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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장반 강의(주후 2024년 04월 16일)
제목: 6과 "아론이냐? 모세냐?"
말씀: 출애굽기 32:15~32
찬양인도: 이다니엘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강의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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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2:15~32,
15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두 증거판이 그의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쪽 저쪽에 글자가 있으니.
16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17여호수아가 백성들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
18모세가 이르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내가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하고.
19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 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20모세가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하니라.
21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당신이 그들을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
22아론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23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24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25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26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27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28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
29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30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31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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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33:8-11,
8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9 그는 그의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의 형제들을 인정하지 아니하며 그의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으로 말미암음이로다.
10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제단 위에 드리리로다.
11 여호와여 그의 재산을 풍족하게 하시고 그의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
 
*출애굽기 32:2~4,
2 그가 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추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에 강림하셨고 그의 오른손에는 그들을 위해 번쩍이는 불이 있도다.
3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의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 도다.
4 모세가 우리에게 율법을 명령하였으니 곧 야곱의 총회의 기업이로다.
 
*로마서 9:3,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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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아론이냐 모세냐
 
32:15-32- 모세의 의분과 깨어진 두 돌판) 이 부분은 우상 숭배에 대해 모세가 의분을 떠 트리는 내용과 그 범죄를 수습하고 있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모세는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백성들이 우상 숭배함으로 언약을 깨뜨렸다는 말씀을 듣고 그 종 여호수아와 함께 내려와 백성들이 우상 숭배하는 모습을 보고 분노를 터뜨렸다. 그러나 이것은 잠시 후 이스라엘의 중재자로서 모세가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한 것과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한편 모세의 이 같은 진노는 뒤이어 레위 자손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그들의 형제, 친구, 이웃을 베는 아픔을 참아내게 하는 계기가 되었는데(25-29)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자기 부인(10:6;16:24-26)의 모습을 잘 나타내 준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32: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금송아지를 만든 아론)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 장면이다. 그들이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금으로 송아지 형상의 우상을 세워서 하나님이라고 섬긴 것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의 결핍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은 영이시라(4:24)는 사실을 몰랐다.
그들의 마음이 강퍅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나타나 그들로 하여금 지도자 모세를 신뢰할 수 있는 증거를 주셨다(19:9,16:20:18-2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만나러 시내 산에 올라간 모세를 믿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진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늘에나 땅, 땅 아래의 어떤 피 조물이라도 그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우상을 만든 것은 하나님 말씀을 경홀히 취급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증 애굽 사람의 제사 방식을 모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애굽에 있는 동안 애굽 인들이 소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나 그러한 관습을 많이 접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인도하던 모세가 오랫동안 그들의 눈앞에서 보이지 않게 되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우상을 만들어 그것을 숭배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첫째,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4:24).
둘째, "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3:15).
셋째,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를 인도할 신) 백성들이 요구한 것은 ‘눈에 보이는신이었다. 오랜 기간 애굽 생활을 통해 그들은 가시적(可視的)인 우상들만을 접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invi-sible) 하나님에 대해서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형상을 만들지 말 것’(20:4)을 강력히 말씀하셨는데 백성들은 이러한 고차원의 신앙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실로 그들은 보고서야 믿는 자들로,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 자들이었다(20:29). 한편 여기서 으로 쓰인 단어는 ‘엘로힘으로 직역하면 신들이라는 뜻의 복수형이다. 이것은 백성들이 애굽의 다신(多神) 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보여 준다.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낸 사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구원해 낸 이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인 모세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세는 자신들이 직접 대면했기 때문에 바로 그가 자신들을 인도해 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과의 신앙에 견고히 서있지 못하다는 증거이다왜냐하면 백성들을 인도하여 내신 분은 모세가 아니라 아브라함과 언약 관계를 맺으신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3:6-8,16,17:15:8-21;17:7). 모세는 단지 그 같은 사역에 쓰여 진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미처 이 같은 사실을 바로 깨닫고 있지 못했던 것은 후에 그들이 모세를 원망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16:3,21:5). 한편 오늘날도 능력 있는 교회 지도자는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숭배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 같은 현상은 당연히 경계되어야 한다.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여기서 어찌 되었는지에 해당하는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하야)’의 뜻이다. 즉 모세가 황량한  돌산에 들어간 지 40일이나 되었기 때문에(24:18) 백성들은 그의 신변에 무슨 사고가 난 줄로 생각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한 신과 같이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처럼 그에게 무슨 이상이 생겼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그들에게 있어서는 전능한신의 개념이 없었고, 단지 신은 유한하고 비() 전능한 것으로  생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잘못 이해한 결과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4:1,6)이 모든 것에 앞서야 함을 새삼 교훈해 준다
 
32:26) 이에 모세가 진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진 문) 백성들이 야영하고 있는 진영의 입구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 이들은 우상 숭배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 및 비록 우상 숭배에 참여했다 할지라도 즉시로 그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 는 자들을 가리킨다. 회개의 기회가 없이 멸망당하는 법은 없다. (레위 자손이 다 모여레위 자손들 중 우상 숭배에 참여하지 않은 자일 것이다. 이들은 모세의 명을 따라 그들의이웃과 형제까지도 칼로 쳐 죽였는데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일로 간주되어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았다(33:9). 때로 신앙은 이러한 갈등을 극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리스도께서도 밝히 말씀하셨다(10:37-39). 
 
 
2.  
32:23)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24)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이 말은 아론의 대답 중 결정적으로 잘못된 부분이다. 송아지는 불에서 저절로 나온 것이 아니라 실제로 붓고’, ‘새겨서만든 것 이다(4). 하지만 이러한 죄 지은 인간들의 책임 전가와 사실 호도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악습이다(3:12,13). 
 
 3.  
 32:10)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내가 하는 대로 두라) ‘혹은 날 내버려 두라’, ‘날 혼자 있게 하라’(let me alone)로 번역하였다. 이는 더 이상 하나님께서 백성들과 관계를 갖지 않으시겠다는 절교 선언이다. 즉 하나님 은 지금까지 이스라엘과의 관계 속에서 그들과 함께’(together) 하셨지만, 간섭하시지 않 으시겠다는 의미이다.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이 약속은 처음에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인데(12:2;18:18) 이스라엘이 계약을 깨뜨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를 철회하고 대신 모세와 새 계약을 맺으려는 것이다. 한편 여기서의 나라와 창12:2민족은 모두 고이를 번역한 말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동일한 내용을 모세에게도 약속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이 제안은 모세에게 매력적인 유혹으로 작용 할 수 있었는데. 만일 이 제안이 모세에 의해 받아들여졌다면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 모세의 자손으로 새롭게 구성되었을 것이다(Keil). 또한 이것은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들이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4:3) ‘믿음의 후손이 아니라, 모세의 율법을 지켜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는 율법의 후손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지금 모세에게 이후 하나님의 백성의 자격과 성격을 결정짓는 중대한 제안을 하고 계신 것이다
 
4.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 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주께서 기록하신 책) 성경 다른 곳에서는 생명책으로도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인간의 삶과 죽음이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나타내 준다. 시민 명부에 자신의 이름이 등재된 자들만이 그 지방의 주민 또는 그 나라의 국민으로 인정되며 아울러 시민권이 보장 되었던 당시의 풍습에서 따온 이 생명책이라는 말은 신약에서는 보다 영적인 의미를 지닌 개념으로 나타난다(4:3;3:5). 곧 이 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모세의 이 기도는 신약 시대 자기 동족 유대인들을 위해 중보 기도하던 바울의 기도와 유사하다(9:3). 책임을 회피했던 아론과 달리 모세는 이처럼 자기 민족을 위해 생명까지 내놓을 만큼 투철한 책임 의식과 동포를 사랑하는 정신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Bengel). 실로 모세나 바울은 그 누구보다도 천국의 기쁨과 지옥의 고통을 잘 아는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영적인 생명까지 걸고서 그토록 간절히 중보기도 드리는 이유는 죄 중에 죽어갈 저 무지하고 불쌍한 뭇 영혼들에 대한 사랑때문이었다. 즉 불쌍한 영혼들에 대한 불타는 사랑이 지옥의 그 고통스런 불꽃 (16:24) 까지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사랑의 힘은 크고 위대하다. 예수님께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그 치욕스런 십자가를 흔쾌히 지신 것도 오직 사랑’, 그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따라서 오늘날 저 죽어가는 뭇 영혼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할 책임이 있는 우리           들도 이 같은 사랑의 마음을 지녀야 할 것이다(고전 4:1,2). 
 
33: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주의 길) ‘주의 뜻혹은 주의 도우심을 의미한다. (주를 알리시고) 주님의 인격을 알게 하시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주님과 더욱더 친숙한 관계를 가지기를 원하는 모세의 심정이잘 나타난 말이다.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주님의 은총을 구하는 말이다. 즉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은총으로 대하시고 공의로 대하시지 말기를 간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5. 
32: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 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올라가니) 1차적으로는 다시 산으로 올라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올라간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라에서 번제를 뜻하는 올라가 생겨났으므로, 이 말에는 일종의 제사 개념이 포함 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즉 모세가 산에 올라간 것은 백성들을 위한 대속 제사를 드리러 간 것으로도 이해 할 수도 있다
 
32: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해 설) 교재 3번 문제 해설 참조 
 
 


순장반 강의(주후 2024년 04월 16일)

제목: 6과 "아론이냐? 모세냐?"
말씀: 출애굽기 32:15~32
찬양인도: 이 다니엘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강의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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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2:15~32,
 
15 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두 증거판이 그의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쪽 저쪽에 글자가 있으니.
16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17 여호수아가 백성들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
18 모세가 이르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내가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하고.
19 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 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20 모세가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하니라.
21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당신이 그들을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
22 아론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23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24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25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26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27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28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
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31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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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배경은 1절부터 6절까지 다 나와 있어요. 모세가 한 달 넘게 시내 사는 정상에 머물러 있었어요. 한 달 넘게 있는 동안에 아무런 소식이 없어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움이 생기는 거죠.. 조금 더 세게 말하면 거의 행방불명이 됐으니까, 모세를 찾았고 수색하고 싶어도 모세를 찾으려고 하더라도 산 위에 구름과 불이 둘러싸여 있으니까 또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로 의미하심 때문에 올라갈 수도 없었어요. 그리고 모세 시종 여호수아도 모세 옆에 있었어요. 아니면 산기슭에 있었어요. 산기슭에만 있었지, 산 위에는 올라갈 수가 없었어요. 모세가 하나님과 모세만 대면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받는 기간이 나중에 장장 며칠이에요?? 그 40일. 또 시내 산 밑에서는 야단, 야단법석 난 것이에요. 그러니까 40일 동안 리더 없이 중심이 안 잡히니까 이제 난리가 났는데, 우리 애굽에서 있었던,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며, 애굽에도 그래도 나쁘기만 했나, 애굽에도 좋았던 것이 있었다. 그걸 애굽의 나름 즐겁고 육신적으로 괜찮았던 육신적으로 무언가 자기만족을 했던 그런 회상을 하기 시작하고, 애굽의 노예로 있을 때 배웠던 애굽 신을 섬기며 부르는 노래들, 또 이방신 섬기는 어떤 그다음에 어떤 광 난의 춤, 이런 것들이 생각날 정도로 옛 습관으로 돌아가게 된 거예요. 그리고 그러면서 모세 형 아론을 찾아왔어요.
 
그러니까 찾아왔고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신을 만들어 달라.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은 우리가 지금 어떻게 할 수 안 되니까.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신, 눈에 보이는 신을 만들어 달라. 그러니까 아론이 너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내어 가져오라고 그랬어요. 금 고리를 가져다가 아론에게 주었어요. 그러니까 아론이 금붙이를 가지고, 4절 앞에 보니까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어요. 거푸집을 만들고,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어요. 동상을 만든 거지요. 마침내 모세가 이제 하나님이 주신 두 증거 판을 가지고 산에서 내려와 보니까, 기가 막힌 거예요. 그리고 막 정말 모세가 미칠 정도로 그냥 화가 났어요. 표현을 잘하면 거룩한 분노가 일어났어요. 그래갖고 증거 판을 깨뜨리고 금송아지 우상을 불살라가지고 가루로 만들어가지고 백성들에게 마시게 했어요. 야, 모세도 한 성깔 하네.... 모세가 온유가 극한 사람인데 얼마나 화가 났으면 미친 거에요. 살아왔던 백성들이 진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러면 안 되지. 그래갖고 막 너무너무 화가 나가지고
 
그러면서 이제 아론에게 What’s the matter? 무슨 일이 있느냐?(What’s going on?) 추궁했더니, 아론이 변명하면서 책임을 백성들에게는 22절에,
22 아론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역사 탓하고 환경 탓하고, 무슨 문제가 있으면 우리 한국 사람들도 그래요.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알지 않느냐고 누가 뭐 잘못했다면, 난리치는데, 아니 같이 울어줘야지 같은 식구 아닌가? 난 한국에 누가 뭐 누가 좀 뭐 잘못했다고 그러면 난 내 마음이 너무 아픈 거예요. 가슴이 콩닥콩닥 해요. 누가 교회에 문제가 생겨갖고 텔레비전 뉴스가 나오면 그게 내일인 것 같아갖고 내가 막 가슴에만 쫄리는 거에요. 그거는 정말 내로남불이고, 책임회피(責任回避)에요. 이게 오늘 아론이 그랬어요.
 
그러면서 24절에,
24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아론이 말은 잘해요... 여러분, 말 잘하는 것과 실천력과는 구분해야 합니다. 옥한흠 목사님도 그러고 나도 그러고 하다 보니까 말씀을 전하고 이렇게 하지만 실질적으로는요. 말이 좀 잘 안 나오고 우리는 저기 뭡니까? 이게 딱 그래서 나는 강단에 올라가는 걸 제가 그렇게 썩 즐겨하지도 않고, 저는 이렇게 앞에 나서고 강자로 오니까 저는 이게 저는 그렇게 익숙하지도 않고 우리는 촌놈이잖아요..
 
우리 한경직 목사님이나, 전에 이승만 대통령이나, 그다음에 심지어 김구나, 그다음에 또 뭐예요? 이동원 목사님, 뭐 이런 분들 보면 정말 부러워요. 서울 사람들 표준말 정말 말씀을 또박또박 잘하고요. 막 그냥 우리는 정신 안 차리면 말이 그냥 엉겨요 우리는 영남보다는 호남이 그래도 또 나아, 영남 사람들은 말이 시작과 끝이 뭐 그래요...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이래야 되는데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합니더.’ 늘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어른이 다 부족한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늘까지 부족한 저를 불쌍하게 여기심과 그 은혜를 찬양합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거룩한 분노와 탄식을 가진 모세가 드디어 26절에 그러니까 26절 뒷부분에,
 
26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레위 자손들이 다 나왔다고 모세는 레위 자손들에게 너희는 칼을 들어서 이 끔찍한 일을 모의하고 적극적으로 한 자는 다 죽이라고 합니다. 28절에 보니, 몇 명이 죽었어요? 3천명, 그리고 여호와의 편에 서서 헌신한 레위족속에 대해서 모세가 29절에,
 
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그리고 실제로 레위 족속이 받은 분복은 받은 이 본복은 뭐냐? 제사장 가문이 되고, 율법을 가르치고, 예배를 집례 하는 최고의 특별한 지위를 허락해 주셨어요. 하나님 편에 서니까, 제사장 가문이 되과, 재판을 하고, 율법을 가르치고, 예배를 집례 하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21세기 왕 같은 대 제사장이 되어가지고, 이 시대에 뭡니까? 제사장 가문이 되어 갖고, 또 하나님 말씀 가르치고, 말씀으로 영혼을 섬기고, 매주일 마다 주님 앞에 진실 된 예배자로, 우리가 설 수 있다는 것 이 축복인 줄 믿습니다. 그 레위지파들이 하나님께 헌신한 불의 서지 않았던 레위지파들이 받은 축복에 대해서 신명기 33장 8-11절에 보면,
 
*신명기 33:8-11,
8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9 그는 그의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의 형제들을 인정하지 아니하며 그의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으로 말미암음이로다.
10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제단 위에 드리리로다.
11 여호와여 그의 재산을 풍족하게 하시고 그의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오늘 이 내용을 여러분들 아는 분들도 많이 있고, 그런데 여러분들이 오늘 이 말씀을 처음 대한다는, 처음 대하는 것 같은 신선하고, 처음 대하는 것 같은 그런 어떤 뭐라고 그럴까요? 은혜로운 낯설음은, 낯설음인데 말씀을 깨닫기 위한 어떤 낯 설음, 좋은 의미의 낯 설음, 그리고 처음 대하는 것 같을 때, 주님이 주시는 음성 프레시한 음성, 그래서 아는 거지만 프레쉬 하게 깨닫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자, 웬만하면 다 했습니다.
 
● 마음 문을 열며.
진면목(眞面目)은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난 진짜 얼굴입니다. 그렇죠. 참 진짜이다. 면목은 얼굴이란 말이죠. 평소에는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신앙인이요. 인격자로 여기는 사람도 때로 세속의 강력한 바람 속에서 치명적인 이해관계에 얽히게 되면 그동안 얼굴을 가렸던 것들이 벗겨져 진짜 얼굴이 드러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위기 앞에서 세상을 선택한 이스라엘의 맨 얼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속의 중력에 사로잡힌 흉한 몰골이요, 자신의 문제를 남에게 돌리는 책임회피의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말씀 속에서 어떤 경우에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영적인 근력을 키우고,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도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는 영적인 본능으로 체화(體化)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 지난주에 제가 여러분들에게 풀무 불 설교를 하면서 ‘풀무 불에 안 들어가니까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다.’ 풀무 불에 안 들어가니까 풀무 불에서 건짐 받은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근데 평상시에 신앙이 좋아 보여도, 풀무불 같은 시험대 앞에 섰을 때 내가 하나님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과 타협을 쓸 것인가?
 
오늘 적나라하게 아론을 통하여 드러나는 거에요. 그리고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멀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어떤 방향을 우리가 생각하고 통찰하는 것이에요. 저는 숭실대학교에 가면 기독교 박물관이 있어요. 한국의 제일 큰 기독교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어요. 김양선 목사님이란 분의 아버님이 평양에서 유명한 클렉터였어요. 그때 아버님이 물려주신 유산을 가지고 김양선 목사님분이 숭실대학의 사학과 교수셨는데 그분이 한 7000점 정도를 기증을 했어요. 국보들도 있고, 이랬는데 그중에 하나가 안준근 의사가 여순 감옥에서 죽기 전에, 죽기 한 달 전에 남긴 휘호(揮毫)가 있어요.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우리나라에 보물로 돼 있어요. 보물 569호인데, 제가 영임본을 갖고 왔어요. 갖고 왔는데 여러분들 보여드릴게요. 한번 보세요. 인무원려 난성대업(人無遠慮 難成大業)-사람은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큰일을 이룰 수 없다.(멀리 앞을 보지 못하면 큰 일을 이루기 어렵다.-(人 사람 인,無 없을 무, 遠 멀 원, 慮 생각할 려, / 難 어려울 난, 成 이룰 성, 大 클 대, 業 업 업)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볼 때,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고 영적인 눈이 열려 가지고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주신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고 사역 전체를 바라보고 그리고 주님이 주신 음성을 듣는 그런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본래 소속이 하늘나라 시민인데 이 땅에서 발을 딛고 살기 때문에, 현실에 직면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시각이 좁아져 있는 거예요. 국가적으로도 모든 일들을 진행할 때에 여러분들 많은 판단을 할 때, 판단 능력이 시각이 좁아지는 당장 내게 유익이 있느냐, 없느냐, 당장 내 스타일이냐 아니냐 이거 갖고 판단하니까, 맨날 헤매고, 그다음 열 받고, 경쟁하고, 기쁨 사라지고, 기본적인 어떤 평안이 없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으로, 하나님의 시각으로, 우리 다락방이나 내 삶이나 민족을 바라보는 그런 어떤 통찰력이 우리는 필요한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이런 말씀은 여러분이 나라나 민족이나 우리 자신이나 우리 다락방을 바라볼 수 있는 큰 통찰력을 제공하는 줄로 확신합니다. 그래서 오늘 6과를 공부하면서 어떤 상황에도 현실을 돌파하는 영적인 어떤 근육을 강화하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자 이제부터는 축축 나갑니다.
 
● 말씀의 씨를 부리며.
1번. (관찰 질문).
-본문은 모세가 십여 명을 받기 위하여 신내산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먼 시각을 하나님 간의 시각을 가지고 보는 거예요. 40주야를 머무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어난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세가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이 아론에게 요청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리고 이 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어떻게 행동을 취하고 있습니까?
 
첫 번째,
*출애굽기 32:1,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강권했어요. 그러니까 잘못했죠“.
그리고
두 번째,
는 26절에는,
26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신내산에서 내려온 모세가 거룩한 분노로 가슴에 터져 버려갖고 백성들에게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오라고 외쳤죠.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백성들이 왜 그랬을까요? 모세가 없던 40일은 긴 시간이었고, 리더가 부재한 40일은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이런 뜻이에요. 40일 동안 여러분 주일 예배 드리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안 봐도 보여요. 매주 일 예배는 매주 일 예배는 여러분들의 삶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영광스러운 현장에, 리더가 없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며 리딩이 없는 이 하나님이 인도하심이 없는 40일,,,
 
☞질문=순원들에게 물어보세요.
-40일 동안 다락방을 빠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그러므로, 행복합니다. 그럼 우리 죽는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 40일 동안 여러분들의 영적인 각성, 여러분 영적으로 여러분들 마음에 스스로 추스리고 근신을 빼버리고, 이거 없애버리고 여러분들 다 방만하게 여러분들은 그냥 뭐라 그럴까요? 그냥 나를 방치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40일 동안은요, 어마어마한 잡초가 자라는 시간이에요. 잡초는 하루만 지나도 막 자라는데, 40일에 공백을 시험 들기 십상이에요.
 
나는 지금도 기억하는 게 제가 부임하고 처음 40일 더 플러스 7일, 47일을 특새를 했는데, 47일은 특새하는 동안에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셨는데, 40일 동안 하루에 세 시간씩 성도들 만나고, 그러니까 특새 하루가 보통 한 두 주, 뭐 만나는 거 이상하게 마음이 40일 동안이니까.
80주 그러니까 거의 2년을 성도들을 개인적으로 만난 것만 40일 동안 나하고 같이 뛴 사람 그러니까 그냥 내가 잘하고 못하고 뭐 부족하고 뭐 못해 이런 거 다 두고 그냥 날 받아줬어요. 21년 전에,,, 내 생각이면 알까? 나도 사람이니까. 나도 느끼는 게 있잖아요. 성도들이 나를 받아줬어요. 40일 동안 40일 동안 어마어마한 일들이 많이 생길 수 있는 시간이에요. 우리 남은 인생 동안 이런 밑에서 백성들이 헤맸던 40일간의 잡초가 자라는 그런 기간이에요. 다락방 순원 들에도 그러고 여러분들에게도 없기를 바랍니다. 아시겠어요? 올해는 늘 한 결 같이,
 
지금 하나님께서는 신의 산 올라오게 해 가지고 모세를 신의 산에 올라오게 해 가지고 이 100성 제대로 인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들과 어떻게 교제할 것이고, 앞으로 이걸 위하여 하나님 백성들과 교제하기 위해서 성막을 어떻게 지을 것인지, 성막 짓는 방법 다 가르쳐 주시고, 심지어 대제사장이 될 오늘 밑에 못된 짓 하는 아론의 입을 의복까지 하나하나 다 말씀해 주고 계셨는데 정작 밑에서 산 밑에서는 백성들이 아론과 합세 해가지고 금송아지 우상 만들고, 그 앞에 춤추고 뛰놀고 광란의 춤을 추고, 여러분, 이게 참, 그 40일의 빈 공간이 그만큼 큰 거예요. 이거는 관찰 문제니까 이런 말씀을 비슷하게 여러분들이 지혜롭게 그냥 40일 동안 예배 안 드리면, 어떻게 될까? 40일 동안 다락방 참석을 안 하면 어떻게 될까? 를 그 정도만 물어보고 방향을 잘 잡으세요.
 
그 결과 너무너무 모세가 화가 나 가지고 여호와의 편에 서인 자리로 오라고 그러고 그냥 직접 하나님 만들어주신 증거 판을 산 아래로 던져버렸어요., 깨뜨려버렸어요. 3000명이 다 죽었어요. 그런 내용이에요.
 
2번. (관찰질문).
-모세는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아론에게 당신이 이스라엘 백성을 큰 죄에 빠지게 하였다 라고 크게 질책합니다. 여기에 대해 아론은 무슨 말로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합니까?
-아까 말한 대로 23절 24절에,
 
23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24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그리고 그것을 내개로 가져왔기에 내가 불에 던졌더니, 송아지가 나왔다고 야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혀 모세가 책임지고 하니까, 아이고 내가 잘못 내가 정신이 나갔나보다고, 나 어떡하면 좋으냐고, 나 어떡하면 좋으냐고 내가 정말 눈물로 통회하고 그러면 또 길이 나올 텐데... 오늘 이 아론의 요따위 책임회피 때문에 3천명이 죽은 거예요. 자기 합리화의 거짓말에 빠지면 안 되고, 뭐 우리 모두가 다 이건 교훈을 받아야 될 내용이죠.
 
한마디로 아로는 백성들이 우상 숭배에 빠진 책임이 자기 자신에게 있지 않고 누구에게 있다. 백성들에게 있다고 책임회피 하는 거예요. 아무리 백성들이 아론에게 모세가 보이지 않으니까 눈에 보이는 신을 만들어 요구한다 하더라도, 지도자로서 그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되죠. 따끔하게, “야 아론아 그렇게 하면 안 돼” 그렇게 해야죠. 그리고 오늘 이 32장이니까. 앞에 아멜렉과의 전투가 있었을 때, 산에 올라갔고 모세 한쪽 팔을 들어준 경험과 기적을 체험한 사고를 백성들에게 최소한 이야기 하면서, 기도의 지팡이라도 높이 들어야 되지 않겠냐? 우리 같이 기도하면 안 될까? 7천기도 용사들 다 앞으로 나와봐!!! 그런 식으로 해 가지고 기도를 했으면, 3천명은 안 죽을 거에요..
 
