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토요비전 새벽예배(주후 2022년 2월 19일)
제목: ''예수가 답이다''
기도: 최형복 집사님(목양 6팀 대교구장)
말씀: 다니엘 3:19~27
말씀읽기: 오재희(청년4국), 장원석(대학2부)
찬양인도: 쉐키나 찬양, 목양 6팀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류효근 목사님(초빙)-(순회군 선교사, 전 해군 군종감)
ㅡㅡㅡㅡㅡㅡㅡ
 
*다니엘 3:19~27,
19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얼굴빛을 바꾸고 명령하여 이르되 그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
20 군대 중 용사 몇 사람에게 명령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지라 하니라.
21 그러자 그 사람들을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하여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졌더라.
22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불이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23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떨어졌더라.
24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25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26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27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

*신명기28:1~14,
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7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8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9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
10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11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을 많게 하시며.
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13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14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예수가 답이다.

오늘 새벽에 일찍이 기도를 하다가 토요일에 많이 모이시는 토요일 특별히 토비새라고 약자를 사용하는데, 기도하는 새가 있구나, 했다. 기도하는 새가 있으니 토요일 기도하는 새, 또 한 가지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새가 ‘토비새’이다. 그런 생각을 해봤다. 제 친구가 서울 강동구 쪽에 있는데 새벽기도를 말하면서 기도를 해달라고 했더니 자기는 ‘토비새’는 못 오고 ‘토새깨’는 한다고 했다. 토요새벽을 깨는 기도를 한다고 했다. 토비새도 있고 토새깨도 있고 토비새는 유일한 기도하는 새, 토요일은 더 기도 하고 매일 기도하는 특새도 있지만 토비새가 귀함을 느꼈다.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특별히 밤마다 새벽마다 기도하기를 사랑의교회가 한국교회와 열방을 책임지는 교회가 되게 위해서 기도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약속이기 때문에 한 번도 빠짐없이 올라가서 담임 목사님 여러 교역자님들, 장로님들, 권사님들, 안수 집사님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특별히 육해공군 해병대, 대한민국 모두 금년에 너무나 중요한 3월 9일 대선에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이 나라를 섬기게 하소서.!!~ 하며 기도한다. 하나님께 엎드리게 하소서. 답답한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엎드리는 사람을 볼 수 있어야 할 터인데 그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 누군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 사람이 이 나라를 섬기게 하소서. 이렇게 산에 올라가서 기도한다. 매서운 추위가 대한민국 육해공군 해병대에 특별히 동해안 최북단 통일 전망대 근처, 우리 해군 지휘관이 있는 해군사관학교 십년 이상 된 후보님이 섬기고 있는 부대이다. 제 아내와 함께 300개의 위문품을 싸서 거기에 소책자를 담아서 찾아갔다.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른다. 그 이유는 더워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찾아오지 않는다.

 
집에 와서 보니 카톡이 왔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저는 기적을 봤습니다. 저의 내외가 아주 부족한 사람인데 목사님의 부부를 통해서 주님을 봤습니다.” 라는 것이다. 눈물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한 동안 목사님 사모님을 통해 오신 예수님을 어떻게 접할지 그 좋으심 어떻게 이해할지 고민해야겠다고 했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며 예수님을 새롭게 영접하고 예수님 때문에 죽을 수 있는 기회를 알려달라고 했다. 이렇게 긴 글이 오고갔다..
 
새벽을 깨우는 세계 유일의 토비새, 기도 용사들이시여,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세상에 어떻게 보이는가? 여러분들이 어떻게 믿음을 표현하는가? 왕 한 분을 찾는다. 이런 분이다. 느부갓네살, 바벨론 제국의 두 번째 왕으로서 BC 587년 남방 유다를 멸망시켰다. 많은 유다 사람들을 바벨론으로 끌고 가는 도중에 유다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2차 포로로 끌겨가서 다니엘의 추천을 받고 좋은 관직을 맡게 되었다. 왕의 말만 잘 들으면 미래가 보장된 자리이다.

그런데 어느 날 왕이 명령을 내린다. “신상에게 절하라, 온 백성이 절하라.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맹렬히 타는 뜨거운 풀무 불에 집어넣겠다.”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앞이 창창한 세 사람은 고민한다. “하나님 한번 만 봐주세요.” Sorry Sir, 하면서 절을 할 것인가? 아니면 유일한 하나님의 중심 신앙으로 승리할 것인가! 하나를 택해야 했다. 서슬 퍼런 왕의 명령 앞에 백성들은 어떻게 반응한가? 다 절했다. 그런데 절하지 아니하는 3명의 청년이 고소를 당하고 왕 앞에 선다. “너희들이 정말 그렇게 절을 하지 아니하겠다고?” 왕이 소리친다. 아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한 번 더 기회를 준다. “이제라도 너희가 엎드려 절하면, 기회를 주겠다. 살게 해 주겠다.”라고 한다.

 
여러분,
저는 이 말씀 속에서 이제라도 ‘now’ 이 짧은 단어에 느낌이 왔다. 이제라도, 아니, 지금만, 기독교 신앙은 언제나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다. 일평생 하나님과 우상, 하나님과 세상, 하나님과 마귀, 진리와 비 진리, 하나님과 나, 둘 중 하나를 택하고 산 일생의 선택이 기독교 신앙이다. 오늘 선택을 잘하셨다. 기도의 자리에 오셨다. 선택을 한 것이다. 이런 선택은 여러 양상으로 나타난다. 교회 갈까, 놀러갈까, 하나님의 뜻, 내 뜻, 성경, 드라마, 정욕, 거룩, 담임 목사님 말씀처럼 마귀를 향해 선제공격하는 기도 대접의 외침의 현장에 갈까 말까? 또 율법의 딱딱한 직판을 복음의 파워로 뒤집는 거룩한 새 판짜기의 주인공이 될까? 말까? 요즘 유행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저 그렇게 살까? 선택이다. 이런 선택도 있다. 위드 코로나를 위드 크라이스트(With Christ)로 비온드 코로나(beyond covid)로, 시대를 선도하는 역사와 부흥의 선봉장으로 살까? 그저 희미하게 살까? 중간 8배 자리에 서서 살까? 이런 선택이 날마다 우리에게 도전한다. 어떤 선택을 하시겠는가? 여러분, 목사님의 글을 자주 보는 가운데 요즘은 특별히 제자훈련 2.0, 온전 론 시대에, 변혁의 주체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한다. 변화를 거부하지 말고 그 자리에 머물지 말고, 여기 중심의 신자, 그런 신앙이 아니라 여기에서 저기로 나아가는 그러한 신앙, 교회에서부터 삶으로 새 지평을 여는 실천적 제자의 삶, 레벨 업(Lebel up) 할 것인가? 그저 신자로 머물 것인가?

 
저는 토저 목사님을 참 좋아한다. ‘믿음의 돛 세우기’라는 그분의 책이 있다. 그는 말한다.
“세상 방향으로 가면 망한다. 타협의 다리에서 돌아서라.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양다리는 없다.”

오늘 제 7차 토비새에 오신 분들은 예수 방향으로 돛을 세웠다. 하나님이 어찌 축복하지 않으시겠는가? 이토록 목말라 하는데, 이토록 새벽을 깨우면서 은혜의 군단, 은혜의 주체의 자리에 오셨는데 어찌 여러분의 사랑의 교회와 이 민족을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겠는가!!! 기도가 생명의 길이다. 기도가 나를 살리는 길이다.
 
▷본문에 보면,
이제라도 조건이 있다고 한다. 엎드리라, 누구에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라고 한다. 이 때 이들은 간단하게 말한다. “우리가 왕에게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한다.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다. 간결하게 “NO comment Sir!” 말할 것이 없다고 한다.
여러분, 이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짧은 단어가 있다면 ‘NO’이다. 왜 Yes와 No를 구분하지 못하는가? 오히려 Yes, 할 때 No, 하고, No, 할 때 Yes, 하는 우리의 무 분별함, 상대주의에 물 들은 현대 크리스천들의 가장 큰 취약점인 Yes, No를 구분하지 못한다. 이의 선택을 거꾸로 한다. 다른 선택의 결단력을 놓치고 마귀에게 자리를 빼앗긴다. 성경은 선포한다.
 
*시편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NO인 것이다. 이들은 더 단호하게 선포하기를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이렇게 선포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각오의 정신으로 “그렇게 아니하셔도 좋습니다. 우린 절하지 않겠습니다.”

이러한 신앙이 우리의 신앙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한다. 그렇게 아니하실지라도,,, 그렇게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But evenif He does not...- It OK. 괜찮다는 것이다. 왜? 나의 신앙을 지키는 것이니까, 저들은 천국을 보았다. 순간의 생명 부지를 원치 아니하고,내가 지금 죽어서 신상 앞에서 지옥 가는 것보다는 죽어서 천국 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거뜬히 건져내실 하나님을 바라봤다. 그리고 내가 지금 죽어도 천국에서 안아주실 하나님을 본 것이다. 이 새벽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하나님, 저를 만나주옵소서!~

 
이 새벽에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하나님, 그런 왕의 유혹은 우리에게 여러 양상으로 나타난다. 날마다 하나님을 따르겠느냐? 이 시대의 신을 따르겠느냐? 너희가 가장 좋아하는 숨겨진 우상은 무엇이냐? 그 산당을 허물라는 것이다. 내가 허물 수 허물 수밖에 없는 산당, 버릴 우상은 무엇인지 이 시간 찾아서 허물라, 버리라. 그 속에 대신 하나님을, 성령님을, 예수님을 채우시길 바란다.
 
그 세 사람은 밧줄에 묶여서 일곱 배나 뜨거운 풀무 불에 던져진다. 몇 분도 지나지 않아서 그들의 형체는 찾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결박당해서 풀무 불에 던져진다. 세 사람의 뼈가 다 녹아보리고 그들을 태운 냄새가 진동을 했을까? 그들은 살았다. 머리털도 상하지 않았다. 겉옷 빛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을 묶어 던졌던 용사들이 이 풀무 불에서 다 죽었다. 놀라운 사실이다. 이 세 사람, 더하기 한 사람, 함께 했다는 것이다. 3+1이다. 우리의 삶 속에 우리의 신앙을 견고히 지킬 수 있다면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시든지 성령님 함께 하셔서 우리를 거뜬히 이겨내게 하신다. 3+1, 나+또 한 번 성령님, 하나님, 예수님, 그래서 승리할 수 있다. 왕이 놀라지 않는가? 분명히 셋이었는데 한 사람은 누구이냐고 한다. 네 사람이 불 가운데 거닐었다. 가슴이 푹 젖은 왕이 바라볼 때, 신들의 아들과 같다고 했다.
 
