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저녁예배(주후 2022년 6월 22일)
제목: "생명수의 강이 넘치는 삶"
말씀: 요한복음 7:37~39
찬양인도: 쉐키나(김원준 부목사님)


설교자:  장광천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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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7:37~39,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제가 목회자로서 지금까지 사역을 하면서 계속해서 배우고 깨닫는 것이 있다. 누군가가 고생하면 누군가는 은혜를 받고 누군가가 희생하면 누군가는 살아난다. 라는 것이다. 제가 사역을 하면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데 내가 왜 이렇게 희생을 해야 하는가? 왜 나만 이렇게 고생을 해야 되는가? 많이 생각이 들 때 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가 고생하면 누군가는 은혜를 받고 누군가가 희생하면 누군가는 살아난다..라는 것이다. 희생과 대가 지불 없이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일어난 일은 없다. 지금의 사랑의 교회가 세워진 것도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얼마나 많이 희생하고 눈물로 기도하고 사랑으로 수고했는지 그것 때문에 이런 사랑의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것이다.
 
그리고 내가 고생한다는 것, 그리고 희생한다는 것은 결코 낭비나 손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의 그 하나님 나라의 역사 가운데 우리가 동참하는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 모든 수고에 대해서 하나님이 갚아 주실 줄 믿는다. 우리는 더 많이 수고하고 노력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열심히 노력하고 수고할수록 그만큼 더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있는 확률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열심히 하면 할수록 나의 내면이 메마르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내 영혼 가운데 그 기쁨과 사랑이 식어져 가는 것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인생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면 쥐어짜는 인생과 흘러넘치는 인생이 있다는 것이다. 빨래 짜듯이 막 쥐어짜서 한 방울이라도 더 누군가에게 그렇게 영향력을 그렇게 끼치려고 노력을 한다. 이것은 희미하고 그래서 결과도 좀 좋은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금 새 메말라버리고 피곤해 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기쁨과 사랑으로 시작했는데 내 마음 가운데 기쁨이 없고 사랑도 없다. 그렇지만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하여 또 내가 해야 될 의무이기 때문에 그냥 묵묵하게 하게 한다.
 
▷인생을 두 가지로 분류
1. 쥐어짜는 인생,
2. 흘러넘치는 인생.

그러나 흘러넘치는 인생은 섬기면 섬길수록 은혜와 기쁨이 흘러넘치는 것이다. 우리 가운데 생명이 있고 또 우리 가운데 사랑이 있고 그래서 많은 열매가 맺혀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을 보면,
 
*요한복음7:37~38,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쥐어짜는 인생이 아니라, 흘러넘치는 인생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초청이 언제 일어났는지를 살펴보면 바로 명절 끝날 곧 큰 날이라는 것이다. 어떤 명절인가? 7장 2절을 보면,
 
*요한복음 7:2,
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이 초막절은 유대인의 3대 절기 중의 하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이후에 이 광야에서 초막을 짓고 살았던 모습을 기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셨다. 만나로 먹여주셨다. 그리고 목마르고 마실 물이 없을 때, 반석을 깨서 거기에서 물이 나오도록 하셨던 그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는 것이 바로 초막절이다.
 
그런데 이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이 했었던 종교의식의 하나 있었다. 그것은 흰 못을 입은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금 항아리를 들고 실로 암 못 가로 간다. 실로 암에 가서 금 항아리에 물을 담아서 행진을 한다. 그때 주변에 있었던 회중들이 이사야 12장 3절을 가지고 이렇게 노래를 하는데, “네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기르리로다.” 이렇게 찬송하면서 행진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제단 앞에 갔을 때는 제단을 돌게 된다. 그리고 난 다음에 금 항아리에 담았던 물들 그 제단에 붓는다. 이것을 7일 동안 진행하게 되었는데, 마지막 일곱 번째 날에는 이 금 항아리에 담아서 그리고 나서 제단 앞에 가서 일곱 번을 돈다. 마치 여리고성을 돌듯이 일곱 번을 돌고 거기에 다시 또 물을 붓는다는 것이다. 지극정성을 다해서 이런 종교의식을 하는 이유는 광야 있을 때, 반석으로부터 물이 터져 나왔던 것처럼 바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기를 소망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주신 것처럼, 초막절 이후에 하나님께서 또 다른 비를 내려주셔서 또 다시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도록 소망하는 마음에 이런 의식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초막절은 물의 절기 물의 축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행했던 이 종교의식이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이 지시하신 명령이었는가? 구약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 것을 그들은 만들어서 열심히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초막절 기간 중에 선지서 중에 스가랴 14장을 읽었는데, 스가랴 8절에 보면,
 
