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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새-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1년 2월 27일)
제목: ''어디로 가는지 이기게 하시는지라''
말씀:삼하 8:13~14절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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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8:13~14절)
13 다윗이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 죽이고 돌아와서 명성을 떨치니라.
14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가난한 집은 돈이 원수!
부자는 혈육이 원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이기게 하시고 하나님이 내 주인 되시고 내 인생을 붙잡는 한 수많은 난관도 승리할 수 있다. 하나님께 집중하면 어떤 난관도 이길 수 있게 하신다. 모든 전쟁 가운데에서 그건 맘대로 할 수 없지만 선교사 마인드로 하나님께서 이길 수 있게 하신다. 내가 어떻게 마음의 소원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자기 맘대로 이겼다고 하지 않았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하셨다. 내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을 한 명 한 명 붙잡아 주셔서 모두가 승리하게 되길 소원하며, 영적 모멘트가 되어야 한다. 다윗이 무너진 장막을 세운다는 장면이 있다. 우리가 세상 가운데서 마음의 상처로 인해 감당하지 못한 것처럼 다윗의 장막이 무너졌다고 했다. 혹시라도 무너진 다윗의 장막이 되었을지라도 오늘 이 주님의 말씀으로 기백으로 무너진 장막을 일으켜 세우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영원한 왕국을 주셨지만, 그것은 다윗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후손으로 통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동일하게 주시는 것이다. 영적 성인식에서는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 다윗의 승리를 통해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길 기도한다. 이 코로나 사태에서 교회에서도 한국교회를 비판하는 자 되지 말고 영적으로 똘똘 뭉쳐서 주님과 친밀해서 영적 기백을 통해서 함께 모여 서로 격려하고 살아가야 한다. 등대와 시계를 같이 가야 하듯이 이런 함께 사랑하고 영적으로 나누고 뭉쳐서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런 특공대가 되어야 한다. 에돔을 향한 승리가 다윗 전체의 승리일 수 있었다. 힘 든 상황 가운데서 이긴다는 것이 만사형통이 아닌 수많은 어려움이 있어도, 내 삶에 이 고통이 있어도 하나님은 어떤 환경에서도 승리를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다윗 왕국을 계승할 하나님 나라의 일꾼을 양성하는 것이다.


요약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난관도 결국은 승리할 수 있다.  내 삶에 이 고통이 있어도 하나님은 어떤 환경에서도 승리를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 교회가 영적인 성인식과 다음 세대의 서교사 파송식을 통해 거룩하게 재편된 하나님 나라의 강력한 군대가 되어 세상과의 영적 전쟁에서 완승하여야 하며, 영가족 모두가 간난시고(艱難辛苦) 가운데서도 고치시고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손길로 인하여 희년의 나팔을 부는 평생이 되어야 한다. 우리 교회 사랑글로벌 아카데미 개교를 감사예배로 드리므로 우리 입학생들을 봄의 생동감이 충천하여 돋는 새싹처럼 새롭게 하시길 기도하자. 세대차이가 없이 한결같이 말씀 안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며 세상은 부정적, 오염된 것, 흐름, 경제적, 정치적, 사람들이 마음이 왔다 갔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성인식과 파송 식을 통해 영적인 야성과 뚝심으로 똘똘 뭉쳐서 주님만을 섬기며 전하는 주님의 기쁜 자녀로 성장해 가길 소원한다. Spiritual Desire 영적 갈망이 있어야한다. 일꾼 되기 위한 소망을 품고 나아가야 한다. 복음적 인재를 양성하게 하는 아름다운 교회로 발 돋음 하기를 소원한다.

-그는 아람 인들과 그들의 동맹국인 에돔 사람들을 물리침으로써 특별한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 다윗이 명예를 얻으니라. 그 전쟁에는 무언가 비범한 요소가 작용하여 그에게 대단한 명성을 가져다주었지만 다윗은 겸손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그는 에돔 족속들에 대하여 승리를 거둔다. 그들은 모두 다윗의 종들이 되었다. 모압이 이스라엘 여러 왕들 밑에서 오랫동안 속국이 되었듯이 에돔은 오랫동안 유다의 여러 왕들 밑에서 요람 왕 때까지 속국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에서가 시간이 흘러 때가 되면 자기 목에서 그 멍에를 떨쳐 버리리라는 이삭의 예언과 같이 요람 때에 그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이와 같이 다윗은 정복을 통하여 아들에게 장기간의 자기의 아들이 성전을 건축할 만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평화를 확보해 놓았으며, 또한 아들에게 재물을 모아 주어 아들로 하여금 그 재물을 가지고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종들을 매우 다양하게 사용하신다. 그는 혹자는 신령한 전투에 사용하시며 혹자는 신령한 건축에 사용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사람들로 하여금 타인을 위해 일하게 하신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께서는 모두를 통하여 영광을 거두시는 것이다. 즉 다윗과 마찬가지로 다윗의 모든 승리는 사단의 왕국에 대한 복음의 승리의 전형이었다. 즉 다윗과 마찬가지로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께서도 사단의 왕국을 정복하시며, 또한 계속 정복하시기 위해 전진하셨던 것이다.

 

 

 

 

 

 

                                                      ---------------------------------------------------------
                        ※ 아프리카에서 선교로 순교하신 유승렬 선교사님, (사모님 김경옥 선교사님 코로나로 치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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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주후 2021년 2월 24일)
제목: “끝까지 잘 감당합시다.”
말씀: 디모데후서 4:9-11절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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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4:9-11절)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비가 오나 눈이오나 코로나가 있으나 없으나 지나간 선대 옥한흠 목사님 25년, 담임목사님 18년, 43년을 제자훈련, 사역훈련 이렇게 개가예배 드리고 수요예배 드리면서 한결같이 사역을 감당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한다.~~!!!

우리교회는 일 년에 몇 차례 교회에 태극기와 교회기를 갖다 놓는다. 광복주일, 교회 창립기념주일, 부활주일 그리고 교회 중요한 때에 태극기와 교회 기를 놓는다. 그렇다면 이것을 갖다 놓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43년째이다. 그래서 이 제자훈련, 사역훈련의 개강이 중요한 것은 바로

1. 무게감과 사역의 우선순위가 되는 것이다.
2. 이 사역훈련, 제자훈련 기간 감사예배를 드리고 있다. 우리의 마음의 자세는 앞으로 1년간 더욱 헌신하는 것이다.
-헌신의 거룩한 습관을 가지고 헌신의 거룩함을 실천하는 것이다.
진짜 은혜는 헌신할 때 받는 것이다. 헌신은 전 생애를 관통하는 것이다. 자녀들이 만약에 주님 나라를 위해 헌신한다면 감동일 것이다.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제대로 거룩한 습관으로 헌신을 해야 한다. 부족한 나에게 만 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헌신의 은혜를 주시길 기도하고 찬양하자.
-주님의 십자가 나도 지고, 신실한 믿음과 사랑으로~~

