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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2년 9월 18일)

제목: "변명 보고 아닌, 믿음 보고를"
말씀: 출애굽기 3:11-14, 4:1-17
대표기도: 이현규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원준 부목사님)
사회: 장광천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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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11-14, 4:1-17,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애굽기 4:1-17,
1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5 이는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6 여호와께서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에 나병이 생겨 눈 같이 된지라. 
7 이르시되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이 본래의 살로 되돌아왔더라. 
8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만일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표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나중 표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9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나일 강 물을 조금 떠다가 땅에 부으라 네가 떠온 나일 강 물이 땅에서 피가 되리라. 
10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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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 보고 아닌, 믿음 보고를”-믿음으로 뱀 꼬리를 잡아보라.
-이른 아침 예배 시간에 우리 일생을 인도하시는 놀라우신 하나님을 찬양 드리는 것이 특별한 축복이라 확신한다.
 
저는 오늘 ‘변명 보고 아닌, 믿음 보고를’, ‘부제로 말하면 믿음으로 뱀 꼬리를 잡아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다. 저는 모세에 대한 내용을 준비하면서 마음이 뜨거워졌다. 왜냐며, 제가 어릴 때부터 저의 할아버지가 “현이는 모세처럼 되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이 더 와 닿아서 그다음 이 말씀을 오늘 들을 때에 ‘모세하고 나는 상관이 없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 모두가 다 모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여러분 말씀 듣고 하나님을 체험하기 바란다. 우리는 모세라는 이름만 떠올려도 강력한 리더쉽을 가진 위대한 믿음의 모험가로 생각하지만 모세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늘 본문을 11절 앞부분을 보면,
 
* 출애굽기 3:11,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모세가 떨기나무에서 하나님과 유일하게 대화를 나눈 사람이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현현하신 하나님과 만난 유일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소명을 완수하라고 사명을 주셨을 때, 따박따박 다섯 번이나 변명을 한다. 그냥 다섯 번이나, 첫 번째는 우리 속에 있는 변명하는 속성, 아니 이 시대는 변명하는 시대이고, 변명하는 우리의 모습을 살펴봐야 한다.
 
l. 변명 바쁜 우리.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내라고 명령하시자, 방금 종전까지 놀라운 광경을 본 사람답지 않게, 모세는 “아니, 안 됩니다.”=Impossible, 이렇게 변명을 늘어놓는다. 나는 아니라한다.
* 출애굽기 3:11,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첫째 번 변명-“나는 아니지요?” 한다. 나는 자격이 없다고 한다. 두 번째로

 
2)두 번째 변명-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 출애굽기 3:13,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나는 하나님을 잘 모릅니다. 하나님의 대한 지식이 없습니다. 조금 전까지 떨기나무에서 하나님과 대화하고서도 하나님을 잘 모른다고 한다.

 
3)세 번째 변명-그들이 나를 믿지 않을 것이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한다.
* 출애굽기 4:1,
1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그들이 나를 믿지 않을 것이다. 애굽 사람들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도 나를 거부할 것이라고 말한다.

 
4)네 번째 변명-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 출애굽기 4:10,
10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사도행전 7:22,
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때, 애굽의 모든 행사가 능한 사람이었다. 모세는 과거에 모든 말과 행사가 능한 사람이었다. 미디안 광야 40년 동안 대화를 안 해서 그런지, 양들과만 있어서인지, 그 입이 뻣뻣하다고 그랬다. 그래서 마침내 다섯 번째 변명을 한다. 변명의 아주 종지부를 찍는다. 13절을 보면,

