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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4월 18일 (750)



1. 경기 회복 속도가 더뎌지는 가운데 물가만 치솟는 현상으로, 스태그플레이션보다는 경기 침체 강도가 약할 때 쓰는 말은?

① 더블 딥 ② 하드 랜딩
③ 디플레이션 ④ 슬로플레이션

2. 부동산 관련 세금은 크게 ‘거래세’와 ‘보유세’로 나눌 수 있다. 다음 중 부동산 거래세에 해당하는 것은?

① 양도소득세 ② 재산세
③ 종합부동산세 ④ 부가가치세

3.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키이우, 흐리우냐에서 공통적으로 연상되는 국가는?

① 러시아 ② 우크라이나
③ 인도 ④ 시리아

4. 불황기에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심리적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제품을 많이 구입하는 현상은?

① 부의 효과 ② 레버리지 효과
③ 립스틱 효과 ④ 피구 효과

5. 물가 하락에 따른 자산의 실질가치 상승이 소비를 증가시키는 효과를 뜻하는 말은?

① 부의 효과 ② 레버리지 효과
③ 립스틱 효과 ④ 피구 효과

6. 야구의 ‘10루타’에서 유래한 말로 투자자에게 10배의 수익률을 안겨준 주식 종목을 가리키는 말은?

① 어닝 서프라이즈 ② 택스 헤이븐
③ 로스 컷 ④ 텐 배거

7. 세금 부담을 줄일 수 있거나 아예 회피할 수 있는 국가 또는 지역을 뜻하는 말은?

① 어닝 서프라이즈 ② 택스 헤이븐
③ 로스 컷 ④ 텐 배거

8. 손질을 마친 식재료와 적절한 양의 양념, 부재료 등을 한 세트로 구성해 간단하게 조리해 먹을 수 있도록 한 상품은?

① 로스리더 ② 밸류체인
③ 밀키트 ④ 언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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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읽는 세상] 하이브, BTS 매출 의존도 낮추고 게임사업 키운다



K팝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소속사 하이브가 게임 사업을 분사해 본격적인 육성에 나선다. BTS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기존 음악 레이블 사업에서 게임, 대체불가능토큰(NFT), 메타버스 등 새로운 사업으로 수익 모델을 다각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된다.美에 법인 신설해 사업양도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하이브는 미국 내 법인을 신설하고 이 법인에 게임 개발 및 퍼블리싱 사업을 양도하기로 했다. 신설법인 이름은 현 게임사업부의 조직명을 딴 ‘하이브IM’이 유력하다. 크래프톤 넷마블 엔씨소프트 등 국내외 대형 게임사와 파트너십을 맺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미국에 합작사를 설립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하이브는 앞서 올 상반기 두나무와 미국에 NFT 합작법인을 설립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회사 신사업의 주축이 될 법인을 모두 국내가 아니라 미국에 두기로 하면서 하이브가 글로벌 시장에서 미래 콘텐츠 사업의 큰 판을 짜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이브는 2019년 리듬 게임 개발사인 수퍼브를 인수해 100% 자회사로 편입하면서 게임 사업에 발을 들였다. 지난해엔 이 회사를 흡수합병해 자사 내 게임사업 부문과 합쳐 규모를 키웠고, 최근 하이브IM이란 신설 조직으로 재편했다. 하이브IM은 70~80명 규모의 게임 개발 인력을 갖추고 있다. 2019년 2대 주주인 넷마블과 협업해 ‘BTS월드’를 출시했고 지난해 2월엔 BTS의 캐릭터를 활용한 ‘리듬하이브’ 등의 게임을 내놓았다. 하지만 현재까지 내놓은 게임의 성과는 기대 이하였다. 게임 부문 매출도 수백억원대 수준이다.“게임은 하이브 플랫폼 핵심”업계에선 하이브가 이번 분사를 계기로 게임 사업을 본격 육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이브는 2020년 10월 상장 당시부터 연예기획사가 아니라 플랫폼 기업으로 회사를 소개해왔다. 아티스트를 육성하고 데뷔시켜 음반을 파는 구조에서 탈피해 팬과 꾸준히 소통하는 플랫폼을 구축,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이브는 이 같은 구상을 현실화할 핵심 콘텐츠 중 하나로 게임을 선택해 3년 전부터 꾸준히 준비해왔다. 지난해에는 대형 게임사 넥슨코리아 대표를 지낸 박지원 전 대표를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해 이 같은 움직임에 힘을 실었다.

BTS에 대한 매출 의존도를 낮추는 것도 게임 분사를 서둘러 결정한 배경으로 꼽힌다. BTS와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가 소속된 빅히트뮤직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270억원으로, 하이브 전체 영업이익(1903억원)의 약 66%를 차지하고 있다. BTS의 최연장자인 진은 1992년생으로, 현행 병역법상 올해 말까지 군에 입대해야 한다. BTS에 대한 병역특례 법안을 국회에서 논의 중이지만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아 불확실성이 크다.

게임은 BTS 등 소속 아티스트의 지식재산권(IP)을 직접 활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로, ‘팬심’이 수익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팬덤 투 언(fandom to earn)’ 측면에서 핵심 요소로 꼽힌다. 하이브는 최근 투자자 대상 콘퍼런스콜에서도 사내 게임 부문 인력의 역량을 소개하고 게임 사업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국내 증권사의 하이브 담당 애널리스트는 “BTS의 곡과 캐릭터를 단순히 게임에 차용하는 수준이 아니라 메타버스 내에서 선호하는 아티스트와 직접 접촉할 수 있는 게임이 개발된다면 게임 사업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현금 창출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준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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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4월 4일 (748)

1. 다음 중 안전자산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을 고르면?
① 금 ② 달러화
③ 일본 국채 ④ 루블화


2.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한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등 기구와 갈등을 빚고 있는 중미지역 국가는?
① 코스타리카 ② 엘살바도르
③ 과테말라 ④ 파나마



3. ‘중국의 경제수도’인 이곳이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봉쇄령이 내려졌다. 테슬라 대형 공장이 가동 중이기도 한 이 도시는?
① 베이징 ② 상하이
③ 광저우 ④ 선전



4. 고위공직자가 직무 수행 도중 사익을 취하지 못하도록 보유 주식을 매각하거나 대리인에게 맡기도록 한 제도는?
① 배임 ② 백지신탁
③ 유상증자 ④ 다운계약서



5. 도로, 항만, 공항, 철도 등과 같은 ‘사회간접자본’의 약어는?
① ETF ② PBR ③ IPO ④ SOC
※-Social Overhead Capital , 社會間接資本사회적 자본, 인프라, 공공자본, 간접자본.


6. 상품 개발 역량을 갖춘 제조업체가 제품 자체 기획, 개발, 생산까지 마쳐 다른 업체에 납품하는 방식을 가리키는 말은?
① OTP ② OLED
③ OEM ④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단순 하도급 형태인 주문자상표부착표시생산(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 방식과는 다르다.



7. 다음 중 물가가 자꾸 떨어지면서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① 하이퍼인플레이션
② D의 공포
③ 펀더멘털
④ 블랙아웃



8. 해외 공장을 국내로 이전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 등을 주는 정책은 무엇을 촉진하기 위한 것인가?
① 업사이클링 ② ESG 경영
③ 오픈 이노베이션 ④ 리쇼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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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커피 수입 연 1조 시대, 한국인의 '커피 칸타타'

우리나라는 김밥 천국? 아닙니다. 커피 천국? 맞습니다. 대한민국은 커피 공화국입니다. 커피 전문점이 없는 길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많습니다.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PC방보다 커피 전문점이 더 많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커피 향에 빠지기 시작하면, ‘커피 공화국’은 지금보다 더 커질지도 모릅니다. 아침을 깨우기 위해 에스프레소 한 잔, 친구와 만나서 카페라테 한 잔, 책을 읽으면서 카푸치노 한 잔, 폭염 속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한국만큼 커피산업과 문화가 빠르게 성장한 나라도 드뭅니다. 2001년 한국의 커피 수입액은 7225만달러였습니다. 지난해 수입액은 9억1648만달러(약 1조488억원)를 기록했습니다. 처음으로 ‘커피 수입 1조원 시대’가 되었습니다. 20년 만에 12.7배로 커진 겁니다.

