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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주후 2021년 2월 3일) 제목: ''주 안에서 기뻐하라'' 말씀: 빌립보서 3:1절 설교자: 하상범 부목사님 ---------------------------------- 기쁨의 서신서이다. 4장 밖에 안되는 서신서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가 바로 기쁨이다. 기쁨이란 기뻐하다는 단어가 16번 나온다. 대부분 서신서들은 그 교회의 문제들을 다룬다. 빌립보서는 그런 문제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그리고 신약에 나오는 대부분 문제들에 대해서 다루기보다 기쁨의 충만에 대해서 다룬다. 기쁨이라는 단어는 발신자 바울과 수신자 빌립보 교인들의 객관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에는 매우 사용하기 어려운 단어이다. 먼저 발신자 바울의 상황이다. 사도행전 28장에 잘 묘사되어 있다. 바울은 로마에 죄수의 신분으로 연금상태가 되어있다.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앞두고 있는데 사형으로 종결될 예정이 것이다. 문자 그대로 삼가 죽음의 상황에서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다. 교회의 상황은 어떠한가? 고린도후서 8장 1-2절을 보면, 형제들아~ 환란의 많은 시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 가운데 있었다. 뿐만 아니라 빌립보서를 보면, 빌립보 교회 안에 내분이 일어남을 볼 수 있다. 빌립보 교인들의 상황은 환난과 가난과 내분이라는 삼중고에 처해서 있음을 알 수 있다. 갑작스럽게 예상치 못한 고난이 닥치게 되면 우리는 3가지를 알게 된다. 1.그 고난이 우리의 복음을 얼마나 빼앗아 가는 것을 알게 된다. 2. 고난 중에 주님 한 분 만으로 충분한가라는 도전을 받게 된다. 3. 시편 44:25절에 시인의 상황을 알지 못할지라도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우리가 고난 가운데 처하게 되면 시인의 고백처럼 우리 역시 절망감과 애통함과 울분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마음은 혼란스럼움으로 가득차게 된다. 그런데 바울은 고난 앞에 서 있는 우리에게 그것들이 우리가 취해야하는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함몰 공동영상이라고 있다. 내면세계 질서와 영적 성장을 작성한 고든 맥도널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외부적 상황에 의해서 우리의 내면이 갑작스럽게 함몰되어질 수 있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처한 상황 가운데 우리의 마음이 땅이 함몰한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푹 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푹 꺼진 그 상황가운데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외부적 상황 때문에 마음이 꺼졌다면, 그 무엇으로도 채우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면 고난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그 마음을 빌립보서 2:5절에 -그 마음 가운데 고난 앞에 서 있는 가운데에 사랑하는 너희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로고 말한다. 빌립보서 2:18절 --이와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 마음을 품으면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시는 이가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시기 때문에 너희들도 나와같이 고난 앞에 서 있지만 기쁨 가운데 거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고난 앞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면, 이미 착한 일을 시작하시는 이가 우리의 영혼을 기쁨으로 충만케 하실 것이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마음을 품는자가 기쁨 가운데 거하게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끝으로 적용하자. 사도 바울은 실천적으로 그들에게 적용해야 할 것을 말하기 전에 그이 형제들을 부른다. 이 단어를 들으면 어떤가? 예고도 없이 찾아온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사람과 사람의 거리를 멀어지게 만들었고, 지금은 5인 이상 집합금지를 시켜서 서로에 대해서 점점 무관심하게 만들고 있다. 무언가를 할 의지 마져도 꺾어 놓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 우울과 코로나 불루는 우리의 희망의 불씨를 점점 꺼뜨려 가는 것만 같고 우리의 마음을 점점 움추려들게 만드는 것 같다. 요즘과 같은 때에 더 의미가 있는 단어가 바로 나의 형제들인 것 같다. 왜냐하면, 빌립보서 1:7-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빌립보 형제들인 성도들에게 그 나의 형제들이라고 부를 때에 속에 담겨있는 사랑의 고백이 그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너희들을 향해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왜 당연한가하면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들을 사모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도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졌기 때문에 빌립보 너희들을 사랑하고 너희들을 기뻐하고, 너희들을 감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방식이다. 우리 모두는 어떤 사랑을 경험하고 있는가? 스바냐 3:17절-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즐거히 부르시며 기뻐하시리라. -조건이 충족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니라 먼저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이,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기뻐 나를 불러 주셨던 먼저 불러 주셨던, 가만히 있어도 춤을 추어 주셨던 그 하나님의 사랑이 이미 내 안네 있기에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사랑의 순서가 다르다. 세상은 조건이 채워지거나 자걱을 주거나 나에게 이익이거나 나에게 만족이 있거나, 내게 유익이 있어야지만 사랑을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떤것이 없어도 사랑할 수 있다. 심지어 내가 사랑을 했는데 나에게 이익이 없어도 우리는 사랑을 한다.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사랑을 주었는데 그 사랑이 나에게 돌아오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지는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힘이고 사랑의 역사이다. 지금 목양 교역자 목사님들과 전도사님이 문고리 심방을 한다. 한 번도 얼굴을 못뵌 성도들에게 전화를 하고 교회가 준비한 선물을 가지고 간다. 담임 목사님께서 목자의 심정으로 목양의 마음을 가지고 카드를 가지고 방문을 한다. 어떤 성도님은 문고리에다가 방문을 하기 전에 간식을 문고리에 걸어두기도 하고 어떤 분은 도착시간에 맞추어서 미리 나와서 얼굴을 못뵈어도 미리 인사해 주시는 분들도 있다. 또한 아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했고, 문고리에 걸어두고 오면 문자가 오거나 고맙다고 전하고 있다. 그 기쁨을 경험하고 있다. 먼저 주님의 심장으로 사랑하고 그 분들을 통해 넘치는 기쁨이 다시 돌아오는 그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 나의 형제들아, 이것은 코로나 고난 가운데서도 꺼져서는 안되는 목양일념의 마음인 것이다. 이것이 고난 가운데 느끼는 넘치는 기쁨이다. 바울은 이제 실천해야 할 것들을 말한다. 실천해야 할 것은 기뻐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주 안에서 기뻐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주 안에서 기뻐해야 한다고 말한다는 것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기독교인들이 기뻐해야 하는 기쁨의 근거와 영역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알려주고 말을 해주기 위해서 주 안에서 기뻐해야 된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쁨의 참된 근거는 무엇인가? 2장에 나와있다. 그리스도의 메시아의 사역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무엇인가? 