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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0년 12월 20일)
제목: "찬하의 왕의 귀한
말씀: (스가랴 14-1-11절)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사회: 윤하중 목사님.
찬양인도: 이원준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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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 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 네 가운데에서 나누이리라.
2 내가 이방 나라들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당하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3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이방 나라들을 치시되 이왕의 전쟁 날에 싸운 것 같이 하시리라.
4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 산은 그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5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이를지라 너희가 그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하리라.
6 그 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것들이 떠날 것이라.
7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8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9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
10 온 땅이 아라바 같이 되되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쪽 림몬까지 이를 것이며 예루살렘이 높이 들려 그 본처에 있으리
니 베냐민 문에서부터 첫 문 자리와 성 모퉁이 문까지 또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왕의 포도주 짜는 곳까지라.
11 사람이 그 가운데에 살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평안히 서리로다.
12 예루살렘을 친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은 이러하니 곧 섰을 때에 그들의 살이 썩으며 그들의 눈동자가
눈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들의 혀가 입 속에서 썩을 것이요.
13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크게 요란하게 하시리니 피차 손으로 붙잡으며 피차 손을 들어 칠 것이며.
14 유다도 예루살렘에서 싸우리니 이 때에 사방에 있는 이방 나라들의 보화 곧 금 은과 의복이 심히 많이 모여질 것이요.



▶천하의 왕의 귀환” (스가랴 14:1~11)(The Return of Our Cosmic King)

1. 코로나로 인해 ‘잃어버린 한 해’가 아니라 말씀을 통한 ‘회복’이 일어나기를

[ 본문해석 ]

1. 스가랴에서 예언된 예수님은 ‘겸손’하게 오셨지만 ‘천하의 왕’으로 귀환하신다(슥 14:9).

• 새끼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슥 9:9), 은 삼십 세겔에 팔리시고(슥 11:12, 13),

찔린 바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슥 12:10) 부활의 대반전을 일으키신다.

2. 스가랴 14:4,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 스라갸 서를 해석할 때, 문자적으로 해석할 것인가? 영적으로 해석할 것인가? 포괄적으로 해석할 것인가?

 

Ⅰ. 고통의 때 (1~5절)

1. 고난의 때에 ① 재물이 약탈되고 ② 성읍이 함락되고 ③ 가옥이 약탈되고 ④ 부녀가 능욕을 당하고

⑤ 성읍 백성의 반이 포로로 사로잡혀가는 큰 재앙이 예루살렘에 온다(스가랴 14:1,2).

2. 스가랴 14:3,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이방 나라들을 치시되 이왕의 전쟁 날에 싸운 것 같이 하시리라”

• 신명기 3:22, “…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

• 역대하 32:8, “…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 시편 116:8,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3. 고통의 때에 나타난 하나님의 증거

1) 자연계의 지각 변동

• 스가랴 14:4,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 산은 그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2) 스가랴 14:5, “…모든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하리라”

• 골로새서 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Ⅱ. 새 창조의 반전 (6~8절)

1. ‘빛의 부재’는 ‘새 창조’의 반전을 이루는 것이다.

• 요엘 2:2,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새벽 빛이 산 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
-한마디로 유혈사태와 예루살렘에 큰 재앙이 온다는 것이다. 불성곽으로 보호하신다는데 대조적이다. 이것은 새로운 구원을 주시기 위함이다.

2. 본문 6절에서 “빛이 없겠고”라고 했으나, 7절에는 “빛이 있으리로다”라고 했다.

이것은 ‘옛 창조’가 ‘새 창조’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 이사야 60:19, 20, “ 19.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20.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

 

 

3. 새 창조의 의미를 조금만 깨달아도 우리는 ‘새 힘’을 얻고 우리 ‘믿음의 용량’이 커진다.

4. 새 창조의 빛은 ‘자연의 빛’이 아니라 ‘계시의 빛’이다.

• 요한계시록 21:23~25, “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5.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5. ‘생수’를 통한 새 창조의 반전이 있다.

• 스가랴 14:8,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 요한복음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 시편 42: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Ⅲ. 우주적인 통치와 왕권 회복 (9~11절)

1.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신다.

• 스가랴 14:9,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

• 이사야 54:5, “…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2. 우주적 격변이 일어나 예루살렘(교회)이 존귀함을 얻고 평안히 서게 된다(슥 2:4의 성취).

1) 예루살렘이 우주적 왕권의 중심지가 된다.

• 스가랴 14:10, “온 땅이 아라바 같이 되되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쪽 림몬까지 이를 것이며

예루살렘이 높이 들려 그 본처에 있으리니…”

2) 예루살렘에 저주가 있지 아니하고 구원의 날이 임한다.

• 스가랴 14:11, “사람이 그 가운데에 살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평안히

서리로다”

3.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믿는 자들에게 ‘심판의 날’이 임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상 그 날은 ‘구원의 날’,

 

