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리브스 목사님(*존 스터트 목사님 제자, 영국 유니온신학교 총장) ▶바울은 우리가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았다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에 대해 불안해하는 불안의 영도 받지 않았다.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아 “아바, 아버지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도 바울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바울은 로마서를 헬라어로 기록했다. 그런데 갑자기 중간에 아람어 단어인 ‘아빠’(Αββα)‘가 나온다. 왜 그랬을까요? 왜 헬라어로 기록하다가 갑자기 이 단어만 아람어로 쓴 것일까요? 전부 헬라어인데 오직 이 한 단어만 아람어이다. *마가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장면을 보면, 이 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하셨다. -바울은 우리가 양자로서 하나님과 누리는 친밀함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과 가지셨던 동일한 종류의 친밀함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마치 예수님처럼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한 교제 가운데로 나아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도 예수님 자신처럼 하나님을 ‘아빠Αββα)’라고 친근하게 부를 수 있게 허락해주신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은 복음이 우리에게 준 선물(膳物)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종(從)으로 삼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 됨을 우리와 공유하신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입양(入養)되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아들과 딸들이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아들이신 예수님의 영을 받았고, 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을 아들만이 부를 수 있는 ‘아빠’(Αββα)‘라는 말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영원히 사랑받는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넘치도록 부어주신 사랑을 우리에게도 나누어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분 안에 있는 생명을 주셔서 우리를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보좌로 인도하신다. 우리는 이제 그저 ’용서받는 죄인‘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아들의 영을 받은 ’지극히 사랑 받는 자녀‘가 된 것이다.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이 기쁜 소식을 깨달은 자들은 행복한 마음으로 열심을 내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다.
요한복음 말씀을 생각해 보자.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말씀이 육신이 되셨는데, 이 말씀은 어둠을 내어 쫓는 빛이라고 증언(證言)하고 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救援)은 어떤 구원인가요? 요한복음 1:12절이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웨일즈의 위대한 설교자 마틴 로미드 존스 목사님은 로마서 8장을 해석하면서 이렇게 말씀했다. “사도 바울의 가장 큰 관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영적인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된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 찬양하며 ’아빠 아버지‘라고 외쳐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완전히 확신하여서 외부로부터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相續者)이자 그리스도의 공동 상속자임을 의심(疑心)하지 않는 것이 바울의 소망(所望)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聖徒)가 확신(確信)에 차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하는 모습은 그가 하나님과 구원에 대한 근본적(根本的)이고도 아름다운 진리(眞理)를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만든다. 우리에게 큰 위안(慰安)과 기쁨을 준다. 예컨대, 어떤 부유한 왕의 자녀가 되는 일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온 우주(宇宙)의 통치자(統治者)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은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도 없는 은혜(恩惠)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은 그저 죄(罪) 용서만 받는 것 이상의 은혜인 것이다. 진실로 더 확실하고 안전한 것이다. 다른 종교(宗敎)의 선물도 혹 잘못을 용서해준다고 하는 경우가 있을지 모르나,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맞아주시고 기꺼이 안아 주신다. 그리고 다시는 우리를 내보내지 않으신다. 자녀는 말을 안 듣는다고 해서 버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우리는 관계(關係)는 ’사랑한다‘, ’안 한다‘ 이런 식으로 변덕(變德)스럽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벽(完璧)하게 행동해야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증명(證明)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요한복음 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영원히 누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하고도 완전한 사랑을 받는 아들이시다. 하나님은 절대(絶對)로 아들을 적당(的當)히 사랑하거나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 아버지의 바람대로 예수님은 이런 사랑을 나누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히 2:11),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다(히 11:16). 은혜의 보좌(寶座)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큼 우리에게 확신과 기쁨을 주는 것은 없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리하도다.”(요일 3:1). 우리는 이런 존재(存在)들이다.
