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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4월 14일)-
(예수님은 누구신가?-Who is JESUS?)-9번째
제목: "용광로(鎔鑛爐) 속에서도 함께하시는 예수님"
말씀: 다니엘 3:19~27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이현규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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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3:19~27,
19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얼굴빛을 바꾸고 명령하여 이르되 그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
20 군대 중 용사 몇 사람에게 명령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지라 하니라.
21 그러자 그 사람들을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하여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졌더라.
22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불이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23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떨어졌더라.
24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25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26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27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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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대 찬송 감사합니다. 명실공이 우리가 지금 봄의 한가운데 꽃 대궐 속에 충만한 봄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 마음속에 우리 성도들도 예외 없이 영원의 봄 동산을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근데 오늘 여러분 찬송가를 부르는데 이 찬송가가 보니까 좀 맥아리가 없어요.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찬양대도 잘 모르시는 것 같고, 근데 이 찬송은 제가 한27년 전쯤 브라질의 상파울로에서 한인 교민들 집회를 하는데, 마지막 시간에 청소년들 한 십여 명이 나오더니, 특 송을 하는 거예요. 이걸 가지고 우리 교우들은 잘 모르고 있는데, 27년 전에 브라질 상파울로의 한인 교회 청소년들이 이 찬송을 하는 거예요. 특 송으로, 저는 어릴 때부터 이 찬송을 잘 알았어요. 근데 너무 마음에 와 닿는 거예요.
 
♬“이 말씀 전할 때, 내 마음이 기쁘고, 말씀을 할수록 새 기쁨 넘치네, 우리에게는 새 기쁨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그다음에 이 말씀을 들을 때, 이 말씀 들은 사람 또 듣기 원하고, 목말라 사모하니 말씀 진리라. 가사가 안 나오죠? 나라 영광중에 나부를 새 노래 옛 부터 좋아하더니, 이 말씀 다시 3절에, 이 말씀 들은 사람 또 듣기 원하고 목말라 사모하니 말씀 진리라.” ♪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목마른 말씀이 되기를 바라고,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진리의 말씀으로 여러분들 탁 정리되기를 바랍니다. 옛 부터 좋아하더니, 말씀 뭐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요. 못합니다마는 이 찬송을 집에 가서도 함 불러보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지금 주신 음성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브라질에 있는 청소년들을 이상으로 찬송이 돼서 영의 눈이 떠지기를 바랍니다. 사람들 다 그래도 주님 잘 섬겨요. 아무것도 없어도 해외 디아스포로로 흩어져 가지고 뭐 보장되는 거 없어도 이런 찬송을 통하여 주님의 임재를 깨달으면 이겨낼 수가 있는 것이에요.
 
오늘 저는 예수님 누구신가?(Who is Jesus?-더블유제이 시리즈) 번째 “용광로 풀무불 속에서도 함께하시는 여수님”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이 본문의 스토리는 여러분들이 익숙하게 하는 내용이고, 처음 오신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사드락과 매삭과 아벳느고라는 다니엘의 구약에 다니엘의 세 친구인데, 구약에 출중한 인물인 다니엘의 세 친구인 이들이 풀무불 속에, 용광도 속에서 구원받는 내용입니다. 이 저는 여기서 어떻게 예수님을 발견하고 여기서 어떤 은혜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여러분 로마서 15장 4절에 이런 말씀해 주세요.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로마서 15:4,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구약의 말씀을 기록한 이유가 뭐냐, 특별 오늘 이런 말씀을 기록한 이유가 뭐냐면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여러분 교과서 알죠“ 교과서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교과서가 될 것이다. 오늘 3장에는 이 본문의 말씀이 여러분들의 생애와 여러분들의 생애와 여러분들의 인생에 교과서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란 1차 포로 때에 잡혀갔어요. 이 차 3차 포로 뒤에 잡혀가는 사람들에게도 얼마나 이 말씀이 위로가 됐을지 몰라요. 그리고 후대에 있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매달리고 수많은 고통 속에서도 이 말씀이 시대에 한 민족의 민족이 면함을 당할 어려움 가운데서도 교과서가 된 것이에요. 오늘 우리의 상황 우리의 주위의 상황이 녹록치 않고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여러분과 저의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삶에 교과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생각할 것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겨도 풀무 불에 던짐을 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I.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겨도 풀무 불에 던짐 당할 수 있다.
-오늘 18절에 보니까 단연히 세 친구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우상 신상에 절하지 않겠다. 제가 배경을 다 뭐 자세히 말씀 다 못 드립니다마는 느부갓네살 왕이 당대 최고의 황제였고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고 무소불이(無所不爲)를 행사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신상을 세웠어요. 그것도 평지에다가 높이 세워갖고 더 두드러지게 보이라고 세워 가지고 이제 절하라고 그랬어요. 근데 절 못한다고 다 이들 질투하던 사람들이 이들이 관리로서 잘 하니까 옆에는 항상 그래요. 누가 잘하면 대한민국 사람하고 똑 같에요. 누가 잘하면 봐주지를 못하는 거야. 질투하고 같이 박수치고 같이 해가지고 같이 잘하면 같이 성공하는데 물어뜯고 집어 뜯고, 잡아 뜯고, 지난주에 제가 원,불,비라고 그랬죠? 물어뜯고 집어 뜯고 잡아 뜯고 물,집,잡이에요. 그래갖고 이 세 친구를 갖다가 얼거 매 가지고, 이제 신상에 절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당시에 느부갓네살 왕이라는 이 황제가 왕이 무소불이 왕이 모욕을 당했다고 느끼고 그래서 이제 풀무 불에 집어 던져지게 되는데, 여기서 우리가 먼저 생각할 것은 우리가 어떨 때는 결단하고, 순종하고, 충성하면 늘 사람들이 격려하고 인정해 준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을 때가 많이 있어요. 오히려 미워하고 박해할 수 있는 것이에요. 요한복음 15장 20절에 보니까,
 
*요한복음 15:20,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니 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다. 전에 우리 개혁 판에는 사람들이 나를 핍박했으니까, 너희도 핍박(逼迫)할 것이다. 주님을 핍박 하니까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핍박한다. 오죽하면 사도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디모데후서 3:12,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핍박을 받으리라. 여기서 경건하게 산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경건하게 개인적인 경건도 있습니다마는 복음을 위해서 전도를 하고, 기독교 신앙 가치관을 가지고 한번 나라를 한번 제대로 세워보고자 애를 쓰고, 전도와 선교를 위하여 어제도 여기 우리가 복음 통일을 위하여 어제도 여기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오후 한 시에 주님 이 나라가 피 흘림 없이 복음적으로 통일되게 해 달라고 막 그렇게 할 때에, 사람들이 박해를 하는 겁니다. 숨어서 경건하게 살면 누가 박해를 하겠어요? 그런데 기독교 정신을 선포하고, 이 나라가 사회주의가 되면 안 되고 이 나라가 공산주의가 되면 안 됩니다. 라고 외칠 때 박해가 있다는 것이에요. 이 세상은 세속의 우상들을 섬기지 않는 자들에게 그리고 복음을 선포하는 삶들에 대해서 저들 나름대로 뜨거운 용광로(鎔鑛爐)를 준비해 놓고 있는 것이에요. 용광로는 빈정거림과 무시와 따돌림의 화덕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대로 섬기고 기독교 신앙 가치관을 가지고 우리가 지금 차별금지법 ,동성애, 이런 거 반대하면 얼마나 무시라 미국 같은 데 가면요 완전히 왕따 시키고 있잖아요. 동부의 아이비리그 잘난 데는 전부 다 교술 다 동성애자들이 많고 얼마나 풀무 불을 많이 준비했는지 몰라요.
 
다시 본문으로 들어가 가지고, 느부갓네살 왕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가지고 풀무 불을 7배나 더 뜨겁게 하라고 그랬어요. 그리고 세 사람을 끌어다가 풀무 불에 던져 넣기 위하여 아주 더 힘이 센 사람들이 세 사람을 묶어 가지고 풀무불 속으로 왔어요. 저 이게 풀무 불이 제 제철 용광로인데, 내가 자세히 위에 있을 때, 뭐 자세 설마 큰 거 있어요. 그리고 밑에는 사람들이 막 왔다 갔다 할 정도로 있잖아요. 위에서만 갖다 놓고 이제 네 그런 게 있어요. 제가 설명을 다 못하고 21절과 22절을 보니까,
 
*다니엘 3:121-22,
21 그러자 그 사람들을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하여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졌더라.
22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불이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힘센 사람들이 단열의 세 친구를 뭐예요? 결박해서 풀무 불에 던졌는데 그들을 풀무 불에 던진 사람들이 먼저 불에 타서 죽어버렸어요. 그러니까 정도의 화력이니까. 이 세 친구는 이제 끝난 것 같았어요. 느부갓네살 왕도 좀 정신이 없는 게 진짜 고통스럽게 벌을 주려면 불을 7배나 강하게 하면 고통이 오겠습니까? 예 보통 풀무 불이 1000도가 넘는데, 7배라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불도 적당히 뜨거워요 고통스러운데 너무나 뜨거우면 뭐 고통 느낄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나 이 감정이 복받치고, 생각이 잘못되면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도 판단 능력이 마비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우리 주위에도 예상외로 말도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 기독교를 비판하고, 비하하고, 조롱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노마 저것들이 느부갓네살이구나 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에요.
 
우리가 말씀을 순종하고 결단했는데도 실상은 풀무 불에 던짐을 당하고 고통당하는 삶의 현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어떻게 됩니까? 거기에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현장을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데, 다니엘이 세 친구가 옷을 입은 채로 던져줬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풀무 불에 던져져서 끝인 줄 알았는데, 24절에 보니까,
 
*다니엘 3:24,
24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그런데 이제 그다음에 더 놀라운 기적을 본 게 25절에 25절이요.
 
II.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현장
 
*다니엘 3:25,
25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네 번째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 그러니까 풀무불이 하늘이 뭐야? 여기 두 가지 기적이 일어났는데, 하나는 기적이 한꺼번에 일어났는데, ➀‘하나는 불에 타지 않고 건재한 기적’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앞에 보니까 뭐라고 돼 있어요? 그들을 포박한 줄만 탔어요. 포승줄만 탄 거예요. 두 번째 기적은 뭐냐 하면 ➁‘네 번째 사람, 신들의 아들과 같은 네 번째 사람 그들이 함께 한 것’ 이 두 가지 기적이에요. 여러분 풀무불이에요. 닭갈비집에 가면 어떻게 돼요. 그리고 저기 뭡니까? 뭐 이런 구이 집에 가면 온몸에 냄새가 나는데, 뒤에 나옵니다. 냄새 하러 나지 아니하고 포승(捕繩)줄만 결박이 없어지고 네 번째 사람이 함께한 기적이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이 네 번째 사람에 대해서 우리가 뭐 다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신들의 아들, 신의 아들 그러니까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이 신의 아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신약의 육신을 입으시기 전에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소위 크리스토파니, 구역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지난번에 우리 여호수아 5장의 군대 장관으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하다. 여러분, 그렇게 그냥 그렇게 해석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큰 무리가 없어요.
 
그리고 그들은 거의 뜨거운 용광로 풀무불 속이 아니라 네 사람이 마치 한가한 정원을 거닐 듯이 마치 왕궁을 거니는 것처럼 풀무 불은 그들에게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이걸 보면서 제가 이사야 43장 2절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구나.
 
*이사야 43:2,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그할렐루야 이 약속의 말씀이 문자적으로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어요. 문자적으로,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인데 그것이 뭐냐 하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 이 풀무불의 핍박이 왔을 때에, 그것을 피했습니까? 안 피했습니까? 피하지 않았습니다. 풀무 불을 정면으로 맞닥뜨렸습니다. 그리고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풀무 불 한가운데서 뜨거운 용광로 한가운데서 건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맞닥뜨리는 것 하나님을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않겠다고 목숨을 건 선언을 한 것입니다. 저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요? 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일단 풀무 불에 여기서 보면, 풀무 불에서 건잠 받는 기적은, 풀무불 속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하고 아니 실제로 풀무불 속에 들어가야 건짐을 받는 것이에요. 아무것도 안 하는데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그래서 제가 썼어요. 풀무 불에 안 들어가니까 풀무불 속에서 건짐 받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에요. 안 일어나는 것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풀무 불에 속에 들어가지 않으니, 풀무 불에 건짐 받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쨌든 간에 그렇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왜 무언가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왜 내 신앙생활이 지루합니까? 왜 내 신앙생활에 물을 물 탄 듯 매가리가 없고, 물에 물 탄 듯 뭐가 없습니까? 왜 그럴까 왜 강직함이 없을까? 오늘 여기 본문을 보면서 우리가 해석하는 것은 풀무 불에 들어가는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킨 결과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27절에 보니까,
 
*다니엘 3:27,
27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그다음에 제일 감동받는 것이 뭐예요? 불탄 냄새도 없었더라. 삼겹살만 구워 먹어도 난린데 냄새가 온통 다 난린데, 세 친구는 불타는 냄새조차 없었습니다. 그들을 결박했던 포승줄 불만 포승줄만 풀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야말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오늘 리빙 미라클!, 산 기적이 되었어요. 살아있는 기적이 어디였어요. 할렐루야!!!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 저도 저의 남은 생애 가운데 저와 여러분들은 산 기적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살아있는 기적이 돼요. 리빙 미라클!, 우리가 먼저 풀무 불에 들어가야 할 경험이 필요하고, ‘2033-50 비전’을 왜 합니까?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잖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잖아요. 핍박도 없어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영적으로 성공하고, 축복의 근원이 되고, 정말로 세계 복음주의 쇠퇴를 막고, 남북의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 통일을 우리가 뭔가를 하면, 핍박이 일어나는 것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역사에 은혜를 베푸셔갖고 모든 포승줄을 풀어주시고, 우리가 결단을 할 때, 우리가 리빙 미라클이 될 수 있도록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목숨을 건 선언이 필요하고, 풀무불의 형벌을 피하지 않았기 때문에, 풀무 불의 기적이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다시 한 번 오늘날 내 삶에 왜 기적이 없는가? 내 삶의 신선한 감격과 주름을 섬기는 열정은 왜 없는가? 왜 내 신앙생활에 이렇게 생활이 지루하고 물에 물 타듯하고 뭔가가 없는가? 중요할 때에 주님을 향한 우리의 분명한 헌신의 자세, 중요할 때에 기독교 신앙에 대한 값을 치르는 대가,
 
-저는 어릴 때 태어나서 가만히 제가 보니까 어릴 때, 60명 가운데 나 혼자 예수 믿었어요. 학교만 가면 이제 예수쟁이라고 있잖아요. 뭐 예수를 믿냐? 내 주먹이나 믿어라. 이러면서 모욕당하고 교회 간다고 모욕당하고, 또 교회가 뭐 너무 초라하니까 모욕당하고, 주일 성수한다고 모욕당하고, 제가 한 번 얘기했죠? 우리 아버지 교 밑에 공병기지창 이라고 있는데, 거기에 내가 어릴 때 여름 성경학과 찬송하고 내려가면요 군인들이 이리 와 이리 와라 자식들 말이야. 어디 감히 이 앞에 노래를 부르고 다녀, 이리 와! 저놈 여기 누나 있나? 누나 없습니다. 내가 장남이니까. 어디 이러면서 노래하나 불러, ♪환난과 핍박 중에도~~이 신앙 생각할 때 기쁨이 충만하도다.~~♬ 말이 그렇지요. 수많은 핍박과 난제에요. 학교에 들어가서도 가난하고 그러니까, 예수 믿으니까, 있잖아요. 얼마나 근데 지금도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요. 예수쟁이기 때문에 찬송한다고, 전도한다고, 교회 간다고, 주일 성수한다고, 모욕당한 모든 것들이 저희 생애를 돌아보면 그것이 기적의 시작점이었어요. 수많은 기적들, 수많은 기적의 만남들이 수많은 인생의 수많은 과정과 열매들, 때론 예수님들을 모욕당하고 여기 예수님의 아내들 집안에 혼자 예수 믿는 분들을 주님들을 모욕당하고, 그래도 꿋꿋이 주님 사랑하고 그럴 때, 지나놓고 여러분 그러면, 자식이 기적을 일으킬 것이에요!!. 살아있는 미라클, 리빙 미라클(living Miracle), 여러분께 여러분들 회사 내에서 한 10년, 20년, 30년을 꿋꿋하게 신앙 지킨다고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리빙 미라클로 삼아주시는 것이에요.
 
III. 풀무불(鎔鑛爐)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한 번 더 제가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크리스토파니를 정리하겠습니다.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1세기에 초림으로 성육신하시기 전에 구약에 예표로 나타나신 것이다.
 
*다니엘 3:25,
25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The Son of God! 이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인 줄로 믿습니다. 풀무 불 가운데 신앙을 지키는 사람에게 그 신앙이 지키는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는 구원자가 되시고, 그들을 보호하는 호위자 보호자가 되어 주시고, 그들의 수호천사가 되어 주시고, 그래서 가장 강력한 호위와 가장 강력한 구원은 뜨거운 용광로 불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세요.
 
여러분들의 생애 가장 강력한 호위는 돈도 아니고, 가장 강력한 호위는 권력도 아니고, 가장 강력한 호위는 정치적으로 여러분들을 같이 하는 그런 흐름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호위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세요. 불 속에서도 그분이 나와 함께하면 여유롭게 걸릴 수가 있고,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나를 돌보시고 있다고 고백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풀무불 속에서도 어려움의 시간들을 말씀과 기쁨과 찬양으로 기도로 통과할 수 있도록 나와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떨 때는 말씀으로,
어떨 때는 특새의 은혜로,
어떨 때는 성도의 교제로,
어떨 때는 찬양의 능력으로,
여러분들의 호위자로,
구원자로 보호자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셔야 됩니다.
 
그래서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의 순간 혼자라고 느껴지는 순간에 예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셔서 승리하게 하신 것이 기적이라 이 말이죠. 신앙 때문에 직장에서 왕따 당할 때도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에요.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사역과 삶의 현장에서 우리를 살리는 가장 큰 은혜의 원천이 뭡니까? 가장 큰 구원의 원천이 뭡니까? 한마디로 임마누엘인데, 지금 나와 함께 다시는 예수님이 나의 삶에 가장 큰 보호와 가장 큰 구원의 원천이 되는 것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이걸 여러분들이 그냥 적당히 생각하시면 안 돼요.
 
