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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2년 2월 6일)

제목: "지혜 없는 빛의 자녀들"
말씀: 누가복음 16:1-8
기도: 유종성 부목사님
사회: 장광천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목사님 외), 영광찬양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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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6:1~8,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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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없는 빛의 자녀들,,,

지난 한 주간의 삶의 여정이 많은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간 복잡한 마음의 창문들을 다 닫아 걸고 영광의 보좌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소망한다. 찬양대와 회중이 찬송이 한 것처럼 주님만이 주시는 참 된 평안이 있기를 소망한다. 목감기가 있다. PCR 검사도 했더니 음성이다. 목감기로 오늘 4부까지 잘 설교하기를 바래본다. 오늘 비유는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의 제목은 아니다. 오늘 주보에 보면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 라고 했는데 이 제목이 그대로 좋으면 안 된다. 이 세상 사람들보다 우리는 빛의 아들들인데 더욱 지혜가 좋아야 한다. 이 말씀으로 책망과 경고와 도전과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깊이 확보하기를 바란다. 여러분 정말 인생을 지혜롭게 살기를 원하는가?
 
잘 아는 대로 지식과 지혜가 분별이 되리라 본다. 많은 지식은 우리를 교만하게 한다. 그러나 참된 지혜는 우리를 충만하게 하고 자신을 깊이 돌아보게 하고 성숙하게 하고 겸손하게 만든다. 오늘 말씀하는 지혜는 세상의 정보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이 주시는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저는 최근에 1-2년 동안 주님이 나에게 어떤 지혜를 주셨나? 목회를 하면서 어떤 지혜를 주셨는지를 생각하면서 4가지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에너지를 남들에게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에너자이저가 되겠다고 했다. 에너자이저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여러분이나 저는 누구에게가 기쁨을 주며 살기를 바란다. 그 사람을 힘을 뺏어가는 것은 안 된다.
두 번째는 이 시대 역사 앞에 역사가 어렵다고 어둠을 탓하지만 말고 어둠을 밝히는 자가 되어서 역사적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촛불처럼 어둠을 밝혀야 한다.
세 번째는 열정처럼 믿음 보고만 하지 말고 페이스 보고를 해야 한다. 우리가 믿음 보고를 해야 한다.
네 번째는 최근에 주신 지혜는 최선을 아직 오지 않았다. ‘The best is yet to come!’
우리는 무얼 기대하고 살아야 하는가? 적어도 아무리 어려워도 지금 죽어도 천국이다. 우리도 항상 최악의 수준을 염두 해 두어야 한다. 저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 해 둔다. 그런 상황을 안 두었다면 어떻게 살아왔겠는가? 디테일이 없으면 건축도 못한다. 우리 교회를 지을 때 공청회를 수없이 했다. 우리는 아직 최선이 오지 않았다. 그것을 기대해야 한다. 최선을 다 잘 준비하기를 바란다.
 
*누가복음 16:8b,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이 본문은 불의한 청지기의 대답이다. 한 번 읽고는 잘 모른다. 여기에는 15장에 세 가지 비유가 있다. 잃어버린 양의 비유, 열 드라크라의 비유, 돌아온 탕자의 비유, 거기에 목자의 심정을 깨닫는 것인데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네 가지 지혜도 목자의 심정으로 통해서 깨달은 저의 은혜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목자의 심정이 너무 예수님이 아파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바리새인들에게 내 이야기 좀 들으라고 하신다. 15장 비유를 말씀하시고 16장에 이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제자들에게 하시고 계신다. 먼저 제자들을 타겟으로 해서 이유를 말씀하신다. 제자들 정도는 되어야 어느 정도는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게 보면 오늘 제자들리 그랬지만 오늘 다 듣고 14절에 나온다.
 
*누가복음 16:14,
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이 모든 비유를 듣고 비웃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었지만 15장에 그 세 가지 비유를 들었던 사람들이 대상인 바리새인들이 이 비유를 듣고 깨닫기를 원하셨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우리 모두에게는 바리새인 속성이 있다. 누가 바리새인이냐고 물으면 우리는 다 아니라고 이야기 할 것이다. 오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는 이 바리새인과 같은 속성이 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제자들에게 어떻게 말씀을 하시냐면 내가 제자들에게 비유로 말씀을 하지만 오늘 이 비유를 통하여 너희 속에 있는 바리새인의 속성을 이야기 하시면서 성숙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너희 속에는 바리새인적인 속성을 해결하는 지혜를 가진 자가 되라고 하신다.
 
그래서 이 세상의 아들들도 똑똑하게 구는데 빛에 자녀들인 너희가 지혜가 없어서는 안 된다고 하시는 것이다. 제자들을 통하여 지혜롭게 바리새인 속성을 제거하고 정리하면서 지혜로운 청지지가 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속에 있는 바리새인적 속성은 무엇인가?
바리새인적 가장 대표적인 것은 자기 의이다. 이것은 한 번씩 강조하지만 너무 중요하다. 자기 의는 self rechusness. 셀프 레처스니스. 바리새인들의 특징은 자기중심이다. 자기이익이 충만하니까 자기이익을 가지고 남을 판단하고 남을 비난하게 되는 그런 독특한 속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비슷한 일이 있지 않는가? 그리고 자기 의는 자기애와 연결된다. 자기의와 자기애는 동전의 양면과 같닥. 자기의가 있다는 것은 자기애가 있는 것이다. 물론 자기를 사랑해야 하지만 잘못된 자기 의는 자기애와 연결이 되어 있다. 우리가 이 말세를 살아가는데 바울 사도는 디모데후서 3장에서 말세를 살아가는 너희들은 정말 심각하게 생각할 것이 있다고 말한다. 말세에 나타난 모든 죄악들, 말세에 나타나는 모든 좋지 않은 것들이 한 29여 가지가 있는데 그 모든 이십여 가지가 어떻게 시작이 되고 어떻게 출발이 되는가? 라고 한다.
 
*디모데후서 3:1~2,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가지를 사랑한다. 말세에 특징이 뭐냐면 자기 의와 자기애가 연결이 되어 자기를 사랑해가지고 돈을 사랑한다. 자기 의와 자기애가 돈 사랑과 아주 직결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내용들을 앞에 서론 격으로 두면서 자기 의와 자기애, 그러면 자기의의 문제가 왜 심각한가? 자기중심적인 자기 애, 자기의가 있을 때 자기 사랑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면 하나님의 주권이 스며들 여지가 없어지는 것이다. 자기 의와 자기애가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통치와 역사할 장소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애가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이 스며들 여지가 없다는 것은 재정의 문제 돈의 문제이다.
 
그리고 자기 의에 사로잡힌 사람은 리플리 증후군에 사로잡힌 자이다. 리플리 증후군은 허구의 세계를 설정하고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증상을 말한다. 요즘 말세에 영적인 저 리플리 증후군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른다. 자기가 정해놓은 세계에서 그 틀 속에서 자기가 생각한 것이 허구라도 그것을 믿으면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게 되는 것이다. 신앙생활 오래 했다는 분들 가운데도 이러한 영적인 리플리 증후군을 가진 자들이 많다. 자기 생각과 자기 판단만 옳다는 인식으로 가득차서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주권의식, 하나님이 내 삶을 통치하신다는 하나님의 통치의식이 너무 부재한 것이다.
 
이런 사람이 세상 적으로는 강하게 보이고 멋있게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자기 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마치 황무지와 같다. 황무지는 폐허이고 거기에는 성장이 없고 거기는 열매가 없고 성장이 없다. 봄에 씨를 뿌리고 생명이 약동하고 하는 그 시기를 모른다. 여름에 초록의 정원으로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도 모르고 가을에 추수 밭의 알곡을 모른다. 황무지는 그냥 황무지일 뿐이다. 씨앗이 움트는 경이로움과 열매가 익어가는 것을 찾을 수가 없다. 자기 의와 자기애에 사로잡혀서 성장하지 못한 그런 사람들의 현주소이다.
 
내가 바리새적인 속성이 있다고 하면 내가 무슨 바리새적인 속성이 있냐고 대항하면 바로 바리새적인 속성이 있는 것이다. 다 그런 문제들이 있는 것이다. 자기 의와 자기애의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않도록 정말 경계하고 애를 써야 한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잘 모른다. 똑똑한 지성인들도 잘 모른다. 제가 존경하는 알레이토레이 이분은 닥터토레이 박사이다. 지금 소천하셨지만 그분에게 어떤 똑똑한 불신자가 찾아오셔서 말한다. “박사님, 저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기독교인보다도 나는 더 도덕적이고 더 정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나를 불신자라고 불인정하고 나를 적대시 하시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라고 했다. 그때 닥터 토레이 박사님의 대답이 “선생님,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당신을 불신하는 이유는 당신이 지금 예수 믿는 사람보다도 더 도덕적이라 하더라도 당신은 지그 하늘에 계신 왕에게 대항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가 이해한 말로 설명을 하면 자기의의 중독이 되어있는 것이다. 예수님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 정말 괜찮은 사람들이 이유는 아버지를 아버지로 하지 못하는 이유,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못하는 이유가 뭐냐면 자기 의에 중독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 동의하십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깊이 있게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는 영적인 리플리 증후군 때문이다. 자기 의에 중독되어 이것 때문에 물질 중독도 같이 연결 된다. 그래서 여러분 자기 의는 하나님의 주권, 은혜를 대적하고 결국은 하나님 왕으로서 통치하시는 것을 반역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자기 의의 바이러스가 우리 속에 침투하지 않도록 결사적으로 항쟁을 해야 하고 눈을 부릅뜨고 막아야 한다. 이것이 인생의 진정한 지혜이다.
여러분, 사람이 자기의의 중독이란 여기서 해독되지 않으면 지혜를 얻을 수 없다. 참 지혜가 없다. 그래서 제가 정리를 했다.
 

※ 자기의가 해독되는 지혜가 있으면 ‘소유권’과 ‘사용권’을 구별하는 지혜를 갖는다.
 

-자기 의에 중독이 되어 있는 사람은 결코 소유권과 사용권을 구별하는 지혜를 가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가 해독되는 지혜가 있으면 소유권과 사용권을 구별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 동산의 사용권을 주셨다. 아담 하와 사용권을 주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사용권을 주시면서 동산을 관리하고 동물들을 기르고 사용하라고 활용하게 하셨다. 그런데 여러분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기 전에 에덴동산에서 잘 사용하는 그 때가 아담과 하와(인류)가 최고로 행복할 때였다. 그런데 자기가 소유권을 주장하고 자기가 맘대로 하려고 할 때부터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하고 여기서 지성인들은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칼 막스가 자본론에서 국가독점 자본권을 강조하는데, 칼 막스가 목사님의 아들인데 잘못되게 오용한 것이다. 그래서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된 것이다. 천안문 앞 열병식, 붉은 광장 앞에서의 열병식, 대단하다.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제대로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내가 사용권을 제대로 잘 사용하면 공산주의와 비교가 안 되는 이 땅에서 맛볼 수 없는 천국을 맛볼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중독된 자기 의는 말씀과 복음의 능력으로만 변할 수 있다. 복음 외에는 능력 외에는 자기 의를 빼내는 데는 약이 무효험이다. 어떤 약도 소용이 없다. 구약과 신약만이 가능하다. 사실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재능, 오케스트라, 시간, 소유, 우리의 손도 발도 이 공간도 다 주님의 것이다. 어떻게 에덴동산에 창조된 것이 아담의 것이 되겠느냐? 아담의 몸도 아담의 것이 아니고 아담은 사용권만을 가지고 있었고, 그 사용권을 잘 발휘했을 때 피조물인 인생이 최고로 행복한 것이다. 그래서 이 예수님의 심정을 깨달은 사도 요한은 놀라운 고백을 한다.
 
