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에버 설교(주후 22023년 09월 20일)
제목: "인생암호 C를 알고 온 천하에 알리자"
말씀: 고린도전서 15:1-4
설교자: 이선복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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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1-4,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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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개인 비밀번호를 갖고 있습니다. 은행 계좌나 또 카드, 집 출입문, 스마트폰 등에 각자의 개인 비밀번호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설정이 가능하고 때로 잊어버리게 될 때 변경도 가능한 것입니다.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반대로 오늘 인생 암호라고 하는 것은 개별적으로 설정과 또 변경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인생 암호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정해놓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으로 그것을 계시하여 알게 해 주시고 그 인생 암호를 온 천하 만민에게 알릴 사명을 책무를 우리에게 위임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인생 암호 C를 알게 될 때, 어떤 일이 있느냐? 인생은 B로 시작하여 D로 끝난다. 이 샤르트르의 말입니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인 이 샤르트르의 이 어록에서 제가 오늘의 설교 하나의 통찰을 얻게 됐는데요. 이 B와 D는 버스(birth) 출생 또 데스(death) 죽음 이 사이에 C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C라고 하는 인생 암호는 도대체 무엇일까? 보통 일반적으로는 초이스(choice)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라고 많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우리 인생의 근본 문제 중에 하나인 이 사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죠. 사망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인생 암호는 무엇일까? 질문해보는 것입니다. 이 인생 암호를 알게 될 때 나는 누구이며, 내가 어디서 봐서 어디로 가는지 내 존재의 비밀을 알게 되고 삶의 이유와 목적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인생의 방황과 공허함이 사라지게 되고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의 두려움이 사라지고 밝고 소망이 충만한 죽음 관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인생 암호를 모르거나 또 그것을 듣고도 거부하게 될 때는 언더 컬스(under the curse) 저주 아래에 스스로 자청하여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주 아래 평생 살다가 죽어서도 저주 아래에 있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내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신명기 28장 19절 말씀처럼 그렇습니다.
 
*신명기 28:19,
19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라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요한계시록 20장 15절의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20:15,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인생 암호를 모르거나 거부할 때, 참으로 이런 심각한 결과가 초래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인생 암호C가 무엇인지 관심을 우리가 적극적으로 진지하게 가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저는 인생 암호C는 어떤 상대적인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절대적인 진리,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지고 또 인생에 근본 문제들이 해결되어지는 그런 근본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진리를 알게 되면 자유함이 있다는 것이죠.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요한복음 8장 32절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요한복음 8:32,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를 체험하여 경험적으로 알게 될 때, 그 진리가 내 인생을 근본적으로 자유롭게 하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8장 36절에서
 
*요한복음 8:36,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이 자유 무엇으로부터 자유를 말합니까?
-첫째는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리고 죄의 결과, 죄의 삭은 사망이요, 사망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또한 최후 심판, 형벌과 괴로움과 저주로부터의 자유이죠.
-또 마귀 사탄으로부터의 자유인 것입니다.
-또한 자아, 우리 안에 있는 자아와 탐욕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또 공포,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인 것이죠.
 
오늘 제가 나누는 이 말씀은 영어 알파벳 A-J까지 10가지 알파벳을 통해서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나가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 먼저 A는 바로 이 아담(Adam)의 약자인 것입니다. 아담은 일반 명사로 사람이라고도 말하고 또 인류의 시조 아담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첫 사람 하나님의 형상으로 모양대로 지음 받은 사람입니다.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하나님께서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그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과의 언약의 당사자, 대표자였던 것입니다. 우리 모든 전 인류를 대표한 중요한 책임자였던 것이죠. 불행스럽게도 아담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여해 주신 선택권, 초이스 라이트, 선택권, 자유 의지를 오용, 잘못 사용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그 생명의 언약을 어기고 배반의 길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께 반역을 하게 된 것이죠. 그 결과는 바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된 것이고 사망에 들어온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은 우리 인생에게 어떻게 사망이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5:12,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언약 당사자, 대표자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 그 한 사람의 불순종과 배반은 그 한 사람의 인생만 참 사망하고 저주에 이르게 된 것이 아니라, 전 인류가 모든 사람이 함께 죄를 짓게 되고 또한 사망이 초래되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전 15장 22절에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비록 살아 있지만 인생 아무를 만나지 못한 인생은 아담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사실은 죽은 상태로 태어나는 것이죠.
 