지난주에 말씀드린 다니엘이 세 친구라면 어떻게 했겠어요? 아무리 백성들이 원불비, 원망과 불평과 비판을 들어놓으며 협박을 한다 하더라도, 세 친구라면 일사각오로 하나님 말씀 지키고, 백성들을 깨우쳤을 거에요. 아론이 어떻게 했습니까? 2절에, 금붙이 다 가져오라. 그리고 4절에 보니까 보세요.
 
*출애굽기 32:2~4,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2절에, 아론이 그들에게, 4절을 보니까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가지고,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다 요래 놓고,,, 뒤에는 그냥 던졌더니, 뭐예요? 이귀퉁 뱅이를 맞아야 돼. 아롱의 가장 큰 먼저는 책임회피, 자기합리화에요. 야비한 겁니다. 사도신경의 빌라도도 그랬죠. 예수님 사형을 처할 죄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군중들에게 책임을 떠넘겼어요. 물 가져오라 그래가지고 나는 관계없다고, 여러분 대한민국은 끝까지 책임 회피가 아니라, 개인이 가진 자유와 책임의 이익 한도 내에 서 하나님이 주시는 이 은혜를 따라가지고 이 국가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학 그대로 계속 가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오늘 교묘한 자기 합리화야, 이 시대의 책임에 피해 모든 다른 표현은 뭐냐 하면 남 탓이야, 사실 백성들이 우상을 만들자고 했을 때, 우상 숭배는 백성들의 운명을 끝장내는 무서운 죄라는 거 아론이 알고 있었어요. 아론이 자기 책임 회피 안 했더라면 무서운 결과도 없었을 거예요. 자기 합리화 하고 백성들과 타협하고 그리고 나중에 모세가 추궁하니까 그것도 자기 합리화하고 책임회피를 해가지고 무서운 일이에요. 3000명이 죽어나갔습니다.
첫째, 아담인 아담도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했죠. 그런데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다른 사람의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 전가한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나라는 책임의 표가 만연하고, 다른 사람 남 탓하고, 좌표 찍기 좋아하고, 그래서 우리는 신앙인은 다른 길이 없어요. 내가 뭐 강남좌파 뭐 내로남불, 내가 뭐라고 그러는 게 아니고 그것도 사실 내 책임이죠. 그것도 크게 보면 우리 다 책임이지 그래서 목자의 심정을 지닌 저희들은 어쨌든 간에 문제가 생기면 문제가 이게 내 문제구나! 같이 울어줘야지,
 
나는 지금 이제 후배들 가운데 무슨 목사들 가운데 무슨 죄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면 신문에다가 잘못 저지른 죄를 1번 2번 3번 쓰고 그래가 되겠습니까? 후배가 잘못됐다면 아니 이게 내 문제야. 내가 더 기도해주지 못하고. 내가 더 아껴주지 못하고. 내가 더 관심을 기울여주지 못해서 그래. 이런 일이 벌어졌어요. 내 문제입니다. 나를 치소서. 그래야 되는 거 아니에요? 내 말 이해가 됩니까? 무슨 말인지, 우리가 그렇게 깊이 들어가야 된다고요.
 
다니엘이 민족의 죄가 있었을 때, 다니엘이 뭐라고 그랬어요? 느헤미야가 뭐라고 그랬어요? 민족 나쁜 놈들 잘못했다고 그러나요? ‘우리가 죄를 범했나이다.’ 느헤미야도 ‘내가 잘못했다고’ 제가 문제의 근원은 제가 여러분들이 다 말씀을 드렸지만 크게 보면 이게 다 우리 잘못이고, 그러니 하나님 이민족으로 불쌍히 읽어달라고, 그런 영적으로 깊이와 또 멀리 내다보는 안목을 우리 모두에게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번. (관찰 질문, 적용 질문).
-범죄한 이스라엘을 진멸(殄滅)하고 모세를 통해 다른 큰 나라를 세우시겠다고 진노하시는 하나님께 모세가 보인 태도를 세밀히 살펴보세요. 다음의 말씀에 기초하여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남 탓과 책임회피(責任回避)의 경향을 바로잡을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세요.
-우리가 문제 인식을 정확하게 되고 만약 우리나라가 사회주의가 되면 국가주의가 되면 우리가 어떤 일이 될지, 그런 것에 대해 명확하게 눈을 두고 알고 있어야 되고, 그렇지만 우리 전체는 이 문제가 내 문제구나, 생각하고 고민해야 되는 겁니다.
 
*애굽기 32:10,
10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출애굽기 32:32,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그러니까 그렇지 않으시면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이름을 지워버려 달라고...
 
*출애굽기 33:13,
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모세는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운다 하시더라도 백성의 죄를 사(赦)해 달라 기도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뭐 이래 한다. 해도 세상 달라지겠나,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이 시대의 모세의 마음을 갖고, 이 시대의 바울의 마음을 갖고, 바울도 그랬잖아요? 자기 동족이 다 죽는다면 자기가 차라리 자기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제거된다할지라도, 주님의 크신 사랑 안에서 나를 끌어버린다 할지라도, 내 민족의 고운받기로 원한다. 그리고 민족의 잘못을 시대 아픔을 나의 죄로 인식하고 짊어진 다니엘처럼 모세나, 바울이나, 다니엘처럼 그렇게 할 때에 거룩한 파장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10절에,
 
*출애굽기 32:10,
10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내가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는 하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맞습니다. 이 못된 놈들 다 끝내버립시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까? 부패한 죄인들 다 처리하고 저와 함께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면 좋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반응하지 않고, 모세는 하나님의 본심을 본심 하나님 심정을 알았잖아요? 사실 하나님 모세에게 너가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나 말릴 생각하지 말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표현은 그런 것 같지만 사실은 저것들 어떻게 하면 좋아! 악한 것들을 저것들 진짜 돌아와야 되는데 저것들 정신 차려야 되는데! 내가 한 번씩 얘기하잖아요. 자식을 잘못해 가지고 부모의 가슴에 멍을 들게 하고 엉망으로 만들었을 때 엄마가 처음 미운 놈 저거 밉다고 그러지만 사실 밉다기보다는 미울 정도로 안타깝고 미울 정도로 사랑하고, 미울 정도로 돌아오면 좋겠다는 엄마의 안타까운 심정이 담겨 있잖아요. 엄마가 자식이 잘못되길 원하는 엄마가 어디 있어요? 돌아오길 원하지 하나님의 심정을 이런 심정을 깨닫게 된 거예요.
 
그런데 이제 사람의 마음은 한계가 있는 게 주일날 철저히 성수하는 사람일수록 자칫 잘못하면 자기처럼 안 살면 삿대질 하는 거에요. 그게 이민족이야, 사람이니까. 그런 게 다른 거예요. 그러면 목자심정을 가지면, 저분도 주일 성수하는 분인데 어제 하루종일 굶었겠구나! 굶었겠구나!! 그리고 오늘 오후에 애들 제대로 더 가르치려고 하니까 힘이 없어갖고 저거 사 먹는구나! 이래 생각을 해야 되는데 그러니까 그게 멀리 내다보는 거고, 그게 가슴이 큰 건데, 하나님이 이민족을 불쌍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게 우리의 마음이 그리고 남 탓하는 이 책임을 극복하는 방법이 뭐냐 하면, 출애굽기 33장씩 3절 써 놓았어요.
 
*출애굽기 33:13,
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결국은 원컨대 내개 줄을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재는 은총을 입게 하시며, 주의 길을 보여 주셔요 그러니까 이걸 책임회피의 극복 방안은 뭐냐 하면, 주의 길을 깨달아야 되는 거예요. 주의 길을 깨달아야 되는 거예요.
주의 길을 깨달아야 로드 티치미 유얼 웨이즈(Lord Teach Me Your Ways). 당신의 길을 내게 가르쳐 달라고, 당신의 길을 알려달라고, 당신의 길을 깨닫게 해달라고, 그리고 주님의 길을 깨닫는 최고의 방법은 하나님께 은총을 입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개인도 가정도, 민족도, 우리 다락방도, 하나님 은총을 통하여 주의 길을 깨달아야 되고, 주의 방법을 깨달아야 되고, 핵심은 주의 은총인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33장 15절이고 보니까.
 
*출애굽기 33:15,
15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지난주에 말씀한 대로 플러스 원(+1), 다락방수는 5명 다섯이면플러스 원(+1), 모세가 진짜 원했던 것은 주님의 은총(恩寵)이고 주님의 은총의 최고의 수준은 뭐냐? 주님의 함께하신 임재-플러스 원(+1), 그래서 이 민족을 향하여 목자의 심정이 회복되어 선거 이후에 하나님께서의 목자의 심정을 주셔가지고 이 민족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하나님의 하나님 플러스 원 되는 그런 축복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4번. (묵상질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옳다고 알면서도 세상과 타협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다음 글을 통하여 그런 신자들의 특징을 살펴보고, 이에 비춰 지금 당신의 진면목은 어떠한지 묵상해보세요.
-1,2,3,4가 다 연결이 되는 겁니다.
-세상과 타협하는 살아가는 세속적 복음주의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지위, 명예, 권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세상의 비위를 맞추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영적으로 무기력입니다.-현재의 신앙이 아닌 과거의 신앙으로 살아갑니다. A.W토저는 이를 어제의 힘으로 살아간다고 표현했습니다.
둘째는 영적 모험심의 부재입니다. 이들에게는 종교 생활은 있지만 전투력 있는 신앙생활은 없습니다.
셋째는 영적 권태입니다. 신앙생활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이나 죄를 짓지 않으려는 긴장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넷째는 영적 성공에 무관심합니다. 세상 성공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만, 사명자의 삶을 살게 하는 영적 성공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만, 사명자의 삶을 살게 하는 영적 성공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다섯째는 영적인 거룩한 습관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세상적인 들숨과 날숨은 있지만 영혼을 살리는 영적인 호흡은 끊어진 지 오래입니다. 말씀을 읽거나 기도와 찬송을 하는 일상의 거룩한 습관은 희미해졌습니다.
-그러니까 평생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이거 다 풀무 불을 피해 버리고, 풀무 불에서 건짐 받는 기적도 안 일어나고, 물에 물 탔던 맹숭맹숭 하고 몸이 건조한 것입니다. 오늘 이런 신앙을 회색지대를 돌파할 수 있도록, 그래서 사랑의 교회는 사랑의 교회, 이 구원의 방주인데 둘 중에 하나의 유람선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전투함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전투함이 될 것인가?
 
*구원의 방주
➊유람선, ❷전투함.
-우리 유람선타고 신앙은 유람선타하고 관광하는 것이 신앙 아니고, 영적 전쟁에서 매일매일 영적 전쟁에서 그런 차원에서 4월 27일 날 우리 교회 7천기도 용사, 순장님들은 뭐 특별한 여유가 없는 이상은 뭐 집안에 진짜 어려운 일이 생겼다. 이래갖고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은 순장님들은 가능하면 7천 도 용사에 지원하시고, 또 그렇게 된 줄로 믿어요.
 
또 상황에 어려운 분들은 대신 누굴 또 여러분 자리에 끼워 넣어가지고, 우리 은혜의 둑이 있는데, 조그만 데 하나 세면요. 다 세게 나중에 방파제가 무너져 버린다고요.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 나라에 거룩한 방파제가 되는데 순장님들이 그러니까 사정상 하면, 거기다 상황이 어려움이 생겼으면 3500번 바로바로 투입을 해야 돼요. 7천 기도 용사가 이제는 집중력을 가지고 전투력을 가지고 힘 있고 강건하게 하나님 나라의 영적 전쟁을 수행하기 위하여, 4월 27일 날 토요일 날, 7000 기도용사 천부장, 백 부장, 50 부장, 십 부장, 서임 식을 하고, 한 번 더 확인하고, 그다음에 5월 18일 날, 5월 18일 날 7천 기도용사 발대식을 할 겁니다. 발대식을 하고 소를 몇 마리 잡으려고 합니다. 헌당식할 때 기쁨을 회복하려고 합니다. 헌당식 할 때 기쁨 품을 회복하기 위하여 소도 잡고 헌당식 할 때 기쁨과 능력을 다시 한 번 우리의 것으로 체화할 수 있도록 은혜 받는 날이 5월 18일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 기대감을 갖고 여러분들 순장님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사항 다 참여하시고, 기도 용사 번호에다 참여 기도 지팡이하고, 그래서 몇 가지 제가 이제 일정들을 말씀을 드리는데 다음 주일 날은 우리가 신앙의 차렷 자세에 대해서 어디서 합니까? 안성 수양관에서 하죠 나머지로 영상으로 좀 하시고, 그다음에 4월 23일 날,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그렇게 되고 그다음에 5월 7일 날은 있잖아요. 이 아름답고 프레쉬 한 이 봄날을 그냥 보낼 수가 있겠나, 그런 생각 교구별로 일일 영상 수양회를 하려고요. 그래 싫어요??. 교구별로,, 이 아름다운 봄날 5월 며칠이라고? 5월 7일, 그래서 순장교구별 가족 수양회를 여러분들이 그 우리 저기 뭡니까? 담당 교육자들하고 잘 의논하시면 될 거예요.
 
5월 14일은 9과할 것이고. 그다음에 5월 20일부터-5월 23일 월화수, 우리 교회에서 수천 명의 전국의 목사님들 장로님들이 모여가 장로님들이 모여 가지고 ‘목장 기도회’라고 해요. 우리 교단에 그래서 지금 제 동생이 뭔지 알죠? 제 동생 형님 사랑이 목사장로 기도회를 ‘사랑의 교회를 합시다’‘라고 해요. 기도할 수 있도록 제 61회 60년 동안 해오는 건데 61회 목사장로 기도회를 사람이 위해서 하십시다. 뭐 그래요. 그래서 물건을 맡겨놨나! ㅋㅋ 그런데 교단에서도 원하고 전체가 그러니까 우리가 2014년인가 우리 완공하고 그다음에 봄에 목사장로 기도회 한 번 한 적 있어요.
 
그때는 열심히 우리가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조금 교단 상층부 지도자들하고 팀웍이 좀 어려웠어요. 근데 지금은 교단 총회장이 제 동생이죠. 그다음에 교단의 중요한 지도자인 우리 총신대 총장이 우리 박성규 목사님이죠. 그다음에 교단의 중요한 지도자인 총신대 이사장이 남서울 교회 하종규 목사님이에요.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는 제가 말하는 줄 알겠죠. 이거는 뭐 정치를 하려해도 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시대를 위하여 우리가 뭐 전혀 안 했는데도, 이런 기회가 왔기 때문에 하나님 주신 기회를 가지고 같이 기도하고, 매어달릴 때 하나님이 우리 대한민국 교회를 불쌍히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 일(23일)은 안성수양관에서, 5월 7일은 순장 영 가족 수양회를 하고, 그다음에 5월 21일 그날 화요일은 못 하니까, 그거는 내가 필요하면 여러분들에게 SNS로 내가 알려드릴 거고, 연합 봄가을 한 번은 연합 순장반을 해야 되는데 이번 올해 연합 우리 2024년도 봄 봄학기는 연합순장반을 5월 25일 날 토요일날 토비새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5월 25일 날 아니 좀 대답 좀 해줘요 5월 25일 날 연합 순장반 진행할려고 토비새 이후에 진행할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감사드리고 그 대답을 잘한 다락방에 나중에 좀 사진 찍어갖고 잘해서 뭘 좀 드리고 그렇게 하면 좋겠어요. 예 자 5월 28일 6월 4일 6월 11일 6월 18 6월 25일까지 이후는 쭉 그대로 진행이 되고 6월 25일 날 종강 있겠습니다. 그래서 15과는 하반기로 그러니까, 6월 18일 14과 비대칭 전략의 신비, 이게 이제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6월 18일까지 그러니까 봄 학교가 벌써 다 지나갔네요. 자, 마지막
 
 5번.(적용문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에 대한 죄 값에 대한 죄 값을 자신이 대신 치르기를 간청합니다(30, 32절). 오늘날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상을 숭배하고, 아론처럼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우리 사회에 죄악 된 성향을 해결하는 길은 우리 자신이 속죄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재물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하고 구체적인 결실을 나눠보세요.
 
-주목할 것을 오늘 30절에 보니까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출애굽기 32:30,
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31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모세가 속죄가 되겠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너무나 비상한 기도이고 비상한 각오예요. 속죄가 된다는 말은 속죄 자는 소와 염소의 피로 희생제물을 올리는 것 아닙니까? 근데 모세는 내가 내 자신의 피와 내 자신의 몸을 각을 떠 가지고 바치겠다. 그 뜻이에요. 자기 몸에 각을 뜨고 자기 몸에 피를 흘리고 자기 몸을 불태우겠다는 그런 마음을 갖는 거예요. 그게 연결돼 가지고 내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도 좋으니 이 백성을 살려달라고, 자기를 죽이는 거에요. 그리고 백성을 위하여 자기를 피의 제물로 받아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럴 때는 우리가 모세를 예수님의 모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십자가의 그림자를 보는 겁니다. 모세가 대신 받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을 속죄로 드리겠다는 이 모세를 보시고, 하나님이 감동을 받으신 거예요. 바울도 마찬가지예요. 로마서 9장 3절에,
 
*로마서 9:3,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모세랑 똑같은 심정이죠. 남 탓하고 책임 회피하고 하는 이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대에, 우리도 한 번쯤은 이 문제가 내 문제구나 생각하고 모세처럼 남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제물로 바치겠다는 영적인 결단과 일사각오의 정신을 오늘 우리가 갖는다면, 하나님 우리 사랑의 교회 순장님들과 사랑의 교회 다락방을 보고서라도 이미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런 마음, 그렇게 그런 은혜, 그래서 저는 제가 지금까지 보니까요? 남 탓해 가지고 문제 해결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남 탓해 갖고는 해결이 안 됩니다. 모세처럼 ‘나를 마칩니다.’ 나를 속죄로 바칩니다. 그 선봉장들이 7천 기도용사에요. 그 선봉장들이 이번 다락방에서 순장 나가신 여러분들이고, 그 은혜를 받은 순원들이 될 수가 있는 것이에요. 내가 각을 뜨겠습니다. 정말로 우리가 속죄하는 마음으로, 모세가 있잖아요. 내가 속죄 죄로 바치겠나이다. 7천 기도용사를 얘기하려고, 영적 제곱근의 원리라고 이렇게 얘기하면 ‘2033-50 비전’ 을 얘기하고, 이런 얘기를 하면 코 방귀 끼고 그러면 안 돼요. 같이 마음을 가지고 제가 처음 시작할 때 말씀드린 대로 이민족이 보지 못하는 것, 기적을 일어난 걸 본 거 있는데, 보죠. 기쁨을 잃어버린 거예요. 하나님이 다시 한 번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문제들은 상식적인 접근으로는 해결이 안 됩니다. 우리 사회의 고착화된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우리가 이 기독교 신앙의 이 결사적인 순교정신 이번 주일에 제가 설교할 건데 물맷돌을 가지고 비대칭 전략으로 하지 않으면 안 돼요. 세상 사람들이 하는 뻔한 정신 갖고 안 되는 거예요. 책임회피 하는 아론이 될 것인가? 아니면 속죄물이 되겠다고 하는 책임을 다 짊어지고 가는 모세가 될 것인가? 이 시대의 속죄물이 되겠습니다. 모세처럼 각을 뜨고 피를 흘리고 하겠습니다. 결단을 하고, 이것이 이 시대를 해결하는 영적 지침서요. Text Book, 교과서가 되면 좋겠습니다.
 
● 마지막 삶의 열매를 거두며.
마귀는 반 기독교적이고 무신론적인 사상의 고삐를 틀어쥐고 대중 미디어를 통해 하나님 아닌 것을 우상화하도록 부추기고, 모든 일에 남 탓을 하며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현상을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악성 질병을 해결하는 길은 모세처럼 순교적이고 결사적인 희생제물이 되는 데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삶의 현장에서 모세처럼 속죄제물이 되어 내가 속한 공동체를 살릴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기독교인의 책임의식은 세상의 책임의식과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기독교인의 책임의식은 소명의식과 함께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소명 의식이 없는 책임 의식의 종착역은 자기 자신이지만, 소명 의식이 있는 책임 의식의 종착역은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맡은 일을 충성되게 책임 있게 한 이유는 내가 똑똑하고 뛰어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맡기신 일이기 때문에 불속이라도 들어가는 것입니다. 제가 원래 순장 반 개강 수양회 때 말씀드렸죠?
 
-필립스 부록스-
그가 얘기한 것은 “당신 능력에 맞는 사익을 구하지 말고 맡겨진 사익을 감당할 능력을 구하라. 그러면 당신이 하는 일이 기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기적이 될 것이다.”
'쉬운 삶을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더 강한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당신의 능력에 맞는 일을 구하지 말고 당신의 일에 맞는 능력을 구하라.
그러면 당신이 하는 일이 기적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기적이 될 것이다’
(Don't pray for an easy life, but to become stronger. Do not seek to look for a work that fits your abilities, but for an ability that fits your work. Then the work that you do will is not a miracle as you yourself will become a miracle) -Phillips Brooks 목사님-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에 소명을 회피하지 말고, 도망가려고 하지 말고, 모세처럼,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그렇게 마음을 집중하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이 시대에 기적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질 겁니다. 우리 한 사람이 어떻게 안아주신 본당을 치울 수 있습니까? 우리 한 사람이 어떻게 합니까? 글로벌 광장에서 한번 보세요. 우리가 한 사람이 어떻게 압니까, 그러나 거룩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시대를 바꾸겠다는 마음을 갖고, 소명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이 일해 주시옵소서. 그래서 여러분 모두가 다 그런 마음 갖고 소망합니다.
 
※안내
*4월 23일 날,=안성수양관(일부만), 나머지는 영상 순장 반.
-4월 27일 -4월 27일 날 토요일 날, 7000 기도용사=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서임식.
*(5월 18일 발대식).
*5월 7일,은- 순장교구별 가족 수양회
*5월 14일은- 9과 순장반.
*5월 20일부터-5월 23일 월화수=목사장로 기도회.
*5월 25일은-연합 순장 반
*5월 28일 -10과
*6월 4일-11과
*6월 11일-12과
*6월 18-13과
*6월 25-14과 종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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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장 강의(주후 2024년 03월 09일)-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다락방 시리즈 16)
-5과 "무엇이 부흥을 가능케 하는가?(What makes a revival possible?)"
말씀: 사도행전 4:7-20
찬양인도: 오준석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강의자: (오정현 담임목사님)-사랑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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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4:7-20,
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9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14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15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16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17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18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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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에 있는 분들 반갑습니다. 인사 고맙습니다. 한 주 안 봤더니, 은혜로 은혜가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 여러분들이 제가요 제가 목회자로서 사역자로서 제 자신을 돌아오면서 추스리는 말씀 중의 하나가 디모데전서 4장이에요. 7절-16절 말씀까지 쭉 보면,
 
*디모데전서 4:7-16,
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9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11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15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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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담임목사님.
-내가 내 자신을 어떻게 추스려야 할 것인가?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과 진보를 나타내는 어떻게 말에 있었어요. 행실에 있어서, 정절에 있어서, 믿음에 있어서, 사랑에 있어서 갖고 순서는 아마 말, 행실 그리고 자신을 들어 하나의 한 번씩 나에게는 저게 뭡니까? 이 뭐 좀 이렇게 체킹 포인트랄까, 나는 일찍부터 사역을 생각했기 때문에 누구든지 내 연소함을 없인 여기지 못하게요. 그러면 나 연소하면 업신여기지 마세요. 그런다고 없인 여기지 않나, 그렇지 않잖아요?. 앉아만 있어도 사역자의 기품이 있고 뭔가 있을 때 업신여기지 못하는 것이지. 순장도 나 순장 말씀 잘하는 거, “나 없인 여기지 마세요.” 그런 소용이 없어요.
 
여러분들이 말씀에 깊이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 붙잡아주시는 어떤 거룩한 아우라가 있어야 해요. 그것이 영향이에요. 세상의 직분도 세상의 장관과 총리, 대통령과 거기 아우라가 있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도 그정도 품위는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 자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이미 큰 그림을 그려드립니다. 전체로 나면서부터 못 걷는 자 베드로와 누굴 통해서 요한을 통해서 완전히 기적적인 치유를 받았는데 여파로 강력한 부흥이 예루살렘 성을 강타했어요. 그리고 병 고침 받은 사람의 나이가 오늘 4장 22절 대보니까 몇 살 40세쯤 됐다고 그랬어요.
 
*사도행전 4:22,
22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그럼 오늘 앞에 4절에 보니까 예루살렘에 이것 때문에 성전유문에 못 걷는 자가 이 기적이 일어나요. 예루살렘 교회 첫 번째 기적이 일어나게 되니까, 4절에 보니까,
 
*사도행전 4:4,
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얼마예요. 4절에 남자의 수가 왜 얼마 약 5천명이라 했어요. 앞에 이 장에서는 베드로사도가 복음을 선포하니까 복음 앞에 형제들이 몇 명이나 깨졌어요? 하루에 3천, 오늘 3장에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과 치유가 일어나니까, 오늘 3장 치유라니까 오늘 4장 앞을 4절에 보니까 몇 명이라고요. 5000명, 여기에 이제 당시 계수법은 누구만 세는 거예요. 남자 당정만 5000명이니까, 최소한 1만 5000명에서 2만 명, 여자 어른, 아이들 한꺼번에 주라면 한꺼번에 1만 5000명에서 2만 명이 주로 돌아오는 거예요. 어마어마한 부흥이 일어난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 어마어마한 부흥에 대한 소원을 하고 간절히 사모할 때, 디모데전서 4장을 보면서 제가 목회자로서 자신을 좀 추스리고 다듬는다는 부흥에 대해서, 저의 어떤 금과옥조(金科玉條)랄까, 부흥에 대해서 저의 어떤 큰 도전을 주고, 저에게 저를 키우고 다시 저를 갖다가 어 인스파이하고 그리고 뭡니까? 리스파크를 하고 나를 점화를 시키는 거죠. 본문이 오늘 이 본문이에요. 이 본문 자꾸 이 본문을 보면 볼 때마다, 부흥에 대한 어떤 맥박(脈搏)이 몰아치는 거예요. 오늘 이제 그리고 1위는 부흥 이후에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하면, 오늘 앞에 3절을 보니까,
*사도행전 4:3,
3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이 부흥을 하면 부흥을 하면 야 부흥 하니까 다들 마 다 변화 받고 다 와 거꾸로 거꾸러지고 다 그래 가지고, 부흥이 강력하게 일어나니까 올해 3절에 보니까 무슨 일이 벌어졌어요? 사도들을 잡아 가지고 어디에 가두었어요. 감옥에 가두었어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강력한 성령 역사와 능력이 나타났고, 기적과 치유가 일어나니까 부흥이 일어나니까 이제는 외부적인 박해가 있는 거예요. 박해가 있었어요. 7절에 오늘 보니까,
 
*사도행전 4:7,
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사도들이 가운데 세우고 “너희가 무슨 권세와 뭐예요? 누구의 이름으로 이해를 행하느냐?”라고 몰아 세웠죠? 그리고 마침내 17절에 보니까,
 
*사도행전 4:17,
17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민간인에게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협박하는 거에요. 협박, 왜냐하면, 오늘 대단한 예수님의 이름이 존귀함과 능력과 권세를 제일 좋아하는 자가 누굽니까 사탄이에요. 사탄, 그러니까 사탄은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말하지 못하도록 박해하고 예수님의 이름이 전파되는 걸 너무 싫어했고, 대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순간에는 사탄의 도구가 된 거예요. 다 한심 하는 교회 내에 이거 오늘날 한국교회 부흥을 위하는데, 교회 내에 부흥을 방해하는 사탄의 앞잡이들도 있는 거예요. 내가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어요. 내가 어떤 단체라고 말하지는 않겠어요. 사도 베드로와 요하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20절에,
 
*사도행전 4:20,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선포하는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이 갖는 능력을 선포한 거예요. 자, 다시 한 번 오늘 5과 전체의 내용이구요. “무엇이 부흥을 가능케 하는가?”에요. 5과 이구요. 전체 첫 번째 내용이고, 이거는 오늘 사도행전 4장은 교회 역사, Church Story, 교회 역사적으로 그러니까 처치 스토리, 교회 역사적으로 손꼽을 수 있는 큰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동시에 또 마귀가 행동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또 방해하는 것이죠?
 
