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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2023년 3월 29일) 제목:"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말씀: 여호수아 15:16-19 찬양인도: 쉐키나, 유재원 부목사님 설교자: 백승준 부목사님 ---------------- *여호수아 15:16-19, 16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내가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17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함으로 갈렙이 자기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18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그에게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19 이르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네겝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 ▶백승준 부목사님 -영혼의 봄 동산 같은 은혜를 사모하며 부흥보고 수요저녁기도회에 오신 성도님을 한 분 한분을 축복한다. 주님께서 회복을 넘어 부흥케 하시는 그런 은혜를 이 밤에 허락해 주실 것을 확신한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읽어보겠다. 여호수아 15장 16절에서 19절이다.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은 믿음 보고의 대명사 같은 갈렙의 마지막 행적을 적고 있는 본문의 말씀이다. 여호수아 15장 말씀은 유대 백성들이 땅을 분배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그 장면 속에서 특별히 이 갈렙 가족의 귀한 이야기를 우리 가운데 더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말씀이 여호수아에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사사기 1장에 다시 한 번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 이렇게 동일한 말씀이 반복되어 나오는 것은 흔치는 않는데 그만큼 중요한 장면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려고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저는 바로 믿음의 세대계승을 위해서 철저히 준비하는 갈렙의 모습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갈렙은 어떤 사람인가? 우리가 잘 알듯이 열 두 지파를 대표해서 모세가 정탐꾼으로 보내게 되는데 유다지파의 대표로서 그 땅을 밟았던 사람이다. 여호수아와 함께 믿음 보고를 하였고 ‘그 땅을 능히 우리가 취할 수 있노라.’고 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 믿음대로 사십 년이 지난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거인들이 살고 있는 헤브론 땅을 믿음을 가지고 취했던 사람이 바로 갈렙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드빌’이라는 곳을 점령하게 되면서 뭔가 새로운 장면을 우리 가운데 보여주고 있다. 잠깐 지도를 통해서 드빌이 어떤 곳인지를 한 번 살펴보기를 원한다. 작지만 사해가 보일 것이다. 사해 옆에 엔게디라는 도시가 보일 것이고 거기서 오른쪽으로 보게 되면 드빌이 있다. 드빌 위쪽으로 갈렙이 정복했던 헤브론이 있고, 조금 더 올라가면 예루살렘이 나오게 되는데 바로 저 드빌을 점령하면서 그가 잠시 본인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드빌’이라는 곳은 원래 이름이 기럇세벨 이라는 지명이었는데 그 뜻은 책에 도시라는 뜻이다. 이름 자체가 세련된 듯하다. 무언가 문화가 발전되어 있고 그 문화가 있을 만큼 군대도 잘 갖추어져 있는 그런 방어 조직이 있었지 않을까 하는 곳이다. 이러한 드빌을, 기랏세벨을 정복하기 위해서 그가 한 가지 조건을 내 본다. 이 드빌을, 기럇세벨을 정복하는 자에게 내 딸, 악사를 주겠노라고 선포하고 있다. 왜 갑자기 믿음의 사람, 그리고 승승장구했던 갈렙이 이와 같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꺼냈을까? 아마도 이렇게 추측해 볼 수가 있다. 그의 나이가 85세가 되었는데 헤브론까지는 점령할 수 있었지만 ‘거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그와 같은 모습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이제는 이 모든 것들을 그가 감당할 수 없기에 이제는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고 여긴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만용을 부리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하는 것도 지혜로운 지도자의 모습이기 때문에 그렇다. 저는 그렇지만 여기에는 특별한 모습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악사를 부인으로 줄 뿐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 땅을 유업으로 주는 것까지 치밀하게 갈렙이 준비하여서 다음세대를 일으키기 위해서 그가 한 가지, 한 가지를 펼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여기서 보면 악사를 전리품 같이 주는 것에 대해서 불편해 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거에 그러한 문화에는 현재의 문화로 평가할 수 없는 그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고, 그리고 악사조차도 이와 같은 아버지의 행동에 동의하면서 적극적으로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제 믿음의 세대계승을 위해서는 마치 갈렙이 헤브론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믿음으로 행동하였듯이 그와 같은 믿음이 일어나서 그 드빌, 기럇세벨을 점령해야 되기 때문에 그렇다. 