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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주후 2020년 9월2일)
제목: 곤한 영혼을 살리는 두 가지 외침''
말씀:로마서 7:21~25절
설교자: 김지혁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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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7:21~25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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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은 탄식의 해이다. 심각한 재앙으로 탄식할 일이여서 가정에서나 도처에서 탄식이 들리고 있다. 모두의 탄식이 남녀노소 탄식이 끊이지 않다. 다윗이 가장 인생에 비참한 시기에 시편 13편에 있다. 히브리어로 ‘아드아나’이다. 요즘 우리의 상황과 너무 비슷하다. 언제까지입니까 라고 !! 4년이나 하나님 앞에 탄식을 쏟는다. 답답한 일이 언제까지인지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에 감사와 찬양으로 바뀐다. 어떻게 되겠는가! 시편13편 5절에 그는 끝까지 붙들어 주님이 주시는 소망과 하나님의 절대적인 신뢰였다.탄식이 멈추지 않는 오늘날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이 모든 답답한 가운에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흔들리지 않는 우리의 유일한 반석이시며 소망이신 분이라는 것이 사실이며 능력이시다. 바울도 오늘 깊은 탄식을 하고 있다. 바울은 본문에 도대체 왜 그런지를 자신의 모습으로 탄식한다. 사도 바울의 탄식을 보면 로마서 7:15절에 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래서 답답하다. 속사람은 법을 즐거워하는데 자신은 엉뜽한 일에 괴롭게 탄식한다. 사도 바울이 그렇다. 올 3월에 한 대학생은 좋은 일을 많이 했다. 장애인 시설에서 많이 봉사했으나 알고 보니 사악한 박사 방을 운영하는 조주빈이다. 그는 두 가지 마음이 있는자이다. 온 국민이 충격이었다. 그래서 참 사람 마음을 모른다.

내 자신도 잘 모른다. 하물며 다른 사람을 어떻게 안다는 것인가? 속생각을 다 알 수 없지만 그냥 모르고 사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 사람이다. 자신의 안에 두 가지 마음으로 바울이 힘들어 한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다. 능력 있는 제자로 살고 싶은 것이나.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는 것을 처절해 질 때도 있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 조절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해서는 안되는 행동도 많다. 우리 스스로를 자책할 때가 많다. 우리는 예수님 닮아 온순하게 살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 잘 가려져 있는 감정이 불쑥 튀어 나올지 모르듯이 바울도 선을 원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 안의 내면을 보면서 탄식과 외친이다. 7장 2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오죽하면 이런 말을 했겠는가? ‘다소’라는 동네의 풍습에 시체를 묶어놓은 일이 있다. 그런 시체를 비유하면서 그만큼 죄가 딸 달라붙어 있다며, 자기의 연약함과 자신의 모습을 오픈하는 것을 보면 실망스럽지 않은가? 그러나 바울은 정반대이다. 사도 바울이기에 그렇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은혜가 많을수록 나의 연약함을 보여주는 것이며 애통하며 성화되어 간다는 것이다. 성품이 실제로 죄의 뿌리가 더 강력하게 느끼게 되어 성령님의 마음의 상태로 성화되어지는 것이다. 바울은 거룩함을 알기에 하나님의 영광 앞에 고백하는 것이다. 이사야 6:5절에 보면 이사야도 탄식한다.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극심한 혼란기에 !!~~~ 사도 바울도 비슷하다. 바라기는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우리 자신, 가정, 이 시대를 돌아볼 때에 탄식하며 영적인 능력이 회복되길 바란다.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말씀이다. 외침으로 인해 더욱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 거룩함에 더욱 갈망인 것이다. 탄식과 외침이 있으면 연약함을 하나님께 맡기고, 모든 아픔을 올려 드릴 때, 우리도 바울처럼 탄식하기를 바란다. 전 세계 교회가 위축이 되고 빛과 소금으로 감당 못 할 때, 우리는 우리 교회를 살려달라고 주께서 지키시길 외쳐야 한다. 주께 돌아오면 회복된다는 것을 믿고 탄식해야 한다. 존 파이퍼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준 것은 만족을 주는 것이 없다는 것이 이 세상에는 없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주님만을 의지하는 확고한 마음이 있기에 7:25절에 감사함으로 나타나있다. 로마서 8장과 비슷하다. 주님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고 헛된 죽음이 아니기에 죄의 영항이 있다할지라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탄식의 자리에 계속 머물지는 않아도 되며, 반드시 탄식과 감사함이 동시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상한 마음을 씻기신다. 믿음과 소망을 주시는 분이 예수님 밖에는 없다. 우리는 탄식하는 그 자리에서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촬스 스펀전은 15세에 작은 시골교회에서 예배에서 누군가 이사야 주를 바라보라 라고만 반복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만 바라본다. 어느 시골 마을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누군가의 설교에서 질문을 받게 되면서 주님을 만나게 되었다. 설교내용은 “우리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설교한다. 설교자가 회중에게 당신은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했다. 그래서 촬스는 일평생 그 이후 하나님만 바라보았다. 살기위한 방법은 구약에서 놋 뱀을 바라보기만 하면 되었듯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된다. 코로나를 바라보면 낙심이지만 예수를 바라보면 소망이 생긴다. 두 번째 외침이 우리 자신의 믿음의 고백이 된다. 우리의 위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서 우리 자신과 가정의 죄악을 사도 바울처럼 애통하며 몸부림치는 자리가 오래 있지 말고, 그 은혜가 있기를 바라며 회복의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우리도 때로는 울면서 탄식하는 때가 있고, 함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지만 마지막으로 모든 삶을 흔들리지 않고, 주님 앞에 나아가자. 하나님께 고백이 되길 바라며 새 마음과 새 힘을 주시며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우리를 구원해 주셨으니, 우리의 탄식을 들으시고 시온의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이 우리에게 임재하시길 소망한다. 윗소싱이 되길 원한다.

