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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차 봄 글로벌 특별새벽부흥회(하나님께서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주후 2023년 4월 12일)-셋째 날(수)

제목: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말씀: 고린도후서 12:9
설교자: 로버트 노리스 목사님(세계개혁주의연합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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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끈질긴 통곡기도의 능력”
말씀: 사무엘상1:10-20
설교자: 강준민 목사님(새생명교비전교회-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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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2:9,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사무엘상 1:10~20,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19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20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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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노리스 목사님(세계개혁주의연합회 이사장)
제목: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말씀: 고린도후서 12:9,
-세계개혁주의협의회(WRF)를 대표해서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께 인사들 드리는 것이 큰 축복이다. 말씀으로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을 섬길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주신 오정현 목사님께 특별히 감사하다. 이번 5월에 세계개혁주의협의회(WRF) 임원 단이 서울에서 이사회를 개최하고 서로 교제를 나누도록 기회를 주신 사랑의 교회에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여러분의 따뜻한 환대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오늘 여러분께 전하고자 하는 말씀은 바울서신 중 하나인 고린도후서 12장이다. 사도 바울은 이 장에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전한 것처럼 모든 시대의 교회에게 동일한 약속의 메시지를 보낸다.
 
바울서신 중 하나인 고린도후서 12장은 모든 시대의 교회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라는 약속을 전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라는 약속을 우리에게도 전하고 있다.
 
바울이 이 약속을 고난과 낙심 가운데 있을 때 받았다. 우리도 고난과 낙심 가운데 있을 때가 있듯이 신약 성경에서 이 말씀처럼 오늘날 교회와 관련이 깊은 말씀을 찾아보기 힘들다. 본문 배경은 사도바울이 역적 지도자로서 형편없다는 비난으로 고통 받을 때이다. 이럴 때 바울이 어떻게 말하는지 잘 들어보기를 바란다.
 
*고린도후서 12:1-9,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바울 자신이 사도가 되기에는 가난하고 아마추어 같고 목소리만 크고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비난한ㄴ 사람들을 마주하며 자신의 상황을 풍자한다. 이들은 바울의 설교에 힘과 언변이 부족하다고 공격했다. 그리고 사도바울이 너무 평범해서 설교자나 사도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 만한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오늘날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지도자가 신체적, 감정적, 영적으로 우월하다고 관계적으로도 뛰어나길 기대한다. 그래서 바울에게는 이런 자질이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바울은 너무나 평범했다. 사람들은 바울이 영성도 부족하다고 여겼다. 게다가 바울에게는 지병이 있어서 위대한 사도가 되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소문이 돌았다. 바울의 원수들에게 영성이란 곧 능력인데 바울은 연약한 인간 그 자체였다. 원수들이 보기에 바울은 영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바울이 자신들보다 영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원수들이 보기에 바울은 영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바울이 자신들보다 영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비난이 사도 바울로 하여금 고리도후서를 쓰게 한 동기가 되었다. 바울은 자신을 위해서 이 편지를 쓰지 않았다. 소위 무늬만 사도인 자들이 단순히 바울의 평판을 흠집 내려고 해서 편지를 쓴 것이 아니라 바울에 있어서 이들의 반대는 복음을 훼손되는 것이었기에 이 서신을 쓰게 딘 것이다. 복음을 지키기 위해 고린도후서를 썼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칭 사도들은 교리에 정통하고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자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들이 보여준 영성은 세상에서 말하는 영성이었다. 실상은 그들은 복음을 왜곡하고 가짜 예수를 전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다른 사도들보다 영적으로 더 뛰어나다는 포장으로, 미묘하지만 실제적으로 복음을 왜곡하고 있었다. 교회가 당면한 큰 위험이 여기에 있다. 거짓 사도들은 더 이상 고통당하는 예수님, 십자가 지시는 예수님, 구유에서 연약한 아기로 태어난 예수님을 전하지 않았다. 바울은 이런 왜곡을 절대로 참을 수 없었다. 바울은 어리석은 자처럼 자랑할 생각이 없기에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고 했다. 바울은 자신의 영적 체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환상과 계시를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초자연적인 영적 경험에 대해 자세하게 말하기 시작한다. 그는 14년 전에 하늘에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들었다고 했다. 바울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에서 목격한 심오하고, 황홀하며, 신비한 경험에 대해 묘사했다. 너무나 엄청나고 깊은 경험이었기에 바울은 자신을 3인칭으로 표현한다. 3인칭으로 말한 이유는 겸손과 절제함으로 말하기 위함이었다.
 
바울은 그 경험이 아주 희귀한 경험이라고 못 박았다. 바울의 말에 의하면 이는 14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일생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이지 매일 기도할 때 경험하는 일상적인 일은 아니었다. 우리는 신비하고 황홀한 경험만을 추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를 생생하게 알고자 애써야 한다. 바울이 하늘에 끌려가서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 가장 가까운 곳에 갔을 때 감각을 압도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은 흔한 경험이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심오한 경험이다. 그러나 바울이 한 말을 잘 보면 바울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사람이 말해서도 안 되는 말씀을 들었다고 했다. 우리의 영혼을 감동시키는 경험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직접 역사하시는 즉각적인 경험 등 그 신비가 너무나 성스럽고 심오하기에 모두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담대하게 나아가기 위해서 이런 경험이 필요했다. 그래서 바울은 천국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이 된 것이다. 바울에게 하나님이 임하셨을 때 그 영향은 실로 엄청났다. 그가 체험한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했는지 하나님은 측량할 수 없는 은혜로 바울에게 가시를 주셨다. 하나님은 바울의 육신의 한계를 두시려고 그의 삶에 가시를 주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손으로 해결하신 하나님의 사역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가시는 어떤 상태로 번역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바울은 정확하게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말을 안 해줘서 우리가 바울을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권능으로 사역하는 사람들과 동일시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바울은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노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라고 말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울을 말을 통해 진정한 영성의 본질이 무엇이든 알 수 있다. 아무리 위대한 성인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응답받지 못한다. 바울이 세 번이나 간구했으니 하나남께서 세 번 다 거절하셨다. 기도는 우리의 소원이 무조건 이루어지게 하는 마법이 아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서 위안을 얻어야 한다. 기도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돌보시는 손으로부터 온 선물이다. 우리를 돌보시는 아버지 하나님은 아무리 우리가 수없이 간구해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우리에게 좋지 않은 것은 주시지 않는다. 바울은 육신의 가시를 받아드려야만 했다.
 
그리스도인은 각자의 삶에 고난이 있을 것이란 예상을 하게 된다. 고난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지만 그 기도가 계속 거절될 때 우리는 우리에게 고난이 없을 때보다 고난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사용하신다는 말씀을 이해해야 한다. 심지어 하나님이시며 인간이신 우리 구주 예수님도 고난을 겪으셨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온전해진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때로는 우리가 연약할 때 가장 풍성하게 임하신다. 인간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는 것이 영성인 것이다. 우리는 연약함을 원치 않고 멀리하기에 대부분 연약함을 찾지 않는다. 우리는 흠이 없는 인생을 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경험이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인생에서 역사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즐거워하고 우리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게 하신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사도 바울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가시를 주실 때가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연약함이 찾아오고 하나님께서 그 연약함을 없애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이 우리의 능력이 아닌 그리스도의 능력을 깨닫게 하는 도구라고 봐야 한다. 우리의 연약함은 곧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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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민 목사님(새생명교비전교회-미국)
‘끈질긴 통곡기도의 능력’ 강준민 목사님
*사무엘상 1:10~20
 
반갑다. 오 목사님은 저에게 집처럼 설교하라고 하셨는데 아니다. 제 눈을 어디에 둘지 모르겠다. 오 목사님은 사랑의 교회가 집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저는 아니다. 저희 교회는 체육관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체육관에서 드리는 예배가 저희 집 같다. 이런 교회를 저에게 맡기도 않으시게지만 맡겨주신다고 해도 못 할 것 같다. 오목사님이시니까 가능하신 것이다. 기도에 관한 메시지이기 때문에 한나의 기도에 대해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
한나의 소원은 아들을 낳는 것인데 아들이 없었다. 한나 ‘이야기는 없었더라.’ 로 시작한다.
*사무엘상 1::1-2,
1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2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결핍, 다른 사람은 있는데 나는 없는 것이다. 결핍(缺乏), 모자라고 부족한 것이다. 거기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하신다. 신비롭다.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모자란지라, 없었더라. 없었기 때문에 소원이 한나에게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 소원에 관해서 관심이 많으시다. 각자의 소원이 다르다. 한나에게는 아들을 낳는 소원이지만 사람마다 소원이 다르다. 하나님은 물어보신다.
 
*요한복음 2:3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열왕기상 3:5,
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그렇게 말씀하시면 무엇을 구하겠는가?
 
*시편 37:4,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누가복음 18:41,
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엄청난 소원이다. 시각장애인이 보기를 원한다고 한다. 38년 된 병자를 찾아가셨다.
*요한복음 5:6,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 질문이 참 놀랍다. 38년 된 병자에게 당연한 것 같은데 많은 사람들이 낫기를 원하지 않는다. 병든 채로 살기를 원한다. 왜냐면 나으면 불편하거든,
*빌립보서 2:13,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이번에 제가 6년 만에 처음 고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모국을 방문하게 된 이유는 제 큰 딸과 두 손녀가 한국을 가보고 싶단다. 처음으로 두 손녀가 한국을 오고 싶은데 한국에 와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을 먹고 싶다고 한다. 컵라면도.~그래서 제 아내와 큰 딸과 손녀 둘이서 의합을 해서 저를 집에 두고 자기네들끼리 다녀오겠다고, 그런 수모를 품고 이야기 하다가 제 아내가 혼자 가면 고생할 것 같아서 제가 41년 만에 안식 월을 받아서 나오게 되었는데 딸과 손녀들의 소원을 들어주다가 제가 이번에 이 사랑의 교회에 와서 설교까지 하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 너무 감사하다.
 
