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주후 2020년 9월 27일) 제목: 메시아의 대관식 말씀: 스가랴 6:9-15절(1부 - 사회: 윤하중 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 ▶스가랴 6:9-15절 9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0 사로잡힌 자 가운데 바벨론에서부터 돌아온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가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집에 들어갔나니 너는 이 날에 그 집에 들어가서 그들에게서 받되. 11 은과 금을 받아 면류관을 만들어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 12 말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13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자리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자리에 있으리니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 14 그 면류관은 헬렘과 도비야와 여다야와 스바냐의 아들 헨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전 안에 두라 하시니라. 15 먼 데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너희가 알리라 너희가 만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진대 이같이 되리라. ------------------------------------------------------------------------ ▷봉사로 여러 모로 교회에 방역지침을 지켜 멀리서 예배드림에 하나님께 감사영광 돌린다. *대관식은 참으로 대단하다. 기독교적 사상으로 쓰여 진 왕의 귀한(반지 왕)에서 아라곤 왕에게 왕의 대관식을 성대하고 거행했다. - 거행 식에서 평화가 왔듯이 참된 왕의 대관식은 백성들에게 평화를 준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셨듯이 하나님께서 우주적 왕이심을 선포하며 우주적 대관식이 되는 것이다. 9절에 보면 8절까지 여덟까지 환상이며, 다음날 아침에 9절부터는 하나님이 스가랴에게 특별 메시지를 주신다. 하나님이 계시의 말씀을 직접 주신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말씀에 집중해야 한다. 성전건축이 16년간 중지 되어 있었다. 세상 적으로는 힘이 없어보였다. 그때 의심의 꼬리를 물었다. 성전건축의 방해로 삶의 의욕을 잃고 좌절하고 있던 차였다. 낙망하고 있을 때에 활력을 준 것은 바로 이들을 구해 낸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위로부터 부어주신 말씀으로 새로운 길을 열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실재적인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0.1 심판 이후에는 대관식이다. (스가랴 6:8b, “북쪽으로 나간 자들이 북쪽에서 내 영을 쉬게 하였느니라”) 쉼과 평안 이후에 놀라운 대관식이 시작되었다. Ⅰ. 대관식 (9~11절) 1. 대관식은 ‘권위’와 ‘위엄’의 상징이다. 참된 왕의 대관식은 세상을 안정시키고 사람들에게 평안을 준다. 10절에 보면 포로이후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에게 마지막 돌아왔는데, 빈손으로 오지 아니하고 금과 은을 가득 싣고 돌아왔다. 이유는 성전을 재건 시에 쓰려고 헌물로 가지고 돌아왔다. 너는 이날에 그집에 들어가서 받으라는 것이다. 2. 지상 최고의 대관식은 예수님이 받으신 것이다. • 마가복음 1:11,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적 대관식)
3. 스가랴 시대의 ‘새로운 활력’의 원동력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 스가랴 6:9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 스가랴 6:10, “사로잡힌 자 가운데 바벨론에서부터 돌아온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가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집에 들어갔나니 너는 이 날에 그 집에 들어가서 그들에게서 받되” 4. 예수님은 위대한 ‘왕’ 직을 겸한 위대한 ‘대제사장’이시다. -11절에 은과 금을 가지고 왕관을 만들라고 한다. 이 일이 특별한 분기점이다. 면류관을 만들어서 여호수아 머리에 씌우라고 한다. 왜냐하면 대 제장은 면류관을 쓰지 않으나, 대 제상은 세마포를 써야 하는데 대제사장이 왕으로써의 왕의 일을 대신하는 일이었다. 대관을 하는 면류관이어서 특별하며 예표이다. 여호수아는 헬라적 발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 시간 제사장ㅇ이 쓰는 것은 왕 직을 겸하여 하는 일이라 한다는 것이다.(왕과 제사장의 겸직을 할 수 없다) 프린스 오피스... 오늘 왕 직과 제사장을 겸직하는 것이다. • 스가랴 6:11, “은과 금을 받아 면류관을 만들어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 → 본래 ‘대제사장’과 ‘왕’의 역할은 별도인데, 대제사장의 머리에 왕관을 씌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했다. • 히브리서 7: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
Ⅱ. 면류관을 쓰신 주님 (12~13절) 1. 스가랴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을 선포해야 했다. 1) 첫째, 보라 순(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나타나리라(12절) - 장차 임할 메시아이다.(싹, 순) • 이사야 53:2, “그는…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시작은 미약해도 하나님 나라에서 강국을 이룬다는 것이다. 순에서부터 출발이다. 우리는 연한 순같과 예수님을 닮아가는 자들이니 하나님 앞에서 끝 날까지 믿어서 가는 것이다. 2) 둘째, 자기 곳에서 돋아나리라(12절) -순은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 곳에서 돋아나는 것이다. 3) 셋째,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12절) -중단된 성전이 댜시 완공된다는 것이다. 모든 죄를 사하신다는 것이다.
4) 넷째, 그가 영광도 얻고 그 자리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라(13절) • 요한계시록 4: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예수님의 영광과 존엄이 있는 것이다. 영광도 얻고 그 자리에서 다스리게 하신다. 이 땅에서 부족하지만 신앙의 고품격을 가지도록 하시는 것이다.
5) 다섯째, 제사장이 자기 자리에 있으리니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13절) - 왕직과 제사장직은 겸하지는 않지만,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아브라함 카이퍼처럼-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나라는 왕직과 제사장직을 겸하는 것이다. 크놋사의 굴욕들이 있긴 하지만,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는 국가와 교회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처치 엔 스테이트(Church and State).
2. 스가랴 6:13,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 1) 국가와 교회는 서로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2) 국민의 영적 성장 문제는 정부의 행정과 역량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는 영적 성장과 관련되어서 조심해야 한다.