 
마귀가 방해하는 정글 같은 그런 상황이 되는 것이죠. 자 오늘 이 정도 하고, 이제부터 쭉쭉 진행해 나가면 됩니다.
 
◆ 말씀의 씨를 뿌리며.
-초대교회 성도들의 대화와 삶의 주제는 예수님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찬양했고, 예수님의 이름을 증거 했으며, 심지어 핍박을 받을 때에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병자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으켰고, 귀신과 악명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칭하는 놀라운 이름들을 주목하고 연구해야 하는 이유는 그의 이름에는 세상을 이기는 능력과 하늘의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 속으로 들어가 그 이름의 권세와 영광과 은혜를 심비(心碑)에 새김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름에 걸 맞는 삶을 사는 능력을 확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저기 뭐야?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않아서 구하라 그래 받으니 너의 기쁨이 뭡니까? 충만하리라. 여러분과 저의 사역에 기쁨과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우리 마음속에 뭐가 필요한가?
-주님의 이름으로 선언하고, 주님의 이름의 능력을 깨닫고, 주님의 이름의 효력을 우리가 기본적으로 체험을 해야 된다.
 
오늘 내용들을 보고 지난 주일날 우리가 우리 ‘예수님이 누구신가?’라는 지금 우리가 시리즈를 하고 있는데, 지난주에는 도피성 되신 예수 그리스도, 말씀을 했고, 그다음 도피성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왜 우리에게는 이렇게 와 닿고 은혜가 되는가? 구약의 대제사장직을 예표 했나? 그리고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모든 죄를 마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할 수는 없어요. 말씀 한마디로 할 수가 없어요. 천지창조도 말씀 한마디로 하셨던 그분이, 우리의 죄를 없애하기 위해서는 그대로 마치 지우개를 가지고 써놓은 걸 갖다 지우듯이 그렇게 못하는 거예요. 우리의 죄 가를 다 없애기 위해서는 주님께서는 말 한마디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사랑하는 그분의 독생자 가장 사랑하는 그분의 최고의 소중한 것을 다 우리에게 내어주신 거예요. 대제사장으로 피를 흘리고,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주신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께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진노의 잔을 다 쏟아 부어 버린 거예요. 예수님께 다 진노의 활을 다 쏟아 부어 버린 거예요. 그니까 그런 은혜가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에,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마는 값싼 은혜라는 건 없습니다. 항상 주님의 은혜는 값비싼 것이고, 주님의 주님께 모든 것들을 다 쏟아 부어졌기 때문에 얻어지는 오늘 여러분들과 저는 예수님께 하나님의 모든 진노가 다 쏟아 부으셨기 때문에 이 자리에 와갖고 이런 말씀을 준비하는 줄로 확신합니다. 여기에다 깊은 깨달음이 있으면 눈물 콧물이 나는 것이고, 나같이 쓸데없는 자리를 구성 너무 감사하고, 자다가 일어나도 온 세상 만물을 가져도 주 밖에는 없는 것이며, 감사로 못 다 갚겠다는 것입니다.
 
1. 관찰질문.
-오순절 상 성령 강림의 역사로 초대 교회가 불일 듯 부흥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당시 에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붙잡을 빌미를 찾기 위해 그들을 공회 앞에 세우고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7절)라며 엄하게 심문(審問)했습니다. 이때 사도들이 힘 있게 대답한 말은 무엇입니까?
 
10절 보겠습니다.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너희 앞에 섰느니라) 사도는 여기서 거부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 다섯 가지를 증거 한다.
(1) 너희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중대한 사실을 선포할 때마다 자주 쓰는 권위 있는 명령형이다. 그 대상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증거 하 는 내용의 중대성과 사실성을 암시한다.
(2)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 사도는 여기서 너희가’ 그런 일을 행한 죄인들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너희’가 죄인 취급하여 죽였지만 하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님을 살리심으로 그를 죽인 자들을 심판했다는 것이다.
(4)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건강하게 된 것을 증거 했다. 너희가 십자가에 죽였지만, 하나님이 다시 살리신 그 예수께서 지금 살아계셔서 이 능력을 베푸셨다는 것이니 저들의 간담(肝膽)을 서늘하게 만드는 선포가 아닐 수 없다.
(5)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상의 변론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제시한다.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그 권력과 무게감을 가지고 심문할 때에 베드로는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전도의 기회로 삼아가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권세이심을 담당하게 했잖아요. 거침을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산헤드린 공회는 당시 유대 최고의 재판기관이었습니다. 로마의 지배 본래는 사형도 다 시킬 수 있었겠지만, 로마의 지배 안에 있었기 때문에 사형 권 빼고는 다 있었어요. 종교, 인사, 민사, 다 처리하는 최고의 권력 기관이었어요. 예수님을 심문했던 공회였습니다. 어쩌면 오늘 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신문을 받으면서 베드로의 마음이 만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전에는 예수님 신문에 있던 산헤드린 공회, 거기 근처에서 뵈도록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을 부인했죠? 전에는 예수님을 부인하는 은혜의 아웃사이더였는데 이제는 자신이 신문을 받는 은혜의 주체가 된 거예요. 은혜의 어떤 중심이 된 거예요. 아마 감회가 새로웠을 거예요.
 
*사도행행 4: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너희가 무슨.....행하였느냐) 예수께서도 대제사장들에게 이와 유사한 질문을 받았으나 그들의 간계를 미리 아시고 지혜롭게 대처한 바 있다. 본 절에서도 대적 자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사도들을 처치할 구실을 마련하기 위하여 애매한 질문 공세를 편 것이0망함과 아울러(9절), 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기회로 삼았다(10-12절).
-요한이 잡혔을 그때가 이미 날이 저물어 가지고 어두워졌어요. 그러니까 그 유대인의 종교 관습에 따르면 일몰 이후에는 죄인들을 심문할 수 심문할 수가 없는 규율이 있었어요. 로마의 지배 본래는 사형도 다 시킬 수 있었겠지만, 로마의 지배 안에 있었기 때문에 사형 권 빼고는 다 있었어요. 종교 인사 민사 다 처리하는 최고의 권력 기관이었어요. 예수님을 심문했던 공해였습니다. 어쩌면 오늘 이 사례들의 공해에서 신문을 받으면서 베드로의 마음이 만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전에는 예수님 신문에 있던 산해 드는 공이 거기 근처에서 뵈도록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을 부인했죠. 전에는 예수님을 부인하는 마 은혜의 아웃사이더였는데 이제는 자신이 신문을 받는 은혜의 주체가 된 거예요. 은혜의 어떤 중심이 된 거예요. 아마 감회가 새로웠을 거예요. 요한이 잡혔을 그때가 이미 날이 저물어 가지고 어두워졌어요. 그러니까 그 유대인의 종교 관습에 따르면 일몰 이후에는 죄인들을 심문할 수 심문할 수가 없는 규율이 있었어요. 그래서 사도들이 하룻밤을 감옥에서 보내고 그다음 아침에 이제 그러니까 유대 종교 자 지도자들이 형식적으로는 종교적 교리를 준행하는데, 그걸 하는데 핵심을 못 깨닫는 거에요. 형식적으로는 밤에는 심문하면 안 되지, 이래가지고 말씀을 따른 거 같은데, 진짜 말씀에 정신과 핵심과 능력과 구원의 역사에는 눈이 멀어 있는 거예요. 여러분과 제가 이런 말씀을 다루면서 껍데기만 하면 안 되고, 진짜 엑기스와 핵심과 가장 중요한 실리에 눈이 떠 있고, 평생 덜 중요한 것, 가장 중요한 것에서 눈을 뜰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뭐라고 그랬어요.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자심을 당당하게 거침없이 선포하고 설교했어요. 거기에 대한 산헤드린 공회원들의 반응이 참 기가 차요. 그들은 당시 유다의 최고의 지성인들이었고 아주 높은 수준의 학문을 배운 공회원들이었는데. 그들의 반응이 뭡니까? 13절에,
*사도행전 4:13,
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베드로가 원래 못 배운 사람인 줄 알고 이상 여기고 놀랐어요. 학문이 없는 걸 알고 있었는데, 또 함부로 할 수 없는 게 놀랬지만 자기들은 학문이 있어도 병 못 고치는데 베드로는 학문이 없어도 병을 고치고 기적을 일으킨 주체 자가 되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함부로 표현도 못 했어요.
 
2. 관찰해석.
-예수님의 이름은 천상천하(天上天下)의 모든 자들이 무릎을 꿇는 지극히 높은 이름입니다(빌 2:9-10). 이처럼 우주의 군세가 복종하는 이름이지만 오늘날 신자들 가운데 예수님의 이름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주의 군세가 복종하는 이름이지만 오늘날 신자들 가운데 예수님의 이름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2000여 년 전에도 그러했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과 오늘날의 신자들이 예수님을 부끄러워하는 각각의 이유를 말해보세요
 
* 막 8: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 예수는 자신의 입장을 결정적으로 밝히면서 이 시대를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음란과 죄는 예수와 복음을 부인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모독하고 교회를 업신여기는 세대를 말한다. 이 본문의 핵심은 33-37에서 언급한 제자 됨과 그리스도인 됨을 위한 예수의 요구의 필연성과 정당성을 종말에 임할 심판묘사로 명백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같은 희망찬 종말 언급을 통해 박해받는 제자들과 추종자 곧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을 각오 한 용기와 믿음으로써(요16:33)예수 자신의 길을 따라오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예수님의 이름을 실제적으로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의 그 사람들이 누구인가? 그런 사람들이 있는가? 있음을 알고 계셨어요. 다시요.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계셨어요.
*요한복음 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이유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그러면서 그다음 디모데전서 8장 보니까 “주를 위하여 갇힌 자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나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사도들이 볼 때 사도들을 사역을 볼 때, 사도들의 사역을 볼 때에 박해와 핍박과 고난을 따른 걸 보면서 부끄러워했을 수도 있는 거예요. 자, 오늘 이 부끄러워하는 배경 중의 하나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다.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대수로 폄하했어요. 무슨 뜻입니까? 나사렛은 갈릴리 북쪽 지하의 지방이잖아요. 북쪽에 무슨 이방인들이 사는 곳인데, 그러니까 사마리아 성 위에 나사렛이잖아요. 그리고 사마리아 성 밑에 유대잖아요. 사마리아 성 밑이 헤브론이고 예루살렘이고 그러니까 밑에 남쪽 지역에 있는 유대인들이 볼 때에 유대 지역에서 볼 때 사마리아 성과 위에 있는 갈릴린 이 나사렛에서 형편없는 지역에 나오는 형편없는 인간들이나 있는 곳이지, 그러나 이 빌립 같은 경우는 요한복음 1장에 보니까, 빌립 같은 경우는 나다니엘의 이 냉소적인 반응에 대해서 다른 말 하지 않고 그저 뭐라고 그랬어요. 빌림이 뭐라고 하느냐, 떠들지 말고 와봐! Come and See! 그러니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제대로 교제하면 세상에서 말하는 만 가지 논리와 논쟁이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빌립은 떠들지 말고 와 보라고 한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갈릴리 지역에 목수 집안의 가난한 사람으로, 그다음에 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죄수로, 이 정도 생각하고 있었고, 헬라 사람들은 복음을 유치하고 어리석고 미련한 것이라 경멸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이 시선과 모든 것들을 다 뛰어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요. 모든 지성과 이성을 뛰어넘은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실체를 가지고 얘기하는 거예요. 제가 볼 때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 세상 앞에서 교회와 그다음에 예수님을 부끄러워하는 분들이 있다면 어떤 사람들은 아이고 뭐 교회가 세상에 몸을 열지 못하고 뭐 교회 지도자들의 문제가 많고 뭐 오만 얘기 다 있잖아요. 근데 그런 거 다 하나의 변명일 뿐이에요. 진짜로 뭡니까? 진짜는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진짜는 주님이 주시는 치유와 능력과 주님과 예수님의 이름이 주는 예수님과 교제할 때 갖는 파워를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그러면서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그러면서도 예수님을 그저 나사렛 예수로 정도만 인식하기 때문에, 지금도 오늘날 우리 주위의 예수님을 나사렛 출신으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왜냐하면, 복음이 지성적이지 못하다. 복음은 무슨 철학적이지 못하다. 복음은 과학적이지 못하다. 오늘 이 시대에 맞지 않다 이런 식으로 그래서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예수 믿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CCC 파운드에 있던 김준권 목사님은 이런 세상의 흐름과 지성의 흐름을 잘 아셨기 때문에 CCC가 대한민국 CCC나 한국 과거의 대학생 기독 선교 단체는 최고의 지성이거든요. 최고의 지성 사유 가운데 진짜 최고의 변적은 뭐냐 능력 있는 예수 그리스도 출신이 나사렛이라고 할 때 그거 전혀 개의치 아니야. 그거는 전혀 개의치 아니하고, 그거는 전혀 나사렛이라는 이름이 오히려 능력의 진원지로서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인격적인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변화시킨 그래서 CCC 최고의 단체 중의 하나가 CCC 여러분들 아시겠습니다만 이 시시기 대학 졸업하면요 나사렛이라고 있었어요. 내가 요걸 얘기하려고 지금 한참 이야기 얘기하는 거죠. 나사렛이라고 들어보셨어요? 나사렛 모임이라고 있어요. 나사렛 최고의 지성에 최고의 나사렛은 당시에 나사렛에서 온 선한 것이 나겠는가, 조롱하고 비난하고 그러는데 기독교는 그런 인간의 이성과 지식과 철학을 온전히 앞두어 뛰어넘을 수 있는 능력과 체험과 예수의 이름에 치유와 기름부음이 있다.
그래서 여러분, 지난번에 우리 이 년 전입니까?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와가지고 미국의 부통령이면, 여러분 지성인이고, 미국의 정치인이고, 세계적인 역량이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마이크 펜스가 바로 글쎄 자기의 정체성 넘버 원, 자기가 뭐라고
➀그리스인이라고, 모든 치성을 압도하는 나사렛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인이라고,,,
두 번째로는 자기는
➁보수주의자라고 세 번째로, 이제 정책으로
➂공화당원이라고 뭐 정도였어요.
-첫 번째가 나는 예수고, 예수 믿는 사람, 그래서 우리 교회에 와가지고 너무나 감동을 받은 게 새벽 5시 6시에, 사람들이 그냥 물밀듯 밀려오고 그리고 그날 어마어마한 비가 왔거든요. 그리고 그날 또 어떻게 보면 우리가 뭐야? 오케스트라 찬양대가 있다고, 야, 새벽 5시 반에 어떻게 저렇게 수많은 과히 오케스트라 올 수 있냐고? 또 거기도 되게 감동 같대요... 그러니까 정체성이 확고하니까 나오는 어떤 저기 뭡니까? 나오는 어떤 그런 것도 다른 거죠. 자 이 말씀을 왜 드리는가 하면 저도 그러고 여러분들 여러분 자녀들도 그러고 예수의 이름에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확고한 자녀들을 키워야 되는 것이에요.
 
※내가 한번 얘기를 저는 중학교 들어갔을 때, 정말 제가 이 가난한 달동네에서 혼자 학교에 들어갔어요. 학교에 근데 너무나 똑똑한 놈들이 많았고, 아버지가 니 아버지 뭐하시노? 부산시장이야. 니 아버지 뭐하시노?부산국세청장 아들이야. 니 아버지 뭐하시노? 부산대학교 총장 아들이야. 그러고 국세청장 송모모라고 내 친군데 집에 처음 가니까요? 세상에 뜨신 물이 나오더라고.,,, 그리고 누나를 보니까 경남여고를 다녔는데 선녀 같더라고,,, 그리고 얘가 뭘 하나 먹는데 이게 뭐꼬? 그러니까 이게 비타민이야 근데 왜 먹나? 왜 먹는냐니까? 이거 몸에 좋은 거야. 뭐 몸에 어떻게 좋으냐? 먹어보면 알어. 나는 먹어본 적이 없어. 내가 어떻게 알어? 그렇다고 또래들이 있는데, 예수 믿는 사람 나 혼자였어요. 생물 시간에 들어가니까, 생물 시간에 말이야. 생물 시간 선생님 들어오는데 그때 뭐 강모 생물 시간 이름도 잘 안 잊어요. 이 사람이 들어오더니, 전부 다 뭐 너희들은 다 원숭이 자녀들이고 있잖아. 이거 저기 호모사피엔스 얘기하면서 네안데르탈인 뭐 크로마뇽인, 얘기하는데 있잖아요. 기가 막힌 거에요. 근데 아무도 얘기하는 놈이 없어요. 내가 딱 손 들어갖고 ‘선생님은 원숭이 자녀입니까? 아 그렇다면 선생님은 선생님 조상이 원숭이입니까?’ 그러니까 “이 새끼가 이리 나와!! 겁데가리도 없이 선생님께가 뭐 그냥 그렇게 이야기 하면 알아듣는 거지” 응 그러고 내 뺨을 두 차례를 맞았는데 근데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그게 나중에 내가 깨달았지만 과학을 적당히 믿으면 무신론자가 되고, 과학을 진짜 믿으면 창조주 유신론자가 되는 것이에요.
 
※톤 브라운 박사가 나사(NASA)에 날라 가는 모든 우주 프로젝트 총책임자 과거에 톤 브라운이라고 독일 계열의 사람이 미국 최고의 나사 과학자인데 최고의 신실한 크리스천이었고 달나라 갈 때, 우주인이 뭘 갖고 갔다고 그랬어요?. 하나님의 말씀 갖고 올라갔다고 그랬잖아요. 시편의 말씀이죠. 적당히 알면 무실론 자가 됩니다. 그러나 제대로 알면, 하나님은 그 앞을 보시며 모든 것을 인도하십니다. 여러분 이런 면에 있어서 여러분 신앙의 초심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어떤 장로님이신데, 자기가 진짜 이 찬송 들을 때마다 몇 십만 유튜브의 조회가 됐다는데요. 한 십몇 년 정도 된 찬송입니다. 이렇게 한번 들어보죠. 그리고 여기 지금 초심이 약간 흔들려 갖고요... 후렴만 ‘어저께나 오늘이나,,,’ 의 마지막 부분 어떻게 후렴만 어저께나 오늘이나 나도 이 찬송을 아침에 들으면서 한 번 불러 보자구요.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이 저보다도 나이가 더 젊을 거예요. 지난 시간을 다 들어보면 여러분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힘들어도, 이 예수님의 이름 한결같은 마음으로, 이거 집중해 가지고 부부가 손잡고 여러분 힘들어도 안 되면 여러분 혼자라도 이 찬송 계속하면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가정과 자녀와 여러분의 인생을 지켜주시는 것이에요. 이게 믿음이에요. 예외 없어요. 여러분 바울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 배드로가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은 참수되어 거꾸로 십자를 못 박힌다든지 아니면 참수를 당하던지 그런 건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분 바울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의 생애 동안 집중하고 고백하고 찬양하고 선포하면 하나님 여러분 자녀 보호하신다니까 알겠어요? 보호하시고 여러분 다락방을 이걸 여러분의 것으로 체험돼 가지고 뿜어져 나와 가지고 이걸 여러분들이 순원들에게 그대로 전달해 주셔야 하면 되는 거예요. 내 마음을 그대로 좀 전달해 주세요. 내 마음을 전달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칠천기도 용사에 대해서 마음을 모으고 있습니다. 7000 기도 용사가 우리 천 부장 제도를 하고 뒤에서 돕고, 그다음에 천부장 뽑고, 천 부장은 백 부장 10명만 관으로 하면 돼. 백부장은 10명만 십 부장들 관할하면 돼. 중간에 50부장 점검하고, 나는 천 부장 일곱을 일곱 7분을 위해서 더 잘 내가 케어하고 그러면 우리가 7000명이 똑바로 정치인 총령 주님을 위해서는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죽으라면 죽고 허신하라면 헌신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 나라를 위해 준비되기를 원하는 그런 7000명의 기도 용사를 만들어 놓기만 하면 하나님 이 민족 살려주셨다니까요. 그래서 내가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이번 선거가 어떤 결과가 나오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일 거고, 이번 선거 이후에 7천 기도 용사가 정신 똑바로 차리면 이것 때문에 하나님은 이 민족을 보호하여 주실 것이다. 남북문제도 해결하여 주실 것이다. 난 오늘 순장반 하면서 이렇게까지 내가 하고 싶지 않은데, 그러나 우리의 마음속에 주를 수 있는 간절함을 따라 가지고 주님의 일에는 이름에는 능력이 있다니까 처심을 잃지 않는 거, 초심에 대한 성심을 다시 가져가는 거,
 
3. 관찰질문.
-사도들은 핍박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자랑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죽음까지 각오하며 예수님의 이름을 확성기를 댄 것처럼 크게 전했습니다. 다음 구절에서 예순 다음 구절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이름이 갖는 능력을 생각하며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 자랑해야 하는 이유를 서로 이야기해 보세요.
-여러분 자녀들이 교실에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따뜻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여러분 순원들이 직장에서 내가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예수 믿는 걸 떳떳이 드러낼 수 있도록, 이것이 최고의 믿음이에요. 지금 대한민국 10대 재벌들이 있습니다. 그 10대 재벌들 돈 많은 것보다도 예수님 이름 간직하고 믿고 선포하고, 능력 받는 것이 훨씬 더 소중한 것이에요.
-우리는 본래 하나님과 원수 된 사람들이었죠. 그런데 구원의 도피성으로 내어주신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셨어요. 그래서 예수님의 일방적인 십자가의 사랑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리가 원수에서 자녀로 바꾸어졌어요. 평생 원수가 평생 자녀가 된 거에요.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갖는 최고의 권세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응답받게 되는 특권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이걸 자랑하지 않을 수가 있게 이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어요. 심문을 당할 때 오히려 베드로와 그들에게 설교했죠.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있다. 없다.
 
여기에 다른 일이라는 것도 우리가 관심을 갖지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라는 데도 초점이 맞추어져야 되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받을 수 없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선 구원이 없다. 예수님의 이름 외에는 구원이 없다. 이거는 너무나도 확고한 만고불변의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어져서 요한복음 6장 24절에,
 
*요한복음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 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지금까지는...구하지 아니하였으나) 여기서 ‘구하다’로 번역된 ‘아이테오’는 ‘구하다’, '질문하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에로타오’와는 달리 ‘요구하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그리고 후반절의 내용이 기도와 관련된 것이 분명하므로 본절에서는 ‘구하다’로 번역되어야 한다. 그리고 특히 ‘구하다’란 말이 현재형으로 언급되어 ‘지속적으로 기도하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L. Morris). 그리고 이 지속적인 기도는 다른 이름으로써는 소용없고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 질 때 응답이 있을 것이다. 한편 ‘지금까지는...아니다’라는 구절은 미래적 시간에는 어떤 일들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리스도의 중보자 개념은 본절에서 아직은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아직 십자가상에서 피 흘림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성전의 휘장은 그대로 드리워져 있었으며, 신성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지 않으셨다.(Calvin). 그러나 그의 구속 사역이 완성될 그날 곧 ‘조금 있으면’ 제자들은 아들의 이름으로 구하는 모든 것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거 핵심이 뭐예요?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응답받는다는 이 용어는 어떤 뜻입니까? 우리의 자격이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가 무슨 헌신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는 거예요. 단순하게 초심과 성심을 가지고 어저께나 오늘이나 한결같은 주 예수님 찬양합니다. 하는 그런 마음을 갖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믿고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응답해 주시는 것이에요. 한 결 같이 그리고 요한복음 14장 12절에 보면,
 
*요한복음 14:12,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자 예수님이 하신 사건은 뭡니까? 오병이어 사건을 베풀어 진리의 말씀을 전하니까 하늘의 떡에 대한 얘기하니까 다 도망가 버렸잖아요? 그런데 베드로는 말이에요. 어떻게 했어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늘 기적을 베풀고 예수님을 전했더니, 핍박 가운데서 몇 명이나 예수 믿었어요. 5000명,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예수님이 하신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을 지금 베드로가 하고 있는 거지요. 오늘 이 5000명이 돌아올 때 초대교회의 120명 성도들, 여러 초대교회 성도들이 가질 수 있었던 감격과 은혜를 한번 상상해 보세요. 이걸 생각을 해서 여러분이나 저는 사랑의 교회 섬김과 사역을 통한 수많은 기적과 치유와 능력과 부흥을 경험한 사람들 아닙니까? 우리가 갖는 감격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올해는 다락방 교재 제목처럼 그리스도인 죽는 날까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그랬기 때문에 올해 새 생명 축제는 오늘 산헤드린 공회 그 핍박 가운데서도 오늘 예루살림 초대교회가 가졌던 베드로와 함께 했던 5000명의 역사가 있었던 것처럼 원래 제가 목표가 뭐냐? 다른 해에 비해서 두 배, 세 배의 새생명 축제위원회가 있게 하여 주십시오.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올해는 결신이 5000명 이상 되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이 내 마음에 이 확신을 주신 거예요. 제가 올해는 5000명 이상 된다. 왜 됩니까? 이게요 5000명 이상 올려면 심플해요. 태신자를 뭡니까? 여기 태신자를 만 명 이상 데려가면 되는 거예요. 아주 심플한 거예요. 대개 이제 숫자 정하고 나면 한 10분의 1쯤 데리고 오더라고. 근데 올해는 만 명 이상 데리고 올 수 있도록, 나는 올해는 될 거라고 생각해 왜 되느냐 첫째, 누가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오늘 이걸 깨닫고 새 생명 축제에 데리고 오는 태신자 들을 만 명 이상 실제로 데려올 그럴라면 적어도 한 5만 명 정도는 우리가 계속 기도를 해야 되는 거예요. 20프로 정도 데리고 본래는 10분의 1 데리고 오는데 그리고 제가 또 하나 믿는 것은 7층 기도 용사가 있기 때문에 7천기도 용사는 이제 기도하러만 오고 그다음에 헌신하라면 헌신하고 그다음에 헬스장 데려오면 데리고 오고 그러면 말랑 말고 안 되는 사람은 칠천 기도용사가 들어오면 안 돼 그런 거 안 하는 사람은 빨리 빼내야 돼 우선 마음만 갖고 했던 사람 다 빼내고 거기다 아울 3500번 다시 잡아넣어야 되고 또 알 다시 부흥, 리바이벌 새로 해서 리바이벌 2779번 다시 잡아넣어야 되고 이렇게 해서 똘똘 뭉쳐 가지고 할 때에 올해 7천명, 영혼구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7000명을 내가 책임지고 하나님 간의 역사를 새롭게 집필해야 되는 줄 믿습니다. 7천명이 똘똘 뭉치면 4900만이 변화가 되고 영혼구원이 됩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이름을 270개 이상의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어요, 구세주, 그리스도, 선한 목자, 구원의주, 만왕의 왕, 영광과 소망, 보배로운 산돌, 생명의 말씀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 영혼의 감독자 우리 몸의 구세주, 더 좋은 은혜의 보좌, 하늘에서 내려온다. 모든 성도들 다락방 순원들 삶 가운데 풍성히 임하기를 바랍니다.
 
