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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사람-매일 책 읽는 습관사진 속에 보이는 책은 한강 작가의 소설 《흰 (The Elegy of Whiteness)이다.



이 책은 일반적인 서사 중심의 소설(줄거리가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이 아니라,

'흰색'에 관련된 65개의 짧은 글과 단어들로 이루어진 시적인 소설이다. 그래서 전자책으로 그냥 읽다 보니ㅡㅡㅡ"이게 무슨 이야기지?", "줄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하고 헷갈리거나 난해하게 느껴지게 된다. 나는 이 책을 교보문고와 우리 구에 있는 도서관과 연계한 전자도서관에서 빌린 책이기에 부지런히 읽으면 2-3일에 한 권을 읽을 수 있다. 다만 책 대출이 신간은 거의 없고 지난 것이라 어쩔 수 없이 대기 없이 바로 빌려 읽게 되었다. 항상 신간은 예약을 해야 된다. 그래서 이렇게 오래 좀 되어도 안 읽은 책이기에 이것 부터 읽기로 했다.

이 책을 이해하고 감동을 느끼실 수 있도록 핵심 내용과 감상 포인트를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은 이 소설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주제는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난 언니(아기)'에 대한 기억과 추모이다.

-책 속, 어머니가 자신을 낳기 전, 임신 7개월 만에 첫 아기를 낳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아기는 세상에 나온 지 단 두 시간 만에 숨을 거두었다. 어머니는 죽어가는 아기를 안고 "제발 죽지 마, 부탁이야..."라고 울부짖었다.

배경은 폴란드 바르샤바이며, '나'는 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다시 재건된 도시(폴란드 바르샤바)에 머물며, 파괴 속에서도 다시 살아난 도시의 '흰 빛'과 자신의 삶을 오버랩되고 있다. '나'는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삶, 이 세상을 선물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세상의 수많은 '흰 것들'을 하나씩 적어 내려가기 시작하게 된다.
이 책에 나오는 주요 '흰 것들'의 단어는, 책에 나오는 '흰색'은 단순히 색깔이 아니라, 생명, 죽음, 그리고 애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강배넷저고리 / 배넷저고리'는 어머니가 태어날 아기를 위해 꿰맨 작은 옷, 아기에게 입혀진 처음이자 마지막 '흰 옷'이다. 소금, 눈, 달, 쌀, 흰 나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만 위태롭고, 순수하며, 금세 사라지거나 부서지기 쉬운 존재들이다. 수건, 붕대는 상처를 감싸고 치유하는 '흰색'이다. 수의(죽은 이에게 입히는 옷)는 생명의 시작(배넷저고리)과 끝(수의)이 모두 '흰색'으로 연결되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내가 여기서 읽고 감동적인 핵심은 어디인가를 생각해 보니, 하나의 시집을 읽듯 마음으로 느껴보는 것 같았고,"만약 내가 태어나지 않고, 그 언니가 살아남았다면?"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삶과 숨결은, 먼저 떠난 그 작은 생명 덕분이 아닐까?" '나'는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이 순간들이 언니의 몫까지 대신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느끼는 부분이다. 그래서 내가 보는 아름다운 눈, 맑은 빛, 흰 소금, 따뜻한 쌀밥의 감각을 "언니, 당신이 보고 있나요? 이것이 세상이에요" 하며 건네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대목이 아름다웠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이었던 아기와의 헤어짐, 그리고 그 슬픔을 안고 나를 낳아준 어머니, 그 덕분에 지금 살아 숨 쉬는 나. 책에 담긴 '흰색'은 차가운 색이 아니라, 상처 입은 영혼을 다정하게 감싸 안아주는 따뜻하고 눈부신 빛이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도해 주니 나에게는 감동이었고, 오래전 아주 오래전 나의 어머니도 동생을 하나 낳으시면서 잃었기 때문에 무척 마음에 와 닿았던 책 중의 하나이고 깊이있게 읽게 되었다.

내가 느낀 것은, 세상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떠난 작은 언니에게, 이 세상의 아름답고 투명한 '흰 빛'들을 모아 바치는 서정적이고 아련한 헌사(獻詞)라는 책으로 느껴졌다. 이 프레임(죽음과 생명, 그리고 언니에게 건네는 마음)을 염두에 두고 읽으니, 하나씩 음미해 보는 느낌이 아주 시적이면서, 단어 하나하나가 훨씬 깊고 먹먹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흰]이 주는 이 책의 감동의 진짜 핵심은 슬픔을 가련하게 추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죽은 아기의 몫까지 내가 더 단단하고 눈부시게 살아내겠다는 결연한 삶의 의지가 생겼다. 여기 소설 속 떠난 아기가 끝내 보지 못한 이 깨끗하고 흰 세상을 내 눈으로 대신 보고, 그 투명한 빛을 모아 아기의 영혼에 사랑을 보내주고 싶다, 나의 삶도 비로소 구원받는 그 조용하고 격정적인 숭고함이 마음을 깊게 흔들어 주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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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주후 2026년 9월 20일)
제목: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
-(Faith That Pleases God)”
본분말씀: 히브리서 11:6
찬양인도: 쉐키나(이동선 부목사님), 시온찬양대(4부)
대표기도: 노추찬목사님(1부), 김재원장로님(2부), 김칠복장로님(3부), 윤혁진 안수집사님(4부).
사회: 임병영(1부), 이기호(2부), 장단희(3부), 임상규 부목사님(4부)
헌금찬양: 사랑유스콰이어찬양단(피아노:황나래성도)


설교자: 윤대혁 후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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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6,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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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 마음이 옆에 분과 이렇게 인사하겠습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인사하겠습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평안하셨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은 이후에, 우리가 교회 생활, 신앙생활, 믿음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우리는 말을 합니다. 매 주일 교회 출석하고 또 훈련반에서 또 훈련받고 다락방에 들어가 믿음의 교제를 나누고 또 때에 맞게 또 귀한 자리에서 헌신의 봉사의 시간을 갖습니다. 헌금 생활도 하고 또 기회 있으면 선교도 가고 이 모든 것들을 우리는 신앙생활이 시작되었다. 라고 말하죠. 전에 하지 않았던 관심 없던 것들이 내 안에 큰 관심이 되어서 이제 우리 믿음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믿음 생활, 신앙생활 한다고 말하면 우리 사랑의 교회에서는 제자 훈련을 받고 제자가 되고 제자가를 삼는 그런 그리스도의 온전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삶을 우리 신앙생활로 정의내리지만 일반적으로 말할 때 신앙생활과 믿음 생활은 교회 생활과 많이 우리가 접목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 생활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믿음이 무엇인지, 믿음 생활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많은 성경 구절 가운데 오늘 히브리서 11장 6절은 우리에게이 부분을 가르쳐 주고 있는데, 다시 한번 하나님 말씀 봉독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시작.

*히브리서 11:6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오늘 본문은 이렇게 정의를 내립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문의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는 이 말은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믿음이다. 믿음 생활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 이것이 여러분 믿음 생활,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예수를 믿기 전에는 나의 기쁨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내가 시간이 있고 재정이 넉넉하면 내가 원하는데 가서 시간을 보내고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사고 사람들에게 나의 만족과 나의 기쁨을 위해서 자랑하며 사는 것, 이것이 우리의 삶의 중심이었는데 예수를 믿든 그 순간부터 이제는 나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의 삶이 완전히 바뀌어졌다는 것이죠. 그래서 소요리 문답 1에 보면 이런 질문합니다. 인간이 사람이 사람의 목적이 무엇이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이냐? 물을 때 답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들의 인생의 목적이 처음에는 예수를 믿기 전에는 나의 기쁨이 목적이었는데, 예수를 믿고 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부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기뻐하며 그분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사람이 되는 목적이다. 라는 것이죠.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눈이 보이지 않아서 엄마 아빠를 못 알아봅니다. 그런데 눈이 열리고 엄마 아빠를 알아본 순간, 아이는 방긋 웃으며 엄마 아빠에게 웃음을 보이죠. 그럼 아이가 웃는 모습을 볼 때 그 부모는 너무나 기뻐서 또한 웃습니다. 아이는 자신을 보고 웃는 엄마 아빠를 보면서 더 밝게 웃죠. 이게 신앙이라는 겁니다.

내 기쁨을 살았다가 예수를 한 순간, 그 아이가 부모의 웃는 얼굴을 보며 함께 웃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우리가 기뻐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모습이다. 라는 것이죠. 주님을 알기 전에는 나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근데 주님을 안 순간부터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누가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원해서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교회에 나오는게 너무나 재밌고 믿는 사람들을 만나 신앙의 나눔을 하는게 너무나 재밌고 성경 읽는게 너무나 즐겁고 또 교회에서 하라는 봉사와 헌신 된 자리에서 기쁨으로 충성되게 헌신하는 모습이 내 삶에 가장 큰 기쁨이 되어지며 우리는 살아가게 되죠. 그래서 주변의 친구들과 지인들이 달라진 내 모습 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도 교회 가냐고,,,

오늘도 교회 가냐고 말합니다. 그래서 비아냥 거리며 이렇게 말해요. “교회 가면 떡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그때 우리는 할 말이 있습니다. 아니 어떻게 알았냐고, 교회 갔더니 떡이 나오더라. 찬양돼서 떡을 주고 교회 가더니 밥이 나오더라. 포에버에서 김밥을 주는데, 또 교회 왔다. 갔던 거 아니냐고, 교회 갔더니 떡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어떻게 알았냐고. 교회 갔더니 떡을 주고 밥도 주더라.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기쁨 가운데 살죠. 그래서 우리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서 늘 하시는 말씀처럼 ‘알 사람이 없도다’. 세상은 모르는 정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생활 갖는 그 기쁨이 우리 가운데 있음을 보게 되죠. 오히려 어떨 때는 그 기쁨이 어떨 때 우리에게 근심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교회 나오면 남편은 항상 교회에 나를 내려다 주고 자기는 서초구에서 맛있는 밥을 먹고 예배 끝날 때, 나를 데리러 왔더니 이 남편이 어느 날 예수를 믿은 순간부터 완전히 달라지는 거예요. 교회 나오기 시작하더니 훈련받기 시작하더니 다락방 참여하기 시작하더니, 어떨 때는 이제는 순장이 되어서, 화요일 순장반, 수요일 수요예배, 목요일 사랑의 전도단, 금요일 금요 기도회, 토요일 토비새(토요비전새벽예배), 주일 주일예배,,, 매일 교회 가서 어느 날 그 와이프가 걱정합니다. ‘이러다가 목사 되는 거 아니야?’ 기도해 달라고,,, 우리 남편 목사 되지 않게 해달라고,,, 이렇게 근심 어린 마음을 가질 때가 있죠. 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사람이, 예수를 믿은 순간부터 이것이 자기 인생에 가장 큰 기쁨이 되는,,,
여러분,
그렇다면 이 믿음 생활이 즐겁고 좋은 것인데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오늘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크게 세 가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 첫 번째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믿음은?
I. 첫째,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계신 것과 그를 찾는 자에게 상주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는 믿음이다. 라는 것이죠. 이것이 우리의 신앙의 시작이고 기본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면서 이 신앙을 지켜기가 참 어려움을 보게 됩니다. 왜냐면 세상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비아냥거리면서 말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는게 맞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게 맞는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당신의 삶에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맞는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너의 삶으로 증명하라고 비아냥거리며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 이런 핑계를 댈 때가 있죠.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데, 하나님은 살아 계셔, 다만 내 삶에 역사하지 않을 뿐이야, 이런 말로 우리는 핑계를 될 때가 있죠.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미션 스쿨을 이제 다니면서 선교부장이 되었습니다. 윤리 선생님이 갑자기 저를 선교부장 나와봐 하면서 강단에 세우셨어요. 저 60명의 학우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이제 기독교에 대해서 궁금한 거 있으면 선교부장에게 물어보라. 라고 한 거예요. 짓궃은 저희 친구들이 나올 질문은 뻔합니다. 첫 번째 질문 이거였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증명해 보이라’ 고, 지금 하나님이 살아 계심이 내 눈에 보이게 한다면 내가 이번 주부터 교회를 다니겠다고 친구들이 말을 합니다. 그때 제가 ‘나를 본 자가 하나님을 본 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이 생각이 안 났어요. 그 말이, 그리고 그 말을 할 만한 자신감도 없었습니다. 큰일 났다. 싶어서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거였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셨다.’ ‘하나님을 망령되이 여기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반 협박을 했습니다. 또 친구 관계니까,,,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탄 안 물러가라.’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답변이었습니다.

여러분, 온 세상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부인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해요. 창조론을 부인하고 진화론을 주장하는 이유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부정하겠다는 겁니다. 동성애의 모든 뿌리는 하나님은 틀렸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셨다는 거예요. 성경은 잘못됐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말은 결국에는 하나님을 부인하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주관자인 사탄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싫어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의심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랑의교회 영가족 여러분, 우리가 상황이 어떠하든 우리의 환경이 어떠하든 그거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신 분이심을 믿습니다. 우리 이것을 믿어야 된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말할 때 대표적인 성경의 구절은 열왕기상 18장에 나오는 갈멜산에서 여러분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 850대1, 엘리야 한 명의 선지자와 싸웠던 그 대결의 현장일 겁니다.

이 이 대결의 현장에서 엘리야는 무엇을 가지고 싸웠고, 무엇을 가지고 이 전쟁에 이겼냐면, 오직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싸워 승리했다는 것이죠. 그 선지자들이 세운 그 제단과 엘리야가 세운 제단 앞에 그들이 자신이 믿는 신들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바알 선지자 그리고 아세라 선지자들 850명이 외쳐 불러도 어떤 것도 나타나지 않았을 때 ,엘리야는 오히려 자신이 세운 제단 위에 ‘물을 부어’라고 말합니다.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을 부어라. 그리고 그 물이 재단에 출렁출렁해서 이 받으시는 불이 임해야 되는데 그러면 마른 장작을 올려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물을 부으라고 했어요. 흥건하게 적셔라. 그 이유는 뭐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그가 믿었기 때문입니다. 믿었으니까, 물을 부으라고 한 거예요. 그 믿음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의 그 믿음이 영적인 승리를 이루어 갔다. 라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끝까지 붙들어야 될 것이 무엇이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흔들리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지는 거예요. 8년 전에 기회가 있어서 인도 땅에 선교를 갔습니다. 한 100명, 120명의 20대, 30대들의 목회자가 되겠다고 모인 젊은이들, 신학생들과 함께 목회자 세미나를 했습니다. 여러분, 인도 땅은 처음에 시작할 때 신이 세 개로 시작했습니다. 브라마, 시바, 미슌으로 시작했다가 지금 인도 땅의 신이 무려 3억 3천만 개의 신이 있습니다.

지금도 신성한 어머니의 강이라고 말하는 그 겐지스 강은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강이에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강에 가서 몸을 씻으면 피부병이 낳는다. 그 강에 가서 몸을 씻으면 병이 낳는다. 그 강에 가서 그 오염된 물을 마시면 내 영혼이 깨끗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겐지스 강에 와서 머무시고 그 물을 마십니다. 말도 안 되는 우상이 섬기는 그 땅에 여러분 신이 3억 3천만 개가 있는 그 땅에 20대 30대에 목회자가 되어 모여 있던 그 젊은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 주고 어떤 격리를 해 줘야 이들이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눈에 보이는 현실은 답이 없는 거예요. 어떤 말로 위로해 줄 수 있을까?

하지만 분명히 하나인 것은 그 세상에 많은 우상(偶像) 신(神)이 있다. 할지라도,,, 내가 믿는 하나님이 내가 믿는 하나님이 유일한 하나님이고 내가 믿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다. 믿음 외에는 이길 수 있는 방법도 이길 수 있는 힘도 없더라는 것이죠.

여러분, 아무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부인할 수 없고 아무리 느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이 살아계심은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들의 삶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우리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요한복음 11장 40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함께 읽을까요? 시작.

*요한복음 11:40,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뭐라고 말합니까? 내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믿어야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어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내 삶 가운데서 보게 되는 줄 믿습니다.

※신대원 들어가서 조직신학 수업을 듣는데 신론의 과목이었어요. 그 조직신학 교수님께서 수업을 하면서 전도사님들에게 강조하면서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전도사님, 성경은 믿음으로 읽어야 됩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읽어야 됩니다. 성경은 이성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읽어야 됩니다. 그래야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봅니다.”

이 말씀은 저와 여러분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 겁니다. 우리가 살면서 여러분의 삶의 현실의 모든 것들을 다. 믿음으로 봐야 믿음으로 봐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우리 삶 가운데 보이게 되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영가족 여러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려고 하신 그 주의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게 되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그래서 믿는 자의 기도인 힘이 있고, 믿는 자의 삶에는 반드시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함을 믿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무엇일까요? 두 번째는 하나님 앞에서 오늘을 살아내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II. 둘째, 하나님 앞에서 오늘을 살아내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는다면,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 오늘도 살아가야 된다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는데 어떨 때는 불편하고 불이익이 다가오면 그때부터 마치 하나님이 아니 계신 것처럼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할 때가 있죠. 성경의 말씀이 이런 말씀이 있어요. 사사기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여호와의 눈 앞에서 악을 행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라는 것이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 앞에서 믿음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닌 다른 길을 우리는 택하며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원하시고 바라시는 바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기 원하시죠. 창세기 17장 1절인데 함께 읽겠습니다.

*창세기 17:1,
..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주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전능하신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너의 말과 너의 행동이 온전해야 된다. 완전해야 된다. 하나님 앞에서 말하고 하나님 앞에서 행동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이것을 우리는 코람데오, 신전주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겁니다. 주님 보시기에 내 말과 행동이 기뻐하실만 한가? 주님 보시게 나의 선택과 나의 일터와 나의 가정이 기뻐하실만 한가? 이것이 하나님 앞에 선 하나님 앞에 살아내는 믿음의 백성의 삶이라는 것이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치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 계신 것처럼,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할 때가 있어요. 내 자존심 하나 지키겠다고, 양심을 버려가면서 내 이익만을 위해서 믿음과 상관없는 하나님이 앞에 계신데도 불구하고, 온전하지 못한 거짓된 말과 바르지 못한 행동을, 우린 살아갈 때도 있다. 라는 것이죠. 우리가 갖는 하나의 착각이 있습니다. 내가 좋은 교회 다니고 좋은 말씀을 듣고 좋은 믿음의 성도들과 함께 하면 우리의 신앙은 자랄 수 있어요. 그런데 내가 좋은 교회 다닌다고 해서 내가 좋은 말씀을 듣는다고 해서 내가 좋은 사람들과 믿음의 교제를 한다고 해서 내가 그렇다고 좋은 성도가 반드시 되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이죠.

좋은 교회 다니고 좋은 말씀 듣고 좋은 성도들과 함께 하는 것이 나의 신앙과 별개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자처럼 말하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자처럼 행동하고 주님께서 보고 있는 자처럼, 우리는 섬기며 날아가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하나님을 기쁘게 하라. 우리 누구를 기쁘게 해야 돼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됩니다. 다. 알면서도 불구하고 사람의 눈치를 보다가 하나님의 시선을 잃어버리는 삶을 우리가 살게 된다는 것이죠. 여러분,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오늘도 살아내는 믿음임을 믿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이 믿음의 삶을 걸었던 성도들을 만나게 됩니다.