*요한복음 1:3,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만물 소유 시간 공간 재능, 모든 것이 주님의 손에 지은 바 되었고 그 분이 소유권을 가지고 계신다. 우리의 사용권만 가지고 있다. 소유권 없다. 그래서 빛의 아들들로서 지혜롭게 사는 자들로서 우리의 인생의 소유권과 사용권을 잘 구별해서 소유권을 주님께 드리고 소유권인 주님의 주권으로 말미암아 자기 의의 중독을 해결하여 사용권을 잘 사용할 때 그것이 주님 앞에 참으로 영광이 되는 줄 믿는다. 여러분, 어떻게 여러분 인생이 여러분 것인가? 젊을 때 내 맘대로 내거라도 살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인생 전체로 보면 결코 내 것이 아니다. 우리가 몸도 아프면 내 것이 아니듯이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잘 나가는데 코로나 하나를 해결 못하는 미련 방통이들이다. 그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해결을 못하고 있다. 우리는 아프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우리는 어려움이 일어났을 때, 앞일은 도저히 우리가 모른다. 그래서 오늘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그 소유권을 주님께 드리는 것을 인정하고 내가 사용권을 지혜롭게 잘 사용하면 우리는 평생 지혜롭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청지기 사용권은 소유권을 가지신 주님의 창조 매뉴얼에 잘 따라 살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내 인생의 중심이 소유권이 아니라 사용권으로, 자기의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으로 살게 되면 우리 인생을 낭비하지 아니하고 지혜 없는 빛의 자녀들이 되지 아니하고 지혜 있는 빛의 자녀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사용권자인데 내가 소유권자라고 착각하는 순간부터 문제가 심각하게 된다. 오늘 다시 한 번 우리가 빛의 아들로서 이 세대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게 살아야 할 줄로 믿는다.
 
누가복음 16:8,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오늘 이 본문이 해석이 쉽지 않다. 자유주의 신학주의 불트만 같은 신학자는 이 내용을 해석을 못하겠다고 했다. 현장 목회자로서 40여년을 목회하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여러분과 나누기를 바란다. 오늘 이 비유의 핵심은 무엇인가?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이다. 불의한 청지기...
 
*누가복음 16:1,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요즘으로 말하면 금융자산관리자이다. 그런데 그 청지기가 그 부자의 소유를 낭비하는 것이다. 주인이 그것을 알고 부른다.
 
*누가복음 16:2,
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너 잘못 된 것이니,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말고 잘 정리하라는 것이다. 소위 해고 통지를 말한다.
 
*누가복음 16:3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앞으로 어떠할까를 생각한다.
 
*누가복음 16:4-5,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누가복음 6~7,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소위 빌어먹자니 부끄럽고, 땅을 파자니 힘이 없는데 잔머리를 굴리는 것이다. JQ지수를 발휘한다. 이 이야기가 주인에게 들어갔다. 주인이 듣고서 8절에 다시 주인이 말한다.
 
*누가복음 16:8,
16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이 잔머리 지수 청지기가 일을 지혜롭게 했다고 칭찬한다. 그러면서 뭐라고 하냐면 이 세대의 아들들(불의한 청지기) 이 자기 세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불의한 청지기의 행동을 판단하시는 것은 불신자들은 자기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성도들보다 더 야무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삶의 현장에서 위기를 만났을 때, 빛의 아들들보다 세상 사람들이 더 지혜롭다고 한다. 그러니 정신 좀 차리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경고하시고 책망하신다. 사용권 자로서 제발 정신 좀 차리라는 것이다. 먼저 주님께서는 옳지 않은 청지기라고 말씀하시면서 행동자체는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불의한 청지기가 자기 자신을 위해 사리판단을 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머리로 신속하게 대처하는 행동이, 자기 살길 찾는 것의 행동은 빛의 아들들보다 더 똑똑하다는 것이다. 소위 그것을 예수님께서 불의한 행동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불의한 사람도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철저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현장 목회자 입장에서 말씀드린다.
 
기회를 잘 활용한다는 것이라 한다. 불의한 아들이 지혜로운 게 아니다. 신앙이 좋은데 능력이 따라가지 않는다. 예수를 잘 믿는다면서 실력이 부족한 사람도 많아서 안타까워서 하는 이야기이다. 고시공부 전력투구 고시 공부하듯이 성경에 집중한다면 뚫어지고 기적이 될 것이다. 영혼들을 위해 애를 써야한다는 것이다. 핵심은 빛의 아들들인 우리가 영원한 곳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 미래를 위해 제대로 준비하라는 뜻이다. 그가 잘하는 것이 아니라 빛의 아들들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자녀들을 영원한 세계를 위해 지혜롭게 가르쳐야 한다. 성경에 집중하고 믿음의 확신을 갖도록 교육해야 한다.
 
바리새인 속성인 제자들에게 제대로 선포하신다. 그랬을 때 이 주제를 듣고 바리새인들이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이 메시지의 핵심은 모든 성도들에게 도전을 주고 어떻게 보면 마음의 불편을 드릴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주제는 핵심은
 
*누가복음 16:14,
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 오늘 주제는 돈에 관한 재물에 관한 주제이다. 예수님의 이 비유의 핵심은 돈 문제를 말씀도 하신다. 세상 사람보다 지혜롭게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이다. 돈 문제와 사용에 대해서 이 세대의 사람들보다 지혜로운가를 보신다. 돈 문제는 삶의 현장에서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엄청 거룩하고 엄청 영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오늘 14절을 보니까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아마 우리 속에서도 우리도 속성이 바리새적일 것이다. 돈문제가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주님이 요구하는 것은 빛의 아들들이 더 지혜롭기를 원하신다. 재정에 관한 제자의 돈, 파이낸션 디사이플(Financial Disciple)이다. 재정에 관해서, 공동체 재자 양육을 하기를 원한다. 저는 앞으로 2-3주간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우리 교회 본당을 딛는 성도님들은 돈 문제에서는 승리가 되기를 원한다. 주님 앞에서 돈 문제로 고통 받지 않아야 한다. 가난한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주님의 통찰력을 가지고 하늘에 쌓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누가복음 16:11,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더 큰 영적인 문제는 어떻게 맡기겠냐고 하신다. 돈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데 어떻게 영광스런 하늘의 일을 하냐고 하신다. 적은 것에 충성하라. 그리고 두 주인을 섬길 수가 없다. 성경은 인생의 실체를 다룬다. 예수님의 비유를 다할 수는 없지만 38개 가운데 여섯 개가 돈과 소유에 관한 것이다. 신약 성경에 보면 25%가 돈과 청지기에 관한 말씀이다. 복음서에도 한 구절이 있다. 성경에는 재정에 관한 2천 개가 훨씬 넘는다. 믿음과 기도보다 많은 듯하다. 신앙의 선배들은 당신의 지갑을 내게 보여 달라고 한다. 그럼 내가 어떤 종류의 신앙인인지를 알게 하겠다고 했다. Show me a pocket. I can tell you What kind of Christian. ~ 왜 인가? 돈과 영성이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분들은 돈이 세속적인데 어떻게 돈과 영성이 밀접하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돈은 영성의 토양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돈의 행위는 예배 행위라고 했다.
 
※ 돈의 사용은 예배 행위이다. -존 파이퍼-
※ 돈은 우리가 ‘누구’를 진심으로 섬기고 예배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하나의 예배행위이다. 이처럼 돈과 영생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왜 이유가 그런가? 예배의 본질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래서 돈은 우리가 누구를 진심으로 섬기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누구를 위해 돈을 사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시험지이다.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보여준다. 좋은 예배 자는 예배에 대한 섬김에서 물질의 섬김도 따라간다. 그래서 영성과 연결해서 예배설교는 엄청 했다. 가계부를 봐야 한다. 우리는 이제 사용처를 새 판짜기를 하기를 바란다. 빛의 자녀로서 철저하게 거룩하게 사용하기를 바란다. 재정문제에서 사용권자로서 평생 행복하기를 바란다. 지혜로운 빛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요약
바리새적인 자기 의와 자기애를 회개하고 복음으로 나의 소유권 중독을 해독하여서 청지기적인 사용권의 행복을 누려야 한다. 영원한 세계를 온전히 바라보고 전력투구하여 미래를 철저히 주님이 주시는 사용권으로 준비해야 하고 돈을 선용하는 지혜로운 빛의 자녀들로 살아가서 믿음보고를 주님 앞에 신실하게 드리기를 실천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 주시는 것에 사용권자이며, 내 인생도 내것이 아니다. 돈 쓰는 것에도 예배가 먼저이다. 어디에 돈을 바르게 쓰는가가 자신의 목적이 어디이며 자신의 신앙을 판단할 수 있다. 

-불성실한 청지기는 미래를 대비했기 때문에 칭찬을 받았다. 그렇지만 이 청지기는 실직한 후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현재의 기회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지혜롭다는 평가를 얻은 것이지 이로 인해 부정직과 사기술을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그는 악한 세대에 속한 자로서 악한 지혜를 사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할 때 세상에서는 잘 살지 모르나 하나님 나라에는 이를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미래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 현재를 충실히 활용하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소유물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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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2년 2월 5일)

제목: “바디는 바이블입니다”
말씀: 시편 139:13~18
기도: 홍진기 부목사님
말씀읽기: 김종용(청년부3국) 최윤미(대학6부),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이창우 장로님-초빙(선한목자병원장-바디바이블 저자)
인도 마무리: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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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9:13~18,
13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15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16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17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18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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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 대한민국의 자부심이자 세계기독교이 자랑인 사랑의 교회에 부름 받고 달려 온 ‘이창우 장로’이다. 먼저 이 땅에 사랑의 교회를 허락하시고 이렇게 하나님이 새벽예배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특별히 부족한 저에게 말씀을 전하게 허락하신 오정현 담임목사님과 성도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저는 정형외과 의사이다. 사랑의 교회에서 약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역삼역에 위치한 ‘선한목자병원장’ 쿠샤퍼드 의료재단 이사로 있으며, 광림교회의 장로이다. 의학을 공부한지도 41여년이 흘렀다. 의사가 된 지도 35년이 되었다. 의사의 아버지 넷째로 태어났고, 동생도 장인어른도 의사 출신의 목사님이시다. 저의 아들 둘 다 의사이다. 대부분 하나님의 은혜로 의사의 집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려서 비록 부유하게 살지는 못했지만 늘 어려운 이들을 인술로 도우시는 부모님의 슬하에서 자라면서 의사가 되고 싶었다. 또 누구나 그랬듯이 슈바이처 박사의 위인전을 읽으면서 의료 선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80년 민주항쟁 속에서 데모를 하면서 저희가 대학에서 데모를 하던 세대였다. 그리고 친구들이 붙잡혀가기도 하고 또 그냥 쫓겨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서도 해부학 실에 가서 생리학을 연구하면서 그렇게 체류 탄 속에서도 눈이 틍퉁 부은 상태에서 울면서 그렇게 공부를 하던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아! 하나님께서 구석구석을 말씀으로 지으셨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깨달음은 이것으로 의사가 된 후에는 점점 더 확고해지기 시작했다.
 
