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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기도회-(주후 2022년 4월 30일)-가정의 새판짜기(I).
제목: "바나바의 선교행복","신앙(복음)의 세대계승"
말씀: 사도행전 4:36-37
대표기도: 류성일 집사님(포에버 남회장)
말씀읽기: 양혜수자매(청년2국), 김정우형제(대학1부)
찬양인도: 쉐키나(포에버 연합찬양)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조용성 선교사님-초빙(터키, GMS선교회 총무),
주연종 부목사님(믿음의 1대 포에버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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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4:36-37,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저는 포에버의 찬양을 드리면서 강사와 벨런스가 참 잘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면 저도 2년 후에 은퇴이다. 별로 반가워하지 않으신 것 같다.


여러분,
선교는 행복이다. 선교는 기쁨이다. 선교는 즐거움이다.  선교는 아름다움이다. 선교는 특권이다. 선교는 희생이 아니다. 저는 그러기에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 사랑의 교회 특새를 통해서 한국교회 지형을 바꾸어 놓은 사랑의 교회를 격려한다. 그리고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 여러분의 신앙생활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한 선교사의 행복을 오늘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 저는 정말 32살에 선교지에 갔다. 오늘의 이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저는 저 인생이 삶에 선교사로 헌신했던 것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저같이 부족한 자를 하나님께서 쓰신 지난 36년의 선교의 여정을 지키신 주님을 찬양한다. 오늘 이 아침에 여러분과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이 구브로는 제가 지금 살고 있는 그 선교의 현장이다. 오늘 이 아침에 여러분에게 한 분을 소개하고 싶다. 이분이 사진 대로 바나바이다. 이 바나바는 제가 살고 있는 구브로에 저희 집에서 저 교회가 바나바가 보이는 곳에 살고 있다. 최소한도 선교지는 이 정도가 되어야 한다. 저는 바나바를 보면서 늘 이런 생각을 한다.


신앙생활은 행복입니다.
신앙생활은 기쁨입니다.
신앙생활은 아름다움입니다.
신앙생활은 특권입니다.
신앙생활은 희생이 아닙니다.


여러분 성경에 바나바에 대해서 3가지 관점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1. 헌신의 행복
2. 다음 세대 일꾼 발굴의 행복
3. 은혜를 보고 기뻐하는 행복.



1. 헌신의 행복 바나바.
-제가 먼저 바나바의 이 헌신의 행복이 어떤 사람이었을까를 보고 본문을 보면 이 바나바는 원래 이름이 바나바가 아니었다. 그의 이름은 ‘요셉’이었다. 사도들의 발 앞에 그의 밭을 팔아서 헌신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바꾸어 주었다. ‘바나바’라고... 여러분 바나바 이름은 원래 권위자(勸慰者)라는 뜻이다. 성경을 깊이 보았으면 이렇게 담대하게 알게 된다. 권위자는 말은 권할 勸, 위로할 慰 자이다. 위로하고 권하는 사람이 바나바였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들에게 정말 바나바의 삶이 여러분과 저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바나바는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바나바이다.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영 가족의 모든 성도와 전 세계의 이 영상을 보시는 분들의 한 분 한 분을 통해서 삶이 바나바처럼 정말 위로하고 권하며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데 위로하는 삶이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여러분 바나바는 그의 밭은 사서 바쳤다고 하는데 사실 성경은 중국어로 번역을 해서 그렇게 되었는데 사실 이 번역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원래는 Property,전 재산을 바친 것이다. 그의 고향은 살라미스가 그의 고향이다. 제가 구브로의 지금 살라미스에 살고 있다. 살고 있는 사람이 말하기 때문에 잘 들어야 한다. 바나바는 그의 아버지가 그의 아버지의 생업은 많은 성경학자들의 문헌에 보면 그의 아버지는 광산업을 했다고 되어있다. 이 당시의 구브로에 엄청난 구리가 많이 나왔다고 하는데 바나바는 이 아버지의 유산을 따라 이 많은 재산들을 소유하고 있었을 거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바나바의 조카는 마가 요한이다. 마가요한의 어머니가 마리아이다. 그런데 마리아는 많은 성경학자들이 바나바의 누이라고 말한다. 마가 요한과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아마 일찍이 예루살렘에 갔을 것이다.
여러분 놀라지 않기를 바란다. 바나바의 누이였던 마리아는 당시 120문도들이 들어가는 저택을 소유했던 사람이다. 마가 요한의 집은 바로 사실은 바나바의 누나의 집이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특별히 이 베드로가 자기 집처럼 드나들었던 이 마가 요한의 집은 원래 마리아의 집이었다. 여러분 이렇게 부호였던 바나바나 마리아가 그의 부모의 유산을 받아 이런 엄청난 재산이 있었을 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마 바나바가 전 재산을 제자들 앞에 바쳤다. 그래서 제자들이 원래 이름을 요셉인데 바나바로 바꾸어 준 것이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 앞에 정말 가정의 새 판짜기에서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하나님 앞에 헌신해서 드리는 삶이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선교여행을 했을 때, 상상이지만 믿어야 한다. 사진처럼 ,,,제가 저 오솔길을 아침이면 걸으면서 기도하며 이 밀밭 길을 자주 간다. 아마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선교 여행할 때, 레위기 25년경에 저린 길을 따라서 살라미스 항구에 도착하지 않았을까를 상상해 본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마가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고 첫 번째 도착했던 항구가 살라미스 항구이다. 여러분들을 초대하고 싶다. 저기는 유대인의 회당이다. 사진에서 보면 성경에서는 사도행전 이 기자가 유대인의 회당에서 주의 말씀을 전했다고 하는데 어떤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살라미스 항구에는 고대도시로 그대로 남아있다.



2. 다음 세대 일꾼 발굴의 행복 바나바.
-바나바의 행복이 어디에 있었을까를 보자. 저는 바나바가 다음 세대를 발굴하는데 있었다. 우리 한 번 사도행전을 읽어보자.
 사도행전 11장 25절에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제가 터키에 26년을 살면서 일 년 에 한 번은 다소에 갔다. 지인들이 한국에서 방문할 때도 있고, 총신대 학생들이 선교여행을 오면 그곳에 갔다. 여러분, 다소에서 수리아 안디옥까지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그 길이 보통길이 아니다. 450킬로미터 정도이다. 서울 부산 거리이다. 여러분 더더욱 놀라운 곳은 바나나가 사울을 만나러 가는 산은 토로스의 산을 넘어가야 한다. 토로스의 산은 백두산 높이의 해발 2200미터의 산이다. 성경은 평면으로 기록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기사를 누가 자신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경의 행간의 의미를 묵상하면서 놀라운 은혜를 받았다. 바나바가 보통 마음을 먹고 이 다소에 간 것이 아니다.


오늘 이 아침에 영 가족 여러분과 영상을 통해서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 ‘다음 세대의 일꾼’, 아마 저는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바나나가 인큐베이터에 있는 바울을 바나바를 통해서 선교의 역사에서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아마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이 사울을 세계 선교의 무대에 올려놓은 중심축으로 올려놓았던 장본인 바나바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역사는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 바나바를 통해서 이 사울이라는 인물이 태어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다음 세대의 일꾼을 키웠던 행복한 일들을 보며 저의 삶의 선교의 여정 속에 이 사실을 설명하고 싶다. 제가 구브로에 갔던 것은 3년 밖에 되지 않는다. 제가 2012년부터 2018년까지 대한예수교 합동측에 책임자로 있었다. 별로 반가워하지 않네요. 2018년 임기를 마치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이제 마지막 선교지를 향해서 어리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하니 하나님은 선교사가 없는 지역으로 가라고 하셨다. 그래서 제가 살았던 26년 된 터키는 저희 후배들이 많이 있다. 구브로에는 한국 선교사들이 없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선교한 지 3년이 되었다. 제가 구브로에 가서 깜짝 놀랬던 것은 평소에도 자주 갔지만 아프리카 학생들의 거의 십만 명이 있다. 별로 놀라시지 않네요. 저의 아내와 3년간 아프리카 동서남북, 아프리카 수많은 학생들이 유럽으로 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이 북 사이프러스로 유학 온 학생들을 식사 대접도 한다. 여러분 이것을 최근에 ‘환대하는 선교’라고 말한다. 저는 아프리카 학생들에게 식사대접을 한다. 제가 섬기고 있는 이 국제 교회의 사이프러스의 교회는 멤버쉽에 들어갔는데 영국 선교사 내외가 이 교회를 세웠다. 그리고 이 교회에서 아프리카 학생들을 위해서 매주 300여명이 예배를 드리는데 저는 1부인 예배에서 이 아프리카 학생들의 예배에 참석하고 오후예배는 아내가 터키 모임에 참여한다. 다음 세대의 아프리카 학생들을 보면 저는 전 세계의 다음 세대의 아프리카 학생들이 오피니언 리더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저는 이것을 보면서 우리 이 학생들을 다음 세대를 위해서 사랑의 교회에서 기도를 해주시기를 바란다.


3. 은혜를 보고 기뻐하는 행복 바나바.
사도행전 11:22-23,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예루살렘에서는 아마 70인 공회의 사람으로 굉장히 위치가 큰 사람이었다. 아마 바나바를 안디옥 교회에 보낸 것은 준비한 미션이 있었다. 안디옥 교회의 여러 가지 상황들을 보고 안디옥 교회를 향해서 많은 다민족들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선포하기 것을 보기 위해서 갔다. 그런데 바나바가 안디옥교회에 도착했을 때, 그의 일성이 하나 있었다. 그것을 보고 기뻐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랑하는 영가족 여러분의 이아침에 은혜를 받기를 위해서 나오신 분들이 보고 기뻐한다. 선교사가 이 정도는 케피시티(capacity-용량)가 넓어야 한다. 우리 한국 사람의 속담에 ‘사돈, 사촌이 땅 사면 배가 아프다.’고 말하지만 여러분이 함께 은혜 받고 함께 영 가족으로 은혜를 받을 때 서로 기뻐하시기 바란다. 은혜를 보고 바나바는 기뻐했다.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은혜 받는 사람들을 볼 때 마다 정말 기뻐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포에버의 찬양을 듣고 곡조와 음과 음정과 관계없이 은혜를 받았다. 왜냐구요??? 제가 왔다고 이렇게 형님 누님들이 함께 기뻐하는 찬양을 하시니 저도 2년 뒤에 은퇴하면 포에버 찬양대에 나오면 끼워주시길 바란다. 아!!! 정말 감동이다.

