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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8월 23일) 제목: 은혜를 계속 누리려면(To Keep Enjoying God’s Grace)" 말씀: 여호수아 17:14~18 찬양인도: 쉐키나(이동선 부목사님), 시온찬양대(4부) 대표기도: 이창희 안수집사님 설교자: 윤대혁 후임목사님 ----- *여호수아 17:14~18, 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1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16 요셉 자손이 이르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나안 족속에게는 벧 스안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 하니. 17 여호수아가 다시 요셉의 족속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18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였더라. ----- ▶젊은 세대들이 부르는 찬양 가운데 아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이런 가사를 갖고 있는 찬양이 있습니다. ‘같은 길에서 다른 계절을 들을 만난다’. 이 노래 아시나요? 같은 길에서 다른 계절을 만나고,,, 유튜브 찾아보시면 되겠습니다. ♬~같은 길에서 다른 계절을 만나고 기쁨 슬픔 반복되는 모든 시간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네!!~~♪ -이 노래는 찬양에 가사는 참 많은 인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8월 23일 같은 시간대에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같은 사건과 같은 문제를 만나도 사람마다 느껴지는 계절은 다르다는 것이죠. 같은 길을 걸어도, 어떤 사람은 너무나 싸늘한 메마른 가지에 추운 겨울의 길을 걷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따뜻한 열매 맺는 풍성한 계절을 맞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와 평강 가운데 잘 살다가 우리 인생에 문제와 어려움이 생기면 그때 어떤 사람은 은혜를 극대화(極大化)해서 그것을 승리(勝利)로 바꿔 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그 문제 앞에서 자신의 은혜가 너무나 무기력하고 힘이 없어 실패(失敗)와 낙심(落心)과 절망(絶望)에 가는 사람들도 있죠. 여러분은 어느 편에 속한 사람입니까? 여러분들 은혜를 극대화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은혜를 무력화(無力化)하는 사람인가요? 여러분 어디에 속한 사람입니까? 아마 둘 중에 한 편에는 속할 거라고 생각되는데 오늘 여호수와 17장 본문에 은혜를 너무나 무력하게 시켰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 사람은 요셉 자손들이었습니다. 요셉 민족이었어요. 왜 이들이 이렇게 은혜를 무력하게 되었을까요? 오늘 부문의 배경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40년의 광야 생활을 하고 나서 이들이 이제 하나의 약속의 땅 요단강을 건너서 약속의 땅을 넘어갑니다. 이제는 가나안 족속들과 전쟁을 하다가 이제는 땅을 12지파에 나누고 어디에 정착해서, 어디를 정복해야 될 건지를 제비를 뽑기를 통해서 결정하게 되죠. 제비를 뽑는다는 말은 인간의 의지와 생각과 플랜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섭립 가운데 순종(順從)하겠다는 마음으로 제비를 뽑아 어디에 어느 지파(支派)가 어디에 어느 자손이 그 땅을 정복하고 다스릴지를 정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모든 지파들은 다 만족하고 모든 지파들은 다 믿음으로 반응(反應)했지만, 오직 한 지파만은 한 자손만은 이것은 말도 안 됩니다. 라고 불평의 소리를 내는 지파가 있었는데, 그 지파가 바로 요셉 지파였습니다. 오늘 14절 말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수아 17:14~18, 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뭐라고 말하고 있냐면 우리는 큰 민족이 되었다. 크게 되었다. 사람이 많아서 인구가 많았으니 더 넓게 넓은 땅을 더 많은 땅을 우리에게 줘야 되는데, 왜 우리에게 한 땅밖에 주지 않느냐 제비뽑기를 두 개가 아니라 우리 요셉 지파는 이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로 합쳐진 두 지파가 합쳐진 건데, 왜 우리에게는 한 분깃만 주냐, 라고 컴플레인을 하고 있는 상황(狀況)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이들이 큰 민족이 됐을 때, 이들이 왜 어떻게 큰 민족이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 14절 이렇게 말합니다. 