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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차 글로벌 봄 특별새벽부흥예배(2021년 4월 16일)
제목: ''21세기 교회에 주어진 기회와 당면과제'', ''그가 이루시고''
말씀: 에베소서 6:10~13, 시편 37:5
설교자: 오스 기니스 교수님(소명저자),-'‘21세기 교회에 주어진 기회와 당면과제”
조명환 장로님(월드비전 회장)-“그가 이루시고''-초빙
사회: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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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기니스 교수님(소명저자),-'‘21세기 교회에 주어진 기회와 당면과제”

 

*에베소서 6:10-1절,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여러분과 한자리에 있지 않지만 ‘제19차 글로벌 봄 특별새벽부흥예배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어서 참 기쁘다. 한국에도 두 번 방문했다. 모든 좋은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저는 한국교회가 가진 기도의 열정과 세계를 향한 열심을 높이 평가한다. 한국의 유례없는 경제 발전과 더불어 한국교회가 급속도로 성장한 사실도 정말 특별한 말이다. 저는 오늘 ’21세기 교회에 주어진 기회와 당면과제‘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한다. 오늘날 21세기 교회에 당면과제는 바로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세속주의 성장‘이다. 세속주의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증오한다. 간략히 핵심 4가지 요소를 말씀드리겠다.

 

I. 21세기 교회가 당면한 큰 과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교회는 남반구 지역을 복음으로 무장시켜야 한다. 복음은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지만, 그중 남반구 지역에서 가장 확실하게 퍼지고 있다. 아직 현대화 되지 않은 남반구 지역이 태반이다. 그러나 현대사회 속에서 교회는 현대화되었다. 교회는 강력한 제자훈련을 통해 남반구 지역 현대화의 물결에 맞설 수 있게 해야 한다.

 

II. 교회는 사방의 선진국을 다시 회복시켜야 한다.

서구사회는 유대교회와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세속주의가 서구 사회를 집어삼켰다. 그 결과 기독교는 점점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

 

III. 교회는 인류의 미래에 공헌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트랜스 휴머니즘’과 ‘초지능’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시대의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변화를 불러오는 이슈들에 관심이 없다. 이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교회에 대한 적개심이 커지는 데 그리스도인이 한 몫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세속주의에 사로잡힌 유럽의 무신론자들이 지금 전 세계를 휩쓸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없던 모습이다.

▷교회는 이런 서구 사회를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 이때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세 가지 그룹이 있다.

1) ‘하나님을 원하지 않아!’ 라고 말하는 그룹.

-유럽에 교회가 세워진 이후, 국가와 교회는 하나였다. 그리고 국가와 교회 둘 다 억압적이었다. 혁명 세력이 이런 국가와 교회를 전복(顚覆)시켰다. 프랑스 대혁명 때, 이들은 왕과 주교를 함께 없애야만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외쳤다. 그 이후로 극좌파들은 하나님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2) ‘하나님을 편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필요 없어!’라고 말하는 그룹.

- 이들은 현대 과학과 기술, 자본, 부를 가지고 종교나 하나님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잘 살면 잘 살수록 덜 종교적이다.

 

3) ‘하나님은 대체할 수 없어!’ 말하는 그룹.

-에덴동산에서 사탄은 이런 말로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다. DNA와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해 인류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세 번째 그룹은 자신들이 하나님처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대인 무신론자 ‘유빌 하라’라는 사람은 그의 저서, 호모데무스,에서 ‘과학은 구약의 하나님보다 더 뛰어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인간이 곧 땅의 신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우리는 세속주의가 단순히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세속주의의 핵심은 ‘하나님을 향한 초자연적인 증오’를 한다. 바로 이 세 번째 그룹에서 ‘하나님을 반하는 세 가지 혁명이 등장했는데,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당면한 것이기도 하다.

 

-첫 번째 혁명은 ‘자유주의 신학’과 ‘수정주의’이다.
지난 200년 동안 전통 교회와 복음주의자들이 자유주의 신학에 격렬히 맞서 왔다는 점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것이다.

 

-두 번째 혁명은 ‘성 혁명’이다.

사람들은 성 혁명의 플레이보이자가 나오고 피임약이 발견된 1960년대의 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정치 혁명이 일어났던 ‘프랑스 혁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 혁명’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은 다음 두 가지 위협하는 세력을 물리치기 전에는 결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1)하나는 부모이다.
그래서 성 혁명가들은 부모의 자리를 없애려고 3-4살 아이에게 성교육을 한다.

2) 다른 하나는 교회이다.
성 혁명가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교회를 크게 위협한다는 점을 안다.

 

-세 번째 혁명은 바로 ‘문화적 마르크스주의’이다.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가 얼마나 강력한지 잘 아실 것이다. 중국을 봐도 마르크스주의와 마오주의가 섞여있다.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는 유럽과 미국을 휩쓸고 있다. 현대 사회에 가장 큰 위협이 바로 문화적 마르크스주의이다.

 

다음으로 권력 구조를 알아야 한다.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는 현 정세를 무너뜨리기 위해 혁명 세력으로 희생자를 내세운다. 그래서 여성학, 인종적, 동성애 연구, 비만 연구가 성행하는 것이다. 이제껏 말씀드린 세 가지 혁명은 서로 합쳐져 기독교에 큰 위협을 불러온다. 그래서 삶의 방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세계관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것이다. 이 위협이 지금 서구 사회와 교회에 침투하고 있고, 세계를 집어삼키고 있다.

 

Ⅳ. 우리는 서구 사회가 가진 ‘왜곡된 말씀’가 싸워야 한다.

우리에게 직면한 위협이 전부 이념만은 아니다. 서구 사회 자체가 알게 모르게 조금씩 우리를 변화시키고 있다. 우리는 이 위협에 맞서 싸우기 위해 맡아야 한다. 이념은 아니지만, 우리의 믿음을 파괴하는 세 가지 현상에 대해 말씀드리겠다. 이미 한국에서 시작된 현상도 있을 것이다. 소개 할 한 가지 현상은 다음과 같다.

1) ‘현대 사회는 ’권위 중심‘에서 취향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너무 많다. 선택의 문제이다. 여러분, 취향, 지금 무엇을 좋아하는지가 중요하다. 이런 경향도 그렇다. 성경에는 ‘이래라 저래라’ 하는 내용이 많아!, 사람들이 성경을 멀리하고 있다. 사랑도 어떤 사람은 지옥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랑은 절대 지옥이 아니다. 우리는 사랑은 변하지만, 심판은 변하지 않는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취향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선택하고 싫어하는 것은 버린다. 이런 경향은 ‘그리스도의 주인 되심’과 ‘제자도’에 치명적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왜곡되었을까? 현대 사회는 ‘통합적 신앙’을 ‘조각난 신앙’으로 바꿔버린다. 예수님은 항상 무리의 주님이셨고, 현대사회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요즘은 이동 수단이 좋아져 편리하게 이곳저곳 이동할 수 있다. 예전에 로스앤젤레스에 소재한 한 교회에서 레이건 대통령이 장년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바 있다. 성도들에게 교회까지의 거리를 물었다. 대체로 80-120km 정도라고 대답했다. 성도들은 교회에 가고, 직장에 일하러 가고, 스포츠를 관람하러 가고, 바닷가에에도 간다. 로스엔젤레스는 서울처럼 대도시이다. 로스앤젤레스는 ‘기독교 신앙은 사적 영역이지 공적인 영역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문화 속에 있다. 이 말은 교회에서는 신앙이 허용되지만 다른 곳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집에서는 괜찮지만, 직장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안 된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통합’되기보다는 ‘조각 난’ 형국이다. 다시 한 번, 이 사실은 ‘그리스도의 주인 되심’과 ‘제자도’에 상당히 치명적이다. 세 번째 예를 들어보겠다. 현대 사회는 우리의 세계관을 초자연적 세계관에서 세속적 세계관으로 점점 바꾸고 있다. 우리는 창문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성경 속의 초월적인 영역이 ‘진짜 현실’이다. 오히려 보이는 세상이 보이지 않는 세상보다 비현실적이다. 현대 사회는 ‘보이는 세상이 현실’이고 그 외에는 ‘비-현실’이라고 말한다. 서구 사회는 이른바 ‘기능적 무신론자’들이 많이 있다. 이들에게는 ‘초월적인 세계관’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영 가족들이 이렇게까지 되지 않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여러분에게도 이런 현상이 유혹으로 다가올 수 있다. 부, 돈, 권력, 성장 같은 것들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 교회는 이런 것들보다 강한 공동체이다. 그런데 점점 초월적 세계와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있다. 마지막 다섯 번째이다.

 

Ⅴ. 우리는 현대 사회 문제를 해결할 도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세 가지이다.

1) 영적 전쟁(靈的 戰爭).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 교회가 가진 열정적인 기도에 경의를 표한다. 한국 교회가 가진 열정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서구에 사는 한국 교회 성도는 서구에 사는 성도는 다 열심히 기도한다. 중요한 것은 그런 ‘기도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세속주의가 성도의 기도 생활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저는 한국교회가 세속주의의 도전에 당당히 맞서 승리한 줄로 믿는다. 세속주의는 초월세계와 능력보다 현실 세계의 성장과 물질, 그리고 부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2) 이념의 역사.

-사람들이 이념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데, 그냥 보고만 있다. 그러니 우리는 사상의 뿌리를 알아야 사상이 가진 위험성을 제대로 알 수 있다. 앞서 ‘성 혁명’에 대해 말씀드렸듯이 ‘성 혁명은 프랑스 혁명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사상이 얼마나 큰 위협이 되는지 알 수 있다. 시대의 이념을 선지자거 관점에서 보기 위해서도 이념의 뿌리를 알아야 한다.

 

3) 문화 분석.

