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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1년 9월 18일)
제목: “주신 은혜 어떻게 보답할까?”
말씀: (시편 72:7-14)
기도: 천동원 부목사님
말씀읽기: 이루카 어린이(초등부),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찬양선물: 김제니, 첼로: 장은령, 섹스폰: 고명철집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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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판 짜기를 위한 예수님의 비유-
 
* (시편 72:7-14)
7 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8 그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리니.
9 광야에 사는 자는 그 앞에 굽히며 그의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며.
10 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11 모든 왕이 그의 앞에 부복하며 모든 민족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
12 그는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13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14 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원하리니 그들의 피가 그의 눈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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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예배를 드릴 때마다 마음에 생각이 든다. 하나님이 부르지 않으시면 이 자리에 올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오늘 현장예배와 온라인 생중계로 보고 듣는 모든 성도들, 하나님이 부르셔서 이 자라의 예배와 말씀을 듣게 됨을 확신한다. 한복 입고 말씀 읽은 어린 아이들 예쁘다. 하나님이 부르셔서 이 자리에 왔다. 누가 뭐라고 해서, 내가 중직자여서 교회에 온 것이 아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온 것이다. 늘 목이 멘다. 이런 시간 때마다 그래서 모두가 감사한 일이다. 그러면서 삶에 대한 통찰력을 갖는데, 이번 한가위가 시작되는데, 저는 늘 옛날부터 ‘인생이 뭐냐?’ 속히 지나가는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새색시가 시집와서 김장을 30번만 담그고 나면 다가고 마는 인생이다. 다 알 듯이. 우리식 버전으로 하면 앞으로 특새 열 번만 하고 추석 다섯 번만 지나면 좋은 인생 다 지나가는 것이다. 장로님들, 특새 다섯 번만 하면 좋은 시절 다 지나가게 될 것이다. 우리 교회 순장님들, 우리 교회 토비새 모든 분들, 우리 좋은 시절 특새 10번 하면 좋은 시절 다 지나가고, 추석 다섯 번만 맞이해도 이제 좀 건강도 좀 약해질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늘 우리는 두 가지 질문을 하고 살아야 한다. 일마다 때마다 두 가지 질문을 해야 한다. 나는 구원 받은 감격이 있는가? 첫 번째 질문은 구원에 관한 것이다.

 
I. 첫 번째 구원받은 감격이 있는가?
-구원 받은 감격이 있다는 것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와 나는 인격적으로 어떤 관계인가? 모태 신앙을 묻는 것도 아니고, 교회 직분을 갖는 것을 묻는 것도 아니고, 늘 구원의 대한 감격은 예수 그리스도와 나와는 어떤 관계인가? 이다. 오늘도 우리 주님을 사랑하기에 이 자리에 온 줄로 믿는다. 늘 이 복음에 대한 생명력, 그리스도의 피의 복음, 다시 이야기 하면, 유튜브 같은 곳에 보면 대형교회 목사님들 지옥가야 한다고들 해놓았다. 욕하고 그런다. 대형교회 목사라서 지옥 가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관계가 잘못 되면 지옥 가는 것이다. 그런 것으로는 끄떡도 안 한다. 우리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 근거한 것이다. 예수님의 피가 하나님 앞에서 의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불의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늘 감동하고 감격하고 그런 것이다. 주님 생각하면 뭉클 하는 것이다. 오늘도 주님 때문에 나오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의 관계가 있기에 나오는 것이다.

 
II. 두 번째는 구원받은 이후의 삶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이다.
-구원 받은 이후에 내게 주신 은혜, 내게 주시 축복, 내게 주신 은사, 내가 어떻게 하고 살 것인가? 가 늘 우리의 질문이다. 그래서 주신 은혜에 어떻게 보답 할까? 이다. 오늘 같은 날 우리가 삶을 여유 있게 돌아보는 시간이다.
 
우리의 삶을 어떤 식으로 주신 은사를 잘 활용하고 있는가?
-출애굽기 3장에 보면, 주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라고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주님께서 ‘너의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신다. 모세는 지팡이라고 한다. 모세의 지팡이를 보시고 무얼 했냐고 묻는다. 그 지팡이를 가지고 지금까지 무얼 했냐는 것이다. 그리고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되었지 않은가?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죽은 지팡이가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면 살아 있는 생물체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세의 입장에서 우리는 구원 받은 차원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모세를 대입해 본다.
 
모세를 대입해 보면, 모세가 가진 그 지팡이가 2절에는 하나님의 손에 생명력이 있게, 하나님의 사람을 변하기 전까지는 모세의 지팡이, 모세는 자기 은사, 자기 능력, 자기 시간, 자기 맘대로 사용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하고 난 다음에는 모세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나일 강의 피가 되고, 하나님의 사람의 지팡이로 변화되니까 홍해가 갈라지고, 하나님의 지팡이로 변화 되니까, 반석에서 샘물이 펑펑 솟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세의 지팡이는 그냥 막대기인데,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니까,,,
 
오늘 같이 이런 생각해 볼 시간이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나 목회 입장에서 볼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드디어 목자의 심정을 주시는 것이고, 목자의 심정을 깨닫고, 주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 내게 주신 재능, 내게 주신 시간, 내게 주신 귀한 것들, 축복 등이 내 지팡이로 끝나지 아니하고, 목자의 심정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잘 활용해서 청지기적 심정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주님 앞에 가치 있게 살아볼까? 돌아온 탕자 입장으로,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 의 그런 마음을 가지면, 그 작대기가 무엇으로 바뀌느냐면, 목자의 심정, 지팡이로 바뀐다. 그래서 시대의 홍해로 가르게 하시고, 인간적인 약점이 있지만, 반석에서 생수가 터지도록 만들어 주신다.
 
우리는 이제 특새 열 번만 하면 좋은 시절 다 지나가니 이런 것을 생각하면 진심으로 두 번째 질문을 깊이 있게 고민하고 살아야 한다.
나와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 나는 신앙생활을 얼마나 오래 했고, 직분을 어떻게 갖고 있느냐가 아닌 주님과 퍼스널한 관계가 중요하다. 오늘도 가슴에 어떤 관계인가가 중요하다. 오늘도 가슴이 찡하다.
 
시편에 있는 72편을 보면, 솔로몬의 특별한 시가 있다. 대부분은 모를 것이다. 다윗만 시편이 있는 것은 잘 안다. 이 솔로몬은 72:1절부터 20절까지 솔로몬의 시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시편 72:1-3,

1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2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
3 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핵심은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많은 좋은 것을 주셨다. 지혜, 판단력, 그다음에는 세상의 권력도 다 주셨다. 그것을 가지고 무얼 하냐고 묻는다. 솔로몬이 내게 주신 그 귀한 것을 가지고 어떻게 하냐고 질문한다. 이제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받은 그 기도의 제목을 선포한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주신 것을 건강도 주시고 환경을 주셨다. 모두에게 어느 지역에서 사는 가운데서 나름 은혜를 받고, 크고 작은 은혜를 받아서 영향력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각자의 은사를 주셔서 나름, 음악, 경제, 가정, 학생, 예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온갖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살아간다. 그걸 갖고, 사업가로 직장에서 누구나 다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주님은 내가 특별히 작은 것으로라도 주님은 작은 일에 충성된 자를 더 귀하게 맡기신다. 사람마다 하나님은 영향력을 주신다. 그리고 오늘 솔로몬에게 하듯이 유명하게 하시고 권세를 주신 솔로몬은 두 번째의 질문의 답이다. 한 마디로 이야기 하면,
 
 
*시편 72:12-14절에,
12 그는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13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14 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원하리니 그들의 피가 그의 눈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로다.
-오히려 구원받고 오히려 어렵고 힘들어도 수고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주신 그 기회와 솔로몬에게 주시는 그 은사와 그 축복들을 가지고 그들이 회복된다는 것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우리에게 주시는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섬길 때, 우리가 가진 막대기가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홍해를 가르고, 그 다음 반석에서 생수가 터지도록 만들어 주신다. 그리고 모세의 지팡이가 그 막대기가 하나님의 지팡이로 변하게 된다.
 
우리가 지금 명절을 앞에 놓고 나는 주님과 어떤 관계인가? 나는 구원받은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이런 것을 앞에 두고 진지하게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로 인해서 주위가 살아나기를 바란다. 주위에 고통당하고 힘든 사람들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을 좀 크게 보면, 우리 교회를 살려 주셨사오니 우리나라를 살려주시길 기도해야 한다.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그냥 막대기가 아니라 모세의 손에 그냥 잡힌 것처럼 아닌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목자가 갖는 지팡이가 되게 해 주시며, 우리를 통해 이 솔로몬이 그 영화로운 그것을 가지고 자기만이 아니라,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궁핍한 자손을 살피고 압박하는 자손을 꺾겠다고 한다.
 
 
12,13,14절에 ,
맺힌 것, 답답한 것, 잘못된 것, 분한 것, 거짓, 엉터리, 이런 것들을 가지고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바른 길로 가게하고 집중하게 하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게 한다는 것이다. 정말로 고통당하는 자에게 그 신원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국민들, 국가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내년 3월 9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대선을 위해서도 밤낮으로도 기도해야 한다. 조용기 목사님 소천 하셔서 조문을 다녀왔다. 어떻게 조 목사님이 전 세계를 다니고 사업화 민주화의 역할이 크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를 하고 지상파에서는 정신이 나갔다. 법정스님이 한 것이 뭐 있는가? 책이나 쓰고 자기 절제하고 뭐가 있는가? 다르다. 조 목사님은 복음을 전하고 전 세계를 위해서 노력했다. 폄하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엉터리 거짓 잘못된 것으로 걱정이 된다. 제일 걱정된다. FTA-그것으로 걱정된다. 여러분 그것 먹으면 뇌 송송 되는가?? 그런 배우가 간혹 있다. 나는 이런 것을 높은 차원에서 이런 것들이 아픔, 상처, 트라우마, 이런 것들이 이런 것들이 더 이상 없기를 솔로몬의 역할을 해야 한다. 모세의 손에 들린 지팡이가 하나님이 손에 들린 지팡이의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는 첫 번째 질문은 나는 주님과 어떤 관계인가? 두 번째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 축복, 건강, 이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으로 우리는 이웃을 살리고 특별히 나라를 살려야 한다. 이 나라가 바로 가야한다. 수고는 수고대로 헌신은 헌신대로 인정하고 그런 면에서 찬송을 두 개 하겠다. 주위를 살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조성한 목사님
가을 찬양 음악회 진정한 예술의 전당이 우리 교회이다. 음악의 향연들이 있다.
 
♣요약
가정도 살리고 다음세대도 살리며 솔로몬의 영광을 자기 영광으로 끝내지 않고 가난하고 힘들고 고통 받는 고아와 과부 그리고 이 민족을 살리며 솔로몬이 가진 영광으로 사는 것이 아닌 이 시대의 고난을 짊어지고 나가게 해야 한다. 토비새의 기도로 우리 민족이 살기를 원한다. 명절을 주위와 아름답게 섬겨서 본이되는 시간으로 주님을 기쁘게 하고 새 판 짜기 예수님이 비유의 말씀으로 인생의 방향을 새롭게 다져가며 거룩한 사명자로 살아가야 한다.
 