*고전 15:22,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이 A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는데요. 단수를 가르칠 때 A라는 단어를 사용하죠. 우리 인생의 단 회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직 한 번뿐인 인생 그 누구도 인생을 두 번, 세 번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한 번뿐인 인생, 속히 지나가리라.” 라고 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그 언약을 어기고 배반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운 음성으로 아담을 찾습니다. 에덴동산 수풀에 숨어 있었던 아담을 향하여 아담 가 어디 있느냐? 웨어라유(Where are you)?라고 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니라 내가 왜 지금 거기 있느냐? 어떻게 그렇게 언약을 배반하게 되었는지, 하나님께서 아담의 그 말씀 말을 직접 듣고 싶었던 것이죠. 그래서 우리 인생의 영적인 현 주소는 두 가지예요. 위아웃 갓(without God) 또는 위드 갓(with God).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이냐, 아니면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이냐, 여러분의 현재 영적인 주소는 어디입니까? 하나님과 함께 살고 계십니까? 또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와 사귄 가운데 계십니까?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이 B는 하는 단어는 버스(Birth) 출생의 약자인데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우리가 생일 때마다 축복합니다. 서로를 축복합니다. 당신의 삶속에서 그 사랑받고 있지요. 참으로 사랑받고 행복해야 될 우리 인생인데,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한시도 멈추지 않고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튜브의 영상을 보게 되면 어느 분만실에서 산모가 아이를 출산하는데, 그 아이가 마치 로켓 미사일처럼 발사되어져서 그 분만실 창을 뚫고 날아가는 것이죠. 날아가는 순간 그 영아기에서 유아기, 또 아동기를 지나서 청소년 청년기를 점점 변모됩니다. 그러다가 장년기에 그리고 늙은 노년기에 들어가고, 마지막에 쇠약해진 모습으로 그 미사일처럼 날아가는 로켓이 어디에 들어가느냐? 공동묘지의 무덤으로 콱! 들어가는 그런 아주 흥미로운 영상이 있는데, 여러분이 유튜브에 찾아보시면 볼 수 있겠습니다. 그처럼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한시도 멈추지 않고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야고보서 4장 14절에는
 
*야고보서 4:14,
14 내일 이를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라고 했습니다. 참 우리가 주변에 죽음을 통하여서 그렇구나! 바로 지난주까지 어제까지 보았던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고 그런 친근했던 분들이 바로 한순간 사망에 이르게 되고, 또 장례 이후에 그 모습을 도무지 다시 볼 수 없는 없어진 안개와 같은 그런 우리 인생의 허망함을 보게 되죠. 전도서 3장 1절에는
 
*전도서 3:1,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라고 했습니다. 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죽을 때는 순서가 없이 예측이 불가한 특징이 있죠. 이 출생 birth보다 더 중요한 것은 리벌스(rebirth)인 것입니다. 이 중생, 다시 거듭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어느 청교도 전도자는 말하기를, 사람이 두 번 태어나면 한 번만 죽고, 한 번만 태어나면 두 번 죽는다. 라고 했습니다. 본 원스 다이 트와이스 본 트와이스 다이 원스(If you are born twice, you die only once; if you are born once, you die twice)라고 말했습니다. 참 기가 막힌 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한 분 태어난 상태에 계십니까? 두 번 태어남을 여러분 경험하셨습니까? 여러분 만약에 두 번 태어나셨으면 단지 한 번만 죽게 된다는 사실이죠. 리버스 중생이라고 하는 말은 다른 말로 본 어겐(burn again)이라고 말합니다. 본 어게인, 다시 나다 본 어게인, 중생의 원래 이 성경적인 의미는 위로부터 나다 프럼 어버브(from above)라고 하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그리고 뒤에서 주님 말씀하시기를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이 니고데모가 사람이 어떻게 나이가 들어서 거듭날 수 있겠느냐고 예수님께 질문했을 때, 예수님께서 답을 주시기를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성령께서 우리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 일을 하신다는 것이죠. 어떻게? 성령의 사역은 우리를 씻어주시는 사역인 것입니다. 이 물이라고 하는 것은 씻음의 의미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중생의 씻음, 성령의 새롭게 함을 받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 하였습니다.
 