 
5) 다섯 번째 변명-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라고 한다.
*출애굽기 4:13,
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못 간다고 거부한다. 여러분, 나는 못갑니다. 우리교회로 말한 것 같으면, “순장님을 보내주옵소서!” 라고 하면 뭐가 생각나는가? 제가 믿음은 항해라고 했듯이, 어떤 정원 초과한 배가 이제 물에 가라앉으려 하니까,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타고 있었는데 영국 사람이 “저는 대영제국 국민입니다.”라고 하면서 신사도를 발휘해서 빠졌고, 미국 사람은 양보 하겠습니다. 라고 하고 물속으로 사라졌고, 서로 눈치 보다가 한국 사람이 벌떡 일어나 대한민국 만세!! 하면서 옆에 있는 일본 탁 쳐서 사람을 잡아 당겼다. 정말 우리에게는 변명할 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래서 무얼 요구하시는지 보면, 지난주에 말씀에 우리 안에 씨앗도 주시고 전부 다 능력을 주셨는데, 우리는 변명하기 급급한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오늘 모세가 따박따박 다섯 가지 이야기 한 것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사실보고이다. 우리교회는 지금 사실보고와 믿음보고를 구별하고 있다. 열 정탐꾼들이 말한 것은 사실보고이고, 여호수아 갈렙은 믿음보고이다. ‘faith report’ 이다. 언제 인생길 가운데 믿음보고 했는가? 우리 상황이야기 하면 이해 될 만하지만, 믿음의 보고가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심을 소명대로 완수할 수가 없는 것이다. 모세가 왜 그랬는가? 계속 변명을 하고 거절을 하는가? 40여 년 동안 모세는 자기도 모르게 과거의 실패의 경험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 두려움이 심리적 위축으로 다가왔다. 그 심리적 위축이 뭐로 다가 오냐면 열등감으로 다가왔다. 그 열등감이 무력감으로 표현되었다.
 
-두려움>심리적 위축>열등감>무력감-하나님을 변명하게 하는 많은 원인이 되고 있다. 실제적으로 모세에게는 이집트에서는 잊혀 진 존재일 수 있다. 모세 머릿속에 계속 떠돌아다니는 내용이 있다.
 
*출애굽기 2:14,
14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좀 도와주려고 하는데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며 아주 심문을 하고 오히려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 그게 모세의 머릿속에 40년 간 뱅뱅 맴돌게 했는지 모른다. 모세는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지금으로 말하면, 너는 지도자가 아니라며 악성 댓글을 계속 고통당하는 것이다. 누가 나에게 말 한마디로 비수처럼 꽃혀 가지고 평생을 고뇌하는 것과 같다. 그게 열등감과 무력감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모세에게 시작도 하기 전에 불가능하다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는가? 주님은 어떻게 해결하시는가? 이제 뱀 꼬리를 잡으라 하시는데 그 전에,
 
*출애굽기 3:11,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내가 누구이기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자의식 문제가 있다며 반드시 함께 하신다고 12절에 말씀하신다.
 
*출애굽기 3:12,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다.
 
*출애굽기 3:13-14,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을 잘 모른다고 하는 모세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구약에 있는 위대한 말씀 중에 놀라운 말씀 중에 하나인 말씀을 14절에 하신다.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I am who I am. 놀라운 이 말씀은 하나님의 위대한 선언이시다. 영광 되는 시간에 주신 것이 아니라, 모세가 자기 변명하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깨우쳐서 새롭게 하도록 하시는 것이며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라고 하시니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데 불구하고 모세는 그들이 나를 믿지 않을 것이라 한다.

* 출애굽기 4:1,
1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그렇게 모세가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드디어 증거를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것이 모세에게 너에게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지팡이가 있다고 대답한다. 그 지팡이를 던지라고 하니까, 지판이가 뱀으로 변하는데 애굽의 상징 중에 왕관, 파라오의 왕관에 코브라로 되어 있다. 그런 것인데 뱀 꼬리를 잡으라고 한다. 그게 말이 되는가? 그 독사가 있는 뱀은 물려 죽는 것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말하면 뱀 꼬리를 잡으면 죽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됨에도 불구하고 뱀 꼬리를 잡으라 하신다. 인간의 상식을 뛰어 넘는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잡아먹히는데, 뒤에 이렇게 나병 손잡고, 나일 강 피, 여러 가지 두 가지 표적과 한 가지 선포를 통해 여러 가지 있지만 오늘 핵심은 뱀 꼬리를 잡으라고 한다. 뱀 꼬리를 잡으면 죽는다. 하나님은 잡으라고 하신다. 마른 막대기가 생명으로 가득 찬 뱀으로 되었고 다시 또 죽음을 무릎 쓰고 뱀 꼬리를 잡으니까 다시 지팡이로 되었다.
 