가족을 먼저 떠나보내는 인생의 풀무 불을 당한 고통을 당하는 분들, 지금 내가 암이 하나 두 개 한두 개 있어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암 때문에 고통도 하는 그런 분들, 어떻게 보면 인생의 풀무불인데 가운데서 고생하는 분들 그분들에게 제일 큰 능력과 제일 큰 치유가 뭐냐, 지금 그분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세요. 지금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세요. 그래서 뜨거운 용광로 가운데 고생하는 분들의 고백 속에 지금도 주님이 나와 함께 계셔, 나는 그분의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여러분 참 희한한 게요 어려울수록 이게 더 실감이 가는 것이에요.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이 은혜는 세상에 잘 나가고 모든 것이 평탄할 때 더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진짜 고통도 어렵고 눈물 날 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 더 잘 느껴진다니까요?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이제 하나의 용어를 말씀드리는데 플러스 원(+1)이라는 거예요. 나 플러스 원(+1) 예수 그리스도, 나와 함께 계시는 플러스 원(+1)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오늘 용광로 속에서 함께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오늘 사실 설교 제목을 제가 ‘플러스 원(+1)되시는 예수님’ 이라고 하고 싶었어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은 뭔가 달라야 한다. 그래서 다른 하나의 우리의 삶의 형태가 사실 팩트 리포트(fact report) 하는 사람이 있고 또 한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시각을 가지고 페이스 리포트(Faith Report), 보고만 하는 사람이 있고, 팩트리 볼트 바른 사람이 있고 믿음 보고만 하는 사람이 있다. 믿음보고를 하는 사람이 있다. 페이스트 리포트라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보고 정도가 아니라 우리는 우리도 눈이 있으니까 사실보고를 하지만 우리는 신앙 때문에 믿음보고의 보고자가 돼야 할 줄로 있습니다. 이거예요. 그러면 오늘 이 여기 말씀과 견주어 볼 때 우리는 이 땅에서의 우리 매일매일 삶의 현장을 사랑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진짜 어려울 때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주님을 깨닫는 그것이 뭐냐면 여러분 플러스 원(+1)이 되는 것이에요. 나 혼자가 아니라 플러스 원(+1)에 보고를 해야 돼 세 명 플러스 원(+1)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플러스 원(+1) 사실보고가 아니라, 사실보고는 나 혼자 감당하는 것이라 그것이라면, 믿음보고는 내 인생의 플러스 원(+1)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풀무불의 임재 공식은 플러스 원(+1)이에요. 다시요. 사실보고가 나 혼자 감당하는 것이라면, 믿음보고는 내 인생의 플러스 원(+1) 되어 주시는 예수님과 함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주일 앞에 서는 그날까지, 플러스 원(+1)의 인생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인생을 살아보면 마이너스 인생도 있어요. 마이너스 역할도 하는 사람도 있고 뺄셈만 하는 그런 환경도 있어요. 그런 사람 그런 환경을 만나면 우리가 에너지가 뺏겨요. 우리 주위 환경을 보면 에너지를 뺏는 환경들과 사건들이 너무 많아요. 제가 자세히 말씀을 안 드려도 여러분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수많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요!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는 마이너스 인생이 되면 안 돼요. 예수님은 우리 인생을 풀무불 속에서도 플러스 원(+1)으로 함께하시는 주님이신 줄로 믿는 것이에요. 오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풀무불 속에 들어갈 때는 그냥 세 사람 플러스 제로(3사람+0)였지만 오늘 풀무불 속에 함께 계신 예수님 때문에 뚜리 플러스 원(+1)이 된 것이에요. 부모들에게는 이 플러스 원(+1)이 돼야 할 것이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는 원 플러스 원(1+1)이 돼야 할 것이에요. 사람의 교회 이런 정신을 가지고 7천기도 용사를 하는데, 7천기도 용사를 하는데 7천기도 용사 7천 플러스 원(7000+1)이 돼야 할 것이에요. 요셉은 구덩이라는 풀무불 속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요셉 혼자서 울었던 게 아니라, 거기에 요셉 플러스 원(요셉+1)이 되었어요. 요셉 플러스 원(요셉+1)이 되니까, 창세기 39장에 보면,
 
*창세기 39:2~3,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여러분 풀무 불 상황 속에서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거예요? 아니 풀무 불 전에도 다니는 세 친구와 주님은 동행하셨어요. 다니엘서 1장에 보면 3년 동안 훈련받을 때도 주님 함께 하셨고, 다니엘서 2장에 보면 세 친구가 각도에 흩어져 가지고 공직을 수행할 때도 함께 계셨어요. 평소에 함께하셨던 주님께서 결정적인 카이로스의 시간에, 예수님이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로 나타나셔 가지고 결정적인 순간에 크로노스의 시간을 카이로스의 결정적 기적의 시간으로 만들어 주신 것이에요. 세 친구와 이미 동행하고 계셨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강력함으로 나타난 것이에요. 그래서 용어를 제가 하나 만들었는데,
 
▷평상시 크로노스의 플러스 One(Plus One)의 임재가 결정적인 시기에 믿음으로 풀무 불에 들어가는 순간 카이로스의 플러스 원(Plus One)의 임재가 되어 주신다.
예수님은 평상시에 크로노스의 플러스 원(+1)을 임마누엘로 우리와 함께 하시지만 그런데 결정적으로 우리가 결정적인 시간에 이걸 깨닫고 헌신하고 풀무 에 들어갈 때에 카이로스 플러스 원(+1)을 만들어주시는 거예요. 평상시 크로노스의 플러스 원 크로노스란 말은 그냥 연대기 일반적으로 살아가는 그런 삶의 주님이 우리의 임재가 결정적인 시기에 믿음으로 풀무불에 들어가는 순간 카이로스 플러스 원(+1)이 되어 가지고 기적이 일어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기적 공식이에요. 오늘 이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 가정 지키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도 지키시길 바라고, 교회도 지키고, 이민족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뭐 뻑 하면 힘들면 이민 간다고 그러는데, 그런 이야기 하지 마시고, 여러분 그런 거 말씀하지 마시고, 하나님 어려울 때도 하나님 이 가운데 플러스 원 되어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런 플러스 원(+1)의 인생이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플러스 원(+1)이 되는 인생이 되고, 역사와 민족 앞에 플러스 원(+1)이 되는 인생이 될 줄로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북 스토어를 사랑 플러스로 지어놨어요. 그래서 앞으로 북스토어 간판을 사랑 플러스 원(+1)으로 바꿀 거예요. 사랑 플러스 원(+1), 전 세계 성도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를 대라 그러면, 많은 분들이 “여호와는 나의 목 자신에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우리 23편 1절도 좋지만 4절이 더 좋아요.
 
4절 내가 사망에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사망의 골짜기에서 주님이 나에게 사망이 음침한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주님이 나에게 플러스 원(+1)이 되어 주시는 것이에요. 혼자, 이 세상 사람들은 잘나고 뭐 있고, 권력하고 모든 것, 지혜 이런 거 지식에 대해서 관심이 많지만 오늘 저와 여러분의 최고의 관심은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것은 어려울 때일수록 더 실감을 한다니까요? 어려울 때일수록 여러분 어려울 때 저는 보면요 어려울 때, 주님의 이거 더 실감하면서 간절히 기도하고, 막 그냥 창자가 꼬이도록 어려운 기도 제목들이 많잖아요. 창자가 꼬이도록 간절히 기도했는데, 그 순간 자체는 나에게 해답이 없었어요. 당장은 해답이 없었어요. 지나고 나니까 하나님이 다 해답해 주셨어요.
 
시간은 좀 걸렸지만 그런데 지나고 나니까 가장 큰 가장 큰 해답은 뭐냐, 정말 어려울 때 창자가 꼴 정도로 기도의 제목이 심각했을 때, 주님의 임재를 끼면서 강하게 기도하고, 매달렸을 때 그리고 저는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모든 해답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방향을 잡는 것이에요.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그리고 모든 해답은 뭐냐면 어려울 때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여호사밧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그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어려울수록 플러스 원(+1)을 느끼고, 기도할 때 지나놓고 보니까 당장 답은 없었지만 어려울수록 주님의 임재를 느끼며 간절하게 매어 달리는 기도한 자체가 최고의 응답이 된 것이에요. 아멘! 자 어려울수록 주님의 임자를 느끼면서 간절히 기도할 때, 자체가 기도에 응답이 되는 것이에요.
 
따라서 예수 믿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도 하나님의 플러스 원(+1)의 임재의 은혜를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그냥 맹숭맹숭 적당히 산다면 그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것이고. 심지어 좀 세게 말해 저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에요. 예수 믿고 모든 것이 잘 되어가지고, 내 힘으로 모든 것이 잘 되고, 모든 것이 평탄해 가지고 하나님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과 하나 선생님이 함께하심을 정말로 사모하고, 매어달리지 아니하고 적당히 해서 다 잘 된다면 여러분 좋은 거 아니에요.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고, 남북통일을 위해서 기도하고, 우리는 우리의 삶 자체가 막 그냥 뭐 압박을 당한다든지 막 칼로 찌를 정도로 그렇게 하지는 않잖아요? 나라를 위해 있기도 하고 통일을 위해 있기도 하고 경회를 위해 있기도 하다 보면 가스 마려할 일들이 많이 생긴다고요.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를 느껴가지고 더 영광을 사모하고, 더 찬양하면, 그것 자체가 기적이 된다는 거예요. 자체가,,, 그것 자체가, 결론은 풀무 불에서 구원받으면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이에요.
 
IV 풀무 불에서 구원받으면 세상이 뒤집어진다.
 
풀무 불 가운데서 네 번째 사람이 거리는 걸 보고 느부갓네살 왕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26절에 풀무 불 아기 그게 밑에 통이 컸어요. 밑에서 사람이 그리는 걸 보면 밑에서 본 거예요.
 
*다니엘 3:26,
26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저는 진짜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결단하는 자리에는 이런 결과가 나타난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래서 저는 믿는 사람이 풀물 불을 결단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좀 더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에요. 좀더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수준으로까지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날이 우리 교회와 개인과 이민족에게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영광을 바라보고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 임재 자체가 응답이라고 믿고, 진짜 하나님을 기대하고 찬양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대면하게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 앞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에요. 거꾸로,
함께하셔서 결단하는 자리에 하나님께서 이런 대반전의 역사를 이루신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이 우리가 제대로 풀무 불을 결단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대면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29절에,
 
*다니엘 3:29,
29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더라.
그 당시에 황제의 조서는 지금 우리 시대로 보면 SNS가 퍼지는 것이에요. 앞으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질투하는 모든 인간들, 한 번 더 해봐라 ‘그 몸을 쪼개고 집을 거름 터로 삼을지니.’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 하나님은 이런 법적 조치가 필요 없어요. 인간에게 이런 법적 조치 받을 필요도 없어요. 그 당시 최고의 무소불이에요. 황제가 권력자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예요. 누가 찬양하라고 해달라고 했나? 찬양하라고 여기에 보니까 시대의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라고 했어요. 아벨론의 신 정도가 아니라 천하 만고의 신들을 KO시키는 결과가 나왔어요. 세 친구들이 풀무 불에 들어가겠다고 순교조인 결단하고 난 다음에 당시 정치 세계에도 글로벌하게 영향을 끼치게 된 거예요. 왕의 조서가 최고의 SNS가 되어 가지고 각 언어로 각 나라에 퍼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전 세계를 다녀보면 뭐 여러 나라가 다 주님 잘 섬기지만 한국 교회가 희망이에요. 사랑의 교회 사역이 한국 교회 사역이 올해는 ‘10.23’, 한국 교회 섬김의 날 사역이, 오늘 왕의 조서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전 세계 드디어 30절에,
 
*다니엘3:30,
30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초라한 아주 연약한 유대 민족이었고 초라한 포로였지만 그가 섬기는 하나님 때문에 제국의 모든 신들과 모든 권위들이 하루아침에 KO당했어요. 우리 식으로 말하면 강원도 홍천의 무명축구팀이 지금 프리미어 리그의 멘시티와 아스날을 10대 빵(10:0)으로 이긴 거예요. 저 강원도에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하기 짝이 없다. 원통 골엔 인제에 있는 축구팀이 파리의 샹제르망을 15:0으로 이긴 거예요. 별로 반응도 안 하시고,,, 사무엘상 30절 다 같이 우리 크게 보겠습니다.
 
*사무엘상 2:30,
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이게 오늘 우리 시대가 오늘 우리가 감당해야 할 주님의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물론 주님을 열심히 섬겨도 세상 왕국에서는 높임 받지 못할 때도 있어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계산은 정확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높여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왕국에서는 반드시 높여 주실 것입니다. 알다 보면 풀부 불을 경험합니다.
 
※존경하는 목사님이 계 목사님이라고 계시는데 그분 목사님 사모님이 계은덕 사모님이세요. 사별함을 이렇게 했어요. 이번에 최근에 책을 하나 썼는데,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사모님은 자녀가 없으시고 미국의 USC라는 좋은 대학의 의과대학 교수셨어요.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암이 두 암이 왔어요. 두 암이 와가지고 지금 뼈만 남았어요. 근데 책을 쓰시고 저한테 추천사를 부탁했어요. 추천사를 써드렸어요. ‘수많은 사람들을 키운 좋은 사모님 교수님이기 전에 목사님 사모님, 몸에 두 암이 두 가지 암이 와가지고 완전히 뼈가 남아았어요. 그 다니시는 교회에서 막 특송을 하시는데, 특송한 내용을 써놓았어요.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마지막 특송이에요.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뼈만 남은 풀무불이에요. 여러분 저의 삶에 최고의 플러스 원은(+1)요, 주님이 날 붙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요약
오늘 우리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통하여 교과서를 주신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플러스 원은(+1)으로 임재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동행 하시니, 우리의 삶에 풀무 불을 두려워하지 말고, 삶의 뜨거운 용광로 속에서도 주눅 들지도 말고, 기독교 정신을 우리가 부끄러워하지 말고, 복음의 횃불을 들고 영적 기백을 가지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이 시대를 승리해야 한다. 질병의 용광로 속에서, 경제적인 용광로 속에서, 어려움 가운데서도 플러스 원 되시는 예수님이 가장 귀한 자본임을 확신해야 한다. 우리가 풀무 불에 던져질지라도, 정면 돌파하게 해서 풀무 불을 회피하지 말고 승리하는 온전한 제자로 살아내어 주님께서 결코 너희를 버려두지 아니하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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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4월 21일)
제목: "산 돌, 모퉁잇돌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예수님은 누구신가?-Who is Jesus? )
-(Jesus Christ the Living Stone, the Very Corner Stone)

말씀: 다니엘 2:34-35,
베드로전서 2:4-8,
대표기도: 신동호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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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2:34-35,
34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35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
 
*베드로전서 2:4-8,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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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비가 그치고 맑고 산뜻하고도 쾌청한 주일이 되었습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서 여러분 다시 한 번 우리 인생에 정말 산뜻하고 청명한 날이 우리에게 오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지금 예수님 시리즈를 하고 있는데, 제 마음에 좀 소원이 있어요. 10편 119편에서 말씀한 것처럼 뭐라고 말씀 하냐면 내 눈을 열어서 추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신묘막측(神妙莫測)한 놀라운 것을 보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동시에 베드로가 고백한 대로 오늘 같이 우리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시편 119:18,
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베드로후서 1:19,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우리가 주님의 놀라운 말씀을 깨우치는 것 뿐 만이 아니라,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어두운 가운데서 샛별처럼 여러분들에게 놀라운 것을 놀라운 깨달음을 주시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개인적으로도 그러고 국가적으로도 혼란스러운 것이 있다면 그것들이 정리되는 샛별과 같은 그런 말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은 제가 10번째 에 ‘산돌이 되시고 모퉁이 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구약이 나타난 예수 그리스어에 대해서 신약과 어떻게 접목되는가? 이 말씀인데 오늘은 산돌 되시는 주님, 주춧돌 되시는 주님, 그리고 보배로우신 돌 되시는 주님, 소위 코너스톤(Corner Stone) 되시는 주님에 대해서 그러니까 오늘 저는 저와 여러분들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 산돌 되시고 보배로운 돌 되시고 오늘 6절을 보시면 다시요.
 
*베드로전서 2:6,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오늘 자 구약의 다니엘을 통하여 뜨인 돌 그 해석이 신약에서는 보배로운 모퉁이 돌인데 모퉁이 돌 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를 믿는 자는 뭐예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수많은 짐들이 있고 수많은 여러분 삶의 무게가 있지만 오늘 이 말씀을 제대로 깨달을 때 모든 삶의 짐들이 벗겨지게 하여 주시옵시고,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그래서 우리 참 버려진 돌 같이요. 부족한 인생들이 보배로운 돌, 산돌 되시는 모퉁이 돌, 되시는 주춧돌 되시는 그분께 접목이 되고 덧붙여지면, 여러분 인생 주님 앞에서 어떤 대반전이 일어나게 하시고, 수많은 삶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새로운 방향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혹해 하는 영이 그러니까, 미혹(迷惑)해 하는 영이 이걸 못 깨닫도록 별 수를 다 쓰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 주님께서 여러분 우리 마음의 미세먼지가 싹 사라지고 오늘 참 청명한 하나님 말씀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오늘 다니엘서의 이 배경은 지난주로 우리 3장하라고 오늘 이 장을 내가 좀 더 설명을 해드리는데 어느 날 2장 1절에 보니까,
 
*다니엘 2:1,
1 느부갓네살이 다스린 지 이 년이 되는 해에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고 그로 말미암아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지라.
-느부갓네살 왕이 에 꿈을 꿨어요. 그런데 꿈을 꿨는데 문제는 뭐냐면, 너무 꿈에 대해서 마음이 번민(煩悶)이 되고 괴로운 거예요. 근데 내가 왜 괴롭지? 하고 꾼 꿈이 뭐냐 하고 생각해 보니까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그래서 당시 당대 최대의 제국의 황제가 당시에 제국의 지혜 자, 소위 박수, 그다음에 지혜자, 그다음에 술객들, 똑똑한 사람들을 다 모았어요. 모아서 이 꾼 꿈을 해석하라. 그러니까 하는 얘기가 왕이시어 무슨 꿈을 꾼 지, 말씀해 주시면 우리가 해석을 하겠나이다. 앞에 있는 내용들 제가 설명을 드리는 거예요. ‘나는 그거 몰라’ 그러니까 완전히 막가파야 막가파 왜냐하면, 전에 여러분 요셉이 바로방의 꿈을 해석할 때는 어떻게 했습니까? 바로 왕이 꿈꿈을 말해주니까 그걸 요셉이 해석을 해줬는데 지금은 이 느부갓네살은 마음의 번민이 있는데, 무슨 꿈을 꿨는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그걸 해석해 달라.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그렇게 하면서 이제 항해를 해도 소용이 없는 거예요.
 
 
그리고 오늘 이 꾼 꿈을 해석을 못하면 소위 바벨론에 있는 모든 지혜자, 박수 이래 박수하니까 무슨 우리가 뭐 무당 뭐 이래 생각하는 대부분 그게 아니고 성경은 우리가 좀 제대로 알아야 되는데 오늘도 여기 뜨인 돌 나오거든요. 뜨인 돌이라면 막 날라 다니는 돌인 줄 알아요? 그거 아니에요. 예 그냥 손대지 아니한 돌 그걸 탁 뜨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그다음에 성경의 여러 가지 누가 동방박사라고 하니까 애들은 동방신기인가 이런 얘기도 하고 그다음에 요즘 한자 익숙하지 않으니까 중식 먹으러 오라 그러니까, 학부형들이 데모를 했대요. 왜냐하면, 왜 집에서 학교에서 한식이나 일식은 안 주고 중식만 주느냐고? 알 사람만 알도다... 중식(점심임), 성령 가운데 그런 거 너무 많아요.
 