※2020년도에 코비드가 시작되고 1년 동안 교회를 오픈하지 못하고 다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린 다음에 2021년도가 시작되면서 이제 교회 현장이 오픈됐습니다. 교회가 오픈되고 나서 부분적인 오픈이었지만 그때 제가 섬겼던 교회에서 큰 두 개의 장례가 함께 왔습니다. 한 분의 장례는 98세 된 권사님의 장례였고, 또 한 분의 장례는 그분의 따님인 60대 중반의 그 따님의 장리였습니다. 98세 권사님께서 1년 만에 교회가 오픈되니까? 너무나 즐거운 나머지 교회 오셨다가 다리에 근육이 빠지셨던지 넘어셔서 고관절에 금이 가셨습니다. 그리고 고관절에 이제 수술을 하시게 됐어요. 병원에 입원하다. 보니까? 간호할 사람이 없어서 한국에 있는 따님이 엄마를 간호하겠다고 미국에 오게 됐습니다. 그리고 병원에 들어가서 어머니 권사님의 병원을 간호하다가 그 어머니 권사님과 따님 권사님이 그 병원에서 코비드에 감염이 되셨습니다. 안타깝게도 두 분 다, 폐렴으로 인해서 산소 호흡기를 의지하고 계셨어요. 2주가 흐르는 이후에 98세 된 권사님은 회복하지 못하시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됩니다. 따님 역시도 산소호흡기 의지해서 도움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따임 권사님의 남편과 또 손주들 아들과 딸이 미국으로 급히 들어왔습니다. 어머니 권사님의 장례를 드릴 때, 따님 권사님의 패는 이미 섬유화돼서 오늘 내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마치 코비드에, 코비드라는 전쟁터에 치루어 지는 장례와 같았어요. 장모님 또 할머니겠죠. 그 어머니 권사님의 장례를 드리면서 아내의 장례를 또한 준비해야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어머니 권사님의 장례를 치르면서 사위분과 그 형제들이 그 조가(弔歌)를 부르는데, 차마 목회자로서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었습니다. 그 사위와 아드님이 이런 찬양을 부릅니다. 슬픔 가운데 부르는 찬양이 이거였습니다. ♬‘내 평생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내 영혼 평안해 평안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어떤 일을 만나도 내 영혼 평안해. 하나님이 우리와 대장 되신 우리 대장 되시니 어떤 적을 만나도 내 영혼 편안해. 이 세상의 심판 때가 와도 내가 주님 품에 있으니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평안해.’ 어머니 권사님을 장례 치르고 와이프가 아내가 오늘 내일 하는 그 가운데서 부른 찬양이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은 평안해. 어떻게 이와 같은 찬양을 부를 수 있을까? 장례를 마치고 그 남편이 병원에 있는 아내를 찾아가서 내가 이런 찬양을 불렀다고 하니까? 아내가 힘없는 팔을 들면서 잘했다고 엄지를 이렇게 들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하루 이틀이 지나지 않아 그 아내 역시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런 여러분 이런 상황을 겪고 있다면 무슨 말로 여러분 이것을 견뎌낼 수 있을까요? 모든게 다 원망스럽고, 와서 엄마를 간호하라고 한 그 오빠가 너무나 싫을 수도 있고, 누가 누구 때문인 것 같고, 누구 때문에 실수한 것 같고,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원망을 가질 수밖에 없는 그 때에 그 따님의 장례를 치르며 아내의 장례를 치르는 그 가운데서 남편분과 그 아들과 딸이 이런 조가(弔歌)를 부릅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이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불었네.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가 되었고 전날에 한숨 변하여 내 노래가 되었네. 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을 하시고 늘 채워 주시네.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분별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늘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이 찬양을 남편과 자녀인 아들과 딸이 불렀습니다. 그리고 가족이 인사를 나눕니다. 남편 되신 분이 첫 인사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을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시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간호하다가 하나님의 품에 갔으니 이보다 값진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게 그 남편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아들과 딸이 흐르는 눈물을 참으며 이런 고백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항상 옳으십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완전하십니다. 우리는 완전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어머니가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물려 주신 그 믿음을 붙들고, 계속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만을 섬기며 우리는 살아가겠습니다.

이 믿음의 고백을 드립니다. 깨닫는 것은 우리 인생의 슬픔과 아픔과 이해되지 못하는 일을 만날 때 우리가 무엇으로 이것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그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이 이 믿음밖에 없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영가족 여러분,
우리들에게 눈물 날 일이 있고, 우리에게 억울한 일이 있고, 답답한 일이 있고 속상한 일이 있고, 어찌할지 모르는 막막한 순간이 찾아오고 내가 과연 견딜 수 있을까? 이겨낼 수 있을까? 싶은 그 수많은 어려움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우리가 그때 믿어야 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셀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나는 완전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걸어가야 될 고백임을 믿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아무리 고난스러워도 우리 세상 앞에 엎드리지 않고 거짓과 타협하지 않고, 우린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오늘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우리들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 됨을 믿습니다.

목회를 하면서도 여러분 절대로 목양에 게으를 수 없는 이유는, 주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에 게으릴 수 없고 우리가 살아가면서도 우리가 딴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주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에 딴 생각할 수 없고, 내 안에 유혹이 찾아오고 진리를 내려놓고 거짓과 타협하고 싶을 때도, 그럴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이 살아 계실 때문에 보고 있기 때문에 내가 그 길을 택하지 못하고 믿음의 길을 진리의 의 길을 걸어가야 되는 거, 여러분, 이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 됨을 믿습니다. 아멘, 그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는 믿음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 앞에서 오늘을 살아내는 믿음이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끝까지 붙들고 나아가는 믿음입니다. 히브리 11장 6절에 보면 하반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III. 셋째, 하나님을 끝까지 붙들고 나아가는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6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기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자기를 찾는 자에게 반드시 하나님은 상을 내려 주신다. 이 믿음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죠. 그래서 오늘 우리가 모여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유는, 이 약속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임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린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의 자리에서야 된다는 것이죠. 이런 말이 있습니다.

2천 년 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적은 믿었다. 그 앞에 나아가면 병든 자가 났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오병이어 기적이 나타나는 것을 그 모였던 사람들 다. 믿고 모였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구원자임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고,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를 믿지만 그러나 오늘날의 사람들은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가 주의 얼굴을 구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짖으면, 우리에게 초월적인 신비적인 하나님의 기적과 같은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하나님의 부르짖지 않는다. 여러분, 우리들의 기도는 주를 찾으면 주의 얼굴을 구하면, 주께 기도하면, 상주신 이심을 믿으며 나아가는 자가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일치 침략기에 있을 때, 이 나라를 살릴 수 있었던 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나라의 해방을 위해서 부르짖는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625 동란 때 온 나라가 붉게 물들을 수 있었을 그 위기 가운데서도 공산주의에 넘어가지 않고, 자유민주주의가 세워질 수 있었던 것도 여러분 교회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나라를 위하여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가 부흥하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보낼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도 1974년도에 엑스플로 74년에서 여의도 광장에서 6일 동안 무려 665만 명이 모여서 함께 기도했던 외침의 기도가 한국 교회를 부흥하는 교회로 한국 교회에 많은 선교사를 보내는 교회로 설 수 있었다는 것이죠. 포괄적 차별 금지법이 이 땅에 씨앗이 뿌려지고 뿌리를 내리려고 할 때 막을 수 있었던 것은 광화문 광장과 여의도와 시청까지 한국교회 250만 명의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현장에서 220만 온라인에서 130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외쳤던 간절한 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이 나라가 넘어가지 않고 영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설 수 있었음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도 상주신 이심을 믿으며 나아가는 기도를 주님은 기뻐하시고 응답하여 주시는 줄 믿습니다.

엘리야가 3년 6개월 동안 가물었던 이스라엘 땅 가운데 피를 내리게 할 때, 그가 기도하고 나서 그의 종에게 말합니다. 밖에 나가 봐라. 구름이 모였느냐?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구름 한 점 없습니다. 또 가서 기도합니다. 밖에 나가 봐라. 아무것도 없습니다.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까지 그는 포기하지 않고 기도합니다. 그가 기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뭐예요? 하나님은 그를 찾는 자에게, 그를 찾는 자에게 반드시 상을 내려 주신다. 이 믿음이 가물었던 이스라엘 땅 가운데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게 하신 은혜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영가족 여러분,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도 상주신 이심을 믿는 자를 기뻐하시는 주님께 날마다 나아가게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역대하 16장 9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역대하 16:9,
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를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말이 무슨 뜻이에요? 하나님은 지금도 온 세상을 찾아다니시면서 두루 감찰하시면서 나를 찾는 자, 나 얼굴을 구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실 준비를 하고 계신다. 아멘. 그 은혜가 믿는 우리에게 있게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영가족 여러분,
이 세상에 어떤 어두움이 있어도, 절대로 어두움은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새벽을 기도하며 기다리는 자에게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 빛을 막을 수 있는 어둠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며 이 짙은 어두운 밤을 기도로 기도로 지세운다면 반드시 주님께서 우리에게 승리의 날을 허락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사랑의 교회가 토비새를 강조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왜 토비새가 중요할까요? 우리가 토요일 날 모여서 모두가 잠든 시간에 모여서 한국 교회를 기도하고,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면, 열방 위해서 기도하면, 어떤 어둠의 권세가 우리이 나라의 이 민족의 이 교회의 온 열방에 틈타지 못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모여서 기도해야 되는 거예요. 사랑하는 영가족 여러분, 우리 주님은 지금도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를 하나님을 붙들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를 기다리고 계시고, 기뻐하시며 응답하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기 원합니다. 사랑하는 영가족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는 겁니다. 그것은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살아내는 믿음으로 사는 겁니다. 그것은 오늘도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 믿기에 그를 붙들고 끝까지 나아가는 자에게, 주님은 기뻐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기쁨으로 받아 주시고 영광을 보게 하실 하나님을 날마다. 소망하며 살 수 있는 우리 사랑의 교회 모든 영가족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을 믿게 하시고,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시며,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주님을 붙들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믿음을 기쁨으로 받아 주시며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자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릴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요약
오늘 본문과 관련하여 말씀하신 것은
-신앙생활은 나 자신의 만족이 아닌,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크게 세 가지인데,
1.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는 믿음이다. 세상의 의심과 부정 속에서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살아 계심을 믿고 바라볼 때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보게 된다.
2. 하나님 앞에서 오늘을 살아내는 믿음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며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의 자세로 신실하게 사는 삶이다. 세상의 이익이나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바로 서야 한다.
3. 하나님을 끝까지 붙들고 나아가는 믿음이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반드시 상 주시는 분임을 믿고,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전심으로 주를 찾고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능력과 은혜를 베푸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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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9월 13일) 로마서 강해 ⑰
제목: “죄(罪)와의 피나는 투쟁(鬪爭)과 고뇌(苦惱)
-(The Fierce Struggle and Anguish Against Sin)”
말씀: 로마서 7:7-25
찬양인도: 쉐키나(이동선부목사님), 시온찬양대(4부)
대표기도: 조미영권사님(4부)
사회: 임상규 부목사님
광고안내 및 기도: 윤대혁 후임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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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7:7-25,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9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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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청명한 가을의 문턱의 이 귀한 시간이 주일날, 로마서 17번째 강해(성경 본문의 뜻을 하나하나 풀어서(講) 설명한다(解))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의 삶의 모든 메마름과 갈증을 채워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메마름을 갖고 살아갑니다. 아마 누가 우리 영혼의 엑스레이를 가지고 영혼의 영혼을 이렇게 촬영할 수 있다면 오늘이 자리에 어떤 분은 지난 한 주간 동안 아주 감사한 마음으로 오신 분도 있을 것이고, 근데 어떤 분들은 너무 피투성이 같은 삶의 현장이 힘들어서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내 삶을 살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오늘 예배의 자리에 온몸으로 오신 그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 모든 분들에게 말씀을 통한 생수가 여러분들에게 길어지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로마서 7장의 말씀을 본문을 이제 계속 강의를 하고 있는데 자, 먼저 로마서 6장 18절에 있는 내용이 나옵니다. 뭐라 나오냐면 같이 보겠습니다.

*로마서 6:18,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죄로부터 해방되어 우리 지난번에 6장에 우리가 죄로부터 해방되어 우리가 정말 신부로서 신랑 되신 예수님과 연합되었다. 이 놀라운 선포를 듣고 은혜를 받았는데, 문제는 오늘 7장 본문 19절에 보면 뭐라고 나오냐면 19절에 시작,

*로마서 7:19,
19 내가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거기에다가 23절은 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함께요.
*로마서 7:23
23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한쪽은 죄에 해방되었다. 이렇게 선언이고 됐는데 또 한쪽은 내가 정말 죄의 법에 사로잡혀 있다. 또 19절에 내가 원하는 바 뭐예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않을 뭐예요? 악을 행하는 도다.

오늘은 말씀에 좀 여러분 깊이 들어가기 때문에 잘 살펴야 되는 것이에요.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다르게 고백을 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로마서를 읽는 저희들은 한쪽만 바라보면 안 되고, 복음을 입체적으로 복음을 단면적으로 보면 안 되고, 복음을 평면적으로 보면 안 되고 입체적으로 전체를 보아요. 전체를 무슨 뜻인가 하면 우리의 이 시각이 말씀으로 시각이 신분과 상태를 구별할 수 있어야 돼요. 무슨 말이냐? 로마서 6장에서 우리의 신분이 예수님께 속하게 되어 어떻게 의롭게 되었는지, 나와 있고 로마 7장은 새로운 신분 얻은 사람이라도 현실 속에서 삶 가운데 치열하게 부딪히는 내면의 상태를 말씀하고 있어요. 제가 이렇게 한번 써 봤어요.

“죄의 지배와 죄의 잔존을 구별해야 한다.”
-무슨 뜻인가? 우리는 이미 로마서 6장에서는 죄의 지배권이 깨어져, 그 죄가 우리를 지배할 수 없도록 주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신 줄로 믿습니다. 처리가 되었어요. 그 로마 7장에서 여전히 성도 안에서 활동하는 죄의 잔존(殘存) 세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죄는 왕좌(王座)에서 쫓겨났지만 아직 전쟁(戰爭)터에서는 물러가지 않았어요. 이런 뜻이에요. 625 때, 우리 9.28 이제 6.25 때 우리 다. 힘들다가 62 6호 인천상륙작전을 통하여 서울이 수복(修復)되었어요. 수복되었는데 서울은 이제 전 수복됐는데 문제는 저 남쪽에 지리산에 뭐가 남아 있는 거예요? 음. 파라티산, 빨지산이 남아 있는 거예요. 이 빨지산이 남아 갖고 준동을 하는 거예요. 이미 전체적으로 수복이 되었는데 이 잔존(殘存) 세력들이 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런 이유로 로마서 6장, 7장을 평면적으로 읽으면 안 되고 전체를 보는데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우리는 이미'와 '아직'의 긴장 속에서 '지금'의 복음을 읽어야 한다.”
-부사 세 가지 크게 하겠습니다. 시작, 우리는 이미와 아직의 긴장 속에서 지금의 복음을 읽어야 한다. 오늘 계속 기억하십시오. 자, 우리는 다시 첫째 뭐예요? 이미와 그다음에 뭐예요? 아직의 기적 속 긴장 속에서 뭐예요? 지금의 자, 무슨 뜻이 우리는 이미 죄 사함을 받은 줄로 믿습니다. 이미 우리는 의롭다을 받은 줄로 확신합니다.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아 가지고 보혈로하신 예수님께 연합된 줄로 믿습니다. 이미 죄의 짐에서 다시 해방된 줄로 확신합니다.

그런데 아직 우리 속에 죄의 존재가 빨지산처럼 완전히 제거(除去)되지 않고 아직 우리가 영화로운 몸을 입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지금 뭘 해야 되? 지금 성령님을 의지해서 죄와 싸우고 죄와의 피나는 투정을 해야 되는 것이에요. 잔존하는 세력들과 각개의 전투를 벌려야 되는 것이에요.

저는 이제 이 말씀을 전체적으로 쭉 보면서, 본문이 좀 길 길고 쉽지 않은 본문이지만 제가 딱 하나 확인한 거 이거예요. 여러분과 저의 힘으로는 죄를 이길 수가 없어요. 다시요. 우리 실력으로는 죄를 이길 수가 없어요. 우리 힘으로 죄를 이긴다고 하는 그 순간 우리는 종교가 되고 종교인이 되는 것이에요. 우리는 오늘 마이 말씀 속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내 힘으로는 죄를 이길 수가 없지만 성령님을 통하여 지금 말씀하시는 그 음성을 듣기를 소망합니다. 평면적이 안 전체적으로 봐요. 첫 번째 생각할 것은,

I. 숨가쁜 깔딱고개를 넘어야.
-우리 숨 가쁜 우리의 삶의 깔딱고개를 넘어가야 돼요. 이 깔딱고개란 말이 뭔지 제가 이거 이거 이거 표준어인가 하고 제가 살펴보았더니 깔딱고개다. 표준어, 자, 이런 뜻이에요. 설악산에 가면 대청봉이 있고 설악산에 가면 울산바위가 있어요. 울산바위 한번 올라가 보셨어요? 올라가려면 기가 찹니다. 계단을 800 계단을 올라가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깔딱, 깔딱, 깔딱 하다가 올라가는 거예요. 로마서 오늘 7장에 이 깔딱고개를 넘어가야 다음번에 말씀할 로마서 8장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에요.

제가 처음 시작할 때, 로마서의 산에 들어 가십시다.①, 기억나시죠? 로마사의 산에 들어가고 그 산에 있는 수많은 아름다운 나무도 보고 계곡도 보고 돌도 보고 이 물도 흐르는 걸 보고 이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이 로마서의 깔딱고개, 우리에게는 무슨 깔딱고개가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가? 8장에 정상이 올라가게 뭐가 기다리고 있는가? 이 죄 문제가 심각(心覺)하다는 거예요. 죄 문제가.

오늘 본문에는 본문에만 죄라는 말이 다섯 번을 나와요. 개혁개정판에 죄냐 죄를 죄가 죄가 죄는 죄가 죄로 죄로 죄느니라 죄느라 죄의 죄의 15번이나 죄가 나와요.

그래서 여기에 이제 죄를 죄에 대해서 뭐라고 대표적으로 말씀하느냐면 8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로마서 7:8,
7: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
-그리고 또 11절에 보니까? 똑같이 한번,
*로마서 7:11,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말이 좀 이렇게 한번 딱 보면 와닿지 않는데 7절에 보니까? 그 계명이 뭐냐면
*로마서 7:7,
7 ..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우리가 율법 율법을 통하여 탐내지만 이런 거 있는데 이 계명인데 이 계명을 우리에게 주었는데 이 계명을 우리가 순종하고 할 그게 아니고 우리는 불 순종의 이 죄 성이 있어 가지고 아담과 하와부터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그런데 그게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해 가지고, 그 유혹(誘惑)에 넘어가 버리는 거예요. 심지어 이 죄는 율법(律法)조차도 아주 업유즈 하고 율법조차도 이용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죄가 호시탐탐(虎視眈眈) 우리를 공격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율법 자체는 문제는 아니에요. 죄는 율법을 나쁘게 이용해 가지고 우리 속에 탐심을 일으키고 우리를 속이고, 결국 사망으로 이끌어가는 거에요. 그래서 9절 뒤에 보니까? 읽겠습니다.

*로마서 7:9,
9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그렇다고 나를 죽인 범인이 율법인가? 그건 아니라는 겁니다. 13절에 보니까? 이렇게 나와 있어요.
*로마서 7:13,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
-이 내용 자체를 여러분들 보시는데 죄의 잔존 세력 빨치산들이 나를 어렵게 하는데 이 내면의 문제를 가지고 우리 고통을 갖게 하는데, 이제 핵심이 뭐냐면 바울은 자기의 이 죄 문제를 우리 인간의 죄 문제를 외부의 환경이나 무슨 남을 통하여 남의 문제를 통하여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고 바울은 이 죄 문제를 자기 내면의 문제로 자기의 문제로 알았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놀라운 내용이 하나 나와요. 그것이 뭐냐? 바울이 계속해서 1인 칭을 썼어요. 내가 나는 어떻게 되나? 나의 문제는 무엇인가 하는 죄가 15번 나오는데, 나의 문제 남 환경이나 남을 탓하지 아니하고 바울이 나의 문제 1인 칭을 얼마나 썼는가 본문에서 많이 썼어요. 7절부터 25절까지, 나라는 1인 칭, 내가 내가 나는 내가 내가 내 속에 내 육신 뭐 나는 나를 내 자신이 35번을 썼어요.