*출애굽기 4:1~2,
1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여러분, 전에 우리 교회 오셔서 간증하신 세계무역협회 총재이신 이희돈 장로님(박사님)이 하신 말씀이다. 뱀 꼬리를 잡는 것이 무슨 뜻인가? 일반적으로 바위로 계란을 치는데 뱀 꼬리를 잡는 것은 마치 무엇 같은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다고 하신다. 이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신앙생활을 해본 적이 있는가? 이것을 주님이 원하신다. 이 뱀 꼬리를 잡는 것은 우리의 이해와 상식이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 메시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결단하게 하시는지 모른다. 뱀 꼬리 잡으면 죽는다. 왜 그런데 뱀 꼬리를 잡으라 하시는가? 일반적으로 바위로 계란을 치는 것은 다 잘 한다. 그러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은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위로 계란을 칠 때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 그거는 기도를 안 해도 되는 것이니까, 그런 신앙생활은 맹숭맹숭 하는 신앙생활이니까, 그런데 계란으로 바위를 칠만큼의 그 상황이 되면 다시 뱀 꼬리를 잡을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이 되면 우리는 박박 기게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기도 제목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다 평안하니까 없다고 한다. 그게 다 좋은 것 같지만, 여러분 믿음으로 사는 삶 가운데서 한 번이라도 뱀 꼬리를 잡아보지 못하고, 계란으로 바위 한 번 쳐보지 못하는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위탁하는 어떤 절박함과 긴박함을 가진 신앙생활을 한 번 못했다면 오늘 말씀은 바로 여러분의 것이다. 자 다시 말하면 바위로 계란을 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가 어떨 때는 소망이 없고 절망이 되고, 하나님 의지 하지 안 되면 그 상황 그것이 뱀 꼬리 잡는 상황이다. 마음이 젊은 어른들은 ‘뱀 꼬리 한 번 잡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고, 마음이 나이가 젊어도 애 늙은이들은 ‘못 잡겠네.’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뱀 꼬리 잡는 것이 믿음 보고이다. 이 믿음 보고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위탁하는 것이다.
 
II. 뱀 꼬리를 잡으라.

-우리가 영적으로 깊이 들어가 보면, 뱀 꼬리를 잡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매어달리지 아니하면 뱀이 우리를 계속 공격할 것이다. 이게 현실적으로 보면 가능하겠는가?
*마가복음 4:38-41,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제자들이 그냥 토하고 난리가 났고 우리가 다 죽게 되었다고, 세상의 광풍으로 다 죽게 되었다는 상황에서 제자들이 죽게 되었다고 소리치는 것을 당연한 것이다. 그럴 때 예수님이 깨어나셔서 “광풍이 불고 너희들이 다 죽게 되었는데 내가 잠자서 미안하다. 많이 놀라고 힘들었지?” 주님이 그렇게 하셨는가? 아니다. 완전 허를 찔렀다. 일갈을 하신다. “이 믿음이 없는 자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하신다. 세상의 광풍 속에서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믿는 것이 바로 뱀 꼬리를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광풍도 주님 때문에 순풍으로 여기는 게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제가 폴 투르니에라고 크리스찬이 정신학자 아주 특별한 분이 한 말이다.