그러니까 오늘도 여러분들이 예를 들어서 성령의 역사 그랬을 때, 성령의 역사가 더 워드 오브 더 홀리 스피릿인데(The work of the Holy Spirit), 사람들이 더 히스토리 오브 홀리 스피릿(The history of the Holy Spirit)이라고 성령의 역사라고 그게 아니고, 성령의 역사하시는 일을 그런 걸 말하는데, 그런 차원에서 오늘 이 예수님의 이 뜨인 돌, 그다음에 손대지 아니한 보배로운 돌, 산돌, 그리고 또 주춧돌, 이런 것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좀 정확하게 아는 그런 시간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갖고 이제 해석을 해 달라고 그러니까 뭐 못하죠. 그러니까 이제 다 죽게 된 거예요. 그런데 다니엘과 세 친구도 당시에 초급 바벨론 제국의 지혜 자 그룹에 들어간 거예요. 초급 지성인 그 그룹에 들어간 거예요. 그러니까 지성인 그룹에 들어갔으니까 해석을 못할 진대로 도매급으로 넘어가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다니엘이 다 함께 다 죽을 판이에요. 다니엘이 이제 기도를 하면서 그리고 다니엘 세 친구, 자기 친구의 기도 부탁도 하고, 이렇게 해서 간절히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꿈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꾸었던 꿈을 다 설명을 하고, 그다음에 설명에 대한 해석까지 다 해주고 그렇게 했어요. 바벨론 네 느부갓네살 왕이 막가파 왕이 꾼 꿈이 뭐냐 하면, 첫째는 신상에 있는데, 머리는 금으로 돼 있고, 그다음에 두 팔은 은으로 되어 있고, 가슴과 은으로 돼 있고 배와 허벅지는 놋으로 되어 있고, 종아리는 철로 되어 있고, 발은 철과 진흙으로 섞여 있었어요.
 
근데 인제 내용을 해석을 하는데, 우리 대체적으로 복음주의 권에 있는 분들이 다 해석의 의미는,
➀금으로 된 머리 부분의 것은 바벨론 제국,
➁은에 대한 부분 이 가슴과 두 팔이 은인데 이것은 페르시아 제국,
➂놋은 배와 허벅지가 놋인데 이 놋은 헬라 제국을,
➃철은 종아리는 로마 제국,
➄철과 흙은 발은 로마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나라를 가리킨다.
뭐 특별히 뭐 이렇게 무리함이 없는 그런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핵심은 제국이 있는데, 거기에 뭐가 나왔느냐 하면요 34절에,
 
*다니엘 2:34,35,
34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이제 신약의 베드로전서에서 해석하기를 산돌이고, 손대지 아니한 돌이 뭐냐? 뜨인 돌이고, 손대지 아니한 그 돌이 나와 가지고, 신상의 쇠와 진흙을 부스러뜨리매,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35절에
35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
놀라운 말씀을 하고 있는데, 우리 같이 볼까요? -사람이 손대지 아니한 산돌이 나와 가지고 뜨인 돌이 나와 가지고 신상 밑에 부분을 갖다 치니까 금, 은 그다음에 뭐 놋, 쇠, 진흙, 신상 전체가 그대로 무너지는데, 옛날에 블레셋에 다군 신당의 법계가 가 있을 때, 언역계가 가 있을 때는 신당에 있는 우상들이 다 다 뭐 그러니까 부서져 가지고 기울어져 있었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정도가 아니고 그 뜨인 돌이 들어와 치니까, 큰 신상이 뭐 멋있게 바빌론 제국의 하나의 영화와 영광과 능력을 다 표현한 신상인데, 그게 전에 그대로 깨어지는데 진짜 다니엘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표현도 잘했어요. 여름 타작마당에 뭐가 된다고요?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에 거룩하게 됐는데, 겨같이 쓱 가루처럼 싹 다 없어지고, 진멸되고, 대신 우상을 친 돌이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
 
이 내용을 여러 해석이 있지만 인류의 모든 제국 국가의 권력 흥망성쇠(興亡盛衰)는 예수 그리스도로 라는 뜨인 돌을 제대로 경험하게 되면, 인간이 자랑하는 모든 권세와 능력과 시스템은 다 무너지고, 복음의 능력이 편만하게 되느리라. 그거예요.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간 곳에는 대 로마 제국이 백기(白旗)를 든 줄로 믿습니다. 그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주님의 복음이 편만하게 되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걸 이제 우리 전체적으로 보면서 이 뜨인 돌, 손대지 않은 돌, 산돌, 돌이 날아와서 모든 우상을 다 파괴하게 된 이것이 뭐냐? 이것은 바로 하늘의 황태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황태자의 직위를 버리시고, 뜨인 돌, 산돌로 이 땅에 오신 줄로 믿습니다. 이 말이에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앞에 헬라 제국이 항복을 하고, 대 로마 제국이 다시 백기를 들었던 것처럼 좀 더 깊이 들어가면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 앞에 어떤 제국이나 나라도 항복할 수밖에 없다. 여름 타작마당에 겨같이 바람에 날릴 정도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 휘황(輝煌)찬란(燦爛)한 금,은 신상을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완전히 부서뜨리고, 없애버리는 복음의 능력이 사랑의 교회에 속한 오늘 예배로 오신 여러분 개인의 삶에도, 그다음에 대한민국 교회라는 공동체 가운데서도, 세계 복음주의 교회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도 이와 같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손대지 아니한 뜨인 돌, 되시는 예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고 붙잡고 계시는 이 진리에 대해서 우리가 오늘 확실하게 눈을 뜨고, 역사의 알파와 오메가를 주장하시는 주님 앞에 우리의 삶을 온전히 의탁해야만 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중요한 것은 이걸 우리 확인하는 것인데 문제는 뭐냐 하면 미혹하는 영, 사탄의 영, 악한 영은 1초도 쉬지 않고 저와 여러분들을 계속해서 세상적인 사고방식과 가치관과 미혹해 하는 것을 가지고 계속 우리를 오염시킴으로 말미암아, 이 뜨인 돌 되시고 산돌 되시는 예수님께 젖 붙여지고 그분께 접목되고 그분께 내 삶을 의탁하기만 하면, 우리가 산돌처럼, 주춧돌처럼, 가장 소중한 코너스톤처럼 그렇게 쓰임 받게 되는데,, 그걸 못하게 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미혹해 하는 영의 모든 세력부터 정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에요. 4장 1절에 보니까, 무슨 말이냐,
 
*디모데전서 4;1,
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이런 말씀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이 있다고 그랬고, 에베소서 4장에 보니까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과 온갖 교훈의 풍조가 있는 거예요.
 
*에베소서 4:14,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심지어 갈라디아서 1장에 보니까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에요.
*갈라디아서 1:6,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그런 것 때문에 기만적인 철학과 헛된 속임수와 이런 것들에 오염되지 말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오늘날 세상은 돈과 물질주의와 무신론적인 이념과 비기독교적인 사상에 물든 지금 수많은 잘못 판이 기울어진 언론들 매스메디아들, 영화, 광고, 텔레비전, 유튜브를 통하여 1초도 쉬지 않고 세속적인 가치관과 무신론적인 가치관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막 퍼부어 놓고 있는 거예요. 세상에 파괴적이고 유혹적인 사상들 이것들이 우리 성경적인 가치관을 오염시키는 것이고. 여기에 물들어 있는 우리 자녀들을 우리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저들을 어떻게 믿음의 계승을 하게하고, 어떻게 저들을 미혹의 영과 세상적인 가치관으로부터 새롭게, 오늘 다니엘처럼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뜨인 돌이 온 세상을 충만케 하는, 뜨인 돌이 이 세상의 제국 적 가치관과 이 세상의 온갖 가치관을 오염시키는 이것을 해결할 수가 있을 것인가?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저와 여러분들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주님께 전 우리가 우리같이 부족한 초라한 돌이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접목되어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강력하게 쓰임 받는 주춧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보배로운 산돌대신 주님과 함께 그런데 우리는 미혹해 그러니까 이 진리와 거짓이야 날마다 싸우는 거예요.
 
※제가 최근에 읽고 깨달은 은혜 가운데 이런 거 있었어요. 뭐냐 하면, 러시아 정교회의 수장이, 소위 믿는다는 그분이 나중에 공산당 혁명 이후에, 20세기 초반에 볼스비키 혁명이 일어났잖아요. 혁명이 일어난 이후에 우리가 잘못했다고 어르시아놀 소독스 알키비숍이 참회록을 쓰고 고백록을 썼어요. 그의 참회록이 뭐냐 하면, 속았다는 것이에요. 공산주의자들이 처음 할 때는 뭣도 몰랐대요 공산주의로 들어올 때 뭐냐 하면, ‘모두가 다 평등하고 모든 사람에게 균등한 기회가 온다.’ 이러니까 뭘 좀 아는 사람들 지성인들은 모두가 다 참 좋은 거다 모두가 다 평등 얼마나 좋겠냐, 그리고 모두에게 기회를 준다면 얼마나 좋겠냐? 이래 생각해 가지고 큰 처음에 큰 뭔가 심각성이 없이 그냥, 그걸 받아 들였대요. 그런데 보니 그런데 진화를 거리가 완전히 속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모두가 다 어떻게 똑같습니까? 우리의 인격이나 그다음에 인권이나 존엄성은 다 똑같지만 은사와 재능은 다른 거예요. 여러분, 지금 손흥민처럼 공을 찰 수 있습니까? 오른발 연발 다 사용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오타니처럼 160개로 던질 수 있습니까? 여러분, 그는 은사에 여러분 누구도 우리 그림 잘 그리는 부분처럼 그림 그릴 수 있습니까? 여러분 그림 그리면 이게 무슨 그림인지 아세요? 사람은요, 다시 인격이나 존엄성은 신분은 다 똑같지만, 그 사람의 재능은 다른 거예요. 그걸 거짓말을 해가지고 그래서 이제 쓴 글들이 이래요. 문제가 뭐냐 하면 러시아 공산당이 다 똑같다고 그러면서 러시아의 지주들과 똑똑한 지성인들을 다 체결한 거예요. 그래서 땅을 경작해야 되는데, 땅 전체를 경작해서 결실을 맺고 제대로 생산해 갖고 분배할 만한 그런 시스템과 그 경작과 생산을 주도할 지성인 다 없어져 버린 거예요. 땅 전체를 경작에서 결실을 맺게 할 지성과 리더십이 실종돼 버리니까, 원래 우크라이나에서 오신 형제들 다 있지만 우크라이나 같은 데는 곡창지대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거야. 그걸 리더십을 가지고 이끌고 경작하고 시스템을 만들고 재생산하고, 이런 구조가 다 사라져 버리기 시작하니까, 인프라가 아무리 잘 돼 있어도, 인프라를 끌고 갈 만한 지성과 받은 은사가 다른 사람들이 역할을 하지 못하면 나라의 시스템이 붕괴되기 시작하는 것이네요. 지금 북한은 그런 거예요.
 
독일 교회도 히틀러에게 속고, 러시아 정교회는 공산당에 속고, 그래서 오늘 이 시대의 한국 교회 한국 교회 성도들은 제대로 된 분별력을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우리 한국 교회 외에 지금 이 시대에 여러분 소망이 없는 거예요. 소망이,,, 우리가 올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산돌 되신 예수님께 붙여줘서 부족한 인생들이 하나님 나라의 보배로운 돌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원하는 겁니다. 다시 1초도 쉬지 않고, 우리 아이들은 세속적인 가치관과 무신론적 가치관 가운데서 아주 그냥 막 무신론적 가치관의 세례를 받고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런 제약된 가치관들 가운데서 미혹의 영 가운데서 나 혼자서 싸우는 것은 역부족이에요. 세속문화를 거부하고 보배로운 돌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기준을 고수하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의 팀 웍이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내일부터 시작되는 칼 세미나도 이런 가치관을 함께 고수(固守)하고 함께 네트워킹하고 함께 시대를 섬겨갈라면 하는 그런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가 형성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유튜브와 알고리즘 화살처럼 막 우리 생각을 막 뚫고 들으려고 할 때, 우리가 뜨인 돌 산돌 되시는 보배로운 돌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대적을 해야만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이제
 
▷ 산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여져야 한다.
 
-우리가 미혹해 하는 영의 약점을 극복해야 되는데, 그렇다면 산돌 대신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가 접목을 해야 되는데, 산돌 되신 예수님께 접목한다는 어떤 뜻인가? 오늘 베드로전서 2장 4절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예수님을 뭐라고 그랬습니까?
 
*베드로전서 2:4,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보배로운 산돌이다. 6절에서는 또 뭐라고 그랬어요. 내가 보배로운 모퉁이 돌이다. 7절에서는 7절에서는 뭐라도 돼 모퉁이에 뭐가 되고요. 머릿돌이 되고 돌은 차가운 것입니다. 돌은 무생물입니다. 돌은 생명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산 돌이 됩니까? 소위 리빙 스톤(Living Stone)이 되는 겁니까?
 
지난주는 제가 살아있는 기적이 되라고 그랬는데, Key가 뭐냐 하면, 죽어있는 돌이, 산돌 되시는 보배로운 돌 되시는, 뜨인 돌 되시는 주춧돌 되시는, 주춧돌 되시는, 머릿돌 되시는, 예수님과 이렇게 접목되고 젖 붙임 되면 산 돌이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오늘 예배를 통하여 산 돌 되시는 예수님께 우리의 삶을 접목하고, 접붙이고, 정렬을 해야 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차가운 돌도 생명의 돌로 변화될 수가 있는 것이에요. 버린 돌 같은 인생이, 공동체가, 가정도, 여러분 산돌 보배로운 돌의 생명의 역사와 접목된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생명력 없는 무생물이, 죽은 것 같은 자가 보배로운 돌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접촉하면 생명이 들어간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버린 돌이 산돌이 된다는 생명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에요. 자 이걸 대표적으로 성경에서는 여러 예들이 나오지만, 여러분 제가 야 이 버린 돌 같은 인생이, 죽은 것 같은 인생이, 보배로운 돌 되시는 예수님과 접목하고, 난 다음에 진짜 주춧돌 된 사람 누가 있을까? 뭐 많이 있지만 아주 대표적으로 제가요? 막 달라 마리아,,,
 
여러분 마리아는 너무 비참해서 일곱 귀신이 들고 한마디로 인생 자체가 엉망진창 버린 돌이였어요. 그런데 그가 산돌 대시는 보배로운 돌 대시는 머릿돌 대시는 예수님과 접목하고, 젖 붙임 되고 난 다음에 첫 번째 부활의 증인이 된 줄로 믿습니다. 첫 번째 부활의 증인을 제자들도 안 시켰어요. 당시에는 여성들은 증인의 자격이 없어 여성들은 증인을 해도 믿어주지도 않아,.,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막달라 마리아 여성을 통하여 버린바 된 인생과 같은 막달라 마리아를 통하여 고 아래 첫 승인을 삼아 주신 것이에요. 아주 대표적으로 버린 돈이 산돌이 된 것이에요. 더 보배로운 산돌의 축복을 받은 줄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를 통하여 세상 적으로 버린 돌이, 하나님 나라의 주춧돌이 되는 것과 세상에서 외면된 사람들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가 전파되는 것을 그냥 아주 우리에게 강력하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구약에는 잘 아시는 다윗이 있습니다. 다윗이 그가 기름 부음을 받을 때까지, 형들부터 멸시를 받고 아버지도 여기에 왕 될 사람 하나 자녀들 사무엘이 기름 부분만 한다고 그럴 때 가져오라 그래 오라 그랬을 때 아예 다윗은 열외였어요. 나타날 수 없는 그런 존재감이 없는 다윗이었어요. 그는 기름 부은 발 받을 때까지 버린 돌이었고, 또 사울 왕으로부터 배척과 미움을 받아 가지고 동굴과 바위에 몸을 웅크리며 떠도는 삶을 살아야 했어요.
 
그런데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시편에서 다윗이 고백하기를,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도다. 자기의 고백 자기의 삶에 고백이에요. 그리고 가장 강력한 선거가 뭐냐 물매돌이였어요. 다윗이 가진 물 몇 돌은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물맷돌, 그것이 감히 다윗이 항거할 수 없는 골리앗이 이라는 환경과 창과 칼을 들고 나오는데 다윗이 물맷돌 초라한 물맷돌을 가지고,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과 덧붙여지니까, 골리앗을 승리하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늘 본문을 썼던 베드로가 버린 돌이었어요. 베드로가 오늘 5절에 보니까,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너희도 산 돌 같다고 너희가 리빙스톤이 된다고 그랬는데, 자기 얘기예요. 베드로는 본래 버려진 돌이었어요. 쓸모없는 돌이었어요. 쓸모없는 돌, 예수님 베드로에게 너 이름을 시몬에서 베드로라라 베드로라의 이름이 뭐예요? 헬라어로, ‘페트라’ 반석이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베드로라는 전혀 반석 같지가 않았어요.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제자로서 십자가 진다고 그랬을 때 눈썹을 날리며 ‘주님 십자가 못 집니다. 주님 십자가 지면 절대로 안 됩니다.’ 예수님의 영원한 놀라운 구원사역을 방해한 사람이었어요. 성격 급해서 말고의 귀를 베 버리고 있잖아요. 심지어 예수님을 세 번이나 저주하고, 못되게 굴고, 여러분 진짜 버린 돌도 그런 버린 돌이 없는 거예요. 실패자였어요. 근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를 회복시키시고, 완전히 무생물 같은 차가웠던 베드로의 역사를 산돌이신 보배로우신 돌인 예수님과 덧붙여지게 되니까. 결국 그의 이름에 걸맞게 초대교의 페트라, 초대교의 반석이 되게 되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 오늘 저와 여러분 여러분들은 오늘 아까 회중 찬송 불렀잖아요.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밖에 없도다!” 주 나의 반석이시니 뭐예요? 위에 내가 서리라. 버려진 돌 같고, 내 상황 자체가 힘들고 어렵고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가 주님께 접붙임이 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살아있는 돌 반석 같은 역할을 막달라 마리아처럼, 다윗처럼, 베드로처럼 새롭게 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내가 초라하다 답답하다 내가 버린 돌이 되었다고 생각한 분이 계시다면, 그렇다면 오늘 마리아, 다윗, 베드로를 생각하시고 뜨인 돌이 되시고, 온 세상이 가득하게 되신 주춧돌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젖 붙임 받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이 시대 앞에 쓰임 받는 영의 눈이 샛별처럼 열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이 마음의 은혜가 있기를 바라고 오늘 우리가 내일부터 시작되는 칼 세미나, 제자훈련 세미나도 적은 자가 천을 이루고, 아무것도 아닌 적은 자가 살아계신 주님께 접목될 때, 산돌 되시고 보배로운 돌 되시는 주님 접목될 때에,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실 줄 믿는 것입니다. 산돌에 대해서 주출될 때 대시는 코너스톤 되시는 주님에 대한 눈을 뜨게 되면 적은 자가 천으로 약한 자가 뭐예요? 강국을 이룬다 이거에요. 우리가 늘 하는 얘기지만 이 세상의 오염된 눈을 갖고 있어요.
 
