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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저녁기도회(2023년 5월 10일) 제목: "한 영혼을 살리시고 먹이시다" 말씀: 누가복음 8:54~56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정명철 부목사님 ㅡㅡㅡㅡㅡ *누가복음 8:54~56, 54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55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 56 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고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 --------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시고 지금 이곳 안아주심의 본당에 모여 하나님께 영광스러운 예배를 올려드리게 하시니 참 감사합니다. 여전히 우리 삶에 답답한 문제들이 남아 있지만 오직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함으로 회복을 넘어 부흥을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오늘도 말씀의 풍성한 은혜를 사모하며 부흥헌신 수요 기도에 오신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 8장 54절부터 5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의 달 5월인데요. 잘 보내고 계십니까? 몸도 많이 바쁘고 돈도 많이 들고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행복한 한 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희 가정에 중학교 1학년 딸이 하나 있어요. 제가 사랑의 교회에 와서 나은 앤데 벌써 중학생이 됐습니다. 얘가 어느 날 갑자기 이러는 거예요. 아빠 올해 어린이날에는 어떤 선물을 해줄 거야 그래서 제가 매우 합리적으로 설명해줬습니다. “선우야, 너는 중학생이잖아. 그러니까 어린이가 아니고 청소년이다.” 이렇게 제가 설명해줬더니요. 제 딸이 더욱 합리적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나는 생일이 안 지났으니까 법적으로 어린이야.” 자기가 만 12세니까 아직 어린이 대우를 받아야 된다는 이런 주장입니다. 그래서 옷도 사주고 치킨도 사주고 어린이 대우를 해줬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 아이도 12세 12살이죠. 이 아이를 본문에 41절 42절에서 이렇게 소개하고 있어요. 같이 보실까요?
*누가복음 8:41-42,
41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42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된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밀려들더라.
우리 여기서 세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요. 첫 번째는 이 아이의 아빠가 회당장인데 이름이 야이로였다.
두 번째는 이 아이는 12살이었고 외동딸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이 아이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어가고 있었다. 이것들을 확인할 수가 있어요. 아마도 이 야이로가 가버나움의 회당 장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고 있는데요. 당시에는 10명의 관리자들이 회당을 섬겼다고 합니다. 그중에 3명의 원로가 회당 장이 돼서 나머지 일곱 사람들을 지도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 야이로가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상당히 지혜가 있었을 것 같아요. 또 외동딸이 12살밖에 안 됐다면, 아마도 늦은 나이 이 딸을 얻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볼 수가 있습니다. 이 아이가 가정에서도 지역사회 안에서도 많은 사랑과 주목을 받으면서 자랐을 거예요. 그런데 이 아이가 아파서 죽어가고 있으니까, 야이로의 마음이 얼마나 까맣게 타겠습니까? 그 아내, 아이의 엄마의 심정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다 알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 아이로가 체면이 뭐고 다 다 내 팽개치고 예수님 앞에 나와서 엎드려 간구하는 것이죠.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이 과연 어떻게 반응하실까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을 중심으로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몇 가지 사역의 원리를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원리는 예수님은 한 영혼에 집중하신다. 예수님은 한 영혼에 집중하십니다.
I. 예수님은 한 영혼에 집중하신다.
=그런데 당시 상황을 우리가 잘 생각해 보면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가 누굽니까? 말라기죠? 말라기 이후에 400년 만에 예수님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신 거예요. 바벨론 포로 이후 600년 동안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고 또 전파하고 또 치유하는 사역 하실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렸던 것이죠. 누가복음 8장 4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누가복음 8:4,
4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갈릴리 주변 동네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었던 것 같아요. 큰 무리를 이루었습니다. 심지어 19절 말씀에 보니까
*누가복음 8:19,
19 예수의 어머니와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로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이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사람들이 너무 에 모여 있어서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이라면 자신을 따르는 큰 무리에게 눈길을 주었을까요. 아니면 야이로에게 집중하셨을까요? 저는 큰 무리에게 눈길이 갔을 것 같아요. 왜냐면 인정받고, 주목받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마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그 유혹이 더 컸을 거예요. 조금 외람된 표현일 수 있지만 예수님이 신흥 종교의 수장으로 되고자 했다면, 이 무리들을 동원해서 선동해서 쉽게 힘을 얻을 수 있었을 겁니다. 또 심지어 예수님이 다윗 왕국의 재건이라고 하는 비전을 제시했다면 이 무리들을 선동해서 로마 총독부를 공격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예수님은 철저히 한 영혼에 집중하십니다.
