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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새벽부흥기도회(주후 2022년 4월 21일)-넷째 날

제목: "1. 믿음의 발걸음을 내 딛으라, 2. 주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말씀: 마태복음 14:27-32, 창세기 1:3
인도사회: 오정현 담임 목사님

설교자:  크리스찬 소니아 목사님(루마니아 호프교회), 박신일 목사님(그레이스 한인교회(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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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4:27-32,(크리스찬 소니아 목사님(루마니아 호프교회))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창세기 1:3,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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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 소니아 목사님(루마니아 호프교회)-"믿음의 발걸음을 내 딛으라."


-밤새 제자들이 폭풍과 사투를 벌일 때 예수님은 물 위를 걸어오셨다. 베드로는 주님께 특별한 요청을 드리게 된다. 주께서는 ‘오라’ 한 마디로 대답하셨고, 그 한 마디는 베드로에게 충분했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부르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를 오라며 부르고 계신다. 그 한 마디는 우리 인생을 바꾸기에 부족함이 없다.
 
베드로는 오라는 주님의 명령에 주님과 동행한다. 그러나 풍랑을 보고 발이 빠지기 시작한다. 베드로의 기도에 성경은 예수님께서 즉시 베드로를 건지셨다고 기록한다. 우리가 할 일은 문에서 건지시기 위해 내민 예수님의 손을 잡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믿음의 발걸음을 내디뎌 순종하라고 도전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성숙하게 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기를 소원한다.
 
※리처드 윔브란트 목사님-공산화에 14년 수감 중 2년 독방생활을 하다가 말씀을 떠올리고 설교하는 꿈으로 견디었고, 그 지옥 같은 암흑 실에서 목사님의 찬양 소리를 듣고 다른 죄수가 자살을 하려고 했던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예수님을 믿으면 새롭게 변화되고 생명이 되는 것이다.
루마니아 호프교회는 지금 3천 명 정도가 되었고 새로 지은 성전을 완공을 앞두고 기도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난민을 섬기고 돕고 있다. 그중 어떤 가정 오스트리아에 정착되도록 도왔고 주님을 더 기쁘게 하시기 위한 순종을 실천하고 있다.
 
요약
베드로의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생긴 결과 그는 빠져 가기 시작했다. 믿음을 지키고 있었을 동안 그는 계속해서 물 위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믿음이 흔들렸을 때 그는 물속에 빠져 가기 시작했다. 우리의 심령이 빠져 가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약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원받을 때와 같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보호를 받는다. 베드로의 믿음이 약해졌을 때 그리스도께서 베드로가 물속에 완전히 빠져 '돌처럼 깊음에 내릴 때까지 내버려두지 않고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칠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은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기 때문이다. 참된 신앙인에 관한 그리스도의 관심은 이와 같은 것이다. 비록 그들의 믿음이 연약하더라도 그들은 단지 빠져 가기 시작할 뿐이지 물속에 아주 빠져버리는 것은 아니다! 베드로가 이런 곤경 속에서 의지했던 구제책은 침착하고 확실하며 인정을 받은 구제책이었다. 그것은 바로 베드로가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한 기도였다. 두려움에 빠진 베드로에게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큰 은혜를 베푸신다.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그는 베드로를 구원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때는 우리가 낙심할 때라는 것을 주의하라. 그는 우리의 필사적인 노력이 요할 때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 그리스도는 모든 신자들이 낙심하지 않도록 아직도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계신다.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 그는 자기의 백성들을 지키실 것이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믿음은 진실할 수 있지만 약할 수도 있다. 그것은 처음의 겨자 씨 한 알과도 같은 것이다. 베드로는 물 위로 걸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믿음을 가졌지만 자신을 극복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믿음이 적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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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일 목사님(그레이스 한인교회(캐나다))-“주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

*창세기 1:3,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할렐루야!! 설교를 듣고, 설교를 하는, 이것도 저에게는 생소한 일이고 두 번 설교를 듣는 여러분들도 아마 6.25사변이후 처음 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제가 말씀을 나누기 전에 루마니아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 이번 특새 요청을 받고 벤쿠버에 있으면서 성령님이 자꾸 기도를 시키셨다. 이상하게 마음속에 계속해서 기도하고 여러분의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오늘 와서 보니 이 루마니아 목사님께서 나눈 말씀의 후속 편에 있다. 그 베드로 이야기가 공교롭게 들어가는 일도 이러한 일도 처음 아닌가 한다. 똑 같은 이야기를 또 하게 되는구나 한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더불 그레싱(double gracing),,,, 말씀의 이중적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오늘 말씀 창세기 1:3절은
*창세기 1:3,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있으라고 할 때 빛이 있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면 빛이 있기 전에 있었던 것이 있었다. 빛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말씀이 먼저 있었다. 하나님 말씀 하실 때 빛이 나타났다. 창세기 1장을 쭈욱 읽어가다 보면 반복되는 말씀이 있다. 그 말씀 중에 이 구절을 잘 기억 했으면 좋겠다. 말씀 중에 반복하는 말씀은 몇 가지만 보겠다.
 
*창세기 1:7,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세기 1장에 계속 여섯 글자가 반복된다.
 
창세기 1:9,
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그대로 되니라 오늘 아침 여섯 글자를 외우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창세기 1:15,
15 또 광명 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이 말씀이 창세기에만 여섯 번 1장에만 나온다. 반복된다. 첫 번째로 기억할 것은,, 주님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니라. 성경에 있다. 제가 한 번 앞부분만 말씀드리면 뒤에 따라 하라. 주님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니라. 주님,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니라.!!! 도대체 말씀이 무엇이기에 그분이 그대로 되는 것인가? 오늘 이것에 대해서 기초에 이것을 붙들고 오늘 말씀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시편33:6,9,
6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9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여호와가 말씀하시므로 이루었다. 그가 말씀하시매 견고히 섰다. 주님,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니라.!!! 설교 끝났다. 말씀이 무엇인가?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은 명확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다. 그분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창세기15: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창세기 15장에 자녀가 전혀 없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 자녀가 없을 때, 너의 종이 상속자가 아니고 너의 몸에서 난 상속자가 하늘에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아질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주님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니라. 주님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니라. -아브라함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내 믿음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내 성품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주의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임할 때 그 말씀이 그대로 된다고 하신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하나님께서 훈련시키고 훈련시키시면서 이삭을 주신다. 아브라함이 실패한 것이 이스마엘을 낳아버렸다. 여러분 이스마엘 그만 낳고 이삭을 낳기를 바란다. 내가 부족함에도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니라
 
*출애굽기3: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나님은 말씀하시니 이루어졌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가 되었을 때,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다 같이 읽어보자. 잘 대답하라. 주님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니라!!!~~~말씀하시니까 이루어진다. 홍해 바다를 만난다. 오늘 찬양을 했듯이 홍해 바다를 만났는데, 다들 두려워 떨고 원망한다. 모세가 주님께 기도하니까... 주님이 말씀하신다.
 
*출14:16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그냥 바다를 본 것이다. 주님이 손 내밀어 갈라지게 한다. 마른 땅을 걷는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느니라. 우리가 말씀을 이렇게 믿는 것이다. 말씀이 능력이다. 진짜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신가? 바다가 풍랑일 때, 제자들이 주님을 깨운다. 아니 주께서 뭐하십니까? 한다.
 
*마가복음4:39,41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주님이 말씀하시니까 잔잔해진다.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니라.
 -요한복음 5장에 38년 된 병자가 있었다. 이 사람의 소망은 주님이 베데스다에 오시는 것이다. 1년에 딱한 번 천사가 물을 동하고 가면 제일 먼저 들어간 한 사람만이 병을 낫는다. 모든 사람이 경쟁자이다. 예수님이 그에게 오셨다. “제가 저 물에 달려 들어가기 전에 두 종류의 사람을 원망한다. 나보다 다른 놈이 먼저 들어가고, 두 번째는 나를 빨리 물에 던져줄 친구도 없다. 상처가 깊어지면 자기중심적이 된다. 모든 사람이 상처가 깊어지면 나를 돕는 자와 안 돕는 인간들, 그는 소망이 베데스다 연못 밖에 없었다. 베데스다 연못은 일등만 치료를 받는다. 선착순이다. 우리 예수님은 38년 동안 베데스만 바라보던 이 병자의 누워있는 자를 향해 요한복음 5장에 말씀하신다.
 
*요한복음5: 8,9,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니라. 38년 동안 가지고 있는 은총이 아니라, 누구나 주께 나오면 누구나 주의 말씀을 받게 되면 그는 일어나 걷는 것이다.
 
*요한복음11:25,26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정말 이 말씀이 능력이라면,,, 무슨 말이냐면 빛이 있으라 하시니 그대로 되고, 풍랑이 잠잠하라 하시니 그대로 되고, 마른 땅을 걷게 되리라 하니 그대로 되고,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을 믿느냐는 것이다. 여러분, 부활의 신앙이 정말 있는 것이다. 아멘!!!~~죽음을 이기는 믿음으로 무장하는 교회가 되길 바란다. 병이 낫는 것도 하나님의 기적이지만, 여러분, 정말 기독교인의 승리는 병들어 죽어가면서도 믿음을 지키는 것이 승리인 줄 믿는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기도할 때, 병들이 낫는 기적이 있기를 축복한다.
 
이사야41:10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니라. 그러면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약속은 현재 진행형인가? 내가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아니 붙들고 계심을 믿는가? 오늘 우리가 나누고 싶은 것은 말씀의 능력앞에 무릎을 꿇는 아침이 되길 바란다. 오늘 여러분 첫 번째 기억할 것은
 
I.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다.
 
-하나님 앞에 정말 진리 앞에 무릎 꿇는 심정으로 우리가 신앙생활 있기를 소원한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느니라. 말씀이 문제가 없다. 그분의 말씀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항상 나에게 있다. 우리에게 있다. 문제가 말씀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때문에 있다. 오늘 루마니아 목사님이 하신 설교 본문을 보자.
 
*마태복음14:28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는데 어떤 분이 걸어오신다. 아!! 주님이시다. 그때 베드로가 나를 명하사 오라고 하십시오. 그래서 예수님이 오라고 했더니 물위를 걷는다. 여러분 바다 위 물위를 걸어본 사람은 세계 역사 속에 베드로 밖에 없다. 문제는 풍랑이다. 내가 믿고 가는데 풍랑이 보일 때, 베드로는 물에 빠져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 구절 한 구절을 보자.
 
*마태복음14:30,31,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베드로에게는 두 가지가 있다. 오라고 하시는 말씀이 있었고 또한 바람과 풍랑이 보인다. 이 두 가지가 있다. 풍랑을 보고 물에 빠져간다. 그때, 베드로가 잘한 것이 있다. 저와 여러분에게 주여, 가 살아있기 바란다. 주여, 아버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외치라.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 오늘 기도하고 오는데 개인적으로 제일 은혜를 제일 많이 받았는지 모르겠다. 즉시(Immediately),주여, 살려달라고 외치니 즉시로 주님이 꺼내주신다. 이제 또 다른 의미를 준다. 예수님은 부족하고 초라한 베드로를 즉시 그 믿음을 보시고 꺼내 주신다. 예수님이 그 베드로를 꺼내 주실 때 예수님을 세 번 부인 한다는 것을 아셨는가? 모르셨는가? 아셨을 것이다. 저 같으면 얘를 꺼내? 얘를 꺼내? 물을 좀 먹여? 반드시 고민한다. 얘를 세 번만 넣었다 뺐다 해볼까를 고민했을 것이다. 이게 왠일인가? 예수님을 배반할 것을 뻔히 아시는 주님이 그를 즉시 들어서 꺼내 주신다. 주님은 베드로의 팔만, 손만 붙드신 것이 아니다. 부족하고, 모자르고, 성급하고 그러나 작지만 살아있는 그 믿음을 보시고 그의 인생 전체를 붙들어 끌어주신다. 우리는 이것을 ‘은혜’라고 부르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 받을 수 없는 은혜를 계속 베풀어주신다. 영어로는 디 언 디저브드 그레이스(the undeserved grace). 받을 자격 없는 자가 받는 은혜, 한국어로는 죄송한 은혜이다. 여러분, 이 죄송한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믿음이 초라하고 작지만 믿음이 너무 넘쳐서 새벽 기도를 나온 것은 아니지 않는가? 겨자씨만한 믿음이니 하나님 껍데기 말고 위선 말고 내 믿음을 달라고 나온 줄 믿는다. 그 믿음 그 작은 믿음 보시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여러분을 환난에서 온 인생을 건져내 주시는 은혜가 되는 특새가 되기를 축복한다. 이 구절이 큰 은혜가 되었다. 주님은 나를 건지시는데 망설이지 않으시는구나!! 부활절을 우리는 지냈다. 예수님을 사랑한 것을 마태복음 28장과 마가복음 16장에 나온다. 여인들의 이름도 나온다. 이들이 부활절 아침에 혹시 무얼 들고 간 줄 아는가? 누가 무덤을 열어줄지를 염려하고 갔다. 그들이 준비하고 갔던 것은 무엇인가? 향품을 들고 간다. 향품은 유대인들의 관습에 시신과 관련이 있다. 주님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이미 예고했다. 여인들은 주님을 사랑했다. 많이 사랑했다. 그런데 향품을 들고 갔다는 것은 죽은 예수님을 만나러 간 것이다. 사랑했지만 온전한 믿음이 아니었다. 사랑했지만 부족한 믿음이었다. 우리 주님은 삐지지 않으셨다. 무덤에 갔는데 문이 열려있다. 천사가 둘이 앉아 있다. 우리 예수님은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문이 닫혀 있는데 들어오신다. 돌이 열려져 있다는 것은 주님을 위해서 연 것이 아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이 여인들을 영접하기 위해서 열어놓으신 것이다. 천사들이 말한다. “그가 누우신 것을 보라,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로 가라.” 이 여인들이 너무 놀라서 두렵고 큰 기쁨으로 달려간다. 가는 길에 부활의 주님이 서 계신다. 그리고 뭐라고 말씀을 하시는가? “너희가 평안하냐?‘고 질문하신다. 이 여인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들은 예수님의 발을 붙들고 경배했다고 말한다. 죽은 예수님을 만나러 갔는데, 우리 주님은 부활의 주님으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부활의 주님을 보고 나서 온전한 믿음을 가지도록 회복해 주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은혜의 주님이시다.
 