성경을 언약적으로 보아야 한다. 1-2절 예수님이 재림하기 전헤 약탈되고
-한마디로 유혈사태와 예루살렘에 큰 재앙이 온다는 것이다. 불성곽으로 보호하신다는데 대조적이다. 이것은 새로운 구원을 주시기 위함이다. 3절에 그 어려운 시기에 주님깨서 나아가셔서 고난의 때에 주님이 용사가 되어 주신다는 것이다. 특별히 3절 뒤에 이왕에(이전에) 전쟁날에 싸운 것같이 한다는 것이다. 전날에 고난이 있었던 것처럼한다는 것이다. 과거에 전쟁에 싸우셔 주신 것처럼 용사가 되어 주신다는 것이며 주님의 직접 개입을 찬양한다. 영적으로 보면 사탄의 능력으로 우리가 고난을 당하게 되기도 하는데 그때 하나님은 출동해 주신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하신다. 역대하 32: 8절과 신명기 3:22절에 하나님이 용사가 되어서 친히 싸워주신다는 것이다. 지금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에게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고난의 때에 우리를 위해 싸워주신다는 것이 체험되어야 한다. 우리를 위해서 싸우시는 경험하지 못하면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 무엇이겠는가? 기적의 떡과 미라클 밀을 지난주에 했듯이 오썸ㄴ뉴이어 해야 한다.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시편 116:8절에 내 발을 건져 주셨다고 하셨다. 세상의 흉폭으로 인해, 눈물나게 하는 대적과 주님이 싸워주심을 믿어야 한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작동해야 한다. 4-5절에 지각변동이 나온다. 그이 발이 감람산에 있을 때 산 가운데가 갈라졌다. 특별히 8절에 지하에 샘이 흘러서 5절에 산골짜기로 도망하는데 유다왕 웃시야 때처럼 도망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하신다. 나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모든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오신다고 하신다. 거룩한 자들은 신앙의 선배, 천사들과 함께 나팔소리로 강림하신다는 것이다. 고통의 때에 주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신다. 14:6절에 주의 날이 임할 때 빛이 사라진다. 그날이 오면 햇빛도 달빛도 없어진다고 말씀하신다. 어둠이 임한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굉장히 심각하다.
-빛의 부재는 새창조의 반전이다. 아모스와 요엘서에 2:2절에 보면 심판에 날은 본래 빛이 없다. 스가랴서는 빛이 사라져도 새로운 빛의 출현을 말씀하신다. 새로운 회복, 새창조의 길이 온다는 것이다. 6절, 빛도 없다가, 7절에 빛이 있게 된다고 한다. 대 반전인 것이다. 옛 창조의 빛이 새 창조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우리의 상황이 어려워도 옛 사람이 새 사람이 되고 새로운 자가 된다는 것이다. 영광의 순전함과 광엄한 빛이 된다는 것이다. 낮과 밤이 사라지고 새로운 창조가 되며 밤이 없고 빛만 있다는 것이다. 옛 창조 낮과 밤이 새로운 창조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이다.새빛 이사야 60:19=20절에 제자훈련의 금과옥조의 구절이다.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되며,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하나님의 옛 창조가 물러가고, 새 창조로 대반전 한다는 것이다. 조금만 깨달아도 평생 믿음의 용량을 키울 수 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우리 주님이 오실 때에는 모두가 필요없고 주님이 오심 형광들이 필요없다. 어떤 다른 것도 필요없다. 세상의 인위적인 것에 의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 21:23-25절에 성령이 새롭게 하심으로 놀라운 은혜가 되게 하신다. 계시의 빛이 주님이 깨닫게 될 것이다. 가능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조금만 내것으로 삼아도 나의 생애가 달라진다. 이 내용을 깨달아지면 믿음의 용량이 커지게 된다. 이 코로나 생중계로 함께 반응해야 한다. 모든 사역자와 중직자들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여호와의 빛을 믿어야 한다. 놀라운 선지자들의 영안을 우리에게도 확인되기를 바란다.
14:8절에 생수가 예루살렘에 솟아나서, 성전에게 물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오늘 이 교회라고 말하고 있다. 이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생수가 흘러나온다는 것은 기적이다. 그곳은 물이 귀했다. 바벨론은 강이 있었다. 이스라엘은 물 부족 국가였기에 결정적 축복인 것이다. 계절에 상관없이 환경에 상관없이 생수가 흘러 내린다는 것이다. 새창조를 말씀하신다. 시온성과 같은 교회 생명 샘이 솟아나와 언제든지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는 것이다. 빛의 대반전, 생수의 대 반전이 될 것이다. 전염병과 파괴적인 열악 가운데에서도 생수의 대반전이 일어날 것이라 믿어야 한다. 생수의 대반전에서 확인하고 삶을 기대하며 물댄 동산 같이 될 것임을 믿고 신뢰해서 날마다 샘솟는 것을 고백하고 체험하길 바란다. 하나님은 새로운 반전을 주시기 때문이다.
미국 갈때 천 달러 가지고 갔다. 몇 천 만불 되는 교회를 지었고, 아무것도 없는데 생수의 강을 주신 것이다. 물댄 동산을 주셨다.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주심을 믿기에 지금도 확신한다. 시편 42:7절에 주의 폭포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은혜의 폭포가 되어 날마다 인생 가정, 모두가 대 반이 되어 축복해 주시길 바란다. 

우주적인 통치와 왕권 회복(9-11)
주님의 재림의 축복으로 반지의 제왕을 만든것처럼, 우리는 천하의 왕이 되시기에 오직 홀로 하나이신 왕이 되신다는 것이며 천하의 왕이 되신다는 것이다. 이사야 54:5절에 온 땅에 하나님이라 하신다. 10절에 예루살렘 높이 들려 - 우주적 대 격변을 말한다. 우주적 왕권의 중심이 되고 예루살렘이 영적 중심지라는 것이다. 여기에 천하의 왕이 되셔서 아라바처럼 평지처럼 되고 예루살렘만 우뚝 서게 된다는 것이다. 11절에 -예루살렘을 교회로 본다. 저주가 있지 않고, 교회가 평안하다는 것이다. 성곽없는 도시이며 한계없는 것이며 저주가 없다는 것이다. The day of The world! 저주가 아닌, 은총과 구원이다. 저주=> 구원이 된다는 것이다. 이말씀을 유지하면 세상 사람들이 저주가 은총이 된다는 것이다. 예수 믿는 자들이 저주 받았다고 하지만
우리는 여호와의 날이며 은총과 구원이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는 그 순간 빛이 빛이고, 눈이 멀어졌지만 심판이지만 은총과 구원의 날이며 회복, 영광의 날이었다. 그날이 저주의 날이 아닌 것이며 구원이며 은총이며 생수의 날이다.
남들이 저주라 여길 때 우리는 은총과 구원이다. 이사야가 눈을 떠서 이사야 9:6절에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남들은 저주라고 하여도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이 땅에서 영존하신 구원의 날이 될 것이다. 모든 성도들 한국교회 모두가 참된 구원의 날의 심판의 날이 생수의 날이 될 것이다. 이 사실을 믿기에 억울함ㅇ도 있지만 결정적 순간에 나는 술수를 쓰지 않는다. 정말 힘들때 사람의 술수를 사용하지 않고 주님의 은혜를 베푸시길 신뢰하고 기도한다. 남을 살리고 남을 비판하고 뒤에 묘략을 하지 않겠다고 평생 살고 싶다. 누구를 치지 않고 살아왔다. 결정적인 순간에 인간적인 것을 쓰지 않았다. 어려울때 여호와를 의지해야 한다. 정치적, 외교적으로 술수를 쓰면 모두가 慘담했다. 시편 2:112절에도 있다. 성탄에 하나님과 입맞추는 자 됭어야 한다. 마귀는 교회를 조롱하고 비웃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최고의 동방박사들에 예배한 것처럼, 천하의 왕을 경배하고 귀환을 믿고 천하의 왕께 찬양을 올려 드리자.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라고 하면 부담을 갖지만, 우리는 회개도 (안심)하고 할 수 있다. 주님 앞에 깨어지는 것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천하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보좌에 나와 예배하게 하심을 감사하다. 우리를 위해 이땅에 오신 주님으로 이 세상이 빛이 되고 생수가 되기를 소원한다. 각 방마다 성탄절에 중직자들이 20명씩만 모여서 예배하길 바란다.  성탄절 예배를 평소와 같이 인터넷으로 예배드린다.

