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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4년 03월 16일)
제목: "7천기도 용사의 팀웍"
말씀: 사도행전 13:1~3
대표기도: 이정애 권사님(목양2팀 여직장 대교구장)
찬양인도: 목양2팀 영가족 찬양대
말씀읽기: 여정민 자매(청년4국), 장광재 형제(대학8부)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팀프리칭: 이윤기 부목사님(대학부), 이기호 부목사님(청년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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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1-3,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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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미션-성경읽기

*시편 20편.
1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2 성소 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3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셀라).
4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5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6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시리로다.
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8 그들은 비틀거리며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9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시편 21편.
1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2 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셨으며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 (셀라)
 
3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그를 영접하시고 순금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4 그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그에게 주셨으니 곧 영원한 장수로소이다
5 주의 구원이 그의 영광을 크게 하시고 존귀와 위엄을 그에게 입히시나이다
6 그가 영원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
7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오니 지존하신 이의 인자함으로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8 왕의 손이 왕의 모든 원수들을 찾아냄이여 왕의 오른손이 왕을 미워하는 자들을 찾아내리로다
9 왕이 노하실 때에 그들을 풀무불 같게 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그들을 삼키시리니 불이 그들을 소멸하리로다
10 왕이 그들의 후손을 땅에서 멸함이여 그들의 자손을 사람 중에서 끊으리로다
11 비록 그들이 왕을 해하려 하여 음모를 꾸몄으나 이루지 못하도다
12 왕이 그들로 돌아서게 함이여 그들의 얼굴을 향하여 활시위를 당기리로다
13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
 
*시편 22편.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4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5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9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10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11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
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14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19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20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21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22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23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24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25 큰 회중 가운데에서 나의 찬송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29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30 후손이 그를 섬길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31 와서 그의 공의를 태어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시편 23편.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4편.
1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5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7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8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9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10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
 
*시편 24편
1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3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4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5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6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들을 기억하옵소서.
7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8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의 도로 죄인들을 교훈하시리로다.
9 온유한 자를 정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의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10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11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크오니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하소서.
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13 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14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15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16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17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고난에서 끌어내소서.
18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19 내 원수를 보소서 그들의 수가 많고 나를 심히 미워하나이다.
20 내 영혼을 지켜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21 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
22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을 그 모든 환난에서 속량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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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부, 우리 초등부 자녀들 400명이 새벽에 이렇게 나와 가지고 토요일 날,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의 실천기도의 용사들 우리가 동지 의식을 가진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 앞뒤 자 옆에 “우리는 칠천기도 용사입니다.” 기도의 능력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아멘, 아멘 작년도에 말이에요. 작년도 63 우리 상암 집회할 때에 우리 프랭클린 빌리그래함 목사님 말씀 듣고 또 많이 한국교회가 아니 전 세계 교회가 코로나 이후에 처음으로 그렇게 많이 모였어요. 전 세계 교회 중에 처음으로 전 세계 우리 프로테스탄트 수많은 교회들 아마 전 세계 아마 교회가 한 200만 정도 되지 않겠어요. 200만 교회 그래야 되는데 처음으로 모여가지고 우리가 말씀 복음 듣고 찬양하지만 그중에 하나가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한 20분간 기도한 것이 그것이 축복이었습니다. 맞습니까? 오늘도 그런 동일한 마음을 가지고 국가를 위하여 여러분 가정을 위하여 여러분 개인을 위하여 하나님이 교회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어떻게 보면 좀 제사장적 그런 마음을 가지고 대표 주자 같은 우리가 뭐 다 대표가 될 수 없는 부족함이 많지만 그러나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나왔을 때는 시대를 대표하는 것이에요. 대표하는 마음으로 나오는데 중요한 것은 여러분 이 지팡이가 갖고 있는 함의가 있어요. 이 지팡이에는 성경에 지팡이는 두 가지예요. 사명과 기적이에요. 지팡이는 뭐가 있다고요? 앞으로 이제 이렇게 할 때마다 지팡이 왜 그래 드느냐? 그런 거 없이도 되지 않느냐? 그럴 수 있죠. 그렇지만 모세가 홍해를 건너고 반석의 샘물을 터뜨리고 또 이 아멜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들고 올라갔을 때, 이게 그냥 그냥이 아닌, 여기에 중요한 하나님의 어떤 뜻이 담겨 있는데 첫 번째 뭐라고요? 사명이에요. ‘너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라. 너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라. 너는 수많은 사람들, 갈증 있는 사람들을 먹이라.’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그 사명을 주심으로 제가 이 때마다 사명을 생각하고, 여러분 마음의 지팡이를 들고 사명을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아시겠어요? 사명을 또 하나는 뭐가 있다고요? 기적이에요.

가장 대표적인 것은 우리 법궤 안에 들어 법궤 안에 들어 법궤 안에 세 가지가 들어있어요. 십자가에 돌멩이가 들고 또 만나 십계명이 들고 그다음에 만 항아리가 들고, 중요한 게 또 뭐가 있어요? 아론의 싹 난 지팡이 기억납니까?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뭘 상징합니까? 죽음에서 부활로, 완전히 이 메마른 것이 생명의 역사로, 죽음에서 부활로, 메마른 것이 생명이 없어요. 그러니까 이 지팡이는 항상 주어져야 하는 사명. 지팡이를 들 때마다 하나님이 사랑의 교회와 우리 개인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그걸 확인하고 또 하나는 뭡니까?
하나님 이 지팡이가 기적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사는 날 또한 능력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기적과 능력은 연계가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 더 우리가 지팡이에다 하나 더 한다면 이거는 간절함이에요.
 
여러분, 잘난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아요. 다 잘나고 다 똑똑하고 교회 오면 조용히 기도하지, 왜 그렇게 부르짖고 기도하냐, 저도 과거에는 그런 사람 중 하나였어요. 왜 어릴 때 왜 왜 그렇게 고함을 지르고 기도하냐, 왜 부르짖냐, 지금도 그런 분들 우리 강남에 많이 있어요. 제가 늘 얘기하죠. 저요 저 사람들이 아직까지 인생의 뜨거운 맛을 못 봐서 그래 인생이랑 뜨거운 맛을,,, 진짜 간난신고(艱難辛苦)를 해보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교회도 아마 지팡이 무용문을 갖고 있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인생의 뜨거운 모습을 보면, 우리가 주님 앞에 지팡이 들고 부르짖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에요. 하다못해 마음의 지팡이라도 들고 하나 기도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우리 7천기도 용사들은 우상이 돼야 되는 것이 이해가 되십니까?
 
첫째-사명, 둘째-기적, 셋째-간절함.
첫 번째는 뭐라고요? 사명이 사명의 집합이 모세에게 준 사명 두 번째는 바로 기적의 지팡이를 들 때 아로의 상난 지팡이의 기적이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시고, 홍해가 갈라지게 하여 주시옵시고, 반상에 생수가 터지게 하시고 영적 전쟁에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또 하나는 뭐라고요? 간절하게 예레미야 29장 12절 13절 또박또박 같이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29장12-13,
1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이 곳과 그 가운데 주민에게 이같이 행하여 이 성읍으로 도벳 같게 할 것이라.
13 예루살렘 집들과 유다 왕들의 집들이 그 집 위에서 하늘의 만상에 분향하고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더러워졌은즉 도벳 땅처럼 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
-아멘, 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가 기도하면 내가 너희의 기도를 뭐예요? 들을 것이오. 부르짖는다는 것이 어떻게 되는가? 지난 주말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참 이 선거가 좀 제대로 되어 가야 되는데 내가 속상한 일들이 좀 있었어요. 그때 자세한 얘기는 안 할 거예요. 참 기가 찰 노릇이네요. 진짜 못됐어요. 진짜,,, 그러니까 오늘 내 마음속에 하나님 아버지, 지팡이를 들고 간절히 기도할 때 주님 역전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시고, 여러분들 때문에 이 민족이 살아야 될 거 아닙니까? 그러려면 여러분들 우리가 마음의 간사함이 남들보다 더 지극해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지팡이는 특별히 몇 가지 세 가지 첫 번째는 뭐예요?
 
사명 두 번째 뭐예요 기적 세 번째 뭐예요? 간절함, 하나님은 일마다 때마다 하나님의 기도의 제목을 주시고 그래서 오늘 먼저 저하고 같이 합심해서 기도할 터인데 첫 번째는 여러분들 평생에 간절히 구하는 기도가 응답되기를 바랍니다. 신명기 33장 25절에 이번 4월 1일부터 있을 특새에 제목을 ‘사는 날 동안 능력이 있으리로다.’ 어떻습니까?
 
*신명기 33:25,
25네 문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가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내가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지팡이를 들고 기도할 때, 강철 신발을 신고 이 하늘을 우리가 계속 힘 있게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 가지, 주여, 내 마음의 지팡이를 들고 싶은 분들은 들고 기도하시고 내 마음의 지팡이는 주님 이걸 들 때마다, 첫 번째, 주님 내게 주신 사명을 확인합니다. 내 것이 비전을 확인합니다. 내가 평생에 가야 할 크기를 확인합니다. 두 번째는 주여 여기에 기적이 일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63 상암 집회 때 들고 있던 기도의 내용들 하나님 이 민족의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시고, 이 민족의 한국 교회가 하나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발 좀 교회 강단에서 쓸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시고, 이상한 사람들 한국교회 뭐 이상한 말 하지 말게 하시고 지금 우리가 사느냐, 죽느냐에 관한 문제인데, 중요한 앞장서 이들 한국교회가 하나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 하나는 하나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국가적으로도 그렇고 교회적으로도 그렇고 다 일어나셔 가지고 이 시간 간절한 마음으로 정말 마음을 다해 오늘 7천기도 용사 1번부터 7천 번까지 여기 다 와 계시는데, 초등부 400명 초등부 아이들 사는 날 동안 능력이 있으리로다. 우리 아이들 4년 동안 능력 있으리로다. 제가요 이 지팡이 이건데 제가 이 지팡이를 드니까요. 전 세계적으로 지팡이가 저한테 들어왔어요. 제 방에 지금요 지팡이가요, 몇 개가 있는데 다음 주에 한번 보여드릴 거예요. 지팡이가 하나는 뭡니까? 뭐예요? 청려장이라고 하여튼 시아는 명아주 지팡이, 명아주 지팡이가 있는데 하여튼 보여드릴게요. 아시겠죠?

이거 마음에 지팡이를 들고 세 가지, 하나님 우리 국가적으로 은혜 주시고 교회적으로 은혜 주시고, 특별히 여러분 개인적으로 평생 기도하는 제목들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우리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고 주의 용서된 나에게 주의 일 맡기소서. 우리 찬양하고 마음의 지팡이를 들고 합심해서 같이 우리 기도하겠습니다. 한 번 더 기적의 매력을 한 번 더 할 터인데, 여러분 간절함을 담아 기도할 때 응답될 줄로 믿습니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에 아무것도 없는 거기서 하나님이 생명의 싹을 틔운다면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이 민족을 구원하시고 교회를 세우시고 여러분 평생의 기도의 제목이 응답될 줄로 믿습니다. 모든 한계를 뛰어넘어 기도의 재판을 높이 들고, 우리 아이들도 다 부모의 마음을 다 배우고, 우리 마음에 지팡이 없는 분들은 손이라도 들고 마음에 손을 들고, 또 오늘 온라인으로 또 방송으로 들어오고, 또 우리 지금 이 현장 중계로 들어오는 모든 분들은 있는 자리에서 동일하게 손을 들고 주님 앞에 주여, 오늘 내가 손을 들 때 주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 이루어지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다음에 주님 남들은 생각하지 못한 육체 한계를 뛰어넘는 기적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주여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오니 부르짖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응답하신다고 약속하셨사오니, 특별히 평생의 기도의 제목이 응답되게 하여 주옵소서. “사명과 기적과 간절함이 지팡이와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13장 말씀을 읽었는데 정확히 말씀은 안 하겠고 이런 우리에게 주신 사명과 그다음에 기적과 간절함의 은혜를 누리려면 한 가지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인 그것이 뭐냐 하면, 우리가 팀웍이에요. 무슨 팀웍이라고요? 우리 팀웍인데 7천 기도 용사의 팀웍이 필요한 것이에요. 오늘 사도행전 13장 이 내용 앞에 1절부터 이 내용인데 1장부터 12장까지는 예루살렘 교회 로컬 지역이었지만 13장부터는 세계 비전으로 나가는 거예요.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로 나가는 거예요. 근데 글로벌 스탠다로 나갈 때 하나는 금식이었고 하나는 팀웍이었어요. 보십시오. 여기 보니까 13장 3절에
 
*사도행전 13:3,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바나바 사울을 따로 세워가지고 안수하게 보내는데, 그렇게 된 배경은 안디옥교회의 앞장서서 일하는 리더들, 그리고 한 안디옥교회 구성원들의 팀웍이었어요. 어떤 분들이 있었습니까? 선지자와 교사들인데, 바나바, 바나바는 잘 아시는 대로 바나바는 우리 마음 좋고, 온유하고, 또 나름 재물이 좀 있는 분이었고, 그다음 니게르라는 거 보니까 이 이름 보니까 흑인이었어. 흑인, 그리고 니게르는 시몬과 그다음 구레네 사람, 사도행전 11장에 보면 앞에 보면 이 안디옥교회 초창기에 헌신 멤버들 가운데 구레네의 사람 매치 이렇게 나오죠. 창립 멤버였고 루기오와 그다음에 분봉왕 헤롯의 젖 동생이다. 젖 동생이 누굽니까? 이 그들은 그 당시 말하면 왕족이죠. 귀족이죠. 그러니까 흑인도 있고 왕족도 있고 부자도 있고 또 구르는

사람도 있고 또 사울은 정통파, 유대인 랍비 아닙니까? 그러니까 각계 각층이 다 모인 거예요. 교회는 너무 신비한 거예요. 생각해 보시라고 오늘 돈을 주면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이 새벽에 그리고 어린아이부터 우리 어른들까지 전체가 이렇게 남녀노소 빈부귀천 유무식이 다 모였잖아요. 이게 하나님 나라 가는 축복이에요.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권속이다. 권속이란 말이 뭡니까? 패밀리라는 뜻이에요. 패밀리는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다 있는 거예요. 교회의 축복에 이런 단체나 이런 어떤 조직은 전 세계 교회밖에 없는 것이에요. 오늘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2천년 동안 하나님의 교회가, 너무나 신비하고, 놀랍고, 경이롭고, 아름답고 깊이가 있는 것이에요오늘 이런 축복을 여러분들 다 받아 누리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팀웍이 우리 한국교회는 이제 더 이상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한국교회는 더 이상 팀웍을 해치는 말을 더 이상 하면 안 된다. 한국교회는 하나 돼야 한다. 지잘 난 맛에 앞에서 이상한 소리 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야 한다. 함부로 한국교회를 헐뜯고 누구누구를 헐뜯고 강단에 올라가서 누구누구는 안 맞다. 나와 안 맞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죠. 그거는 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러니까 구원받지 못한 백성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모시지 않는 사람이라면, 피해 복음의 능력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자유주의 신학자라면 어쩔 수 그거는 우리하고는 영이 안 통하니까 영이 안 맞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지만 예수 믿고 구원받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믿고 복음을 믿고 교회의 영광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가 다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에요.

