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1월 21일)
제목: "가족을 위한 기도 지팡이"
말씀: 사무엘상 1:26~2:1
대표기도: 노영훈 장로님(당회서기)
찬양인도: 창목회
말씀읽기: 천예준 어린이(소년부), 김예린 어린이(초등부)
사회 : 김도훈 부목사님(예배)

사회: 조성환 부목사님
(SaGA 사역, 찬양사역부-설날 찬양 음악회)
사회: 이민형 부목사님(주일학교 팀장)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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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26~2:1,
26 한나가 이르되 내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내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27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2:1
1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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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담임목사님(가족을 위한 기도 지팡이)
-할렐루야!!!~
영하 12도에 최근 들어서 토비새에 제일 추운 날인 것 같은데 다를 그대로 이 새벽에 우리를 불러주신 주님을 우리는 찬양한다. 오늘 찬양대가 그 모든 민족을 찬양을 했는데 교역자인 창목회가 찬양을 했다. 사랑의 교회 한 해 교역자들의 섬김을 통해 수많은 영혼들이 주님 앞에 돌아오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오늘 이 성경 봉독을 또박또박하게 한 어린이를 축복한다. 하나님께서 맞춤의 은혜를 주시를 바란다. 오늘 새벽에 제가 나오면 이 교회 교통봉사 사역을 위한 분들과 인사를 하는데 오늘은 교통봉사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오늘은 순장님들이 거의 나오셔서 봉사를 하셨다. 일부러 다 나오실 뿐만이 아니라 가족들과도 다 왔다는 것이다. 우리 순장님들과 이 새벽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성도님들을 한 분 한 분도 축복한다. 오늘 성경고사 대회에서 드디어 처음으로 전국성경고사 대회에서 저희 교회가 1등을 했는데 제가 새벽에 나와서 이렇게 인사를 하니까, 아이들이 “목사님, 가까이서 뵈니까 더 감사하네요.” 한다. 아이들이 그렇게 말하니 제가 깜짝 놀랐다. 그래서 제가 “나도 그렇다. 이 새벽에 너희들 이렇게 나오니 너무 감사하다.”라고 했다. 우리 아이들 가운데 평양시장, 각국 각처의 유능한 인재들이 나올 줄 믿는다. 자, 우리는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을 산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가? 작년 가을부터 하나님께서 아주 중요한 슬로건을 주셨다. ‘사람에게는 진심으로, 하나님께는 전심으로’, 그리고 
Sincere heart to people-사람에게는 진심으로, 
Wholeheartedly to God.-하나님께는 전심으로.
 
그러면 어떻게 하면 진심과 전심을 담을 수 있는가? 어떻게 진심과 전심의 사람이 되는가? 그렇게 기도하면서 보니 진심과 전심을 다음을 만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 진심과 전심을 담을 만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 믿음의 용량이 준비되어야 한다. 새벽이니까 더 잘 쏙 쏙 들어올 줄 믿는다. 그릇이 준비되어야 하는데 그릇은 고난과 믿음의 용량(用量), 이 두 가지가 같이 가야 강하고 믿음의 용량을 같이 가야 이 그릇이 준비되는 것이다. 아멘, 고난과 믿음의 용량이 같이 가는 핵심, 우리가 평생 붙잡을 만한 뭐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그것이 바로 모세가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시고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는 출애굽에 대한 엄청난 사명이고 엄청난 그릇의 준비인데 그것을 위해 수많은 고난을 겪에 하시고 심지어 뱀 꼬리 잡으라고 하시고, 그렇지 않은가? 뱀 꼬리 잡으면 그 당시 살모사, 죽는 것이다. 죽음을 각오한 그 전력투구(全力投球)를 하니까 뱀 꼬리를 잡으니 뱀 꼬리가 지팡이가 되었다. 그 지팡이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지팡이를 가지고 아멜렉도 승리하게 하시고, 지팡이를 가지고 반석에서 샘물도 터트리게 하시고, 그 지팡이가 단순한 지팡이가 아니라, 고난과 믿음의 사명이 같이 결합된 지팡이가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새벽에 적게는 이런 지팡이를 가지고 나오고 크게는 이런 지팡이를 가지고 나온다. 제가 앞으로 무얼 할 건가 싶은가하면, 컬렉션을 해보고 싶은데, 지팡이만 한 번 해볼까? 한다.
 
제가 몇 년 전에 덴버신학교에 가니까 창설하신 유명한 닥터 버넌이란 분이 유명하셨는데 그분은 그 컬렉션, 그분은 지팡이를 모으는 취미를 가지고 계셨다. 전 세계적인 양과 목자의 지팡이를 가져다가 딱 서재에 걸어놓았다. 여러분, 지팡이를 한 번 수집해 보겠는가? (가장 강하고 튼튼한 지팡이가 가장 비싸다-대추나무에 번개 맞은 지팡이가 가장 상품)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지팡이가 무얼 상징하는가? 고난과 믿음의 용량이다. 하나님은 항상 고난과 믿음의 용량을 가지고 그 사람을 쓰시고, 민족을 구원하시고 시대를 새롭게 하신 줄 확신한다. 제가 새해 많은 분들에게 이렇게 인사가 오면 저도 간단한 답을 드리는데 거기다가 꼭 쓰는 이야기가 새 한 해에, 새 은혜에, 새 역사가, 일어나게 해달라고 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 우리가 마음에 갖고 있는 이 지팡이를 통하여 기도의 지팡이를 통하여 새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오늘 기도의 지팡이의 예를 사무엘상 1:26-2:1절까지 한나의 기도의 지팡이를 이야기 하겠다. 앞으로도 더 이야기를 할 텐데, 한나의 기도의 지팡이의 오늘 핵심은 사무엘상 12장에 보면 사무엘이 뭐라고 하냐면 한나는 기도의 어머니로 기도의 지팡이로 본을 하나 보여주었다. 그 때 한나로 끝난 게 아니라 이 기도의 지팡이가 누구에게 전수가 되었는가? 사무엘에게 전수되었다. 사무엘이 기도의 지팡이를 가지고 은혜를 받고 난 다음에 나중에 기도의 응답을 가지고 이제 예루살렘 성막에서 그 사명을 감당하는데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아니하였다. 그러니까 사무엘이 성막에서 수종들 때는 불이 꺼지지 아니하였고 그것이 연계 되어서 사무엘상 12:13절을 보면.
 
*사무엘상 12:23,
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기가 막힌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한나의 기도의 지팡이가 사무엘에게 기도의 지팡이와 연결되고 반대로 한나의 기도의 지팡이가 사무엘의 강력한 기도의 지팡이로 계승이 된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 모든 기도의 지팡이, 앞으로 여러분들의 기도의 지팡이를 가지고 올 때마다 먼저 이제 한나를 생각해 보고 그리고 한나에게 이 기도이 지팡이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전수가 되었는데, 이 기도의 지팡이는 한나에게도 꼭 같다. 모세에게도 고난과 믿음의 용량이라는 믿음의 용량이라는 그 두 가지로 사람에게는 진심, 하나님께는 전심으로 쓰임 받도록 만들어 주셨는데 한나에게도 기도의 지팡이를 들도록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고난을 주셨다. 오늘 사무엘상 6절을 보면, 어떤 고난을 주시는가? 
 
*사무엘상 1:6,
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그 당시 히브리 사회, 이스라엘 사회에서 자식이 없는 것은 하나님이 너를 축복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니까 한나 입장에서는 너무 괴로웠고 더더구나 다시 5절에 보면,
*사무엘상 1:5,
5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妊娠)하지 못하게 하시니. 
-기가 막힌 것이다. 뭐 브닌나를 어떤지 잘 알 것이다. 남편이라고 있는데 자기가 애를 못 낳으니까 ‘브닌나’라는 여자를 데려와 아이를 척척 낳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는 못 낳고 그것도 한나에게 태(胎)의 문을 안‘열어 주시니까 어떻게 보면 고난도 이런 고난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핵심(核心)은 모든 고난(苦難)은 기도(祈禱)의 지팡이를 들게 하는 초청장(招請狀)이다. 여러분이나 저나 우리의 삶의 모든 일이 다 순적하기만 하겠는가? 그런데 모든 종류의 고난은 기도의 지팡이를 들게 하는 초청장이다. 그래서 기도하는데 한나가 처음 기도할 때는 “하나님, 아들을 주시옵소서!” 기도했다. 그러다가 한나가 나중에는 기도를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냐면, 내가 억울하고 힘드니까 나에게 아들을 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기도하다가 가만히 보니까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사명을 주신 것이다. ’아. 이 아들을 주실 때에 내가 이 아들을 드리겠나이다.’ 라고 한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사람에게는 진심, 이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는 전심으로 기도의 지팡이를 들어야 하는데 기도가 통곡할 정도로 기가 막혔지만 11절에 보면 이 말씀이 핵심이다. 
 
*사무엘상1:11,
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제는 한나의 아들을 자녀를 달라고 이전에도 기도를 했을 것이다. 기도하는데 어느 순간 기도의 깊이와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주님 앞에 기도하나까 영적인 통찰력과 쉽게 이야기 하면 영적인 물미가 터진 것이다. ‘아, 이 자녀가 내 자녀가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자녀이네. 하나님이 주실 자녀이면 정말 귀하겠다.’라고 생각하면서 한나의 마음속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지만 ‘나보다도 하나님이 나에게 더 주시기를 원하시겠구나.’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이해가 되는가? 여러분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지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며 내가 원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이 더 주시기를 원하신다. 다시 말하면 내가 주시기를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더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것이 확신이 되는 순간 한나가 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어졌다. 
 
*사무엘상1:18,
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수색이 없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기도의 지팡이를 들 때 한나는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한다. 저는 한나는 자기를 생각해 달라는 것이다.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 여러분 기도는 기억해 달라고 해야 한다. 내가 내게 소원하는 것을 요청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이 나에 대한 더 귀한 것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 여러분 이 자녀는 나중에 내 자녀이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부모들은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께 렌트하신 것이다. 깊은 내용들은 오늘 다 못할 것 같고 오늘 명절 특별 음악회가 있기 때문에 이정도로 마치려고 한다. 전심과 진심은 고난과 믿음의 용량의 핵심중에 하나가 기도의 지팡이이다. 기도의 지팡이를 들때는 한나가 기가 막히게 고통스러웠다. 그게 초청장이다. 그래서 깊은 기도의 경지에 들어가면 내가 요청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이 나에게 필요한 것을 더 잘 알고 계신다. 그리고 얼굴에 수색(愁色)이 없는 것이다. 나중에는 욥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자. 가지고 온 지팡이를 들고 내 영혼 주 찬양하자. 2장 1절을 보면, 한나가 너무 감사해서 
 
*사무엘상 2:1,
1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오늘 영하 10도 넘는 이 어려운 가운데 새벽에 이렇게 나와서 명절 특별기도회를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있는 우리를 하나님은 응답해 주시리라 믿는다. 오늘 기도할 것은 사람에게는 진심, 하나님께는 전심으로 되어 고난과 믿음의 용량을 가지고 우리의 믿음의 용량을 키워주시는데 거기에 맞는 것이 기도의 지팡이이다 오늘 모세에게도 기도의 지팡이를 들게 하셨듯이 한나에게도 이런 기도의 지팡이를 들게 하시는데 한나에게는 고난과 어려움이 기도의 초청장이었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게 되고 아,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더 귀한 것을 주시길 원하시구나!’ 를 깨닫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그 얼굴에 수색이 없고 하나님께 맡기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 맡기게 되니까 사무엘이 태어나고 한나의 기도가 사무엘에게 전수가 되어서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 기도의 쉬는 죄를 범치 않았다. 
 
♩내 영혼 주 찬양하며~♬~~~
♣요약
여기서는 기도의 영과 아울러 예언의 영으로 감동받은 한나의 감사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한나는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어 주시사 감사하고 찬양함으로써 그 사실을 시인하였다. 감사는 우리가 마땅히 바쳐야 할 세금과도 같은 것이다. 
둘째, 한나가 받은 자비는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래서 한나는 특히 그것에 대한 감사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셋째, 한나의 감사를 여기서는 기도라고 한다. 왜냐하면 감사는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앞에서 간구했을 때는 그 음성이 들리지 않았으나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는 모두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나는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간구했으나 이제는 입술을 열어 하나님께 찬양을 올린 것이다. 한나의 감사에서 세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람에게는 진심, 하나님께는 전심으로 되어 고난과 믿음의 용량을 가지고 우리의 믿음의 용량을 키워주시는데 거기에 맞는 것이 기도의 지팡이이다 오늘 모세에게도 기도의 지팡이를 들게 하셨듯이 한나에게도 이런 기도의 지팡이를 들게 하시는데 한나에게는 고난과 어려움이 기도의 초청장이었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게 되고 아,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더 귀한 것을 주시길 원하시구나!’ 를 깨닫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그 얼굴에 수색이 없고 하나님께 맡기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 맡기게 되니까 사무엘이 태어나고 한나의 기도가 사무엘에게 전수가 되어서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 기도의 쉬는 죄를 범치 않았다. 우리도 그러한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주님을 간절하게 사모하여 현장예배와 헌신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 설날 찬양 음악회 ☆---------------
●소프라노:-최재연(입맞춤) 
●테너:이정명(그대는 나의 모든 것)
●메조 소프라노: 양송미(내 마음은 당신의 목소리에 열리고, 믿음의 고백)
rㅏ 사무엘 윤(더 이상날지 못하리)
●사무엘윤, 이정명(믿음의 고백)
●사무엘윤, 이정명, 최재연, 양송미(물 위를 걷는 여자)
●피아노:???