저는 사실 목사님과 여러 목사님들이 계신 가운데, 이 문제를 가지고 2주간 고민했다. 신들이 아들, 킹 제임스는 The Son of GGod, 예수님을 보기도 하지만, 안전하지 않은 것 같아서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임마누엘 함께 하시는 표현이다. 장차 오실 성육신 예수 그리스도로서 상징으로서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라고 해석했다. 3+1분,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 혹은 도울 어떤 분을 보내시든 간에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혼자가 아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우리를 사망에서 옮기셨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가 세상에 보여줄 것은 이것이다. 저 사랑의교회 옆에 있는 그 한 사람이 누구이냐? 누가 함께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함께 거닐고 있다. 그분이 누구인가?

우리가 예수를 잘 믿으면 세상 앞에 예수를 보여줄 수 있다. 이게 전도이다. 이 놀람이 우리의 삶으로부터 표출되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서 신앙의 패배자가 아니라 거뜬하게 살아서 그리스도가 보여 져야 한다. 나를 통해서... 토비새에 나온 우리들을 통해서,.,, 오늘 날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신앙인이다. 하나님이 이 나라에도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누군가가 나라를 섬기게 하시고 질곡의 역사 속에 꽃을 피운 대한민국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한 분으로 인하여 더 성장하게 하시고 열방 앞에 복음이 되게 하시고 이 나라를 깨울 수 있는 누군가 엎드리는 한 사람을 주시길 기도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살아내는 신앙, 세상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 그 한 사람을 보고 싶은, 사단이 컨트롤 하는 세상 문화라는 이름으로 유린하는 온갖 도전 앞에서 오직 그루터기 신앙으로 영원한 그 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한다. 여러분, 코로나 시대에 많이 지쳐있는가? 제 주변에는 많이 감염되어서 다 나았다. 기도중에 코로나 시대에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생각해보았다. 외적으로 내적으로 볼 때,


-외적으로는
바이러스 쓰나미에 주눅 들지 말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센 파도를 거슬러 승리하는 모습이요, 지친 세상 사람들에게 나와 함께 하시는 그분 예수 그리스도, 세상의 진정한 소망을 선포하며 보여 주는 것,
-이러한 생각이 들었으며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내적으로는
의학과 과학과 방역을 뛰어넘는 Beyond Corona의 주권자.
하나님을 배고파하라.(Hunger for God).
하나님께 매달리라(Cling to God).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라.(Closer to God).

-이것이 주의 뜻이고 명령이다. 하나님을 배고파하라. 무엇을 배고파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하나님 속에 경고음은 뚜렷하다. 하나님만이 답이다. 라는 뜻이다. 이 나라 이민족 대한민국도 하나님이 답이라는 것이다. 예수가 답이다. 온 우주와 지구상에 한 인간을 하나님이 잡고 계심을 알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 절대성,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라는 것이다. 따라서 무릎 꿇는 오늘 토비새의 기도가 진정한 구국이고 애국이며 시대가 요구하는 그루터기 신앙인줄 믿는다.
 
드디어 왕이 하나님을 찬양한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을 몰랐겠지만 어떤 신, 너희가 믿는 하나님을 나도 믿겠다고 한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최종 도달점은 하나님께 영광이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높여드려야 한다. 이것이 구국이다. 하나님 오늘 토비새의 기도를 통해 우리가 주의 대사가 되고 주의 편지가 되게 하시며 세상이 우리를 보고 놀라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게 하시고 찬양하게 되기를 소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결론은 토비새는 힘 빠진 한국 기독교의 힘 빠진 대한민국 땅에 새 에너지를 공급하는 생명운동인줄 믿는다. 코리아를 깨우는 대 각성인줄 믿는다. 여러분 기도가 왜 구국인가? 하나님이 이 나라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이다. 여러분 도전하라. 예수가 답이다. 하나님이 답이다.
 
팀 켈러는 기독교 신앙을 답이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답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변함없이 답이다. 예수를 자신 있게 전해야 한다. “예수가 답이다.”
 
One Haystack
 
♣요약
우리의 삶 속에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 앞에 내 뒤에 계심을 믿으며 보여주는 삶을 통해서 예수가 답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게 되기를 소원한다. 나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배고파하라.(Hunger for God).
하나님께 매달리라(Cling to God),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라.(Closer to God)처럼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나아가 하나님을 높이고 전도를 감당해야 한다. 힘 빠진 대한민국에 새 에너지가 되도록 신실하게 기도하여서 예수님만이 답이라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끝까지 자신들의 신앙을 지켰다. 그들은 육체만을 없앨 수 있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도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분께만 순종했던 것이다. 소년들을 풀무 불에 넣은 후 왕이 놀란 까닭은, 결박되어 평소보다 7배나 뜨거운 풀무 불에 던져진 세 사람이 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결박이 풀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사람이 던져졌는데 네 사람이 불 가운데 있었으며 넷째의 모양은‘신들의 아들’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아무도 불에 상하지 않았으며 머리털도 그을리지 않았고 고의 빛도 변하지 않았으며 불탄 냄새도 없었다. 반면에 세 사람을 죽이려고 모의 했던 이들은 그 뜨거운 풀 무불에 타 죽고 말았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 고난당하는 자들을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함께 고난당하시며 우리와 동행해 주신다.
 
*신명기 28
1~14, 담임 목사님 요약,
-먼저 개인적인 것이 있는데, 이는 생활의 복(3절), 자녀의 복(4절), 소유의 복(4, 5절), 출입의 복(6절) 등이다. 그리고 민족적 우월성(1, 2절), 전쟁에서의 승리(7절), 민족의 부강(8-12절), 민족적 명예의 향유 등과 같은 민족적인 것이 있다. 이러한 복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면 율법을 지키는 국민이 받게 되는 복(1, 2절), 생활 중에 받게 되는 복(3-6절), 적군으로부터의 보호의 복(7-10절)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율법을 지키는 국민이 받게 되는 복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뛰어나게 되는 것이다. 또 생활 중에 받게 되는 복은,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으며 집에 속한 모든 사람과 생축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게 된다. 한편 적군으로부터의 보호의 복은, 대적들이 한 길로 쳐들어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게 되며 세계 만민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한 누구의 무력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요약
-우리의 삶 속에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 앞에 내 뒤에 계심을 믿으며 보여주는 삶을 통해서 예수가 답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게 되기를 소원한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끝까지 자신들의 신앙을 지켰다. 그들은 육체만을 없앨 수 있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도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분께만 순종했던 것이다. 소년들을 풀무 불에 넣은 후 왕이 놀란 까닭은, 결박되어 평소보다 7배나 뜨거운 풀무 불에 던져진 세 사람이 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결박이 풀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사람이 던져졌는데 네 사람이 불 가운데 있었으며 넷째의 모양은‘신들의 아들’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아무도 불에 상하지 않았으며 머리털도 그을리지 않았고 고의 빛도 변하지 않았으며 불탄 냄새도 없었다. 반면에 세 사람을 죽이려고 모의 했던 이들은 그 뜨거운 풀 무불에 타 죽고 말았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 고난당하는 자들을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함께 고난당하시며 우리와 동행해 주신다.
 
*신명기 28
1~14, 담임 목사님 요약,
-먼저 개인적인 것이 있는데, 이는 생활의 복(3절), 자녀의 복(4절), 소유의 복(4, 5절), 출입의 복(6절) 등이다. 그리고 민족적 우월성(1, 2절), 전쟁에서의 승리(7절), 민족의 부강(8-12절), 민족적 명예의 향유 등과 같은 민족적인 것이 있다. 이러한 복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면 율법을 지키는 국민이 받게 되는 복(1, 2절), 생활 중에 받게 되는 복(3-6절), 적군으로부터의 보호의 복(7-10절)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율법을 지키는 국민이 받게 되는 복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뛰어나게 되는 것이다. 또 생활 중에 받게 되는 복은,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으며 집에 속한 모든 사람과 생축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게 된다. 한편 적군으로부터의 보호의 복은, 대적들이 한 길로 쳐들어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게 되며 세계 만민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한 누구의 무력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2년 2월 16일)
제목: "평신도훈련 개강예배"
말씀: 요한일서 2:15-17,
대표기도: 송기양 장로님(평신도훈련부)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찬양: 시온찬양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
 
*요한일서 2:15-17,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
 
▶코로나 상황이 엄중한 가운데서도 사랑의 교회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한 결 같이 제자훈련(사역훈련,전도훈련) 개강감사예배를 3년째 드리게 하심에 감사드린다. 사실 쉽지 않은 상황이다. 어떻게 이렇게 인도하시며 감사예배 드리게 하심이 영광스럽다. 혹자는 사랑의 교회를 평가할 때, 이런저런 겉으로 보기에는 말씀들을 하시지만 사랑의 교회 비밀병기의 몇 가지가 있다. 오늘 저녁이다. 이 제자훈련과 사역훈련, 전도폭발도 다 그러하다. 우리 교회의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소위 영적인 비밀 병기가 영적인 비밀 병기(spiritual secret weapon)가 무얼까? 오늘 저녁의 제자훈련 사역이고 어제 하루 종일 있었던 순장 반 개강예배, 이번 금요일마다 다 아는 다락방, 이 세 가지는 원씽 원 아더가(One thing another) 아니라, 아주 정밀하게 서로 연결이 되어있다. 제자훈련을 통해 순장들이 배출되고 배출된 순장들이 다락방을 섬기며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단체든지 비슷한 사역을 한 30년을 하면은 흥망성쇠(興亡盛衰)가 있다. 어느 교회든지 2~30년 지나가다가 30년이 지나면 정체가 일어나고 약회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사랑의 교회는 놀랍게도 오늘 37기 제자 반, 43기 사역훈련반이 꾸준하게 이렇게 감당하도록 하셨다. 순장반이나 제자반 사역반, 다락방이 더 품위 있게 더 약화되지 않도록 더 영적 생기가 더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교회에 또한 SAGA를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 4가지가 서로 네 바퀴처럼 굴러가는 것이다. 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바퀴처럼 하나도 흔들리지 않도록 균형을 잃지 않고 가고 있다. 사랑의교회는 순장반, 제자반, 다락방, 사랑글로벌 아카데미가 이와 같이 서로 네 바퀴처럼 잘 균형을 잡고 이 시대의 대로를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출발이 감사예배이다. 저는 오늘 아침부터 아주 설레였다. 오늘도 누군가가 이 감사예배를 위해 기도하고 기대하는 분들이 많았을 것이기에 우리 중직자, 신실한 성도님들 가운데 모두가 제자훈련이 코로나 3년째에 코로나 위중 가운데 있는 가운데서도 지속적으로 인도해 주심을 감사하며 간절하게 기도해 주시기에 오늘 이 자리가 있는 줄로 확신한다.
 
