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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2025년 3월 19일)
제목: "십자가의 길"
말씀: 누가복음 9:18~23
찬양인도: 쉐키나(이동선 부목사님)
사회: 강건우 부목사님

설교자: 임상규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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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9:18~23,
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9 대답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21 경고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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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와 21세기 초에 기독교 사상계에 가장 영향을 미쳤던 한 분이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신학자요 목회자요 철학자 ‘달라스 윌라드’입니다. 달라스 윌라드는 그의 책 ‘잊혀진 제자도’에서 특별히 20세기 말을 지나면서 하나님 앞에서 제자도의 길을 잃어버린 성도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엄중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죠. 그의 책에서 특별하게 현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이렇게 지칭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이름은 바로 ‘뱀파이어 그리스도인’입니다.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우리 책 내용을 한번 보겠습니다. 그가 말하는 뱀파이어 그리스도인들의 표현은 이렇습니다. 예수님, 부디 당신의 피가 조금 필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의 학생이 되거나 당신의 성품을 닮을 마음은 없습니다. 솔직히 제가 인생에 즐기는 동안 좀 못 본 척해 주시렵니까? 천국에서 뵙겠습니다.

어떠십니까? 마음에 확 와닿으십니까 아니면 어떻게 저렇게도 될까, 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제가 이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7년 전에 제가 섬겼던 한 교회의 부서 수련회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수련회 기간 동안 학생들과 함께 빌립보서를 같이 공부했습니다. 수련회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곳은 딱 한 가지였습니다. 빌립보서를 읽고, 또 읽고, 또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가고 싶지 않습니까? 아멘! 집회 둘째, 날이었습니다.

함께 말씀을 나누고 그리고 서로가 조별로 모여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들을 나누는 시간을 한 친구의 나눔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교사들과 학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친구는요 신앙과는 사실은 좀 거리가 먼 친구였습니다. 이 친구의 삶은 랩, 그리고 팝 그리고 춤으로 가득 찼던 친구였죠 그런데 그 친구가 조용히 일어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고백을 하였습니다. 가장 먼저 빌립보서 1장을 먼저 읽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빌립보서 1:29,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빌립보서 1장 29절 말씀을 읽어 내려간 후에 이 친구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저는 싱가포르에서 오랜 시간 동안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좋은 부모님 덕분에 부족함이 없이 컸습니다. 그리고 랩과 음악과 춤을 위해 싱가포르의 대형 로컬 교회들을 이곳 저곳 많이 찾아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어느 곳에서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고난을 받는다는 것과, 십자가의 길을 살아야 가야 한다는 것을 단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며, 과연 이 땅의 교회들이 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그리고 나는 지금 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18살 학생이 말입니다.

이 한 명의 고백은요, 마치 뱀파이어 그리스도인처럼 살아가는 현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또한 뱀파이어 그리스도인들과 같지는 않지만 나의 삶을 바라보며 교회도 다니고 신앙생활도 하는데 예수님의 제자인지, 예수님의 길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너무 많이 놓쳐서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가운데 警鐘(경종)을 울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누가복음 9장의 본문의 말씀은, 참된 제자의 길은 무엇인지, 그리고 제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계시는데요. 이 말씀을 통하여 오늘 우리 가운데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 가운데 귀 기울이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누가복음 9장은 본격적인 ‘제자도의 章(장)’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가 잘 기록 되어져 있습니다. 특별히 누가 보건 9장 1절에서 6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불러 모으십니다. 그리고 전도 여행을 내보내시죠.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요. 바로 하나는
➀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능력과 권위를 부어주셨다. 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➁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여행을 위하여 너희가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말은 제자의 길이란 자신의 능력과 자신의 실력이 아닌 예수님께서 주시는 능력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여해 주시는 권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라는 것이죠.

또한 예수님의 제자는요 모든 상황 속에서 오직 누구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일까요? 맞습니다. 예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임을 말씀하고 계시는 거죠. 제자들의 말씀에 순종하여 전도 여행을 떠납니다. 제자들이 가는 마을 곳곳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데요. 병든 자가 낫습니다. 치유가 일어납니다. 기적이 발생한 것입니다. 제자들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이름이 더 광범위하게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누가복음 9장 7절에서 성경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데요.