-저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며. 마음속에 새겨진 그리스도의 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직하고 공정하게 행하며 의무를 다하도록 만든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랑 안에서 살게 만듦으로써 많은 평화를 가져오며 칼을 쳐서 보습이 되게 한다. 거룩함과 사랑하심은 모두 그리스도의 왕국에 영영히 있을 것이며 결코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왕국의 신하들은 '해가 있을 동안에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 대대로' 그리 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세상에 뿌리를 박고 마지막 때까지 그 의를 지킬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그 뿌리를 박음으로써 죽음으로 인하여 해와 달과 별들이 빛을 잃을 때까지(곧 그것들을 볼 수 없을 때까지) 그 마음속에 계속 존재할 것이다.
(6) 그리스도의 왕국은 그가 진실로 사랑하는 모든 백성들에게 큰 위로를 준다(6절). 저는 벤 풀에 내리는 비같이 임하리니. 즉 그것은 성령의 은혜와 위로를 통하여 임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베어졌지만 봄이 오면 다시금 싹을 낼 수 있는 풀 위에 임할 것이다.
(7) 그리스도의 왕국은 크게 확장될 것이다.
1) 그의 왕국의 범위 : 저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리니(8절). 여기에 언급된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가 뜻하는 것은 남극해에서부터 북극해까지를 나타내거나 홍해에서부터 지중해까지를 나타낸다. 솔로몬의 통치 범위는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창 15:18) 매우 광대했다(왕상 4:21). 본문에서는 바다의 이름이나 강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것은 바로 주 예수님의 전 인류적인 왕국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복음은 '온 세상'으로 전파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전파될 것이다(마 24:14). 그러므로 그의 영역은 다음과 같은 나라들까지 확장될 것이다.
① 그때까지 그를 모르던 나라 : 광야에 거하는 자는 저의 앞에 굽히며. 구세주의 기쁜 소식을 전혀 들어본 적이 없던 그들이 이제 그 소식을 듣고 그를 믿고 경배하며 그의 멍에를 멜 것이다.
② 그와 원수가 되어 대적했던 나라 : 그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며.
2) 속국들에 대한 그의 위엄 : 그는 광야에 거하는 가난한 농군들뿐만 아니라 왕궁에 거하는 자들까지도 지배하실 것이다. '다시스'와, 이스라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의 왕들이' 그들의 최고 통치권자인 그리스도에게 '공세를 바칠'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솔로몬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천하 열 왕이...솔로몬의...지혜를 듣기 원하여...각기 예물을 가지고 왔으니',대하 9:23,24).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도 이루어졌는데 이는 그가 탄생했을 때 동방 박사들이 경배하러 와서 예물을 드렸던 사실로 보아 알 수 있다(마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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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1년 9월 15일)

제목: "다윗의 간구에 주께서 행하신 일"
말씀: 시편 138:1-3
설교자: 권진우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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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8:1-3,

1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송하리이다.
2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
3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
 

▶수요 저녁기도회에 참여한 모든 성도님들을 주 안에서 환영하고 축복한다. 주님 함께 하셔서 풍성한 기쁨과 은혜를 허락해 주시길 소망한다.
 
오늘 함께 읽은 시편 138편은 다윗이 지은 시이다. 오늘 시편은 다윗이라고 소개 되어 있지만 어떤 배경과 상황 속에서 지은 시인지는 사실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오늘 본문부터 시편 145편까지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다윗의 시의 내용과 흐름으로 보았을 때, 아마도 계속되는 전쟁에서 승리하며 다윗왕가를 견고히 하며 지은 시일 것이라고 많은 신학자들이 예상을 한다. 오늘 시편은 다윗이 먼저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송에 고백을 하며 이어서 2절부터 감사의 이유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먼저 다윗은 2절 중반에서 주의 인자(仁慈)하심과 성실함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한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인자’라는 것은 자비와 사랑을 이야기 하고, 성실은 늘 변함이 없으시고 한결 같으심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의 생애(生涯) 가운데 긍휼과 자비를 나타내시고 사랑을 베푸셨는데 그것을 띄엄 띄엄이 아니라, 어느 한 순간에만 베푸신 아니라 다윗의 전 생애를 통해서 한결같이 지속적으로 나타냈다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한결같은 자비와 사랑을 자신의 생애 가운데 베풀어 주셨음을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2절 말미부터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식으로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다윗의 생애에 나타내셨는가가 나오고 있다. 2절 말미를 보면,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시편 138:2,
2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
-조금 이해가 어려울 수 있지만 다행히 아래에 이 말씀에 대한 부가적은 난해주 설명이 나와 있다. 이 2절의 말씀을 주의 말씀을 크게 하셨음이라고 성경에 나와 있다. 우리가 구약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로부터 몇 가지로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여호와 샬롬, 여호와 라파 등 여러 이름이 등장하는데 그 하나님의 이름을 다 종합해보면 결국은 무엇으로 요약이 되냐면 능력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으로 요약이 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분의 이름을 통해서만 ‘나는 능력과 자비의 하나님이다.’라는 것을 그냥 알려주실 뿐만 아니라, 다윗의 생애를 통해서 실제 그분의 이름대로 행하셨다는 것이다. 다윗이 그 생애를 통해서 능력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을 실제 경험하였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에 의미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가 3절까지 그 흐름이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시편 138:3,
3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
-핵심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이름에 합당한 크고 다윗의 생애 가운데 행하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일들을 일방적으로 행하신 것이 아니라, 다윗의 간구((懇求)를 들으시고 행하셨다. 다윗은 하나님께선 나를 위해 일하심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나의 간구를 들으셨다는 것에 더욱 감사가 터져 나왔을 것이다. 간구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아뢴다는 것이며, 하나님과 교제(交際)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간구에 응답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그에게 마음을 쏟으셨다라는 것을 의한다. 다윗은 사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조차도 존중받지 못하였던 인물이었다. 사무엘이 사울 왕 이후에 왕을 될 자를 찾아 이새의 집에 찾아와서 형제를 불러 모았을 때, 다윗은 그 자리에 끼지도 못했다. 들에 나가 양을 돌보는 다윗에게 그의 가족들 중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남이 아닌 가족들에게조차도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인물이 바로 다윗인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최상의 답을 주신다는 이 사실이 다윗에게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이었겠는가? 가족들로부터도 존중받지 못해서 형제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소외 되었던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마음을 쏟으시고, 세상에 가장 중요한 이야기인 것처럼 자신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들으셨다는 사실이 다윗에게는 최고의 감사의 이유였을 것이다. 실제 사무엘서에 나오는 다윗의 생애를 보면 다윗은 매순간 하나님께 아뢰었고, 하나님은 매순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시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하나님과 다윗 사이에 참으로 많은 대화가 등장한다. 다윗은 이러한 신앙경험을 통해서 간구할 때 주께서 행하신 일을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I. 주께서 응답(應答)하셨다.
 
-기도를 하면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고 기도들 하는 것은 가장 사실 중요한 이유이다. 다윗의 여정(旅程)을 봐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아뢸 때, 응답을 받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특별히 다윗을 질투하는 사울 왕 여정 속에서 피해야 할 길을 여시고 안전한 길, 도피처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응답의 손길을 우리가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도 이 코로나로 어려움 속에서 이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주님께 우리가 더욱 간구하고 더욱 응답을 사모하게 된다. 저는 작년과 올해 전도폭발을 섬기면서 공동체기도 가운데 주님께서 놀랍게 응답해 주시는 것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다. 코로나가 바이러스로 이 전염병이 유행할 때, 가장 어려운 사역가운데 우리가 뽑으라면 아마도 전도사역을 뽑을 수가 있을 것이다. 전도는 사람을 만나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이 코로나 상황에서 대면해서 만난다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다. 그것도 잘 아는 사람도 아니고 전도대상자에게 낯선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쉽지 않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 리더 분들과 교사 분들이 기도하고 고민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주님께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듯이 우리가 순종해서 훈련의 결정을 내리고 지금은 특별한 상황이기에 화상과 줌으로 진행하는 온라인 비 대면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주워진 역할에 맞추어서 화상 전도를 긴급히 우리가 도입하긴 했지만 처음해보는 이 화상 전도에 과연 이 훈련에 참여하는 훈련생들이 어려움을 겪지나 않을까를, 복음을 들어야 하는 전도대상자들이 흔쾌히 이 온라인이라는 전도의 현장에 참여를 잘 할지에 대해서 인간적으로 우려를 좀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기도밖에 없었다.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가장 기뻐하시는 영혼구원을 하는 일에 릴레이로 기도하면서 섬기시는 분들과 훈련생들까지 함께 간구하고 기도로 준비했다. 그런데 이 코로나 상황에 이 훈련의 전도폭발의 과정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훈련을 받으시는 분들이 온라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지방에 있는 가족과 친지들, 그리고 심지어 해외에 있는 지인까지 복음을 전하고 결신하였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다. 어떤 훈련생은 부산에 동생이 살고 있는데,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아서 복음을 전할 길을 이제나 저제나 찾고 있었다. 그런데 서로 멀리 떨어져 살고 있고 명절 같은 때에 특별한 날이 아니고는 만날 기회가 없다보니까 시간을 두고 복음을 전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동안에...

그런데 이 화상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니까, 언제나 자기가 동생을 초대해서 자기 동생과 교제할 수 있는 일이 열린 것이다. 화상으로 만나자고 하고 서로 간에 더욱 형제간의 친밀감과 따뜻함을 다진 다음에 어느 순간 충분이 준비하고 화상으로 복음을 전했을 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함께 결신까지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느 훈련생은 아부다비인 중동에 살고 있는 친형과 화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결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먼 지방부터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지인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해서 결신하게 되었다는 소문이 훈련생 가운데 퍼지면서 훈련이 어떻게 되겠는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가슴이 설레이고 역동적으로 훈련이 될 수 있었고, 대면 적으로 훈련이 살아나는 은혜도 더 받게 되었다. 마스크 쓱 3-4명 나가서 카페에서 만나고 심지어는 스터디카페에서 돈 내고 만나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르리고 올해도 이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작년보다 더 많은 인원이 전도폭발에 참여해서 더 열심히 현장 전도에 나아가는 이런 감사한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라는 가장 어려움 속에서도 전도사역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어떤 노하우와 전략이 좋아서도 아니다. 공동체 기도 하나 가운데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라고 믿는다. 또한 사랑의교회 전체가 코로나 위축되지 않고 담임 목사님을 중심으로 예배와 기도로 역동성을 유지해 나갔기에 이런 전도 사역도 그 영성에 맞물려서 힘 있게 전도를 진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과 환경을 초월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이러한 새 힘의 응답의 열매가 성도님들의 삶과 가정 가운데 늘 함께 하길 간절히 소망한다.
그런데 이 기도의 응답과 관련해서 우리가 중요한 기억해야할 사실이 있다. 우리가 먼저 말씀을 하나 보자.


*마태복음 7:7-11,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예수님께서 주신 산상수훈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구하라 찾으라 두르리라 하신다. 그러면 받고 찾고 열리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9절 이하로 한 가지 이유가 나오고 있다.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면 돌을 주고 생선을 달라면 뱀을 줄 사람이 누가 있겠냐는 것이다. 자녀가 달라고 하는데, 지금 이 말씀을 보면 무엇과 무엇이 서로 상반된 개념으로 나오는지 잘 보라. 떡과 생선, 돌과 뱀, 이것이 상반된 것으로 나오고 있다. 떡과 생선은 주시고, 돌과 뱀은 안 주시는 것으로 나온다. 구하는 자녀에게 떡과 생선을 주시지 돌과 뱀은 주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비유적인 이 단어인 떡과 생선은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잘 아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면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무리들을 먹이시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떡과 생선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양식이었다. 즉 떡과 생선은 그것을 섭취하면 우리 몸을 건가하게 하고 생명을 유지하게 한다. 이와 상반된 돌과 뱀은 어떠한가? 이것은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여기 나오는 돌과 뱀은 먹으면 몸을 병들게 하고 마침내 생명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에게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인가? 우리 영혼과 삶을 건강하게 하고 복되게 하고 생명이 되게 하는 방향으로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판단하시기에 우리가 구하는 것이 우리의 영혼과 삶을 병들게 하고 사망에 이르게 하는 돌과 뱀 같은 것이라면 절대 응답을 안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12절 중반에서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 하냐면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신다는 것이다. 모든 것 주신다는 적이 없다. 떡과 생선과 같이 우리의 영혼과 삶을 복되게 하고 건강하게 하는 방향으로만 응답하시지 아무리 구해도 돌과 뱀 같은 것은 응답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것 주신다는 것을 말씀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응답 받을 수 있도록 영혼의 떡과 생선에 해당하는 것을 구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함께 병행하여 연구하고 묵상하면서 참으로 우리 영혼의 삶에 떡과 생선과 같은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가 구하는 것이 나에게 떡과 생선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지속적으로 성숙시켜 나아가야 한다.
 