아내가 5년 반 전에 폐암을 선고받았다. 6.5센티였다. 그래서 왼쪽 폐를 절단했다. 아내가 폐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 제 마음에 소원이 있었다. 아내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모든 집회를 다 취소하고 아내에게 전적으로 붙어서 몇 년 동안 살았다. 감사하게도 지금 5년을 넘겨서 이번에 같이 나오게 되었다. 사람마다 많은 아픔이 있다. 소원이 다 다른 것 같다. 제 마음 속에 5년 반 전에 소원은 “하나님 이미 목회 너무 어려운데, 아내가 고생 많이 했는데 하나님 꼭 살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기도했다. 지난 주 부활주일에 처음으로 외부에 나와서 예배를 드렸다. 제주에 아이들이 원해서 제주에 갔는데, 제주에 간 교회에서 설교를 부탁하셨다. 그냥 정말 예배를 드리고 싶었다. 모처럼 설교하지 않고 예배만 드리고 싶었다. 그래도 저를 안내해 주시는 목사님이 제가 덴버 대학교에 겸임교수로 있는데 목회학 박사과정 학생이어서 연락을 했더니 그래도 설교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20명 모였다.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20명도 안 된다. 목사님 두 가정이 함께 참여하고 저희가 둘이니까 합치면 20명쯤 되니까 아주 작은 교회인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다. 그런데 오늘 사랑의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다. 하나님이 크시고 놀라우신 분이시다. 거기 갔더니 결손 가정에서 성장한 아이, 그 목사님이 제주에 가서 처음 개척하는데 어른 들은 보이지 않고 아이들이 한 50명이 몰려왔다. 그런데 아이들이 결손가정 아이들이다. 어떤 아이는 어머니가 베트남인데 나이든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 낳고 그냥 아이를 두고 가버렸다. 그런 아이들이 교회가 열리니까 찾아와서 교회에서 살았다. 그 중에 한 아이가 쭈욱 성장해서 지금 찬양인도를 하고 있다. 아이의 소원이 무엇이냐면 미국을 가보는 것이다.
 
마침 그 교회에서 저를 안내해 주시는 목사님 한 분이 최근에 교회를 시작했는데 이름이 너무 놀라웠다. ‘천천희(天天喜)교회’이다. 너무 놀라웠다. 너무 감동이었다. 이 빠른 세상에서 천천히 교회가 좋았다. 목사님과 교제를 했는데 누군가가 천천히 교회라는 이름을 듣고 이름이 너무 좋다고 했단다. 하늘 천, 하늘의 기쁨이라는 뜻이다. 신자는 없고 그리고 학교 앞에다 ‘학교방 천천히’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이 와서 학원가기 전에 잠시 와서 거기 머물다 가는 것이다. 사모님은 아이들을 치유하는 그 미술치료사 자격증이 있는데 처음에는 5평짜리, 지금은 20-30평인데 아이들이 온다. 이름이 재미있다. 거-북이 놀이터, 아이들이 와서 함께 놀고 치유하는 곳이다. 치유를 하니까 부모들이 보내는 곳이었다. 목사님이 안내를 하면서 승합차로 안내를 하는데 오른쪽 문이 열리지 않았다. 10여 년 전에 아이들을 많이 전도했다고 받은 승합차인데 열리지 않는다. 목사님은 말씀을 안 하시는데 속으로 새로운 승합차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여겼다. 그런 것 같았다. 이번에 13개 교회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 한 교회가 승합차를 하나 헌신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안 되면 우리 교회에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살 때부터 그 사촌언니 등에 엎여왔던 결손 가정의 아이가 둘이 있었는데 그 목사님 사모님이 아이가 없다. 그 아이들을 친 자녀처럼 키우는데 얼마나 밝은지 모른다.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최근에 만난 아이들 중에 그렇게 행복하고 즐거운 아이들을 본적이 없다. 천천히 교회 목사님의 첫 딸에게 소원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LA가서 갈비 먹는 거랍니다. LA갈비, 뉴욕에 가서 치즈 케잌 먹는 것이 소원이다. 육지를 나가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제주도에는 많다. 사람마다 소원이 다르다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도 어릴 적에 제 어머니가 바느질 하셔서 키우셨다. 그리고 목회자가 되기로 했는데 설교를 너무 못했다. 신학대학 다닐 적에 설교를 못했다. 학점이 C를 맞았다. 그런데 오늘 사랑의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있다. 하나님 휴머러스 하신 분이시다. 어떻게 소원이 이루어질까? 오늘 각자의 소원이 다른 것 같은데,,, 첫째로...
 
I.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 소원을 갖게 하십니다.

-고통이 소원을 낳는다. 고통이 잘 반응한 것이 지혜이다. 고통을 소원을 갖게 되고 고통을 통해 소망을 품는 것이 것이 믿음이다. 한나의 이야기는 고통에서 시작한다.(삼상 1:6~7)
*사무엘상1:6-7,
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7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남편이 좋은데 한나가 아이를 못 나으니까 두 번째 아내를 데려온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 아이가 잘 나아서 첫 번째 아내인 한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심히 격분하게 했다. 그러므로 울고 먹지 아니했다고 한다.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서 남편이 아무리 잘해주어도 울고 먹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고통을 주는 사람은 주로 가까이 있다. 선교지 사람들 사랑하기는 상대적으로 쉽다.
 
*사무엘상1:8,
8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웃기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렇게 남자들이 무얼 모른다. 내가 그대의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고 한다. 웃기는 이야기이다. 남자는 평균 연령이 여섯 살 밖에 되지 않는다. 저도 집에 가면 여섯 살 밖에 되지 않는다. 남자가 철이 들면 죽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냥 데리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고통을 주는 자는 항상 가까이 있다. 브닌나가 괴롭힌다. 멀리 있는 사람은 선하기 쉽다. 선교지에 있는 사람들을 한 주 두 주 사랑하는 것 물론 어렵지만 그것은 쉽다. 그러나 한 평 땅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어렵다. 브닌나가 괴롭히고 그리고 또 하나가 있는데 원수가 남편이다. 이것은 웬수이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을 데려온 것이다. 펄벅에 대지를 보면 아무리 지붕이 넗어도 두 여자가 살만한 큰 지붕은 없다고 한다. 그런데 두 여작 사는데 얼마나 힘든가? 그래서 한나가 고통을 안고 기도하기 시작한다. 엘리가 보고 술 취한 여자로 생각하는 것이다.
 
*사무엘상 1:15,
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이제 고통은 소원을 창조하는 재료이다. 고통이라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신비하다. 브닌나가 없었으면 기도하지 않았을 것 같다. 소원을 갖지 않았을 텐데 고통이 기도를 창조한 것이다. 고통은 신비롭지만 우리 삶 가운데 아주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이다. 인생은 비극이다.희극이 많지 않다. 그래서 탁월한 작품들은 비극이다. 왜냐하면 인생이라는 그릇은 희극을 담기 어렵다. 희극과 비극이 같이 가는 건데 사실 희극보다 비극이 더 많다. 그래서 우리는 비극을 통해서 동감하고 위로를 받는다. 우리는 소원이 필요하고 갈망된다. 소원은 굉장한 에너지이다. 소원은 우리의 꿈이고 목표이다. 소원은 우리가 갖고 싶은 것, 우리가 갖고 싶은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갖고 싶은 것이 없다. 우리 때는 갖고 싶은 것이 많았다. 갖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이다. 갖고 싶은 것이 있어서 참 좋은 것인데 요즘 아이들은 갖고 싶은 것이 없다. 소원도 없다. 뭔가 내가 이루고 싶다는 것이 좋은 것이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것도 좋다. 선교 지를 가고 싶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런 소원을 가진 것은 참 좋은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것도 좋은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것도 너무 좋은 소원이다.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 얼마 전에 사랑의 교회에서 목회자 5천 명을 초청해서 섬겼다. 너무 감동했다. 오목사님이 참 훌륭하시다. 많은 목회자들이 위로를 받고 가셨고 선물을 받고 가셨다. 물론 어려운 목사님들도 계셨다. 위로가 되셨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한국교회 목사님들이 굉장히 사랑을 받았다. 사랑의 교회에 대한 좋은 소문을 듣게 되었다. 소원을 갖는다고 모두를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소원은 하나님께서 들어주지 아니하시므로 들어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 보다는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주신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는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가끔은 거절하신다. 우리가 절망 가운데로 몰아넣으신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망이 적절하지 않을 때, 우리를 절망케 하시므로 우리가 가진 소망보다 더 필요한 소망을 갖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절망시킴으로 진정한 소망을 갖게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 중에 하나인 것이다. 그런데 소원을 갖지 않는다면 소원을 이룰 수 없다. 그래서 소원을 성취하는 이유가 간단히 다섯 가지이다. 구체적으로 소원을 가져야 한다.
 
 
1] 구체적인 소원을 가지십시오.
-애매한 소원을 요구하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께 애매하게 기도하면 물으신다. 구체적으로 무얼 원하는지를, 애매하게 원하면 하나님이 되물으신다. 그래서 뭘 원하니?
 