커피는 에티오피아를 떠나 세계로 번지면서 하나의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사상가들이 카페에서 만나 토론을 펼쳤고, 지식과 정보가 교환됐습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가 ‘커피 칸타타’에서 천 번의 키스보다 달콤하다고 한 커피. 어둠처럼 검고 재즈 선율처럼 따뜻하다고 한 커피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고기완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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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2년 2월 20일)

제목: ''재물 사용을 권을 위한 메뉴얼''
말씀: 누가복음 16:14~18
기도: 강팔용 장로님
찬양인도: 쉐키나, 할렐루야찬양대
사회: 유선비 부목사님(3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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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6:14~18,
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17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
18 무릇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림당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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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아버지와 맨날 있는데 나를 위해 잔치 한 번 하는 일이 없거늘 동생은 허랑방탕하고 창기와 함께 돈을 다 녹여먹였다며 화를 낸다. 심하게 자기 동생을 공격한다. 첫째 아들의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오늘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말씀을 다 하고난 다음에 바로 14절에 보면
 
*누가복음 16:14,
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첫째 아들의 마음속에 바리새 적 속성이 있었고, 그 다음은 청지기 비유 다음에 이 바리새인은 큰 아들 같이 비슷하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바리새 적 속성이 있다는 곳이다. 큰 아들은 바리새 적 속성이 있었고,
 
*누가복음 16:16,
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 집안의 큰 아들로서 주님의 심정을 깨닫지 못하는 둘 다 하나님의 나라에 진짜 탕자들이었다. 이렇게 복음의 신비가 있다. 우리에게 돌아온 탕자 가운데 큰 아들이 되지 않도록, 유대판인 바리새인이 되지 않도록, 재정에 있어서도 돌아온 탕자가 귀환하듯이 새 판짜기로 귀한 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첫 번째로 평생에 기억을 해야 한다.

 
I. 재물에 있어서도 바리새 적 자기 의를 탈피해야 한다.

-내가 무슨 바리새 적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하겠지만 아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한다. 속으로는 좋아하면서 경건한 척 그러는데 이것이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있는 가운데 예수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이것을 영원한 연결고리로 사용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작은 재물에 충성해야 큰 권능을 맏기신다고 했다.
 
*누가복음 16:13,
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이 흥하고 비웃었다. 왜냐하면 대게 바리새인들은 다 부자들이었다. 그런데 그 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서 자기들을 축복해 주셨다고 한다. 부자로 사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킨 증거라고 생각했다. 자기들의 의가 부(富)로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아주아주 틀렸다.
여러분, 자기들이 율법을 잘 지킨 그 공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의 재물과 부가 정말 율법을 잘 지켜서 얻은 것인가? 결론은 아니다. 그러면서 15절을 보면,
 
*누가복음 16:15,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저희들 스스로 돌아온 탕자가 못 됐다고 하고 청지기
 
바리새인들뿐만 아니라 우리 바리새 적 속성을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나간 인생의 여정에 고난과 인생길 가운데 수고를 많이 했는데 그런 고난을 통하여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신앙인으로서는 바보 멍청이들이다. 예수님이 계속해서 그들의 가식을 꾸짖을 때, 뭐라고 말씀하시느냐? 우리 속에 들어 있는 속성에 대해서 주님은 도전하시는데 뭐라고 하시는가? 16절에 보면,
 
*누가복음 16:16,
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14, 15, 16절마다 여러분들에게 해석을 하고 있다. 16절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을 말씀하신다. 구약은 요한의 때까지라고 말씀한다. 우리 교회 중직 자들도 이해가 쉽지가 않다.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이며 세례요한의 때까지 구약이다. 예수님 오시고 난 다음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한다고 한다. 하나님 나라가 천국이라고 했다. 예수님 오셔서 복음의 생명력 있는 복음이 선포되고 난 다음에는 사람마다 특별히 이 사람은 구원 못 받아, 이 사람은 틀렸어, 이 사람은 절대 구원 받을 사람이 아니야, 창기라든지 죄인들,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구원 못 받는다고 바리새인들의 머리에는 꽉 차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 신비한 복음이 전파되고 난 다음에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라고 했다. 이 뜻이 무슨 뜻인가?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들어보았지 않는가? 이 율법과 구역의 시대가 끝나고 난 다음에 예수님 오시고 난 다음에 복음이 선포되고 나서 비록 죄인이다. 비록 세리이다. 이 사람은 안 된다는 그런 사람도, 심지어 십자가의 강도들도 복음을 깨닫고 복음에 부복하며 피의 능력에 이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천국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천국에 침입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프레임에 갇혀서 자기들의 의에 갇혀서 죄인들과 창녀들과 함께 하는 예수님에 대해서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은 절대로 구원 못 받는다고 하고 우리와 비교해서도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새로운 복음을 받아들이지를 못한다. 완고함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실은 그들이 천국 탈락이다. 그들이 천국탈락이다. 사실은 죄인과 바리새인들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들이 바로 그 과부가, 그 어려운 사람들이, 오히려 천국을 침노해서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자가 된다.. 이 차이를 알겠는가? 복음의 신비함이 있다.
 
여러분들에게 말씀하는 가운데 여러분들이 평소에 재물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을 좀 뛰어넘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의 부요함을 체험하게 된다. 사람 앞에 부자 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부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바리새인들은 율법과 선지자, 자기들은 잘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엉터리였다. 다음에 주님은
16:16잘은 너무나 놀라운 열린 장이다. 열렸다. 열렸다. 16장 16자, 열여섯 장, 누가복음 16:16절을 평생 기억하는 축복이 있기를 소망한다. 다시 한 번 율법과 선지자는 이해가 되는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될 때, 천국이 선포되는 곳마다 사람이 침입한다고 했다. 우리는 천국을 침노하는 것이다. 천국의 유업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네버이다. 바리새인들은 자기 프레임에 갇혀서 안 된다. 재정에 관해서도 그렇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재정으로 끝나면 안 된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신비의 원칙인 재정이 세워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주님이 노파심을 갖고 구약의 율법의 말씀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누가복음 16:17,
17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
-한 말씀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라리 천지가 없어짐이 쉽지 율법, 구약의 말씀들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형편없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을 안 받아들이고 복음의 신비를 깨닫지 못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을 그래도 믿었다. 구약을 믿으면서 바리새 적으로 믿으니까 예수님의 신약의 선지자 인 것을 모른다. 엉터리이지만 그래도 믿으니 된다.
Do you understanding What I am saying? 그리고 구약을 예를 들어서 재물에 대해서 말한다.
 
*잠언 3:9-10,
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10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일 점 일획도 이 구약의 무거운 말씀이 그대로 소중한 말씀이, 무게 있는 말씀이, 우주적 무게감을 가지고 들어가는데, 여러분,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한다고 해서 간혹 부자가 안 된 사람은 있다. 바울이나 베드로처럼 대단한 세상의 핍박 받고 오히려 세상의 핍절하게 사는 자도 있다. 그런 분들은 이 세상 물질이 그냥 대단한 것처럼 아니고 그냥 뛰어넘은 것이다. 혹 그런 분이 있더라도 대체적으로 우리는 다 신앙세계의 초중고 수준이기 때문에 이 말씀 그대로 믿고 그래도 순종하면 여러분들의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넘치게 되는 것이다. 눈을 확 열어야 한다.
 
*누가복음 16:18,
18 무릇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림당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이 구절이 뭐냐면, 신명기에 보면 이혼증서라고 있다. 구약의 이혼증서를 써준다는 것은 그 당시 여자의 인권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결혼을 파기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안 된다고 말씀한다. 이혼증서를 써 줄 정도로 결혼은 소중하고 한 남자의 아내로 소중한 가정제도이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혼증서를 남발하고 멋진 여자가 있으면 막 바꾸었다. 엉터리였다. 그러니까 겉은 경건한 척하고 속은 썩어빠진 것이다. 겉은 멋있는 것 같고 속은 썩은 것이다. 사실 재물관이 썩어 문드러진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질타하시니까 눈치 빠른 바리새인들이 눈알만 굴리다가 입을 닫았다. 18절 뒤에 안 나온다. 다음 주에 다시 할 것이다. 천국과 지옥에 관한 말씀을 그 때 하겠다.
 