그러면 제자훈련의 핵심은 무엇인가? 예수님처럼 되고 예수님처럼 삶을 사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다. 오늘 본문을 볼 때는 영원을 위하여,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위하여 준비되고 개인은 영원을 위한 투자의 인생이 되고, 그가 속한 공동체는 영원을 위한 하나님의 훈련된 신실한 종들을 많이 재생산하는 그 일이야말로 제자훈련의 요체이다. 사람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예를 들어서 고구려가 대단한 나라였다. 한 때 고구려는 요동 벌을 북쪽을 진압했고 천하를 진압하듯이 지금도 길림성 장군총에 가보면 그 고구려 왕 들의 무덤이 거의 피라미드처럼 대단하게 컸다. 스케일이 동아시아를 호령할 정도로 큰 스케일이었다. 오죽하면 당나라 이세민이가 도망갈 정도로 강력한 스케일이었다. 그런데 스케일이 컸지만 좀 디테일하지 못했다. 백제는 금동대향로라고 부여 국립박물관에 가보면 있는데 향로가 멋있다. AD 7세기에 예술의 정수였고 백제 문화의 정수라고 하는 놀라운 문물이다. 중국도 그런 것이 없다. 백제 금동대향로(百濟 金銅大香爐), 그런 것도 좀 보도록 하면 좋겠다. 문화의 티테일(detail) 비결이 굉장했지만. 백제도 스케일이 없었다. 그런데 신라는 스케일도 없었고 디테일도 없었다. 그러나 신라는 화랑도를 키웠다. 사람을 키운 것이다. 그래서 민족의 역사의 해석을 넘어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이다. 김유신, 김춘추 등 인재 교육기관이었다. 무엇을 말씀 하냐면 사랑의 교회의 제자훈련은 신라의 화랑도를 키우는 것보다 더 낫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랑의 교회 제자훈련은 화랑도보다 낫다. 신라시대는 성경도 없었고 신라시대는 예수님도 몰랐고, 신라시대는 교회도 성령의 역사도 없었다. 그런데도 사람을 키웠다. 우리는 고구려, 백제의 문화유산도 없지만 우리는 사람을 한 번 키워보자는 마음으로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와 사랑의 교회는 제자훈련은 한 결 같이 우리를 인도하심에 하나님을 찬양하며 오늘 개강예배에 드림이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김도훈 목사님, 박삼열 목사님, 내년도에는 개강예배에 차고 넘치는 교회가 되도록 준비해 보시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쏟아보기를 기도합시다. 한국교회 이 정도의 예배도 너무 감사하지만 내년도는 더 차고 넘쳐야 하고 숫자가 아닌 그만한 그 기백을 가지고 이 예배를 드리기를 소원한다. 사람을 키운다는 것이 무엇인가? 고구려도 못한, 백제도 못한, 화랑도가 있다지만 화랑도와 게임도 안 되는 예수님의 제자를 키운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인가? 오늘 본문을 암송하고 그 가운데 뜻이 있다. 요한 일서에 있다.
 
*요한일서 2:15-17,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그러면 우리가 사람을 키운다는 것이 어떤 뜻인가? 제자반, 사역반 개강예배에 중요한 것은 우리가 흔들림 없이 온 교회가 들어야 한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거하느니라. 하신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을 영적으로 훈련하고 키우고 키워진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키우는 영적 재생산, 승법 번식을 하는 것을 일컬어서 소위 제자훈련을 하는 것이다. 오늘 이번 기수 모두가 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주의 종들이 다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오늘 찬양대와 오케스트라가 드린 찬양 ‘우릴 사용 하소서’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께 쓰임 받는 신실한 주의 종들을 무장시키는 제자훈련이 되기를 소망한다. 왜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일인가? 하나님의 뜻은 바로 영원이다. 영원을 위한 성공이다. 우리를 위한 목자의 심정을 가진 주님은 우리 모든 이에게 이 땅의 일시적으로 잘 되는 정도가 아니라 너희는 영원한 세계까지 영적으로 성공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왜냐면 이 세상에 있는 것이 딱 세 가지이다. 이 세상의 정욕도 다 자나간다고 하는데 이런 세상에 있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이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 같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대표적인 것이 롯이었다. 그 소돔성의 육신의 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총 집합시켜 놓은 곳이다. 그런데 겉으로 볼 때는 여호와의 동산, 에덴동산처럼 멋있어 보였다. 사실 그 속에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었고 곧 얼마 있지 않으면 소돔성은 장망성(장차 망할 성)이 되었다. 이것은 천로역정 1장에 나온다. 우리 모두는 장망성에 살고 있다. 장망성은 장차 망할 성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하나님 모르는 이생의 자랑이었다. 다 같다. 광야길 가운데 시험 든 것, 육신의 정욕, 먹는 것 등이 육신의 정욕이며, 안목의 정욕은 금송아지, 이생의 정욕은 너만 선지자이냐? 누이가 되고 형이 되어서 모세를 가지고 강력한 연동성도 없다. 그런 식으로 이생의 자랑이다. 광야에서 예수님이 시험 받을 때, 육신의 정욕-돌이 떡 덩이가 되게 하라. 안목의 정욕-천하만국을 보여주고, 이생의 자랑-너도 뛰어 내려라. 다 똑 같다. 우리가 경험하는 삶의 모든 형편은 이 3가지 카테고리 안에 다 들어간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전부 다이다. 조금 더 들어가면 Money, Sexpower, 가 들어가겠다. 자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이것을 오버컴(overcome) 하고 이것을 하나님의 신실한 제자들로 키우는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도 지나가되 하나님의 뜻을 향하는 사람은 영원히 거한다. 그러니까 주님 이 땅에는 이 3가지가 있는데 우리는 그러면 무엇 때문에 제자훈련을 하는가?
 
왜 제자훈련을 하는가?
이 땅에서 있는 이 3가지를 극복하도록 훈련을 하는데, 이 땅에서 극복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대신에 그것은 이 땅에 있다가 다 소돔 성처럼 장차 없어지고 망할 성으로 끝나지만, 그것을 이겨내는 핵심은 영원한 것에 눈이 열려야 한다는 것이다. 영원한 것에 눈이 열려서 자기의 삶을 투자를 하고, 자기의 삶을 헌신하고, 자기의 삶이 주님께 쓰임 받는 것이다. 성경에 영원한 것이 딱 3가지이다. 그 영원한 3가지가 있다.
 
1. 주님이 영원하신 것.-히브리서 1장에 주님 연대가 다함이 없다. 심지어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주님이라고 그랬다.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하시다. 하나님이 영원하시다. 베드로전서 1장에 나오지만 풀은 마르고 떨어지되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다. 이 세상도 다 지나가지만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영원하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을 배출해 내는 일이다.
2. 하나님의 말씀, 우리의 삶의 디렉션을 받기 위해서.
3. 하나님의 사람. -사람도 영원하다. 영원한 사람을 더 무장되게 섬기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행하거나 아니거나 장소만 다를 뿐이지 인간의 영혼이 영원한 것이다. 인간의 영혼이 영원한 것이기에 이 세 가지 영원한 것에 투자할 수 있도록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제자훈련이다. 따라서
 
첫째는 영원을 위한 투자. 제자훈련은 주님이 영원하다. 주님을 더 깊이 알아야 하고 주님과 더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주님을 깊이 아는 은혜, 신비한 것이다. 내 평생의 소원이 되어야 한다.
-저는 신학교 가기 전에 대학부에서 캠퍼스 사역을 했다. 옥 목사님이 신학교를 가서 목회자가 되어서 섬기라고 하셔서 신학교를 간 것이다. 그런 후에 교회를 섬기게 되었다. 김해곤 선교사님은 서울대학교에서 오랜기간 섬겼다. 아무런 보장이 없었는데도 섬겼다. 내 마음에 주님이 나의 비전입니다. 라고 고백하고 했다. 당신이 나의 비전입니다. 라고 헌신했다. 주님이 나의 전부입니다. 라고 고백했다.(Be doubt my vision!!!~) 내 마음에 주여 소망되소서. ~~~484장. 찬양을 합시다. 우리는 화랑도보다도 더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을 키워내는 것이며 주님이 중심이 되신다. 이 찬송은 마이너이다. 애조를 띄었지만 웅장하다. 가사가 깊이가 있다. 밤이나 낮이나 나의 주님이시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 영원한 것으 바라보자. 
1. 주님,
2. 말씀,
3. 사람. 
-제자훈련은 영원한 주님을 더 깊이 알고 말씀을 통해 더 성숙하고 한 영혼 한 영혼이 영원한 것에 집중하고 말씀으로 영혼을 섬기는 일을 통해 무장된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을 키우는 것이다. 이 사명으로 이 한해도 맥박치는 사역이 소명이다. 
순장반, 제자반, 다락방이 서로 연결되어서 어느 것도 다 소중하다. 사랑글로벌이 더하여져서 하나님이 더 큰 은혜를 주실 것임을 확신한다. 선봉장이 되어야 한다.  네 바퀴가 균형있게 돌아가야 한다. 

 
요약
47기, 34기 사역훈련을 통해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고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서 말씀의 능력과 은혜의 디렉션을 받아 우리 교회가 한국교회와 하나되고 남북이 통일이 되는데, 화랑도보다도 더 놀라운 하나님의 제자들로 삼아주시길 소원한다. 어려운 형평이 훈련동안 없기를 간구하며 도우시는 주님의 은혜로 가정, 직장, 건강, 관계에 샬롬의 은혜가 되어야 한다.
우리를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의 길로 인도하심에 감사드리며 훈련의 모든 과정에 감당할 수 있는 은혜 가운데 주님의 온전한 제자로 빚어지며, 제자의 삶이 준비되는 훈련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품게 되는 온전한 제자로 비전과 기백으로 무장시켜 주시고, 자기 부인인 고통의 강을 은혜 중에 통과되기를 기도하며 새 영, 새 맘, 새 몸으로 훈련의 대 장정을 영광스럽게 마무리되길 소원한다. 온전한 제자로 빚어져서 한 마음으로 주님의 뜻을 따라 성숙한 훈련이 되기를 소망한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dl

주일예배(주후 2022년 2월 13일)

제목: "재정에 대한 새 판짜기"
말씀: 누가복음 16:9-13
대표기도: 박삼열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 영광 찬양대
사회: 장광천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
 
 
*누가복음 16:9-13,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재정에 대한 새 판짜기-
-제 마음의 소원은 위로부터는 하늘의 평화가 우리 성도들에게 임하며 이 자리에 앉은 우리의 성도들에게 은혜의 샘물이 터지게 되길 바란다. 여기 지하 5층에서 지상까지 이 썬 큰인 은혜의 폭포수가 있다. 마지막 한 방울 두 방울이 아니라 폭포수가 쏟아진다. 은혜의 폭포수가 되길 바란다. 오늘 본문은 재장에 대한 새 판짜기인데 핵심은 돈 갖고도 주님을 깊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배경은 그들이 살아생전 은 재정에 대한 새 판짜기이다. 핵심은 돈 가지고 주님을 깊이 만나길 바란다. 그리고 물질의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우리 성도들 주님 깊이 만나길 소망한다.
 
