‘제자리로 돌아가라.’ 라는 말입니다. I. 첫째, 제자리로 돌아가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제자들의 마음이 있었던 처음의 마음은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었는데. 시간이 흘러서 제자들의 마음이 변화되었으니 변질되었으니 다시 처음 예수님을 따랐던 처음의 그 처음 자리로 너는 돌아가라 라는 말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따랐을 땐 순수한 마음이었습니다. 뭐 대단한 걸 바란 것도 아니었고 제자라는 그 사실이 기뻤고 그가 메시아라는 것 때문에 그는 따랐던 자들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르고 예수님이 기적(奇蹟)을 봄과 동시에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면 내가 혹시 국무총리는 되지 않을까? 내가 한 자리는 차지 않을까? 더 높은 자리를 올라가고자 하는 마음에 관심이 있었다는 겁니다. 이 마음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너희들이 나를 처음 따랐던 처음 자리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시며 돌이켜, 라는 말을 쓴 것이죠. 두 번째 돌이켜 라는 말은 방향을 바꾸라는 의미입니다. II. 둘째, 방향을 바꾸라는 뜻이다. -너 이렇게 살다, 큰일 난다. 네가 가는 길은 멸망의 길이야. 너가 가야 되는 길은 생명의 길인데 그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의 길을 걸어야 된다. 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며 돌이켜, 라는 말을 썼다는 것이죠.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어린아이와 같다. 라는 말은 어린아이의 행동을 따라 라는 말은 아닐 겁니다. 여러분 아이처럼 행동해라. 아이처럼 흉내 내라. 한마디로 말하면 아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쁘죠. 주쎄요. 이런 말은 아니라는 것이죠. 뿌잉뿌잉잉.~ 이건 아니라는 겁니다. 어린아이가 되라는 말은 적극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왜 많고 많은 것 가운데 왜 어린아이가 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우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모세처럼 되어야 된다. 다윗과 같아야 된다. 다니엘과 같지 아니하면 엘리야와 같지 아니하면 느헤미야와 같지 아니하면 더 이해하기 쉬울 텐데 왜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한 말을 했을까요? 왜 어린아이를 비유했을까요? 만약에 예수님께서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을 이야기했다면, 제자들은 그냥 그 자리에서 포기했을 겁니다. 나는 안 되는구나. 나는 절대로 할 수 없구나. 나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구나. 나는 하늘의 유업을 받을 수 없구나. 내가 모세가 된다고, 내가 다윗이 된다고, 내 출신이 어떠한데? 불가능해 포기(抛棄)해버렸을 거예요. 하지만 어린아이가 되는 것은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어른이었지만 이미 어린아이의 시절을 보낸 기억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어린아이 시절을 보냈어요. 그래서 어린아이가 된다는 것이 뭔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는 너무나 평범하게 볼 수 있어서 충분히 따라 할 수 있는 시청각 자료가 될 수 있는 존재였다는 것이죠. 안타깝게도 제자들의 마음은 변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랐을 때, 그 마음은 없고 대접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변한 거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처음 가졌던 그 처음 그 초심을 우리는 지키기가 참 어려움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우리는 이렇게 말하죠. 우리가 부목사님이 새로우면 목사님 초심을 잃지 마세요. 라고 격려하기도 하고 제가 후임 목사로 부임해서 많은 성도님들이 목사님 초심 잃으시면 안 됩니다. 라고 말할 때 저도 동일하게 말합니다. 권사님, 초심 잃지 마세요. 장로님도 초심 잃지 마세요. 집사님도 초심 잃지 마세요. 순장님도 초심 잃지 마세요. 이 우리가 다시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은 목회자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여러분 가져야 될 마음이라는 것이죠. 제가 신학대학교 4학년 때, 24살 때 전도사 사육을 시작했습니다. 초등부 선생님이었다가 중고등부가 둘로 중등부, 고등부 나눠주면서 중등부 전도사를 시작을 했는데요. 그때 중등부 선생님들이 한 30명, 다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20살, 30살 많으신 분들이 선생님이었어요. 24살 된 난 아직도 결혼 안 한 총각 전도사가 이제 대학생 전도사가 했으니, 얼마나 마음이 여러분 겸손하고 얼마나 마음이 열심을 다하고 싶었을까요? 항상 교회에 제일 먼저 가서 불을 켜고 추운 겨울에는 보일러를 뜨고 또 예배가 다 끝나면 마지막까지 불을 끄고 나갔던 저였습니다. 그리고 회식이라도 하면 먼저 식당에 가서 예약(豫約)을 하고 자리를 만들어 놓고 음식(飮食)도 미리 주문해서 오시면 먹을 수 있도록 다 준비해 놓고 밖에서 기다린 다음에 들어가시면 신발도 다 이렇게 나갈 때 편하게 신으로 다 돌려놓고, 그리고 고기를 구울 때도 먼저 구워드리면서 선생님 접시에 이렇게 올려드렸습니다. 