*누가복음 9장 7절,
7 분봉 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니 이는 어떤 사람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이 소문이 동봉왕 해롯의 귓가에 들렸고 해롯이 심히 당황하였다. 라고 이후에 예수님은 벳세다로 옮기셔서 5천 명의 사람들에게 五甁二魚의 기적을 나타내십니다. 이미 수많은 기사와 이적을 베푸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유명하신데, 오병이어 사건으로 예수님의 주가가 한층 더 올라갔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을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서 예수님과 가까워지고 싶었던 것이죠. 예수님을 마치 우리의 모든 必要(필요)를 채워줄 政治的(정치적) 메시아로 여기면서 예수님께로 다가선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한 가지 이상한 질문을 하십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대해 누구라고 하느냐?” 라고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의 질문 앞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네, 예수님,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세례 요한’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또 다른 제자가 아니야. ‘어떤 사람은 엘리야’ 라고 말해 그러자 또 다른 제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다시 나타났다’ 라는 소리도 들립니다 라고 대답하였죠. 아무튼 ‘예수님은 정말 멋지시고 대단하시고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께 집중하고 있어요’ 라고 제자들이 신이 나서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잠시 뜸을 들이시고 제자들에게 재차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 가운데 우리의 마음속에 굉장히 호감이 가는 한 형제가 생각나지 않습니까? 행동보다 말이 앞서고, 실수 투성이고 어 성질이 아주,,, 바로 베드로입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 이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의 본질, 예수님께서 바로 참 메시아 이십니다 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베드로야 이것을 너에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다 라고 말씀하시죠. 그리고 베드로의 이 고백, 이 반석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겠다. 라고 약속하십니다. 이제 제자들 가운데 예수님이 누구이신지가 드러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구하는 정치적 메시아가 아니라,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아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의 마음 가운데 무언가 모르는 뜨거운 열망이 일어납니다.

와~!! 번지수 제대로 찾았네,,, 예수님이 통치하시고 예수님이 다스리시면 우리 한 자리씩 큰 자리 앉을 수 있겠네... 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이런 생각에 잠겨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매우 당혹스러운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22절의 말씀인데요. 우리 함께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9:22,
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제자들은 이런 말씀을 기대하지 않았을까요? 그래 너희들 수고 많았다. 조금만 기다려, 조금만 참아, 내가 너희들에게 보상해 줄 거고, 너희들은 큰 자리에 앉을 거야. 라고 대답해 주시고 제자들은 승리의 찬가를 불러야 할 그 때에, 예수님은 찬물을 끼얹듯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얘들아, 나는 많은 고난을 받을 거야, 합니다. ‘얼마 안 있어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될거야,. 그리고 나는 죽게 될 거야. 그 후에 3일 후에 살아날 거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명 부활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의 귓가에는요. 그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고난, 예수님의 죽음, 이라는 단어가 그의 머리에 刻印(각인) 되어 그들을 痲痹(마비)시켜 버렸습니다. 누가복음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마태복음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데요. 마태복음 16장 22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2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여기서 ‘항변하다’는 표현은 niv 성경에는 ‘질책하다, 꾸짖다“(Rebuke Him),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며 향하여 항변합니다. 이렇게 말하죠. ”주여, 그리마옵소서. 이 일이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예수님 말도 안 됩니다.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베드로의 충정이었습니까? 이것이 베드로의 예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 때문이었습니까? 만약에 베드로가 충정 심으로 사랑함으로 대답했더라면, 이렇게 대답을 했겠죠. “예수님, 예수님 아닙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실 그 십자가를 제가 대신 지고 걸어가겠습니다. 그런 말 하지 마십시오”. 라고 말해야 좀 적합한 표현이 아닐까요? 그런데 베드로는 자신이 생각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자신이 생각했던 제자의 길과 相衝(상충)되는 상황이 발생하자, 예수님을 붙잡고 붙들고 항변하며 그를 비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 이것은 아니죠. 제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라온 것 이런 길이 아닙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3절에 말씀해 보면 좀 더 선명히 알 수 있는데요.