-좀 많이 쓴 거 같은데 반응도 안 하시네요. 그러니까? 나의 문제를 죄와 나의 문제에 대해서 숨 넘어갈 정도로 깔딱고개로 속사포로 말하고 있는 것이에요.

드디어 자기의 문제를 세 가지를 가지고 설명해요. 자기의 삶의 문제, 내면의 문제, 바울이 체험한 세 가지 고뇌(苦惱)를 얘기하는 거예요.이 고뇌는 아마 신앙생활 깊이 들어간 분들이나 처음 믿는 분들이나 아마 예수님 믿고 변화되고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고백한 분들이라면 이 고는 다 비슷하게 아 여러분 여러분들이 이렇게 뭐라 그럴까요? 동의가 될 거예요. 마음이 같이 아마 이해가 될 거예요. 자 첫 번째 고해가 뭐냐? 15절을 보겠습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II. 둘째, 내면의 세 가지 고뇌(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는 고뇌).
*로마서 7:15,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뭐예요?
○첫째,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는 고뇌(현상).
-내가 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고 미워하는 것을 행한다. 이것은 옳고 그름을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왜 그랬는지, 나 자신도 이해가 안 된다는 거예요.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청소년들 보고 문제 일으키는 자식들 보고, 너 너 왜 왜 그러니 왜 그러니? 나도 몰라요. BJR이야 배 째라 ㅋㅋㅋ내가 내가 내가 원하는 걸 알면서도, 옳고 그럼을 알면서도 못 하는 거예요. 아마 바울은 이 말씀을 하면서 자기 고뇌 중에 하나가,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심히 다투어서 갈라섰잖아요. 기억나십니까? 그 바나바가 누굽니까? 바울을 인도해 가지고 바울을 이 복음의 역사에 등장시킨 위대한 은인(恩人)이에요. ‘내가 바나바 왜 다투었을까?’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지 몰라요.


그래서 15절에 첫 번째 고해는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는 고뇌, 두 번째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 가지고 18절에 이렇게 나와. 18절에 같이 보겠습니다.

*로마서 7:18,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둘째, 선을 원하나 행할 능력이 없는 고뇌(원인).
-선을 행하고 싶은 의지는 있지만 내 안에 남아 있는 죄의 잔존 세력 때문에 실행할 능력이 없는 권해요. 끊는 것이 좋은 줄 알면서도 끊지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할 줄 알면서도 반복(反復)하는 것이에요.

베드로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고 어떻게 이겨내려고 그러는데요. 쿨쿨 찼어요. 예수님이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선을 행하고 싶은 의지는 있는데, 남아 있는 잔존 세력 때문에 이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세 번째 고뇌가 뭐냐? 21절에 같이 보겠습니다.

*로마서 7:21,
21..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셋째,선을 행하려 할 때 악이 함께 존재하는 고뇌 (본질).
-이거는 이제 영적 전쟁의 본질을 깨닫는 고뇌예요. 여기서 함께 있다는 이 번역된 헬라어는 바로 내 곁에 바짝 붙어 있다. 내 옆에 악이 찰싹 달라붙어 있다는 거예요. 껌딱지처럼 내가 가는 곳마다 악도 동행을 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선을 행하고자 할 때, 조금만 손을 뻗으면 다할 수 있는 그곳에 악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이에요.

마르다가 예수님 모시고 벳세다에서 예수님을 잘 섬기려고 그러는데 보니까? 마리아는 가만히 있는 거예요. ‘저 애는 왜 가만히 있습니까?’ 좋은 일인데도 보니까? 그 뭐라 그럴까? 불평이 나오는 거예요. 좋은 일인데도,,,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해요. 우리가 이 땅에서 아무리 거룩해지고 아무리 선하고 아무리 높은 곳에 도달해서 하나님과 깊어진다. 할지라도 우리 속에 여전히 이런 죄 성이 자리잡고 있는 것 알아야 되는데 이런 연약한 속성이 다 우리에게 다. 있는 거예요. 완벽하게 거룩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실수와 허물에 빠지고, 수많은 문제 봉착(逢着)을 하는 거예요. 이런 연약(軟弱)함이 다. 있는 거예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버이 주를 앞에 놓고 제가 장남이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야, 이번 어버이의 주 한 주간은 ‘내가 우리 어머니나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든지 내가 다 한번 순종을 해 보자.’ 그건 선한 거죠. 그죠? 무슨 말씀을 그래서 뭐 종 치라면 종 치고, 종 치고, 그다음에 뭐 교회 뭐 뭡니까? 뭐 청소라고 심부름도 말하면 하고 뭐 많은 것들을 이렇게 제가 실천을 했어요. 그리고 기특하게도 동생들과 함께 이번에는 아침 몇 몇 번을 우리 우리가 식사를 우리가 준비하자. 어머니 아버지 위해서 우리가 준비하자.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이 밥을 했어요. 밥할 때 물이 요 만큼 하야 돼요. 요즘은 뭐 물 그 다 밥솥이 다 있지만 옛날에는 딱 이 감으로 잡아야 돼, 제가 장남이었으니까,,, 일주일 내내 제가 부모님을 순종(順從)을 잘했어요. 그리고 아 드디어 주일 예배가 되었어요. 주일 예배가 되어 가지고 아 이제 주일 예배 어버이 주일 날, 제대로 예배드리러 가야 되겠구나, 하면서 이제 뭐 개척 교회였으니까? 세면 바닥에다 돗자리 깔고 예배를 드리는데 가는데 아침에 이제 어머니 어머니의 옷을 주시는데 보니까? 양말을 주셨는데 양말이 구멍 난 양말이야. 그래서 구멍 난 양말이라 할지라도 주셨으니까? 다. 순종하니까 네, 하고 구멍 난 양말을 신었겠어요? 안 신었겠어요? 그 순간 엄마 왜 나한테 이렇게 구멍 난 양말을 주세요? 라고 항의하는 그 순간 내 마음속에 아차, 자 무슨 말을 하느냐? 우리 속에 아무리 잘하고 싶어도 우리 약점들이 다 있다는 것이에요. 우리가 다. 한계가 있다는 것이에요. 이거는 평생을 살아낸 어른들도 마찬가지예요. 교양 있는 지식인도, 신실한 선교사님도, 이런 속성 때문에 속으로 싸우는 거예요.

학식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다 이런 속성이 다.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21절에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로마서 7:21,
21..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그 내면에서 두 영이 전쟁을 버리고 있는 거예요. 25절 뒤에,,,

*로마서 7:25,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이런 뜻이에요. 한 성도가 오랫동안 충성스럽게 교회를 섬겼어요. 어느 날 자신보다. 늦게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 더 크게 칭찬받고 중요한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입으로는 겉으로는 그분 보고, 축하합니다. 정말 축하합니다. 말은 하지만 마음속에는 두 개의 목소리가 충돌(衝突)하는 거예요. 속에 남아 있는 죄의 뿌리와 욕망은 이렇게 속삭이는 거예요. ‘왜 나는 안 알아줘?’ 내가 저 사람보다. 더 많이 객관적으로 수고를 했는데, ‘아이 마 치 아쁘라 마’ 어 ‘차라리 그가 실패했으면 더 좋겠다.’ 근데 동시에 또 성령으로 새로워진 속사람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저 사람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다. 그의 성공은 나의 실패가 아니고, 그의 성공이 축복이다. 여러분 다른 이 사람의 마음속에 다른 사람을 축복하고 싶어 하면서도 한편으로 시기가 있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 불평이 있고 겸손하게 섬기고 싶으면서도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있고, 이런 성향 있죠. 내면의 전쟁이에요. 그래서 항상 제가 말씀드리지만 ‘동’자가 위험한 거예요.

동문(同門), 동창(同昌), 요새는 동생(同生)도 좀 위험하고 제일 위험한 게 동서(同壻)야. 동서(同壻). 다. 이런 이런 동력(同力) 자, 뭐예요? 이 내면의 전쟁이 얼마나 치열(熾熱)한지, 23절에 보니까? 이렇게 나와 있어요. 23절에,

*로마서 7:23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이 싸운다, 사로잡는다는 이 용어 자체가 전쟁 용어예요. 마귀(魔鬼)도 우리에게 전쟁을 거는 거예요. 치열하게. 마귀도 군대를 정렬(整列)시키고 군사 작전에 돌입(突入)하는 것처럼, 그래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내주는 내 속에 있는 죄의 세력이 우리를 무너뜨리고 파멸시키고 낙담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 멀어지게 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전열(戰列)을 가다듬고 전쟁(戰爭)을 치르려고 준비(準備)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오래 다니고, 중직 자이고, 교회 생활 오래 한 분들일수록 정말 조심해야 되는 것이에요. 정말 조심해야 되요. 제가 이제 말씀 여기까지 드렸는데 지금까지 이런 내면의 권의 죄와의 투쟁은 피나는 전쟁이 있다는 것은 이것은 나쁜 게 아니에요. 이게 믿음이 없다는 말도 아니에요. 오히려 제대로 전쟁을 준비하도록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은 싸우잖아요. 영적(靈的)으로 죽은 사람에게 싸움이 없어요. 죄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그 사람 안에 죄를 거스리는 새로운 생명(生命)의 원리(原理)가 들어갔다는 뜻이에요. 죄와의 피너는 투쟁과 고뇌를 한다는 이 사실은 그 사람 안에 죄를 거스리는 새로운 생명의 원리가 들어갔다는 거예요.

*“죄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그 사람 안에 죄를 거스르는 새로운 생명의 원리가 들어왔다는 뜻이다.”
-주님을 더 닮아가겠다는 이런 새로운 생명의 원리가 들어간 줄 믿습니다. 이 바울의 탄식(歎息)은 성령께서 죄의 무감각 했던 마음을 깨우셨다는 증거예요. 그래서 신앙이 깊어질수록 은혜가 많아도 갈등(葛藤)이 있는 것이고, 신앙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죄와의 충돌(衝突)를 피할 수가 없어요. 신앙이 깊어질수록 죄가 더 많이 발견되는 거예요. 그 이유는 뭐냐? 죄가 더 많이 많아진 게 아니라, 죄가 점점 더 죄답게 보이는 과정(過程)이에요. 이 성화라는 것은 죄가 점점 작게 보이는 과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거룩하심 앞에서 죄가 더 죄게 보이는 과정이에요.
*“성화는 죄가 점점 작게 보이는 과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거룩하심 앞에서 죄가 점점 더 죄답게 보이는 과정이다.”
-그러니까? 성숙(成熟)할수록 더 깊이 자각(自覺)하게 되는 거예요. 성숙할수록 더 죄에 대해서 더 예민해지는 거예요. 아멘입니까? 성숙할수록 우리는 더 큰 소리를 못 치는 거예요. 옛날에는 내가 자신이 있어 가지고 눈빛이 번쩍번쩍 하는 거야. 근데 성숙할수록 내면을 들어볼수록 아 나는 이런 죄성이 있구나. 내 속에서 이것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구나. 이걸 돌아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주님을 닮아가고 온유(溫柔)해지게 되는 거예요. 할렐루야!!~.

자, 이런 뜻이에요. 바울이 처음에 이걸 자기가 내면 자가 갈등(葛藤)하고 막 내가 이렇게 하면서 아, 내가 뭔가 했을 때, 제일 처음에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뭐라고 했냐면, 고전 15장 9절에 이게 주후 55년쯤 됐어요. 55년쯤,
*고린도전서 15:9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사도 중에 가장 뭐한 자라? 작은 자라. 처음에 받은 은혜 사도 중에 나는 가장 작은 자라. 그런데 5년쯤 지나고 주 60년쯤 되었을 때는, 에베소서 3장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에베소서 3:8,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도 더 작은 나이니라.
-작은 자보다도 더 작은 나라고 더 깊이 들어갔어요. 내면의 이 어려움,이 내면의 이 고뇌를 겪어놓은 바울이, 작은 자, 정도가 아니라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 그다음에 드디어 바울이 마지막에 썼던 디모데전서에 보면 다. 같이 읽겠습니다.
*디모데전서 1: 15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죄인 중에 이거는 거의 5년쯤 AD 한 60 5년쯤, 55년, 60년, 65년, 5년 5년을 10년을 거치면서 작은 자 작은 자 중에 더 작은 자 죄인 중에 내가 괴수(怪獸)라고 사역이 깊어지고 주님의 은혜를 더 많이 알아갈수록 자기의 낮아짐을 고백하고 더 부족함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성도가 성화 될수록 내면의 전쟁이 더 격렬해지는 이유는 처음에는 겉으로 나타난 행동으로만 죄를 보지만, 성숙할수록 죄의 뿌리를 보기 시작하는 거에요. 우리는 오늘이 자리는 제 모습만 본 분이 계시고, 더 성숙할수록 제의 깊은 뿌리를 보고 계시는 분들이 계세요. 이 오늘 이 예배는 아마 죄 뿌리를 더 깊이 보는 분들이 성숙성 많이 계세요. 그래서 이런 뜻이에요. 우리가 분노하고 화를 열 때 겉으로 아 분노하고 화를 죄송합니다. 이게 아니라 그 아래 숨어 있는 자기 중심성, 우리가 열심히 봉사하는데 그 봉사 속에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정 욕구,. 그리고 남들을 분별하고 남들을 판단할 때 사실은 그 속에 있는 냉소와 교만, 그리고 염려속 염려인데 염려 속에 자리 잡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 성공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욕망, 이런 것들이 다 숨겨진 죄의 뿌리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살아가는 동안에 가장 경건한 바울 같은 사람이 이토록 실험했다면 우리도 이런 실험을 하는 것, 내부의 전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아니다. 어때요? 자연스러운 거예요. 자연스러운 거에요. 여러분, 살다 보면 기가 막힌 일들이 많아요. 딱 보면 나하고 안 맞는 사람들 옆에다가 많이 붙여 놔요. 그 그냥 보기만 해도 은혜가 안 돼. 보기만 해도 케미가 안 맞아, 꼭 옆에 원수 같은 빌런들을 한 명씩 갖다 놓는 거예요. 근데 하나님은 그런 사람 붙여 놓고 우리 속에 죄 성과 죄의 뿌리를 보게 하는 거예요. 자기의 판단, 자기 의로움을 주장한 사실은 그 안속에 그 안속에 있는 죄의 뿌리를 봐야 되는데, 오늘 저는 이런 상황 속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죄의 문제는 내 힘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데, 어떻하면 좋을까? 내 힘으로 해결한다는 것 자체가 이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그렇게 하겠다는 종교인들이고, 세상 종교인데 우리는 복음의 신비하는 은혜를 깨달아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님으로 고백하고, 죄에서의 자유를 얻게 하며 보혈의 능력 이걸 우리가 믿는 사람들인데,,,

저는 오늘이 상황 속에서 제 마음에 아 그렇구나, 말씀을 통하여 깨달은 두 가지 진리가 있어요. 돌파구 방법, 브랙드로 하는 방법 첫째 24절에 보니까,
*로마서 24a,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로마서 24b,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 누구도 죄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첫 번째는요. 솔직하게 내이 죄송과 문제를 주님 앞에 고백하는 것이에요. 솔직하게 탄식하는 것이에요. 주님, 특별할 정도로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고 겸손해야 돼요. 하나님이 죄 문제는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첫 번째, 돌파구, 특별할 정도로 솔직하게 겸손해야,
-나이가 들어도 남들이 볼 때 성숙하다. 그래도,,, 내 죄의 뿌리를 내가 아는 이상 주님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다 바울이 가진 해결책이었어요. 주님 저는 곤고한 사람입니다. 이 사망의 법에서 내가 나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 저는 탄식합니다. 저는 제 힘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한 번씩 제가 말씀드리지만 저 만23살 때 그 당시 우리 교단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대학부를 제가 맡았어요. 만 24살 때 너무나 대단한 주의 분들이 많지만 나가 그걸 맡고 20대 중반에 나는 청년의 정욕이 없나요? 나는 20대 중반에 약점이 없나요? 토요일 날 하루 종일 아침에 학교 갔다가 토요일 날 토요일 날 리더십 제자 훈련하고 주요일 날 아침에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종일 예배드리고 다. 겉으로는 멀쩡하게 열심히 하지만, 주중에는 나도 육신의 약점을 갖고 있는 인간이라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자주자주 떼굴떼굴 구르는 거예요. 주님 저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제임으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에요. 약점이 그대로 있는 거예요. 그런데 지나놓고 지금 다 보면 그때 ‘오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건져내랴’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나. 주님 앞에 솔직히 고백하는 그것이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주신 은혜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이 되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이 말씀을 방송으로 듣는 여러분들, 수많은 분들이 오늘이 말씀을 듣는데, 여러분의 이 죄성의 뿌리를 생각하면 여기는 큰 소리 칠 사람 아무도 없기 때문에, 바울이 그랬다면 바울이 죄인 중에 괴구라고 고백했다면 그것도 가장 성숙할 때, 우리는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으니 오로 나는 곤고(困苦)한 사람이로다. 주님 나는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솔직(率直)하게 겸허(謙虛)한 자세로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은 그것 자체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길을 주실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죄 문제를 해결 못 한다 사람의 힘으로 죄 문제를 해결하려는 순간 종교가 되고 종교인이 되어 버린다.

-또 하나는 25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
*로마서 7:25a
25a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솔직한 고백과 또한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내 힘으로 결코 해결할 수 없으니 죄 문제는 인간의 힘으로 결코 해결할 수 없으니 내 삶의이 부족한 부분을 주님께 전적으로 위탁하고 주님께 감사할 때 주님이 돌파구(突破口)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랬어. 감사하노니, 감사하노니 그래서 여러분, 죄와의 피나는 투쟁을 위하여 솔직함뿐만 아니라, 이 죄를 이기겠다는 이 첫걸음은 강한 의지나 결심이 아니라 죄를 대적하는 첫 단추는 자신의 모습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에요. 다윗처럼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도다. 솔직함을,,, 바울은 죄를 구원할 능력이 자기에게 없음을 인정하고 누가 나를 건져내라고 탄식하고 그래서 죄와 죄를 이기기 위하여서는,

”죄와의 피나는 싸움은 주먹을 불끈 쥐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인정하고 무릎을 끓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다 "주님, 주님이 아니시면 이겨 낼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인정하고 무릎을 꿇는데 시작하는 거예요. 주님이 아니시면 이겨낼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죄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죄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 종교가 되고 종교인이 되어 버리는 것이에요. 우리는 종교인이 아니라 크리스천이에요.

우리는 주님 없으면 못 사는 사람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처절한 고뇌의 현장, 피나는 전쟁의 현장, 적들이 전열을 가다듬고 우리를 공격하는 그런 현장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이것은 일반적인 상상과 반응을 뛰어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죄와의 편안한 투쟁의 아주 중요한 해결 방법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이것이 죄와의 피라는 처절한 투쟁 가운데서 승리하도록 도우시는 결정적인 열쇠가 되는 것이고, 젊은이들 말하면 치트키, 만능 열쇠, 우리가 실패해도 이기게 하는 열쇠인 줄로 믿습니다. 이런 내용은 방법이나 수단이 아니라 인격이에요. 인격,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이것은 인격이에요. 인격, 인격, 그리고 이렇게 감사할 때의 감사는 여러분과 저의 교만(驕慢)과 절망(絶望)을 동시에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내가 이겼을 때 내가 잘해서 이겼다. 라고 생각하는 교만을 이기고 내가 넘어졌을 때 나는 끝났다. 라고 생각하는 절망을 동시에 처리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겼을 때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다고 고백을 하고 넘어졌을 때는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전히 나를 붙들고 있다. 라고 고백(告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내가 감사(感謝)하리로다.