오늘 이 중생의 씻음, 성령의 새롭게 함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각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자기 자신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날마다 사모하는 그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니고데모에게 예수님 일침을 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거듭나야 하겠다.”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위로부터 나야 되겠다.(You must all be born from above).
 
세 번째는 그다음 죽음에 대해서 D. 데스(death)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히브리서 9:27,
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세 가지 죽음이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태어나서 하나님 없이 사는 상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를 가리켜 영적인 죽음이다. 라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에베소서 2:1,
1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바로 허물과 죄 가운데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단절된 상태를 죽었던 죽음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우리가 과거에 그런 상태에 있었었고요. 그러다가 우리가 예수를 믿거나 믿지 않거나 모든 사람은 육체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데 바로 육체의 죽음은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것입니다. 이 육체는 영원히 거주하는 장막인데, 그 육신의 장막을 영원히 떠나가게 될 때, 영과 육이 분리되는 그 순간을 죽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참으로 피해야 될 우리가 벗어나야 될 구원받아야 될 죽음은 이 세 번째 심판이라는 것인데요. 지옥 불 못, 요한계시록에서는 그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말하는데 이 둘째 사망으로부터 건짐 받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죽음의 확실성은 네 가지인데요. 예외 없이 간다는 것이고 순서 없이 또 혼자 빈손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금주가
 
내 인생의 마지막 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항시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죽음의 역설이 있습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가 있다. 라고 우리 주님께서 사데 교회를 향하여서 일침을 가하시죠. 반면에 복음을 위하여서 정말 죽을 고생을 하면서 살았던 사도 바울은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있고 이런 죽음에는 역설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정말 내가 살아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오늘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인생 암호를 깨달은 자는 이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게 되는데요. 사도바울은 인생 암호를 그가 경험한 이후에 죽는 것도 유익하다. 훨씬 더 좋은 일이라고 이런 급진적인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고백인 것이죠. 좀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될 만큼 아주 급진적입니다. 죽는 것이 훨씬 더 좋다는 말을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이 차원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고린도후서 5장 8절에서는
 
*고린도후서 5:8,
8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즉 죽어서 주와 함께 있는 것이 내가 정말 원하는 바라.
-고 바울은 진정성 있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55절에서
*고린도전서 15:55,
사망한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은 내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 모든 인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그 사망 원수를 향하여서 이렇게 호통을 치고 있습니다. 이런 영적인 기백이 정말 죽음의 상황이 우리에게 불현듯 다가올지라도 “사망한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여 주는 나의 생명이시오 나의 구원의 반석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사망 앞에서도 조금도 쫄지 않고 정말 기백 있고 담대함이 있는 포에버 어르신들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지금도 살아계신 우리 김소엽 권사님 시인 계십니다. 그분의 죽음의 창가라는 시를 저는 매우 좋아하는데요. 좀 발췌해서 나누겠습니다.
 
※“죽음은 생의 종말이며 삶의 끝이라고 말하지 마시오. 죽음은 가장 진지한 삶의 표현, 가장 경건한 삶의 완성인 것을, 하루를 잘 사는 길이 잘 죽는 길이오 순간순간을 잘 사는 길이 인생을 잘 사는 길인 것을, 죽음은 또 하나의 신비한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 어느 날 그분이 부르시면 영혼의 껍질을 벗고 나비처럼 날아서 아름답고 깨끗한 영혼으로 황홀한 첫날 밤 위에 그분 앞에 가야겠네. 설레이는 마음으로 신혼여행 떠나야겠네. -김소엽 권사님 시인-
 
-참으로 이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고 언젠가 다가올 나의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참 아름답습니까? 설레이는 마음으로 신혼여행 떠나야겠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들의 죽음이라는 것이죠. 우리 죽음은 정말 사별 그 자체는 슬픔이고, 비극이지만 영적으로 우리 인생의 전 과정을 봤을 때는 최절정에 달하는 가장 최고의 큰 희락의 순간이 바로 죽음의 순간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신혼여행 떠나야겠네.”
 