오늘 본문 앞에는 예수님이 한 영혼에 집중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기록돼 있어요. 여러분 26절부터 보시면 예수님이,
*누가복음 8:26,
26 그들이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귀신 들린 한 사람에게 집중하십니다. 귀신 들린 한 사람 이 사람은 많은 귀신이 들렀었기 때문에 이름이 군대였어요. 옷도 입지 않았습니다. 무덤 사이에서 살았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이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광풍이 몰아치는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십니다. 심지어는 이 사람을 치유하기 위해서 2천 마리나 되는 돼지를 희생시키세요.
여러분 요즘 돼지 한 마리가 얼만지 아세요? 50만 원 2천 마리면 10억입니다. 10억 우리는 태신자를 위해서 10만 원 쓰기도 좀 아깝잖아요. 안 그런가요? 엄청 도전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다음으로 40절 보시면,
*누가복음 8:40,
40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예수님이 다시 가보나무 들어오실 때 무리가 막 몰려들어서 환영하는데, 예수님은 야이로 한 사람에게 집중하십니다. 또 예수님이 야이로의 집으로 이동하실 때, 우리가 막 몰려들었는데 이때 예수님의 옷 가에 살짝 손을 대었던 그 여인을 집중하시죠. 야로의 입장에서는 한시가 급한데 예수님이 굳이 발걸음을 멈추시고 그 여인을 찾아내서 그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시고 구원과 평화를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함께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오롯이 이 아이에게 집중하시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이처럼 한 영혼에 집중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 사람의 변화가 갖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예수님이 정확히 아셨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변화가 갖는 영향력 여러분 혹시 이런 얘기 들어보셨어요. 1ml 정도 되는 종이가 한 장 있습니다. 1ml 되는 종이를 한 번 접고 두 번 접고 30번을 접으면 높이가 얼마나 될까요? 무려 1천 74킬로미터입니다. 1천 74킬로미터, 에베레스트 최고봉이 8848m 잖아요. 그러니까 에베레스트보다 120배가 높은 거예요. 어마어마하죠. 안 놀라시니까 제가 눌러야겠네요. 어마어마한 겁니다. 담임 목사님 가끔 언급하시는 승법 번식이 이런 원리잖아요. 그리고 제자 훈련의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제자훈련의 대헌장이라고 하는 골로새서 1장 28절에 보시면 이렇게 돼 있어요.
*골로새서 1:8,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잘 아시는 말씀인데 이 말씀에 보면 세 번 반복되는 단어가 있어요. 뭘까요? 각 사람 각 사람입니다. 제자 훈련은 각 사람을 권하고, 각 사람을 가르치고, 각 사람을 세우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한 영혼에 집중하는 것 그게 제자 훈련이죠. 물론 제자 훈련 반 편성을 할 때는 12명 이내의 소급으로 만들잖아요. 그런데 훈련 교육자들의 관심은 훈련생 한 명 한 명이 있는 거예요. 왜냐 이 훈련소에 한 사람이 변화되면 그 파급력이 엄청날 것이다. 이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도 폭발 훈련 부를 담당했을 때 이야기인데요. 어느 날 훈련을 받고 있었던 한 청년 저 찾아왔어요. 하는 말이 자신이 청년부의 전도팀장인데, 청년부 전도 학교에 저를 강사로 초대하고 싶다. 그래서 제가 흔쾌하게 허락을 했습니다. 당시가 전도 폭발 복음 지시가 클래식에서 저스트로 변화되는 시기였거든요. 그러니까 새로운 버전의 복음 제시를 배우고 싶다. 이래서 요청했던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몇 주 뒤에 이 형제가 저 다시 찾아왔는데 의기소침한 상태로 왔어요. 그래서 제가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청년부에 전도 학교를 홍보를 하고 있는데, 신청자가 거의 없다. 이러는 겁니다. 제가 뭐라 그랬을까요? “형제님 염려하지 마세요. 한 명이 신청해도 합니다.”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네, 그 한 명이 변화되면 수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잖아요. 그 형제가 처음에는 깜짝 놀라더니 안심하고 돌아갔습니다. 실제로 여러 명이 왔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에게 한 영혼 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믿음의 세대 계승을 간절히 바라는 엄마 아빠는 내 자녀가 그 한 사람입니다. 일터 선교를 꿈꾸고 있는 직장인들은 내 옆에 앉아 있는 김 과장님이 한 사람입니다. 캠퍼스의 복음화를 갈망하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내 친구 그 애가 한 사람인 것이죠. 아무쪼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그 한 영혼을 위해서 집중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지금까지 우리가 예수님이 한 영혼에 집중하셨다. 이 사실을 살펴보았는데 그러면 조금 구체적으로 한 영혼을 향한 예수님의 사역이 어떻게 나타났느냐. 몇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II. 먼저 예수님은 한 영혼을 살리십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을 살리신다. 예수님이 야이로의 아이에게 “아이야 일어나라.” 어떻게 말씀하시니까? 아이가 일어났어요. 죽었던 아이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아이를 살리는 장면을 우리가 잘 관찰해 보면 두 가지 단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우리 함께 54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54절 시작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여러분 두 단계 찾으셨나요.