-신앙에 위협을 주는 것은 이념만이 아니다. 자동차, TV, 라디오, SNS 같은 것, 모두 우리에게 크게 영향을 미친다. 시간을 예로 들어보겠다. 현대인은 누구나 24시간 동안 스트레스 속에서 정신없이 지내고 있다. 이런 현상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철학자, 심리학자, 사회적 과학자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이는 시계에서 비롯되었다. 시계는 1300년대에 유럽에서 발명되었다. 시계는 당시 가장 강력한 도구였다. 19세기에는 시계가 시간을 통재했다. 그리고 지금은 원자시간 시대이다. 우리는 이로 인해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시간뿐만 아니라 인간의 심리까지도 통제하게 될 것이다. 이런 사상은 ‘교회가 역사의 잘못된 편에 서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항상 세상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최신 유행’이라고 말한다. 이런 현상은 시계의 압박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도구들이 우리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요약
 21세기를 조망해 보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기독교 신앙’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가 발달할수록 기독교는 그만큼 발달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 없음이다. 영국의 유명한 기독교 지도자 존 스토트 목사님을 잘 아실 것이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90세가 넘어 소천하셨다. 저는 그가 소천하시기 전에 뵌 적이 있다. 그때 저는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면서 이렇게 여쭈었다. “목사님, 기도 제목을 나워주세요” 존 스토트 목사님께서는 속삭이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지막 호흡까지 예수님 앞에 신실하게 서도록 기도해주세요”라고 하셨다. 모든 게 잘 될 때는 믿음을 지키기 어렵다. 우리는 권력, 숫자, 효율, 성장 등, 인간적인 것을 의지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성공보다 신실함이 필요하다. 물론 일이 잘 될 때는 대가를 치르고 손해를 보아야 한다. 전 세계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으로 인해 박해를 받는다. 주님 앞에 끝까지 신실하게 사는 삶이 도전하는 시대이다. 여러분께 사랑으로 간구한다. 하나님은 다른 무엇보다 위대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어야 한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21세기 교회에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소망한다. 21세기 교회에 주어진 당면한 과제에 맞서며, 예수님 안에 있는 복음의 능력이 어떤 적대 세력보다 강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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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 장로님(월드비전 회장)-“그가 이루시고''-초빙
*시편 37:5절,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 2018년에 이 자리에서 뵈었는데 다시 뵙게 되어 감사하다. 코로나로 힘들지만 코로나로 인해 더욱 글로벌하게 사람들을 만난다. 은혜의 폭포수로 은혜가 되길 바란다. 삼년 전에 이 교회에서 정말 큰 은혜와 감동이었다. 오늘도 동일한 은혜의 폭포로 꽉차고 은혜가 가정마다 넘치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다시 공부를 하게 하셨다. 미국의 MIT공대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것은 블록체인 공부이다. 비즈니스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며 어떤 세계가 되는지를 알게 하는 공부였다. 향후 20년간 새로운 경제가 나타날 것인데 이 블록체인이 중신이 된 새로운 경제가 나타날 것임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 왕에게 지혜의 축복을 주셨다. 어떤 지혜를 주셨는지 열왕기상 4장에 보면 나와있다. 솔로몬이 사방에 둘러싸인 민족과 평화를 누렸다고 한다. 즉 솔로몬왕은 외교를 잘하였다. 정치도 참 잘했다. 하나님께서는 요즘으로 말하면 사회과학적으로 지혜를 주신 것이다. 또 솔로몬은 잠언을 3천가지를 말하고 노래를 1005편이나 지었고, 요즘으로서는 인문학적인 지혜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가 초목에 대해서 말한다. 그가 짐승과 새, 물고기에서 말한다. 동물, 식물학도 말한다. 사람들이 나를 생물학인줄 아시고 길거리에 가면서 이쁜 꽃을 물어본다. 사람들이 생물학 교수이지만 아무것도 모른다. 미생물 전공을 한 사람이어서 식물은 아는 것이 없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자연과학적인 지혜를 주셔서 소로몬은 사회과학 인문학을 전부 아우르는 놀라운 지혜를 주셨다. 저는 사실 평생 살면서 두가지 비밀을 가지고 살고 있다 하나는 원조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가난한 것을 자랑하고 살았다. 부모님이 원조를 받아서 살았다. 교수이지만 공부를 잘하지 못해서 미달학과를 통해서 들어간 사람이다. 구태여 이러한 사실을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셨다.

비 인기학과였다. 적성도 맞지 않았는데 생물공학과를 들어갔다. 미달학과인 학교에서 하나님의 축복으로 잘 졸업한 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그 대학에 생물학과 교수로 만들어주는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교수가 되면서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축복을 다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 제 인생에 계속 역사의 진행 중이셨다. 노벨상 수상자를 통해서 실리콘 벨리에서 보여주시더니 기업경영을 하게 하시고, 모든 좋다는 대학에서 공부하게 하시고 아시아 학회 에이즈 회장으로서 지난 20년간 에이즈 퇴치 운동을 벌이면서 국제 무대에서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지도자들을 만나면서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일을 역사하셨다. 에드나 할머니는 나에게 15000원을 오랫동안 필요도 없는데 보내주실까를 생각해 보았는데 이제야 알게 되었다. 올해부터 월드비전 회장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네가 도우면서 살라는 것을 보여주셨다. 월드비전은 미국의 파피우스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이 선교교단 감리교 목사님들이 만든 단체이다. 그래서 1대 이사장을 한경직 목사님이 하셨고, 2대 이시징을 정진경 목사님, 3대 김선동 목사님이 하셨다. 월드비전은 1950년도에 한국 전쟁으로 만들어진 단체이다. 목사님과 교회가 만든 하나님의 기업이다. 71년째가 되었는데 전 세계 백 개 국가에 있는 월드비전이 직이 37000여명의 직원들이 1년간 3조원의 예산을 가지고 1억 오천 만 명의 가장 취약한 어린이들을 돕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민간 NGO이다. 이러한 사역을 하나님께서 맡기셨는데 이런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길 바란다. 하나님께서 감당할 수 없는 축복을 주셨는데, 하나님은 저에게 축복만 주신 것은 아니다. 견딜 수 없는 시험 과정을 두 번이나 거치게 되었다. 한국에서 1년, 미국에 가서 1년 동안, 연단을 거쳤다. 대학 졸업시에 24살이었을 때에 카이스트 석사과저을 밟고 싶었다. 시험 준비를 했고 사년간 열심히 했다. 이제 지원을 하려고 하니 워낙 철저하여, 카이스트에서 모든 지원자들에게 건강진단서를 함께 제출을 하라고 했다. 그래서 생전처음 대학 병원에서 검진을 하게 되었고, 결과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바로 그것이 결핵이었다. 너무 심하니 공부를 아무것도 하지 말고 당장 모든 것을 중단하고 시골에 내려가서 약을 복용하라고 좋은 공기에서 살라고 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너무나 이해가 안되었다. 청년 기간 동안에 하나님과 가장 가깝고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기도도 새벽마다 했고. 밤에 예배도, 기도도 많이 했다. 정말 교회 봉사도 많이 하면서 하나님과 너무나 가까운 정말 그리스도가 왕인 청년시절을 보내고 있는데 왜 하나님은 이런 시련을 주실까를, 결핵균을 들어올 때 나를 아셨을 것인데 가만히 보고 계셨을까를 생각했다. 내가 죽을 정도로 결핵이 자라고 있을 때, 점점 자라고 있었을 텐데 하나님은 미리 발견하게 해주시지 않았을까를 원망했다. 눈감고 계신 것을 원망했고 이해를 못했다.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한창 밝은 미래의 청년이 경기도 안성에 한 농장에 내려가서 일 년 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 농장에서 한 주먹에 달하는 약을 먹으면서 1년간을 보냈다. 농장에서 이런 사실을 얻게 되었다. 농부는 채소를 얻기 위해서 씨앗을 뿌리고 채소를 기르지만, 농부가 원하지 않는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밭에서 같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도 신앙생활을 하는데 은혜와 고난이 공존함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은 비록 우리를 징계를 하시지만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징계하시는 것이고, 우리를 채찍질을 하시지만 우리를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채찍질하심을 알게 된다. 결국 하나님은 나에게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게 하셨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잘 버텼다. 건강을 회복하게 하시고 몸무게를 54킬로에서 20킬로가 더 나가게 되었다. 지금 그 체중을 잘 유지하는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셨다.

 

두 번째 시련은 미국에서의 시련이다. 미국에서 하나님의 축복으로 정말 이런 일을 발생할 수 없는데 미국에서 공부하는 기회를 주셨다. 그러나 여기에서 어처구니없게 실력이 없어서 쫓겨나게 되었다. 성적이 안 되서 정말 황당했다. 왜 하나님은 이러실까? 이렇게 왜 고통을 주셨다. 가족들에게 이야기도 못하고 창피해서 아침에 거짓말하고 공원벤치에서 지내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런 생활을 1년 동안 하게 되었다. 이때 에드나 어머니는 계속 왔다. 하나님이 너를 사랑한다고 했다. 과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모습이냐고 따졌다. 어떻게 사랑한다면서 이렇게 못되게 하시냐고 하시면서 같이 기도하지고만 하신다. 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을 원망했다. 하나님의 존재조차 부정했다. 하나님은 저에게 언제 예수님을 믿겠다고 결정했냐고 물었다. 하나님은 제가 예수님을 믿는 어머님 아래 태어나게 만들어 놓고, 저에 의지와 관게 없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게 만들고, 그리스도를 나의 왕으로 믿고 살게 해놓고 왜 어찌하여 나를 못살게 하냐고 따졌다. 이러한 고난을 주신다고 원망하고 힘든 시절을 보냈다.

 