예수님께 가까이가 와이파이 가까이 가면 이기고, 멀 멀어지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안 되는 거예요. 주님과 가까이 가면 솔직히 가까이 가면이 가까이 가는 강도가 강해지면 이기고 멀어지면 죄 성과 연결되고 멀어지면 데이터 요금은 폭탄 맞고, 마귀의 보이스 피싱에 당할 수가 있고 죄의 놀이가 되고,

죄의 연약한 죄의 뿌리를 보면서 한 30여 년 전에 저에게 놀라운 이걸 이기게 도와줬던 중요한 찬양 있었어요. ~~♬주께서 나를 이끌어 주사 세상의 죄를 이기네,,, 주의 보혈로 나를 씻으사 주 앞에 서게 하소서~~(The Lord leads me forth, overcoming the sins of the world.). !~~~ 세상이 나를 다. 감사하고 죄가 나를 다. 감사하고 있지만 그 주님께 감사하고 fade away!!!(사라지다)~ 내 죄 성을 고백할 때에 다 그것이 물러갈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여러분 다 우리 연약한 자들입니다. 바울조차 이랬는데 우리가 뭐 중불나는 존재라 우리 다 연약한 존재 다 실수할 수 있고, 다 연약할 수 있고 지금도 사람 때문에 갈등하고 있고 지금도 수많은 아픔과 뭐 어떻게 보면 억울함과 상처가 수만 있지만 이걸 주님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기도: 하나님 아버지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나 오른 나는 공고한 사람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뿌리는 늘 상처받고 힘든 우리 주님 오늘이 말씀으로 승리의 길을 열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로마서 8장을 앞에 놓고 이 7장에 이 숨 가쁜 고백을 내면의 자아를 투쟁하는 우리의 수많은 갈등을 주님 나는 곤고한 사람입니다. 고백하며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전적 의탁을 통하여 승리하는 온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부족하다고 꺾지 않으시고 오늘 이 순간이 자리까지 불러신 주님 앞에 모든 영광과 감사를 올려 드리며 말씀 앞에 순종하여 모두가 다 바울처럼 주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빚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받들어 간절히 간절히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요약
우리는 이미와 아직의 긴장 속에서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는 '무력함과 곤고함의 고뇌'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오고 오는 죄의 깔딱고개'를 돌파하해야 한다. 우리가 성숙할수록 '더 깊이 숨겨진 죄의 뿌리'를 알아 날마다 '죄악에서 이끌어 내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며, '교만과 절망'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3 사랑의교회가 '보리떡을 내어드리는 진심-전심- 충심'으로 제111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9.14-18)를 섬길 때, 한국교회가 새 차원으로 비상하기를 간절히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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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9월 6일)
제목: “다시 열정으로(A Return to Passion”
말씀: 사도행전 20:24
찬양인도: 쉐키나(이동선 부목사님), 시온찬양대(4부)
대표기도: 조덕현 안수집사님(4부)
사회: 임상규 부목사님(4부), 임병영(1부), 이기호(2부), 장단희(3부) 부목사님.


설교자: 윤대혁 후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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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0:24,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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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옆에 분과 인사하시죠. 평안하셨습니까? 인사하겠습니다. 평안하셨습니까? 평안하셨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은 누구신가? 라는 그 질문 앞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우리는 자주 얘기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신음하는 우리의 기도 소리에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많은 하나님의 좋은 선하신 그 이름을 우린 이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입에 잘 달라붙지 않은 또 다른 하나님에 기억해야 될 성품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열정의 하나님이다’ 라는 겁니다. 이사야서 9장 7절의 말씀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함께 읽겠습니다.


*이사야 9:7,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하나님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시는 열정의 하나님이죠. 그래서 하나님 우리를 향하여서 하나님께서는 주무시지도 않고 쉬지도 않으신다. 라는 그 열심의 열정의 하나님임을 우리 가운데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성경에 보면은 하나님의 열정의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지 창조할 때에도 6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에는 인간을 손으로 직접 부으셔서 생기를 불어 넣으신 다음에 아담이라 하셨던 하나님의 열정의 창조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원치도 않았어요. 달라고 하지도 않았지만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여서 원하지도 않았는데 사랑하는 아내 하와를 주셨던 하나님의 열정이 창세기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을 보여 주시며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너희 자손 이렇게 많게 할 것이고, 그 약속을 이루어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거라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광야에서도 40년의 시간 동안 하나님은 만남을 보내 주셔서 굶지도 않게 하시고 배고프지도 않게 하셨던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의 열정이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이 땅에 보내셔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이루시는 열정이 있었죠. 그래서 성경에는 하나님의 열정, 열심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났던 모든 사람들은 열정의 하나님을 만났기에 열정의 삶을 또한 살아갑니다. 그래서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예수를 만난 순간부터 하나님 만난 순간부터 내 마음 안에 마음이 불처럼 뜨거워지고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 안 된다. 내가 주의 영광을 살아야 되겠다는 결정과 결심과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들을 우리는 고백하게 됩니다.


노아 역시도 120년 동안 산에 배를 지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던 열정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공양을 뒤로하고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그 열정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예배에 대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는 회복을 향한 기도의 열정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온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재건되길 원하는 민족을 향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사람의 이 열정은 하나님을 만난 그 순간부터 그 열정을 품게 되죠. 오늘 읽었던 사도행전의 이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그가 어떻게 삶을 살았는지를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면서 쓴 구절이기도 한데요. 우리 한번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읽겠습니다. 시작.


*사도행전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은 예수를 다메섹에서 만난 그 순간부터 자신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복음의 사도로 평생을 살고자 하는 자신의 생명이 죽는다 할지라도 막힘 없이 내어 주었던 열정과 열심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여러분들은 열정의 사람입니까? 아니면 열정을 회복해야 되는 사람이신가요? 이 이 질문 앞에 어떤 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지금은 아닌데 왕년에는 내가 왕년에는 대단했습니다. 그 왕년에 그 대단했을 때, 목사님 저 만나셨어야 되는데 이렇게 얘기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갈렙은 그가 인생을 이렇게 고백하잖아요. 그때나 40년이나 이때나 85세가 되었을 때나 내 마음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왜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왕년에 그때는 이런 이야기를 할까요? 왜 우리가 지금 열정을 회복해야 되는 상태가 된 걸까요?


제가 전도사 시절에 제 마음에 참 흡족한 때가 언제였냐면 그때는 타고 다니는 그 차에 기름이 만땅이었을 때 정말 만족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냥 마음이 밥을 안 먹어도 뭔가 배부른 거예요. 그리고 더운 날에는 에어컨을 시원하게 켤 수 있고 또 추운 날에는 히터를 빵빵하게 틀 수 있고 어디를 가든 하나도 두렵지 않 않았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가든 아니면 내가 가야 될 길을 놓치든 할 것 없이 헤매인다 할지라도 하나도 어려움이 되지 않았어요. 그 이유는 내 차에 기름이 만땅이라는 것. 근데 어느 날 기름이 앵꼬가 되어서 이제 기름을 넣어 달라는 빨간색 그 등이 켜지는 딱 순간부터 마음이 긴장감이 찾아옵니다. 빨간 신호등에 차가 멈추면 마음이 초조해지는 거예요. 가야 될 길을 놓쳐서 길을 잃어버리면 그때부턴 패닉의 혼란에 빠집니다. 더워도 에어컨을 켤 수 없고 추워도 히터를 틀 수 없고 심지어는 라디오도 켜지 못해서 운전할 때, 마음 안에 계속 이런 생각을 반복합니다. 다시는 운전하지 말자. 다시는 운전하지 말자. 다시는 운전하지 말자.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영적인 삶의 연료 탱크가 고갈되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아무것도 하기 싫은 거예요. 그냥 하고 싶은 생각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들의 인생의 영적인 연료 탱크를 비게 만든 사건은 무엇 때문에, 우리가 영적으로 이렇게 식어지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요?


자, 이렇게 세 가지를 나눈다면 첫 번째 열정이 식는 이후 첫 번째는 여러분 그것은 여러분 죄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있었던 열정, 우리 안에 있던 소망, 우리 안에 있던 그 꿈과 그 기대가 죄를 지은 순간부터 그 열정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죠.


◎왜 열정이 사라지는가?
I. 첫 번째는, 죄(罪)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은 하나님 앞에 사명을 받았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이 충만하여 다스리라는 그 사명을 받았는데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순간부터 그들은 잎을 가져다가 몸을 가리고 숨어 버렸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여러분 잠수를 탔다는 겁니다. 이렇게 초라한 인생, 사명이 있었던 인생이 뜨거웠던 인생이 하나님 앞에 열심을 다해 살았던 인생이 한 순간에 하나님 앞에 숨어 버리는 잠수한 인생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지었던 여러분 죄 때문입니다.


여러분 죄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라지게 만듭니다. 그리고 죄는 하나님 멀어지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를 다 막아 버리죠. 마치 구멍 난 항아리처럼 아무리 부어도 부어도 채워지지 않아서 메마른 심령으로 살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 바로 죄다. 라는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의 예배 열정이 있었던 그 다윗은 그가 범죄하고 나서 시편 51편에 그가 잃어버린 것을 회복시켜 달라고 죄를 통하여 잃어버린 것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하는 그 구절이 시편 51편의 구절인데, 그는 이것을 회복시켜 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주의 성신을 내게 거두지 마옵소서. 하나님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하나님 내 입술의 찬양을 다시 열어 주옵소서.”


여러분, 죄로 인하여 잃어버린 걸 말합니다. 뭘 잃어버렸다고요? 성령 충만함을 잃어버렸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그 임재를 잃어버려서 그 마음의 담대함과 자신감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죄로 인하여 구원의 즐거움을 잃어버렸습니다. 기쁨이 사라졌어요. 감사가 사라졌습니다. 즐거움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죄로 인하여 또한 노래가 사라졌어요. 찬양이 멈추기 시작했습니다.이 모든 잃어버린 그 열정을 씌워 버린 그 이유가 어디였습니까? 바로 다윗이 지었던 죄로 인하여 그는 그 열정과 모든 기쁨과 감사가 사라져 버린 것이죠. 두 번째 왜 열정이 식어져 버릴까요? 첫 번째는 죄입니다. 두 번째는 허무주의입니다.


◎왜 열정이 사라지는가?
II. 두 번째는, 허무주의(虛無主義)입니다.
-모든 것이 하기 싫어져요. 이 말은 뭐냐면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한들, 내가 이렇게 기도한들, 최선을 다한들, 열심히 순종하고 산들 뭐가 달라지겠는가? 이 이 허무주의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이 허무주의는 이것이 팽찬 때가 언제였냐면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차 세계전이 끝난 다음에 황폐해 버린 세상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데 이와 같은 전쟁의 아픔이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하나님이 만드신 이 아름다운 세상을 이렇게 황무케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이 하나님에 대한 의심(疑心)을 갖기 시작하면서 사람들 마음 안에 허무주의가 들어왔습니다. 믿는 우리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게 맞는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게 맞는가?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오시는게 맞는가? 그렇다면 왜 나의 인생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쳇바퀴 돌듯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인가?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는가? 이와 같은 의심의 마음이 들 때 내 안에 있는 불탔던 열정이 식어지기 시작한다. 라는 것이죠. 세 번째 왜 열정이 식어질까요? 세 번째는 비난하는 말들입니다.


◎왜 열정이 사라지는가?
III. 세 번째는, 비난하는 말들입니다.
-은혜받고 열심히 봉사했습니다. 훈련받았습니다. 또 다락방에 들어가서 사역에 들어가서 그리고 또 순장으로 서임받고 또 직분자가 되어서 너무나 재밌게 즐겁게 신앙생활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이런 이야기였어요. 저분 이상한 것 같아요. 뭐가 이상한데요? 그냥 이상합니다. 저분이 예수 믿기 전에 이래 때문에요. 저래 때문에요. 지금 저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가 다 이유가 있대요. 순장되려고 뭐 되려고 이런 얘기 할 때마다,,, 내 마음 안에 식어지는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또 나름 순장이 되어서 열심히, 열심히 또 이제 복습을 하고 순장반에 또 담임 목사님의 또 말씀도 듣고, 또 예습도 하고, 또 복습도 하고, 강의도 또 계속 반복해서 듣고 실습도 한다고 인형을 세워 놓고 ‘여기다,, 김집사님 최집사님’ 붙여 놓고 다 실습까지 해서 열심히 지난 봄을 했는데, 가을 텀이 시작됐는데 이상한 얘기가 들립니다. ‘목사님 저 지난 저 다락방에서 봄 때 아무것도 배운게 없어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락방 바꿔 달라는 이야기들을 때 순정으로서 내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되겠다. 못 해 먹겠다. 라는 그 생각을 가질 때가 있죠. 수많은 비난(非難)과 비방(誹謗)의 말들이 내 신앙의 불을 꺼트릴 때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열정이 왜 사라지느냐가 마지막은 내 삶에 동역자가 없는 외로움입니다.


◎왜 열정이 사라지는가?
Ⅳ. 네 번째는, 내 삶에 동역자가 없는 외로움입니다.
-마음을 기댈 사람이 없고, 그리고 기도 제목을 나눌 사람이 없고, 나를 위하여 눈물로 눈물로 함께 해 줄 사람이 없다는 그 순간이 있을 때, 여러분 우리는 탈진에 빠질 때가 있어요. 침체(沈滯)에 빠지죠.


여러분, 하나님의 기적을 행했던 그 엘리야 역시도 놀라운 기적을 행했지만 그가 기적을 행했는데도 불구하고 아합왕과 이세벨 그 사람이 하나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아 왔던 낙심마 그 이세벨이 내가 엘리야를 반드시 죽이겠다고 말하는 그 비난의 말을 들을 때 침체가 찾아왔어요. 근데 문제는 나와 함께 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마음이 생겼을 때, 여러분 엘리야에게 찾아왔던 영적인 침체, 여러분 식어진 열정이 있었다는 것이죠. 이와 같이 여러분 죄와, 허무주의와, 비난의 말들과, 동역자가 없다, 는 것이 우리의 열정을 식어지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다시 우리 열정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는 영적인 열정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크게 세 가지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첫 번째 다시 열정으로 가라면,,, 첫 번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반드시 제일 먼저 회복하셔야 합니다.


○ 다시 열정으로 가려면?
①첫째,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받았던 그 은혜가 주님께서 부으신 은혜가 우리가 죄를 지은 순간부터 그 은혜의 통로가 다 깨어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은 이런 말을 그랬습니다. 여러분, 고린도후서 11장 2절인데 함께 읽을까요? 시작.


*고린도후서 11:2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
-내가 하나님의 열심이, 내게 부어 주시는 열심으로, 내게 주시는 은혜의 힘 입어서 내가 그 일을 감당하는데 하나님의 은혜의 파이프가 끊기는 죄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받을 수 있는 완전히 깨어져 버린 항아리기 때문에 받을 능력도 없고 담아낼 수 있는 힘이 없으니 우리에게 열정이 식어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요. 제일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은혜의 파이프를 활짝 열어야 되는데, 그것이 뭐냐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된다는 것이죠.


이 이 열정이란 이 단어가 여러분 라틴어로 이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부어진다. 그니까? 열정은 하늘로부터 부어지는 거예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하나님으로부터 그 힘과 능력과 지혜가 부어져서 감당해 나가는 것, 이것이 열정인데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일 먼저 회복해야 된다는 것이죠. 열정은 각오도 결단도 아닙니다. 열정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거라는 거예요. 그래서 요한복음 15장 4절 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5:4~5,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나를 떠나서는 주님과 멀어져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우리는 하나님과의 여러분 회복된 관계 가운데 있을 때 열정이 회복되는 것이죠. 다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야 됩니다.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거룩한 신부가 되어서, 사랑의 친밀한 교제(交際)에 들어갈 때, 우리 안에 다시 열정(熱情)이 시작되는 것이죠.


지난주 오정현 다임 목사님께서 여러분 신랑 되신 주님과 결혼한 신부 된 이야기를 나누시며 우리들의 인생은 사랑 우선주의(優先主義)가 되어야 된다. 말씀 기억하시죠? 그래서 목사님께서 지난 20전 24년에 자신의 목회를 이와 같이 단장(短章)하셨습니다. 나는 24년의 목회를 24개월의 시간처럼 보낼 수 있었다.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제가 그 말씀을 듣고 얼마나 얼마나 회개(悔改)한지 모릅니다. 목사님 24년의 목회를 24개월 같았는데 나는 지난 3개월의 목회를 왜 3년이라고 말했을까? 왜 내가 3년이라고 말했을까? 그래서 앞으로 3일이라고 말하려고 지금 마음에 먹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하나님의 열정은 이와 같은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에게 부어지면 지치지 않습니다. 머물지 않습니다. 그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로마서 여러분 8장 26절의 말씀에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나의 부족함을 나의 연약함을 성령 하나님은 반드시 도와주셔서 감당하게 하시고 이기게 하시고 승리케 하여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주님과의 사랑의 인격적인 교재가 회복돼야 되는 거예요.


이미 목회할 때 청년 이미 목회를 10년 했습니다. 뭐 한국 청년 사역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민교회 청년 사역도 그 목회자가 가정을 오픈해서 청년들을 많이 초대하고 또 음식을 대접하는 이 일들이 참 많이 이루어집니다. 남과주 사랑의 교회 부목사 시절에 청년부가 어려워졌다는 얘기 듣고 교회가 저보고 이제 청년부를 맡아 달라고 어 하셔서 청년부를 다시 일으켜야 되는 그 사명과 비전으로 청년부에 이제 담당 목사가 되어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딱 가 봤더니 청년들이 많이 지쳐 있고 위로 위로가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아내에게 앞으로 우리가 청년들을 위로하고 회복시키기 위해서 아내의 허락하에 청년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음식을 나눠 주고, 또 베풀어 주고 함께 기도하자는 시간을 저는 아내의 기쁨의 허락 가운데 저는 이걸 시작을 했습니다.


한 7월 8월 동안 한 20개 팀, 한 250에서 300명이 이제 저희 집에 월요일, 목요일, 토요일 이렇게 와야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저 아내의 기쁨의 허락 가운데 여러분 시작을 했습니다. 근데 한 열개 팀 11개 팀 반환점을 돌았을 때 인가요? 어 그날도 청년들이 오는 날이었는데 아내가 음식 이렇게 준비하는 중, 칼로 이렇게 음식을 썰다가 갑자기 칼을 내려놓고, 저를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거였습니다. “좋니? 좋아 그러더라고요.”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ㅋㅋ~~ 그래서 그날 청년들이 오는 날이니까? 또 이제 집을 청소를 하고 청년을 맞이해서 음식을 나누고, 또 기도 제목 나누고, 그다음에 한 10시 반 되었을 때 빨리 가라 가면서 청년들을 이렇게 보냈어요. 근데 치우겠다는 청년들도 이제 빨리 가라고 이제 주차 빨리 차를 빼야 되니까? 이게 보냈는데 그 안 가도 되는 집에도 가까운 형제도 같이 가서 이렇게 마중한 다음에 이제 방에 집에 딱 들어오니까? 거실에는 이제 먹다 남은 음식물들이 있고, 또 주방에는 해야 될 설거지가 있는데, 아내가 너무나 지쳤던지 소파에 누워서 이제 지쳐서 잠이 들은 겁니다. 가까이 갔더니 아내가 여기 자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내를 깨웠습니다. 너무나 피곤했던지 깨우기에도 아내가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근데 제가 그때 아내를 이렇게 안아서 이제 방으로 가려고 했는데 어 용기가 나지 않아서 못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끝까지 깨웠습니다. 끝까지 깨워서 끝까지 깨워서 자기야, 오늘 우리 이거 정리 이거 내일 아침에 하고, 오늘은 그냥 빨리 가라고 끝까지 깨워서 방에다. 누고 저는 옆에 이제 누워 있는데, 마음 안에 화가 이게 화가 올라오는 거예요. 이 청년들, 이 청년들 막 분노를 참을 수가 없어서 밤을 새고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가지고 제가 새벽 기도를 갔습니다.


