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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3월 1일) 제목: "덤으로 사는 삶" 말씀: 열왕기하 20:1-6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고영민 부목사님 -------------------------------------- *열왕기하 20:1-6,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6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 ▶고영민 부목사님 사람들에게는 무너지는 순간들이 있다. 대학입시를 위해서 수능을 준비하고 면접도 보고, 또 열심히 노력했는데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또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별을 통보 받았을 때도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그러나 목양을 하면서 제가 마음이 무너질 때가 언제였냐면 생명에 관한 것을 들었을 때이다. 어떤 집사님께서 병원에 갔다가 이상한 조직을 발견하시고 의사의 권유에 따라서 조직검사를 맡기신 것이다. 그리고 나서 결과를 간절하게 기다리게 된다. 주일에 담당 교역자인 저에게 찾아오신 것이다. 그 떨리는 마음을 아는가? 간절하게 기도해 드리고 다음에 또 연락이 온다. 그리고 나서 어떠한 말을 듣는다. “목사님 저 암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지요?” 저는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마음이 무너지는 마음을 느낀다. 우리는 크고 작은 일에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 피해갈 수 없기에 누구나 경험을 한다. 하지만 우리기가 함께 읽은 히스기아는 절대(絶對) 절명(絶命)의 위기의 순간들에 맞닥뜨리고 있다. 그리고 그는 마음이 무너져 내렸고 참담함 그 자체이다. 이 이야기를 보면 내용이 아주 간단하다. 히스기야가 중병이 든다. 그리고 이 병은 선지자가 와서 히스가에게 삶을 정리 하라고 할 만큼 중한 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을 들은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하나님의 응답은 그가 살아갈 날을 15년을 연장하여 주셨다는 이야기이다. 너무 간단하지 않은가? 아마도 이 시기는 유다와 예루살렘이 앗수르에 침공을 받는 시기와 겹치는 시기로 보인다. 히스기야 재위 기간이 29년이다. 그리고 히스기야가 삶을 15년을 연장을 받았기 때문에 그가 병들었고 그 기도의 응답을 받은 시기가 아마 히스기야 재위 14년 정도였을 것이다. 열왕기하 1 *열왕기하 18:13, 13 히스기야 왕 제십 사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하매. *열왕기하 10:6, 6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그리고 오늘 말씀에도 이 성을 앗수르의 성에서 구원해줄 것을 약속하는 것을 보면, 아직 침공이 끝나기 전으로 보인다. *열왕기하 21:1, 1 므낫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오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헵시바더라. -15년을 연장 받은 것을 생각해보면 이때는 아직 자식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러분 히스기야의 위기가 보이는가? 히스기야에게는 지금 적국으로부터 침공(侵攻) 받는 국가적 위기(危機) 뿐 아니라, 후사(後嗣)가 없는 가정의 위기, 그리고 시한부(時限附) 판정을 받은 개인의 위기까지 총체적인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 위기의 상황이다. 오늘은 인생의 절대 절명의 위기이자, 총체적(總體的)인 위기를 맞이한 이유를 중심으로 기도하고 그 받은 응답을 받고 그 이유까지 우리가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하는 하나님이 말씀에 보면서 우리가 귀 기울이기를 바란다. 먼저 히스기야를 살펴보자. 히스기야는 이런 총체적인 위기에 맞이했을 때 어떻게 했는가? 즉시 그는 기도했다. 여러분, 성도는 위기의 순간에 기도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마음이 무너지는 고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곳에 기도하는 자리까지 나오지 못하고 그리고 가지고 나오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히스기야는 그렇지 않았다라고 이야기 한다. 오늘 말씀을 203절을 보면, *열왕기하 20:2-3,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첫째- 히스기야는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했다. -이 본문은 히스기야가 기도한 내용이다. 오늘 히스기야 기도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히스기야는 사람을 의지하지 않았다. 먼저 죽음을 가지고 온 사람은 바로 이사야 선지자였다. 이사야 선지자는 평생을 히스기야와 함께 했던 사람이다. 그와 함께 의지하면서 전쟁을 겪은 사람이다. 영적으로 잘 통했던 사람이겠다. 그렇다면 히스기야에게 그 말을 해준 사람은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는 아주 가까운 사람이다. 여러분들도 이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하겠는가? 그 사람을 붙잡고 하소연 할 수 있지 않은가? 이유가 뭐냐? 라고, 내가 무얼 해야 되느냐? 네 생각은 어떠한가? 라고 하여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한다. 또 히스기야에게 많은 재산들이 있었다. 히스기야는 “왕의 건강과 회복을 위하여 이제 너희들은 기도하고 제사를 올려라.” 라고 명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외 많은 의사들과 박사들도 있었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들도 부르지 않았다. 히스기아는 누구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혼자 하나님을 대면하고 기도했다.