♧요약
한나가 어떻게 아들을 바쳤는가 보자. 첫째, 제물과 함께 : 수소 셋과 소제물을 바쳤다(24절). 어린 아이의 나이 한 살마다 수소 한 마리씩 바친 것인지도 모른다. 또는 수소 한 마리는 번제로 또 한 마리는 속건제로 드리고 마지막 한 마리는 화목제로 드린 것인지도 모른다. 둘째,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은 선하심에 감사함으로 : 한나는 그것을 엘리에게 표시하였다. 왜냐하면 엘 리가 그녀에게 용기를 주어서 안심하고 기도의 응답을 바라게 되었기 때문이다(26,27절).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27절). 셋째, 한나는 이 아이에 관한 모든 권리를 하나님께 바쳤다.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28절).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먼저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여 얻은 것이다.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16). 이 기사에 의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빌려드리는 것이라고 한다. 세례를 통해 우리의 자녀를 하나님께 바칠 때는 그들이 엄연히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먼저 기억하도록 하자. 게다가 그들이 여전히 우리의 위로가 되는 우리의 자녀란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자.
(5) 어린 사무엘은 그 또래의 아이들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일을 하였다.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28절). 즉 그는 기도를 하였던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일찍부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하며 예배드리도록 인동해서 가능한 한 그들이 예배에 동참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예배를 기쁘게 받으실 것이며 그들이 더 훌륭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가르쳐주실 것이다.


ㅡ여기서는 기도의 영과 아울러 예언의 영으로 감동받은 한나의 감사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한나는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어 주시사 감사하고 찬양함으로써 그 사실을 시인하였다. 감사는 우리가 마땅히 바쳐야 할 세금과도 같은 것이다. 둘째, 한나가 받은 자비는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래서 한나는 특히 그것에 대핸 감사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셋째, 한나의 감사를 여기서는 기도라고 한다. 한나가 기도하여(1절). 왜냐하면 감사는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앞에서 간구했을 때는 그 음성이 들리지 않았으나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는 모두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나는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간구했으나 이제는 입술을 열어 하나님께 찬양을 올린 것이다. 한나의 감사에서 세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 설날 찬양 음악회 ☆-----------------------------

●소프라노:-최재연(입맞춤) 
●테너:이정명(그대는 나의 모든 것)
●메조 소프라노: 양송미(내 마음은 당신의 목소리에 열리고, 믿음의 고백)
●베이스: 사무엘 윤(더 이상날지 못하리)
●사무엘윤, 이정명(믿음의 고백)
사무엘윤, 이정명, 최재연, 양송미(물 위를 걷는 여자)














































                                                                                     ☆성경고사 시상식☆




















♣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1월 18일)
제목: "일상, 하나님의 나라!"
말씀: 미테복음 4:1-10
찬양인도: 쉐키나(이 디니엘 부목사님)
사회: 문진호 부목사님

설교자: 빅인기 부목사님(목양 3팀장, 중보기도사역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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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테복음 4:1-10,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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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시험을 본다. 학창시절 중간고사 기말고사 뿐만이 아니라 수능도 있다. 또한 학교를 졸업하고 난 다음에 직장에 취업하기 위하여 취업시험도 보고 직장에서 진급 시험도 본다. 그뿐이 아니라 어떤 자격증을 갖기 위하여 자격증 시험, 운전면허 시험도 본다. 이런 시험들은 우리를 기쁘게도 하지만 어떨 때는 심각한 좌절 가운데 빠지게 하기도 한다. 저는 운전면허 시험에 떨어져서 좌절에 빠졌다. 무려 8번이나 떨어졌다. 학원비 아껴보려고 친구한테 그냥 한 번씩 배우고, 한 번씩 운전해 보고 시험을 쳤는데, 나중에는 시험 치는 비용이 운전학원 비용보다 훨씬 더 많이 나왔다. 여덟 번 떨어지고 난 다음에 아홉 번째에 붙었는데 너무 기뻤다. 20년 동안 무사고로 운전하고 있는데, 한 번씩 도로에 운전하며 운전연습 차량들을 보면 짠한 동질감을 참 많이 느끼곤 한다. 시험은 우리를 절망에 빠지게도 하고 우리를 기쁘게 하기도 한다. 이런 시험은 학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도 동일한 여러 시험들이 있다.
 
베드로는 그의 서신 서에서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찾아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라고 말씀한다. 성도들을 시험에 빠뜨리기 위하여 어떨 때는 우는 사자의 두려움으로 또한 어떨 때는 광명을 천사처럼 달콤한 유혹으로 성도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위협한다. 우리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두려움을 주고 또한 우리를 유혹하고 결국에는 경계심을 제거하여 시험에 빠뜨리는 것이다. 인류를 대표하는 첫 번째 아담도 뱀의 유혹에 넘어가 결국 인류를 모든 오염된 가운데 태어나게 하고 살아가게 했다. 이처럼 치명적이다. 또한 너무 어렵고 힘든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항상 이 모든 시험들이 어렵다거나 힘들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는 그의 서신 서에 “네 형제들아 너희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시험당할 때 우리에게 기쁘게 여길 것들을 권면한다. 수제자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6-7절에 보면,
 
*베드로전서 1:6-7,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신앙인들에게 다가오는 시험, 이 시험을 어떻게 견디고 이기느냐에 따라 우리 신앙생활 가운데 치명적인 어려움을 줄 수도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광이 될 수도 있다고 권면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오는 이 시험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고 풀어가는 가의 문제이다. 이런 측면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무나 멋지고 좋은 모범적인 답안들을 보여주셨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이다. 예수님은공생애를 시작하며 마귀에게 당하시는 이 세 가지의 시험, 이 시험에서 너무나 못 있게 이기심으로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우리의 삶 가운데 다가오는 시험을 어떻게 이길 것인가를 보여주셨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승리의 비결들을 함께 나누고 우리의 삶 가운데 오는 시련과 어려움들을 승리할 수 있는, 비결들을 배워갈 수 있는 주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예수님이 당하신 첫 번째 시험이다.
I. 첫 번째 시험은 삶의 모습에 대한 오해입니다.

-이 시험은 마귀는 40일 동안 금식하신 예수님께 찾아와서 돌을 변하여 떡으로 만들어 먹을 것들을 촉구한다. 우리나라 속담에 ‘3일을 굶으면 담을 넘지 않을 군자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배고픔들이 너무 심각한 어려운 문제라는 것이다. 저도 예전에 일주일 정도를 금식한 적이 있다. 어느 정도 초반부에는 견디었다. 마지막 2-3일 정도 남겨두고서는 금식 끝나고 나서 먹을 것들을 생각하며 그 상상으로 남은 시간들을 견뎠다. 금식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주일을 금식도 이렇게 힘들 진데 40일 금식하신 예수님,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육체의 모습을 입고 계셨기 때문에 동일하게 고통과 배고픔을 경험하신 예수님이셨다. 그 예수님께 마귀가 시험하는 것이다. 먹을 것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예수님께 배고픔의 문제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원초적인 문제였다. 마귀는 예수님의 약한 부분을 비집고 들어와 집요하게 공격한다.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 굶주림은 삶의 중요한 현실이며 우리가 당면한 현실의 어려움을 상징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돈이 없어 고민하고 몸이 아픈 것 때문에 어려워하며 불안한 미래 때문에 힘들어 한다. 우리의 가장 원초적이며 현실적인 어려움 아닌가?
 
예수님도 우리의 어려움들을 아셨기 때문에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친히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이런 마지노선이 무너진 것이다. 그리고 마귀는 우리에게 찾아온다. 또한 예수님께 이야기한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역으로 이야기하면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 문제들을 해결해 주셔야 되는 것 아닌가?”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친히 너의 자리 가운데 찾아오셔서 너를 돕고 일으키시며 그 문제를 하나하나 다 풀어주셔야 되는 것 아닌가?’ 라는 의구심들을 우리에게 던진다. 시험하는 자는 구체적인 현실들 앞에서 해결을 주지 않는 예수님께 실망하고 그 결속력들을 깨뜨리는 것이다. 이러한 시험에 빠지면 우리의 속에 원망이 생긴다. “하나님, 왜 이런 문제들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인가요? 왜 나만 힘든 걸까요? 하나님 나를 사랑하는 것 맞습니까? 아니 하나님 게신 것 맞습니까?” 이런 의구심과 불안함 들이 우리 속에 솟아난다.
 
※얼마 전에 풀룻 연주자인 송솔나무 선교사님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허준, 이산, 동이, 드라마 주제곡들을 연주한 아주 탁월한 풀룻 연주자이다. 어렸을 때, 참 부자였다고 이야기 한다. 아버지께서 유명한 출판사를 운영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의 사업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도피성으로 어쩔 수 없이 엄마와 누나와 함께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에서 참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던 상황에서 아버지의 사업이 완전히 망했다. 아버지는 도망자가 되에 연락도 안 되었고 엄마와 누나와 함께 그렇게 어렵게 살아가던 중, 어려움 끝에 줄리아드 음대에 프리스쿨에 풀룻 연주로 합격했다. 어려운 현실 가운데 엄청난 은혜였다. 이것만이 그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고 소망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던 중, 그에게 힘겨운 일이 찾아왔다. 음악연주자에게 악기는 생명과 같은데 그 악기를 세 번이나 도둑을 맞았다고 한다. 첫 번째 도둑맞고, 두 번째 도둑맞고, 마지막 한 악기가 남았는데 천만 원이 넘는 그 악기마저 도둑맞은 것이다. 그때 그는 심각한 절망 가운데 빠졌다.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인가요? 내 삶을 돌보고 계신 것 맞습니까? 하나님,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해도 해도 너무 한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때부터 교회를 떠났다. 그런데 만약 이런 마귀의 속삭임,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런 속삭임이 예수님을 위한 것인가? 그것이 아니다. 이 마귀의 속삭임은 우리를 유혹하는 마귀의 음침한 속삭임이다. 이 비슷한 속삭임이 있다. 마태복음 27:40절에 나온다.
 
*마태복음 27:40,
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십자가를 향하여 매달린 예수님께 내 뱉은 사람들의 조롱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동일한 속삭임이다. 마귀의 요구는 예수님 안에 있는 인간, 이것을 가장 원하는 것이며 마귀가 기대하는 것이었다.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하나님이 너의 아버지라면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해 주셔야 되는 것 아니냐?’는 그의 외침이다. 하나님이 너의 어려움의 삶에 찾아오셔서 너를 건져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 ‘너를 도와 주셔야 하는 것 아니냐‘ 한다. 혹시 근본적인 문제로 시험 가운데 있는 분들이 있는가? 동일한 이런 마귀의 외침 가운데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35-37절에 보면,
 
*로마서 8:35, 37,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다. 우리의 삶이 어떠하든지 간에 우리가 얼마나 곤고한 문제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그 어떤 것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고 여전히 하나님이 사랑에서 붙들고 계심을 약속하고 있는 줄 믿는다. 아멘, 하나님의 은혜는 어려움 가운데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우리의 간구 가운데 응답해 주셔서 그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것,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가 맞다 하지만 또 다른 은혜는 여전히 바뀌지 않는 현실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서 우리를 붙들고 계시다는 것들을 확신하고 그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을 믿는다. 시편 23편에 나오는 고백처럼,
 
*시편 23:4-6,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사망의 음침한 가운데서도 주께서 지팡이가 되시고 원수가 바로 앞에 있는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상을 차려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럴 때 성도는 고백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모든 말씀, 그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이 우리에게 고백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아멘.
 
예수님이 당하신 두 번째 시험이다.
II. 두 번째 시험은 삶의 이유에 오해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높은 성전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뛰어내리라고 재촉한다. 이 마귀의 시험은 하나님의 말씀까지 동원해서 시험을 한다. 시편 91편 11-12절에 나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천사들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지켜주신다.
 