 

♣ 요약

도처에 탄식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우리가 의지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도 한 분이시며 우리는 그 분을 의지하여 고백하고 주님께 우리의 눈을 돌려 영광스러운 얼굴을 바라보며, 성령의 능력과 새힘을 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우리 자신과 우리 가정, 이 시대가 하나님 앞에 저지른 모든 죄악을 하나님의 거룩한 영과 앞에 서 회개하며 ‘오호라’!!~의 외치며, 탄식할 수 있는 영적인 세밀한 마음을 분별력 있게 허락하시길 기도하며, 답답한 이 코로나 사태에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오직 우리를 흔들리지 않게 하시니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주님만을 의지하여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다잡아서 주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과 함께 늘 동행하여 모든 것을 주님만이 해결하심을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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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0년 8월 30일)

제목: “순금 등잔대의 환상(純金 燈盞臺의 幻像)

말씀: 4:1-6절

기도: 양은규 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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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空을 초월하여 예배를 드리는 우리에게도 가을 사역을 하나님이 복주시기를 원한다. 살아있는 말씀으로 시작하면서 스가랴로 설교하게 되어 마음에 감격이 있다. 본 교회를 섬기면서 늘 감사함은 우리 성도들이 말씀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간절함의 강도가 참 크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 같이 너무 귀한 은혜이다. 설교노트로 인터넷 예배를 드리기를 바란다.

0.1 한국교회의 강점은 성도들이 말씀을 사랑하고, 사모함의 강도가 크다는 것이다.

 

▷• 예레미야 15:16,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 우리가 말씀을 먹을 때에 슬픈 마음이 위로받고, 괴로운 마음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회복하는 시간이기를 확신한다. 가을 사역을 앞에 놓고 가을 사역을 대하는 비록 공간이 떨어져 온라인으로 예배하고 있지만 모든 성도들이 예외 없이 두 가지를 허락해 주시길 원한다.

 

Ⅰ. 하반기 사역을 앞에 둔 우리의 자세

1. 말씀에 대한 시각이 새로워지고 깊어져야 한다. - ex) 벼룩시장에서 산 3달러에 샀던 것인데., 중국 천 년 전 송나라시대에 만들어진 도자기였다. 그런데 경매시장에서 알고 보니 (225만 달러)70만 배가 넘는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3000원짜리가 이십 오억이 된 것은 그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보 같은 일이라 여기지만 사실은 우리는 더욱 더 바보인 것이다. 매주 몇 십억 몇 백억이 넘는 말씀을 삼 천 원에 팔아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놀라운 사실이다 바로 말씀 보석이 우리 앞에 있는 것이다. 말씀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다. 말씀은 영원한 양식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해결해 주실 것이다. 새로워지고 더 깊어지는 말씀의 토대위에 세워지자.

 

2. 구약 시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 소통의 도구였지만(롬 9:4),- 말씀으로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신약 시대는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가 그 역할을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전과 호의 때문이다.

 

◆구약시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 소통의 도구였지만 신약시대에는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가 그 역할을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전과 호의 때문이다.

▷ 로마서 9: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 영적인 새로운 공동체는 오늘날 교회이며, 우리 자신이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이다. 전적인 은혜이다.

▷ 요한계시록 1:6,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말씀으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

 

Ⅱ. 순금 등잔대의 특별 환상.

1. 해석 천사가 스가랴를 깨워주듯 우리의 상황을

깨워주시기 바란다.

• 스가랴 4:1,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난 것 같더라”- 해석천사가 8가지 환상 가운데에서 스가랴를 깨운 것이다. 깨움으로 시작한다는 것은 깨어서 더 집중하라는 것이다. 온라인 생중계로 한 가정 한 가정을 하나님이 임재하시기를 원한다. 대한민국은 코비드(COVID)로 지금 우울하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2. 스가랴가 본 순금 등잔대(그림 참조) - 등잔대는 기름그릇이지만, 메노라이다. 이탈리아 개선문에 부조되어 있다. 그 촛대 위해 주발이 있고 감람유가 있어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다. 기름이 파이프를 통해 등잔대에 흐르는 것이며 7X7=49개인 셈이다. 두 감람나무에서 기름이 순금 등잔대에 공급되는 것이다. 기름주발은 성령님의 권능이다. 힘으로도 능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으로~~ 구약에서는 제사장이 매일 그것을 꺼지지 않게 불을 지켰으나 환상에서는 자동적인 공급을 통해 지속적으로 성령이 공급이 되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

 

3. 구약에서는 성막과 성전에서 인간 제사장이 등잔대의 불을 끄지 않게 했지만 (출 27:21),

스가랴가 본 등잔대는 두 감람나무에서 계속 기름이 공급되어 꺼지지 않았다. (슥 4:3)

• 출애굽기 27:21,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 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

4. 순금 등대가 비추는 곳은 ‘살아있는 구역(Living Quarter)’이 된다. 빛이 비치는 곳이다. -오늘날 신약에 사도 요한이 일곱 교회를 말한다. 죽어있는 공간이 살아있는 교회와 장소가 된 것이다(Bright Living Quarter). 우리가 팬데믹으로 어두운 상황에서 오늘 여기가 가장 살아있는 빛이 되는 것이다. 지금 있는 이곳이 살아 있는 곳이 빛이며, 주의 백성들이 함께 하는 곳이 빛이 있는 공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Ⅲ. 우리는 세상의 빛이다.