한 번 더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수아 17: 14 14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자, 요셉 자손이 큰 민족이 됐던 것은 누구 때문이었어요?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큰 민족을 주셨습니다. 이거 좋은 일입니다. 잘 된 겁니다. 연약(軟弱)한 자손들이었는데. 자신의 노력과 실력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넘치는 은혜와 복을 주셔서 큰 민족이 되었다는 것은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자랑할 만한 사건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큰 민족이 되어서 우리가 땅을 적게 받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그 불평(不評)의 말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보면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정말 불편할 만한 일인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사실 보면 요단강에서 동편에서 서편으로 넘어올 때요. 이미 세 지파가 요당 동편의 땅을 물려받았습니다. 이들은 전쟁도 하지 않고 이미 정복(征服)된 땅, 싸움도 필요 없는 좋은 땅을 받았어요. 그 좋은 땅을 배분받았던 사람이 누구냐면 바로 요셉 지파 중의 하나였던 므낫세 지파가 그 넓은 땅을 갖습니다. 그러면 요단강을 건너와서 땅을 분배(分配)해야 되는데 그럼 누구만 챙겨주면 돼요? 에브라임만 챙겨주면 됩니다. 에브라임에게는 몇 땅이 필요한 거예요? 땅 하나만 필요하면 됩니다. 한 분깃을 뽑으면 돼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큰 민족이 되었는데 왜 당신은 나를 우리를 이렇게 도와주지 않냐? 라고 불평하고 있는 걸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살면서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내 삶에 어떤 문제와 어려움 앞에서 우리가 쉽게 불평하고 쉽게 내 마음의 어려움을 불만스럽게 말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불평이라는 것은 너무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불평을 하기 시작하면 불평한 순간부터 우리들 마음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는 것을 보게 돼요. 여러분의 삶 가운데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나의 삶은 하나님께서 받은 은혜, 정말 주님께 주신 내게 주신 은혜를 우리는 끝까지 그 은혜를 누리고 있는가? 혹시 요셉 자손들처럼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서 큰 지파가 되었다고 하지만 어느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받은 은혜가 온데간데없이 나에겐 은혜가 없어. 라고 말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지 않나? 우리가 모를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받은 은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를 나는 평생의 은혜로 잊지 않는, 잃지 않는 평생의 은혜로, 우리는 살아갈까를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계속 우리가 누리기 위해서 우리가 생각해야 될 세 가지를 오늘 본문에서 보게 됩니다. 우리가 평생의 은혜를 살기 위해서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첫 번째는 무엇이냐면 우리들의 삶에 이제는 불평을 멈추셔야 됩니다. ◎평생의 은혜를 계속 누리려면, I. 첫째, "불평"을 멈추어야 합니다 -여러분 불평을 하기 시작하면 불평은 불평으로 끝나지 않아요. 불평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다 부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불평하기 시작하면 내게 받은 은혜는 온데간데없고 없는 것만 보며 살아가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감사의 문으로 들어왔다가 불평의 문으로 빠져나간다는 말이죠. 자,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에 계속해서 충만 하려면 우리는 감사하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봐야 되는데 어느 순간 불평하기 시작하면 내 삶에 있었던 은혜가 불평의 문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불평한다는 것 자체는 우리의 삶에 은혜가 메말라 가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면 우리는 그 문제를 이기고 승리(勝利)하시는 자가 됨을 믿습니다. 이런 말이 있어요. 인생에는 두 종류의 인생이 있습니다. 