 
2] 강렬한 소원을 가지십시오.
-기도를 해보니까 제가 감정이 들어간 기도가 강렬하다. 감정이 들어간 소원이 강렬하다. 이곳 사랑의 교회에서 쓰는 언어들을 보면 굉장히 강렬하다.(압도적인, 폭포수 같은 은혜, 목회자의 역할은 언어를 바꾸는 것이다.) 이러니까 이렇게 교회가 성장하고 그 놀라운 일을 이룬다. 오 목사님은 정말 대단한 언어를 사용하신다. 왜냐면 언어가 우리 교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여러분의 삶을 만들어 간다. 목회자의 역할은 언어를 바꾸는 것이다. 어떤 분은 처음 목회를 시작하시는데 욕밖에 안하시는 분도 봤다. ㅋㅋㅋ 알고 보니까 그분의 언어에 그릇 속에는 욕밖에 없다. 그런데 야단을 안 친다. 그분 안에 있는 것이 그건데, 거듭 가봐야 그 그릇에는 욕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은 그릇에 새로운 언어들을 담아두는 것이다. 새로운 언어들을 만들고 움직이는데 오 목사님이시다. 저는 오 목사님 뒤따라가느라고 늘 힘들다. 남가주 사랑의 교회를 오 목사님이 먼저 개척하셨다. 교회가 막 성장하는데 저는 로고스 교회를 개척했다. 뒤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어느 날 포기했다. 포기(抛棄), 안되겠다. 제게 주신 길을 가야지, 오 목사님 따라가다가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강렬한 소원, 강렬한 기도가 필요하다. 소원이 성취된 것을 확신해야 한다.
 
3] 소원이 성취될 것을 확신하십시오.
- 하나님은 결국 가장 선한 것으로 내 소원을 채우실 것이다.
 
4] 소원성취를 위해 끈질기게 기도하십시오.
소원이 성취되기 위해서 끈질기게 기도해야 한다. 기도 응답 받는 비결은 응답 될 때까기 기도하면 된다.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하면 된다. 소원성취하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새벽기도회 나오기 위해서 뉴스레터를 가져다 주셨는데 한 시에 일어나거나, 두 시에 일어나 나오셔서 차량 안내를 하시는데 정말 대단한 분들이 많다. 훌륭하시다. 사실 은혜를 받으려면 대가를 지불해해야 된다.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서 은혜를 받게 하신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 애절한 소원을 품고 눈물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눈물의 기도,
 
5] 소원을 성취하시 위해 대가를 지불하십시오.
 
*사무엘상 1:10,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서 은혜를 받게 하신다. 한나는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해 주는 분이 누구인줄 알았다. 한나는 브닌나

 
II. 하나님께 애절한 소원을 품고 눈물의 기도를 들으십시오.
 
*사무엘상 1:10,
한나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한나는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분께 갔다. 그 대상은 브닌나나 엘가나가 아닌 하나님께 나간다.
 
*사람은 우리를 괴롭히는 능력은 있지만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우리를 망까 뜨리는 능력은 있지만 회복시키시는 능력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회복시키시고 역전 시킬 수 었는 능력이 있다. 사람은 용서와 사랑의 대상이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한다.
 
*예레미아 17:7-8,
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여기서 통곡하는 기도, 눈물의 기도, 참 눈물이 중요하다. 오래 산다. 눈물을 여러분 많이 흘려라. 눈물은 많이 흘릴수록 좋다. 눈물을 흘릴 때 영혼이 깨끗해지고 정화되고 또 영혼의 창이 깨끗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 어머니는 참 고통스런 생애를 사셨다. 어릴 적 어머니를 보면 정말 불쌍했다. 그래서 한이 많았다. 제가 초등학교 때 학교 갔다 집에 오면 집에서 통곡 소리가 났다. 어머니의 눈물 소리이다. 가슴이 턱 내려앉는다. 어머니가 또 시작하셨구나, 집에 들어오면 소주병이 대병이 있었다. 어른들은 아신다. 아마 3/1은 마셨다. 그리고는 통곡을 시작하신다. 말려도 소용이 없다. 통곡을 하신다. 인생이 너무 어려워서... 저는 엽기능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저는 그래서 웬만한 가정은 다 이해한다. 다 이해한다. 그래서 어머니가 막 우신다. 하루 정도를 정신없이 우신다. 저희 누님이 간호사였다. 제가 막내아들이었는데 누님에게 가서 엄마가 또 시작했다고 하면 엄마를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엄마는 안 죽는다. 그러면서 와서 링거를 꽂아드리고 그러면 6개월 정도 지나간다. 한을 품은 것이다. 1년에 두 번씩 그렇게 하셨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가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셨다. 하나님을 만나 한을 푸시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기도가 놀라운 기도로 변화되기 시작하셨다. 여러분 사람 앞에서 울면 초라하다. 하나님 앞에서 울면 기적이 나타난다.
 
III.. 기도 응답을 받기까지 끈질긴 기도를 드리십시오.
 
1] 끈질긴 기도는 통곡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10~20,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통곡했다. 예수님도 통곡하신다.
 
*히브리서 5:7,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저는 가끔 통곡하며 기도할 때마다 참 마음이 절절 하다. 어떤 교회는 크게 기도하는 것 못하게 한다. 그러지 말라고 한다. 통곡하게 놔두라고 한다. 장례식에 갔다가 통곡하면 저는 가만 둔다.
 
2] 끈질긴 기도는 오랫동안 몰입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12~13,
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여러분 기도의 길이도 중요하다. 기도의 양을 채워야 한다. 섬김의 양도 채워야 한다. 수넴 여인이 엘리야를 섬기는데 정말 성실하게 섬긴다. 그랬더니 어느 날 엘리사가 감동을 받았다. 뭘해 주면 좋겠냐고 한다. 그러나 필요 없다고 한다. 그냥 섬기는 것이라 한다. 그랬더니 게하시가 이 집의 남편이 나이가 들었는데 아이가 없다고 한다. 엘리사가 이야기 한다. 엘리사가 이야기 한다. “네가 내년 이 맘때에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 라고 한다. 양을 채우는 것이다. 요단강에 나병환자가 일곱 번 들어갔다가 나온다. 6번째 까지는 기적이 안타나지 않는다. 일곱 번째에 기적이 나타난다. 엘리야가 비오기를 기도할 때, 여섯 번째까지 기도할 때는 하늘의 손바닥 만 한 구름도 나타나지 않는다. 일곱 번째 기도했더니 손바닥 만 한 구름이 나타난다. 기도의 양을 채웠다. 봉사의 양을 채웠다. 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느 순간에 역사가 나타나는데 내일이 제일 고비라는데 특새에,,, 내일 오신느지를 보겠다. 양을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 오래 기도하고 깊이 기도하기를 바란다. 기적이 나타난다. 이것을
 
3] 하나님은 끈질긴 기도를 통해 소원을 성취하도록 도와주십니다.
-기도했더니 엘리가 아주 그 당시에 영적으로 아주 타락한 엘리 대제사장이 한나를 축복해준다.
*삼상 1:17~18,
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그 당시에 엘리를 존중하지 않았다. 엘리의 두 아들이 제사를 멸시했다. 예배를 멸시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때이다. 엘 리가 영적으로 어둡다. 한나가 기도를 하는데 술 취한 줄 안다. 그런데 한나가 기도하면서 엘리 속에 있는 감추어진 거룩을 본다. 엘리를 무시하지 않는다. 존중한다. 하나님이 엘리를 심판하지만 엘리를 존중하는 한나를 축복한다. 엘리가 축복한 것을 ‘아멘’으로 받는다. 그러면서 여종이 당신의 여종이 은혜입기를 원한다고 하고 가서 다시는 한나는 엘리의 축복을 받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이 없었다. 여러분 가끔 부족한 목회자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 목회자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고 존중하면 기적이 나타난다.
 
뭐냐면 눈이 열리면, 영안이 열리면 누구에게나 있는 거룩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신비롭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을 쓰지 않는다. 자기 도덕이 강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감추어진다. 왜 아론을 쓰시는가? 여러분, 모세가 제일 혼돈스러울 때가 뭐냐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40일 동안 말씀하시면서 거룩한 지성소에서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죄를 대속할 사람으로 아론을 세우라 말씀하셨다. 40일 만에 내려왔더니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왜 금송아지를 잡고 그렇게 죄를 범한, 가장 큰 죄를 범한 아론을 대 제장으로 삼고, 이스라엘의 전체 죄를 대속하는 사람으로 세웠을까? 왜인지 아는가? 아론은 그날 이후로 어떤 사람의 죄도 정죄할 수 없다. 온 이스라엘 어떤 죄보다도 자기 죄보다도 작다. 모세는 살인자이다. 하나님이 복음의 핵심은 우리의 도덕이 아니다. 복음이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이 무슨 일을 했냐가 중요하지, 우리가 얼마나 도덕적으로 의로우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도덕적으로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의를 내 세운 사람들은 교만하다. 남을 잘 정죄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했는데 그 사람들은 누구나 정죄한다. 자기가 도덕성이 강하기 때문에 정죄한다. 이제 영적으로 학대를 한다. 아무도 정죄하지 말라고 하셨다. 간음하는 여인이 현장에서 잡힐 때 예수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고 말씀하셨는데 교회에서 자꾸 정죄한다. 교회를 안 나오려고 한다. 저는 도덕과 윤리를 무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도덕과 윤리가 우리를 구원하는 게 아니다. 한나가 엘리를 존중한다. 재미있는 것은 다윗이 사울을 존중하는 것이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누구냐면 원수를 존중한 자이다. 자기의 경쟁자를 존중해야지 경쟁자가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잘 하고, 잘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존중해야 한다. 그 까짓게,,,그러면 배우지 못한다. 좀 잘하고 이렇게 놀랍게 역사가 나타나면 그것을 기뻐해야지, 배우는 것이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이다. 보라 얼굴이 근심 빛이 없으니까 한나의 몸에 치유가 나타난다. 몸에 조화를 이루니까 남편과 동침을 하니까 아이를 넣게 된다. 왜냐면 사실은 마음에 병이 들었던 것이다. 격분하니까 분노가 많은 것이다. 그러니까 몸이 제대로 기능이 발휘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근심이 없어지니까 변화가 나타난다.
 