4. 묵상질문.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부끄러워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이름이 주는 축복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사탄의 치밀한 전략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글을 읽고 묵상해 보세요.
-오늘날 교회 내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예수님을 나사렛의 예수로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나사를 내수로 폄하(貶下)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나사렛 출신으로만 이해했던 것처럼 무의식중에라도 예수님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나사렛 출신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복음을 지성적이지 않고 과학적이지 못하며 복음의 내용이 세상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세상은 나사렛 예수라는 이름을 경멸(輕蔑)의 의미로 사용했지만, 예수님은 이름 가치를 바꾸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사람들이 무덤을 찾아왔을 때, 천사는 “너희가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라고 말했습니다(마가복음 16:6). 또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은 믿는 자들을 핍박(逼迫)하던 사울에게 “나는 나사렛 예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도행전 22:8). 예수님은 나사렛이란 이름을 취하여 그것을 하늘에까지 높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탐관오리를 척결하는 부패한 사또의 권력을 가진 부패한 사또의 부패를 척결하는 암행 의사가 마패를 들어 암행어사 출두요 그랬을 때, 그 사람이 갖는 능력이 아니고 그에게 마패의 암행어사라는 직분에게 부여한 왕의 이름의 권위가 부여된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교묘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반기독교 정서가 있습니다. 반기독교 문화가 있습니다. 오늘 나사렛의 이름을 무시하는 것처럼, 반기독교적인 정치 성향이 있습니다. 특별히 대학 교수들이 강단에서 잘못된 이념을 가르치고 또 사회 메디아, 이런 언론 굽어진 거 많이 있습니다. 엔티 기독교적인 글들, 반기독교적인 사상들, 이런 걸 가지고 오늘날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이걸 우리가 정확하게 알고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공격하는 거 있을 수 있다. 마귀의 전략이니까. 그러나 우리는 담대하게 이 시대에 베드로와 요한이 되어 가지고 시대 앞에 다른 일은 없는 구원을 들 수 없으니 오직 사랑의 구원을 얻으면 아니도 예수 그리스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느니라. 확실하게 선포하는 사랑의 교회와 순장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5번 적용문제.
-오늘날 성도와 교회가 부흥(復興)하는 비결(秘決)은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네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 속에 있는 능력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산 같은 장애물(障碍物)들을 돌파(突破)할 것입니다.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무기력한 것은 예수님의 이름에 의존(依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끄러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 있습니까? 이를 위한 당신의 각오(覺悟)와 다짐을 나누어 보세요.
-예수님의 이름이 매일매일 지금 내 삶에 신선한 능력으로 부어짐 받기를 바랍니다. 매일매일 역사해야 되는 거예요. 이게 왜 여기 중요한가. 하면 여러분, 왜 이것이 중요한가. 하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 제자들이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담대하게 할 수 있을 이유가 뭐냐 하면 또 예수님의 이름의 권위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어 있습니까? 13절에 보니까
*사도행전 4:13,
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13절에 13절 뒷부분에 에이 주의해야 됩니다. 사람들이 이 제자들이 전에 주님과 함께 교제하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주님과 함께 있은 것을 알았다. 몰랐다를 운동은 놀러 가고 합니다. 교제하고 동행하고 함께 다 알아야 되는 거예요. 그중에 하나가 여러분 특새는 뭡니까? 사람들에게는 큰 영향력이 있는 것입니다. 어 특새는 하나님 하고 계시지, 거기에 함께 찬영하기도 하고 말씀 듣고,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 활용을 찾고, 이게 너무나 소중한 일 아닌가? 여러분 오늘 손잡고 나오면서 저와 영화는 얼마나 좋고요. 이렇게 돌아 뭐 이렇게 아이고 돈 그대로 있고 흔히 나와서 여러분이 주님과 함께 동의하는 것을 누가 제일 잘 알고 있는가? 가까이 있는 사람 제일 잘 알죠. 남편이 예술을 가까이 했는지 술과 가까이 했는지, 누가 잘 압니까? 대답 좀 해봐요. 한 번 더 가장 가까운 아내가 제일 잘하고 우리 와서 반대하는데 부모가 예수님하고 경영하고 있는지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는지 부모가 함께 하고 있는지 부모가 함께 하고 누가 제일 잘 알아요. 아이들이 제일 잘 알죠. 아이들이 요새는요 주름과 가까이가 아니라 유투브와 가까이, 주님과 가까이가 아니라 드라마와 가까이 조영필 오빠 뭐 이런 사람도 있어요. 왜 나에게는 기름부음이 없는가, 고민하지 말고 왜 나는 주님과 더 가까이 하지 않는가? 왜 주름과 더 깊은 교제가 없는가? 그걸 고민해야 되는 거예요.
 
주님과의 교제 능력이 실질적으로 삶의 능력으로 정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가 나와 함께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왜 사람 말의 문제를 알 사람이 과거에 은혜 만났던 분들 이 자리에 계십니까? 과거에 나름대로 열심히 했던 분 시험 안 들고 열심히 초심으로 성심으로 한결같은 분들이 여기에 계시죠?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요즘 좀 뭔가 무언가 빠져있다면 정신 차려야 되고, 아주 신선한 우유도요 3일을 못 가요. 양분이 있다. 할지라도 그냥 놔두면 변해요. 매일매일 신선한 우유를 마셔야 되는 거예요. 오늘 이런 순장과 순원들이 이런 것이 매일매일 여러분들을 향한 신선한 우유가 돼 가지고 여러분들의 건강을 지켜주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어저께나 오늘이나 순원들과 부르고 들어보고 해주세요. 나도 오늘 가슴이 뭉클하더라고요. 내가 마음처럼 죽을 때까지 지속하게 해주시고, 허물 많은 베드로를 용서하시고, 의심 많은 도마에게 확신 주시고, 사랑하는 해주죠? 부드러운 사람으로 품고 서로 격려하는 자들이 되며, 오늘 그런 마음을 가지고 승리하는 순장, 순원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
-그리스도인이 힘 있는 신앙생활을 하는 비결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 이름의 능력이 회복(回復)되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무릎이 예수님의 이름 앞에 꿇어지는 것이요, 모든 입술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빌 2:9-10). 당신이 속한 모든 삶의 영역에서 세상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거룩한 담력으로 예수를 자랑할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아멘.
*빌립보서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지극히 높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페립소센’은 ‘휘페르’('위로')와 ‘휩소스’('높은 곳')의 합성어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려지다’라는 의미 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겸손과 수치스러운 죽음의 자리에서 다시 부활과 승귀(昇貴)를 통해 영광에 이르도록 높이셨음을 시사한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바울은 이 이름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언급하지 않는다. 이 ‘이름’에 대해서 혹자는 ‘예수’라고 주장하며 혹자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맥상 ‘이름’은 11절에 나오는 ‘주’를 가리킨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전우주를 다스리시는 주권을 소유하신 ‘주’이심을 시사한다.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해 설) ‘시인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사본에 따라 다르게 사용된다. 어떤 사본에서는 제1부정과거 가정법인 ‘엑소몰로게세타이’를 사용하여 ‘시인하였을 것이다’라는 의미로 기술한다. 다른 사본에서는 미래 직설법인 ‘엑소몰로게세타이’를 사용하여 ‘시인 할 것이다’라는 미래적 의미로 기술한다. 두 가지 경우 중 문맥상 전자가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10절의 ‘꿇게 하시고’의 헬라어 ‘캄프세’는 ‘캄프토’('굽히다')의 제1부정 과거 가정법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높이셔서 ‘주’라는 칭호를 주심으로 모든 만물로 하여금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주’라고 시인하게 하셨다. ‘주’에 대한 시인은 하나님 뜻의 성취를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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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장반 강의(주후 2024년 03월 05일)
제목: 1과 - "나와 씨름해 주시는 하나님"
말씀: 창세기 32:9~32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찬양인도: 오준석 부목사님
 
강의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창세기 32:9~32,
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3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14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15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16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누어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의 종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거리를 두게 하라 하고.
17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누구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의 것은 누구의 것이냐 하거든.
18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19 그 둘째와 셋째와 각 떼를 따라가는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 말하고.
20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21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32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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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회중 찬송하시는데
‘주여 속히 임하셔서 기쁜 날을 주옵소서.’ 막 목이 메이는 거에요. ‘주여 속히 임하셔서 부흥의 날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여러분이나 저는 다 인생에 에서가 있습니다. 오늘 야곱의 얘기를 할 터인데 에서 때문에 다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싸워주시면 에서를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 회복을 넘어 부흥이 시리즈를 하는데 제 마음에 저 먼저 다 와 닿았던 것 중에 하나가, 여러분 부흥은 어떤 개인의 고립된 사건이 아닙니다. 부흥은 개인의 부흥은 공동체의 부흥과 같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부흥되면 개인도 부응하는 것입니다. 제 이야기 정도가 아니고 존경하는 신앙 선배 J.I 패커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부흥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새로운 활력을 주시는 일이요, 동시에 개인의 삶을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J.I 패커-
 
-공동체가 새로워지는 것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도 회복되고 부흥되는 것입니다. 이게 같이 가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교회가 막 부응할 때, 그 교회에 속한 성도들의 비즈니스가 부흥하고 그리고 그 교회에 속한 성도들의 가정이 새로워지고, 그리고 예술을 하는 사람은 그림을 더 잘 그리게 되고, 음악 하는 사람들은 음악이 더 깊은 차원에 들어가게 되고, 인간의 수많은 한계를 갖고 있는 분들의 한계를 극복하고 학문의 세계에서도 부흥하는 것을 제가 많이 보았습니다.
 
이번에 이 시리즈를 통하여 사랑의 교회뿐만 아니라 여러분 개인도 부응하는 축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니 우리가 그렇게 기도하고 이 말씀을 드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바울 한 사람의 부흥은 바울 한 사람의 부흥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대 로마 제국을 업사이드 나오는 역사가 일어났고, 어거스틴의 개인의 부흥은 초대 그 교부 시대의 부흥을 이끌어냈고, 요한 캘빈을 비롯한 여러 루터의 부흥을 통하여 유럽의 대 부흥이 일어났고, 19세기에 미국의 대 각성 운동을 통하여 그 대각성이 일어났을 때에 여러분 단순히 어떤 미국 교회에 부흥하는 정도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미국의 팩스 아메리카나, 미국의 국가적인 대 부흥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오늘 이 부흥 시리즈 일어나고 난 다음에 한국이 다시 부흥되게 도와주십시오! 이 민족이 다시 한 번 세계 선교를 마무리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과 기백을 갖추게 하여 주십시오!
 
오늘 첫 번째 주인공은 야곱입니다. 여러분이 야곱은 잘 아시는 대로 인생의 고비 고비의 종합 선물 세트를 가졌던 사람입니다. 장자 권 마음이 쓰여 져 가지고 하나님이 알아서 줄 텐데, 이 야곱은 늘 이 자기가 좀 더 앞섰어요. 그러니까 똑똑하니까, 그래가지고 아버지 속이고, 형 속이고 어쩔 수 없이 그 라반의 집이라고 야곱의 외삼촌 집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가서 20년 동안 죽을 고생을 합니다. 그러니까 그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였던 것은 야곱의 어떤 면에서 개인의 흑 역사입니다. 그 흑 역사 때문에 도망을 갔습니다. 가서 20여 년 동안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중간에 한 14년 정도 지나서 돌아올 기회도 있었지만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사실 오늘 여기에 나오는 이 내용은 20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너,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라. 아비의 집으로 돌아가라” 그런데 아브라함 같은 경우는 하란을 여기 하란이거든요. 지금 야곱이 20년 동안 있었던 곳이 하란을 떠나서 가난으로 갈 때 단순하게 그냥 가버렸어요. 근데 야곱은 자기가 똑똑하니까 온갖 참 우여곡절이 여기 있는 것이에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20년 동안 이 시간이 걸렸는데 사실은 하나님이 20년을 기다려주신 것이었어요. 우리 가운데 수많은 흑 역사가 있고 우리 가운데 수많은 흑 역사가 있는 분들이 오늘 이 하나님께서 20년을 기다려 갖고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 이 예배에 참석하게 하실 지도 몰라요. 하나님이 20년을 기다려 주시는 것이 사랑의 교회 성도들이여,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주의 권속들이여, 이 말씀을 통하여 10년, 20년, 30년 아니 선대에 걸쳐 내려오는 신앙의 가문에서라도 해결되지 못한 부분이 있거든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해결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정말 진리 지식과 지혜가 하나님께 주셔야만 되는 것이에요.
 
우리는 성경에 많은 인물들을 앞에 놓고 예를 들어서 아브라함이다 바울이다. 그러면 우리는 너무나 먼 당신이에요. 아브라함이나 바울은 우리하고 좀 멀리 가 있는 당신이에요. 그런데 야곱은 좀 우리하고 좀 가까운 당신이에요. 왜냐하면 우리하고 속성이 너무 비슷해요. 구약에서는 야곱, 신약에는 베드로 비슷해요. 우리하고 야곱을 앞에 놓고, 우리가 사랑하는 성도야, 내가 너를 20년 동안 기다렸다. 이제 회복을 해야 할 때이니라. 그 말씀에 여러분들 마음을 열기를 바랍니다. 잘 아시는데 야곱에게는 두 아내와 11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엄청난 수의 염소와 양과 낙타와 나귀와 소가 있었습니다. 돈도 많았습니다. 이제는 두 대를 이루고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속에는 사라지지 않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동물이 580마리에요. 말씀한 대로 아버지와 형을 속였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형을 속이고 난 다음에 그 머리를 많이 굴렸어요. 어떻게 하면 자기가 살아볼까,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그런 것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지만 잔머리를 많이 굴렸어요. 그래서 잔머리를 많이 구른 걸 우리가 뭐라 그러죠? JQ지수가 높다. 아이큐가 아니라, JQ가 많이 발달됐다. 그리고 형을 다시 만나는 이 과정에도 야곱의 이 잔머리가 잔꾀가 발달이 됐어요. 먼저 종들을 에서에게 보내갖고 에서의 어떤 상황, 에서의 마음 에서가 지금 나에게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형이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반응을 떠보려고 그랬어요. 사실은 야곱이 좀 더 성숙했으면 이 순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될 터인데, 본인이 워낙 똑똑하고 자기 나름대로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두 떼를 이루는 능력이 있으니까 그렇게 이제 종들을 보내가지고 그렇게 알아보게 했는데 종들이 들어와 가지고 뭐라고 보고하느냐 하면, 오늘 앞에 32장 6절에 보니까 이렇게 나와 있어요.
 
*창세기 32:6,
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그러니까 이 400명을 거느리고 온다? 왜 400명을 거느리고 오지? 자기가 잔머리를 이렇게 굴리니까 이거는 날 죽이려고 400명을 데리고 오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고 왜냐하면 마음에 늘 두려움이 있고, 떳떳하지 못하니까 오해하게 되는 것이에요. 미리 판단하는 거예요. 사람이 두려움이 있고 짐이 있고 상처가 있고 이러면요. 전체를 보는 시각이 약해져가지고 자기 지레 짐작을 많이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삶의 헛발질 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하나님께는 전심으로 기도하지 못했어요. 야곱은 지금 사람에게는 진심, 하나님께는 진심이 아니고 사람에게는 의심, 하나님께는 무심, ㅋㅋㅋ 사람에게는 의심, 하나님께는 무심, 그래서 그가 제 키를 굴려가지고 사람에게는 의심, 하나님께 무심이 발동이 돼 갖고 자기 형에게 돌아가면서 자기 무리를 둘로 나누었어요. 그래서 앞 그룹은 자기가 덜 좋아하는 좀 덜 아끼는 그룹을 먼저 보내고, 뒤 그룹은 자기가 더 좋아하는 그룹을 했는데, 그렇게 한 이유가 뭐냐 8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큰 두려움 속에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는 그가 20여 년 전, 고향에서 도망칠 때 드렸던 기도와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다음 구절 속에서 두 기도의 차이점을 찾아보세요.
--------------------
 
*창세기 32:8,
8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뭐라고 나와 있냐면 에서가 와서 먼저 앞에 있는 사람을 치면, 그 순간 나는 도망가리라 그랬어요. 대단한 JQ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야곱을 가나안 땅으로 돌려보내신 분이 누굽니까? 9절에 나오죠.
 
*창세기 32:9,
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하나님이 돌아가라고 그러셨으면 하나님께 전적 의탁을 하고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갖고 가면 되는데, 그게 참 잘 안 되는 거예요. 그게 워낙 똑똑하니까 그래갖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앞에 1절 2절에 너를 지킨다.
 
*창세기 32:1-2,
1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옛날에 벧엘에서 혼자 아버지 엄마를 떠나가지고 혼자 광야에 왔을 때 벧엘이라는 곳에서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보여주신 것처럼, 지금 오늘 더 돌아갈 때 앞에 1절 2절에 천사들을 보내 하나님의 군대를 보내와 너를 지키겠다. 그걸 ‘마하나임’ 입니다. 1절 2절에 나와 있어요. ‘마하나임’ 입니다. 하나님의 군대라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입니다. 그러니까 나름 좀 평안한 마음을 좀 가지고 이제 마음이 좀 평안하게 되니까 하나님이 나를 지킨다고 생각하니까 드디어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오늘 몇 가지 살펴볼 때 첫 번째 여기 나와 있어요.
 
I. 첫 번째, 회복의 기도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래서 야곱이 오늘 나오죠. 9절부터 시작해가지고 그다음에 저 뒤에 12절까지 야곱이 기도를 하는데 이 야곱의 이 기도가 회복의 문을 열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두려워하는 에서가 있고 우리에게 다 두려워하는 트라우마가 있다 하더라도 이 네 가지 기도가 기본이 돼야 합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에게는 회복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첫 번째 기도가 뭔가? 9절에 보니까 이렇게 나와 있어요.
 
*창세기 32:9,
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을 얘기하면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조상의 아브라함, 그리고 이삭의 순종을 얘기하면서 내게 은혜 베푸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첫 번째 기 기도의 내용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하나님의 위대하심, 하나님의 임재하심,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 그래서 하나님 되심에 먼저 초점을 맞춘 거에요.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어요.
 
▷야곱의 기도
첫째,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하나님의 위대(偉大)하심에 먼저 초점을 맞췄다.
-옛날에는 항상 자기중심이야 기도를 하는데 창세기 28장 앞에 벧엘에서 기도할 때 아주 재밌는 내용이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렇게 나와요. 조건부예요. 하나님께서 28장 20절,
*창세기 28:20-21,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시고, 내게 먹을 거 주시고, 입을 거 주시고, 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조건부에요. 컨틴전시(Continjency)예요. 조건부가 되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 자기중심적인 기도였고, 그랬는데 이제 기도가 좀 성숙하기 시작했어요. 두 번째 기도 제목은 그다음 10절에 나오죠.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야곱의 기도
둘째, 자신이 얼마나 무가치(無價値)한 존재(存在)인지를 인정했다.
-고백하는 그런 내용이었어요. 나는 주님의 은혜를 조금도 감당할 수 없는 부족한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조금씩 올라가는 거예요. 그 기도가 첫 번째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두 번째는 자기의 무가치함을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의 자세, 세 번째는 뭔가,
*창세기 32:10,
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나는 주님이 내게 주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 기도의 제목은 하나님 앞에서 겸비한 마음의 자세였어요.
 
▷야곱의 기도
셋째, 구체적인 기도 제목으로 간구(懇求)했다.
*창세기 32:11,
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주십시오. 내가 너무 겁납니다. 에서 형 너무 겁납니다. 자기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나를 도와달라고, 구체적으로 두려움을 하나님께 솔직하게 고백을 했어요. 그리고 또 한 번 네 번째가 있는데, 그것이 뭐냐, 아까 여러분들 보신 12절에 뭐라고 나와 있느냐 하면,
 
▷야곱의 기도
넷째, 하나님의 약속을 재차 언급했다.
*창세기 32:12,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이 언약은 아버지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또 아버지 이삭에게 주었던 그 내용을 다시 한 번 다시 한 번 리컨펌(Reconfirm)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이 네 가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자기의 무가치함과 겸손함, 그리고 실제적으로 필요한 내용들, 하나님의 약속을 재차 언급을 했습니다. 이건 좋아요. 근데 문제는 이제 시작이에요. 밤을 지내고 어떻게 합니까?
 
▷야곱의 기도
첫째,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하나님의 위대(偉大)하심에 먼저 초점을 맞췄다.
둘째, 자신이 얼마나 무가치(無價値)한 존재(存在)인지를 인정했다.
셋째, 구체적인 기도 제목으로 간구(懇求)했다.
넷째, 하나님의 약속을 재차 언급했다.
 
2. 야곱의 기도는 우리가 모범으로 삼을 정도로 그 내용이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기도 이후 야곱의 행동은 그가 여전히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응 구절 속에 나타나는 야곱의 모습을 살펴보고, 그의 철저한 전략이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는지 말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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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기도는 하지만 믿지 않는 아이러니
-문제는 그다음에 이렇게 기도하고 난 다음에 야곱이 한 여러 가지 행위 절차를 보면 기도는 이렇게 멋있게 했는데 실제로는 안 믿은 거예요. 이게 문제예요. 기도는 하지만 믿지 않는 아이러니 멋진 기도를 드렸지만 하나님께서 내 삶에 역사하실 것을 제대로 믿지 못하는 것, 훌륭한 기도는 하는데 실제로는 믿지 않는 거에요.. 그래서 13절에 야곱이 거기서 이제
*창세기 32:13,
13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예물을 택하는 건 나쁜 건 아니었지만 너무나 과도한 염모를 가지고 형 에서의 마음을 하려고 형 에서가 자기를 칠 것을 대비하며 준비를 하는 것이에요. 어떻게 보면 믿기는 믿는데, 실제로는 안 믿는 이중성이 나타나는 것이에요. 형에서의 분노를 달래기 위하여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이에요. 훌륭한 기도는 하지만 확실한 응답될 것을 못 믿는 약점이 있는 것이에요. 이것이 야곱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야곱과 공감대가 많다는 것이죠. 열심히 기도하면 그렇게 믿어야 되는데 인간적인 불신이 날마다 상황 가운데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리고 야곱 같은 경우도 기도는 그렇게 멋지게 했는데, 하나님의 권능보다도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 것이 나중에 실제는 어떻게 되느냐 하면, 야곱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에서가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에요. 야곱이 에스에게 잘해준다고 에서가 더 감동받고 그런 게 아니고 여러분 33장 뒤에 4절에 보니까 이렇게 나와 있어요.
 
*창세기 33:4,8,
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 맞추고 서로 우니라.
8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에서와 야곱이 만나고 난 다음에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며 그에 입 맞추고 서로 통곡하고 울었어요. 내 동생 야곱야, 아마 이건 하나님이 하시는 거죠. 에서가 막 그렇게 울면서 속으로 그랬을지 몰라요. 내 동생 야곱 아마 이건 하나님이 하시는 거죠. 에서가 막 그렇게 울면서 속으로 그랬을지 몰라요. 20년간 복수의 칼날을 갈았는데 이게 뭔가 그러니까 야곱이 나름대로 대책을 세우고 한 것이 전혀 뭐예요? 전혀, 계략이 전혀 효과가 없었어요. 에서를 향하여 580마리의 그 소떼와 양떼와 이런 거 낙타 이런 걸 막 갖다 주려고,,, 그 당시로서는 이게 어마어마한 선물입니다. 정주영 씨가 1차로 북한에 갔을 때 소떼 500마리 데리고 갔잖아요. 지금도 그거 굉장한데 그 당시에는 그게 아무런 별로 효과가 의미가 없는 것이에요.
 
제가 볼 때 그러면 목사님, 에서가 왜 400명 데리고 왔느냐고,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는데 에서 입장에서 야 나도 이만큼 대단하다. 나도 400명 데리고 올 수 있다. 동생에게 좀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이건 순전히 제 생각이에요. 그러나 뭐 그렇게 큰 무리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인간의 꾀를 쓰고, 머리를 쓰고, 애쓴다고 했지만 그 애쓴 것이 별로 의미가 없게 된 것입니다.
 
3. 야곱의 회복은 인간적인 철저한 계산이나 계획에 달려 있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회복의 문으로 들어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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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구체적인 회복의 시작.
 
