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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3월 9일) 제목:1,2부: "불확실한 시대에 하나님 신뢰하기"(Tnusting God in Uncertain Times), 제목: 3,4부-"인생의 고통중에 주시는 말씀의 위로"(The Comfort of the Scriptures in the Heartaches of Life) 말씀: 고린도후서 4:8-9,16-18, 이사야 40:1-31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외) 대표기도: 오소협 부목사님(1부 외)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외) 설교자:베리 코리 목사님(Dr.Bary Corey):통역(김인기 부목사님), 피터 릴백 목사님(Dr. Peter A, Lilback):통역(정상익 부목사님) ----- *고린도후서 4:8-9, 16-18,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이사야 40:1-31,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12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 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 13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14 그가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정의의 길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 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16 레바논은 땔감에도 부족하겠고 그 짐승들은 번제에도 부족할 것이라. 17 그의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 18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 19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은 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20 궁핍한 자는 거제를 드릴 때에 썩지 아니하는 나무를 택하고 지혜로운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세우느니라. 21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22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에 사는 사람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주할 천막 같이 치셨고. 23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24 그들은 겨우 심기고 겨우 뿌려졌으며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이 입김을 부시니 그들은 말라 회오리바람에 불려 가는 초개 같도다. 25 거룩하신 이가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교하여 나를 그와 동등하게 하겠느냐 하시니라.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 ▶1,2부-베리 코리 목사님(Dr.Bary Corey):통역(김인기 부목사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다시 사랑의 교회에 오게 돼서 큰 영광입니다. 이 사랑의 교회가 가진 정말 아름다운 영성에 다시 한번 감격을 느낍니다. 특별히 오정현 담임 목사님 함께해서 너무나 큰 영광입니다. 탈보 신학대학교를 우리 담임 목사님께서 졸업하셨습니다. 사모님께서도 졸업하셨고요. 아드님께서도 졸업하셨고, 그리고 며느님께서도 우리 바이올라 대학을 졸업하셨습니다. 사랑의 교회에 올 때마다 그래서 우리 바이올라 신학대학교에 있는 모든 가족분들을 만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도 탈보를 졸업했습니다. 33년간 결혼한 우리 와이프 파울러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딸이 한국에 2번을 방문했었는데요. 고등학교 때와 대학교인데 여러분들에게도 문안 인사를 올려드립니다. 바이올라는 남가주에 있고요. biolla가 성경 공부하는 대학교라는 이름으로 지어진 이름입니다. 5,300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에 있으며 대학원, 학부, 석사, 박사까지 과정을 제공하고 있고 33개 학부와 8개의 석박 과정이 있습니다. 특별히 탈보 신학대학원 많은 목사님들께서 한국에서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많은 학생들이 저희 바이올라 학교로 유학을 오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함께 되어 너무나 큰 영광입니다. 너무나 초대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인스타그램에도 저 팔로우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몇 주 전 한국에서 말씀을 준비하며 어떠한 말씀을 전할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불확실함 때문에 제 마음의 염려가 생겼습니다. 여러분 혹시 미국 정치를 알고 계시다면 미국 정치가 분열돼 있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엄청나게 많은 불안과 미국과 한국이 참 비슷한 양상을 지금 정치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시대 가운데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제자로서 살 수가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 주제를 가지고 몇 주 동안 계속 고민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말씀은 우리 사랑의 성도님뿐만 아니라 제 자신에게도 주님께서 주신 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미국에 있는 교회들에게도 주신 말씀입니다. 전 세계 교회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이 바로 선교 하나님의 말씀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성경책이 우리가 믿고 확신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기반은 말씀 위에 서 있어야 되는 것을 믿습니다. 조금 전 우리가 읽은 말씀은 고린도서 4장 말씀입니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겪는 어려운 시간들입니다. 우리가 도대체 풀 수 없는 문제들입니다. 그리고 8장과 9절을 제가 요약하자면, 우리가 우겨 싸움을 사방으로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쌓이지 아니하며 버림받은 죄 되지 아니하며 거꾸로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을 것이라 성경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혼란스러움을 당할 때에도 우리가 절망 가운데 서 있지는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답답함 바로 혼란스러움에 대해 포커스 하길 원합니다. 지금 이 시대의 많은 것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바로 바울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과 어려운 상황들입니다.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 지금 이 시대에도 사실 혼란스러운 일이 많지 않은가요? 정치적 분열과 불안정성입니다.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사람들을 억압당하고 있으며 지금 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고 고용시장과 인플레이션이 있으며 정치적 분열과 경제적인 불안정성 때문에 우리는 더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교회 내에서도 혼란스러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교회들이 성경이 아닌 비본질적인 문제들로 인해 나뉘고 있습니다. 