흔히 우리가 하는 말 중에, 칼이 어른에 손에 들어가면 다시는 요리를 만들기 위한 좋은 도구가 되지만, 어린아이의 손에 들어가면 자신과 타인을 헤치게 하는 흉기가 될 수 있다라고 말씀한다. 같은 물건, 같은 칼이라도, 같은 기도의 내용이라도 내가 어느 정도 성숙했는지에 따라서 영적인 떡과 생선이 될 수 있고, 돌과 뱀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시던지 우리 영혼이 떡과 생선이 되기 위해서 온전함을 향한 신앙의 경주도 게을리 해서도 안 된다. 그것이 또한 하나님께 좋은 것으로 응답받는 좋은 비결이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피는 인물인 다윗도 어떠한가? 사무엘에게서 기름 받은 후에 사울로 받는 고난, 그 왕이 되게까지 그 중간에 어떤 일이 있냐면, 사울로부터 고난이 있는데, 이 고난이 없이 곧바로 왕이 되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다윗은 이 사울과의 고난이 있었기 때문에 납작 엎드려서 작은 것 하나라도 하나님께 묻고 답으로도 움직이는 더욱 온전하게 하는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만일 이러한 믿음의 성숙의 과정이 없었다면, 아마도 다윗의 왕의 자리는 사울과 같이 자신과 이스라엘을 망치게 하는 돌과 뱀 같은 자리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좋은 것으로 응답 받기 위해서는 떡과 생선에 해당하는 것을 분별해서 구해야 하고 무엇을 주시던지 내 영혼에 떡과 생선과 같은 이익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을 끊임없이 성숙시켜 나가야 한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좋은 것을 누가복음 11장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신다.

 
*누가복음 11:13,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구하는 것을 주시는 것을 구체적으로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예수님이 성령이라고 말씀하신다. 성령은 그 자체로 성령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응답으로 받을 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 영광스런 분이시다.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가 참으로 구해야 하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분별할 수 있도록 도우시고 깨닫게 하시는 분이시다. 나는 이것을 꼭 손에 쥐어야 하고 ‘절대 놓아서는 안 된다.’ 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기도하고 말씀을 읽다보면, 성령님께서 그것을 반대로 ‘그것을 내려놓아라.’하실 때가 있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A라는 것을 구하여야 할 때, 성령님께서 B라는 것을 구하게 하신다. 또한 성령님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돌과 뱀이 아니라 떡과 생선이 될 수 있도록 우리를 성숙시켜 나가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자신을 온전케 할 수 없지만 성령님은 우리 안에 내주 하셔서 우리를 계속해서 성화시켜 나가신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서 우리 영혼과 삶에 떡과 생선과 같이 양식이 되는 것을 구하여서 우리는 풍성한 응답의 열매를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 은혜를 누리는 성도님들이 되길 소망한다. 둘째로 하나님께 다윗이 간구하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은 다윗의 영혼에 힘을 주어서 그를 강하게 하셨다. 기도를 통해 누리는 큰 유익이다.

 
II. 주께서 그를 강하게 하셨다.
 
-우리는 간절히 기도할 때. 영혼의 힘을 얻는다. 다윗은 그의 영혼에 약하게 하고 두렵게 하는 사방의 원인이 많았다. 사울이 그랬었고, 블레셋이 어려움을 주었고, 심지어는 그의 자녀들이 다윗의 영혼을 무너지게 할 때가 있었다. 멀리서 우리가 찾지 않아도 오늘 보는 이 시편 내에 나오는 다윗의 그 수많은 시편들을 보면, 그 다윗이 대적들로 인해서 영혼이 떨리고 연약하게 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우리는 시편을 통해서 목격을 하게 된다. 그때마다 말씀대로 겨자씨와 같이 초라했던 다윗은 기도해서 영혼에 힘을 얻고 다시 강한 용사인 큰 나무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에게 어떠한 영혼이 일어나서 우리가 힘을 얻고 우리가 강하게 되는가?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에베소서 6:18,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바울은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 성령 안에서라는 말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령의 권능 안에서, 라고 해석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도할 때, 멀리 계시는 하나님께 그냥 입술로 아뢰는 것으로 그치는 기도가 아니라, 기도하는 것은 성령님이 함께하시고 권능으로 역사하시는 그 통로, 그것이 기도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연약해진 우리 영혼은 강하여지게 되고, 죄를 이길 내적인 힘을 얻게 되면 다른 영혼을 움직일 수 있는 영향력까지 우리가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지속적으로 기도를 해 나아가야 한다. 만일 기도하는 목적이 응답뿐이라면, 기도를 그냥 어떤 문제에 대해서 응답만 받기 위해서 기도하는 목적이라면, 우리가 기도해서 응답받은 이후에 잠시 쉴 수도 있다. 쉬었다가 이런 응답받은 일이 생겼다고 또다시 이런 방식으로 기도하는 모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을 악화시키고 약화시키는 이 죄의 유혹과 위협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이 있는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이 미혹들이 주위에 너무도 많고 넘어뜨리려고 한다. 당장 가깝게는 이 휴대폰이 그러한 유혹의 통로가 될 때가 있지 않는가? 또 하루를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직장과 세상 가운데서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다 우리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 아니다. 말 한마디도 감정을 거스르게 말하고 일부러 마음에 파고드는 말을 하는 자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로 인해서 그 말이 화살같이 박혀서 하루 종일 마음에 영향을 미치며 우리 영혼을 악화시킨다. 이처럼 다양한 죄의 유혹들과 어려움들이 쉬지 않고 다가오기 때문에 우리는 쉼 없는 기도와 함께 입술로만의 기도가 아니라 마음을 쏟는 기도를 해야 한다. 기도 가운데 성령님이 함께하셔서 성령님이 내 영혼에 힘을 주시고 어떤 문제이든 자녀문제 어떤 삶의 문제도 응답받을 뿐 아니라 이 기도하는 시간에 열렬히 사모하는 시간에 성령 하나님이 내 영혼에 임재 하셔서 내 영혼에 힘을 주시고 강하게 해주시길 기도해야 한다. 세상을 초월하는 성령의 힘과 나를 담대하게 하시고 충만케 하시고 강하게 하시길 기도해야 한다. 이 은혜를 그 자리에서 응답받고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다윗이 경험한 기도의 놀라운 유익이었다. 그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시고 강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신다. 결국 영혼에 유익을 위한 기도를 위해서는 마음을 쏟는 지속적인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평생 이어지는 지속적인 기도는 어떤 의도의 의무감의 지속적인 기도를 이어갈 수 없다. 뭔가를 우리가 지속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일에 대한 기쁨이 있어야 하고 은혜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은혜가 있어야 하듯이 그런데 의무감으로 한다면 하다가 중단되기가 쉽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것도 의무감으로 하면 중단되기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과 친밀함으로 나아가야 한다. 의무감을 넘어 친밀함으로 가야한다. 하나님과의 거리감을 줄이고 친밀함으로 나아갈 때, 우리가 자원하는 심령으로 나아가는 지속적인 기도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로마서 5:6-8,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아주 연약할 때, 경건하지 않은 상태에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고 말씀한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사랑의 확증된 사건이라고 이야기 한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아들의 생명을 내어 주신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가 나타난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언제 나타난 일이라고 사도 바울은 말하는가? 하나님의 그 깊은 사랑, 아들의 생명을 내어 주시는 그 사랑을 언제 나타내셨다고 하는가? 우리가 아직 경건하지 않을 때라고 하고, 8절에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라고 이야기 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할만한 어떠한 이유가 없고 어떤 건더기가 없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의 호감을 갖고 누군가를 사랑하면 왜 그런가? 그렇게 할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을 하고 호감을 갖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뭐라고 말 하냐면, ‘매력에 끌린다.’ 라고 이야기 한다. 매력이 있기에 사랑하고 호감을 갖는 것이다. 그 매력이 다양할 것이다. 성격이 좋아서도 그렇고, 성실함에, 외모에 대해서, 목소리가 좋아서도 그렇다. 이처럼 누군가의 사랑을 갖고 호감이 갈 때는 분명히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아들의 생명을 내어 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실 때에 우리는 어떤 상태였다고 말하는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죄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상태를 본다면 매력은커녕 한 번 만나면 거부감이 들어서 두 번 다시 만나기 싫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이다. 사랑할만한 이유가 없고 끌릴만한 매력이라곤 전혀 없는데, 그러한 우리를 어느 정도로 사랑하셨냐면 우리에게 영생을 주셔서 우리가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해 아들의 생명까지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셨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놀랍기도 해서 상대방이 의롭고 선한 모습이 있어도 우리가 목숨을 줄 정도로 사랑하기가 쉽지가 않은데, 어떻게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것만 갖추고 있는 우리를 생명을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실 수가 있는가이다.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우리를 위한 사랑, 우리가 어떻게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가? 그 답을 우리는 찾을 길이 없다. 어떤 이유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자신감 있게 우리가 근거를 댈 것도 없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저 존재 자체로 사랑하셨다는 것 밖에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존재자체를 기뻐하시고 사랑하신다. 이 이상 우리를 하나님께서 왜 사랑하시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우리 편에 서서 설명할 길이 없다. 우리는 그저 죄인이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먼저 어떤 변화가 일어나냐면, 실제 신앙생활에 있어서 한결같은 우리가 좀 더 편안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을 만날 때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된다. 어떤 내용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고 들으실까? 해여 하나님이 어긋난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노하시고 불쾌하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심지어 기도에 대한 부담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에 앞서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존재의 자체를 기뻐하심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기도가 서투르고 하나님의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해서 기도의 내용이 성숙하지 못하더라도 그로인해서 우리가 기도의 자리를 절대 부담스럽게 가질 필요는 없다. 일단 하나님께 우리가 존재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 서투르고 연약한 모습일지라도 하나님을 만나겠다고 나아가겠는 자체만으로 하나님은 너무 기뻐하신다. 기꺼이 우리를 품에 안아주심을 기억하라. 기도의 내용이 성숙하고 좋은 기도라는 것은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자녀 된 우리를 점차 다듬어 시간을 두고 교정해 나가신다. 중요한 것은 그게 좀 미성숙해도 그것 때문에 하나님과 거리감을 두지 말고 하나님은 우리 존재 자체를 사랑하시기에 이미 내가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을 갖고 있을 때부터 하나님은 너무나 사랑하셨고 아들의 생명을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것이다. 그러니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복음서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천국에서는 누가 크냐고 예수님께 질문한다. 그때 예수님께서 ‘천국은 어린 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그러시면서 어린 아이가 오는 것을 막지 말라신다. 천국은 어린 아이와 같은 것이다. 추석이면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날 것이다. 품에 안기면서 안아주신다. 사랑스럽게 손주들과 할머니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어린이 집에서 어떻고 누가 유치원에서 있던 이야기를 한다. 어려서 말하는 것이 말하는 것이 철이 없다. 품에 안고 있다가 그렇다고 손주를 품에서 밀어내시는 할아버지는 할머니는 없다. 말이 서투르고 내용이 앞뒤가 안 맞아도 할머니 할아버지 귀에 대고 열심히 소곤대는 자체로 마음이 살살 녹아서 어쩔 줄을 모르신다. 그 존재로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 것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들의 생명을 내어 주신 것이다. 우리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시는 것이다. 만왕의 왕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어떠한 말로 준비하여서 잘 꾸며서 이야기 한들 그 수준과 격에 맞는 기도로 우리가 올려드릴 수 있겠는가? 우리가 예전에 그 기도가 맞는 것 같았는데 참으로 철없고 부족했던 기도였다는 것을 느낄 때도 얼마나 많이 있는가!!! 그러나 중요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재 자체로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자주 만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를 존재 자체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깨달을 때, 우리는 친밀감을 가지고 주님 앞에서 나아가게 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지속적인 기도를 올려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속적인 기도는 성령님의 임재 속에서 하나님이 응답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 영혼을 힘있고 강하게 하실 통로가 될 것이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시편을 통해서 그가 간구할 때,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살펴보았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다윗의 간구에 응답하셨다. 그의 영혼에 떡과 생선과 같은 영혼의 양식이 되는 것에 힘을 주셨다. 온갖 유혹과 위협을 초월하고 비상하는 영혼의 강함을 허락해 주셨다. 부디 우리 인생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쏟는 기도를 통해서 응답의 은혜, 성령 안에서 영혼이 강하고 담대하여 지는 은혜를 누리기를 바라며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는 위대한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경험하는 모든 성도들이 다 되기를 축원한다.
 
 
 
♣요약
우리의 간구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영혼의 새 힘을 공급하시고 높이 비상하게 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성실하심에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한다. 자녀 된 우리에게 언제나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하늘 아버지를 신뢰하며, 헛된 것을 구하지 않고 영혼의 참된 것인 떡과 생선을 구하며 응답의 기쁨을 누려야 한다. 또한 겨자씨와 같이 연약한 것이 우리인 것을 깨달아서 간구하며 기도하여 영혼에 힘을 얻어서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경험하고 세상에 주님을 전하는 사명자로 살아가야 한다.
 