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과 독대하는 것이다. 독대하는 것에 동의하는가? 사람들의 조언과 생각을 듣는 것이 아니다. 사실 두려움은 하나님의 말을 듣고 사람을 의지할 때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를 어지럽혔던 말이 사라진다. 히스기아는 즉시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했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대면한 것이다. 절대 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사람의 소리,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기도를 드린 것이다. 둘째- 히스기야는 하나님 말씀 앞에 즉시 기도했다. *열왕기하 20:1,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찾아가서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이제 너는 죽는다.”라고 이렇게 이야기 한다. 여러분 보통 때는 예고의 말씀이 없어야 정상이 아닌가? 성경에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은 그냥 병이 중하여 지다가 명이 다하면 죽는 것이 일반이 아닌가? 그런데 오늘 말씀에 중병을 앓고 있는 히스기야에게 와서 “너는 죽는다.”라고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아주 특별한 케이스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이것은 지금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사인인 것이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주시는 이 사인 앞에 지체하지 않고 즉시 기도했다. 다른 생각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이 말씀이 나를 위한 말씀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의 사인이며,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확신이 들었을 때, 그 어떤 생각이나 조치를 하기 전에 바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이럴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는가? 신속하게 응답하신다. 4절을 보면, *열왕기하 20:4, 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여러분, 성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였다라고 이야기 한다. 즉시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기 시작했을 때, 당신도 지체하지 아니하고 바로 응답하신 분이 하나님이신 줄 믿는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과 사인 앞에 지체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즉시 나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가장 복된 하나님의 선으로 응답하실 줄 믿는다. 셋째- 하나님 앞에 전심을 다해 눈물로 기도했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그 눈물을 보시는 하나님이시다. 여러분 모든 눈물을 흘린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강하셨던 저희 아버지 인생이 힘드시니 우셨다. 사람은 다 운다. 그러나 그 눈물이 다 기도는 아니다. 운다고 하나님이 다 보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눈물은 기도의 눈물이다.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치고 응답받지 않는 자는 없다. 한나가 그랬고, 다윗이 그랬고, 예레미야가 그랬다. 여러분 예수님도 눈물로 기도하셨다. 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 뭐라고 하시는가? *열왕기하 20:5,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눈물을 보셨다. 그의 마음을 보셨다. 하나님은 그의 슬픔을 아셨고 이 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시는 분이시다. 여러분, 하나님은 절대 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눈물로 나온 자에게 기도를 반드시 응답하신다. 그리고 5-6절을 보면,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응답하신다. 그 중병을 고치신다. *열왕기하 20:5-6,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6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그 중병을 고치신다. 하나님께 즉시 기도했다. 그리고 그 말씀과 사인 앞에서 지체하지 않았다. 생명도 15년이나 연장시켜 주신다. 그리고 전심을 다해 기도했다. 히시기야의 받은 응답을 보면 기도의 타임이 태도 내용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인다. 이것은 받은 응답도 너무나 완벽하다. 위기의 순간에 기도자로서 최고의 모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귀감이 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성령은 히스기야에 대해서 이렇게 아름답고 귀감(龜鑑) 될 만한 내용으로 마치지 않는다. 성경은 우리에게 히스기야의 기도응답 이후의 삶을 통해서 메시지를 던진다. 이것은 하나님은 기도응답과 함께 변화된 삶을 요구하신다는 것이다. 기도응답 이후에 히스기야의 변화 소식을 들은 바벨론 왕, 브로닥발라단이 사절단과 함께 편지와 예물을 보낸다. *열왕기하 20:12, 12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 -아마 이 예물을 보냈을 때에는 병이 해결되고 회복되었을 때로 보인다. 시간차가 있다. 어쨌든 그들이 온다. 