정치적 이슈로 그리고 교회 내부적인 정치적인 문제로 돈 문제로 그리고 작년 세대는 또 다음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불확실성도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기도 제목은 주님 저의 장년 세대 저를 비롯한 모든 장년 세대들이 주님께서 젊은 세대를 통하여 하시는 역사를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라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우리 바이올라 학교에는 많은 젊은 세대들이 있는데요. 그들은 정말로 신선한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옵니다. 한 학생이 저의 오피스에 왔었습니다. 그녀는 아주 엄청난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그건 되지 않을 거야. 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크레이지한 생각이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면은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어 도대체 이걸 언제 시작해야 되지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님들 우리 젊은 세대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역사의 현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기성세대들에게는 우리에게 참 혼란스러움을 가중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젊은 세대를 통해 역사하시는 새로운 방식들을 우리 장년세대들이 이해하는 날이 속해 오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사야 43장을 자주 방문하곤 합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태어날 것이라 그리고 말합니다. 너는 그것을 보지 못하느냐, 그렇기 때문에 저는 주님께 기도합니다. 주님 다음 세대를 통해 일하시는 그 역사를 보게 하옵소서. 그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4장에서 얘기했던 이야기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혼란스러움을 우리 삶 가운데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확신할 수 없는 상황들 정치적인 상황들일 수 있고 경제적인 상황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어떤 일을 하시려나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삶 속에서도 혼란스러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람이 갑자기 큰 건강상의 문제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의 자녀가 올바르지 않은 선택을 할 때 혼란스럽습니다. 가족 내 갈등으로 인해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게 될 때, 재정적인 어려움이 닥쳐 앞이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님들 안심하십시오. 고린도전서 4장은 우리가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일을 당하여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주권자 되시며,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지금 일어나는 모든 ai 상황들 ai 때문에 혼란스러우신 분들이 계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런 트렌드의 우리 크리스찬들은 정말 어떤 것이 도덕적인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새로운 기술들에 우리가 도망가거나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나 이것들을 잘 활용해서 주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가야 됩니다. 지금 교회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나 새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행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베러스 윌러드 교수님은 바이올라대학교 이사회 멤버였고, 미국 남가주대학교 철학 교수셨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들에게 그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조언들을 우리에게 해 주셨는데요. 첫 번째는 절대 염려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 가운데도 걱정하지 말라고 교수님은 얘기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충만합니다. 또한 교수님 말했습니다.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과거의 방식만을 고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주권자 다 되시며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무엇을 하시는지 분명히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답답함과 혼란스러움을 느껴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허락하지 않는 것은 바로 절망(絶望)입니다. 포기(抛棄)하는 것을 허락치 않으셨습니다. 상황이 절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허락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새로운 일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전 세계 가운데 참 놀라운 역사들을 하고 계십니다. 바로 10월 사랑의 교회에서 WEA 총회가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 현장인 줄 믿습니다. 바로 전 세계에서 가장 가장 큰 지하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 현장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정말 말로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부흥을 위해 기도할 때 다시 한번 부흥을 위해 기도할 때,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서 제자화를 이뤄가실 때, 사랑의 교회를 하나님께서 사랑의교회를 통해 세계선교의 마무리를 이룰 것을 확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늘 사랑의교회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교회를 통해 새 일을 새 역사를 행하겠노라!~~ 바로 이 자리에서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님들이 보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혼란스러움이 아니라, 주님 두려움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전적 믿음으로 위탁함으로 말미암아 나아가길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도 일하고 계시는 것을 확신하시길 바랍니다. 바로 정치와 경제와 문화 모든 영역에서 교회와 가정과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주님은 역사하고 계십니다. 제가 한국에 올 때마다 새로운 단어들을 배우게 되는데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라는 예전에 배웠습니다. 김치, 목사님, 목사님, 사모님 그리고 제가 한국에서 또 배운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단어들이 오늘 설교의 핵심 본문입니다. 