여기서 우리가 갈렙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갈렙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갈렙을 조금 더 깊이 생각하다보면 흥미롭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민수기 32자아 12절을 보면 이렇게 나온다. *민수기 32:12, 12 그러나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온전히 따랐느니라 하시고. -우리는 잘 알고 있듯이 갈렙은 유다지파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에게 또한 그나스 사람, 도대체 그나스 사람이 무엇인가? 성경을 잘 살펴보면 그나스 사람에 대한 힌트를 살펴볼 수가 있다. 바로 창세기 36장에 나와 있다. *창세기 36:15을 읽어보겠다. 15 에서 자손 중 족장은 이러하니라 에서의 장자 엘리바스의 자손으로는 데만 족장, 오말 족장, 스보 족장, 그나스 족장과.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바로 이 말씀을 비추어볼 때 갈렙이 그나스 사람이라는 것은 결국은 에서의 후손, 에돔 족속이었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많은 성경학자들이 그렇게 추측하고 있다. 원래 유다족속은 아니었고 그나스 사람이었는데 출애굽 그 시절에 허다한 잡족들이 같이 출애굽을 하여서 이스라엘 백성과 나오게 된다. ‘그때에 유다지파에 함께 편입되지 않았나?’로 평가하고 있다. 그래서 더 살펴볼 것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물의 뜻이 있지 않은가? 여러분 갈렙의 이름이 무슨 뜻인지 아는가? 뜻밖에도 그의 이름의 뜻은 개라는 뜻이다. 도그, 라는 뜻이다. 갈렙이 어떤 사람이었는가? 에돔족속, 이방 족속 개였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랬던 그가 믿음의 대명사와 같이 변화된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출애굽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그 크신 능력을 친히 경험하였고, 이 분,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요, 내가 유일하게 섬길 분이라는 것을 확신이 섰던 것 같다. 그런 확신을 가지고 가나안 땅을 믿음으로 정복할 수 있었던 갈렙은 확실히 깨달았다. 참된 이스라엘 되는 것은 혈통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향한 참 된 믿음에서부터 말미암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이제 딸 악사를 통해서 이룰 다음 세대는 믿음의 세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설 그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런 세대를 일으키기 위해서 그런 기회를 제공하고, 믿음으로 자기가 마치 헤브론 땅으로 나갔듯이, 믿음으로 이제 드빌을 정복할 그러한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이다. 누가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었는가? 마치 보면 이 갈렙의 조카와 같이 표현되어 있는 옷니엘이 그 일을 취하게 되는 것을 본다. 옷니엘이 동일하게 믿음으로 일어나서 드빌을 취하게 되고, 그 옷니엘은 사사기를 보면 첫 번째 사사가 되어서 또한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이스라엘을 위해서 구원자로서 쓰임 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들을 보게 된다. 철저하게 준비되고 사람을 키웠기에 대를 이어서 이스라엘을 이끌 수 있는 믿음의 명문가를 이루었던 것을 보게 된다. 바로 갈렙은 후세를 준비하고 믿음의 다음세대를 위해서 애썼음을 우리가 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어제 저희 사랑의 교회를 사역하시다가 한 지역 교회로 맡아 섬기시는 목사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목사님을 통해서 어떻게 목회를 하시는지 여러 가지 궁금하였는데 첫 마디부터 너무나도 한국교회 현실이 어렵다는 것을 들었다. 다른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가 교회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래도 사랑의 교회에서는 많은 젊은 분들을 또한 이렇게 많은 젊은 세대들을 있지만 한국교회 목회 현장에 갔을 때 가장 절망적인 것은 젊은 사람들, 특히 3-40대를 찾아보기 너무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그 목사님은 이렇게 설명하셨다. 80대의 권사님이 식판을 받아 손을 떨면서 힘들게 걸어가시는 모습을 보고서는 그 애처로운 모습에 달려와 식판을 대신 받으신 분이 계시는데, 그분 또한 손이 떠시면서 그 식판을 받아서 대신 들고 가 주시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제가 영국 웨일즈에 있을 때, 이와 비슷했다. 영국의 1904년 ‘모리아 교회’라고 그 교회에서 엄청난 대 부흥이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은 영국이 웨일즈를 갔을 때, 그 교회를 방문하게 되는데, 그 교회를 소개해 주시고 부흥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는 한 분이 계셨다. 그분이 손님들에게 차를 따라 주시면서 저에게 대접을 해주셨는데 손을 떨면서 차를 따라 주셨다. 그분이 그 일을 섬기시냐면 그 교회에서 가장 젊은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 나이대가 80대가 되셨던 것을 제가 기억한다. 