의사들은 의학 지식이 더 깊어지면 점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더 깊이 들어가서 자기의 전공 분야를 더 보게 된다. 자기 전공분야가 아니면 옆방으로 가라고 보내기도 하지만 그렇게 세밀한 부분을 담당하는 전문적인 치료자가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육체적 질병만을 치료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병과 영적인 질병까지도 돌보는 전인적인 치료자가 되라고 저에게 계속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성경을 깊게 만나면 만날수록 우리 몸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려야 된다는 소명이 선교의 소명보다도 더 점점 더 뚜렷해졌다. 지난 20년간 국내 선교를 다니면서 수많은 어려운 환자를 만나면서 저의 할 일은 그분들의 아픈 부분을 함께 위로해드리고, 아파하고 하나님께서 치료하시도록 그분들을 도와드리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2017년에 ‘유발 하라리-(호모데우스 저자)’ 라는 사람이 책을 한 권 쓴다. 신이 되려고 하는 인간, 아마 신이 된 인간이 이미 된지도 모르겠다. 호모사피엔스처럼 호모데우스라는 정의를 내렸다. 이 책을 세상에 내어놓았는데 전 세계가 아주 열광을 했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인간이 신이 되고 싶어 했고 과학이 점점 더 발전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다. 앞으로 20-30년 후에는 죽음을 정복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인간의 뇌를 다운로드를 받아서 그것을 젊은 뇌에게 다시 심어주고 영생할 수 있도록 유전자의 가위로 건강하지 않는 유전자를 제거하는 그런 몸들을 만들어내려고 한다고 한다. 가난, 기후, 에너지, 전쟁의 문제들을 이러한 것들을 과학의 문제로, 힘의 논리로 극복해서 마침내 인간은 신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의 뇌가 수치화 되면서 다운 받아서 유전자 조작을 통해서 상위의 인간을 점점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인간의 육체를 전능 적으로 만들어서 죽지 않게 하려고 하기도 한다.
 
특히 스마트폰이 신체와 몸의 일부가 되면서 혈압도 제고, 심전도도 제고하는 일들이 생기고 있는데 전지전능한 그런 신적 존재가 되려고 하는데 도움을 주고는 있다. 그래서 과학의 발전이 신이 되게 하고 인간은 신이 되는 욕망을 이미 가지고 있고, 또 지금 이 세상에 그런 것으로 일부 우리가 맛보고 있다.
 
인간의 뇌가 수치화 되면서 다운 받아서 필요하면 장기도 바꾸어가면서 인간은 죽지 않고 점점 살아가게 될 거라고 장담을 하고 있다. 우리 같은 의사들이 그렇다. 저에게는 이것이 엄청난 쇼크였다. ‘창세기 바벨탑 사건이 드디어 제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일어나고 있구나. 다시 벌어지고 있구나, 이것 때문에 인구가 열광을 하고 있구나!’ 마음이 아팠다. 아주 참담한 마음이었다. 저는 하나님 앞에 너무나 죄송했다. 또 무기력한 느낌이 들었다. 확실히 이때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보여준 그 내용을 책으로 준비해서 그 이듬해 2018년 6월에 “바디는 바이블” 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원제목은 “호모 비블리쿠스”이다. 성경으로 지어진 인간이라는 책이다. 어떻게 보면 세상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성경책이다. 그런데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이 인류가 이때까지 태어나서 이 땅에 아담과 하와 이후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리빙 바이블’이다. 살아있는 성경책이 바로 우리의 몸인 것이다.
 
의학자인 제가 사람의 몸을 바라보면서 느낀 것은 ‘호모 비블리쿠스’이다. 사람의 몸 세포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이라는 것을 뚜렷이 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이 되라는 그런 메시지가 그 안에 들어있다. 영원성을 향하고 있지만 그러나 육체는 소멸되고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영원한 생명이 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몸 안에 있는 것이다.
 
‘호모데우스’는 신이 되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의 에고이즘을 과학의 신적으로 밀어붙이는 상승시켜 준다고 그렇게 정의를 한다면,
 
‘호모비블리쿠스’는 나의 에고이즘과 욕망을 부인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부정함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호모비블리쿠스이냐, 호모데우스냐 이것이 오늘 이 시대의 하나님 앞에서 고백해야 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비록 세상은 열광하지 않겠지만 저는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고백이며 하나님 앞에서 목이 쉰 그러한 외침이다. 또 내가 죽었을 때, 제 묘비명에다가 호모비블리쿠스라고 써 달라고 저의 아이들에게 부탁을 하려고 한다. 이 말뜻이 좀 어려울 수 있지만 바디 바이블이라는 이름으로 발간했고 서점가에서 종교서적으로 분리를 해주니까 전체적으로 보는 책으로는 분류가 되지는 못했다. 그래서 세상의 관심 밖에 있게 되었지만 그것은 그래도 1만 4천 권정도 팔렸고 또 사랑을 받았으며 종교 서적 중에는 한 동안 베스트셀러로 유지하기도 했다. 다행히 다음 달에는 영문판과 중국판에는 ‘호모비블리쿠스’를 준비하고 있어서 아마존에 선보일 예정이다. 오늘 저는 수십 가지 증거물 중에서 세 가지만 말씀을 드리겠다.
 
성경에 하나님이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면 이 말씀 안에 저자이신 하나님의 의도가 있으실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몸에도 기록이 되어 있다면 우리 몸 안에도 하나님의 의도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성경 66권을 압축하고 압축하면 무슨 내용이 되는가? 물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한복음 3장 16절이 될 것이다.
 
그런데 구약부터 쭈욱 보면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세워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또 하나님과 연합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시고 ‘너희는 참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해당이 되어서 육신으로 낳아주었으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영으로 거듭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하는 그런 말씀이 우리 몸 안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몸에 기록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참 사람이 되라는 그런 명령이다.
 
I. 하나님의 참 사람이 되라.

-우리 몸의 세포가 몇 개쯤 되는가? 무지 많다. 세보지 않았으니까, 과학자들은 한 66-100조개 정도라고 한다. 60만조가 일억 개가 60만개가 되어야 60조이다. 어마어마한 숫자이다. 이런 세포들이 서로 협력해서 유기체를 이루고 있다. 각각의 세포들 안에는 유전자라는 것이 들어 있다. 세포 안에 핵이 있고 핵 안에 유전자가 들어있는데 그 안에 무슨 내용의 유전자가 들어있냐면 그야 물론 하나님의 형상이 닮은 사람이 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어머니께서 난자를 가지고 계시는데 아버지를 만나서 그 정자와 만나는 날, 내가 태어난 것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그날이 하나님께서는 둘이 하나가 되는 날 새로운 명령을 주의 책에다가 기록을 해주셨다고 되어 있다.
 
우리가 본문에서 성경을 읽은 것처럼 그 첫날이 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기록을 해주셨다. 과학자들이 열심히 찾아보았다. 그런데 찾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로버트 후크라는 사람이 현미경을 발견하면서 그 현미경으로 코르크를 보니까 방들이 있다. 우리 대한민국의 대표 교회인 우리 사랑의교회에 셀 모임을 하는 것처럼 그것을 CELL, 이것이 셀 안에 하나님께서 명령을 넣어주었는데 하나의 세포가 어머니께서 수정란이 되어 어머니의 자궁에 안착되어서 그 세포가 둘이 되고 넷이 되고 여섯이 되고 하면서 배아가 되어서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 그 안에 보면 하나님께 염색사라는 것을 넣어주셨고 그 안에 염기 서열이라고 기록해 주셨다. 이 염기 서열을 쭉 보면 그것을 통해서 이제는 장차 무엇이 될 것인가를 보여주신다. 이것들이 어느 때 되면 세포들이 분열을 될 때쯤 되면 맛동산 같이 생긴 것들이 중간에 모인다. 그래서 23쌍이 모인다. 이것들이 두 개씩 짝을 짓고 있다가 서로 끌려가서 이제 방이 두 개가 된다. 왜 cell이 두 개가 되는가? 우리 목사님은 기쁘실 것이다. 우리 사랑의교회가 커다랗게 된 것처럼 우리 몸도 몸속에 첫날 태어나서 이것이 하나님께서 말씀을 기록을 해주셔서 그 기록을 나누어서 두 개가 되고 네 개가 되고 하면서 이제 배아가 된다. 그래서 점점 숫자가 많아진다. 그래서 이 세포에 대한 연구가 좀 더 말을 하겠다. 저는 원래 전공이 정형외과 의사이다. 목수와 같다. 예수님과 같은 직업이다. 썰렁한가? 늘 이렇게 환자들을 치료하고 아픈 분들 관절들의 망가진 부분들을 인공으로 바꾸기도 하고 스포츠 선수들이 달리다가 망가지면 십자인대를 만들어 드리기도 한다. 요즘은 줄기세포로 새로운 연골을 만들어 드리는 그러한 치료들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인공관절과 관절 의학은 미국에서 저는 다른 의사 선생님들보다 더 긴 시간 공부하며 근부하고 왔다. 그런데 그 당시에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를 주셔서 아직 한국에 줄기 세포가 나오기 전이었는데 세계적인 줄기세포 연구소가 있는 피츠버그에서 줄기세포를 연구하게 되었다. 거기에서 저는 줄기세포의 유전자 치료술이라는 학문을 연구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들어와서 줄기세포를 연구하고 있다. 그때 연구는 스포츠를 하다가 다친 사람들이 있는데 다치면 ‘내 인생이 끝났구나!’ 하는 시기였다. 그래서 이분들을 어떻게 하면 잘 뛸 수 있게 할 수 있을까를 하는 연구를 하는 중에 그분들이 다친 그 세포들에게다가 바이러스를 이용해서 그 병든 세포에 건강한 유전자 조각을 유전자 가위, 프라스미드라는 그런 조각을 유전자 조각을 그것을 집어넣으면 이 세포가 병들었어도 갑자기 성장인자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건강한 세포가 되고 회복되게 하는 그런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유전자를 설명을 드리면 유전자 안에는 그런 염기라는 것이 있다. 염기 서열로 되어있다. ATGC라는 4개의 유전자가 이것들이 순서를 막 바꾸어가면서 기록이 되어있다 그래서 이것이 염기서열이라고 한다. 조그만 세포 안에 5micro도 안 되는 핵 안에 얼마나 긴 염기 서열이 들어있냐면 2미터정도로 되어 있다. 제 몸 안에 100조개의 세포가 있는데 제 안에 있는 염기 서열이 청사진이다. 이렇게 사랑의 교회를 짓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건축하시는 분들과 짓는 사람들이 힘들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선 그렇게 한 분 한분들을 만들기 위해서 명령을 그렇게 적어놓았다. 너는 두 달이 되면 손가락 발가락이 나오고 머리는 곱슬이가 되라. 또 코는 좀 높고 쌍꺼플도 있어라. 이러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기록을 해주신다. 그 길이가 2미터나 된다. 그 조그만 세포 염기서열 안에 있게 한 것이다. 과학자들이 연결해보니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길이 일억 오천만 킬로미터이다. 오백 번을 왔다 갔다 한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염색사 안에다 그렇게 기록해 주셨다. 이렇게 염기 서열 안에 모든 것을 기록해 놓으셨다. 이창우 너는 45세쯤에 시력이 나빠질 거야. 등 실제 시력이 나빠졌다. 머리가 빠질 거야 등, 다 시간이 가니 다 빠지고 하얗게 되었다. 이렇게 사랑의 교회에 와서 설교를 하게 되니까 색을 입혔다.
 