우리는 이런 것을 놓고 여기 재물 사용권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우리 안에 있는 바리새 적 속성과 자기 의와 자위적 말씀의 해석과 선택적 말씀을 적용하여 처리해야 한다. 그래서 내 안에 있는 바리새 적인 요소가 정리되어야 재물 사용권의 문제가 해결될 줄로 믿는다.
 
*누가복음 12:1,
1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이 누룩 외식을 주의하라.
-전염성을 주의하라. 제자들에 대해서 바리새 적의 요소에 대한 경고 표지판을 세워주신 것이다. 재정문제에 관에서 내 안에 있는 바리새 적 견고한 프레임 때문에 영적인 큰 은혜의 생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저 작은 저수지에서 자신이 평생 붙잡고 있는 작은 누룩 나룻배를 지탱하느라고 큰 바다에서 항해하는 은혜의 함선에 승선하지 못한다. 은혜의 폭포를 경험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 속에 있는 바리새 적인 속성을 척결하기 위하여 재물의 사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구체적으로 내용을 설명하겠다.
 
II. 재물을 믿음의 모험에 투자하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재물을 미리 저축하라.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날이 제한되어 있다. 이 땅에서는 돈도 제한되어 있다. 불의한 청지기도 그렇다. 이런 제한적 시간 속에서 제한되어 있지 않다면 좋겠지만 제한된 시간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재정 사용을 할 것인가? 믿음의 모험을 가지고 투자를 해야 한다. 영육이 목마른 자를 위하여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들을 위하여 사용하고 정말 소외되고 가난하고 약자인 자들을 위하여 사용하고 무엇보다도 선교와 복음을 위하여 사용해야 할 줄로 믿는다. 이 재물은 제한된 시간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의 모험을 위해 투자를 해야 한다. 하늘에 쌓아두라.
 
*마태복음 6:20,
20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인플레이션도 없고, 주식 폭락도 없다. 경제 공항도 없고, 거기는 좀도둑도 없다. 그러니까 생명의 복음을 믿는 우리는 복음의 신비를 깨닫는 우리는 이 땅의 돈의 궤도를 따라 도는 것이 아니라 돈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복음의 궤도, 생명의 궤도를 따라 돌게 해야 하는 것이다. 믿음의 모험을 통해서 소중한 물질을 하늘에 축적하는 믿음의 궤도에 진입 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돈이라는 것을 이땅에 궤도를 위해 돌지 아니하고 복음의 궤도, 생명의 궤도, 믿음의 모험의 궤도로 돌게 되면 희한한 일들이 벌어진다. 하나님의 기적 같은 것이 나타난다. 지난 주 4부 예배에서 말씀드렸는데 큰 부자들이 있다. 대대로 이어오는 삼성이나 현대나 이런 부자들 말고 당대에 우리의 물질을 복음의 궤도 생명의 궤도 믿음의 궤도로 돌리면 당대에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큰 부자들이 나오게 되어있다. 아주 신비한 것이다. 우리가 주님 앞에 물질을 드릴 때에 두 가지 표현이 있다.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한 물질의 표현이고 그런 마음으로 주님 앞에 감사함을 돌린다. 또 하나는 미래에 주실 은혜를 기대하면서 모험을 투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과거에 대한 감사와 미래에 대한 기대로 드리는 것이다. 기복 신앙과 다르다. 기복 신앙은 그냥 아무것도 없이 하나님을 요술방망이처럼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믿음으로 눈을 열어서 내 속에 있는 바리새 적 속성을 처분하여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인도하실 것을 기대감을 가지고 주님 앞에 물질을 드릴 때 그것이 저축이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다. 믿음으로 저축하는 것이야말로 성경적인 저축관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성경적 저축관이다. 오늘 이 예배에 참여한 모든 분들은 성경적인 저축관의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미래를 위해 저축해야 한다. 우리의 자녀가 반드시 망하게 되는 원인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큰 재산을 물려주면 그 자녀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있다. “목사님, 저는 망하게 되더라도 부모로부터 큰 재산을 받기를 원합니다.” 해봐라. 바리새 적 속성을 해결하는 것은 성경적 저축 관을 가지는 것이다.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저축을 하는데 우리는 벌거벗은 사람들이고 우리는 죽을 때 무얼 갖고 갈 수 없다. 그런데 우리가 믿음으로 미래의 기대감을 갖고 가면 우리는 하늘에 쌓기에 우리는 주님 앞에 벌거벗고 가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의 이방종교는 엉터리로 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투자하고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면,
 
*마태복음 6:20,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믿음의 황금은 나를 위한 것이다. 우리가 믿음의 투자를 왜 하는가? 오직 나를 위하여 자신을 위해서 우리가 눈이 열려야 한다. 재정을 가지고 정말로 영적으로 눈을 뜨면 나를 위함을 깨달아야 한다. 액수가 아닌 마음의 삶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 나를 위하여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자. 보물이 있는 곳에 내 마음도 있다고 했다. 여러분, 금고에 보물을 쌓아두면 그 금고에 마음이 자꾸 가는 것이다. 우리가 하늘에 보물을 쌓으면 본향을 향한 멋진 삶을 살 수 있다.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고 천국을 사모하고 천국에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는 것이다.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는 일이 엄청난 보물을 쌓는 일이다. 하나님 나라야말로 옥토 중에 옥토이다. 하늘에 쌓으면 30배, 60배, 100배, 천 배를 걷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에 이 땅에서 거룩한 부레랑 현상이 일어난다. 물질이 다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아주 특별한 사명 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돌아온다.
 
*전도서 11:1,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우리가 물질을 후하게 쓰면 여러 날 후에 다시 찾게 되는 것이다.
-잠언에 보면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함이라고 말씀한다. 풍족하게 되고 윤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6:38,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준다고 하신다. 윤택하고 기적의 대답을 하신다. 우리 가운데 큰 부자도 허락하실 줄 믿는다. 정리를 하면, 결국은 우리가 신앙의 원칙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다.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바리새인의 속에 있는 껍데기만 그러지 실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돈만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을 주님을 질타하시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섬기라고 하신다. 땀흘린 결정체를 주님 앞에 드리는 것이 주님 사랑의 테스트이다. 네 마음이 어디 가 있는지를 보신다. 이 테스트에 합격하여야 한다. 우리 속에 있는 바리새 적인 속성을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테스트를 위해서 전부 뺏어 가시기도 한다. 주여 이런 말을 안 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안목을 주시길 기도한다. 우리 앞에 엘림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다. 엘림의 축복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넜다. 대단한 축복이다. 홍해를 건넜는데 사흘 길을 갔는데 마라의 쓴물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험에 들었다. 난리가 났다. 원망과 불평이 많다. 하나님은 마라의 쓴 물에 엘림이라는 곳에 하나님이 예비해 두셨다. 엘림을 예비해서 열 두 샘을 준비해 놓으셨다. 엘림의 축복을 다 준비하고 있는데 항상 마음속에 바리새 적 이여서 엘림의 축복을 체험하지 못한다. 늘 얕은 물가에서 방방거리고 있는 것이다. 엘림의 축복의 영상이 있어서 그림을 보여 주겠다. 그 그림은 독특한 성화이다. 보면은 이것이 엘림의 축복이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깨닫도록 이 말씀의 문을 통과하여야 한다. 마라의 ‘쓴물에 머물지 말고 성령님이 도우심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소원하여서 바리새 적 마음을 버리고 살기를 소망한다. 사용권을 위한 매뉴얼.
 
▷텔레이오스 재정 제자도(Teleidos Financial Discipleship)
1. 소유권자는 주님이시고, 나는 사용자이다.
2. 물질을, 영원을 준비하는 연결 고리로 사용한다.
3. 작은 것에 충성할 때, 큰 것 즉 권능의 문을 열어 주신다.
4. 내 안에 있는 물질에 대한 바리새 적 요소(자기 의, 외식)을 처리한다.
5. 재정 사용을 통하여, 하나님을 깊이 만나야 한다.
6. 믿음의 모험을 위해 투자한다.
7. 하나님 나라를 위한 물질의 헌신은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마 6:20).
 