여러분, 제 지난 터키에서 세 사람의 목회자를 키웠다. 사진에 교회 앞에 두 목회자는 처음 장로교회를 개척했다. 이 교회는 지금 주일에 아마 100명의 터키인들이 모이는 교회이다. 이 교회를 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께서 일하심을 찬양하고 기도한다. 그 옆에 함께 사진을 찍었던 분은 이 피크렙 목사가 고 3때 저와 만났다. 이 젊은이는 부모님이 이혼을 하고 오고가는 곳이 없어서 오늘은 이 선교사 집, 내일은 저 선교사 집에 가는데 그때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이 피크랩 목사님에게 그때 그랬다. “너 대학을 가고 싶니?” 했더니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그가 대학을 가면 생활비를 주겠다고 했더니 대학을 가라고 했더니 그 대 열심히 기도하고 공부해서 우리로 말하면 수능고사를 공부했다. 그러나 자기 목표는 이스탄불 대학에 가고 싶어 했다. 그런데 점수가 되지 않아서 서모나에 에게해 대학에 영문과에 들어갔다. 할렐루야!! 그래서 대학 4년 동안 후원을 제가 했다. 어느 날 결혼을 하고 미국에 유학을 갔는데 이 샌디에고에 있는 웨스트민스트 대학에 갔다고 한다. 저는 깜짝 놀랐다. 그의 아내가 원래는 단기 선교사로 터키에 제 딸의 선교사 담임 선생님이었다. 담임 선생님과 연애를 했다. 그래서 결혼을 한 것이다. 미국에 가서 사모가 자기 남편을 헌신해서 신학을 했다. 아마 터키의 이즈밀의 지역에 장로교회가 30-40명 모이는 교회를 지금도 섬기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제가 사이프러스에 갔는데 어느 날 제가 섬기는 교회에 이 피크랩 목사님이 왔다. 어쩐 일이냐고 했더니 자기 딸을 데리고 왔다. 딸 셋이고 아들 하나가 있는데 놀랬다. 여러분 사모와 그 목사님이 결혼 후에 어떻게 약속을 했냐면 자기 아이를 낳지 않고 4명의 아이를 입양을 한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우크라이나의 아이 4명을 입양했다. 한 명을 입양을 하려고 갔는데 이 가족의 부모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다 떠났다. 막내아들을 입양을 하려고 하니 세 누나가 엉엉 우는 것을 보고 네 명을 다 입양했다. 하루 아침에 4명의 자녀를 둔 아버지가 되었다. 여러분 두 딸이 사이프러스에 치과대학에 왔다. 제가 대리 아버지를 하고 있다.

 
♣요약
신앙생활은 행복, 기쁨, 아름다움, 특권이다. 신앙생활은 희생이 아니다.
헌신의 행복 바나바 ,다음 세대 일꾼 발굴의 행복 바나바, 은혜를 보고 기뻐하는 행복 바나바가 되었듯이 우리도 바나바처럼 나의 전체를 주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가정의 새 판짜기 토비새를 통해서 신앙과 사명가 비전이 계승되는 골든타임을 붙잡아서 믿음의 세대계승을 해야 한다. 포에버와 영 가족이 날마다 더욱 주님 안에서 신앙의 깊이를 깨달아서 품위 있는 신앙생활이 되어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예수님의 제자로 온전히 살아가기를 소원한다.
 
-본문에는 특별한 사람의 이름 하나가 기록되어 있다. 그의 이름은 요셉이었으며 레위족인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구브로 출신이었다. 그가 사도들과 함께 한 뒤에 사도들이 그의 이름을 바꾸어 주었음을 주목하자. 그는 사도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그의 가치를 인정하는 표시로 그에게 바나바란 이름을 지어 주었던 것이다. 그 이름의 뜻은 '위로의 아들'(권위자)로 그는 유쾌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의 마음은 가난한 사람을 구제함에 있어 늘 관대하였으며 또 주의 백성을 위로하는 데 있어 탁월했다. 이와 같이 그는 훌륭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사도들 가운데 보아너게 즉 '우레의 아들'이라 불리는 사람이 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위로의 아들이 그들과 함께 있었다. 그들은 각각 자기만의 특별한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상처를 찾아내면 다른 사람이 치료하고 싸매 주었다. 둘째, 본문에서는 그의 무한한 관대함이 설명되어 있다. 후에 하나님의 교회에 있어서 그의 봉사가 뛰어났기 때문에 이 사실은 특별히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또는 그것이 타인의 모범이 되고 지도적인 지침이 되기 때문에 언급되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밭 앞에 두니라.. 이와 같은 그의 행위는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라고 하신 성령의 말씀대로 그가 사실상 사도들의 일원으로 간주되었던 사실과 합치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사도들을 사도로서 존중하였기 때문에 그 보상으로 그는 사도로서의 대접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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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예배(주후 2022년 4월 27일)

제목: "나를 변화시켜 주신 하나님"- 장애인주간 기념
말씀: 요한복음 2:1-11
찬양인도: 쉐키나 찬양대,
장애인 선교부, 사랑복지재단 연합찬양대
사회: 남동우 부목사님(장애인선교부)


설교자: 강주해 목사님(초빙-주은농선교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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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1-11,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나를 변화시켜 주신 하나님”.-강주해 목사님
-방금 남동우 목사님께서 봉독하신 성경 말씀인 예수님께서 제일 첫 번째 기적을 이야기 하겠다. 가나안에서 혼인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거기 초대된 내용을 하겠다. 그런데 포도주가 동이 나서 연회장이 쩔쩔 매는데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명령하여 연회장에게 주라고 지시하셨더니 맛좋은 초 상급 포도주로 변하게 하셨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기적이다. 오늘 제가 어떻게 그렇게 기적된 능력으로 변화되어서 귀한 사용되고 있는지 간증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이 말씀을 들어주시길 바란다. 제 말 알아들으실 수 있는지요? 어릴 때 저는 홍역으로 청력을 잃었다. 부모님이 제 청력으로 회복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모른다. 어머니께서 저를 데리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시면서 몇 분의 의사선생님을 만나서 회복시켜 달라고 애원하셨다.
 
 
♣요약
-마리아가 믿음으로 간청할 때 예수님은 결코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리스도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이 잔치의 주빈들이었다.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그는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예수께서는 청함을 받고 오셔서 그들과 함께 대접을 받았다. 결혼 예식이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거기에 참석해 계시다는 사실, 즉 참석하셔서 결혼을 주재하시고 축복하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바랄만한 일인가! 실로 그러한 결혼식은 자랑할 만한 것이다. 결혼 예식을 거행할 때, 그리스도께서 그 결혼 예식에 함께 하시길 원하는 사람들은 기도로 그리스도를 청해 모셔야 한다. 기도는 그리스도를 모셔 오기 위해 하늘로 심부름을 가는 사자이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는 오실 것이다. 그리고 물을 포도주로 바꾸실 것이다. 그의 제자들 역시 청함을 받았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돌보심 아래 자기들을 맡겼으며, 그리스도께서 결코 부자가 아니셨지만, 훌륭한 친구들과 사귀고 있음을 곧 알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와 함께 잔치에 참여할 것이며 그가 마시는 것을 마시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은 그의 제자들에 대한 사랑에 의해 입증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포도주가 부족한지라. 잔치에 결핍이 생긴 것이다. 많은 것을 준비했었을 테지만 다 써 버렸던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지내는 동안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충분히 준비해 놓았다고 생각할지라도 몹시 어려운 곤경에 빠지곤 한다. 만일 항상 쓰고만 있다면 우리가 깨닫기도 전에 모두 다 써 버리게 될 것이다. 거기 결혼식 연회에 모자라는 것이 있었다.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은 이 포도주가 모자랄 때 거기 계셨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필요하여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까닭에 손해 보지 않을 것이다.
 
예수의 어머니께서 그녀의 친구들을 도와주라고 그리스도께 권유하였다. 여기에 그리스도와 그 모친 사이에 오간 내용에 대해 쓰여 있다. 예수의 모친께서는 그 사람들이 곤란한 지경에 처해 있음을 알려 주었다.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하니. 혹자는 생각하기를(여태껏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신 일이 없기 때문에) 그 모친이 그에게서 어떤 기적적인 지원을 받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의 어머니가 기적을 원했음이 더욱 신빙성이 있다. 신랑은 더 많은 포도주를 구해 보라고 사람을 보냈을 테지만 예수의 어머니는 그 근원에게로 갔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 친구들의 필요와 궁핍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자신이나 친구의 궁핍이 생겼을 때 기도로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지혜이며 의무인 것이다. 그리스도께 탄원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 이렇게 해 달라 저렇게 해 달라 처방을 내려서는 안 되며 겸손히 우리의 사정을 그리스도 앞에 펼쳐 보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그리스도께서는 사랑하시는 만큼 꾸지람하시고 경책하신다. 예수께서는 그녀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여자라고 부르고 있다. 이 말을 우리가 생각함에 앞서 우리는 우리가 연약하고 어리석고 타락한 남자와 여자 즉 인간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나타나고 있다.
 
첫째, 그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으로서의 일이었으므로 그 일에 끼어드는 일을 견제하신 것이다. 그러한 일은 그의 어머니에 의해 되는 일이 아니었으며, 마리아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모친은 아니었다. 인간은 커다란 진보를 이루었다고 해서 자신과 자신의 처지를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되며 은혜의 언약으로 그리스도와 친숙해졌다 해서 경솔하거나 존경심을 갖지 않는다거나 주제 넘는 짓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이 말은 그가 기적을 베푸시는 일에 있어서는 육체를 따라서 생긴 어떤 혈연관계일지라도 그에게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다른 친지들에 대한 교훈이었다. 이 문제에 있어서 비록 주님의 가족들이라 해도 주님에게 다른 사람 이상의 어떠한 존재도 아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여러 국면을 인간이 알 수는 없는 것이다. 경책하는 이유는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셨거나 또는 그에게 행해진 모든 일들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때, 즉 정해진 시간과 또한 가장 적절한 시기를 가지고 계셨다. "기적을 행할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셨으며 그의 때가 도래하기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이 일을 행하셨다. 예수께서는 이 일이 제자들의 어린 믿음을 다지게 하리라고 예견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 기적은 그의 때가 이르렀을 때 행하셨던 많은 기적들 가운데서 대단히 중요한 기적이었다. 그의 모친은 그의 마음을 움직여 포도주가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 이렇게 읽을 수도 있다. 그 사람들을 도와주도록 했다. 그러나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의 때가 왔다. 이 사실은 인간의 극도의 곤경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기회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즉 우리가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어 어찌해야 할 지 모를 때 그의 때가 오는 것이다. 자비가 뒤늦게 베풀어진다고 해서 기도가 거부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예수님에 의해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듯이, 예수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시면 ‘우리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무미건조한 삶이 기쁨과 희망에 불타게 되며, 무한한 변화를 일으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 이번 영상은 없어서 못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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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2년 4월 24일)
제목: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말씀: 에스겔 37:1~17
찬양인도: (쉐키나,이원준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김영준 부목사님
사회: 장광천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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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37:1~17,
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7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11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12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13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14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5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6 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가지고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17 그 막대기들을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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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을 넘어 부흥으로”-오정현 담임 목사님