*칼빈은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의 목적(目的)은 우리를 회복(回復)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우리를 ‘사람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는 것이다. -지옥(地獄)의 상속자가 천국(天國)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목적이다. 하나님의 축복의 핵심은 ‘자녀 됨’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가장 큰 축복(祝福)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에 우리의 노력(勞力)과 공로(功勞)는 아무 소용(所用)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노력은 우리의 종으로 만들 뿐이다.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다. 자기 노력으로 더 열심히 기도하고, 더 열심히 사역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고 발버둥 쳐봐야 종이 될 뿐이다. 그러나 좋은 기업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은혜로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복을 철저히 은혜로 주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영적(靈的) 전투(戰鬪)의 핵심(核心)이다. 철저(徹底)한 죄인(罪人)이 철저히 은혜로 입양되는 것이다. 우리는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자주 흔들리고, 믿음도 연약(軟弱)하고, 죄악으로 얼룩져 있고, 신앙인(信仰人)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삶이 형편(形便)없어. 그러니 하나님이 이런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의심스러워’ 그러나 사실 우리의 신앙생활이 형편없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이러한 생각 때문이다. 우리가 사탄이 뒤집어 놓은 복음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행실을 바르게 해야 비로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자녀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아버지의 사랑을 얻어야 한다는 말을 자녀에게서 듣는 아버지, 상상이 됩니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는 이렇게 생각하신다. “얘야,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란다. 나는 언제나 너를 사랑한단다. 내가 죄의 유혹에 넘어질 때도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네가 나를 잊고 살 때도, 의도적으로 나를 화나게 하는 일을 할 때에도,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 딸아, 나는 항상(恒常) 너를 사랑하고, 네가 하는 그 어떤 일도, 심지어 죄나 죽음조차도 내 사랑을 끊을 수 없단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依支)하게 된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기도(祈禱)하게 된다. 증거를 보고 싶다면, 저와 함께 여호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따랐던 구약의 인물을 보십시다. 구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다고 기록된 인물이 누구인지 아신가요? 바로 갈렙이다. 갈렙은 매력적인 인물이다. 민수기 13장을 읽겠다. 가나안 땅에 보낸 정탐꾼(偵探)의 이름이 나온다. *민수기 13:4절,
*민수기 32장 12절을 보면, -그나스의 아들 여분네의 아들 갈렙, 그나스 사람은 가나안의 이방인이다.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가나안 족속과 그나스 족속과 옛 족속과 아모리 족속에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여분네는 그나스의 족속 사람이다. 갈렙의 아버지는 이방인이었다. 그러나 갈렙은 이스라엘에 합류한 이방인이었다. 이제야 갈렙의 이름 뜻이 이해가 간다. 이스라엘은 항상 ‘이방인(異邦人)’을 ‘개’라고 여겼다. 갈렙이란 이름은 ‘개’라는 뜻이다. 갈렙은 자신의 이름을 명예훈장(名譽勳章)처럼 여겼다. 태어날 때부터 갈렙은 개였다. 그러나 유다 족속에게 입양되었다. 갈렙의 입장에서 보면, 이방인 개가 유다 족속이라는 ‘왕족’이 된 것이다. 갈렙이 온전(穩全)히 하나님을 좇았다고 반복해서 기록된 것은 우연(偶然)이 아니다. 하나님의 품에 안겼기 때문에 갈렙이 바알에게 절을 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갈렙은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고 하나님의 위대(偉大)한 용사(勇士)가 되었다. 그때 나이가 80歲였다. 갈렙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갈렙은 하나미의 백성이 되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전능자(全能者)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꿔 달라고 기도하라.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을 아신다. 우리가 기도하기 힘들어한다는 것도 아신다.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는 것도 아신다. 이 말은 우리가 기도의 용사인 척할 필요 없다는 뜻이다. 우리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을 내뱉기만 해도 된다. 기도하기 힘들다면, 그냥 내뱉으라. 자녀가 아버지에게 말하듯이 말이다. 도움을 구하라.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자애로우신 아버지 앞에 나가는 자녀의 용기 정도만 가지고 하나님께로 가라. 그리고 하나님과의 친밀감(親密感)을 간구(懇求)하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다.
*누가복음 11장 5절, -예수님은 ‘기도란 하나님과 우정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交際)하길 원하신다. 하나님은 자비로운 분이시니 기도할 때는 하나님께 뻔뻔하게 간청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의 비유에서 벗의 간청함, 즉 뻔뻔함 때문에 그가 요구대로 준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우리도 이처럼 하나님께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증명해달라고 요청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담대한 자의 기도를 기뻐하신다. 기도할 때 민망(憫惘)해 하지 말라.
