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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9월 19일 (766)
[커버스토리] 늘어나는 세금 이대로 괜찮나그래픽=허라미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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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늘어나는 세금 이대로 괜찮나그래픽=허라미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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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2년 9월 21일) 제목:"서로 발을 씻어주라" 사회: 박주성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이원준 부목사님) 설교자: 박주성 부목사님 -------------------------------- *요한복음 13:14,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 ▶할렐루야, 예배를 사모하며 오늘 믿음 보고, 수요저녁 기도회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주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풍성한 은혜를 맞춤형으로 허락해 주실 줄 믿는다. 오늘 본문을 읽어보자. -여러분 우리는 ‘9.26, 한국교회 섬김의 날’을 준비해 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5543명의 목회자님들을 우리들에게 보내주셨다. 원래는 제목은 ‘한국교회 코로나 극복 세미나’였다. 대게 좀 촌스럽지 않은가? ‘한국교회 코로나 극복 세미나’, 라고 해서 한국교회가 코로나, 긴 터널, 어둡고 힘들었던 터널을 벗어나는 계기를 좀 만들어야 되겠다. 는 생각과 그래서 현장예배를 복원하고 능력 있게 쓰임 받아 갈 수 있는 그런 교회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우리 담임 목사님의 생각으로 ‘한국교회 코로나 극복 세미나’로 하자고 하셨다가 하나님께서 우리 목사님께 감화 감동을 주셔서 ‘9.26 한국교회 섬김의 날’이라고 붙여야 된다고 하셨다. “목사님, 이틀인데요?” 했더니 “9.26, 9.27 보다는 낫지 않은가?”라고 하시면서 ‘9.26 한국교회 섬김의 날’을 하자고 하셨다. 아마 제가 평생 살면서 ‘9.26’은 절대로 6.25처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제가 처음에 기안을 하면서 “목사님, 제가 한국교회 목회자 4천명을 초빙하는 것으로 계획을 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목사님께서 “아니, 오천 명이야, 오천 명, 그것도 선착순이라고 꼭 붙여야 된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선착순은 마감되면 마감일자까지 계속 받는 것인가? 미리 선착순 등록 되면 문 닫는 것인가? 문 닫아야죠. 목사님의 믿음이 좋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이유 때문에 제가 생각할 때, “목사님, 정말 최선을 다하면 한 3천 명, 목사님들을 초빙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천 명, 그러면 굉장히 믿음 보고 한 것입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제 믿음이 목사님의 믿음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그러시면서 목사님께서 “오천 명을 모으려면, 절대로 목사님들이 등록하는 것만으로 안 될 것이다. 우리 성도들이 초청을 해야 된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5천 5백 43명이 등록을 하셨다. 자발적으로 등록 하신분이 3,412분이시다. 나는 여기 가야되겠다고 하신 분들이 목사님들이 직접 정보를 입력하시고 등록 하신 분이 3천 4백 12명이시다. 나머지 분들은 2131명 되시는 분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초청하기로 오신 분들이다. “제가 열심히 하면 3천 명 모으겠습니다.” 라고 했던 제 믿음보다도 하나님이 더 크게 보시고 3천 4백 명을 보내 주시고 오천 명 모으려면 절대로 등록만으로는 안 된다고 담임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듯이 2천 1백 31명이 성도님들이 초빙하기로 이렇게 섬김의 날에 동참하시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담임 목사님께 믿음의 큰 그릇을 주셨다. 뱀 꼬리도 어마 무시한 뱀 꼬리여서 제가 뱀 꼬리를 잡고 온 몸이 흐느적대고 있다. 여러분, 이번 ‘9.26 한국교회 섬김의 날’은 사랑의 교회가 한국교회의 발을 씻어주는 사역이다. 그런데 왜? 굳이 한국교회의 발을 사랑의 교회가 씻어주어야 되는가? 왜? 그 지치고 힘들고 어려웠던 목회자님들의 발을 사랑의 교회가 씻어주어야 되는가? 그리고 왜? 사랑의 교회가 한국교회 성도들의 재 헌신을 부흥을 위해서,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달려가는 계기의 길을 만들어 주어야 돼? 질문을 우리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곳에 수요예배에 오신 분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기 안 오고 오늘도 방바닥에 누워서 열심히 TV보고 ,드라마 보고 있는 분들은 그런 생각을 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여기 오신 분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왜 이 일을 해야 되는지를 다시금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왜? 우리가 한국교회의 발을 씻어주어야 하는가? 첫 번째, I. 우리가 먼저 일방적인 발 씻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은 주와 선생이 되어서 우리들의 발을 씻어주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발을 다시 씻어 드렸는가? 아니면 예수님만 일방적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었는가? 여러분은 예수님의 발을 씻겨드렸는가? 아니면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의 발을 씻어주시고 여러분의 죄의 짐을 내려 주시고, 문제를 해결하셔서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기쁨을 누리게 해주셨는가? 첫 번째인가? 두 번째인가? 두 번째 주님이 일방적으로 우리의 발을 씻어주셨다. 저도 일방적으로 주님께 발 씻음을 당했다. 그래서 그 발 씻어주심에 감동이 되어서, 감격해서 제 인생을 내어 드렸다. 오늘 여러분도 이 저녁에 주님께로 달려 간 것은 우리 주님이 여러분의 발을 일방적으로 씻어주시는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그 은혜를 맛보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나오신 줄 믿는다. 여러분, 예수님은 여러분 발을 씻어주시기 위해서 하늘 보좌를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이신데 그 다스려야 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물려받게 될 독생자. 예수님께서 왕이 되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들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육신을 입고 오신 것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십자가 위해서 목숨의 값을 내어 놓으시면서 우리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발을 씻기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도록 해주셨다. 여러분, 팔래스타인 지방에서 원래 발을 씻어주는 사람은 노예가 하는 일이다. 종중에서도 가장 아랫 단계 노예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신는 것처럼 구두나 운동화처럼 발을 양말 신고 구두나 운동화처럼 다 발을 감싸는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샌들을 신고 다닌다. 포장도로가 아니라 비포장도로를 걷고, 하루 종인 바깥에서 활동하다가 집에 들어오면 온 발에 먼지가 땀이랑 범벅이 된 채로 들어오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 발을 씻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 집에 가장 낮은 종이 발을 씻어주는 것이다. 우리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 그것은 예수님께서 가장 낮아지셔서 우리를 아끼고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자 먼저 헌신해 주신 일방적인 섬김, 일방적인 사랑이셨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씻어주시고 나서 우리 주님께 다른 사람에게 발을 씻어주라고 하신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 주어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다고 말씀 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우리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본문 말씀에 보면, “너희가 일방적으로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어라. 내가 제자들의 발을 일방적으로 씻어주었지, 제자들이 내 발을 씻기지 않았잖아, 내가 너희들의 발을 일방적으로 씻겨주었지, 너희가 내 발을 씻겨주지 않았잖아, 그러나 너희는 일방적으로 남의 발을 씻어주는 일을 쉽지 않으니, 너희는 그 만큼의 내공은 없으니, 입이 툭 튀어나와서 불평불만을 할 것이니, 너희는 서로서로 발을 씻어주어라.”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저에게 “주성아. 너는 냄새나는 발을 일방적으로 씻어주어라.”라고 해도 저는 씻어 주었을 것이다. 믿어주세요. 우리 주님이 “주성아, 너 일방적으로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어라.” 저에게 명령을 하셨어도, 저에게 옳은 길이다. 라고 하셨어도 저는 일방적으로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었을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조금 힘든 내색을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주님이 저에게 명령하셔서 순종해야만 했다. 일방적으로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이미 우리의 수준을 아신다. 저 박주성의 수준을 아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발을 씻어주는데 일방적으로 씻어주라고 하지 않으시고 “서로 발을 씻어주라.”라고 그렇게 명령하지 않으시고 그렇데 하신다. 내가 남의 발을 씻어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내 발을 씻어주는 은혜도 공급 받아야 또 내가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힘과 능력과 에너지가 내 속에 생겨난다는 것을 우리 주님이 아셨던 것이다. 사실, 지방에 있는 교회들, 작은 교회들, 그런 교회들이 사랑의 교회들을 위해서 이미 발을 씻어주었다. “무슨 물이요? 목사님, 발을 씻어주었다니요? 지금 이번에 ‘한국교회 섬김의 날’이라고 스타리아와 노트북에다가 엄청나게 홈스테이 헌금하고, 사역 물품 지원하는 헌금을 하고 있으면서 한국교회 발을 씻어주고 있는데, 씻어주겠다는데, 한국교회가 사랑의 교회를 발을 이미 씻어주었다니요?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여러분, 오늘 수요예배에 오신 성도님들 중에 한 번 손을 들어보겠다. ‘나는 서울 토박이가 아니라, 지방에서 올라왔다.’는 분은 손을 들어보라. ‘나는 지방에 있는 교회 있는 교회에서 믿음 생활 하다가 대학 들어가면서, 직장구해서 서울로 올라와서 사랑의 교회에서 믿음 생활 하고 있다.’는 성도님들도 손을 들어보라. 네, 감사하다. 적지 않은 분이 손을 들었다. 여러분, 우리 교회에서 기둥같이 일하고 헌신하고 섬기는 분들이 서울 토박이 분들이 아니다. 사랑의 교회에서 처음 예수 믿은 분들만 사랑의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 이미 지방의 작은 교회, 도서벽지 산간에 있는 교회, ‘경북 의성군 다인면 삼분동, 다인교회’ 출신 오정현 목사님께서도 시골에서 믿음을 가지고 서울 사랑의 교회를 담임하고 계시고, 이번 ‘9.26 한국교회 섬김의 날’, 총괄을 맡고 있는 박주성 목사도 저 지방 시골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창촌리 246번지’, 반성교회에서 열심히 믿음을 키우고 성장을 하다가 서울 사랑의 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 교회 연간 장례 통계를 받아보았다. 우리 교회 장례 통계를 받으니까 보통 부모님 장례이지 않은가? 부모님 장례 건수가 서울 경기 인천이 60-70%정도 된다. 연간 기준들이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지방까지 부모님 장례 때문에 내려가야 하는 비율이 많으면 40%, 적으면 36-37%이다. 여러분 우리 교회는 서울 토박이 교회가 아니다. 이미 우리 교회는 저 도서 지방 산간벽지에서 궁벽한 시골에서 믿음을 기르고 하나님의 나라를 꿈을 꾸었던 성도들이 올바른 믿음의 길을 걷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소원하는 마음으로 사랑의 교회라는 곳에 등록을 해서 이곳에서 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소망하며 함께 동역해 가고 있는 공동체인 것이다. 그러면 한국교회가 사랑의 교회를 발을 씻어준 것인가? 안 씻어준 것인가? 한국교회가 이미 사랑의 교회를 위해서 발을 씻어주셨다. 이미 섬겨주신 것이다. 저 시골에 작은 교회들, 청년들이 한 명도 없는 교회에서 한두 명 있는 청년들이 대학진학을 하고 나면 다 고향 떠나서 서울 사랑의 교회에서 청년 시절을 보내고 있다. 일꾼이 한 명이 부족한 곳인데, 다 우리 교회로 먼저 보내주신 것이다. 여러분, 서로 발을 씻어주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이 말씀이 참 은혜로우니까 제가 한 번 발을 씻어드리겠습니다.” 제가 발을 먼저 씻어드릴 테니까 집사님은 제가 씻어 드리고 나면 조금 있다가 발을 씻어주세요.” 이런 실랑이와 싸움이 벌어지겠는가? 