그러나 이 비밀을 알지 못하는 세상은 어리석게도 참으로 헛된 것들을 인생 암호라고 붙잡고 살아갑니다. 첫 번째 이 c. 컴폴드 세상 모든 사람들은 안락함을 추구하지요. 참 안락함을 추구하는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어떤 절대적인 행복이 있거나 또 우리 인생에 이 사망의 문제를 풀어줄 수 있는 능력이 없음에도 그저 좋은 집 한 채 얻기 위해서 인생의 20대, 30대, 40대 죽을 고생을 하고 또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요즘 영끌이리라 그래가지고 영혼까지도 끌어서 모든 있는 돈 없는 돈 다 모으고 대출받아서 아파트 하나 사는 것 요즘 젊은이들의 관심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롯데캐슬, 얻는 것 롯데캐슬 대표적이죠. 화려하고 아주 고급진 주택에 살고 싶어 하는 욕망들이 누구에게나 있죠. 또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돈을 사랑합니다. 더 많은 재물을 모으고자 합니다. 코인 캐시 비트코인에 미친 사람들도 있고요. 캐시를 탐내는 사람들 부를 탐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경고합니다. 누가복음 12장 15절에 삶과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누가복음 12:15,
15 삶과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아니하니라.
-넉넉한 데 있지 않다고 비록 가난하고 궁핍할지라도 생명은 거기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참 만족을 재물과 관계없이 누릴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세상은 돈과 더불어서 섹스에 미쳐 있습니다. 참으로 오늘날은 더구나 얼마나 이 성적으로 문란하고 음란한지요. 요즘 우리 자녀들이 얼마나 위험한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이 혼전 성관계가 만연해 있습니다. 가늠이 너무 많이 참 음풍이 온 세상에 가득한 것을 보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극단적 동성애를 주장하고, 또 동성애와 동성혼 합법화를 ‘차별금지법’이라고 하는 그런 법으로 제정하고자 지금 애를 쓰고 있는 의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반드시 그 간음과 음행과 동성에 관해서 하나님이 진노하실 것이라고 히브리서 13장 4절에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 세상에 인생 암호라고 붙잡는 권력을 얻고, 명예를 얻는데 파워와 포지션 암호를 얻는데 내년 4월에 국회의원 선거 또 장관 대통령 어떤 장 자리를 많은 사람들이 참 그렇게 갈망하고 욕구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한 때 다 지나가는 것이지 때로는 1년, 4년, 5년 만에 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나가는 것이죠. 그밖에 종교에 종교에서 인생 암호를 찾으려고 하는 인생들이 많습니다. 이처럼 석가모니 또 알라 마호메트 공자의 컴프셔서, 이런 정말 인생 암호 C에 해당하는 것은 여기 공교롭게도 공자인데요. 참 그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죠. 그 밖에도 자동차에 더 좋은 고급 진 차를 얻고자, 또 핸드폰, 때로는 커피 샤넬, 명품, 컴퓨터 또 시가렛 담배, 술 이런 곳에서 인생의 어떤 의미와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헤아려 해서 무익한 것이다. 내 인생의 삶의 문제와 죽음의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는 헛된 거짓된 암호인 것입니다.
 
인생 암호 C는 바로 인 크라이스트(In Crist)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씨는 크라이스트, 인 크리스토 라고 하는 이 헬라어는 신약 성경에 164회나 반복되는 매우 중요한 말씀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
 
*고린도전서 15:22,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고린도후서 5:17,
17 그런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어떤 인생도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면은 새 것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죠. 인생 암모 C는 Christ died for our since!.... 갈라디아 3장 13절에
*갈라디아 3:13,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록된 바 나무 위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으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2년 전에 어느 대전의 장례식장에서 만났던 어느 아버님입니다. 부인의 죽음 을 지켜보면서 믿지 않았던 어떤 아버님이신데 식사하는 그 접객 실에서 저에게 오셔가지고 “목사님 왜 하필 예수님은 십자가의 나무에 달려 죽었습니까?” 그런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분이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인데 어떻게 성경에 가장 중요한 그런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질문을 하셨는가? 제가 ‘아버님 정말 중요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갈라디아서 3장 13절 말씀을 읽어드리고 제가 설명해 드렸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특별히 나무에 달려 죽으신 것은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기록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율법의 모든 저주에서 우리를 속령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모든 죗값을 다 지불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왜 나무에 달리셨느냐? 신명기 21장 23절에
 
