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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차 봄 글로벌 특별새벽부흥회(하나님께서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주후 2023년 4월 15일)-여섯째 날(토)
제목: "찬송이 승리입니다"
말씀: 역대하 14:9-13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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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대한 문명의 대결“
말씀: 출애굽기 3:11-15
설교자: 오스 기니스 교수님(소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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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20:21~23,
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23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시편 149:6,
6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고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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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11~15,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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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담임목사님-"찬송이 승리입니다"


*역대하 20:21~23,
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23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시편 149:6,
6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고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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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 praise!! 할렐루야!! 이렇게 찬양할 때 모두가 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등 다 기억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높이므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인도하실 것이다. 기도의 찬양이다. 찬양이 기도가 된다. 그렇게 하면 성령이 통제하기 시작한다. 경지에 올라가면 성령이 통제하면 우리가 못 보던 것을 보게 된다. 조금 더 들어가면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우수(優秀)사려(思慮), 근심이 너무 많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어떤 투명한 창을 막아버린다. 엉뚱한 생각을 하고 예수님을 믿어도 치유가 없는 것이다.


하늘의 영광과 능력을 바라볼 수 있도록 어떤 투명한 서로 격려하자. “오늘은 잔치이다. 오늘은 잔치입니다. 특 모닝입니다.” 특새의 좋은 아침이다. 마귀를 위한 선제공격이다. 오늘은 오스 기니스 교수님 하시기 전에 하겠다. 말씀을 먼저 나누겠다. 오늘 본문을 보라. 두 날 가진 칼이로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칼을 쥐고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하나님을 높임으로 무장되었다는 것이다. 무슨 활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최고의 무기가 찬양이다. 그래서 주님을 찬양하면 나도 모르게 기도가 된다.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성령이 이제 통제하기 시작한다. 성령이 통제하면 우리가 못 보던 것을 보는 것이다. 조금 더 들어가면 이것이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우수(優秀)사려(思慮), 근심 염려가 너무 많다. 그런 것들이 하늘의 영광과 능력을 바라볼 수 있도록 어떤 투명한 창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그게 가리고 있으니까 엉뚱한 판단을 하고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어도 능력이 안 나타난다. 예수님을 믿어도 치유가 없다. 예수님으로부터 새로운 삶으로부터 경지나 신선도가 유지가 안 되는 것이다. 여러분의 담임 목사님으로서 저는 지금까지 지난 20년 동안에 일관된 기도의 제목이 있다. 그것은 우리 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하면 끝까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유지할 수 있을까?이다.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하면 끝까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온전한 제자로 무장되어 끝까지 승리하게 할 수 있는가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인생의 이 나그네 길이 아니라, 순례의 길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영광스럽게 갈 수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을까?이다. 한 결 같은 은혜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 이다. 오늘 영광스런 20+1 첫 특새이다. 첫 특새 일 때 그 신선도, 그 영감과 능력 이제 47일 되었다. 그때의 소원은 그 감격, 축복, 기름부음, 영적인 어떤 능력이다. 여호사밧은 그 찬양팀과 하나님께 어떠했길래 그럴 수 있었는가? 우리가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앞으로 사랑의 교회는 기도의 지팡이가 찬양의 지팡이가 될 것이다. 이것이 찬양 지팡이다. 그럴 때 우리 앞에 있는 수많은 골리앗들이 무너질 것이다. 우리가 높이 찬양이 될 때에, High Praise가 될 때에 우리에게 가로 막힌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하고 그 다음 오염되게 하고, 그 먼지가 낀 것들을 투명하게 만들어 주실 것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적들이 보이지 아니하고 높은 보좌에 앉으신 하늘의 아버지가 보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수많은 동안에 우수사례 문제들이 벌벌 떨게 되는 것이다. 높은 찬양으로 무장하면 적들이 보이지 아니하고 하늘의 보좌가 보이는 것이다. 하늘의 보좌가... 너무 기쁘고 놀랍다. 놀라운 은혜 중에 하나가 이 찬양기도가 적들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이 보이니까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다윗이 골리앗을 치러올 때, 골리앗이 어마하게 컸다. 다윗도 사람이니까 무서울 것이다. 그런데 다윗이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너, 나는 하나님의 백성인데 너는 뭐냐?”고 하니, 하나님의 눈이 열리니까, 골리앗이 무서웠는데, 서양조크가 있다. He is too big. 그가 너무 크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니, 실수하지 않고 맞힐 수가 있다는 것이다. 왜냐면 뒤에 계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 적군을 보기 전에 하나님을 먼저 보게 해주신다. 그래서 찬양 기도가 너무 좋은 것이다. 이게 최고의 전략이 되는 것이다. 골리앗을 다윗처럼 물맷돌 가지고 이길 수 있는가? 수많은 찬양님을 보지만 우리 찬양 팀을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는 찬양 팀이 힘이 나는 것이다. 저는 지난 40년 목회 기간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Prison to prison. 감옥 생활과 같은 인생이 찬송생활을 갖는다. to Praise가 되기를 바란다. 옛날에 감사의 찬양을 통해서 ‘From prison to praise.’ 하나는 감옥이고 하나는 찬양이다. The praise-prayer is victory. 우리 사랑의 교회에서 찬송하고 주일에 회중 찬송할 때, 여러분은 은혜가 되는가? 이 이야기는 교역자들에게 자주 한다. 두 종류가 있는데 찬양의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Object Song, 또 하나는 Subject Song가 있다.
▷Object song : 하나님을 찬양
▷Subjec Song: 고백송.
-Object Song은 객관적으로 그 자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곡이다. 보통 영광송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만복의 근원하나님!!, 그게 독사이다. 하나님 자체를 찬양하는 것이 오브젝 송이다. 그러니까 하나님 자체를 찬양하는 것을 찬양이다.
-Subjec Song은 고백 송이다.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그 손자국 만져라.,,등등,~~
이런 이야기는 그때의 신선도를 유지하고 회복하자는 것이다. 나의 안타까움 나의 인생의 어려움 가운데서 주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자가 기도로 승화되어서 기도 송처럼 되는 것이 Subjec Song이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찬양이 절묘하게 이렇게 연결되는 것이다. 오늘 하나님께서 영광스런 마귀를 향한 선제공격을 할 수 있는 하이 프레이즈를 하게 하심을 찬양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늘 찬송을 하는데 매력이 있고 어떤 사람은 끌어들어오고, 어떤 사람은 은혜가 안 되고 너나 불러라 하는 자도 있지만 찬송을 하면 기쁘고 감사가 되는 것은 소위 전 세계 찬양하는 자가 신앙으로 끌어들이는 자가 있다. 그러니까 Sing in, 하는 자와 Sing out 하는 자가 있다. 안으로 들어오면 주님은 역사하신다. 어떤 성도님이 꽈배기와 음료수를 헌신했으니 특새 기간에 고생하고 주님을 찬양한 덕택이다. 모세가 아론과 홀에게 기도의 지팡이를 들게 하고 모세의 지팡이로 아론과 홀이 두 손으로 지탱하고 인내해서 이겼다. 서로 찬양이 올려 진 것이다. 영 가족이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이다. 모두가 다 주님 앞에 영적 승리를 하는 자이다. 마귀를 선제공격을 하여야 하는데 하나님께 찬양을 할 때 승리할 것이다. Object song, Subjec Song으로 하나님께 조화롭게 올려 드리고 내 뱉지 말고 끌어들이는 찬양이 되기를 소망한다.

♣요약
우리 모두가 마귀를 선제공격을 해서 주님 앞에 찬양으로 높여 들여서 찬송을 높이 올려 드림으로 수많은 우수사려를 이겨내고 승리와 극복해 주심을 믿고 오브젝 송과 서브젝 송으로 절묘하게 불러드리는 자가 되어서 주님을 깊이 경배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유다를 치러 온 암몬과 모압 자손으로 하여금 세일 거민을 쳐서 진멸하게 하시고 세일 거민을 멸한 후에는 서로 살육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개입으로 연합군은 유다와 싸워 보지도 못하고 해체되고 말았듯이 하나님은 사람들이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개입하시어 믿음의 자녀들을 도와주시고 승리케 하시니 우리는 늘 찬송과 경배로 예배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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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오스 기니스 교수님(소명 저자)-"위대한 문명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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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11~15,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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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새의 자리에서 다시 여러분과 말씀을 나눌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 새벽에 저는 여러분에게 ‘위대한 문명의 대결’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이 대결은 하늘에서 벌어지는 싸움이다. 20세기 초 독실한 기독교인인 네덜란드 총리가 있었다. 이분이 말하기를, 만일 커튼을 열어서 세상 뒤에 벌어지는 영적 전쟁을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다면 그 전쟁은 엄청나게 심오하고도 많은 것을 아우르기에 이 땅의 싸움은 그저 애들 장난 같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영적 전쟁 속에 있다고 믿는다. 저는 특새 때, 여러분께 문명의 순간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다. 역사의 위대한 문명은 모두 사라졌다. 문명들을 위협하던 적들이 승리한 것이다. 서구 문명이 여전히 버티고 있지만 심각한 위기 속에 있다. 서구 문명이 여전히 버티고 있지만 심각한 위기 속에 있다. 문명은 스스로를 위대하게 해주었던 영감이 고갈되는 지점에 결국 이르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의 갈림 길이 있다. 영감이 새로워지거나, 다른 영감으로 대체되거나 아니면 문명이 쇠퇴해버린다. 서구 문명은 그리스와 로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실은 성경으로부터 탄생했다. 즉 서구 문명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서방 국가들은 믿음을 거부한다. 우리는 지금 대(大) 문명의 대결 속에 있다. 성경에도 문명 대결이 등장한다. 세 가지 대결이 나오는데,

첫 번째는 모세와 바로의 싸움.
-즉 애굽 문명과의 싸움이고

두 번째는 (갈멜산 엘리야)가나안 문명 대 바알 선지자 싸움.
-대표되는 가나안 문명과 싸움이다.

세 번째는 바벨론과 페르시아 제국과 싸움.
-이 싸움에 대한 해석의 열쇠를 다니엘이 갖고 있었다.
지금 서구 문명의 위기와 더불어 우리는 문명 간의 싸움 가운데 있다. 이 때 한국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글로벌 사우스 교회들이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등 남쪽에서 강세를 보이는 반면에 한국교회에는 현대 사회에서 매우 독특하고도 역동적인 강력함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현대 국가로서 지속 발전함과 동시에 한국교회가 영적인 힘을 유지할 수 있다면 한국교회는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세계교회를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영적 싸움인 출애굽에 대해 자세히 말씀을 드리겠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실패로 돌아가자 강경파들은 전체적인 혁명을 요구했다. 강경파들은 프랑스 대혁명이 해내지 못한 것이 아직 많다고 여겼다. 국가 정신과 체계와 국가 자체가 완전히 번해야 했다. 물론 강경파는 실패했다. 세속적인 혁명은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지 못할뿐더러 설사 변화를 만들더라도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바로 ‘개종혁명’이다. 그런데 출애굽기를 보면 권력 간의 싸움을 잘 보여주는 예가 등장한다. 애굽은 당시 최선진 문명국이었고 지금도 인류 역사를 통털어 가장 오래 지속된 문명이다. 애굽은 번영과 긍지와 권력의 땅이었다. 충분한 일조량과 천혜의 나일강의 풍부한 수자원 그리고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이 있었다. 애굽은 신의 아들이라 하는 바로가 통치하고 있었다. 모세가 마주했던 기자의 거대한 피라미드는 이미 천 년 전에 지어진 피라미드였다. 그 피라미드는 4600년의 세월이 지나고도 아직 그 자리에 건재하다.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유일하게 현존하는 건축물이다. 유럽 대성당과 에펠탑 이전에 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건물이 기자의 피라미드이다. 모세가 이 대단한 제국의 지도자 바로의 면전에서 백성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백성은 애굽과 가나안 문명을 대적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를 기억하실 것이다. “떠나라!” 처음 주신 말씀부터 받아들이기 어려운 명령이었다. 아브라함은 나라와 민족과 친족을 떠나 세상의 지배적인 문화에 저항하라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주변 이방 민족과의 대결 가운데 하나님이 다른 신과 어떻게 다르고 하나님과 동행했던 우리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보여주어야 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과 정반대인 애굽이라는 제국과의 대결을 뒤로한 채 출애굽 했다. 이제 그들은 또 다른 정반대의 민족이 사는 가나안 땅을 향해 있었다.


인류는 두 가지 커다란 유혹을 받곤 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피조물의 중간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닮았다. 우리는 동물보다 고등하고 존귀한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닮기만 했을 뿐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처럼 될 수 없고 하나님처럼 대우받을 수 없다. 여러분이 이 부분을 보신다면 죄가 가진 양 방향적 힘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실 것이다. 인간은 자연, 이성, 과학, 기술에 통달함을 통해 하늘을 향해 올라가며 신이 되고 노력한다.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다. 이것이 애굽에 있었던 유혹이다. 또 어떤 인간들은 땅을 향해 내려가며 자연에 통달할 순 없을지언정 자연과 동화되어 다른 동물들처럼 행동한다. 이것이 가나안 족속에 있던 유혹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바알을 숭배할 때 난잡한 성행위가 동반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애굽이나 가나안과는 다른 하나님의 새로운 민족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출애굽은 단순히 모세가 바로에 맞선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애굽의 신들을 대적하신 사건이었다. 성경은 애굽이 당대 최고의 천단 문명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의 자유와 비교되는 속박의 집이라고 묘사한다. 마치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과 같지 않은가? 바로가 모세에게 말한다.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지 않으려 했다. 바로는 자신의 힘을 믿었으나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여러분은 현대의 서구권과 중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세속화가 가진 강력한 힘이 무엇인지 보실 수 있다. 이들 국가는 인간의 힘을 믿으며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의 싸움은 사회적 전투나 정치적 전투가 아닌 영적 전투인 것이다. 만약 우리 앞의 커튼을 걷을 수 있다면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하늘에서 일어나는 정사와 권세와의 싸움이 바로 우리가 마주한 진짜 전투임을 알게 된다. 이는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영적 전투가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계속 기도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러분은 영적 전쟁 가운데 있음을 기억하라. 여러분은 어둠의 세력을 대적하는 하나님 나라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 겉으로 보기에 서방 교회들은 무너지고 있지만 하나님은 이를 교회가 무너지는 것을 금하셨다. 서방 교회들이 과연 무너질까? 우리는 전 세계의 모든 교회들 특히, 한국교회가 바톤을 이어받아 믿음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더 굳건해질 것을 믿는다. 이 초자연적 현실로 부르신다는 것은 여러분이 부흥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전에 제가 미국 하원에서 설교를 한 적이 있다. 의원 한 분이 제 설교를 듣고 제게 오셔서 ‘독의 구멍을 손가락으로 막아 마을 전체를 홍수에서 구한 네덜란드 소년 이야기’가 생각난다고 말씀하셨다. 그 의원님은 홍수가 났을 때 작은 소년이 손가락으로 둑을 막으면 영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 문제는 홍수 정도가 아니다. 걷잡을 수 없는 산사태 그 자체이다. 과연 누가 이것을 막을 수 있는가? 서방 전체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 초자연적인 능력의 하나님의 말씀만이, 성령님의 능력만이 오직 대각성과 부흥만이 반전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다. 하나님은 서구권과 전 세계 모든 교회에 부흥이 필요함을 잘 아신다. 그래서 저는 사랑의 교회를 응원하고 있다. 강력하게 기도하는 한국과 전 세계 성도님들을 응원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실 줄 믿는다.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다. 감사하다.

♣요약
서구 문명의 위기와 더불어 우리는 문명 간의 싸움 가운데 있듯이 이 때 한국교회의 역할이 중요함을 알아야 하며 우리의 싸움은 사회적 전투나 정치적 전투가 아닌 영적 전투인 것이니,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하늘에서 일어나는 정사와 권세와의 싸움이 바로 우리가 마주한 진짜 전투임을 알아서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영적 전투가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니 오직 성령님의 능력만이 오직 대각성과 부흥만이 반전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음을 믿고 주님과 늘 함께하여서 우리가 가정과 교회와 민족이 부흥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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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차 봄 글로벌 특별새벽부흥회(하나님께서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주후 2023년 4월 13일)-다섯 째 날(금)


제목: "쇠사슬을 깨뜨리려면"
말씀: 사도행전 16:22-26
설교자: 크리스찬 소니아 목사님(루마니아 호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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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과 동행”
말씀: 누가복음 24:13-17
설교자: 박신일 목사님(그레이스 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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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22-26,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누가복음 24:13-17,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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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크리스찬 소니아 목사님(루마니아 호프 교회)
제목: "쇠사슬을 깨뜨리려면"
말씀: 사도행전 16:22-26