지난주까지 8월 15일에는 저는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으로 분류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청계산 산상 기도회에 올라간 사람과, 올라가지 않는 사람으로 구분된다고 했는데 그날은 지나갔으니까 다시 얘기하면 여러분 모든 사람은 문제를 다 만나요. 문제 없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만날 때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①문제 앞에 넘어지는 사람이 있고, ②문제를 넘어서는 사람만 있는 것뿐입니다. 문제는 다 만나요. 문제 없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마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사람은 어떤 문제를 만나도 그 문제를 넘어서죠. 하지만 은혜가 메마른 사람은 작은 문제를 만나도 그 문제 앞에 넘어질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의 삶이 날마다 날마다 문제 앞에서 어떤 환경(環境)과 상황(狀況)이든지 간에 영적(靈的)인 승리(勝利), 영적인 기쁨, 영적인 만족(滿足), 하나님의 영감(靈感) 가운데 복(福)되고 아름답게 살기 위해선 우리의 삶에 은혜가 절대 말라선 안 된다는 거예요. 오늘의 은혜가 우리의 평생의 은혜가 돼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 불평을 일단 멈추셔야 합니다. ※저의 삶 가운데 제가 대학부 사역을 한 적이 있었어요.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남자 선생님을 사역하면서 대학부 사역을 했는데 대학부 아이들의 선교를 떠났습니다. 대학부까지 1달 동안 가는 선교였는데 브라질 팀으로 선교팀을 보냈어요. 한 12명 정도가 간 것 같아요. 그런데 한 달 정도니까 저는 한 달 다 있지 못해서 2주만 하려고 2주 후에 저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상파울루로 떠났습니다. 무려 14시간 비행기를 타고 상파울루에 도착했어요. 선교를 하는 현장은 그 상파울루에서 여러분 차로 직행버스로 한 10시간 정도 가야 되는 그런 거리인데 저를 마중 나오신 현지 우리 한인 목사님이 저를 이제 가면서 티켓을 빨리빨리 구입해야 되는데 미처 못 구입해가지고 직행버스가 아니라 이렇게 순환버스, 18시간 걸리는 직행버스는 누워서 가는 버스인데 이 순환버스는 15도밖에 기울어지지 않은 이렇게 솟구쳐서 가는 그런 버스를 타고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면서 우리 목사님 너무나 미안했던 게 계속해서 저한테 목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이거를 확인하지 못하고 예약을 못 해서 목사님 오셨는데 피곤하신데, 저희가 이렇게 10시간에 갈 만한 거리를 18시간이 걸려 너무 죄송합니다. 계속 이러시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늘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일부러 그러신 것도 아닌데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일부러 그럴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요즘에 최근에 들어서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이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아 이거 이게 10시간 밖에 이제 18시간 걸리지만 온 구석을 다니면서 또 가다가 산사태가 나고 빛 때문에 산사태가 나 가지고 나무가 쓰러져 있고, 무려 차에서 4시간 동안 기다렸던 시간도 있었거든요. 목사님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연, 브라질의 아름다운 자연(自然) 만물(萬物)을 보게 하시려고 이곳저곳 두르면서 이렇게 못 가게 하시고 이곳저곳 두르면서 가셔서 이 브라질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게 하셔서요.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 목사님과 좋은 대화도 나누고 또 휴게실에서 브라질에 대한 바비큐도 먹고 얼마나 18시간이 하나님께 저에게 주신 선물과 같은 시간입니다. 라고 제가 말씀을 드렸어요. 잘했죠. 진짜 잘했어요. 그런데 그 목사님이 만약에 죄송합니다. 목사님 제가 미리 끊었어야 됐는데 피곤하게, 그런데 제가 그런 질문하고 그런 대답해 그러게요. 하고, 목사님이 이렇게 일찍 끊었으면 이런 고생 안 하잖아요. 선교도 시작 안 했는데 지금 피곤해 죽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만약에 그런 불만과 불평을 토했으면 저는 18시간 그 내내 입이 이만큼 나와서 브라질의 아름다운 자연은 하나도 눈에 안 들어왔을 겁니다. 이 인간이 왜 그랬을까? 인간이 대체 무슨 억하심정으로 아마 그 생각을 하면서 왔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여러분, 우리가 불만과 불평을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해 놓으신 정말 아름답게 펼쳐놓으신 그 좋은 것들이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가 계속해서 은혜를 누리기 위해선 우리는 불평의 입술을 닫으셔야 돼요. 