오늘 혹시라도 주님을 사랑하는데 내 믿음이 작동하지 않고 죽은 것처럼 지금 머물러 있다면 오늘 이 새벽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나는 살아있느니라. 내가 말하면 그대로 되니라” 이 말씀이 그들 앞에 말씀의 주님이 부활의 몸으로 그들을 만나 그들의 부족한 믿음을 온전한 믿음을 바꾸는 역사가 그들에게 있기를 바라신다. 오늘 새벽 제단에 모두 나오신 분들, 저는 주님을 사랑해서 달려 왔다. 오늘 이렇게 사랑하시고 내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사랑의 주님을 만나고 가는 특새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우리의 믿음은 작고 부족하여서 연습이 필요하다.
 
II. 믿음은 연습이 필요하다.
 
-믿음을 연습을 하라. 믿음의 연습이 있어야 우리의 믿음이 점점 더 온전해진다. 부족하지만 무덤으로 달려가라. 주님께로 가라. 주님께 가는 자마다 믿음이 살아날 줄 믿는다.
 
 
제가 미국에 애리조나 주의 방송에 하트 앤 서울 방송이 있다. 그 단체와 연결해서 운영한다. 그 여자 집사님의 섬김이 아름답다. 그 방송국에 직원들이 50명인데 모두 다 자원봉사로 이끌어가는 단체이며 기독교 CD를 만드는 방송국이다. 그 여자 집사님의 운영과 섬김이 자기들은 예수님 같다고 한다. 그 분의 뜻을 기려서 자원봉사 팀들이 최선을 다해서 운영한다. 그 여자 집사님이 운영하면서 말기 암이었다고 한다. 그분이 방송국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계속 헌금으로 운영을 하는데 어느 날 어느 교회로 성령님이 가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가서 그 백인 교회의 센터를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 교회 목사님은 당황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기도해 보겠다고 하고 보냈단다. 그런데 한두 달 후에 그 목사님이 전화로 당신 한 이야기를 기도했는데 우리 교회가 그 비전센터를 드리겠다고 했다고 한다. 비영리단체이니 1불에 드리겠다고 했다고 한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님이 말씀하실 때가 있다. 성경을 읽을 때 나에게 말씀하실 때가 있다. 그 말씀에 순종하면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연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연습이 필요하다. 주님 말씀하신 것을 연습하라. 순종하면 주님은 일 하신다.
 
III. 하나님은 나에게 하신 말씀이 있을까?

-구약에 예언자들이라고 하는 예언자는 예언이라는 말은 일기예보(日氣豫報)의 예(豫)자가 아니다. 앞일을 예언한다는 말이 아니다. 예언은 정기예금(預金), 예(預)자이다. 하나님 말씀을 맡아서 받는다는 것이다. 그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 중에는 앞일을 이야기 하시는 것도 있다. 선지자의 사명은 주의 말씀을 전해주는 자이다.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말씀이 있는가? 우리 한국교회가 오해하지 말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너무 이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한다. 우리 아들이 어느 과를 가야하냐고 목사님들께 가지 말라는 것이다.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케이스는 주님이 먼저 말씀하시는 것이 많다. 우리가 들으려고 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주의 할 것은 평상시에 전혀 묻지 않고 지 혼자 살다가 급한 일만 생기면 물어보는 성도가 있다. 놀란다. 교인 중에 십 년 동안 새벽 기도회에 안 나가다가 절대로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지 말라고 부탁한다. 무슨 일이 터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미리 전화하고 오라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중요한 것은 듣는 것이 아니라
 
1) 평상시에 주님과 교제 속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쓰러져 있을 때 만져주신다.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가 있다. 언제이냐면 우리가 지쳐 쓰러져 있을 때이다. 엘리야가 지쳐서 쓰러져 있을 때, 주님이 오셔서 만지시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여러분이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지쳐서 쓰러져 있을 때 주님은 오셔서 어루만지시고 일으켜 세우실 줄 믿는다. 오늘 쓰러지는 분이 있다면 그런 날이 필요하다.
 
2) 회개가 필요할 때 말씀하신다.
-나단이라는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다윗에게 간다. 다윗은 범죄를 저지른 기간에도 종교생활을 했을 것이다. 저는 이렇게 부탁한다. 함부로 입으로만 회개하지 말자는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회개하라. “하나님, 제 마음을 건져주시옵소서!” 회개는 터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다윗에게 와서 당신 그 사람에게 왔을 때 그의 인생에 눈물이 터지기 시작했다. 회개할 것이 있을 때 말씀하신다.
 
3) 주님을 간절히 붙들 때 말씀하신다.
-혈루 병을 앓는 여인이 다른 곳을 다 돌아다녀 봐도 안 되었다가 그날 주님의 옷자락 끝을 만졌을 때 성경에 예수께서 자기 능력이 나간 것을 아시고 혈루 병이 낫는다. “누가 내 옷을 만졌느냐?” 주님은 아셨다. “누가 내 옷을 만졌느냐?” 여러분 생각해보라. 누가 만졌는지를 주님은 아셨다. 여리고를 지나가는 중에 삭개오를 보시고 “아저씨 내려와”라고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삭개오야, 내려오너라.” 주님이 내 이름을 아신다. 그냥,,, 이 무슨 말인가? 너희가 고통 했던 것, 갈등했던 것을 예수님은 다 아시는 것이다. 문제가 끝나는 것이다. 주님은 이 여인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누가 내 옷을 만졌느냐고 하신다.
어거스틴은 말한다. 메시지가 있다고 누가 내 옷을 만졌느냐는 것은 주님은 다 아신다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이 본문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다가는 오는데 절대 왜 만지지는 안 하는가? 라고 한다. 다가는 오는데 붙들지는 않느냐는 것이다. 여러분 오늘 주님을 붙드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4380일 12년 동안, 혈루 병을 앓았던 여인은 다른 것을 붙들며 살았다. 그러나 주님을 붙드는 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신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니라. 오늘이 그날이 되길 바란다.
 
4) 내 병만 낫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 주실 때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은데 못 들을까 염려하신다고 말한다. 하나님 말씀을 못 듣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몰라서이다. 아버지가 이야기를 다시 이야기 하면 주님은 중요한 일을 다 말씀하신다. 못 들을까봐 염려하는 두려움은 버려라.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시다. 그분은 사명을 주실 때 말씀하신다. 바울이 헤매고 있을 때, 다메섹 도상에서 막 헤매고 있을 때 주님이 나타나셔서 빛을 비추어서 쓰러지게 하시고 “이는 이방인을 택하기 위한 나의 그릇이라.”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니라. 여기 모인 모든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주님의 그릇인 줄로 믿는다.
*이사야40:7,8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캐나다의 신학자는 2천년의 기독교 서적을 다 읽고 한 문장으로 말하는 내용은 바로 요한복음 2장이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새벽에 오신 여러분은,
1.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2. 믿음은 연습해야 한다.
3. 하나님은 나에게 말씀하실 줄 믿는다. 넘어진 자는 일어나라고 말씀하신다.
 
창세기 1장에는 빛이 있으라. 하셨다.
마태복음 1장에는 무엇이 나오는가?
- 예수님의 족보가 나온다.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 14대씩 요약해서 설명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은 단순한 글자 안에 엄청난 사연이 있다. 자식이 없어 울었던 세월이 있다. 이 아브라함이 낳은 사이사이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안 된다. 그런데 유다가 다말에게서 시아버지가 며느리 사이에서 낳는 아이가 있다. 예수님의 족보이다. 히스기야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므낫세가 나오는데 므낫세는 인신 제사들 드린 악명 놓은 자이다. 이 족보를 보면 감추지 않는다. 여자가 몇 명 나오는데 다윗이 솔로몬을 낳았다. 그런데 다윗이 회개하기 전까지는 우리아의 처라고 밧세바를 이야기 한다. 회개하고 나서는 주님이 용서하였다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 죄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회개하라고 한다. 똑바로 깨끗하게 살라고 한다. 이런 비참한 족보를 지나 마지막에는 예수님이 태어나신다. 이 족보를 보면, 주님이 안 계시면 우리 집안은 어둠의 족보이다. 우리가 주님이 안 계시면 어둠의 족보이며 우리는 죄로써 온 역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죄 덩어리이다. 우리는 숨 쉬는 것도 죄다.
 
마태복음 1장은 빛이 있으라고 한다. 우리 가문에 예수님이 들어오시면 빛의 족보로 바뀔 줄로 믿는다. 우리 가정에 어떤 상처가 있더라도 예수님을 모시면 빛의 가정이 된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니라.
 
♣요약
히나님 말씀은 능력이시다. 그분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니라. 그러나 우리는 부족하여 그래서 물을 걷다가도 바람만 봐도 뚝 빠져버린다. 그러나 주님이 그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전체로 끄집어 내 주셔서 그 은혜로 다시 믿음으로 걸어가게 하시니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한다. 말씀을 믿는 자리로 돌아와 부흥은 말씀을 깨달아서 반응하고 이 제단에 허락해 주시길 기도해야 한다. 온전한 믿음으로 회복되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오늘 주의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사명의 자리로 가서 주님을 붙들게 되는 삶이되기를 구해야 한다. 믿음을 연습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의 음성을 받기를 소원한다.
1.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조금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도 은혜를 선물로 주시는 분이심을 확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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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2년 4월 20일)

제목: "입술의 열매"
말씀: 히브리서 13:9-15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전도사님

설교자: 김도훈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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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3:9-15,
9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10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 
11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4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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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이들이 사람 머리 모야 안에다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을 한 번 적어보라고 하고 여러 가지 공간을 이렇게 그림을 그려서 거기에 이것저것 그림을 그려서 놓은 것을 본 분들이 있을 것이다. 어떤 아이들은 자기 머리 모양에 큰 반을 잘라서 한 쪽은 만화, 한 쪽은 오락, 이렇게 적어놓고 그 옆에 조그맣게 ‘숙제’ 이렇게 써놓는다.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만화하고 오락이고 숙제는 정말 하기 싫은데 적기는 적어놓아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적어 놓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만약 지금 그 그림을 그려 놓는다면 무엇을 그릴 수 있겠는가? 무엇을 지금 그려놓는가이다. 아마 여러 가지를 그릴 수 있을 있을 것 같다. 고난주일 부활절 전에 금식을 많이 하신 분들은 그 때를 그려보라고 한다면 설렁탕, 피자, 이렇게 적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사실 우리 마음 가운데 생각나는 것들,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이것저것 생각해서 그려본다면 사실 우리의 철학, 우리의 사상,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시스템도 이렇게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당신의 머리속에 있는 것을 영역을 정해서 그려보라고 한다면 어떻게 그리겠는가? 중간에 십자가 하나를 딱 그려넣으실 수 있는가? ‘은혜’라고 크게 그려 넣을 수 있겠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성경 기자가 그 대상으로 하는 사람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마 그 중심에 예수님을 적어놓고 그 옆에다가 다른 것을 적어놓은 것 같다. 그러니 9절에 말씀에 다른 교훈에 끌리자 말라는 말씀이 나온다.
 
*히브리서 13:9,
9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그렇다. 분명히 마음을 굳게 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단단하게 한다는 것이며 우리가 그 마음을 점프하고 나가서 열심히 일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 그 무엇인가는 무엇이어야 하냐면 은혜이어야 하는데, 은혜로써 굳게 해야 하는데 다른 교훈 어떤 것이 그 안에 여러 가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 기자는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고 한다. 여기서 교훈은 그냥 급훈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나를 좌우지 하는 그 어떤 것이다. 예를 한 번 들어보면 교회를 아주 잘 다니는데 초팔일에 반드시 나는 절에 가야된다. 그래야지 내 삶이 바로 설 것 같다는 자라면 이 분은 그 마음의 중심에 교회를 하나 그려놓고 옆에다가 사찰도 하나 그려놓을 것 같다.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리지만 연 초에는 “반드시 사주를 봐야지 나는 살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한다면 의아해 하지 않겠는가? 예수를 잘 믿는 분이 왜 또 사주를 보는가? 그분은 십자가를 그려놓았지만 그 앞에는 연 초에는 ‘사주’라고 그려놓는 것이다. 우리 안에 여려 가지 다른 교훈들이 있을 수 있다. 삼각산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계룡산에서 돌을 하나 올릴 수 있는 인생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 다른 교훈에 음식에 문제가 당시에는 있었다.
 