*창세기 32:22-24a,
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 새.
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드디어 22절부터 24절까지 밤에 22절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 새. 그러고 난 다음 24절에 다 건너가게 하고 야곱은 홀로 남았다. 아마 혼자 남아서 더 깊은 생각과 기도를 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일대일 대면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야곱과 하나님의 관계는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을 통하여 만난 좀 간접적인 만남, 마치 온라인 같은 비대면의 경험이었어요. 오늘 드디어 대면으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간접 경험에서 직접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20여 년 전에 벧엘에서 만났던 하나님은 좀 멀리 계시는 건 하나님 같았지만 오늘 만남은 본격적으로, 오늘 하나님과 대면하여 만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제 24절 뒤에 홀로 남아가지고 무슨 얘기가 나오는가,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여러분 이 내용은 구약에서 너무나도 신비롭고 흥미로운 얘기입니다.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이 말씀을 우리가 보면서 야곱을 찾아와서 씨름한 사람이 누군가 제가 물어보겠습니다. 야곱이 먼저 씨름하자고 그랬습니까? 이분이 먼저 씨름하자고 그랬습니까? 왜 이렇게 연약하세요? 다들 야곱이 먼저 씨름하자고 그랬어요? 아니면 이분이 먼저 씨름하자고 그랬어요? 아주 흥미로 이분이 누굽니까? 이분이 우리가 그냥 평가한 하나님이 아니고 30절에,
 
*창세기 32:30,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다 하는 거, 보니까 그래서 브니엘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보니까 하나님이세요. 그리고 나중에 호세아 선지자가 야곱의 씨름에 관해서 호세아 12장에 해석을 내놓았어요.
 
*호세아 12:3-4,
3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4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그러니까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누가 먼저 찾아오신 거예요? 하나님이 찾아온 거예요. 그래서 회복의 시작을 좀 정리를 한다면 회복의 시작은 인간적인 계획과 나름 기도는 하지만 실제로는 믿지 않는 거예요. 우리가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실제로는 내가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에요. 똑똑하니까,,, 그리고 자기가 생각하는 400명 이 400명이 나를 치러 온다 그랬을 때 여러분 나름대로 야곱 나름대로 자기 프레임이에요. 오늘 이런 일 많잖아요. 여러분들 유튜브 보는 대로 여러분들의 프레임이 가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들 유튜브에 딱 치면 유튜브 나오잖아요. 그게 여러분이에요. 저는 요즘요. ‘9 26 섬김의 날’만 계속 나와요. 계속 그것만 나와요. 며칠 전에 은혜 받은 게 선교 날 마지막 패배 난 막 그때만 너무 강력하게 해가지고 잘 잘 기억이 안 날 때가 있는데 우리 아이들 주일 학교 아이들이, ♬내 하나님은 그거 힘 있고 능이 있어 못할 일 전혀 없네.♪!~~~ 그게 막 유튜브로 막 올라오는 거예요. 저한테. 그래서 이번 주일날 해야지, 여러분, 이게 여러분 유튜브 딱 치면 나오는 그게 여러분이라니까 지금요. 그게 여러분이 그 프레임이에요. 그러니까 400명이 나를 칠 것이다 아닌데 지레짐작 해가지고 그런 일들이 너무 많고 기도는 하지만 믿지 않는 기도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내 삶을 통제해야 한다는 이런 우리의 성향이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회복의 시작은 인간적인 개혁과 나름 인간적인 기도와 나를 치르려고 하는 400명의 오해 이런 것들을 깨부수고 업그레이드 돼야 되는 것입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힘 빼기 작업하는 것이 여러분 야곱의 문제는 뭐였습니까?
 
※야곱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자기를 위해 일하신다는 그 사실을 그렇게 깊이 믿지 않았어요. 하나님 믿으면서도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일하시는 분이시다. 그걸 특별히 믿지 않으셨어요? 믿지 않았어요. 믿으면서도 믿지 않았다.
-다시요 믿으면서도 뭐 하지 않았다고요? 믿지 않았어요. 그의 내면은 하나님은 그의 내면은 이렇게 하나님은,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시긴 하지만 그러나 내가 내 삶을 통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하실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안타까운 이런 상황에 대해서 하나님은 너의 진짜 믿음의 용량이 커지고, 저 진짜 니가 믿음의 조상이 되고, 네가 진짜 부흥하려면 너의 자기중심적 신앙관이 깨어져야 한다는 거예요. 야곱의 기도가 나름 괜찮고 신학적으로 옳았지만 하나님께서 자기의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능력 있게 일하심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걸 깨우치려고 하신 것이에요.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제가 부흥을 얘기하면 자기 나름대로 생각들이 다 있는 것이에요.
 
※어떤 분은 우리 교회는 아니 교회가 이렇게 크고 그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데 여기 또 부응 많이 해가지고 또 얼마나 사람을 모을 것인가 여러분 그게 다 자기 프레임이에요. 부흥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거 그거는 나중에 나타난 열매이고 부흥은 내가 깨어지는 것이에요. 부흥은 내게 있는 에서를 처리하는 것이에요. 부흥은 내가 내 삶을 통제하려고 하는 하나님을 믿지만 기도도 하지만 그러나 막판에서는 내가 내 모든 것을 마지막 결론을 내는 이런 스타일을 정리하는 것이 부흥인 것이에요. 그래서 한국교회 지금 그럴 듯한 말로 교회 내에서도 뭐 이런저런 얘기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이 한국 교회 내에 진짜 부흥을 맛본다는 것은 자기 힘 빼기요 에서를 처리하는 것이요. 자기 속에 있는 잘못된 프레임을 처리하는 것이에요.
 
우리 모두에게 이런 성향들이 있죠? 우리 기도도 어느 정도 괜찮고 신학적으로 자리가 잡히고 신앙적으로 나름대로 신앙의 역사가 있어가지고 나름 멋진 기도를 하기는 하는데, 하나님께서 내 삶에 실질적으로 일하는 걸 믿지 않는 거예요.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내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 자신이 없는 거야. 그러니까 기도하고 난 다음에 다시 내가 하는 거예요. 옛날에 우리 할머니 권사님들 교회 와갖고 날마다 새벽 기도 다 기도 다 제목 다 하고 난 다음에 갈 때는 그 기도 제목 다시 다 거두어 가지고 보따리 싸가지고 다시 가고 고민하고 우리가 특세나 새 생명 축제에 귀한 분들이 간증을 하고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김 집사님이나 이 집사님이나 박 권사님이나 김 장로님에게 되는 거지, 나에게는 되는 것이 아니야. 나에겐 역사가 안 일어나! 그러니까, 그러니까 여러분 이 수천 년의 야곱의 이 얘기가 여러분 내 얘기가 돼야 할 줄로 믿습니다. 내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 오래 다니시는 분들 가운데 이런 신드롬이 많아요. 남이 은혜 받는 거 보면 은혜 받는데 정작 내 스스로는 안 되는 거예요. 주로 언제가 위험 하냐, 3대가 위험해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야곱이 3대, 그래서 내 의지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강력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를 별로 안 하는 기도는 하지만 늘 신앙의 상식선에서 하도 요즘 교회가 어려우니까 상식적인 교회가 되길 원해요. 이런 말도 하지만 신앙은 상식이 아니에요. 신앙은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에요. 신앙은 부흥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만나는 것입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상식선에 하나님을 믿으니까, 계란으로 바위 칠 생각도 안 해보고 부흥에 대해서 눈도 못 뜨는 것이 드디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 우리가 기도를 하면서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불신앙의 잔재들이 이번에 이 기회를 통하여 청소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리 돼야 되는 거에요. 드디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25절을 보십시오.
 
*창세기 32:25,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옛날 말로는 위골되었더라. 허벅지 관절, 소위 고관절, 골반 뼈가 어긋나버렸습니다. 야곱이 계속 성하고 야곱이 포기하지 않자, 절대 포기 악착같이 하니까 하나님께서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쳐버리셨어요. 야곱이 인간적으로 저항할 만한 그 힘의 근원을 처리해 버리셨어요. 차단시켜버리셨어요. 그래서 야곱이 할 수 있는 것은 뭐냐, 낯선 분 앞에 엎어져가지고 그분을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자기 힘으로 씨름하던 사람이 매달리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 거죠. 그리고 엎어지면 그걸로 그냥 항복해야 되는데 야곱은 또 있잖아요. 26절에 보니까,
 
*창세기 32:26,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엎어져 놓고 하여튼 그 성격 자체가 독특해요. 이거 끝났는데 그건 안 끝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야 니 이름 뭐냐? 야곱입니다. 잘하신 대로 야곱이 뭐예요? 속이는 자, 악착같은 자, 악착같은 자, 자기의 삶을 자기가 통제하려고 하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께서 ‘네가 다시는 이름 야곱이 하지마라.’ ‘너희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하라.’ 네가 하나님 및 사람들과 괴로워 이겼다. 사실은 지금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뜻이 뭡니까? 물어보면 하나님과 교류를 이겼다, 이런 뜻도 있지만 사실은 좀 더 엘을 엘로힘, 할 때 에이 이스라엘 하나님 이름 들어갔을 때 하나님이 승리하신다. 하나님이 싸워주신다. 이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너가 이제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이름을 얻었다는 그런 뜻 이런 뜻이에요. 너 힘으로 인생 싸우며 살지 말고, 내가 싸워줄게. 니 힘으로 인생 살려고 크게 아등바등하지 말고, 내 힘으로 내가 싸워줄게, 니 인생 니 지팡이 니 집고 혼자 살지 말고, 나한테 의지하면 내가 싸워줄게. 그게 이스라엘이라는 뜻이에요.
 
많은 분들이 야곱이 밤새도록 하나님과 씨름하고 이겼기 때문에 야곱의 기도 용사였다. 이런 얘기하는 분도 있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겠지만, 사실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 먼저 찾아와 주시고,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한 것이 아니라, 야곱과 씨름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세요.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을 ‘나와 씨름해 주신 하나님’이라고 그랬어요. 야곱의 고집스러운 자기 의지와 자기 처신에 대한 과도한 의도를 깨부수기 위하여 하나님이 씨름해 주신 것이에요. 그러니까
 
◆4. 그리스도인의 회복은 자신이 의지하는 것을 깨뜨리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다음 글을 읽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진정 어떤 의미인지를 묵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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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싸우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싸워주시는 인생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져주신 것이에요.
 
이 세상적인 회복과 부흥은 막 우리가 이기고 승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부흥의 방법은 우리가 하나님이 져주시는 것이고,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에요. 최고의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 된 것이 뭐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져주신 것이에요. 십자가에서 주님이 쳐주신 것이 실제로 야곱은 하나님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야곱이 하나님 이기지 못하고 그의 환도(環刀)뼈가 위골이 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을 붙잡고 의존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주님을 더 의지하도록 그렇게 만든 거예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환도 뼈가 완전히 위골(違骨)이 되어서 내가 완전히 무너져서 하나님을 붙잡는 그 순간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실패일지 모르지만 이 시간부터 야곱이 참으로 승리하는 시간이 된 줄로 믿습니다. 내가 싸우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싸워주는 아주 그냥 신비한 인생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죽하면 바울 같은 경우는 그 유명한 내가 약할 때 강합니다. 그랬어요. 내 능력이 약할 때서 강하게 된다고 말씀한 것이에요. 내가 싸우는 인생이 아니라 누가 싸워주신다고요? 하나님이 그래서 하나님은 날마다 힘 빼기 작업하게 하시고 오늘 이 시대에 내 인생의 환도 뼈를 하나님이 치신 것이에요.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것이 회복의 플랫폼이 되는 것입니다. 잔꾀를 부리고 생각을 많이 하면 잔꾀를 부리고 생각 많이 할 때는 두려움, 에서의 얼굴이 많이 보였는데 오늘 이렇게 자기가 위골되고 난 다음에 드디어 하나님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뭘로 이름을 바꿨다고요? 브니엘이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 맨날 애사 때문에, 맨날 두려워하는 에서 때문에, 맨날 흑 역사 때문에, 어쩌면 흑 역사 때문에 야곱의 마음도 그거 뭐예요? 흑심이에요. 그 흑심이 하나님과 씨름해가지고, 하나님 대신 싸워주니까 회복이 되고, 부흥이 되고,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흑 역사가 이렇게 바뀌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축복했어요. 그리고 30절과 31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창세기 32:30-31,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30절 그가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뭐라고 불렀습니까? 그가 알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그동안 간접적으로 만난 하나님인데 이제는 직접 대면, 비대면이 아니라 대면하여 만나고 내 생명이 보존되고'
-31절 중요합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 뭐가 떴고요. 해가 더 낫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참 여기에 아주 많은 걸 깨달을 수가 있어요. 야곱의 지금 현 상황은 허벅다리로 말미아 젖었어요. 위골이 돼가지고 지팡이를 의지하지 면 안 되는 그런 상황이 되었어요. 그런데 영적으로는 해가 돋는 인생이에요. 새로운 차원의 삶이 펼쳐진다는 뜻인 거예요. 우리는 3년 동안에 이 코로나를 지나왔습니다. 코로나의 강을 지나왔습니다. 지나오면서 개인적으로 많은 트라우마도 많고 상처도 많고 우리 사회에도 전반적으로 수많은 어려움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이걸 우리 힘으로 해결해 보려고 별짓을 다 합니다. 기도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난 다음에는 믿지를 않는 거예요. 이런 속성을 향하여 주님 오늘 우리에게 주님 찾아오셔가지고, 우리와 씨름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싸우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싸워주는 인생을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까지 위골된 환도 뼈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우리의 삶의 역사에 우리의 다리를 절개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인도하심이 있는 것입니다. 그게 뭡니까? 믿는 가족에게 배신당해서 가족의 다리를 절게 될 수도 있고, 남보다 공부를 많이 못해가지고 우리의 어떤 지성의 다리가 절게 되는 분도 있고, 육신의 질병 때문에 다리를 절게 된 분도 있고, 사업의 실패로 다리를 절게 되는 분도 있고, 심리적으로 다리를 다칠 수도 있고, 과거의 상처로 다리를 계속 절게 되는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다리를 절게 될 때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에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놀랍게 하나님이 싸워주시는 그런 은혜를 만나게 되는 것이에요. 겉으로 볼 때는 이제 지팡이를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마는, 겉으로 볼 때는 내가 내 힘으로 씨름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팡이를 의지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지만, 이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싸워주시면 에서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이에요.
 
◆5. 성경 기자는 야곱의 회복을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다.” 라고 상징적으로 표현했습니다(31절). 브니엘을 지날 때 해가 돋았다는 것은 그에게 새로운 삶이 열렸음을 의미합니다. 당신에게는 인생의 브니엘을 지날 때 해가 돋는 경험이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 삶에도 해가 돋는 회복의 시작이 가능할까요? 이를 위해 당신이 결심한 바를 나누어보세요.
 
우리에게 있는 수많은 짐들과 수많은 기도의 제목들,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들을 주님께서 무니엘로 만들어주신 것이에요. 브니엘을 지날 때 해가 돋았고, 겉으로는 저었지만 해가 돋았다.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무슨 말입니까? 해가 돋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만남으로 새로운 삶이 열렸다는 뜻인 겁니다. 다시 기도하지만 믿지 않는 우리의 성령을 앞에 놓고, 오늘 우리 인생의 다리를 절게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주여 우리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시옵소서. 주님이 나와 싸워주시는 그런 인생 되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이 나와 싸워주시면 우리는 더 이상 에서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에 해가 없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부흥의 시작입니다.
 
지난 몇 주간에 걸쳐서 제 마음에 와 닿는 찬송 중 하나가 오래전에 했던 찬송, ‘내 마음속에 있는 참된 이 평화는 누구도 앗아을 수 없네. 그 후렴 가사에 ♬오 주 없이 살 수 없는 주님만 나를 구하시면 주님 없는 세상은 평화 없네.♪ 오 주 없이 살 수 없네. 영어로 (Oh! I could not live without Him). 아이코드 정말 절실해요. 주님 없이는 내가 어떻게 살 수가 없다고 오늘 야곱처럼 이런 고백을 할 때 여러분의 에서를 주님이 처리해 주실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또 다음 주간에 여러분 설거지하면서 길을 가면서 공부하면서 이 찬송 부르면서 눈물 흘리면서 이 찬송 부르면 다 정리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가슴에 손 얹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야곱 같은 인생을 붙잡으시고, 은혜 주셔서 우리의 삶에 수많은 저는 발이 많이 있지만 주님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다시 한 번 회복의 시작을 경험하게 하신 거 감사합니다. 믿고 확인하면서 정말 내 삶을 내 힘으로 통제하지 말고, 주님께 전적 위탁하여 계란으로 바위 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기적이 일어나는 삶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할렐루야 더 이상 에서를 두려워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시고, 성도들, 성도들의 삶에 은혜의 해가 동터 오르게 하옵소서.
 
삶의 열매를 거두며.
우리 인생에서 야곱처럼 더 이상 자신을 의지할 수 없는 절대 절망의 순간은 오히려 인생의 새로운 해가 뜨는 복된 시간이요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내 고집과 내 주장을 주님 앞에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참된 회복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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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장반 강의]
제목: 5과 "사명자로 죽는 꿈“
말씀: 사도행전 28:1-15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
찬양인도: 오준석 부목사님

강의자: 오정현담임 목사님
ㅡㅡㅡㅡㅡ

*사도행전 28:1-15,
1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2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3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4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6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7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8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9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10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11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12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13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14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15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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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 사명으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그 지난 주일날 우리 교회 40대 초반에 어떤 사업가 부부를 잠깐 만났는데, 너무 감동적인 얘기에요. 신혼부부 다락방인데 다락방 순장님 이름은 남자 조모 순장님이에요. 근데 몇 년 동안 신혼부부 다락방에 너무 은혜가 많다는 거예요. 은혜가 많은 이유 왜? 은혜가 많으냐? 이유를 대라. 그랬더니 쓸데없는 소리는 하나도 안 한답니다. 성경만 이야기 한답니다. 성경만 얘기한대요. 우리 다락방에서 다루 이것만 나누는데 그러니까, 이 친구도 똑똑하고 사업을 하는 친구인데 세상 얘기해봐야 얼마나 하겠어요? 여러분 세상 얘기가 얼마나 하겠냐고요. 여기 우리 다 지역적 배경도 다르고 또 살아온 배경도 다 다르고 그런데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주님 앞에서 하나 되게 하는 것인가? 하나님 말씀에는 다른 길이 없어요. 그러니까 제발 그냥 쓰잘 데 없는 얘기하지 말고 다단계, 뭐가 어떻다 이런 얘기 많이 하지 말고, 정말 말씀만 다루시라고요. 아시겠어요? 오늘 이 얘기는 여 순장 반, 남 순장 반, 여 직장인 순장은 동일합니다. 기본 원칙은 우리가 물론 필요한 우리 교회의 여러 가지 사역들은 같이 나눠야죠. 사역들은 대학생 정도 집회다. 우리 한국교회 섬기는 날이다. 그다음에 특새다. 이런 걸 우리가 다 다루는 거, 그런 하나님에 대한 사역이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그 외에는 다른 건 얘기해봐야 별 영향할 거 없어요. 기도 제목 나누고 가족들을 돕고 사람을 섬기는 그것도 이 오케이 그런데 다른 거 쓰잘 데 없는 이야기는 말아야 해요. 아시겠습니까? 사랑의 아름다운 전통에 대답하는 반응 좀 봐봐요. 아시겠습니까? 그러면 그 부분만 잘 기록하겠습니다.

성경을 좀 집중적으로 얘기합시다. 본문 사도행전 27장에서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배를 타고 로마로 이송되고 있었는데 유라굴로 돌풍을 만났죠?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한 사람도 상함이 있어요? 없어요? 그래서 바울을 포함한 276명이 바울을 빼면 몇 명이에요? 275명, 대답이 이래 시원치 않아요. 산수도 안 됩니까? 바울을 빼면 몇 명이에? 275명, 바울을 포함 276명이 전원이 어디하나 다치지 아니하고 구조되었습니다. 이들이 구조되어 다다른 곳이 1절에 무슨 섬이에요? 멜리데 섬, 멜리데 섬이에요. 이 멜리데의 섬은 뜻이 뭐냐 하면 피난처의 뜻이에요. 피난처의 오늘도 이태리 남부에 여러분들 뭡니까? 마피아, 마피아 시칠리아 알죠? 시칠리아 섬 옆에 위치한 섬이에요. 그리고 바울을 포함한 276명이 멜리데 섬에서 몇 달 동안 머물렀죠? 그것도 답이 안 되나요? 11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어요? 석 달 동안 3개월 머물렀는데, 누가는 그 기간에 그 석 달 동안 일어난 수많은 사건들 가운데 오직 두 가지 사건만 기록하고 있어요.

누가는 성령 충만한 사람이었어요. 누가는 우리가 소위 갖기 힘든 양수협정을 한 사람이에요. 누가는 의사였어요. 의사는 정치한 사람입니다. 정화가 치밀한 사람입니다. 의사는 정교합니다. 의사가 정치하지 않으면 아무 데나 꾸며버리고, 아무 데나 잘라버리고, 아무 데나 막 엉망 될 거 아니에요? 의사는 소위 마이크로 한 사람이에요. 마이크로 한 사람, 그러나 동시에는 의사는 의사였던 누가가 역사학자에 있어 역사학자, 성령 충만한 역사학자, 역사는 통전 적으로 통치적으로 전체를 봐야 합니다. 수백 년 역사를 보고 수천 역사를 보잖아요.

저는 제 부전공의 역사학이 에드워드 카, 라는 사람인데, “What is History?”-역사란 무엇인가? 에드워드 카, 그 분은 역사학자에요. 역사는 과거를 통하여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되찾기 위해 과거 현재가 대화하는 것이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그게 수천 년 역사를 가지고 시대를 바로 통전 때 그러니까 의사의 마이크로 한 것과 역사학자의 micro와, 매크로-macro로 하고 macro로 마이크로와 매크로 가 것이 겹쳐진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그 많은 사건들 가운데 딱 두 가지만 기록한 거예요.

독사에서 낳는 거, 또 수많은 병들이 낳는 거, 바울이 독사에 물린 사건과 바울이 원주민의 병을 치유한 사건이 두 가지. 그러니까 이 사건은 여러분 오늘 사명 받은 그리스도인은, 저와 여러분 사명 받은 줄로 믿습니다. 사명 받은 그리스도인은 독사에 물려도 하나님 돌보신다. 죽을 때까지 하나님 생명을 거두고 가기 전까지는 그래서 당당해야 되는 거예요. 동시에 또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거에요. 하나님은 늘 사명 자에게는 이 두 가지를 주시는 거예요.

하나는 뭐냐 하나님이 돌봐주셔요. 돌봄의 대상, 또 하나는 뭐 하는 거예요? 축복의 통로, 그다음 본문 관찰을 위하여 제가 도와드리는 거예요.

바울 일행이 멜리덱 섬에서 몇 달 보냈다고요 몇 달을 석 달을, 다시 배를 타고 로마로 떠나게 되었는데 바울이 이 섬을 떠날 때는 겉으로는 죄수의 모습이었지만 실제로 마치 승리한 장군같이 고귀하고도, 영광스럽고도 정말 명예스러운 모습으로 떠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내용을 오늘 11절부터 15절까지 아주 자세하게 그 역사학자 통찰 성령 충만한 역사학자인 바울이 의사 누가가 아주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요. 왜 그랬을까? 어떤 내용을 묘사하고 있을까? 우선 어떤 내용을 묘사하고 있을까? 멜리데에서 알렉산드리아의 곡물 상선을 타고 로마로 향합니다. 곡물 상설이 그 당시에 지중해를 갑니다. 저 아프리카 북부에 있는 것, 수많은 거 거기에는 수 없는 농작물이 있어요. 지금 말하면 정으로 말하면 어디입니까? 모로코, 모로코 지금 모로코 이쪽 모로코는 몰라도 카사블랑카는 다 알죠 카사블랑카는 몰라도 뭐야 그 남자 그 유명한 그 남자 배우의 이름은 험프리 보가트, 여자 배우는 잉글리드 버그만, 그런 거 알죠? 거기가 모로코 거기가 옛날에 지중해 1세기 때는요. 막강한 지금 우크라이나처럼 유럽의 빵공장처럼 거기가 로마 제국의 빵공장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곡물들을 싣고 곡물 수송선선 이름이 뭐라고요?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수라구사에 입상 수라고사가 나오죠. 수라구사에 입항을 해가지고 3일을 머물고, 그다음에 이탈리아의 서남단에 위치한 레기온에 도착해가지고 하루를 머물고, 그 이튿날 나폴리만의 작은 항구도시 보디온에 도착해요. 나는 지금 이태리 지도가 한눈에 원하니까 제가 이태리를 읽어 봤으니까 알죠. 그러니까 나폴리가 이태리 남부에 저기 뭡니까? 항구잖아요. 항구. 이리 이리 반도에 시칠리아 섬은 섬이고 그러니까 시칠리아, 마치 제주도 갔다면 앞으로는 뭐 부산 같이 그렇게 되는 거죠. 거기에 이제 항구도시 보디올이 흐르고 그리고 부산에서 이제 내륙으로 들어가는 거죠. 로마가 내륙이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부산에서 한 가지만 대구는 150km 밖에 안 되니까, 그런데 로마로 들어가기 전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뭐냐 하면 바울 일행이 로마로 걸어오고 있다는 소식을 로마 교회 성도들이 듣고 바울을 맞이하려고 로마에서 약 60km 떨어진 압비오 광장까지 나가서 반대해 줬어요. 서울로 말하면 서울에서 60km 떨어진 지금 여주 정도까지, 그리고 로마에서 더 가까운 16kg 로마에서 16km 떨어진 트레이스 타베르 여기 트레이스 타베르 15절에 나오죠. 트레이스 타베르, 트웨이스 타베르의 이 뜻이 뭐냐면 트레이스가 세 가지예요. 이게 여관 세 여관이라는 뜻이에요. 지금은 우리가 막 넓고 막 멀고 이런 것들이 아무 데나 가고 그러지만 그 당시에는 다 걸어서 가야 되니까 이것도 길거리에 거기에 여러 성도들이 바울을 맞이하러 갔습니다.

