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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3월 22일)
제목: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복"
말씀: 시편 128:1~6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권진우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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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28:1~6,
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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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편 128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시편 기자는 1절에서,
 
*시편 128:1,
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 ‘경외하다’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여기서 ‘경외’는 누군가를 향한 지극한 사랑과 존경에 나오는 두려움, 혹은 조심스러운 마음을 의미한다. 단순히 잘못하면 불이익 당하고 벌 받을까봐 갖게 되는 그런 두려움이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면 그 관계 속에서 감동을 받게도 하고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어서 관계가 멀어짐이 없도록 마음과 짐과 행동을 매우 조심하게 된다. 일례로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인격이 존경스럽고 나를 아껴주는 선생님이 계시면 어떻게 하는가? 그 과목은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된다. 더 선생님께 주목 받고 싶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행동거지를 더 조심하게 된다. 그것은 단지 매를 맞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그 선생님을 좋아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나오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저는 대학교를 신학교를 나오지 않고 화학을 전공했다. 제가 화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있는데, 제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문과와 이과를 선택하지 않는가? 제가 딱 이과를 선택했는데, 이후에 구체적으로 내가 무엇을 전공해야 될지 참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그때 저의 고민을 알고 있던 저의 친한 친구가 옛날 그 유명한 한샘학원을 하실 것이다. 그 학원에 단과 화학 선생님이 정말 잘 가르치신다고 했다. 자기와 함께 다녀보자고 권면을 했다. 그래서 그 친구를 따라서 그 학원 화학 단과 반을 다니게 되었다. 그때 처음 본 학원 선생님의 첫 인상이 어땠냐면 요즘 인기 있는 요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슬램덩크에 안 감독님을 알 것이다. 그 분과 외모가 아주 비슷했다. 안 감독님보다는 좀 더 젊으시지만 연세가 지긋이 있고 아주 인자하게 생기셨다. 그런데 이 선생님이 그 어려운 고등학교 화학을 너무 재미있고 쉽게 잘 가르치셨다. 게다가 인품도 아주 훌륭하셨다. 학생들이 집중 안하거나 졸면 혼을 내시는 것이 아니라 천 원짜리 한 장, 또는 두 장을 딱 꺼내 놓고 돌발퀴즈를 내셨다. 그때 천원은 그 당시 학생들에게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그런데 손을 들어서 돌발퀴즈를 딱 맞히면 그 돈을 그 자리에서 직접 건네주시면서 잘했다고 칭찬을 많이 해 주셨다. 그런 선생님을 저는 매우 존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돌발퀴즈를 더 열심히 하기 위해서 화학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것은 결코 돈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이다. 한 번이도 더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고 싶고 칭찬을 듣고 싶은 마음이 제 마음이 훨씬 더 컸다. 그리고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수업시간 보다 일찍 와서 칠판 정리도 다 하고 선생님이 드실 음료수를 미리 준비해 놓았다. 그리고 혹시라도 다른 친구가 사온 것이라고 착각 하실까봐 포스트잇에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권진우 올림”을 딱 크게 써서 음료수에 붙여 놓았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보는 Test도 있었는데 정말 선생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거의 매번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그것은 절대로 선생님한테 매 한 번 덜 맞고, 선생님에게 안 찍히려는 동기에서 나오는 열심이 아니었다. 너무나 존경하는 그 선생님과 멀어지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의 동기였다. 그러다가 제가 화학과를 가게 된 것이다. 이 성경에 나오는 경외라는 단어가 이와 비슷한 면이 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과 존경심에 바탕한 두려움, 다만 잘못하면 벌 받고 혼날까봐 갖게 되는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여서 나의 잘못된 행실로 인해 그분과 관계가 단절되고 멀어지는 게 싫어서 갖게 되는 두려움이 바로 경외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여호와를 마음으로부터 진정으로 경외하는 자가 나타나게 되는 삶의 모습은 무엇인가? 오늘 1절 중반에 나오는 것처럼 그의 길, 즉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걸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분께 더 잘 보이고 싶고 실망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과 사랑과 존경에 대한 경외이기 때문에 여호와를 두려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분을 찾고 만나려고 하고 의지하려고 할 것이다. 만일 인격적으로 존경을 갖지 않는데 그냥 무섭고 엄하기만 한 선생님이 계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는가? 피해 다닐 것이다. 우리한테 가까이 오면 멀리 돌아서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존경과 사랑이 전제가 되어 있으면 그 선생님이 계신 자리에는 항상 함께 하려고 하고 누구보다 곁에 있으면서 눈에 띄려고 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그 반응이 말씀과 기도를 통해 주님을 더 자주 만나고 찾으려고 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려고 할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경외는 더 자주 찾고 만나려는 모습으로 반응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자신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을 오늘 말씀에서 크게 네 가지로 말씀하신다.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당사자에게는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다. 라고 오늘 말씀하고 계신다. 이것은 당시에 농사짓는 배경으로 표현하고 있다. 고대사회에서 수고한 대로 먹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매우 중요했다.