평생 헌신의 은혜가 충만 합시다.~~끝이 아름다워야 한다.
본문, 9-11절에 보면, 너는 이라는 사람은 바로 닥터 누가이다. 그 다음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해서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한다. 누가만 함께 있다며 유익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개인적인 소식들을 주면서 바울이 사사로운 부탁을 하는데, 한 생애를 통하여 여기 3사람이 나오고 있다. 누가, 데마, 마가이다. 우리는 한 생애에 살면서 이 데마와 누가와 마가의 역할 같은 삶 가운데 우리는 무엇을 참고해야 할 것인가? 성경에는 처음에는 거창하게 시작하다가 끝이 안 좋은 사람이 있다. 대표적으로 사울 왕 같은 사람이다. 처음에는 좀 부족해도 나중에는 회복 된 사람이 있다. 마가이다. 감사한 것은 의사 누가는 시종일관 From beginning, To the end, Consistent power, 한결같이 끝까지 가는 것이다. 우리 속에는 데마 같은 속성, 누가 같은 속성, 다 있다. 그러나 훈련은 거룩한 습관을 만드는 것이어서 제2의 천성이 제 1의 천성이나 본성을 우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데마와 같은 약점은 죽이고, 마가와 같은 사람이 되면 마음을 모아서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해야 한다. 훈련은 거룩한 습관으로 예배와 훈련에 집중해야 한다. 잘 정리를 해서 누가처럼 한결같이, 시종일관하여야 한다. 그러하지 않아도 꾸준히 묵묵히 무게감을 가지고 거룩한 습관으로 주님과 동행하면서 끝이 아름다운 훈련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데마와 같은 속성을 정리를 해야 한다. 데마는 처음에는 대단했다. 함께 이름을 날렸다. 데마가 대단히 영웅적이었다. 그러나 바울을 좇는 것이 희망이 없어 보였다. 사역에 영적으로 엄청난 사역이었다. 그러나 바울이 순교하게 되자, 데마가 자신의 인생을 종치는 것 같아서 바울을 떠나버렸다. 우리의 속성과 비슷하다. 겉으로는 이랬는데, 데마의 속사람이 능력이 없었다. 속사람, 내면이 영적으로 어떤 영적전쟁을 감당할 능력 없었다. 신앙의 본질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신앙과 인격은 속사람의 강건함이다. 뭔가 서기만 해도 은혜가 되고 빛이 난다. 뭔가 뭉클하다. 무엇으로 증명이 되는 것인가? 속사람의 능력과 강건함이 중요하다. 그것이 데마에게는 없었다.

 왠만한 어려움을 이겨낼 만한,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고, 이겨낼 만한 삶의 목표가 약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큰 비전을 붙잡히는 능력이 없었다. SAGA란 이유가 무언가?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이 사랑 예수님의 대 계명과, 글로벌- 예수님의 지상 사명과, 아카데미-하나님 나라의 인물, 그것이 갖추어져야 하는데, 글로벌 스탠다드로 하나님 나라의 전체를 위해, 기도하고, 너무 속이 좁다. 더 큰 비전에 사로잡혀야 한다. 영적으로 강국으로 가서 더 큰 비전을 잡혀야 한다. 속사람이 강건하고 더 큰 비전을 사모해야 한다. 그럴러면, 훈련기간에 속사람의 강건을 위해 토비새를 나와야 한다. 뭔가 속사람의 강건함의 계기가 필요하다. 기도제목을 서로 주고받고, 후원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더 큰 비전과 용량을 갖도록 반드시 훈련을 통해 그 사람을 깨뜨신다. 그래서 더 큰 비전에 사로잡히도록 해야 한다. 나와 안 맞는 사람을 함께 앉혀 놓기도 한다. 신경 쓰인다는 것은 내가 가진 판단 기준이 좁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좋게 바뀌는 것이다. 수많은 연단과 수많은 고난이 있게 된다. 그러나 훈련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데마적인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강건함과 더 큰 비전과 믿음의 용량을 주시기 위해 훈련을 하게 하신다. 마가는 한 마디로 라틴 식 이름이며, 요한은 히브리식 이름이다.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120명이 모였다. 기도하는 다락방으로 봐서는 아주 부자이다. 사도행전 13장에 중도 하차를 하게 된다. 마가와 대판 싸운다. 그래서 마가를 보면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심기일전을 해서 마가로 인해서 힘든 적도 있었지만, 마가를 데려오라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 사도 베드로의 믿음의 아들처럼 되었다. 베드로와 마가는 동행했다. 12제자 안에 들어가지 안 들어가지만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을 남기고 있다. 마가복음이 자유주의 신학의 큰 역할을 한다. 마가복음은 행동의 복음이다. 마가복음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즉시로(Immediately)이다. 곧, 바로, 예전의 실수를 기억하였다. 바로, 곧, 즉시 마가적인 연약함, 이런 부분들이 훈련을 통해 잘 다듬어져서 다시 회복되어 즉시 실천하길 소망한다.

마지막에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죄인으로 태어났지만, 주님의 온전함으로 닮아가려고 하는 선함도 있다. 하는 그런 롤 모델이 바로 누가이다. 시종일관이며 바울의 주치의이기도 하다. 하나님 나라에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정치적 색을 띄지 않고 기도하고 이 민족의 역사가 복음의 역사가 되고 헌신이 되어 복음의 전사가 되기를 소원한다. 통찰력 있는 역사와 시각이 있는 누가는 한결 같았다. 누가는 그가 가졌던 생각의 틀 전환을 잘했다. 전체를 보는 능력이 뛰어났다. 마태는 갈릴리를 바다라고 했다. 누가는 호수로 말한다. 마태는 갈릴리를 벗어나 본적이 없고, 누가는 바울과 함께 곳곳을 자기 집 안방처럼 돌아다녔다. 그러니 게임이 안 된다. 믿음의 용량이 커졌다. 믿음의 용량을 키워야 한다. 섭섭함이 있다하더라도 영적 통찰력이 있으면 우리도 한결같이 된다. 누가는 그 실력 있는 의사이며, 문학, 이공계의 지식을 완전히 갖춘 지성인인데도 늘 성령을 사모했다. 사도행전은 누가가 기록했다. 성령의 행전이다. 성령으로 도배되어 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했다. 우리 속에 있는 데마적 속성들을 정리하고 우리 속에 있는 마가적 부족함도 즉시 변화하여 누가처럼 한결같이 시종일관 역사적 통찰력과 성령의 인도함에 민감해져서 이번 기수를 잘 감당하기를 바란다.

우리 교회 본당의 꽃들은 모두 생화이다. 우리교회 본당에는 페이크(fake-모조품)가 하나도 없다. 우리 교회 제자훈련도 오리지널이 되어야 한다.

