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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8월 23일)
제목: 은혜를 계속 누리려면(To Keep Enjoying God’s Grace)"
말씀: 여호수아 17:14~18
찬양인도: 쉐키나(이동선 부목사님), 시온찬양대(4부)
대표기도: 이창희 안수집사님

설교자: 윤대혁 후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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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7:14~18,
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1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16 요셉 자손이 이르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나안 족속에게는 벧 스안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 하니.
17 여호수아가 다시 요셉의 족속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18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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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들이 부르는 찬양 가운데 아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이런 가사를 갖고 있는 찬양이 있습니다. ‘같은 길에서 다른 계절을 들을 만난다’. 이 노래 아시나요? 같은 길에서 다른 계절을 만나고,,, 유튜브 찾아보시면 되겠습니다.
♬~같은 길에서 다른 계절을 만나고 기쁨 슬픔 반복되는 모든 시간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네!!~~♪

-이 노래는 찬양에 가사는 참 많은 인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8월 23일 같은 시간대에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같은 사건과 같은 문제를 만나도 사람마다 느껴지는 계절은 다르다는 것이죠. 같은 길을 걸어도, 어떤 사람은 너무나 싸늘한 메마른 가지에 추운 겨울의 길을 걷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따뜻한 열매 맺는 풍성한 계절을 맞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와 평강 가운데 잘 살다가 우리 인생에 문제와 어려움이 생기면 그때 어떤 사람은 은혜를 극대화(極大化)해서 그것을 승리(勝利)로 바꿔 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그 문제 앞에서 자신의 은혜가 너무나 무기력하고 힘이 없어 실패(失敗)와 낙심(落心)과 절망(絶望)에 가는 사람들도 있죠. 여러분은 어느 편에 속한 사람입니까? 여러분들 은혜를 극대화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은혜를 무력화(無力化)하는 사람인가요? 여러분 어디에 속한 사람입니까? 아마 둘 중에 한 편에는 속할 거라고 생각되는데 오늘 여호수와 17장 본문에 은혜를 너무나 무력하게 시켰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 사람은 요셉 자손들이었습니다.

요셉 민족이었어요. 왜 이들이 이렇게 은혜를 무력하게 되었을까요? 오늘 부문의 배경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40년의 광야 생활을 하고 나서 이들이 이제 하나의 약속의 땅 요단강을 건너서 약속의 땅을 넘어갑니다. 이제는 가나안 족속들과 전쟁을 하다가 이제는 땅을 12지파에 나누고 어디에 정착해서, 어디를 정복해야 될 건지를 제비를 뽑기를 통해서 결정하게 되죠. 제비를 뽑는다는 말은 인간의 의지와 생각과 플랜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섭립 가운데 순종(順從)하겠다는 마음으로 제비를 뽑아 어디에 어느 지파(支派)가 어디에 어느 자손이 그 땅을 정복하고 다스릴지를 정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모든 지파들은 다 만족하고 모든 지파들은 다 믿음으로 반응(反應)했지만, 오직 한 지파만은 한 자손만은 이것은 말도 안 됩니다. 라고 불평의 소리를 내는 지파가 있었는데, 그 지파가 바로 요셉 지파였습니다. 오늘 14절 말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수아 17:14~18,
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뭐라고 말하고 있냐면 우리는 큰 민족이 되었다. 크게 되었다. 사람이 많아서 인구가 많았으니 더 넓게 넓은 땅을 더 많은 땅을 우리에게 줘야 되는데, 왜 우리에게 한 땅밖에 주지 않느냐 제비뽑기를 두 개가 아니라 우리 요셉 지파는 이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로 합쳐진 두 지파가 합쳐진 건데, 왜 우리에게는 한 분깃만 주냐, 라고 컴플레인을 하고 있는 상황(狀況)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이들이 큰 민족이 됐을 때, 이들이 왜 어떻게 큰 민족이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 14절 이렇게 말합니다. 한 번 더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수아 17: 14
14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자, 요셉 자손이 큰 민족이 됐던 것은 누구 때문이었어요?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큰 민족을 주셨습니다. 이거 좋은 일입니다. 잘 된 겁니다. 연약(軟弱)한 자손들이었는데. 자신의 노력과 실력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넘치는 은혜와 복을 주셔서 큰 민족이 되었다는 것은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자랑할 만한 사건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큰 민족이 되어서 우리가 땅을 적게 받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그 불평(不評)의 말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보면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정말 불편할 만한 일인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사실 보면 요단강에서 동편에서 서편으로 넘어올 때요. 이미 세 지파가 요당 동편의 땅을 물려받았습니다. 이들은 전쟁도 하지 않고 이미 정복(征服)된 땅, 싸움도 필요 없는 좋은 땅을 받았어요. 그 좋은 땅을 배분받았던 사람이 누구냐면 바로 요셉 지파 중의 하나였던 므낫세 지파가 그 넓은 땅을 갖습니다. 그러면 요단강을 건너와서 땅을 분배(分配)해야 되는데 그럼 누구만 챙겨주면 돼요? 에브라임만 챙겨주면 됩니다. 에브라임에게는 몇 땅이 필요한 거예요? 땅 하나만 필요하면 됩니다. 한 분깃을 뽑으면 돼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큰 민족이 되었는데 왜 당신은 나를 우리를 이렇게 도와주지 않냐? 라고 불평하고 있는 걸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살면서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내 삶에 어떤 문제와 어려움 앞에서 우리가 쉽게 불평하고 쉽게 내 마음의 어려움을 불만스럽게 말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불평이라는 것은 너무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불평을 하기 시작하면 불평한 순간부터 우리들 마음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는 것을 보게 돼요. 여러분의 삶 가운데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나의 삶은 하나님께서 받은 은혜, 정말 주님께 주신 내게 주신 은혜를 우리는 끝까지 그 은혜를 누리고 있는가? 혹시 요셉 자손들처럼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서 큰 지파가 되었다고 하지만 어느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받은 은혜가 온데간데없이 나에겐 은혜가 없어. 라고 말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지 않나? 우리가 모를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받은 은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를 나는 평생의 은혜로 잊지 않는, 잃지 않는 평생의 은혜로, 우리는 살아갈까를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계속 우리가 누리기 위해서 우리가 생각해야 될 세 가지를 오늘 본문에서 보게 됩니다. 우리가 평생의 은혜를 살기 위해서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첫 번째는 무엇이냐면 우리들의 삶에 이제는 불평을 멈추셔야 됩니다.

◎평생의 은혜를 계속 누리려면,
I. 첫째, "불평"을 멈추어야 합니다

-여러분 불평을 하기 시작하면 불평은 불평으로 끝나지 않아요. 불평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다 부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불평하기 시작하면 내게 받은 은혜는 온데간데없고 없는 것만 보며 살아가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감사의 문으로 들어왔다가 불평의 문으로 빠져나간다는 말이죠. 자,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에 계속해서 충만 하려면 우리는 감사하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봐야 되는데 어느 순간 불평하기 시작하면 내 삶에 있었던 은혜가 불평의 문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불평한다는 것 자체는 우리의 삶에 은혜가 메말라 가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면 우리는 그 문제를 이기고 승리(勝利)하시는 자가 됨을 믿습니다. 이런 말이 있어요. 인생에는 두 종류의 인생이 있습니다. 지난주까지 8월 15일에는 저는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으로 분류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청계산 산상 기도회에 올라간 사람과, 올라가지 않는 사람으로 구분된다고 했는데 그날은 지나갔으니까 다시 얘기하면 여러분 모든 사람은 문제를 다 만나요. 문제 없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만날 때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①문제 앞에 넘어지는 사람이 있고, ②문제를 넘어서는 사람만 있는 것뿐입니다. 문제는 다 만나요. 문제 없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마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사람은 어떤 문제를 만나도 그 문제를 넘어서죠.

하지만 은혜가 메마른 사람은 작은 문제를 만나도 그 문제 앞에 넘어질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의 삶이 날마다 날마다 문제 앞에서 어떤 환경(環境)과 상황(狀況)이든지 간에 영적(靈的)인 승리(勝利), 영적인 기쁨, 영적인 만족(滿足), 하나님의 영감(靈感) 가운데 복(福)되고 아름답게 살기 위해선 우리의 삶에 은혜가 절대 말라선 안 된다는 거예요. 오늘의 은혜가 우리의 평생의 은혜가 돼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 불평을 일단 멈추셔야 합니다.

※저의 삶 가운데 제가 대학부 사역을 한 적이 있었어요.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남자 선생님을 사역하면서 대학부 사역을 했는데 대학부 아이들의 선교를 떠났습니다. 대학부까지 1달 동안 가는 선교였는데 브라질 팀으로 선교팀을 보냈어요. 한 12명 정도가 간 것 같아요. 그런데 한 달 정도니까 저는 한 달 다 있지 못해서 2주만 하려고 2주 후에 저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상파울루로 떠났습니다. 무려 14시간 비행기를 타고 상파울루에 도착했어요. 선교를 하는 현장은 그 상파울루에서 여러분 차로 직행버스로 한 10시간 정도 가야 되는 그런 거리인데 저를 마중 나오신 현지 우리 한인 목사님이 저를 이제 가면서 티켓을 빨리빨리 구입해야 되는데 미처 못 구입해가지고 직행버스가 아니라 이렇게 순환버스, 18시간 걸리는 직행버스는 누워서 가는 버스인데 이 순환버스는 15도밖에 기울어지지 않은 이렇게 솟구쳐서 가는 그런 버스를 타고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면서 우리 목사님 너무나 미안했던 게 계속해서 저한테 목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이거를 확인하지 못하고 예약을 못 해서 목사님 오셨는데 피곤하신데, 저희가 이렇게 10시간에 갈 만한 거리를 18시간이 걸려 너무 죄송합니다. 계속 이러시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늘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일부러 그러신 것도 아닌데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일부러 그럴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요즘에 최근에 들어서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이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아 이거 이게 10시간 밖에 이제 18시간 걸리지만 온 구석을 다니면서 또 가다가 산사태가 나고 빛 때문에 산사태가 나 가지고 나무가 쓰러져 있고, 무려 차에서 4시간 동안 기다렸던 시간도 있었거든요. 목사님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연, 브라질의 아름다운 자연(自然) 만물(萬物)을 보게 하시려고 이곳저곳 두르면서 이렇게 못 가게 하시고 이곳저곳 두르면서 가셔서 이 브라질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게 하셔서요.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 목사님과 좋은 대화도 나누고 또 휴게실에서 브라질에 대한 바비큐도 먹고 얼마나 18시간이 하나님께 저에게 주신 선물과 같은 시간입니다. 라고 제가 말씀을 드렸어요. 잘했죠. 진짜 잘했어요. 그런데 그 목사님이 만약에 죄송합니다. 목사님 제가 미리 끊었어야 됐는데 피곤하게, 그런데 제가 그런 질문하고 그런 대답해 그러게요. 하고, 목사님이 이렇게 일찍 끊었으면 이런 고생 안 하잖아요. 선교도 시작 안 했는데 지금 피곤해 죽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만약에 그런 불만과 불평을 토했으면 저는 18시간 그 내내 입이 이만큼 나와서 브라질의 아름다운 자연은 하나도 눈에 안 들어왔을 겁니다. 이 인간이 왜 그랬을까? 인간이 대체 무슨 억하심정으로 아마 그 생각을 하면서 왔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여러분, 우리가 불만과 불평을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해 놓으신 정말 아름답게 펼쳐놓으신 그 좋은 것들이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가 계속해서 은혜를 누리기 위해선 우리는 불평의 입술을 닫으셔야 돼요. 그리고요. 14시간 비행기 탔죠. 그리고 18시간 거리인데 4시간 더 추가돼서 38시간 만에 선교 현장에서 도착했습니다. 선교사님이 저를 보고 미안했던지 아마 피곤이 떨어지셨겠죠. 미안했더니, 보자마자 이렇게 말한 거랍니다. 목사님, 목사님 오시기 전까지 어제까지 비 내리고 바람 불고 추워서 사연을 제대로 할 수 없었는데, 목사님이 딱 오니까 비가 안 오고 날씨가 개이고 선도하기에 너무나 좋은 날씨가 되었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우리에게 선물로 보내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제가 선교사님 그게 말이 돼요. 말이 안 돼요. 그냥 비가 그칠 때니까 그쳤고 좋은 날이 됐겠죠. 이게 말이 됩니다. 내가 왔다고 바꿨겠어요? 이렇게 말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냐구요. 그런데 우리들에게도 이런 사람이 있다. 없다. 있습니다. 좋은 얘기를 해줘도 좋은 얘기 못 받아요. 설마 그랬겠어? 어떤 분이요?

저희가 의료 사역을 하는데 이분이 카이로프로텍인 척추 교정을 하시는 분입니다. 어떤 분이 6개월 동안 팔도 안 올라가고 힘들었다가 교회에서 의료봉사하는데 그 집사님에게 치료를 받았어요. 교회에서,,,. 한 두 번 받았나? 두 번 받았는데 두 번 받았는데 이분이 6개월 동안 치료되지 않았던 팔과 어깨가 다 나은 거예요. 그걸 집사님 찾아가. 집사님 제가 어디 가도 낫지 않다가 집사님한테 척추치료 두 번 맞고 다 나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카이로프라텍 그 치료사 선생님이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이 주변에서 보게 됩니다. 선교사님이 이제 목사님이 오셔서 선물같이 날씨가 개었습니다. 할 때, 제가 뭐라고 그랬냐면 어떻게 아셨냐고,,, 저는 가끔 가는 곳곳마다 모든 게 잘 풀리고 신기하게 저는 밥 먹으러 식당을 가자마자 문전성시를 되고, 제 뒤에 손님이 그리고 줄줄이 섭니다. 성도님들의 비즈니스만 가도 제가 심방(尋訪)을 하고 나면 손님들이 많아져 그 집사님의 장사가 최고치로 잘 되게 해요. 저는 그런 사람이에요. 이렇게 말하면요. 그 은혜가 나에게 멈추지 않고 흘러오는 겁니다.

불평하지 않고,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를 믿습니다. 그런 은혜가 내 삶에 떠나지 않습니다. 나는 그런 은혜가 필요해, 이렇게 나아가면 내 삶의 은혜는 평생 은혜의 삶으로 살게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 삶에 많은 일들이 있어요.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많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평생 은혜로 살 수 있는 그 이유는 어떤 형편(形便)과 환경에서도 우리는 불평하지 않아야 되는 거예요. 불평하면 내게 하나에게도 주신 은혜가 내 삶에서 흔적(痕迹) 없이 사라집니다. 하지만 그 환경 가운데서 믿음을 심고 은혜를 소망하고 그런 은혜가 있을 거라고 믿고 나아가면 내 삶에 평생, 평생의 은혜가 멈추지 않고 저와 여러분 가운데 펼쳐지게 될 줄 믿습니다.두 번째는 어떻게 해야 우리들의 삶에 은혜가 계속 누려질 수 있는 걸까요? 평생을 살게 될까요? 첫 번째는 불평을 멈춰야 됩니다. 두 번째는 남 탓을 멈추셔야 됩니다.


◎ 은혜를 계속 누리려면,
II. 둘째, "남 탓"을 멈추어야 합니다


-자 14절 말씀을 이제 한 번 더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수아 17:14,
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자, 뭘 말하고 있어요? 인정하는 곳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복을 주셔서 큰 민족이 되었다. 이건 감사할 일이죠. 그런데 그 후반부에 뭐라고 말하죠? 당신이? 당신만 아니었으면 당신이 한 분깃이 아니라, 두 분깃만 줬어도 이런 일은 생기지 않잖아요. 다 당신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당신 때문입니다. 모든 문제의 탓을 누구에게 전환하고 있어요?

여호수아에게 전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여러분 어느 지파 사람이게요? 아 퀴즈,,, 자 여호수아는 열두 지파 가운데 어느 지파 사람이게요? 에브라임 지파 사람, 이 말은 뭐예요? 당시 에브라인 지파 사람이잖아요. 우리가 지금 에브라임 요셉 지파가 에브라임 지파와 당신 이런 법이 어딨어? 같은 형제 아니야? 누구보다 우리 상황을 잘 알잖아. 그러면 같은 편이면 같은 지역구면 같은 형제면 우리를 더 신경 써줘야지. 그런 법이 어딨어? 이거 다 당신 때문에 우리가 어려워진 거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뭘 잃어버린 거예요? 자신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으로 큰 지파가 되었다는 것을 까먹게 된 거예요. 뭐 때문에? 남을 탓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남을 탓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우리의 삶에 은혜가 기억되지 않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남을 탓하는 게 영적으로 위험한 거냐면 남을 탓한다는 것은 이 사람 때문에 내가 안 됐습니다. 이 사람 때문에 내 인생이 막혔습니다. 이 사람 때문에 되는 일이 없습니다. 라는 그 말을 나의 인생의 이유와 목적과 주도권을 누구에게 넘겨주는 거예요? 그 사람에게 넘겨줍니다. 자, 그 사람 때문에 이렇게 됐어 라고 말하는 것은 내 인생이 그 사람에게 종속(從屬)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내 인생의 주도권(主導權)이 누구에게 있다는 거예요? 내가 원망하고 탓하는 그 사람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우리의 주도권이 누가? 우리의 주도권을 누가 갖고 계세요? 하나님이 갖고 계십니다. 우리의 주인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남을 탓할 때마다 우리는 나의 인생의 주권자는 하나님이 아니고, 바로 저 사람이야 라는 그 잘못된 길에 서게 된다는 것이죠.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돼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의 주권자가 되시고, 인도자가 되시고, 주도권이 되시기 때문에 그가 나를 방해한다 할지라도 그가 나를 막는다 할지라도 그가 나를 괴롭힌다 할지라도 절대로 너는 나의 가는 길을 막지 못해. 이 고백이 되어야 된다는 거죠. 이 사람 때문이야. 저 사람 때문에 얘기할 때마다 우리는 점점 하나님이 나 인생의 주도권이 아니고, 주권자가 아니고 저 사람이 내 인생에 목숨줄을 갖고 있다. 라고 착각(錯覺)하며 산다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남 탓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난주에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서 해방(解放) 선언(宣言)이라는 말씀을 기억하시죠? 해방 선언 하시면서 이런 얘기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 하심이 우리들의 인생에 운전대를 하나님께 넘겨야 된다고 말씀하시면 이런 질문을 하셨어요.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 하심이, 테슬라의 자율주행보다 못합니까? 뭐라고 답해야죠?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기도 하시니 테슬라의 자율주행보다 못합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세상에 어떤 권력자와 힘이 있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많은 것을 갖고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이끄심보다 하나님이 인도하심보다 여러분 더 좋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끌다 말씀하시면 하나님께서 책임자라고 하시면 누구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막을 자가 있다. 없다. 없다. 탓을 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그 사람의 손에서 지금 다스림을 받고 있다. 라고 나 스스로를 잘못 고백합니다. 그래서 은혜의 다스림을 받기 위해서는 탓을 하지 말으셔야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이끄심을 인정하며 여러분 살아가야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더래도 당신 때문이야, 라고 말했던 이웃의 자손들에게 여러분 15절에 여호수아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여호수아 17: 15,
1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다 똑같은 말을 하고 있어요. 요셉 자손들도 우리가 큰 민족이 되었다고 말하고, 여호수아도 너가 큰 민족이 되었다고 말해요. 똑같은 큰 민족이 되는 거야. 그런데 관점이 달라요. 요셉 자손들은 큰 민족이 되어서 땅이 좁습니다. 여호수아는 너희가 큰 민족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힘이 있으니까 다른 족속들을 다 물리치고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해라, 개척하라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힘이 있으니까 능력이 있으니까 그게 이 땅 부족하지, 열심히 해봐. 해봐 그러면 그 땅을 더 많이 차지할 거예요. 만약에 이 요셉 자손들이 끝까지 여호수아를 탓했다면, 다른 족속에 있는 산림의 나무 하나로도 베지 못했을 겁니다. 남 탓을 하지 않고 그 다음에 내용에 보면 그들이 정신 차렸고 하나님께서 감당할 수 있는 큰 민족이 되게 하셨지. 남 탓하지 않고 하나님을 다스림을 믿고 나아갔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는 것이죠.