첫 번째는, 농사를 지을 물이 넉넉해야 한다.

두 번째는, 그 수확한 것에 대해 주변 나라들로부터 약탈을 당하지 않도록 안전이 보장이 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 성경에 쓰여 진 이 고대사회에서 이러한 조건을 잘 갖춘 천혜(天惠)의 지역이 있었는데 거기가 어디였냐면 오늘날 이집트에 해당하는 애굽이었다. 애굽은 나일 강이라는 큰 강을 끼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여름에 큰 비가 내리면 이 나일 강 물이 막 범람(氾濫)을 하면서 그 강 주변으로 농사짓기에 좋은 검은 흙들이 막 쌓이게 된다. 이게 뭐냐면 따로 거름이나 퇴비(堆肥)를 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큰 비가 멈춘 후 홍수(洪水)가 멈추고 나면 그 나일 강 주위에 그 기름진 땅, 그 검은 흙 위에 씨만 뿌려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곡식들이 알아서 잘 자라서 애굽의 왕과 그 고위층만이 아니라, 하층민까지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많은 양의 곡식을 수확을 할 수가 있었다. 더군다나 애굽은 지형적(地形的)으로도 이 사방(四坊)이 사막(砂漠)과 지중해(地中海)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이것이 천연의 요새(要塞)가 되어서 외부의 침략을 받는 일도 거의 드물었다. 이처럼 애굽은 농사짓는데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옛날에 세계 7대 불가사의인 피라미드 같은 고난도 건축물도 세울 수가 있었던 것이다.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사정이 달랐다. 이스라엘은 일단 큰 강이 없다.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강은 뭐가 떠오르는가? 그런데 요단강은 평상시에는 강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수량도 부족하고 그 규모가 상당히 작았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이스라엘이 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로부터 때에 맞게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려주어야지만 포도농사도 짓고 올리브 농사도 지을 수 있었다. 제때 풍족한 비가 내리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 물을 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해 농사를 완전히 망쳐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그토록 하나님께서 의지 말라고 하는 비와 폭풍의 신인 바알을 끝까지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가 아니면 살 수가 없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의 나라는 적군이 많았다. 서쪽으로는 블레셋이 있고 동쪽에는 앗수르와 바벨론이 딱 버티고 있었다. 하늘로부터 제 때 내려주어서 농사를 잘 짓고 나면 그 수확의 시기에 맞추어서 외부의 세력들이 호시탐탐 약탈할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힘이 약해지고 경비가 허술할 때 치고 들어와서 모든 수확물을 다 거두어 가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요즘 날샘(날마다 솟는 샘물) 큐티에 등장하는 블레셋인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그동안 애썼던 모든 수고가 헛된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애굽과는 달리 제때 비가 내리지 않고 외부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하면, 수고한대로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무어라고 하시는가? “너희가 여호와를 경외하면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수 있도록 때에 맞게 비를 내려줄 수 있다.” 고 말씀하신다. 모든 풍족한 수확(收穫)을 위한 조건들, 그 조건들을 다 갖추어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확한 것을 이방민족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내가 창과 방패가 너희에게 되어주겠다고 하신다. 네가 복되고 형통하다고 느낄 정도로 오늘 2절에 말미에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라고 나오고 있는데,
 
