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도예배(주후 2020. 8. 12.)

제목: “되찾은 안식”

말씀: 마가복음 3:1-6절

설교자: 구성찬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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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50일째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장마로 휴포자가 되었다. 이것은 휴가를 포기한 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이 이러한 시기에 잘 맞는 말씀을 주셨다. 현대인이란 표현은 21세기와 연관된 것은 현대인은 부정적인 내용이 많다. 안식 없는 내용이며 어떤 시대보다 발전된 과학기술인데도 역시 세상에는 안식이 없음을 깨닫는다. 세상은 자족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하고 높은 것 등 탐욕을 목표로 삼기에 만족이란 없는 것이다.

 

※월터부르그만 –‘안식일이 저항이다’는 그 이유는, 이 안식일이 상품 생산과 소비가 우리 삶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강조해 주기 때문이다. 만족을 모르는 끝없는 추구.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창조 때부터 하나님은 안식에는 우리에게 쉼을 주시기를 원하셨다.

 

♣요약

오늘 본문은 마가복음 2:27절을 보면 – 안식일에 사람을 위해 있다고 하신다. 한 주의 모든 일을 그쳐야 하는 날이다. 한 주의 일을 마치고 쉬는 날이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날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창조 당시 안식도 바로 이 안식일과 연결되어 있다. 아담의 범죄이후 하나님과 관계가 깨지면서 이 안식이 깨졌다. 각자 바벨탑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인생을 허비하면서 계속해서 달린 것이다. 하나님은 관계 회복을 통해 십계명을 제정해서 보내셨다.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며 살도록 하신 것이다. 안식일은 회복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속에 가두어 버리고 만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과 같이 안식일을 잊고 사는 것이 아닌가 되돌아보아야 한다.

 

본문 3:1-2절을 보면 안식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한 사람은 손이 마른 자이고,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다. 여전히 안식일을 찾지 못하고 잃어버린 것이다. 모세를 통해 안식일을 잃어버린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제정한 안식일의 본질을 잊었다.

2장 23절-24잘을 보면 안식일에 예수님에 대해 반감을 가진 자들이 이삭을 자르고 안식일을 범하게 되는데, 문제는 여기서 일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 노동의 대가를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안식일에는 모두 금지였고 생명이 위급할 때만 예외였다.

 

※윌리암 바글레이 –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계속 말이 이어진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났어도 하나님의 임재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한 것이다. 안식을 왜곡한다. 그들이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 것임.

 

예수님은 사역이 바빠도 한 영혼에도 관심을 가지신다. 마른 손을 가진 자에게 한 영혼을 살리신다. 우리도 영원한 안식을 해결하지 못하는 자의 어려움을, 이 예배에도 안식하지 못하는 자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것이다. 손 마른 사람이 위급하지 않다고 바리새인의 생각이지만, 예수님은 알고서 손 마른 사람을 바라보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시선으로 우리도 볼 줄 알아야 한다.

 

1. 안식을 되찾는 출발은 예수님의 시선을 회복하는 것이다.

동시에 이웃의 회복도 나의 회복이다. 사랑의 시선을 회복할 때, 내게 먼저 안식이 찾아오며 가정과 교회까지 안식의 회복이 되는 것이다. 작은 사랑이 흘러서 여기에까지 온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수고하고 무거운 자에게 온다. 이 시선을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한다. 바리새인들이 자신을 죽이실 것도 아시고 계셨다. 그런데도 마른 손을 고치시는 것이다.

3절에 손 마른 남자, 그 사람에게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라 하신다. 에게이레, 소녀와 일어나라! 와 같은 것이다. 부활과 같은 것이다. 그의 생명을 살리고 안식을 되살리며 침체된 영혼을 일으키신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진정한 믿음으로 일으키는 것이다.

 

2. 안식을 되찾기 위해 지금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여기가 좋사오니가 아니라, 늘 제자리에 머물러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 쪽 손 마른 사람 같은 우리에게도 예수님은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일어나 가운데 서라고 하신다. 무거운 짐을 혼자 지고 힘들어 말고 예수님 앞에 서라고 하시며 초대하신다. 안식을 잃어버린 바리새인들에게도 안식을 주시려 하시는 것이다.

4절에 선과 악, 생명과 사망을 말씀하시며, 두 가지로 무엇이 옳은지를 그들에게 물으신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이다. 행동으로 선으로 행동으로 생명을 구하는 것이다. 진정한 본질을 되찾아 주시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침묵으로 무너지게 하신다. 하나님의 진노로 표현하시는 것이다. 창조주의 마음을 담긴 것이기에 창세기 2:3절을 보면,,, 안식일을 친히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신다. 안식일을 이렇게 주신 것이다. 안식일의 정신이 주일이다.

 

3. 안식을 되찾기 위해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본질을 일상에서 회복해야 한다.

5b절에 보면 손 마른 사람에게 말씀으로 회복시키신다.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내밀라고 했을 때 쉽게 내밀 수 있었을까? 매주 예배를 드리기도 하지만 달라지는 것이 없다. 늘 그 손 마른 사람처럼 그렇다. 믿으면서 다 나아가는데, 나만 안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회복이란 것을 느끼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예수님은 일어나라고 하신다. 부끄러운 손을 내밀라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민다. 바로 회복되었더라 한다. 이 시간 예수님께 손을 내 밀기를 바란다. 능력의 근원은 예수님 앞이다. 더 이상 손 마른 자가 아니다. 우리의 안식도 되찾을 수 있다. 이 예배의 자리에서 주님께 마른 손을 내어드릴 때, 회복이 경험할 것이다. 우리에게 안식을 빼앗아 가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의 시선이 주님을 바라보며 회복이 되어 이웃을 향해 가길 바란다. 이것이 매일과 주일이, 선과 생명을 구하는 길이다. 시리고 아픈 손을 오늘 예수님께 내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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