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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9월 6일) 제목: “다시 열정으로(A Return to Passion” 말씀: 사도행전 20:24 찬양인도: 쉐키나(이동선 부목사님), 시온찬양대(4부) 대표기도: 조덕현 안수집사님(4부) 사회: 임상규 부목사님(4부), 임병영(1부), 이기호(2부), 장단희(3부) 부목사님. 설교자: 윤대혁 후임목사님 ----- *사도행전 20:24,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 ▶할렐루야!!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옆에 분과 인사하시죠. 평안하셨습니까? 인사하겠습니다. 평안하셨습니까? 평안하셨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은 누구신가? 라는 그 질문 앞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우리는 자주 얘기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신음하는 우리의 기도 소리에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많은 하나님의 좋은 선하신 그 이름을 우린 이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입에 잘 달라붙지 않은 또 다른 하나님에 기억해야 될 성품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열정의 하나님이다’ 라는 겁니다. 이사야서 9장 7절의 말씀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함께 읽겠습니다. *이사야 9:7,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하나님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시는 열정의 하나님이죠. 그래서 하나님 우리를 향하여서 하나님께서는 주무시지도 않고 쉬지도 않으신다. 라는 그 열심의 열정의 하나님임을 우리 가운데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성경에 보면은 하나님의 열정의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지 창조할 때에도 6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에는 인간을 손으로 직접 부으셔서 생기를 불어 넣으신 다음에 아담이라 하셨던 하나님의 열정의 창조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원치도 않았어요. 달라고 하지도 않았지만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여서 원하지도 않았는데 사랑하는 아내 하와를 주셨던 하나님의 열정이 창세기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을 보여 주시며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너희 자손 이렇게 많게 할 것이고, 그 약속을 이루어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거라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광야에서도 40년의 시간 동안 하나님은 만남을 보내 주셔서 굶지도 않게 하시고 배고프지도 않게 하셨던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의 열정이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이 땅에 보내셔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이루시는 열정이 있었죠. 그래서 성경에는 하나님의 열정, 열심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났던 모든 사람들은 열정의 하나님을 만났기에 열정의 삶을 또한 살아갑니다. 그래서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예수를 만난 순간부터 하나님 만난 순간부터 내 마음 안에 마음이 불처럼 뜨거워지고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 안 된다. 내가 주의 영광을 살아야 되겠다는 결정과 결심과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들을 우리는 고백하게 됩니다. 노아 역시도 120년 동안 산에 배를 지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던 열정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공양을 뒤로하고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그 열정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예배에 대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는 회복을 향한 기도의 열정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온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재건되길 원하는 민족을 향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사람의 이 열정은 하나님을 만난 그 순간부터 그 열정을 품게 되죠. 