*시편 128:2,.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가 복되고 형통하다고 느낄 정도로 당시에 애굽 못지않게 수고한대로 풍족히 먹게 해주겠다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약속하시는 것이다. 그러니 너의 존재하지도 않는 바알 같은 것들 의지 하지 말고 오직 만물의 주관자 되신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날 우리는 이 성경 본문에 나오는 당시보다 훨씬 문명화된 곳에 살고 있고, 지식과 정보에 기반을 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오늘 날 우리가 수고하고 애쓴 만큼의 수확을 거두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때에 맞게 지혜의 단비를 내려 주셔야 한다. 시대에 맞는 창조적인 창의력을 허락해 주셔야 한다. 또한 때가 되면 주저하지 않고 담대함을 갖고 일을 추진해 나갈 수 있는 우리 마음 가운데 은혜의 단비를 내려 주셔야 한다. 풍성한 수확을 위한 이른 비와 늦은 비는 옛날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 날 이 시대에 맞게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그 비를 우리에게도 내려 주셔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수확을 거둔 이후에도 약탈을 위해서 부지불식간에 침략해 들어오던 그 블레셋처럼 내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컨트롤 할 수 없는 영역에서 문제가 생기고 갈들이 생겨서 우리가 손해를 보는 경우가 일하다 보면 발생하지 않겠는가? 이처럼 내가 보지 못하고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영역은 누가 지켜 주셔야 하겠는가? 하나님 밖에 지켜주실 이가 없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수고한대로 먹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경외하는 자의 삶을 수고하는 자의 손에 영역에 미치는 않는 모든 영역에서도 지켜주신다. 라고 오늘 말씀에 다 포함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않는 인생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삶 가운데 이 은혜를 경험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왜? 자신을 경외하는 자에게 허락되는 복의 첫 번째로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을 가장 먼저 이야기 하시는가? 먹는 것을 가장 먼저 이야기 하셨는가? 우리가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우리의 필요로 채워주시는 연결되는 말씀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마태복음 6장 33절을 보겠다.
 