참 한국교회의 현실이 저희가 그토록 유럽교회 모습과 비슷해지지나 않나! 그런 걱정이 된다. 그럴 때일수록 믿음의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이 갈렙의 모습을, 자기 딸 악사에게 믿음의 사람, 옷니엘을 예비시켜 주기 위해서 참으로 치밀하게 준비하는 갈렙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렇다면 갈렙은 믿음의 세대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바로 믿음의 세대계승은 사명의 계승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결국 옷니엘은 드빌을 점령하였고, 악사를 아내로 얻게 된다. 그리고 나서 여호수아 15장은 땅을 분배한 이야기이다. 이들 악사와 옷니엘에게도 땅을 배분할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들에게 어떤 땅이 주어지는 건가? 저희는 이 땅 분배에 관심이 많지 않은가? 한국 사람들처럼, 부동산에 한이 맺힌 사람들은 없는 것 같다. 갈렙이 정복한 헤브론 땅은 장차 수도권이 될 그런 요지였다. 헤브론 땅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믿음으로 살아갔던 땅이었고, 사라가 죽었을 때, 사라를 장사(葬事)한 땅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윗이 왕으로 와서 처음으로 7년간 다스렸던 땅이 바로 헤브론 땅이었다. 바로 그 헤브론 땅을 갈렙이 정복하였고, 그 갈렙이 정복한 땅에 헤브론을 조그만 내려갔을 때가 드빌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요충지(要衝地)였다. 소위 말해서 노른자위 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갈렙이 이 악사와 옷니엘에게 준 땅은 바로 그런 노른자위 땅이 아닌 아니 흰자위도 되지 못한 네겝 땅(메마른 땅)을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러분, 네겝이 어떤 땅이었는가? 사진을 준비했다. 보면 사막은 아니지만 사람이 살아가기에는 황무지(荒蕪地) 같은 곳이 네겝 땅이다. 겨우 낙타 떼나 지나갈 수 있는 그런 땅이다. 왜? 좋은 땅도 있는데, 헤브론과 드빌과 같이 그런 좋은 땅도 있는데, 갈렙은 자기 딸의 부부에게 이 네겝 땅, 남방 땅을, 바로 황무지와 같이 건조하고 사람이 살아가기 힘든 그런 땅을 그들에게 유업으로 주었을까?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네겝 땅이 분명히 사람이 살기 힘든 땅이지만 그들에게 사명을 맡긴 것 같다. 바로 그것을 사람이 거할 수 있고, 바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땅으로 개척하라는 것이었다. 바로 편하게 살 수 없는 그곳을 모든 것을 갖추어진 땅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근면하게 일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그 땅을 개척하고 하나님 백성이 살만한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킬 것에 대한 사명을 갖고 그들에게 네겝 땅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성경을 통해 살펴 볼 수 있다. 바로 네겝 땅이 갖고 있는 전략적인 위치이기 때문이다. 바로 갈렙이 정탐꾼으로 자기가 젊은 40세에 정탐꾼으로 걸어왔을 때, 그 땅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민수기 13장 17절을 보면, *민수기 13:17, 17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그들을 보내며 이르되 너희는 네겝 길로 행하여 산지로 올라가서 그 땅이 어떠한지 정탐하라. -네겝 땅을 본인이 통괴 해서 네겝 땅을 정탐했던 것이다. 그 땅을 정탐할 수 있었던 곳이 그만큼 네겝이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았고 그곳에 수비가 허술했기 때문에 쉽게 그곳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민수기 13장 22절에도 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모세의 말씀이다. *민수기 13:22, 22 또 네겝으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르렀으니 헤브론은 애굽 소안보다 칠 년 전에 세운 곳이라 그 곳에 아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있었더라. -든든하게 지키라는 그 사명을 지키면서 자기 딸 악사와 또한 사위 옷니엘을 그 땅으로 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항상 하나님의 사람들, 그리고 인물들은 어디서 길러지는지 아는가? 광야와 같은 네겝 땅에서 길러진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헤브론과 같이 좋은 곳, 그곳을 받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인물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항상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던 곳은 광야였고, 황무지였고, 고난 속에서였다. 또 하나님께서 네겝과 같이 황무지와 같이 어려운 시간을 주시게 된다. 왜? 그런 시간을 우리에게 허락하시는가? 그런 시간이 찾아와야지만, 그런 환경이 찾아와야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그 삶을 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이란 언제 되는가? 우리의 힘에 능력으로 넘어갔을 때, 힘들게 되었을 때 그때부터 운동이 되고 그때부터 우리의 근력이 붙게 되면서 우리의 힘이 붙게 되는 것이다. 믿음 또한 그러한 것이다. 편안한 곳에서 모든 것이 갖추어진 환경에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의 훈련에서 우리를 광야로 부르실 때가 있다. 