그리고요. 14시간 비행기 탔죠. 그리고 18시간 거리인데 4시간 더 추가돼서 38시간 만에 선교 현장에서 도착했습니다. 선교사님이 저를 보고 미안했던지 아마 피곤이 떨어지셨겠죠. 미안했더니, 보자마자 이렇게 말한 거랍니다. 목사님, 목사님 오시기 전까지 어제까지 비 내리고 바람 불고 추워서 사연을 제대로 할 수 없었는데, 목사님이 딱 오니까 비가 안 오고 날씨가 개이고 선도하기에 너무나 좋은 날씨가 되었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우리에게 선물로 보내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제가 선교사님 그게 말이 돼요. 말이 안 돼요. 그냥 비가 그칠 때니까 그쳤고 좋은 날이 됐겠죠. 이게 말이 됩니다. 내가 왔다고 바꿨겠어요? 이렇게 말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냐구요. 그런데 우리들에게도 이런 사람이 있다. 없다. 있습니다. 좋은 얘기를 해줘도 좋은 얘기 못 받아요. 설마 그랬겠어? 어떤 분이요? 저희가 의료 사역을 하는데 이분이 카이로프로텍인 척추 교정을 하시는 분입니다. 어떤 분이 6개월 동안 팔도 안 올라가고 힘들었다가 교회에서 의료봉사하는데 그 집사님에게 치료를 받았어요. 교회에서,,,. 한 두 번 받았나? 두 번 받았는데 두 번 받았는데 이분이 6개월 동안 치료되지 않았던 팔과 어깨가 다 나은 거예요. 그걸 집사님 찾아가. 집사님 제가 어디 가도 낫지 않다가 집사님한테 척추치료 두 번 맞고 다 나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카이로프라텍 그 치료사 선생님이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이 주변에서 보게 됩니다. 선교사님이 이제 목사님이 오셔서 선물같이 날씨가 개었습니다. 할 때, 제가 뭐라고 그랬냐면 어떻게 아셨냐고,,, 저는 가끔 가는 곳곳마다 모든 게 잘 풀리고 신기하게 저는 밥 먹으러 식당을 가자마자 문전성시를 되고, 제 뒤에 손님이 그리고 줄줄이 섭니다. 성도님들의 비즈니스만 가도 제가 심방(尋訪)을 하고 나면 손님들이 많아져 그 집사님의 장사가 최고치로 잘 되게 해요. 저는 그런 사람이에요. 이렇게 말하면요. 그 은혜가 나에게 멈추지 않고 흘러오는 겁니다. 불평하지 않고,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를 믿습니다. 그런 은혜가 내 삶에 떠나지 않습니다. 나는 그런 은혜가 필요해, 이렇게 나아가면 내 삶의 은혜는 평생 은혜의 삶으로 살게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 삶에 많은 일들이 있어요.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많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평생 은혜로 살 수 있는 그 이유는 어떤 형편(形便)과 환경에서도 우리는 불평하지 않아야 되는 거예요. 불평하면 내게 하나에게도 주신 은혜가 내 삶에서 흔적(痕迹) 없이 사라집니다. 하지만 그 환경 가운데서 믿음을 심고 은혜를 소망하고 그런 은혜가 있을 거라고 믿고 나아가면 내 삶에 평생, 평생의 은혜가 멈추지 않고 저와 여러분 가운데 펼쳐지게 될 줄 믿습니다.두 번째는 어떻게 해야 우리들의 삶에 은혜가 계속 누려질 수 있는 걸까요? 평생을 살게 될까요? 첫 번째는 불평을 멈춰야 됩니다. 두 번째는 남 탓을 멈추셔야 됩니다. ◎ 은혜를 계속 누리려면, II. 둘째, "남 탓"을 멈추어야 합니다 -자 14절 말씀을 이제 한 번 더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수아 17:14, 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자, 뭘 말하고 있어요? 인정하는 곳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복을 주셔서 큰 민족이 되었다. 이건 감사할 일이죠. 그런데 그 후반부에 뭐라고 말하죠? 당신이? 당신만 아니었으면 당신이 한 분깃이 아니라, 두 분깃만 줬어도 이런 일은 생기지 않잖아요. 다 당신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당신 때문입니다. 모든 문제의 탓을 누구에게 전환하고 있어요? 여호수아에게 전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여러분 어느 지파 사람이게요? 아 퀴즈,,, 자 여호수아는 열두 지파 가운데 어느 지파 사람이게요? 에브라임 지파 사람, 이 말은 뭐예요? 당시 에브라인 지파 사람이잖아요. 우리가 지금 에브라임 요셉 지파가 에브라임 지파와 당신 이런 법이 어딨어? 같은 형제 아니야? 누구보다 우리 상황을 잘 알잖아. 그러면 같은 편이면 같은 지역구면 같은 형제면 우리를 더 신경 써줘야지. 그런 법이 어딨어? 이거 다 당신 때문에 우리가 어려워진 거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뭘 잃어버린 거예요? 자신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으로 큰 지파가 되었다는 것을 까먹게 된 거예요. 뭐 때문에? 