첫 번째 단계는 아이의 손을 잡은 거예요.
두 번째 단계는 입을 열어서 말씀하신 겁니다. 조금 일반화시키면 사랑의 터치와 능력의 말씀 선포 사랑의 터치와 능력의 말씀 성 이렇게 정리할 수가 있어요. 먼저 사랑의 터치를 한번 생각해 볼까요. 요즘은 아이를 이렇게 함부로 만질 수가 없죠. 잘못하면 이게 성추행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근데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이 아이의 손을 잡는 것이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될 수가 있어요. 지금 이 아이가 죽은 상태죠 그러니까 이 아이의 몸이 시체입니다. 구약 율법에 보면 시체를 만진 사람은 부정하게 돼요. 7일 동안, 그래서 제3일째 또 마지막 7일째 이렇게 정결예식을 진행해야 되는데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에서 끊어지게 돼 있습니다. 굉장히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이 본문에서 아이의 손을 과감하게 딱 잡으시는 거예요. 왜 예수님은 죽은 아이의 손을 잡으셨을까요? 그것은 이 시체로부터 부정함이 예수님께로 옮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생명력이 흘러가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과감하게 잡을 수 있는 것이죠. 예수님이 죽은 아이의 손을 잡는 그 순간부터 부활이 시작됐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랑의 터치가 살아있는 사람들 우리들에게도 굉장히 필요합니다. 지금은 시대가 이제 많이 변해서 출산 신방을 굉장히 좀 늦게 하는 편이잖아요. 첫 번째 이유는 산후조리원에서 외부인 통제를 심하게 하기 때문에 못 가고 두 번째는 우리 자매들이 자기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못 갑니다. 근데 진짜 15년 전만 해도 제가 목사 안수 받고 얼마 안 됐으면 해도, 출산 심방을 바로 갔어요. 그런데 저는 출산 심방이 너무 어려운 거예요. 왜냐하면 애를 낳아봤어야지 그 심정을 알죠. 그래서 어떻게 위로를 하나 상당히 좀 어려웠었는데 그래서 제가 생각해낸 게 있어요. 야, 출산 심방을 갈 때 우리 여 순장님을 모시고 가자 여 순장님 모시고 가면 어떻게 될까요? 순장님이 그냥 산모의 손을 다 잡고 자매님, 너무 수가 많았어요. 이러면 끝나요. 제가 다른 말 안 해도 왜 그럴까요. 네, 그 마음을 아니까 서로 통하는 거죠. 사랑의 터치가 생명력을 전달해 주는 겁니다. 근데 어떤 목사님은 남자 제자 반을 맡잖아요. 그러면 이분은 꼭 어떻게 하시냐면 매일 훈련 시간마다 훈련생들이 서로 이렇게 포옹을 하고 인사를 하게 한대요 서로 안아주라는 거죠. 왜냐하면 남자들은 이렇게 손만 잡아서는 정서적 교류가 안 된대요 그게 안아야 된대 여기 남자 분 선생님들 많이 계시는데 맞습니까? 네, 그래서 이 목사님이 끌어안기 하는데 이렇게 가슴을 탁 대고 심장 박동을 좀 느끼면서 또 귓가서의 훈련생의 목소리 소리 들으면 이렇게 생명력이 흘러간다는 것이죠. 얼마든지 이렇게 손을 잡든지 간에 포옹하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이 사랑의 터치를 통해서 생명력이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랑의 터치를 통해서 생명력을 흘러 보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면 참 좋을 것 같아요.