*시편 91:11-12,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이 말씀을 인용하여서 “뛰어내려 뛰어내리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너를 구해 주실 거야.”라고 이렇게 유혹한다.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에 대하여 확신하며 뛰어내리는 것을 요청한다. 이 마귀의 시험은 하나님의 권능을 증명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이다. “그래, 내가 한 번 뛰어내리지. 하나님 정말 권능과 능력이 있어, 내가 뛰어 내리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천사들을 통하여 나를 보호해 주실 거야. 야, 잘 봐, 하나님이 얼마나 권능에 있는지, 능력이 있는지, 똑똑히 봐?” 하면서 풀쩍 뛰어내릴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마귀의 예수님은 요청에 전혀 응답하지 않는다. 왜 그랬는가? 하나님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하나님의 힘을 증명할 수 있는 이 상황 가운데 왜 예수님은 묵묵부답(黙黙不答)이셨는가? 마귀의 말에는 하나님의 능력만 나타날 뿐이다. 능력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에만 집중할 때, 우리는 시험에 빠진다. 그 능력을 집중하고 신뢰하지만 어떨때는 그 능력이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나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필립 얀이 지은 책 제목 중에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라는 책에 실망하는 것이다. 왜 실망하는 것인가? 실망이라는 항상 기대라는 단어와 짝을 이루며 나타난다. 기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실망이 없다. 기대하기 때문에 그 기대한 대로 결과들이 나타나지 않을 때, 우리는 실망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실망할 때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 이만큼 내가 했기 때문에 하나님, 나의 기도를 들어주셔야 되죠, 하나님, 내가 열심히 기도했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봉사했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모든 것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하나님 기도 가운데 응답해 주시고,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셔야 되죠?”라고 그런 기대들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 마치 하나님은 능력의 자판기처럼, 내가 어떤 input을 넣으면 하나님으로부터 output이 나와야 된다. 라는 은연중에 그런 기대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나님, 우리 아이가 이번에 대학교 시험에 떡하니 합격해서 하나님께 영광되게 해주십시오. 하나님, 이번 진급 시험에 합격해서 진급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해주십시오. 하나님, 질병을 주께서 낫게 해주십시오. 하나님께 영광 올리게 주십시오.” 이런 기도가 필요하다. 물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하지만 이런 기도들, 이런 바램들, 이런 하나님의 능력, 이 능력 가운데는 하나의 전제가 깔려있다. 그것은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내기 위함보다 하나님과 먼저 교제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 가운데서 그 관계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어리 적에 가끔 퇴근하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들을 사간 적이 있다. 아이들이 치킨을 좋아하고 햄버거를 좋아했다. 유독 많이 좋아했다. 한 번씩 치킨이나 햄버거를 사서 한 손에 들고 집으로 간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다. 아이들이 저를 보고 막 달려온다. “아빠!!!” 하고 달려와서 저와 함께 하이파이브를 함과 동시에 다른 편에 있는 봉투를 낚아채서 달려간다. 저는 내심 하이파이브하고 나서 아빠를 안아주기라도 하든지, 뽀뽀라도 한 번 해주든지 해줄지 알고 “아빠 감사해요. 잘 먹겠습니다.”라고 이야기 할 줄 알고 시간을 줄줄 알았는데, 이 봉투만 들고 가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왔지만 내심 섭섭한 마음이 있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에만 집중할 때, ‘하나님은 어떤 마음이실까?’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는 그 능력만 우리가 바라본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보실까?’ 그 마음이다.
 
고린도전서 1:9,
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 이전에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시는 줄 믿는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다. 역대하 16장을 보자.
 
*역대하 16;9,
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하나님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신다. 그리고 어떤 자들을 찾으시는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자,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 하나님을 향해 시선이 고정된 자를 찾는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런 자들을 향하여 능력 베푸시는 줄 하나님이신 줄 믿는다. 능력이전에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먼저이고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다.
 
제가 지난주에 제천기도동산에 다녀왔다. 신년을 시작하기 위하여 기도하러 간 것도 있고 제 삶들 가운데 여러 어려운 문제들, 제 두 자녀의 문제, 또한 저의 문제, 저의 가정의 문제들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간구하기 위하여 기도할 문제들을 가지고 올라갔다. 기도동산의 본당에 앉아 처절하게 기도했다. “하나님, 이 문제를 주께서 해결해 주시고 하나님 도와주셔야 합니다.” 막 기도하는 중에 너무 답답하게 기도하는 중에 주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인기야, 힘드냐? 네 주님, 너무 힘듭니다. 너 힘듦을 내가 모를 것 같냐? 네가 힘들어 하는 것 나도 잘 알고 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고 너는 내 것이다. 너의 삶을 내가 책임진다. 너의 삶, 그 능력 가운데 해결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너의 삶을 책임진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라고 그 마음을 주시는데 하나님 앞에 끄억 끄억 소리 내어 울었다. 저는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기다리고 계셨다.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제가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을 기대하고 계셨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을 능력의 자판기처럼 오해하고 있지는 않는가? 예수님은 이 마귀를 향하여 외치신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우리가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날 때, 이 마귀의 시험은 말씀으로 물리칠 줄 믿는다. 아멘.
 
예수님이 당하신 세 번째 시험이다.
III. 세 번째 시험은 삶의 목적에 대한 오해입니다.
 
-삶의 목적에 대한 오해, 마귀의 마지막 시험은 예수님을 가장 높은 산으로 데려가서 모든 영광들을 다 보여 주신다. 그리고 예수님께 이야기 한다. 그리고 예수님께 이야기 한다. “이거 다 너에게 모든 것들을 줄게. 나에게 딱 한 번만 절 한다면 모든 것들을 줄게.” 모든 것들을 다 가질 수 있는 정말 좋은 진 기회이다. 마귀에게 절만 한 번 한다면, 마귀의 유혹이다. 이 마귀의 유혹은 세상의 화려한 물질을 보면 그것을 갖고 싶고 또 마음껏 누리고 싶고 즐기고 싶은 우리의 욕망들을 부추기며 계속해서 유혹한다. 그 욕망이 유혹으로 넘어간다. 이런 유혹들은 우리의 삶의 도처에 널려있다. 조금만 신앙양심을 접으면 수많은 수익들이 생길 수 있고, 또한 한 번만 눈을 질끔 감으면 얼마간의 소유가 생길 수 있다. 또한 신앙이라는 것만 잠깐 접으면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누리는 그 기쁨들을 동일하게, 그 희락들을 동일하게 누릴 수 있다. 라고 유혹한다. 마귀의 유혹이다. 잠시 접어두기만 하면 한 번, 한 번만, 접어두기만 하면, 요한은 이런 마귀의 유혹들을 너무나 잘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요한 일서를 보면,
 
*요한일서 2:16,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마귀는 우리를 유혹한다. 이 마귀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무기이다. ‘한 번만 나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다 줄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이것을 다 줄게.’ 라고 한다. 이런 것들에 대해
 
유명한 신학자 리차드 포스트는 돈과 권력과 섹스, 성으로 표현한다. 마귀의 성 가운데 있는 무기이다. 딱 한 번만 눈을 감으면 그것이 나의 것이 된다고 이야기 한다. 혹시 복 요리를 좋아하는가? 복요리, 아주 맛있는 보양식이다. 하지만 복어가 갖고 있는 독성은 죽음의 아이콘 청산가리보다 몇 십 배나 강력한 독을 품고 있다. 돈, 권력, 성이 우리의 일상이지만 마귀의 유혹에 넘어갈 때, 이것은 우리의 신앙 가운데 치명상을 일으킨다. 순식간에 절망가운데 빠진다. 불의한 재물이 되고, 오만한 권력이 되고, 불륜이 되는 것이다. 이런 유혹들은 최초 아담의 유혹인 뱀을 유혹하는 것과 흡사하다. 아담이 그 전에도 선악과를 참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뱀이 와서 유혹을 한다. “저거 한 번 먹어봐, 먹는 날에는 하나님처럼 될 거야.” 그때부터 선악과를 보는데 보암직도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하는 탐스러운 과일이 되었다. 그리고 유혹한다. “한 번만, 한 번만”, 이거 한 번이 너무나 치명적이다. 한 번 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고, 그때부터 우리의 삶이 된다. 조금 지나면 어떠한가? 절망적으로 우리의 신앙 가운데 심각한 어려움 가운데 빠지고 수많은 후회들과 죄책감에 시달린다. 저의 이야기이다. 제가 목사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참 많이 경계하지만 한 번씩 한 번씩 그런 유혹들이 엄습(掩襲)해 온다. 어떨 때는 그런 유혹 가운데 빠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제 스스로 시달린다. ‘아이구 목사가 되어서... 내가.’ 어렵다. 우리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 반대도 있다. 항상 우리가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 아담처럼 이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다니엘은 10대의 나이에 이억 만리 바벨론에 포로(捕虜)로 잡혀간다. 10대의 나이에 왕의 진미(眞味), 먹으라고 주는 그 맛있는 음식들을 거부한다. 장년이 되어서는 금 신상에 절하기만 하면, 그가 물을 수 있는 것이 참 많았다. 그런데 그 금 신상에 절하지 않고 그 세 친구들과 함께 풀무 불에 던져지는 것들에 주저(躊躇)하지 않는다. 그의 노년이 되었을 때, 90대의 노후가 되어 왕 외에는 어떤 간구들을 하지 않아야 됨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그렇게 하면 사자 굴에 던져진다는 유혹 가운데서도 그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전에 하던 대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했다. 한 번만 눈 찔끔 감으면 모든 것들이 해결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모든 것들을 누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의 자존심을 지키며 그에게 절하기를 원하는 마귀의 유혹가운데 단호하게 맞서 물리친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풀무 불 가운데 보호해 주시며 다니엘을 사자의 입 가운데 건져 주신 줄 믿는다. 아멘, 수많은 유혹 가운데서 우리는 얼마나 연약(軟弱)하며 연약하다 못해 나약(懦弱)한 존재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나는 나약하지만 나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은 절대 나약하지 않는다. 나는 부족하지만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강하고 능하신 용사인줄 믿는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돕고 계신다. 그 하나님이 그 성령님이 날마다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 분이신줄 믿는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 8장 26절을 보면,
 
*로마서 8:26,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연약함을 너무 잘 아신다. 하지만 그 성령이 우리를 도우신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계속해서 간구하고 계신다. 말씀을 마무리 한다. 앞에서 나왔던 풀롯 연주자, 송솔나무 연주자 이야기 뒤 부분이다.
악기를 세 번이나 도둑맞고 하나님을 떠났다. 십 년이나 하나님을 떠났다. 그렇게 연주자로서 승승장구하고 있을 무렵, 그의 친한 동료가 전도 집회 때에 그를 초청했다.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그를 따라가 전도 집회에 앉아있었다. 한참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그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물었다. “내가 도둑맞은 게 무엇이냐?” 송솔나무씨가 하나님께 대답한다. “하나님, 제가 생명같이 여기던 풀룻을 도둑맞았어요.” 하니, “아니 네가 도둑맞은 게 무엇이냐?” “아니오. 하나님, 제가 풀룻을 도둑맞았습니다.” “그래, 네가 도둑맞은 것은 풀룻이 아니라, 나의 대한 마음이야. 나를 도둑맞았어.” 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그는 그 자리에서 예배 마칠 때까지 그는 펑펑 울면서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성탄절 저녁에 TV를 보는데 TV에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구출하는 한국사람 영상이 나온다. 누굴까? 벤을 구출하는데 벤을 보니 총알자국이 너무 많은 것이다. 언제 죽을지,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그런 상황 가운데서 벤을 통하여 다른 나라로 구출하는 그 사람이 그 송솔나무 그 사람이었다. 나중에 인터넷을 통해서 찾아보니 그분이 바로 송 솔나무씨였다. 하나님 앞에 그를 드리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고난이 닥치면 낙심하고 의심에 맞기 쉽다. 또한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의 타락한 우리의 본성이며 우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 주신 이유는 승리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통하여 승리하는 비결들을 보여주셨고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우리 또한 마귀의 시험 가운데서 승리할 수 있을 줄 믿는다. 마귀의 시험들은 공통점이 있다. 계속해서 우리를 보게 한다. 우리 자신에게 집중하게 한다. 이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시선’이라는 찬양이 계속 떠올랐다. 그 가사를 보면,
 
1절-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주를 보기 시작할 때, 주의 일을 보겠네. 내 작은 마음 돌이키사 하늘의 꿈꾸게 하네. 주님을 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계신 주님을 느낄 때, 내 삶은 주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2절- 성령이 나를 변화시켜 모든 두려움 사라질 때 주의 일을 보겠네. 황폐한 땅 한 가운데서 주님 마음 알게 되리. 주님을 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느낄 때, 세상은 주의 나라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시험이 난무하는 우리의 일상이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 가운데 우리의 시선들을 내게로부터 주님께 시선을 고정할 때, 우리의 일상은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줄 믿는다. 수많은 시험과 유혹 가운데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봄으로 승리를 선포하며 하나님의 일상이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도드린다. ♪  ~~

♣요약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서 일상 가운데 하나님을 경험하여 마귀의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우리를 향하는 시선들을 주님께 고정시켜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능력 주심을 확신하며 모든 연약함과 마귀를 이겨내게 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승리를 선포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유명한 결투 즉 천사 장 미가엘과 용,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아니 뱀 자신과의 백병전의 사건을 보게 된다. 이 싸움에서 여자의 후손은 시험을 받고 고통을 당하며 그의 발꿈치를 상한다. 그러나 뱀은 그의 시험에서 완전히 실패하며 그의 머리가 깨뜨려진다.