남을 탓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남을 탓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우리의 삶에 은혜가 기억되지 않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남을 탓하는 게 영적으로 위험한 거냐면 남을 탓한다는 것은 이 사람 때문에 내가 안 됐습니다. 이 사람 때문에 내 인생이 막혔습니다. 이 사람 때문에 되는 일이 없습니다. 라는 그 말을 나의 인생의 이유와 목적과 주도권을 누구에게 넘겨주는 거예요? 그 사람에게 넘겨줍니다. 자, 그 사람 때문에 이렇게 됐어 라고 말하는 것은 내 인생이 그 사람에게 종속(從屬)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내 인생의 주도권(主導權)이 누구에게 있다는 거예요? 내가 원망하고 탓하는 그 사람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우리의 주도권이 누가? 우리의 주도권을 누가 갖고 계세요? 하나님이 갖고 계십니다. 우리의 주인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남을 탓할 때마다 우리는 나의 인생의 주권자는 하나님이 아니고, 바로 저 사람이야 라는 그 잘못된 길에 서게 된다는 것이죠.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돼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의 주권자가 되시고, 인도자가 되시고, 주도권이 되시기 때문에 그가 나를 방해한다 할지라도 그가 나를 막는다 할지라도 그가 나를 괴롭힌다 할지라도 절대로 너는 나의 가는 길을 막지 못해. 이 고백이 되어야 된다는 거죠. 이 사람 때문이야. 저 사람 때문에 얘기할 때마다 우리는 점점 하나님이 나 인생의 주도권이 아니고, 주권자가 아니고 저 사람이 내 인생에 목숨줄을 갖고 있다. 라고 착각(錯覺)하며 산다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남 탓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난주에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서 해방(解放) 선언(宣言)이라는 말씀을 기억하시죠? 해방 선언 하시면서 이런 얘기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 하심이 우리들의 인생에 운전대를 하나님께 넘겨야 된다고 말씀하시면 이런 질문을 하셨어요.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 하심이, 테슬라의 자율주행보다 못합니까? 뭐라고 답해야죠?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기도 하시니 테슬라의 자율주행보다 못합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세상에 어떤 권력자와 힘이 있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많은 것을 갖고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이끄심보다 하나님이 인도하심보다 여러분 더 좋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끌다 말씀하시면 하나님께서 책임자라고 하시면 누구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막을 자가 있다. 없다. 없다. 탓을 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그 사람의 손에서 지금 다스림을 받고 있다. 라고 나 스스로를 잘못 고백합니다. 그래서 은혜의 다스림을 받기 위해서는 탓을 하지 말으셔야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이끄심을 인정하며 여러분 살아가야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더래도 당신 때문이야, 라고 말했던 이웃의 자손들에게 여러분 15절에 여호수아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여호수아 17: 15, 1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다 똑같은 말을 하고 있어요. 요셉 자손들도 우리가 큰 민족이 되었다고 말하고, 여호수아도 너가 큰 민족이 되었다고 말해요. 똑같은 큰 민족이 되는 거야. 그런데 관점이 달라요. 요셉 자손들은 큰 민족이 되어서 땅이 좁습니다. 여호수아는 너희가 큰 민족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힘이 있으니까 다른 족속들을 다 물리치고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해라, 개척하라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힘이 있으니까 능력이 있으니까 그게 이 땅 부족하지, 열심히 해봐. 해봐 그러면 그 땅을 더 많이 차지할 거예요. 만약에 이 요셉 자손들이 끝까지 여호수아를 탓했다면, 다른 족속에 있는 산림의 나무 하나로도 베지 못했을 겁니다. 남 탓을 하지 않고 그 다음에 내용에 보면 그들이 정신 차렸고 하나님께서 감당할 수 있는 큰 민족이 되게 하셨지. 남 탓하지 않고 하나님을 다스림을 믿고 나아갔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는 것이죠. 사랑의 영가족.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남 탓하지 마세요. 