지난 한 주간 동안 형언할 수 없는 특별새벽부흥의 은혜를 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20살 청년 맞춤형 특새를 은혜를 우리에게 주셔서 감사와 영광 돌린다. 오늘 회중 찬송에서는 박수를 잘 안 치는데 박수가 절로 나오는 것을 보니 정말 은혜를 받았다는 느낌이 든다.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어찌 즐거운 일 아닌가?!!~~맘에 두려움이 사라져 새로움 힘이 솟는다.!~~♪

하나님 말은 능력에 있지 않고 능력이 현장이 되게 하신 것에 감사드린다. 어제 마지막 찬양예베에서 막 뛰었다. 육십이 넘은 분들은 수직으로 못 뛰고 옆으로 뛰었다. 우리 어른들께선 뛰게 해주셔서 5년은 젊어져서 감사하다고 했다. 여러분 은헤를 정말 받으면 독수리 같은 축복을 주실 줄 믿는다. 그대로 될 것이다. 은혜 받은 증거이다. 하나님 앞에서 순전하게 찬양하면서 뛴 것을 보니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다.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길이다. 재헌신하게 하심을 믿는다. 한 단계 올라가서 기쁨으로 찬양하면서 내 인생을 주님께 사용되기를 소망한다. 

이 특새를 통하여 은혜의 조각구름 비를 다 발견했다. 이제는 부흥의 단비와 소낙비를 경험해야 한다. 그래서 메마른 내 심령이 새로워지길 바란다. 목이 잠겨서 말은 조근 조근 하게 해도 알아듣기는 찰떡 같이 알아들어야 한다. 구름과 조각구름을 발견한 것 같이 부흥의 단비를 맞이하길 바라며 마치 언제 코로나가 있었던가 싶을 만큼 회복의 은혜를 주심에 주님을 찬양한다. 그냥 2년 3개월이 언제인지 모르게 다 지나간 것 같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다 부족하고, 기도제목도 많고 인생살이 가운데 삶의 커튼을 열어보면 다 문제가 있다. 문제 없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마치 그런 어려움이 언제 있었는가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유와 회복을 넘어 부흥을 주셨음을 확신한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에스겔 37:1-17절에,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무엇인가? 3절에 나와 있다.

 
*에스겔 37:3,
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 뼈들이 능히 살수 있냐고 하신다. 그냥 마른 뼈들이 아니고 심이 말라비틀어진 뼈이다.
 
*에스겔 37:2b
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very dry!!... 곧 부스러질 듯이 말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 바벨론의 기마부대는 철기 문화였다. 철기문화 기마부대가 가는 곳마다 초토화 되고, 황폐화가 되고, 유혈이 가득하고, 다 무너져 버렸다. 시체가 너무 많으니까 수습하고 장례할 사람이 없어서 시체와 해골이 곳곳마다 나뒹굴어져 있었다. 이런 참혹한 상황, 패배의식이 가득한 마른 뼈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마른 뼈를 살리리라.”그렇게 물의시니,
 
*에스겔 37:3,
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 자신이 없는 것이다. 반드시 산다는 것이 아니고, 상황을 보니 자신이 없어서 “주님만이 아십니다.” 라고 대답한다. 인간적으로 볼 때 불가능으로 느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마른 뼈가 살아나고 그 과정을 거치고 마른 뼈가 살아나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데....
이 안아주심 본당에 이렇게 많이 예배드림이 큰 군대인 것이다. 영광스런 군대가 된 것이다. 역전 승리하고 완벽한 패자부활전이 일어난 것이다. 이 시대의 마른 뼈는 무엇인가? 오늘 은혜 받는 신실한 종들이 많은데, 또 어떤 한 편에서는 죽음의 영이 가득한 곳도 있다. 우리 주위에 어둠의 영들이 가득하다. 속임의 영들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 마음에 마른 뼈처럼 조각조각 나와서 그냥 골짜기에서 시체처럼 흩어져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열 정탐꾼이 보고처럼 패배주의 때문에 이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자도 있다. 혹시 우리 가운데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함께 참여하지 못하고 예배를 열정과 에너지도 없고 형식적으로 교회만 왔다갔다가 하는 분이 있다면 어쩌면 그 마음이 마른 뼈가 된 것이다. 어떻게 그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나가지고 큰 군대, 하나님 나라의 군대,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언제나 감내할 수 있는가이다. 두 가지인데 하나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우리가 적용해야 하는 것이 있다..
 
*에스겔 37:1,-첫째,
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이 권능이라는 말, 임재하시는 말, 권능, 임재, 그의 영, 이게 우리 편이 되어가지고 적어도 에스겔의 말씀에 대한 간절한 소원이 되어서 하나님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기대하면서, 하나님을 인도를 바랐던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일도 안 하고, 아무 생각도 실천도 안 한다면, 아무 기도도 안 하고, 아무 기대도 안 하는데,,, 모두가 다 하나님의 영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기대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려야 한다. 주 얼굴을 바라야 그 단계가 있어야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특새를 통해 하나님의 권능과 임재와 그의 영을 바라면 응답하신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소원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인도하실까? 그의 영으로 인도함으로 받을 것인가? 이것이 우리의 key이다. 20차의 특새의 은혜를 보면,
 
I. 찬양 기도의 축복.

-찬양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 앞으로 우리가 기도할 때, 통성기도를 하기도 하지만 찬양통성기도를 할 것이다. 찬양합심 기도를 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은 기도는 기도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 펜데믹이후 엔데믹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영구성과 감성과 체험의식인데, 우리가 믿음으로 눈을 영고 우리의 영과 이모션과 우리의 실체,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인 이모션이 되어가지고 조각구름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이 임재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그것이 찬양기도이며, 찬양통성기도이고 합심기도이다. 예전에는 기도는 기도이고, 찬양은 찬양으로 따로 했지만 그게 아니고 기도가 찬양 기도가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주님 앞에 주님 앞에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깨닫는 것이다. 여기에 엄청난 파워가 기름부음이 있는 것이다.
 
※저는 어릴 때 산 기도를 좀 많이 갔다. 여러분 산 기도를 하면 바로 기도가 막 나오는가? 그냥 되는 것이 아니고 지금은 스티로폼이 있어서 좋지만 모포보다 습기가 안 올라와서 좋다. 이것은 해본 사람이 안다. 삶이 짓눌려 있으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아서 하려면 기도가 안 나오니까 먼저 찬양부터 하여야 한다. 그래야 기도가 나오는 것이다. 주님의 임재와 찬양을 구하여 “찬송하세, 나의 소망되시고 생명이 되시네!~” 등으로 찬송을 통해서 마음 문을 열고 찬양하는 동안에 뜨거워질 때 찬송 가사가 내 기도가 되는 것이다. 기도하다보면 하나님은 내게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를 기도제목을 주시는 것이다. 마치 권능으로 임재 하셔서 기도하게 하신다. 찬양의 풍성함 가운데 자연스럽게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주님이 말씀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사명과 계획을 주님 앞에서 결단이 서게 된다. 에너지가 떨어지면 다시 찬양하게 되면 기도가 되고 이렇게 반복하다보면 이렇게 하나님이 기름 부으시고 영광이 충만하게 된다. 무엇을 기도해도 들어주실 것이고 어떤 기도도 제대로 열매가 있을 것 같고 그런 마음의 영적인 담대함을 갖게 된다. 이번 특새가 매일 그런 은혜를 주신 줄로 믿는다.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아니고 그 시간 기도할 때, 기도하고 찬양으로 인도될 때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진다. 첫날도 주시고 끝 날도 주시지만 또 가을 특새가 기다린다. 특별히 찬양기도를 할 때, 말씀이 찬양되고 찬양이 말씀이 되고 가사 자체가 성경구절 같이 어제 시편 148편을 말씀대로 되게 찬양해야 한다.

*시편 148:1-4,
1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 데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2 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그를 찬양할지어다.
3 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
4 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
-우주 만물, 삼라만상,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일하신다. 그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엄청난 것이다. 이것이 찬양이 된다. 가사가 기가 막힌다.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찬양이 = 기도가 된다. 또한 말씀 = 찬양 이런 찬양을 할 때, 주님이 일하신다.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찬송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근거로 찬양으로 나아가니 하나님의 권능과 임재와 인도하심이 계시다. 하나님이 그냥 쓰신다. 성경구절 자체가 찬양이다. 시편은 150편이지만, 할렐루야를 통해 찬양을 통해 기름부음을 받아서 주님이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시151편 써나가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사무엘하 3장에 다윗을 마지막 유언일 때, 다윗을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라. 이스라엘의 찬양 잘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다. 찬양이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심을 믿어야 한다. 구약성경을 한 마디로 말하면, “할렐루야!” 이다. 우리는 주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그냥 신념과 마음의 뜻을 가지고 주의 권능과 임재가 있는 것이다. 매일 매주 시편 151편을 써나가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이런 할렐루야를 통해, 찬양을 통해 기름 부으심의 인도함으로 받아야 한다. 우리의 삶이 역사와 특새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를 바란다.
 
*에베소서5:19,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우리가 말씀을 가지고 서로 격려하고 말씀의 능력이 있는데,,, 다윗이 고백한 것이다.
scripture song이다. great in battle great in power...찬양으로 승리할 것이다. 우리 가운데 일어나길 소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에스겔 37:4,7,8,-둘째,-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여다
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7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말씀을 듣고 말씀을 대언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의 조각난 인생들이 다 맞추어지고 뼈가 살아나고 살이 붙고 완전히 하나님이 종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이렇게 듣고 순장님들은 순원들을 위해서 같이 나누고 대언하는 것이며 그 태신 자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전하며 여러분이 전하면 그것이 대언하는 것이다. 마른 뼈들이 소리가 나고 이 뼈 저뼈가 다 연결되어서 살아난다.
 
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요한복음을 보면,
 
*요한복음 5:25,
25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이 말씀을 듣는 자는 살아난다고 하신다. 말씀을 듣는 자는 살아난다고 하신다.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면서 살아나게 하신 것이다. 나사로의 마른 뼈가 살아난 것이다. 성경학자들이 죽은자를 다 나오라 했으면 전 세계 무덤이 다 일어나면 곤란할 것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신다.
 
