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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2년 9월 25일) 제목: "풍랑 앞에서" 말씀: 마가복음 4:35~41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구성찬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마이클 리브스 목사님(영국 유니온 신학교 총장), 이원준 부목사님 통역. -------------------------------- *마가복음 4:35~41, 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 ▶마이클 리브스 목사님(영국 유니온 신학교 총장), -이원준 부목사님 통역.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다시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이렇게 제한 없이 여러분을 만나게 된 것이 3년 만이다. 유니온과 웨일즈에서는 여러분을 위해 그동안 계속 기도해 왔다. 제가 섬기고 있는 유니온과 웨일즈에서 물리적으로 함께 할 수 없었지만 마음과 기도로 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대면하여 여러분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정말 사랑의 교회 여러분들이 가지고 계신 그 우정과 따뜻함과 하나님을 향한 그 열정, 그리고 저에게 주시는 수많은 격려들을 참 그리워했었다. 오늘은 이 시간, 제가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권면과 은혜가 되기를 소망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는 가운데 광풍을 잠잠케 하신다. 저는 여러분과 이 말씀은 보고 싶은 이유가 있는데 우리가 앞으로 어떤 날씨를 맞닥뜨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햇빛이 비치는 시간도 있을 터이지만 광풍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세계의 동향을 미루어보면 우리는 머지않아 광풍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세계를 살펴보면 교회들이 연약하여 지고 고초를 겪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작은 숫자의 사람들이 주님께로 나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모든 상황 속에서 마치 예수님께서 배에 잠을 주무시고 계셨던 것처럼 하늘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주님께서 주무시고 계시면서 우리가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서 인지가 없으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세계 곳곳에서는 이 팬데믹의 이후 현상들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이 모든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적 공항의 상황도 우리 앞에 있다. 우리가 그동안 건강을 두려워했던 상황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재정 상태를 걱정해야 되는 상황을 만나고 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걱정이 있다고 한다면 지금 오늘 마가복음 4장으로 나오라. 광풍을 주님과 함께 돌파에 가는 그 과정들을 함께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 제자들이 배에 오르기 전까지는 매우 좋은 날을 보냈다.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내셨고, 가르치시고 이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모든 것이 잘 되는 것처럼 보였고 구름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이 광풍이 찾아온다. 교회 역사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영적인 성공과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정진이 있는 나라의 다음에는 다양한 고난과 도전들이 생겨났다. 복음이 전진하는 곳에는 마귀가 분노하고 있다. 자 이제 이 광풍이 다가왔을 때 제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한 번 보자. 그들이 매우 두려워하여 예수님께 이렇게 이야기 한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들은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이 광풍이 그들이 믿음마저도 굴러 나가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상관하시는지 돌보시려는 마음이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하기 시작한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는 것이 보이는 상황에서는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얕은지를 잘 모르게 된다.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우리의 믿음이 굉장히 단단하고 큰 것처럼 느껴지는데 모든 것이 순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풍이 일어나는 때에 진정한 믿음이 시험대에 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로 인해서 우리의 믿음과 삶이 연약해지고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이런 광풍이 우리의 삶에 찾아올 때에 우리는 피로해지는 것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광풍이 찾아올 때에 예수님께서 나를 돌보지 않으시는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광풍이 찾아올 때에 배에서 주무시고 계시던 예수님 모습은 마치 예수님은 저 위에서 상관하지 않고 돌보시지 않으시고 주무실 때가 느껴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이 제자들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 보기를 바란다. 