-요약-

-그리스도의 재림의 목적 ( 14:1-8 )
세상의 심판과 통치를 위해 이스라엘의 구원과 택한 자들을 모으시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상주시기 위해, 사탄을 멸하고 성도들을 영접하기 위해, 성도의 몸을 변화시키고 죽은 자들을 일으키시기 위해, 성도의 구원의 완성과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이다.

이스라엘의 고난의 끝 ( 14:1-11 )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고난은, 메시야 왕국이 도래할 때에 끝나게 된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자와 함께하시며 모든 자들의 왕이 되실 것이다. 유대인의 여호와의 날( 14:8 )이 날은 이스라엘이 대적을 짓밟는 날이지, 자신들의 죄악의 대가를 치르는 날은 아니다. 이 날에 거하는 자는 거룩한 자이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구원의 확신과 더불어, 하나님 앞에 신실하고 정직하게 살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삶의 모습을 변화시켜 나가야 하겠다.

열방들에 대한 징계 ( 14:12-14)
이스라엘을 공격한 열방들에게는 살과 눈과 혀가 썩어들어가는 재앙이 임하고, 상호간에 전쟁을 일으켜 자멸하게 되며, 재물을 빼앗기고, 육축도 재앙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를 박해하면 영원한 멸망을 당하게 됨을 의미한다.

성탄 주일에 겸손하게 오시는 예수님이 천하의 왕으로 귀환하실 것을 확신하며, 날마다 생수의 대반전을 경험하는 평생되기를 간구하며, 우리가 주님께 회개 할 때에 친히 대신 우리를 위해 싸워주시며, 모두가 약한 자가 강자로 되는 우주적 통치의 중심지로 거듭나고 비상하길 소원한다.  이 어둠의 시대에 영원한 빛을 대망하기를 기도하며,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이 땅과 우리 교회와 가정, 사회 나라에 새창조의 역사가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우리는 사명과 확신이 꽉차서 영원한 빛의 대반으로 될 것을 믿는다. 우리의 인생의 천하의 왕이시기에 경배와 찬양하기 원하며
인간적인 모습으로 해결하지 않고 술수를 사용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여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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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0.12.19)

제목: "성탄 새벽송"
말씀: 누가복음 2:11-14절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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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11-14)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epilogue~
온라인 생중계때 온 마음을 더 쏟아 붓는다.
아름다운 새벽송을 하게 되어 감사한 일이다. 찬양, 테너, 가야금과 기타에 은혜가 정성을 다했으니 기쁨이 충만하게 주어서 감동한 것 같다. 목양 9팀이 나와서 줌과 인터넷으로 예배하니 넘 좋다. 그 가정을 보이게 해주시라고 했더니 한 번씩 가정을 비추어 주길 바란다. 서로 벽이 없이 소통이 되는 길이 되어야 한다. 모두가 집중하여 참여하면 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온라인 생중계로 모두가 든든히 서갈 수 있기를 바란다.

누가복음 2장 11-14절
짐이 많을 때마다 위로가 되는 것은 크리스마스 캐롤과 성탄 송을 들으면 위로가 된다. 8월에도 마음의 위로가 되어 듣게 되면 더 은혜가 된다.
캐롤은 이미 2천년전부터 성탄이 시작되었다. 한국교회 통합이 되어가고 있으니 한국교회 총 연합회에 성탄목이 올려져 있어서 은혜이고 감사이다. 우리 교회가 글로벌 교회이다. 그러니 미국 텍사스에서 어떤 성도가 온라인으로 등록을 해서 교회에서 온라인으로 심방을 했다. 2년간 은혜가 늘 있어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글로벌한 예배가 되어서 온 교회에 은혜가 넘치기를 바란다.

본문에 두가지 구주가 태어나심의 기쁨을 주셨다.
2:11절
1 - 구주가 나셨다.-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Jessus is The Lord)
에수님은 우리에게 구주가 되셨다. 지저스 이스 로드!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셨다. 모든 성도들의 신앙의 강력한 기초이다.
초대교회는 훈련이나 완성된 교회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삼위일체 교회도 아니었다. 초대교회가 그 신앙을
순전하게 지킬 수 있는 것은 지저스 이즈 더 로드이다Jessus is The Lord). 예수님의 우리 주님이시다. 초대교회가 그 한 가지로도 복음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교회의 주인이시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시다. "우리 모두의 주님이시다". 한국 교회의 주님이시다. 성탄 새벽송이 마음마다 가정마다. 연말연시를 특별히 채워주실 것이라 믿는다. 우리 모두가 주님이신 것을 알게 한다.

2:10절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 우리는 기쁜 소식의 대상인 온 백성이다. 사랑의 교회 대상이며 친 백성이다.
이 소식을 누가 들어야 하는가? 온 백성에게 올더 피플(All the peaple)에게 미칠 큰 기쁨이다. 이 새벽송이 온 백성들이 들어야 한다.  헤롯왕과 그 측근들은 아기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미칠듯이 큰 기쁨의 소식이었다. 우리 모두가 대상이 되고 자연스럽게 치밀어 오늘 기쁨이 되는 것이다. 그 순간 선택받은 사랑으로 기쁜 것이다. 그 은혜가 무조건적이다. 우리는 주님으로 인해 구원을 받았으니 기쁨이 넘쳐야 한다.