 
“내가 할 일은 백지 하단에 서명하는 일이라는 걸 이제 깨달았소. 하나님께서 뭐라고 쓰시든 나는 그대로 할 것이요. 하나님이 이 백지 계약서에 뭐라고 쓰실지 모르지만 어쨌든 난 오늘 섬ㅇ을 마쳤소이다.”-폴 투르니에-
-믿음이라는 것은 백지수표 하단에 서명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뭐라고 쓰시든 간에 그대로 한다는 것이며 서명을 마쳤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든 하나님 앞에서 백지수표를 써 보았는가? 백지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은 하나님께 납작 엎드려서 순종하는 것이다. 오늘 영적 세계에서 이유식에서 밥을 먹는 것이다. 서명하는 믿음의 눈이 되어야 한다.
 
III. 이해보다는 순종으로.

-모세가 뱀 꼬리를 잡으니까 다시 지팡이가 되는 것을 경험하고 모세는 아까 무기력증과 열등감이 재발 되어가지고 말을 못하는 자이고 입이 뻣뻣하다고 한다.
*출애굽기 4:10-11,
10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모세가 부족하다고 하는 것에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것을 확신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12절에,
 
*출애굽기 4:12-13,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 한 자를 보내소서.
-오 주여, 아론을 보내주옵소서! 한다. 실컷 이야기 했는데, 어떤 사람이 가게에 와서 물건을 다 살 것 같이 하다가 마지막에 안사고 가는 것, 그것과 비슷하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보면, 성경에 쉽지 않다. 너무 놀라운 말씀이 있다. 14절을 보면,
 
*출애굽기 4:14,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하나님께서 불 같이 화를 내셨다.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셨다. shut up and go!!! 하신다. 여러분들이 오늘 부담이 느껴지면, 오늘 깊이 생각해 보라. 여호와께서 노를 하시고 자기의식이 잘못 된 사람에게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하나님의 의식이 잘못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 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깨닫게 하시므로 모세의 잘못된 것을 해결해 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쉽지가 않았다. 오늘 키는 이해가 안 된다고 해서 그냥 퍼져 앉아가지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이해가 안 되더라도 오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으로 백지수표에 서명하는 심정으로 그냥 순종하면 이해할 날이 온다는 것이다. 이게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이해가 다 된다고 믿음 보고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다 알 수도 없다. 수긍이 가지 않는 것도 너무 많다. 이해가 안 되어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순종이 더 중요하다. 이해가 안 되어도 이해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따라서 어떨 때는 이해보다 순종이 더 중요하다.
 
※어떨 때는 이해보다 순종이 더 중요하다.
-여리고 성을 빙빙 돌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그런데 순종하고 나니까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이다. 희한하다. 너는 세상 적으로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다. 하나님께서 ‘나를 신뢰하라, 나를 의탁하라’ 하시면 이해가 안 되어도, 하나님이 해답을 언젠가는 이해하게 하시고 해답을 주실 것을 믿고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해되지 않는다고 시간 낭비하지 말고, 훗날 이해하게 될 것을 기대하고 순종해야 한다.
-이것이 믿음 보고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변명 보고가 아니라 믿음 보고가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 이 교회에 오게 하신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온갖 상황이 있을 것이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이해가 안 되더라도 영적으로 순종하면 이해할 그 놀라운 상황을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다.
 
*히브리서 11:8,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아브라함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시에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은 그 당시 원시 부족사회에 그 집을 떠나는 것은 사형선고인데 그냥 주님은 떠나라고 하는데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순종하고 나아갔을 때, 나중에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을 주님이 이끌어 주실 것이다. 이게 믿음이다. 우리는 앞으로의 일을 다 모른다. 다 아는 사람이 없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안다.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무엇보다도 내 입에 할 말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내 입과 귀를 만드는 하나님이시다. 이것을 우리가 신뢰하고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더라도 주님 말씀을 순종하면 이해할 만한 환경으로 주님이 인도해 주신다. 백지수표를 써야 한다. 자, 그럴 때에 이해가 안 되어도 순종하게 되면, 이해가 되는 날이 온다고 했는데 그리고 이해할 날을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신다. 그것은 지팡이를 주신다. 모세의 지팡이는 본래 그냥 한탄하는 지팡이였지만, 내 신세타령이나 하고 땅이나 치는 지팡이였으나, 하나님이 그 지팡이를 던져서 뱀이 되게 하신다. 그 뱀 꼬리를 잡으라고 하니까, 정말 죽음의 위협을 무릎 쓰고 그걸 잡았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것을 가지고 새로운 지팡이를 주신 것이다. 그러니까 이해가 안 되어도 순종하면 우리의 손에 지팡이를 쥐어 주시는 것이다. 이게 세상 법칙과 하나님 법칙과 다르다. 애굽을 떠나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놀라운 말씀을 주신다.
 
