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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새(주후 2020년 8월 22일)

제목: “생명나무 열매”

말씀: 창세기 3:22-24절

설교자: 이왕재 교수님 초빙(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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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장 22-24)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세기 3:22-24

첫째, 하나님께서는 그를 불쾌하게 여기셨다.

둘째, 천사들은 그를 대적하였다. 그가 천사들과 우리의 주이신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한, 하늘의 군대들과의 평화란 있을 수 없다.

셋째,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이 막혔다. 즉 처음에 하나님께서 그를 들여보내셨던 흠 없는 순결의 길이 막힌 것이다. 그 이후로 그가 첫 번째 언약에 의해서 의와 생명과 행복을 기대한다는 것은 헛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언약이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그 언약에 의해서 심판을 받는다면 우리는 다 멸망해 버리고 만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아담에게 계시하셨는데 그것은 그를 절망에 빠뜨리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화염검을 제거할 약속된 후손 안에서 생명과 행복을 기대하도록 은혜를 베풀고 격려하시기 위해서인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우리와 화해하였고 가장 거룩하신 자에게 이르는 새로운 생명의 길이 우리에게 열렸다.

 

▶이왕재 교수님(장로님)

본인은 좋은 부모님을 하나님께서 주셔서 농촌에서도 믿음의 가문에서 잘 자랐다. 뒷받침 해주실 능력도 없으신 부모님은 그 믿음으로 막내아들을 매일 서울로 가도록, 시골을 떠나도록 기도로 가르쳐 주셨다.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를 간 것과 그것도 의대를 갔기에 우리나라의 가장 인재들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어릴 때부터 자랄 수 있었다는 것에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이곳까지 인도해 주신 것도 하나님이 부르셨기에 이렇게 얼마 남지 않은 퇴직을 두고 설교를 하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 영광 올린다. 끝까지 축복을 해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30년간 지낸 교수연구실을 떠나게 된다(퇴직). 인간적으로는 불만족도 불만도 많이 있었지만 가는 곳마다 본인 곁에 천사를 보내 주시고, 세우셔서 자신의 능력보다 훨씬 더 큰 역사를 이루어주셨다. 성경에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항상 비슷함을 자신도 그렇데 느낀다. 너무나 뛰어난 사람들과 지냈으며 그것은 다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니다. 백지장 하나의 차이이다. 하나님이 인도하시지 않고는 농촌 자녀로서는 감당 못할 일을 하나님은 다 하게 해 주셨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그것을 알고 못 알고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라 여긴다. 한 순간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하나님을 믿고, 확실하게 따르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미래가 다르다. 그 사람을 온전하게 높이 들림 받은 자로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성경말씀대로 그렇고, 최고의 지성인으로서 그렇다. 하나님 앞에서는 누추할 수밖에 없다. 일주일 뒤에 학교를 떠난다. 인간의 해부학을 전공하여 학생들에게 가르쳤고, 우리 몸의 구석구석을 가르쳤다. 또한 과학자로서 면역체계인 종양 쪽을 연구했다. 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보고 종양을 치료하기를 힘썼다. 면역학 적으로 연구하면서 암을 早期 診斷보다 더 중요한 것이 早期 豫測을 중요시 한다. 의학적 대책을 하고 있고 계속 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문서 선교를 했다. 빛도 없이 소리도 없이 문서학교 잡지가 있는데 ‘건강과 생명’이라는 잡지이다. 1990년에 창간 후 2020년에 360호를 발간했다.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이며 축복이다. 월간지로서 돈을 번 것이 아니다. 잡지가 30년이 넘기 힘 드는데, 30년이 넘었다. 하나님을 영접하는 분들이 그 책을 보고 구원을 받게 되며 인간이 몸이 아프게 되면 하나님을 찾게 되는데 그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해주시고 계신 것이다. 바로 이 책이 그러한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고, 이 책을 보고 수술을 앞에 두고 교회에 들어가 기도하고 있으며 이 책으로 하나님을 영접하며 매년 수십 건씩 일어나고 있다. 책을 파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기 위함이다. 전국에 큰 병원마다 원목실이 거의 다 있다. 이 책이 후원으로 지금 들어가고 있으니 이 책을 보고 참여해 주시길 바란다. 주님의 역사를 이루기 위함이다.

 