1. 일곱 등잔대는 일곱 교회이다.

▷ 요한계시록 1:20,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2. 순금 등대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누가복음 1: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 누가복음 2: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 요한복음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3. 세속의 광풍이 몰아치는 이 세상에서 교회만이 죄악에 붙잡힌 영혼들을 피 묻은 십자가의

복음으로 구원하는 곳이다. 살아있는 공간이다. 이것은 타협할 수 없는 순금 등대파의 사명이다.

- 교회는 봉사만 하는 곳이 아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피 묻은 십자가로 구원 받는 곳은 교회 밖에 없다. 가장 밝은 불빛이 되어야 한다.

 

Ⅳ. 불타는 순금 등대파, 우리는 순금 등대파이다. 빛으로서의 사명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1. 스가랴 4:6,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사랑의 교회가 사명으로 알고 ...

 

2. 우리는 인소싱(Insourcing)도 아니고, 아웃소싱(Outsourcing)도 아니고 윗소싱(Upsourcing)을 받아야 한다. -위로부터 부어지는 윗소싱만이 역사가 이루어진다. 다른 빛은 다 가짜이다. 제대로 윗소싱이 되기를 바란다.

 

3. 우리는 기름을 저장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름을 불태우는 등대이다.

 

4.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기름을 준비해야 한다.

▷ 마태복음 25: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모두가 다 준비가 된 자로 날마다 친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빛으로 살아가야 한다. 어두운 곳, 영적인 교제가 끊어졌다면 깨어나라!!~~ 시험이 들지 않게 깨어있어야 한다. 살아있는 빛이 있도록 깨어나길 바란다.

즉시 깨어나 끊임없이 심지를 연결하여 위소싱(Upsourcing)을 받아라. 바로 예배를 사모하여야 하며 준비하여야 한다. 전에 태도고 회복되어서 예배에 집중하고 준비하기를 바란다. 온전한 예배를 드리라.

 

[ 결 론 ]

1. 순금 등대의 빛을 비추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1) 첫째, 빛을 가리는 차단막을 제거해야 한다.

2) 둘째, 깨어나야 한다.

 

① 무엇으로부터 깨어나야 하는가?

ⓐ 나태한 잠에서 (잠 6:9) ⓑ 술 취함에서 (욜 1:5) ⓒ 유혹의 잠에서 (삿 16:19~20)

② 무엇을 위해 깨어나야 하는가?

ⓐ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잠 6:22~23) ⓑ 참된 찬양과 기도하기 위해서 (사 26:19, 엡 6:18)

ⓒ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마 26:41) ⓓ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고전 15:34)

 

2. 주일예배는 기름 주발에 기름을 공급받는 시간이다. 예배를 ‘관람하고 시청’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온전히 드려야’

한다. 거룩한 습관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만, 만들어진 습관이 깨어지는 것은 순간이고 회복되기는 쉽지 않다.

 

※ 오늘 우리가 본 순금 등대가 박제된(메노라) 기념품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 시대에 생명력 있는 삶의 지침이 되어야 한다.


느낀 점.

