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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2년 8월 14일)
제목: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신비"
말씀: 요엘 2:23-29
대표기도: 이다니엘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 영광찬양대

사회: 장광천 부목사님

설교자:(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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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 2:23-29
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
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24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25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26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27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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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담임 목사님
-광복 77주년 영광스런 주일이다. 77년 전에 우리 민족에게 신적 개입을 하게 해주셔서 민족의 역사 가운데 일본의 억압과 식민지에서 해방 시켜 주시고 그 해방의 종소리가 우리 마음속에 울려주심에 찬양 드린다.
 
제가 어릴 때 들은 이야기이다. 저희 할아버지는 해방될 때가 47세이셨다. 40년된 교회를 영수로도 섬기시고 교회 사찰로도 섬기셨는데 일본식민지 시대에 미국과 전쟁을 하면서 그 때 전쟁에서 한국으로부터 많은 것들을 수탈해 갔다. 대표적으로 쇠붙이들, 놋그릇, 소위 공출을 하게하고 나중에는 소나무에 있는 심지어 송진까지도 가져갔다. 그런데 교회 종을 공출로 가져오라고 했다. 저희 할아버지와 가족들이 교회 종을 숨기셨다. 숨겼다가 해방될 때에 숨겨놓은 종을 찾아와서 그 종을 치면서 “해방 되었네! 해방되었네! 삼천리 금수강산! 하나님이 주신 동산!”, 그렇게 하실 때 너무 기쁘셨다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이 광복주일을 말할 때에 광복 45년 이후에 태어난 분들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하는 이런 생각을 가질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한국교회는 이 광복주일이 굉장히 중요하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면서 유월절을 지킨 것처럼 한국교회 광복절 주일을 왜 이렇게 지키는가? 이것은 단순히 일본으로부터 그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우리는 원래 죄와 허물과 모든 억압과 압박과 사슬에서 모든 고통으로부터 우리는 부자유한 존재였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피의 복음으로 우리가 해방 받은 것이다. 이 해방의 은혜로 영적으로 자유하게 된 것이며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는 그 ‘Pass Over’의 유월절의 은혜를 지금도 그대로 그것을 기념하고 감사하고 축하하고 마치 이스라엘 민족 같이 해방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 사랑의 교회와 한국교회가 광복 77주년을 맞이하여 단순히 광복주일 기념이 아니고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는 이 기간 동안에 우리에게 짐 지워진 수많은 억압들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여러분들에게 한 분 한 분, 성령이 주시는 것임을 소망한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이른 비와 늦은 비 신비’인 것이다. 이른 비와 늦은 비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알고 있고 옛날에 우리 한국교회 부흥사 목사님들은 한국교회에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은혜를 물 붓듯 부어주시옵소서!’ 그런 기도도 많이 했다. 이 뜻이 무슨 의미인가? 오늘 이른 비와 늦은 비에 관해 제일 앞장에 여러분들이 요절처럼 나온다.
 
*요엘 2:23,
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 여러분, 이른 비와 늦은 비에 관해서 나의 소리가 되기를 바란다. 잘 알듯이 이스라엘 기후는 우리와 다르다. 이스라엘 기후로는 언제 파종을 한다. 가을에 파종된 씨앗들이 싹트기 위해서는 비가 내려애 파종이 되는 것이다. 파종뿐만이 아니라 그 씨앗이 결실이 되어가지고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봄에 봄비가 내려야지만 수확이 도고 추수열매가 맺어야 한다. 소위 추수할 때 내리는 비는 늦은 비라고 이야기 한다. 우리와는 좀 반대이다. 만약에 봄비가 내리지 않으며 거북이 등처럼 쩍쩍 그리고 이삭들이 말라비틀어져서 무언가를 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결실을 맺을 수가 없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봄비를 경험한 이 추수를 위한 비가 너무 소중했고, 맥추절 같은 경우 우리교회는 그렇지 않지만 한국교회는 맥추절 지키는 교회가 많이 있다.‘내 인생의 수확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내 인생의 씨앗뿐만이 아니라 그것이 아름다운 결실로 나타나게 하여 주십시오!’가 포함된 의미이다.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신비는 파종과 씨앗만이 잘 뿌려질 것이 아니라, 반드시 추수의 결실이 있기를 원한다. 내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답기를 원한다. 여기에 젊은 분들과 나이 드신 분들이 있지만 여러분들이 평생 기도할 제목은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인생이 피니쉬 웰(Finish Well), 끝이 아름답기를 원한다. 누구나 소원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끝이 아름다운 문제는 이 본문에 나오는 이 요엘의 본문과 함께 또 이 시대를 이끈 요하스의 왕의 시대를 연결해서 전체적으로 파악을 해보겠다.
 
I. 한국교회는 이른 비의 은혜를 받았다.
 
-우리는 이른 비의 은혜를 받았다. 성령님을 통해 우리가 주님으로 고백하고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그 일주일의 168시간 가운데 이 주일예배가 최고의 영적인 정서적인 크라이맥스가 되게 하여 이 시간에 앉아서 하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체가 이른 비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 동시에 우리 한국교회되 이른 비의 은혜를 받았다. 세계 교회의 다른 나라 선교 역사에 비교해서 우리나라는 말씀의 이른 비를 받았다.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말씀이 먼저 들어와 있었다. 얼마나 축복인지, 이 본당에서 전국에서 만 명의 학생들이 모여서 학부형과 모여서 전국 성경고사를 하는 것이다. 성경을 읽고 성경을 그대로 묵상하고 성경을 암송하고 하나님 앞에서 한국교회는 말씀의 이른 비를 받은 줄 믿는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기도의 이른비를가 받았다. 세계 교회 어디에도 없는 기도의 DNA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우리는 철야기도를 한다. 대한민국 교회는 새벽기도를 한다. 이른 비의 은혜를 받았다. 우리는 산상기도회까지 한다. 어릴 때, 그 불광동에서 산에 올라가면 산 기도를 많이 했다. 그냥 불빛을 보면서 그 당시에 삶에 여건 가운데에서 굉장히 열악하고 힘들었지만 모두 한국교회에 동일한 은혜를 부어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했다. 소원을 가지고 기도를 하고 삼각산, 하늘산, 수많은 산에 기도원마다, 무척산 등, 거기는 산 기도를 많이 하니까 돌이 반들반들 했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 기도하는 인걸이 없는 것이다. 오늘 오후 청계산에 올라가서 한국교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허락하시길 기도해야 한다. 선교의 파송이 세계 1위이다. 선교의 이른 비의 은혜를 받는 것이다. 세계선교의 마무리하는 늦은 비의 은혜도 받기를 소원한다. 한국교회는 일제치하, 육이오 전쟁을 거치면서 수많은 순교의 흘린 피들이 순교의 이른 비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은 단순히 한 때 이른 비의 은혜를 받은 것으로 끝나면 안 되고, 오늘 신명기를 보자.
 
*신명기 11:14,
14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귀한가!!! 욥기도 그랬다.
 
*욥기 29:23,
23 그들은 비를 기다리듯 나를 기다렸으며 봄비를 맞이하듯 입을 벌렸느니라.
-봄비는 늦은 비이다. 늦은 비를 맞이하듯이 하!!!~ 하나님께 봄비의 은혜를 주시길 기도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이른 비의 은혜를 맞게 하심을 찬양하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두 번째도 중요하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늦은 비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II. 한국교회는 늦은 비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의 팬데믹 가운데서 또 이 코로나의 강을 건너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과 크리스찬 가운대서도 교회의 패배주의, 한국교회의 부흥은 끝났다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아니다. 늦은 비를 맞으면 한국교회는 다시 한 번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줄로 확신한다. 주님은 변함이 없다. 교회의 능력과 영광은 변함이 없다. 우리가 부족해서 그렇다. 우리가 준비가 안 되어서 그렇다. 하나님의 영광과 여호와의 손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함은 없다. 하나님의 손이 짧지 않다. 늦은 비의 은혜가 있으면 하나님의 신적개입을 우리가 경험할 수 있따. 폐색 짙은 인생이라 할지라도 오늘 다시 늦은 비의 은혜를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생의 열매, 인생의 추수, 인생의 수확과 인생의 결실을 허락해 주시길 바란다. 그것을 위하여 오늘 요엘서 본문의 사건과 요하스 왕의 사건을 통해 1반면(反面敎師)를 삼아야 한다. 끝이 안 좋은 사람도 간혹 있다. 우리는 한 결 같이 사모해야 한다. 우리 교회 모두 뿐만이 아니라, 오늘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 마지막이 복되길 바란다. 그게 바로 늦은 비의 축복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른 비의 은혜로 왔지만 늦은 비의 축복도 받아야 한다. 늦은 비의 축복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기가 막힌 일이다. 우리는 끝까지 늦은 비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무슨 뜻인가?
 
오늘 요엘서의 요엘 선지자가 감당하는 그 시기는 요하스 라는 남 왕국의 왕이 통치하는 시기였다. 이 요하스라는 남 왕국시대에 북쪽 왕들은 다 악한 왕들이었고 이스라엘 왕들 중 남쪽 왕들이 좀 착했다. 그리고 요하라는 왕은 7세 등극 후 40년을 통치하다가 죽었다. 이 요하스의 증조할아버지가 여호사밧 왕이었다.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의 특별한 이른 비와 은혜를 받아서 그가 전쟁을 할 때에 찬양대를 먼저 보내고 찬양으로 승리한 아주 멋진 증조할아버지였다. 여호사밧도 늦은 비의 은혜를 받아야만 했는데 말년에 좀 부족했다. 남 왕국과 북쪽 이스라엘과의 사이에서 그 당시 북쪽 이스라엘 왕이 누구냐면, 아합 왕이었다. 여러분 아합은 좋은 왕인가? 못 된 왕이었다. 못된 이유는 아합 왕의 아내가 이세벨과 아주 그 이방 신상들을 가져와서 이스라엘을 하나님 섬긴 대로 안 하고 오염을 시켜 놓은 것이다. 그리고 이세벨이 딸이 있는데 딸이 아달랴라는 딸이었다. 여호사밧 왕이 자기 아들 여호람이라는 아들과 함께 아합왕의 딸 아달랴를 결혼시킨다. 결혼 후에 여호람이 죽고 난 다음에 아달랴가 이세벨처럼 자기 엄마 못된 것을 배워서 남쪽의 왕족에게 이방 신들을 가지고 오염을 시킨 것이다. 여호람이 죽고난 다음에 아달랴의 아들이다. 아하시야가 일 년만에 죽었다. 죽었는데, 이제 아달랴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기가 여왕이 되고 싶었다. 손자들을 모조리 다 죽인다. 그런데 여호야다라는 제사장이 그 손자 중의 한 명을 구해내서 성전에서 키웠다. 7세에 쿠테타를 일으켜서 집중해서 들어라. 모든 사람은 이 출생의 비밀을 이야기 하면 다 재미있다. 아주 독특하다. 그래서 아달야의 악행이 얼마나 웃기냐면 그 아들이 죽고 아하시야가 죽자 왕의 후손이 없어야 하니까 그 학상 현장에서 갓난 아기 왕자 한 명이 고모의 도움으로 구출되었는데 그 왕자가 바로 요하스였다. 그 고모가 누구냐면, 당시에 대제사장의 아내였던 여호야다의 아내였다. 선지자를 감당했는데 대 제사장인 여호야다가 요하스를 숨겨서 7세가 될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쿠테타를 일으켜서 아달랴의 여왕을 처리해서 그 다음에는 요하스가 왕 위에 앉았다. 그리고나서 고모부 대제사장인 여호야다의 멘토로 우상 숭배를 척결하고 할머니인 아달랴가 잘못했던 것들을 다 파괴된 성전을 수리하고 종교개혁을 일으켰다. 우상 숭배를 정상으로 되돌린 역할을 한 것이다. 소위 이른비의 은혜를 받았다. 그런데 대 제사장 여호야다가 나이가 많아서 죽게 되자 하나님을 떠나고 우상 숭배를 하고 심지어 자신의 생명의 아들이었던 여호야다의 아들 사가랴 선지자를 죽여 버렸다. 이 이야기는 너무나 엄청나기 때문에 마태복음 5장 35절에 사가랴가 성전에서 흘린 피가 있다고 했다. 여러분 이 내용을 잘 모른 분들이 많을 것이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한다. 이것이 열왕기하 거의 일곱 장에 걸쳐서 나온다. 구약의 929장 가운데서 일곱 장 정도가 이것으로 나온다는 것은 중요한 이야기이다.
 
그러면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요엘서와 요하스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예를 들어서 요하스가 이른 비의 은혜를 받아서 개혁을 하고 다른 것은 좋은데 마지막 늦은 비의 은혜를 받아야 하는데 요하스는 끝이 안 좋게 열매가 없는 인생이 된 것이다. 나중에 요하스는 자기 신복들의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나중에 유다왕실의 묘실에 같이 들어가지도 못했다. 쉽게 이야기 하면 늦은 비의 은혜를 못 받은 것이다. 요하스는 이른 비의 은혜를 받아 파종도 하고 꽃도 피웠는데 늦은 비의 은혜를 못 받아 영적으로 열매가 없는 인생의 수확이 없었다. 나중에 이 내용의 28절 29절에 ‘남종과 여종에게 은혜를 부어 주리니’ 라고 나온다.
 
*요엘 2:28-29,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이 내용은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의 늦은 비가 내린 다음에 첫 번째 설교에서 이 본문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아주 중요하다. 이 광복절을 맞이해서 우리도 이렇게 사모하는 본당에 나왔으니 하나님께서 늦은 비의 은혜를 회복시켜 주시길 소망한다. 여러분, 나를 울려주는 봄비, 이런 가사도 있지만 이것이 아닌 나를 통하여 인생의 추수와 수확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 늦은 비의 은혜를 주시길 소원한다. 이렇게 신령한 은혜가 있기를 소원해야 한다. 남북통일도 그렇다. 이런 말씀이 이 요절에서 전체의 배경과 흐름이다. 나중에 오순절 성령강림시에 베드로가 첫 설교를 할 때, 감동과 감흥을 받아가지고 사도행전에 나와 있다.
 
*사도행전 2:16~18,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우리가 늦은 비의 은혜를 충만하기를 소원한다. 나는 늦은 비의 은혜가 없다면 늦은 비의 은혜가 필요한 증거를 드리겠다. 마지막 절에 보면 늙은이라는 말이 나오듯이 .늘 그런 사람들은 꿈을 꾼다는 것이다. 늘 하나님이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막강한 하나님의 나라의 꿈을 꾸게 해주실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늦은 비의 은혜가 필요한 이유이다. 오늘의 역사와 대한민국의 역사를 보라. 우리는 대한민국을 보면서 요하스의 출생의 비밀과 아달랴의 이야기를 했다. 사실 북한 김일성 왕조는 이것보다 더했으면 더했다. 지금 현재 정치적 환경이라든지를 보라.
 
