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2년 6월 18일) 
제목: “여호와께 좋은 것을 주시리라”
말씀: 시편 85:12
말씀읽기: 이형우자매(청년4국), 표정주형제(대학3부)
찬양인도: 남순장반(주보혈로, 왕께 만세)
대표기도: 지원정 안수집사님(군선교 마하나임 총무)


설교자: 최석환 목사님(육군 군종실장,한국 군종 목사단장, 대령-미군임)

사역나눔-김철우 목사님(한미연합사, 군종실장, 미군 대령)

이석영 목사님(한미연합사, 군종실장, 한국군 대령)
-------------------------------------------------------------


▶여호와께 좋은 것을 주시리라. ☞(최석화 목사님).

*시편 85:12,
12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Vision2030!!!영상-

 


여호와께 좋은 것을 주시리라. ☞(최석환 목사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사랑의 교회 담임 목사님과 우리 모든 성도님들 위에 함께 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먼저 옆 사람들과 축복하자.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은혜와 평강을 주시길 원한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 상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유명하게 하시길 원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함께 하시길 원한다.


비전 2030의 영상을 우리가 시청했다. 가장 먼저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시청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 우리 담임목사님, 주연종 목사님, 그리고 모든 목사님과 모든 만날 수 있는 귀한 영광을 하나님께서 주셨다. 오늘 저는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라. 이 말씀 한 구절이 여러분의 심비에 새겨지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히브리어를 가르쳐 드리고 싶다.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라. 이 말씀을 히브리어로 함께 한 번 해보자. “야훼, 이텐 하토오브”, (야훼는 하나님이시고, 이텐은 주시리리, 하토오브는 좋은 것을)“ 히브리어는 감이란 뜻이 포함되어 있다. 감(정말로, 진심으로), 야훼(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라. 우리 하나님께서는 군 선교를 위해서도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줄 믿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보면 여호와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인간은 변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변하지 아니하시고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시편 34:10,
10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다. 저는 군 선교를 한지가 27년차이다. 아들과 저의 군 선교 경력과 동일하다. 제가 군 선교를 처음 시작할 때, 아들이 태어났다. 아들 두 살 때에 그 아들에게 양파 링을 사달라고 해서 사주었는데 그 아이가 개봉을 못한다. 다시 저에게 주었기에 양파 링을 개봉해서 아이에게 주었는데 먹는 모습이 너무 맛있게 먹는 것이다. 그래서 손을 내밀었다. “아들아, 좀 줄래?” 했더니 그런데 그 아이가 봉지의 아구를 싹 잡는 것이다. 내가 방금 사주었는데, 인간의 사악함을 보았다. ㅎㅎㅎ그것을 다시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예 뒷짐을 지고 안 주었다. 제가 그래서 빼앗아서 정신 교육을 10분정도 시키려다가 완전히
울어재껴서 제가 주면서 이렇게 고백을 했다. “하나님, 이제부터 군 선교 사역을 할 때 양파 링에 집착하지 않겠습니다.” “양파 링을 주신 아빠 아버지에게 집중하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맞았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계급, 그 모든 좋은 것들은 다 그림자였다. Real reality!, 참 실재가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 아빠는 히브리어도 아빠가 아빠이다. 헬라어로도, 아람어로도, 한국어로도, 아빠가 아빠이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 우리를 잊지 않고 하나니 앞에 시선을 고정하고 나간다면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주실 줄 믿는다.

여러분
어떤 것이 가장 좋은가? 물론 건강도 좋다. 9988234라는 말이 있다. 이제는 9988231로 바뀌었다. 99세까지 팔팔하다가
이삼일 아프다가 다시 일어난다는 것이다. 하도 건강해서 그렇다. 그런데 건강도 좋지만 가장 좋은 것이 있다.


*시편 103:3-5,
3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해쎄드, 하나님께서 그런 면류관을 씌워주신다고 하신다. 그리고 이 모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며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그 말씀대로 그 평화를 누리며 그가 채찍을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도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말씀이 성취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죄책감에서 죄 사함으로, 그리고 지옥에서 천국 백성이 된 줄로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셔서 우리를 천국의 시민권자로 만들어 주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저는 여러분들에게 세 가지를 주문하고 싶다.
첫째는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고,
두 번째는 가장 좋은 것을 이웃과 나누고,
세 번째는 가장 좋은 것만 선택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길 원한다.
-여러분,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릴 수 있는가? 저는 여러분들에게 감사 찬양 전도를 말씀드리고 싶다. 우리 한 번 따라  해보자.
1감사 2찬양 3기도 4전도!! 그렇다. 감사 찬양 기도 전도!!!.


*출애굽기 23:19,
19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토지에서 처음 거둔 것, 가장 좋은 것, 저는 돈 들어가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다. 돈 들어가지 않는 것, 감사 찬양이다. 먼저 감사함이다. 저는 군종 목사로서 활동을 하면서 감동적인 시간이 너무 많았다. 그중에서도 병사 한 명이 감사헌금
봉투를 냈는데 여러분 이 작은 감사헌금 봉투에 감사헌금 봉투에 조금 밖에 되지 않지만 그런데 여기에다가 100가지 감사 제목을 적은 것이다. 감사헌금 봉투 뒷면에다가 기록한 것을 보면,

1. 교회에 와서 처음으로 특 송 하게 한 것에 감사합니다.

2. 특별히 군대에 와서 식사기도 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 제설작업 한 시간 만에 끝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4. 교회 가려고 하는데 비가 그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5. 
.
.
.
.
.
.
93. 좋은 목사님 주셔서 감사합니다.
-93번째, 그거 없었으면 오늘 이야기 안 했을 것이다.
100. 좋은 전우들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군대에 가면 마음이 연약해진다. 집을 떠나서 나그네 적 삶을 살고 부모님이 있지만 고아 적 삶을 살고, 애인은 있지만 과부 적 삶을 산다. 그 심령이 가난하게 되었을 때에 우리가 끝까지 감사의 제목의 기도를 드린다는 게~

93번째!!~~
100가지 기도제목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그런데도 쉽게 그들이 해낸다. 군선교가 그래서 중요한 걸 믿는다. 감사 찬양, 기도전도 ㆍ두번째는 찬양이다.
 
 
어떤 한 형제가 목양실 문을 노크했다. "재석아, 왠일이냐? 목사님, 저 연무대 교회에 가서 특송하고 싶어요." 그 재석이란 형제는 서울대 성악과를 나왔고 대학원까지 졸업을 하고 늦깎이로 서른 살 때에 군에 입대했다. 연무대에서 5주간 교육을 받으면서 나중에 "하나님, 연무대에서 특송하게 해주세요!" 그런데 상병이 된 것이다. 그래서 너무 다급해서 저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연결 좀 해주라고,,, 제가 연무대 교회 담임 목사님과 얼른 연락을 해서 자리매김을 해 놓았는데 그 교회 목사님이 프랭카드를 만들었다. '상병 임재석'이 온다고~ 서울에서 자신의 피같은 휴가를 내서 논산까지 간 것이다. 그 형제도 대단하다. 그리고 소개를 했다. 상병 임재석 특송을 하겠습니다~ 상병이라는 말에 훈련병들은 계급장이 없다. 너무 높은 계급이 나타나니까 3천 여명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충성"이라고 동시 다발적으로 경례를 하는 것이다. 우리 형제가 너무 감동을 받았다. "하나님 저는 전심을 다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은데, 하나님 어떻게 저를 단체로 경례를 받게 하십니까?" 정말로 그 이후에 그 형제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역에 힘쓰는 것을 보고 있다.  감사 찬양! 기도전도!

3. 기도이다.
기도 중에서도 가장 귀중한 것은 금식기도이다. 정말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할 수 있는 여러분이 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온 마음을 다해서~ 저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충성!!! 우리 재석 형제가 충심을 다해서 하나님 찬양을 위해 왔을 뿐인데 어떻게 이런 단체 거수경례를 받게 하십니까?

금식기도
여러분 하나님을 향해서 간절히 기도하여야 한다.

저는 갈등할 때가 있었다. 3일 금식기도를 할까말까? 그런데 수도정비단 가다보면 커피전문점이 있는데 거기서 엄청난 글자를 하나 보았다. '유금식 회계사 사무소!' 사람 이름이 금식이다. 하나님 앞에 금식 기도하고 얼마나 하나님의 그 친밀함을 느꼈는지,,, 금식기도 돈 들어가지 않는다. 감사 찬양 기도 전도!

군 선교이다.  저희 아들이 5주간 육군 논산훈련소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전도를 했다. 재건이라는 아이를 전도를 했는데 저희 부부는 기도했다. 저희 아내는 "하나님, 저희 아들을 수도권으로 보내주세요. 저는 기도했습니다. 될 수 있으면 저희 아들을 오지로 보내주세요."라고,,, 하나님께서 두 가지 제목을 다 이루어 주셨어요. 재건이는 제가 있는 부대로 왔다. 제가 신사임당을 주면서 영적인 아들로 키웠다. 그리고 저희 아들은 강원도 철원군 동성읍 오지리로 갔다. 교회 이름이 오지 교회이다. 여러분, 저희 아들이 받은 그 가나파의 한 곽을 그 재건이라는 형제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그 달콤함에 빠져서 실질적으로 세례도 받고 주의 자녀로 성장하는 모습이다. 군 선교 현장에서 볼 수 있는 너무나도 귀한 사역들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정말 감사, 찬양, 기도, 전도로 하나님 앞에 귀한 것을 올려 드리고 그리고 군 선교 현장 속에 귀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축원한다. 우리 오정현 담임 목사님과 함께 우리 귀한 성도님들이 100대 버스와 함께 오셔서 우리 연무대 교회에(나도 갔음) 큰 대형 스크린을 7억짜리를 기증해 주셨고, 또 최근에는 한 빛 교회는 2군단에 교육관 건축을 위해서 이억 원을 기부를 쾌척해 주셨다. 모든 선교활동들을 진심으로 잘 하셨다. 정말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한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군 선교 활동에 힘써 주시기 바란다.
 
갈라디아서 6:6절 말씀처럼 가장 좋은 것을 또 이웃들과 나누며 가르치는 자들은 모든 것을 함께 한다고 했으니 이웃과 가장 좋은 것을 나누시되 군 선교 현장 속에 여러분들의 그 모든 선교의 영향을 집중해 주셔서 나누어 주시길 소망한다.
 
*갈라디아서 6:6,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데살로니가전서5:21~22,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모두가 순결한 주의 신부가 다되시길 바란다. 햅시바의 여러분, 하나님의 기쁨인 하나님의 신부인 여러분들, 제사장들이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그 관문을 쓰고 사명을 감당했듯이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감사, 찬양, 기도, 전도,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의 이웃들과 나누고 가장 좋은 것만 선택할 수 있는 주님의 거룩한 신부님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요약
-오늘 주신 생명의 말씀인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니 생명의 열매가 있을 줄로 믿으며,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세상의 양파 링 같은 것은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앙망하고 군 선교에도 헌신하는 거룩한 신부가 되어야 한다.
                       ----------------------------------------------------------------------------------------------------------------------------


▶사역나눔- 김철우 목사님(한미연합사, 군종실장, 미군 대령)
-미국 분이신데 한국 사람이다. 목사님이 소개하심. 전 세계 미군 기지를 활동하신 분이셔서 이번에 한국으로 배치되었다. 군복은 미군이시다. 마군 복을 입으면 예전에는 대단 했었다.
 
-반갑다. 아침에 저 혼자만 일찍 일어난 줄 알았더니 이렇게 많이 새벽을 깨우고 나오신 여러분이 또 주를 찾으시는 여러분을 뵐 때, 속에서 힘이 난다. 오히려 큰 힘을 받는다. 사람은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오늘 우리의 제목으로 최 목사님 설교를 받은 저는 이야기 하고 싶다. “청년들이여, 아빠가 양파 깡 달라하면 드려라. 안 그러면 오지로 간다.” 오지로 가기 싫으면 주시되 오히려 더 사드리기 바란다.
 
어는 한 꼬마가 잘 날 체를 하려고 애들에게 “야, 사람들한테 눈물 나게 하는 새 야채는 양파뿐이 없어.” 어떻게 오늘 양파의 단어가 계속 나온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친구가 그 친구한테 코코넛을 얼굴에 던져 버렸다(냄새 독함).
 