이제 다시 하나님의 축복을 위해서 비타민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평생 연구한 것이며, 비타민C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비타민 C를 연구하여 세계 최고의 권위가 있는 작년에 단독으로 스프링거(1942년) 출판사와 함께 영문으로 과학서적을 냈다. 그런 축복을 하나님이 본인에게 주셨다고 한다. 저자로서 과학 서적을 출간했다. 많은 출판사들이 그 곳에서 책을 내기를 원한다. 한 길을 걸은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놀라운 결과를 받았다. 바로 코로나 19 대응 방법을 이야기 하려고 한다. 사스도 홍콩의 기자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2002년도이다. 20년 전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다고 난리였다. 생명 과학의 시대라고 했다. 그것은 유전자 조작이었다. 그 당시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인간의 유전자를 분석하게 된 것이다. 줄기세포도 그랬다. 대한민국이 망신을 당한 것도 보았다. 그렇게 시작된 사스는 바로 인류와 역사를 같이 한 감기였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다 몸속에 가지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 증식하게 된다. 언제든지 출구전력이 있기에 호흡기에 가깝게 있다. 인두, 후두, 상기도 감기였다. 누가 감기 걸려서 죽었다고 했던 일이 있는가? 사스는 변형된 감기이다. 사양 고양이라는 변종을 일으켜서 사람에게 온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간은 인간, 동물은 동물끼지 유전자가 다르는데 사람 세포 속에 들어가야 증식이 가능하다. 그런데 열쇠가 안맞는다. 살기 위해서 그 바이러스가 변종되어 사람에게 들어간 것이다. 농부가 키운 고양이가 변종으로 농부를 전염시킨 것이다. 일파만파 퍼진 것이 바로 홍콩 기자가 보고한 것이 바로 사스였다. 독감은 인풀루엔자인데 몸 속에 없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는 몸속에 있다. 백신은 쉽지 않다. 코로나 바이러스 19의 백신이 없다고 했다. 개발되기를 원하지만 되지 않을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방법인데 DNA를 집어넣어서 만드는 것인데 유전자 단백질이 들어가 면역이 일어나는 것인데 엄청 위험하다. 대단히 위험하다. 신속 허가제가 있는데 놀라운 핑계로 그 DNA 백신이 허용되어서 지금 개발하고 있지만 철저하게 봐야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스와 크게 다른게 없다. 단지 숙주만 다르다. 박쥐이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걱정되는 나라다. 하나님을 배척하는 나라는 징계하시며 믿는 자들에게 함부로 하면 하나님은 더욱 망하게 하신다. 그들은 교회를 다이나마이트로 교회를 폭싹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 나라를 놔두시진 않는다. 바로 징계이다. 계속 하나님의 징계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우한 폐렴도 마찬가지다. 박쥐를 엄청 잘 먹는다. 박쥐가 없어지니 새로운 숙주가 생기고 변종을 일으켜 사람이 많기에 들어간다. 빨판이 15배이상 강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래서 전염력이 강하다. 구조가 거의 비슷하다. 사스나, 코로나 거의 비슷하다. 백신 예방 주사는 없다. 변종이 계속 생기기에 더 강하게 일어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백신이 만들어지기 어렵지만,,, 전 세계가 공포이기에 백신이 부작용이 장난이 아니기에 정말 조심해야한다. 그 효능도 검증이 아니니 인풀루엔자는 잘 만들어진다. 여하튼 코로나 바이러스 변종이 이미 만들어지고 있어서 막을 길이 없다. 백신을 만들고 싶다. 특히나 DNA 유전자를 집어넣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며 그 속에 칩을 넣는 장난도 할 수 있다. 그러니 영원히 몸속에서 함께 살고 조종당하게 된다. 과학을 바탕으로 생각을 하기를 바란다. 지금 한 가지 문제는 코로나 바이러스인데 감기정도라 여기고 열이 나면 해열제를 절대 먹지 말라. 독감은 바이러스로 오니 감기와 다르다. 독감을 시즈널 풀루(유행성 독감)이라고 한다. 병원체가 없으니 아무나 걸리지 않는다. 코로나 19는 정착력이 강해 감염력이 높다. 더워도 결코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래서 대책이 있다. 방역을 철저히 하고 분명한 것은 지금 감염이 잘되는 이때 우리가 예배를 못 보게 할 정도로 위험하지 않다. 공포에 초기에는 빠졌다. 그러나 사망자들을 자세히 보면,,, 미국,이태리,프랑스,스페인,브라질,,, 전 세계 3.5%이다. 우리나라는 잘 하고 있지만, 대만은 감염이 안 된 것도 바로 대처를 잘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마스크를 쓰면 된다. 무조건 쓰면 되고 초기에는 많이 죽었다. 논문을 보니 3개 이상의 기저질환자이다.

 

→사망자의 원인

1. 그것은 기저질환자가 죽은 것이다(기저질환-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분).- 몸속에 내란이 일어난 것이다. 밖에서 들어온 바이러스가 들어와 죽는 것이다. 저항을 못하니 그렇다. 98%가 기저질환으로 죽는다. 그래서 우리가 무서워할 병이 아니다. 방역만 잘 하면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fact이다. 그 동안 하루에 8천 건의 검사를 했다. 그러나 약 1%밖에 안 된다. 냉철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대다수 교회들이 모범이게 지키는데 아침에 8시에 대중교통에 얼굴을 맞대고 있다. 지하철에 보면 그러면 멈추어야 한다. 정부는 정말 교회 50명도 못 모이게 하는가? 이것은 기독교 탄압이다.