그만큼 바벨론도 앗수르가 지금 남하하고 있는 국제정세에서 유다를 크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편지와 예물은 화해나 동맹 등의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다. 히스기야는 기분이 아주 좋아서 자기 창고에 금은, 향품과 기름과 군기고에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13절에 보면, *열왕기하 20:13, 13 히스기아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마지막에 한 번 더 강조하고 있다. 히스기야가 보인 것 중에 그의 나라에 있는 모든 것 중에 그에게 보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일은 산헤립의 1차 침공 이후에 전쟁을 다시 준비하면서 다시 국고가 채워진 뒤에 일어났을 것이다. 특히 오늘 말씀에 보면 자기의 보물고, 그의 군기고, 그리고 그의 나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아마도 히스기야는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했던 것 같다. 아니면 화해와 동맹의 손길에 손 내미는 바벨론에게 자기의 나라의 영광과 부요함을 자랑스런 모습을 보여주고 잘해보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이야기 하냐면, 역대하에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 *역대하 32:25, 25 히스기아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성경은 마음이 교만하여졌다고 진단한다. 이 사실을 안 이사야는 얼른 달려가서 히스기야를 크게 책망한다. “무엇을 보였느냐? 질문에 히스기야가 해맑게 안 보여준 게 없다고 한다. 정말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더 황당한 이사야는 하나님을 대언하여 책망정도가 아니라 *열왕기하 20:17-18, 17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18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여러분, 여기에서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히스기야의 개인적인 허영심? 아니면 어떻게든 잘 보여서 동맹국을 맺어 의지하려고 했던 마음인가? 이런 것들도 해달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여러분 그 당시에 바벨론이 사절단을 통해서 편지와 예물을 보낸 것은 무엇인가? 앗수르가 자꾸 남하를 하니까 그런 국제정세 안에서 유다와 함께 무엇인가 동맹을 맺을까를 하여서 온 것 아닌가? 그런 의도를 뻔히 알고 있는 왕이다. 왕도 그냥 왕이 아니라, 국가적인 위기, 개인적인 위기, 생명의 위기, 이 모든 절대 절명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큰 은혜를 넘치도록 받은 왕이다. 보통 사람은 경험할 수 없었던 그런 경험을 하고도 정작 그 나라가 어떠한 나라인지, 궁금하여서 친히 자기 나라에 방문한 이방인에게 크게 역사하신 그 크신 하나님의 역사를, 하나님을 어느 한 점 비추거나 거론하지 않고 각종 보물과 무기고를 보여주면서 마치 자신의 재력과 자신의 무기와 군대가 지금 그 나라를 보호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 으스대고 있는 것 아닌가? 여러분 굳이 죽을 사람에게 “너 죽을 것이다.” 라고 특별히 예고하시면서 기회를 주신 이유가 무엇인가? 15년생을 연장해 주셨는데 하나님은 무엇을 하라고 그 생을 연장해 주셨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경험한 하나님을 유대의 온 땅에,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알리고, 만국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증언하라고 15년을 허락하신 것이다. 이러한 히스기야의 반응이 더 놀랍다. 19절에 보면, *열왕기하 20:19, 19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이 말씀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어렵다. 다른 번역본을 보면 이렇다. <그대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은 지당하신 말씀이요, 그리고 자기의 목숨이 붙어있는 동안은 평안과 안전이 계속 되리라고 혼자 생각했다.> -여러분 지금 남하하고 있는 앗수르에게서 유다를 보호하고 있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은금과 보물인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군대나 무기인가?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싸울 생각도 못하고 포위되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우리는 히스기야에게 연장된 15년을 굉장히 크게 생각한다. 아주 특별한 경험이다. 개인적인 기도의 응답으로는 아주 큰 응답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 기도응답으로 끝맺지 않고 히스기아의 마지막을 지금 기록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베풀어지고 일들이 다 해결 된 이후 즉 기도응답을 받은 이후의 삶도 중요하다고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계신다. 여러분 히스가아는 생명을 건지는 은혜를 경험한다. 이런 은혜는 아주 특별한 은혜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의 사건을 이후를 살고 있는 지금 우리, 신자에게는 히스기야의 이 큰 경험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은혜를 경험한 자들이다. 죄의 근간을 부수고 사망권세를 이기고 죄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비교할 수도 없는 은혜를 경험자들이 바로 신자요, 성도요, 교회가 아닌가? 이렇게 히스기아에게 15년이란 시간이 주어진 것처럼, 우리에게는 거듭난 이후에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의 시간이 주어진 것을 아는가? 죽음의 선물을 받은 인생들에게 사망으로 결론지어질 인생들에게 제2의 인생의 선물을 주신 것이다. 