확실과 확신의 차이점에 대해 배우게 됐습니다. 제가 이 두 단어들의 차이를 알게 되었는데요. 확실이라는 뜻은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확실히 알고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확신은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확신하는 믿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확실은 확실히 일어날 일이라고 영어로 번역이 되고 확신은 주님 안에서 가지고 있는 믿음입니다. 확실은 눈에 보이는 것에 의지해서 사는 삶이고, 확신은 믿음 안에서 사는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혼란스러울 때 우리가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마주할 때,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확신의 믿음인 줄 믿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주권자 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어려움과 질문들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주권자 되심을 확신합니다. 우리의 불안정성에서도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붙잡고 계십니다. 우리를 은혜 안에서 보듬어주십니다. 바로 은혜란 우리가 어떤 것을 해도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보다 더 크게 사랑을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우리가 더하거나 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최고로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그만큼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주님께서 저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혼란스러워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절망은 하지 말라고 그리고 바로 사도 바울은 당시 교회 지금 우리와 같은 그 교회들에게 이 편지를 전했습니다. 두려움이 있었고, 교회 내 그들은 소수자였고 그리고 함께 하길 너무나 힘들어하는 상황 가운데 있었지만 바로 우리 모두가 교회의 공동체에 속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사랑의 교회 같이 성도의 교제라며 공동체에 속해 있는 아름다운 교회로 빚어 가라고 했습니다. 바로 사랑의 교회가 하나님의 몸 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나타내 주는 가장 좋은 예시입니다. 우리 콰이어 오케스트라 참 아름다운 찬양해주셨는데, 함께 찬양하게 돼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함께 배우고, 함께 사랑하고, 서로를 도우고 세워주며, 바로 이것이 우리가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겨내는 방법들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사도 바울이 기도에 전념하라고 합니다. 바로 기도의 힘을 무시하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바로 서로를 향해 기도하라.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고 얘기하고, 저는 특별히 전 세계 교회들이 한국 교회 성도님들의 기도의 영성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오정현 담임목사님께서 이 기회를 시작하셨을 때 바로 엄청 40일 특별 기도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있습니다. 새벽 기도이고 열정적인 기도이고 오정현 담임 목사님 전 세계 교인들이 어떻게 기도해야만 됐는지, 예시를 보여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발언 얘기합니다. 공동체에 속하라. 기도를 전념하라. 그리고 성경의 권위에 우리가 정말 존중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그대로를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권위가 있고, 믿을 만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다른 길로 새는 것을 방지합니다. 그리고 정말 좋지 않은 트렌드로부터 우리를 지켜줍니다. 우리 삶에서 정말 들어오는 모든 나쁜 것들을 제하여주는 유일한 소망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이 말합니다. 우리가 비주류고 소수여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지금도 전 세계 많은 교인들이 소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강력합니다. 우리는 어떤 어떨 때로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미국에서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우리 바이올라 대학교에서는 결혼이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는 것이라 가르칩니다. 그리고 저희 기숙사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해서 지금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관점으로 이 정의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우리가 분노로 대답하거나 아니면 두려움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분노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주님 안에서 온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고, 우리의 원수를 사랑하고, 그리고 세상 가운데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우리가 먼저 다가가고, 심지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도 사랑하게 되는 것이 바로 성경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인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살아가셨듯이 사랑하는 교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혼란스러우시다면 건강한 교회에 속해 있으시길 바랍니다. 기도에 전념하시길 바랍니다. 성경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서로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살아있게 사는 모든 사역들의 본질인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바이올라대학교에서 하는 일들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세계가 전 세계가 필요한 사랑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8절에서 9절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싸움을 당하여도 우리는 쌓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우리가 정말 넘어져도 우리의 주님 안에서 절대로 제하지 아니하며 우리가 거꾸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을 것을 확신합니다. 몇 절 뒤에서 바울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에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오.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어라.’ 