♣요약
1바울은 디모데에게 빨리 올 것을 명한다. 바울은 디모데가 함께 있어서 도움을 주기를 원했다. 그 이유로는 여러 사람이 그를 떠났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렸다'고 말한다. 이 현세를 사랑하는 것은 종종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도에서 떠나는 이유가 된다.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떠나갔고 또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 누가는 계속해서 바울과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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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1년 2월 21일)
제목: ''희년의 나팔을 불어라''
말씀: 이사야 61:1~3.누가복음 4:16~21절
설교자: 김정우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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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1:1~3)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누가복음 4:16~21)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빵집 새로 생겼다 '온전한 빵집'이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온전한 삶이 되길 바란다. 온전한 언약이 있다.  
샬롬과 연관된다. 성경은 개인적이고 내면적이고, 영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정치, 문화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온전하심 같이 우리가 온전해 지기를 원하신다. 죄많은 세상에서 온전해 지는 것은 이사야가 메시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오늘 본문의 메시아의 모습이 정말 유니크하다. 그의 모습이 정말 숭고하다. 이사야 마직막 부분에 이렇게 독특한 메시아의 모습을 이사야가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절정 부분에서 헨델의 메시아!!~ 예수님께서 첫 설교를 오랫동안 준비하셨다.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세례를 성령으로 받으신다. 광야에서 40일 금식 기도를 하신 후, 고향 나사렛 가서 설교하셨다. 금식하시면서 깊이 이 말씀을 묵상하셨을 것이다. 누가복음 17:4절에 두루마기에서 이 본문을 찾아서 열었다고 한다. 이사야 두루마리는 7.34미터이다. 너희가 듣는 너희 귀에 이 말씀 듣는 가운데 너희에게 이루어졌다라고 말씀하신다. 오늘 지금, 이 자리에서 이 말씀이 우리 마음 속, 삶 속에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3가지로 나누어 이야기를 나누겠다.

첫째 -우리 다 함께 성령을 사모하라.
ㅡ메시아가 부어 주시는 성령을 사모합시다.
주여호와가 내게 임했다. 이사야도 장차 올 온전한 지도자(메시아) 기도,
앞에 나온 여호와의 종과 너무나도 닮았다. 이사야 43-52장에는 여호와의 종의 노래가 나오는데 둘 다 주님으로부터 성령을 받는다. 둘 다 아름다운 소식을 선포한다. 둘 다
가난한 자, 갇힌 자를 풀어주고 있다. 둘 다 하나님의 은혜의 때를 선포하고 있다. 여호와 종의 노래가 이사야 53장에도 나오는데 전혀 기대하지 못한 모습으로 다시 선지자 같은데, 선지자이시고, 제사장이 아니신 것 같은 제사장이시고, 왕이 아닌 것 같은데 왕으로서 우리에게 찾아 오신다. 여호와의 성령이 나에게 임했다는 이 말씀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항구적으로 머물러 계신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요단 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에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 위에 강림했다고 말씀하신다. 비둘기 같은 형체ㅡ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자이다. 예수님께서 장차 우리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 줄 사자이신 것을 친히 성령께서 말씀해 주신다. 왜 영원하신 예수님께 성령이 다시 임하시는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메시아로서 가변적으로 보이시고 성령으로 이루어 지고 계시니 증거해 주신다. 성령이 임하신 것은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알려 주시고, 모든 사역이 성령으로 이루어짐을 알려주시고, 장차 우리에게 성령 주실 것을 증거해 주신다. 성령부음과 기름부음은 무엇인가?

왜 기름 부우는가? 그 기름을 우리 몸에 부으면 모든 상처가 아물고, 기름 부으면, 향기가 되어서, 부드럽고 생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오직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하여야 한다. 우리도 성령을 사모해야 한다. 왜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하는가? 우리에게 주님이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우리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 오기 때문이다. 귀신들이 폭격을 하면 우리가 쓰러지기에 우리는 그래서 성령을 사모해야 한다. 평소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야 어떤 시련이 오더라도 우리가 지로 포인트 우리의 인생이 모든 것들이 이러한 순간이 다 오기에 그렇다. 하나님의 임재가 내 속에 쌓여 있어야 내 속에 나의 친구 예수가 나의 가까이에 있어야 견딜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시련을 이길 수 있다.

둘째 -예수님의 은혜의 구원을 사모하라.
여기서 메시아는 4가지 핵심 사역을 하실 것을 선포하신다.

1.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시고,
2. 마음 상한자 고치시고,
3.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4.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신다.

내 인생의 모든 것들이 순간에 날라가 버리면,  절벽앞에 선 사람ㆍ 인생의 빵점을 받은 사람, 사회, 경제, 정치적인 실종을 보아야 우리를 영적 실존을 보여 준다. 가난은 단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다. 삭개오는 부자였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었다. 디오게네소스는 당대 최고 가난했지만 알렉산더 대왕한테 햇빛을 가리지 말라고 말할 수 있었다.  비헬라인들은 우상숭배ㆍ아웃사이더였다. 현재 우리는 코로나로 환난 가운데에 있다. 이 펜데믹으로 세계가 무너지고 그것으로 인해 우리의 생활이 궁핍해졌다. 우리의 심령이 상했다. 산산조각이 났다. 혼비백산(魂飛魄散)이다. 뼈가 부러진 것 같다. 뼈가 부러지는 순간 우리는 숨쉬기 힘들다. 그런데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고치시는 분이시다.

시편  147편- 별들을 다 헤아리시고 그 이름을 불러주시는 하나님께서 상심한 자를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어 주신다. -예수님은 어떻게 상한 심령을 어떻게 고치시는가?

이사야 53장5절-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 이것은 포플리즘이 아니다. 예수님이 맞았기에, 찔렸기 때문에, 상했기 때문에, 우리의 상한 자리, 우리가 징벌을 받았던 자리, 우리가 채찍을 맞았던 자리에 예수님이 가셔서 그곳에 함께 계셨던 것이다.  

ex)'도마의 치유'이다 (작품)-한 획을 그은 그림이 예수님의 상처인 줄 알았는데, 제목을 자세히 보니 '도마의 치유'였다. 예수님이 우리의 상처의 자리에 오실 때, 우리의 치료의 자리가 된다. 우리가 치료를 받지 않으면 계속 덧날 것이다. 이세상 정의를 왜치는 사람은 영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이다. 내 상처가 치유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내 속에 면역 백신이 생긴다. 예수님이 계시면 백신이 생기고, 면역체계가 생긴다. 나를 만나는 사람또한 치유를 받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포로된 자, 갇힌 자를 놓아준다고 말씀하신다. 처참하게 무시당하는 사람들을 예수님은 풀어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사야 본문을 인용하시면서 우리를 자유케 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예수님은 신체적으로 장애를 가진자에게 가까이 오신다. 병들고 가난한 자에게 오셨다. 정치는 무엇인가? 정치는 약자 곁에 있어 주는 것이다.  죄가 우리를 옭아맨다. 모든 멍에를 빼내주기 위해 오셨다.