제가 새벽 기도를 간 거는 그날 아침에 치우기 싫어서 간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진짜 기도하려고 갔을 뿐이에요. 그래서 이제 갔는데 마음 안에 하나님 더 못 하겠습니다. 나의 청년 사역, 정말 교회가 보내서 갔는데 나 도저히 못 하겠다고 막 이런 마음 있는데 하나님 앞에 가면 하나님께 저희 마음 만져 주시잖아요. 제 마음 만져 주시기 시작하는 거예요. 기도가 바뀌었습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주님 도와주세요. 주님 도와주세요. 그때 생각났던 찬양이 이런 찬양이었습니다. 가사는 이렇습니다. ♬주의 사랑 주의 능력 내게 부어 주소서. 주의 사랑 주의 능력 내게 부어 주소서.♪~~
아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이런 노래인데요. 주의 사랑, 주의 능력 내게 부어 주소서. 이 이 찬양을 한 30분, 수십 번을 계속 반복해서 불렀어요. 그런데요. 제 안에서 뭔가 이렇게 차가 올라오는 게 있는 거예요. 다시 기쁨이 올라오고, 감사가 올라오고 즐거움이 임하고 꽉 채워진 참 하나님으로부터 부음 받은 그 새 힘과 새 은혜가 저한테 가득 차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아침이 이제 금요일이었는데 금요일 날 금요기도가 있었거든요. 금요. 기도를 이제 준비하고 이제 미리 나가서 금요일 기도 오는 청년들 가운데 어제 왔던 목요일 날 왔던 그 청년들이 옵니다. 근데 그 미웠던 마음은 온데 간데 없고, 오면 오자 멀리서 반가 인사하면서 어제 우리 집에 와서 너무나 고마웠어요. 너무나 고마웠어요. 얼마나 내가 기쁜지 몰라요. 우리 집에 냉장고는 너희 집에 냉장고라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오세요. 이러고 있는 제 모습을 보기 시작했어요. 한 순간에 달라져 있는 제 모습 봤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그 은혜의 자리를 지키면 그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감당할 수 있는 힘뿐만 아니라, 넘치는 은혜와 능력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그 자리에 떠나면 안 되는 거예요. 날마다 거룩한 주의 예배이 자리를 반드시 목숨 걸고 지켜야 되는 줄 믿습니다.


토비새의 은혜에 나아가서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내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 주시는 그 은혜를 사모하며 나와야 되는 거예요. 훈련반에 나와야 되는 거예요. 말씀 앞에서야 되는 거예요. 기도의 자리를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 내게 은혜 주시옵소서. 라는 마음으로 그 자리를 지켜갈 때, 하나님의 관계 회복을 통해서 우리를 다시 열정의 사람으로 바뀌시는 그 은혜가 저와 여러분 삶 가운데 반드시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두 번째 우리가 어떻게 해야 다시 열정으로 살게 될까요? 두 번째는 표대를 향하여 우리가 달려가야 합니다.


○ 다시 열정으로 가려면?
②둘째, 풋대를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자,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 사명이 시작되는데,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저 이렇게 살기 원합니다. 내 인생의 비전을, 내 인생의 꿈을 여기에 드리며 내가 주님 앞에 하나님께는 전심이요. 사람에게는 진심이요. 그리고 하나님께 맡기신 사명과 사역에는 우리가 충심을 다하겠다는 그 마음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요.


여러분, 그러나 하지만 그런 일을 감당할 때마다. 우리를 가로막는 많은 일들이 생깁니다. 우리에게 사명이 있는데 그 사명대로 걷지 못하게 하는 온갖 비난들과 어려움들과 핍박들이 우리에게 찾아올 때가 있어요. 사도 바울 역시도 복음을 전하고 그 사명의 길을 걷는데 복음을 전할 때마다, 사도 바울이 과거에 지었던 그의 잘못들을 사람들이 낱낱이 이야기하며, 그는 사도가 될 자격이 없다. 라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복음을 들어서 고침 받은 사람들이 이제 배신(背信)해서 반대로 사대 사도 바울을 핍박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복음을 전해서 세웠던 교회가 한 순간에 영지주의 이단 사상이 들어와서 교회가 혼미게 되는 일들을 그가 맞이했을 때, 마음 안에 이게 말이 된다는 말인가? 내가 복음을 전한들, 내가 열심히 한들,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라는 찾아오는 실패감과 낙심의 마음이 그에게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도 불구하고요. 사도 바울이 어떻게 이겨내냐면 이렇게 고백합니다. 자, 13절의 말씀인데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빌립보서 3:13,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뭘 말하는 거예요? 내 삶에 있었던 나를 가로막고 나를 붙잡고 있는 수많은 많은 이들이 내 앞에 있었지만 그것을 난 다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않고, 앞에 있는 것을 나는 잡으려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14절이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빌립보서 3:14,
4 풋대를 항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어디에 포커스 한 거예요? 내가 표대를 향하여 나를 부르신 그 부르심을 향하여 나는 오늘도 오늘도 달려가겠다. 이것이 다시 열정으로 사는 힘이었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영가족 여러분,
우리가 반드시 믿음으로 살고, 의을 구하고 살고 거짓과 싸우고, 악한 것과 싸울 때, 찾아오는 마음이 있어요. 이렇게 열심히 한들 이렇게 수고한들 뭐가 달라지겠는가? 뭐가 바뀌겠는가? 나만 손해 보는 거 아닌가? 이런 마음이 들 때 그 지나왔던 모든 것들을 다 뒤로하고 우리가 앞에 계신 주님, 의에 굶주리고 의를 위해 싸웠던 죄와 싸웠던 복음을 위해서 걸었던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위하여 그분을 표대로 삼아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후배 교역자들에게 이런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제 50대 초반이 되니깐 저도 제 후배 또 부교역자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고충을 이렇게들을 때가 있어요. 목회하다 보면 왜 힘든 일이 없겠습니까? 왜 어려운 일이 없겠습니까? 왜 오해받고 왜 손가락질 받고 그런 일이 없겠어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 부목사님들 역시도 그런 일을 겪을 때, 또 후배 목사님들이 와서 이렇게 말해요. 목사님, 저 더 이상 못 하겠습니다. 저 목회 안 하고 그냥 딴 일 하고 싶어요. 아내도 힘들고 아이도 힘들고 인생도 어렵고 그냥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 있는데, 꼭 목회 안 하고 그냥 세상 일 하면서 하나님의 기쁨에 일을 감당하며 살게요. 라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힘들어하는 많은 부목사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해 줍니다.


우리가 목회하면서 이런 오해가 있을 거라는 거, 이런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거, 이런 환난과 고난이 있을 거라는 거 우리가 모르고 이 자리에 온 거 아니지 않냐, 복음 위해서 살다 보면 목회 길를 걷다 보면 오해도 받고 핍박도 받고 그리고 손가락질도 당하고 힘든 일 겪는다는 거 다 알고 오지 않았느냐? 다 알고 왔는데 불구 왜 지금까지 다 알고 왔는데 왜 이제 와서 딴 소리 하냐고,,, 우리 다. 알고 왔다고 모르고 오지 않았다고 다 알고 왔잖아,,,


여러분이 이야기는 우리들의 신앙도 마찬가지예요. 믿음의 길을 거는데 말씀으로 사는데 핍박(逼迫)이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환난(患難)이 있습니다. 방해(妨害)를 합니다. 왜 너만 그렇게 사냐고 손가락질도 합니다. 그런데 이미 우리는 우리가 믿음대로 살다 보면, 죄와 싸우다 보면, 거짓된 것과 싸우다 보면, 말씀대로 살다 보면, 하나님의 나라 의를 구하다 보면, 세상에 핍박과 환난이 있다는 것 우리가 다 알고 있잖아요. 여러분 안 걷겠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어요. 그런 일이 있어도 그런 핍박이 있어도 나는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제자의 길을 나는 끝까지 걷겠습니다. 우리는 그 표대를 향하여 살아갈 때, 다시 주님께서 우리를 열정의 사람으로 바꾸시는 그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열정으로 살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자, 첫 번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돼야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표대를 향하여 달려가야 됩니다. 마지막으로 동역자를 만나야 되고 우리가 동역자가 되어져야 됩니다.


○ 다시 열정으로 가려면?
③셋째, 동역자를 만나고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의 선한 동역자들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신앙을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야 된다는 것이죠. 함께 격려하고, 함께 기도해 주고, 함께 믿음의 길을 걷는 믿음의 동역자들이 우리 주변에 있어야 되고 우리도 그와 같은 사람이 돼야 된다는 거예요. 어찌 보면 내가 왜 영적으로 잘하지 않을까? 남에게 영적으로 날마다 낙심과 또 침체 가운데 식어진 신앙으로 살까? 살펴보면 여러분 안에 여러분 믿음의 동역자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다락방에 속하지 않아서 홀로 교회를 왔다갔다 하다 보니 내 믿음이 자지 않고 뜨거워지지 않고 오히려 식어져 버리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다. 라는 것이죠. 사도 바울이 1차 전도 여행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2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 마가를 데리고 가냐, 데리고 가지 않느냐의 문제로 1차 전도 여행과 함께 갔던 바나바와 다투게 됐습니다. 이 다툼은 초대교회가 시끄러웠던 소돔과 같은 다툼이었다고 말하고 있어요. 당시 바나바는 초대교회의 큰 어른이었습니다. 반면에 사도 바울은 그 예수님을 부인하고 교회를 핍박하다가 온 사도였기 때문에, 그를 해하고자 하는 사람이 초대교회에 여전히 있었어요. 그렇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다 이런 다툼의 문제 앞에서 다 바나바의 편을 듣는 것 같은 거예요.


사도 바울이 홀로 남겨진 것 같은데, 2차 전도 여행을 떠났을 때, 그를 따랐던 사람이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근데 그 2차 전도 여행은 외로움 가운데 있었던 그 사도 바울의 실라가 있었지만 2차 전도 여행 때 사도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을 통해서 수많은 믿음의 동역자들을 만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2차 전도여행 때 빌립보에서, 그는 평생 동역 자된 ‘루디아(Lydia)’ 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2차 전도에서 루스드라 라는 곳에서 그는 ‘디모데’라는 제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2차 전도 여행 때, 육체에 가시가 있어서 복음을 더 이상 전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을 때 그를 옆에서 병을 살펴주는 주치의와 같은 ‘누가’라는 사람을 그는 만나게 돼요. 그 동역자가 있었기 때문에 여러분 사도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디모데를 만나서 너무나 놀라운 배움의 감사의 시간을 보내게 돼요. 왜냐면 여러분 디모데는 그의 어머니가 유대 사람이고, 그의 아버지가 헬라 사람인데, 그 디모데를 보니까? 너무 목회를 너무나 잘한 겁니다. 그의 모습을 통해서 여러분 사도 바울이 너무나 귀한 거를 배워요. 그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런 고백하시죠?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이와 같은 엄청난 고백이 누구를 통해서 영향받았을까요? 그의 동역자였던 디모데를 통해서 그는 배웠다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들의 삶에 이와 같은 동역자가 있어야 우리는 끝까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길을 완주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왜 시어졌는가? 왜 내 신앙이 잘하지 않는가? 어찌 보면 교회 왔는데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신앙이라면, 신앙이 식어질 수밖에 없어요. 반드시 여러분 다락방에 들어가서 순장님들과 또 다락방 순원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고 함께 기도 제목을 나누고 함께 울어주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그 믿음의 공동체를 동역자를 만나고, 동역자가 되어주는 그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랑의 교회에는 서로에게 정말 많은 칭찬과 격려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사님 때문에 우리 교회가 행복해졌습니다. 권사님 때문에 제가 행복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가 서로 격려하고 아름답게 믿음의 길을 뜨겁게 끝까지 할 수 있는 그런 교회로 함께 세워가게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최근에 제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사랑의 교회에서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제가 제일 행복하지 않을까? 아, 이런 고백을 늘 하게 되는데 왜냐면 오정현 담임 목사님의 늘 따뜻한 격려와 사랑과 또 가르쳐 주시는 귀한 배움이 있고, 또 사랑교 영 가족분들이 만날 때마다. 좋아해 주시고 칭찬해 주시고, 사진 찍자 하시고 막 그러니까요. ㅋㅋㅋ ~


제 안에 막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거예요. 잘하고 싶다. 잘하고 싶다. 칭찬이 있으니까. 요즘에 저희 아내가 이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자기는 왜 교회 가면 집에 안 와요? 왜 집에 올 생각을 하네요?’ 뭐 이런 얘기를 왔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여러분, 누군가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용기를 내서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걷게 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도 그가 열정 있게 사역하셨던 그 힘은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삶이 있었습니다. 병든 자가 오고 눈먼 자가 왔을 때 하늘을 우러러서 하나님을 바라보시며 기도하고, 그 일을 감당하셨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었어요. 또 예수님은 또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핍박과 방해와 공작(工作)이 있다 할지라도,,, 멈추지 않아야 되는 십자가(十字架)의 사명(使命)의 길이 있으셨습니다. 그 예수님께는 함께 복음(福音)의 길을 걸어가는 제자(弟子)들이 있었어요. 그러기에 주님은 열정 있게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셨죠.


우리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역시도 하나님과 인격적인 깊은 교제를 통해서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사명 푯대를 향한 비전을 품고 사명을 품고 그리고 믿음의 동역자 영 가족들과 함께 영적이고, 영원하고 영광과 고난을 함께하는 영 가족들과 함께 뜨거운 열정의 사람으로 인생의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에 식어버린 영적인 열정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죄로 인하여 멀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게 하시고 뒤에 있는 것을 내 삶에 나를 무겁게 하는 힘들게 만드는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고 나에게 주신 우리에게 주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믿음의 동역자를 허락하여 주시고, 우리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격려가 되는 동역자가 되게 하여 주셔서, 사는 날 동안 하나님께 전심이요. 사람에겐 진심이요. 하나님께 맡기신 사명과 비전에는 우리가 충심을 다하는 주의 성도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올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요약
하나님은 뜻을 이루기 위해 쉬지 않으시는 ‘열정의 하나님’이시며, 그분을 만난 성도 역시 사명과 열정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죄, 허무주의, 타인의 비난, 그리고 함께할 동역자의 부재와 외로움은 영적 연료를 고갈시켜 열정을 식게 만든다. 식어진 영적 열정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며,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중요하니, 열정은 하늘로부터 부어지는 은혜이므로, 주님과의 친밀한 인격적 교제와 예배와 기도의 자리를 최우선으로 지켜야 한다. 또한 푯대를 향한 매진이 되어, 지난날의 장애물에 매이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사명)을 향해 멈춤 없이 달려가, 동역자와의 연합을 해야 한다. 홀로 서는 신앙이 아닌 공동체 안에서 함께 기도하고 격려하며 사명을 완주할 동역자를 만나고, 스스로도 좋은 동역자가 되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 명확한 푯대, 그리고 공동체와의 연합을 통해 주님께 전심, 사람에게 진심, 사명에 충심을 다하는 열정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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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8월 30일)-로마서 강해 ⑯번째
제목: “성화의 첫 열매, 복된 결혼”
말씀: 로마서 7:1-6
찬양인도: 쉐키나(이동선 부목사님), 시온찬양대 외
대표기도: 이민신 권사님
사회: 임상규 부목사님(4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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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7:1-6,
1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할렐루야.
-오늘부터 우리 본격적인 가을 사역을 시작하는데, ,이 사역을 시작하면서 제 마음에 ‘하나님 아버지, 우리 성도님들은 개인적으로 이번 가을 사역 동안 주님을 더 잘 닮아가는 성숙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교회는 훈련과 섬김을 통하여 풍성한 열매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 주십시오.’ 참 간절한 소원이에요.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가 나무를 보고 심한 책망(責望)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신앙생활 어떤 분들은 금방 한 분도 있지만 10년, 20년, 30년, 40년, 50년 그렇게 우리 신앙생활 하면서 우리 나름 주님이 주시는 성숙의 열매가 있어야 되지 않겠나? 그래서 오늘 본문 5절에 보니까? 5절에,

*로마서 7:5,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육신에 있을 때에는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었는데, 죽음의 열매를 맺었는데 죽음에,,,4절에 보니까? 또 뭐라고 넣었냐면

*로마서 7:4,
4b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시에 가서 우리가 누구를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성령님을 통하여 죽음의 열매가 아니라, 생명의 열매, 이런 놀라운 말씀의 생명의 열매가 우리에게 있어 지기를 원합니다. 지금부터 수년 전에 저희 교회 토요일 날 아침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 토요비전새벽예배(토비새) 때 수천 명의 성도들이 모였어요. 모였는데,,, 그날 누가 왔느냐면 미국의 전 부통령이었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왔어요.

와 가지고 그분이 이런 얘기를 했어요. 자기는 아 정치인이라고, 그런데 정치인이지만 자기는 공화당원이라고. 그렇지만 공화당원이라고,,, 공화당원이기 이전에 자기는 그리스도인이라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얘기를 하면서, 근데 자기는 그리스도인이란 증거가 뭐냐, 할 때에 성경을 대하는 자세라고 그런데이 성경을 대할 때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 통찰력과 지혜를 얻기 위하여 성경을 보는데, 자기는 성경을 통찰력과 지혜를 위하여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자기는 성경을 순종하기 위하여 읽는다고 했습니다. 순종하게 위하여,,, 그래서 저는 오늘이 말씀을 통하여 지금 로마서 16 번째 강의를 하는데 말씀을 통한 깊은 은혜가 있을 뿐만 아니라 순종의 열매가 있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도 제가 지금 우리 로마서 강의 전체 주제를 나는 ‘복음에 빚진 사명 자’라 이렇게 이제 전체 주제가 되어 있는데 여러분 오늘이 말씀을 통하여 복음의 깊은 신비를 한번 깨달았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순종의 열매, 말씀을 통한 열매를 맺어야 되는데 예를 들어서 과수원 주인이 봄마다. 복숭화 나무, 사과나무에 물을 주고 걸음을 줍니다. 그래서 복숭아 꽃이 피고, 복사꽃이 아름답게 핍니다. 그런데 여름이 되어도 복숭아 나무에 복숭아 열매가 안 열리고 가을이 되어도 사과나무에 열매가 하나도 열리지 않는다면 주인은 그 봄에 핀 그 꽃이 하나도 만족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과수원의 목적은 꽃 구경이 아니라, 열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신앙의 성숙은 연륜이 아니라, 신앙의 열매로 확인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 말씀을 통한 순종의 열매, 성령의 열매 있어 지기를 원합니다. 오늘 그래서 제가 설교 제목을 이제, 로마 7장에 들어가면서 성화의 첫 열매가 뭐냐? 복된 결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결혼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는데 여러분 결혼하기 전에는 다 눈이 멀어서 결혼을 합니다. 서로 단점이 안 보이잖아요. 제가 처음 결혼 결혼하기 전에 우리 장인어른을 만났는데 첫 질문이 이거예요. 자네 우리 난영이 단점이 뭐냐? 제가 깜짝 놀랐어요. 눈이 멀어서 지금 단점 안 보이고 있는데... 그런데 여러분, 눈이 멀어 있는데 결혼하게 되면 그 먼 눈이 번쩍 뜨이게 되는 거예요. 현실에 현실이 이제 딱 눈이 번쩍 뜨이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내용들을 우리 삶의 배경을 앞에 놓고 오늘은 본문은 율법과 관계된 옛 사람의 결혼은 실패했고, 예수님과 관계된 새로운 결혼은 너무나 차원에 다르고, 신비한 복음의 은혜가 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내용들을 이제 진행하면서 첫 번째 잘못된 결혼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우리 신앙생활은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을 오늘 복음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어요.

