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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주후 2021년 2월 3일)
제목: ''주 안에서 기뻐하라''
말씀: 빌립보서 3:1절
설교자: 하상범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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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서신서이다. 4장 밖에 안되는 서신서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가 바로 기쁨이다. 기쁨이란 기뻐하다는 단어가 16번 나온다. 대부분 서신서들은 그 교회의 문제들을 다룬다. 빌립보서는 그런 문제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그리고 신약에 나오는 대부분 문제들에 대해서 다루기보다 기쁨의 충만에 대해서 다룬다. 기쁨이라는 단어는 발신자 바울과 수신자 빌립보 교인들의 객관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에는 매우 사용하기 어려운 단어이다. 먼저 발신자 바울의 상황이다. 사도행전 28장에 잘 묘사되어 있다. 바울은 로마에 죄수의 신분으로 연금상태가 되어있다.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앞두고 있는데 사형으로 종결될 예정이 것이다. 문자 그대로 삼가 죽음의 상황에서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다. 교회의 상황은 어떠한가? 고린도후서 8장 1-2절을 보면, 형제들아~


환란의 많은 시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 가운데 있었다. 뿐만 아니라 빌립보서를 보면, 빌립보 교회 안에 내분이 일어남을 볼 수 있다. 빌립보 교인들의 상황은 환난과 가난과 내분이라는 삼중고에 처해서 있음을 알 수 있다. 갑작스럽게 예상치 못한 고난이 닥치게 되면 우리는 3가지를 알게 된다. 

1.그 고난이 우리의 복음을 얼마나 빼앗아 가는 것을 알게 된다.
2. 고난 중에 주님 한 분 만으로 충분한가라는 도전을 받게 된다. 
3. 시편 44:25절에 시인의 상황을 알지 못할지라도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우리가 고난 가운데 처하게 되면 시인의 고백처럼 우리 역시 절망감과 애통함과 울분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마음은 혼란스럼움으로 가득차게 된다. 그런데 바울은 고난 앞에 서 있는 우리에게 그것들이 우리가 취해야하는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함몰 공동영상이라고 있다. 내면세계 질서와 영적 성장을 작성한 고든 맥도널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외부적 상황에 의해서 우리의 내면이 갑작스럽게 함몰되어질 수 있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처한 상황 가운데 우리의 마음이 땅이 함몰한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푹 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푹 꺼진 그 상황가운데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외부적 상황 때문에 마음이 꺼졌다면, 그 무엇으로도 채우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면 고난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그 마음을 빌립보서 2:5절에 
-그 마음 가운데 고난 앞에 서 있는 가운데에 사랑하는 너희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로고 말한다. 빌립보서 2:18절 --이와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 마음을 품으면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시는 이가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시기 때문에 너희들도 나와같이 고난 앞에 서 있지만 기쁨 가운데 거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고난 앞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면, 이미 착한 일을 시작하시는 이가 우리의 영혼을 기쁨으로 충만케 하실 것이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마음을 품는자가 기쁨 가운데 거하게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끝으로 적용하자. 

사도 바울은 실천적으로 그들에게 적용해야 할 것을 말하기 전에 그이 형제들을 부른다. 이 단어를 들으면 어떤가? 예고도 없이 찾아온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사람과 사람의 거리를 멀어지게 만들었고, 지금은 5인 이상 집합금지를 시켜서 서로에 대해서 점점 무관심하게 만들고 있다. 무언가를 할 의지 마져도 꺾어 놓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 우울과 코로나 불루는 우리의 희망의 불씨를 점점 꺼뜨려 가는 것만 같고 우리의 마음을 점점 움추려들게 만드는 것 같다. 요즘과 같은 때에 더 의미가 있는 단어가 바로 나의 형제들인 것 같다. 왜냐하면, 빌립보서 1:7-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빌립보 형제들인 성도들에게 그 나의 형제들이라고 부를 때에 속에 담겨있는 사랑의 고백이 그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너희들을 향해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왜 당연한가하면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들을 사모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도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졌기 때문에 빌립보 너희들을 사랑하고 너희들을 기뻐하고, 너희들을 감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방식이다. 우리 모두는 어떤 사랑을 경험하고 있는가?

스바냐 3:17절-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즐거히 부르시며 기뻐하시리라.
-조건이 충족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니라 먼저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이,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기뻐 나를 불러 주셨던 먼저 불러 주셨던, 가만히 있어도 춤을 추어 주셨던 그 하나님의 사랑이 이미 내 안네 있기에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사랑의 순서가 다르다. 세상은 조건이 채워지거나 자걱을 주거나 나에게 이익이거나 나에게 만족이 있거나, 내게 유익이 있어야지만 사랑을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떤것이 없어도 사랑할 수 있다. 심지어 내가 사랑을 했는데 나에게 이익이 없어도 우리는 사랑을 한다.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사랑을 주었는데 그 사랑이 나에게 돌아오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지는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힘이고 사랑의 역사이다. 지금 목양 교역자 목사님들과 전도사님이 문고리 심방을 한다. 한 번도 얼굴을 못뵌 성도들에게 전화를 하고 교회가 준비한 선물을 가지고 간다. 담임 목사님께서 목자의 심정으로 목양의 마음을 가지고 카드를 가지고 방문을 한다. 어떤 성도님은 문고리에다가 방문을 하기 전에 간식을 문고리에 걸어두기도 하고 어떤 분은 도착시간에 맞추어서 미리 나와서 얼굴을 못뵈어도 미리 인사해 주시는 분들도 있다. 또한 아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했고, 문고리에 걸어두고 오면 문자가 오거나 고맙다고 전하고 있다. 그 기쁨을 경험하고 있다. 먼저 주님의 심장으로 사랑하고 그 분들을 통해 넘치는 기쁨이 다시 돌아오는 그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 나의 형제들아, 이것은 코로나 고난 가운데서도 꺼져서는 안되는 목양일념의 마음인 것이다. 