*스가랴 14:8,
8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 이것은 에스겔 47장의 말씀이 성취될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에스겔 47:9,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에스겔서 47:12절도 마찬가지이다. 이 물이 흐르는 곳마다 생명나무에 실과들이 자라기 시작하게 되고 또 많은 생물들이 살게 되고 또 그 잎사귀는 약 재료로 사용되게 되는 이들이 일어나게 된다. 이것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 있었던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그들이 곧 회복될 것이다. 다시금 예루살렘의 성전이 재건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회복될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에스겔서 47장의 말씀이 간절히 성취되는 소망하는 마음으로 그들은 이러한 종교의식을 행했던 것이다. 특별히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메시아에 대한 열망을 뜨겁게 가지고 있었는데, 나라를 빼앗기고 로마와 같은 열강들의 의하여 그들은 압제와 고통을 다하고 있었다. 그래서 메시아가 나타나서 그들을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해방시켜 주시고 그리고 종교적인 부패와 메마름 가운데서 그들을 건져내 주시는 생수의 강물이 터져 흘러지는 것에 대해서 그들은 소망하고 열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초막절에 실로 암 물가로 가서 거기에 금 항아리에 담아서 행진하고 한 바퀴 돌고 마지막 일곱 바퀴 도면서 물을 붓기 시작한다.
 
그런데 제단에 물을 붓고 난 다음에 일어나는 일이 중요하다. 제단에 물을 부었다. 그다음은 어떻게 하는가? 생명수의 강물이 콸콸 솟아나야 하는데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단에 물을 붓는다. 또 붓는다. 또 다시 메말라 버린다는 것이다.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메말라버리고 지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종교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때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치시는 것이다.
 
*요한복음7:37~38,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성경의 이름과 같이 바로 생명수의 강물이 흘러넘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예수님께서는 선포하고 게시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너희가 아무리 종교 적을 노력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명수의 강물이 흘러넘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도 유대인들이 금 항아리에 물을 담아서 제단에 쏟아 붓는 것처럼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간다. 종교적 행위를 열심히 하고 인간적인 노력을 열심히 하면서 마지막 한 방울이라도 쏟아 부으며 살아간다. 노력하면 될 듯 될 듯 하는 데 또 다시 되지 아니하는 그 이들 가운데 때로는 실망하게 된다. 때로는 낙심한다. 그러나 노력하면 할수록 좋은 결과가 나올 것에 대해서 기대하고 또 다시 시도하고 노력하게 된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쏟아 붓는다. 그래서 예배 때 은혜 받은 것 가지고 조금 순종한다고 하고, 노력한다고 하고서 쏟아 붓는데, 그런데 뭐가 촉촉하게 적서 지는 것 같고 뭔가 눈빛이나 말이나 조금 상향해 지는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 원래 상태로 돌아오게 되는 그 가족의 모습, 배우자나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답답해져오기 시작한다.
 
제가 사역을 시작했을 때, 제자훈련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옥한흠 목사님, 오정현 목사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하는데,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열심히 해서 쏟아 붓고 밤낮 가리지 않고 사람들 만나고 청년들을 만나고 열심히 했다. 그러면 애들이 사랑을 안다. 청년들은 받은 대로 돌려줄 줄 안다. 그래서 뭔가 변화된 것 같은데 그래서 6개월 지나고 1년 지나고 나면 그런데 돌아보니까 그렇게 변화되었다고 했던 청년이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실망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목회자이니까 어떻게 하면 또 다시 쏟아 붓기 시작하고, 쏟아 부으면 조금 좋아진 것 같고 숫자도 늘어난 것 같고, 그래서 겉모습은 더 좋아 보이지만 제 마음은 점점 메말라 갔다. 기쁨이 없는데도 열심히 사역했다. 사랑이 없는데도 사랑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했다. 우리 순장님들이나 여러분은 어떠한가? 열심히 노력하고 애쓰는데 뭔가 촉촉하게 적셔지는 것 같고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지만 원래 상태로 되돌아오게 되어 지는 그 모습을 볼 때, 여러분의 마음은 어떤가? 마음 가운데 분노가 일어날 수 있다. 실망할 수 있다. 그런데 내 힘으로 되지 않을 때,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국에 메말라 버리는 그 모습을 볼 때에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의 이름과 같이 배에서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예수님을 마신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마신다. 라는 것은 상징적인 뜻이다. 예수님을 마심으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나의 생명과 인격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과 내가 연합이 되고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을 보면,
 