담임 목사님,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찬양하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수요일은 가만히 있는데 오늘 조용기 목사님의 빈소에 다녀왔다.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할 목사님이 많이 계시지만, 우리 옥한흠 목사님께서 제자훈련을 통해서 우리가 글로벌화 되게 하는데 많은 역할을 하셨지만, 조용기 목사님도 한국의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조용기 목사님을 다른 나라에서 조용기 목사님을 잘 안다. 마음속에 조용기 목사님은 K페이스이다. K 팝 등이 있는데, 그 김장한 목사님 등, 다 K페이스이다. 우리 성도님들도 전 세계 앞에 K성도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대한민국 교회가 세계 어디와도 바꿀 수 없는 우리의 헌신 자본이기에 K성도들이다. 저녁에 나와서 기도하고 마음을 모은 우리 성도는 K성도들이다. 그리고 내년 3월 9일 대선이 5개월 남았는데 우리가 새벽예배와 수요기도회를 통해서 주일은 당연하지만, 나라를 위한 기도를 해서 세계선교를 위해서 쓰임 받는 기회가 되도록 붙잡아 주시길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가슴에 간절한 것이 무엇이냐면, 우리는 겨자씨인데 하나님께서 겨자씨 찬스를 갖게 해달라고 했다. 하나님이 우리교회를 살려주셨으니 이제 우리는 나라를 살려주시길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중직 자들과 토비새와 새벽예배와 교회를 살려 주신 것처럼 나라를 살려주시길 기도를 힘 있게 엎드려 하여야 한다. ‘나라를 살리게 하시고 이 조국을 살려달라’고 해야 한다. 우리 교회에 조용기 목사님도 오셔서 말씀을 전했다. 성령운동과 함께 갈 때에 K미션이 되어서 조용기 목사님의 강점을 이어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지금 시무하시는 이용훈 목사님의 기도가 간절하게 나왔다. 마음을 같이하여 한국교회가 다 잘 되길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이유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인자하고 성실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다윗은 진실한 마음과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다. '전심으로'라는 어구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다윗은 온 마음을 다 바쳐 심령에 감동받은 것을 그대로 입술로 옮겨 찬양하는 일에 힘썼다. 신들 앞에서 주께 찬양하리이다. 여기서 '신들 앞'이라 함은 모든 방백들과 재판관, 권세 자 앞이라는 뜻이다.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며. 이것은 제사장 한하여 성전에 들어가도록 허용되었을 뿐 백성들은 가까운 곳에서 전을 바라보며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나타내 준다. 물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여호와의 전을 향하여 예배를 드릴 수도 있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성전이 되시는 분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 앞에 찬양을 돌려야 한다. 또한 하늘도 여호와의 거룩한 전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늘을 향해 우러러보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간구해야 한다. 다윗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과 같은 여호와의 위로하심을 인하여 찬양을 돌렸다.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높게 하셨음이라. 여기서 말씀이란 진실하신 여호와의 언약을 뜻한다. 하나님은 창조와 섭리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게 해주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호와의 존재를 분명히 제시해 주는 것은 말씀이다. 뛰어난 주석가 몇몇 사람은 말씀의 근원이신 그리스도에 과한 복음이야말로 예전에 조상들을 깨우쳐 자신의 존재를 알게 하고자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기사보다도 훨씬 뛰어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또한 다윗은 자기가 한 대 고난 중에 있었던 일을 결코 잊지 않았다. 주께서...내 영혼을 장려하여 강하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만약에 하나님의 장려하심을 받아 자기의 영혼이 무거운 짐을 지고도 넉넉히 견디며 악의 유혹을 물리치고 어려울 때에도 옳은 길로 지켜 행할 수 있게 된다면, 이것은 여호와께0서 자신이 기도한 것을 들으사 응답하셨다는 점을 인정하고 감사의 찬송을 드려야 한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여호와께서 힘을 주사 믿음으로 주를 의지하며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고 인내로 열매를 기다리게 하셨을 때에도 감사하는 것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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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1년 9월 12일)-Jesus Parables for the New Nomal Age.

제목: ''작은 겨자씨의 꿈(Small Mustard Seed's Dream)"
찬양인도: 이원준 부목사님
기도: 윤현수 부목사님
말씀: (마태복음 13:31~33)
사회: 윤하중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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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3:31~33)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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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설교 동영상은 1부와 다른 2부 영상이니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오늘 이 예배의 날은 주께서 정하신 날이니, 축복하고 즐거워하라고 했다. 오늘 예배를 통하여 창백하고 메마른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생수가 흐르는 밈음 동산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이번 시리즈를 새 판짜기를 위한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이라고 했는데, 조심 조심스럽다. 요즘 사회상을 보면 어떠한가? 기축(기축(基軸)이 흔들리는 세상이다. 지난주에 목사님들과 대화를 하는데, 4차 산업혁명인 메타버스, 증강현실 가성현실에서 지금 현실과 가상세계가 혼대되어 있는 것이다. 사역을 어떻게 할까 대화를 하는 가운데 네이버에 보면 ‘ZEPETO’라는 가상 메타버스가 시작되고 있다. 벌써 이억 명이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목사님들이 제패토에 가서 개척교회를 해야겠다는 것이다. 어떤 대학은 후기 졸업식을 메타버스로 했다. 아바타 사용해서... 기축이 흔들리는 세상과 사회 정치적 상황은 어떠한가? 그냥 때를 쓰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사회 정의를 붙잡아가는 이상한 세상이 되고 있다. 오죽하면 주님은 다수를 따라 악을 행치 말라고 하시겠는가? 이 사회 정의가 기울어졌다. 오늘 저는 ‘겨자씨와 누룩’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는데, 여러분이 다 알고 있지만, 주님은 그 시대 1세기에 이 말씀을 듣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이 말씀을 듣는 청중들에게, ~~
주님은 이 말씀을 듣는 대상을 놓고 제자들에게만 했다ㆍ
특별히 이제 다음 주에 설교할 내용의 ‘보화와 진주의 비유‘이다. 특정한 대상을 두고 이야기 한다. 그것은 제자들에게만 이야기 했다.
 
오늘 말씀은 제자들이 아니라 모든 일반 청중들, 남녀노소, 겨자씨가 밭에 뿌려지는 것은 주로 남성들을 위해, 누룩은 여성들을 위해, 남녀노소 누구에게가 해당되는 말씀이다. 내가 자격이 있다, 없다가 아닌 따라서 이 기축이 없는 상황 가운데, 이 겨자씨와 누룩의 말씀의 당시에 배경도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당시에 정치적 환경은 로마제국의 눈치를 보고 사는 암흑의 시대였다. 종교적으로는 성전의 영광이 떠나가는 시대였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에게 율법아래서 종노릇을 하고 있었다. 사회 안전망은 얼마나 취약했는지, 강도들이 너무 날뛰어서 여리고로 가는 길이 너무 무서운 상태였다. 소망이 한 조각도 찾기 힘든 기울어진 낙관론을 펼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서 주님은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새 소망과 꿈을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 대해서 오늘 이 비유에 대해서 겨자씨와 누룩의 이 비유를 말하고 있다.
 
스펄전-‘겨자씨와 누룩’이 비유는, “지극히 작은 씨앗 속에 엄청난 세계를 담고 있는 위대한 짧은 비유이다.”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고, 다음 주에 말씀드린 값진 보화와 극히 값진 진주의 비유는 아주 익스클로씨브(Exclusive-독저점적인)한 대상이었다. 그 듣는 대상이 누구냐면 예수님의 제자들이었다. 그야말로 집중에서 듣는 자들에게 주는 말씀이지만, 오늘 말씀은 누구나 다이다. 겨자씨는 남자, 누룩은 여자, 집안에서 일하기에 익숙하다. 이 겨자씨의 비유는 모두가 다 포함된다. 지금은 팬데믹이라는 상황 때문에 사람들이 영적 패배주의가 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를 정신 차리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 비유를 내것으로 삼으면 하나님은 일 하실 것이다. ,
 
*마태복음 13:31,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마태복음 13:33,
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태복음은 하나님 나라를 천국이라고 함부로 부를 수 없고, 천국은 이것이라고 정의할 수 없다. 이것은 영안이 열리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이것은 이 세상의 가치관, 이 세상에 때를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이 세상의 수많은 어떤 대단한 자격이 있어서도 아니고, 오늘 정말 힘을 없는 자이다. 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렇게 예배를 사모하고 현장 예배와 온라인 생중계를 시간을 지켜서 드리며 잔정하게 사모하며 드리는 예배 자들에게 영안을 열어주시길 바라는 것이다. 핵심은 그렇다. 겨자씨의 가지들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된 것이다. 단수가 복수가 된 것이다. 조금 더 들어가면,
 
*마태복음 13:32,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겨자씨가 너무 작다. 겨자씨를 가지고 왔다. 그 작은 것이 커서 새들이 깃들이다. 그 당시에 새들이라는 것은 단순하게 상징하는 것이었다. 헬라어로 ‘탑페텐’으로 이방인이 축복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겨자씨 같이 아무것도 아닌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수많은 이방인들이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물댄 동산 같은 은혜를 받는 것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초대교회는 십자가의 복음이 너무 초라했지만, 강가에 자라는 나무처럼 크게 번성해서 복음의 가지가 수천, 수억으로 사람들에게 연결이 된 것이다. 그리고 비유로 말씀 하시되 천국은 가루 서말과 같다고 부풀게 하여 영안을 열고, 이것이라고 말은 아 하지만, 이 누룩과 밀가루에 대해서 눈을 열어라는 것이다. 누룩이 밀가루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고, 누룩이 밀가루로 들어가서 밀가루 그리고 그 비유로 말씀하신다. 누룩은 밀가루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더 밀가루가 많으면 많을수록 설렌다. 그 많은 밀가루를 누룩은 밀가루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이 겨자씨와 누룩은 큰 나무가 되고, 작고 미미한 아무것도 아닌 것이 전체를 변화시킨다.
 
이사야가 고백한다. 예수님에 대해서 표현을 할 때에 ‘마른 땅에서 나온 작은 줄기와 같다.’고 말한다. 이사야 11장에 보면, 보잘 것 없다는 것이다. 그가 태어난 곳은 마구간이었고, 무슨 선한 것이 나겠냐고 천대 받던 나사렛이었다. 공생에 기간 동안 그 고생을 많이 하시고, 로마의 반역자로, 십자가의 죄수로 수치스럽게 참담하게 세상을 마치셨다. 누가 예수님을 세상이 구세주가 되시고, 왕 중에 왕이 되시고, 다시 오실 왕이 되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되시고, 역사의 주인이 되실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지금 우리는 오늘 날 전 세계가 예수님이라는 복음의 나무 아래 모여 있는 줄 확신한다. 무엇보다도 삶의 목적이 없고 우울증, 자살하려고 하는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시대의 새들이 예수님이라는 구원의 나무 밑에서 치유 받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통해 생명수 역사를 가지고 창백한 영혼이 생수의 강이 된 것이다. 판이 바뀐 것이다.
 
열 두 제자를 보라, 그 가운데 제대로 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다 하찮은 겨자씨와 같은 존재들이었다. 뒤에 사도들 가운데 대표적으로 좀 잘났다고 했던 사도 바울도 로마를 향하여 로마에 복음을 전하겠다는 그런 소명을 가지고 로마를 향해 갈 때는 초라하게 죄수의 몸으로 갔다. 누가 초라한 바울을 추대했겠는가? 그런데 수많은 역사가들이 바울이 걸어간 로마의 아퀴아 가드의 걸음걸이 때문에 대이동의 역사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었다. 우리 시대도 그런 사람이 많다. 초라한 집안에 힘없는 며느리가 예수 믿는다고 집안의 박해를 받고 머리채 잡히고 온갖 수모를 당하고 이혼의 위험을 당했는데, 결국은 온 집안이 그 며느리 때문에 복음이 된 것이다. 할렐루야!~~얼마나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된 것인가?
 