유전자 안에 세포 안에 얼마나 많은 유전자가 있는지를 과학자들이 연구를 했다. 그랬더니 이 한 페이지 안에 천 자를 쓴다고 하면 이 천자짜리가 한 페이지라고 한다면 그런 책 3300권을 쓸 수 있다는 것이며 이 코딱지만한 세포 안에다가 쓰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쓰시느라 무지 바쁘신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께서 저를 합쳐서 이창우오면은 이렇게 될거야 하시면서 너의 아버지 어머니 모습도 닮고 못된 것도 있다고 만드셨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되는 양이냐면 브르태니커라는 백과서전을 알고 있듯이 250년 동안 열심히 만든 아주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백과사전인데 그 안에 4300만 단어가 되어 있다. 이 책을 80번이나 넣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몸이 얼마나 대단한 유전 정보를 갖고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이 첫 날 저를 만드실 뿐만 아니라 그 첫날 이것을 다 기록 해주셨고 그것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것이 이루어져서 오늘 우리가 된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일전일획이라고 잘못 복제가 되어도 임신 중에 돌아가실 수도 있고 유전병이 생겨서 여러 가지 병들이 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이렇게 건강하게 되었고 그래도 몸이 좀 불편할 수도 있다. 그래도 태어나기만 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수억 만분의 일로 태어나서 이 땅에 태어나서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건강하게 살아가는 특혜 중에 특혜를 우리는 누리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 구약은 무얼로 되어있는가? 히브리어로 되어 있다.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다. 아예 성경은 언어로 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듯이 이 말씀이 히브리어로 되어 있는데 히브리어 알파벳을 보면 22자로 되어 있다. 저보다는 우리 목사님들께서 훨씬 더 잘 아시겠지만 22자 중에 한 자는 이게 남성, 여성도 있다. 그래서 쉰과 쉰이라는 발음하는 그런 알파벳이 있다. 22자인데 왜 23개랑 같은 것이다. 사람의 몸도 맛동산 같은 것이 23개가 있다. 놀랍다. 모양도 비슷하게 생겼다. 그 중에 22개는 상염색체, 그 중에 xy로 되어 있는 성 염책체가 있다. 하나님께서 놀랍게 우리도 언어로 써 주셨다. 그 언어를 왜 쓰셨는가? 사람이 되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가 그래서 교회에 이렇게 앉아 있다.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개한테는 그냥 개가 되라고 하신 것이며 동물한테는 동물이 되라고 써 주신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우리 인생을 이 땅에 보내주신 목적은 하나님의 참 사람이 되라고 써 주신 것이다. 아쉽게도 오늘 날 하나님의 이 명령을 인생의 목적으로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하는 걱정이 되고 저 자신부터 반성이 된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몸이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II.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몸이 되신다.

-그래서 척추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다. 우리 목에 뼈가 몇 개가 있는가? 7개가 있다.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이 뼈가 더 많거나 적지가 않다. 하나님은 공평하셔서 누구나 다 7개로 되어 있다. 일곱 개다. 이 일곱 개가 머리를 떠받히고 있다. 머리를 잘 받히라고 일곱 개의 목뼈를 주셨다. 머리와 몸이 잘 연계 되라고 그 목안에 신경이 지나가게끔 구조를 해주신 것이다. 그래서 이 목뼈는 상당히 중요하다. 머리를 떠받히는 역할이다. 우리의 성경을 보면 머리만이 아니고 7일이라는 숫자가 많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창세기에 보면 7일 동안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레째는 안식하시기로 정하셨다. 일곱 우물 이야기 등 성경에 7이라는 숫자가 굉장히 중요한 숫자이고 우리 달력에 보면 일주일이 7일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7일을 이렇게 해주시고 머리를 잘 받들라고 해주셨다. 이 머리 안에 건강하고 건전한 그러한 머리가 들어 앉아 있으면 건전하고 좋다. 우리 오 목사님처럼 훌륭하실 수도 있고 이것이 잘못 되면 굉장히 아파서 평생 병원에 누워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머리가 건강해야 한다. 건강한 머리를 잘 모셔야 한다. 만약에 병이 들어서 깨어나지 못하면 온 몸이 멀쩡해도 식물인간처럼 누워있게 된다. 이 머리를 누구를 머리로 모시느냐가 상당히 중요하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머리를 잘 모시라고 했다. 우리는 교회의 몸이고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몸은 성전이라고 한다. 그래서 온전하고 건강한 몸이 되어야 하는데 거기에 내가 올라 앉아있으면 어떻게 되는가?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강도라고 한다. 온전한 게 아니다. 제가 인생에 머리에 올라와 있으면 그것은 온전한 것이 아니다. 제 머리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야 되는 것이다. 그래야 건전한 것이다. 머리가 비면 흉가가 되고 폐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목표를 보여주시면서 너희 목뼈를 받히는 것처럼 너희 인생 속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받들고 그 받는 그 몸을 내가 받아주겠다고 하신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라고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다 받아 주신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슴에는 뼈가 몇 개인가? 12개이다. 흉추가 12개가 있다. 갈비뼈가 몇 개인가? 24개이다. 남자는 뽑아서 23개인가? 아니다. 요즘은 살이 쪄서 잘 안 세어진다. 24개이다. 24개는 상당히 중요해서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는 심장, 폐, 복강 안에 있는 간, 등 중요한 조직들을 잘 커버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성경 안에도 12개의 흉추와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고 만들어주시면서 앞서서 12아들을 허락하신다. 12아들이 이스라엘의 커다란 골격이 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12지파 안에 다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누구랑 싸울 때도 12지파가 든든하게 지켰기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지 않는가? 이렇게 12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도 예수님도 12제자를 두셨고 그 열 두 제자를 두셔서 온 세계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굉장한 프로젝트를 이루어 주신다. 또한 요한계시록에 보면 24장로에 대한 이야기, 달력에 보면 일 년이 12달로 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들어 주시고 그 안에 모든 것을 넣어주시고 그거와 똑같이 세상의 이치를 그렇게 만들어 주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 주신 것이다. 이제 하나 더 말씀을 더 하겠다. 어떤 것이냐면 우리 배와 골반이 있다. 거기에는 뼈가 몇 개인가? 척추에는 다섯 개가 있고 골반에는 다섯 개가 있다. 이것을 합치면 열이다. 왜 열이라는 이야기를 하냐면 이 열 안에는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세계를 준비하는 놀라운 그런 준비과정이 들어있다. 그래서 남자들은 여자들은 골반 안에 생식기를 가지고 있다. 특히나 여성분들은 골반 안에 자궁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아기가 생기게 되면 수정란이 골반 안에 자궁이 자라나고 그것이 열 까지 자란다. 그래서 골반의 바닥에서 요추의 끝까지 열 마디가 자라난다. 그렇게 되면 다 자라났으니 다 자랐으니 밖에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애기들이 얼마나 엄마 뱃속에 있는가? 열 달이다. 십이라는 숫자가 상당히 중요한 것 같다. 그렇지 않은가? 저는 이것을 볼 때마다 흥분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세밀하게 만들어 주신 것이다.
 
10이라는 숫자는 중요해서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켰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시내 산에 모아 놓고 십계명, 율법 말1씀을 주시면서 거기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출생시키는 그러한 놀라운 일을 만드셨다. 이스라엘 민족이 어디서 왔는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으면서 이스라엘 민족이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시작은 더 일찍 있었지만 그렇게 이 10이라는 숫자가 중요하다. 성경에는 창세기에 열 개의 족보가 나오고 출애굽기에는 열 개의 재앙이 나오고, 레위기에는 열 개의 절기와 민수기에는 열 개의 은혜를 보여주시고, 신명기에는 십계명과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십일조 이야기도 나온다. 또 그리고 세상의 오늘 날 모든 일들은 모든 계산을 십진법을 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십 원이 열 개 모이면 백 원이다. 이렇게 배웠듯이 십진법이 중요한데 우리 몸의 열이라는 숫자는 하나님께서 장차 그냥 준 숫자가 아니라 그 다음 세대를 준비하라는 숫자이다.
 
우리 교회 안에서 열이라는 숫자는 하나님께서 다음 세대를 준비하라고 하신 숫자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기 위해서 나만을 위한 숫자가 아니고, 에베소서를 보면 그리스도가 머리이시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 한 세람을 건축하라고 하신다. 성경이 우리의 몸을 읽어낸 것처럼 쓰여 진 것처럼 우리 몸은 그리스도를 모시라는 건축학적인 뜻이다. 세 번째는 내가 사람이 되고 또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머리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거듭나야 된다는 것이다. 그중에 하나 특징적인 것을 말씀한다. 잠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한다.

 
III.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기 위해서는 우리는 잠이 중요하다.

- 오늘 귀한 자리에서 말씀을 나누게 되니 힘이 난다. 잠을 충분이 주무셨다면 맑은 정신으로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을 것이다. 잠, 우리는 하루에 몇 시간 주무신가? 하나님은 대게 6-8시간을 자라고 하셨다. 우리가 80세까지 산다면 20-25년을 잠만 자고 산다. 아깝기도 하다. 그 시간에 다른 것을 하면 좋을 텐데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4당5락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4시간 자면 대학에 들어가고 5시간 자면 대학에 떨어진다는 말이었다. 이렇게 스트레스가 많았다. 아무 기억이 없다면 그러면 도서관에 가서 공부는 안 하고 졸기만 했을 것이다.
 
