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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2년 8월 10일)

제목: "강하고 담대하라"
말씀: 여호수아 1;1-9
찬양인도: 쉐키나(이원준 부목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하상범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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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1-9,
1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2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3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4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5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7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9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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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범 부목사님

-거룩한 습관을 따라 치유와 응답을 체험하시는 오늘 수요저녁기도회에 참여하신 모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한다. 강하고 담대한 용기를 심령에 가득 부어주시는 시간되시기를 소망한다. 저는 종종 소설을 읽을 때가 있다. 소설을 읽다보면 저와 전혀 다른 상황 속에 있는 그 인물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공감하며 읽을 때가 있다. 또 소설책을 읽다보면 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주변 책들을 뒤적거리며 저의 협소한 상식이 넓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또 감정이 언어로 정리가 되어서 저의 마음이 시원케 되는 경험할 때가 있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 이 모든 것들을 경험한다. 성경 속 인물에게 수평적으로 연결이 되어 감정을 공감한다. 그리고 시야가 넓어지는 것들을 경험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언어를 진리가 되어 마음이 시원케 된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성령의 조명하심을 통하여서 하나님과 수직적으로 연결이 되는 은혜를 경험한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읽을 때에 제 삶을 넓어지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깊어지게 하는 놀라운 신비한 체험을 하게 하신다. 오늘 이 시간 여호수아 말씀을 통해서 저희 모두에게 아버지 하나님께서 넓어지고 깊어지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소망한다.
 
*여호수아 1:6-9,
6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기서 반복되는 단어가 있다. 설교 제목이기도 한다. 어떤 단어가 반복이 되는가? 바로 강하고 담대하라. 바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신다.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했을 때, 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시는가? 의 대해서 질문이 들었다. 왜냐하면 찬송가 347장을 보면 ‘허락하신 새 땅에 들어가려면 여호수아를 본받아서 들어가야 된다.’라고 우리가 찬양을 한다. 왜 본 받아야 하냐면, 여호수아가 강하고 담대한 인물이기 때문에 ‘여호수아를 본받자.’ 라고 찬양을 한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강하고 담대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혹시 여호수아가 성경에 처음 등장했던 그 장면을 기억하는가?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여호수아가 처음 등장한다. 출애굽기 17장 9-13절 말씀을 보자.

*출애굽기 17:9,10,13,
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여호수아가 성경에 처음 등장할 때 성경은 여호수아의 감은 초년의 역사, 그의 경건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당시 상황은 이렇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지 두 달 정도 되었을 때이다. 그런데 그들 앞에 잘 훈련된 그들 앞에 아말렉 민족이 있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 민족은 노예였다. 그런데 잘 훈련된 군사를 가진 아멜렉과 지금 전투를 싸움을 해야 될 상황이다. 그 상황에서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여호수아, 사람들을 취하여 아말렉과가 싸우라.” 그 말은 들은 여호수아가 모세의 명을 받들어 순종하여 사람들을 취하여 아말렉과 싸움을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싸움을 나가서 승리를 취하여 돌아오는 장면이 바로 오늘 그 장면이다. 저희가 이 장면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여호수아는 강하고 담대한 인물이며 전사요, 무사이고, 이미 모세의 눈에 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한 장면을 보면 출애굽기 24:13.15,18을 보자.
 
*출애굽기 24:13.15,18,
13 모세가 그의 부하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모세가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15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18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돌아오는 주일 청계산 산상 기도회를 앞두고 있는데, 마치 그러한 상황이다. 모세가 하나님과 시내 산 산상 기도회를 하기 위해서 여호수아와 함께 산에 올라간다. 모세는 그런데 홀로 여호수아를 산에 남겨 두고 더 깊은 산으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올라간다. 출애굽기 32장 1절에 보면 산 아래서 진에서는 40일 동안 그들을 이끌고 온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급함에 두려움에 사라진다.

*출애굽기 32:1,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왜냐하면 그들을 이끌고 온 리더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아론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급함과 같이 전이되어 버린다. 그래서 백성들과 똑 같은 불경건과 불신앙의 선택을 하고 만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홀로 산에서 40일 40야를 두려움과 맞서 싸우며 모세가 돌아올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린다. 그런 여호수아를 향해서 민수기 32:12장 하반 절에 여호와 하나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신다.
 