아니면 “당신이 먼저 씻어주면 제가 그 다음에 씻어드릴게요.” 요런 실랑이가 벌어지겠는가? ‘왜? 사랑의 교회가 한국교회를 위해서 먼저 발을 씻어주어야만 되는가?’라고 하며 ‘한국교회가 우리 교회를 발을 씻어주어야지, 왜 우리가 발을 먼저 씻어주어야 하냐?’고 하는 이런 실랑이를 하는 수준의 교회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미 한국교회는 사랑의 교회의 발을 씻어주었다. 이미 한국교회는 사랑의 교회에 수많은 자원을, 수많은 영적 자원을 주셨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가 꼭 섬겨야 합니까? 우리가 꼭 먼저 해야 됩니까?’ 싸워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이미 한국교회가 우리의 교회를 씻어주었기 때문에 우리도 자원하여 한국교회의 발을 씻겨야 하는 것이 맞다고 저는 생각을 한다. 또 하나는 우리가 이번 한국교회에 발을 씻겨 드리고 나면, 수많은 한국교회가 다시 사랑의 교회를 씻겨줄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이번에 도움을 받은 교회들이, 이번에 이 안아주심의 본당에서 은혜를 받은 목사님들이 다시 내려가서 젊은이들이 서울에 올라간다고 하면, “예야, 너는 저기 서초동에 있는 교회를 가거라. 너는 저기 역에 있는 교회에 가거라.” 라고 목사님이 권유하실 것 같은가?” 저는 이번에 발 씻음 당한 한국교회가 다시 사랑의 교회의 발을 씻어주는 은혜의 선순환이 일어나게 될 줄 분명히 믿는다. 우리가 먼저 한국교회의 섬김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한국교회의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9.26 한국교회 섬김의 날’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 두 번째, II. 감동이 되는 발 씻음을 해야 한다. -여러분, 세상에 돈을 벌기 위해서도 적당히 해서도 돈을 못 번다. 여러분, 적당히 음식을 해서 내 놓은 식당에 가고 싶은가? 아니면 와!! 입이 벌어지는 식당에 가고 싶은가? 여러분, 세상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고객이 감동할 때까지 헌신한다. 제가 그래서 고객 감동 사례를 알아보았더니 우리나라에 용인에 있는 ㅇㅂ랜드, 랜드를 갔는데 어떤 간이 화장실에 갔는데 반지를 빠뜨렸다고 한다. 그래서 나와“어머, 어떻게 해요!! 제가 반지를 빠뜨렸어요. 결혼반지가 빠졌다는 것이다. 유 아무개 대리라는 사람이 ”고객님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망치를 가져와서 간이 화장실을 부수고 두 시간 동안 변을 해 집으면서 반지를 찾아서 깨끗하게 씻어서 소독해서 고객에게 되돌려 주었다. 여러분, 그 고객은 그 랜드의 홍보 대사가 되겠는가? 안 되겠는가? 랜드를 가면 그 랜드만 가겠는가? 디즈니랜드만 가겠는가? 미국의 어떤 분이 출장을 자주 다니는 분이었다. N백화점에 갔다. 세일 기간에 양복을 사가지고, 두 벌을 사가지고 이것은 수선을 맡겨놓고 이제 내일 출장을 떠나는데, 찾으러 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보니까 세일 기간에 구입을 한 양복은 하루 만에 수선이 안 되는 것이다. 직원이 잘 몰랐다. 그래서 그 다음날 찾으러 갔더니 “죄송합니다. 상황이 그렇습니다.” 그러고, 이분이 세일 때 산 옷을 입고 출장을 가고 싶었는데 새 양복을 입고 비즈니스 파트너를 만나러 가려고 했는데, 그 양복을 입지 못하고 출장을 떠났다. 출장 떠나서 호텔에 딱 들어갔더니 페덱스(FedEx)로 택배가 와 있었다. 당일 배송 택배가 와 있는 것이다. 열어보니까 수선을 한 양복 두 벌과 주문하지도 않았던 넥타이 세 개까지 사은품으로 선물로 보내와서 고객에게 들어가는 편지까지 넣어서 딱 배달이 되어 있는 것이다. “고객님,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더 면밀하게 안내해 드리고 섬겼어야 되는데, 고객님 불편하지 않도록, 사업에 도움이 되도록 배송이 드립니다.” 그리고 양복 두 벌과 넥타이 세 개까지 선물로 온 것이다. 배송비가 우리나라 돈으로 10만원이었다. 그 고객은 양복 사면 그 백화점만 가겠는가? 그 옆에 백화점만 가겠는가? 여러분 세상은 돈을 벌기 위해서도 그저 그런 수준의 섬김이 아니라 감동이 되는 섬김을 하고 있다. 우리는 사랑의 교회가 돈을 버는 정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겨내겠다고, 한국교회를 섬겨내겠다고, ‘한국교회 섬김의 날’을 선포하고 이번 ‘9.26 한국교회 섬김의 날’의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적당한 수준의 섬김이 아니라, 하나님 수준, 우리 주님 수준의 감동이 되는 섬김을 제공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분, 감동이 있는 섬김의 핵심은 무엇인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섬기는 것이다. 섬기는 교회 우리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참여하게 되는, 섬김을 받으셔야 하는 참여하시는 목사님들과 사모님들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디 메모리얼 교회에서 무디기념 교회에서 오랫동안 담임 목사님이신 알리언스 아이드 목사님은 이러한 말씀을 하셨다. ※발을 씻어 주는 사람은 물의 온도에도 신경 써야 한다. -알리언스 아이드 목사- -내가 발을 씻어주고 싶은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좋은 일인데 아주 얼음물을 가져와서 발을 씻어주거나 아주 뜨거운 물을 가져와서 발을 씻어주면 섬김을 받는 그 사람은 “내가 참 대접 받았다. 감동이다.” 라는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뭐 이런 섬김이 있어?”라고 발을 뿌리치겠는가? 여러분 우리가 한국교회를 섬기겠다고 오천 오백여명을 초청했다. 우리는 섬김에서 물의 온도까지 신경을 쓰고 이틀간 섬겨야 할 줄 믿는다. 안내 하시는 분들도, 제가 강의실, 은혜 채플이라는 있는데, “은혜 채플은 어떻게 가야되나요?”라고 하시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쭈욱 가시라고 우회전해서 쭈욱 복도를 따가 가시면 은혜채플 입구가 나옵니다.” 이렇게 라고 하면 그분이 쭈욱만 기억되고 어디로 가라는지 하나도 기억되지 못하실 것이다. 안내하시는 분도 감동이 있는 안내가 되려면, 우리교회 성도들을 안내 하듯이 하면 안 되고 다른 태도로 접근을 해야 될 것이다. 네, 홈스테이 하시는 분도, 주차봉사를 하시는 분도, 세미나 강의를 담당하시는 우리의 교역자들도, 의전을 하시는 분들도, 모두 물의 온도까지 신경을 써서 이번에 오시는 목사님들에게 감동이 있는 섬김, 우리 주님이 우리 각자를 위하여서 친히 발을 씻어주셔서 우리의 영혼에 깊은 울림을 주시고 감동을 주셔서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재 헌신하게 만드셨던 그런 감동이 있는 섬김을 우리 사랑의 교회가 한국교회를 위해서 내어드릴 수 있는 역사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 여러분, 그러려면 적당한 수준을 넘어서 감동이 되는 섬김을 우리가 감당해 내려면, 우리의 힘과 능력만 가지고 되겠는가? 아니 되겠는가? 사랑의 교회에 역량을 가지고 될까? 안 될까? 안 된다. 우리 담임 목사님의 말씀하시듯이 육신의 한계를 뛰어 넘는 성령의 은혜와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시지 않는가? 저는 사역을 하면서 하나님께 “저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하는 것은 제가 이번이 처음이다. 자 웬만한 사역 가지고는 겁먹지 않고, 웬만한 사역 가지고는 버텨낼 능력이 있는데, 저는 이번에 사역하면서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하나님, 저는 도저히 저의 힘으로는 못하겠습니다.” 제가 믿음이 작아가지고,,, “도저히 제 능력으로는 이것은 못하겠습니다.” 그런 기도를 여러 번 드렸다. 그러면서 또 기도했다. “이거 하라고 하셨으면 육신의 한계를 뛰어 넘는 성령의 은혜와 능력을 주셔야 하겠습니다. 제 힘으로는 못 하겠습니다.” 라고 기도드렸다. 저는 여러분, 우리 주님의 발 씻음의 감동 수준만큼 사랑의 교회가 한국교회가 먼저 발 씻어준 은혜를 갚아가는 발 씻음의 은혜의 선순환의 고리를 이어 가려면, 우리 모든 순장님들과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힘과 능력을 긁어모으고, 모으고 모아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육신의 은혜를 뛰어넘는 성령의 은혜의 능력이 부어져야 한다. 이 시간에 하늘 문을 여시고 가장 최 일선에서 헌신하셔야 할 우리 수요저녁기도회의 동지들부터 육신의 한계를 뛰어 넘은 은혜와 능력으로 무장되어야 하나님 수준의 감동 있는 섬김을 다음주간 월화를 감당해 낼 줄 믿는다. 할렐루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오병이어를 내어드리면, 아무리 오병이어를 긁어모아도 오천 명을 먹이고 열두 광주리를 남길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주님이 축사해 주셔야 한다. 우리가 여러 교회의 사역 물품 지원을 위해서 헌신하고 오병이어를 내어 드리지만, 내어 드린 것에 주님이 친히 손을 들어 축사하시고, 기름 부으시고, 은혜 내려 주셔야 그 사역의 물품이 사용되는 곳마다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나타나고,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타나고, 열두 광주리가 차고도 남음이 있는 은혜와 능력의 역사가 맺히게 될 줄 믿는다. 그리고 정말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사랑의 교회에 참 잘 왔네.’ 그게 아니라 “진짜 하나님 대단하신 분이시네.” 그렇게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는 9.26이 될 줄 믿는다. ♣요약 ‘9.26, 한국교회 섬김의 날’ 헌신하는 우리 영 가족이 육신의 한계를 넘어 성령의 은혜를 허락하셔서 감동이 있는 섬김이 되게 하시고, 섬김의 날을 통해 천국잔치를 경험하게 하시며, 하나님이 주시는 오병이어를 받으시고, 오천 명이 먹고도 열 두 광주리가 남게 하시는 은혜를 주시며, 독생자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셨으니 우리도 주님처럼 내어드리는 발을 씻어드리고 지금도 구원을 위해 역사하시는 성령님이 친히 일해 주시길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이 이 저녁에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천국잔치, 나눔의 잔치, 섬김의 잔치, 발 씻음의 잔치를 위로부터 부으시는 능력으로 무장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님 받아주시고, 우리 힘으로 감당키 어려운 힘으로 만족시킬 수 없는 하나님의 수준의 감동이 있는 한국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길 기도해야 한다. |
☆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2년 9월 24일)"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오정현 담임 목사님)-사랑의 교회 ☆ (0) | 2022.0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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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상식. 일반상식 퀴즈 -한국경제 ★ (0) | 2022.09.21 |
☆ 주일예배(주후 2022년 9월 18일)"변명 보고 아닌, 믿음 보고를"(오정현 담임 목사님)-사랑의 교회 ☆ (0) | 2022.09.18 |
☆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2년 9월 17일)“주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덕 버셀 목사님(前 로잔 국제총재, SaGA 교수님)-통역 이원준 부목사님)-사랑의 교회 ☆ (0) | 2022.09.16 |
☆ 주일예배(주후 2022년 9월 11일)"믿음으로 모험해 해봅시다"(오정현 담임 목사님)-사랑의교회 ☆ (0) | 2022.09.11 |
주일예배(주후 2022년 9월 18일) 제목: "변명 보고 아닌, 믿음 보고를" 말씀: 출애굽기 3:11-14, 4:1-17 대표기도: 이현규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원준 부목사님) 사회: 장광천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 *출애굽기 3:11-14, 4:1-17,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애굽기 4:1-17, 1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5 이는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6 여호와께서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에 나병이 생겨 눈 같이 된지라. 7 이르시되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이 본래의 살로 되돌아왔더라. 8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만일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표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나중 표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9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나일 강 물을 조금 떠다가 땅에 부으라 네가 떠온 나일 강 물이 땅에서 피가 되리라. 10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 ▶"변명 보고 아닌, 믿음 보고를”-믿음으로 뱀 꼬리를 잡아보라. -이른 아침 예배 시간에 우리 일생을 인도하시는 놀라우신 하나님을 찬양 드리는 것이 특별한 축복이라 확신한다. 저는 오늘 ‘변명 보고 아닌, 믿음 보고를’, ‘부제로 말하면 믿음으로 뱀 꼬리를 잡아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다. 저는 모세에 대한 내용을 준비하면서 마음이 뜨거워졌다. 왜냐며, 제가 어릴 때부터 저의 할아버지가 “현이는 모세처럼 되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이 더 와 닿아서 그다음 이 말씀을 오늘 들을 때에 ‘모세하고 나는 상관이 없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 모두가 다 모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여러분 말씀 듣고 하나님을 체험하기 바란다. 