바울은 세상의 관점에서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까지 끌려가는 것이었지만 영적인 눈으로 보면 그동안 서신을 통해서만 알던 로마 교회 성도들과 함께 왕의 자녀의 신분으로 아피아 가도를 따라서 로마까지 찬송하며 걸었다. 어마어마한 누가는 이게 너무 감사해서 두 가지 아까 독사 사건, 병 치유 사건 이후에 이게 너무너무 감사해서 15절에,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뭐라고요? 감사와 담대한 마음으로 된 겉으로는 죄수의 몸이었지만 영적으로 볼 때는 이런 개성 장군이 없어요.

*사도행전 28:15,
15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그래서 오늘 바울이 어떻게 이럴 수 있었나? 오늘 보석 같은 진리를 오늘 본문을 통하여 확인하고 모든 다락방 순원들과 순장님들이 사명으로 살고 사명으로 죽는 21세기에 바울처럼 우리 인생의 이 아피아 가도를 하나님의 영광과 사명으로 있잖아요. 개선 장군 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한 분 한 분 붙잡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내가 이 얘기한다고 막 이렇게 얘기할 필요는 없고 여러분들이 지혜롭게 여러분의 언어로 귀법 적 질문과 또 비합법적 과 교재로 인도하면 좋겠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며.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대한 꿈이 있습니다. 여러분 죽음에 대한 꿈이 뭐예요? 건강하게 살다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평화로운 환경에 죽는 거예요. 하지만 이것을 이루기에는 죄로 오염된 이 땅의 삶이 그렇게 친절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는 소워하는 대로 맞이할 수 있는 죽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명자로 죽는 것입니다. 사명은 나이, 불의 의 사고(事故), 혹은 중병의 유무(有無)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사명자의 삶을 결심하고, 나아가 언제라도 후회 없이 사명자로 죽을 수 있는 꿈을 갖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무슨 목사님하고 캐나다 벤쿠버에 계시는데 아마 이분이 이제 인생을 다 이렇게 다 소진하고 쓰시고 가족들 다 모아놓고 찬송하는 마음에 가족들 다 모아놓고 그래갖고 돌아가시더라고요. 근데 그걸 가족들 가운데 누가 그걸 이제 막 유튜브에 올려놨더라고요. 이게 그러니까 내가 참 특별하더라고 보니까 나도 꿈이 생겼어요. 나도 죽을 때까지 가족들 나아놓고 찬송하다가 죽어야 되겠구나. 그러면 또 찬송하고 하다가 목숨이 안 끊어지면 어떡하나, 그건 저렇게 주님께 맡겨야 지 뭐, 하다 안 되면 숨 안 쉬면 될 거지 뭐. 그러니까 이게요. 4개월을 살다가 4주 이 사람은 세상 사람들하고 달라요. 완전히 달라요. 여러분 정말 지금부터 서운해야 돼요. 그냥 되는 법이 어디 있나요? 그냥 되는 법이 어디 있나요? 안아주신 본당? 그냥 된 겁니까? 제가 굉장히, 심오한 질문을 한 겁니까? 아주 어려운 질문을 한 겁니까? 이 안 나오신 분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기도나 이 알아주지 못하는 집이 있으니까 한국교회 섬김의 날도 가능한 것이었어요. 전 세계가 찾아오는 거예요. 어제도 이브 역대 3부, 수잔 숄티 세계적인 인권운동가 부부가 와가지고 뒤집어졌어요. 세상에 이런 교회가 어디 있냐고 했어요. 여기에 천장 조명 디자인 안아주신 본당, 곡선이 모든 건 사명에 살고, 사명을 죽였다는 사람들이 기도하고 마음 모으고 해서 이렇게 해가지고 이리 된 거예요. 여러분 남은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다시오. 이 땅의 삶은 친절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사명으로 살고 사명으로 죽겠다는 사람 앞에서는 불쌍히 여겨주시는 것이에요. 그걸 다 마음이 가지고 보십시다. 다 성경 얘기 바울이 로마에 입사할 때 그때 로마 황제가 누구였어요? 그것도 모릅니까? 검은 고양이 네로가 아니고 폭군 네로에요. 로마의 폭군 내로가 로마 제국을 15년 동안 통치를 했어요. 15년. 폭군네로는 얼마나 대단한 황제의 영광이 있었는지 몰라요. 그리고 독재자였고 로마를 불태우고 그 쿼바디스라는 영화 보면 네로 나온 사람이잖아요. 이러면서 그 수금을 가지고 로마 불타는 걸 보면서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구경이 뭐냐면 불구경하는 게 제일 재미있잖아요. 자기 집만 안타면 불구경하는 게 제일 재미있는 게 없다고. 나는 어릴 때 부산에 살았기 때문에 부산이 불 산이야. 곳곳마다 불이야. 그 당시에는 왜? 안전 감각이 별로 없으니까. 부산 초량에 있는 어떤 분들이 부산 여기 막 대형 화재가 일어나고 불이 막 나는데 너무 재밌어가지고 부산역 불구경하고 있는데 오늘 보니까 자기 집에 타고 있더래요. 부산역에 초량이 있거든. 이렇게 숨을 타고 있잖아. 불타는 로마법 쿠바디스 소리 나와요. 보셨죠? 기억나지? 근데 그렇게 독재자가 그리고 네로가 한 번 이렇게 네로가 한 번 행차를 할 때마다 혼자 안 가죠. 말 탄 기병이 천 명 황제기가 되어가고 침이 되어 말 탄 기병이 천 명이, 우리 수원 행궁도, 화성 행궁도 할 때, 정조가 경복궁에서 화성까지 갈 때, 그렇게 많이 하고 저기 뭡니까 나가는데 그래도 기마병이 천 명은 안 됐어요. 어림도 없어요. 기껏해야 한 20~300명, 천 명의 기명과 수많은 기병대들인데 황제가 사는 궁은 2km나 되는 황금 궁이었고 벽에는 상아와 자개와 또 온갖 금으로 장식이 되어 있었고 그리고 황제가 사는 궁궐 천상에는 향수가 막 뿌려져 가지고, 옷은 얼마나 멋진 옷들이 많은지 한 번 입은 옷은 다시는 입지 않았어요. 그저께 제가 말씀한 대로 값비싼 퍼플 색 옷가지로 만든 옷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정도로 황제의 독특한 영광이 있었어요. 근데 그 영광이라는 것은 껍데기, 껍데기였어요. 네로는 공포정치, 독재 정치를 하다가 결국은 원로원이 자신을 적으로 선포했다는 얘기를 듣고 원로원과 싸고 싸우기 위하여 군위 병을 소집했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남은 사람은 노예 4명밖에 없었습니다. 절망감에 빠진 네로는 노예들과 도망하다가 들켜가지고. 결국 네로가 뭐였죠? 그 세상의 최고 황제였지만, 공포 가운데 스스로 자살로 인생을 막을 내렸어요. 이 세상에 부위의 극치 영화를 누렸지만 결코 행복하거나 만족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지금도 똑같아요. 제가 주일날 설명했죠? 그 유명한 여배우 이름이 에네트 베닝이에요. 에네트 베닝, 세상이 만세하면, “왜 이리 우울한 거야, 세상 만세하면 이리 우울한 거야.” 내 탁월함은 어디 가 있는 거야? 그 사람들은 돈 억수로 해가지고 살고 잠깐 인간적인 육신적인 즐거움이 있을지 모르지만 사랑에게 손잡고 갔고, 내가 매일 십자가 앞에 찬송 부르는 거와 이건 비교가 안 되는 거예요. 가만히 있는 거 봐요 진짜 사명자로서 부르는 찬송하고 비교가 안 되는 거야. 비교가 안 돼요. 뭣과도 바꿀 수가 없는 거예요. 이거는 비교가 안 되는 거다. 황제 로마 황제 네로의 그 영광과과도 비교가 안 되는 거예요. 사람은요 왜 그랬죠? 내가 얘기했죠. 장례식에는 왜 그랬죠? 사람이 만든 사람이 우리는 피조물이잖아요. 피조물로서의 창조물이잖아. 우리의 코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께 사명으로 살지 않으면 우리 인생은 어떤 인생도 행복하지 않아요. 잠시 잠깐 답답한 소리 뭐야 펜싱 선수 이름 남모 있잖아요. 정신 나가도, 그 정신 나는 여자가 어디 있어요? 성 전환하는 여자 알고 있나 이죠? 그 금메달을 어떻게 땄어? 내가 그 모습 내가 펜싱선수 진출을 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십자가에 죽은 것을 60이 넘어도 이걸 못 깨달았으면 그건 바보야. 그냥 우리 남 먹고 사는 거만 먹고, 살고 맡기고 있고 여러분 제 침대가 있는데요. 20이 아니 내 그 침대가 미국에서 한 5년 26년째 쓰고 있어요. 얼마나 후지겠어요. 내가 좋은 침대를 살 수 있고 그런데 아무튼 라텍스 하나 위에 덮어놓고 있잖아요. 내가 좀 한심해요. 그런데도 할렐루야! 목사님 저 말로만 하는 거 아니야 우리 집에 와 볼래요? 또 우리 마누라는 또 갑자기 어제 또 목감기가 걸리더라고 아침에 나가면 목을 못 쓰더라고 시험은 시험이구나! 이거 이번 주 새 성명 축제 앞에 놓고, 내 목 감기 그러면 어떡하나 당분간 별거하자, 라고 말을 안 하고 여보 마스크만 껴라. 우리는 뭐예요 따로 사는 걸 뭐라고 그러지 각방 우리는 각방 안 써요 우리는요 우리는 왜 친해요...내가 뭘 말했는가? 다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다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오늘 사명으로 살고 오늘 바울은 초라하고 죄수고 로마를 향해 걸어갔지만 그 마음은 얼마나 기쁜 일이 누구도 그 앞을 막을 수가 없어요. 바울이 수많은 시험과 고난을 통과했지만 하나님의 영광에 눈이 열렸잖아요. 그 영광을 체험하게 되니까, 오늘 그 하나님의 영광이 오늘 우리들에게까지 전달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게 남 이야기가 아니에요. 이 초라한 죄수복을 입었지만 사명자로 마지막까지 자신을 하나님께 영광스럽게 드렸던 바울과 로마 제국의 황제였지만 결국은 두려움 속에 몸부림치며 자살했던 황제 네로의 삶을 비교해 보세요. 어떤 삶을 사는 것, 내가 한번 얘기했잖아요. 이 바울의 영광과 은혜가 사모돼가지고 세상에 좋은 이름들로 나오잖아요. 폴, 싸이먼, 검은 고양이 네로가 아니에요.

오늘 이 높은 차원의 진리에 대해서 눈을 뜨고 저는 이 사명 이런 이야기가 맞지 지지 맞지 이 생각하시는 제 눈이 평소보다 반짝반짝반짝하지 않습니까? 물론 내 혼자 생각이 1번부터 이제는 급행지처럼 달립니다.

◆마음의 씨를 뿌리며.
1. 유려글로 광풍에서 구조된 바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 일로 멜리데 섬 원주민들에게 바울이 한 말은 무엇입니까?

-3 4절,
3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4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바울이 그 가운데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남들 다 추위에 떨고 있는데 바울이 또 섬기는 마음으로 어떻게 했어요? 나무 한 묶음을 가지고 와가지고 남들은 다 가만히 있는데, 바울은 섬기는 자의 의식을 갖고 있으니까 막 묶음을 가지고 거두어 불에 넣으면 뜨거운 독사가 나와 가지고 나무속에 독사가 나와 가지고 바울의 손을 물고 있는 거에요. 독사가 기록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소리를 이게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죠? 지금 의사가 아주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 거야. 말하되 이 사람이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 부조를 받아서 공유가 더는 살지 못하게 했다. 하늘이 벌을 내리고 있다. 진실로 우리 그들이 그가 붓던 지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 이게 의사가 기록한 거에요.

-6절
6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그렇게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하늘이 뿌리를 내렸다는 것을 알고 갑자기 그를 신이라 이게 답이 다 나왔죠? 여기에 보니까 멜리데 섬, 뭐라고 그랬어요? 흔히 누가가 그들을 이 메리디스 원수민이라고 그러는데 그런데 이 원수민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들이 뭐 아주 미깨했다 바바리야 그런 뜻이 아니라, 헬라어를 못한 사람을 다 야만인이라고 그랬어요. 원주민이라고 그랬어요. 바울은 사도바울도 로마서와 글로세스에서 그릭을, 헬라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을 야만인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그들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고 헬라를 하지 못하는 헬라 문화를 모르는 사람을 일반적으로 호칭하는 내용이었습니다. 2번 관찰 질문이자 해석 질문이죠.

2. 관찰 질문이자 해석 질문.
2 하나님이 사명을 받아 로마로 가던 바울을 기다린 것은 순탄한 여인이 아니라 살 소망까지 끊어질 정도로 역경이었습니다. 구사일성으로 살아난 바울은 독사에 물려 또다시 죽음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사명자의 길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성경 구절에서 그 이유를 찾아 당신의 말을 풀어보세요. 27장 24절 우리 혹시 27장 24절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사도행전 27:24,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가이사 앞에 서서 복음 전하는 이를, 가이사가 누굽니까? 로마 황제 앞에서,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함께 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더라. 안 죽는다 그 말이죠? 그리고 우리 마가복음 16장 15절부터 18절까지 참고 구절 나와 있는데 여러분 참고하시고

*마가복음 16:15~18,
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우리가 온 천하에 복음을 전할 때에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구원을 얻고 그리고 난 다음에 정죄가 없어지고 또 믿는 자의 표적이 따르는데 귀신도 쫓아내고, 방언을 말하고, 특별히 18절에 뱀을 집어 올리며 바울 얘기에요. 지금 마가가 오늘 멜리데에서 있었던 이 사건들을 기억하면서 이걸 기록한 것이에요. 독사 독사의 독을 독사의 해를 받지 아니하는 것이에요. 뱀을 집어 올려요. 병든 사람은 손을 낳으리라. 하나 예, 아마 마가가 그렇게 추측해요. 신학자들이... 바울이 이런 사명자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요?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명을 주신 것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 거죠. 그러니까 사명자는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다는 것도 자기가 믿었죠. 그리고 오늘 독사에게 물려도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것을 통하여 하나의 실체를 체험한 것이죠. 그리고 바울이 아주 담대했어요. 담대했어요. 담대한 이유가 뭡니까? 그의 믿음이 담대한 것도 있었겠지만 위대한 하나님을 바울이 믿었기 때문에 참 중요한 얘기예요. 바울의 믿음도 있었겠지만 그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위대한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에요. 아멘.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걸 다 우리가 생각하면 잘 생각하면 한마디로 뭡니까? 여러분이나 저는 사명 완수하기 전까지는 죽는다. 안 죽는다. 그리고 이 사명 완수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데 여러분의 삶의 모든 이해가 안 가는 모든 내용들도, 하나님께서 딤전 4장 4절을 지지난 주 설 했잖아요.

*딤전 4:4,
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사명 자에게는 모든 걸 감사함으로 받으면 뭐? 할 것이 없다? 버릴 게 없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그리고 그 바울이 추장 버블리오의 아버지에게 안수하고 기도하니까 그의 병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성에 많은 병자들도 바울을 찾아가지고 치료를 받았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왜 기적과 치유와 병이 낫는 그 현장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 병과 치유의 전제 조건이 뭐예요? 전제 조건이 뭐예요? 복음을 전하는 거니까, 복음을 전하는 걸, 복음 전하는 상황 가운데서 일어나는 기적과 치유와 돌보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모든 기적은, 복음서는 모든 치유와 기적은 거의 대부분 거의 대부분 생명 구원과 연관이 있는 것이 언제는 복음 사역과 연관이 돼 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과 제가 기적을 체험하고 싶다. 여러분과 제가 놀라운 치유를 체험하고 싶다. 여러분과 제가 제 삶 가운데 우리의 삶 가운데서 세상 사람들을 알지 못하는 놀라운 평생이 일어나기를 원한다. 그러려면 방법은 딱 하나예요. 생명의 역사에 여러분들이 뛰어들어야 되는 거예요. 생명의 역사에 여러분들과 관계가 돼야 되는 거예요. 또 하나는 부흥의 현장에 부흥을 위하여 간절해서 그리스는 2033 50 비전을 위하여 여러분 자신이 뛰어질 때 거기서 기적을 것이에요. 할렐루야. 그러니까 제가 지금 2033 50 비전을 오정현 목사가 무슨 슬로건을 가지고 여러분들을 이렇게 막 어떻게 하려고 하면 천만의 말씀이에요. 2033 50 비전은 여러분 다락방하고 여러분 개인 여러분 가정 우리 모두의 소년들의 삶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최고의 통로가 되는 것이에요. 이걸 알랑가 모를랑가, 다시 복음서에 나타나는 모든 기적 같은 일들, 모든 영광스러운 기적 같은 일들은 다 생명 구원과 영혼 구원과 관계가 돼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제 제가 몇 가지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오늘 그런데 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이런 비전 안 들어요. 당연 그러니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기적을 안 베풀어주셨어요. 그리고 딱 하나, 너희들에게 보여줄 거 다.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게 없다. 요나 요나의 표적이라는 게 뭡니까?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 다 나왔죠? 그 자리는 뭐예요? 의심 많은 요나, 말 안 듣는 요나, 요나가 거꾸러져 가지고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건데 요나처럼 그런 어떤 마음의 자세가 돼 있으면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될 거고 안 그러면 다 해봐야 소용도 없다. 여기 이제 묵상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생명 구원과 복음의 역사에만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이 놀란 표적이다 기적이다 할 만, 치유될 만한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과 저의 남은 생에는 생명 과 생명과 복음과 부흥의 여러분들의 인생이 연결돼 있고 걸려 있을 때만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에요. 이걸 귀납법적으로 질문을 해요.

질문? 왜 여러분의 삶에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나 왜 내 삶에는 표적이 일어나지 않나? 내 삶에 왜 치유가 일어나지 않나? 그러니까 한국의 자유주의 신학자들, 성경의 기적을 믿지 않는 사람들, 자기 머릿속에만 이렇게 한계에 있는 사람들은요. 절대 기적 안 일어납니다. 기적 체험 못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이성과 리서치 연구의 한계에 대해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보니까 그걸로 끝나는 것이에요. 조금 더 고상한 21세기 판 바리새인이에요.

근데 우리는 모든 기적과 치와 표적은 부흥은, 어떤 놀라운 것들은 복음과 부흥과의 관계된 것에 내 삶이 연결돼 있을 때만 체험할 수 있다. 되겠습니까? 그러면 예를 들어서 우리 지금 알아주세요. 본당 한 번씩 제가 얘기하지만 알아주세요. 본당 이 모든 것들은 이 기적이에요.

※202,008년 9년까지 여기에 대림건설이라는 큰 회사가 여기를 대림건설의 헤드콘으로 만들어보려고, 여기가 원래 뭐였죠? 꽃마을이 중심 이제 이거 공부를 해야 돼요. 꽃마을이 꽃 여기에 2188평 거의 한 2200평정도 돼요. 강남이 2200평의 땅은 쉽지가 않아요. 그런데 처음부터 2200평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여기가 많게는 180개의 꽃마을 180개의 무어 꽃 가게에 있잖아요. 그게 여기 있었던 거 기 알죠? 여기 살던 사람들은 여기가 골 때리는 곳이었어요. 그러니까 맨날 대 꽃마을 우리 방해하지 마라. 우리 망하게 하지 말라. 우리 옛날에 저 우면동 거기 가면 꽃마을에 맨날 대고 있잖아요. 거기 이거 머리 아프네. 그런데 이 대림건설에서 이걸 5년 동안 있잖아요. 최선을 다해가지고 꽃마을로 이제 정 잡으려고 그래갖고 이제 어째째 했어요. 그게 자기들만 들어간 돈이 1500억이었어요. 근데 우리가 이걸 1178억을 주고 샀어요. 이 땅을 땅 산 것도 기적이지만 땅을 살 때요 여기에 도로가 몇 개 있었어요. 중간에 도로들이 있어요. 근데 도로들을 다 한 밭으로 묶는 거, 그것 자체도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갑자기 2008년도 리만 브루드 사태가 일어나고 우리나라만 그때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경제를 잘 해가지고 기가 막힌 가가지고 우리만 그때 유일하게 2%인가 3%가 전 세계가 다 내리막길이고 전 세계가 다 마이너스 경제인데 대한민국이 2%인가 3%가 유일하게 발전했어요. 이해가 됩니까? 그걸 보고 욕하는 거 보면 말도 안 되는 얘기에요. 그러니까 그때 다 벌어놓은 걸 가지고 지난번에 지난번 정부가 먹고 산 거야. 그렇지? 그 전 지난번 정부가 막 힘들게 한 게 지금 우리가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중에 하나예요. 그러니까 다른 때는 옛날에 그 전에 정부 보면 다른 나라들은 다 6% 3% 다 발전하는데 우리만 발전하는 조그만 12%는 발전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mb 정부 그때는 진짜 경제는 잘했어요. 그런데 리마 브루드 사태 때문에 우리 이 땅이 말이에요 이 땅이, 이 땅이 lh공사에다가 이게 대림이 현금 저기 뭐야 구조악화가 돼가지고 이걸 전당포처럼 맡긴 거예요. 그 맡긴 걸 이단 통일과 사가지고 여기다 통 본부를 지으려고 그랬어요. 근데 그 모든 과정들이 다 다 다 거두 설명하고 결과를 보면 사랑의 교회가 그걸 해가지고 그 모든 중간에 있는 도로 길 같은 것들 다 이렇게 다 정리를 하고, 그다음에 우리 이렇게 지하에 이렇게 지었던 이게, 이게 뭐예요 저 기적이에요. 그렇게 된 이유가 뭘까요? 우리가 복음 사역 우리가 한국교회 부흥 akc 라이스 코리아 한국교회 다시 일어나라. 매년마다 복음 살 제도사요. 꾸준히 하니까 하나님이 이런 기적을 주신 거에요. 그리고 전 세계 어느 교회가 45대를 잃은 메가출스가 큰 교회가 45년을 꾸준하게 약화되지 아니하고 역동성을 가지고 간다는 것은 이것도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에요. 아무리 좋은 교회도 30년 가면 다 거꾸로 지기도 해요. 지금 우리 교회는 역동적으로 괜찮습니까? 헤매고 있습니까? 괜찮습니다. 아니 헤매고 있다는 분들은 나한테 헤매고 있다는 분은 증거를 가지고 와요.

우리가 잘한다. 이런 뜻이 아니라 우리는 여전히 영혼 구원에 대한 갈증과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온전해져야겠다는 갈망과 여전히 주일 예배마다 주님을 더 사모하고, 우리 교회 와서 전 세계에서 오신 분들이 다 어떻게 이런 예기가 있나? 여기가 앞으로 세계 교회 복음주의 교회의 쇠퇴를 막는 은혜의 창구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은혜의 곳간, 진짜 제사장 나라, 축복의 거물이 되는 것이에요. 그게 또 하나의 복음 사역과 부흥을 사모하면, 하나님을 아시는 거예요. 그래서 ‘2033 50 이 비전’을 통하여 여러분 자녀들과 각 다락방 순장님들 선원들의 생애에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기적이다 세상 사람들 때 독사에 물려도 안 죽는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열병에서 다 구원한다. 는 그런 것 같은 결과가 나타나도록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단순히 ‘2033 50 비전’이 아닌 우리 모두를 살리는 그래서 예수님은 생명과 무관한 일에는 기적을 거의 보이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는 영화를 가졌다고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기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놀랍다. 감탄사 얻으려고 기적 베푼 게 아니고, 생명의 역사, 구원의 역사, 그걸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보여주신 것이고, 지금도 여전히 복음과 부흥을 위하여 헌신하고 집중하는 곳에는 동일한 기적과 같은 은혜가 일어나는 줄로 믿습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기록한 질문을 잘 한번 해보세요.

▷질문-왜 당신의 삶에는 기적을 일어나지? 생명과 부흥 역사에 우리가 접목이 돼야 되는 2033-50 비전은 우리를 살리는 거죠.


◆3번- 관찰적 해석 질문.
사명자는 자기 뜻이 아니라 사명을 주신 분의 뜻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사도 바울의 고백 속에서 그 답을 찾아보세요.

*로마서 14:8,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우리가 살아도 죽기 위해 살고 죽어도 멀리 살아 좋은 이 핵심은 뭐예요? 인생은 열심히 살아가야, 내 실력으로 열심히 살아도 남는 것이 없어요. 너무 허무하게 짜여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거예요. 가슴이 아리는 거, 그래서 일찍, 일찍 눈을 떼야 되는 인생은 누군가를 위해 살아야 같이 있는데 자녀를 위해 살면 의미가 있고, 또 가족을 위해 살면 나는 뜻이 있고 그렇지만 그것도 오래 못 가요. 자녀를 위하여 평생 한번 살아보라고 나름대로 의미는 있지만 자녀가 말 잘 듣던가? 여러분들 마음대로 다 됩디까?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로 합디까? 자녀들이 여러분들의 가슴에다가, 구멍을 뚫어줄 거예요. 허무하게 짝이 없을 거야. 제가 그렇다고 그런 줄 아세요. 아시겠어요? 우리 아이들은 비교적 잘하는 편이에요.

저한테 그거 그래도 남는 거는요. 남는 거는 복음하고 복음밖에 없어요. 남는 거는 부부밖에 없다고 할 줄 알았지요? 그것도 또 남는 거는 복음하고 복음밖에 없어요. 그래서 하여튼 뭐, 왜 궁시렁거리고 있어요.