*시편 119:50,
50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시고, 말씀이 우리를 살리시기를 소원한다. 성경에 사도바울과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났다고 했다. 우리가 마음이 이러할 때 마음이 뜨거워질 것이다.
 
*누가24:32
32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 우리의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냐고 하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와 권능으로 들어가야지, 찬양이 기도가 되고 찬양이 통성기도가 되고 합심기도가 찬양이 되고 이 기도와 찬양이 이 말씀 가질 때, 말씀이 우리를 살리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 뜨거운 역사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이다. 말씀을 읽고 듣고, 적용하는 가운데 영적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다.
 
*히브리서 4:12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 역동적으로 무장한 사람들은 에너지를 받고 은혜를 받고, 만약 엉터리로 사는 사람들이라면 말씀의 은혜를 모른다. 이상한 핑계를 댄다. 대신 말씀으로 은혜를 받으면 그냥 사는 것이다. 제가 열왕기하 13장을 읽다가 무릎을 쳤다.
 
*열왕기하 13:21,
21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도적 떼를 보고 그의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
-엘리사가 있는데 죽어있는 상태인데, 시체를 함께 이스라엘은 동굴에 넣어놓기 때문에 엘리사의 뼈에 닿자마자 살아났다. 기적인 것이며 놀라운 것이다. 우리가 다시 한 번 주님의 권능을 받아서 마른 뼈가 이렇게 살아나면 회복을 넘어 부흥이 있을 때 우리 가운데 시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오늘 말씀으로 대언하여 역사가 날아나는 체험이 되어야 한다.
 
II. 두 번째 도구: 생기의 역사.
 
*에스겔 37:9,
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생기의 역사이다. 성령의 은혜가 임하신 것이다. 다 살아나는 군대도 생기가 없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성령님이 생기를 넣으니 살아난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뼈들이 말랐다고 했다. 우리가 끝났다고 말하지만 주님은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신다. 생기를 넣으시면 능력이 있게 된다. 에스겔이 환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본 것이다. 어제 청년부 학생들이 강단에 올라와서 3시간씩 앉아서 손을 가슴에 얹고 한 손은 머리에 대고 기도를 해주었다. 그렇게 오래 앉아 있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 미음을 본 것이다. 성령이 시선을 주시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축복하는 것이 주님을 묵상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생기의 역사를 만난 것이다.
 
둘이 하나가 되리다.
에스겔 37:17,
17 그 막대기들을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막대기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용서의 찬양을 깊이 느껴야 한다. 사탄은 우리으 영을 방해한다. 가까울수록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좁아지고 서로 거부하고 그런다.
 
※잠시 책을 읽었는데 어떤 여자 분이 쓴 글이다. 아버지가 6.25때에 공산당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그 여자분은 아버지를 죽인 공산당은 이해해도 남편은 용서를 못 한다.고 해서 기가 막혔다. 우리의 현실이라면,,, 정말,,
 
이스라엘과 유다의 그 두 막대기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가까운 관계가 수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정리하고 두 마음이 하나가 된다는 것과 같다. 그것은 말씀을 대언하고 생기를 불어넣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찬양이 기도가 되고 찬양통성이 기도가 되면 모두가 해결될 것이다. 우리의 영이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가야 한다. 회복과 부흥으로 나아가야 한다.
 
♣요약
우리가 마른 뼈처럼 메마른 상황이더라도 강력하고 영광스러운 큰 군대로 일어나서 찬송합심 찬송통성이 기도가 되어 성령님의 권능과 영 권으로 충만하여 축복된 새 인생이 되고 우리 공동체 모두가 역동적인 한 마음으로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살아서 조각난 마음이 살아나서 주님의 임재와 권능의 인도하심을 체험하여 그리스도의 생명이 연결되어야 한다.
 
-생기라는 말의 히브리어 ‘루아흐’는 ‘하나님의 영, 숨, 호흡, 바람’을 의미하며 성령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성령은 생명과 활기를 주는 것으로서 사람의 창조시 하나님이 흙으로 만든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시자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했다. 이렇게 생기가 주어질 때 인간의 능력으로는 결코 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다. 생기를 불어넣은 뼈들 ~
마른 뼈는 이스라엘을 휩쓴 불운과 그들의 포로 상태를 상징한다. 또한 마른 뼈는 허물과 죄로 죽은 인간의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게 마른 뼈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자 뼈들이 살아 움직이고 큰 군대가 되었다. 이는 마른 뼈들처럼 열국에 흩어져 포로 생활하던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영을 받아서 다시 옛 상태를 회복할 뿐만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가 되리라는 것이다. 이는, 언약의 파기로 인해서 심판받은 백성들을 다시 만군의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로 삼겠다고 하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다. 서로 연합하는 막대기 -막대기들이 연합하여 하나가 되리라는 말씀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통일 왕국을 이룰 것이라는 의미한다. 여기서 이 두 막대기는 분열 왕국인 이스라엘과 유다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 두 막대기가 하나로 연합되었다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하나의 통일 왕국을 이룰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한 이는 메시야 안에서 믿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완성할 것을 의미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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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새벽부흥기도회(주후 2022년 4월 22일)-여섯째 날
제목: "1. 부활의 날에, 2. 다시 세우는 다윗의 장막"
말씀: 히브리서 10:19~25, 사도행전 10:38, 사도행전 15:16

설교자: 데이비드 로스 목사님(한국 예수전도단 설립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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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0:19~25, 사도행전 10:38,(데이비드 로스 목사님)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사도행전 10:38
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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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5:15~18,(오정현 담임 목사님)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누가복음 1:31-33,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1. “부활의 날에”(데이비드 로스 목사님-히브리서 10:19~25, 사도행전 10:38절)

좋은 아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글로벌 특새를 통해 기념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여러 번 특새에 참여했는데 오늘 이 새벽에 여러분과 함께 예배드리게 되어 영광이다. 이번에는 여러분과 함께하지 못해 죄송하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이 사람임을 기억하자. 우리는 날마다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 안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부르는 노래는 '할렐루야‘이다. 누구나 특새에 나오면 ’할렐루야‘ 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를 얻었다. 우리는 무거운 죄의 짐과 불안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질병은 불안이다. 요즘 세상은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전쟁으로 인한 불안, 코로나바이러스로 전염병으로 인한 불안, 우리의 삶 가운데 개인적인 문제, 가족 간의 문제, 질병, 수입, 이런 문제들이 있다. 이런 문제들이 우리를 매우 불안하게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불안을 없애려고 노력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돈, 더 많은 힘, 더 많은 쾌락을 추구함으로써 불안을 떨치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덜 불안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효과가 없다. 불안을 다루는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셨다. 우리는 부활의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살아계시고 오늘 아침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염려를 그 분께 맡기라고 말씀하신다.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는 구세주가 모든 근심을 나에게 맡기라 하신 것이 놀랍지 않다. 불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던 어둠의 세력 중 하나이다. 그분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죄의 속박을 깨뜨리셨고 두려움의 속박을 끊으셨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이 놀라운 부활 주간을 보내고 있다. 이제 우리가 죄를 떠나고 우리 삶에서 품었던 모든 두려움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펜데믹으로, 지금은 또 전쟁으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금은 한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라 생각한다. 우리는 분노를 버리고 우리 사회를 파멸로 몰아가는 분열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활의 능력 안에서 살기를 원하신다.
 
이번 주 부활 주간만이 아니라 매일이 부활의 능력 안에서 살기를 원한다. 그러면 어떻게 날마다 부활의 능력으로 살 수 있을까? 히브리서 10장은 우리에게 그 방법을 알려준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과 친밀한 시간을 매일 가지는 것이다. 매일 아침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히브리서 10장 22절은 우리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말씀한다. 한번은 제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교회에서 설교 초청을 받은 적이 있다. 매우 바쁘게 그 교회에 갔었는데 거기 담임 목사님이 찬양대가 노래를 마치면 바로 설교하러 등단하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설교 등단 준비하는데 주위를 둘러봐도 찬양대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찬양대원들이 예배당 사방에 있는 여러 개의 문들로 함께 들어오는 것이었다. 춤을 추고 손을 들고 기뻐하며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행복하게 예배당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오늘 이 아침에 눈을 뜨고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할렐루야!! 그 이름에 영광을 돌린다. 이런 찬양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걸어 들어오면서 계속 찬양을 불렀는데 그러자 목사님과 온 회중이 일어나서 함께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이 아침에 눈을 뜨고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할렐루, 할렐루 할렐루야”찬양으로도 너무 은혜가 넘쳐서 그날 설교할 필요도 없었다. 설교는 했지만 찬양만으로도 은혜가 충분한 예배였다. 마치 사랑의 교회에서 하나님께서 드리는 찬양과 매우 비슷했다. 이른 아침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더 큰 기쁨이 있다. 여러분은 부활의 사람들이다. 언젠가는 여러분들의 찬양대들도 몌배 중 여러 문으로 입장하면서 “오늘 아침에 눈을 뜨고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할렐루야”를 부른다면 참 멋질 것 같다. 그 순간에 여러분들도 다 함께 일어서서 그 멋진 노래를 부르시기를 바란다. 그 이유는 매일 아침 주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성소로 들어오라고 부르시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말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보좌에 들어갈 담력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어떻게? 그리스도의 피와 그의 부활을 통해서이다. 하나님이 보좌에 들어갈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을 경배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너희에게 주고 싶은 두 가지 선물이 있다.” 고 말씀하신다.
 
첫 번째 선물은 우리가 모든 죄에 대해 자비와 용서를 받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하루를 죄의 저주 없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그것이 첫 번째 선물이다. 자비이다.
두 번째 선물은 은혜이다. 필요할 때마다 도우시는 은혜이다. 은혜가 필요한가? 언제 어디서나 우리가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아침에 우리를 깨우셨다고 말한다. 그것이 우리가 일어나는 방법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귀를 깨우신다. 그분은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서 듣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오늘 아침에 여러분이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일 하루를 시작하는 멋진 방법이다. 그리고 항상 성경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 물론 교회에 성경을 가져오시지만 아침에 항상 손닿는 곳에 성경을 두어야 한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신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실망시키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목소리가 안 들린다고?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면 들릴 것이다.
 