우리는 모세라는 이름만 떠올려도 강력한 리더쉽을 가진 위대한 믿음의 모험가로 생각하지만 모세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늘 본문을 11절 앞부분을 보면, * 출애굽기 3:11,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모세가 떨기나무에서 하나님과 유일하게 대화를 나눈 사람이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현현하신 하나님과 만난 유일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소명을 완수하라고 사명을 주셨을 때, 따박따박 다섯 번이나 변명을 한다. 그냥 다섯 번이나, 첫 번째는 우리 속에 있는 변명하는 속성, 아니 이 시대는 변명하는 시대이고, 변명하는 우리의 모습을 살펴봐야 한다. l. 변명 바쁜 우리.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내라고 명령하시자, 방금 종전까지 놀라운 광경을 본 사람답지 않게, 모세는 “아니, 안 됩니다.”=Impossible, 이렇게 변명을 늘어놓는다. 나는 아니라한다. * 출애굽기 3:11,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첫째 번 변명-“나는 아니지요?” 한다. 나는 자격이 없다고 한다. 두 번째로 2)두 번째 변명-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 출애굽기 3:13,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나는 하나님을 잘 모릅니다. 하나님의 대한 지식이 없습니다. 조금 전까지 떨기나무에서 하나님과 대화하고서도 하나님을 잘 모른다고 한다. 3)세 번째 변명-그들이 나를 믿지 않을 것이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한다. * 출애굽기 4:1, 1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그들이 나를 믿지 않을 것이다. 애굽 사람들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도 나를 거부할 것이라고 말한다. 4)네 번째 변명-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 출애굽기 4:10, 10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사도행전 7:22, 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때, 애굽의 모든 행사가 능한 사람이었다. 모세는 과거에 모든 말과 행사가 능한 사람이었다. 미디안 광야 40년 동안 대화를 안 해서 그런지, 양들과만 있어서인지, 그 입이 뻣뻣하다고 그랬다. 그래서 마침내 다섯 번째 변명을 한다. 변명의 아주 종지부를 찍는다. 13절을 보면, 5) 다섯 번째 변명-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라고 한다. *출애굽기 4:13, 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못 간다고 거부한다. 여러분, 나는 못갑니다. 우리교회로 말한 것 같으면, “순장님을 보내주옵소서!” 라고 하면 뭐가 생각나는가? 제가 믿음은 항해라고 했듯이, 어떤 정원 초과한 배가 이제 물에 가라앉으려 하니까,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타고 있었는데 영국 사람이 “저는 대영제국 국민입니다.”라고 하면서 신사도를 발휘해서 빠졌고, 미국 사람은 양보 하겠습니다. 라고 하고 물속으로 사라졌고, 서로 눈치 보다가 한국 사람이 벌떡 일어나 대한민국 만세!! 하면서 옆에 있는 일본 탁 쳐서 사람을 잡아 당겼다. 정말 우리에게는 변명할 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래서 무얼 요구하시는지 보면, 지난주에 말씀에 우리 안에 씨앗도 주시고 전부 다 능력을 주셨는데, 우리는 변명하기 급급한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오늘 모세가 따박따박 다섯 가지 이야기 한 것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사실보고이다. 우리교회는 지금 사실보고와 믿음보고를 구별하고 있다. 열 정탐꾼들이 말한 것은 사실보고이고, 여호수아 갈렙은 믿음보고이다. ‘faith report’ 이다. 언제 인생길 가운데 믿음보고 했는가? 우리 상황이야기 하면 이해 될 만하지만, 믿음의 보고가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심을 소명대로 완수할 수가 없는 것이다. 모세가 왜 그랬는가? 계속 변명을 하고 거절을 하는가? 40여 년 동안 모세는 자기도 모르게 과거의 실패의 경험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 두려움이 심리적 위축으로 다가왔다. 그 심리적 위축이 뭐로 다가 오냐면 열등감으로 다가왔다. 그 열등감이 무력감으로 표현되었다. -두려움>심리적 위축>열등감>무력감-하나님을 변명하게 하는 많은 원인이 되고 있다. 실제적으로 모세에게는 이집트에서는 잊혀 진 존재일 수 있다. 모세 머릿속에 계속 떠돌아다니는 내용이 있다. *출애굽기 2:14, 14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좀 도와주려고 하는데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며 아주 심문을 하고 오히려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 그게 모세의 머릿속에 40년 간 뱅뱅 맴돌게 했는지 모른다. 모세는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지금으로 말하면, 너는 지도자가 아니라며 악성 댓글을 계속 고통당하는 것이다. 누가 나에게 말 한마디로 비수처럼 꽃혀 가지고 평생을 고뇌하는 것과 같다. 그게 열등감과 무력감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모세에게 시작도 하기 전에 불가능하다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는가? 주님은 어떻게 해결하시는가? 이제 뱀 꼬리를 잡으라 하시는데 그 전에, *출애굽기 3:11,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내가 누구이기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자의식 문제가 있다며 반드시 함께 하신다고 12절에 말씀하신다. *출애굽기 3:12,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다. *출애굽기 3:13-14,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을 잘 모른다고 하는 모세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구약에 있는 위대한 말씀 중에 놀라운 말씀 중에 하나인 말씀을 14절에 하신다.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I am who I am. 놀라운 이 말씀은 하나님의 위대한 선언이시다. 영광 되는 시간에 주신 것이 아니라, 모세가 자기 변명하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깨우쳐서 새롭게 하도록 하시는 것이며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라고 하시니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데 불구하고 모세는 그들이 나를 믿지 않을 것이라 한다. * 출애굽기 4:1, 1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그렇게 모세가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드디어 증거를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것이 모세에게 너에게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지팡이가 있다고 대답한다. 그 지팡이를 던지라고 하니까, 지판이가 뱀으로 변하는데 애굽의 상징 중에 왕관, 파라오의 왕관에 코브라로 되어 있다. 그런 것인데 뱀 꼬리를 잡으라고 한다. 그게 말이 되는가? 그 독사가 있는 뱀은 물려 죽는 것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말하면 뱀 꼬리를 잡으면 죽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됨에도 불구하고 뱀 꼬리를 잡으라 하신다. 인간의 상식을 뛰어 넘는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잡아먹히는데, 뒤에 이렇게 나병 손잡고, 나일 강 피, 여러 가지 두 가지 표적과 한 가지 선포를 통해 여러 가지 있지만 오늘 핵심은 뱀 꼬리를 잡으라고 한다. 뱀 꼬리를 잡으면 죽는다. 하나님은 잡으라고 하신다. 마른 막대기가 생명으로 가득 찬 뱀으로 되었고 다시 또 죽음을 무릎 쓰고 뱀 꼬리를 잡으니까 다시 지팡이로 되었다. *출애굽기 4:1~2, 1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여러분, 전에 우리 교회 오셔서 간증하신 세계무역협회 총재이신 이희돈 장로님(박사님)이 하신 말씀이다. 뱀 꼬리를 잡는 것이 무슨 뜻인가? 일반적으로 바위로 계란을 치는데 뱀 꼬리를 잡는 것은 마치 무엇 같은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다고 하신다. 이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신앙생활을 해본 적이 있는가? 이것을 주님이 원하신다. 이 뱀 꼬리를 잡는 것은 우리의 이해와 상식이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 메시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결단하게 하시는지 모른다. 뱀 꼬리 잡으면 죽는다. 왜 그런데 뱀 꼬리를 잡으라 하시는가? 일반적으로 바위로 계란을 치는 것은 다 잘 한다. 그러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은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위로 계란을 칠 때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 그거는 기도를 안 해도 되는 것이니까, 그런 신앙생활은 맹숭맹숭 하는 신앙생활이니까, 그런데 계란으로 바위를 칠만큼의 그 상황이 되면 다시 뱀 꼬리를 잡을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이 되면 우리는 박박 기게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기도 제목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다 평안하니까 없다고 한다. 그게 다 좋은 것 같지만, 여러분 믿음으로 사는 삶 가운데서 한 번이라도 뱀 꼬리를 잡아보지 못하고, 계란으로 바위 한 번 쳐보지 못하는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위탁하는 어떤 절박함과 긴박함을 가진 신앙생활을 한 번 못했다면 오늘 말씀은 바로 여러분의 것이다. 자 다시 말하면 바위로 계란을 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가 어떨 때는 소망이 없고 절망이 되고, 하나님 의지 하지 안 되면 그 상황 그것이 뱀 꼬리 잡는 상황이다. 마음이 젊은 어른들은 ‘뱀 꼬리 한 번 잡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고, 마음이 나이가 젊어도 애 늙은이들은 ‘못 잡겠네.’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뱀 꼬리 잡는 것이 믿음 보고이다. 이 믿음 보고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위탁하는 것이다. II. 뱀 꼬리를 잡으라. -우리가 영적으로 깊이 들어가 보면, 뱀 꼬리를 잡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매어달리지 아니하면 뱀이 우리를 계속 공격할 것이다. 이게 현실적으로 보면 가능하겠는가? *마가복음 4:38-41,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제자들이 그냥 토하고 난리가 났고 우리가 다 죽게 되었다고, 세상의 광풍으로 다 죽게 되었다는 상황에서 제자들이 죽게 되었다고 소리치는 것을 당연한 것이다. 그럴 때 예수님이 깨어나셔서 “광풍이 불고 너희들이 다 죽게 되었는데 내가 잠자서 미안하다. 많이 놀라고 힘들었지?” 주님이 그렇게 하셨는가? 아니다. 완전 허를 찔렀다. 일갈을 하신다. “이 믿음이 없는 자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하신다. 세상의 광풍 속에서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믿는 것이 바로 뱀 꼬리를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광풍도 주님 때문에 순풍으로 여기는 게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제가 폴 투르니에라고 크리스찬이 정신학자 아주 특별한 분이 한 말이다. ※“내가 할 일은 백지 하단에 서명하는 일이라는 걸 이제 깨달았소. 하나님께서 뭐라고 쓰시든 나는 그대로 할 것이요. 하나님이 이 백지 계약서에 뭐라고 쓰실지 모르지만 어쨌든 난 오늘 섬ㅇ을 마쳤소이다.”-폴 투르니에- -믿음이라는 것은 백지수표 하단에 서명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뭐라고 쓰시든 간에 그대로 한다는 것이며 서명을 마쳤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든 하나님 앞에서 백지수표를 써 보았는가? 백지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은 하나님께 납작 엎드려서 순종하는 것이다. 오늘 영적 세계에서 이유식에서 밥을 먹는 것이다. 서명하는 믿음의 눈이 되어야 한다. III. 이해보다는 순종으로. -모세가 뱀 꼬리를 잡으니까 다시 지팡이가 되는 것을 경험하고 모세는 아까 무기력증과 열등감이 재발 되어가지고 말을 못하는 자이고 입이 뻣뻣하다고 한다. *출애굽기 4:10-11, 10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모세가 부족하다고 하는 것에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것을 확신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12절에, *출애굽기 4:12-13,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 한 자를 보내소서. -오 주여, 아론을 보내주옵소서! 한다. 실컷 이야기 했는데, 어떤 사람이 가게에 와서 물건을 다 살 것 같이 하다가 마지막에 안사고 가는 것, 그것과 비슷하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보면, 성경에 쉽지 않다. 너무 놀라운 말씀이 있다. 14절을 보면, *출애굽기 4:14,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하나님께서 불 같이 화를 내셨다.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셨다. shut up and go!!! 하신다. 여러분들이 오늘 부담이 느껴지면, 오늘 깊이 생각해 보라. 