오늘 읽었던 사도행전의 이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그가 어떻게 삶을 살았는지를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면서 쓴 구절이기도 한데요. 우리 한번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읽겠습니다. 시작. *사도행전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은 예수를 다메섹에서 만난 그 순간부터 자신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복음의 사도로 평생을 살고자 하는 자신의 생명이 죽는다 할지라도 막힘 없이 내어 주었던 열정과 열심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여러분들은 열정의 사람입니까? 아니면 열정을 회복해야 되는 사람이신가요? 이 이 질문 앞에 어떤 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지금은 아닌데 왕년에는 내가 왕년에는 대단했습니다. 그 왕년에 그 대단했을 때, 목사님 저 만나셨어야 되는데 이렇게 얘기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갈렙은 그가 인생을 이렇게 고백하잖아요. 그때나 40년이나 이때나 85세가 되었을 때나 내 마음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왜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왕년에 그때는 이런 이야기를 할까요? 왜 우리가 지금 열정을 회복해야 되는 상태가 된 걸까요? 제가 전도사 시절에 제 마음에 참 흡족한 때가 언제였냐면 그때는 타고 다니는 그 차에 기름이 만땅이었을 때 정말 만족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냥 마음이 밥을 안 먹어도 뭔가 배부른 거예요. 그리고 더운 날에는 에어컨을 시원하게 켤 수 있고 또 추운 날에는 히터를 빵빵하게 틀 수 있고 어디를 가든 하나도 두렵지 않 않았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가든 아니면 내가 가야 될 길을 놓치든 할 것 없이 헤매인다 할지라도 하나도 어려움이 되지 않았어요. 그 이유는 내 차에 기름이 만땅이라는 것. 근데 어느 날 기름이 앵꼬가 되어서 이제 기름을 넣어 달라는 빨간색 그 등이 켜지는 딱 순간부터 마음이 긴장감이 찾아옵니다. 빨간 신호등에 차가 멈추면 마음이 초조해지는 거예요. 가야 될 길을 놓쳐서 길을 잃어버리면 그때부턴 패닉의 혼란에 빠집니다. 더워도 에어컨을 켤 수 없고 추워도 히터를 틀 수 없고 심지어는 라디오도 켜지 못해서 운전할 때, 마음 안에 계속 이런 생각을 반복합니다. 다시는 운전하지 말자. 다시는 운전하지 말자. 다시는 운전하지 말자.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영적인 삶의 연료 탱크가 고갈되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아무것도 하기 싫은 거예요. 그냥 하고 싶은 생각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들의 인생의 영적인 연료 탱크를 비게 만든 사건은 무엇 때문에, 우리가 영적으로 이렇게 식어지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요? 자, 이렇게 세 가지를 나눈다면 첫 번째 열정이 식는 이후 첫 번째는 여러분 그것은 여러분 죄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있었던 열정, 우리 안에 있던 소망, 우리 안에 있던 그 꿈과 그 기대가 죄를 지은 순간부터 그 열정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죠. ◎왜 열정이 사라지는가? I. 첫 번째는, 죄(罪)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은 하나님 앞에 사명을 받았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이 충만하여 다스리라는 그 사명을 받았는데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순간부터 그들은 잎을 가져다가 몸을 가리고 숨어 버렸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여러분 잠수를 탔다는 겁니다. 이렇게 초라한 인생, 사명이 있었던 인생이 뜨거웠던 인생이 하나님 앞에 열심을 다해 살았던 인생이 한 순간에 하나님 앞에 숨어 버리는 잠수한 인생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지었던 여러분 죄 때문입니다. 여러분 죄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라지게 만듭니다. 그리고 죄는 하나님 멀어지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를 다 막아 버리죠. 마치 구멍 난 항아리처럼 아무리 부어도 부어도 채워지지 않아서 메마른 심령으로 살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 바로 죄다. 라는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의 예배 열정이 있었던 그 다윗은 그가 범죄하고 나서 시편 51편에 그가 잃어버린 것을 회복시켜 달라고 죄를 통하여 잃어버린 것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하는 그 구절이 시편 51편의 구절인데, 그는 이것을 회복시켜 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주의 성신을 내게 거두지 마옵소서. 