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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2년 8월 6일)(여름특별토비새-(Ⅴ) 제목: "우리 함께 재건축 합시다" 말씀: 느헤미야 6:5~6 찬양인도: 쉐키나, 이 다니엘 목사님 대표기도: 김도훈 부목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조성민 목사님-초빙(상도 제일교회) ------------------------------------------------------------------- *느헤미야 6:5~6, 5 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냈는데. 6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너와 유다 사람들이 모반하려 하여 성벽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 ▷설교자: 조성민 목사님-초빙(상도제일교회) -할렐루야!!~ 이렇게 새벽에도 안아 주심의 본당을 채워주시는 자체가 너무 감사하다. 토비새는 누구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있는 것을 믿는다. 아마 제가 단 위에 선 것은 제가 SaGA 1기생이다. 박수.... SaGA 1기생으로서 목사님이 잠시 비우실 때, 제가 오정현 목사님과 함께 우리 목양 실에서 SaGA 1기생들과 함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제가 배웠다. 너무너무 감사하고 이런 기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은혜이다. 저는 주일 학교를 13년 동안 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 설교는 그냥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 체험하는 설교이다. 우리 어린 아이들도 와 있다. 어린 아이들, 손을 들어보라. 와! 어린 아이가 손을 저렇게 든다. 오정현 목사님께 꼭 선물 달라고 하기 바란다. 자 박수로 격려하자. ~~ 여러분, 말씀을 배울 때 듣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함께 몸으로 체득한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어떤 의미에서는 말씀을 귀로 듣고 내 몸으로 체험해서 집으로 돌아가면 어떠하든지 간에 들은 것을 여러분의 삶에 체득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중심이 될 수 있기를 다시 한 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6:15-16절을 보면서, “우리 함께 재건축 합시다.”를 나누겠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2022년도 여름 특별새벽 말씀을 듣고 있다. 여러분은 이번 2022년의 토비새의 주제 말씀은 무엇인가? “영감의 갑절을 은혜를 주옵소서.”이다. 영감의 갑절을 은혜를 주옵소서. 라는 것이 우리 2022년도의 토비새 주제이다. 여러분 질문을 하나 하겠다. 제가 질문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여러분, 영감의 갑절, 왜 받고 싶은가? ‘영감의 갑절의 은혜’를 왜 받고 싶은 것인가? 만약에 여러분이 영감의 갑절을 받았다면 어디에 사용하고 싶은가? 여러분, ‘영감의 갑절을 은혜를 주옵소서!’ 라는 이 주제와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있다. 그럴 때에 여러분에게 던질 질문은 두 가지이다. 내가 왜 영감의 갑절을 받고 싶은가? 그리고 내가 하나님께서 영감의 갑절을 주셨다면 내가 이 영감의 갑절을 어디에 쓰고 싶은가? 여러분, 만약에 이 영감의 갑절의 이 단어를 보면, “영감의 갑절을 은혜를 주옵소서.” 자 여러분, 영감은 성령을 이야기 한다(영감=성령). 제가 어렸을 때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칠 때,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 있다. 늘 오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주일학교를 나와야 된다.”라고 하셨다. 성령님은 날마다 돕는 분이시다. ‘아, 내가 남들보다 두 배 은혜를 받아서 저 성도보다, 저 순원 보다 두 배 더 순장을 한 번 눌러보자.’ 이것인가? 무얼 눌러?? 순장이 뭐 단추인가? 버튼인가? 아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은연중에 비교 의식이 들어와 있다. 비교의식, 우리 마음 가운데 누가 이야기 하지 않는데 어느 새, 순간적으로 꼭 들어와 있다. 교회끼리 비교, 순장님들 비교, 순원 끼리, 다락방끼리 비교한다. 여러분 영감의 갑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비교 의식을 지금 충만하게 주기 위한 메시지가 아니다. 이것은 정말 우리를 교만하게 만든다. 