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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2월 8일)
제목: "은혜의식 사로잡힌 삶"
말씀: 사무엘하 5:1~5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설교자: 오규현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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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5:1~5,
1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2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4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 
5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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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성도님들과 서로 인사하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황금 같은 수요일 저녁 시간에 이곳 안아주심의 본당에 이렇게 앉아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는다. 무엇보다 세상 사람들에게 아무리 자세하게 설명한다고 한들 그리고 아무리 힘주어서 목청껏 외친다고 한들 믿지 못하는 예수님이 믿어진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은혜인 줄 믿는다. ‘은혜’라고 하는 이 말은 어쩌면 교회에서 가장 자주 사용되는 말이기도 하는데, 그래서 그것을 명확하게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다. 보통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이해를 하고는 하는데, 교회에서는 도무지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을 일컬을 때 이 은혜라는 이 용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이 말을 좀 바꾸어서 생각해보면 결국 은혜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해서 우리 편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또 하나님의 사랑을 약화시킬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가 어제 제자훈련 첫 모임을 하면서 특별히 첫 모임을 할 때 마다 내 삶에 대한 자기소개를 나누고는 하는데 자기소개를 다 나누고 나서 제가 마지막 이렇게 정의를 내렸다. ‘인격적인 하나님께서는 모두에게 똑 같은 방식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춤형 은혜로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하셨고, 우리는 우연히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攝理) 가운데 사랑의 교회 48기 제자 반으로 만나게 되었다.’고 이렇게 정의(定義)를 해서 나누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 가운데 우리 하나님께서 각자 각자에게 동일한 은혜가 아닌 맞춤형 은혜로 하나님께서 주실 줄 믿는다.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결코 우연이가 아니라고 말씀을 드렸다. 아무리 받을 자격이 없고 전혀 사랑할만한 모습이 보이지 않더라도, 영원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인줄 믿는다. 이 하나님의 은혜 또한 이렇게 성경 전체를 해석할 수 있는 중요한 주제들 중에 하나로 그렇게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다. 특별히 구약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가르친다고 한다면,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이라고 우리가 생각해볼 수가 있다. 온 우주 만물과 그리고 인류를 이 땅에 존재하게 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첫 사람, 아담에게 선악과를 주심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리고 첫 사람 아담이 선악과 명령을 거역하면서 심판과 타락이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지금도 존재하게 된 것,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들 중에 특별히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이 후손들로 한 민족을 세우신 것,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게다가 그 민족을 출애굽 하셔서 제사장 나라 삼으시고, 그리고 율법과 성막을 허락해 주심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뿐만 아니라 그 민족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결국에는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서 이방 강대국에 끌려갔지만 그들이 완전히 망하지 않고 다시 돌아오게 된 것, 그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은혜의 절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났다. 
 
오늘 우리가 살아서 천국을 누리고, 죽어서도 천국이 보장된 것, 결국 무엇 때문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인 줄로 믿는다. 이 은혜를 한마디로 요약한 구절이 있다. 예배소서 2장 8절이다. 
 
*에베소서 2:8,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왜 우리에게 이런 선물을 주셨는가? 그것은 우리를 구원함과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변화된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다. 에베소서 1장 4절을 보면,
 
*에베소서 1:4,
4 곧 창 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신 궁극적인 이유가 무어라고 하시는가? 구원 받은 우리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는 구원 받을 때만 전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이 땅을 힘 있게 살아가는데도 전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삶의 시작이자 끝이고, 구원의 조건이자 삶의 원동력인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이렇게 구해야 한다.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날마다 우리가 삶속에서 모든 일을 해 나갈 때마다, 무슨 일을 있을 때마다 우리가 날마다 구해야 하는 제목이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바로 이 제목인 줄 믿는다. 
 
성경에서 이런 모습을 잘 보여주는 한 인물이 있다. 바로 다윗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골출신에다가 어린 목동에 불과했던 이 다윗, 그를 왕으로 부르신 것,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다윗이 왕이 되는 모든 과정들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된다. 
 