*빌립보서 1장 29절,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영어 표현에는 이렇다. 고통은 목적이 있다라고 하신다. 세상 사람들은 정말 재수가 없다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너의 고통은 다 목적이 있다라고 하신다. 시험을 기쁘게 여기라고 하신다. 코로나로 지금 문을 닫고 있는데 어떻게 기쁘게 여기냐구요?? 그러나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기를 바란다고 하신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조금도 부족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드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인내하는 자는 복 되도다, 시험 받는 자는 복 되도다 하신다. 그래서 성경은 네가 약할 때에 바로 강하다고 하신다. 네게 힘들게 고통을 통과하지만 강할 때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통은 재앙이 아니라 미래와 희망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간혹 철저하게 우리를 낮추시고 시험하시지만, 결국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나는 것은 복을 주시고자 하시는 것을 믿어야 한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고아와 같이 혼자 두시지 않으신다. 사막을 혼자서 힘들게 걸어가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혼자 놔두시지 않고 함께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이 사막을 통과할 때, 하나님은 물을 주시고 그것도 부족하면, 돌멩이라도 깨서 물을 찾아주시고 그것도 부족하면, 부셔서라도 물을 철철 솟아나오게 하실 것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아시아 에이즈 퇴치 운동을 하면서 처음으로 스리랑카에서 총회를 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어렵다. 거기에서 개최를 하는데,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려고 정부에서 로비를 하고 노력하는 것처럼, 스리랑카는 작은 나라여서 이 나라가 이 행사를 개최하게 되면 가장 큰 국제대회이다. 그래서 대통령까지 나와서 이 대회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래서 나라가 작고 부족한 나라지만 총회를 하게 되었다. 이 스리랑카에도 우리가 몰랐던 것이 있었다. 이 나라에 반군이 있었다. 정부를 상대로 해서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되었다. 국제대회를 개최를 하니까 망치려고 정부를 망신주기 위해서 스리랑카 정부를 국제무대에서 망신을 주려고 국제대회를 방해한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졌냐면 콜롬보 시내에서 버스의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그래서 50여명이 그 자리에서 죽었다. 학회에 참여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망설이고 흔들려서 결국은 두 달 전, 이 대회가 있기 전에 공항을 반군들이 폭파했다. 그리고 모든 국제 사회 사람들이 압박을 했다. 국제 학회는 위험하니 국민들을 보낼 수 없으니 취소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결국은 유엔에서도 취소를 부탁했다. 그런데 마음 속에는 물론 맞지만, 이 대회를 하고 싶었다. 콜롬보 시내에 와디와 해변이 있다. 저는 대통령을 만나서 이 안보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 대회를 개최할 수 없으니 빨리 안전하게 좀 대책을 만들어 달라고 하니 걱정을 하지 말라고 했다. 계속 행사를 하라고 한다. 그러나 정부는 하겠다고 한다. 해변가에 가서 나는 기도를 했다. 하나님께 이 일을 어쩌면 좋냐고 기도했다. 우리가 이 행사를 못하면, 아시아 지역의 에이즈 퇴치 운동에 막대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기도했다. 또 행사를 개최하자니 안정이 보장이 안 된다고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이 그때 용기를 주셨다. 기도하는데 엉뚱한 생각을 주셨다. 반군 지도자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의 생물학 교수가 반군 지도자를 만나는 것이 전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엉뚱하게 생각이 굳어졌다. 국방부 장관에게 부탁해서 만나게 주선을 부탁하고 돌아왔다. 며칠 뒤 연락이 왔다. 성사가 되었다고... 그래서 스리랑카로 다시 들어갔다. 무장한 지프차를 타고 접선 장소에서 만났다. 그전까지는 두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정부로부터 반군에게 인도되었을 때, 이제부터는 너무나 혼자 두려웠다. 무서웠다. 이들이 나를 죽이고 인질을 잡고 협상까지 하면 어떨까를 염려하였다.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주님만 의지하고 기도했다. 이 담을 뛰어넘겠다고 기도했다. 이 재앙이 오지 않을 것을 믿고 나아갔다. 모세 때에 정탐꾼도 그러했다. 여호수아 갈렙에게도 담대하게 하나님을 믿고 기도했고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본 것이었다. 이들의 믿음을 가지고 들어갔다. 반군 지도자를 만났다. 스리랑카 차를 대접했다. 얼굴만 쳐다보았다. 너무 무서웠지만, 대화를 했다. 스리랑카 정부를 망신 주려고 계획을 하지만, 우리는 에이즈 퇴치를 위해서 싸우는 사람들이다. 이 행사를 망치면 에이즈 아이들이 죽게 되는데 이 행사를 망치면 에이즈로 죽는 아이들을 너희들이 책임을 지라고 했다. 이 행사를 온전히 치를 수 있게 하라고 이야기 했다. 도와주지 않으면 독립을 위해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때 마침 반기문 총장님이 유엔 총장이었다. 그래서 이 분을 팔았다. 이 분이 우리 대한민국의 한국 사람이다. 너희가 이 행사를 망치면 유엔이 돕지 않음을 이야기 했다.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얼른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반군 지도자에게 이 행사를 꼭 치를 것이라고 당부했다. 반군 지도자는 나를 부하에게 보내라고 했다. 그래서 잘 돌아왔다. 그 해 성공적으로 박사님을 모시고 그 행사를 성대하게 잘 치렀다.

 

다윗의 이런 상황을 보아야 한다. 여호와여,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근심으로 눈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내 일생은 슬픔으로 보내며 내 기력이 약하여졌으며 나의 뼈가 쇠하여졌으며, 나는 잊어버린바 되었고 깨진 그릇과 같습니다 라고 한다. 여러분도 이처럼 보낸 적이 있는가? 이정도로 되는 다윗의 입술을 통해서 하나님을 원망도 할 수 있겠건만, 다윗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하여도 주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하여도 그리스도는 나의 왕 이십니다”. 라고 이렇게 고백한다. 욥을 봐도 그렇다 모든 것을 다 잃었다. 스바 사람들이 와서 다 죽이고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이 죽고 갈대아 사람들이 다 뺏고 다 죽이고, 심지어는 태풍이 와서 사랑하는 자녀들까지 다 죽었다. 근데 욥은 뭐라고 하는가? “그래도 오직 주님만을 찬양합니다.” 라고 한다. 잔양한다는 것, 다니엘과 친구들을 보면, 느부갓네살이 이 신상에 절을 하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풀무 불에 던진다고 협박을 한다. 그러나 세 친구는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주시겠지만, 그러지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주님을 찬양하겠다고 고백한다. 하박국 선지자도 그렇다. 비록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추수 할 것 없고, 밭에 추수할 것도 없고, 우리의 양이 없고 소가 없다할지라도, 쫄

딱 망해서 길거리에 내팽개쳐진 상황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원망하지 않는 하박국, 그래도 여호와를 즐거워한다고 한다. 그래도 하나님을 기뻐하겠다고 한다. 우리도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인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오늘 말씀하신다. “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하나니은 무엇이 두려운가? 내가 너를 어찌 버리겠냐고 하신다. 내가 사랑하는 자녀들인데 너의 고통은 잠시 끝날 것이다. 우리는 무기가 무엇인가? 우리의 무기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무기이다. 우리의 자녀의 길도 여호와께 맡겨라. 그를 의지하면 내 인생을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루심을 믿기를 바라며, 진심으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왕이 되시기를 바란다. 왕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인생을 가꾸어가길 소망한다.

 

♣요약

우리 교회와 전 세계의 자녀들을 축복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모시고 살아가고 있는 이 삶이 내가 이 땅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큼 축복인 것을 깨닫기를 바라며, 어떤 상황이라도 주님을 의지하여 기쁜 삶을 살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무기이다. 우리의 자녀의 길도 여호와께 맡겨라. 그를 의지하면 내 인생을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루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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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새부흥기도회(주후 2021년 4월 15일)
제목: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할 때”, “진짜 기적은 무엇일까요?”
말씀: 사도행전 12:5-7, 데살로니가전서 5:16-18절
설교자: 짐 심벌라 목사님, 김예랑 성도.

사회: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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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심발라 목사님(뉴욕 부르클린태버너클교회)

 

한국교회 성도 여러분께 인사드린다. 이번 글로벌 특새에 초대 받게 된 것이 참으로 영광스럽다. 저에게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교회에 리더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오늘 새벽 기도하면서,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임하는 엄청난 능력을 상기 시켜 드리고자 한다. 하나님께서는 한국어이든 영어이든 또는 세계의 어떤 언어이든지 우리 마음의 진정한 언어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 여러분의 마음과 저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간구할 때 기도를 들으신다.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의 초대 교회는 기도의 엄청난 능력을 실제적으로 경험하였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3년 반 동안 예수님의 사역을 보았다. 기도하고 사역하고 기도한 후에 설교하셨다. 바쁠수록 더욱 기도하는 것이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항상 기도하고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다. ‘구하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로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니라’ 사도행전 12장에서 발견하는 것은 교회가 실제적인 문제에 직면하였을 때 교회는 모든 것을 차단하고 기도하는 것으로 반응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도행전 12장에서 베드로는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교회는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베드로가 옥에 갇히기 전 사도행전 12장에서 해롯 왕은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죽였다. 헤롯은 초대교회를 핍박했다. 헤롯이 교회 지도자들을 처형했을 때, 백성들과 특히 종교 지도자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았다. 해롯은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원로이자 지도자인 베드로를 감옥에 가두었다. 해롯은 유월절이 오기만을 기다렸고 베드로를 죽음에 몰아넣고자 하였다. 교회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반응하는 지를 보는 것이 흥미롭다. 교회는 모든 일을 멈추고 베드로를 위해 기도의 흐름을 이어갔다. 그들이 기도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돈이 없었다. 정부를 향한 어떠한 영향력도 없었다. 오늘날의 기독교를 떠올릴 때, 앉아 있는 면에서 생각나는 그 어떤 것도 없었다. 건물도 없었고, 영향력도 없었고, 모든 사람들이 배척했다. 그래서 교회는 모든 일을 멈추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즉각적으로 우리가 지금 당장 기도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건져내 주시길 간절히 기도했다. 만약, 여러분의 목사님을 감옥에 넣고 처형하려고 한다면, 여러분의 교회는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어떤 교회가 반응하겠는가? 예루살렘 교회의 기도가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성경은 해 아래 모든 것의 때가 있다고 전한다. 말씀을 전할 때가 있고, 찬양할 때가 있다. 가족과 함께 할 때가 있고, 홀로 성경을 공부할 때가 있다. 그리고 합심하여 기도할 때가 있다.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 나타나는 능력을 아무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자, 교회가 이렇게 모여 기도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교회는 단지 지속적으로 기도했다.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교회는 사도행전 12장 6절에 보면, 해롯이 베드로를 재판하기 전날 밤, 베드로는 두 개의 쇠사슬에 묶인 채 두 군인 사이에서 잠들어 있었고 문 앞에는 경비병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갑자기 주의 천사가 나타나시더니 강한 빛이 감옥 안에 비쳐졌다. 천사는 베드로의 옆구리를 치고 깨우며, 빨리 일어나라고 말했다. 그때 베드로를 묶고 있던 쇠사슬이 풀어졌다. 천사들이 베드로에게 옷을 입으라고 하였고 베드로는 감옥에서 바로 나왔다. 그들 앞에 굳게 닫혀있던 그 거대한 철문이 저절로 열렸다. 베드로는 성도들이 기도하는 그 장소로 가서 자신을 나타내며 기도의 응답이 되었다. 그 문 앞에서 그 응답이 그들이 기도했던 응답이 되었다. 구하면 얻을 것이요 두드리면 열릴 것이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의 기도로부터 나온 엄청난 능력의 말씀을 마치기 전 몇 가지 내용을 알려드리겠다.