*마태복음 6:33,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삶에 필요한 모든 것들도 더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신다. 이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주기도문에서 보면 어떠한가? 초반에는 하나님의 뜻을 위한 기도를 하게 한 이후에 이어서 중간에 뭐가 나오는가? 우리에게 무얼 달라고 하는가?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를 하라고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허락하시는 첫 번째 복이 수고한대로 먹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시고 계신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를 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첫 번째로 허락하시는 약속과 복이 다른 것도 아니라, 먹을 것을 채워주시는 것이 먼저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분을 경외하며 사는 게 삶에 자꾸 먹는 것,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과 연결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모든 만물가운데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경외 받으시냐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들을 통해서 영광 받으신다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으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그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살아있는 눈에 보이는 자녀들의 영혼 가운데 함께 하셔서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나타내 사 높임을 받으시고 영광 받으신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작정하신 방법이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 만물 가운데 영광 받으시고 그분의 일을 행하시며 경외함을 받으시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할 조건은 무엇이냐면, 바로 그분의 자녀들의 생존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을 통해 영광 받으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그분이 선택한 자들의 생존은 필수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구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넉넉히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계획과 마음을 알고 우리의 필요를 구하고 양식을 구해야 한다. 그냥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 했으니까 그 상으로 원하는 것을 주신다는 것은 그런 기복적인 의미가 절대 아니다. 우리의 육신의 필요를 채우셔서 살아 있는 우리를 통해 영광 받으시기로, 하나님께서 또 일하시기로 하나님께서 작정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목적으로 일용할 약식을 위한 수고를 감당해야 되고 필요를 채워주실 것을 기도해야 된다는 것이다.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여호와를 경외한대로 수고한 대로 결실을 맺으며 또 그 생명과 힘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우리가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시편 128:3,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복의 그 다음은 가정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내 아내는 결실한 포도(葡萄)나무 같으며, 자식들은 어린 감람(橄欖)나무 같다고 약속을 하신다. 여기에 아내와 자녀들을 비유하는 이 포도나무, 감람나무, 다른 말로 하면 올리브 나무인데 이 감람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좋아하는 열매를 맺는 유실수이다. 몸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기분을 좋게 하는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면 그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를 섬기는 마음으로 각자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그리고 상대방의 내면을 아프게 하고 악하고 공격적인 말이 아니라 서로를 건강하게 하고 세워주는 사랑과 격려의 마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서로를 기쁘게 하고 건강하게 하는 유실수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정의 복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기도 하지만 또한 앞으로 하나님이 주실 약속이 될 수도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설령 내 배우자와 내 자녀가 결실한 포도나무요, 어린 감람나무라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있을지라도 그 과정 안에 있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그 가족 구성원, 그 한 사람으로 인해서 오늘 3절의 말씀이 장차 반드시 이루어져가게 된다는 것이다. 아직 배우자가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믿는 자 역할을 하지 않아 기도 제목이 될 수가 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면 그 배우자의 변화를 위해서 믿는 남편, 혹은 아내로서 감당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를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려고 하고, 아내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를 따라서 남편의 권위에 순종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나의 그 노력과 섬김의 배우자가 막 감동 받고 곧바로 반응이 오면 좋겠는데 그것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마음의 상처를 더 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또한 사단이 믿음의 가정을 세우는데 쓰는 중요한 전략이 하나 있다. 약을 올리는 것이다. ‘네가 이래도 잘하나 보자.’ 하면서 평소에 마시던 술을 일부러 두 배로 더 마시게 하고, 상대방이 싫어하는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도 하게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어떠한가? 인간적으로 다 집어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네 마음대로 살아라.’ 할 것이다. 사람의 힘으로 오래 인내하기 힘들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다스리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지만 오로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전적으로 그분을 의지할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주관하셔서 우리에게 인내할 힘을 주신다. 상대방을 향한 분노가 아니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셔서 그를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끝까지 믿음의 배우자로서의 본분을 감당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끝까지 인내하시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인내하실 때에, 그 마음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품게 하시는 것이다. 그럴 때 어느 순간 상대방의 완고한 마음은 점점 꺾이게 되고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인내와 수고가 다리 역할이 되어서 그가 주님 앞에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이라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하면 자식들이 감람나무, 즉 올리브나무와 같은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될 것이라고 우리 하나님은 약속하신다.
 
저는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패역함을 꾸짖으시는 한 가지 좀 충격적인 말씀이 마음에 들어왔다. 약간의 충격적인 말씀인데, 에스겔 16장 20절을 보자.
 