그러나 더 귀한 것은 이렇게 억지로 어쩔 수 없어서 광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명에 순종하셔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네겝 땅으로 가는 이 모습 속에서 다음 세대가 준비되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가?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시기 전까지는 절대로 이와 같이 어려운 환경을 우리는 구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이런 것을 깨기 위해서 우리 담임 목사님께서 계속 말씀하신다. 자발적으로 고난을 받던지, 새벽기도회에 나오고, 토비새에 나와서 그곳에서 하나님께 바짝 엎드리든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어쩔 수 없는 고난에 믿음에 성장하든지, 그 두 가지 아니고서는 우리 가운데 믿음이 성장할 기회는 없는 것 같다. 항상 우리가 기억했으면 좋겠다. 예수님께서도 고난을 받고 영문 밖으로 나가서 친히 우리를 위하여서 모든 것을 쏟아부어주시는 그런 삶을 보여주셨다. 안전한 성합 그리고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영문 밖에 나가셔서 고난을 받으셔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을 걸어주셨다. 바로 그와 같이 사명을 위해서 네겝 땅을 가는 악사와 옷니엘의 모습 속에서 다음세대가 준비되는 것이다. 과연 그렇게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서 기꺼이 고난을 받고 기꺼이 어려운 걸음을 걷는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인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셨듯이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또한 동일하게 걸어가고 있는 사람인지 우리는 스스로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그 십자가의 길을 걷고 예수님과 같이 영문 밖에서 고난을 받고 그것을 준비하는 사람을 통하여서 다음세대가 준비되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렇지만 사명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특별한 축복이 있다는 것이 그 다음 말씀에서 기록되어 있다. 아름다운 장면이 그 다음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 네겝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 길을 가려는 딸과 사위에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18절을 보면 그래도 여인인 악사가 조금 더 현실 감각이 있었던 것 같다. 18절을 다시 한 번 제가 읽어보겠다. *여호수아 15:18, 8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그에게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악사가 출가하면서 아버지기 네겝 땅을 준 것을 알았던 것이다. 아마 아버지를 통해서 그 땅을 받아야 될 이유에 대해서 많이 들었을 것이다. “내가 정탐꾼으로 이 땅을 밟았을 때에 네겝 땅이 너무 허술해서 그곳을 쉽게 통과했으니 다른 적들도 그럴 수 있다. 네가 그 땅을 든든하게 지키고, 그 땅을 정복하고, 그 땅을 이제는 하나님의 땅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아마 그런 책임을 주었기 때문에 그 땅으로 갈 마음에 각오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갈지라도 이건 그냥 가서는 안 되겠다는 이런 현실적인 생각이 있었다. 옷니엘은 그런 것도 없이 그냥 가려고 했는데 남편을 설득해서 아버지에게 뭐를 청하자고 설득했다. 그리고서는 나귀에서 내렸다. 아버지에게 다가가서 아버지는 직감을 했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그냥 가지 않게 두면서 아버지는 묻는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그랬을 때, “네게 복을 주옵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네겝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주옵소서.” 네겝 땅으로 갈 때, “그 땅은 살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사명을 위해서 맡기신 그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가겠지만 그 땅으로 가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축복과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하오니 샘물을 주옵소서.” 라고 간구했다. 그랬을 때, 그 간구에 어떻게 응답했는가? 샘물을 달라고 단수로 간구했지만 어떤 응답이 듣게 되는가? 윗샘과 아랫샘, 두 배로 복을 받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아버지 갈렙도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에 그렇다. 바로 네겝 땅에 가서 그 땅을 변화시키고 그 땅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샘물이 필요한데 그냥 샘물이 아니라, 윗샘과 아랫샘, 그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으로 그들을 축복해야만 된다는 것을 아버지 갈렙이 잘 알고 있었다. 바로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살아가는 자에게 이와 같은 기도 응답의 축복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도 응답은 누구에게 허락하시는지 아는가? 