-사랑의 영 가족 여러분 그리고 존경하는 오정현 목사님,
이렇게 아름다운 봄 글로벌 특별새벽부흥회에서 말씀을 전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 사랑의 교회 특새에 말씀을 전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교회를 통해 역사하시는 모습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얼마 전에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에 행하신 놀라운 역사에 대해 읽었다. 1970년대 빌리 그래함 전도 집회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하심도 놀랍지만 지금 한국교회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하심도 경이로운 그 자체이다. 1970년대에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대규모 전도 집회가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 기도, 찬양, 고난이라는 자본을 이용하여 한국교회를 성장시키시고 굳건하게 세우셨다. 또한 루마니아 교회들도 성장시키기 위해 하나님은 이 네 가지 자본 모두 사용하셨다. 그리고 초대교회도 마찬가지로 기도, 찬양, 고난, 말씀을 통해 성장시켰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인 사도행전 16장을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사도행전 16장에는 바울과 실라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가 나온다. 두 사람은 선교 여행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 하나님께서 열심히 전하는 두 사람에게 멋진 휴가 같은 보상을 주셔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그런 보상은 받지 못했다. 놀랍게도 여러분의 생각과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났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보상을 받기는커녕 복음을 전하는 대가로 고통과 투옥과 자유의 억압이 찾아왔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길 무리들이 바울과 실라를 고발했고 상관이 그들의 옷을 벗기고 채찍으로 때리라고 명령까지 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간수는 두 사람을 잘 지키라고 명령을 받았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감옥에 넣고 그들의 발을 쇠사슬로 묶었다. 감옥에 갇히는 것은 복음을 전파한 상급으로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과 실라 입장에서는 하나님께 불만을 토로하고 왜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 하나님께 물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저희가 왜 투옥당해야 합니까? 왜 고통 받아야 합니까?”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불평하는 대신 다른 것을 하였다. 25절을 보면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했다고 나온다. 지금 특새에서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것처럼 말이다.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고 찬송을 불렀고 다른 죄수들은 그들의 찬양을 들었다. 엄청난 이야기이다. 실제로 이런 고난을 겪으면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다. 인생 살다 보면 그리고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화를 할 때 항상 이 두 가지 선택 앞에 놓이게 된다. 바울과 실라는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바울과 실라는 그들을 묶고 있는 쇠사슬이 찬양 또는 부숴버리도록 내버려둘 수도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삶의 쇠사슬이 믿음의 찬양을 파괴할 수 있다. 실라는 어느 순간 바울에게 “우리가 이런 식의 대우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바울은 실라에게 “당신 말이 옳습니다. 우리는 이런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이 진짜 계시긴 합니까 왜 하나님은 선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게 하십니까?” 라고 반문할 수도 있었다. 바울과 실라는 선한 사람들이었다. 바울과 실라는 자신들을 불쌍하게 여길 수 있었다. 우리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불평할 수 있다. 인생에 쇠사슬이 많이 있다. 물리적인 쇠사슬은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 우리가 참 많이 묶여있다. 여러분도 잘 아실 것이다. 불안이라는 쇠사슬, 우울증이라는 쇠사슬, 질병이라는 쇠사슬, 암이라는 쇠사슬, 실패라는 쇠사슬, 죄라는 쇠사슬에 매여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쇠사슬이 너무나 쉽게 삶의 찬양, 믿음의 찬양을 부숴버릴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여러분이 지금 특별새벽부흥회에 오셨을지도 모르겠다. 저도 여러분과 함께 특새 현장에 있으면 좋겠다. 여러분의 찬양과 기도를 현장에서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여러분이 계신 자리를 둘러보면 좋겠다. 많은 분들이 그 자리에 나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많은 성도님들이 특새에 나오셔서 기도와 찬양을 하고 계신다. 여러분은 지금 삶의 묶는 쇠사슬이 너무 많기에 마음을 다해 기도를 하고 싶으실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는 인생의 쇠사슬이 여러분의 찬양을 막을 수 있다. 절망이라는 쇠사슬이 여러분 찬양을 깨드릴 수 있다. 너무 힘들면 목소리를 높이고 손을 들어서 하나님을 찬양하기 어려울 수 있다. 가족이나 여러분의 삶에 어떤 큰 사건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실직을 했거나 질병과 싸우고 계실 수도 있다.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쇠사슬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 쇠사슬이 여러분의 찬양을 끊어지게 내버려 두지 말라. 비록 여러분의 삶이 어려울지라도 여러분은 지금 이 자리에 나와서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 드리고 있다. 바울과 실라가 주님께 찬양을 한 것처럼 말이다.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제가 여러번 말씀드려서 아시겠지만 저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자랐다. 그때 너무 고통스러운 터널을 지나야만 했다. 어렸을 때 기억이 난다. 제 아버지는 교회를 섬기셨는데 아버지가 맡은 가장 중요한 임무는 성경을 숨기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공산당 비밀경찰이 성경을 압수했기 때문이다. 비밀경찰이 성경을 압수해서 화장실 휴지로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당시에 루마니아에 성경을 몰래 가져와서 제가 자란 교회에 전달해준 서양에서 온 멋진 그리스도인이 있었다. 교회 지하에 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 성경이 가득 차 있었던 기억이 난다. 저희 아버지와 장로님들은 성경을 필요로 하는 곳에 나눠주셨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버지와 장로님에게는 기쁨이 가득했다. 교회는 움직였고 성장했다. 교회는 함께 기도했고 찬양했다. 당시에 감옥에 간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감옥에 투옥되었던 사람들 중 특별한 하나님의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니콜라에 스타인하트’이다. 이분은 루마니아인인데 예수님을 민든다는 ‘믿음’ 때문에 감옥에 갇혔다. 공산당 강제 수용소의 독방에 감금된 상황 속에서도 니콜라에 스타인하트는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를 발견했다. 그 어둡고 외로운 감옥에서 니콜라에 스타인하트는 “행복 일기”라는 책을 썼다.
 
바울과 실라도 감옥에 있었다.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은 정말 힘들고 어려웠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그 상황을 “행복 일기”로 만들었다. 여러분이 어떤 어려움이 지나고 계시더라도 교회가 고난을 겪더라도 아무리 큰 고통이 닥치더라도 삶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삶을 찬양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여러분 믿음의 기도로 변화시킬 수 있다. 바울과 실라처럼 여러분의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놀라운 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여러분의 삶은 지금 이 순간 ‘행복 일기’가 될 수 있다. 여러분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 번째는 여러분을 묶고 있는 쇠사슬이 찬양을 부숴버리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두 번째는 찬양을 통해 쇠사슬을 끊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여러분은 “뭐라고요? 무슨 뜻인가요? 찬양이 쇠사슬을 파괴한다고요?” 라고 의아해 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시 상황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감옥에 갇혀있었다. 아마 어두웠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려고 어떤 이들은 울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찬양을 부르기 시작한다. 바울과 실라 중에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둘 중 한 명이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무엇을 불렀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찬송을 시작했다. 성경에는 찬송을 했다고만 나와서 어떤 곡인지는 알 수 없다. 상상의 나래를 펴보겠다.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라고 누가 먼저 찬송을 부르자 ‘무섭게 바람 부는 밤물결 높이 설렐 때 우리 주 크신 은혜에 소망의 닻을 주리라.’ 부터는 함께 부른다. 바울과 실라는 한목소리로 ‘주 나의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라고 불렀다. 정확하게 어떤 찬송을 불렀는지 모르지만 제가 상상해 봤다. 어쨌든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성경은 이때 다른 죄수들이 그들의 찬양을 집중해서 들었다고 말씀한다. 지옥과 같은 곳이 찬양의 장소가 되었다. 어둠의 장소가 빛의 장소가 되었다. 갑자기 바울과 실라의 찬양으로 감옥이 다른 곳이 되었다.
 
여러분, 바울과 실라는 쇠사슬이 찬양을 막지 못하게 했다. 바울과 실라의 찬양이 그들에게 역사하기 시작했다. 찬양이 쇠사슬을 끊은 것이다. 두 사람의 발은 묶여 있었다. 여러분이 찬양할 때, 여러분이 기도할 때,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을 때, 고난 가운데 여러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할 때 예수님은 여러분을 자유롭게 하실 것이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있었다. 그러나 감옥 안에서 자유로웠다. 이 상황을 자세히 보라. 찬양은 쇠사슬을 끊을 수 있다. 26절을 보면,
 
*사도행전 16:26,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모든 감옥 문이 열리면서 쇠사슬이 다 끊어졌다. 우연의 일치인가? 여러분이 오늘날 어떠한 일들 가운데 있는지 모른다. 저는 확실히 믿는다. 여러분이 어떤 고난을 겪더라도 여러분의 찬양이 여러분을 묶고 있는 삶의 쇠사슬을 끊을 수 있다. 네. 맞다. 저는 여러분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여러분의 찬양이 여러분의 삶을 묶고 있는 쇠사슬을 끊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안다. 찬양이 불안의 쇠사슬을 끊을 수 있다. 바울과 실라가 찬양을 부르자 감옥은 피난처로 바뀌었다. 지옥과 같았던 곳이 찬양의 장소가 되었다. 어둠의 장소가 빛의 장소가 되었다. 갑자기 바울과 실라의 찬양으로 감옥이 다른 곳이 되었다.
 
여러분, 바울과 실라는 쇠사슬이 찬양을 막지 못하게 했다. 바울과 실라의 찬양이 그들에게 역사하기 시작했다. 찬양이 쇠사슬을 끊은 것이다. 두 사람의 발은 묶여 있었다. 두 사람은 심하게 두들겨 맞아서 아파했다. 얼마나 아팠는지 그 고통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인 바울과 실라는 찬양했다. 바울과 실라의 찬양은 어둠 속에 있던 사람들에게 희망을 줬다. 바울과 실라의 찬양은 지옥 가운데 있던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었다. 바울과 실라는 찬양이 그들을 자유롭게 했다. 두 사람은 자유로워지기 전에 이미 자유로워졌다고 말할 수 있다. 여러분이 찬양할 때, 여러분이 기도할 때,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을 때, 고난 가운데 여러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실 때, 예수님은 여러분을 자유롭게 하실 것이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있었다. 그러나 감옥 안에서 자유로웠다. 이 상황을 자세히 보라. 찬양은 쇠사슬을 끊을 수 있다. 26절에 보면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감옥이 흔들렸다. 모든 감옥문이 열리면서 쇠사슬이 다 끊어졌다. 우리의 일치일까? 여러분이 어떠한 일들 가운데 있는지도 모른다. 저는 확실히 믿는다. 여러분이 어떤 고난을 겪더라도 여러분의 찬양이 여러분을 묶고 있는 삶의 쇠사슬을 끊을 수 있다. 여러분은 아마 ‘목사님은 제가 지금 어떠한 상황인지 모르십니다.’라고 말씀할 수 있다. 네 맞다. 저는 여러분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찬양이 우울의 쇠사슬을 끊을 수 있다. 찬양이 불안의 쇠사슬을 끊을 수 있다. 찬양이 고통의 쇠사슬, 실패의 쇠사슬, 죄의 쇠사슬을 끊을 수 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쇠사슬에 묶여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특새 기간 동안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쇠사슬을 끊어주시는 자유를 누리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묶고 있는 쇠사슬을 바로 이 자리에서 끊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저는 하나님께서 쇠사슬을 끊으시는 것을 많이 봤다. 바울과 실라에게도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여러분의 쇠사슬도 끊어주실 것이다. 바울과 실라는 쇠사슬에 묶여 있을 때에도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리고 여러분들 또한 찬양할 때 여러분들의 쇠사슬은 완전히 끊어질 것이다.
 
♣요약
바울과 실라처럼 여러분의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놀라운 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믿고 이 순간 찬양을 통해 쇠사슬을 끊는 것이어야 한다. 찬양할 때, 기도할 때, 하나님을 믿을 때, 고난 가운데 삶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실 때, 예수님은 자유롭게 하실 것임을 확신해야 한다.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면 바울과 실라처럼 주님은 기적으로 인도하심을 믿고 늘 찬양과 기도로 주님을 경배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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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과 동행”
말씀: 누가복음 24:13-17
설교자: 박신일 목사님(그레이스 한인교회)
 
▶할렐루야!! 기도제목이 있는가? 대답할 필요 없다. 인생이 다 기도제목이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우리에게는 기도제목이 있다. 왜냐면 우리 안에 죄 덩어리가 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24:13-17,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서더라.
  
▶할렐루야!! 기도제목이 있는가? 대답하실 필요 없다. 인생이 다 기도제목이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우리에게는 기도제목이 있다. 왜냐면 우리 안에 죄 덩어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도해야 될 줄로 믿는다. ‘하나님께서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이미 응답이 온 분들도 있고 아직 응답이 오지 않은 분들도 응답이 없는 분들은 응답이 오고 있는 줄로 믿는다. 한 가지만 더 질문을 더 해보겠다.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기도응답을 원하는가?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지면 좋겠는가?” 거짓말은 하지 말구요... 우리 믿음의 왜 흔들리는가? 왜 믿음이 가리워지는가? 예수 믿는 우리들이 안 믿는 사람과 똑 같은 가치관으로 성공과 실패, 이 관점으로 내 인생을 쳐다보기 때문에 그 때마다 우리는 좌절할 때가 많다. 오늘 성경에 있는 믿음의 부활이 있기를 기원한다.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부활 신앙으로 무장되기 바란다. 그래서 여러분 다 어디로 가냐면은 결국에는 하나님의 나라에 도착할 줄 믿는다. 천국 가는 순례자이다. 우리 옆 사람에게 인사를 하겠다. “우리는 천국으로 가는 인생이다.” 라고 인사하기를 바란다. 부흥은 이 부흥이란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주님이 원하는 것에 완전히 통제되는 것이다. 이 부흥이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다 죽을 것이다. 죄송하다. 아침부터,,, 그러나 부활할 것이다. 저희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제가 한국에 와서 장례 천국환생을 다 마치고 신고해야 할 것이 많았다. 무슨 신고를 해야 하는가? 사망신고이다. 이런 고민을 했다. 부활 신고는 없다지? 왜 우리는 부활 신고를 안 하는가? 오늘 예배 마치고 주민 센터에 가셔서 “나는 부활할 것입니다,”라고 해보라. 생각을 해보자. 우리는 사망신고를 할 줄 안다. 부활신고는 어디서 하는가? 자기에게 한다. 에베소서 2장에
 
*에베소서 2:6,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원래 성경에는 과거 동사로 되어 있다. ‘앉히셨으니. 앉히셨으니, 우리 모두는 신분이 하나님의 하늘나라에 앉아 있는 신분이다. 천국 가는 길이, 우리의 발이 천국에 닿아 있다는 것을 믿고 정말 멋진 그리스도인임을 축복한다. 오늘은 주제를 가지고 나누고 싶은 것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여러분 구하는 기도에 응답이 왔고 오고 있는 줄 믿는다. 우리가 기도하면 계시록에 표현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천사에게 받은 향로를 가지고 주께 가면 불을 담아서 다시 이 땅에 쏟아 부으신다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성령의 불이 담겨서 이 땅에 쏟아질 때, 우리 인생이 얼마나 놀라운 역전승이 일어나겠냐는 것이다. 일어나길 바란다. 그런데 오늘 나누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저는 이것을 거꾸로 기도하고 싶다. 우리도 많이 구할 수 있다. 그런데 거꾸로 주님이 주시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이다. 저도 여러분도 우리가 구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주님이 저에게 주시고 싶은 것이 무얼까? 오늘 이것도 깨닫고 가지고 가시길 바란다. 부활절이 끝나면서 부활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오늘 성경에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실망한 표정으로 둘이 이야기하며 돌아가고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자신들이 섬기던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이다. 근심이 가득했다. 들리는 소문이 있는데 부활하셨다는 소문이 들린다. 아무도 본 자가 없다. 세상이 관점으로 패배감으로 걸어가고 있다. 오늘 이 말씀 중에 15절을 보겠다.
 
*누가복음 24:15,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이들이 오늘 말씀을 보시면 슬픈 마음 중에 이들이 내려가고 있는데 특이한 구절이 있다. 서로 이야기하며 고민할 때, 예수님께서 가까이 이르러 동행하신다. 이 단어 하나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슬퍼서 내려가고 있는데 예수께서 정확히 와서 그들과 동행하신다. 그런데 16절에 보면,
 
*누가복음 24:16,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주님이 오셔서 걸어주고 동행하고 계신데 이들은 눈이 가려져서 안 보이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의 신앙 여정 중에 믿음이 가려지는 경우가 있다.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닌데 믿음이 가려질 때가 있다.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 세상의 모든 관점으로 바라보면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어려움이 어쩔 때는 겹쳐서 온다. 나 혼자 질 수 없는 것을 혼자 지라고 하는 것처럼 엄청난 고난의 짐을 져야 될 때가 있다. 성경은 예수님이 동행하고 있는데 이들은 알지 못한다. 예수님이 함께 걸어주시는데 예수님이 몰랐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참 재미있다. 17절을 보면,
 
*누가복음 24:17,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서더라.
-오히려 질문하신다. 이들은 슬픈 동행과 여정을 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냐? 이렇게 질문하신다. 그랬더니 두 사람이 슬픔 마음으로 머물러 섰다. 18을 보면,
 
*누가복음 24:18,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이 사람이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가 그렇게 사랑하던 예수님이 죽으셨다고,,, 아니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길인데 예루살렘에 내려와서 모든 사람이 아는데 왜 당신은 모르냐고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그 분이 누구인가? 우리가 이럴 때가 종종 있다. 아니 무슨 일 하느냐? 아니 예루살렘에 내려가는데 예수님이 죽으신 거 모르냐고 한다. 믿음이 있는 건가? 없지는 않다. 여러분 없지 않는다. 있는데 발휘가 안 되는 것이다. 왜? 다른 것이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앞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우리 믿음은 죽지 않는다. 진짜 믿음은 없는 것처럼 보여도 믿음은 결코 죽지 않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그 믿음이 살아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시다.
 
*누가복음 24:19-20,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이들은 슬픈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왜? 주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주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동행하고 걸으면서도 주님이신 줄 모른다. 죽으신 예수가 압도하고 계신 상황이다. 21절에 보면,
 
*누가복음 24:21,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사흘째 절망하고 있다. 저는 이 구절이 역사적인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 따라 해보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주님이 어떻게 되셨는가? 죽으신 지가 사흘째이다. 왜 역사적인 구절이이냐면 사람이 하나님을 염려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지가 주님을 염려한다. 돌아가셨는데, 이들은 매우 낙심한 상태로 절망으로 엠마오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동안 대화는 22절에 있다.
 
*누가복음 24:22-2,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이것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소문은 도는데 만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슬픈 동행을 하고 있다. 주님이 계시는데 없는 것처럼 그 길을 걷고 있다. 이 본문을 다른 관점에서 이들은 기쁨 가운데 걸어가는가? 실망과 낙심 가운데 걸어가는가? 영적으로 패배감으로 걸어가고 있다. 왜? 우리 주님이 죽으셨기 때문이다. 이제 제가 이 똑 같은 것을 다른 관점으로 설명해 보겠다. 여러분들이 대답을 잘 해 주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으로 패배당한 것처럼, 고난이 압도할 때 실패한 거처럼 이렇게 살아갈 때가 있다는 것을 아신다. 그때 우리가 이런 관점으로 살아가고 있을 때, 오늘 성경은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그들과 동행하고 있다는 말씀인데 이들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질문이 뭐냐면, 우리가 이렇게 비참한 영적 상태가 있다는 것이다. 그때 우리 주님은 나에게 관심이 있으신 것이다. 이 성경은 무엇을 이야기 하는가? 내가 영적으로 믿음이 영적으로 쓰러지고 그런 때가 왔을 때, 우리 주님은 나를 돌보시는가? 나에게 관심이 있으신가? YES? NO? 이 본문을 다른 관점으로 보면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이들이 영적으로 지쳐 있을 때, 어디로 가는지 주님은 아시고 그 자리에 정확히 오셔서 그들과 동행해 주신다. 우리 주님은 이들의 마음속에 있는 혼란을 아신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은혜가 뭐냐면 우리가 힘들고 지치고 믿음이 발휘를 못하고 고난이 압도하는 이 상황에 우리 주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 그 자리에 오셔서 우리 걷고 계신다는 것을 너희는 믿냐고 하신다. 이것을 깨닫게 해주시는 말씀이다. 그들은 몰랐지만 그들과 함께 걸어주고 계시는 것이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주님이 안 계신다. 주님의 부재(不在)이다. 오늘 성경은 거꾸로 말씀한다. 주님이 안 계신 것처럼 느끼는 순간에도 주님은 완벽한 임재로 동행하고 계신다. 오늘 이 새벽 제단에 주님이 동행하시는 눈이 활짝 열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시편 139편에 그분은 내가서고 앉고를 아신다.
 