어릴 때 안동 지역에서 예수 믿는다고 어린 아이가 예수 믿는다고, 선교사를 통해 예수를 믿었는데 복음이 너무 좋았는데, 광산 김씨, 종가 집이었다. 초등 5학년 때 그 광산김씨가 대청 밑에 데려다 놓고 그 예수 믿는 아들을 인두로 팔을 지졌다. 계속 믿겠다고 하는 아이를 어른들이 인두로 어깨를 지지니 도망쳐 나왔다. 선교사를 만나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사명을 받고 신학교를 갔는데 그 집안 어른들과 아버지가 얼마나 쌘 지 모든 세간살이를 다 부순다. 기가 막힌 그런 핍박과 횡포를 당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아버지가 그 세례를 받았다. 기가 막힌 일이다. 부산 부민교회라고 하는 교회이다. 오케스트라가 와서 그 목사님의 위임 식을 하는데, 시온성과 같은 교회, 그 영광이 찬란했다.
중3때이다 위임 식 오케스트라 반주할 때, 아들에게 아버지가 세례를 받고,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된 것이다. 한국교회가 이런 힘으로 버텨온 것이다. 겨자씨와 누룩의 영적인 DNA가 무엇인가? 작지만 위력적인 것이다. 작다고 위축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놓고 이제 끝났다. 이제 한국 교회가 부흥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이, 이것 자체가 겨자씨 같은 상황이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자격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역발상을 해야 할 줄 믿는다. 내 자신이 겨자씨와 같다. 내 자신이 작다고 생각하고 이 상황, 그것이 오히려 내 자신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전적으로 주님만 의지하는 환경을 받는 것이다.
 
제자들 입장에서 삶 자체가 오히려 유대의 귀족이 아닌 상황자체가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을 따르고 주님을 배우기 결심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시대에 지역주의와 혈연주의의 민족주의의 모든 것들, 내세우기가 하나도 없는 제자들이 예수님만 붙잡고, 예수님께 배우고, 예수님만이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계기가 작은 겨자씨가 되어 바뀐 것이다. 그래서 우리 상황 자체가, 한국교회와 내 개인이나 모두의 상황 자체가 작은 겨자씨 같이 초라하다고 생각한다면, 새판 짜기의 키가 뭐냐면, 내가 작은 겨자씨 같이 초라하기에 절박한 심정으로 주님만을 붙잡는 것이다.
 
 
그리고 환경적, 가정적으로 내가 겨자씨 같아서 어렵다고 주님만을 붙잡게 되면, 그런 마음으로 주님 섬기고, 그런 마음으로 자식을 키우고 그런 마음으로 가정을 세우면, 그 아이들 절대로 예수님을 거부 안 한다. 강남에서 잘나가고 있는 대로 돈 가지고 다하는 것이 그것은 애가 겨자씨가 아니다. 그 아이는 처음부터 하나님 앞에 뻣뻣한 것이다. 주님을 의뢰해야 한다. 눈물로 기도하고 모두를 주님이 주시지만, 이 상황을 하나님 앞에 나와서 나는 겨자씨 같다고 기도해야 한다. 이것이 겨자씨 새판 짜기 어떤 토대이다. 끝까지 우리는 주님 앞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주님 앞에 납작 엎드려야 한다. I’m nothing!!! 아임 나씽!!!~ 목회자인 저도 죄인이고, 주님 앞에 어린아이이다. 오늘 이 배경을 가지고 한두 가지 앞으로 계속 집중해야할 새판 짜기를 하겠다.
 
I. 겨자씨는 뿌려져야 한다.
-겨자씨가 뿌려져야 한다. 또 누룩은 밀가루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겨자씨와 누룩의 DNA는 작을수록 위력적이다. 뿌리지 않으면, 심지 않으면, 작은 것으로 끝난다.

*시펀126:6,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중요한 것은 울며 씨를 뿌려야 한다. 우리가 겨자씨 같다고 해서 아무리 꿈과 비전이 있어도 뿌리지 않으면, 씨앗을 심지 않으면, 평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겨자씨 속의 엄청난 생명이 역사가 담겨 있지만, 오늘 우리에게 각인 시켜 주는 것이 무엇이냐면, 진짜 중요한 것은 겨자씨 자체가 아니라, 겨자씨가 땅에 떨어져서 심겨져야 하는 것이다. 겨자씨가 고귀하고 대단하다 하더라도, 심겨지지 않으면 나씽이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나름대로 확신하고 감동도 받지만,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 겨자씨를 마음에만 담을 뿐, 감동만 있을 뿐, 일상의 삶의 땅 속에 열심히 심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새판 짜기가 안되고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 상자 속에 여러 개의 씨앗이 있다고 여겨보라. 그 상자를 가만히 두기만 하면 그 씨앗은 열두 달이 지나도 여전히 같은 상태로 있을 것이다. 예쁘고 아름답고 예쁜 씨앗이 그대로 있으면, 그냥 놔두면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겨자씨는 뿌려져서 흙속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결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 내용은 교회를 오래 다닌 자들이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오래 다닐수록 조심해야 한다. 그러니 새판 짜기가 쉽지 않다. 그런 사람들에게 오늘 이것이 답이다.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흙 속에 뿌려져야 한다. 그냥 있으면 안 되고 내가 기도의 씨를 뿌리고, 겨자씨처럼 조그만 것이라도 뿌려야 한다. 그래서 이번 새판 짜기에 모두가 보라고 반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의 포스터를 걸게로 만들어서 걸어두었다. 새판 짜기는 '반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반고흐는 저렇게 그림으로 나타냈지만 우리는 씨를 신실하게 뿌리자. 뿌리되 믿음과 인내로 뿌려야 한다.
 
씨를 뿌리되 인내하면서 겨자씨 자체가 믿음의 행위이다. 너무나 작기 때문이다. 또 씨를 뿌려도 한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즉각적으로 싹이 나거나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봄에 뿌리고 바로 추수가 될 수 없다. 염천과 폭우와 바람을 견디어야 한다. 그런 그 씨앗이 오십 배 백배 천배의 결실을 내는 것이다. 씨를 뿌리되 인내해야 된다. 내가 뿌린 씨를 내가 보지 못할 때가 있다. 당대에 못 봐도 그 믿음으로 뿌리면 그 다음 대에도 된다. 결과에 대해서 염려도 말라. 그 씨를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너무나 신비한 것이다. 성령님이 하신다.
 
저는 이 말씀이 정말 맞는 것 같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너무나 억울하고 답답했다. 말 그대로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어 가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에 전국이 혼란했을 때 말도 못한 일들이 있었다. 제주 4.3사건이나, 여수순천사건을 우리가 함부로 해석을 하면 안 된다.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왜냐하면 여수 순천 사건을 함부로 해석하다가는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가 우습게 된다. 동일이 동신이 순교가 그 아들들이 우습게 되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님은 ‘사랑의 원자탄’이란 책으로 유명하듯이 자식을 죽인 아들을 양자로 삼는다. 믿음의 씨를 뿌렸다. 과거의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굶어죽어도 자식들을 신앙 속에서 제대로 교육하고 올바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믿음의 기도로 자식을 키웠다.
 
6.25때 낙동강 밑에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영적인 겨자씨를 뿌리고 그 어려운 가운데 천막치고 아이들을 교육했다. 그게 그런 씨를 뿌리지 않았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렇게 한국교회가 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에 신앙의 선배들이 그 겨자씨를 뿌리지 않았다면, 새들이 와서 먹는 것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멋진 씨앗을 예쁜 상자에 종류대로 담아두기를 말아야 한다. 안 뿌리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겨자씨는 너무나 깨알보다 작다. 한 번 보여주겠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미국에 있을 때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이 이 패를 만들어서 놓고 기도했다고 가져왔다. 그랬더니 사업 망한 것이 다시 상생되었다고 했다. 요새는 이런 것을 만들지 말라. 요즘은 메타버스 시대이니까...

 
*마태복음 17:20,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못할 것이 없으리라... 오늘 날 작은 겨자씨 한 알만 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긴다는 것이다. 그다음에 새판은 겨자씨 한 알 만으로도 사는 것이다. 진짜 중요한 것이다. 주의 성일 기억하고 시간을 지켜서 주님 앞에 올바른 제단을 쌓는 것이 겨자씨를 심는 일이다. 겨자씨는 올바른 예배, 아침마다 기도, 차별금지법,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 그것 다 겨자씨 뿌리면 앞으로 큰 나무가 되어서 유럽교회를 답습하지 않게 될 것이다. 본당에 오려고 한두 시간 일찍 나와서 줄서고 있는 것도 겨자씨를 심는 것이며, 광장에서 예배드리는 것과 정오기도회를 지키는 것, 내년 3월 9일까지를 위해 참 자유의 복을 갖는 지도자의 복을 주시라고 기도하는 것도 겨자씨를 심는 것이다. 북한은 혼자 김정은 자유가 있다. 나머지는 자유가 없는 것이다. 지금 자유가 없어지고 있다. 코로나 이 사태로 인해서 이제 유럽은 자유를 찾았다. 개인의 자유를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는 개인의 동선을 추적하고 경찰국가 만들어가지고
살아간다. 미국은 자유가 있어도 그렇게 개인을 침범하면 큰 일이 일어난다. 참 자유를 아는 지도자의 복을 주시라고 기도해야 한다.
 
II. 새판 짜기는 꿈 판짜기이다.

겨자씨의 은혜를 꿈 판짜기가 되어 다음 세대에 전수를 해야 한다. 어제 아침에 대학부 그들의 가진 꿈을 이야기 했듯이 88올림픽 어떻게 했다고 나누었다. 그때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우리 한국이 그렇게 되어야 하나가 되어야 한다. 굴렁쇠 굴릴 때, 대한민국의 굴렁쇠가 다 동이났다고 했다. 그게 모두가 한마음 하나가 되었다. 미국에 있을 때, 그것을 보고 감동이었다.
중국 사람은 세계에 어디나 중국음식을 가지고 나타낸다. 세계 곳곳마다 없는 곳이 없다. 일본사람들은 일본 무역상사 만든다. 한국은 세계에 나아가면 교회부터 세운다. 열가정만 모여도 교회를 세웠다. 너무나 신비하다. 훨씬 더 좋은 여건을 이민교회를 통해 얻었다. 그래서 글로벌화가 우리가 먼저 했다. 한국 교회는 이민 교회에 모여 예배드리고 애들 교육하고 했기에 그렇게 글로벌화가 된 결과이다. 인구가 훨씬 적지만 우리민족은 역동적인 DNA를 갖고 있다.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진 자들이 우리 민족이며, 누구도 BTS와 손흥민을 못 만든다. 3-40대 젊은이 하나가 아프리카에 휴대폰만을 가지고 갔다. 그 아프리카 사업이 번창했다. 전쟁의 폐허에서 겨자씨보다 못한 그 환경에서 컸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인 우리나라가 유대민족보다 아이큐가 더 좋다. 배움의 대한 열망도 더 높다. 또한 정이 많아서 살기 어려운 시대에 내 젖을 물려주었다. 새판짜기는 모판짜기이다. 우리의 연약하지만 이러한 강점들이 살아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랑글로벌 아카데미는 내년도부터 예배 대학원, 제자대학원 글로벌네트워크 대학원 텔레이오스, 유스아카데미, 집중적으로 젊은 대학생들을 제대로 훈련시킬 것이다. 한해 휴학시키고 6개월은 하나님 나라, 역사의식, 제자훈련과 아프리카와 런던에 가서 배우고 6개월은 우리나라에 전국에 다녀와서 제대로 키워야 함을 계획하고 있다. 어른들은 은퇴하신 어르신들 큰 나무에 깃들어 젊은이들이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여러분, 아무리 비참한 인생일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겨자씨의 꿈을 갖고 있는 한 다시 일으키시는 주님의 계획을 믿어야 한다. 이 겨자씨의 놀라운 씨가 뿌려져야 한다. 새판짜기, 모판짜기가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것이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아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있는 집에 태어난 것보다 가난한 집에 태어난 것이 오히려 더 큰 축복이라는 것을 지금 깨달아야 한다. 나중에 뿌리지 말고 지금 뿌려야 한다. 나이가 많은데,,, 핑계이다. 지금 뿌려도 늦지 않다. 그것은 하나님이 일하기기 때문이다. 신비한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지금 주님은 깨달으라고 하신다. 나중이 아니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러기엔 우리 인생이 아쉽다. 지금 어려울수록 오히려 더 설레이고 그래서 주님의 신적개입이 있어서 신실한 종으로 살기를 축원한다.
 