하나님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하나님 내 입술의 찬양을 다시 열어 주옵소서.” 여러분, 죄로 인하여 잃어버린 걸 말합니다. 뭘 잃어버렸다고요? 성령 충만함을 잃어버렸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그 임재를 잃어버려서 그 마음의 담대함과 자신감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죄로 인하여 구원의 즐거움을 잃어버렸습니다. 기쁨이 사라졌어요. 감사가 사라졌습니다. 즐거움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죄로 인하여 또한 노래가 사라졌어요. 찬양이 멈추기 시작했습니다.이 모든 잃어버린 그 열정을 씌워 버린 그 이유가 어디였습니까? 바로 다윗이 지었던 죄로 인하여 그는 그 열정과 모든 기쁨과 감사가 사라져 버린 것이죠. 두 번째 왜 열정이 식어져 버릴까요? 첫 번째는 죄입니다. 두 번째는 허무주의입니다. ◎왜 열정이 사라지는가? II. 두 번째는, 허무주의(虛無主義)입니다. -모든 것이 하기 싫어져요. 이 말은 뭐냐면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한들, 내가 이렇게 기도한들, 최선을 다한들, 열심히 순종하고 산들 뭐가 달라지겠는가? 이 이 허무주의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이 허무주의는 이것이 팽찬 때가 언제였냐면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차 세계전이 끝난 다음에 황폐해 버린 세상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데 이와 같은 전쟁의 아픔이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하나님이 만드신 이 아름다운 세상을 이렇게 황무케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이 하나님에 대한 의심(疑心)을 갖기 시작하면서 사람들 마음 안에 허무주의가 들어왔습니다. 믿는 우리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게 맞는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게 맞는가?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오시는게 맞는가? 그렇다면 왜 나의 인생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쳇바퀴 돌듯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인가?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는가? 이와 같은 의심의 마음이 들 때 내 안에 있는 불탔던 열정이 식어지기 시작한다. 라는 것이죠. 세 번째 왜 열정이 식어질까요? 세 번째는 비난하는 말들입니다. ◎왜 열정이 사라지는가? III. 세 번째는, 비난하는 말들입니다. -은혜받고 열심히 봉사했습니다. 훈련받았습니다. 또 다락방에 들어가서 사역에 들어가서 그리고 또 순장으로 서임받고 또 직분자가 되어서 너무나 재밌게 즐겁게 신앙생활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이런 이야기였어요. 저분 이상한 것 같아요. 뭐가 이상한데요? 그냥 이상합니다. 저분이 예수 믿기 전에 이래 때문에요. 저래 때문에요. 지금 저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가 다 이유가 있대요. 순장되려고 뭐 되려고 이런 얘기 할 때마다,,, 내 마음 안에 식어지는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또 나름 순장이 되어서 열심히, 열심히 또 이제 복습을 하고 순장반에 또 담임 목사님의 또 말씀도 듣고, 또 예습도 하고, 또 복습도 하고, 강의도 또 계속 반복해서 듣고 실습도 한다고 인형을 세워 놓고 ‘여기다,, 김집사님 최집사님’ 붙여 놓고 다 실습까지 해서 열심히 지난 봄을 했는데, 가을 텀이 시작됐는데 이상한 얘기가 들립니다. ‘목사님 저 지난 저 다락방에서 봄 때 아무것도 배운게 없어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락방 바꿔 달라는 이야기들을 때 순정으로서 내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되겠다. 못 해 먹겠다. 라는 그 생각을 가질 때가 있죠. 수많은 비난(非難)과 비방(誹謗)의 말들이 내 신앙의 불을 꺼트릴 때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열정이 왜 사라지느냐가 마지막은 내 삶에 동역자가 없는 외로움입니다. ◎왜 열정이 사라지는가? Ⅳ. 네 번째는, 내 삶에 동역자가 없는 외로움입니다. -마음을 기댈 사람이 없고, 그리고 기도 제목을 나눌 사람이 없고, 나를 위하여 눈물로 눈물로 함께 해 줄 사람이 없다는 그 순간이 있을 때, 여러분 우리는 탈진에 빠질 때가 있어요. 침체(沈滯)에 빠지죠. 여러분, 하나님의 기적을 행했던 그 엘리야 역시도 놀라운 기적을 행했지만 그가 기적을 행했는데도 불구하고 아합왕과 이세벨 그 사람이 하나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아 왔던 낙심마 그 이세벨이 내가 엘리야를 반드시 죽이겠다고 말하는 그 비난의 말을 들을 때 침체가 찾아왔어요. 근데 문제는 나와 함께 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마음이 생겼을 때, 여러분 엘리야에게 찾아왔던 영적인 침체, 여러분 식어진 열정이 있었다는 것이죠. 