오늘 본문에 비로써 마무리가 되게 되는 다윗이 왕이 되는 그 이야기를 살펴보면 그 핵심도 바로 이것이다. 오늘 이 이야기는 사울이 죽은 이후부터 시작된다.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는 사무엘하 2장에서 시작된다. 사무엘하 1장에는 다윗의 정적 사울이 전사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자연스럽게 다름 왕으로 다윗을 세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울이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에 분위기가 매우 어수선했다. 그리고 신하들은 자신의 입지를 고수하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지도자를 잃고 나라가 혼돈에 빠져있는 바로 이 상황에서 다윗은 내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으니까 ‘당연이 내가 후계자이다.’ 라고 이런 고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유력한 차기 후보였던 이 다윗은 가장 무엇을 하는가? 하나님이 뜻을 묻는다. 사무엘하 2장 1절을 보면, 
 
*사무엘하 2:1,
1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이렇게 구하고 움직였을 뿐인데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된다. 무슨 일이냐면 유다지파 사람들이 와서 다윗을 자신들의 왕으로 세워버린 것이다. 다윗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유다지파의 왕이 된 것임을 그렇게 볼 수 있다. 이렇게 작고 사소하게 여겨지는 그 일들, 지극히 당연하다고 싶은 그런 일일지라도, 먼저 하나님께 물어보고 움직이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의 모습인줄로 믿는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런 질문을 할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위가 구하기도 전에 있어야 할 모든 것들을 다 아신다고 하시는데, 왜? 굳이 우리로 하여금 기도를 하라고 하시는지? 그런 것 한 번쯤 생각해 보았는가? 그런데 여러분 한 편으로 생각해 보라. 만약에 기도하지 않고 우리가 뭔가를 얻었다고 한다면, 그 모든 것이 내가 잘나서, 내가 잘해서 그렇게 된 줄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본성인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너무나 지극히 당연하게 보이는 그 일일지라도 기도하면서 만약 그 응답을 얻게 되면 그 모든 것이 결국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 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로 하여r금 필요한 것을 구하여서 얻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에 보면,
 
*요한복음 15:7,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모든 성도님들도 날마다 모든 일에 먼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그렇게 움직이고 행동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깊이 경험하는 그런 삶이되기를 부탁드린다. 다윗이 은혜로 유다지파의 사람들에 의해서 왕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반쪽짜리 그런 왕일뿐이었다. 왜냐면 나머지 11지파가 아직까지 다윗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떤 한 소식이 들린다. 사울의 시신(屍身)을 장사(葬事)했던 사람이 다름 아닌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라는 소식을 이제 듣게 된다. 그 순간 다윗은 무릎을 탁 치면서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했겠는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예전에 그 자신들을 위협으로부터 구해준 그 사울 왕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핵심 세력들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을 잘만 포섭(包攝)을 하면 어떻게 되는가? 나머지 지파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그런데 다윗의 이러한 판단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상황을 더욱 꼬이게 만들어버렸다. 당시 이 사울의 군 사령관이었던 아브넬이라고 하는 장군이 있었는데, 그가 그 모습을 보면서 즉시 사울의 남은 아들이었던 이스보셋을 나머지 11지파의 왕으로 세워버린다. 지금까지 한 나라였는데 그 통일왕국이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나버린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다윗과 이스보셋의 그러한 갈들이 사무엘하 2장 12절부터 4장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그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아브넬 장군과 이스보셋 왕 사이에 관계가 틀어진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아브넬이 화가 나서 홧김에 다윗 왕에게 사신을 보내게 된다. 그래서 사신을 보내서 자신과 언약을 맺으면 온 이스라엘을 자기가 넘기겠다고 제안을 하게 된다. 
 
여러분, 참으로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지 않은가? 그것을 받아들이면 나머지가 정말 아무런 내 노력 없이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브넬과 협상을 통해서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들과 그렇게 얻으려던 다윗의 시도가 거의 성사되게 직전에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왜냐면 다윗의 군사령관이었던 요압 장군이 동생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아브넬을 도중에 살해해버렸기 때문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다 된 밥에 재 뿌린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완성되기 직전이었는데 그것이 순식간에 수포로 돌아가 버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이것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는 바가 있다. 다윗은 인간적인 협상에 통해서는 절대 왕이 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성경저자가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다윗은 이 일을 계기로 이런 사실에 더욱 깊이 깨달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면 다음에 이어지 사건을 보면 잘 알 수 있는데 아브넬이 살해되었다는 그 소식이 전해지자, 그 사울의 군 지휘관 두 사람이 이스보셋 왕을 살해를 해서 그 머리를 가지고 다윗에게 투항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생각해보라. 인간적으로 또 한 번 협상 할 수 있는 그러한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앞서서 아브넬의 죽음을 통해서 깊이 깨달았던 다윗은 이들을 반기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자’라고 선포하면서 두 암살자를 처형하는 단호함을 보이게 된다. 결국 이렇게 사울 가문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 다 사라지게 되자, 이스라엘 나머지 지파 사람들이 다윗에게 제 발로 찾아와서 그들의 왕이 되어달라고 요청을 한 것이다. 
 