도대체가 무순 생각으로 이런 보고를 하는 것인지 잘 알아야 한다. 이제 우리 신앙을 돌봐야 한다. 너무나 코로나로 교회 안가도 된다는 것으로 만족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다. 사실 모두가 약속이 취소되었다. 일 년 지나고 나면 내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용기를 가져야 한다. 우리 신앙이 지하철을 타는 만큼도 믿음이 없다는 것이다. 믿음을 점검하라. 바이러스로 인해서 하나님은 징계의 사인이다. 에이즈로 징계를 주었다. 그것은 성적인 타락으로 보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역사를 같이할 순한 바이러스와 함께 살라고 하시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DNA, RNA바이러스 두 종류 밖에 없다. 다 유전자이다. 유전자 조작이 일상화 되어 있다. 인간의 생명을 만드실 때 건드리지 말라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이런 엄청난 시대에서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말을 안 들으니 깊은 수렁에 넣어주시는 것이다. 정말 깨달아야 한다. 방역을 마스크로 잘 하되 예배도 드리고 다만 요양원과 병원, 기저질환 자는 더 열배로 강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제의 몰락으로 전 세계가 문제가 되게 된다. 창세기에 생명나무의 열매가 나온다. 우리가 선악과로 죄를 알게 되었듯이 생명나무 열매를 놔두어야 하는데 과학자들은 그것을 놔두지 않고 따먹는다. 문서중심인 선교를 바라보라. 비타민 C를 다시 말을 해야 한다. 쥐로 실험을 했다. 면역기능이 안 좋은 자는 폐렴으로 죽는다. 하 기도로 내려가면 죽는다. 비타민 씨를 먹인 쥐와 안 먹인 쥐를 실험해 보니 안 먹인 쥐만 다 죽는다. 죽은 쥐의 바이러스가 바글바글했다. 기관지 액에 바이러스 면역체계가 부족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비타민 C를 먹인 것은 정말 다르니 우리도 비타민 C를 먹어야 한다. 진리를 통하게끔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

 

♣ 요약.

첫째 – 전철을 밟아보니 교회 예배를 못하는 것은 과잉이다.

둘째 - 코로나로 죽는 것이 아니라 기저질환으로 죽는 것이다.

셋째 –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비타민 C를 먹으면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이다. 정한 양을 먹어야 한다. 6000mm그램을 한꺼번에 먹으면 안 된다. 6시간 이내에 재 보충을 하라. 여서시간을 계산을 해보니 식사하고 바로 먹는다. 음식을 함께 먹어야 한다. ‘비타민 C’가 초기에는 속이 쓰리니 음식과 함께 먹으면 된다. 사람마다 다르다. 면역기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비타민 C’를 먹어서 유지하라. 여러 번 나누어서 먹어서 면역체계를 갖추길 바란다.

얼이 날 때 해열제를 먹지 말아야 한다. 바이러스는 추운 것을 좋아하니 열이 나면 바이러스가 죽는 것이다. 땀이 난다는 것은 바이러스가 죽는다는 것이다. 해열제를 먹지 말아서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

기저질환이 있는 곳은 방역을 잘 하고 확진 자가 많은데 전염된다는데 마스크를 꼭 써야한다. 연구결과이다. 확진 자가 있는 것은 마스크를 안 써서 걸린다. 죽은 자들은 다 기저질환자이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기 바이러스와 같기에 코로나도 기생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신앙을 지켜서 하나가 되어서 본이 되어서 신앙을 잘 지키기를 권고한다.

 

우리가 현장 예배를 잘 드릴 수 없는 위기의 상황 속에도 방역을 잘 지켜서 지혜와 능력을 더하시는 주님을 의지하여 다시 회복되어 예배를 온전히 드리기를 원한다. 온전한 예배가 회복되어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 되어야 하며, 면역체계를 순서대로 잘 지켜서 영육을 건강하게 하고 주님이 주시는 말씀대로 “생명나무 열매”를 잘 지키는 자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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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주후 2020년 8월 19일)

제목: “영혼과 범사가 잘 되는 그리스도인”

말씀: 요한삼서 1:1-8절

설교자: 주성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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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3서 : 1~8

1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6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7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8 그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 주 안에서 여러분 모두가 잘 되고 잘 되기를 소망한다. 50일간의 역대 최장의 장마가 끝이 났다. 작년 12월에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도 장마처럼 끝이 나듯이 끝이 나리라 믿는다. 우리는 어느 때 보다도 영혼이 범사에 잘되어야 할 시기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생애 다시 오지 않기를 바라는 감염 병으로 인한 이 펜데믹시대에 우리의 삶은 더 잘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잘’ 이라는 단어에 뜻은 무엇인지 아는가?

