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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주후 2021년 2월 24일)
제목: “끝까지 잘 감당합시다.”
말씀: 디모데후서 4:9-11절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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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4:9-11절)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비가 오나 눈이오나 코로나가 있으나 없으나 지나간 선대 옥한흠 목사님 25년, 담임목사님 18년, 43년을 제자훈련, 사역훈련 이렇게 개가예배 드리고 수요예배 드리면서 한결같이 사역을 감당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한다.~~!!!

우리교회는 일 년에 몇 차례 교회에 태극기와 교회기를 갖다 놓는다. 광복주일, 교회 창립기념주일, 부활주일 그리고 교회 중요한 때에 태극기와 교회 기를 놓는다. 그렇다면 이것을 갖다 놓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43년째이다. 그래서 이 제자훈련, 사역훈련의 개강이 중요한 것은 바로

1. 무게감과 사역의 우선순위가 되는 것이다.
2. 이 사역훈련, 제자훈련 기간 감사예배를 드리고 있다. 우리의 마음의 자세는 앞으로 1년간 더욱 헌신하는 것이다.
-헌신의 거룩한 습관을 가지고 헌신의 거룩함을 실천하는 것이다.
진짜 은혜는 헌신할 때 받는 것이다. 헌신은 전 생애를 관통하는 것이다. 자녀들이 만약에 주님 나라를 위해 헌신한다면 감동일 것이다.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제대로 거룩한 습관으로 헌신을 해야 한다. 부족한 나에게 만 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헌신의 은혜를 주시길 기도하고 찬양하자.
-주님의 십자가 나도 지고, 신실한 믿음과 사랑으로~~

평생 헌신의 은혜가 충만 합시다.~~끝이 아름다워야 한다.
본문, 9-11절에 보면, 너는 이라는 사람은 바로 닥터 누가이다. 그 다음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해서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한다. 누가만 함께 있다며 유익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개인적인 소식들을 주면서 바울이 사사로운 부탁을 하는데, 한 생애를 통하여 여기 3사람이 나오고 있다. 누가, 데마, 마가이다. 우리는 한 생애에 살면서 이 데마와 누가와 마가의 역할 같은 삶 가운데 우리는 무엇을 참고해야 할 것인가? 성경에는 처음에는 거창하게 시작하다가 끝이 안 좋은 사람이 있다. 대표적으로 사울 왕 같은 사람이다. 처음에는 좀 부족해도 나중에는 회복 된 사람이 있다. 마가이다. 감사한 것은 의사 누가는 시종일관 From beginning, To the end, Consistent power, 한결같이 끝까지 가는 것이다. 우리 속에는 데마 같은 속성, 누가 같은 속성, 다 있다. 그러나 훈련은 거룩한 습관을 만드는 것이어서 제2의 천성이 제 1의 천성이나 본성을 우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데마와 같은 약점은 죽이고, 마가와 같은 사람이 되면 마음을 모아서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해야 한다. 훈련은 거룩한 습관으로 예배와 훈련에 집중해야 한다. 잘 정리를 해서 누가처럼 한결같이, 시종일관하여야 한다. 그러하지 않아도 꾸준히 묵묵히 무게감을 가지고 거룩한 습관으로 주님과 동행하면서 끝이 아름다운 훈련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데마와 같은 속성을 정리를 해야 한다. 데마는 처음에는 대단했다. 함께 이름을 날렸다. 데마가 대단히 영웅적이었다. 그러나 바울을 좇는 것이 희망이 없어 보였다. 사역에 영적으로 엄청난 사역이었다. 그러나 바울이 순교하게 되자, 데마가 자신의 인생을 종치는 것 같아서 바울을 떠나버렸다. 우리의 속성과 비슷하다. 겉으로는 이랬는데, 데마의 속사람이 능력이 없었다. 속사람, 내면이 영적으로 어떤 영적전쟁을 감당할 능력 없었다. 신앙의 본질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신앙과 인격은 속사람의 강건함이다. 뭔가 서기만 해도 은혜가 되고 빛이 난다. 뭔가 뭉클하다. 무엇으로 증명이 되는 것인가? 속사람의 능력과 강건함이 중요하다. 그것이 데마에게는 없었다.