적은 자는 적은 자고, 약한 자는 약한 자라고, 그리고 정의는 강자 이익이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래서 이 사람으로 무장되고, 온전한 제자로 이렇게 성숙하고, 자라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하나님의 시각을 갖고 우리가 바라보게 될 때에, 하나님의 나라는 적은 자를 통하여 위대해지고, 하나님의 나라는 약한 자를 통하여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버린 돌이 산돌 되신은 보배로운 돌 되신 예수님과 접목될 때의 시대의 주춧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걸 깊이 생각하면 마지막 적용하는데 이걸 깊이 생각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여러분들이 어떤 환경에 처해져 있다. 할지라도 환경 어려운 상황 자체가 승부처가 될 수가 있습니다. 평탄한 환경은 승부처가 될 수 없습니다. 평탄한 환경은 내가 버린 돌이 보배로우신 산돌 되신 주님께 접 고침 받고, 접목되는 거에 대해서 강렬한 소원과 열망이 강도가 강하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진짜 어려워지고 베드로처럼 나가떨어지고 세 번 부인하고, 완전히 뭐 대성통곡을 할 만한 주님께 대한 얼굴이 뜨뜻하고 죄송한 그런 환경과 상황이 되었을 때, 산돌이신 보배로우신 돌이신 예수님께 눈을 뜨고, 차가운 내 인생이 그분께 살아있는 은혜에서 온기를 느끼기 시작할 때, 여러분 자리와 환경이 승부구처가 되어 간다는 것이에요. 그러면 내가 속한 이 상황 이 자리 승부처가 되려고 할 때, 오늘 다니엘이 목숨이 경각관이 달린 상황이 느부갓네 살의 꿈을 해석하는 기적 같은 그런 상황으로 만드는 승부처가 되었듯이, 에스겔 선지자가 그 발 강가에서 포로로 잡혀 가지고 희망이 없다. 다 사라졌다. 이제 끝이다. 라고 하는 상황 속에서 그 상황 속에서 버린 돌 같은 상황이 생명력 있는 산돌 대신 예수님께 젖붙임 받을 때 그발 강가가 하늘 문이 열리는 승부처가 된 것이에요. 수세기 동안 한울 문이 닫혀 있었는데, 하늘 문이 열리고 에스겔에게 하나님이 한일 문을 열리는 놀라운 생명과 비전을 보여 주신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저는 내가 속한 이 자리가 차가운 어린 돌 같은 인생이, 보배로운 산돌이신 주님께 접목되면 나는 베드로처럼, 나는 바울처럼, 나는 다윗처럼, 나는 막달라 마리아처럼 될 수가 있다고 마음에 하는 순간, 여러분 영적인 비대칭 전략의 승리자가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비대칭 전략의 최고 핵심은 뭐냐면 골리앗이 강한 환경을 가지고, 칼과 창으로 나타났을 때 똑같이 갑옷 입고, 똑같이 칼과 창으로 대석을 해야 되는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비대칭으로 칼 대신에, 창 대신에, 갑옷 대신에, 그의 주머니에 있는 뭐에 물 몇 돌을 들고 나간 것이에요. 이거는 어마어마한 비대칭이에요. 남들이 볼 때는 연약한 거, 물맷돌이 아무것도 아니죠.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과 결부될 때에 골리앗을 무너뜨릴 수가 있는 것이에요 비대칭 전략의 가장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뭡니까? 기드온에 미디안이 쳐들어왔을 때 300명 데리고 간 비대칭 전략이고, 무엇보다도 하만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죽여 버릴 계획을 다 세웠을 때, 똑같은 전략을 짜고 똑같은 뭘 해야 되는데 모르드개와 함께 에스더가 그냥 금식이에요. 금식,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수많은 어려운 일들을 겪을 수 있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여러분 많은 사람들을 신앙의 선배들은 그때 금식했습니다.
 
여러분 금식이 최고의 비대칭 전략이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금식할 때에,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내 손에 있는 물맷돌이 무엇인지를 알면서 물맷돌을 가지고 던질 수 있는 힘이 나오는 것이에요. 육신의 힘은 작아지지만, 비대칭 전략의 천형적인 대표가 뭡니까? 아브라함 링컨이 아닙니까 남북군이 싸울 때에 남쪽 리히가 군대의 능력과 그다음에 전략이 남군이 탁월했어요. 북군이 게임이 안 되는 거예요. 맨날 패티 하는데 가만히 생각하다가 전쟁을 같이 하기보다는 차라리 내가 기도초로 들어가 있다고 링컨 대통령이 기도처로 들어갔다가 기도처에서 나와 가지고, 비대칭 전략의 극치가 뭐예요? 노예 선언을 해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남군과 북군의 전략적인 전쟁의 상황이 정의와 불의와의 싸움으로 바뀌게 된 것이에요.
 
여러분 오늘 수많은 일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내일부터 칼 세미나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 상황 자체 한국 이 모든 우리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자체가 정말 어려운 상황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이란이 싸웁니다. 내가 볼 때는 페르시아하고 이스라엘이 다시 싸우는 거예요. 지금 전 세계 수많은 북한 문제인 너무 답답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시대에 비대칭 전략을 가져야 되겠어요. 한국 교회는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7천기도 용사를 통하여 칼 세미나를 통하여, 이 예배를 통하여, 이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의 손에 있는 은사가 무엇인지, 여러분의 손에 있는 적은 물맷돌이 무엇인지, 그 물맷돌을 주님의 보배로운 돌에 접목하고, 물맷돌이 적은 기도가 될 수 있고, 말씀의 물맷돌이 될 수가 있고, 은사에 주신 은사의 물맷돌이 될 수 있고, 이걸 가지고 태산 같은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도록 은혜 위에 은혜를 덧입혀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마음을 가지고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삶에 모든 환경들 가운데서도 비대칭 전략으로 물맷돌을 가지고, 산돌 되시는 주님 앞에 젖 붙여져서, 생명의 역사 시들을 섬기는 역사 한 분 한 분에 허락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약
우리는 주님의 비대칭 전략으로 세상의 금 은 신상을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사라지게 하시는 능력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를 미혹해 하는 모든 영으로부터 자유케 하여 주심을 확신하여 성경적 가치관으로 무장한 손대지 아니한 산돌, 그 그리스도를 모시며 우리의 다음 세대 자녀들까지도 능력을 받아서, 이 시대를 하나님 나라의 역사로 바꾸는 축복을 받아야 한다. 1초도 쉬지 않고 퍼붓는 세속적인 가치관과 비 진리와 거짓을 깨끗이 제거하고, 오늘 산돌 되시는 보배로우신 돌 되시는 주님과 접목됨으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거룩한 종들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지금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자들은 오늘의 말씀을 그대로 믿음의 확신을 가질 때에 어려운 상황과 수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내게 주신 물맷돌을 가지고 골리앗을 쳤던 것처럼 그런 비대칭 전략의 승자가 되어야 한다. 생명없는 죽은 돌 같은 인생이 예수님을 만날 때, 보배로운 모퉁이 돌 인생이 되고, 반석 같은 주춧돌 같은 민족이 되고, 시대 앞에 별처럼 빛나게 될 것이기에 우리는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122기 제자훈련 지도자 세미나를 섬겨서 온전한 훈련의 본질이 한국교회와 세계교회 부흥에 강력한 물맷돌로 쓰임 받아야 한다.
 

- 예수 그리스와 예수님 시리즈- 10번째.

-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놀라운 것을 보기를 바라는 소망
- 예수 그리스와 예수님 시리즈의 중요성

-꿈 해석을 위한 제국의 지혜자 그룹
- 꿈 해석을 위한 제국의 지혜자 그룹 모임
- 제국의 지혜자들은 꿈을 해석하는 지혜자 그룹
- 다니엘과 세 친구도 초급 바벨론 제국의 지혜자 그룹에 포함

☆다니엘의 기도와 해석
- 지성인 그룹에 들어간 다니엘의 기도와 해석
- 바벨론 네 느부갓네 살 왕의 꿈 해석
- 뜨인 돌과 우상이 깨어지는 이야기

☆뜨인 돌과 산돌: 복음의 능력과 세계 정복
- 뜨인 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대표함
- 예수의 복음은 권력과 시스템을 무너뜨림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함

☆돈과 물질주의에 오염된 세속적인 가치관의 문제
- 기만적인 철학, 헛된 속임수, 오염된 가치관
- 무신론적인 사상의 영향, 세속적인 가치관 오염
- 성경적인 가치관 보호와 새로운 가치관의 중요성

☆한반도의 가치관 변화와 교회 역할
- 세상이 거짓말을 해가며 문제 발생시킴
- 땅 경작과 생산을 주도할 리더 부족
- 미국의 무신론적 가치관에 대한 대처

☆예수님과 우리의 삶을 접목하여 산돌이 되는 이야기
- 산돌이 되는 이유와 예수님과의 접목
- 산돌이 되면 생명의 역사와 접목
- 마리아와 부활의 증인이 되는 이야기

- 다윗과 베드로의 버림받은 돌의 역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적은 자와 강한 자
- 주님의 접목으로 새로운 역할을 하게 됨
- 환경 어려움에 강렬한 열망 필요

☆비대칭 전략의 승리자가 되는 것
- 어려운 상황에서 산돌 주님에게 접목될 때
- 골리앗을 무너뜨리는 비대칭 전략
- 금식을 통한 기도, 지혜와 힘의 비대칭 전략

☆북군과 남군의 전략적인 전쟁
- 비대칭 전략의 극치: 노예 선언
- 한국 교회의 어려움과 기도

-목자의 심정으로 제자훈련 지도자 칼 세미나
-한국교회와 세계교회 부흥을 위한 가장 중요한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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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4년 04월 20일)
제목: "용광로 속에서 +1"
말씀: 골로새서 2:1-5
찬양인도: 권사회 팀
대표기도: 한준희 권사님(1권사회 회장)
말씀읽기: 임주현 자매(청년1국), 김민준 형제(대학6부)
 
설교자: 이원준 목사님(렝케스터 바이블 칼리지 교수님)
ㅡㅡㅡㅡㅡ
 
*골로새서 2:1-5,
1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2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4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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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준 목사님(렝케스터 바이블 칼리지 교수님)
 
-우리 주 예스 수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비천하고 비참한 처지에 있던 죄인들을 건져내 주셔서 하늘과 땅에 주인 되신 분의 자녀로 총애(寵愛)와 호의(好意)를 입게 살아가게 하시는 우리 성삼위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讚揚)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소유한 자는 모든 것을 가진 자인 줄 믿습니다. 하늘 문을 여시고 부으시는 신령한 복들과 기름 부으심이 사랑하는 사랑의 교회 영(靈)가족 모두에게 지금 이 시간 강력하게 임하기를 간절(懇切)히 소망합니다.
 
저는 이번 멧 레드멘 집회와 여러 가지 동역을 위해서 그리고 사랑글로벌 아카데미, 예배 아카데미에 예배학 교수님으로 전 세계적인 영향을 끼치고 계신 콘스텐트 최위 교수님의 강의와 함께 동역을 위해서 에 한국은 방문하게 되었는데요. 이 시간들이 참 기대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 이렇게 토비새(토요비전새벽기도회)에서 여러분과 함께 예배하고 또 주일 예배를 주님 앞에 올려드리는 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귀한 강단 초대해 주신 사랑하는 오정의 목사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참 잊을 만 했는데 또 나타난 저를 따뜻하고 사랑으로 받아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참 소중하고 또 저에게도 여러분의 기도를 향한 열정 토비새에서 우리가 함께 기도의 지팡이를 드는 모든 마음의 결단들, 함께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이 모든 마음의 움직임들이 얼마나 도전이 되고 또 전 세계적으로 참 모범이 되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오늘 우리의 만남 또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이 시간을 향한 애틋하고 소중한 마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 마음 한편으로는 동시에 안타깝고 절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학생들은 학교에서, 우리 대학생들은 캠퍼스에서, 청년들은 일터에서, 장년들은 사회와 가정 그리고 나아가서는 문화와 미디어 속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신앙의 모습들을 조롱(嘲弄)하고 조소(嘲笑)하고 이상하게 여겨낸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누리는 이 은혜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것이 매우 무모(無謀)하고 맹목적(盲目的)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祈禱)하는 이 모든 시간들이 과연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차지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자신들만의 평가를 내립니다. 신앙이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하지, 전부가 되어서 안 된다. 라는 주장을 합니다.
 
종교는 어떤 면에서 인간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그 종교가 삶의 전부(全部)이거나 종교가 삶의 모든 부분들을 이끌어 가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평가(評價)합니다. 이런 사회에 또 이런 세상의 평가 앞에 우리는 이 평가에 대한 우리의 소신(所信), 우리의 신념(信念) 그리고 기도지팡이를 다시 들 수 있는 믿음의 결단이 없다면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 스스로만의 자리로 후퇴(後退)하든지 아니면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수용해서 마치 우리의 신앙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되고 일부가 돼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종교 생활이라고 하는 것을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라고 하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사도바울의 이 골로새서를 향한 편지 안에서 이 문제에 대한 돌파(突破)를 찾을 수 있는 메시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우리가 함께 붙잡게 될 때에 우리의 토비새의 기도 제목, 우리의 인생의 가도 제목, 그리고 이 땅 가운데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에 대한 새로운 동력(動力)이 생겨나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 골로새서를 향한 사도바울의 편지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聖靈)의 음성(音聲)을 함께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골로새서 2장 1절의 말씀을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골로새서 2:1,
1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사도바울은 너희와 골로새 교회에 있는 자들이죠.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 라오디게아는 이 당시에 번영(繁榮)과 무역(貿易)과 학문(學文)과 여러 가지 풍성(豊盛)한 문화의 결실로 유명한 대도시였습니다. 그리고 무려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 그러니까 이 도시 밖에 있지만 복음을 받은 자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즉 여러분과 저와 같은 사람들을 향한 메시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절 말씀 우리 계속해서 읽도록 하겠습니다.
 
*골로새서 2:2,
2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자, 사두바울이 이 절부터 3절 그리고 4절에 이르기까지 원하고 원한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방금 우리가 본 것처럼 우리가 이해와 지식, 지혜와 아는 것에 모든 풍성함 속에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되는 것이고요. 3절 말씀 제가 얘기했습니다.
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그 안에는 지혜와 자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기 원하고요. 4절 말씀 보겠습니다.
4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의 마음 속에는요. 여러분과 저와 같은 라오디게아 있는 사람들 그리고 사도바울을 직접 만나지 못했지만, 복음의 소식을 듣고 주니 앞에 나온 모든 사람들이 결국은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寶貨)이신
➀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비밀인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라고 하는 하나와
➁교묘한 말로 속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묘한 말로 속지 않고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는 이것, 이것이 우리의 삶의 기도 제목이고, 우리 토비새의 용광로(鎔鑛爐)와 같은 기도의 원동력(原動力)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 사도바울이 이야기한 교묘한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고린도에 편지한 사도바울의 글들 또 이외에 다른 서신들을 통해서 이 당시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이 교묘한 말들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는데요. 헬라인들에게는 이 교묘(巧妙)한 말로 사람들을 십자가보다 철학이 더 고등(高等)하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律法)이 십자가보다 더 고등하다..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헬라인-철학,
-유대인-율법.
십자가보다 더 높은 것이 헬라인들은 철학이라고 여겼고 유대인들은 율법이라고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이 세상이 십자가보다 더 고등하고, 십자가보다 더 높은 위치를 가지고 있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이것이 인간의 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이성이 십자가보다 높아서 종교를 평가하는 최고 권위(權威)는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나의 판단 인간의 이성이라고 하는 이 주장이 이 견해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와 문화와 심지어 가정과 관계와 캠퍼스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 뜰의 뿌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의 이성이 십자가보다 높다. 라고 하는 이 견해는 틀렸습니다. 인간의 이성이 어떤 것도 대체할 수 없는 인간과 이 세상의 평가 기준이 최고의 권위가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이것이 왜 그러한지 여러분과 함께 잠깐 나누고자 하는데요. 여러분 저와 함께 사도 바울이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예수님이라고 하는 것을 좀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종교적인 지식의 최고 권위가 아니구요. 지혜와 지식까지도 최고 권위가 되신다는 겁니다. 자 이것을 왜 이렇게 주장하는가를 생각할 때, 우리는 이성의 영역이라고 얘기해 주는 과학과 수학을 좀 잠깐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저와 함께 생각해보시면 좋겠어요. 제가 여러분께 질문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과학과 수학이 발명일까요? 발견일까요? 발견입니다. 네, 역시 수준이 있으십니다. 인간이 발명한 것이 아니고 발견해 내는 것입니다. 진공 상태에서 빛이 29억 7297만 4458미터를 1초에 움직인다. 라고 하는 사실은 누가 만들어낸 사실이 아니구요. 찾아낸 사실입니다. 수소 둘, 산소 하나, H2O가 합쳐지면 물이 된다는 사실은 여러분이만 들지도 않았고 제가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과학자들이 발명한 것이 아니고 발견한 것입니다.
 
※에이 삼각형이 있을 때 하나만 더 얘기 할게요 삼각형이 있는데, 직각삼각형의 한 면 곱하기 한 면 제곱은 다른 면의 제곱과 동일하다 A 스퀘어 비 스퀘어는 씨 스퀘어다라고 피타고라스의 정의가 있지요.(예: 직각 삼각형에서 직각을 낀 두 변의 길이를 각각 a, b라 하고, 빗변의 길이를 c라 하면 a2+b2=c2이 성립한다).
-새벽부터 머리가 갑자기 어질어질 하실 수도 있겠는데, 자 이 피타고라스의 정의는 발명한 것이 아니고 발견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지금 제가 말씀드린 이 모든 것은 논리적인 법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질서(秩序)라고 하는 것이에요. 근데 이 질서가 인간의 발명의 결과가 아니었고 잘 들어보세요. 인간의 존재 유무와 상관없이 보편적(普遍的)으로, 우주적(宇宙的)으로 이미 존재하는 것이라면 이것이 어디에서 만나는 겁니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는 유일한 설명은 인간의 초월한 지적 존재가 있다. 라고 하는 거예요. 인간 이상의 지적 움직임이 모든 논리를 가능케 하고 이것이 지적(知的)의 산물(産物)이라고 한다면, 우연의 결과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화(進化)의 결과일 수 없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여러분 이 새벽에 한국말을 듣고 있는 것 같은데, 과연 이것이 무슨 얘기인가 헷갈리실 수 있는 분들이 계실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마는 제가 여러분에게 결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라고 하는 온 우주를 만드시고 질서를 허락하신 그분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인간의 어떤 논리(論理)나 자연(自然) 법칙(法則)은 설명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설명되기까지는 인간을 초 란 그분이 계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안 믿겠다. 라고 하는 것은 더 이상 이성이 아니구요. 신앙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안 믿겠다고 믿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존재는 있을 리가 없다고 믿어버리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여러분과 제가 가지고 있는 이 신앙은 무모하거나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고 사실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을 던질 수 있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이기 때문에 믿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그냥 근거 없이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근거가 분명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인(否認)하는 어떠한 노력도 인류의 역사 가운데 성공적인 적이 없습니다. 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기까지는 엄청난 크기에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이 세상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전제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을 기본 값이고 이성적이라고 주장하는 생각이 얼마나 믿음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비이성적인지를 우리가 깨닫게 될 때에, 우리의 모든 기도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어깨를 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분명한 근거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여러분의 일터에서 고개를 드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아름답고 온전하며 옳고 사실에 근거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부 여러분, 어떠한 핍박(逼迫) 가운데에서도 우리는 선함과 온유(溫柔)함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전제되지 않는 세상은 그 어떠한 힘도 어떠한 바탕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그래도 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종교(宗敎)의 영역(領域)이 아닙니까? 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교묘한 말로 우리가 종교 생활로 제한되는 것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아무리 그렇게 사실에 근거하여도 결국은 종교일 뿐이라고 하는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이 교묘(巧妙)한 말이 과연 주장대로 사실에 의거한 것인지를 우리가 성경을 통해 다시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종교가 만들어내는 신(神)은 결국은 두 종류밖에 없습니다. ➀종교는 결국 내가 하는 만큼 나에게 상을 주거나 벌을 주는 그 신을 만들어 내거나 아니면 ➁내가 하는 모든 것을 무한대로 받아주고 수용하는 그런 자비의 신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신앙은 그냥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만 들어낸 신은 내가 하는 대로 상을 주기 때문에 공의로울지는 모르지만 나에게 자비를 베풀지는 않습니다. 나에게 언제나 자비를 베풀 수 있는 종교의 대상은 자비로울지 모르지만 공의롭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살 폭탄을 어깨에 지고 테러를 일으키는 이유가 내가 하는 만큼 상을 주고 그렇지 않을 때는 나에게 벌을 주는 하나님의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미국에서도 교회, 목회자, 성직, 또 결혼이라고 하는 이 고귀한 가치들을 동성(同姓)애(愛)와 전 부쳐서 모든 라이프 스타일을 수용하는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라고 하는 사람들이만 들어낸 종교의 신, 역시 공의(公義) 없는 자비(慈悲)의 신(神) 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신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공의만 있고 자비가 없는 신은 우리의 두려움의 대상이 될지 모르지만 사랑의 대상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이 대상이 언제나 우리를 두렵게 만들 뿐입니다. 우리 자신 역시 완벽(完璧)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신적 존재 앞에 늘 공포에 휩싸여 입니다. 반대로 이 자비만 있고 공의만 없는 이 신의 존재는 경배(敬拜)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나도 받아주는 만큼 사람도 받아주고 우리의 어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정도의 신은 나에게 잠시 동안의 위안이 될 진 모르지만 경배의 대상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종교가 도저히 할 수 없는 큰 놀라운 하나님의 계시(啓示)가 바로 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펼쳐지기 시작하는데요. 왜냐하면, 이 하나님의 비밀이 나타나는 하나님의 모습은 그저 자비 없는 공의의 하나님도 아니고 공이 없는 자비의 하나님도 아닙니다. 공의로우면서 자비로우신 완벽하게 공해로우시기 때문에 모든 죄를 완벽하게 처벌하시지만 처벌이 죄인들이 아닌 그의 백성에게 떨어진 것이 아닌 그의 아들에게 옮겨지는 자비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비밀(祕密)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종교가 가지고 있는 이 근원적인 문제가 단순히 이 신의 모습을 뒤틀린 채로, 거짓된 채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채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종교의 결과는 결국은 내 자신을 바꾸어 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하나님의 비밀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그리고 이 종교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어거스틴의 심국론 또 더 쓰리 오브 갓(The Three of God-하나님의 도성) ‘하나님의 도성’이란 책에서 매우 큰 통찰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도성 그리고 인간의 도성은 평행선을 이루면서 이 땅에 존재하는데,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하고 있는 하나님의 도성은 참 예배요. 하나님을 대적하고 이 세상의 방법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인간의 도성은 결국은 종교라는 것입니다.
 