국어사전에 무려 13개의 의미가 있다. 이 잘이라는 말을 붙이면,, 이 부사는 부족함이 없는 만족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성경에도 많이 등장한다. 그중에 요한3서 1장에 15절에 두 번이나 등장한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요한삼서는 사도요한이 기록했다. 초대교회 공동체 가운데 에배소 교회에 모였던 지역 교회에 편지를 2번 쓰는데 요한1서와 요한2서이다. 그리고 요한삼서는 지역 교회에 편지하는 것이 아닌 가이오라는 한 개인에게 쓴 편지이다.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라고 쓰고 있다. 요한은 가이오에 대한 . 애정어린 표현은 사랑의 불을 밝히게 한다. 그러면서 인사만 초두에 그가 범사에 잘 됨 같이 잘되고 강건하기를 기도한다라도 축복하고 있다. 축복된 말을 할 때에 많이 사랑하고 암송하는 말씀이다. 우리도 ‘사랑하는 성도님, 성도님의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축복의 메시지로 인사 나누니 주님 안에서 마음이 평안과 기쁨을 주는 것 같다. 그러나 세상 가운데에서는 의미가 좀 다르다. 그리고 성경 말씀에는 우리의 영혼이 잘되는 인생과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잘 되는 인생이 다른 것 같다. 잘 사는 삶이 모두가 다른 의미로 산다. 우리의 잘 되는 인생이 세상 사람들의 잘 사는 인생이 같은 의미로 등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말씀에서 가르치는 교훈과 가르침이 같아 보일 수 있지만 전혀 다르다. 세상 사람들의 추구의 잘됨은 무엇인가? 영어로는 Well이다. 그러나 세상적인 잘 사는 것은 잘 먹고 잘 쓰고 잘 나타내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삶이다. 머니 토크가 있다. 그것은 돈이 전부라도 믿고 있다. 돈이 다 안 된다. 환경, 기후, 전쟁, 두려움의 감염 병 등도 안 되는 것이다. 진정한 우정과 사랑도 돈으로는 살 수가 없다. 더욱이 영혼의 문제는 돈으로 보장 받을 수 없다. 누가복음 12장에 등장하는 부자를 어리석은 부자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자신의 영혼의 평안까지 지 보장 받는 줄 알고 있어서 예수님은 바보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평가를 듣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그럼 우리의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되는 것을 바라시는가? 당연히 바라신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물질세계를 도외시 하시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세기를 보아도 우리의 먹고 사는 것을 가볍게 보시지 않으신다. 인간을 첫째 날 창조하시지 않고 6일째 되는 날 만드셨다. 5일간은 먹고 사는 것을 만드신 것이다. 인간이 혼자 지낼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신 것이다. 인간은 식물도, 동물도,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고 누리고 정복하라고 하신 것이다. 창조의 목적대로 통치하실 것을 명령하시는 것처럼 물질을 도외시 하시지 않는다. 기쁘게 인정하고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 돌릴지를 알게 하시는 것이다. 범사와 영혼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혼과 범사가 다 잘 되어야 한다.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어도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그들이 잘 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들도 함께 하셨기에 그들의 영혼과 범사가 잘 되게 하신 것이다. 주님은 임재하시고 함께 하시면서, 우리가 영혼과 범사가 잘 되기를 원하신다.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참 평안을 누리지 못하며 사는 우리는 불안해 오는 것이 엄습해 온다. 사도 요한은 참으로 사랑하는 자라고 하듯이 요한삼서에 나온 가이오는 불신자였다. 지역교회의 크리스쳔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했다. 가이오는 칭찬 받을 자격이 있는 자였다. 그가 처한 상황이 만사형통이 아니었다.

가이오가 목회했던 교회는 혼란 자체였다. 적 그리스도인이 있었다. 가연설이 있었다. 물질의 세계가 부정하다고 하는 것을 믿는 자의 사고가 가연설이다. 인간 예수님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사람이 될 수 없다 라고 주장하고 있는 자다. 이런 교회에서 목회를 하니 답답했을 것이다. 배교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남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을 방해했기에 가이오는 힘들었다. 사도요한을 폄해하고 믿음의 사람들을 접대하지 못했다. 그래서 영혼이 편안하지 못했다. 가이오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도 하나님 앞에서 말씀으로 행한 사람이기에 이 기도문과 같이 확신하고 있다. 그는 많은 형제들 앞에서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는 자이다. 진리로 말미암아 친구를 사랑하는 것이 참된 사랑이요 복음적인 사랑이다. 진리 안에서 행하고 말씀대로 살아내는 신실한 크리스천이 되어야 한다. 그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채워주었을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지금 입시로 인해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모두 웰빙으로 살다가 잘 살고 잘 죽기를 바랐는데 당장 하루가 힘들다. 내게 처한 상황이 어렵다고들 이웃들이 많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권면할 것인가? 머니 토크 할 것인가? 이렇게 세상 사람들이 외침을 동조할 것인가? 성경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에게 권면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북돋아 주면, 하나님 말씀 안에서 소망을 주는 자가 되길 바란다. 담임 목사님 말씀에 ‘나를 망치는 것은 나밖에 없다.’라고 하셨듯이 죄에 지친 지체들에게 사랑 안에서 진리를 권면하고 그들로 하여금 회개의 자리로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럴 때 그들과 내가 영혼과 범사가 잘 될 것이다.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된다는 것은, 영육의 성장이 조화롭게 되었다는 것이다. 선한 길로 인도받다. 좋은 여행을 하다. 번성하다. 성공하다인 뜻으로 내포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을 행할 때 우리가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 되는 줄 믿는다. 가이이오는 동료들의 평가의 의해서 택한 삶이 아니다. 가이오는 오직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이며 귀 기울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래서 마음과 뜻을 다하여 섬기고 원만과 관용으로 품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적으로 성장하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지켰다.