예수님을 믿고 이제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고 은혜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여전히 주님을 모르는 유대교 정통 유대인들은 제사를 옛날처럼 그대로 드려야 된다고 하고, 절기를 지켜서 어떤 음식은 먹어야 되고, 어떤 음식은 먹으면 안 되고, 어떤 때는 반드시 금식을 해야 하고, 어떤 때는 반드시 먹어야 하고,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이런 교훈들이 당시에 난무하였다는 것이다. 완전히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 옛날 유대교회에 정통했던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막하니까 은혜를 아는 자들까지 그 교훈에 꼬드김을 당한 것이다. 오락가락 중간에 애매하게 하는 그리스도인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성경 기자는 10-11절에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히브리서 13:10-11,
10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
11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정말 어려운 본문이다. 이 시간 온라인 생중계로 보고 계신 분들은 정말 놀라운 은혜를 누리시는 것이다. 이 어려운 부분을 수요저녁기도회에서 특새 기간에 나누고 있지 않는가? 우리에게 제단이 하나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제단이 하나 있는데 그 제단에서는 이전에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먹을 권한이 없다고 한다. 옛날 레위인들 제사장들은 이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먹을 권리가 있었다. 화목제를 드리거나 소제를 드리거나 속건제를 드리거나 속죄 죄를 드린다 하더라도 제사장의 몫, 제사자의 몫, 돕는 자들의 몫들이 조금씩 있었다. 화목제 같은 경우에는 더욱 풍부해서 백성들까지도 초대받아서 풍성하게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고 나서 함께 먹고 나누고 즐거워하는 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성경 기자는 우리에게 있는 제단에는 옛날 그 제단에서 섬기는 자들은 먹을 권한이 없다고 한다. 왜 그러는가? 옛날 제사에서도 옛날 유대교 제단에서도 못 먹는 때가 한 번 있었다. 그것은 대제사장이 대 속죄일 날, 모든 이스라엘 회중 한 명 한 명, 민족을 위하여 속죄할 때는 그 짐승의 피를 지성소에 들어가게 하고, 나머지를 하나도 안 먹고 영문 밖에 가져가서 다 불태웠다. 아예 아무것도 안 먹었다. 그때가 한 번 있다는 것이다. 성경 기자는 정말 성령께서 주시는 그 감동하심으로 지금 옛날제사의 정통해 있는 이들에게 너희들은 새로운 제사에서 먹을 권한이 없는데, 이게 이렇게 왜 이렇게 되냐면 ‘옛날도 이렇게 되는 날이 있었지, 옛날에 너희도 못 먹을 때가 있잖아. 그게 대 속죄일 때 못 먹었잖아. 그때를 잘 생각해봐’,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대 속죄일 때는 못 먹었는데, 이제는 예수님 이야기가 나온다.
 
*히브리서 13:12,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예수님께서 바로 대 속죄일에 하나님께 드려진 짐승처럼, 그 피를 다 지성소에서 올려드리고 영문 밖에서 주님께 또한 올려 졌다는 것이다. 이 제사가, 영적 완전한 이 제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제는 다시는 그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고 이제 다시는 제단 안에서 먹을 일도 없다는 것이다. 옛날의 시스템 가운데 유대교의 그 제단 안에서 먹는 일은 이제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제단, 우리 그리스도인의 제단은 옛날 유대교가 믿었던 그 제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막도 성전 안에 있었던 그 제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꾸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제발 옛날 시스템을 가져오지 말라. 먹고 마시기를 지키고 그 옛날 시스템을 해야 된다고 허락하지 말라. 다른 교훈을 가져오지 말라고 지금 간절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율법의 완성 자이신 예수님은 옛 제사를 완전히 다 예언을 다 성취하시고 구약의 율법과 제단까지도 다 만족시켜 주시고 그리고 새 제단을 이루셨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새 제단이 있다. 그 제단이 어디에 있는가?
 
*히브리서 13:13-14,
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4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12절에 예수님께서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다고 되어있는데 지금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자고 하고 있는가?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우리 주님이 지금 어디계신가? 9절을 보면 우리의 제단이 어디 있는가? 예루살렘 도성에 있는가? 성전 안에 있는가? 아님 예수님의 십자가가 서 있는 바로 그곳에 우리의 재단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치욕을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에 가신 것처럼 우리의 재단이 거기 있으니까 우리도 거기에 가자는 것이다. 그곳에서 예루살렘 성을 보면 그 도시가 평강의 도시를 보이겠다. 그 안에는 아름다움도 있고 옛날에 안정감도 있고 좋은 것도 있고 성전도 있고 다 있는 것 같지만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는다라고 말씀한다.
 
이렇게 우리가 주님께 올려드릴 제단은 나그네 인생길, 도성 없이 영문 밖에 머무는 것과 같은 그런 삶이다. 제단에서 안정되게 고기를 먹고 나누는 것이 아니라, 치욕을 짊어지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바로 그 삶이, 그 제단으로 나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의 인생이라는 것이다. 장소적으로 사하라 사막에 가야된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 깊고 깊은 산속에서 다른 사람을 아무도 만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바로 함께 이 세속 도시 가운데에 있지만 우리는 영적으로 영문 밖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세상은 이해할 수 없다. 더 정확히는 이해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고생스럽다.
 
오늘이 특새 4일차다. 3일차에 피곤함이 조금 더 무거울 것 같다. 매일 두 시 세시에 여기가 성도님들로부터 하나둘 채워져서 간절히 기도하고 찬송하는 이 공간이 지금 있다는 것을 예수님을 안 믿는 분들이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어떻게 생각할 것일까?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말로만 듣던 ‘광’자가 듣던 신도가 아닐까? 할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미친다면 우리는 이 '광자'가 즐거운 광자이고 '빛 광자'로 우리 안에 들어올 줄로 안다. 사실 영문 밖에 제단으로 나아가는 삶의 방식, 평강의 도시를 떠나 영문 밖 주님께서 계시는 제사는 그 제단으로 나아가는 삶의 방식은 우리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 우리의 제자도이다. 비전을 붙잡을 때도, 직장을 구할 때도, 자녀를 기를 때도, 가정을 섬길 때도, 기업을 운영할 때도, 공동체를 섬길 때도, 영혼을 위해 기도할 때도 바로 이 영문 밖 제단으로 나아가는 방식이 우리에게 그 삶의 방식을 적용을 받는다. 이번 한 주간 바로 오늘 우리가 이 놀라운 제자도, 영문 밖으로 나아가는 삶의 방식을 우리에게 적용을 한다면 이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제 20차 진행되고 있는 특별새벽부흥회 앞으로 기도하며 찬송하며 힘있게 나아가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특새에에서 말씀으로 먹고 마시고 마음껏 찬양하고 기도하며 이 한 주간을 올려드리는 것이다. 주님이 걸어가신 길은 치욕의 길 고난의 길은 모든 영역 가운데 우리가 다양한 방법으로 감당해야 된다. 그러나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며 기도의 자리를 사모하며 바로 이곳에서 마음껏 주님 앞에 올려드리는 것을 참으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너무나 놀라운 것은 영문 밖으로 나아가는 삶이 쉽지 않은 삶의 패턴, 또 이렇게 새벽을 깨우고 또 낮에가서 정상적으로 일하고 밤에 먹을 거 먹고 일찍 잠에 들고 이 어려운 패턴 가운데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이 있다. 

*히브리서 13:15,
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
그렇다. 성경기자는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찬송의 제사를 드리자고 강력하게 권면한다. 몸이 지치고 눈물이 난다. 해결해야 할 것이 많다. 그냥 ‘특새’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전반을 바라보면 그리스도인으로, 주님의 제자,로 주님의 자녀로,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 치욕의 길, 내가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는 길은 참으로 때로는 무거울 때가 있고, 손해가 날 때도 있고, 눈물 날 때가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는 무엇을 드리자는 것인가? 찬송의 제사를 드리자는 것이다. 우리 입술에는 찬송보다는 불평과 억울함과 또는 이해할 수 없다는 고백이 나올 법도 한데, 그런데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찬송의 제사를 드리자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렇게 새롭게 치러졌다. 또 너무나 역설적이다. 너무나 이율배반적이다. 치욕을 짊어지고 주님께 나아가고 있는데 주에게 힘들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우리 안에서는 샘솟듯 찬송의 고백이 우리의 입술을 통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환경이 우리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결정한다. 하루 종일 화장실에 있으면 화장실 냄새가 난다. 우리의 몸은 먹은 대로 배출한다. 우리가 매운 것을 먹으면 매운 것이 나오고, 쓴 것 먹으면 쓴 것이 나온다.

 
그런데 인생이, 환경이 고생이고 우리가 고난과 곤란과 어려움을 온 몸으로 감내하면서 인생의 고난을 먹고 마시며 나아가는데, 우리에게 나오는 것이 찬송의 제사라면, 이 얼마나 놀라운 총체이니가? 이것은 주님께서 허락하시고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주님에 제단에서만이 가능하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영 가족 모든 성도 여러분, 모든 존재는 열매 맺기를 원한다. 식물도 동물도, 종족 본능 유지를 가지고 있다. 영혼을 가진 인생은 더할 것이다. 반드시 열매 맺기를 원한다.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잘 됨을 통하여 열매 맺고, 자녀를 통하여 열매 맺고, 관계를 통해 열매 맺고, 자신이 섬기는 기업이 잘 되는 것을 통해서 열매 맺기를 원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기를 원하는가?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는 존재들인가? 우리는 찬송의 제사라는 열매를 맺는 존재들이다. 그런 인생이다. 우리의 입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리의 행동까지 그 행동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우리의 입술의 열매, 우리 삶의 열매는 찬송의 제사인 것이다. 은혜와 감격으로 삶의 결단으로 찬송하고 고백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모든 선한 일을 도모하고 섬기고 전도하고 애써서 주님께 다시 와서 주의 제단에서 찬송하는 우리가 되길 원한다. 기업을 경영하고 자녀를 양육하고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면서 자신의 맡은 일을 다 하면서 그렇게 찬송의 제사를 때마다 입술로 올려드리는 아름다운 인생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영 가족 여러분,
이제 특새를 통하여 찬송의 제사를 올려드리면서 이 한 주간 은혜의 풍성한 바다가 되기를 바란다. 이후에 모든 삶 가운데 환경과 관계없이 상황과 관계없이 우리의 입술의 열매로 찬송의 제사가 계속 맺힐 것이다.
 
♣요약
우리를 다른 교훈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직 주만 쫓아가게 하셔서 주님의 제자로서 거친 땅에서도 찬송의 제사를 올려드리는 제자가 되었음에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다시 한 번 결단하고 고백함으로 기쁨과 감사로 찬송의 제사를 주님의 제단에서 올려드리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잘못된 교훈들은 여러 가지이며 다양하지만 이것들은 전에 그들이 받았던 교훈과는 전혀 다르며 이러한 잘못된 교훈들은 교회에서 들어보지 못한 전혀 생소한 것이다. 이 잘못된 교훈들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 등 외적이고 사소하며 없어질 것들이다. 이 잘못된 교훈들은 어떠한 식으로도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그것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신령하게도, 겸손하게도, 감사하게도 못할 뿐만 아니라 물론 하늘에 이르게도 못한다. 이러한 잘못된 교훈을 받는 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제단의 특권을 박탈당하며,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리스도 교회에는 제단이 있다. 이 제단은 물질적인 제단이 아니라 인격적인 제단이며 곧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제단인 동시에 우리의 희생 제물이시다. 이 제단은 진정으로 믿는 자들에게 만찬을 제공해 준다. 주의 성만찬은 복음 시대의 유월절 만찬이시다. 구약의 장막이나 레위기 속의 율법을 고집하거나, 그리고 돌아가는 자는 이 그리스도의 제단의 특권에서 제외된다.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서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은 능욕을 감수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같이 하여야 하는 더 큰 이유는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다'는 사실에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우리는 잠시 후 죽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나아가서 이 세상이 우리에 줄 수 없는 안식과 안착을 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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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부흥새벽기도회(주후 2022년 4월 20일)-셋째 날
제목: "기도의 용사들, 기도하라 하나님이 일 하신다"
말씀: 시편 108편, 출애굽기 17:8~16
인도사회: 오정현 담임목사님
 
설교자: 필립 라이켄 목사님(휘튼 칼리지대학 총장님),
최병락 목사님(강남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ㅡㅡㅡ
 
*시편 108편,-(필립 라이켄 목사님-(휘튼 칼리지대학 총장님))
1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
2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3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
4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보다 높으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까지 이르나이다.
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6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
7 하나님이 그의 성소에서 말씀하시되 내가 기뻐하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8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투구요 유다는 나의 규이며.
9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내 신발을 벗어 던질지며 블레셋 위에서 내가 외치리라 하셨도다. 10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읍으로 인도해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으로 인도 할꼬.
11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의 군대들과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2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13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들을 밟으실 자이심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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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라이켄 목사님-(휘튼 칼리지대학 총장님)-*시편 108편,
이는 이스라엘 후기 역사의 일들로 백성들이 고통 받던 일들로 인해 낙담해 있던 때에 기록되었다. 시편 108의 기도는 오늘 이 아침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올려드릴 기도의 밀접에 있다. 아침 일어나 노래로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리며 기도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온 여러분의 기도와 밀접함에 말이다. 또는, <기도의 용사들이 드리는 아침의 시편> 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시인은 해가 자신을 깨울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아침 일찍 스스로 일어나 오히려 자신이 해를 깨운다. 시인은 하루의 첫 시간부터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리고 싶어 한다. 이 사실은 본문 서론에 나타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랑 안에서 얼마나 신실하신지를 찬양하고 싶어 한다. 스스로를 위해서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또는 영적으로 암울한 시기를 보내는 사람들을 위해서이다.
제5권의 시편들은 일반적으로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던 중에, 또한 그 이후에 기록되고 읽힌 시편이다. 비록 여러분이 수많은 기복을 겪고 어려움을 겪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변함이 없으시다. 본문 5절에서 나타난 시인의 고백이 인상 깊다.
 