제가 뉴욕에 살았을 때 제 사무실이 타임스퀘어에 있었다. 저는 바쁘고 시끄러운 타임스퀘어를 걸으며 이렇게 혼잡하고 시끄러운 곳에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아시는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게 더 가까이 오너라. 내 아들아.” 우리가 이른 아침 시간에 하나님께 가까이 갈 때, 그분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이고 우리는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그분의 임재 안에서 기뻐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여러분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먼저 경청하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기 바란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해 주시길 구하라.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도 하나님과 하루를 함께 시작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홀로 된 사람들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날은 자연스레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교제하는 계기로 이어지게 된다. 지금은 여러분 주변에는 많은 성도님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결코 혼자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지체이다.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우리는 매일 서로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히브리서 10장 23절에서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고 그 약속하신 자는 미쁘시니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소망이 있다. 하나님은 그 소망을 붙잡고 서로에게 고백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부활 공동체이다. 그래서 지금 주변에 있는 분들, 옆에, 뒤에 있는 성도님들을 바라보면 여러분은 영적인 가족임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이분은 내 영적인 형제네, 아, 이분은 내 영적인 자매시구나. 우리는 모두 주님 안에서 영적인 형제자매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주님께 오기 전에는 옆에 있는 분들과 우리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서로를 알지도 못했다. 성령님께서는 서로 알지 못하는 주님 안에서 영적인 형제자매로 변화시켜 주셨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변화이고 그래서 우리는 영 가족이 된 것이다. 우리는 초자연적인 공동체이다. 우리의 교제는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안에서 존재한다. 우리는 교제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우리는 매우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한다. 오늘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예수님께서는 마음에 근심하지 않고 “내가 죽음에서 부활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하신다. 이 어려운 시대에 우리에게 초자연적인 성령의 공동체가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다. 그리스도인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여러분은 결코 혼자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없다. 함께 살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큰 축복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소망을 서로 나눌 수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약속하신 모든 것은 다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서로에게 나누어라. 그러므로 오늘부터 아시는 형제자매들에게 당신의 소망을 고백하라. 지금 이 양 옆에 계신 분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해 보라. “나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삶에 예수님을 함께 소망하시기길 바란다.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도 서로 화해하자. 오늘 글로벌 특새에 참석하신 분들은 서로 화해하신 줄로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받았다는 것도 꼭 기억하여야 한다. 남을 용서하지 않는 사랑이 있는가?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용서한 것 같이 너희도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서로 용서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용서함으로 자유를 얻게 되는 큰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다. 또한 용서를 하면 할수록 나 자신도 더욱 자유로워지게 된다. 서로 용서함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이 자유를 더욱 누리시기를 바란다. 부활 주간을 지내면서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상처 준 모든 사람을 용서하겠다는 결심을 하자. 당신을 힘들게 했던 한국 내 모든 사람들, 그리고 외구 여러 나라의 사람들도 포함한다. 나는 모든 사람을 용서했다는 사실을 알고 사는 인생이 주는 놀라운 기쁨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용서,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기를 원하시는 기적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서로 용서하라. 그리고 우리 매일 아침 찬양을 부르며 일어나자. “나는 오늘 아침에 눈을 예수님께 고정한 채 일어났습니다. 그는 주님이십니다.”라고 노래하자. 할렐루야!~~이런 아침의 찬양은 우리 가족과 교회와 전 세계에 새 생명을 가져다 줄 것이다. 글쎄요.. 우리는 하나님과 하루를 단둘이 시작하지만 예수 믿는 다른 지체들과 함께 계속 시간을 보낸 후 이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히브리서 10: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서로 사랑하고 세상에서는 선행을 실천하라. 그래서 아침 기도가 끝나면 우리는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격려했다. 이제 나가서 사랑하라. 나가서 선을 행하라. 그리고 “나에게 오라”고 하신 말씀하신 바로 그 예수님께서 이제는 “세상에 가서 선한 일을 하라”고 말씀하신다.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을 행하라고 하신다. 여러분, 주위 사람들에게 여러분 안에 있는 사랑을 보게 하라. “내가 이렇게 했으니 너희들도 이렇게 하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사도행전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저는 성령께서 여러분의 삶도 이 말씀으로 평가하시기를 원하신다고 믿는다. 사도행전 10장 38절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어 보라.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 거기에 여러분의 이름을 두라. 하나님은 다윗, 요한, 그리고 여러분에게 기름을 부으셨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기름 부으셨다. 여러분이 두루 다니며 선을 행하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에게 병을 고칠 것을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파하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신 것처럼,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 이웃에게 증거 하라. 평화가 임하게 하는 사람으로 세상에 나가라. 이것이 한국과 세계 다른 지역에서 우리에게 필요로 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 평화의 중재자가 되라. 깨어진 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은 분열되어 있다. 사람들은 심지어 서로에게 마귀 복수를 한다. 우리와 대화하는 방식을 바꾸신다. 보수든 진보든 상관없다.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에 있어서 조금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서로를 좌파 우파라고 부르는 단어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말들은 종종 증오로 가득 차 있어 우리 사회를 마비시킨다. 우리의 모든 대화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 서로에 대한 사랑, 전 세계 사람들에 대한 사랑, 우리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세계에 나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용하여 세상에 화해를 가져오실 수 있다. 이번 글로벌 특새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온 민족에 펴쳐질 것이라 믿는다. 바로 이 특새를 시작으로 역사가 일어날 줄 믿는다. 오늘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고, 여러분을 지키시고, 그의 얼굴을 여러분에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한다. 아멘.

♣요약

히브리서 10:19~25, 사도행전 10:38,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 소망, 사랑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 그리고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과 서로 돌아보는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죄 사함을 받은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그리스도 재림의 날이 가까울수록 서로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
-사도행전 10:38절의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은 기름부음을 받을 수 있는 세 직분인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역할을 모두 감당하시는 분으로 이것은 사61:1에도 언급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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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시 세우는 다윗의 장막“(오정현 담임 목사님-사도행전 15:15~18절)

*사도행전 15:15~18,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누가복음 1:31-33,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다윗이 왕위를 예수님께서 주시고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예수여! 라고 하신다. 다윗은 삼성 장군이며 다윗은 시인이었다. 다윗은 아름다운 아내와 자식들이 있었다. 솔로몬, 잘 생긴 압살롬, 아들들이 다 있었다. 그런데 모든 것들보다도 다윗은 하나님 앞에 예배자이다. 다윗의 장막을 일으킨다는 것은 다윗의 예배를 회복을 시키신다. 것이다. 그 시편을 통하여 그의 주님을 향한 예배를 선포하고 예배의 은혜를 가지고 그 수많은 간난신고(艱難辛苦)와 우여곡절(迂餘曲折)을 넘기는 것이다. 이번에 특새에 와서 자녀들과 왔는데 자녀들은 오기 시작부터 잔다. 그리고 은혜 주실 것이다. 은혜의 게시판에도 은혜가 충만했다. 한 참 웃었다. 뭐냐면, 어떤 성도님의 자녀가 중학교 가는 아이가 있는데 불교 재단에 있는 중학교를 다닌다는 것이다. 동국대 부설중학교,,, 그런데 4월 초팔일이 얼마 안 남았는데, 그 학교에서는 연등행사를 한다고 한다. 예수님 믿는 아들이 고민을 하면서 연등을 소원을 빌면서 학교에서 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연등에다가 소원을 썼는데 그 중학생의 아들이 그 연등에다가 “주여, 한국교회의 부흥과 회복을 주소서!” 라고 썼다는 것이다. ㅎ ㅎ 이것을 보고 아들이 벌점을 맞았을지 모르겠다고 엄마에게 이야기 했다. 그래서 엄마는 아들에게 괜찮다고 했다고 한다. 교회에 와서 잠을 자기도 하고 졸기도 하지만 하나님 은혜를 주셨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왜 모세의 성곽이 아니고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회복하게 하시는가? 이것이 이방 선교의 KEY가 된다. 다윗이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면서 온갖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래도 마지막 살아남은 이유는 알게 모르게 온갖 짓을 해도 다윗이 하나님 앞에 예배 자였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다시 한 번 한국교회의 예배가 회복되기를 바란다. 놀라운 예배의 진원지가 되는 것이다. 내일 나누어지는 예배가 더 이어질 것이다. 유치부 아이가 특새를 하는데 아이가 보라색 옷을 입고 왔다. 그래서 왜 보라색 옷을 입었냐고 했더니 그때 그 애가 하는 말이,,, 보라 주님, 이라는 찬양을 생각해서 입었다는 것이다. 그 애가 지금 대학을 졸업했을 것이다. 가사를 보면 기가 막힌다. 에스겔의 마른 뼈가 살아나고,,,, 또 주의 종 다윗 같이 예배가 회복된다고 했듯이 춤을 추면서 하나님께서 이 자리를 복주시고 특새를 통해 회복을 넘어 부흥을 주신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체험되길 소원한다.

♣요약
어떤 환경 속에서도 다윗처럼 예배가 회복되고 예배 자가 되면 모든 문제들이 회복되고 성공이다.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저에게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백성들은 그 왕위를 그에게 주려 하지 않을 것이나,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들을 다스릴 권세를 주시고, 거룩한 산 시온에 그의 왕으로서 그를 세우실 것이기에 우리는 무너진 장막을 세워야 한다. 이 특새를 통해서 주님 앞에 온전히 나아가 예배하고 찬양하여 주님 기쁜 자녀로 헌신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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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새벽부흥기도회(주후 2022년 4월 22일)-다섯째 날

제목: “1. 인생을 결정짓는 신앙, 2. 두려움 대면하기”
말씀: 마가복음 9:24, 여호수아 1:6-9
사회 인도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설교자: 슬라빅 페이지 목사님(우크라이나 침례신학교 총장),
설교자: 이용규 선교사님(인도네시아 자카르타-‘내려놓음’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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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빅 페이지 목사님(우크라이나 침례신학교 총장)-“인생을 결정짓는 신앙”

- 사랑의교회 형제 자매 여러분,
우크라이나에서 문안드린다. 오늘 제 마음에 있는 말씀을 여러분과 나눌 수 있게 되어 영광이다. 사랑의 교회가 지난달부터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다고 들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함께 마음 아파해 주시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한국교회 성도님들께서 깊이 기도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제가 미국에서 수학할 때부터 개인적으로 교제해온 한국 친구들이 있는데, 제가 저는 그들이 가진 기도에 대한 열정에 크게 감명 받았다. 사랑의 교회가 우크라이나를 위해 중보해주시고 헌신해 주셨다고 들었다. 여러분과 현재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 몇 가지 나누고 싶다. 여러분께서 잘 아시는 대로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이다.
 