*사무엘상 1:19-20,
19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20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참으로 어머니의 기도가 중요하다. 자녀를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것은 책망도 아니고 잔소리도 아니다. 기도이다. 오영석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제가 미국에 가서 2년 동안 모셨는데 참 훌륭한 목사님이신데 교회는 50명을 넘기지 못했다. 이제 나중에 사모님이 소천을 받으셨을 때 장례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들이 장례 오신 분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어머니의 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막 우는 것이다. 목사님 아들이 당황을 했다. 고등학교때 방황하고 집에도 늦게 들어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자기가 고등학교 때 방황할 때 열시 열두시 새벽 두시 세시에 들어오면 어머니는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다. 기도하면서, 들어오면 아무 이야기도 안 하시는데 한 마디, “왔냐?” “자라” 그리고 들어가신다. 그리고 수없이 어머니는 한 마디 책망도 아니 하시고 기도하신 어머니, 기도 때문에 제가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아들이 잘 되었다. 큰 기업의 지사장이 되어 베트남에 가서 많은 선교사를 도왔다. 나중에 어머니, 아버지 집을 사주었다. 어머니가 아프셨는데 어머니를 살리려고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는지 모른다. 어디서 막 울면서 새벽 두 시 –네 시 끝까지 기도하시다가 들어오면, “왔니? 자라.” 그 기도가 변화하게 한 것이다.
 
저희 어머니가 제가 목사가 된다고 하니까 너무 좋아하셨다. 내가 바느질해서 키우는데 그러면서 어머니가 약속하셨다. 내 평생 동안 너를 위해서 새벽기도를 드리겠다. 어머니는 평생 동안 기도를 드렸다. 제자 군에 간 뒤에 저희 어머니가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다. 3/1을 교회에서 철야기도를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다. 산에 기도하려고 올라가는데 비를 철철 맞으면서 기도를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머니의 기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생각한다. 제가 복을 많이 받았다. 어디까지 복을 받았냐면 제가 잘 될 수 있도록 제가 복을 받았다. 어머니의 기도 때문이다. 그런데 제가 아주 망가지려고 할 때, 딱 멈추는 복을 받았다. 완전히 2009년도에서 3년 동안 정말 어려웠다. 그때 저는 완전히 망가지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저를 힘들게 하는 분들이 제 모든 것을 빼앗겠다고 이야기 했고, 저를 감옥에 집어넣겠다고 했다. 얼마나 고생 했나 모른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의 기도로 다 망하지 않고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 제가 오 목사님이 초청해서 오는데 옛날이야기가 생각난다. 로고스 교회를 떠나 그 다음 교회로 가는데 오 목사님이 찾아오셨다. 인사 한마디를 하력 하니까 목사님이 저를 보고 교인들 앞에서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라고 하셨다. 그 다음표현은 더 어려운 표현이다. 말씀을 하셔도 그렇게 말씀을 하실 수가 있나? 나중에 인제 남가주 사랑의 교회를 떠나 사랑의 교회로 오시는데 제가 목회하는 교회를 오셨다. 제가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라고 했다. 뭐 저도 들은 이야기가 그거 밖에 없으니까, 그래가지고 우리 두 사람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부메랑이다. 저보다 오 목사님이 훨씬 더 고생하셨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저의 어머님의 기도, 오 목사님의 부모님의 기도, 눈물 흘리신 기도가 오늘 사랑의 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물론 오 목사님이 자신 있는 것도 있다. 그러나 “뭐 그거 가지고 되겠나?” 하시는 말씀 등등,,, 행간에 그런 소문도 있지만 그것은 아니고 부목님의 기도가 아닌가 한다. 이번에도 목사님 아드님이 오기호 목사님인데 교회를 새롭게 개척하셨다. 오기호 목사님 제가 멘토이다. 오 목사님이 부르신 것이 아마도 아드님 멘토라서 부르신 것 같다. 시간이 많이 갔다. 나머지는 내일 이야기 하겠다.
 
♣요약
고통이 소원을 창조하는 기도가 되었고, 고통이 기도를 이끄는 재료가 되었으니 참회를 낳고 또 회개를 통해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졌음을 깨달아서 사울 왕을 세우고 다윗 왕을 세우고 그리고 예수님을 세우신 하나님, 하나님은 끈질긴 기도를 통해 소원을 성취하도록 도와주시니 애절한 마음, 통곡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깊이 해야 한다. 주님의 나라를 세워가고 원수조차도 사랑하는 마음이 되면 주님은 축복하시니 항상 한나처럼 기도하고 하찮게 보이는 자도 존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사랑의 빛을 온 열방에 비추는 아름답고 거룩한 교회가 되기를 소원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너끈히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한나의 기도에서 볼 수 있듯이 온 몸과 온 심령을 다 바쳐 하나님을 갈망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한다. 인간은 삶 속에서 매순간 닥치는 고통을 기도로써 극복해야 한다. 중보자의 사명은 하나님의 요구와 죄의 심판과 약속을 전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 가운데 항상 중보자를 통해서 자신의 뜻을 알리시어 인간들로 하여금 당신의 뜻을 따르게 하셨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새로운 계약의 중보자로 세우시어 우리를 구원하길 원하신다. 구약 성경에서는 보통 출생 때 갖게 되는 이름이 그의 활동이나 장래를 나타낸다. 그러나 중간에 이름이 바뀌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어떤 계기를 통해서 마음이 거듭난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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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차 봄 글로볼 특별새벽부흥회(하나님께서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주후 2023년 4월 11일)-둘째 날(화)
제목: "에즈버리 부흥을 묵상하며"
말씀: 마태복음 5:6
설교자: 케빈 브라운 박사님(애즈버리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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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의 신음”
말씀: 에베소서 6:18
설교자: 김한요 목사님(LA 베델교회 담임)
-------------------

*마태복음 5:6,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에베소서 6:18,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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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브라운 박사님(애즈버리대총장)-"에즈버리 부흥을 묵상하며“
*마태복음 5:6,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애즈버리 대학교에서 인사드립니다. 저는 미국 켄터키주 월모어에 있는 애즈버리 대학교 18대 총장인 케빈 브라운이다. 저는 미국 켄터키 주 월모어에 있는 애즈버리 대학 총장이다. 39개 주의 280개 이상의 대학교에서 방문객들이 찾아왔다. 사랑의 교회 글로벌 특새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린다. 지난 2월에 애즈버리 대학교 캠퍼스에서 며칠 동안 이어진 집회에 대해 여러분과 나눌 수 있어서 참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우리 인간의 언어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다. 지난 2월에 16일 동안 제가 경험한 일은 평생 보지 못한 일이었다. 사람의 말로는 그 16일 동안 보고 느낀 점을 온전히 다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욥기서에 보면, 욥은 하나님께 자신이 겪은 고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하나님은 욥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신다. 욥기 42장에서 욥은 이렇게 말한다.

*욥기 42:3,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기의 문맥과 다르지만 저도 비슷한 입장에 있는 것 같다. 제가 확실히 못하는 것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애즈버리 대학교에서 일어난 일이 너무 놀라워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애즈버리 대학교에는 일주일에 세 번 채플이 있다. 이것은 애즈버리 대학교가 설립된 이래로 계속 이어진 전통이 앞으로도 계속 일주일에 세 번 예배를 드릴 것이다. 여러 방면에서 2월 8일에 있었던 채플은 어느 예배와 다를 바 없던 예배였다. 수요일 아침. 저는 제 사무실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렸다. 설교 후 찬송을 부르고 예배는 끝난 상황이었다. 저는 제 책상에서 일어나 예정된 회의에 들어갔다. 이후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데 아내가 저에게 학생들이 아직도 채플에서 찬양하고 있다는 문자를 보냈다. 더 많은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늦은 오후 즈음에 뭔가 특별하고 이전과는 다른, 게획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그 시간 동안 직접보고 느끼고 경험한 말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16일 동안 이어진 집회에서 5만 명이 다녀갔다. 수백만 명이 ‘애즈버리 부흥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을 찾아봤다. 39개 주의 280개 이상의 대학에서 방문객들이 찾아왔다. 미국과 해외 전역에서 목마르고 절박한 영혼들이 휴즈 강당으로 왔다. 말 그래로 모든 족속과 언어와 민족이었다. 멀리서 함께 참여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다른 장소들과 혐력해서 밤새도록 현장을 생중계할 수 있었다. 저는 이렇게까지 하나님을 구하고 회개하는 절박한 영혼들이 모이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리고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간증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따뜻하게 사람들을 맞이하고 선의를 베푸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당시 분위기는 정말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이를 두고 ’성령님의 조용한 임재‘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는 겸손, 긍휼, 하나님의 사랑, 적나라한 고백, 회개, 풀어진 속박, 무너진 견고한 진, 축성,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증거, 진실한 기도, 삶을 바꾸는 헌신을 봤다.

저는 우리 대학 학생들이 최선을 다하는 멋진 모습을 봤다. 모두가 자기 할 일은 뒤로 한 채, 재정비하며 지치지 않고 일했다. 때로는 밤낮으로 일하며 질서 정연하고 방문객을 환영하는 환경을 만들고자 애썼다. 점점 지역으로 몰려드는 사람의 수가 많아지자 리더들은 빠르게 대응하고 협력해야만 했다. 질서가 세워졌는데, 그것은 사람의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잘 드러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이는 일부러 만들어 내거나 조작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 힘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이 상황을 그저 받아들였다. 상황을 보고 대처하는 이 모든 일에 ‘신뢰’가 이었다. 변화로 인해 신뢰의 단계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상황을 대처하는 이 모든 일에 ‘신뢰’가 이었다. 변화로 인해 신뢰의 단계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이 역사적인 애즈버리 부흥집회를 위해 애쓴 사람들 속에는 깊은 신뢰가 자리 잡았다. 이 기간 동안 애즈버리 대학에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는 뉴스와 SNS가 쏟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가 보는 가운데 벌어지는 이 일에 이름을 붙이고 싶어 했다. 부흥인가, 아니면 갱신인가? 성령의 부으심인가? 대각성인가? 대체 이 일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가? 모두가 목도하는 이 시ㅏ건에 가장 맞는 신학적 용어는 무엇일까? 애즈버리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해석을 보면서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시각 장애인이 때문인가? 그의 죄 때문인가? 아니면 그의 부모의 죄 때문인가? 예수님이 이 시각 장애인의 눈을 뜨게 해주신 후에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어서 이 사람을 불렀다. 바리새인은 예수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가 죄인인지를 물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유명한 대답을 했다.