사랑의 영가족.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남 탓하지 마세요. 여러분 우리가 탓하는 남보다 더 위대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내 인생을 막고 있는 여러분 직장의 과장, 부장 또 누구 회장 누구 얘기하세요? 저한테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르겠어요. 누구 누구 누구예요? 저한테 고자질 하세요. 그저 누구든지 간에 하나님이 이길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이길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 계속 이끄신다면 우리 은혜의 자신 가운데 살게 되는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일까요? 자, 퀴즈, 첫 번째 뭘 멈춰라? 병을 멈춰라. 두 번째 남 탓을 멈춰라. 하니까 어떤 형제님이 왼쪽에 자매님들 꾹꾹 찌르고 있어요. 이렇게 해서 니 얘기하는 거보다 니 얘기 세 번째는 무엇이냐면 세 번째는 자막을 띄워주실까요? 포기하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 평생 은혜를 계속 누리려면,
III. 셋째, "포기(抛棄)하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자 오늘 말씀 16절의 말씀을 보면, 요셉 자손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읽어볼까요? 시작.
*여호수아 17:16,
16 요셉 자손이 이르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나안 족속에게는 벨 스안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 하니.
-이 말씀의 뉘앙스가 어때요? 거기에는 땅도 넘는 하지 못하고 다 골짜기고 뿐만 아니라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무기가 다 철기문화입니다. 우린 청동기인데 다 철기문화를 갖고 있어서 그 다음 말이 뭐예요? 우리는 못합니다. 올라갈 수 없습니다. 올라가 봤자 패합니다. 올라가자마자 우리는 죽을 겁니다. 우린 땅, 어떤 땅도 차지하지 못할 겁니다. 안 됩니다. 못합니다. 우리는 끝났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거죠. 포기해 버렸습니다.

우리가 문제 앞에서 쉽게 내가 능력도 안 되고 실력도 안 돼서는 어느 순간 문제 앞에서 우리가 쉽게 포기하며 하나님의 은혜마저도 사라져 버릴 때가 있어요. 하지만 절대로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거, 하나님께서 책임도 진다는 그 약속의 말씀을 절대로 절대로 우리는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죠. 성경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날마다 날마다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우리에게도 있어요. 오늘 읽었던 여호수아도 동일하게 그 18절의 말씀에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읽고 17절, 1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수아 17:17~18,
...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
-여호수아가 뭘 말하고 있는 거에요? 너는 큰 민족이다. 그리고 큰 권능이 너에게 있다. 하나님께서 복 주셔서 큰 민족이 되었고, 너희에게 뭐가 있다? 큰 권능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큰 권능은 무엇일까요? 너희에게 하나님이 계신다, 도와주신 하나님이 계신다, 지켜주신 하나님이 계신다. 가장 능력 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너희 안에 있으니, 너희가 올라가기만 하면 그 땅이 너희 것이 될 것이다. 약속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약속은 요셉 자손만 받은 것이 아니고 우리도 받은 약속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하시니라.” 아멘, “너를 두려워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걱정도 하지 말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리라.” 말씀하신 약속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성경의 내용을 보면 수많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어요. 놀라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걱정하지 말라. 내가 너를 붙잡아주리라. 내가 너를 승리케 하리라. 내가 너를 사용하리라. 내가 너를 통해서 많은 역사와 영광을 행해주리라. 이런 약속으로 가득합니다.

성경에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에게, 정말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넌 안 돼. 넌 못해. 해봤자 소용없어. 다 필요하지 않을 거야.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세요? 주님은 우리가 뭘 말씀하시냐면 두려워하지 말아라.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거야. 떠나지 않을 거야. 그러니 너는 반드시 나보다 더 큰 일을 행하리라. 너는 반드시 나의 큰 영광을 보게 되리라. 주님은 날마다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포기(抛棄)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주님께서 행하실 일들을 사모하면서 그 은혜를 사모(思慕)하고 그 은혜를 바라보며 이웃이 하나님 앞에 우리 날마다 포기하지 않고 오늘도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전진하며 살아간다면, 오늘의 은혜가 우리에게 평생의 은혜의 삶으로 저와 여러분의 삶이 펼쳐지게 될 듯 믿습니다.

저는 이 은혜에 대한 이야기, 포기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면 생각나는 사건이 있습니다. 제가 2003년도에 강도사 고시를 갔습니다. 2003년도 1월달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강도사 고시를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한 제일 첫 번째 시험인 강도사 고시를 보는데, 강도사 고시는 1년에 한 번 봅니다. 그리고 그에 떨어지면 그다음에 봐야 되거든요. 1년에 재수를 해야 되는 거예요. 많은 전도사님들이 강도사 구시를 보러 갈 때, 그 교회 담임 목사님들이 항상 이런 얘기를 전도사님들에게 격려하죠. 아 전도사님 많이 부담 갖지 마세요. 편하게 시험 보세요. 그런데 우리 교회는 지난 역사 가운데 전도사님이 강도사 고시를 떨어져 본 적이 없어요. 부담 갖지 마시고 그냥 편하게 보세요. 그런데 기억하셔야 될 것은 한 번도 떨어져 본 사람이 없어요. 이런 얘기를 하시는 게 대부분인데 그렇다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강도사 고시를 봅니다. 숭실대 신대원의 교실에 들어가서 이렇게 공부 열심히 한 거를 문제를 푸는데, 그때 고시부 목사님, 시험 감독관인 목사님이 이 시험을 치고 있는 전도사님들에게 하셨던 말씀이 너무나 제 마음의 기억남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전도사님들, 오늘 시험 문제지 모르는 문제 있잖아요. 모르는 문제 있지만 그 빈 란을 냅두시면 안 됩니다. 무조건 채우세요. 아는 건 어제 배운 건 무조건 적으세요. 문제와 답과 달라지고 하나님, 예수님, 화이팅 뭐든지 간에 아무튼 적으세요. 무조건 적으세요. 아는 거 적으세요. 어제 배운 거 아무것도 뭐든 적으세요? 무조건 적으십시오. 빈 란으로 드리면, 점수 못 드립니다. 그런데 채워져 있으면 은혜 점수가 임합니다. 은혜 점수가 임합니다. 그 문제와 상관없이 뭐든 채우면 뭐 하나 걸리는 거 있지 않겠습니까? 애국가를 적지 않는 이상, 가요를 적지 않는 이상,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파이팅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뭐라고 적으면 뭐라도 은혜 점수가 있을 겁니다. 은혜 점수가 있습니다. 은혜 점수가 있습니다. 빈 란으로 제출하지 마세요. 반드시 꽉꽉 채우십시오. 이 얘기를 줬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나는 건 뭐냐면 이게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 같은 거예요. 우리에게 주님께서 자, 은혜 점수가 있을 거다. 너 실력이 없고 능력이 없고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내가 대체 뭘 할 수 있을까요? 내가 대체 뭘 잘할 수 있을까요? 막막한 가운데서도 우리가 믿음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하루하루 주님을 바라보고 살아가면 뭐가 있나요? 은혜 점수가 이 말입니다. 포기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너에게 은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면 그 은혜를 줄 수가 없는 거에요. 빈 란으로 제출하면 주고 싶은 점수를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뭐라도 적은 거예요? 포기 안하고 낑낑대면 뭐라도 하나님 은혜가 있는 줄 믿습니다. 심지어 어떤 일이 있었냐면 어떤 정상이 사지선답 이었는데 이렇게 시험을 하다가 목사님이 보시고 딱딱 보셨던 하면서 틀렸다. 틀렸어요. 뭐라도 낑낑대면 은혜 점수가 되는 거야. 하지만 포기하면 nothing~~!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 거 아니에요.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아가면서 참 많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해요. 그런데 그때 아 몰라, 될 때도 돼. 몰라. 몰라 이러면 하나님께서 주고 싶은데 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힘도 능력도 없는데 믿음으로 생각해요. 어떻게든 버텨볼게요. 죽을 것 같은데, 어떻게든 내가 살아내 볼게요 하면 하나님께서 살아내게 하실 줄 믿습니다. 승리케 하실 때가 있는 거예요. 요즘에 우리 젊은 세대들이 꿈꾸기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여러분 그래도 선배로서 다행입니다. 아빠 세대라고 안 했다는 건데 선배로서 여러분 너무 미안한 일이죠. 저희는 부모님들에게 참 좋은 시절을 물려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여러분에겐 제가 받았던 좋은 시절을 못 물렸을 거예요. 되게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 우리의 삶에 꿈이 없는 건 아닙니다. 희망을 꿈꾸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왜냐면, 저보다 아무리 좋은 선배보다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심을 믿습니다. 세상은 소망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소망 있다. 라고 말합니다. 왜요? 너가 살아있는 한 소망입니다. 여러분, 많은 젊은 손님이 힘들고 어려운 줄 압니다. 무엇을 해야 될지 어떤 직장을 가져야 될지, 하지만 그때마다 정말 포기하지 말고 주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내가 알았기에 그 내가 내 평생의 떠나지 않음을 믿고 자리를 지키고, 기도의 자리를 지키고, 말씀의 자리를 지키고 그리고 작은 거 하나에도 내가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고 주의 은혜를 구하고 가다 보면 그 길에 하나님의 은혜의 장비가 내 삶 가운데 촉촉히 적셔져 있었어요. 메마른 길이 아니라, 푸르른 길을 걷게 하시면 열매의 길을 걷게 하시면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계절의 길을 걷게 하시는 이가 저 여러분에게 반드시 있을 줄 믿습니다.

사랑의 영가족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은혜를 계속 누릴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평생 은혜로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에 우리는 불평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의 다스림이 있기에 우린 안 탓하지 않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에 우린 포기하지 않는 겁니다. 그럴 때마다 저 여러분의 삶을 평생의 은혜 일상으로 저 여러분의 삶을 이끌고 인도하여 드실 줄 믿습니다. 그런 후 옆에 분에게 이렇게 인사했으면 좋겠습니다. 평생의 은혜로 삽시다! 라고 인사해 볼까요? 평생의 은혜로 삽시다.

♣요약
인생의 어려운 문제 앞에 서 있을 때, 은혜를 극대화하여 승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은혜를 무력화시켜 절망에 빠지는 사람이 있음을 지적한다. 여호수아 17장의 요셉 자손은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큰 민족이 되었음에도 한 제비, 한 분깃만 주었다며 불평을 터뜨려 은혜를 무력화시켰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평생 잃지 않고 계속 누리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를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
첫째, 불평을 멈추어야 한다. 은혜는 감사의 문으로 들어왔다가 불평의 문으로 빠져나간다. 불평하기 시작하면 은혜는 메마르고 문제 앞에 쉽게 무너진다.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을 입 밖에 내지 않고 감사를 선택할 때, 은혜가 삶에서 떠나지 않는다.
둘째, 남 탓을 멈추어야 한다. 요셉 자손은 어려움의 원인을 여호수아 탓으로 돌렸다. 남을 탓하는 순간 인생의 주도권을 그 사람에게 넘겨주게 되며, 이는 내 삶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다스림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어떠한 방해 속에서도 하나님이 내 삶의 주도권을 쥐고 계심을 인정하며 남 탓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셋째, 포기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요셉 자손은 상대의 철 병거를 보고 미리 패배를 선언하며 포기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신 권능으로 함께하시며 끝까지 개척하라고 약속하신다. 시험지에 아는 내용이라도 꽉 채워 제출할 때 은혜 점수가 임하듯,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믿음으로 자리를 지키며 포기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평생의 은혜로 삶을 이끌어 주심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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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8월 16일)-<로마서 강해 ⑮>-광복절 특별 메시지
제목: “죄*罪)로부터의 해방선언(解放宣言(The Proclamation of Liberation from Sin)”
말씀: 로마서 6:12-23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외
대표기도: 최종민 부목사님(1부) 외
사회: 임병영(1부), 이기호(2부), 장단희(3부), 임상규 부목사님(4부)

설교자: 오정현 원로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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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6:12-23,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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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만을 높여 드립니다. 광복 81주년의 뜻깊은 주일날, 여러분 아무도 그냥 돌아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진가를 발견하기를 바라고, 그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깊은 심정을 깨닫는 영광스러운 주일 예배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우리 광복은 우리나라 우리 실력으로 우리 힘으로 한 겁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이루어진 겁니까? 맞습니다. 우리 선대 어른들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불쌍히 여기셔 갖고 광복의 특별한 축복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해 주신 이유는 우리가 전 세계를 위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고, 전 세계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우리에게 광복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 이 말씀이 죄로부터의 해방 선언에 이 말씀 로마서 강해 주욱~ 내려오는 말씀인데, 이 말씀을 통하여 정말 말씀 자체가 우리에게 뭘 얘기하는가 여러분 깨닫는 그런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22절 23절에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뭐로부터 해방되고요? 누구의 종이 되었어요?

*로마서 6:22-23,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이 말씀은 요한복음 3장 16절 우리가 다 잘하는 성경에 제일 주제 되는 그런 말씀이나 또 사도행전 16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요한복음 3장 16,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탑 10에 들어가는 아주 그냥 특별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6:23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뭐라구요? 사망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고 죽음입니다. 창세기에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죄를 짓고 난 다음에 창세기 3장에, 4장에 보면 처음으로 죄(罪)란 말이 나와요 죄가 우리 문 앞에 있다는 말이 나와요. 그리고 4장에 가인이 범죄(犯罪) 하여 아벨을 죽였어요

*창세기4:7,
7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
-그러니까 가인의 죄 때문에 아벨의 죽음이 온 것이에요 그다음에 여러분들 그 죄의 결과로 어 창세기에 보면 무슨 일이 벌어 벌어집니까? 노아의 홍수(洪水) 시대에 사람들이 죄악이 관여해 가지고 그 죄에 대한 홍수 심판(審判)을 받으니까 그 죄 때문에 생긴 그 벌로 수많은 시체(屍體)들이 그 물 위에 둥둥둥 떠다니는 거예요 출애굽할 때 애굽 사람들의 죄 때문에 애굽의 모든 장자들이 죽어 나갈 때, 죽음의 천사가, 천사의 날개 짓을 사각사각 할 때 집집 마다 통곡(痛哭)의 소리가 나온 거예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그야말로 죄의 삯은 사망인 것입니다 아멘!! 자 이게 슬픈 일이에요 너무 이거는 뭐 이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런데 놀라운 일어났어요.

*로마서 6:23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여기 하나님의 은사라고 그랬을 때 우리가 잘 봐야 되는데 하나님의 은사란 말이 우리가 예를 들어서 뭐 성경에 성령의 은사(恩賜) 할 때 무슨 뭐 방언의 은사다 신유의 은사다. 뭐 어 영 분별의 은사다. 하는 그런 은사가 아니고요. 이 이 은사는 카리즈마 라는 뜻인데 카리스라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조건 없는 호의 이 카리스에서 나온 것인데, 뜻이 뭐냐면 하나님의 은사라는 말은 하나님의 선물은,,, 하나님 뭐라고요 선물은 은사란 말이 다른 말로 바꾸면 선물이다. 그래 선물이란 말이 좀 더 정확하다고 말할 수가 있어요. 여러분 관주 성경 갖고 계시는 분들은 딱 밑에 오면 밑에 뭐라고 써
놨어요 은사, 선물(膳物) 그런가 안 써 놨으면 하나님의 뭐예요? 선물은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다. 그러니까 오늘 죄로부터 해방 선언에 총 집약하게 되는 놀라운 선언인데 그것이 뭐냐,

I. 첫째, 죄로부터의 해방을 총 집약하는 선물(膳物) 선언.
-무슨 선언이라고요? 선물이다. 여러분들이나 저는 지금 이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얼마나 기가 막히고 영광스러운 일인지, 이거는 설명할 수 없는 소위 필설(筆舌)로 형용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믿는 것이에요. 이 선물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쟁취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특별한 거예요. 이것은 우리의 힘이나 능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이건 너무나 값진 것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이 죄의 삯,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가, 예수는 우리가 로마서 4장 앞에 예수님은 우리가 범죄 한 것 때문에 내어줌이 되셨다 그랬어요.

*로마서 4:25,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까 내어줌이 되셔 가지고 주님이 당하신 그 고난과 수치와 그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뭐 그거는 우리가 흔히들 뭐 적당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거는 우리가 감히 범죄 할 수 없는 놀라운 하나님이 값을 치르신 것이기 때문에, 프라이슬리스한 거기 때문에 이건 선물로 외에는 받을 수가 없는 것이에 그래서 기독교의 놀라운 신비는 우리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셔 갖고 선물로 주시 것이에요 아멘!

많은 세상의 종교는 실적주의예요. 공로 주의에요. 우리가 애를 쓰고 수고하고 뭐 땀 흘리고 우리가 뭐 찾고 뭐 공로 이렇게 해 갖고 뭘 우리가 노력해 가지고 우리가 최선을 다하니까 그거 보시고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는 그런게 아니에요. 죄의 삯은 사망인데 이 해결할 방도가 없는데,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님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아멘. 놀라운 놀라운 것이에요 많은 이방 종교와 기독교의 차이가 여기에 있는 거예요. 많은 종교의 이방 종교는 인간이 주도권(主導權)을 가지고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容恕)받기 위하여 제물(祭物)을 바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움직이려고 하는 거예요. 근데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가지시고 친히 아들을 제물로 준비(準備)하시고 성자 하나님이 직접 제물(祭物)이 되어 주셔 갖고 인간이 죄를 용서받게 하는, 소위 죄로부터 선물로 해방시켜 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아멘

그래서 여러분 주님께서 이 값을 피해 복음을 친히 보혈(寶血) 복음(福音)을 치르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값을 다시 지불할 필요가 없어요. 두 번 값을 지불할 필요가 없는 놀라운 선물을 받은 것이에요. 따라서 우리가 구원을 쟁취(爭取)한게 아니라, 내가 구원(救援)을 얻은 사람이 되었어요. 구원을 쟁취한 것이 아니라, 구원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았어요.

또 내가 은혜를 붙잡은 사람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恩惠)에 붙잡힌 사람이 된 것이에요. 이 선물을 바울이 받고 기가 막혀 가지고 로마서를 쓰면서 나중에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내가 나의 된 것은 오늘 내가 있다면 내가 오늘 살아 있다면 내가 나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다른 말하면 하나님의 은사로 하나님의 선물로 된 것이니.

*고린도전서 15:10,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오늘 여러분이 귀한 선물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이 예배에 오신 분들 눈을 떠 가지고 내가 받은 이 하나님의 선물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깨달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고 신앙생활 오래 하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종교 매너리즘에 빠지고 그냥 종교인이 되는 거예요. 십자가 그냥 십자가 그냥 복음 뭐 그냥 뭐 이렇게 그냥 익숙한 종교 지식으로 끝나는 거예요.

그 십자가를 보면 가슴이 뭉클하고 절절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교회와 집안의 장식물로만 사용하는
거예요. 그 십자가를 지고 가라. 그러면 청년들은 십자가를 지고 있다가 뒤로 넘기는 거예요. 제가 우리 젊은이들이 가면서 그러니까 그 십자가가 그냥 절절한 것이 아니에요. 뭉클한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오늘이 영생 선물 복음이 우리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해야 되어야 하는 거에요. 왜 이게 중요한가? 여러분, 살다 보면 키가 막힐 일들이 많아요 그 심지어 어떤 사람은 예수 믿다가도 그 예수 안 믿고 그 탈 복음화, 이렇게 하는 사람도 있어요. 억울하다고 힘들다고 고통스럽다고,,, 대부분 왜 그렇게 예수 믿다가 중간에 나가 떨어지고 어려워지고 그러면 대부분 제가 그 가만히 보면요 결핍(缺乏)이에요.

뭐냐면, 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에 대한 결핍이에요 십자가의 깊은 비에 대한 결핍이에요 그리고 그 결핍을 어떻게 사람으로부터 그 결핍을 충족하려고 그래요. 환경(環境)으로부터 충족(充足)하려고 그러고, 물질(物質)로부터 충족을 하려고 그러고, 어떤 뭐 사람의 어떤 신념과 이념으로 그걸 가지고 충족하려고 해요. 절대로 해결(解決) 안 돼요.