 왠만한 어려움을 이겨낼 만한,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고, 이겨낼 만한 삶의 목표가 약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큰 비전을 붙잡히는 능력이 없었다. SAGA란 이유가 무언가?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이 사랑 예수님의 대 계명과, 글로벌- 예수님의 지상 사명과, 아카데미-하나님 나라의 인물, 그것이 갖추어져야 하는데, 글로벌 스탠다드로 하나님 나라의 전체를 위해, 기도하고, 너무 속이 좁다. 더 큰 비전에 사로잡혀야 한다. 영적으로 강국으로 가서 더 큰 비전을 잡혀야 한다. 속사람이 강건하고 더 큰 비전을 사모해야 한다. 그럴러면, 훈련기간에 속사람의 강건을 위해 토비새를 나와야 한다. 뭔가 속사람의 강건함의 계기가 필요하다. 기도제목을 서로 주고받고, 후원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더 큰 비전과 용량을 갖도록 반드시 훈련을 통해 그 사람을 깨뜨신다. 그래서 더 큰 비전에 사로잡히도록 해야 한다. 나와 안 맞는 사람을 함께 앉혀 놓기도 한다. 신경 쓰인다는 것은 내가 가진 판단 기준이 좁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좋게 바뀌는 것이다. 수많은 연단과 수많은 고난이 있게 된다. 그러나 훈련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데마적인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강건함과 더 큰 비전과 믿음의 용량을 주시기 위해 훈련을 하게 하신다. 마가는 한 마디로 라틴 식 이름이며, 요한은 히브리식 이름이다.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120명이 모였다. 기도하는 다락방으로 봐서는 아주 부자이다. 사도행전 13장에 중도 하차를 하게 된다. 마가와 대판 싸운다. 그래서 마가를 보면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심기일전을 해서 마가로 인해서 힘든 적도 있었지만, 마가를 데려오라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 사도 베드로의 믿음의 아들처럼 되었다. 베드로와 마가는 동행했다. 12제자 안에 들어가지 안 들어가지만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을 남기고 있다. 마가복음이 자유주의 신학의 큰 역할을 한다. 마가복음은 행동의 복음이다. 마가복음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즉시로(Immediately)이다. 곧, 바로, 예전의 실수를 기억하였다. 바로, 곧, 즉시 마가적인 연약함, 이런 부분들이 훈련을 통해 잘 다듬어져서 다시 회복되어 즉시 실천하길 소망한다.

마지막에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죄인으로 태어났지만, 주님의 온전함으로 닮아가려고 하는 선함도 있다. 하는 그런 롤 모델이 바로 누가이다. 시종일관이며 바울의 주치의이기도 하다. 하나님 나라에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정치적 색을 띄지 않고 기도하고 이 민족의 역사가 복음의 역사가 되고 헌신이 되어 복음의 전사가 되기를 소원한다. 통찰력 있는 역사와 시각이 있는 누가는 한결 같았다. 누가는 그가 가졌던 생각의 틀 전환을 잘했다. 전체를 보는 능력이 뛰어났다. 마태는 갈릴리를 바다라고 했다. 누가는 호수로 말한다. 마태는 갈릴리를 벗어나 본적이 없고, 누가는 바울과 함께 곳곳을 자기 집 안방처럼 돌아다녔다. 그러니 게임이 안 된다. 믿음의 용량이 커졌다. 믿음의 용량을 키워야 한다. 섭섭함이 있다하더라도 영적 통찰력이 있으면 우리도 한결같이 된다. 누가는 그 실력 있는 의사이며, 문학, 이공계의 지식을 완전히 갖춘 지성인인데도 늘 성령을 사모했다. 사도행전은 누가가 기록했다. 성령의 행전이다. 성령으로 도배되어 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했다. 우리 속에 있는 데마적 속성들을 정리하고 우리 속에 있는 마가적 부족함도 즉시 변화하여 누가처럼 한결같이 시종일관 역사적 통찰력과 성령의 인도함에 민감해져서 이번 기수를 잘 감당하기를 바란다.

우리 교회 본당의 꽃들은 모두 생화이다. 우리교회 본당에는 페이크(fake-모조품)가 하나도 없다. 우리 교회 제자훈련도 오리지널이 되어야 한다.

♣요약
1바울은 디모데에게 빨리 올 것을 명한다. 바울은 디모데가 함께 있어서 도움을 주기를 원했다. 그 이유로는 여러 사람이 그를 떠났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렸다'고 말한다. 이 현세를 사랑하는 것은 종종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도에서 떠나는 이유가 된다.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떠나갔고 또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 누가는 계속해서 바울과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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