제자들이 이렇게 이야기 한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들이 절박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주님을 향한 감사한 마음이 사라진 채로 접근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불신은 이런 경향을 만들어 낸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안에 이 평온함이 없을 때,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하는 그 기능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풍랑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불안함과 불친절함으로 이어지게 된다. 자, 우리도 한 번 질문해 보자. “선생님, 우리가 죽는데 상관하지 않으시겠는가?” 여러분 정말 예수님께서 우리를 상관하지 않기 시작했는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예수님께서 주무시고 계셨지만 예수님은 제자들과 똑 같은 상황에 놓여있었다. 예수님도 똑 같은 위협 앞에 놓여 배가 침몰하게 되고 전복하게 되면 예수님도 빠지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런 위험 가운데 예수님은 어떻게 주무실 수 있었는가? 예수님께서 주무신 것은 그가 단순히 피곤하셨기 때문만은 아니고 그의 아버지의 손 안에 그 삶이 있다는 그 믿음 때문에 주무시고 평안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복음서를 보면서 예수님의 주무심에 대해서 잘 살펴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에피소드가 여기 등장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그의 주무심으로 우리를 가르치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의 주무심이 설교였던 것이다.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계셨다.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광풍이 있는 가운데도 너는 안식할 수 있어. 너를 그토록 돌보심에 그분의 손 안에 있기 때문에 안식할 수 있는 거야.” 그의 주무심은 그가 우리를 돌보시는 것을 끊어내신 것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잠잠히 주무심이 느껴지는 이 순간에도 우리를 향하신 그분의 돌보심은 그분의 끝남이 없다는 것이다. 여러분, 이런 유혹이 다가온다면, 그러니까 주님이 주무시는 것 같아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는 이런 유혹이 찾아온다면, 보이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실 수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이 삶이 여러 가지 고단함과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어서 주님이 상관하거나 돌보지 않으시는 것 같이 느껴지는 그 순간이 다가온다면 여러분 기억하기 바란다. 그른 우리를 향한 그 돌보심과 사랑을 끊으실 수 없는 분인 줄 믿는다. 그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영원하시다. 그는 그의 모든 역사 가운데 친절하시다. 그의 이름, 존재 자체가 사랑이시다. 그는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실 수 없다. 여러분 기억하라. 여러분을 위해 그의 보혈을 흘려주셨다. 여러분을 잊으시거나, 여러분을 향한 그 사랑이 식으실 수 없는 것이다. 생명을 던져서 얻으신 바로 여러분이 바로 상급이요, 보물인 것이다. 여러분을 내 버려두기 원하셨다면 이미 전에 짐작하셨을 것이다. 여러분의 어떤 죄악도 그를 놀라게 하는 죄악은 없다. 그의 사랑을 먼저 작정하셨을 때에 그는 우리의 삶과 우리의 마음에 있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 그리고 그는 절대로, 절대로 그이 자녀들을 버리시지 않으신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영광이 그 길로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들을 이끌어 가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 가운데 있는 어려움과 아픔을 그도 느끼신다. 여러분 기억하라.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사울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그가 정말 돌보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믿음은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오히려 이 광풍을 통하여 제자들과 우리를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이 가르침은 제일 먼저는 제자들의 자신의 대한 것이었다. 이 광풍이 없었다면 아주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여러분,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다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세례 주시길 바랍니다. 저희는 예수님을 거절하고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광풍이 이들이 얼마나 연약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게 되었다. 그리고 이 광풍이야말로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한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깨달아야만 그를 신뢰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광풍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더욱 의지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예수님께는 이 광풍을 통하여 예수님과 함께 걷는 것이 어떠한지를 가르쳐 주고 계신다. 여러분 제자들이 예수님과 배를 오를 때에 어떤 유람선을 타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께서 타라고 하셨기 때문에 탔다. 잘했기 때문에 이런 고난을 당한 것이다. 고난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닥쳤을 때 이런 현상이 이와 같다. 많은 사람들이 고난이 다가오면, ‘우리가 무얼 잘못했지?’