이 인간이 핍절(乏絶)한 것은 사람으로도 그 핍절함을 해결하면 안 되고, 그 핍절함은 하나님만이 해결해 주실 수 있는 것이에요 아멘, 여러분 수많은 핍절함 억울함 안타까움 뭐 상처받은 것들을 사람으로부터 환경으로부터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이 놀라운 선물을 주신 하나님으로부터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에요 선물로 주신이 복음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하여 절실해져야 우리의 핍절의 결핍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결핍을 사람으로부터 채우려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선물로 주신 이것으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막 나도 모르게 이 선물의 은혜에 감사해 가지고,,,

♪주 사랑 안 없고 주 은혜 끝없네 주 선물을 사람이 어떻게 다할까 주 권능을 어떻게 다할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감사합니다. 여러분 인생에 복잡한 거 있든 수많은 아픔이 있든간에 그 핍절을 사람이나 환경이나 물질을 갖고 신념을 갖고 해결하지 말고, 선물로 놀라운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해결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제가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미국을 가 보니까 세상에~~~! 프랑스 대혁명의 잘못된 인본주의의 여진으로 유럽의 탈 복음화 현상, 유럽의 복음화 이 복음이 약화돼 버리니까 7-8월에는요? 교회가 문을 닫았어요. 목사님들이 휴가야, 7-8일에 교회를 안 해요. 그러니까 우리 이민자들은 거기 가서 교포들은 7-8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여러분, 여름에도 아무리 휴가를 하더라도 매주일마다 교회에 나와 가지고 주님 앞에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인 그런데 이 선물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아시겠죠? 예수 믿는 자에게 주시는 영생이란 말이에요. 예수 믿는 자에게 주시는 풍성한 삶이란 말이에요.
예수 믿는 자에게 주시는 결핍을 해결하는 길인데, 그 결핍을 사람끼리 해결하고 바캉스가 해결하고, 여러분 빠리의 7,8월은 누구만 있느냐? 발리에 개들하고 한국 사람들 와서 여행하고 있다고 해요. 그게 아니라, 매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면서 이 놀라운 하나님의 선물을 우리가 기억하고 감사하고 그렇게 해 야 되는데 세상에!!~ 영국에 가니까 영국의 뮤지움 꼭대기에 무지개의 깃발을 달아놨어요. 영국의 시청, 시청 위에다가 무지개의 동성애 깃발을 달아놨어요. 영국의 학교 위에도 달아놨어요. 뭐 독일도 마찬가지고, 오스트리아 마찬가지고, 가는 곳마다,,, 여러분 유럽이 진짜 어려워졌어요.

아이고 아이고,,. 맥도날드 들어가서 뭘 하나 먹었는데 맥도널드 먹고 난 다음에 화장실에 가는데, 화장실 가니까요 화장실에 사람이 있어 왜냐 1유로를 달래? 여러분 맥도날드 들어갔는데 그 안에 화장실 쓰는데 또 돈 내야 됩니까? 아주 못 알아들으셨어요. 아뭏튼 또 케첩을 달라니까 케첩 값을 따로 받아요. 세상에 여러분, 갔어요 갔어,,,

제가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에요 왜 탈 복음화 현상 때문에, 인생의 결핍을 어떤 철학이나 인생의 결핍을 어떤 신념이나 인생의 결핍을 인본주의나 인생의 결핍을 사람이나 물질이나 환경을 통하여 얻으려면 해결해야 안 되는 거예요. 영생을 선물로 주신, 가장 강력한 선물로 주신 그 은혜를 우리가 받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 오늘이 제가 첫 번째 주제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이 모든 해방 선언의 총집약 단어가 뭐라고요 선물이라는 단어에요.

두 번째는 이제 오늘이 오늘 사실이 12절부터 23절까지가 쉬운 내용은 아니에요. 근데 저는 기도하면서 어떻하면 여러분들이 저는 이제 책임이 있잖아요. 본문을 인테 그 본문을 정확하게 전체를 해결해 해석해 드려야 할 책임이 있으니까 ,그것도 여러분들이 알아듣게 한번 보고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일들이 많아요. 근데 그다음에 이제 이런 놀라운 선물을 주셨는데, 그런데 사람들이 죄를 짓는 거에요.
예수 믿고도,,, 실제 삶에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는 예수님을 믿고도 또 죄를 짓는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II. 둘째, 죄는 우리에게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가져온다.
*로마서 6:12-23,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너희 몸, 너희 지체, 너희 자신 모든 것들이 뭐예요? 우리 전인격이에요. 우리의 전인격이라면 우리의 눈, 코, 귀, 입, 말, 행동, 손발이 전체를 우리가 의의 병기로, 불의 병기가 아니라, 의의 병기로 죄의 종이 아니라, 순종 예수님의 종으로 그리고 의의 병기로 우리가 사용을 해야 되는데, 문제는 우리가 이 죄를 지은 우리가 이런 우리의 삶의 전인격을 가지고 은혜를 받아도 죄를 짓는 경우예요. 그러니까 죄를 지을 때 나타나는 두 가지가 큰 현상이 있으니 그 두 가지 큰 현상을 명심을 하고 죄를 지을 때마다 그 두 가지 현상을 생각을 하고, 죄를 주님 앞에 자백하고, 자신을 깨끗이 하면서 우리가 남은 생애를 주님의 주제권을 인정하면서 살아가라. 그 뜻이에요

그러니까 어떻게 하느냐, 자 우리 지체, 우리 몸, 우리 자신을 어떻게 돼, 우리가 주님 앞에 의의 병기(兵機)로, 그다음에 예수님의 종으로 순종의 종으로 의의 병기로 사용해야 되는데, 죄를 지을 때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①첫째, 죄(罪)는 우리를 노예(奴隸)로 만든다.
-16절부터 18절까지 보니까, 첫째로 죄는 우리를 뭐로 만든다고요? 노예로 만든다. 그래서 16절부터 18절까지 보세요.
*로마서 6:16-18,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이 뜻을 종합하면 우리가 의의 종이 된 거 너무 감사한데, 예수를 믿고도 은혜를 받고도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되는데, 죄의 종이 된다는 건 무슨 뜻인가? 죄의 통제권 안에 들어간다. 그 말이야. 죄의 뭐 안에 들어간다고요? 통제권, 그리고 여기서 죄의 종이라고 했을 때, 이 종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무슨 Stewart, 청지기이다. 사환이다. 혹은 무슨 자발적인 봉사나 삯을 받고 일하는 하인(下人)이다. 그런 뜻이 아니고 이 종은 둘로스예요. 둘러스(Duluse)라는 말은 완전히 완전히 자유 의지가 박탈되어서 다른 사람이 시킨 대로 하는 사람을 둘러스라고 해요.

그러니까 둘러스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최종 통제권이 없는 사람, 다른 사람의 처분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걸 아시고 요한복음 8장에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요한복음 8:34,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죄를 뭐예요? 죄의 한번 따라가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오늘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도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우리에게 문제가 뭐가 되느냐 죄의 통제권(統制權) 안에 들어가는 거예요. 죄의 종이 되는 것이에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기들은 영적 자유인이라고 프라이드를 갖고 자부심이 큰 소리를 쳤는데, 예수님은 아니야 너희들은 죄의 종이 되었어. 죄의 종이라는 말은 죄가 우리를 노예(奴隸) 상태로 만든다는 사실이에요. 죄가 우리를 얼마나 노예 상태로 만드는지, 아까 창세기 4장 7절에 처음으로 죄가 등장하는데 이런 말이 나옵니다.

*창세기4:7,
7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
-죄가 뭐예요? 문에 엎드려져 있는 죄가 우리 우리 안방에 있는데 안방 문 앞에 문 앞에 죄가 딱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밖에 있던 그 죄가 우리 안방을 들어와 가지고 안방에서 주인 노릇을 하는 거, 안방마님이 되는 거예요. 나를 통제하는 거예요. 나를 군림 하는 거에요. 나에게 군림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 죄가 예수 믿고도 죄를 지을 때, 죄를 지을 때마다 죄에게 우리가 문고리를 쥐어 주는 것이에요. 죄가 예수 믿는 사람 문 앞에 엎드려져 가지고 호시탐탐(虎視眈眈) 우리가 문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고, 노리고 유혹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문이 열려 가지고 죄가 들어오게 되면 죄는 군림자가 되고, 우리를 노예 상태로 만들고 죄가 폭군이 되어서 우리를 죄의 종(從)으로 삼아 버리는 것이에요. 처음에는 내가 죄를 선택하는 것 같지만 죄가 나를 끌어당기고 나중에는 죄가 나를 본능처럼 통제하고 명령하는 것이에요.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죄를 지을 때마다 오늘이 말씀을 기억해 죄는 우리를 너희로 노예로 삼는다. 내 삶에 통제권을 지고 있다. 어느 정도 통제권인가 아주 확 확 확대 재생산시키는 통제권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거짓말하기로 선택할 때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낳는 거예요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이 점점 확대 재생산 되어 가지고 자꾸 커지는 거예요. 한 가지 거짓말은 여러 가지 열 가지 거짓말을 가져온다는 말이 .거짓의 죄를 지을 때 우리가 인식하기도 전에 또 다른 거짓말하는 소위 죄의 통제권 안에 들어가는 거예요. 둘로스. 노예처럼 분노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화를 내고 폭발을 하면 상대방도 똑같이 화를 내는 거에요. 부부간에 더 깊은 상처를 받고 원치해 놨던 더 큰 싸움에 휘말리게 되는 거에요. 이게 죄의 노예 상태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에요.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큰 심한 고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죄가 우리 문 밖에 있는데, 죄 우리가 예수 믿고도 죄를 지을 때 죄가 우리 안방에 들어와 가지고 그것 때문에 우리의 영적 전투와 영적 싸움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진지 구축을 하게 되면 우리가 그래서 우리 제대로 진지 구축을 하는 거예요. 죄가 우리 속에 들어 주었기에, 우리 저 공산당들은 도미노 현상 해 가지고 진지 진지론을 하잖아요. 혁명의 진지론 이라는 게 있어요. 죄의 진지로는 어마어마한 거예요. 밖에 딱 있다 들어와 가지고 통지권 행사해 가지고, 우리를 노예 상태로 만드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죄 짓기 전에는 죄와 피 흘리는 투쟁을 하고, 죄를 짓고 난다면은 이게 통제하지 않도록 빨리빨리 처리를 하는 그런
능력을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아멘.

오늘 81주년 광고 해방 주일 날,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죄의 종에서 해방되었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우리는 죄의 종이 아니라, 누구의 종입니까 예수님의 종입니다. 오늘 이 주일 누가 우리를 통제하는가? 아니 나는 누구의 종인가? 거기에 따라서 인생은 완전히 달라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죄가 우리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의 노예가 아니라, 죄의 둘로스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종, 의의 종, 의의 병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근데 오늘 이제 가장 중요한 클라이맥스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죄를 지으면 죄가 우리를 노예 상태로 만든다. 죄가 우리를 통제한다. 이것뿐만 아니라, 더 오늘 심각한 것이 20절 21절 20절과 21절을 또박또박 같이 우리 합독 하겠습니다.

*로마서 6:20~21,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조금 어려운 거 같은데 이런 뜻이에요. 아담과 하와가 범죄를 하고 난 다음에 죄의 종이 되고 난 다음에 아 자기 나름대로 자유 의지를 가지고 선택했는데 자기 나름대로 자유론 같았죠. 사실은 무슨 일이 벌어졌어요? 그때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죄를 지을 때마다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죄는 우리에게 수치를 가져오는 거예요.
②둘째, 죄는 우리에게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가져온다.
-죄는 우리에게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가져오는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이거는 주님과 나만이 하는 은밀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거기에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있다는 것, 죄를 지으면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가져온다는 거, 아담과 하은 그 죄지은 것 때문에 얼마나 수치스러웠는지, 그 몸을 가리 부끄러웠어요. 사도 베드로는 죄를 짓고 난 다음에 너무나 수치롭고 부끄러워 가지고 대성 통곡(痛哭)을 했어요. 죄는 우리에게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가져오는 거예요. 이걸 제대로 깨닫고 나면 우리가 죄짓 죄짓기 전에는 피흘림 투쟁을 할 수가 있어요. 다시오. 죄가 우리 문밖에 있어요. 죄가 우리 안방에 들어왔고, 안방마님 노릇하기 전에 죄와의 피 흘리는 투쟁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자 이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지은데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거예요 왜냐면 죄는 실제로 부끄러운 것이기 때문에, 다윗이 범죄하고 난 다음에 세상 사람들은 몰라도 내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였나이다. 주님과 나만이 하는 은밀한, 은밀한 아픔이 있는 .그러나 영생을 선물로 받은 그리스도인은 죄로 인한 수치심이 우리를 도피(逃避)나 절망(絶望)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그 수치(羞恥)가 오히려 회개(悔改)와 십자가(十字架)의 은혜(恩惠)로 이어져야만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해방 주일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수치심(羞恥心)이 죄로 인한 마지막 수순(隨順)이 되어서는 안 돼요.

여러분의 생애(生涯)가 수치심으로 끝나면 안 된다니까요. 왜냐하면 우리의 생에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이 있지만, 수치와 부끄러움이 우리의 생에 끝이 아닌 이유가 뭐냐, 살아계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온갖 수치를 다 당해 주셨기 때문에 그런 것이에요. 아멘! 예수님께서 우리의 수치를 다 대신해 주셨기 때문에 여러분이 땅에 십자가와 같은 그런 수치가 어디 있습니까?

십자가에 예수님께서 벌거벗기시고, 조롱당하시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 창으로 찔리시고, 공개처형을 당하시고, 창자가 터져 나오는 수치를 당하셨어요. 예수님이 그 수치를 당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에게 죄로 인한 수치심은 십자가 앞으로 달려갈 수 있는 계기가 되면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수치스러움으로 숨을 사람이 아니라, 우리는 죄를 자백하고, 처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돼야만 하는 것이에요.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수치 때문에 우리 죄를 자백하면 선물로 주신 하나님 은혜 때문에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나 속죄함을 받은 후 한없는 그 은혜가 얼마나 큰지,,, 그래서 오늘 사랑의교회 모든 성도들은, 죄로 인한 수치심이 복음으로 재해석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탕자의 비유에서 돌아온 탕자가 수치스러워 가지고, 아버지 나는 아버지의 일꾼이라 칭함 받는 것도 할 수가 없다고,,, 나는 아니라고,,, 너무 부끄러웠다고,,, 여러분 그게 끝이 아니에요. 그 멀리 도망가 가지고 돼지 쥐염 열매를 먹는 그 수치 가운데, 그 수치로 끝나지 아니하고, 그 수치심과 그 아픔이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계기가 된 것처럼, 만약에 그 수치심이 하나님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도망치고 끝나 버린다면 그건 파괴가 되지만, 그 수치심이 나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면, 그 수치심이 회개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아멘. 따라서 제가 오늘 좀 정리를 했습니다.

*죄로 인한 수치심은 복음으로 재해석으로 되어야,
•세상의 수치심은 '숨고 도망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복음은 영생을 선물로 받고 '빛으로 나오라'고 말한다
•세상의 수치심은 '너는 이제 끝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복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다시 너를 살릴 것이다'라고 말한다
*세상의 수치심은 하나님은 너를 멀리하신다'고 말한다. 그러나 복음은 '아버지는 아직도 거리가 먼 데서 너를 보고 달려오신다'고 말한다. 그러니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한다

-the best is yet to come 아직 인생에 최선을 오지 않았다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도 아직 제 인생에 최선이 오지 않았다고 저 믿고 있어요. 주님 만날 그날이 우리의 인생의 최고의 시간이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여러분들의 인생의 클라이맥스가 언제일까요? 40대, 50대 잘 나갈 때, NO! 주님 앞에서는 그날의 인생의 클라이맥스가 돼야 되는 것이에요. 모든 수치와 부끄러움을 다 처리하시는 그날, 다시오. 그리스도인은 수치가 사라진 회복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수치를 안고 아버지께로 돌아갈 때,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성령께서 우리에게 영감을 주시는데, 내가 수치스러웠지만 이제 남은 인생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더 쓰임 받고 어떻게 하나님 더 사랑하고 하나님께 하나님을 더 기뻐하실까,

제가 오늘 이제 말씀을 정리하면서 한두 가지 적용을 하겠습니다 제가 오늘 해방 주일 날 제가 아 어떻게 우리 성도들이 오늘 이날 좀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좀 뜻깊은 시간을 질 수 있을 것인가, 여기 나이 드신 어른들이나 부모님들 세대는 이 피의 복음과 보혈 복음과 수치를 극복하게는 복음과 통제권, 노예 상태의 이 인생을 해결시켜 주는 핍절함을 해결시키는 이 해방 선언의 이 복음의 깊이를 실적주의가 아니라, 공로 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찾아 오신 이 복음의 신비를 여러분 자녀들에게 알려주는 그 역할을 남들에게 에게 맡기지 마시고, 여러분들이 그 특권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아멘!!! 믿음의 세대 계승을 해방 선언을, 죄의 우리 자녀들이 평생에 갖고 있는 원죄의 죄 해방 선언을 여러분들이 역할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지방에 계시는 장로님이 서울에 있는 손주 셋이 있는데, 그 손주에게, 아 내가 손주들에게 제일 잘해 줄게 뭐냐 생각하다가 매 주일마다 카톡으로 이 퀴즈 성경 퀴즈 문제를 내야 되겠다. 그리고 그 퀴즈 문제를 맞추면 계좌 이체를 해야 되겠다. 아이들은 계좌 이체 때문에 그 뛰어드는데 수년간 한 줄도 빠지지 않고, 아이들에게 퀴즈를 내는 것입니다. 주로 어떻게 되느냐 본인이 나가는 교회에 담임 목사님이 주일 설교에 하셨던 그 내용을 본인이 소화시켜 가지고 그걸 퀴즈 문제로 만들어 갖고 퀴즈를 그거 답할 수 있겠습니까? 아이들 잘 못 하죠. 근데 요즘은 이런 하면 쳇gpt가 다 답을 해 줘요. 그렇기 때문에 영상으로 직접 쳇gpt 못 보게 하고, 딱 그렇게 수년 동안 아이들하고 하는데 그게 할아버지로서 손주에게 해 주는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여러분이 복음의 깊이를 여러분들이 아이 자녀들에게 믿음의 세대에 성할 수 있는 특권을 갖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다음에 복음의 역사를 가르치시고, 그다음에 한국 교회 역사를 가르치시고, 그다음에 세계 선교의 역사를 가르치시고, 사랑의 교회 역사도 가르치는 은혜가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게 너무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해방 선언의 이 참 복음을 우리 가족들과 자녀들에게 가르치자. 예를 들어서 다음 주일 날 퀴즈 문제는 뭐냐 죄의 삯은 사망인데, 하나님의 선물은 뭔지 알아? 딱 그리고 죄를 지으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통제권에 살아 종이 되고, 또 하나는 뭐예요 수치심이다. 이거 알아 이거, 그 그것도 답을 좀 내고 이렇게 하면 여러분들이 우선 걸 갖고 있는 거예요. 지금 또 하나는 뭐냐면 우리의 삶의 통제권을 우리가 죄의 통제권이 아니라, 해방 선언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께 우리가 삶의 통제권을 드리게 되면, 우리는 굉장히 자유함을 갖게 되는 거예요. 자유스러워지는 거예요. 진정한 자유를 갖게 되는 거예요. 무슨 뜻인가면,

※제가 지난 5월 달에 제자훈련 세미나 미국 갔다가 미국 캘포니아에 얼바인에서 그 어 에나임이란 곳까지 한 20마쯤 되는데 거기 저 어떤 목사님 부목사님 한 분이 근데 목사님 오늘 목사님 한번 경험 한번 하십시다 뭔데니까 얼바인에서 에나임까지 20쯤 되는 그 길을 한 32km, 자율 주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서이 친구가 뭡니까, 목사님이 그냥 운전을 딱 안 하고 맡겨 버리고 나는 옆에 앉았는데 내 깜짝 놀란 거예 야 괜찮나, 갑자기 성 어떡하냐 너 옆에서 또 끼어들면 어떡하냐, 체 레인체인지는 어떻게 할 거야 막 했는데, 목사님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내가 봤을 보니까 하나도 문제 없이 32km를 그냥 쭉가요 가 갖고 교회에다가 딱 데려다 주더라고요. 야 이거 이거 새로운 세상이 왔네. 또 제가 이번에 그 뉴욕을 갔는데 어떤 분이 나한테 본인이 그 로봇 무인 택시를 캘포니아에 와 가지고 탄 그 텍사스 탄 걸 이렇게 보여 주는데 그 소위 웨이모라는 건데 거기다가 로봇 무인 택시야 그거는 아무도 없어 스마트폰으로 갖다가 앉아 갖고 하면 딱 갖다 주는 거예요. 야 그게 진짜 가능하나 그러니까 아무론 문제 없이 타고 갔다 온 걸 나한테 그 영상 걸 보여 주는 거예요 세상에 진짜 그럼 너는 뭐 했나? 그러니까 목사님 새우가 먹었죠. 앉아 갖고,,, 응 앉아 편하게,,, 아 근데 그런 그 로봇 공학 이런 그 이제 흐름을 잘 아니까 편한데, 우리 같은 사람은 그 마음 편하겠어요?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되겠나,

자 이런 뜻이에요 우리는 삶의 통제권을 주님께 드린다고 하면서도, 내 삶의 통제권을 주님께 드리지 않아요. 입술로는 주님 나를 인도해 달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내 손은 내 운전대를 내가 막 쥐고 있는 거예요. 주님 뜻대로,,, 하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면서도 내 뜻이 꺾일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 거예요. 입술로는 주님만이 나의 주인이라고 찬양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우리 세상 그냥 흐름으로 사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이 해방 선언은 내 삶의 통제권을 주님께 드릴 때 받는 축복을 받아야만 되는 것이에요 문제는 차가 없거나 길이 없거나 주님이 계시지 않는게 아니고 문제는 우리가 운전석에서 내려오지 않는 거예요. 우리가 그래서 오늘 주님의 주님의 저는 그래서 테슬라가 보면서.,,, 아, 주님의 인도가 테슬라 자율 주행보다 못하겠나? 다시 물을게요. 예 여러분 테슬라의 인도가 또 웨이모, 그 무인 로보트 저기 뭡니까 택시가, 예 그게 주님의 인도보다 더 하겠습니까? 못 하겠습니까? 대답도 그냥 메리메리하죠. 그냥 다 크게 대답하세요. 여러분 주님의 인도가 테슬라 자율 주행보다 못 하겠습니까?