*민수기 32:12,
12 그러나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온전히 따랐느니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온전히 따랐다는 것은 여호수아가 죄 없는 삶을 살았다는 말이 아니라, 여호수아 삶이 불신앙이 가득하고 배도가 판을 치는 그 시기에 두려움을 모르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목표로 삼고 하나님께 충성하였다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강하고 담대한 인물이었다. 두려움을 모르고 하나님께만 충성하던 자였다. 그 여호수아가 여수룬에서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통치자 되었다. 강하고 담대한 인물이며 두려움을 모르고 담력을 가진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강하고 담대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반복해서 강조하시면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버지 하나님의 약속이 나를 통해서 실현될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약속을 내가 실천만 하면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강하고 담대한 여호수아라 할지라도 두려움을 모르고 거룩하고 충성스런 여호수아라 할지라도 두렵고 놀라, 발이 땅에 붙고 몸이 얼어붙어서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고 몸이 얼어붙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강하고 담다하라’는 이 말씀은 여호수아만을 위한 말씀이 아니다. 에베소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 역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았으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기업의 풍성함이 이미 주어진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팬데믹 시대에 무언가로 인한 불안, 초조, 떨림을 느끼며 살아간다. 왠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왠지 모를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그래서 한 발짝 떼면 된다는 것을 아는데, 용기를 내면 된다는 것을 아는데, 몸이 얼어붙고 말 때가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 마이스 교수는 ‘의지력의 재발견’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하더라도 인간의 의지만큼 믿을 수 없는 게 없으니 믿지 말라.”고 말한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도 기도교 강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무심적 의지로는 자유하게 하지 못 한다.” 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담대하지 못하다고 해서 자책하지 말라. 자신이 강한 의지력을 갖지 못한다고 해서 좌절하지 말라. 그러면 이제 본문 말씀을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고 반복해서 말씀하셨는지 그 이유들을 살펴보자. 첫 번째부터 보자.
 
I. 소중한 것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 1:1-2,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모세가 죽었으니, 라고 기록되어 있다. 출애굽을 하며 광야기간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바라본다. 모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곧 법이었고 모세의 입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모세를 통해서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았고, 모세를 통해서 만나가 떨어지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해서 물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가나안 땅을 들어가야 된다. 가나안 땅에 일곱 족속과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런데 가장 필요한 그 순간에 모세를 상실했다. 여호수아에게 있어서는 더 특별한 존재였다. 왜냐하면 여호수아가 전투하러 나갔을 때에 산에서 두 손을 들고 기도하고 있는 모세를 바라보며 여호수아는 전투를 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과 대면하는 모세를 바라보면 여호수아는 신앙생활을 했다. 그리고 삶에서 분별이 되지 않고, 판단이 되지 않고 햇갈리는 상황이 있으면 모세를 찾아서 상의를 했다. 그런데 지금 가장 필요한 그 순간에 모세를 상실한 것이다.
 
목회자로 소중한 사람들뿐 아니라, 소중한 일을 상실했다고 말씀하시는 성도님들을 만나야 할 때가 있다. 좋아하고, 의지하고 전부였던 것을 잃어버렸다고, 빼앗겨버렸다고 표현하시며 말씀하실 때가 있다. 육신적으로 보면 깊은 미스터리이다. 지극히 아픈 섭리이다. 그분들의 믿음에 대한 쓰라린 시련이다. 상실로 인해 비어버린 그 자리를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야 되는지 그 방법들을 물어보신다. 이스라엘 백성과 여호수아에게도 지금 그러한 순간이다. 바로 그 순간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여호수아 1:2b,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신명기 34:8절에 보면,

*신명기 34:8,
8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모세가 죽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과 여호수아가 그들이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애곡하고 애도하는 30여 일의 기간을 기다려 주신다. 그리고 오늘 본문 2절 하반 절에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냐면 곧 너희들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그 땅이 어떤 땅인가? 본문 말씀 3절이다.
 
*여호수아 1:3,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3절에 보면, 시제가 좀 이상하다. 뭐가 이상한가? 밟는 곳을 아직 안 밟았는데 하나님께서 이미 주었다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세기 5장을 먼저 이해하셔야 한다. 창세기 15장을 보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통해서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언약을 맺는다. 그러다가 나중에 출애굽기 2:24절에서 애굽 땅에서 그들이 너무 힘이 들어 고통소리를 기억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들의 언약을 기억하신다.
*출애굽기 2:24,
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 사랑하는 성도님들,
언약을 기초로 구원의 행위를 이루어 가시는 분이시기에 가나안 땅은 그들의 땅이 될 땅이다. 다만 그 약속을 믿고 순종하느냐, 순종하지 않느냐에 달려있다. 그 약속을 믿고 순종하면 8절에 형통하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형통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개념과 의미가 다르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형통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지금 다가와 주셔서 내가 상실한 것들을 채워주시고 위로를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성취해 주시는 것이 형통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다. 자신의 순종과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 그것이 형통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영적인 비밀을 깨달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상실의 체험과 아버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상실의 체험이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상실의 생각에 발목을 잡혀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잃어버린 그 자리를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소중한 것을 상실했다 하더라도 예정된 완성을 향하여 순종의 전진을 멈추지 말라고 하신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순종의 자리‘라고 말씀하신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통하여 ’약속된 기업‘을 얻기들 원하신다. 여호수아는 이 영적인 비밀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중에 40년 동안 해어지지 않았던 신발과 옷이 해어지는 상실이 닥친다. 그리고 40년 동안 매일 아침마다 내렸던 만나가 그치는 상실을 닥친다. 그래도 여호수아는 순종의 전진을 멈추지 않는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상실의 순간이 닥친다하더라도 강하고 담대함으로 순종의 전진을 멈추지 않아 약속된 기업을 받는 형통함의 은혜를 누리시길 소망한다.
 