*요엘 1:4,
4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다 메뚜기 종류이다. 1대가 와서 다 먹고 가면 또다시 2대가 와서 확 먹고 간다. 3대가 확 쓸어간다. 그야말로 황폐하기 짝이 없다. 인생의 메뚜기 황충, 느치가 다 쓸어간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이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늦은 비의 은혜로 해결할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이 거북이 등판처럼 난관들로 가득 차 있다고 할지라도 거기에 하나님의 늦은 비의 은혜가 닿기만 하면 깨어진 조각들조차도 아름다운 모자이크 벽화로 만들어주시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남북문제는 요하스가 겪은 문제보다 더 복잡하다. 이거보다 더하면 더한다. 대한민국의 역사의 질곡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역사의 질곡 가운데서도 우리가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른 비의 은혜를 주셨다면, 이제는 늦은 비의 은혜를 통하여 통일을 감당하게 하여 주시길 간구해야 한다. 광복의 이른 비가 통일의 늦은 비를 이루게 되게 연결되길 소원해야 한다. 이런 기도제목을 지금까지 안했지만 이제 사랑의교회와 한국교회는 광복의 은혜와 함께 하나님 아버지, 통일의 늦은 비의 은혜를 주시길 기도하자. 내 인생의 길이 쩍쩍 갈라지고 말라 비틀어져도 하나님께 늦은 비의 은혜를 주시길 소원해 보자. 우리는 늦은 비의 은혜가 더 필요하다.
 
III. 늦은 비의 은혜는 남종과 여종이 성령의 기름 부음을 통해 받는 것이다.
-늦은 비는 구역시대는 특별한 사람들에게 주지만, 신약에는 특정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요엘 2:28~29,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신약에는 늦은 비의 은혜를 만민에게 부어 주신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허락해 주시는 늦은 비의 보편적 은혜이다. 우리가 순전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늦은 비의 은혜를 모두에게 주신다. 이 자리에서 영적으로 기도의 제목대로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부어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으면 R.T캔달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우리 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돕는 선물이다. -R.T캔달-
-이 늦은 비의 은혜로 성령의 단비가 있을 때 우리는 무슨 축복이 있는가? 하나님의 일이 쉽게 되도록 선물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영적으로 신이 나는 것이다. 거룩한 흥이 생기는 것이다. 성령이 계시면 내 속에서 누군가가 움직이는 것을 나를 밀어주고 당겨주는 것이다. 인격적 사역이다. 그럴 때 불가능도 해결되고 진짜 사모해야 할 것은 늦은 비의 은혜를 주시길 사모해야 한다.
 
*누가복음 4:18,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늦은 비의 은혜를 통해서 여러분의 결실과 수확이 확실해지기를 소망한다.
 
▷적용.
늦은 비의 은혜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요엘 2:23,
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스가랴에 보면 내가 너희들을 내어주는 일이 없음 같이 될 것이라고 했다. 번성하던 것 같이 번성할 것이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이 번성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스가랴 10:8,
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요엘 2:24~27,
24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26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27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주위의 이방 사람들이 요하스 시대에 얼마나 남 왕국을 조롱과 수치를 주었는지 모른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왜 메뚜기 떼가 와가지고 왜 다 자연을 쓸어버리고 저주를 받느냐고 수치를 주는데 그런 수치를 받지 않게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요엘 2:15,16,17
15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16 백성을 모아 그 모임을 거룩하게 하고 장로들을 모으며 어린이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신방에서 나오게 하고.
17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
-늦은 비의 은혜가 그만큼 소중하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은혜를 사모하면 가정을 불쌍히 여겨 주신다. 이렇게 겸손하게 앉아 있지만 누구도 문제는 있다. 그러니 하나님께 의지하고 맡기는 것이다. 다 나와서 장로, 어린아이 신랑 신부도 다 나와서 예배하면 그 때에 여호와께서 사랑하셔서 백성을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역사하신다.
 
*요엘2:18,
18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의 땅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
-시작할 때, 우리의 마음에 해방의 종소리가 울리기를 원했다. 오늘 늦은 비의 축복으로 치유와 회복과 평화의 종소리가 여러분의 마음속에 울리기를 바란다. 하늘 문이 열리기를 소원하는 찬양을 부르자. 순전하게 불러보자. 인생들마다 늦은 비의 은혜를 받아서 해결되길 소원하자.
 
♬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빗줄기 이 땅 가득 내리도록, 마침내 주 오셔서 의의 빗줄기 우리 위에 부으시도록... !!~~~~♪ 우리 개인의 기도를 부어주실 것이다. 이 민족에게 늦은 비의 은혜를 주시길 소원하자.
 
♣요약
하나님께서 이 민족에게 이른 비의 은혜와 축복을 내려주셨으니 감사해야 하며, 늦은 비의 은혜(Finish well)로 나중이 더욱 아름다운 늦은 비의 은혜로 평생 부어주시기를 소원하며 광복의 응답의 종소리가 강력하게 울려 퍼져서 이방의 복음과 통일의 늦은 비를 내려주시길 확신하며 기도해야 한다. 오늘 청계산 산상 기도회에서도 모두 민족과 나라와 개인과 교회를 위해서 순전하고 정결한 기도를 올려드려야 한다.
 
-요엘이 제시한 구원의 마지막 가능성은 범죄에 대한 비판, 후회, 진정한 마음의 돌이킴, 깊은 참회였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죄를 용서하시고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는 복을 주신다. 그래야 하나님의 성령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성령께서는 특정한 때에, 특정한 사람에게만 임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임하신다. 이 예언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으로 성취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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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2년 8월 13일)

제목: "산 위의 동네"
말씀: 마태복음 5:14-15
찬양인도: 쉐키나(이원준 부목사님)
대표기도: 유설 권사님(4권사회장)
말씀읽기: 김용만 (은퇴안수집사님 1945년생),
할아버지와 외손녀- 이은서(다윗 중등부 -외손녀)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말씀 마무리, 암송(오정현 담임 목사님)

설교자: 박명수 목사님-초빙(서울신대 명예교수,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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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14-15,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박명수 목사님 초빙(서울신대 명예교수,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장)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대로 내일 모레가 광복절이다. 이 광복절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1945년 8월 15일 일제에서 해방된 날이다. 우리는 얼마나 일제 36년 동안 고생을 했는가! 해방의 날, 그날은 모두에게 감격의 날이었다. 다른 하나는 1948년 8월 15일이다. 이날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 된 날이다. 정부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나라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광복절은 한 편으로는 일본에서 해방되었다는 것과 또 하나는 새로운 나라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해방과 건국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저는 오늘 대한민국의 해방과 건국을 4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겠다. 1943년 11월에 발표된 카이로 선언이다. 우리가 독립을 했지만은 국제사회가 여기에 대해서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1943년 11월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장개석과 영국의 처칠과 함께 한반도를 자유롭고 독립된 나라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우리가 해방을 맞이하는 오늘 이 광복절을 앞두고 우리는
 
첫 번째로 카이로 선언의 중요성을 생각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1945년 8월 15일에 만들어진 3.8선 문제이다. 1945년 8월 15일은 일본에서 해방된 날이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 민족이 둘로 갈라진 민족 분단의 날이기도 하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라고 하는 것, 우리 한국 사람들은 누구나 다 깊게 생각해야 될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세 번째로는 1945년 12월에 발표된 삼상회의이다. 이 모스크바 삼상 회의는 국제사회가 어떻게 대한민국에, 한국에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를 결정한 중요한 한 의미이다. 반도의 운명을 결정한 중요한 회의이다. 이것을 잘 알아야 오늘의 대한민국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로는 1947년 11월 남북한 총선거실시에 대한 결의이다. 자세하게 말씀하자면 1945년 모스크바에서 결정한 결정이 제대로 된 결정이 아니었다. 잘못된 결정이다. 그것을 무효로 하고 다시 유인이 1947년에 세계 모든 나라들이 모여서 한국은 이렇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 결정에 의해서 오늘날 대한민국은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 보통 교회에서 이런 이야기 하기는 매우 어려운 이야기이다. 그러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상당히 복잡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면 다 알아야 하고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면, 이 대한민국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복잡하고 어려워도 우리가 공부를 해야 우리가 기도할 수 있고, 대한민국의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나아갈 수가 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이 복잡한 이야기를 한국역사에서 가장 복잡한 시기가 이 시기이다. 어떻게 우리나라를 잘 설명할까를 하나님께 기도 많이 했다. “하나님, 쉽게 잘 설명할 수 있게 잘 도와주세요.”라고 그러나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여러분들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이해를 잘 하실 분들이라 여겨진다. 이해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지금 말씀을 드리겠다. 한 가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지난 10년 동안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해방공간은 좌익들이 연구를 많이 한다. 그 사람들이 무얼 가지고 연구하느냐면 공산당 문서를 가지고 연구한다. 그러기 때문에 해방이후 역사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제가 공산당 문서도 보았지만, 동시에 미국 문서도 보고, 한국 여러 문서도 보았다. 외교 문서도 보았다. 그러면서 제 마음속에 지금 대한민국에 역사는 잘못되었다는 그런 확신을 갖게 되었다.
 
여기에 사랑의교회가 도움을 주었다. 사실 오늘 이야기 할 한 부분은 특별히 카이로 선언과 관련된 부분은 사랑의교회가 1919년, 이제 3.1운동을 기념해서 학자들에게 학술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후원을 해주었다. 제가 그 때에 연구했다. 사실 연구를 했지만 책속에 있어서 아무도 보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저는 제 나름대로 구한 연구를 했다고는 하지만 사실 관심 갖고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후원해서 여러분들의 후원해서 연구한 것이니까 이 기회를 통해서 그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서 제 이야기를 하겠다.
 
먼저 1947년 12월 7일 태평양 전쟁을 일어나자 미국은 큰 충격에 빠졌다. 이 조그마한 섬나라 일본이 미국을 향해서 도전하다니, 미국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미국에 있는 우리 한인들은 기뻤다. “아!! 이제야 됐다. 미국과 일본이 전쟁을 했다면, 이제 결론은 분명하다. 저 섬나라 일본이 미국을 이길 수 없다. 미국이 이기게 되면 일본은 항복하게 되고 그러면 우리는 해방될 것이다.”라고 했다. 1941년 11월에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는데 그 다음에 1942년 3월 1일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고 제일 처음 벌어진 모임이 미국교포들의 3.1절은 축제였다.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렸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셨다.”고 말했다. 그 때 미국에 있는 우리 한인들, 이승만 박사를 중심으로 해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모여서 이제 미국 정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정식 정부로 승인해 달라고 하는 것을 요청할 것을 결의했다. 왜 이것이 중요한 것인가? 대한민국 정부가 임시정부가 승인되어야 전쟁이 끝났을 때, 우리 대한민국의 승전국의 일환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한반도는 남의 나라에서 지배를 받지 아니하고 우리가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이승만 박사와 미국에 있는 우리 교포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 국무성이 여기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미국 국무성에는 사실 소련과 밀접한 그러한 스파이가 있었다. 그래서 한반도가 민주주의로 독립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민주주의 지향하는 대한민국이 임시정부를 우리가 인정해 달라고 했을 때, 미국 국무성은 그것을 반대했던 것이다. 이승만 박사가 누구인가? 이런 것을 가지고 낙심할 사람이 아니다. 미국 국무성이 반대하면 다른 쪽으로 가서 이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것이었고, 그래서 미국 의회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의인은 무엇으로 움직일 수 있는가? 미국에서 로비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돈이 있어야 되고, 두 번째는 표가 있어야 된다. 그런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돈도 없고 표도 없다. 이승만 박사가 가장 생각해보니까 그래도 한국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국에서 선교했던 선교사들이다. 그중에서도 에비슨 같은 선교사들은 대한민국을 목숨처럼 사랑했다. 그래서 상의했다. 지금 임시정부를 인정받게 해야 되는데 국무성이 반대하니 이제 의회에 이것을 청원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Korean friend of korea. 한국말로는 ‘기독교인친회’ 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여기에 중심 멤버들은 한국에서 선교했던 선교사들이다. 이승만 박사는 이 선교사들과 함께 청원 작업을 시작했다. 그래서 많은 선교사들을 동원했다. 그 선교사들에게 자기들이 속한 교회에 가서 이야길 하라고 했다. 교회의 여러 단체들도 동원했다. 그래서 그 단체들로 하여금 자기 지역의 상원, 하원의원들에게 청원서를 쓰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미국 전역이 이 청원서 제출 운동이 벌어졌다. 미국 의회 의원들이 상하의원들이 이것을 보니까 이것이 일리가 있는 것이다. 이 청원서 내용에는 무엇이 담겨져 있는지 아는가? 미국이 ‘한국 임시정부’를 인정하고 그리고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무기를 대주면 세상에서 일본 사람들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일본 사람드리고 일본 사람 같이 말을 하는 사람이 한국 사람이고 일본 사람들과 섞여 있으면 누가 일본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제일 잘 싸울 수 있다고 우리에게 무기만 달라고 했다. 이렇게 된 것이다. 말이 되는가? 안 되는가? 지금 미국이 일본과 전쟁하는 것이 힘든 전쟁이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도와준다니 이게 얼마나 좋은 말인가? 왜 이것을 미국 국무성을 반대하는가? 그래서 미국 의원들이 여기에 동의를 했다. 그리고 상원에서는 상원 나름대로 하원에서는 하원 나름대로, 결의안을 만들었다. 그리고 제출했다. 또 미국의 의원들이 의회는 이런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이국무성이 물어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제출해 놓고 물어보았다. 미국 국무성의 대답은 이렇다. “당신들은 정신없는 사람들이고, 한국 사람들이 도와주어 봐야 얼마나 도와주겠으며, 지금 일본을 이기려면 소련이 미국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대답한다. 당시 소련은 독일과 전쟁을 하고 있었고 일본과는 전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전쟁에 참여시켜야 미국이 이길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것보다 소련의 도움을 더 받는 것이 중요하다. 임시정부의회는 김구와 이승만이 있고 소련은 김구와 이승만을 싫어하는데, 임시정부를 인정한다는 것은 미국의 국무성 정책에 어긋나는 일이요, 그 결의안을 통과시키면 안 됩니다.” 라고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래서 1943년 봄 내내 청원서를 제출했는데 그것이 국회에서 그냥 잠자고 있었다. 보류되어 있었다. 지금도 현재까지 보류 상태이다. 그런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많이 낙심했다. 이것이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이 청원서는 국회의원들만 읽은 것이 아니라, 국무성의 직원들도 읽었다. 국회에 오면 그것을 다시 국무성에 보내기 때문에 국무성 사람들도 한국을 왜 독립시켜야 하는지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독립을 간절히 원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1943년 봄, 여름에 청원서를 제출했는데 1943년 11월에 카이로 선언이 나왔다. 적당한 과정을 거쳐서 한국은 자유롭고 독립된 나라가 되어야 된다고 하는 매우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우리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여러분들 1919년 3월 1일 우린 뭐라고 외쳤는가? 우리는 ‘독립국임과 자주민’임을 선언하다고 했다. 독립과 자유, 우리가 목 놓아 외쳤던 중요한 단어이다. 이 단어가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1919년 이 단어를 쳤지만 아무도 이 단어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1943년 카이로 선언에 독립과 자유를 바꾸어서 자유와 독립이라고 해서 국제사회에 약속한 것이다. 여러분들, 1919년 우리가 외쳤지만 그래서 아무도 우리의 이 짐을 듣지 않는 줄 알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에게 알려주셨고, 루즈벨트는 이 카이로 선언에 가장 중요한 단어를 넣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해방은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중요한 문제는 3.8선 문제이다. 1945년 4월에 루즈벨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 다음에 중요한 문제는 3.8선의 문제이다. 1945년 4월에 루즈벨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투르만이 대통령이 되었다. 루즈벨트와 투르만은 다른 사람이다. 투르만은 공산주의와도 협력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새로 대통령이 된 투르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공산주의는 협력하는 척 하지만 나중에는 뒤통수를 치고 자기가 차지할 것을 다 차지하는 그런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했다. 소련을 대일 년에 끌어들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소련은 자기 몫을 달라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만주도 소련에게 넘겨주어야 하고 한반도도 소련에게 넘겨주어야 될 일이 올지 모른다고 한다면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 소련이 참전하기 전쟁을 끝내버려야 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럴 때 마침 1945년 7월에 투르만이 독일 포츠담에서 회의를 하고 있을 때, 미국에서 전보가 왔다. 우리가 원자 폭탄을 완성했다. 투르만은 그 다음부터 그 포츠담은 하는가, 마는가에 별 관심이 없었다.
 