바로 주님의 나라와 그를 위해서 순종하며 그 길을 걷는 자에게 축복이 기도 응답의 축복인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보면 너무나도 많은 기도 응답에 대한 약속이 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기도에 대해서 쉽게 생각할 것이다. “구하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너희가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에게 열릴 것이요.” 그러면서 수많은 기도약속에 대한 응답이 있기에 우리는 기도에 대한 그런 확신이 있지만, 막상 우리가 기도해도 응답이 많이 없는 것 같다. 왜 그럴까? 한 번 생각해 보라. 기도라는 것은 그냥 우리가 편안하게 앉아서 더 많은 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응석부리기 위해서 그런 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바로 악사와 옷니엘이 네겝 땅을 정복해서 그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 왜적들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 순종하며 나아갈 때, 샘물을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더 놀랍도록 채우는 것이 기도이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와 같은 기도응답을 경험할 때, 우리는 담대해지게 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서 하나님 맡기시는 일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를 책임지시고 끝가지 돌보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 그의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볼 것이 있다. 갈렙이 악사에게 묻는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바로 그녀는 무엇을 원했던 것인가? 아버지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하다. 그 땅을 개척하기 위한 샘물이 필요하다. 이 사명을 위해서 도망치지 않고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간구한 것이다. 바로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간구하는 바로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주어지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를 한 번 돌아보면 좋겠다.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시며 참 안타까워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마태복음 6장 31-33절이다. .*마태복음 6:31-33,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해서 가르쳐 주신 아주 중요한 말씀이다.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하늘에서 들으셨겠는가? 그런데 기도의 내용을 잘 들어보면 무엇인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면서 내 생활의 안전한 지대를 벗어나지 않은 채, 좀 더 많은 축복, 좀 더 많이 흡족하게 살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응석을 부리듯이 하는 그것이 바로 우리가 구하는 기도가 아니었나? 하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돌아보게 된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의 기도의 모습이 이러지 아니한가? 미래에 대한 염려와 불안 때문에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는 그런 세상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은행이 흔들리고 있는 이런 시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하나님, 나를 보호하여 주시고, 이 모든 환난에서 나를 지켜주시라고 우리는 기도하고 있다. 기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기도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기도가 무엇인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라고 말씀하신다. 바로 악사와 옷니엘이 네겝 땅을 향하여 가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듯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명을 위해서 살아가는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듣기 원하신다.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듣기를 원하시는 기도가 하나 더 있다. 시편 2장에 나오는 기도이다. *시편 2:7-8,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듣기 원하시는 기도, 바로 2장 8절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우리는 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확실한 약속을 주시는데 여러분, 이 기도를 해보신적이 있는가? 이방나라를 유업으로 구하는 기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듣기 원하시는 기도는 이 정도의 기도이다. 