*시편 139:2,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주님은 내 혀의 말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다. 우리가 신앙생활로 걸어갈 때, 하나님의 부재를 느낄 때가 있다. 그런데 이 본문은 다른 관점으로 보면 그때도 내 곁을 걸어주고 계신다. 이것을 보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부활신앙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누가복음 24:25-,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우리 주님은 이들에게 성경 말씀을 기억하게 하신다. 말씀으로 26절에 보면,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미 메시아가 죽을 것과 부활의 일을 약속대로 되어 있다는 것이며 그들을 말씀으로 돌아가게 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날 줄 믿는다. 27절에 보면,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구약이다.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이다. 어떻게 부활하신 것을 다 설명하신다. 저는 감사한 것이 있다. 우리 주님은 이들의 믿음을 회복시키시는데 말씀을 사모하게 한다. 그리고 28절에 보면,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예수님이 억지로 머무시는 것처럼 거기에 유하시러 들어가신다. 이제 문제는 그 다음이다. 30절에 보면,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 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어떤 상황인지 이해할 것이다. 눈이 가리워졌고 다 수동태이다. 내가 가린 것이 아니라 열리어졌고, 열릴 때도, 눈이 밝아졌다. 그래서 그분이 누구인가? 예수님이신 것이 깨달아진 것이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줄로 믿는다. 오늘 아침 부활의 주님을 여기 계신 것을 목격하고 체험한 것을 믿기를 바란다. 주님은 부활하셨다. 아멘. 예수님인지 알아봤는데 그 순간에 어떻게 되었는가? 부활의 몸으로 자유롭게 되었다. 예수님인 줄 알았는데 사라졌다. 정말 재미있는 말씀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이제는 같이 안 계셔도 된다. 왜? 알았기 때문이며 부활을 봤기 때문이다. 먼저 이야기 해보자. 어느 시점에 눈이 열렸는지, 어느 시점에 눈이 열렸는가? 30절에 다시 보면 성만찬 하시듯이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그들에게 주신다. 물론 이 눈이 열리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말씀을 풀어주시니 말씀이 깨달아지고 신기한 것은 축사하시고 주님이 떡을 떼어 그들에게 왜 이때 먹는 것이 중요한가? 이 답은 무조건 상상이 아니라, 기독교 역사에서 해석해온 것이 있다. 이 사건 이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다. 제가 이 해석을 본문 속에서 해석한 것이 있다. ‘떡을 떼어 주실 때.’ 주님의 손을 본 것이다. 그분의 손에는 못 자국이 있었다. 예수님이 이후에 주님의 손과 발을 보여주신다.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신다. 이들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주님이 살아나신 것이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순간 주님은 떠나셨다.
 
여러분,주님은 떠나셨다. 주님의 물리적으로 부재, 주님의 부재, 그런데 여러분, 놀라운 것을 아는가? 이제부터는 동행이시다. 할렐루야!! 내가 주님을 보았기 때문에 안 계시는데 동행이 시작된다. 주님이 나를 아신다는 것, 그 사람은 동행이다. 주님이 나를 찾아주셔서 아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여러분, 물리적으로 안 계셔도 동행이다. 이 동행이 회복되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란다. 무슨 일을 만나도 동행이다. 내가 죽일 일을 당해도 동행이다. 내가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나니. 사나 죽으나 나는 주의 것이다. 아멘!! 여러분, 거룩한 동행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아멘...
 
주님이 사라지셨다. 동행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대화를 한다. 32절에 보자.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내가 믿는 믿음이 확인되고 그 마음에 뜨거워지지 않느냐고 하신다. 여러분, 이스터 파이어, 이스터 파이어, 부활을 만날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오늘 이 새벽에 기도할 때 이 불이 떨어지기를 바란다. 이스터 파이어!!!~ 하나님의 불이, 동행하시는 불이 우리 가슴에 새겨지는 아침이 되기를 바란다. 문제만 보이던 사람이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 동행의 능력, 이 놀라운 이 능력이 가슴 속에 떨어져서 주님, 할렐루야!! “저는 주님과 오늘도 동행합니다.” 우리 마음 뜨겁지 아니하냐? 고 하신다. 그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나신다. 그리고 44절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가복음 24:44,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뭐에 중인이라 하시는가? 부활의 증인이다. 기독교인은 부활의 증인이다. 아멘. 성경은 4복음서 모두가 부활로 끝을 맺는다. 부활이 끝이 아니다. 승천하시고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신다. 다시 오셔야 역사가 완성된다. 그런데 승천하시기 전에 주님이 하신 것이 무어냐면, 사명을 주신다. 다시 올 때가 할 일이 있다고 하신다. 인생이 무엇인가? 기독교인 존 버네인이다. 오래전에 주님이 꿈속에 나타나셨다. 이런 질문을 하셨다. 너 인생이 무엇인지 아니? 라고 하셨다. 인생은 제가 들었던 가요 중에는 것은 인생은 미완성이라고 안다. 꿈속에 듣고 있는데 주님이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너 초등학교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심부름 시킨 적이 있지? 돈 주시면서 이것 좀 사와라.” 저의 어린 시절에 꼭 이 두 가지를 사오라고 하셨다. 공감하는 분들은 두부와 콩나물을 사오라고 하셨다. 고개 끄덕이는 사람들은 다 55세 이상이다. 그런데 그 돈을 가지고 두부 콩나물 사러가는 길은 유혹의 길이었다. 저희 때는 12시에 만나요. 부라보콘, 등을 아시는 분도 50대 이상이다. 그 부라보콘이 얼마나 먹고 싶은지, 이것을 사면 이것을 못 사니까, 그 다음에 나왔던 것이 누가봐, 등, 그것을 먹으면 그냥 헤븐이다. 그런데 이 돈을 들고 이걸 사먹고 싶은 유혹, 저는 그때 초등학생의 고뇌가 무언지 안다. 그러나 그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돌아왔을 때, 온 가족이 모여 콩나물국을 먹고 두부요리를 먹을 수 있었다. 주님이 꿈속에 주신 것은 “인생은 내가 너한테 맡긴 것이다. 심부름 잘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라고 꿈속인데도 눈물이 났다. 왜? 심부름을 못해서, 인생이란 여정은 30년을 살아도, 100년을 살아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맡기시는 때가 다시 온다. 우리 손에 쥐어주시는 것을 잘 하고 집으로 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성도가 되시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증인이 되라고 하시고 49절에 보면,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이성에 머물고, 성령에 머물라고 하시고.
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52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리라. 여러분이 오늘 하신 것처럼, 이 말씀을 마지막 절에 하시냐면, 주님은 어떻게 하시는가? 주님은 어디계시는가? 승천하셨다. 물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올라가셨다. 주님은 떠나셨다. 그러나 떠나셨는데 큰 기쁨으로 늘 찬송하고 있다. 내 질문은 주님이 안 계시는데 왜 찬송하는가?이다. 안 계신데, 계시는 것이다. 주님은 물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승천하셨는데, 그들은 분명히 알게 되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주님이 동행하시는 것을 알아채는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확신한다. 이 똑 같은 상황에서 마태복음 28장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서 마태복음 28장 20절에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28:20,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의 상상이 아니다. 우리의 믿음이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이들과 함께 계시던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난 다음에 승천하셨다. 물리적으로 떠나셨다. 완벽한 부재이다. 완벽히 안 계시는데, 완벽한 임재를 동행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다 완벽한 임재와 동행을 누리고 사는 온 교회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그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 나냐면 ‘늘 찬송 하겠네’ 이다. 늘 모여서 주님을 찬송하는 것이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주님을 찬송하는 회복이 있기를 바란다. 어떤 사람에게냐면, 주님과 동행을 믿는 사람이 가능하다. 마지막 한 사람 이야기를 하고 마치겠다. 성경을 보면 마태복음 15장에, 마가복음 7장에, 마가복음에는 수로베니게 여인이 나오고, 마태복음에는 똑 같은 여인인데, 가나안 여인으로 나온다. 아방 여인들은 유대인들은 ‘개’라고 이야기 한다. 정말 유치찬란할 정도로 아주 비극적이다. 지금 미국에서는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데 유대인들은 지금도 안식일에는 걸어 다닌다. 회당에도 절대 차를 안탄다. 안식일 전날 불을 켜 놓는다. 실수로 불을 못 켰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불을 켜 달라고 한다. 이게 유대인이다. 철저하다. 이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달려와서 내 딸이 귀신 들렸으니 도와달라고 한다. 제자들이 이방여인을 가라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위해서 보내심을 받았다.” 라고 말씀하신다.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냐면 딱 엎드려 버린다. 주여, 저를 도와주십시오. 라고 한다. 저는 성경을 읽다가 이렇게 주님이 차가우신 것을 처음 보았다. 살려 달라고 하는데, 나는 너한테 오지 않았고 이스라엘 잃어버린 양을 위해서 왔다고 하신다. 신가한 것은 마태복음 15장에 말씀이 나오는데 28장에는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로 삼아, 라고 하신다.’ 저는 이 넌센스를 푸는 방법이 1번 마태가 졸다가 기록했다. 2번 예수님이 말씀이 왔다 갔다 하셨다. 3번 모르긴 몰라도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몇 번인가? 3번, -대한민국은 객관식에 천재이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구속을 완성할 때까지는 비밀이다. 십자가에 구속하시고 부활하신 다름에 더 이상의 복음서는 없다. 그때부터 땅 끝까지 가라고 하며 우리 주님은 제자들 앞에서 엎드려 다시 그 여인을 말한다.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것을 개에게 주는 게 마땅치 않다고 하신다. 유대인들은 기뻤을 것이다. 당연이 유대인들에게는, 그때 이 여인이 “주여,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라고 한다. 이 장면에서 예수님의 태도가 바뀐다. 하시는 말씀이 “네 믿음이 크도다.” 하신다. 알고 계신 것이다. 이 때 유대인들 제자들은 당황했을 것이다. 개라고 내보내고 개라고 우겨야 되는데,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저는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이런 응답을 받으면 얼마나 좋은가!!이다. 주님이 나타나셔서 네 믿음이 크다. 라고 하신다. 제 질문은 주님이 이 여인에게 해주고 싶었던 본심은 무엇인가? “안 돼, 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왔어.” 이것이 주님의 본심인가? 아니면 제자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이 여자는 진짜 안아주고 싶으신 건가? 저는 아무리 읽어봐도 이 여자의 믿음을 드러내고 싶으신 것이 주님의 본심이었던 것을 알게 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집에 가서 읽으실 말씀이 많다. 마태복음 15장과 마가복음 수로베니게 여인과의 위치가 어디에 있냐면 놀랍게도 똑 같이 이 부스러기를 얻어먹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는 이 여인의 앞 이야기는 오병이어 오천 명이 배불리 먹은 이야기가 나온다. 이 여인이 먹은 다음에는 사천 명이 먹은 기적이 나온다. 성경은 어마한 풍성한 음식이 두 가지 음식 사이에 부스러기 얻어먹는 이야기를 끼어넣고 있다. 오천 명을 먹이신 다음에 요한복음에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온다. 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
너희가 나를 찾는 까닭은 먹을 것을 위해 배부른 까닭이요, 너희는 세상에서 잘 되기 위해서 나를 쫓아온다.” 주님이 하신 말씀은 “나는 생명의 떡이니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왔다.”라고 말씀하신다. 이 어마어마한 것을 먹는 사람들에게는 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전부였다. 그 사이에 열 두 광주리가 아니라, 부스러기를 먹는 이 여인의 믿음을 드러내신다. 오늘 강대상에 올라오신 분들은 부스러기를 드시려고 올라오셨다. 모두가 다, 저는 이 여인의 마음을 나누고 마치겠다. 내가 믿는 예수님, 저 여인은 이방여인이지만 저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알았다. 그리고 여러분, 끝까지 매달린다. 메시야는 저를 못 버리신다. 주님은 저를 못 버리신다. 오늘 우리의 기도할 때 이런 기도가 있기를 바란다. 부흥은 겸비할 때 온다. “주님, 저 못 버리신 것 알아요”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허락하신 줄 믿는다.
 
♣요약
우리가 믿는 주님은 부활하신 주님이시니, 승천하셨고, 다시 오실 주님이오니 오늘 우리가 특새의 주제처럼 하나님께서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다고 하셨으니 내가 믿는 주님은 나를 못 버리심을 믿고 부스러기를 주시더라도 좋으니 우리 가정과 일터와 교회, 그리고 우리나라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며 주님이 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서 동행하고 계심을 믿고 우리는 늘 찬송하고 완벽한 부재이지만 완벽한 임재이심을 믿고 살아가는 믿음의 성령의 불이 우리 가슴에 임하시고 동행의 축복이 임하시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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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1차 봄 글로벌 특별새벽부흥회(하나님께서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주후 2023년 4월 13일)-넷째 날(목)


제목: "우리가 해야 할 기도"
말씀: 사도행전 1:8-11
설교자: 데이비드 브루스 목사님(前 빌리그래함 수석 목사-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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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끈질긴 감사 기도의 능력”
말씀: 다니엘 6:10
설교자: 강준민 목사님(새생명교비전교회-미국-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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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8-11,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다니엘 6:10,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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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이비드 브루스 목사님(前 빌리그래함 수석 목사-초청)
-지금 저는 노스캘리포니아 주 살럿에 위치한 빌리그래함 도서관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지금 제가 서 있는 곳은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시는 한국 목회자 중 한 분인 김장한 목사님의 이름을 따서 지은 ‘김장한 도서관 기념관’이다.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께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문안인사 드린다.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과 오정현 목사님, 그리고 특새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과 함께 말씀을 나눌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제 뒤에 보이는 사진 하나가 걸려있다. 50년 전인 1973년 서울의 모습이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한국 전도대회의 마지막 집회 때 모습이 담긴 사진인데 이 사진이 1973년 6월 3일에 찍혔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다. 참 놀라운 집회였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당시 약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서울 여의도 광장에 모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다. 그 후로 50년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바로 오늘 새벽, 여러분의 모습을 보라. 한국교회가 얼마나 성장하고 어떤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 잘 보이시리라 믿는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와 동시에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한 번 생각해 보라.


전 세계 수많은 나라들이 한국을 여러 방면에서 경이롭게 여기는 이유를 발견하실 것이다. 교회의 성장과 한국 사람들의 힘이 바로 지난 50년 동안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부어주신 놀라운 증거이다. 정말 믿기 어려운 놀라운 일이다. 올해 6월 3일에 50년 전에 있었던 빌리 그래함 전도 집회를 기념하기 위해 우리는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다시 모이게 될 것이다. 그때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아들인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게 될 것이다.

1930년 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디로 데리고 가실지 그리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시며 어떤 사역을 하게 하실지 전혀 알지 못했다. 심지어 당시 그런 목표를 꿈꾼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35년 전에 있었던 일이 빚어지고 빚어져 1973년 여의도 광장 전도 집회로 이어졌다. 소명을 받고 10년이 지난 1940년대 후반 어느 날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영국을 방문하게 됐다. 그때 오래전에 한 목회자가 생활했던 대학 캠퍼스 내의 방, 한 곳을 가게 되었다. 그 방은 바로 존 웨슬러가 쓰던 방이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존 웨슬러는 전 세계 감리교회의 창시자이며 하나님의 역사를 간구하던 젊은 청년들의 모임인 흘리클럽(Holy Club)의 일원이었다. 홀리클럽은 하나님의 능력이 영국에 임해서 부흥이 불꽃처럼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제임스 오어 목사님은 200년 전 존 웨슬러가 썼던 소박한 방에 섰다. 두 사람은 바닥의 나무판자에 패인 자국과 닳고 닳은 부분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존 웨슬러와 홀리클럽 사람들이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해 생긴 자국이었다. 그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영국을 위해 기도했다. 그 기도의 시간을 통해서 영국에 위대한 영적 각성이 일어났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오어 목사님은 바로 그곳에서 머리를 숙이고 우리 모두가 해야 할 기도를 했다. 두 분은 웨슬러의 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때 나라를 위해 드렸던 기도의 능력이 어떠했는지 깨닫고 200년 전 영국의 대각성을 일으켰던 바로 그 기도의 자리에서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다시 부흥을 주시옵소서. 제 안에서 부흥이 시작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은 목사님의 단순한 기도에 응답하셨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전 세계를 순회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게 되셨고, 그 가운데 1973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오신 것이다.

제 뒤에 사진이 그때의 집회 장명이다. 무엇이 빌리 그래함 목사님을 여기까지 인도했을까? 무엇이 사랑의 교회를 이렇게 기도의 자리로 나오게 한 것인가? 무엇이 6월 3일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다시 전도 집회를 하게 한 것인가? 무엇이 서울을 움직이고 있는가? 무엇이 교회를 움직이게 하는가? 이 새벽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깊이 깨닫고 믿었던 말씀을 보겠다. 사도행전 1장 말씀이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마음을 움직였던 말씀을 잘 들어보기를 바란다. 6월 3일 전도 집회를 준비하는 사랑의 교회 성도 여러분의 심장을 뛰게 만들 말씀이다.

사도행전 1:8-11,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이 구절들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 전도를 할 때에 말씀이 왜 여러분과 저에게 중요한가? 6월 3일 전도 집회를 앞두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바는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방금 전에 읽은 사도행전 말씀은 신약시대 가운데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주신 말씀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전하신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을 경청하고 있었다. 이때 주신 구체적인 말씀이 지금까지 교회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라’고 말씀하셨다. 가면 우리가 능력을 받게 될 것이라 하셨다. 6월 3일 집회를 준비하는 가운데 우리가 가서 사람들에게 우리가 전심으로 믿는 예수님의 복음을 나누고 말하고 전하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사역 가운데 발견하게 된 힘이었다. ‘가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여러분의 교회와 사역자, 동역자들에게 힘이 된다. 이것이 지금 이 자리에 모이신 영 가족 여러분의 힘이 되어야 한다. 미국 해변에는 바닷물에 빠진 사람이 있는지 순찰하는 인명구조대 초소가 있다. 그 초소에는 ‘의심이 들면 가라’는 단순하게 보이는 문구가 붙어있다. 구조원은 물에 빠진 듯한 사람이 보이면 지체 없이 뛰어가야 한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도 가야한다. 예수님의 진리와 능력으로 나아가 구원의 힘과 성령의 능력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깨닫도록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해야 한다. 그냥 가고 복음을 전하는 곳에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권능을 받고 나아가야 한다. 성경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말씀한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이 구절이 가진 힘을 아셨다. 사랑의교회도 잘 알고 계신 줄 안다. 영 가족 여러분께도 잘 알고 계신다. 오정현 목사님도 잘 알고 계신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여러분은 권능을 받게 된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존 웨슬러의 방에서 “주님, 다시 부흥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셨을 때 가지셨던 전도자의 마음이 느껴지실 것이다. 오늘 우리가 이와 같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 예수님의 사역과 부활을 통해 드러난

오늘 우리가 이와 같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 예수님의 사역과 부활을 통해 드러난 동일한 ‘두나미스(권능)’를 받데 될 것이다. 이 권능은 물리적인 화려한 말씀 속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이 권능은 논리나 사고, 또는 지혜로만 나타나지 않는 하늘에서 오는 권능이다. 우리가 성령님의 능력 앞에 엎드릴 때 우리의 말로 증거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성경은 여러분이 나아가는 목적이 있다고 말씀한다. 여러분의 마음과 삶에 일어난 일, 여러분이 경험한 것, 교회가 진리로 아는 것을 말하는 증인이 되라고 하신다. 여러분의 마음과 삶에 일어난 일, 여러분이 경험한 것, 교회가 진리로 아는 것을 말하는 증인이 되라고 하신다. 우리 모두 증거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사도행전 말씀을 보면 예수님과 함께 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위해 구별된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역할 때 필요한 권능을 예수님께서 준비하실 것이라고 가르쳤다. 제자들은 세상을 향해 뛰어들 준비가 되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도 마찬가지였다.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님도 6월 3일에 그렇게 하실 것이다. 사랑의 교회도 매주 마다 그렇게 하고 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고 말씀 전파의 소명을 받고 성령님께 복종하며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했다. 우리도 그렇게 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삶의 목적은 바로 말씀을 중거 하는 것이다. 말씀 전파를 위한 계획이 있다. 성경은 여러분이 있는 곳에서 시작하라고 말한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다.