2 - 이 기쁨의 대상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이 성탄의 기쁨으로 위로가 되고 은혜가 되고 예수님이 주인되게 하기를 기도하면 북한까지도 은혜를 더하시길 기도한다


-요약-
정결의 샘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모든 우리 교회와 한국 교회 영가족을 통해서 새 언약의 빛이 나라와 열방에 비추어져 어둡고 힘들고 지친 자, 길잃은 자들에게 옳은 길로 돌이켜서 주님의 기쁨이 넘치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와 친밀함으로 성탄의 은혜를 누리며, 거리두기로 사회의 흐름이 다시 회복되어 모두가 한 마음으로 온전한 상태로 회복되길 소망한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 온 백성이 주님이 구주이심을 기뻐하고 찬양하는 성탄이 되고 연말연시를 주님과 동행하여 주님이 주관하시는 이 시대를 믿고 기다리며 기도하기에 힘쓰는 온 가족이 되길 소원하며 주일예배와 성탄예배 그리고 글로벌로 드리는 모든 성도의 마음에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치며 성령이 충만하기를 간구하며 우리 성탄송을 부르며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길 소망한다.

메시야 탄생 소식을 처음 들은 사람은 양치는 목자들이었다. 목자라는 직업은 당시 가장 천한 직업에 속하였는데, 본문을 통해 본서는 복음이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사람들에게 맨 처음으로 전해졌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는 강하고 능력 있는 자보다 약하고 부족한 자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때로 외양을 추구하는 자에게 있어 그리스도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이는 양인 우리들을 영적으로 돌보시는 목자로서의 예수님의 탄생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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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주후 2020년 12월 16일)

제목: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

말씀:시편 2:1-8절

설교자:김완기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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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1-8)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오늘 수요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고 갑절의 은혜를 사모하길 원한다. 도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불 확신성이 극대화 되는 시대를 살아가도 있다. 금주 수도권을 비롯해 코로나 1일 확진 자 수가 천명이 넘어서고 있다. 급기야 거리두기 3단계를 해야 된다는 이 소식까지 지금 들려온다. 지금까지 우리는 개인위생은 물론이고 철저한 방역으로 이 코로나시대가 하루 속히 종식되길 기도하며 행동으로

옮겨왔다. 하지만 상황은 헌신적인 의료진의 수고 떠한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무나 고통 가운데 우리는 오늘 하루를 보내며 또한 내일 염려하며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더 힘들게 하는 한 가지 상황이 또한 발생하고 있다. 그동안 잠잠하던 언론들은 교회 발 코로나 확진 자 수를 매일 자세한 정보도 없이 교회 이름과 확진 자 수를 적어내고 있다. 몇몇 주의를 소홀히 했던 교회의 작은 실수가 마치 한국교회 전체의 실수의 것 인양 그리고 환경과 시설이 열악해서 정말 한순간 소홀해서 그 작은 실수를 한국교회 전체가 그렇게 한 것 인양 보도 하고 있다. 이 현실 속에 우리는 고통 속 이것만으로 힘 드는데 더 깊은 고통 속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리스도인 들은 이중적인 고통 속에 머물고 있다. 이중적인 고통 속에 머물고 있다. 교회를 향한 이 날선 비난 앞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이란 설교를 하게 되었다. 분명 우린 고난 가운데 있다. 세계적인 이 팬더믹 현상가운데 물론 우리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와 동시에 그리스도인으로 이 시간 살아가는 데에 모이지도 못하고 또한 모이면 손가락질 받고 비난 받는 이러한 이중적인 잣대 가운데 우린 또 다른 고통 속에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최근 몇몇 성도님들께 이러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코로나 시대에 교회 가서 예배를 하고 왔다고 해서 동료들이 은근히 자신을 피한다는 소식이다. 공무원 교육기관 종사자들 특별히 의료기관 종사하는 많은 성도님들은 만약 예배에 참여했던 것이 발각이 되면 불이익을 받거나 실직까지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집합금지업종의 직장을 가진 성도님들은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고 해야 한다고 한다. 급기야 이런저런 이유들로 가슴 아픈 사연들도 들었다. 더 많은 사례들이 있지만, 분명히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 뿐만 아니다. 위에 언급된 특별한 직업군을 가진 성도님들은 예배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여서 더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고 있다 현장예배 참석하지 못하고 온라인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이 이 예배를 받으실까를 생각하며 교회 나오지 못함을 담당교역자나, 성도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러다가 내 생활이 엉망이 되지는 않을까를 고민하고 있고, 이렇게 불 확신성이 극대화 되면서 하나님은 그저 침묵하고 계신 것이 보인다. 그러나 성도님들!! 하나님은 결코 이 상황을 방치하시지 않는다. 지금 하나님은 고난 속에서 약속을 믿고 의지 하는 자들을 찾고 계신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뜻을 함께 발견해 보기를 원한다. 우리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시편 1편을 암송하기도 하고 친숙하게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곧 이어 나오는 시편 2편은 참 낯설고 어렵게 느껴진다. 다시 살펴보면 시편 1편과 2편의 시는 문학적인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그 예로 1편은 복 있는 사람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2편은 맨 마지막에 가서 복 있는 사람으로 마쳐진다. 시편 1편의 처음은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한 사람을 가르쳐 복 있는 사람이라 한다. 2편은 마지막은 그 아들에게 입 맞추지 않으면 길에 망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문학적 통일성을 통해 두 편은 한 편의 시였을 가능성이 크다. 특별히 우리가 시편 2편에서 눈여겨 살펴보아야 할 점이 있다. 다름 아닌 다윗언약의 핵심을 담고 있다. 비록 시편 2편에서 문자적으로 다윗, 다윗언약 표현은 등장하지 않지만, 다윗의 언약의 진수가 시편 2편이다. 다윗의 후손은 여호와의 기름 은자가 되고 시편 2편에 전체를 통해 말한다. 언약 관계 속에서 이방나라를 유업을 받는다고 약속을 받게 된다. 시편2편을 더 자세히 보면 1-2절은 분위기가 밝지 않다. 참담하고 암담하다. 하지만 놀라운 반전이 있다. 4절에 하늘에 계신이가 웃으심이여~~ 이제 하나님의 위대한 반전의 역사가 등장한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은 침묵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이어나가시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완성시켜 나가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이 언약의 계승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 시편 2편이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복 있는 사람은 고난 가운데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해서 희망을 기대하고 바라보고 있어야 된다는 신학적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 주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의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나님의 약속 성취의 서곡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 성취의 서곡으로 받아야 한다. 원래 서곡은 오페라나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막이 내려진 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이 서곡은 단순히 분위기를 띄우려는 목적이 아니다. 이 서곡만 들으면 이 내용이 어떻게 전재될지 이 내용의 마지막은 어떻게 될지를 듣기에 암시의 역할을 한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에피타이저도 우리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서 먹는다. 에피타이저를 통해서 앞으로 어떤 메인 요리가 나올지를