자기 마음속에는 빨리 전쟁을 끝내버리겠다. 소련과 지루한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8월 6일 날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터트린다. 그리고 8월 9일 날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또 터트린 것이다. 원자 폭탄 한 방 맞고 안 되겠다 싶으면 항복했으면 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러니까 3일 후에 다시 원자폭탄을 또 터트린 것이다. 그런데 9일 날 일이 벌어졌다. 소련이 일본과 전쟁하겠다고 전생을 선포한 것이다. 그 다음 날 8월 10일 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일본이 국제사회에 항복하겠다고 하는 의사를 전했다. 소련은 단 하루 전쟁을 선포하고 하루 전쟁을 한 것이다. 그리고 자기의 몫을 요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일역서라는 것은 매우 묘하고 복잡하다. 매우 복잡한 것이다. 투르만은 소련이 찬전하기 전에 전쟁을 끝내버리려고 했지만 소련은 참전하고 만 것이다. 계산이 틀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제 지도를 놓고 보았다. 큰일 났다. 왜냐면 그 당시에 소련군, 극동군사령부가 어디인지 아는가? 바로 함경북도 두만강 넘어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것이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이 북한으로 오는 것은 금방 오는 것이다. 8월 9일 전쟁을 선포하고 8월 10일은 이미 이 두만강을 넘어서 함경북도에 진군하고 있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미국 국무성에 있는 고급 장교들과 국무성 고위 관료들이 모여서 회의하기 시작했다. 이때 미국은 어디에 와 있는 줄 아는가? 미국 군대는 오끼나와에 와 있었다. 오끼나와에서 한국까지 오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블라디보스톡에서 한반도를 점령하는 데는 기차타고 오면 금방 내려 올 수 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사실 소련이 그렇게 급하게 내려올 수 없었다. 미국이 잘못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련이 한반도 전체를 다 장악을 하면 그러면 소련 공산주의에게 넘겨주어야 되는 것이 아니냐? 그래서 3.8선을 그은 것이다. 한반도는 일본군이 있는데, 무장해제를 위해서 3.8선 이북은 일본군이 무장해제를 하고, 3.8선 이남은 미군이 좀 늦게 와서 무장해제를 한다. 그래서 3.8선 이남으로는 내려오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다행히 소련이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1945년 8월 15일 이제 일본은 정식으로 종전을 했다. 이때 미국의 투르만 대통령은 매우 고민이 컸다.
 
투르만 대통령은 친구가 있었다. ‘프레디헤리스’ 라고 하는 미국의 감리교회 목사님이시다. 이 감리교회에 출석자 중에 바로 이승만 박사가 출석하고 있었다. 이승만 박사는 오래전에 이 헤리스에게 편지를 했다. 이 문제를 바로 생각을 해야 된다. 만일에 한반도에 소련이 들어와서 한반도를 공산화 시킨다면 이것은 큰 문제이다. 당신이 투르만을 설득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래서 헤리스가 투르만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는 자유를 위해서 2차 대전을 싸웠다.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사위가 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전쟁에 나가서 죽었다. 미국이 많은 희생을 치른 것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 희생을 치른 것인데 한반도를 소련에게 넘겨준다는 것은 우리 미국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이 문제를 잘 생각해서 처리하세요. 라고 편지만 보낸 것이 아니고 그 바쁜 헤리슨이 자기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그리고 약속했다. 내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겠다. 고 대답했다 그런데 한반도가 둘로 나누어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1945년 8월 25일경 미국 국무성은 맥아더와 하지, 맥아더는 극동군 사령관이었고, 하지는 주한미군 사령관이었다. 전보를 쳤다. 명령을 내렸다. 한반도에 도착하는 즉시, 지금 3.8선으로 북한군은 소련으로 남한에는 미군이 와 있지만 한반도에 도착하는 즉시, 일일이 소련군에게 가서 북한에 일본군 무장해제를 마친 즉시 북한과 남한을 하나이 중앙정부를 만들어라. 여러분들 지금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 이 문서는 미국 외교문서에 나온다. 어떤 학자도 이 문서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미국이 1945년 전쟁이 끝난 다음에 한국 문제에 대해서 내린 첫 번째 결정은 “한반도를 분단시키지 말고 일본군 무장해제를 시킨 다음에 소련과 협력을 해서 하나의 중앙정부를 만들어라.” 라고 이렇게 명령을 했다. 이것이 미국 대통령이 국무장관을 통해서 주한미군 사령관 하지에게 내린 명령이다. 하지가 한반도에 와서 이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 북한에 연락을 했다. 우리 만나자, 만나서 이 문제를 이야기 하자, 북한이 결정할 수 없다.
 
그래서 스탈린에게 연락을 했다. 스탈린이 9월 20일에 답장을 했다. 답장에는 “또 정신없는 행동하지 말라. 북한은 우리가 차지한 땅이다. 북한을 먼저 단독으로 공산주의 정권을 세워라.” 라고 지시를 내렸다. 이것이 9월 20일 지시이다. 이 문서를 오랫동안 비밀로 감추어져 있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야 이 이 문서가 고개 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북한에 단독정부를 먼저 세운 것은 소련 스탈린이 지시이다. 북한이 먼저 단독정부를 만든 것이다. 남한이 먼저 만든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미국의 대통령 투르만은 이야기를 했다. 미국의 대통령은 이제 이 한반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가에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래서 서로 협상을 하게 되는데 미국은 먼저 3.8선을 철폐시키고, 하나인 중앙정부를 만들자고 이야기 했고, 소련은 그럴 수 없고 북한은 이미 우리가 차지한 땅이니 북한에 먼저 우리 나름대로 정부를 만들겠다고 주장했다. 결국 소련이 양보하겠는가? 이미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한 번 잘하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이렇게 생각하는데, 만일 3.8선을 철폐 시키면 자유의 물결이 오게 되고 북한에 들어오게 되고 북한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호응하게 되는데 그러면 공산주의 정권을 못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서 만들어 놓은 3.8선.을 소련은 국경선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3.8선으로 이북에 있는 사람들을 내려오지 못하게 하고 이남에 있는 사람들은 올라가지 못하게 되었다. 이 3.8선.이 만들어짐으로 인해서 제일 많이 고난을 받은 사람들이 누구인가? 북한에 있는 우리 기독교인들이다. 한경직 목사님이 1945년 9월 말에 맥아더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일본이 망하면 자유가 올 줄 알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소련군이 와서 우리의 자유는 사라지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는 박탈되고 있습니다.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라고 호소하는 호소문을 보냈다. 3.8선을 가장 강력하게 요구했던 것은 바로 우리 기독교인들이다. 그리고 이승만 박사이다. 이승만 박사가 1945년에 우리나라에 와서 보니 한반도가 둘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다. 이승만 박사는 “한반도가 한 몸이 둘로 나누어 놓고 살아가라고 하니 살아갈 수 있는 것이냐? 이 문제를 누가 일으킨 것인가? 국제 사회가 일으켰다. 국제사회가 이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된다.” 라고 하니, 미국 사람들은 듣고 매우 가슴아파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말씀 드리자면 3.8선은 일시적으로 일본군 무장해제를 하기 위해서 군사 작전 선으로 만든 것이다. 이것을 남북이 왕래를 못하고 분단국가로 만든 출발은 스탈린의 명령에 의한 공산주의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세 번째는 모스크바 회담에 관한 문제이다. -한국이 일본에서 해방된 다음에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을 결정한 것이 모스크바 3상 회의이다. 이 회의는 몇 가지 중요한 결정을 했다. 첫 번째는 한반도에 민주정부를 만들어야 된다. 그럴듯한 이야기이다. 듣기는 매우 좋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어떤 민주정부인가의 말이 없다. 하나는 자유민주주의가 있고 하나는 인민민주주의가 있다. 여러분들 놀라지 말라. 북한의 공식적인 이름이 무엇인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다. 북한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인민민주주의를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정부를 만든다는 것이 자유민주주인지, 인민민주주의인지 알 수가 없다. 모호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는 이 회의는 만주주의 정부를 만드는데 누가 만드느냐? 미국과 소련이 만든다. 이렇게 결정했다. 원래 미국의 계획은 미국, 소련, 중국, 영국 이렇게 네 나라가 힘을 합하여 만들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1945년 10월에 소련에 갔던 그 미국의 외교 담당자들이 정신이 어떻게 나갔는지! 이것을 잊어버리고 소련이 원하는 대로 그냥 이것을 들어주고 말았다.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설에 의하면 전날 술을 몽땅 마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에 이런 결정을 했다고 하는 것이다. 나중에 이것을 이승만 박사는 알고 노발대발 했다. 네 나라가 함께 모이면 미국 영국 중국 미국편이다. 소련은 4분의 1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미국이 원하는 대로 끌고 갈 수 있다. 그런데 미국 소련이 1:1로 끌고 가니까 소련이 반대하면은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이다. 소련이 원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여기에 중요한 결정은 미국과 소련이 결정을 하는데, 미국과 소련이 결정하기 보다는 한국 사람들을 대표로 뽑아서 그들로 하여금 나라를 만들게 해야 한다. 그다음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대표자가 누가 되느냐가 중요하다. 대표가 공산당이 주류를 차지하게 되면 한반도는 공산국가가 되는 것이고, 이 대표에 민주주의를 원하는 사람들이 주류가 되면 한국은 민주국가가 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또 한 가지 중요한 결정이 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것이다. 5년 이내에 신탁통치를 한다. 이런 것이 있다. 조금 복잡한 이야기이다. 원래 소련은 신탁통치를 반대했다. 신탁통치를 주장한 것은 미국이다. 미국이 지지한 것은 한국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모른다. 미국이 교육시키는 기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까 신탁통치라고 하는 과정 또한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그 다음에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을 한 것이고, 소련은 그걸 반대한 것은 신탁통치가 있으면 미국식으로 교육을 시키면 민주주의를 좋아하면 다 민주국가가 되면 소련은 허탕 치니까, 그런데 소련이 생각을 바꾸었다. 소련의 공산주의자들은 머리가 영리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원래 신탁통치를 반대하지만 대화만 할 경우에 이것을 잘 이용해서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간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 신탁통치는 미국이 주장하는 것이지만 적이 주장하는 것도 잘 활용하면 더치할 수 있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 신탁통치 속에 좋은 수가 들어있다. 신탁통치를 누가 반대한지 아는가? 이승만과 김구가 반대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미국 말대로 신탁통치를 주장을 하고 찬성을 하고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사람은 대표할 수 없다고 하면은 미국 말도 들어주는 것 같고, 자기 목적들도 달성하고 얼마나 좋겠는가? 이것을 대한민국 역사가들은 잘 이해를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미국 말대로 신탁통치를 주장을 하고 찬성을 하고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사람은 대표할 수 없다고 하면은 미국 말도 들어주는 것 같고, 자기 목적들도 달성하고 얼마나 좋겠는가? 여러분, 이것을 대한민국 역사가들은 잘 이해를 못한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좀 복잡하게 설명했다. 매우 중요한 설명이다. 미국이 주장하는 신탁통치를 배치해가지고 이 신탁통치를 통해서 신탁통치를 주장하는 이승만과 김구를 제거시켜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신탁통치 반대하는 사람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데 참여할 수 없다. 이승만과 김구는 모스크바 외상들인 국제적인 결정을 반대하는 것이니까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좀 이해가 되는가? 역시 여러분들은 대한민국의 최고의 신자들이다. 우리 한반도 사람들은 걱정이 되었다. 미국도 보내는 사람들을 들어주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통일을 시키려면 소련이 말하는 것을 들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조금 생각해 보니까 그것이 아니다. 소련이 원하는 것은 한반도 전체를 공산주의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공산주의가 안 되면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하지 않으면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 하지 않으려면 역시 이승만 박사를 내세울 수밖에 없다고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승만 박사는 한 때 버리려고 했는데 이승만 박사를 지지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 미, 소련이 모여서 공유사태를 자체를 부정해버렸다. 아까 우리기도하시는 그 권사님이 ‘오정현 목사님의 새 판짜기 운동’이라고 했듯이. 안 되면 이것은 새판을 짜야 되는 것이다. 미국과 소련이 합의가 안 될 때에 이 판을 바꾸어버려야 된다. 이승만 박사는 판을 바꾸어야 된다고 했다. 한반도를 공산화 하려고 하는 소련에서 한반도 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를 세운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다. 이것은 잘못된 판이다. 원래부터 소련에게 유리한 판이다. 판을 바꾸자. 한반도 문제를 유엔으로 가지고 가자고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 미국이 이 주장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여러분들, 일을 하다가 안 되면 판을 바꾸어야 한다. 판을 바꾸어야 새로운 판에서 이길 수가 있다. 대한민국이 지금 새판을 짜야 된다. 이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의해서 새로운 판을 짜야 되는 것이다. 저는 이 사랑의 교회가 새판 짜기에 중심에 서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미국은 미.소 공동위원회를 포기하고 이 문제를 유엔으로 이관했다. 1947년 11월 14일 유엔은 한반도의 운명을 바꾸는 새로운 결정을 이루었다. 이 유엔의 결정은 내용은 이것이다.