우리는 다 죽은 자들이다. 생명이 없었던 자들이다. 사망으로 결론지어진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거듭난 은혜로 생명을 주셨다. 그래서 거듭난 성도는 모두 덤으로 사는 것이다. 삶을 선물로 주신 것이다. 그 누구도 경험할 수 없었던 모두가 다 그 죄 아래에서 종노릇 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 아들로 말미암아 히스기야처럼 그때그때 위기에서 건져주신 것도 아니요,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영원한 생명수 가운데서 우리를 부르셔서 영원한 생명의 은혜를 경험한 여러분이라면 이제 무엇을 하겠는가? 세상에서 무엇을 보여주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보겠노라고 하겠는가? 여러분 무엇을 사랑하겠는가?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가? 죽음의 권세를 깨부수시고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시고 생명의 자리로 옮겨온 그 원천인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가? 이제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졌다고 하면 히스기야처럼 자신이 갖고 있던 재산을 내어놓으면서 무기를 자랑하고 자신의 군대를 내보이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대로 우리를 구원한 복음이 우리의 자랑이 되어야 한다. 내가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해야 되는 것 아닌가? 내가 세상에 보여줄 것이 딱 한 가지 밖에 없다 라고 말하면서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여러분, 복음을 증거 하라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인생가운데 히스기야와 같은 축복을 주셨다. 복음을 증거 하라고 물질을 주셨고, 신분도 주셨고, 건강도 주셨다. 종흔 성적도 주셨고 작은 지혜로 주셨다. 그렇다면 여러분, 주어진 시간에 여러분은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입든지, 무엇을 먹든지, 무엇을 하든지, 어떤 자리에 있든지 그 시간에 무엇을 하겠는가? 이것이 여러분에게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구원이후에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그 두 번째 인생, 덤으로 주어진 인생이 복음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소망한다. 히스기야가 사랑했던 그 보물들, 그 군기들,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다고 하시는가? 다 팔려가겠다고 이야기 하신다. 여러분들의 인생이 히스기야 같지 않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복음으로 가득 채워진 기쁨의 인생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성도는 기도응답의 삶도 승리해야 한다. 넷째-기도응답의 삶도 승리해야 한다. -여러분 히스기야는 기도의 성공이 있었지만 그의 평가가 좋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긴급할 때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히스기야가 너무 잘 한 부분이다. 맞다. 그러나 말씀의 히스기야처럼 기도응답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고 나서 하나님 앞에 두손 들고 나온다. 무엇이 부족한 것인가? 기도응답이후의 삶까지도 영적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도응답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3절을 보면, *열왕기하 20:3,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여기 히스기야의 기도를 보면 “여호와의 구하오니 기억하옵소서!” 라고 기도한다. 이렇게 호소하면서 자신의 삶을 기도로 올려드렸던 삶이다. 먼저는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주 앞에 행하였던 삶을 기도로 올려드렸던 사람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 앞에 선하게 행하였던 삶을 기도를 드렸던 사람이다. 여러분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가? 자신의 삶을 근거로 기도의 응답을 요청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 앞에 진실함과 전심의 삶, 선한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렇게 근거를 두고 기도할 만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라면 앞에 살펴보았듯이 갑자기 자기에게 죽을 병이 들었던 것, 또 기도했는데 보란 듯이 너무나 즉시 병을 낫게 해주신 것,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것,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약속을 주신 것, 또 그 약속의 증거를 주신 것, 이렇게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티를 내도 너무나도 팍팍 티를 내시면서 응답하셨음에도 불구하고 12절 이후처럼 행동하는 것은 기도 응답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에 히스기야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여러분 분명 기도응답은 너무나도 기쁜 이야기이다. 여러분 기도하고 계신 것이 있을 것이다. 그 응답을 받았다고 생각을 해보라. 기도응답은 얼마나 기다렸던 기도응답인가? 그러나 이제 성숙한 여러분이라면 그 응답과 함께 주시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 의도,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마음을 충분하게 헤아리고 묵상하여서 한 차원 높은 기도를 올려드리며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소망한다. 