▷-사용권을 위한 창조 매뉴얼-
*엘림의 축복을 누리기 위한 일곱 가지 기도
1. 재정의 소유권이 주님께 있음을 인정하며, 아침마다 “저는 주님의 청지기입니다”라고 고백하겠습니다.
2. 영혼 구원을 위해 재정을 사용하기로 결단하고 영 가족과 나누겠습니다.
3. 탁월한 업무 능력과 겸손을 겸비한 숙련된 일꾼이 되기 위해 영성과 은사를 계발하겠습니다.
4.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물질을 드리겠습니다.
5. 이웃 사랑과 하나님 나라가 선포되어야 할 영역을 위해 기도와 함께 물질로 후원하겠습니다.
6. 자녀들에게 단순히 재테크가 아니라, 재정의 높은 영적 가치, ‘성경적인 저축관’을 가르겠습니다.
7. 주님 앞에 올려드리는 헌금을 정성스럽게 미리 준비하겠습니다.
- 2022년 2월 20일 O O O-
 
♣요약
내 속의 바리새 적 위선과 완고함을 회개하고 내게 맡겨주신 재정 사용권을 주님 앞에 드리며 하늘에 쌓아서 은혜와 축복으로 부메랑을 경험하는 자 되고 은혜와 생명의 궤도를 따라 순종하여 우리가 엘림의 축복을 누리는 삶이 되어야 한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다. 아무리 신앙이 좋다고 해도 결국 하나님은 그들의 정체를 아신다. 그들은 하나님께 인정받기보다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하였고, 무엇보다도 재물 욕이 강했다. 또한 이들은 하나님 나라와 율법에 대하여 그릇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역과 충돌하는 경우가 많았다. 율법과 선지자 및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한다. 즉, 율법과 선지자는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리킨다. 따라서 전자는 수단이고 후자는 궁극적 목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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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2년 1월 12일)

제목: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말씀: 요한복음 20:24-29
찬양인도: 쉐키나 찬양단(이다니엘 부목사님)
 
설교자: 백요셉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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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24-29,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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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어떻게 사랑하는 주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시게 할까 많은 고민했을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 답을 이렇게 이야기 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그를 향한 참된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을 보면 무언가 하나 믿으려면 참 복잡한 세상을 사는 것 같다. 작은 것 하나를 믿기 위해서는 논리적 설명을 듣고 이유가 타당하고 합리적 판단이 서야 비로소 어느 정도 믿기를 시작한다. 보이는 확실한 증거와 그것이 멊다면 정황적 증거라도 다수 있어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공간을 초월하여 직접 경험이 가능한 가상현실은 점점 발달하고 메타버스를 통해 아바타를 움직여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보여주는 시대가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이다.
 
요즘 젊은 세대를 MZ세대라고 한다. 이 젊은 세대들이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그것 중 하나는 어떠한 현상에 대해 이유와 증거를 파헤쳐 확실성 신빙성이 있는 것만 믿고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면 이들은 어떤 물건을 사고자 하면 일단 온라인으로 정보를 모은다. 그리고 모아진 DB를 기반으로 가장 저렴하게 나온 사이트 리스트를 만든다. 그리고 나서 그 리스트를 하나씩 들어가서 리뷰를 보는데 아무 리뷰나 보지 않고 실제 사진이 있는 리뷰들을 본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반드시 부정적인 리뷰가 있는 것들을 참고한다고 한다. 만약에 이러한 부정적인 리뷰가 있는 사이트라면 다른 사이트를 본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 사이트가 이런 부정적인 리뷰를 지웠다라고 생각해서 그런 의심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들을 여러 번 거친 후에 가장 저렴하고 본인이 생각할 때, 정말 믿을 수 있는 사이트를 통해서 물건을 구매한다고 한다. 이런 과정이 과장된 것이 아니라 그냥 최소한으로 줄인 일반적인 과정이다. 그런데 이러한 특징들을 단순히 세상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일어난다. 구체적인 성경적 진리나 교회를 믿기 위해서는 정말 복잡한 자기만의 잣대를 들이대어 이해와 납득의 과정을 거친다.. 본인이 생각할 때 믿을 수 있는 것을 골라 구입한다고 한다. 구체적인 성경을 믿기 위해서 사실 세계관이라는 것은 내가 아무리 성경을 믿고 있다고 해도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내가 경험한 것들 보고 들었던 세상의 법칙들, 기준과 사회의 정의 법 가정의 역사 사회적 맥락, 이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실제로 성경을 믿어도 매사에 순전한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아무리 성경을 들고 교회를 드나들어도 그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에 선택을 보면 그 사람의 진정한 핵심 가치관을 볼 수 있다. 그 성격을 보면 그 사람의 중심에 하나님이 있는가? 아니면 아직 세상의 여러 가치관으로 혼란스러워하고 있는가? 를 알 수 있다. 때로는 믿음 생활 가운데 반복적으로 쓰러지고 또 쓰러지는 상황 속에서 언제쯤 온전한 승리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한다.
 
오늘 본문에서 읽은 도마라는 제자는 의심이 많아서 예수님의 못 자국에 자신의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못 믿겠다고 하는 제자로 유명하다. 마치 이 세대에 의심이 많아 자신이 본 것만 믿으려고 하는 이 세상 사람들과 닮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상 이 도마에게 인생의 마지막은 믿음의 사람으로 너무나 열정적으로 주님을 위해 살다가 순교한 인생을 살았던 예수님의 제자였다. 이러한 의심 많아 보이는 성령의 사람이 어떻게 믿음의 본을 보인 주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는지를 우리는 도마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살펴보기를 원한다.
 
학자들이 도마를 연구할 때, 도마에게 붙여진 의심 많은 사도라는 별명은 너무 단편적이고 소극적인 평가를 한다. 사실 정말 의심 많았던 제자라는 것보다 질문이 많았던 제자라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서는 문제제기 능력을 가진 사람을 인재라고 한다. 다른 사람을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를 인식하여 질문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민족의 창업정신인 후추파 정신의 첫 번째 덕목이고 제자훈련, 사역훈련, 순장 반에서도 귀납적 성경 연구법의 첫 번째가 그 구절에 끊임없는 질문을 하고 있듯이 말이다. 도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은 4복음서 중 요한복음이 유일하다. 도마의 성향을 잘 나타내고 있다.
 
요한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디론가 제자들 곁을 떠나신다는 말씀을 한다. 베드로가 그곳이 어디이시냐고 묻지만 36절에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3:36,
36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는 다소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신다. 사실 제자들의 생각으로는 예수님이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디에 거쳐를 준비하신다는 것인지, 왜 당장 못 따라간다는 것인지, 왜 우리는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그직 목적지를 알게 된다는 것인지, 아마 정확성을 목숨을 거는 현대인들이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지금 들었으면 속이 터져서 질문을 했을 것 같다. 그런데 도마는 저희와 같았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을 한다.
 
*요한복음 14:4-5,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이 말은 한 마디로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 지를 알아야 우리가 따라가지 않겠습니까?라는 말이다. 이것은 분명하게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저는 도마의 질문을 묵상하며 오늘날 현대 신앙인들의 대표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을 했다. 정답을 알고 싶은 마음, 확실히 하고 싶은 마음, 보이는 길이어야 발걸음을 떼고 검증된 길이어야 가고자 하는 태도이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가 오늘의 본문인 요한복음 20:24-25절에서 나오는데,,,
 
*요한복음 20:24-25,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부활이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을 때, 도마는 그 현장에 있지 않았다. 많은 제자들을 통해서 소식을 들었을 뿐이기에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니고 들은 것만으로는 이 사실을 믿지 못 하겠다 라고 이야기 한 것이다. 도마가 결국에는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았는지 성경에는 기록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29절에 보면,
 
*요한복음 20:29,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 하시니라.
-이 말씀이 지금까지 믿음에 대해 우리들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남기게 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도마의 반응인데, 도마는 28에 이렇게 고백한다.
 
 
*요한복음 20:28,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그는 의심 많고 질문 많은 성정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마침내 진정한 해답을 얻게 된 것이다. 소원하고 바라기는 도마를 통해 단순히 의심하며 궁금해하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머뭇거리는 것이 아니라 그이 고백처럼 하나님 아버지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을 고백할 수 있는 저와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소원한다. 이 고백이 있기까지 믿음의 원리를 3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려고 한다.
 