이것이 고난 가운데 느끼는 넘치는 기쁨이다. 바울은 이제 실천해야 할 것들을 말한다. 실천해야 할 것은 기뻐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주 안에서 기뻐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주 안에서 기뻐해야 한다고 말한다는 것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기독교인들이 기뻐해야 하는 기쁨의 근거와 영역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알려주고 말을 해주기 위해서 주 안에서 기뻐해야 된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쁨의 참된 근거는 무엇인가? 2장에 나와있다. 그리스도의 메시아의 사역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무엇인가?
고린도후서 5: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역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에게 주어진 기쁨이다. 나의 공로가 아닌 에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기쁨, 예수님께서 만들어 주신 기쁨이 우가 가지고 있는 기쁨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6:22절, 17:13절에 보면,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에게 주어진 그공로로 주어진 그기쁨은 외적인 사건이나 환경적인 조건으로 채워진 일시적인 기쁨이  아니다. 피로 사주신 아무도 빼앗을 수가 없다라고 하셨다. 그 기쁨을 우리가 온전히 충만히 가질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다. 한 신학자는 그 기쁨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주안에서의 기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말한다. 외적인 사건에 영향을 받아 내부에서 솟아나는 적개심과 공포심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벽으로 막아 변하지 않는 기쁨을 유지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그 공로로 우리에게 주어진 그 기쁨은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참여하는 길에 들어셨다라는 그 기쁨이다. 오늘의 인생이 고달프지만 영광으로 다가올 미래에는 즐거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다. 완전한 생명은 마지막 때에 이루어지지만 그 미래는 이미 여기서 현실성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미 구원의 기쁨에 실제적으로 참여하고 누리게 되는 그 은혜가 여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바울의 모습이 바라 그 모습이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 죄수의 신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모습인가? 기쁨으로 편지를 쓰고 있다. 바울 자신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공로 때문에 자신의 내부를 기쁨의 벽으로 세웠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적개심과 공포를 기쁨의 벽으로 막아내고 있기에 옥중에서도 기쁨의 편지인 빌립보서를 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주 안에서 기뻐한가?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에 힘입어 인생의 어두움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내 안의 기쁨의 벽을 세워서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기쁨을 온전함으로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둘째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기쁨의 영역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기쁨의 영역은 빌립보서 2;9-11절에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주 안에서 기뻐해야 할 영역은 만유를 통치하시는 예수님의 주권의 영역 안에서 예수님의 주권적 통치 아래서를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는 예수님께서 사단의 권세를 꺾고, 죽음을 깨뜨리고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능력에 의존하고 그이 온 우주를 통치하는 권세에 순종하는 자이다. 예수님의 주권의 영역 안에서 예수님의 주권적 통치아래서 하는 행동일 수 있다. 그래서 주 안에서 기뻐하라하는 이 말은 주의 힘입어 기뻐하라라는 말이며, 다르게 표현하면 주에 순종하여 기뻐하라라는 말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이 말을 적용하면, 이렇게 표현한다. 세상과 역사를 다스리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자적인 간섭에 힘입어 기뻐한다는 것이다. 이것역시 사도 바울은 이론가가 아니다. 자신의 삶의 실질적으로 체험한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빌립보서 1:1절에 보면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종이라라고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이라고 말하고 있다. 종이라는 표현은 당시 헬라 문화권에서는 자신을 비하 시키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종에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비하가 아닌 모든 인생은 그리스도 예수님께 예속 되어져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도행전 16장에서 보면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가게 되는 배경이 나온다. 바울은 소아시아 지방으로 복음을 전하러 가고 싶었는데 성령이 소아시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환상 가운데 마게도냐로 가게 하신다. 바울은 그 성려의 음성에 순종하여 마게도냐로 향하게 된다. 첫째로 간 곳이 빌립보이며, 첫 만남은 루디아 여인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게 되고 귀신 들린 한 여인에게 복음을 전한다. 그래서 감옥에 들어가게 되는데 기적을 본 간수에게도 복음을 전한다. 