♧요약
하나님이 작은 겨자씨를 큰 나무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연약하고 항상 위대하신 주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시기에 초라하고 절박할수록 눈물로 작은 위력을 가진 겨자씨를 심어고 인내하여서 영적인 패배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산을 옮겨주시기에 우리는 새판짜기의 은혜로 베풀어주실 것을 믿고 꿈 판짜기의 겨자씨로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예배와 모든 영역에서 헌신적으로 신실하게 드려야한다. 그래서 겨자씨의 작은 꿈을 이루어가야 한다.
 
ㅡ겨자씨는 모든 씨보다 작지만 자란 후에는 많은 새들이 깃들게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는 처음은 미약하나 결국은 많은 결실을 거두게 된다. 누룩은 작은 것으로도 전체를 부풀게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천국 복음의 능력은 비록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 시대의 모든 영역에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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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1년 9월 11일)
제목: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믿음보고'’
기도: 심정선 권사님(고3 학생부,교사양육스텝), 강지훈 형제(대학4부 예배간사),
찬양: 이영주 집사님, 김준환 형제(사랑유스콰이어 교사, 졸업생), 피아노-이혜영
말씀: (민수기 14:7~8, 여호수아 6:6~7)
말씀읽기: 장회남 안수집사님, 송정숙 권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이민형(주일학교), 이기호(대학부)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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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4:7~8, 여호수아 6:6~7),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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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6:6~7),
6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가라 하고.
7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그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갈지니라 하니라.


 
▶이민형 부목사님(주일학교)
-어느 시인처럼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으리야!’ 코로난 엄중한 상황 가운데 우리 모든 성도님들께서는 밤이나 낮이나 주님 생각, 우리 마음의 고향인 ‘사랑의교회’, 그리고 안아주심에 본당을 늘 사모한 줄 믿는다. 세대차이가 없으며 한국교회의 강점을 배울 수 있는 믿음의 4대 토비새에 나온 모든 영 가족을 환영하고 축복한다. 특별히 다음 세대 사역의 현장에서 눈물의 기도와 목자의 심정으로 섬기는 주일학교 교사와 우리 대학부 리더들이 한 자리에 모였는데, 이 시간을 통해 우리의 헌신과 충성을 새롭게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우리가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가도 잠시 뒤를 돌아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을 가질 때가 있다. 이제 다가오는 추석과 같은 명절이 되면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셔 어른들께서 옛날이야기를 많이 해주신다. 꼭 ‘나 때는 말이야’, 란는 그런 부정적인 차원이 아니더라도 언제 들어도 힘이 되고 우리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있다. 다음의 세 가지 이야기는 확신하건데 이 자리에 계신 모든 성도님들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을 생각한다.
 
먼저 88서울 올림픽이다. 이전에 성도님들과 함께 영상을 보며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었다.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저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신기한 일들을 보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당시 굴렁쇠를 굴리는 그 장면을 보고 전국의 아이들이 동그랗게 보이는 물건으로 다 굴리고 다녔던 기억을 한다. 집에서는 주전자 뚜껑, 학교에서는 쓰레기통 뚜껑, 그래서 부모님들과 선생님들께 많이 혼나기도 했다.
 
두 번째는 벌써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가끔 TV에서 자료 영상이라도 보여주면 마치 어제 있었던 경기처럼 생생하게 기억나는 ‘2002년 월드컵’, 어느 특정 경기 하나만이 아니라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땀을 흘리며 최선을 다한 태극 전사들이 보여준 감동적인 순간들, 사람들이 모이는 곳마다 ‘대한민국’을 외쳤던 그 때, 말씀을 드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집중해 주는 우리 성도님들을 뵈며 얼마나 대단했던 일인지를 느끼게 된다.
 
마지막으로 소개해 드릴 이야기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성도님들과 저만 아는 순간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면, ‘사랑의 교회 창립 40주년’으로 기념으로 올려드렸던 ‘제16차 가을 특새’이다. 본당뿐만 아니라, 모든 부속실을 가득 메워, 말씀을 간절하게 듣고,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했던 순간, 그리고 특새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내 영혼의 풀 콘서트’, 모든 순서가 마치게 되면 내 영혼뿐만 아니라 내 육신도 풀로 채워주시는 글로벌 광장에서의 잔치 시간,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이 쏜살 같이 지나갔다. 하지만 그때의 은혜를 그대로 담고 있는 이 특새의 동판, 올림픽 메달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이 특새 동판, 제 책상에 올려놓고 오가며 볼 때마다 주셨던 강력한 말씀과 찬양, 올려드렸던 기도가 지금도 생각하면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당시 믿음보고 백일장 그림대회도 있었다. 주일학교 학생들이 은혜 받고 함께 참여 그림을 소개한다. ‘구원의 손길, 신적개입’이라는 제목으로 제출한 어느 학생의 멋진 작품이다. 성도님들이 보는 순간, 아!! 뭔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미대 입시를 준비하고 있던 한 학생의 믿음 보고였다. 어떻게 지내는지 지난주에 연락을 해보았다. ‘네, 목사님, 고등학교 졸업하고, 미대에 합격하여 열심히 미술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고 하며 지금도 대학부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정말 마음이 감사했다.
 
또 하나의 멋진 믿음 보고, ‘미래 이력서’이다. 당시 초등 3학년인 김주희 어린이, ‘저는 아픈 사람들 치료해 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의사가 되었습니다.’라고, 2041년 일어날 일을 미리 감사보고 한 것이다. 그림 밑에 보면 ‘제자훈련 했고, 부모님 말씀 순종했고, 큐티를 꾸준히 한다.’고 내용까지 함께 올려 드린 것을 볼 수 있다. 궁금해서 연락을 했더니 지금은 소년부에서 예배를 잘 드리고 있고, 부서에서 제자훈련도 잘 마쳤다고 한다. 주희양에게 물었더니, ‘의사라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이 친구가 이야기 하면서 ‘저 법 의학자, 프로파일러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 주희야, 꼭 그대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길 바란다.’고 축복하며 격려해 주었다. 비록 짧은 3년이 지났지만 올려드린 믿음보고 대로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을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해 주시고 계심을 확신하게 되었다. 당시 특새를 하루 앞둔 주일, 말씀 선포를 통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주셨다. 특새 홈페이지 내용에 정리 된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라는 정체성을 확인하며 영적 특공대와 영적 동맹군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셨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며 전 세계가 코로나로 이렇게 오랫동안 어려운 가운데 있을지 상상도 못했던 2018년 가을, 하나님께서는 창립40주년 믿음보고 특새를 통해 주의 자녀 된 우리 모두를 무장 시키시고 준비시켜 주신 줄로 확신한다. 우리 다음 세대 믿음 보고 출정식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몸 된 사랑의 교회를 은혜의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신 줄로 믿는다.
 
그러나 갈수록 심각해지는 코로나 엄중한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확진자수 증가, 집단 감염 등으로 ‘이것이 팩트’라고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마음을 여전히 흔들어 놓으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믿음 보고를 올려드리며 반드시 예배를 지키고 살리며, 우리에게 주신 성도로서의 본분을 다 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영적 보험이 되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님들에게 담임 목사님께서 말씀해 주신 영적 특공대와 영적 동맹군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회복을 넘어 부흥의 주역들로 쓰임받기를 간절히 원한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길 여정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물론 하나님의 계획은 완벽했다. 그러나 여전히 노예(奴隸) 근성과 죄 된 본성을 버리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기가 없다고 불평하고, 마실 물이 부족하다고 원망하는 등, 구원(救援)의 은혜를 너무 자주 잊어버렸다. 하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때마다 다함없으신 그 사랑으로 넉넉하게 공급해 주시고 인도해 주셨다. 이제 길고 길었던 약 40년을 광야시간을 마무리 하는 시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탐하라는 명령을 내리신다. 그런데 사실 정탐(정탐(偵探)꾼의 원정 사건 역시 처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적인 태도에서 나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근거는 신명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신명기 1:21-22,
21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22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리게 하자 하기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제 여러분,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고, 주저하지도 말라고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믿음이 부족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잠깐만요, 팩트 체크하고 갑시다.’, 이것은 마치 의심 많은 도마가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의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라고 말한 것처럼 여전히 불신앙적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모습을 성경기자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연악하고 부족한 모습까지 다 허용하시며 받아주시는 것일까?
 
우리는 그것이 알고 싶다. 그런데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지만, 하나님은 다 계획이 있으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오래전부터 약속하신 이 가나안 땅으로의 입성은 단순히 노예생활 가운데 고생한 그들을 격려하시기 위한 차원이나 마치 신도시에 우뚝 세워진 신축 아파트 입주하며, 내집 마련하게 하시는 그런 인간적인 차원이 아니라, 이들로 하여금 열방 가운데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선포하며 구원의 주님을 찬송하게 하시는 거룩한 도구로 사용되길 원하셨다. 이런 특별 임무를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이기에 하나님은 결전의 날을 이들의 불신앙적인 모습을 철저하게 드러나게 하시고 부족한 것을 채우고 이들이 말 그대로 영적 특공대로서의 정체성을 더 분명하게 하시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드디어 모세는 열 두 지파 가운데 한 사람씩 뽑아 정탐꾼을 세우게 된다. 그들의 이름과 명단은 민수기 13장에 기록되어 있다. 모세는 열 두 정탐꾼을 보내며 확인해야할 체크리스트를 그들의 손에 쥐어 주었다. 가나안 땅 전체를 둘러보라는 것, 그리고 그곳에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능력을 얼마나 대단한지, 그 땅이 사람이 살기에 좋은지, 뿐만 아니라 그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지, 과일도 가져오라고 한다. 드디어 모든 임무를 마치고 40일이 지나 정탐꾼의 보고대회가 열렸다. 보고자들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모세와 아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결과를 발표하기 시작한다.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과연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맞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마 환호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 증거로 직접 가져온 그 땅의 소산물까지 보여주었으니 사람들의 기대감은 더 크게 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감을 한 번에 꺾어버리는 보고가 이어진다.
 
*민수기 13:28-29,
28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오른 사람들의 모습과 달리 그러나로 시작하는 이 보고의 내용을 듣고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는 상황이 된 것이다. 상황이 심상치 않은 갈렙은 즉시로 ‘우리가 올라가서 우리가 그것을 취합시다. 능히 이길 것입니다.’라고 선포하였지만, 압도적으로 밀리는 분위기는 수습되지 않았고 심지어 백성들은 소리 높여 통곡하는데 그 내용이 가관이 아니었다. ‘우리가 애굽에서 죽었거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여기서 불쌍하게 죽게 되는구나!’ 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것이 말이나 되는 내용인가? 이 말도 안 되는 반응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출애굽 했는데 턴 애굽 하자고 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다. 열 명의 정탐꾼의 보고는 단 1도 틀리지 않는 팩트리포트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사실을 보고 앞에 마치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이 요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상황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두 번째 믿음 보고를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선포하기 시작한다. 오늘 함께 읽었던 본문의 말씀이다.
 
*(민수기 14:7~8),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이 강력한 믿음보고 앞에서도 흔들리는 백성들의 마음을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잘 알고 있다. 공의의 하나님은 끝까지 지키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벌(罰)하셨다. 하지만 반대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그분의 음성을 듣고 생명언어, 사명언어를 말한 믿음 보고자들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기가 막힌 일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이들이 누린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 같은 일들이 무엇인지 이제 대학부 팀장이신 이기호 목사님께서 계속하여 말씀을 전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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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대학부) 부목사님

(여호수아 6:6~7),
6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가라 하고 7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그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갈지니라 하니라
 
-무려 40년이 지났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은 지금 철통같은 여리고성 앞에 서 있다. 두 번째 함께 읽은 그 본문은 여호수아 6장은 여리고성이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도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성 안에서 나오는 사람도 없을 만큼 성문 빗장은 단단히 걸어 잠긴 상황이다. 피비린내가 나는 그 치열한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그 긴장과 고요함이 혹시 느껴지는가? 가나안 땅은 40년 전에도 지금도, 하나님 나라 백성의 진입을 단단히 막아서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40년간 많은 것이 또한 변했다. 40년 전에 한 지파의 지휘관이었던 그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정복 전쟁 전체를 책임지는 총사령관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하나님께서 지난 광야의 시간을 통해서 이전 시대는 세상 누구도 보지 못한 그 믿음의 세대를 친히 일으키시고 등장시키신다. 이 믿음의 세대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약속의 땅으로 나아갔고 승리하였고, 그리고 그 땅을 차지했다. 오늘 날 코로나 같은 이 시간 속에서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적 패배주의를 걷어내시고 하나님 나라를 든든 세워나갈 그 믿음의 세대를 오늘도 친히 준비시키시고 일으키실 것을 확신한다.
 