제자들이 어디에 살았는지 제 고향이 노스캐롤라이나인지, 제가 오늘 어디에 있는지, 여러분이 서울 어디에 계시는지 중요하지 않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이다. 지금 있는 곳에서 시작하자. 우리의 임무는 단순하다. 6월 3일이 되기 전까지 여러분과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믿음으로 고민해 보시기 바란다. 저는 상암월드컵경기장 집회에 있을 것이다. 믿음으로 누군가를 데리고 갈 것이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교회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을 데리고 갈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성령님의 권능으로 선포되는 복음을 현장에서 들을 수 있게 할 것이다. 연합된 교회인 우리 모두 하나 되어 함께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이다. 지금 계획을 세우라. 참석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셨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가시는 것을 지켜봤다. 천사들이 와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 올려 지신 이 예수님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이 말씀은 한국교회뿐만이 아니라 미국교회를 비롯한 전 세계 교회가 주목해야 할 우선순위이다.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신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이다. 곧 다시 오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곳에 재림하실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교회로 하여금 긴급히 오늘 바로 일어날 복음을 선포하고 기도하며 아버지의 손길을 구하고 성령님의 역사를 간구하며 주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봐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것이 여러분을 위한 저의 기도이다. 바로 지금이 우리가 일해야 할 시간이요, 날이다. 한국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눠야 할 때이다. 모두가 모여서 기도할 때이다. 제가 여러분께 요청 드릴 것이 있다. 저도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에서 놀라운 일들을 계속해서 펼쳐 나가시기를 기도하겠다. 동시에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6월 3일 집회에 오게 해주시기를 기도해 주면 한다. 복음을 들고 많은 이들이 말씀에 반응하기를 기도한다. 지금도 우리의 날이다. 지금은 우리의 순간이다. 지금은 우리의 때이다. 여기 미국에서 지금 특새에 모이신 영 가족들께 존경과 사랑과 감사를 담아 인사를 드린다. 또한 지금이 바로 여러분의 때임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 저도 여러분들과 함께 기도하겠다. 여러분과 함께 기대하겠다. 6월 3일에 상암경기장에서 뵐 것을 기대한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께 임하길 기도한다.

♣요약
우리가 해야 할 기도는 주님의 지상 명령인 복음이다. 그래서 러분의 마음과 삶에 일어난 일, 우리가 경험한 것, 교회가 진리로 아는 것을 말하는 증인이 되라고 하심을 깨달아서 오늘 바로 일어날 복음을 선포하고 기도하며 아버지의 손길을 구하고 성령님의 역사를 간구하며 주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봐야 한다.
-다니엘의 모범적 신앙생활은 기도하는 일을 생활화했다. 다니엘은 어쩌다 하는 기도가 아니라 과거부터 기도의 습관을 들였던 것이다. 또한 그는 많은 기도를 했다. 하루에 한 번의 기도도 어려운데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이처럼 많은 기도가 큰 능력을 갖게 한다. 그리고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는데, 무릎을 꿇는 것은 겸손의 자세요 자신을 하나님께 굴복시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겸손한 자의 기도를 들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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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준민 목사님(새생명교비전교회-미국-초청)-끈질긴 감사기도의 능력.
-The Power of Resilient Thanksgiving Prayer

다니엘6:10,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어제 말씀을 전했는데 천천희 교회의 목사님이 연락을 하셨다. 어제 새벽기도 설교를 들으신 사랑의 교회 신자가 제주도에 방문했다가 천천희 교회를 찾아오셔서 격려를 해주셨다고...사랑의 교회 멋지다. 너무 감사하다. 마음에 감동이 되었다. 어제 제주 열방교회의 승합차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저희 교회 성도님이 연락을 했다. “목사님이 차를 바꾸려고 했는데 제가 할게요.!!!”라고 하셨다. 이 사랑의 교회에 오니까 기도응답이 바로 왔다. 너무나 감동의 시간을 갖고 있다. 오늘 다니엘의 기도는 잘 아는 기도이지만 함께 나누고 싶다.

▷기도의 사람, 다니엘은 슈퍼 서바이벌이였다.
이 팬데믹 기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바로 살아남는 것이고, 누가 가장 강한 사람인가? 살아남은 사람이 강한 사람이다. 서바이벌이 있어야 리바이벌이 있다. 오늘 여러분들이 살아있다는 자체가 축복이다. 이 살아있음을 통해서 이번 빌리 그래함 50주년 상암집회에 큰 복이 나타날 줄 믿는다. 제가 팬데믹을 거치면서 저의 아내가 암 투병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가장 위대한 것은 살아남는, 살아내는 것이다. 성공도 중요하고 권세도 중요하지만 살아남는 것이며 가장 위대한 것은 살아내는 것이다. 그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다.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여러분이 살아 있다는 것이 정말 존경스럽다. 어렵지 않은 사람이 없다. 정말 다 우리는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성경에 나온 인물들 가운데 하나님이 주신 분들을 보면 모두가 다 수퍼 서바이벌, 요셉도, 그는 종으로 끌려가서 13년 동안 살아남는다. 또 다니엘도, 모세도 다윗도 얼마나 사울이 괴롭히는가? 그런데 살아남는다. 한 때는 다윗은 아기스 왕 앞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척을 해 가며 살아 남아야 된다. 살아남아서 위대한 왕이 된 것이다. 저는 다윗의 생애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있다면 그 그림이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 앞에 부르심을 위해서 우선 살아남아야 되기 때문에 침을 흘리면서 미친척 하는 그 그림이 다윗이 인생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아닐까 한다. 부끄럽게 보일지 모르지만 살아남아서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데 일단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다니엘은 젊은 날에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다. 그가 살아남았다. 왕이 바뀌고 나라가 바뀌었다. 정권이 여러 번 바뀌었는데도 살아남았다. 너무 궁금한 것이다. 살아 남아있는 특징이 무얼까? 다니엘도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생존자의 특징이 무얼까? 여러분, 고난을 당하면 제일 어려운 것이 나만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내 고난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고난을 당했을 때, 고난을 극복하는 비밀 하나가 은 많은 이들이 처절한 생존의 투쟁을 하였다.
요셉은 종으로 끌려갔고 감옥에서, 궁에서 살아남았다. 모세는 광야로 도망쳐 살아남았다.
다윗은 아기스 왕 앞에서 침을 흘리며 미친 척을 해 가며 살아남았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고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우리가 만나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나의 어려움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래서 저는 인생의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성경에서 정말 고통스럽게 어려움을 만났던 사람이나 욥기 또는 고난을 극복해 내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다니엘의 경우를 보면 몇 가지 살아남았던 경우가 있다. 짧게 하겠다. 다니엘이 살아남았던 이유들을 살펴보자.

1. 첫째, 하나님이 다니엘을 도와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인간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 하나님이 도와 주지 않으면 안 된다.

2. 둘째 다니엘은 기본에 충실했고, 본질에 집중했습니다.
-기도, 말씀, 항상 하나님께로 돌아갔다. 지혜는 원천의 능력이다. 하나님께 늘 돌아가서 하나님을 까까이 하는 것이다.

3. 셋째, 다니엘은 단순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소유를 무시하지 않았지만, 소유 그것에 집착하지 않았다. 아마 다니엘은 내시였을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외로운 사람이다.

4. 넷째, 다니엘은 거룩했습니다.
-그래서 담대했고 늘 고요한 삶을 살았다.

5. 다섯째, 다니엘은 지속적으로 역량을 키웠습니다.
-그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터득한 것이다. 성령이 역사하신 것이다. 또 하나는 바벨론 성령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그는 바빌로니아 땅에 가서 최고의 학문을 터득했다. 그 당시 글로벌 인재가 된 것이다. 교육은 위대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이디는 교육에 있다. 그런데 바로는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교육을 시키기 않는다. 파라오는 이스라엘 민족을 교육하거나 안식을 주지 않았다. 예배를 드릴 기회도 주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래서 이스라엘을 이끌어내서 광야에서 대안 공동체를 만든다. 그 대안 공동체가 뭐냐면 그 대안은 이스라엘을 안식하고 예배하게 하신다. 또 하나는 40년 동안 집중해서 교육하신다. 이는 신명기 4장에 보면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서 교육을 주심은 큰 나라와 큰 민족이 된다. 지혜와 명철, 지식을 통해서 큰 나라를 이루게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꿈도 비전도 없다. 그래서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꿈이 있기 때문에 교육을 시킨다. 또 모세가 애굽에서 받은 교육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교육이 조화를 이루어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40년 동안 교육한 후 위대한 민족, 전 세계적인 민족으로 만드는 것을 보게 된다. 교육은 가치를 더해주고 교육은 우리의 삶에 놀라운 미래를 새롭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교회가 교육하는 교회, 사랑의 교회는 교육하는 교회이다. 비전을 가진 교회이다. 이 교육이 얼마나 비전을 가진 것인지 모른다.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한데 성품과 영향이 합해질 때, 신뢰를 얻게 된다. 예를 들자면 의사 선생님인데 성품이 좋다. 그런데 그분이 수술하면 사람이 죽는다. 여러분, 이제 참 곤란하지 않는가? 어떤 분은 굉장히 실력은 있다. 그런데 성품이 안 좋다. 둘 중에 누구를 찾아갈 것 같은가? 둘 다 어려운 이야기이다. 그런데 성품과 실력을 겸비한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지만, 여러분 긍휼만 가지면 안 된다. 실력이 있어야 한다.

어제 밤에 저희 아내가 아는 정진상 박사님 만났다. 이 두통을 치료하시는 전문가이시다. 삼성병원에 계시다가 이번에 강남에 신경과를 개원을 하셨다. 가까운 곳에 계셔서 만났다. 두통분야는 세계적인 분이시다. 이분을 만나보면 인격과 실력을 겸비하셨다. 만나보면 굉장히 향기롭다.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사람들에게도 신뢰를 받으려면 성품과 영향, 균형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명철을 통해 이스라엘은 큰 나라와 민족이 된다. 그런데 실력이 없으면 눈치라도 있어야 된다. 어제 오 목사님이 오늘 시간을 많이 준다고 했는데 저는 그런 이야기 믿지 않는다. 제가 목회를 하다 보니까 8복 다음에 9복이 있다. 9복은 뭐냐면 설교를 짧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또 초청을 받을 것이요...길게 하면 초청을 안 한다. 설교를 듣는 것 같지만 안 듣는 분들도 있다. 잘 안 듣는다.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은 설교를 잘 들으신다. 어제 보니까 반응이 좋았다. 우리가 설교를 듣지만 건성으로 듣는 자들도 있다. 어떤 분이 설교를 듣고 나가서 은혜를 엄청 받은 것이다. 목사님, 너무너무 설교에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다. 무슨 설교의 은혜를 받았냐고 하니까 목사님 그 수도꼭지, 젖꼭지 이야기 할 때 너무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다. 설교 때에 수도꼭지, 젖꼭지 한 적이 없는데 제가 그래서 원고를 보았더니 소극적 적극적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렇게 알아들었던 것이고 잘못 알아들은 것이다. 설교 잘 들어야 한다. 어쨌든 다니엘은,,,

6. 여섯째, 다니엘은 적응력이 뛰어났습니다.
-우리가 적응을 잘 해야 된다. 요셉과 다니엘은 시대가 바뀔 때 마다 적응을 잘 했다. 사랑의 교회는 적응력이 탁월한 교회이다. 애굽의 지도와 광야의 지도가 다르다. 광야에 와서 애굽의 지도를 보고 있다면 그것은 안 된다. 이집트의 지도와 가나안의 지도는 다르다. 또 가나안에 들어가서 광야의 지도를 보면 안 된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는 부분이 있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도 있지만 가지지 않았다. 여호수아, 갈렙은 가나안의 지도를 가지고 있다. 모세는 광야의 지도를 가지고 있다. 애굽의 궁중의 지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가나안의 지도는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의 지도가 있었다. 그래서 지도를 가진 자가 백성을 인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새 시대에 새로운 적응력을 가지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백성들을 인도할 수 있었다. 지금 세상이 얼마나 바뀐지 모른다. 6년 만에 왔더니 완전히 촌놈이다. 놀랍다. 정말 놀라운 나라이다. 배달의 민족이다. 너무나 놀랍다. 문화 충격 때문에 적응이 안 되어가지고 놀랍다. 여러분 여기서 살아서 그렇지만 저는 한국이 세계적이고 놀라운 나라이다. 모든 글로벌의 허브이다. 우리 한국에서 시도해보고 잘 되면 잘 되는 것이다. 그만큼 한국 민족이 위대한 민족이다. 이게 다 선교사님들이 들어오셔서 복을 뿌려주시고 학교를 세워주셔서 결부시켜준 결과이다.

7. 일곱째, 다니엘은 사건에 지혜롭게 반응했다.
-사건에 지혜롭게 반응했다. 사건보다 중요한 것은 해석이다. 그리고 반응이다. 다니엘이 반응을 잘 한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반응을 잘하고 기회를 만든다. 고난에 처할 때마다 반응을 잘하므로 수직 상승한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간다. 고난이 고난의 문제가 아니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있다. 저도 고난을 많이 겪었다. 여러분, 저의 얼굴을 보시라. 여러분, 제 얼굴을 보라. 얼마나 말랐는지... 피골이 상접하다. 이 목회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고난을 극복하는 길은 고난을 스승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면 고난이 우리에게 유리해진다. 인생의 문제라는 것은 위기이다. 저도 문제를 싫어한다. 다니엘이 문제를 싫어하는데 어느 날 기적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다가 깜짝 놀랐다. 문제가 없으면 기적이 없다. 문제가 적으면 기적도 작다. 문제가 크면 기적이 크다. 깨달은 것이 있다. 문제는 기적을 창조하는 재료이다. 는 기적을 창조하는 재료다. 그래서 문제가 오면 환영해야 한다. 문제를 끌어안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모든 문제가 기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면 기적이 창조가 된다. 그 다음부터는 문제가 오면 제가 두렵지 않게 되었다. 문제가 오면 기대가 된다. 문제 속에 기적의 씨앗이 담겨있기 때문에 약간 흥분이 된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실까, 다니엘도 마찬가지이다. 엄청난 문제를 만났는데 축복을 경험했다. 다니엘은 거룩한 습관을 가겼다.

8. 여덟째, 다니엘은 경건한 습관을 가졌습니다.
-습관이 중요하다. 여러분 특새 끝나면 이제부터 주무실 것이다. 특새가 하는 이유는 거룩한 습관을 형성하기 위함이다. 다니엘은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다. 습관은 반복을 통해 주어진다. 다니엘의 습관을 자세히 살펴보자.

*다니엘 6:10,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습관이 중요하다. 습관이라는 것은 반복으로 주워지는 것인데 여러분 평소에 기도하던 사람들이 고난을 만났을 때 기도를 한다. 평소에 기도하지 않은 사람들이 고난을 만나면 기도하기 보다는 원망하게 된다. 기도가 습관이 되어야 하고 그리고 말씀이 습관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다니엘에게 있었던 습관이 무엇인가?


I. 말씀을 따라 기도하는 습관,
*다니엘 6:10,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이게 중요하다. 솔로몬은 성전을 완공하며 기도한다. “하나님, 만약에 백성들이 범죄 해서 먼 나라로 쫓겨 가거든 그들이 먼 나라에서 성전을 향하여 타국에 가게 되었을 때, 두 손을 들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라고 한다. 그 기도를 기억하고 다니엘이 그 말씀을 따라 창문을 열어놓고 기도하는 것이다. 다니엘은 말씀을 붙잡는 것을 타협하지 않았다.(다니엘 1:8) 다니엘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지만 그는 말씀을 붙잡는 것이다.

*다니엘 1:8,
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뜻을 정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그는 여러 가지 타협을 한다. 그래서 이름도 바꾸고, 박수무당의 장이었지만 말씀을 따라 사는 것만은 놓지 않았다. 말씀을 가까이 했다. 다니엘서 9장에 보면 나중에 예레미야서를 읽다가 70년 만에 포로에서 회복 될 것을 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자를 버리시낟. 사울 왕이 버림받은 것은 말씀을 버렸기 때문이다. 사무엘이 왕인 여호와의 말씀을 버려서 여호와께서 버리신다. 예수님도 성경을 읽는 습관이 있었다.

*누가복음 4:16,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늘 하시던 대로, 습관이다. 여러분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신학교를 가서 굉장히 고민했다. 신 신학을 공부하다보니까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고민하고 기도하는 중에 깨달음을 주셔서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겠다는 고백을 하였다. 그래서 빌리 그래함 목사님 설교하실 때마다 성경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신다. 그렇게 하심으로 엄청난 복음전도의 역사가 나타났다. 세상 사람들은 일리를 추구하지만, 우리는 진리를 추구한다. 우리는 교회를 나오는 이유는 진리 때문에 나온다.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시다. 정말 중요한 것이다.

II. 날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습관
-다니엘서를 보면 다니엘을 괴롭히는 사람이 나온다. 다니엘이 잘 되니까 꼴을 못 본다. 그러나 다니엘은 흠이 없었고 오직 하나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는 것을 보고 기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법령을 만든다. 30일 동안 어떤 신에게나 기도하면 사자 굴에 집어넣는 법령을 만들어 가지고 법령이 금령의 도장을 찍는 것이다. 위기에 처한다. 다만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다. 고난을 겪어보면 진짜 믿음과 가짜 믿음을 알게 된다. 평소에는 모른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사람은 사람에게 무릎 꿇지 않아도 된다. 여러분 짝퉁이를 잘 만드는 나라가 하나 있다. 가짜를 계란도 가짜로 만든다. 어느 나라인지는 묻지 말라. 어느 농부가 농사를 짓기 위해서 씨앗을 샀다. 큰 땅에다가 씨앗이 가짜이다. 그래서 너무 괴로워서 농약을 먹었다. 농약이 가짜였다. ㅋㅋㅋ!!~~ 우리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신앙이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의 신앙이 한 번 점검이 된다. 진짜인가, 가짜인가, 다니엘이 기도하면 죽는 것이다. 다니엘은 기도를 생명처럼 여겼다. 목숨처럼 기도했다. 세 번 씩 무릎을 뚫고 기도하는데 이 당시에 다니엘이 젊은 나이가 아니다. 6장에서 보면 포로로 끌려간 지 70년이 되었다. 그가 10대에 끌려갔다면 70년이 지난 것이다. 70년이 지나도록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한 것이다. 여러분 무릎을 끓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자는 사람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다. 겸손이 중요하다. 하나님 앞에 겸손이 중요하다. 릭 워렌 목사님은 목회자들을 모아놓고 축복을 받은 다음에 유지하고 축복을 받았을 때, 잃지 않고 오히려 확장할 수 있는 세 가지 원칙(세 번째는 말씀 안하심)를 가르치신다. 다음과 같다. 축복을 받은 다음에 축복을 잊어버린다. 축복을 유지하고 축복을 키우고 확장하는 원리를 세 가지로 가르친다.
1)humility(겸손) -교만하면 다 잃어버린다.
2)maturity(성숙) -미숙하면 간직할 수가 없다.(세번째는 말씀 안 하심) 미숙한 교회는 말이 많다. 말이 많아지고 싸움이 생긴다. 성숙한 교회는 말이 없다. 제가 미국에 처음 갔을 때, 교회 부서가 유치부였다. 유치부 애들은 정말 유치하다. 말도 많고 점심때 도너츠 먹을 것인지, 싸우다가 귀가 깨진다. 성숙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지킬 수가 있다. 계속 자라야 한다. 두 살짜리 아이가 애를 낳는가? 금식해도 못 낳는다. 크면 아이를 낳는다. 성숙하면, 원숙하면 오늘 아무리 어려워도 불평하지 않는다. 왜 마지막이 보이기 때문이다. 건축하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흉하지만 마지막은 아름답다. 여러분 아직 아이를 키울 때는 아직 공사 중이다. 아직 멀었다. 일찍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 특별히 청소년 아이들, 틴에이저, 걱정하지 말라, 지나고 나면 다 멋있어진다. 여러분 청소년들이 자기도 힘들다. 어떤 분이 청소년들과 미친 사람들을 찍어보니 똑 같더란다. 이게 굉장히 어렵고 부모도 어렵다. 제가 한 번은 이삭을 바치는 아브라함을 이야기 하면서 바치면 얼마나 힘들겠냐고 했더니 그 목사님이 아들이 셋인데 다 바쳐버리고 싶단다. ㅋㅋㅋ그런데 그 아이들이 다 커가지고 얼마나 훌륭한 자녀들이 되었는지 모른다. 지금 모른다. 끝나기 전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 하나님은 쉼표를 찍었는데 마침표를 찍어버린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본인이 미국에 처음 갔을 때, 맡은 부서는 유치부였다. 유치부는 말도 많고 유치했다. 도너츠 먹을지 국수 먹을지로,,, 교회가 깨진다. 성숙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출산하지 못한다. 금식해도 안 된다. 그러나 크면 낳는다. 청소년은 어렵다. 부모도 어렵다. 청소년 뇌를 찍어보니 미친 사람 뇌와 매우 유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미성숙하기에 공사 중인 것이다. EM 목사님이 아들 셋인데 이삭처럼 다 바치고 싶다고 했고 했다. 하나님이 쉼표를 찍었는데 내가 멋대로 마침표를 찍으면 안 된다. 그러면 다니엘이 기도하는 기도가 무엇일까? 기도가 신비롭다. 하나님도 기도하신다. ‘기도는 지성소에 가서 성삼위 하나님이 대화하는 것을 엿듣는 것이다.’ 기도는 영광스러운 초대다. 성삼위하나님께서 우리를 교제 가운데 초대하는 것이 기도이다. 기도하는 교회는 살아있는 교회다. 기도하게 만드는 목사가 훌륭하다. 기도해야 살아가기 때문이다. 기도하게 만드는 목사님이 훌륭하시다. 왜냐면 기도해야 살아가기 때문이다. 다니엘의 기도는 무엇일까?