*요한복음 1:12,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영접하는 자가 곧 믿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요한복음 6장에도 보면, 생명의 떡은 먹는 것이 바로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믿는다 라는 것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마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내 안에 살아서 예수님께서 나의 생명과 구원이 되시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을 마시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내 힘과 내 능력을 할 수 없을 때, 무엇을 하라고 하는가? 그때 바로 예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 같고, 다시 메말라지는 상황 가운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더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더 열심히 섬기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다. 그때 해야 할 것이 있다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명수의 강물이 흘러나오리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6:28,
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자들이 예수님께 묻는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일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라고 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해야 될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되지 않을 때, 그 때 진짜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내 생각 대로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예수님을 믿을 때, 그 예수님의 생명수의 강물이 흘러넘치게 되는 것이며 그 생명수가 닿는 곳마다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는다. 그렇다면 생명수의 강물이 흘러넘치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되는가? 세 가지를 말씀 드리고자 한다.

 
I.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내 안에 거하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에스겔서 47장이 성취되는 장면이 요한계시록 22장에 나오게 된다.
 
*요한계시록 22:1-2,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에스겔 47장의 말씀과 사실은 병행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에스겔 47장은 성전 문지방으로부터 생수가 흘러나왔는데, 요한계시록 22장에서는 어디서부터 흘러나왔는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22:1-2절에는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이 성전이시라고 말씀한다. 무엇이 성전인가? 하나님과 그의 어린 양 되시는 분이 바로 성전이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1:14,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거하다는 것은 문자적으로 ‘장막을 치다’이다. 성자 하나님께서 바로 육신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것이 장막을 치는 사건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가 거하는 바로 성전이 되셨다. 그래서 물이 안에서 생명수의 강물이 흘러넘치는 이유는 성정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줄 믿기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셔서 우리 안에 생명수의 강물을 흘려보내신다. 예수님의 생명 때문에 우리 안에 목마름이 해결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은혜가 우리 안에 거하기 때문에 우리가 참된 만족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특별히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고 했는데, 이 배는 헬라어로 코일리아이다. 이 단어는 자궁, 모태라고 그렇게 번역도 되기도 했는데 결국에는 내면 가장 깊숙한 곳, 우리 영혼의 깊숙한 곳이 배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배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강이 무엇이냐면, 바로 성령이라고 말씀한다.
 
*요한복음7:39,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서 나온 물을 물세례로 해석을 하는데 요한복음에서는 이 물을 물 세례로 해석하지 않는다. 물은 성령을 의미한다.
 
*에스겔 36:25,27,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여기에서 물로 하는 일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정결하게 씻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셔서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게 만들어 가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새 언약이다. 새 언약의 특징이 무엇인가? 옛 언약은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부패한 육신에 가지고 있는 인간은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만 우리 마음 가운데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과 하나님의 말씀이 따로 놀기 시작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지만 우리의 부패한 본성 때문에 우리의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고 또 다시 죄악에 빠지게 되고 불순종의 그 유혹에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새 언약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기록되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셔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새겨주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내 안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닮아가기 시작하고 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신다.
 
그래서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고 했을 때, 바로 이 새 언약의 말씀인, 에스겔 36장의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바로 성령으로 거듭나서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예수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게 만드시겠다는 것이 바로 새 언약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4:14,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마시면 우리 안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될 것이라고 말씀한다. 이물이 무엇인가? 바로 성령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모두가 다 성령의 사람이다.
 