셋째 -
희년의 나팔소리를 들읍시다.
이사야서에서 자유란 굉장한 희소한 단어이다.
모세는 50년을 거룩하게 하여 자유를 국민에게 공포하게 했다. 구약에서는 7이란 수가 완전 수이며, 온전 수이다. 7일이 안식일이다. 이스라엘 원력으로 속죄일이 되고, 제 7년이 되면, 안식년이 온다. 7X7년이 50년이 오면 희년이 된다. 다니엘은 70의 7년 490년 이후에는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보았다. 회복하고 새롭게 사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다고 말하고 있다. 모세는 희년이 오면 뿔 나팔을 불게 하고, 소리가 들리게 했다.  7수와 함께 새로운 회복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속역사를 하신다. 쉼과 회복이다.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심령이 회복되고, 자유가 회복 되게 했다. 우리의 가업이 회복되게 하신다. 큰 나팔 소리를 듣기를 모두가 듣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는 그 순간에 이루어진다. 이것이 말씀의 효력이다. 지금 이 순간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신다. 우리가 믿음의 힘이 된다. 이루어졌다~ 지속적으로 느껴야 한다. 이것이 믿음의 힘이고, 생명을 창출하는 능력을 주신다. 지금 성취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양에서 제일 늦게 노예제도를 폐지한 나라가 있다. 브라질 1885년에 즉각적 ㆍ무조건적으로 노예제도를 폐지한다고 했다. 이 말씀이 우리도 즉각적 무조건적으로 선포되길 기도한다. 말씀 붙들고 집중하여 승리하길 바란다.

♣ 요약
우리를 성령님께서 상한 심령 위에 기름부어 고치시고 치유하여 주실 때에 가정과 일터에서 영적 면역이 강하여지게 하시며,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온전히 치유받아야 함과 우리의 공동체가 날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쉼과 회복을 경험하며, 민족과 열방에 희년의 나팔 소리가 불수 있는 평생의 복이 되어야 한다. 올해는 연이는 지진가 재해로 힘든 일본을 위해서도 모두가 기도를 해주기를 바란다.


(이사야
61:1~3)
ㅡ메시아의 사명과 사역(61:1-3)본문은 구약 성경 중 메시아의 사명과 사역을 가장 분명하게 제시한다. 예수께서도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실 때 본문을 인용하셨다(눅 4:18,19). 여기 묘사된 메시아의 구속 사역은, ①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심. ② 영적, 육적으로 상처입은 자들을 치유하심. ③ 죄악의 사슬을 파하사 죄와 사단의 지배로부터 자유를 선언하심. ④ 죄인들의 영안을 여사 그들로 복음의 빛을 보고 구원을 얻게 하심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골격이 된다. 또한 이는 교회가 이루어 나가야 할 사역이기도 하다.

(누가복음 4:16~21)
1)말씀 전파할 기회를 포착하셨다. 그리스도는 다른 지역에서 명성을 얻은 후 나사렛으로 가셨다. 거기서 그는 기회를 잡아 말씀을 전파하셨다.
①회당에서 전파하셨다. 그리스도가 사적인 인물이었을 때는 그곳에서 참예하는 것이 그의 규례였었다(16절). 그러나 이제 그는 공적 사역을 위해 그곳에 들어가서 말씀을 전파하셨다.
②안식일에 전파하셨다. 안식일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단순히 의식상으로 세상적인 일을 하지 않고 쉬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시간을 보내는 때이므로, 말씀을 전파하기에 적절한 때였다.

2)그리스도는 그곳을 방문하셨다. 그는 성경을 읽으려고 서셨다. 안식일마다 회당에는 일곱명의 낭독자들이 왔다. 첫째는 제사장이요, 둘째는 레위인, 그리고 나머지 다섯은 그 회당에 소속된 이스라엘인들이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다른 회당에서도 말씀을 전파했지만, 나사렛의 이회당을 제외한 다른 회당에서는 성경을 읽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스도는 오랫동안 나사렛 회당에 소속되어 있었던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17절). 그날의 제2일과는 이사야의 예언서였으므로, 사람들은 그리스도에게 그 책을 읽으라고 주었다.

3)그는 보문을 설교하셨다. 읽으려고 서시매. 이제 책이 그에게 드려졌으므로 그는 그것을 폈다. 구약의 책들은, 어느 의미로는, 그리스도가 그것들을 열기까지는 닫혀 있었다(사 29:11). 다음에 그리스도는 그 날 읽도록 정해져 있었던 부분을 찾으셨다. 그는 이사야서 61:1,2의 성경 주절을 찾아내셨다. 여기 본문에 그것이 자세히 인용되어 있다(19절). 그가 메시아에 대하여 그토록 명백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바로 그 성경 구절을 그날 읽게 된 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이 성경 구절은 그리스도의 임무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으며, 그리스도는 그 일을 행하고자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①그는 어떻게 그 일을 행할 자격을 부여받았나.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18절). 성령의 모든 은사와 은총이, 다른 예언자들에게 내린 것처럼 일정한 것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그에게 주어졌다(요 3:34).
②그는 어떻게 위임받았나.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그가 기름부음을 받으셨다는 것은, 그가 그 임무에 적합하다는 것과 그 일에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③그의 임무는 무엇이었나. 그는 다음과 같이 자격을 부여받았으며 사명을 위임받았다.
㉠그는 위대한 예언자가 될 것이었다. 그는 전파하도록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것은 여기서 세 번 언급되어 잇다. 그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전파하러 오셨다. 가난한 자, 즉, 온유하고 겸손한 자, 죄 때문에 진정으로 애통하는 자들이었다. 그는 무엇을 전파하게 되어 있었나? 그는 복음을 전파하셨다. 그는 그들에게 복음을 그들의 귀에 뿐만 아니라 마음에 들려 주도록 보내졌다. 그는 다음의 세 가지를 전파해야 했다.

첫째,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복음은 애굽과 바벨론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것과 같은 자유의 선포이다. 그것은 최악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기꺼이 자기들의 머리로 삼고자 하는 모든 자들은 그것의 유익을 향유하게 된다.

둘째,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그리스도는, 그의 복음을 말씀으로, 흑암에 앉은 자에게 빛을 주러 오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은혜의 권능으로 눈먼 자에게 빛을 주기 위해서도 오셨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무상으로 취할 수 있는 안약이 그에게 있다고 우리에게 말해 주시고자 오셨다. 즉, 우리가 "주여 우리의 눈을 뜨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할 때, 그는 시력을 받으라고 대답하실 것이다.