팀웍을 이루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유이야를 막론하고 여러분들이 강단위에서 교회를 해치는 소리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다 싸그리, 그냥 알겠습니다. 참 참 질이 안 좋은 사람들 많아 교 교회 한국교회를 한국교회 죄송합니다. 한국교회에 참 녹을 먹고 살면서 이상하게 한국교회를 비난하는 사람들 참 그 질이 안 좋아요. 우리는 한국교회가 하나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남녀노소 빈부귀천, 유무식이 다 그래서 여러분들 들어보면 강단에서 여러분들 설교를 들어보면 아 저분은 한국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분이시구나, 저분은 한국교회의 하나됨을 통하여 한국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귀한 일을 하기를 원하는구나, 그걸 분별하는 분별의 영을 여러분들에게 주시기를 바라는 거예요. 끊임없이 중요하고 그리고 사도행전 1장부터 12장 사도행전 전체의 요절은 뭡니까?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아니 그 당시에 하루에 걸어봐야 40km 밖에 못 가고 그 당시에 배가 그 당시에 뭡니까? 기차가 있습니까? 무슨 자동차가 있습니까? 비행기가 있습니까? 기껏 해봐야 도보 막 걸어봐야 40km 말 타고 가봐야 100km 갈까요?100km, 못 가죠 하루에 그런 넓디 넓은 그 고대 근동 세계에 지금의 나라와 지금 세계와 비교하면 우리는 지금 비행기 타면 전 세계를 하루에 다 한 바퀴 다 돌잖아요. 기껏해야 하루 40km 가는 그런 세대에 온 세계를 가슴에 품고 ‘모든 족속으로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기가 막힌 거 아닙니까? 지금 우리 지팡이 들고 기도하는 거랑 비교가 안 될 정도의 통 큰 가슴이 그걸 위하여 1장부터 12장까지는 우선 예루살렘 교회까지고, 13장부터 오늘까지 전 세계를 향하여 나가는 거예요. 우리 교회로 말하여 지금 ‘2033-50 비전’을 위하여 주님 쓰임 받게 하여 주십시오. 그런 마음으로 팀웍을 이루는 것이에요. 팀웍, 그래서 여러분 제가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서는 정말 대단했다 할 때에 그때 영국의 조지뮬러, 그다음에 뭡니까? 스폴전 목사님 허드슨 테일러, 다 스타일 다르고 사역의 영역은 다 달랐지만, 서로 귀한 친구가 돼가지고 똘똘 뭉칠 때, 영국 교회가 그 당시의 시대를 향하여, 한국교회도 한때 우리 김준곤 목사님 대학생 선교회, 김준근 목사님 국가조찬기도회를 설립하고, 대학생 선교회를 설립하고, 한경직 목사님 이북에서 내려 와가지고 어쨌든 나라 살려야 된다고, 생각하고 영락교회 이렇게 영락교회 개척하시고, 그리고 성령의 역사를 따라서 힘 있게 살던 조영기 목사님 이런 분들이 힘을 다해가지고 다 그 뒤 우리 옥 목사님 또 여러분들이 귀한 사역을 하셨지만, 지금은 이런 팀웍을 가지고 해야 되는데, 이 이 7천기도 용사 이 기도가 한국교회 팀웍을 위하여 놀랍게 쓰임 받는 자리가 되게 해 주실 줄 저는 믿습니다. 이거예요. 우선 우리 아이들부터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7천기도 용사, 어른들 기도 용사, 우리 아이들 기도 용사, 그래서 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들이 벌 떼와 같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7천기도 용사를 위하여 포에버는 어떻게 하고, 주일 학교는 어떻게 하고, 다 나오지만 오늘은 청년대학부가 대학 청년부가 7천기도 용사를 위하여 어떤 팀웍을 이루고 어떻게 일해야 할지, 뭘 준비하고 있는지, 이 시간 우리 이윤기 목사님하고 이기호 목사님 두 분 우리 나오셔 가지고 오늘 팀 프리칭을 하겠습니다. 잘 듣고 오늘 우리가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저기 뭡니까? 대학부 청년부 고생 많이 하는데 지금 여러분 청년이 살아야 한국교회가 사는 것이에요. 그리고
 
여러분 어떤 모임이든지, 어떤 여러분들 직업이 여러분들 식당 하나를 하더라도요. 젊은 사람이 많이 와야 그 식당에 성공을 하는 거예요. 이것도 화면을 크게 하나네. 그러니까 무슨 모임 어떤 단체 뭘 하더라도 젊은 사람들이 많이 와야 되는 거예요. 사랑의 교회는 아직까지 젊은이들이 많이 오는 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청년대학부 우리 박수로 환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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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프리칭:
대학부-이윤기 부목사님.
네, 사랑의 교회 대학부는 청년의 시기에 예수님을 따르는 온전한 제자로 훈련받아 캠퍼스와 삶의 자리에서 작은 예수로 살아가고자 하는 청년들이 모인 사명 공동체, 생명 공동체인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 우리가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나아갈 때에 청년 7천 기도용사가 되어서 2033-50 비전을 향해 사랑의 교회 대학부 청년들을 사용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런 마음을 안고 사랑의 교회 대학부는 모든 대학부 지체들이 지난주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던 자정부터 시작된 “God send all right!”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세속 문화의 죄로 물든 불금이 아니라, 우리 담임 목사님의 말씀과 같이 복음의 야성을 회복하고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사명을 기억하는 거룩한 불금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번 기도에 참여했던 한 형제는 보내신 캠퍼스에서 홀로 기도할 때는 외로울 때도 있었지만, 함께 마음을 합하여 청년들과 기도하며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7천 명의 기도 동역 자를 생각하며 용기를 얻었다라고 고백했고, 그 내용이 어제 국민일보 기사로 ‘God send’, 기사와 함께 실리기도 했습니다. 밤새 기도했던 대학부체들은 청년 7천 기도 용사의 사명을 안고 지난주 토비새로 함께 나왔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는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을 때에 비로소 시대를 감당할 만한 순전한 영성을 표현하고 그 은혜를 받을 수 있다. 라고 말씀하셨었는데, 우리 사랑교회 대학부 청년들이 지난 기도회를 통하여서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거룩한 영성을 주님께 받았을 줄로 믿습니다. 이와 같이 앞으로도 대학교 청년들은 우리 믿음의 선배님들과 부모님 세대의 고귀한 기도, 자본의 영성을 본받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여호와 닛시의 깃발을 높이 들고, 또한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었을 때에, 그리고 주님께 자신의 인생을 내어드리며 살아갈 때에 주님께서 우리 대학부 청년들의 인생을 2033년, 대한민국 50% 복음화의 주역으로 마중물로 사용하실 것을 다시 한 번 믿습니다.
 
이러한 새벽 영성을 가지고 대학부는 청년 7천기도 용사가 되어 주중에는 캠퍼스 현장으로 나아갑니다. 대학부 주체들에게 아말렉과의 영적 전투가 가장 치열하게 일어나는 곳은 바로 캠퍼스입니다. 세속주의와 인본주의적인 세계관 앞에서 성경적 세계관으로 맞서 싸우는 사랑의 교회 대학부는 캠퍼스 선교 모임 시드를 통하여 캠퍼스 복음화에 힘쓰고 있습니다. 2024년 상반기 현재 43개의 시드 모임이 각 캠퍼스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SEED 모임으로 함께 모여 크리스천 청년으로서의 삶을 나누고 캠퍼스를 위해 기도하며, 십자가 보혈의 복음이 이들의 기도로 말미암아 각 캠퍼스를 물들이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더불어 사랑의 교회 대학부는 작년부터는 캠퍼스 입학식과 개강 시리즈에 맞춰서 캠퍼스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작년과 올해도 동일하게 해당 시즌마다 캠퍼스별로 커피 천 잔을 제 손에 쥐어주면서 입술에는 맛있는 커피이지만, 그 가슴에는 뜨거운 복음을 담아 함께 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지난 주 중에는 총신대 사당 캠퍼스로 방문하였는데요. 그곳에는 이제 막 지방에서 올라와 어느 교회로 갈지 헤메이는 수많은 영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지 아니하고, 은혜의 저수지, 사역의 병참 기지인 사랑의 교회로 올 수 있도록 우리 대학부가 먼저 다가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사랑의 교회 대학부는 각 캠퍼스 시드 모임과 캠퍼스 전도를 통한 선교를 계속하겠습니다. 사랑의 교회 온 성도님께서 대한민국 캠퍼스 복음화를 위해 함께 마음 모아 기도해 주시고, 주님께 헌신해 주실 때에, 주님께서 ‘2033-50 비전’을 위해 사랑의 교회 대학부 청년들을 귀하게 사용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그리고 7천기도 용사가 되어 2033-50 비전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사랑의 길 대학부는 적인 무기 또한 열심히 갈고 닦고 있습니다. 그 무기는 바로 대학부 전도폭발훈련입니다. 2018년 가을 장년 부 전도폭발 훈련에 훈련 자 성도님들의 도움과 섬김으로, 대학부 전도폭발 훈련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벌써 어느덧 11기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약 650명 되는 훈련자와 훈련생이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번 학기에도 대학부 전도폭발 훈련자와 훈련생들은 한 손에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한 손에는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아말렉과 같은 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 이 청년들의 생명 사역을 통하여 더 많은 청년들이 7천 기도용사의 대열에 들어설 수 있도록 전력투구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설명 드린 대학부의 생명 사역들은 세상의 거센 도전을 향해 여호와 닛시 깃발을 높이 드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또한 ‘2033-50 비전’을 이뤄가고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의 현장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역사는 매주 바로 이곳 토비새에서 새로운 역사로 다시 쓰여 지며 새 차원으로 매주 마다 도약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이를 위해 청년 7천 기도용사의 핵심 리더십인 대학부의 리더 들과 제자 훈련생들은 토요일 새벽을 깨우며 안아주심의 본당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매주 토비새를 통해 우리 청년들을 기도의 용사로 세워주시고, 토비새로 나오는 모든 청년들을 한 명도 예외 없이 그 인생을 반드시 거룩한 사명을 위해 귀하게 사용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사랑의 교회의 온 영 가족들이 새벽이슬 같은 우리 대학부 청년들을 위해 이 토비새에서 7천기도 용사가 되어주셔서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함께 기도해 주실 때에 주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시사 대학부지대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캠퍼스와 삶의 현장과 각 가정 곳곳으로 흘러가게 하실 것을 굳게 믿습니다. 이어서 우리 청년부에서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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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프리칭:
청년부-이기호 부목사님.
토비새에 나오면 세대 차이가 없고, 은혜 의식과 올바른 역사의식으로 무장되는 줄 믿습니다. 또한 우리 토비사의 현장은 한국교회의 강점을 배우는 수선대후의 현장이 되는 줄 또한 믿습니다. 출애굽기 17장에서 기록한 대로 이스라엘 민족은 아멜렉의 그 야비하고 집요한 공격에 맞서서 치열한 전투를 벌입니다. 모세와 아론과 홀이 산에서 기도할 때에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뜨겁게 하나님 앞에 메어 달릴 때에 산 아래에서는 청년 여호수아가 군대를 이끌고 전투를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훗날 이 여호수아는 성경에서 유일한 순종의 세대인 그 이스라엘과 함께 가나안 땅을 정복합니다. 이처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언약의 그 약속의 거룩한 영적 자본의 상속자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고령층과 젊은 층을 서로 다른 세대로 구분 지으며 세대 간의 갈등을 부추긴 것들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때에 사랑의 청년, 사랑의 교회 청년부는 이러한 세상의 아말렉의 공격에 맞서서 한국교회의 영적 자본, 그 새벽 영성의 거룩한 상속자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부흥 헌신 토비새에 나오며 기도로 부르짖으며 매달릴 때에, 하나님께서 청년 7천기도 용사와 이 세대를 한국교회의 회복과 부흥의 주역으로 세워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사랑의 교회 청년부는 기도의 전후 조를 이루어서 함께 토비사이에 참여합니다. 성경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세와 아론과 홀, 그리고 여호수아가 믿음의 동력을 이루어 전쟁에서 승리했던 것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또한 베드로와 요한, 이어서 바울과 바나바의 그 사랑의 팀웍으로 한국교회의 세계 선교를 담당했던 것들을 또한 기억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를 보더라도 마포 삼열, 배위량, 이길함 선교사님들이 사랑의 팀웍을 이루어서 3.1운동 기독인 지도자들을 양성하고, 한국교회의 초석을 다졌던 것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청년, 사랑의 교회 청년부는 이러한 믿음의 동력과 사랑의 팀웍의 영성을 이어받고자 합니다. 소그룹별로 섬김 팀별로 함께 기도의 전후 조를 이루어 토비새에 나와 내가 나와서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 교회와 영적 동지들의 영성을 책임질 수 없다. 내가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 교회와 한국교회의 영성을 지킬 수 없다는 심정으로 기도하고 앞으로 더욱더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토비의 후에는 매주 청년들이 다시 다 함께 청년 무릎 기도회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일 1부부터 4부 예배까지의 그 예배와 청년부 집회, 그리고 소그룹과 또 섬김의 현장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일 모든 예배와 집회와 소그룹 현장을 생명의 현장으로 바꾸어 주실 줄 믿습니다. 특새의 영성이 일새의 영성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처럼, 토비새와 토비새의 그 새벽 영성이 주중 일터에서의 새벽 영성으로 또한 이어져야 할 줄 믿습니다.
 