지구는 우주에 떠 있는 하나의 행성에 불과하다. 2016년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만드신 눈으로 보이는 우주는 끝에서 끝이 260억 광년이다. 안 놀라는 것 같다. 여기서 부산까지 5분 만에 간다면 놀랄 것이다. 그런데 1초도 안 걸린다. 그래도 안 놀라는 것 같다. 왜 중요하냐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as far east as is far from the west), 동이 서에게 먼 것처럼 우리를 옮기셨을 때는 단순히 왼쪽에서 오른쪽이 아니고, 독도에서 송도가 아니라, 260억 광년, 된 것으로 죄악을 당기시다는 것이다.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목사님께서 비전을 새롭게 하신 것처럼, 회복뿐만이 아니라 회복에서 부흥으로 가는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국어사전에 보니 ‘우연’이라는 말을 인과 관계 없이 그냥 생긴 일로 정의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권과 정 반대되는 말이다. 제가 우연히 이곳에 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저를 이곳에 세우시고자 지난 25년 동안 군목으로 돌리시면서 이렇게 파병 두 번, 아프칸니스탄 한 번, 파병으로 젊은 나이에 전쟁을 체험했다. 그 때는 젊었는데 지금은 젊지 않다. 이 자리에 올 때까지 하나님께서 군 사역에 대해서 다시 하라고 하시면 다시 할 것 같다. 죽었다 다시 살아나도 군종 하라고 하시면 군종 하겠다. 전쟁터에서는 군종만큼 필요한 것 없다. 전쟁터에서는 무실론 자가 없다. 전쟁터에서는 “기도합시다.” 하면 다 모인다. 자기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고 죽음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두려운 속에 살고 있다. 밥을 먹는 것인지 공포를 먹는 것인지 모르는 상황인데 그 때에 우리를 살리고 견디게 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다. 성경은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하신다.
 
미국에 당권위자인 죠지 마셜이 이렇게 이야기 했다. (The soldier‘s heart, Tje soldier’s spirit, The soldier’s soul everything). 다 알지요? 군인의 마음, 정신, 영혼이 전부이다. 영혼이 군인을 받들어 주지 못 하면은 그 군인은 신뢰할 수 없고 자기와 지휘관과 가서는 나라까지 실망시킬 것이다.
 
요즘 우크라이나의 전쟁 상황을 쳐다보면서 지휘관들이 깨닫기 시작한다. 전쟁은 유형 전투력이 아니라, 무형 전투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더 깨닫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기도제목만 드리고 마치겠다. 최석환 목사님과 상의도 안 한 내용이다. 한 가지 저희가 할 수 없어서 여러분께 부탁을 드린다. 그것은 꼭 진행되어야 하는 내용이다. 한국군 안에 군종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엄청 부족하다. 제가 세 번의 파병을 다녀와서 훈련하는 가운데 이 상황 가운데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 군종의 사역이다. 여러분 기도해 주시길 바란다. 한국군 안에 군종 장교의 숫자가 늘어야 한다. 배 이상으로 늘어야 한다.
 
제가 어제 노트를 정리하면서 백점 만점에 18점을 드리고 싶다. 배 이상으로 증가되면 50점을 더 들여와서 98점을 드리고 나머지 2점은 저희가 더 훈련하고 겸손하면 백점을 맞을 것으로 생각된다. 할 수 있는 것은 저희가 하겠다. 할 수 없는 것을 부탁드린다. 한국군의 군종 장교의 숫자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길 바란다. 여러분들의 감을 잡으시기 위해서 말씀을 드리는데 미국 같은 경우에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생기기 1년 전부터 생긴 것이 군종부다. 미국은 1776년에 독립되었지만 미 군종부는 1775년에 생겼다. 지금 숫자로 따져보면 군종 장교 한 사람당 281명의 군인을 상대하고 있는데, 한국은 1100명이다. 한시에 천 백 이지만 전시에는 도저히 안 된다. 이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면 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엄청난 일을 행하셨고 또 제 뒤에 오시는 이석중 목사님도 하나님께서 엄청 일을 행하신 후에 저의 연합사로 보내주신 분이시다. 군을 사랑하시는 여러분, 나라를 사랑하시는 여러분, 최선을 다해 지키겠다. 저희 군을 위해서 계속 기도해 주시길 바란다.
 
♣요약
-이 아침에 나와서 마음으로 놀라운 비전을 채워주심을 믿고 앞으로의 군종 장교가 배로 많아지기를 기도하여야 한다.
 
                                 ---------------------------------------------------------------------------------------------------------


▶사역나눔- 이석영 목사님(한미연합사, 군종실장, 한국군 대령).


-합동 교단 출신이시며 귀하신 한미연합사를 하시니 우리 교단의 축복이다(담임 목사님 소개).
-제 앞에 2년 선배님의 말씀을 은혜롭게 받았다. 저와 사무실에 계시는 카운트 파트이신, 엄밀하게 말하면 저의 상관이시다. 실장님이시고, 저는 부실장이다. 앞에 분들이 다 말씀을 하셨다. 저에게 주어진 3분 ㅋㅋㅋ 스톰 워치를 누르고 시작하겠다. 근무하는 곳은 한미연합국은 요즘 용산시대가 열렸듯이 용산이다. 대통령님 계시는 바로 옆에 있다. 한미연합군 사령부는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인 1978년 11월 7일 창설이 되었다.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에서 발발할 경우 우리 한국군이 전쟁을 단독으로 수행하는 것이 조금 어려워 미군과 연합하여 승리하기 위해서 말 그대로 카운트 파트의 개념으로 조직이 되어 있는 곳이다. 한미연합군 사령부이다. 조직 자체가 한미가 대등하게 구성되어 있다. 사령관님은 미육군대장, 부사령관은 한국육군대장이다. 같은 계급이다. 부와 정을 같이 구성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와 상응하게 한국은 육해공해병대의 간부들이 있고, 또 미군도 육해공해병부대의 간부들이 같이 일을 하고 있다. 모든 참모가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유일하게도 군종 참모 분은 지난 43년 동안 올라오신 김철우 목사님이신 것과 같이 미 육군 대령과 군종부만 형성되어 있었고, 한 측은 카운트 파트가 없었던 상황인 채로 43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한국군은 인사 청 기능 안에 소령 목사님, 한 명이 연락장교로 귀속 보직 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에 작년 11월 1일 부로 수많은 기도로 국방부, 정치계에 계셨던 분들이 이 사실을 아시고 도움의 요청을 많이 하셨던 결과 한미연합군 사령부에 미군 대령이 있으면 한국분도 대령을 보직을 시켜야 된다고 하는 것이 국방부 장관님께서 말씀하셔서 제가 원래 다른 곳으로 저는 명령이 났던 사람인데 참 군 생활 25년 하다보니까 명령이 났다가 그 명령이 뒤집어져서 저쪽으로 가려는 사람을 잡아다가 이쪽으로 보내시는 그런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첫 주인공이 되었다. 그 사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우리 미군 목사님 올라오셔서 말씀하신 거처럼 군종 장교의 중요성이 많이 간과 된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러던 중에 대령하나 소령하나, 상사하나 다 여군인데 세 명이 보직되어서 제가 이 자리에 부름 받게 되었다.

각 작전 사령부와 협조하는 최고의 전투사령 연합사이며 군종 실에 역할을 정립해 나아가고 있다. 저는 사실은 목회로 지냈고 생명공동체로 세워서 우리가 교회이다. 목회만 25년 동안 하던 사람이었다. 국군중앙교회를 섬겼다. 그 목회하던 사람을 하나님이 부르심의 이유가 무엇인가? 없던 것을 만드셔서 부족한 사람을 보내셔서 하나님께서 기초를 닦게 하시는 것 같아서 이 또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귀한 기회이다. 누군가가 해야 되는 중요한 일인 줄 알고 최선을 다해 근무하고 있다.
 
*전도서 4:12,
12 “한 사람이면 폐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느니라.”
-혼자서 막지 못할 원수도 둘이서는 막을 수 있는 것처럼 한미가 연합하면 어떤 세력이라도 맞설 수 있다. 쉽게 끊어지지 않는 세 겹줄, 삼 겹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삼 겹줄, 하나님이 가장 중요한 것이 중심 가닥이 되시고, 거기에 한국군이 한 가닥, 미국 분이 한 가닥, 그래서 세 겹줄이 되었다. 한미연합의 군종 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란다.
 
 -----------------------------------------------------------------------------------------------
-바라는 모든 것들이 매우 풍부함이다.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좋은 것이라 함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좋다고 여기신 모든 것을 의미한다. 복음의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물 때 영광위에 영광이 더할 것이다. 우리 교회 모든 믿음의 4대가 군(軍)선교를 위해 마음을 모아 전심으로 기도하고 청년들과 군인장병들이 바른 신앙 안에서 대한민국의 병거와 마병으로 무장되기를 소원하며 우리 영가족들이 현장 예배와 다락방을 통해서 영적 기백과 결단을 가지고 시대에 도전과 세상의 위협을 정면돌파하여 다윗의 용사처럼 그리스도의 상승 부대가 되어야 한다. 주일예배에 더욱 은혜가 넘치는 현장 예배와 다락방 예배에 집중하자.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2년 6월 15일)

제목: "여호수아의 삶이 주는 메시지"
말씀: 여호수아 24:29~31
찬양인도: 오준석 부목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장명철 부목사님
------------------------------------------------------
 
*여호수아 24:29~31,
29 이 일 후에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30 그들이 그를 그의 기업의 경내 딤낫 세라에 장사하였으니 딤낫 세라는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이었더라.
31 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
------------------------------------------------------


▶오늘도 견고한 말씀에 의지하며 치유와 응답을 체험하는 수요저녁기도회에 오신 분들을 여러분을 환영하고 축복한다. 오늘 우리에게 합당한 말씀을 주실 줄 믿는다. 오늘 본문 여호수아 24장 29-31절까지 말씀을 드리겠다.
 
여러분 이번학기 수요저녁기도회에 설교의 주제가 일정하게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관찰력이 뛰어난 분들은 눈치 빠르게 알 수도 있다. 지난 한 학기 동안 우리는 온전 론의 다섯 가지 영역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말씀을 듣고 있다. 전혀 몰랐다는 분위기인 듯하다.
 
여러분, 온전 론의 다섯 가지 영역을 한 번 해보다.
첫 번째, 사고의 온전함,
두 번째, 감정의 온전함,
세 번째, 의지의 온전함,
네 번째, 행실의 온전함,
다섯 번째, 관계의 온전함.
이 다섯 가지가 온전 론의 영적의지인데 우리의 인격, 우리의 내면과 관계된 부분들이다. 뒤에 두 가지는 행실과 관계는 우리의 삶에 관계된 부분이다. 이 다섯 가지 주제 중에 오늘 설교가 어디에 속하는 것인가? 오늘 설교의 주제는 행실의 온전함이다. 그래서 제가 설교의 제목을 “여호수아의 삶이 주는 메시지”라고 적어보았다. 여러분,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여호수아의 죽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다. 그의 삶이 어떠했는가? 그가 남긴 영향력은 어떠한가? 이런 질문에 우리가 답을 하면서 그가 이 땅 가운데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돌이켜보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제가 지난 5월 초에 장례가 하나 있었다.  제가 우리 교구에 장례가 한 건 있었다. 70세 되신 한 권사님이 소천을 하셨는데 코로나 상황 때문에 제가 직접 심방(尋訪)하지는 못하고 두어 번 전화를 드렸던 그런 권사님이었다. 제가 이분을 살펴보니까 이 권사님이 두 자녀가 있는데 아직 자녀가 결혼을 안 했다. 그래서 ‘이번 장례에는 조문객이 적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낮 다락방에 순장님께 부탁을 드렸다. 이런 장례가 있으니 순장님들이 좀 참여해 달라고 요청 드렸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장례식장에 갔는데 깜짝 놀랐다. 너무나 많은 분들이 이미 와계셨다. 먼저는 1권사회, 2권사회, 우리 이 고인 되시는 권사님이 2권사 시절에 임원을 섬기면서 단기선교를 가셨던 함께 하셨던 분들이 와 계시고 우리 권사님이 교구에 순장으로 섬기실 때에 순원으로 함께 했던 여러 분들이 와 계신 것이다. 또 너무나 많은 분들이 와 계심을 보고 제가 위로 예배를 인도했다. 그리고 나서 한 분 한 분이 가족들을 보면서 인사를 나누시는데 이 고인 권사님께서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셨는지 눈에 선했다. 그래서 이 장례식을 바라보면서 ‘한 사람의 일생이 이 죽음의 순간에 이렇게 평가되고 있구나!’ 라고 생각을 해보았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여호수아의 죽음이 등장하고 있다. 여호수아의 죽음은 도대체 우리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오늘 본문에 발견하는 여호수아의 삶의 흔적들을 살펴보시면서 몇 가지 교훈의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먼저 29절 말씀을 한 번 더 보자.
 
*여호수아 24:29,
29 이 일 후에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여기에서 여호수아가 어떻게 소개되고 있는가? 여호와의 종이다.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종(從)이다. 이렇게 소개되고 있다. 사실 종이라는 단어는 딱 떼어놓고 보면 그렇게 호감(好感)이 가는 단어는 아니다. 종(從)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가? 우리 사극에 등장하는 종, 또는 하인, 서양사에 등장하는 노예(奴隸), 이런 분들의 이미지가 우리 마음속에 떠오를 거라고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우리가 누구의 종으로 사는가? 우리가 과연 누구의 종으로 사는가? 의 질문을 던져본다면, 종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여러분 이런 이야기 들어보았는가?
 