-예수그리스도의 메시아를 인정한 국가는 국가와 교회가 서로 조화가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국가는 좋은 선지자가 많았다. 왕과의 조화가 많았다. 우리도 예배를 통하여 국가를 위해서 기도할 때 교회와 국가가 평화롭게 공존하게 되길 기도해야 한다. 균형 잡힌 나라가 되어서 정부도 국민의 영적 성장에 조심해야 한다. 성도들의 영적 성작에 압박을 주어서는 안 된다. 국가와 교회가 충돌하지 않는 나라가 네덜란드이다. 그처럼 하나님과 멀리하면 절대적인 진리가 사라지게 된다. 법도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것으로 평화가 조화가 있을 것을 믿고 접목되길 바라고 있다.
Ⅲ. 면류관 쓰는 인생 (14~15절)
1. 스가랴 6:14, “그 면류관은…여호와의 전 안에 두라 하시니라” → 대관식을 거행했던 그 면류관을 ‘여호와의 전 안에 보관하라’는 것은 미래 세대가 성전 안에 있는 면류관을 보면서 장차 오실 ‘대제사장’이시자 ‘왕’이신 예수님을 기대하라는 것이다.
2. ‘믿음의 계승’을 위한 섬김은 ‘왕의 대관식’에 비견될 만큼 영광스럽고 고귀하다. • 로마서 11:13, “…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3. 우리가 영적인 대관식을 하는 이유는 우리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선포하기 위함이다. • 베드로전서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4. 우리의 할 일은 말씀을 청종하면서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다. • 스가랴 6:15, “…너희가 만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진대 이같이 되리라” -면류관을 여호와의 전 안에 두는가?- 성전 안에 두는 것은 찬란의 빛을 발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누구도 언급하지 않은 것은 기다렸다. 그분이 오실 것을 기다렸다. 성화가 되는 그날 까지 우리도 기다려야 한다. 그 면류관을 여호와 전 안에 두는 것은 모든 세대들이 믿음을 계승하라는 것이다. 왕의 대관식만큼 그래서 중요하다. 성전을 두고 지키는 것은 다음 세대들에게 계승해야 해서 소중한 것이다. 바울사도가 – 로마서 11:13절- “내가 이방인의 사도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리” ..====> 대관식은 그 영광이 계속 계승되기 위한 것이며 믿음의 세대계승이다. 우리의 헌당식도 가장 중요한 일이며 귀중한 일이다. 사랑의 교회 성도들이 헌당식을 하는 것은 왕께 면류관을 올려 드리는 일임을 기억해야 하면 감사와 영광이며 다음 세대에 믿음과 성전을 물려주는 것이다. 대관식을 통해 다음세대의 믿음의 계승이다. 참 신앙은 초라한 인생들이 척박한 상황에서도 메시아를 통해서 기다리고 기다려야 하며 다음 세대에 계승하는 것이며 바울처럼 수평적으로, 또한 다음세대에 수직적으로 계승해야 한다. 제자훈련의 정신을 가지고 영적 직분으로 리더로서 가치와 사명과 의미를 담아서 리더 서행 식을 하는 것이다. 사명을 주신 사명을 가지고 왕의 면류관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며 순장도 그렇다. 하나님이 주신 왕직을 수행하는 것이다. 위에 다섯 가지 모두가 영광스런 일이다. 주일학교와 찬양대 모두가 주님의 대관식이다. 참으로 중요한 사명의 직분이다. 지미카터는 주일학교에서 어덜트 스쿠울(adult school)이 있다. 성인들 주일학교 교사를 대통령직과 바꿀 수 없다고 했다. 주일학교 교사가 더 소중함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한국교회의 장로들이 장관들보다 더 소중하고 큰 사명이며 직분이며 영적인 힘이 강하다. 우리는 우리의 직분을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게 잘 감당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 계시록 2:10절, 야고보서, 계시록, 모두가 존귀한 주님의 아들과 딸들이다.
[ 결 론 ] 1.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견디며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하셨다. • 요한계시록 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한글개역) • 야고보서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15 먼 데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너희가 알리라 너희가 만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진대 이같이 되리라. -우리가 받아들이면 그대로 되리라고 하신다. 매주 주일예배가 주님께 왕관을 드리는 자에게 은혜를 받는 자리가 주일예배이다. 말씀대로 4명의 제사장들이 면류관을 드린 것처럼 우리의 삶도 주님께 올려드리는 대관식을 하신다. 주님은 우리에게 왕의 대관식을 하게 하신다.
2. 매 주일 예배가 ‘우리의 삶’과 ‘마음의 금과 은으로’ 왕관을 만들어 예수님의 머리에 올려드리는 ‘대관식’이 돼야.
3. 주일은 ‘작은 부활절’일뿐 아니라 ‘영적인 대관식’임을 기억하고 매 주일 마다 나 자신 뿐 아니라 다음 세대에 믿음 계승을 해야. 우리도 삶의 품격이 영광스런 대관식이 되기를 바란다. 매주 초대하는 대관식을 참여하기를 바란다. 영적인 대관식은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매주 왕의 대관식임을 선포하여 거룩한 품격을 가지기를 소망한다. 매주가 왕의 대관식이 되기를 소원한다. 현장예배로 시작하면 왕의 대관식에 참여하여야 한다.
p.s. ‘ 대관식’이 영어로 Coronation이다. Coronation의 어원과 Corona바이러스의 어원이 둘 다 ‘Corona(라틴어: 왕관, 화관)’이다. 우리가 ‘코로나’에 잘못 반응하면 ‘저주’가 되고 ‘역병’이 되지만, 코로나 사태 가운데서 말씀을 잘 청종하고 참된 예배 자가 되면, 진정한 대관식의 은혜가 되기를 바란다. 3. 주일은 ‘작은 부활절’일뿐 아니라 ‘영적인 대관식’임을 기억하고 매 주일 마다 나 자신 뿐 아니라 다음 세대에 믿음 계승을 해야 한다.
p.s. ‘ 대관식’이 영어로 Coronation이다. Coronation의 어원과 Corona바이러스의 어원이 둘 다 ‘Corona(라틴어: 왕관, 화관)’이다. 우리가 ‘코로나’에 잘못 반응하면 ‘저주’가 되고 ‘역병’이 되지만, 코로나 사태 가운데서 말씀을 잘 청종하고 참된 예배 자가 되면, 진정한 대관식의 은혜를 받을 것이다. 사랑의 교회와 한국교회 대관식이 대통령 대관식보다 더 소중하다.