이것이 바로 우리가 혼란스러운 시대 가운데 대응해야 되는 방법인 것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삶에 다가올 것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될 것들에 대해서도 바울은 서술합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할 것을 예측해야 합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망하지 않게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박해 받을 수 있지만, 하나님 안에서 절대 버림 받지 않을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넘어질 때도 있지만 그리고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권자 되심을 믿으시길 소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절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사도 바울이 빌립 보서 1장 6절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우리는 확신하노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룰 수 있는 우리는 확신하노라.’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 가운데 갖고 가야 되는 약속인 것입니다. 두 달 전 큰 산불이 로스앤젤레스를 강타했습니다. 모든 것들이 참 말라있었을 있습니다. 나무들이 그리고 정말 큰 강풍이 불어왔는데 초속 160km의 강풍이 불어왔고, 퍼지는 불길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로 산불이 계속 퍼졌고, 29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1만 8천 채 이상의 집과 건물을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불이 난 그날 밤 바이올라대학교의 한 교수님이 소방서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불 때문에 빨리 대피하라는 연락이었습니다. 교수님은 레바논에서 오신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몇 시간 뒤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시겠지 하고, 여권과 야근 챙겨서 차를 타고 집을 조금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그러나 다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그녀가 다시 집에 돌아갔을 때, 집이 다른 모양으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교수님의 집이었는데요. 불이 나기 전날 사진입니다. 남가주에 있는 참 아름다운 전형적인 집입니다. 그리고 이게 바로 다음 날,,, 우리 교수님의 집입니다.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하루 만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모든 사진들, 모든 일기장들, 모든 노트들, 모든 편지들, 그녀가 적었던 노트들,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교수님과 다음 날 얘기했습니다. 정말로 교수님 이겨내려고 했지만, 결국 눈물을 흘렸습니다. 너무나 충격을 받았고, 또 부모님도 케어해야 됐습니다. 저에게 말했습니다. 이거는 너무나 큰 상처로 남을 것이라고, 그러나 교수님께서 이 사연설을 인용하며 저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바로 재에서 화산을 만들겠다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이겼어요. 총장님 그게 어떤 모양으로 나타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하실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총장님 오래 걸리겠죠? 살아가는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우리를 오랫동안 괴롭힐 때가 있습니다. 삶을 살면서 영원히 해결 받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그리스도 영원한 우리의 왕이시라고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지금 그 교수님께서는 참 혼란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총장님, 저는 절망 가운데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께서 내 삶에 일하실 것을 믿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그 교수님께서 다시 한번 일어날 것입니다. 이 불길을 뚫고 나올 것입니다. 어떻게 제가 확신하냐고요. 왜냐하면, 교수님이 섬기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제가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굽은 길을 곧게 만드신 분인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거친 파도를 잠잠케 하시는 분인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의를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재에서 화관을 만드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이 화마로 모든 것이 집어삼켜졌을 때 이 말씀을 떠올리셨습니다. 이사야의 말씀입니다.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너를 지으신 이가 너를 말씀하시느니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도 타지 아니 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리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이니 내 하나님은 내 구원자이니라.’ 그러므로, 살아가는 여러분 우리의 모든 혼란들 교회 가운데서 그리고 개인적인 삶에서도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상한 마음을 고치시며, 고통과 혼란 속에서도 소망을 주는 분임을 믿습니다. 저를 위해서도 역사하셨고, 사랑하는 성도님들을 위해서도 주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확신하며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것을 우리는 확신 하노라. 감사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주님은 성난 파도를 잔잔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지금 이 가운데 성남 파도 가운데 서 있는 성도님들이 계십니다. 주여,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부으시는 주님, 지금 성도님들 가운데 그 생수의 강물이 필요한 분들이 계십니다. 주요 우리를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상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예배 가운데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분들 가운데서도 주님께서 만져주시고,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소망 가운데 거하게 하여주시고, 절망 가운데 기쁨을, 예수님을 우리 가운데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아멘 ♣요약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는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현실'을 직면할 때, 주권자이시며 지금도 통치하시는 왕이신 주님을 끝까지 신뢰하여야 한다. 우리가 절망하며 포기하고 싶을 때, 확실하게 새 일을 행하시는 주님을 확신하여,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모든 좌절에서 일어나야 한다. 