 

♣요약

그리스도 안에서 잘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살아야 한다.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받는 자로 가이오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칭찬을 받고 믿음의 지체로서 본이 되게 살기를 바란다. 우리 영혼이 잘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안다라고 하면서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라고 한다.

(1) 하늘나라 이편에서 큰 축복인 그의 영혼이 잘되기를 비는 사도의 경건한 기원이 있다. 그의 동료에 대한 경건한 기원은 그의 영혼 잘되며 아울러 몸의 강건함을 바라는 것이다. 은혜는 강건함을 증진시키며 강건함은 은혜를 동반한다.

〔1〕사도 요한은 자기가 들은 그에 대한 좋은 평판을 말하고 있다.

(1) 가이오에 대한 형제들의 증거는 그가 진리 안에서 행하고 사랑으로 이것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믿음은 사랑에 의하여 역사하여야만 한다.

(2) 가이오로부터 온 형제들이 증거를 전했다. 좋은 평판은 그에게서 선한 것을 받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3) 그에 대한 이러한 보고나 증거는 교회 앞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 교회는 당시 사도가 거하고 있었던 교회인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오직 그들이 보고 느낀 것만을 증거 하였다.

〔2〕사도가 친히 가이오에 대해 내린 평판

그는 언제나 대접하기를 잘하고 선대하였으며 이는 형제를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나그네에게도 그리하였다. 그는 모든 믿음의 식구들을 환대하였다. 그는 모든 믿음의 식구들을 환대하였다. 그는 또 모든 일에 양심적이었다.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즉 "너는 그 모든 일을 신실한 종처럼 행하였으니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을 상급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3〕그 일로 인한 사도의 기쁨(3절):

진리를 소유했다는 가장 뚜렷한 증거는 그 진리를 좇아 행하는 것이다.

 

〔4〕그와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접대할 것에 대하여 추가로 권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여행 중인 전도자와 그리스도인들의 가는 길을 안내해 주는 것이 하나의 통례이었던 것 같다. 길을 안내해 주는 것이 나그네에게는 큰 친절을 베푸는 것이요 적당한 동행자를 만나는 것이 여행자에게는 기쁨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해진 일이다.

〔5〕이런 일들을 권하는 이유: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그들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은 자들이며 아마 요한 사도에 의하여 파송을 받은 자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을 위하여 나간 것이다.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않고 값없이 나누어 줄 복음을 들고 나갔다. 그런데 직접 복음을 전파하도록 부름 받지 않았어도 그 전파를 위하여 공헌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복음은 그것을 처음 받는 사람들에게는 값없이 주어져야 한다. 이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또한 참된 신앙을 위하여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감사가 넘쳐나서 주님의 역사가 나타나서 우리가 상황이나 판단으로 선택되지 않고, 진리 안에서 사랑을 행함으로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 되기를 바란다. 빛이신 하나님나라 안에 우리의 생이 아름답게 살며 불쌍한 자들을 돕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기를 소원한다. 복음을 직접 전하지 못하는 자들도 복음 전하는 자들을 돕고 후원함으로써 복음 전파의 일익을 담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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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0년 8월 16일)

제목: ''攝理의 神祕와 祝福''(광복절 기념 예배)

말씀: (창세기 45:1~5)

(기도: 구성찬 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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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요셉의 정체를 안 형들

형들을 만난 기쁨에 앞서 자신들이 저지른 악행으로 인해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래서 요셉이 이를 알고 안심시키기까지 그들은 참 기쁨을 잊고 있었다. 성도의 참 기쁨은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다. 요셉의 섭리 신앙 섭리(攝理)란 이 세상을 다스려 나가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간섭하시면서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요셉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음을 믿었다. 그가 하는 말에는 항상 ‘하나님’이 언급되고 있다. 이 단어는 그의 전 생애를 조명해 주는 가장 중요한 단어인 것이다. 그러니까 요셉과 형제들 사이에 화해와 용서가 이루어지는 내용이다. 요셉은 개인적인 불행을 탓하지 않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한다. 그는 자신이 형제들로부터 겪은 모든 고통이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계획의 일부였으며, 자신뿐 아니라 악을 저지른 형제들로 인해 유익함이 되었다고 말한다.

 

▷형들의 죄를 용서하는 요셉

요셉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섭리라는 관점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형들을 기꺼이 용서할 수 있었다. 요셉은 형들의 잘못된 가해 행위 자체만을 보고 형들을 미워하거나 복수심을 갖지는 않았다. 오히려 눈을 들어 그런 행위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살폈던 것이다. 다만 용서하기에 앞서 그 용서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했기에 그는 형들을 시험하며 회개의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 8.15 광복 특별 메시지...