♣ 요약 여호수아에게 면류관을 씌움 (스가랴 6:9-15) 네(4개) 병거에 대한 환상으로 열방에 대한 심판을 보여주신 하나님은 스가랴에게 장차 오실 메시야를 “싹”으로 보여주신다. 당대의 성전을 여호수아를 통해 재건해 주시겠지만, 진정한 성전의 영광은 메시야로 오시는 분을 통하여 성취하게 될 것임을 면류관을 만들어 쓰게 하는 상징을 통하여 보여주신다.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로서 하나님이 스스로 하나님의 전의 재건을 완공할 것임을 포로에서 갓 돌아온 유력한 자들을 통하여 면류관을 만들어 여호수아에게 씌우는 것을 통하여 확증해 주신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 뭔가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일하신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하나님은 더 나아가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해서 정보를 주시기 시작하신다. 궁극적인 하나님의 전의 본체가 되실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을 성전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스가랴에게 알려주셨다. 그분은 왕과 제사장의 직분을 겸직하시는 분으로 그 모두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시는 분이 되실 것임을 알려주신다. 예수님 외에 누가 왕과 제사장으로서의 직분을 완벽하게 모두 다 이루시고, 또 그 모두를 조화를 이루시는 분이 계시겠는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 만군의 여호와는 자신을 위하여 헌신하는 자들의 수고를 잊어버리시는 분이 아니시다. 면류관을 여호와의 성전에 두고 기념하게 하시며, 그들의 헌신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시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의 일하심이시다.
-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을 통하여 성취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도하심이 너무나 귀하더라도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귀한 만군의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성전을 재건하기까지 한 이스라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인정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율법에 빠지는 안타까움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래도 모든 말씀을 이루시는 분이 만군의 여호와이시다.
-우리는 현장예배에 정성을 다해 드리기를 힘써야 하며 매 주일 예배가 예수님의 머리에 씌워 드리는 왕관의 대관식을 이루어내야 한다. 어떤 대통령보다도 더 귀하고 존귀한 예배를 중심이 되어야 한다. 매주 주일학교 교사가 더 소중함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한국교회의 장로들이 장관들보다 더 소중하고 큰 사명이며 직분이며 영적인 힘이 강하다. 우리는 우리의 직분을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게 잘 감당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믿고 순종하여 주님 앞에 헌신하는 자 되어야 한다. ♣ 느낀 점. 나는 오늘 무슨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는 자가 되겠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일을 가로막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격려를 기대하며 뚫고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또한 우리 가족이 전적으로 이 코로나 시기를 잘 벗어나서 주님 안에서 누리는 삶을 살기를 고대한다. 현장 예배를 사모하면서 서서히 비켜가는 코로나를 우리는 감사해 하면서 우리가 주님과만은 정직하게 대면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호수아가 쓴 면류관보다도, 그들이 열심을 내어 완공하게 되는 스룹바벨 성전보다도 더더욱 비교되지 않게 소망스러운 것은 여호와의 싹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나는 모든 신앙의 진실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을 믿으며, 그리스도 이상의 어떤 소망은 존재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오늘도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에 집중하니 감사가 넘치게 되었다. 다음 주는 교회에서 예배드리기를 기도한다. 오늘 헌금을 인터넷으로 드리면서 헌금 봉사가 생각이 났다. 십일조나 감사헌금을 본당에서 드렸다가 계속 인터넷으로 드리니 기쁨이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교회에 예수님이 계시고 나의 모든 것을 보시는 것 같아서이다. 큰 소리로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이 나에게 쌓였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시간인데, 그것이 해소가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이라도 나는 방역지침 따라서 이제 현장 예배를 드려야 함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목사님의 말씀에 대관식을 거룩하게 드리는 시간이 속히 오기를 기도하며 소망하며, 우리 가족이 항상 즐거워하는 예배가 되기를 소원한다. 직분을 소중히 하여서 다음 세대에도 본을 보이고 세대계승을 해야 함을 진정으로 깨닫게 하시는 말씀이었다. 대관식 만큼 우리의 사명을 잘 지키기를 간절하게 기도하며 주님 자녀로 올바르게 살기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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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교회 주일예배
- ☆ 주일예배(주후 2020년 9월27일)"메시아의 대관식(戴冠式)"-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님) ☆ 2020.09.27
- ☆ 주일예배(주후 2020년 8월 16일)-''攝理의 神祕와 祝福''(광복절 기념 예배) ☆ 2020.08.16
- ☆주일예배 5월 31일 "성령 충만한 그릇" -사랑의 교회(오정현 목사님)☆ 2020.05.31
- ☆ ♧주일예배♧ 4월 19일 ☆ 2020.04.22
☆ 주일예배(주후 2020년 9월27일)"메시아의 대관식(戴冠式)"-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님) ☆
☆ 주일예배(주후 2020년 8월 16일)-''攝理의 神祕와 祝福''(광복절 기념 예배) ☆
◆주일예배(주후 2020년 8월 16일) 제목: ''攝理의 神祕와 祝福''(광복절 기념 예배) 말씀: (창세기 45:1~5) (기도: 구성찬 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 ♣ 요약 ▷요셉의 정체를 안 형들 형들을 만난 기쁨에 앞서 자신들이 저지른 악행으로 인해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래서 요셉이 이를 알고 안심시키기까지 그들은 참 기쁨을 잊고 있었다. 성도의 참 기쁨은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다. 요셉의 섭리 신앙 섭리(攝理)란 이 세상을 다스려 나가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간섭하시면서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요셉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음을 믿었다. 그가 하는 말에는 항상 ‘하나님’이 언급되고 있다. 이 단어는 그의 전 생애를 조명해 주는 가장 중요한 단어인 것이다. 그러니까 요셉과 형제들 사이에 화해와 용서가 이루어지는 내용이다. 요셉은 개인적인 불행을 탓하지 않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한다. 그는 자신이 형제들로부터 겪은 모든 고통이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계획의 일부였으며, 자신뿐 아니라 악을 저지른 형제들로 인해 유익함이 되었다고 말한다.