*출애굽기 4:17,
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우리가 변명할 이유가 다 있지만,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해가 안 되어도, 하나님의 일을 잘 모르지만 우리는 마음속에 지팡이를 하나씩 주실 것이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모세의 말라빠진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 것이다. 평범한 나무 막대기가, 신세 한탄한 막대기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 것이다. 그리고 살아계신 지팡이가 되니까, 모세가 지팡이를 올리니까 나일 강이 피가 되었고, 모세가 그 지팡이를 들고 올리니까 불가능하게 보였던 홍해가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났다. 광야 같은 메마른 그 딱딱하고도 그 물이 나오지 않는 곳에서 반석에서도 모세가 지팡이를 치니까 반석에서 생수가 터지게 되었다. 생명력 없는 마른 막대기가, 이해가 안 되어도 순종하니까, 백지수표에 사인을 하니까, 하나님이 지팡이가 되게 하셔서 우리는 살리는 영이 되게 하신 것을 믿는다.
 
마귀는 죽이는 영, 참수하는 영이지만, 성령은 창조하는 영이고, 마른 막대기가 살리는 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지팡이를 손에 잡고 있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엑스트라 축복이 있다. 그것은 기대감이다. 제가 존경하는 A.W 토저 목사님은
 
※참된 믿음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기대감이 동행한다. 그러므로 기대감이 없는 곳에는 믿음도 없다.“ -A.W 토저-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서도 무엇이 이루어지는 기대감이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다. 저는 교회 역사를 볼 때에 나름대로 교회능력이 지극히 컷을 때, 교회가 부흥할 때, 교회 안에는 기대감이 충만함을 믿는다. 교회가 믿음이 있을 때, 교회는 기대감이 있었고, 주님은 교회를 실망시키지 않으셨다. 누가복음을 보면,
 
*누가복음 1:45,
45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역사 속에 나타난 모든 하나님의 큰 일, 교회의 모든 부흥들이 일어나기 전에는 반드시 강렬한 기대감이 있었다. 기대감은 언제나 성령과 함께 일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들의 문제는 기대감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모여도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감이 사라진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눈에 보이는 교회뿐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교회인 여러분 자신 한 분 한분의 삶의 여정 가운데 여러분의 기대감이 사라졌다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우리의 기대감이 사라졌다면 오늘 이 기대감이 회복되길 바란다. 이 지팡이를 여러분들의 손에 들려주셔야 한다. 이 기대감이 회복되어야 한다. 우리 교회는 말도 안 되는 5,534명의 목회자분들이 목사님과 사모님들이 참여를 하신다. 9.26,섬김의 날, 무슨 일을 하시는가? 저 나름대로 기대감이 출렁출렁함을 믿는다. 이 은혜를 통하여 여러분의 생에 삶의 여정에도 기대감이 출렁출렁하기를 바란다. 너의 손에 있는 지팡이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주시는 지팡이는 다르다. 우리는 한국교회를 섬김에 기대감과 온라인 사역과 대면예배가 회복되고 이것이 한국교회에 대한 기대감이다. 출애굽한 백성들이 이제 홍해를 건너와서 모세의 이 지팡이를 가지고 반석에서 샘물을 내고, 그 다음 모세는 홍해를 건너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것은 광야에서 아말렉과 전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말렉과 전쟁을 할 때 무엇으로 전쟁을 하는가?
 