아브라함과 롯이 하나님의 축복하셔서 잘 되었다. 어는 정도 잘 되었냐면, 재산이 너무 많아서 종들이 서로 싸울 정도였다. 그런데 하나님이 축복을 하셨을 때, 롯은 겉으로 보기에 좋은 소돔을 선택했기에 쫄딱 망했다. 아브라함은 그 재산을 가지고 광야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래서 하나님이 축복의 근원으로 삼아주셨다. 오늘 이 은혜가 21세기 아브라함이 다 되기를 바란다. 물질 가지고 주님을 깊이 만나야 한다.
 
오늘 본문은 배경은 그들이 살았던 정황, 이 배경은 이 세상의 거칠고도 잔인한 현실적인 배경이다. 사실 우리 예수님은 로마제국 치하에서 가장 원초적이고도, 거칠고도, 잔인한 사역으로 사셨다. 오늘 불의한 청지기는 전형적인 분식회계를 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오늘 이 불의한 이 청지기는 실직한 후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현재의 기회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지혜롭다는 평가를 얻은 것이지 이로 인해 부정직과 사기술을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그는 악한 세대에 속한 자로서 악한 지혜를 사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부정이 다 드러났을 때에 자기 직업을 잃을 위기에 처해졌고 불안한 위기에서 심각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누가복음 16:3,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이 말은 도시 사는 사람이 육체 노동이 쉽지 않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가면 다 잘 사는 사람들는 좋은 직업 갖고 있고 재산이 많은 사람이 아닌 다 제 3국의 사람들이 청소하고 다 노동으로 관리한다. 노동자의 일을 한다. 그 청지기는 빌어먹자니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가 한 행동에 대해서 지혜롭다고 한 것이다. 불의한데 지혜롭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신다. 불의한데 지혜롭다고 하신다. 불의한 청지기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러한 행동에 대해서는 지혜롭다고 하신다. 옳지는 않지만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전력투구를 한 것이다. 이 세상의 아들들의 삶의 치열함에 관해서 우리는 그들에 비해서 철저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래서 재정에 대한 새 판짜기이다. 

*누가복음16:8b,
8b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청지게에 대해서 지혜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불의한 청지기는 옳지 않은 행동을 하긴 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 안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사간과 노력을 들여 전력투구하여 자기 미래를 준비했다.

-이 세상의 아들들의 치열함에 비해서 빛의 아들들이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하지 못한 것이다. 정확하고 치밀하지 못한 것이다. 돈 가지고 주님을 깊이 만나기를 바란다.
 
*누가복음 16:9,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것은 영원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지난주는 사용권과 소유권을 말했다. 오늘은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며, 물질이 영원을 위한 연결고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재물을 가지고 영원한 것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오늘 이 말씀은 불의한 재물을 강조한 것도 아니고 청지기 지혜를 생각해야 하는데 뜻은 현실의 물질이나 현실의 재정을 가지고 ‘영원을 준비하는 연결고리’를 만들라는 것이다. 우리의 재물로 헌신하고, 우리는 물질로 친구를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영원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돈이 있던 없던 상관없이 핵심은 우리의 재물로 영원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청지기는 자기에게 제한 된 시간으로 나름 제대로 활용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돈 문제로 힘들다고 한다. 동서남북이 다 짐이다.
 
-동쪽은 은행계좌가 있고,
-남쪽은 신용카드가 골치가 아프고
-북쪽은 주식시장이 그렇고
-서쪽은 국세청이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앞뒤 좌우를 막고 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우리는 어떤 식으로 물질 문제를 해결할까?
 
*누가복음 16:9b,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불의의 재물로 라는 말은 이 세상의 물질을 말한다. 이 세상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뜻이다. 물질을 가지고 인격 관계의 투자를 하면 나중에 재물이 없어질 때, 그 인격에 투자한 친구들이 추후에 영주할 처소를 준다는 것이다. -죽을 때는 빈 털털이가 된다. 있는 자나 없는 자나 nothing이다. 억만장자도 다 거짓말이다. 죽을 때는 아무것도 없다. 장례식을 거창하게 해도 아무것도 없이 사라진다. 죽을 때 무얼 가지고 가는가? 진시황도 죽을 때 준비하지만 그것도 나씽이다. 우리가 지혜롭다면 오늘의 생과 다음의 생을 연결하는 연결고리를 준비해야 한다. 연결고리를 준비하라.
 

I. 물질을 영원의 연결 고리로 사용할 수 있다.

-연결 링크로 사용해야한다. 오늘 본문에서는 친구를 주님 앞으로 인도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에 이해가 되도록 마태 마가 누가 공관복음에 다 나오는 중풍병자가 나온다. 온 몸이 마비된 중풍병자가 있었다. 그 친구들은 그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나오는데 남의 지붕을 뚫어서라도 예수님께 데려온다. 그 집주인은 날벼락일 것이다. 그 수리비는 누가 낼 것인가? 그 친구들이 내주었을 것이다. 4명의 친구가 물어주었을 것이다. 지혜로운 청지기처럼 돈을 사용한 것이다. 하늘에 쌓는 재물이다. 세상 재물로 친구를 위해 사용한다는 것이며 우리의 물질을 가지고 영원을 얻으라는 것이다. 우리의 도움으로 친구를 영접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값진 일이다. 복음 전하는 데에 물질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다.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우리와 영원한 처소에 들어가면 우리를 영주할 처소를 주실 것이다.
 
-사용자 재정원칙-
⓵물질을 영원을 준비하는 연결 고리로 만들어야 한다.
 
네 명의 친구가 그 지붕을 수리했을 것이다.
세상재물로 영혼을 얻으라. 빛의 아들들이 지혜로워져서 돈과 물질이 친구들을 인도하면 영성과 인도되는 것이다. 그 재정으로 친구들을 위해 영원을 위한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빛의 아들들인 우리가 친구들의 영원을 얻는 축복을 받기를 바란다. 우리 친구의 죄악을 탕감해 주는 것이다. 불의한 청지기가 친구들의 빚을 삭감한 것처럼 친구를 예수님께 인도하면 저들의 죄악을 탕감하게 하시고 영주할 처소를 우리에게 마련해 주신다. 전력투구하여야 하고 영원한 연결고리를 마련해야 한다.
 
*디모데전서 6:17~19,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친구를 사귀어서 영원한 것을 준비하는 것이다. 영원을 위한 연결고리이다. 참된 생명을 취하게 하신다. 바울이 이것을 깨달았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한 것이다. 이 세상은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디에 돈이 쓰이냐가 중요하다고 하신다.
 
기독교 저술가인 랜디알코니라는 사람이 있다. 책 속에 두 가지 예를 들고 있어서 참 마음에 와 닿았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소개한다. 여행가이드가 그리스도인이다. 이집트에 있는 선교사의 무덤에 데리고 간다. 미국선교사 묘지에 데리고 간 것이다. 이집트에서 윌리암 보데는 예일대 부모에게 많은 상속을 받은 자였다. 보데는 이슬람 사람들의 영혼을 주님 앞에 인도하는 것이었다. 이슬람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전 재산 영혼 구원을 위해 사용했다. 그 후 그 당시 25세에 척수염으로 죽는다. 윌리엄 보뎀은 예일대 나왔다. 25세에 순교를 한 것이다. 그는 부자였지만 남을 위해 재산을 다 쓰고 갔다. 카이로에서 이슬람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다 4개월 만에 죽었다 그 가이드가 안내하면서 투탕 가면이 있는 전시장에를 안내 한다. 거기에는 투탕 가면에는 17세기에 죽었는데 수많은 황금마차 등과 재물이 묻힌 곳이다. 황금 유물이 발견됨. 하나는 투탕가면의 묘지이고 하나는 윌리암 보뎀의 묘비가 있다. 황금마차와 황금 유물 그 앞에서 질문한다. 우리는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그 질문 앞에서 누구나가 다 투탕 가면으로 할 것이다. 저는 사역 자체가 영원한 로또이다. 로또는 그래서 안 산다. 우리가 쓰는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쓰이는 것이 로또이다. 우리는 투탕 가면으로 갈 것인가 세상 재물과 대단한 지위를 택할 것인가에 깊이 고민을 해봐야 한다.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 보야 한다. 윌리암 보뎀처럼 살면 좋지만 그래도 그의 삶은 신앙의 깊이 들어가지 않고는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살면서 아무리 백세 시대라 하더라도 70-80년 이상은 못 살 것이다. 우리는 어떤 글로 나의 묘비에 남길 것인가에 고민해 봐야 한다. 나의 묘비에 무어라고 쓸 것인가?
 
-사용자 재정원칙-
⓶물질에 관해서 내 묘비에 무엇이라 기록되면 좋을 것인가?
(물질을 영원을 위한 연결고리로 사용한 OOO)
 

-청지기 사용자 OOO, 우린 모두는 사용자로서 그리스도의 믿음을 따라 살아야 한다. 윌리암 보뎀의 생은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그의 삶을 설명할 길이 없다. 예수님의 믿음으로만 산 사람이다. 그의 인생은 오직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물질이 영혼구원과 연결이 되는 높은 품격을 갖게 되면 물질이 고품격이 되고 새 판짜기가 되는 것이다. 돈 가지고 주님을 깊이 만나는 은혜의 세계가 있다. 불의한 청지기는 부정적이었지만 빚진자들의 빚을 삭감해 줌으로 인해서 채무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잘못된 것이긴 하지만 그래서 그 채무자들이 두려워 떠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세계에 들어가도록 했다. 거래의 세계와 은혜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은혜의 셰계로 들어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탕감, 은혜의 세계가 되어야 한다.
 