*사무엘하 5:1,
1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지파의 왕이 된 이후에 자그만 치 7년 6개월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지금까지 살펴보며 이 다윗이 왕이 되는 이야기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의식에 더욱 사로잡힐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어 지기를 원한다. 
 
I. 하나님의 은혜는 삶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맡길 때만 경험할 수 있다. 
-다윗이 왕이 되는 과정에서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가? 그 주도권은 다윗 자신이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지파가 쥐고 있었다. 더 엄밀히 말하는 그들을 통해서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쥐고 계셨다. 2절에 보면, 
 
*사무엘하 5:2,
2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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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비록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은 다윗 자신이었던 지혜와 능력으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다윗은 결코 이 열두 지파 이스라엘 전체 왕국의 왕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백성들도 인정한 것일 뿐만이 아니라, 이후에 보면 다윗 자신도 이것을 인정하는 것을 본다. 사무엘하 5장 12절의 말씀을 보면, 
 
*사무엘하 5:12,
12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 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
-하나님께서 자기를 왕으로 세우신 것을 다윗이 알았다고 그렇게 12절에서 언급하고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삶의 주도권을 누구에게 있는가? 우리가 꾸려나가는 가정과 자녀들의 삶, 우리들이 만나서 맺고 있는 여러 인간관계들, 그리고 직업을 가지고 일터에서 하고 있는 모든 일들, 또한 우리가 몸 된 교회에서 우리가 여러 곳에서 우리가 맡고 있는 직책들과 섬김과 여러 훈련의 과정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해서 가능하게 되었는가? 우리가 억척 같이 노력하고 우리가 그 부분에 탁월하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인가?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렇지 않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 자녀를 두신 분들은 잘 아실 것이다. 우리가 주도권을 가지고 자녀들의 삶을 이끌어가려고 해 본다면, 그게 쉽게 잘 되는가? 그러면 그럴수록 자식들은 더 튕겨져 나가는 것을 봤을 것이다. 또한 단순히 우리의 힘으로 직장에서나 몸 된 교회에서 맡고 있는 그러한 일들을 내 더 악을 쓰면서 잘해내려고 그렇게 하면 할수록 그의 미치는 만족한 결과를 얻어내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삶 속에서 심심치 않게 경험하게 된다. 왜 그런가? 우리가 주도권을 가지고 환경을 통제해서 원하는 그 결과를 얻으려고 하면 할수록 그 속에 우리의 욕심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실수가 생기고 많은 오류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삶속에 참된 만족과 평안함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에 주도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 아니면 내가 원치 않는 결과를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 안달복달 하는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다른 사람들과 환경들을 통해서 일하기 시작하실 것이다. 저는 보통 일상의 영성을 추구하는 편이다. 그런데 삶에 순간순간마다 도저히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그런 때가 찾아오면 철야기도를 한다든지, 또 산에 올라가서 기도를 한다든지, 그렇게 하면서 집중적으로 기도를 하는 어떤 나름의 영적 루틴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딱 어제 그랬다. 갑자기 몇 주 전부터 저의 허리와 목에 통증이 찾아와서 정말 오래 앉아있기 힘든 상황들을 겪으면서 어제 화요일 직장인 훈련 반 첫 모임을 가지고 또 첫 수요기도회 설교를 앞에 두고 그 중압감이 저에게 밀려오는데 도저히 저에게 사자지지 않는 두통과 그 견딜 수 없는 중압감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집에서 교회로 출근하는 길에 청계산 표지판이 보였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방향을 틀어서 청계산 기도원으로 향했다. 산에 올라서 자리에 앉아서, 그렇게 주님 앞에 부르짖기 시작했다.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그렇게 간절히 부르짖으면서 찬양을 하기 시작하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제 마음속에 있는 중압감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마음속에 정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런 평안한 마음이 제게 찾아든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것들을 감당할 힘이 생겨서 산에 내려올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들려온 찬양의 가사가 ‘내게로부터 눈을 주를 보기 시작할 때 주의 일을 보겠네. 그 찬양의 후렴이 그렇다.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낄 때 내 삶은 주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시선이라는 가사의 찬양이다. 여러분, 혹시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내려놓지 못하고 꼭 붙잡고 있는 일들이 있는가? 우리 힘을 빼고, 하나님께만 시선을 두시기를 바란다.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하는 그 모든 시선들을 내려놓기를 바란다. 그러면 그때부터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하실 것이다.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도록 하나님께 우리의 삶의 주도권을, 우리 가정의 주도권을, 우리 직장에서의 주도권을, 우리 모든 사역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내어드리기를 결단하는 우리 모든 영 가족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오늘 다윗이 왕이 되는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할 수 있는 두 번째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II.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 
 
