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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2년 12월 10일)
제목: "실망시킨 적 없으신 하나님"
말씀: 창세기 22:1~5
찬양인도: 사랑광주리 사역, 북사선, 이웃사랑선교
말씀읽기: 임준성 학생(소년부), 주은서(초등부)
대표기도: 강희근 장로님(사랑광주리 이사)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정우길 부목사님
(SaGA 복음통일아카데미 부학장)
ㅡㅡㅡㅡㅡ

*창세기 22:1~5,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북한 교회에 있는 이름의 깃발이다. 준비해 주심에 감사하다. 우리의 소망과 열망을 담은 표현이다. 오늘 어디서 많이 듣고 보신 것들을 보신 것 같다 ‘통인헌신은 진심으로 영혼 섬김은 전심으로’ 이야기이다. 설교 제목이 “실망시지 않은 적 없으신 하나님”, 이것도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는가? 찬양의 가사를 좀 땄다. 사실 우리가 찬양을 할 때, 그 멜로디도 좋아하고 여러 가지 의미를 담은 기도로 찬양을 하겠지만 가사가 이렇게 고백이 될 때, 찬양이 더 은혜로 다가온다. 아마 2000년 초반쯤 나오게 된 찬양이며 많이 불렀고 아마 이 찬양 부르면서 믿음의 고백을 담았을 때, 눈물 없이 부를 수 없는 그런 찬양 고백이 있었을 것이다. 저도 눈물을 흐르면서 부른 적이 있다. 혹시 지금 힘들고 어렵고 답답할 때, 이 찬양의 가사를 좀 상황 상 찬양은 하지 않고, 좀 가사를 띄어드리겠다. 기쁨으로 찬양 334장이다. 가사를 같이 읽어보자,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지나온 모든 세월을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 없네.”!~~♩

-혹시 하나님에 대해서 지금 실망하시고 아예 가사가 마음에 닿지 않는 분들은 오늘 아브라함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신하고 그런 고백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은 한 번도 실망시킨 적 없으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의 여정을 전체를 보겠다.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친 순종의 대표적인 성경의 사례인데, 그래서 세부적인 해석은 하지 않겠다. 아브라함의 인생의 전체를 다루고 싶은데 아브라함이 창세기 12장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하란에서 출발할 때가 75세이다. 제가 성경에 확인된 나이만 설명을 드리겠다. 우리로 표현하면 아브라함은 신앙생활 처음 시작한 것이 75세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죽은 나이가 175세이다. 아브라함은 모태신앙이 아니다. 이삭은 모태신앙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175세를 살았지만 1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신앙생활을 한다. 아브라함이 75세에 부름 받고 100세에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이 이삭이다. 그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시점이 오늘 본문인데 아브라함이 100여년 걸친 신앙 속에서 오늘이 언제쯤 될까를 생각해보면 아마 막연하게 예전에 설교 들었을 때, 이때 이삭의 나이가 17세이다. 라고 기억할 것이다. 여러 가지 유추가 있는데 해석은 하지 않겠다. 보통은 객관적으로 볼 때 15-37세이다. 어머니 사라가 죽기 전에 그 사이라고 여겨진다. 저는 대략 잡아서 이삭이 15-35세 중간인 25세 정도로 추측을 하고 말씀을 진행하겠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인생을 보면 75세에 부름 받고 가나안 땅으로 이주한 모든 여정을 거쳐서 한 40-50년 지난 다음인 오늘 시점이다. 아주 중요한 포인트이다. 기억해 주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대략 한 50년 살다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된다. 아브라함이 처음 출발부터 오 신실하신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다고 그렇게 고백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도 마찬가지이다. 여러분 대부분도 그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고 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하나님은 나를 한 번도 실망시킨 적 없다고 고백하면서 신앙을 시작하시는 분은 거의 없다. 저도 그랬다. 오늘 아브라함을 통해서 한 번 보자.
 