우리 사랑의교회가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서울총회(10.27)를 위한 특별기도회(3.15 토요일 새벽 6시)로 엎드려, 강력한 눈물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과 세계 교회의 심장을 울리는 간절한 기도를 올려드리자. ========================================== ▶3-4부-피터 릴백 목사님(Dr. Peter A, Lilback):통역(정상익 부목사님) 사랑의교회에 다시 오게 돼서 참 기쁩니다. 여러분의 담임 목사님이신 오정현 목사님께서 다시 초대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미국에 있는 주안의 형제 된 우리 많은 사람들의 인사를 대신해서 전해드립니다. 특별히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인사 문안 인사를 여러분에게 드립니다. 오늘 특별히 성경 말씀에 나오는 위로에 대해서, 또 우리가 느끼는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드리고자 해요. 우리의 영혼 가운데 어려움이 고통이 찾아올 때를 경험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제가 여기서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만약 여러분과 대화를 나눈다면 각자 각자의 마음 가운데 상처와 또 고통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타락한 그리고 무너져 내린 세상 속에서 살면서 고통을 경험하고 있죠. CS루이스가 자신이 썼던 저서인 고통의 문제라는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런 어려운 세상 가운데 해서 이런 고통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하나님을 반대하는 논거는 이 우주가 너무나도 가혹하고 불공평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공평함과 불공평함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까?” 만약 어떤 사람이 선이 휘었다고 이야기를 하려면 선이 바르다는 개념을 알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다시 이야기하면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여 주신 공평함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어야만 우리가 공평함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거죠. CS루이스는 계속해서 이 저서 안에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 가운데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들려주시고 계신지에 대해서 계속해서 설명해나갑니다. 하나님께서 기쁨 가운데 속삭여 주신다고 이야기 해요. 그런데 우리의 양심 가운데서 직접적으로 말씀을 주신다고도 언급합니다. 그런데 CS루이스가 특별히 우리의 고통 가운데 하나님이 외치신다. 라고 이야기해요. CS루이스는 고통은 하나님께서 귀먹은 세상을 향해 쓰고 계시는 확성기다.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겪고 있는 개인적인 또는 관계적인 특별히 나라 적인 국가적인 문제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지도 몰라요. 우리는 믿는 자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의 말씀을 통해서 얼마나 명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특별히 말씀을 볼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셔서 오늘 우리가 살펴봤던 이 이사야 40장 말씀을 통해 위로를 받게 됩니다. 첫 번째 구절이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니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위로하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위로하라. 두 번이나 위로해 주신 것 보고 계십니까? 왜 하나님께서 위로, 위로 두 번이나 말씀하셨을까요? 제가 한 장로님께서 주일 학교에서 아침에 아이들에게 말씀을 전했던 이야기를 들은 게 있어요. 그 장로님께서 사도바울이 했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셨어요.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그렇게 말씀을 전하고 나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우리 아이들에게 장로님이 물었습니다. 왜 바울이 두 번이나 기뻐하라고 얘기했을까? 그러자 어린 소녀가 손을 들고 대답했어요. 저희 엄마가 저한테 늘 두 번이나 반복해서 얘기하실 때는 제가 엄마 말을 안 들을 때예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안 듣는지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삶 가운데 어떤 고통을 겪고 있던지, 어떤 상황 가운데 있던지, 말씀하십니다. 위로한다. 너를 위로한다 라고요. 여러분이 어디에 속해 있으시든지 간에 여러분의 영혼을 위로하시고자 합니다. 창세기 37장 35절에 나오는 야곱과 요셉의 이야기에 나오는 모습을 우리가 가지고 때도 있어요. 야곱이 요셉을 잃고 위로하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시편 69편 20절 말씀에 이와 같이 나와요. “불쌍히 여길 자를 바라나 얻고 긍휼이 여길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그런데 스가랴 10장 2절 말씀은 이와 같은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거짓된 위로가 존재한다는 걸 알려줘요. 명성 성이나 재물이나 또 내가 가지는 수많은 이 유혹들에 대한 마음들을 채울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 가운데 성경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우리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진정한 위로자가 계시다면, 하나님의 임재 자체가 진정한 위로자가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너무나 사랑하시는 10편 23편의 다윗이 이야기하는지 아시죠? “내가 사망에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성경 안에서 특별히 구약 안에서, ‘위로’라고 표현된 단어의 뜻을 좀 더 살펴보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구약성경에서 위로라고 쓰였던 히브리어 단어 자체가 구약성경에 있는 성경책 이름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어로 나흠이라고 되어 있는 그 단어를 따서 나흠서가 기록됐죠. 우리 자녀들 중에 나훔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이 위로해 주신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요. 이 구약성경의 히브리어에서 헬라어로 번역된 70인경 안에서는 그 헬라어 단어가 새롭게 쓰였습니다. 제가 신학교 총장이다 보니 설교하면서 히브리어 헬라어 정도는 써야겠죠. 그렇죠. 일단 히브리어로 나흠, 하면 위로한다는 뜻이고요. 위로 예전에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히브리어와 또 헬라어에서 한 번의 헬라어로 번역했을 때, 사용되었던 ‘위로’란 뜻을 가진 헬라어 단어도 알려드릴게요. ‘파라클레이테’라는 헬러 단어입니다. 헬라어로 ‘위로’를 뜻해요. 바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성년 대해서 묘사하실 때 사용했던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신다고 하셨을 때, 그 보혜사가 위로자이시잖아요. 그 위로라는 단어가 거기에서 쓰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셨던 이 페라클레이트라는 단어 파라클레이토스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찾아보다 보면,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드러내는 단어임을 알 수 있게 돼요. 