여호와께서 노를 하시고 자기의식이 잘못 된 사람에게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하나님의 의식이 잘못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 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깨닫게 하시므로 모세의 잘못된 것을 해결해 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쉽지가 않았다. 오늘 키는 이해가 안 된다고 해서 그냥 퍼져 앉아가지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이해가 안 되더라도 오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으로 백지수표에 서명하는 심정으로 그냥 순종하면 이해할 날이 온다는 것이다. 이게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이해가 다 된다고 믿음 보고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다 알 수도 없다. 수긍이 가지 않는 것도 너무 많다. 이해가 안 되어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순종이 더 중요하다. 이해가 안 되어도 이해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따라서 어떨 때는 이해보다 순종이 더 중요하다. ※어떨 때는 이해보다 순종이 더 중요하다. -여리고 성을 빙빙 돌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그런데 순종하고 나니까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이다. 희한하다. 너는 세상 적으로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다. 하나님께서 ‘나를 신뢰하라, 나를 의탁하라’ 하시면 이해가 안 되어도, 하나님이 해답을 언젠가는 이해하게 하시고 해답을 주실 것을 믿고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해되지 않는다고 시간 낭비하지 말고, 훗날 이해하게 될 것을 기대하고 순종해야 한다. -이것이 믿음 보고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변명 보고가 아니라 믿음 보고가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 이 교회에 오게 하신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온갖 상황이 있을 것이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이해가 안 되더라도 영적으로 순종하면 이해할 그 놀라운 상황을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다. *히브리서 11:8,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아브라함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시에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은 그 당시 원시 부족사회에 그 집을 떠나는 것은 사형선고인데 그냥 주님은 떠나라고 하는데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순종하고 나아갔을 때, 나중에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을 주님이 이끌어 주실 것이다. 이게 믿음이다. 우리는 앞으로의 일을 다 모른다. 다 아는 사람이 없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안다.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무엇보다도 내 입에 할 말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내 입과 귀를 만드는 하나님이시다. 이것을 우리가 신뢰하고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더라도 주님 말씀을 순종하면 이해할 만한 환경으로 주님이 인도해 주신다. 백지수표를 써야 한다. 자, 그럴 때에 이해가 안 되어도 순종하게 되면, 이해가 되는 날이 온다고 했는데 그리고 이해할 날을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신다. 그것은 지팡이를 주신다. 모세의 지팡이는 본래 그냥 한탄하는 지팡이였지만, 내 신세타령이나 하고 땅이나 치는 지팡이였으나, 하나님이 그 지팡이를 던져서 뱀이 되게 하신다. 그 뱀 꼬리를 잡으라고 하니까, 정말 죽음의 위협을 무릎 쓰고 그걸 잡았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것을 가지고 새로운 지팡이를 주신 것이다. 그러니까 이해가 안 되어도 순종하면 우리의 손에 지팡이를 쥐어 주시는 것이다. 이게 세상 법칙과 하나님 법칙과 다르다. 애굽을 떠나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놀라운 말씀을 주신다. *출애굽기 4:17, 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우리가 변명할 이유가 다 있지만,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해가 안 되어도, 하나님의 일을 잘 모르지만 우리는 마음속에 지팡이를 하나씩 주실 것이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모세의 말라빠진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 것이다. 평범한 나무 막대기가, 신세 한탄한 막대기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 것이다. 그리고 살아계신 지팡이가 되니까, 모세가 지팡이를 올리니까 나일 강이 피가 되었고, 모세가 그 지팡이를 들고 올리니까 불가능하게 보였던 홍해가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났다. 광야 같은 메마른 그 딱딱하고도 그 물이 나오지 않는 곳에서 반석에서도 모세가 지팡이를 치니까 반석에서 생수가 터지게 되었다. 생명력 없는 마른 막대기가, 이해가 안 되어도 순종하니까, 백지수표에 사인을 하니까, 하나님이 지팡이가 되게 하셔서 우리는 살리는 영이 되게 하신 것을 믿는다. 마귀는 죽이는 영, 참수하는 영이지만, 성령은 창조하는 영이고, 마른 막대기가 살리는 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지팡이를 손에 잡고 있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엑스트라 축복이 있다. 그것은 기대감이다. 제가 존경하는 A.W 토저 목사님은 ※참된 믿음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기대감이 동행한다. 그러므로 기대감이 없는 곳에는 믿음도 없다.“ -A.W 토저-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서도 무엇이 이루어지는 기대감이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다. 저는 교회 역사를 볼 때에 나름대로 교회능력이 지극히 컷을 때, 교회가 부흥할 때, 교회 안에는 기대감이 충만함을 믿는다. 교회가 믿음이 있을 때, 교회는 기대감이 있었고, 주님은 교회를 실망시키지 않으셨다. 누가복음을 보면, *누가복음 1:45, 45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역사 속에 나타난 모든 하나님의 큰 일, 교회의 모든 부흥들이 일어나기 전에는 반드시 강렬한 기대감이 있었다. 기대감은 언제나 성령과 함께 일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들의 문제는 기대감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모여도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감이 사라진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눈에 보이는 교회뿐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교회인 여러분 자신 한 분 한분의 삶의 여정 가운데 여러분의 기대감이 사라졌다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우리의 기대감이 사라졌다면 오늘 이 기대감이 회복되길 바란다. 이 지팡이를 여러분들의 손에 들려주셔야 한다. 이 기대감이 회복되어야 한다. 우리 교회는 말도 안 되는 5,534명의 목회자분들이 목사님과 사모님들이 참여를 하신다. 9.26,섬김의 날, 무슨 일을 하시는가? 저 나름대로 기대감이 출렁출렁함을 믿는다. 이 은혜를 통하여 여러분의 생에 삶의 여정에도 기대감이 출렁출렁하기를 바란다. 너의 손에 있는 지팡이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주시는 지팡이는 다르다. 우리는 한국교회를 섬김에 기대감과 온라인 사역과 대면예배가 회복되고 이것이 한국교회에 대한 기대감이다. 출애굽한 백성들이 이제 홍해를 건너와서 모세의 이 지팡이를 가지고 반석에서 샘물을 내고, 그 다음 모세는 홍해를 건너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것은 광야에서 아말렉과 전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말렉과 전쟁을 할 때 무엇으로 전쟁을 하는가? *출애굽기 17:9, 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언제 여러분들은 언제 하나님이 주신 지팡이를 들고 산꼭대기에 서는 때가 언제인가? 다시 한 번 다짐해야 한다. 우리가 변명거리도 있지만 하나님이 지팡이 주실 때 기대감을 주셨다. 우리의 영적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하길 원하신다. 하나님 앞에서 수많은 귀한 일이 있을 때는 영적 전쟁이 있다. 아말렉과 전쟁이 있는 것이다. 그럴 때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우리가 지팡이를 들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는 것이다. 결단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일반 지팡이가 아니라 그 지팡이를 잡고 인생의 산 꼭대기에 서라. “나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인생의 산꼭대기에 서리라.” ♣요약 두려움과 열등감 무기력에 사로잡혀서 변명 보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전적 위탁하여 절박할 때 뱀 꼬리를 잡는 믿음으로 이 세상을 이기고,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하고 백지수표에 서명할 때, 홍해가 갈라지고 반석에서 물이 샘솟는 하나님의 지팡이로 쓰임 받게 되리라는 믿음으로 우리는 기대감을 가지고 9.26 섬김에 헌신하는 순종이 되어서 하나님께 온전한 믿음 보고가 되어야 한다. 요약-*출애굽기 3:11-14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을 하시면서 그에게도 또한 자유롭게 말할 기회를 주신다. 모세는 자신이 부름 받은 일을 하기 에는 부족하다고 이의를 제기한다. 내가 누구관대(11절). 모세는 자신이 그런 명예로운 일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에게 용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기의 재능이 부족하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에서 건져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무장도 하지 않았으며, 훈련도 받지 않았으며, 아주 의기소침해 있었다. 모세는 그 당시에 살던 어느 누구보다도 이 일에 최고 적임자였다. 그는 학문, 지혜, 경험, 용기, 신앙, 경건에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가 누구관대'라고 말하고 있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대개 자신을 낮게 평가하는 법이다. -실제로 그 일의 어려움은 지대하였다. 그러나 모세는 종국에는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적임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자신의 임재를 약속하신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12절). 그러면 모세의 이의는 충분히 해결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공을 보장하시며, 이스라엘 백성이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임을 확증하신다. 모세는 그의 임무 수행을 위한 지시를 구한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서 이때 무슨 이름으로 자신을 알리실 것인지를 알고 싶어 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이 자신에게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물을 것이라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은 이 모세를 당황하게 하려, 아니면 그들 자신의 알고자 해서 할 것이다. 모세는 그들에게 어떤 대답을 해야 되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구하고 있다.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나의 권위에 대한 증거로 내가 어떠한 이름을 그들에게 내세워야 합니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이 말은 '여호와'라는 그의 이름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이 자존 자이심을 의미한다. 그는 그의 존재의 기원을 그 자신 속에 가지고 계시며 그 어떤 다른 존재에게도 의존하지 않으신다. 자존하시므로 그는 자족하시며 그렇기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이 넉넉하시며 존재와 축복의 무한한 원천이 되신다. 그가 영원하시고 불변 하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탐구를 통해 그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 사실을 알리도록 하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하라. 요약- *출애굽기 4:1-17,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와 자기 말을 믿지 않으리라는 것과 자기가 말에 능치 못하다는 것, 그리고 보낼 만한 자를 보내라는 등의 이유를 대며 불순종했다. 우리도 믿음이 연약할 때 하나님의 명령을 피하려고 변명을 늘어놓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단 부르신 사람은 반드시 쓰시고야 만다. 모세가 자신은 말에 능치 못하며 적당한 사람이 아니니 보낼 만 한 자를 보내라고 거절하자 하나님께서는 그와 늘 함께하여 부족함을 채우겠다고 위로하시며 그를 권면하셨다.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능치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에게는 다만 그 힘을 의지하는 순종이 필요하다. 또한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내와 자비로써 죄인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