*요한복음 9:25,
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사람들은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을지를 궁금해 한다. 또는 이 현상이 부흥인지 아닌지 묻는다. 이에 대한 저의 대답은 ‘모른다’이다. 그 시각 장애인처럼 저도 ‘제가 아는 것은 이것이다.’라고 답할 뿐이다. 5만 명의 목마른 영혼들이 이 예수님을 찾으려고 한 자리에 모였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목마름에 응답하시는 것을 봤다. 우리 가운데 어떤 움직임이 있었던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이 달콤하고 부드럽고 선하고 의롭고 진실하다는 것을 안다. 사람들이 짓눌려 있던 삶의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생각지도, 만들지도 못하는 방식으로 나타 나셨다는 것도 안다. 우리가 예전과 같을 수 없다는 사실도 안다. 제가 아는 건 이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인간의 노력이나 재주 때문에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 역시 안다. 애즈버리 대학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도 아니다. 미리 계획한 일이나 프로젝트도 아니었다. 전문 찬양 팀이나 유명한 설교자로부터 비롯한 일도 아니다. 돈을 많이 쓴 마케팅이나 광고 캠페인의 산물도 아니다. 제가 본 것은 더 깊고, 더 진실하고, 더 충만한 것을 바라는 절실함과 영혼의 목마름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에 응답하셨다.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이웃들과 화목하고 싶은 자들은 복을 받을 것이다. 이를 추구하는 자는 배부를 것이다. 예수님은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화목이 제일 우선인 이들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핵심을 알게 되었다. 이 현상은 그리스도의 연합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모습인 것 같다. 우리는 연합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인간의 담론으로 여기거나 바람직한 조직 같은 희망사항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기독교 전통에서 연합은 희망사항이 아니다. 사도행전 4장 32절에서 연학은 요구이다.

*사도행전 4:32,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행전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한마음 한 뜻이 되었다고 말씀한다. 고린도전서 10장은 성도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한다.

*고린도전서 10:17,
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갈라디아서 3:28,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바울은 우리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리고 에베소서 4장에서 그리스도인은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바울은 로마서 6장 5절에서 우리도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같은 죽음 즉, 우리 자아와 죄를 죽임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파격적인 말을 했다.

*로마서 6:5,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요한복음 17장에는 연합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나온다. 예수님은 획일성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 되는 것과 같은 연합을 찬양하셨다. 예수님은 한 번만 언급하신 것이 아니라, 다섯 번이라 기도하셨다. 성경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 되라는 이 분명하고도 구별된 부르심을 간과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연합은 제자와 공동체룰 향한 요구이다. 오랫동안 저는 기독교 내의 분열이 심화되는 모습에 무거운 마음의 짐을 느껴왔다. 우리 중에 분열에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 연합에 대해, 특히 어떻게 하면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연합을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은 많을 것이다. 저는 시간이 갈수록 우리의 자아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라고 확신한다.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 저는 겸손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완전히 엎드리는 것이다. 예수님이 만물을 다스리는 통치자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런 모습을 ‘십자가를 본받는 삶’이라고 말한다. 저는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의 가득 찬 삶’이라고 말한다. 이런 삶이 요한복음 17장에서 말하는 연합이라고 생각한다.

*열왕기하 10:15,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본문으로 한 존 웨슬리의 유명한 설교가 있다.
※“네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그러면 나와 손을 잡자.”
-존 웨슬리-
-네 마음이 옳고, 내 마음이 옳고, 우리 마음이 옳으면 다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경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애즈버리 대학교 캠퍼스에서 목도한 놀라운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은 그리스도의 응답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서 있었는지 생각해보자. 세상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살펴보자. 정치 양극화, 사회불안, 인종차별, 전쟁, 경제 불확실성과 더불어 코로나 펜데믹을 겪어야만 했다. 교회를 보자. 교회에 좋은 점이 많이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구언 사역을 위한 도구이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교회가 너무 시장화 되어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교회의 타락을 보심 알 것이다. 신앙과 삶의 불일치를 보자. 주일과 월요일의 삶이 너무 다르다. 제자도의 잘못 된 개념도 보자. 제자도는 단순히 믿음을 확인하거나 전반적인 삶이 변하지 않고 교회 콘텐츠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나날이 떨어지는 교회 신뢰도를 보자. 사회 속에서 교회가 차지하던 중요도가 사라지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의 불안, 우울, 중독, 자살 충동이 심하다. 우리 안에 만연한 외로움도 보자. 21세기에 들어서 절망사가 점점 크기 늘어가고 있다.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이러한 불안정한 현상을 너무 많이 접하게 되어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SNS로 인해 이념적 성향이 점점 고착화 되고 있다. 이런 모든 현상을 보고 새롭고 신선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많은 이들이 의에 주리고 목말랐다.

최근 몇 주 동안 이들이 자유로워지고 치유 받고 화해하고 고백하고 죄와 짐과 두려움을 내려놓았다. 견고한 짐이 무너졌다고 간증했다. 누군가가 이를 두고 우리에게 영적인 눈이 있다면 풀린 쇠사슬로 덮인 제단을 볼 것이라는 멋진 말로 표현했다. 많은 이들이 갈등의 부재를 넘어선 이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평화를 경험했다. 또한 그들 안에 하나님의 영이 충만함을 경험했다. 이로 인해 새 생명을 느꼈다. 실제적이고 진실한 무언가를 갈망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는 그저 만족이나 화력하고 비싸고 최첨단이고 즐거운 것이 아니다. 실제적이고 선하고 올바르고 진실한 것을 바랐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요한복음 17장에서 말하는 연합을 경험했다.

애즈버리 대학에서 일어난 이 역사적인 부흥집회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바로 ‘그리스도 중심’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집회로 하나가 되었다. 이 집회로 겸손해졌다. 이 집회로 회개(悔改)했다. 이 집회로 자유로워졌다. 이 집회로 새 삶을 얻었다. 이것이 바로 저의 간증이다. 제가 본 것은 이것이다. 이 말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애즈버리 대학에서 일어났던 역사의 궤도는 더 뻗어 나갈 것이다. 불을 비유로 설명할 수 있다. 불은 가장 높게 치솟을 때 가장 밝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캠퍼스에서 엄청나게 커서 잊혀 질 수 없는 큰 영적 모닥불을 경험한 것이다. 불은 가장 높게 치솟을 때가 가장 밝다. 그러나 불길이 잦아들고 있을 때 가장 뜨겁다. 일어난 일이 잠잠해지거나 끝나 보일 때도 마찬가지이다. 제가 바라는 것은 애즈버리 대학에서 일어난 불이 꺼지지 않는 것이다. 저는 이 불길이 앞으로 계속 활활 타올라 번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불을 다시 비유로 들겠다. 전 세계의 다른 학교와 교회 사역 단체들이 이 불길을 이어받아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고 세상의 빛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복음과 소망을 전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긍휼한 마음으로 연약한 공동체를 섬기고 돕기를 기도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요약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고 구별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겸손해지고 이웃과 공동체를 도우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이 세상에서의 외적인 빈곤과 비천한 상태에 대한 계속적인 예로 이해한다.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을지라도 만약 그들이 선한 양심을 위해서 그리고 선한 양심을 가지고 이러한 곤란들을 겪는다면 그들은 복이 있다. 그러므로 고난을 받는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자. 심한 압제를 받으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처지를 변호해 주시도록 조용히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들은 때가 이르면 만족하게 될 것이다. 만족하되,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나타나실 때 보여 주실 지혜와 자비를 보고 크게 만족할 것이다. 의가 여기에서는 모든 영적 축복들을 가져오는 근거로서 제시된다. 모든 영적 축복들이 그리스도의 의에 의해서 우리에게 주어진다. 새 사람이 되는 것,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는 것 그리스도와 그 약속들에 관심을 갖는 것, 이것들이 곧 '의'이다. 우리는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한다. 우리는 진정으로 그리고 실제로 의를 갈망해야 한다. 영적인 복들에 대한 우리의 갈망은 진지하고 끈질겨야 한다. 구해야 한다. 배고픔과 갈증은 자주 발생하는 욕구로서 새로운 만족을 요구한다. 소생한 영혼은 끊임없는 의의 양식을 요구하며 매일 매일의 일을 수행하기 위한 은혜의 양식을 필요로 한다.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애써 일할 것이다. 그처럼 우리도 영적인 복들을 바라야 할 뿐만 아니라 정해진 수단들을 사용하여 그 복들을 얻기 위해 수고해야 한다. 이처럼 주리고 목말라 하는 자들은 그와 같은 복들로 배부를 것이다. 첫째, 그와 같이 갈망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 은혜를 바라는 모든 욕구가 다 은혜는 아니지만(가장되고 희미한 욕구는 은혜가 아니다) 이와 같은 욕구는 은혜이다. 그것은 좋은 어떤 것의 증거이며 보다 나은 어떤 것의 보증이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일으키시는 욕구이다. 둘째, 그들은 그와 같은 복들로 배부를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바라는 것을 충분히 만족할 만큼 그들에게 주실 것이다. 영혼을 만족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며, 그의 은혜와 은총만이 영혼이 정당한 욕구에 적합하다. 하나님은 주린 자들을 배불리시되, 차고 넘칠 정도로 풍족히 주시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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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의 신음”
말씀: 에베소서 6:18
설교자: 김한요 목사님(LA 베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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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18,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풋볼에서 쿼터백은 사령탑의 지시를 받는다. 지상 현장에서는 전반적인 상황을 보는 시야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 땅에서 살아갈 때는 잘 보이지 않지만, 위에서 보면 다 보인다. 모든 일을 영적으로 결부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역사와 악한 영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무시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영적 전시 상황에 있다. 잠을 자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깨어 기도하라, 깨어 구하라는 말은 전시에 불침번 서듯이 그 연통을 유지하라는 말이다.