이와 같이 여러분 죄와, 허무주의와, 비난의 말들과, 동역자가 없다, 는 것이 우리의 열정을 식어지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다시 우리 열정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는 영적인 열정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크게 세 가지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첫 번째 다시 열정으로 가라면,,, 첫 번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반드시 제일 먼저 회복하셔야 합니다. ○ 다시 열정으로 가려면? ①첫째,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받았던 그 은혜가 주님께서 부으신 은혜가 우리가 죄를 지은 순간부터 그 은혜의 통로가 다 깨어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은 이런 말을 그랬습니다. 여러분, 고린도후서 11장 2절인데 함께 읽을까요? 시작. *고린도후서 11:2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 -내가 하나님의 열심이, 내게 부어 주시는 열심으로, 내게 주시는 은혜의 힘 입어서 내가 그 일을 감당하는데 하나님의 은혜의 파이프가 끊기는 죄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받을 수 있는 완전히 깨어져 버린 항아리기 때문에 받을 능력도 없고 담아낼 수 있는 힘이 없으니 우리에게 열정이 식어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요. 제일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은혜의 파이프를 활짝 열어야 되는데, 그것이 뭐냐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된다는 것이죠. 이 이 열정이란 이 단어가 여러분 라틴어로 이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부어진다. 그니까? 열정은 하늘로부터 부어지는 거예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하나님으로부터 그 힘과 능력과 지혜가 부어져서 감당해 나가는 것, 이것이 열정인데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일 먼저 회복해야 된다는 것이죠. 열정은 각오도 결단도 아닙니다. 열정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거라는 거예요. 그래서 요한복음 15장 4절 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5:4~5,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나를 떠나서는 주님과 멀어져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우리는 하나님과의 여러분 회복된 관계 가운데 있을 때 열정이 회복되는 것이죠. 다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야 됩니다.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거룩한 신부가 되어서, 사랑의 친밀한 교제(交際)에 들어갈 때, 우리 안에 다시 열정(熱情)이 시작되는 것이죠. 지난주 오정현 다임 목사님께서 여러분 신랑 되신 주님과 결혼한 신부 된 이야기를 나누시며 우리들의 인생은 사랑 우선주의(優先主義)가 되어야 된다. 말씀 기억하시죠? 그래서 목사님께서 지난 20전 24년에 자신의 목회를 이와 같이 단장(短章)하셨습니다. 나는 24년의 목회를 24개월의 시간처럼 보낼 수 있었다.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제가 그 말씀을 듣고 얼마나 얼마나 회개(悔改)한지 모릅니다. 목사님 24년의 목회를 24개월 같았는데 나는 지난 3개월의 목회를 왜 3년이라고 말했을까? 왜 내가 3년이라고 말했을까? 그래서 앞으로 3일이라고 말하려고 지금 마음에 먹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하나님의 열정은 이와 같은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에게 부어지면 지치지 않습니다. 머물지 않습니다. 그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로마서 여러분 8장 26절의 말씀에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나의 부족함을 나의 연약함을 성령 하나님은 반드시 도와주셔서 감당하게 하시고 이기게 하시고 승리케 하여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주님과의 사랑의 인격적인 교재가 회복돼야 되는 거예요. 이미 목회할 때 청년 이미 목회를 10년 했습니다. 뭐 한국 청년 사역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민교회 청년 사역도 그 목회자가 가정을 오픈해서 청년들을 많이 초대하고 또 음식을 대접하는 이 일들이 참 많이 이루어집니다. 남과주 사랑의 교회 부목사 시절에 청년부가 어려워졌다는 얘기 듣고 교회가 저보고 이제 청년부를 맡아 달라고 어 하셔서 청년부를 다시 일으켜야 되는 그 사명과 비전으로 청년부에 이제 담당 목사가 되어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딱 가 봤더니 청년들이 많이 지쳐 있고 위로 위로가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아내에게 앞으로 우리가 청년들을 위로하고 회복시키기 위해서 아내의 허락하에 청년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음식을 나눠 주고, 또 베풀어 주고 함께 기도하자는 시간을 저는 아내의 기쁨의 허락 가운데 저는 이걸 시작을 했습니다. 