에스겔 16:20-21,
20 또 네가 나를 위하여 낳은 네 자녀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서 드려 제물로 삼아 불살랐느니라 네가 네 음행을 작은 일로 여겨서.
21 나의 자녀들을 죽여 우상에게 넘겨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느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여러 범죄를 저질렀는데 그 중에 어떤 범죄가 있었냐면 자신의 자녀를 우상에게 제물로 바치는 일이 있었다. 자녀를, 이것은 당시 실재로 모압 족속의 신인 몰록에게 자녀를 불로 태워 제물로 바치는 인신제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니 왜 이렇게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어처구니 일들을 이 시대에 자행했던 것인가? 그것은 바로 신 앞에 인간이 나타낼 수 있는 최고의 정성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가장 아끼는 자녀까지도 당신한테 바치니 우리 공동체 큰 번영과 영화를 주시기를 원하는 것이다. 제물로 희생된 자녀는 신을 통하여서 좋은 곳에 있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런 인신제사가 충격적이지 않는가? 우리에게 너무나 충격적으로 다가오고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 앞에 자녀를 드리는 인신 제사가 오늘날 정말 우리에게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올해 저희 자녀가 고3인데, 자녀가 수험생이 되면 ‘너 올해는 공부에 전념해야 되니 대학생이 되면 예배 나가고 교회활동을 자제하라.’고 권면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이것이 세상의 성공이라는 우상 앞에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 영혼을 불사르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인간적인 욕망과 욕심이라는 우상 앞에 부모의 따뜻한 사랑과 돌봄을 받아야 할 자녀의 정서가 메마르고 자존감은 밑바닥까지 내려앉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심어놓으신 은사 소명은 설자리를 잃어버리고 만다. 영적으로 본다면 현대판 인신제사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식들이 감람나무와 같을 것이고 자신의 영혼과 삶이 풍요로울 것이며 오늘 감람나무, 이 유실 수 같은 이 존재로 그의 가정과 장차 자녀들이 속할 공동체를 유익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평생을 세상만 바라보며 세상에 파묻혀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는 자가 되어서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가장 가치 있게 쓰임 받게 될 것이라. 고 하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늘 시편 기자는 3절 이후의 4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고 있다.
 
*시편 128:4,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다시 말해서 참으로 이것은 분명하다고 단정 지으며 말씀한다. 이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개인과 가정이 놀라운 복을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복은 내 개인, 내 가정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예루살렘이 번영하며 내 자식의 자식이 보게 될 것이다. 5절 6절을 보면,
 
*시편 128:5-6,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여기에 보면 예루살렘이 번영하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고대 사회에서는 영토를 빼앗기 위한 국가 간의 전쟁이 꽤 많이 있었다. 그것은 어떤 명예이기 앞서서 생존이 직결되는 문제였다. 고대 근동의 어떤 지역의 하나의 도시를 이루고 어떤 집단이, 살았던 집단이 그 지역의 인구가 늘어나는데 비해서 농사지을 땅은 부족해지고 가축을 먹일 목초지가 부족해지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옆에 힘이 약한 근접한 도시 국가를 공격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격은 매우 맹렬하고 잔인하게 이루어져서 심지어는 임산부와 어린아이까지 목숨을 앗아가게 했다.
 
대표적으로 여러분이 잘 아시는 앗수르가 그러한 일들을 많이 행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왜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했는가? 그게 무언가하면 원래 민족이 민족성이 원래 잔인해서가 아니라, 그 상대방이 그 침략을 받는 나라가 어린 아이들이 성장하면 다시 보복할 가능성이 있기에 그것을 완전히 제거해 버리기 위해서 임산부 애들까지 다 죽여 버리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한 번 나라가 힘이 약해져 침략(侵略)을 당하게 되면 그 나라는 번영(繁榮)이 아니라 쇠퇴(衰退)를 넘어서 침몰(沈沒)을 하게 되고 자식의 자식을 보는 게 아니라 그 당대에서 대가 끊겨버리게 되는 너무나 비극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당시에 이 번영이라는 이스라엘의 번영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이스라엘의 번영이라는 말을 사실은 상당히 거리가 있는 나라였다. 군사력이 그리 강하지도 않고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애굽이나 앗수르처럼 나라 안에 큰 강이 있어서 먹을 것이 풍요로운 것도 아니었다. 그냥 변방에는 하나님의 작은 초라한 나라에 불과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보잘 것 없고 악조건만 있는 이 민족에게 무얼 말씀 하냐면 한 번도 그들이 생각하지 못한 번영을 이야기 하시고 내 자식의 자식을 보게 될 것이다. 라고 감히 다른 나라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평강을 허락하겠노라고 약속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무기가 많아서인가? 아니면 인구가 많아서인가? 하나님은 단 한 가지만을 말씀 하신다. 너희가 여호와를 경외하면 그의 길을 걸으면 자식의 자식을 볼 것이라고 분명히 약속하고 계시는 것이다. 결국 여호와가 힘과 방패가 되시고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공급자가 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또한 다른 말씀을 보면 이방민족들이 이스라엘 때문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는 여호와를 두려워 떨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까지 이스라엘에 대해서 그러하시는가?
 