토비새와 주일 예배의 넘치는 은혜가 일터에서의 실천과 열매로 나아가기 위해서 사랑의 교회 청년부는 아침 7시 출근길에 권역별로 모여서 말씀 묵상으로 하루하루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서울과 경기도를 포함해서 총 9개 지역에서 아침마다 모이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이 현장을 청년 7천기도 용사들의 거룩한 거점이 되게 하시고, 일터를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하는 전초 기지가 되게 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런데 일터에서, 일터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감당해 나가다 보면 때로는 세상의 부정적인 피드백과 과도한 스트레스를 비롯해서 참 마음을 뒤흔드는 여러 아말렉의 공격이 있는 것을 경험하시지 않습니까? 이때 아말렉의 공격에 즉각 반응하여 기도의 지팡이를 잡고 산에 오른 모세와 같이 사랑의 교회 청년부 지체들은 일터 직장에 앉은 바로 그 현장에서, 1초 화살기도, 3초 거룩 기도, 5초 전적 위탁의 기도를 드립니다. 이어서 그 마음을 이번에 청년부에서 사랑의 괴 72구절 암송 캘린더를 제작하여 배부하였는데요. 사랑의 교회 729절 암송 말씀으로 그 마음을 채울 때마다, 하나님께서 일마다 때마다 여호와 닛시 승리의 깃발을 흔들며 전진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다 함께 이 구호를 한번 읽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한 번뿐인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한 번뿐인 인생 속히 지나가리라.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일만이 영원하니라.’ 아멘 사랑의 교회 청년 대학 대청부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교회 믿음의 3대는 ‘2033-50 비전’을 이루어 나가는 청년 7천기도 용사로 계속해서 뚜벅뚜벅 걸어 나가며 전진해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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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오정현 담임목사님
우리 젊은이들이 이와 같은 기도로 무장될 때 하나님이 이 민족을 사랑해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저는 꿈이 있어요. 토비새를 수출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토비새를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런 꿈을 갖고 그렇게 하고 이게 우리 생각의 틀만 바꾸면 되는데 제가 우리 몇 년 전에 이디오피아에 가가지고 목사님들 훈련을 하고 집회를 하고, 또 저자 훈련 세미나를 하고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근데 우리 팀이 한 20여 명 정도 갔는데, 아디사바마에 가니까 우리 숙소가 있는데 물도 좀 잘 안 나오고 조금 불편했어요. 그러니까 우리 한국식으로 생각하고 좀 불편하다. 라고 이렇게 마음을 먹을 수가 있는데 갑자기 있잖아요. 무슨 생각이 했냐면, ‘여기 선교지 아닌가? 선교지는 물 좀 불편해도 익숙해 잠자리 불변에도 있츠 오케이!’ 다 그런 갑자기 그 생각의 틀이 딱 바뀌니까요. 그리고 또 또 이제 길을 가다가 무슨 제가 야생초가 좀 있어가지고 이렇게 딱딱 이제 좀 좋아 보여 가지고 딱 만지는데 탁 쏘더라고요. 보니까 이게 엄지손가락이 퉁퉁 붓는 거야. 독초를 내가 만진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 독초를 만지니까 손이 붓고 그다음에 뭐 이렇게 물도 잘 안 나고 이럴 수 있는데 선교지니까, 그러니까 마음이 다 편한 거야. 그러니까 선교지라고 생각하니까 모든 것이 다 용납이 되는 거예요. 토요일 비전 새벽 예배는 여기가 기도의 선교지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예요. 여기 오면 모든 것이 다 감사가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저기 뭐야 엄지손가락이 퉁퉁 부으니까 여기 병원이 있는데 그래도 괜찮은 병원이 하나 있다고, 그래갖고 가니까 이디오피아 아디사바마의 명성 기독교 병원 명성교회 가는 병원 제일 좋은 거예요. 거기가 툭 하니까 명성교회 기독병원인데 쫓아 나오는 저기 뭐야 의사는 미국 남가주 사랑의 교회 의사가 쫓아 나오더라. 그냥 깜짝 놀란 거예요. 그래서 야 거기가 우리 장로님이신데 은퇴하시고, 미국에서 잘 나가는 이 마취의사였는데요. 아랍의 왕족들이 오면 LA의 유명한 병원에서 이렇게 마취하는 분이고, 마취를 잘해줬다고 다 금시계 하나를 갖다가 딱 선물 받고, 왕족들이니까 뭐 그런 한 분인데 다 이제 다 정리하고 옆에 와가지고 선교 병원을 선교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다 감사하다는 거예요. 다 감사하다는 거에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토비새는 다 감사가 되는 자리가 돼야 되는 거예요. 독초의 쏘여도 이쪽이 병원에 보내줄 거다. 병원 가면 또 내가 너무 잘 아는 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늘 같이 또 기도하고 그러니까 이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대학부, 청년부 주일학교 모두가 다 매수 토비새는 하나님의 역사를 창조하는 토비새가 될 줄로 확신합니다.
 
◆기도의 지팡이 상징,
지팡이는 첫 번째 뭐라고요 사명,
두 번째 뭐예요? 기적,
세 번째 뭐예요? 간절함,
-이 세 가지를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들의 생애를 바꾸어 주시고, 사랑의 교회를 붙잡아주시고, 한국교회를 붙잡아주시고, 이 민족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요약
우리 믿음의 4대가 7천 기도용사가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의 경이롭고, 신비로운 장엄한 임재로 모든 난공불락의 장애물을 돌파해 주실 것을 확신하며, 영 가족들이 하나님의 섭리적 의도를 의지하여 영원한 대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갈 때, 참된 하늘의 부요에 눈을 떠서 날마다 은혜의 성층권으로 비상해야 한다. 우리 교회 사랑글로벌 아카데미가 시대의 변화를 선도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영적 플랫폼으로 구축도어 시대적 소명과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글로벌 리더들을 양성하는 영적 집현전의 역할을 감당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과 권능으로 내일 예배에 폭포수 같은 은혜를 부어주셔서 사각 지대가 없는 맞춤형 은혜로 승리의 확신 트로피를 들어올려 드리는 감사의 예배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팡이를 높이 들고, 매일 사명을 가지고, 기적을 기대하며, 간절함으로 기도하여 2033-50 비전을 이루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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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03월 13일)
제목: "영생의 복이 있는 팀워크"
말씀: 시편 133:1-3
찬양인도: 쉐키나(이동선 부목사님)
사회: 강건우 부목사님
 
설교자: 양은규 부목사님(목양9팀, 1권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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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3:1-3
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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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경 말씀에는 하나님의 감격, 하나님의 칭찬, 하나님의 복이 함께 연합하고 함께 거하고 함께 하나 되는 그 동거는 형제들 위에 부어졌다라고 선언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시편 본문 133편 3편 앞에 보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이렇게 적혀 있는데요. 히브리어 성경에는 이렇게 돼 있지 않고 다윗의 시 그리고 올라가는 자들의 노래 이렇게 돼 있습니다. 아마 이게 후대에서 아마 이것이 예배에 의해서였기 때문에 성전이라고 붙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솔로몬 다윗 시대는 성전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회막에서부터 이미 유월절이나 초막절에 그들이 함께 요 앞에 보이고 그 얼굴을 함께 나타내는 그 절기에 이 찬양이 불려졌다. 라는 거예요. 그래서 다윗 때부터 솔로몬 그리고 솔로몬 이후까지 계속적으로 이 찬양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술에 고백되어지고 함께 노래했던 곡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함께 이 곡을 고백하면서 그들이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이 성전에 올라가는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함께 고백하면서 그들의 정체성을 이해하게 됐을 것이고요. 그리고 우리가 함께하는 것에 대하여서 우리가 함께 연합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함께 이 절기를 지키면서 같이 시간을 보내는 그 동거하는 그 시간을 통하여서 우리가 함께하는 것에 주님이 어떤 복을 주시는가라는 것을 기대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편은 단순하게 그들의 공동체의 고백, 그들의 정체성, 하나님의 축복을 넘어서서 여기 안에는 굉장히 계시적이고 언약적인 메시지가 숨겨져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사도행전 2장 29절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2:29,
29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다윗을 가리켜서 그는 선지자다. 그는 선지자여서 메시아의 부활을 이렇게 예언하였다라고 29:31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다윗은 선지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 140편 또한 다윗이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 정도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마음을 이 시에 담아주신 것입니다. 다윗에게 보여주신 영적 의미가 우리는 확인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눈에, 다윗의 마음에 하나님의 감격을 보여줬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의 그 아름다움에 하나님의 감격, 하나님의 그 벅찬 희열을 다윗의 눈과 마음과 그 입술에 담아준 것이죠. 그래서 어떻게 해요? 내 백성의 연합하는 것을 봐라. 그들이 함께 나와서 내 얼굴을 보는 것을 봐라. 그들이 얼마나 아름다우냐? 이것이 얼마나 선하냐? 내가 이것을 보고 복을 내리지 않겠냐? 내가 복 내리겠다. 야, 이거 영생이야, 이렇게 하나님이 감격하는 것입니다. 이 다윗을 통한 하나님의 감격이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 첫 번째 한번 같이 따라 읽도록 합시다. 시작
 
I. 첫 번째, 참 연합과 참된 팀워크는 하나님의 눈에 아름답습니다.
 
다윗은 형제가 연합하는 것이 아름답다 선하다 이렇게 말하는데요. 이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서 a는 b 같다. a는 c 같다. 이렇게 연합의 의미를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a는 b 같다 할 때 이 b는 뭐냐 하면 ⓵첫 번째는 보배로운 기름이에요. 2절에 나와 있는 보배로운 기름, 그래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은 뭐와 같다 보배로운 길을 갔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은 무엇 같다 ⓶헐몬산의 이슬 같다 이렇게 비유해 주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아름다움은 다윗이 야 형제가 연합하는 것에 그 아름다움은 내 눈에 만족스럽다. 지도자의 눈에 기쁘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눈에 선하고, 하나님의 눈에 흡족하고, 하나님의 눈에 아름답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디서 확인할 수 있습니까? 3절입니다. 3절에 뭐라고 돼 있어요? 예. 여호와께서 덕을 명령하셨다.
 
*시편 133:3,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곧 영생이다. 하나님께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의 그 아름다움을 보고 거기에 이야!! 복 받을 행동이다. 잊고 복 받을 만하다. 이거 영생이다. 라고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요. 하나님이 아름답다. 라고 하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토브’ 라고 그러는데 하나님의 눈에 좋다 선하다 ‘토브’ 아름답다. 라는 표현이 있는데 어디에 나와 있냐면 창세기에 나와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그 지으신 것이 어떻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좋았다가 토브입니다. 오늘 여기 있는 토브 하나님 눈에 선하다 할 때도 토브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눈에 좋았다. 그리고 또 뭐가 좋았어요? 하나님 눈에 힘이 좋은 건 뭡니까? 남녀가 함께하는 것을 보고 심이 좋았더라.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이 좋았더라. 근데 하나님 눈에 좋지 않은 것이 있어요. 뭐가 좋지 않아요? 독거하는 거 이 가운데 아무도 혼자 살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셨네요. 혼자 독차하는 것이 아름답지 않다. 좋지 않다. 그리고 뭡니까? 죄로 인하여서 남녀 부부의 관계가 깨어지고, 또 죄로 인하여서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가 깨어지고 이것이 뭡니까? 하나님 눈에 좋지 않았습니다. 연합이 깨어진 것이죠. 팀웍이 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 연합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정말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얼굴을 뵙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연합은 하나님의 눈에 아름다운 것이고, 복을 명령하실 만한 정말 선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b와 c라고 제가 표현했는데 b는 뭐라 그랬습니까? 보배로운 기름, 보배로운 기름 그다음에 c는요. 헐몬의 이슬, 여러분 이 두 가지 다 우리는 뭡니까? 이래도 기억도 잘 못할 만큼 희미하지만 이것을 유대인들이 딱 들었을 때는요. 이거는 매우 강렬한 이미지이고,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동일한 이미지가 그 언어 속에서 다 고백되는 거예요. 여러분, 두 비유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보배로운 기름도, 그리고 헐몬의 이슬도 이 두 가지 비유가 공통점이 있어요. 뭘까요? 자꾸 질문만 하면 곤란하겠죠. 제가 알려드릴게요. 흘러내린다. 두 비구는 흘러내립니다. 그리고 이 두 비유조차 그 결과의 공통점이 뭐냐 하니까, 하나님의 축복이고, 그것은 영생 하라 이래가지고요. 그 영원함 그 하나님께서 이 두 가지 비유를 딱 보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 그 영원함이 깃든 것이다. 라고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우리 한번 읽어보도록 하십시다. 시작
 
II. 두 번째,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임재가 영생의 복이 있는 팀워크를 만듭니다.
 
-여러분 여기 나오는 보배로운 기름 이렇게 돼 있는데요. 이 보배로운 기름 이것은 어떤 기름이냐? 여러분 이 기름은요 아론의 머리에 부었다라고 말했는데 이 기름은 바로 관유라고 합니다. 관유, 관유는 출애굽기 29장에 있는 말씀인데요. 우리 한번 같이 읽어보도록 하십시다.
 
*출애굽기 29“6-9,
6 그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위에 성패를 더하고.
7 관유를 가져다가 그 머리에 부어 바르고.
8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속옷을 입히고.
9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워서 제사장의 직분을 그들에게 맡겨 영원한 규례가 되게 하라 너는 이같이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위임하여 거룩하게 할지니라.
-여러분, 이 특별히 시편 133편에 있어서의 이 보배로운 기름이 아론의 수염 그리고 그 옷깃을 타고 내려서 온몸에 흘러내린 같다. 라고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바로 대제사장의 위임식입니다. 이 위임 식에 쓰이는 관유는 어떻게 만들어지느냐 이건 함부로 만들면 안 돼요. 만들다가 사람이 써도 안 돼요. 쓰면 어떻게 돼요? 그 백성 가운데 끊어질 거다 이렇게 표현해요. 굉장히 오묘(奧妙)하고 신비한 기름입니다. 우리 출애굽기 30장에 있는 이 관유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한번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출애굽기 30:23-25,
23 너는 상등 향품을 취하되 액체 몰약 오백 세겔과 그 반수의 향기로운 육계 이백 오십 세겔과 향기로운 창포 이백 오십 세겔과.
24 계피 오백 세겔을 성소의 세겔대로 하고 감람기름 한 힌을 취하여.
25그것으로 거룩한 관유를 만들되 향을 제조하는 법대로 향 기름을 만들지니 그것이 거룩한 관유가 될지라.
이게 향 기름이에요. 향 기름, 그래서 이걸 더해가지고요. 거룩한 관요를 가지고 어떻게 해요? 아론의 머리에 붙는 겁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이게 한 양이 어느 정도냐면 20kg 정도 20kg, 20kg 정도면 여러분 해피 식용유 20kg 한 통 튀김할 때, 쓰는 거 그 정도의 양입니다. 그 기름을 가지고 어떻게 해요? 사람인 부족한 아론 사람이에요. 근데 그에게 대제사장의 위임을 하면서 그 머리에다가 붓는 겁니다. 그래서 이 보배로운 기름 그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여기 머리에 부으니까 어떻게 돼요?
 