I. 도마의 믿음의 고백의 비밀은 진정한 진리는 오직 예수님 안에만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쉬운 것 같지만 참 어렵다. 그 이유는 출애굽기를 보면 잘 설명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 노예생활을 마치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앞세워 그들을 출애굽 시키신다. 출애굽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잘 모르는 그분의 백성들을 위해 엄청난 기적과 권능을 일으키시고 홍해를 가르게 하시며 마른 땅인 홍해 바다를 건너게 하신다. 또 매일 같이 만나를 먹이시고 저녁에는 메추라기 고기를 먹이시며 물이 없으면 반석(磐石)에서 물이 나게 하셨다. 그런데 출애굽기 32장에 보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를 불러 장시간 모세와 대면하고 십계명과 율법들을 주시는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을 중심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경배했다. 백성들이 그들의 리더 모세가 사라졌으니 하나님의 현존을 만들어내라고 들고 일어난 것이다. 출애굽기 32장 4절에 보면,
 
*출애굽기 32:4,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정말 놀랍게도 그들이 그토록 찾은 것은 다른 우상 신이 아니라, 그들을 여기까지 이끄신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모세가 사라지고 하나님이 임재를 느끼지 못하자 하나님을 그토록 갈망하여 우상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우상 앞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그 곁에서 먹고 마시며 뛰 놀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시다시피 이에 크게 진노하셨고 부패한 백성들이라고 말씀하시며 떠나시려고 하셨다. 이 이야기를 보면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지만 그 어떤 방법에서도 온전히 하나님을 찾을 수 없는 죄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하나님을 갈망하고 그의 임재를 그토록 원하지만 본성인 죄인인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을 제대로 찾을 수 없다는 말이다. 수많은 신화들과 우상 종교들 그리고 신을 찾고자 했던 철학의 역사를 보면 인간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열망하고 갈망하고 경배하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이 한 번도 꺼진 적이 없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 인간이 찾은 하나님은 모두 왜곡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찾고 경배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밖에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하나님을 바로 찾고 만나고 따라갈 수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며 보혜사 성령님을 주셨는데 그분이 하시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알게 하고 그를 아는 지식과 지혜로 인도하신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우리는 그 어떠한 생명의 진리와 마주칠 수 없기 때문이다. 아까 말했듯이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지금은 너희가 가는 길을 알 수 없다는 말씀에 도마가 물어본다.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정확히 알려달라고 한다. 그리고 도마의 말씀을 들은 예수님은 성경에서 말씀한 가장 위대한 진리를 공개하신다.
 
*요한복음 14:6,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도마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저울에 달아보았지만 예수님께서는 도마에게 또 도마같이 살아가는 이 시대의 우리들에게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며 구원의 길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 우리는 수많은 세상의 학문들과 가르침 속에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지식이며 생명의 지식인 것을 다시 한 번 마음에 확증하는 우리가 되길 소원한다.
 
II. 도마의 믿음의 고백의 비밀은 고난의 삶 가운데 주님은 날마다 허락하시는 새로운 권능을 보아야 한다.

-요한복음 11장에 도마의 다른 행적을 볼 수 있다.

*요한복음 11:16,
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요한복음 11장은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어느 날 나사로의 누이들이 찾아와 나사로의 병이 위급해졌다는 상황을 이야기 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사로에게 바로 달려와 도와준 것이 아니라 이 병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수수께끼와 같은 말씀을 하시고 고치시는 것을 미루신다. 그런데 한참 후에 길을 가시던 예수님이 갑자기 대답하시며 나사로가 잠들었다라고 말씀하신다. 이 때 제자들이 이해를 못하자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라고 사실을 알리신다. 이때 뜬금없이 도마가 말한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한다.
 
도마의 표현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가? 학자들은 두 가지로 이 해석을 한다.
첫째로는 당시 유대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는 위험한 상황 속에 있었지만, 나사로가 죽었다, 주님이 사랑하신 제자, 우리들의 귀한 친구가 죽었다 라면 그의 죽음을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함께 가서 죽자. 라는 의미였다는 것이다. 또 다른
두 번째로의 해석은 예수님께서 서두르지 않으시고 나사로를 방치하시는 것에 대해 실망감, 빈정 섞인 대답이라는 주장이 있다. 우리는 도마의 이 표현이 청년 같은 용기의 표현이었지 낙심 가운데 자조의 표현이었는지 우리는 확실하게 알지는 못한다. 그런데 전자의 긍정적 용기의 표현이든, 후자의 실망스런 표현이든 도마는 상황을 바라보며 확실하게 하고 싶었을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고 들리는 상황을 통해 극적인 감정적 기복으로 결단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나사로의 죽음의 이유가 무엇인가? 구약에서도 하나님께서도 그를 따르는 백성들에게 다양한 고난과 어려움의 자리로 인도해 주었던 이유는 단 하나이다. 백성들이 아직 다 모르고 있는 주님께서 많이 행하실 수 있는 권능을 드러내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앞에는 홍해, 뒤에는 적군으로 사방을 막으신 후 홍해를 가르시는 기적을 행하셨다. 또한 친히 구름 기둥을 통해 그의 백성들을 물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셔서 고난을 겪게 하신 후 반석에서 물을 내는 권능을 보이셨다.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강한 상대와의 전쟁으로 그의 백성으로 몰아넣으신 후에는 오직 주님께 순종함으로 승리하게 하셔서 하나님 한 분만이 온 세상의 주권자이심을 드러내셨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당장 고치실 수 있으셨지만 조금의 기다림을 허락하셔서 어쩌면 그 시간들 속에서 감당할 수 없는 슬픔, 좌절, 낙심의 시간을 주신 이유는 그의 놀라운 권능을 드러내시기 위함이셨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을 잘 믿고 잘 따라가고 있으니 늘 좋은 말로 그렇게 말씀하시고 교훈하시면 좋은데 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고난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알려주시는가? 우리는 그분의 섭리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성경 스토리를 본 그 이유는 아직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의 창조주이자 주권자이신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마냥 좋으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떠한 능력의 주님이신지를 알 기회가 없고 오히려 죄 가운데 유혹받고 영적으로 어두워진 죄 성을 지닌 우리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어려움, 고난, 환난, 장애물, 아픔, 슬픔, 결핍 가운데 그것을 해결하시고 그 일에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새벽에 내린 만나를 먹고도 그날 오후 반석에서 물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은 몰라서 원망했고 열 가지 재앙을 통해 기적을 보고도 홍해를 가르시는 주님을 몰라 독설을 내 뱉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수님과 함께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경험하며 오병이어와 같은 온갖 기적을 다 보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실 것이라는 것을 꿈도 꾸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마치 치유하시는 주님을 믿고 병든 가족을 위해 전심으로 간절히 기도하는데 정말 주님께서 나를 먹이시며 돈과 물질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여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의심하고 불안 속에 일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혹은 일터에서 왕 되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신뢰하지만 집에 와서 배우자의 갈등, 고부간의 갈등은 주님도 해결하지 못하신다 라고 생각하고 기도도 하지 않고 포기해 버리고 낙망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아침에 주신 은혜에 감사하다가도 오후에 다른 고난을 낙심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도마는 본인이 경험한 예수님에 대해 단편적으로만 알았다. 그래서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에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으심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이 저녁에 주님이 사랑하시는 우리를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능력의 제한이 없으신 그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시길 소망한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권능에 풍성함고 그 광대함 범위와 세심함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으심을 믿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결핍과 고난과 어려움과 방해물들을 주님께서 자신의 권능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심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소망 가운데 감사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래서 성도님께 도전하기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열심히 믿는데도 어떤 어려움을 만난다면 새로운 권능으로 임하실 주님을 기대하고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III. 도마의 위대한 믿음의 고백의 비밀은 예수님의 몸 되신 교회를 사랑하고 모이기에 힘써야 한다.
 