그 사건을 통해서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게 된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땅으로 갔는데도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영적인 희열을 경험했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6절에서 보면, 세상과 역사를 다스리시는 주권자적 간섭으로 우리의 인생 가운데 있기에 환난을 만나도 주권자적 영역 가운데에서도 기뻐하라는 것이다. 에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지금 내뜻대로 안되는 것 같아도 세상의 역사를 다스리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자적 간섭에 기뻐하길 바란다. 우리 주님의 주권자적 영역에 기쁨으로 서 있어야 한다. 이러할 때 우리는 세상의 빛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 안에 꺼지지 않는 기쁨의 빛을 보여주어야 한다. 주 안에서 기뻐하는 삶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주님으로 기뻐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요약
인생의 어두움 앞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을 때,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의 영혼을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외적인 환경들이 객관적으로 보기에 좋아 보이지 않더라도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기쁨의 벽을 세워  변하지 않는 기쁨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세상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간섭에 힘입어서 기뻐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빌립보 교회가 비록 신실하고 번창해 가는 교회였다 할지라도 유대교화 하려는 교사들에 의해 혼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행한 교훈은 다음과 같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주안에서 기뻐할' 것을 권고한다. 우리가 신앙으로 위로를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는 더욱더 그 신앙을 고수할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 안에서 기뻐하게 될수록 더욱더 우리는 주를 위해서 당하는 고난을 달가운 것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주를 멀리하게 될 위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니 항상 주 안에서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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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베(주후 2021년 1월 31일)
제목: "영적 건강 측정"
말씀: 요한복음 15:4-5절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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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5:4~5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한 해의 11개월을 새롭게 걸어가야 할 앞에 놓고 영적 건강 측정'이라는 제목으로 주님의 심정을 깨닫기를 바란다. 코로나 이후로 사람들이 육신의 건강에 대해서 굉장히 예민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군이기에 그 위험으로 보호 받을 수 있도록 목회자인 나로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면역력을 강화시켜 주시길 주님께 기도한다. 
비타민 씨를 많이 먹어야 하고, 음식도 조절하고, 손도 잘 씻고, 자기 몸을 체크하고 점검하여야 한다. 그런데 육신의 건강뿐 아니라 우리 영적 건강이 어떤지를 봐야 한다. 육신의 건강과 영혼의 건강은 차이가 있다. 육신의 건강은 건강하지 않으면 당장 피곤하다. 면역력이 약해진다거나 혹사하거나, 몸을 굴리면, 입안이 터지고 몸살이 나고 피곤한 것이다. 그러나 육신의 건강은 어느정도 측정할 수 있다. 검사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영혼의 건강은 표도 안나고 측정이 안된다.
영적세계는 깊은 것이기 때문에 영을 혹사시킨다든지 영은 잘못 다른지를 이야기를 안한다. 영혼은 상처받았다고 당장 호소하지 않는다. 영혼의 건강이 안좋을 때에 처음에는 잘 못 느끼고 거의 막판에 가야 느낄 수 있다.미귀에게 패배해서 영적 단물이 다 빨아먹히고 나중에서야 안다.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하고 영적 건강을 체크해서 미리미리 영적 건강 체크해서 강건하기를 바란다. spritual medical chek이다. 영적 메디컬 체크이다. 혹시 사람들이 육신의 건강이 안좋을 때는 몸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굳어져서 딱딱해진다.영적으로도 보면 한국 사람들은 이 체면문화, 가면문화, 가면문화, 간판문화 겉으로는 괜찮은 것 같은데 실재 속으로는 안그런게 얼마나 많은가! 바리새인들도 겉으로 보기에는 멋있고 건장해 보였다.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다. 일반적으로 건강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것도 많다. 신의 건강과는 다르게 표가 나지 않기 때문에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모두가 영적 건강이 무엇보다도 문제가 있을 때 주님의 열망과 하나님 나라 비전과 영정들이 다 사라지고 있다. 겨우 연명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은 영적 건강이 잘 체크되어 가지고 다시 한 번 강건하길 소망한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영적 건강을  재대로 체크할 수 있는가? 이것이 우리의 관심이다. 오늘 뒤를 보다가 마음을 확 때리는 구절이 있다. 5절 뒤에 보면 나를 따르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신다. 오늘 이 사실 주님을 떠나서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것을 절실하게 처절하게 실체를 깨달아야 한다. 