​※아브라함 부르신 나이 75세
생 마감 175세, 백 년 동안 신앙생활, (이삭 나이 평균 25세),
 
*창세기 22:1,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부르셨다고 말씀하신다. 시험 받을 만한 기간이 지났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50여년이 지났다. 이제 아브라함을 한 번 테스트 할 때가 됐다. 이 시험하다를 설명하지 않아도 아실 것이다. 이것은 유혹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결정적으로 점검해 본다고 생각하면 된다. 저는 한 단계 앞서서 설명을 드리고 싶다. 이 테스트는 기회를 준 것이다. 여러분과 제가 이미 이 기회가 주어져 있고 그 기회를 통과하고, 오늘 아침 이 기회가 주어졌다면,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한다. 너의 믿음을 가지고 새로운 출발을 하라고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는 주님,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것은 설명하지 않겠다. 그런데 이 테스트가 무엇인지를 성경이 설명해 주고 있는데 12절을 보겠다.
 
*창세기 22:12,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 하나님의 평가가 저와 여러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긍정적인 평가가 되길 소망한다. 하나님께서 지난 50여 년 동안 그렇게 인도하셨다. 크게 두 가지로 정리를 하겠다. 하나는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땅의 약속 받고 갔다. 또 하나는 자손의 약속을 받고 간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고 하는 표현은 실망은 기대감에서 출발한다. 내 기대감이 채워지지 않으면 실망하게 되어 있다. 이 찬양의 고백처럼 설교의 제목처럼 실망시키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기대감을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기대감을 주셨는가? 저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본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대감은 약속이었다. 그리고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주시면서 인도하셨다.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음으로 받았고, 기대감을 가지고 출발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땅을 준다고 하셨는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기근이 생겨서 애굽으로 내려간 것, 설명하지 않겠다. 그리고 부자가 되어서 가나안으로 돌아온다. 처음에는 기대감으로 왔다가 다시 실망으로 온 것 같았는데 다시 기대감을 가지고 가나안에 돌아오게 된 아브라함, 아들도 마찬가지다. 후손을 약속하셨는데 처음에 기대감이 있었다. ‘그래 나에게 후손이 있을 것 같은데’, 하는 마음이었지만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기대감이 실망으로 바뀌면서 종이라도 아들로 삼아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안 되니까 여종의 아들, 이스마엘이라도 후손으로 삼아야 하겠다고 하니 그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직접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에서 아들을 주시는 것이 이삭이다. 기대감을 가지고 출발했다가 실망을 했던 아브라함이지만, 이제는 그 기대감보다 더 큰 은혜를 통해서 돌려주시고 기대감을 주시고 실망시키지 아니한 체험을 한 아브라함, 그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따라갈 수 있는 그 믿음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에게 일어나길 소망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살았던 것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는 우리가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I. 하나, 기대 이상으로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리게 한다.
 
​-하나님은 그렇게 인도하시고 앞으로도 그렇게 인도하실 줄로 믿는다. 아브라함의 50년의 신앙생활이 그 증명하고 있다. 저와 여러분들이 그 증명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이 그렇게 인도하지 않으셨는가? 아브라함이 두 가지 약속을 받았던 것, 나에게는 어떤 약속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 모르겠다. 예수 처음 믿기 시작할 때, 잘 될 줄 알았다. 형통하다고 약속 받았다. 그래서 예수 믿기 시작하고 교회 다니기 시작했는데, 형통한 분도 계시지만, 일이 잘 안 되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래서 실망하셨을 것이다. 그 실망을, 그 기대감을 채워주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시는지 이제 고백할 수 있지 않은가? 세상에 부귀영화(富貴榮華)를 세상의 형통(亨通)함을, 예수 믿으면 그런 것이 나에게 자동으로 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런 것보다 더 소중한 하늘의 소망과 하늘의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까 이제는 세상 것은 좀 부족해도 하나님 앞에 실망하지 아니하고 결코 나의 기대감 그 이상으로 넘치는 은혜와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 것, 주님을 높여드리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인도하셨다. 할렐루야!!~` 나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 내가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이 후회가 되는가?
 
