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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절한-옛 어른의 "아내 사랑"

   

 

 

옛 사람들은 남존여비를 내세우고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 번도 안하고 살았다고 비판하지만

아내사랑의 깊이가 이에서 더할 수 있을까.

‘사랑한다.’ 소리를 입에 달고 살다가도

이혼하기를 손바닥 뒤집듯 하는

요즘 사람들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채제공선생 은 영조대의 남인,

 

우의정에 남인 채제공 발탁, 권력 재편 승부수

 

 

특히 淸南계열의 지도자로

사도세자의 伸寃 등 자기정파의 주장을 충실히 지키면서

정조의 탕평책을 추진한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정조의 세손시절부터 그를 보좌해오면서

다수파인 老論 辟派의 견제를 받아 관직생활이 평탄치 못했지만

영조와 정조대에 걸친 기간 중 정치,·경제,·사회, 문화·등

각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겼고,

 

 

특히 수원성곽 축성에 많은 공을 세워

정조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벼슬이 영의정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白紵行(백저행)

 

                         채 제공

 

皎皎白紵白如雪(교교백저백여설)

云是家人在時物(운시가인재시물)

家人辛勤爲郞厝(가인신근위랑조)

要襋未了人先歿(요극미료인선몰)

 

 

새하얀 모시 베 백설처럼 하얗구나,

당신이 살아있을 때 남긴 물건

사랑하는 남편 위해 모시 한 필 끊더니

바느질 미처 못 마치고 당신이 먼저 떠났구려,

 

 

 

舊篋重開老姆泣(구협중개노모읍)

誰其代斲婢手拙(수기대착비수졸)

全幅已經刀尺裁(전폭기경도척재)

數行尙留針線跡(수행상류침선적)

 

 

 

할멈이 울면서 오래된 상자를 열어

아씨가 옷을 짓다 돌아가셨으니

누가 이 솜씨를 따를까 하네,

모시 베 전폭이 벌써 마름질은 끝나 있고

바느질하던 자욱 여기저기 남아 있네,

 

 

 

朝來試拂空房裏(조래시불공방리)

怳疑更見君顔色( 의갱견군안색)

憶昔君在窓前縫(억석군재창전봉)

安知不見今朝着(안지불견금조착)

 

 

이른 아침 빈방에서 모시옷을 입으니

당신의 얼굴 어렴풋이 다시 보는 듯하오.

당신이 창 앞에서 바느질하던 모습을 생각하니

내가 이 옷 입은 것을 당신이 못 볼 줄 어찌 알았겠소.

  

 

物微猶爲吾所惜(물미유위오소석)

此後那從君手得(차후나종군수득)

誰能傳語黃泉下(수능전어황천하)

爲說穩稱郞身無罅隙(위설은칭랑신무하격)

 

  

이 옷이 하찮아도 당신의 사랑이 묻어 있으니

이후에는 언제 당신이 바느질한 옷을 입을 수 있겠소

누가 황천에 가서 내 아내에게 말을 전해주오

당신이 지은 모시옷 내게 너무 잘 맞는다고.

 

                      

  둘조  襋 옷깃극  斲 마름질할 착 

    罅 틈하 篋 상자협 姆 여스승모 怳 멍할 황

   

 

새하얀 모시 베 백설처럼 하얗구나,

당신이 살아있을 때 남긴 물건

사랑하는 남편 위해 모시 한 필 끊더니

바느질 미처 못 마치고 당신이 먼저 떠났구려,

 

 

할멈이 울면서 오래된 상자를 열어

아씨가 옷을 짓다 돌아가셨으니 누가 이 솜씨를 따를까 하네,

모시 베 전폭이 벌써 마름질은 끝나 있고

바느질하던 자욱 여기저기 남아 있네,

 

 

이른 아침 빈방에서 모시옷을 입으니

당신의 얼굴 어렴풋이 다시 보는 듯하오.

당신이 창 앞에서 바느질하던 모습을 생각하니

내가 이 옷 입은 것을 당신이 못 볼 줄 어찌 알았겠소.

 

 

이 옷이 하찮아도 당신의 사랑이 묻어 있으니

이후에는 언제 당신이 바느질한 옷을 입을 수 있겠소

누가 황천에 가서 내 아내에게 말을 전해주오

당신이 지은 모시옷 내게 너무 잘 맞는다고.