*요한복음 20:24,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한 이유는 요한복음 20:24절에 나와 있다. 도마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첫 번째 찾아오신 현장에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아니했다. 교회는 예수님이 피 값으로 주신 자녀들의 공동체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머리되시고 우리는 그의 몸이며 예수님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 교회인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교회 전반적인 모습을 생각해보면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교회의 모임을 꺼려한다. 그런데 교회는 믿는 자들의 모임의 본질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도마는 그 모임에 없었기 때문에 부활의 첫 번째 소식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한참 의심하고 회의 하다가 나중에 그것을 믿게 되었던 것을 보았을 때에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모이는 공 예배와 성도의 교제가 중요하다. 제 말이 아닌 예수님께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과 함께 한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공 예배에 감동이 있는 이유는 주님의 임재 때문이다.
 
도마가 두 번째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게 된 이유를 생각해보면 물론 찾아오신 예수님이 직접적인 이유이겠지만 결국 그 시간에, 그 현장에, 제자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체험한 것이다. 오늘 본문 26절에 보면, 이렇게 고백한다.
 
*요한복음 20:26,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드리는 예배마다 어떤 목사님, 어떤 장로님, 어떤 성도님은 없을지라도 그 자리에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참석하시고 예배의 주체가 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된다. 예배의 자리에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 예배는 성도의 의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배는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는 성도의 가장 큰 특권이다. 중요한 것은 논리적인 설득으로 도마의 의심의 문제가 해결 된 것은 아니다. 사람이 지적으로 아무리 잘 설명을 해준다 해도 인간의 회의는 풀리지 않는다. 세상 논리법칙에도 아무리 타당한 이유로 설득력 있게 참을 주장한다하여도 모든 사람이 설득되지 않는다는 문장이 있다. 도마가 부활을 믿게 된 것은 그의 논리나 지성으로 이해가 갔기 때문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현존하시는 자리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하자 의심이 눈녹듯 사라진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야 하며 예배의 자리에 있어야 하나님의 살아계신 임재와 믿음을 체험할 수 있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교회의 모임과 예배에 대해 사탄의 공격이 심하기도 한다. 심한 낙심, 우울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도마 역시 주님이 죽으셨다 라는 이야기를 통해 말로 표현 못할 낙심에 젖어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에 에베소에서 교회에 대해 이처럼 이야기 한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에게 충만함이니라.” 이 말씀은 쉽게 이야기해서 교회는 상황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이 그분의 살아계심이 말씀으로 찬양으로 기도로 교제 가운데 충만하게 선포되고 고백되는 곳이라는 말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되는 예배 자리에 나와야 하고 교제해야 한다. 우리는 성령충만 하다고 느낄 때는 너무나 뜨겁고 행복해서 당장이라도 부르신 선교지로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느 날은 내 자신이 한심하고 절망스럽고 그냥 방구석에서 곤고한 마음이 들기도 하다. 그런데 교회를 가까이하고 예배와 다락방, 큐티, 성도님들과 영적인 교제를 쉬지 않을 때, 내 안에 성령님의 권능과 성취하시는 힘이 영적근력이 더해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축구를 볼 점유율이라는 말을 쓴다. 이 말은 경기 안에서 공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를 통해 이길 수 있는 확률을 높인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영적인 싸운에서 성령님께서 점점 내 안에 점유율을 높이는 방법은 그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는 것, 교회를 사모하여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삶의 어떠한 가운데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존전에 나와 기도하고 찬양하고 부르짖을 때, 우리의 삶에 막힌 담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우리가 고백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통해 낙심은 극복될 뿐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놀라운 비전과 은혜를 체험하고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기를 역사하실 것이다. 도마가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을 고백한 이후의 삶은 어떠했을까? 요한복음 21장 2절을 보니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요한복음 21:2,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도마는 그 이후에 제자들과 항상 같이 있었다. 사도행전 1장에 나타난 제자들의 명단 속에서도 도마가 들어있었고 마가 다락방에서도 성령강림 속에 그 대열 속에서도 도마가 있었다. 도마는 부활이후에 성도의 교제와 모임 가운데 떠나지 않았고 교회의 자리에 굳게 서 있었던 것이다. 교회의 역사에 의하면 도마는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의 선교를 떠난다. 지금도 인도의 크리스천을 만나면 그들에게 복음의 빚진 두 사람의 이름을 들을 수 있는데 한 사람은 도마이고 또 한 현대 성경의 아버지 윌리암 케리이다. 도마는 인도에 도착해서 복음을 전하고 지금의 쳇낭 근처에서 전도하다가 그곳 원주민이 던진 창에 찔려 순교를 당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전례에 의하면 도마는 찔림을 당하면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주를 예배하나이다.’라고 계속해서 고백했다라고 한다. 지금도 인도 쳇낭에 가면 도마의 무덤과 그의 기념하는 도마 기념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 정면에 도마의 고백인 ‘주를 예배하나이다.’ 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고 한다. 도마는 성도의 교제 자리에, 예배의 자리에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고 평생 그 주님을 예배하며 예수를 증거 하다가 영광스럽게 주님 곁으로 가게 된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길 가운데 보이는 것만 전부라는 실의 가운데서 성도의 믿음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아마 도마도 우리와 같은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부활하신 주님을 의심하던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분명히 보이지 않고 믿는 믿음이 더 복되다고 말씀하신다.
 
*히브리서 11:1,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고린도후서 5:7,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진실로 믿음은 보이지는 않지만 약속의 말씀에 근거하여 신뢰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신앙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 믿음의 본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 외에는 없다. 보이는 것만 믿은 이 시대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예수님의 임재 앞에 현존하시는 그분의 보좌 앞에 나오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이다. 2022년 한 해 동안 예배하고 성도들의 모임과 교제를 소중히 여기며 복된 신앙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이 계신 곳이 인생의 모든 답이 있으며 그의 본능은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하게 하시며 광대하게 하시며 기도하고 예배하는 우리들에게 반드시 역사하실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나에게 어려움이 찾아온다면 어제는 몰랐던 새로운 주님의 본능을 기대하며 예배하는 성도가 되길 소망한다. 그래서 우리도 도마처럼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는 믿음의 고백을 올려 드리는 새해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하고 소망한다.
 
♣요약
보이는 것, 들리는 것으로 살아가야만 된다는 세상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에게 정말로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치유와 회복이 있음을 믿고 믿음으로 고백하고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하는 도마와 같이 평생을 주님의 이름으로 살아내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며 인생의 고난과 결핍, 수많은 장애물들을 믿음의 눈으로 깨닫게 하심을 알고 몸 된 교회에 나아와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며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면 모든 의심과 갈등과 고난이 사라지게 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경험해야 한다. 최고의 때에 임하시는 주님의 권능을 새롭게 체험되어서 주위에 믿음 없는 자들 앞에서 더욱 담대하여 본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배반한 제자들을 방문하여 허탈감과 고통을 느끼는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다. 즉 예수님은 제자들의 배신을 비난하거나 책망치 않으시고 새로운 약속과 사명을 맡기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성령 받을 것을 명하시고 속죄의 사명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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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1년 9월 8일)