*마태복음 16장 23절,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하시고.
-예수님은 즉각적으로 베드로를 향하여 강한 어조로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베드로를 향하여 사탄이라고 칭하시며 예수님은 예수님을 떠나 물러가라 라고 명령하시죠. 베드로의 말이 예수님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실 그 길을 따라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말은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예수님을 넘어져 자빠뜨리는 말씀이었던 것이죠. 예수님을 곁에서 聽從(청종)하며 함께 따라왔지만 베드로는 여전히 자기 자신이 그려놓은 자기의 그림이 있었습니다. ’내가 생각한 제자의 길, 내가 생각한 예수님을 따르는 길, 내가 생각한 십자가는 이러한 것이야‘ 라고 자기만의 그림을 그렸던 것이죠. 예수님은 괴도를 향하여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라고,

사랑하는 성교 여러분,
우리는 어떠합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앞에 십자가의 길을 말씀하실 때 우리도 예수님 앞에 나와 그로처럼 항변하며 예수님, 이것은 아니지요. 이런 것은 제가 주님을 따라온 것이 아니잖아요. 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예수님은 본격적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함께 누가복음 9장 23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9장 23절,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전제 조건으로 세 가지를 말씀하시면 돼요.

▶전제조건-예수님을 따르는 길.
I. 첫째로, 자기 자신을 부인하라.

-너희는 너희 자기 자신을 부인하라. 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부인하라.. 라는 헬라어로 쓰인 원어의 뜻은 아르네오마이(포기하다, 거절하다, 관계를 끊는다)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 아르네오마이라는 단어는 그 뜻이 굉장히 의미가 강력한데요. 포기하다, 거절하다, 관계를 끊는다, 라는 뜻이 담겨 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니가 가지고 있는 너의 생각 네가 그려놓은 너의 그림 네가 가지고 있는 너의 계획을 포기해야 해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거절하고 끊어버려야 해.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면서도 우리의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고 아니 우리 마음속 저 깊은 곳에 독버섯처럼 자라있는 못된 자아를 주님께서 잘라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요, 쉽지 않습니다.

나를 증명해야 되고, 나를 증명하고 나를 자랑해야 살아남는 이 시대 가운데 나를 부인한다니요. 이것은 우리가 가고 싶지 않은 길입니다. 아니, 너무나도 피하고 싶은 길입니다. 그런데 주님, 그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 정말, ’나의 제자가 되길 원하니?‘ 너 자신을 먼저 부인해야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자기 십자가를 지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전제조건-예수님을 따르는 길.
II. 둘째로, 자기 십자가를 지라.

-예수님을 따르는 자에게는요. 그 제자들에게 각자 각자의 십자가를 허락하십니다.
교회에서 심방을 하다 보면 참 놀라운 것을 발견합니다. 학벌이 좋거나, 부유하거나, 자녀가 잘 되거나, 내 삶에 직업이 탄탄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요. 돈이 많아도, 권력이 있어도, 내가 원하는 것들을 잃어왔어도,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십자가가 있다는 것이에요.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에게 허락한 그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걸어가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면서 그 십자가가 너무 무겁지만 그 십자가가 너무 힘들지만 그 십자가를 지고 걸어갈 때, 우리는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됩니다. 이 십자가가 너무나 힘겹고 어렵지만, 이 십자가를 지고 나아갈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뒤를 돌아보니 아!!~~ 하나님께서 내 삶에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이뤄 놓으셨구나! 아니 지금도 이루고 계시는구나, 를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우리 모두에게 주님께서 주신 十字架(십자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 아버지, 이 잔을 내게 거두어 주십시오‘ 라고 기도했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 저 이것만 거두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라고 기도하는 그 십자가가, 그 십자가가 우리에게 있다. 라는 것이죠.

※제가 한 21년째 교제하고 있는 한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이 선교사님은 영국 런던에서 무슬림 사역을 감당하고 계시는 선교사님이십니다. 그런데 벌써 20년이 넘게 腦腫瘍(뇌종양)을 몸에 안고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뇌종양으로 인한 고통이 너무 심해가지고 먹는 것을 다 토해버리고, 때때로는 먹을 힘조차 없고 그 괴로운 시간 들을 계속 적으로 보내오셨습니다. 몸에 제 3차 신경 고통이 조여오면 정말로 이 송곳으로 그 몸과 마디마디를 찌르는 것 같은 그 고통 때문에 너무 괴로우시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어느 날 선교사님께서 저 정말 건강이 이렇게 좋지 않은데 계속 런던에 있어야 됩니까? “주님 건강이 좋지 않은데 런던에 있어야 합니까? 계속 사역을 해야 합니까? 주님이 이 질병 질병을 주님께서 거두지 않으시는데 저 계속 이 자리에 있어야 됩니까?” 라고 그때 하나님께서 이 선교사님의 마음 가운데 아주 뜨거운 감동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것이 너에게 허락한 십자가야, 너의 십자가를 지고 가렴” 지금도 선교사님은 뇌종양을 안고 선교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묵묵히 그 땅에서 무슬림 영혼들을 섬기며 사역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선교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십자가가 있습니다. 때로는 그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서, 그 십자가가 내 삶을 짓눌러서 피하고 싶고 떠나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그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는 나의 제자는, 그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이다.” 라고 말입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께서 제자의 전제조건 세 번째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전제조건-예수님을 따르는 길.
III. 셋째로, 나를 따르라.