한 7월 8월 동안 한 20개 팀, 한 250에서 300명이 이제 저희 집에 월요일, 목요일, 토요일 이렇게 와야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저 아내의 기쁨의 허락 가운데 여러분 시작을 했습니다. 근데 한 열개 팀 11개 팀 반환점을 돌았을 때 인가요? 어 그날도 청년들이 오는 날이었는데 아내가 음식 이렇게 준비하는 중, 칼로 이렇게 음식을 썰다가 갑자기 칼을 내려놓고, 저를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거였습니다. “좋니? 좋아 그러더라고요.”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ㅋㅋ~~ 그래서 그날 청년들이 오는 날이니까? 또 이제 집을 청소를 하고 청년을 맞이해서 음식을 나누고, 또 기도 제목 나누고, 그다음에 한 10시 반 되었을 때 빨리 가라 가면서 청년들을 이렇게 보냈어요. 근데 치우겠다는 청년들도 이제 빨리 가라고 이제 주차 빨리 차를 빼야 되니까? 이게 보냈는데 그 안 가도 되는 집에도 가까운 형제도 같이 가서 이렇게 마중한 다음에 이제 방에 집에 딱 들어오니까? 거실에는 이제 먹다 남은 음식물들이 있고, 또 주방에는 해야 될 설거지가 있는데, 아내가 너무나 지쳤던지 소파에 누워서 이제 지쳐서 잠이 들은 겁니다. 가까이 갔더니 아내가 여기 자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내를 깨웠습니다. 너무나 피곤했던지 깨우기에도 아내가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근데 제가 그때 아내를 이렇게 안아서 이제 방으로 가려고 했는데 어 용기가 나지 않아서 못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끝까지 깨웠습니다. 끝까지 깨워서 끝까지 깨워서 자기야, 오늘 우리 이거 정리 이거 내일 아침에 하고, 오늘은 그냥 빨리 가라고 끝까지 깨워서 방에다. 누고 저는 옆에 이제 누워 있는데, 마음 안에 화가 이게 화가 올라오는 거예요. 이 청년들, 이 청년들 막 분노를 참을 수가 없어서 밤을 새고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가지고 제가 새벽 기도를 갔습니다. 제가 새벽 기도를 간 거는 그날 아침에 치우기 싫어서 간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진짜 기도하려고 갔을 뿐이에요. 그래서 이제 갔는데 마음 안에 하나님 더 못 하겠습니다. 나의 청년 사역, 정말 교회가 보내서 갔는데 나 도저히 못 하겠다고 막 이런 마음 있는데 하나님 앞에 가면 하나님께 저희 마음 만져 주시잖아요. 제 마음 만져 주시기 시작하는 거예요. 기도가 바뀌었습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주님 도와주세요. 주님 도와주세요. 그때 생각났던 찬양이 이런 찬양이었습니다. 가사는 이렇습니다. ♬주의 사랑 주의 능력 내게 부어 주소서. 주의 사랑 주의 능력 내게 부어 주소서.♪~~ 아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이런 노래인데요. 주의 사랑, 주의 능력 내게 부어 주소서. 이 이 찬양을 한 30분, 수십 번을 계속 반복해서 불렀어요. 그런데요. 제 안에서 뭔가 이렇게 차가 올라오는 게 있는 거예요. 다시 기쁨이 올라오고, 감사가 올라오고 즐거움이 임하고 꽉 채워진 참 하나님으로부터 부음 받은 그 새 힘과 새 은혜가 저한테 가득 차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아침이 이제 금요일이었는데 금요일 날 금요기도가 있었거든요. 금요. 기도를 이제 준비하고 이제 미리 나가서 금요일 기도 오는 청년들 가운데 어제 왔던 목요일 날 왔던 그 청년들이 옵니다. 근데 그 미웠던 마음은 온데 간데 없고, 오면 오자 멀리서 반가 인사하면서 어제 우리 집에 와서 너무나 고마웠어요. 너무나 고마웠어요. 얼마나 내가 기쁜지 몰라요. 우리 집에 냉장고는 너희 집에 냉장고라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오세요. 이러고 있는 제 모습을 보기 시작했어요. 한 순간에 달라져 있는 제 모습 봤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그 은혜의 자리를 지키면 그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감당할 수 있는 힘뿐만 아니라, 넘치는 은혜와 능력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그 자리에 떠나면 안 되는 거예요. 날마다 거룩한 주의 예배이 자리를 반드시 목숨 걸고 지켜야 되는 줄 믿습니다. 토비새의 은혜에 나아가서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내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 주시는 그 은혜를 사모하며 나와야 되는 거예요. 훈련반에 나와야 되는 거예요. 말씀 앞에서야 되는 거예요. 기도의 자리를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 내게 은혜 주시옵소서. 라는 마음으로 그 자리를 지켜갈 때, 하나님의 관계 회복을 통해서 우리를 다시 열정의 사람으로 바뀌시는 그 은혜가 저와 여러분 삶 가운데 반드시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두 번째 우리가 어떻게 해야 다시 열정으로 살게 될까요? 