‘첫째, 기도를 최고의 우선순위로 두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는 목숨보다 더 기도를 중요시 했다.그는 기도를 통해 명철을 얻었다.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지혜와 명철을 주신다. 열심만 가지고는 안 된다. 물론 열심히도 해야 한다. 게으르면 마귀조차 쓰지 않는다.

‘둘째, 기도가 거룩의 비밀입니다.’
-오 목사님이 언어에 디자인이시다. 어제 대화를 하는데 사람에게는 진심, 하나님께는 전심,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시는지 모른다. 열심만 가지고는 안 된다. 다니엘에게는 하나님께 열심히 있었고 그에게는 사람을 향한 진심이 있었다. 다리오 왕에게, 그리고 하나님께 전심이 있었다. 기도를 최 우선순위에 둔 것이다. 우리는 무엇과 접촉하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기도는 말씀과 접촉하는 일이다. 또한 기도하면 성령과 접촉하게 되며, 기도하는 사람들과 접촉하게 된다. 거룩은 자기 위치를 지키는 것이다. 음식이 그릇 밖에 나가면 거룩하지 않다. 거룩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이며, 하나님을 경외해 경계를 지키는 일이다. 존중하고 예의가 있어야 한다. 지나치게 친밀함은 문제가 된다. 일정한 거리를 갖는 것이다. 거리가 있어야 그리워한다. 본 교회를 비운 제가 그렇다. 단, 40일을 넘기면 안 된다. 너무 멀어지면 금송아지를 만든다.(?) 거룩은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이며 거룩은 접촉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삶 속에 경계이다.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지키는 것이다. 탈선은 선로를 벗어나는 것이다. 행복한 결혼 생활은 간단하다. 선을 지키는 것이다. 너무 사랑하려고 하지 말라. 선을 지키면 된다. 경계를 지키고 존중하고 여러분 결혼하면 함부로 하는 것이 무리이다. 남편 스마트 폰 자꾸 훔쳐보고 세시에 일어나서 아내 것을 훔쳐보는 것은 안 된다. 교회도 예의가 있다. 목사님을 존중하고 장로님을 존중하라. 지나친 친밀함은 안 된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싸운다. 행복한 인간관계는 일정한 거리를 갖는 것이다. 두 번 정도는 한국에 나와서 집회를 했다. 그러니까 교인들이 계속 있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권태를 느낀다. 제가 떨어져 나와 있으면 그리워한다. 인생은 동경한다. 어느 정도 그리워해야 한다. 오 목사님은 한 교회의 소유가 아니다. 하나님의 소유이다. 세계를 다니면서 말씀을 전하시면 우리는 기도를 해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떨어져 있으면 안 된데요. 40일이 지나면 금송아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번에 그래서 내가 나와서 딱 38일 만에 들어갈 것이다. ㅋㅋㅋ

‘셋째, 기도는 하나님을 항상 신뢰하는 신앙 고백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신뢰했다. 기도한다고 당장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가끔 기도하다가 더 어려움에 직면한다. 기도해도 고비가 있다. 하나님은 기도할 때, 응답하시는 것도 있지만 사자 굴에서 응답하신다. 기도하면서 더 어려움을 직면한다. 사자 굴에 들어가야 한다. 풀무 불에 들어갔더니 예수님이 와 계시는 것이다. 거기서 하나님의 역사를 만나게 되고 벼랑 끝에서 비상하게 하신다. 사자 굴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하지만 그런데 거기서 역사하신다. 벼랑 끝에서 역사하신다. 기도는 바통을 넘기는 계주와 비슷하다. 내가 가진 바톤(문제)를 하나님께 넘기는 것이다. 내가 바톤을 들고 있으면 내가 뛰어야 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신다. 기도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인데 열심히 기도하고 내려놓더니 다시 들고 간다. 맡기면 죽는 줄 알면 안 된다. 엘리에게 사무엘을 맡긴 것처럼,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은 잘 키우신다. 어릴 적에 쓰인 문구가 있다. 목욕탕에서 복음을 발견했다. ‘맡기지 않은 물건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 같다. 맡길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문제가 해결된다. 기도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을 우리가 본다.

III.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습관
다니엘은 받은 것을 받았다고 기도했다. 감사기도는 간구하는 기도만이 아니라 받을 것을 미리 감사하는 것이다.
*다니엘 6:10,
10 `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감사는 받은 것을 감사하고 받았던 것만이 아닌 받을 줄 믿고 감사한다.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자녀를 위해서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기도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이성미 개그우먼이 간증을 하는데 놀라웠다. 전도를 많이 한 자이다. 자기 자녀에게 막말을 했다. 하나님이 한 번 욕한 대로 해줄까? 라고 하셨다. 그래서 자녀 앞에 용서를 구했다. 하나님께서 말을 고쳐주셨다. 하나님은 내 귀에 들린 대로 행하신다. 감사하게 되면 놀랍다. 죽은 것이 살아난다. 역전의 드라마가 이루어진다. 조금만 생각하면 감사할 거리가 많다. 다니엘은 고난을 통해 큰 축복을 받았다. 역전의 드라마다. 다니엘서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내용이자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역전의 드라마를 좋아하신다. 나도 어려움이 많았다. 인생이 불행 같아도 하나님이 축복하면 기적이 된다. 다니엘이 엄청난 고난에서 축복을 받았다.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주님 앞에 전하는 것이다. 아직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하나님이 아직 쉼표를 찍지 않았는데 본인이 먼저 찍지 말아야 한다.

♣요약
다니엘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느 분이신지를 깨닫고 이 소중한 시간을 교회와 가정에게 축복해 주시며 온 성도가 한 마음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려드리고 하나님이 아직 쉼표를 찍지 않았는데 본인이 먼저 찍지 말아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이니, 어려운 문제를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문제가 해결됨을 믿어야 한다. 우리가 기도의 비밀을 가지고 내 영혼을 샤워하는 이번 특새가 되어서 주위에게 겸손하고 성숙하여서 우리는 본질로 돌아가서 주님을 온전히 바라보고 무한한 성장을 하기 위해 안아주심의 본당에서 거룩한 기도를 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를 소망한다. 다니엘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느 분이신지를 깨닫고 이 소중한 시간을 교회와 가정에게 축복해 주시며 온 성도가 한 마음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려드리고 하나님이 아직 쉼표를 찍지 않았는데 본인이 먼저 찍지 말아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이니 어려운 문제를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문제가 해결됨을 믿어야 한다. 우리가 기도의 비밀을 가지고 내 영혼을 샤워하는 이번 특새가 되어서 주위에게도 겸손하고 성숙하여서 우리는 본질로 돌아가서 주님을 온전히 바라보고 무한한 성장을 하기 위해 안아주심의 본당에서 거룩한 기도를 올려드리고 모든 문제를 해결 받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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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차 봄 글로벌 특별새벽부흥회(하나님께서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주후 2023년 4월 12일)-셋째 날(수)

제목: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말씀: 고린도후서 12:9
설교자: 로버트 노리스 목사님(세계개혁주의연합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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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끈질긴 통곡기도의 능력”
말씀: 사무엘상1:10-20
설교자: 강준민 목사님(새생명교비전교회-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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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2:9,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사무엘상 1:10~20,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19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20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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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노리스 목사님(세계개혁주의연합회 이사장)
제목: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말씀: 고린도후서 12:9,
-세계개혁주의협의회(WRF)를 대표해서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께 인사들 드리는 것이 큰 축복이다. 말씀으로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을 섬길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주신 오정현 목사님께 특별히 감사하다. 이번 5월에 세계개혁주의협의회(WRF) 임원 단이 서울에서 이사회를 개최하고 서로 교제를 나누도록 기회를 주신 사랑의 교회에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여러분의 따뜻한 환대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오늘 여러분께 전하고자 하는 말씀은 바울서신 중 하나인 고린도후서 12장이다. 사도 바울은 이 장에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전한 것처럼 모든 시대의 교회에게 동일한 약속의 메시지를 보낸다.
 
바울서신 중 하나인 고린도후서 12장은 모든 시대의 교회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라는 약속을 전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라는 약속을 우리에게도 전하고 있다.
 
바울이 이 약속을 고난과 낙심 가운데 있을 때 받았다. 우리도 고난과 낙심 가운데 있을 때가 있듯이 신약 성경에서 이 말씀처럼 오늘날 교회와 관련이 깊은 말씀을 찾아보기 힘들다. 본문 배경은 사도바울이 역적 지도자로서 형편없다는 비난으로 고통 받을 때이다. 이럴 때 바울이 어떻게 말하는지 잘 들어보기를 바란다.
 
*고린도후서 12:1-9,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바울 자신이 사도가 되기에는 가난하고 아마추어 같고 목소리만 크고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비난한ㄴ 사람들을 마주하며 자신의 상황을 풍자한다. 이들은 바울의 설교에 힘과 언변이 부족하다고 공격했다. 그리고 사도바울이 너무 평범해서 설교자나 사도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 만한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오늘날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지도자가 신체적, 감정적, 영적으로 우월하다고 관계적으로도 뛰어나길 기대한다. 그래서 바울에게는 이런 자질이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바울은 너무나 평범했다. 사람들은 바울이 영성도 부족하다고 여겼다. 게다가 바울에게는 지병이 있어서 위대한 사도가 되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소문이 돌았다. 바울의 원수들에게 영성이란 곧 능력인데 바울은 연약한 인간 그 자체였다. 원수들이 보기에 바울은 영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바울이 자신들보다 영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원수들이 보기에 바울은 영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바울이 자신들보다 영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비난이 사도 바울로 하여금 고리도후서를 쓰게 한 동기가 되었다. 바울은 자신을 위해서 이 편지를 쓰지 않았다. 소위 무늬만 사도인 자들이 단순히 바울의 평판을 흠집 내려고 해서 편지를 쓴 것이 아니라 바울에 있어서 이들의 반대는 복음을 훼손되는 것이었기에 이 서신을 쓰게 딘 것이다. 복음을 지키기 위해 고린도후서를 썼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칭 사도들은 교리에 정통하고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자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들이 보여준 영성은 세상에서 말하는 영성이었다. 실상은 그들은 복음을 왜곡하고 가짜 예수를 전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다른 사도들보다 영적으로 더 뛰어나다는 포장으로, 미묘하지만 실제적으로 복음을 왜곡하고 있었다. 교회가 당면한 큰 위험이 여기에 있다. 거짓 사도들은 더 이상 고통당하는 예수님, 십자가 지시는 예수님, 구유에서 연약한 아기로 태어난 예수님을 전하지 않았다. 바울은 이런 왜곡을 절대로 참을 수 없었다. 바울은 어리석은 자처럼 자랑할 생각이 없기에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고 했다. 바울은 자신의 영적 체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환상과 계시를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초자연적인 영적 경험에 대해 자세하게 말하기 시작한다. 그는 14년 전에 하늘에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들었다고 했다. 바울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에서 목격한 심오하고, 황홀하며, 신비한 경험에 대해 묘사했다. 너무나 엄청나고 깊은 경험이었기에 바울은 자신을 3인칭으로 표현한다. 3인칭으로 말한 이유는 겸손과 절제함으로 말하기 위함이었다.
 
바울은 그 경험이 아주 희귀한 경험이라고 못 박았다. 바울의 말에 의하면 이는 14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일생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이지 매일 기도할 때 경험하는 일상적인 일은 아니었다. 우리는 신비하고 황홀한 경험만을 추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를 생생하게 알고자 애써야 한다. 바울이 하늘에 끌려가서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 가장 가까운 곳에 갔을 때 감각을 압도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은 흔한 경험이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심오한 경험이다. 그러나 바울이 한 말을 잘 보면 바울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사람이 말해서도 안 되는 말씀을 들었다고 했다. 우리의 영혼을 감동시키는 경험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직접 역사하시는 즉각적인 경험 등 그 신비가 너무나 성스럽고 심오하기에 모두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담대하게 나아가기 위해서 이런 경험이 필요했다. 그래서 바울은 천국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이 된 것이다. 바울에게 하나님이 임하셨을 때 그 영향은 실로 엄청났다. 그가 체험한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했는지 하나님은 측량할 수 없는 은혜로 바울에게 가시를 주셨다. 하나님은 바울의 육신의 한계를 두시려고 그의 삶에 가시를 주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손으로 해결하신 하나님의 사역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가시는 어떤 상태로 번역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바울은 정확하게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말을 안 해줘서 우리가 바울을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권능으로 사역하는 사람들과 동일시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바울은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노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라고 말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울을 말을 통해 진정한 영성의 본질이 무엇이든 알 수 있다. 아무리 위대한 성인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응답받지 못한다. 바울이 세 번이나 간구했으니 하나남께서 세 번 다 거절하셨다. 기도는 우리의 소원이 무조건 이루어지게 하는 마법이 아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서 위안을 얻어야 한다. 기도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돌보시는 손으로부터 온 선물이다. 우리를 돌보시는 아버지 하나님은 아무리 우리가 수없이 간구해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우리에게 좋지 않은 것은 주시지 않는다. 바울은 육신의 가시를 받아드려야만 했다.
 
그리스도인은 각자의 삶에 고난이 있을 것이란 예상을 하게 된다. 고난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지만 그 기도가 계속 거절될 때 우리는 우리에게 고난이 없을 때보다 고난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사용하신다는 말씀을 이해해야 한다. 심지어 하나님이시며 인간이신 우리 구주 예수님도 고난을 겪으셨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온전해진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때로는 우리가 연약할 때 가장 풍성하게 임하신다. 인간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는 것이 영성인 것이다. 우리는 연약함을 원치 않고 멀리하기에 대부분 연약함을 찾지 않는다. 우리는 흠이 없는 인생을 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경험이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인생에서 역사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즐거워하고 우리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게 하신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사도 바울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가시를 주실 때가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연약함이 찾아오고 하나님께서 그 연약함을 없애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이 우리의 능력이 아닌 그리스도의 능력을 깨닫게 하는 도구라고 봐야 한다. 우리의 연약함은 곧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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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민 목사님(새생명교비전교회-미국)
‘끈질긴 통곡기도의 능력’ 강준민 목사님
*사무엘상 1:10~20
 
반갑다. 오 목사님은 저에게 집처럼 설교하라고 하셨는데 아니다. 제 눈을 어디에 둘지 모르겠다. 오 목사님은 사랑의 교회가 집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저는 아니다. 저희 교회는 체육관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체육관에서 드리는 예배가 저희 집 같다. 이런 교회를 저에게 맡기도 않으시게지만 맡겨주신다고 해도 못 할 것 같다. 오목사님이시니까 가능하신 것이다. 기도에 관한 메시지이기 때문에 한나의 기도에 대해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
한나의 소원은 아들을 낳는 것인데 아들이 없었다. 한나 ‘이야기는 없었더라.’ 로 시작한다.
*사무엘상 1::1-2,
1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2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결핍, 다른 사람은 있는데 나는 없는 것이다. 결핍(缺乏), 모자라고 부족한 것이다. 거기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하신다. 신비롭다.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모자란지라, 없었더라. 없었기 때문에 소원이 한나에게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 소원에 관해서 관심이 많으시다. 각자의 소원이 다르다. 한나에게는 아들을 낳는 소원이지만 사람마다 소원이 다르다. 하나님은 물어보신다.
 
*요한복음 2:3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열왕기상 3:5,
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그렇게 말씀하시면 무엇을 구하겠는가?
 
*시편 37:4,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누가복음 18:41,
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엄청난 소원이다. 시각장애인이 보기를 원한다고 한다. 38년 된 병자를 찾아가셨다.
*요한복음 5:6,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 질문이 참 놀랍다. 38년 된 병자에게 당연한 것 같은데 많은 사람들이 낫기를 원하지 않는다. 병든 채로 살기를 원한다. 왜냐면 나으면 불편하거든,
*빌립보서 2:13,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이번에 제가 6년 만에 처음 고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모국을 방문하게 된 이유는 제 큰 딸과 두 손녀가 한국을 가보고 싶단다. 처음으로 두 손녀가 한국을 오고 싶은데 한국에 와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을 먹고 싶다고 한다. 컵라면도.~그래서 제 아내와 큰 딸과 손녀 둘이서 의합을 해서 저를 집에 두고 자기네들끼리 다녀오겠다고, 그런 수모를 품고 이야기 하다가 제 아내가 혼자 가면 고생할 것 같아서 제가 41년 만에 안식 월을 받아서 나오게 되었는데 딸과 손녀들의 소원을 들어주다가 제가 이번에 이 사랑의 교회에 와서 설교까지 하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 너무 감사하다.
 