*신명기 21:23,
23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다.
-라고 하는 그런 구약의 율법의 말씀 그대로 성취하시기 위하여서 주님이 나무 위에 달려 죽으신 것이죠. 고전 15장 3절 4절에는
*고전 15:3-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인생 암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방언에 관한 여러 가지 혼란 가운데 그가 가르치기를, 사람이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1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낫다. 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청년 시절에 그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한다는 게 무슨 말일까? 묵상하는데, 바로 이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이 다섯 단어가 결합된 이 진리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 이것이 바로 복음 중에 복음인 것이죠. 이것을 깨닫고 정말 고백하고 선포하게 될 때, 방언 일만 마디 하는 것보다도 훨씬 우리 성도들에게, 또 교회에게 덕을 세우고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죽으신 후에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라고 성경은 이 역사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고린도전서 1:18,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고백하기를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이 깊어질수록 세상의 자랑이 아니라, 이생의 자랑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고백하고 자랑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늘 기억하면서 우리가 감격하여 찬송 올려드릴 때,
 
♪영 죽을 나를 살리려 그 영광 떠나서 그 부끄러운 십자가 날 위해 지셨네 날 위해 지셨네. 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 우리의 죄를 속하시려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어린 양 보혈을 흘렸네. 주의 은혜 우리의 죄를 다 씻었네. 주의 은혜 우리의 죄를 다 씻었네.♩!~~
-일평생 이 십자가 은혜가 우리 심령 가운데 늘 북받쳐서 눈물로 경비하고 감격하는 그런 예배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인생암호C, 더 크로스 오브 크라이스트(The Cross of the Christ!) “율법을 따라 그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 즉 삶이 없느니라.” 왜 예수님께서 나무에 달려 못 박혀 죽으셔야했는가? 그저 나무에 달려서 목을 매달아서 죽어서는 속제 제사가 이루어질 수 없어요. 왜? 반드시 피 흘림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사람의 생명은 피에 있다. 라고 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17:11,
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그로 피 흘림을 통하여 모든 사람의 피가 아니라, 의로운 사람, 죄가 없는 사람의 피 흘림이 있어야 되는 것이죠. 바로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으로서 그분의 피 흘림으로 인하여 우리가 사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1장 7절입니다.
 
*요한일서 1:7b,
7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오.
-요한일서 1장 7절에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피 흘리심과 그의 부활을 믿는 자는,
 
*요한복음 5:24,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완전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진 바 근본적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더 이상 그리스도 안에서는 사망이 없는 것이오. 우리의 현재는 이 영생을, 하나님과의 그 사임을 현재적으로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미래에는 결코 죄로 인한 끔찍한 심판이 없다는 사실 이 기쁜 소식을 예수님이 선포하십니다. 요한복음 6장 40절에
 
*요한복음 6:40,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이 영생은 현재적이면서도 동시에 종말론적으로 마지막 날에 우리의 흙으로 돌아간 육체까지도 다시 살리시겠다고 썩지 않고 강한 몸으로 영광스러움 신령한 몸으로, 우리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첫 열매와 똑같은 그런 몸으로 다시 살리리라. 이것이 바로 이미 우리에게 허락되어진 영생 안에 포함되어져 있는 미래의 소망인 것이죠. 요한일서 5장 11, 12절에는
 
*요한일서 5:11-12,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생명공학자들도 이 생명을 정의하지 못하고, 또 법의학자들도 사망을 근본적으로는 정의를 못합니다. 생명 공학자들은 그저 사람이 물질 대사를 하고 외부 내부적으로 움직이고 생식 기능이 가능하고 외부 자극에 반응을 하고 어떠한 생장하며 또 항상성을 유지하고 에너지와 물질을 필요로 하는 어떤 상태를 가리켜서 살아있다 생명이 있다. 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생명 그 자체를 정의 못합니다. 또 법의학자들은 이 심장 또 폐와 뇌, 생명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장기, 심장, 폐, 뇌가 모두 죽는 것을 심폐사(心肺死)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심폐사가 될 때 그 각자의 개체의 사망 시점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법의학자 또 생명공학자들이 하는 말이요. 성경은 절대적으로 사람이 살았다 죽었다 하는 것을 그 기준을 아들에게다 두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아들의 심령 가운데 참으로 모시고 있는 자는 생명이 있는 것이고 마음 가운데 그리스도가 없는 자는 죽은 자인 것입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친밀한 관계 가운데서 경험하여 그분을 알아가는 거 영원한 사임 그 자체가 영생의 본질인 것이죠.
 