알게 되기도 하고 상상할 수 있다. 결국 이 고난이라는 것은 장차 있을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위대한 선물의 에피타이저, 서곡과 같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지금 이 그리스도인의 고난이 극심함과 최절정에 다다랐을 때에 이 초대 교회의 시절이다. 시대적 정황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사도행전 4장 25-26절이다. 시편1-2편과 그대로 담겨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잘 알았다. 일찍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시편 2편 1-2절의 예언이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 성취되었음을 이들은 고백한 것이다. 시편2편의 고백이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러한 약속 성취의 서곡과 같았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지금 받은 이 고난을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그 처음 출입문 서곡과도 같았기에 이 고난을 결코 두려워하거나, 도망하지 않고 그들은 고난 한 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와 초대교회 성도들은 시편 2편에서 지금 자신을 통해서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들은 인정했다.

그래서 온 교회가 헤롯과 빌라도의 위협적인 세력이 유대 지도자들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올 때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아시고, 조치를 취해 달라고 간절하게 이 사도행전 4:25-26절, 시편 2편 1-2절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린 것이다. 하나님의 위로, 하나님의 영광의 서곡의 신앙을 이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렇게 온전히 살아갔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는 지금의 고난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 하나님의 약속 성취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통로란 무엇인가? - 오늘도 우리가 물을 마실 수 있는 것은 바로 한강에 있는 수도관이란 통로를 통해 지금 우리가 사는 곳까지 끌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통로는 자기 자신에게 어떠한 이그넘과 같다. 시간이 지나면 닳고 닳아지는 것이다. 이천 년 전 초대교회 성도들도 이 통로의 역할에 충실했다. 교회 안팎으로 교회가 핍박 가운데 놓여 있을 때에 그들 자신에게 유익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는 사실이 있다. 우리가 통로가 되었을 때에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 그 약속은 온전히 세상 가운데 전파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고난 받는 그 장면을 생생히 목격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고난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승천하시는 영광스런 모습을 그들은 직접 목격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지상 대위임 명령인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하는 이 명령을 주셨다. 이들은 철저하게 통로의 인생을 살았다. 어떤 통로인가?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통로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기억했다. 이렇게 시편 2편의 예언이 이미 예수님 자신이 그 고난을 통해 성취하셔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그 고난의 주인공이 우리들 즉 그들이 주인공이 되어 있다라는 사실이다. 2020년 12월 지금 우리의 상황도 이때와 비교 한다면, 사실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사탄은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을 통해 여화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행동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위협 앞에, 핍박 앞에 대항하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 예수님처럼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었다. 예수님은 그 털 깎는 자 앞에 순한 양처럼, 도살 창에 끌려가는 어린양의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들도 온갖 핍박앞에 반응하지 않고, 대항하지 않고, 그 고난을 스스로 받아들였다. 마치 예수님처럼,... 그들은 예수님의 순종하는 그 모습이 하나님의 언약의 길임을 알았다.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는 방법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철저하게 주님을 붙잡고, 더 매달려 나아갔다. 우리 성도님들도 이 어려운 이때에 철저한 협조와 희생을 하고 있지 않는가?? 방역지침의 우리는 선제적으로 협조하고 대응해 오고 있다. 또한 안성수양관을 코로나 병상으로 지원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코로나로 힘든데 수해를 입은 구례를 방문해서 우리의 사랑을 전달했다. 지금도 우리는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이 땅에 온전히 전하고자 애쓰고 있는 것이다. 어느 곳에서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통로가 되어서 하나님의 언약의 통로로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흘러 보내는 아름다운 이 모습을 지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의 고난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약속성취를 위해 갈망하며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힘들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힘들고 지쳐있다. 그 때 필요한 것은 위로와 격려의 말 한 마디이다. 어떠한 선물이나 보상도 좋지만, 그 순간 수고 했어 많이 힘들지를 하면 그 한 마디가 그 들에게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살면서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힘든 순간을 보내면서 위로받고 싶고 격려 받고 싶다. 이럴 때 우리도 사람의 격려와 위로가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큰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가 정말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위로와 격려를 하나님이 그냥 주시는가? 아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시며, 우리에게 새 힘으로 격려해 주신다. 예루살렘 교회와 초대교회는 고난당하는 가운데 이 시편 2편의 기도를 자기 자신의 기도로 승화시켰다. 그들은 왜 고난을 당하는지 시편 2편을 통해 분명히 깨달았다. 예수님의 고난, 이 고난은 자발적 순종의 고난이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 자신이 유익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 성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 이루기 위한 자발적 고난에 순종의 고난이었다는 것을 몸소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자신은 이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우리를 억누르는 고난을 회피하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 앞에 우리가 당당히 맞서면서 내가 오늘 당하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이 흘러나가고 하나님의 그 언약이 성취되어 기쁨과 감격이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기도를 올려드린 것이다. 그래서 시편 2편에 말씀에 비추어 그들은 기도했고, 하나님의 언약 약속의 성취를 이에 대한 근거로 간절히 간절히 매달려 온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기도했더니 그 결과가 있더라는 것이다.