어제 제자훈련을 하면서 들었던 이야기이다. 히스기야가 제자훈련 과제인 큐티와 신앙일기를 쓰는 사람이었다면 분명 아버지 마음을 알았고, 감사하게도 한 차원 높은 기도를 드렸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이런 생각이 든다. 여러분들도 그 기도응답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려 더 높은 차원의 기도를 올려드리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두 번째로 예배를 통해 우리를 지속적으로 기도를 올려드리기를 바란다. 기도가 응답되어지고 문제가 해결함을 받으면 기도응답을 받았던 히스기야에게 찾아왔던 유혹들이 찾아온다. 내 보물고라고 말하고 싶은 이유, 내 군기고, 내 나라, 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이다. 여러분 이 히스기야가 이 유혹에 넘어가서 내 보물고, 내 군기고, 내 나라라고 말하는 그 순간 그는 하나님 앞에 진심과 전심을 잃어버린 것이다. 순전한 동기로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그의 삶, 온전한 마음을 다하여서 주님만을 의지했던 삶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뿐인가? 그는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하였던 삶도 잃어버렸다. 판단의 기준이 자기가 보는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옳다고 했던 것, 하나님께서 옳다고 하신 삶을 위해서 최선을 살아갔던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무엇인가? 그 한 마디에,,, 내 보물고, 내 군기고, 내 나라, 우리는 주위에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시기에 주님만 붙들고 살다가 기도응답 이후에 주님과 멀어지고 바른 태도를 취하지 않은 사람들을 보았다. 여러분 히스기야 이야기는 먼 이야기가 아니다. 기도응답의 이후의 삶도 영적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예배를 통해 우리를 주님께 지속적으로 올려드려야 한다. 동의하는가? 말씀의 능력의 은혜를 올려드릴 때에 우리 인생의 주제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 성령으로 충만한 예배를 올려드릴 때에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그 유혹을 벗어나서 하나님의 일하심에 증거자로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여러분, 이 모든 시작은 예배이다. 날마다 드리는 예배를 통해 여러분들의 인생의 최종 결정권을 지속적으로 주님께 올려드리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서 성공적인 기도생활을 영위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정리하겠다. 성도가 인생에 절대 절명의 위기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성도는 위기의 순간에, 오직 하나님께 지체하지 않고 기도해야 한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분명히 응답을 주실 것인데, 그 응답과 함께 반드시 변화된 삶을 요구하신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주님은 기도응답 이후의 삶도 영적으로 승리하기를 원하신다. 여러분 우리의 삶 속에서 기도의 제목이 끊일 날이 있겠는가? 기도의 제목은 계속해서 우리가 살아있는 한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위기의 순간에 주님을 의뢰하고, 그러면 분명히 응답을 주실 것인데 그 응답의 의미를 깨닫고 기도응답의 요구하시는 변화된 삶의 순종을 위해서 영적으로 승리하는 그 영적인 선순환의 기도생활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기도하고 응답받고 영적으로 또 올려드리고, 응답받고 이것이 기도생활의 선순환이다. 하나님께서 이 기도생활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기쁨과 승리로 인도하실 줄 믿는다. ♣요약 인생의 한계 앞에서 우리의 모든 주재권을 주님 앞에 내어드리고 전심으로 기도를 드릴 때에 우리의 위기를 초월한 새 차원인 인생으로 인도하실 것이며 기도응답이후의 삶도 한결 같이 주님을 바라고 기도하는 영적 선순환의 기도생활이 되면 인생의 상상할 수 없는 승리를 주님이 주님이 주실 것이다. 우리가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며 살아가서 덤으로 사는 삶에 보답하는 복음의 산 증거를 보여야 한다. -히스기아는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통곡하며 기도했다. 히스가야의 이런 기도는 세상을 등지고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는 참 믿음의 기도이다. 뿐만 아니라 전인격을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였다. 기도는 우리의 전인격을 바쳐서 드리는 헌신적인 모습을 지녀야 한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의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땀이 피가 되기까지 기도하시는 모범을 보여주셨다. 우리들도 환난을 만날 때 세상을 등지고 하나님만 전적으로 바라고 기도해야 한다. 이 사건은 하나님이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관하시며 모든 사람의 수한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우리는 오직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하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기도와 의학적 치료방법은 둘 다 병행하는 것이 좋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의술이나 지혜는 인간들을 위해 사용하게 하신 귀한 선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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