이렇게 올려드렸던 그래서 말하죠. 전도사님도 드세요. 선생님이 먹는 것만 봐도 전 배부릅니다. 라고 말해서 이거를 이렇게 제가 그랬다니깐요. 제가 그랬던 저였는데 어느 날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달라져버린 제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날도 교사 회식(會食)을 하는 날이었는데. 선생님, 저보다 나이 많으신 선생님이 다 식당에 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제일 늦게 나타나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서 제 접시에 올려놓은 고기를 올려주는데 족족 먹으면서 당연(當然)한 듯이 먹고 있는 제 모습을 봤습니다. 왜? 저렇게 이상한 눈으로 보세요. 여러분도 그렇잖아요. 어느 순간 대접받는 게 당연하고 대접받는 게 익숙해져 버린 성도들이 교역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겨준 건데, 이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변화(變化)되어 버린 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실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역시도 제자들의 이 달라진 모습 보면서, 자신을 처음 따라왔을 때 그 처음 마음이 바뀌어있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은 다시 처음처럼 되기를 원하며 너희들은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된다. 라고 오늘 본문에 말씀하고 계신 거예요.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은 어떤 신앙일까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은 어떤 의미의 신앙의 길을 걷는 것일까요? 우리 그것을 우리가 세 가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함께 나누길 원하는데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 첫 번째는 하나님 없이는 못 사는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란? ①첫째, 하나님 없이는 못사는 신앙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전적 위탁자의 삶을 살아가는 거예요. 아이들은 절대로 혼자 생활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부모의 도움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어요. 이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란, ‘나는 주님이 없으면 하루도 살지 못합니다.’ 라는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 이 사람이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죠. 여러분 인간의 모습 가운데 가장 참혹(慘酷)하고 불쌍한 모습은 에덴 동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 임(臨)재(在) 가운데서 살았던 아담과 하와가 그가 죄(罪)를 범(犯)하고 나서 하나님의 얼굴을 피(避)하여 숨었던 아담과 하와, 그 에덴 동산에 쫓겨나 있었던 하나님과 멀어져 끊겨버린 그 아담과 하와의 그 존재(存在)가 인간의 가장 참혹(慘酷)하고 처량(凄涼)한 모습이었던 것이죠. 여러분,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늘 반복적(反復的)으로 가르쳐주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은 15장 5절인데요. 우리 함께 읽어볼까요? 시작. *요한복은 15:5,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아멘 -너희는 나를 떠나선 너희가 아무리 많이 배웠고 많이 그걸 가졌다 할지라도 너희 인생의 존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nothing의 인생이다. 라고 가르쳐 주셨죠.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이것을 기억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되찾는 거예요. 길거리에, 아니 아니면 놀이동산에, 백화점에 아니면 맛있는 식당에서 부모를 잃고 우는 아이를 만날 때 여러분 그런 아이 아마 만나보셨을 겁니다. 재미있는 놀이동산에서 부모를 잃었을 때 우리는 그 아이를 보면서 지금 재미있는 놀이동산이 있잖아. 너 행복하지 않아. 라고 말할 어른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백화점에서 장난감도 많은 그곳에서 엄마를 잃고 울고 있는 아이에게 많은 장난감이 네 손에 있잖아. 행복하지 않아? 라고 질문할 부모도 없을 겁니다. 손에 맛있는 핫도그를 들고 있는 아이에게 엄마를 잃어버려서 울고 있는데, 너 그 맛있는 핫도그를 먹으면 되잖아. 행복하지 않아? 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 아이는 아무리 좋은 옷을 입었고 놀이동산에 와 있고 맛있는 것을 들고 있다 할지라도 이 아이는 지금 큰일 난 아이입니다. 왜요? 엄마 아빠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자신을 늘 지켜주는 보호자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 아이는 큰일 난 인생이에요. 이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 이런 믿음입니다. 