이같이 사도행전 4:31절에 - 그들이 모여 기도했더니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진동하여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기서 진동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강림하실 때 느꼈던 그 장면을 말한다. 또한 사도 베드로에게 임했던 성령이 임해서 그들 가운데 충만해져서 사도 베드로처럼 말씀을 선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강력한 성령 충만의 임재를 느낀 현장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그들에게 응답하는 역사를 친히 보여 주셨고, 이들은 하나님의 역사의 산 증인들이 되어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로 그들이 인생을 살아간다. 하나님은 결코 침묵하지 않으신다. 우리기도 가운데 즉각적으로 반응 하신다. 2020년 12월 지금 우리는 그러므로 더욱더 간절히 기도해야 할 때이다. 어떤 성도님은 교회를 향한 이러한 정부의 대응에 불편해 하는 분도 있다. 또 어떤 성도님은 우리가 스스로 더 조심해야 된다고 말한다.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의견들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것은 세상을 대항하는 무력과 폭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세상은 항상 하나님을 대적해 왔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과도 맞섰다. 하지만 주님의 제자들은 이러한 성화 앞에 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고 고난당하는 것이 바로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와 같은 온전한 제자로서 이러한 길로 나아가야 한다. 각자의 목소리와 의견을 내기보다는 이런 저런 불만을 표출하기 보다는 우리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기도를 통하여 만약 고난을 주신다면 받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주님을 알아 갈수만 있다면 흘러 내려져 가는 그 통로가 될 수 있다면 이러한 고난은 달게 받겠다는 각오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기도가 우리 가운데 흘러 넘쳐야 되지 않겠는지요?? 우리는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바로 예수님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우리 다 함께 2편 8절을 합독하자.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나라를 네게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주리라.”- 내게 구하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는 것이다. 기도하기 힘드신가? 주님을 더욱 의지하라, 예수님은 기도하라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이 땅에서 순종하셨고, 지금도 하나님 우편의 천상에서 기도하고 계신다. 우리의 보존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위해 온전히 기도를 주님께 맡겨야 한다. 시편 2편 12절 하반에는 이렇게 말씀한다. 고난을 허락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이 고난을 해결 하실 분도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이 고난, 고난이 극심할수록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말씀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다고 하신다. 이 말씀을 기억해서 우리도 돌아와야 한다.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에 대해 시작했다. 주야로 묵상 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라고 시편1편은 말씀하신다. 시편 2편에서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결국 하나님이 반전의 역사를 이루어 주시기에 주님 품으로 돌아오라, 주님 품으로 안겨라 하고 말씀을 하신다. 예수님도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했다. 이 때 하나님은 너 내 아들이라 하시며 온 열방을 예수님께 주셨다. 지금 이 교회 밖에는 성탄목이 비추어 밝히고 있다. 성탄목을 보면서 감동을 못 느꼈었다. 그런데 올해 바라보는 성탄목이 더 다르게 보인다. 캄캄할수록, 별은 더 밝게 빛난다. 지금 한국 교회의 분위기가 힘들다. 그래서 어떤 교회들은 성탄목조차 설치를 못했다고 들었다. 사회적 분위기 자체가 많이 힘들고 어둡고 어렵다. 이런 상황가운데 우리 교회 성탄목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게 비치고 있다. 이 성탄목이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한다.

방울마다 달려있고 방울마다 285여개의 북한 교회들의 명단이다. 남북으로 나누어지기 전에 그 교회들의 이름이 성탄목에 달려있다. 어두워진 북한 땅을 우리의 기도로 밝혀야 한다. 우리 한국교회 속에도 우리의 눈물 씨앗을 뿌리며 더욱 밝게 비추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이 교회 앞마당을 다니면서 기도하는 심정, 이 성탄목이 더욱 더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영적 등대의 역할을 해야 하는 간절한 기도를 해야 한다. 예수님은 시편 2편을 기도하셨고, 초대교회 성도들도 시편2편으로 기도했다. 주님 된 제자의 우리도 고난 가운데 어떻게 하겠는가? 더 높은 차원의 기도 시편 2편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불 확신성인 극대화 된 이 시대에 확실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의 신앙을 통해 온 열방에 하나님의 뜻대로 퍼져 나갈 것이다. 간절히 믿고 기도해야 한다. 세상이 더욱 어두울수록 하나님을 의지하고 이 세상을 더욱 밝히는 영적 등대가 되길 기도해야 한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의 통로가 되어 하나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하나님은 우리를 다스리시는 줄 믿는다.


♧ 요약

메시아의 우주적인 통치와 그것을 반대하는 세속 권력자들의 어리석은 저항을 묘사하고 있다. 행 4:25-26에 인용된 대로 헤롯과 빌라도에게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시이다.

시편 2편은 메시아 예언시이다. 1-3절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심리를 증거하고, 4-6절은 그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증거 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온 땅과 거기 있는 왕들을 통치하시며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를 대적하는 자들을 보고 웃으신다. 주님)이신 그는 그들을 비웃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셔서 그들을 놀라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자이지만, 또한 그를 대적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분노하시는 자이시다. 그가 노하시면 모든 사람은 다 놀라며 두려워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놀라게 하시며,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원문에는 ‘내가’라는 말이 강조되어 있다. 그것은 메시아를 거절하고 대적하는 땅의 왕들과 하나님을 대조시킨다. 또 ‘나의 왕’이라는 말은 사람들에 의해서나 사람들의 혈통에 따라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특별한 작정과 뜻에 따라 세움을 받은 왕이라는 뜻이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일을 행할 왕이시다.

‘내 거룩한 산 시온’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거하신다. 하나님께서 그의 왕 메시아를 그 곳에 세우신다는 것은 메시아께서 그 곳에 오실 것을 가리킨다. 그는 육체로 그 곳에 오셨고 부활하심으로 자신을 주와 그리스도로 확증하셨고(행 2:36), 그의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땅에 전파될 것이며 장차 재림하심으로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의 신앙을 통해 온 열방에 하나님의 뜻대로 퍼져 나갈 것이다. 
우리는 이제 간절히 믿고 기도해야 한다. 세상이 더욱 어두울수록 하나님을 의지하고 이 세상을 더욱 밝히는 영적 등대가 되길 기도해야 한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의 통로가 되어 하나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이 땅에 온전히 전하고자 애쓰고 있는 것이다. 어느 곳에서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통로가 되어서 하나님의 언약의 통로로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흘러 보내는 아름다운 이 모습을 믿고 실천하여 그리스도인에게는 본이되게 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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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0년 12월 13일)

제목: "정결함의 회복"

말씀: 스가랴 13:1-9절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사회: 윤하중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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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2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귀신을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

3 사람이 아직도 예언할 것 같으면 그 낳은 부모가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말을 하니 살지 못하리라 하고 낳은 부모가 그가 예언할 때에 칼로 그를 찌르리라.

4 그 날에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에 그 환상을 각기 부끄러워할 것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털옷도 입지 아니할 것이며.

5 말하기를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내가 어려서부터 사람의 종이 되었노라 할 것이요.

6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있는 상처는 어찌 됨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

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8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

9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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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간절한 예배를 받으실 줄 믿는다. 참 예배자의 예배를 통해 가정과 사회 공동체가 든든히 서야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으로 성찬식을 하게 되었다. 감사한 일은 온 성도들이 미라클 밀이 떡과 술을 미리 받아가셔서 다시 더 준비했다. 성찬 키트를 모두 함께 해주셨음에 감사한 일이다. 그만큼 간절한 심령을 주님은 만족시켜 주시길 기도한다.