여러분이 영감의 갑절을 ‘내가 어떻게 하든지 두 배의 은혜를 받고, 두 배의 능력을 받고, 두 배의 직분을 받아서 저 사람보다 앞서가겠다.’ 이것은 교만이다. 큰 교만이다. 여러분, 엘리사가 엘리야보다 더 뛰어나고 싶어서 영감의 갑절을 달라고 한 것인가? “야 이제 엘리야 선생님이 돌아가시니까 영감의 갑절을 받아서 엘리야보다 훨씬 더 뛰어난 제자가 되겠다.”는 것인가? 그런 의미로 영감의 갑절을 달라고 한 게 아니다. 여러분, 성령은 인격이지 분량이 아니다. 두 배, 세 배, 열 배, 어떻게 성령을 분량으로 측정하는가? 측정할 수 없다. 성령은 우리에게 주시는 인격이다. 할렐루야!, 우리가 주제로 “영감의 갑절”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두 배, 세 배, 네 배, 이런 부분들이 아니다. 왜냐면 우리가 연약한지라, 자꾸 이런 부분에 집중하다 보면 자꾸 우리의 마음속에 사탄이 은혜 받아야 하는데, 비교의식의 자꾸 가라지를 뿌린다. 비교의식의 가라지를 뿌린다. 영감의 갑절은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여러분 이것은 영감의 갑절이 우리를 교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욕심을 채우기 위한 주제가 아니다. 우리를 엘리트주의로 만드는 그런 잘못된 신앙의 모습들이 아니다. 우리 성경을 찾아보자. 신명기 21장 17절이다. *신명기21:17, 17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영감의 갑절을 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비교의식이 충만해 지려고? 교만하게 만든다. 자기의 장자의 권리가 있다. 장지 권을 이야기 한다. 장자권, ᆢ후계 자,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 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아멘, 여러분, 두 명의 장자, 후계자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엘리야를 향하여서 엘리사는 “영감의 갑절을 주옵소서” 라고 한다. 그 영감의 갑절을 더블로 주셔서 내가 더 뛰어난 선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신의 진정한 장자, 후계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이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확신하는 주제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주제를 잡은 목적 자체가 그렇다. 우리 사랑의 교회, 또 우리 순원들, 다락방들, 순장님들, ‘이런 다락방을 맡겼을까?' 이런 다락방이 어때서? 왜? 그런 다락방도 있는데, 뭘 잊어버린 것인가? ’나는 괜찮은 지역 갔으면 좋겠는데‘, 그게 영감의 갑절이 없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내가 장자이다. 내가 후계자이다. 엘리사는 그걸 알았다. 그래서 영감의 갑절을 달라고 하는 이유는 “내가 당신의 후계자임을 확인시켜 주세요.”이다. 이 떠나가는 이 엘리사 선생님의 직임을 승계하는 것이다. 누가? 엘리사가... 떠나가는 그 엘리야 선생님의 직임을 잘 후임해서 그 시대의 위기를 재건축을 해야 하는 것이다. 여러분, 오늘 본문 이후로 보면 계속해서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 발생한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하는가? 엘리사가 해결한다. 엘리사는 그 시대의 위기를 재건축 했다면 오늘 영감의 갑절을 원하는 우리와 유튜브 성도님들, 그 성도들을 오늘 영감의 갑절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이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내가 있는 내 삶의 현장에서 여러분의 현장에서, 그게 가정이든, 다락방이든, 직장이든 어떤 공동체가 되든 거기에서, 위기에서 재건축하는 역사를 이루어 내는 것이 바로 ‘영감의 갑절’을 구하는 태도이다. 그래서 여러분, 이 주제와 설교를 이렇게 연결해 보겠다. “영감의 갑절을 은혜를 주옵소서.”의 주제이니 성령의 역사의 장자권을 주옵소서! 이다. 이 시대의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다. “우리 함께 재건축 합시다.” 재건축은 밑에서 세워지는 하는 것이다. 모션... 영감의 갑절을 주옵소서! 우리함께 재건축 합시다. 오늘 이 말 하기 위해서 여기 왔다. 여러분 갑절의 영감은 무엇이냐면 재건축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코로나가 장기와 되고 있다. 굉장히 많이 무너졌다. 무너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제가 어느 책을 보니까 지금 코로나 시대에 열 가지가 무너졌다고 한다. ▷코로나로 무너진 열 가지. 1 정상의 무너짐. 2. 가정의 무너짐. 3. 몸의 무너짐. 4. 