제목: ''진정한 회복과 부흥을 소망하는 자에게''
말씀: (아모스 9:11~15)
찬양인도: 이원준 부목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조철민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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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9:11~15)
11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12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그 때에 파종하는 자가 곡식 추수하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14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15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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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회복과 부흥을 기대하고 있는가? 주로 회복이란 단어는 아픈 환자에게 수술을 끝마치고난 뒤 정말 회복되기를 소망한다고 할 때 많이 사용하는 단어이다. 병들어 있는 자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회복을 기원하고 소망할 때, 자주 쓰는 단어이다. 그 이야기는 원래 상태로 돌이키거나 원래의 상태를 되찾는다는 의미로 결핍되어 있는 대상에게 결핍이 해결되고 충족, 충만하게 하기 위해서 권면하거나 권고하거나 소원할 때 쓰는 단어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 가운데는 이런 결핍의 문제가 없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공간을 창조하셨다. 하늘과 땅 그 공간 안에 사람을 두시고 그 사람 가운데 충만히 거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들로 꽉꽉 채워 넣으셨다. 그런데 문제는 그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들로 꽉 채워진 공간 안에 사탄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죄가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어떻게 되겠는가? 온전한 공간에 틈이 생기게 되었다. 틈을 메우려고 하니 계속해서 죄가 하나, 둘, 셋, 나도 모르게 조금 누수가 생긴 줄 알았는데, 이제는 계속 누수가 생기게 된 것이다. 사실 지금 이 시대가 그렇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라. 만약 이 공간 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그 모습 그대로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면 우리는 회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왜냐면 그 자체로 주님 보시기에 너무나 좋은 공간 안에서 우리는 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대에 분명한 누수가 생김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회복을 소망하게 되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회복되면 부흥은 같이 따라오게 되어있다. 하나님께서 이 공간 안에 참된 회복을 원하시기 때문에 그 회복된 사람들이 함께 뜻을 모아 의를 구하고 간구하고 나아가면 그 공간 안에는 정말 폭발적인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그런 놀라운 역사의 부흥이 일어나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을 계속해서 소망하면서 나아가야 하는데 우리가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가 변화된 세상 속에서 너무 많이 적응해버렸다는 것이다. 회복은 충만한 상태로 복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 어느 순간부터 그냥 과거로 돌아가야만 하면 좋겠다는 단순한 회귀를 꿈꾸고 있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순간부터 기도를 바꾸어야 한다.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세상이 너무나 속히 진전되어 가기 때문에 우리가 소망해야 할 것은 회귀(回歸)가 아니고 회복(回復)되는 것이다. 그 회복은 본질로의 회복이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사람을 만드신 그 목적대로 충만하게 이 공간을 채워 넣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그 본질로의 회복이 우리가 소망하면서 꿈꾸면서 우리는 기도해야 될 줄 믿는다. 다시 한 번 질문한다.

 
여러분 회복을 소망하는가? 아멘인가?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을 보면 아모스가 사는 시대에도 회복과 부흥이 필요했다. 여러분 아모스가 누구이고 그가 선포한 말씀이 무엇인가? 살펴보자.
 
I. 우리가 소망해야 하는 것은 회귀가 아니라 회복이다.
 
 
아모스 1:1~2,
1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2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소리를 내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마르고 갈멜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여러분 시대적 상황을 잘 보아야 한다. 지진이 나고 하면 원인은 지구의 표면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것은 단층면에서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인데 지진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저도 떨림 현상만 보았고 그렇게 경험을 하지 못했다. 지진은 우리가 영상을 통해서 보면 사람들이 온전한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다가 흔들리니까 불안이 몰려오는 것이다. 불안이 몰려옴은 두려움이 몰려온다. 두려움이 몰려오면 어떻게 되는가? 나 스스로 이것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안절부절 하며, 모든 상황 가운데서 바로 떨게 되는 그런 현상이다. 그 지진년 이전에 아모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아모스는 전문적인 선지자가 아니다. 아모스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농부출신이다. 그 이름 가운데는 ‘짐을 짊어지다’ ‘운반하다’라는 뜻이 있다. 재미있는 표현은 본문에는 북이스라엘을 예언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남 유다에 있는 드고아 라고 하는 시골 마을에 있는 농부를 굳이 불러다가 뷱 이스라엘에 예언토록 하시는 것에 생각을 우리가 해보아야 한다. 이것을 이해를 하려면,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는가를 보아야 한다.
 
2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소리를 내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마르고 갈멜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이 표현을 보면, 목자 출신이고 농부출신이다. 목자로 하여금 북이스라엘의 말라있는 곳에 갈멜산 꼭대기 가운데 다시금 마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 드고아라고 하는 남 유다에 있는 자를 굳이 운반해서 그 짐을 지게 하려고 북이스라엘 땅으로 불러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서 이 사람을 불렀다. 북이스라엘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굳이 이 사람을 불렀을까?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시대를 떠올리면 풍요와 번영이다. 그만큼 물질로 충만했던 시기이다. 이 표현으로 잘 알 수 있는 본문이 있다.
 
*아모스 6:3~6,
3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포악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4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5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6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여기 잘 보면 재난이 닥쳐올 날이 피하려고 하면서도 스스로 재난을 피하지 않고 폭력에 날을 불러들이고 있다는 표현이다. 상아상 비파, 침상 이런 것이 풍요와 번영을 이야기 하는데, 이런데서 마음껏 누리면서 자신이 다윗이 된 것처럼 노래를 부르지만 재난을 피하려고 하면서도 폭력의 날을, 심판의 날을, 그들 스스로 불러들이고 있다는 것이며,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또 다른 표현이 있다. 풍요와 번영 속에서 살다보니 환난과 금심은 나의 일이 아닌 것이다. 나의 일이 아닌 것이다. 모든 것이 풍족했다. 모든 것이 넘쳐났다. 과연 이러한 그들이 회복을 원했겠는가? 태초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공간 안에 하나님의 뜻으로 채워 넣기를 원했을까? 그들의 풍족함은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을 메마르게 했다. 그들의 넉넉함이 하나님의 사랑의 갈급함을 사라지게 했다. 그들 안에는 하나님이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그 자리에는 무엇으로 가득 찼냐면 불의와 거짓으로 가득 차 있었다. 회복은 관심조차 없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으로 충만함을 얻는 부흥에 대해서는 소망이 없었다. 그랬기에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정리하시는데, 그 유명한 아모스서 5장에 있다.
 
*아모스 5::24,
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앞서 북이스라엘이 어떻다고 했는가? 목장이 말랐다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모스를 통해서 지금 무엇을 하시겠다고 하시는가? 물이 흐르게 하겠다는 것이다. 물이 흐르게끔 하는 근원이 무엇이라고 하냐면,
첫 번째 정의라고 한다. 미슈파트, JUSTIS, JUSTMENT, 심판하겠다는 것이다. -심판이 무서운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게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심판의 날을 기다려야 한다. 왜냐하면 구분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두렵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 날에 대해서 기대감을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과 구분하면서 야곱의 집, 자손, 이스라엘, 택함 받은 백성,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 받은 우리에게 구분되게끔 하시면서 다시금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하시기에 이 정의, 심판으로 물을 흐르게끔 하는 날을 우리는 사실은 기대해야 한다. 그리고 공의로 무얼 하시겠다고 하시냐면,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하겠다고 하신다. 말라 있는 곳에도 공의로 마르지 않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두 번째로 공의라고 한다. 제데카, lightjutis,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바른 것, 결국은 이곳에, 심판은 물처럼 흐리게 하고 옳은 것은 마르지 않는 것처럼 제대로 된 목장을 다시금 조성하시겠다고 시골출신 남 유다의 드고아에 있는 아모스를 통해 주신 메시지였다. 이렇게 생각하면 좀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마치 노아의 홍수가 생각이 나기도 하지만, 탐욕과 불의가 창궐하고 있는 그 시대에 진정한 예배를 위선적인 종교행위로 대치되고 있는 정의 불감증 시대에, 공의 불감증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그곳 가운데 이와 같이 물이 흐르게 하고 계속해서 마르지 않는 강으로 제대로 된 땅을 만드시겠다고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회복과 부흥을 위한 전제 조건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으로 가득 채우려고 하는 열망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회복을 위해서는 정의와 공의로 이 땅이 다시금 제대로 된 결실을 맺는 땅으로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먼저 하셔야겠다고 하시면서 진정한 회복과 정의를 위해서 반드시 이것이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회복과 부흥은 필요하다. 물질 만능주의로 살고 상대적 박탈감과 늘 비교하는 의식들이 팽배해지고 있고 코로나는 끝나지 않고 이제는 다 보편화되어 함께 교제하는 것에 대한 기쁨도 회복되어야 됨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익숙해져버렸다. 그야말로 다시금 물이 흘러야 되는데, 계속해서 메말라 있고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복음이 흘러가고 정의와 공의가 다시 세워져야 하는데, 이 땅에 교회를 향하여 주시는 말씀이 있는데 과연 그것들이 지금 현재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고민해야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빛과 소금된 말씀을 하신다. 세상 속에서 구별되라. 이 땅에 빛과 소금된 교회여, 세상의 소망이 되어라, 이 땅에 빛과 소금된 교회여, 거짓과 불의로 가득찬 세상에서 희망이 되어라, 바로 태초부터 내가 채워놨던 그 공간 안에서 거룩함을 회복하고 하나님께서는 흐르는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시는데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사실 우리의 모습만 놓고 보면,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서 벗어날 수 없으며, 거짓과 구분되었다고 말하지만, 한 쪽 발은 여전히 세상의 발에 담그고 있는 모습, 하나님께서 이 지면에서 멸하겠다고 하시는데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이 아모스가 우리에게 주는 희망을 주는 구절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아모스 9장 8절이다.
 