-사용자 재정원칙-
⓵물질을 영원을 준비하는 연결 고리로 만들어야 한다.
-사용자 재정원칙-
⓶물질에 관해서 내 묘비에 무엇이라 기록되면 좋을 것인가?
(물질을 영원을 위한 연결고리로 사용한 OOO)
-사용자 재정원칙-
⓷ 작은 것에 충성되면 하나님께서 큰 것, 영적인 권능을 부어주신다.
 
*누가복음 16:10,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그래서 지극히 충성된 자에게는 큰 것을 주시며 권능을 부어주신다는 것이며 돈 재물 시간을 말한다. 영적인 세계인 하늘의 부요이다. 물질세계를 잘 경영하면 영적 세계의 부요함을 만들어 주신다는 것이다. 물질세계의 충성하면 영적 세계에도 풍성하다는 것이다. 헌금 생활이 잘 안 되면 무슨 큰 은혜를 받겠는가? 이다. 오죽하면 내 물질이 가는 곳에 마음도 간다고 하시는가? 주님은 누구도 작은 영역에서 충성하면 영적인 영역에서도 충성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작은 것에 충성하지 못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부요를 깨달으면 큰 영적인 부요를 부어주신다.
 
 
II.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에게 큰 것을 맡기신다.


-오병이어, 다윗의 작은 물맷돌, 요셉은 보디발 집에서 작은 것에 충성, 하나님 안에 영적인 부요를 예비하시는 것을 믿어야 한다.
 
*누가복음 16:11,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참된 것이 무언가? 바로 예수님 안에 누려야 하는 풍성한 은혜, 그리스도인이 샘솟는 은혜와 하늘의 권능과 축복, 우리의 삶속에서 샘솟는 은혜, 은혜의 폭포,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 예수님의 그 풍성한 것을 성령님이 주시는 것이다. 물질세계를 잘 감당하면 하늘의 권능과 능력을 체험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 말씀을 잘 깨닫지 못할 사람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3:12,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못 깨닫는 것이다. 자기 의를 꺽을 준비도 안 되어있고 바리새인들처럼 준비가 안 된 사람일 수 있다.

*요한복음 3:14,
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작은 일에 깨닫지 못하는데 어떻게 ,,,
 
-사용자 재정원칙-
⓷ 작은 것에 충성되면 하나님께서 큰 것, 영적인 권능을 부어주신다.
-작은 것에 충성하면, 큰 것 영적인 권능을 부어주신다 하늘의 큰 부요를 산 선지자들이 있다.
이 땅에 충성하면 물질을 통하여 거래의 세계에서 은혜의 세계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8:1,
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모두가 잘 되길 바란다. 오늘 양복을 10년 된 양복이다. 하나님이 물질을 풍성하게 주실 때 산 옷이다. 정말 하나님은 재물에 대한 마음을 바르게 갖고 작은 것에 충성하기를 바란다.
 
♣요약
세상 사람들이 눈의 부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한다. 나의 물질이 친구들의 죄악을 탕감 받게 하는 데에 쓰이게 하며, 영원을 준비하는 값진 연결고리로 드려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재정에 대한 고품격으로 새 판을 짜기를 제대로 하여 헌신을 충성되게 하고 나의 묘비에 영적 권능을 받는 물질의 지혜로운 사용자로 아름답게 기록되길 소원한다면 작은 것에 충성하여서 하나님의 더 크고 놀라운 기적의 은혜를 부어주심을 믿고 실천 하여야 한다.
 
-불의의 재물이란 하늘의 보화와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불의한 청지기가 마음대로 사용한 세상의 재물을 의미한다. 이는 불신자들이 세상에서 장차의 유익을 얻기 위해 지혜롭게 투자하듯이 신자도 천국에서의 유익을 위해 재물을 이용하는 법을 배우라는 뜻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고 재물은 하나님으로부터 맡아 관리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준다.. 그러므로 비록 재물은 하나님보다 열등한 것이지만 이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관리를 맡은 청지기답게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해야 한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2년 2월 11일)

제목 :“2022년 SAGA 입학감사예배”
말씀 : 사도행전 7:36~38, 마태복음 28:19~20.
대표기도: 백형선 장로님(재단법인 이사장님)
말씀읽기: 이병구(후원이사회 이사장님)

찬양: 영광찬양대
설교자 : 오정현 담임목사님, 엘머타운즈 목사님-영상(박사님)
----------------------------------
*사도행전 7:36~38(오정현 담임 목사님)
36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37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마태복음 28:19~20(엘머타운즈 박사님)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정현 담임목사님 설교.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이다.
첫째는 예배하는 장소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내일 주일예배를 기대하고 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며 수많은 말씀에 대한 큰 짐이 있지만 토요일 일정이 다 마치게 되면 주일 날 예배드릴 것이 기대가 되어서 영적으로 매 주일마다 마치 내 인생에 첫 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마치 내 인생의 마지막 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그런 은혜를 받는 것이 교회이며 예배의 공동체이다.
둘째는 교회 자체를 위한 훈련 공동체이다.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를 양육하고 키우고 재생산하는 곳이다. 또 교회는 교회 자체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복음 증거를 위해 세계선교에 놀라운 역할을 감당하는 방주이며 구원의 방주가 되는 것이다.
셋째는 일터에서 하나님 나라의 빛으로 소금으로 일꾼으로 그렇게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게 너무 중요한데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칠 때 목회자들을 이렇게 배출하는 신학교는 그렇게 한다. 신학교를 나오면 예배를 다시 배워야 하고 제자를 다시 배우고 일터선교와 복음 선교를 다시 배워야 되고 그래서 사랑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를 목표로 하다보니까 이 사랑글로벌 아카데미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수년전부터 기도를 하고 저희들이 이 코로나 와중에도 이런 대학원 수준의 학교가 개교 된 것은 우리가 유일한 것이다. 전 세계 우리가 이 코로나 상태에서 대학원수준의 훈련을 개강하는 곳은 유래가 아직 없다.2020년부터 했는데 사도행전 2020은 우리 빼지에도 있듯이 사도행전 20장 20절을 의미한다.
 
*사도행전 20:20,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무엇이든지 어디든지, 누구든지(anything, anywhere, anyone), 시간이나 공간이나 장소나 상황에 관계없이 유일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의 구주가 되시고, 이 주님을 위한 사명을 갖고 내 평생 하나님께 가장 쓰임 받는 것, 이런 일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어디에서나, 어떤 사람에게나, 기백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 신실한 사명을 선포하여 가르치는 그런 축복을 주실 줄 믿는다. 그런 마음으로 하다 보니 그런 축복이 있게 되었다. 그래서 교회가 존재하는 3가지는 예배 –아카데미, 훈련,- 제자훈련 아카데미, 복음-일터선교 및 글로벌 네트워크아카데미, 거기에다가(복음적 통일 아카데미) 기도하고 준비하라고 건강할 때 남북이 하나 될 줄 믿는다.
 
이 세상의 정치와 관계없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시대적 사명을 앞에 놓고 집중해서 보니, 이것이 아니면 안 되는 간절함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는 앞으로 10년 내에 거의 통일에 준하는 그런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정치적 통일이 완전히 안 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남북이 자유롭게 교류되는 일이 반드시 일을 것이다. 우리가 기도하고 있고 우리가 지난 70년을 기도해 왔기에 그런 은혜를 하나님을 이루어주실 것을 확신한다. 우리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면 10년 내로 통일에 준하는 것이 된다고 할 때에 지금 우리 민족적으로 어떤 사역의 어떤 우선순위(priverity)로 넘버원이 무엇인가? 바로 복음적 통일 아카데미가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난 18년 동안 쥬빌리 아카데미를 통해 구국통일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모든 것들을 축적(accumulation)해 놓으셨다가 하나님께서 지난여름 준비하게 하셔서 이번에 복음 통일아카데미까지 허락하셨다. 이 은혜가 얼마나 큰지 박수 올려 드린다.
 
※저는 미국에서 신학교를 다닐 때에 일본 친구도 있고, 중국 친구도 있었다. 화교출신 친구도 있었다. 우리가 미국에서 공부를 했지만 그 사람들과 수업을 했지만 한국교회, 일본교회, 중국교회, 특징이 무엇인가가 궁금했다. 우리가 일본교회는 우찌모라 간조라든지, 가가와또요히코 같은 사상가들을 많이 배출하는 교회이며 Thinking church이다. 그 다음 중국교회는 수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중국을 32년 전에 처음 가보니 북경에 있는 교회에서 첫 예배를 드리는데 그때, ‘다시 사신 주’를 찬양하는데 그렇게 눈물이 났고 그때는 많이 모여서 중국 사람들이 그렇게 찬송을 잘했다. 중국교회가 프레이징 처치(praising church)이다라고 했다. 그러면 한국교회(suffering church)는 고난을 통한 교회, 기도가 강한 교회이다.(praying church). (Thinking church, praising church, praying church).
그래서 우리 한국교회가 기도의 고난을 이겨낸,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고난을 이기는 신앙의 능력이며 고난을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 사랑글로벌 아카데미 2기를 출범하면서 앞으로 이 사랑 아카데미를 통하여 한국교회가 어떤 인물을 배출할 것인가? 한국교회는 교회는 믿는 자의 어머니이고 은혜를 주시는 곳이고 교회는 존재 이유와 민족적 존재이유로 복음적 평화통일을 기대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결국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인물들이 배출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입학식을 하면서 다시 한 번 마음에 끓어오르는 마음의 소원은 내 인생을 가장 값지게 하고 내 인생의 쓰릴이 넘치게 하고 내 인생을 가장 복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나 같은 인생을 하나님 앞에 사용되는 것이 부복하고 감사하고 정말 통절한 은혜를 받는 것이다. 오늘 입학하는 여러분들을 평생토록 하나님이 써주시길 소원하는 것이다. 성경에 있는 난 인물들이 우리 앞에 롤 모델로 주어졌다.
 