다음으로 능력의 말씀 선포인데요.
여러분, 잘 아시는 것처럼 마태복음 5장부터 7장에 예수님의 산상수훈이 기록돼 있습니다. 7장 끝에 보면, 마태가 이렇게 이야기 하고 했어요. 마태복음 7장 28절입니다.
*마태복음 7:28-29,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예수님 말씀에 영적인 권위가 막 나타나는 거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보면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셨는데 제자들이 광풍에 있는 바다를 보면서 우리가 죽게 되었다고 예수 이름을 깨우니까 어떻게 됩니까? 네 누가복음 8장 24절 하반 절입니다.
*누가복음 8:24,
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예수님의 그 말씀의 권위가 바람과 물결도 잔잔하게 하는 자연 만물을 다스리는 영적인 권위로 나타나는 것이죠. 왜냐하면 예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본문에서 예수님이 아이의 손을 딱 잡고 “아이야 일어나라!” 하실 때 그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죠. 창조주 하나님의 영적인 권위가 그대로 온전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제가 매년 훈련생들에게 강조하는 게 있어요. 뭐냐 여러분이 훈련을 수료하면 두 가지가 남아야 된다. 두 가지가 남아야 되는데,
첫 번째는 뭐냐 사랑의 관계가 남아야 된다.
두 번째 여러분의 인격과 삶을 관통하는 말씀이 남아야 된다.
그렇게 강조를 합니다. 오늘 두 번째 인격과 삶을 관통하는 말씀에 대해서 조금 더 강조해 드리고 싶은데요. 이 자리에 이미 수료하시고 여러 사역 현장에 섬기시는 분들이 많이 앉아 계세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한 번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언제 변화를 경험하셨나요? 다시 말해서 ‘야 내가 다시 살아났다 영적으로 되살아났다.’ 이렇게 느꼈던 적이 언제입니까? 네, 많은 성도들의 공통적인 고백이 무엇이냐면 ‘내 인격과 삶을 흔들어 놓았다.’ 그 강력한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순종했을 때 그랬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영적인 mri가 되어서 우리의 인격과 삶의 모난 부분 다 비춰주실 때 또 하나님의 말씀이 좌우의 날선 검처럼 살아서 우리들에게 다가올 때, 그것이 메스처럼 우리의 상처를 찌를 수 있지만 우리가 비록 아프더라도 그 말씀에 순종하면 치유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을 살리는 창조의 능력이 들어있기 때문인 것이죠.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훈련을 받으시면서 주일 설교 말씀을 요약하거나, 또는 날샘 큐티를 하거나 또는 훈련 아이비에스(IBS)를 하거나, 심지어 다락방에서 말씀을 나눌 때, 내 마음에 딱 와서 부딪히는 말씀이 있으면 순정의 방향으로 결단할 때 반드시 변화가 일어납니다. 훈련생 여러분 아시죠? 네 꼭 그렇게 될 겁니다. 지금까지의 긴 말씀드렸는데 정리를 하자면 예수님은 한 영혼를 살리십니다. 어떻게요? 먼저는 사랑의 터치를 통해서 생명력을 살리시고 결정적으로는 능력의 말씀 선포로 그 영혼을 살리시는 거예요. 이해가 되었을 것으로 보고...이제 세 번째입니다. 본문에서 발견한 세 번째 예수님의 사랑 권리 우리와 함께 55절 말씀을 한 번 더 읽겠습니다.