I. 첫번째 영적 건강 체크를 위하여 주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영적건강의 가장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교만이다. 
영적교만이란 주님을 떠나서 내 힘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주님을 떠나서 내 실력 내 능력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 교만이다. 
주님의 보좌에 앉으셨는데 우리 모두가 다 마음의 소원, 우리는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것은 깜깜한 밤에 번개가 짜자작 치듯이 일도양단이란 말이 있다. 칼을 가지고 단칼에 치듯이, 건곤일척도, 하늘과 땅을 가르듯이 쫘악하는 것이 뭐냐면, 주님을 떠나서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젊을 때는 내 능력, 내 실력이 이라고 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진리이다. 

내 마지막 때에 주님 앞에 이것을 고백하고 서게 해달라고 해야한다. 이것을 우리 성도들이 고백해야 하고 한국 교회가 고백해야 한다.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주님 없어도 내맘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소위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독립선언이다. 주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이것이 제자훈련에서 말하는 것이 바로 전전위탁(토털 커뮤니먼트)인 것이다. 
한해 내내~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에서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II.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첫째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삶에서 일이 복잡하고 큰 일을 앞에 놓고 많은 일들이 있어도 기본은 단순,명료, 순전, 명징한 것이다. 아주 심플한 것이다. 단순명료는 이 말은 일은 안한다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복잡하게 일을 하셨다. 바울 사도도 많은 일을 하다. 이중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양다리가 아니다. 어쩡쩡하게 한 발은 세상, 한 발은 예수님께 딛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삶의 등대가 흔들림이 없다. 그 등대의 불빛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럴때 우리의 집중력을 흩으리지 아니하고 고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그런데 사람들이 많은 경우 흔들림 없는 등대의 불빛에 의지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배의 불빛에 흔들리는 것이다. 그 미혹되어 가지고 영적 집중력에 장애를 일으키는 것이다. 지나가는 배의 불빛은 무엇인가? 그것은 화려하고 좋아보이고 세상의 즐거움과 쾌락과 재물이 반짝반짝 하는 것이다. 결국에 이것은 지나가는 것이며, 유혹에 불과하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 교회 목사님이 58세인 분이계시는데 우리 엄마는 나만 보면 양치질해라 하신다고 한다. 누가 모르겠는가?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기본인데 우리도 이 한 해동안, 모든 내용들을 주님 앞에 놓고 주여! 單純 明瞭, 純全, 明徵한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라고 해야한다. 이것은 이중적이지 아니하고 도울 마인드가 아니고 오직 쟁기를 잡고 뒤를 봐라 보는 것, 한 발은 세상에가 아니라는 것이다. 두 마음을 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호세아서에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영적 집중력을 가지고 지나가는 불빛에 흔들리지 말고 딱 흔들림 없는 고정된 인생에 등대에 집중하여 그래서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단순명료해진다. 그리고 인생의 등대 불빛을 바라보고 고도의 집중이 된다.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석을 하면

둘째는 주님과의 친밀함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주님과 나만이 아는 그 친밀한 감탄사를 가지고 회복하라는 것이다. 이런 뜻이다. 새벽에 자다가도 깨면 침상에서 눈물이 나는 것이다. 나같은 인생이 뭔데 주님 나같은 인생이 무언데 수치와 모욕을 다 당해 주시고 대신 ...기가 막힌 것이다. 주없이 살 수 없는 것의 찬양도 그렇다. 주님과 더 친밀해져야 한다. 이 땅에서의 더 나은 삶만이 목표가 아니고 주님과의 더 친밀함이 목표이다. 그래서 더 친해져서 주님의 심장을 느낀다. 주님과 친밀하면 두려움이 없다. 죽음은 죄 때문에 온 것이다.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으면 안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과 분리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은혜를 받아서 그리스도의 피로  영적으로 회복되어서 주님과 관계가 회복되면 죽음 자체가 주님과의 친밀함의 극점이다. 죽는 그 순간이 최고의 성화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는 것이다. 죽음조차도 두렵지 않고 감사한 것이다. 분리되었던 인생이 내가 죽는 그 순간이 오매불망 주님과 만나는 것이 죽음이 두렵지 않는 것이다. 슬프지만 슬프지 않다. 이것이 신앙이다. 육신의 몸이긴 하지만, 진짜 영적으로 보면 내가족이 주님과 만나는 것이 최고의 성화이기에 죽음이 두렵지 않다. 신앙의 깊은 은혜이다. 세상적으로 볼때 대단한 분이라도 주님을 떠나서는 살 수없다고 여기는 사람은 행복이며 그 순간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며 영적으로 깊은 것이다.

이것이 그냥 찬송 중에 눈물이 난다.
주 없이 살 수 없네 죄인의 구주여 그 귀한 보배 피로 날 구속하소서 구주의 사랑으로 흘리신 보혈이
내 소망 나의 위로 내 영광됩니다 주 없이 살 수 없네 나 혼자 못 서리 힘 없고 부족하며 지혜도 없도다
내 주는 나의 생명 또 나의 힘이라 주님을 의지하여 지혜를 얻으리 주 없이 살 수 없네 내 주는 아신다
내 영의 싶은 간구 마음의 소원을 주밖에 나의 마음 뉘 알아주리요 내 마음 위로하사 평온케 하시네
​주 없이 살 수 없네 세월이 흐르고 이 깊은 고독 속에 내 생명 끝나도 사나운 풍랑일 때 날 지켜주시니
내 곁에 계신 주님 늘 힘이 됩니다~~ 아멘