▷형들의 죄를 용서하는 요셉 요셉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섭리라는 관점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형들을 기꺼이 용서할 수 있었다. 요셉은 형들의 잘못된 가해 행위 자체만을 보고 형들을 미워하거나 복수심을 갖지는 않았다. 오히려 눈을 들어 그런 행위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살폈던 것이다. 다만 용서하기에 앞서 그 용서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했기에 그는 형들을 시험하며 회개의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 8.15 광복 특별 메시지... 교회는 주님의 교회이다. 그래서 교회는 주님이 지켜주실 것을 믿는다. 영적 기백을 가지고 기도한다. 우리가 건강할 때 평양에서 예배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기를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소원한다. 우리의 항상 소명과 비전을 가지고 광복 75주년을 맞이하여 섭리의 신비와 축복에 대해서 나누고자 한다. 개인이나 교회나, 어떤 공동체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섭리의 신비에 대해서 분명한 신앙 고백이 있고, 또 섭리의 신비에 대한 신학적 뿌리가 확고하면 그 인생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잡혀 사용될 것을 확신한다. 그것이 상록수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가? 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다. ➁ 우리 인간의 필요를 공급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통제하시는 ‘하나님의 질서와 은혜’이다. 하나님의 시각이 있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시각을 주시길 원한다. 인간의 시각이 아닌 하나님의 시각이 있다.
※ 인간의 시각이란 대부분 프로이드나 니체이며, 한국은 김*욱 같은 사람을 인간의 시각으로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는 것이 없기에 말씀을 통하여 조명하시고 계시하시며, 영감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시각이 없기에 육신의 시각만이 있는 것이다. 그 결과로 인간에게 상처주고, 대부분 똑똑하다고 하는 자들이다. 역사의 상선은 하나님의 시각이 없다. 다람쥐 쳇바퀴가 도는 듯 되었다. 우리는 이 코로나 19 속에서도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자체가 하나님의 시각에 대해서 나름 주님과의 문이 열려있는 것이며 온라인도 마찬가지이다. 방역지침을 잘 지키기를 바란다. 역사의 하선 밑에서 상처받지 말고 역사의 윗선인 하나님의 시각을 수직적으로 신본주의로 하나님 나라 섭리의 신비와 축복의 은혜를 누리기를 원한다. 역사, 정치이슈, 상상이 안 되는 일들이 대처할 수 없는 일이 많다. 남북문제도 그렇고, 시각이 다르니까 고착이며 편파적이라서 그렇다. 모두가 하나님의 시각이 되어야 한다. 1대 대통령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시각이 것이다.
▶왜 하나님의 시각, 섭리에 눈이 열려야 하는가? 본문은 요셉에 관한 인물이다. 요셉은 야곱의 노년에 가진 아들이며 91세에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채색 옷을 입고 왕자처럼 살았다. 12아들 가운에 편애하니 당연히 형들에게 시기를 받은 것이다. 그래서 구덩이에 버려진 것이며,,,그 밑바닥까지 간 것이다. 술 맡은 관원이 도와주었다. 애굽의 총리였다 이것이 인간의 시각이다. 인간의 시각으로 보면 요셉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은 다르다. 구덩이에서는 큰 고통이었지만 하나님의 시각은 생명의 구원의 시각인 것이다.
→창세기 37:24절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도망치려고 애를 썼다는 것이다. 얼마나 상처가 컸겠는가!!! 구덩이가 무덤과 같다. 죽는 것이었다. 엄청 잔인한 일이며 비참한 일이다.
▶하나님의 시각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인식만 분명하면 ’저주의 구덩이‘가 반드시 ’축복의 구덩이’가 된다. 하나님은 채색 옷을 벗겼다. 채색옷 ㅡ장자 ㆍ상속권을 가지는 것이다. 형들은 동생 요셉의 옷을 다 벗겨버렸다. 거기서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에 숙련된 대장장이와 같다. 스가랴서의 더러운 옷을 벗긴 것과 같다. 우리도 하나님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그것이 섭리의 장소이다. 구덩이에서 요셉은 기도했을 것이다. 모든 하나님의 섭리는 반드시 거치는 것이다. 옷은 하나님의 섭리시다. 비참하지만 역사의 신비의 구덩이가 축복의 구덩이다. 우리도 이 환경 속에서도 예배드리는 것이 좋다. 좀 부족해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충만한 것이다.
▶인간의 시각은 저주의 구덩이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시각이 있었기에 우리의 고난과 고통이 있었기에 그래서 이 민족이 존재하는 것이다. 섭리의 시각이 열리면 축복의 구덩이가 된다. -회개의 구덩이 깨어짐 ㆍ성숙의 구덩이다. 환경, 어려움, 상처, 코로나 사태, 우리의 안경을 깨끗이 렌즈를 씻어야 하듯이 도수의 초점을 재조정하여야 한다.