첫 번째, 한반도 문제를 미국과 소련의 두 나라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유엔이 담당해야 한다. 여러분들 저희 어렸을 때에는 유엔이 ‘유엔데이’라고 이었다. 왜 유엔데이가 있었는지 아는가? 우리나라에 만든 것이 유엔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 다음에

두 번째, 유엔은 남북의 총선거를 실시하여 한국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정부를 구성하기로 한다. 여러분들 모스크바 외상들의 결정과 이 유엔의 결정이 무엇이 다른가를 잘 알아야 한다. 모스크바외상 회의는 미국과 소련, 미국과 소련이 뽑은 대표들이 새로운 나라를 만든다고 결정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엔은 뭐라고 결정을 하는가? 국민투표를 해서 한국 사람이 원하는 정부를 만든다는 것이다.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보통 선거를 통해서 대표를 뽑고 그들이 공산중의면 공산주의, 민주주의면 민주주의, 선택을 하도록 하자 이렇게 주장을 한 것이다. 모스크바 3상 회의는 미국과 소련이 자기 말을 잘 듣는 사람들을 뽑아서 정부를 만들자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엔의 결의는 그렇게 하지 말고 국민 전체가 참여하는 투표를 통해서 그들이 대표를 선출하고 그들이 자기들이 원하는 정부를 만들자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출발이다.
 
유엔은 이 문제를 가지고 유엔 임시위원단을 구성하고 1948년 1월에 대표를 우리 한반도에 보냈다. 남한은 당연히 이것을 받아들였다. 유엔으로 가지고 가는 것도 미국이고, 이것을 주장한 것도 미국이기 때문에 남한에 있는 미군은 이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소련은 미, 소 공동위원회가 100이 되고 소련으로 가는 것을 기본적으로 반대했다. 그리고 이것을 반대했지만 소련이 압도적인 다수로 미국의 의견을 지지하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유엔 임시위원단이 북한에 와서 총선거를 실시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북한에 자유의 바람이 불어오고 이 자유의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서 투표를 하게 되면 공산주의를 지지하겠는가? 아님 민주주의를 지지하겠는가? 결론은 뻔하다. 북한이 받아들이겠는가? 소련이 받아들이겠는가? 안 받아들인다. 그래서 북한은 우리는 총선거를 할 수 없다. 남한은 총선거를 할 수 있다. 여기서 또 하나 한반도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과제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남한이라도 총선거를 해서 정부를 만들어야 하는가, 아니면 남북통일을 해서 기다려서 정부를 만들어야 되느냐, 이며, 단독정부냐? 통일정부냐? 그러나 그 당시에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했다. 지난 2년 반 이상을 소련과 협상을 해봤다. 소련은 한반도를 공산주의로 만들지 않는 한 결코 양보할 수 없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해야 될 것은 안 되는 통일정부를 구상할 것이 아니라 남한만이라도 먼저 민주정부를 구상해서 이것을 기반으로 해서 기회가 될 때, 북한을 통일하는 것이 맞다.
 
이승만 박사가 이렇게 이야기 했다. 1945년 10월에 처음 왔을 때 한반도는 한 몸과 같았다. 따라서 한 몸을 둘로 나눈다고 하는 것은 우리를 살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1948년에 이승만 박사가 이렇게 이야기 했다. “한반도 전체가 병들어 있는데 한 몸 병들어 있는데, 이제 병들어 있다면 썩어가는 잘라버리고 살아 있는 것부터 살려서 살아있는 부분을 가지고 죽어있는 부분을 살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 “남한은 아직 자유가 있다. 이 자유를 가지고 자유를 확대하고 공부해야 해서 이 자유의 바람을 북한까지 불어올라가게 해서 통일하게 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 북한 인민이 자유가 없는 노예의 나라인데 그 바람이 남쪽에 불어오게 하는 것보다는 북쪽으로 불어올라가게 하는 것이 맞는다.” 고 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이승만 박사를 지지했다.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도 이승만 박사의 주장을 지지했다. 그래서 1948년 5월 10일 5.10선거를 하게 된 것이다. 또 여기에 유엔이 이것을 지지하게 되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잘못알고 있다. 단독정부를 세우느냐, 통일정부를 세우느냐, 하는 것이 1948년 봄에 제기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김규 김규석을 따라서 통일정부를 지향하는 것으로 지지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1948년 5.10일 선거했을 때 대한민국이 유권자의 90프로 이상이 참여해서 남한에 새로운 정부를 만들어야 된다고 하는 것을 결정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다 강제로 동원되어서 투표했는가? 그것이 아니다. 남한 사람들은 지금까지 몇 년 동안 손해보지 않았느냐? 그래서 한국에 널리 회자되는 말이 바로 이것이다. 소련에 속지 말라!, 소련이 얼마나 우리를 많이 속였는가?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국을 믿지 말라! 일본은 일을 한다. 조선을 조심하라. 매우 중요한 말이다. 여기에 대해서 다 설명할 수 없다.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이 만들어진 것이다. 대한민국이 만들어질 때 근본적인 정신은 남한을 먼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고 튼튼하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든 다음에 그 힘을 가지고 북한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어야 된다. 그래서 대한민국 한 번은 자유민주주의의 근거한 평화통일을 지향한다. 이렇게 된 것이다.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할 때 건국정신이 바로 이런 정신인 것이다.
 
여러분들, 오늘 제가 읽은 본문은 보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등경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두 사람에게 비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은 우리 기독교인들을 뭐라고 설명하는가? 산 위 있는 동네라고 말씀하고 있다. 등경위에 등불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산 위에 멋있는 동네가 세워지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그 동네를 보고 아! 멋있는 동네다. 우리도 언제 저런 동네처럼 될까? 산 위에 밝은 불빛이 빛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그 불을 보면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될 것인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저는 하나님이 우리 대한민국을 세우신 근본적인 이유는 산 위에 동네를 만들려고 하셨다는 것이다. 산 위에 동네, 우리가 산 위에 동네가 되어서 아시아의 중국도 보고 러시아도 보고 일본도 보는 높은 산 위에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야 되겠는가? 아름다운 기독교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아름다운 자유민주주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되는 것이다. 일찍이 1907년 대북 운동 때, 선교사들은 이렇게 말했다. “소련은 큰 땅이 있고 중국은 긴 역사가 있고 일본은 근대문명이 있다. 조선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조선은 아무것도 없다. 조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딱 한 가지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있다.
 
여러분들, 우리 한국교회를 아름다운 기독교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이 공동체를 잘 건설해야 한다. 그래서 이렇게 기독교 공동체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야, 여기야말로 희망이 있다. 또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가? 아름다운 민주국가가 되어야 한다. 지금 아시아의 민주주의가 위기가 오고 있다. 소련 대통령 푸틴이 황제가 되어가고 있다. 짜르가 되어가고 있다. 중국은 시진핑이 시황제가 되어가고 있다. 일본은 국수주의로 자꾸 나가려고 한다. 중국도 소련도 일본도 다시 옛날 권위주의 체제로 바꾸어져 가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은 이 잘 된 민주주의 국가인지 모른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가 이 주변에 있는 권위주의 체제가 위협받고 있다. 여러분들 중국을 보라. 20세기 전반에는 일본이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했다. 20세기 후반에는 소련이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지금은 누가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가? 중국이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홍콩을 공산화 시켰다. 지금 대만을 공산화 시키려고 하고 있다. 그 다음에 누구 차례인가? 한반도가 그 대상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자유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 하나님께서 국제사회를 통해서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켜 주셨다. 종의 멍에에서 해방되었다. 일본에서 해방되고 지킬 줄 알아야 된다. 그래서 이승만 박사가 마지막으로 유언으로 남긴 말은 성경에서 사도바울이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고 자유케 하라. 여러분들 자유는 지키 지금 대한민국의 자유가 위태롭고 있다.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은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한다. 우리도 잘 살고 못 살고 함이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자유가 중국에 의해서 위협받고 있다. 점점점 우리를 향해서 그의 강력한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2022년 광복절을 맞이해서 우리가 해야 될 기도의 제목은 무엇인가? ‘하나님,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으니 이 복음으로 아시아를 복음화 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아시아 복음화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 아시아의 어두운 그림자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자유를 억압하는 세력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지켜주시고, 이 대한민국으로 인해서 아시아가 복된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것이 2022년 광복절을 맞이하는 우리의 기도제목이 되어야 될 줄 안다.
 
♣요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대한민국을 자유한 나라로 만들어주시고 복음을 주시고 민주주의를 주셨음에 감사하며, 대한민국의 자유기 위협 받지 않도록 도와주시길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갑절의 영감을 소원하며 청계산 산상기도회에서 더욱 모두가 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참여하여 회복을 넘어 부흥을 경험하기를 소원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비유하셨다. 이는 역동적이고 능동적인 사명을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소금의 특징은 부패를 방지하는 데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부패를 막고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유지·보존해야 할 책임이 있다.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 안에서 빛이며 또 빛들로 나타나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로부터 발생된 빛을 어두운 구석까지 밝히 비추어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통치하심을 드러내야 하며, 이 일을 위해서는 견고한 인내와 용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는 어떤 목적을 위해서 우리의 빛을 비추어야 하는가? "이같이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너희에게 영광을 돌리게 하지 말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가 신앙으로 행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목표로 삼아야 할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해야 한다. 우리의 선한 행실들이야말로 사람들에게 찬양할 거리와 경건의 동기들을 부여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 성도들의 거룩하고 정연하며 모범적인 대화는 죄인들의 대화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모범이 곧 선생이다. 경건한 대화 속에는 매력적인 미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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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2년 8월 10일)

제목: "강하고 담대하라"
말씀: 여호수아 1;1-9
찬양인도: 쉐키나(이원준 부목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하상범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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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1-9,
1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2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3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4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5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7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9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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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범 부목사님

-거룩한 습관을 따라 치유와 응답을 체험하시는 오늘 수요저녁기도회에 참여하신 모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한다. 강하고 담대한 용기를 심령에 가득 부어주시는 시간되시기를 소망한다. 저는 종종 소설을 읽을 때가 있다. 소설을 읽다보면 저와 전혀 다른 상황 속에 있는 그 인물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공감하며 읽을 때가 있다. 또 소설책을 읽다보면 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주변 책들을 뒤적거리며 저의 협소한 상식이 넓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또 감정이 언어로 정리가 되어서 저의 마음이 시원케 되는 경험할 때가 있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 이 모든 것들을 경험한다. 성경 속 인물에게 수평적으로 연결이 되어 감정을 공감한다. 그리고 시야가 넓어지는 것들을 경험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언어를 진리가 되어 마음이 시원케 된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성령의 조명하심을 통하여서 하나님과 수직적으로 연결이 되는 은혜를 경험한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읽을 때에 제 삶을 넓어지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깊어지게 하는 놀라운 신비한 체험을 하게 하신다. 오늘 이 시간 여호수아 말씀을 통해서 저희 모두에게 아버지 하나님께서 넓어지고 깊어지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소망한다.
 
*여호수아 1:6-9,
6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기서 반복되는 단어가 있다. 설교 제목이기도 한다. 어떤 단어가 반복이 되는가? 바로 강하고 담대하라. 바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신다.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했을 때, 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시는가? 의 대해서 질문이 들었다. 왜냐하면 찬송가 347장을 보면 ‘허락하신 새 땅에 들어가려면 여호수아를 본받아서 들어가야 된다.’라고 우리가 찬양을 한다. 왜 본 받아야 하냐면, 여호수아가 강하고 담대한 인물이기 때문에 ‘여호수아를 본받자.’ 라고 찬양을 한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강하고 담대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혹시 여호수아가 성경에 처음 등장했던 그 장면을 기억하는가?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여호수아가 처음 등장한다. 출애굽기 17장 9-13절 말씀을 보자.

*출애굽기 17:9,10,13,
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여호수아가 성경에 처음 등장할 때 성경은 여호수아의 감은 초년의 역사, 그의 경건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당시 상황은 이렇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지 두 달 정도 되었을 때이다. 그런데 그들 앞에 잘 훈련된 그들 앞에 아말렉 민족이 있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 민족은 노예였다. 그런데 잘 훈련된 군사를 가진 아멜렉과 지금 전투를 싸움을 해야 될 상황이다. 그 상황에서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여호수아, 사람들을 취하여 아말렉과가 싸우라.” 그 말은 들은 여호수아가 모세의 명을 받들어 순종하여 사람들을 취하여 아말렉과 싸움을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싸움을 나가서 승리를 취하여 돌아오는 장면이 바로 오늘 그 장면이다. 저희가 이 장면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여호수아는 강하고 담대한 인물이며 전사요, 무사이고, 이미 모세의 눈에 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한 장면을 보면 출애굽기 24:13.15,18을 보자.
 
*출애굽기 24:13.15,18,
13 모세가 그의 부하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모세가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15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18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돌아오는 주일 청계산 산상 기도회를 앞두고 있는데, 마치 그러한 상황이다. 모세가 하나님과 시내 산 산상 기도회를 하기 위해서 여호수아와 함께 산에 올라간다. 모세는 그런데 홀로 여호수아를 산에 남겨 두고 더 깊은 산으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올라간다. 출애굽기 32장 1절에 보면 산 아래서 진에서는 40일 동안 그들을 이끌고 온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급함에 두려움에 사라진다.

*출애굽기 32:1,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왜냐하면 그들을 이끌고 온 리더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아론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급함과 같이 전이되어 버린다. 그래서 백성들과 똑 같은 불경건과 불신앙의 선택을 하고 만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홀로 산에서 40일 40야를 두려움과 맞서 싸우며 모세가 돌아올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린다. 그런 여호수아를 향해서 민수기 32:12장 하반 절에 여호와 하나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신다.
 
*민수기 32:12,
12 그러나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온전히 따랐느니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온전히 따랐다는 것은 여호수아가 죄 없는 삶을 살았다는 말이 아니라, 여호수아 삶이 불신앙이 가득하고 배도가 판을 치는 그 시기에 두려움을 모르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목표로 삼고 하나님께 충성하였다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강하고 담대한 인물이었다. 두려움을 모르고 하나님께만 충성하던 자였다. 그 여호수아가 여수룬에서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통치자 되었다. 강하고 담대한 인물이며 두려움을 모르고 담력을 가진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강하고 담대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반복해서 강조하시면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버지 하나님의 약속이 나를 통해서 실현될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약속을 내가 실천만 하면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강하고 담대한 여호수아라 할지라도 두려움을 모르고 거룩하고 충성스런 여호수아라 할지라도 두렵고 놀라, 발이 땅에 붙고 몸이 얼어붙어서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고 몸이 얼어붙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강하고 담다하라’는 이 말씀은 여호수아만을 위한 말씀이 아니다. 에베소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 역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았으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기업의 풍성함이 이미 주어진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팬데믹 시대에 무언가로 인한 불안, 초조, 떨림을 느끼며 살아간다. 왠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왠지 모를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그래서 한 발짝 떼면 된다는 것을 아는데, 용기를 내면 된다는 것을 아는데, 몸이 얼어붙고 말 때가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 마이스 교수는 ‘의지력의 재발견’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하더라도 인간의 의지만큼 믿을 수 없는 게 없으니 믿지 말라.”고 말한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도 기도교 강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무심적 의지로는 자유하게 하지 못 한다.” 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담대하지 못하다고 해서 자책하지 말라. 자신이 강한 의지력을 갖지 못한다고 해서 좌절하지 말라. 그러면 이제 본문 말씀을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고 반복해서 말씀하셨는지 그 이유들을 살펴보자. 첫 번째부터 보자.
 