여러분 우리가 탓하는 남보다 더 위대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내 인생을 막고 있는 여러분 직장의 과장, 부장 또 누구 회장 누구 얘기하세요? 저한테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르겠어요. 누구 누구 누구예요? 저한테 고자질 하세요. 그저 누구든지 간에 하나님이 이길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이길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 계속 이끄신다면 우리 은혜의 자신 가운데 살게 되는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일까요? 자, 퀴즈, 첫 번째 뭘 멈춰라? 병을 멈춰라. 두 번째 남 탓을 멈춰라. 하니까 어떤 형제님이 왼쪽에 자매님들 꾹꾹 찌르고 있어요. 이렇게 해서 니 얘기하는 거보다 니 얘기 세 번째는 무엇이냐면 세 번째는 자막을 띄워주실까요? 포기하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 평생 은혜를 계속 누리려면, III. 셋째, "포기(抛棄)하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자 오늘 말씀 16절의 말씀을 보면, 요셉 자손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읽어볼까요? 시작. *여호수아 17:16, 16 요셉 자손이 이르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나안 족속에게는 벨 스안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 하니. -이 말씀의 뉘앙스가 어때요? 거기에는 땅도 넘는 하지 못하고 다 골짜기고 뿐만 아니라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무기가 다 철기문화입니다. 우린 청동기인데 다 철기문화를 갖고 있어서 그 다음 말이 뭐예요? 우리는 못합니다. 올라갈 수 없습니다. 올라가 봤자 패합니다. 올라가자마자 우리는 죽을 겁니다. 우린 땅, 어떤 땅도 차지하지 못할 겁니다. 안 됩니다. 못합니다. 우리는 끝났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거죠. 포기해 버렸습니다. 우리가 문제 앞에서 쉽게 내가 능력도 안 되고 실력도 안 돼서는 어느 순간 문제 앞에서 우리가 쉽게 포기하며 하나님의 은혜마저도 사라져 버릴 때가 있어요. 하지만 절대로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거, 하나님께서 책임도 진다는 그 약속의 말씀을 절대로 절대로 우리는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죠. 성경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날마다 날마다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우리에게도 있어요. 오늘 읽었던 여호수아도 동일하게 그 18절의 말씀에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읽고 17절, 1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수아 17:17~18, ...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 -여호수아가 뭘 말하고 있는 거에요? 너는 큰 민족이다. 그리고 큰 권능이 너에게 있다. 하나님께서 복 주셔서 큰 민족이 되었고, 너희에게 뭐가 있다? 큰 권능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큰 권능은 무엇일까요? 너희에게 하나님이 계신다, 도와주신 하나님이 계신다, 지켜주신 하나님이 계신다. 가장 능력 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너희 안에 있으니, 너희가 올라가기만 하면 그 땅이 너희 것이 될 것이다. 약속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약속은 요셉 자손만 받은 것이 아니고 우리도 받은 약속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하시니라.” 아멘, “너를 두려워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걱정도 하지 말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리라.” 말씀하신 약속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성경의 내용을 보면 수많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어요. 놀라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걱정하지 말라. 내가 너를 붙잡아주리라. 내가 너를 승리케 하리라. 내가 너를 사용하리라. 내가 너를 통해서 많은 역사와 영광을 행해주리라. 이런 약속으로 가득합니다. 성경에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에게, 정말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넌 안 돼. 넌 못해. 해봤자 소용없어. 다 필요하지 않을 거야.