오늘 그 중에 한 사람인 모세에 대한 설명을 드리겠다. 앞으로 이 내용은 우리 사랑의교회 우리 사랑글로벌아카데미 입학식을 할 때마다 제가 자주 반복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반복하고 내게 남아야 하며 내게 체화가 되고 이것이 고백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재생산 되어야 함을 믿는다. 우리 앞에 있는 수많은 인물들 가운데 사랑 글로벌을 통해 예배 아카데미 제자훈련, 일터선교, 글로벌아카데미, 복음적 통일 아카데미를 통해 우리가 요청하고 소원하고 계획하고 방향을 잡는 인물이 누구인가?이다. 일차적으로는 모세와 같은 인물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지난번에 1기도도 그러했다. 2기는 더 주님 앞에 무장되고 더 하나님 귀하게 쓰시는 21세기 시대에 수많은 어려움과 난관들 가운데 저 출산, 젠더 문제, 차별금지법 등의 수많은 난관이 있지만 모세와 같은 인물이 배출이 되기를 소원한다.
 
모세는 어떤 인물인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구약시대에 그 광야학교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하나님의 나라에 놀라운 생도로 쓰시고 모세를 훈련을 시키셨다. 그리고 그냥 적당이가 아닌 균형 잡게 잘 감당하도록 훈련을 시키셨다. 모세가 얼마나 훈련되었는지를 보면 민수기에 나온다.
 
*민수기 12:3,
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모세의 온유함, 모세는 온유함이 모든 사람보다 더한 다는 것은 성경이 부드럽다. 겸손하다. 남을 잘 품는다. 다 포함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핵심은 나중에 광야교회와 연결되었듯이 결국은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백성과 시대를 향하여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십자가를 더 짊어지고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온유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비전과 사명과 하나님의 교회를 향하여 주님이 주신 십자가의 사명을 더 지고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온유함이다. 모세는 그렇게 갖추어진 사람이다. 모세는 어떻게 그렇게 갖추어진 것인가? 세 가지이다. 적용. 오늘 본문에 나오지만,,
 
모세는 120년을 살았다. 좋은 게 40, 40, 40으로 나눌 수 있다. 모세는 120세를 살아도 40, 40, 40이 멋있었다. 40년 동안 애굽에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목자와 지도자로서, 잘 살았다.
 
여러분, 앞으로 1년간 각 아카데미, 또 사랑의 교회 모든 교우들, 이 한 해 동안 이 사랑아카데미 입학식에서 기도하고 방향을 잡는 것처럼, 여러분들의 삶이 매년 마다 입학생도들처럼 매년 하나님 나라의 학생과 같은 그런 삶을 살면 인생은 정말 기쁘고 힘차고,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의미 있게 살다가 가는 것이다. 사랑의 교회는 사랑글로벌 아카데미와 같이 가면서 계속 젊어지고 계속 리프레쉬 해진다. 모세가 40년 동안 애굽에 모든 학문의 지혜를 배웠다.
 
*사도행전 7:22,
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개역 판에서는 모세가 애굽의 모든 학문에 통달하더라. 라고 되어 있다.
지금 우리로 말하면 모세는 아마도 7가지 이상의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건축학, 수사학, 천문학, 수학, 기하학, 피라미드를 건축할 때, 그 시기를 보면 람세스, 피라미드를 다 달통을 한 것이다. 애굽의 갖고 있는 모든 문화 천문 기상, 애굽의 모든 건축 등을 통달한 자가 모세이다. 사랑글로벌 아카데미에 각 학과별로 주어진 그 수준이 이 시대 앞에서 높은 수준을 주시길 바란다. 이 머리가 계발되기를 바라며 또 하나는 40년 동안 애굽에서 쫓겨나서 40년간 광야 생활을 하면서 애굽의 왕자로서 호의호식하다가 그 머리가 큰 대단한 지성인이었다. 너무 많이 아니까 좀 삐딱하다. 대게 똑똑한 사람들은 그렇다. 그런 사람
-모세를 40년 동안 광야에 집어넣어 가지고 훈련을 시키신 것이다. 광야는 온도가 조절이 안 된다. 낮에는 엄청 덥고, 저녁에는 춥다. 애굽의 왕자가 죽을 정도로 훈련한 것이다. 우리는 교회의 중직 자들이 이곳에 다 모였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모세처럼 하나님이 지워주신 십자가를 더 잘 지고 나갈 사명자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반드시 몸의 훈련을 시키신다. 육신은 대우하면 대우할수록 더 버릇이 없어진다.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더 버릇이 없어진다. 나이 든 분들은 예외이다. 나이든 분들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50대 이전까지는 잘 추슬러야 한다. 겸손하고 먹는 것, 입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다 추슬러야 한다.
-모세는 마지막 40년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이타심을 가지고 인도하느라 마음고생을 말로 다할 수 없이 했다. 오죽하면 모세가 나를 데려가 달라고 했다. 백성들을 내가 낳았냐고 반항했다. 그 고생을 하면서 그 마음 가운데 고생을 시킨 후 하나님은 모세를 민족의 지도자로 삼으시고 나중에 그 몸과 머리와 마음을 훈련시키셔서 목자의 심정을 갖게 하신다.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엉망으로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치우게 하시고 너의 후손으로 하여금 새로운 왕국을 형성하신다고 하신다. 하나님께 모세는 이 못된 것들을 다 치워주시라고 하겠지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도 사랑으로 알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품는다. 모세는 생명책에서 내 이름이 제거될지라도 하나님께 이 백성을 구원해 달라고 한다. 그것이 목자의 심정이다. 한국 교회가 사랑글로벌 아카데미가 이런 목자의 심정을 깨닫고 배우고 무장되면 여러분은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를 주실 줄 믿는다. 놀아운 은혜로 인도하실 것이다. 결론은 모세의 손에 든 지팡이는 예전에는 양치기 지팡이다. 이 훈련을 받고 나니, 몸의 훈련, 마음의 훈련, 깨어지는 훈련,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면서 수많은 좌절감에도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고 결코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였더니 모세의 손에 든 지팡이가 옛날에는 양치기 지팡이였지만 모세의 손에 든 지팡이가 나중에는 민족을 구원하는 지팡이가 되고 홍해를 가르는 지팡이가 되고 반석에서 샘물이 나는 지팡이가 된 것이다. 사랑글로벌 아카데미 출신들은 이렇게 모든 것을 이기는 모세처럼 예배, 훈련, 일터선교, 글로벌 네트워크, 특별히 복음적 통일 아카데미, 이 과정에서 한 해 동안 양치기 막대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반석에서 샘물이 나오게 되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하나씩 다 소유하고 은혜주실 줄 믿으며 한 분 한 분 붙잡아 주실 줄 소원한다.
 
♣요약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모세를 통해 구원하셨음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기사와 이적을 행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언제나 지켜보시며 인도하여 주심을 알 수 있다. 또한 모세는 나이 40이 되었을 때 자신의 고귀한 신분을 버리고 동족을 돌보았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희생하며 이웃을 돕고 있는지, 여전히 도움과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
 
 
▶엘마타운즈 박사님 설교.
세계에서 알아주시는 박사님이시다. 엘마타운즈 학교 창시한 박사님이시고 80대 후반이시다. 230권의 책을 쓰셨고, 우리 한국에 교회에 관한 책도 쓰신 분이다. 지금 버지니아에서 설교를 영상으로 하실 것이다. 하이브리드로 설교를 하시겠다.
-안녕하세요. 저는 엘머 타운즈이고 리버타대학교 공동설립자이다. 오늘 저는 사랑글로벌에 입학하여 하나님을 섬기기를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말씀을 드린다. 제가 학생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리버티대학교는 50년 전에 154명으로 개교를 시작했다. 그 중 대다수가 50년이 지난 지금도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현재는 학생수가 10만 명에 달한다. 오늘은 제가 첫 채플 시간에 했던 설교를 나누겠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마태복음 28:19~20,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 예수님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자기 제자들을 보내셨고 1년 훈련 후에 여러분도 보내실 것이다. 가서 지금 행하라. 가서 행하라고 하는 것이 무슨 뜻인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하라는 뜻이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예수님께서 당신을 섬기라고 부르시고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신다면, 예수님께서 당신 마음에 계시고 가서 내 종이 되라고 말씀하신다면 순종하여야 한다. 여기서 핵심 어구는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이다. 그러나 가서 하나님이 부르시는 일을 하라.고 하신다. 왜일까? 하나님께 순종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가야한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기적을 보겠다.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기 전이었다. 말씀에 보면 어머니 마리아는 혼례에 참석했는데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다. 마리아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그래서 하인들에게 말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내 아들이 무슨 말을 하든지, 그래로 하라.”라고 한다. 마리아의 첫 순종 명령이 예수님의 첫 기적을 열었다. 여러분의 첫 기적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첫 기적을 여실 것이다. 순종할 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그리고 선교현장에 가라. 하시면 가고, 성경 번역가나 성경 교사로 부르시면 하라. 어떻게 부르시든 그대로 하라. 에스라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는데, 그는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했다. 에스라는 하나님을 섬길 때 교사로 섬기기를 결심하며 그래서 자신을 준비하여 하나님의 교사가 되기로 했다. 에스라는 여호와의 율법을 사모하며 마음을 준비했다. 나도 여러분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사모하라’고 외친다. 구약과 신약을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고 이스라엘 율례를 가르치라.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라. 요한복음 14장 14절, 기도한다.
 
*요한복음 14:14,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탁월한 사역의 핵심은 하나님께 위대한 일을 구하는 것이다. 탁월한 사역의 핵심은 위대한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믿음을 가지려면 먼저 하나님의 조건을 알아야 한다. 순종해야 한다.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양도해야 한다. 당신의 죄를 씻는 예수님의 보혈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일을 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
 
*골로새서 3:23,
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하고 1년 학업 후 졸업하여 나갈 때, 가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돈과 명예보다 하나님을 우선으로 두고 소유보다 하나님을 우선으로 두라. 내가 차를 몰든, 오토바이를 타든, 걸어 다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우선으로 두라.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서 하라. 진심으로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을 두라. 마음을 다해 주께 하듯 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우리는 가장 위대한 명령을 받았다. “가라”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사령관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우리에게는 가장 위대한 명령이 있다. 온 세상으로 가서 전하고 가르치라. 그러면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다. ‘내가 너를 통해 역사하리라.’ 예수님은 당신을 사용하시고, 당신에게 힘을 주시고, 채우시고 당신을 통해 열매를 맺으시기겠다고 약속하셨다. 당신이 예수님의 종이 된다는 뜻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령관은 예수님이시다. 어려움도 만나겠지만 여러분은 예수님의 종이 되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고 그분과 함께 일할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그리고 당신을 통해 세상을 바꾸실 것이다. 입학하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한다. 위대한 힘과 부담감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킬 때, 예수님께서 함께 하신다. 왜 그럴까? 예수님은 세상을 바꾸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왜 세상을 바꾸실까? 예수님은 이 세상을 그의 형상을 닮도록 바꾸자고 하시기 때문이다. 당신을 할 수 있다. (You can do it).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대로만 한다면 말이다.
 