III. 셋째 영적으로 건강해지면 과실을 많이 맺는다.
우리는 꽃보다 열매이다. 꽃보다 과실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열매이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하고 중요한 것은 과실이다. 나무 자체는 목재로도 못 쓴다. 뗄감으로도 별로 의미가 없다. 조경수로도 못 쓴다. 포도나무의 제일 중요한 것은 열매이다. 열매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 ?  8절에 보면. -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을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은 하늘에 영광이고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다. 참된 제자는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이다. 우리는 열매를 말할 때 열매는 성령의 열매이다. 바로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아홉가지 열매이다. 이 아홉가지 열매를 한 사람이 조화롭게 잘 맺어야 한다. 그래서 완벽하게 맺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가지로서 접붙여 있으면, 주님께 포도나무에 접붙여 있으면, 우리도 나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단순명료하고 이중성없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우리의 삶의 등대를 분명하게 하면, 이 아홉가지 열매가 조화롭게 맺어지게 되는 것이다. 균형잡힌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나에게 어떤 열매가 있는지를 봐라보라. 나에게 무슨 열매가 있는지를 보게 됨을 알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꽃이 아니라 열매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은 꽃 성도가 아니라 열매 성도가 되어야 한다. 열매는 생명을 연장한다.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아버지께서 제거해 버린다 하신다.
- 영적인 삶의 열매로....
주없이 살수없어...주님과의 친밀함
--왜 순장하나, 봉사, 예배... 주님과의 더 나은 관계를 위하여

요한복음15: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중요한 것은 꽃이 아니라 열매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빌립보서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열매맺는 삶
- 하나님과 함께 해야 열매맺을 수 있다. 하나님을 위해서... 보다
- 전적위탁
이스라엘 2,000년 된 올리브나무

마태복음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요한복음15: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유다서1:12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포도나무 가지 같이 주님께 붙어있으면 자연스럽게 열매맺는다. 극상품 열매를 맺기위하여


♣요약

우리가 열매를 맺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할 필요성: 너희가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과실을 맺을 수 없으나 내 안에 거하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니 이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4,5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가장 훌륭한 증거는 열매 맺는 생활이다. 이것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으며,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우리가 많은 선을 행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그 안에 있는 믿음의 역사를 따라 항상 살아가는 자는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삶인 것이다. 그 삶은 선을 행하는 데에도 필요하다. 그것은 모든 선의 근원이며 원천이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즉 위대한 일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우리가 아무 것도 바르게 행할 수 없다.

즉 어떠한 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라 우리에게 유익이 될 만한 열매가 될 수 없다. 우리는 포도나무가 울타리로 지탱되고 나무가지가 뿌리에서 수액을 공급받듯이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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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새(주후2021년 1월 30일)
제목: "구레네 사람 시몬의 경우"
말씀: 마가복음 15:16-23절, 로마서 16:13
설교자: 주연종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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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5:16-23절, 로마서 16:13)
15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16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21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3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로마서 16:13-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교회는 서로 나누고 노인이 맘껏 녹여내는 곳은 바로 놀이터가 교회였음 좋겠다고 생각한다. 포에버 중심과제이면 더욱 좋겠다. 주 직종을 은퇴한 사람들이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심지어는 은퇴후에 40년을 더 살아야 한다. 앞으로 절반으로 우리 교회도 교회 사역에 새로운 사역을 준비해야 한다. 은퇴자 협회가 있다. 미국등에도 활성화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활성화 되지 않고 있으며 기독교 은퇴자 협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은퇴자들이 더 잘 살고 교회오면 영원히 산다고 느끼게 하고 교회가 도와야 한다. 세상 가운데 영원히 쉬고 영혼이 안식하고 싶은 곳이 되어야 한다. 예배를 중요시 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 훈련과 배우는 것들도 많이 있다. 그 모든 것에 앞서서는 영적인 공동체로서 예배를 더 중요시 한다.

오늘 말씀 중에 시몬을 말한다. 예수님은 새벽부터 대제상장고, 공회가 빌라도에 보내서 예수님을 죽이게 된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메고 두 시간을 걸려서 1킬로를 걷고 가신다. 그 이른 아침에 골고다 골짜기에 가신다. 그것을 본, 사람중에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다. 남루한 모양의 사람 시몬은 형편없지만, 예수님과 십자가를 멘 사람이다. 예수님이 재판을 마치고 무덤으로 간 곳이 유적으로 남아있다. 시몬이 끝까지 십자가를 함께 메고 가고 있다. 십자가 위에서 6-9시간 예수님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함께 간 것이다. 시몬이 예수님의 모든 것을 느끼고 본 사람이다. 로마서 16장에 보면 바울이 로마에 있는 사람에게 안부한다. 시몬의 아내에게 안부를 전한다. 시몬의 집안은 바울과 동역자가 되었음을 볼 수 있다. 시몬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아프리카에서 시몬은 예수님을 전했을 것이다. 성전에 가서 예배를 했던 것은 전형이 예수님이시기에 하나님께 올려 드려서 모든 죄를 사함을 받았음을 말했을 것이다. 시몬을 통해서 영적인 재생산이 되고 가족이 다 그렇게 되고 바울과 동역자로서도 그렇다. 생명도, 영적인인 생명으로부터 온다. 포에버 공동체도 21세기 시몬처럼 은퇴이후에 초고령자 속에 재생산의기회가 되길 소망한다.