I. 깨어 구하라
-‘기도’란 전시상황의 워키토키와 같다. 인생이 전쟁임을 믿기 전 까지 기도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기도는 전시에 사명 완수를 위한 것이다’ - 존 파이퍼 - 기도를 그러한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집의 초인종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다.

II.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 기도의 폭은 인격의 폭이다.
※-‘크리스천으로서 우리의 최대 궁극적인 신분은 우리의 기도 생활로 그 인격이 측정된다. 이것은 말씀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나에게 있어 성경에 지식보다 저 중요한 것은 딱 하나이다. 그것은 기도이다. 나의 성경에 대한 이해와 지식은 나의 기도하는 양에 절대적으로 비례하기 때문이다.’-마틴 로이드 존스 -

2) 기도는 나의 정체성
-기도는 인격을 넘어 정체성이다. 기도를 듣고있다보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의사였지만 뒤늦게 사명을 받고 목회의 길을 걷게 되었다. 말씀에 대한 집중력과 강해 력이 탁월하시다. 그렇게 지적으로 말씀을 깊게 탐구하시는 분이 말씀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력보다 중요한 것은 기도라고 말씀한 것이다. 들어보면 그 사람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엄마의 기도, 남편의 기도, 순장의 기도, 담임목사의 기도가 있다. 정체성을 기도로 드러내기를 바란다.

3) 기도는 하나님과의 사귐-주님과 친밀하라.
※-‘제가 다시 강조하는 사실은 크리스천의 삶은 기도드리는 시간의 양으로 궁극적으로 검증된다. 그러나, 저의 말은 오해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의무라고 말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맞다 기도는 의무이다. 그러나, 의무 그 이상이다. 기도는 기쁨이며, 크리스쳔의 삶의 가장 궁극적인 표현이어야 한다.’ -마틴 로이드 존스-

-이는 기도를 많이 한다고 장땡이라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정확히 바리새인의 모습이다. 기도는 인격의 폭, 됨됨이 라고 하였다. 그러나 기도의 양은 그 이상을 말해준다. 3분이면 기도가 금방 끝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에서 오래 산 한 성도가 간만에 재회한 부모님과 30년 동안 못 만났다가 만나니까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할 말이 없다고 하면, 그간 떨어져 지냈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도는 관계이자 교제라 할 수 있다. 기도의 양은 친밀성이자 관계의 밀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요한복음 17:3,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은 예수님을 아는 것이라 하였다. 기도를 들어보면 그가 예수님과 친한지 알 수 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는 아래 구절과 상통한다.

*빌립보서 4:6,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모든 형태의)와 간구(간절한 특별요청)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기도의 능력은 화려한 문장에 있지 않다. 기도의 생명력은 간절함에 있다. ‘주여!’는 ‘당신만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십니다.’라는 뜻이다.

※마치 막내딸이 아빠에게 선물을 구하고 받는 과정처럼 간절히 아뢰는 것이 중요하다. 막내딸의 요청이 해외에 나가면 아른거린다. 이처럼 우리의 기도도 하나님이 아른거리시지 않을까? 그런 기도와 응답이 있기를 바란다.

III. 성령 안에서 기도
-기도는 요술방망이가 아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는 적절한 범위가 있다. 그렇다면 성령 안에서 드리는 기도가 무엇일까?

*로마서 8:26-27,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희망찬 것은 우리가 기도를 잘 못할지라도 그에 대해 주께서 원하시는 최선을 우리에게 응답하신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신다. 하나님 아버지가 알아들으신다. 또박또박 멋있게 하는 기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절박함으로 간절함으로 주의 이름을 외칠 때 성령께서 중보 하신다. 하나님의 놀라운 기도응답의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를 중보기도 해주신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의 축복이다. 성령께서 탄신하며 신음하며 기도하신다는 것이다. 음!!~~ 라고 해도 다 아신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초심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특새에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있기를 소원한다.

♣요약
연약하기 짝이 없고 어떻게 기도할지 모르지만 주님 안에 있기에 성령 안에 있음을 믿고 성령의 도고와 중보를 기도해야 한다. 주님 앞에 외치는 기도가 간절하게 상달되어서 모든 기도가 응답되기를 소원하며 주님의 뜻이 우리의 삶 속에 일어나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가지고 주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와 가정이 영적 계보를 이어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음에도 응답해 주심을 믿고 늘 주관자이신 주님 앞에 모든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 엎드려 기도해야 한다. 

-영적 전쟁의 수행 방법으로써 바울은 성령 안에서 항상 깨어 기도하되 함께 은혜를 나누는 주위를 위해 기도하고 복음의 비밀을 맡은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때로 이웃이 어려움을 당하여 권력에 복종할 때가 있다. 이럴 때는 힘을 다해 이웃을 격려하고 그들이 믿음 가운데 거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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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차 봄 글로볼 특별새벽부흥회(주후 2023년 4월 10일)-첫째 날(월).
제목: “주님의 마지막 부탁”
말씀: 요한복음 13:34-35
설교자: 릭 워렌 목사님(새들백교회)

제목: “세상을 흔드는 기도”
말씀: 사도행전 4:23-31
설교자: 김한요 목사님(LA 베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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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3:34-35,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사도행전 4:23-31,
23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24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오.
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29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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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워렌 목사님(새들백교회)-주님의 마지막 부탁(요한복음 13:34-35)
*요한복음 13:34-35,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사랑의 교회 성도 여러분께 문안 인사드립니다. 여러분 모두를 너무 사랑합니다. 이 귀한 특별새벽부흥회에서 말씀을 전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전에 캘리포니아주 애나하임에 있는 남가주 사랑의교회 특새에서 말씀을 전한 기억이 난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오전현 목사님과 저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 사이이다. 저는 오정현 목사님을 형제처럼 아끼고 사랑한다. 그리고 사랑의 교회의 모든 분들을 사랑한다. 저는 새들백교회의 원로목사이자 ‘목적이 이끄는 삶’의 저자이다. 그리고 ‘Finishing the Task’라는 글로벌 연합체의 대표이기도 하다. 저희는 예수님이 주신 대 위임명령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교회, 교단, 선교단체, 복음주의 기관들과 함께 2023년까지 ‘Finishing the Task’에 동역할 예정이다. 사랑의 교회가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연합체인 ‘Finishing the Task’와 동역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음을 알고 있다. 저는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사랑의 교회가 귀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자, 요한복음 13-17장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향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과 기도가 나온다. 목회자, 또는 교회 지도자라면 마지막 말, 유언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아실 것이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하는 마지막 말은 중요하다. 요한복음 13장부터 17장에서 먼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겟세마네서의 기도가 나온다. 여기서 말씀하신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예수님께서 언급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말씀하셨는가? 십자가에 매달리시기 전에 어떤 생각을 하고 계셨는가? 요한복음 13-17장까지 예수님이 가장 많이 말씀하신 두 가지 주제는 사랑과 연합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인 성도간의 ‘사랑과 연합’에 대해 가장 많이 말씀하셨다. 이게 바로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이다. 여기에서 ‘사랑과 연합’을 21번이나 언급하셨다. 여러분에게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요한복음 15장 9절에

*요한복음 15:9,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한복음 15장 12-13절에서도 또 나온다.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이어서 사랑을 측정하는 방법이 나온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장 17절을 보면
*요한복음 15:17,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사역 적 전략, 계획, 목표, 도구, 협력에 대해 말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서로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기도 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 말씀을 나누셨다. 그 후에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셔서 고별 기도를 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시기 전에 이 기도를 들었고 이 장면은 요한복음 17장에 나온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 대 위임명령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에게 하나가 되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네, 다섯 가지로 말씀을 드리겠다. 이는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비전이다. 요한복음 17장 1-2절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의 시작이다
*요한복음 17:1-2,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요한복음 17장 1-8절은 지난 삼 년 동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사역을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일종의 보고이다. 9절부터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요한복음 17:1-9,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그리고 제자들과 사도들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체포되시기 직전까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셨다. 그 이후에 십자가에 매달리셔서 여러분을 위해 죽으셨다. 요한복음 17:9-11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도이다.

*요한복음 17:9-11,
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그들은 바로 여러분과 저를 가리킨다. 그리고 다음 문장을 잘 들어보라.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첫 번째 기도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나이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 부분이 바로 예수님이 기도하시면서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처음 언급한 부분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기도 전체를 아우르는 핵심 주제이다. 예수님은 십자가형을 분비하시면서 하나 됨을 여러 번 언급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향하시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주제는 바로 예수님의 가족, 그리스도의 몸이자 신부인 교회가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17장 20-21절에서 예수님은 하나 됨을 더 언급하셨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셨다.