*시편 127:2,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너희가 일찍 일어나며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다고 하신다. 이런 말씀을 왜 쓰셨을까? 에너지가 넘쳐서 ‘모든 일을 척척해내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가 아니고 너 그렇지 말고 너는 정말 사랑하는구나 하시면서 잘 자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말씀하신가? 잠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만나주시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아기를 보면 하는 것을 보면 잠만 자고 먹고 자는 게 다이다. 석 달이 지나면 배로 큰다. 잠만 잔다.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고 만져주셨기 때문이다. 내가 주인이 되고 내 욕심대로 하면 하나님은 어디까지 하는지를 지켜보신다. 하나님께서 우리 몸 안에 호모스타시스라는 단어인데 의사들은 이 단어를 잘 쓴다. 항상성, 특수한 생리현상이다. 우리를 잘 자게 한다. 고장나지 않게 하나님께서 우리 몸을 만져 주시기 때문이다. 늙은 세포들을 어린 세포로 교환해 주시고 쌓여있는 노폐물들을 모아서 폐나 콩팥 간으로 이런 곳으로 보내서 제거해주고 또 새로운 영양분으로 바꾸신다. 우리가 근심이 많고 걱정도 지난밤에 많으면 머리가 띵하다. 하나님께서 자게 해주셔서 아침이 되면 생각이 정리가 된다. 컴퓨터에 아이들링 같이 컴퓨터가 밤사이에 돌아가면서 메모리 이런 것을 했다. 이 컴퓨터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고 있다. 그래서 안 좋은 생각, 화가 나는 생각들은 저기 깊숙한 곳에 넣으시고 기쁘고 감사한 것은 눈에 띄는 곳에 옯겨 놔 주셔서 우리가 하루를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가게 하시고 위로와 새 희망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것이다. 특히 성장기 아이들은 10시만 되면 곯아떨어진다. 그러면 10-12시 사이에 하나님은 성장호르몬을 주셔서 키를 키운다. 피곤했던 팔다리에 힘을 주셔서 새 날을 주시고 우리 몸을 새롭게 리모델링 해주시기에 우리가 건드릴 수 없다. 우리는 나를 사랑해 주신다는 산 증인인 것을 일생동안 갖고 있는 것이다. 저는 하나님 몰라요 해도 하나님은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하시면서 지난밤에도 만지시고 계셨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나를 만져주시고 우주 만물을 정비도 해주신다. 만물을 신선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랑하셔서 많은 것을 공급하신다. 우리의 잠은 죽음과 매우 흡사하다. 의사들이 이야기 할 때 잠을 계속 자면 죽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무 깊이 자지 않도록 꿈도 주시고 깨우신다. 이런 것을 반복하면서 재우신다. 예수님께서 완전히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3일 만에 온전히 부활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매일 깊은 잠에 들어야지만 다음 날 맑은 정신으로 부활해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죽음이 없으면 부활도 없듯이 잠자는 것을 소홀이 하거나 아까워하고 우리의 몸을 질병을 내 쫓는 일을 갖지 못하면 병이 일어난다. 우리의 세포들은 매일 죽고 새로운 세포들이 태어나서 그 자리를 대신한다. 세포가 교체되지 않으면 서서히 죽어간다. 그래서 중요한 기관들이 잘 새롭게 살아난다. 잘 때만 그것이 일어난다. 하나님께서 만져주시기 때문이다. 잠을 충분히 그래서 자야 한다. 우리는 죽음과 부활을 체험하고 있다. 우리 몸은 일생동안 그렇게 학습하고 산다. 이와 같이 우리 몸의 기관을 세세하게 만드셨고 항상성의 운영체계를 만들어주셔서 일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은 이끄신다. 이것은 바디 바이블이라는 책을 소개해 드렸다. 뿐만 아니라 마음도 만져주신다. 만족하고 기쁘고 행복함도 만져주신다. 때로는 짜증도 시기심도 두려움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것도 하나님께서 넣어주신 뜻이 있다. 하나님의 크신 뜻을 발견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 뜻을 알면 그렇게 짜증내고 슬퍼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을 하나님께서 알려주셔서 책을 바디 바이블이라는 책을 만들었다. 코로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제일 신경 쓰이는 것이 건강이다. 건강은 항상성과 관계있다. 사람들은 건강하기 위해 먹는 것과 운동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굉장히 중요한 것은 잠이다. 팁은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건강의 비결이 있다. 바로 잠을 충분히 자는 것이다. 먹는 것 20%, 운동 10%이다. 잠은 60%에 해당한다. 잠을 잘 자면 암도 걸리는 것도 낮다. 성경에도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된다고 한다. 저녁이 되는 것이 놀랍다. 하루에 시작이 저녁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 시간이 하나님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에 잠을 잘 자면 하루의 시작이다. 우리 몸의 건강은 세포의 합이다. 분열하고 증식하면 새롭게 된다. 밤에 일어나고 진행된다. 조혈모도 잠을 자는 시간에 다 일어난다. 자는 시간을 충분히 갖기를 바란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잠을 자면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이 시산에 독소와 분비물도 다 빼주시기에 잠자는 시간을 쪼개지 말고 황금 같은 시간을 잠으로 채우기를 바란다. 다윗이 영적을 스마트 폰이 없는 시대에 살았기에 영적으로 더욱 선진국에 살았을 것이다.

 

요약
항상 건강을 위해 잠을 충분히 자고 주님이 주시는 선물이시니 감사하며 시간을 쪼개지 말고 주님 안에서 충분한 잠을 자서 하나님 일에 집중하고 예배를 생명과 같이 지키며 믿음의 4대가 토비새를 통해 새마음과 새 믿음으로 무장되고 부흥의 은혜를 구하고 감사의 비대칭전략으로 나아가 모든 성도가 시대를 관통하여 영적인 기백을 가져야 한다. 주님 주시는 비전을 꿈꾸며 주일 예배를 준비하며 기도해야 한다. 

-우선 다윗은 경이로움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평생에 끊임없이 지켜 주셨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17,18절). 다윗을 잘 아시는 하나님은 그를 항상 생각해 주셨고, 그 생각은 언제나 따뜻한 사랑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은 그 백성을 위해 선하심을 베푸시려고 늘 감찰하신다(렘 31:28). 우리를 위해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실로 무한하다. 따라서 그 결과는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거나 예상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 훨씬 더 좋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아침마다 새로이 베푸시는 여호와의 긍휼하심이 얼마나 크고 다양한지 제대로 알 수가 없다.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 이 고백은 여호와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지키시는 가운데 평안하고 안락하게 하룻밤을 보냈다는 감사의 뜻을 나타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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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2년 2월 2일)
제목: "믿음으로 겨울나기"
말씀: 여호수아 2:8-11, 히브리서 11:31
설교자: 문진호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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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2:8-11,
8 또 그들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9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히브리서 11:31,
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수요저녁기도회에서 맞춤형 응답의 은혜를 체험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 여러분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가? 이틀 후에는 절기상 입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춘이 이 절기에 실제적으로 봄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2월은 여전히 추운 겨울이다. 절기와 계절에 이 간극을 보면서 우리 신앙생활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믿음으로 소망을 품어보지만 여전히 삶은 겨울을 지나고 있다. 시대의 불청객인 코로나로 아직도 삶의 강바닥이 딱딱하게 얼어있는 듯하다. 오미크론이 얼마만큼 우리의 삶을 강타하게 될지 두려움과 불안함에 한겨울을 지나는 것이다. 어떤 성도들을 질병이 가져온 고통의 겨울을 지나기도 한다.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불안의 기다림의 겨울을 지난다. 요즘처럼 위축된 비즈니스 환경에서 사업을 해야 하는 분들에게는 위기라고 하는 리스크라고 하는 겨울을 지나고 있다. 자녀들이 가정에서 온라인 수업을 진행할 때면 가정주부들을 피곤함에 겨울을 지나게 된다. 어쩌면은 우리 모두는 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강도에 있어서는 그 추운 겨울을 느끼는 강도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겠지만 모두는 다 겨울을 지나고 있다고 말씀을 드릴 수 있다.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겨울을 지나고 있는가? 겨울이 진정 문제가 되는 것은 겨울이라는 것이 알 수 없는 미래의 수해와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잘못하면 사방이 얼어붙은 길에서 길을 잃거나 절망이라고 하는 감옥 가운데 떨어져버릴 수도 있다. 실제 마주하는 환경이라는 겨울보다도 어쩌면 마음의 겨울이 더 차디찬 그리고 시리도록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겨울은 겨울나기에 지혜가 있으면 잘 넘어갈 수 있다.

 
겨울나기는 월동이라고 이야기들 한다. 우리는 부모세대로부터 배운 지혜가 있다. 그것은 겨울이 오기 전에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장을 담고 감을 말리고 방풍 지를 붙인다. 누비옷을 준비하며 뗄 감을 마련한다. 과거에 있었을 법한 그런 여러 가지 활동들일 것이다. 지금도 월동준비는 필요하다. 추운지방일수록 더 디테일하고 정교하게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자연계에서도 월동준비는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이다. 식물이 가을에 잎사귀를 떨구는 것이나 짐승들이 털갈이를 하고 겨울잠을 자기 위해 배불리 먹어치우는 것들이 겨울나기의 지혜이다. 여러분 그림 하나를 보겠다. 이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겠는가? 왼쪽에는 양배추인데 그것을 땄을 때 모습이다. 그러나 겨울이 되면 희한하게도 그 안에 있는 알맹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바깥에 있는 겉에 껍데기들이 속살을 보호하는 것이다. 다 오므려져 있는 것을 오른쪽에 볼 수 있다. 농사일을 하시는 선배 목사님이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신다. ‘믿음으로 겨울나기’ 설교 제목을 가지고 설교를 하고자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이 사진을 보내주셨다. 자연계에서도 겨울을 나기 위한 지혜가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 인생의 겨울을 맞이해서 어떤 지혜로 어떤 대책으로 겨울을 나고 있는가? 인생의 겨울을 지나갈 때, 우리 모두에게 보호대책이 필요하다. 어떤 대책의 겨울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겨울은 복음을 새롭게 깨닫고 성장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무기력하거나 절망의 감옥에 갇히게 될 수 있다. 본문에 인생의 겨울을 지나가면서 믿음으로 겨울나기를 잘 감당하여 햇빛 찬란한 인생의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 사람이 소개되고 있다. 그 사람은 라합이다.
 
▷라합이 만난 겨울은 어떤 것이었는가?
첫 번째는 공포감이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면 그가 만난 실제적으로 무엇이었는지를 느낄 수 있다.
 
*여호수아 2:9,11.
9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간담이 녹는다고 표현한다. 11절도 마찬가지 이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
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한마디로 그녀가 느낀 것은 공포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가나안 땅, 그리고 가나안 땅 첫 성인, 여리고 성을 함락하기 위해서 진군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라합에게 있어서 이와 같은 소식은 그야말로 한겨울을 경험하는 것 같은 공포심이었다. 히브리어로 공포감은 ‘묵으’라는 말이다. 문자적으로는 ‘용기를 잃다.’ ‘주저앉을 정도로 무기력해지다.’의 뜻이다. 마음이 녹았다는 뜻을 ‘묵으’라는 단어로 무기력해진다. 또 주저앉을 정도로 힘이 없어지고 힘이 빠진다는 뜻을 담고 있는 단어이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사용할 때, 아주 독특한 상황을 상정해놓고 쓰고 있다. 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자로 임재하실 때, 특히 하나님 앞에 높아진 것들과 교만의 상징인 산들이 녹아내린다. 라는 표현으로 이 단어가 쓰여 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용례를 살펴보면
 
*시편 97:5,
5 산들이 여호와의 앞 곧 온 땅의 주 앞에서 밀랍 같이 녹았도다.
*이사야 34:3,
3 그 살륙 당한 자는 내던진바 되며 그 사체의 악취가 솟아오르고 그 피에 산들이 녹을 것이며.
 
*미가서 1:3-4,
3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4 그 아래에서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지기를 불 앞의 밀초 같고 비탈로 쏟아지는 물 같을 것이니.
-여러분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 하나님의 향하여 높아진 모든 것들이 산들로 묘사되어지는 그 대상들이 다 ‘물같이 녹아내린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표현이 여호수아서에서 딱 한 군데 표현하고 있다.
 
*여호수아 7:5,
5 아이 사람이 그들을 삼십육 명쯤 쳐 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가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누구의 마음이 물같이 녹아내리는 것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물같이 녹아져 내려버리는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가나안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다. 그리고 홍해 물을 말리시고 또 광야 사십 년 동안 함께하시고 요단 동편에 있는 두 왕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다. 가나안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정상적인 반응은 간담이 녹아내리는 것이다.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인생 가운데 이제 한파가 불어 닥치는 한겨울이 임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정상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리고성 사람들은 그러하지 않았다. 그것을 느낌으로 경험하고 있을 뿐 그것에 대한 실체를 자신의 삶으로 경험하고 있는 사람은 라합 뿐이었다. ‘마음이 녹았다.’는 그 표현은 라합이 그것을 실제로 의도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리 철옹성과 같은 여리고 성을 쌓고, 방비한다 할지라고 홍해를 말리시고 시혼과 옥을 멸망시킨 심판의 하나님 앞에 안전지대는 없다. 라는 사실을 드러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라합이 경험하고 있는 겨울이다. 하나님의 품안에 거하지 않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공포감이 바로 겨울이다. 넓은 평수의 집과 연금과 보험으로 보장된 노년의 삶도,,, 그것으로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세상을 심판하실 하나님의 임재가 되시면 하나님을 향한 모든 높아진 것들이 물처럼 녹아내리게 될 것이다. 라합은 이 공포감의 실체를 마주대하는 것이다. 인간 본성 안에도 이러한 공포감이 있다.
 