여러분 이런 거 안 부어봤죠? 여러분 제 향기를 한번 맡아보세요. 이 신비한 기름이 머릿속부터 쫙 부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여러분 조금은 제가 흘려 내려가지고 이렇게 하는 게 아니고 20kg 20kg 그래서 이게 부어지면요. 이 제사장이 이 에봇을 입거든요. 에봇을 입고 여기에 12지파를 표현하는 보석이 박힌 옷을 입고 이제 세마포는 안 입었겠죠. 이제 탁 내려 있으면 모세가 그 기름을 가지고 붓는 겁니다. 부으면 이 기름이 흘러내릴 때 모든 사람들 눈에 뭐로 보여요? 저거 하나님이 특별하게 세우는 하나님의 임직이 저기 있구나! 눈으로 다 봐요. 두 번째는 이 보배로운 기름이 옷깃을 적셔가지고 흘러내려서 발끝까지 다 흘러내렸을 거예요. 그러면 이 향이 향이 여러분 그 모든 이 대제사장의 위임 식에 참여하고 있던 사람들이 그 향을 어떻게 했겠어요? 다 맡는 겁니다. 저는 아직까지 이 관유를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어요. 만들지 마라 그랬으니까 못 만들었겠죠. 근데 이 기름을 가지고 붙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 대제사장의 위임으로 선포할 때 이것이 신약 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건 구약 적으로는 그런 의미가 있지만 신약 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래서 신약에 보면 우리가 이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이것에 대해서 해석하는 단서의 질문을 한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이 뭐냐면 ‘하이베르그 신앙고백서’ 라는 책이 있습니다. 하이베르그 신앙고백서 제31문과 32문에 보면 이렇게 돼 있어요.
 
제31문, 왜 예수님을 기름부음 받은 자, 라는 뜻의 그리스도라고 부릅니까?
제32문, 그러면 당신은 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옵니까?
-이렇게 질문을 두 가지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는 그렇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하는데요. 예수 그리스도까지가 다 이름인 줄 알아요. 아니에요 예수가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직임, 직임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은 100% 하나님이시고 100% 인간이시지만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성부 하나님께서 성령 하나님을 메시아로 이 땅에서의 공직의 삶을 살게 하실 때에 그 위에 뭘 벗습니까? 세례요한이 물세례를 하죠. 물세례를 하지만 그 물세례 이면에 성령이 어떻게 해요? 비둘기 같이 그 위에 나시는 거예요. 성령이 그 위에 부어지는 거예요. 예수님의 메시아직, 메시아지 예수님의 그리스도 직, 이것이 공식적으로 선언되고 선포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옵니까? 우리는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그 직임, 그 사명, 그 기름 부으심을 동일하게 소유하고 우리가 이 땅의 왕 같은 제사장으로, 그의 소재는 백성으로 이 땅을 살아가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이 그 속에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기름 부으신 메시아 적은 공적으로 시작되었고요. 우리는 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 땅에서 메시아 책임을 계속적으로 감당하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이고, 교회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아론은 부족한 사람이에요. 그냥 인간이었어요. 은 죄인이에요. 그런데 그가 하나님 앞에 구별된 제사장의 그 책임을 감당하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그에게 관유를 붓게 했습니다. 그 관유가 이렇게 구워지면서 향기가 쫙 나는 거야. 여러분 향기는요. 우리의 뇌에 굉장히 강력하게 박히는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자기 똥차가 지나가며 우리는 이미 맡았던 향기이기에 그죠? 냄새가 안 나는데도 나는 것 같아. 여러분 대제사장의 그 위임 식 가운데에 그 기름 부어지는 아론의 모습을 보고 또한 그 향기를 맡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뇌리에 박히는 그 향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아마 저의 해석입니다. 아마 속죄의 향기라고 느꼈을 겁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길, 나를 살릴 하나님 앞에 살릴 수 있는 그 제사장의 향기를 그들이 맡았을 것입니다. 저 사람은 희생양을 통하여서 우리를 우리의 죄 문제에서 해결할 분이야! 라는 향기가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느껴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이 대제사장이요. 아론이 이 기름부음 다 받고 난 다음에 민숙이에서 어떻게 기도하라고 명령하시냐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호와는 내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지니라.” -이게 뭐예요? 대제사장이 세워질 때 그 기름을 관유를 부으면서 그 지금이 세워지고 난 다음에는 그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복을 선포하는 책임을 감당하는 겁니다. 아마 대제사장의 그 기름의 냄새를 맡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축복의 향기다. 하나님의 심정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복 주시는 그 향기다. 라고 느꼈을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어디에 있다고요?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그 자리에 하나님이 느끼시는 감동이고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하게 되는 축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고린도후서 2장 15절 말씀 한번 같이 읽도록 합시다.
 
*고린도후서 2:15,
15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의 향기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이 세상을 향하여서 어떤 향기를 바라고, 세상은 교회를 바라보면서 어떤 향기가 그들의 뇌리에 박혀야 할까요? 여러분 물어보셨습니까? 여러분, 여러분 주변에 있는 직장인들에게 여러분들의 동료에게 그리고 여러분들의 가족들에게 물어보셨나요? 나에게서 어떤 향기가 납니까? 여러분, 아론이 세워졌을 때 그 아론을 바라보면서 모든 사람들은 죄 사함의 향기를 맡았을 것입니다. 구원의 향기를 맡았을 거예요.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그 축복의 기도처럼 그들은 다 축복의 향기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는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이 메시아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세상 가운데 어떤 향기를 맡게 해야 할까요? 그러면 세상은 어떤 향기를 맡나요?
 
사도바울은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다.” -여러분 그리스도라는 말은 메시아입니다. 메시아 메시아여야 합니다. 저는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향기가 나기를 축복합니다. 메시아의 향기가 나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이게요 어디서 난다고요? 형제가 연합할 때요. 형제가 서로 사랑할 때, 형제가 자매가 함께 거하며 함께 살아가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 방향을 맞출 때 거기에 그 향기가 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교회를 향해서 무엇을 기대할까요? 세상은 교회를 향하여서 그 구원의 향기, 그 축복의 향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에 이 기름 부으심이 있는 공동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 번째 우리 같이 한번 말씀해봅시다.
 
III. 세 번째, 이스라엘 부어짐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풍성해지는 사역 적 팀워크와 열매를 기대하게 합니다.
 
-여러분 그 두 번째 비유에 보면 ‘헐몬의 이슬’이라고 그랬습니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린 같다라고 말했을 때, 이 헐몬의 이슬 여러분 누군가 이렇게 말을 하면요. 못 알아듣는 말을 하지는 않아요. 우리는 해석이 필요하지만 아마 다윗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의 아름다움은 헐몬의, 헐몬산에 있는 많은 이슬들이 모든 시온에서 내린 같다 이렇게 말했을 때는요. 그 언어를 듣는 모든 사람은 동일한 그림, 동일한 생각을 하게 됐을 것입니다. 이 가나안 땅에서 이 헐몬에 이슬이라는 말은 여러분 헐몬산을 바라보면 거기에 만년설이 있답니다. 요즘 여름에는 만년설이 안 보인대요. 많이 기후가 좀 그래서 그러나 거기에 만년설이 있고, 그리고 거기에는 항상 그 만년설이 녹은 그리고 수증기가 되어서 매일같이 내리는 이슬이 근원이 거기다. 라고 모든 사람들이 다 생각하는 거예요. 매일매일 이슬이 내리는데 그 권한이 어디 있을까요? 다 호르몬에 있으리라고 생각을 한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많은 물이 쌓여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하나님의 복이 저기에 쌓여 있다. 라고 보는 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그 헐몬에 쌓여 있는 그 복들이 어디에 내려요? 시온의 산들에 내린 같지 이 시온의 산들에 내리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 아름다움은 바로 형제가 연합하는 그 모습 속에 날리시는 하나님의 복이다. 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헐몬의 이스리를 바라보며 기대할 것입니다. 여러분 목동들이 헐몬의 이슬을 바라볼 때 이 씨를 딱 들려주면 뭘 생각할까요?저 헐몬의 이슬이 쫙 올라가지고 모든 시온의 산들에 내릴 때에, 거기에 내가 몰고 가는 양떼와 소대가 그 풀을 뜯고 살찌는 것을 상상할 겁니다. 농부가 이 시를 들으면서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린 같다. 라고 말을 했을 때, 그 농부들의 뇌리 속에는 저 이슬이 내리면 곡식이 영글고 익어가겠고 올해도 풍년이 되겠구나! 라고 상상할 겁니다.
 
여러분, 어부가 이 시를 들을 때에는 어떡할까요? 야 저 헐몬의 이슬이 모든 요단들을 적시고 요단의 물이 풍성하여져서 요단이 범람하고 밀과 그리고 수많은 이 어종들이 풍성하게 자라고 그것이 사회로 흘러가서 모든 주변의 밭들의 풍성 함들이 이어지겠지 오늘도 풍년이 들겠지, 라고 생각하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면 이와 같은 복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면 이것은 기대를 넘어서서 현실적으로 많은 풍성한 열매가 우리에게 맺힐 거라는 것을 알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가정의 웃음소리를 들어보셨습니까?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그 기도 소리를 들어보셨습니까?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그 의시하는 모습들을 보셨습니까? 여러분 한 분씩 제가 이렇게 예배를 마치고 나갈 때 보면 그 제자 반은 일부러 그러는지 아니면 출석 체크를 하기 위해서 그러는지 아니면 정말 그렇게 뜨거운지 잘 모르겠어요. 주님만 아시겠죠? 그런데 그들이 모여서 뜨겁게 기도하는 반들이 있습니다. 제가 지나가면서 어떤 생각하는 줄 아세요? “저반은 됐다. 저반은 된다. 저반은 원래 제자반 성공이다. 저반은 원래 사역반의 성공이다. 저 안은 된다. 저 안에는 은혜가 있다.” 이렇게 제가 속으로 딱 이야기하고 가요. 그리고 사역자를 딱 가요. 사역자 다 보고 난 다음에 기억했다가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그런 거예요.
 
여러분,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이 단지 그들만의 어떤 일치, 그들만의 우리 함께 해보자! 뭐 이 정도의 것이 아니라요. 그것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덮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헐몬에 있는데 이것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그곳에 어떻게 부어지는 실제적인 열매를 기대하게 되고 그것은 반드시 열매가 맺을 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형제가 연합하여 가는 것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지 하나님이 복을 주지 않을 수가 없는 거예요. 내가 복을 명하마, 영생이다. 이 영생이라는 말을요. 우리는 영생 영원한 삶 이렇게 되는데, 영원함입니다. 영원함 근데 여기는 여러분 우리가 이 영원함이라는 것이 굉장히 많은 개념들이 있지만 다윗은 그 영원함을 생각했어요. 그 영원함은 어떤 영원함일까 아마 다윗의 그 심상 속에 있는 그 영원함은 하나님의 영원함일까, 하나님의 생명의 영원함, 하나님의 복의 영원함,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계획의 영원함, 그 영원함이 어디에 있다고요? 하나님을 향하여 전심으로 연합하여 나아가는 메시아로서의 그 직임과 그러나 이 땅의 축복의 냄새와 정말 이 땅을 향하여서 정말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그 연합 위에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그 위에 부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들에게는 연합하고 있는 지체가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함께 연합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향하여 메시아적인 사역을 감당하고 구속 사역을 감당하고 그 기름 부으심을 하여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드러나며, 세상은 우리를 바라보면서 구원의 향기를 맡으며 구속의 향기를 맡으며, 축복의 향기를 맡으며, 저들로 인하여서 우리가 복을 받을 것이라는 그 기대감을 주는 그 만남이 여기 있는 우리가 함께 연합할 때,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자반 사역반 이것은 굉장히 아름다운 구속의 향기를 바랄 수 있는 공동체입니다. 여러분 축복의 향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그러한 그 영원함에 복이 머무는 훈련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락방은 어떻습니까? 다락방은요 말씀이 이후로 하나 되고 기도로 연합하고 그 위에 수많은 물을 준비하고 계시고, 수많은 부유함을 준비하고 계신 그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곳이 바로 다락방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다락방에 그냥 가지 마세요. 거기에 가면 하나님의 기름 부으시니 헐몬의 이슬이 내릴 거라는 그 기대감을 가지고 연합하고자 나아갈 때에 하나님이 그곳에 그 영원함을 보이시고 복으로 우리에게 풍성함을 선물해 주십니다. 2033-50의 비전을 우리가 이루고자 할 때 이것이 그냥 이루어지겠습니까? 형제가 연합하여 함께 7천 기도의 용사들이 참 예배 자가 되어주고 은혜의 빚진 자로 자신을 낮출 줄 알고, 복음의 전도자로 용맹을 바랄 줄 알고, 내가 다른 사람을 한 사람으로 치유해 보겠다. 라는 그러한 헌신과 화해자로서 소명자로서 나아갈 때에 우리가 함께 그것을 시도할 때, 거기에 우리의 힘이 아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헐몬의 그 이슬이 그 위에 내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러한 팀웍을 원하십니다. 그러한 연합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고자 헌신할 때에 그 위에 영원함이 있는 그 영원함의 복이 열매 맺도록 하나님께서 축복할 것입니다. 이 복이 살아가는 교회의 모든 공동체 위에, 그 여러분들의 가정 위에, 충만하게 임할 수 있게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약
우리는 서로 사랑함의 팀워크로 하나님께 나아가 누리는 영원함의 축복에 나를 가장 먼저 불러주심을 확신하며 의미 있게 사용해 주시길 원해야 한다. 생명의 풍성함을 사모하고 모든 영 가족들이 성령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믿고, 형제의 연합을 온전히 이루어 가는 사귐의 복을 경험하며, 예수님의 구속에 참여해서 태신 자를 작정하여 주님의 기쁜 자녀로, 그리스도의 생명의 향기로, 세상을 진동시켜서 우리는 진정한 복음의 씨앗으로 쓰임 받아 영생의 복이 있는 팀워크로, 참 연합과 참된 팀워크로 하나님의 눈에 아름다운 자가 되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임재가 영생의 복이 있는 팀워크를 만들어, 하나님의 성품으로 풍성해지는 사역 적 팀워크로 열매 맺는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 1보배로운 기름, 2헐몬의 이슬, -(흘러내림, 영생, 그 영원함, 하나님의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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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3월 10일)
제목: "멜기세덱을 아십니까?
(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⓺-(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Do you know Melchizedek?(Jesus Chirst th eternal high priest))”
말씀: 창세기 14:17~20, 히브리서 7:1-7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김지수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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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4:17~20,
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히브리서 7:1-7,
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자라.
2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4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5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6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7 논란의 여지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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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꼭 필요한 은혜를 복락의 강수로 채워주기를 바랍니다. 오늘 회중 찬송하셨는데, 예수 앞에 나오면 영생 복락 면류관 그다음 뭐예요? 확실히 바뀌었네!!~~ 복락의 강수 영생복락 면류관(冕旒冠) 아마 예수님 믿지 않는 세상에서 이런 용어를 한번 평생 한 번도 안 써봤을 거예요. 그래서 주님 믿는 것은 너무나 신비하고 깊이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한 진리 지식에 눈을 뜨는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7절을 여러분들이 히브리서 7장 7절에 읽었는데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렇게 나오죠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히브리서 7:7,
7 논란의 여지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그래 돼 있는데 우리는 주님 앞에 다 엎드려서 부복하고 항복하고 주님만이 나의 전부입니다. 라고 고백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독특한 축복이 있는 것이 그게 논란의 여지가 없어요. 말할 것도 없이, 의심할 여지가 없이, 영어로 말하면,,, Without doubt!!!, 의심할 여지가 없이, 오늘 의심할 여지가 없이 진리 지식을 깨닫는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예수님은 누구신가 여섯 번째, 그리고 오늘은 특별히 멜기세덱? 아마 우리 가운데 멜기세덱이 누군가 ‘멜기세덱을 아십니까?’ 입니다. 그랬는데 “목사님. 새댁 이름입니까?” 여러분 그런 게 아니고 오늘 멜기세덱은 오늘 여러분들이 귀를 좀 쫑긋해가지고 진리 지식에 대해서 눈이 열리는 시간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오늘 배경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여러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이제 소식을 들었어요. 뭐냐 하면 자기 조카 앞에 13장에 자기 조카 롯이 소돔성에 거했는데 그돌라오멜이라는 당시 그 근동 사회에서는 동방의 제일 강력한 군주였고, 동방의 패자였어요. 그 당시로 말하면 그 당시에 알렉산더이고 또 그 당시의 어떤 징기스칸 같은 그런 아주 강력한 군사력인 힘을 가진 왕이었는데 이 왕이 이제 늘 주위에 여러 나라들로부터 조공을 받는데, 소돔으로부터 받고 그러는데 이 몇 나라들이 이 왕에게 종을 안 바치고, 이제 약간 반역 비슷하게 하니까, 이것들 가만히 두면 안 된다 해가지고 그 당시에 최고의 거돌라멜이 소돔성에 쳐들어와 가지고 모든 다 붙잡아 가고 특별히 소돔성에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있었기 때문에 롯을 붙잡아 갔어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그 소식을 듣고 야 이거 내 조카가 저렇게 잡혀가면 되겠나! 라고 생각하고 아브라함은 특전사 그러니까 특공대를 길렀어요. 318명의 특공대를 길렀는데 이 특공대를 데리고 그돌라오멜의 왕과 그 강력한 군대를 쫓아갔어요. 말도 안 되죠. 사실은요. 그 숫자도 마음이 말도 안 되고 그런데 이 사람들은 전승에 취해가지고 밤에 그냥 술 마시고 무방비 상태로 널브러져 있었어요. 그러니까 강력한 특공대 1당 100이 쳐들어가니까 318명 앞에 나가떨어지고 그냥 다 완전히 패전하고 도망가 버렸어요. 그러니까 이제 그 전리품하고 이제 이런 것들을 가져오는데 가져오면서, 두 왕을 만났어요. 두 왕을 만났는데, 먼저는 누구를 만나 소돔 왕을 만났어요? 소돔 왕 21절에 보니까 나오죠?
 