먼저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 세우실 믿음의 세계는 승리가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고백한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여호수아 6:2,
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
-그리고 이 약속을 받은 여호수아는 이처럼 단단히 걸어 잠긴 그 견고한 여리고 성을 앞에 두고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아가라고 명령하고 계신다.
 
*여호수아 6:7,
7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그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갈지니라 하니라.
-‘나아가다’의 단어는 여호수아 4장 22절에서 요단강을 건넜다는 하는 것에 사용된 단어와 동일하다. 마치 여호수아는 아무리 견고해 보이는 여리고 성이라고 할지라도 요단강을 그들이 건넌 것과 같이 우리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통과하게 될 것이고, 그 성벽을 오르게 될 것이고 정복하고 돌파할 것을 미리 보고 있는 것 같다. 전쟁의 승패는 우리 눈앞에서 성벽이나 그 성문이 얼마나 공락하기 쉬운지 그 성문이 얼마나 허술한지, 단단한지에 성패가 달려있지 않다. 전쟁의 승리와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만 달려 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 일상 중에서 특별히 가정에서, 일터에서, 섬기는 그 현장 가운데서 마치 꼭 막힌 것 같은 그 여리고 성을 상대하는 것 같이 너무나 견고한 그 어려움과 근심과 걱정을 마주하며 이 자리에 나온 성도님들이 계실 거라 생각된다. 바라기는 그 모든 견고한 성을 그의 백성의 손에 붙이시고 나아가게 하사는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의 약속을 붙드는 그 믿음으로 우리 각 사람을 붙들어주시고 세워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 믿음의 세대는 친히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함께 하시며, 친히 앞서 싸우심을 믿고 나아간다.

연구에 의하면 고대는 이 왕의 직위식이라든지 왕의 마을과 성읍에 그리고 견고한 요새화 된 곳을 행진을 했다고 하는데 이 행진을 함으로써 왕이 영토의 권리를 주장하는 그러한 의식을 치렀다고 한다. 오늘 본문 6장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그 언약궤를 상징하는 말씀이 열 번이상 등장하면서 언약궤를 중심으로 이 행진이 기록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여리고 성을 도는 이 이스라엘 백성들에 행렬을 살펴보면 제사장들과 그 언약궤, 그 호위하는 군사들이 먼저 선두 그룹을 이루고 그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렬을 보게 된다 . 하나님의 언약궤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할 때에 하나님께선 이미 여리고성과 그 가나안 땅을 향하여 하나님의 왕권을 선포하고 계신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전쟁과 전투 속에 그냥 홀로 두지 않으신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 백성과 함께 하시며, 함께 싸우시고,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왕권을 선포하는 그런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따라서 이번 가을 학기에 하나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고, 모든 다락방과 GBS 소그룹을 통해서 함께 예배하며, 믿음보고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나아갈 때에, 기도하고 소원하는 모든 영역마다, 그 간절한 기도의 제목마다 하나님의 왕권이 선포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처럼
 
첫 번째로 하나님이 세우신 상황이 아니라 바로 구원을 주시는 것에 주목하였고,
두 번째로 그 백성과 친히 함께 하시며 앞서 싸우시는 그 하나님을 따라 나아가는 것이다.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 믿음의 세대의 입술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 양각 나팔소리, 바로 믿음의 나팔 소리와 또한 믿음의 함성이 그 믿음의 세대의 입술 가운데 있었다.
 
세 번째로
성경에 나팔소리는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하나님을 향한 높은 찬양과 그리고 적들과의 전쟁 상황가운데서 이 나팔은 등장하게 되는데,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여리고성을 도는 동안에 제사장들로 하여금 나팔을 불도록 명령하셨다. 아마 여리고의 온 하늘과 그리고 온 땅은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과 그리고 전쟁을 선포하는 하나님 군대의 나팔소리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견고한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팔을 불 때, 그리고 나팔소리와 함께 믿음으로 외칠 때에 그때 비로소 무너져 내리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여호수아 6:20,
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너진 성벽을 보고 외친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그들 앞에 견고히 서있는 그 여리고 성을 향해서 외쳤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그 나팔 소리에 맞추어 믿음으로 외칠 때에, 믿음의 함성을 지를 때에, 하나님의 손에 붙이신 그 승리를 그 승리의 약속하고 경험하고 은혜를 이 믿음의 세대에 허락하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매주 토비새를 통해서, 그리고 주일예배와 다락방을 통해서, 믿음을 선포하고 믿음의 함성을 외치는 그 순간부터가 견고한 우리 눈앞에 바로 견고한 진이 비로소 무너지는 순간임을 우리 모두가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믿음의 세대는 현재 상황에 주목하지 않았다. 오직 그 손에 붙여주신 하나님을 주목하고 그 백성과 함께 하시며 왕권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을 따라서 나팔소리와 믿음의 함성으로 진격했다. 지난 시간을 잠시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는 때마다 사랑의 교회에 늘 기름 부으심이 있는 찬양을 허락하셨다.

 
축해 내 영혼, 시선, 나는 믿네 선한능력으로, 예수 산을 옮기시는, Way maker, The Blessing 축복 송, 날 자녀라 하시네, 그리고 지극히 높으신 주, 이루 다 열거하기조차 숨이 찰 만큼 때마다 찬양을 주시고, 높은 기도와 찬양으로 모든 상황을 돌파하게 하신 그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우리가 기억하면서 나아가길 소망한다.
특별히 오늘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나아가는 이 믿음보고 출정식’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고자 한다.
 
오늘 토비새 본당에 들어올 때 받은 두 개의 스티커가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사랑의 교회 믿음 특전단 마크이다. 그 마크를 왼팔에 붙여주고, 그리고 믿음보고 스티커는 가슴에 붙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세대는 결코 풍요의 시대가 아니라 바로 광야의 시대에 준비되었다. 오늘 이 시간 찬양과 기도와 그리고 믿음의 함성으로 나아갈 때에 가을 사역 앞에 놓인 모든 견고한 진이 무너지고 우리 모두가 회복을 넘어 부흥을 체험하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소원한다.
 
♣요약
영적 보험이자 영원한 언약인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여 이 코로나를 지혜롭게 극복하여 주님의 기쁜 자녀로 살아가며, 우리를 믿음의 세대로 부르시고 회복을 넘어 부흥을 꿈꾸며 사모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한다. 살아가면서 어떠한 견고한 진을 맞는다 할지라도 승패가 상황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구원을 주시며 승리를 주시는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를 갈망하며, 우리가 각 사람의 입술마다, 찬양과 믿음의 선포와 생명의언어가 가득하여 우리 모두가 회복을 넘어 부흥을 체험하는 믿음의 세대로 살아가야 한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소란해진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며, 하나님께서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니 여호와를 거역하여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했다. 열두 명의 정탐꾼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신앙에 입각한 보고를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망을 불어 넣어 주었다.
-여기서 여리고 성 주위의 이스라엘의 행렬, 그에 관한 여호수아의 명령에 관한 기사를 볼 수 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께 받은 그대로 지시하였고 백성은 이 명령을 어김 없이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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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1년 9월 8일)

제목: ''진정한 회복과 부흥을 소망하는 자에게''
말씀: (아모스 9:11~15)
찬양인도: 이원준 부목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조철민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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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9:11~15)
11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12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그 때에 파종하는 자가 곡식 추수하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14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15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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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회복과 부흥을 기대하고 있는가? 주로 회복이란 단어는 아픈 환자에게 수술을 끝마치고난 뒤 정말 회복되기를 소망한다고 할 때 많이 사용하는 단어이다. 병들어 있는 자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회복을 기원하고 소망할 때, 자주 쓰는 단어이다. 그 이야기는 원래 상태로 돌이키거나 원래의 상태를 되찾는다는 의미로 결핍되어 있는 대상에게 결핍이 해결되고 충족, 충만하게 하기 위해서 권면하거나 권고하거나 소원할 때 쓰는 단어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 가운데는 이런 결핍의 문제가 없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공간을 창조하셨다. 하늘과 땅 그 공간 안에 사람을 두시고 그 사람 가운데 충만히 거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들로 꽉꽉 채워 넣으셨다. 그런데 문제는 그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들로 꽉 채워진 공간 안에 사탄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죄가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어떻게 되겠는가? 온전한 공간에 틈이 생기게 되었다. 틈을 메우려고 하니 계속해서 죄가 하나, 둘, 셋, 나도 모르게 조금 누수가 생긴 줄 알았는데, 이제는 계속 누수가 생기게 된 것이다. 사실 지금 이 시대가 그렇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라. 만약 이 공간 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그 모습 그대로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면 우리는 회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왜냐면 그 자체로 주님 보시기에 너무나 좋은 공간 안에서 우리는 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대에 분명한 누수가 생김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회복을 소망하게 되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회복되면 부흥은 같이 따라오게 되어있다. 하나님께서 이 공간 안에 참된 회복을 원하시기 때문에 그 회복된 사람들이 함께 뜻을 모아 의를 구하고 간구하고 나아가면 그 공간 안에는 정말 폭발적인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그런 놀라운 역사의 부흥이 일어나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을 계속해서 소망하면서 나아가야 하는데 우리가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가 변화된 세상 속에서 너무 많이 적응해버렸다는 것이다. 회복은 충만한 상태로 복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 어느 순간부터 그냥 과거로 돌아가야만 하면 좋겠다는 단순한 회귀를 꿈꾸고 있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순간부터 기도를 바꾸어야 한다.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세상이 너무나 속히 진전되어 가기 때문에 우리가 소망해야 할 것은 회귀(回歸)가 아니고 회복(回復)되는 것이다. 그 회복은 본질로의 회복이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사람을 만드신 그 목적대로 충만하게 이 공간을 채워 넣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그 본질로의 회복이 우리가 소망하면서 꿈꾸면서 우리는 기도해야 될 줄 믿는다. 다시 한 번 질문한다.

 
여러분 회복을 소망하는가? 아멘인가?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을 보면 아모스가 사는 시대에도 회복과 부흥이 필요했다. 여러분 아모스가 누구이고 그가 선포한 말씀이 무엇인가? 살펴보자.
 
I. 우리가 소망해야 하는 것은 회귀가 아니라 회복이다.
 
 
아모스 1:1~2,
1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2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소리를 내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마르고 갈멜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여러분 시대적 상황을 잘 보아야 한다. 지진이 나고 하면 원인은 지구의 표면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것은 단층면에서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인데 지진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저도 떨림 현상만 보았고 그렇게 경험을 하지 못했다. 지진은 우리가 영상을 통해서 보면 사람들이 온전한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다가 흔들리니까 불안이 몰려오는 것이다. 불안이 몰려옴은 두려움이 몰려온다. 두려움이 몰려오면 어떻게 되는가? 나 스스로 이것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안절부절 하며, 모든 상황 가운데서 바로 떨게 되는 그런 현상이다. 그 지진년 이전에 아모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아모스는 전문적인 선지자가 아니다. 아모스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농부출신이다. 그 이름 가운데는 ‘짐을 짊어지다’ ‘운반하다’라는 뜻이 있다. 재미있는 표현은 본문에는 북이스라엘을 예언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남 유다에 있는 드고아 라고 하는 시골 마을에 있는 농부를 굳이 불러다가 뷱 이스라엘에 예언토록 하시는 것에 생각을 우리가 해보아야 한다. 이것을 이해를 하려면,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는가를 보아야 한다.
 
2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소리를 내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마르고 갈멜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이 표현을 보면, 목자 출신이고 농부출신이다. 목자로 하여금 북이스라엘의 말라있는 곳에 갈멜산 꼭대기 가운데 다시금 마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 드고아라고 하는 남 유다에 있는 자를 굳이 운반해서 그 짐을 지게 하려고 북이스라엘 땅으로 불러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서 이 사람을 불렀다. 북이스라엘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굳이 이 사람을 불렀을까?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시대를 떠올리면 풍요와 번영이다. 그만큼 물질로 충만했던 시기이다. 이 표현으로 잘 알 수 있는 본문이 있다.
 