마치 네겝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기 위해서 사명을 위해 살아가듯이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지 않은 땅,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다스려지지 않은 불모지와 같은 땅, 바로 그것이 우리 가족일 수 있고, 우리 직장일 수도 있고, 아니 한참 라마다 기간에 하나님을 모른 채, 잘못되게 열심을 살아가고 있는 선교 현장일 수도 있다. 바로 그런 선교 현장을 품고 아버지 하나님, 그 땅이 하나님이 다스리는 땅,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땅, 하나님께 예배하는 땅으로 되기를 원한다고 그 열방을 향해서 부르짖는 그 기도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도를 하다보면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신다. 그 땅을 이제 네가 취라고 마음을 주셨을 때, 그와 같은 마음을 품고 담대한 응답을 향해 가는 그러한 순종의 발걸음이 선교를 위한 기도이고, 또 전도를 위해 기꺼이 내 입을 벌려서 하나님 말씀을 담대히 증거 하는 그와 같은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모습,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아멘. 하나님께서 우리가 담대한 믿음과 담대한 기도로 살아갈 때, 하나남께서 그 기도의 응답을 주시리라 약속하신다. 우리가 이 시대에 그러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를 하나님께서 찾고 계심을 확신하기 바란다. 다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께서 사명을 감당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며, 기도를 응답하시는 내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가장 필요한 땅을 위해서 내가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저 북한 땅이 변화되게 하시며, 저 아랍 민족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을 모르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 가운데 널리 퍼지게 되기를 소원하고 간구하자. 우리의 기도가 땅 끝까지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순종하며 그리고 그 땅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믿음의 사람들이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땅위에서 살아가는 많은 선교사들이 있다. 그 선교사들이 믿음의 영웅과 같이 나가 있지만 우리의 기도와 함께 그것을 위해서 싸우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 땅을 하나님의 땅, 우리의 소유의 땅으로 변화시키실 것이기에 그렇다. 우리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이 약속을 붙잡고 더욱더 주님의 나라를 꿈꾸며 믿음의 다음 세대가 힘 있게 일어나서 갈렙에 의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용기를 얻었듯이 또 옷니엘이 일어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혼란의 시기에 첫 번째 사사로 그 땅을 변화시켰듯이 계속된 믿음의 계승으로 또 믿음의 사람들로 말미암아 이 한국교회가 온 열방을 주님께로 돌이키는 제사장 나라로써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는 주님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사용하여 주시길 다시 한 번 우리가 간절히 소망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와 같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쓰임 받게 되는 그러한 하나님의 백성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요약 갈렙의 신앙이 딸 악사와 사위 옷니엘에게 이어져 믿음의 명문가문이 되어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듯이 우리와 한국교회가 선대의 강점을 다음 세대들에게 체계적으로 계승하여 세계 선교에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되고, 제사장 나나로 쓰임 받으며,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황무지 같이 열악한 복음의 불모지와 세계선교 현장으로 찾아가 그곳을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로 변화시키는 부흥 도구의 주인공들로 헌신하며 십자가의 길을 위해 걸어갈 때, 위샘과 아랫샘의 은혜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더욱 더 담대하게 믿음보고를 써 가는 부흥의 용사로 쓰임 받아야 한다. -이 갈렙의 이 마지막 행적을 통해서 믿음의 다음세대를 준비하는 갈렙의 모습을 보고 우리 가운데서도 다음세대들이 필요함을 깨달아서 편안한 그런 곳이 아닌 네겝 땅과 같은 황무지에서도 주님을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시며 그들을 끝까지 지키시는 모습을 교훈삼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다음세대를 잘 세우고, 다시 한 번 그 믿음의 세대들이 그 땅을 밟고 그 땅을 책임지는 세대가 되기를 소원한다. 한국교회가 이제는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믿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우리가 그것을 구하면 우리는 주님이 일을 해주심을 믿어야 한다. 매일 삶이 네겝 땅 같이 황무지에 놓여 있다할지라도 주님 붙들고 나아가면 부족함이 없는 줄 믿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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