사명이 뭔가? 그랬을 때 사명이 뭐냐? 그래 사명은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도 평생 부를 수 있는 노래, 평생 흔들 수 있는 깃발, 평생 붙잡을 수 있는 삶의 목적을 가진 것이 사명이죠. 그리고 사명은 우리의 사적 욕심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온 고개와 부르심이에요. 이 얘기는 이번 주일 설교할 때 좀 더 강조할 거예요. 그러니까 내 사적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고귀한 부르심이에요. 그래서 이 고귀한 부르심이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해야 되는 거, 이것이 있으면 우리 삶에 북극성을 딱 붙잡고 방향대로 딱 잡고 살아가는데 이거 없으면 세상이 흘러가는 방향대로 그냥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바람이 나는 겨와 같은 바람이 나는 겨와 같은 그런 중심 없는 삶을 사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한 번 사명 없는 인생은 죽은 물고기 같은 인생이다. 죽은 고기는 물이 흐르는 대로 떠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이게 사명적 창조예요. 그러니까 이게 창조의 질서인데 창조의 질서는 사명의 질서를 움직이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제가 이제 다음 토요일 날 ‘반 혁명당’ 책 헌정식을 할 거거든요. 그날 여러분들은 이제 25일날 4월 졸업식 토비스 받드시 나와 보세요. 나오면 1600까지 책을 줄지도 몰라. 물론 저희 뽑아가지고 이 말 너무 멋있어요. 아브라함 카이퍼가 쓴 반혁명단, 영어로도 번역이 안 된 거예요. 그럼 더치 코리아, 네덜란드에서 바로 한국말로 번역되는데 아브라함 카이파가 보니까 기가 찬 거야. 사람들이 다 프랑스 혁명을 높이 평가하는데 자유 평등 박애라고 하는데 그 하나님 없는 자유 평등 박괴는요 그거 다 엉터리야. 그래서 아브라함 카파가 유명한 얘기는요 모든 참 자유는 창조의 질서 안에 있을 때 그 자유가 진짜 자유라는 거예요. 우리 신은 사명의 질서 안에 있을 때 참 자연한 거예요. 그게 프랑스 혁명은요. 하나님 안에 없는 질서가 되니까요. 완전히 단두대 기옥댐 만들고 있잖아요. 로베스 피에는 그 못된 것들이 나타나고, 자유 평등 박애라는 말만 했지 사실은요 무질서하기 짝이 없고 하나님의 질서에서 벗어나 있으니까 피가 강처럼 흘렀어요. 보복하고, 물고기는 물속에 있을 때 자유가 있는 거에요. 화분 속에 꽃은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 때만 자유가 있는 거에요. 우리 인생은 저와 여러분의 인생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거룩한 프레임 안에 있을 때만 우리가 자유로운 것이에요. 참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뛰쳐나가 봐요 물고기 물에서 뛰쳐나가 봐요. 메말라 그 자리에서 퍼져 죽어버리는 거에요. 뿌리 없는 흙에 뿌리 내리지 않는 나무가 싫다고 흙에서 나와 봐요. 곧 얼마 안 있어가지고 태양빛에 메말라 바싹 말라 죽어요. 다시 우리는 창조의 질서 안에 있을 때 그 자유가 진짜 자유가 되는 거예요.

마찬가지예요. 지금 우리 민노총이라든지, 그다음에 뭐예요 사회주의법, 공산주의 법들은 전부 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벗어난 그 공산주의 사상적 자유 안에 있어요. 그 진짜 자유가 있는 노동자의 자유라고 얘기하지만 그게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있을 때의 자유가 그게 진짜라 안 그러면 그게 반당분자 되고, 엉터리 혁명이 되고 그다음에 세상을 시끄럽게 말고 나라를 갖다 무너뜨리고 엉망진창이 되어요. 그래서 오죽하면 아브라함 카이퍼가 정치를 시작할 때, 네덜란드는 지금 세계 최고의 기독교 뭐야 그거거든요. 세계 무역 사회의 무역국가 강국이에요. 인구 숫자라고 하면 세계 무역 최고의 무역 국가 각국의 인구가 얼마 되지 않는 나라, 세계 무역 사회라니까 아주 이 무 안에 있을 때에만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 있을 때만 창조 질서의 키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고귀한 질서의 사명을 사명 안에 있을 때만 그러니까 여러분과 제가 오늘 왜 이래 헤매냐, 나 왜 이렇게 내 탁월하면 어디 같지? 내 위에 우울해? 내 왜 허무해? 당연한 거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테두리 안에 있을 때만 우리의 삶은 허무하지 않는 것이에요.

좀 세게 얘기하면 여러분의 순장의 역할과 말씀으로 영혼을 섬기고, 이럴 때만 이럴 때에 하나님은 진짜 여러분들의 영광과 기쁨과 보람과 삶의 참 자유와 은혜와 그다음에 나도 모르는 주님의 은혜에 눈물이 주르르 너무 감사합니다. 세상 어떤 거 바꿀 수 없고 영적인 이 수준 알 사람만 알도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하나님이 쓰시는 인생으로 다시 개조할 때에 제일 먼저 하신 것이 뭐냐 하면 사명의 질서를 회복시켜줄 거에요. 요한복음 6장 21절에,

*요한복음 20:21,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사명으로 영적 심폐소생을 해야 하는 것이에요. 제가 어릴 때 들었던 얘기 안 했어요? 워너메이커라고 백화점의 왕 jc. 팬이 큰 백화점을 생각해 보는데 이 사람 나중에 미국의 재무장관이 됐어요. 재무장관 될 때 조건이 딱 하나였어요. 내가 주일학교 교사하는 걸 허락해 달라. 어릴 때부터 잘하더라고. 재무장관의 일 이상으로 주일학교 교사인 것이 평생의 자격을 주신 주님의 사명을 알고 사명 그 인생은 복됐어요. 지금 보세요. 미국의 제일 복된 대통령 중에 하나가 누구냐면 지미 카터 아닙니까? 이분은 얼마나 어려웠는데 대통령은 8년 못했어요. 대통령 8년 못한 사람 많이요 4년 만 한 사람 많잖아요. 특별히 몸이 아프다든지 이 사람들 요는 웬만하면 8년 했는데 집이 카운트를 어떻게 4년밖에 못했어요. 근데 만약에 미국 대통령이 자기의 사명을 알았으면 지미카트는 억울해가지고 열불 나고 속상해가지고 아마 심장 터져 죽었을 거예요. 지미카트는 주일학교 교사회 계속했잖아요. 자기에게는 미국 대통령 이상으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 영혼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고, 영적으로 양육하고, 지미카터는 지금 가다가 이번에 99세가 100세가 됐잖아요. 100세, 축하 파티하더라구요. 보니까 하나님의 사명으로 사는 삶이에요.

◆4번 묵상 질문.
다음 글을 읽고 사도바울처럼 고통의 환경이 오히려 사명을 이루는 대로(大路)가 됨을 묵상해 보세요. 이 세상 사람들은 고통이 있을 때 왜 왜 나에게 어려움이 있느냐?
-사명자로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해 붙잡아야할 깃발이 있습니다. ‘나는 보람이 아니라 사명으로 사는 사람이요 나는 소유가 아니라 사명으로 사는 사람이다.’ 보람이 아니라 사명으로 일하는 사람은 환경이나 다른 사람의 반응과 상관없이 묵묵히 맡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사명의 길에서 만나는 고난이나 고통의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들이 사명을 이루는 대로가 된다는 사실, 사명을 이루는 대로가 된다는 것은 평생 고통을 딛고 살았던 마르바 던의 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고통은 신앙인에게 왜? 에서 무엇을 위해서? 라는 질문으로 바꾸어 준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은 고통을 받으면 ‘왜’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고통을 받으면 ‘왜’라는 질문을 넘어 ‘무엇을 위해서’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무엇을 위해서’라는 말은 바로 사명과 직결되는 질문이에요. ‘하나님은 내게 왜 이런 고통을 주셨을까’ 해서 하나님은 무엇을 위해서 이런 고통을 주셨을까? 로 바꾸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바울이 로마로 가지 못하게 하려고 바울을 죽이기 전에 먹지도 마시지 않겠다는 40명의 폭도들을 갖고 바울을 공격했고, 또 바다의 광풍과 배의 파선, 유라글로 광풍 같은 걸 통하여 공격했고, 강도가 날로 세워졌고, 심지어 마침내 멜리데에서는 독사까지 가세를 했지만 바울은 독사에게 몰려가지고 헤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일을 계기로 해서 멜리데에서는 3개월에 머무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마귀의 공격을 하나님이 선으로 바꿔 놓으신 것이죠. 그리고 275명을, 심지어 백부장 율리오, 276명을 호소하는 백부장 율리오에게까지 영향을 끼쳤습니다.

율리오는 책임이 뭐냐 끝까지 죄수들 로마까지 호송하고 또 알렉산드리아 오라는 곡물 수송선을 완전히 이렇게 잘 가야 되는데 그것이 이제 파손이 되었을 때, 자기가 책임자가 파손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되니까 낙담과 절망으로 아마 자살하고 싶었을 거에요. 그런데 그가 바울 때문에 다 해결된 걸 보면서 감동적으로 율리오가 영향을 받았을 거에요. 바울이 로마에서 1차, 감옥 갈 때에 2차도 많이 달라요. 1차 때 사람 일반 감옥생활 보다 조금 더 이렇게 혜택 배려를 받았어요. 많은 학자들은 그런 부자는 무력한 보람도 없을 것이다. 당시에 로마의 백부장은요. 귀족들, 귀족 출신이거나 적어도 신분이 높은 가문이 아니면 백부장 못했어요.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 100명을 모아가지고 부담되는 거니까 대단한 거죠. 그래서 오늘 귀납법적 질문을 여기서 한다면

▶질문-고통이나 고난 없이 사명을 성취할 수 없는 건가? 통과 고난과 사명의 함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건가? -아마도 고통이나 고난이 없다면 우리가 사명을 감당할 만한 그릇으로 빚어지기가 힘들 거예요. 고통은 우리의 사명을 그릇으로 빚어주는 거예요. 똑같은 철이라고 하더라도 여러 번 담금질을 할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것과 같잖아요?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서 인생을 그리스도인들을 사명자의 그릇으로, 사명자의 그릇으로 만드는 건 두 가지밖에 없다고 했어요. 지금까지는 첫째는 가난과 고난과 고통이고 두 번째로는 믿음의 모험, 사명을 통하여 사명 받은 자로서, 고난과 고통에 대해서 왜? 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 일어나? 또 사명 받은 자로서 믿음의 모험을 할 수 있는 것이죠.

◆5번은 적용 질문.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은 사명을 다하기 전에 죽지 않는다’는 말을 되새겨야 합니다. 이는 사명자의 삶을 사는 사람은 언제 어떻게 죽든지 후회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의 가슴을 뜨겁게 할 사명이 있습니까? 만일 사명의 불이 꺼져 있다면 그 이유를 생각해 보고 당신을 사명을 나누어보세요.

-사명 중에 최고의 사명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죠. 오늘 우리는 바울은 쇠고랑을 차고서도 형제들과 함께 손을 잡고 로마로 가면서 또 로마가 복음을 전한 것이 있다면, 그리고 바울이 이 사명을 가지고 로마를 걸어가는데, 여러분 앞으로 4세기 중엽에 대제국 로마의 반이 구원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로마 전국 3천만 가운데, 1500만 원이 구원받을 줄을 어떻게 상상을 했겠냐구요. 지금 우리가 기도하는 2033 50 비전도 대부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나 우리가 사명자로 바울처럼 살아간다면 아마 지금은 처음은 더뎌 보여도 어느 시점이 지나면 반드시 반의 가속도가 붙을 줄로 믿습니다. 사명의 가속도 20,335전도 마찬가지. 그래서 여러분 이런 사명을 가진 사람이 갑자기 일찍 죽거나 또 사고로 어려워지거나 질병으로 어려워지거나 발로 사거나 이런 것들이 그냥 무의미한 게 아니에요. 사명으로 살고 사명으로 죽은 자는 모든 것이 버릴 것이 없어요. 모든 것이 선함에 사명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딤전 4장 4절에,

*딤전 4:4,
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할렐루야. 40에 죽는 그리스도인이라면, 40에 죽어도 사명이 완수되었기 때문에 다 죽는다고 생각하고, 90이 넘은 좋은 분들은 그것도 또 사명이 완수되었기 때문에 주님품에 가신다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20대에 부름 받아도 60대에 부름 받아도 70대에 부름 받아도 우리는 사명에 살고 사명에 죽는 거예요. 그리고 사명에 당할 때까지는 죽지 않는다는 거룩한 배짱이 필요해요.

제가 미국에 사역할 때 26살짜리 젊은데 유엔씨라고 남가주 사는 참 잘생겼어요. 조인성이보다 훨씬 잘생겼어. 아무렇지 않지 못해요. 갑자기 위암이 걸렸어요. 위암이 걸리니까 70, 50, 60, 70대 돼서 위암 걸리면 잘라내도 되고 빨리 안 퍼져도 돼요. 20대가 위암에 걸리면 순식간에 젊으니까 그래갖고 몇 달 만에 하나님 데려가시더라고 내가 그 장례식에 가서 펑펑 울었어요. 너무나 아까운 거예요. 28살 때 너무 괜찮아. 지금도 내 머리 생생해요. 진짜 조인 조인성보다 더 잘생겼어요. 여기에 들어갔을까? 오늘 아침 이걸 내가 이제 좀 묵상을 하는데 오늘 새벽에 했어요. 우리 집사람 보고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했어요. 하나님 왜 왜 빨리 데려갔지? 유엔씨(UN.C) 선생인데 우리 두 아들의 주일학교 선생이었어요. 그리고 그 선생님을 통하여 목사 선교사 그리고 프로페셜 아이들이 20명이 많이 나왔어요. 20살 때 물 보기 너무 아깝고 너무 그러지만 그 형제를 통하여 나온 수많은 목사 선교사들 사역자들과 사명자들이 그를 통해 대신 일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여러분과 저의 섬김을 통하여 수많은 하나님의 사명 자들이 배출되기를 바랍니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사명은 인생이라는 배를 움직이는 조종키와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서의 복음 전도를 사명으로 받았고, 남은 평생을 그 일을 위해 자신을 재물로 드렸습니다. 우리에게도 바울처럼 일평생 가져야 할 사명의 꿈을 주시고 이릉 위해 성령께서 다시금 내 속에 사명의 불을 붙여주시기를 기도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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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장반 강의]-4과 "주는 자의 복"
말씀: 사도행전 20;31-38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

강의: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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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0;31-38,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 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4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37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38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사랑하는 장님들 그리고 사역 반 우리 식구들 참관하시는 분들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잠언을 제가 특별하게 이렇게 여러분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제 오늘 4과 “주는 자가 받는 복” 같이 우리 또박또박 같이 우리 먼저 교도하도록 하겠습니다. 평생에 보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31절로 38절 우리 교도하겠습니다. 오늘 사역 반 우리 식구들이 참가하러 왔으니까 먼저 제가 사역 반 식구들께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 또 이 말씀드리는 것이 또 우리 순장님들에게도 다시 한 번 이렇게 재확인 컨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교회 다락방은 한마디로 말하면 뭐죠? 다락방은 다락방에 대한 우리 정의 디파인은 뭐죠? 사랑의 교회 다락방은 무슨 산실이다? 영적 변화의 산실이에요. 그럼 여기서 제가 중요한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그러면 영적 변화는 어떻게 하면 일어나는 것입니까? 영적 변화는 머리가 좋아져 갖고 신학을 많이 공부했다고 그런 변화가 일어납니까? 아니죠. 영적 변화는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는 것이에요. 로마서 12장에 보니까 너희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그다음 뭡니까? 변화를 받아 우리의 심령, 우리의 마인드가 우리의 하트가 우리의 마음부터 먼저 변화가 돼야 되는 것이죠. 그래서 사랑의 교회가 이렇게 영적 변화의 산실이 되려면 거기에 속한 다락방 식구들이 다락방 선원들 한 명 한 명이 마음이 변화돼야 한다. 그것이에요. 그러니까 많이 아는 그리스도인 만드는 것도 아니고, 어떤 교단에 맞는 그리스도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소위 컨 폼드나 인 폼드도 크리찬이 아니라 트랜스 폼드 변화된 그리스도인 마음을 통하여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마음이 변화됩니까? 마음이 변화되려면 머리만 바뀌면 안 되고, 마음이 바뀌게 되려면 머리만 겨냥하면 안 되고, 마음을 겨냥해야 되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 오늘도 이 다락방 교재 ‘주는 자의 받는 복’ 이 교재가 질문이 대부분 마음을 겨냥한 질문이에요. 그러니까 마음을 겨냥한 질문 특별히 마음을 겨냥한 귀납법적 질문을 잘할 수 있도록 우리 손자들은 준비가 되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 순자님들은 또 우리 사역 반 참관자들은 앞으로 어떻게 구체적으로 마음을 겨냥한 귀납법적 질문을 잘할 수 있겠습니까?
첫 번째는 그 귀납법적 질문을 성령께서 인도하시도록 성령께 의존해야 되는 것이에요.
-물론 우리는 여러 가지 참 이렇게 공부를 많이 하고 아카데믹하게 이게 나름대로 우리가 미리 예습을 하고 준비를 많이 해왔지만 이합법적 질문을 위해서는 순간순간 성령께 의존하는 것이에요. 요한복음 16장 13절에 보니까,

*요한복음 16:13절
13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다시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
-그랬어요. 모든 진리 가운데로 그러니까 어떤 질문 하나도 성령께 의존하지 않는 질문은 그거는 그냥 그거는 잘못 가는 거예요. 이렇게 방향이 잘못된 것이 그러니까 튕겨져 나가는 것이에요.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 성령께 의존한 질문 그다음 둘째,

둘째는 본문의 텍스트에서 벗어나면 안 돼요.
-지금 우리 이거 지금 이 얘기는 사역 훈련생들 참관하는 분들에게 지금 말씀하는 거 같긴 하지만 우리 순자님들에게 다시 한 번 제가 다시 한 번 제가 컨 펌 하는 거예요. 항상 우리에겐 텍스트가 있고 컨 텍스트가 있죠. 텍스트는 뭐냐 성경 본문 중심이에요. 그러니까 성경 본문 중심으로 해가지고 우리의 상황 이 컨 텍스트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이죠. 본문을 중심으로 질문을 해가지고 본문이 말하는 바 핵심을 얘기해야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여러분 요한복음 2장에 보면 물로 포도주 만드는 사건이 나오잖아요. 물로 포도주 만든 사건 요한복음 2장의 그 키가 뭡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으실 때에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꾼 만드는 것인데, 그럼 천국에 하나님 나라 천국에 대한 일꾼이 되려면 천국에 대한 컨셉이 분명해야 되잖아요? 그럼 천국에 대한 컨셉트의 핵심이 뭐냐? 요한처럼 맹물같이 변함없던 인격이 그 성질 급한 인격이 그 못된 인격이 성령님의 임재를 통하여 변화된 것이에요. 맹물 같은 인생이 성령의 폭발력 있는 포도주로 바뀌는 것이 명물은 화학식의 H2O이고 성령의 포도주는 C2H5OH죠? 그러니까 h2o가 c2h5oh로 바뀌는 것은 단순한 어떤 물리적인 변화가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 화학적인 변화죠. 그러니까 핵심은 뭡니까? 맹물 같은 인생이 성령님의 폭발력 있는 포도주로 바뀌어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 나라는 잔치가 되고,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그런 어떤 기쁨이 샘솟는 것이죠.

제가 변화에 대한 능력을 얘기할 때 다락방은 요강 단지 같이 냄새 나는 인격이 하나님 나라의 근거로스로 바뀐다. 그렇게 얘기하는 이게 너무 감사한 거예요. 냄새 나는 인생이 하나님 나라 금 그릇 향기 나는 인생으로 바뀌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것들이 요한복음 2장의 핵심이에요. 변화의 능력자 되시는 거 맹물이 포도주로 그다음에 요한 자체가 이렇게 바뀌는 거 그래서 요한이 요한복음 2장 가나안 잔치 제일 11절 뒷부분에 보면 뭐라고 나옵니까? 요한이 비로소 예수님을 처음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었다 그랬어요. 변화의 능력을 보고 예수를 믿었다. 이 그런데 여기 컨 텍스트, 이 텍스트에 어긋나는 사람들 그 어떤 사람들 보면 왜 예수님이 마리아 보고 여자여! 라고 물었냐고, 어머니 보고 여자, 라고 그러면 그건 좀 좋지 않은 경어가 아니지 않느냐고, 그러면서 별 중요하지 않은 거, 왜 항아리를 그 6개를 뒀느냐고, 6개 둔 것이죠. 그냥 그거는 그냥, 그냥 그거는 상황 현상이 그렇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중요하지 않은 걸 가지고 핵심으로 삼지 말고 주변부를 가지고, 이렇게 낭비하지 말고 핵심에서 어긋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피난법적 질문을 하려면 첫 번째는 뭘 의존하라? 저 뒤에 대답도 안 하고 가만히 있지 말고요. 첫 번째 뭘 의존하라?
첫 번째 성령에게 의존하라.
두 번째는 텍스트의 핵심에서 본문에서 벗어나지 말라.
셋째는 늘 성경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말라.
-성경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있잖아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뭐예요? 주님의 심정이 나타난 거예요. 성경 전체를 보면서 목자의 저는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창세기 요한계시록을 쭉 보니까 저는 이걸 깨닫고 나가지고 이걸 성경 전체를 주님의 심장 특별히 목자의 심장을 가지고 보는 그 영안이 터지고 난 다음에 저의 어떤 영적인 어떤 그 두꺼운 껍질이 다 깨뜨려지고 또 은혜의 물미가 터져요. 성경을 여러 가지 관점과 렌즈를 가지고 해석할 수 있지만 성경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안타까운 목자의 심정이 담겨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성경을 이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바라보고 그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바라보면서 구원 역사적으로, 그다음에 또 역사 구원사적으로, 그다음에 이걸 문법적으로, 또 문자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그러니까 그래머티컬리 그다음에 리트롤리 그다음에 히스토리컬리 그런 식으로 성경을 볼 때 성경 전체의 흐름이 눈에 보이고 텍스에서 벗어나지 않고 핵심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세 가지,

첫째 뭘 의존하라? 성령님을 의존하라.
둘째 어떻게 하라 본문을 벗어나지 말라.
셋째 어떤 시각을 가지라 성경 전체에 흐르는 명맥한 목자의 심정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사랑의 교회 다락방에 모든 선원 한 명, 한 명은 이 귀납법적 질문에 은혜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자가 있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모든 순장님들 또 우리 사역 반에서 이제 올라오셔가지고 순장하실 모든 분들은 이 귀납법 적, 그 질문의 은혜의 테두리에서 딱 붙잡혀 있어요. 그리고 귀납법적 질문을 제대로 주고받으려면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니고 준비를 해 가지고 와야 되겠죠. 반드시 교재를 연습을 해가지고 또 본문을 여러 번 읽고 준비를 해서. 그래서 처음 말씀한 대로 Not focus on head, -낫 포커스 온 헤드, 머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but focus on heart. -벗 포커스 온 헐트, 마음을 겨냥해 가지고 그리고 마음을 겨냥하기 위해서는 머리만 두드리는 티칭이 아니라 삶을 나누는 셰어링이 되죠. 셰어링 나누는 것이 그래서 다락방 처음 시작할 때 오픈 하트 나누고 말씀을 통한 비전을 깨닫고 구체적으로 적용 그래서 하트 비전 스킬 마음이 열리고 사명과 비전을 말씀을 통해 확인하고 마지막에는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가 꼭 예습을 해오고 준비를 해가지고 그래서 여러분 이런 마음을 가지고 순장님들이 잘 집중을 하고 해야 되지 빨리 다락방 빨리 마치고 난 다음에 엉뚱한 거 뭐 옛날에는 엉터리 우리 다락방들은 계,,, 를 어떻게 할까? 그 뭐죠? 개하고 그 뭡니까 다단계 말이야. 이런 엉터리 같은 그런 게 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중심을 잘 잡아 주셔갖고 사랑의 교회 다락방은 다시 한 번 다락방 무슨 산실이라고요 영적 변화의 사실 필한법적 질문을 통하여 성령님께 의존하고 텍스트에서 벗어나지 말고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자기 할당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와 은혜의 은혜를 덧입혀 주시라고 믿습니다.

제가 오늘 사역 반 우리 식구들 참석한 분들을 위하여 제가 말씀을 좀 드렸습니다. 이제 본문 관찰을 하겠습니다. 본문 내용들 우선 이 본문을 앞에 놓고, 오늘 사도행전 20장 31절, 38절 이 본문에 대한 백그라운드를 좀 살피겠습니다. 사도행전 전체가 약 한 천 구절 정도 됩니다. 그 천 구절 중에서 309절 이상이 설교 문입니다. 소위 디스코스 강화체 설교문이에요. 대표적으로 베드로의 설교가 있고 또 바울의 설교문이 많고 스테반의 설교도 있고 야고보의 설교본도 있습니다. 야고보 그리고 대부분의 이 설교 메시지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오늘 본문은 특별하게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미 예수 믿는 분들에게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설교 중에서 오늘 가장 주목받는 깊은 차원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참 절절하죠. 그냥 애틋합니다. 바울이 왜냐하면 그가 섬겼던 에베소 교회 귀한 성도들을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걸 영적으로 예감을 했죠. 그래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초청해가지고 양떼를 잘 돌볼 것을 부탁하는 고별 설교입니다. 그리고 31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31절에 보니까,

*사도행전 20:31,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밤낮 3년이나 에베소에서 쉬지 않고 눈물로 목자의 심정으로 각 사람을 양육했다고 고백하는 것이죠. 그리고 바울이 자신이 떠난 후에 에베소 교회, 교회가 외부로부터 박해와 또 내부로부터의 갈등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이런 공격을 이길 수 있는 지침을 주는 것이에요. 은혜의 비밀 보따리를 이렇게 제공해 주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이길 것인가? 그 권면 중에 먼저 32절에 주님과 은혜의 말씀을 부탁한다고 그랬어요.