→창세기 45:1절 - “ 1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I. 인격의 용량을 키워야 한다. 남을 배려하는 인격이다. 형들의 잘못을 시종들이 알면 안되기에 다 내보냈다. 요셉은 섭리를 깨달은 자였다. 고난을 당하면서 섭리를 깨달았기에 자기 가족 살리는 자 민족을 살리는 자가 되어 지게 했다. 절망이 섭리가 되었다. →창세기 39:5 -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요셉처럼 인격의 용량이 커지면 그 주위가 다 복을 받는 것이다. 축복(The blessing)이라는 찬송도 우리의 용량이 커지게 될 것이니 많이 부르기 바란다. 요셉은 하나님의 큰 섭리인 것은 흉년도 되게 하였다. 요셉은 원한을 품지 않고 은혜로 베풀었다. 어떤 왕궁도 중상묘략이 난무한 곳이 왕궁인데 오염되지 않고, 요셉은 용량이 커졌다. 우리도 용량이 커져서 민족도, 용량이 커져서 하나님 나라를 전체를 바라보는 자가 되어야 한다.
II. 인식의 용량을 키워야 한다. →창세기 45: 2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궁중 전체에 들릴 정도로 요셉이 방성대곡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깨달은 것이며, 하나님 주권적으로 역사의 상선, 하나님 관계가 수직적으로 깨닫게 되어 인도와 섭리와 은혜의 통곡이 되었던 것이다. 총리가 우니 얼마나 무서웠겠나? 하나님의 감격하는 요셉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요셉처럼 살아야 한다. 요셉이 형들을 부르니,,, 페닉 상태인 형들이 되었을 것이다. →창세기 45: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창세기 45: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자라. →창세기 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고백 안에는 하나님의 그릇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요셉을 낮추어서 쓰신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의 시각이다. 이렇게 종지가 되지 말고 은혜의 저수지가 되어야 한다. →창세기 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창세기 50:20 -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고 함부로 인간의 시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섭리의 시각으로 보라. 나를 무너뜨릴 사람은 나이다. 우리나라로서는 정말 많이도 얻어맞은 나라다. 어떤 경우도 승리로 바라보라. 그러면,, 그 자리가 축복이 될 것이다. 우리의 독소들을 75주년 다이아몬드 식이다 →스가랴 8:15 -이제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나를 무너뜨리는 것은 나밖에 없다. 그러니 영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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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5월 31일 "성령 충만한 그릇" -사랑의 교회(오정현 목사님)☆
♣주일예배(2020. 5. 31일) 제목: ''성령 충만한 그릇''(Spirit -Filled Vessel of Clay) 말씀: 고전 (6:19~20, 고후 4:7)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한 사람의 기도와 한 교회의 사명을 붙잡아 주시고 한 지역의 부흥을 통하여 시대를 변화시킨다. 평안북도 선천에 선교 보고서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는 자들이 기도처 예배에 믿음과 부흥이 무수히 일어났다고 한다. 한국 교회가 역사와 은혜를 가지 민족이니 하나님께서 세계 수많은 코로나 사태가 있지만 한국 교회는 복음의 능력과 기름 부음으로 회복시키실 것을 확신한다. ◆성령강림 주일 이 분들이 주님 앞에서 변화 받고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I. 너희 몸은 성령의 전이다. 19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부패한 속에 고린도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 어려운 사태에도 성령강림주일을 지키게 되어 감사이다.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인 것이다. 우리의 몸이 특별한 사명의 실체가 되면 우리의 삶의 차원이 놀랍게 달라진다. 우리는 모든 육신의 제한을 받고 살고 있다. 제한이 없는 자가 없다. 조급함, 두려움, 육신의 고통, 정욕, 우리가 늘 두려움의 전, 아픔의 전, 근심과 고통의전이 되기도 하며 배고픔으로 성격이 날카로워지고 예민해지며 배가 너무 불러도 불쾌하기도 한다. 그리고 잠을 못자면 힘들기도 한다. 우리의 부족하고 연약한 몸을 성령께서 오셔서 성령의 전이라고 말씀하신다. 오늘 이 말씀이 신비한 것이다. 성령의 전인 것을 어떻게 오늘 본문을 통해서 잘 살펴보자. *우리 몸을 성령께서 오셔서 성령의 전이다라고 하신다. 성령의 전이 되게 하기 위해서 성삼위 하나님께서(성부와 성자 성령) 총체적으로 임해 주셨다. 우리의 미래는 20절에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피 값으로 사주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것이 과거의 몸은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산 것이며, 현재는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성령의 전으로서 현재 임재가 있게 하시고, 미래는 성부 하나님께 우리의 몸을 가지고 영광을 올려 드리라는 것이다. *과거- 그리스도 예수의 피 값으로 산 것, *현재- 성령의 임재를 통한 성령의 전, *미래- 성부하나님께 우리 몸을 가지고 영광을 올려 드리는 것. 그래서 ‘우리는 聖靈의 殿‘이다. 전이라는 것은 성전이다. 예루살렘 성전과 같고, 광야의 성막과 같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의 예배하며 하나님께 제자를 올려 드릴 때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 기둥이 빽빽하게 임한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성령의 전으로서 역할이 제대로 감당된다면 육신의 한계도 있고, 우리의 분노나 조급함을 감당 못하고 분노가 전도되기도 하고 우리의 마음이 상할 때도 있지만, 이 성삼위 하나님께서 총동원되셔야 할 만큼 은혜를 주시는 몸이라면 제대로 되면 오늘 우리 시대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영광의 구름 기둥으로서, 우리에게 예고편으로 확인될 수 있다. 동시에 광야 길의 성막이 어떠했는가? 물도 없고, 어둡고 환경자체가 척박하지만 그런데 유일한 소망이 여기서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광야의 성막이다. 