하나님이 진실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실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따스한 어머니의 품으로 느끼게 되겠지만 하나님 안에 거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리 그것이 견고한 여리고 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그것에 계시지 않으면 결단코 안전지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라합이 느끼는 이 공포감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공포감으로 느낄때,
분주한 일상을 잠시 멈추고 영혼의 속삼임에 귀 기울일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교만의 성벽을 높이 쌓고 마치 그것이 내 인생을 안전하게 지켜 줄 것처럼 착각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내일 쓰지 못할 큰 창고를 짓고 여러 해 쓸 것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자! 할지라도 그 생명을 오늘 취하실 분은 하나님 아버지 이신 것을 믿고 하나님 임재 앞에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품과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소망하며 그 앞에 무릎 꿇을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무엇이 공포감이라고 하는 하나님이 우리 삶 가운데 임재하실 때 교만한 자를 심판하시고 겸손한 자를 붙드시고 도우시며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지 그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참으로 지혜롭게 반응하는 것이 무엇일까?
 
*시편 131:2,
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 이처럼 어머니 품 안에 고요하고 평안한 젖뗀 아기처럼 참으로 복 있는 자임을 믿는다. 라합이 두 번째 겨울을 지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소외감이다. 라합은 힌나님 없는 인생의 두려움과 공포감을 느낄 때 또 다른 느낌을 경험했다.
 
라합의 인생의 두 번째 겨울은 무엇인가?
 
*여호수아 2:12,
12절 하반 절을 보니
12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라고 고백한다. 신앙의 연조가 오래된 그런 신앙의 연륜을 가진 사람이 아닌 이 고백은 불신의 세상 한 복판에 거주하고 있는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 안에 들지 못한 라합의 고백이다.
 
*여호수아 2:13,
13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그랬던 그가 이렇게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내 목숨이 누구에게 달려있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달려있다는 것이다. 내 인생의 생과 사를 누가 좌지우지 하고 있다고 하는가? 하나님께서 좌지우지 하고 있다는 고백인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하늘과 땅 모든 곳에서 하나님이 되시는 줄 믿는다. 온통 세상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내게 주어질 것은 단 한 평도 없다. 라는 이 고백이 라합이 경험하고 있는 소외감이다. 내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아니시기에 그렇다.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요 나는 여전히 진노 받기에 합당한 하나님께 분깃이 없는 여전히 나는 버림받은 백성이라고 하는 그 정책성 가운데서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등산가서 서울을 내려다보면 옆에서 하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저렇게 집들이 많은데 내 것은 하나 없네~ 여러분 제 고백이라 하지 않겠다.
 
여러분, 수많은 내 것 아닌 것들을 바라보면서 내 것 하나 없네~ 저렇게 많은데~우리가 자주 생각하는 것 아닌가?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에게 주신 그 가나안 땅의 이제 여리고 성을 첫 제물로 삼아 이제 함락시키기 위하여 이쪽으로 진군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워한다. 그리고 소외감을 느낀다. 두려우신 그 하나님 앞에 모든 교만한 자들, 하나님을 대항하여 모든 높아진 사람들이 눈 녹듯이 녹아져서 사라질 것처럼 그런 공포감을 가지고 있는 바로 그 순간 그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관계로 이 땅에서 단 한 평도 내 것이 될 것이 없다. 라고 하는 그 소외감 여러분 이것이 인간본성이 경험하는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감정인 것이다.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은 살려주어 우리의 목숨을 건져내라. 우리의 목숨 우리의 생명 우리의 가족들의 모든 미래의 삶, 내 손에 달려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 라는 것이 정직하고 진솔한 느낌이며 하나님 앞에서 느끼게 되어질 인간 본성의 감정인 것이다. 소외감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은 나에게도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내게 속한 모든 사람에게도 아전하지 않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여기에 우리의 인생의 겨울나가 두 번째 기회가 있는 것이다. 요즘 뉴스에서 건물과 토사가 무너져 있는 장면들을 보면서 과연 내가 있는 곳은 안전한가? 이런 생각을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모 건축회사에서 지은 그 아파트는 그 아파트 브랜드에서 빼려고 한다고 뉴스에서 들었다. 이름을 빼려고 하는 시도들이 벌어지고 있다고들 뉴스에서 듣는다. 여러분 계신 곳은 안전한가?
 
2m 두께의 벽이 이중으로 세워진 여리고성은 과연 안전지대인가? 눈에 보여 지는 것이 안전지대로 보여도 하나님 편에 있지 않은 것은 안전지대일 수 없는 줄로 믿는다. 여리고성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에 대하여 높아진 것들, 교만해진 것들, 다 산들처럼 녹아져 사라져 버리게 될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911테러가 벌어진 다음 주일 타임스퀘어 강단에서 이런 메시지가 선포되었다. 뛰라는 것이다 그곳에서 뛰쳐나오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한다. 계속해서 좋은 삶을 살라는 초대도 아니다. 벗어나십시오! 살기위해 달리십시오! 당신의 생명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뉴욕의 경관들의 이야기는 나의 마음속에 영원히 새겨질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향해 도망치라고 외쳤다. 목숨을 걸고 외쳤다. 여러분도 살기 위해 달려야 한다. 벗어나야 한다. 번영, 부흥, 성공에 집중하는 것들로부터 달려야 한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자신의 이익으로 쓰는 사람들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죄가 편하게 느껴지는 곳으로부터 당신이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왔을 때 당신의 삶에 죄가 있고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당신의 생명을 위해 달려야 한다. 여러분, 하나님이 없는 그곳에 과연 안전지대가 있을까? 하나님의 집만이 안전지대일 것이다. 하나님의 집이 어디인가? 너희 하나님은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 온 세상의 통치자이심을 깨닫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심을 고백하며 그리고 나도 하나님 편에 서고 싶다고 하는 강한 열망으로 사로잡히는 것이야말로 참된 겨울나기의 지혜인줄 믿는다.
 
*여호수아 2:13절에 다시 한 번 읽어보겠다.
13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라합의 절규인 것이다.
하나님이 온 세상의 통치자이심을 고백할 때 우리가 서 있는 그 모든 곳에서 호흡하며 살아가는 모든 곳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붙드실 줄로 믿는다. 반대로 여리고와 같은 강한 성, 부족할 것이 없는 중국 자금성처럼 구중궁궐의 아홉 결의 보호막이 예비 되어 있는 곳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없는 그곳은 안전지대가 아닌 것이다. 그곳은 무너져 버릴 것이며 오직 우리가 월세 방을 살아도 우리가 우리의 이름을 새겨 넣을만한 그러한 곳이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만 하면 그곳이야말로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안전한 거처가 될 줄로 믿는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반전이 있는 줄로 생각할 것은 여전히 두 명의 정탐꾼이 탈출을 목적으로 성벽위에 있는 집의 라합의 집에 쳐들어 왔다. 그런데 라합이 살고 있는 그 집은 이 이중구조로 되어 있는 성벽 위에 지어진 집이었기 때문에 정탐꾼들이 숨어 들어왔을 가능성이 매우 큰 것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성벽위의 집들 가운데 유일하게 두 정탐꾼이 들어온 집, 그 정탐꾼이 살기위해 방문한 집이 라합의 집이다.
 
여러분 인생 가운데 어떤 반전인가?
영적으로 보면 정탐꾼의 방문은 하나님의 구원이 여리고의 변방에 살고 있는 가장 보잘 것 없고 소외된 사람에게 임했던 구원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탄생의 복음이 베들레헴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진 것처럼 변방의 라합에게 구원이 선포된 것은 복음의 수용성이 좋았기 때문인 것 같다. 복음의 수용성이 좋다. 라는 것은 이 땅에서 천국을 다 살아버리면 이 땅 이후의 삶에 진짜 우리가 살아가야 될 영원한 천국에서 더 이상 누릴 것이 없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실제로 우리가 누리게 될 그 어떤 것보다도 귀하고 아름답고 복된 것인 줄로 믿는다. 그런데 이 땅이 너무나 좋아서 어떤 분은 이 땅의 것을 다 누리지도 못하고 이 땅의 삶을 끝까지 붙잡고 있다가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인생들도 간혹 있다. 라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팔복에서 복음이 필요한 사람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었다. 애통하는 사람들이다. 의의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었다. 하나님 없으면 나는 못살아요 하나님만이 나의 소망이요 반석이요 피난처이시다. 이와 같은 고백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의 삶 가운데 주님이 찾아오시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인생이 월세 방이냐 아니면 청와대와 같은 구중궁궐이냐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도 하늘을 사는 자처럼 사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이 땅에서 모든 것을 누리며 살고자 하지 않고 늘 마음이 가난한 자처럼 주님의 복음 때문에 전전긍긍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에 하나님은 찾아오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모든 자는 하나님의 거룩한 의의 옷을 입혀 주시는 줄로 믿는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영적으로 두 번째 선택이 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은혜인 것이다. 소망 없고 빛도 없는 어두운 세상 가운데 공포감과 소외감을 온전히 느끼면서도 내가 속한 안전지대를 벗어나 하나님 나라에 속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 마음, 그 소외감의 겨울이 찾아오게 되면 우리 모두가 라합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것이 믿음의 선배들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본이었다. 그들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다가 더 좋은 본향을 사모하며 살았다.
 
*히브리서 12:16,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이 땅의 삶이 영원히 지속될 거라 아니하고 나를 위해 예비하신 영원한 성을 소망하며 천국의 시민으로 살아가길 간절히 바랬던 믿음의 선배들처럼 우리의 삶에도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삶이 있기를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공포심과 소외감이 찾아왔을 때, 라합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그것은 믿음으로이다. 라합의 겨울나기의 본질은 믿음으로였다.
 
*히브리서 11:31,
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 라합의 삶을 한 줄로 요약한다.
라합의 믿음의 본질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한 것이다. 평안히 영접한 것을 선대하였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여호수아 2:12,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선대하다는 히브리어로 '헤세드'이다. 헤세드의 관한 가장 아름다운 언어 중 기억하고 있는 중의 이야기가 있다면 룻의 이야기이다. 룻은 시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낯선 곳인 시어머니의 고향인 베들레헴에 정착한다. 가난을 면하기 위해 밭에 나가 이삭을 주우며 늙은 시어머니를 먹이고 돌본다.
 
이것이 헤쎄드이다. 룻의 착한 행동을 보고 그것을 주목하고 있던 장차 남편이 될 보아스가 이렇게 이야기 한다.
 
*룻기 2:12,
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시어머니에게 행한 헤쎄드,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을 보답하기를 원하는 그 행한 일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 자비와 긍휼이라고 하는 헤쎄드이다. 그 결과가 온전한 상이 주어지는 것이다. 룻은 남편을 잃었다. 모압 땅에서 기근을 만났다.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낯서 곳에서 정착하지만 생활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이삭을 주워가며 늙은 시어머니를 봉양한다. 이 모는 상황이 룻에게는 겨울이다. 공포감과 소외감이 파도처럼 밀려왔을 것이다. 내 인생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베들레헴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여전히 이방 여인이라고 하는 딱지를 달고 있다. 그렇지만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성품 헤세드로 반응한다. 인생의 얼어붙은 상황을 이 하나님의 성품 헤쎄드로 반응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온전한 상을 베풀어 주시는 줄로 믿는다.
 
*룻기 4:21-22,
21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22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룻이 누가 되는가? 다윗의 증조모가 되는 것이다. 영원히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없었던 모압 여인 룻은 하나님의 백성의 족보에 들어간다. 단순한 족보가 아니라 왕의 족,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쯤에서 족보 하나를 더 보겠다.
 