정신의 무너짐. 5. 희망의 무너짐. 6. 애착의 무너짐. 7. 연결의 무너짐. 8. 습관의 무너짐. 9. 관계의 무너짐. 10. 격차의 무너짐. -여러분 예수 믿는 집안이라 할지라도 코로나로 이렇게 무너진 모습이다. 우리가 여러분 이 코로나 영향을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러분은 몇 가지가 무너졌다고 생각하는가? 여러분 그럴 수 있다. 우리는 연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이다. 무너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럴 때마다 두 가지의 질문을 해야 한다. 첫 번째 질문이고, 두 번째 질문이다. I 나는 언제까지 무너진 채로 살 것인가? -여러분 넘어질 수 있다. 그런데 포기하면 안 된다. 넘어질 수 있다. 연약하니까, 그런데 포기는 하면 안 된다. 오늘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늘 사랑의교회 성도들이, 유튜브 방송을 듣고 있는 성도들이, 여러분이 말씀은 듣지만 언제까지 무너진 상태로 살 것인가? 무너지지 않았다고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도 나는 안다. 내가 얼마나 무너져 있는지, 첫 번째 질문은 내가 내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었고, 두 번째 질문은 II. 하나님은 내가 무너진 채로 사는 것을 원하시는가? -여러분 하나님은 내가 무너진 채로 사는 것을 원하시는 분이신가? 만약에 그렇다면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 무너진 채로 살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내가 너를 반드시 도우리라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다.” 여러분 이런 말씀을 그러면 하지지 않는다. 그런데 여러분 구약을 보라.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가장 많은 말씀 가운데 “내가 너와 함게 하리라.” 그 말씀은 무슨 말씀인가? 그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랑의교회 성도들이, 오늘 토비새 나온 성도들이, 무너진 채로 사는 것을 하나님이 원치 않으심을 말씀하신다. 포장하지 말라. 신앙을 화장하지 말라. 그것은 잠시이다. 하나님 앞에 그게 통하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무너진 채로 사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이 아침에 토비새를 통해서 우리와 함께 재건축되기를 소망하신다. 자 여러분,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다. 이 말은 무엇인가? 여러분 성벽이 무너졌다. 핵심이 예루살렘의 성벽이 무너졌다는 것이 무엇인가? 여러분, 두 가지 의미가 있다. 1차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적이 공격할 때 성벽이 없다. 그러면 어떠하는가? 그래서 적의 공격으로부터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2차는 예루살렘의 영적인 구심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구심점이다. 이 영적인 구심점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보호할 수도 없고 영적인 구심점이 무너졌는데 오늘 성벽은 무엇인가? 52일 만에 성벽이 재건축되었다는 것을 말씀한다. 무너진 자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결코 무너진 채로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오늘 본문의 말슴의 핵심은 저는 영감의 갑절을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인 분들은, 이 위기의 시대에 여러분의 직장과 가정에 재건축의 일꾼이 되는 것이다. 영감의 갑절을 받으면 나를 위해서가 아니다. 그 영감의 갑절을 받아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감의 갑절이 아니다. 아니다. 함께 재건축하자는 것이다. 무너진 채로 살지 말고 재건축하자는 것이다. 1. 어떻게 52일 만에 성벽을 재건축할 수 있었는가? 중요한 주제이다. 여러분, 재건축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본당도, 이 멋진 건물 아닌가? 쉽지 않았다. 여러분 이 인부들, 이 공사기간, 이거 맞추는 게 쉽지 않다. 환경, 날씨, 이러한 것으로 쉽지가 않다. 여러분, 이 예루살렘 성벽 지을 때, 이 사랑의교회를 지을 때, 반대하는 세력들이 얼마나 많은가? 여러분 오늘 본문, 제가 읽지 않았지만 지금 보면 산발랏이 무어라고 하는가?? “야, 네가 왕이 되려고 하는구나!!” 이것은 역린(逆鱗)이다. 여기에 걸리면 다 죽는다. 네가 왕이 될려고 하는구나!! 하는 말에 걸려들면 다 죽는다. 