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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주후 2021년 2월 17일)
제목: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말씀: 사무엘상 13:8-15절
설교자: 소문수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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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3:8-15)
8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9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10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11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15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의 수를 세어 보니 육백 명 가량이라.

▶온, 오프라인과 생중계로 예배드림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오늘 하나님께서 충만한 은혜를 주시길 원한다.
어릴 때 자주 듣던 사자성어가 하나 있다. 바로 有備無患이다. 직역하면 갖춤이 있으면 염려가 없다는 뜻이다. 좀 더 의역하면 어떤 일을 당면할 때, 미리미리 준비해 놓으면 근심할 것이 없다는 사자성어이다. 평생에 삶에 영향을 참 많이 미쳤다. 요즘에는 유비무환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왜냐하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은 계속해서 바뀌는 입시제도로 우왕좌왕하며, 준비하는 것이 해가 되는 경우도 있고, 대기업에 취업을 위해서 입사 준비를 하면서 모든 것을 준비하는 데에 혼신을 다해 준비했는데 정작 원서를 제출해야 할 때에는 준비한 것을 적을 칸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독특한 자기만의 스토리가 훨씬 더 많은 작용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하는 것이 참으로 힘겨운 모습으로 보여 진다. 아파트 값 등이 폭등으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도 있다. 다 같이 힘들면, 버틸만한데, 상대적 박탁감이 짓누를 때, 우리는 변화무쌍한 세상 앞에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코로나는 어떤가? 우리가 예견이라도 했겠는가!! 예견 못한 상황에서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당면하는 감정들 중에서 가장 많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불안과 불확실함이다. 미래를 대비해 준비해야 하는데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모르겠고, 오히려 미리미리 준비한 것들이 시간낭비와 낭패가 되다보니,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몰리게 되냐면, 소위 돈이 되는 곳으로 몰려가고, 마음이 빼앗겨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신조어 한 가지가 있다. 파이어족이다.

Fire’족이란 ‘경제적 자유와 조기 퇴직(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이다. 앞 글자를 따서 파이어족이며 영어로는 해고자이다.

이 파이어족은 30대 후반과 40대 초반의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해고 시키는 게 목적인 사람들이며 그때까지 모은 돈을 가지고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를 하고 거기서 나오는 이득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보겠다는 사람들을 지칭하여 ‘파이어족’이라고 말한다. 90년대 미국에서 나타난 문화인데 한국에도 전해진 것이다. 작년에 주식 계좌를 살펴보면 20대 30대라고 한다. 재테크에 투자한 그 사람들이 거의 전체 30퍼센트라고 하며 미투, 동학개미, 영끌, 설명하지 않아도 익숙한 단어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준비야말로 인생의 노후대책이라고 말한다. 이 불안한 상황에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다른 것은 다 제외하고 경제적인 것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30대 후반과 40대 초반에 자기 스스로를 해고하기 위해서는 모든 삶의 시간을 경제와 돈에 맞추어져야 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진지한 신앙적인 고민과 하나님의 존재,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떠한 존재인가를 이런 진지하게 질문들이 전혀 마음에 자리 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상을 보면서 오히려 자신을 모습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무엇을 준지해야 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모습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두 인물을 살펴보며 해답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첫째 인물은 바로 사울이다.

성경 본문은 사울이 블레셋과 전쟁을 놓고 벌어지는 내용이다. 사울과 사무엘은 모정의 약속을 한 것 같다. 길갈에 사무엘이 간다고 했고, 사울에게 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사무엘의 제사의 시작으로 신탁을 받고 행해야 할 일이었다. 사울은 눈앞에 보여 지는 것은 사기가 떨어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었고, 점점 더 흩어지는 모습이 보여 진다. 사울은 뭔가를 보며주어야 해서 결단을 하게 된다. 사무엘과 약속한 7일이 지났기에 사무엘을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번제 제물을 가져오라 하고 사울은 제사들 드린다. 그런데 제사를 드리자마자 사무엘이 사울 앞에 등장한다. 그런데 사무엘은 왕이 범죄 했다고 왕위를 폐위 시킨다.
오늘 13-14절에 보면,