어떤 기자가 나사(NASA) ‘미 항공우주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 기자가 나사에 정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원에게 질문을 했다. “당신은 여기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이 때 경비원이 말하기를 “저는 달의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멋있다!. 반응이 없는 것 같다. 굉장히 멋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이 경비원이 자신 맡고 있는 경비원이라고 하는 직책에 자신의 정체성을 한정한 것이 아니고 그가 속해 있는 나사(NASA)라고 하는 그 기구의 존재 목적이 자신의 정체성을 합치시켰기 때문에 본문에 등장하는 종이라고 하는 말, 여호수아는 누구의 종으로 말하고 있는가? 여호와의 종이다. 여호와는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그분의 종으로 섬긴다면 우리가 그의 종으로 불림을 받는다면, 이보다 큰 영광이 있겠는가? 참 큰 영광 중에 하나가 그분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여호와의 종이라는 호칭이 사실은 모세에 붙여졌던 호칭이다. 
  
*여호수아 1:1,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여기 여호수아 1장 1절에서 누구에게 여호와의 종이라고 붙어있는가? 모세이다. 출애굽기의 말씀을 참고해 보면 사람이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모세와 하나님께서 대면하여 말했다. 라고 표현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할 수 없는 친밀한 관계를 허락하신 것이다. 반면에 같은 구절에 여호수아는 어떻게 소개되는가? 모세의 수종자, ‘모세의 수종자 여호수아’ 라고 소개되고 있다. 여러분 여기에 수종자라고 하는 이 단어를 히브리어로 찾아보면 ‘메샤렛’ 단어로 쓰여 있다. 기본적 의미가 ‘섬기는 자’ 라고 하는 의미이다. 쉽게 표현하면 ‘조수’, 우리 어른들이 표현하는 ‘시다’, 이런 의미가 수종자의 의미이다. 우리가 이 수종자라는 단어를 이해하는데 조금 더 도움이 되는 단어의 이야기가 있다. 지난주에 담임 목사님이 설교에서 언급하신 엘리야와 엘리사의 관계이다. 열왕기하 말씀을 보면 엘리사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한 것이 있다.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엘리사, 라고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여러분, 이게 무슨 의미인가? 엘리야가 손을 닦고, 엘리야가 손을 씻을 때, 그 옆에서 물을 부어주던 섬기는 역할을 하는 ‘엘리사가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호수아는 엘리야 옆에서 종처럼 섬겼다는 이런 의미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처음부터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종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여호와의 종이었던 모세를 섬기는 수종자, 그것이 바로 여호수아 출발점이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여호수아는 그게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여호와의 종’이라고 하는 불리어지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여호와의 종으로 살고 싶은가? 아니면 모세의 수종자로 살고 싶은가? 여호와의 종으로 살고 싶을 것이다. 저도 여호와의 종으로 살고 싶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처음부터 여호와의 종으로 사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처음부터 그렇게 살아내는 삶이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도 여호수아처럼 모세의 수종자로부터 출발해야 되는 것이다.
 
제가 벌써 15년째 사랑의 교회를 섬기고 있다. 세월이 참 빠른 것 같다. 저는 15년간 담임 목사님을 도우면서 담임 목사님의 목회 철학과 사역들을 지켜보고 배우고 있는데 제가 마음에 담고 있는 문장이 하나 있다. 무엇이냐면, ‘목회는 신발 정리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목회는 신발정리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인가? 우리가 지금은 편안하게 신발을 신고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우리의 선배님들이 교회를 섬기실 ‘때, 그 교회는 신발을 벗고 예배당에 들어가는 구조였다. 그래서 예배당에 찾아오시는 많은 분들이 신발을 어수선하게 벗어놓고 예배당에 들어가면 목사님이 그 신발들을 가지런히 정리하면서 예배한 참여한 성도들이 은혜 받도록 기도하시고 섬기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교회 안에서 훈련된 분들이 이 일을 맡아하면 더 좋은 일이고 목회자로서 말씀과 기도로 더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하는 이 섬김의 원리가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루아침에 여호와의 종으로, 존귀한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다른 사람의 손에 물을 붓는 작은 손이 누군가의 신발을 정리하는 작은 출발에서부터 우리는 실천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은 일을 감당할 때, 내가 지금 여호와의 사역에, 하나님이 존귀한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섬길 수만 있다면 우리 모두는 모세의 수종자에서 여호와의 종으로 변화되고 성숙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호수아의 삶이 어떠했기에 변화의 성숙이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우리가 그 이유를 30절 말씀에서 볼 수 있다.
 
*여호수아 24:30,
30 그들이 그를 그의 기업의 경내 딤낫 세라에 장사하였으니 딤낫 세라는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이었더라.
-여러분 이 구절에 두 번 반복되는 단어가 있다. ‘딤낫 세라’라고 ‘하는 지명이 두 번 반복된다. 사사기에 보면 ‘딤낫 헤레스’ 라고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데 ‘태양의 지역’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아마도 그 골짜기가 햇볕이 잘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30절에서 님낫 세라는 것에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세 가지로 찾아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딤낫 세라는 여호수아의 기업이었다.
두 번째 딤낫 세라는 여호수아의 매장지였다.
세 번째는 딤낫 세라는 에브라임 산지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성읍이었다.
-여러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여호수아가 어느 지파 사람인가?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다. 에브라임 지파, 여호수아가 에브라임 지파를 대표해서 갈렙과 함께 가나안 땅을 정탐(偵探)했다. 40일 동안 정탐했기 때문에 가나안 땅 구석구석 살펴보았을 것이다. 어떤 지역이 사람이 살기에 좋은가, 그렇지 않은가,를 명확하게 분석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호수아를 가나안 정복전쟁(征服 戰爭)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탁월한 리더쉽으로 가나안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 자신이 원하기만 했다면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과연 그랬을까?
 
오늘 본문 다시 보면, 딤낫 세라가 에브라임 산지 가셋은 북쪽에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딤낫 세라가 산지인가? 평지인가? 산지이다. 그렇다면 산지가 살기가 좋았을까? 평지가 살기가 좋았을까? 평지가 좋았을 것이다. 평지에는 물이 흐른다. 평야가 있다. 훨씬 평지가 좋은 곳이다. 게다가 가나안 정복 전쟁 당시에 에브라임 지파의 힘이 컸다. 그리고 제비뽑기를 했는데도 에브라임 지파가 가나안 땅의 중심부를 차지했다. 에브라임 산지에서 서쪽으로 쭈욱 펼쳐진 샤라 평지가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딤낫 세라는 에브라임 지파가 얻었던 그 성읍들의 목록에도 그 이름이 들어가 있지 않는다. 무슨 이야기이냐면, 여호수아가 에브라임 산지, 그것도 불모지(不毛地)였던 땅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여호수아는 그와 같은 선택을 했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여호수아 17장을 참고해 보아야 한다. 여호수아 17장은 요셉 자손,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가 모세를 찾아온다.
 
*여호수아 17:14-15,
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15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요셉이 볼 때, 그들에게 땅이 너무 좁다는 것이다. 더 넓은 땅을 달라, 요청을 하고 있다. 그 말을 들은 여호수아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여호수아가 지금 요셉 지파에게 강력한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땅이 좁으면 스스로 개척해서 땅을 넓히라.’고 하는 것이다. 이를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들은 그렇게 할 만한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이렇게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여호수아 17:16,
16 요셉 자손이 이르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나안 족속에게는 벧 스안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 하니.
-여러분 요셉지파가 주장하는 핵심이 무엇인가? 그들이 싸워야 될 상대가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당시는 역사적으로 청동의 시대이기 때문에 전쟁용 무기는 돌과 칼이다. 돌을 매끄럽게 갈아서 전쟁에 썼던 그 시대인 것이다. 그런데 요셉 지파가 상대해야 할 적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철 병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오늘날과 비교하자면, 소총을 들고 싸우는 이스라엘 부대가 전차와 장갑차를 무장한 브리스 족속과 싸워야 되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너무나 게임이 안 되는 말이 안 되는 싸움인 것이다. 바로 이때 여호수아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호수아 17:17-18,
17여호수아가 다시 요셉의 족속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18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였더라.
-정말 엄청난 기백이다. 놀라운 사실은 여호수아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에브라임 산지에 딤낫 세라를 개척하라는 것이다. 여호수아 19:50절 말씀을 보면,
 
*여호수아 19:50,
50 곧 여호와의 명령대로 여호수아가 요구한 성읍 에브라임 산지 딤낫 세라를 주매 여호수아가 그 성읍을 건설하고 거기 거주하였더라.
-여러분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여호수아가 딤낫 세라를 그 지역을 자신의 지역을 삼았다. 그 성읍을 건설해서 거주했다. 다시 말해서 여호수아는 말로만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그의 삶으로 본을 보여 주었던 리더였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우리 교회 식으로 표현하자면, 여호수아는 행실의 온전함을 가진 지도자였다. 이와 같이 행실의 온전함을 갖춘 오늘 날 우리 교회와 우리 사이에도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든다.
 
※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한 분 계신다. 이 분은 제자훈련과 가정교회라고 하는 사역을 통해서 지금도 굉장히 건강한 목회를 잘하고 있는 목회자이시다. 제가 신학교 때부터 목사님을 알고 뵈는데 한 결 같이 여전하게 교회를 섬기시는 분이시다. 제가 한 번은 목사님 담임 하시는 교회에 세미나를 참여한 적이 있다. 그 때에 여러 가지 은혜와 도전을 받았다. 그 중 한 가지 제 마음속에 남는 권면의 말씀이 있었다. ‘목회자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처럼 해봐요 이렇게”...이렇게 목회자가 말할 수 있어야 된다. 라고 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어렸을 때 부른 동요의 한 구절이다. ‘나처럼 해봐요. 이렇게’ 무슨 뜻인가? 목회자가 삶의 본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평신도 사역자들은 자신들이 일을 하는 대로 자신들이 들은 대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고 목회자가 보여준 대로, 목회자가 하는 것을 본 그대로 닮아가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이말 맞는 말이다.
 
제가 지난 주일 대면으로 다락방 심방을 했는데 순장님은 9년 전에 저와 함께 제자훈련을 하셨던 분이시다. 그날 다락방 심방을 하면서 식사교제도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가운데 순원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목사님, 저는 우리 순장님이 너무 좋아요. 왜냐면요, 순장님이 질문을 하실 때, 제가 엉뚱한 대답을 해도 칭찬을 해주시거든요. 그래서 너무 좋아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때 제가 이렇게 답변을 했다. “우리 순장님이 명문 제자 반을 수료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명문 제자 반, 제가 웃자고 한 이야기지만 사실은 굉장히 의미가 있는 말이다. 제가 훈련을 계속 진행하고 있는데, 훈련을 진행하다보면, 목회자의 질문에 아주 시원하게 정답을 하는 훈련생이 있는 반면에 가끔은 핵심을 벗어나서 대답을 하는 분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다그치지 않는다. “집사님, 정말 창의적인 대답을 하시네요. 제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그런 답을 하셨네요.” 이렇게 말하면, 그 말이 칭찬인 듯, 아닌 칭찬 같은 말로 들리게 된다. 그러면 훈련생이 그 말을 듣고 “아, 내가 좀 부족하구나.”를 생각하게 된다. 순장님이 그대로 적용했을 때, 다락방에서 그와 같은 반응이 나온다고 생각되었다. 여러분 우리가 속으로 잘 이해하고 지적으로 삼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득하는 그런 원리들이 오랫동안 기억하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바로 본이 되어서 보여주시는 것이다.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고 한 것을 말로만 지시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을 통해서 딤나 세라를 개척함으로 삶으로 보여준다. 그 사람이 바로 여호수아였다.
 
가끔 우리 교회에 오셔서 설교를 하시는 권성수 목사님이 계시는데, 그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2‘1세기는 실천적 지식인의 시대’이다. 라고 하셨다. 여호수아야 말로 정말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분과 저도 여호수아처럼 삶으로 본을 보여주는 21세기의 실천적 지식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지금까지 여호수아에 대해서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요약
모세의 수종자로서 시작한 여호수아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여호와의 종'으로 인정 받은 것처럼 우리도 섬김의 삶을 통해 더욱 삶으로 본을 보이는 행실의 온전함이 되어야 한다. 
 