오늘은 전쟁 이면의 내용을 말씀드리려고 한다. 뉴스에는 나오지 않는 영적인 면이다.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러시아군의 잔혹함은 정말 놀라울 정도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면이 있다. 이 전쟁은 단순히 두 국가 간의 분쟁이 아니다. 사실 이 전쟁은 영적 전쟁이다. 우리 마음속에서도 벌어지는 그 전쟁이다. 우리는 한 쪽에서 악을 발견할 수 있다. 파괴와 죽음을 가져오는 ‘악’ 말이다. 한편 다른 쪽에서는 거대한 악의 세력이 유럽과 전 세계를 하나로 묶었다. 저와 여러분은 그 악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기도함으로 가까운 형제자매가 되었다. 한 교회로서 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로서 이런 상황을 바라보며 마음이 무너지지만 동시에 이때야말로 우리가 세상을 섬길 수 있는 기회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오늘 바로 이 수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신 대계명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이웃을 수없이 섬길 수 있는 때인 것이다.
 
오늘 이 시간 정말 저에게 큰 위로의 도전이 되었던 말씀을 여러분과 나누려 한다. 이 세상에 살면서, 전쟁을 겪으면서 저를 포함하여 우크라이나 형제자매들이 생각하는 질문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믿음이 무엇인가?’이다. 어느 날 성경을 묵상하던 중에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 있었던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예수께서 몇 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변화 산에 올라가셔서 변모하신 적이 있다. 예수께서 변화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이들을 데려온 한 나자를 보셨다. 산 아래에 있던 제자들이 귀신 들린 그 아이를 고치지 못한 상황이었다. 아이 아버지는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아이를 고쳐 달라고 요청한다. 이 아이는 귀신에 들려 엄청난 고통 중에 있었다.
 
*마가복음 9:23-24,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 그때 즉시 아이의 아버지가 부르짖는다. 믿지만 미음 없음을 도와달라고 말한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이 말씀은 현재 우크라이나의 현실을 그 어떤 것보다 정확히 대변하는 말씀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전능하시며 강한 분이신 줄 믿는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하나님 나라가 임할 줄도 믿는다. 하지만 동시에 이 세상 뉴스를 듣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다 보면 우리의 믿음은 때때로 산산(散散)조각(彫刻) 나기도 한다. 그래서
 
▷제가 첫 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우리의 현실의 삶이 우리의 믿음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말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현실 말이다. 여러분의 삶의 방식이 여러분의 믿음을 정의한다. 모두 목숨을 부지하려고 피난길에 올랐다.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사람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행동한 사람들도 있다. 마리우풀에 거주하던 카디스키라는 분을 소개해 드리고 싶다. 그분은 마리우풀의 한 교회에서 사역하시던 목사님이셨다. 아마 뉴스에서 마리우풀시에 대해 많이 듣고 보셨을 것이다. 그분은 전쟁이 터졌을 때, 본인이 섬기는 교회의 모든 성도들을 한 분 한 심방하는 일을 개인적인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자신의 차량으로 가가호호 심방하며 성도들에게 음식과 필요한 물품들을 제공했다. 그런데 전쟁 통에 폭격으로 자동차를 잃게 되었다. 목사님은 자전거로 각 가정을 심방하며 도움을 주었다. 몇 몇 집이 폭격을 받아 파괴되었을 때 피해를 입은 성도들을 한 곳으로 모아 대피시키기도 했다. 모두가 안전한 상황을 원했지만 음식조차 없었다. 전기도 끊기고 식수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성도들이 무엇을 했는지 아시는가? 촛불 아래서 찬양하고 성경을 읽었다. 목사님도 그렇게 그들을 위로했다. 며칠 전에 이 목사님도 마리우풀을 떠나게 되었다. 자신이 섬기던 교회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떠나게 됐다. 교회 모든 성도들을 먼저 내보내고 그들의 안전이 확보된 후에야 마지막으로 마리우풀시를 떠난 것이다. 우리의 행실이 우이와 믿음을 정의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는 설교자로서, 믿는 자로서, 우리의 입술로 믿음에 대해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크라이나 성도들은 행실이 진정한 믿음을 드러내는 때를 마주하고 있다. 우리가 믿음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가운데 진정한 믿음은 우리의 행실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제 2차 세계대전 가운데 어려움을 겪었던 독일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그분들은 다른 사람들을 구하다가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도무이 정말로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것으로 드러난다. 물론 한국에 있는 여러분은 조금 다른 상황이실 것이다. 그렇지만 동일하게 적용되는 진리가 하나 있다. 바로 위리의 믿음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정의되고 레사실이다.
 
▷오늘 본문 두 번째로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내용은 어린아이의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는 영적전투 중에 있다. 그는 한편으로는 아들이 건강하게 치유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얼마나 믿음이 없는지 깨닫게 됐다. 그래서 예수님께 자기의 믿음 없음을 도와 달라고 간구한다. 이곳 우크라이나에서 명확히 볼 수 있듯이 우리 믿음을 살펴보다 보면 과거에 모아둔 믿음을 미래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과거에 무언가 믿음의 말을 했다고 해서 오늘 마주한 도전을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도움을 바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으로 기도할 때, 매일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구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만나를 매일 새로게 받아야만 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일주일 치 심지어 먹을 만나조차 온전히 저장해 둘 수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매일 새롭게 만나를 주실 것을 전적으로 신뢰해야만 했다. 저의 상황을 돌아봐도 하루하루가 도전 그 자체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믿음으로 하루를 마치며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리지만 내일이 되면 다시 일어나 내일 필요한 믿음으로 새롭게 하루를 헤쳐 나가야 한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좋은 예가 하나 있다. 바로 다섯 명의 자녀를 둔 한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동쪽 도네스크시에 출신인데 지난 2014년 수도 카이우로 이주했다. 그때가 바로 우크라이나에서 처음 내전이 일어난 해였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과 5명의 자녀를 살리기 위해 카이우로 피난해야 했는데 자녀들 중 2명은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며칠 전에 카이우가 폭격당하자 그녀는 카이우에서 제가 사역하는 서쪽 르비우로 목숨을 걸고 탈출했다. 제가 그분의 사연을 들으며 알게 된 사실은 자녀를 살리기 위해 그녀가 평생 피난을 다녔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동안 남편 없이 생활해 왔다. 도네츠크에서 내전이 일어났을 당시 남편을 일었기 때문이다. 대화하는 가운데 저는 그분이 얼마나 강인한 여성인지 깨닫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전으로 인해 자신의 고향을 처음으로 떠나게 되고 이번 전쟁으로 인해 안전했던 카이우를 떠나 또 다시 피난길에 올랐는데 오직 다섯 명의 자녀들의 안전을 위해 이 모든 고통을 감내한 것이다. 저희는 그분의 가족이 독일로 이주해서 정착할 수 잇도록 도왔다. 제가 가장 놀랐던 사실은 그녀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녀가 감당해아 할 역할들을 수행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도 삶 가운데 큰 도전을 겪고 계시다면 특별히 믿음이 도전 받고 있다면 하루하루를 승리하며 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소망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매일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 믿음에 대한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매일 매일이 믿음이 필요하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믿음만이 우리에게 소망을 주며 하나님께서 매일 어떻게 일하실지 이미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신뢰하게 한다는 것이다. 믿음은 절망의 반대이다. 믿음↔절망


앞서 말씀드린 다섯 명의 자녀를 가진 엄마 이야기를 떠올려 보라. 그녀는 매일 자녀들의 안전을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하고 있다. 자녀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신앙인으로서 절망의 희생물이 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믿으며 그것을 우리 삶 가운데 고백하고 선포하고 알려야 한다. 소망을 찾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
 
▷셋째로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내용은 믿음과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자기 아들을 살리려고 제자들을 따라 예수님을 찾아왔던 그 아버지는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다. 정말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께 ‘예스’라고 대답할 때, 마귀에게는 ‘노’라고 대답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선다는 것은 반대편을 적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예스’라고 하는 것은 대적에게 ‘노’라고 하는 것이다.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을 찾아 왔을 때 자신이 예수님을 신뢰하고 믿는다고 고백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른다면 우리도 하나님께는 ‘예스’하고 마귀에게는 ‘노’라고 한 것이다. 어떤 식으로도 이 원리는 동일하다. 물론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문화나 삶의 방식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영적인 원리는 동일하다. 우리가 함께 예수님을 따른다면 우리 모두가 대적을 함께 ‘노’라고 선포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는 철저히 마귀와 싸워야 하며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특별히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교회로서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이들을 돌봐야 한다. 제가 우크라이나 마리우풀시 교인들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있다. 저에게 찾아오셨던 분이 들려준 이야기인데, 그 중 한 가족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들은 고향 마리우풀을 떠나 카이우로 파난 가던 중에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선포하는 내용들이 얼마나 참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첫 번째 검문소에서 만난 러시아 군인들은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마침 교회가 근처에 있었다. 러시아 군인들이 저쪽 교회로 가면 먹을 것과 쉴 곳을 제공 받을 수 있다고 말해 귀 뜸해 주었다. 그래서 교회로 갔다. 그리고 계속된 피난길 가운데 만난 몇 몇 교인들이 그들에게 교통편을 제공해 주기도 했다. 마침내 제가 있는 곳으로 왔을 때, 저희는 이분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드렸다. 그리고 유럽으로 넘어가도록 도왔다.
이 이야기의 백미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신뢰하고 악을 거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을 유통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이 가득하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을 이들에게 보일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허락하신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여러 교회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하나님께 ‘예스’라고 반응하는 모습이 우리의 구체적인 행실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을 알려준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면서 지구 반대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큰 그림을 보여드리고 싶다. 아마 여러분께서는 유럽이 복음에 매우 개방적이고 수용적인 상황이라는 이야기는 거의 못 들어보셨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복음이 들어갈 수 있도록 유럽과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활짝 여셨다. 사람들이 자신의 가정과 삶과 마음을 열어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있다. 그리고 도움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셨고 대적으로부터 구해 내셨기 때문이다. 생각해보고 기도해보기를 원한다. 우리는 이제 전혀 다른 정말 믿어지지 않는 상황 속에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 가까이 나와 죽음으로부터 구원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고향을 떠나게 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전하는 전도자들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해 주시길 바란다.
 
오늘 제가 여러분께 전한 말씀에 믿음으로 화답하시고 기도로 반응해 주시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다고 믿는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게 될 줄로 믿는다. 감사합니다.
 