처음에는 내가 제대로 가는 길인가를 혼돈하기도 했겠지만 하나님은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결코 실망시키지 아니하시고, 세월을 지내보니까, 신앙생활 하고 보니까 아!! 새로운 삶이 이런 것이구나, 주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아래서 더 감사하게 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찬양과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결코 실망시킨 적이 없으신데, 혹시 아직도 하나님 앞에 실망스럽고, 낙심되고, 원망 섞인 고백이 나온다면 조금만 더 기다려 보기를 바란다. 조금 더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해 가시는 그 과정 속에서 아브라함을 생각하면서, 아브라함이 50년 동안 하나님 앞에 훈련 받았던, 그 하나님이 열심히 아브라함을 이끌어 가시고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경험케 하셨던 그 하나님의 손에서 빚어갔던 아브라함처럼 그렇게 조금만 더 성장하면 이 찬양의 고백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 한 번도 저를 실망시킨 적 없으셨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안 주실 때도 있으셨다. 내가 원하는 대로, 기도 응답이 안 되는 적도 있었지만 조금 지나놓고 보니까 그게 유익이었다. 그 때는 실망스러운 것 같았는데, 조금 지나보니까, 내 기대가 훨씬 뛰어넘는 놀라운 기대감으로 함께 하셨던 하나님, 응답하셨던 하나님, 그 하나님을 결국에 가서는 찬양하게 되고 눈물로 실망시킨 적 없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시간이, 그 날이 속히 임하게 될 줄 믿는다. 조금 더 인내하고 기다리면서 실망시킨 적 없으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고백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런 발걸음이 되기를 축복한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또 있다. 두 번째이다. ​
 
II. 둘,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기적의 실체를 경험하게 한다.
-아브라함은 기적의 사람이었다. 3절을 보면,
 
*창세기 22:3,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바로 순종을 한다. 그 귀한 아들을 독자를 제물로 잡으려고 한다. 그런 결단을 하게 된 이유를 창세기에서 설명은 안 하지만 히브리서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히브리서 11:19a,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의 판단에는 이삭을 제물로 잡아 죽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분명히 이삭을 살릴 거야.’ 하는 믿음이 있었다. 우리로 표현하면 믿음이다. 이 믿음이 어디서 나왔을까? 우리는 아브라함과 비교하면서 나 같은 신앙, 기가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아브라함을 칭찬하는 핵심 표현인데, 왜 이런 결단을 할 수 있고, 이런 순종이 가능했을까? 저와 여러분들에게 동일한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서 기적을 체험케 하시는 이런 결단, 이런 순종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저는 이것이 아브라함의 경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브라함이 우리가 생각하는 부활을 믿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해석이다. 이삭의 제물 사건, 순종의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 보혈 십자가를 예표 한다는 해석이 충분하지만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계시로라도 받았다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들의 신앙이다. 이미 십자가를 통해서 경험한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이고, 아브라함은 그 정도의 믿음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데,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적어도 이삭을 제물로 바쳐도 하나님의 기적으로 이 아들이 살아날 것을 확신했다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을 주시도록 인생 여정을 이끌어 가시는 주님을 찬양하고 그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아브라함이 그런 경험을 통해 없던 데서 낳은 아들, 도저히 애굽에서 살아날 것 같지 않은 그런 상황 속에서 애굽에서 피신했다가 가나안으로 돌아왔던 그 여정, 애굽으로 가긴 갔지만 오죽하면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살아나기 위해서 거짓말까지 한 그 절망 속에서 오히려 부자가 되어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기적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해도 도저히 안 되었던 후손을 자기 몸으로 직접 낳을 수 있도록 기적을 베푸신 하나님을 경험한 아브라함은 이제 독자 이삭을 바칠만한 넉넉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아갔다.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이 아브라함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짧은 인생일지라도 많은 경험은 아닐지라도, 작은 기적의 연속 속에서 저는 기적을 일상으로 표현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우리 담임 목사님도 가끔 그런 표현을 하신다. 어떤 분이 그러더라. 기적은 한 번 만 일어나는 것이 기적이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적은 자주 일어나는 것이 기적이다.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할렐루야!! 왜 기적을 잊어야 되는가? 하나님을 잊어버려서 그런 것 아니겠는가. 안 되는 것을 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시고 그 은혜와 복을 주시기 위해서 저와 여러분들을 테스트 하시고 기회를 주시는 그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기회를 붙잡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한다. 내 것을 포기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오늘 아브라함의 모습이다. 물질을 붙잡고 있었다면 물질을 포기해 보아라. 되돌려 주시는 물질의 하나님의 법과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로 저는 확신한다. 인생의 노후대책을 붙잡고 계셨다면 하나님의 노후대책의 기적을 한 번 맛보시도록 그것을 내려놓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여전히 자녀를 붙잡고 계시다면 그것을 내려놓음으로 말미암아 이 자리에 나와 있는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기적을 경험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고 맛볼 줄로 믿는다. 우리의 모든 것들이 내가 만든 우상들이 내려놓는 그 순간 하나님의 기적으로 바뀌어져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아브라함처럼 독자 이삭을 바칠 수 있는 순종하는 아브라함처럼 저와 여러분들 그렇게 바꿀 줄로 믿는다. 붙잡고 있는 건 내려놓는 은혜가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사실 오늘이 중요한 결론이다. 한 가지 더 대 제목을 보겠다. 화면을 참조해주길 바란다.