-요셉은 약 200년 전에 애굽에서 죽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안식을 얻기까지는 자기 뼈를 무덤에 두지 말라고 명하였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요셉의 뼈가 든 관을 애굽에서 가지고 나와 광야를 행군하는 동안 줄곧 운반하였고, 가나안이 완전히 정복될 때까지 자기들 진에 간직하였었다. 이제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뼈를 그의 아버지 야곱이 그에게 주었던 세겜 근처의 땅에 안장시켰다. 아마도 이 장에 나오는 여호수아의 설교는 요셉의 장례식 설교와 자신의 고별 설교가 겸하여진 것일지도 모른다. 여호수아가 죽어 장사되어진다. 그는 여기서 여호와의 종이라고 불리운다. 모세가 죽을 때에 같은 칭호가 주어졌었다. 여호수아의 장지는 '가아스산 북편'으로 알려졌다. '가아스'는 '흔들린다'는 뜻이다. 유대인의 전설에 따르면 여호수아를 묻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그 위대하고 선한 사람의 죽음을 마땅히 애도했어야 하는데 어리석게도 그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꾸짖기 위하여 산이 울렸다고 한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주일예배(주후 2022년 6월 12일)

제목: "영감의 갑절을 구합시다"
말씀: 열왕기하 2:1~14
대표기도: 이한길 부목사님
챤양인도: 이원준 부목사님, 쉐키나, 영광찬양대
사회: 장광천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
 
*열왕기하 2:1~14,
1 여호와께서 회오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3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이르되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니라.
4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매.
5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6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
7 선지자의 제자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8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10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 수레와 불 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12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고.
13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 요단 언덕에 서서.
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오늘의 찬양을 주님이 받으실 줄 믿는다. 오늘 성령 강림주일을 맞이하여 영감의 갑절을 주옵소서! 엘리야의 대한 내용을 가지고 할 것이다. ‘영감의 갑절을 주옵소서.’는 무얼까? 의문이 있을 수 있는데 찬송가운데 ‘나의 사랑하는 책, 주의 선지 엘리야, 병거타고 하늘에 올라가듯’ 정말 주일학교를 좋은 곳에 나와야 한다. 주의 선지 엘리야, 병거타고 올라가듯‘, ~~ ♬
 
오늘 엘리야와 엘리사의 관한 말씀을 할 터이다. ‘야’와 ‘사’가 좀 횃갈릴 것이다.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야’가 스승이고 ‘사’가 제자이다. 엘리사가 제자이다. 구약은 율법과 선지자라고 하는데 율법의 대표가 모세이고, 선지자의 대표는 엘리야이다.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베드로와 야고보, 제자들이 변화산 선상에 올라가서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을 보았다. 예수님이 변화된 영광스런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오른편 좌우에 누가 서 있었는가? 엘리야와 모세가 서 있었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했다. 그리고 모세는 죽었다가 무덤에서 일어나는 성도들을 대표했고, 엘리야는 죽지 않고 승천 할 성도들의 대표자가 되었다. 그리고 엘리야는 이스라엘 나라는 전체 스승이었고 국사였다. 엘리야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열왕기하 2:12,
12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고.
-어떤 한 국가나 한 공동체를 보호하는 능력이 되었다는 뜻이다. 엘리야 때문에 이스라엘이 보호되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다른 사람이 국력이 아니라 엘리야 한 사람의 역할로 인해서 이스라엘이 병거와 마병으로 보호가 되었다는 것이다.
 
저는 젊은 시절에 우리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한 번씩 이렇게 이야기 하곤 했다. 우리 교회에 “하나님 아버지 병거와 마병이 될 줄로 믿습니다.”하고 “이 시대의 병거와 마병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하고 다녔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 내일을 기약할 수 없고 다 부족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교회와 민족의 병거와 마병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사실 이런 기도의 제목이 요즘 약해지고 메말라버렸다.
 
오늘이 성령 강림주일날에 제가 ‘영감의 갑절을 주시옵소서.’라고 했는데 이 영감을 받아서 무얼 할 것인가? 조크로 남편이 없는 할머니와 능력 없는 목회자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바로 ‘영감’이 없다. ㅋㅋ 영감을 받아서 여러분은 무얼 할 것인가? 내가 하늘을 펄펄 날 것인가? 영감을 받으면 무얼 할 것인가? 오늘 우리가 ‘이 시대의 병거와 마병이 되게 하옵소서!’를 하기가 쉽지 않고 하기 어려운 시대이다. 약해져 있고 메말라진 시대 가운데서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오늘 돌아갈 때, ‘주여 우리가정과 교회와 공동체와 시대 앞에 병거와 마병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해야 한다. 우리가 진짜 서운할 수가 있다면, 오늘 성령 강림 주일날에 너무 귀한 것이다. 그러면 영감의 갑절을 받아 이 시대에 병거와 마병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오늘 이 엘리야는 자기만 병거와 마병이 된 것이 아니라, 나중에 엘리사도 시대의 병거와 마병이 되었다.


*열왕기하 13:14,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저에게로 내려가서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가로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그래서 자기만 병거와 마병이 된 것이 아니라 자기 제자도 병거와 마병이 되게 만들었다. 

*열왕기하 2:8,
8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요단강물을 치니까 요단강 물이 말랐다. 나중에 14절에 보면, 

*열왕기하 2:4,
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제자 엘리사도 요단강 물을 탁 치니까 요단강이 마르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내용들을 보면서 자기만 병거와 마병이 아니라, 다음 세대, 소위 믿음의 계승을 해서 병거와 마병이 된 것이다. 

저는 한국교회의 부흥의 끝자락을 경험한 세대이다. 제가 끝자락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다시 회복이 되어야 하니까,,, 그러니까 저희들 세대만 은혜를 받으면 안 되고 저희 선대의 어른들, 저희 옥목사님도 저에게 그러셨다. "오목사, 불쌍하다." "왜요?" "아니 우리시대는 강남에 제대로 메시지 전하고 제대로 목회하면 다 교회가 부흥했어. 그런데 오목사 시대는 참 쉽지 않을거야." 저는 다음 세대가 불쌍하다. 왜냐면 하루에 인터넷을 10시간씩 15시간씩 스마트폰 보고 있는 젊은이들, 그 다음세대가 영감과 능력과 기름부음을 충만히 받을 것인지, 그리하려면, 우리가 어른들이 받았던 그 영감보다도 갑절을 받아야 되는 것이다. 그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첫번째는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주신 사명이 있었는데 

*열왕기상 19:16,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흘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겉옷을 가지고 믿음이 계승을 하는 것이다. 그는 엘리사가 그런 사명을 받고 난 다음에 한번 받은 사명을 끝까지 유지를 했다. 오늘 그 내용이 여기에 나와 있다. 그래서 오늘 첫번 째 생각할 것은 

I. 받은 사명 끝까지 붙잡고 완주해야.

-받은 사명 끝까지 붙잡고 완주하는 축복을 주셔야 영감의 갑절을 받는 것이다. 앞에 1절에 보니까 이제 엘리야가 

열왕기하 2:1-2,
1 여호와께서 회오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엘리야가 길갈에 가서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2절에 보면, 
*열왕기하 2:2,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여기 나오는 길갈은 요단강 지나서 열 두 기념비를 만든 그 길갈이 아니고, 여기는 이스라엘의 고원지대에 어떤 선지학교가 있는 아주 종교적 성지로 아주 평안했던 곳이다. 여기에 선지학교가 있었다. 우리나라도 경기도 광주, 전라남도 광주가 있듯이, 그런 것과 비슷하다. 이 길갈은 요단강 건너서 기념비를 만든 길갈이 아니고, 여기는 선지학교가 있었던 길갈이다. 이 길갈은 사무엘 선지자 때부터 아주 평안한 곳이었다. 거기 있으라고 하니까 "아 평안한 곳 좋죠, 제가 여기 있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라고 한다. 본인은 이제 벧엘로 가겠다고 엘리야가 말한다. 스승은 벧엘로 가게되어서 벧엘로 엘리사도 따라가겠다고 한다. 

벧엘에 갔다. 벧엘은 회복의 하나의 표상이고, 옛날에 야곱이 어려웠을 때, 벧엘에서 회복을 하고 또 벧엘에서 사닥다리를 보면서 하나님 집을 경험한 그런 회복의 장소이다. 회복의 장소 그곳에도 선지학교가 있었다. 너무나 어려운 시대이니까 엘리야가 가만 생각해보니까, 이 난국을 어떻게 파괴하겠는가 하고 생각해보니까, 현지 선지 생도들을 제대로 키워야 이 나라가 지켜지겠다고 생각하고 길갈의 선지학교, 벧엘의 선지학교를 세워서 벧엘에 있으라고 하니까 그냥 수용할수도 있는데, 엘리사가 아니라 하고 "나는 벧엘에 있지 아니하고 난 선생님을 따라가겠습니다." 한다. 

열왕기하 2:4,
4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매.
-그래, 하면서 엘리야가 여리고로 갔다.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오는데 여리고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곳이다. 아주 영광이 충천한 곳이었다. 여리고가 무너진 곳이고 여호와의 능력이 있는 곳이다. 거기에 엘리사를 생도학교에 머믈러 잇으라 하니까, 아니라 하며 내가 받은 은혜대로 스승을 끝까지 따라가겠다고 한다. 그래서 요단강까지 갔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죽음을 각오하고 요단강까지 따라 갔다. 따라가서 쭈욱, 머물라고 하는데도 계속 따라간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있다면 그걸 가지고 끝까지 집중하라고 한다. 엘리야가 가지만 엘리사에게도 자기 나름대로 스케줄이 있을 수 있다. 나름대로 계획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의 일정이 아니라 엘리야가 가는 곳, 끝까지 스케줄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히브리서 3장처럼,

*히브리서 3:14.
14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주심을 확신한다. 그것이 있으면 길갈의 평안도 우리에게 필요하고 벧엘의 회복도 필요하고, 한 때, 여리고의 영광도 필요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그 사명을 위하여 끝까지 집중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게 무엇인가?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드디어 요청을 한다. 왜 요청을 하는가하면, 스승 엘리야가 엘리사가  하도 기특해 가지고 
9절에 보면,

*열왕기하 2:9,
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너무 엘리사가 기특해서 구할 것을 구하라고 한다. 이렇게 계속 따라오니까 그렇다. 사람이 그러면 끝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무슨일이 일어나냐면, 구할 것을 주겠다는 것이다.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엘리사 입장에서는 그 당시 엘리야는 모든 능력과 은혜의 원천이었고 그래서 웬만큼 구하는 것은 다 주는 입장이다. 명예, 부, 여러 가지를 줄 수 있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엘리사는 그걸 구하지 아니하고, "당신이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내게 갑절이나 있게 해주십시오. "라고 한다. 성령의 역사의 갑절을 달라고 한다. 영감의 갑절을 주라고 한다. 다른 필요한 것이 많이 있었겠지만 가장 필요한 것이 영감의 갑절이었다. 

마치 시각장애인 바디메오가 예수님께서 "네가 너에게 무얼 주기를 원하느냐?" 바디메오도 이렇게 여러 가지 소유가 필요할 수 있었지만 바디메오가 딱 하나 있다. "주여, 내가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다. 우선 순위로 한 것이다. 그다음에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고 하신다. 그랬을 때 솔로몬에게 필요한 국가적 전략과 여러 가지 비전들이 다 필요했지만 솔로몬은 딱 하나 "지혜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했다. 그게 우선 순위로 구할 것이었다. 이 영감의 갑절을 달라는 것은 우선 순위로 그걸 구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하나님은 하나님 됨과, 성령의 능력과 기름부으심을 제대로 간절한 마음으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여러분 예를 들어서 우리를 구할 몸이 아픈 사람이 있는데 나를 치료해 줄 명의가 바로 옆에 있는데 우리가 그 사람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그 명의 옆에서 그냥 일반적인 이야기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면 안 되지 않는가? 이 명의 한테는 나를 고쳐줄 명의한테 내 병을 고쳐달라고 해야 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자리에 나와서 주님 앞에 예배드린다는 자체가 소원을 바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바랄 것은 "주여, 성령의 능력의 갑절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주 간절하게 직격탄을 쏘는 것이다. 


*열왕기하 2:10,

10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엘리야가 주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과 믿음의 계승은 하나님께서 주시고 결정하신다. 그러면서 영감의 갑절을 네가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체크하는 것이 하나 있다. 내가 하늘로 승천하는 것을 네가 직접 보게 되면 영감의 갑절을 보게 되면 영감의 갑절을 받는 것이고 내가 승천하는 것을 보지 못하면 영감의 갑절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을 말씀하신다. 
 
*열왕기하 2:11,
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 수레와 불 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을 그림으로 멋있게 이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다가 참았다. 이 시간 여러분이 마음으로 그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역사, 엘리야가 승천하는 광경을 여러분들이 마음에 한 번 그려보라. 그리고 그걸 마음에 소원을 가지고 그려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아니면 그냥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면 못 보는 것이고 마음에 소원을 가지고 믿음으로 열어서 
 
*열왕기하 2:12,
12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고.
-엘리사를 보고, 성경에 기록된 것이 예전의 이야기기 아닌가 하지만 오늘도 성령의 강림주일날, 우리는 우리 자신만이 살아가는 자가 아니고 우리는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님이신 구세주를 섬기는 우리의 영적으로 영안을 열어가지고 오늘도 성령께서 우리에게 영감의 갑절을 주시는 것을 믿고 믿음의 눈으로 보고 엘리사가 본 것처럼 보고, 엘리야의 능력을 계숭하는 것이다. 
 