오늘 15절에 그럴 수 없느니라,,,그럴 수 없느니라. 왜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느니라. 아멘! 그래서 여러분 주님께 통제권을 드리는 것이 진정한 해방 선언인 거예요. 저는 테슬라가 아니라, 우리는 하슬라 자율주행이 아니라 신율주행, 우리의 인생의 운전대를 내려놓는 순간 우리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쉼을 누릴 수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아멘 그럴 때 비로서 창밖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하늘을 보고 나무를 보고 길을 보고 내가 만든 길이 아니라 주님이 열어 주신 길이 보이고 내가 버티는 것이 아니라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붙들어 주신 것이 보이게 될 겁니다. 아멘! 그리고 자율주행 옆에 앉아 있으면 그냥 커피도 마실 수 있습니다. 테슬라 보다 나으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인생이 창밖을 보며 여유를 갖고 조수석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참 쉼을 갖는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우리의 진정성을 가지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주 사랑하는 없고 주 선물 한없고 이 찬양이 우리의 진실된 고백인 줄로 믿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시는 주님의 은혜 앞에 우리 앞으로 죄에게 조금도 문을 열어 주지 않는 인생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세상에 너는 이제 끝났다. 라고 수치심을 줄 때에 절망으로 도망치지 말게 하여 주시옵시고, 수치심보다 더 큰 주님의 선물 은혜의 품으로 속히 돌아오게 하여 주옵소서. 가정 가정마다 자녀들에게 피의 복음의 은혜를 가르치는 귀한 부모님들 되게 하여 주셔서, 영적 해방 선언을 계속 계승하는 믿음의 아름다운 신앙의 가문들을 이루어 주옵소서. 이 민족도 주님 불쌍해 주시고 오늘이 예배 때문에 이 민족의 현재와 장례가 희망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간절히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요약
-죄로부터의 해방은 인간의 공로나 노력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 한 우리를 위해 친히 아들을 제물로 내어주신 하나님의 조건 없는 선물이다. 따라서 성도는 구원을 은혜로 받아들이며 인생의 결핍을 세상이 아닌 하나님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반면, 구원받은 자라도 죄를 지으면 자유의지를 잃고 죄의 통제권 아래 놓여 노예 상태가 되며 부끄러움과 수치를 겪게 된다. 그러나 성도에게 죄로 인한 수치심은 절망이나 도피의 이유가 아니라,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회개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수치를 대신 당하셨기에, 수치를 안고 하나님께 돌아갈 때, 진정한 회복이 시작된다. 그러니 결국 우리의 참된 해방은 삶의 통제권을 자신이 아닌 주님께 완전히 맡기는 데서 온다는 것을 잊지 말고, 자신의 뜻과 고집을 내려놓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삶을 내어드릴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와 안식을 누리게 됨을 확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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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6년 8월 15일)
설교제목 : "기도하는 자녀의 무릎"
성경본문 : 마태복음 7:7~11


설교자 : 윤대혁 후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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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7~11,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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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아멘, 오늘 토요 여러분 부흥헌신 토요비전예배에 오신 여러분들 진심으로 환영을 축복합니다.

이 자리에 함께하는 기도가 우리에게 큰 축복과 위로가 되는 좀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옆에 분에게 함께 서로 인사했으면 좋겠는데요. 여러분 우리 잘 오셨습니다. 인사할 텐데 오늘 아침이라 얼굴을 맞대면 서로 놀랄 수 있으니까 어깨 선만 보면서 인사하겠습니다. 오늘 잘 오셨습니다. 오늘 잘 오셨습니다. 하나님 말씀 봉독해 올리겠습니다. 마태복음 7장 7절부터 11절 말씀입니다.

신약성경 9페이지 마태복음 7장 7절부터 11절까지 있는 말씀 서로 교독하며 11절의 말씀은 함께 봉독히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7:7~11,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계속해서 무릎 기도 시리즈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기도하는 자녀의 무릎’이라는 제목 가지고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서 우리의 삶에 많은 것들이 달라졌습니다.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성령 하나님에 속한 자, 하나님에 속한 자, 그리고 천국을 소망으로 품는 자가 우리는 되었습니다. 또 우리에겐 주님께 주시는 은혜와 또 위로와 평강 가운데 늘 감사하고 기뻐하고 행복할 수 있는 우린 또한 참된 신앙의 길을 또한 걷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 백성이 되었다는 것, 놀라운 은혜와 축복임과 함께 이 땅을 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예수를 믿어서 허락하신 새로운 축복과 특권은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여러분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절대 아무나에게 하나님께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자, 예수를 주라 고백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특권이죠.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 가운데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가운데 살게 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시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기도를 생각할 때에 이런 생각합니다. 내가 기도를 하는 이유는 문제가 많아서 기도하는 것이다. 내가 기도하는 이유는 내 인생에 사건이 있어서 나는 기도하는 것이다. 내가 기도하는 일은 내 인생에 어려운 일이 있어서 나는 기도한다. 라고 우리는 쉽게 말을 합니다. 하지만 기도의 시작은 문제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의 시작은 내 인생에 어려움이 다가왔기 때문에, 힘듦이 다가왔기 때문에 나의 삶에 기도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집사님 이제 기도할 때가 되었나 봐요. 라고 우리는 쉽게 격려를 하죠. 하지만 기도는 문제와 어려움이 있어서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존재로부터 시작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순간부터 우리가 하나님의 천국 백성이 된 순간부터 우리의 삶에 기도가 시작되는 겁니다. 우리가 아이를 키울 때도 아이가 태어나서 눈을 뜨면 엄마 아빠를 알아보고 그 아이가 제일 첫 번째 말을 할 때 무슨 말을 하죠? 아빠 엄마라는 말을 처음 배우죠. 그때 아빠 엄마는 싸웁니다. 아빠라고 먼저 했다. 엄마라고 먼저 했다. 아이는 맘마 달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빠라고 했다. 엄마라고 했다. 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죠. 그런데 이 아이가 아빠 엄마를 인식한 순간부터 부모가 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말이 있습니다. 뭐죠? 주세요!,, 입니다. 그렇잖아요. 아빠 엄마를 알아본 인식한 순간부터 그 부모는 아이들에게 가르킵니다. 주세요. 라고 말하세요. 주세요. 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깐 자신이 그 부모의 자녀라는 거를 내 아빠 엄마가 있다는 걸 안 순간보다 그 아이가 그 다음에 배우는 단어는 주세요. 라는 단어입니다. 여러분 이것도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는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뭐냐면 주세요, 기도하라. 라는 말씀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마태복음 7장 7절과 8절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을 기록합니다.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아멘,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대한 응답을 말씀하시는데 예수님께서는 구하는 문제마다 구하는 찾는 이유마다 두드리는 사건마다 응답하겠다고 말씀하지 않았고,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8절이 보니까 구하는 이마다 찾는 이마다 두드리는 이마다, 구하는 사람에게 찾는 사람에게 두드리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의 기도의 응답은 문제가 아니라, 구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겁니다. 그럼 기도의 특권은 누구에게 주셨어요?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셨다. 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를 들으시냐?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겁니다. 자, 구하는 문제마다 구하는 사건마다 구하는 일마다가 아니라 구하는 사람에게 찾는 사람에게 두드리는 사람에게 그가 누구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응답하신다는 것이죠. 그래서 기도는 여러분 관계에서 시작되는 겁니다. 누가 기도하냐가 여러분 중요하다는 것이죠. 의학박사, 미국의 의학박사 가운데 래리 도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연구했냐면 ‘기도가 질병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면서 여러분 치료하는 기도라는 책을 냈는데 그 결과가 참 흥미롭습니다. 병원에 있는 환자들 가운데 이렇게 분류했습니다. 기도하는 그룹이 있고 기도하지 않는 그룹이 있습니다. 종교를 떠나서 기도하는 그룹이 있고 기도하지 않는 그룹이 있는데, 그 결과가 눈에 띄게 달랐다는 겁니다. 기도하는 그룹은 더 병세가 빨리 회복됐고 기도하지 않는 그룹은 그 병세가 회복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라는 연구를 했는데 이게 맞는 것 같지만 또 100% 맞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기도의 행위는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여러분 하나님을 모르는 자나, 다른 종교를 가진 자나 다 기도라는 행위는 각 종교마다 있습니다. 그러면 기도의 행위로 여러분 절대 응답과 은혜가 임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 지극한 정성,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이것이 아니라 기도는 누가 누구에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계신 지금도 역사하시는 응답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실 때에도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첫 만물을 말의 문을 여신 단어가 뭐냐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요, 우리가 누구에게 기도하냐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 아버지에게 기도하기 때문에 기도가 시작되고 기도가 응답된다라고 가르쳐 주셨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의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의 기도는 어떻게 기도해야 되는 것일까요? 세 가지로 말씀을 나누고 정리하길 원하는데요. 하나님의 자녀의 무릎 기도는 첫 번째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여러분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무릎 기도는,
I. 첫 번째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여러분 기도입니다.
-여러분 자녀에게 부모라는 존재는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항상 엄마 아빠에게 묻는 게 뭐냐면 엄마의 존재와 아빠의 위치를 묻죠. 그래서 늘 묻습니다. 아빠 어디 가? 엄마 어디 가? 엄마 언제 와? 아빠 언제 와? 그러니까 아이들은요. 그 부모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그 부모의 존재에 대한 의존적인 교재를 갖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부모에게 자녀는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부모가 공급해주지 않으면 그 무엇도 얻을 수 없는 게 여러분 자녀이죠. 자녀는 전적으로 부모를 의존해야 여러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에게 모든 사랑과 모든 은혜를 베풀어 주죠.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설명하시면서 그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말씀하셨습니다. 떡을 달라는 자녀가 있는 왜 떡을 주지, 생선을 달라 하는 자녀에게 생선을 주지 다른 걸 주겠느냐? 하면서 그 기도를 그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여러분 주님이 설명하셨죠. 그 이유는 그만큼 자녀의 기도는 그 부모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된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아이가 부모에게 아빠에게 조릅니다. 다리가 놀이동산을 갔든 길을 가다가 자녀들이 가끔씩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아빠 업어줘. 엄마 안아줘 합니다.

그런데 아빠 엄마도 힘든데 그 아이를 안아줄 수밖에 없을 때 한번 이렇게 물을 때가 있습니다. 장난치면 묻죠. 내가 왜 너를 업어줘야 되는데? 아빠도 힘들어. 내가 너를 왜 안아줘야 되는데 엄마도 힘들어. 그런데 아이들은 내가 갑자기 그 부모의 당황스러운 침묵에 당황되죠. 그런데 이 아이의 한마디가 그 부모가 아이를 업어주고 안아줄 수밖에 없습니다. 뭐라고 말하냐면 아빠잖아. 엄마잖아. 나 엄마 자식이잖아. 아빠 자식이잖아. 이거 외에는 아이들이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엄마 안아주세요. 아빠 업어주세요. 내가 너를 왜 업어줘야 되는데? 아빠잖아요. 내 아빠잖아요. 이게 이 아이가 해준 유일한 여러분 답변이랍니다. 여러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가 왜 너의 기도를 들어줘야 되는데? 왜 내가 너를 보호해줘야 되는데? 내가 왜 너를 지켜줘야 되는데, 답이 없어요. 그렇게 잘난 것도 없고 하나님한테 떳떳하게 산 것도 없고 늘 부끄럽고 죄송스럽고 정말 주님 앞에 나오면은 생각나는 게 내 연약함 밖에 생각 안 나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매달리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응답을 구할 수밖에 없는 그 이유는 하나잖아요. 나 하나님 자식이잖아요. 나 하나님 백성이잖아요. 나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나를 살리셨잖아요. 그렇다면 나 책임져 주셔야죠. 이거 외에는 여러분 답변이 없어요.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의 무릎 기도의 특징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의존성이라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는 연약한 내 힘으로 이 땅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의존적인 관계가 돼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 나는 하나님 없으면 안 돼요.

하나님 나 도와주시면 안 돼요. 하나님 나를 지켜주지 아니하시면 안 돼요. 나를 살펴주셔야만 내가 오늘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 그런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그런 연약한 자녀입니다. 이런 기도가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의 무릎 기도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의 자녀의 기도가 응답될 때 성경은 뭐라고 말하냐면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된다. 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을 피곤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그 기도의 가운데 응답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심이 인정되는 현장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기도와 응답은 하나님의 하나님 대신 인정되는 자리라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적극적으로 응답하기를 어떠 하신다? 원하신다는 겁니다. 왜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인정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기를 주님은 즐거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의 삶의 신앙이 시작되었다는 것,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내 삶에 여러분 기도가 시작되었다. 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반대로 말한다면, 우리에게 기도가 멈췄다는 것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있다. 라는 말과 틀리지 않습니다. 더 심하게 말하면 기도 없는 신앙은 가짜 신앙입니다. 좋아하지 않는 성도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고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왜요? 믿기 때문에 시작되는 게 뭐예요?

기도이기 때문에 기도가 내 삶에 시작되지 않는다면 내가 참 그리스도인이라 하나님의 자녀라 말할 수 있겠는가? 기도가 소리가 작아지고 기도하지 않는 교회도 여러분 주님께서 세우시는 기뻐하시는 교회라 또한 말할 수도 없습니다. 기도가 받침 되지 않는 사역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사역이라도 말할 수도 없습니다. 기도를 해야 기도 가운데 성령의 바른 열매를 맺어갈 수 있게 되는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세상은요. 사단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간에 성도들의 삶의 교회 공동체 안에 기도를 하지 못하게 하려고 방해하는 것이죠. 분주한 삶으로, 교만한 삶으로, 죄악 된 삶으로, 우리의 멀어진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려고 합니다.

우리의 삶에 기도의 소리가 있어야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역사의 기적의 현장이 여러분 펼쳐지게 되는지 믿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삶에, 교회의 삶에, 기도가 작아지는 것은 교회의 위기고 가정의 위기고 한 성도의 위기가 됨을 믿습니다.

반대로 기도가 시작되면 다시 회복과 능력이 시작되는지 믿습니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무엇일까요? 한국 교회 위기 많은 분들이 진단합니다. 저도 섣불리 진단하지 않겠지만, 한국 교회 위기 할 때, 많은 분들은 다음 세대가 떠난다. 청년들이 떠난다. 많은 이유가 있겠죠. 진짜 한국 교회 교회가 위기에 빠졌다고 할 때는 기도가 사라질 때, 기도가 작아질 때 모여서 함께 기도하는 기도의 함성이 들리지 않을 때, 그것이 한국 교회의 위기의 시작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 과거 우리 믿음의 선배들 보면 주말만 되면 철야 기도가 있었어요. 아시죠? 철야는 진짜 철야 했습니다. 12시에 기도 시작해서 그 다음날 6시까지,,, 진짜 밤새 밤새 철야 했고 기도원마다 정말 기도원이 바글바글했습니다. 그래서 기도 소리가 가득가득했어요. 제가 총신대학교를 다닐 때에도 총신대학교 도서관 뒤편에 기도 굴이 있었습니다. 뭔 일이 있으면 그 기도굴에 가서 기도를 했던 그 시절이 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저희 아버님 시대 때는 그 사당동 쪽에 지역 주민이 그렇게 총신대에 항의 전화를 많이 했대요. 무슨 항의 전화였냐면 총신대에서 염소 키우냐고,,, 밤마다 염소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자겠다고 그게 뭐냐면 그 뒷산 기도굴에서 계속 기도하는 소리가 음메,,, 음메 저런 소리를 가지고 총신대학에서 대체 학생은 안 키우고 염소를 키우는 거 아니야? 그렇게 항의 전화를 받을 만큼 기도가 밤새 가득했습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를 살렸고요. 이 땅을 살렸고, 이 민족을 살렸다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가 돌아오는 내일이죠.

내일 우리가 청계산 산상 기도하는 이유가 뭡니까? 구국 기도하는 이유가 뭡니까? 한국을 살리겠다는 겁니다. 주요 이 땅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다시 한번 일으켜 주옵소서 국난의 위기 가운데 하나님 이 땅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주님께서 가르쳤었던 것처럼 감람산에 올라가 가슴을 치며 기도하셨던 것처럼, 겟세마네 동산에서 눈물 흘리며 기도했던 것처럼, 그때 이 땅에 살아났던 것처럼 주님 우리도 주님께서 우리가 가르쳐 주셨던 것처럼 그 산에서 주님과 함께 이 땅 위하여 부르짖겠나이다. 이 땅을 살려주옵소서, 이 민족을 살려주옵소서, 우리를 살려주옵소서 이 기도의 시작이 모든 것의 회복의 시작이 됨을 믿습니다.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권이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축복이 됨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기도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거예요. 두 번째, 하나님의 자녀의 무릎 기도는 무엇일까요? 두 번째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기도입니다.

◎ 하나님의 자녀의 무릎 기도는,
II. 두 번째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기도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함을 표현하는 비유적인 관계가 있어요. 부부의 관계를 통해서 친밀함을 말하지만 특별히 기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는 부부의 관계로 말하지 않았고 여러분 자녀의 관계로 친밀함을 또한 표현하셨습니다. 여러분 부부는 친밀할 수 있습니다. 그저 부부 친밀하시죠? 이럴 때 표정 잘 지으셔야 됩니다. 부부 친밀하시죠? 아멘, 확신이 좀 없으신 것 같아요. 부부는 친밀하지만 여러분 부부 안에는 뭐가 있냐면 독립성이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도움 없이도 살아요. 또 남편, 그 아내도 남편의 도움 없이 삽니다. 하지만 여러분, 부부 그 자식과 부모의 관계는 의존적이면서도 뭐예요? 친밀함이 있습니다.