첫 번째, 어둡고 더러운 감옥에서 베드로는 무력했고, 쇠사슬에 묶였으며, 문을 지키는 경비병 사이에 놓여져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비쳤고, 천사가 나타났다. 우리가 기도할 때 가장 큰 응답은 하늘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은행에서나, 컴퓨터에서나, 프로그램이나 정부에서나, 그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그 상황 속으로 하나님께서 개입하신다. 하나님께서 응답이 내려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도할 때, 성경의 역사가 되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늘에서 응답이 내려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이 내려오셔서 은혜와 사랑과 능력으로 임하시는 것을 우리가 기적이라 부른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구약 성경은 환난 날에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도의 자리에 초대하였다. 이것은 어떤 목사가 떠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오라고 초대하신다. 우리의 요청들, 긴급한 일들, 고통스러운 일들, 자녀들의 문제 혼란함과 마음의 어려움, 그 어떠한 것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늘에서 응답이 임하는 것이다. 백여 년 전 북한 평양에서 시작된 대 부흥의 역사가 한국 땅에 임하였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실 때 한반도 전역에 복음이 퍼져나갔다. 강력한 부흥의 역사로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고, 교회가 성장했다. 왜 그랬겠는가? 하늘에서 응답이 임하였기 때문이다. 제가 아는 모든 한국 목사님들은 동일하게 저에게 말씀했다. 짐 목사님, 성도들은 기도했습니다!!라고, 두 가지 더 말씀을 드리겠다. 천사가 베드로의 옆구리를 만졌을 때 베드로가 잠에서 깨어났다. 하나님의 사람이 깨어날 때, 다른 사람들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이 장면은 단순히 베드로가 감옥에서 나온 것보다 더 깊은 담고 있다. 어쩌면 여러분의 가족이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는 지도 모른다. 어쩌면 여러분의 교회에 교회에는 나가고 있지만, 영적으로 하나님의 영원함과 한 영혼의 존귀함에 대해 잠들어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매일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주일에만 교회에 간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영적인 잠에서 깨우실 수 있다. -----여러분의 자녀가 방황할 때 주님을 섬기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깨우실 수 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사람들을 묶고 있던 쇠사슬들이 깨어진다. 성도들이 기도할 때, 잠자는 자들이 깨어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속박하던 쇠사슬이 끊어진다. 저와 제 아내가 수년간 목회하였던 뉴욕 브루클린의 교회에서 마약중독과 알코올 중독, 성도착 등에 빠져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옭아매던 죄의 쇠사슬이 끊어지는 기적을 경험한 것을 말할 수 있다. 우리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도할 때,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묶인 것이 깨어지는 것을 목격하였다. 주님, 그들을 살려주시고 그녀를 구원하사 다시 올바른 길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했다. 오늘 한국에서 여러분이 기도하실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부르짖음에 항상 귀를 기울이신다는 성경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시기를 바란다.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전활 할 때 받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받으신다. 하나님의 귀는 항상 열려 있다. 여러분이 오늘 기도할 때 위대한 것을 구하라!! 하나님은 위대하시기 때문이다. 작은 것들이 아닌 위대한 것을 구하라!! 성경은 하나님께는 어려운 일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에게 어려운 일이 있나요? 한국에서 온 마음으로 기도하는 여러분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길 소망한다. 주님은 여러분을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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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얘랑 성도님 간증.

 

뇌전을 앓는 아이를 위해 입원했고, 아픈 상황 속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으로 힘을 얻고 주님께 따지는 기도를 했다. 무릎을 꿇는 순간에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김지혜인데 김예랑이다. 예수님의 사랑의 뜻이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사랑한다는 말씀임을 깨닫게 되었다. 가족, 친구, 시댁, 이웃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기도하게 되었다. 죄인인지 몰랐던 교만함을 깨닫고 울었다. 인간 만드시려고 주님이 성공하신다. 경기는 아이가 더 심했다. 결국에 캐톤 치료를 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치료이다. 모두 못 먹으니 매일 울었다. 한 시간 뒤에는 치료를 해야해서 먹을 것 떡볶기를 먹여주고 싶었다. 처음으로 하나님을 부정하는 믿음이 나왔다. 십자가를 째려보면서 하나님을 원망했다. 예배실을 나오면서 원망했다. 그러나 나오다가 다시 주님이 계시는 곳, 예배당으로 다시 돌아갔다. 내가 의지 할 수 있는 곳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 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울고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왜 네 딸만 위해서 기도하니?”라고 하셨다. 생각해보니 남을 위해 기도한 적이 없었다. 뇌를 열어서 수술을 한다는 것은 무서웠다. 병동에 있는 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았고, 더 아픈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기도했다. 신기하게 불교라도 기도해달라고 했다. 그중에 불교신자 동생이 한 명이 있었다. 나의 기도에 관심이 있었다. 굉장히 기도에 관심이 그녀가 많았다. 그래서 친구가 되었다. 려원이 우리 딸에게 이렇게 아멘 동생과 친하는데 그 자녀인 아들도 경기를 해서 누워만 있다. 엄마도 못 알아본다. 우리 딸에게와 놀아주는 그녀를 보면서 많이 깨달았다. 캐톤의 치료가 안들어서 다시 좋아하는 떡볶이를 먹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를 해도 나아지지 않았다. 한 번에 그 아이들을 낫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으나 들어주시지 않았다. 기도를 매일 하고 70일 정도 기도를 했다. 그리고 약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갔다. 80일 째 되는 날 퇴원하는데 사람들은 축하를 해주었다. 그때 본인들의 자녀들은 누워있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와서 보니 그 질문을 하나님께 물었다. 려원이만 고쳐주셨다. 엄마들과 소통하기 위해 유튜브를 찍었다. 열심 했다. 코로나 들어오기 한 달전에 경기가 사라져서 안정을 찾았다가 경기가 3년만에 재발했다. 수술해야 했다. 대신 오른 쪽 다리가 마비가 온다고 했다. 그래서 릴레이 금식기도를 했다. 기도할 분들을 40 여명의 기도 자들을 보내주셨다. 아멘 동생이 오히려 힘을 주셨다. 우리 아기들이 천국가게 해달라고 기도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때 그 아멘 동생이 우리 교회에 와서 영접했다. 수술을 하게 되었기에 오른 쪽 다리는 당연히 움직이지 않았다. 완전한 용서라는 책을 보고 상대방이 자기를 몰라주어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 용서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제 안에는 사랑과 용서가 없었기에 기도했다. 려원이가 여섯 살에 걷고 싶다고 했다. 영상으로 찍었다. 주님이 하셨다. 주님은 기도를 들으신다. 진정한 기적은 무엇일까요? 그것도 다시 보여주셨다. 가장 아프고 가장 힘들었던 그 려원이가 2018년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이다. 그렇게 기적으로 살아났다. 그 기적은 힘이 없다. 쉽게 잊혀진다고 생각했다. 기적에 이렇게 힘이 없다. 진짜 기적은 매일 다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항상 기뻐하는 것, 더 기도한다. 그 기도는 감사기도가 있다. 감사는 조건이 없다. 지금도 값없이 누리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끝까지 부활의 약속을 믿고 ,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편지를 한 것을 보니 사랑의 편지라고 생각한다. 그 말씀을 주셨다.

 

데살로니가전서 5:5-24절에,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
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매일 매일의 기적이 함께 하시길 기도한다.

요약
이번 특새를 통해 은혜로 충만하여 전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위대하신 하나님께 위대한 것을 구하며, 고통의 감옥에서 기도의 기적을 경험한 베드로을 위해 합심하여 기도하면, 모든 역경과 쇠사슬이 끊어지게 될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고, 하나님이 안계시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지켜보신다. 쉬지말고 기도하고 엄마의 사랑으로 돌보아도 상황이 낙심 될때에도 원망대신 찬양하는 마음으로 주님만을 바라보면 기적을 경험하게 하실 것이다. 우리도 기도를 쉬지말고 기도하고, 확신하면서 주님과 더욱 친밀하여서 항상 감사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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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1년 4월 14일)
제목: “40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말씀: 사도행전 1:3
설교자: 박삼열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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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진행 중인 글로벌 19차 글로벌 특새로 인해서 매일 새벽이 은혜로 충만한 줄 믿는다. 남은 기간 동안 특새에 주님께서 함께 하실 줄 믿는다. 오늘 말씀은 참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몸을 가지신 주님께서 사십일 동안 이 땅에 계셨다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몸이다. 부활하신 몸이 어떤 몸이신가?

 

*누가복음 24:39절에 이하를 보면,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본 제자들이 영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만한 그런 모습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부활하신 몸은 만져지고 뼈도 있고 살도 있고, 손에 못자국이 나 있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 그 분이셨다. 우리와 함께 음식을 드시고 제자들과 대화도 하셨다. 그런데 동시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부활 이전과 전혀 같지 않은 몸이기도 했다.

 

*요한복음 20장 26절을 보면,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제자들이 모여있는 그 집안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이다. 갑자기 나타나신다면 어떠겠는가? 부활하신 모습은 이러한 모습이셨다.

 

*마가복음 16장19절에도,
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이 마가복음 16장은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셨다고 표현하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 죽으시기 이전과 똑같은 예수님이셨고 같이 대화하고 살아계시고 음식도 먹고 동시에 문이 닫혀 있는데도 들어오신 예수님이셨고 그 몸 그대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에 않으신 신비한 몸이셨다. 이렇게 예수님의 이 몸은, 이 영광스러운 이 몸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으셨고, 우리의 생물학이나 물리학으로 도저히 설명을 다 할 수 없는 그런 몸이시다. 이 특이한 몸으로 땅위에 사십일 동안이나 계셨다. 결코 짧지 않는 기간이며, 정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나주셨고, 사십일 동안 승천을 앞두고 제한된 사십일 동안 예수님은 정말 꼭 필요한 시간이었고, 절대적으로 중요한 시간이었다. 승천하시면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이 마지막 시간에 특이하고, 그 영광스런 몸을 가지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십일 동안 제자들을 만나주시고 계신 것이다.

 

본문의 *사도행전 1:3절을 보면,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 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0일 동안의 일을 말씀해 주시고 있다. 승천하셔서 제자들을 떠나시기 전의 40일, 그런 그야말로 마지막 주님께서 하신 일을 기록하고 있다. 정말 중요하고 흥미롭다. 신령한 몸으로 이 땅에 계셨던 그 사역을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신 다고 하신다. 40일간의 이 땅에 계셨던 이유와 목적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부터 가르치셨던 하나님의 나라였다. 이 부활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너무 놀라운 일이다. 이 부활의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확증하시고 확신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이 특별한 기간 동안에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 무슨 뜻인가?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 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과 그 후 3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란 예수님이 고난 받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과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을 뜻한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남은 이 땅에서의 40일 동안 예수님이 하신 사역의 핵심이다. 죽음과 부활은 한마디로 ‘십자가’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곧 부활을 의미한다. 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바로 복음이다. 그 이유는 그 죽음과 부활로 인해서 우리로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영원한 저주 가운데 있는 죄 문제를 해결 받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복음이 되는 것이다. 진짜 복음이며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의로워져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특새에서 들은 것처럼,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 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이 복음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일인 복음을 말씀하시고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놀랄만한 죽음에서부터의 부활을 확신시켜 주심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을

 

*누가복음 24장에 44-48절에 보면, 더 소상히 설명해 주고 있다.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사도행전 같다. 제자들에게 만나 하시면서 해주신 40일 동안에 계시면서 하셨던 사역이다. 구약의 모든 시편의 구약의 말씀이 결국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완성이다. 곧 하나님의 나라 일이다. 사도행전에 맨 마지막 구절도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 하신다. 신약의 복음의 시대인 사도행전의 시작과 마지막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신다. 이 복음과 교회의 역사는 하나님 나라의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어떻게 복음이 퍼져나간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접근은 사실은 예수님부터 시작이었다.