*열왕기하 2:14,
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승천하고 난 다음에 그의 겉옷이 밑으로 떨어졌는데 그도 물을 치니까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요단강을 건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장면을 15절에 엘리야의 성령이 하신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 그것을 여리고에 있는 생도들 오십명이 그것을 보았다. 그리고 난 다음 엘리사는 영감의 갑절을 받아가지고 여리고의 물을 먹지 못하는 물이었는데 엘리사의 능력을 행해서 여릭의 물을 먹을 수 있도록 좋은 실과가 나올 수 있도록 되었고, 나중에 엘리사의 능력, 나아만이 병고치는 것 문제부터 시작해서 엘리사가 강력한 은혜를 받았고, 엘리야는 25년을 사역했지만 엘리사는 50년을 사역을 했다.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내려주셔서 요하스가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엘리사가 죽을 때, 너무 간절하게 이스라엘 왕이,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 병거와 마병이여, 그렇게 엘리사가 큰 은혜를 받게 되었다. 심지어 아람군대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진을 치면, 이스라엘이 미리 그걸 아는 것이다. 그리고 아람군이 진을 치는 것이 미리미리 다 알아가지고 다 하니까 아람왕이 너무 절망이 되어서 어떻게 저런일을 다 알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하니,
 
*열왕기하 6:12, 
12그 신복 중에 하나가 가로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이라도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 하는지라.
-영감의 갑절을 받아가지고 적군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엘리사가  알고 이스라엘 왕에게 이야기를 다 해준다는 것이다. 여러분, 이런 내용을 보면서 엘리사가 영감의 갑절을 받아가지고 또 하나의 국가의 스승이 된 것이다. 여러분, 우리 민족을 보호하는 것은 행복의 정도가 아니라 성도들의 영감의 갑절의 기도를 통하여 기도가 이 민족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특별하다.
 
여러분, 대한민국을 말할 때, 곧 6.25기 오는데, 그 6.25의 위기 가운데서 대한민국을 구한 것은 누구인가? 겉으로 볼 때는 이 분들이 와가지고 도와주어서, UN군이 와서 도와준 것 같지만 UN군, 미군이 어떻게 오게 되었는가? 투루만 대통령에게 한국에 있는 미국선교사들이 대한민국에는 100만 명이 간절히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고 그것을 들어달라고 했다. 투루만 대통령이 듣고 그래, 대한민국에 신실한 기도 자들이 백만 명이나 있어? 백만 명의 간절한 기도가 병거와 마병이 되어서 이민족을 보호한 줄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를 빼고 말할 수 있는가? 대한민국의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를 빼고 말할 수 잇는가? 성도들의 기도가 나라를 지키는 병거와 마병이 된 것이다. 오늘 이런 내용들을 이야기할 때, 어떤 희미한 그림자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이었다. 다시 한 번 이 기도의 제목이 회복하여야 할 줄 확신한다. 영감의 갑절을 받아서 이 시대에 모두가 다 병거와 마병의 역할을 해야 한다. '가정을 지키는 병거와 마병이 되고 교회와 이 시대와 하나님나라를 지키는 병거와 마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려면 우리가 몇 가지 적용을 해야 할 것이 있다. 
 
첫 번째 적용①: '때까지(Until)'의 은혜를 받아야.

*누가복음 24:49,
49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 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제가 볼 때는 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에 관한한 까지 이전과 까지 이후로 나눌 수 있다. 뭐냐면, 
오늘 이 자리가 능력을 입히 우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그러면 능력을 입히는 자리가 되면 그 이전과 능력을 입히는 자리까지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영감의 갑절을 사모해야 한다. 영감의 갑절을 통하여 이 시대의 병거와 마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엘리야와 엘리사가 계승된 것처럼 우리도 그런 계승의 은혜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간절한 것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바디메오가 눈뜨기를 원한 것처럼 솔로몬이 지혜를 원하는 것처럼 사막에서 물이 없어서져서 갈증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좋은 것은 무슨 좋은 차도 아니고 좋은 집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장 목말라 죽는 사람에게는 물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성령의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후의 은혜가 우리에게 확인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하라. 
 
두번째 적용②: 영적 전사가 되어야.

병거와 마병이 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영적 전사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는 에베소서를 보면 
 
*에베소서 6:12, 
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우리는 악한 영들을 상대한다. 지금 우리가 우크라이나도 문제도 심각하고 어렵지만 사실은 영적전쟁이 더 심각한 것이다. 그 일을 위하여 영감의 갑절을 사모해서 '까지'의 은혜를 받아서 영적 전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날마다 악한 마귀의 공격 앞에 방어에 급급 하느라고 난리이다. 한국교회가 보이지 않는 우리 무형교회, 우리 자신과 눈에 보이는 우리 한국교회가 이제 이 시대 앞에 이 치열한 영적 전쟁 앞에서 우리 교회가 영적 선전포고를 해서 먼저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공격을 받아서 날마다 긴장만 해서는 안 되고 우리 특별히 유형교회는 우리 자신 한 사람 한 사람이 영적 전쟁에서 병거와 마병이 되어서 
 
*고린도후서 10:4,
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영적인 선제공격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 이게 가능하겠냐고? 이것이 무슨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처럼 무슨 말의 제목으로 끝나면 안 되고 오늘 영적 전사에 대한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 영적인 선제공격을 하게 하시옵소서!" 날마다 당회의만 하지 말고 영적 선제공격을 해야 된다. 하나님께서 영감의 갑절을 주셔서 그 갑절을 통하여 "이 시대의 병거와 마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를 외치면서 기도해야 한다. 
 
 
세 번째 적용③: 시대를 향한 병거와 마병에 대한 소원을 가져야.
-영감의 갑절의 뜻은 영성운동가가 아주 통찰력 있는 이야기를 한다. 무슨 말이냐면 
 
※영감의 갑절이란 우리가 성령을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다. -오스월드 스미드-

-영감의 갑절이란 구약의 장자 권, 장자들은 두 배를 받는 것이다. 두 배를 받아가지고 배 두드리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장자는 집안의 책임이 있어서 그런다. 더 많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더 하나님의 능력을 위하여 더 주신 준비되기 위하여 영감을 주시길 소망을 해야 되는데, 성령께서 우리 갑절로 지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우리가 20%, 30% 성령님과 동행했다면 우리는 주께서 우리를 50%, 60% 올라가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성령님을 통해 주님을 구세주라 고백을 하지만 이 땅에서 매일 살아가는 것이 만만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삶의 현장 가운데 이전에 성령을 받았던 성령의 프리젠테이션 보다도 갑절의 지배를 받기를 원해야 한다. 60%, 70%의 지배를 받기를 기도하고 허락하신다면 80%, 90%를 주님이 주시도록 허락하심을 사모해서 성령이 나를 온전히 지배하시면 병거와 마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마음의 각오를 하자. 누가 나를 괴롭히든 말든 누가 나를 공격하든 말든 혹은 길갈과 여리고의 머물러 있으라 요청하던 말든 우리는 요단강을 건너서 사모하면서 정말 영감의 갑절을 주시길 소원해야 한다. 그리고 이 은혜가 내 세대로만 끝나지 말고 내 다음 세대로 이어가게 하여 주시길 간구하라. 이게 무엇이 되겠냐가 아니라 저는 젊을 때, 이 시대에 병거와 마병이 되기를 원한다고 소원했다. 내일에 대한 어떤 미래가 불투명한데도 불구하고 시대를 향한 병거와 마병의 섬김의 은혜를 주시길 원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마음의 소원을 갖고 아주 순전하게 하늘의 불로써 이 제단을 태워주시고 엘리야의 때와 같이 지금 태워주옵소서! 그런 우리는 찬송을 하면서 마음속에 주님이 영감의 갑절을 주시며 주님이 나를 더욱 소유하여 주시길 소원하자. 더 진정성을 가지고 간절함으로 소원해야 한다. 오늘 사랑의 교회 이 시간 참여한 여러분들이 이 시대의 병거와 마병이 됨으로 말미암아 한 사람을 통하여 나라가 구해진 것처럼,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을 통하여 한국의 미래가 결정되게 해 주시길 원한다. 전 세계 많은 나라들 가운데 대한민국은 정말 간절한 기도의 소원과 영감의 갑절을 체험한 나라이다. 우후죽순처럼 우리 선대의 어른들은 하늘에 불로써 능력으로 나를 새롭게 해달라고 그렇게 소원한 그 응답을 받은 민족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찬양을 통해 이 시간 영감의 갑절의 불이 떨어지길 소원하라. 그러면 여러분을 하나님이 붙잡으셔 힘 있기 살아가고 우리 앞에 문을 뚫어버리게 하시고 담은 뛰어넘도록 만들어 주실 것이다.

 
♬하늘의 불로써 이 제단 태워주옵소서. 엘리야의 때와 같이 지금도 돌과 흙까지 태우소서. !!~~♪
 
요약
갈의 평안이나 벧엘의 회복에 안주하지 말고 받은 사명을 끝까지 붙잡고 완주하는 평생이 되어야 한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온전히 소유하시는 영감의 갑절을 부어주셔서 우리 모두가 이 시대를 향한 병거와 마병으로 쓰임 받아야 한다. 엘리야처럼 다음 세대를 예비하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영적 전사를 키워서 영광스런 주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길 소원해야 한다.
 
-본문은 바알 종교와 일생 동안 투쟁했던 엘리야 사역의 최종적인 완성을 보여준다. 이는 또한 여호와 신앙의 최종적인 승리와 하나님의 구속사의 궁극적인 성취를 예표 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온 세상의 죄와 싸워 승리하시고 부활, 승천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 주님은 당신의 일꾼들에게 믿음과 소망을 불어넣어 주심으로써 기쁨으로 성역에 동참케 하신다. 성도들은 신앙 선배의 삶을 통해 구속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을 배워 나가야 하겠다. 엘리야에게 구한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갑절의 영감을 구했다. 그의 요구는 더 위대하기를 구한 것이 아니라 엘리야를 따를 만한 후계자가 되기를 원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구하기를 원하신다. 그러기에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가장 좋은 은사를 사모해야 한다. 엘리야의 승천은, 하나님의 뜻대로 산 사람은 사탄의 권세에 내버려두시지 않고 직접 자기 품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준다. 이것은 장차 영광스러운 주님 품으로 성도가 승천하게 될 것을 예표하고 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옷을 취해서 이는 엘리사에게도 그와 같은 능력이 주어졌음을 의미한다. 예수님도 승천하신 후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다. 주님은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시지 않고 그의 영을 보내사 교회와 세계를 지키신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2년 6월 11일)
제목: “사랑의 섬김이 있는 다락방”
말씀: 로마서 16:12
기도: 천동원 부목사님
말씀읽기: 모녀 순장님(윤혜숙어머니-포에버, 김정연 딸- 반포교구 순장님)
찬양: 인도-이원준 부목사님, 다락방연합합창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


*로마서 16:12,
12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오늘 이 새벽 현장 다락방 회복, 특별새벽예배를 주님이 기뻐하실 줄 확신한다. 조금 전에 성경봉독 하신 모녀 순장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리라고 생각하고 오늘 우리 연합 특송도 귀한 찬송도 감사하다. 오늘 미어터지는 줄 알았다. ㅋ ㅋ ㅋ우리가 교회가 크다보니까 개척교회이면 어떡하겠느냐? 그리고 개척교회라면 한 사람 한 사람 너무 소중할 것이다. 그러니까 말씀드리는 것은 우리가 대면 다락방을 회복 한다고 할 때 그냥 잘 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각 팀별로 전력투구(全力投球)를 해야 한다. 목양별로 잘 되면 좋다. 그리고 그런 개념이 아니고 한국교회를 살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목양 각 팀 사역자들은 다 이름도 드러나 있고 순장님들도 다 드러나 있지만 사실은 우리 교회 보이지 않는 무명 교회 성도 한 분 한 분도 중요하다. 오늘 본문도 12절에 누가 나와 있는가? 특별히 지금 로마서에는 26명의 사랑과 섬김과 헌신하는 사람들, 믿음의 동역 자들, 쭈욱 쓰고 있다. 정말 그 한 사람 한 사람, 다 설명하기에는 너무 많다. 12절에 그렇게 나와 있는 사람들 가운데 주목하는 것은 드루배나와 드루보사도 중요하지만, 여기 주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자가 버시에게 하라고 하고 있다. ‘버시’는 잘 모를 것이다. 그냥 숨겨진 성도이다. 그런데 바울이 이 버시에게 무어라고 이야기 하냐면, “정말로 수고를 많이 했다.”라고 한다. 많이 수고하고 사랑한다. 성경 안에서 ‘버시’는 여자이다. 본래 영어로는 ‘페르시스’이다. 별로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이 사실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전력을 다하여 수고하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사랑의 교회 목양 1-9팀까지 그리고 포에버까지 다 일어나라고 한 것은 어떻게 보면 익명성이다. 여기 내가 왔는지 안 왔는지, 내가 정성을 기울이는지, 누가 신경을 안 해도 주님의 은혜 때문에 내가 다락방에 어떤 영적인 아이덴티티(identity-정체성, 존재의 본질)를 가지고 “나는 이 다락방과 함께 나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이 다락방을 통해서 진정 다락방이 영적 변화의 산실인줄 믿습니다.” 라고 하는 지금까지 44년 동안 한결 같이 우리 모든 중직 자들과 또한 보이지 않게 어떻게 보면 거룩한 익명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오늘까지 온 것이다. 그래서 진짜 오늘 여기가 미어터질 줄 알았다. 물로 여기를 꽉 차게 하는 일도 감사한 일인데, 이 정도면 많지만 그래도 각 실마다 넘칠 줄 알았다. 목양 적 현실은 냉정하다. 사실 나는 오늘 아침에 익사이팅 했다. 다락방이 이제 철저하게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사랑의 교회는 다락방이 없으면 존재가 안 되는 것이다. 얼마나 다락방이 중요한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 제가 사랑의 교회 다락방, 몇 가지를 이야기를 하겠다.