기도에서 친밀함이 없다면 여러분 허공을 치는 기도와 같죠? 왜냐하면, 친밀함이 있을 때 뭐가 나오냐면 정직함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여러분, 부모는 이 아이가 부모에게 나와서 용서를 구하면 얼마든지 용서를 해줄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게 여러분 부모입니다. 하지만 부부는 조금 다르더라고요. 부부는 이때다. 이게 부부입니다. 그런데 부모는 아이가 부모 앞에 나와서 용서를 빌면 모든 것을 다 받아 용서하기로 결정돼 있죠. 그래서 친밀함 가운데 나타날 수 있는 게 뭐냐면 여러분 사무적인 기도가 아니라, 실제적인 회계의 친밀함의 기도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죠. 작은 것 하나에도 다 부모는 아이에게 관심이 있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그 부모는 항상 아이에게 묻습니다.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재밌었어. 그거 말고 또 친한 친구 누구야? 오늘 밥은 뭐 나왔어? 선생님이 뭐라고 그래? 그 부모가 뭐죠? 아이한테 계속. 계속 물어보잖아요. 관심이 있기 때문에, 친밀하기 때문에, 그리고 아이는 또 집에 와서 미주알 고주알 있었던 얘기를 다 합니다. 귀찮아 죽겠는데 계속 다 합니다. 이유는 뭐예요? 친밀하니까 모든 것을 다 부모가 들어준다고 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라는 것이죠. 여러분 친밀하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얘기할 수 있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사무적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책을 쓴 여러 유명한 영성학자인 달라스 윌레드가 기도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내 유익이 아닌 다른 훌륭한 일을 위해서만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달라스 윌레드-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를 생각할 때 너무나 큰 부담을 갖는 이유는 대단한 것을 기도해야 된다. 위대한 것을 기도해야 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만 기도해야 된다. 그렇다 보니까 부담스러워하고 항상 기도할 때는 하나님 앞에 결재를 받는 듯한 마음으로 기도한다는 거죠. 주님께서 원하실까? 원하시지 않으실까? 그러니까 기도가 항상 턱을 넘어가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달라스 윌라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후반부에 우리는 종종 내 유익이 아닌 우리 함께 요구가 시작. 우리는 종종 내 유익이 아닌 다른 훌륭한 일들을 위해서만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훌륭한 일에 대하여 기도하려고 애쓸 때 우리의 기도는 죽는다. 그 훌륭한 일들을 위한 의미 있는 기도에 이르는 길을 먼저 나에게 진정 관심사가 되는 문제부터 기도하는 것이다. 하네요.

“우리는 종종 내 유익이 아닌 우리 함께 요구가 시작. 우리는 종종 내 유익이 아닌 다른 훌륭한 일들을 위해서만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훌륭한 일에 대하여 기도하려고 애쓸 때 우리의 기도는 죽는다. 그 훌륭한 일들을 위한 의미 있는 기도에 이르는 길을 먼저 나에게 진정 관심사가 되는 문제부터 기도하는 것이다.” -달라스 윌레드-

-훌륭한 대단한 것을 가지고 기도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내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주님 앞에 나올 때 그 기도가 시작될 때, 나의 기도는 더 영적으로 확장 되어질 수 있다라는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은 나의 여러분의 모든 삶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여러분의 원함과 여러분의 소원과 여러분의 관심에 주님은 관심을 갖고 계시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니깐요. 그래서 우리가 나의 관심을 하나님께 이야기하는 것은 이기적인 기도가 아닙니다. 내가 너무 하는 게 나만 원하는 거 구하는 거 아닐까 내 바래는 나의 바라는 소원만 말하는 건 아닐까, 그 생각도 하는데 미처 하나님 앞에 구하지 못할 때가 많아요. 주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해드려야 되는데, 하지만 여러분 주님은 저와 여러분의 작은 것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그 기도의 친밀함이 시작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기도를 우린 드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더래도 하나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녀들이 구하는 것을 그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는가. 여기서 좋은 것이라는 말은 Yes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어떨 때는 그 NO가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이 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주님의 관심은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길 원하신다. 이 솔직한 주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그 기도가 바로 여러분 친밀함이라는 것이죠.

여러분 친밀하지 않은 기도는 기도를 그렇게 오래 못합니다. 기도가 깊어지지도 않아요. 친밀해야 여러분 기도가 마치 주님과의 교재고 대화인데 친밀해야 오래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또한 지치지 않고 만나도 만나도 힘들지 않은 겁니다. 친밀하지 않으면 그 자리를 떠나고 싶어요. 있고 싶지도 않아요. 빨리 이 자리가 끝났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친밀하면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거라는 거죠. 여러분 제가 한 가지 퀴즈 한번 내볼게요.

여러분 자주 만나는 사람과 대화가 더 자주 만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 뭐 더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3년마다 만나는 사람이 있어요. 자주 만나는 사람과 대화를 하면 더 대화가 길어질까요? 3년 만에 오랜만에 만난 사람과 만나면 대화가 더 길어질까요?


어떻게 이렇게 잘하세요? 그렇잖아요. 3년 만에 만나면 대화할 게 없어요. 그런데 어제를 봤는데 오늘 만났는데 오늘도 여전히 아침에 만났는데 점심 먹었는데 어떻게 하지? 저녁 먹고 헤어지는, 만나면 만날 때마다 더 대화가 길어지잖아요. 이게 여러분 기도의 능력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하자 더 기도하고, 싶은 거예요. 더. 더 많이 얘기하고 싶은 거예요. 처음에 왔을 때는 그냥 내 문제 하나로 왔다가 주님과 대화하다 보면 더 많은 기도를 하게 되며 간다는 것이죠. 그리고요. 이 친밀함이 있을 때 주님께서 내가 바랐던 것이 아니라 NO 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다른 길로 인도하셨을 때에도 친밀함이 있기 때문에 실망하지 않아요. 왜요?

나를 친근히 여겨주시고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확신과 친밀함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어떠한 응답 가운데서도 우리는 실족하거나 낙심하지 않는다. 라는 것이죠.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무릎 기도의 특징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자녀의 무릎 기도는 어떤 것일까요? 첫 번째는 하나님 의지하는 기도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기도입니다. 세 번째는 응답될 때까지의 여러분 기도입니다.

◎ 하나님의 자녀의 무릎 기도는,
III. 세 번째는 응답될 때까지의 여러분 기도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구한다는 것은 신뢰입니다. 있기 때문에 계속 구하는 거예요. 예전에 어떤 분이 믿음의 기도를 설명하면서 참 우리가 오해할 만한 설명을 하신 적이 있어요. 그게 뭐냐면 우리가 믿는 줄 알고 기도했으면 더 이상 기도할 필요가 없다. 계속 기도하면 믿음이 없어. 믿음이 없어. 또 기도해. 믿음이 없어. 이건 여러분 100% 맞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믿음의 기도는 기도했기 때문에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손에 의탁하고 맡기는 그 믿음의 태도는 맞지만, 믿고 우리네가 하나님이 응답하심을 확신하고 신뢰하기 때문에 우리 응답 될 때까지 우린 계속 기도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에스겔서 36장, 37장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함께 읽어볼까요? 시작.

*에스겔 36:37,
37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아멘 하나님 말씀 반드시 성취가 됩니다. 아멘이십니까? 그것을 믿는 않는다면 확신한다면, 신뢰한다면, 너희들은 이것이 이루어지기를 너희는 내게 구해야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라는 것이죠.

여러분, 한 번 기도하고, 더 이상 기도할 필요 없다. 이것이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는 확신하여 오늘도 확신하고 신뢰하며 이 기도의 자리에 있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무릎의 기도임을 믿습니다.

여러분 왜냐면요 기도는 문제가 해결되고 사건이 해결되면 멈추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도는 응답 되어도 계속돼야 되는 것이고, 그 문제가 해결되어도 계속돼야 되는 것입니다. 왜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기도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도는 하면 할수록 그 기도의 제목의 수가 더 많아집니다. 하나님과 친밀함 가운데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가기 때문에,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까지 약속하셨지만, 약속하신 바가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는 신뢰하며 기도해야 됩니다.

성도들의 삶에 기도의 멈춤은 우리가 사무엘의 기도에 물음을 나눈 것처럼 기도가 멈추는 것은 우리가 죄라고 여기는 것처럼, 우리의 삶의 기도는 계속해서 계속해서 주앞에 드려져야 될 줄 믿습니다. 세상에 기도하는 사람 많습니다. 우상 앞에서 기도하고, 절에서도 기도하고,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고, 주문을 외우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생명력 있는 기도는 응답의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그 기도가 생명력이 있고 그 기도가 응답 되고 그 기도가 역사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무릎 기도의 자리를 지키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함께 시간에 찬양하며 나아가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찬양하실까요?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준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

♣요약
기도는 문제나 고난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존재적 관계에서 시작되는 특권이자 은혜이다. 하나님은 구하는 '문제'가 아닌 '구하는 사람(자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하나님의 자녀가 드리는 무릎 기도의 핵심은 세 가지이다. 첫째, 자녀가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듯, 성도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둘째, 기도는 거창한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나의 작은 관심사와 신음까지 솔직하게 아뢰는 교제이다. 셋째, 기도는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응답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드려야 하는 성도의 삶 자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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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8월 09일)
설교제목 : "광야에서의 승리(Victory in the Wilderness)"
성경구절 : 출애굽기 16:4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외
대표기도: 오우진 부목사님(1부) 외
사회: 임병영(1부), 이기호(2부), 장단희(3부), 유선비 부목사님(4부)

설교자 : 윤대혁 후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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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6:4,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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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우리 밝은 얼굴 옆에 분에게 서로 인사 나누겠습니다. 평안하셨습니까? 평안하셨습니까? 한국뿐만 아니라 지금 전 세계가 혼란과 혼돈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 경제적으로는 고물가의 시대를 우리는 걸어가고 있고 또 국가부채의 시대를 우리는 맞이하고 있습니다. 종교적으로도 각 교회마다. 이단들에 의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어, 영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또 AI 시대의 돌파구를 찾아야 되는 현실에 놓여져 있고, 안보적으로도 지금 이렇게 싸울 때가 아닌데, 싸울 때가 아닌데 하면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현장입니다. 보건적인 면에서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바이러스의 출물들의 이야기를 나올 때 또 다시 팬데믹이 오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젊은이들은 미래를 꿈꾸지 못하고 나의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불안해하며 초조해하며 한해 한를 또한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한국을 떠나 이민자의 삶을 산다고 해서 달라지진 않습니다. 왜냐면 전 세계가 이와 같은 위기와 어려움과 광야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안보적으로 보건적으로 영적으로 할 것 없이 모두 다. 지금 현재 어려움의 시간대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광야, 고난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분명히 광야는 머무는 것이 아니고 지나가는 것이고 반드시 그 광야의 끝이 있다는 것은 우리 믿고 알지만 그렇다면 그 광야가 언제 끝납니까?라고 말할 때 이것에 대해서 정확하게 답을 해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 광야의 삶 가운데서 우리가 이 광야의 길을 어떻게 걸을 때 광야에서 우리는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을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자,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면서 맞이한 문제의 시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먹을 거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200만의 사람들이 하루에 새끼의 식사를 먹는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 광야에서는 돈이 있어도 은이 있다고 할지라도, 지혜가 있고 요리사가 있고 식당을 차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광야에서는 이 먹는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왜냐면 광야에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식재료가 없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언제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이동할지 모르기 때문에 농작물을 또한 심을 수도 없고 또 심는다고 하여도 땅이 메마른 땅이고 비가 오지 않아서 작물의 열매를 거두기가 어려운 것이 여러분 광야입니다.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그 광야의 현장에 여러분 먹는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죠.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적과 끌이 오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그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이 광야의 길을 걸어야 됐던 것일까? 그냥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비혹한 땅이라고 말한다면 그냥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계속해서 다스리게 하는 건 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되죠. 왜냐면 애굽 땅은 그 당시에 최고로 비옥(肥沃)하고 우거진 숲이 있는 곳이 여러분 바로 이 애굽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구 시간에 지리 시간에 배웠죠? 세계 최대의 곡창지대, 거기 어디죠? 나일강 삼각주, 모처럼 들어보니까? 기억이 안 나실 수도 있는데 나일강 삼각주. 나일강에서 흐르는 그 물이 그 강물이 모든 퇴적(堆積)물을 가지고 와서 바다를 만날 때 그거를 퇴적물(堆積物)로 쌓아놓고 그 넓은 땅들이 비혹한 땅이 되어서 그것이 정말 사람이 살기 좋은 땅, 나일강 삼각주 곡창(穀倉) 지대죠.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이 얼마나 그 애굽 땅이 좋았냐면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12장 10절인데요. 함께 읽어 볼까요? 시작.

*창세기 12:10,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
-자 그 땅에 온 세상에 주변에 모든 땅에 기근이 임했지만 기근이 임하지 않았던 먹을 것이 풍성했던 땅이 어디였다고요? 애굽은 여러분 먹을 것이 많아서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가면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죠. 그것이 얼마나 또 비혹했냐면 좋은 땅이었냐면 출애굽기 16장 3절이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창세기 16:3,
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었던 때에.
-자 애굽의 노예들까지도 고기 가마 밑에서 고기를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고 떡도 배불리 먹는 노예 역시도 고기와 떡을 배불리 먹는 곳이 바로 이 애굽 땅 좋은 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을 그 애굽 땅을 장악(掌握)하는 그 나라로 세우면 되는 문제가 아니었을까요?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왜냐면 애굽의 시작은 그 애굽 지역에 살고 있었던 토착화(土着化)된 사람들 중심으로 나라가 시작됩니다. 그 나라가 시작되다가 주변 이방 민족이었던 힉소스라는 왕조의 이해 나라가 침략(侵略)을 당합니다. 새롭게 왕이 바뀌니 왕에게 부강한 힘이 필요했는데 그때 그를 도왔던 사람이 바로의 꿈을 해석했던 요셉입니다.

요셉이 7년의 풍년을 잘 준비하여서 7년의 흉년을 잘 대비하잖아요. 그 여러분 애굽 땅은 큰 부강(富强)한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에 요셉에게 총리의 자리를 주었고 그의 가족을 애굽에서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죠. 400년이 흘러서 여러분 히소스 왕조가 약해지고 처음에 시작했던 그 토착민이었던 아모세 왕조가 그 나라를 차지하게 됩니다. 성경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해요. 출애굽기 1장 8절인데 제가 읽어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8,
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나라가 바뀐 겁니다. 자, 히소스 왕조에서 토착민이었던 아모세 왕조로 바뀌었는데 그러니까, 요셉의 공로를 누구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죠. 자신들도이 나라를 침략해서 얻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 사람들이 두렵기 시작했습니다. 왜요? 그 숫자가 만만치 않은 거예요. 그래서 그들이 우리를 공격하면 어떻게 하지 싶어 가지고 남자아이를 다 낳으면 죽이라고 명령한 것이죠. 그렇게 고욕(苦辱)이 여러분 시작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번성(蕃盛)케 하셔서 그리고 모세라는 왕이 준비되어 있잖아요.이 나라를 차지하고 이 애굽 땅 안에 새로운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는 것 이건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너무나 합리적인 방법이에요. 쉬운 선택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자신이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난(苦難)과 광야(廣野)의 길을 걷게 하셨고 뿐만 아니라 왜 하나님은 그 이스라엘 백성에게 원망을 들으면서까지 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셨는가? 왜 그렇게 하셨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법은 좋은 방법 같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애굽 땅에 하나님께서 가장 비옥한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 그 약속의 땅보다. 더 좋은 땅에 이스라엘 백성을 새로운 나라로 세우시는 것, 이것만큼 합리적인 방법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왜 광야로 인도하셨는가? 우리가 광야에서의 승리를 알기 위해선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셨는지를 그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제일 첫 번째 우리가 해야 되는 것은 언제에서 → 왜?로 우리가 시선을 옮겨야 합니다.

◎광야에서의 승리를 위하여,
I. 첫째, "언제"에서 "왜"로 시선을 이동해야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어려움과 광야를 만나면 제일 먼저 나오는 질문이 이겁니다. 왜 그랬었습니까? 라는 말보다도 먼저. 그렇다면 이 광야는 언제 끝나는 겁니까? 이 문제는 언제 해결되는 것일까요? 이 고난은 언제 끝날까요? 하나님, 올해 끝나는 겁니까? 내년에 끝나는 겁니까? 올해까지는 참겠지만 내년은 안 됩니다. 하나님 올해까지는 견뎌 보겠지만 내년은 안 됩니다. 하나님이 고난과 광야가 대체 언제 끝나는 것입니까? 우리가 고난을 만날 때, 광야를 만날 때 늘 하는 짐은 이렇습니다. 언제 이것이 끝날까? 언제 이 문제가 해결될까? 언제 이 어려움이 해결될까? 대체 언제 나는 언제 이 문제로부터 자유케 될 수 있을까? 이게 우리들의 관심이죠. 하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의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히려 우리를 광야에게 두신 그 이유와 목적에 관심이 있으시죠. 그래서 신명기 8장 2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신명기 8:2,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자, 하나님의 관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너희는 기억해야 된다. 언제 끝날지가 아니라, 왜 너희가 이 광야 길을 걸었는지, 왜 너희가 이 광야에 있었는지를 너희는 반드시 기억해야 된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영가족 여러분,
광야는 단순한 고난과 단순한 어려움이 아닙니다. 광야는 우리를 광야에 두신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과 이유가 있다. 라는 것이죠. 하나님 광야에서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이 광야 가운데 담겨 져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자로 우리를 삼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이죠. 만약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애굽 땅을 주었다면 광야의 길이 아니라 애굽의 그 좋은 땅을 주셨다면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애굽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았을 겁니다. 배부른 배부르게 하는 그 고기와 넘치는 고기와 그 배부른 떡 때문에 그들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그들은 찾지도 부르지도 않았을 거예요.

여러분, 세계 기독교 역사가 이것을 그대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선진국일수록, GMP가 높을수록, 부강해질수록 기독교의 복음화율은 더 감소됩니다. 그 물질이 많을수록 잘 살수록 기독교의 영향력은 반비례한다는 것이죠. 이번에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서 유럽을 국제 제자 훈련의 네트워킹을 세우고 오시면서, 이제 잠깐 한국에 방문하신 다음에 이제 대화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움서 이런 말씀하셨어요. 예전에 이 나라가 기독교 국가였는데 예전에 이 나라가 하나님의 영역 주권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했던 나라였는데 경제적으로 부강하고 잘 살게 되었고, 세계 1등 2등의 복지 국가가 되었는데, 교회 교회마다. 젊은이가 없고 복음에 관심이 없고 그 큰 교회의 성전은 텅텅 비어 있으며 교회 건물은 오락 공간이 되었고, 있는 교회마저도 동성애를 찬성하는 여섯 색깔 무지개 깃발이 휘날리고 있는 것을 볼 때에, 너무나 안타깝다. 라고 얘기하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이 개혁주의 신앙을 가지고 유럽의 제자훈련의 복음화를 위해서 우리가 힘써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열심을 다해야 된다는 가슴 뜨거운 열정을 품고 오셨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잘 사는데,,, 아니 우리를 잘 살기 위해서 기도해서 잘 살기 위해서 열심히 해서 왔는데 막상 잘 살고 나니까? 오히려 영적으로 무너져 버린 현실의 현장들을 보게 됩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살고 있었던 LA 땅에서 가장 잘 살고 있다. 라고 말하는 비버리힐즈에 가면 모든 부촌들과 모든 상점들 안에 여섯 색깔의 무지개가 달려 있는 그 동성애를 찬성하는 그 깃발들이 모든 상점마다 여러분, 꽂혀 있습니다. 스티커가 붙여 있어요. 이 회사는이 가게는 여러분을 환영하고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라는 여섯 색깔 무지개의 그 스티커가 붙여 있습니다. 동성애를 찬성하는 교회들이 좀 늘어나고 있고뿐만 아니라 목회자의 노후 대책에 잘되 있다는 그 교단마저도 이런 일에 앞장서고 있어요.

제가 섬겼던 교회 바로 옆에 여러분 동성애를 찬성한 정말 대표적인 교회가 있는데, 심지어는 어디까지 이들이 이야기하냐면 플랫 카드가 하나 붙였습니다. 이런 플랫카드였어요. 내용이었습니다. ‘이번 주일 날 애완견과 애완 동물을 다 데리고 들어오십시오. 데리고 오십시오. 안수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이게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팬데믹을 지나면서 많은 교회들이 새벽 기도를 안 합니다. 모이지 못하니까? 기도의 소리가 작아졌습니다. 팬데믹이 끝나서 회복되니까? 교회가 영적인 힘을 잃어버리기 잃어버리게 됐어요. 편해지니까? 좋아지니까? 살만하니까? 영적인 것에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예는 교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시대가 돈을 벌어야 된다. 부자가 돼야 된다. 점점 세상 사람들이 만몬 주의와 물질주의와 세속주의에 빠질 때마다. 영적인 힘을 잃어버리는 현장들, 영적인 힘을 잃어버린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최근에 많은 분들이 후회하신다고 하더라고요.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참 많이 이럴 걸 저럴 걸 후회를 한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사람들의 후회와 반성은 내가 하나님 앞에 순종하지 못했던 것, 말씀대로 살지 못했던 것, 사랑으로 섬기지 못했던 것, 용서하지 못했던 것, 헌신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고 후회하고 반성해야 되는데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요즘은 항상 이렇게 후회한다고 합니다.