지금 우리나라와 세계가 코로나 19가 확산 되고 있는데,,, 교회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사회 전반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나 스스로도 이런 분위기에 위축 될 수밖에 없었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그래도 어려운 시대 상황에서도 희망이 교회에 있음을 다시 발견 했다. 어려울 때 일수록 교회는 예배를 사수하고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도록 확고한 토대를 갖춰야 할 명분을 확인했다. 대면 예배를 할 수 없는 가운데서도 불편하지만 그래도 지속적으로 말씀을 듣고 찬양하며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온라인 환경에 감사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모든 전반적인 최첨단의 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것에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 올려 드린다. 또한 오프라인 예배 때 보다 더 집중하여 말씀과 찬양의 은혜가 넘쳐 내 등잔대의 성령 기름주발에 기름이 마르지 않는 순금 등대처럼 주변을 은혜의 빛을 비추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순금 등잔대에는 두 감람나무에서 계속 기름이 공급되어 꺼지지 않았듯이 나에게도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에도 우리나라에도.... 모든 나라 위에 순금등대가 비추는 곳이 되어 살아있는 교회와 이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간절히 기도해 본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다. 감람나무에서 기름이 공급되어 등잔대 불이 꺼지지 않은 것처럼 날마다 우리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가정과 일터 교회가 Bright Living Quater가 되도록 순금등대파가 되기를 소원하고 속히 현장 예배가 회복되기를 기도해야 하겠다. 아무 것도 아닌 나를 자녀삼아 주시고 세상의 빛이라 불러주시니 영광과 찬양을 올려드린다.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은혜가 떨어지지 않도록 말씀과 성령님의 은혜를 날마다 구하며 복음을 전하며 세상을 밝히는 순금등대의 사명 감당하는 복된 인생 되게 능력과 기본을 갖추기를 원한다. 훈련도 인터넷으로 드린다니 영 가족과 목사님을 만나지 못해 아쉽다. 잘 훈련이 되어서 죄에 붙잡힌 영혼을 피 묻은 십자가의 복음으로 구원하는 순금 등대의 역할을 감당하여야 하겠다.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기 위해 순금등잔대에 채우시는 성령의 능력을 기대하며 오늘도 말씀의 집중하고 온 가족이 힘을 얻어서 이 우울한 시간들을 주님 주시는 그 감람나무 기름으로 심비에 매끄럽게 스며들어서 주님 일에 빛이 되고 세상을 이길 밝은 삶이 되었고, 위로가 되었음에 감사 감사이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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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새(토요특별새벽기도회)(주후 2020년 8월 29일)
제목: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말씀: 창세기 22:14절
설교자: 김병종 교수님(서울대학교 전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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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말씀을 듣기를 바란다. 믿음의 처소에서 주님과 온전한 만남이 되고, 특별 새벽예배에 마음을 집중해서 온라인 예배라 할지라도 온전히 드리기를 바란다. ,,,암송과 찬양 기도...
예배를 보는 시간이 되지 말고 특별새벽기도회는 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는 기도회가 되기를 바란다. 7-8월 특별새벽기도회를 하게 하심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감사드린다.(오정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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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 교수님 초빙 설교
창세기 22:14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 인문학이나 예술을 감상하듯이 편안하게 예배를 드리기를 바라며, 보는 신앙에 대해서 묵상해 보자.
에어포켓의 공포... 발리그램 목사님과 비행기의 소녀- 아버지가 곁에 것처럼 우리도 평생 하나님을 전하는데 그 소녀만큼도 안 됨을 부끄럽다고 한다. 삶의 에어포켓을 만나면 우리는 기도하면서도 두려워하지만 지척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을 믿어야 한다. 믿음은 거리에 비례하는 것 같다. 본문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다.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이 구절은 눈을 들어 산을 보라와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와 같은 맥락이다.

▷보는 믿음이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지속적으로 보면 현실로 나타난다는 약속의 비밀의 말씀인 것이다. 삶이 캄캄한 절망감에 있을 때, 하나님이 나를 위해 준비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비전의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두려움과 염려,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햇살이 쫙 오는 것처럼 모든 힘들 일이 물러가도록 하신다.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이 말씀을 되 뇌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을 느끼며 살았다. 하나님을 이 말씀으로 묵상하고 있다. 하나님의 임재가 아주 가까이 느껴진다. 우리를 에워싼 창조물과 역사하심을 보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자. 삶의 처소가 예배의 장소이다. 영역주권이 계시기 때문이다. 연자와 연처럼 하나님과 내가 적절히 유지되면, 모든 날들이 다 좋은 것이다. 나의 어머니는 홀로 자녀들을 기도로 기르셨다. 언제나 어려움을 하나님께 의지하시며 평생을 성경과 기도로 보내셨다. 교육에서도 말 한마디도 조심 시키셨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고 하시면서 늘 궁핍하고 힘들게 살 동안의 때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다는 믿음 때문에 살아내셨다.

교회도 여호와의 산이지만 뚜껑 없는 교회에서 편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라 하는 것 같다. 집단에서 나홀로, 믿음의 광야로 서야할 때인 것 같다. 하나님의 창조물이 실제의 산과 꽃과 자연을 보고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자연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창조 미술관임을 알게 된다. 이사야 40장을 보면,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보면 하나님의 안 계심을 핑계 할 수 없다. 지으신 만물을 보면 그분을 핑계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호흡을 느끼게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과 가까워진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이 교회이며 예배의 장소라고 지금 말씀하시는 것 같다.

옥수수가 영글어갈 때 누가 이렇게 만드는가? 누가 네게 이것을 주었는가?(어머니의 질문) 우리 삶속에 주 뜻대로 하소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가 지금 영적인 양식을 스스로 지금 공동체 시간에서 독학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적 신앙의 시기, 하나님과 홀로 대면하는 코람 대오를 체험한 후 보다 믿음의 강성을 주도록 반전의 기회를 주시는 것일 것이다. 이러한 훈련도 필요한 시기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무엇을 볼 것인가에 무심하다. 나쁜 것을 많이 보면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잘 보고 듣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베드로가 주목하여 본 후 역사가 일어났다. 깊이 응시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주목하여 응시하여 보신다. 연민과 사랑, 우리의 아픔과 눈물을 닦으시며 손으로 치유하여 주신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문 닫아 교회를 살리는 역사를 하시고 계신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다. 바라본다는 것은 바라며 보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이 실제로 이루어진다. 보고 성장한다. 믿음을 가지고 상상하고 바라보면, 늘 상상하던 곳에 가서 있게 된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밤낮없이 천국을 바라보고 상상하는 자가 주님을 만나는 것이다. 바라보고 상상하여 급기야 자신의 나라로 만드는 비밀이다. 창조세계를 시각으로 보는 것은 풍성한 감성, 느낌의 삶, 심미적 삶이다. 풍부한 공감능력이다. 봄으로써 하나님의 호흡에 감사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만 아멘, 할렐루야는 메마른 신앙이 되고 만다. 하나님께서 그래서 잠시 방학을 주신 이유이다. 다시 말해서 방학동한 가까운 곳에 가서 하나님의 대자연의 솜씨를 느끼고 마음으로 찬양하고 기록해 보기를 바란다. 은혜도 용서도 모두 눈 닿는 가까운 데서부터 시작된다. 우리 담임 목사님은 지각을 아시고도 환하게 웃어주셨다. 그래서 우리 목사님의 용서가 감사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용서는 평생의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니 더욱 감사한 일이다. 그러기에 사람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의 공식을 우리에 주신 것이다. 우리가 합심하여 기도하면 들으신다는 것이다. 모두 다 눈에 보일만한 것을 용서하고 사랑하라.