모여라 60플러스!!! 기독교인들이 모여서 모여서 새길을 내보자라는 것을 해보고 싶어진다. 기독교 은퇴자들 모임을 만들어서 시스템을 만들어서
세대계승을 효과적으로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하지 않으면 안되는 위기감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교회가 잘 감당해야 한다. 우리의 현실을 감당해야 할 일이며 숙제가 되어 이 연령대에 갈바를 모르는 자들이 모여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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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에버를 통해 멋진 재생산이 일어나길 바란다. 유산이란 단어가 레가시이다. 유산=Legacy 그래서 신앙의 유산을 남겨주기를 바란다. 1905년에 세운 경북 의성에 있는 삼분교회에서 담임 목사님이 유아세례 명부가 있다고 한다. 감동이다. 방역문제로 교회는 영적인 재생산을 통해 가장 세계에서 영광스런 곳이다. 민족, 이웃의 아픔을 대비하고 북한의 모든 문제, 청년 단체, 언론, 시민, 비열리 단체 등이 크리스찬이 레가시를 만들어 내길 바란다. 교회가 잘 되어야 한국이 발전한다. 교회는 방역지침 잘 지켜서 N차 감염이 절대 없다. 방역지침 지키면 예배를 잘 지켜서 우리교회는 마스크 잘 쓰고 거리를 두어서 한 번도 감염이 없었다. 한국 교회는 한국 사회와 함께 간다. 우리 교회도 아름다운 본당을 지켜주시고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믿는다.

암송 그리스도를 전파함. 1,2이다. 제직회 후에 여직장반 수양회가 있게 된다. 많은 은혜가 되기를 소망한다.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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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직장다락방 수양회

 

 

 

 



                                                                  ☆ 여직장인 다락방 수양회 ☆   

빅준범 선교사님(새순병원원장)
중동에서 선교사로 일하면서 그 순간이 꿈의 현실이 되고 제자를 삼고 성경으로 함께 모여서 아랍 제자에게 준 성경책 3천권이 복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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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주후 2021년 1월 27일)
제목: "결국 은혜뿐입니다"
말씀: 출애굽기 4:10-17절
설교자: 한재준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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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4:10-17절)

10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
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에필로그
-오늘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은혜로 예배드림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며 축복한다. 오늘 이시간 주님께서 갑절의 은혜를 주실 줄 믿는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며 사명이란 말을 많이 듣는다. 모두 스스로가 사명자라고 생각하는가?

사명자란 목사님만이 사용하는 사람이지 하면서 동떨어진 말로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사명을 받은 사명자이다. 그런데 요즘처럼 급변하는 혼란 시대에 우리는 사명자로서 지금 무엇을 할지를 고민을 하게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참 많은 것들이 변했다.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모든 영역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 중에 가장 큰 변화 바로 비대면 시대이다. 이때에 우리가 갑가지 갖게 된 것은 ZOOM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우리 교회도 모든 훈련을 줌으로 했다. 이전에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이렇게 환경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앞으로 이런 현상은 더 급속히 감소할 것으로 본다. 우리 교회는 어떤가? 크리스찬 투데이에서 보면 코로나 시대에는 종교에 대한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유사 이래 가장 위기라고 한다. 우리는 이렇게 급변하는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소식을 요즘 자주 듣는다. 이럴 때에 우리는 소명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분명 우리 모두에게 이 상황 가운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해야 할 일을 주셨는데, 우리는 과연 이 사명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 오늘 본문은 모세에 대한 내용이다. 모세를 생각하면 위대한 지도자로 상상된다. 하나님께 사명을 받았던 모세는 충성되고 훌륭하게 감당했다. 그는 특별한 사람은 아니었다. 모두 겁 많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제 모세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자.

▷사명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무엇인가?
첫째- 모든 경험은 하나님의 준비하심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 그의 나이는 80세였다. 모세의 인생을 크게 세 시대로 분류된다.

1. 왕자로서 -40년,

2. 목자로서 40년,

3. 지도자로서 40년이다.

 

I.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그 타이밍.

1. 모세 인생의 3분의 2가 지난 시점인 그가 80세 때이다.

늦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적당한 시간이었고 모세를 준비시키는 시간이었다.

 