*누가복음 8:55,
55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
-예수님이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이후에 뭐라고 말씀하세요? “먹을 것을 주라 먹을 것을 줘”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제가 동일한 질문을 집에서 딸에게 한번 해봤어요. 왜 그러셨을까? 딸이 하는 말이 얘가 아파서 오랫동안 누워 있었으니까 아무것도 못 먹었을 거 아니야 배고파서 그랬겠지 어떻습니까? 굉장히 합리적이죠. 네, 맞아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예수님께서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로 한 것은 그 아이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것이죠. 여기서 발견한 세 번째 원리 예수님은 한 영혼을 먹이십니다 한 영혼을 먹이십니다
III. 한 영혼을 먹이십니다.
-이 말을 우리가 조금 더 이렇게 바꿀 수가 있는데 어떻게 바꿀 수 있냐면 예수님은 한 영혼의 필요를 채우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필요를 다 알고 계시잖아요. 그러니까 그것을 공급해 주시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지난 특새 때 많은 은혜를 받았던 찬양 중에 ‘주님의 그 모든 것’이라고 하는 찬양이 있어요. 가서 한번 보여주실까요? 이렇게 돼 있습니다.
♬나의 공급자 또 내 생명 놀라우신 하나님, 주 나의 상급 삶의 이유 놀라우신 하나님 주님의 그 모든 것이 내 삶을 가득 채우네. 내 모든 갈증과 필요 주 사랑으로 만족시키니 부족함 없네.
-여러분, 아시죠? 네,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의 필요를 알고 계시고 공급해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좀 주의할 것이 있어요. 무엇이냐면 우리는 가끔 내가 원하는 것을 나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착각한 오류에 빠집니다. 조금 노골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필요로 포장하는 경우가 있어요.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네 아주 쉬운 예인데 물은 필요고요 커피는 욕망입니다. 우리 가운데 목사님 저는 커피 없이 못 삽니다. 이런 분이 있을 수 있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물 없이는 살 수 없어요. 커피 없이는 살 수 있습니다. 커피는 욕망이에요. 커피는 필요를 넘어서는 물 이상의 그 무엇이다. 라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죠. 자, 그런데 예수님 우리 필요를 채우신다고 했잖아요.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보시면 예수님은 다시 살아난 아이에게 먹은 것을 주라. 라고 하셨어요. 그 아이의 필요를 알고 그에게 꼭 필요한 그것을 채워주고자 하셨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한 영혼을 먹이는 일에 힘써야 되겠죠. 제가 지금까지 여러 말씀드렸는데요. 본문에서 발견하는 예수님의 사역 원리 세 가지를 말씀드렸어요. 첫 번째가 뭐였죠.
첫 번째는 예수님은 한 영혼에 집중하신다.
두 번째는 예수님은 한 영혼을 살리신다.
세 번째는 예수님은 한 영혼을 먹이신다.
-네 잘 기억하고 계시는데, 제가 이와 관련해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한 가지 있습니다. 제가 지금 여직장인 순장 반을 담당하고 있거든요. 우리 순장 반에서 지난 1월 달에 캄보디아로 단기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저희가 함께 사약과 선교사님이 약 30년 가까이 캄보디아 땅을 섬기고 계시는 분이셨어요. 우리 선교팀이 이분의 사역 현장을 쭉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현장이 어디였냐면, 움직이는 안식처, 버스를 타고 살아가는 것인데 움직이는 안식처라는 사역 현장이었어요. 송 교사님이 현지인 사역자들 2명과 함께 버스를 타고, 노숙자 아이들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시는 거예요. 이 아이들이 글을 모르니까 주로 활동 위주의 놀이를 하거나 성경 공부를 하는 거죠. 나이가 조금 있는 애들은 버스 안에 들어가서 프로그램을 하고, 어린아이들은 마당에 이렇게 공터에 돗자리를 깔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현진 사역도 이렇게 사역을 하고 있는데, 우리 선교사님이 한 귀퉁에 딱 자리를 잡으시는 거예요. 그러더니 아이들을 한 명씩 한 명씩 부릅니다. 부르시고 어떻게 하시냐면 물티슈를 꺼내가지고 애들 다 닦아주는 거예요. 손을 닦아주고 얼굴을 닦아주고 그러고 나서 정성껏 손톱을 다 깎아주시는 거예요. 그리고 몸에 상처가 난 아이들은 일일이 소독제로 이렇게 꺼져 닦아주시고 연고를 발라주시더라고요 물론 맨손으로 하십니다. 마스크도 쓰지 않고 하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딱 바라보는데 마음이 뭉클해지는 거예요. 그러면 제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드냐면 ‘우리 선교사님은 예수님 같다.’ 이런 느낌이 확 와 닿았습니다. 참 부끄럽지만 저는 그 마스크를 벗는 것조차 어려웠어요. 왜냐하면 첫 번째는 냄새가 많이 날 것 같아서 노숙자니까 두 번째는 코로나나 다른 질병이 나한테 오면 어떡하나? 라는 걱정 때문에 그렇게 못했습니다. 