또한 도비야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야,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지겠다.” 한다. 여러분, 열심히 건축하고 있는데, 열심히 예루살렘을 짓고 있는데, 반대하는 자가 있다. 열심히 건축을 하고 있는데, “열심히 지으십시오. 성벽 참 보기 좋습니다.”가 아니라 “야 여우가 올라와도 무너지겠다. 그게 성벽이냐?”고 한다. 힘을 쪽 빼버린다. 여러분,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52일 만에 성벽을 재건축할 수 있었는가?는 것은 짧았다.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성벽이 건축될 수 있었는가? 시간이 짧았다는 것인가, 아니면 길었다는 것인가? 짧았다는 것이다. 오늘 성경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짧았기에 기록했다. 어떻게 52일 만에 성벽이 재건축 될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내 인생이 무너진 채로 사는 것 말고, 사람들에게는 안 무너진 것처럼 이야기 하고 싶을 것이다. 사람들 앞에 괜찮은 것으로 보여 주고 싶을 것이다. 그게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나 주님은 아신다. 여러분,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52일 만에 성벽이 재건축 되었다. 이것은 기적이다. *느헤미야 2:17-18, 17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하고. 18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누구의 선언인가? 느헤미야가 이야기 한다. 잘 보라. 그들이 이르기를,,, 느헤미야가 알고 있었다. 예루살렘의 성벽이 불탔으니, 여러분, 52일 만에 재건축 되어졌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다. 바로 선언이다. 느헤미야의 선언이다. 여러분, 느헤미야가 더 이상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한다. 그 말을 듣고 나서 ‘그들이 일어나 모두 힘을 내자! 이 선한 일을 하고 하니 그 52일 만에 재건축한다. 중요한 것은 느헤미야의 선언이다. 여러분, 순장들이 이제 대면 예배를 드린다. 바로 이것을 하는 것이다. 순장님들은 왜 세웠는가? 왜 교사를 세웠는가? 선언하라고 교사로 순장으로 우리를 세우셨다. 왜 우리를 부모로 세우셨는가? 선언하라고 우리를 부모로 세우셨다. 어떤 선언인가? “자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 말자! 말자! 자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 말자! 말자!! 자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 말자! 말자!!! 이게 선언이다. 이 선언을 이스라엘 백성이 듣고 힘을 내기 시작한다. 여러분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게 무엇인가? 여러분을 힘을 빼게 하는 것이 무언가? 여러분은 자신 만만하게 만들지 못하는 게 무엇인가? 왜 주눅이 들어있는가? 오늘 ‘우리 함께 재건축 합시다.’ 우리의 삶 가운데 적용은 무엇인가?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느헤미의 선언을 재연하는 것이다. “자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 말자! 말자!! 말자!!!, 그 수치스럽게 나를 수치스럽게 하는 대상, 수치스럽게 만드는 그 사건, 수치스럽게 그 악한 존재 앞에서 침묵하는 게 아니다. 세력, 동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수치와 대상과 존재와 그런 악한 세력이 있다면 느헤미야처럼 선언해야 한다. “자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 선언할 수 있지 않은가? “자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 말자!! 순장이 그 말을 하면 순원들이 힘을 얻기 시작한다. 여러분들이 교사들이 이들에게 그 말을 하면 아이들이 힘을 얻기 시작한다. 부모가 하면 자녀들이 힘을 얻는다. 그래서 52일만에 성벽이 재건축 된다. 일만에 성벽이 재건축 되는 것이 선언만이 아닌 행동이다. 이게 우리가 약하다. 선언은 잘한다. “자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 말자!! 말자!!!” 