두 번째는 표대를 향하여 우리가 달려가야 합니다. ○ 다시 열정으로 가려면? ②둘째, 풋대를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자,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 사명이 시작되는데,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저 이렇게 살기 원합니다. 내 인생의 비전을, 내 인생의 꿈을 여기에 드리며 내가 주님 앞에 하나님께는 전심이요. 사람에게는 진심이요. 그리고 하나님께 맡기신 사명과 사역에는 우리가 충심을 다하겠다는 그 마음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요. 여러분, 그러나 하지만 그런 일을 감당할 때마다. 우리를 가로막는 많은 일들이 생깁니다. 우리에게 사명이 있는데 그 사명대로 걷지 못하게 하는 온갖 비난들과 어려움들과 핍박들이 우리에게 찾아올 때가 있어요. 사도 바울 역시도 복음을 전하고 그 사명의 길을 걷는데 복음을 전할 때마다, 사도 바울이 과거에 지었던 그의 잘못들을 사람들이 낱낱이 이야기하며, 그는 사도가 될 자격이 없다. 라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복음을 들어서 고침 받은 사람들이 이제 배신(背信)해서 반대로 사대 사도 바울을 핍박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복음을 전해서 세웠던 교회가 한 순간에 영지주의 이단 사상이 들어와서 교회가 혼미게 되는 일들을 그가 맞이했을 때, 마음 안에 이게 말이 된다는 말인가? 내가 복음을 전한들, 내가 열심히 한들,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라는 찾아오는 실패감과 낙심의 마음이 그에게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도 불구하고요. 사도 바울이 어떻게 이겨내냐면 이렇게 고백합니다. 자, 13절의 말씀인데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빌립보서 3:13,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뭘 말하는 거예요? 내 삶에 있었던 나를 가로막고 나를 붙잡고 있는 수많은 많은 이들이 내 앞에 있었지만 그것을 난 다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않고, 앞에 있는 것을 나는 잡으려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14절이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빌립보서 3:14, 4 풋대를 항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어디에 포커스 한 거예요? 내가 표대를 향하여 나를 부르신 그 부르심을 향하여 나는 오늘도 오늘도 달려가겠다. 이것이 다시 열정으로 사는 힘이었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영가족 여러분, 우리가 반드시 믿음으로 살고, 의을 구하고 살고 거짓과 싸우고, 악한 것과 싸울 때, 찾아오는 마음이 있어요. 이렇게 열심히 한들 이렇게 수고한들 뭐가 달라지겠는가? 뭐가 바뀌겠는가? 나만 손해 보는 거 아닌가? 이런 마음이 들 때 그 지나왔던 모든 것들을 다 뒤로하고 우리가 앞에 계신 주님, 의에 굶주리고 의를 위해 싸웠던 죄와 싸웠던 복음을 위해서 걸었던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위하여 그분을 표대로 삼아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후배 교역자들에게 이런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제 50대 초반이 되니깐 저도 제 후배 또 부교역자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고충을 이렇게들을 때가 있어요. 목회하다 보면 왜 힘든 일이 없겠습니까? 왜 어려운 일이 없겠습니까? 왜 오해받고 왜 손가락질 받고 그런 일이 없겠어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 부목사님들 역시도 그런 일을 겪을 때, 또 후배 목사님들이 와서 이렇게 말해요. 목사님, 저 더 이상 못 하겠습니다. 저 목회 안 하고 그냥 딴 일 하고 싶어요. 아내도 힘들고 아이도 힘들고 인생도 어렵고 그냥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 있는데, 꼭 목회 안 하고 그냥 세상 일 하면서 하나님의 기쁨에 일을 감당하며 살게요. 라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힘들어하는 많은 부목사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해 줍니다. 우리가 목회하면서 이런 오해가 있을 거라는 거, 이런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거, 이런 환난과 고난이 있을 거라는 거 우리가 모르고 이 자리에 온 거 아니지 않냐, 복음 위해서 살다 보면 목회 길를 걷다 보면 오해도 받고 핍박도 받고 그리고 손가락질도 당하고 힘든 일 겪는다는 거 다 알고 오지 않았느냐? 다 알고 왔는데 불구 왜 지금까지 다 알고 왔는데 왜 이제 와서 딴 소리 하냐고,,, 우리 다. 알고 왔다고 모르고 오지 않았다고 다 알고 왔잖아,,, 여러분이 이야기는 우리들의 신앙도 마찬가지예요. 믿음의 길을 거는데 말씀으로 사는데 핍박(逼迫)이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환난(患難)이 있습니다. 방해(妨害)를 합니다. 왜 너만 그렇게 사냐고 손가락질도 합니다. 그런데 이미 우리는 우리가 믿음대로 살다 보면, 죄와 싸우다 보면, 거짓된 것과 싸우다 보면, 말씀대로 살다 보면, 하나님의 나라 의를 구하다 보면, 세상에 핍박과 환난이 있다는 것 우리가 다 알고 있잖아요. 