돈을 숭배하고, 권력을 숭배하고, 쾌락을 숭배하고, 내 삶의 안락과 안전을 숭배하고, 나아가 모든 것 중심 속에 지독한 자기 사랑의 발견이 끊임없는 자기 사랑의 발현이 결국은 이 인간의 도성, 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교로 뒤덮인 이 세상, 그리고 이렇게 종교로 기독교를 제안해 내려고 하는 이 모든 움직임의 결과는 자명합니다. 계속되는 자기 사랑으로 인하여서 하나님을 경멸(輕蔑)하게 되고 언젠가는 그토록 자신의 경멸하는 하나님과 완벽하게 분리되는 그런 날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역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 세상에 교묘한 말로 인해서, 우리 신앙이 마치 부분 정도면 괜찮은 것처럼. 마치 이것은 종교생활로 제안해야 하는 것처럼. 심각한 그 모든 것들을 저항하는 가운데 스스로 분리되어서 나도 모르는 지독한 자기 사랑에 빠져있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우리에게는 이 자기 사랑으로부터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거나 건져낼 수 있는 힘이나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이 구원자가 어떻게 우리를 이 자기 사랑과 종교성에서 건져내시는지 보여주시는데요. 우리와 함께 골로새서 1장 26절과 27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골로새서 1:26-27,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할렐루야! 사랑한 여러분, 이 세상이 생각할 수 있는 신의 모습은 자비 없는 공의, 없는 자비이지만 공의와 자비가 십자가에서 만나는 그분만이 하나님의 비밀인 것입니다. 이 세상이 알 수 없고 상상할 수 없고 고안할 수 없는 비밀이 말씀을 통하여 드러나기 시작하는데요. 우리가 이 비밀이라고 읽은 이 단어가 영어 성경에서는 시크릿 이라고 변역 번역되지 않습니다. 미쓰트리(Mistry)라고 번역이 돼요. 왜 그러냐면 감추어진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숨겨놓은 것이 아니고요. 경이로움 때문에 이것이 놀랍 다. 고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담임 목사님께서 자주 사용하시는 표현 중에 신비라고 하는 단어가 너무 이 대목에 맞는 단어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신(信)비(秘)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秘密)이 이것입니다.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신은 너무나도 절대적이지만 인격적이지 않아서 인간의 삶에 제 이 인간의 삶에 관여하지 않는 존재이거나 제우스처럼 너무나도 인격적이지만 절대적이지 않아서 어떠한 힘도 어떠한 영향력도 없는 그런 신 일지 언데, 성경에서 나타내고 있는 하나님의 비밀은 너무나도 절대적이시면서 너무나도 인격적인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높으신 거룩함 가운데에서도 너무나도 가까운 인물 임마누엘의 대 하나님이 하나님의 신비라고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인간이 치러야 되는 대가를 인간 되신 분이 치르셨는데 인간이 그저 인간이 아니고, 참 신이기도 하셔서 인간이 도저히 고안(考案)해 낼 수 없는 방법으로 완벽한 공의(公義)와 자비(慈悲)를 이뤄내시는 분이 계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신을 죽이려 했습니다. 니체도 말했고 마르크스도 말했습니다. 종교성을 가지고 제안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신을 이렇게 박스 안에 가둬두고자 합니다. 사탄도 마치 마찬가지였습니다. 참신과 참 인간된 그분을 십자가에 죽였지만 하나님의 신들은 이것이니, 죽음이 그를 죽음 안에 가둘 수 없었습니다. 그분이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자기 사랑이 아닌 크라이스트 인 유(Crist In You!)-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놀라운 은혜를 우리 가운데 주시는 분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인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이 자기 사랑밖에 모르던 종교인들을 그가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그가 우리를 건져내 주셔서 이제 자기 사랑을 벗어던지고, 그가 우리 안에 계십니다. 크라이스트 인 유(Crist In You!), The Mistry of God! is Crist In You.의 하나님의 비밀은 너희 안에 있는, 너희 안에 있는, 너희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 이니라. 할렐루야!!! 사랑은 여러분 이 하나님의 비밀은 종교가 아니 모든 과학을, 모든 지식과 지혜를 가능케 하는 진리인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기독교는 단순히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깨닫게 되는 계시(啓示)인 줄 믿습니다.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계시인 줄 믿습니다.
 
죽은 자를 살려내고 죄인들을 의인 만들고 고아(孤兒)들을 자녀 삼고 자기 사랑의 굴레로부터 완전히 자유하게 되어서 하나님을 영원토록 기쁨으로 사랑하며 사랑받을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인 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의 지팡이를 드는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리 가운데서 이제 자유 함으로 함께 모이고 함께 기도할 수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 가슴에 담으면서 세 가지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 우리 하나님이 모든 지식과 지혜의 전제가 되시며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둘러보았을 때에 이 세상을 더듬어 보았을 때 가장 이성적인 결론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 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될 때에 우리는 우리의 모든 교만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암송 구절이 있습니다. 고린도의서 10장 5절입니다. 잠시 뒤에 하시겠지만,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가 우리의 적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조금이라도 높아진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을 제한하거나 하나님을 그저 내 삶의 전부가 아닌 일부 하나님이 여기까지만 다스리시고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 라고 하는 마음의 모든 높아짐 있었다면 지금 이 시간 다 회개(悔改)하고 엎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아침 그리고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서 팔짱 끼고 내가 말씀을 평가하겠다고 하는 마음의 결단이 있었던 분들은 이제 팔을 주님 앞에 들어서 말씀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이 우리를 평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리는 자유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인데, 크라이스트 인 유(Crist In You!), 내가 아니라서 내가 아니라서 그리스도 예수라서 너무나도 담대할 수 있지만 이게 내가 아니라서 그리스도라서 너무나도 겸손할 수 있는 놀라운 자유 포함과 은혜가 우리 모두의 그리고 토비새에 신앙 고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이 말씀을 적용합니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할렐루야 사랑한 여러분,
오늘 저녁 5시에 우리는 이 말씀을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사랑글로벌 아카데미는 이 말씀에 순종하는 예배의 일꾼을 세우고 섬기는 일에 매진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토요일 날 오전 10시 내일 저녁 7시에는 멧 레드맨과 제가 함께 아 강의가 있고요. 월요일 날까지 예배학으로 전 세계적 영향을 끼치고 계시는 콘센스 체외 교수님의 특강이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이 예배하고 신령한 노래를 함께 부르는 이 기쁨을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 이 교묘한 말로 인해서 우리의 가정에서, 우리의 캠퍼스에서, 일터에서, 사회에서, 우리 학교에서 학원에서, 마음이 무너지고 위축되었던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 이 시간 온 우주의 진리 되시고 모든 물리상수 자연법칙 수학의 공식 하나하나까지도 그 힘을 기동케 하시는 그분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모든 그 속박에서 벗어나서 이 자유 함을 누리며 주님 붙잡고 승리하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내 안에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비밀이었던 것처럼, 나의 승리, 나의 신앙 고백, 그리고 나의 담대함의 비밀은 예수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이 이 세상의 모든 교묘한 말은 떨쳐내게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분명한 약속 위해서 근거 앞에서 너무나도 확실한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함께 기도의 지팡이를 들게 될 줄 믿습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요약
지혜와 지식의 보화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 놀라운 진리를 드러내 주시기에 이제 우리는 주님을 알고 깨달아, 이 모든 놀라운 신비를 감사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에 높아진 모든 것을 그리고 이 세상에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들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 지금 이 시간 우리의 모든 생각과 결단을 다 사로잡아 그리스도 예수께 복종해야 한다. 오직 주님 말씀이 가장 으뜸이며, 주님이 전부가 되신다. 우리 주님이 최고의 권위가 되심을 알고 우리는 그 주님 앞에 항복하여야 한다. 자유 함 가운데 우리를 부인하는 자유 함 가운데, 놀라운 기쁨과 회복을 누리는 자가 되고, 우리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시와 찬미로 주님을 경배하는 그 예배의 움직임이 끊임없는 우리 사랑의 교회가 되고, 이 세상의 어떠한 공격 가운데에서도 그들의 온유함과 사랑으로 그들의 교묘한 말을 벗겨낼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의 보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자가 되어, 용광로 속에서도 플러스 원이 되는 복된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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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04월 17일)
제목: "일어나 걸어라"
말씀: 사도행전 3:1-10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설교자: 고영민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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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 3:1-10,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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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을 보면 나면서부터 걷게 된 이가 등장을 합니다. 지금 우리의 시대라 할지라도 장애인이 장애인(障礙人)에 대한 생각과 예우를 사회적 측면에서 배려한다고 해도 장애인들이 살아가기에 쉽지 않은 세상임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 당시 유대 사회라면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특히 아예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사람이라고 하면, 더욱 어려운 삶을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2절에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사람의 일상이 등장을 합니다.

 
* 사도행전 3:2,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이 사람을 사람들이 메고 성전 문 앞에 놓아주는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그 성전 문 앞에 앉아서 제사를 드리러 오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것이 일상이었을 거예요.
 
사람들에게 아침에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성전 문 앞에 앉아서 구걸하다가 해질 때쯤에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는 일, 말입니다. 특별하게 무엇을 할 수 없었던 그에게는 이러한 삶이 매일매일 반복했을 것으로 우리가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라도 해야 먹고 살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한 평생을 살았을 그를 보고자 하면 마음 한 켠에 무겁고 먹먹한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만약에 우리 아이가 이렇게 한평생 살아가야 한다. 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의 삶은 너무나도 수동적입니다 구걸조차도 사람들에게 매어 나와야만 할 수 있는 사람 아닙니까?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만들어 가기는커녕 구걸로 인하여서 다른 사람들에게 받은 돈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살아가는 그의 삶에는 능동적인 부분이 없습니다. 당시 사회상으로 봤을 때에는 결혼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녀를 기르는 기쁨도 아마 상상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재산을 모으는 기쁨 어떤 일을 성취해서 얻는 기쁨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채 철저하게 수동적으로 주어졌던 삶을 살아갔던 큰 이변이 없는 한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아가야 했던 한 사람이 오늘 등장하게 되는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됐던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무엇입니까?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사람에게 이 모든 것의 시작은 태어났을 때부터 걷지 못했던 그의 장애였습니다.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것이 원래 창조되었을 때 아름답게 살아갔을 바로 한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원흉(元兇)이죠. 그렇게 이것이 자신의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다 포기하고 지금까지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남아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도인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도 생명에 관한 것 영원에 속한 것을 전혀 꿈꾸지 못한 채 뭘 얻을 것 없을까? 뭘 더 얻을까? 하는 아주 현실적인 모습만 남아 있는 것 아닙니까? 그에게 남은 것은 그날그날 살아가야 할 현실의 문제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우리는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사람이 이 사람과는 우리가 다르다고 생각하기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우리 스스로 행동과 결정을 가지고 살아간다. 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이 어그러지고, 어디서부터 어디서부턴가 무너져 있고, 어디서부턴가 잘못되어도 대부분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이처럼 말이죠. 이러한 삶이 맞는 것일까?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하는 본질적인 질문들을 다 잃어버리고는 굉장히 수동적으로 오늘 아침을 시작하지 않습니까?
 
오늘 하루하루에 살아갈 현실의 문제만을 떠안은 채, 다른 사람 의해서 조직에 의해서 시스템에 의해서 혹은 여러 가지 상황에 떠밀려서 수동적으로 직장생활을 하거나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지 않습니까? 오직 오늘 하루의 삶에 문제만 매어서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이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고 우리가 물을 수 있는 것이죠. 여러분들이 오늘 아침에 풀린 눈으로 회사에 출근하고 아무 생각 없이 주어졌던 일들을 해왔고, 그렇게 지금 죄송하지만 이 자리에 앉아 있다. 라면 수동적으로 말이죠. 이뿐입니까?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고 하자 무엇을 얻을까? 하여 그들을 바라보았던 것처럼 말이죠. 여러분들의 마음이 혹시 이 세상 가운데 어떻게 하면 무엇을 더 얻을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이 상황에 마음이 다 뺏겨있지는 않습니까? 시기를 또 차야 되고요. 지금은 이런 것들을 해야 된대 유행을 따라서 혹은 상황을 따라서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움직여서 이렇게 운영해야 된다더라. 하는 세상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현실의 문제 그러나 여러분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되는 이가 어느 날 구걸을 구걸이 너무 잘 돼서 그날은 풍족하게 보냈다고 해도 그에게 아무것도 변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 아셔야 됩니다. 우리의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었음에도 변하는 것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 아셔야 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사람처럼 모든 것은 다 접어두고 세상사는 일에 함몰(陷沒)되어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청년부를 담당할 때 아이들을 심방(尋訪)에 보면 어떤 친구는 성공해야 하는 강박감에 사로잡혀 있어서 정말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성공해야 하고, 돈을 많이 버는 취급을 가져야 하는 것으로 대화가 가득할 때 여러분 교육자로서 어떤 마음이 드시는지 아십니까? 막 숨이 막혀옵니다. 어떤 말을 해줘야 하지? 온통 친구의 머릿속에는 성공과 좋은 직장과 어떻게 하면 현실의 문제를 타개할 수 있을까? 이 아이의 기본적인 태도(態度)가 바로 누구를 보아도 어떤 일을 마주쳐도 어떤 것을 더 얻을 수 있을까? 어떻게 더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시선만 가지고 있더라는 겁니다. 완전히 여기에 함몰된 것이죠. 인생이 그게 전부가 아니고 더 가치 있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 라고 막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 중에 이런 현실에 함몰되어 있는 분이 계십니까? 예배와 예배에 와 계셔도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는 분이 혹시 계십니까? 오늘 근심과 염려로 주저앉아 계신 분이 혹시 계십니까? 그래서 현실이 신앙을 뒤덮어버려서 깊은 수렁에 빠지신 분이 계십니까? 이 깊은 수령에서 건져주시는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이 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현실의 문제 때문에 영원한 것을 잃지 않는 여러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말씀을 좀 더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더 살펴보면 성전에 들어가려던 베드로와 요한이 그를 주목하여서 ‘우리를 보라’ 이렇게 말합니다. 드디어 베드로와 요한이 말하기 시작하니까 안심이 되죠. 구걸하던 그에게 베드로가 군더더기 없이 선포를 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내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버려라 베드로와 요한은 그가 재물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은과 금은 내게 없다고 말했겠죠. 그러나 그가 정말 필요한 것을 바로 말합니다. 그가 이제는 포기했던 것, 그가 이제는 단념했던 것,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사람들이 메고 올 수밖에 없었으나 사실은 메어 오면서도 마음속으로 진짜 간절히 원했던 것 어떤 말이요. ‘일어나 걸으라.’예요. 이제 어떻게 됩니까? 7절을 보니까,
 
*사도행전 3:7,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손목을 잡고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었다라고 말합니다. 8절에서는 뭐라고 말합니까?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다라고 말합니다. 아 이런 본문 보면 너무 마음이 좋죠. 네 여러분 혹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는 방글라데시에서 잠깐 사역을 했을 때 중간에 선교사님 사역을 도와준 적이 있습니다. 그때 뒀던 마을에 태어나면서부터 못 걸었던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상체는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보일지 모르겠어요. 그냥 다를 게 없었어요. 그러나 다리가 정말로 앙상한 거 있죠. 정말 뼈에 가죽만 살짝 붙어있는 앙상한 다리만 진짜 다리가 발가락도 뼈가 보 1만큼 앙상하게 보입니다. 어찌 보면 다리가 덜 자란 것처럼 짧아 보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이런 모습이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오늘 말씀은 뭐라고 합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라고 말하자마자 발과 발목에 힘을 얻었다. 로 말합니다. 선포하자마자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전 사실 그때 방글라데시에서 봤던 나면서부터 못 걸었다는 그분의 다리와 외에 여러 가지 조건들을 생각하노라면 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지금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사람은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뼈만 앙상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선포되었을 때, 걸었다는 말은 지금 걸을 수 있을 만큼 말씀 선포되자마자 근육이 붙어나가고 있고, 근육 가운데 걸을 수 있을 만큼 일반인만큼 여러분의 허벅지 만큼이요. 근육이 막 붓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작았거나 뒤틀린 뼈가 자라기 시작하고 바르게 맞춰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그뿐입니까? 갑자기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었던 그래서 균형(均衡) 감각(感覺)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던 사람이 다리로 걸었을 뿐 아니라 뭐까지 한다고요. 네 뛰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지금 등장하는 사건은 대단함이고 놀라움 자체예요. 눈앞에서 이 상황이 벌어졌다고 생각해보세요. 무릎 수술만 해도 재활하고 다시 뛰는데 몇 달이 걸리는 거 아시죠? 네, 이걸 생각하면 이것은 마치 아이가 걸음마를 하지도 않고도 갑자기 균형 감각을 얻은 것과 동일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명령의 회복은 완전한 회복(回復)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상상을 해 보십시오.
 