모세의 성막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제사 드리고 했을 때에, 그 성막에 쉐키나의 영광이 구름 기둥으로 뻭빽하게 임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이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은혜로 신약시대의 우리에게 모두를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고린도 교회의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샀지만, 너희 몸을 성령의 전인 줄 믿으라고 하신다. 성막의 영광, 쉐키나의 영광, 예루살렘의 찬란한 영광을 오늘 이 시간 예고편으로 맛보는 성령강림 주일이 되길 원한다. 우리가 영적으로 눈이 뜨이길 원한다. 정말 중요하다. 특별한 것이다. ▶우리의 몸에 성령이 거하시는 ‘영광스런 주의 인 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길 바란다. 워킹 템플, 무버블 템플(Working Temple, Movable Temple)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몸의 성령의 은혜가 되기를 바란다. 자유함을 가지고 주의 쉐키나의 영광이 임하기를 찬양하고 싶다. 코로나로 방역 지침을 우리는 기도를 지속하고 있으니 우리에게 움직이는 주의 전이되기를 간구한다. 우리 몸은 성령의 전인 줄로 확신한다. 그런 마음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주의 임재가 있기를 원한다. 믿음의 용량이 커져야 한다. 성령이 역사하면 ※디엘(D.L) 무디는 “이 세상은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께 온전히 그의 몸이 의탁된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일을 하실 수 있는지를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라고 이야기 했다. 그는 미국의 대 부흥 신학자이다. 뉴욕 거리를 걸으면서 묵상하는데 충격이 왔다. 그래서 본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기도를 했더니 그때에 성령님께서 무디를 사로잡으시고, 장악하시고, 성령의 도구로 사용하시고, 하나님께서 성령의 전으로 삼으시고 놀라운 전 세계의 대각성의 역사를 쓰게 되었다. 성령의 지배를 받으니...우리는 II. 그리스도의 몸은 질그릇이다. 고후 4:7ㅡ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 몸 ㅡ질그릇이다. 성령의 전일 뿐 아니라 우리 몸을 질그릇에 보배로 담고 있는 것이니, 신앙눈으로 볼 때, 신앙으로 사람을 볼 때에 우리가 그릇인 것이다. 성경에 토기장이가 사람을 빚을 때 하나님이 귀히 쓰는 그릇으로 하나님이 쓰실 그릇으로 말한다. 특별히 바울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시려고 했을 때도 그랬다. 하나님의 사람을 그릇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도행전 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어떤 사람은 귀히 쓰고, 어떤 사람은 천히 쓰고,,,,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보배가 질그릇을 결정한다. 바울은 예수님은 보배여서 어떤 자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보배의 그릇이 된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연약한 그릇이라고도 했다. 성령 충만을 체험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은혜를 받기 위해서 그릇이 되어 질그릇이 되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며 질그릇도 두 가지 용도가 있다. 하나는 귀한 것- 중요한 것과 보배로운 것을 담는다. 또 하나는 천한 것- 인간의 배설물로도 쓰인다. 질그릇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보배가 질그릇에 담겨있으니 질그릇이 보배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보내가 질그릇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늘 바울이 강조하는 것이 내 속에 있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니, 나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라고 한다. 어떤 무식쟁이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는 순간, 우리는 보배를 담은 그릇이다. In Christ!!!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질그릇이다. 그러므로 말씀 중에 *골로새서 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질그릇은 그래서 기가 막힌 그릇이 된 것이다. *질그릇은 질그릇인데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다. 그 당시 구리그릇도 고린도 당시에 동 그릇과 있었다. 사도 바울은 왜 값없는 것을 사용했는가? 값어치 없고, 화려하지 않는 질그릇을 사용하는가? 그 이유는 질그릇은 세상의 사람들의 가치관과 다르다. 고린도 당시에는 동 그릇이 더 가치가 있었지만, 세상 가치관은 화려하지만 세상의 가치관은 따르지 말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이 질그릇을 심는 순간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이 디지털 세상 가운데에서도 가치관이 달라진다. 기독교의 가치관은 내적으로 예수님을 품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외적으로는 질그릇이지만, 이 그릇이 예수님을 담으면 최고의 그릇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의 가치관에 기죽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의 학벌, 지위나 이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백악관의 주인보다 하나님의 성전의 문지기가 더 낫다는 것이다. 오늘 이렇게 성령 강림 주일에 예배하는 자가 더 가치가 있다. 오늘도 수고하는 자가 많다 그러한 사람들이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주차, 교육 안내 봉사 등 가치가 있는 삶이다. 코로나 재 확산 때문에 조심한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사모하기에 이렇게 예배를 드린다. 주님의 초청장이기에 우리는 그 가치를 믿고 헌신한다. 질그릇의 가치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릇의 용량을 키워서 유기적인 믿음으로 영적인 용량을 넓혀서 살기를 소망한다. 찬양 길 만드시는 주님은 상한 심령을 치유하시기에 우리의 찬양도 중요하다. 오늘 은혜의 찬양은 ‘길 만드시는 주이다’~ 찬양도 영적인 용량이 넓어져서 질그릇에 보배로 담아지길 바란다. III. 우리의 질그릇의 용량을 넓히고 깨끗하게 하려면 *디모데후서' 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말씀의 용량을 넓혀야 한다. -1) 말씀으로 깨꿋하게 해야 한다. 