1. 첫째, 다락방은 영적 변화의 산실입니다.
-정말 이렇게 되기를 원한다. 말씀과 기도와 영적 교제와 다락방 귀납적 설명과 이미 귀한 것들을 통하여 영적 변화의 산실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아이디이다.


2. 둘째. 다락방은 사랑의 교회의 모판이다.
-이 모판은 'Seed bed'이다. 그러니까 모판이다. 모판은 농사를 누가 짓는가? 그래서 순장님들도 그렇고 각 교구도 그렇고 이것 모판이 안 되니까 전력투구를 해야 되는 것이다. 오늘 이제 익명의 헌신이지만 오늘 이 귀한 시간에 마음을 가지고 왔으니 우리 영상으로 다 보여 주어야 한다. 지금부터는 다 모판이 되어서 영적 성장을 경험하고 교회의 흐름, 교회의 사역의 사명과 비전과 흐름들이 다 연결되고 다락방에서 준비된 사람들이 제자훈련의 지원도 받고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평신도 지도자로 성장을 해서 한 평생 오늘 버시와 같이 드루베나와 드루보사 같이 주 안에서 많이 수고 사랑하는 이런 은혜를 받아서 일평생 가장 값진 삶을 사는 것이다. 


3. 셋째. 다락방은 말씀과 기도로 생명의 계보를 이어가는 생명의 공동체입니다.
-저는 다락방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우리 교회 많은 장로님들이나 교회 중직 자들이 우리 다락방 순장들이 얼마나 많이 나왔는지 이 다락방의 순장 계보가 있고 믿음의 계보가 있다. 무슨 교회의 기득권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말씀과 기도의 생명의 계보인 것이다. 사랑의 교회가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사랑의 교회가 영적인 모판이 됨으로 말미암아 기도와 생명의 계보를 이어가야 된다. 그래야 생명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4. 넷째. 복음 전도의 교두보입니다.
-그래서 어떤 다락방은 우리 교회 지난 초창기부터 44년간 교회 오기보다도 다락방에 먼저 왔다가 교회 오는 사람도 참 많았다. 여기가 복음 전도의 창고가 되는 곳이다. 복음에 대해서 마음을 열고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다락방은 사랑의 교회의 복음 전도의 교두보이다. 사랑의 교회의 아이디이다. 우리 정체성이다. 흔들림 없는 우리 교회 다락방에 대한 집약된 우리가 가져야 할 정체성이다. 이 정체성이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이런 정체성은 웬만한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게 만들어 주신다.


제가 밤에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에 초대를 받아서 악키와 토라라는 대사가 있는데 어제 안식일 사바스를 함께 했다. 제가 놀라웠던 것은 대체적으로 백인들처럼 생겼는데 부인은 대학교수이고 박사인데 완전 중동 분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닌 듯 했기에 물어보니 예맨 출신의 부인이셨다. 중동 분인데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서 물으니 2천동안 주이시들은 자기들의 정체성을 가지고 세계 어디가 있어도 다 연결되고 알고 지낸다고 한다. 에티오피아의 주이시는 잘 모르지만 주이시라는 정체성만 있으면 다 알고 연결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토라, 성경교육 하나 가지고 주이시들은 결혼도 굉장히 소중히 여기고 결혼을 하면 보통 서너 명의 아이 자녀들을 낳고 이천 년 동안 서로 연계 감을 가지고 예맨의 주이시와 결혼을 한 것이다. 저녁을 같이 하면서 샬롬의 시간을 가졌다. 자기들의 정체성을 가지고 이천 년 동안 흩어져 있어도 서로가 결혼할 수 있는 그런 것이다.


우리 사랑의 교회 정체성은 굉장한 정체성이다. 한국의 수백 개의 교회도 만찬가지이다. 오늘 이 본산지인 우리가 조금 더 어머니같이 잘해야 되지 않겠는가? 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 다락방, 서로가 다는 몰라도 이런 보이지 않는 버시와 같이 드루보나와 드루보사와 같이 이 여성들처럼 이렇게 잘 감당해 낼 때, 앞으로 사랑의 교회에 연결된 수많은 제자훈련 교회에 격려가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격려를 주고받아야 되지 않겠는가? 이런 면에서 우리가 사랑의 교회 정체성을 회복하는 날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로마서 16:12,
12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모두 여성의 이름인데 드루배나와 드루보사는 주 안에서 수고 했다고 하고, 드루배나는 섬세함의 뜻이 있고, 드루보사는 고상한의 뜻이 있는 것을 보니 아마 쌍둥이나 자매로 보인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애쓰고 수고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버시라는 이 여성은 더 많이 수고하고 더 많이 사랑하는 이 버시는 페르시아 출신이며 드루배나와 드루보사는 아마 귀족이었을 것이다. 버시는 그 여종일 수도 있다. 여종이든이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수고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십자가의 능력, 보혈의 능력에 감사해서 우리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주님을 사랑하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21세기의 버시도 되고 21세기의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와 로마서에 나오는 자들이 귀한 섬김처럼 우리 사랑의 교회의 생명의 계보를 잘 이어가는 우리의 사역과 섬김을 통하여 한국교회가 이 코로나 펜데믹을 완벽하게 이겨내는 영적인 선봉장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각 목양마다, 각 팀의 특징들을 설명하는 시간을 갖겠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도 방송으로 들어온 모든 분들도 모두가 다 한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하기를 바란다.


-내일 주일예배는 성령 강림주일이다. 내일 모두의 마음 문을 열고 성령 체험을 하는 축복이 있는 시간이길 바란다. 내일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름 부으심이 실제로 체험되는 영광스런 주일예배가 될 것이다.


요약
우리 현장 다락방이 회복되어 3000여 다락방이 한마음으로 간절히 주님을 사모하고 예배하며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덧입어서 한국교회와 세계 복음주의 교회에 경천동지할 부흥의 대전환이 되어야 한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마가의 다락방과 같은 성령의 역사가 다락방마다 임하여 주님의 손이 함께 하시는 K부흥을 체험하는 현장이 되길 우리는 소원한다.
-바울은 그와 함께 동고동락하던 복음의 동역 자 혹은 여러모로 바울의 선교 사역을 위해 조력했던 성도들을 일일이 나열하면서 문안한다. 이처럼 사도로서 권위주의적 자세로 성도들을 주장하려 들지 않고 도리어 섬기는 마음으로 친형제와 자매처럼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자 한 바울의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의 겸손과 사랑을 느낄 수 있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주일예배(주후 2022년 6월 5일)
제목: “K부흥 가능한가?”
말씀: 사도행전 11:19-30
대표기도: 정상익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이원준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장광천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
 
*사도행전 11:19-30,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27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 사랑의 교회가 창립 44주년을 맞이했다. 그래서 오늘은 교회의 사명이 무엇일까? 우리 성도들 한 분 한 분의 신앙의 우선순위가 무엇일까? 오늘 본문을 통하여 세미한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소망한다.
 
오늘 설교제목은 “K부흥 가능한가?” 무슨 다큐멘터리 제목 같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붙인 이유는 부흥은 초대교회 역사부터 지금까지 보면, 부흥은 우리가 뭐 어떻게 하는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되는 것이다. 성령님이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면 성령님은 진리의 말씀을 주시고 인도하시고 생명의 역사를 허락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초대교회부터 보면 성령님을 통해 부흥의 역사를 통하여 부흥이 일어나는데 예수님께서 공생하시는 기간 동안 그 갈릴리에서 대단한 부흥이 일어났다. 그 갈릴리 지역에서, 그리고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다음에 오순절 성령강림의 강력한 역사가 예루살렘 교회에 임하였다. 그래서 마가의 다락방을 통하여 예루살렘 부흥이 일어나고, 그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이 지금 이 안디옥 교회와 연결되며 이 안디옥교회의 부흥이 성령님의 인도를 통하여 빌립보로 가게 하시고 빌립보에서 유럽의 부흥의 첫 발걸음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유럽의 부흥을 통해서 평양 부흥으로 갈 것이다. 그래서 제가 이름을 이렇게 붙여보았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부흥을 일으키실 때, G부흥이며... 갈릴리... 그다음에 갈릴리 부흥이 예루살렘 부흥으로, 그다음에 제2 부흥으로 제2 부흥이 안디옥교회 부흥으로, 안디옥이 앤티오니까 A부흥으로, A부흥이 빌립보 부흥은 P부흥이며, 그래서 우리에게 다시 와 P부흥인 평양부흥으로 오게 될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가 뭐 K푸드, K컬쳐, K드라마, K뷰티가 있지만 진짜 우리가 사모할 것이 K부흥인줄로 믿는다. 강남부흥도 G부흥이 되게 하시고 K부흥이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 이제 이 말씀이 시작되는 배경은 19절에 이렇게 나와 있다.
 
*사도행전 11:19-20,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이것이 이제 안디옥교회의 부흥의 시작의 재출발이 되는데 여러분 많은 경우 예수님 때문에 핍박 받고 환난 받고 고통 받으면 그건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새로운 부흥의 기폭제, 점화 장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스데반의 일로 예루살렘 교회가 큰 핍박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데반으로 인해 일어나는 환난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안디옥교회에 부흥을 일으킬 수 있는 어떤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생각의 틀을 바꾸게 하신다. 그래서 19절을 보면 당시의 이 생각의 프레임은 생명의 역사와 복음의 역사는 유대인끼리만 가능하다고 했다. 심지어 오늘 11장 앞에 10장에는 베드로조차도 그런 생각이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고넬료가 이방인인데도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하나의 예를 보여주시고, 그리고 그것을 안디옥에 이르러 몇 사람들이 요즘으로 말하면 강남사람, 강북사람, 인천사람, 일산사람, 이름 없는 이런 사람들이 생각의 틀을 바꾼 것이다. ‘아, 복음이 이방인에게도 전해질 수 있구나, 헬라인에게도, 그리스 사람에게도 전해질 수 있겠구나’, 이런 식으로 생각의 틀을 바꾸어 가지고 부흥이 일어나는 곳에는 항상 페러다임 쉬프트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 무명의 사람들이었다. 지난 44년간 사랑의 교회도 보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무명의 사람들이 이 부흥의 열망과 페러다임 쉬프트를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신 그 역사가 오늘 44주년 은혜의 주일이 된 것인 줄 믿는다. 이제 환난을 기폭제로 삼고 생각의 틀을 바꾼 사람들이 부흥의 시발점을 일으키게 되는데 진짜 부흥을 일으키는 강력한 엔진이 무엇인가? 뭐 부흥의 두 날개가 무얼까? 부흥의 강력한 슈퍼엔진은 이야기 하겠다. 이것이 사랑의 교회의 44주년을 맞이하여 교회적으로 또 어떻게 보면 이제 코로나 펜데믹 이후에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야하는데 이 부흥의 역사에 있어서 어떤 날개와 엔진을 달아야 할 것인가? 그래서 회복을 넘어서 부흥으로 가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지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11:21,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사도행전 곳곳마다 노른자위 같이 부흥의 역사가 있다. 노란 펜을 그어야 할 만큼 그런 부흥의 자리에 대한 표현은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이다. 그런데 그 이유는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이며 첫 번째는
 
I. 부흥은 주의 손이 함께 해야 부흥한다(성령의 역사).(21)
 
-성령의 능력과 역사를 말한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본문의 핵심은 주의 손이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더라. 여러분 다시 우리가 마음속에 강조하고 확인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부흥은 누구의 손이 함께 한다고 했는가? 주의 손이다. 가정도 개인도 그래서 용어를 하나 만들었다. 자수성가가 아닌 신수성가이다. 개인적으로 잘하는 것이 아닌 신수성가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셔서 부흥하는 것이다. 신수성가이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드리면, 오래된 사람들은 ‘그렇지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해야지, 당연한 것이지,’ 하며 너무나 당연시하고 실제적으로 주의 손이 함께 하시는 강력함이 뭔지를 잘 모르며 체득하지 못할 때가 많다. 다시 말하면 부흥은 주의 함께 해야 한다. 하나님의 손이 짧지 않으심을 오늘 우리가 경험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생활 오래 한 사람들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맞지만, 이것을 실제로 체험을 못한다.
 