​영성과 예술, 부활의 섭리를 다시 회복될 것을 믿음으로 보고 생각해 보라. 아기는 엄마를 봐야 안정감을 느낀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나 아브라함에게 별들을 보이시며, 동서남북을 바라보며 시선이 닿는 곳까지 정복하라고 명령하신다. 바라보라!!! 믿음으로~~ 깨닫고 발견하길 보고 계신다. 모든 자연이 비전 화 되면, 하나님은 한 번 창조하신 것을 날마다 다른 색과 빛으로 창조하시며 우리가 감동하고 느끼며 알아차리라고 하신다. 우리가 너무 문명의 세계에 물들어 있고, 오랜 시간 교회 안에서만 성도의 교제만 익숙하나, 예술이나 자연과의 만남과 사귐이 익숙지 못한다. 우리의 풍성한 삶에 문제가 되며, 아름다음을 보고도 감성에 무디면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기쁨과 감동과 찬양의 뛰어난 영적 슬픔을 보고도 무심하다면 주께서 원하시는 삶과 거리가 멀게 된다. 다윗도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에 감탄하고 감사하며 시로 음악으로 만들었다. 감동의 횟수가 인생을 좌우한다. 그러니, 우리 좋은 목사님은 아름다움을 추구하셔서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우리도 창조의 섭리와 하님의 세미한 소리를 들어야 한다. 예술과 풍경을 보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보시기에 좋다고 하신 하나님은 아름다움에 감동하신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길 바란다.정말 죄는 과녁을 빗나가는 것이다. 바로 특권층 같은 오만이 배려와 사랑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과녁을 바르게 맞히어야 한다. *후속세대의 신앙은 보는 것과 상상력이다. 

▶과녁을 잘 맞히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하나님의 의도를 살핀다. 보고 생각해 본다. 사랑의 하나님을 집중하여 본다. 하나님의 관점

둘째-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유심히 본다. - 마음을 실어서 보는 것이다. 대충 보면 죄이다.(하말티아)

셋째 –주님을 전제로 하고 본다.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으로 볼때 더 많은 것을 보고 기억하라. 시간은 기억이다.

모든 기억은 우리 영혼에 각인이 된다.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메멘토모리). 우리도 죽음을 생각하면 하나님 앞에서
교회 자체의 묘원을 가졌음 좋겠다. 제2의 성전을 갖기를 소망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밀접한 어머니의 신앙생활이 하나님과의 삶이었다).

 

 

☆ 연과 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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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 (주후 2020년 8월26일)

제목: ''만민을 위한 잔치''

말씀: 이사야 25:6~8

설교자: 장명철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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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금 이전에 없었던 혹독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54일이란 역대 최장의 장마를 보내면서 인명과 재물의 많은 피해를 보았다. 장마 이후에는 폭염으로 고생했다. 또 태풍 ‘바비’로 인해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의 영적 생활에 많은 방해를 받고 있다. 우리가 함께 예배드리지 못하고 모니터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우리에게는 일 년 전만 해도 굉장히 낯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말씀의 위로가 있다고 믿는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다라고 고백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이 어려운 때를 인내하며, 통과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축복을 예비하시리라 믿는다. 본문 바로 앞에 4절과 5절을 보면 -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에게 우리의 그늘이 주시리라 믿는다. 본문에 연회를 잔치라고 표현한다. 잔치라는 말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나는가? 오늘 본문 말씀은 바로 이사야 25장 5-8절이다. 잔치는 명절도 있어서 좋고 다 즐겁고 좋다. 우리 교회의 잔치는 작년에 헌당 감사예배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누가 잔치를 베풀고 계시는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잔치를 베푸신다. 가족, 교회가 하는 잔치도 기쁨이 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만민을 위한 잔치는 참으로 기쁘고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6절을 보면,, - 본문에 반복 된 말씀은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한 포도주이다. 기름진 것과 오래된 포도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잔치를 위해 마련된 좋은 음식이다. 그래서 쉬운 성경에서 가장 좋은 음식과 잘 익은 포도주로 잔치를 베푸시는 것이다. 라고 쓰였다.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바라만 보아도 배가 부를 것 같은 잔치상.

*오래 저장한 포도주(쉬메르)- 최고급의 포두주이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 그 포도주는 맑은 포도주가 최고급 포도주였다. 단순히 좋은 음식만을 말씀하지 않는다. 만민을 위한 잔치는 이 산이다. 바로 시온산 또는 예루살렘이다.

우리는 여기서 영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주목하라. 요한복음 6:53-5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기적이후 많은 무리가 따른다. 예수님은 썩을 양식을 위해 하지 말고 영생을 위하여 하라고 하신다.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 하시며 예수님이 주신 떡을 먹으면 세상에 생명을 위한 살이라고 하신다. 자기 살을 주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어떻게 살겠느냐며 우리를 대신하여 피를 흘리심을 우리가 믿는다는 것이 영적인 잔치이며, 피와 살을 먹는 것이다. 유일한 구원자임을 믿는 자마다. 영적 잔치에 들어간 것이다. 이사야 본문에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잔치는 참된 양식과 음료를 제공하시는 것이다.