*창세기 14:21,23,
21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져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23절에,
23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오늘은 좀 쎈 말들이 많이 나와요. 그러니까 논란의 여지없이 그다음에 실오라기 하나도 내가 놓치지 아니하고 들메끈이라는 것은 여러분 신발을 묶는 끈이에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신발 끈 하나라도, 실로라기 하나라도, 소돔 왕이 주는 거니까, 주는 거 내가 안 받겠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마치 소돔 왕이 자기가 아브라함에게 재산을 주는 것처럼, 그렇게 이제 자기 걸 가지고 생색내는 것처럼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이 전리품을 받아가지고 아브라함이 치부하였다. 그 전리품을 다 받으면 그 당시에 고대 근동 사회에서는 아브라함이 가장 강력한 부자가 되는 것이에요. 어느 정도 부자가 되는가? 요즘 우리 식으로 하면 일론 머스크라든지, 빌게이츠 같은 그런 부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그런 물품이었는데, 아브라함이 “NO, 안 받겠다!!”! 그 이유는 ‘내가 사람으로부터 내가 받아가지고 내가 부자가 되겠냐? 그렇게 하지 않겠다.’ 그래서 소돔 왕의 제안을 깨끗하게 거부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지금 외적 전쟁에서도 승리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보면 아브라함도 욕심이 있을 거고, 유혹도 있을 거고, 그런데 내면의 어떤 전쟁으로부터 승리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니까 하나님께서 놀라운 축복을 주시는데 첫 번째 뭐냐 하면, 내면의 유혹을 승리하니까 하나님이 누구를 만나게 해 주셨다고요? -멜기세덱을 만나게 해주셔 또 다른 왕이 있는데 멜기세덱에 대해서 18절에 보면,
 
I. 유혹에 승리하니, 멜기세덱을 만나게 해 주셨다.
 
*창세기 14:18,
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이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러니까 멜기세덱은 무례한 예의가 없는 어떻게 보면 좀 저열한 그런 소돔 왕과는 완전히 다르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완전히 아브라함에 대해서 정말 따뜻한 태도를 가지고, 전쟁으로 수고한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멜기세덱은 우리 모든 신학자들이 신비한 인물인데, 구약에서 예수님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인물이다 이렇게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멜기세덱은 대부분 여러분 잘 모르신다고 그랬잖아요. 잘 모르시는데 성경에 세 번 나옵니다.
 
오늘 창세기 14장에 나오고, 그다음에 다윗이 시편 10편에서 또 나오고, 그다음에 구약을 해석한 신약에 히브리서가 있는데 히브리서 5장, 6장, 7장에 걸쳐서 아주 다양하게 나오면서 우리에게 멜기세덱이 어떤 분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나오는데도 우리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히브리서에서 멜기세덱에 대해서 어떻게 제대로 표현하고 있느냐, 여러분들이 아까 봉독했습니다마는 히브리서 7장 1절부터 3절까지, 우리가 한 절 한 절 한 절을 보면서 오늘 아브라함 창세기 14장 이 사건이 히브리서 기자가 어떤 식으로 해석을 하는지 같이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7장 1절을 다 같이 봅니다.
 
*히브리서 7:1-7,
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자라.
2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평강의 왕이요.
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아멘 이 에 대해서 3절에서는 설명하는 것이 누구에게 설명 하냐면 멜기세덱에 대한 설명이에요. 그는 뭐가 없고요. 아버지도 없고 그다음 뭐예요? 어머니도 없고, 그다음 또 보니까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뭐로 있다고요?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시간 지금부터 약간 한 3분 정도 제가 여러분들에게 신학적으로 멜기세덱이 왜 중요하고 멜기세덱은 우리에게 누구인가, 에 대해서 좀 정확하게 좀 말씀을 드릴 테니까 조금만 공부하듯이 좀 집중해 주시겠습니다. 할 수 있겠습니까? 멜기세덱이란 말은 첫째 복합어예요. ‘멜렉’, 이라는 말과 그다음에 ‘세데키’ 라는 말 세데라는 이 두 단어가 복합돼 있는데 그래서 멜기 세대가 있는데 멜렉 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왕이라는 뜻이고 세데키 라는 이거는 뭐냐 하면 -정의다 이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말기 세력은 복합으로 뭐라고요? 정의의 왕이시다. 의의 왕이시다. 그랬죠? 그다음에 또 살렘 왕이요. 그랬죠? 살렘은 여러분 샬롬, 예루살렘 할 때 예루살렘의 평화의 성 아닙니까?
 
※멜렉=왕, 세데키=정의, 샬렘 왕=평강의 왕.
 
샬롬, 할 때 평화라는 평강이란 말이죠. 평화 평강 그래서 여러분 프린스 오피스, 이사야 9장에 보면 예수님에 대해서 그는 우리에게 평강의 왕이요, 기억나시죠? 우리 예수님에 대한 예언할 때 평강의 왕이요 의의 왕이다. 멜기세덱의 이름 자체가 뜻하고 있는 것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우리에게 이제 예수님을 예표 하는 것 중에서 평강의 왕, 그다음에 의의 왕, 그리고 다시 한 번 3절에서 뭐라고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은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닮아서 그다음 뭡니까?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그러니까 앞에 멜기세덱은 평강과 의의 왕, 일 뿐만 아니라 항상 제사장으로 있다. 성경에서 완벽하게 왕 직과 제사장 직을 겸임한 분은 예수님이 메시아인데 메시아밖에 없는데 ‘멜기세덱’이 예수님의 예표로, 왕 직과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제사장직을 완벽하게 겸비한 줄로 믿습니다. 멜기세덱의 뜻 그다음 멜기세덱이 가진 그 역할 두 가지, 왕 직과 제사장은 바로 예수님을 예표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다윗이 깨닫고 여러분 다윗은 다윗도 예수님을 예표라고 그랬는데 다윗에 대해서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가 다윗에 대한 설교할 때, 그는 선지자 중에 하나라고 그랬어요. 다윗도 보면 선지자 역할도 하고 왕의 역할을 했는데 이제 이건 여러분들이 이걸 좀 나중에 이제 그냥 기억하시고 다윗이 110편 4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느냐 이렇게 하고 왔습니다.
 
*시편 110:4,
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아멘 여기는 너라고 그럴 때, 이거는 예수님의 메시아이심을 얘기하면서 그 메시아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 되셨도다. 그랬어요. 이 서열이란 말은 오더(Oder)인데 요즘 반차, 그러니까 뒤에 이제 반차란 말이 나오는데, 내가 또 반차니까 일본말처럼, 젊은이들은 목사님, 휴가 내는 반차입니까? 또 그러더라고요?.... 여러분 그 반차가 아니고 서열이다. 서열이다. 크게 보면 족보이다. 이런 것도 포함 다 되는 건데요. 그러니까 메시아가 멜기세덱의 반열에서 제사장으로 온다는 뜻인 거예요. 무슨 말인가 하면 여러분 율법에서는 제사장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죠? 좀 신경 좀 써야 됩니다. 율법에서는 누가 제사장이 되는 겁니까? 레위지파,,, 레위지파가 제사장이 됩니까? 사랑의 교회 성도들은 다 아시죠? 누가요? 레위지파,
 
※레이지파에서 제사장이 나오고, 대제사장은,,,,
레위지파 가운데 아론의 자손들이 대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 율법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오늘 멜기세덱은 아브라함 시대니까 그 레위 지파보다도 훨씬 위 세대예요. 이해가 됩니까? 아브라함 시대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은 레위지파입니까? 유다지파입니까? 예수님은 유다지파예요. 근데 유다지파인 예수님이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고, 영원한 제사장이 되셨다는 건 여기에 특별한 구약의 예수님의 메시아 됨에 대한 예언을 하고 있는 것이에요. 조금 이해가 가십니까? 이제 다 이해 못해도 괜찮아요. 그다음 내가 설명을 드릴 테니까 그러니까 이 말씀을 히브리서 기자가 완전히 이해를 해가지고 우리보다 더 많이 완벽하게 이해해가지고, 히브리서 6장 20절에 놀라운 말씀을 하고 있어요.
 
*히브리서 6:20,
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아멘, 자,,, 예수님께서 뭐가 되셨다고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반차한 서열입니다.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히 뭐가 되셨다고요? 대제사장이 되셨다. 이 반차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가문을 계승하고 뒤를 잇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리고 히브리서 7장 3절에,
 
*히브리서 7:3,
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아까 얘기한 대로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특별히 뭐가 없다고요 족보가 없다. 창세기는 주요 인물들에 대한 내용들 누구, 누구를 낳고 자세히 나오지만 이 멜기세덱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족보를 기록하지 않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제 무슨 뜻이 있는가? 이제부터 중요합니다. 멜기세덱에 대해서 족보를 누락시킨 것은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섭리적인 의도성을 보여주고 있어요. 이 용어는 이제 오늘 매주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대해서 알 때마다 새로운 용어들을 하나씩 여러분들이 봤는데 오늘은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섭리적인 의도성, 이 섭리적인 의도성,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멜기세덱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시고 멜기세덱에게 하는 그 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이심을 상징하고 예수님은 그것 때문에 유다 지파에서 제사장이 되시고, 레위 지파가 아니고,,,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은 축복 없는 분이시다. 이해가 됩니까? 하나님이시니까.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을 통하여 섭리적인 의도성을 보여줬다는 것 어떤 뜻인가 하면, 멜기세덱에서 예수 그리스도까지 그 긴 기간 동안 아무런 반차와 개성이 없다는 것이고, 이 반차가, 반차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에게만 영원히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 하고, 그래서 멜기세덱에게 예수님의 예표를 말씀할 때 예수님이 의의 왕이시고, 평강의 왕이시고, 하나님의 사람 사이의 중보자, 이시고 실질적으로는 아브라함에게서 참된 복을 주시는 예수님을 예표 하는 것인데, 그래서 제가 이제 섭리 적 의도성을 가지고 설명을 하는 건데 자막을 만들었어요.
 
▷그분은 의의 왕, 평강의 왕이시고 시작과 끝이 없는 분이시고 특별 불멸의 생명을 가지신 분이시고 계속요. 결코 죽지 않아 교체될 필요가 없는 분이시고, 아브라함보다 높고 레위보다 더 위대하신 분(4-5), 그리하여 아브라함을 축복(7절)하고,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았던 분이시다(5,6,8-10). 더 이상 이런 완벽한 대제사장이 없다.
-이런 모든 내용들은 하나님의 섭리 적 의도에 포함된 것이에요. 그리고 여기에 나온 이런 내용과 용어들이 옛날에 예수 믿지 않았을 때 나하고 전혀 상관없는 용어였어요.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깨닫고 이 용어들을 믿을 때, 오늘 이 용어들이 여러분의 것으로 체화될 수 있도록 놀라운 하나님의 신비와 섭리적인 의도가 있다는 사실이에요.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섭리적인 의도를 우리식으로 얘기하면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맞이하러 나온 것은 예수님이 오늘 저와 여러분을 만나주시는 것이에요. 둘째,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장면은 오늘 우리에게도 영원한 축복을 주시는 것이에요.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축복한 것은 주님과의 이제 얼마나 있으면 오늘 성만찬을 할 터인데, 성만찬 떡과 포도주 그와 연결이 되고, 주님이 주시는 영적인 양식과 구원의 축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섭리적인 의도가 얼마나 대단하냐 하면, 제가 지난주에는 큰 인생의 전쟁을 앞에 놓고 있는 여리고를 앞에 놓고 있는데, 이 여호수아가 군대 장관을 만나가지고 이제 전쟁을 잘 준비하도록 용기를 주신 것이 나와 있잖아요? 그것이라면 오늘은 전쟁에서 싸우고 돌아온 아브라함에게 멜기세덱 제사장으로 나타나셔가지고 복 주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이런 뜻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섭리적인 의도는 뭐냐 하면 여러분과 저의 삶에 전쟁터 같은 고단한 생활 전선에서 지난 한 주간도 우리는 수많은 일들을 겪었어요. 예상하지 않던 일들, 어려운 일들, 마음으로 밖으로 환경으로, 마음으로 내면으로 수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그런 수많은 일터에서 우리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싸우고 오늘 예배를 온 줄로 믿습니다. 그러고 왔는데 주님께서 오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영원한 제사장이 되신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위로하시는 그 주님의 섭리적인 의도가 여기에 포함돼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레위기는 제사 제도를 말씀하고, 거기에 우리의 죄가 어떻게 지키는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의 내용이 나오고 이스라엘 백성, 레위 지파 얘기합니다마는, 히브리서의 *오늘 이 내용은 하늘 성소, 예수님이 대제사장 되시고, 그의 피로 한 분의 영원한 속죄가 되어 주셔가지고, 하늘 성소의 눈이 열린 자마다 오늘 섭리적인 의도를 가지고 멜기세덱을 만나 축복을 받았던 전쟁 후에 축복을 받았던 아브라함의 축복을, 오늘도 우리가 그대로 누릴 수가 있다. 이것입니다. 이거는 너무 신비한 것이고 조금 더 깊이 다면 은혜의 성층권에 올라가는 것이에요. 밑바닥에서 일어난 일들, 이 땅에 일어난 수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에 여러분들이 신비한 은혜의 눈을 뜨게 되면 이 진리 지식의 깊이의 눈을 뜨게 되면 하나님의 섭리 적 의도에 의한 영적인 거룩한 성층권에 올라가는 축복이 여러분과 저에게 있는 것이에요. 무슨 말이냐,
 
아무것도 아닌 인생이 연약한 인생이 부족한 인생이 초라한 인생이, 어떻게 보면 비참하고도 참담한 인생들이라 할지라도 이 섭리적 의도에 의한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를 깨닫고 하나님의 신비에 눈을 열면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대제사장 되시고 축복하신 그 은혜를 우리의 것으로 채워할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지금 다시 한 번 더 강조합니다.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대제사장이요.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히브리서 7장 본문에 마무리 뒤에 7장 25절에,
 
II.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대제사장이요,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되는 것이다.
 