그때 그 주식을 샀었어야 되는데,,, 그때 그 금을 팔았어야 되는데,,, 계속해서 이런 후회만 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 우리를 여러분 광야로 인도하시는 거에요. 왜요? 광야는 내가 가진 물질도 내가 가진 지혜도 내가 가진 주식도 내가 가진 금떡지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광야입니다. 쓸모없는 것이 광야에요. 많이 가진들, 많이 있는들, 뭐 하나, 음식 하나 그거 가지고 해 먹지 못하는 것이 광야라는 곳이죠. 여러분, 광야는 절대 편한 곳이 아닙니다. 원망과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는 곳이에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이들은 항상 원망했어요. 출애굽기 16장 2절이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출애굽기 16:2,
2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그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광야 가운데 원망 밖에 터 타 나오지 않는 곳이 이 광야의 현장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이 원망은 당연할지도 모르겠어요. 먹을 것이 없어요.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밥 한 끼만 안 먹어도, 여러분 신경이 예민해진 분들이 있잖아요. 나 오늘 건들지 마라. 밥 안 먹었다. 이런 분들 있잖아요. 예. 여러분, 만약에 우리 자식이 내 사랑하는 자식이 먹을 것이 없어서 엄마 밥 주셔야 한다면 그 현실 가운데 가만히 있을 부모는 없을 겁니다. 답답하고 누군가 탓타고 싶고 누군가 잡아야 되겠다. 생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우리가 다락방에서 훈련반에서 우리가 가끔 식탁의 교재를 하고 공부를 하고 또 함께 나눔을 갔잖아요. 그때 이제 집에 초대한 우리 집사님이 맛있는 음식을 이렇게 차려 주면 얼마나 마음이 좋은지 얼마나 행복한지 나눔도 은혜 가운데 이렇게 시작됐다. 끝났는데

뭔 일인지 바빠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 모임에 갔고 훈련 모임에 갔는데 테이블 위에 새우깡, 양파깡이 깔려 있으면 마음에 깡이 생기잖아요. 땡깡 부리고 싶고 이게 말이 되냐? 여러분 그 작은 것 앞에서도 불평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우리들인데, 아무것도 없다는 거 먹을 것이 없다는 거 필요한 것이 없다는 것은 여러분 원망이 나올 수밖에 없는 현장이에요.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이런 광야의 시간을 보낼 때, 우리를 위로한다고 많은 분들 이렇게 말합니다. 집사님, 권사님 집사님의 인생에 이런 광야가 있는 것은 다. 하나님께서 집사님을 존귀히 쓰시려고 복되게 쓰시려고 언젠가 간증케 하시려고 그렇게 집사님에게 광야에 인생을 주시는 거 아닐까요? 라는 말로 위로하지만 그때마다. 속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나 간증하고 싶지 않아요. 나 그렇게 대단한 사람 되고 싶지 않아요. 나 그렇게 주님 앞에 싶지 않아요. 그냥 일반적으로 남이 있는 거 그냥 누리고 싶고 편하게 살고 싶은데 나 대단한 사람 되고 싶지 않은데 왜 나보고 그런 사람 되라고 광야를 주시는 겁니까? 오히려 스스로 하나님 앞에 여러분 따지고 싶을 때가 있다는 거죠. 여러분, 하지만 광야는 단순한 시간이 아닙니다. 우리는 광야가 끝났다. 라는 것으로 우리의 인생이 정의가 되는 것이 아니에요.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광야를 주셨는가? 우린 거기에 관심과 시선을 가져야 돼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자녀로 삼기 위해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광야로 인도해 주셨는 줄 믿습니다. 그 목적을 아는 거, 그 이유를 아는 것이 여러분 광야에서의 승리가 됨을 믿습니다. 두 번째로 광야에서의 승리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될까요? 광야에서의 승리를 위해서 두 번째는 순종이 우리들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 광야에서의 승리를 위하여,
II. 둘째, 순종이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 16장 4절 우리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출애굽기 16: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도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하나님께서 광야를 통해서 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게 뭐냐면 네가 나의 명령을 순종하냐 순종하지 않는가? 따르냐? 따르지 않느냐를 보기 원했다는 것이죠. 신명기 8장 2장에서도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내가 알고 싶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8:2,
2....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신 명령은 참 지키기 어려운 명령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6장 4절에 이렇게 말하죠. 너희가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선 먼저 나가야 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이스라엘 백성이 살교 있는 짐 밖으로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냥 집 앞에 있는 텐트 밖으로 나가라는 말이 아니라, 짐 밖으로 나가야 되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200만의 사람이 이렇게 움집 되어 모여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200만의 사람을 뚫고 짐 밖으로 나가야 된다면, 그 가는 길은 절대 가까운 길이 아닙니다. 수 킬로를 걸어서 가야 되는 길이 그 길이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했던 말씀합니다. 네가 진 밖을 나아가면, 광야로 나아가면 그것을 하늘에서 무엇인가 내릴 텐데 그것을 가져다가 밥을 해 먹어라. 이것이 너 음식이 될 것이다.

여러분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 이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겁니다. 지금까지 광야의 길을 걸어왔는데 걷기까지 아무런 일이 없었는데 거기에 뭐가 내려져 있다고 말도 안 되는 거예요.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이죠. 여러분, 이때이 말씀 가운데 분명히 순종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이런 부류들은 순종하지 않았을 겁니다. 첫 번째 부류는 누구냐면 애굽에서 나올 때 음식을 넉넉히 싸 가지고 온 사람들, 그 사람들은 믿을 만한게 있으니까? 아직 먹을게 남아 있으니까? 그들은 그 말씀이 귀 등으로도 들리지 않았을 겁니다. 아직 믿음 한 구석이 있다. 두 번째 어떤 사람은 순종하지 않았을까요? 그냥 믿지 않는 거예요. 불순종하는 겁니다. 마음이 강팍해서 이게 말이 돼? 어떻게 말도 안 된 이야기래? 그 말씀 자체를 따르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은 순종 안 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광야는요. 순종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이 광야입니다. 믿었던 음식도 언젠간 사라집니다. 그냥 막연하게 강팍한 마음으로 불순종하기에는 배고픔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억지로든 순종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광야라는 것이에요.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양 가운데 ‘광야’라는 CCM 곡이 있는데요. 그 찬양 가사 가운데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후렴부에 보면 ‘광야는 주님만이 내 도움 되시고 주님만이 내 빛이 되시며 주님만이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그 광야, 나는 그 광야에서 있네.’ 주님의 손을 놓으면 오늘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그것이 광야다. 라는 것이죠.

여러분, 광야는 순종해야만 살 수 있는 곳입니다. 내 가진 모든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오직 말씀에 순종하야만 살 수 있는 것. 그것이 광야인 것이죠. 우리가 자녀를 키울 때 자녀들이 그 부모의 꼭대기에 쓰려고 할 때가 있어요.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때 모르는 수학 문제를 산수 문제 갖고 오면 이렇게 풀어 줍니다. 그러면 아이들 너무나 놀래 가지고이야 아빠 대단하다. 뭐 이렇게 할 때가 있어요. 그러다가 3학년 4학년 지나다. 보면 자기가 세상에서 수학을 제일 잘하는 줄 알고 그때부터 아빠가 풀어 주려고 해도 돈 필요. 없다. 다 안다고,, 이렇게 말할 때가 있으면 다. 한다고. 그러면서 오히려 저를 테스트합니다. 아빠 그럼 이거 문제 알아? 어 말해 봐. 12 * 12는 뭐야? 144.이야 대단한데. 이렇게 얘기할 때가 있어요.

그러다가 자기가 제일 수학을 잘하는지 알아. 그러다가 자기가 못 푸는 문제가 왔을 때 낑낑대면 못 푸는 문제가 왔을 때 딱 저한테 갖고 와요. 그럼 제가 싹 풀어 줍니다. 그럼 그때부터 우리 아들이 겸손해져요. 어찌 겸손한지 시키는 대로 다. 합니다. 물 가져라. 물 가져오고 다. 갖고 와요. 왜요? 내 힘으로 안 된다는 것을 깨달 때. 아이 문제는 내가 못 풀어.이 문제 내가 풀 수 없어라고 깨달 때 그때 뭐예요? 누군가를 의지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곳이 광야입니다. 여러분, 광야는 하나님의 손을 놓고서는 순종하지 않고서는 살지 못하는 것이 광야예요. 그래서 광야를 우리는 순종학교라고 말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낮에는 구름 기둥과 방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죠. 뜨거운 태양 빛에 타 죽지 말라고 구름 기둥을 추운 밤에 얼어 죽지 말라고 불기둥을 내려 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사랑이고 은혜이고 보살핌이고 보호하심이에요.

하지만 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보살핌을 누리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해야 되는 건 뭐예요? 순종해야 됩니다. 새벽에 잠을 권한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불기둥이 움직입니다. 나 더 자겠다고 여기 자겠다고 가면 얼어 죽는게 광야고요. 낮에 힘이 있다고 나 저기 가겠다고 빨리 가자고 서둘러서 그 구름 기둥을 벗어나면 뜨거운 태양 빛에 메말라 죽는 곳이 광야입니다. 순종하지 아니하면 주님을 따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그 광야,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순종이 우리의 삶이 되면 순종이 나의 삶이 되면, 그때부터 우리는 광야에서의 승리의 길을 우리는 걷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순종하는 자가 되면 그때부터 더 이상 우리의 삶에 하나님께서 광야를 두실 필요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순종이 삶이 돼야 되는 거예요. 제자 훈련하면서 순종을 삶으로 살아갔던 한 여자 집사님의 이런 간증이 있었습니다. 훈련 때 이렇게 나누시더라고요. 목사님, 저는 순종하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 저는 항상 말씀을 듣고, 성경을 읽고, 은혜를 받고 영적으로 막 충만할 때 그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그 마음, 그 생각, 그 입술의 고백의 결단, 첫 번째 그 생각을 나는 끝까지 지키려고 합니다. 이것이 내가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영적인 비결입니다. 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더 설명을 이렇게 해 주었습니다. 내가 은혜를 받아서 말씀 앞에 또 그렇게 살겠다고 결단하고 순종한 다음에 시간이 이렇게 좀 지나면 두 번째 생각이 저 안에 이렇게 들어온다는 겁니다. 두 번째 생각은 이렇다는 거예요.

안 해도 되지 않을까? 너무 피곤할 것 같아. 누가 알아주긴 할까? 내가 그렇게 헌신하고 수고한다고 용서를 먼저 손 내민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고마워는 할까? 내가 이렇게 나선 나서면 사람이 나게 뭐라고 하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산들, 봉사한들, 사랑하고 섬긴들 뭐가 달라지겠어! 라는 두 번째 생각이 내 안에 계속 다가온다는 겁니다. 그때마다. 뭘 생각한다고요? 첫 번째 생각, 첫 번째 은혜 가운데 말씀을 들으며 마음 가운데 결단했던 그 고백을 저는 지키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잖아요. 예배를 드리고 나서 마음에 불편했던 성도가 생각납니다. 그 권사님, 그 집사님 찾아가서 그래, 내가 먼저 이름을 불러 주고 인사해 줘야지. 라는 마음을 듣고 나가다가 문밖을 딱 나가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분이 환영을 해 줄까? 그런 마음이 들어서 획하고 지나갈 때가 있잖아요.

우리는 마음 안에 순종을 결단하고 나서도 순종하지 말아야 될 일곱 가지 법칙을 찾고 순종하지 말아야 될 100가지 이유를 만들어 내면서, 이래서 내가 안 한 거야라고 핑계를 대고 있잖아요. 여러분 우리는 순종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광야라는 곳이 세컨 옵션이 없는 것이에요.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지 않으면 나는 죽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날 살지 못해,,, 이 생각 순종이 삶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광야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광야에서의 진정한 승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저와 여러분이 순종이 삶이 될 때, 순종이 여러분이 삶이 될 때, 그때 진정한 광야에서의 승리가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된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광야에서의 승리를 위해서 우리 무엇을 해야 될까요? 세 번째는 변화를 여러분 기대하셔야 됩니다.

◎ 광야에서의 승리를 위하여,
III. 셋째, 변화를 기대해야 합니다.
-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인도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화시켜 주셨다. 라는 것이죠. 역사적인 부흥을 봐도 항상 역사적인 부흥은 광야가 있을 때 고난이 임했을 때 여러분 부흥이 임했습니다. 인도의 기독교의 부흥의 역사도 영국의 식민지라는 힘든 시기 광야 시간 가운데 부흥이 임했고 우리 한국의 영적인 부흥도 일제 강념기 시대에 교회는 순수한 부흥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부흥의 역사에 보면 항상 여러분 고난의 때가 있었어요. 아주사 대부흥 운동도 흑인 빈민가에서 누구도 관심받지 않은 그 땅에서 아주사의

부흥 운동이 있었고 그리고 미국의 식고 부흥 역시도 식고 대부흥의 화제 사건 이후에 하나님의 귀한 그 무디와 같은 너무나 귀한 사람들이 세워지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 광야의 길을 걸을 때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광야 가운데 나를 빚으시고, 나의 영적인 걸 회복시켜 주시고, 부흥케 하신다는 하나님이 나를 만지시고 빚으시는 그 손길을 여러분 기대해야 된다는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하나님의 백성 다웠던 그때가 언제였냐면 광야였습니다. 광야를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 원망하는 자들이었어요. 광야가 끝나 약속의 땅에 들어가고 나서도 시간 흘러서 이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일어나니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는 자가 되었다. 라고 말합니다. 그 광야라는 시간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가장 귀하게 만들어지는 시간이었다. 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지금 광야의 시간을 걷는 분들은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나를 빚으시고, 만들어 가고 계심을 변화시켜 주고 계심을 여러분 기대하며 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여러분, 제 인생에도 여러분, 광야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희 아버님께서 목회를 하시다가 아 60세 때 뇌출혈로 쓰러지셨습니다. 그때 제가 신학대학교를 들어간 그 첫 입학하는 해였어요. 제가 아는 저희 아버지는 참 제가 존경하는 분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사랑했고 교회를 사랑했고 영혼 사랑에 온임을 다하셨던 분이십니다. 늘 정직하셨고 하나님 앞에 거룩함과 두려움으로 사셨던 아버지를 저는 너무나 존경하고 너무나 저는 어 아버지가 불편하기도 했지만 되게 또 사랑도 하고 그런 거 있잖아요. 아버지란 존재는 사랑도 하지만 불편하고 그런 존재. 정말 저희 아버지를 너무나 저는 존경하고 그런 분이셨는데 하나님께서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저희 아버지에게 뇌출혈이라는 병을 허락해 주셔서 저와 저희 가족이 고난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말씀은 어버버 하셔서 말씀을 하실 수가 없었고 생각과 판단의 능력은 초등학교에 못 미쳐서 더 이상 목회를 하실 수 없었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과정 가운데 성도들에게 받았던 많은 상처들이 우리 가정 가운데 있었어요. 저는 이렇게 기도해서 하나님 하나님의 영광을 가려 가리지 마시라고 하나님 고쳐 달라고 했지만 저희 아버지의 육신은 예전처럼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목회를 그만두셨고 온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때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나님 대체 우리 아버지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렇게 하신 겁니까?

우리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렇게 고난의 시간을 준 겁니까? 대체 하나님 뭘 우리에게 얻으시기 위해서 이렇게 광야의 길을 우리 가운데 주신 것입니까? 하나님 체 왜 그러신 거예요? 왜 그러신 거예요? 왜 그러신 거예요?이 이 수많은 기도에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부신의 마음이 저 안에 있었어요. 하나님 이러실 거면 저 목사 되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도 목회하다가 우리 아버지처럼 만들지 않으실까요? 나 하나님 믿지 못해요. 하나님을 원망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한참 동안 그렇게 기도하고 나서 주님께 되게 다가 제게 다가오셔서 저를 품어 안아 주실 때가 있었어요. 그때 제 마음은 녹아지고 그때 주님 앞에 외쳤던 기도는 주님 나 이제 어떡해요? 주님 나 이제 어떡해요? 주님 나 이제 어떻해요? 주님 나 이제 어떻해요? 얼마나 많은 시간에 주님 나 이제 어떻해요? 주님 나 어떻해요? 얼마나 많이 울면서 기도했는지 몰라요. 그때 주님께서 비처럼 저희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떠오르게 하셨습니다. 그때 주셨던 말씀이이 말씀이에요. 마태복음 11장 28절 29절 말씀인데요.

*마태복음 11:28~29,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 말씀 앞에 이렇게 다가왔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내가 너를 가르치리라.’ 이 말씀의 약속의 말씀이 내게 들어와서 그때부터 주님, 예 주님, 내가 주님, 앞에만 나아가겠습니다. 내 인생에 어떤 어려움과 어떤 슬픔과 어떤 괴로움이 있어도 내가 주님 앞에만 나아가겠습니다. 주님께만 엎드리겠습니다. 주님만 의지하며 살겠습니다. 그 인생의 길을 걸어왔어요. 한참 동안 시간을 쭉 이렇게 걸어오고 나서 하나님께서 저의 삶 가운데 저를 만지신 그 은혜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사랑의빛선교회 담임 목사로 이제 청빙 내며 지원서를 냈을 때, 그때 저를 추천하셨던 세 분의 이제 멘토 되는 선배 목사님들의 그 추천서 내용을 이렇게 어떻게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교회 이제 어 부임 어 되고 나서 많은 성도님들이 이것저것에 윤디 목사는 어떤 사람이에요. 라고 물을 때 그 많은 분들이 해줬던 말들이 추천하셨던 그 세 분의 목사님과 많은 저를 알고 있는 분들이 저에 대한 평가했던 말들이 너무나 똑같았어요. 어떻게 평가하셨냐면 그 제 입으로 얘기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ㅎㅎㅎㅎㅎ 제가 얘기한 거들은 대로 들은 대로 말하겠습니다. 들은 대로요. 주여, 겸손케 겸손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윤대혁 목사는 마음이 참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입니다.”이 고백을 하셨다는 거예요.

제가 그렇게 되려고 애쓴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 나는 마음이 오려고 겸손하니 너는 내게 배워라. 내가 잘리라.이 말씀 붙잡고 늘 살았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이와 같이 빚으시고 만들어 가셨던 거예요. 저는 완성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정현 단임 목사님도 저를 볼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세요. 윤목사 윤목사는 이렇게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전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저렇게 빚어져 가시는 걸 보게 됩니다. 여러분, 광야의 시간에 나는 마치 버림받은 것 같고, 시간 낭비한 것 같고,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 버린 것 같은데, 무의미하게 지나간 시간 같은데 그렇지 않았더라고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을 만드시기 위해서 빚으시고 만들어 가시는 은혜의 시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여러분 저에게만 이런 은혜가 있다고 전 생각하지 않아요. 여러분 모두에게도 이와 같은 은혜가 있는 줄 믿습니다. 광야의 길을 건널 때 지날 때, 하나님은 우리 사랑의 영가족의 모든 이들을 주님께서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자들로 만들어 가시고 빚어주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광야에서 승리하였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간증이 됨을 믿습니다.