[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1월 16일 (782)
1. 기업이 발표한 실적이 시장 추정치보다 크게 낮아 투자자들에게 충격을 주는 상황을 뜻하는 말은?
①어닝 시즌 ②프리어닝 시즌
③어닝 서프라이즈 ④어닝 쇼크
2. 매년 초 근로소득자의 급여에서 전년도에 원천징수된 세액의 과부족 여부를 따져 세금을 더 냈다면 환급하고, 덜 냈다면 더 부과하는 절차는?
①세액공제
②유상증자
③감가상각
④연말정산
3. 한국의 ‘4대 보험’에 속하지 않는 것을 고르면?
①국민연금 ②연금저축
③산재보험 ④고용보험
4. 배를 만드는 산업을 뜻한다. 지난해 한국 기업들이 세계 발주량의 37%를 따내며 선전한 이 업종은?
①해운 ②조선
③방산 ④2차전지
5. 공인회계사가 제시한 네 가지 감사의견 중 기업 존립에 의문이 들 정도로 중대한 결함이 발견된 가장 심각한 상태는?
①적정 ②한정 ③부적정 ④의견거절
6. 증시 약세 탓에 지난해 ‘이것’ 규모가 세계적으로 65% 급감했다. 기업이 일반투자자에게 주식을 공개하고 증시에 상장하는 절차인 이것은?
①SPAC ②PEF
③IPO ④M&A
7. 국가가 보유한 노동·자본·기술 등 생산요소를 모두 활용하면서도 물가 상승 부작용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최적의 경제성장률은?
①잠재성장률 ②명목성장률
③실질성장률 ④총요소생산성
8. 산업 현장에서 많이 쓰는 비철금속의 하나로, 가격이 실물 경기를 잘 반영한다고 해서 ‘닥터 코퍼’라는 별명이 붙은 이 금속은?
①구리 ②니켈 ③아연 ④알루미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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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기술 한계는 어디까지? 상상 초월 'CES 2023'

 

인류는 지금 ‘제2의 태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태양 만들기에 성공하면 인류는 석유, 가스, 석탄과 같은 화석 에너지에 집착하지 않아도 됩니다. 태양은 핵융합을 통해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생산하는데요. 지구에서 태양을 만들려면, 즉 핵융합이 일어나도록 하려면 1억 도 이상의 초고온 상태를 안정적으로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답니다.

진전은 있습니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은 30초 동안 1억 도를 유지하는 기술을 선보였고, 미국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LLNL)는 레이저를 이용해 핵융합을 일으키는 새로운 접근법을 시현했습니다. 인류는 언제쯤 만족할 만한 기술을 거머쥘까요?

지난 5~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IT·가전 전시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23’은 이 질문에 답을 줬습니다. “인류가 걸어온 길을 계속 걸어가면 가능하다”는 것이죠. CES는 우리가 상상했던 온갖 기술이 실현되었음을, 또 조만간 구현될 것임을 보여준 최첨단 기술 경연장이었습니다. 돌을 갈아 썼던 우리 조상들이 봤다면 기절했을 기술과 제품이 즐비했습니다. 타제석기에서 마제석기로 진화하는 데 수십만 년이 걸렸던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기술적으로 ‘호모 데우스’, 즉 신의 영역을 넘볼 정도의 수준에 올라설 수 있었을까요? CES 2023을 통해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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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뱀·펴고접는 디스플레이·선 없는 TV…상상을 기술로 구현한 혁신에 세계가 '깜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지난 5~8일 열린 세계 IT·가전 전시회 ‘CES 2023’은 기술 진화에 인간 한계는 없다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CES는 코로나19 때문에 3년 만에 열렸는데요. 긴 공백을 메우려는 듯 이전보다 진화된 많은 기술과 신제품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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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인공지능(AI)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융복합 기술을 탑재한 로봇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양쪽 팔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다목적 휴머노이드 로봇 ‘아이오’. 그림을 멋지게 그려주는 ‘스케처’. 수도관 누수를 찾는 로봇 뱀 ‘클린 워터 패스파인더’…. 가장 눈길을 끈 기술은 로봇뱀입니다. 로봇뱀은 수도관을 따라 자율적으로 움직이면서 관이 얼마나 부식했는지, 석회화가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등을 확인해 지도화합니다. 프랑스의 자율 로봇 스타트업 ACWA로보틱스 제품인데 조만간 상용화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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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고 접는 삼성 디스플레이

삼성은 ‘세상에 없던’ 디스플레이를 선보였습니다. 접혀 있던 디스플레이를 펼치고 또 오른쪽 화면을 당기면 디스플레이가 커지는 기술입니다. 처음엔 스마트폰 크기(7.8형)였다가 펼치면 태블릿PC(10.5형)만 하게 확대되고, 다시 늘리면 12.4형까지 늘어납니다. 화면이 커지면서도 디스플레이에서 나오는 영상은 끊기지 않습니다. 별도의 버튼을 누르지 않고 공책을 펴듯 열면 됩니다. ‘플렉스 하이브리드’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작은 크기로 휴대하고 다니다가 필요에 따라 화면을 키워서 콘텐츠를 즐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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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없는 LG TV


선(線) 없는 TV ‘LG 시그니처 올레드M’는 LG전자의 비밀병기로 불렸습니다. LG전자가 축적한 ‘올레드 TV 10년의 노하우’를 모두 담은 TV입니다. 이 TV는 전원을 연결하는 선 외에 아무 선도 필요 없습니다. 너저분한 TV 줄이 없어서 주변이 깔끔한 게 특징입니다. LG전자의 대표 출품작답게 이 TV는 홈시어터 부문 최고상을 받았습니다. 현존하는 TV 중 가장 큰 97형 OLED TV에 세계 최초로 4K·120㎐ 무선 전송 솔루션을 탑재했습니다. 정보를 전달하는 선이 없을 경우 화질이 떨어지고 소리가 안정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이 제품은 그런 한계를 극복한 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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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처럼 색상이 바뀌는 차


BMW는 ‘디지털 영혼을 가진 친구 같은 차’를 콘셉트로 한 전기차 ‘i 비전 Dee’를 공개했습니다. 이 차는 인공지능 친구(비서)를 두었습니다. 비서를 통해 운전자의 감정을 표현하듯 차의 외관 색상을 다양하게 바꿀 수 있었습니다. 색상과 표정 변화는 특수 안료가 포함된 캡슐 수백만 개가 전기장에 의해 한쪽으로 쏠리는 원리에 따라 구현된답니다.

미국 모빌리티 스타트업 아스카(ASKA)는 도로와 하늘에서 모두 쓸 수 있는 공륙양용 차량 ‘A5’를 공개했습니다. 이 회사가 선보인 것은 4인승이었습니다. 리튬이온 배터리와 가솔린을 동력원으로 쓴다고 합니다. 지상에선 한 번 충전으로 최대 약 400㎞를 이동할 수 있습니다. 수직으로 이착륙할 수 있고, 활주로를 이용해 이륙할 수도 있습니다. 자동차로 다니다가 길이 막힐 때 하늘로 붕 떠올라서 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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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극복 제품

국내 스타트업 닷이 만든 닷패드는 디스플레이 표면에 2400개의 핀이 올라와 PC나 모바일 등에 나온 도형·기호·표 차트 정보를 점자로 표시해주는 촉각 디스플레이입니다. 시각장애인이 소통할 수 있는 점자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언제든 자유롭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 셀리코라는 회사는 ‘전자눈’을 선보였습니다. 시세포층에 카메라 역할을 하는 이미지 센서칩을 삽입하는 게 핵심 기술입니다. 이 장치가 빛을 감지한 뒤 이를 생체 전기 신호로 변환해 뇌에 전달합니다. 시력 0.1 이상 수준까지 해상도를 높이는 게 이 회사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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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화중인 기술…'밈(meme) 복제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CES 2023’에는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첨단기술이 모였습니다. 전시회를 둘러본 사람들은 “우와 이런 것까지 구현됐네”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인간은 왜, 어떻게 다른 동물과 달리 새로운 기술, 새로운 도구를 잘 만들 수 있게 됐느냐”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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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가는 데만 수십만 년
인류 조상이 타제(打製)석기인 찍개를 쓰다가 마제(磨製)석기인 돌도끼를 쓰는 신석기 인류로 진화하는 데 수십만~수백만 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깨어져 있는 돌 쓰기’에서 ‘돌을 날카롭게 갈아서 쓰기’로 점프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니, 정말 믿기 어렵습니다. 마제석기는 시간이 더 걸려서 청동·철기를 낳았습니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아마도 아이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 같은 조상이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철기시대는 곧 산업혁명을 낳았습니다. 말과 소의 힘을 이용하는 인류는 증기라는 거대한 힘을 에너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대 기술 혁신이었습니다. 철기는 증기를 만나서 기차, 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21세기 인간은 이제 만들지 못할 것이 없는, 심지어 ‘제2의 태양’까지 만들려 하는 중입니다. 인류학자들이 ‘도구를 잘 만드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조어(造語)해낸 ‘호모 하빌리스’라는 용어는 정말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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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라진 기술 진화
주목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인류 역사 중 99%가량이 구석기 시대였지만 급격한 기술 진화는 길게 잡아야 200여 년 전부터 시작됐고 우리가 즐기는 현대적 최첨단 기술은 최근에야 나타났다는 겁니다. 인류 전체 역사를 24시간으로 본다면 CES에 등장한 기술은 23시간59분59초59에 등장했다는 은유가 가능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하늘을 나는 자동차’ ‘커지는 디스플레이’ ‘뱀처럼 기어가는 로봇’ ‘선 없는 TV’를 본다면 아마 기절초풍할 겁니다. <부는 어디에서 오는가>를 쓴 에릭 바인하커는 ‘석기에서 우주선으로’라는 표현을 써서 인류의 물리적 기술 진화를 찬양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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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과 도킨스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모든 생물은 진화해 오늘날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진화는 자연선택이라는 메커니즘을 밟는다고 했어요. 생물들이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기 위해 변이·적응·재생산 과정을 거친다고 했고 이것을 자연선택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다윈은 수억 년, 수십억 년이라는 긴 시간(eon) 동안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단세포는 다세포로, 결국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진 생물로 바뀌었다는 점을 설명했습니다.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는 책 말미에 한 가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생물학적 진화는 무엇인지 알겠는데, 인간은 어떻게, 왜 동물과 달리 고도로 발달한 기술과 문화를 가질 수 있었을까라고 자문했습니다. 생물학적 진화론으로는 문화적 진화론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어떻게 현대의 우리는 구석기와 신석기 사람들보다, 그리고 18세기, 19세기 사람보다 더 복잡한 기술, 과학, 정보통신력을 가질 수 있게 됐느냐는 것이죠. 그러면서 그는 유전자(gene)와 매우 유사한 단어인 밈(meme)을 만들었고 밈이 문화적 진화를 이끈다고 했습니다. 유전자가 변이, 적응, 확산하듯이 밈도 복제돼 수많은 사람에게 선택, 확산한다는 겁니다.

<밈>을 쓴 수전 블랙모어는 이것을 밈학(memetics)으로 끌어올리려 했습니다. 인간의 기술력이 갈수록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것은 하나의 밈이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빨리 전파, 선택, 변이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오늘의 기술과 정보가 내일이면 지구 전체로 번지는 시대에선 기술 변이가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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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뇌와 기술

인간의 뇌는 밈 진화에 적합하게 진화했습니다. 생물학적으로만 보면 인간의 큰 뇌는 출산 등에 매우 불리합니다만 언어, 정보, 기술 같은 문화를 복제하고 선택하고 전달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는 게 밈 진화론의 포인트입니다. 재미있는 관점입니다.