민수기 11장에 보면, 백성들이 광야에서 출애굽해서 나와서 광야에서 어려우니까 애굽에서는 고기도 먹었는데 광야는 고기도 없다며 어디가 고기가 있느냐며 모세를 원망한다. 모세가 기가 막혀서 ‘이 고기를 어떻게 주나?’, 하나님께서 “그래, 내가 백성들에게 한 달 동안 그 입에서 신물이 나도록 고기를 먹여 주리라.”고 하셨다. 모세가 그 말을 듣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해야 되는데, 모세가 그 믿음의 고수가 안 믿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얼마 전에 홍해를 기적처럼 건넌 모세가 하나님께서 “내가 고기를 주겠다. 입에서 신물이 나도록 먹여주겠다.” 그래서 모세가 말한다.
 
*민수기 11:21-23,
21 모세가 이르되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22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장정만 60만이다. 여자, 어린아이들, 합치면 200만이 넘는다. 이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고기를 정말 풍성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가능한 것인지? 모세가 뭐라고 하냐면 모세 생각이 안 된다는 것이다. 23절에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내가 내 말이 너에게 그대로 응하는 것을 보리라.” 내 손이 짧으냐며 하시면서 하나님은 내 손이 짧지 않다고 하신다.
 
*민수기 11:31,
31 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 쯤에 내리게 한지라.
- 감이 안 잡힐 것이다. 진영 하룻길,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를 몰아가지고 어떻게 하냐면 사방 30킬로니까 동서남북이 30킬로씩 해서 거기다가 메추라기를 1미터씩 산처럼 쌓아가지고 그냥 여러분, 메추라기를 1미터씩 산처럼 수원까지 쌓였다고 생각해 보라. 별로 반응이 없는 것 같지만 이것은 너무나 놀라운 것이다. 모세가 두 손을 들었다. 모세 같은 고수도, 홍해를 건넌 사람도 주의 손이 함께 한다고 그랬을 때, 잘 믿어졌다.
 
특별히 오늘 44주년 우리 교회 초창기 때 있었던 많은 분들이 교회에서 기적 같은 역사를 많이 경험했다. 우리 오늘 우리도 모르게 약간 메너리즘에 빠진 그런 약한 성품이 있다면, 오늘 다시 어린 아이처럼 순전하게 돌아와야 한다. “하나님 주의 손이 함께 하는 기적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메추라기를 동풍에 몰아서 사방 30킬로를 1미터로 쌓아서 한 달 동안 입에서 신물이 날 수 있을 정도로 실컷 먹여주는 것이다. 호주에 여러 도시에서 특별히 호주가면 메추라기가 맛있다. 그 고기를 한 달 동안 200만 명이 주야장창 먹여준다는 것이다. 호주 시드니, 여러 도시에서 메추라기 요리가 있다. 엄청 맛있다. 닭보다 훨 맛있다. 여러분 그것을 2백만 명이 그냥 주야장창, 여러분 제가 강조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 우리도 모르게 이 순전함이 사라진 것이다. 주의 손이 함께 하시길 기대하자. 오늘 이 자리는 주의 손이 함께 하시는 현장이다.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 자체가 주의 손이 함께 하시는 증거이다.
 
이 안디옥교회는 주의 손이 함께 하셔서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와서 대 부흥을 일으켰다. 이 안디옥이라는 이 장소에 제가 두 번을 가 보았는데 그 당시 로마 제국 시대에 제 3의 도시였다. 두 번째 도시는 알렉산드리아, 세 번째 도시는 안디옥이었다. 인구가 50만 이상이 되었고 요즘 같은 부산 같은 항구이고 뉴욕 같은 항구였다. 여기는 상업이 발전되어 있고 대신 부패하고 타락한 도시였다. 그 부패하고 타락한 도시에 4세기에 유명한 설교자, 황금의 비의 설교자이자 교회 사가였던 ‘크리스소스톰’은 안디옥 교회가 얼마나 부흥을 했는지 안디옥 교회 출석이 십만 명이었다. 그것도 수평이동이 아니라 다른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시 오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완전히 회심성자이다. 그래서 기가 막힌 부흥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도 이런 부흥을 경험한 평양 부흥을 경험한 한국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이런 메추라기를 30킬로미터에 1미터씩 주시는 여호와의 손이 짧지 않는 그 은혜가 우리 가운데 접목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느끼는 것은 목회도, 가정도 자녀교육도 주의 손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주의 손이 함께 하지 않으면 헛된 것이다. 부모가 아무리 잘나고 잘 준비가 되었어도 자녀만큼은 마음대로 못한다. 부모가 좋은데 자녀가 문제가 나올 수 있고 또 부모가 형편없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 자녀가 하나님 앞에 나와 가지고 예수 믿고 하나님 손과 함께 하시면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제가 부모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그 자녀들이 혼자 예수를 믿고 잘 된 케이스를 말하라고 하면 저는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수많은 그런 사람들이 그런 많다. 여러분, 주의 손이 함께 하시므로 여러분들이 삶의 개인과 가정에 부흥이 일어나기를 원하다. 그러면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교회 내에 똑똑하다는 사람들 가운데 “주의 손이 다한다면 우리가 할게 뭐있나?”라고 한다. 그리고 요즘 이런 질문도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삶은 전적위탁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할게 뭐있냐고 할 수 있지만, 주의 손이 함께 하시면 할수록 할 일이 더 많아진다. 이게 뼈 때리는 이야기이다. 주의 손이 함께 하시고 우리가 주님께 전적 위탁하면 할수록 창의력을 주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통찰력을 주시고, 우리에게 더 귀한 일을 하도록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적인 계산과 생각을 가지고 신앙을 판단하면 안 되고 주의 손이 함께 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저는 어제도 “주여 내일 예배를 살려주시옵소서!” 여러분 저는 예배를 많이 드린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가정예배, 주일 예배, 등 수많은 예배를 드렸고 하루에 여섯 번씩 많은 예배를 드린 사람이지만 지금도 주의 손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매 예배마다 벌벌벌 주님 앞에 녹는 것이다. 말도 안 된다고 하지만 주의 손이 함께 하면 은혜가 있는 것이다. 모든 예배 가운데 “주의 손으로 내일 예배를 살려주시옵소서!” 한다. 주여 성령의 은사들을 오늘도 내려 주소서. 이 귀한 성령의 은혜와 축복들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기를 찬양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 내 생애가 끝나는 날 우리가 감사로 끝나게 해주시라고 해야 한다. 내 삶이 목표가 주님의 손이 함께 하여주셔서 내 삶의 부흥을 체험한 생애가 되도록 도우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한다.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한 번이라도 주의 손이 함께 하지 않으면 부흥을 언제 체험했는가? 저와 여러분의 생애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보통 사람들이 갖는 삶의 목표가 있다. 뭐 잘되고 정말 좋은 그런 인생도 다 구하지만 여러분 진짜 마음속에 주의 손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역사가 우리 가운데 체험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 지금 중요하다고 생각이 든다. “내 삶의 주의 손이 함께 하시므로 내 생전에 부흥을 체험하는 것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의 손이 함께 하심에 내 가정과 내 일터에 부흥이 일어난 줄 믿는다. 주여 성령의 은사들을 오늘도 내리어 주옵소서. 이것이 한국교회가 받는 독특한 영성이다. 이것이 첫 번째 부흥의 엔진이다. “주의 손이 함께 평생 함께 하는 부흥의 엔진이 되게 하옵소서.” 사랑의교회와 한국교회가 주의 손이 함께 하는 증거가 있도록 도우시길 기도하자. 두 번째는 24절이다.

*사도행전 11:24,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저 노른자위가 사도행전의 부흥의 중요한 기록이다. 그 이유는 바나바는 성령이 충만하다고 했듯이 이름 없는 무명의 사람들을 통해서 개척한 멤버들인데, 그중에서도 그분들뿐만이 아니라, 바나바라는 저 사람의 신앙 인격 때문에 착한 사람이라는 것은 본래 성품이 착한 사람이다. 참 법 없이도 살 수 있다. 이런 좋은 성품과 거기다가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의 어떤 자연적인 인격과 그의 성령과 믿음의 인격이 잘 조화가 됨으로 말미암아 바나바의 신앙인격 때문에 부흥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분명이 능력이다.
 
II. 바나바 같은 신앙 인격자를 통해 부흥한다(성령의 사람).(24절)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될 때에 교회는 부흥하는 것이다. 교회 내에 보면 어떤 분들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물론 속은 안 그렇지만 겉으로 볼 때는 정말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분들도 있다. 문제는 이런 분들이 소위 영적인 은혜라 할까? 영적인 센스라 할까? 감각은 무디고 느려터지는 분들이 많다. 사람은 착하고 좋은데 말씀의 은혜와 생명의 역사와 성령의 은사와 신앙의 복음과 이런 것들이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듣는다. 새벽기도의 은혜와 뭐 영성이 있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그리하는데 새벽기도 갔다가 오는 길에 남의 밭에 들어가서 호박하나 딱 따서 가지고 집에 와가지고 된장찌개 끓여 먹으면서 “주여 감사합니다.” 이러면 되겠냐고??? 이게 말이 아닌 것이다. 한국교회가 이제는 140여년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바나바와 같이 자연 인격적인 성품과 어떤 기름부음의 충만함과 신앙의 인격의 두 가지가 잘 조화가 되어서 부흥의 원천을 새롭게 경험할 줄로 믿는다. 어떤 분은 교회서는 은혜도 많고 축복도 많은데 집에서는 아빠, 엄마로서 존경을 못 받는 것이다. 가슴이 아프다. 우리는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자연인격과 신앙인격이 조화가 되어가지고 우리가 부흥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 한 분 한분을 붙잡아 주시길 원한다. 그러면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다. 그 다음에 착한 사람이라는 것이 추상적인데 이것을 구체적으로 23절에 설명을 하고 있다.
 
*사도행전 11:23,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성경에서 바나바의 자연인격과 신앙인격을 구체적으로 세 가지 동사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는 은혜를 본다. -witness, 은혜를 본다.

두 번째 기뻐한다. -rejoice.
세 번째는 권하다. 잘 권하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이 44주년을 맞이하면서 다시 한 번 기도제복으로 삼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면, 이 방송과 여기 참여한 모든 분들은 “하나님 아버지, 평생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은혜를 보는 자 되게 하소서. 그리고 함께 기뻐하는 자가 되게 하여주시고 남들이 앞세우는 자 되어야 한다. 바나바가 바울을 앞세우듯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앞세우고 권면하고 스카웃하고 세워주는 그런 사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첫 번째는 은혜를 본다. -witness, 은혜를 본다.  바나바의 이름은 권면하다. 권위의 아들이다. 위로하는 아들이다. -son of consolation.
은혜를 본다는 말이 뭐냐면, 안디옥 교회는 개척교회였다. 개척 교회는 문제가 많다.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 개척교회에 문제를 먼저 본 것이 아니라 은혜를 먼저 본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흥하고 성령이 충만하고 내 인생의 가치와 보람을 갖고 살기를 위해서는 은혜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첫 번째는 우리는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우리는 수많은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은혜가 눈에 보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남의 단점보다 장점이 보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떤 사람은 진짜 미스터 폴더 파인더, 그냥 단점만 발견하는데 전문가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하시옵소서!~
 
두 번째는 기뻐한다. 남 잘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썩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경쟁 사회에 살다보니까 한반도 오천 년을 살다보니까 우리는 경쟁구도이다. 왜냐면 남이 내 파일을 가져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 남 잘 되는 것을 기뻐하지 못한다. 한국 사람들은 밥 먹으러 가면 화장실을 못 간다. 화장실 가 있는 동안에 씹기 때문이고, 그리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8촌이 땅을 사면, 그냥 샀구나, 남이 땅을 사면 꽃다발을 가지고 가는 것이다. 남 가까운 사람끼리 상처를 주고받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생애를 다하는 그날까지 우리가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했는데 가까울수록 남들을 기뻐해 주고 그들과 함께 기뻐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우리가 권했다. 착한 사람이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다는 것은 좀 추상적인데 이것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는 은혜를 보는 것이며, 기뻐하는 것이며, 권면하고 위로하는 것이다. 여기 대표적인 것은 25절에 나와 있다.