 

“정결함의 회복” (스가랴 13:1~9)

.1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영적으로 자신을 성찰해야

고린도전서11:28,“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Ⅰ. 정결의 샘을 통하여 죄와 더러움이 정화된다.(1절)

-우리는 죄와 더러움으로 인해 나파된 배와 같이 침몰될 자였다. 죄로 인해 심판을 받을자, 외롭고 고독하고 처절한 자이다.

이것을 씻는 정결의 샘을 주셨다. 다윗의 족속으로 인해 우리가 모든 계층이 함께 깨끗해진다.

모두가 다 남녀노소가 정결함을 받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잘못된 길, 과녁을 놓인다면 주님이 정해 주시길 바란다. 부정한 것들도 해결해 주시길 바란다. 모두 제거해 하길 바란다.

 

1. 스가랴13:1,“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 누구의 죄와 더러움을 씻어주는가? 1절b,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 모든 계층을 말한다.

2. 씻어야 할 두 가지

1) 죄: 잘못된 길로 가는 것

2) 더러움: 피하거나 도망쳐야 할 어떤 추한 것.

3. ‘정결의 샘’은 고여 있는 웅덩이가 아니라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샘’이다.

▷마코르 –생수의 근원이다.

4. 본래 이스라엘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아야 한다.

1) 예레미야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2) 수많은 비누로도 씻을 수 없는 죄(렘 2:22), 금강석 끝 철필로 새겨진 죄(렘 17:1)

5. 이 죄를 어떻게 씻는가?

• 요한일서 1:7b,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Ⅱ. 거짓 선지자의 우상 숭배와 거짓말로부터 정화된다 (2~6절)

1. 거짓 선지자의 ‘거짓 예언’과 ‘선동’ 때문에 우상 숭배가 널리 퍼졌다.

2. 2절의 우상의 이름, 3절의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말을 하고, 4절의 거짓 선지자 노릇 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

3. 스가랴 13:5, “말하기를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스가랴 13:6,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있는 상처는 어찌 됨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

--문신 같은 것도 조심해야 한다. 자신의 몸에 자해를 하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

사탄은 스스로 사람들을 자멸하게 만든다. 여호와의 날이 되니 과거 거짓을 선지자들이 숨긴다.

 

• 열왕기상 18:28,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Ⅲ. 목자의 칼이 정화시킨다 (7~9절)

1. 참 목자의 죽음을 통하여 깨끗해진다.

• 스가랴 13:7a,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2. 7절에서 ‘칼아’는 ‘칼이 움직인다’는 뜻이다.

--참목자의 죽음으로 인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말씀한다.

-우리의 죄와 우상 숭배로 하나님은 칼로 내리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 짝된 목자를 치라하신다. 출생으로 인한 가족관계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씀한다.

• 이사야 53: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

 

3.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 짝(My Associate) 된 목자’께 죽음의 칼을 허락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정화시키신다.

• 스가랴 13:7b,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 마태복음 26: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작은 자들 위에 내 손을 드리우리라 하신다. 모든 고통에서 우리를 보호하시는 것이다.

 

4. 그 결과 심판 가운데서도, 살육과 죽음의 파멸 가운데서도 우리를 보호하시고 살아남게 하신다.

• 스가랴 13:8,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

--대부분 3분의 1은 적은 자들을 보호하셔서 살아남는 것이다. 아마겟돈에서 그러듯이 문자적으로 파멸이다.

 

5. 살아남은 3분의 1이 누구인가?

-오늘 성찬에 참여한 우리를 말씀하신다. 우리의 구원자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1) 스가랴 12: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그것을 깨달은 사람, 죄와 정욕을 씻는 자들, 믿고 감사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이다.

 

2) 3분의 1은 믿기 힘들 정도의 환난과 시련을 이겨낸 사람들이다.

-우리가 모두가 금과 은으로 남기를 바란다. 온 성도들이 불가운데에서도 통과하여 하나님 앞에서 정련된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이 되기를 바라신다.

 

결론---

1. 이렇게 정화된 사람들에게 주시는 축복

• 스가랴 13:9b,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성찬의 날 주님은 부르실 때 주님은 들으신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최고의 축복이다.

바로 우리는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된 것이다.

 

1) 하나님과의 관계에 막힘이 없다.

2) 로암미에서 암미(내 백성)가 되는 축복

• 호세아 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

 

2. 정결의 샘을 통하여 우리는 새 언약에 들어간다.

주님이 칼에 찔리신 보혈의 은혜로 우리는 새 언약의 백성이 되었다.

• 누가복음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새 언약이다. 이 새 언약에 참여하는 사람마다. 어린 양의 피에 참여자로 인해 마귀를 모두 보냈다.

말씀으로 참 승리가 되었다. 새 언약으로 인해 참 기쁨이고 새 언약에 참여한다. 보혈의 경계선에 나가지 않으면 지켜 주신다.

 

3. 새 언약의 백성들은 보혈의 경계선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 요한계시록 12: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

-떡과 잔을 놓고 말씀으로 받아서 새 언약으로, 보혈로 나를 씻기를 바란다.

-정결하게 하는 셈물이다. 재미있는 말씀이 있다.

 

ex)12월25일에 산타할아버지가 못 오신다고 한다. 2주간 자가격리이시기 때문이다. 1월 9일에 성탄이 오심을 믿고 성탄을 보내기를 바란다.

모든 성도의 집에 문설주에 그리스도의 피가 발라지기를 기도한다.

 

4. 예수님의 보혈만이 우리를 평생 변호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우선순위 두면

진학, 직장도, 주님이 잡아주신다. 날마다 삶의 여정에서 승리를 주신다.

*요한계시록12:11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주님께서 이 성찬식으로 우리를 정결한 샘으로 뿜어져 나오는 성찬의 은혜를 더하시고 우리의 마음의 문설주에 임하셔서 모든 계층에 죄와 더러움을 깨끗이 정화하여 주시길 원한다.

♣요약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날, 우상과 거짓 선지자들은 사라지고 참 목자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할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신다.