I. 첫재, 잘못된 결혼 이후, 새로운 길이 열린다.

-1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자, 한 절 한 절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7:1,
1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
-이 법 아는 자들이 법 아는 자들은 누군가? 오늘이 법이라는 것은 뭐냐면 4절에 보니까 이 법은 율법에 대한 얘기예요. 그러니까 이 법은 이렇게 1절에 나오는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 율법을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왜냐면 당시 로마 교회 안에는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어요. 헬라인 출신 그리스도인이 있었지만 특별히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의 전문에 율법의 평생 율법과 함께 사는 거예요. 그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을 앞에 놓고, 결혼이라는 비유를 통하여 그 율법의 문제를 처리를 하고 있는 것이에요. 우리가 이제 신앙생활 처음 하는 분들은 율법에 대해서 아직까지 좀 개념이 없지만 우리 오해하신 분들은 율법이 뭔지, 우리가 기회 뭐 못이 박히도록 많이 들었어요. 많이 들었는데 여러분 율법이 뭡니까?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기대하는 행동의 표준이에요. 특별히 유대인의 삶을 지배하는 원칙이에요. 대표적인 율법에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 10계명이죠. 십계명, 첫째, 나 외에 다른 신을 두 말라. 그리고 마지막 열 번째, 내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쭉 나오잖아요. 쭉,,, 이게 유대인들의 삶의 표준이라는 거예요. 그 결과 율법은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못했을 때, 율법이 우리를 정죄하는 것이에요. 율법은 우리가 옳은 일을 했다고 결코 칭찬하거나 등을 두드리거나 고맙다고 하지 않아요. 대신 율법을 어기고 잘못을 저지르면 득달 같이 와서 정죄를 하는 것이에요. 따라서 율법은 사람을 낙담시키고 패배감을 갖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절망을 갖게 하는 것이요. 이게 율법이 하는 일이에요.

저는 어릴 때부터 이 성경을 좀 이렇게 많이 읽었어요. 왜냐면 우리 아버지가 NB,MB. MB,MB가 뭐냐? 노 바이블, 노브스 블랙 퍼스트에요(No Bible, no breakfast.-If you don't read the Bible, in the morning, you can't eat breakfast). 그래서 저는 성경을 정말 생존의 문제로 읽었어요. 이럴 때,,,

근데 구약을 읽는데 제가 구약에 읽을 때마다. 나는 하나님이 너무 두려워요. 그리고 쭉 성경을 읽는데 내가 그 성경의 원칙의 성경의 표준에 내 삶에 하나도 미치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청소년시기에 많이 방황을 했어요. 왜냐하면 내가 아무리 성경을 지킨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못 지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신앙이 늘 좀 두려웠고, 어두웠고 왜냐면 언젠가는 내가 하나님 법을 지키지를 못하는 거예요. 거기다가 한 단계 더 들어 갖고 5절에 보니까?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란 말이 나와요.

*로마서 7:5,
5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 ..
-불순종의 영이 임해 가지고 참 사람은요. 하지 말라 그러면 더 하고 싶은 거야. 잔디 밭에 들어가지 마세요. 그러면 발을 싹 넣잖아요. 그리고 페인트칠 해 놓았으면 그러면 진짜 해 놨는데 싹 한 번 만져 보잖아요. 사람이란 게 있잖아요. 참 독특해요. 반항하는 속성을 갖고 있어요. 우리 아이들이 다. 청개구리죠. 청개구리, 심지어 이거는 신학 대학원생도 비슷해요. 어느 신학대학원에서 우리가 학교가 좁으니까? 저기 뭡니까? 저 좀 남쪽으로 저 용인 쪽 남쪽으로 좀 내려가기를 원합니다. 그래 갖고 이제 학교 발표를 하니까? 전부 다 반대야,,, 서울에 있기를 원합니다. 이래요.

그러니까? 아이 정책을 입안하는 분이 기획실에서 그럼 생각을 했어요. 이게 다. 불순종 영이 임했으니까, 그럼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저 밑에 넓은 대로 안 내려 안 내려 결정했습니다. 그러니까? 또다시 다. 내려가고 막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려갔어요. 그래 갖고 예. 이게요. 우리 사람들이 갖는 다 독특한 겁니다. 그런데다가 더 큰 문제는 뭐냐면 율법을 통한 정욕과 욕망인데 그것이 뭐냐면, 자기는 지키지 못하면서 겉 모습만 지키는 것처럼 해 가지고 남들을 정죄하고 자기가 의롭다고 해가지고 남들을 판단하고 그래요. 그게 대표적으로 뭐냐면 바리새인들이에요.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남들을 정죄하고 그런지 몰라요. 저도 어릴 때 우리는 철저하게 이 보수주의 교회 살았기 때문에 주일 성수, 이래 가지고 철저한 거에요. 그 뭐 주일날 어 누가 성수 하지 못한 분들 보면 막 마음에 삿대질을 하는 거예요. 무슨 교회 중직자를 할 수 있는 이런 식으로 실제로 그것은 내 속에 있는 율법에 대한 잘못된 욕망이에요.

그러니까? 실제로 반응하고 불순종하고 잘 지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 겉으로는 포상을 해 가지고 자기 의를 가지고 남들을 판단하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사도 바울은 이 율법 아래 주눅 들어 있는 성도들에게,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율법의 정욕 때문에 힘들어하는 그 성도들에게, 오늘 1절에 놀라운 해결점을 주는 거예요. 저 같은 사람에게,,,

*로마서 7:1.
1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율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니까,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율법이 작동을 하는 거예요. 죽은 사람에게는 율법 작동이 유효 기간이 지나 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이제 이 복음의 신비 가운데 이걸 제가 어릴 때부터 예수를 믿었지만 대학생 시절에 로마서 5장, 6장, 7장, 8장을 연구를 하면서 복음의 신비의 눈에 떠 너무 감사해 가지고, 참 이 복음의 신비에 감동 중에 하나게 뭐냐면 내가 살아 있고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을 율법에 계속 작동하는 거예요. 근데 주님과 함께 내가 죽고, 대신 새롭게 주님과 신부로서 결혼을 하게 되면 이 율법의 수많은 짐과 아픔과 상처와 어려움과 문제들이 처리가 되는 것이에요.

죽은 사람은 더 이상 율법에 통치하려 있지 않다. 왜냐하면 죽게 되면 더 욕구를 할 수가 없잖아요. 죽은 사람에게 계약을 강제할 수 없잖아요. 죽은 사람은 의무가 해제되잖아요. 뭐 채무 관계도,,, 죽어버리면 어떡할 거예요? 그래서 이 1절의 원리는 죽음은 모든 계약을 무효화(無效化) 한다.

*죽음은 모든 계약을 무효화(無效化)시킨다.
-심지어 죽음은 결혼이라는 계약도 무효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여러분 대부분 결혼 서약은 우리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가 아니라, 죽음이 우리를 뭐 할 때까지 갈아놓을 때까지, 살아 있는 동안, 그러면서 2절, 3절에 아주 놀라운 예시를 하고 있어요.

*로마서 7:2-3,
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자,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지만,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더라. 다시 3절에도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자, 여기서 여인은 우리 자신을 뜻하고, 남편은 율법을 의미하기도 하고, 그래서 남편이 죽으면 여인이 남편에게서 벗어난다. 그리고 율법에서 벗어난다. 그런 뜻이에요. 한 가지 주의할 것은 그렇다고 율법이 무가치하고 경멸받아야만 할 것인가? 그건 아니죠. 율법은 율법의 역할이 있고 율법이 있어야 할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율법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는 귀한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율법 갖고는 절대로 우리가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동의합니까?

율법은 악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을 행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낙담하고 실패하고 고통의 자리에서 벌떡 일으키는 것도 율법은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 새 사람들, 우리 모두 예수님 믿고 이 자리에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고백하고 이 자리에 앉아 있는데 예수 믿은 우리 새 사람이 새롭게 결혼하는 대상인 부활하신 그리스도 신랑 되신 예수님, 그분과의 관계만이 우리를 다시 일으키고, 다시 열매 맺게 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이거예요. 그 율법은 우리를 다시 살리고 열매 맺게 할 수는 없고, 다시 결혼하는 그 일을 통하여 우리가 열매를 맺을 수가 있다.이 말입니다. 자, 제 말씀이 아니고 오늘 마침내 성도는 시작,

II. 둘째, 마침내 성도는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결혼을 통하여 참된 성화의 열매를 맺는다.

-자 이걸 제가 설명을 다하고 여러분들이 결혼을 내려야 되는데, 오늘의 내용이 조금 여러분 집중을 해야 되기 때문에 미리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자 이 내용입니다. 우리는 율법에 대해서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우리가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 그랬어요. 그리고 대신 죽고 난 다음, 그리스도와 함께 결혼하게 되었다. 그랬어요. 4절을 우리 또박또박 같이 한번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다시 한번 봉독하겠습니다.

*로마서 7:4,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오늘 4절이 요절인데요. 이 갈 사역을 앞에 놓고 오늘이 4절을 깊이 묵상을 하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 오늘 두 번째 한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님과 결혼한 그러니까?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신 이, 저번에 누구냐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뭐예요?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하심이라. 이 간다는 말이 무슨 공간 이동한다. 이런 뜻이 아니라, 거기에 속해 가지고 예수님과 연합해 가지고, 예수님과 접붙여 가지고 예수님과 결혼해 가지고 가서 속하게 되는 혼인하게 되는 대상이 누구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러니 그러므로 형제들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가 뭐냐? 예수님의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죽었다. 이 말이야. 그리스도의 몸이 십자가에서 죽었다. 이 말이야. 그때 그 순간 일이 우리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다. 이 말이야. 저는 이 사실을 너무 놀랍게 깨닫고 이 복음의 신비예요.

*로마서 7:4.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이 몸도 그 순간에 죽어 버렸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율법을 통하여 갖고 있는 수많은 짐과 아픔과 상처와 수많은 어려움들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 죽임을 당했다만은 예수님이 우리 속죄의 재물로서, 힐라스테리온 앞에 우리 했죠. 속죄 재물로서 피의 복음으로 피의 속죄로 주님이 죽임을 당하시는 그 순간, 우리가 그 예수님을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순간, 우리가 율법에 대하여 죽음을 당함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더 이상 우리의 몸에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만드신 주님을 찬양한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저걸 청년 시절이 저걸 깨닫고 아!!! 예수님이 십자가에 그 몸으로 죽임을 당하실 때, 우리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고, 이 몸도 그 순간에 죽어 버렸어. 오죽하면 이걸 작사를 하고 작곡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이 몸도 그 순간에 죽어 버렸어,,, 우리의 과거의 죄 성과 율법의 모든 연약함 들이 다 죽어 버리게 된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죽음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하신 예수님과 이 결혼 하게 될 수 있도록 예수님과 혼인하게 될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 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이게요. 기독교 신앙에 너무 신비한 거예요. 놀랍고도 환상(幻想)적인 구절이에요. 우리가 새로운 길에 들어서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 겁니다. 이건 동양 종교, 뭐 힌두이즘이다, 뭐다 부디즘이다. 불교다, 뭐 이런 어떤 거의 명상이나 묵상, 이런 것들이 감히 범접(犯接)할 수 없는 깊은 차원의 신비예요.

여러분,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우리의 연약한 몸이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우리의 몸이 그 순간에 죽어 버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과 결혼하게 되었다. 이 말이에요. 주님이 우리의 신랑이 되시고 우리가 신부가 되어 주셨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이 복음의 불이 오늘까지 저를 살려 주셨다고 저는 믿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고, 그리스도와 혼인 관계에 들어가게 된 것, 드디어 부활하신 그분이 나의 신랑이요. 나의 남편이 되셨습니다. 할렐루야. !!!~

무슨 뜻인가? 하면 우리는 율법으로부터 죽어 버렸기 때문에 율법이 주는 정죄, 그것 때문에 생긴 우울, 상처, 낙담, 가식, 심지어 자기 의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과 새롭게 혼인하고 난 다음에 부활하신 그분의 신랑 되신 그분의 이름을 공유하고 기도할 때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할 때마다 신랑 되신 부활하신 그분의 이름을 공유하고, 그분의 능력을 공유하고, 그분의 경험과 그분의 주님의 위치와 예수님의 영광과 예수님의 소망과 예수님의 꿈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신구약 전체를 통해서 쭉 해석을 하면서, 에스겔 16장을 보다가 가슴이 확 와닿는 거예요. 우리는 율법을 지키지 못해 가지고 율법의 정죄 때문에 우리는 피투성이가 되었어요. 너덜너덜해져 가지고 피투성이가 되었어요. 에스겔 16장에 보면 피투성이 대한 우리들에게 뭐라고 말씀하느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에스겔 16:5-6,
5 아무도 너를 돌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불쌍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천하게 여겨져 네가 들에 버려졌느니라.
6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들판에 버려진 피투성이 아이 같은 자를 주님은 죄의 노예가 되어서 율법의 정죄의 우리를 데려다가 씻겨 주고 화려한 황후의 신부의 예복을 입혀 주셨어요. 피투성이로 버려진 자가 어떻게 황후가 될 수가 있습니까? 이유는 딱 하나. 왕이신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를 신부로 삼아 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거는 오늘 눈에 보이는 사랑의 교회란 눈에 보이는 유형 교회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맑음으로 씻어 가지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복된 결혼을 우리가 믿는 그 순간, 신랑 되신 예수님의 생명과 능력과 기적과 치유를 우리가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그분의 은혜와 그분의 수준과 그분의 축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이에요. 오늘 여러분들이 우리 회중 찬송을 불렀는데,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그 찬송을 제가 선택하는 것은 본래는 제가 주 없이 살 수 없는데 그 찬송을 할까? 이 깊은 고독 속에 내 생명 끝나도 내 주는 나의 생명 또 나의 힘이라. 주님을 의지하여 지혜를 얻으리... ♪ 이런 찬송 우리가 알잖아요. 근데 제가 오늘 구주와 함께 나주고 있으니 그걸 선택한 이유가 뭐냐면 거기에 마지막 절에 보면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그데 뭐 그게 뭐냐면 못고칠 질병이 아주 없네’ 그 나와 있어요.

따라서 우리는 다. 연약하고 우리는 다. 한계가 있지만 주님과 함께 접붙여지고 결혼하는 그 순간 다시 얘기합니다. 간 다음 너희는 가서 부활하신 그와 함께 결혼한다고 그랬는데 간다는 말은 이동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 속해지는 것이에요. 그분과 함께 연합되는 것이에요. 그분과 함께 접 붙여 지는 것이에요. 그 순간 주님이 필요하면 우리에게 치유도 주시고, 필요하면 기적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분과 함께 이 고난 가운데 인생길을 가는 동안에도 우리가 겪는 수많은 정제와 실패가 있지만 우리는 그분과 결혼하는 그 순간, 그분을 우리의 신랑으로 모시는 그 순간, 이겨놓고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피투성이 만신창이라도 부활하신 신랑 되신 그분이 우리를 신부로 삼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랑 되신 주님과의 결혼의 궁극적인 목적이 뭘까요? 예수님이 우리 신랑이 되시면 신부인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져야 되는 거에요. 옛날에는 그냥 아무렇게 살지만 달라지는 거예요. 이전에는 나는 실패한 사람이다. 나는 죄에 붙잡힌 사람이다. 나는 율법의 그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이다. 나는 결국 실패할 것이다. 결국 넘어질 것이다. 이게 내 삶이었다면 이제는 나는 신랑인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되어 가지고, 드디어 무슨 일이 벌어지니까? 4절 뒷 부분에 이는 다른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뭘 맺게 한다고요? 열매를 맺게 하려함이라. 새로운 신랑이신 그리스도께 속하는 그 순간, 그분과 연합된 그 순간, 우리의 신분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되게 하신 것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이전에 맺을 수 없었던 새로운 열매를 맺게 되는 겁니다. 따라서 이번 가을 사역 동안 여러 일들이 우리 교회에 있겠지만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열매가 사랑의 교회 내에 충만하게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신랑에게 속한 그 순간, 이 신비한 결혼이 너무 놀라워서 우리의 정체성 정도가 바뀐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생명의 관계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신한 복음은 예수님의 도움을 받는 것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께 속하는 것이에요. 그와 접붙여지는 것이에요. 이거는 다시 말 동양적 종교가 감당할 수 없는 신비(神祕)한 것이에요. 예수님께 속해 있는 그 순간 부활하신 주님과 끊임없이 연결되는 것이에요.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썩은 나무와 연결되면 아무 열매도 기대할 수 없지만, 살아 있는 생명나무에 접붙여진 가지는 그 뿌리가 생명을 공급받아 가지고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성화의 첫 단계예요. 막 내가 노력이게 아니라, 주님과 속해 있고, 접붙여져서,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성화의 삶은 자기 힘으로 ‘그리스도인 답게 보이려는 노력’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신랑,되신 예수님께 속하여 열매를 맺는 것이다.

-속하여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에요. 아멘.!!~ 이 로마서의 아주 중요한 신학자 중인 한 분이 존머레이라는 분이 있는데 존머레이 같은 신학자는이 그리스도의 연합의 신비, 이 그리스도와의 결혼을 구원 교리 전체 중심 진리라고 말하는 거예요. 여기에는 칭의가 있고 성화, 양자 된 부활의 소망 다. 있는 것인데 이것이 우리가 따로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신랑 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속함으로 얻게 되는 것이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 그늘 밑에서 우리가 죄를 용서받지만 십자가 아래만 살면 안 되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하신 예수님과 결혼하게 된 것이에요.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결혼해 가지고, 살아계신 그리스도 부활하신 예수님과 결혼해 가지고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는 겁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예수님과의 너무나 고귀하고 영광스럽고 존귀한 예수님의 신비가 신부가 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는 특별한 부르심의 사명을 받은 줄로 확신합니다. 그 사도 요한은 이걸 깨닫고 요한복음 15장 7절에,

*요한복음 15:7,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우리 다. 암송하는 거예요. 여기서 내 안에 거한다는 말이 뭔지 좀 추상적이었어요. 그런데 오늘 깨달은 진리는 뭐냐면 율법 아래 있는 우리가 죽고 예수님과 연합하여 결혼하게 된 거, 그런 뜻이에요. 그리고 드디어 요한복음 15장 8절에,

*요한복음 15:8,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그런데 오늘이 말씀과 함께 연결해서 볼 때 이번 갈역 주님과 우리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그늘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결혼하고 신부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때에,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삶의 높은 차원에 수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열매를 만들려고 말씀한 거 아니에요.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요한복음 15장 4절에 바로 앞에 뭐라고 하냐?

*요한복음 15:4,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열매 맺는 방법이 뭐냐면 주님 안에 거하면 되는 것이다. 내 안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그리스도인의 성화의 첫 출발은 율법의 요구를 받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과 연합하여 그분과의 교제(交際) 속에서 이루어지는 생명의 공급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열매가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게 깨달아지면 말씀 읽고, 기도하고 이런 예배하는 것이 의무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신랑 되신 예수님께 붙어 있어 가지고 생명의 수액(水液)을 받는 놀라운 연합(聯合)의 시간이에요.

아침에 여러분 큐티할 때도, 큐티가 부담한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10분간, 하나님과 데이트, 교제하는 시간이에요. 주님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만나는 거에요. 여러분, 옛날에 연애할 때 더 빨리 만나고 싶잖아요. 안 그랬어요? 그리고 바래다 줄 때도 있잖아요. 응. 그 내려가 갖고 계속 빙빙 도는 거야. 나중에 이제 나중에 들어가 빙빙 도는 거예요. 그 요새는 편의점에도 같이 안 가. 자, 무슨 말이냐면 이번 가을학기에 신부의 열매 맺는 삶의 비밀은 더 많은 규칙이 아니라, 더 깊은 연합이 돼야 되는 것이에요.

○신부의 열매 맺는 삶의 비밀은 더 많은 규칙이 아니라, 더 깊은 연합이 돼야 되는 것이다.

-제가 수많은 내용들을 지금 이제 쭉 과정을 설명을 드렸는데 이제 우리는 더 많은 규칙이 아니라 더 깊은 연합이에요. 더 깊은 연합. 그리고 그 연합의 대상은 죽으실 뿐만 아니라 죽음을 이기시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이 크리스천의 열매는 무슨 더 많은 규칙을 많이 정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에요.