 
요약
지금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에 있고 상황이 좋지 않지만 주님의 선하신 능력을 믿고 아버지가 아들의 병을 믿음으로 고친 것처럼 승리를 위해서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있으니 우리도 함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한다. 
-그 귀신들린 아이는 아버지의 믿음 때문에 고침을 받았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처음에는, 자신의 아들을 고치지 못했던 제자들로 인해서 예수님의 능력도 의심하여 ‘할 수 있거든 병을 고쳐달라’는 식의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아버지의 믿음 때문에 그의 아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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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규 선교사님(인도네시아 자카르타-‘내려놓음’의 저자)-“두려움 대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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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마무리되어 가면서 이렇게 뵐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 인도네시아는 거의 마무리 되었는데 아직 여기는 한국 상황을 잘 모르니까 그래도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오늘 말씀을 보면 여호수아가 그동안은 2인자로 있다가 이제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고 가야되는 상황 가운데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장면이다. 제가 보니까 그 옆에서 돕는 것과 내가 모두 책임을 지고 가는 것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는 것 같다. 제가 몽골에서는 편하고 즐겁게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게 제가 궁극적으로 모든 책임을 지지 않았던 게 그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에서는 모든 책임이 제 어깨위에 있다고 느낄 때, 저는 안 맞는 옷을 있다고 느껴졌고 처음에 이 옷을 벗고 싶은 충동이 너무너무 컸던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여호수아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이해가 된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실 때 강하고 담대하라고 여러 번에 걸쳐서 말씀하신다. 아 그렇구나. ‘우리 인생은 한 번 들어가지고는 안 되는 것 같다. 여러 번 새겨들어야 되는구나!’라는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사실은 말씀 안에 ‘강하고 담대(膽大) 하라’ 라는 내용을 계속해서 접하지만 삶의 위기 가운데 여전히 두려움에 떨게 되는 경우를 느낀다.
 
저희 아버지께서 얼마 전에 위암 수술을 하셨는데 지난번에 그 위암이 발견되고 나서 제가 한국에 몇 번 다니러 왔다. 그때 격리 기간 동안에 이제 아버지를 위해서 계속 같이 예배드리고, 기도해드리고 아버지가 회복되고 살아나시는 것 같고, 그래서 좀 마음에 안심을 하고 다시 인도네시아로 돌아갔는데 이번에 통증이 너무 심해서 수술을 받기로 결정을 하시고 굉장히 두려워하시면서 다시 어린애 같은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게 됐다. 그때 그렇게 은혜를 받으시고 담대해 지셨지만 또다시 아픔이 찾아오고 죽음의 공포(恐怖)가 엄습(掩襲)을 하니까 무너지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최상의 결과를 하나님이 주시는 것 같다. 처음에는 수술을 받으려고 했던 젊은 의사분이 코로나 양성이 발견이 되면서 수술이 지연되다가 그분의 은사이신 의사선생님께 트랜스퍼가 되면서 결과적으로는 가장 좋은 환경에서 가장 좋은 의사샘의 의해서 수술을 받게 되었고 그 회복도 잘 진행되고 있는데 그 코로나 양성 동안에 대기 하는 기간에 아버지도 양성 반응이 나오면서 그때 그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면서 아 그렇구나! 우리가 인생의 위기를 맞을 때 처음에 믿음이 있지만 죽음을 앞에 두고 있을 때, 많이 무너지는구나.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우리가 이 두려움을 쉽게 이기는 것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여러분, 우리가 언젠가는 죽음을 대면해야 된다. 그렇다. 그리고 인생의 많은 위기를 지나오게 된다. 그때마다. 전전긍긍(戰戰兢兢)하고 두려워하고 낙담(落膽)하고 절망(絶望)하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안심하다 안전하다 그런 마음을 인생을 산다면 우리는 인생의 끝으로 가면 갈수록 더 어린애가 되고 예전에 살아왔던 삶의 궤적(軌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두려움에 눌리면서 거기서 더 이상 헤어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여러분이 오늘 믿음을 가지고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반응하는 삶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삶에 마지막까지 갈 때 우리 삶의 끝자락에서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았는지 드러나게 될 거라는 것을 생각한다.
 
오늘은 믿음과 관련하여 제가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했던 삶의 여정가운데 하나님의 특별한 도우심, 어떻게 기적과 같은 도우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한국교회에 와서 처음 이야기 한다. 그동안은 우리 사역이나 사역의 방향을 공개하기가 좀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가능한 한 한국교회에 와서는 말씀을 전할 때는 그 말씀을 주로 나누었지만 제 삶 가운데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는 좀 구체적으로 나눌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제가 이제 오래 첫 졸업생을 맞게 되고 그리고 대학교 첫 졸업생을 맞게 된 것이다. 그리고 종합대학 허가를 눈앞에 두고 있는 가운데 우리 사역자들을 위해서 이제 설교 준비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이 그 어떤 뛰어난 사람이 와서 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하나님이 개입하신 순간들을 대가 세어보니까 그냥 큰 것만 봐서 12개 정도이다. 오늘 그 열두 개를 다 말씀드릴 수가 없는 것 같은데 며 장면 가운데 하나님이 어떻게 인생 가운데 개입하셔서 당신이 오래전부터 이끌어 가시는가, 사람의 무기력함과 무능함에도 불구하고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누겠다.

저는 몽골에서 잘 사역하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그 땅을 떠나라고 하셨다. 저는 그 말씀에 대해서 순종하고 안식년을 갖는 과정 중에 하나님께서는 인도네시아 땅을 보여 주셨고 그곳에 대해서의 교육 사업에 대해서 그 부담을 주셨고 그 땅 가운데로 들어가라고 말씀을 구체적으로 제 가운데 새겨 주셨다. 그런데 제가 인도네시아에 대해서 잘 알았으면 아마 그 나라로 들어가는 것을 선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땅에 외국인으로서 초등, 중등, 고등학교를 세우고, 대학교를 세우고 선교적인 비전을 가지고 사역하는 것을 쉽지 않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제가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거기서 첫 번째로 불가능에 부딪힌 것은 제게 있었던 췌장의 혹이었다. 이것은 결국 수술을 하기로 결정이 되었고 너무 좋은 의사를 만나서 일반적인 수술법으로는 비장도 들어내고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선교지에서 풍토병에 취약해지고 오랫동안 머물면서 사역할 수 없게 되는 것을 우려하셔서 특별히 혹만 제거하는 어려운 수술을 채택을 했다. 수술이 잘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췌장액이 세는 것이 발견되었고 그것이 아물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완전히 수술을 절제하는 수술을 하든지 아니면 평생 관을 달고 살아야 되는 그러면 선교지에는 갈 수 없는 상황가운데 있었다. 기도밖에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두 주를 지나가면서 이 췌장관이 저절로 아물었다. 보통은 췌장액이 산성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상처를 계속해서 녹인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극적으로 흘러나오는 췌장액을 멈추게 하셨고 그래서 다시 건강한 몸으로 인도네시아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 만약에 하나님께서
제 건강 상황에 대해서 개입하지 않으셨으면 오늘날의 사역은 없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가 인도네시아에서 굉장히 어려움을 겪게 되었던 것 중에 하나는 비자 문제였다. 대학을 세워야 비자를 해결하기가 쉬운데 또 대학을 세우려면 사람이 들어와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인도네시아의 많은 상황들이 A가 있어야 B가 있고 B가 있어야 A가 있는 그런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서 대학교 건축을 하려고 보니 학교 건축의 허가를 받으려면 학교 허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학교 허가를 받으려면 학교 건물이 있어야 했다. 있어야 B가 있고 B가 있어야 A가 있고 그런 것들이 굉장히 많은데 비자 문제가 그와 비슷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것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외부를 나가면서 집회를 해야 하는데 또 비자 기간에 잘 안 맞아서 어려웠고 한 번은 비자 연장 기간에 어쩔 수 없이 집회 차 나갔다가 들어오는 것이 금지가 되는 상황이 되었다. 이민국 데스크에 앞에 앉아서 불쌍한 모습으로 선처를 구하면서 그렇게 있다가 참 그 책임자가 저를 긍휼히 보고 없었던 것으로 넘어가 주면서 무사히 인도네시아로 들어가게 되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 결국은 이 비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회사를 세워야 했다. 그런데 회사를 세우려면 인도네시아에서는 투자 금이 많이 필요로 했다. 그 투자 금을 만들려면 그런데 헌금을 가지고 투자를 하면 원칙적으로 하면 안 되듯이 투자를 위한 재정이 별도로 필요했다. 사역을 위한 것 외에 회사를 세울 수 있는 어떤 재정후원이나 투자 목적의 투자가 필요했는데 그 부분이 처음에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이 목적으로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때 특별한 계기로 하나님이 만나게 하시는 과정에서 합작회사를 세울 수 있게 해주시고 그것을 통해서 결국 합작했던 그분들이 나중에는 다 빠져나가는 모습에서 우리학교가 그 사역을 이어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선교사들이 사역도 하고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 이것을 가장 편안하게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은 학교에 부동산을 관리하는 것이 제일 좋겠고 그렇게 해야 학교가 편안하게 갈수 있고 또 회사는 회사대로 어떤 에너지를 쓰지 않고 갈 수 있겠는데 그런데 법적으로는 그게 불가능했다. 그런데 작년에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해서 옴니버스라는 법안이 만들어졌는데, 그 많은 항목 중에 외국인의 부동산 추가 항목이 있었다. 도대체 변호사들도 이 항목이 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보통은 막아 놓는데 이 시점에서 이렇게 열어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것은 우리의 사역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것이라고 여겨졌다. 저희가 대학을 세우기 전에 선교사 자녀들의 교육을 생각을 해야 해서 초중고학교를 운영을 해야 했다. 하지만 영어 커리큘럼에다가 그 미국식 교육과정에 더하기 기독교교육 과정이어야 하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정부의 허가를 받는 것이 불가능할 거라라고 봤다. 그런데 그렇게 운영을 하려고 하니 다양한 어려움이 발생했다. 외국인으로서 거기서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또 학생들의 졸업 후에 진로에도 문제가 있었다. 특히 제 아이는 한국으로 가고 싶어 했는데 그렇게 하려면 인가 받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야 했다. 안 그러면 검정고시를 보게 되어야만 하니까 외국에서 자라는 아이가 국사 공부하고 국어 공부하는 것들이 너무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로 하고 있는데 정말 우연한 경우에 어느 교육 컴퍼런스에 갔다가 인도네시아 교장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인도네시아에서 새로운 법안이 나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이 법은 로비가 아니다. 대통령도 쉽게 법을 만들 수가 없다. 그런데 그 법은 뭐냐면 인도네시아에 이슬람의 학교가 있다. 그런데 그 절반 정도는 그곳에서 가르치고 그 절반 정도는 일반 교육과정을 같이 하는 학교인데 인도네시아는 5대 종교를 다 해주는데 왜 이슬람만 특별한 학교로 해주고 다른 종교는 허용해 주지 않느냐고 했더니 기독도 특별하게 기독교 교육을 받으면서 공부할 수 있는 곳, 우리로 말하면 기독교 특목교이다. 일단 단순히 크리스천 학교가 아니라 어마한 성경을 가르치고 암송시켜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학교 제도가 허가가 나온 것이다. 저희 지역이 경기도 같은 곳인데 그 지역 자체의 딱 두 개의 중에 신설하게 되었다. 저희 학교가 신설학교로 선정이 된 것이다. 이 학교는 영어로 가르치고 내셔널 커리큘럼으로 인정을 못 받을 줄 알았는데 제도가 미비 된 상황에서 어플라이를 했기 때문에 정부 공인이 되게 되었고 단 한 가지는 저희가 성경을 너무 많이 가르치는 학교로 되어서 저희가 정부에 성경 과목수를 줄이게 해달라고 하는 선교사가 이야기 하는 그런 상황이 되었다.
 