*출애굽기 17:9,
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언제 여러분들은 언제 하나님이 주신 지팡이를 들고 산꼭대기에 서는 때가 언제인가? 다시 한 번 다짐해야 한다. 우리가 변명거리도 있지만 하나님이 지팡이 주실 때 기대감을 주셨다. 우리의 영적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하길 원하신다. 하나님 앞에서 수많은 귀한 일이 있을 때는 영적 전쟁이 있다. 아말렉과 전쟁이 있는 것이다. 그럴 때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우리가 지팡이를 들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는 것이다. 결단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일반 지팡이가 아니라 그 지팡이를 잡고 인생의 산 꼭대기에 서라. “나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인생의 산꼭대기에 서리라.”
 
♣요약
두려움과 열등감 무기력에 사로잡혀서 변명 보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전적 위탁하여 절박할 때 뱀 꼬리를 잡는 믿음으로 이 세상을 이기고,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하고 백지수표에 서명할 때, 홍해가 갈라지고 반석에서 물이 샘솟는 하나님의 지팡이로 쓰임 받게 되리라는 믿음으로 우리는 기대감을 가지고 9.26 섬김에 헌신하는 순종이 되어서 하나님께 온전한 믿음 보고가 되어야 한다.
 
요약-*출애굽기 3:11-14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을 하시면서 그에게도 또한 자유롭게 말할 기회를 주신다. 모세는 자신이 부름 받은 일을 하기 에는 부족하다고 이의를 제기한다. 내가 누구관대(11절). 모세는 자신이 그런 명예로운 일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에게 용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기의 재능이 부족하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에서 건져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무장도 하지 않았으며, 훈련도 받지 않았으며, 아주 의기소침해 있었다. 모세는 그 당시에 살던 어느 누구보다도 이 일에 최고 적임자였다. 그는 학문, 지혜, 경험, 용기, 신앙, 경건에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가 누구관대'라고 말하고 있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대개 자신을 낮게 평가하는 법이다.
-실제로 그 일의 어려움은 지대하였다. 그러나 모세는 종국에는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적임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자신의 임재를 약속하신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12절). 그러면 모세의 이의는 충분히 해결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공을 보장하시며, 이스라엘 백성이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임을 확증하신다. 모세는 그의 임무 수행을 위한 지시를 구한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서 이때 무슨 이름으로 자신을 알리실 것인지를 알고 싶어 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이 자신에게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물을 것이라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은 이 모세를 당황하게 하려, 아니면 그들 자신의 알고자 해서 할 것이다. 모세는 그들에게 어떤 대답을 해야 되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구하고 있다.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나의 권위에 대한 증거로 내가 어떠한 이름을 그들에게 내세워야 합니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이 말은 '여호와'라는 그의 이름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이 자존 자이심을 의미한다. 그는 그의 존재의 기원을 그 자신 속에 가지고 계시며 그 어떤 다른 존재에게도 의존하지 않으신다. 자존하시므로 그는 자족하시며 그렇기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이 넉넉하시며 존재와 축복의 무한한 원천이 되신다. 그가 영원하시고 불변 하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탐구를 통해 그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 사실을 알리도록 하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하라.
 
요약- *출애굽기 4:1-17,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와 자기 말을 믿지 않으리라는 것과 자기가 말에 능치 못하다는 것, 그리고 보낼 만한 자를 보내라는 등의 이유를 대며 불순종했다. 우리도 믿음이 연약할 때 하나님의 명령을 피하려고 변명을 늘어놓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단 부르신 사람은 반드시 쓰시고야 만다. 모세가 자신은 말에 능치 못하며 적당한 사람이 아니니 보낼 만 한 자를 보내라고 거절하자 하나님께서는 그와 늘 함께하여 부족함을 채우겠다고 위로하시며 그를 권면하셨다.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능치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에게는 다만 그 힘을 의지하는 순종이 필요하다. 또한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내와 자비로써 죄인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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