셋째, 주의 은혜의 해를(19절). 그리스도는, 세상 사람들이 거역했던 하나님께서 그들과 기꺼이 화해하고자 하시며 새로운 조건들로 그들을 받아들이고자 하신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러 오셨다. 그것은 해방의 해, 혹은 희년 즉 은혜의 해를 암시한다. 그 때는 구원의 날, 곧 은혜의 때였다.

㉡그리스도는 위대한 의원이 되기 위하여 오셨다. 그는 상한 심령을 고치고 죄 때문에 고통받으며 겸비해 진 자들에게 평화를 주고, 죄와 타락으로 인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안식을 주도록 보냄받으신 것이다.
㉢위대한 구속자가 되기 위해서 오셨다. 그는 포로된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할 뿐만 아니라 상처받은 자들에게 자유를 주신다. 선지자들은 자유를 선포할 뿐이었자만, 그리스도는 권능을 가진자로서 자유케 하려고 오셨다. 그러므로 여기서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라는 구절을 덧붙인 것이다.

④여기서 그리스도는 이 성경 구절을 자신에게 적용시키신다(21절). 그는, 유대 선생들의 관례에 따라, 그 책을 읽고 나서 책을 덮어 그 맡은 자 혹은 서기에게 다시 주고, 앉으셨다. 이제 그는 다음과 같이 강화를 시작하였다.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그것은 지금 그리스도가 공적 사역을 시작할 때 응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다른 지역에서 그가 행한 전파와 이적에 대해 소문을 들은 지금 또한 그들의 회당에서 그들에게 전파하는 지금 응하였다. 그밖에도 많은 은혜로운 말씀들이 그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단지 간략한 설명만을 접하고 있지만, 그리스도는 종종 긴 설교를 하셨기 때문이다.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라는 말씀은 설교의 서두가 되기에 충분하였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의 은밀한 말씀의 성취일 뿐만 아니라, 계시된 말씀이기도 하다. 그리고 성경과 하나님의 섭리를 견주어 보는 것은 우리가 그것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⑤청중들이 주목하고 칭송하였다.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20절). 말씀을 들을 때, 사역자를 주목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또한 눈이 마음을 움직일 때 마음은 눈을 따라가며, 눈의 상태에 따라 방황하거나 차분해지거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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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새(주후 2021년 2월 20일)
제목: ''주여, 우리를 다시 회복시켜 주소서''
말씀: 시편 85:4~9절
설교자:오정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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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거두소서.
5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에 진노하시겠나이까.
6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7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
8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9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

▶매일 정오마다 정화 되고 회개가 되기를 기도해야한다. 우리 자신의 시간을 정해두고 샬롬을 누리기를 원한다. 3번째 정오에 베드로가 환상을 보았다. 우리도 환상과 기적을 보기를 바란다지나간 1년간 백만 여명이 정오기도회의 능력이다. 보너스이다. 3월 6일 아카데미가 세 부분이 다 개교로 더 큰 정오기도회의 결실임을 확신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성숙함을 주실 줄 믿는다. 사랑글로벌 아카데미로 더욱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자. 외교부 장이신 분이 우리 교회 성도님이시다. 공직에서 수고가 많아도 하나님의 사명을 묵묵히 집중하고 유지함이 하나님께서 축복하심을 느꼈다. 이것은 경험이니 가족과 고백함을 볼 때 신실함을 보게 된다.

첫째 생수 경험,
둘째 자신을 돌아봄,
세 번째 환상과 비전을 보게 기도해서
샬롬의 축복을 누리기를 바란다.

신약=온전함, 구약=샬롬이다.

시편 85편은 고국으로 돌아와 지은 시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을 마치고 멸망의 나라의 재건을 꿈꾼다. 고생 끝 행복시작이 아닌 아무것도 없고 원수들이 공격할 대상이 되어 있고, 영적으로 정리가 안 되어 있었다. 죄악이 팽배했다. 그럴 때에 시편 85편을 보면 하나님 앞에 찬양과 기도하게 된다.

85:6절에,
6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주님을 알되 엎어지고 싶은 사람이다. 외부, 내부적인 기도의 응답을 사모하는 것이다. 엎어지고 싶은 삶이다. 우리 모두의 집안의 삶의 커튼을 들여다보면 집집마다 기도의 제목이 없는 집이 없다. 완벽한 집이 없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다시 회복시켜 주신다. 믿는 자가 엎어지면 다시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게 하신다.

85:8절에,
8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대상은 믿는 자들이 엎어져 있는 자들이다.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이며 히브리어로 샬롬이다. 우리 성도들은 온전함, 샬롬이다. 늘 사용해라 샬롬 라켐!!! 샬롬 라카!!!, 샬롬 라카!! 샬롬 라켐이라 외쳐라. 주의 분노는 거룩한 분노이다.

 

85:4절 –우리 가정(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 가정을(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 가정에(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거두소서.
85:5절 –주께서 우리 가정에(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에 진노하시겠나이까.

85:6절 – 주께서 우리 가정을(우리를) 다시 살리사 우리 가족들이(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하지 아니하시나이까.

85:7절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 가정에(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 가정에(우리에게) 주소서.

85:8절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우리 가정(그의백성), 우리 자녀들에게(그의 성도들에게) 샬롬을 말씀하실 것이라 우리 가족들은(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85:9절 –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가정 대대에(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

 

찬양!!~~

주 샬롬 한없고 주 은혜 끝없네~~ 내주 예수 무한한 샬롬으로 넘치게 주시며 늘 더 주시네~~

▷가정마다 회복되게 해 주시며 샬롬의 은혜를 주시길 기도한다. 유승렬 선교사님이 가나에서 순교하셨다.(소천하셨다).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부인 김경옥 선교사님이 가나 대학에서 가르치시는데 어려운 선교가 되고 있는 가운데 또 코로나에 감염되셨다. 김경옥 선교사님을 비행기로 엠블런스로 모셔오게 되어 준비해야 한다. 헌신이 아니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조심스럽긴 하다. 어려운 선교사님들도 너무 많은데 마음이 다 아프다. 그러나 우리 마음은 두 분 다 순교시킬 수 없어서 시간을 다투니 십시일반으로 헌금하심 좋겠다. 샬롬의 평강을 주시길 기도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샬롬의 평강과 회복이 있기를 기도해야 한다. 온 교우와 한국 정치와 사회에 평강과 회복이 되며, 가정마다 주일학교와 파송식 또한 사랑글로벌 아카데미 개학 등과 모든 사역들에게 은혜를 더하시며, 부활의 가장 강력한 능력이 되고 부활의 영광을 드리고 예배에 봄 사역에 샬롬의 평강를 주시길 기도해야 한다. 모두가 나라와 교회와 가정을 위해 샬롬의 평강의 주시길 기도하자.