주일에 아이들과 암송하고 예배에 나와서 아이들과 기도하라. 말씀으로 믿음의 용량의 넓혀달라고 할 때 일해 주신다. -2)기도하여 깨끗이 씻어야 한다. 말씀과 기도로 간구하면 하나님은 지키신다. *에베소서5:26,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말씀의 용량을 넓힌다. 기도의 용량, 찬양의 용량을 넓히기를 바란다. 믿음과 기도의 용량이 커져서 우리의 그릇을 깨끗하게 되길 기도하라. 마틴 루터 말씀 용량을 넖히니 하나님이 지키셨다. 바울은 사도행 16:25~26,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그래서 말씀과 기도의 용량을 넓혀서 살라. -만입이 그 입다 가지고~^ 찰스웨슬리 영국을 변화 시킨다 그 형제가 그렇다. ◆요약. 성도의 몸은 성도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성도들에게 주어진 은혜는 위대한 변화를 낳는다. 그 변화의 기초는 성령께서 우리들의 심령에 믿음으로 내주하시는 것이다. 죄에 종노릇하던 인생들이 이제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된 것이다. 질그릇 속의 보배란 인간의 연약함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인간 자체는 약하지만 성도 각자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해 귀한 보배를 가졌기 때문에 세상에 대하여 강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몸은 성전이니 거룩한 가운데 근심 걱정 연약함 다 주님 안에서 맡기고 성령님의 임재와 능력을 완전하게 덮어 주심을 믿고 모든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성령 충만한 그릇으로 평생을 살게 되어야 한다. 성령님께서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충만하게 지배해 주시길 간구하여 말씀의 용량을 넓혀서 모든 질병을 치유 받고 모든 일들을 해결 받기를 원하니 바울이 질그릇을 귀히 여기는 것처럼 보배로우신 주님을 의지하여 날마다 성령 충만 받고 주님 안에서 귀히 쓰임 받은 질그릇이 되어야 한다. ♧ 느낀 점. 내가 매주 새벽부터 주일을 준비를 한 것은 늘 주일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주님 전에서 예배드리는 감사의 은혜가 있기 때문이며, 예배 헌금위원으로 일찍 미리가 가서 기도하고 준비하면 왠지 뭔가 은혜를 더하는 느낌이 든다. 기도를 응답하시는 느낌이 들기에 아무도 도착하지 않는 시간에 좀 일찍에 가서 기도를 한다. 본당에서의 예배를 내가 (타자속도가)속기를 좀 잘하다 보니 다 손으로 따다닥 내용을 치면서 예배를 잘 드리고 있다. 질그릇이 보배가 되기 위해서는 준비로 잘 해야 하고 훈련도 잘 받아야 하고 봉사도 성실히 해야만이 하나님은 성령 충만을 주실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면서 주님과 교제를 사모하는 주일이 되기를 무척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목사님은 오늘 성령 충만이신지 헌금을 빼고 예배를 마치시려 해서 우리가 깜짝 놀랐지만 센스가 극치셔서 금방 알아 차리셔서 다행히 순서가 순적하게 되었다. 성령 충만 받아 이렇게 귀히 쓰임 받는 질그릇도 되고 싶다. 가정과 공동체에서 진정한 질그릇이 되고 싶다. 세상 가치와 비견하는 아름다운 질그릇으로 변화시켜 주실 주님을 믿고 의지하여 날마다 성령 충만한 그릇이 되기 위해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겠다. ☆ 길 만드시는 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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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예배♧ 4월 19일 ☆
♧주일예배♧ 2020. 4 . 19. 제목: ''새날을 여는 사랑의 능력'' 말씀: (요한복음 20:1, 11~16)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코로나 극복시리즈 9 우리에게 새날 주심을 감사한다.~ 우리 어려운 이 가운데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에 짐을 진 어려운 분들에게 주님이 붙잡아 주시길 바란다. 지난 주 받은 말씀이 그래도 확인되길 원한다. 시편 147:3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주시는도다'' 모든 상처를 치유하시고 회복시켜 주시길 원한다. - 예배는 상황의 지침을 따르기를 바란다. “사랑하면 새날이 열린다.”
1. 오늘 본문은 부활의 목격자인 막달라 마리아 모든 상처와 고통을 덮어 주시길 기도한다. 사랑하면 새날이 온다. 막달라는 마을의 이름의 마리아이다. 달라 마리아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도 나온다. 개인적으로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를 1:1대화로 만나주신 이 스토리는 요한복음에만 나와 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만 비춰지는 주인공처럼 나온다. 아마도 요한에게 막달라 마리아가 요한에게 간증한 내용을 요한이 기록한 것이다. 그의 간증이고 이 막달라 마리아 간증이 우리와 동인한 간증이었으면 좋겠다. 간증은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간증이다. 간증은 기독교 신앙의 보물 상자를 여는 것이다. 우리도 모두 보물 상자를 열기를 바란다. 그 안에 들여다보니 보석이 들어있다. 이 보물 상자를 여는 신앙이길 바란다. 마리아의 간증을 들어보면 그가 예수님 만나가 전의 상태, 그리고 예수님을 만난 상태가 나와 있는데 우선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상태(Before Christ), 1)막달라 마리아 과거는 누가복음 8:2에 나와 있는데 병 고침을 받았는데 귀신들려서 숨 막히게 살았다. 일곱 귀신이 들었던 것이며 귀신들로부터 지배당했다. 귀신들로부터 노예로 살았던 것이다. 그의 인생을 멈추게 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영광스런 존재가 일곱의 귀신의 지배당하고 그녀의 인생을 Stop 되었다. 예수님을 만나고 일곱 귀신이 쫓겨난 줄로 믿는다. 2) 막달라 마리아는 누가복음 8: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 마리아와” 급격하게 변화되었다. 완전히 reset되고, 새로 고침 되고, 재조정되었다. 다시 시작하는 능력이 되어 인생역전이 되었다. 1)병 고침( therapeow 떼라페오) - 수동완료형: 누군가에 의해서 전적으로 고침을 받은 것. 2) 귀신이 나갔다(exerchomai) - 능동완료형: 신이 나갔다는 뜻이다. V자로 형태로 회복되었다. 완전 치유이며,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 100프로 치유되었고, 귀신이 나갔다는 것. 3) 예수님을 만나 인생이 완전히 리셋 되었다. V자 형태로 회복되었다. 단번에 죽은 그녀를 청소하셨다. 오늘 모두에게도 인생이 해결되는 이런 역사를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란다.