이건 선언은 잘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재건축이 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선언과 행동을 중요시 하신다. *느헤미야 4:21-23, 21 우리가 이같이 공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으며. 22 그 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말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일하리라 하고. 23 나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따라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다 우리의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느니라. -이게 행동이다. 제가 이 말‘씀을 보면서 선언이 아닌 행동이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행동, 여러분 행동을 보면 선언하고 난 다음에 동틀때부터 별이 나오기까지 옷을 벗지 않았다. 군대 가면 알 것이다. 5분 대기조이다. 그 정도로 긴장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 하나님의 은혜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백성의 얼마나 알뜰하면서 얼마나 확실한 행동을 하는지 성경은 조목조목 이야기 하고 있다. 우연히 된 것은 없다. 우연히 된 것은 없다. 예수 믿는 자들은 특히 우연은 없다. 지금 오늘 청년들은, 시간 낭비하지 말라. 아무리 믿음의 고백이 탁월해도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쓰신다.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쓰신다. 청년들은 준비하는 시간이다. 시간을 아껴라. 세월을 아끼라. 여러분 성경에 나온다. 그 시간을 돈을 주고 사라는 것이다. 얼마나 아까운 줄을 알게 된다. 맡긴 자의 사명은 충성이다. 하나님이 나를 언제 불러갈지 모른다. 그러니 충성하다가 가라. 그냥 뺀질뺀질 하지 말고, “순장님 기도하고 결정할게요.” 무얼 기도해, 이미 기도했는데 결정할게요. 교역자가 이미 기도했는데 하라면 하는 것이다. 굉장히 “며칠 만 기도해보고 하겠습니다.” 아주 교만이다. 선언은 있는데 행동이 없는 것이다. 선언도 행동도 52일 만에 성벽이 재건축 될 수 없다. 여러분 52일 만에 성벽이 재건축 되는 것은 함께 가는 것이다. 선언도 행동도 함께 가야 한다. 52일 만에 성벽이 재건축하는데 행동이 없으면 안 된다. 직장에서 여러분이 원하는 것이 왜? 안 되는가? 그 작장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실력을 길러라. 그 직장에서 꼭 필요한 자가 되어야 한다. “야 너는 언제 나갈거니? 3년 치 월급 줄 테니 나가 줄래”의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그게 뭔가? 여러분, 52일 만에 성벽이 재건축 되겠는가? 실력이 없지 않은가? 행동이 없다. 여러분, 우리가 사랑의 교회가 다닌다고 해서 사랑의 교회가 실력을 대변해 주지 않는다. 왜 그 맛에 살려고 하는가? 여러분, 사랑의 교회가 여러분의 실력을 신앙의 뒷받침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보시지 않는다. 여러분은 메너리즘에 빠지지 말라. 그게 행동이다. 자 여러분, 자기 몸이 비행기라고 하라. 오른 쪽 날개, 왼쪽 날개, 집사님 비행기의 오른쪽 날개가 중요한가 왼쪽이 더 중요한가? 두 개다 이다. 선언과 행동이 균형이 잡히면 우리를 하나님이 쓰시는 목적지까지 데려가신다. “자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 말자! 말자!” 행동은 끝내주는데 선언이 접혀도 안되고 예수님의 대한 고백, 신앙에 대한 고백이 없고 하나님이 사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여러분, 어떻게 하면 52일 만에 성벽이 재건되었냐면 선언과 행동이 있으면 재건축이 된다. 믿음의 선언과 액션 행동까지 하라. 자기 몸이 비행기라고 생각해보라. 비행기의 오른쪽 왼쪽 날개가 어디가 중요한가? 다 중요하다. 여러분, 오른쪽 날개는 선언, 자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 말자! 말자!” 이고, 왼쪽은 행동이다. 이 선언과 행동이 균형이 잡히면 하나님이 쓰시는 목적지까지 데리고 가신다. “자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 말자! 말자!”는 되는데 행동이 안 되면 안 된다. 이런 비행기는 날지 못한다. 반대로 행동이 끝내주는데, 선언이 접혔다면 그것도 안 된다. 예수님의 대한 고백, 신앙에 대한 고백이 없으면 이런 비행기는 날 수가 없다. 하나님이 사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여러분, 어떻게 하면 성벽이 재건축 되었는가? 다른 것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언과 행동이 함께 있을 때 재건축이 된다. 나를 수치를 당하게 하는 그 존재 앞에서 더 이상 수치를 당하지 말자 !말자!! 말자.!! 2. 52일 만에 성벽이 재건축 된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52일 만에 성벽이 재건축 된 진정한 의미가 있다. 