교회는 주님의 교회이다. 그래서 교회는 주님이 지켜주실 것을 믿는다. 영적 기백을 가지고 기도한다. 우리가 건강할 때 평양에서 예배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기를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소원한다. 우리의 항상 소명과 비전을 가지고 광복 75주년을 맞이하여 섭리의 신비와 축복에 대해서 나누고자 한다.

개인이나 교회나, 어떤 공동체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섭리의 신비에 대해서 분명한 신앙 고백이 있고, 또 섭리의 신비에 대한 신학적 뿌리가 확고하면 그 인생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잡혀 사용될 것을 확신한다. 그것이 상록수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가?

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다.

➁ 우리 인간의 필요를 공급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통제하시는 ‘하나님의 질서와 은혜’이다. 하나님의 시각이 있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시각을 주시길 원한다.

인간의 시각이 아닌 하나님의 시각이 있다.

 

※ 인간의 시각이란 대부분 프로이드나 니체이며, 한국은 김*욱 같은 사람을 인간의 시각으로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는 것이 없기에 말씀을 통하여 조명하시고 계시하시며, 영감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시각이 없기에 육신의 시각만이 있는 것이다. 그 결과로 인간에게 상처주고, 대부분 똑똑하다고 하는 자들이다. 역사의 상선은 하나님의 시각이 없다. 다람쥐 쳇바퀴가 도는 듯 되었다. 우리는 이 코로나 19 속에서도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자체가 하나님의 시각에 대해서 나름 주님과의 문이 열려있는 것이며 온라인도 마찬가지이다. 방역지침을 잘 지키기를 바란다. 역사의 하선 밑에서 상처받지 말고 역사의 윗선인 하나님의 시각을 수직적으로 신본주의로 하나님 나라 섭리의 신비와 축복의 은혜를 누리기를 원한다. 역사, 정치이슈, 상상이 안 되는 일들이 대처할 수 없는 일이 많다. 남북문제도 그렇고, 시각이 다르니까 고착이며 편파적이라서 그렇다. 모두가 하나님의 시각이 되어야 한다. 1대 대통령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시각이 것이다.

 

▶왜 하나님의 시각, 섭리에 눈이 열려야 하는가?

본문은

요셉에 관한 인물이다.

요셉은 야곱의 노년에 가진 아들이며 91세에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채색 옷을 입고 왕자처럼 살았다.

12아들 가운에 편애하니 당연히 형들에게 시기를 받은 것이다. 그래서 구덩이에 버려진 것이며,,,그 밑바닥까지 간 것이다. 술 맡은 관원이 도와주었다. 애굽의 총리였다 이것이 인간의 시각이다. 인간의 시각으로 보면 요셉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은 다르다. 구덩이에서는 큰 고통이었지만 하나님의 시각은 생명의 구원의 시각인 것이다.

 

→창세기 37:24절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도망치려고 애를 썼다는 것이다. 얼마나 상처가 컸겠는가!!! 구덩이가 무덤과 같다. 죽는 것이었다. 엄청 잔인한 일이며 비참한 일이다.

 

▶하나님의 시각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인식만 분명하면 ’저주의 구덩이‘가 반드시 ’축복의 구덩이’가 된다. 하나님은 채색 옷을 벗겼다. 채색옷 ㅡ장자 ㆍ상속권을 가지는 것이다. 형들은 동생 요셉의 옷을 다 벗겨버렸다. 거기서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에 숙련된 대장장이와 같다. 스가랴서의 더러운 옷을 벗긴 것과 같다. 우리도 하나님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그것이 섭리의 장소이다. 구덩이에서 요셉은 기도했을 것이다. 모든 하나님의 섭리는 반드시 거치는 것이다. 옷은 하나님의 섭리시다. 비참하지만 역사의 신비의 구덩이가 축복의 구덩이다. 우리도 이 환경 속에서도 예배드리는 것이 좋다. 좀 부족해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충만한 것이다.

 

▶인간의 시각은

저주의 구덩이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시각이 있었기에 우리의 고난과 고통이 있었기에 그래서 이 민족이 존재하는 것이다. 섭리의 시각이 열리면 축복의 구덩이가 된다. -회개의 구덩이 깨어짐 ㆍ성숙의 구덩이다.

환경, 어려움, 상처, 코로나 사태, 우리의 안경을 깨끗이 렌즈를 씻어야 하듯이 도수의 초점을 재조정하여야 한다.
★ 섭리의 시각, 도수의 초점을 우리가 리셋하기를 바란다.

 

→창세기 45:1절 - “ 1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I. 인격의 용량을 키워야 한다.

남을 배려하는 인격이다. 형들의 잘못을 시종들이 알면 안되기에 다 내보냈다. 요셉은 섭리를 깨달은 자였다. 고난을 당하면서 섭리를 깨달았기에 자기 가족 살리는 자 민족을 살리는 자가 되어 지게 했다. 절망이 섭리가 되었다.