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세요? 주님은 우리가 뭘 말씀하시냐면 두려워하지 말아라.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거야. 떠나지 않을 거야. 그러니 너는 반드시 나보다 더 큰 일을 행하리라. 너는 반드시 나의 큰 영광을 보게 되리라. 주님은 날마다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포기(抛棄)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주님께서 행하실 일들을 사모하면서 그 은혜를 사모(思慕)하고 그 은혜를 바라보며 이웃이 하나님 앞에 우리 날마다 포기하지 않고 오늘도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전진하며 살아간다면, 오늘의 은혜가 우리에게 평생의 은혜의 삶으로 저와 여러분의 삶이 펼쳐지게 될 듯 믿습니다. 저는 이 은혜에 대한 이야기, 포기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면 생각나는 사건이 있습니다. 제가 2003년도에 강도사 고시를 갔습니다. 2003년도 1월달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강도사 고시를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한 제일 첫 번째 시험인 강도사 고시를 보는데, 강도사 고시는 1년에 한 번 봅니다. 그리고 그에 떨어지면 그다음에 봐야 되거든요. 1년에 재수를 해야 되는 거예요. 많은 전도사님들이 강도사 구시를 보러 갈 때, 그 교회 담임 목사님들이 항상 이런 얘기를 전도사님들에게 격려하죠. 아 전도사님 많이 부담 갖지 마세요. 편하게 시험 보세요. 그런데 우리 교회는 지난 역사 가운데 전도사님이 강도사 고시를 떨어져 본 적이 없어요. 부담 갖지 마시고 그냥 편하게 보세요. 그런데 기억하셔야 될 것은 한 번도 떨어져 본 사람이 없어요. 이런 얘기를 하시는 게 대부분인데 그렇다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강도사 고시를 봅니다. 숭실대 신대원의 교실에 들어가서 이렇게 공부 열심히 한 거를 문제를 푸는데, 그때 고시부 목사님, 시험 감독관인 목사님이 이 시험을 치고 있는 전도사님들에게 하셨던 말씀이 너무나 제 마음의 기억남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전도사님들, 오늘 시험 문제지 모르는 문제 있잖아요. 모르는 문제 있지만 그 빈 란을 냅두시면 안 됩니다. 무조건 채우세요. 아는 건 어제 배운 건 무조건 적으세요. 문제와 답과 달라지고 하나님, 예수님, 화이팅 뭐든지 간에 아무튼 적으세요. 무조건 적으세요. 아는 거 적으세요. 어제 배운 거 아무것도 뭐든 적으세요? 무조건 적으십시오. 빈 란으로 드리면, 점수 못 드립니다. 그런데 채워져 있으면 은혜 점수가 임합니다. 은혜 점수가 임합니다. 그 문제와 상관없이 뭐든 채우면 뭐 하나 걸리는 거 있지 않겠습니까? 애국가를 적지 않는 이상, 가요를 적지 않는 이상,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파이팅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뭐라고 적으면 뭐라도 은혜 점수가 있을 겁니다. 은혜 점수가 있습니다. 은혜 점수가 있습니다. 빈 란으로 제출하지 마세요. 반드시 꽉꽉 채우십시오. 이 얘기를 줬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나는 건 뭐냐면 이게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 같은 거예요. 우리에게 주님께서 자, 은혜 점수가 있을 거다. 너 실력이 없고 능력이 없고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내가 대체 뭘 할 수 있을까요? 내가 대체 뭘 잘할 수 있을까요? 막막한 가운데서도 우리가 믿음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하루하루 주님을 바라보고 살아가면 뭐가 있나요? 은혜 점수가 이 말입니다. 포기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너에게 은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면 그 은혜를 줄 수가 없는 거에요. 빈 란으로 제출하면 주고 싶은 점수를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뭐라도 적은 거예요? 포기 안하고 낑낑대면 뭐라도 하나님 은혜가 있는 줄 믿습니다. 심지어 어떤 일이 있었냐면 어떤 정상이 사지선답 이었는데 이렇게 시험을 하다가 목사님이 보시고 딱딱 보셨던 하면서 틀렸다. 틀렸어요. 뭐라도 낑낑대면 은혜 점수가 되는 거야. 하지만 포기하면 nothing~~!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 거 아니에요.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아가면서 참 많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해요. 그런데 그때 아 몰라, 될 때도 돼. 몰라. 몰라 이러면 하나님께서 주고 싶은데 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힘도 능력도 없는데 믿음으로 생각해요. 어떻게든 버텨볼게요. 죽을 것 같은데, 어떻게든 내가 살아내 볼게요 하면 하나님께서 살아내게 하실 줄 믿습니다. 