아내가 5년 반 전에 폐암을 선고받았다. 6.5센티였다. 그래서 왼쪽 폐를 절단했다. 아내가 폐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 제 마음에 소원이 있었다. 아내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모든 집회를 다 취소하고 아내에게 전적으로 붙어서 몇 년 동안 살았다. 감사하게도 지금 5년을 넘겨서 이번에 같이 나오게 되었다. 사람마다 많은 아픔이 있다. 소원이 다 다른 것 같다. 제 마음 속에 5년 반 전에 소원은 “하나님 이미 목회 너무 어려운데, 아내가 고생 많이 했는데 하나님 꼭 살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기도했다. 지난 주 부활주일에 처음으로 외부에 나와서 예배를 드렸다. 제주에 아이들이 원해서 제주에 갔는데, 제주에 간 교회에서 설교를 부탁하셨다. 그냥 정말 예배를 드리고 싶었다. 모처럼 설교하지 않고 예배만 드리고 싶었다. 그래도 저를 안내해 주시는 목사님이 제가 덴버 대학교에 겸임교수로 있는데 목회학 박사과정 학생이어서 연락을 했더니 그래도 설교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20명 모였다.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20명도 안 된다. 목사님 두 가정이 함께 참여하고 저희가 둘이니까 합치면 20명쯤 되니까 아주 작은 교회인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다. 그런데 오늘 사랑의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다. 하나님이 크시고 놀라우신 분이시다. 거기 갔더니 결손 가정에서 성장한 아이, 그 목사님이 제주에 가서 처음 개척하는데 어른 들은 보이지 않고 아이들이 한 50명이 몰려왔다. 그런데 아이들이 결손가정 아이들이다. 어떤 아이는 어머니가 베트남인데 나이든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 낳고 그냥 아이를 두고 가버렸다. 그런 아이들이 교회가 열리니까 찾아와서 교회에서 살았다. 그 중에 한 아이가 쭈욱 성장해서 지금 찬양인도를 하고 있다. 아이의 소원이 무엇이냐면 미국을 가보는 것이다.
 
마침 그 교회에서 저를 안내해 주시는 목사님 한 분이 최근에 교회를 시작했는데 이름이 너무 놀라웠다. ‘천천희(天天喜)교회’이다. 너무 놀라웠다. 너무 감동이었다. 이 빠른 세상에서 천천히 교회가 좋았다. 목사님과 교제를 했는데 누군가가 천천히 교회라는 이름을 듣고 이름이 너무 좋다고 했단다. 하늘 천, 하늘의 기쁨이라는 뜻이다. 신자는 없고 그리고 학교 앞에다 ‘학교방 천천히’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이 와서 학원가기 전에 잠시 와서 거기 머물다 가는 것이다. 사모님은 아이들을 치유하는 그 미술치료사 자격증이 있는데 처음에는 5평짜리, 지금은 20-30평인데 아이들이 온다. 이름이 재미있다. 거-북이 놀이터, 아이들이 와서 함께 놀고 치유하는 곳이다. 치유를 하니까 부모들이 보내는 곳이었다. 목사님이 안내를 하면서 승합차로 안내를 하는데 오른쪽 문이 열리지 않았다. 10여 년 전에 아이들을 많이 전도했다고 받은 승합차인데 열리지 않는다. 목사님은 말씀을 안 하시는데 속으로 새로운 승합차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여겼다. 그런 것 같았다. 이번에 13개 교회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 한 교회가 승합차를 하나 헌신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안 되면 우리 교회에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살 때부터 그 사촌언니 등에 엎여왔던 결손 가정의 아이가 둘이 있었는데 그 목사님 사모님이 아이가 없다. 그 아이들을 친 자녀처럼 키우는데 얼마나 밝은지 모른다.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최근에 만난 아이들 중에 그렇게 행복하고 즐거운 아이들을 본적이 없다. 천천히 교회 목사님의 첫 딸에게 소원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LA가서 갈비 먹는 거랍니다. LA갈비, 뉴욕에 가서 치즈 케잌 먹는 것이 소원이다. 육지를 나가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제주도에는 많다. 사람마다 소원이 다르다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도 어릴 적에 제 어머니가 바느질 하셔서 키우셨다. 그리고 목회자가 되기로 했는데 설교를 너무 못했다. 신학대학 다닐 적에 설교를 못했다. 학점이 C를 맞았다. 그런데 오늘 사랑의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있다. 하나님 휴머러스 하신 분이시다. 어떻게 소원이 이루어질까? 오늘 각자의 소원이 다른 것 같은데,,, 첫째로...
 
I.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 소원을 갖게 하십니다.

-고통이 소원을 낳는다. 고통이 잘 반응한 것이 지혜이다. 고통을 소원을 갖게 되고 고통을 통해 소망을 품는 것이 것이 믿음이다. 한나의 이야기는 고통에서 시작한다.(삼상 1:6~7)
*사무엘상1:6-7,
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7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남편이 좋은데 한나가 아이를 못 나으니까 두 번째 아내를 데려온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 아이가 잘 나아서 첫 번째 아내인 한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심히 격분하게 했다. 그러므로 울고 먹지 아니했다고 한다.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서 남편이 아무리 잘해주어도 울고 먹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고통을 주는 사람은 주로 가까이 있다. 선교지 사람들 사랑하기는 상대적으로 쉽다.
 
*사무엘상1:8,
8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웃기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렇게 남자들이 무얼 모른다. 내가 그대의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고 한다. 웃기는 이야기이다. 남자는 평균 연령이 여섯 살 밖에 되지 않는다. 저도 집에 가면 여섯 살 밖에 되지 않는다. 남자가 철이 들면 죽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냥 데리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고통을 주는 자는 항상 가까이 있다. 브닌나가 괴롭힌다. 멀리 있는 사람은 선하기 쉽다. 선교지에 있는 사람들을 한 주 두 주 사랑하는 것 물론 어렵지만 그것은 쉽다. 그러나 한 평 땅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어렵다. 브닌나가 괴롭히고 그리고 또 하나가 있는데 원수가 남편이다. 이것은 웬수이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을 데려온 것이다. 펄벅에 대지를 보면 아무리 지붕이 넗어도 두 여자가 살만한 큰 지붕은 없다고 한다. 그런데 두 여작 사는데 얼마나 힘든가? 그래서 한나가 고통을 안고 기도하기 시작한다. 엘리가 보고 술 취한 여자로 생각하는 것이다.
 
*사무엘상 1:15,
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이제 고통은 소원을 창조하는 재료이다. 고통이라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신비하다. 브닌나가 없었으면 기도하지 않았을 것 같다. 소원을 갖지 않았을 텐데 고통이 기도를 창조한 것이다. 고통은 신비롭지만 우리 삶 가운데 아주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이다. 인생은 비극이다.희극이 많지 않다. 그래서 탁월한 작품들은 비극이다. 왜냐하면 인생이라는 그릇은 희극을 담기 어렵다. 희극과 비극이 같이 가는 건데 사실 희극보다 비극이 더 많다. 그래서 우리는 비극을 통해서 동감하고 위로를 받는다. 우리는 소원이 필요하고 갈망된다. 소원은 굉장한 에너지이다. 소원은 우리의 꿈이고 목표이다. 소원은 우리가 갖고 싶은 것, 우리가 갖고 싶은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갖고 싶은 것이 없다. 우리 때는 갖고 싶은 것이 많았다. 갖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이다. 갖고 싶은 것이 있어서 참 좋은 것인데 요즘 아이들은 갖고 싶은 것이 없다. 소원도 없다. 뭔가 내가 이루고 싶다는 것이 좋은 것이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것도 좋다. 선교 지를 가고 싶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런 소원을 가진 것은 참 좋은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것도 좋은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것도 너무 좋은 소원이다.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 얼마 전에 사랑의 교회에서 목회자 5천 명을 초청해서 섬겼다. 너무 감동했다. 오목사님이 참 훌륭하시다. 많은 목회자들이 위로를 받고 가셨고 선물을 받고 가셨다. 물론 어려운 목사님들도 계셨다. 위로가 되셨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한국교회 목사님들이 굉장히 사랑을 받았다. 사랑의 교회에 대한 좋은 소문을 듣게 되었다. 소원을 갖는다고 모두를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소원은 하나님께서 들어주지 아니하시므로 들어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 보다는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주신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는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가끔은 거절하신다. 우리가 절망 가운데로 몰아넣으신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망이 적절하지 않을 때, 우리를 절망케 하시므로 우리가 가진 소망보다 더 필요한 소망을 갖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절망시킴으로 진정한 소망을 갖게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 중에 하나인 것이다. 그런데 소원을 갖지 않는다면 소원을 이룰 수 없다. 그래서 소원을 성취하는 이유가 간단히 다섯 가지이다. 구체적으로 소원을 가져야 한다.
 
 
1] 구체적인 소원을 가지십시오.
-애매한 소원을 요구하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께 애매하게 기도하면 물으신다. 구체적으로 무얼 원하는지를, 애매하게 원하면 하나님이 되물으신다. 그래서 뭘 원하니?
 
 
2] 강렬한 소원을 가지십시오.
-기도를 해보니까 제가 감정이 들어간 기도가 강렬하다. 감정이 들어간 소원이 강렬하다. 이곳 사랑의 교회에서 쓰는 언어들을 보면 굉장히 강렬하다.(압도적인, 폭포수 같은 은혜, 목회자의 역할은 언어를 바꾸는 것이다.) 이러니까 이렇게 교회가 성장하고 그 놀라운 일을 이룬다. 오 목사님은 정말 대단한 언어를 사용하신다. 왜냐면 언어가 우리 교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여러분의 삶을 만들어 간다. 목회자의 역할은 언어를 바꾸는 것이다. 어떤 분은 처음 목회를 시작하시는데 욕밖에 안하시는 분도 봤다. ㅋㅋㅋ 알고 보니까 그분의 언어에 그릇 속에는 욕밖에 없다. 그런데 야단을 안 친다. 그분 안에 있는 것이 그건데, 거듭 가봐야 그 그릇에는 욕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은 그릇에 새로운 언어들을 담아두는 것이다. 새로운 언어들을 만들고 움직이는데 오 목사님이시다. 저는 오 목사님 뒤따라가느라고 늘 힘들다. 남가주 사랑의 교회를 오 목사님이 먼저 개척하셨다. 교회가 막 성장하는데 저는 로고스 교회를 개척했다. 뒤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어느 날 포기했다. 포기(抛棄), 안되겠다. 제게 주신 길을 가야지, 오 목사님 따라가다가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강렬한 소원, 강렬한 기도가 필요하다. 소원이 성취된 것을 확신해야 한다.
 
3] 소원이 성취될 것을 확신하십시오.
- 하나님은 결국 가장 선한 것으로 내 소원을 채우실 것이다.
 
4] 소원성취를 위해 끈질기게 기도하십시오.
소원이 성취되기 위해서 끈질기게 기도해야 한다. 기도 응답 받는 비결은 응답 될 때까기 기도하면 된다.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하면 된다. 소원성취하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새벽기도회 나오기 위해서 뉴스레터를 가져다 주셨는데 한 시에 일어나거나, 두 시에 일어나 나오셔서 차량 안내를 하시는데 정말 대단한 분들이 많다. 훌륭하시다. 사실 은혜를 받으려면 대가를 지불해해야 된다.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서 은혜를 받게 하신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 애절한 소원을 품고 눈물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눈물의 기도,
 
5] 소원을 성취하시 위해 대가를 지불하십시오.
 
*사무엘상 1:10,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서 은혜를 받게 하신다. 한나는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해 주는 분이 누구인줄 알았다. 한나는 브닌나

 
II. 하나님께 애절한 소원을 품고 눈물의 기도를 들으십시오.
 
*사무엘상 1:10,
한나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한나는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분께 갔다. 그 대상은 브닌나나 엘가나가 아닌 하나님께 나간다.
 
*사람은 우리를 괴롭히는 능력은 있지만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우리를 망까 뜨리는 능력은 있지만 회복시키시는 능력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회복시키시고 역전 시킬 수 었는 능력이 있다. 사람은 용서와 사랑의 대상이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한다.
 
*예레미아 17:7-8,
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여기서 통곡하는 기도, 눈물의 기도, 참 눈물이 중요하다. 오래 산다. 눈물을 여러분 많이 흘려라. 눈물은 많이 흘릴수록 좋다. 눈물을 흘릴 때 영혼이 깨끗해지고 정화되고 또 영혼의 창이 깨끗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 어머니는 참 고통스런 생애를 사셨다. 어릴 적 어머니를 보면 정말 불쌍했다. 그래서 한이 많았다. 제가 초등학교 때 학교 갔다 집에 오면 집에서 통곡 소리가 났다. 어머니의 눈물 소리이다. 가슴이 턱 내려앉는다. 어머니가 또 시작하셨구나, 집에 들어오면 소주병이 대병이 있었다. 어른들은 아신다. 아마 3/1은 마셨다. 그리고는 통곡을 시작하신다. 말려도 소용이 없다. 통곡을 하신다. 인생이 너무 어려워서... 저는 엽기능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저는 그래서 웬만한 가정은 다 이해한다. 다 이해한다. 그래서 어머니가 막 우신다. 하루 정도를 정신없이 우신다. 저희 누님이 간호사였다. 제가 막내아들이었는데 누님에게 가서 엄마가 또 시작했다고 하면 엄마를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엄마는 안 죽는다. 그러면서 와서 링거를 꽂아드리고 그러면 6개월 정도 지나간다. 한을 품은 것이다. 1년에 두 번씩 그렇게 하셨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가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셨다. 하나님을 만나 한을 푸시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기도가 놀라운 기도로 변화되기 시작하셨다. 여러분 사람 앞에서 울면 초라하다. 하나님 앞에서 울면 기적이 나타난다.
 
III.. 기도 응답을 받기까지 끈질긴 기도를 드리십시오.
 
1] 끈질긴 기도는 통곡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10~20,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통곡했다. 예수님도 통곡하신다.
 
*히브리서 5:7,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저는 가끔 통곡하며 기도할 때마다 참 마음이 절절 하다. 어떤 교회는 크게 기도하는 것 못하게 한다. 그러지 말라고 한다. 통곡하게 놔두라고 한다. 장례식에 갔다가 통곡하면 저는 가만 둔다.
 
2] 끈질긴 기도는 오랫동안 몰입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12~13,
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여러분 기도의 길이도 중요하다. 기도의 양을 채워야 한다. 섬김의 양도 채워야 한다. 수넴 여인이 엘리야를 섬기는데 정말 성실하게 섬긴다. 그랬더니 어느 날 엘리사가 감동을 받았다. 뭘해 주면 좋겠냐고 한다. 그러나 필요 없다고 한다. 그냥 섬기는 것이라 한다. 그랬더니 게하시가 이 집의 남편이 나이가 들었는데 아이가 없다고 한다. 엘리사가 이야기 한다. 엘리사가 이야기 한다. “네가 내년 이 맘때에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 라고 한다. 양을 채우는 것이다. 요단강에 나병환자가 일곱 번 들어갔다가 나온다. 6번째 까지는 기적이 안타나지 않는다. 일곱 번째에 기적이 나타난다. 엘리야가 비오기를 기도할 때, 여섯 번째까지 기도할 때는 하늘의 손바닥 만 한 구름도 나타나지 않는다. 일곱 번째 기도했더니 손바닥 만 한 구름이 나타난다. 기도의 양을 채웠다. 봉사의 양을 채웠다. 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느 순간에 역사가 나타나는데 내일이 제일 고비라는데 특새에,,, 내일 오신느지를 보겠다. 양을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 오래 기도하고 깊이 기도하기를 바란다. 기적이 나타난다. 이것을
 
3] 하나님은 끈질긴 기도를 통해 소원을 성취하도록 도와주십니다.
-기도했더니 엘리가 아주 그 당시에 영적으로 아주 타락한 엘리 대제사장이 한나를 축복해준다.
*삼상 1:17~18,
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그 당시에 엘리를 존중하지 않았다. 엘리의 두 아들이 제사를 멸시했다. 예배를 멸시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때이다. 엘 리가 영적으로 어둡다. 한나가 기도를 하는데 술 취한 줄 안다. 그런데 한나가 기도하면서 엘리 속에 있는 감추어진 거룩을 본다. 엘리를 무시하지 않는다. 존중한다. 하나님이 엘리를 심판하지만 엘리를 존중하는 한나를 축복한다. 엘리가 축복한 것을 ‘아멘’으로 받는다. 그러면서 여종이 당신의 여종이 은혜입기를 원한다고 하고 가서 다시는 한나는 엘리의 축복을 받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이 없었다. 여러분 가끔 부족한 목회자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 목회자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고 존중하면 기적이 나타난다.
 
뭐냐면 눈이 열리면, 영안이 열리면 누구에게나 있는 거룩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신비롭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을 쓰지 않는다. 자기 도덕이 강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감추어진다. 왜 아론을 쓰시는가? 여러분, 모세가 제일 혼돈스러울 때가 뭐냐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40일 동안 말씀하시면서 거룩한 지성소에서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죄를 대속할 사람으로 아론을 세우라 말씀하셨다. 40일 만에 내려왔더니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왜 금송아지를 잡고 그렇게 죄를 범한, 가장 큰 죄를 범한 아론을 대 제장으로 삼고, 이스라엘의 전체 죄를 대속하는 사람으로 세웠을까? 왜인지 아는가? 아론은 그날 이후로 어떤 사람의 죄도 정죄할 수 없다. 온 이스라엘 어떤 죄보다도 자기 죄보다도 작다. 모세는 살인자이다. 하나님이 복음의 핵심은 우리의 도덕이 아니다. 복음이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이 무슨 일을 했냐가 중요하지, 우리가 얼마나 도덕적으로 의로우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도덕적으로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의를 내 세운 사람들은 교만하다. 남을 잘 정죄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했는데 그 사람들은 누구나 정죄한다. 자기가 도덕성이 강하기 때문에 정죄한다. 이제 영적으로 학대를 한다. 아무도 정죄하지 말라고 하셨다. 간음하는 여인이 현장에서 잡힐 때 예수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고 말씀하셨는데 교회에서 자꾸 정죄한다. 교회를 안 나오려고 한다. 저는 도덕과 윤리를 무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도덕과 윤리가 우리를 구원하는 게 아니다. 한나가 엘리를 존중한다. 재미있는 것은 다윗이 사울을 존중하는 것이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누구냐면 원수를 존중한 자이다. 자기의 경쟁자를 존중해야지 경쟁자가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잘 하고, 잘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존중해야 한다. 그 까짓게,,,그러면 배우지 못한다. 좀 잘하고 이렇게 놀랍게 역사가 나타나면 그것을 기뻐해야지, 배우는 것이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이다. 보라 얼굴이 근심 빛이 없으니까 한나의 몸에 치유가 나타난다. 몸에 조화를 이루니까 남편과 동침을 하니까 아이를 넣게 된다. 왜냐면 사실은 마음에 병이 들었던 것이다. 격분하니까 분노가 많은 것이다. 그러니까 몸이 제대로 기능이 발휘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근심이 없어지니까 변화가 나타난다.
 
*사무엘상 1:19-20,
19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20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참으로 어머니의 기도가 중요하다. 자녀를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것은 책망도 아니고 잔소리도 아니다. 기도이다. 오영석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제가 미국에 가서 2년 동안 모셨는데 참 훌륭한 목사님이신데 교회는 50명을 넘기지 못했다. 이제 나중에 사모님이 소천을 받으셨을 때 장례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들이 장례 오신 분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어머니의 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막 우는 것이다. 목사님 아들이 당황을 했다. 고등학교때 방황하고 집에도 늦게 들어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자기가 고등학교 때 방황할 때 열시 열두시 새벽 두시 세시에 들어오면 어머니는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다. 기도하면서, 들어오면 아무 이야기도 안 하시는데 한 마디, “왔냐?” “자라” 그리고 들어가신다. 그리고 수없이 어머니는 한 마디 책망도 아니 하시고 기도하신 어머니, 기도 때문에 제가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아들이 잘 되었다. 큰 기업의 지사장이 되어 베트남에 가서 많은 선교사를 도왔다. 나중에 어머니, 아버지 집을 사주었다. 어머니가 아프셨는데 어머니를 살리려고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는지 모른다. 어디서 막 울면서 새벽 두 시 –네 시 끝까지 기도하시다가 들어오면, “왔니? 자라.” 그 기도가 변화하게 한 것이다.
 