 

요약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40일간 보이시면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신다. 고난 받으신 것은 십자가이며,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것이며, 그래서 하나님을 우리가 아빠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구약의 완성을 하시고 복음의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하셨다. 특새 시간 시간을 이 복음을 만나고 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이 복음을 깊이 붙잡고 사모하여야 한다. 제자들에게 확신해 주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부활 후 40일 동안 사람들과 함께 계셨다. 4와 7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던 숫자이다. 
4의 배수인 40도 역시 거룩한 숫자로 여겨졌다. 여기서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주장하며 입증하고 있다. 주님의 부활의 가장 큰 증거는 그가 사도들에게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저희에게 보이셨다는 것이다.
(1)그 증거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서 그가 살아나셨다(그는 그들과 함께 걷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그들과 함께 먹고 마셨다)는 사실과 살아나신 분이 다름 아닌 그 분 자신이시라는 사실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들에게 손과 발, 허리의 상처의 흔적을 여러 번 보여 주셨다.
(2)그런 일이 여러 번 있었고 자주 반복되었다. 그는 '사십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셨다' 그 동안 그들과 함께 항상 계신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에게 자주 모습을 보이셨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줄 교훈에 대하여 대략적인 암시를 주셨다. 그는 그들이 수행해야 할 임무에 대하여 교훈을 주셨다.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주께서 사도직에 뽑았던 자들은 그가 그들에게 특권을 주시리라고 기대했으나 오히려 그는 그들에게 계율을 주셨다.
그는 그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계율을 주셨다. 즉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심으로 그는 그들에게 계율을 주시는데, 그 위안자는 또한 명령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그들이 가르쳐야 할 말씀에 관해서 즉 그는 저희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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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차 글로벌 봄 특별새벽부흥예배(2021년 4월 14일)
제목: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기도의 특권, 내가 사는 이유
말씀: 로마서 8:14~15절, 마태복음 25:40절.

설교자: 마이클리브스 목사님-(영국 유니온신학교 총장),
-지상호 의원(21대 국회의원).

사회: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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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리브스 목사님(*존 스터트 목사님 제자, 영국 유니온신학교 총장)

▶바울은 우리가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았다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에 대해 불안해하는 불안의 영도 받지 않았다.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아 “아바, 아버지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도 바울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바울은 로마서를 헬라어로 기록했다. 그런데 갑자기 중간에 아람어 단어인 ‘아빠’(Αββα)‘가 나온다. 왜 그랬을까요? 왜 헬라어로 기록하다가 갑자기 이 단어만 아람어로 쓴 것일까요? 전부 헬라어인데 오직 이 한 단어만 아람어이다.

*마가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장면을 보면, 이 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하셨다.

-바울은 우리가 양자로서 하나님과 누리는 친밀함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과 가지셨던 동일한 종류의 친밀함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마치 예수님처럼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한 교제 가운데로 나아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도 예수님 자신처럼 하나님을 ‘아빠Αββα)’라고 친근하게 부를 수 있게 허락해주신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은 복음이 우리에게 준 선물(膳物)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종(從)으로 삼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 됨을 우리와 공유하신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입양(入養)되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아들과 딸들이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아들이신 예수님의 영을 받았고, 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을 아들만이 부를 수 있는 ‘아빠’(Αββα)‘라는 말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영원히 사랑받는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넘치도록 부어주신 사랑을 우리에게도 나누어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분 안에 있는 생명을 주셔서 우리를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보좌로 인도하신다. 우리는 이제 그저 ’용서받는 죄인‘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아들의 영을 받은 ’지극히 사랑 받는 자녀‘가 된 것이다.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이 기쁜 소식을 깨달은 자들은 행복한 마음으로 열심을 내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다.

 

요한복음 말씀을 생각해 보자.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말씀이 육신이 되셨는데, 이 말씀은 어둠을 내어 쫓는 빛이라고 증언(證言)하고 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救援)은 어떤 구원인가요? 요한복음 1:12절이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아버지 품속에 있는’ (요한복음1:18) 말씀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셨다. 요한복음 17장 24절에서 예수님은 성도들도 예수님이 계신 곳에 함께 있기를 바란다고 기도하셨다. 요한복음 13:23절에도 비슷한 장명이 나온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가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워있었다. 예수님이 영원히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것처럼, 이제는 요한이 예수님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7장 23절에서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다.”라고 말씀하신 이유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친밀하게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권한을 우리에게도 나누어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분의 보혜사(保惠師)이신 성령님을 우리에게도 주셨다.

 

웨일즈의 위대한 설교자 마틴 로미드 존스 목사님은 로마서 8장을 해석하면서 이렇게 말씀했다. “사도 바울의 가장 큰 관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영적인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된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 찬양하며 ’아빠 아버지‘라고 외쳐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완전히 확신하여서 외부로부터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相續者)이자 그리스도의 공동 상속자임을 의심(疑心)하지 않는 것이 바울의 소망(所望)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聖徒)가 확신(確信)에 차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하는 모습은 그가 하나님과 구원에 대한 근본적(根本的)이고도 아름다운 진리(眞理)를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만든다. 우리에게 큰 위안(慰安)과 기쁨을 준다. 예컨대, 어떤 부유한 왕의 자녀가 되는 일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온 우주(宇宙)의 통치자(統治者)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은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도 없는 은혜(恩惠)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은 그저 죄(罪) 용서만 받는 것 이상의 은혜인 것이다. 진실로 더 확실하고 안전한 것이다. 다른 종교(宗敎)의 선물도 혹 잘못을 용서해준다고 하는 경우가 있을지 모르나,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맞아주시고 기꺼이 안아 주신다. 그리고 다시는 우리를 내보내지 않으신다. 자녀는 말을 안 듣는다고 해서 버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우리는 관계(關係)는 ’사랑한다‘, ’안 한다‘ 이런 식으로 변덕(變德)스럽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벽(完璧)하게 행동해야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증명(證明)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요한복음 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영원히 누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하고도 완전한 사랑을 받는 아들이시다. 하나님은 절대(絶對)로 아들을 적당(的當)히 사랑하거나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 아버지의 바람대로 예수님은 이런 사랑을 나누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히 2:11),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다(히 11:16). 은혜의 보좌(寶座)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큼 우리에게 확신과 기쁨을 주는 것은 없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리하도다.”(요일 3:1). 우리는 이런 존재(存在)들이다.

 

*칼빈은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의 목적(目的)은 우리를 회복(回復)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우리를 ‘사람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는 것이다.

-지옥(地獄)의 상속자가 천국(天國)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목적이다. 하나님의 축복의 핵심은 ‘자녀 됨’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가장 큰 축복(祝福)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에 우리의 노력(勞力)과 공로(功勞)는 아무 소용(所用)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노력은 우리의 종으로 만들 뿐이다.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다. 자기 노력으로 더 열심히 기도하고, 더 열심히 사역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고 발버둥 쳐봐야 종이 될 뿐이다. 그러나 좋은 기업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은혜로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복을 철저히 은혜로 주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영적(靈的) 전투(戰鬪)의 핵심(核心)이다. 철저(徹底)한 죄인(罪人)이 철저히 은혜로 입양되는 것이다. 우리는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자주 흔들리고, 믿음도 연약(軟弱)하고, 죄악으로 얼룩져 있고, 신앙인(信仰人)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삶이 형편(形便)없어. 그러니 하나님이 이런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의심스러워’ 그러나 사실 우리의 신앙생활이 형편없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이러한 생각 때문이다. 우리가 사탄이 뒤집어 놓은 복음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행실을 바르게 해야 비로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자녀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아버지의 사랑을 얻어야 한다는 말을 자녀에게서 듣는 아버지, 상상이 됩니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는 이렇게 생각하신다. “얘야,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란다. 나는 언제나 너를 사랑한단다. 내가 죄의 유혹에 넘어질 때도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네가 나를 잊고 살 때도, 의도적으로 나를 화나게 하는 일을 할 때에도,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 딸아, 나는 항상(恒常) 너를 사랑하고, 네가 하는 그 어떤 일도, 심지어 죄나 죽음조차도 내 사랑을 끊을 수 없단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依支)하게 된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기도(祈禱)하게 된다. 증거를 보고 싶다면, 저와 함께 여호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따랐던 구약의 인물을 보십시다.

구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다고 기록된 인물이 누구인지 아신가요? 바로 갈렙이다. 갈렙은 매력적인 인물이다. 민수기 13장을 읽겠다. 가나안 땅에 보낸 정탐꾼(偵探)의 이름이 나온다.

*민수기 13:4절,
4 그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르우벤 지파에서는 삭굴의 아들 삼무아요.
5 시므온 지파에서는 호리의 아들 사밧이요.
6 유다 지파에서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요.
-갈렙은 유다지파 사람이다. 갈렙의 아버지는 여분네는 누구인가요?

 

*민수기 32장 12절을 보면,
12 그러나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온전히 따랐느니라 하시고

-그나스의 아들 여분네의 아들 갈렙, 그나스 사람은 가나안의 이방인이다.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가나안 족속과 그나스 족속과 옛 족속과 아모리 족속에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여분네는 그나스의 족속 사람이다. 갈렙의 아버지는 이방인이었다. 그러나 갈렙은 이스라엘에 합류한 이방인이었다. 이제야 갈렙의 이름 뜻이 이해가 간다. 이스라엘은 항상 ‘이방인(異邦人)’을 ‘개’라고 여겼다. 갈렙이란 이름은 ‘개’라는 뜻이다. 갈렙은 자신의 이름을 명예훈장(名譽勳章)처럼 여겼다. 태어날 때부터 갈렙은 개였다. 그러나 유다 족속에게 입양되었다. 갈렙의 입장에서 보면, 이방인 개가 유다 족속이라는 ‘왕족’이 된 것이다. 갈렙이 온전(穩全)히 하나님을 좇았다고 반복해서 기록된 것은 우연(偶然)이 아니다. 하나님의 품에 안겼기 때문에 갈렙이 바알에게 절을 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갈렙은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고 하나님의 위대(偉大)한 용사(勇士)가 되었다. 그때 나이가 80歲였다. 갈렙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갈렙은 하나미의 백성이 되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전능자(全能者)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꿔 달라고 기도하라.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을 아신다. 우리가 기도하기 힘들어한다는 것도 아신다.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는 것도 아신다. 이 말은 우리가 기도의 용사인 척할 필요 없다는 뜻이다. 우리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을 내뱉기만 해도 된다. 기도하기 힘들다면, 그냥 내뱉으라. 자녀가 아버지에게 말하듯이 말이다. 도움을 구하라.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자애로우신 아버지 앞에 나가는 자녀의 용기 정도만 가지고 하나님께로 가라. 그리고 하나님과의 친밀감(親密感)을 간구(懇求)하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다.