*요한복음 17:20-21,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이 사람들은 21명이 아니라, 실제로는 11명이다. 여기서 ‘그들의 말과 기도로 믿는 사람’은 여러분과 저를 가리킨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 역시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다.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에서 하나 됨의 주제를 볼 수 있다.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되고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된다. 잘 보라. 전도의 연합의 결과물이다. 이게 바로 전도이다. 우리가 하나 되었기 때문에 이 세상은 믿게 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리기 바로 직전까지도 제자들이 사랑 안에서 하나 되는 것에 크게 관심을 두셨다. 이는 요한복음 17장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비전이었다. 예수님의 기도제목임과 동시에 소망이기도 했다. 이미 다른 게 더 중요했다면 예수님은 그것을 언급하셨을 것이다. 십자가에 매달리시기 전 예수님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바로 예수님의 가족이자, 몸인 교회의 연합이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께서 하나가 되라고 명령하신 이유가 나오는데 그중에서 다서 가지만 살펴보겠다. 이번 특별새벽부흥회 기간 동안 우리가 할 일, 즉 예수님의 대 위임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여서 할 일이다. 우선 여러분에게 서 너 가지 정도 그 이유들을 말씀드리겠다.

첫째, 다른 성도들과의 연합은 스스로 경험하는 구원받았다는 증거이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가시기 전 요한복음 13:34-3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3:34-35,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 내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증거는 체에 붙어 다니는 범퍼 스티커나 기독교 상징물, 십자가 목걸이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제자라는 증거는 바로 다른 성도들을 향한 사랑이다.

둘째, 성삼위일체가 우리의 연합을 위한 예가 되기 때문이다.
-삼위일체는 하나 됨의 모델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요한복음 17장 11절에서 이렇게 설명하신다.
*요한복음 17:11,
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다른 성경 번역본에서는 “그들의 연합이 마치 우리의 연합과 같게 하옵소서.”라고 번역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이 하나이신 삼위일체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연합의 모델이다.
셋째,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는 우리가 하나 되어 살게 해달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17:21,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앞에서는 세상이 알게 된다고 했고 여기서는 세상이 믿게 한다고 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께로 오는 사람들, 믿음 앞으로 나오는 사람들, 구원으로 오는 사람들, 하나님의 가족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으신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을 성도들의 연합체로 묶으신다. ‘메시지 성경’은 21절을 이해하기쉽 게 번역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와 한마음 한뜻이 되는 것, 이것이 내 기도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참으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해주십시오.”라고 번역한 메시지 성경의 이 구절이 참 마음에 든다. 이는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비전이자 목적이다. 여러분의 배경에서, 여러분의 영역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와 그리스도 몸의 일부로서 특별새벽부흥회 기간 동안 한마음 한뜻이 되자고 요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기도 중 다음 구절은 하나 됨의 네 번째 이유이다. 바로 22절이다.

넷째, 하나님께서 영광을 주시는 목적은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17:22,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장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주셔서 우리가 하나 되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주시는 목적은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성품이다. 하나님의 임재이다. 하나님의 권능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내 성품, 임재, 권능을 그들에게 주리라.” ‘내가 그들에게 영광을 주었으니 하나님의 임재가 너희들의 삶 속에서 나타나게 하리라. 더 가혹한 자세가 아니라, 더 독선적이고 고집부리는 태도가 아니라, 더 비판적인 태도가 아니라, 정말로 사랑이 충만한 그런 성품, 그 사랑으로 우리가 하나 되게 하겠다.‘ 라고 말씀하신다.

형제자매 여러분께 한 가지 질문을 하겠다. 여러분 삶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길 원하시는가? 물론 원할 것이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느끼길 바라시는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길 소망하시는가? 예수님은 서로 다른 이들을 포옹하고, 서로 다른 이들과 하나 되기에 최선을 다하는 자들에게 영광과 능력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이로써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주신 대 위임명령을 이루게 하실 것이다.

다섯째,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 하나(one) 되지 않으면 세상을 얻지(won) 못한다
-성도가 하나 되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우리가 주님의 사람인 것에 대한 가장 큰 증거가 된다.
*요한복음 17:23,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이렇게 기도하셨다. 23절에 두 번째로 성도들의 연합으로 세상을 얻는 것 즉, 대 위임명령을 성취하는 것을 연결하셨다. 주님은 그리스도인이 하나(one) 되지 않으면 세상을 얻지(won)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제 방식으로 표현해 보겠다. 믿지 않는 사람들 입장에서 우리 안에 있는 것이 그들에게 좋아 보인다면 그들은 우리가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 공동체를 사랑과 하나 됨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 이 세상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고선 그리스도께로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리스도인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그리스도인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7장에서 기도하신 사랑과 연합의 삶을 살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번역본은 23절을 이렇게 번역했다. “그들이 성숙함으로 하나 되면 하나님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셨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들도 사랑하신다는 증거를 보여주게 된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하나 됨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음을 여러분께 말씀드렸다. 일곱 가지 이상 더 말씀드릴 수 있지만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며 이 말을 하고 싶다.

‘분열은 비전을 죽인다. 이 말을 꼭 기억하시기 바란다. 필기 하시면 좋겠다. ‘분열은 비전을 죽인다(Fragmentation kills vision).’ 우리가 하나 되지 못하면,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세계 복음화를 이룰 수 없다. 아프리카 속담 중에 ‘물 한 방울로는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비 한 방울로는 못 하지만 많은 빗방울은 사막을 정원으로 만들 수 있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 대 위임명령을 이룰 수 없다. 여러분 힘으로는 가능한가? 여러분도 혼자 힘으로는 하지 못한다. 심지어 여러분의 교단과 기관 혼자만으로 못 한다. 우리는 절대 혼자서는 못한다. 우리 모두가 하나 될 때만 가능하다. ‘분열은 비전을 파괴시킨다(Division destroys vision).’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다. 함께 할 때, 힘이 생긴다. 예수님은 여전히 우리가 예수님의 기도 응답이 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이번 특새 기간 동안 일어날 역사들이 요한복음 17장의 예수님 기도의 응답이 시작되는 시점이 될 것이다. 지금 예수님은 서로 다른 배경과 믿음의 전통을 가진 우리 모두를 내려다보시며 그리스도의 몸으로 함께 나와 대 위임명령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것을 기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해 주시길 소원한다. 여러분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요약
주님이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을 기억하여 다른 성도들과의 연합하고 스스로 경험하는 구원받았다는 증거로 살아가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주시는 목적이 우리가 하나 되는 것임을 깨달아서 늘 서로 한 뜻으로 나누고 세워가며, 우리가 하나(one) 되지 않으면 세상을 얻지(won) 못한다고 하셨음을 알아 더욱 하나로 뭉쳐서 주님의 자녀로서 본이 되고 주님을 전하는 아름다움을 갖추어 가야한다.

-첫째, 제자들이 하나 되기를 기도하셨다. 너무도 믿음이 약한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져버릴 것을 염려하여 마음과 뜻과 목적이 하나 되게 해주시기를 기도하셨던 것이다.
둘째, 악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적대시하는 세상에 남아 있을 것이므로 제자들이 악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하셨던 것이다.
셋째, 전도를 위해 기도하셨다. 즉 제자들이 그분의 도구로서 세상에 속하지 않고 말씀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며 살기를 기도하셨다.
넷째, 하나님께서 영광을 주시는 목적은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이다.
다섯째,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 하나(one) 되지 않으면 세상을 얻지(won) 못 한다.
예수님의 영광은 십자가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아니 하시고, ‘영광을 얻었다’고하셨다. 즉 십자가는 형벌이 아니요 곧 영광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복종하는 것이 영광이다. 인간은 자기 뜻대로 행해서는 영광을 얻을 수 없다. 영광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순종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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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요 목사님(LA 베델교회)-세상을 흔드는 기도.(사도행전 4:23-31,
 
*사도행전 4:23-31,
23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24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오.
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29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기도가 더 많이 필요한 상황이다. 팬데믹 때, 예배 금지령을 받았을 때 큰 충격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시기를 지난 후 성도들이 어깨 붙이고 앉지 않는 분위기로 바뀐 것을 본다. 사도행전은 성령 강림 이후 불같은 열정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을 선포하자, 교회의 성장을 억제하려는 반대와 핍박에 봉착하게 된다.

사도행전 3장에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나면서 걷지 못한 장애우를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의 이름으로 걷게 했던 기적이 일어났다. 상대적으로 무능했던 종교지도자들은 사도들의 권세를 시기하여 베드로와 요한을 구금하여 박해했다. 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사탄은 가장 싫어한다. 만사를 악한 영, 사탄과 연결하여 생각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악한 영의 움직임을 완전 무시하는 태도는 더 위험하다.

베드로와 요한의 구금 소리를 듣고 예루살렘 교회는 무릎을 꿇고 간절한 기도를 드리게 된다. 고난당하는 교회는 기도로 응전했다.

1. 하나님의 속성, 성품을 기억하면서 기도했다.
대 주재여!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온 우주 만물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전능자이심을 기억하고 기도하라. 루터와 에라스무스와의 논쟁 중에 루터는 ‘당신의 하나님은 너무 작다’라는 비판을 에라스무스를 향하여 했다. 우리가 기도하는 하나님은 어느 정도의 스케일을 지닌 분이신가? 대 주재이신 하나님이시다.

2. 25절,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시편 2편을 읽으면서 기도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 성령님을 묵상하며, 그 말씀의 예언대로 이루어짐을 확신하며 믿음보고하면서 기도했다. 누가 주인공인가? 기도하는 자가 주인공이다. 교회가 흔들리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오로지 대 주재이신 하나님께 기도하면 땅이 진동하는 역사로 응답하셨다. 세상을 흔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세상을 흔드는 하나님을 경험할 것이다.