♣요약
치유와 회복의 완성이 온전함임을 믿고, 개인과 나라와 열방이 치유를 넘어 온전함을 이루도록 마음 모아 기도해야 한다. 매일 정한 시간에 기도했던 다니엘처럼 사랑투게더 정오 기도회에 참여하여 온전함에 이르고, 일상의 거룩한 습관이 되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 종식까지 기도의 분량이 넘쳐서 중보기도자로 부르시는 주님께 순종하는 기도자가 되어 모두가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과 기도의 헌신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던 유대인들의 포로 귀환이 이루어진 당시(B.C. 538)에 작시된 시편이다. 징계의 손을 거두시고 새로운 은총을 내려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1) 그들은 그들이 개심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4절).
2)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진노의 징표들을 제거해 주시도록 기도하고 있다.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그치소서. 그들의 기도 방법을 살펴보면 먼저 "우리를 주께로 돌이켜 주소서"라고 기도한 다음에 "주의 분노를 우리로부터 돌이켜 주소서"라고 기도한다.
3)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선의를 드러내 주시도록 기도하고 있다(7절).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주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셨고 우리를 위하여 긍휼을 예비해 두셨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라는 뜻으로 기도한 것이다.
4)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 편이 되어 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다.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 "약속하신 대로 우리에게 구원을 허락해 주소서. 그러면 분명 주께서는 그 약속으로 말미암아 주의 섭리를 행하실 것이니이다."
(3) 그들은 그들이 현재 겪고 있는 고난에 관하여 하나님께 겸손히 간원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있다(5,6절).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에 발분하시겠나이까. "주께서는 우리의 조상들에게 영원토록 노하지 않으시고 속히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그러한 주님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는 영원히 노하려 하시나이까? 우리를 구원 하셔서 '우리를 다시 살려주시지' 않으시겠나이까"(6절). 하나님께서는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자손을 '종노릇하는 중에서 조금 소성하게 하셨다'(스 9:8). 그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한 것은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겔 37:11,12). 그러므로 그들은 다음과 같이 간구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고 우리에게 다시 손을 펴사 우리를 모아 주시지 아니하시겠나이까?"(사 11:11;시 126:1,4).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합 3:2).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얻는 모든 긍휼의 원천이 되신다면 그는 우리가 누리는 모든 기쁨의 중심도 되셔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그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주시고 훈계하신다.
(1) 일반적으로 보아 이것은 화평의 응답이다. 시편 기자는 망대 위에 서서 '하나님 여호와의 하실 말씀을'(8절) 들었다. "내 영혼아 하나님을 섬기고 그의 뜻을 받들도록 겸손하게 침묵을 지키며 마음을 안정시키도록 하라. 내가 할 말을 다 했으니 이제는 하나님께서 하실 말씀을 듣고 그의 거룩한 뜻을 환영하리라. 내 주께서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겠는가?" 대저 그 백성 그 성도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조만간에 그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다. 만일 그가 외적인 화평을 말씀하시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적인 화평을 일으켜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말씀과 사역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던 것을 이제는 성령을 보내사 마음에 말씀하시고 또 기쁘고 행복한 말씀을 그들에게 들려주심으로써 내적인 화평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실로부터 위로를 받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내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리니 곧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실 화평을 보장하시는 말씀을 들을 것이라." 저희는 다시 망령된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화평을 기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다시 망령된 데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2) 여기에서는 이 화평의 응답이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시편 기자는 이 시편의 마지막 다섯 절을 통하여 우리에게 교호가 큰 번영을 누리리라는 밝은 전망을 보여 주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포로 시대 이후 이스라엘 자손이 누린 화평과 번영을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베풀자 그들은 마침내 그들 자신의 땅에 정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구절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자들이 안락하고 복된 생활을 할 것이라는 약속과, 메시야 왕국이 세워져 크게 융성하리라는 예언과 축복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1) 가까이에 있는 도움(9절) : 진실로 그의 구원이 가까우니. 벽돌을 만드는 노역이 가중되자 모세가 왔다. 고난이 닥치자 구원도 다가온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백성들이 고난을 당할 때 즉각적으로 도움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2) 확보된 영광 : 이에 영광이 우리 땅에 거하리이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나이다. 그것은 곧 땅의 영광이니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을 때 이가봇(Ichabod;비느하스의 아들, 영광이 떠났다는 의미-역주), 즉 영광도 떠나며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영광도 우리와 함께 거할 것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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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주후 2021년 2월 17일)
제목: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말씀: 사무엘상 13:8-15절
설교자: 소문수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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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3:8-15)
8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9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10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11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15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의 수를 세어 보니 육백 명 가량이라.

▶온, 오프라인과 생중계로 예배드림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오늘 하나님께서 충만한 은혜를 주시길 원한다.
어릴 때 자주 듣던 사자성어가 하나 있다. 바로 有備無患이다. 직역하면 갖춤이 있으면 염려가 없다는 뜻이다. 좀 더 의역하면 어떤 일을 당면할 때, 미리미리 준비해 놓으면 근심할 것이 없다는 사자성어이다. 평생에 삶에 영향을 참 많이 미쳤다. 요즘에는 유비무환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왜냐하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은 계속해서 바뀌는 입시제도로 우왕좌왕하며, 준비하는 것이 해가 되는 경우도 있고, 대기업에 취업을 위해서 입사 준비를 하면서 모든 것을 준비하는 데에 혼신을 다해 준비했는데 정작 원서를 제출해야 할 때에는 준비한 것을 적을 칸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독특한 자기만의 스토리가 훨씬 더 많은 작용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하는 것이 참으로 힘겨운 모습으로 보여 진다. 아파트 값 등이 폭등으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도 있다. 다 같이 힘들면, 버틸만한데, 상대적 박탁감이 짓누를 때, 우리는 변화무쌍한 세상 앞에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코로나는 어떤가? 우리가 예견이라도 했겠는가!! 예견 못한 상황에서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당면하는 감정들 중에서 가장 많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불안과 불확실함이다. 미래를 대비해 준비해야 하는데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모르겠고, 오히려 미리미리 준비한 것들이 시간낭비와 낭패가 되다보니,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몰리게 되냐면, 소위 돈이 되는 곳으로 몰려가고, 마음이 빼앗겨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신조어 한 가지가 있다. 파이어족이다.

Fire’족이란 ‘경제적 자유와 조기 퇴직(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이다. 앞 글자를 따서 파이어족이며 영어로는 해고자이다.