 

▶왜 하나님이 직접 이러한 잔치를 마련하셔야만 하는가?

*7절을 보면 가리개와 덮개 – 무엇이 보이지 않도록 덮어 놓는 것이다. 이사야가 이 단어들을 사용하는 것은 죽음을 상징한다. 시신을 덮고 있는 수의를 말한다. 모든 민족과 열방이 죽음에 있다는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이 만민을 위한 잔치를 친히 베푸셔야만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영적인 죽음의 상태에 빠져서 영원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수의와 같이 우리를 덮고 있는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하나님께서 직접 만민을 위해서 잔치를 베푸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얼굴을 덮고 있는 덮개와 가리개를 제거할 수 있는가?

사도바울의 통찰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고린도후서 3:16-17절을 보면,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가면 우리가 덮고 있는 수건이 벗겨지며, 주님이 임재하시면 사망의 권세가 물러가는 것이다. 자유가 선포되는 것이다. 담임 목사님이 하시는 스가랴 설교 말씀을 늘 하신 것처럼, 돌아오면 회복된다는 것이며, 바로 하나님의 능력인 것이다. 책 –‘은혜은혜’라는 책이 있다. 이 내용은 엔드류는 고백하는데 탐욕에서 벗어나는 내용이다. 하나님은 그의 모든 죄악의 덮개를 벗겨 주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 돌아와서 만민을 위한 잔치에 참여하고 회복을 경험한 하나님의 약속된 축복은 무엇인가?

 

*8절을 보면 – 만민의 축복을 말한다.

 

▶우리에게 만민에게 주어지는 3가지 축복이 있다.

첫째 – 하나님께서 사망을 영원히 滅하신다. 멸한다는 뜻은 여기서 히브리어로 ‘발라’이다. 삼키다 들이키다 와 같다. 하나님께서 죄의 형벌로 인간에게 주어진 사망의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신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가 기록한 것처럼 죽음의 종노릇에서 완전히 해방한다는 것이다(히브리서 2:14-15).

만민의 잔치에 참여하는 자에게는 죄와 사망의 문제가 완전하게 해결되는 축복이 약속되어 있다.

 

둘째 –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씻겨주신다. 눈물을 닦아 주신다. 우리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면서 자비로운 손길로 친히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위로가 된다. 사도 요한은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부라고 이야기 한다.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니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우리 가운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자영업자, 고3 수험생, 코로나와 싸우고 있는 의료진들, 또한 일상에 살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우리 영 가족들,,, 우리 하나님께서 한 사람 한사람의 눈물을 친히 닦아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셋째 – 하나님께서 우리의 羞恥를 除去하여 주신다. 여기서 수치는 단순한 부끄러움의 단어가 아니라, 非難, 嘲弄, 蔑視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이 하나님의 백성을 비난 조롱 멸시하는 행위를 완전히 제거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반대로 하나님이 우리들의 명예를 회복시키신다는 약속인 것이다.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지나가면서 절대 진리를 부정하는 세계관의 공격을 많이 받았다. 소위 지성인들 사이에서는 예수 믿는 것을 매우 불쌍히 여기는 풍조가 많다. 게다가 코로나 상황에서 신천지로부터 시작한 교회에 대한 많은 오해와 비방이 도를 넘고 있다. 하지만 시편 25편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소원한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 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고 ~~”(시편 25:2-3절).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볼 때, 세상에서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도록 우리 모두에게 보호해 주시길 원한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만민을 위한 잔치에 대해서 함께 우리가 묵상했듯이 만민의 잔치는 기름진 것과 맑은 포도주가 있는데, 이것은 영적인 참된 양식과 음료가 되시는 예수님을 의미한다.

 

만민을 위한 잔치에서 우리의 얼굴을 가리는 덮개가 제거 되는데,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가는 회개를 통해서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만민의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에게는 죄와 사망이 완전히 해결되고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며, 수치를 제거해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들이 보장되어 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하나님이 베푸신 잔치가 누구를 위한 잔치인가? 만민을 위한 잔치이다.(All peaple)이다. 만민을 강조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베푸시는 잔치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다는 것을 강조하신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잔치에 들어와 있지만, 여전히 들어와 있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새로운 사람들을 초청하기를 원하신다. 우리 교회가 온라인으로 한 것을 잘했다. 보이지 않는 비 대면이지만 코로나 상황에서 과연 복음을 전하려면 교회로 초청을 해야 하는데,,, 눈동자 같이 보호하셔서 올해 11월에는 대각성전도축제를(새 새명 축제)가 우리를 위한 잔치가 아닌 모든 사람의 잔치가 되기를 소원한다. 날마다 만민의 잔치를 여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요약
하나님이 진설해 주시는 잔치에 참여하는 기쁨을 가지고 생명의 떡 되신 예수님의 사랑을 누리며 우리가 전해야 할 진정한 복음을 행해서 많은 가족, 부모, 형제, 자매, 친지, 친구에게 전해져서 참자유를 누리도록 죄와 사망의 덮개를 벗겨주도록 주님이 차려 놓으신 잔치에 참여케 하고 섬겨야 함을 세상의 눈치를 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순종하기를 소원한다.
우리에게 마련해 주신 잔치를 주님이 주셔서 감사하며 우리는 영적으로 죽어 있었으나 주님께로 돌아오는 회개를 통해 참 자유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여전히 우리 가운데 사망과 눈물과 수치의 고통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완전히 제거해 주실 것을 믿고, 만민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이 코로나 상황을 뛰어넘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능력을 주시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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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예배(주후 2020년 8월23일)