 
III. 셋, 약속(기도) 응답의 때를 인내하며 기다리게 한다.

그렇다. 하나님의 응답의 때를 기다리는 게 믿음이다. 제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사실 지금까지는 서론인데 짧게 결론을 내도록 하겠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제가 아브라함 인생 100년을 잠깐 말씀드렸다. 오늘 사건을 중심에 50년쯤으로 본다면, 앞으로 아브라함은 50년을 더 산다. 창세기에 기록을 놓고 보면 12장에서 시작한 아브라함의 사건이 오늘 22장에서 정점을 찍고 그 다음에 이삭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잠깐 아브라함에게 언급한 두 구절 정도가 있고 나머지는 이삭의 사건으로 진행이 된다. 아니 전반부 50년은 크게 다양한 삶의 경험을 하고 기적을 경험한 아브라함이 가장 정점을 이루고 순종한 그 테스트를 통과한 아브라함에게 여러 가지 풍성한 은혜의 사건이 주어지지 않고, 그냥 침묵하다가 인생을 마감한다. 그가 기진하여 술을 다 하고 175세에 죽었다가 이후의 삶이다. 그러나 단 하나 이런 구절이 표현되어 있다. 창세기 24장 1절이다.
 
*창세기 24:1,
1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다. 근데 그 복이 범사에 복이다. 설명이 필요 없다. 아브라함의 인생을 이끌어 가신 하나님 마지막 기적을 스스로 경험하게 하신 그 하나님께서 이제 아브라함이 그 테스트를 통과한 이후의 삶은 그냥 한 구절이면 끝나는 것이다. 한 표현이면 된다.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이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님의 말씀이 저와 여러분들의 신앙 고백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나의 인생 속에 진정한 하나님의 복이 범사에 임하였음을 간증하고 고백하고 그렇게 묵묵히 기다리며 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한다. 보통 말씀을 묵상하면 이 정도 되면 아브라함이 이제 테스트를 통과하고 난 다음에 이삭이 막 자녀를 낳아야 된다. 가나안 땅에서 거부가 된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데, 여전히 후손의 약속은 없다. 아브라함이 죽을 때 야곱이 몇 살이냐 하면 성경에 근거한 나이이다. 정확한 나이이다. 야곱이 15세 때 아브라함이 죽는다. 그러면 독자 이삭을 바쳐 여호와이레 하나님이 준비하신 예비하신 은혜와 복을 경험했던 수풀에 걸려있는 그 양을 통해서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경험했던 아브라함이 이제 이 약속, 이 테스트를 통과한 다음에 이삭이 계속 자녀를 낳아야 되지 않는가. 우리 상식으로는 야곱이 열두 아들 낳았는데 사실은 이삭이 열 두 아들을 지금부터 낳아야 정상인데 50년 동안 이삭은 겨우 결혼해서 쌍둥이 야곱을 낳고, 그것도 서로 싸우면서 태어난 이상한 아들 그 야곱이 15살 될 때 세상을 마감한다. 그리고 성경은 침묵하고 있다. 단 한 표현 그에게 아브라함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다가 오늘 사건 이후에 50년의 핵심이다. 여러분 이 말씀을 각자에게 적용하고 기다리게 하시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내가 원하는 기대감과 다른 하나님의 때가 하나님의 역사가 이제는 아브라함이 초조하지 않는다. 성경 어디를 봐도 다급한 아브라함의 모습 실수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냥 묵묵히 저는 그렇게 거룩한 상상을 한다. 50년 동안 하나님을 섬기고 묵묵히 바라보았던 아브라함,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아니하고 이해가 안 되는 자녀의 축복이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아브라함의 믿음은 흔들리지 아니하고, 15살 된 야곱을 보면서 인생을 마감한 아브라함의 인생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이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 아브라함의 마지막 모습을 히브리서 11장 9절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같이 보겠다.
 