☆ 경제상식. 일반상식 퀴즈 -한국경제 ★ (0) | 2022.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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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2년 9월 21일)"서로 발을 씻어주라"(박주성 부목사님)-사랑의교회 ☆ (0) | 2022.09.21 |
☆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2년 9월 17일)“주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덕 버셀 목사님(前 로잔 국제총재, SaGA 교수님)-통역 이원준 부목사님)-사랑의 교회 ☆ (0) | 2022.09.16 |
☆ 주일예배(주후 2022년 9월 11일)"믿음으로 모험해 해봅시다"(오정현 담임 목사님)-사랑의교회 ☆ (0) | 2022.09.11 |
☆ ♣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2년 9월 10일)"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조서환 부목사님)- 토요명절음악회- 사랑의교회 ☆ (0) | 2022.09.10 |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2년 9월 17일)-복음의 서진 제목: “주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말씀: 이사야 58:12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대표기도: 백진호 집사님(복음의 서진 총무님) 말씀읽기: 최유주 자매(청년부), 강주영 자매(대학부) 찬양인도: 글로벌 선교회, 남순장반 설교자: 덕 버셀 목사님(전 로잔 국제총재, SaGA 교수님)-통역 이원준 부목사님) -------------------------- *이사야 58:12,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 ▶덕 버셀 목사님(전 로잔 국제총재, SaGA 교수님)-통역 이원준 부목사님) -사랑의 교회에서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매우 큰 특권이다. 이렇게 새벽부터 함께 하신 여러분께 감사와 환영의 마음을 전한다. 저는 이곳에 여러분과 함께 하기 위해서 6천 마일을 날아왔다. 이 새벽에 여러분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을 통해서 한국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망과 미래를 발견할 수 있는 것 같아서 마음에 벅참이 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서기 전에 담임 목사님과 잠시 인사를 나눌 시간이 있었는데, 바로 목사님께서 저에게 “머리가 점점 더 하해진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원래 머리카락 검정색인데 하얀색으로 염색을 해서 그렇습니다.”라고 했다. 동양에서는 이렇게 하얗게 보여야 지혜롭게 보이기 때문에,,, 제가 이제 70이 되었다. 그런데 더 중요하게는 65년 동안 주님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제가 선교사역을 감당한지 43년이 되었다. 오늘 아침에 말씀으로 나아갈 때에 저는 특별히 유럽 재복음화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 싶다. 제가 2007년에 부다페스트에서 사랑의 교회의 리더 한 분을 만난 그 이후로부터 사랑의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그 복음을 향한 열정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랑의 교회를 이렇게 복 주시기까지는 여러분의 심장 가운데 있는 복음화와 전도를 위한 구령의 열정 때문이 아닌가? 하는 그렇게 생각도 든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맡기실 때에 많은 책임을 요구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사랑의 교회가 이렇게 수많은 자원들과 젊은이들을 열방 가운데 보내고 있다는 것이 이것이 간증이 되는 것 같다. 2010년에 있었던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진행된 로잔대회 준비를 위해서 오정현 담임 목사님과 고성삼 목사님을 만난 기억이 있다. 그 대회에서는 복음화를 세계 재 복음화를 위한 여섯 가지 중요 과제를 안고 모인 모임이었다. 하나 중요한 과제 중에 하나가 바로 유럽대륙을 다시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것에 관련해서 잠깐만 말씀을 드리자면 그 로잔대회를 치르기 위해서 이 세상 그 어떤 교회보다 사랑의 교회가 가장 많은 헌신을 해주셨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정말 위대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랑의 교회, 그리고 위대한 비전과 힘께 하시는 분들이 바로 여러분이다. 이 세계의 복음화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값지게 사용하기 위해서 유럽 재복음화를 위해서 우리가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이 아침 여러분과 계속 나누고 싶다. 예수님의 공생에 사역, 그리고 초대교회의 모습, 그리고 이후에 있는 모든 시간들 속에 유럽은 특별히, 북유럽은 매우 이도교적인 사회였다. 오순절 사건 이후로 많은 제자들이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가게 된다. 3세기 이후 하나님이 은혜로 복음이 유럽지역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여러분, 유럽을 지금 여행해 보면 곳곳 교회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그것이 바로 이 사건들의 유산인 것이다. 그리고 종교개혁의 중심이었던 마틴루터를 통해서 유럽 전역에 다시 한 번 복음의 불길이 솟아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라비안과 윌리암 케리를 통해서 17세기에도 이어서 계속해서 복음의 불길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19세기 이르러서는 전 세계의 기독교인구 90%가 유럽에 뿌리를 가지고 있든지, 유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인도에서 윌리엄 케리가 감당했던 귀한 사역을 한 번 생각해 보라. 아프리카를 전역으로 다녔던 데이빗 리빙스턴을 생각해 보라. 중국에 갔던 허드슨 테일러를 생각해 보라. 그리고 큰 능력으로 미국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웨스트 리 형제를 생각해 보라. 정말 세기 동안에 임펨트를 끼쳤던 유럽 교회가 있었다.
그런데 세계 전쟁, 1차,2차에 이르기까지 시간들을 통해서 유럽에 그 정신세계에 유럽에 큰 영향이 생겼다. 그리고 교회는 하락하기 시작했다. 19세기만 하더라도 그 90%를 차지하던 그 기독교인구가 이제 20세기 말에 이르러서 전 세계의 10%도 되지 않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을 미래를 생각할 때에 많은 희망을 가지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프랭크 울프라고 하는 워싱턴 D.C에서 굉장히 유망한 정치인을 제가 2년 전에 만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는 유럽과 북미 지역에 부흥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고 저에게 말해주었다. 이제 그 의회 밖의 장소에서 만나면서 잠시 뒤에 그 부흥에 대한 발표를 하는 그런 시간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유럽과 미국에 세속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가운데 이렇게 하락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있었다. 죠지 위프와 조나단 에드워드를 통해 일어났었던 영적 대각성 운동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추억하면서 너무나도 가슴이 아픈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저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질문했다. “덕 우리의 평생, 우리의 삶 동안에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요?”라고 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했다. 그 당시에는 이 나라가 영어 하나만을 썼었는데, 유럽에 기독교 백그운드를 가지고 배경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었는데, 지금 미국은 너무나도 많은 세계관들이 있고 수많은 언어들이 있어서 문화와 종교가 충돌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프랭크 이것은 너무 하나님에게도 힘든 일이 아닐까?”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저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저희는 그 순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증명할 수 있는 그 순간이 있다면,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일 거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하나님께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사야도 동일하게 예고했다. “내가 새 일을 행하고 있다. 광야의 이슬은~~” 하나님께서 유럽 가운데 새 일을 행하는 줄 믿는다. 그리고 여러분 가진 것 모든 것을 하나님이 역사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제가 여러분과 다섯 가지의 아주 짧은 이야기들을 하겠다. 먼저는 저와 케이프타운에서 시간을 함께 보냈던 베이그 나간이라고 하는 목사님과 함께 3년 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쪽에 복음주의 연맹에 대표로 있었던 한서라고 하는 분을 저에게 데리고 왔다. 여러분 잘 아시는 것처럼 북유럽이 굉장히 세속적인 나라이다. 너무나도 많은 돈들, 그리고 마약과 문란한 성문화가 너무나도 오랫동안 팽배했었던 그런 모습으로 모든 것이 이제는 지겨운 상황이 아닌가 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저희가 그와 점심을 먹는 그 순간에 저희가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저희는 그 때 케이프타운에 있었던 것을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 케이프타운에 있었던 그 대회에서 한 개의 세미나가 저의 모든 의식을 바꾸었고 혁명적으로 우리의 사역을 일으켜 내고 있다. 이 세미나는 그냥 호기심에 이끌려서 간 세미나였는데, 민족의 이동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이민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세미나였다. 그들은 이것이 흥미가 있을 것 같은데 우리와 큰 상관은 없을 것 같다. 우리는 덴마크는 그저 북유럽에 단일 민족이고, 그리고 강의를 담당했던 그 필리핀 강사께서 “여러분이 만약 이정도 규모의 도시에서 산다면 이 정도의 아프리칸이 있을 것이고, 이정도의 동양 사람이 있을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때 그들도 그것을 들으면서 ‘다른 도시는 그러하지만 코펜하겐을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집으로 돌아갔을 때, 엄청난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이 그 사람들이 바로 그 도시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연결 점들이 없었던 것이다. 제가 조금 더 빨리 이야기를 움직여 보겠다. 그는 저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지금 저희는 필리핀 여성들의 모임의 70개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냥 다섯 명, 열 명, 베푸는 것이 아니라, 이란 출신의 학생들이 50명, 100명 단위로 세례를 베풀고 있다. 코펜하겐에 들어온 불교 신자들을 전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아프리카 출신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기도회 움직임들을 다시 일으키고 있는지를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덴마크 코펜하겐 가운데 역사하고 계신 줄 믿는다. 이 세라브로어라고 하는 브라질에서 태어난 여성분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싶다. 레네라고 하는 성경을 정말 탁월하게 가르치시는 분과 결혼한 분이다. 그 카돌릭으로 가득한 로마 한 복판에 그들은 교회를 개척했다. 제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영적으로 깨어 있고 파워풀한 분이다. 너무나도 아름다우시고 총명하시고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있는 분이다. 이게 법적으로 가능하다면 제 딸로 입양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녀는 ‘리바이블 유럽’, ‘유럽을 다시 부흥으로’라고 하는 그 모임을 시작했다. 매 2년마다 격년으로 약 1500명의 젊은이들을 이 크리스마스 연휴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모으고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들을 큰마음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러분, 이제 며칠이 지나면 오스 기니스와 함께 할 텐데, 오스 기니스도 유럽피안인데 유럽과 전 세계에서 귀하게 쓰임 받고 계시는 분이다. 린지 브라운이라고 하는 사람을 만났을지 모르지만 웨일즈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정말 많은 영향력을 끼친 분이다. 