고기완 기자 dadad@hankyung.com


주일예배(주후 2023년 1월15일)
제목: "세속화 극복"
말씀: 호세아 7:8~10,
11:8~9
찬양인도: 쉐키나(),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조충현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 (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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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7:8~10,
7 그들이 다 화덕 같이 뜨거워져서 그 재판장들을 삼키며 그들의 왕들을 다 엎드러지게 하며 그들 중에는 내게 부르짖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8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에 혼합되니 그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9 이방인들이 그의 힘을 삼켰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무성할지라도 알지 못하는도다.
10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들이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

*호세아 11:8~9,
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9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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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 말씀을 육신의 귀로만 듣지 말고 마음으로 영으로 말씀을 듣기를 바란다. 오늘 제목은 ‘세속화 극복’이란 말씀이다. 지난주일 날 우리가 갈렙을 통해서 40세때는 믿음복고 1.0을 썼고 85세에 45년이 지나서 믿음보고 2.0을 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래서 우리 사랑의 교회가 올해 45주년을 맞이하면서 믿음 보고 2.0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 믿음 보고 2.0을 가록 막는 장애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오늘 이 말씀, 세속화를 놓고 우리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게 되었다. 우리가 어느 정도 세속화가 되었는지, 우리가 측정을 해보면 좋겠다. 세속화가 되어 있는데 이쪽은 순전하고 1로 잡고 세속화가 10이라면 1-10까지의 범위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인가? 2. 5, 8, 어쩌면 좀 오히려 정결한 분일수록 더 내가 오염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인류역사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기는 가장 부유하고 풍요롭게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상상치 못한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가정이 완전히 파괴가 되고 제가 말씀 안 드려도 너무나 타락한 문화들이 많다. 특별히 이 세속화에 프론트 라인에 세워져 있다. 그들이 배우는 역사, 그들의 교육, 문화, 디지털, 그들의 예술에 대한 모든 시각들,,, 어마 하게 세속화가 되어있다. 강력한 세속화게 찌들어 있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국교회를 비판하는 가운데 신앙과 삶이 분리되어 있다고 오래 전부터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세속화의 문제는 이중성에 관한 것이다.

 
오늘 본문에 보면 뒤집지 않는 전병(煎餠)이 나오는데 전은 구울 전이며 병은 떡 병 자이다. 그러니까 구운 떡을 말하는 것인데 이중적이다는 것이다. 마태복음을 보면,
 
*마태복음 7:22~23,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어떻게 보면 신앙 좋고 어떻게 보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우리들 같은 경우는 이런 말씀을 들으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러니까 사람 앞에 있을 때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하나님과 나와 독대할 때 나는 과연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 이다. 이것이 이중성에 관한 이야기 이다. 섬뜩한 것이다. 겉으로는 말씀도 잘 아는 것 같고, 대단한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신앙의 이중성을 주님은 지금 이중성을 질타(叱咤)하고 계신다. 그러니까 이중성의 대한 극복이 세속화의 극복인 것이다.
 
저는 국밥은 따로 국밥을 좋아한다. 그런데 삶은 따로 국밥이 되면 안 된다. 이중성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교회생활은 열심히 하는데, 사회생활이나 생활 인격은 바뀌지 않는 자가 있다고 치면 교회생활과 사회 삶이 따로 논다. 이것이 이중적이 되는 것이며, 이게 왜 이렇게 큰 문제가 되는가? 선대 옥한흠 목사님은 제자훈련에 대한 말씀을 할 때, “만일 이중적인 이런 사람들이 겉으로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하면서 삶은 따라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만약에 이런 사람들이 제자훈련의 대한 과정을 마쳤다는 이유로 이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인정한다면 그것은 교회 세속(世俗)화(化)를 촉진(促進)하는 화를 자초(自初)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우리는 예수 믿지 않은 사람들은 그냥 도덕적인 본능이라든지, 그 다음에 어떤 육신적인 본능이 있다. 그러나 영적인 본능인 새로운 본능의 자아가 생겼다. 우리에게 있어서 이중성의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오죽하면 바울 사도 같은 경우는
 
*로마서 7:24,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에게 다 말은 못하지만 나름 이중적인 것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거는 죄 성을 가진 인간, 우리가 완전히 주님 앞에 도달하지 않을 데까지는 우리가 약점들이 다 있기 때문에 영원한 과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는 이중성의 문제가 심각해질 때에는 영적인 힘을 다 잃어버리는 것이다. 영적으로 약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믿음보고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왜 그리스도인은 세속화의 거친 파도에 맞서가지고 힘을 다하여 사력을 다하여 자신을 지켜야 하는가? 세속화를, 신앙을 잃게 하는 마치 삼손에게 있어서 힘의 근원인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세속화는 그리스도인을 오합지졸(烏合之卒)로 만드는, 삼손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가위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기독교인의 수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세속화 되어 있다면 삶의 영역에서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이다. 세속화에 물드는 신앙인은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뿜어내지 못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영향을 끼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드릴라의 그 여인의 가위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맡긴 삼손을 보면서 참으로 어리석은 자라고 손가락질 하지만 세속화의 가위가 우리의 머리카락을 자른 것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심한 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드릴라가 삼손의 머리를 잘라서 세계 최초의 미용사가 드릴라이다. 그런데 삼손이 자기의 영적인 힘이 나가는 줄도 몰랐다. 어떻게 보면 삼손이 세속화인 것이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자녀가 세속화 될 때 어떤 위험이 일어나는가? 껍데기는 변한 것 같은데 속이 변화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예수 믿는 사람이 세속화 되어서 영적으로 병들거나 약해 보일 때, 우리 주님이 얼마나 안타까워하실까? 를 가지고 살펴보도록 하겠다. 뒤집지 않는 전병과 보이지 않는 백발을 말씀하겠다. 오늘 이 말씀의 본문의 배경은 2700여 년 전에 살았던 호세아 선지자가 당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씀하는 것이다. 그 시대 사람들도 오늘 날과 비슷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영적인 능력이 탈진되고 세속화 되고 이중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뜨럽게 표현한 본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8절을 보자.
 
I. 뒤집지 않는 전병, 보이지 않는 백발.
 
*호세아 7:8,
8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에 혼합되니 그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에브라임 혼합주의를 질타하는 것이다. 잘 아시듯이 북쪽 이스라엘 나라는 이제 열 지파로 되어 있었는데, 오늘 여기를 보니까 이스라엘을 거의 에브라임이라 이스라엘이나 같이 취급하고 있다. 그리고 이때에 호세아 시대에, 북쪽 이스라엘 이 시대에 여로보암 시대인데 이때는 북쪽 이스라엘이 세상 적으로 볼 때는 가장 강력하고 경제적으로 번성하고 강력한 나라였다. 사실 이 에브라임은 에브라임의 어머니가 아스낫이라고 이집트의 제사장의 딸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집트의 어떤 문화가 있었던 사람인데,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요셉과 결혼함으로 말미암아 에브람임이 나왔다. 에브라임은 둘째 아들이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인데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 요셉 대신에, 야곱을 통하여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야곱이 마치 손자를 아들처럼 양자처럼 삼았다. 그러면 그것이 너무 감사해서 그냥 충성하고 한 결 같아야 되는데 그런 에브라임이 오늘 같이 와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북왕국 이스라엘이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세상과 섞여서 아주 그냥 혼합화 되어서 세속화 되어서 혼잡이 되었다. 문제는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하고 죄송해야 하는데 오히려 자신만만하고 교만했다.
 
*호세아 7:10,
10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들이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북 왕국은 가장 강력하고 경제적으로 번성하고 강력한 나라였다. 그런데 그 내면을 살펴보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냐면 앞에 4절을 보면 알 수 있다.
 
*호세아 7:4,
4 그들은 다 간음하는 자라 과자 만드는 자에 의해 달궈진 화덕과 같도다 그가 반죽을 뭉침으로 발효되기까지만 불 일으키기를 그칠 뿐이니라.
-화덕은 우리식으로 말하면 아궁이 같다는 뜻이다. 달구어진 화덕, 달구어진 아궁이와 같다는데 이것은 늘 마음이 늘 달궈져서 언제든지 영적인 간음을 저지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소위 혼합적인 것이다. 세속화 되어진 것이다. 달궈진 화덕이란 말은 희브리어로 돌아가면 습관적인 죄를 범한다. 는 뜻이다. 주일에 말씀을 들을 때는 도전도 받는 것 같고 깨끗해지는 것 같다가도 집에만 가면 똑 같은 죄를 또 범하고 또 범하는 것이다. 이런 악한 사람들에 대해서 6절에 보면,

*호세아 7:6,
6 그들이 가까이 올 때에 그들의 마음은 간교하여 화덕 같으니 그들의 분노는 밤새도록 자고 아침에 피우는 불 꽃 같도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하지만 속마음은 화덕처럼 아주 그냥 이글이글 뜨거워지는 것이다.정치적 이중성 때문에 그들은 네 번이나 반역을 했고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하지만 속마음은 화덕처럼 이글이글 하고 있고, 뜨거워져 있다. 실제로 이들은 정치적인 이중성 때문에 북 왕국 말기에 네 번이나 반역(反逆)을 해서 왕조가 네 번이나 바뀌는 아주 궁중 안에 (음모)陰毛와 반역과 (배신(背信)이 횡횡하고 頻煩(빈번)했다. 이런 문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7절에 보면,
 
*호세아 7:7,
7 그들이 다 화덕 같이 뜨거워져서 그 재판장들을 삼키며 그들의 왕들을 다 엎드러지게 하며 그들 중에는 내게 부르짖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이 세속화를 심각하게 생각해서 이 세속화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고민하면서 주님께 부르짖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지금 응답하고 싶어 하시고, 하나님은 지금 세속화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시고, 하나님은 지금 사람을 바로 해드리고 싶어 하시는데,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찾고 있는데, 구하는 자가 없다고 하신다. 영적으로 무디어져가지고 신경세포가 죽어버렸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은 에브라임 지파 이스라엘에게 많은 은혜를 주시는데 영적으로 세속화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면서 영적인 가난뱅이 생활을 하면서 세상 적으로 차이도 없고 영적으로 동화되어가지고 물에 물탄 듯 미지근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 이것은 우리와 비슷한 것이다. 우리는 이런 속성이 다 있는 것을 가지고 고민 고민하고 그러니까 우리는 이런 속성이 다 있다는 걸 가지고 고민한다. 어떻게 보면 그 시대의 사람들이나 오늘 이 시대를 돌아보면 우리 속에 있는 어떤 이중성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도긴 개긴 이다. 그때나 지금이 도친 개친 이다. 지난 70년 한국을 이와 같이 8.15해방, 6.25, 지난 70년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하늘의 복을 열어가지고 꾸어줄 질지언정 꾸지 않은 나라가 되게 하시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세속화의 덫에 걸려버렸다. 그래서 8절에 보면,
 
*호세아 7:8,
8절에 에브라임 여러 민족 가운데에 혼합되니 그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라.
-우리 개인도 이런 성향이 있고 우리 민족도 이런 뒤집지 않은 전병 같은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달궈진 화덕 위에 떡을 굽는데 어느 시점에 되어가지고 딱 뒤집지 않으면 한 쪽은 새까맣게 타고, 한 쪽은 설익어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무디어져서 자기가 설익은 있는지도 모르고 뒤집지 않아가지고 겉으로 보기에는 다 익은 것 떡 같지만 적적할 때 뒤집지 않으니까 설익은 떡이 되니까 이걸 보고 뒤집지 않은 전병이라고 한다. 한 쪽은 새까맣게 타고, 한 쪽은 설익게 되어 요즘처럼 오븐이 있거나, 전자레인지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뒤집지 않으면 한 쪽은 새까맣게 타고, 한 쪽은 설익고 중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민족도 그런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소위 반쪽짜리 숙성이라는 것이다. 온전하지 못한 모습인 것이다. 성경에서 야곱이 말한 대로 두 마음을 품은자이다. 이중적인 생활이다. 예배할 때는 그럴듯한데, 나가면 세상 사람들과 똑 같다는 것이다. 공적예배와 생활예배가 완전히 이중적이라는 것이다. 겉으로는 예수 믿는 사람 같은데 세상 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정통적인 신앙 행위가 따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뒤집지 않은 전병이 도니까 영적으로 약해져 버린 것이다. 내면이 실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9절에 보면,
 
*호세아 7:9,
9 이방인들이 그의 힘을 삼켰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무성할지라도 알지 못하는도다.
-속 사람의 힘이 다 빠져가지고 백발이 무성할지라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백발이 얼룩해서 진액이 빠지게 된 뜻이다. 겉으로는 백발이 무성한 것처럼 보이지만 맥이 빠진 것이다. 젊음의 신앙이 영적 패기가 사라지고 젖줄이 끊어진 아이처럼 얼굴이 노랗게 되어서 가시밭에 떨어진 것 같이 진액이 빠져서 메마르고 노래진 것이다. 무디어진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러분 무감각해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신경이 죽으면 아프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영적으로 신경이 죽으니까 무디어진 것이다. 여기서 받는 교훈은 하나님의 자녀가 동요되어 뒤집지 않는 전병처럼 사는 속사람이 힘을 잃고 영혼의 사람이 얼룩얼룩 백발같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주에 여성분들, 권사님들께서 이제 전(煎) 부칠 때, 전을 딱 뒤집으면서 “주여, 뒤집지 않는 전병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하기를 바란다. 다시 뒤집지 않은 전병(煎餠)은 한 쪽만 익은 전병은 절반의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다. 너무나 절반의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헌신을 드리는 것 같은데, 아나니와 삽비라처럼 절반의 헌신을 드리고,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고, 절반의 신앙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온전한 그리스도인대, 절반의 그리스도인, 하나님은 우리를 절반의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지 않으신 줄 믿는다. 주님의 구원(救援) 역사는 절반의 구언역사가 아니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한 피의 역사는 온(溫)전(全)한 역사인 줄로 확신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것을 보라, 온전한 구원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 하는 것도 절반의 헌신(獻身)이 아니라 온전한 헌신, 온전한 예배(禮拜), 온전한 드림이다. 그래서 절반의 헌신, 이중적인 신앙에 대해서 오늘 보면 어떤 것이 대표적인가를 보여준다. 요한일서 1장을 보면,
 