*아모스 6:3~6,
3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포악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4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5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6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여기 잘 보면 재난이 닥쳐올 날이 피하려고 하면서도 스스로 재난을 피하지 않고 폭력에 날을 불러들이고 있다는 표현이다. 상아상 비파, 침상 이런 것이 풍요와 번영을 이야기 하는데, 이런데서 마음껏 누리면서 자신이 다윗이 된 것처럼 노래를 부르지만 재난을 피하려고 하면서도 폭력의 날을, 심판의 날을, 그들 스스로 불러들이고 있다는 것이며,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또 다른 표현이 있다. 풍요와 번영 속에서 살다보니 환난과 금심은 나의 일이 아닌 것이다. 나의 일이 아닌 것이다. 모든 것이 풍족했다. 모든 것이 넘쳐났다. 과연 이러한 그들이 회복을 원했겠는가? 태초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공간 안에 하나님의 뜻으로 채워 넣기를 원했을까? 그들의 풍족함은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을 메마르게 했다. 그들의 넉넉함이 하나님의 사랑의 갈급함을 사라지게 했다. 그들 안에는 하나님이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그 자리에는 무엇으로 가득 찼냐면 불의와 거짓으로 가득 차 있었다. 회복은 관심조차 없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으로 충만함을 얻는 부흥에 대해서는 소망이 없었다. 그랬기에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정리하시는데, 그 유명한 아모스서 5장에 있다.
 
*아모스 5::24,
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앞서 북이스라엘이 어떻다고 했는가? 목장이 말랐다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모스를 통해서 지금 무엇을 하시겠다고 하시는가? 물이 흐르게 하겠다는 것이다. 물이 흐르게끔 하는 근원이 무엇이라고 하냐면,
첫 번째 정의라고 한다. 미슈파트, JUSTIS, JUSTMENT, 심판하겠다는 것이다. -심판이 무서운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게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심판의 날을 기다려야 한다. 왜냐하면 구분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두렵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 날에 대해서 기대감을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과 구분하면서 야곱의 집, 자손, 이스라엘, 택함 받은 백성,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 받은 우리에게 구분되게끔 하시면서 다시금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하시기에 이 정의, 심판으로 물을 흐르게끔 하는 날을 우리는 사실은 기대해야 한다. 그리고 공의로 무얼 하시겠다고 하시냐면,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하겠다고 하신다. 말라 있는 곳에도 공의로 마르지 않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두 번째로 공의라고 한다. 제데카, lightjutis,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바른 것, 결국은 이곳에, 심판은 물처럼 흐리게 하고 옳은 것은 마르지 않는 것처럼 제대로 된 목장을 다시금 조성하시겠다고 시골출신 남 유다의 드고아에 있는 아모스를 통해 주신 메시지였다. 이렇게 생각하면 좀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마치 노아의 홍수가 생각이 나기도 하지만, 탐욕과 불의가 창궐하고 있는 그 시대에 진정한 예배를 위선적인 종교행위로 대치되고 있는 정의 불감증 시대에, 공의 불감증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그곳 가운데 이와 같이 물이 흐르게 하고 계속해서 마르지 않는 강으로 제대로 된 땅을 만드시겠다고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회복과 부흥을 위한 전제 조건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으로 가득 채우려고 하는 열망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회복을 위해서는 정의와 공의로 이 땅이 다시금 제대로 된 결실을 맺는 땅으로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먼저 하셔야겠다고 하시면서 진정한 회복과 정의를 위해서 반드시 이것이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회복과 부흥은 필요하다. 물질 만능주의로 살고 상대적 박탈감과 늘 비교하는 의식들이 팽배해지고 있고 코로나는 끝나지 않고 이제는 다 보편화되어 함께 교제하는 것에 대한 기쁨도 회복되어야 됨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익숙해져버렸다. 그야말로 다시금 물이 흘러야 되는데, 계속해서 메말라 있고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복음이 흘러가고 정의와 공의가 다시 세워져야 하는데, 이 땅에 교회를 향하여 주시는 말씀이 있는데 과연 그것들이 지금 현재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고민해야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빛과 소금된 말씀을 하신다. 세상 속에서 구별되라. 이 땅에 빛과 소금된 교회여, 세상의 소망이 되어라, 이 땅에 빛과 소금된 교회여, 거짓과 불의로 가득찬 세상에서 희망이 되어라, 바로 태초부터 내가 채워놨던 그 공간 안에서 거룩함을 회복하고 하나님께서는 흐르는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시는데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사실 우리의 모습만 놓고 보면,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서 벗어날 수 없으며, 거짓과 구분되었다고 말하지만, 한 쪽 발은 여전히 세상의 발에 담그고 있는 모습, 하나님께서 이 지면에서 멸하겠다고 하시는데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이 아모스가 우리에게 주는 희망을 주는 구절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아모스 9장 8절이다.
 
*아모스 9:8,
8 보라 주 여호와의 눈이 범죄한 나라를 주목하노니 내가 그것을 지면에서 멸하리라 그러나 야곱의 집은 온전히 멸하지는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께서 죄 많은 나라를 지켜보고 계신다고 하신다. 그러나 야곱의 자손은 완전히 없어지게 하지 않으신다고 하신다. 너희들을 그래도 붙잡아 주고 있겠다고 하신다. 교만한 자에게는 벌이 내려지겠지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겠다고 하신다. 회복과 부흥을 허락하시겠다고 하시며 다시금 그 땅 가운데 물이 흐르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그렇다면 진정한 회복과 부흥을 맞으려면 내게 재앙이 오지 않도록 간구하기 보다는 ‘주님, 나의 죄악과 불의를 고하오니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거룩하고 온전하고 구별되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말씀이 되게 하시도록 이렇게 합심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토대가 물이 흐르도록 다져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부터 하나님께서 놀라운 회복과 부흥을 허락하신다.
 
 
II.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회복과 부흥은 필요하다.
 
 
아모스 9:11,
11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자기 백성을 일으켜 세우신다. 하나님께서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겠다고 하신다. 가다르, 리페어 하신다는 것이며, 결국은 다시금 틈을 막고 보수공사를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집수리를 해보았는가? 자전거, 차, 집, 고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누구한테 맡기느냐가 중요하다. 잘 하는 데에 가야한다. 어설픈데 가면 다시 고쳐야 한다. 바가지 쓰고 만다. 이 보수공사를 지금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하신다. 여러분, 우리에게 적용하자면 우리 공동체를 다시 일으키고 교회 틈을 보수하시겠다고 하신다. 허물어진 부분을 일으키시고 재건하시겠다고 하신다.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 보수공사를 일으키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고린도전서 6:19~20,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의 몸을 성령의 전이라고 바울은 이야기 한다. 결국 재건하시고자 하는 것이 단지 공동체인 교회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을 재건하시겠다고 하신다. 몸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이다. 우리를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리페어된 몸으로 주님께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라는 것이며 진정한 회복과 부흥을 하려면 예배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 영광의 자리, 훈련의 자리가 다시금 살아나야 될 줄 믿는다. 틈을 하나님이 막아주시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자리로 우리의 몸을 온전히 드려야 한다. 그렇기에 하나님께로부터 보수공사를 받은 자, 하나님께 영공을 돌려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회복과 부흥을 위해선 반드시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다.
 
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신다.
②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먹이십니다. (13-14절)

*아모스 9:13~14,

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그 때에 파종하는 자가 곡식 추수하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14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곡식을 베자마자 다시 갈아야 하고 씨를 뿌리자마자 포도주를 마신다는 것이다. 계속 씨를 뿌리고 곡식을 계속 거두어도 그 땅 가운데 소출을 허락하시겠다고 하시며 무한공급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부어주신다는 것이다. 거룩함을 갖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샀던 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가 좌절하거나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걱정을 말라.
 
*마태복음 6:30~32,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신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줄 믿는다. 염려는 결코 우리의 주린 배를 배부르게 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배부르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도록 나의 모든 것을 다 드려서 진정한 회복과 부흥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염려로부터 근심으로부터 벗어나라. 내가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를 아무리 걱정해봐야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것만이 진정한 회복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먹이실 것이다. 모든 문제의 염려가 될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다.
 
③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영원히 지키십니다.(15)

*아모스 9:15.

15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기 보면, 자기 백성을 심는다는 것이다는 것은 그 땅에 정착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통치의 원리가 가장 잘 표현되어 있는 구절이다. 국가를 이루는 요소가 국민, 주권, 영토 가운데 제대로 자리 잡혀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이 주신 땅에 잘 심어놓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원리가 그대로 들어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원리로 잘 드러나 있는 구절이 또 있다. 여호수아서에 있다.
 
*여호수아 1:8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이 구절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원리를 바르게 세우기 위한 헌법과도 같은 구절이다. 심겠다고 하면 거기서 어떻게 거하는가? 율법책을 주야로 묵상하라고 하신다. 그 안에 가이드가 되어 있는 대로 잘 지켜 행하라고 하신다. 다시는 거기서 뽑지 않겠다고 하신다. 영원히 거기서 살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또 다른 구절에도 있다.
 
*학개 2:23,
23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1차 귀환을 이끌었던 그 스룹바벨이 여호와 족보 안에 들어가 있다. 너를 세우고 인장으로 삼겠다고 하신다. 옥새로 삼으신 것이다. 왕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왕족으로 삼겠다고 하신다. 신약에서 바울이 이야기 하고 있다. 로마서 8:15절에 있는 대로 아빠 아버지로 부르라고 하신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아멘,,, 성도 여러분, 진정한 회복과 부흥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오직 생명의 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옥새로 삼으셨다는 것은 그 자녀 된 기쁨을 나눌 수 있고 노래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회복과 부흥이 있을 줄 믿는다. 우리가 코로나 기간 동안에 ‘날 자녀라 하시네!!’~ 찬양을 불렀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자녀라고 하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 아버지께서는 자녀에게 그 땅 가운데서 왕의 족보를 따라 살게 하시려고 우리 가운데 오셨다. 아무 자격 없는 우리를 위해서 오셨다. 그분이 자녀라고 축복하시면서 우리에게 오셨다. 우리는 그 은혜로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아들이고 딸이고 그 사실을 기억하면서 나에게 회복은 반드시 일어나고 우리 교회의 부흥은 반드시 일어나고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 그 사실을 믿고 나아가는 그 믿음이 주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 우리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고 말씀으로 다시 회복시켜주시는 그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의 다음 세대 자녀들은 이미 현실 공간에서 놀지 않는다. 가상현실, 증강현실에서 놀고 있다. 하나님은 통치원리를 주시면서 오늘도 이야기 하신다. 내가 먹이고 입히고 세우겠다고 하시며 인장 삼아서 왕손으로 삼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이 공간에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원리는 하늘과 땅, 우주 만물 가운데 동일하게 일어날 줄 믿는다. 그러려면 다음 세대의 자녀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하나님이 너를 세우실 거야, 하나님이 우리를 먹이신다. 우리를 왕손삼아서 옥새로 예수님의 족보 가운데 세우셨다’고 그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우리 땅 가운데 정의와 공의를 흘려보내고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고 더 한 것을 드릴 수 있도록 우리의 본질을 회복하여 예배하고 훈련하고 증거 하는 일에 회복의 역사를 기도하면서 우리 모두가 합심해야 한다.
v. 진정한 회복과 부흥의 주체는 하나님, 인장 받은 백성답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자.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이 시간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것은 우리를 먹이시고 우리에게 선택받은 자로 힘과 능력을 주시고 이 땅 가운데 주님의 자녀로 당당하게 살기를 소원하니 말씀을 통해서 회복되길 바란다.
 
 
♣요약
진정한 회복과 부흥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니 오직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정의와 공의로 거짓과 불의를 제거해 주시길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코로나 가운데서 다시 보수공사를 하셔서 세워 주실 줄 믿고, 우리의 무너진 성전을 다시 고쳐서 회복이 되어야 하며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진정한 예배자로서 주님을 증거하고 무한 공급을 해주시는 은혜에 온전히 감사하며 회복과 부흥을 소망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며 그 틈을 막고, 퇴락한 것을 일으키며 옛적과 같이 세우고,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이는 심판 중에도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들은 남은 자로 구원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고, 구속 사역을 이룰 하나님의 백성을 제사장의 나라로 서게 하실 것이다. 이 약속은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기쁜 소식이 만방에 전파되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에서 실현될 것이다.

아모스 선지자는 여기서 모든 선지자들이 증거하는 하나님에 대해 증거하면서 그가 메시야의 왕국을 세움으로써 그의 교리를 위하여 큰 일을 하실 그 날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그 약속은 그리스도 교회의 설립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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