삼상 13: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섬삼 13: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내용을 보면, 사무엘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울은 기다렸다. 약속했던 날까지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 사울은 전쟁을 두고 무언가를 해야 할 리더의 역할이었다. 오히려 사울의 판단이 옳게 느껴져서 사무엘의 폐위는 좀 과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사울과 사무엘을 보면, 찜찜한 부분이 풀리지 않았는데, 의외의 질문에서 해답을 찾게 되었다. 그 해답은 사무엘상 13장 1절을 보면 찾아볼 수 있다.

삼상 13:1절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에 많은 사람들 앞에 환영받는 왕은 아니었다. 비록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모든 백성이 사울을 왕으로 단번에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삼상 10:27절 “어떤 불량배는 이르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바치지 아니하였으나 그는 잠잠 하였더라”
-하나님깨서 기름부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사울 왕을 따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울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작은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 전쟁은 이스라엘과 접경에 있는 암몬과의 전투였다. 암몬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전쟁으로 암몬을 상대하기 힘들었다. 암몬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조소하며 마치 위해 주는 것처럼 위장된 표정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협상을 제안한다. 그것은 삼상 11장 2절을 보면,
“암몬 사람 나하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언약의 협상은 오른쪽 눈을 다 빼면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협상을 하는 것이다. 이런 치욕적인 말이다. 성경 후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은 굉장히 가슴이 아프다. 이들은 7일간의 말미를 달라고 한다. 그때까지 전쟁할 때까지 찾아보겠다고 한다. 이게 이스라엘의 반응이다. 바로 그때 사울이 등장한다. 사울이 이 소식을 듣고 사울은 거룩한 분노가 일어났다. 소를 가지고 밭을 갈고 있다가 소의 각을 떠서 이스라엘 전체에 보내고 전쟁할 남자를 모집한다. 그리고 이렇게 모였는데 30만 명이나 되었다. 그래서 사울은 전쟁을 하여 승리로 이끌어 냈다. 비로소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사울을 왕으로 추대하게 된다.


삼상 11:12절을 보면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
-진정한 견고한 왕권이 세워진 것이다. 이 전쟁 2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성경에서는 2년간을 말하지 않는다. 13장 1절에서 이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 일어난 것에 주목하게 되었고, 아마 사울은 이스라엘 나라를 어떻게 지고 나갈지를 고민을 했어야 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다스릴 이스라엘 나라가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지 또 왕으로서 이스라엘 나라 앞에 서야 하는지, 하나님 앞에 서야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했을 시간이 그 2년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하나님께서 그 2년을 허락하신 상황이라는 것이다. 오늘 13장은 사무엘과 사울과의 관점으로 읽어야 될 본문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울의 관점으로 읽어야 한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묻고 있다. 사울에게 상황이 위급하니 사무엘도 없으니 이 혼란 상황에서 어떻게 전쟁을 준비할 것이냐고, 어떤 왕으로 이스라엘을 하나님 앞에 준비 시킬 것이냐라고 하나님이 사울에게 진지하게 묻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울은 하나님 앞에 대답을 한다. 자신이 제사를 드려 승리를 갖고 오는 것, 자신의 경험, 지혜, 모든 계략으로 전쟁의 승리를 이끌어내고 이것을 위해 필요한 것이 제사라면, 사무엘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율법이 없을지라도 그런 것을 무시한 채 오직 승리에 마음을 빼앗기며, 이스라엘을 자신이 이끌어가겠다는 오만불손한 대답을 하나님 앞에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본문을 읽으면서 혼란하고 불안하고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는 우리와 겹쳐진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큰 당면하는 일들이 있고, 주식과 부동산의 열풍이 불고 있다. 철저한 자본주의가 시장을 낳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 정치, 경제 어느 것 하나님 편안함이 없는 지금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하시는 것 같다. “너희는 지금 이 위기에 무엇을 준비하고 있느냐?”라고 “전쟁 같은 이 시기에 너는 나의 앞에서 무엇을 준비하며 너의 인생을 계획하고 있느냐?”라고 물으시는 것 같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우리도 거대한 물살에 휩쓸려 버리고 만다. 그리고 마치 사울처럼, 부득이하게 핑계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둘째 인물은 바로 에스겔이다.