이 개학을 중심으로 한 정말 지적인 접근들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많이 깨닫고 계시며 그런 사역들을 유럽에서 하고 계신다. 유럽대학 신앙의 교재를 하는 단체를 만들어서 지금 운영하고 계신다. 그 스펠링을 이렇게 따라가 보면 독일 말로 불이라는 뜻의 파이어, 라고 하는 그런 말을 한다. 하나님께서 정말 새로운 일을 정말 유럽 가운데 펼쳐내고 계신다. 하나 더 말을 하겠다. 유럽에 재 복음을 위해서 더 뜨겁게 하는 목사님 한 분이 대한민국에 계신다. 그는 그리고 유럽에 1000개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마음을 쏟고 계시는 분이다. 그 비전을 가지고 계시고, 그 열정을 가지고 계신 분이 두 분이 계신다. 그리고 바로 앞자리에 앉아 계신다. 오정현 목사님과 고성삼 목사님이 유럽대륙에 천 개의 교회가 세워질 거라고 믿고 전진해 나가시는 분들이라고 믿는다. 박수.... 그래서 이 목사님들과 함께 하고 싶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예수님 만나게 된 분들을 만나보았다. 저는 미국에서는 더 버셀이다. 그런데 이사야가 여기 있었다면, 이스라엘의 정말 이 선지자가 여기에 왔었다면, 사랑의 교회 여러분,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고 계신다. 유럽에 새 교회를 개척하고 계신다. 전도자들을 일으키고 계신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중동과 남미에서 전도자들을 일으켜서 데리고 오신다.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는 줄 믿는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하는 특권을 주실 줄 믿는다. 유럽을 새롭게 하고 온 열방을 축복할 비전에 하나님께서 복을 더하시길 간절히 소망한다. 아멘. ♣요약 복음의 불모지가 되어 버린 유럽을 품고 진행하는 복음의 서진 사역을 통해 예수님께서 주신 대 사명이 유럽 전역에 실현되고 천 개의 교회가 세워지고 새 역사가 집필되길 소원하며, 우리 교회가 9.26 섬김의 날을 통해 강력한 말씀 자본, 기도자본, 헌신자본을 다시 회복되고 이 나라와 민족이 다시 살아나고, 매일 육체의 한계를 뛰어 넘어 간구하는 강단 기도회를 통해서 교단과 지역 교회 5,500여며의 목사님들이 함께 회복되고 부흥이 되어 세계 복음화의 새로운 전환점을 경험하길 기도해야 한다. |
☆ ♣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2년 9월 21일)"서로 발을 씻어주라"(박주성 부목사님)-사랑의교회 ☆ (0) | 2022.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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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예배(주후 2022년 9월 18일)"변명 보고 아닌, 믿음 보고를"(오정현 담임 목사님)-사랑의 교회 ☆ (0) | 2022.09.18 |
☆ 주일예배(주후 2022년 9월 11일)"믿음으로 모험해 해봅시다"(오정현 담임 목사님)-사랑의교회 ☆ (0) | 2022.09.11 |
☆ ♣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2년 9월 10일)"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조서환 부목사님)- 토요명절음악회- 사랑의교회 ☆ (0) | 2022.09.10 |
☆ 주일예배(주후 2022년 9월 4일) "달란트의 신비"(오정현 담임 목사님)-사랑의 교회 ☆ (0) | 2022.09.04 |
주일예배(주후 2022년 9월 11일) 제목: "믿음으로 모험해 봅시다" 말씀: 마태복음 25:14~30 대표기도: 이선복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원준 부목사님),영광찬양대 사회: 장광천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 *마태복음 25:14~30,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 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 ▶태풍도 지나가고 전형적인 가을의 청명함을 주신 주일이다. 자 우리 왜 청명함을 왜 원래 이렇게 얘기 하느냐 하면 전 어릴 때 성경을 읽는데 어느 날 모세하고 장로님들이 시내 산에 올라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그렇게 기가 막힌 말씀이 있다. 어릴 때 제가 보고 너무 이렇게 머리에 뇌리에 남아가지고 하나님 우리 예배가 그렇게 해달라고 제가 기도하고 있는데 그게 뭐냐면 출애굽기 24장 10절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와 있다. *출애굽기 24:10, 10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할렐루야!~. 얼마나 좋은지 여러분 청옥이 뭐냐면 사파이어이다. 사파이어 반지 여자분들 하나만 줘도 좋다. 대부분 없겠지만 그런데 이 사파이어가 아스팔트처럼 깔린 것이다. 다시 사파이어가 아스팔트처럼 깔린 것이다. 우리 인생의 도로이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좋은데 하늘같이 청명하더라. 오늘 예배가 삶의 모든 짐들이 벗겨지고 우리의 삶에 청옥같이 또 우리의 삶에 청량감이 넘치는 그런 예배가 되기를 바란다. 지난주일 저는 달란트 비유를 가지고 말씀을 드리고 오늘 to be continued~, 그렇게 해서 오늘 계속 이어서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핵심은 이것이다. 하나님의 우리에게 인생의 인생을 향해할 때 배를 주시는 것이다. 배를 주시고 또 그 배를 저를 노도 주시는 것이다. 노도 주시는데 우리에게 뭐는 안 해주시는가? 노는 우리가 저어 가야지 하나님이 저어주시는 않으신다. 그러니까 우리의 말씀의 노도 주시고, 기도의 노도 주시는데 우리가 말씀을 읽고 말씀의 자리에 나와서 기도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는 것이다. 물론 크게 보면 그것도 내주지 않은 것이지만 일단 우리 편에서 볼 때는 우리가 믿음과 말씀과 기도의 노를 져야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노를 젓는다는 말은 믿음의 모험을 해야 한다 자, 믿음의 무엇을 해야 한다고? 모험을 해야 한다. 그런데 믿음의 모험을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우리의 어떤 관념이나 생각과 우리의 신념을 실천 한다 그런 뜻인가? 뭐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여러분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의 잘못된 관념이나 생각도 많이 있다. 자기 믿는다고 해서 막 그거 하면 되는 것, 아닌 것 많아요. 북한 같은데 가보면 아이들 어릴 때부터 잘못된 세뇌를 시키니깐 거기가 지금 지상낙원인 줄 안다. 그런 식으로 자기 믿는 대로 하면 안 된다. 우리가 믿음의 노를 젓는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나 신념의 노를 젓는 게 아니고 말씀이 얘기하는 노를 저어가야 되는 것이다. 그 말씀이 standard(기준)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정한 믿음의 모험은 성격이 말씀하시는 바를 그대로 행하는 것이다. 여러분 어떠한가. 이게 우리의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성경의 기준이라는 것이 그래서 여러분과 제가 우리의 삶의 항해를 저어갈 항해를 해야 할 때에 요즘 무슨 최첨단의 어떤 하이테크의 노도 있다. 그런데 오늘 순박하지만 오늘 말씀 그대로 말씀의 노를 저어갈 때, 하나님 은혜주시면 여러분들의 삶의 청명함이 넘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말씀의 노가 뭘까? 첫 번째 말씀의 노는 오늘 지난 주일에 제가 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다. 14절에 자기 소유를 하나님의 소유를 그 다음 15절 살펴보면, *마태복음 25:14~15,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각각 그 재능대로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은 이 각각 그 재능대로 그랬다. 이 재능대로라는 말에 굉장히 중요한 것들이 많이 담겨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이 재능대로라는 말은 흔히 재능이라고 하면 talent(재능)라고 생각해 talent가 아니다. 이것은 ‘능력’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대단한 부모님을 만나가지고 강남 8학군 출신이고 어떤 사람은 무학하신 농촌의 부모님 만나가지고 시골에서 자라고 어떤 사람은 암이 있고, 어떤 사람은 병이 없고,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뭐 대단한 사람, 그렇지 않으면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고생해 가지고. 우리는 다 모른다. 우리는 다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 그랬을 때 그 재능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능력을 주셨다는 것이다. 희한하게도 다섯 달란트, 두 달란, 한 달란트 이것을 비교하면 안 되는 것이다. 나에게만 주신 그것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키는 이거 첫 번째는 뭐냐면 I. (믿음의 모험)비교하지 말고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모험이라는 것은 받은 그 재능 다른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을 일반 talent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그 능력을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겠냐 이것이 말씀의 standard(기준)이라는 것이다. 조금 이것이 차이가 있는 것이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도 저도 ‘참 그렇구나!’ 여러분, 다섯 달란트 받은 자가 다섯 달란트 남긴 것 하고 두 달란트 받은 자가 두 달란트 남긴 것 하고 나중에 악한 게으른 종이 있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가 한 달란트 남겼다면, 셋 다 칭찬의 양과 질과 수준이 똑같을까? 다를까? 두 달란트 받은 자는 다섯 달란트 받은 자에 비해서 반반 밖에 안 주고 한 달란트는 반주고 이렇게 칭찬할 것인가? 아니면 다 똑같을까? 대답이 왜 이런가? 자, 키는 이것이다. 하나님은 사람마다 각각 능력을 주셨다. 어떻게 보면 기적의 씨를 사람마다 개인마다 넣어주셨다. 어떤 사람은 언어에 재능이 없고, 그런데 어떤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재능을 주시고, 키는 무엇이냐, 이미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런데 그걸 나는 남에 비해서 적게 받았다고 비교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은 보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이 있다. 그러면 30배 받으면 30배고, 60배는 더 많고 100배는 더 많이. 이 뜻이 아니야. 30배도 100점, 60배도 100점, 100배도 100점인 것이다. 사람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에게 어떤. 다시 얘기해. 어떤 언어의 은사가 있다. 우리가 영어 잘하는 분들 많지 않는가? 어떤 분들은 진짜 해도 경상도 사람들은 경글리쉬 경상도 잉글리쉬를 경글리쉬라고 발음이 안돼요. 그러니까 그 받은 것을 가지고 그 받은 것을 가지고, 내가 무엇을 남겼느냐. 내게 주신 그 여러분 재능이 아니라 여러분 무엇이라고 그랬냐. ‘능력’. 그래서 이 단어가 무엇이냐면 각각 그 재능대로라는 단어가 두나미스. 헬라 원어가 뒤나미스, 여러분 두나미스에 대해 어디서 들어본 적 없는가?“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말씀 너희에게 뭘 받는가? 권능을 받고 두나미스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각각 재능. *디모데후서 1:7,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다. -저 능력이 여기서 말하는 재능이다. 잘났던 못났던 상관이 없이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은 능력을 주신 줄 믿는다. 이걸 가지고 비교하지 말고 이미 결정된 것 가지고 비교하지 말고 내가 어디서 태어났다 내가 어떤 부모를 만났다 내가 어 키가 뭐 얼마다 이거 절대로 능력 비교하지 말고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것 하나님이 능력 주셨다. 내가 어떻든 간에 내게 주신 은사에 따라서 능력 주셨다.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주님 더 사랑할 수 있다. 주님과 더 영적 교제 할 수 있고, 더 믿음의 모험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더 찬양하고, 더 기도문 읽고, 다 믿음의 모험 여기서 다 큰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의 모험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주신 줄을 믿는다. 내 손에 있는 것을 가지고 모세에게도 내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냐? 그랬다. 너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이미 내게 주어진 그것을 가지고 내가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걸 가지고, 그래서 하나님이 각각 그 재능 능력 들어주신 것을 가지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눈을 뜨면 그 때부터 문이 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존 에릭슨이라는 사람을 아실 것이다. 17살 때 다이빙을 하다가 목뼈를 다쳐가지고 사지가 마비가 되었다. 원래 존은 수영과 테니스, 승마, 등산, 등, 이 스포츠심이 발달되어 가지고 아주 그냥 열정적인 아주 그냥 그런 것을 잘하는 청소년이었다. 그러니까 그가 척추를 다쳐가지고 목뼈를 다쳐가지고 사지가 마비되었으니까 아무 것도 못하는 것이다. 누워만 있는 것이다. 처음엔 하나님 원망도 하고 그런 고통 가운데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입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네! 