*시편 108:5,
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고자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항상 창조물(피조물)을 떠올리는데, 시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가장 높은 데까지 이릅니다.”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나서 5절에서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라고 고백한다. 이아침 기도의 자리로 오신 여러분, 기억하세요.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보좌에 좌정해 계시며 부활하신 구세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높은 곳에 앉아 계셔서 천사들과 모든 열방, 그리고 오늘 이 아침에 기도하러 나오신 여러분들로부터 높임을 받으시고, 예배를 받으신다. 그런 의미에서 본 시편은 하나님을 높여 경배하고 예배하는 ‘찬송 시’이다. 앞서 저는 본 시편의 두 개의 시편이 하나로 통합된 시편이라고 말씀드렸다. 두 음식물을 섭취해 하나의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내는 것을 비유로 들었지요. 이아침 기도의 자리로 오신 여러분 기억하길 바란다. 또 어쩌면 본 시편은 재봉사가 두 개의 담요에서 찬 조각을 가져와 꿰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과도 같다. 흥미로운 것 중에 하나는 시인이 57편 일부와 60편 일부를 가져와 하나로 통합해 본 시편을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시인은 각 시편의 후반부 말씀을 따와 한 편의 시로 묶어냈다. 만약 시편에 대해 조금 아신다면 초반부는 대체로 질문들과 어려움을 호소하는 내용으로 차 있다는 사실을 아실 것이다.
 
본 시편이 여러분을 믿음 안에서 더 굳건하게 하고 여러분에게 소망을 주는 이유 중 하나는 두 개의 다른 시편의 의기양양한 결론들을 단일 시편의 결론으로 묶어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시편 108편은 여러분이 더욱 담대하게 한다. 시편 57편의 경우, 당시 다윗은 위기의 시기에 있었고, 그의 원수인 사울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동굴 안으로 숨었고 목숨을 잃을까 두려웠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피난처요 안전한 처소이신 하나님을 경험했다. 심지어 시편 60편의 경우, 당시 다윗은 더 큰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다윗은 그의 군대와 함께 전쟁을 치르려고 북쪽에 가 있었는데 에돔 군대가 이스라엘의 남쪽을 공격했다. 다윗과 그의 군대는 패배했고 이 일로 다윗은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본 시편이 검증된 시편이기 때문이다. 시편 60편은 큰 어려움과 고난을 겪고 심지어 패배까지 경험한 남자와 한 민족이 올려드린 신앙과 기도이다. 탄원들이 담긴 시편 108편의 후반부를 살펴보면 얼마나 어려운 형편이 놓여 있었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11절을 보면 다윗은 시편 60편을 기록할 때 가졌던 의문을 제기하였는데 이 질문은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동안에 또, 그 이후에 시편 108편을 묶어내며 가졌던 질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라고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께 일종의 수사학적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어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외면하시고 여러분과 함께하고 계시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 적 있으신지 궁금하다. 시인이 지금 바로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악과 고통이 만연하다.
 
여러분은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 저는 남한 사람들이 북한의 형제자매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 통일을 바라고 계실 것이다. 우리는 유럽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보며 어마어마한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소식을 듣고 있다. 우크라이나 뿐 아니라 심지어 오늘날 전 세계 난민은 총 6-7,000 명으로 추산한다. 여러분이 이런 어려움을 몸소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오늘 이 아침에 기도의 자리로 나오기 어려우셨다면 스스로 낙담해 있거나 사랑하는 자녀들이 주님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낙심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는 공동체 내에 갈등 문제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필요를 채우지 않으실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사단이 여러분을 공격하고 있고, 침울하게 만들고 있으며 좌절시키려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여러분 이 자리에 잘 오셨다. 왜냐하면 이 자리는 여러분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시간, 우리가 처한 시점과 형편에 솔직해질 수 있고 이를 기도로 하나님께 아뢸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과 그분의 강력한 역사를 경험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인도 자신이 느끼고 있는 좌절감을 솔직히 드러낸다. 그러면서 그는 여전히 하나님과 주권을 확신한다. 여러분은 시편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겠다. 여러분이 고대 이스라엘 지리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7-10절에는 다양한 지역이 언급되어 있다. 이 중에 일부는 이스라엘 내에 있다. 여기에서 한국에 계신 여러분들과 관련 있는 흥미로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요단강 왼쪽부터 다른 왼쪽까지 이스라엘 전 지역에 자신의 주권을 선포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지역의 이름들은 무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매우 중요하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모든 열방의 주님이심을 고백한다. 그리고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의 주님이심을 고백하실 줄로 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언젠가 남과 북을 하나 되게 하시고 대한민국의 통일을 이루실 소망 안에 산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열방을 통치하시고 계시며 모든 피조물은 그분의 손 안에 있다.
 
*시편 108편 8b,
8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투구요 유다는 나의 규이며.
-8절 하반 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다른 지역 또한 자신의 것으로 선포하시면서 유다를 자신의 ‘규(통치 지팡이)’로 지칭하였다. ‘규’란 통치자가 그의 왕권과 그가 왕좌에 앉아 있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쥐고 있는 ‘왕의 지팡이’이다. 누구라도 ‘규’를 쥐고 있는 통치자를 보면 “저기 왕께서 계십니다! 왕께서 앉아 계시며, 그의 왕권을 상징하는 규를 쥐고 계십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왕께서 유다 족속으로부터 나오신다.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와 모든 열방에 대한 그분의 통치를 예표 하는 예언의 말씀 중 하나이다. 그밖에 시편 108편을 비롯한 모든 시편과 관련해 말씀드리고자 하는 사실이 있다. 우리는 시편을 읽을 때 시인이 누구인지를 떠올려야 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떠올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려야 한다.
 
히브리서 2장을 보면, 하나님의 이름이신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께 말씀하신다.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사도 바울은 로마서 15장에서 이와 비슷한 표현을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서 사역하시면서 시편을 즐겨 부르셨다. 그는 회당에 가셨을 때도 부르셨고 제자들과 함께 부르기도 하셨다. 또한,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 가시기 전,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한 그 밤에도 시편을 부르셨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시편 말씀과 상당히 친밀하셨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시편을 읽고 부를 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는 일은 중요하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시편을 부르신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시편의 표현들을 인용하시면서 모든 열방에 대한 그분의 주권을 선포하시고 모든 열방의 백성들과 함께 주를 찬송하고 싶어 하는 마음의 소원을 드러내신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열방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자 목적이다.
 
만약 우리가 이런 종류의 찬양과 진심 어린 탄원을 올려드릴 수 있다면 시인이 시편 말미에서 그리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확신할 수 있다. 여러분,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오 주님, 우리를 도우소서, 원수들을 물리쳐 주십시오! 세계교회가 사단과 악을 대적해 승리를 거두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 밖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구원은 없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다. 우리는 본문 11절의 말씀을 통해 확신한다. 우리 스스로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시면 우리는 귀한 일을 감당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대로 우리의 대적들을 받으실 것이다.
 
여러분, 이아침에 세계 선교를 위해 기도하시는 가운데 휘튼 칼리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길 바라며 오늘 시인처럼 승리의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소망하고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이 올려드리는 찬양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복을 베풀어 주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요약
이른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라. 시인처럼 고통과 낙담될 때 전심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려 드린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면 들어응답하신다. 찬양하고 기도를 전적으로 집중하여 기도해서 주님과 친밀한 만나야 한다. 예수님도 찬양을 먼저 하셨듯이 찬양과 경배로 시작하고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이니 늘 찬양의 확신을 가지고 찬송하고 소망을 가지고 집중하여 기도를 올려드려라. 그리하면 응답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정한 다윗의 태도는 자신의 온 인격을 하나님께 집중하겠다는 의미이다. 이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뢰한 심령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같은 마음가짐을 가진 자에게서 참된 기쁨과 감사의 찬양이 흘러나올 수 있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진 시인은 본문에서 주의 구원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자신은 하나님의 권능과 도움을 믿고 용감히 싸우겠다고 다짐한다. 우리는 여기서 사람의 수나 재물은 가변적이라는 사실을 보게 된다. 따라서 성도는 재물이나 사람의 수를 가지고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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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7:8~16-(최병락 목사님-강남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님)

8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16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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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 다시 와서 19차 말씀을 전하고 이번에 다시 불러 주셔서 말씀을 전할 기회가 있어 감사하다.
청년부 대학부 수련회 때,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저 혼자 와서 설교를 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올 때마다 마음에 감동이 있고 박영선 목사님 말씀하셨던 것을 같이 시청하면서 말씀이 생각난다. 사랑의 교회의 부흥이 현재를 써내려가고 있다는 것처럼, 부흥이 현재형이고 이전에 없었던 놀라운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복한다. 코로나가 끝이 난다고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 이전에도 없었던 기도, 이 자리에 없었던 예배, 찬송으로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나아가는 사랑의 교회와 가정이 되길 바란다. 기도하면 일 하신다. 분명한 사실임을 기억하라.
 
내가 일하면 하나님은 멈추고 계시지만,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일하시기 시작하신다. 언젠가 기도하는 제 모습을 돌아보았다. 기도의 모습이 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기도하는 모습은 이렇게 묘사를 한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는데, 왜? 무릎을 꿇고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기도를 할까? 봤더니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릎을 꿇으면 하나님은 보좌에서 일어나 내 삶에 걸어오셔서 일을 행하시고, 내가 손을 모으면 하나님은 능력의 팔을 펼치셔서 일하시고 내가 눈을 감으면,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셔서 내 모든 삶을 감찰하시고 일하신다.
 
“주여, 내 두 발로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가지 않겠나이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많으나 내 두 발을 주님 앞으로 부복하고 엎드려 내 발을 스스로 결박할 테니, 주님이 나의 발이 되어 주여, 내 삶에 걸어 다니시고 주님, 일하시옵소서.” “하나님이 두 손 가지고 제 마음 대로 일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 두 손 기도하려고 묶어 둘 테니 하나님이 내 손이 되어 주시옵소서. 마음껏 일하시옵소서. 하나님 보인다고 보이는 대로만 보지 않겠습니다. 주님 앞에 내 눈을 감겠습니다. 하나님이 내 눈이 되어주셔서 불꽃같은 눈동자가 되어 주시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감찰하사 제가 보지 못하는 것까지 통찰하시고 보시면서 해결해 주시옵소서!”
 
그 마음에 모든 자세의 소원이 그 기도의 자세에 다 들어있었다. 오늘 기도하는 시간에 하나님이 여러분의 발이 되시고, 기도하는 시간에 여러분의 손이 되시고, 기도하는 시간에 여러분의 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오늘 본문에 보면 모세가 약 200만 명의 달하는 사람을 데리고 이 출애굽을 하고 광야로 나왔다. 얼마나 두렵겠는가? 또 이 출애굽을 한 이백만 명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면서 목축을 하고 노동을 했기 때문에 전쟁을 해보지 않았다. 한 번도 전쟁을 해보지 않고 남의 나라에서 종살이 하던 사람들이 출애굽을 했는데 갑자기 느비딤의 골짜기에 이르렀을 때에 아말렉 군대가 쳐들어와서 약 400년 만에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모세야 이집트의 왕자로 자라면서 많은 전쟁의 선봉에 서서 승리로 이끌었던 람세스 책들을 보면 모세의 전쟁이 나온다. 모세를 제외하고 누가 전쟁을 했겠는가? 아무도 400년 동안 전쟁이라고는 해보지 않았다. 이들 앞에 전쟁이 일어났다. 그것도 느비딤 골짜기에 아주 오래전부터 살고 있던 아말렉이라고 하는 신출귀몰하는 그러한 민족과 그렇게 전쟁을 하게 되었다. 누가 봐도 이 전쟁을 승리할 수 없었다. 한 번도 전쟁을 해보지 않은, 그리고 광야에 익숙하지 않은, 그리고 광야가 낯설기만 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태어나서부터 광야에서 잔뼈가 굳었고 느비딤은 자기들의 터전이었고,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것을 노략해서 자기의 생계를 이어가던 이 아말렉 군대에 있어서는 어쩌면 눈감고 전쟁을 해도 이 전쟁은 이길 수 있는, 누가 봐도 전세가 기울어지는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전쟁, 아무리 사람 숫자로 밀어붙여도 이길 수 없음을 누가 가장 잘 알고 있었느냐면 모세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세는 칼을 들고, 창을 들고, 말을 타고 구호를 짜서 돌려가면서 바로 전쟁으로 다가간 것이 아니라, 잘 알다시피 그가 선택한 것은 전쟁에서 이길 방법은 기도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그는 산으로 올라 간 것이다. 산위로 올라가서 아론과 훌을 데리고 손을 들면 하나님이 이기게 하시고 손을 내리면 하나님이 지게 하신다는 것을 모세는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전쟁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황스럽게 전쟁에 앞장 서야할 리더가 산위로 올라가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함으로 이 전쟁은 이길 수 없는 전쟁인데 이기게 된 것이다. 여러분이 이 새벽이라는 산에 올라와 기도하는 동안에 세상에 이 코로나와 코로나의 직격탄과 코로나의 광풍에 여러분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이때에 이 특별부흥회의 산에 새벽에 올라온 이상 하나님이 이루게 하실 줄 믿는다. 우리는 기도할 뿐이지만 기도하는 시간에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어차피 내 힘으로 싸워서는 이길 수 없는 전쟁, 기도하는 동안에 하나님이 발이 되시고, 내 손이 되시고, 눈이 되신다면 하나님이 싸워주시면 하나님하고 싸운다면 누가 이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기도하는 가정을 반드시 돌보시고 기도하는 삶을 반드시 이기게 하실 줄 믿는다.
 
모세는 산 위로 올라가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 저번에 왔을 때 간증을 했지만 미국에서 21년 살면서 목회를 개척을 하고 17년 목회를 하던 중에 강남중앙침례교회 저희 교단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교회 1번지 교회이다. 마음으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마음의 빚이 있는 교회인데 청빙을 받아서 1년 동안 기도하고 도망가고 또 기도하고 하다가 순종해서 오게 되었다. 이렇게 오면 3년 전인데 이렇게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부르셨으니까 하나님이 기다리고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진짜 엄청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코로나가 터졌다.
 