어쨌든 초중고 학교의 허가가 되었고 참 많은 아이들이 하나님을 특별히 만나고 체험하고 또 일본 아이들이 와서 성경을 배우고, 다양한 아이들이 와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그러한 특별한 은혜를 누리고 있다. 그때 하나님이 법을 인도하시지 않으셨으면 한 발도 못 움직였다. 또 저희 대학 허가 관련해서 저희가 인도네시아에 들어갔을 때 모라토리움이라는 것이 허용되었다. 신규 대학에 일체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게 십년 정도 계속되었는데 그 사이에 잠시 그 제도를 개편하기 위해서 열어둔 적이 있었다. 그런데 딱 그때 어플라이를 했다. 그 프로세스에 갔는데 허가가 나왔다. 그 국장님이 저희 학교에 시찰을 나왔다가 그런 이야기를 저에게 했다. ‘지난 십년 간 인도네시아에서 신규 대학허가를 받은 학교는 당신들 밖에 없다.’ 라고 했다. 그만큼 우리가 당신들에 대해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 시책에 따라서 그 폐교 위기에 있었던 한 단과 대학을 인수한 적이 있었는데 그 두 개를 합치면 속히 종합대학으로 선정될 수 있도록 다른 학과를 설립을 열어주겠다고 해서 올해 또 허가를 목전에 두고 있다. 단과대학 허가를 받은 지 4년 만에 종합대학으로 가는 것은 너무나 특별한 케이스이다. 이것은 누가 개인이 잘해서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작정하고 일을 벌이시는 경우가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또 자카르타 인터내셔널 유니버시티, 라고 하려고 보니까 ‘자카르트’라는 언어를 쓰기는 어렵고 ‘인터내셔널’이라는 언어도 쓰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어프로브가 된 것이다. 이게 쉽지 않은 게 저는 이게 필요하다고 보냐면 중동권 아이들을 위해서 그들을 섬기고 또 핍박 받는 지역의 아이들이 교육을 받고 돌아가게 하려면 중립적인 이름이 필요했는데 그 이름을 사용하게 되도록 허가를 받은 것이다. 한 번은 어느 대학교, 인도네시아의 한 대학교의 총장님이 우리를 찾아오셨다. 물었다. ‘우리는 20년간 이 땅에 분교를 세우려고 그렇게 애를 쓰다가 여기서는 안 된다고 해서 그만 두었는데, 이것이 되어가는 것을 보니 특별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 같다.’라고 해주셨다.

건축을 할 때도 참 어려웠다. 제가 가진 것이 없었다. 그나마 은혜를 받았던 것은 그때는 하나님이 다 두고 오라고 하셨다. 그때는 아직 믿음으로 두고 왔는데 인도네시아 오니 좀 아쉬웠다. 씨드 머니가 필요했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마음에 말씀을 주셨다. “괜찮아, 네가 알지 못하는 재정이 준비되어 있다.” 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그때는 한국에 대한 것에 선교적인 열정도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저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주시고 제가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시고 또 그런가 하면 외부로 우리 사역에 대해서 이야기 하거나 소통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조용히 입 다물고 있으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만 바라고 기다렸던 상황이었다. 공사를 시작하라는 강한 감동을 주셔서 시작은 했지만 계속해서의 사인의 인보이스를 보고 많이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 앞에 저의 낙담을 올려 드리는 시기에 “하나님, 저 혼자 독박을 쓰는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감옥을 가도 하나님이 가시는 것이 아니고 내가 간다고 했더니 “너 부담 가운데서라도 좀 웃으면서 가라.” 하셨다. 그런데 40억 빚지고 웃어지는가? 그런데 깨달아졌다. 아 그렇구나, 하나님이 이 부담을 주시는 이유가 나보고 너 좀 고생 좀 해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여호수아에게 짐을 지시게 하는 이유가 ‘너 한 번 좀 혼나봐’ 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이다. 제가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쁨으로 받았다. 하나님의 특별한 말씀을 듣고 집을 팔아서 헌금하는 사람들도 있고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 재정을 채워 가시고 건물을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건물까지 이번 4월 4일에 완공 식을 하고 얼마 있다가 나왔다. 계속해서 지어야겠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의 공급을 기대하면서 가야한다. 이것은 무얼 쌓아놓고 가는 것이 아니다. 믿음의 훈련의 여정이기 그렇다. 그런데 그런 과정에서 단단해 지는 것이 있다. 하나님 내일도 나와 함께 하실 것 같은 것이 자연스럽게 믿어지는 것이다. 어제 함께 하셨던 하나님, 그분을 믿고 내가 반응했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해 주셨는지가 너무 생생하게 현실로 인식이 되기 때문에 내일을 편안하게 맞을 수 있는 것이다. 저희가 외진 곳에 있으니까 그런 것들이 어려웠다. 어떤 일이 생겼냐면 학교 앞으로 5km 떨어진 거리에 고속전철이 들어오기로 했다. 저희학교 근처에 동남아에서 가장 큰 일본 몰이 들어오기로 되어있고 학교 건너편 쪽으로 현대 자동차 전기차 공장이 들어왔고 그리고 LG베터리 공장이 곧 들어오고, 그리고 또 아마 다른 대기업들이 들어오기 위해서 스터디 중이라고 들었는데 저희는 외진 곳에서 학교를 운영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좀 했는데 거기가 인도네시아의 최대 첨단 산업단지로 변모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것을 보면서 ‘아 그렇구나!! 하나님은 오래전부터 이미 계획해 두셨구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저희는 영어로 교육을 하기 때문에 크리스천으로만 영어교사와 영어교수를 뽑아야 하는데 인도네시아에서는 그게 불가능할거라고 보았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사람들이 있었다. 선교사를 통해서 오래전부터 훈련 받았던 사람들이다. 또 교육선교사로 사명을 받았던 사람들, 십년 십 오년 전부터 사명을 받았던 사람들, 하나님께서 그들을 양육하고 때로는 무슬림도 타종교도 있었는데 그들을 하나님이 크리스천으로 바꾸셔서 우리를 만나게 하시는 모든 과정들이 너무 섬세하셨다. 그런가 하면 우리 사역자들이 들어온 과정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이다. 제가 이 분야에 이런 사람이 필요한데요. 하고 마음에 품고 있으면 3-4개월 이내에 연락이 온다.

이번에 IT학과를 세워야 해서 한국 사역자가 한 명 더 오면 좋겠다고 했는데 인도에서 선교사님이 연락이 왔다. 우리가 IT 세운 것을 모르고 거기 좀 IT대학에서 인도에서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는데 1년 정도 가 있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 당신네 교회에서 인도사역을 하고 있는데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적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 좀 고쳐달라고 했더니 그러면서 저희가 IT학과 신설을 하는 것을 알게 되어서 아예 함께 하시는 것으로 그렇게 결정해서 들어오시게 되었다. 제가 마음에 품고 하나님께 아뢰면 그것은 우리가 일반 회사가 월급 주는 회사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가 하면 저희가 건축을 담당했던 사역자가 나가게 되는 상황이어서 이 빈자리를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던 차에 삼성건설에서 해외 수주를 오랫동안 하셨던 리더분 한 분이 인도네시아에 골프를 치러 오셨다가 저희 사역 지를 보시고 마음이 움직여져서 그 즉시 3번째 건물을 맡아 주셔서 지금껏 잘 마무리 해주셨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타이밍 가운데 연결되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떤 사람들에게는 드라마틱하게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보게 된다. 어떤 경우는 잘 느껴지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경우들이 있을 것이다. 제가 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특별한 것들을 만나기 전에 하나님께 고백할 것이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아무것도 안 될 거라고 느껴져서 낙담하던 어느 날 예배 가운데 “주품에 품으소서.!!!” 그 찬양이 들렸다. 그래서 “하나님 저도 품어주시고 안아주시면 안돼요?” 했더니 하나님은 날개를 치시면서 저에게 다가와 주셨다. 그때 물으셨다. 네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껴진 시간이 오래 계속되고 너에게 아무런 도움도 없는 것 같고 너의 소중한 기회들이 다 날려버린 것 같고 그렇게 지내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나를 만족할 수 있냐고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께 고백했다. “주님, 저 하나님 한 분이시면 됩니다. 주님의 안아주심으로 충분합니다.” 라고 했더니 하나님은 기다리신 것이다. 그렇기에 인도네시아에 있는 동안에 한 번도 성공을 위해서 달려간 적은 없다. 그냥 이것은 안 되는 일이니까,,, 제가 무슨 수로 인도네시아의 법을 바꾸는가? 그저 있으라 하는 자리에서 주님만 바라보니 일이 진행하게 되었다. 나를 찾아와서 나를 품어주시는 주님을 기대하고 “강하고 담대하라.” 고 하신 말씀에 “저도 그렇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라고 반응하시기를 바란다.

 
 
♣요약
여호수아에게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은
'강하고 담대하라' 이다. '강하다'는 것은 '튼튼하다'는 의미보다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이방 문화에 흔들리지 말고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두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율법을 지켜 행하는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삶의 기준을 말씀에 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것에 너무나 쉽게 동화되는 우리의 연약한 특성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상에 흔들리지 말고 오직 말씀에 순종함으로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다. 묵상이란 단순히 마음으로 그 의미를 음미하는 것만이 아니라, 말씀으로 분별하고 적용하기 위한 철저한 준비와 치열한 영적전쟁을 의미한다. 우리의 할 일만 열심히 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다 하시기 때문이다. 마음에 그 말씀을 품고 안아주심을 기대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헌신하고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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