*이사야 49장 15절에, 이와 비슷한 말씀이 나온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는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예수님은 이런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가 기도의 핵심이라고 강조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할 때, 본능적으로 예수님을 빼고 하나님만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主님이자, 審判者’로 생각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렇게 여기면, 하나님은 죄인인 나의 기도를 듣기 싫어하실 거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죄책감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친밀(親密)하심을 생각할 때, 우리를 받아 주신 아버지의 넓은 팔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고 싶어진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기도할 때,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 되심을 꼭 붙잡고 기도하기 바란다 여러분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양자의 영을 받았다. . *지성호의원(집사님). 북한주민으로 살다가 와서 자유대한 민국의 사람으로 사는 것에 당당하다. 하나님은 항상 일하셨다. 모든 것도 하나님의 손에 계심을 안다. 북한땅에 가까이 왔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보면서 통일의 기적을 주심을 믿는다. 대한민국 교회가 북한을 품고 기도한다면 될 것이라 믿는다. 지금 국회에서 내가 막내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주셔서 받고 있다. 나이에 비해 노안이지만, 그래도 사랑을 받는다. 하나님께 진심을 다해서 모든 사람과 잘 지내니 좋다. 함께 어떤 상황이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살아가고 있다. 나이가 어리지만 함께 일하는 분들을 존경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평양에도 못 가 본 사람이 넘어왔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와서 사랑의 교회에 와서 새신자가 되었을때, 옷을 사주셨다. 이것이 사랑의 교회의 힘이 되었다. 작은 자들을 위해 기도해서 세워주셨다. 그옷으로 미국으로 온 세계를 다녀왔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했다. 북한에서도 사람들이 있고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이 있다고 선포하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팔과 다리가 없는데도 그 눈물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2018년을 잊을 수 없다. 백악관 방문에 미 상하의원들이 가득 차 있던 그날을 기억하게 했다. 북한 땅에서 고통받았던 설명을 하니 상 하의원들이 일어나 보라고 했다. 전 세계를 향해서 목발을 들어 보였다. 그 함성은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해서 기도하게 했다. 북한의 주민들의 인권을 위해 선포함에 미국 사람들이 북한 인권법을 만들었다. 역사의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악은 선을 이길 수 없고 그때 자유가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탈북 전에 살아야 하는 북한 땅에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함격북도 산골짜기 오지에서 살았던 삶이다. 눈이 여름에도 내리는 곳이다. 북한 수령이 신이라고 하는 곳인데, 그 삶의 현장에 살다가 왔다. 사람이 그것을 먹고 살 수 없고, 아사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굶어죽으면 옥수수 가루를 준다. 아버지는 옥수가루를 가지고 가고 준비하는 게 인간의 삶이 말이 아니었다. 이런 세상이 북한에 지금도 있다. 하나님의 택한 자녀임을 확신한다. 북한 주민을 위해서 울지 않으면 안되는 삶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옥수수 가루로 힘얻어서 남한으로 온 것이다. 아버지의 일한 삯을 받지도 못한다. 대한민국은 옥수수 가루로 닭 사료로 사용하는데, 국민을 돌볼 책임이 있다. 북한은 사람을 짐짝처럼 여긴다. 죽음을 쉽게 여기는 곳이다. 철길에서 손과 발이 잘렸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마취제가 없어서 눈을 뜨고 수술 받았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톱으로 다리를 써는데 너무 무서웠다. 사람으로서 맑은 정신을 가지고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리가 절단되고 손이 절단된 것을 보신 아버지는 잘려진 것을 묻으라고 하실 때 너무 힘들었다. 이 모든 것은 그래도 살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이다. 북한을 보면서 마음이 늘 아프다. 아버지와 약속을 했다. 마지막 이별에서 꼭 모시러 오겠다고 했다. 조선족 교회에서 하나님을 무식하게 믿었다. 하나님께서 두만강을 건너오게 했다. 무엇을 의지했을까요? 오직 하나님만 의지 했다. 1만 킬로를 걸었다.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서 일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놀랍다. 일을 이렇게 하게 하신다. 부모님도 못해셨던 그것들을 하신다. 중국에서 돌아오지 않으신 것은 알고 보니 인신매매가 되셨다.탈북자를 돌보면서 북사선에서 사랑의 교회에서 지금 이렇게 돌보고 우족 우손을 해주셔서 이렇게 살고 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북한에서는 일용할 양식인데 남한에서는 남아돈다. 두만강에서 잡혀서 고문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저도 누군가의 아들이다. 북한의 자녀들도 자녀이다. 북한도 같은 사람이다. 이 간증이 지성호가 아닌 이 사랑의 교회 이 공동체에 전달되었음 한다. 그 많은 고통에서 일어나 이자리에 섰다. 하나님이 사명을 주셨다. 복음적 통일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오기를 북한가서 특새를 하기를 간구한다. 모두 준비하려고 한다. 열명의 보좌진 중에 탈북민을 채용했다. 이들이 통일 되었을 때 그곳에 정치가가 되기를 바란다. 많은 탈북민이 성공을 했으면 좋겠다고 여긴다. 성공을 보고 북한 주민들이 대한민국이 얼마나 좋다는 것인지를 알리고 싶다. 그래도 감사하다. 나라에서 감사가 있지만, 북한 사람을 위해 산다면 품을 수 있다면, 모두 좋다. 파트너로 챙길 수 있어서, 복음의 자유를 위해 사는 것이 좋다. 여기온지 15년이 된다. 자유를 호흡하고 복음으로 호흡하게 하고 싶다. 고향땅에서 특새를 하도록 만들어 가겠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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