“일어나 걸으라.” 선포했지, 내가 일어나 뛰라고 하지 않았다라고 말해서 뛰지는 못하고 이렇게 막 엉거주춤 이렇게 해왔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막 넘어질 것 같고, 그래도 이분은 진짜로 감사했을 거예요. 왜냐하면, 처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봤잖아요. 처음으로 한 발을 떼 봤잖아요.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회복은 지금 그런 상황 지금 상황보다 좀 더 나아진 회복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회복은 완전한 회복입니다. 모자람이 없는 회복인 것입니다. 지금 이 사람은 하나님의 완전한 회복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큰 은혜 아닙니까? 지금 저희 교회에도 사랑부가 있지 않습니까? 제가 신혼 때 화곡동에서 시작했습니다. 좋은 동네예요.
 
화곡동에는 사랑부로 유명한 교회가 있는데, 꼭 제가 주일에 사역하는 시간에 아마 교회 사랑부 예배 시간이었던 것 같애요. 그래서 출근을 하고자 하면은 이제 거의 매주 교회 앞을 지나갈 때마다 부모님이랑 사랑부 친구들이 여러 명이 교회에 이렇게 들어가는 모습을 보곤 했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당시 이제 주일에 교회를 가는 사랑부 학생들을 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여보, 예수님이 다시 오시고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면 친구들도 완전히 회복되겠지?” 저는 깜짝 놀랐어요. 내 아내가 어 제 아내는 신학을 하지 않았습니다. 좀 놀랬어요. 그래서 제가 ‘물론이지’ 그랬더니, 아내가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아마 저기 함께 가는 부모님은 누구보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걸 기다릴 거야.’ 저는 매일같이 길을 매주 길을 지날 때마다 늘 동일하게 봤는데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이었어요. 그날에 예수님이 오시는 그날에 저분들도 창조 때에 기뻐하셨던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이 일어나겠구나! 하면서 막 그날이 너무 기다렸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 그 교회 사랑부 부모님들이 그렇게 소망하고 기다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완성할 하나님 나라에서나 누릴 완전한 회복을 지금 여기 있는 그가 경험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그에게 무슨 치유 받을 조건이 있었습니까? 그가 보여준 특별한 믿음이 있었습니까? 아니에요. 오히려 그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뭘 얻을 게 없을까? 하여서 그들을 갈구하는 눈길만 바라보았던 사람 아닙니까? 현실에만 매어 있던 그의 삶에 성령의 강력한 능력에 폭탄(爆彈)이 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그의 삶을 완벽하게 회복시키고 계십니다. 그의 삶이 어그러졌던 근본적인 지점부터 완전하게 회복하고 계십니다.
 
단순하게 돈 몇 푼을 더 받아서 잠시나마 편하게 사는 것인 그런 임시적인 회복이 아니라, 그가 이렇게 이렇게밖에 살 수 없었던 근본적인 지점 나면에서부터 못 걷게 되었던 지점을 완전하게 회복시키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회복시키실 때, 여러분들의 삶에 근본적인 부분부터 완전하게 회복시키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어떨 때에는 우리가 이 부분만큼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들이라서 그게 남편이 될 수도 있죠. 그게 아이들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우리 아이들만큼은 변화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저희 아버지만큼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부분만큼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상상하지도 않고, 기도하지도 않고,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에 다가오셔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한 가지도 성령의 강한 능력으로 회복시키실 줄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도 현실의 깊은 수렁에 빠져 있어서 뭘 보아도 무엇을 얻을까? 로만 보이고 어떻게 더 벌어볼까? 로만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이 팍팍하게 살고 있는 우리라 할지라도, 주님께서 우리의 삶에 구석구석 모든 부분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완전하게 회복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할 수 있는 그가 들어간 곳이 어디입니까?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던 성전에 들어갑니다. 그동안 성전(聖殿)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이라는 미(美)문(門) 앞에서 아이러니하게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수년을 보냈을 그가 말이죠. 장애인으로서 성전에 들어가는 멀쩡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불허했을 그가 드디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당당하게 하나님의 품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전을 뛰어 들어가면서 그가 한 행동이 무엇입니까? 8절을 보면,
 
*사도행전 3:8,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하나님을 찬성했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재미있지 않습니까? 제자들은 지금 누구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했죠. 맞아요. 나사르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누구를 찬성하고 있죠. 하나님을 찬성하고 있어요. 왜 그렇습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했을 때 이러한 일이 너무나 능력이 넘쳐서 너무나 완전해서 하나님이 아니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찬성했던 것 아닙니까 특히 누구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했겠습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선포한 이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로 메시아였구나! 그리스도였구나! 그래서 그분이 참 구원자 맞구나! 하나님이 보내신 자구나! 거부할 수가 있었겠어요? 예수란 그분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내신 구원자이시구나! 라는 걸 깨달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것을 알 수 있습니까? 뒤에 서서 걸으며 뛰어 서서 걸으며 어떻게 들어갔다고 말하죠. 네, 성전에 아까 말했듯이 성전에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을 받고 구원을 받은 자라는 것을 지금 성경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11절부터, 베드로가 이 일이 너희가 죽인 예수로 인하여 일어난 일이라고 증언(證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회복은 우리의 삶에 영역(領域)만 회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 완전한 우리의 삶에 영역만 회복할 회복을 뛰어넘어서 우리의 영을 완전하게 회복시키십니다. 성령의 능력의 폭탄이 그의 인생 가운데 떨어질 때 현실에만 얽매여 있던 저주(詛呪)의 끈이 끊어지고 삶이 완전하게 회복되는 것뿐만 아니라 이제는 생명에 관한 것, 영원한 것, 여기에 눈이 뜨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동안에는 무엇을 얻을까?
 
머릿속에 온통 그것만 있었던 사람 아닙니까? 오늘은 어떻게 하루를 보내야 되나, 오늘 저녁은 어떻게 해결하지?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찼기에 관심도 없었던 것 필요도 없었던 것이 이제 눈이 뜨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돈보다 더 소중한 것 더 값어치 있는 것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영원한 것에 심령의 눈이 뜨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말씀을 묵상할 때 지금 이 사람이 성전에 들어가면서 드리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 그의 인생에 처음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원망(怨望)과 무기력(無氣力)함으로 살아왔던 그의 인생에서 말이죠.
 
육체적인 완전한 회복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영적(靈的)으로도 완전하게 회복되어서 하나님을 바로 온전하게 찬양할 수 있는 자가 된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에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회복시키실 때, 여러분들의 삶의 문제들만 회복시키는 것에 끝나지 않고, 여러분들이 다시 온 전(穩全 한 찬양을 드릴 수 있도록 온전한 예배(禮拜)와 경배(敬拜)를 드릴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심령(心靈)도 완전히 회복시키실 줄 믿습니다. 세상의 욕심(慾心)들로 가려져 있던 여러분들의 눈을 다시 생명에 관한 것 영원한 것에 눈뜨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와 은혜(恩惠)의 은혜를 바라보는 여러분으로 회복시키실 줄 믿습니다. 이 밤에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의 삶의 영역뿐 아니라 영적인 영역에 완전한 회복을 경험(經驗)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남은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사람과 같이 그날의 얻어진 재물(財物)로 기쁨을 누리며 그것으로 만족(滿足)하며 살아갔을 자들 아닙니까? 여러분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일을 다행히도 메어다가 줄 사람이 등장하죠?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이 비참(悲慘)한 인생들끼리 아무리 자기네들끼리 돕고 살아도 비참함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도와줘도 평생 데리고 나와서 성전 문 앞에 내어준다. 할지라도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똑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에게 진정(眞定)으로 필요한 것은 사람의 도움도 아니오. 하루를 살아갈 재물도 아니오. 바로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하고 가장 필요한 것이 사람의 도움도 아니고 재물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런 하나님의 완전한 회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영적인 생채기가 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상처들이 곪아서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잃어버리신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디선가부터 잘못된 것인지 몰라서 그저 눈물로만 기도하고 계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삶을 능력 있게 회복시키실 줄 믿습니다. 망가지고 무너진 여러분들의 삶을 좀 더 나은 정도의 회복이 아니라, 원래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려고 했던 완전한 축복으로 회복시키실 줄 믿습니다. 오늘 이 밤에 이런 완전한 회복이 회복을 주실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삶에 회복뿐 아니라 여러분들을 영적인 깊은 수렁에서 건지셔서 더 다시 우리를 반석위에 세우시고, 기쁨을 회복시키시며 우리의 입술에 찬송을 담아주실 주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믿음으로 나아갈 때,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되었던 이가 경험했던 완전한 회복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 이름으로 여러분과 여러분들의 가정 가운데 임할 줄 믿습니다.
 
♣요약
인생의 한계 앞에서 우리의 능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진정한 기도로 올려드리면, 현실의 난제를 초월한 새 차원의 인생으로 비상하게 하심을 확신해야 한다. 한 생명에게 ‘일어나 걸어라’라고 선포하셔서 당장의 기적을 보이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말씀의 능력으로 삶을 살아가면 완전한 회복을 주실 것이다. 우리 인생 가운데 능력으로 찾아와 주시는 주님께서 인생의 한계 앞에 무력하게 무너져 있는 우리의 인생 가운데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 믿어야 한다. 성령의 역사를 베풀어 주실 것을 소망하고, 완전한 회복과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완전한 회복을 경험하게 해 주실 것을 확신해야 한다. 우리의 심령이 회복되게 하심을 소원하며, 언제나 기쁨과 찬송이 되어,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일어나 걸어가면 주님은 항상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도우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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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장반 강의(주후 2024년 04월 16일)
제목: 6과 "아론이냐? 모세냐?"
말씀: 출애굽기 32:15~32
찬양인도: 이다니엘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강의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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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2:15~32,
15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두 증거판이 그의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쪽 저쪽에 글자가 있으니.
16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17여호수아가 백성들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
18모세가 이르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내가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하고.
19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 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20모세가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하니라.
21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당신이 그들을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
22아론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23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24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25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26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27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28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
29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30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31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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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33:8-11,
8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9 그는 그의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의 형제들을 인정하지 아니하며 그의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으로 말미암음이로다.
10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제단 위에 드리리로다.
11 여호와여 그의 재산을 풍족하게 하시고 그의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
 
*출애굽기 32:2~4,
2 그가 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추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에 강림하셨고 그의 오른손에는 그들을 위해 번쩍이는 불이 있도다.
3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의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 도다.
4 모세가 우리에게 율법을 명령하였으니 곧 야곱의 총회의 기업이로다.
 
*로마서 9:3,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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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아론이냐 모세냐
 
32:15-32- 모세의 의분과 깨어진 두 돌판) 이 부분은 우상 숭배에 대해 모세가 의분을 떠 트리는 내용과 그 범죄를 수습하고 있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모세는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백성들이 우상 숭배함으로 언약을 깨뜨렸다는 말씀을 듣고 그 종 여호수아와 함께 내려와 백성들이 우상 숭배하는 모습을 보고 분노를 터뜨렸다. 그러나 이것은 잠시 후 이스라엘의 중재자로서 모세가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한 것과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한편 모세의 이 같은 진노는 뒤이어 레위 자손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그들의 형제, 친구, 이웃을 베는 아픔을 참아내게 하는 계기가 되었는데(25-29)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자기 부인(10:6;16:24-26)의 모습을 잘 나타내 준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32: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금송아지를 만든 아론)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 장면이다. 그들이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금으로 송아지 형상의 우상을 세워서 하나님이라고 섬긴 것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의 결핍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은 영이시라(4:24)는 사실을 몰랐다.
그들의 마음이 강퍅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나타나 그들로 하여금 지도자 모세를 신뢰할 수 있는 증거를 주셨다(19:9,16:20:18-2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만나러 시내 산에 올라간 모세를 믿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진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늘에나 땅, 땅 아래의 어떤 피 조물이라도 그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우상을 만든 것은 하나님 말씀을 경홀히 취급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증 애굽 사람의 제사 방식을 모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애굽에 있는 동안 애굽 인들이 소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나 그러한 관습을 많이 접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인도하던 모세가 오랫동안 그들의 눈앞에서 보이지 않게 되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우상을 만들어 그것을 숭배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첫째,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4:24).
둘째, "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3:15).
셋째,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를 인도할 신) 백성들이 요구한 것은 ‘눈에 보이는신이었다. 오랜 기간 애굽 생활을 통해 그들은 가시적(可視的)인 우상들만을 접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invi-sible) 하나님에 대해서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형상을 만들지 말 것’(20:4)을 강력히 말씀하셨는데 백성들은 이러한 고차원의 신앙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실로 그들은 보고서야 믿는 자들로,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 자들이었다(20:29). 한편 여기서 으로 쓰인 단어는 ‘엘로힘으로 직역하면 신들이라는 뜻의 복수형이다. 이것은 백성들이 애굽의 다신(多神) 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보여 준다.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낸 사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구원해 낸 이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인 모세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세는 자신들이 직접 대면했기 때문에 바로 그가 자신들을 인도해 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과의 신앙에 견고히 서있지 못하다는 증거이다왜냐하면 백성들을 인도하여 내신 분은 모세가 아니라 아브라함과 언약 관계를 맺으신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3:6-8,16,17:15:8-21;17:7). 모세는 단지 그 같은 사역에 쓰여 진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미처 이 같은 사실을 바로 깨닫고 있지 못했던 것은 후에 그들이 모세를 원망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16:3,21:5). 한편 오늘날도 능력 있는 교회 지도자는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숭배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 같은 현상은 당연히 경계되어야 한다.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여기서 어찌 되었는지에 해당하는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하야)’의 뜻이다. 즉 모세가 황량한  돌산에 들어간 지 40일이나 되었기 때문에(24:18) 백성들은 그의 신변에 무슨 사고가 난 줄로 생각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한 신과 같이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처럼 그에게 무슨 이상이 생겼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그들에게 있어서는 전능한신의 개념이 없었고, 단지 신은 유한하고 비() 전능한 것으로  생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잘못 이해한 결과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4:1,6)이 모든 것에 앞서야 함을 새삼 교훈해 준다
 
32:26) 이에 모세가 진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진 문) 백성들이 야영하고 있는 진영의 입구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 이들은 우상 숭배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 및 비록 우상 숭배에 참여했다 할지라도 즉시로 그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 는 자들을 가리킨다. 회개의 기회가 없이 멸망당하는 법은 없다. (레위 자손이 다 모여레위 자손들 중 우상 숭배에 참여하지 않은 자일 것이다. 이들은 모세의 명을 따라 그들의이웃과 형제까지도 칼로 쳐 죽였는데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일로 간주되어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았다(33:9). 때로 신앙은 이러한 갈등을 극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리스도께서도 밝히 말씀하셨다(10:37-39). 
 
 
2.  
32:23)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24)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이 말은 아론의 대답 중 결정적으로 잘못된 부분이다. 송아지는 불에서 저절로 나온 것이 아니라 실제로 붓고’, ‘새겨서만든 것 이다(4). 하지만 이러한 죄 지은 인간들의 책임 전가와 사실 호도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악습이다(3:12,13). 
 
 3.  
 32:10)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내가 하는 대로 두라) ‘혹은 날 내버려 두라’, ‘날 혼자 있게 하라’(let me alone)로 번역하였다. 이는 더 이상 하나님께서 백성들과 관계를 갖지 않으시겠다는 절교 선언이다. 즉 하나님 은 지금까지 이스라엘과의 관계 속에서 그들과 함께’(together) 하셨지만, 간섭하시지 않 으시겠다는 의미이다.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이 약속은 처음에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인데(12:2;18:18) 이스라엘이 계약을 깨뜨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를 철회하고 대신 모세와 새 계약을 맺으려는 것이다. 한편 여기서의 나라와 창12:2민족은 모두 고이를 번역한 말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동일한 내용을 모세에게도 약속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이 제안은 모세에게 매력적인 유혹으로 작용 할 수 있었는데. 만일 이 제안이 모세에 의해 받아들여졌다면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 모세의 자손으로 새롭게 구성되었을 것이다(Keil). 또한 이것은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들이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4:3) ‘믿음의 후손이 아니라, 모세의 율법을 지켜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는 율법의 후손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지금 모세에게 이후 하나님의 백성의 자격과 성격을 결정짓는 중대한 제안을 하고 계신 것이다
 
4.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 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주께서 기록하신 책) 성경 다른 곳에서는 생명책으로도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인간의 삶과 죽음이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나타내 준다. 시민 명부에 자신의 이름이 등재된 자들만이 그 지방의 주민 또는 그 나라의 국민으로 인정되며 아울러 시민권이 보장 되었던 당시의 풍습에서 따온 이 생명책이라는 말은 신약에서는 보다 영적인 의미를 지닌 개념으로 나타난다(4:3;3:5). 곧 이 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모세의 이 기도는 신약 시대 자기 동족 유대인들을 위해 중보 기도하던 바울의 기도와 유사하다(9:3). 책임을 회피했던 아론과 달리 모세는 이처럼 자기 민족을 위해 생명까지 내놓을 만큼 투철한 책임 의식과 동포를 사랑하는 정신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Bengel). 실로 모세나 바울은 그 누구보다도 천국의 기쁨과 지옥의 고통을 잘 아는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영적인 생명까지 걸고서 그토록 간절히 중보기도 드리는 이유는 죄 중에 죽어갈 저 무지하고 불쌍한 뭇 영혼들에 대한 사랑때문이었다. 즉 불쌍한 영혼들에 대한 불타는 사랑이 지옥의 그 고통스런 불꽃 (16:24) 까지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사랑의 힘은 크고 위대하다. 예수님께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그 치욕스런 십자가를 흔쾌히 지신 것도 오직 사랑’, 그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따라서 오늘날 저 죽어가는 뭇 영혼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할 책임이 있는 우리           들도 이 같은 사랑의 마음을 지녀야 할 것이다(고전 4:1,2). 
 