“하나님, 코로나가 끝나고 부르셔도 되는데 왜 코로나 직전에 부르셨나요?”라고 하면서 와서 1년 정도 열심히 목회를 하다가 보니까 정말 코로나 전 1년은 엄청난 교회로 몰려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정말 즐겁게 잔칫집 같이 그렇게 목회를 하고 있는 중에 코로나가 생긴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예배당은 텅 비어버렸고 혼자 카메라 앞에서 설교를 해야 하고 최대한 배려를 해주어서 20명 나올 수 있다고 그러고, “아 하나님, 왜 이곳으로 보내셨나요? 하나님 이곳에서 또 이 시기에 부르셨나요?” 하면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할까요?” 기도하는 중에 기도하라고 주신 시간이라고 들고 기도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저희 교회는 양수리 수양관이 있는데 양수리 수양관이 부지가 굉장히 넓어서 뒤에 큰 산이 두 개가 있다. 그 산도 양수리 수양관 것이다. 그래서 마음껏 올라가서 기도할 수 있다. 모세가 산으로 올라갔다고 하면 나도 산으로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하고 혼자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운전하고 저 양수리 수양관에서 차를 대놓고 30분 산으로 올라가서 기도를 했다. 10시에 가면 새벽 1시 2시까지 깊은 바위틈에 혼자 앉아서 있으면 얼마나 기도가 안 나오는지 모른다. 여러분도 궁금하면 한 번 해보라. 혼자 산에 올라가서 기도가 나오나 안 나오나 시험을 해보아라. 절대로 안 나온다. 무서워서 기도를 할 수가 없다. 조그만 부스러기 소리만 나면, 멧돼지가 나오는가 싶어 눈이 번쩍 뜨인다. 후레쉬를 가지고 이리 비치고 저리 비쳤다고 한다. 신세가 처량하다. “하나님 이게 뭡니까? 미국에서 20년 넘게 살던 사람을 불러놓고 목회를 하려고 하는데 하나님, 코로나가 왠 말입니까? 이 산에 혼자 앉아서 주여, 우리 성도들 코로나에서 구원해 주십시오!” 라고 했다. 어떨 때는 기도가 잘 안 되는 때에 자정이 내려가고 영하 20도가 내려가는 시간이면 제일 추울 때에 무조건 가는데 그때에 기도가 열린다. 왜냐하면 무서워가지고 이것은 막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다. 산이 쩡쩡 울릴 정도로 기도가 나온다. 그때 한 시간 집중해서 기도하고 내려온다. 혼자 다니다 보니 아내를 데리고 간다. 잘 따라온다. 둘이 기도를 한 참 하다가 혼자 하는 것 보니까 밤길도 업은 아이 한 명 데리고 가면 덜 무섭다고 그러는데 기도가 재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우리 부목사님들을 다 데리고 올라갔다. 그리고 나서 좋으니까 장로님들 모시고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호루라기 불기 전까지 내려오지 못하게 했더니 그렇게 해서 기도를 계속하게 되었고 권사님들과 중직 자님들도 그리하셨고, 모든 집사님들도 이렇게 해서 산에 다 올라가서 기도를 했다. 기도를 시키니까 무서워서 얼마나 소리가 엄청 크게 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산에 정말 많이 올라갔다. 목사님 따라 산에 올라간 사람과 못 간 분들이 소리가 나왔다. 그래서 전교인 산 기도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몇 주 전에 산 기도를 했다. 양수리에서 야외 모여서 부르짖으면서 하나님, 펜데믹이 엔데믹이 되어도 부흥의 새 바람이 불어오게 하시고 코로나 광풍을 맞아 대한민국 교회가 한 교회도 문 닫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조국교회 골짝마다 성령의 새 바람이 불어오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다. 그리고 오월에는 전국에 있는 참여하기 원하는 교회들이 다 초청해서 다시 산 기도를 한다. 코로나 기간에 기도를 했더니 많은 일들을 행하셨고, 기도하다 보니 많은 것을 깨닫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역사의 새 판을 짜고 계신다는 것을 또 느끼게 되었다. 기도하지 않고 염려만 했더라면 하나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 기도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있었고,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었고, 기도했기 때문에 저 같이 약한 심장이 빼고 강한 사자 같은 하나님의 심장을 가지고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었으니 하나님께서 그러한 시간, 저에게는 새로운 시간을 주셨다.
 
창세기 26장에 보면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이 파 두었던 그 우물을 아비멜렉이 메꾸어 버렸을 때에 이삭이 아버지의 그 우물을 다시 파는 장면이 나온다. 마틴 루이스 목사님은 이삭이 메꿔진 아버지의 우물을 다시 파낸 것을 ‘부흥’이라고 이야기 했다. 메꾸어진 우물을 다시 파는 것, 이것이 부흥인데 우리 대한민국 120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 우리 성도들과 교회들이 파 놓은 부흥의 우물들이 있다. 그런데 마귀가 이 우물들을 다 메꾸어버려서 이제는 다 메꾸어 되어져 버린 것이 너무나도 많은데, 오늘날 교회들은 그 우물들을 다시 파내어서 부흥의 샘물이 솟아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그중에 하나가 제 목회가운데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면서 대한민국이 골짝마다 저 삼각산에서, 오산리에서, 저 양수리에서, 다 산에서 부르짖으면서 우리의 부흥의 우물을 팠던 그 선배들, 이제는 그 우물들이 메꾸어져 버린 것, 하나님이 파내는 맡겨진 저만의 사명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의 교회는 특새라고 하는 정말 미국과 전 세계에 한국교회들에 ‘특새’라고 용어를 쓰지 않는 교회가 없을 정도로 사랑의교회가 만들어 낸, 오정현 목사님이 만들어 낸, 특별새벽기도회를 줄여서 특새, 라는 용어가 이션 하고 여러분의 특새와 정감 운동을 통해서 많은 교회들이 새벽에 일어나 깨우고, 지금도 많은 교회들이 이제 코로나가 끝나는 것을 준비하면서 특새를 하고 있다. 여러분의 교회가 앞장 서 가면서 이렇게 새벽에 이렇게 성도들이 많이 모여 이 코로나가 무색할 정도로 기도하고 있는 이곳은 사랑의 회가 우리 대한민국 120년 역사 속에서 새벽마다 그 선배들이 깨웠던 그 새벽의 우물을 여러분이 지금 계속 파고 있는 것이다. 어느 교회는 여의도 광장에 모여서 매스컴퍼런스를 통해서 거기에서 많은 헌신 자들이 나오고 많은 주의 종들이 나왔다면 광장의 우물도 다시 파서 그 광장에 모인 젊은이들이 주 앞에 헌신하고 목회자로 헌신하는 우물이 다시 파내지고 산에서 메꾸어진 우물들은 산에서 기도소리가 울려야 되고 도시의 한 복판에 메꾸어진 우물을 사랑의교회가 계속해서 파내어서 교회들마다 새벽의 우물에서 생명수가 솟아나는 일을 감당해야 할 줄 믿는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개인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나온 것도 중요하지만, 모이는 이 자체만으로도 시대적으로도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인 줄 믿는다. 모여서 기도하더라. 20차 이번에 시작을 했는데 정말 새벽 2시 3시부터 성도들이 저 도로에 길게 줄로 서서 정말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위해서 줄을 섰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부흥은 언제나 소문을 통해서 전해지고, 그 소문은 그 교회에 현실로 나타나게 되면서 다시 부흥은 이 코로나 이후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런 새벽기도로 많은 교회들이 막혔던 기도의 시간들이 회복될 줄 믿는다. 그래서 고맙고 그래서 감사하고 그래서 여러분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기를 바란다.
 
 
모세는 이 아말렉 전쟁 앞에서 산으로 올라갔는데 말씀을 묵상하다가 모세는 왜? 그 평지에서 기도하지 않고 그 전쟁 앞에서 좌우를 두리번거리다가 “오!~저 산”!! 산에 올라간다. 왜 산에서 손을 들고 기도를 했을까?
 
오늘 여러분과 함께 정해진 시간에 모세가 산으로 올라가서 기도를 드린 이유를 밝혀보고 여러분은 여러분만의 기도를 산에 왜 찾아서 가야 하는지를, 여러분의 기도의 산은 무엇인지를 한 번 나누어보자.
 
1. 모세가 산으로 올라간 첫 번째 이유는 가장 간절하게 나오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모세는 평지에서 전쟁을 앞두고 기도할 수 있었지만, 그리고 리더가 모세는 이 전쟁이 신출귀몰하는 자기들이 어릴 적부터 이 이집트에서 받았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리더가 산꼭대기로 올라간다는 것은 자살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적군에서 특공대를 보내어 동서남북에서 쥐 잡듯이 올라오면 산꼭대기에 있는 리더는 포위되어 죽고 만다. 평지에서 진두지휘해야 한다. 앞에 서면 뒤로 도망가고 오른쪽에 서면 왼쪽으로 도망가는 퇴로가 있는 곳에서 리더가 진두지휘를 해야 하는데, 그 백성을 버려두고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것, 그것을 모를 리가 없는 모세가 가장 위험한 곳을 왜 선택해서 올라갔는가? 모세는 알았다. 가장 위험한 곳에서 기도해야 가장 절실한 기도가 나온다는 것을 안다. 이 전쟁은 나의 진두지휘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이 역사하셔야 된다고 모세는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어디에 서서 기도를 해야 가장 간절한 기도가 나올까를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오랜 기도에도 응답하시지만 기도의 양도 중요하지만 기도의 퀄리티도 중요하다. 여러분 어차피 기도하는 시간, 몇 시간씩 앉아서 기도하는 것 양의 시간도 중요하지만 한 번을 기도해도 간절하게 기도하는 그 기도를 하나님은 응답하신다.

 
*잠언 8:17,
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그냥 시간만 보내서는 안 된다 5년째 기도의 응답이 안 된다고 말한다. 5년을 어떤 마음으로 기도했냐가 중요하다. 모세는 내가 어디로 올라가야 가장 기도가 잘 나올까를 생각했다. 로링 커닝의 기도를 빌리자면 산꼭대기 벼랑 끝에 서서 기도하는 사람과 평지의 한 복판에서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그 기도의 간절함이 평지에서 기도하는 사람과 같지 않다. 산꼭대기에서 기도하는 이유가 그런 이유이다. 여러분이 저마다 간절한 기도가 되기를 원해서 이 새벽이 나온 줄 안다. 그렇다면 어차피 나온 이시간에 정말 간절해지기를 축복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이 감동되고 다른 사람의 기도는 몰라도 “너의 기도는 들어 주어야겠다.”고 하실 정도로 심쿵이 되시도록 하나님도 찡하는 감동이 올 정도의 기도를 가장 기뻐하실 줄 믿는다.
 
미국에서 목회하다가 미국에 이민 와서 사는 사람은 절벽인 사람들이 많다. 실패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실패, 미국에서 기도에 실패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3일을 금식하고 간절하게 기도를 하자고 했다. 남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이 힘들다. 금식기도는 잘 나온다. 그 집사님은 배가 고파서 식사를 하면서 그냥 기도를 간절히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잘 될 리가 없다. 그분은 금식을 안 하신 것이다. 이분이 힘들어졌다. 간절해야 한다. 정말 간절해야 한다.
 
야곱이 창세기 32장에서 야콥 강가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길 정도로 어떻게 기도했는지를 아는가? 초저녁 기도와 새벽녘 기도가 다르다. 야곱이 워낙 열정적인 사람이라서(Man of passion), 누가 보기에는 초저녁부터 기도를 열심히 한다고 했겠지만 성경을 보면 걸음이 느린 아내와 자녀들과 다 소와 양들은 일찍이 강 너머로 보내버렸다. 야곱은 달리기가 선수이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두 마음으로 기도하는데 하나님, 형이 따라오는데 나를 살려주세요. 굉장히 간절해 보인다. 하나님은 끝까지 안 도와주시고 형이 코앞에 오면 플랜 B가 본인에게 생각이 있었다. 그러면서 두 다리를 툭툭 쳤을 것이다. 다리가 선수이니까 일단은 기도해보고 안 해주시면 도망가고 이 기도를 한다. 플랜 B, 2차 기도가 있는 계획은 하나님은 들어주시지 않으신다. 주님도 지켜보신다. 야곱을 그래도 하나님이 사랑하셔가지고 그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고 싶은 것은 첫 번째의 응답은 달릴 수 없도록 환도 뼈를 치신다. 그 뼈가 끊어지는 순간 야곱의 기도의 톤이 높아진다. 아까 목사님께서 키 업 하라고 하신 것처럼, 야곱의 그 기도가 한 단계 높아지면서 하나님, 진짜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내 도망갈 두 다리가 끊어졌으니 이제는 하나님이 아니고는 안 된다고 간절하게 기도를 한다. 그 기도가 천사와 겨루어 이길 때까지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응답되었던 것이다.
 
 
 
엘리야의 기도...
1:850으로 싸웠던 엘리야, 누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참 신인가를 대결하는 것이었다. 아무리해도 안 되고 하늘에서 불이 내리려면 제단에 짐승들을 놓고 땔감을 놓고 있던 습기도 없앤 후에야 그런 3년 동안 건조한 곳에서 불이라도 붙을 텐데, 불이 나게 하려면 있는 습기도 없애야 하는데 오히려 엘리야는 반대로 물을 12통이나 붓는다. 절대로 인간적으로 불이 붙을 수 없는 상황을 일부러 만들어 낸 것이다. 왜냐면, 여기에 물을 12통을 붓고 나면 내 기도는 간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니고는 불을 내릴 수 없나이다. 하나님이 아니고는 이 불이 붙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야 엘리야는 간절한 기도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기도가 절절히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들고 그 간절함이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불을 내리시고 불이 아니라 무엇인들 안 내리셨겠는가?
 