→창세기 39:5 -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요셉처럼 인격의 용량이 커지면 그 주위가 다 복을 받는 것이다. 축복(The blessing)이라는 찬송도 우리의 용량이 커지게 될 것이니 많이 부르기 바란다. 요셉은 하나님의 큰 섭리인 것은 흉년도 되게 하였다. 요셉은 원한을 품지 않고 은혜로 베풀었다. 어떤 왕궁도 중상묘략이 난무한 곳이 왕궁인데 오염되지 않고, 요셉은 용량이 커졌다. 우리도 용량이 커져서 민족도, 용량이 커져서 하나님 나라를 전체를 바라보는 자가 되어야 한다.

 

II. 인식의 용량을 키워야 한다.

→창세기 45: 2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궁중 전체에 들릴 정도로 요셉이 방성대곡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깨달은 것이며, 하나님 주권적으로 역사의 상선, 하나님 관계가 수직적으로 깨닫게 되어 인도와 섭리와 은혜의 통곡이 되었던 것이다. 총리가 우니 얼마나 무서웠겠나? 하나님의 감격하는 요셉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요셉처럼 살아야 한다. 요셉이 형들을 부르니,,, 페닉 상태인 형들이 되었을 것이다.

→창세기 45: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창세기 45: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자라.

→창세기 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고백 안에는 하나님의 그릇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요셉을 낮추어서 쓰신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의 시각이다. 이렇게 종지가 되지 말고 은혜의 저수지가 되어야 한다.

→창세기 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창세기 50:20 -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고 함부로 인간의 시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섭리의 시각으로 보라. 나를 무너뜨릴 사람은 나이다. 우리나라로서는 정말 많이도 얻어맞은 나라다. 어떤 경우도 승리로 바라보라. 그러면,, 그 자리가 축복이 될 것이다. 우리의 독소들을 75주년 다이아몬드 식이다

→스가랴 8:15 -이제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나를 무너뜨리는 것은 나밖에 없다. 그러니 영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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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새벽기도회(토비새)-(주후 2020년 8월 15일)
제목: "북한의 영적 이해와 복음통일"
말씀: 로마서 9:1-3, 디모데전서 5:8
설교자: 이용희 교수님 초빙(가천대, 에스더기도운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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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

 바울은 로마서 9:1-3절에...자신의 동족들을 보면서 자신이 저주를 받더라도 그들을 살려내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동족을 향한 바울의 애 끓는 사랑이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의 동족을 향한 바울의 사랑과 같은 마음으로 아니 그보다 더 큰 마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이 땅에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시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하고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우리들을 위해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 주셨다.그리고 그로 하여금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사망의 형벌을 받게 하셨다. 많은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라고 손가락질 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의 죄를 사해주기 위해서 아무 말 없이 십자가를 지셨다. 사도바울이 자신이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골육의 친척들이 구원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던 것은 바울의 마음속에 자신의 친족들을 향한 안타까움과 고통이 얼마나 큰가를 잘 보여주는 표현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민이고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또한 디모데전서 5:8절을 보면, 하나님은 가난한 이웃과 선한 일을 위하여 재물을 사용하기를 원하심을 알 수 있다.

▷광복75주년이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유대인들이 구원 받을 수 있다면 내가 지옥 갈지라도 유대인들이 구원받기를 바울은 원했듯이,
우리 핏줄에게 주는 것처럼, 우리 동족을 위해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이다.  우리 한국교회가 분단
75년을 맞아서 하나님께서 반쪽의 광복이 한반도 전체의 광복이 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우리를
복음적 통일을 위해 기도의 동역자로 하나님은 부르신다. 그러니 북한 동포들의 멍에의 줄을 이제 끊어 주시고,
압제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우리는 지금 예수님 못 믿고 지옥가게 하는 김일성 주체사상의 멍에를 꺾어주시길
기도해야 한다. 북한 동포들 가운데 우리의 눈물과 희생과 섬김이 있기를 간절하게 기도합시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꿈꾸는 것 같은 하나님께서 대사를 행하셨다고 고백하고 송축하는 기적을 속히 허락하시길 기도한다.
피흘림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을 위해 일해주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
기도하는 자 되길 소원한다.

 

민수기6:24~26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  2020년 평신도 사역훈련 11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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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예배(주후 2020. 8. 12.)

제목: “되찾은 안식”

말씀: 마가복음 3:1-6절

설교자: 구성찬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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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50일째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장마로 휴포자가 되었다. 이것은 휴가를 포기한 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이 이러한 시기에 잘 맞는 말씀을 주셨다. 현대인이란 표현은 21세기와 연관된 것은 현대인은 부정적인 내용이 많다. 안식 없는 내용이며 어떤 시대보다 발전된 과학기술인데도 역시 세상에는 안식이 없음을 깨닫는다. 세상은 자족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하고 높은 것 등 탐욕을 목표로 삼기에 만족이란 없는 것이다.

 

※월터부르그만 –‘안식일이 저항이다’는 그 이유는, 이 안식일이 상품 생산과 소비가 우리 삶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강조해 주기 때문이다. 만족을 모르는 끝없는 추구.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창조 때부터 하나님은 안식에는 우리에게 쉼을 주시기를 원하셨다.