엄마 아빠를 잃어버리면 불안하듯이 내 인생의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위기에 빠진 인생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을 느끼지 못한다면, 내가 주님과 멀어져 있다면, 불안해해야 되고 초조해야 되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먹지 않는다면 그것이 나 인생에 가장 불행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아이들은 좀 컸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부모로부터 독립하려고 하듯이 우리가 조금 신앙이 자랐다고 생각하면 마치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지 않아도 내가 얼마든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라고 착각(錯覺)하게 되죠. 그래서 여러분 청소년 아이들이 청소년기 때, 그렇게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가출해서 혼자 살아보기도 하는 그 일들을 벌이는 이유가 그 이유이기도 있게 합니다. 미국에서 이제 아이들이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갈 때, 서부에 있는 아이들은 대학을 동부로 가려고 하고, 동부에 있는 아이들은 대학을 서부로, 5시간, 6시간 비행기 타고 가야 되는 서부로 가려고 합니다. 살고 있는 동부에, 서부에 좋은 학교가 없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니라 이유는 부모로부터 가장 먼 곳의 학교를 가겠다는 거예요. 하지만 딱 가고 나서 아이들이 뭘 느끼죠? 집 나가면 고생이다. 어떻게 잘하세요? 집 나가면 고생이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영적으로 성인이 되었다고 착각하면 그때부터 내가 모든 것을 선하게 결정할 수 있고 뜻대로 살아갈 수 있고 나는 얼마든지 죄의 유혹(誘惑)을 이길 수 있다. 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지 못한 순간부터 우리는 죄의 유혹에 넘어지기 시작합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길이 아니라, 잘못된 그릇된 길에 설 가능성이 많아져요. 요셉이 죄를 이길 수 있었던 힘이 무엇입니까?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어찌 하나님께 득죄(得罪)하리이까? 그의 마음에는 그의 생각에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늘 인식하고 살았다. 라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나는 하나님 없이는 안 됩니다. 나는 하나님 없으면 나는 살지 못합니다. 라고 전적(全的) 의탁(依託)하고 사는 것, 이것이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놀면서도 항상 엄마가 있는지를 확인하며 놀아요. 열심히 친구와 놀다가도 뒤를 돌아보면서 엄마가 있는지 확인합니다. 자다가도 깨면 항상 손으로 더듬거려서 엄마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잠을 자요. 저희 아들이 잘 때 항상 엄마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그 엄마 볼 위에 손을 항상 올려놓고 잤어요. 그런데 여러분 따뜻한 손이 올려주면 얼마나 불편한지,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게 너무나 부모가 니 옆에 있다는 것을 인식할 때 편안하게 잠을 드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날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셔야 나는 삽니다. 주님이 안 계시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고백으로 사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둘째, 두 번째 어린아이 같은 신앙은 어떤 신앙일까요? 두 번째는 말씀 그대로를 믿는 신앙입니다. 여러분 아이들은 부모의 보호가 없이는 살지 못하죠.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란? ②둘째, 말씀을 그대로 믿는 신앙이다. -여러분 아이들은 부모의 보호가 없이는 살지 못하죠. 전적으로 부모의 공급과 부모의 보호(保護) 가운데 살아가야 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 부모의 보호와 공급(供給)함에 있기 위해서 아이들은 철저하게 부모의 말을 따르고 여러분 순종(順從)하죠.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지으시고 나서 아담에게 하셨던 것은 순종(順從) 훈련(訓鍊)이었어요. 너희는 생육(生育)하고 번성(繁盛)하고 땅에 충만(充滿)하고 이 땅을 다스리라는 명령에 순종을 해야 됐던 것이 여러분 아담과 하와의 사명(使命)이었습니다. 선악(善惡)을 알게 한 나무를 만들어 놓으시고, 그 모든 것은 다 이름 어때? 그 선악을 알게 한 나무는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 이유 또한 나 하나님은 창조주(創造主)고 너희는 피조물(被造物)인데 너희가 나의 이 계명을 말씀을 언약(言約)을 지켜야만 에덴 동산에서의 축복(祝福)을 누릴 수 있고 너희가 이 말씀에 순종해야만 너희는 은혜와 복 가운데 산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하나에게 세우셨다는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曠野)로 이끌 때에도 낮에는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실 때 너희가 이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따라야 된다. 