*요한복음 8:14,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누가 하나님의 자녀이냐면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이다.
 
*로마서 8:9,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 사람의 특징은 그리스도의 영이 그 사람 안에 거하시고 도우시고 인도하신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을 성령으로 인치신다고 말씀하시고 그에게 주신 이 영원한 생명, 이 구원의 선물을 완성하기 위해서 오심으로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하신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모든 것들은 다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과 깨닫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이미 우리 가운데 뭐가 흐르는가? 바로 생명수의 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내주 하시고 말씀하시고 인도하신다. 그럴 때 우리가 변화 되는 것이다.
 
어느 청년이 제자훈련을 하다가 귀신이 들려도 사람이 변하는데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신다면 왜 나는 변하지 않는가? 의 질문에 마음이 부딪혀 왔다. 진짜 내가 거듭났다면 내 안에 성령 하나님께서 살아서 역사하신다면 왜 나는 변화되지 않을까? 수련회를 앞두고 있을 때 그리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님 내 안에 성령의 강이 흘러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하나님이 내 가운데 충만히 역사하시는 그 은혜를 체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으로 가득 채워달라고 그렇게 기도했다. 자신의 욕심을 주님 앞에 내려놓는다. 자신의 죄악들이 회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성령님이 나를 만나주시고 나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시길 기도하라. 그런데 조금씩 마음이 따뜻해져 오는 것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조금씩 채워져 가는 것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주체할 수 없는 성령의 강물이 흘러넘치길 시작했다. 기쁨이 시작했다. 예전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이제는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에는 할 수 없었던 순종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예전에 했던 일을 더 기쁨으로 능력 있게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뭐라고 질문을 하냐면, “목사님, 제가 정말 이전에 거듭났던 것이 맞는 것일까요?” 제가 정말 거듭났다면 왜 지금 일어나는 이 역사가 그 때는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많은 성도님들이 물을 쏟아 부었던~~제단에 쏟아 부었던 그 종교인들의 모습처럼 인간적인 열심을 가지고 기독교 종교생활을 한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으로 되는 것인 줄 믿는다. 우리 안에 이 성령의 강물이 흘러넘치기를 더욱 사모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II. 생명수의 강으로 나의 생각과 욕구가 변화됨을 믿으십시오.

-우리 배는 우리 영혼의 가정 깊은 곳이라고 말씀드렸다.
 
*빌립보서 3:19,
19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인간의 욕구와 욕망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배를 신으로 삼는다는 것은 타락한 인간이 육체의 욕구와 욕망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가장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생명수의 강물이 흘러넘치는 동시에 우리 안에 있는 욕구와 욕망이 일어나는 것은 배에서부터 생명수의 강물이 흘러넘친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순종해야지, 순종해야지, 그렇게 하는데 마음속으로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게 되고 음란의 유혹에 넘어가게 되고 그것을 원하는데 어떻게 죄를 안 지어야지, 이렇게 몸부림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성령의 강물이 우리 안에서부터 흘러넘치기 시작할 때, 예전에 원하지 않았던 그 거룩함을 사랑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놀라운 변화이다.
 
*갈라디아서 5:16,-17,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체의 소욕과 성령이 서로 둘이 싸운다. 그래서 어떻게 하냐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씀한다. 그래서 이것을 해석을 할 때, 성령을 따라 행하게 되면 의지적으로 이제는 육체의 욕망을 억제하고 그래서 죄를 이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성령과 함께 걷다 보면 성령의 소욕이 점점 우리 가운데 강물처럼 솟아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육체의 소욕으로 살아가는 것이 예전에는 기뻤다면 이제는 육체의 소욕으로 살아가는 것을 그냥 안 해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미워하게 되고 하나님의 성령의 소욕을 이제는 더욱 더 사모하고 갈망하게 되는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지금 원하는 것, 갈망하는 것이 진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래서 정말 우리 가운데 필요한 것, 정말 우리의 영혼, 속사람이 원하는 것을 성령께서 원활하게 만들어 가신다는 것이다.
 