-나를 따르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따라야 될 것은 예수 그리스도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따라가야 할 것은요, 이 세상도 이 세상의 문화도 아닙니다. 이 세상의 권력자 이 세상에 부함 이 세상의 명예와 이 세상이 주는 안락함도 아닙니다. 우리가 따라야 될 분은요, 이 세상의 탁월한 지도자도 아닙니다. 위로해 주는 상담가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힘을 주는 친구도 사실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잠시 피웠다가 사라질 꽃과 같은 유한한 것에 너희의 마음을 두지 말라. 영원히 변함없으시며 영원토록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심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따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예수님만을 사랑하시기를 오직 예수님만을 의지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다른 그 무엇이 아닌 오직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우리의 삶의 모든 삶의 이유와 모든 삶의 목적과 모든 삶의 방향이 결정 되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단 한순간도 다른 길로 걸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한길, 그 길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건져내시고자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우리가 하나님과 심지어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도 못한 채, 무지 가운데 살아가고 있던 우리를 건지시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그 길 가운데 서신 그 길, 바로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이 십자가는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었죠. 이 십자가는요 정말로 세상 사람들이 다 내던져 버리고 싶은 것이 바로 십자가였죠 그런데 예수님은 그 십자가의 길로 묵묵히 걸어가십니다. 묵묵히 걸어가셔서 이 세상에 지혜를 멸하시고 총명을 패하셨습니다. 모든 통치자들과 권력을 무력화시키시고 하나님의 승리를 선포케 하셨던 것이죠. 그리고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의 죄악 사이에 막혀 져 있던 그 담을 주님께서 헐어버리사,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만이 결국 마침내 하나님의 勝利(승리)가 宣布(선포)되는 그 역사적인 현장이었던 것입니다. 승리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 찬양의 가사에 보면 이런 고백이 나오는데요.

승리가 무엇인 줄 아는가? 우리는 승리하면 우리가 강압하고 악제하고 힘을 더 갖기를 원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승리 그 십자가의 길 가운데 주어지는 승리가 무엇인지, 승리는- 더 좋고 더 편한 가능성의 유혹을 절연히 잘라버리고, 오직 주님만 따라가는 것, 승리가 무엇인 줄 아는가? 하고 싶은 말, 그 많고 많은 말, 모두 힘겹게 꾹 누르고, 오직 주님께서 내 삶 가운데 말씀하게 하시는 것, 그것이 승리입니다. 승리란 무엇인가?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을 허옇게 잠재우고, 주님만 내 안에 사시는 거, 주님만 내 안에 사시고, 주님이 내 안에 역사하시고,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십자가의 능력이 내 안에 역사하면, 그것이 바로 승리라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말씀하시고 친히 걸어가신 그 길은요, 십자가의 길입니다. 우리가 길을 그 길을 따라갈 때 때로는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때로는 무시를 당할지도 모릅니다. 때로는요 모욕과 치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고통을 당하시므로 우리를 헤아리시는 주님께서 무시를 이미 당하셨고 무시당하는 자의 그 아픔을 헤아리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상처를 보듬으시며 모욕의 현장 가운데 우리보다 더 뜨거운 눈물로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부끄러움을 가려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날마다 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게 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비교할 수 없고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힘입어, 예수님께서 친히 걸어가신 그 십자가의 길을 주님을 따라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서원합니다.

♣요약
우리는 참 많이 넘어지고 쓰러지는 인생이다. 그때마다 주님께서 다시 한번 우리 가운데 말씀하심을 청종하여,. ’십자가의 길로 나아오라.‘는 말씀을 붙잡고, 우리가 다른 것으로 우리의 인생을 방황하지 않고, 오직 우리의 생명이 주가 되어 주시는,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로만 걸어가는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을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걸어가는 그 십자가의 길을 통하여 이 땅 곳곳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과 부활의 생명과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이 머무는 거룩한 인생으로 살며, 나를 진정으로 부인하여 세상 사람들 앞에 겸손과 거룩함으로 본이 되어서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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