이 구름 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너희가 순정으로 따를 때, 너희는 보와 은혜 가운데 살 수 있어. 라는 그 순종함을 가르쳐 주셨다라는 것이죠. 여러분,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비유하시면서 여러분 예수님은 그 어린아이의 순수(純粹)한 순종(順從)을 닮아가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왜냐면 아이들은요. 순종할 때 그 이유를 묻지 않습니다. 왜 순종해야 되는지 이게 나은지 저게 나은지 아이들은 계산하지 않아요. 아빠가 얘기이기 때문에 그냥 순종합니다. 내가 순종하면 아빠가 좋아하니깐 순종할 뿐이지, 이게 좋아 저게 좋아 판단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달라요. 어른들은 별의별 생각을 다 합니다. 이것이 나에게 이익이 될지 이것이 나에게 손해(損害)가 될지, 남들이 뭐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 내가 생각했던 것, 내가 바랐던 것과 다르면 어떻게 하지? 온갖 많은 생각을 가지고 순종을 더디 하는 것이 어른이라면, 아이들은 계산(計算)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 말에 순종하자.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1983년도에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입니다. 주일학교 예배가 마치고 나서 이제 성가대로 섬겼기 때문에 이제 1~23학년 아이들이 이제 예배 끝나고 성가 연습을 교육관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한 10시, 한 40분 정도 됐을까요? 갑자기 밖에서 전쟁이 났을 때 울리는 긴급경보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부모님들이 전쟁 났다고 허겁지겁 교육관의 아이들을 찾으러 데리러 온 거예요. 그때 아이들이 20~30명 있었거든요. 그때가 어떤 사건이냐면 북한의 이웅평 소령이 전투기를 타고 이제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넘어왔던, 여러분 그 사건 기억하실 겁니다. 그때 6.25 전쟁이 다시 터지는 줄 알고 진짜 긴급한 분위기 가운데 부모들이 교회 아이들을 찾으러 왔어요. 그때 그 모여있는 1~2,3학년 아이들이 정말 허겁지겁 얼굴이 사색이 돼서 교육관에 들어온 그 부모님들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무나 태연하게 전쟁 나서 죽어도 우리는 천국 가잖아요. 이게 아이들의 얘기였습니다. 엄마 왜 이렇게 걱정해? 우린 전쟁 나서 죽어도 우린 천국 가잖아. 그런데 계속 찬양을 했던 게 기억납니다. 아이들이 볼 때는 저런 철없는 아이들, 생각 없는 아이들 하겠지만, 이 아이들이 들었던 전도사님의 말씀, 아니 부모가 줬던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는 건 뭐예요? 아이들의 신앙이 순수하기 때문인 거예요. 말씀 그대로 믿는 거, 하지만 어른이 되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말씀을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죠. 저는 우리 사랑의 영 가족 모든 분들이 다 처음엔 이 어린아이와 같은 순종하는 사람이었음을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세요? 지금은 그때보다 성경 지식도 많아졌고, 경험도 많아졌고, 훈련도 많이 받았고, 하나님에 대한 살아계심의 경험도 더 많이 했는데도 불구하고, 힘과 권력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말씀을 말씀 그대로 받지 않고, 항상 말씀 앞에서 내 생각을 먼저 이야기하고 이것이 유익이 될지 손해가 될지를 따지고 있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셨던 것처럼 다시 너희는 처음처럼 돌아가야 된다. 주님을 만났던 그 처음,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듣겠나이다. 내가 순종하겠습니다. 했던 그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 저와 여러분에게 회복(回復)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도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치유하실 때, 그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백 부장을 보면서 내가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백 부장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주님 나도 종에게 일로 가라면 가고 절로 가라면 갑니다. 주님이 지금 이 자리에서 말씀하시면 지금 죽을 병에 걸린 내 하인이 말씀하시면 말씀하신 대로 나을 줄 믿습니다. 우리 집에 오실 필요 없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내가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였습니다. 이 이만한 믿음이 어떤 믿음이에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라는 거예요. 