요한일서 2장 1절 말씀에 이와 같이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을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다’ 여기에 그 단어가 쓰입니다. 예수님이 의로우신 분이고, 대언자 이시며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분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는 본문입니다. 그리고 이 요한복음 14장 16절 말씀에, 다락방에 계셨던 예수님이 이 단어를 또 언급하시는 걸 볼 수 있어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 위로자를 말씀하시죠.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또 다른 이라고 표현하셨을 때 사용되었던 단어는 정확히 동일한데 다른 존재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의 위로자라고 말씀하세요. 그리고 너희와 영원히 함께할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겠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위로하시고 힘을 더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죠. 우리 함께하시는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그것이 가능하게 된 겁니다. 또 사도 바울이 작성한 고린도후서 1장 3절에서 4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로해주시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3절 4절 말씀 이와 같이 나옵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란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서 모든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로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로를 주신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읽었던 이사야 40장을 보시면, 위로, 위로로 시작이 되는데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위로하시는지 세 가지 큰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는데 왜 위로를 주시냐,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절에서 4절까지 말씀을 읽겠습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워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으로 엄청나게 큰 고속도로를 주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있는 산과 바다를 다 물리치셨어요. 그리고 깊이 파여있던 계곡을 다 채우셨습니다. 막고 있던 모든 장애물을 치우고 바로 우리에게 달려와주셔서 너를 위로한다. 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세요.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로 인해 무너져 내리고 깨져 있는 것을 다 아시고 우리에게 다가오셔요.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받게 하셨다” 라고 말씀하셨죠. 하나님의 사랑이 이 세상으로 침투해 들어와서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단순히 우리를 돌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정말 우리를 위로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하나님 되었기 때문에 우리를 위로하실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로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뒤에 이어지는 9절부터 11절 말씀을 보면, 목자의 심정으로 우리에게 오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의 위로를 주시는 거예요. 9절에서 11절 말씀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위에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그 능력을 본문을 통해서 보여줄 주시는 걸 봅니다. 이 모든 만물에 특별히 이 바다와 궁창과 모든 것을 손아귀로 쥐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모든 황제와 또 모든 대통령과 모든 나라를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단순히 우리를 돌보실 뿐만 아니라, 전능하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 한 명, 한 명을 위로해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과 시작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시작 전부터 이미 알고 계십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다람쥐의 모습을 또 새의 모습을 볼 뿐만 아니라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나를 위로해 주는 사람이 없어요. 라고 말하는 그 순간에도 여러분을 위로하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내 문제가 너무 커서 도저히 위로받을 수 없는 상황이에요. 라고 말하는 그 순간에도 그것을 뛰어넘는 여러분을 위로하는 위로자가 계십니다. 물론 여러분들에게 그 위로는 나를 위한 위로는 아닌 것 같아요. 라고 말하는 여러 가지 이유 들이 아마 있으실 것 같아요. 여러분 이렇게 얘기하실 수도 있어요. 하나님 보시기에 난 너무 미물이라서 위로 못 받을 것 같아요. 저는 너무 피곤해서 그 어떤 사람도 나를 도와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저는 너무 힘들어서 다 내려놨기 때문에 아무도 저를 도울 수 없어요.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분이 단순히 돌보실 뿐만 아니라, 돌볼 능력이 있는 분이라는 것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더 나아가서 그분이 그렇게 상처받고 힘든 사람을 사랑하셔서 위로하는 이라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27절부터 31절 말씀에 이사야 40장 27절부터 31절 말씀에 이와 같이 나옵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야곱아 어찌하여 내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내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시는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이것이야말로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여러분이 나는 외로워요. 라고 말할 때 하나님이 나는 너와 영원히 함께한다. 라고 말씀하세요. 저는 연약해요. 라고 말하는 여러분에게도 하나님께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가운데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는 말씀을 주시면서 예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물가에서 베데스다 못 옆에서 마비된 채로 가만히 있었던 사람도 생각해볼 수 있어요. 여러분이 그와 같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혜의 말씀을 듣고 찾아오십니다. 그 ‘네가 들고 있는 그 침구를 들고 일어서라’ 라고 예수님 말씀하세요. 그런 것처럼 여러분의 그 연약한 가운데서 하나님이 힘을 더해 주십니다. 어 말씀을 보다 보면 젊은 사람들조차도 지쳐 하고 또 쓰러지는 걸 봅니다. 여러분, 30절에 나오는 장정과 같은 젊은이더라도 너무 연약하고 힘이 없어서 다 포기하고 싶다. 