 

♣요약

오늘 본문은 마가복음 2:27절을 보면 – 안식일에 사람을 위해 있다고 하신다. 한 주의 모든 일을 그쳐야 하는 날이다. 한 주의 일을 마치고 쉬는 날이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날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창조 당시 안식도 바로 이 안식일과 연결되어 있다. 아담의 범죄이후 하나님과 관계가 깨지면서 이 안식이 깨졌다. 각자 바벨탑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인생을 허비하면서 계속해서 달린 것이다. 하나님은 관계 회복을 통해 십계명을 제정해서 보내셨다.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며 살도록 하신 것이다. 안식일은 회복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속에 가두어 버리고 만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과 같이 안식일을 잊고 사는 것이 아닌가 되돌아보아야 한다.

 

본문 3:1-2절을 보면 안식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한 사람은 손이 마른 자이고,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다. 여전히 안식일을 찾지 못하고 잃어버린 것이다. 모세를 통해 안식일을 잃어버린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제정한 안식일의 본질을 잊었다.

2장 23절-24잘을 보면 안식일에 예수님에 대해 반감을 가진 자들이 이삭을 자르고 안식일을 범하게 되는데, 문제는 여기서 일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 노동의 대가를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안식일에는 모두 금지였고 생명이 위급할 때만 예외였다.

 

※윌리암 바글레이 –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계속 말이 이어진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났어도 하나님의 임재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한 것이다. 안식을 왜곡한다. 그들이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 것임.

 

예수님은 사역이 바빠도 한 영혼에도 관심을 가지신다. 마른 손을 가진 자에게 한 영혼을 살리신다. 우리도 영원한 안식을 해결하지 못하는 자의 어려움을, 이 예배에도 안식하지 못하는 자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것이다. 손 마른 사람이 위급하지 않다고 바리새인의 생각이지만, 예수님은 알고서 손 마른 사람을 바라보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시선으로 우리도 볼 줄 알아야 한다.

 

1. 안식을 되찾는 출발은 예수님의 시선을 회복하는 것이다.

동시에 이웃의 회복도 나의 회복이다. 사랑의 시선을 회복할 때, 내게 먼저 안식이 찾아오며 가정과 교회까지 안식의 회복이 되는 것이다. 작은 사랑이 흘러서 여기에까지 온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수고하고 무거운 자에게 온다. 이 시선을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한다. 바리새인들이 자신을 죽이실 것도 아시고 계셨다. 그런데도 마른 손을 고치시는 것이다.

3절에 손 마른 남자, 그 사람에게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라 하신다. 에게이레, 소녀와 일어나라! 와 같은 것이다. 부활과 같은 것이다. 그의 생명을 살리고 안식을 되살리며 침체된 영혼을 일으키신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진정한 믿음으로 일으키는 것이다.

 

2. 안식을 되찾기 위해 지금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여기가 좋사오니가 아니라, 늘 제자리에 머물러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 쪽 손 마른 사람 같은 우리에게도 예수님은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일어나 가운데 서라고 하신다. 무거운 짐을 혼자 지고 힘들어 말고 예수님 앞에 서라고 하시며 초대하신다. 안식을 잃어버린 바리새인들에게도 안식을 주시려 하시는 것이다.

4절에 선과 악, 생명과 사망을 말씀하시며, 두 가지로 무엇이 옳은지를 그들에게 물으신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이다. 행동으로 선으로 행동으로 생명을 구하는 것이다. 진정한 본질을 되찾아 주시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침묵으로 무너지게 하신다. 하나님의 진노로 표현하시는 것이다. 창조주의 마음을 담긴 것이기에 창세기 2:3절을 보면,,, 안식일을 친히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신다. 안식일을 이렇게 주신 것이다. 안식일의 정신이 주일이다.

 

3. 안식을 되찾기 위해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본질을 일상에서 회복해야 한다.

5b절에 보면 손 마른 사람에게 말씀으로 회복시키신다.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내밀라고 했을 때 쉽게 내밀 수 있었을까? 매주 예배를 드리기도 하지만 달라지는 것이 없다. 늘 그 손 마른 사람처럼 그렇다. 믿으면서 다 나아가는데, 나만 안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회복이란 것을 느끼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예수님은 일어나라고 하신다. 부끄러운 손을 내밀라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민다. 바로 회복되었더라 한다. 이 시간 예수님께 손을 내 밀기를 바란다. 능력의 근원은 예수님 앞이다. 더 이상 손 마른 자가 아니다. 우리의 안식도 되찾을 수 있다. 이 예배의 자리에서 주님께 마른 손을 내어드릴 때, 회복이 경험할 것이다. 우리에게 안식을 빼앗아 가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의 시선이 주님을 바라보며 회복이 되어 이웃을 향해 가길 바란다. 이것이 매일과 주일이, 선과 생명을 구하는 길이다. 시리고 아픈 손을 오늘 예수님께 내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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