처음 40년간의 모세는 애굽의 왕자였다. 왕자로서 왕궁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법학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교육과 훈련을 받았다. 또한 그는 모세 5경을 기록한 자이다. 왕자의 교육을 받은 자였기에 이 방대한 분량의 모세 5경을 기록할 수 이었을 것이다. 또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애굽을 잘 알아야 했다. 모세가 애굽의 왕자가 아니었다면, 훗날 바로와 마주했을 때 어떠했겠는가? 바로 앞에서 모세는 바로에게 압도당했을 것이다. 또한 애굽의 거대하고 화려한 왕궁 앞에서 아마도 주눅이 들었을 것이다. 모세는 애굽을 잘 알았기에 바로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었다. 그 다음의 40년은 어떤 준비를 했겠는가? 모세는 혈기가 왕성했고, 세상의 무서울 것이 없는 왕자의 시대였다. 그의 어머니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배운 모세는 아마도 내가 애굽의 왕자이고 힘이 있으니 자신의 동포인 이스라엘 백서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때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을 죽였다, 그 일이 탄로 나자, 애굽을 떠나 미디안으로 도망갔다. 모세는 왕자의 신분에서 하루아침에 도망자의 신분이 되었다. 애굽 왕궁에서 세상의 고급 학문을 연구하고 나라의 정책을 논의 했던 모세는 미디안에서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다. 40년간 목자 생활을 하면서 자기 안에 있던 왕자로서의 자존심, 자만심, 교만함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광야에서 양을 치며 자신의 무능력한지, 초라한 존재인지를 깨달았다. 양떼를 키우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모세는 목자로서 양떼와 함께 천천히 걷는 법을 배웠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양을 다룰 줄 알게 되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헤매는 양들을 쉴만한 초장으로 인도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었다. 미디안광야가 없었다면, 불평과 불만이 끊이지 않았던 백성들을 끝까지 참고 그들을 인도할 수 있었다. 미디안 광야 40년의 시간은 모세에게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마찬가지로 준비시키신다. 평범해 보이는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서 나를 준비시키시는 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하나님 앞에서 충실해야 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힘들고 어려운 시간도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더 크게 사용하기 위해서 준비를 시키시는 시간임을 믿는다. 부르심의 순종함의 후에 힘들 수 있다. 생각하지 못하게 어려움도 있고, 도저히 오를 수 없을 것 같이 보이는 오르막길이 내 앞이 놓여 있을 수 있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싶지만, 내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닌가! 여러 가지 이유로 망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다는 것은 내가 준비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완벽한 준비는 아니라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부르시는 이유가 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그때가 가장 좋은 시간이다. 그때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순종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시길 바란다.

 

II. .하나님을 부르심을 받아야 할 타이밍.

2. 두 번째에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전능하심이다.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아래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고 하신다. 이에 대한 모세의 반은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저는 절대 못합니다’로 요약된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거절 하냐면 바로 자신이 없어서이다. 한사람도 아니고 한 가족도 아닌 한 민족을 이끌어내라고 하시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 모세가 트라우마가 있었다. 거절이다. 애굽의 왕자였던 히브리 사람을 죽였기에 그 후에 히브리 사람은 모세에게 화를 낸다. 같은 히브리 사람인데 자기를 위해 저지른 사람이었기에 그런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부를 당한 경험으로 인해 트라우마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반드시 모세와 함께 있겠다고 하신다. 그러나 입이 뻣뻣하다고 한다. 아론을 붙여 주신다. 그리고 나서 모세에게 또 하나를 더 주신다. 모세에게 지팡이를 주시면서 그것으로 기적을 행하게 하신다. 기적을 보이시면서 자시의 전능함을 보이신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부족함을 아시고 그것을 채우신다. 내가 무엇 때문에 두려움을 하나님은 아시고 계신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주실 줄 믿는다.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는 우리 성도들이 어렵게 지내고 있다. 삶의 변화들 가운데 두려움이 있다. 직장과 인간관계, 분노, 미움들, 가정 안에 산적해 있는 문제들, 다른 사람들에게 말 못할 어려운 일들이 나를 덮치고 짓누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체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숨을 쉬며, 매일 눈을 뜨는 것도 은혜이고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것도 큰 은혜이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는 벌레보다 못하고 전적으로 타락한 죄 있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은혜는 말할 수 없는 것이며 그 은혜를 매일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 은혜를 잊고 살고 있을 수 있다. 이 현실에 익숙해서이다. 매일 일상이 너무나 당연할 수 있다. 마스크를 이렇게 쓸 것인가도 우리는 예상을 못했다. 지금은 그 당연한 것들을 못하고 있다. 아무리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조금씩 내 마음 가운데 교만함이 생긴다. 내 힘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한다. 나의 재능, 지식, 경험, 내 인맥, 내 노력, 내 의지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부족하기에 매 순간 주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모세가 소명을 받자,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은혜를 구했기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아론과 지팡이를 허락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 아신다. 나의 약함도,,,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약함을 통해서 감사하게 일하고 계신다.

 

바울의 고백을 보면, 고린도후서 12:9-10절이다.

-바울에게는 육체의 가시가 있었다. 그래서 3번이나 간구 기도했다. 그러나 충분하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약할 때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고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III. 하나님을 부르심을 받아야 할 타이밍

3. 사명 자는 참된 축복의 은혜를 누린다.