여러분 안 걷겠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어요. 그런 일이 있어도 그런 핍박이 있어도 나는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제자의 길을 나는 끝까지 걷겠습니다. 우리는 그 표대를 향하여 살아갈 때, 다시 주님께서 우리를 열정의 사람으로 바꾸시는 그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열정으로 살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자, 첫 번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돼야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표대를 향하여 달려가야 됩니다. 마지막으로 동역자를 만나야 되고 우리가 동역자가 되어져야 됩니다. ○ 다시 열정으로 가려면? ③셋째, 동역자를 만나고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의 선한 동역자들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신앙을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야 된다는 것이죠. 함께 격려하고, 함께 기도해 주고, 함께 믿음의 길을 걷는 믿음의 동역자들이 우리 주변에 있어야 되고 우리도 그와 같은 사람이 돼야 된다는 거예요. 어찌 보면 내가 왜 영적으로 잘하지 않을까? 남에게 영적으로 날마다 낙심과 또 침체 가운데 식어진 신앙으로 살까? 살펴보면 여러분 안에 여러분 믿음의 동역자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다락방에 속하지 않아서 홀로 교회를 왔다갔다 하다 보니 내 믿음이 자지 않고 뜨거워지지 않고 오히려 식어져 버리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다. 라는 것이죠. 사도 바울이 1차 전도 여행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2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 마가를 데리고 가냐, 데리고 가지 않느냐의 문제로 1차 전도 여행과 함께 갔던 바나바와 다투게 됐습니다. 이 다툼은 초대교회가 시끄러웠던 소돔과 같은 다툼이었다고 말하고 있어요. 당시 바나바는 초대교회의 큰 어른이었습니다. 반면에 사도 바울은 그 예수님을 부인하고 교회를 핍박하다가 온 사도였기 때문에, 그를 해하고자 하는 사람이 초대교회에 여전히 있었어요. 그렇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다 이런 다툼의 문제 앞에서 다 바나바의 편을 듣는 것 같은 거예요. 사도 바울이 홀로 남겨진 것 같은데, 2차 전도 여행을 떠났을 때, 그를 따랐던 사람이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근데 그 2차 전도 여행은 외로움 가운데 있었던 그 사도 바울의 실라가 있었지만 2차 전도 여행 때 사도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을 통해서 수많은 믿음의 동역자들을 만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2차 전도여행 때 빌립보에서, 그는 평생 동역 자된 ‘루디아(Lydia)’ 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2차 전도에서 루스드라 라는 곳에서 그는 ‘디모데’라는 제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2차 전도 여행 때, 육체에 가시가 있어서 복음을 더 이상 전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을 때 그를 옆에서 병을 살펴주는 주치의와 같은 ‘누가’라는 사람을 그는 만나게 돼요. 그 동역자가 있었기 때문에 여러분 사도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디모데를 만나서 너무나 놀라운 배움의 감사의 시간을 보내게 돼요. 왜냐면 여러분 디모데는 그의 어머니가 유대 사람이고, 그의 아버지가 헬라 사람인데, 그 디모데를 보니까? 너무 목회를 너무나 잘한 겁니다. 그의 모습을 통해서 여러분 사도 바울이 너무나 귀한 거를 배워요. 그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런 고백하시죠?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이와 같은 엄청난 고백이 누구를 통해서 영향받았을까요? 그의 동역자였던 디모데를 통해서 그는 배웠다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들의 삶에 이와 같은 동역자가 있어야 우리는 끝까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길을 완주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왜 시어졌는가? 왜 내 신앙이 잘하지 않는가? 어찌 보면 교회 왔는데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신앙이라면, 신앙이 식어질 수밖에 없어요. 반드시 여러분 다락방에 들어가서 순장님들과 또 다락방 순원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고 함께 기도 제목을 나누고 함께 울어주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그 믿음의 공동체를 동역자를 만나고, 동역자가 되어주는 그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랑의 교회에는 서로에게 정말 많은 칭찬과 격려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사님 때문에 우리 교회가 행복해졌습니다. 