에스겔은 사울보다 더 처참한 가운데 놓여있다. 왜냐하면, 사울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는 나라가 세워지는 혼란 가운데 있었지만, 에스겔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는 나라가 완전히 망하여서 불안함과 불확실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절망과 소망 없음에 상태였기 때문이다.

에스겔 1:1-3절을 보면.
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2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3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에스겔 선지자는 25세 꽃다운 나이에 포로로 잡혀갔다. 이 나이는 어떤 나이인가하면, 어릴 때부터 에스겔 가문에 어릴 적부터 제사장이시던 조부와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며 커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이 귀한 직분과 사명을 감당하려고 꿈을 키워왔던 어린 에스겔이며, 수습 제사장으로서 본격적으로 배워 나가는 시기였다. 정식 제사장의 나이가 30-50세로 규정하는 것을 보면, 25세의 나이에 수습 제사장의 나라의 멸망은 절망 그 자체였을 것이다. 에스겔의 나라가 망한 것이다. 공동체가 망했다. 개인도 망했다. 이 현실 가운데 에스겔은 두 가지의 끈을 붙잡고 이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두 가지의 열쇠를 붙잡고 일어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첫 번째는 에스겔인 자기 인식과 사명의 정체성으로 미래를 준비한다.
3절에 보면 -3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나라가 망했는데 누구도 에스겔을 제사장으로 임명할 수 없다라는 것이다. 지금 자기의 신분으로 봉사를 할 만한 나라도 없고, 성전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에스겔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제사장, 나 에스겔’이라고 고백하게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 본질적인 질문 앞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그 정체성을 부여잡고 어려운 이 시기를 이겨내는 이 첫 번째 열쇠를 붙잡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과 현실 속에서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키를 찾는 것이 아니라, 오늘 여호와의 말씀이 나를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를 에스겔을 세우고 있다. 세상이 우리를 무엇이라고 평가하는지, 주변의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나를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에스겔이 붙잡고 있다는 것이다. ‘제사장 나 에스겔’ 바로 자기 인식이라는 것이다. 이 강력한 확신은 외부의 어떤 도전도 대적할 수 있을 만한 무기가 될 줄 믿는다. 세상은 말한다. 더 빨리 뛰지 않으면 망할 것이라고,,,, 더 치솟고, 빠르게 떨어지는 돈의 가치를 보고 있지 않느냐고, 우리에게 으름장을 놓고 있다. 하지만 그 세상 속에서는 어떠한 해답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모든 세상은 가면적이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영원한 줄로 믿는다. 그 영원한 말씀이 나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에 대한 자기 인식이야말로 에스겔이 붙잡았던 중요한 실마리인 첫 번째 Key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속에서 미래를 준비한다.

-에스겔이 자기 인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1:1절에 답이 있다.
에스겔 1:1절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 그 나라가 멸망했다는 것은 그 나라의 신이 망하였거나, 그 나라를 버렸다라고 생각했다. 나라를 잃은 것도 좌절이지만,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렸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고통스런 마음 중에 하나였다. 오늘 에스겔은 무엇을 보았는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이 계심을 보았다. 역사의 주관자로 하나님이 계심을 본 것이다. 에스겔은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똑같은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인식의 변화가 얼마나 크고 재미있는지를 알게 된다. 치킨 집 예화이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전혀 다른 우리의 인생을 준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진정한 힘은 복원력이다. 실패 앞에서 다시 일어나는 힘이 강력한 힘이다. 의연하게 꿋꿋하게 일어나는 힘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이다. 오늘 이 마음이 에스겔에게 있었다. 그리고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내적인 확신의 마음을 가지고 하늘이 열리는 모습을 기억하며 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 정리하면, 사울은 하늘을 우러러 기도해야 했다. 백성이 흩어지고 천지가 개벽된다 해도 이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기에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마음에 내적인 확신을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해야 했다. 사울은 현실의 고통과 속에서 그저 자신의 합리적인 생각만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만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온전한 헌신이다. 우리의 삶과 하나님의 적당한 선을 비벼서 적당하게 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시지 않는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과 우겨쌈으로 인도하신다. 왜 그러신가? 그것은 하늘이 열려있음을 발견하게 하시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온전함으로 하나님을 사모하여 다시 회개하여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모든 삶의 미래와 인생을 준지하게 되는 것이다. 불확실한 시기를 우리는 지나가고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하늘이 열리고 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깨달아서 모든 삶이 하나님 앞에 부어지기를 바란다. 핑계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나의 자아가 깨어져서 자기 인식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간구해야 한다.