고린도후서 5: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역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에게 주어진 기쁨이다. 나의 공로가 아닌 에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기쁨, 예수님께서 만들어 주신 기쁨이 우가 가지고 있는 기쁨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6:22절, 17:13절에 보면,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에게 주어진 그공로로 주어진 그기쁨은 외적인 사건이나 환경적인 조건으로 채워진 일시적인 기쁨이 아니다. 피로 사주신 아무도 빼앗을 수가 없다라고 하셨다. 그 기쁨을 우리가 온전히 충만히 가질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다. 한 신학자는 그 기쁨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주안에서의 기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말한다. 외적인 사건에 영향을 받아 내부에서 솟아나는 적개심과 공포심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벽으로 막아 변하지 않는 기쁨을 유지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그 공로로 우리에게 주어진 그 기쁨은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참여하는 길에 들어셨다라는 그 기쁨이다. 오늘의 인생이 고달프지만 영광으로 다가올 미래에는 즐거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다. 완전한 생명은 마지막 때에 이루어지지만 그 미래는 이미 여기서 현실성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미 구원의 기쁨에 실제적으로 참여하고 누리게 되는 그 은혜가 여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바울의 모습이 바라 그 모습이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 죄수의 신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모습인가? 기쁨으로 편지를 쓰고 있다. 바울 자신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공로 때문에 자신의 내부를 기쁨의 벽으로 세웠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적개심과 공포를 기쁨의 벽으로 막아내고 있기에 옥중에서도 기쁨의 편지인 빌립보서를 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주 안에서 기뻐한가?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에 힘입어 인생의 어두움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내 안의 기쁨의 벽을 세워서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기쁨을 온전함으로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둘째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기쁨의 영역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기쁨의 영역은 빌립보서 2;9-11절에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주 안에서 기뻐해야 할 영역은 만유를 통치하시는 예수님의 주권의 영역 안에서 예수님의 주권적 통치 아래서를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는 예수님께서 사단의 권세를 꺾고, 죽음을 깨뜨리고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능력에 의존하고 그이 온 우주를 통치하는 권세에 순종하는 자이다. 예수님의 주권의 영역 안에서 예수님의 주권적 통치아래서 하는 행동일 수 있다. 그래서 주 안에서 기뻐하라하는 이 말은 주의 힘입어 기뻐하라라는 말이며, 다르게 표현하면 주에 순종하여 기뻐하라라는 말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이 말을 적용하면, 이렇게 표현한다. 세상과 역사를 다스리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자적인 간섭에 힘입어 기뻐한다는 것이다. 이것역시 사도 바울은 이론가가 아니다. 자신의 삶의 실질적으로 체험한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빌립보서 1:1절에 보면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종이라라고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이라고 말하고 있다. 종이라는 표현은 당시 헬라 문화권에서는 자신을 비하 시키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종에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비하가 아닌 모든 인생은 그리스도 예수님께 예속 되어져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도행전 16장에서 보면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가게 되는 배경이 나온다. 바울은 소아시아 지방으로 복음을 전하러 가고 싶었는데 성령이 소아시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환상 가운데 마게도냐로 가게 하신다. 바울은 그 성려의 음성에 순종하여 마게도냐로 향하게 된다. 첫째로 간 곳이 빌립보이며, 첫 만남은 루디아 여인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게 되고 귀신 들린 한 여인에게 복음을 전한다. 그래서 감옥에 들어가게 되는데 기적을 본 간수에게도 복음을 전한다. 그 사건을 통해서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게 된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땅으로 갔는데도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영적인 희열을 경험했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6절에서 보면, 세상과 역사를 다스리시는 주권자적 간섭으로 우리의 인생 가운데 있기에 환난을 만나도 주권자적 영역 가운데에서도 기뻐하라는 것이다. 에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지금 내뜻대로 안되는 것 같아도 세상의 역사를 다스리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자적 간섭에 기뻐하길 바란다. 우리 주님의 주권자적 영역에 기쁨으로 서 있어야 한다. 이러할 때 우리는 세상의 빛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 안에 꺼지지 않는 기쁨의 빛을 보여주어야 한다. 주 안에서 기뻐하는 삶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주님으로 기뻐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요약 인생의 어두움 앞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을 때,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의 영혼을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외적인 환경들이 객관적으로 보기에 좋아 보이지 않더라도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기쁨의 벽을 세워 변하지 않는 기쁨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세상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간섭에 힘입어서 기뻐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빌립보 교회가 비록 신실하고 번창해 가는 교회였다 할지라도 유대교화 하려는 교사들에 의해 혼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행한 교훈은 다음과 같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주안에서 기뻐할' 것을 권고한다. 우리가 신앙으로 위로를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는 더욱더 그 신앙을 고수할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 안에서 기뻐하게 될수록 더욱더 우리는 주를 위해서 당하는 고난을 달가운 것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주를 멀리하게 될 위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니 항상 주 안에서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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