권사님 때문에 제가 행복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가 서로 격려하고 아름답게 믿음의 길을 뜨겁게 끝까지 할 수 있는 그런 교회로 함께 세워가게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최근에 제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사랑의 교회에서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제가 제일 행복하지 않을까? 아, 이런 고백을 늘 하게 되는데 왜냐면 오정현 담임 목사님의 늘 따뜻한 격려와 사랑과 또 가르쳐 주시는 귀한 배움이 있고, 또 사랑교 영 가족분들이 만날 때마다. 좋아해 주시고 칭찬해 주시고, 사진 찍자 하시고 막 그러니까요. ㅋㅋㅋ ~ 제 안에 막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거예요. 잘하고 싶다. 잘하고 싶다. 칭찬이 있으니까. 요즘에 저희 아내가 이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자기는 왜 교회 가면 집에 안 와요? 왜 집에 올 생각을 하네요?’ 뭐 이런 얘기를 왔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여러분, 누군가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용기를 내서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걷게 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도 그가 열정 있게 사역하셨던 그 힘은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삶이 있었습니다. 병든 자가 오고 눈먼 자가 왔을 때 하늘을 우러러서 하나님을 바라보시며 기도하고, 그 일을 감당하셨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었어요. 또 예수님은 또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핍박과 방해와 공작(工作)이 있다 할지라도,,, 멈추지 않아야 되는 십자가(十字架)의 사명(使命)의 길이 있으셨습니다. 그 예수님께는 함께 복음(福音)의 길을 걸어가는 제자(弟子)들이 있었어요. 그러기에 주님은 열정 있게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셨죠. 우리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역시도 하나님과 인격적인 깊은 교제를 통해서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사명 푯대를 향한 비전을 품고 사명을 품고 그리고 믿음의 동역자 영 가족들과 함께 영적이고, 영원하고 영광과 고난을 함께하는 영 가족들과 함께 뜨거운 열정의 사람으로 인생의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에 식어버린 영적인 열정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죄로 인하여 멀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게 하시고 뒤에 있는 것을 내 삶에 나를 무겁게 하는 힘들게 만드는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고 나에게 주신 우리에게 주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믿음의 동역자를 허락하여 주시고, 우리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격려가 되는 동역자가 되게 하여 주셔서, 사는 날 동안 하나님께 전심이요. 사람에겐 진심이요. 하나님께 맡기신 사명과 비전에는 우리가 충심을 다하는 주의 성도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올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요약 하나님은 뜻을 이루기 위해 쉬지 않으시는 ‘열정의 하나님’이시며, 그분을 만난 성도 역시 사명과 열정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죄, 허무주의, 타인의 비난, 그리고 함께할 동역자의 부재와 외로움은 영적 연료를 고갈시켜 열정을 식게 만든다. 식어진 영적 열정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며,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중요하니, 열정은 하늘로부터 부어지는 은혜이므로, 주님과의 친밀한 인격적 교제와 예배와 기도의 자리를 최우선으로 지켜야 한다. 또한 푯대를 향한 매진이 되어, 지난날의 장애물에 매이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사명)을 향해 멈춤 없이 달려가, 동역자와의 연합을 해야 한다. 홀로 서는 신앙이 아닌 공동체 안에서 함께 기도하고 격려하며 사명을 완주할 동역자를 만나고, 스스로도 좋은 동역자가 되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 명확한 푯대, 그리고 공동체와의 연합을 통해 주님께 전심, 사람에게 진심, 사명에 충심을 다하는 열정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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