제목: ''위험을 무릎쓰고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말씀: 46:1~7

설교자: 김지찬 목사님 초빙(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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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때 일수록 당당하고 품위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오늘 지금 펜데믹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말하려고 한다. 따라서 성경에서 찾는 동시에 신앙의 선배들이 전염병의 펜데믹에서 어떻게 과거에 대처했는지를 알고 싶어서 마틴 루터가 흑사병을 경험하고 서신을 기록해 놓은 것을 번역했다. 루터 시대에는 흑사병의 펜데믹이 있었기 때문이다. 흑사병은 피부에 종기가 생기면서 피부가 까맣게 생기는 전염병으로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발병한지 8일 만에 사망하는 치사율이 높은 병이었다. 유럽을 간헐적으로 몰사를 당하는 일이 있었다. 모두가 무서워서 상가도 의원도 문을 닫았다고 한다. 임신 아내도 팽개치고 피신하는 자들도 있었다고 할 정도이다. 그런데 종교개혁이후 흑사병이 루터 동네인 비히텐부르크를 덮치게 되었는데, 루터는 도시에 나가서 피신하지 않는 자들을 위해 영적으로 위로하고 돌보는 사역을 감당했다. 주위 친한 사람들이 다 죽게 되었고, 부인도 임신 중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집을 병원으로 사용했다. 그만큼 그도 자주 현기증으로 뇌빈혈로 자구 쓰러지게 되어 설교를 멈추게 되었다. 지속적으로 일어나자, 후배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심각한 지병을 앓았으며 그는 흑사병을 앓는 자들을 보살피며 돌봤다. 그 위기에서도 그는 남아서 신자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주는 강한 성이요’를 작사하고 작곡한 것은 사탄을 물리치고 흑사병으로부터 이기고 주님의 위로를 받기 위한 곡이다. 우리도 이 펜데믹에서 이겨낼 힘은 바로 위로이다. 이 큰 환란 가운데 루터가 가장 위로가 되었던 말씀은 시편 46편이었다. 4절 5절에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이 시편을 읽고 감동을 받아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찬송가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시인이 천재지변과 같은 재난 가운데서도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떠한 천재지변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안전한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교 개혁자 루터는 여기에서 용기를 얻어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찬송시를 썼듯이 우리의 삶이 절망하게 될 때의 유일한 피난처는 세상의 권력과 부귀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품이다. 시편 기자는 자연재해를 말한다. 지진으로 흔들리고, 산, 해일, 바다로 모든 것이 흔들려도 시편 기자는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피난처인 하나님은 환난 중에 피난처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것과 왕국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

 

  ▷산 ↔ 왕국, 바닷물 소리  ↔ 뭍나라가 소리침.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연재앙과 인간 재앙을 나누지 않고 서로 시편 기자는 연결하기를 원한 것으로 보인다.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자연재앙이나 인간재앙등도 인간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코로나 19사태도 마찬가지로 자연재해와 인간재해가 연관되면서 우리의 고통은 배가 시키고 있다. 처음에는 자연재앙으로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정치, 사회에 연결되면서 국가와 사회와 존재의 기반이 심각하게 흔들리는 것을 우리가 지금 온 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강대국 지도자들의 말 한 마디에 전 세계가 요동을 치고, 나라마다 감염 병 대책을 놓고 내부적으로 균열을 일으키며 흔들리고 있다. 정부의 지도자들이 백성들의 안전을 겸손하게 최우선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들의 정치적인 욕망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총체적인 계산을 하게 되면 자연재앙이 인간재앙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단순히 자연재해만이 아니다. 인간의 죄 된 본성이 다 쏟아져 나오면서 인간의 사악함의 펜데믹을 만들어 내고 있는 실정이다. 어찌되었던 루터는 흑사병을 적대자인 교황과 황제가 만들어내는 안간 재앙의 한 복판에서 하나님은 항상 그의 곁에 존재하는 도움이시며, 매우 현재적인 도움임을 경험했다. 루터는 엄청난 시련을 겪었지만, 파문을 당했기에 너무도 어렵고 누구에게도 도움도 없게 되었는데도, 심각한 종교개혁이 최초에 놓이게 되어가도, 루터는 개인, 교회, 정치, 신학적, 사회적 상황은 시편의 46편과 매우 흡사하다. 뭍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리고 개인적으로는 박해와 시련으로 불완전한 상황에서 세상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시편 46편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와 힘이시니 환난 가운데 항상 현존하는 도움이라” 이것이 루터에게는 위로였으며 또한 ‘내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찬양시를 작사 작곡했던 것이다. 가사를 보면 정말 위로가 된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

 

요약

마틴 루터 흑사병 이후 (치사율75%,쥐벼룩)

비히텐베르크 교회에서 환자들 돌보게 되었다. 친한 신자 부목사 아내아이 흑사병 걸림으로 집을 오픈하고 환자들 치료에 도움을 주었다. 루터도 뇌빈혈로 쇼크가 자주 오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내주는 강한성이요 라는 찬양곡을 작사 작곡하여 하나님께 집중 의지한다.