여러분 이 새벽에 나와 기도하실 것이면 간절하게 기도하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네게 응답하겠고 내가 알지 못하는 큰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

많은 분들은 잠잠한 기도를 하지만 믿음이 깊어지면 부르짖는 기도를 한다는데 반대이다. 가장 성경에 나오는 기도는 부르짖는 기도이다. 신앙이 성숙해지면 침묵기도까지 영성이 되지만 믿음이 적은 자들은 부르짖고 기도해야 응답이 된다.
 
아말렉 앞에서 이 전쟁을 어떻게 이길까? 어디로 가야 내 기도가 가장 뜨겁게 나올까를 생각한 모세는 가장 위험한 장소로 간다. 기도가 저절로 나오는 장소로 가야겠다고 하면서 산꼭대기로 간다. 그래서 하나님, 동서남북에서 올라오면 나는 죽습니다.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이 전쟁을 이길 수 없아고 외치며 모세는 간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 장소에 서니 하나님 앞에 저절로 기도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 응답해 주세요, 한다면 만약 응답을 안 하신다면 기다리라고 하신다. 내가 세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주여, 주밖에 없나이다.” “나는 주만 바라보나이다.” 아람군대 앞에서 기도했던 여호사밧 기도처럼, “나는 주만 바라봅니다.” 로 기도하면 그 기도는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가 산으로 올라갔던
 
2. 또 하나의 이유는 산은 모세가 늘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이다.

하나님은 그를 산에서 부르셨고 그에게 산에서 율법을 주셨고 산에서 오늘도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했으니 모세에게 있어서 기도하면 떠오르는 가장 첫 번째 장소가 산이었다. 산에서 응답 잘된 사람이 있고 저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나고 여러분이 기도응답이 잘 되는 여러분만의 산이 있을 것이다. 어떤 분들은 특별새벽기도라든지 기도가 잘 되는 사람, 내 평생 살아온 길, 새벽마다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은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고 새벽에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새벽에 나왔다가 갈 때까지 자고 가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나는 금요일 철야기도 때는 하늘 문이 열리고 방언이 열리고 정말 하나님과 영적 깊은 기도를 해서 모든 내 삶에 응답이 철야기도회에서 일어났다면 그분에게 있어서 금요철야가 맞는다. 나는 3일 금식하고 일주일 금식을 했는데 그때마다문제가 풀어졌다면 그분의 산은 금식이 되는 것이고, 저마다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가장 만날 수 있고 가장 기도가 잘 응답되어 지는 여러분만의 산이 있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 산에서 내려오면 안 된다.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주님 앞에 나와 기도했을 때가 있는데, 하나님이 복주시고 응답 주셔서 살만하게 되니까 이일도 해야 되고 저 일도 해야 되고 이제는 살만하니까 바빠서 새벽에 산에서 내려왔다면 문제는 그날부터 시작이 되었을 것이다. 그분은 다시 그 산에 올라야 한다. 내가 금요일 아무리 바쁘고 힘들고 피곤해도 하나님 앞에 나아와 밤새도록 기도하고 부르짖었던 그 산에서 하나님이 불쌍해서 응답 주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놀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오라는 곳도 많아서 금요일 한두 번 산에서 내려오면서부터 그 문제는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면 그 산에 올라야 하고 금식으로 은혜를 받았다면 금식의 산에 올라가야 하는 그것이 바로 회복을 너머 부흥으로 가는 여러분의 길복이 되는 것이다. 어제 칩 잉그램 목사님이 아침에 영어공부 많이 되었을 텐데 그분이 하신 말씀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모세는 산 위에서 산 밑을 바라보면서 그 문제를 하나님의 눈으로 보기위해서 산으로 올라갔던 것처럼 우리가 기도를 해서 아무리해도 기도의 응답이 안 된다면 그걸 고집스럽게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것을 하나님이 원하신다.
 
어떤 선교사님의 간증이다. 그분이 중보기도 팀장을 하신 분이시다. 선교단체는 최전방의 영적 최 전방이다. 그걸 영적으로 책임지는 중보기도 팀장이니까 사령관이나 다름없다. 얼마나 마음이 무겁고 책임감이 있었겠는가? 하나님 앞에 벌벌 떨면서 제가 어떻게 중보기도 팀장이 됩니까를 하다가 궁여지책으로 하던 생각이 집에서 3년간 칩거를 하는데 방에다가 전 세계 대통령 사진을 붙여놓고 그 밑에 나라 정보를 붙여놓고 그 아래 기도제목을 붙여놓고 전 세계 대통령에게 안수를 하고 그렇게 3년이 되었다. 됐다고 생각이 났다는 것이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산도 옮길 만한 하다는 것이 믿어지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험해 보고 싶었다. 친구 두 명을 불러서 북한산을 옮기겠다고 했다. 증인으로 불러서 한강이 보이는데 저 산을 한강에 옮기겠다고 장담한다.
외친다.“북한산아!, 저 산이 한강에 빠질지어다.” 라고 했더니 가만히 있더란다. 그대로 되지 않으니 하나님을 원망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더란다. 온 우주를 다 하는데 “나는 그 산을 옮기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하셨다고 한다.
 
기도는 예수의 팔을 붙들어 예수의 이름으로 내가 산을 옮기고 싶을 때만 옮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 저 산을 옮기시기를 원하시나요?” 라고 묻는 것이 그를 향하여 담대함이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응답하신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고 있는 것인지, 마지막 한 가지 왜 그가 또 산에 올라갔을까?
3. 그 이유는 그는 모세가 이겼다는 전쟁에서 이겼다는 것을 듣지 않고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게 함으로 백성들이 모세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한다. 모세만 의지 했다면 그때부터 모세만 의지해야 하는데 백성들이 친히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던 말은 이것은 하나님이 일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모세는 기도를 했고 역사는 하나님이 하신다.

 
여러분, 여러분이 일하시면 하나님은 안 계신다. 그러나 우리가 무릎 꿇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순간에 하나님이 일하신다. 한국에 오기위해 기도를 참 많이 했다. 하나님께 자녀를 맡겼다. 자녀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지켜 달라고 기도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가로막을 수 있다. 모세가 기도했더니 8절은 아말렉과 이스라엘이 싸웠는데 모세가 기도를 했더니 아말렉과 하나님이 싸우셨다. 나와 싸웠는데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셔서 싸워주l신다. 이 특새에 모든 기도의 응답이 되길 기도한다.
 
 
요약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간절한 마음으로 이곳이 아니면 안 되기에 우리의 성전의 산에 올라왔으니 오늘도 내가 열심히 해서 하나님이 일하실 틈을 드려야 한다. 발을 묶고 손을 모으로 눈을 감아서 하나님이 나의 눈이 되시고 발이 되시고 손이 되셔서 하나님이 역사하시길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를 해야 한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군을 인솔하였고, 모세는 지팡이를 들고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모세가 손을 올리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패했다. 그러다가 모세가 피곤하여 손을 내리자 아론과 훌이 양쪽 손을 받쳐 주어 그 손이 내려오지 않았다. 이리하여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인간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결국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범사에 하나님을 의뢰할 때 그 크신 능력을 덧입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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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새벽부흥기도회(주후 2022년 4월 19일)-둘째 날

제목: "1. 위대한 기도의 5가지 특징, 2. 새 인생"
말씀: 누가복음 11:2-4, 누가복음 15:32.
사회인도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설교자: 칩 잉그램 목사님(리빙온디엣지 대표), 장경동 목사님(중문교회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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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2-4, (칩 잉그램 목사님-리빙온 디엣지 대표)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
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누가복음 15:32, (장경동 목사님-중문교회 담임 목사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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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2-4, (칩 잉그램 목사님-리빙온 디엣지 대표)-위대한 기도의 5가지 특징.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
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상황을 돌파하는 기도에는 몇 가지가 있다. 위대한 기도에는 특징이 있다.
 
1.위대한 기도는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하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 모세와 다윗. 바울. 하나님께 무엇을 얻어내려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얼굴을 보고 싶어 해야 한다.
 
2. 위대한 기도는 상한 마음의 깊은 곳에서 나오는 기도이다.-통회하는 심령으로 주님께 마음을 다해야 한다. 주님과 친밀감을 가져서 매달려야 한다. 하나님은 진솔한 기도를 들으신다.
ex) 느헤미야, 이사야.
 
3. 위대한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기도이다.(God agenda)-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길 소원해야 한다. 우리 삶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한다. 이른 아침에 주기도문을 외우고 외치고 기도하라. 울며 기도하여 올려드려라.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계획에 맞추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초점을 맞출 때 기뻐하신다. 내 삶에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희생과 초점에 맞추어서 가족과 자녀를 위한 기도를 해야 한다.
 
4 위대한 기도는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기도이다. -말씀하신 대로 행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약속하신 일을 반드시 지키실 것임을 믿는다는 뜻이다. 모세와 느헤미야도 그랬다.
경외함으로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중보기도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라는 일들이 이루어 져야 한다. 전 세계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를 이어주시고 베푸셔서 이 세상의 남녀를 초자연적으로 이끄신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기도를 하라.
 
5.위대한 기도는 거대한 불굴의 용기를 촉구하는 기도이다. -불굴의 용기를 가지고 기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도하라. 그러면 내가 너를 사용할 것이다 구하라! 적은 것부터 시작하라. 문제를 해결할 만한 사람으로 사용하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은 있을 수 없는일을 행하시고,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경험하게 하실 것이다. 성령에 힘입어서 있을 수 없는 일을 담대하게 구할 수 있다. 구하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인해 생각하지 못한 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위대한 기도를 올려드리는 것은 우리의 소명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위대한 기도를 올려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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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5:32, (장경동 목사님-중문교회 담임 목사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메리 크리스마스.!!!... ㅋ ㅋ 소돔 고모라가 왜 망했는가? 언뜻 보기에는 죄가 많아서 망한 것 같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의인이 열 명이 없어서 망한 것이다. 망하기로 치면 니느웨도 망했어야 했다. 그런데 니느웨는 멀쩡하다. 그 회개했기 때문이다. 그 회개의 아주 중요한 한 사람이 등용되는데 바로 요나이다. 솔직히 우리 대한민국을 들여다보면 참 부패한 곳이 많다. 그런데 이 나라가 이렇게 건강하게 잘 나가는가이다. 오늘 새벽에 그 이유를 확증했다. 바로 여러분이 계셔서이다. 박수...~~~ㅋ
예수 믿고 교회에 다녀도 이 새벽에 나오는 사람들이 대단한 것이다.
   
사울도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예수 믿는 사람이다. 다윗도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예수 믿는 사람이다. 같은 교회 다니는 사람이다. 상황이 다르다. 사울왕은 새벽에 기도했다는 말이 한 번도 없다. 다윗왕은 왕인데도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오늘 여러분의 새벽기도의 지킴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교회만이 아니고 이 나라를 붙들고 살려가는 아주 밑거름이 되는 줄 믿는다. 그렇다면 새벽 작정기도회만 나오고 나중에는 안 나오면 점검해봐야 한다. 계속해서 그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성경에 보면 목사님의 종류가 4부류로 나온다. 이 네 부류를 보면
첫 번째 목사님, 실력도 있고 능력도 있고 성령도 충만한 자는 사도 바울목사님이다. 참 실력도 있고 능력도 있다.
 
두 번째 목사님, 실력은 없는데 성령은 충만하다. 베드로 목사님이다. 사실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말고 하나 더 베드로 복음서가 있어야 된다. 왜냐면 제자 중에 수제자가 베드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베드로복음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 왜인가? 복음서를 쓸 능력이 안 되는 것 같다. 그분이 쓴 것은 베드로전서, 후서가 있는데 베드로가 분명히 쓰신 것은 맞는데 신학자들 가운데 의심하신 분이 있다. 진짜 썼을까? 한다. 왜 그랬을까를 보니,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과 더불어 다른 제자들이 못하는 물위를 걷다가 빠졌다. 그래도 걸어는 봤다. 빠져서 그렇지... 그런데 이분의 학력을 들여다보니까 수산전문대 어부과 출신이다. ㅋ 그러니까 베드로사도님은 성령은 충만한데, 실력은 부족했다.
 
세 번째 목사님, 실력은 무지하게 좋다. 그런데 성령의 능력이 없다. 아볼로 목사님이다. 나중에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사도행전 18장, 19장에 보면 아볼로 목사님은 성령에 대한 그런 언급이 별로 없다.
 
네 번째 목사님, 성령도 지식도 없는 스개와 제사장 일곱 아들 같은 목사님, 그런데 제가 가만히 집회를 보니 저보다 부흥회 저보다 더 많이 다닌 목사님이 있으면 나와 보시라고 해봐요. 그러면 막 나오신다. 그렇게 말해야 욕을 안 얻어듣는다. 많지는 않다. 계속 집회를 이렇게 하는데 이 사랑의 교회에서 이렇게 정상적인 부흥회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면 내가 와서 놀라운 것 중에 하나가 제 손을 붙잡고 나를 보시더니, 제 손을 붙들더니 기도를 오 목사님이 해주셨다. 제가 숯 하게 수년 동안 부흥회를 다녔지만 나를 붙들고 기도해 주신 목사님은 오정현 목사님 밖에 안 계시다.
 