어제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서 토비새의 말씀을 전하시면서 참 귀한 도전의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10월 달에 ‘글로벌 특별 새벽 부흥회’를 앞두고 있고 7천 명의 한국 교류를 섬기는 우리 ‘한교섬’과 그리고 이번에 특별히 일본 목사님을 섬길 200명을 섬기는 ‘일교섬’ 세계 개혁주의 교회 목회자 지도자들을 섬기는 ‘WRF 서울 총회’를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그날에 은혜와 기적과 능력과 회복을 이미 준비하고 계시는데, 그러면 그 은혜와 기적과 능력과 회복을 받을 마음의 그릇을 우리가 준비해야 되는데,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고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는 말씀하셨다면 우리가 그 은혜와 기적을 받기 위해선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그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선 우리가 금식하며 기도하며 믿음의 그릇을 키워가야 된다. 우리는 금식할수록 내 안에 있는 불순물들, 거짓되고 의심(疑心)하고 자기 생각을 말하고 이것이 이익이 되는지 이익(利益)되는지 아느냐에 따라 판단(判斷)하고 있는 우리 안에의 불순물(不純物)들이 금식 기도하고, 제거(除去)되므로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 되어서 주님 주님이 말씀하시면 됩니다. 주님에게는 하나님께는 능치 못한 일이 없습니다. 라고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말씀을 그대로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줄 믿습니다. 아이들은 너무나 너무나 순수(純粹)해요. 그리고 그 말씀을 전적으로 따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제가 살던 미국의 집에 계단(階段)이 있었습니다. 딸아이가 4살, 5살 때였는데 첫 번째 계단에 오르면서 말합니다. 뛰어봐. 아빠가 안아줄게. 머뭇거리다 뜁니다. 그럼 저는 안아주죠. 두 번째 계단 올라갑니다. 머뭇거리다 뛰어봐. 아빠가 안아줄게. 아빠의 말을 듣고 뜁니다. 세 번째는 설명이 필요 없어요. 세 번째 계단 뜹니다. 받아줍니다. 네 번째 계단도 뜹니다. 받아줍니다. 다섯 번째 계단도 뜹니다. 받아줍니다. 아이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계단 놓는데 일단 뛸 때는 그 계단에서 뛰지 않고 저 뒤로 가가지고 달려오면서 뜁니다. 엄청 뛰면서 달려와서 아이가 팍 나르죠. 그럼 저는 받아줍니다. 아이의 머릿속에는 내가 뛰면 아빠는 받아준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아이의 머릿속에는 내가 뛰면 아빠는 슈악 하고 피할 거라는 생각이 없습니다. 받아줄 거라는 생각밖에 없어요. 이게 어린아이의 신앙이에요. 우리의 생각에 설마 응답하시겠다. 이게 아니라 반드시 주님을 응답하신다. 말씀대로 역사하신다. 나는 믿는다. 이것이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에요.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신앙을 회복해야 돼요. 아멘이십니까?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으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린아이 같은 신앙은 어떤 신앙일까요? 세 번째로, 그것은 자기를 낮추는 신앙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란? 셋째, 자기를 낮추는 신앙입니다. -우리 4절의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함께 읽어볼까요? 시작. *마태복음 18:4,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아멘. 여러분, 19세기에는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어린이의 인격은 존중(尊重)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인류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20세기의 최고의 발견은 어린이의 발견이다.’ 그 당시에 아이들은 인격체가 아니었습니다. 성인 남자만이 사람의 수로 포함되었어요. 아이들은 그 대상에서 제외되었어요. 아이들은 대접받는 대상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관심의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은 항상 어디를 가나 자기를 낮추고 낮추는 것이 운명인 존재가 아이였습니다. 이 이야기하면 한편으로 이렇게 말씀하신 분이 있습니다. 목사님, 요즘 아이들은 안 그래요. 요즘 아이들은 부모 머리, 어른 머리 꼭대기에 서 있습니다. 말할 때 예 맞습니다. 그런 아이들은 치유(治癒)가 필요한 아이들이고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아이는 진짜 자기를 낮추는 아이를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선생님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처럼 너희가 너희 스스로를 낮추지 아니하면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없다. 이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베드로 전설 5장, 5장 말씀인데 우리 함께 읽어볼까요? 시작. *베드로전서 5:5,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니라 아멘, -뭘 말하고 있습니까? 예수님 하나님은 교만(驕慢)한 자를 대적(對敵)하시고 자기 스스로 낮추는 자에게 그 인생은 평생 하나님의 은혜(恩惠)가 떠나지 않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사랑의 교회 성도님 안 그렇지만 주변에 보면 목이 곧은 성도가 있습니다. 그냥 자기를 낮추는 것을 자존심 상했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권리(權利)만 주장(主張)합니다. 