*히브리서 11:9,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살았다. 저는 이 히브리서 11장 9절 말씀을 보면서 오늘 말씀의 결과를 찾았다. 오늘 말씀의 핵심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인지를 저는 이 말씀에서 찾았다. 아브라함의 이후에 50년의 인생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나그네 인생을 가나안 땅에서 잘 마무리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기적과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들을 체험한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 속에서 신앙생활 속에서,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는 약속과 저 멀리 보이는 기도의 응답들을 놓고 기다리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또 다른 손길을 초월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묵묵히 인생길을 마무리하고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란다.
 
우리는 너무 급하지 않는가. 인생을 살면 살수록 신앙생활에 경험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하나님 신실하신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신뢰하고 믿음으로 반응하며 묵묵히 기다리고 인내하며 나아가는 그런 신앙인의 발걸음을 놓치지 않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의 분단 역사가 이제 휴전선으로 말미암아 분단된 것이 내년이면 벌써 70년이다. 그 동안에 북한 선교다, 통일 선교다, 또 이제 최근에는 통일 대신에 이제는 평화를 써야 된다. 그래서 평화통일 단어 많이 쓴다. 시대에 따라서 개념들은 많이 바뀌고 상황에 따라서 강조점들은 달라지지만 교회는 우리 교회 늘 쓰는 기도의 제목이 있다. ‘피 흘림이 없는 복음적 평화 통일’, 이것이 이 시대에 주님이 주시는 약속이고 모리아 산에서 순종했던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피 흘림이 없는 복음적 평화 통일에 약속으로 임하게 되는 것을 저는 확신한다. 인내하고 기다리고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한다. 사랑광주리가 8주년이 지나갔다. 오늘 감사의 예배이다. 관여하신 분들 기피하시는 분들 계시고, 피상적으로 들으신 분들도 계실 터인데, 세상의 환경은 늘 바뀌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고 순종하는 자들 기회를 주셨을 때, 그 기회를 포기하지 아니하고 결단하고 헌신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은혜는 변함이 없이 지금도 지속되는 줄로 믿는다.
 