*히브리서 7:25,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제가 시간이 없어 다 못하지만 7장 25절에 또박또박 결론 부분에, 아멘, 잘 보세요. 그러므로 라는 말이 너무 중요하고 이 모든 것을 몽땅 모은 것., 또 하나는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느니라.’ 무슨 말이냐 여기에 ‘온전한 구원’이라는 말이 나오고 ‘온전한 제사’라는 말이 나오는데, 구약의 레위 지파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단편적으로 파편적으로 일부 부분적인 구원이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오늘 이 시대에 완전한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항상 살아계신 그분의 능력을 통해 이루는 온전한 제사를 주님 앞에 올려드릴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라는 단어와 이 종합적으로 또 하나는 항상 살아계셔서, 항상 살아계셔서라는 이 단어가 얼마나 박진감 있고 얼마나 역동적인지 몰라요. 여러분 항상 살아서 전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 신비함을 저와 여러분이 깨닫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이걸 깨달으면 이 땅에 살면서도 하늘의 부유와 능력에 눈이 열리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항상 살아계셔서 이 예배를 받으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숨 쉬고 호흡하고 생명을 유지하고 오늘 이와 같이 예배를 드리는 것은 주님이 항상 살아계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항상 사랑에서 어떻게 하느냐, 두 가지, -그러니까 살아계신 주님은 우리에게 완벽한 구원의 표상이 되시고, 또 하나는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는 분이세요.
 
▷ 영원한 구원을 주시고 영원한 중보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대 제사장이신 예수님께 나아가는 주니의 모든 백성을 위하여 예비 된 것이다.
-아멘, 아멘! 그래서 오늘도 하늘 성서를 사모하여 이 예배에 나온 여러분들은 멜기세덱을 만나기를 바라고, 멜기세덱을 제대로 깨닫기를 바라고, 예수님을 예표 하는 멜기세덱에게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 오늘 우리의 것으로 체화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이걸 깨닫는 사람들은 히브리서 4장 14절부터 16절에, 14절 함께 선포 합니다
 
*히브리서 4:14-16,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 믿는 도리를 굳게 잡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섭리 적 의도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은혜의 성층권에 올라가야 합니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동정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슨 말입니까? 먼저 우리가 축복받는 것은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알고 계신다 이거예요.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무슨 말입니까? 먼저 우리가 축복받는 것은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알고 계신다 이거예요.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16절 다 같이,, 아멘, 어떤 환경과 경우, 어떤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보좌에 나가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섭리 적 의도라는 것이에요. 이런 뜻입니다. 가정에 무거운 짐을 지고 고통하고 괴로워하는 어머님들의 모든 탄식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에요. 압제 받는 자들의 모든 슬픈 하소연을 들어주시는 대제사장이시라는 거예요. 괴로움 가운데 있는 모든 자들의 신음 소리를 새겨들으시는 멜기세덱이신 거예요. 특별히 가난한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분이시고, 과거에 50년대, 60년대, 70년대 우리나라 가난했을 때, 그때, 예수 믿고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돌아 와가지고 하나님 나는 너무 가난합니다. 나는 먹고 살 길이 없습니다. 나는 주님밖에 없습니다. 라고 주님 앞에 매어달리고 기도하고 나아가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보좌를 믿고 나아가는 그분들의 삶을, 하나님은 정말 삶을 정돈시키시고 안정시키시고 경제적으로도 안정하게 하신 주님이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알겠습니다. 내가 수많은, 수많은 그런 간증을 하는 우리 주위에 옛날에 있었던 그런 신앙의 선배들이 많이 계세요. 그분은 마음이 상한 자들의 모든 슬픔을 들어주시는 멜기세덱이에요. 이 모든 것들은 그분 자신이 제물 되어 하늘 성서에서 희생, 온전한 희생, 제물로 올려드린 그 대제사장적 사역에 근거하여 받은 은혜라고 믿어야 되는 것이에요. 따라서 우리는 때를 따라 덮는 은혜를 주시는 주님 앞에 나아가는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 적 의도를 우리가 깨달은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특별히,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우리를 섭리 적 의도로 도우시는가? 히브리서 5장 2절 바로 이어서 히브리서 5장 2절에 다 같이 봅니다.
 
*히브리서 5:2,
2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놀라운 말씀이에요. 저는 성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 그런 그가 어떤 사람 첫 번째 어떤 사람이에요? 무식한 사람들, 진리 지식도 없는 사람들, 또 날마다 실패하고 미혹된 자들, 그들조차도 이 하나님의 섭리 적 의도에 눈을 뜨고 대제사장 되시는 멜기세덱 되시는 그분 앞에 나오기만 하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보좌에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이 베풀 만한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에요. 미혹된 자들, 무식한 자들을 용납한다는 어떤 뜻입니까? 그는 부족한 사람도, 곤고한 사람도, 참담한 사람도, 또 연약한 사람도, 또 위대한 사람도, 선한 사람도, 유혹에 빠진 사람들도, 고통의 중에 있는 사람들도 다 예외 없이 맞춤형 은혜로 다 도와주신다는 것이에요. 나이가 들고, 초라하고, 나이 늙고, 연약하고, 병들고, 참혹하고, 치매 때문에 고통당하고, 가족들이 고통당하고 이런 상황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어떨 때는, 정말 벌레 같은 상황이 된다 할지라도,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적 의도에 눈을 뜨면 우리는 다 알 수 없지만,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갈 때 하나님이 베풀어 주실 만한 은혜가 있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히브리서 5장 5절, 6절에 바로 이어서 5장 5절, 6절 크게 여러분 선포합니다.
 
*히브리서 5~6,
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할렐루야! 여러분과 저는 영원히 멜기세덱의 서열과 반차를 따르는 왕 같은 제사장이 된 줄로 확신합니다. 주님 과거의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제사장들은 가슴에 이렇게 흉배를 붙이고 어깨에는 포만으로 장식하고 그러는 게 있어요. 지금도 주님은 우리를 위해 완벽히 중보하시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의 은혜를 깨닫는 하나님 백성들에게 여러분과 저의 이름을 오늘 흉배에다 다 붙이시고, 그 제사장 어깨에 호마노에다가 거기다 여러분 저의 이름을 다 새기고,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항상 살아서 중복 기도하시는 그 주님이심을 믿을 진데, 우리는 멜기세덱에게 받은 아브라함에게 받은 축복을 우리의 것으로 삼을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특별히 우리의 이름을 새기시고 마귀의 참소를 변호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변호하시고 우리를 도우시는데, 우리를 도와주시는데, 적당히 도와주시는 것이 아니에요. 아까 소돔 왕 재물 던지듯이, 적당히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큰 대제사장이신 주님은 오늘도 지혜롭고 인격적으로 예의를 갖추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깊이 있고, 감동 있고, 고귀하게 우리를 도와주시는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믿습니다. 그렇게 도우실 때, 우리에게는 꿈을 주시고, 이 사람에도 지혜가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우리는 누추하고 부족하지만 영광스럽고 은혜롭게 우리의 삶을 살아가도록 섭리적인 의도를 가지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오늘 이 멜기세덱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오늘 다 이렇게 좀 이해가 안 되면, 나중에 이 내용을 다시 한 번 여러분들이 들어보시고 여러분 것으로 소화하실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하늘에 부요가 여러분의 것으로 체득되는 것이에요. 하늘의 부요가 놀라운 하늘의 부요에 눈을 뜨게 해주세요. 창세기 14장 19절에 아까 본문에 같이 보죠. 그가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제이시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옵소서. 할렐루야 천지의 주제이시오.
 
III.참된 하늘의 부요에 눈을 떠야 한다.
 
*창세기 14:19,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지극히 높다는 말은 엘, 엘리온 이라고 그러는데, 이 엘 엘리온이라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엘리온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왕 같은 제사장의 삶을 살게 하신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은혜의 성층권에 올라가게 하신 하나님 하늘의 부유의 눈이 열리도록 하늘의 부요가 너무 크니까 아브라함은 세상의 유혹에 조금 초연할 수 있었어요. 오늘도 이와 같이 하늘의 보에 너무 눈이 열리니까 세상 세상에 대해서는 조금 우리가 차원이 다를 수 있어요. 하늘의 부요에 눈이 열리니까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세상 사람들이 보는 어떤 수준과 우리가 보는 수준이 달라요. 예를 들어서 하늘의 부요에 눈이 열린 사람은 자연도 그냥 안 보이는 거예요. 하나님의 부요에 눈이 열린 사람은 야생화하더라도 그냥 안 보이고, 이거 하나님의 부요가 너무 크네. 너무 신기하게 보이는 거예요. 물질 하나라도 하늘의 부유 눈이 열린 사람은 세상에 저 도박해가지고 1억 딴 사람과 우리가 하늘에 부요에 대해서 눈이 열려가지고 100만 원을 얻은 사람과 그 1억보다도 하늘의 부요에 눈이 열린 사람 100만 원이 훨씬 더 소중한 것이에요. 훨씬 더 가치가 있는 것이에요. 수준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 족보도 없고 모든 것이 없지만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메시아의 족보를 가지시고 우리에게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 때문에 아브라함이 멜개 세대를 통하여 받았던 하늘에 지극히 높으신 엘 엘리온의 하나님, 엘리사다의 하나님 축복을 받고, 또 구체적으로는 육신적으로는 떡과 포도주 전쟁에서 피곤하고 지치고 돌아온 그 영혼에게 떡은 목숨을 위하여, 포도주는 다시 마음의 환희와 기쁨을 가져오게 하는 것인데, 뜻과 포도주의 축복을 주시는 그 주님이 오늘도 우리의 삶의 주인이심을 믿어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과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주님 앞에 기도하는 것 중에 하나는 하늘의 부요의 눈이 열리는 이 하루가 되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 가운데 오늘 하루도 하늘의 부요를 점점 많이 배워나가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고, 특별히 저뿐만 아니라, 우리 온 성도들이 오늘 하루 하늘의 부요를 더 많이 발견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만나는 사람마다 제가 읽는 성경마다, 제가 접하는 책마다, 수많은 과정들을 통하여 하늘의 부요를 깨닫게 하여 주십시오. 밤에 잠자기 전에 “하나님, 이 하루도 더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늘의 부요에 눈이 열리게 하고, 하늘의 부여에 대해서 은혜 주신 이 하루가 되게 하신 거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저는 잠잘 때 꼭 남북통일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 민족이 만주까지, 만주까지 우리의 영향을 끼치게 하여 주십시오. 한국이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세계 복음주의 교회의 쇠퇴를 맞고 대한민국이 복음주의 교회의 허브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를 위해 우리 성도들이 다 쓰임 받게 해달라고, 하나님 나라의 꿈에 대한 부여에 대한 꿈을 가지고 그렇게 하게 될 때 숙면을 취하게 되고 그리고 그 결과 하늘의 부요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니까 하룻밤도 끝없이 잠들지 아니하고 하룻밤도 꿈 없이 깨지 아니하고 세상에서도 부요가 많이 있어요.
 
저는 가끔 머리가 아프면 뮤지엄을 가는데 박물관을 가는데 박물관에 가면 도록이 있어요. 공예품이라든지 훌륭한 작품들 보면 도록이 있어요. 그걸 보면 어떻게 보면 하늘의 부여에 대한 이 땅에서 약간의 예고편이거든요. 세상 사람들 이렇게 할 수 있는데 하늘의 보유를 받은 사람들은 얼마나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많을까? 우리 온 성도들 예상치 않듯 하나님의 부요와 능력을 날마다 체험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의 보요의 눈이 열린 사람들이 될 때에, 세상에 너무 흔들리지 아니하고 너무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아니하고 영적인 품위와 거룩한 고품격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이것은 단순히 어떤 수고 후에 받는 적당한 보상 정도가 아니라, 영적 전투 이후에 주어지는 환희와 기쁨과 품위를 말하는 것이에요. 삶의 가혹한 삶의 전투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준비하신 이 섭리 적 의도성을 가진 하늘의 부요에 눈이 열리는 축복이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이럴 때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습니까?
 