사랑 영가족 여러분,
광야가 끝났다. 문제가 해결됐다가 광야에서의 승리가 아닙니다. 왜 광야를 우리 가운데 주셨는가? 그 이유를 아는 거, 그리고 우리가 광야에서 순종이 삶이 될 때기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로 빚어 주시고 만들어 주셨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 할 때에, 그때 진정한 광야에서의 승리가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된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영가족 여러분,
이 광야에서의 승리의 삶을 보여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광야에서 주님은 말씀하셨어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직 살 것이라.” 예수님은 광야에서 십자가의 광야에서 그를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기뻐하시는 자다. 메시아다. 그는 증명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역시도 이 광야에서의 승리의 길을 함께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는 사랑의교회 영 가족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광야가 언제 끝나는지를 묻기보다 왜 우리를 광야에 두셨는지를 깨달아 아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광야에서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하시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옵소서. 우리의 힘으로 광야를 지나지 않게 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만을 바라보며 광야에서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릴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요약
1. "언제"에서 "왜"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고난을 만날 때 언제 끝나는가 보다 "왜 광야로 인도하셨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물질과 환경이 풍요로워지면 하나님을 멀리하기 쉬우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 찾도록 광야를 허락하시기 때문이다.
2. 순종이 삶이 되어야 한다
광야는 내 경험이나 자원이 무용지물이 되는 곳이며, 오직 말씀에 순종해야만 살 수 있는 '순종 학교'이다. 이해되지 않는 순간에도 말씀 앞에 즉각 순종하는 것이 삶이 될 때 승리가 시작된다.
3. 변화를 기대해야 한다.
광야는 허송세월하는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주님이 기뻐하시는 백성으로 빚으시는 은혜의 과정이다. 단순한 문제 해결을 넘어, 광야를 통해 내가 거룩하게 변화되는 것이 진정한 승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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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배벽예배(주후 2026년 8월 9일)
제목: "무명의 여인의 무릎"
말씀: 마가복음 5:25-34
찬양인도: 쉐키나 찬양대(이동선 부목사님)
대표기도: 윤대혁 후임목사님

설교자: 윤대혁 후임목사님
ㅡㅡㅡㅡㅡ

*마가복음 5:25-34,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ㅡㅡㅡㅡ


 ▶주일 날 그 야이로의 딸에 그 주님께서 살리셨던 또 야이로를 깨우셨던 말씀을 전하고 나서 중간에 이제 삽입되었던 혈루병의 여인의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하시다는 분 말씀들이 제 안에 있어서 제 안에 있어서 여러분의 말씀을 오늘 토요일 새벽에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돈을 잃으면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건강을 잃으면 행복을 잃어버릴 것이다. 명예를 잃으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와 함께 한 가지 더 소망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라는 말이 있는데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혈루(血漏) 병(病)의 여인이 돈도, 건강도, 명예도, 소망도 잃어버린 여인이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았던 그 여인의 삶이었습니다. 혈루증이라는 것은 이유 없이 하혈하는 병입니다. 이 병은 빈혈로 인해서 일어서기가 어려운 병입니다. 그리고 몸이 나빠지는 것을 스스로 몸이 느껴지는 병이고 그리고 사람 만나기도 어렵고 언제 쇼크사로 운명을 달리할지 모르는 병이 혈우병의 증상이기도 합니다. 12년 동안 낳았다는 것은 단순한 12년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12년 동안 고생했어도 12년 동안 열심히 치유해서 나았다고 하면 그 12년의 시간은 힘들었어도 그래도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고백할 수 있는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그 병이 나은 것에 대해서 12년 고생했다. 할지라도 축하해 주고 또 격려해 주고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또 많은 곳에 가서 간증할 수 있는 그 시간이 12년 동안 앓았지만 나았다라는 그 선포가 되어지면 선언이 되어지면 모든 것은 다 은혜와 감사로 마무리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그렇게 혈루 병의 여인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무명의 여인의 상황은 마가복음 5장 26절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마가복음 5장 26절,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모든 것을 허비했습니다. 돈도 시간도 그리고 많은 의사에 가서 자신의 병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 의사의 그 따끔한 너무나 이게 사람을 정지한 듯한 그 시선 때문에 마음의 명예도 감정도 잃어버렸죠. 그리고 결국에는 제대로 고치지도 못하고 사람만 만나다 됐다가 이곳저곳 찾아가다가 몸이 중하여졌다. 라는 이야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 되면 이 여인의 마음 가운데는 아마 후회로 막심했을 겁니다. 그때 내가 그 의사를 만나지 말았어야 되는데 내가 그때 내가 이렇게 바보처럼 이곳저곳 다녔을까? 라는 후회의 시간들을 보냈을 겁니다. 결국 이 병은 단순한 몸이 아픈 병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 병을 의사에게 가서 내가 혈류 증입니다. 라는 걸 이야기할 때 사람들의 반응은 절대 환영할 수 없는 반응이었습니다.
 
여기 15장에 보면 피가 멈추지 않은 혈루 병은 영적으로 부정한 병이다. 라고 취급을 받았습니다. 부정하기에 이 여인을 누구도 만져서는 안 됐습니다. 이 여인이 있었던 누워있던 자리는 여러분 우리 여인이 있었죠. 부정하다고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부정한 자리야. 이 사람이 만든 물건은 다 부정한 물건이야 라고 했다는 것이죠. 사람들에게 어떻게 오셨습니까? 라는 의사의 질문을 받을 때 정말 머뭇거리면서 너무나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혈류 증을 앓고 있습니다. 라고 말할 때, 아마 의사들은 이렇게 반응했을 거예요. 혈류 증이요. 이렇게 반응했을 겁니다. 12년 동안 자기 몸을 치료한다고 돈도 잃었고 건강도 잃었고 심지어는 가족도 잃었고 그리고 자신의 소망도 잃어버렸습니다. 완전히 무너져버렸다는 것이죠.
 
오늘부터 몸을 다시 한번 26절에 말씀해 보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부여할 시대 아무 효용도 없고 도리어 더 중하다는 차에, 여기서 중하던 차에 그때의 라는 말을 한마디로 말하면 이제 어떤 것도 손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라는 말이죠. 중하여져서 이제는 언제 죽을까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 놓여졌다는 말일 거예요. 그런데 그때 이 여인에게 들리는 한 소리가 있습니다. 소망이 없는 자에게 들렸던 한 소리는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마을에 오신 날 이랍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이미 많이 퍼졌기 때문에 그가 어떤 일을 했는지는 이 여기는 들었을 겁니다.
 
갈릴에서 온 30대의 한 사람 예수라는 사람이 앉은뱅이도 일으켰고 오병이어의 기적도 일으켰으며, 심지어 죽은 나서 나인성의 과부에 그 아들의 몸에 손을 얹어서 청년아 일어나라 했더니, 일어났다. 말 못하는 청각장애인이 입을 열어줬고 38년대 앉은뱅이를 세웠으며 그리고 땅에 침을 뱉어 그 진흙을 눈에 바르면서 그 실로암의 곳에 가서 시술했을 때 눈이 열렸더라. 라는 그 이야기를 들 때 과연 이 여인은 그것을 믿을 수 있었을까? 이 여인은 의사가 온갖 의사를 만나면서 이렇게 하면은 고침 받는다. 저렇게 하면 고침 받는다. 이것을 가려 먹어 봐라. 이것을 해 봐라. 아니면 새벽마다 일어나서 뭐 절을 해 봐라. 온갖 방법.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온갖 방법들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중요해졌답니다.
 
그럼 예수님이 치유하는 방법은 그 당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상식적이지 않은 방법이었다는 것이죠. 처음에 속는 셈치고 했겠지만, 지금 이 상황은 속을 만큼 속은 상태에서 몸이 중해졌기 때문에 예수님의 치료의 방법에 대해서는 그는 절대로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렇게 해서 사람이 나 어떻게 그렇게 사람이 일어나. 어떻게 그렇게 해서 사람이 눈이 져. 그래 나가. 치료하는 방법이라면 의사보다 더 뛰어난 방법들을 경험했던 사람이 있을 거예요. 예수님의 치료의 방법은 도저히 이 여인이 여러분 받아들일 수 없는 방법이었다는 것이죠. 오히려 거부하고 싶은 것이 예수님의 치료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신기하죠.
 
이 여인에게 이상하게 예수님이 오신다는 이 말이 이 여인에게는 한 번도 치르지 못했던 그 시도를 할 수 있는 믿음이 이 여인에게 시작됩니다. 마가복음 5장 28절인데요.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마가복음5:28,
28 이는 내가 그의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예수님의 치료의 방법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방법이었는데요. 여기는 마음의 소원은 더 비상식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무슨 생각하죠? 예수님의 옷에 옷자락에 손만 베어도 내 12년 동안 누구도 고치지 못했던 혈루병이 나올 것 같다. 라는 믿음이 시작됐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믿음이 시작될 수 있을까? 이 엄청난 믿음. 여러분 예수님은요. 가는 곳곳마다 병을 치유하고 죽은 자리를 살리시되 예수님이 보셨던 건 뭐냐면 이 사람의 뭘 보자? 믿음을 보셨습니다. 믿음을 주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이방 사람 백부장의 믿음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잖아요. 내가 온갖 많은 곳을 다녔지만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며 이 믿음을 보시고 치유하시고 고치셨던 그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의 손길을 우리 말씀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더니, 무명의 여인의 이 믿음은 이만한 믿음보다 더 이만한 믿음이었다는 것이죠.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가졌어? 주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그 누구도 어떤 의사도 고치지 못했던 혈루 병을 나는 고침 받을 줄 믿는다 라는 이 믿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었을까? 예수님이 오신다는 그 소식을 듣고 나서 여러분 이 여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계속 생각함일러라. 생각함일러라는 단어는 행위를 나타내는 미완료 변사입니다. 이 말이 이런 뜻입니다. 아직 나에게 이루어지진 않았어요. 아직 나에게 치유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나는 고침 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확신하면서 그런 일이 일어날 거야. 그런 일은 일어날까요? 그런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살아갈 거야. 라는 생각과 행동이 함께 합쳐진 것이 바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이야기도 없구나. 이 여인은 그때부터 주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면 나는 마침 받을 거야. 고침 받을 거야. 고침 받을 거야. 계속 생각하고 그 생각이 생각으로 끝나지 않고 믿음의 행동으로 나타났다.

◎ 믿음의 무릎 기도는,

I. 첫째, 주님의 말씀이 임할 때 시작된다.
◎ 믿음의 무릎 기도는,
II. 둘째, 고난이 해석될 때 시작된다.
◎ 믿음의 무릎 기도는,
III. 셋째, 내 영혼의 치유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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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8월 2일)
설교제목 : “자는 자여 일어나라(Arise, O Sleeper)”
성경구절 : 마가복음 5:21~24, 35~43
찬양인도: 쉐키나(이동선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외
대표기도: 김건 부목사님 외
사회: 구성찬(1부), 이기호(2부), 장단희(3부), 이윤기(4부)부목사님.

설교자 : 윤대혁 후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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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5:21~24, 35~43,
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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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옆에 분과 밝은 얼굴로 인사하겠습니다. 평안하셨습니까? 인사하겠습니다. 평안하셨습니까? 평안하셨습니까? 우리가 살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내 인생에 문제가 생겼을 때, 특별히 건강의 문제가 생겼을 때, 또 경제적인 어려움이 찾아올 때, 또 가정 안에 갈등의 문제가 생길 때는 어느 때보다도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고 주 앞에 나와 기도하게 되죠.

그런데 그 간절함을 뛰어넘어서 절규의 기도의 마음으로 예수를 부르짖고 주님 앞에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자녀에 대한 문제일 때일 겁니다. 특별히 자녀 가운데 어려운 병원으로 하루하루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부모가 그 자녀를 도와줄 힘이 없어서 그 자녀가 스스로이 어려움의 시간들을 홀로 견뎌야 된다면 그 부모는 눈물로 절규하며 주님께 나와 간절히 부르짖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오늘 본문에 이와 같은 어려움을 갖고 있었던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 사람은 유대인의 회당 장 ‘야이로’라고 이름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에겐 어린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어린 딸이 중한 병에 걸려서 예수께 나와 고쳐 달라고 이야기하는 본문이 오늘 본문인데요. 그다음이 어린 딸이 어떤 병에 걸렸는지는 성경에 나오고 있지 않지만이 어린 딸에 대한 설명을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누가복음 8장 42절에 보면 이런 말을 합니다. 12살 된 외동딸이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 이 어린 딸인데 12살 된 외동딸이다. 여기에는 이 야이로가 갖고 있는 마음의 심중에 두 가지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져 있습니다. 첫 번째는 12살이다. 라는 말인데 당시에 고대 근동 지방에서 12살은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이 성인의 접어든 나이입니다. 그런 건데도 불구하고 12살 딸을 어린 딸이다. 라고 말했던 그 위에는 이 아이가 아마 태어날 때부터 아파서 그 부모의 도움이 없이는 살지 못했던 연약한 아이였기 때문에 그 아버지의 심정에는 항상 어린 딸 어린 딸 부모의 도움이 없이는 살지 못하는 연약한 딸이다. 라는 말로 어린 딸로 표현했을 겁니다. 또 두 번째는 외동 딸이다. 라는 마을이 나오고 있어요. 왜 외동딸이었을까요? 아마이 아이를 고치기 위해서 또 다른 자녀를 갖기를 포기하지 않았을까?이 아이를 위해서 온 집안이 이 아이만 낳을 수 있다면 모든 관심과 집중을 가지고 살아왔던 그 부모의 심정이 담겨 져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아이를 고치기 위해서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나와서 주님이 아이의 몸에 손을 얹고 이 아이를 구원을 받아 살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간청하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아이가 죽게 됩니다. 그 주님께서 다시 이 방문의 집에 방문하셔 이 아이를 죽은 아이를 살리신 사건의 내용이 오늘 본문의 전체적인 스토리의 내용인데 오늘이 성경의 말씀을 기록된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하게 주님께서 병들었던 아이를 죽었던 아이를 살리셨다는 그 기적의 역사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기록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 인생에 찾아온 어려움의 슬픔의 이야기들을 주님께서 들어 주시고 해결해 주신다는 이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기 위해서이 말씀을 기록한 것일까? 그런 내용도 있겠지만 이 본문을 기록한 데는 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져 있습니다.

이 말씀을 기록한 이유를 알기 위해선 마가복음 5장의 전체의 스토리를 우리가 좀 볼 필요가 있는데요.이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 야이로가 어린 딸을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아이는 결국 죽게 되었고 주님께서 이 죽은 아이를 잔다고 하시며 깨우셨던 살리셨던 이야기로 마무리가 되는데 만난 이야기와 야이로의 딸을 살린 그 이야기 중간에 어떤 사건이 있냐면 12년 동안 혈루병을 안았던 여인을 고쳤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 이 12년 동안 혈류 병을 앓았던이 여인은 자신의 돈을 쓰고 시간을 들여이 의사 저 의사 만나봤지만 찾아온 것은 더 몸이 악화 되었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재산을 다 탕진해 버렸습니다. 후회하고 후회한 인생을 걸었던 12년 동안 혈루 병을 알았던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그가 고침 받았던 사건이 그 중간에 딱 들어와 있습니다.

여러분, 야이로는 이 12년 동안 혈루 병을 알았던 이 여인의 고통과 아픔을 누구보다도 이해했던 사람일 겁니다. 12년 동안 고치려고 해도 고치지 못했던 중한 짐과 중한 어려움이 있었다. 나도 그런 인생을 살았는데 12년 동안 내 딸을 고치기 위해서 온갖 그 의사, 저 의사 다. 만나봤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는데 누구보다도 이 여인의 슬픈 힘든 마음을 이해한 사람이 야이로였을 겁니다. 뿐만 뿐만 아니라 12년 동안 혈루(血漏)병(病) 알았던 여인이 고침 받았던 그 사건을 보면서 누구보다도 감격에 눈물을 흘렸던 사람이 야이로였을 겁니다. 나의 12살 난 딸도 이와 같이 고침 받을 줄 믿는다.

얼마나 마음에 소망이 일어났을까요? 내 어린 딸이 이제는 죽지 않고 살겠구나. 12년 동안 고생해서 누구도 고치 못했던 혈로 병 앓는 여인이 예수를 만나 고침을 받았다면 나의 딸도 죽지 않고 살겠구나. 얼마나 마음 안에 기대와 소망이 있었을까요?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흐르고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고치신 다음에도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계시는 겁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가복음 5장 35절 말씀인데요.

*마가복음 5:35,
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이렇게 말합니다.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이 야이로의 심정에는 한시가 급합니다. 지금 사느냐, 죽느냐의 사선의 문제 앞에서 예수님께 나왔는데 예수님은 내 부탁에 관심이 없는지 계속해서 이 여인과 대화를 이어가십니다. 이 여인을 고쳤던 사건은 너무나 좋겠지만 나는 급해 죽겠는데 주님은 계속 머물러 계시는 거예요. 그 기다린 순간, 안타까운 비보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35절 말씀입니다. 입니다. 함께 읽을까요?

*마가복음 5:35,
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 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 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자 어린 딸이 예수님이 오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가슴이 무너지고 그리고 온 집안에 통곡 소리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야이로에게는 주님이 가시면 살겠다. 라는 마음의 소망과 기대가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원망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혈루병 여인이 고침 받은 사건을 통해서 기대가 있었던 그 마음이 오히려 이 혈루병 여인이 나타나지만 않았더라도, 이 여인이 예수님께만 오지만 않았더라도, 주님께서 이 여인을 고치지만 않았더라도 내 아이는 살 수 있었을 텐데, 이 여인에 대한 원망을 쏟아놓기 시작합니다. 또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이 여인에게 시간을 허의하지 않고 고쳤으면 그냥 바로 가시면 되는데, 여인아, 딸아, 네가 고침을 받았느니라. 많은 이야기를 하신 거 보면서 주님께서 고치고 당장 발걸음을 재촉해서 우리 집에 오기만 하셨더라도 주님 내 딸은 살았을 텐데 그 예수님에 대한 원망이 이 야이로의 마음에 일어나기 시작했을 겁니다.

여러분 야이로의 복잡한 심정은 우리들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언제는 좋았다. 언제는 싫었다. 언제는 기대와 소망이 있었다. 언제는 낙심했다. 언제는 감사했다. 언제는 원망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의 마음이 왔다 갔다 우리들의 마음을 보죠. 여러분, 그 이유는 우리 너무나 우리들의 삶에 펼쳐진 환경과 상황에 지배를 받는다는 겁니다. 그렇다 보니 환경의 지배를 받다. 보니깐 어떻게서든지 간에 내 삶의 환경을 바꾸고 싶어 합니다.

주님, 내가 이렇게 힘들게 어렵게 사는 거 이거 내 문제 아니고 내 삶에 일어난 모든 환경과 사건들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내 삶의 환경을 바꿔 주십시오. 내 어려운 환경을 고쳐 주십시오. 지금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내 주변의 모든 일들을 주님 바꿔 주십시오. 여러분, 우리는 그러면서 산다는 것이죠,

여러분. 그러나 주님께서 정말 우리에게 원하시는 건 뭐냐면 우리가 환경과 상황 가운데 지쳐 있는 지금 야유로 역시도 환경과 상황 가운데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라고 여기는 그 절망의 현실 가운데, 주님께서 일으키고 깨우기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었냐면 그 야이로의 환경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우린 주님 앞에 날마다. 환경을 가지고 납니다. 주님이 환경을 바꿔 주세요. 이 상황을 바꿔 주세요. 마치 죽은 것과 같은 나의 삶의 현실을 주님, 깨어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나아가지만 주님께서 정말 정자 깨어나 살게 하시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환경 가운데 죽은 채로 살고 있는 잠자고 있는 우리 영혼을 주님은 깨우기를 원하신다. 라는 것이죠.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이 소녀 그 딸을 살리실 때, 달리다 쿰, 하셨습니다. 이 말은 ‘소녀야 일어나라’는 뜻이에요. ‘깨어나라’는 뜻입니다. 근데 여러분이 야이로의 이름의 뜻이, 야이로의 이름의 뜻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그 야이로 이름의 뜻이 ‘일어나라 깨어나라’는 뜻입니다. 야이로의 이름이 ‘일어나라 깨어나라’는 뜻인데 지금 야유로는 어떻게 됐어요? 완전히 잠자고 있는 거예요. 그때 주님께서는 이 소녀,이 딸보다, 환경보다, 더 깨어 일어나기 원하었던 것은 바로 야이로의 여러분 믿음이었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영가족 여러분,
우린 늘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환경을 바꿔 주십시오. 상황을 바꿔 주십시오. 내가 이렇게 지쳐 쓰러져 무너져 있는 것은 나를 힘들게 하는 이 환경과 상황 때문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환경과 상황 때문에 내 인생은 마치 끝났습니다. 라고 우리는 잠자는 죽은 영혼처럼 살아갈 때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늘 말씀하시는 거예요. 깨어나야 될 것은 살아나야 될 것은 너의 환경이 아니라, 그 환경 가운데서 죽은 채로 머물고 있는 절망 가운데 사망한 채로 먹고 있는 너의 영혼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주의 음상을 우리는 들을 필요가 있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영가족 여러분,
여러분, 우리 주님은 날마다.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보호하여 주시는 그리고 우리는 그 보호하심과 지키심 가운데 살아나는 살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잊지 않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형편과 환경에서도 우리는 절대로 무너지지 아니하며, 우리를 해치도 아니하고 우리가 넘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우리는 날마다 깨어 고백해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날마다. 깨닫고 일어서야 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사랑하는 영가족 여러분 우리가 깨어나야 되는 신앙은 어떤 신앙일까요? 주님께서 우리를 일으키기 원하시는 신앙은 어떤 신앙일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깨어 있는 신앙이 무엇인지를 크게 세 가지로 여러분과 나누기 원합니다. 첫 번째 깨어 있는 신앙이란 끝까지 주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 깨어있는 신앙이란,
I. 첫째, 끝까지 믿는 신앙입니다.