 

우리는 전염병으로부터 피신해도 되는가? 흑사병속에서도 하나님 주신 생명을 지켜야한다. 내 이웃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남아야한다고 루터는 말하고 있다. 목사, 공직자(시장, 판사), 의사 남아야 사회를 지키기 위해 모든 사람들도 자기 자리를 지켜야한다. 사랑의 법이란 고통당하는 자를 돌봐야 한다. 목회자로서도 이 어려움은 징벌을 위함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을 테스트하시는 하나님 위로임을 알고, 우리는 위로를 나눠야 한다. 당신의 유일한 위가 누구이신가를 말하면 무엇이라고 답을 할 수 있는가?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의 유일한 위로는 하나님이시다. 머리털 하나도 떨어지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생사간의 유일한 위로이신 하나님이시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만이 위로이다.

an ever-present help in trouble.​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 하리로다.

 

▶그러면 우리가 생사간의 유일한 위로를 유지하고 계속적으로 살 수 있는가?

→ 첫째. 우리는 사람들에게 교회에 참여하여 설교를 들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지에 대해 배우라고 權勉해야 한다.

→ 둘째. 모든 사람은 죽음에 대해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죄를 고백하고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현대인들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당장 닥친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에 흑사병이 만연한데 교회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굳이 현장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를 걱정하는 그리스도인도 많다. 물론 일리가 있다. 기저질환이나 어린이는 조심해야 하지만, 식당과 카페는 우굴 버글 하는데, 그 얼굴에서 두려움의 얼굴을 보시 못했다. 그런 곳은 두렵지 않으면서 가면서도 교회 오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지금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일이다. 국가의 방역 조치를 잘 따르고, 개인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는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라면 그리스도인은 존재의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 비대면 예배는 비상 대책이어야 한다. 치사율이 75%인 흑사병인 대유행 앞에서도 교회에 참석하여 설교들 들음으로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지에 대해 배워야 한다. 고백하고 성찬에 참여함으로 죽음을 준비하라는 루터의 권고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예배를 등한이 한다면, 어디서 우리는 생사간의 유일한 위로를 얻을 수 이 있는가?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이 코로나를 이길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셋째. 루터가 위험을 무릎 쓰고 비히텐베르크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

위험을 무릎 쓰지 않고는 결코 이웃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루터는 ‘자신의 안전이나 재산에 손해가 나는 것이 힘들어서 다른 사람을 돕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이웃을 도울 수 없다’라고 말한다. 이웃을 도울 때는 언제나 위험을 甘受해야 하는 일이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危險을 무릎 쓰지 않고는 도울 수 없다고 루터는 통찰하고 있다. 한 500년 전 루터를 보면서 정말 대단함을 느낀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 19는 치사율이 1.8%에 불과하다. 흑사병은 그때는 치료약도 없었다. 두려워말고 이웃을 위해 사랑을 권고한다. 루터는 시편 46편을 보면서 ‘내주는 강한 성이요’를 작사하면서 사탄마귀 로 다 빼앗긴데도, 내 몸도 다 가져간다고 해도 우리 왕국은 영원하다‘라고 했다. 생사간의 유일한 위로가 있기에 흑사병의 펜데믹 안에서도 그는 이웃을 사랑할 수 있었다. 그런 루터로 인해서 루터의 그 의지를 보면서 지지하는 사람들로 인해 종교개혁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 우한의 선교사는

사명 자는 사명에 따라 움직여야 하며 상황에 따라 움직여서는 안 된다. 사람을 세워가는 일은 말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교회가 병원을 세운 것이 현대의 역사인데,,, 우리는 생사 간에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사역 가운데서 발견하고 생사간의 위로를 가지고 코로나 사태를 주님의 이름으로 이겨내길 소원한다.

 

♧느낀 점.

지금 이렇게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됨을 나도 절실히 무섭게 느껴진다. 세상은 계속 정치와 이슈로 더욱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시점을 세상의 이슈나 간사한 정치에 귀 기울이지 않고 이 시점이 분명, 하나님의 징계라고 여겨지기에 더 조심하면서 주님을 사모하고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나의 부족함을 아시는 주님이시기에 나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납작 엎드리면서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주님의 예배를 고대하며 기도할 것이다. 어제 예배에 나간 사람들은 용기가 대단하다. 허탕을 치고 돌아갈 것을 왜 그들은 모른가를 나쁘게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만큼 하나님의 예배를 사모하는 자들임을 보면서 나는 내심 부끄러웠다. 어떤 죽을 상황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 하겠다면서 나는 그냥 교회의 지킴을 따라갈 뿐이라며 핑계를 되 뇌였다. 이제 주님 앞에서 과감하고 용기 있는 선택이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또한 루터처럼 위험을 무릎 쓰고 과연 이웃을 얼마나 사랑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고, 회개하는 시간이 되었다. 남의 생각을 믿지 말고 나의 판단을 주님께서 주관해 주실 것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모든 삶은 고난의 연속이고, 그 고난이 주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라면 기꺼이 사랑하고 이웃에게 더 나누고 품는 자 되기를 간구한다. 또한 한국교회 그리고 우리 교회의 예언자적인 말씀과 사랑으로 김지찬 목사님(총신대 교수님)을 초빙하셔서 우리에게 주님에 대한 올바른 이치와 진리를 우리 교회에 오셔서 하나님 앞에서 나를 더 깊이 깨닫게 해 주심을 감사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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