*마태복음 1:5,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라합이 나온다. 살몬이 이 라합과 결혼을 한다. 우리가 룻기에서 보았던 그 보아스의 엄마가 바로 라합이다. 유대지파의 족장인 살몬은 라합을 아내로 맞이하여 보아스를 낳았던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성품, 헤쎄드로 반응한 사람들이 기록된 역사이다. 하나님의 전으로 영원히 들어가지 못하는 모압 출신 여인 룻, 멸망당해 그리고 여리고 성 출신이기에 하나님의 그 성회에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았던 기생 라합은 자격 없고 비천하고 생명의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겨울 인생들이었다. 그 겨울의 인생들이 찬란하게 햇빛 비치는 생명 가득한 봄날 인생으로 바뀌어 진 것이다.
 
여러분 우리의 삶이 겨울이 찾아왔는가? 어떻게 반응하는가? 때로는 공포감으로 때로는 소외감으로 우리 인생 가운데 찾아온다. 그러나 그 공포감도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그 고통 겨울 한복판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반응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성품, 자비와 긍휼이라는 헤쎄드로 반응하면 하나님은 선대한 우리는 그 작은 몸짓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런 족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그것이 온전한 상이다. 우리 모두 우리 인생 가운데 찾아 온 이 겨울이라 하는 그 한복판에 우리가 놓여있을 때, 우리 스스로 절망과 무기력감의 감옥에 빠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온전한 상을 베푸실 것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헤쎄드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로, 반응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 헤쎄드를 필요한가? 코로나의 겨울은 오히려 비접촉의 접촉을 강력하게 필요하듯이 직접 만나지 못해도 전화로 문자로 메일로 그들을 위해 매일매일 사랑이 담긴 중보의 기도로 우리 이웃들을 위해서 우리는 기도하고 섬길 수 있다. 안아주심의 본당에서 드리는 현장의 예배는 비접촉을 위한 것이 남을 위한 배려한다고 하는 세상 사람들은 공포로 반응하고 세상 사람들은 소외로 반응할지라도 우리는 그러할수록 현장예배를 사모하고 안아주심의 본당에서 서로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며 또 손에서 손으로 옮겨지는 거룩한 성찬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나아갈 수 있는 줄로 믿는다. 그것이 살아있는 예배인 것이다. 여전한 두려움과 여전한 공포가운데 여전한 후회 감의 감옥에 스스로 갇혀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우리는 그들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현장 예배의 은혜와 그 온전한 상을 베푸심에 그 현장, 그 축제 가운데 나올 수 있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권면해야 한다. 사랑으로 그들을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겨울이니까 할 수 없다고 해서는 안돼! 라는 메시지를 들으면서 절망하기보다 겨울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 헤쎄드에 대해 참여하는 참된 하나님의 자녀의 아름다운 모습이 우리 삶 가운데 있어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요약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공포감과 소외감의 겨울을 지날 때 주님의 품안에 힘써 거하여 젖 뗀 아기의 평강의 복을 누리기를 소원하며 주님 아닌 것에 안주 감을 누렸던 자리에서 뛰쳐나와서 하늘과 땅의 통치자 되시는 하나님의 집에 머물러 참 된 안식과 기쁨을 소유한 자가 되어야 한다. 얼어붙은 시간을 지나는 동안에도 이웃들과 함께 하나님의 성품, 자비, 긍휼의 헤쎄드로 반응하여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기억하여 주님의 자녀로서 권세를 겸손하게 누리기를 소망해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따스함을 기대하면서 우리 인생에 공포감이 있을지라도 이 세상에 단 한 평도 단 하나도 없을지라도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내 마음을 이해해 줄 사람은 없는 것 같아도 그 소외감이 가득 차는 순간에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는 줄 믿기에 두 정탐꾼을 한 겨울을 경험하고 있는 그 라합의 삶 가운데 보내셔서 하나님의 위로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그에게 내밀고 계시는 것을 깨달아서 우리 인생에도 주님이 구원을 손길을 내밀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이 시간 찾아오셔서 진정한 화평과 안식과 기쁨을 우리 인생 가운데 허락하시고 계심을 믿고 그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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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2년 1월 30일)
제목: ''만 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말씀: 시편 116:12~17
기도: 이의수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 영광찬양대
사회: 장광천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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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6:12~17,
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15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16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감사 제목을 매일 3가지씩 적는다. 진정한 감사가 없다면 불행하다. 대한민국 태어난 것에 감사하다. 나는 순국선열들에게 묵념한다. 우리는 신앙의 선배들께 감사하고. 선배 어른들께도 감사하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의 열정과 좋은 점과 교육열, 우리 한국 사람들의 자식에 대한 교육열, 부지런함에 감사하다. 밤 열한 시, 열두 시에 골목을 걸을 수 있는 곳은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세계에서 유일하다. 우리 교회 어떤 장로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나라 2030이 가장 똑똑한 세대라고 한다. 참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오늘 명절 찬양 예배가 감사의 예배로 승화되길 원한다. 우리 모두가 감사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오늘 근본적인 감사를 하게 된 이유가 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면 시편 116편의 저자가 누구인가? 어떤 사람은 히스기야가 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 기도로 수면연장을 받고 나서 쓴 시라고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다윗이 압살롬의 손에서 벗어나서 쓴 것으로 보인다. 제가 볼 때는 다윗이 더 낫지 않나 생각한다. 핵심은 뭐냐면 시편 116편은 갑작스런 삶의 난관, 위기, 죽음, 병 앞에서 고백하는 시이다. 얼마나 심각한가?
 
*시편 116:3-4,
3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4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고난과 위기가 많다. 얼마나 심각한지 11절에 보면 알 수 있다.
 
*시편 116:11,
11 내가 놀라서 이르기를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
-사람들이 정죄하고 압제와 비방하고 이 시인이 빨리 죽기를 바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모두가 거짓말쟁이라고 한다. 세상에 믿을 놈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배신당하고, 그럴 때 8절에 다시 보면,

*시편 116:8,
8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내가 사망에서 배신과 배척과 흑암가운데서도 영적으로 성공한다는 것이다. 감사하다는 것이다. 무얼 감사하다는 것인가? 오늘 12절의 요절을 보자.
 
*시편 116:12,
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나는 만 가지 은혜를 받았는데 내 평생 슬프나 기쁘나 즐거우나 이 몸을 어떻게 하나님 앞에 감사하여야 할까? 그이유가 무얼까?
 
*시편 116:13,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I. 참된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감사하면 영적으로 성공한다.

-복받쳐 오르는 감사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삶의 난관을 극복하게 하는 최고의 것은 내가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감사하면 영적으로 성공하는 것이다. 이 감사는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을 총칭한다. 구원에 대한 감사는 한 마디로 하나님이 나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 주셨다.
 
※구원에 대한 감사는 하나님이 나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 주셨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것을 미칠 정도로 깨달아야 한다. 나 같은 것이 무엇인데 정말 주님을 찬양하게 하는가!! 이 정도가 아닌 하나님이 나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 주셨다는 사실은 생애 최고의 석학도 깨달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제 아무리 훌륭해도 수준이 높고 지식이 높다하더라도 구원 받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받지 못한 것을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것을 확신한다. 이유를 모르지만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는 것만으로 기가 막힌 일이다. 어떤 낙심과 병중에도 하나님 앞에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감사하는 것이다. 이 감사를 하게 될 때, 우리가 하나님께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집중하게 되면 주님의 주님 되심을 믿게 되는 것이다. 감사를 통해 믿게 되면 환경이나 사람을 믿는 것이 아니며, 나는 나를 구원의 잔을 높이 들게 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마음속에 그래서 확증이 되는 것이다. 구원의 잔을 높이 든다는 것은 잔속에 넣는 대로 된다는 것이다. 물을 넣으면 물 잔이 되고, 포도주를 넣으면 포도주 잔이 되고 구원을 넣으면 구원의 잔이 되고 불평을 넣으면 불평의 잔이 되고 불씨를 넣으면 불씨의 잔이 되고 감사를 넣으면 감사의 잔이 된 줄로 믿는다.
 
※ 제가 존경하는 신학자는 제임스 패커는 기독교의 감사를 이렇게 표현한다.
“이 세상의 여러 종교 중에 기독교만큼 감사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믿는 자들에게 끈질길 정도로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요청하는 종교가 또 있을까? 아마 없으리라. 성경에서는 왜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라고 강조하는가?” -제임스 패커-
 
-아마 없을 것이다. 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오늘 말씀대로 나 같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찬양할 수 있을 정도로 나에게 준 구원의 선물이 너무도 값지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우리의 구원 사역을 통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깊이 느끼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이 지옥에 갈 우리를 구원하였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줄로 믿는다. 이러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이 나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나라로 들어가게 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감사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감사해야 한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내가 가진 구원이 진짜라면 여러분과 우리의 죄가 참으로 용서 되었다면 내가 지금 죽어도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다면 지금 우리의 형편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받는 구원이 진짜라면 내가 어떤 지위나 신분이 문제가 아니다. 내가 받은 구원이 진짜라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문제 될 것은 없다. 내가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구원을 받았다면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마음을 갖지 않아야 한다. 남을 판단해서 찾지 말라. 근본적인 감사가 필요하다. 내 인생의 최고의 사건은 무엇인가?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구원의 감사에 대해서 김동영 목사님과 안이숙 사모님이 계셨다. 13살 많은 사모님과 결혼했다. 안 사모님의 구원이 너무 좋아서 안 사모님만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책을 쓴 사람이다. 두 분의 관계가 하나님의 구원의 감사가 가장 큰 분이다.

 
※“주여 나 같은 것에게 사랑하는 독생자까지 주셨으니 어찌 가슴이 끓어 오르고 불타고 폭발하지 않고 견딜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구언에 감사하여 옳고 꿇어 엎드리고, 이 몸을 드리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정열을 다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것입니다.” -김동명 목사님, 안이숙 사모님-


-구원에 감사가 참된 감사이다. 목이매이는 것이다. 이 고백을 하시는 두 분을 잊을 수가 없다. 안 사모님이 우리 교회에 와서 그 간증을 들었던 분들도 계신다. 허락 되면 우리 교회 영상 팀에서 다시 보기를 권한다. 훈련에서 다시 보여 주고 판매하기를 바란다.
 
II. 참된 감사는 우리를 ‘영원한 시간’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다.

-우리는 많이 살면 백 살이다.
 
*시편 116:15,
15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경건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정말 은혜를 주시고 더 깊은 뜻은 우리에게 영원한 세계를 보장하시고 진입하게 하신다. 모두가 시간의 노예이고 시간 속에 갇혀있다. 서로 밀당하고 끌려가기도 하고 온갖 일을 겪으면서 산다. 그런데 가장 가치 있는 참된 감사로 구원의 잔을 높이 들면 육신의 시간이 영혼의 시간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고통과 상처가 감사로 바뀌는 것이다. 불평의 감옥이 감사와 찬양이 된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하게 하신다.
 