내면의 모습이 있다. *느헤미아 6:16, 16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여러분, 믿음의 성벽, 기도의 성벽이 세워지면 대적들이 크게 두려워한다. 여러분들이 성벽이 재건축 되야한 한다. 준비 되지 않으면 이방 민족들 그들이 비웃는다. 대적들, 산발랏, 도비야 게셈, 그러한 대적들이 다 두려워하고 크게 낙담한다. 이런 역사가 일어나길 축원하다. 이것은 성벽이 재건축 되엇을 때 이야기이다. 우리 함께 재건축되어지면 대적들이, 악한 세력들이 두려워하고 낙담한다. 이방 족속들이 다 두려워하고 두려워한다. 위기를 낙담 시키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줄 믿는다. 우리가 재건축 되어 지면 이 방인들이 다 두려워한다. 이게 내면적인 이유이다. 또 내면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16절 하반 절에 보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할렐루야!! 이게 내면적인 역사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그 대적들이 다 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누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사람의 이름과 공동체가 아니라, 성벽이 재건축 될 때, 대적들이 보니, ‘야,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야’. 하게 된다. 하나님이 하셨다. 여러분 성벽이 재건축 되어질 때, 다른 사람들이 이것 말이 안 돼, ‘이건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면서 “갑절의 은혜는 주옵소서!” 라는 것은 결국, 우리 성도들이 다시 한 번 재건축 되어지는 것이다. 이것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냥 “주옵소서!” “주옵소서!” “주옵소서!”만으로 끝나지 말고, 그것을 받고 난 다음에는 내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담는 것이다. 그래서 짧은 시간 안에 무너진 채로 살지 말고, 무너져 있는데 왜? 무너지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 하는가? “하나님 앞에 이런 부분이 무너졌으니 하나님 52일 만에 주님 채워주세요.!!” 하라. ▷사랑의교회 영감의 갑절을 주옵소서. 우리 함께 재건축 합시다. 1. 어떻게 52일 만에 성벽을 재건축 할 수 있었는가?(외면) - 선언과 행동. 2. 52일 만에 재건축된 성벽의 진정한 의미는?(내면) 그들이 다 두려워하고 크게 낙담한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다. ♣요약 -우리가 재건축되어지면 이방족속들이 다 두려워하고 낙담한다. 이리치고 저리 치지 말고 진짜 전문가가 되어서 살아야 한다. 안 믿는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 사람 이름 들어내지 말고 그것을 하나님이 하심을 믿어야 한다.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아버지 무너진 성벽을 재건축하게 하시며 저를 붙들어 주셔서 앞길을 인도하여 주시길 원합니다."라고 기도하라. 우연이 아닌 하나님 어떤 방편이라도 주님 함께 하셔서 우리 교역자들을 사랑하시고, 힘을 주시고, 재건축 역사의 주인공이 되며 장로님들, 권사님들, 순장, 리더들이 무너지지 않아서, 어떻게 하든 52일 만에 재건축되길 선언과 행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무너진 성벽을 시간과 세월을 낭비하지 말고 시간을 아끼고 하나님 앞에 충성아여서 다시 재건축하기를소망한다. -겸손하여서 내 신앙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자 되고 양 날개가 잘 세워져서 믿지 않는 자들 앞에서 섬기고 많은 이들의 악한 권세를 낙담시켜서 선교 지는 세워지고, 모두가 성령 안에서만 굳건히 세워지길 기도해야 한다. 정말 영감의 갑절을 받아서 가정의 위기, 신앙의 위기, 교회의 위기에서 재건축되는 역사가 되고, 선언과 행동으로 놀라운 역사를 맛보며, 그 역사 안에서 대적들이 다 두려워하고 크게 낙담되게 하시고 이것을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깨달아서 대 전환의 그들이 되길 기도하고 선언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 ![]() ![]() ![]() ![]() ![]() ![]() ![]() ![]() |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2년 8월 6일)(여름특별토비새-Ⅴ)-우리 함께 재건축 합니다(조성민 목사님).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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