I. 주님의 사랑은 은혜의 주류(主流)에 서게 한다. 1. 누가복음8:3 -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났으므로 세상으로 가지 않고 팀웍을 이루어 한결같이 섬긴다. 자유함을 얻어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고 후원자가 되고 여성 제자가 되었다. 예수님의 참된 여성 제자가 된 것이다. 제자들은 다 도망갔지만 그녀만이 지켰다. 2. 히브리서9:14, 10:22 주님의 참 사랑을 받게 되니, 주님을 진심을 따르니 순결한 처녀처럼 되었다.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피로 깨끗하게 하신다. 평생을 은혜의 주류에 서길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능력은 3. 막달라 마리아는 귀신의 통치를 받는 은혜의 비주류에서 주님의 통치를 받는 은혜의 주류 인생으로 변화되었다. 모든 분들이 평생을 은혜의 주류에 서길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 참된 능력은 은혜의 많이많이 사랑받은 자답게 살아야 한다. 은혜의 주류에 산다는 것은 많이 은혜 입은 자가 은혜 입은 자답게 사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살다보면 우리의 마음이 기가 막힐 때도 있고, 마음이 일곱 귀신 든 자처럼 오염될 때가 있다. 이웃사람 때문에, 돈, 정치, 동기 동창 동서 때문에 오염된다. 이럴 때 막달라 마리아처럼 우리는 은혜의 기준을 가지고 많이 사랑받은 자가 은혜로 주류로 섬겨야 한다. 은혜의 주류에 선다는 것은 내 가정적, 사회, 정치적, 경제적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
II. 주님을 향한 사랑은 모든 환경을 초월한다. 1. 요한복음 20:1 –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1)시간 초월- 아직 어두울 때에 라고 했다. 우리도 끝나자 말자 시간 지체 말고 교회로 모이자. 마리아는 시간을 놓치지 않고 쫓아갔다. 주님을 향한 사람은 시간을 초월한다. 진실로 사랑하면 날을 샌다. 2)공간 초월 – 무덤은 사람이 가장 가기 꺼려한 곳이다. 마리아는 주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로 예수님이 계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간다. 십자가에서부터 시신을 내릴 때도, 공간을 초월했다. 3)계산 초월 - 막달라 마리아는 장례를 위한 향료품도 준비하고 무덤에 간 것이다. 예수님을 참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2.주님을 향한 찬된 사랑은 환경을 초월하는 거룩한 무모함이 있다. 사랑하는 마음은 조건이나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는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환경에 질질 끌려가는 열 한 제자들의 모습처럼이 아닌 마리아는 시공을 초월한다. 순도 높은 사람은 무모할 정도로 환경을 초월한 거룩한 무모함이다. 무대뽀이다. 참된 사랑은 거룩한 무모함이, 마리아의 사랑을 뛰어넘지 못한다. 선교사들의 그 선교가 모두 거룩한 무모함이다.
3. “나는 조선 사람을 사랑하였고, 또 그들을 예수님께 인도하기를 원하였다” 한국 사회에서 사무엘 모어는 조선을 사랑했고, 예수님을 인도했다.
*여기 마리아는 빈 무덤을 보고 펑펑 울었다. 왜 우는가? 주님을 향한 절실한 사랑의 순도 때문에 눈물로 표현하는 것이다. 주님을 향한 순도 때문에 나온 것이다. 복음의 능력 보혈의 능력이~ 한국교회의 선대의 능력이 세대계승을 하기를 지킬 것을 바란다.
III.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이 직접 만나 주셨다. 1. 요한복음 20:18,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처음에 주님을 몰라봤다. 마리아는 슬퍼서 돌아보니 동산지기인 줄 알았다 첫 번째 아담도 동산지기, 두 번째 동산 지기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의 동산지기가 있어야 한다. 마리아가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꼭 필요한 자들에게만 만나주신다. 2. 요한복음 20:16 “예수께서 마리아야...”요한복음 10:27,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니라” 우리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해 주신다. 3. 예수님은 마리아 등 뒤에 계시면서 만나 주셨다. 우리도 나의 등 뒤에서 나를 지키시는 주를 사랑한다. 오늘 부르자 ~~우리도 마리아 등 뒤에 있으니 미래를 향한다. 우리에게는 손에 드는 빽이 아닌 우리에 등 뒤에 진실 된 빽이 있지 않는가!!! 4. 누가복음7:47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것이다. 옥합을 깨서 발을 씻고 머리카락으로 닦았다. 이는 그를 사랑함이 많다 사함을 많이 받은 자로서 주님을 많이 사랑하는 대류에 서라~ 우리는 누구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많이 받은 자이다. 지금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된다는 것이 아름답다. 우리의 헌신이 교회의 미래가 결정된다. 수 주간이 수년간을 결정한다. 순도 높은 사랑하면 주님은 행하신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사랑 받은 자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주님께 사랑받는 정체성을 가지고 민족의 새날을 여는 데 쓰임 받기를 기도한다.
♣느낀 점 목사님은 이 코로나19가 속히 가기를 간절히 원하심을 본다. 우리도 그렇게 어서 속히 종식되어 제대로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으면 좋겠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귀신들리고 부족한 사람들이 아직도 천지인데 안아 주시는 본당에서 은혜를 충만히 받고 성령을 체험하는 자가 많아지고 치유 받은 자가 넘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마리아처럼 진전한 여성 제자로서 한결 같이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 더 은혜 받은 자가 더 많이 베풀고 더 많이 나누며 그 부족한 자들을 사랑하기를 간구한다. 오늘 오랜만에 교회에서 헌금 봉사와 예배를 드리니 너무 좋았다. 계속 이렇게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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