 
*사도행전 11:25,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사울은 그 당시 사도행전 9장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다가 꺼꾸러져가지고 자기 고향에 가서 다소(터키)에 가서 사울의 고향인데 바울의 우물물이 지금도 있다. 그런데 안디옥에서 다소까지 택시로 몇 시간 걸린다. 먼 거리이다. 거기를 바울을 데리러 갔다 오는 것이 보통 정성이 아니다. 그런데 바울을 바나바가 데리러 간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을 아니까, 자기는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라서 아주 그냥 앗사리 하고 강력하고 분명한 리더쉽을 원하는데 자기보다 더 사울이 더 좋겠다고 생각하고 정통 신앙과 말씀의 깊이가 더 잘하는 것을 자기가 알고 사울을 데리고 오면 더 좋겠다고 이리 생각한 것이다. 자기가 데리러 가는 것이다. 그게 쉬운일이 아니다. 혼자 있으면 자기가 안디옥 교회에 리더이다. 그러면 나중에 11장과 13장부터는 그 전에는 바나바와 바울이었지만 바울과 바나바로 바뀐다. 바울은 능력, 리더쉽, 성경에 대한 깊이, 생각하면 안 데리고 오고 혼자하려고 하는 마음이 왜 없었겠나? 이 바나바는 부흥을 경험하는 사람이다. 부흥의 능력의 원천인 사람이니까, 권면하고 위로하는 사람이니까, 남이 잘되는 것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바울을 데려와서 리더를 만든 것이다. 남을 성공시키는 자이다. 사랑의 교회는 오래된 형제자매들, 같이 은혜를 보고 기뻐하고 권면하는 부흥의 현장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 K부흥을 위하여 내가 데려올 바울이 어디 있는가? 내가 스카웃 될 바울이 어디 있는가? 내가 앞세워야 할 바울이 어디 있는가? 그래서 바나바처럼 이 신앙인격은 부흥의 불길을 일으키는 점화장치와 같다. 스파크를 일으키는 것이다. 시편을 보자
 
*시편 24:3,
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하나님을 체험하고 영적인 갈망이다. 여호와의 산에 오르는 것은 하나님 만나려고 그런 것이다. 하나님께 내 삶을 튜닝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내 삶을 가득 채우는, 부흥을 체험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인가? 부흥의 산에 오를 자 누구인가? 부흥의 장소에 설 자가 누구일 것인가? 오늘 우리의 마음의 소원에 하나님 우리 모두가 다 부흥의 산에 올라가길 소원한다. 어떤 사람일까? 4절에
 
*시편 24:4,
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순전한 신앙인격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우리의 신앙의 인격이 부흥을 통하여 다듬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여러분, 한국교회의 지금 윤리 문제를 많이 이야기 하는데 윤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기독교 윤리는 유교적으로 또 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 기독교 윤리는 부흥을 체험해야 해결되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평양부흥을 경험하고 나니까, 거기에 축척제도, 노비제도 거기에 어떤 불의한 물질의 부의 문제들이 부흥을 체험하고 나니까 자연스럽게 축척제도 노비문제, 수많은 물질로 인해서 부흥을 경험하고 나니까, 은혜를 받으니까 자연스럽게 마음의 인격의 정결함을 통하여 해결되는 것이다. 따라서 윤리 문제를 유교적 윤리 문제로 접근 하면 안 되고 부흥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 교회가 전 세계 교회에 보여주어야 할 K 부흥의 DNA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윤리학자들의 논리를 뛰어넘는 K부흥의 기름 부으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부흥의 은혜는 항상 부흥의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주의 손이 함께 하셔야 되고,. 그것을 통한 성령의 사람들이 되어서 신앙인격이 준비가 되어야 하고 그럴 때 마지막 부흥의 표상, 역할모델, 이그젬플(example.)이 나오는 것이다. 그것이 안디옥 교회였다. 안디옥교회는 먼저는 이렇게 나와 있다.
 
II. 부흥의 표상 안디옥 교회(성령의 공동체)(26).
 
*사도행전 11:26,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부흥의 표상이다. 안디옥 교회가...그 이전까지는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님의 나사렛 땅이다. 혹은 무슨 팔로우다. 이런 식으로 있었는데 처음으로 안디옥 교회에서 크리스천(그리스도인)의 이름이 시작이 되었다. 크리스천이 뭔가? ‘Christian’은,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 한다. ‘예수님께 속한 사람’, =Belong to Christ!,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Christ I am nothing.=예수님이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이 안디옥 교회로부터 시작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고, 말씀을 가르칠 때, 그냥 드라이한 말씀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골로새서 3장에 있는 것처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과 말씀으로 서로 화답하는 것이다. 말씀과 찬양과 기도가 어우러져서 거기에 생명력 있는, 기름부음 있는 말씀의 공부가 된 것이다. 그게 안디옥 교회이다. 그 안디옥 교회를 통하여 놀라운 하나님의 사람들이 배출되었다. ‘잉나티우스’라는 여러분, 바나바, 바울 다음으로 초대교회 교부 가운데, 우리 교회 제자훈련 세미나 할 때, 제일 먼저 ‘교회 론’을 이야기 하는데, 교회 론의 창설자, 교회 론을 전체 정립을 한 사람이 ‘잉나티우스’로부터 시작했다. 나중에는 원형 경기장에서 순교당하셨는데, 잉나티우스 안디옥 교회 출신이고 4세기의 초대교회의 ‘황금의 비’라고 설교의 황태자, 크리스소스톰이 안디옥 교회 출신이다. 그 이후에 어거스틴, 루터, 칼빈, 메튜 헨리, 웨스트 코트, 라이트 푸트 알포드, 라는 근대 들어서 알포드 성경 해석 집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고 훈련하는 안디옥 교회의 역사를 그대로 이어 받는 종들을 통하여 부흥을 계속 이어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교회 역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스큐로바 안디옥, 안디옥 학파, 당시에 초대교회는 두 종류의 성경을 보는 어떤 눈이 있었다. 하나는 스큐로바 알렉산드리아, 알렉산드리아 중심으로 해서 필로, 오르겐, 클레멘트라는 교부들이 있었는데, 그분들을 중심으로 해서 영회를 했다. ‘알레그리카’라고 풍미적인 해석을 했다. 예를 들어서 예수님께서 부활해 고기를 몇 마리 잡았냐?, 153마리, 153마리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냥 153마리 많이 잡은 것이다. 거기다. 꼭 예수님 공생애 33년이다. 그다음 150문도 기도한 것, 그래서 153, 와 은혜가 된다. 등, 이런 게 건강하지 못한 해석이다. 그런데 스크로바 안디옥은 성경은 문법적으로 문자적으로 역사적으로 아주 균형 감각이 있게 제대로 해석한 것이다. 사랑의 교회 제자훈련은 스크로바 안디옥의 후예가 되는 줄로 믿는다. 한국교회도 길선종 목사님, 박현종 박사님, 박유선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우리교회 옥한흠 목사님, 이런 우리가 44주년을 맞이해서 이런 귀한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균형 잡힌 말씀의 축복을 주시길 바라는 것이다. 사역도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한때 한국교회 성령운동을 할 때 불로, 불로 하면서, 반대로 말씀으로, 말씀으로 서로가 막 이렇게 맞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성령의 역사와 말씀의 기름 부으심이 균형을 잡아야 할 줄 믿는다. 두 가지가 균형이 잡히니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사도행전 11:28-30,
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두 가지 사건이 나오는데 아가보의 예언(豫言) 사건이 나오고, 그다음에 구제(救濟)에 대한 문제가 나온다. 이 구제문제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앞에 6장에 보면 초대교회의 예루살렘 교회가 막 싸우고 내부분열이 일어날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다. 그리고 예언의 문제, 성령의 사역은 깊이 들어가다 보면, 많은 경우 이 성령의 사역은 예언의 문제로 흘러가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너무 치우치면 그런 일이 일어나는데, 이 예언과 구제의 문제가 안디옥 교회의 균형 잡힌 부흥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해결된 줄 믿는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다. 모든 부흥은 두 가지 엔진이 있다. 주의 손이 함께 하시고 그 손이 함께 하신 성령의 사람들을 통하여 성령의 공동체가 될 때에 부흥이 되는 것이다.
▷부흥은 성령의 능력을 받은 성령의 사람들이 성령의 공동체를 이룰 때 일어난다. 아멘,
-그러면 한국교회가 부흥의 은혜를 나누어줄 DNA가 무얼까? 우리에게 4가지가 있다.
 
▷ 한국교회 부흥의 DNA 4가지.
 
1. 첫 번째는 순교의 영성(순교의 피).
-양화진에 가면 145명의 선교사님들이 거기에 순교하시고 피 흘린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전 세계 어느 나라가 피선교지에 한 지역에 145명의 고생하고 순교하시고 돌아가신 그런 선교사님들이 묻혀있는 나라가 별로 없다. 우리 광주에도 있다. 하나님께서 독특하게 이 순교의 피를 흘린 곳이 우리나라이다. 6.25때에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공산당에게 순교를 당했는가? 예수 믿는다고... 지금도 북한의 지하교회는 순교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 순교의 영성의 기름부음과 강력함이 계속해서 한국교회를 통하여 역사해야 되는 것이다.
-
2. 두 번째는 기도의 영성(새벽기도, 독특한 영성, 구국기도, 산기도, 금식기도, 철야기도).
-수많은 한국교회는 특별히 구국기도, 나라를 위한 기도, 이 나라를 위한 한국교회의 기도의 강력한 복음의 DNA가 이 민족을 살려주시고 아직까지 우리가 침공 받지 않은 줄로 믿는다. 기도의 영성이 한국교회의 K부흥의 놀라운 역할을 할 줄로 믿는다.
 
3. 세 번째는 주일성수 영성.
-세계 교회 어느 나라에 비교해서 한국교회는 주일예배를 지키는 주일 성수의 유산이 있는 것이다. 사업이 어려워도, 내일 시험이 있어도,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주일예배는 지켜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세계교회 앞에 K부흥의 어떤 중요한 유산으로 펼쳐야 될 것으로 생각이 되는 것이다. 지난 2년 반 동안에 코로나 펜데믹 가운데, 혹시 한국교회 가운데 이 생명을 걸고 위그노들처럼 생명 걸고 주일예배를 지키는 이것이 좀 약화 되었다면, 하나님께 다시 한 번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동체를 통하여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아멘!!~
 
4. 네 번째는 말씀의 영성.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서 우리나라는 선교사님이 들어오기 전에 말씀이 먼저 들어왔다. 제가 말씀이 들어온 것을 연구하다 보니까 처음에 한국의 성경이 들어올 때, 눈물겨운 과정이 있었다. 가슴이 찡한 것이다. 국경 검문소를 통해서 성경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중에 하나로 성경 낱장을 그냥 가지고 오면 안 되니까, 금서(禁書)니까, 한 장 한 장을 낱장으로 집신으로 만들어서 가지고 엑스트라가 있어도 상관이 없으니까, 그래서 나중에 그것을 가지고 들어와서 집신을 해체해서 다시 하나하나 펴서 인두로 다려서 책으로 제본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래가지고 선교사님 들어오기 전에 그 성경 가지고 은혜 받아서 세례 받는 사람들이 생겼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한국교회가 이 은혜를 다시 회복하기를 바란다. 세 가지 기초위에다가 한국교회의 순교적 영성, 기도의 영성, 주일예배(성수)영성, 그리고 말씀의 영성이 잘 조화된 사랑의 교회, 우리 자신이 됨으로 말미암아 주님 앞에 큰 온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 땅에 새롭게 하소서. 할렐루야,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오~~~영광 가득한 새날 주소서 오~ 주님 나라 이 땅에 임하소서.♩


♣요약
하나님 앞에 머리 숙여서 간절하게 원하여야 할 것은. 우리가 참으로 갈망하는 심령으로 이 시대의 부흥을 소원하는 부흥의 점화장치가 되어야 한다. 환경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주님 함께 하심을 믿고 그 고통과 어려움이 부흥의 기폭제가 되게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길 기도하고, 우리 모두가 바나바처럼 자연인격과 신앙인격이 균형을 잡아서 공동체를 살리는 일에 쓰임을 받아야 한다. 성령께서 진실한 일꾼들로 삼아주셔서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말씀으로 무장되어서 우리가 교회와 한국교회에 네 가지 영성이 K부흥으로 세계 교회의 진원지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들은 헬라인에게까지 복음을 전했다. 전에는 사람들이 베니게와 구브로, 안디옥에 와서도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으나 이제는 이방인들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져, 안디옥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혼합된 교회가 되었다. 안디옥 교회의 교회에 파송을 받은 사람은 바나바이다. 바나바는 사도들이 인정하였던 신실한 자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또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된 곳도 이곳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크리스티아노스’에서 온 말이다. 이는 이방인들이 기독교인들을 지칭할 때 쓰던 단순한 호칭으로 경멸의 의미가 담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광스러운 이름이었던 것이다. 신자들은 이 호칭을 2세기경에 정식으로 받아들인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