저희 어머니가 제가 목사가 된다고 하니까 너무 좋아하셨다. 내가 바느질해서 키우는데 그러면서 어머니가 약속하셨다. 내 평생 동안 너를 위해서 새벽기도를 드리겠다. 어머니는 평생 동안 기도를 드렸다. 제자 군에 간 뒤에 저희 어머니가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다. 3/1을 교회에서 철야기도를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다. 산에 기도하려고 올라가는데 비를 철철 맞으면서 기도를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머니의 기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생각한다. 제가 복을 많이 받았다. 어디까지 복을 받았냐면 제가 잘 될 수 있도록 제가 복을 받았다. 어머니의 기도 때문이다. 그런데 제가 아주 망가지려고 할 때, 딱 멈추는 복을 받았다. 완전히 2009년도에서 3년 동안 정말 어려웠다. 그때 저는 완전히 망가지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저를 힘들게 하는 분들이 제 모든 것을 빼앗겠다고 이야기 했고, 저를 감옥에 집어넣겠다고 했다. 얼마나 고생 했나 모른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의 기도로 다 망하지 않고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 제가 오 목사님이 초청해서 오는데 옛날이야기가 생각난다. 로고스 교회를 떠나 그 다음 교회로 가는데 오 목사님이 찾아오셨다. 인사 한마디를 하력 하니까 목사님이 저를 보고 교인들 앞에서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라고 하셨다. 그 다음표현은 더 어려운 표현이다. 말씀을 하셔도 그렇게 말씀을 하실 수가 있나? 나중에 인제 남가주 사랑의 교회를 떠나 사랑의 교회로 오시는데 제가 목회하는 교회를 오셨다. 제가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라고 했다. 뭐 저도 들은 이야기가 그거 밖에 없으니까, 그래가지고 우리 두 사람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부메랑이다. 저보다 오 목사님이 훨씬 더 고생하셨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저의 어머님의 기도, 오 목사님의 부모님의 기도, 눈물 흘리신 기도가 오늘 사랑의 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물론 오 목사님이 자신 있는 것도 있다. 그러나 “뭐 그거 가지고 되겠나?” 하시는 말씀 등등,,, 행간에 그런 소문도 있지만 그것은 아니고 부목님의 기도가 아닌가 한다. 이번에도 목사님 아드님이 오기호 목사님인데 교회를 새롭게 개척하셨다. 오기호 목사님 제가 멘토이다. 오 목사님이 부르신 것이 아마도 아드님 멘토라서 부르신 것 같다. 시간이 많이 갔다. 나머지는 내일 이야기 하겠다.
 
♣요약
고통이 소원을 창조하는 기도가 되었고, 고통이 기도를 이끄는 재료가 되었으니 참회를 낳고 또 회개를 통해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졌음을 깨달아서 사울 왕을 세우고 다윗 왕을 세우고 그리고 예수님을 세우신 하나님, 하나님은 끈질긴 기도를 통해 소원을 성취하도록 도와주시니 애절한 마음, 통곡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깊이 해야 한다. 주님의 나라를 세워가고 원수조차도 사랑하는 마음이 되면 주님은 축복하시니 항상 한나처럼 기도하고 하찮게 보이는 자도 존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사랑의 빛을 온 열방에 비추는 아름답고 거룩한 교회가 되기를 소원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너끈히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한나의 기도에서 볼 수 있듯이 온 몸과 온 심령을 다 바쳐 하나님을 갈망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한다. 인간은 삶 속에서 매순간 닥치는 고통을 기도로써 극복해야 한다. 중보자의 사명은 하나님의 요구와 죄의 심판과 약속을 전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 가운데 항상 중보자를 통해서 자신의 뜻을 알리시어 인간들로 하여금 당신의 뜻을 따르게 하셨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새로운 계약의 중보자로 세우시어 우리를 구원하길 원하신다. 구약 성경에서는 보통 출생 때 갖게 되는 이름이 그의 활동이나 장래를 나타낸다. 그러나 중간에 이름이 바뀌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어떤 계기를 통해서 마음이 거듭난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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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차 봄 글로볼 특별새벽부흥회(하나님께서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주후 2023년 4월 11일)-둘째 날(화)
제목: "에즈버리 부흥을 묵상하며"
말씀: 마태복음 5:6
설교자: 케빈 브라운 박사님(애즈버리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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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의 신음”
말씀: 에베소서 6:18
설교자: 김한요 목사님(LA 베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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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6,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에베소서 6:18,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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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브라운 박사님(애즈버리대총장)-"에즈버리 부흥을 묵상하며“
*마태복음 5:6,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애즈버리 대학교에서 인사드립니다. 저는 미국 켄터키주 월모어에 있는 애즈버리 대학교 18대 총장인 케빈 브라운이다. 저는 미국 켄터키 주 월모어에 있는 애즈버리 대학 총장이다. 39개 주의 280개 이상의 대학교에서 방문객들이 찾아왔다. 사랑의 교회 글로벌 특새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린다. 지난 2월에 애즈버리 대학교 캠퍼스에서 며칠 동안 이어진 집회에 대해 여러분과 나눌 수 있어서 참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우리 인간의 언어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다. 지난 2월에 16일 동안 제가 경험한 일은 평생 보지 못한 일이었다. 사람의 말로는 그 16일 동안 보고 느낀 점을 온전히 다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욥기서에 보면, 욥은 하나님께 자신이 겪은 고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하나님은 욥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신다. 욥기 42장에서 욥은 이렇게 말한다.

*욥기 42:3,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기의 문맥과 다르지만 저도 비슷한 입장에 있는 것 같다. 제가 확실히 못하는 것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애즈버리 대학교에서 일어난 일이 너무 놀라워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애즈버리 대학교에는 일주일에 세 번 채플이 있다. 이것은 애즈버리 대학교가 설립된 이래로 계속 이어진 전통이 앞으로도 계속 일주일에 세 번 예배를 드릴 것이다. 여러 방면에서 2월 8일에 있었던 채플은 어느 예배와 다를 바 없던 예배였다. 수요일 아침. 저는 제 사무실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렸다. 설교 후 찬송을 부르고 예배는 끝난 상황이었다. 저는 제 책상에서 일어나 예정된 회의에 들어갔다. 이후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데 아내가 저에게 학생들이 아직도 채플에서 찬양하고 있다는 문자를 보냈다. 더 많은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늦은 오후 즈음에 뭔가 특별하고 이전과는 다른, 게획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그 시간 동안 직접보고 느끼고 경험한 말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16일 동안 이어진 집회에서 5만 명이 다녀갔다. 수백만 명이 ‘애즈버리 부흥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을 찾아봤다. 39개 주의 280개 이상의 대학에서 방문객들이 찾아왔다. 미국과 해외 전역에서 목마르고 절박한 영혼들이 휴즈 강당으로 왔다. 말 그래로 모든 족속과 언어와 민족이었다. 멀리서 함께 참여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다른 장소들과 혐력해서 밤새도록 현장을 생중계할 수 있었다. 저는 이렇게까지 하나님을 구하고 회개하는 절박한 영혼들이 모이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리고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간증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따뜻하게 사람들을 맞이하고 선의를 베푸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당시 분위기는 정말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이를 두고 ’성령님의 조용한 임재‘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는 겸손, 긍휼, 하나님의 사랑, 적나라한 고백, 회개, 풀어진 속박, 무너진 견고한 진, 축성,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증거, 진실한 기도, 삶을 바꾸는 헌신을 봤다.

저는 우리 대학 학생들이 최선을 다하는 멋진 모습을 봤다. 모두가 자기 할 일은 뒤로 한 채, 재정비하며 지치지 않고 일했다. 때로는 밤낮으로 일하며 질서 정연하고 방문객을 환영하는 환경을 만들고자 애썼다. 점점 지역으로 몰려드는 사람의 수가 많아지자 리더들은 빠르게 대응하고 협력해야만 했다. 질서가 세워졌는데, 그것은 사람의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잘 드러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이는 일부러 만들어 내거나 조작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 힘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이 상황을 그저 받아들였다. 상황을 보고 대처하는 이 모든 일에 ‘신뢰’가 이었다. 변화로 인해 신뢰의 단계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상황을 대처하는 이 모든 일에 ‘신뢰’가 이었다. 변화로 인해 신뢰의 단계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이 역사적인 애즈버리 부흥집회를 위해 애쓴 사람들 속에는 깊은 신뢰가 자리 잡았다. 이 기간 동안 애즈버리 대학에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는 뉴스와 SNS가 쏟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가 보는 가운데 벌어지는 이 일에 이름을 붙이고 싶어 했다. 부흥인가, 아니면 갱신인가? 성령의 부으심인가? 대각성인가? 대체 이 일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가? 모두가 목도하는 이 시ㅏ건에 가장 맞는 신학적 용어는 무엇일까? 애즈버리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해석을 보면서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시각 장애인이 때문인가? 그의 죄 때문인가? 아니면 그의 부모의 죄 때문인가? 예수님이 이 시각 장애인의 눈을 뜨게 해주신 후에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어서 이 사람을 불렀다. 바리새인은 예수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가 죄인인지를 물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유명한 대답을 했다.

*요한복음 9:25,
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사람들은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을지를 궁금해 한다. 또는 이 현상이 부흥인지 아닌지 묻는다. 이에 대한 저의 대답은 ‘모른다’이다. 그 시각 장애인처럼 저도 ‘제가 아는 것은 이것이다.’라고 답할 뿐이다. 5만 명의 목마른 영혼들이 이 예수님을 찾으려고 한 자리에 모였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목마름에 응답하시는 것을 봤다. 우리 가운데 어떤 움직임이 있었던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이 달콤하고 부드럽고 선하고 의롭고 진실하다는 것을 안다. 사람들이 짓눌려 있던 삶의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생각지도, 만들지도 못하는 방식으로 나타 나셨다는 것도 안다. 우리가 예전과 같을 수 없다는 사실도 안다. 제가 아는 건 이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인간의 노력이나 재주 때문에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 역시 안다. 애즈버리 대학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도 아니다. 미리 계획한 일이나 프로젝트도 아니었다. 전문 찬양 팀이나 유명한 설교자로부터 비롯한 일도 아니다. 돈을 많이 쓴 마케팅이나 광고 캠페인의 산물도 아니다. 제가 본 것은 더 깊고, 더 진실하고, 더 충만한 것을 바라는 절실함과 영혼의 목마름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에 응답하셨다.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이웃들과 화목하고 싶은 자들은 복을 받을 것이다. 이를 추구하는 자는 배부를 것이다. 예수님은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화목이 제일 우선인 이들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핵심을 알게 되었다. 이 현상은 그리스도의 연합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모습인 것 같다. 우리는 연합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인간의 담론으로 여기거나 바람직한 조직 같은 희망사항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기독교 전통에서 연합은 희망사항이 아니다. 사도행전 4장 32절에서 연학은 요구이다.

*사도행전 4:32,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행전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한마음 한 뜻이 되었다고 말씀한다. 고린도전서 10장은 성도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한다.

*고린도전서 10:17,
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갈라디아서 3:28,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바울은 우리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리고 에베소서 4장에서 그리스도인은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바울은 로마서 6장 5절에서 우리도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같은 죽음 즉, 우리 자아와 죄를 죽임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파격적인 말을 했다.

*로마서 6:5,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요한복음 17장에는 연합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나온다. 예수님은 획일성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 되는 것과 같은 연합을 찬양하셨다. 예수님은 한 번만 언급하신 것이 아니라, 다섯 번이라 기도하셨다. 성경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 되라는 이 분명하고도 구별된 부르심을 간과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연합은 제자와 공동체룰 향한 요구이다. 오랫동안 저는 기독교 내의 분열이 심화되는 모습에 무거운 마음의 짐을 느껴왔다. 우리 중에 분열에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 연합에 대해, 특히 어떻게 하면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연합을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은 많을 것이다. 저는 시간이 갈수록 우리의 자아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라고 확신한다.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 저는 겸손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완전히 엎드리는 것이다. 예수님이 만물을 다스리는 통치자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런 모습을 ‘십자가를 본받는 삶’이라고 말한다. 저는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의 가득 찬 삶’이라고 말한다. 이런 삶이 요한복음 17장에서 말하는 연합이라고 생각한다.

*열왕기하 10:15,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본문으로 한 존 웨슬리의 유명한 설교가 있다.
※“네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그러면 나와 손을 잡자.”
-존 웨슬리-
-네 마음이 옳고, 내 마음이 옳고, 우리 마음이 옳으면 다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경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애즈버리 대학교 캠퍼스에서 목도한 놀라운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은 그리스도의 응답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서 있었는지 생각해보자. 세상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살펴보자. 정치 양극화, 사회불안, 인종차별, 전쟁, 경제 불확실성과 더불어 코로나 펜데믹을 겪어야만 했다. 교회를 보자. 교회에 좋은 점이 많이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구언 사역을 위한 도구이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교회가 너무 시장화 되어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교회의 타락을 보심 알 것이다. 신앙과 삶의 불일치를 보자. 주일과 월요일의 삶이 너무 다르다. 제자도의 잘못 된 개념도 보자. 제자도는 단순히 믿음을 확인하거나 전반적인 삶이 변하지 않고 교회 콘텐츠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나날이 떨어지는 교회 신뢰도를 보자. 사회 속에서 교회가 차지하던 중요도가 사라지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의 불안, 우울, 중독, 자살 충동이 심하다. 우리 안에 만연한 외로움도 보자. 21세기에 들어서 절망사가 점점 크기 늘어가고 있다.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이러한 불안정한 현상을 너무 많이 접하게 되어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SNS로 인해 이념적 성향이 점점 고착화 되고 있다. 이런 모든 현상을 보고 새롭고 신선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많은 이들이 의에 주리고 목말랐다.

최근 몇 주 동안 이들이 자유로워지고 치유 받고 화해하고 고백하고 죄와 짐과 두려움을 내려놓았다. 견고한 짐이 무너졌다고 간증했다. 누군가가 이를 두고 우리에게 영적인 눈이 있다면 풀린 쇠사슬로 덮인 제단을 볼 것이라는 멋진 말로 표현했다. 많은 이들이 갈등의 부재를 넘어선 이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평화를 경험했다. 또한 그들 안에 하나님의 영이 충만함을 경험했다. 이로 인해 새 생명을 느꼈다. 실제적이고 진실한 무언가를 갈망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는 그저 만족이나 화력하고 비싸고 최첨단이고 즐거운 것이 아니다. 실제적이고 선하고 올바르고 진실한 것을 바랐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요한복음 17장에서 말하는 연합을 경험했다.

애즈버리 대학에서 일어난 이 역사적인 부흥집회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바로 ‘그리스도 중심’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집회로 하나가 되었다. 이 집회로 겸손해졌다. 이 집회로 회개(悔改)했다. 이 집회로 자유로워졌다. 이 집회로 새 삶을 얻었다. 이것이 바로 저의 간증이다. 제가 본 것은 이것이다. 이 말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애즈버리 대학에서 일어났던 역사의 궤도는 더 뻗어 나갈 것이다. 불을 비유로 설명할 수 있다. 불은 가장 높게 치솟을 때 가장 밝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캠퍼스에서 엄청나게 커서 잊혀 질 수 없는 큰 영적 모닥불을 경험한 것이다. 불은 가장 높게 치솟을 때가 가장 밝다. 그러나 불길이 잦아들고 있을 때 가장 뜨겁다. 일어난 일이 잠잠해지거나 끝나 보일 때도 마찬가지이다. 제가 바라는 것은 애즈버리 대학에서 일어난 불이 꺼지지 않는 것이다. 저는 이 불길이 앞으로 계속 활활 타올라 번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불을 다시 비유로 들겠다. 전 세계의 다른 학교와 교회 사역 단체들이 이 불길을 이어받아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고 세상의 빛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복음과 소망을 전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긍휼한 마음으로 연약한 공동체를 섬기고 돕기를 기도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요약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고 구별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겸손해지고 이웃과 공동체를 도우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이 세상에서의 외적인 빈곤과 비천한 상태에 대한 계속적인 예로 이해한다.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을지라도 만약 그들이 선한 양심을 위해서 그리고 선한 양심을 가지고 이러한 곤란들을 겪는다면 그들은 복이 있다. 그러므로 고난을 받는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자. 심한 압제를 받으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처지를 변호해 주시도록 조용히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들은 때가 이르면 만족하게 될 것이다. 만족하되,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나타나실 때 보여 주실 지혜와 자비를 보고 크게 만족할 것이다. 의가 여기에서는 모든 영적 축복들을 가져오는 근거로서 제시된다. 모든 영적 축복들이 그리스도의 의에 의해서 우리에게 주어진다. 새 사람이 되는 것,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는 것 그리스도와 그 약속들에 관심을 갖는 것, 이것들이 곧 '의'이다. 우리는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한다. 우리는 진정으로 그리고 실제로 의를 갈망해야 한다. 영적인 복들에 대한 우리의 갈망은 진지하고 끈질겨야 한다. 구해야 한다. 배고픔과 갈증은 자주 발생하는 욕구로서 새로운 만족을 요구한다. 소생한 영혼은 끊임없는 의의 양식을 요구하며 매일 매일의 일을 수행하기 위한 은혜의 양식을 필요로 한다.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애써 일할 것이다. 그처럼 우리도 영적인 복들을 바라야 할 뿐만 아니라 정해진 수단들을 사용하여 그 복들을 얻기 위해 수고해야 한다. 이처럼 주리고 목말라 하는 자들은 그와 같은 복들로 배부를 것이다. 첫째, 그와 같이 갈망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 은혜를 바라는 모든 욕구가 다 은혜는 아니지만(가장되고 희미한 욕구는 은혜가 아니다) 이와 같은 욕구는 은혜이다. 그것은 좋은 어떤 것의 증거이며 보다 나은 어떤 것의 보증이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일으키시는 욕구이다. 둘째, 그들은 그와 같은 복들로 배부를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바라는 것을 충분히 만족할 만큼 그들에게 주실 것이다. 영혼을 만족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며, 그의 은혜와 은총만이 영혼이 정당한 욕구에 적합하다. 하나님은 주린 자들을 배불리시되, 차고 넘칠 정도로 풍족히 주시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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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의 신음”
말씀: 에베소서 6:18
설교자: 김한요 목사님(LA 베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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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18,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풋볼에서 쿼터백은 사령탑의 지시를 받는다. 지상 현장에서는 전반적인 상황을 보는 시야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 땅에서 살아갈 때는 잘 보이지 않지만, 위에서 보면 다 보인다. 모든 일을 영적으로 결부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역사와 악한 영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무시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영적 전시 상황에 있다. 잠을 자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깨어 기도하라, 깨어 구하라는 말은 전시에 불침번 서듯이 그 연통을 유지하라는 말이다.

I. 깨어 구하라
-‘기도’란 전시상황의 워키토키와 같다. 인생이 전쟁임을 믿기 전 까지 기도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기도는 전시에 사명 완수를 위한 것이다’ - 존 파이퍼 - 기도를 그러한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집의 초인종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다.