라고 질문한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걷는다는 것은 모든 것이 평탄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된다. 광풍을 거쳐서 그와 함께 영광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에 고난의 계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등을 돌리신 시간이 아닌 것이다. 그는 그의 사랑하는 자들을 훈계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의 금을 용광로(鎔鑛爐)에 집어넣는다. 여러분의 삶의 고단함과 고초가 있다고 해서 그가 여러분에게 등을 돌리셨다고 절대로 생각하지 말라. 하나 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이 있다. 바다와 바람을 잠잠케 하시는 그 주님의 능력을 이 광풍을 통해서 보는 것이다. 이 광풍이야말로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깨닫게 되는 현장이었다. 자, 여러분 이 가르침을 제자들이 깨닫게 될 때, 조금이라도 깨닫게 될 때,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를 한 번 살펴보길 바란다. 자, 여러분 파도가 일어날 때, 이들의 두려움이 찾아온다. 예수님께서 잠잠케 하시고, 그다음에 어떤 현상이 일어나냐면,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다고 한다. 그래도 이것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두려움인 것이다. 이 두려움이 이 두려움을 교체해 버린 것이다. 이제 파도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두려움을 사라지게 한다. 여러분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이 진정 예수님임을 믿고 그 안에 안식하게 될 때에 우리 안에 모든 불안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가 그분이 말씀을 깨닫고 안식하게 될 때에 우리는 모든 광풍을 해쳐나갈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될 줄로 믿는다. 어떤 계절, 어떤 날씨가 찾아와도 주님이 함께 배에 계시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파도의 주인이 되신다. 자, 모든 것들의 주인 되신 그분이 파도에게 어떤 것을 하시는지를 살펴보기 바란다. “그가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일으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그리고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 지더라.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가장 혼란스럽고 가장 절박한 상황도 그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곧 이 세상을 덮고 있는 광풍을 주님께서 잠잠케 하실 날이 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우리가 그를 바라보며 그의 영광을 바라보게 될 때에 그저 잠잠해진 바다 이상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시선을 그로 채우기 시작할 때에, 우리의 모든 불안함은 잠잠해지고 주님을 향한 거룩한 두려움으로 가득하게 될 줄로 믿는다. 교회가 주님을 이런 경외함과 경이로움과 흠모함으로 바라보게 될 때에 우리는 그것을 뭐라고 부르는가? 바로 부흥이라고 하는 줄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디를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 우리가 그저 파도만 바라보고 광풍만 바라본다면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불안함으로 우리의 삶이 채워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든 관점을 그로 채우기 시작할 때에, 그의 모든 사랑과 위엄을 바라보게 될 때에 교회가 살아나게 될 줄 믿는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부흥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성도들이 일어나 기쁨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 바로 부흥이다. 그리고 그 생명력이 세상으로 흘러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 광풍을 통해서 제자들은 하늘과 땅의 주인 되시고 다스리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어두운 시간일수록 그의 영광은 가장 더 밝게 빛나는 줄 믿는다. 우리의 삶도 이러하기를 바란다. 이제 눈을 들어 파도를 보지 않고, 위를 바라보기를 바란다. 모든 것들을 통치하시는 그분을 바라보기를 바란다. 여러분의 면류관을 벗어 그에게 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가 엎드릴 때, 그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엎드릴 때에, 교회는 일어날 줄 믿는다. 부흥으로 이어질 것을 믿는다. 시편 34편은 그를 바라보는 자는 해와 같이 빛난다고 말한다. 그를 바라보라.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주시고 지키시길 원한다. 그의 영광스런 얼굴의 광채를 여러분에게 비치시고 복 주시길 원한다. 그의 얼굴을 들어 그의 얼굴을 비추시고 평강 주시길 원한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한다. 아멘, ♣요약 인생 항로에는 잦은 풍랑이 있는데 그러한 풍랑 중에는 주님이 즉시 구원치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어떤 풍랑에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풍랑을 이겨야 한다. 그런데 본문에서 보면 주님의 제자들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풍랑이 닥치자 크게 두려워하였고, 이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꾸짖으셨다. 주님이 항상 함께 계심을 믿지 못하는 연약한 우리 인생은 세상의 풍파만 보면 겁먹고 좌절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는 임마누엘 신앙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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