라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의 위로자 되신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도전해봐 일어날 수 있어 할 수 있어. 라고 말씀하십니다. 윗 세대와 아랫세대가 갈등으로 인해 나눠진 그런 가정에 있는 여러분도 계실 거예요. 그런데 그런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위로자께서 찾아오셔서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너 안에서 일할 거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죄악 때문에 너무나 패역한 자신의 모습 때문에 완전히 가라앉아 있을 때 여러분을 위해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여러분도 함께 부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여러분, 정말 어려운 시국 가운데 우리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계시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어려운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일어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리우게 되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 31절 말씀을 다시 보셨으면 좋겠어요. 있습니다. 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은 것이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 들 것이오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않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 말씀이야말로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교회와 또 여러분이 속한 모든 공간을 위한 말씀이에요.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제가 한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데요. 독수리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드리고 싶어요. 독수리가 어렸을 때는 굉장히 멀리 높이 납니다. 그런데 독수리도 나이가 들어서 또 연약해질 때가 있겠죠. 날개가 빠지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점점 힘을 잃어버리는 걸 봅니다. 그래서 자기가 날던 그 하늘에서 점점 자리를 비켜줘야 될 때가 오는 거예요. 예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을 때, 그 독수리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겠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독수리에 이미지를 사용하셔서 새롭게 부활시켜 주시는 새로운 힘을 주시는 그 사역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는 겁니다. 이 고통의 순간이 지나가면, 새로운 날개가 돋고, 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높은 곳으로 날게 될 것이라고 말씀 주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이 구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의 새로운 날, 깃털이 자라나는 시간을 가지고 계신지도 몰라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새롭게 해주실 것입니다.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입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달음질하여도 곤비하지 않을 것이고. 걸어가 피곤하지 않을 줄 믿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약속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이야말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에게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패배하지 않았다. 그리고 힘을 얻어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알려주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가운데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땅과 하늘은 지나갈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줄 믿습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한국에 주신 그리고 교회와 온 세계의 만물에게 주신 약속인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런 위로야말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위로예요. 위로하라.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여러분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확장돼 나가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왜요? 예수님께서 그 나라의 왕이시고, 예수님은 절대 패배하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옵소서. 오늘 너무나 연약하고 또 힘들어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말을 들어주옵소서. 고통 가운데 있는 영혼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단순히 돌볼 뿐만 아니라 돌볼 능력이 있음을 알려주옵소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독수리가 날개 쳐 올라감 같이 힘을 더해주셔서 보내주신 사명을 달성할 수 있게 해주심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특별히 시랑의 교회에 함께 해주 주시길 기도합니다. 오정현 목사님과 함께해 주시길 원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살려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힘이 필요한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성도 한 명 한 명을 위로하시고 힘 더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를 위로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요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참된 위로를 주시기에, 우리는 고통과 어려움을 경험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위로하신다고 말씀하신다. CS 루이스는 고통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고 했듯이, 성경도 하나님이 진정한 위로자이심을 믿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시며, 죄에서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고, 전능하시기에 참된 위로를 주실 수 있으니, 또한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힘을 주시고 함께하시기에 두려워할 필요 없다. 그 약속을 통해 우리의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니 다시 일어나, 우리 인생의 고통 중에 주시는 말씀의 위로를 늘 주심을 믿고, 우리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니, 굳게 일어나서 주님 앞에 나아가 헌신하여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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