교회 안에도 이전 제도가 많아졌어요. 성경에도 장로의 유전 많아졌다. 그랬어. 교회 전통도 뭐 귀한 전통 많이 있지만 우리 교회 어떤 우리 교회 사역했던 목사님이 다른 교회 담임 목사님이 가셨는데, 그 교회는 전통이 뭐냐면 그 교회 전통 뭐냐면 주일날 예배드리로 올라갈 때, 목사님이 손에 하얀 장갑을 끼고 올라가셔야 돼요. 장로님도 기도하러 올라올 때 하얀 장갑을 끼고 가야 돼,,,. 왜냐면 가장 중요한 의식일 때 다. 하얀 장 끼고 하잖아요. 우리나라 그런 거 있잖아요? 여러분 결혼식을 다장고 꼈잖아요? 예. 근데 이게 이제 장로 유전이 되고 규칙이 돼 버립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왜냐면 장갑 끼고 성경 넘기려면 안 넘 안 넘어가요.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목사님이 그 장갑 벗는데 5년 걸렸대요. 5년. 그 당에 설득하는데,,, 또 어떤 교회는 장로님들은 또 이쪽에 다. 앉아 계세요. 한쪽에,,, 다. 높은데도 앉아 계셔 갖고 교인들이 보면 좋는 거 다 보여요. 예 그런데도 그거 계속 앉아 계시는 거예요. 참 우리가 많은 것들을 생각하는 거예요. 정말 우리는 더 많은 규칙, 더 많은 무슨 법칙을 만들어 갖고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에요. 주님과의 더 깊은 관계가 깊어질 때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사랑이 식어 버린 부부가 냉장고에 좋은 남편의 열 가지 규칙, 좋은 아내의 열 가지 규칙을 붙여 넣는다고 하십시다. 규칙 자체는 다. 좋을 수가 있어요. 친절하게 말하라. 상대방을 존중하라. 상대방을 배려하라. 시간을 함께 보내라. 그런데 부부 사이가 연합이 깨어졌다면 그 규칙은 침이 될 뿐인 거예요. 반대로 사랑이 회복되면 그 행동이 달라지는 것이에요. 결혼식, 결혼 기념일 날, 꽃 사오는 것도 의무가 아니라, 기쁨이 되고 필요하면 백송이도 사 가지고 대화와 교제를 하는 것이 숙제가 아니라 사랑의 표현이 되는 거예요. 사랑이 깊어지면 오늘 순종의 열매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열매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번 가을 사역 주님과 결혼의 신변 이런 은혜를 가지고 그 교재와 연합이 우리 모든 성도에게 넘치기를 바라는 겁니다. 마지막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자, 1, 2, 3, 4, 5절 다. 설명을 했고 이제 6절이 중요합니다. 6절을 한번 보십시오.

*로마서 7:6,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유전과 율법과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영의 새로운 것, 영의 새로운 것은 성령의 새로운 것이에요. 율법에 대해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결혼하게 되면 영의 새로운 것이에요. 성령의 새로운 것인데 그럼 성령의 새로운 것이 뭘까? 오늘 이것이 제일 핵심인데 아주 클라이맥스에요. 앞에 로마서 5장 5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로마서 5:5,
5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부은바 되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되었다. 그까? 성령의 새로운 방식, 복된 결혼의 최고의 새로운 방식이 뭐냐? 해라 해라 해라. 그래서 하는 거 아니고, 말라 말라 말라 해서 안하는 그 정도가 아니라, 율법적으로 두려움의 죄책감이 우리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 성령의 새로운 방식 하나님의 사랑에 부은 바된 것, 그래서 복음의 신비한 것이 뭐냐? 복음적 신비는 하나님의 사랑 우선주의가 되는 것이에요. 피 묻은 사랑 우선주의가 되는 것이 피 묻은 사랑 주의가 되는 것이에요. 이걸 뭐 러비즘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대표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대표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창세기 29장 20절에 보면, 야곱이 그 라반이라는 아주 못된 삼촌를 만났어요. 얼마나 못됐는지 그 라반은요. 아직 악질이었어요. 그 못된 데다가 최상급 est-이에스트를 붙여 가지고, 못est, 최고로 못된 라반을 만나 가지고,,, 그래 가지고 뭐 얼마 오랫동안 라반에게 속임 당하고 고통 당하고 그랬어요. 근데 거기에 놀라운 말씀이 있어요. 창세기 29장 20절 같이 보겠습니다.

*창세기 29:20,
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이번 가을 사역 동안 사랑의 교회가 사랑 우선주의가 된다는 것은, 사랑의교회라는 이름 자체가 무거운 이름이에요. 흔들기 합니다. 소망 교회 소망 없고, 평안 교회 평안이 없고, 믿음 교회 믿음이 없고, 사랑의 교회 사랑이 없다. 이런 말이 진짜 어려운 얘기예요. 핵심은 이거예요. 우리 교회 가을 사역의 모든 기준 판단 결정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 우선주의가 돼야 하는 것이에요. 내가 이걸 사랑으로 하고 있는가? 정말 내가 이거 사랑으로 하고 있는가? 내가 무슨 말을 할 때, 무슨 결정을 할 때 내가 정말 사랑으로 하고 있는가? 이 사랑 우선주의이 신비한 사랑은 율법이 끝나는 데서 시작이 되었고, 강력한 율법이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신비한 복음적 사랑이 해내는 줄 믿습니다. 진짜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편지만 받아도 하루 종일 기쁜 거예요.

저는 우리 집사람하고 교제할 때 우리 사람 편지하면 하루 종일 기뻤어요. 너무 기쁜 거야. 지금 얼굴 봐도 감사하고 그래. ㅋㅋㅋ 아, 그런데 인간이 쓴 편지만 받아도 하루 종일 기쁜데, 오늘 7장 1절부터 6절까지 최고의 완벽한 신랑 되신 주님의 사랑의 편지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것이 여러분과 저에게 기쁨이 돼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7년을 하루 같이,,, 저는 협동 목사 쳐서 지금 24년이 됐는데, 저는 24년을 2년 4개월 같이,,, 약간 오글거립니다 만은 예 본래 사랑은 오글거리는 거예요. 오늘 이 마음 가지고 이번 갈 사역, 모든 판단 기준을 우리가 신부로서 신랑 되신 주님께 의탁 된 결정, 그럴 때 그 신랑의 권위와 영광과 우아함과 축복과 기름 부으심과 능력과 치유가 우리의 것으로 공유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이 마음 가지고 여러분 다.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는 율법의 정주 아래 고단하고 비투성이 같은 우리였지만 우리를 신부로 삼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신부인 저희들을 앞으로 평생 보호하시고 지켜 주시고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그래서 사랑받는 신부의 표정으로 살아가는 남은 생애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 더 많은 규칙을 요구하는 옛사람의 삶에 얽매이지 말게 하시고, 피 어린 사랑 우선주의 거기에 우리 연합되어 가지고 참된 성화의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요약
율법은 하나님의 표준으로서 죄를 깨닫게 하지만, 인간을 정죄하고 낙담시킬 뿐 구원이나 생명을 주지 못한다. 죽음이 모든 계약을 무효화 하듯, 성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함께 율법에 대해 죽음으로써 율법의 정죄와 죄의 정욕, 모든 얽매임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길로 들어서게 된다. 성화의 삶은 더 많은 규칙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더 깊은 연합과 사랑에서 비롯된다. 성도가 신랑 되신 주님께 속하여 생명의 수액을 공급받을 때, 율법 조문이 아닌 성령이 부어주신 피 묻은 사랑을 최우선으로 삼아 사역과 삶 속에서 참된 성화의 열매를 자연스럽게 맺어야 한다.

우리는 율법에 대해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신비한 영적 결혼을 이룬 존재이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고 정죄할 뿐 성도를 구원하거나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지 못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 역시 율법에 대해 죽음으로써 율법의 모든 정죄와 얽매임에서 벗어났다. 성화의 삶은 자신의 힘으로 율법적 규칙을 지키려는 노력이 아니라, 부활하신 신랑 예수께 속하여 생명의 수액을 공급받는 깊은 연합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율법의 조문이 아닌 성령의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마음에 부은 바 된 하나님의 피 묻은 사랑을 최우선으로 삼아 참된 성화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또한 가을 사역에 더 깊은 연합으로 참되신 예수님을 본 받아 주님의 일에 사랑으로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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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8월 23일)
제목: 은혜를 계속 누리려면(To Keep Enjoying God’s Grace)"
말씀: 여호수아 17:14~18
찬양인도: 쉐키나(이동선 부목사님), 시온찬양대(4부)
대표기도: 이창희 안수집사님

설교자: 윤대혁 후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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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7:14~18,
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1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16 요셉 자손이 이르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나안 족속에게는 벧 스안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 하니.
17 여호수아가 다시 요셉의 족속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18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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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들이 부르는 찬양 가운데 아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이런 가사를 갖고 있는 찬양이 있습니다. ‘같은 길에서 다른 계절을 들을 만난다’. 이 노래 아시나요? 같은 길에서 다른 계절을 만나고,,, 유튜브 찾아보시면 되겠습니다.
♬~같은 길에서 다른 계절을 만나고 기쁨 슬픔 반복되는 모든 시간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네!!~~♪

-이 노래는 찬양에 가사는 참 많은 인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8월 23일 같은 시간대에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같은 사건과 같은 문제를 만나도 사람마다 느껴지는 계절은 다르다는 것이죠. 같은 길을 걸어도, 어떤 사람은 너무나 싸늘한 메마른 가지에 추운 겨울의 길을 걷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따뜻한 열매 맺는 풍성한 계절을 맞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와 평강 가운데 잘 살다가 우리 인생에 문제와 어려움이 생기면 그때 어떤 사람은 은혜를 극대화(極大化)해서 그것을 승리(勝利)로 바꿔 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그 문제 앞에서 자신의 은혜가 너무나 무기력하고 힘이 없어 실패(失敗)와 낙심(落心)과 절망(絶望)에 가는 사람들도 있죠. 여러분은 어느 편에 속한 사람입니까? 여러분들 은혜를 극대화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은혜를 무력화(無力化)하는 사람인가요? 여러분 어디에 속한 사람입니까? 아마 둘 중에 한 편에는 속할 거라고 생각되는데 오늘 여호수와 17장 본문에 은혜를 너무나 무력하게 시켰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 사람은 요셉 자손들이었습니다.

요셉 민족이었어요. 왜 이들이 이렇게 은혜를 무력하게 되었을까요? 오늘 부문의 배경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40년의 광야 생활을 하고 나서 이들이 이제 하나의 약속의 땅 요단강을 건너서 약속의 땅을 넘어갑니다. 이제는 가나안 족속들과 전쟁을 하다가 이제는 땅을 12지파에 나누고 어디에 정착해서, 어디를 정복해야 될 건지를 제비를 뽑기를 통해서 결정하게 되죠. 제비를 뽑는다는 말은 인간의 의지와 생각과 플랜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섭립 가운데 순종(順從)하겠다는 마음으로 제비를 뽑아 어디에 어느 지파(支派)가 어디에 어느 자손이 그 땅을 정복하고 다스릴지를 정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모든 지파들은 다 만족하고 모든 지파들은 다 믿음으로 반응(反應)했지만, 오직 한 지파만은 한 자손만은 이것은 말도 안 됩니다. 라고 불평의 소리를 내는 지파가 있었는데, 그 지파가 바로 요셉 지파였습니다. 오늘 14절 말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수아 17:14~18,
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뭐라고 말하고 있냐면 우리는 큰 민족이 되었다. 크게 되었다. 사람이 많아서 인구가 많았으니 더 넓게 넓은 땅을 더 많은 땅을 우리에게 줘야 되는데, 왜 우리에게 한 땅밖에 주지 않느냐 제비뽑기를 두 개가 아니라 우리 요셉 지파는 이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로 합쳐진 두 지파가 합쳐진 건데, 왜 우리에게는 한 분깃만 주냐, 라고 컴플레인을 하고 있는 상황(狀況)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이들이 큰 민족이 됐을 때, 이들이 왜 어떻게 큰 민족이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 14절 이렇게 말합니다. 한 번 더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수아 17: 14
14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자, 요셉 자손이 큰 민족이 됐던 것은 누구 때문이었어요?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큰 민족을 주셨습니다. 이거 좋은 일입니다. 잘 된 겁니다. 연약(軟弱)한 자손들이었는데. 자신의 노력과 실력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넘치는 은혜와 복을 주셔서 큰 민족이 되었다는 것은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자랑할 만한 사건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큰 민족이 되어서 우리가 땅을 적게 받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그 불평(不評)의 말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보면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정말 불편할 만한 일인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사실 보면 요단강에서 동편에서 서편으로 넘어올 때요. 이미 세 지파가 요당 동편의 땅을 물려받았습니다. 이들은 전쟁도 하지 않고 이미 정복(征服)된 땅, 싸움도 필요 없는 좋은 땅을 받았어요. 그 좋은 땅을 배분받았던 사람이 누구냐면 바로 요셉 지파 중의 하나였던 므낫세 지파가 그 넓은 땅을 갖습니다. 그러면 요단강을 건너와서 땅을 분배(分配)해야 되는데 그럼 누구만 챙겨주면 돼요? 에브라임만 챙겨주면 됩니다. 에브라임에게는 몇 땅이 필요한 거예요? 땅 하나만 필요하면 됩니다. 한 분깃을 뽑으면 돼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큰 민족이 되었는데 왜 당신은 나를 우리를 이렇게 도와주지 않냐? 라고 불평하고 있는 걸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살면서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내 삶에 어떤 문제와 어려움 앞에서 우리가 쉽게 불평하고 쉽게 내 마음의 어려움을 불만스럽게 말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불평이라는 것은 너무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불평을 하기 시작하면 불평한 순간부터 우리들 마음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는 것을 보게 돼요. 여러분의 삶 가운데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나의 삶은 하나님께서 받은 은혜, 정말 주님께 주신 내게 주신 은혜를 우리는 끝까지 그 은혜를 누리고 있는가? 혹시 요셉 자손들처럼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서 큰 지파가 되었다고 하지만 어느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받은 은혜가 온데간데없이 나에겐 은혜가 없어. 라고 말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지 않나? 우리가 모를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받은 은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를 나는 평생의 은혜로 잊지 않는, 잃지 않는 평생의 은혜로, 우리는 살아갈까를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계속 우리가 누리기 위해서 우리가 생각해야 될 세 가지를 오늘 본문에서 보게 됩니다. 우리가 평생의 은혜를 살기 위해서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첫 번째는 무엇이냐면 우리들의 삶에 이제는 불평을 멈추셔야 됩니다.

◎평생의 은혜를 계속 누리려면,
I. 첫째, "불평"을 멈추어야 합니다

-여러분 불평을 하기 시작하면 불평은 불평으로 끝나지 않아요. 불평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다 부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불평하기 시작하면 내게 받은 은혜는 온데간데없고 없는 것만 보며 살아가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감사의 문으로 들어왔다가 불평의 문으로 빠져나간다는 말이죠. 자,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에 계속해서 충만 하려면 우리는 감사하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봐야 되는데 어느 순간 불평하기 시작하면 내 삶에 있었던 은혜가 불평의 문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불평한다는 것 자체는 우리의 삶에 은혜가 메말라 가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면 우리는 그 문제를 이기고 승리(勝利)하시는 자가 됨을 믿습니다. 이런 말이 있어요. 인생에는 두 종류의 인생이 있습니다. 지난주까지 8월 15일에는 저는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으로 분류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청계산 산상 기도회에 올라간 사람과, 올라가지 않는 사람으로 구분된다고 했는데 그날은 지나갔으니까 다시 얘기하면 여러분 모든 사람은 문제를 다 만나요. 문제 없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만날 때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①문제 앞에 넘어지는 사람이 있고, ②문제를 넘어서는 사람만 있는 것뿐입니다. 문제는 다 만나요. 문제 없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마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사람은 어떤 문제를 만나도 그 문제를 넘어서죠.

하지만 은혜가 메마른 사람은 작은 문제를 만나도 그 문제 앞에 넘어질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의 삶이 날마다 날마다 문제 앞에서 어떤 환경(環境)과 상황(狀況)이든지 간에 영적(靈的)인 승리(勝利), 영적인 기쁨, 영적인 만족(滿足), 하나님의 영감(靈感) 가운데 복(福)되고 아름답게 살기 위해선 우리의 삶에 은혜가 절대 말라선 안 된다는 거예요. 오늘의 은혜가 우리의 평생의 은혜가 돼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 불평을 일단 멈추셔야 합니다.

※저의 삶 가운데 제가 대학부 사역을 한 적이 있었어요.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남자 선생님을 사역하면서 대학부 사역을 했는데 대학부 아이들의 선교를 떠났습니다. 대학부까지 1달 동안 가는 선교였는데 브라질 팀으로 선교팀을 보냈어요. 한 12명 정도가 간 것 같아요. 그런데 한 달 정도니까 저는 한 달 다 있지 못해서 2주만 하려고 2주 후에 저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상파울루로 떠났습니다. 무려 14시간 비행기를 타고 상파울루에 도착했어요. 선교를 하는 현장은 그 상파울루에서 여러분 차로 직행버스로 한 10시간 정도 가야 되는 그런 거리인데 저를 마중 나오신 현지 우리 한인 목사님이 저를 이제 가면서 티켓을 빨리빨리 구입해야 되는데 미처 못 구입해가지고 직행버스가 아니라 이렇게 순환버스, 18시간 걸리는 직행버스는 누워서 가는 버스인데 이 순환버스는 15도밖에 기울어지지 않은 이렇게 솟구쳐서 가는 그런 버스를 타고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면서 우리 목사님 너무나 미안했던 게 계속해서 저한테 목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이거를 확인하지 못하고 예약을 못 해서 목사님 오셨는데 피곤하신데, 저희가 이렇게 10시간에 갈 만한 거리를 18시간이 걸려 너무 죄송합니다. 계속 이러시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늘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일부러 그러신 것도 아닌데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일부러 그럴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요즘에 최근에 들어서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이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아 이거 이게 10시간 밖에 이제 18시간 걸리지만 온 구석을 다니면서 또 가다가 산사태가 나고 빛 때문에 산사태가 나 가지고 나무가 쓰러져 있고, 무려 차에서 4시간 동안 기다렸던 시간도 있었거든요. 목사님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연, 브라질의 아름다운 자연(自然) 만물(萬物)을 보게 하시려고 이곳저곳 두르면서 이렇게 못 가게 하시고 이곳저곳 두르면서 가셔서 이 브라질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게 하셔서요.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 목사님과 좋은 대화도 나누고 또 휴게실에서 브라질에 대한 바비큐도 먹고 얼마나 18시간이 하나님께 저에게 주신 선물과 같은 시간입니다. 라고 제가 말씀을 드렸어요. 잘했죠. 진짜 잘했어요. 그런데 그 목사님이 만약에 죄송합니다. 목사님 제가 미리 끊었어야 됐는데 피곤하게, 그런데 제가 그런 질문하고 그런 대답해 그러게요. 하고, 목사님이 이렇게 일찍 끊었으면 이런 고생 안 하잖아요. 선교도 시작 안 했는데 지금 피곤해 죽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만약에 그런 불만과 불평을 토했으면 저는 18시간 그 내내 입이 이만큼 나와서 브라질의 아름다운 자연은 하나도 눈에 안 들어왔을 겁니다. 이 인간이 왜 그랬을까? 인간이 대체 무슨 억하심정으로 아마 그 생각을 하면서 왔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여러분, 우리가 불만과 불평을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해 놓으신 정말 아름답게 펼쳐놓으신 그 좋은 것들이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가 계속해서 은혜를 누리기 위해선 우리는 불평의 입술을 닫으셔야 돼요. 그리고요. 14시간 비행기 탔죠. 그리고 18시간 거리인데 4시간 더 추가돼서 38시간 만에 선교 현장에서 도착했습니다. 선교사님이 저를 보고 미안했던지 아마 피곤이 떨어지셨겠죠. 미안했더니, 보자마자 이렇게 말한 거랍니다. 목사님, 목사님 오시기 전까지 어제까지 비 내리고 바람 불고 추워서 사연을 제대로 할 수 없었는데, 목사님이 딱 오니까 비가 안 오고 날씨가 개이고 선도하기에 너무나 좋은 날씨가 되었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우리에게 선물로 보내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제가 선교사님 그게 말이 돼요. 말이 안 돼요. 그냥 비가 그칠 때니까 그쳤고 좋은 날이 됐겠죠. 이게 말이 됩니다. 내가 왔다고 바꿨겠어요? 이렇게 말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냐구요. 그런데 우리들에게도 이런 사람이 있다. 없다. 있습니다. 좋은 얘기를 해줘도 좋은 얘기 못 받아요. 설마 그랬겠어? 어떤 분이요?