첫째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 때문이고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제사장 나라를 이스라엘을 삼기 위함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저와 성도님들 각자 한 사람이 기도의 사람이 되는 것은 비단 나와 가정뿐만이 아니라, 한 지역과 나라를 지키는 영적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을 믿는다. 우리가 언론과 뉴스를 통해서 매 정치적, 사회적으로 여러 뉴스와 사건들이 들려온다. 또 우리나라는 작은 나라이고 실제적으로 자원도 거의 없는 나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담임목사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것처럼 인구도 적고, 땅도 작지만, 그리고 자원도 없지만 어떤 자원이 있는 나라인가? 기도자본이 있는 나라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도로 자리를 지키는 의인 열 명을 주목하시고 그들로 인하여서 이 나라를 지키시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번영하게 하시고 대한민국의 자식의 자식을 보게 하시고 대한민국의 평강을 주실 것을 믿는다.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저와 여러분의 기도에 달려 있는 줄 믿는다. 그래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누리게 되는 복에 대해서 우리가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너무나 당연한 말 같지만 왜 우리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요구하시는가? 먼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우리와의 관계를 하나님이 회복하시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리게 하셔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또 앞으로도 짓게 될 미래의 죄의 모든 죄를 예수님께 다 담당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 사실을 믿는 믿음도 우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완악한 처지에 있으니까, 은혜로 믿고 받아들이게 하셨다. 구원의 방식도 하나님이 마련하시고 그것을 믿는 것도 하나님께서 조치를 취하신 것이다. 다 하나님이 하셨다. 그리고 영원히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며 함께 하는 관계로 우리를 하나로 묶어놓으셨다. 이처럼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또한 무얼 원하시냐면 우리에게 사랑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한다.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원하신다. 그렇게 본다면 어쩌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오늘 시편 말씀과 같은 이 네 가지의 그 큰 구한 네 가지의 복을 주시겠다고 하는 것도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냐면, ‘네가 나와 교제를 하고 사랑을 하는데, 다른 무엇 때문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나머지는 내가 다 책임져 줄게’ 나머지는 여기에 담겨있음을 생각을 한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결국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인가? 단 하나, 저와 여러분 우리 자신인 것이다. 우리를 너무나 존귀하게 여기신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은 자, 즉, 그 자, 그 한 사람, 우리를 원하시며, 그 외 그렇게 걸으면 그 외 다른 것들은 그것 때문에 네가 정신이 생각이 분산되고, 나를 위한 집중이 어려움이 없도록 하나님의 손 안에서 다 지키시고, 채우시고, 해결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면 되는 것이다. 올 한해 전심을 다해 하나님을 경외하며 오늘 시편 말씀의 약속을 경험하며 복된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란다.
 
♣요약
우리에게 먼저 무한한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삶에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시니 항상 주님을 경외하며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시기 위해 우리 개인뿐만이 아니라 가정과 민족과 나라까지 복되게 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깨달아서 우리는 사명감을 가지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복을 누리며 나라와 민족을 위한 영적 파수꾼의 역할을 신실히 감당하여야 한다.
- 개인과 가정과 나라를 안락하게 할 수 있는 복의 길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말씀을 복종하는 것이다. 신앙과 경건은 번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는 그러한 찬양을 하나님께 돌리며 진리에 대한 굳건한 신념과 믿음으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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