*창세기 14:20,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여기에 구약의 열의 하나를 구별해 드리는 내용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아브라함이 열에 하나를 구별해 드렸는데 제가 질문하겠어요. 겨우겨우 들었을까요? 그다음에 의무적으로 들었을까요? 아니면 억지로 들었을까요? 아니면 기쁨과 감사로 드렸을까요? 감사함으로, 어떻게 그래 사랑하십니까? 아브라함은 오늘 이 열의 하나를 구별해 드릴 때 겨우겨우 억지로 의무적으로 강제적으로 드린 것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로 드렸어요. 이걸 일컬어 뭐라고 그러냐? 예배로 드렸다 그것이에요. 예배로 드리는 것이에요. 오늘 여러분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데 찬양을 통한 예배 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열애한 나를 구별해 드렸는데 이거는 율법 이전이에요. 이걸 여러분들이 열의 하나로 하나님 앞에 예배로 드릴 때에 기쁨과 감사로 드릴 때 하늘의 부요가 여러분 것으로 채워지는 것이에요. 너무나도 이거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 그다음에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은 오늘 명심을 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열이 하나 구별하는 이 모든 것은 하나님 앞에 하늘의 부요에 눈이 열려가지고 기쁨과 감사로 예배로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게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의도성에 대해 감격하는 하나의 증거로 드리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운동에 승리하면 트로피를 주잖아요. 그러니까 예배와 주님 앞에 드리는 이 예물은 하나님 앞에서 승리의 트로피가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 트로피를 매 주일마다 드릴 때, 여러분의 삶이 승리에 대한 감사일뿐만 아니라 앞으로 승리하게 하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면서 드리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아는 어떤 신실한 분들은요. 예배드릴 때마다 찬양과 할 때마다, 오늘 영생복락 면류관 너무 감사한 것이고, 말씀으로 축복이지만 헌금 드릴 때 미치게 감사하고 기쁘고 너무 즐겁고 너무 축복이 돼가지고 너무 설레 가지고 헌금을 드린다는 것이에요. 여러분 이 사원을 이해만 하면 하나님은 말로도 할 수 없는 주님의 부요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앞으로 사랑의 교회뿐만 아니라 오늘 한국교회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우리가 물질이나 예배를 드릴 때 승리의 트로피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부요로 여러분들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어떤 부여로 채워주십니까? 예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땅의 삶의 모든 삶은 다 우연에 의해서 일어난다. 인생의 90%가 우연히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우연에서 일어나니까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점쟁이한테 가고 뭐 점 보러 가고 어떻게 될 것인가 사람이 다 우연이라고 생각하니까 심지어는 똑똑하다는 사람들도 그것은 하늘의 부요가 뭔지를 모르는 사람들, 승리의 트로피가 뭔지를 모르는 사람들, 멜기 세덱의 반차를 따라 멜기세덱을 만나는 것 하나님의 섭리 적 의도가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얘기고, 하나님의 섭리적 의도를 아는 사람들은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인생에 우리는 90% 100% 하나님의 섭리 적 의도에 의해서 우리 인생은 결정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부모를 누구를 만나는 거 여러분 하나님의 성적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이 아내를 만났을 때 여러분들이 결심하고 만났습니까? 라일라 꽃이 피는 어느 날 만난 거예요. 너무나도 내가 우리가 알았던 것이 너무나도 신비하게 만난 거예요. 여러분들의 신실한 교수들 여러분 생애에 특별한 분들 여러분들의 자격 있어서 만났습니까?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것이에요. 저는 지금도 지방에서 올라와가지고 제가 그때 신복임 목사님이라고 계셨어요. 내수동교회에 그리고 박희천 목사님 나중으로 옥하는 목사님 제가 그분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거예요. 그분은 내 인생에서 볼 때 성층권에 계시는 분이에요. 나는 그분들은 화장실도 안 가는 줄 알았어요. 어떻게 감히, 얼굴이든 어떻게 감히,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적인 의도를 믿는 사람들은 하늘의 부요를 믿는 사람들은, 우리의 예배와 우리의 물질이 주님 앞에 승리의 트로피로 올려드리고, 아니 승리를 주님 앞에 기대하면서 드리는 그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늘의 부요와 하나님의 섭리 적 의도를 가진 100% 하나님의 만남을 허락해 주시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이 좀 부족하면 여러분들 자녀를 통하여 그 일을 이루어 주시는 것이에요. 하다못해 여러분들의 손자를 통해서라도 그 일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충만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지난 주일은 제가 신비하고 경이롭고 아름답고 이런 말씀을 드렸죠. 오늘은 진리의 깊이가 있고 섭리적인 의도가 있고 하늘에 보유가 있고 감동적이고 오늘 저는 이 예배에 아마 처음 오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오늘 내가 초청하고 싶어요. 오늘 이 우리의 삶의 완전한 대제사장 되시는 메시아 되시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생애와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여러분들의 생애는 떡과 포도주를 주님이 채워주시고 겉으로는 힘들고 어려운 게 있다 할지라도, 그 내면의 풍성함은 말로 다 할 수 없고, 하늘의 부여로 체험 받는 여러분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집필 하는 하룻밤도 꿈 없이 잠들지 아니하고, 하룻밤도 꿈이 깨지 않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로 만들어 주실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요약
아브라함처럼 참된 하늘의 부요에 눈을 떠 세상 유혹을 거절하며, 예수님께서 21세기의 멜기세덱의 모습으로 찾아오셔서 주님의 영원한 떡과 포도주로 위로하시니, 이 처절한 전투에서 지치고 힘들 때, 항상 살아계시는 예수님께서 섭리적 의도성과 신적개입으로 중보해 주심을 확신하여 날마다 담대하게 은혜의 성층권으로 올라가야 한다. 우리는 믿는 도리를 굳게 잡고 열에 하나를 승리의 트로피로 올려드리고 이번 4월 총선에도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보좌 앞에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는 예배가 되기를 소원한다.
-아브라함이 동방의 군주 그돌라오멜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그는 먼저 소돔 왕을 만났다. 소돔 왕은 물품을 모두 가져오라고 제안했지만 아브라함은 이를 깨끗하게 거부함으로 내면의 유혹에서 승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브라함에게 살렘 왕 멜리세댁을 만나는 축복을 주셨다. 살렘 왕 멜리세덱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며, 의의 왕 평강의 왕이시고, 시작과 끝이 없는 분이시고, 불멸의 생명을 가진 분이시고 결코 죽지 않아 교체될 필요가 없는 분이시고, 아브라함보다 높고 레위보다 더 위대하신 분이셨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았던 분이시다. 히브리서는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고 하였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났던 것처럼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주신다. 그는 우리를 축복하여 떡과 포도주를 베푸시는 분이시며, 이는 성만찬을 나타내며 영적인 양식과 구원의 축복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대제상이요,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나아가 참된 하늘의 부요에 눈을 떠야한다. 섭리적 의도로 주시는 하늘의 부요함에 눈을 뜬 사람은 꿈이 있고, 지혜로우며,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살렘은 ‘평화’라는 뜻으로 예루살렘의 옛 명칭이며,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라는 뜻이다. 그는 동시대의 타락했던 가나안 족속처럼 살지 않고 순전하며 신실한 믿음을 소유한 평강의 왕이었고, 왕이면서도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는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 아브람이 롯을 구출하여 돌아올 때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람에게 축복하자 아브람은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다. 이것은 최초의 십일조의 유래로서 성도와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말해 준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떡과 포도주로 상징되는 살과 피를 드리셨다. 따라서 우리는 십일조로 상징되는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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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4년 03월 09일)
제목: "제자가 된다는 의미"(What does It mean to be a disciple?)
말씀: 마가복음(Mark) 10:35-45
찬양인도: 대학, 청년회 연합회 찬양팀
말씀읽기: 이동진 형제(대청부), 강영지 자매(대청부)
대표기도: 김진우 형제(대학부) , (박예은 자매)대청부, (김동욱 형제)청년부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설교자: 제이미 듀 박사님(뉴올리온스 침례신학교 총장), 통역: 김인기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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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가복음(Mark) 10:35-45,
35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41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42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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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새 인터미션-성경통독(오정현 담임목사님)
*시편 13, 14, 15, 16, 17편입니다.

*시편 13편,
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5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6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시편 14편,
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4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5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6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7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 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시편 15편,
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3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4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5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시편 16편,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편 17편,
1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 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2 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함을 살피소서.
3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
4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삼가서 포악한 자의 길을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5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
6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으므로 내가 불렀사오니 내게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7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9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10 그들의 마음은 기름에 잠겼으며 그들의 입은 교만하게 말하나이다.
11 이제 우리가 걸어가는 것을 그들이 에워싸서 노려보고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
12 그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
13 여호와여 일어나 그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14 여호와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 아이들에게 물려 주는 자니이다.
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사회:김대규 부목사님
-오늘은 특별히 대학부 대청부 청년부 헌신 예배로 하나님 앞에 드립니다. 앞에 있는 대학부 청년부 연합 찬양팀과 함께 찬양하며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겠습니다. 우리 이 시간 함께 우리의 소망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함께 박수로 찬양하시겠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이 시간은 대학부 김진우 형제, 대청부 박예은 자매 청년부 김동욱 형제가 차례로 나와서 예배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제이미 듀 박사님(뉴올리온스 침례신학교 총장), 통역: 김인기 부목사님.
-제 이름은 제이미 듀이고 여러분들과 오늘 함께하게 되어 너무나 큰 영광입니다. 특별히 초대해 주신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 가장 큰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특별히 우리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할 수 있는 아침이 너무나 큰 축복입니다. 저는 미국 뉴올리언스 침례신학교 총장으로 지금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신학교를 대표하여 모든 우리 성도님들께 문안을 올려드립니다. 그리고 혹시 여기 계실지 모르겠는데요. 저희 지금 교단에 속해 있는 혹시 분들이 계시다면 모든 분들에게도 인사를 올려드립니다. 특별히 저희 가족을 소개하고 싶은데요. 저희 가족들 함께 오늘 하였습니다. 제 아내 이름 테라인데요. 저희들에게 특별하게 쌍둥이가 2명씩 있습니다. 네이튼과 나달리가 쌍둥이고요. 사무엘과 사만다가 또 쌍둥이입니다. 특별히 저희 학장님 오늘 코리 학장님, 오늘 같이 오셨는데요. 그리고 봉채 박사님과 그리고 아내 분께서도 함께 대동하십시다. 감사드립니다. 모두를 대표하여 우리 사랑하는 성인 교회 성도님들께 문안 인사 올려드립니다. 방금 좀 전에 우리 마가복음 10장을 읽었는데요. 먼저 기도하면서 우리 말씀으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부어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주신 그 사랑과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내어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오늘 이 아침 저희들이 신실한 제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주님께서 부르신 그 사명의 자리를 감당하는 저희들이 되길 원합니다.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저희들이 일꾼이 되길 원합니다. 그렇게 오늘 이 아침 주님께서 지혜를 부어주시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주님께 더욱더 순종하는 자들이 되길 원하나이다. 저희들을 축복하여 주시고 저희들을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특별히 기독교인이라면 제자 됨에 대해서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많은 책들과 커리큘럼이 제자에 관련한 책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 됨은, 제자 화는 정말로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핵심 가치입니다.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가신 그 길을 가는 줄 믿습니다.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가신 그 곳을 가고 행하신 것을 행하는 줄 믿습니다. 제자는 예수님이 사랑하신 것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목숨을 내어주셨듯이 제자도 스스로의 목숨을 내어줍니다. 오늘 마가복음 10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란 무엇인가에 대해 분명하게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이 세계가 얘기하는 제자와는 굉장히 다른 제자의 모습을 오늘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세상은 우리에게 우리의 만족을 위하여 살라고 가르칩니다. 세상은 우리의 편안함과 안락을 위해 살라고 가르칩니다. 특별히 세상을 지위와 그리고 권력을 따라가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가르침을 오늘 보여주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가치관을 뒤바꿔 놓으셨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제자란 무엇인가에 대해 분명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데요. 특별히 오늘 이 아침에는 세 가지 가장 중요한 원리들에 대해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각 포인트들은 제자란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줍니다. 첫 번째입니다.

I. 첫 번째는, 제자는 개인적인 이익이 아닌 순종으로 나아가는 줄 확신합니다.

제자란, 우리의 모든 선택권을 주님께 전적 위탁 드리는 자임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제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우리의 인생을 평탄하게 만들어주시기만을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모든 것들을 그대로 해 주시기만을 바랍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그것이 제자가 아님을 알려주십니다. 특별히 35절부터 38절까지 그 부분이 자세히 나와 있는데요.

*마가복음 10:35-38,
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이 뜻은 우리 야고보와 요한이 정말로 번개의 우레의 아들이었다는 말입니다. 아주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2명이 예수님께 정말 특이한 리퀘스트를 가지고 나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께 요청한 것을 통하여서 그들이 무엇을 예수님께 원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그들의 요청을 보면 그들은 제자 됨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이 요청한 것은 이것입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와 여쭈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정말 이 구절의 뻔뻔함을 여러분 느끼시나요? 정말로 만 우주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 오히려 그들이 나와 우리가 하자는 대로 하고자 하는 그 뻔뻔함이 이곳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그들은 주인과 종의 관계를 잘못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정말 은혜롭고 자비로우셔서 정말로 아름다운 대답을 해주시는데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그리고 새 야고보와 우리 요한의 정말로 못남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주여, 우리가 주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아 있기를 원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지위와 권력이었습니다. 예수님께 그들이 요청했던 것은 단순히 유명해지고 더 권력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이익만을 위해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요청에서는 예수님께서 방금 말씀하신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35절, 전에는 방금 좀 전에 예수님께서 스스로 죽으시고 이제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직도 자기들의 유익만을 위하여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왕으로 오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물었어야 됐는데, 아직도 자기 스스로의 유익만을 구하였습니다. 자신들의 유익만을 위해 사는 자들이었습니다. 권력과 명예, 그들이 원했던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제자 됨이란 내가 무엇을 더 받을 수 있는가, 까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제자 됨이란 순종이다. 라고 제자 됨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원하시는 것을 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 됨이란 우리의 삶을 주님께 전적 위탁하는 것임을 믿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신 분이십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우리의 모든 피로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제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선에 서 계신 것이 아닙니다. 제자 됨이란 주님의 길에 우리가 서 있는 것임을 확신합니다. 제자 됨이란 주님께 전적으로 순종으로 나아가심을 믿습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여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우리 두 번째 포인트를 보길 원하는데요. 제자 됨이란 우리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주님께 순종하는 것이 첫 번째 포인트이고,

II. 두 번째로는, 제자 됨이란 주님께 전적으로 나아가 죽는 것임을 믿어야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대하고 강하게 만들어주시기만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정확하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들이 나를 위하여 고난 받을 수 있느냐? 38절부터 40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10:38-40,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너희들은 너희가 구하는 바를 알지 못하는도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라고... 그리고 주님께서 이어 말씀하십니다.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도 받을 수 있느냐?’ 라고... 도대체 여기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내가 마시는 잔과 세례란 무슨 뜻일까요? 이것이 무엇을 언급하는 것일까요? 제자들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39절에 그들의 대답이 나오는데요.