33: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주의 길) ‘주의 뜻혹은 주의 도우심을 의미한다. (주를 알리시고) 주님의 인격을 알게 하시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주님과 더욱더 친숙한 관계를 가지기를 원하는 모세의 심정이잘 나타난 말이다.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주님의 은총을 구하는 말이다. 즉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은총으로 대하시고 공의로 대하시지 말기를 간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5. 
32: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 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올라가니) 1차적으로는 다시 산으로 올라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올라간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라에서 번제를 뜻하는 올라가 생겨났으므로, 이 말에는 일종의 제사 개념이 포함 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즉 모세가 산에 올라간 것은 백성들을 위한 대속 제사를 드리러 간 것으로도 이해 할 수도 있다
 
32: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해 설) 교재 3번 문제 해설 참조 
 
 


순장반 강의(주후 2024년 04월 16일)

제목: 6과 "아론이냐? 모세냐?"
말씀: 출애굽기 32:15~32
찬양인도: 이 다니엘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강의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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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2:15~32,
 
15 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두 증거판이 그의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쪽 저쪽에 글자가 있으니.
16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17 여호수아가 백성들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
18 모세가 이르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내가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하고.
19 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 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20 모세가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하니라.
21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당신이 그들을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
22 아론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23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24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25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26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27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28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
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31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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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배경은 1절부터 6절까지 다 나와 있어요. 모세가 한 달 넘게 시내 사는 정상에 머물러 있었어요. 한 달 넘게 있는 동안에 아무런 소식이 없어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움이 생기는 거죠.. 조금 더 세게 말하면 거의 행방불명이 됐으니까, 모세를 찾았고 수색하고 싶어도 모세를 찾으려고 하더라도 산 위에 구름과 불이 둘러싸여 있으니까 또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로 의미하심 때문에 올라갈 수도 없었어요. 그리고 모세 시종 여호수아도 모세 옆에 있었어요. 아니면 산기슭에 있었어요. 산기슭에만 있었지, 산 위에는 올라갈 수가 없었어요. 모세가 하나님과 모세만 대면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받는 기간이 나중에 장장 며칠이에요?? 그 40일. 또 시내 산 밑에서는 야단, 야단법석 난 것이에요. 그러니까 40일 동안 리더 없이 중심이 안 잡히니까 이제 난리가 났는데, 우리 애굽에서 있었던,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며, 애굽에도 그래도 나쁘기만 했나, 애굽에도 좋았던 것이 있었다. 그걸 애굽의 나름 즐겁고 육신적으로 괜찮았던 육신적으로 무언가 자기만족을 했던 그런 회상을 하기 시작하고, 애굽의 노예로 있을 때 배웠던 애굽 신을 섬기며 부르는 노래들, 또 이방신 섬기는 어떤 그다음에 어떤 광 난의 춤, 이런 것들이 생각날 정도로 옛 습관으로 돌아가게 된 거예요. 그리고 그러면서 모세 형 아론을 찾아왔어요.
 
그러니까 찾아왔고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신을 만들어 달라.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은 우리가 지금 어떻게 할 수 안 되니까.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신, 눈에 보이는 신을 만들어 달라. 그러니까 아론이 너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내어 가져오라고 그랬어요. 금 고리를 가져다가 아론에게 주었어요. 그러니까 아론이 금붙이를 가지고, 4절 앞에 보니까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어요. 거푸집을 만들고,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어요. 동상을 만든 거지요. 마침내 모세가 이제 하나님이 주신 두 증거 판을 가지고 산에서 내려와 보니까, 기가 막힌 거예요. 그리고 막 정말 모세가 미칠 정도로 그냥 화가 났어요. 표현을 잘하면 거룩한 분노가 일어났어요. 그래갖고 증거 판을 깨뜨리고 금송아지 우상을 불살라가지고 가루로 만들어가지고 백성들에게 마시게 했어요. 야, 모세도 한 성깔 하네.... 모세가 온유가 극한 사람인데 얼마나 화가 났으면 미친 거에요. 살아왔던 백성들이 진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러면 안 되지. 그래갖고 막 너무너무 화가 나가지고
 
그러면서 이제 아론에게 What’s the matter? 무슨 일이 있느냐?(What’s going on?) 추궁했더니, 아론이 변명하면서 책임을 백성들에게는 22절에,
22 아론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역사 탓하고 환경 탓하고, 무슨 문제가 있으면 우리 한국 사람들도 그래요.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알지 않느냐고 누가 뭐 잘못했다면, 난리치는데, 아니 같이 울어줘야지 같은 식구 아닌가? 난 한국에 누가 뭐 누가 좀 뭐 잘못했다고 그러면 난 내 마음이 너무 아픈 거예요. 가슴이 콩닥콩닥 해요. 누가 교회에 문제가 생겨갖고 텔레비전 뉴스가 나오면 그게 내일인 것 같아갖고 내가 막 가슴에만 쫄리는 거에요. 그거는 정말 내로남불이고, 책임회피(責任回避)에요. 이게 오늘 아론이 그랬어요.
 
그러면서 24절에,
24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아론이 말은 잘해요... 여러분, 말 잘하는 것과 실천력과는 구분해야 합니다. 옥한흠 목사님도 그러고 나도 그러고 하다 보니까 말씀을 전하고 이렇게 하지만 실질적으로는요. 말이 좀 잘 안 나오고 우리는 저기 뭡니까? 이게 딱 그래서 나는 강단에 올라가는 걸 제가 그렇게 썩 즐겨하지도 않고, 저는 이렇게 앞에 나서고 강자로 오니까 저는 이게 저는 그렇게 익숙하지도 않고 우리는 촌놈이잖아요..
 
우리 한경직 목사님이나, 전에 이승만 대통령이나, 그다음에 심지어 김구나, 그다음에 또 뭐예요? 이동원 목사님, 뭐 이런 분들 보면 정말 부러워요. 서울 사람들 표준말 정말 말씀을 또박또박 잘하고요. 막 그냥 우리는 정신 안 차리면 말이 그냥 엉겨요 우리는 영남보다는 호남이 그래도 또 나아, 영남 사람들은 말이 시작과 끝이 뭐 그래요...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이래야 되는데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합니더.’ 늘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어른이 다 부족한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늘까지 부족한 저를 불쌍하게 여기심과 그 은혜를 찬양합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거룩한 분노와 탄식을 가진 모세가 드디어 26절에 그러니까 26절 뒷부분에,
 
26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레위 자손들이 다 나왔다고 모세는 레위 자손들에게 너희는 칼을 들어서 이 끔찍한 일을 모의하고 적극적으로 한 자는 다 죽이라고 합니다. 28절에 보니, 몇 명이 죽었어요? 3천명, 그리고 여호와의 편에 서서 헌신한 레위족속에 대해서 모세가 29절에,
 
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그리고 실제로 레위 족속이 받은 분복은 받은 이 본복은 뭐냐? 제사장 가문이 되고, 율법을 가르치고, 예배를 집례 하는 최고의 특별한 지위를 허락해 주셨어요. 하나님 편에 서니까, 제사장 가문이 되과, 재판을 하고, 율법을 가르치고, 예배를 집례 하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21세기 왕 같은 대 제사장이 되어가지고, 이 시대에 뭡니까? 제사장 가문이 되어 갖고, 또 하나님 말씀 가르치고, 말씀으로 영혼을 섬기고, 매주일 마다 주님 앞에 진실 된 예배자로, 우리가 설 수 있다는 것 이 축복인 줄 믿습니다. 그 레위지파들이 하나님께 헌신한 불의 서지 않았던 레위지파들이 받은 축복에 대해서 신명기 33장 8-11절에 보면,
 
*신명기 33:8-11,
8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9 그는 그의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의 형제들을 인정하지 아니하며 그의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으로 말미암음이로다.
10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제단 위에 드리리로다.
11 여호와여 그의 재산을 풍족하게 하시고 그의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오늘 이 내용을 여러분들 아는 분들도 많이 있고, 그런데 여러분들이 오늘 이 말씀을 처음 대한다는, 처음 대하는 것 같은 신선하고, 처음 대하는 것 같은 그런 어떤 뭐라고 그럴까요? 은혜로운 낯설음은, 낯설음인데 말씀을 깨닫기 위한 어떤 낯 설음, 좋은 의미의 낯 설음, 그리고 처음 대하는 것 같을 때, 주님이 주시는 음성 프레시한 음성, 그래서 아는 거지만 프레쉬 하게 깨닫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자, 웬만하면 다 했습니다.
 
● 마음 문을 열며.
진면목(眞面目)은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난 진짜 얼굴입니다. 그렇죠. 참 진짜이다. 면목은 얼굴이란 말이죠. 평소에는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신앙인이요. 인격자로 여기는 사람도 때로 세속의 강력한 바람 속에서 치명적인 이해관계에 얽히게 되면 그동안 얼굴을 가렸던 것들이 벗겨져 진짜 얼굴이 드러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위기 앞에서 세상을 선택한 이스라엘의 맨 얼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속의 중력에 사로잡힌 흉한 몰골이요, 자신의 문제를 남에게 돌리는 책임회피의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말씀 속에서 어떤 경우에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영적인 근력을 키우고,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도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는 영적인 본능으로 체화(體化)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 지난주에 제가 여러분들에게 풀무 불 설교를 하면서 ‘풀무 불에 안 들어가니까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다.’ 풀무 불에 안 들어가니까 풀무 불에서 건짐 받은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근데 평상시에 신앙이 좋아 보여도, 풀무불 같은 시험대 앞에 섰을 때 내가 하나님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과 타협을 쓸 것인가?
 
오늘 적나라하게 아론을 통하여 드러나는 거에요. 그리고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멀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어떤 방향을 우리가 생각하고 통찰하는 것이에요. 저는 숭실대학교에 가면 기독교 박물관이 있어요. 한국의 제일 큰 기독교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어요. 김양선 목사님이란 분의 아버님이 평양에서 유명한 클렉터였어요. 그때 아버님이 물려주신 유산을 가지고 김양선 목사님분이 숭실대학의 사학과 교수셨는데 그분이 한 7000점 정도를 기증을 했어요. 국보들도 있고, 이랬는데 그중에 하나가 안준근 의사가 여순 감옥에서 죽기 전에, 죽기 한 달 전에 남긴 휘호(揮毫)가 있어요.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우리나라에 보물로 돼 있어요. 보물 569호인데, 제가 영임본을 갖고 왔어요. 갖고 왔는데 여러분들 보여드릴게요. 한번 보세요. 인무원려 난성대업(人無遠慮 難成大業)-사람은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큰일을 이룰 수 없다.(멀리 앞을 보지 못하면 큰 일을 이루기 어렵다.-(人 사람 인,無 없을 무, 遠 멀 원, 慮 생각할 려, / 難 어려울 난, 成 이룰 성, 大 클 대, 業 업 업)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볼 때,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고 영적인 눈이 열려 가지고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주신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고 사역 전체를 바라보고 그리고 주님이 주신 음성을 듣는 그런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본래 소속이 하늘나라 시민인데 이 땅에서 발을 딛고 살기 때문에, 현실에 직면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시각이 좁아져 있는 거예요. 국가적으로도 모든 일들을 진행할 때에 여러분들 많은 판단을 할 때, 판단 능력이 시각이 좁아지는 당장 내게 유익이 있느냐, 없느냐, 당장 내 스타일이냐 아니냐 이거 갖고 판단하니까, 맨날 헤매고, 그다음 열 받고, 경쟁하고, 기쁨 사라지고, 기본적인 어떤 평안이 없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으로, 하나님의 시각으로, 우리 다락방이나 내 삶이나 민족을 바라보는 그런 어떤 통찰력이 우리는 필요한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이런 말씀은 여러분이 나라나 민족이나 우리 자신이나 우리 다락방을 바라볼 수 있는 큰 통찰력을 제공하는 줄로 확신합니다. 그래서 오늘 6과를 공부하면서 어떤 상황에도 현실을 돌파하는 영적인 어떤 근육을 강화하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자 이제부터는 축축 나갑니다.
 
● 말씀의 씨를 부리며.
1번. (관찰 질문).
-본문은 모세가 십여 명을 받기 위하여 신내산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먼 시각을 하나님 간의 시각을 가지고 보는 거예요. 40주야를 머무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어난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세가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이 아론에게 요청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리고 이 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어떻게 행동을 취하고 있습니까?
 
첫 번째,
*출애굽기 32:1,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강권했어요. 그러니까 잘못했죠“.
그리고
두 번째,
는 26절에는,
26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신내산에서 내려온 모세가 거룩한 분노로 가슴에 터져 버려갖고 백성들에게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오라고 외쳤죠.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백성들이 왜 그랬을까요? 모세가 없던 40일은 긴 시간이었고, 리더가 부재한 40일은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이런 뜻이에요. 40일 동안 여러분 주일 예배 드리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안 봐도 보여요. 매주 일 예배는 매주 일 예배는 여러분들의 삶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영광스러운 현장에, 리더가 없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며 리딩이 없는 이 하나님이 인도하심이 없는 40일,,,
 
☞질문=순원들에게 물어보세요.
-40일 동안 다락방을 빠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그러므로, 행복합니다. 그럼 우리 죽는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 40일 동안 여러분들의 영적인 각성, 여러분 영적으로 여러분들 마음에 스스로 추스리고 근신을 빼버리고, 이거 없애버리고 여러분들 다 방만하게 여러분들은 그냥 뭐라 그럴까요? 그냥 나를 방치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40일 동안은요, 어마어마한 잡초가 자라는 시간이에요. 잡초는 하루만 지나도 막 자라는데, 40일에 공백을 시험 들기 십상이에요.
 
나는 지금도 기억하는 게 제가 부임하고 처음 40일 더 플러스 7일, 47일을 특새를 했는데, 47일은 특새하는 동안에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셨는데, 40일 동안 하루에 세 시간씩 성도들 만나고, 그러니까 특새 하루가 보통 한 두 주, 뭐 만나는 거 이상하게 마음이 40일 동안이니까.
80주 그러니까 거의 2년을 성도들을 개인적으로 만난 것만 40일 동안 나하고 같이 뛴 사람 그러니까 그냥 내가 잘하고 못하고 뭐 부족하고 뭐 못해 이런 거 다 두고 그냥 날 받아줬어요. 21년 전에,,, 내 생각이면 알까? 나도 사람이니까. 나도 느끼는 게 있잖아요. 성도들이 나를 받아줬어요. 40일 동안 40일 동안 어마어마한 일들이 많이 생길 수 있는 시간이에요. 우리 남은 인생 동안 이런 밑에서 백성들이 헤맸던 40일간의 잡초가 자라는 그런 기간이에요. 다락방 순원 들에도 그러고 여러분들에게도 없기를 바랍니다. 아시겠어요? 올해는 늘 한 결 같이,
 
지금 하나님께서는 신의 산 올라오게 해 가지고 모세를 신의 산에 올라오게 해 가지고 이 100성 제대로 인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들과 어떻게 교제할 것이고, 앞으로 이걸 위하여 하나님 백성들과 교제하기 위해서 성막을 어떻게 지을 것인지, 성막 짓는 방법 다 가르쳐 주시고, 심지어 대제사장이 될 오늘 밑에 못된 짓 하는 아론의 입을 의복까지 하나하나 다 말씀해 주고 계셨는데 정작 밑에서 산 밑에서는 백성들이 아론과 합세 해가지고 금송아지 우상 만들고, 그 앞에 춤추고 뛰놀고 광란의 춤을 추고, 여러분, 이게 참, 그 40일의 빈 공간이 그만큼 큰 거예요. 이거는 관찰 문제니까 이런 말씀을 비슷하게 여러분들이 지혜롭게 그냥 40일 동안 예배 안 드리면, 어떻게 될까? 40일 동안 다락방 참석을 안 하면 어떻게 될까? 를 그 정도만 물어보고 방향을 잘 잡으세요.
 
그 결과 너무너무 모세가 화가 나 가지고 여호와의 편에 서인 자리로 오라고 그러고 그냥 직접 하나님 만들어주신 증거 판을 산 아래로 던져버렸어요., 깨뜨려버렸어요. 3000명이 다 죽었어요. 그런 내용이에요.
 
2번. (관찰질문).
-모세는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아론에게 당신이 이스라엘 백성을 큰 죄에 빠지게 하였다 라고 크게 질책합니다. 여기에 대해 아론은 무슨 말로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합니까?
-아까 말한 대로 23절 24절에,
 
23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24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그리고 그것을 내개로 가져왔기에 내가 불에 던졌더니, 송아지가 나왔다고 야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혀 모세가 책임지고 하니까, 아이고 내가 잘못 내가 정신이 나갔나보다고, 나 어떡하면 좋으냐고, 나 어떡하면 좋으냐고 내가 정말 눈물로 통회하고 그러면 또 길이 나올 텐데... 오늘 이 아론의 요따위 책임회피 때문에 3천명이 죽은 거예요. 자기 합리화의 거짓말에 빠지면 안 되고, 뭐 우리 모두가 다 이건 교훈을 받아야 될 내용이죠.
 
한마디로 아로는 백성들이 우상 숭배에 빠진 책임이 자기 자신에게 있지 않고 누구에게 있다. 백성들에게 있다고 책임회피 하는 거예요. 아무리 백성들이 아론에게 모세가 보이지 않으니까 눈에 보이는 신을 만들어 요구한다 하더라도, 지도자로서 그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되죠. 따끔하게, “야 아론아 그렇게 하면 안 돼” 그렇게 해야죠. 그리고 오늘 이 32장이니까. 앞에 아멜렉과의 전투가 있었을 때, 산에 올라갔고 모세 한쪽 팔을 들어준 경험과 기적을 체험한 사고를 백성들에게 최소한 이야기 하면서, 기도의 지팡이라도 높이 들어야 되지 않겠냐? 우리 같이 기도하면 안 될까? 7천기도 용사들 다 앞으로 나와봐!!! 그런 식으로 해 가지고 기도를 했으면, 3천명은 안 죽을 거에요..
 
지난주에 말씀드린 다니엘이 세 친구라면 어떻게 했겠어요? 아무리 백성들이 원불비, 원망과 불평과 비판을 들어놓으며 협박을 한다 하더라도, 세 친구라면 일사각오로 하나님 말씀 지키고, 백성들을 깨우쳤을 거에요. 아론이 어떻게 했습니까? 2절에, 금붙이 다 가져오라. 그리고 4절에 보니까 보세요.
 
*출애굽기 32:2~4,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2절에, 아론이 그들에게, 4절을 보니까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가지고,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다 요래 놓고,,, 뒤에는 그냥 던졌더니, 뭐예요? 이귀퉁 뱅이를 맞아야 돼. 아롱의 가장 큰 먼저는 책임회피, 자기합리화에요. 야비한 겁니다. 사도신경의 빌라도도 그랬죠. 예수님 사형을 처할 죄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군중들에게 책임을 떠넘겼어요. 물 가져오라 그래가지고 나는 관계없다고, 여러분 대한민국은 끝까지 책임 회피가 아니라, 개인이 가진 자유와 책임의 이익 한도 내에 서 하나님이 주시는 이 은혜를 따라가지고 이 국가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학 그대로 계속 가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오늘 교묘한 자기 합리화야, 이 시대의 책임에 피해 모든 다른 표현은 뭐냐 하면 남 탓이야, 사실 백성들이 우상을 만들자고 했을 때, 우상 숭배는 백성들의 운명을 끝장내는 무서운 죄라는 거 아론이 알고 있었어요. 아론이 자기 책임 회피 안 했더라면 무서운 결과도 없었을 거예요. 자기 합리화 하고 백성들과 타협하고 그리고 나중에 모세가 추궁하니까 그것도 자기 합리화하고 책임회피를 해가지고 무서운 일이에요. 3000명이 죽어나갔습니다.
첫째, 아담인 아담도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했죠. 그런데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다른 사람의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 전가한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나라는 책임의 표가 만연하고, 다른 사람 남 탓하고, 좌표 찍기 좋아하고, 그래서 우리는 신앙인은 다른 길이 없어요. 내가 뭐 강남좌파 뭐 내로남불, 내가 뭐라고 그러는 게 아니고 그것도 사실 내 책임이죠. 그것도 크게 보면 우리 다 책임이지 그래서 목자의 심정을 지닌 저희들은 어쨌든 간에 문제가 생기면 문제가 이게 내 문제구나! 같이 울어줘야지,
 
나는 지금 이제 후배들 가운데 무슨 목사들 가운데 무슨 죄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면 신문에다가 잘못 저지른 죄를 1번 2번 3번 쓰고 그래가 되겠습니까? 후배가 잘못됐다면 아니 이게 내 문제야. 내가 더 기도해주지 못하고. 내가 더 아껴주지 못하고. 내가 더 관심을 기울여주지 못해서 그래. 이런 일이 벌어졌어요. 내 문제입니다. 나를 치소서. 그래야 되는 거 아니에요? 내 말 이해가 됩니까? 무슨 말인지, 우리가 그렇게 깊이 들어가야 된다고요.
 