 

*누가복음 11장 5절,
5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예수님은 ‘기도란 하나님과 우정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交際)하길 원하신다. 하나님은 자비로운 분이시니 기도할 때는 하나님께 뻔뻔하게 간청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의 비유에서 벗의 간청함, 즉 뻔뻔함 때문에 그가 요구대로 준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우리도 이처럼 하나님께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증명해달라고 요청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담대한 자의 기도를 기뻐하신다. 기도할 때 민망(憫惘)해 하지 말라.

 

*이사야 49장 15절에, 이와 비슷한 말씀이 나온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는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예수님은 이런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가 기도의 핵심이라고 강조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할 때, 본능적으로 예수님을 빼고 하나님만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主님이자, 審判者’로 생각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렇게 여기면, 하나님은 죄인인 나의 기도를 듣기 싫어하실 거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죄책감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친밀(親密)하심을 생각할 때, 우리를 받아 주신 아버지의 넓은 팔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고 싶어진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기도할 때,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 되심을 꼭 붙잡고 기도하기 바란다 여러분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양자의 영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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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호의원(집사님).
제목: "내가 사는 이유"
마태복음 25:40절.
함경북도에서 태어남,

▶나는 북한에서 힘들게 살다가 남하하여 정착하고, 통일 한국을 꿈꾸는 탈북민 지성호 의원이다.
"내가 사는 이유"로 오늘 간증하겠다.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면서 산다. 수많은 결정에도 주님께 의탁한다. 참으로 쉽지만은 않는 것이 정치이다. 욕을 먹는 길을 가려고 하려고 하냐고들 한다. 말리시는 분들도 많다. 그리고 특별하게 주민들 중에 하나님께서 택해서 이 땅으로 보내주셨다. 2019년 아사 사건을 보고 울었다. 북한에서 배가고파서 왔는데, 자유를 위해서 왔는데 대한민국에서는 쓰레기가 넘쳐나는데 북한은 배가 고파서 죽어간다는 생각이 들때는 너무 힘들다. 내가 선 자리가 어디든 하나님을 내 구주로 모시고 신앙을 지키면서 일을 하니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시고 성장시켜주시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게 하셨다. 나는 왼쪽 다리와 손이 없다.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다니면서 정책을 만들어 가고 있다. 배고픈 사람들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 살겠다고 대한민국에 왔다. 북한땅을 품는다는 것은 탈북민을 살펴야 한다. 통일을 위해 품어야 한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파송 선교사로 보내주셨는데 탈북민에게 감사하고 지성호의원으로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니 너무 좋다. 모든 영역에서 역할을 하게 하신 것에 감사하다. 꽃제비가 국회의원이 되었다.

북한주민으로 살다가 와서 자유대한 민국의 사람으로 사는 것에 당당하다. 하나님은 항상 일하셨다. 모든 것도 하나님의 손에 계심을 안다. 북한땅에 가까이 왔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보면서 통일의 기적을 주심을 믿는다. 대한민국 교회가 북한을 품고 기도한다면 될 것이라 믿는다. 지금 국회에서 내가 막내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주셔서 받고 있다. 나이에 비해 노안이지만, 그래도 사랑을 받는다. 하나님께 진심을 다해서 모든 사람과 잘 지내니 좋다. 함께 어떤 상황이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살아가고 있다. 나이가 어리지만 함께 일하는 분들을 존경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평양에도 못 가 본 사람이 넘어왔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와서 사랑의 교회에 와서 새신자가 되었을때, 옷을 사주셨다. 이것이 사랑의 교회의 힘이 되었다. 작은 자들을 위해 기도해서 세워주셨다. 그옷으로 미국으로 온 세계를 다녀왔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했다. 북한에서도 사람들이 있고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이 있다고 선포하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팔과 다리가 없는데도 그 눈물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2018년을 잊을 수 없다. 백악관 방문에 미 상하의원들이 가득 차 있던 그날을 기억하게 했다. 북한 땅에서 고통받았던 설명을 하니 상 하의원들이 일어나 보라고 했다. 전 세계를 향해서 목발을 들어 보였다. 그 함성은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해서 기도하게 했다. 북한의 주민들의 인권을 위해 선포함에 미국 사람들이 북한 인권법을 만들었다. 역사의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악은 선을 이길 수 없고 그때 자유가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탈북 전에 살아야 하는 북한 땅에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함격북도 산골짜기 오지에서 살았던 삶이다. 눈이 여름에도 내리는 곳이다. 북한 수령이 신이라고 하는 곳인데, 그 삶의 현장에 살다가 왔다. 사람이 그것을 먹고 살 수 없고, 아사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굶어죽으면 옥수수 가루를 준다. 아버지는 옥수가루를 가지고 가고 준비하는 게 인간의 삶이 말이 아니었다. 이런 세상이 북한에 지금도 있다. 하나님의 택한 자녀임을 확신한다. 북한 주민을 위해서 울지 않으면 안되는 삶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옥수수 가루로 힘얻어서 남한으로 온 것이다. 아버지의 일한 삯을 받지도 못한다. 대한민국은 옥수수 가루로 닭 사료로 사용하는데, 국민을 돌볼 책임이 있다. 북한은 사람을 짐짝처럼 여긴다. 죽음을 쉽게 여기는 곳이다. 철길에서 손과 발이 잘렸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마취제가 없어서 눈을 뜨고 수술 받았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톱으로 다리를 써는데 너무 무서웠다. 사람으로서 맑은 정신을 가지고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리가 절단되고 손이 절단된 것을 보신 아버지는 잘려진 것을 묻으라고 하실 때 너무 힘들었다. 이 모든 것은 그래도 살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이다. 북한을 보면서 마음이 늘 아프다. 아버지와 약속을 했다. 마지막 이별에서 꼭 모시러 오겠다고 했다. 조선족 교회에서 하나님을 무식하게 믿었다. 하나님께서 두만강을 건너오게 했다. 무엇을 의지했을까요? 오직 하나님만 의지 했다. 1만 킬로를 걸었다.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서 일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놀랍다.

일을 이렇게 하게 하신다. 부모님도 못해셨던 그것들을 하신다. 중국에서 돌아오지 않으신 것은 알고 보니 인신매매가 되셨다.탈북자를 돌보면서 북사선에서 사랑의 교회에서 지금 이렇게 돌보고 우족 우손을 해주셔서 이렇게 살고 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북한에서는 일용할 양식인데 남한에서는 남아돈다. 두만강에서 잡혀서 고문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저도 누군가의 아들이다. 북한의 자녀들도 자녀이다. 북한도 같은 사람이다. 이 간증이 지성호가 아닌 이 사랑의 교회 이 공동체에 전달되었음 한다. 그 많은 고통에서 일어나 이자리에 섰다. 하나님이 사명을 주셨다. 복음적 통일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오기를 북한가서 특새를 하기를 간구한다.

모두 준비하려고 한다. 열명의 보좌진 중에 탈북민을 채용했다. 이들이 통일 되었을 때 그곳에 정치가가 되기를 바란다. 많은 탈북민이 성공을 했으면 좋겠다고 여긴다. 성공을 보고 북한 주민들이 대한민국이 얼마나 좋다는 것인지를 알리고 싶다. 그래도 감사하다. 나라에서 감사가 있지만, 북한 사람을 위해 산다면 품을 수 있다면, 모두 좋다. 파트너로 챙길 수 있어서, 복음의 자유를 위해 사는 것이 좋다. 여기온지 15년이 된다. 자유를 호흡하고 복음으로 호흡하게 하고 싶다. 고향땅에서 특새를 하도록 만들어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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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님--
지성호집사님,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다. 탈북인으로 성공자이며 작은 불씨가 되어 통일의 역사를 위해 놀라운 일꾼으로 쓰림받기를 원한다. 겸손한 자로 북한을 위해 노력하고 주님 앞에 온전히 쓰임받기를 바란다. 당신을 통하여서 열방이 주께 돌아오게 되리~~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살다보면 어려운 짐들도 많지만 지성호집사님으로 인해 믿음으로 이기고 힘내야 한다.주님 앞에 힘들어도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영광돌리는 자 되어야 한다. -담임목사님-- 
찬양~~!! 하늘 문이 열리고~~ 찬양, 함께 하면서 북한을 위해서 기도하자.

 

♣요약
은혜의 이 자리에, 이 교회에서 폭포수 같은 은혜를 사모하고 기도할 때, 그리스도가 왕이 되어 주심을 믿어야 한다. 모든 영역에서 왕관의 보석처럼 빛나게 하실 것을 믿고, 북한을 품고 기도하는 자 되고 우리 주님의 자녀로서 서로 사랑하며 복음적 통일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방인 갈렙을 개에서 유다지파인 왕족으로 삼으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을 만유의 왕으로 경외하고, 자비롭고 인자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친밀하여져서 주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가 되어야 한다. 모든 기도를 간절하게 하여 우리의 공동체가 주님 나라에 온전한 헌신자가 되어 복음의 씨앗을 심는 은혜로운 기적의 특새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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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새벽부흥기도회(주후 2021년 4월 13일)

제목: "영원한 시각으로 보는 하나님의 영광(榮光)(고린도후서 4:16-18절),
"온전케 하시는 왕이 치유(治癒)(마태복음 9:35-10:4).
말씀: 고린도후서 4:16-18절, 마태복음 9:35-10:4.