지식도 있고 능력도 있는 1번 목사님이시다. ㅋ ㅋ ㅋ 1번 아니면 여기는 부흥회에 오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면 안 불러 줄 것 같다. 헛소리 하면 누가 부르겠는가? 믿음도 없고 능력도 없는데 누가 불러주겠는가? 그렇구나.. !!~~~
 
제가 짧은 시간이지만 3가지로 말씀을 드리겠다. 세 종류의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I. 첫째는 세 종류의 사람에 대해서- 양의 신앙을 가지라.
-성경에는 수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세상에는 지금 78억이 살고 있지만 사람은 딱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마태복음 10:16,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 양과 이리가 있다. 양은 그리스도인이다. 이리는 세상 사람이다. 인정을 하든 안하든 상관없다.

*마태복음 25:32,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 염소는 왼편, 양은 오른편에 합하면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제일 안 좋은 사람=세상사람=이리.
교회는 다니는데 아직 거듭나지 못한 사람=염소.
교회는 다니는데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양.
- 이리를 세상 사람들 말로 금수라고 하고 염소를 인격자라고 하고 양을 성자라고 한다. 오늘 여러분에게 안경을 맞추어 주었다. 이제 오늘부터 사람을 볼 때에 ‘참 잘생기셨네요, 참 아름다우시네요.’ 가 아니라 저 사람이 이리냐, 염소냐, 양이냐? 로 보아야 한다.
 
이리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산다. 순 거짓말이다. 입만 열면 그 말도 거짓말이다. 저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도 거짓말이다. 법을 지키기가 어렵다. 학교 앞 30킬로에 가다가 지켜야 하는데 카메라가 없으면 안 지킨다. 새벽 4시 반에 30킬로!!?? 예수님은 지키시겠지만 사도바울도 쉽지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 법 없이 살 사람이라는 것도 틀리다. 이 세 사람을 다 경험한 사람은 탕자이다.
탕자가 집에 있을 때는 염소였고 나갔을 때는 이리였고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는 양이다. 보통 베드로는 고기 잡을 때 이리였고 복음서에 들어오면서 염소였다가 성령을 받고 양이 된다. 보통 이리→ 염소→ 양 이 패턴으로 가는데 왜 탕자는 염소→ 이리→양, 이렇게 갔을까? 모태 신앙이다. 염소로 출발했다가 성령 받으면 양으로 가고 세상으로 가면 이리가 되고 회개하고 돌아오면 양이 된다. 그런데 이리는 거짓으로 살고 염소는 사실로 살고 양은 진실로 산다. 사람들이 사실과 진실을 잘 구분을 못한다. 왜냐면 세상에는 진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진실은 성령이 없는 진실은 없다. 성령없이 훌륭하게 살면 사실이다. 세상 사람들은 팩트 팩트 하는데 그 팩트가 사실일 뿐이다.
 
자 탕자가 허랑방탕하게 할 때 바로 거짓이다. 탕자가 거짓말을 안 하고 살았어도 허랑방탕 삶 자체가 거짓이다. 회개하고 왔다. 자 형이 말한다.
“창기하고 놀아난 허랑방탕한 아들을 왜 잘해 주십니까?” 그게 사실이다.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어긴 적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게 사실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말씀하신다.

*누가복음 15:32,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목욕시키고 옷 입히고 반지 끼우고 신발 신 끼고 잔치해 준 것이 진실이다. 사실과 진실의 차이는 무엇이냐면, 있는 대로 말하면 사실이고 거기에다 사랑이 들어가면 진실인 것이다. 그게 차이이다. 오늘 우리 삶에도 사실도 있고 진실도 있긴 하다. 조금 그 진실이 다르긴 해도 며느리가 밥을 하다가 태우면
“‘너는 시집오기 전에 밥이나 해보다가 왔니? 내가 반찬은 못해도 이해하지만 밥을 다 태우느냐?” 이게 사실이다.
그런데 딸이 밥을 태웠다. ‘엄마 어떻게 해, 밥이 다 탔어. 하니 엄마가 네가 무얼 잘못이냐! 안 가르친 사람 내가 잘못이다.“가 진실이다.

저도 위에 누나가 둘이 있고 내가 태어났다. 예전에는 딸만 다 낳았다면 우리 아버지 새 장가를 가셨을 것이다. 왜냐면 아들을 못나서이다. 왜 똑똑한 사람이 없었는가? 여자가 딸 셋을 낳은게 전혀 여자 잘못이 아니다. 왜냐면 자판기에 돈을 넣고 누르는 사람이 밀크 누르면 밀크 나오듯이 커피 누르면 커피 나오듯이 자판기가 맘대로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여자는 어차피 아들도 없고 딸도 없다. 당신이 주는 대로 하는데 이렇게 대변해 주는 남자가 그때는 하나도 없었다. 제가 나와서 이야기 해 준 것이다. 여러분 딸 낳고 아들 낳으면 엄마가 편하다. 누나가 동생을 잘 돌본다. 딸이 둘이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딸만 둘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맞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했더니 그렇게 주셨다. 우리 집은 딸 낳고 아들을 낳았는데 은혜와 충만이 되었다. 주례를 설 때마다 기도해 준다. “하나님, 오늘 새롭게 시작되는 이 가정에 처음에는 딸을 주시고 그 다음에는 아들을 주시옵소서. 순서가 바뀌지 않게 하여서 섭섭함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더니 거의가 다 딸 낳고 아들을 낳았다. 먼저 기도를 해야 한다. 간혼 아들부터 낳는 경우도 있다. 성경에 66권 중에 진짜 존경하는 분이 사무엘이다. 사무엘은 ‘그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을 하나님이 다 책임을 진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딸낳고 아들 낳으라고 주례 때에 기도를 했는데, 내 말이 떨어졌다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심각했다. 내가 분명이 딸부터 낳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왜 아들을 낳았습니까?“라고 하니 하나님이 제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신 것이 아니었다. 왜 그런 일이 생겼냐고 질문하니 금방 대답하셨다. ‘내가 응답 하지 않은 게 아니라 저애들이 아이를 먼저 가지고 왔더라.” 하셨다. ㅋㅋㅋ ~~~ㅎㅎㅎ 그때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미리기도 해라.‘ 해놓고 기도하지 말고 기도하고 해야 한다. 미리기도 해야 한다. 결혼하기 전에 기도하면 작정기도 새벽예배 일주일이면 응답 받을 것을 결혼해도 기도하면 30년을 기도해도 응답이 안 된 사람도 있다. 사실과 진실이 무엇인지 알겠는가? 탕자를 대할 때 형같이 대하면 사실이고 아버지 같이 대하면 그게 진실이다. 우리가 말씀대로 산다고 말씀대로 산 것인가?
 
*마태복음 10:5-6,
5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이상하다. 사도행전 1:8절을 읽어야 한다.

*사도행전 1:8,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저기는 땅 끝까지 가라고 하셨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랬다저랬다 하시는가? 하나님이 그러신 것이 아니고 상황이 달라서 그렇다. 12제자를 부르자마자 땅 끝까지 보내면 누가 가겠냐고, 가면 안 오지. 그때는 잃어버린 양에게 간다. 이제 성령 충만 받고 나면 땅 끝까지 가지 말라고 하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받겠는가? 그때는 땅 끝까지 가라. 상황이 다르다. 아아. 그렇구나.
 
*사도행전 16:31,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더 이야기 할 것 없고 예수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아멘!!~ 그런데 저 구절만 있으면 믿으면 끝나지만 이런 구절도 있다.
 
*요한복음 3:5,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예수 믿고 거듭나면 완벽한 것을 거듭은 안 되고 믿기만 한 것은 구원 받을 거라고 게기지 말자는 것이다. 아 말씀은 한 구절만 붙들어서 되는 것도 있지만 한 구절만 붙들어서 안 되는 것도 있다. 왜냐면 사실로 끝내지 말고 진실까지 가야 한다. 이 사실과 진실을 하나 더 이야기 한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다. 그 여자는 거짓된 짐승 같은 삶을 산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돌을 들어 치지고 한다. 바리새인과 40인이 돌을 들어 치자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땅에 글씨를 쓰신다. 일어나셔서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 그리고 또 글씨를 쓰신다. 사람들이 돌을 놓고 간다. 뭐라고 썼기에 제가 목사로서 얼마나 궁금하겠는가? 제가 성경을 뒤져도 안 나왔다. 이스라엘 가서 땅 바닥을 다 뒤져 보았다. 안 나온다. 다 지워졌고 어디다 쓰셨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찾다 찾다가 찾았다. 틀리면 나를 뭐라 하지 말고 여러분이 찾아라. 첫 번째 쓰신 것이 이 글씨였다 “간음을 했어도 간음이지만 여자를 보고 품어도 이미 마음에 죄인이다.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하신다. 저 여자는 재수 없어서 들킨 여자이구나. 니들은 재수 좋아서 안 들킨 남자이다. 그래서 돌을 놓고 다 간다. 그 때 예수님이 그 여자에게 이르되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을 하지 않았다. 그 과정이 좋지 않았다. 이게 설교할 때, 난감하다. 전 세계에 다 방출되는 말이라서 조심스럽다. 예수님은 절대 이렇게 말씀하지 않았다. “야, 이년아 나가 뒤져라.”하셨으면 그 여자는 죽었을지 모른다. 예수님은 뭐라고 하시냐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 하신다. 그게 진실이다. 왜냐면 주님이 사실로 이야기 하시면 여기에 구원을 받을 사람이 여기 하나도 없을 것이다.
 
나는 사울과 다윗을 보면 진짜 사울은 나쁜 사람이라고 여긴다. 다윗은 좋다. 그 다윗이 사울을 사랑하는데 사울은 다윗을 너무 괴롭힌다. 죽이려고 창을 던지고 심지어는 군사 3천을 데리고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닌다. 그냥 손을 안 댄다. 이런 사울을 왜 놔 두냐고 하면서 빨리 조치를 해주시지 하면서 기도했다. 하나님이 그 때에 그러셨다. “너는 사울은 좋아하고 다윗만 좋아하는구나.” 구하지 않는 그 사울도 나는 사랑한다고 하신다. 거기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그 다음 이야기는 충격 받았다. “너는 네가 다윗인 줄 아느냐?”하신다. 나는 당연히 다윗만 좋아하신 줄 알았다.
 
다윗은 평생 성령 충만함으로 문제는 전쟁마다 이겼고 그 이긴 노획물을 다 모아서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에 썼다. 지구상에서 지금까지 헌금을 가장 많이 헌신한 사람이 다윗이다. 가장 귀한 것을 드린 사람이 아브라함이며, 그래서 마태복음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한다. 그 두 사람이다.
 
솔직히 우리의 성전을 지을 때,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많은 부분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뒤에 오신 분들이 많이 있다. 우리의 헌신이 다윗 같이 못하다. 사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니까 내가 사랑
내가 사랑을 입었지 다윗만 사랑하시라면 누가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되겠는가?
 
하나님께서 최초로 아담과 하와를 만들었다. 딱 두 사람을 만들었는데 그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을 마귀가 붙든다. 두 명 중에 마귀는 하와를 붙든다. 그래서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다. 그 때 뱀이 꼬신 내용은 “네가 그것을 먹으면 하나님 같이 되리다.” 한다. 지구상에 나온 거짓말 중에 등수 안에 드는 거짓말이 그 거짓말 같다. 어떻게 인간이 과일 하나 먹고 하나님 같이 되냐고?? 그걸 믿는다. 그걸 먹는다. 그리고 신랑에게 준다. 먹으면 안 되는데 그런데 먹더라. 아담이 나쁜 줄 알았다. 나는 나쁜 줄 알았는데 아담이 그런데 ‘목사님 내가 나쁜 게 아니고 괜찮은 사람이다.’ 라고 말한다. 괜찮은 사람이 왜 먹어?? 하와가 딱 먹고 주는 순간 “나는 당신에게 갈 수 있어도 당신은 내게 올 수 없으니 내가 당신에게 가오리다.” 한다. 그래서 먹은 거라네...!!~~ 그렇게 훌륭한 게 남자이다. 여자들은 그것을 알아야 한다. 남자의 근본적으로 남자의 기본이다. 그냥 선악과를 먹을 정도이다. 그래서 가인과 아벨을 낳는다. 둘이 있는데 아벨은 하나님이 붙들고, 가인은 마귀가 붙든다. 그래서 가인이 동생 아우를 죽인다. 딱 보니까 그게 누군가 봤더니 이 시대의 바로 푸틴이다. 사람을 죽이냐고???
 
모세는 창세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창세기 4:8,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요한 1서 3:12,

12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마귀 역사의 응답이다. 가인은 자손 중에 라멕이 나온다. 완전히 이 지구상에 안 좋은 것을 가져왔는데,

*창세기 4:23,

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정신 차려서 보자. 오늘 날 같으면 완전 세상 사람이다. 그러면 가인은 믿는 사람인가? 그렇다. 전형적 믿는 사람이다. 왜 내가 이 이야기를 하냐면,
 
내가 신앙을 가지면 내 자식들은 불신자 될 확률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 가서 집에 자녀를 들여다보라.
-내 자신이 나보다 믿음이 좋다.
-내 수준은 된다.
-교회 안 나간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모른다. 지금 미국의 이민 간 1세대들 정말로 훌륭했다. 죽기 살기로 신앙생활을 하고 죽기 살기로 먹고 살아서 다 성공했다. 2세까지는 괜찮은데 3세 4세대는 믿음이 전무하다. 이것이 중요한지를 사람들은 먹고 사는 것에만 집중하고 모른다. 그래서 부탁한다. 내일 새벽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라. 사랑의교회는 대한민국의 있는 교회 중에 마지막까지 지킬 수 있는 교회이고 가장 깊은 곳 중에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무너져가도 마지막까지 있게 되는 교회이다. 이 좋은 사랑의 교회가 지금 주위를 돌아다보라. 30년이 지나고 40년이 지나서 특새를 계속 했을 때 지금 누가 나와 있겠는가? 지금 저기 졸고 있는 아이가 장로쯤 되어서 있을 것이다. 아니 진정으로 보여진다. 내일 새벽에는 아이와 딜을 하라. 오늘 은혜를 받았으니 돈 줄게 10만원 줄게 가자. 해서 데려오라. 일곱 번 해봐야 70만원이다. 괜찮다. 주라. 나중에 돈 달라고 하면 “줬잖아!”~ 하라. 어차피 줄 거 용돈 주고 믿음을 듣는 것을 안 하니까 왜 그런지 생각해 보니 엄마의 믿음이 염소 신앙 같지 않았는지, 잘 사는 것만 신경 쓰고 공부 잘하는 것만 신경 쓰지 않았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게 호세아 4:6절에 나온다.
 