▷이중적인 신앙, 절반의 그리스도인.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는 자(요일 1:6).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요일 2:9).
*겉은 깨끗하나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한 자(눅 11:39)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요일 4:20)
-아주 이중적이다.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삶의 현장에서 겉으로는 교회생활 열심히 하고, 아주 단정하고, 참 신앙생활 잘 하는 것 같은데, 특히 남자 성도 분들 가운데 집에서는 가족들에 대해서 함부로 말을 하고 상처를 주고 자신의 분노(憤怒)를 제어(制御)하지 못하고 폭발(暴發)하고 가정을 살얼음판을 만들고 그리고 항상 자신이 옳다고 한다면 이것은 뒤집지 않는 전병이다. 어떤 권사님은 교회에서는 친절한데 집에 가면 자녀들이나 며느리들한테 쌍심지를 켠다는 것이다. 뒤집지 않은 전병이다. 요새는 또, 며느리들도 며느리 시집살이를 시키는 며느리들도 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100%의 자유로운 사람이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 부족하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이 도전이 되는 것이고 이런 말씀을 통과해야 우리가 부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으로 믿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씀이 내게 와 닿고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영적 신경이 살아있는 것이고, 들어도 무 덤덤 하는 자는 설익은 사람이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우리 교회 모두, 다시 한 번 한국교회가 2023년이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게 해달라는 원년이 되도록 우리 마음의 소원이 있고 기도의 제목이 있다면 설익은 뒤집지 않는 전병 같은 분들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떡하면 좋는가? 오늘 본문에 11:8-9절에 보면, 주보에 요절처럼 올려놓아다.

*호세아 11:8,
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며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붙들듯 하도다.
-주님의 목자의 심정을 오늘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이중성과 세속화에 대해서 제가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도 하나씩은 다 관계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 것이 있다. “하나님 아버지, 그렇다고 우리가 나가떨어지면 안 됩니다. 주님의 심정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아드마와 같이 내가 스보임 같이 너를 놓겠느냐는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같이 불탄 성들이다. 어찌 너희가 내가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한 대로 그냥 둘 것인가!!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 주님은 우리의 마음이 우리가 이렇게 좀 부족하다고 해서 우리가 연약하다고 해서 스스로 자책을 해서 나가떨어진다거나, 주님은 그냥 우리를 꾸짖기만 하신다거나, 아니면 우리를 질타하고만 하신다거나 우리를 찌르시고 우리를 상처주시는 것이 주님의 목표가 아니다. 주님은 어떠하든지 우리를 회복하게 원하시는 것이다. 싸매어 주시려 하신다. 어떠하든지 베드로가 이 마음을 깨닫고 베드로후서 3장에 보면,
 
*베드로후서 3:9b,
9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신구약 전체를 통틀어서 우리 주님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 모두가 다 뒤집지 않는 전병 신세가 되어가지고 설익어서 식탁에 제대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맛을 잃은 소금처럼 버려지는 것을 주님은 안 원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오늘 영저인 센스와 통찰력을 다시 회복하여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주님의 심정을 깨달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주님의 목자의 심정을 깨달을 수 있는가? 다른 것 없다. 말씀의 거울에 우리가 규칙적으로 우리가 되돌아보아야 한다. 말씀의 거울을 가지고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여러분은 거울을 안 보면 이에 영구처럼 이빨에 낀 것처럼 낀 것도 모른다. 부끄러운가? 말씀으로 우리를 살펴야 한다. 지난 2주간 동안 큐티를 하든 주일 메시지를 듣든 성경을 통독을 하든 훈련을 통해서 말씀과 접해서 지난 2주일 간 한 번도 말씀을 통하여 도전 받는 일이 없다면 그러면 마음이 틀어져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씀을 6개월을 접해도 도전이 없다면 이것은 심각하고 영 세포가 죽은 것이다.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은 말씀의 거울로만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가 있는 것이다. 말씀의 거울 앞에 비추어보면 나의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간절히 매어달릴 수밖에 없다. 주님의 목자의 심장을 깨달은 자는 말씀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는 사람과 같다. 도대체 말씀의 거울에 자신을 비춘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인가? 이런 뜻이다.
 
※어떤 사람이 당뇨와 혈압 때문에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지금 체중조절 안 하면 큰일 났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제 체중조절 해야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체중조절 교실에 갔다. 건강을 위하여 체중조절 하는 김에 자기의 어떤 몸도 개선하고 싶어가지고 남자든 여자든 그녀로, 다이어트 교실에 등록을 했는데 PT 트레이너가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뭐냐면, 당신이 거울에다가 당신이 되고 싶은 몸 모습을 한 번 그려보라고 했다. 그런데 자기가 거울에다 자기의 모습을 그려놓았는데 자기의 모습을 자기의 몸과 대입해 보니까 엄청 났다. 넘쳐났다. 초과되었다. 그래서 그분은 운동을 하고 음식을 조절하고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몸은 줄기는 했지만 거울에는 윤곽에 아직 다다르지 못했다. 더 조심하고 더욱더 열심히 운동을 하고 엄격하게 음식을 조절하고 그러던 어느 날 그 거울에다가 걸어놓은 자기의 몸매의 모습과 딱 들어맞았다. 이때는 아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제가 말하는 요지는 이것이다. 말씀의 거울 앞에 자신을 비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나의 모습이 있다. 저도 모습, 하나님의 원하시는 저의 모습이 있다. 이중적이지 않는 세속화 되지 않는 저의 모습이 있다. 그 하나님이 원하시는 저의 모습에 말씀과 기도의 컨트롤, 말씀과 기도의 훈련과 다이어트를 통하여 맞춘 것이다. 그래서 주의 말씀에 거울에 비추어진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세상적인 욕심으로 아니면 죄가 주는 쾌락으로 혹은 미움의 마음으로 또 습관적인 죄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몸매와는 거리가 먼 것은 아닐까? 여러분 다이어트가 쉽지가 않다. 세속화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그만큼 쉽지가 않는 것이다. 다른 길이 없다. 말씀의 거울 앞에 자신을 비추어보는 것이다. 규칙적으로 말씀의 거울 앞에 자신을 비추어 보는 것이다. 우리가 영혼의 사람이 약해지면 우리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결국 영혼의 속사람과 영혼의 사람이 약해지는 것이다. 남편 잘못만나서, 아내 잘못 만나가지고, 무슨 물질의 문제가 있어가지고, 누구누구 때문에, 이런 것은 둘째 치고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의 영혼의 사람이 약해진 것이다. 육체가 아무리 건강해도 영혼이 망가지면 우리 영이 썩어지면 인생이 고목처럼 쓰러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 영혼이 건강하려면 이중성 세속화 뒤집지 않은 전병 신세를 뛰어넘어야 할 줄 확신한다. 그러니까 말씀의 거울 앞에 돌아오고, 주님의 심정 앞에 돌아와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말씀의 거울 앞에 자신을 비추어 보는 것이 너무 어렵다. 이유가 무어냐? 스마트 폰 때문이다. 퇴직하고 나면 대부분 스마트폰을 보면서 본인에게 맞는 알고리즘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 좀 재정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치고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다. 젊은이들은 젊은이대로 대한민국은 모두가 다 전철을 타면 모두가 다 기도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말씀 앞에 거울 앞에 내 자신을 비쳐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우리는 이중성의 세속화를 극복하기가 너무 어려움에 당면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하루 평균 5시간 정도 스마트 폰에 시간을 보내지만 한국 사람들은 잘 아시듯이 평균 8시간이라고 한다. 말씀 앞에 자기를 돌아볼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고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추어볼 그런 삶의 현장이 실제적으로 안 되는 것 같다. 그러니 이것을 미리 예견하고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뭐라고 말하고 있는가?
 
*딤전 4:13,
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읽는 것은 Reading이고, 권하는 것은 Preching이고, 그리고 가르치는 것은 Teaching이다. 말씀을 리딩 하고, 말씀을 프리칭 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것인데 디모데 입장에서는 이렇지만 디모데의 이 말씀을 통하여 사역의 대상인 그 회중들의 입장에서는 말씀을 듣는 것이다. 리스닝 하는 것이다. 이것을 듣는 것이다. 설교를 듣는 것이다. 그리고 가르침을 받는 것이다. 우리 교회로 말하면 가르침을 받고 만약에 말씀을 통하여 양육되어서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디사이플 메이킹을 하는 것이다. 영적 재생산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말씀의 거울 앞에 자신의 몸매를 자기가 원하는 수준으로 갈 수 있도록 사랑의 교회는 제자훈련이 있다. 매일 성경을 읽기가 있다. 사랑의 교회는 ‘날마다 솟는 샘물’ 큐티 책이 있다. 심지어 큐티 틴에이저도 있고 일본, 중국 사람도 큐티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말씀의 거울 앞에 자기를 비추어볼 수 있도록 그리고 깊이 있게 살펴보려면 사랑글로벌 아카데미 같은 그런 프로그램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이러한 우리가 이 한 해 동안 말씀 앞에 자신을 돌아보고 적어도 2주일에 한 번은 말씀을 통한 깊은 도전을 가지고 세속화의 어떤 속성 가운데 이쪽으로 넘어가지 아니하고 더 주님을 닮아갈 수 있도록 반절만의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제자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길 소원한다. 이걸 호세아가 미리 깨닫고 호세아 6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호세아 6:1~3,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와 우리 민족도 주님 앞에 돌아가자.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우리를 신뢰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믿음보고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하나님이 우리를 낫게 하시고, 우리를 싸매어 주시고, 살리시고, 일으키실 것을 믿고 말씀으로 달려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믿음으로 2.0 믿음보고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3절에 보면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뒤집지 않는 전병 신세를 그만 두고 머리가 얼룩얼룩 해서 영적인 속사람이 능력이 약해진 것을 그만 두고 결과가 그렇게 된다.
 
*호세아 7:11,
11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
-애굽으로 가야되나, 아니면 앗수르로 가야되나, 막 횟갈리는 것이다. 어리석어서, 방향도 이러 저리 흔들려서 방향도 못 잡는 그런 뒤집지 않는 전병 결과로 백발이 얼룩 얼룩 하는 것과 그런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되지 말고 어떻게 되는가? 여호와를 알고 힘써 알자, 사랑의 교회나 한국교회에 베풀어 주시는 이 말씀의 앞에 자신을 거울 앞에 비추어보는 무엇보다도 사랑의 교회는 다락방이 있다. 이제 2월 달부터 다락방이 오픈을 할 텐데 방학 지나고 말씀 앞에서 우리가 돌이켜 볼 때, 스가랴를 통해서 자신을 돌이켜 볼 때 , 하나님께서 우리의 세속화와 이중성을 방지해 주실 줄 믿는다. 제가 이 말씀인 호세아서를 보면서 제일 감동된 부분이 호세아 14장 8절이다.
 
*호세아 14:8,
8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내가 그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
-하나님이 푸른 잣나무이시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도 푸른 잣나무가 될 수 있다. 그런 푸른 잣나무가 되어가지고 우리가 세속화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시대를 향하여 수많은 믿음의 열매를 맺도록 만들어 주실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의 열매를 맺도록 만들어 주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적용하여 말씀의 거울 앞에 우리가 서서 함께 돌이켜 보자 많은 사람들이 말씀의 거울 앞에 자신을 돌아보며 훈련을 받으라고 하면 시간이 없다고 한다. 왜 말씀 앞에 이 중요한 시간을 내지 않는가? 아직도 한국교회 내에 교회 다니는 분들 중에 뒤집지 않는 전병들이 너무 많다. 뒤집지 않는 전병을 극복한 신실한 주의 종들을 통하여 모두가 다 이런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집중하여서 이 겹, 삼 겹줄이 되어 오 겹줄이 되어가지고 다시 한 번 한국교회가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시기를 소망한다. 우리 속에 이중적인 것과 세속화 된 것들을 습관적인 죄악들, 달구어진 화덕들, 뒤집지 않은 전병들이 정리되는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길 소망한다.
 
요약
-아직도 세속화의 거친 파도 앞에 굴복되어져서 뒤집지 않는 전병처럼, 어리석은 비둘기처럼 우리 성도들이 있다면 말씀에 비추어져서 주님 앞에 다시 돌아오는 자가 되어 말씀의 능력으로 치유하시고 싸매어주시고 일으켜 주심을 확신하여 푸른 잣나무처럼 열매 맺는 평생이 되어야 한다.
 