여러분, 문단의 아픔이 얼마나 힘든지 아시지 않는가. 좀 넉넉히 가지고 있는 분들은 나누고 싶다. 그래도 나눌 수가 없다. 지나가는 사람 옆에 사는 사람 불쌍하고 어렵고 힘들면 도와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마음이 있어도 도울 수가 없다. 여러분 따뜻한 밥 먹으면서, 맛있는 고기 먹으면서, 밥을 못 먹는 사람 고기 먹고 싶어 하는 사람 나눠줄 수 있다. 나눠주고 또 그렇게 살지 않는가! 혹시 내 자녀가 지금 먹을 것이 없어서 엄마 나 먹을 것 좀 주면 좋겠어요.. 할 때 그 마음이 어떤지, 우린 내가 못 먹어도 자녀에게 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지 않는가. 그리고 줄 수 있다. 지구촌 어딘들 못 쫓아가겠는가. 필요하다면 달려간다. 어떤 분의 간증이 있다. 자기 아이가 선교지에서 힘들다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 즉시 비행기 타고 날아갔다고 한다. 그 아이 위로해 주려고... 그게 부모의 마음이고 가족의 마음인데 실제로 얼마 전에 자기 딸이 두 살짜리 손자와 함께 그 것도 아픈 아이 먹을 것이 없어서 도와달라고 울면서 전화하는 목소리를 듣고 마음이 찢어져 있는 엄마의 마음, 위해서 내려오신 분이다. 이유가 있을까? 주고 싶고, 줘야지. 그분의 탄식이 그러하다. 아니 얼마나 됐든 줘야 되는 거 아닌가. 내 딸이 지금 죽어가고 있는데, 굶어가고 있는데, 배고프다고 하는데 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 보낼 방법이 없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 같지만 지금도 보이지 않는 손길을 통해서 일하고 계시고 침묵하시는 것 같지만 지금도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의 믿음을 통해서 일하시는 줄로 믿는다. 우리가 못하는 것을 지금 사랑광주리가 하고 있다. 후에 보시면 소개가 나올 텐데 좀 마음을 모아 주시기 바란다.
 
아브라함이 자손이 번성하는 것 보지도 못하고 15살짜리 손자들이 서로 싸우는 것 보다가 인생을 마감해도 그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믿음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늘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조상의 고백을 드리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 시간 저와 여러분들에게 순종하고 결단한 그 믿음을 보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유유히 흘러가고 약속이 흘러가는 그런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보게 될 줄로 믿는다.
 
여러분, 저를 포함해서 우리 인생을 포기해 보셨는가? 한 번 하나님 앞에 멋지게 헌신해 보셨는가? 모든 목회자들이 할 수 있는 표현 하나 저도 목사니깐 말씀드리겠다. 제가 80년에 1980년에 신학을 결정했는데, 그 때 정말 다 포기했다. 저는 포기한다는 것에 대해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제가 해 봤다. 내가 꿈꿨던 젊은 시절에 하고 싶은 것 다 내려놓고, ‘저 주님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고백을 했다. 수십 년 전이니까 제가 얘기한다. 여러분 그렇게 한 번 해보시지 않겠는가. 목사가 되라는 것도 아니고, 선교사가 되라는 것도 아닌데 한 번쯤은 “내 인생을 포기하고 주님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고백하는 것 필요하다. 남은 인생이 얼마일지 모르지만 한 번도 자신을 포기해 본 적이 없었다면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드리고 포기하겠습니다.” “주님 주권 속에 주님의 기적 속에 살아가겠습니다.”라고 한 번 외치고, 그렇게 고백하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인생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멋진 결단의 계기가 되기를 부탁을 드린다.
 
자녀를 한 번도 포기해 본 적이 없는가? “한 번 쯤은 내 자녀 아닙니다. 하나님 자녀니깐 제 주권도 제 사랑도 제 안타까운 애정도 다 내려놓겠습니다. 하나님 자유롭게 하세요.” 그렇게 내 아이의 주권을 하나님께 내려드리고 포기할 때, 하나님의 기적이 시작될 줄로 믿는다.
 
지난 주 주일 예배 마지막 우리 담임 목사님 찬양하면서 인도하실 때 좀 부끄럽지만 눈물 많이 흘렸다. 혼자 뒤에서. 마스크가 그래서 좋다. 그냥 누구도 모르는 것 같다. 혼자 눈물을 주르륵 흘렀는데 이런 가사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 하리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
 