*아모스 9:8,
8 보라 주 여호와의 눈이 범죄한 나라를 주목하노니 내가 그것을 지면에서 멸하리라 그러나 야곱의 집은 온전히 멸하지는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께서 죄 많은 나라를 지켜보고 계신다고 하신다. 그러나 야곱의 자손은 완전히 없어지게 하지 않으신다고 하신다. 너희들을 그래도 붙잡아 주고 있겠다고 하신다. 교만한 자에게는 벌이 내려지겠지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겠다고 하신다. 회복과 부흥을 허락하시겠다고 하시며 다시금 그 땅 가운데 물이 흐르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그렇다면 진정한 회복과 부흥을 맞으려면 내게 재앙이 오지 않도록 간구하기 보다는 ‘주님, 나의 죄악과 불의를 고하오니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거룩하고 온전하고 구별되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말씀이 되게 하시도록 이렇게 합심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토대가 물이 흐르도록 다져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부터 하나님께서 놀라운 회복과 부흥을 허락하신다.
 
 
II.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회복과 부흥은 필요하다.
 
 
아모스 9:11,
11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자기 백성을 일으켜 세우신다. 하나님께서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겠다고 하신다. 가다르, 리페어 하신다는 것이며, 결국은 다시금 틈을 막고 보수공사를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집수리를 해보았는가? 자전거, 차, 집, 고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누구한테 맡기느냐가 중요하다. 잘 하는 데에 가야한다. 어설픈데 가면 다시 고쳐야 한다. 바가지 쓰고 만다. 이 보수공사를 지금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하신다. 여러분, 우리에게 적용하자면 우리 공동체를 다시 일으키고 교회 틈을 보수하시겠다고 하신다. 허물어진 부분을 일으키시고 재건하시겠다고 하신다.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 보수공사를 일으키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고린도전서 6:19~20,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의 몸을 성령의 전이라고 바울은 이야기 한다. 결국 재건하시고자 하는 것이 단지 공동체인 교회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을 재건하시겠다고 하신다. 몸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이다. 우리를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리페어된 몸으로 주님께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라는 것이며 진정한 회복과 부흥을 하려면 예배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 영광의 자리, 훈련의 자리가 다시금 살아나야 될 줄 믿는다. 틈을 하나님이 막아주시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자리로 우리의 몸을 온전히 드려야 한다. 그렇기에 하나님께로부터 보수공사를 받은 자, 하나님께 영공을 돌려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회복과 부흥을 위해선 반드시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다.
 
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신다.
②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먹이십니다. (13-14절)

*아모스 9:13~14,

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그 때에 파종하는 자가 곡식 추수하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14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곡식을 베자마자 다시 갈아야 하고 씨를 뿌리자마자 포도주를 마신다는 것이다. 계속 씨를 뿌리고 곡식을 계속 거두어도 그 땅 가운데 소출을 허락하시겠다고 하시며 무한공급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부어주신다는 것이다. 거룩함을 갖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샀던 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가 좌절하거나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걱정을 말라.
 
*마태복음 6:30~32,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신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줄 믿는다. 염려는 결코 우리의 주린 배를 배부르게 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배부르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도록 나의 모든 것을 다 드려서 진정한 회복과 부흥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염려로부터 근심으로부터 벗어나라. 내가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를 아무리 걱정해봐야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것만이 진정한 회복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먹이실 것이다. 모든 문제의 염려가 될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다.
 
③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영원히 지키십니다.(15)

*아모스 9:15.

15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기 보면, 자기 백성을 심는다는 것이다는 것은 그 땅에 정착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통치의 원리가 가장 잘 표현되어 있는 구절이다. 국가를 이루는 요소가 국민, 주권, 영토 가운데 제대로 자리 잡혀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이 주신 땅에 잘 심어놓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원리가 그대로 들어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원리로 잘 드러나 있는 구절이 또 있다. 여호수아서에 있다.
 
*여호수아 1:8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이 구절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원리를 바르게 세우기 위한 헌법과도 같은 구절이다. 심겠다고 하면 거기서 어떻게 거하는가? 율법책을 주야로 묵상하라고 하신다. 그 안에 가이드가 되어 있는 대로 잘 지켜 행하라고 하신다. 다시는 거기서 뽑지 않겠다고 하신다. 영원히 거기서 살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또 다른 구절에도 있다.
 
*학개 2:23,
23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1차 귀환을 이끌었던 그 스룹바벨이 여호와 족보 안에 들어가 있다. 너를 세우고 인장으로 삼겠다고 하신다. 옥새로 삼으신 것이다. 왕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왕족으로 삼겠다고 하신다. 신약에서 바울이 이야기 하고 있다. 로마서 8:15절에 있는 대로 아빠 아버지로 부르라고 하신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아멘,,, 성도 여러분, 진정한 회복과 부흥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오직 생명의 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옥새로 삼으셨다는 것은 그 자녀 된 기쁨을 나눌 수 있고 노래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회복과 부흥이 있을 줄 믿는다. 우리가 코로나 기간 동안에 ‘날 자녀라 하시네!!’~ 찬양을 불렀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자녀라고 하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 아버지께서는 자녀에게 그 땅 가운데서 왕의 족보를 따라 살게 하시려고 우리 가운데 오셨다. 아무 자격 없는 우리를 위해서 오셨다. 그분이 자녀라고 축복하시면서 우리에게 오셨다. 우리는 그 은혜로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아들이고 딸이고 그 사실을 기억하면서 나에게 회복은 반드시 일어나고 우리 교회의 부흥은 반드시 일어나고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 그 사실을 믿고 나아가는 그 믿음이 주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 우리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고 말씀으로 다시 회복시켜주시는 그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의 다음 세대 자녀들은 이미 현실 공간에서 놀지 않는다. 가상현실, 증강현실에서 놀고 있다. 하나님은 통치원리를 주시면서 오늘도 이야기 하신다. 내가 먹이고 입히고 세우겠다고 하시며 인장 삼아서 왕손으로 삼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이 공간에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원리는 하늘과 땅, 우주 만물 가운데 동일하게 일어날 줄 믿는다. 그러려면 다음 세대의 자녀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하나님이 너를 세우실 거야, 하나님이 우리를 먹이신다. 우리를 왕손삼아서 옥새로 예수님의 족보 가운데 세우셨다’고 그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우리 땅 가운데 정의와 공의를 흘려보내고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고 더 한 것을 드릴 수 있도록 우리의 본질을 회복하여 예배하고 훈련하고 증거 하는 일에 회복의 역사를 기도하면서 우리 모두가 합심해야 한다.
v. 진정한 회복과 부흥의 주체는 하나님, 인장 받은 백성답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자.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이 시간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것은 우리를 먹이시고 우리에게 선택받은 자로 힘과 능력을 주시고 이 땅 가운데 주님의 자녀로 당당하게 살기를 소원하니 말씀을 통해서 회복되길 바란다.
 
 
♣요약
진정한 회복과 부흥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니 오직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정의와 공의로 거짓과 불의를 제거해 주시길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코로나 가운데서 다시 보수공사를 하셔서 세워 주실 줄 믿고, 우리의 무너진 성전을 다시 고쳐서 회복이 되어야 하며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진정한 예배자로서 주님을 증거하고 무한 공급을 해주시는 은혜에 온전히 감사하며 회복과 부흥을 소망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며 그 틈을 막고, 퇴락한 것을 일으키며 옛적과 같이 세우고,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이는 심판 중에도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들은 남은 자로 구원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고, 구속 사역을 이룰 하나님의 백성을 제사장의 나라로 서게 하실 것이다. 이 약속은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기쁜 소식이 만방에 전파되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에서 실현될 것이다.

아모스 선지자는 여기서 모든 선지자들이 증거하는 하나님에 대해 증거하면서 그가 메시야의 왕국을 세움으로써 그의 교리를 위하여 큰 일을 하실 그 날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그 약속은 그리스도 교회의 설립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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