I. 소중한 것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 1:1-2,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모세가 죽었으니, 라고 기록되어 있다. 출애굽을 하며 광야기간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바라본다. 모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곧 법이었고 모세의 입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모세를 통해서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았고, 모세를 통해서 만나가 떨어지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해서 물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가나안 땅을 들어가야 된다. 가나안 땅에 일곱 족속과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런데 가장 필요한 그 순간에 모세를 상실했다. 여호수아에게 있어서는 더 특별한 존재였다. 왜냐하면 여호수아가 전투하러 나갔을 때에 산에서 두 손을 들고 기도하고 있는 모세를 바라보며 여호수아는 전투를 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과 대면하는 모세를 바라보면 여호수아는 신앙생활을 했다. 그리고 삶에서 분별이 되지 않고, 판단이 되지 않고 햇갈리는 상황이 있으면 모세를 찾아서 상의를 했다. 그런데 지금 가장 필요한 그 순간에 모세를 상실한 것이다.
 
목회자로 소중한 사람들뿐 아니라, 소중한 일을 상실했다고 말씀하시는 성도님들을 만나야 할 때가 있다. 좋아하고, 의지하고 전부였던 것을 잃어버렸다고, 빼앗겨버렸다고 표현하시며 말씀하실 때가 있다. 육신적으로 보면 깊은 미스터리이다. 지극히 아픈 섭리이다. 그분들의 믿음에 대한 쓰라린 시련이다. 상실로 인해 비어버린 그 자리를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야 되는지 그 방법들을 물어보신다. 이스라엘 백성과 여호수아에게도 지금 그러한 순간이다. 바로 그 순간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여호수아 1:2b,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신명기 34:8절에 보면,

*신명기 34:8,
8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모세가 죽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과 여호수아가 그들이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애곡하고 애도하는 30여 일의 기간을 기다려 주신다. 그리고 오늘 본문 2절 하반 절에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냐면 곧 너희들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그 땅이 어떤 땅인가? 본문 말씀 3절이다.
 
*여호수아 1:3,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3절에 보면, 시제가 좀 이상하다. 뭐가 이상한가? 밟는 곳을 아직 안 밟았는데 하나님께서 이미 주었다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세기 5장을 먼저 이해하셔야 한다. 창세기 15장을 보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통해서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언약을 맺는다. 그러다가 나중에 출애굽기 2:24절에서 애굽 땅에서 그들이 너무 힘이 들어 고통소리를 기억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들의 언약을 기억하신다.
*출애굽기 2:24,
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 사랑하는 성도님들,
언약을 기초로 구원의 행위를 이루어 가시는 분이시기에 가나안 땅은 그들의 땅이 될 땅이다. 다만 그 약속을 믿고 순종하느냐, 순종하지 않느냐에 달려있다. 그 약속을 믿고 순종하면 8절에 형통하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형통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개념과 의미가 다르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형통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지금 다가와 주셔서 내가 상실한 것들을 채워주시고 위로를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성취해 주시는 것이 형통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다. 자신의 순종과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 그것이 형통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영적인 비밀을 깨달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상실의 체험과 아버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상실의 체험이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상실의 생각에 발목을 잡혀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잃어버린 그 자리를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소중한 것을 상실했다 하더라도 예정된 완성을 향하여 순종의 전진을 멈추지 말라고 하신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순종의 자리‘라고 말씀하신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통하여 ’약속된 기업‘을 얻기들 원하신다. 여호수아는 이 영적인 비밀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중에 40년 동안 해어지지 않았던 신발과 옷이 해어지는 상실이 닥친다. 그리고 40년 동안 매일 아침마다 내렸던 만나가 그치는 상실을 닥친다. 그래도 여호수아는 순종의 전진을 멈추지 않는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상실의 순간이 닥친다하더라도 강하고 담대함으로 순종의 전진을 멈추지 않아 약속된 기업을 받는 형통함의 은혜를 누리시길 소망한다.
 
II.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게 될 때이다.
 
*여호수아 1:1,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하나님은 모세의 여호수아에게 모세의 자리에 서서 백성을 이끌어가라고 말씀하신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옆에서 섬기고 돕는자였다. 그 누구보다도 모세가 어떤 자였는지 잘 아는 자였다. 성경에 보면 모세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출애굽기 2:2,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겼다는 표현이 되어 있다. 외모적으로 칭찬이 된 것이 아니라, 원어로 보면 토브라고 숨겨져 있는데 그 ‘토브’가 그의 인생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나타낼 것’이라고 뜻이 숨겨져 있다.
*출애굽기 33:11,
11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이사야 6장에 보면 천사도 경외함 가운데 하나님 앞에 두려워 떠는데 모세는 친구와 같이 하나님과 대면하였다. 그 결과 출애굽기 34:29절에 보면,
 
*출애굽기 34:29,
29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는 은혜를 누렸다고 말한다. 민수기 12:3절에도 그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에 모든 사람보다 더 은혜를 누렸다. 그리고
 
*민수기 12:3,
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신명기 34:10,
10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시편 90편 표제에는 모세를 위해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라고 표제에 적혀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여호수아 1:1절에 보면 여호수아를 향해서 여호와의 종 모세,
 
*여호수아 1:1,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미국의 백 년 전에 살다간 연방 대법관 월리홈스는 이런 말을 했다. 삶이란 총 합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월리홈스의 지적처럼 삶을 살아남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살아가야 되는데 그것이 잘 되지가 않을 때가 많다. 우리 모두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살아가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다짐을 하면서 산다. ‘남보다 잘 살아야지.’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아야지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비교하면서 모순된 다짐을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남보다 잘 살아야지’ 하면서 남과 비교하면서 극단으로 치 닫을 때가 있다. 이 극단으로 치 닫을 때가 언제냐면 나도 모르게 ‘나는 지금 이 나이까지 뭐했나?’ 생각을 줄 때가 있다. 그러다가 잘 된 친구를 보면서 저친구 나이가 어떻게 되었었지? 그러면서 스스로를 초라하게 느낄 때가 있었다.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그렇게 모세와 비교하여 스스로가 초라하다고 느낄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여호수아 1:5절이다.
 
*여호수아 1:5,
5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바로 그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가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할 용기를 주신다.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의 성곽은 하늘에 닿을 만큼 크다. 그들의 병거는 철로 되어있다. 그들과 싸워야 할 군사는 거인과 같이 크다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들과 비교할 때에 자신들이 초라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있으며, 그들을 대적할 자가 없으며,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는 것을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와 비교했을 때에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먼저 너와 함께 있다는 신적 확신이 가득 부어주셨어야만 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내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 너와 함께 있으며, 내가 너를 떠나지 않고 내가 너를 버리지 아니할 것이다.’라고 하신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말씀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그 순간에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할 용기를 주신다. 강하고 담대할 용기를 우리에게 부어주신다. 성경은 기록된 이 말씀이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셨다. 이 상실을 자주 상기하라. 내 자신이 스스로 초라하다고 느껴질 때에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구하라.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시는 이가 그리스도의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 확신하라. 우리가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일을 더하면 우리의 수고가 예수 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 확신하라.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떠나지 아니하실 것이다. 우리 안에 생명을 더하는 믿음, 풍성하며 확고하며 흔들리지 아니하며, 회복력을 더하는 믿음을 더 주실 것이다.
 
욥도 자신이 초라해졌을 때, 나를 떠나지 않으시며 버리지 않으실 때, 맞으십니까? 라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울부짖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 칭찬하셨다. 뿐만 아니라 야곱도 하나님 앞에 나아갔더니 하나님께서 그 야곱에게 넌지시 져 주시기도 하셨다. 그리고 아간의 죄 때문에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했을 때, 여호수아가 이 본문 말씀을 붙잡고 이렇게 기도한다. 여호수아 7:9절이다.
 
*여호수아 7:9,
9 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도 강하고 담대 하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함께 하신다. 마지막 세 번째이다.
 
III. 영적 왕관의 무게가 부담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신명기 34:5,7,
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7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이 말씀은 어떤 뜻이냐면, 모세가 죽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죽음에 개입하셨다는 것이다. 왜 개입하셨는가하면, 그 이유가 민수기 20자에서 나온다. 모세의 여동생 미리암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물이 없어서 물이 없어서 물을 달라고 불평을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야박하다. 모세의 여동생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때 모세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반석을 향하여 명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물을 주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모세가 명하여 물을 주지 않고 반석을 쳐서 물을 준다. 딱 한 번,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다. 그 대가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영적 왕관의 무게를 여호수아가 본 것이다. 얼마나 불순종하는 대가가 얼마인지를 여호수아가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 부담 앞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여호수아 1:7-8,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 이전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서 그의 명령과 규례들을 지켰다. 모세 역시 신적인 권위를 좇아 처신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서 명령과 규례들을 받았다. 그런데 여호수아부터 달라진다. 출애굽기 24장을 보면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들을 기록하게 한다. 그리고 신명기 31장에 가면 언약궤를 메는 레위 제사장들에게 모든 장로들에게 그것을 기록한 모든 율법 책들을 주어서 보관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7년에 한 번씩 온 회중들에게 낭독하여서 듣게 만든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7년에 한 번씩 온 회중들에게 낭독했던 것을 이제는 주야로 묵상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다 할지라도 그의 처신이 율법 책 위에서 규정된다고 말씀하신다. 그의 처신의 표준을 율법 책으로 삼으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라고 할지라도 그이 규범이 그의 말씀 가운데서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이제는 이스라엘이 따르라고 할지라도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해야 되는 것은 성실히 그 율법 책을 지키고 따르는 것이 그의 임무가 되었다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이것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규정되어야 한다. 내 삶의 표준을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삼아야 한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되어야 한다. 오직 저희들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새로운 법을 만들 필요가 없다. 새로운 세계관을 기준을 만들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주야로 묵상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성경을 폈을 때, 때로 이해가 안 되고 의심이 되는 내용이 있을 수 있다. 그러할 때에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신약 성경에 의심의 대명사를 나타내는 신자가 한 명이 있다. 바로 도마이다. 요한복음에 보면 그 도마 앞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현현하여 나타나신다. 그 때 도마가 무엇이라고 고백한 줄 아는가?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요한복음 전체에서 예수님을 향해서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도마 한 사람 밖에 없다. 묵상하여 성경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은혜가 바로 그것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영적 그 무게가 부담으로 느껴진다 하더라도 강하고 담대하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의 말씀을 통해서 그 길이 복된 길임을 은혜의 길임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시고 누리게 하여 주실 것이다. 이제 말씀을 맺겠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된다. 가나안 땅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신명기 12:9,
9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가나안 땅은 천국의 모델이 아니다. 이미 잘 아시는 거처럼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실질적인 경험에 있어서는 힘겨운 싸움의 시작이다. 가나안 땅이 의미하는 것은 천국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아래로 들어가서 믿음의 삶의 훈련을 받기 시작한 곳이 바로 가나안 땅이다.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순간 양심의 평안을 영원의 안식이 시작되었다. 값 주고 산 소유에 대해 갖게 되었다. 그렇지만 실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은 아직은 먼 미래에 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수없이 많은 강하고 담대한 순간들을 맞이해야 된다. 그래서 그의 자녀들을 향해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신다.
 
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 가운데서 아버지 하나님만 전적 순종함으로 의지하는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의지의 온전함을 회복시켜 주시며 성령 하나님께서 모든 능력을 부어주시는 평생 되는 은혜를 부어주시기를 소망한다.
 
♣요약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순종 위에서 강하고 담대함을 주심으로 의지의 온전함을 회복하고 주님이 부어주시는 놀라운 역사를 누리기를 소망해야 한다. 보배롭고 큰 약속을 의지하여 나아가 우리 안에 착한 일을 하신 이가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 믿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며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음을 믿고, 우리 안에 생명을 얻게 하는 믿음, 풍성하며 확고하고 회복력 있는 믿음을 더하시기를 간구하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갈 때에 슬픔이 기쁨이 되는 역전을 경험하며 내 일의 삶 가운데 전적 위탁으로 그 은혜를 펼쳐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명예와 능력의 원천이 되시고 세상 통치자들의 근원이 되시는 분에 의하여 명예가 여호수아에게 입혀지고 큰 능력이 그의 손에 들리워진다. 아마도 모세에게 말씀하신 때처럼 하나님게서는 '회막에서' 여호수아를 향하여 말씀하시는데, 그에게 더 큰 힘을 주시고자 직접 말씀하신다. 어떤 이들은 꿈이나 환상 중에 말씀하셨다고 생각한다. 모세의 죽음으로 출애굽 1세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종결된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새 지도자로 임명되어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한다. 하나님은 그에게 가나안 정복과 율법을 지킬 것으로 명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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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2년 8월 7일)
제목: "놀라우신 주님의 그 큰 은혜"
말씀:  갈라디아서 3:13-14
찬양인도: 쉐키나( 이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박단열 부목사님(1부)
사회: 장광천 부목사님(1부)

설교자: 박성규 목사님-초빙(부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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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3:13-13,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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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규 목사님-초빙(부전교회)
-폭염 가운데 하나님 사랑하며 경배하며 나온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축복한다. 들어오면서 주차하시는 성도님들을 보니까 마음에 참 감동이 되었다. 폭염 가운데서도 헌신해 주시는 주차 안내 하시는 여러분들 깊은 감사를 드린다. 예배 실 안내에도 감사하다. 찬양대 1부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오케스트라는 새벽부터 나오셨을 것 같다. 모두 진심으로 주님께 감사드리며 은혜로운 찬양에 감사하다.