여러분, 우리 십자가의 길 걸어 보았는가? 순교자의 삶을 사는 자에게 순교자가 무언인지 아는가? 육신의 순교는 어렵지만 믿음의 순교는 가능하다. 조롱하는 소리 세상의 유혹 속에도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기를 원하는 이 고백 한 번 해 보셨는가? 우리 다 같이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 악한 세상에서 더러운 세상에서 주님의 순결한 신부가 되어서 한 번 인생 단 1분이라도 단 1초라도 한 번 그렇게 살다가 ‘주님 만나고 싶습니다.’ 고백하고 내 생명, 내 헌신, 내 믿음, 내 사랑 주님께 드리리.~ 고백하면서 기도하고 새롭게 우리 인생을 출발하는 결단하는 이아침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요약
이악한 세상에서 주님의 순결한 신부가 되어 살아야 한다. 십자가의 길을 걷고 싶고 선교자의 삶을 살아보고 싶은 우리의 간절함,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 놓치지 아니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거, 모든 것 주님 것이라 고백하고, 주님 원하시는 것 마음껏 내어드리고, 나를 포기하고, 주님의 초월적인 기적의 역사에 함께 올라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해야 한다. 우리 교회가 믿음의 4대가 피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의 비전을 가지고 벅찬 감격으로 나아가 통일시대를 향한 믿음보고를 통해 하나님의 날을 기대하고 사랑광주리 사역을 위한 1만 성도의 기도가 헌신이, 속죄 제물로 자신을 드렸던 모세처럼 통일을 앞당기는 거룩한 제물로 사용되기를 소원하며 복음 안에서 하나 되고 통일의 마중물이 되기를 소원하며 모두가 평화통일과 부흥의 주역으로 쓰임 받기를 간구하자.

 
-아브라함의 아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것이었다. 여호와께서 지시하신 모리아 산은 예루살렘에 있는 것으로 브엘세바에서는 약 80Km 떨어진 곳이었다. 거기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가혹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하나의 시험으로써, 아브라함의 믿음을 성장시키려는 계획이었다. 이처럼 상상도 못할 어려운 시련 뒤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숨겨져 있는 경우가 있음을 깨닫고 우리는 이 시련을 믿음으로 잘 극복해야 할 것이다.
 

▶이기원 부목사님(사랑광주리 상임이사)
-‘사랑광주리’의 8주년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기도와 함께 후원해 주신 여러분께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린다. 통일은 모리아 산으로 향하는 순종으로 시작되고 여호와의 은혜로 마무리 될 것이다. 이민족이 통일을 이루고 북녘 땅에도 속히 배고픔과 병으로 인해 복음을 접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영혼들이 없는 날, 그리고 믿음을 지키며 하루 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지하 교회의 성도님들이 자유를 찾아, 하나님께 자유롭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오늘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찬양을 하면서 두 개의 깃발을 흔들어 주었다. 하나는 로얄, 왕권을 상징하는 보라색, 그 색깔 바탕에 우리 사랑의교회 로고인 붉은 피, 보혈과 섬김의 심벌을 담았으면 또 다른 깃발에는 재건되어야 할 북한 교회의 이름들을 담았다. 만세를 외치며 왕 되신 하나님께, 왕 되신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 영권이 한반도 구석구석에 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깃발을 흔들며 찬양을 올려드렸다. 오늘 시간이 많이 없는 관계로 사랑광주리 사역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래서 여러분 주보에 보면 사랑광주리가 어떤 일을 하고 그 내용을 담아서 넣었으니 무엇보다 기도해 주시고, 기도하며 후원해 주신 모든 영 가족들에게 감사드린다. 코로나 기간동안 잠깐 후원을 잊으신 분들은 적극적으로 후원해 주시는 것을 대 환영한다. 많이 기도해 주면 좋겠다. 선물을 하나 씩 줄 것이다. 올리브 오일 발사믹이다. 왜 이 선물을 준비했느냐면 말씀을 아직은 못 드린다. 사랑광주리 후원자로 오시면 알게 될 것이다. 그 상황을 이행하시고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린다. 모리아 산으로 향하는 산상 기도회이다. 통일과 북녘 땅을 위해서 기도하며 마음을 담아 외치면 세 가지 기도 제목으로 기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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