 

 

 

조선 후기의 문신인 채제공(蔡濟恭)이 지은 백저행(白紵行)입니다.

백저행(白紵行)에서 백저(白苧)는

흰모시 베를, 행(行)은 시체(詩體)의 한 가지입니다.

 

 

하니 겉보기엔 모시옷을 주제로 한 시(詩)로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내용면을 음미해보면 죽은 아내를 애도하는 도망시(悼亡詩)입니다.

어쩜 작자가 상상력으로 모시옷을 상정하고

부부의 애틋한 정을 그린 것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모시 한 필을 끊어 남편 옷을 마름질하고 바느질하다

그 옷을 다 짓지 못하고 이승을 떠났으니 얼마나 애통한 일이냐?

그 옷을 완성하여 입으면서 아내의 정성과 그리움을 떠올리면서

안타까워하는 선비의 인간성에 고개가 숙여진다.

 

 

 

끝 구절에는 아내와 내세에 만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다른 사람 편에 ‘옷이 잘 맞는다.’고 전해달라는 그 마음은

그 어느 누구도 들어주지 않더라도

벌써 남편의 마음은 전해지고도 남음이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오늘날 현대인의 부부생활에도 한 번 돌아보게 한다.

 

 

          울진 담양전씨 열녀비각                                                                                                                                   

 

※ 채제공(蔡濟恭)은

 

청렴한 삶으로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정치적 탄압으로 귀양 떠난 사이 손수 베옷 한 벌 지어놓고,

31세에 요절한 아내 오씨 부인을 그리며...

지은 시로 죽은 아내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이 짧고 명료하지만 정말 절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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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碧鳥逾白 /杜甫

 

江碧鳥逾白

山靑花欲然

今春看又過

何日是歸年

 

강이 파래서 새 더욱 희게 보이고

산이 푸르러 꽃은 불타는 듯하다

올 봄 또한 보일 듯 지나가버리니

어느 날이 돌아갈 해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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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고 새우는데 / 추사 김정희

 
放處西川十樣錦     방처서천십양금
收時明月印前溪     수시명월인전계
 
收放兩非還兩是     수방양비환양시 
一任花開與鳥啼     일임화개여조제
 
 
펼쳐 두면 서천의 고운 비단 무늬요
거둬 둘 땐 밝은 달이 앞 시내에 떠 있네.
 
펼쳐 두건 거둬 두건 둘 다 옳거나 그르거나  
꽃피고 새우는데 맡겨 두노라.

 

 

<선시 감상>

 

추사 김정희는 재가자로 불도를 깊이 닦아 심오한 이치를 터득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초의(草衣)선사나 백파긍선(白坡亘璇)과도 절친한 교분을

나누면서도 한 때 초의와 백파의 선의 논쟁에도 끼어들기도 하였다.

초의와 백파가 각각 <선문사변만어>와 <선문수경>을 지어 논쟁을 벌였을 때

추사는 초의의 의견을 지지하며 백파를 공박한 일도 있었다.

펼치고 거둔다는 것은 본체와 작용을 두고 쓰는 말이다.

 “고요히 앉은 곳에 차는 반쯤 끓었고 향은 처음 꽂았는데 미묘한 작용

일어나니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靜坐處茶半香初 妙用時水流花開)”는

황산곡의 시를 추사는 즐겨 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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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無名花(무명화) / 이름없는 꽃 - 大谷 成運에게 부친다.

                                                   남명  曺植

      一年消息管多時 (일년소식관다시)

      名與香埋世不知
      (명여향매세불지)
      摠是名香爲己累 (총시명향위기누)
      洛陽曾得機人歸 (낙양증득기인귀

      한 해의 소식을 자주 들어 보았지만
      이름과 향기는 세상에 묻혀 알지 못한다네.
      이름과 향기는 본디 자신에게 허물이 되는 것
      서울에서 일찍이 몇 사람이나 돌아올 수 있었던가?
       

    성운(成運) 1497-1579 :
    字 건숙(健叔), 號 대곡(大谷) 창녕인(昌寧人)으로
    "대곡집(大谷集)"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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