 















♣부흥헌신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1월 14일)
제목: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
말씀: 열왕기상 18:20~39
대표기도: 김정한 안수집사님(예배부 안내총괄팀장)
찬양인도: 예배부 봉사자
말씀읽기: 김다니(소년부) 이시우(초등부)
 
설교자:제이슨 하버드 목사님(국제기도커넥트 대표,
이충희 목사님(Blessed International Church)-초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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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왕기상 18:20~39,
20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로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23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24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25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붙이지 말라.
26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27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28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29 이같이 하여 정오가 지났고 그들이 미친 듯이 떠들어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르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31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열두 개를 취하니 이 야곱은 옛적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32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33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34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35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
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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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하버드 목사님(국제기도커넥트 대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국제기구 커넥트를 통해서 또 여러분을 섬길 수 있어서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 제가 어딜 가든지 항상 한국교회를 고맙게 생각하면서 한국교회를 축복하고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해서 여러분들이 돌파하고 계신 것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감사하다. 오늘 우리가 볼 말씀은 열왕기상의 말씀이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갈멜 산에서 일어났던 사건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다. 성경책에 나오는 야훼가 아닌 우상인 바알을 섬기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을 어기고 있었다. 신명기 11:17절에 말씀처럼

*신명기 11:17,

17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이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 이 신명기 말씀에서 나왔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 엘리야와 함께 우리l가 볼 수 있다. 이 이스라엘은 당시에 농업 국가였기 때문에 비가 오는 것이 매우 중요했었다. 만약에 미국으로 친다면 월 스트리트를 완전히 무너뜨리셔서 더 이상 돈으로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것과 돈이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과 같다. 굉장히 무서운 심판으로 다가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상숭배에 대해서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셨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야고보는 야고보서에서 엘리야가 마치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 라고 한다. 우리가 마치 기도하는 거처럼, 우리처럼 엘리야가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 다시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응답하셨다고 이야기 한다. 이스라엘은 3년 반 동안이나 비가 한 번도 오지 않은 가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3년 반 가뭄의 시간을 통해서도 여전히 이스라엘 왕인 아합 왕은 회개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자인 엘리야를 보내서 그를 책망하셨다. 그래서 엘리야가 전혀 알려지지 않는 상황에서 아합 왕에게 나타나서 ‘당신이 회개’를 해야 만이 하나님께서 비를 주신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 말씀을 볼 때 제가 참 놀랍게 생각하는 부분이 마치 우리와 같은 인간이 나나타서 3년 반이나 되었던 가뭄이 멈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말을 하나님께서 듣고 계신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이 열왕기상 18장 말씀이 아주 우리 기도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갈멜 산에서 일어났던 이 전투를 통해서 어떤 신이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신 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의 적을 물리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엘리야 선지자가 이 바알 선지자들에게 갈멜 산에서 모여서 누가 진짜 신이신지를 겨루어보자고 한다. 그래서 엘리야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열왕기상 18:19,
19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
- 엘리야가 이렇게 요청한다. 엘리야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과연 누가 진정한 신이신가? 라고, 이 갈멜 산은 사실 바알의 신이라고 불리는 바알을 숭배하던 산이었다. 하나님을 섬기던 제단이 무너져 내리게 되고 이제 바알을 섬기는 제단이 서 있던 곳이었다. 그래서 엘리야 선지자는 그들이 그 신을 섬기는 그 장소에서 만나길 원했다. 그래서 사실 그곳에서 무언가 즐거움을 가지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하나님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바알을 선택할 것이냐? 를 종용했던 것이다. 이 엘리야 선지자의 심정이 이후에 그가 올린 기도에 잘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 이 일을 통해서 백성이 누가 참신이신지 알게 하옵소서!” 이 하나님의 이름이 이제 그 위기 가운데 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런 동일한 일을 우리가 나라들 가운데서도 볼 수 있다. 힌두교도와 또 불교를 믿는 사람들과 이슬람권에 있는 사람들 중에 85%나 되는 사람들이 전혀 기독교인들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 있다. 현재 전 세계는 하나님의 이름이 흔들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 주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옵소서!“ 어떻게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줄 알겠는가?
 
그래서 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거짓 선지자들이 불을 내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을 때에 수 시간 동안 기도했고 또 열심히 춤을 추었으며 심지어 자해를 하면서 불을 달라고 염원했다. 이제 드디어 엘리야가 하나님께 불을 달라고 요청할 때에 세워 놓은 제단위에 물을 붓기 시작한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오늘 “하나님이 누구신지 이 사람들이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 주옵소서! 하나님, 내 음성에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이 하나님이 누군지 알게 하옵소서!” 엘리야가 어떤 기도를 올려드리고 있는가?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라고 기도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 보여주셔서 내가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사람들이 알게 하옵소서.” 라고 엘리야가 기도 하자마자 하늘에서 불이 떨어진다. 이 제단에 있었던 희생제물을 받으시고 완전히 태우시는 것을 보면서 백성이 외친다. “참 신이시구나! 하나님이시구나! 우리의 하나님은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성경책에 나오는 불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이 성경책에 나오는 불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서 제단 위에서 태우시면서 불로 임재하시는 것을 많이 본다. 마치 이 엘리야에게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을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불이 그 제물위에 임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의 삶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린다. 하나님의 능력과 그 권능으로 하나님의 임재로 우리의 삶을 태워주시길 바라고 있다. 우리의 기도는 늘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내어 놓는 것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왕국이 이 땅 가운데 임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그래서 이 땅 가운데 모든 것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이 보여지 하옵소서.’ 마치 천국에서 그러하듯이 이 땅 가운데, 이 모든 창조물들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에 그
영원한 뜻들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의 삶을 하나님 앞에 내어드릴 때, 온 맘을 다히새 마치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을 순종하게 된다. 엘리야가 보았던 그대로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그대로 볼 수 있는 것 같다. 제가 섬기고 있는 사역 가운데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작은 열쇠를 가지고 하나님의 그 큰 문을 열 수 있다고... 하나님의 나라 가운데 여러분이 굉장히 작고 연약하다고 느끼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기도라고 불리는 이 작은 열쇠를 여러분들이 쥐고 하나님께 내어드릴 때, 하나님께서 엄청나게 큰 문을 열어주시고, 여러분을 사용하실 줄 믿는다. 아멘... 위고레 목사님과 함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마음으로 이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 저희가 2032년까지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미 종족들 가운데에 성경과 그리고 믿는 사람들이 드러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계속해서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저희는 이 사역이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 돌파해서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모든 영역에서 주님의 이름이 드러나기를 기도하고 있다. 더 기도할수록 더 능력이 드러날 것이다. 적게 기도한다면 적게 능력이 드러날 것이다.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능력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저희가 여러 교단과 여러 가정 교회들을 살펴본 결과 90%에 가까운 이 미 전도된 사람들은 110여 개의 도시 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110여 개의 도시들에서 우리가 함께 마음을 모아서 전략적으로 그리고 계속해서 유지 될 수 있는 기도 운동을 해야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우리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도 함께 이 도시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린다. 작년에 이 기도운동을 시작했을 때에 그래서 여러 국가에 있는 교단들과 또 가정교회들을 통해서 그 결과를 이제 듣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이름을 드러내고 그리고 예배를 드높이고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그 기도를 계속해서 드리는 가운데 57만 개나 되는 교회들이 새롭게 세워지는 것을 발견했다. 800만 명의 성도들이 세워진 것이다. 만약에 11억 명이나 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110개 도시들에 새롭게 세워진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의 응답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실 것이라 믿는다. 함께 기도하겠다.
 
♧요약
-하나님의 아들을 기업으로 허락하시고 우리 영 가족이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영적 갈멜산에서 엘리야의 심정으로 간구하고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모든 죄의 습관과 우상을 태워주시고 하버드 목사님의 사역도 인도하셔서 국제기도커넥트 사역을 통해서 미국과 여러 나라와 도시에 복음이 되게 기도하며 이충희 목사님의 사역을 통해서도 불길처럼 복음이 전파되어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사역이 되기를 소원해야 한다. 우리도 엘리야의 기도처럼 불로 응답하심을 믿고 복음과 부흥을 위해 충성과 헌신으로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주일예배(주후 2023년 1월 8일)
제목: "45년을 한결같이"(부제: 믿음보고 2.0)
말씀: 민수기 14:22~26,여호수아 14:8~12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오규현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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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4:22~26,
22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25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주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26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여호수아 14:8~12,
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9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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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대 귀한 찬양, 하나님께 영광 돌린 줄로 믿는다. 올해도 찬양대 한 주일도 빠지지 말고 기름부음 충만한 찬양되기를 바란다. 사랑의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새초부터 새말까지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보혈의 능력으로 여러분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어주셔서 모든 마음의 소원하는 계획이 응답되기를 바란다. 저는 오늘 45주년을 한 결 같이, 부제 믿음 보고 2.0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다. 창세기 29장 20절에 보면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는 까닭에 7년을 며칠 같이 여겼다고 말하고 있다. 
 
*창세기29:20,
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사람이 7년이란 세월이 길지 않은가? 사랑하니까 7년이 마치 하루 같이, 45년의 사랑의 교회를 돌이켜보면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한 결 같이, 우리는 어떻게 45년을 한결 같을 수 있는가? 이 갈렙은 아시는대로 오늘 민수기 14장 여호수아 14장에도 그렇다. 45년 전에 그 나이 40세 때에 그 가나안 땅에 정탐꾼으로 갔다. 거기서 열 정탐꾼은 다 안 된다고 했다. 아낙자손들 때문에 우리는 안 된다고 우리는 그들의 밥이라고, 우리가 그들 보기에는 메뚜기처럼 보인다고 했다. 다 그 펙트 리포트를 했지만 있는 그대로 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아니라고 한다. 그들이 보기에는 우리가 메뚜기 같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의 밥이라고 한다. 왜? 그 열 정탐꾼은 자기들과 환경을 비교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과 환경을 비교했다. 여러분 BAB,,, 그러니까 믿음보고 펙트 리포트를 Faith report를 했다. 우리 교회가 수년 전부터 믿음 보고를 하지 않은가!! 그래서 얘기 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일이 생겨도 우리는 그렇게 어려운 것 보다는 믿음 보고를 하자. 그 사람들은 다 우리 교회 교인들이다. 이렇게 할 정도로 우리가 믿음 보고를 한 것이다. 올해 45주년을 맞이하면서 믿음보고 2.0을 하겠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믿음 보고를 할 수 있는가? 오늘 본문에 8절을 보면, 
 
*여호수아 14:8,
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니까, 충성, 9절에도 나온다. 충성하였은즉, 충성한다는 말은 나중에 민수기 14장 24절에 보면 
 
*민수기 14:24,
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갈렙에 대해서 나는 온전히 따랐다. 내 종이고 충성스런 종이다. 우리가 충성한다는 것은 21세기 어떤 뜻인가? “우리 중에 아무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죽는 자도 없도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 맞는가? 사람들은 다 자기를 위해 산다. 바울은 자기를 위해 살아도 안 된다고 바울은 고백하지만 대게 세 종류이다. 자기를 위해 살고, 아니면 조금 더 고상해서 남을 위해 살고, 아니면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그래서 주를 위해서 살 때에 충성이라고 한다. 이것은 온전히 주님을 따르는 것인데 온전히 주님을 따를 때, 사실 45년을 한 결 같이 하게 되는데 여러분 사람을 위해,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 정도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살게 되면 환경과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환경과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으니까 한 결 같은 것이다. 여러분에게도 한 결 같은 축복을 주시길 원한다. 
 
저는 늘 기도한다. ‘하룻밤도 꿈 없이 잠들지 말고, 하룻밤도 꿈 없이 깨지 않게 하옵소서.’ 한다. 살아서는 충성, 죽어서는 영광, 목숨보다 중요하다. 한 결 같이, 그런데 오늘은 갈렙이 역할 모델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여러분의 인생은 과거, 현재, 미래가 다 중요하지 않나? 그런데 과거보다는 사실 현재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현재보다는 미래가 더 중요하다. 왜냐면 미래가 없는 현재는 그것은 현재가 아니다. 미래를 우리가 기약할 수 없는 현재는 괴로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를 현재에 산다고 이야기 했다. 그리스도인은 진짜 이런 45년을 한 결 같이 이러한 은혜가 있고, 주를 위해 산다는 것 때문에 우리가 환경과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의 이력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의 이력서를 쓰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들은 과거의 이력서를 왔다 갔다 한다. 과거가 어떻다 한다. 그러나 미래의 이력서를 써야 한다. 이미 결정되어서 한 결 같이, 오늘 말씀의 배경을 보면, 오늘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해서 광야의 길을 갔다. 가는 동안에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 중에 두 가지 어려움의 적이 있었다.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이 있었다. 외부의 적은 아말렉 같은 전쟁이며, 또 광야의 환경의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내부의 적은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적이었다. 
*내부의 적은 최측근이 반기를 일으킬 때이다. 그럴 때 정말 힘든 것이다.
 