하나님 아버지, 입학생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이 주님의 명령과 부르심대로 순종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요약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하고 주님을 우선순위로 두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세상을 변화하게 하실 것이며 순종하면 주님이 일하신다. 위대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일이 가장 먼저이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세상으로 변화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주께 하듯 모든 일을 정성을 다해 하여야 한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주님께서는 남은 사역을 제자들에게 맡기셨다. 이 땅의 모든 성도는 예수님의 이러한 명령을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 주님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당신의 교회를 이끌어 가시며, 지금도 하늘에서 성도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계신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2년 2월 9일)

제목: ''하나님의 보배:경외함''
말씀: 말라기 3:16~18
설교자: 김지혁 부목사님
ㅡㅡㅡㅡㅡㅡㅡ
 
*말라기 3:16~18,
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18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
 
▶하나님의 보배, 경외함으로 정했다. 이것은 저의 표현이 아니라 이사야 33장 6절에 보면 그대로 나온다. 읽어보겠다.
 
*이사야 33:6,
6 네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우리말 성경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 보배가 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잇는데 이사야 33장 원문을 보면 좀 다르게 되어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하나님의 보배이다.” 이렇게 나온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우리에게도 참 가치 있고 귀한 일이지만 하나님에게 참 귀한 보배 같은 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좋으신 것이다. 저는 이 짧은 구절을 묵상하는데 제 마음에 얼마나 큰 울림이 있었는지 모른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피조물이 창조주를 경외하고 경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면서 정말 보배처럼 보배 있게 가치 있게 존귀하게 여겨주신다는 말이다. 마치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그것을 보시면서 “와!!! 좋다!” ~~ 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을 보시면서 “나의 보배다.” 라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표정과 마음을 보게 된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표정인 줄 믿는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짧은 구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읽어보자.
 
*말라기 3:16,
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느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듣고 있는 자들의 귀를 기울이시고 들으신다. 라고 약속을 하셨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땅에 있는 백성들의 말과 생각을 자세히 들으시기 위해서 하늘에서 허리를 숙이시고 몸을 낮추시고 마치 할아버지가 손녀를 바라볼 때 마치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그것을 기념 책에 기록해서 우리의 모든 선한 말과 선한 행위를 다 기억하신다고 하신다. 우리가 어떤 사역이나 섬김을 할 때, 과연 하나님께서 알아주실까? 를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은 몰라줘도, 교역자는 몰라줘도 우리의 모든 섬김과 헌신과 우리의 열심을 하나님께서 다 보시고, 아시고, 기억해 주신다고 약속을 해주신다. 또 17절을 보면,
 
*말라기 3:17,
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로 시작을 하는데 ‘만군’의 여호와의 명칭은 전쟁개념이 들어가 있는 용어이다. 싸우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이다. 말라기서에서 무려 24번이나 등장을 한다. 하나님이 싸우시는데 누구랑 싸우시는가? 희한하게도 다른 대적들과 싸우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싸우시는 대상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와 싸우신다. 이것은 사춘기 자녀를 기르시는 분들이라면 금방 아실 것이다. 무서운 중학생들을 키워보면 부모의 말을 고지 고 때로 듣는 아이들은 인간이 아니다. 그 애들은 천사들이다. 대체로 부모의 말을 순종하지 않는다.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한다. 밤새 게임과 걸핏하면 집을 나간다고 하고 체크카드 만들어 달라고 하고 그러면 부모 입장에서 볼 때 이게 남의 자식이 그러면 그렇게 신경 쓸 일도 아니다. 밤새 게임을 하던지 집을 나가든지 배고프면 돌아오겠지 편하게 생각하겠지만 그놈이 내 자식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놈이 내 자식이면 전쟁을 불사한다. 그 아이와 어떻게 싸움을 해서라도 정신을 차리게 하는 만드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만군의 여호와 싸우시는 싸움이 그런 싸움과 같다.
 
그러니까 만군의 여호와는 너는 그런 자식이 아니라 내 자식이라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이다. 내 자식이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너의 뜻대로 네가 원하는 방식대로 방만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겠다는 것이다. 싸우시면서 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전제된 것이 바로 ‘만군의 여호와’의 개념이다. 그 만군의 여호와 되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위해서 전쟁하시는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그것이 우리의 소망이 있는 것이다. 그 만군의 여호와께서 17절 말씀하고 있다.
 
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새롭게 다가온다. 만군의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특별한 소유로 삼아주시고 진심으로 아껴주신다고 약속을 하신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과 언약을 맺으셔서 “너는 내 것이라, 내 자식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과 언약을 맺으셔서 ‘너는 내 것이라고 너는 내 자식’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된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는 내 것이다’라고 하시는 말씀이 왜 우리에게 축복이 되는지를 아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면 하나님의 모든 풍성한 것이 우리의 것이 되기 때문에 그렇다. 자녀가 갖는 특권이다. 여러분 믿는가?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의 소유가 되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고, 하나님의 거룩함이 우리의 것이 되어서 우리를 정결하게 해주시고 우리를 성결하게 해 주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의 것이 되어서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공급해 주신다는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하나님의 보배라고 했는데 여러분 진짜 값비싼 보물, 진짜 값나가는 보석을 보았는가? 10캐럿쯤 되는 진짜 다이아몬드를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진짜 보석은 찾기가 어렵다. 반면에 인조 다이아몬드라든지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진짜 보석은 주변에서 보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짜 보배, 하나님의 진짜 보석과 같은 성도들은 오늘 날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면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우리의 믿음과 신앙과 삶에 우리의 가정, 자녀들의 삶에 온전하게 회복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 때까지 끊임없이 무언가를 경외하면서 살아가면서 살아가는지 모른다. 그것이 인간이다. 두 가지 중에 하나이다. 첫 번째는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든지, 아니면 피조물을 경외하든지 둘 중 하나이다. 그런데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에 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으면서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피조물을 경외하는 잘못된 경외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마땅히 경외해야할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경외하지 말아야 할 다른 것들을 경외하는 잘못된 경외심이 우리 마음에 가득 찼다는 것이다. 이것은 로마서 1장에서 사도 바울의 진단이기도 한다.
 
*로마서 1:25,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피조물을 경외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인간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뒤바뀐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피조물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대치된 사건이다. 그 후로 모든 인간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아닌 물질을 경외하고 돈을 경외하고 쾌락을 경외하고 우상을 경외하는 잘못된 경외심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에서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죄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을 위해 살지 못하고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살고 있다. 하나님의 수직적인 경외심이 나에 대한 잘못된 경외심이 잘못되면서 우리의 삶에 모든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말라기서도 마찬가지이다. 4장 밖에 되지 않은 말라기서를 쭈욱 읽어 보면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사라져버리니까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얼마나 타락하고 부패했는지 모른다. 제사장들이 제물을 드리는데 원래는 구약의 제사는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구별해서 가장 최상의 것을 드려야 그것이 온전한 제사가 되는데 백성들이 훔친 물건을 가져다가 제단에 바치는 것이다. 희생 제물을 가져오는데 병든 것, 저는 것, 흠이 있는 것을 드리는 것이다. 그러면 제사장들은 그것을 제지하고 좋은 최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제사장의 임무인데 전혀 개의치 않고 그대로 제물을 드리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자신들이 취하고 남은 것, 필요 없는 것들을 하나님께 가져다 드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단을 경멸하고 하나님을 멸시했다. 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셨겠는가? 짐작을 한 번 해보라. 하나님의 표정이 보이신가? 오죽했으면 그런 제물을 받는 것이 너무 속상하셔서 마음이 아프셔서 1장 10절에 이러한 말씀을 하신다.
 
*말라기 1:10,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성전 문, 차라리 문을 닫아버리라고 하신다. 차라리 그렇게 예배들 드릴 바에는 예배를 드리지 말라는 것이다.
 
*말라가 2:3,
3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여러분, 제물에 똥을 발라버리고 싶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심정이 느껴집니까? 제사장들과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는다고 얼마나 불평을 쏟아내는지 모른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사람 중에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는 늘 불평하는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 백성들의 입에서는 감사는 조금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하노라.”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백성들은 1:2절에 어떻게 반박하는가?
 
*말라기 1:2,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사춘기 자녀들이 부모에게 대드는 것처럼 따지듯이 묻는 것이다. 말로서 하나님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모른다. ‘정의의 하나님, 그런 하나님은 안 계셔... 하나님 믿어 봐야 소용없어. 하나님을 믿어봐야 다 헛된 일이야.’ 성경에 그대로 나오는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금지하셨던 이방민족과 혼인을 하고 십일조를 전혀 하지 않았다. 뭐라고 말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했다.라고 한다. 말라기 시대에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불평을 쏟아내고 말로써 하나님을 대적하고 형식적인 제사만 드리고 헌금 생활이 무너져 버린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원인이 그것이다. 그래서 말라기에서 이 모든 삶의 문제의 해결로 해답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다. 저는 이번에 말라기 본문을 묵상하면서 말라기 시대의 백성들처럼 오늘날 우리들도 우리의 가정도 어쩌면 우리의 자녀들도 특별히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상당히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가 염려가 된다.
 
신앙의 중심에는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있었다. 최근 많은 교회 현장에 성령의 역동적 역사하심과 강력한 은혜와 믿음의 경험을 찾기가 쉽지가 않고 오히려 말라기 시대의 형식주의 적인 제자 세속주의가 팽배해지고 있지는 않는지 염려가 된다. 여러분 우리가 냉철하게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볼 때 여러분의 예배는 어떠한가? 가정과 다락방, 자녀들의 예배의 현실은 어떠한가?
 
제가 지난주에 오페라 극장에 공연을 보러 갔다. 15분 전에 큰 자리가 대부분 차 있었다. 영화를 보러 가더라도 5분만 늦어도 큰일 나지 않는가? 우리는 왜 하나님과 만나는 이 예배는 그렇게 습관적으로 늦고 지각을 하는 것인가?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차가 막혀서도 아니고, 아이들이 늑장을 부려서도 아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오페라 극장에 사람들이 참 많았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손주들까지 연인들 가족들 다 모여서 얼마나 경건하게 집중해서 그 공연에 관람을 했는지 모른다. 그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영광스러운 자리가 아니라 어쩌면 속히 마쳐야 하는 시간만 바라는 마치 견뎌야 하는 시간으로 초라하게 변해버린 것은 아닌지...
예배를 귀찮은 숙제처럼 생각하고 무미건조하게 시간을 그냥 때우고 돌아갈 때도 많이 있고 예배시간에 카톡을 하거나 심지어 전화통화를 하는 분들도 많이 보았다. 왜 그러는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갈수록 우리의 헌금 생활이 인색해지고 예배의 감격이 사라지고 예배를 형식적으로 의미적으로 드리면서 첫 사랑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도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라기 시대의 백성들과 너무나 비슷한 것이다. 정말 바라기는 이 시간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조명해 주셔서 우리의 마음에 있는 잘못된 경외심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심을 회복되는 경험이 되길 소망한다.
 