-자, 예수님은 야이로와 그의 가족들에게 슬퍼하며 눈물 가운데 절망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두려워하지 말고 나를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떨지도 말고 울지도 말고 이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거라 말씀하시며 나를 믿으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날마다.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마치 죽은 것 같은 우리의 삶 가운데 이건 죽은 것이 아니라, 지금 잠깐 멈춰 있고 자는 거라고 말씀하시죠.

여러분, 죽음은 끝이지만 자는 것은 잠깐 멈춰 있는 겁니다. 주님은 오늘도 동일하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통곡하고 울고 싶은 우리들의 상황에 아직 끝나지 않았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를 믿으라. 라고 주님은 말씀하시는 것이죠. 이때 믿는 믿음이 여러분 깨어 있는 신앙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할 때 주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이와 같이 반응했어요. 40절의 말씀인데 이렇게 말합니다.

*마가복음 5:40,
40 그들이 비웃더라....
-비웃었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말에 비웃는 것은 어찌 보면 일반적인 상식일 겁니다. 아니 죽은 자가 어떻게 자, 아니 죽은 자가 어떻게 깨어나 말도 안 돼. 끝난 거야. 어떻게 살아나? 이것은 세상의 말이고 여러분 현실적인 말일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도 이와 같이 반응할 때가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구약에 기록되 있는 하나님의 기적과 같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 말씀을 읽습니다. 신약에 나와 있는 예수님의 하신 일들을 우리가 봅니다. 볼 때마다. 우리 안에 이런 비웃음이 있는 거예요. 이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까? 아, 말도 안 돼.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이 이 사건은 2천 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지. 이 사건은 오늘의 나의 삶이 일어나는 일은 아니한다면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는 자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죠.

누가 간증을 합니다. 주님께서 내 삶을 이렇게 이끄셨다. 도와주셨다. 보호해 주셨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 그것은 저 집사님의 이야기지 나의 삶에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아 저와 같은 좋은 이야기는 저 순장님과 장로님과 믿음으로 잘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지. 나의 삶에는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나다면 여러분 그것은 잠자고 있는 영혼의 고백이라는 것이죠.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오늘도 말씀을 들으면서 성경을 읽으면서 누군가의 간증을 들으면서 아 그와 같은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줄 믿습니다. 믿는다면 깨어 있는 신앙이겠지만 그와 같은 일은 내 삶에 일어나 본 적이 없다. 라고 한다면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에게 깨어나야 될 일어나야 될 자는 바로 너다. 라고 말씀하시는 깨어날 자가 바로 우리가 됨을 믿습니다.

여러분, 지금 야이로가 모든 사람들이 비웃을 때, 비웃지 못했던 그 이유가 뭔지 마세요. 여러분 예수님께 갔을 때 누굴 봤어요? 12년 동안 혈루 병을 알아서 누구도 고치지 못했던 여인이 고침 받은 사건을 야이로는 봤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이로에게 뭐가 있었어요? 주님, 이 여인을 고치신 주님은 내 아이의 병도 고칠 줄 믿습니다. 라는 그 영혼의 깨어남이 그 야이로에게 있었다. 라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탄은 우리에게 절망이 오면 포기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절망이 오면 나를 믿고 따르라고 하십니다. 사단 마귀는 우리에게 슬픔이 찾아오면 그만두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슬픔과 어려움이 찾아오면 포기하지 말고 나를 믿으라고 하시는 것이죠. 이렇게 끝까지 주님을 믿는 신앙이 여러분 깨어 있는 신앙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깨어 있는 신앙을 가진 성도님들을 만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분들의 간증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떻게 이런 깨어 있는 신앙을 살까? 싶은 이야기들이 있는데요. 팬데믹 때의 이야기입니다.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가셔서 12여년 넘는 시간에 열심히 일해서 사업에 성공하신 분이 이제 자녀를 위해서 미국으로 사업체를 다. 두고 이제 어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마음으로 미국에 오셨습니다. 열심히 열심히 수고해서 열심히 열심히 일을 해서 그가 하고 있는 의류 사업을 잘 번성케 하고 그리고 사업이 너무나 잘됐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이제는 어 건물을 얻어서 사무실을 거기 세우고, 들어오는 옷의 그 물건들을 창고에 가득가득 어 쌓아놓는 그런 귀한 일들을 은혜를 체험한 분입니다. 팬데믹 가운데도 그 사업이 늘 잘되는 사업이었는데 어느 날 아침에 그 장로님의 교구 담당하시는 장로님이 새벽 이른 새벽에 전화가 온 겁니다. 목사님, 지금 빨리 TV를 켜 보세요. TV를 켰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 장로님의 회사가 지금 불에 타고 있습니다. 라는 거예요. TV에 방영이 되고 있는 거였습니다. 뉴스에 나올 정도로 큰 화제였어요. 그리고 그 아르헨티나에서 오셔서 사업을 읽으신 그 장로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됐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목사님, 다 타고 있습니다. 다 타고 있습니다. 그런지 빨리 와서 이곳에서 예배를 드려 주십시오. 부르는 겁니다. 그리고 차를 타고 바로 갔습니다. 도착하니까? 모든 미국의 방송사들이 다 와 있더라구요. 취재하려고,,, 그리고 정말 연기만이 타 오르고 있는 이 무너진 건물의 현장을 봤습니다.

저도 기가 차더라고요. 장로님을 보니까? 이제 가족들 이렇게 제가 오니까? 이제 만났습니다. 근데 저희들에게 모이니까? 갑자기 방송사 카메라들이 우리를 비추기 시작합니다. 생방송으로,,,. 그때 그 장로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럴 때 이런 어려움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봐야 된다. 하면서 모였어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말씀을 나눴어요. 그 기도를 했습니다. 말씀을 나누면서 이런 말씀을 나눴습니다. 앞으로 이삭의 우물처럼 모든 사람들이 우물을 빼앗아가고 빼앗아가도 믿음으로 우물을 팔면 샘물 나게 하셨던 것처럼 그와 같은 기업이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기업이 과연 화제가 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덮어 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하면서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다 아멘으로 화답했어요. 예배를 다. 드리고 났지만 눈에 보이는 현실은 불에 의해서 완전히 주저앉아 버린 화의 터밖에 안 보이는 거예요. 그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밖에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젠 다 끝나서 이제 다 전소가 되어서 이제 소방관이 들어가서 혹시 거기에 뭐 화재 이유가 뭔가 확인도 해야 되고 또 이 화재의 사건을 알고 보니까? 추운 날 홈리스들이, 노숙자들이 자기 춥다고 불을 짚혔는데 그 불을 컨트롤 못 해서 건물에 옮겨붙어서 완전히 타 버린 사건이거든요. 근데 이제 검사를 이제 하는데 소방관이 저기에서 사장을 부르는 겁니다. 사장 빨리 와 보라고, 그래서 장로님이 진짜 화가 돼 버린 곳에 이제 그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근데 딱 갔더니 다. 탔어요. 진짜 다 탔는데 딱 타지 않은 세 개가 나왔습니다. 이 기업은 이제는 물건을 이제 넘겨 주려면 어디서 물건이 왔는지 어디서 보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기업이 일어날 수도 모든게 다. 타 가지고 사업을 다시 시작할 수도 없는 상황인데 딱 타자는 세 개가 나온 거예요. ①첫 번째 뭐가 안타냐면 컴퓨터 하드라이브가 안탄 거예요. 그 하드라이브는 물건을 주문하고 어디에 물건을 보내야 되는 모든 주문서가 있는 하드드라이버였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안 타 가지고 결국에는 신뢰를 계속 지키면서 그 주문한 물건을 배송할 수 있었습니다. ②두 번째 뭐가 안 타냐면 샘플이 안 탄 거예요. 옷의 모든 샘플, 샘플이 안 타 가지고 여러분 그 샘플을 가지고 바로 그다음 날부터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또 안타게 있었는데 그 장로님의 테이블이 있었던 ③성경책이 안탄 거예요. 그 성경책이 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이분이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니서요. 놀랍게 놀랍게 하나님께서 이것을 보셨는지, 끝까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보셨는지, 그 이후에도요. 정말 우리 회사가 불이 나나 싶을 정도로 하나님께서 이 기업을 축복하시는데 부우셔도 부우서도 끝이 없을 만큼 부으셔서,

여러분 기독교 단체인 ‘히즈 그레이스’라는 NGO 단체를 만들어서 많은 선교사님들과 더 많은 선교지를 후원하는 기업으로 하나님 그 기업을 일으켜 주셨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 끝까지 믿는 믿음, 절망과 슬픔 가운데 완전히 화마가 되어서 끝이 나 버린 그 순간에도, 그들의 믿음은 끝까지 지켰다는 것이죠. 그 주님께서요. 그 끝까지 믿음 가운데 주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요. 우리는 눈에 보이는 주저 앉아버린 현실이 깨어나야 돼, 다시 살아나야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살아나야 될 것은 너희 환경이 아니다. 살아나야 될 것은 너희 가정이 아니다. 살아나야 될 것은 너의 일터가 아니다. 살아나야 될 것은 그 힘든 어려움 가운데 주저 앉아 버린 너의 영혼이 살아나야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여러분, 깨어나야 될 것은 우리들의 신앙입니다. 끝까지 믿는 신앙을 우리가 일으키며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깨어 있는 신앙은 어떤 신앙일까요? 첫 번째 끝까지 믿는 신앙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신앙입니다.

◎ 깨어있는 신앙이란,
II. 둘째,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신앙입니다.

-분명히 시간표에는 나의 시간표가 있습니다. 크로노스의 시간표가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의 시간표가 있습니다. 카이로스의 시간대가 있습니다. 나의 시간표와 하나님의 시간대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르는 찬양과 이런 찬양 있잖아요. ♬주님의 시간에 주의 뜻 이루어지기를 기다려. 하루하루 살 동안 주님 인도하시니 주님의 시간에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는 12년 동안 혈루 병을 알았던 그 자체가 너무나 주님께서 그냥 방치한 것 같처럼 보이죠. 그 12년 동안 앓았던 그 자신의 아이를 주님께서 고치지 않은 것은 너무나 주님께서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잖아요. 하지만 그 고치신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 주님께서 계획하신 완벽한 때인 줄 믿습니다. 오히려 더디 간 것 같고 안이 이루어진 것 같고 끝난 것 같지만,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기도 응답을 할 때 보통 네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는 기도 응답은 ①,구한 것을 그대로 주시는 거 놀라운 은혜죠.
두 번째는 우리가 구했지만 ②다른 것을 주십니다. 환경은 바뀌지 않았지만 환경을 이기게 하시는 믿음과 능력을 주실 때가 있어요. 마지막
세 번째는 우리가 구했는데 ③노(NO!) 하실 때가 있습니다. 뱀을 달라 하는 자녀에게 그 어미가 어찌 뱀을 주며 칼을 달라 하는 아이에게 그 아비가 어찌 칼을 줄 수 있냐 노라고 말씀하시는 것 응답이죠. 마지막
네 번째는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④더 좋은 것을 주실 때가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응답의 때는, 역사하심의 때는 나의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죠. 예수님께서 사랑했던 베다니의 나사로는 예수님을 기다리지 못하고 중한 병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누이들이 말합니다. 주님께서 오셨더라면, 주님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우리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겁니다. 라고 그가 원망하며 얘기해요. 그때 예수님께서 뭘 말씀하셨냐면 요한복음 11장 40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1:40,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 뭘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너에게 누누이 말하지 않았냐? 내가 너에게 계속해서 반복해서 너를 만날 때마다. 너희 집에 거할 때마다. 너와 대화를 안 할 때마다. 내가 계속해서 얘기한 게 있지니 네가 믿으면 네가 믿으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내가 늘 반복해서 계속해서 얘기하지 않았니 뭘 말하는 거예요? 보게 된다는 겁니다. 네가 믿기만 하면 믿기만 하면 나의 때에 너의 삶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여러분, 우리 현재의 닥쳐온 어두움 어려움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성경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전도서 3장 11절인데요. 함께 읽을까요?

*전도서 3:11,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그 때를 알 수 없고 시작과 끝을 측량할 수 없는 연약한 자로 만드셨지만 그런 하나님은 그때를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라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그 때를, 그 영원함을 우리는 사모해야 됩니다. 그 때가 언제입니까? 라기보다는 하나님은 그 뜻이 이루어질 줄 나는 믿습니다. 라는 소망을 붙으며 우린 살아가야 된다는 것이죠. 아브라함 역시도 약속을 받았지만 그 약속은 오랜 기다림 가운데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자신의 방법으로 낳은 아들이 있어요. 그게 뭐냐면 이스마엘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주신 자가 여러분 약속의 아들 이삭이라는 것이죠.

사랑의 영 가족 여러분,
우리 기억하셔야 됩니다. 우리가 조급하게 서두르면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다리면 끼어 있으면 이삭을 낳습니다. 누구를 낳기 원하십니까? 이삭이잖아요. 조급하게 서두르면 이스마엘을 낳요. 하지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기다리면 우리는 약속 이삭을 얻게 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시간대가 길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때에, 한 번도 실수 없이 주님께서 그때를 우리 가운데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야이로에게도 늦은 것 같은 시간이에요. 늦었다. 늦었다. 끝났다. 주님 뭐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늦지 않았다. 끝나지 않았다. 나의 때에 너의 아이는 살 것이다. 여러분, 이것을 믿는 것이 여러분 우리가 깨어 있는 신앙이 됨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깨어 있는 신앙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끝까지 믿는 신앙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신앙입니다. 세 번째는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신앙입니다.

◎ 깨어있는 신앙이란,
III. 셋째,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신양입니다.

-야이로는 유대인의 회당장입니다. 이 말은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 인이라는 말이에요. 종교 지도자입니다. 자기가 가르쳤던 자신이 또 지켜야 된 율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체면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는 동료들의 시선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께 와서 주님 내 딸을 살려 달라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우리가 깨어 있다는 것은 내 생각과 내 방법을 내려놓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여러분 우리가 깨어 있는 신앙이라는 것이죠. 딸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더 이상 예수님께서 집에 올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멱살을 잡고 당신 때문에 내 딸이 죽었소! 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일 거예요. 그만큼 힘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러나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생각을 들려놓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집으로 초청합니다. 그리고 죽은 아이에게 예수님을 모셔갑니다. 이건 뭘 말할까요? 자신의 모든 생각과 계획을 방법을 내려놓은 거예요. 그리고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다. 올려놓은 맡긴 신앙이었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내 손에 있는 것보다. 주님의 손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한 겁니다. 내 손에 있는 것보다. 주님의 손에 올려 드리는 것이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것이죠. 제가 남자 제자반을 할 때, 어느 집사님이 이제 20년 이민 생활하면서 너무나 바빠서 두 아들을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고 살뜰하게 챙기지도 못했어요. 그냥 부모가 일 수 있는 것은 그 두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늘 아들 안에 미안한 마음이 있었어요. 내가 아들을 잘 돌보지 못했는데, 놀아주지 못했는데 챙겨 주지 못했는데 이런 늘 미안한 마음이 있는데 그 두 아들 너무나 잘 자란 거예요. 좋은 대학도 나오고, 신앙도 좋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너무나 너무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된 겁니다. 그 제자에서이 남자 집사람이 간증을 하는 거예요.

나는 진짜 내 아들에게 두 아들에게 해 준 것도 없고 정말 부족하고 참 아들을 위해서 기도한 것밖에 없는데 참 하나님께서 우리 두 아들을 너무나 이렇게 잘 길러 주셨다.이 간증을 하는데 듣고 있었던 우리 다른 제자분의 모든 형제들이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사님, 집사님이 손대지 않아서 잘 된 거예요. ㅎㅎㅎㅎ 집사님께서 손대지 않아서 잘 된 거예요. 집사님께 손대셨으면 이렇게 잘될 수 없었을 거예요. 집사님께서 손대지 않고 기도만 하셨으니까? 잘 된 거예요. 아빠의 무관심, ㅋㅋㅋ

근데 이 말을 듣는데 이 말을 부인할 수 없는 겁니다. 그래 우리가 손대지 않아 잘된 거다. 내가 이렇게 돼 된다. 내가 저렇게 된다. 하면 우리 아들 잘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어르신도 이런 얘기 많이 하잖아요. 아이가 다쳐서 이제 막 이렇게 까지면 애들은 그 아픈 계속 손 댑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늘 이렇게 말했어요. 야 손대지 마라. 손대지 마라. 덫 난다. 손대지 마라. 손대지 마라. 덧 나, 얘기 많이 들으셨잖아요. 주님도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손대지 마라. 손대지 마라. 덫 난다. 그 손대지 마. 손대지 마. ㄴ-덫 나. 덫 나. 내가 할게. 내가 할게. 여러분, 주님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실까요? 깨어 있는 신앙은 내가 손대는 신앙이 아닙니다.

주님의 손에 여러분 올려 드리는 신앙인 거예요. 맡기지 못해서 문제가 생기지, 주님은 맡겨진 것에 대해선 확실하게 책임져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한 번도 걸어가지 못한 오늘의 인생을 한 번도 겪지 못한 내일의 삶을 시작합니다. 어떤 일이 내 삶에 벌어질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해요. 근데 그 길을 내가 뭐라고 뭐가 잘났다고 이런 일이 있을 거야? 저런 일이 있을 거야. 이렇게 되면 돼, 저렇게 돼. 우리가 말할 수 있을까요? 아무런 의미 없습니다.

여러분, 내 앞계를 누가 아세요? 오직 주가 아시나니. 내 미래를 누가 아세요? 우리 주님이 하시하니. 나 인생을 누가 책임져 주세요? 우리 주님이 책임져 주시니, 내 계획과 플랜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올려 드릴 때마다, 주님께서 저와 여러 삶 가운데 일하신 은혜와 능력을 보여 주실 줄 믿습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기 원합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주님께서 정말 일으키기 원하셨던 것은 그 야이로의 딸이 아니었어요. 야이로의 신앙이었습니다. 네 이름답게 살아라. 네 이름이 깨어 있다는 거 아니냐? 너의 이름이 일어난다는 거 아니냐?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네가 너희 이름이 그리스도인 아니냐? 네가 하나님의 아들 아니냐? 하나님의 자녀 아니냐? 하나님의 백성 아니냐? 그렇다면 나를 끝까지 믿어라. 그리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라. 그리고 너의 계획과 너의 방법으로 살지 않고, 나를 의지하고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기며 살아갈 때 할 때 주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죽은 내 영혼이 깨어날 때마다. 죽었던 나의 모든 삶이 이와 함께 살아나게 될 줄 믿습니다. 그 은혜로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절망의 순간에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는 주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크로스의 시간대로 살지 않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카이로스의 시간대를 붙들며 살게 하여 주시고, 모든 것을 주의 손에 맡기며 의탁하는 믿음의 걸음 걷게 하여 주옵소서. 환경보다 깨어나야 될 우리의 믿음이 있습니다. 다시 일으켜 주셔서 주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여 주시고 우리의 삶 가운데 새 힘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주의 믿음의 길을 걷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려올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요약
회당장 야이로는 딸의 죽음 앞에 절망하지만,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며 아이를 살리신다. 주님이 진정 깨우고자 하신 것은 절망적인 환경이 아니라, 상황에 지쳐 잠들어 있던 야이로의 믿음이다. 죽어가는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나 다음과 같은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1. 끝까지 믿는 신앙: 세상의 비웃음과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자세이다.
2.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신앙: 자신의 조급함을 내려놓고, 가장 완벽한 하나님의 때(카이로스)에 역사하실 것을 소망하는 자세이다.
3. 나를 내려놓는 신앙: 자신의 생각과 방법을 내려놓고 삶의 주도권을 주님께 완전히 맡기는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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