승리케 하실 때가 있는 거예요. 요즘에 우리 젊은 세대들이 꿈꾸기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여러분 그래도 선배로서 다행입니다. 아빠 세대라고 안 했다는 건데 선배로서 여러분 너무 미안한 일이죠. 저희는 부모님들에게 참 좋은 시절을 물려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여러분에겐 제가 받았던 좋은 시절을 못 물렸을 거예요. 되게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 우리의 삶에 꿈이 없는 건 아닙니다. 희망을 꿈꾸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왜냐면, 저보다 아무리 좋은 선배보다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심을 믿습니다. 세상은 소망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소망 있다. 라고 말합니다. 왜요? 너가 살아있는 한 소망입니다. 여러분, 많은 젊은 손님이 힘들고 어려운 줄 압니다. 무엇을 해야 될지 어떤 직장을 가져야 될지, 하지만 그때마다 정말 포기하지 말고 주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내가 알았기에 그 내가 내 평생의 떠나지 않음을 믿고 자리를 지키고, 기도의 자리를 지키고, 말씀의 자리를 지키고 그리고 작은 거 하나에도 내가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고 주의 은혜를 구하고 가다 보면 그 길에 하나님의 은혜의 장비가 내 삶 가운데 촉촉히 적셔져 있었어요. 메마른 길이 아니라, 푸르른 길을 걷게 하시면 열매의 길을 걷게 하시면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계절의 길을 걷게 하시는 이가 저 여러분에게 반드시 있을 줄 믿습니다. 사랑의 영가족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은혜를 계속 누릴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평생 은혜로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에 우리는 불평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의 다스림이 있기에 우린 안 탓하지 않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에 우린 포기하지 않는 겁니다. 그럴 때마다 저 여러분의 삶을 평생의 은혜 일상으로 저 여러분의 삶을 이끌고 인도하여 드실 줄 믿습니다. 그런 후 옆에 분에게 이렇게 인사했으면 좋겠습니다. 평생의 은혜로 삽시다! 라고 인사해 볼까요? 평생의 은혜로 삽시다. ♣요약 인생의 어려운 문제 앞에 서 있을 때, 은혜를 극대화하여 승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은혜를 무력화시켜 절망에 빠지는 사람이 있음을 지적한다. 여호수아 17장의 요셉 자손은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큰 민족이 되었음에도 한 제비, 한 분깃만 주었다며 불평을 터뜨려 은혜를 무력화시켰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평생 잃지 않고 계속 누리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를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 첫째, 불평을 멈추어야 한다. 은혜는 감사의 문으로 들어왔다가 불평의 문으로 빠져나간다. 불평하기 시작하면 은혜는 메마르고 문제 앞에 쉽게 무너진다.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을 입 밖에 내지 않고 감사를 선택할 때, 은혜가 삶에서 떠나지 않는다. 둘째, 남 탓을 멈추어야 한다. 요셉 자손은 어려움의 원인을 여호수아 탓으로 돌렸다. 남을 탓하는 순간 인생의 주도권을 그 사람에게 넘겨주게 되며, 이는 내 삶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다스림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어떠한 방해 속에서도 하나님이 내 삶의 주도권을 쥐고 계심을 인정하며 남 탓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셋째, 포기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요셉 자손은 상대의 철 병거를 보고 미리 패배를 선언하며 포기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신 권능으로 함께하시며 끝까지 개척하라고 약속하신다. 시험지에 아는 내용이라도 꽉 채워 제출할 때 은혜 점수가 임하듯,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믿음으로 자리를 지키며 포기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평생의 은혜로 삶을 이끌어 주심을 확신한다. ![]() ![]() ![]()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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