오늘 기독교의 한 일간지에 나온 한 인물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영어를 잘 가르치기로 유명한 정철 선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기독교 신문에 실린바가 있다. 집안은 기독교였지만 본인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할머니가 최현숙 전도사님이셨다. 그 유명한 그 김익두 목사님과 동역을 했던 아주 훌륭한 전도사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작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대학 입시에 실패했다. 그는 청소년 시절 키가 작아서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골똘이 생각하다가 그는 철학을 연구하게 되었고, 동양철학에 빠지다보니까 무속종교에 깊이 빠져들었다. 대학입시에 실패를 하면서 그는 산으로 갔다. 도사가 되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도를 닦다가 식량이 떨어져서 내려왔는데, 경기고등학교 동창을 만난 것이다. 미군들에게 자기가 영어 배우러 가는데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따라갔더니 미군 장교와 그가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는 한 마디도 알아 듣지 못하는데 자기보다 고교 때 영어를 더 못했던 그 친구가 너무 잘하는 것이다. 좀 속에서 불타는 마음이 생겨서 모임을 마치자마자 책방에 가서 영어회화 책을 잔뜩 샀다. 그리고 산으로 올라가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보름 만에 이제 어느 정도 됐다 싶어서 그 친구를 만나 보름만에 미군을 만나자고 했다. 완전히 사람이 바뀐 것이다. 영어를 한 마디를 못했던 정철이 영어를 너무 잘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말을 잘하는데 듣기는 못한다. 그 미군 존슨데이와 말하는데 들리지가 않는 것이다. 안 되겠다 싶어서 미국 방송 AFKN을 듣게 되었고 자막을 보지 않고 영어를 들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는 1년 만에 AFKN 뉴스가 귀에 들리고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알고 지내던 영어 학원 원장님이 한 선생님이 강의를 해야 되는데 지금 일이 생겨서 일을 못하게 되는데 대타를 쳐달라고 했다. 그래서 가서 본인이 터득하던 방법으로 가르치니까 학생들이 너무 좋아했다. 그래가지고 그때부터 영어강의를 시작한다. 그리고 1983년도에 정철학원을 세웠는데 그리고 테이프를 팔면서 1989년 1년 수입이 백억이나 되었다. 놀랄 일이다. 그런데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다가 30억 원의 세금을 내고 부도가 나버렸다. 이것 가지고 재판을 벌였는데 10년 만에 무죄가 판결이 되었지만, 이미 학원은 다 끝나버린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1990년도에 강남에 다시 정철 어학원을 세운다. 그 시련을 견디고 난 다음에 세운 학원이기에 더 학원을 운영할 수 있었고, 어린이 영어까지 가르치고 전국에 300여 개의 체인 영어 학원을 세운다. 95년 경에는 사업이 굉장히 많이 발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두 아들을 영국으로 유학을 보내면서 당부하는 것이 있었다. 두 아들에게 두 가지를 당부하신다. ‘절대로 서양 섹시는 데려오지 말 것’과. ‘절대로 서양종교를 믿지 말 것’이라고 했다.


큰 아들이 런던에 갔다가 대학 생활을 하면서 선배의 따라 김치 먹으러 한국인교회를 갔다가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거기서 1997년대에 IMF가 터지면서 유학비를 보내기가 어려우니까 귀국을 하라 해서 군대를 가게 되는데 군대를 가기 위해서 신체검사를 받을 때마다 불합격이 된다. 그래서 무려 1년 뒤에 군대를 가게 되는데, 그 기간 동안 아들이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면 아버지에게 끊임없이 전도를 한다. 밥 먹고 나면 예수님의 믿음의 나눔을 전했고, 정철 선생은 쓸데없다고 일축했다. 토론이 일 년 가까이 계속 되면서 정철 선생의 반대 논리는 점차 옹색해지기 시작했다.

“좋아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치고, 이제부터 성경책을 읽어 본다. 단 교회는 가지 않는다.” 단전호흡을 하면서 성경을 읽었다. 그러자 아들이 이야기 한다. “아빠, 휴대폰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기지국하고 연결이 안 되면 휴대폰이 안 터지잖아, 아빠가 하나님과 통하려면, 이 휴대전화와 달리 신앙생활을 기지국하고 무선 통신이 아니라 나가야 돼, 기지국에 나가야만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어” 라고 한다. 이 말을 듣고 정철 선생은 그럼, 이제 이번 주부터 기지국에 나가보겠다. 그래서 교회에 나가게 된 것이다. 교회 와보니 특별한 것은 없었다. 강사가 나와서 강의하고 그리고 강의가 끝나면 모두가 합창하는 것이었다. 학원과 비슷했다. 그렇게 2년째 될 때, 그동안 그를 지탱해왔던 샤머니즘의 무속신앙의 껍질이 점점 벗겨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내가 사는 길은 나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속죄하신 예수님을 받아들여야겠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그는 2000년 말 한밤중에 자신의 집에서 무릎을 꿇고 만난다.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였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니까 실로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평안한 잠, 숙면을 누리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세상이 달라져 보였다. 예수님을 영접한 다음에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 창밖의 나무가 살아있다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온 통 모두가 기적 덩어리라는 것이 느껴졌다. 밥을 먹는데 그것이 에너지로 바뀌는 것이 기적이라고 느껴졌다. 내 가슴 속에 심장이 자연스럽게 뛰고 있다는 것이 기적으로 느껴졌다. 사물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모두를 머릿속으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기적으로 느껴졌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직접 만지고 계심을 느꼈다고 한다. 들러보니 온 세상이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사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는 이 사도바울의 갈라디아서 2:20절의 고백이 자신의 고백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속에 더 깊고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마음 한 구석에 항상 웅크리고 있던 불안감과 공허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기쁨과 확신이 넘쳤고, 무슨 일이든 하나님께 기도드리면 신기하게도 지혜를 주셨고, 그 문제를 또 해결해 주셨다. 풀지 못 할 때면 마음이 평안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는 여기서 예수님과 친해졌다. 과거에 그가 신음하던 민속적 종교는 엄청 높았다. 저 높은 곳에 군림하고 있었던 것이었고 인간은 그 아래 비는 모습이었다.

기독교의 신은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은 찾아오시고 인간을 위해서 죽어주시는 분이심을 깨닫게 된다. 항상 돌봐 주시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예수님은 피조물인 우리들의 친구라고 부르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었다. 성경에서 읽은 이런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감격했다. 여러분은 그렇다. 기독교는 타종교와 비교하면 무엇이냐면, 신이 우리를 위해서 찾아오시는 것이다. 그리고 신이 우리를 위해 죽어주시는 신이 기독교이다. 타종교 어떤 신도 인간을 위해서 죽어주지 않는다.

 
저는 유명한 성가 곡 ‘생명의 양식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되었다. 성찬식을 앞둔 어느 주일, 어떻게 하면 성도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생명의 양식을’이라는 성가곡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가사가 원래는 라틴어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신학을 공부할 때 조금 배웠던 라틴어로 초보적인 라틴어 수준이지만, 이 문장이 그리 어렵지 않아서 번역을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본래 나와 있는 지금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는 ‘생명의 양식을’ 의역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드러내는 것에는 좀 아쉽다는 생각을 깨닫게 되었다.

자, 이제 지금의 우리말과 라틴어를 부족한 종이 번역한 것을 화면을 통해 비교해보자. 현재 가사는 ‘생명의 양식을, 하늘의 만나를 이지만, 직역하면 천사들의 빵이 인간들을 위한 빵이 되셨다. 천사들의 빵이 만나이다. 만나가 하늘에서 내려올 때 천사가 전해주었다. 라고 시편의 기록에 나온다. 그래서 만나를 가리키는데 요한복음 6장 32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진짜 만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이 가사의 천사들의 빵은 예수님을 가리킨다. 예수님이 인간들을 위한 빵이 되셨다. 빵이 인간들의 입에서 부서지고 깨지면서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게 도와주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깨어지고 부서져 주시므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기념하는 것이 성찬식이다. 빵이 우리 입안에서 깨지고 부서진다. 그 다음의 가사는 마음이 빈자에게 내려주소서! 라고 직역하면 하늘의 빵이신 예수님이 모든 상징을 종식시켰다. 이 모든 상징은 구약의 메시아가 오실 때, 이런 역할을 하실 때 상징되었던 것들을 실제 그분이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종식시켰다는 것이다.
 
여러분 구약에는 창세기에서 범죄 한 아담에게서 가죽옷을 지어주듯이 이것이 장차 피 흘려서 우리의 죄를 가리워 주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종식시키는 것이다. 그 가죽 옷이 바로 예수님이고 십자가이다. 유월절 어린양의 죽임을 통하여 이집트에서 해방을 얻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처럼 유월절 어린양처럼 유월절 절기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구원을 이루실거라는 것을 그 상징을 종식시키는 것이다. 그 다음 가사는 저는 이 가사를 번역하다가 울어버렸다. 감탄했다. 오, 놀라운 일인가? 이야기는 그가 먹는 도다. 라틴어 동사에는 인칭동사가 들어가 있다. 그가 먹는 도다. 그가 먹는 도다. 놀랍게도 주님을 먹는다. 기가 막히다. 그가 주님을 먹는 도다. 저는 이 가사를 번역하다가 그냥 울어버린 것이다. 가난하고 비천한 종이 주님을 먹는 도다. 박성규가 바로 가난하고 비참한 종이 아닌가?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고, 그분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영생의 사랑을 받았다. 주 안에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는 가난하고 비천한 우리가 영생할 수 있도록 생명의 사건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이 놀라운 은혜를 받았다. 이 사실을 오늘 본문은 말씀한다.
 
*갈라디아서 3:13,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 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여기에 ‘우리를 위하여’는 ‘우리를 대신 하여’로 번역될 수 있는 단어이다. 우리를 대신 한 것이다. 내가 받을 형벌을 그분이 대신 받으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를 속량(贖良)하셨다. 속량의 뜻은 역사적으로 보면 조선왕조 때도 종을 풀어서 양민이 되게 하는 것이다. 양민은 선량한 백성을 말한다. 더 이상 노예가 아니고 이제는 평범한 시민으로 자유를 누리게 한 것을 역사서에 속량이라고 말한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속죄라고 말한다. 헬라어는 ‘엑세고라센’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것은 다시 사다. 노예를 해방시키다. 그리스도가 속죄하다. 해방하다. 구해내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여러분, 엑세고라센, 센이라는 이 용어가 부정함을 의미한다. 영어나 우리 단어에 없는 단어이다. 현재나 미완료 진행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부정과 단정적인 것, 확실한 것을 말할 때 쓰는 표현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량했다는 것은 확실히 우리의 속죄를 이루었다. 할렐루야!!~~우리의 속죄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완전히 이루어졌다. 엑세고라센,이다.
 
제임스 패커 박사는 이 예수님의 속죄는 형벌 대속이라고 불렀다. 그 뜻은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죄의 형벌을 받으시므로 대신 속죄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하나님이신 그분이 우리 대신 형벌을 받으므로 우리가 속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만약에 형벌 대속이 없었다고 하면 우리는 이 땅에서 삶의 목적도 없이 방황하고 성공한다 할지라도 그 깊은 허물을 이기지 못하고 그러다가 죽고 지옥갈 수밖에 없고 영혼이 먼저 지옥을 간 다음에 예수님 재림 때에 목숨까지 심판의 부활을 영혼과 육신이 영원히 지옥에서 형벌 받을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신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생명의 빵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누리며 산다.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다만 우리가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다만 우리가 하나님과 접속하지 않기 때문에 은혜를 누리지 못하지만 접속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얼마든지, 우리는 이 땅을 천국처럼 살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다 죽는다. 그러나 우리는 죽자마자 우리의 영혼은 천국을 가게 될 것이다. 몸은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이 몸이 성화가 완성되는 날,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히 이 몸과 연합되어 우리는 진정한 전인적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 놀라운 일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다고? 십자가 때문에 예수님의 속량으로, 예수님의 속죄의 은혜 때문에, 생명의 빵이 되어주신 십자가 사건 때문에 이 은총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 제임스 패커는 예수님의 대속의 특징을 이렇게 말한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대속을 한 단어로 설명하는 것보다 이렇게 여러 측면으로 이해하다보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더 깊게 되는 것을 경험했다.
 
◆예수님의 대속의 특징.
1. 우리 형벌 받는 것-형벌적인 것.
2. 우리를 대신 한 것-대리적인 것.
3. 우리를 대체한 것-대체적인 것.
4. 우리 모두를 대표할 것-대표적인 것.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형벌적, 대리적 대체적이 우리 모두를 위해서 대펴해서 대속해 주셔서 승리한 줄 믿는다.
 
*고린도후서 5:21,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5:14,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이와 같은 대신하여 대리적 대표적이라는 것이며 형벌적이라는 것이며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한다. 예수님의 형벌적, 대리적 대체적 대표적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그렇다면 이것을 무엇을 위한 것인가?
 
*갈라디아서 3:14,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무엇인가를 보여주신다.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이 성경에서 말하는 유대인이 아닌 모둔 세계의 사람들, 모든 민족이다. 이 말씀에서 두 가지를 이야기 한다.
첫 번째는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한다.
두 번째는 성령을 받는 것,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는 목적이다. 이 두 가지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첫 번째의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본문의 앞 절에 나오는 3장 6절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받았던 이신칭의 복, 즉 구원의 복을 말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어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아브라함이 받았던 복을 우리 한국 사람인 우리를 위해 받게 하려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한 번 따라해 보자. 나를 위해 예수님이 죽으셨다.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받았다고 나온다.

*갈라디아서 3:6,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갈라디아서 3:8,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성경을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했다. 복음이 신약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구약에도 나왔다. 우리가 노력에 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말미암음을 믿음을 말한다.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복을 받는다고 한다. 아브라함과 히브리인을 선택한 이유는 그들을 통하여 세상과 모든 열방이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구원에 빠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내가 잘되고 우리 식구가 잘 되고 우리 자녀가 잘 되고 우리 교회가 잘 되는 그것이 전부인가? 아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마음은 열방에 가 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옆에 앞에 살고 있는 지옥갈 사람에게 다가가 계신다. 코로나 시대라고? 아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러기에 더 필요하다. 그리고 이 코로나의 위기를 이길 수 있는 것은 하늘로부터 오심을 믿는다. 우리 모두가 아브라함의 복, 이 구원의 복이 믿지 않는 내 가족과 친구들에게 해외 선교지에 전파되길 바란다. 9월에 한국 교회를 섬긴다는 이야기를 듣고 광고를 듣고 너무 기뻤다. 사랑의 교회는 이제까지 사랑의교회로 만이 아니었다. 한국교회와 세계 교회를 위해서 헌신해 오신 여러분의 교회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우리가 더더욱 아브라함의 복이 열방에 미치게 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 기도하며 헌신할 수 있기를 축복한다.
 
두 번째는 성령을 받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어주시는 목적 중의 하나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 찾아오신다. 내주. 그리고 그분이 충만하게 임재하도록 말씀 묵상과 기도할 때, 성령이 충만, 순종할 때, 더더욱 충만을 주신다. 순종이 그래서 중요하다. 성령으로 그럴 때 성경이 깨달아진다. 성경 말씀이 튀어나온다. 성령으로 기도가 깊어진다. 거기에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 하심을 경험한다. 성령은 사람의 인격을 바꾸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가 우리 가운데 맺혀진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영이 전도의 영이기에 다른 사람을 위한 불타는 구원의 열정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어주신 것은 구원 복 뿐만이 아니라, 놀라운 성령 충만의 유익을 주기 위하심이었다. 그런데 모든 복의 출발점이 어디 있냐면 예수님의 십자가에 있다. 십자가가 출발점이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것을 화해케 했던 그 십자가, 오, 주의 십자가가 우리 모든 구원과 인생의 진정한 복의 출발점이 된다. 최근에 이 강단에서 말씀을 한 전하셨던 김지찬 교수님이 번역하신 화해의 아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을 들려드림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주신 화해의 놀라운 사역을 소개하고자 한다.
 