인생 암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한 자는 E,F,G,H,I,J 여기까지 이어지는데 참 놀라운 죽음 이후 사후에 놀라운 영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에버 라스팅 파들(Ever lasting Father) 영존하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대면하여 보게 될 것이요. 이터널 패밀리(Eternal family) 우리 앞서간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과 더불어서 우리 모두는 영원한 가족을 이루어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갓 홈(God home), 하나님의 집에서 글로리어스 헤븐(Glorious Heaven) 영화로운 천국에서 길이길이 살게 될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까? 영접하는 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8장 15절에
 
*로마서 8:15,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아들의 영을 주셔서 아빠 아버지라고 하나님을 부를 수 있게 해 주셨는데 오늘 우리 안에 그 아들의 영이 부어줘서 하나님을 실시간 날마다 친근하게 아빠, 아빠 아버지! 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천국의 현재성을 여기에서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바로 이 아버지 집, 영원한 천국으로 이르는 이 그 길은 인 지저스(In Jesus!) 오직 예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길과 진리와 생명 유일한 길과 진리와 생명은 오직 예수, 이름 밖에 없습니다.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이 길을 오롯이 따라가게 되면은 길이길이 살리라. 이 길을 뒤집으면 길이가 되는데 이 길이 살리라.
 
♬독생자 예수 자유케 하시네. 주의 자녀라 하시네. 아버지 지 그 할 곳이 있네 주의 자녀라 하시네.~
-인생 암호를 거부한 인생들 꺼지지 않는 불 못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 터널 파이어(Eternal Fire)! 소름 끼치는 지옥에서 길이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리라.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질 것이다.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이 진리 앞에서 반응해야 되겠습니까? 이 인생암호 C를 우리의 삶과 죽음에 적용해 보시겠습니다. 먼저 우리 개인적으로 정말 우리 영혼의 심령이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이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컴백 투더 로드(Comeback to the LORD), 그리하면 너그럽게 용서하실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구원의 그 실체를 날마다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친근히 가까이 하실 것입니다. 또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정말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실시간 매일 확인하면서 살게 될 때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놀라운 반전 죽음의 관점이 달라지고 죽음의 내용이 달라지는 죽음의 방향이 달라지는 그런 반전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담대하게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세 번째 하나님의 양 무리를 돌봄에 목양에 헌신하라고 말합니다. 주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어린 양은 바로 교회죠. 그래서 교회를 돌보고 사랑하고 내 다락방의 순원들과 상호 간에 우리가 서로 돌보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정성 다하여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이 지상 명령 즉 더 그레이 커맨드먼트(The Great Commandment), 이 세계를 복음화 하는 이 복음 전도에 우리 인생을 걸게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하면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암호,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겨 주셨으니 우리가 정말 충성된 사도 적 그런 사명자로서 우리가 우리 남은 생애를 올인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에게는 오직 한 가지 열정이 있다. 그것은 오직 그분이다. 그분 홀로이다. 진젠도르프의 그 심장을 가슴을 우리가 이어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정리하면 컴백,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 가까이 하며 리빙 이즈 크라이스트(Living is Crist),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세 번째 테이크 캐러어브 마이 십(Take care of my ship),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목자의 심정으로 목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 선교 완성에 우리의 인생을 전 생애를 걸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직 그리스도께 미친 인생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요약
인생 암호 C는 바로 인 크라이스트(In Crist)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인생 암호를 거부하지 말고 인생 암호C가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진지하게 생각해서 인생 암호C를 절대적으로 믿고, 인생에 근본 문제들의 해결점을 그 안에서 찾아야 하며 그 인생의 암호 C로 온 천하에 알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늘 자유함을 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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