II.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 기도의 폭은 인격의 폭이다.
※-‘크리스천으로서 우리의 최대 궁극적인 신분은 우리의 기도 생활로 그 인격이 측정된다. 이것은 말씀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나에게 있어 성경에 지식보다 저 중요한 것은 딱 하나이다. 그것은 기도이다. 나의 성경에 대한 이해와 지식은 나의 기도하는 양에 절대적으로 비례하기 때문이다.’-마틴 로이드 존스 -

2) 기도는 나의 정체성
-기도는 인격을 넘어 정체성이다. 기도를 듣고있다보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의사였지만 뒤늦게 사명을 받고 목회의 길을 걷게 되었다. 말씀에 대한 집중력과 강해 력이 탁월하시다. 그렇게 지적으로 말씀을 깊게 탐구하시는 분이 말씀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력보다 중요한 것은 기도라고 말씀한 것이다. 들어보면 그 사람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엄마의 기도, 남편의 기도, 순장의 기도, 담임목사의 기도가 있다. 정체성을 기도로 드러내기를 바란다.

3) 기도는 하나님과의 사귐-주님과 친밀하라.
※-‘제가 다시 강조하는 사실은 크리스천의 삶은 기도드리는 시간의 양으로 궁극적으로 검증된다. 그러나, 저의 말은 오해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의무라고 말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맞다 기도는 의무이다. 그러나, 의무 그 이상이다. 기도는 기쁨이며, 크리스쳔의 삶의 가장 궁극적인 표현이어야 한다.’ -마틴 로이드 존스-

-이는 기도를 많이 한다고 장땡이라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정확히 바리새인의 모습이다. 기도는 인격의 폭, 됨됨이 라고 하였다. 그러나 기도의 양은 그 이상을 말해준다. 3분이면 기도가 금방 끝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에서 오래 산 한 성도가 간만에 재회한 부모님과 30년 동안 못 만났다가 만나니까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할 말이 없다고 하면, 그간 떨어져 지냈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도는 관계이자 교제라 할 수 있다. 기도의 양은 친밀성이자 관계의 밀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요한복음 17:3,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은 예수님을 아는 것이라 하였다. 기도를 들어보면 그가 예수님과 친한지 알 수 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는 아래 구절과 상통한다.

*빌립보서 4:6,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모든 형태의)와 간구(간절한 특별요청)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기도의 능력은 화려한 문장에 있지 않다. 기도의 생명력은 간절함에 있다. ‘주여!’는 ‘당신만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십니다.’라는 뜻이다.

※마치 막내딸이 아빠에게 선물을 구하고 받는 과정처럼 간절히 아뢰는 것이 중요하다. 막내딸의 요청이 해외에 나가면 아른거린다. 이처럼 우리의 기도도 하나님이 아른거리시지 않을까? 그런 기도와 응답이 있기를 바란다.

III. 성령 안에서 기도
-기도는 요술방망이가 아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는 적절한 범위가 있다. 그렇다면 성령 안에서 드리는 기도가 무엇일까?

*로마서 8:26-27,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희망찬 것은 우리가 기도를 잘 못할지라도 그에 대해 주께서 원하시는 최선을 우리에게 응답하신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신다. 하나님 아버지가 알아들으신다. 또박또박 멋있게 하는 기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절박함으로 간절함으로 주의 이름을 외칠 때 성령께서 중보 하신다. 하나님의 놀라운 기도응답의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를 중보기도 해주신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의 축복이다. 성령께서 탄신하며 신음하며 기도하신다는 것이다. 음!!~~ 라고 해도 다 아신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초심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특새에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있기를 소원한다.

♣요약
연약하기 짝이 없고 어떻게 기도할지 모르지만 주님 안에 있기에 성령 안에 있음을 믿고 성령의 도고와 중보를 기도해야 한다. 주님 앞에 외치는 기도가 간절하게 상달되어서 모든 기도가 응답되기를 소원하며 주님의 뜻이 우리의 삶 속에 일어나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가지고 주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와 가정이 영적 계보를 이어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음에도 응답해 주심을 믿고 늘 주관자이신 주님 앞에 모든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 엎드려 기도해야 한다. 

-영적 전쟁의 수행 방법으로써 바울은 성령 안에서 항상 깨어 기도하되 함께 은혜를 나누는 주위를 위해 기도하고 복음의 비밀을 맡은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때로 이웃이 어려움을 당하여 권력에 복종할 때가 있다. 이럴 때는 힘을 다해 이웃을 격려하고 그들이 믿음 가운데 거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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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차 봄 글로볼 특별새벽부흥회(주후 2023년 4월 10일)-첫째 날(월).
제목: “주님의 마지막 부탁”
말씀: 요한복음 13:34-35
설교자: 릭 워렌 목사님(새들백교회)

제목: “세상을 흔드는 기도”
말씀: 사도행전 4:23-31
설교자: 김한요 목사님(LA 베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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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3:34-35,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사도행전 4:23-31,
23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24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오.
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29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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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워렌 목사님(새들백교회)-주님의 마지막 부탁(요한복음 13:34-35)
*요한복음 13:34-35,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사랑의 교회 성도 여러분께 문안 인사드립니다. 여러분 모두를 너무 사랑합니다. 이 귀한 특별새벽부흥회에서 말씀을 전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전에 캘리포니아주 애나하임에 있는 남가주 사랑의교회 특새에서 말씀을 전한 기억이 난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오전현 목사님과 저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 사이이다. 저는 오정현 목사님을 형제처럼 아끼고 사랑한다. 그리고 사랑의 교회의 모든 분들을 사랑한다. 저는 새들백교회의 원로목사이자 ‘목적이 이끄는 삶’의 저자이다. 그리고 ‘Finishing the Task’라는 글로벌 연합체의 대표이기도 하다. 저희는 예수님이 주신 대 위임명령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교회, 교단, 선교단체, 복음주의 기관들과 함께 2023년까지 ‘Finishing the Task’에 동역할 예정이다. 사랑의 교회가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연합체인 ‘Finishing the Task’와 동역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음을 알고 있다. 저는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사랑의 교회가 귀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자, 요한복음 13-17장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향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과 기도가 나온다. 목회자, 또는 교회 지도자라면 마지막 말, 유언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아실 것이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하는 마지막 말은 중요하다. 요한복음 13장부터 17장에서 먼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겟세마네서의 기도가 나온다. 여기서 말씀하신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예수님께서 언급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말씀하셨는가? 십자가에 매달리시기 전에 어떤 생각을 하고 계셨는가? 요한복음 13-17장까지 예수님이 가장 많이 말씀하신 두 가지 주제는 사랑과 연합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인 성도간의 ‘사랑과 연합’에 대해 가장 많이 말씀하셨다. 이게 바로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이다. 여기에서 ‘사랑과 연합’을 21번이나 언급하셨다. 여러분에게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요한복음 15장 9절에

*요한복음 15:9,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한복음 15장 12-13절에서도 또 나온다.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이어서 사랑을 측정하는 방법이 나온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장 17절을 보면
*요한복음 15:17,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사역 적 전략, 계획, 목표, 도구, 협력에 대해 말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서로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기도 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 말씀을 나누셨다. 그 후에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셔서 고별 기도를 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시기 전에 이 기도를 들었고 이 장면은 요한복음 17장에 나온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 대 위임명령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에게 하나가 되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네, 다섯 가지로 말씀을 드리겠다. 이는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비전이다. 요한복음 17장 1-2절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의 시작이다
*요한복음 17:1-2,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요한복음 17장 1-8절은 지난 삼 년 동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사역을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일종의 보고이다. 9절부터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요한복음 17:1-9,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그리고 제자들과 사도들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체포되시기 직전까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셨다. 그 이후에 십자가에 매달리셔서 여러분을 위해 죽으셨다. 요한복음 17:9-11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도이다.

*요한복음 17:9-11,
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그들은 바로 여러분과 저를 가리킨다. 그리고 다음 문장을 잘 들어보라.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첫 번째 기도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나이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 부분이 바로 예수님이 기도하시면서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처음 언급한 부분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기도 전체를 아우르는 핵심 주제이다. 예수님은 십자가형을 분비하시면서 하나 됨을 여러 번 언급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향하시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주제는 바로 예수님의 가족, 그리스도의 몸이자 신부인 교회가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17장 20-21절에서 예수님은 하나 됨을 더 언급하셨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셨다.

*요한복음 17:20-21,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이 사람들은 21명이 아니라, 실제로는 11명이다. 여기서 ‘그들의 말과 기도로 믿는 사람’은 여러분과 저를 가리킨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 역시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다.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에서 하나 됨의 주제를 볼 수 있다.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되고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된다. 잘 보라. 전도의 연합의 결과물이다. 이게 바로 전도이다. 우리가 하나 되었기 때문에 이 세상은 믿게 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리기 바로 직전까지도 제자들이 사랑 안에서 하나 되는 것에 크게 관심을 두셨다. 이는 요한복음 17장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비전이었다. 예수님의 기도제목임과 동시에 소망이기도 했다. 이미 다른 게 더 중요했다면 예수님은 그것을 언급하셨을 것이다. 십자가에 매달리시기 전 예수님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바로 예수님의 가족이자, 몸인 교회의 연합이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께서 하나가 되라고 명령하신 이유가 나오는데 그중에서 다서 가지만 살펴보겠다. 이번 특별새벽부흥회 기간 동안 우리가 할 일, 즉 예수님의 대 위임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여서 할 일이다. 우선 여러분에게 서 너 가지 정도 그 이유들을 말씀드리겠다.

첫째, 다른 성도들과의 연합은 스스로 경험하는 구원받았다는 증거이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가시기 전 요한복음 13:34-3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3:34-35,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 내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증거는 체에 붙어 다니는 범퍼 스티커나 기독교 상징물, 십자가 목걸이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제자라는 증거는 바로 다른 성도들을 향한 사랑이다.

둘째, 성삼위일체가 우리의 연합을 위한 예가 되기 때문이다.
-삼위일체는 하나 됨의 모델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요한복음 17장 11절에서 이렇게 설명하신다.
*요한복음 17:11,
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다른 성경 번역본에서는 “그들의 연합이 마치 우리의 연합과 같게 하옵소서.”라고 번역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이 하나이신 삼위일체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연합의 모델이다.
셋째,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는 우리가 하나 되어 살게 해달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17:21,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앞에서는 세상이 알게 된다고 했고 여기서는 세상이 믿게 한다고 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께로 오는 사람들, 믿음 앞으로 나오는 사람들, 구원으로 오는 사람들, 하나님의 가족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으신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을 성도들의 연합체로 묶으신다. ‘메시지 성경’은 21절을 이해하기쉽 게 번역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와 한마음 한뜻이 되는 것, 이것이 내 기도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참으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해주십시오.”라고 번역한 메시지 성경의 이 구절이 참 마음에 든다. 이는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비전이자 목적이다. 여러분의 배경에서, 여러분의 영역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와 그리스도 몸의 일부로서 특별새벽부흥회 기간 동안 한마음 한뜻이 되자고 요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기도 중 다음 구절은 하나 됨의 네 번째 이유이다. 바로 22절이다.

넷째, 하나님께서 영광을 주시는 목적은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17:22,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장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주셔서 우리가 하나 되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주시는 목적은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성품이다. 하나님의 임재이다. 하나님의 권능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내 성품, 임재, 권능을 그들에게 주리라.” ‘내가 그들에게 영광을 주었으니 하나님의 임재가 너희들의 삶 속에서 나타나게 하리라. 더 가혹한 자세가 아니라, 더 독선적이고 고집부리는 태도가 아니라, 더 비판적인 태도가 아니라, 정말로 사랑이 충만한 그런 성품, 그 사랑으로 우리가 하나 되게 하겠다.‘ 라고 말씀하신다.

형제자매 여러분께 한 가지 질문을 하겠다. 여러분 삶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길 원하시는가? 물론 원할 것이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느끼길 바라시는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길 소망하시는가? 예수님은 서로 다른 이들을 포옹하고, 서로 다른 이들과 하나 되기에 최선을 다하는 자들에게 영광과 능력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이로써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주신 대 위임명령을 이루게 하실 것이다.

다섯째,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 하나(one) 되지 않으면 세상을 얻지(won) 못한다
-성도가 하나 되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우리가 주님의 사람인 것에 대한 가장 큰 증거가 된다.
*요한복음 17:23,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이렇게 기도하셨다. 23절에 두 번째로 성도들의 연합으로 세상을 얻는 것 즉, 대 위임명령을 성취하는 것을 연결하셨다. 주님은 그리스도인이 하나(one) 되지 않으면 세상을 얻지(won)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제 방식으로 표현해 보겠다. 믿지 않는 사람들 입장에서 우리 안에 있는 것이 그들에게 좋아 보인다면 그들은 우리가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 공동체를 사랑과 하나 됨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 이 세상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고선 그리스도께로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리스도인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그리스도인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7장에서 기도하신 사랑과 연합의 삶을 살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번역본은 23절을 이렇게 번역했다. “그들이 성숙함으로 하나 되면 하나님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셨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들도 사랑하신다는 증거를 보여주게 된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하나 됨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음을 여러분께 말씀드렸다. 일곱 가지 이상 더 말씀드릴 수 있지만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며 이 말을 하고 싶다.

‘분열은 비전을 죽인다. 이 말을 꼭 기억하시기 바란다. 필기 하시면 좋겠다. ‘분열은 비전을 죽인다(Fragmentation kills vision).’ 우리가 하나 되지 못하면,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세계 복음화를 이룰 수 없다. 아프리카 속담 중에 ‘물 한 방울로는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비 한 방울로는 못 하지만 많은 빗방울은 사막을 정원으로 만들 수 있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 대 위임명령을 이룰 수 없다. 여러분 힘으로는 가능한가? 여러분도 혼자 힘으로는 하지 못한다. 심지어 여러분의 교단과 기관 혼자만으로 못 한다. 우리는 절대 혼자서는 못한다. 우리 모두가 하나 될 때만 가능하다. ‘분열은 비전을 파괴시킨다(Division destroys vision).’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다. 함께 할 때, 힘이 생긴다. 예수님은 여전히 우리가 예수님의 기도 응답이 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이번 특새 기간 동안 일어날 역사들이 요한복음 17장의 예수님 기도의 응답이 시작되는 시점이 될 것이다. 지금 예수님은 서로 다른 배경과 믿음의 전통을 가진 우리 모두를 내려다보시며 그리스도의 몸으로 함께 나와 대 위임명령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것을 기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해 주시길 소원한다. 여러분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요약
주님이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을 기억하여 다른 성도들과의 연합하고 스스로 경험하는 구원받았다는 증거로 살아가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주시는 목적이 우리가 하나 되는 것임을 깨달아서 늘 서로 한 뜻으로 나누고 세워가며, 우리가 하나(one) 되지 않으면 세상을 얻지(won) 못한다고 하셨음을 알아 더욱 하나로 뭉쳐서 주님의 자녀로서 본이 되고 주님을 전하는 아름다움을 갖추어 가야한다.

-첫째, 제자들이 하나 되기를 기도하셨다. 너무도 믿음이 약한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져버릴 것을 염려하여 마음과 뜻과 목적이 하나 되게 해주시기를 기도하셨던 것이다.
둘째, 악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적대시하는 세상에 남아 있을 것이므로 제자들이 악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하셨던 것이다.
셋째, 전도를 위해 기도하셨다. 즉 제자들이 그분의 도구로서 세상에 속하지 않고 말씀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며 살기를 기도하셨다.
넷째, 하나님께서 영광을 주시는 목적은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이다.
다섯째,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 하나(one) 되지 않으면 세상을 얻지(won) 못 한다.
예수님의 영광은 십자가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아니 하시고, ‘영광을 얻었다’고하셨다. 즉 십자가는 형벌이 아니요 곧 영광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복종하는 것이 영광이다. 인간은 자기 뜻대로 행해서는 영광을 얻을 수 없다. 영광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순종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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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요 목사님(LA 베델교회)-세상을 흔드는 기도.(사도행전 4:23-31,
 
*사도행전 4:23-31,
23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24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오.
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29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기도가 더 많이 필요한 상황이다. 팬데믹 때, 예배 금지령을 받았을 때 큰 충격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시기를 지난 후 성도들이 어깨 붙이고 앉지 않는 분위기로 바뀐 것을 본다. 사도행전은 성령 강림 이후 불같은 열정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을 선포하자, 교회의 성장을 억제하려는 반대와 핍박에 봉착하게 된다.

사도행전 3장에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나면서 걷지 못한 장애우를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의 이름으로 걷게 했던 기적이 일어났다. 상대적으로 무능했던 종교지도자들은 사도들의 권세를 시기하여 베드로와 요한을 구금하여 박해했다. 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사탄은 가장 싫어한다. 만사를 악한 영, 사탄과 연결하여 생각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악한 영의 움직임을 완전 무시하는 태도는 더 위험하다.

베드로와 요한의 구금 소리를 듣고 예루살렘 교회는 무릎을 꿇고 간절한 기도를 드리게 된다. 고난당하는 교회는 기도로 응전했다.

1. 하나님의 속성, 성품을 기억하면서 기도했다.
대 주재여!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온 우주 만물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전능자이심을 기억하고 기도하라. 루터와 에라스무스와의 논쟁 중에 루터는 ‘당신의 하나님은 너무 작다’라는 비판을 에라스무스를 향하여 했다. 우리가 기도하는 하나님은 어느 정도의 스케일을 지닌 분이신가? 대 주재이신 하나님이시다.

2. 25절,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시편 2편을 읽으면서 기도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 성령님을 묵상하며, 그 말씀의 예언대로 이루어짐을 확신하며 믿음보고하면서 기도했다. 누가 주인공인가? 기도하는 자가 주인공이다. 교회가 흔들리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오로지 대 주재이신 하나님께 기도하면 땅이 진동하는 역사로 응답하셨다. 세상을 흔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세상을 흔드는 하나님을 경험할 것이다.

*예레미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오 목사님께서 남가주 사랑의 교회에서 40일 특새를 하실 때에 남가주에는 특새 바람이 불었다. 도전을 받고 벧엘교회도 40일 특새를 했는데 놀라운 부흥을 경험했다. 250명 들어오는 본당에 300명 이상이 회집하여 미국 신문에도 기사화되기도 했다. 웨일즈 부흥기록을 보면서 발견한 사실이 있다. 교회는 항상 먼저 무릎으로 가야 한다. 계획보다 기도가 앞서야 한다. “주님, 교회를 무릎 꿇게 하소서(Lord, bring the church to its knees!).”라는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교회를 꺾으시고, 교만한 무릎을 꺾어 무릎을 꿀리소서! 뻣뻣한 교회의 무릎을 꿀리게 하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공급 받는 교회의 우리의 무릎을 꿇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는 그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자. 그리하여 세상이 교회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를 통해 우리 하나님께서 세상을 흔드는 놀라운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축원한다.

♣요약
은혜 가운데 이 시대의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무릎을 꿇고 주님 앞에 나아가 우리 형편이 기도를 막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기도를 통해 기도의 진보가 나타나는 역사가 되기를 기도하여야 한다. 기도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역사가 나타나고, 글로벌 특별새벽부흥회에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 교회를 흔드는 모든 악한 세력들을 물리쳐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며 하나님께서 막아주실 줄 믿고 세상을 흔드는 기도가 되고 우리가 구하는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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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담임 목사님
-목사님 통해 또박또박 주셨는데 어느 것 하나라도 여러분 것으로 확인 될 줄 믿는다. 우리의 시추에시션을 주님이 다 알고 계시니 복음의 진보가 되게 해 주시길 기도한다.
첫째 날(월), 공동 기도제목
“하나님께서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역대상 4:10)=“God Granted What Was Requested”-1 Chronicles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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