제가 어느 집사님을 만나서 심방을 하게 되었는데 맏딸에 대한 사랑이 컸다. 그래서 공부에 대해서 막 잔소리를 많이 하고 때론 딸과 싸우면서까지 공부에 대한 압박을 했다. 그래서 대화를 나누면서 이야기를 했다. “따님이 성공하기를 바라시는데 딸과의 관계가 깨어져도 딸이 공부를 잘하기를 원하신가요?” “그렇게 정말 깨어지면 점점 공부를 안 할 수 있는데 왜 그리 관계가 깨어져가면서까지 공부에 대해서 압박을 하십니까?” “그렇게 이야기를 했더니 다시 물어보았다. 딸의 관계가 중요합니까? 아니면 성적이 더 중요합니까?” 라고 물었을 때, 대답이 딸이 상처를 받고 관계가 깨어져도 공부 잘해서 좋은 직장 가는 게 더 좋다.”라고 말씀하셨다.
 
여러분,
자녀들에게 공부 잘하라고 막 하면서 그렇게 압박하고 상처와 고통을 줄 때, 이런 마음으로 하는가? 그게 진짜 여러분이 원하시는 것인가? 제가 그분을 다시 만났을 때 고백을 하셨다. “딸의 성적보다 딸과의 좋은 관계가 더 나에게 소중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딸이 더 열심히 믿음을 가지고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격려하는 아버지가 되겠습니다.”라고 하셨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라는 것이다.
 
때로는 우리가 정말 원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원하는 것이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자녀를 잘 키워보겠다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보겠다고 그렇게 애썼는데 알고 보니까 내가 제일 원했던 것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사랑하는 것이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강물이 우리 가운데 흘러가게 되어 질 때, 성령께서는 우리 가운데 새로운 욕구와 갈망을 일으켜 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습관을 통해서 형성이 된다. 이 습관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맛을 알게 되고, 기쁨을 알게 된다.
 
네슬레(nestle)에서 일본에 커피를 팔기 위해서 했었던 전략 중에 하나가 커피 쿠키를 아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었다. 아주 어린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커피 향에 노출되고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이 커피 향에 익숙해진 어린 아이는 잠재적인 이 커피고객이 된다고 한다. 우리가 김치와 청국장을 좋아는 것처럼 그러나 외국인들은 전혀 먹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왜 김치를 먹게 되고 청국장을 좋아하는가? 어려서부터 먹고 익숙해지면서 그 습관에 따라 반복되고 그 행동에 따라서 그 맛을 경험했기 때문이고 나의 생각할 요구가 변화됨을 믿어야 한다. 우리 배는 영혼이 가장 깊은 곳이라고 말씀드렸다.

 
여러분이 지금 워하는 것이 진짜 원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여러분이 경험했었던 그 사건이나 누군가의 경험이나 그 사건의 해석 때문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 성령의 강물이 흘러넘친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주신 그 기쁨을 깨닫게 되어 질 때, 우리가 진정으로 원해야 할 것, 하나님의 뜻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배자크 선교사님이 토비새에서 말씀을 전하셨는데 그분이 선교사로 헌신 하셨을 때, 어머니가 했었던 말씀이 생각난다. “나는 네가 장군이 되는 것보다 선교사 된 것이 더 기쁘단다.” 제가 오늘 새벽에 기도하면서 이것이 제 마음에 큰 감동이 되었다. 여러분 중에 장군이 되는 것보다 회사의 CEO 되는 것보다 선교사 되는 것이 더 영광스럽고 기쁘다. 고 생각 되시는 분, 몇 분이나 되시는가? 그것은 우리의 인간적인 생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부어질 때 우리 가운데 생명수의 강물이 흘러넘치게 될 때, 할 수 있는 믿음의 고백인줄 믿는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로마서 8:5-6,
5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성령의 생각을 하는 것이다. 어제까지도 기쁨 가운데 살아갔다고 할지라도 내 가운데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서 그래서 육신의 생각을 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6절과 같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다. 어제까지 은혜받고 기쁨으로 했던 것, 그것 소요없다. 어제까지 사랑으로 인내 하면서 꾹 참았었던 것, 그것도 소용없다. 왜냐하면 육신의 생각이 들어오는 순간, 육신의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부터 사망이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할 수 있는 생명과 능력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계속해서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그 핵심은 성령의 생각을 하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생각을 해야 한다. 그 말씀을 순종을 통해서 계속해서 우리의 몸과 우리의 뇌가 우리의 손과 발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갈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인 것처럼, 우리 가운데 생명과 평강이 흘러넘치게 될 줄 믿는다.