그러니깐 입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존 에릭슨에게는 능력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입을 가지고 입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그림이 손으로 그려도 그렇게 잘 그릴 수 있을 것인가 할 만큼 입으로 그림을 잘 그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그림을 그리고 난 다음에 항상 수개월 후에 거기다 사인을 하는데 ‘PTL’이 무엇이냐. ‘Praise to the lord’ 말이 되는가? 사지가 마비되고 입만 갖고 이렇게 그렸는데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랬을 때 존 에릭슨을 통하여 수많은 참 사람들 다시 일어나기 힘든 사람들 다시 용기를 갖기 힘든 사람들이 용기를 갖고 다시 믿음의 모험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희 교회에도 한 번 간증했는데 ‘닉 부이지치’라고 들어보셨는가? 닉 부이지치. 그는 팔 다리가 없다. 어린 시절에 자신의 팔 다리가 없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정말 어려워서 자살 시도도 몇 번 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깐 차이가 내가 가지고 있는 게 무엇인가 보니까, 자기는 팔다리도 없는 이 상황인데 그것조차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니까, 그게 능력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단지 팔과 다리가 없어 불편한 장애인이 아니라 나는 믿음으로 모험하는 사람’에 대한 눈이 열린 것이다. *“할 수 없는 일 때문에 불평하지 말라. 당신이 가진 것으로서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을 할 수 있다.” -닉 부이지치-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주고 자신이 지금 받은 걸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이 원리를 깨달은 사람들은 남들이 볼 때, 초라해 보이는 한 달란트라 할지라도 믿음의 모험을 가지고 그것이 기적의 씨가 되어가지고 하나님 앞에 세기를 열리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 모두는 다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 어떻게 하면 오래 갈 수 있는가? 오늘 이 원리를 깨달은 사람들이 이 원리를 깨달은 사람들이 어떻게 믿음의 모험을 하느냐에 따라서 신앙의 명암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좀 더 제가 말씀을 드릴 테니까 잘 한 번 생각해보라. 모든 것을 다 가진 부자 청년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그 부자 청년에게 너의 소유가 어떻게 하라 그러니깐 그거 갖고 아무것도 못 하였다. 그 능력이 안 되었다. 근심하고 돌아갔다. 아무것도 없는 과부가 있었다. 두 렙 돈 밖에 없었다. 그것 가지고 자기 있는 것 가지고 주님께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해 가지고 두 렙 돈을 하나님께 드리니깐 하나님이 그 통해 과부에게 기쁨을 주었다. 오늘 이 첫 번째 중요한 원리 비교하지 말고, 비교하지 말고 이미 내게 주신 것을 능력인줄 믿고 두나미스이다. 예수님께서 이적을 행하셨던 그 이적의 두나미스이다. 하나님 우리에게 이적과 두나미스의 씨를 우리에게 주신 줄로 믿는다. 비교하지 말고, 이걸 가지고 어떻게 우리가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하려면 II. 무엇이 믿음의 모험을 방해하는가? -두 번째 믿음의 모험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된다. 오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지난 주일에 말씀 한 대, 땅에 파묻어 놓았다. 땅에 파묻어 놓고 주인에 대해서 주인에 대해서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그러면서 그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잘못된 것이 뭐냐면 자기의 세계관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모험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한 달 반쯤 본래 자기는 종이었는데 종의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종의 정체성을 망각했다. 그리고 주인을 함부로 판단했다. 자신의 주인이나 정체성을 가지고 자기가 자기 주인이 된 것이다. 정체성 이탈을 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정체성,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고,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되고, 말씀을 순종해야 되고, 말씀에 충성해야 되는데, 이걸 제일 못하게 하는 작전이 무엇인가 사탄의 작전이다. 정체성 이탈이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있을 때, 사탄이 어떻게 했는가. “야, 니가 뭐냐. 너 네가 하나님 앞에 그냥 종이냐? 아니야! 너 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으면 너는 하나님 같이 돼” 라고 한다. 피조물이 하나님같이 되겠다는 정체성 이탈에 대한 걸 가지고 생각을 오염시키고 잘못 되게 하였다. 이 거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고,. 요즘 말로 하면 너 생각대로 해, 너 느낌대로 살어, 왜 너가 내가 너의 주인인데 누가 너를 간섭할 수 있냐? 여러분 이 세계관이 정말 문제라는 것이다. 이게 한 달란트 받은 소위 인본주의적인 생각의 핵심이다. 그래서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자기 세계관, 자기 가치관으로 볼 때에 땅에 묻는 행위가 정당한 것이었고, 그것도 불순종이라고 생각도 안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그러느냐? 예수님께서는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그것 좀 땅에 파묻어 놓았다고 어떻게 그렇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그렇게 강력하게 질타를 하시냐? 그래서 다른 뜻이 아니다. 너는 위치 이탈을 한 거야! 너는 너의 가치관이 변질이 된 것이야,. 너 자리 이탈한 거야. 너의 세계관이 변질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악 하다는 말을 다른 복음서에는 많이 없었는데 이 마태복음에만 유독 악하다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 그 이유는 다른 복음서는 누가복음 같은 건 이방인에 위해 쓰여 졌지만 마태복음만 히브리 사람들 유대인들을 위해 쓰여 졌다. 그 유대인들 가운데 오랫동안 신앙생활 한다고 하나님 섬긴다고 그러지만, 사실은 자기 세계에 묻혀 가지고 하나님 판단하고 특별히 바리세인들, 자기부인하지 아니하고, 그걸 보면서 악하고 게으른 종아, 악하고 게으른 종아, 여기 이렇게 생각이 변질된 사람들 같은 경우, 한 달란트 받는 사람들 경, 이런 사람들은 뭘 해도 꼬였다. 뭘 해도 꼬였다. 그래 가지고 뭘 해도 이렇게 전체를 보지 못해. 자기 세계에 갇혀 있으니까, 이런 사람들이 교회 내에 삼분의 일이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다들 긴장하셔 가지고 삼분의 일이니깐 ‘내가 그 속에 들어가면 어떻게 하나?’ 할 것이다. 사실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할 문제 중에 하나이다. 이 한 달란트 받은 자가 갖고 있는 약점들이 무엇인가? 전체를 못 보고 자기중심이다.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한국 교회를 누가 비난한다는데 교회 내에서도 한국 교회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왜? 전도 더 안 하고, 왜? 더 영혼을 얻는 일에 힘쓰지 않는가? 왜? 교회는 더 부흥하지 않는가? 왜?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복음의 영광을 위하여 더 선교하지 않는가? 그런 것 때문에 교회를 비난하지 아니하고, 뭐 가십성 갖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 걸 갖고 물론 교회는 교체 교회 자체가 정화 되어야 하고 다 해야 되겠지만, 별로 중요한 것들도 아닌 것을 가지고 교회 내에서 서로 내부 총질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바둑으로 말하자면 저는 바둑은 잘 못 두지만 바둑으로 말하면 그 바둑 전체 큰 걸 봐야하는데 오목이나 두고 대마를 보지 못하고, 그 바둑판 앞에 놓고 알까기나 하고 있는 것이다. 알까기. 전체를 못 보는 것이다. 그 자기 생각대로, 우리는 사역의 큰 그림 전체를 보아야 할 줄로 믿는다. 여러분 ‘포레스트 검프’를 아실 것이다. 남들보다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이었고, 근데 그걸 가지고 한탄하거나 그러니 않고, 그냥 해피하게 내게 주신 그게 뭘까? 하면서 자기는 잘 달리는 것이었다. 그러다 막 계속 달리다 보니깐 마라톤 승자도 되고 어떻게 하다 보니깐 대통령도 만나고, 그 자기는 너무 사과가 좋다. 그래서 사과를 먹고 좋다고 그렇게 해서 계속 사과 회사에 투자를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깐 애플 주식이었다. ㅋ ㅋ ㅋ 애플 주식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실 것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다 기적의 씨를 주셨다. 근데 한 달란트 받은 자처럼 내 생각으로 변질되면 안 되고, 내 세계관에 갇히면 안 되는 것이다. 또 한 달란트 받은 종의 문제는 뭐였냐면, 주인을 자기 나름대로 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하나도 몰랐다. 주인을 모르니까 주인을 믿지 못 한 것이다. 주인을 믿지 않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까 한 달란트도 못 남기고 가진 것 마다 다 빼앗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 어둠속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이게 악순환이다. 조심스럽지만 성경적으로 볼 때,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지옥 같다. 또 과격하게 말하면 이런 하나님 뜻을 모르고 하나님 주신 기회를 가지고 믿음의 모험을 하지 않으면, 우리가 악순환의 굴레가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제가 이것을 읽으면서 몰골이 송연한 것이다. 머리털이 쭉 서고 소름이 끼친다. 그래서 야고보서 5장 9절에 보니까 *야고보서 5:9, 9 서로 원망하지 말고 서로 원망하지 말고 그리하여 심판을 면하리라. -받은 은사 비교하지 말고 내게 주신 기적의 씨앗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믿음의 모험 믿음의 노를 저어 갈 때, 그래야 심판을 면하리라. 자, 이제 우리가 비교하지 말고, 내가 가진 것 뭘 어떻게 내가 가진 것을 가지고 뭘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한 달란트 받은 자의 잘못된 것 자기 세계관에 갇힌다든지, 그리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 이런 것들 정리하면서 그렇게 잘하게 믿음의 노를 저어가게 되면 어느 놀라운 말씀 오늘 주보의 제일 앞에도 있다. *마태복음 25:21,23,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다 똑같은데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가 동일한 보상을 받게 된 것이다. 자, 같이 한 번 읽어 보겠다. 다시 한 번.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아멘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자. 하나님께서 세 가지 축복을 주셨다. 보상을 주셨다. 첫 번째 무엇이냐.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잘하였도다. 첫 번째, -주님께서 영원한 칭찬을 주셨다. - 착하고 충성된 종아, -주님의 칭찬을 받게 되는 것이다. good job 잘하였도다. 주님이 칭찬하신 것이다. 그런데 한 번만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주님의 칭찬은 영원한 칭찬이다. 세상 사람들이 한 번 밖에 하는 그런 칭찬이 아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제가 독특한 영어 선생님을 만났다. 제가 뭘 했더니 중학교 2학년인데 그 레포트를 제출했더니 앞에 뭐라고 써 놓았냐면 excellent!!!(엑설런트)였다. 그랬었다. 그 때 단어를 이거를 뭔가 중2가 엑설런트를 어떻게 알겠는가. 사전을 찾아보니까 엑설런트 잘 하였도다. 잘 하였도다. 그러니깐 여기서 말하는 착하다는 것은 뭐 좋다 good 이 정도가 아니라 훌륭하다 우수하다 탁월하다 여러분 ,중학교 2학년 때 들었던, 쓰였던 그것이 오십 년이 훨씬 지난 지금 이 시간에도 50년이 지난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엑셀런트 그것이 생각이 난다. 인간이 칭찬하는 정도, 여러분 주일학교 교사들이 우리 학생들에게 제대로 잘 해가지고 믿음으로 칭찬하는 그 아이가 평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일학교 교사가 중요한 것이다. 영원한 칭찬을 받는 것이다. 히브리어 ‘토브’에서 발생된 단어인데 너무 좋은 것이다. 하나님 여러분들의 ‘토브’. 잘하였도다!. 엑설런트!! 칭찬하시길 바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칭찬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지고 무슨 일이 있느냐 거기 보니까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주님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맡기신다고 약속하셨다. 많은 것을. 여기에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라는 이 말이 미완료 과거이다. 이 뜻은 한 번만 충성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충성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충성한 자에게 많은 것을 맡기게 됐다. 그러니까 주인과 종의 관계가 더 큰걸 맡기면서 더 깊은 신뢰감이 형성되는 것이고, 그리고 주님과 나만이 아는 신뢰감을 통하여 영혼의 감탄사가 나오게 되어있는 것이다. 많은 것을 맡기리니, 누가복음에서는 열 문화의 비유가 나온다. 