그렇다면 그 인생은 하나님이 떠나는 인생인데 자기를 낮추고 낮추고 낮추는 자는 평생의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지 않는 자가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되는 어린아이 신앙이 되어야 됨을 예수님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압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사신 분이 있는데, 그분이 누구냐면 예수님이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은요. 하나님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늘 하나님과 늘 함께하기를 구하셨고, 늘 하나님께 기도했으며, 늘 어려운 어떤 힘듦이 있을 때마다 죽게 나와서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을 구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늘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조건 순종(順從)했습니다. 주여, 하나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는 순종하신 분입니다. 또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낮아지고 낮아지신 겸손의 왕이 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우리들에게, 너희가 나처럼 돼라. 예수님처럼 되라고 하면 저는 예수님처럼 못 살아요. 라고 말하겠지만,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걸으셨던 분이세요. 그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어린아이처럼 돼라. 어린아이 신앙이 될 수 있다. 왜? 우리가 그 어린아이 시절을 보냈고. 우리가 그런 과거가 있고, 우리가 충분히 그와 같이 예수님처럼 살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기 위해서 어린아이 같은 신앙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우린 돌이키면 됩니다. 주님 말씀하신 것처럼 다시 어린아이 같은 신앙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게 되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예수님께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라 말씀하십니다. 다시 어린아이의 신앙으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나는 나를 낮춤으로 내 평생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지 않는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우리를 떠나지 않는 그런 하나님의 백성으로 서게 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순수한 믿음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자가 되게 하시고,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게 하시며 늘 우리를 낮추어 평생 은혜 속에 거하는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은혜와 능력이 날마다 경험 되게 하여 주시고, 어린아이 같은 믿음으로 끝까지 주님을 따라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교회 기도문 1주여! 대접받기 좋아하는 마음이 커질 때마다 '돌이켜" 어린아이처럼 되게 하사 "주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고백하며 '나의 그물을 내려놓았던 그 처음 자리'로 돌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2 주여! 이유를 물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게' 하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생육-번성-충만의 은혜'를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3 사랑의교회가 검손하게 금식하며 제24차 가을 특새로 달려와 엎드려 간구활 때. 제5회 한교섬/일교섬과 세계개혁주의협의회(WRF) 서울총회를 통해 대한민국과 세계교회가 '강력한 은혜와 회복과 능력과 기적'을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요약 -제자들이 천국에서 누가 더 큰지를 두고 다툴 때,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세우시고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경고하셨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란, 첫째,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어 모든 것을 전적으로 맡기는 신앙이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계산 없이 순종하는 신앙이다. 셋째,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한 신앙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자기를 낮추고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때,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임한다.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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