설교자: 존 파이퍼 목사님(베들레헴침례교회), (이동원 목사님-지구촌교회) 초빙.
사회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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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폭포수가 되어 치유와 위로가 되며, 복음의 능력이 회복되고, 말씀이 깊이 체험되어, 이른 비와 단비의 은혜가 충만히 내리기를 소원한다. -담임 목사님-


*존파이퍼 목사님(베들레헴침례교회)

(고린도후서 4:16-18절)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바울은 고통 속에서 말하고 있다. 본문에 보면 ‘낡아진다’라고 말하는데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인간은 타락한 죄의 본성 때문에 낡아진다. 타락만 인간으로서 가진 ‘죄성’이 성도 된 자신을 낡아지게 한다.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말이다. 바울이 ‘바로 이거야’ 라고 강조하는 것이 있다. “우리의 겉 사람이 낡아지는 것은 ‘죄성’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낙심하지 않는다. 대신, 날로 새로워진다.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진다. 바울은 ‘낙심하지 않는 비밀’을 알고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낙심하지 않고 날로 새로워질 수 있는 비밀을 알고 싶어 한다. 그 비밀을 파헤치기 전에, 마지막으로 16절을 함께 보자.

 

*고후 4:16절,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새로워진다는 단어의 함축(含蓄)된 의미를 살펴보겠다. 우리는 날로 새로워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새로워진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날로 새로워진다’는 것은 우리의 희망이 바래 가고 의욕이 시들어진다는 말이다. 이 사실이 제게는 큰 격려(激勵)가 된다. 바울은 ‘나에게 비밀이 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한 번 새로워지고 나면 더 이상 새로워질 필요가 없는’ 그런 것이 아니다. 실제로 바울의 말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현실적이다. 날로 새로워진다는 말은 여러분이 매일 새어 나가고 매일 시들어 가고, 매일 고갈되어 간다는 말이다. 여러분은 매일 새로워질 필요가 없다. 만약, 어제 주유한 기름으로 운전할 수 있다면 말이다. 만약, 어제 한 식사로 오늘 살아갈 수 있다면 말이다. 어제 새로워진 것으로 오늘 살아갈 수 없다. 바울은 비밀을 안다고 말하고 있다. 그 비밀은 본문에서 제가 찾고자 하는 비밀과 같다. 저는 단 하루도 낙심하고 싶지 않다. 매일 새로워질 수 있는 비밀을 알고 싶다. 매주, 매달이 아니라, 매일 그 비밀을 깨닫고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게 새로워진다는 뜻이다. 여러분이 바울에게 “당신이 파헤친 비밀을 알고 싶어요”라고 묻는다면, 바울은 “새로워지는 것이 비밀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본문 16절은 “우리는 낙심하지 아니한다 날마다 새로워진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이 영원한 영광을 위한 준비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후 4:17절, 본문의 핵심이다. 여기에서 “ 때문에”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무언가를 이루고 있다. 이것이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한다’고 말한다.

*고후 4:18절이 말하는 것은 단순히 ‘이것을 보라!’는 것이다. ‘볼 수 없지만 바라보라’는 것이다. 타락한 인간이 여러분에게 총을 겨누는 것을 바라보거나, 타락한 세상이 쓰나미로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면 여러분은 낙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쳐다보지 말라!!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사실,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볼 수 있는가? 모순이지 않는가??? 보이지 않는 것은 볼 수 없다. ‘볼 수 없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보라는 것이 말이 되나요?’ 바울이 한 말을 보면, 그리 어려운 말은 아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根據)는 볼 수 없는 무언가에 있다. 그 이야기는 잠시 후에 하겠다. 이렇게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낙심하지 않고 매일 새로워질 수 있을까요?

 

고후 4:17절에,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낙심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것을 바라보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 17절을 읽으면 무엇이 보이시나요? 바울이 평생 겪은 고난을 ‘잠시’라고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 여러분, 저는 67세이다. 은퇴할 나이다. 바울은 칼에 목이 베어 죽을 때까지 고난을 겪었다. 한 1. 2년 정도 낚시나 골프를 하며 즐길 수 있는 시간도 없었다. 바울에게 은퇴는 목 베임을 당한 다음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 만약 바울에게 이런 게 없었다면 그는 빈털터리가 되었을 것이다. 바울은 고전 15장에서, ‘만약 부활이 없다면 나는 어리석은 자일 것’이라고 고백한다. 바울의 삶은 매 맞고, 파선하고, 잠도 이루지 못하고 교회를 위해 겪은 괴로움으로 가득 했다. 그런데 17절을 보면,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이런 고난 세월을 ‘경하다’고 ‘잠깐’이라고 말한다. 말도 안 되는 말이다. 물론, 실상은 그렇지 않다. 비밀은 약 50-60년을 살았을텐데, 그 중 20-30년은 감옥 생활하고 핍박 받았다. 그런데 그런 삶을 ‘잠시’라고 ‘걍하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잠시’와 ‘영원’이란 단어가 대조를 이루고, ‘경함’과 ‘중함’도 대조되고 있다. 그 구조를 신경 쓰며 본문을 보면, “(잠시) 받는 환난이(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영광의)(중한 것)을...” 잠시와 영원함이 비고 되듯이 중한 것이 경한 것과 비교된다. 바울은 볼 수 있었다. 정말 보이니까... ??실제로는 보이지 않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무덤 뒤 영광을 보았다. 그리고 장차 보일 하나님의 영광과 그에게 주어질 영광을 보았다. 그래서 평생의 고난을 ‘잠시’라고 느끼게 된 것이다. 무게를 가볍게 여기게 된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지금 장난하나요?? 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을 위해 죽으라면서 그것이 가볍다구요?? 네!! 왜 그런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무엇을 바라본다는 말인가? 영광이다!!! 짧은 인생 대신 무덤 너머의 영광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잠시’로 또한 ‘경한 것’으로 보이는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봐야 할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한 가지 더 나누겠다. 현재 환난을 겪고 계신 많은 분들이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제게는 너무나 소중한 내용이다.

 

17절을 보면, ‘이루게 함’이니 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말은 환난이 잠시 지나갈 뿐만 아니라 가벼울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영광을 이루어 나간다는 말이다. 여기에 큰 의미가 있다. 이 말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말이다. 이 세상에는 말도 안될 정도로 많은 고통이 있기 때문이다. 끔찍한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뉴스에서는 별로 의미 없는 듯이 기사를 다룬다. 원래 그래 보이는 것이라고,, 보라가,,, 이것 무의미해!!!라고 말한다. 인도에서 23명의 아이들이 죽었다. 그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냥 점심 한 끼 먹으려 한 것 뿐인데... 모로코의 한 가정에도 그러했고, 보스턴에서도 그러했다. 세사 어디에나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다. 이제는 인터넷이 있어서 모른 채 지나갈 수 없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야 하지 않는가?? 우리는 이런 끔찍한 사건들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신학도 없다. 그냥 접할 수밖에 없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라고... 나중에 영원한 영광이 따라올 거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하겠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카케르가조마이‘-헬라오(성취하다, 행하다, 생산하다)라고 했다. 실례했다. 헬라어를 좋아해서... 가끔 던져지는데, 여러분은 모르셔도 된다. 이 단어는 준비하다, 생산하다, 유발하다이다. 조심스럽게 말씀드린다. 타락한 세상과 타락한 인간으로 인해 여러분이 겪는 고통이나, 순종하는 삶에서 여러분이 겪는 비극은, 장차 여러분만의 고유한 영광을 만들어 낼 것이다.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말이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믿는다. 따라서 누구라도 제게 “믿는 사람의 고통이 무의미하다”고 말한다면, 저는 일단 정숙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곧바로 제 말을 들으면 마음이 아플 테니 적절한 때를 기다릴 것이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무의미하지 않다‘고 말해줄 것이다. 암에 걸렸든지, 비난을 받았든자. 질병에 걸렸든지, 험담을 들었든지... 그 어떤 것도 무의미하지 않다. 17절은 내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무엇인가를 이룬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여러분은 그게 무엇인지 볼 수 없다. 그게 바로 18절에서 말하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어떤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봐야 하는가??

 

17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봐야 한다. 우리가 겪는 고난이 우리를 무언가를 이룬다는 약속 말이다.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다.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하고, 성경이 말하니까 믿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낙심하게 될 것이기에...

 

이제 세례 요한 이야기를 하고 말씀을 마치려고 한다.

제 이름이 ‘요한(john)’인데요... 저는 이 세상의 모든 ‘요한(john)을 사랑한다. 세상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조심해야 하는데... 저는 세례 요한과 그이 삶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가 삶을 마치는 장면을 보며 울지 않을 수 없다. 요한이 감옥에 갇혔을 때 일이다. 요한이 갇힌 이유는 다 알고 있듯이... 예수님께서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사람은 없다”고 말씀하셨다. 감옥에 갇혔는데 왜 감옥에 갇힌 지 아는가? 해롯왕 앞에서 “당신은 동생의 아내와 결혼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간음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매우 위험한 발언이다. 누구든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왕인데 말이다. 그런 이유로 해롯은 요한을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하지만 해롯은 두려워 요한을 죽이지는 않았다. 해롯 왕의 생일이 되었고, 자신을 위해 잔치를 마련했다. 해롯은 손님들을 접대하는 의미로 수양딸의 춤을 선보였다. 딸의 춤은 매력적이었다. 모든 사람이 만족할 만한 춤이었다. 다들 너무 좋아했다. 수양딸이 춤을 마치자, 해롯은 그이 딸이 손님들을 즐겁게 했다는 이유로 상을 주겠다고 말한다. “네가 원하는 것이면 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말한다. 소녀는 세례 요한을 싫어하는 자신의 어머니 해로디아에게 가서 물었다. “제가 무엇을 구해야 할까요?”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다. “세례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달라고 하여라”라고 했다. “네” 그녀는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돌아가 말한다. “세례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제게 주십시요!” 라고... 적막이 흐른다. 왕도 자기가 내뱉은 말을 취소할 수 없어 그렇게 하도록 명했다. 요한은 감옥에 갇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임할지를 생각하곤 했을 것이다. 문이 열리고 두 사라미 서 있는데 한 명은 칼을 들고 있다. 영문도 모른 채 침묵이 흐른다. “와서 무릎을 끓어라” 몸부림치면 묶어버리겠다“”무슨일입니까? 왜 그러시는 거죠?“ ”왕의 딸이 잔치에서 춤을 추었는데, 그 소녀가 네 머리를 달라고 했다. 우리는 네 머리를 가지러 왔다“라고 말한다. 요한은 마지막 20초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러분들이라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저는 제게 있는 모든 힘을 다해 호소할 것 같다. “하나님, 생일파티에 춤을 추던 소녀가 내 머리를 원한다고 목을 베라고 하다니요???” 세상에 이런 무의미한 일이 어디 있나요? 라고 말이다.