이 파이어족은 30대 후반과 40대 초반의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해고 시키는 게 목적인 사람들이며 그때까지 모은 돈을 가지고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를 하고 거기서 나오는 이득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보겠다는 사람들을 지칭하여 ‘파이어족’이라고 말한다. 90년대 미국에서 나타난 문화인데 한국에도 전해진 것이다. 작년에 주식 계좌를 살펴보면 20대 30대라고 한다. 재테크에 투자한 그 사람들이 거의 전체 30퍼센트라고 하며 미투, 동학개미, 영끌, 설명하지 않아도 익숙한 단어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준비야말로 인생의 노후대책이라고 말한다. 이 불안한 상황에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다른 것은 다 제외하고 경제적인 것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30대 후반과 40대 초반에 자기 스스로를 해고하기 위해서는 모든 삶의 시간을 경제와 돈에 맞추어져야 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진지한 신앙적인 고민과 하나님의 존재,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떠한 존재인가를 이런 진지하게 질문들이 전혀 마음에 자리 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상을 보면서 오히려 자신을 모습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무엇을 준지해야 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모습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두 인물을 살펴보며 해답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첫째 인물은 바로 사울이다.

성경 본문은 사울이 블레셋과 전쟁을 놓고 벌어지는 내용이다. 사울과 사무엘은 모정의 약속을 한 것 같다. 길갈에 사무엘이 간다고 했고, 사울에게 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사무엘의 제사의 시작으로 신탁을 받고 행해야 할 일이었다. 사울은 눈앞에 보여 지는 것은 사기가 떨어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었고, 점점 더 흩어지는 모습이 보여 진다. 사울은 뭔가를 보며주어야 해서 결단을 하게 된다. 사무엘과 약속한 7일이 지났기에 사무엘을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번제 제물을 가져오라 하고 사울은 제사들 드린다. 그런데 제사를 드리자마자 사무엘이 사울 앞에 등장한다. 그런데 사무엘은 왕이 범죄 했다고 왕위를 폐위 시킨다.
오늘 13-14절에 보면,

삼상 13: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섬삼 13: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내용을 보면, 사무엘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울은 기다렸다. 약속했던 날까지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 사울은 전쟁을 두고 무언가를 해야 할 리더의 역할이었다. 오히려 사울의 판단이 옳게 느껴져서 사무엘의 폐위는 좀 과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사울과 사무엘을 보면, 찜찜한 부분이 풀리지 않았는데, 의외의 질문에서 해답을 찾게 되었다. 그 해답은 사무엘상 13장 1절을 보면 찾아볼 수 있다.

삼상 13:1절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에 많은 사람들 앞에 환영받는 왕은 아니었다. 비록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모든 백성이 사울을 왕으로 단번에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삼상 10:27절 “어떤 불량배는 이르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바치지 아니하였으나 그는 잠잠 하였더라”
-하나님깨서 기름부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사울 왕을 따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울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작은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 전쟁은 이스라엘과 접경에 있는 암몬과의 전투였다. 암몬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전쟁으로 암몬을 상대하기 힘들었다. 암몬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조소하며 마치 위해 주는 것처럼 위장된 표정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협상을 제안한다. 그것은 삼상 11장 2절을 보면,
“암몬 사람 나하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언약의 협상은 오른쪽 눈을 다 빼면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협상을 하는 것이다. 이런 치욕적인 말이다. 성경 후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은 굉장히 가슴이 아프다. 이들은 7일간의 말미를 달라고 한다. 그때까지 전쟁할 때까지 찾아보겠다고 한다. 이게 이스라엘의 반응이다. 바로 그때 사울이 등장한다. 사울이 이 소식을 듣고 사울은 거룩한 분노가 일어났다. 소를 가지고 밭을 갈고 있다가 소의 각을 떠서 이스라엘 전체에 보내고 전쟁할 남자를 모집한다. 그리고 이렇게 모였는데 30만 명이나 되었다. 그래서 사울은 전쟁을 하여 승리로 이끌어 냈다. 비로소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사울을 왕으로 추대하게 된다.


삼상 11:12절을 보면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
-진정한 견고한 왕권이 세워진 것이다. 이 전쟁 2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성경에서는 2년간을 말하지 않는다. 13장 1절에서 이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 일어난 것에 주목하게 되었고, 아마 사울은 이스라엘 나라를 어떻게 지고 나갈지를 고민을 했어야 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다스릴 이스라엘 나라가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지 또 왕으로서 이스라엘 나라 앞에 서야 하는지, 하나님 앞에 서야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했을 시간이 그 2년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하나님께서 그 2년을 허락하신 상황이라는 것이다. 오늘 13장은 사무엘과 사울과의 관점으로 읽어야 될 본문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울의 관점으로 읽어야 한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묻고 있다. 사울에게 상황이 위급하니 사무엘도 없으니 이 혼란 상황에서 어떻게 전쟁을 준비할 것이냐고, 어떤 왕으로 이스라엘을 하나님 앞에 준비 시킬 것이냐라고 하나님이 사울에게 진지하게 묻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울은 하나님 앞에 대답을 한다. 자신이 제사를 드려 승리를 갖고 오는 것, 자신의 경험, 지혜, 모든 계략으로 전쟁의 승리를 이끌어내고 이것을 위해 필요한 것이 제사라면, 사무엘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율법이 없을지라도 그런 것을 무시한 채 오직 승리에 마음을 빼앗기며, 이스라엘을 자신이 이끌어가겠다는 오만불손한 대답을 하나님 앞에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본문을 읽으면서 혼란하고 불안하고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는 우리와 겹쳐진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큰 당면하는 일들이 있고, 주식과 부동산의 열풍이 불고 있다. 철저한 자본주의가 시장을 낳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 정치, 경제 어느 것 하나님 편안함이 없는 지금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하시는 것 같다. “너희는 지금 이 위기에 무엇을 준비하고 있느냐?”라고 “전쟁 같은 이 시기에 너는 나의 앞에서 무엇을 준비하며 너의 인생을 계획하고 있느냐?”라고 물으시는 것 같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우리도 거대한 물살에 휩쓸려 버리고 만다. 그리고 마치 사울처럼, 부득이하게 핑계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둘째 인물은 바로 에스겔이다.

에스겔은 사울보다 더 처참한 가운데 놓여있다. 왜냐하면, 사울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는 나라가 세워지는 혼란 가운데 있었지만, 에스겔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는 나라가 완전히 망하여서 불안함과 불확실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절망과 소망 없음에 상태였기 때문이다.