다니엘이 민족의 죄가 있었을 때, 다니엘이 뭐라고 그랬어요? 느헤미야가 뭐라고 그랬어요? 민족 나쁜 놈들 잘못했다고 그러나요? ‘우리가 죄를 범했나이다.’ 느헤미야도 ‘내가 잘못했다고’ 제가 문제의 근원은 제가 여러분들이 다 말씀을 드렸지만 크게 보면 이게 다 우리 잘못이고, 그러니 하나님 이민족으로 불쌍히 읽어달라고, 그런 영적으로 깊이와 또 멀리 내다보는 안목을 우리 모두에게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번. (관찰 질문, 적용 질문).
-범죄한 이스라엘을 진멸(殄滅)하고 모세를 통해 다른 큰 나라를 세우시겠다고 진노하시는 하나님께 모세가 보인 태도를 세밀히 살펴보세요. 다음의 말씀에 기초하여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남 탓과 책임회피(責任回避)의 경향을 바로잡을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세요.
-우리가 문제 인식을 정확하게 되고 만약 우리나라가 사회주의가 되면 국가주의가 되면 우리가 어떤 일이 될지, 그런 것에 대해 명확하게 눈을 두고 알고 있어야 되고, 그렇지만 우리 전체는 이 문제가 내 문제구나, 생각하고 고민해야 되는 겁니다.
 
*애굽기 32:10,
10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출애굽기 32:32,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그러니까 그렇지 않으시면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이름을 지워버려 달라고...
 
*출애굽기 33:13,
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모세는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운다 하시더라도 백성의 죄를 사(赦)해 달라 기도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뭐 이래 한다. 해도 세상 달라지겠나,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이 시대의 모세의 마음을 갖고, 이 시대의 바울의 마음을 갖고, 바울도 그랬잖아요? 자기 동족이 다 죽는다면 자기가 차라리 자기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제거된다할지라도, 주님의 크신 사랑 안에서 나를 끌어버린다 할지라도, 내 민족의 고운받기로 원한다. 그리고 민족의 잘못을 시대 아픔을 나의 죄로 인식하고 짊어진 다니엘처럼 모세나, 바울이나, 다니엘처럼 그렇게 할 때에 거룩한 파장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10절에,
 
*출애굽기 32:10,
10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내가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는 하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맞습니다. 이 못된 놈들 다 끝내버립시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까? 부패한 죄인들 다 처리하고 저와 함께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면 좋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반응하지 않고, 모세는 하나님의 본심을 본심 하나님 심정을 알았잖아요? 사실 하나님 모세에게 너가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나 말릴 생각하지 말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표현은 그런 것 같지만 사실은 저것들 어떻게 하면 좋아! 악한 것들을 저것들 진짜 돌아와야 되는데 저것들 정신 차려야 되는데! 내가 한 번씩 얘기하잖아요. 자식을 잘못해 가지고 부모의 가슴에 멍을 들게 하고 엉망으로 만들었을 때 엄마가 처음 미운 놈 저거 밉다고 그러지만 사실 밉다기보다는 미울 정도로 안타깝고 미울 정도로 사랑하고, 미울 정도로 돌아오면 좋겠다는 엄마의 안타까운 심정이 담겨 있잖아요. 엄마가 자식이 잘못되길 원하는 엄마가 어디 있어요? 돌아오길 원하지 하나님의 심정을 이런 심정을 깨닫게 된 거예요.
 
그런데 이제 사람의 마음은 한계가 있는 게 주일날 철저히 성수하는 사람일수록 자칫 잘못하면 자기처럼 안 살면 삿대질 하는 거에요. 그게 이민족이야, 사람이니까. 그런 게 다른 거예요. 그러면 목자심정을 가지면, 저분도 주일 성수하는 분인데 어제 하루종일 굶었겠구나! 굶었겠구나!! 그리고 오늘 오후에 애들 제대로 더 가르치려고 하니까 힘이 없어갖고 저거 사 먹는구나! 이래 생각을 해야 되는데 그러니까 그게 멀리 내다보는 거고, 그게 가슴이 큰 건데, 하나님이 이민족을 불쌍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게 우리의 마음이 그리고 남 탓하는 이 책임을 극복하는 방법이 뭐냐 하면, 출애굽기 33장씩 3절 써 놓았어요.
 
*출애굽기 33:13,
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결국은 원컨대 내개 줄을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재는 은총을 입게 하시며, 주의 길을 보여 주셔요 그러니까 이걸 책임회피의 극복 방안은 뭐냐 하면, 주의 길을 깨달아야 되는 거예요. 주의 길을 깨달아야 되는 거예요.
주의 길을 깨달아야 로드 티치미 유얼 웨이즈(Lord Teach Me Your Ways). 당신의 길을 내게 가르쳐 달라고, 당신의 길을 알려달라고, 당신의 길을 깨닫게 해달라고, 그리고 주님의 길을 깨닫는 최고의 방법은 하나님께 은총을 입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개인도 가정도, 민족도, 우리 다락방도, 하나님 은총을 통하여 주의 길을 깨달아야 되고, 주의 방법을 깨달아야 되고, 핵심은 주의 은총인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33장 15절이고 보니까.
 
*출애굽기 33:15,
15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지난주에 말씀한 대로 플러스 원(+1), 다락방수는 5명 다섯이면플러스 원(+1), 모세가 진짜 원했던 것은 주님의 은총(恩寵)이고 주님의 은총의 최고의 수준은 뭐냐? 주님의 함께하신 임재-플러스 원(+1), 그래서 이 민족을 향하여 목자의 심정이 회복되어 선거 이후에 하나님께서의 목자의 심정을 주셔가지고 이 민족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하나님의 하나님 플러스 원 되는 그런 축복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4번. (묵상질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옳다고 알면서도 세상과 타협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다음 글을 통하여 그런 신자들의 특징을 살펴보고, 이에 비춰 지금 당신의 진면목은 어떠한지 묵상해보세요.
-1,2,3,4가 다 연결이 되는 겁니다.
-세상과 타협하는 살아가는 세속적 복음주의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지위, 명예, 권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세상의 비위를 맞추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영적으로 무기력입니다.-현재의 신앙이 아닌 과거의 신앙으로 살아갑니다. A.W토저는 이를 어제의 힘으로 살아간다고 표현했습니다.
둘째는 영적 모험심의 부재입니다. 이들에게는 종교 생활은 있지만 전투력 있는 신앙생활은 없습니다.
셋째는 영적 권태입니다. 신앙생활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이나 죄를 짓지 않으려는 긴장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넷째는 영적 성공에 무관심합니다. 세상 성공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만, 사명자의 삶을 살게 하는 영적 성공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만, 사명자의 삶을 살게 하는 영적 성공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다섯째는 영적인 거룩한 습관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세상적인 들숨과 날숨은 있지만 영혼을 살리는 영적인 호흡은 끊어진 지 오래입니다. 말씀을 읽거나 기도와 찬송을 하는 일상의 거룩한 습관은 희미해졌습니다.
-그러니까 평생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이거 다 풀무 불을 피해 버리고, 풀무 불에서 건짐 받는 기적도 안 일어나고, 물에 물 탔던 맹숭맹숭 하고 몸이 건조한 것입니다. 오늘 이런 신앙을 회색지대를 돌파할 수 있도록, 그래서 사랑의 교회는 사랑의 교회, 이 구원의 방주인데 둘 중에 하나의 유람선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전투함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전투함이 될 것인가?
 
*구원의 방주
➊유람선, ❷전투함.
-우리 유람선타고 신앙은 유람선타하고 관광하는 것이 신앙 아니고, 영적 전쟁에서 매일매일 영적 전쟁에서 그런 차원에서 4월 27일 날 우리 교회 7천기도 용사, 순장님들은 뭐 특별한 여유가 없는 이상은 뭐 집안에 진짜 어려운 일이 생겼다. 이래갖고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은 순장님들은 가능하면 7천 도 용사에 지원하시고, 또 그렇게 된 줄로 믿어요.
 
또 상황에 어려운 분들은 대신 누굴 또 여러분 자리에 끼워 넣어가지고, 우리 은혜의 둑이 있는데, 조그만 데 하나 세면요. 다 세게 나중에 방파제가 무너져 버린다고요.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 나라에 거룩한 방파제가 되는데 순장님들이 그러니까 사정상 하면, 거기다 상황이 어려움이 생겼으면 3500번 바로바로 투입을 해야 돼요. 7천 기도 용사가 이제는 집중력을 가지고 전투력을 가지고 힘 있고 강건하게 하나님 나라의 영적 전쟁을 수행하기 위하여, 4월 27일 날 토요일 날, 7000 기도용사 천부장, 백 부장, 50 부장, 십 부장, 서임 식을 하고, 한 번 더 확인하고, 그다음에 5월 18일 날, 5월 18일 날 7천 기도용사 발대식을 할 겁니다. 발대식을 하고 소를 몇 마리 잡으려고 합니다. 헌당식할 때 기쁨을 회복하려고 합니다. 헌당식 할 때 기쁨 품을 회복하기 위하여 소도 잡고 헌당식 할 때 기쁨과 능력을 다시 한 번 우리의 것으로 체화할 수 있도록 은혜 받는 날이 5월 18일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 기대감을 갖고 여러분들 순장님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사항 다 참여하시고, 기도 용사 번호에다 참여 기도 지팡이하고, 그래서 몇 가지 제가 이제 일정들을 말씀을 드리는데 다음 주일 날은 우리가 신앙의 차렷 자세에 대해서 어디서 합니까? 안성 수양관에서 하죠 나머지로 영상으로 좀 하시고, 그다음에 4월 23일 날,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그렇게 되고 그다음에 5월 7일 날은 있잖아요. 이 아름답고 프레쉬 한 이 봄날을 그냥 보낼 수가 있겠나, 그런 생각 교구별로 일일 영상 수양회를 하려고요. 그래 싫어요??. 교구별로,, 이 아름다운 봄날 5월 며칠이라고? 5월 7일, 그래서 순장교구별 가족 수양회를 여러분들이 그 우리 저기 뭡니까? 담당 교육자들하고 잘 의논하시면 될 거예요.
 
5월 14일은 9과할 것이고. 그다음에 5월 20일부터-5월 23일 월화수, 우리 교회에서 수천 명의 전국의 목사님들 장로님들이 모여가 장로님들이 모여 가지고 ‘목장 기도회’라고 해요. 우리 교단에 그래서 지금 제 동생이 뭔지 알죠? 제 동생 형님 사랑이 목사장로 기도회를 ‘사랑의 교회를 합시다’‘라고 해요. 기도할 수 있도록 제 61회 60년 동안 해오는 건데 61회 목사장로 기도회를 사람이 위해서 하십시다. 뭐 그래요. 그래서 물건을 맡겨놨나! ㅋㅋ 그런데 교단에서도 원하고 전체가 그러니까 우리가 2014년인가 우리 완공하고 그다음에 봄에 목사장로 기도회 한 번 한 적 있어요.
 
그때는 열심히 우리가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조금 교단 상층부 지도자들하고 팀웍이 좀 어려웠어요. 근데 지금은 교단 총회장이 제 동생이죠. 그다음에 교단의 중요한 지도자인 우리 총신대 총장이 우리 박성규 목사님이죠. 그다음에 교단의 중요한 지도자인 총신대 이사장이 남서울 교회 하종규 목사님이에요.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는 제가 말하는 줄 알겠죠. 이거는 뭐 정치를 하려해도 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시대를 위하여 우리가 뭐 전혀 안 했는데도, 이런 기회가 왔기 때문에 하나님 주신 기회를 가지고 같이 기도하고, 매어달릴 때 하나님이 우리 대한민국 교회를 불쌍히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 일(23일)은 안성수양관에서, 5월 7일은 순장 영 가족 수양회를 하고, 그다음에 5월 21일 그날 화요일은 못 하니까, 그거는 내가 필요하면 여러분들에게 SNS로 내가 알려드릴 거고, 연합 봄가을 한 번은 연합 순장반을 해야 되는데 이번 올해 연합 우리 2024년도 봄 봄학기는 연합순장반을 5월 25일 날 토요일날 토비새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5월 25일 날 아니 좀 대답 좀 해줘요 5월 25일 날 연합 순장반 진행할려고 토비새 이후에 진행할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감사드리고 그 대답을 잘한 다락방에 나중에 좀 사진 찍어갖고 잘해서 뭘 좀 드리고 그렇게 하면 좋겠어요. 예 자 5월 28일 6월 4일 6월 11일 6월 18 6월 25일까지 이후는 쭉 그대로 진행이 되고 6월 25일 날 종강 있겠습니다. 그래서 15과는 하반기로 그러니까, 6월 18일 14과 비대칭 전략의 신비, 이게 이제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6월 18일까지 그러니까 봄 학교가 벌써 다 지나갔네요. 자, 마지막
 
 5번.(적용문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에 대한 죄 값에 대한 죄 값을 자신이 대신 치르기를 간청합니다(30, 32절). 오늘날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상을 숭배하고, 아론처럼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우리 사회에 죄악 된 성향을 해결하는 길은 우리 자신이 속죄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재물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하고 구체적인 결실을 나눠보세요.
 
-주목할 것을 오늘 30절에 보니까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출애굽기 32:30,
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31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모세가 속죄가 되겠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너무나 비상한 기도이고 비상한 각오예요. 속죄가 된다는 말은 속죄 자는 소와 염소의 피로 희생제물을 올리는 것 아닙니까? 근데 모세는 내가 내 자신의 피와 내 자신의 몸을 각을 떠 가지고 바치겠다. 그 뜻이에요. 자기 몸에 각을 뜨고 자기 몸에 피를 흘리고 자기 몸을 불태우겠다는 그런 마음을 갖는 거예요. 그게 연결돼 가지고 내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도 좋으니 이 백성을 살려달라고, 자기를 죽이는 거에요. 그리고 백성을 위하여 자기를 피의 제물로 받아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럴 때는 우리가 모세를 예수님의 모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십자가의 그림자를 보는 겁니다. 모세가 대신 받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을 속죄로 드리겠다는 이 모세를 보시고, 하나님이 감동을 받으신 거예요. 바울도 마찬가지예요. 로마서 9장 3절에,
 
*로마서 9:3,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모세랑 똑같은 심정이죠. 남 탓하고 책임 회피하고 하는 이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대에, 우리도 한 번쯤은 이 문제가 내 문제구나 생각하고 모세처럼 남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제물로 바치겠다는 영적인 결단과 일사각오의 정신을 오늘 우리가 갖는다면, 하나님 우리 사랑의 교회 순장님들과 사랑의 교회 다락방을 보고서라도 이미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런 마음, 그렇게 그런 은혜, 그래서 저는 제가 지금까지 보니까요? 남 탓해 가지고 문제 해결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남 탓해 갖고는 해결이 안 됩니다. 모세처럼 ‘나를 마칩니다.’ 나를 속죄로 바칩니다. 그 선봉장들이 7천 기도용사에요. 그 선봉장들이 이번 다락방에서 순장 나가신 여러분들이고, 그 은혜를 받은 순원들이 될 수가 있는 것이에요. 내가 각을 뜨겠습니다. 정말로 우리가 속죄하는 마음으로, 모세가 있잖아요. 내가 속죄 죄로 바치겠나이다. 7천 기도용사를 얘기하려고, 영적 제곱근의 원리라고 이렇게 얘기하면 ‘2033-50 비전’ 을 얘기하고, 이런 얘기를 하면 코 방귀 끼고 그러면 안 돼요. 같이 마음을 가지고 제가 처음 시작할 때 말씀드린 대로 이민족이 보지 못하는 것, 기적을 일어난 걸 본 거 있는데, 보죠. 기쁨을 잃어버린 거예요. 하나님이 다시 한 번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문제들은 상식적인 접근으로는 해결이 안 됩니다. 우리 사회의 고착화된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우리가 이 기독교 신앙의 이 결사적인 순교정신 이번 주일에 제가 설교할 건데 물맷돌을 가지고 비대칭 전략으로 하지 않으면 안 돼요. 세상 사람들이 하는 뻔한 정신 갖고 안 되는 거예요. 책임회피 하는 아론이 될 것인가? 아니면 속죄물이 되겠다고 하는 책임을 다 짊어지고 가는 모세가 될 것인가? 이 시대의 속죄물이 되겠습니다. 모세처럼 각을 뜨고 피를 흘리고 하겠습니다. 결단을 하고, 이것이 이 시대를 해결하는 영적 지침서요. Text Book, 교과서가 되면 좋겠습니다.
 
● 마지막 삶의 열매를 거두며.
마귀는 반 기독교적이고 무신론적인 사상의 고삐를 틀어쥐고 대중 미디어를 통해 하나님 아닌 것을 우상화하도록 부추기고, 모든 일에 남 탓을 하며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현상을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악성 질병을 해결하는 길은 모세처럼 순교적이고 결사적인 희생제물이 되는 데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삶의 현장에서 모세처럼 속죄제물이 되어 내가 속한 공동체를 살릴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기독교인의 책임의식은 세상의 책임의식과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기독교인의 책임의식은 소명의식과 함께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소명 의식이 없는 책임 의식의 종착역은 자기 자신이지만, 소명 의식이 있는 책임 의식의 종착역은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맡은 일을 충성되게 책임 있게 한 이유는 내가 똑똑하고 뛰어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맡기신 일이기 때문에 불속이라도 들어가는 것입니다. 제가 원래 순장 반 개강 수양회 때 말씀드렸죠?
 
-필립스 부록스-
그가 얘기한 것은 “당신 능력에 맞는 사익을 구하지 말고 맡겨진 사익을 감당할 능력을 구하라. 그러면 당신이 하는 일이 기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기적이 될 것이다.”
'쉬운 삶을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더 강한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당신의 능력에 맞는 일을 구하지 말고 당신의 일에 맞는 능력을 구하라.
그러면 당신이 하는 일이 기적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기적이 될 것이다’
(Don't pray for an easy life, but to become stronger. Do not seek to look for a work that fits your abilities, but for an ability that fits your work. Then the work that you do will is not a miracle as you yourself will become a miracle) -Phillips Brooks 목사님-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에 소명을 회피하지 말고, 도망가려고 하지 말고, 모세처럼,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그렇게 마음을 집중하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이 시대에 기적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질 겁니다. 우리 한 사람이 어떻게 안아주신 본당을 치울 수 있습니까? 우리 한 사람이 어떻게 합니까? 글로벌 광장에서 한번 보세요. 우리가 한 사람이 어떻게 압니까, 그러나 거룩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시대를 바꾸겠다는 마음을 갖고, 소명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이 일해 주시옵소서. 그래서 여러분 모두가 다 그런 마음 갖고 소망합니다.
 
※안내
*4월 23일 날,=안성수양관(일부만), 나머지는 영상 순장 반.
-4월 27일 -4월 27일 날 토요일 날, 7000 기도용사=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서임식.
*(5월 18일 발대식).
*5월 7일,은- 순장교구별 가족 수양회
*5월 14일은- 9과 순장반.
*5월 20일부터-5월 23일 월화수=목사장로 기도회.
*5월 25일은-연합 순장 반
*5월 28일 -10과
*6월 4일-11과
*6월 11일-12과
*6월 18-13과
*6월 25-14과 종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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