II.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게 될 때이다.
 
*여호수아 1:1,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하나님은 모세의 여호수아에게 모세의 자리에 서서 백성을 이끌어가라고 말씀하신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옆에서 섬기고 돕는자였다. 그 누구보다도 모세가 어떤 자였는지 잘 아는 자였다. 성경에 보면 모세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출애굽기 2:2,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겼다는 표현이 되어 있다. 외모적으로 칭찬이 된 것이 아니라, 원어로 보면 토브라고 숨겨져 있는데 그 ‘토브’가 그의 인생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나타낼 것’이라고 뜻이 숨겨져 있다.
*출애굽기 33:11,
11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이사야 6장에 보면 천사도 경외함 가운데 하나님 앞에 두려워 떠는데 모세는 친구와 같이 하나님과 대면하였다. 그 결과 출애굽기 34:29절에 보면,
 
*출애굽기 34:29,
29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는 은혜를 누렸다고 말한다. 민수기 12:3절에도 그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에 모든 사람보다 더 은혜를 누렸다. 그리고
 
*민수기 12:3,
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신명기 34:10,
10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시편 90편 표제에는 모세를 위해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라고 표제에 적혀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여호수아 1:1절에 보면 여호수아를 향해서 여호와의 종 모세,
 
*여호수아 1:1,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미국의 백 년 전에 살다간 연방 대법관 월리홈스는 이런 말을 했다. 삶이란 총 합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월리홈스의 지적처럼 삶을 살아남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살아가야 되는데 그것이 잘 되지가 않을 때가 많다. 우리 모두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살아가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다짐을 하면서 산다. ‘남보다 잘 살아야지.’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아야지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비교하면서 모순된 다짐을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남보다 잘 살아야지’ 하면서 남과 비교하면서 극단으로 치 닫을 때가 있다. 이 극단으로 치 닫을 때가 언제냐면 나도 모르게 ‘나는 지금 이 나이까지 뭐했나?’ 생각을 줄 때가 있다. 그러다가 잘 된 친구를 보면서 저친구 나이가 어떻게 되었었지? 그러면서 스스로를 초라하게 느낄 때가 있었다.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그렇게 모세와 비교하여 스스로가 초라하다고 느낄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여호수아 1:5절이다.
 
*여호수아 1:5,
5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바로 그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가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할 용기를 주신다.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의 성곽은 하늘에 닿을 만큼 크다. 그들의 병거는 철로 되어있다. 그들과 싸워야 할 군사는 거인과 같이 크다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들과 비교할 때에 자신들이 초라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있으며, 그들을 대적할 자가 없으며,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는 것을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와 비교했을 때에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먼저 너와 함께 있다는 신적 확신이 가득 부어주셨어야만 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내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 너와 함께 있으며, 내가 너를 떠나지 않고 내가 너를 버리지 아니할 것이다.’라고 하신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말씀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그 순간에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할 용기를 주신다. 강하고 담대할 용기를 우리에게 부어주신다. 성경은 기록된 이 말씀이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셨다. 이 상실을 자주 상기하라. 내 자신이 스스로 초라하다고 느껴질 때에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구하라.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시는 이가 그리스도의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 확신하라. 우리가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일을 더하면 우리의 수고가 예수 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 확신하라.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떠나지 아니하실 것이다. 우리 안에 생명을 더하는 믿음, 풍성하며 확고하며 흔들리지 아니하며, 회복력을 더하는 믿음을 더 주실 것이다.
 
욥도 자신이 초라해졌을 때, 나를 떠나지 않으시며 버리지 않으실 때, 맞으십니까? 라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울부짖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 칭찬하셨다. 뿐만 아니라 야곱도 하나님 앞에 나아갔더니 하나님께서 그 야곱에게 넌지시 져 주시기도 하셨다. 그리고 아간의 죄 때문에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했을 때, 여호수아가 이 본문 말씀을 붙잡고 이렇게 기도한다. 여호수아 7:9절이다.
 
*여호수아 7:9,
9 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도 강하고 담대 하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함께 하신다. 마지막 세 번째이다.
 