예수님께 충성하고 이렇게 참한 사람들에게 독점적으로 영원한 하나님 왕국에서 성읍을 다스릴 기회를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믿음의 역량, 이들 뭐 믿음의 모험이 커지니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기업과 사업을 맡기시는 것이 우리 선교 적으로 말하면 우리 교회에 중앙아시아도 맡겨주시고, 러시아도 맡겨 주시고 동유럽도 유럽도 맡기시고, 브라질이나 인도네시아나 이렇게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아프리카를 맡겨주시는 것이고, 이게 우리 세계도 다 마찬가지다. 많은 것을 맡긴다. 오늘 이 자리도 172개 꽃마을이 변하여 안아 주심에 본당으로 변화되는 것에도 맡겨주신 줄로 믿는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시고, 제가 물어보니까 제가 물어보니까 사랑의 교회가 지나간 십여 년 동안 유럽교회 개척을 했는데, 25개국에 지난주에 162개 교회를 개척하게 한 것이다. 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 그렇게 하신 것이다. 많은 것을 맡기리니, 첫 번째 뭐 한다고 칭찬해 주시고, 두 번째 맡기고, 세 번째가 중요한데 세 번째는 무엇이라고 되어있냐면 이렇게 나와 있다. 세 번째 –주님의 영원한 즐거움에 챰여 하게 된다.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 -믿음의 모험을 내게 주신 능력을 가지고 한 달란트이든 어떻든 그것을 가지고 주님 앞에 최선을 다하면, “너의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이 즐거움은 그냥 하루 이틀의 즐거움이 아니다. 한 때 즐거움이 아니다. 이 즐거움은 영원한 즐거움을 허락해 주신다. 신앙의 세계는 기가막히다고 했다. 아무리 ,아무리 좋아도 2년, 잘하면 2년, 어떤 사람은 3개월 4개월이다. You are my sunshine! 해도 아무리 따라다녀도 2년이다. 그런데 이 즐거움을 깨닫는 사람이 성숙해지만 가면 갈수록 더 성숙이다. 새 자동차 그렇게 원하는 것을 사면 두 달, 한 달, 이발하고 미용실 가면 하루, 그런데 주님이 주시는 즐거움은 영원한 즐거움이다. 세상의 어떤 즐거움도 허망하지 않은 게 어디 있겠는가? 세상에 어떤 즐거움도 유효기간이 없는 게 어디 있겠는가? 다 유효기간이 있다. 얼마 못 간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제일 잘 나가는 사람이 제가 ‘아랑드롱’이라고 말 한 적이 있다. 이 사람이 세상에서 멋진 남자이고 수많은 여인과 수많은 물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마지막은 ‘안락사’였다. 자기 마지막 소원이었다. 오늘 우리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닉 부이지치, 조니 에릭슨, 아니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누구는 이렇게 하고 누구는 저렇게 하는데 이게 어떻게 되나? 하지 않고 다시 말해 이미 결정된 것 가지고 고민하지 않고 내게 주신 것이 능력이 되고, 내게 주신 것이 기적이 씨엇이 되면, 영원한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이다. 영원한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나도 즐겁지만 우리가 즐거워하면 주님에게도 기쁨이 되는 것이다. 주님께도 즐거움을 드릴 수가 있는 것이다. 제가 어떤 90이 다 되가시는 목사님과 길을 걷는데, 그렇게 콧노래를 부르셨다. 흥얼거리셨다. ‘야, 연세가 90이 넘어도 저렇게 후레쉬 하게 살 수 있구나! 를 생각했다. 우리가 즐거워하면 하나님께도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즐거워하면 남들이 ’아, 저 사람은 예수 믿고 저렇게 즐거워하는구나!‘ 를 보여 지면 그것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오늘 영원한 즐거움에 참여자가 되도록 한 분 한 분, 맞춤형의 은혜를 주시길 소원한다. 그럴 때 우리가 일하는 것이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이 되는 것이다. 억지가 아니라, 갑과 을이 관계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고, 봉급 받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고, 세 가지, 칭찬 받고, 우리의 믿음의 영역이 확장되고,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주님의 영원한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배도 주시고, 노도 주시지만, 우리의 노를 하나님이 직접 저어주시지 않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모험을 통하여 노를 저어가게 하는 줄로 믿는다. 그렇다면 배의 특징은 항구에 정박하고 항해를 하는데 배는 정박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항해하기 위하여 있는 줄로 확신한다. 그런데 정박을 하기는 해야 된다. 배가 항구에 정박할 때, 무엇을 하는가? 잘못된 곳을 수리도 하고 거기에 기름도 넣고 음식물도 제공받고 그 다음에 여러 가지 이제 항해할 때 필요한 물건들을 넣듯이 괴혈병에 걸리지 않으려고 레몬도 많이 갖다놓고, 여러 가지들을 정박하는 시간 동안에 그 항해를 위한 물자들을 다 공급 받고 정리하는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여러분 주일 예배는 두 가지가 거룩한 긴장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믿음의 모험에 대한 꿈을 갖고 그 믿음의 모험을 위하여 우리가 정박해 가지고 필요한 것들을 정리하고 공급 받고 치유하고 새로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매주일 마다 정박하고 다시 내일부터 항해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피니쉬와 스타트가 확실하다. 그리스도인들은 finish와 start가 매 주일마다 믿음의 모험을 하기 위한 정박을 하고 하늘의 청옥과 같은 청명함을 받아서 다시 내일부터 항해 할 수 있도록 매주일 기름부음을 받는 것이다. 예수님 안 믿는 사람은 그냥 가는 것이다. 그냥 상처 받은 대로 계속 가고, 그냥 세상 적으로 대단할지 몰라도 그냥 늘 가니까, 피니쉬와 스타트가 없으니까, 늘 후레시 하지 않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늘 프레쉬 하다. 주일 이 시간이 최고의 청명함과 청옥을 편듯함을 받아서 내일부터 믿음의 모험을 할 수 있는 영적인 연료를 공급 받는 것이다. 제가 오늘 예배를 들어오면서 제가 들어오기 전에 내가 아닌 것 같다. 제가 지난주에 무지하게 피곤했다. 어제 어떤 분과 밥을 먹었다. 식당을 갔는데 식당 메니저가 나를 보더니, 목사님, 왜 이리 늙었어요? 한다. “와!!! 목사님, 늙었네!~~” 했다. 그런 말을 왜 할까? 그런데 제가 오늘 아침 설교하려고 나오기 전에 나의 모습을 보니 어제 내 모습이 아니었다. 이것을 알 사람이 없도다. 오늘 이 시간은 여러분과 함께 믿음의 모험을 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주신 기적의 씨앗과 능력들을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여 믿음의 모험을 하는 시간이다. 그러니까, ‘강단에 서는 목사님과 다르네요.’ 라고 하지 말고, ㅎㅎㅎ, 매 주일마다. 이 주일 예배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이 시간은 특별한 시간이다. 믿음 모험을 위하여 정박하고 여기서 준비하고, 계획하고 물자를 모으고, 여기에서 모든 자료들을 공급 받고, 그래서 내일부터 다시 믿음의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피니쉬와 스타트가 매 주일마다 있는 사람과 그것이 없는 사람과는 하늘과 땅 차이이다. 아까 90이 다 되가시는 목사님이 그렇게 밝고 환하고 누군지는 말하지 않는다. 인생은 믿음의 모험을 감행하느냐의 따라서 여러분의 인생이 판결난다. 전반전에서는 잘 못했던 분들도, 후반전에서는 승리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자리에는 인생의 전반전에서 몇 번의 실수로 충격 받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전반전에서 수많은 죄책감과 중독과 여러 경험을 겪은 분들이 인생의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여기에는 자식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것, 건강악화로 인해서 인생의 어려운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리고 인생 경기하다가 전반전에 갑자기 꼴을 먹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후반전에 믿음 모험 잘하면 반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전반전에 계신 분들은 다시 한 번 믿음 모험을 주님 앞에서 작정하기 바란다. 늘 말씀대로 세상의 어떤 일, 귀한 일에도 내가 아무런 기도도 안하고, 아무런 설레임도 없고, 아무런 기대도 안 하고 아무런 꿈도 안 꾸고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누구나 하나님의 일은 다 안다. 누군가가 어디서인가 집안에 누군가가 할머니든지, 할아버지든지, 누군가가 내게 주신 것 불평하지 아니하고 이게 능력과 기적이라고 믿고, 비교하지 아니하고, 한 달란트 받은 자처럼 땅에 파묻어 두지 아니하고, 그렇게 감당하면, 우리 앞에 하나님께서 청옥 같고 청명한 삶을 펼쳐주시리라 믿는다. 이제 우리가 2주일 후면 ‘9.26 한국교회 섬김의 날’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너무나 놀랍다. 제가 처음에 어떤 분들은 오천 명을 한다고 할 때, 천명와도 많이 참여할 거라고 했다. 요즘 오백 명도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보니 4천 7백 명이 참여했다. 하나님 은혜이며 감사한 일이다. 이것은 교회를 통하여 믿음의 모험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여러분들이 이런 상황을 보게 되는데, 놀라운 일은 저 흑산도 사는 목사님도 참여하게 된다. 백령도에 사는 목사님도 등록을 하셨다. 전국에 26개 교단에서 골고루 오시게 된다. 14일이 마감인데, 저는 5500명이 등록하길 원한다. 오백 명이 무어냐고 하지만 그것은 묻지 말아라. 제가 생각하는 것이 있다. 설명을 드리는 것이다. 흑산도, 백령도에서도 그분들도 모험을 하러 오시는 것이다. 대신 우리는 강단에서 하는 기도대로 따뜻한 마음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한 순서가 감동이 있게, 이 믿음의 모험을 통하여 회복을 넘어 부흥의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저 큰 바다보다 깊다 너 곧 닻줄을 끌러 깊은 데로 저 한 가운데 가보다.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띄워 내 주 예수 은혜의 바다로 네 맘껏 저어가라. ~~ ♪ ♣요약 우리는 믿음의 거룩한 모험가들이 되어서 인생의 노를 힘차게 저어갈 수 있어야 한다. 주님 앞에 섰을 때, 잘 했다. 칭찬 받는 충성 된 종이 되고,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허락하신 영원한 즐거움을 가지고 기쁘고 신선하게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믿음의 모험을 하나님께서 우리가 감당하게 하실 줄 믿고, 믿음의 모험으로 눈을 뜨고, 감게 하여 주시며, 어린 아이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한 명도 예외 없이 살만한 인생이 되어야 한다. 남과 비교하기보다는 각기 받은 재능과 능력대로 오직 순종과 충성으로 믿음의 노를 저어가고, 믿음을 방해하는 게으름을 극복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칭찬을 받고 주님의 즐거움에 참여하고 성경이 말씀하신 대로 믿음의 모험을 하여서 9.26 한국교회 섬김의 날을 통해 회복과 부흥의 대해를 항해하길 소망한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달란트를 주신 이유는 각각의 재능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은혜를 다양하게 주셨다. 그것에는 양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질의 차이는 없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받은 은사를 잘 활용하여 봉사해야 한다. 우리가 이 달란트를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바른 청지기의 삶을 살아야 한다. 청지기는 열심히 충성하여 최선을 다 한다. 또한 청지기는 먼저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믿음을 지켜 나가는 삶을 살며, 충성하여 양 무리의 본이 된다. 두 달란트 받은 자는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재능을 가지고 봉사하는 데 태만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에게 편견이 있었고 주인이 부여한 재능을 활용하지 않고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하나님께 받은 재능을 하찮게 여기거나 남의 것을 시기하는 자는 그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의 성실한 종의 자세로 살아야 한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과 재능대로 하나님께 충성해야 한다. 충성된 종은 두 배의 소산을 남김으로써 주인에게 칭찬을 받았고, 또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했다. 그러나 게으른 종은 소산을 남기지 못하여 주인에게 책망을 받았으며 가진 것도 빼앗기고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었다. 이처럼 처음에는 그 차이가 미미해 보이지만 그 결과는 엄청나게 벌어질 수 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재능을 가지고 봉사하는 데 태만하지 않았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과 재능대로 그분께 충성해야 한다. 그러나 두 달란트 받은 자는 하나님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활용하지 않고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이처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재능을 하찮게 여기거나 남의 것을 시기하는 자는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의 종의 자세로 살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