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주후 2020년 8월 16일)

제목: ''攝理의 神祕와 祝福''(광복절 기념 예배)

말씀: (창세기 45:1~5)

(기도: 구성찬 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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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요셉의 정체를 안 형들

형들을 만난 기쁨에 앞서 자신들이 저지른 악행으로 인해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래서 요셉이 이를 알고 안심시키기까지 그들은 참 기쁨을 잊고 있었다. 성도의 참 기쁨은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다. 요셉의 섭리 신앙 섭리(攝理)란 이 세상을 다스려 나가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간섭하시면서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요셉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음을 믿었다. 그가 하는 말에는 항상 ‘하나님’이 언급되고 있다. 이 단어는 그의 전 생애를 조명해 주는 가장 중요한 단어인 것이다. 그러니까 요셉과 형제들 사이에 화해와 용서가 이루어지는 내용이다. 요셉은 개인적인 불행을 탓하지 않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한다. 그는 자신이 형제들로부터 겪은 모든 고통이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계획의 일부였으며, 자신뿐 아니라 악을 저지른 형제들로 인해 유익함이 되었다고 말한다.

 

▷형들의 죄를 용서하는 요셉

요셉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섭리라는 관점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형들을 기꺼이 용서할 수 있었다. 요셉은 형들의 잘못된 가해 행위 자체만을 보고 형들을 미워하거나 복수심을 갖지는 않았다. 오히려 눈을 들어 그런 행위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살폈던 것이다. 다만 용서하기에 앞서 그 용서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했기에 그는 형들을 시험하며 회개의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 8.15 광복 특별 메시지...

교회는 주님의 교회이다. 그래서 교회는 주님이 지켜주실 것을 믿는다. 영적 기백을 가지고 기도한다. 우리가 건강할 때 평양에서 예배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기를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소원한다. 우리의 항상 소명과 비전을 가지고 광복 75주년을 맞이하여 섭리의 신비와 축복에 대해서 나누고자 한다.

개인이나 교회나, 어떤 공동체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섭리의 신비에 대해서 분명한 신앙 고백이 있고, 또 섭리의 신비에 대한 신학적 뿌리가 확고하면 그 인생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잡혀 사용될 것을 확신한다. 그것이 상록수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가?

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다.

➁ 우리 인간의 필요를 공급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통제하시는 ‘하나님의 질서와 은혜’이다. 하나님의 시각이 있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시각을 주시길 원한다.

인간의 시각이 아닌 하나님의 시각이 있다.

 

※ 인간의 시각이란 대부분 프로이드나 니체이며, 한국은 김*욱 같은 사람을 인간의 시각으로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는 것이 없기에 말씀을 통하여 조명하시고 계시하시며, 영감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시각이 없기에 육신의 시각만이 있는 것이다. 그 결과로 인간에게 상처주고, 대부분 똑똑하다고 하는 자들이다. 역사의 상선은 하나님의 시각이 없다. 다람쥐 쳇바퀴가 도는 듯 되었다. 우리는 이 코로나 19 속에서도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자체가 하나님의 시각에 대해서 나름 주님과의 문이 열려있는 것이며 온라인도 마찬가지이다. 방역지침을 잘 지키기를 바란다. 역사의 하선 밑에서 상처받지 말고 역사의 윗선인 하나님의 시각을 수직적으로 신본주의로 하나님 나라 섭리의 신비와 축복의 은혜를 누리기를 원한다. 역사, 정치이슈, 상상이 안 되는 일들이 대처할 수 없는 일이 많다. 남북문제도 그렇고, 시각이 다르니까 고착이며 편파적이라서 그렇다. 모두가 하나님의 시각이 되어야 한다. 1대 대통령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시각이 것이다.

 

▶왜 하나님의 시각, 섭리에 눈이 열려야 하는가?

본문은

요셉에 관한 인물이다.

요셉은 야곱의 노년에 가진 아들이며 91세에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채색 옷을 입고 왕자처럼 살았다.

12아들 가운에 편애하니 당연히 형들에게 시기를 받은 것이다. 그래서 구덩이에 버려진 것이며,,,그 밑바닥까지 간 것이다. 술 맡은 관원이 도와주었다. 애굽의 총리였다 이것이 인간의 시각이다. 인간의 시각으로 보면 요셉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은 다르다. 구덩이에서는 큰 고통이었지만 하나님의 시각은 생명의 구원의 시각인 것이다.