.-다윗이 왕이 되는 과정에서 때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인간적인 수단을 사용하려고 했다는 것을 아까 말씀을 드렸다. 길르앗 아베스 사람들을 포섭을 하려고 했다든지, 또 아브넬과 동맹을 통해서 그렇게 왕이 되려고 했던 것들, 분명 다윗의 실수이고 잘못이다. 그런데 성경저자는 이런 다윗을 혹독하게 비판한다든지, 그의 잘못을 심각하게 지적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윗이 왕이 되는 그 과정이 더 복잡하게 얽혀지고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는 그 사실만 보여줄 뿐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떠한가? 아브라함은 우리 믿음의 조상이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 그의 삶을 보면 믿음의 조상답지 못한 그런 삶을 살았다. 하나님께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그 약속을 이루려고 그렇게 했던 그 모습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아내를 사지로 내모는 그 모습들, 믿음의 조상답지 못한 그의 모습, 하지만 성경저자는 그 아브라함을 통해서 정말 한 민족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어가는 것을 창세기를 통해서 우리는 볼 수 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다윗에게는, 아브라함에게는, 비록 인간적인 연약함, 그리고 잘못이 있었지만, 다윗 자체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인물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셔서 왕으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연약함과 잘못에 대해서 반드시 징계는 하시지만 결코 그를 버리시지는 않으셨다. 마찬가지이다.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우리들을 은혜로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육신의 장막을 벗고 영화로운 존재로 서기까지 이 땅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오직 은혜로만 대해주실 것이다. 우리가 때론 실수하고 잘못된 선택을 한다고 할지라도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를 징계하실 뿐이지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지 않으신다고 하는 사실이다. 오히려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고 회개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거기서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새롭게 우리의 삶을 인도해 가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에 대해서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단지 끊임없이 우리의 선택과 행동의 동기가 올바른지를 돌아보는 그 일만이 필요한 것이다. 이 사실이 우리의 삶에 놀라운 자유와 평안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것을 잘 요약해서 정리한 구절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로마서 8장 28절이다. 
 
*로마서 8:28,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안다고 했다. 무얼 안다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 우리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들, 지나왔던 모든 삶들 속에서 좋은 것, 나쁜 것, 성공과 실패,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는 사실이다. 말씀을 맺겠다. 최근 2주 동안 담임 목사님의 주일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삶의 엔진과 같은 기백에 대해서 우리는 도전 받고 결단을 했다. 우리가 영적을 기백을 가지고 이 한해를 힘 있게 달려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일말의 찌꺼기라도 그 가라않는 찌꺼기라도 남아 있는 우리의 공로의식을 다 버리고 은혜의식의 온전히 사로잡혀야 될 줄 믿는다. 구원의 시작부터 완성에 이르는 우리의 삶의 모든 과정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그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도 오직 은혜로 선택하신 이미 창세전에 우리를 은혜로 선택하신 그 하나님께서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를 오직 은혜로만 대해주시는 그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고 감사하며 날마다 기쁨으로 순종하며 사는 우리 사랑의 교회 모든 영 가족들이 되기를 간절히 부탁드린다. 
 
♣요약
아무 자격 없는 우리를 오직 은혜로 자녀 삼아 주심에 감사하며, 우리 인생여정 가운데 여기까지 인도하여 주심도 감사함을 가지고 우리가 그간에 누려왔던 모든 길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인정하고 오직 은혜만을 구하며 우리의 삶의 주도권을 잡고 내 뜻대로 하려 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제 주님 앞에 우리의 삶의 주인으로 모셔서 친히 우리와 나를 다스려 주시길 소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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