오늘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회복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 성경적인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성경에서 맨 처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표현으로 나오는 곳이 창세기 22장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그런 본문이다. 여러분 다 아시는 내용이지만 아브라함이 75세 때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는다. 그리고 100세가 되어서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 25년이 흐른 후에 약속의 아들, 이삭이 태어난다. 그러니까 정말 오랜 시간에 얻은 이 이삭이 얼마나 이쁘고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들일지 짐작이 되지 않는가? 앉으나 서나 이삭 생각이다. 오직 이삭이다. 아브라함의 이삭은 자기 목숨과 자기 생명보다 더 소중한 아들이다. 아무리 재산이 많았어도 아들이삭이 주는 기쁨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러분, 창세기 22장 1-2절을 보면,
 
*창세기 22:1-2,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여러분, 번제가 무엇인지 알지 않는가? 번제는 불로 태우는 제사이다. 아들을 자기 손으로 죽여서 불에 태우라는 이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듣고, 아브라함은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는가? 노년에 아브라함의 가장 두려운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아들이삭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부모로서 가장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 여러분은 이미 스토리를 알고 있어서 이것은 하나님의 테스트이고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 다 준비해 놓으신 것이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 때 아브라함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다.
 
저도 한 번 진지하게 상상을 해보았다. 만약 저에게 아들이 너는 둘이니까, 하나를 나에게 바치라고 하시면 그럼 나는 어떻게 반응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여러분도 남의 이야기처럼 생각지 말고 여러분에게 생명보다 더 소중한 그것, 다 하나씩을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보배처럼 생각하고 있는 그것을 하나님이 요구하실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할지를 한 번 마음속으로 생각해보면 좋겠다. 저는 당장 아들이 둘이니까 첫째를 바칠까? 둘째를 바칠까? 그게 가장 고민이었다. 눈물이 났다. 어떻게 결정하겠는가? 한참을 고민한 후에 그래도 첫째가 3년을 더 살았으니까 첫째를 바치자고 생각하고 이제 번제를 드리려고 생각을 하니 더욱 눈물이 주르르 났다. 여러분, 아무리 생각해도 내 힘으로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 생명보다 소중한 것, 내 기쁨의 근원이 되는 것, 내 인생의 목표가 되는 그것을 내려놓고 포기하는 것은 그것은 죽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사흘 동안 아브라함과 이삭이 모리아 산을 향해서 걸어가는데 이 때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아들의 죽음을 묵상하면서 사흘 길을 가는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괴로운 심정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스스로 아들을 죽이려 한다는 그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더욱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로 결정한다.
 
*창세기 22:12,
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 음성을 들어보라. 이 본문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표현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굉장히 중요한 본문이다. 내 독자까지도 아끼지 않는 것을 보니까,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을 알겠다고 하신다.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그 두려움보다 내가 생명처럼 여기고 보배처럼 여기는 그것을 잃어버리는 두려움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과 하나님의 말씀에 삶의 최 우선순위(優先順位)를 두고 때로는 납득이 되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피눈물을 흘리면서 묵묵히 순종하며 모리아 산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 올라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성경적 의미이다.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쉬운 일인가?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아브라함처럼 자기 생명보다 소중한 아들을 번제로 바칠 수 있는 분이 우리 중에 얼마나 계실까?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가? 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게 못할 것 같다. 내 손으로 죽여서 그 아들을 불로 태워야 한다니... 아들을 바치느니 차라리 내가 죽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차라리 나를 번제로 바치겠으니 나를 데려가십시오. 라고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묵상을 하다가 문득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하나님은 제 안에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아셨을 것이다. 아브라함처럼 이삭을 번제로 드릴 수 있는 믿음이 저와 여러분의 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셨다. 우리는 절대로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들을 내 힘으로는 포기하지 못한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시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힘으로 안 된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잘못된 경외심에 사로잡혀있으니까 하나님을 스스로 제물이 되어주시기로 작정하신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성전이 되셔서 임마누엘로 이 땅에 오셨고 스스로 가장 정결한 제물이 되시므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경외하심을 직접 보여주셨다.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에 나타난 하나님의 해결책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우리 안에 있는 잘못된 경외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그렇다. 자아를 향하는 잘못된 경외심을 변화시켜서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으로 회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은,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뿐임을 믿는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안 되지만 예수님께서 이루어주신 일이다. 우리가 자주 믿음의 4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미국의 경우이다. 믿음은 할아버지 시대에는 경험이고, 기적이고, 감동이었다가 아버지 때에는 전통이 되고, 아들 때에는 그저 그런 것이 되고, 손자 때에 믿음은 귀찮은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영국과 미국에 기독교적인 유산이 얼마나 빠르게 그 힘을 잃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들은 어떠한가?
제가 예전에 고등부 사역을 할 때, 굉장히 가슴 아픈 일들 중에 하나가 아이들이 고등부 때까지는 교회를 잘 출석을 하는데 꼭 대학을 가게 되면 아이들이 교회 출석을 하지 않고 믿음을 잃어버리는 아이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이 아이들이 왜 믿음을 잃어버렸을까를 고민을 해보았는데, 정확히 말하면 그 아이들은 믿음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애초에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억지로 교회 나오게 하는 부모들의 통제를 받으면서 교회 출석을 잘 했는데 대학교에 가면서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니까 이제 영적인 상태를 고스란히 드러난다. 교회 출석을 하지 않는다. 이제부터라도 자녀 양육의 원칙을 아이들이 자신의 자아와 성공과 풍요를 경외하는 잘못된 경외심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우리 아이들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가정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회복될 때, 비로소 온전한 신앙계승이 가정에서 이루어질 줄 믿는다. 저도 아이들을 키워보니 나한테 없는 것을 아이들에게 줄 수 없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줄 수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가정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영광을 부모인 우리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날마다 아이들 학원 라이드와 밥 챙겨주느라 아이들 숙제, 세탁,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너무 바쁘고 분주한 나머지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을 부모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이 시간 간절히 바라기는 부모인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회복하면 좋겠다. 말씀을 맺겠다.
 
창세기 26장에 보면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판 우물을 자기가 다시 파서 물을 긷는 그런 장면이 나온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처음에 이 우물을 파는데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우물을 파면서 어떤 생각을 했겠는가? 이 우물을 나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내 아들 이삭도 마시고, 또 나의 손자들도 마시라고 대대로 이 우물을 마시라는 마음으로 그 우물을 팠을 것이다. 그런데 창세기 26장 18절에 보면,
 
*창세기 26:18,
18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이 부분이 중요하다. 블레셋 사람은 아브라함이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죽으니까 흙먼지로 덮어버렸다. 그래서 더 이상 물을 긷지 못하도록 막아버린 것이다. 흙먼지가 우물을 덮어버리니까 이삭과 그 자식들이 우물에서 물을 긷지 못한 것이다. 물을 마실 수 없게 되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오늘 날 우리도 이삭과 같은 형편에 처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생수가 필요하다. 코로나 시대를 보내면서 활력과 토대가 되는 근본적인 생수가 우리는 필요하다. 우리도 생명이 필요하고 능력이 필요하고 성령을 충만케 하시는 은혜가 필요하다. 그런데 왠지 무언가에 꽉 막혀있는 답답함을 느낀다. 코로나로 예배의 우물이 막혔고 염려와 근심의 불순물이 가득 쌓여서 사회의 우물을 막아버린 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가정에 이미 우물이 막혀버려서 더 이상 가정 예배가 이루어지지 않고, 은혜의 통로가 막힌 가정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삭이 그 우물을 다시 판다. 우물을 다시 판다는 것은 우리 자녀들의 믿음의 계승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부모들이 우물을 파는 수고를 해야 되는 것이다. 경외의 우물을 파야 되는 것이다. 오늘 말씀의 결론이다. 코로나 시대를 보내면서 우리가 다시 우물을 파야 할 때인 줄 믿는다. 우리 부모세대가 파 놓은 우물, 우리를 위하여 파 놓은 것을 우리가 다시 파서 우리도 살고 우리의 자녀들도 성령의 생수를 맛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저희 부모나 우물을 파놓으신 생수를 먹고 자랐다. 저희 외할아버지, 저희 증조할아버지도 우물을 팠다. 그렇게 4대가 그렇게 우물을 먹고 자랐다. 여러분 이제 누구 차례인가? 제 차례이다. 저의 아들과 저의 손주들을 위해서 우리 부모 세대가 경외의 우물을 파야 한다. 코로나로 막혀 있는 흙먼지를 파내야 한다. 가정의 불화와 다툼의 불순물을 파내야 한다. 염려와 근심의 혼합물을 파내야 한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우리 가정에 당장 흙먼지로 막혀 있다. 라고 하더라도 그 밑에는 여전히 생수가 있다는 것이다. 부흥의 물줄기가 우리의 가정을 여전히 지나고 있다 그러니 우리 부모들이 다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외의 우물을 파면, 그곳에서 생수가 다시 터져 나오고 생수와 같은 성령의 역사가 터져 나오게 될 줄 믿는다. 치유가 그 우물에 있다. 응답이 회복이 부흥이 그 우물에 있다. 바로 경외의 우물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들, 그들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 ‘나의 보배다.’ 라고 귀하게 여겨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올 한 해, 우리는 다시 그 경외의 우물을 팔 때이다. 무엇보다 영원한 생수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영원한 기쁨과 생명의 기쁨을 얻기 위하여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참 만족의 근원이 십자가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 오늘 이 말씀을 붙들고 우리가 가정,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는 믿음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요약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먼저 회복되고, 말라기 시대의 형식적인 세속주의를 이겨내고 자아를 향한 잘못된 경외심을 변화시켜서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경외심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복음의 능력으로 사로잡히는 삶이 되고, 신앙생활의 활력과 토대가 되는 근본적인 생수를 얻기 위해 우리는 가정에서 우물을 파서 온전한 신앙 계승이 우리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은혜가 있도록 실천하고 기도해야 한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