*호세아 4:6,
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 가인이 하나님의 율법을 잊으니 하나님은 가인의 자손을 잊어버리고 세상 사람이 돼버렸다. 그렇다면 세세 다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노아 때 와보니까 세세의 자손중이 믿음의 자손이 된 자는 노아 한 명 밖에 없다. 모든 사람이 죄악에 관여할 때, 세세 자손들도 그 속에 다 들어가서 창세기에 6:8절에 노아 한 사람만 은혜를 입었다.

*창세기 6:8,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저 말씀이 안타까운 게,,,그렇다면 지금 내가
인자의 때와 노아의 때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노아 계열인가? 은혜 받은 노아 계열인가? 큰 도전이 되어야 한다. 제가 결정적인 약점이 말 주변이 없다. 아닌데요..... ㅋㅋㅋ
세 가지 이야기 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II. 성령 받은 사람에 대해서-성령 받은 증거가 있는지 점검하라. 

-성령 받는 증거를 갖고 사는데, 성령 받은 증거가 없으면 안 된다. 중요하다.
*고전 12:3,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기롯 유다는 한 번도 예수님을 “주여,” 라고 한 적이 없다. “랍비여, 랍비여,” 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물에 빠져 죽어도 “주님이여, 주님이여,” 한다. 양은 주여, 염소는~~ 이리는 사탄이여, 한다. 알 듯 모르듯 철저하게 자기 유익만 추구하고 사는 사람은 이리이고 예수님을 이용해 먹고 사는 사람은 염소이고 예수님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하는 자는 양이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야 한다. 이제 남은 인생, 완전히 예수님께 이용당하고 살기를 바란다. 예수님이 이용하는 사람은 다 잘 됐다. 마귀가 이용하는 사람은 신앙은 가롯 유다이고 예수님을 팔아서 죽게 하고 유다를 자살 시키다. 마귀에게 이용당하면 가는 길이 자살이다. 하나님에게 이용당하는 사람은 삶이 아름답다. 지금까지도.,,,
 
III. 하나님께 보은 하는 사람에 대해서-하나님께 보은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령 받은 양은 하나님께 보은 받은 사람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금 제일 똑똑한 것 같다. 작년과는 또 다르다. 일리가 있다는 게 내가 김형석 교수님께 여쭈었다. 교수님, 삶 속에서 가장 좋았던 시기가 언제이냐고 질문했더니 60-75세가 제일 좋았다. 라고 하셨다. 내가 딱 좋다. 내가 그 안에 있거든,,,그래서 지금 오 목사님과 비슷한데 제일 똑똑하다. 이 똑똑함 속에 성경이 보여 지는 것이 다르다.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이 감옥을 간다. 이게 왜 감옥을 갔는지 모르지만 이제 똑똑해지니까 알게 되더라. 그것을 빼 먹다가 들킨 것이다. 그런데 거기까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떡 맡은 관원장은 죽고 술 맡은 관원장은 살았는가? 그것을 알아낸 사람은 없다. 그것도 내가 알아냈다. 술 맡은 관원장은 꿈 해석을 했기에 살았고 떡 맡은 관원장은 꿈 해석을 못해서 죽었다. 나갈 때 요셉의 한 마디에 “나 좀 빼주라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라고 했다. 그런데 빼주어야 하는데 잊어버렸다. 잊어 버리고나서 1년 뒤에 바로가 꿈을 꾸고 고민을 할 때, 감방 동기를 생각한 것이다. 그때 술 맡은 동기가 요셉을 생각한 것이다. 그때 술 맡은 관원장이 이런 말을 한다.
 
*창세기 41:9,
9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오늘날 나의 허물을 추억하나이다.
-회개한다. 용서해주세요. 요셉을 등용한다. 그 요셉을 등용해서 형을 끝낸다. 가족을 불러들인다. 430년이 지나 국가가 탄생된다. 모세를 통해서 출애굽 한다.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 입성을 한다. 오늘날 이스라엘을 누가 탄생시켰느냐? 술 맡은 관원장이다. 지금 이스라엘은 저 술 맡은 관원장의 문중에 감사패를 해주어야 한다. 떡 맡은 관원장은 말을 않고 입을 막았다. 그것을 배은이라고 한다. 요셉을 등용해준 것을 보은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러분은 영적 고향은 충북 보은이 되어야 한다.
 
누가 천국을 가는가? 하나님에 대해 보은 하는 사람이 천국에 간다. 누가 지옥을 가는가? 하나님의 은혜에 배은하는 사람이 지옥을 간다. 그 보은의 극치는 성령으로 입은 사람이 마리아이다. 자기 오라비 나사로가 죽었다가 4일 만에 살아난다. 그 감격이다. 마르다는 정성껏 대접한다. 그런데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날 때 그 현장에 없다. 요즘으로 말하면 소년소녀 가장이었다. 부모님이 안 계시니까 내가 시집 갈 때 쓰려고 300데나리온을 모은다. 하루 품으로 20만원 잡으면 6000만원이다. 그 감동해서 예수님께 그 향료를 붓고 머리털로 씻어드린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가장 감격스러운 장면이 그 순간이다. 마음을 주님께 드리고 향료를 주님께 붓고 머리로 닦아드린다. 상상해 본다. 그런데 열 두 제자가 보고 구시렁댄다. 왜 감사를 안 하고 구시렁대는가? 알아냈다. 남자는 다른 남자에게 잘하는 꼴을 못 본다. 그때 유다가 보았다. “왜 그것을 팔아서 구제하지?” 한다.
 
여러분이 교회 결정 중에 굉장히 잘 한 결정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안 맞는 결정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가만히 계시는가? 너무 놀랍다. 왜 예수님은 돌아가시는데 염(殮)을 할 수 없는 게 부활을 하시기 때문이다. 산채로 장례를 치르는 것이다. 마리아는 옥합을 깼지만 그것은 주님의 장례이다. 염을 하는 것이다. 그걸 예수님은 알았다. 마리아는 모르고 했다. 성령의 감동으로 한 것이다. 예수님은 그 누구에게도 안 하신 말씀을 하신다.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의 행한 일을 기념하게 하라.” 그게 주님께 한 보은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름다운 것은 성령의 감동이다. 오늘 이 자리에는 염소 아니면 앙인데 염소가 이 자리에 나오기는 어렵다. 내가 양이라면 사실과 진실 속에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사실인지, 하나님의 은혜에 보은하고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진실 속에 하나님께 보은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요약
1. 항상 주님께 초점을 맞추어 기도하면 하나님은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열정과 상한 마음과 하나님께 부합하는 기도와 경외하는 마음으로 불굴의 용기를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2. 큰아들은 집을 떠나지 않고 형식상으로는 아버지를 섬겼으나 그것은 사회적인 체면이나 도덕적인 의무감 때문이었다. 또한 형제애가 부족한 그는 돌아온 동생에게 불쾌한 마음을 가진 물질주의자로, 돌아온 동생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불평하며 마음으로부터 아버지를 떠났다. 형식적인 효자, 형식적인 종교인들이 바로 외식하는 자들이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격렬한 말로 저주하셨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실과 진실 속에 어디에 있는지를 깨달아서 주님 앞에 정직하게 헌신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고 자녀들부터 제대로 세워가야 한다. 하나님은 옥합을 깨뜨린 여인처럼 가장 귀한 것을 바치는 자를 보시며 자신이 진실한 신앙인인지를 잘 되돌아 보아야 한다. 진실 된 자로 살아서 걸어 다니는 교회로서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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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4월 18일 (750)



1. 경기 회복 속도가 더뎌지는 가운데 물가만 치솟는 현상으로, 스태그플레이션보다는 경기 침체 강도가 약할 때 쓰는 말은?

① 더블 딥 ② 하드 랜딩
③ 디플레이션 ④ 슬로플레이션

2. 부동산 관련 세금은 크게 ‘거래세’와 ‘보유세’로 나눌 수 있다. 다음 중 부동산 거래세에 해당하는 것은?

① 양도소득세 ② 재산세
③ 종합부동산세 ④ 부가가치세

3.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키이우, 흐리우냐에서 공통적으로 연상되는 국가는?

① 러시아 ② 우크라이나
③ 인도 ④ 시리아

4. 불황기에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심리적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제품을 많이 구입하는 현상은?

① 부의 효과 ② 레버리지 효과
③ 립스틱 효과 ④ 피구 효과

5. 물가 하락에 따른 자산의 실질가치 상승이 소비를 증가시키는 효과를 뜻하는 말은?

① 부의 효과 ② 레버리지 효과
③ 립스틱 효과 ④ 피구 효과

6. 야구의 ‘10루타’에서 유래한 말로 투자자에게 10배의 수익률을 안겨준 주식 종목을 가리키는 말은?

① 어닝 서프라이즈 ② 택스 헤이븐
③ 로스 컷 ④ 텐 배거

7. 세금 부담을 줄일 수 있거나 아예 회피할 수 있는 국가 또는 지역을 뜻하는 말은?

① 어닝 서프라이즈 ② 택스 헤이븐
③ 로스 컷 ④ 텐 배거

8. 손질을 마친 식재료와 적절한 양의 양념, 부재료 등을 한 세트로 구성해 간단하게 조리해 먹을 수 있도록 한 상품은?

① 로스리더 ② 밸류체인
③ 밀키트 ④ 언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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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읽는 세상] 하이브, BTS 매출 의존도 낮추고 게임사업 키운다



K팝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소속사 하이브가 게임 사업을 분사해 본격적인 육성에 나선다. BTS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기존 음악 레이블 사업에서 게임, 대체불가능토큰(NFT), 메타버스 등 새로운 사업으로 수익 모델을 다각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된다.美에 법인 신설해 사업양도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하이브는 미국 내 법인을 신설하고 이 법인에 게임 개발 및 퍼블리싱 사업을 양도하기로 했다. 신설법인 이름은 현 게임사업부의 조직명을 딴 ‘하이브IM’이 유력하다. 크래프톤 넷마블 엔씨소프트 등 국내외 대형 게임사와 파트너십을 맺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미국에 합작사를 설립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하이브는 앞서 올 상반기 두나무와 미국에 NFT 합작법인을 설립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회사 신사업의 주축이 될 법인을 모두 국내가 아니라 미국에 두기로 하면서 하이브가 글로벌 시장에서 미래 콘텐츠 사업의 큰 판을 짜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이브는 2019년 리듬 게임 개발사인 수퍼브를 인수해 100% 자회사로 편입하면서 게임 사업에 발을 들였다. 지난해엔 이 회사를 흡수합병해 자사 내 게임사업 부문과 합쳐 규모를 키웠고, 최근 하이브IM이란 신설 조직으로 재편했다. 하이브IM은 70~80명 규모의 게임 개발 인력을 갖추고 있다. 2019년 2대 주주인 넷마블과 협업해 ‘BTS월드’를 출시했고 지난해 2월엔 BTS의 캐릭터를 활용한 ‘리듬하이브’ 등의 게임을 내놓았다. 하지만 현재까지 내놓은 게임의 성과는 기대 이하였다. 게임 부문 매출도 수백억원대 수준이다.“게임은 하이브 플랫폼 핵심”업계에선 하이브가 이번 분사를 계기로 게임 사업을 본격 육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이브는 2020년 10월 상장 당시부터 연예기획사가 아니라 플랫폼 기업으로 회사를 소개해왔다. 아티스트를 육성하고 데뷔시켜 음반을 파는 구조에서 탈피해 팬과 꾸준히 소통하는 플랫폼을 구축,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이브는 이 같은 구상을 현실화할 핵심 콘텐츠 중 하나로 게임을 선택해 3년 전부터 꾸준히 준비해왔다. 지난해에는 대형 게임사 넥슨코리아 대표를 지낸 박지원 전 대표를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해 이 같은 움직임에 힘을 실었다.

BTS에 대한 매출 의존도를 낮추는 것도 게임 분사를 서둘러 결정한 배경으로 꼽힌다. BTS와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가 소속된 빅히트뮤직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270억원으로, 하이브 전체 영업이익(1903억원)의 약 66%를 차지하고 있다. BTS의 최연장자인 진은 1992년생으로, 현행 병역법상 올해 말까지 군에 입대해야 한다. BTS에 대한 병역특례 법안을 국회에서 논의 중이지만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아 불확실성이 크다.

게임은 BTS 등 소속 아티스트의 지식재산권(IP)을 직접 활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로, ‘팬심’이 수익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팬덤 투 언(fandom to earn)’ 측면에서 핵심 요소로 꼽힌다. 하이브는 최근 투자자 대상 콘퍼런스콜에서도 사내 게임 부문 인력의 역량을 소개하고 게임 사업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국내 증권사의 하이브 담당 애널리스트는 “BTS의 곡과 캐릭터를 단순히 게임에 차용하는 수준이 아니라 메타버스 내에서 선호하는 아티스트와 직접 접촉할 수 있는 게임이 개발된다면 게임 사업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현금 창출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준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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