*사도행전 20:32,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 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그러니까 교회의 양떼를 지키는 것은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프로그램에도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양떼를 믿음 안에서 지켜주는 것은 교회의 머리 대신 주님과 주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니까 그 비밀 병기, 비밀 주머니가 뭐냐? 주님과 은혜의 말씀 또 하나 더 한다면 오늘 35절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꼭 기억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35,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이 교회 공동체가, 에베소 교회 공동체가 오늘 이 시대의 공동체가 내부의 공격, 외부의 공격, 외부의 공격과 내부의 갈등을 이겨내고 건강하게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해서는 서로 주는 것이 체화되어야 함을, 서로 주는 것이 자연스러워야 됨을, 성령님을 통하여 서로 주는 것이 축복임을 깨달아야 된다고 교훈하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이 오늘 이렇게 설교하고 나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서로 울면서 작별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인 것입니다. 오늘 4과에서는 사도바울의 권면 가운데 오늘 주는 자의 복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만하면 웬만한 건 여러분들이 답을 다 할 수 있고 심지어 기라법도 질문까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 문을 열며
-그리스에 그리스도인에게는 ‘주는 것’이 영적인 본능입니다. 왜 그럴까요? 주는 것이 사의 일체 하나님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땅 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호흡을 주시고 생명을 주셨습니다(사 42:5). 성자 예수님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자신을 주셨습니다(딛 2:14).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도록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시고(롬 5:5)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갈 5:22-23). 그런데도 죄로 부패한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주는 것보다 받는 것에 기울어져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받는 것이 익숙한 죄의 중력에 맞서 새로운 영적 본능인 ‘주는 것’에 자연스럽게 작동할 수가 있을까요? 오늘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큰 복임을 각성하고 주는 것을 거룩한 본능으로 우리의 몸에 새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주는 것은 성숙함, 머트리티(maturity) 어른 됨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일수록 자꾸 받으려고 하지만 성숙해질수록 주는 것에 대한 가치와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제대로 주고, 내가 갖고 있는 소중함을 주고 그럴 때에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주는 기쁨을 모르고 자꾸 받으려고만 한다면 겉만 어른이지 속은 어린 아이죠. 이 세상의 메디아 이 세상의 매스컴은 이것을 소유하면 이것을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고 하지만 성경은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복되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유명한 어떤 유물들 그다음에 유명한 어떤 작품들 여러분 그거 돈 많은 사람들은 그거 다 이걸 작품을 갖고 있다. 하지만 여러분 그게 며칠 가겠어요? 며칠은 쓰다듬고 좋다 그러지만 그거 오래 못 갑니다. 몇 달을 못 갑니다. 그런데 진짜 우리가 갖고 있는 가치 있는 걸 주면요. 영원한 기쁨이 되는 것이에요. 그중에 갖고 나중에 있지만 복음 복음을 줄 때 최고죠. 복음을 같이 나눌 때 최고죠. 그리고 이제 우리 가운데는 이 도덕적으로나 어떻게 인격적으로나 천성적으로 주는 것을 좋아하는 분들이 있어요. 손이 큰 분들, 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것도 이게 도덕적으로 막 그렇게 하면 안 되고, 그런 주는 것과 타인을 섬기는 귀한 어떤 은혜의 은혜 원천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를 아는 것이 좀 좋겠고 이걸 정리하면 축복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반면에 주는 것을 힘들어하는 분들은 나는 왜 남에게 베풀지 못하는가? 한번 생각해 보고, 귀납적 질문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것을 오늘 이 현장 감각으로 체화됐으면 좋겠어요.

◆말씀에 씨를 뿌리며
1번-관찰질문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에게 친히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관찰 질문이죠. 35절 핵심 뭐라고 돼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바울은 자신이 권리를 포기하면서 자신의 전부를 다른 일에게 줄 수 있었던 이유는 뭐냐 하면 그 이유는 자기 능력이 아니에요. 35절에,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그렇게 예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이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내용을 어떤 워딩으로, 구체적으로 단단하게 이렇게 했다기보다도 주님의 삶 자체가 당신의 권리를 포기하시고 삶 전불을 우리에게 주신 분이셨기 때문에, 바울은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삶을 기억하고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에요. 이것이 나중에 우리의 이기심과 자기 권리가 안 되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오늘 우리 마음속에 자기의 자기 권리 포기 안 되는 거, 이런 것들을 비움과 섬김을 또 주는 것에 대한 눈을 열 수 있도록 그렇게 말씀을 우리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정도 하면 충분히 될 것 같습니다. 2번 하겠습니다.

2번-관찰질문
우리가 주고받는 것을 물질적인 것으로 제한하여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경이 말씀 주는 것은 물질을 넘어 훨씬 더 깊은 차원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바울의 삶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것을 살펴보고 진정으로 주는 삶을 살기 위해 가져야 하는 태도를 말해보세요.
-빌립보서 2장 5절에,

*빌립보서 2:5,
5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고전 9:19,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더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고자 한 것이죠. 그다음 누가복음 12장 33절에 보니까,

*누가복음 12:33,
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하늘에 쌓아두는 보물이죠. 그러니까 예수님과 바울에게서 배우는 이 공통적인 것은 뭐냐 하면 권리 포기입니다. 주는 삶, 베푸는 삶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웃을 위하여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마음이 먼저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주님 주는 자의 권리가 포기라는 거 다 내 거라는 것이 아닌 거죠. 그러니까 내 거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의식이 뭐예요? ‘청지기 의식’ 스튜워드십이죠(stewardship). 청지기 의식, 스튜워드십이 주는 삶을 가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청지기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먼저 주님께서 빌립보서 2장 5절에, 바울은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마음을 가질 것을 권면합니다.

*빌립보서 2:5,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님의 마음이 무엇입니까? 늘 제가 강조하는 대로 하늘의 황태자이셨지만 그 영광스러운 지위를 잠시 뒤로 하시고 인간의 몸으로 자신을 낮추시는 마음이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시는 마음이죠. 이러한 예수님의 자기 비움, 또 자기 비하, 또 자기 포기 이것 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또 고전 9장 19절에서는 사도바울은 타인의 영혼을 위해 스스로 다른 사람들의 종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고전 9:19,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이런 사도바울의 태도는 철저하게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따르는 자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사도바울처럼, 영혼 구원을 위해 나를 낮추고, 나의 권리를 포기하는 삶의 예로서 오늘 이제 여러 가지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누가복음 12장 33절에,

*누가복음 12:33,
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구제에 대한 구제할 때 그것이 낡아지지 아니한다. 그랬어요. 하늘에, 하늘에 둔 보물을 쌓아둔 것이 우리가 여러분 하늘의 보물을 쌓아두고 진짜 제대로 된 소유를 잘 관리하는 첫 번째 비결이 뭐냐 하면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어주는 데 있다. 주는 자가 받는 복이다 이 말이에요. 다른 사람을 섬기는 구제하는 이 세상 창고가 아니라 하늘 창고에 하늘 곳간에다가 보물을 쌓는 것임을 말씀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렇게 구제하고 섬길 수 있는 근원은 우리의 모든 소유가 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아는 청직 의식 때문에, 따라서 우리가 청직 의식을 가지고 내게 주신 것을 잘 관리해야 하는 이유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것이죠. 오늘 이런 내용들을 여러분들이 잘 좀 정리하시면 우리가 영적으로 굉장히 이렇게 성숙한 사람의 수준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3번 하겠습니다.

3번-관찰질문
-진정한 베풂은 무엇보다도 주는 자의 복에 눈이 열려야만 기쁨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주는 자가 받는 복은 무엇입니까?
-오늘 제목 하나하나가 다 이게 귀납법적으로 서로 연결돼 있고 이게 3번은 관찰 질문인데 다 연결돼 있고 뭐죠? 2번에 대한 답이 3번이도록 3번에 대한 답이 4번이도록 자세히 살피면 그렇게 여러분들이 답을 하기 어려울 때는 그렇게 정리를 하시면 됩니다.

*누가복음 6:38,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데 후히 누르고 흔들어, 흔들어 전에 우리 어떤 목사님 흔 넘치도록 주신다. 넘치도록 나중에 여러분도 제가 더 늙으면 넘치도록 주시는 걸 기억해 주세요.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주변 하나님이 우리에게 넘치도록, 한국교회 섬김의 날처럼 넘치도록 고린도후서 8장 9절은 주님의 부유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부유하게 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성경이 특별히 주는 자가 받는 복에 대해서 우리가 남에게 주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 주님이 우리에게 인정해 주시는 복은 너무 영광스럽고 넘치는 복을 받는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주는 자에게 주시는 복은 영적인 복만이 아니고 누가복음 6장에 보니까, 오늘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도 흔들어 넘치도록 했잖아요. 여러분의 믿음의 수준을 이거 할 때에 하나님께 그래서 우리가 헌금을 한다. 무슨 다른 사람을 위하여 우리가 희생을 한다. 그랬을 때 결국은 그것이 흘러넘치는 인생이 되는 것이에요. 이걸 깨달으니까 오늘 한 주간 주님 앞에 한 결 같이 묵묵한 헌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죠. 오늘 여기에 구체적인 표현이 잠언 11장 24절 나중에 여러분들 한번 확인하세요.

*잠언 11:24,
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참 기가 막혀. 허트, 구제해가지고 막 주는데 더더욱 부과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진짜 부자들은 자기 자기의 수입의 50%, 60%, 70~80%를 다 흘러가게 하잖아요. 더 많은 것이 들어오는 거 아주 놀라운 영적인 원리에요. 그런 아끼더라도, 아끼더라도 그게 기 것이 안 되는 거예요. 가난하게 될 뿐이라고. 그래서 주는 자에게는 영적인 복은 물론이요 이 땅에 살아갈 때도 하나님이 주시는 후이 주시는 그런 복이 있는 것이 이게 믿음의 수준대로 되는 겁니다. 오늘 누가복음 6장 38절에서 예수님 이웃에게 주라고 명령하시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는 사람에게 보상해 줄 걸 약속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38,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이어서 어떻게 보상해 주신가에 대해서는 곡식의 그릇에 담아 누르고 더 담기 위하여 흔들어서 옛날에 그런 거 있잖아요. 그냥 곡식 그냥 살짝 담아서 이제 싹 깎아주는 거 있지만, 어떤 사람은 그냥 거기다 쿵쿵 해가지고, 그냥 흔들어가지고 거기다가 더 꽉꽉 채우고 그다음 넘치도록 주신다고 묘사하시는 거 아닙니까? 예수님이 약속하신 주는 자가 받는 복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 인정받는 복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은 우리 모두 인간의 본성인데, 인간은 창조 때부터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기도록 지어졌는데, 그러니까 기가 막힌 게 이 주는 자가 받는 복에 대해서 주님이 인정하시는 것인데 여러분 고린도후서 1장 18절에 보니까 더 고후 1장 18절에 옳다.

*고린도후서 10:18,
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하나님이 인정을 하나 그러니까 주님이 칭찬하는 자가 진짜지 자기가 자기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데 아담의 범죄 이후에 사람들은 자신을 세상에 자기 그러니까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으로 여기는 것이에요.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본능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했어요. 자기중심이니까. 그래서 피조물이, 피조물의 본성 중에 하나가 진짜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본래는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데, 우리가 범죄하고 난 다음에 죄 짓고, 난 다음부터는요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 대신에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대체가 돼버린 거예요. 그게 죄의 본성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따라서 누가복음 6장 38절에,

*누가복음 6:38,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이웃에게 주는 자는 주님께서 인정하시고, 주님께서 누르고 흔들고 넘치는 복을 주시니까 다시 회복과 창조 질서로 돌아가는 것이에요. 그러니 우리가 주는 자가 받는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이고, 하나님 인정을 받을 때 부패한 우리의 본성이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으려고 하는 그것이 약화되기 시작하고 참된 우리의 수준으로 올라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할렐루야 여러분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고린도후서 8:9,
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보유하게 했다고 그랬잖아요? 하늘의 황태자이신 예수님은 절대적 부를 소유하신 분인 줄로 믿습니다. 천하만국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위해 비천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내려오셨고,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다 주셔가지고 주님은 가난하게 되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우리에게 다 주시니까 주님은 가난하게 되신 거죠. 그 이유는 우리를 더욱 부유하게 하시기 위하여, 더 부유하게, 그래서 오늘 꼭 기억할 것은 주는 자가 받는 복은 단순히 주라 뭐 희생하라 이게 아니에요. 이게 우리가 가장 풍성하고 부유하게 되는 지름길이다 이 말이 그래서 이 구절은 여러분 아시는 사도바울이 1차적으로 마게도냐 교인들에게 쓴 거 먼저는 마게도냐 교인들의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았잖아요? 기근으로 극심한 가난을 겪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그들의 헌신을 했는데 그들의 헌신이 예수님의 섬김을 닮았다고 칭찬하는 것이에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셨지만 오히려 주님의 영혼은 더 풍성하고, 더 생수가 솟으시고, 더 주님의 영혼은 말로 할 수 없는 풍요로움과 잔치함으로 메마르지 않았던 것처럼 어려운 가운데 형제를 위하여 섬긴 마게도냐 교인들에게 예수님의 영혼의 풍성함을 주실 것이라고, 영혼의 부유를 주실 것이라고, 영혼의 잔치를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3번에 정리하면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주는 자가 되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하나님의 인정으로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게 되고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하나님께서 부유하게 해 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다. 이것들을 잘 정리해가지고 기합법적 질문을 해보시라고 예를 들어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라고 하신 이유가 단순히 뭐 이렇게 영적으로 성숙하기만을 위한 것인가? 아니라는 것이에요. 거기는 모든 걸 따라오는 거에 대해서는 지혜롭게 그다음 질문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4번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저 같은 경우는 그래요. 이렇게 주게 될 때, 영적인 부유함과 더불어 제가 순전해지는 것이 복음으로 더 퓨리파이드(purified), 더 정결해지는 것이에요. 주다가 보니까 내가 더 정결해지고, 내가 더 복음의 은혜를 깨닫고, 내가 주다 보니까 내가 더 순전해지는 것이에요. 내 마음 밭이 더 주님이 보시기에 옥토가 되는 거예요. 할렐루야 아닙니까

4번-적용. 다음 글을 읽고 주는 자의 복을 묵상해 보세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두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에게 복을 주겠다.’고 다른 하나는 ‘내가 너를 복의 근원이 되겠다.’입니다. 이에 대해 종교개혁자 마르틴루터는 1520년에 쓴<그리스도의 자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은 것들이 그리스도께로부터 흘러나와 우리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 좋은 것들은 우리에게 흘러나와 그것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또 흘러들어간다.” 우리에게 주어진 좋은 것들은 내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로부터 우리 속에 흘러들어온 것이며 이것은 내가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나로부터 반드시 또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베푸는 삶이라는 것은 지갑의 척도가 아니라 영혼의 척도입니다.”

-늘 제가 말씀하지만 우리는 축복의 통로이지 축복의 대상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 순장님들도 계시고 또 사역 반 훈련생들도 함께 했으니까 다시 한 번 정리합니다. 창세기의 주제는 창세기 12장 2절, 3절이죠. 너는 복이 될지라,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세기 12:2-3,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복의 대상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는 복의 근원이다. 그런데 이 말씀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잘 먹혀 들어가지 않고 이해가 안 됐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몰아내시고, 정신 차리게 하시고 그다음에 출애굽기의 주제인 ‘너희가 내게 제사장 나라가 되라’고 그랬어요. 여러분 제사장은 누구를 위해서 삽니까? 자기 배만 두드리는 제사장이 아니고,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말하면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을 위해 자기의 삶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걸 이렇게 이렇게 이해시키고자 했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잘 깨닫지 못했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결국 영광스러운 예루살렘 성전 다윗이 준비해가지고 예루살렘 성전을 짓게 했죠.

그러면 그 성전을 지어가지고 성전 좋다, 자기들만 폼 잡다 그게 아니고 이 성전을 자기들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주신 게 아니라, 역대야 6장에 보니까 솔로몬이 성전 운동을 할 때 땅의 모든 족속이 이 성전을 향하여 와서 기도하면 응답해 달라고, 기도 응답해 달라고 우리가 솔로몬이 주님 앞에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올려드린 것이에요. 한마디로 말하면 솔로몬 성전도 자기만 배 두드리는 거 땅의 모든 족속을 위하여 주는 그런 은혜가 있기 위하여 소위 그 솔로몬 성전을 헌당할 때가 소위 미슈널(missionary Israel) 이스라엘, 선교적, 이스라엘의 삶을 살라고 하신 거 선교적 이스라엘 삶의 기준 하나 주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백성들이 또 못 알아듣고 자기 병을 두드리고 교만하고 범죄하고 그러니까 결국 성전이 파괴되었죠. 그리고 바벨론 포로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남은 자들이 스룹바벨 성전을 짓게 하면서 ‘나중 영광의 이전 영광보다 더 크리라’고 하시고 이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어요. 이사야에 나오죠. 이사야 56장 6절, 7절에 보니까,

*이사야 56:6-7,
6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7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이 성전은 내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그리고 그래도 못 깨달으니까, 우주적 성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예표하게 하시고, 신약에 들어와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2장에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세월이라.” 이렇게 크게 보면 영적인 구원 사, 예수님의 구속사역의 완성, 또 부활 이런 거 다 포함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의 사건을 통하여 지성소 휘장이 찢으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만민에게 우주적 성전 되게 하시고, 그 주님 앞에 나가기만 하면 나의 의가 아니라, 예수님의 의로 축복의 근원 왕 같은 제사장 되게 하셨습니다. 토비세 때 말씀을 드렸지만 일방적으로 우리를 이걸 깨닫도록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주셨어요. 삼아주신 거예요. 내가 된 게 아니에요. 실력과 재능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에요. 내 실력으로 쟁취하면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자격 없는 우리를 일방적으로 그렇게 삼아주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축복의 근원이 돼야 되고, 제사장 나라가 돼야 되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우리만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을 통하여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를 축복을 유통하는 통로가 되게 하시고 그리고 은혜의 플랫폼 되게 하시고, 또 주는 자의 플랫폼 되게 하시고 신적인 공유지가 되도록, 그래서 우리는 축복의 병참기지가 돼야 되고 주는 자의 곳간이 돼야 되고 축복의 저수지가 돼야 되고 그다음에 주는 자의 창고가 돼야 되고 나를 통해서 내 주위가 복을 받도록 은총의 통로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제가 지금 이 내용을 너무 중요한 신구약 전체를 빨리 내가 정리를 했어요. 내가 평소에 많이 강조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러니까 오늘 순장님들이나 우리 모든 우리 사육과 훈련생들 이걸 또록또록 기억하시고, 여러분의 것으로 삼을 때 여러분 사랑하는 교회 순장으로서 또 오 목사가 같이 함께 동역하는 자로서 나보다 더 잘 될 줄로 확신합니다. 확신합니다. 우리 5번 하겠습니다.

5번-묵상 적용.
-옛 자아는 받는 것이 본성이요 예수님을 얻은 새 자아는 주는 것이 본성입니다. 왜냐하면 옛 자아는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받는 것이 체질입니다. 그러나 새 자아는 베풂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무시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베풂의 복음의 신비를 깨달은 자가 가질 수 있는 태도입니다. 자신의 전부를 드림으로 우리를 부유하게 하신 예수님처럼, 당신은 이웃을 위해 무엇을 나눌 수 있습니까? 당신은 결심을 나눠 보십시오.
-여러분, 내 안에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더 좋아하는 모습이 있다면 다 연약하니까, 이런 속성이 다 있긴 합니다마는 그래도 내 안에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더 좋아하는 모습이 있다면 아직까지 내 삶의 왕자에 내가 앉아 있기 때문이에요. 즉 아직도 나 자신을 인식할 때 십자가라는 어떤 그 거울을 통과하지 않고 내 기준의 거울을 통과하기 때문에, 그 십자가의 거울을 바라보지 않고 내 기준의 거울을 바라보기 때문에 진정한 청지기 의식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 우리 손에 받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너무 귀한 것, 예컨대 귀한 공동체, 형제의 사랑, 숨 쉬는 공기, 마시는 물 이 너무나 귀해서 값을 매길 수 없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도 아직까지 여러분 잠언 30장 15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어요?

*잠언 30:15,
15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족한 줄 알지 못하고 족하지 아니하다. 서넛이 다 거머리는 다오 다오 한다. 저 어릴 때 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청직 의식을 가지고 매일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내 삶의 최종 결정권을 주님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 자신을 부인하게 되고 내가 내 자신을 소유하고 있다 내가 내 주인이라고 하는 생각을 처리하게 되는 것이죠. 저와 여러분의 이 성향은 자체가 나무의 아래 나를 두는 걸 싫어합니다. 우리 인간이 이 부패하고 난 다음에 인간이 범죄하고 난 다음에 누구 밑에 있는 걸 싫어해요. 그래서 자기가 자기의 최종 결정권을 갖는 거예요. 마지막 결정권을 자기가 갖는 거예요. 그러니까 맨날 힘들고 맨날 상처받고, 맨날 이상한 어떤 뭐라고 그럴까요. 압박감이랄까 뭔가, 뭔가 일은 모르지만 안 믿는 사람들이 다 당연하죠. 뭔가 불안감이 늘 그를 사로잡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신의 소유권, 자신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포기하라고 하신 이유는 어떤 면에서 우리의 가장 깊은 곳을 다 처리하는 것이에요.

여러분, 예수님께 내 삶의 최종 결정권을 이양하고, 그분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게 되면 새로운 자아, 즉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셔갖고 주는 것이 복이 있다는 걸 더 좋아하게 되고, 섬김을 받는 것보다 섬김을 더 좋아하게 되고 이럴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풍성하게 되고 성숙하게 되고 마음의 모든 짐들과 어깨에 진 수많은 이 돌멩이들을 다 처리하는 거예요.

사랑하는 순장 여러분, 사랑하는 훈련생 여러분,
우리가 제자 훈련을 하고 사기 훈련하는 이유가 뭡니까? 결국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포기함으로 말미암아 오직 내 안에 예수님이 내 온 인격을 주장하게 하시는 거죠. 그리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나도 기뻐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성숙하게 되고, 기쁨이 이렇게 기쁨이 쭉~ 따라오게 돼 있는 거지 자기를 포기하지 아니하고 자기 부인하지 않고 자아실현하고 자기가 펄펄 살아 움직이면 결국 그 얼마나,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거 얼마나 저기 뭡니까 답답하겠어요? 얼마나 마음에 짐이 많겠어요. 따라서 오늘 사역 훈련생 여러분 우리가 사역 훈련을 통하고 순종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면 남을 더 잘 섬기고 어떻게 주는 자의 삶을 살 것인가 말씀을 통해 영혼을 섬기고, 또 실제적으로 영혼을 섬기고 그럴 때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이번에 10월 23일 한국교회 섬김의 날 ‘한교섬’은 우리가 이 섬김을 실천하고 주는 좋은 장이 되었어요. 다시 한 번 새 중에 가장 아름다운 새는 뭐예요? 특새, 섬 중에 가장 아름다운 섬은 뭐예요? ‘한교섬’ 이번에 우리 교우들 가운데 준비된 홈스테이를 경험하신 어떤 목사님이 은혜 게시판에 남긴 글을 소개하겠습니다.

※113. 한국교회 섬김 날 은혜의 홈스테이 170번 읽어보십시오.
제가 거기 보니까 물질적으로 넉넉한 대형 교회가 작심하고 하는 행사 정도로 가벼이 여기고 참석한 마음이 매우 죄송하고 부끄러웠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대형교회 한다고 하는 거 그거 그냥 그러려니 하고 그냥 적당히 가볍게 생각하고 적당히 참석한 것이 부끄러웠다 그 말이죠. 사랑의 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이 믿음으로 혼연일체가 되어 질서 있게, 절도 있게, 그러나 매우 온유하고 은혜롭게 진행되어 가는 모습은 대형 교회가 물질적으로 치르기 위하여 하는 행사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중략... 또한 저희 부부에게 홈스테이는 특별한 은총이었습니다. 류 권사님께서는 직장에 다니시는 듯 한데도, 시시때때로 연락과 정보를 주시며 저희가 사랑의 교회에 무사히 도착하기까지 세심하게 안부를 살펴주셨습니다. 저의 아내를 위한 독채로, 그것도 1년 전부터 미리 예비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작년에도 홈스테이를 섬기고 싶어 신청하셨다는데 거리가 멀어 탈락이 되어가지고 매우 아쉬웠기에 다시 1년 동안 기도하고 간절히 소망하며 겨우 섬기게 된 홈스테이하며 환대해 주시는 부부의 모습에서는 정말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둘째 날 일정 시간을 맞추기 위하여 꼭두새벽부터 오직 저희 부부만을 위한 요리를 해주시고, 그게 요리하고 싶어 갖고 설레 가지고 잠이 아직 오늘 아 잠이 오지 않았다고, 남편 집사님의 그 묵직한 말씀을 곁들인 이태리 풍미 가득한 요리들로 아침 만찬까지, 어디서도 보지 못할 귀한 섬김으로 평안하고 회복의 은혜를 누리고 왔습니다. 우리는 영적 가족에게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함께 해결하자고 그리고 꼭 연락하셔야 한다고 당부를 넘어 협박까지 하신 이런 성도들의 진심이 담긴 섬김과 기도가 결코 되지 않도록 응답되는 목회를 할 수 있는 목회자가 되겠다고 책임감이 막 밀려왔습니다. 교회 앞에 교회 부름 앞에 계산 없이 그에 기꺼이 순종할 수 있는 사랑의 교회 영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영적 존경심을 표합니다.
-주는 자가 받는 복이죠. 아마 이 홈스테이는 이 댁은 앞으로 3년은 문제없을 거예요. 가만히 계시네요. 아멘도 안 하고 믿든지 말든지 그러나 여러분들이 이거 여러분의 것으로 확인되면 좋겠어요. 마지막,

◆삶의 열매를 거두며
“내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않은 것이 무엇이냐?” 고전 4장 7절 말씀은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8) 라는 말씀과 맥을 같이 합니다. 이 말씀들을 이 말씀들은 베풂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어때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하나님이 거져주신 것이기에 우리도 우리 이웃과 형제를 위해 거져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베풂의 대척점은 탐심입니다. 그리고 탐심은 우상숭배입니다. 우리 속에 집요한 탐심을 꺾고 주는 자의 복을 누릴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십시다. 더 높은 차원이 되겠죠.

더 높은 차원 자, 우리같이 찬송 한 장 하신 주님 사랑해요, 주님 사랑해요. 주님 사랑해요. 원망과 정성 다해 예수님 신실한 제자들 예수님의 진실한 주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그런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둘씩 마주 보시겠어요 둘씩 마주 보세요. 저 뒤에도 잘하세요. 둘이 마주 보세요. 오늘은 언니가 동생 보고 동상은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개인적으로 뭘 깨달았느냐? 물어보겠습니다. 이제 우리 우리 우리 다 함께 우리 잠깐 우리 대화하는 거 멈추고 저와 함께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주께서 하시는 이 말씀이 얼마나 놀랍고 특별한지요? 우리 가운데 부패한 육신의 본성으로 오염된 마음을 이 말씀으로 청소해 주시니 마음만 감사를 주께 올려드립니다. 오늘 우리 모든 사역 반 훈련생들 우리 모든 순자님들 이 말씀으로 무장되어 이 시대를 향한 거룩한 은혜의 손발이 되어 주는 자가 받는 복을 체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우리 한국교회 우리 때문에 우리의 섬김 때문에, 우리 한국 교회가 새로 지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를 주는 자의 주체로서 무장되게 하여 주시길 원하옵고, 우리 순장 반부터 온 교회가 이 땅을 새롭게 살리는 하늘의 기쁨과 은혜를 충만히 맛보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우리 사역한 훈련생들 크게 복 주시기를 원하옵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간절히 기도 올리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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