에스겔 1:1-3절을 보면.
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2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3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에스겔 선지자는 25세 꽃다운 나이에 포로로 잡혀갔다. 이 나이는 어떤 나이인가하면, 어릴 때부터 에스겔 가문에 어릴 적부터 제사장이시던 조부와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며 커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이 귀한 직분과 사명을 감당하려고 꿈을 키워왔던 어린 에스겔이며, 수습 제사장으로서 본격적으로 배워 나가는 시기였다. 정식 제사장의 나이가 30-50세로 규정하는 것을 보면, 25세의 나이에 수습 제사장의 나라의 멸망은 절망 그 자체였을 것이다. 에스겔의 나라가 망한 것이다. 공동체가 망했다. 개인도 망했다. 이 현실 가운데 에스겔은 두 가지의 끈을 붙잡고 이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두 가지의 열쇠를 붙잡고 일어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첫 번째는 에스겔인 자기 인식과 사명의 정체성으로 미래를 준비한다.
3절에 보면 -3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나라가 망했는데 누구도 에스겔을 제사장으로 임명할 수 없다라는 것이다. 지금 자기의 신분으로 봉사를 할 만한 나라도 없고, 성전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에스겔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제사장, 나 에스겔’이라고 고백하게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 본질적인 질문 앞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그 정체성을 부여잡고 어려운 이 시기를 이겨내는 이 첫 번째 열쇠를 붙잡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과 현실 속에서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키를 찾는 것이 아니라, 오늘 여호와의 말씀이 나를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를 에스겔을 세우고 있다. 세상이 우리를 무엇이라고 평가하는지, 주변의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나를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에스겔이 붙잡고 있다는 것이다. ‘제사장 나 에스겔’ 바로 자기 인식이라는 것이다. 이 강력한 확신은 외부의 어떤 도전도 대적할 수 있을 만한 무기가 될 줄 믿는다. 세상은 말한다. 더 빨리 뛰지 않으면 망할 것이라고,,,, 더 치솟고, 빠르게 떨어지는 돈의 가치를 보고 있지 않느냐고, 우리에게 으름장을 놓고 있다. 하지만 그 세상 속에서는 어떠한 해답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모든 세상은 가면적이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영원한 줄로 믿는다. 그 영원한 말씀이 나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에 대한 자기 인식이야말로 에스겔이 붙잡았던 중요한 실마리인 첫 번째 Key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속에서 미래를 준비한다.

-에스겔이 자기 인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1:1절에 답이 있다.
에스겔 1:1절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 그 나라가 멸망했다는 것은 그 나라의 신이 망하였거나, 그 나라를 버렸다라고 생각했다. 나라를 잃은 것도 좌절이지만,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렸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고통스런 마음 중에 하나였다. 오늘 에스겔은 무엇을 보았는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이 계심을 보았다. 역사의 주관자로 하나님이 계심을 본 것이다. 에스겔은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똑같은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인식의 변화가 얼마나 크고 재미있는지를 알게 된다. 치킨 집 예화이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전혀 다른 우리의 인생을 준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진정한 힘은 복원력이다. 실패 앞에서 다시 일어나는 힘이 강력한 힘이다. 의연하게 꿋꿋하게 일어나는 힘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이다. 오늘 이 마음이 에스겔에게 있었다. 그리고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내적인 확신의 마음을 가지고 하늘이 열리는 모습을 기억하며 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 정리하면, 사울은 하늘을 우러러 기도해야 했다. 백성이 흩어지고 천지가 개벽된다 해도 이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기에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마음에 내적인 확신을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해야 했다. 사울은 현실의 고통과 속에서 그저 자신의 합리적인 생각만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만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온전한 헌신이다. 우리의 삶과 하나님의 적당한 선을 비벼서 적당하게 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시지 않는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과 우겨쌈으로 인도하신다. 왜 그러신가? 그것은 하늘이 열려있음을 발견하게 하시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온전함으로 하나님을 사모하여 다시 회개하여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모든 삶의 미래와 인생을 준지하게 되는 것이다. 불확실한 시기를 우리는 지나가고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하늘이 열리고 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깨달아서 모든 삶이 하나님 앞에 부어지기를 바란다. 핑계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나의 자아가 깨어져서 자기 인식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간구해야 한다.


♣요약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한 제사였고, 말씀을 떠난 제사였으며, 성급히 드린 제사였으므로, 믿음이 없는 제사였고, 진실이 결여되었고 형식적이며, 이기적인 제사였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헌신과 충성, 감사와 교제가 담겨져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의분이 있는 자, 하나님을 경외하고, 지혜롭고 지식이 있는 자, 공의를 사랑하고, 진실한 자, 율법을 순종하고, 성도를 위해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자,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바른 교훈으로 성도를 권면하는 자.결국 중간에 실수하고 범죄했던 지도자라 하더라도 끝까지 신본주의적인 자세를 가진 지도자가 하나님께 합당한 지도자임을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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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은 사무엘이 오기 전에 제사를 드리는 잘못을 저질렀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면서 그에게 길갈에서 칠일을 기다리라고 한 적이 있다(10:8). 아마도 이같은 특별한 경우를 두고 그 명령을 최근에 다시 한번 내렸던 것 같다. 이 명령을 사울은 어겼다.
①사울은 사무엘이 없는데도 대담하게 제사를 드렸다.
②사울은 사무엘의 지시를 받지 않고도 블레셋과 싸우려고 결심했다. 사울은 자신감에 넘쳐서 여호와의 선지자를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거나 충고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필요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울은 사무엘에게 사자를 보내서 사무엘의 생각을 알아보지 않았다.
㉡사무엘이 오자 사울은 자기가 한 것을 회개하기는커녕 도리어 당당했던 것 같다. 즉 사울은 같은 제사장으로서 사무엘을 나가 맞으며 문안했다. 그는 나가서 사무엘을 축복했다. 그는 지금 마치 자신을 완전한 제사장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는 사무엘에게 약속을 어겼다고 책망했다.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11절).
㉣불순종했다고 사울을 책망하자 그는 자기가 한 일을 정당화했으며 전혀 회개하는 빛을 보이지 않았다. 사울이 어떻게 변명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사울은 자기가 신중해서 이러한 불순종한 일을 하게 된 것처럼 변명했다. 또한 사울은 자기가 경건하기 때문에 이러한 불순종한 일을 하게 된 것처럼 변명했다. 사울이 아주 경건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제사를 드리고 나서야 블레셋 사람들과 대결하겠다고 한 것처럼 생각할 것이다.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한 터였습니다"하고 사울은 말했다. 하지만 마침내 그는 양심에 거슬려서 그런 일을 했다고 시인한다.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한다.



▷이러한 잘못에 대한 형벌을 사울에게 선고 하였다.

1)사무엘은 그에게 그의 죄악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사울이 자신과 자신의 이익에 손해되는 일을 행하였다고 책망한다.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또한 하나님과 그의 다스림에 반역하였다고 책망한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죄는 어리석음이요 죄인은 가장 어리석은 자들이다.
2)사무엘은 사울의 운명을 선포한다. 사무엘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가르쳐 준다. 즉 가벼운 죄란 없다. 왜냐하면 죄를 지어도 될 만큼 하찮은 하나님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죄악은 우리가 당당히 서있는 천국을 빼앗아 간다. 사울은 두 세 시간을 참지 못해서 나라를 잃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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