 
III. 생명수의 강이 흘러갈 때, 생명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남을 믿으십시오.

-제임스 몽고베리 보이스 목사님이 이 표현을 했는데 여러분도 아시는 예화일 수 있다. 어느 배가 갯벌 진흙에 박혀있다. 사람의 힘으로 아무리 움직이려 해도 끔적하지 않는다.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 때 바닷물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한다. 바로 밀물이 밀려들어오면 배가 저절로 뜨게 되고 그 배는 항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갯벌에 처박혀 있는 것처럼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이 있다. 나의 변화 역시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때가 있다. 그때 생명수의 강물이 우리가운데 흘러나오길 사모하시길 바란다. 생명수의 강물이 우리 가운데 흘러나오기 시작할 때, 내 힘과 내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줄 믿으시길 바란다. 특별히 자기 부인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성도님들이 자기부인 하려고 많이 애쓰고 노력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힘으로 능력으로 되지 않는다. 만약 우리 힘과 능력으로 된다면 우리가 그냥 죽이면 된다. 예수님이 죽으실 필요가 없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임하실 때, 우리는 권능을 받는다. 그 권능이 무엇인가? 그 권능은 내 욕망이 죽는 것이다. 내 옛 사람의 습관과 행위에 따라서 살아갔었던 것들을 죽일 수 있게 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을 성령께서 증거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경험케 하시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2:20,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그것을 바로 성령께서 하게 만드신다. 어떻게 가능한가? 나 옛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는 것이다. 생명수의 강물이 나를 통하여 흘러감으로 말미암아 가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군가를 만났는데 너무나도 우울했다. 그런데 그 사람을 만나는 가운데 마음의 위로가 되었고 마음 가운데 소망을 경험해 본적이 있는가? 마음이 막히고 정말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데 우리 순장님이 손을 잡고 기도해 주시는데 마음에 눌렸던 것들이 뻥하며 뚫리게 되면서 기도의 문이 열리게 되고 응답의 문이 열리게 되는 것을 경험하셨을 것이다. 도무지 복음을 전파해도 예수 믿을 것 같지 않은데 그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어지는 그런 이들을 경험을 해보았는가? 다 그것은 그들을 통하여 생명수의 강물이 바로 우리 가운데 흘러 들어왔기 때문이다. 우리를 통해서 그 영혼 가운데 생명수의 강물이 흘러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마주 할 때마다 더 노력하지 말라. 더 몸부림치지 말고 성령 하나님의 강물이 우리 가운데 넘쳐흐르길 사모하길 바란다. 그리고 노력한다면 성령의 강물이 우리 가운데 흘러넘치고 그 생명수의 강물이 우리 가운데 넘쳐흐를 수 있도록 기도하고 순종하는 모두가 되기를 소망한다.
 
♣요약
우리 가운데 성령의 은사를 듣기를 간구하며 우리 가운데 목마름과 메마름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채워주시고 만족케 하여 주시기에 우리의 힘과 우리의 능력으로 살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권능으로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 가운데 흘러넘치는 생명수의 강물로 말미암아 우리가 먼저 변화되어서 또 다른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우리의 가정과 일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날마다 믿고 그의 생명수를 마심으로 우리 안에 생명수의 강물이 흘러넘쳐서 모든 더러운 것과 우상을 버리고 정결하게 되면  목마름이 충만히 채워질 것이다. 또한 생명수의 강물이 흘러넘침으로 내 안에 솟아나는 예수님의 생명이 나를 변화시켜 주시고 우리 가정과 일터와 나라가 가운데에 놀라운 치유와 생명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리라 믿는다. 
-이 강은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새 예루살렘 길 한가운데로 흐르며 만국을 소성케 한다. 즉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온 이 강은 죽은 바닷물을 소성케 하고 모든 생명을 풍성케 하며, 나무에 많은 열매를 맺히게 한다. 또한 이 강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성도의 마음속에서 솟아나 참 자유와 평안, 기쁨, 만족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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