III. 영적 왕관의 무게가 부담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신명기 34:5,7,
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7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이 말씀은 어떤 뜻이냐면, 모세가 죽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죽음에 개입하셨다는 것이다. 왜 개입하셨는가하면, 그 이유가 민수기 20자에서 나온다. 모세의 여동생 미리암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물이 없어서 물이 없어서 물을 달라고 불평을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야박하다. 모세의 여동생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때 모세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반석을 향하여 명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물을 주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모세가 명하여 물을 주지 않고 반석을 쳐서 물을 준다. 딱 한 번,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다. 그 대가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영적 왕관의 무게를 여호수아가 본 것이다. 얼마나 불순종하는 대가가 얼마인지를 여호수아가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 부담 앞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여호수아 1:7-8,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 이전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서 그의 명령과 규례들을 지켰다. 모세 역시 신적인 권위를 좇아 처신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서 명령과 규례들을 받았다. 그런데 여호수아부터 달라진다. 출애굽기 24장을 보면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들을 기록하게 한다. 그리고 신명기 31장에 가면 언약궤를 메는 레위 제사장들에게 모든 장로들에게 그것을 기록한 모든 율법 책들을 주어서 보관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7년에 한 번씩 온 회중들에게 낭독하여서 듣게 만든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7년에 한 번씩 온 회중들에게 낭독했던 것을 이제는 주야로 묵상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다 할지라도 그의 처신이 율법 책 위에서 규정된다고 말씀하신다. 그의 처신의 표준을 율법 책으로 삼으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라고 할지라도 그이 규범이 그의 말씀 가운데서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이제는 이스라엘이 따르라고 할지라도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해야 되는 것은 성실히 그 율법 책을 지키고 따르는 것이 그의 임무가 되었다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이것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규정되어야 한다. 내 삶의 표준을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삼아야 한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되어야 한다. 오직 저희들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새로운 법을 만들 필요가 없다. 새로운 세계관을 기준을 만들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주야로 묵상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성경을 폈을 때, 때로 이해가 안 되고 의심이 되는 내용이 있을 수 있다. 그러할 때에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신약 성경에 의심의 대명사를 나타내는 신자가 한 명이 있다. 바로 도마이다. 요한복음에 보면 그 도마 앞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현현하여 나타나신다. 그 때 도마가 무엇이라고 고백한 줄 아는가?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요한복음 전체에서 예수님을 향해서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도마 한 사람 밖에 없다. 묵상하여 성경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은혜가 바로 그것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영적 그 무게가 부담으로 느껴진다 하더라도 강하고 담대하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의 말씀을 통해서 그 길이 복된 길임을 은혜의 길임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시고 누리게 하여 주실 것이다. 이제 말씀을 맺겠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된다. 가나안 땅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신명기 12:9,
9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가나안 땅은 천국의 모델이 아니다. 이미 잘 아시는 거처럼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실질적인 경험에 있어서는 힘겨운 싸움의 시작이다. 가나안 땅이 의미하는 것은 천국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아래로 들어가서 믿음의 삶의 훈련을 받기 시작한 곳이 바로 가나안 땅이다.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순간 양심의 평안을 영원의 안식이 시작되었다. 값 주고 산 소유에 대해 갖게 되었다. 그렇지만 실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은 아직은 먼 미래에 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수없이 많은 강하고 담대한 순간들을 맞이해야 된다. 그래서 그의 자녀들을 향해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신다.
 
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 가운데서 아버지 하나님만 전적 순종함으로 의지하는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의지의 온전함을 회복시켜 주시며 성령 하나님께서 모든 능력을 부어주시는 평생 되는 은혜를 부어주시기를 소망한다.
 
♣요약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순종 위에서 강하고 담대함을 주심으로 의지의 온전함을 회복하고 주님이 부어주시는 놀라운 역사를 누리기를 소망해야 한다. 보배롭고 큰 약속을 의지하여 나아가 우리 안에 착한 일을 하신 이가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 믿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며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음을 믿고, 우리 안에 생명을 얻게 하는 믿음, 풍성하며 확고하고 회복력 있는 믿음을 더하시기를 간구하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갈 때에 슬픔이 기쁨이 되는 역전을 경험하며 내 일의 삶 가운데 전적 위탁으로 그 은혜를 펼쳐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명예와 능력의 원천이 되시고 세상 통치자들의 근원이 되시는 분에 의하여 명예가 여호수아에게 입혀지고 큰 능력이 그의 손에 들리워진다. 아마도 모세에게 말씀하신 때처럼 하나님게서는 '회막에서' 여호수아를 향하여 말씀하시는데, 그에게 더 큰 힘을 주시고자 직접 말씀하신다. 어떤 이들은 꿈이나 환상 중에 말씀하셨다고 생각한다. 모세의 죽음으로 출애굽 1세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종결된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새 지도자로 임명되어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한다. 하나님은 그에게 가나안 정복과 율법을 지킬 것으로 명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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