*예레미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오 목사님께서 남가주 사랑의 교회에서 40일 특새를 하실 때에 남가주에는 특새 바람이 불었다. 도전을 받고 벧엘교회도 40일 특새를 했는데 놀라운 부흥을 경험했다. 250명 들어오는 본당에 300명 이상이 회집하여 미국 신문에도 기사화되기도 했다. 웨일즈 부흥기록을 보면서 발견한 사실이 있다. 교회는 항상 먼저 무릎으로 가야 한다. 계획보다 기도가 앞서야 한다. “주님, 교회를 무릎 꿇게 하소서(Lord, bring the church to its knees!).”라는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교회를 꺾으시고, 교만한 무릎을 꺾어 무릎을 꿀리소서! 뻣뻣한 교회의 무릎을 꿀리게 하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공급 받는 교회의 우리의 무릎을 꿇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는 그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자. 그리하여 세상이 교회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를 통해 우리 하나님께서 세상을 흔드는 놀라운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축원한다.

♣요약
은혜 가운데 이 시대의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무릎을 꿇고 주님 앞에 나아가 우리 형편이 기도를 막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기도를 통해 기도의 진보가 나타나는 역사가 되기를 기도하여야 한다. 기도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역사가 나타나고, 글로벌 특별새벽부흥회에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 교회를 흔드는 모든 악한 세력들을 물리쳐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며 하나님께서 막아주실 줄 믿고 세상을 흔드는 기도가 되고 우리가 구하는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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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담임 목사님
-목사님 통해 또박또박 주셨는데 어느 것 하나라도 여러분 것으로 확인 될 줄 믿는다. 우리의 시추에시션을 주님이 다 알고 계시니 복음의 진보가 되게 해 주시길 기도한다.
첫째 날(월), 공동 기도제목
“하나님께서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역대상 4:10)=“God Granted What Was Requested”-1 Chronicles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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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1월 14일)
제목: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
말씀: 열왕기상 18:20~39
대표기도: 김정한 안수집사님(예배부 안내총괄팀장)
찬양인도: 예배부 봉사자
말씀읽기: 김다니(소년부) 이시우(초등부)
 
설교자:제이슨 하버드 목사님(국제기도커넥트 대표,
이충희 목사님(Blessed International Church)-초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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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왕기상 18:20~39,
20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로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23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24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25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붙이지 말라.
26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27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28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29 이같이 하여 정오가 지났고 그들이 미친 듯이 떠들어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르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31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열두 개를 취하니 이 야곱은 옛적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32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33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34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35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
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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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하버드 목사님(국제기도커넥트 대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국제기구 커넥트를 통해서 또 여러분을 섬길 수 있어서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 제가 어딜 가든지 항상 한국교회를 고맙게 생각하면서 한국교회를 축복하고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해서 여러분들이 돌파하고 계신 것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감사하다. 오늘 우리가 볼 말씀은 열왕기상의 말씀이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갈멜 산에서 일어났던 사건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다. 성경책에 나오는 야훼가 아닌 우상인 바알을 섬기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을 어기고 있었다. 신명기 11:17절에 말씀처럼

*신명기 11:17,

17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이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 이 신명기 말씀에서 나왔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 엘리야와 함께 우리l가 볼 수 있다. 이 이스라엘은 당시에 농업 국가였기 때문에 비가 오는 것이 매우 중요했었다. 만약에 미국으로 친다면 월 스트리트를 완전히 무너뜨리셔서 더 이상 돈으로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것과 돈이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과 같다. 굉장히 무서운 심판으로 다가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상숭배에 대해서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셨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야고보는 야고보서에서 엘리야가 마치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 라고 한다. 우리가 마치 기도하는 거처럼, 우리처럼 엘리야가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 다시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응답하셨다고 이야기 한다. 이스라엘은 3년 반 동안이나 비가 한 번도 오지 않은 가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3년 반 가뭄의 시간을 통해서도 여전히 이스라엘 왕인 아합 왕은 회개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자인 엘리야를 보내서 그를 책망하셨다. 그래서 엘리야가 전혀 알려지지 않는 상황에서 아합 왕에게 나타나서 ‘당신이 회개’를 해야 만이 하나님께서 비를 주신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 말씀을 볼 때 제가 참 놀랍게 생각하는 부분이 마치 우리와 같은 인간이 나나타서 3년 반이나 되었던 가뭄이 멈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말을 하나님께서 듣고 계신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이 열왕기상 18장 말씀이 아주 우리 기도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갈멜 산에서 일어났던 이 전투를 통해서 어떤 신이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신 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의 적을 물리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엘리야 선지자가 이 바알 선지자들에게 갈멜 산에서 모여서 누가 진짜 신이신지를 겨루어보자고 한다. 그래서 엘리야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열왕기상 18:19,
19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
- 엘리야가 이렇게 요청한다. 엘리야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과연 누가 진정한 신이신가? 라고, 이 갈멜 산은 사실 바알의 신이라고 불리는 바알을 숭배하던 산이었다. 하나님을 섬기던 제단이 무너져 내리게 되고 이제 바알을 섬기는 제단이 서 있던 곳이었다. 그래서 엘리야 선지자는 그들이 그 신을 섬기는 그 장소에서 만나길 원했다. 그래서 사실 그곳에서 무언가 즐거움을 가지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하나님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바알을 선택할 것이냐? 를 종용했던 것이다. 이 엘리야 선지자의 심정이 이후에 그가 올린 기도에 잘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 이 일을 통해서 백성이 누가 참신이신지 알게 하옵소서!” 이 하나님의 이름이 이제 그 위기 가운데 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런 동일한 일을 우리가 나라들 가운데서도 볼 수 있다. 힌두교도와 또 불교를 믿는 사람들과 이슬람권에 있는 사람들 중에 85%나 되는 사람들이 전혀 기독교인들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 있다. 현재 전 세계는 하나님의 이름이 흔들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 주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옵소서!“ 어떻게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줄 알겠는가?
 
그래서 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거짓 선지자들이 불을 내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을 때에 수 시간 동안 기도했고 또 열심히 춤을 추었으며 심지어 자해를 하면서 불을 달라고 염원했다. 이제 드디어 엘리야가 하나님께 불을 달라고 요청할 때에 세워 놓은 제단위에 물을 붓기 시작한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오늘 “하나님이 누구신지 이 사람들이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 주옵소서! 하나님, 내 음성에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이 하나님이 누군지 알게 하옵소서!” 엘리야가 어떤 기도를 올려드리고 있는가?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라고 기도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 보여주셔서 내가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사람들이 알게 하옵소서.” 라고 엘리야가 기도 하자마자 하늘에서 불이 떨어진다. 이 제단에 있었던 희생제물을 받으시고 완전히 태우시는 것을 보면서 백성이 외친다. “참 신이시구나! 하나님이시구나! 우리의 하나님은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성경책에 나오는 불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이 성경책에 나오는 불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서 제단 위에서 태우시면서 불로 임재하시는 것을 많이 본다. 마치 이 엘리야에게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을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불이 그 제물위에 임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의 삶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린다. 하나님의 능력과 그 권능으로 하나님의 임재로 우리의 삶을 태워주시길 바라고 있다. 우리의 기도는 늘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내어 놓는 것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왕국이 이 땅 가운데 임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그래서 이 땅 가운데 모든 것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이 보여지 하옵소서.’ 마치 천국에서 그러하듯이 이 땅 가운데, 이 모든 창조물들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에 그
영원한 뜻들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의 삶을 하나님 앞에 내어드릴 때, 온 맘을 다히새 마치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을 순종하게 된다. 엘리야가 보았던 그대로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그대로 볼 수 있는 것 같다. 제가 섬기고 있는 사역 가운데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작은 열쇠를 가지고 하나님의 그 큰 문을 열 수 있다고... 하나님의 나라 가운데 여러분이 굉장히 작고 연약하다고 느끼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기도라고 불리는 이 작은 열쇠를 여러분들이 쥐고 하나님께 내어드릴 때, 하나님께서 엄청나게 큰 문을 열어주시고, 여러분을 사용하실 줄 믿는다. 아멘... 위고레 목사님과 함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마음으로 이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 저희가 2032년까지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미 종족들 가운데에 성경과 그리고 믿는 사람들이 드러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계속해서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저희는 이 사역이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 돌파해서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모든 영역에서 주님의 이름이 드러나기를 기도하고 있다. 더 기도할수록 더 능력이 드러날 것이다. 적게 기도한다면 적게 능력이 드러날 것이다.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능력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저희가 여러 교단과 여러 가정 교회들을 살펴본 결과 90%에 가까운 이 미 전도된 사람들은 110여 개의 도시 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110여 개의 도시들에서 우리가 함께 마음을 모아서 전략적으로 그리고 계속해서 유지 될 수 있는 기도 운동을 해야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우리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도 함께 이 도시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린다. 작년에 이 기도운동을 시작했을 때에 그래서 여러 국가에 있는 교단들과 또 가정교회들을 통해서 그 결과를 이제 듣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이름을 드러내고 그리고 예배를 드높이고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그 기도를 계속해서 드리는 가운데 57만 개나 되는 교회들이 새롭게 세워지는 것을 발견했다. 800만 명의 성도들이 세워진 것이다. 만약에 11억 명이나 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110개 도시들에 새롭게 세워진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의 응답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실 것이라 믿는다. 함께 기도하겠다.
 
♧요약
-하나님의 아들을 기업으로 허락하시고 우리 영 가족이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영적 갈멜산에서 엘리야의 심정으로 간구하고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모든 죄의 습관과 우상을 태워주시고 하버드 목사님의 사역도 인도하셔서 국제기도커넥트 사역을 통해서 미국과 여러 나라와 도시에 복음이 되게 기도하며 이충희 목사님의 사역을 통해서도 불길처럼 복음이 전파되어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사역이 되기를 소원해야 한다. 우리도 엘리야의 기도처럼 불로 응답하심을 믿고 복음과 부흥을 위해 충성과 헌신으로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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