요한은 고작 성경의 두 구절 만에 죽었다. “하나님! 하나님! 무의미합니다! 영광스런 구석이 전혀 없다. 천국에까지 악취가 풍기겠어요” 제 소원은 하나님껫 요한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마지막 20초 동안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너에게 이루게 한다”는 생각을 주셨기를 바란다. 우리가 낙심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겪는 고난이 무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무의미해 보인다. 그래서 18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여러분이 거기서 그것을 보고 있다면, 요한을 죽게 놔주겠는가? 아마도 울며, 소리치며, 멈추라고 했을 것이다. 소녀가 춤춘 것뿐이니 그러지 말라고...미친 짓이라고, 말도 안되는 소설이라고,,,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그러했을 것이지요? 우리의 눈은 무의미한 것만 보려고 한다. 그러나 보이는 것만 보려 하지 말라.!!어머니가 돌아가시거나, 아이를 잃거나, 40세에 암에 걸리고, 인도를 걷다가 차 사고가 났을 때, 이건 무의미해라고 말하지 말라!! 그렇지 않다. 그 모든 여러분이 중하고 영원한 영광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라. 오늘 알게 된 이 진리들을 봍잡고 날마다 집중하고, 매일 아침 자신에게 선포하라.!! 하나님과 독대하며 스스로 머릿속으로 선포하라.! 여러분의 마음이 새로워지고 돌보심을 받고 있다고 당당하게 외칠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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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원 목사님(지구촌교회)
제목: "온전케 하시는 왕의 치유"
(마태복음 9:35-10:4절)

▷얼마 전에 이 펜데믹 시대를 지나가고 있는데 이 시대를 풍자하는 기도문을 보고 마음의 공감이 되었다. 카톡으로도 여러분들도 보았을 것이다.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는 기도문이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그동안 거짓의 막막들을 얼마나 많이했으면 주둥이를 마스크로 다 틀어막고 살라고 하신가요? 우리가 얼마나 다투고 시기하고 미워했으면, 거리를 두고 살라고 하십니까? 우리는 죄를 짓고 손으로 나쁜짓을 많이 했으면, 어디를 가나 손을 씻고 소독하라고 하십니까? 우리가 얼마나 열을 올리고 살았기에 가는 곳마다 체온을 체크하고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비밀스럽게 다녔으면, 가는 곳마다 연락처를 적어야 합니까? 이대로 살다가 돌겠습니다. 부디 여기서 멈추고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성경을 보면 인간 실존에 대한 비유는 양에 대한 비유이다. 우리시대의 인간은 적절한 비유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고슴도치에 대한 비유이다. 모든 동물은 이동할 때 떼를 지어서 이동한다. 그러나 고슴도치는 혼자 다닌다. 고독을 엔조이해서도 아니다. 고슴도치에게도 외로움과 고통이 되는 순간이 있다. 다른 고슴도치에게 그래서 접근한다. 또 다른 고슴도치를 만나는 순간 사고가 난다. 자기 등에 가지고 다니는 수많은 바늘로 그 상대방을 찌르고 자신도 찔림을 받는다.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다. 우리는 다 고슴도치와 같아서 그렇다. 그렇다면, 인생은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다가 끝나는 인생인가요? ‘성처입은 치유자’(운디드 힐러)라는 책이 있다. 예수님도 상처를 많이 받으셨다. 십자가는 그분의 상처의 크라이막스이다. 자신의 상처를 통해서 인류의 상처를 바라보시고 그 상처를 대신 짊어지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시고 구원하시는 구원자가 되셨다. 인생의 길에서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마땅하는가?

마태복음 9:35, 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왕으로 묘사한다. 마태복음에 2장에 왕으로 표현한다. 왕을 찾는다. 그리고 마지막장에는 모든 민족들의 왕이라고 한다. 모든 민족들의 왕이며, 만왕의 왕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Kig of Kings. 만주의 주, 그런데, 그분도 상처를 받으셨다. 받고 끝난 것이 아니라, 치유자가 되셨다.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상처를 많이 받는다. 시간만큼 받는지 모른다. 왕 되신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라면, 우리도 다른 이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자가 되어 나보다 더 상처받고 더 아파하는 인생을 치유하는 삶을 살아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상처 입은 자들의 사람의 마음을 읽는 눈이 열려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


I. 상처 입은 자들을 주목하는 눈이 열려야 한다.

*마태복음 9:36절.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he had compassion on them)

-그들을 보시고 주목하셨다. 봐야 섬기고 돌볼 수 있다. 우리는 보인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보지 못하고 지나가고 있을지 모른다. 한 인생은 쫓겨 다니는 인생, 한 인생은 이것을 소명을 위한 인생, 이것은(Called life), 이 인생이 지극히 작다한다. 모두가 쫓기다보니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치유자(治癒者)가 되겠는가?- 인생수업이라는 책이 있다. 유명한 사람이다. 치유자로 살려면 가만히 바라봐라.

▶당신의 고통을 보고 불쌍히 여겼다는 말씀이다. 기진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이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미국의 특이한 목사님이 한 분이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시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전도를 많이 하시는 분이시다. 교회가 불신자들을 전도하고 무슬렘을 복음을 전한다. 주님을 영접하는 것, 불쌍히 여겨달라고 늘 기도하신다. 우리의 모든 인생들을 주님이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이다.

 

II. 상처입은 자들과의 공감의 가슴이 있어야 한다. -공감이 되어야 한다. 불쌍히 여기신다고 한다.

*마태복음 9:36절.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he had compassion on them)

 

▷복음의 3가지 케이스
1. 바오메오의 기도(The Prayer of Bartimaeus)
2. 한센병 열명
3.세리의 기도(The prayer of a Tax Collector)-불쌍히 여겨달라고 한다.
그들의 기도에 불쌍히 여겨달라는 것과 강력한 중보기도이다. 내 가족, 내 남편, 내 친구, 모두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식당에서 점원이 불친절하다. 화가 나더란다. 잠시 기도를 했다고 한다. 주님께서 사정이 있다고 말씀하셔서 그녀를 위해서 기도했다고 했다. 요금 지불을 하다가 팁을 얼마를 줄까하다가 3불을 놓으려고 하니 적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도했더니 10불을 놓고 가라는 생각을 주셨다. 손님이 달려와서 돈을 돌려드린다고 했다. 자매를 격려하고 싶다면서 서비스가 엉망이었다는 것을 말하며 남편이 어젯밤에 떠났다고 했다. 그래서 목사님은 기도하겠다고 하신 후 계속 자매를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예수님을 전하고 왔다고 한다. 기뻐했다고 한다. 나보다 더 힘들어하고 고통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바라보라. 이런 상처 입은 이웃을 공감하기를 기도하고 상처 입은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III. 상처입은 자들을 제자 삼는 헌신이 있어야 한다.

*마태복음 9:37-38절,
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0:1절,
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를 부르신 것이다. 여기 주님은 열두 명을 제자라고 부르지 않으신다. 열두 사도-보냄받은 자, 제자-배운다. 선교자(미션너리)-보낸다. 이다. 우리가 복음을 필요한 자에게 보내신다면 우리는 다 선교사이다. 그들을 온전케 하는 사역이다. 디자어링 텔레이오스- 성숙과 같은 말이다. 우리의 과제이다. 제자의 사명, 열두 사도의 사명이 된다. 열두 사도 어떤 제자로 열두 제자를 묵상했다. 격리하면서 책을 썼다. 본문에 사도를 열거하시면서 3명의 제자를 수식어를 붙인다. --------------------‘열두 사도 이야기’ 책을 보라.

 

1)베드로라 하는 시몬(반선이 되어간 사도)
-
내 발을 씻어주신다. 베드로는 왔다갔다 한다. 주님을 부인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장차 이런 시몬이 주님앞에 붙들림을 받아 기초석이 될 것을 하나님은 보신다.

2) 세리 마태 가나안인(셀롯인, 열심당원) 시몬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열성당원, 시카리파,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 두 명의 제자를 놓고 설교하신다. 그들은 이념을 극복하고 복음 앞에 순종하여 땅끝까지 나가게 된다.

3) 유다 가롯유다,(예수를 판자/하나님의 뜻)
-십자가를 위해 필요한 제자-끝까지 사랑하며 열두 제자의 계획 속에 있었다. 성숙하지 않으면 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작년에 나는 가장 힘들었다. 둘째 아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으로 갔다. 참척(慘慽)의 고통을 당했다. 자식이 죽으면 다르다. 부인이 죽어도 그렇지 않다. 자식이 죽으면 그 마음이 있다. 대장암도 4기였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갔지만, 누구나 그런 것처럼 기적을 보여달라고 기도했다. 중보자들도 함께 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 아들이 부르시면 어떠나하는 생각을 해보니 기적보다는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해달라는 성숙을 기도했다.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하나님의 관계를 물었다. 나 하나님만 바라본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두 가지 말만 했다고 한다. 주님만 집중한다고 했다. 고백했을 때 주님 품안에 안기면 된다는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유골을 들고 오면서 유골에다 "주님만 바라봅니다." 기록해 두었다. 여러분도, 주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글로벌한 모든 식구들에게 온전한 성숙이 있기를 바란다.


♣요약

환난은 피할 수 없다. 잠시이다. 잠시 환난 거너 편에 영광을 준비하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성숙하게 온전하게 길을 갈 수 있는지를 바라보며, 이웃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라.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라. 만져주시고 새롭게 하시고 이 환난 뒤에 영광을 보여 주시며, 우리의 삶을 잘 감당하고 온전케 하시며 제자, 사도의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터치를 바라보며 자비롭게 임하시어서 상처입은 자를 보듬어 주고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 일들을 하나님은 보이게 하시니 믿고 보이지 않는 것에 의지하여 주님께 집중하고 상처와 짐들을 진 자들을 위로하여야 한다.

☆포루투칼 바아나 셔프 교회 (누오 몰리에나 목사님)
-포루투칼 북부 바아나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누노 목사이다. 사랑의 교회의 많은 형제자매들이 새벽부터 함께 모여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은 큰 위로가 되었다. 여러분이 특새를 위해 일어났을 시간을 생각할 때 참 격려가 되었고, 이곳 유럽에 있는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되었다. 여러분은 특새 후 성령 충만하여 쉼터로 가셨다. 이는 유럽에 있는 우리에게는 엄청난 일이다. 이제 여러분에게 이곳 남유럽을 위한 기도를 부탁드리고 싶다. 남유럽의 부흥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성령께서 수백만명의 사람들을 만져 주시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란다. 성령께서 그들의 눈과 귀와 마음을 여서서 예수 그리스도으 구원을 깨닫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소원한다. 남유럽의 교회와 신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시고, 우리가 성령충만하여 그리스도만으로 온전히 만족하기를 기도부탁드린다. 감사하다. 여기서도 나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놀랍게 축복하시길 기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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