던 리처드슨 선교사는 1962년부터 네덜란드령의 뉴기니에 사위(Sawl)족, 사위부족은 아주 잔인했다. 그래서 전투를 벌이다가 적의 머리를, 그 해골을 머리게 배고 자는 사람들이다. 정말 얼마나 잔인한 부족인가? 그리고 이들은 아주 호전적이기 때문에 부족들과 전투를 자주 벌이고 그들은 같은 식인종이기 때문에 함께 보족을 하는 전투가 끊임없는 이런 보복의 악순환이 되는 부족이었다. 리처드슨 선교사가 사역할 때, 부족 간의 피를 흘리는 심각한 전투가 있었다. 그들의 문화 속에는 오랜 갈등, 그렇게 5개월 동안 전투가 지속되었다. 많은 사람이 죽어나간다. 이런 갈등, 전쟁을 종식시키고 원수가 화해케 되는 관습이 있었다. 그것은 A라는 부족과 B라는 아들들을 맞교환을 하면 그때부터 화해가 시작되고 전투가 종식된다는 것이다. 이 때 교환하는 아이를 ‘평화의 아이, 화해의 아이’ Peace child라고 불렸다. 그런데 그때는 5개월 동안 전투가 계속 되고 있었지만 상대 부족에게 자기 아들을 내어놓는 사람이 단 한 명이 없었다. 갈등은 계속 되고 있었다. 마침 그 때에 ‘카이오’라는 사람이 자기 아들을 내놓는다. 6개월 밖에 안 되는 자기 아들을 내놓는다. 외아들 ‘비아카돈’을 상대 부족에게 보낸다. 그리고 상대 부족의 아들 양자로 ‘마니’를 받아온다. 이렇게 화해의 아들이 교환됨으로 더 이상 전투가 일어나지 않고 화해가 성립되었다. 이 때의 화해의 아들을 사위부족의 말로 한다면 ‘타로프’라고 불렀다. 한 번 따라해보자. 타로프, 화해의 아들이다. 그들은 이 타로프 아들을 교환하지 않고는 절대로 평화가 올 수 없었다. 이 사실을 근거해서 던 디처드슨 선교사는 사위 부족을 앉혀놓고 복음을 전한다.
 
그 선교사는 이런 메시지를 전한다. 나는 비아카돈을 다른 부족에게 전할 때, 비아카돈의 엄마가 진흙 구덩이에서 몸부림치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는 바아카돈을 빼앗아 그 엄마에게 돌려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나는 계속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저렇게 아들을 남에게 주는 고통스런 단계 없이 화해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렇게 남에게 주는 고통스런 단계 없이 화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여러분들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방도는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옳았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화해의 아이가 있어야만 평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분은 여러분 만이 아니었다. 바로 하나님이셨다. 사위적 언어로 미아오코돈, 미아오코돈(사위적 언어로 하나님)이 같은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미아오코돈은 사람들이 자기와 화해하기를 원하셨고 사람들끼리도 화해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일시적인 기간의 화해가 아니라 영속되는 화해를 위하여 그는 화해의 아들, 타로프 아들, 화해의 아들을 택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문제는 누구를 선택하느냐가 문제였다. 이 땅에 사는 가운데 화해의 아들을 선택한다면 그는 완전한 타로프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완전한 타로프를 찾고 계셨다. 원주민들이 묻는다. 도대체 누구를 선택 하냐고 묻는다. 우리 리처드슨 선교사가 되묻는다. 카이오가 다른 사람의 아들을 주었나요? 아니면 카이오가 자신의 아들을 주었나요? 자신의 아들이다. 선교사가 말한다. 미아오코돈께서도 자신의 아들을 주셨습니다. 리처드슨 선교사는 아시야서를 읽어준다.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매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 타로프라 할 것이라.” 이어서 요한복음을 읽어준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원주민들이 묻는다. “당신이 말한 그가 그 사람인가요?” 라고 한다. 예수스 말이요? 선교사가 대답한다. “바로 그분이요. 미아오코돈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기 때문에 인간들이 자신의 아들을 죽일 줄 알면서도 그 아들을 타로프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 아들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속죄를 얻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할 때 족장 하토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하토의 아들이 설명했다. “당신이 우리 부족에게 오기 전에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 부친이 저의 형을 화해의 아이로 카야가를 부족에게 주었습니다. 그 아들을 데리고 가서 잡아먹었습니다. 그제서야 카야가족이 우리 사위족과는 다르게 화해의 방식을 택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부족은 머리에 안수를 화해가 성립되는데 캬야가르족은 화해의 아들을 잡아먹음으로써 평화가 시작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토의 음성이 부드럽게 들려왔다.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이렇게 그는 말한다. “미아오코돈, 즉 하나님께서도 나처럼 슬펐을 것임에 틀림이 없어.” 라고 했다. 리처드슨 선교사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그렇다. 이 화해의 아들을 통해서 두 부족이 화해하는 것처럼, 우리의 화해의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가 화해하게 되었고 원수 되었던 다른 사람과도 화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폭염 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지 않은가? 우리의 전 생애를 그분을 위해 드려도 아깝지 않은 것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은가?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독생자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해케 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후 5:15,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정철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모든 것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다. 하던 일을 하고 있다. 다만 이제는 순서가 바뀌었다. 전에는 영어만 가르쳤다면 이제는 영어를 통해 하나님을 전한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우리가 삶의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이라도 우리가 받은 이 엄청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독생자를 바친 성부 하나님의 그 사랑을 기억하면서 더 이상 우리를 위해 살지 말고 그분을 위해 살기를 소망한다.
 
 
*디도서 2:14,
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성도라 하지만 내 삶 속에 악한 일이 있다면 그것을 벗어버려야 한다.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 우리가 버젓이 예배드리고 있지만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죄의 문제가 있다면 이 엄청난 십자가의 속량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악한 일을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 하지 않은가? 회해의 아들, 타로프가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로 엄청난 구원을 받은 우리, 다시금 십자가의 감격을 회복하면서 오늘 가장 의미 있게 살아가가길 축복한다.
 
♣요약
우리가 미천한 가난하고 종들을 생명의 빵으로 오셔서 구원해주심에 감격하며, 이제는 살아도 죽어도 내 삶과 인격에서 내 발이 딛는 데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예수 제자로 살기를 소원해야 한다.
-성령의 약속이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약속을 가리킨다. 이 약속은 오순절에 성취되었으며 오늘날도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내재하셔서 성도의 삶을 인도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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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2년 8월 6일)(여름특별토비새-(
Ⅴ)
제목: "우리 함께 재건축 합시다"

말씀: 느헤미야 6:5~6
찬양인도: 쉐키나, 이 다니엘 목사님
대표기도: 김도훈 부목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조성민 목사님-초빙(상도 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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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6:5~6,
5 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냈는데.
6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너와 유다 사람들이 모반하려 하여 성벽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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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조성민 목사님-초빙(상도제일교회)
-할렐루야!!~
이렇게 새벽에도 안아 주심의 본당을 채워주시는 자체가 너무 감사하다. 토비새는 누구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있는 것을 믿는다. 아마 제가 단 위에 선 것은 제가 SaGA 1기생이다. 박수.... SaGA 1기생으로서 목사님이 잠시 비우실 때, 제가 오정현 목사님과 함께 우리 목양 실에서 SaGA 1기생들과 함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제가 배웠다. 너무너무 감사하고 이런 기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은혜이다. 저는 주일 학교를 13년 동안 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 설교는 그냥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 체험하는 설교이다. 우리 어린 아이들도 와 있다. 어린 아이들, 손을 들어보라. 와! 어린 아이가 손을 저렇게 든다. 오정현 목사님께 꼭 선물 달라고 하기 바란다. 자 박수로 격려하자. ~~
 
여러분,
말씀을 배울 때 듣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함께 몸으로 체득한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어떤 의미에서는 말씀을 귀로 듣고 내 몸으로 체험해서 집으로 돌아가면 어떠하든지 간에 들은 것을 여러분의 삶에 체득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중심이 될 수 있기를 다시 한 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6:15-16절을 보면서, “우리 함께 재건축 합시다.”를 나누겠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2022년도 여름 특별새벽 말씀을 듣고 있다. 여러분은 이번 2022년의 토비새의 주제 말씀은 무엇인가? “영감의 갑절을 은혜를 주옵소서.”이다. 영감의 갑절을 은혜를 주옵소서. 라는 것이 우리 2022년도의 토비새 주제이다. 여러분 질문을 하나 하겠다. 제가 질문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여러분, 영감의 갑절, 왜 받고 싶은가? ‘영감의 갑절의 은혜’를 왜 받고 싶은 것인가? 만약에 여러분이 영감의 갑절을 받았다면 어디에 사용하고 싶은가? 여러분, ‘영감의 갑절을 은혜를 주옵소서!’ 라는 이 주제와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있다. 그럴 때에 여러분에게 던질 질문은 두 가지이다. 내가 왜 영감의 갑절을 받고 싶은가? 그리고 내가 하나님께서 영감의 갑절을 주셨다면 내가 이 영감의 갑절을 어디에 쓰고 싶은가? 여러분, 만약에 이 영감의 갑절의 이 단어를 보면, “영감의 갑절을 은혜를 주옵소서.” 자 여러분, 영감은 성령을 이야기 한다(영감=성령). 제가 어렸을 때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칠 때,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 있다. 늘 오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주일학교를 나와야 된다.”라고 하셨다. 성령님은 날마다 돕는 분이시다.
 
‘아, 내가 남들보다 두 배 은혜를 받아서 저 성도보다, 저 순원 보다 두 배 더 순장을 한 번 눌러보자.’ 이것인가? 무얼 눌러?? 순장이 뭐 단추인가? 버튼인가? 아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은연중에 비교 의식이 들어와 있다. 비교의식, 우리 마음 가운데 누가 이야기 하지 않는데 어느 새, 순간적으로 꼭 들어와 있다. 교회끼리 비교, 순장님들 비교, 순원 끼리, 다락방끼리 비교한다. 여러분 영감의 갑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비교 의식을 지금 충만하게 주기 위한 메시지가 아니다. 이것은 정말 우리를 교만하게 만든다. 여러분이 영감의 갑절을 ‘내가 어떻게 하든지 두 배의 은혜를 받고, 두 배의 능력을 받고, 두 배의 직분을 받아서 저 사람보다 앞서가겠다.’ 이것은 교만이다. 큰 교만이다.
 
여러분,
엘리사가 엘리야보다 더 뛰어나고 싶어서 영감의 갑절을 달라고 한 것인가? “야 이제 엘리야 선생님이 돌아가시니까 영감의 갑절을 받아서 엘리야보다 훨씬 더 뛰어난 제자가 되겠다.”는 것인가? 그런 의미로 영감의 갑절을 달라고 한 게 아니다. 여러분, 성령은 인격이지 분량이 아니다. 두 배, 세 배, 열 배, 어떻게 성령을 분량으로 측정하는가? 측정할 수 없다. 성령은 우리에게 주시는 인격이다. 할렐루야!, 우리가 주제로 “영감의 갑절”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두 배, 세 배, 네 배, 이런 부분들이 아니다. 왜냐면 우리가 연약한지라, 자꾸 이런 부분에 집중하다 보면 자꾸 우리의 마음속에 사탄이 은혜 받아야 하는데, 비교의식의 자꾸 가라지를 뿌린다. 비교의식의 가라지를 뿌린다. 영감의 갑절은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여러분 이것은 영감의 갑절이 우리를 교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욕심을 채우기 위한 주제가 아니다. 우리를 엘리트주의로 만드는 그런 잘못된 신앙의 모습들이 아니다. 우리 성경을 찾아보자. 신명기 21장 17절이다.
 
*신명기21:17,
17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영감의 갑절을 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비교의식이 충만해 지려고? 교만하게 만든다. 자기의 장자의 권리가 있다. 장지 권을 이야기 한다. 장자권, ᆢ후계 자,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 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아멘, 여러분, 두 명의 장자, 후계자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엘리야를 향하여서 엘리사는 “영감의 갑절을 주옵소서” 라고 한다. 그 영감의 갑절을 더블로 주셔서 내가 더 뛰어난 선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신의 진정한 장자, 후계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이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확신하는 주제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주제를 잡은 목적 자체가 그렇다. 우리 사랑의 교회, 또 우리 순원들, 다락방들, 순장님들, ‘이런 다락방을 맡겼을까?' 이런 다락방이 어때서? 왜? 그런 다락방도 있는데, 뭘 잊어버린 것인가? ’나는 괜찮은 지역 갔으면 좋겠는데‘, 그게 영감의 갑절이 없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내가 장자이다. 내가 후계자이다. 엘리사는 그걸 알았다. 그래서 영감의 갑절을 달라고 하는 이유는 “내가 당신의 후계자임을 확인시켜 주세요.”이다. 이 떠나가는 이 엘리사 선생님의 직임을 승계하는 것이다. 누가? 엘리사가... 떠나가는 그 엘리야 선생님의 직임을 잘 후임해서 그 시대의 위기를 재건축을 해야 하는 것이다.
 
여러분, 오늘 본문 이후로 보면 계속해서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 발생한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하는가? 엘리사가 해결한다. 엘리사는 그 시대의 위기를 재건축 했다면 오늘 영감의 갑절을 원하는 우리와 유튜브 성도님들, 그 성도들을 오늘 영감의 갑절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이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내가 있는 내 삶의 현장에서 여러분의 현장에서, 그게 가정이든, 다락방이든, 직장이든 어떤 공동체가 되든 거기에서, 위기에서 재건축하는 역사를 이루어 내는 것이 바로 ‘영감의 갑절’을 구하는 태도이다. 그래서 여러분, 이 주제와 설교를 이렇게 연결해 보겠다. “영감의 갑절을 은혜를 주옵소서.”의 주제이니 성령의 역사의 장자권을 주옵소서! 이다. 이 시대의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다.
 
“우리 함께 재건축 합시다.” 재건축은 밑에서 세워지는 하는 것이다.
모션... 영감의 갑절을 주옵소서! 우리함께 재건축 합시다. 오늘 이 말 하기 위해서 여기 왔다. 여러분 갑절의 영감은 무엇이냐면 재건축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코로나가 장기와 되고 있다. 굉장히 많이 무너졌다. 무너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제가 어느 책을 보니까 지금 코로나 시대에 열 가지가 무너졌다고 한다.
 
▷코로나로 무너진 열 가지.
1 정상의 무너짐. 2. 가정의 무너짐. 3. 몸의 무너짐. 4. 정신의 무너짐.
5. 희망의 무너짐. 6. 애착의 무너짐. 7. 연결의 무너짐. 8. 습관의 무너짐.
9. 관계의 무너짐. 10. 격차의 무너짐.
-여러분 예수 믿는 집안이라 할지라도 코로나로 이렇게 무너진 모습이다. 우리가 여러분 이 코로나 영향을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러분은 몇 가지가 무너졌다고 생각하는가? 여러분 그럴 수 있다. 우리는 연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이다. 무너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럴 때마다 두 가지의 질문을 해야 한다. 첫 번째 질문이고, 두 번째 질문이다.
 
I 나는 언제까지 무너진 채로 살 것인가?