여러분은 ‘미즈노 겐조’라는 사람을 아는가?
그 시인은 ‘감사는 밥’이라는 책을 썼다. 미야오 목사님의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은 시인이다. 지금은 천국에 갔지만 그가 쓴 책에서 자신의 생각을 눈으로 표현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장애로 살았다. 말을 못해도 감사하며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진심으로 감사하며 살았다고 한다. 비록 육신은 안 들었지만 영혼의 시간을 만들며 살았다. 겐조의 그리스도의 사랑의 글귀가 있다. “밤마다 격하게 괴롭히는 고민도 아픔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나를 떼어놓을 수가 없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시끄러운 두려움도 불안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나를 떼어놓을 수가 없다. 라고 말하고 있다. 육신적으로 참으로 불행했지만 일평생 침상에서만 살았지만 그의 침상은 원망과 불평 대신에 감사가 넘쳤다. 눈을 깜박이는 것 외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슴이 뜨거워졌고 구원 받은 것에 감사하며 미소 짓고 살았다면 건강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겐조에 비하면 얼마나 감사한 이야기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모두 감사하는 자는 육신의 눈이 아니라 영혼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육신의 시각으로 살지 않고 영혼의 시각으로 살아야 하고 영혼의 렌즈로 살면 우리는 감사의 렌즈로 살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감사의 렌즈로 보면 다섯 가지가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영혼의 눈으로, 영혼의 시각으로 보면, 예전에 지나친 것을 깨닫게 된다.
-첫째, 감사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과거의 상처나 슬픔에 집착하지 않는다.
-둘째, 감사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일상에 숨어 잇는 작은 행복을 발견하는 눈이 열린다.
-셋째, 감사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이전보다 화를 내는 횟수는 줄고 웃는 횟수는 많아진다.
-넷째, 감사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섯째, 감사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더 배울 수 있고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자리가 성장하는 자리이다.
 
*시편 116:17,
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이런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시편 116:18-19,
18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그의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가 지키리로다.
19 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에서 곧 여호와의 성전 뜰에서 지키리로다 할렐루야.
-여호와 성전 뜰에서 감사의 제사를 드리자는 것이다.
 
▷구약의 레위지파 사람들은 성전 중앙 뜰에서 축제의 기간마다 레위지파 자기들은 할 일일 있었다.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았다. 우리도 주의 뜰인, 하나님의 예배당에 나와서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여러분과 저는 21세기 감사의 레위지파가 되어야 한다. 역대 상 16장에는 레위지파를 세 분류로 나누고 있다.
 
세 분류- 레위지파.
첫 번째ㅡ여호와 궤를 섬기는 자.
두 번째 ㅡ하나님의 행적과 은혜를 감사하고 기록하는 자(사관).
세 번째ㅡ 직접적인 연주자. 찬양대나 오케스트라처럼 같다.(연주자)
 
-그래서 다윗은 전쟁하러 나가기 전에 먼저 정결하게 하고 레위지파를 점검했다. 항상 감사와 찬양이 없는 전쟁은 망하고 실패한다. 이것이 거룩한 비대칭 전략이다. 다윗은 전쟁 준비를 하기 전에 하나님께 감사의 준비부터 한 것이다. 비대칭 전략이란 골리앗을 칼을 들고 나올 때, 다윗은 물맷돌을 들었다. 여호사벳은 모압과 암몬 연합군을 맞설 때, 그걸 준비하는 것이 아닌 찬송을 했다. 비대칭 전략이다. 이것이 영적인 비대칭이다. 우리가 평생에 문제가 있으면 먼저 주의 제단 뜰에 와서 21세기의 레위지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비대칭 전략이다. 예배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곳이다.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불평이 있으면 감옥이 된다. 성숙한 사람은 거룩한 비대칭 전략이다. 부부 싸움할 때도 잠시 화장실 가서 찬송하고 나오라. 그러면 비대칭 전략이 되는 것이다. 미즈노 겐조도 비대칭 전략을 한 것이다. 우리의 비대칭 전략은 찬양 아리랑을 한 것이다.
아리랑으로 찬양을 하면 비대칭 전략이 된 것이다. 애통의 아리랑, 성령의 한의 아리랑이 찬송이 된 것이다. 아리랑이란 비대칭 전략으로 세상을 바꾸기를 소망한다.
 
♧요약
구원 받은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무엇으로 보답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만 가지 은혜로 우리를 최고로 대우하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잔을 높이 들고 영적으로 성공하는 평생이 되어야 한다. 날마다 애통과 한의 역사를 기쁨과 감사의 역사로 바꾸는 주인공이 되어 어떠한 난관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헌신하여 감사의 비대칭 전략을 세워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ㅡ하나님은 두려움에 떨던 다윗에게 보다 좋은 선물을 주셨으며 환난에 빠진 그를 구하시는 은혜도 베푸셨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다윗은 '모든 은혜'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모든 긍휼하심을 잘 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다윗은 하나님께 받은 많은 은혜에 대한 대가로 적당한 보답을 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그마한 보답이라도 하려고 했던 것이다. 마침내 다윗은 마음을 다하여 경건하게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고 기도를 올리기로 결심하였다.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즉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시로 율법에 명시된 전제를 드리고 믿음의 동료들과 함께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즐거워하겠나이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구원의 잔'이란 명칭을 사용한 것은 구원의 날을 기억하면서 마셔야 할 잔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은 은혜를 베푸셨으니 이제 어떤 잔을 허락하신다 하여도 불평하지 않고 기꺼이 마시겠나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영접하겠나이다." 똑같은 내용이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가운데 나온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구든지 먼저 자기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려야 한다. 그렇게 한 뒤에는 자기의 모든 재산을 내놓아 선한 사업에 사용케 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높여야 한다. 또한 이렇듯 아무 가치도 없는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산제사로 바쳐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께서 생명을 소중히 여기시며 그 백성을 위로해 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여호와께서 다윗을 귀중히 보시사 그의 죽음으로 대적자들을 만족시키지 않으셨다. 한때 무서운 위험에 빠져 죽음의 손길을 느끼던 다윗도 이 진리를 믿고 위로를 얻었다. 더욱이 체험을 통해서 진리에 대한 확신을 얻고 나자 다윗은 그 말씀으로 많은 사람을 위로해 주었다. 앞서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고 외쳤던 다윗은 여기서 번제와 희생제보다 뛰어난 자기 자신을 드린다.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이것은 그렇게 되기를 스스로 선택하여 결심한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가리켜 '성도'라는 호칭을 즐겨 사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경우를 언급할 때에는 '나는 진실로 주의 성도'라 하지 않고 굳이 '주의 종'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다. 다윗은 한 나라의 왕이었으나 오히려 하나님의 종 된 것을 더 영광스러워 하였다. 사람이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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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2년 1월 29일)
제목: ''하나님 만나면 하나님 찬양 한다''
말씀: 누가복음 2:20
기도: 김홍식 장로님(호산나 찬양대
말씀읽기: 박하연(중등부), 오준택(소년부)
찬양인도: 조성환 부목사님 안내(최혜진,조중혁,윤종민,방신제,사랑국악쳄버)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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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20
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성경고사 오래 전에 내가 1등 한 사진이 있다(오정현 담임목사님)
한국교회의 제일 큰 교단에서 67년 동안 강남노회가 우승을 했다. 강남은 우리인데 그분들은 합숙을 해서 일등을 한 것이다. 여기는 동서울 노회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공동 우승을 했다. 어릴 때 성경고사를 제대로 하면 영적 과거제도가 된다. 강남노회와 우리교회가 1등을 했다. 동생의 교회가 성경대회에 3등을 한 것이다. 그래서 동생이 그날 내게 다가와서 "형은 일등, 서대전노회가 3등을 했는데 어릴 적 같은 일이 있어서 좋다."라고 했다.

오늘 명절 특별 선물이 있다. 첫째 선물은 안아주심 본당에서 명절 선물을 보여주겠다.
첫째는 -영적 과거제도 아이들 성경고사 시상식이다.

둘째는 –명절 선물 음악회이다.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겠다.

*누가복음 2:20,28.
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28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이 언어에 신선도가 더한다. 좋은 글을 만나면 그 저자를 만나고 싶듯이 좋은 음식을 만나면 유명한 쉐프가 나와서 요리에 대한 주제에 대해 인사의 말을 듣게 된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찬양하고 찬양하게 되면 주님을 만나고 싶어진다. 나이가 상관없다. 틴에이저였다. 마리아는 어린 처녀였다. 나이에 상관없이 시므온 동방박사 많은 목자들은 숫자. 장소, 나이, 직업 상관없이 주님을 찬양할 줄로 믿는다. 주님을 만나면 주님을 찬양한다. 찰스웨슬리 영국의 대가 기초의 한 사람, 영국은 피의 혁명을 일으키고 프랑스는 인본주의적이다. 네덜란드의 아브라함 카이퍼는 반 혁명당을 일으켰다. 그런데 영국은 명예혁명을 했다. 영국교회가 살고 바로 나가니까 그 근저에는 신앙의 인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기에 인권이 제대로 섰던 것은 찰스이다.
 
※만입이 내게 있으면,,,, 내 은혜로우신 하나님 날 도와주시고...
만 개의 입이 있으면, 텐 싸우전 마우스(Ten thousand mouths)

 
*고린도전서 14:15,

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이다. 고린도교회는 문제가 많은 교회였다. 고린도교회가 살아남게 된 교회가 된 것은 무엇이냐면,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찬송했다. 우리 사랑의교회와 한국교회 모든 성도들이 영으로 찬송해야 한다. 영적으로 방언으로 찬송해야 한다. 모두가 다 통용되어야 한다. 영과 무의식 세계가 주님을 찬양한다는 뜻이다. 어릴적부터 영으로 기도하는 은혜를 받았다. 인지하지 못하는 가운데 주님을 찬양한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나온다. 아멘 주를 기뻐하고 찬양하나이다. 하게 된다.
 
캐톨릭 적인 것이 아닌 수도원 같은데 가보면 영으로 찬양을 한다. 마음으로 주님을 의식적으로 찬양한다. 내 마음의 중심이 주님을 집중하여 찬양해야 한다. 목소리가 안 좋아도 좋다. 남만큼 음악적인 재능이 없어도 온통 오염되어 있어도 이 모든 것을 총정리하고 내 마음이 순수하게 주님 앞에 올라가면 된다. 무의식 세계가 주님과 온전하게 찬양하게 된다. 지성과 내 의지, 감정, 행실이 주님을 향하여 찬양하면 주님은 기뻐하신다. 항상 무장되어 시대앞에 설 수 있기를 찬양한다. 내일 주일 은혜에 만 가지 은혜를 받아서 영과 마음으로 찬양해야 한다. 주님을 깊이 만나서 주님을 찬양하면 많은 것들이 해결될 줄 믿는다. 만약에,,, 사회주의 정권이 된다면 광화문 앞에 모여 찬양한다면 해결된다. 러시아군들이 다 물러갔다. 우리 나라가 없기를 바라지만 영광의 주님을 찬양을 일주일만 하면 모두가 해결된다. 이제 음악 순서를 하겠다.
 
▷워쉽과 조성환 목사님과 함께 찬양과 가곡을 소개 하게 되겠다.
선구자 조두남씨는 음악 교육가였다. 그의 음악은 우리 민족 고유의 감정을 이입한 곡이다. 오늘 가곡을 감상하겠다.
1. 연주 - (김제니 집사님-피아노)
2. 소프라노 - 최혜진 집사님(새타령),
3. 테너 - 조중혁님(그네),
4. 베이스 바리톤 - 윤종민 성도님(청산에 살으리랏다)-김현준(한양대 총장 작곡.
5. 메조소프라노 -방신제 성도님(금강산)-금강산 빼어난 절경묘사 최형섭 작곡
6. 사랑 국악쳄버가 우리 교회 안에 계심을 채굴했다. 사랑국악-서편제
7. 중창단- 김제니(피아노), 최혜진(소프라노), 조중혁(테너), 윤종민(베이스 바리톤), 방신제(메조 소프라노)

 





                                                   사랑의교회 주일학교 -성경고사 대회 시상식-









               


                                                             ♧---- 토요비전새벽기도회 음악회 ----♧



                                                                          최혜진(소프라노)





                                                                           윤종민(바리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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