여러분,
미리암과 아론을 알 것이다. 미리암은 모세의 누나였고, 아론은 모세의 형이었다. 그런데 모세가 잘 나가는 것을 보니까 누나와 형이라도 이것은 안 되나보다. 누나와 형이라도 지도력과 리더쉽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누나와 형이 모세를 향하여 하나님이 모세하고만 말씀했냐? 우리 하고도 말씀했다고 반역을 했다. 사실은 모세를 향하여 반기를 든 것이 아니라, 모세를 세우신 하나님께 반기를 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죽이려고 했다. 그러니까 모세가 아니라고 한다. 모세의 특기는 뭐냐면, 죽이려고 하는 것을 못 죽이게 하는 은사가 있다. 우리누나 살려 달라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미리암을 일주일 동안 나병(癩病)이 걸리게 하시고 격리(隔離)를 시키신다. 그 격리 때문에 모든 회중들이 일주일 동안 광야에 행진을 못하고 모든 회중들이 멈추었다. 그러니까 생각해보면 거의 200만이나 1400만 날이 날아가 버렸다. 회중들이 일주일 동안 멈추니까 미리암과 아론의 반기로 일주일 동안 멈추니까 난리가 난 것이다. 그러니까 모세가 허탈했고, 너무나 절망했다. 힘들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그 때에 모세에게 터닝 포인트를 주셨다. 그것은 민수기 12장과 13장에 나오고 있다. 13장에 낙심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냐면,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보내라고 하신다. 정탐꾼을 12명을 보내게 하신다. 열 정탐꾼은 환경과 자기를 비교해서 메뚜기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하면서 믿음 보고를 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 이런 배경을 앞에 놓고 어떻게 갈렙은 끝까지 믿음보고를 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믿음보고의 요체는 무엇이며 믿음보고를 우리가 이런 45년을 한 결 같이 할 수 있도록 적용할 것이 무엇인가? 믿음 보고를 할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인가? 
 
 
여라분, 갈렙은 오늘 본문 여호수아 14:6절을 보면
 
*여호수아 14:6,
6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그니스 사람은 출애굽기 15장에 나오는데, 가나안 족속이다. 이 가나안 족속에 대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굉장히 비방하고 멸시하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열주의자이고, 차별주의자들이다. 이방인을 진짜 우습게 여긴다. 그러니까 여호수아에 나오는 기생 라합도 이방인이다. 나중에 이스라엘 족보에도 올릴 정도로 그런 축복을 받았는데, 갈렙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힌다. 자기 선조와 자기 그니스 족속 여분네 아들 갈렙이다. 그 어떻게 보면 자기는 이방 출신이다. 그런데 순열주의자들 앞에서 그가 견디기가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꿋꿋하고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참 놀랍다. 우리식으로 하면 소위 수저주의자들이다. 흙 수저, 나는 금 수저다. 등등, 정말 저는 수저주의자를 정말 싫어한다. 우리는 금수저도 아니고 흙 수저도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수저이다. 정말 오늘 갈렙이 한결 같은 것은 출신, 배경, 스펙, 출신 배경을 극복했다.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하여 라고 한다. 자기 정체성이 분명했다. 자기는 이방 출신이지만 하나님의 종(從)이라고 한다. 
 
*민수기 14:24,
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구약의 종이니까 뭐 서번트 라고 생각되지만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네가 내 종이라고 이렇게 호칭한 것 별로 없다. 모세에게 종이라고 했고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종이라고 했다. 다윗에게 다니엘에게 엘리야에게 종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것을 알고 나중에 사도바울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종의섬김을 가져야 하지만 주님이 나를 종이라고 부를 때는 이것은 사도 적 특권이다. 자기 정체성이 분명하다. 우리가 한 결 같기 위하여 우리가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서 어벤다운이 없게 진지하게 한 결 같게 하기 위해서 마음의 소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우리는 그니스 족속 여분네의 아들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입니다.” 출생, 성별, 배경, 수저 다 극복하는 축복을 주시기를 이 한 해 동안 주시기를 소망한다. 너무 중요하다. 그래서 이런 마음이 있어야 한다. 중맘꺾- 중요한 것은 마음이 꺾이지 않는 것, 중요한 것은 마음이 꺾이지 않아야 한다. 내 수저가 어떻다. 마음이 꺾이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는 마음이 꺾이면 안 된다. 출신성분, 두 번째로는 비교의식 가지고 질투하지 않았다. 갈렙은 대단했다. 민수기 14장에서 여호수아 보다 더 갈렙이 더 우선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쓰셔서 여호수아를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삼았다. 그래서 40세 이 믿음 보고를 한다. 45년 동안 그 역사에서 사라져버렸다. 웬만하면 ‘하나님은 여호수아만 쓰시고 나는 안 쓰시나?’ 이렇게 생각을 할 수 있을 텐데, 갈렙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남과 비교하지 않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 같았다. 그런데 배경 때문에 약해지지 않고, 동료하고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께 섭섭해 하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다. 불평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열 번이나 하나님을 배반하고 원망 불평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낀 적도 없고 모세를 비난하는 무리들에게 낀 적도 없다. 애굽의 고기와 부추를 사모하는 그것 때문에 그들이 불평하는 그것들에 가담한 적도 없고, 금송아지 섬기는 무리들에게 속하지도 않고, 한 결 같이 주님께서 주시는 약속을 붙잡고 갔다. 
 
지난 45년을 하나님께서 사랑의 교회를 인도하셨다. 강남 예배당, 서초 예배당 주의 종들을 통하여 사랑의 교회를 오늘까지 붙잡아 주셨다. 45주년을 고 선대 옥한흠 목사님,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키워야 한다는 목적으로 25년 동안 사역을 하시게 하시고 부족한 종이 이어받아서 그 한 사람 한 사람 그리스도의 제자로 온전한 사람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지난 20년을 붙잡고 왔다. 저는 놀랍다. 그리고 우리 교회 초창기부터 성도님들이 45년 동안 한 결 같이 주님을 섬겼다. 이제 45주년을 맞이하는 이 한 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갈렙의 자세로 보면, 
 
*여호수아 14:10-11,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I am still strong. still the same.~~
-85세가 되었어도 가슴이 뛰었다는 것이다. 비교의식 안 하고 불평의식 안 하고 배경 보지 않으니까 그 마음에 한 결 같이, 그때나 지금이나 강건하다는 것이며 육신은 좀 쇠할 수 있지만 마음은 늘 이러하니까 여러분 마음이 기쁘고 감사하고 설레고 마음이 한 결 같으면 몸도 따라온다. 몸이 지배를 받는 것이다. 갑자기 괴로운 소리 듣고 고통당하면 마음이 캄캄해서 소화가 되는가? 마음이 괴롭고 어려울 때 소화가 잘 되면 인간이 아닐 것이다. 사람은 마음의 지배를 받는다. 마음이 기쁘고 감사하고 늘 설레이니까 몸도 마음도 같이 건강해 지는 것이다. 삼국지에 황충 장군처럼 한 결 같이, 벨런스와 균형 잡힌 건강, 그의 지성, 그의 의지, 그의 감성, 그의 행실, 그의 관계가 온전하게 균형 잡혀서 온전한 인격이 되었다. 그렇게 하면서 갈렙의 입장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은혜를 가지고 이제 45주년을 우리가 믿음 보고 2.0을 보고하는 것이다. 뭐라고 고백하느냐면 
 
*여호수아 14:12,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이 산지를 내게 주옵소서. 이것이 믿음 보고의 2.0이다. 그들이 우리의 밥이다. 믿음보고의 2.0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이 산지를 내게 주십시오. 한다. 이 말씀은 우리가 시리즈 주제처럼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게 하여 주십시오.’와 동일하다. ‘이 산지를 내게 주십시오.’ 이 산지를 내게 달라고 할 때 이것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기가 막히다. 참 어려운 어떤 상황이었다. 지금 보면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과 7년 전쟁을 하는데, 이제 막바지에 도달했는데 마지막 무얼 못했냐면, 지금 갈렙이 요구하는 이 산지를 아직까지 점령을 못했다. 그 산지는 바로 헤브론 산지였다. 이 헤브론은 아주 구원역사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선 직접적으로 말씀한 것은 창세기 13장 14-15절이다. 
 
*창세기 13:14-15,
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저기에서 크게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땅을 주시고 하는 마음은 있지만 직접적으로 말한 것은 헤브론 산지이다. 이 헤브론 산지는 예루살렘, 베들레헴, 그 다음은 갈보리 , 감란 산, 베다니가 포함되어 있다. 소위 구원역사를 이루는 핵심 지역이다. 예수님께서 태어난 곳이고 아마 갈렙에게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주셔서 구원 역사에 무언가 아낙 자손들 때문에 이 땅을 어떻게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갈렙은 여호수아를 끝까지 돕는다. 한결 같으니까. 45년을 한 결 같으니 그래서 하나님께서 갈렙을 통하여 산지를 주시게 된 것이다. 믿음보고 2.0이 되는 것이다. 
 
우리도 85세가 되어가지고 우리가 이런 믿음 보고를 할 수 있다면 우리 생애가 2.0 생애가 될 줄 믿는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 신앙은 나이가 들수록 더 좋아야 한다. 믿음은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야 할 줄로 믿는다. 
 
신앙은 나이가 들수록 더 좋아야 한다.
믿음은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야 한다.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 넘치기를 바란다. 갈렙처럼 영적으로 더 강해져야 하고 더 나이가 들수록 집중력이 더 생겨야 한다. 더 신앙이 깊어져야 한다. 육신적으로 어쩔 수 없지만 영적으로는 더 강해져야 한다. 어느 단체든지 그렇다. 처음에는 믿음의 모험을 한다. 30-40년이 지나면 대부분이 약해진다. 서서히 관료화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굳어지면 화석화가 되어서 어느 날 다 깨지고 장례식이 된다. 그러나 갈렙은 그러지 않았다. 지난 45년 전에 가졌던 믿음 보고 1.0을 지금 믿음보고 2.0을 주님 앞에 올려드리는 것이다. 주님 이 어려운 ‘이 헤브론 산지를 내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한다. 어떤 갈렙 한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개인 가정에도 이 말씀이 접목되기를 바란다. 이 말씀이 그대로 녹아지기를 바란다. 
 
적용
공동회 때문에 좀 일찍 마치겠다. 갈렙은 45년 동안 한 결 같았다고 했다. 그래서 충성된 종이라고 두 번이나 불리고 갈렙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배경을 비관하지 않고 또 여호수아와 비교하지 아니하고 한 결 같이 그리고 이 산지를 내게 달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어떤 식으로 적용하면 되는가? 갈렙은 남들이 불평 불만할 때, 아까 수많은 과정에서 불평 불만할 때 그런 환경들, 그런 사건이 많았지만 불평불만이 없이 믿음으로 충성되게 일관되게 사니까 믿음보고 2.0을 주님 앞에 올려드린 줄 믿는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우리도 불평불만하지 않겠다. 누가 이렇게 말했다. 말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2년이 걸렸지만 말하지 않는 것을 걸리는 것은 60년이 걸렸다고 남들의 말을 경청하고 침묵하는 데 60년이 걸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평불만을 하지 않으려면 몇 년이 걸려야 하는가?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통하여 여러분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어주셔서 불평불만은 지금부터 안 할 수도 있게 된다. 연말에 글을 받았는데 이런 내용이 있다. 
 
“목사님, 제 남은 인생은 절대로 반드시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불만하지 않고 살겠습니다.”라고 해서 그 글을 읽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젊을 때부터 이런 마음을 가지면 평생 얼마나 복될까? 믿음보고 2.0. 3.0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하면 “하나님, 제 남은 인생을 절대로 반드시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불만하지 않고 살겠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젊을 때부터 이런 마음으로 살면 여러분 믿음 보고 2.0, 3.0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인제 선택을 해야 한다. 불평하는 할매, 할배가 되지 말고 죽지 말고 피니쉬 웰(finishing well)이 아닌 피니쉬 페일이다. 다시 말하면 폭망이 된다.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여호수아 14:12,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나와 함께 하셔서 불평불만 보고 대신에 우리는 하나님께 믿음의 보고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요약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불만하지 않고 우리 세대가 평생 믿음보고 2.0이 되어서 배경도 뛰어 넘고 비교도 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극복하고 에너지를 주는 인생이 되어서 어둠을 밝히고 아무리 힘들어도 귀한 21세기의 갈렙이 되어 이 산지를 달라고 믿음의 보고를 하는 평생이 되어야 한다. 45년을 맞이하면서 갈렙처럼 믿음보고를 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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