근데 선교사님이 그 아이들 한 영혼 한 영혼을 다 집중하시는 거예요. 그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서 사랑의 터치를 하시는 거죠. 그리고 그들의 필요 그들이 먹을 것과 선물을 나눠주시는 사역들을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이 선교사님이 어떻게 그와 같은 사약을 묵묵히 30년 가까이 계속할 수 있었을까? 선교사님에게 이런 확신이 있었대요. 내가 이 캄보디아 아이들을 변화시키면 이 아이들은 캄보디아 땅을 변화시킬 것이다. 그 확신 속에서 일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선교사님이 운영하고 있는 ‘주님의 학교’라고 하는 그런 학교가 있는데 그 담벼락에 이렇게 돼 있어요. 제목에 나올 텐데 ‘티칭 더 월드’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체인징 더 월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삶도 이런 삶이 아닐까요? 우리 모두 예수님처럼, 이 선교사님처럼 한 영혼에 집중하고, 그 영혼을 살리고, 먹이는 일에 동참하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오늘 본문 56절에 보시면 이렇게 기록돼 있어요.
*누가복음 8:56,
56 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고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
-야이로와 그의 아내가 자신의 딸이 살아나는 모습을 보고 엄청 놀랐어요. 네, 여기서 놀랐다는 단어가 어떤 의미냐면 완전히 압도당해 있다. 이런 의미입니다. 완전히 압도당할 정도로 놀랐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그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질문입니다. 정말 이 야이로와 그의 아내가 이 일을 말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말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생명의 역사를 내 눈 앞에서 봤어요. 내 삶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딸이 죽었다가 살아난 것을 봤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입을 꾹 닫고 살아간다.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그랬을 겁니다. 오히려 그 딸의 손을 잡고 다니면서 얘가 바로 예수님이 살린 애다 이러고 다니지 않았을까요? 그랬을 것 같아요. 다시 살아난 이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이 아이가 공 예배에서 간증을 했는지도 몰라요. 여러분, 저의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의 예고편이었습니다. 이렇게 했을지 몰라요. 네 당당하게 그런 삶을 살았을 겁니다. 이와 같이 이 야이로의 부부와 그 딸은 그 삶이 완전히 바뀌었을 거예요. 뒤집어서 말하면 예수님은 이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역자로 변화시키신 겁니다. 하나님이 사역자로 세우신 것이죠. 예수님은 한 영혼을 살리시고, 먹이실 뿐만 아니고 한 영혼을 세우십니다. 그것이 오늘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을 세우십니다.
IV. 예수님은 한 영혼을 세우십니다.
-우리 모두는 이미 예수님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은 사람들이죠. 예수님이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제 우리를 통하여 저와 여러분을 통하여 또 다른 영혼을 살리시고 먹이시고 세우시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 영혼을 살리고 먹이고 세우는 사역에 동참하는 기쁨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부탁을 드립니다.
♣요약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한 영혼에 집중하시는 예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 예수님이 사랑의 터치와 능력의 말씀 선포로 우리를 살리셨음을 확신하고, 예수님이 여전히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공급자 되심을 고백하는 우리의 인생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처럼 한 영혼을 살리고, 먹이고, 세우는 사역이 되어 사랑의 터치로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만들어내고, 또 예수님의 사랑을 예수님의 생명의 능력을 전하는 귀한 도구로 쓰임받기를 간구하여서 주님의 기쁜 자녀로 살아가며, 사람의 변화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재생산의 역사를 계속 이어나가서, 예수님이 죽은 아이의 손을 잡아 말씀으로 다시 살리신 것처럼 사랑의 터치와 능력의 말씀 선포로 내 주변의 한 영혼을 살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예수님을 기억하며, 이웃의 필요에 민감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역자로 세워지는 은혜를 경험하는 현장과 가정과 이웃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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