-여러분 넘어질 수 있다. 그런데 포기하면 안 된다. 넘어질 수 있다. 연약하니까, 그런데 포기는 하면 안 된다. 오늘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늘 사랑의교회 성도들이, 유튜브 방송을 듣고 있는 성도들이, 여러분이 말씀은 듣지만 언제까지 무너진 상태로 살 것인가? 무너지지 않았다고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도 나는 안다. 내가 얼마나 무너져 있는지, 첫 번째 질문은 내가 내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었고, 두 번째 질문은
 
II. 하나님은 내가 무너진 채로 사는 것을 원하시는가?

-여러분 하나님은 내가 무너진 채로 사는 것을 원하시는 분이신가? 만약에 그렇다면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 무너진 채로 살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내가 너를 반드시 도우리라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다.” 여러분 이런 말씀을 그러면 하지지 않는다. 그런데 여러분 구약을 보라.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가장 많은 말씀 가운데 “내가 너와 함게 하리라.” 그 말씀은 무슨 말씀인가? 그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랑의교회 성도들이, 오늘 토비새 나온 성도들이, 무너진 채로 사는 것을 하나님이 원치 않으심을 말씀하신다. 포장하지 말라. 신앙을 화장하지 말라. 그것은 잠시이다. 하나님 앞에 그게 통하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무너진 채로 사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이 아침에 토비새를 통해서 우리와 함께 재건축되기를 소망하신다. 자 여러분,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다. 이 말은 무엇인가? 여러분 성벽이 무너졌다. 핵심이 예루살렘의 성벽이 무너졌다는 것이 무엇인가? 여러분, 두 가지 의미가 있다.
 
1차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적이 공격할 때 성벽이 없다. 그러면 어떠하는가? 그래서 적의 공격으로부터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2차는 예루살렘의 영적인 구심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구심점이다. 이 영적인 구심점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보호할 수도 없고 영적인 구심점이 무너졌는데 오늘 성벽은 무엇인가? 52일 만에 성벽이 재건축되었다는 것을 말씀한다. 무너진 자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결코 무너진 채로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오늘 본문의 말슴의 핵심은 저는 영감의 갑절을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인 분들은, 이 위기의 시대에 여러분의 직장과 가정에 재건축의 일꾼이 되는 것이다. 영감의 갑절을 받으면 나를 위해서가 아니다. 그 영감의 갑절을 받아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감의 갑절이 아니다. 아니다. 함께 재건축하자는 것이다. 무너진 채로 살지 말고 재건축하자는 것이다.
 
 
1. 어떻게 52일 만에 성벽을 재건축할 수 있었는가?
중요한 주제이다. 여러분, 재건축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본당도, 이 멋진 건물 아닌가? 쉽지 않았다. 여러분 이 인부들, 이 공사기간, 이거 맞추는 게 쉽지 않다. 환경, 날씨, 이러한 것으로 쉽지가 않다. 여러분, 이 예루살렘 성벽 지을 때, 이 사랑의교회를 지을 때, 반대하는 세력들이 얼마나 많은가? 여러분 오늘 본문, 제가 읽지 않았지만 지금 보면 산발랏이 무어라고 하는가??
“야, 네가 왕이 되려고 하는구나!!” 이것은 역린(逆鱗)이다. 여기에 걸리면 다 죽는다. 네가 왕이 될려고 하는구나!! 하는 말에 걸려들면 다 죽는다. 또한 도비야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야,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지겠다.” 한다. 여러분, 열심히 건축하고 있는데, 열심히 예루살렘을 짓고 있는데, 반대하는 자가 있다. 열심히 건축을 하고 있는데, “열심히 지으십시오. 성벽 참 보기 좋습니다.”가 아니라 “야 여우가 올라와도 무너지겠다. 그게 성벽이냐?”고 한다. 힘을 쪽 빼버린다.
 
여러분,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52일 만에 성벽을 재건축할 수 있었는가?는 것은 짧았다.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성벽이 건축될 수 있었는가? 시간이 짧았다는 것인가, 아니면 길었다는 것인가? 짧았다는 것이다. 오늘 성경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짧았기에 기록했다. 어떻게 52일 만에 성벽이 재건축 될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내 인생이 무너진 채로 사는 것 말고, 사람들에게는 안 무너진 것처럼 이야기 하고 싶을 것이다. 사람들 앞에 괜찮은 것으로 보여 주고 싶을 것이다. 그게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나 주님은 아신다. 여러분,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52일 만에 성벽이 재건축 되었다. 이것은 기적이다.
 
*느헤미야 2:17-18,
17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하고.
18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누구의 선언인가? 느헤미야가 이야기 한다. 잘 보라. 그들이 이르기를,,, 느헤미야가 알고 있었다. 예루살렘의 성벽이 불탔으니, 여러분, 52일 만에 재건축 되어졌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다. 바로 선언이다. 느헤미야의 선언이다. 여러분, 느헤미야가 더 이상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한다. 그 말을 듣고 나서 ‘그들이 일어나 모두 힘을 내자! 이 선한 일을 하고 하니 그 52일 만에 재건축한다. 중요한 것은 느헤미야의 선언이다. 여러분, 순장들이 이제 대면 예배를 드린다. 바로 이것을 하는 것이다. 순장님들은 왜 세웠는가? 왜 교사를 세웠는가? 선언하라고 교사로 순장으로 우리를 세우셨다. 왜 우리를 부모로 세우셨는가? 선언하라고 우리를 부모로 세우셨다. 어떤 선언인가? “자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 말자! 말자! 자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 말자! 말자!! 자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 말자! 말자!!! 이게 선언이다. 이 선언을 이스라엘 백성이 듣고 힘을 내기 시작한다. 여러분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게 무엇인가? 여러분을 힘을 빼게 하는 것이 무언가? 여러분은 자신 만만하게 만들지 못하는 게 무엇인가? 왜 주눅이 들어있는가?
 
오늘 ‘우리 함께 재건축 합시다.’ 우리의 삶 가운데 적용은 무엇인가?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느헤미의 선언을 재연하는 것이다. “자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 말자! 말자!! 말자!!!, 그 수치스럽게 나를 수치스럽게 하는 대상, 수치스럽게 만드는 그 사건, 수치스럽게 그 악한 존재 앞에서 침묵하는 게 아니다. 세력, 동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수치와 대상과 존재와 그런 악한 세력이 있다면 느헤미야처럼 선언해야 한다. “자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 선언할 수 있지 않은가? “자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 말자!! 순장이 그 말을 하면 순원들이 힘을 얻기 시작한다. 여러분들이 교사들이 이들에게 그 말을 하면 아이들이 힘을 얻기 시작한다. 부모가 하면 자녀들이 힘을 얻는다. 그래서 52일만에 성벽이 재건축 된다. 일만에 성벽이 재건축 되는 것이 선언만이 아닌 행동이다. 이게 우리가 약하다. 선언은 잘한다. “자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 말자!! 말자!!!” 이건 선언은 잘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재건축이 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선언과 행동을 중요시 하신다.
 
*느헤미야 4:21-23,
21 우리가 이같이 공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으며.
22 그 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말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일하리라 하고.
23 나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따라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다 우리의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느니라.
-이게 행동이다. 제가 이 말‘씀을 보면서 선언이 아닌 행동이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행동, 여러분 행동을 보면 선언하고 난 다음에 동틀때부터 별이 나오기까지 옷을 벗지 않았다. 군대 가면 알 것이다. 5분 대기조이다. 그 정도로 긴장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 하나님의 은혜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백성의 얼마나 알뜰하면서 얼마나 확실한 행동을 하는지 성경은 조목조목 이야기 하고 있다. 우연히 된 것은 없다. 우연히 된 것은 없다. 예수 믿는 자들은 특히 우연은 없다.
 
지금 오늘 청년들은, 시간 낭비하지 말라. 아무리 믿음의 고백이 탁월해도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쓰신다.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쓰신다. 청년들은 준비하는 시간이다. 시간을 아껴라. 세월을 아끼라. 여러분 성경에 나온다. 그 시간을 돈을 주고 사라는 것이다. 얼마나 아까운 줄을 알게 된다. 맡긴 자의 사명은 충성이다. 하나님이 나를 언제 불러갈지 모른다. 그러니 충성하다가 가라. 그냥 뺀질뺀질 하지 말고, “순장님 기도하고 결정할게요.” 무얼 기도해, 이미 기도했는데 결정할게요. 교역자가 이미 기도했는데 하라면 하는 것이다. 굉장히 “며칠 만 기도해보고 하겠습니다.” 아주 교만이다. 선언은 있는데 행동이 없는 것이다. 선언도 행동도 52일 만에 성벽이 재건축 될 수 없다. 여러분 52일 만에 성벽이 재건축 되는 것은 함께 가는 것이다. 선언도 행동도 함께 가야 한다. 52일 만에 성벽이 재건축하는데 행동이 없으면 안 된다. 직장에서 여러분이 원하는 것이 왜? 안 되는가? 그 작장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실력을 길러라. 그 직장에서 꼭 필요한 자가 되어야 한다. “야 너는 언제 나갈거니? 3년 치 월급 줄 테니 나가 줄래”의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그게 뭔가? 여러분, 52일 만에 성벽이 재건축 되겠는가? 실력이 없지 않은가? 행동이 없다. 여러분, 우리가 사랑의 교회가 다닌다고 해서 사랑의 교회가 실력을 대변해 주지 않는다. 왜 그 맛에 살려고 하는가? 여러분, 사랑의 교회가 여러분의 실력을 신앙의 뒷받침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보시지 않는다. 여러분은 메너리즘에 빠지지 말라. 그게 행동이다.
 
자 여러분, 자기 몸이 비행기라고 하라. 오른 쪽 날개, 왼쪽 날개, 집사님 비행기의 오른쪽 날개가 중요한가 왼쪽이 더 중요한가? 두 개다 이다. 선언과 행동이 균형이 잡히면 우리를 하나님이 쓰시는 목적지까지 데려가신다. “자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 말자! 말자!” 행동은 끝내주는데 선언이 접혀도 안되고 예수님의 대한 고백, 신앙에 대한 고백이 없고 하나님이 사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여러분, 어떻게 하면 52일 만에 성벽이 재건되었냐면 선언과 행동이 있으면 재건축이 된다. 믿음의 선언과 액션 행동까지 하라. 자기 몸이 비행기라고 생각해보라. 비행기의 오른쪽 왼쪽 날개가 어디가 중요한가? 다 중요하다. 여러분, 오른쪽 날개는 선언, 자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 말자! 말자!” 이고, 왼쪽은 행동이다. 이 선언과 행동이 균형이 잡히면 하나님이 쓰시는 목적지까지 데리고 가신다. “자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 말자! 말자!”는 되는데 행동이 안 되면 안 된다. 이런 비행기는 날지 못한다. 반대로 행동이 끝내주는데, 선언이 접혔다면 그것도 안 된다. 예수님의 대한 고백, 신앙에 대한 고백이 없으면 이런 비행기는 날 수가 없다. 하나님이 사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여러분, 어떻게 하면 성벽이 재건축 되었는가? 다른 것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언과 행동이 함께 있을 때 재건축이 된다. 나를 수치를 당하게 하는 그 존재 앞에서 더 이상 수치를 당하지 말자 !말자!! 말자.!!
 
2. 52일 만에 성벽이 재건축 된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52일 만에 성벽이 재건축 된 진정한 의미가 있다. 내면의 모습이 있다.
 
*느헤미아 6:16,
16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여러분, 믿음의 성벽, 기도의 성벽이 세워지면 대적들이 크게 두려워한다. 여러분들이 성벽이 재건축 되야한 한다. 준비 되지 않으면 이방 민족들 그들이 비웃는다. 대적들, 산발랏, 도비야 게셈, 그러한 대적들이 다 두려워하고 크게 낙담한다. 이런 역사가 일어나길 축원하다. 이것은 성벽이 재건축 되엇을 때 이야기이다. 우리 함께 재건축되어지면 대적들이, 악한 세력들이 두려워하고 낙담한다. 이방 족속들이 다 두려워하고 두려워한다. 위기를 낙담 시키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줄 믿는다. 우리가 재건축 되어 지면 이 방인들이 다 두려워한다. 이게 내면적인 이유이다. 또 내면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16절 하반 절에 보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할렐루야!! 이게 내면적인 역사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그 대적들이 다 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누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사람의 이름과 공동체가 아니라, 성벽이 재건축 될 때, 대적들이 보니, ‘야,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야’. 하게 된다. 하나님이 하셨다. 여러분 성벽이 재건축 되어질 때, 다른 사람들이 이것 말이 안 돼, ‘이건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면서 “갑절의 은혜는 주옵소서!” 라는 것은 결국, 우리 성도들이 다시 한 번 재건축 되어지는 것이다. 이것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냥 “주옵소서!” “주옵소서!” “주옵소서!”만으로 끝나지 말고, 그것을 받고 난 다음에는 내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담는 것이다. 그래서 짧은 시간 안에 무너진 채로 살지 말고, 무너져 있는데 왜? 무너지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 하는가? “하나님 앞에 이런 부분이 무너졌으니 하나님 52일 만에 주님 채워주세요.!!” 하라.

 
▷사랑의교회 영감의 갑절을 주옵소서. 우리 함께 재건축 합시다.
1. 어떻게 52일 만에 성벽을 재건축 할 수 있었는가?(외면)
- 선언과 행동.
2. 52일 만에 재건축된 성벽의 진정한 의미는?(내면)
그들이 다 두려워하고 크게 낙담한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다.
 
♣요약
-우리가 재건축되어지면 이방족속들이 다 두려워하고 낙담한다. 이리치고 저리 치지 말고 진짜 전문가가 되어서 살아야 한다. 안 믿는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 사람 이름 들어내지 말고 그것을 하나님이 하심을 믿어야 한다.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아버지 무너진 성벽을 재건축하게 하시며 저를 붙들어 주셔서 앞길을 인도하여 주시길 원합니다."라고 기도하라. 우연이 아닌 하나님 어떤 방편이라도 주님 함께 하셔서 우리 교역자들을 사랑하시고, 힘을 주시고, 재건축 역사의 주인공이 되며 장로님들, 권사님들, 순장, 리더들이 무너지지 않아서, 어떻게 하든 52일 만에 재건축되길 선언과 행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무너진 성벽을 시간과 세월을 낭비하지 말고 시간을 아끼고 하나님 앞에 충성아여서 다시 재건축하기를소망한다.

 -겸손하여서 내 신앙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자 되고 양 날개가 잘 세워져서 믿지 않는 자들 앞에서 섬기고 많은 이들의 악한 권세를 낙담시켜서 선교 지는 세워지고, 모두가 성령 안에서만 굳건히 세워지길 기도해야 한다. 정말 영감의 갑절을 받아서 가정의 위기, 신앙의 위기, 교회의 위기에서 재건축되는 역사가 되고, 선언과 행동으로 놀라운 역사를 맛보며, 그 역사 안에서 대적들이 다 두려워하고 크게 낙담되게 하시고 이것을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깨달아서 대 전환의 그들이 되길 기도하고 선언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2년 8월 6일)(여름특별토비새-Ⅴ)-우리 함께 재건축 합니다(조성민 목사님).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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