저희가 의료 사역을 하는데 이분이 카이로프로텍인 척추 교정을 하시는 분입니다. 어떤 분이 6개월 동안 팔도 안 올라가고 힘들었다가 교회에서 의료봉사하는데 그 집사님에게 치료를 받았어요. 교회에서,,,. 한 두 번 받았나? 두 번 받았는데 두 번 받았는데 이분이 6개월 동안 치료되지 않았던 팔과 어깨가 다 나은 거예요. 그걸 집사님 찾아가. 집사님 제가 어디 가도 낫지 않다가 집사님한테 척추치료 두 번 맞고 다 나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카이로프라텍 그 치료사 선생님이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이 주변에서 보게 됩니다. 선교사님이 이제 목사님이 오셔서 선물같이 날씨가 개었습니다. 할 때, 제가 뭐라고 그랬냐면 어떻게 아셨냐고,,, 저는 가끔 가는 곳곳마다 모든 게 잘 풀리고 신기하게 저는 밥 먹으러 식당을 가자마자 문전성시를 되고, 제 뒤에 손님이 그리고 줄줄이 섭니다. 성도님들의 비즈니스만 가도 제가 심방(尋訪)을 하고 나면 손님들이 많아져 그 집사님의 장사가 최고치로 잘 되게 해요. 저는 그런 사람이에요. 이렇게 말하면요. 그 은혜가 나에게 멈추지 않고 흘러오는 겁니다.

불평하지 않고,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를 믿습니다. 그런 은혜가 내 삶에 떠나지 않습니다. 나는 그런 은혜가 필요해, 이렇게 나아가면 내 삶의 은혜는 평생 은혜의 삶으로 살게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 삶에 많은 일들이 있어요.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많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평생 은혜로 살 수 있는 그 이유는 어떤 형편(形便)과 환경에서도 우리는 불평하지 않아야 되는 거예요. 불평하면 내게 하나에게도 주신 은혜가 내 삶에서 흔적(痕迹) 없이 사라집니다. 하지만 그 환경 가운데서 믿음을 심고 은혜를 소망하고 그런 은혜가 있을 거라고 믿고 나아가면 내 삶에 평생, 평생의 은혜가 멈추지 않고 저와 여러분 가운데 펼쳐지게 될 줄 믿습니다.두 번째는 어떻게 해야 우리들의 삶에 은혜가 계속 누려질 수 있는 걸까요? 평생을 살게 될까요? 첫 번째는 불평을 멈춰야 됩니다. 두 번째는 남 탓을 멈추셔야 됩니다.


◎ 은혜를 계속 누리려면,
II. 둘째, "남 탓"을 멈추어야 합니다


-자 14절 말씀을 이제 한 번 더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수아 17:14,
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자, 뭘 말하고 있어요? 인정하는 곳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복을 주셔서 큰 민족이 되었다. 이건 감사할 일이죠. 그런데 그 후반부에 뭐라고 말하죠? 당신이? 당신만 아니었으면 당신이 한 분깃이 아니라, 두 분깃만 줬어도 이런 일은 생기지 않잖아요. 다 당신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당신 때문입니다. 모든 문제의 탓을 누구에게 전환하고 있어요?

여호수아에게 전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여러분 어느 지파 사람이게요? 아 퀴즈,,, 자 여호수아는 열두 지파 가운데 어느 지파 사람이게요? 에브라임 지파 사람, 이 말은 뭐예요? 당시 에브라인 지파 사람이잖아요. 우리가 지금 에브라임 요셉 지파가 에브라임 지파와 당신 이런 법이 어딨어? 같은 형제 아니야? 누구보다 우리 상황을 잘 알잖아. 그러면 같은 편이면 같은 지역구면 같은 형제면 우리를 더 신경 써줘야지. 그런 법이 어딨어? 이거 다 당신 때문에 우리가 어려워진 거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뭘 잃어버린 거예요? 자신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으로 큰 지파가 되었다는 것을 까먹게 된 거예요. 뭐 때문에? 남을 탓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남을 탓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우리의 삶에 은혜가 기억되지 않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남을 탓하는 게 영적으로 위험한 거냐면 남을 탓한다는 것은 이 사람 때문에 내가 안 됐습니다. 이 사람 때문에 내 인생이 막혔습니다. 이 사람 때문에 되는 일이 없습니다. 라는 그 말을 나의 인생의 이유와 목적과 주도권을 누구에게 넘겨주는 거예요? 그 사람에게 넘겨줍니다. 자, 그 사람 때문에 이렇게 됐어 라고 말하는 것은 내 인생이 그 사람에게 종속(從屬)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내 인생의 주도권(主導權)이 누구에게 있다는 거예요? 내가 원망하고 탓하는 그 사람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우리의 주도권이 누가? 우리의 주도권을 누가 갖고 계세요? 하나님이 갖고 계십니다. 우리의 주인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남을 탓할 때마다 우리는 나의 인생의 주권자는 하나님이 아니고, 바로 저 사람이야 라는 그 잘못된 길에 서게 된다는 것이죠.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돼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의 주권자가 되시고, 인도자가 되시고, 주도권이 되시기 때문에 그가 나를 방해한다 할지라도 그가 나를 막는다 할지라도 그가 나를 괴롭힌다 할지라도 절대로 너는 나의 가는 길을 막지 못해. 이 고백이 되어야 된다는 거죠. 이 사람 때문이야. 저 사람 때문에 얘기할 때마다 우리는 점점 하나님이 나 인생의 주도권이 아니고, 주권자가 아니고 저 사람이 내 인생에 목숨줄을 갖고 있다. 라고 착각(錯覺)하며 산다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남 탓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난주에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서 해방(解放) 선언(宣言)이라는 말씀을 기억하시죠? 해방 선언 하시면서 이런 얘기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 하심이 우리들의 인생에 운전대를 하나님께 넘겨야 된다고 말씀하시면 이런 질문을 하셨어요.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 하심이, 테슬라의 자율주행보다 못합니까? 뭐라고 답해야죠?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기도 하시니 테슬라의 자율주행보다 못합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세상에 어떤 권력자와 힘이 있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많은 것을 갖고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이끄심보다 하나님이 인도하심보다 여러분 더 좋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끌다 말씀하시면 하나님께서 책임자라고 하시면 누구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막을 자가 있다. 없다. 없다. 탓을 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그 사람의 손에서 지금 다스림을 받고 있다. 라고 나 스스로를 잘못 고백합니다. 그래서 은혜의 다스림을 받기 위해서는 탓을 하지 말으셔야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이끄심을 인정하며 여러분 살아가야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더래도 당신 때문이야, 라고 말했던 이웃의 자손들에게 여러분 15절에 여호수아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여호수아 17: 15,
1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다 똑같은 말을 하고 있어요. 요셉 자손들도 우리가 큰 민족이 되었다고 말하고, 여호수아도 너가 큰 민족이 되었다고 말해요. 똑같은 큰 민족이 되는 거야. 그런데 관점이 달라요. 요셉 자손들은 큰 민족이 되어서 땅이 좁습니다. 여호수아는 너희가 큰 민족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힘이 있으니까 다른 족속들을 다 물리치고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해라, 개척하라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힘이 있으니까 능력이 있으니까 그게 이 땅 부족하지, 열심히 해봐. 해봐 그러면 그 땅을 더 많이 차지할 거예요. 만약에 이 요셉 자손들이 끝까지 여호수아를 탓했다면, 다른 족속에 있는 산림의 나무 하나로도 베지 못했을 겁니다. 남 탓을 하지 않고 그 다음에 내용에 보면 그들이 정신 차렸고 하나님께서 감당할 수 있는 큰 민족이 되게 하셨지. 남 탓하지 않고 하나님을 다스림을 믿고 나아갔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는 것이죠.

사랑의 영가족.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남 탓하지 마세요. 여러분 우리가 탓하는 남보다 더 위대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내 인생을 막고 있는 여러분 직장의 과장, 부장 또 누구 회장 누구 얘기하세요? 저한테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르겠어요. 누구 누구 누구예요? 저한테 고자질 하세요. 그저 누구든지 간에 하나님이 이길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이길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 계속 이끄신다면 우리 은혜의 자신 가운데 살게 되는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일까요? 자, 퀴즈, 첫 번째 뭘 멈춰라? 병을 멈춰라. 두 번째 남 탓을 멈춰라. 하니까 어떤 형제님이 왼쪽에 자매님들 꾹꾹 찌르고 있어요. 이렇게 해서 니 얘기하는 거보다 니 얘기 세 번째는 무엇이냐면 세 번째는 자막을 띄워주실까요? 포기하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 평생 은혜를 계속 누리려면,
III. 셋째, "포기(抛棄)하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자 오늘 말씀 16절의 말씀을 보면, 요셉 자손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읽어볼까요? 시작.
*여호수아 17:16,
16 요셉 자손이 이르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나안 족속에게는 벨 스안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 하니.
-이 말씀의 뉘앙스가 어때요? 거기에는 땅도 넘는 하지 못하고 다 골짜기고 뿐만 아니라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무기가 다 철기문화입니다. 우린 청동기인데 다 철기문화를 갖고 있어서 그 다음 말이 뭐예요? 우리는 못합니다. 올라갈 수 없습니다. 올라가 봤자 패합니다. 올라가자마자 우리는 죽을 겁니다. 우린 땅, 어떤 땅도 차지하지 못할 겁니다. 안 됩니다. 못합니다. 우리는 끝났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거죠. 포기해 버렸습니다.

우리가 문제 앞에서 쉽게 내가 능력도 안 되고 실력도 안 돼서는 어느 순간 문제 앞에서 우리가 쉽게 포기하며 하나님의 은혜마저도 사라져 버릴 때가 있어요. 하지만 절대로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거, 하나님께서 책임도 진다는 그 약속의 말씀을 절대로 절대로 우리는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죠. 성경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날마다 날마다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우리에게도 있어요. 오늘 읽었던 여호수아도 동일하게 그 18절의 말씀에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읽고 17절, 1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수아 17:17~18,
...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
-여호수아가 뭘 말하고 있는 거에요? 너는 큰 민족이다. 그리고 큰 권능이 너에게 있다. 하나님께서 복 주셔서 큰 민족이 되었고, 너희에게 뭐가 있다? 큰 권능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큰 권능은 무엇일까요? 너희에게 하나님이 계신다, 도와주신 하나님이 계신다, 지켜주신 하나님이 계신다. 가장 능력 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너희 안에 있으니, 너희가 올라가기만 하면 그 땅이 너희 것이 될 것이다. 약속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약속은 요셉 자손만 받은 것이 아니고 우리도 받은 약속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하시니라.” 아멘, “너를 두려워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걱정도 하지 말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리라.” 말씀하신 약속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성경의 내용을 보면 수많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어요. 놀라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걱정하지 말라. 내가 너를 붙잡아주리라. 내가 너를 승리케 하리라. 내가 너를 사용하리라. 내가 너를 통해서 많은 역사와 영광을 행해주리라. 이런 약속으로 가득합니다.

성경에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에게, 정말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넌 안 돼. 넌 못해. 해봤자 소용없어. 다 필요하지 않을 거야.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세요? 주님은 우리가 뭘 말씀하시냐면 두려워하지 말아라.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거야. 떠나지 않을 거야. 그러니 너는 반드시 나보다 더 큰 일을 행하리라. 너는 반드시 나의 큰 영광을 보게 되리라. 주님은 날마다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포기(抛棄)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주님께서 행하실 일들을 사모하면서 그 은혜를 사모(思慕)하고 그 은혜를 바라보며 이웃이 하나님 앞에 우리 날마다 포기하지 않고 오늘도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전진하며 살아간다면, 오늘의 은혜가 우리에게 평생의 은혜의 삶으로 저와 여러분의 삶이 펼쳐지게 될 듯 믿습니다.

저는 이 은혜에 대한 이야기, 포기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면 생각나는 사건이 있습니다. 제가 2003년도에 강도사 고시를 갔습니다. 2003년도 1월달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강도사 고시를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한 제일 첫 번째 시험인 강도사 고시를 보는데, 강도사 고시는 1년에 한 번 봅니다. 그리고 그에 떨어지면 그다음에 봐야 되거든요. 1년에 재수를 해야 되는 거예요. 많은 전도사님들이 강도사 구시를 보러 갈 때, 그 교회 담임 목사님들이 항상 이런 얘기를 전도사님들에게 격려하죠. 아 전도사님 많이 부담 갖지 마세요. 편하게 시험 보세요. 그런데 우리 교회는 지난 역사 가운데 전도사님이 강도사 고시를 떨어져 본 적이 없어요. 부담 갖지 마시고 그냥 편하게 보세요. 그런데 기억하셔야 될 것은 한 번도 떨어져 본 사람이 없어요. 이런 얘기를 하시는 게 대부분인데 그렇다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강도사 고시를 봅니다. 숭실대 신대원의 교실에 들어가서 이렇게 공부 열심히 한 거를 문제를 푸는데, 그때 고시부 목사님, 시험 감독관인 목사님이 이 시험을 치고 있는 전도사님들에게 하셨던 말씀이 너무나 제 마음의 기억남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전도사님들, 오늘 시험 문제지 모르는 문제 있잖아요. 모르는 문제 있지만 그 빈 란을 냅두시면 안 됩니다. 무조건 채우세요. 아는 건 어제 배운 건 무조건 적으세요. 문제와 답과 달라지고 하나님, 예수님, 화이팅 뭐든지 간에 아무튼 적으세요. 무조건 적으세요. 아는 거 적으세요. 어제 배운 거 아무것도 뭐든 적으세요? 무조건 적으십시오. 빈 란으로 드리면, 점수 못 드립니다. 그런데 채워져 있으면 은혜 점수가 임합니다. 은혜 점수가 임합니다. 그 문제와 상관없이 뭐든 채우면 뭐 하나 걸리는 거 있지 않겠습니까? 애국가를 적지 않는 이상, 가요를 적지 않는 이상,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파이팅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뭐라고 적으면 뭐라도 은혜 점수가 있을 겁니다. 은혜 점수가 있습니다. 은혜 점수가 있습니다. 빈 란으로 제출하지 마세요. 반드시 꽉꽉 채우십시오. 이 얘기를 줬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나는 건 뭐냐면 이게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 같은 거예요. 우리에게 주님께서 자, 은혜 점수가 있을 거다. 너 실력이 없고 능력이 없고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내가 대체 뭘 할 수 있을까요? 내가 대체 뭘 잘할 수 있을까요? 막막한 가운데서도 우리가 믿음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하루하루 주님을 바라보고 살아가면 뭐가 있나요? 은혜 점수가 이 말입니다. 포기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너에게 은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면 그 은혜를 줄 수가 없는 거에요. 빈 란으로 제출하면 주고 싶은 점수를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뭐라도 적은 거예요? 포기 안하고 낑낑대면 뭐라도 하나님 은혜가 있는 줄 믿습니다. 심지어 어떤 일이 있었냐면 어떤 정상이 사지선답 이었는데 이렇게 시험을 하다가 목사님이 보시고 딱딱 보셨던 하면서 틀렸다. 틀렸어요. 뭐라도 낑낑대면 은혜 점수가 되는 거야. 하지만 포기하면 nothing~~!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 거 아니에요.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아가면서 참 많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해요. 그런데 그때 아 몰라, 될 때도 돼. 몰라. 몰라 이러면 하나님께서 주고 싶은데 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힘도 능력도 없는데 믿음으로 생각해요. 어떻게든 버텨볼게요. 죽을 것 같은데, 어떻게든 내가 살아내 볼게요 하면 하나님께서 살아내게 하실 줄 믿습니다. 승리케 하실 때가 있는 거예요. 요즘에 우리 젊은 세대들이 꿈꾸기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여러분 그래도 선배로서 다행입니다. 아빠 세대라고 안 했다는 건데 선배로서 여러분 너무 미안한 일이죠. 저희는 부모님들에게 참 좋은 시절을 물려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여러분에겐 제가 받았던 좋은 시절을 못 물렸을 거예요. 되게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 우리의 삶에 꿈이 없는 건 아닙니다. 희망을 꿈꾸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왜냐면, 저보다 아무리 좋은 선배보다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심을 믿습니다. 세상은 소망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소망 있다. 라고 말합니다. 왜요? 너가 살아있는 한 소망입니다. 여러분, 많은 젊은 손님이 힘들고 어려운 줄 압니다. 무엇을 해야 될지 어떤 직장을 가져야 될지, 하지만 그때마다 정말 포기하지 말고 주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내가 알았기에 그 내가 내 평생의 떠나지 않음을 믿고 자리를 지키고, 기도의 자리를 지키고, 말씀의 자리를 지키고 그리고 작은 거 하나에도 내가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고 주의 은혜를 구하고 가다 보면 그 길에 하나님의 은혜의 장비가 내 삶 가운데 촉촉히 적셔져 있었어요. 메마른 길이 아니라, 푸르른 길을 걷게 하시면 열매의 길을 걷게 하시면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계절의 길을 걷게 하시는 이가 저 여러분에게 반드시 있을 줄 믿습니다.

사랑의 영가족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은혜를 계속 누릴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평생 은혜로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에 우리는 불평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의 다스림이 있기에 우린 안 탓하지 않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에 우린 포기하지 않는 겁니다. 그럴 때마다 저 여러분의 삶을 평생의 은혜 일상으로 저 여러분의 삶을 이끌고 인도하여 드실 줄 믿습니다. 그런 후 옆에 분에게 이렇게 인사했으면 좋겠습니다. 평생의 은혜로 삽시다! 라고 인사해 볼까요? 평생의 은혜로 삽시다.

♣요약
인생의 어려운 문제 앞에 서 있을 때, 은혜를 극대화하여 승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은혜를 무력화시켜 절망에 빠지는 사람이 있음을 지적한다. 여호수아 17장의 요셉 자손은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큰 민족이 되었음에도 한 제비, 한 분깃만 주었다며 불평을 터뜨려 은혜를 무력화시켰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평생 잃지 않고 계속 누리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를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
첫째, 불평을 멈추어야 한다. 은혜는 감사의 문으로 들어왔다가 불평의 문으로 빠져나간다. 불평하기 시작하면 은혜는 메마르고 문제 앞에 쉽게 무너진다.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을 입 밖에 내지 않고 감사를 선택할 때, 은혜가 삶에서 떠나지 않는다.
둘째, 남 탓을 멈추어야 한다. 요셉 자손은 어려움의 원인을 여호수아 탓으로 돌렸다. 남을 탓하는 순간 인생의 주도권을 그 사람에게 넘겨주게 되며, 이는 내 삶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다스림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어떠한 방해 속에서도 하나님이 내 삶의 주도권을 쥐고 계심을 인정하며 남 탓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셋째, 포기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요셉 자손은 상대의 철 병거를 보고 미리 패배를 선언하며 포기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신 권능으로 함께하시며 끝까지 개척하라고 약속하신다. 시험지에 아는 내용이라도 꽉 채워 제출할 때 은혜 점수가 임하듯,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믿음으로 자리를 지키며 포기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평생의 은혜로 삶을 이끌어 주심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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