정결함을 이루는 능력의 시작 ( 13:1 )
-정결함을 이루는 길은 더러움을 씻는 샘에서부터 시작하며, 이스라엘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우상과 거짓 선지자였기 때문에 이 두 가지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정결함을 이루는 능력이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와 성령의 사역이 성도의 죄를 대속하시고 정결케 하신다.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 ( 13:9 )이스라엘이 환난을 이기고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남은 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슥9:8의 남은 자 사상으로, 이들은 시련을 통과한 하나님의 군사이며 성숙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자들이다. 또한 심판 가운데에서도 자기 백성을 온전히 멸절하지 아니하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간절한 예배를 받으실 줄 믿는다. 참 예배자의 예배를 통해 가정과 사회 공동체가 든든히 서야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으로 성찬식을 하게 되었다. 감사한 은 온 성도들이 미라클 밀이 떡과 술을 미리 받아가서 다시 더 준비했음이 감사하고, 성찬 키트를 모두 함께 해주셨음에 감사한 일이다. 그만큼 간절한 심령을 주님은 만족시켜 주실 것이다. 우리는 항상 정결함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하고, 이 성찬식으로 우리는 더욱 주님을 사모하여 남은 자로서 주님과 늘 동행하여 주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한다.

느낀 점
오늘 성찬식을 인터넷으로 하면서 난 생 처음으로 준비해 준 키트로 성찬식을 했다. 주님은 이 코로나 시대에 온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줌과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고 성찬식을 각 가정에서 드림도 사랑으로 인도하셨음에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이 어려운 시기에서도 한마음으로 오직 주님을 향한 소망을 갖게 하시고 정성으로 드려진 예배를 기뻐 받으실 줄 믿는다. 어제 순장님께서 손수 전달해 주신 키트에는 떡과 포도주가 담긴 프라스틱 팩이 앙증스럽게 보였다. 그것을 순장님은 각각의 순원들 집에 차를 가지고 전달해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주님을 경외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순장님의 헌신이 이러한 세밀한 일까지도 순종하시는 마음을 배우게 되었다. 넘 감사한 주말을 보내면서 또한 주일 성찬식을 드리면서 나도 그 믿음을 본받아서 진정한 주님 자녀로 살아야 함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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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새(주후 2020년 12월12일)

제목: ''가까이 있으라''

말씀: (룻기 2:20~23절)

설교자: 이기원 목사님(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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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붙잡지 않고, 예배 붙잡지 않으면 다 흔들리게 되어있다.

기도의 모든 성도들은 코로나 시대에 말씀으로 나아가야 한다.

 

(롯기 2:20~23)

20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21 모압 여인 룻이 이르되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하니.

22 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의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하는지라.

23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니라.

 

하나님께서 임재의 체험이 되길 바란다. 룻기는 4장으로 된 비교적 적은 량의 성경이지만 내용은 국제결혼으로 단순한 엄친 며느리 이야기나 개종이야기를 다룬 차원을 넘어 우리가 한평생 겪는 인생의 굴곡들을 심도 있게 다루면서 무엇보다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를 설명하고 있는 비중 있는 성경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사기와 사무엘 상, 하라는 딱딱한 조개껍질 속에 들어 있는 진주라고 표현을 하기도 한다.

 

룻기의 배경은 사사시대 때에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9Km 떨어져 있는 베들레헴에 살고 있던 나름 그 지역의 유지라고 하는 엘리멜렉의 가족에서부터 시작된다. 베들레헴 이름 자체가 베들레헴 .떡의 집(house of bread).기근이 들어 타향살이 설상가상 남편이 죽고, 안정을 찾는 듯 했는데 또 두 아들도 죽었다. 나오미는 모든 것을 잃었다. 아들들을 잃은 나오미는 참담했다. 이런 상황에서 풍년이 들었다는 베들레헴에 여호와께서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나오미는 고향인 60킬로미터를 걸어가면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두 과부 며느리를 데리고 과연 유다를 데리고 가는 것이 맞는지에 고민하게 되었다. 한 며느리는 어머니를 따라가지 않고 모압으로 가게 되었고 한 며느리는 어머니와 함께 있겠다고 한다.상식적인 판단으로서 오르바는 자신의 고향으로 갔다. 한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나라로 모압 여인이 가겠다 한다.

 

룻1:14 룻의 다바크 결정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3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4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8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가까이 있으라(티드바킨) 이후...그들의 삶이 달라지고 다바크의 결정을 한 룻이, 룻의 다바크를 기억하시는 하나님 보아스를 통해 축복. 식량과 가족의 축복을 하신다. 그래서 기업 무를 자가 되고, 디바카는 디바크라는 단어는 여성형 동사이다.

성경에서 고엘의 세가지 책임
첫째-피무르기, 둘째-몸무르기, 셋째-땅무르기 책임.
고엘의 책임- .코이노니아이다.
룻은 다윗의 선대가 되었고, 오르바는 골리앗의 선대가 되는 것이다.

-미가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요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룻처럼 순간을 버리고, 영원을 줍는 삶을 살아야 한다.

 

♧ 요약

기업 무를 자의 자격 ( 2:20 )

먼저 혈연적인 관계에 있어야 하고, 자원해야 하며, 고엘(기업 무를 자란 말의 히브리어로 ‘고엘’은 잃은 것을 회복시키는 것이나 친족 중 구속자를 의미하기도 함)로서의 능력을 구비해야 한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땅을 다시 사주었고 룻과의 결혼을 통해 메시야의 계보를 잇게 된다. 룻은 자기에게 친절을 베풀어 준 사람이 보아스라고 말한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누군인가를 생각해 보고는 즉시 기억해 냈다. "그 사람은 우리 근족이다. 그 이름을 듣고 보니 잘 아는 사람이로구나." 나오미는 룻에게 계속 보아스의 밭에서 일하라고 했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왜냐하면 다른 밭에서 일하면 보아스의 친절을 무시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주님도 우리에게 너그러이 대해 주시지 않았는가? 다른 밭에 가지 말며 피조물에게서 행복과 만족을 추구하지 말자. 룻은 시어머니가 말하는 것을 충실하게 지켰으며 보리 추수뿐만 아니라 그 후에 밀 추수를 마칠 때까지 계속해서 이 삭을 주워 겨울에 먹을 양식을 장만할 수 있었다. 나오미와 룻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지만 보다 궁극적인 주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다. 곧 보아스와 룻의 아름다운 신앙과 사랑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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