♣요약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한 제사였고, 말씀을 떠난 제사였으며, 성급히 드린 제사였으므로, 믿음이 없는 제사였고, 진실이 결여되었고 형식적이며, 이기적인 제사였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헌신과 충성, 감사와 교제가 담겨져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의분이 있는 자, 하나님을 경외하고, 지혜롭고 지식이 있는 자, 공의를 사랑하고, 진실한 자, 율법을 순종하고, 성도를 위해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자,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바른 교훈으로 성도를 권면하는 자.결국 중간에 실수하고 범죄했던 지도자라 하더라도 끝까지 신본주의적인 자세를 가진 지도자가 하나님께 합당한 지도자임을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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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은 사무엘이 오기 전에 제사를 드리는 잘못을 저질렀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면서 그에게 길갈에서 칠일을 기다리라고 한 적이 있다(10:8). 아마도 이같은 특별한 경우를 두고 그 명령을 최근에 다시 한번 내렸던 것 같다. 이 명령을 사울은 어겼다.
①사울은 사무엘이 없는데도 대담하게 제사를 드렸다.
②사울은 사무엘의 지시를 받지 않고도 블레셋과 싸우려고 결심했다. 사울은 자신감에 넘쳐서 여호와의 선지자를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거나 충고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필요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울은 사무엘에게 사자를 보내서 사무엘의 생각을 알아보지 않았다.
㉡사무엘이 오자 사울은 자기가 한 것을 회개하기는커녕 도리어 당당했던 것 같다. 즉 사울은 같은 제사장으로서 사무엘을 나가 맞으며 문안했다. 그는 나가서 사무엘을 축복했다. 그는 지금 마치 자신을 완전한 제사장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는 사무엘에게 약속을 어겼다고 책망했다.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11절).
㉣불순종했다고 사울을 책망하자 그는 자기가 한 일을 정당화했으며 전혀 회개하는 빛을 보이지 않았다. 사울이 어떻게 변명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사울은 자기가 신중해서 이러한 불순종한 일을 하게 된 것처럼 변명했다. 또한 사울은 자기가 경건하기 때문에 이러한 불순종한 일을 하게 된 것처럼 변명했다. 사울이 아주 경건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제사를 드리고 나서야 블레셋 사람들과 대결하겠다고 한 것처럼 생각할 것이다.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한 터였습니다"하고 사울은 말했다. 하지만 마침내 그는 양심에 거슬려서 그런 일을 했다고 시인한다.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한다.



▷이러한 잘못에 대한 형벌을 사울에게 선고 하였다.

1)사무엘은 그에게 그의 죄악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사울이 자신과 자신의 이익에 손해되는 일을 행하였다고 책망한다.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또한 하나님과 그의 다스림에 반역하였다고 책망한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죄는 어리석음이요 죄인은 가장 어리석은 자들이다.
2)사무엘은 사울의 운명을 선포한다. 사무엘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가르쳐 준다. 즉 가벼운 죄란 없다. 왜냐하면 죄를 지어도 될 만큼 하찮은 하나님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죄악은 우리가 당당히 서있는 천국을 빼앗아 간다. 사울은 두 세 시간을 참지 못해서 나라를 잃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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