 

→창세기 37:24절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도망치려고 애를 썼다는 것이다. 얼마나 상처가 컸겠는가!!! 구덩이가 무덤과 같다. 죽는 것이었다. 엄청 잔인한 일이며 비참한 일이다.

 

▶하나님의 시각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인식만 분명하면 ’저주의 구덩이‘가 반드시 ’축복의 구덩이’가 된다. 하나님은 채색 옷을 벗겼다. 채색옷 ㅡ장자 ㆍ상속권을 가지는 것이다. 형들은 동생 요셉의 옷을 다 벗겨버렸다. 거기서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에 숙련된 대장장이와 같다. 스가랴서의 더러운 옷을 벗긴 것과 같다. 우리도 하나님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그것이 섭리의 장소이다. 구덩이에서 요셉은 기도했을 것이다. 모든 하나님의 섭리는 반드시 거치는 것이다. 옷은 하나님의 섭리시다. 비참하지만 역사의 신비의 구덩이가 축복의 구덩이다. 우리도 이 환경 속에서도 예배드리는 것이 좋다. 좀 부족해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충만한 것이다.

 

▶인간의 시각은

저주의 구덩이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시각이 있었기에 우리의 고난과 고통이 있었기에 그래서 이 민족이 존재하는 것이다. 섭리의 시각이 열리면 축복의 구덩이가 된다. -회개의 구덩이 깨어짐 ㆍ성숙의 구덩이다.

환경, 어려움, 상처, 코로나 사태, 우리의 안경을 깨끗이 렌즈를 씻어야 하듯이 도수의 초점을 재조정하여야 한다.
★ 섭리의 시각, 도수의 초점을 우리가 리셋하기를 바란다.

 

→창세기 45:1절 - “ 1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I. 인격의 용량을 키워야 한다.

남을 배려하는 인격이다. 형들의 잘못을 시종들이 알면 안되기에 다 내보냈다. 요셉은 섭리를 깨달은 자였다. 고난을 당하면서 섭리를 깨달았기에 자기 가족 살리는 자 민족을 살리는 자가 되어 지게 했다. 절망이 섭리가 되었다.

→창세기 39:5 -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요셉처럼 인격의 용량이 커지면 그 주위가 다 복을 받는 것이다. 축복(The blessing)이라는 찬송도 우리의 용량이 커지게 될 것이니 많이 부르기 바란다. 요셉은 하나님의 큰 섭리인 것은 흉년도 되게 하였다. 요셉은 원한을 품지 않고 은혜로 베풀었다. 어떤 왕궁도 중상묘략이 난무한 곳이 왕궁인데 오염되지 않고, 요셉은 용량이 커졌다. 우리도 용량이 커져서 민족도, 용량이 커져서 하나님 나라를 전체를 바라보는 자가 되어야 한다.

 

II. 인식의 용량을 키워야 한다.

→창세기 45: 2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궁중 전체에 들릴 정도로 요셉이 방성대곡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깨달은 것이며, 하나님 주권적으로 역사의 상선, 하나님 관계가 수직적으로 깨닫게 되어 인도와 섭리와 은혜의 통곡이 되었던 것이다. 총리가 우니 얼마나 무서웠겠나? 하나님의 감격하는 요셉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요셉처럼 살아야 한다. 요셉이 형들을 부르니,,, 페닉 상태인 형들이 되었을 것이다.

→창세기 45: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창세기 45: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자라.

→창세기 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고백 안에는 하나님의 그릇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요셉을 낮추어서 쓰신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의 시각이다. 이렇게 종지가 되지 말고 은혜의 저수지가 되어야 한다.

→창세기 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창세기 50:20 -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고 함부로 인간의 시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섭리의 시각으로 보라. 나를 무너뜨릴 사람은 나이다. 우리나라로서는 정말 많이도 얻어맞은 나라다. 어떤 경우도 승리로 바라보라. 그러면,, 그 자리가 축복이 될 것이다. 우리의 독소들을 75주년 다이아몬드 식이다

→스가랴 8:15 -이제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나를 무너뜨리는 것은 나밖에 없다. 그러니 영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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