-어렵사리 애굽에서 이끌고 나왔지만, 가나안 땅은 결코 순탄치는 않았다. 모세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불평했다. 심지어 고라는 아론과 모세에게 반역까지 했다. 가나안 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어려움이 있었지만, 모세는 연단되고 변화되어 갔다. 모세는 다혈질적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지만, 하나님께 모세는 기도했다. 다혈적인 사람이 오히려 자기 목숨보다 주위사람을 더 귀히 여기는 사람이 된 것이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일을 한 것이다. 하나님이 빚어 가신 대로 살아간 모세가 축복된 길이었다. 사명자의 길은 좁은 길이다. 모세는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날마다 하나님과 가까워졌다. 우리도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요약

모세가 자신은 말에 능치 못하며 적당한 사람이 아니니 보낼 만한 자를 보내라고 거절하자 하나님께서는 그와 늘 함께하여 부족함을 채우겠다고 위로하시며 그를 권면하셨다.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능치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에게는 다만 그 힘을 의지하는 순종이 필요하다. 또한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내와 자비로써 죄인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순장님과 주일학교 교사들, 모두가 자기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고, 부모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사람은 부족하다. 부족하기에 하나님께 더욱 의지하고 기도하게 된다. 나의 모든 경험과 시간이 하나님께서 나를 준비시키시는 시간임을 믿으며,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여 부르심에 순종하고, 부족하고 연약한 나를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내가 약할 때 강함이 되어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온전하게 깨닫고 나의 사명을 거뜬히 이겨내는 삶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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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1년 1월 24일)

제목: 거룩한 나라, 거룩한 백성

말씀: 이사야 1:1~4

설교자: 전광식 목사님(고신대총장님, 독수리학교 이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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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1-4절)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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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오늘 오랜만에 드리는 감격스러운 대면 예배인데 이 예배를 드리게 됨에 감사하다. 말씀의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200년 전에도 이러한 전염병이 심했다. 우리나라로는 순조시대이다. 무서운 돌림병으로 8도에 그리고 제주도까지 미쳤다. 이때에 콜레라도 희생자 수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다고 한다. 200년 후에 이렇게 조선시대 못지않는 전염병이 왔다.

도입 : 바이러스와 정체성의 위기

바이러스가 가져온 위기들은 다음과 같다.
1. 경제 및 사회의 위기
2. 공동체의 위기
3. 생명의 위기 : Yuval Harari “homo sapiens → homo Deus”
4. 정체성의 위기 : 도대체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이며, 어떤 자들인가?

 

Ⅰ.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국적

정체성은 국적에서 드러나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이중국적을 지니고 있다.

1. 그리스도인들의 이중국적

지금 그런 형국으로 인해
첫째는 경제위기,
둘째는 공동체의 위기이다.
셋째는 생명의 위기이다.
넷째는 정체성의 위기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는 이중국적자이다. 흙에 속한 자이고, 하늘에 속한 자이다.
-후찌무라 간조목사님 -,
Christian, Japanese
-남은 김인서 목사님,
C chosen(조선)
C church(교회)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고린도전서 15:49).”

1) 흙의 형상 – 땅의 백성 – 세상나라의 시민
2) 하늘의 형상 – 하늘의 백성 – 천국의 시민

2. 이중국적의 의미

1) 천국의 백성 : 은혜로 얻은 신분

2) 세상의 백성 : 과제로 받은 신분

 

Ⅱ. 나라와 민족을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과제(1) : 복음화

1. 바울의 예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로마서 9:1~3).”

2. 죤 낙스와 김준곤 목사

3. 복음의 증인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8).”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사도행전 2:32).”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사도행전 3:15).”


Ⅲ. 나라와 민족을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과제(2) : 거룩한 나라, 거룩한 백성

1. 국가의 이상
1) 공산주의, 사회주의 이상 – 유물론, 무신론, 반기독교적 태도
2) 민족주의 이상 – 민족절대주의, 집단이기주의, 타민족 천시
3) 세속적 자유주의 이상 – 개인주의, 물질숭배, 자유방임주의

 

2. 세속적 자유주의 이상의 문제점
1) 비도덕적, 반기독교적 흐름들
2) 아브라함 카이퍼와 <반(反)혁명당>


3. 나라와 민족의 방향
1) 주변국들과의 비교점검
2) 위로부터 임하는 은혜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야고보서 1:17).”
3) 우리의 현실 : 은혜가 임하기 어려운 상황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이사야 1:4).”

 

Ⅳ. 그리스도인들의 사명

1. 먼저는 하나님의 진리가 무너지는 것에 대해서는 막아야 한다.

1) homo negans
2) 새뮤얼 헌팅턴 : West & Rest → God and Rest
3) 에밀 브룬너

 

2. 투쟁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도이다.
1) 빌리 그래함
2) 우리 믿음의 선조들

3. 우리가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야 한다.
-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시련과 위기가 있더라도 진리를 지키고 믿음의 바른 길을 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것에 생명을 걸어야 한다.

마무리“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애굽기 19:6).”


♣요약
공동체 위기의 시대에 기도로 성령충만 받아서 복음의 증인이되고 교회의 SAGA를 통해 우리 민족에게 그리승으 계절을 전해야 한다. 우리가 위로부터 임하시는 은혜를 구하여 늘 기도하고 모둔 영역에서 영적 전선에서 압도적으로 거룩하게 쓰임받는자 되어야 한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을 하면서도 그의 백성들이 경청해 줄 것을 기대하지 않고 하늘과 땅에다 말을 한다. 유다의 죄악상을 지적하시는 말씀이다.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하나님을 거역함으로써 징계를 자초했다. 하나님의 은혜가 온 열방에 떨치고, 우리가 영적 비전을 가지고 사명으로 감당하고, 깨어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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