39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그들은 그냥 아주 단순하게 말합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자를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을 것이라고, 그리고 나의 세례와 함께 너희도 세례 받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요? 혹시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와 같이 깨어 기도하자고,,, 그러나 너무 제자들이 피곤하여서 그들은 잠들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 제자들이 자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아버지께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기도입니다. “만약 가능하시면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 기도하셨습니다. 그 잔이란 예수님께서 마셔야 했던 그 쓴 와인을 뜻합니다. 그 쓴 와인이란 예수님께서 받으실 고난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정말 맞으시고 채찍질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면류관을 쓰셔야만 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고난 받으시고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그 잔이 바로 이 모든 고난의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바로 주님께서 기도하시며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겠다고 하신 바로 그 장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잔을 마시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위대해지고 싶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이 유명해지고 싶었습니다. 정말로 권력과 명예와 돈을 원하는 자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이 바로 제자 됨이구나! 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제자 됨이란 순종이라고, 그리고 제자 됨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고난 받는 것임을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이 고난의 잔을 받을 수 있느냐?”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물으십니다. “너희들이 나를 위하여 고난 받기를 기뻐하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간다는 것은 사실 우리에게 대가 지불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사실 세상은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은 기독교인들에게 점점 더 박약해지고 점점 더 공격스러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우리에게 돈을 요구할 수도 있고, 믿음을 유지하려면 우리의 어떠한 직업을 직장을 걸어야 될 때도 있고, 믿음을 유지하려면 관계가 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에게 어떤 거, 어떤 것이든 요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 고난을 너희들도 감내하겠느냐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너희들이 고난 받겠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러나 세례는 무슨 뜻일까요? 특별히 세례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세례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나타냅니다. 세례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묻히신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은 권력과 명예와 돈을 원했지만 예수님은 순종과 희생을 요구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자 됨입니다. 하나님의 길 위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이야말로 제자 됨을 믿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것을 우리가 대가를 치르던 주님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제자 됨을 확신합니다. 특별히 성도님들과 제가 가질 수 있는 이 믿음을 나눌 수 있는 자유에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대한민국과 미국은 우리가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자유 함이 있습니다. 대한민국과 미국 둘 다 너무나 위대한 나라이고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증거 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의 믿음에 점점 더 공격적으로 변합니다. 특별히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심령에 하나의 결단을 해야 됩니다. 어떤 것이 우리 삶을 막든 방해하든 우리는 믿음을 지키겠노라는 그 신앙고백이 있어야 함을 믿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하기로 나아가고 결단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대가를 지불하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가 고난을 감내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한 포인트를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⓵특별히 제자 됨이란 우리가 순종이고, 그리고
⓶희생인 것을 우리가 먼저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자들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알려주시는데요.
⓷제자 됨이란 권력이나 지위가 아닌 섬김인 것입니다.

III. 세 번째로는, 제자 됨이란 권력이나 지위가 아닌 섬김인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제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는 것임을 믿습니다. 제자는 스스로를 먼저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자는 자신의 피로만을 구하지 않습니다. 제자는 언제나 다른 이들을 먼저 생각합니다. 제자들은 다른 이들을 도와줍니다. 제자들은 다른 이들이 복을 받도록 도와줍니다. 41절에서부터 45절까지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마가복음 10:41-45,
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성경은 말합니다.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그리고 그런 말을 한 것에 대해서 야고보와 요한에 대해 제자들이 아주 화가 났습니다. 그러나 왜 그들이 화가 났을까요? 그들이 화가 난 이유는 이 질문이 잘못된 질문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화난 것은 그 질문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들보다 먼저 이 요구를 했기 때문에 화가 났습니다. 성경 전체에 다른 구절들이 있는데요. 그 구절들을 보면, 제자들은 언제나 다른 제자와 비교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열 제자들이 화가 났던 것은 그들보다 앞서 이 요청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바로 제자 됨에 대해 다시 한 번 알려주십니다. 42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여기에 나오는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세상의 가르침과 세상의 어떠한 가치관을 이방인이라는 단어가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 없는 세상에 대한 가치관임을 지금 예수님께서 알려주고 계십니다. 세상에서는 정말로 위대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권력을 남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내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위대해지는구나! 라고 착각을 하게 됩니다. 언제나 우리가 넘버 1이 돼야 된다고, 최고가 돼야만 내가 인정을 받는구나! 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43절을 보겠습니다.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이 제자들을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살아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토대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됨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같이 살면 안 되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가치관을 주님께서는 완전히 뒤바꿔 놓으셨습니다. “너희 중에 크고 작은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것은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되는 것입니다. 정말로 내가 위대하다. 라고 정말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겸손함과 같이 우리도 겸손하여져서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는 바로 그것이 위대하다고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에서는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임을 분명히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겸손한 섬기는 종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44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이건 세상에 가르쳐 본 적도 없는 핵심 교리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가치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 가운데서 겸손한 마음으로 무장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러한 겸손함으로 부르신 이후에, 그리고 아주 아름다운 롤 모델을 제시해 주십니다. 45절에 나와 있는데요.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다른 말로 하자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따라야 된 롤 모델임을 믿습니다. 우리의 구세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습니다. 우리의 구세주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분임을 확신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 모든 사람에게 성도님과 제가 치유 받은 것을 확신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자 되심을 믿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 이상이신 분입니다. 우리의 롤 모델인 심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갈 때 우리는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도 물동이와 대야를 가지고 따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셨던 그 모습으로 우리도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는 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바로 제자 됨임을 확신합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너의 유익을 따라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세상은 말합니다. 정말로 아름다운 것과 그리고 너의 평안을 위해 살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네가 다른 사람들을 부려 먹을 수 있을 정도의 권력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크리스천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것이기 이전에 우리의 정체성은 바로 크리스천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소명과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섬기고, 순종하며, 희생하는 것임을 확신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여러분들의 믿음을 확인할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저희 가정에 와서 성도님들의 믿음을 확인할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은 저희들에게 너무나 큰 축복입니다. 특별히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미국에 있는 모든 크리스천들도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끈을 띠고 있습니다. 특별히 제가 저와 우리 미국에 있는 모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거와 같이 오늘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는 모든 사역 가운데 주님의 충만한 축복이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기도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 자비와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제자 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려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성령을 부어주셔서 이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신 그 능력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저희가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삶을 전적 위탁하며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회: 네 은혜로운 말씀 감사드립니다. 주신 말씀과 같이 우리 모두가 주님께 전적 기탁하는 순종으로 믿음의 대가 지불을 하면서 주님을 닮은 섬김으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온전한 제자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우리 이런 마음을 가지고 앞뒤 좌우 바라보시면서 이렇게 한번 격려하시겠습니다.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 됩시다!!!. 이러한 마음으로 이제 이 시간 지금부터 대학부 신입생 ‘새돌’ 들의 캠퍼스 선교사 파송식과 청년부 대청부 일터 선교사 파송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캠퍼스 선교사로 파송되는 모든 대학부 신입생 새돌들은 자리에서 일어서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2033-50’ 비전’에, 네 좋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동일한 마음으로 ‘2033-50 비전’을 꿈꾸면서 청년 세대 7천기도 용사로 시대 앞에 쓰임받기를 믿음으로 결단한 모든 대학부 청년부 대청부 모든 청년들도 자리에서 함께 일어서 주시기 바랍니다. 네 모든 청년들 자리에서 함께 일어나시겠습니다. 준비하시는 현수막도 지금 펼쳐주시면 되겠습니다. 지금부터 하나님과 교회 공동체 앞에서 파송 선언문을 진심과 전심으로 영적 기백을 담아 선포하겠습니다.

▷대학부 임주원 자매, 대청부 최병용 형제, 청년부 서원철 형제가 각 부서를 대표하여 파송 선언문을 선포하겠습니다. 대표자가 선서라고 선창할 때, 모든 새돌과 대학부, 대청부 청년부 들은 오른손을 들고 크게 선서를 따라 외쳐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하나를 외쳐주시면 모든 지체들 지체들은 다 같이 선언문의 내용을 크게 선언해 주시고 마지막에는 자기 이름을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선서하겠습니다.

◆선서,
하나, 우리는 캠퍼스에 파송된 선교사이자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제자로서 마지막 한 영혼까지 전심으로 찾아가며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력투구하겠습니다.
하나, 우리는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예술, 세상 모든 영역이 그리스도를 왕으로 고백하게 하는 일터에서의 소명 자이자,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힘차게 전진하겠습니다.
하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 희생과 헌신을 온전히 닮아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을 섬기고 통일, 한국의 미래를 비추는 영적인 등대이자 세계 선교를 마무리하는 소명 자가 되겠습니다.
(추후 2024년 3월 9일OOO) 선서 단 축복하는 마음을 담아 격려의 박수 다함께 부탁드립니다.

-이제 이러한 기백으로 믿음의 3대 청년들이, 청년들이 7천기도 용사로 힘차게 걸어가도록 각 부서를 섬기는 교육자님들이 나와서 기도의 지팡이 다음 세대 청년 7천기도 용사 배지를 달아주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배지를 수여할 때 다 같이 큰 박수로 한 번 더 격려해 주시고 축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서 귀한 메시지와 또 축복의 시간 함께 진행해 주시겠습니다.

▶오정현 담임 목사님,
아이구야 아니 저기 뭐야 블랙카드가 느려요 괜찮아요? 보여줘요. 보여줘요. 우리 최소한 한 5살은 젊어지는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오늘 우리 대학부 청년부 아까 찬송하는 거 보니까 어떤 형제들은 약간 얼굴이 갔어요. 왜 이런가 보니까 어제 밤샘을 했대요. 얘가 지금 그래서 잠, 잠을 포기한 그런 시간을 갖고 오늘 아침에 나오는 것 같아요. 오늘 본당뿐만 아니라, 지금 저 안성 수양관에는 중보기도팀들이 한 수 명이 모여가지고 지금 여기 안성수양관 안성수양관, 중보기도팀들, 감사하고 오늘 이 아침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새로워질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닥터 듀, 오늘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 주셨는데 어떤 말씀하셨죠? 온전한 제자가 된다는 게 어떤 뜻인지 서브미션(submission), 또 서퍼링(Suffering) 크리파이스 서번트(Christ Servant), 또 뭐 있었어요? 마지막 오늘 순종하고(obedience), 하여튼 이 말씀 그대로 해가지고 마가복음 10장의 말씀 여러분 삶에 그대로 적용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참 중요한 시간이고, 한 번 보자. 저 2024년도 ‘새돌’이 뭐야 아는데 왜 왜 새돌이라 그래 아이돌이 아니고 새돌이야? 왜 ‘새돌’인가? 하나님의 씨앗, 시드 어브 더 로드(Seed Of The Lord,)!! 우리 교회 용어에 사랑에게 용어랍니다. 새 돌 시드 오브 로드 그러니까 주님의 씨앗이라는 뜻이네요. 그럼 우리도 어른들도 주님의 씨앗 될 수 있는 거예요? 예를 들면, 우리 정말 너무 귀한 시간이고, 여기 우리 교회 중직 자들, 또 기도하는 분들 다 와 계시는데, 다시 한 번 우리 다시 한 번 주님 나라를 위한 영광스러운 주님의 신실한 제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그리고 닥터 우리 듀께서 또 우리 가족들 다 우리 귀한 말씀 주셨는데 다시 한 번 박수로 감사합니다. 자, 감사드리고 오늘 다 같이 우리 다 손을 펴고 주님 사랑해요.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 되기 원합니다. 이 찬송 같이 한문하고 오늘 캠퍼스 선교사 파송 식을 좀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은 캠퍼스가, 외국 같은 경우는 9월 달에 오픈인데 안국은 3월 달에 캠퍼스가 개학을 하는데 개학을 앞에 놓고 사랑의 교회 새 돌들, 그리고 우리 캠퍼스 대학부 청년부 우리 캠퍼스 선교사로 파송할 때 오늘 캠퍼스 선교사 파송 식을 통하여 한국 캠퍼스가 세속주의, 오염주의, 패배주의, 냉소주의, 회의주의에 있는 모든 우리 젊은이들이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우리 교회도 더 젊어지기를 바라고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회가 위기라고 그러는데 여러분 한국교회 위기라고 막 말하는 그분들 가운데 전도 많이 하는 거 봤어요? 그리고 한국교회 비판하는 분들 가운데 선교하는 거 봤어요? 그러면 좀 안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유체이탈 화법으로 자기들은 안 그런데 자기들은 안 그러는데 한국교회 그게 아니죠. 우리는 한국교회가 더 잘 돼야 되기 때문에 같은 짐을 짊어지고 캠퍼스 선교사 파송도 하고, 기도의 7천 용사가 되는 것이에요. 맞습니까? 그리고 오늘 마가복음 10장 이런 말씀으로 딱 무장해가지고 기도의 7천 용사로서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일하실 줄로 믿습니다. 영적제곱의 원리, 1만 명이 변화되려면 몇 명이 제대로 하면 된다고요? 100명이, 제대로 하면 되는 것이고, 100만 명이 변화되려면 몇 명이 제대로 하면 되는 거예요? 천 명이 제대로 하면 되는 거 제국군 아시죠? 그러면 5천만이 변화되려면 몇 명이?, 7천 명만 변화되면 7천 제곱 그러면 7천 곱하기 7천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4천 9백만, 그러니까 7천기도 용사가 제대로 하면 이 민족이 바로 갈 줄로 믿습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노사모도 세상을 바뀌는데 예수님과 말씀과 성경과 성령과 그 비전이 있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이 같이 할 때 세상을 변화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새 새 돌들 강철 신발과 빛의 갑옷과 기쁨의 면류관을 쓰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다음에 Seed Of The Lord, 복음의 씨앗, 캠퍼스의 희망, 대한민국의 희망, 저게 ‘새 돌’이네요. 보여줘요. 시드 어브 더 로드!! 그러니까 Seed Of The Lord,하고 새 돌, 알아들었습니까? 여러분, 좀 더 좀 더 깊이 비춰봐요.Seed Of The Lord, 복음의 씨앗, 캠퍼스의 희망, 대한민국의 희망, 아멘!!! 그다음에 청년 7천기도 용사, 기도 용사 있죠? 여기 이거 이거 이거 기도의 지팡이를 가지고The Lord must be the master in all areas!!, 우리가 아브라함 카이퍼의 ‘모든 영역에 주님이 주인 되도록 하라.’ 알겠죠? 그다음에 그다음에 읽어보겠습니다. 일터 일터에서의 소명 시작, 일터에서의 소명자,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 그다음 또 뭐예요? 젊은이들이여 ‘2033-50의 비전’ 을 품고 비상하라. 그다음에 21세기의 거룩한 성막이 되어 세상으로 보냄 받은 거룩한 예배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모두가 다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 같이 주 말씀 내 발의 등이요. 찬양하고 우리 암송하는 거 다 일어나십시다.

우리 같이 합심해서 오늘 말씀 듣고 주여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의 자격이 갖춰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를 위하여 주님 우리가 정말로 복종하게 하여 주시옵시고 고난도 감당하게 하여 주시고, 희생도 하게 하시고 남을 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두 번째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캠퍼스 선교사 파송식 이 일을 통하여 대한민국 캠퍼스가 변화되게 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회의주의, 염세주의, 패배주의, 냉소주의 물들어 있는 이 캠퍼스가 바뀌게 하여 주시옵소서. 강력한 복음이 선포되게 하여 주옵소서. 간절한 마음으로 캠퍼스 사역을 위해서 기도하고 제자의 자격, 캠퍼스 사역을 위해서 기도하고, 주님 사랑의 교회 7천기도 용사를 통하여 영적 재고권의 권리를 가지고 5천만이 바뀌게 하여 주시옵시고, ‘2033-50 비전’을 위하여 5천만이 바뀌어 갖고, 세계 선교를 마무리하는 이 민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주여 기도의 용사 되어 기도할 때에 주님 은혜를 달라고, 주여 기도의 응답의 문을 열어달라고, 주여 응답의 문을 열어주옵소서! 주여 응답의 문을 열어주옵소서 크게도 외치고 같이 합심하여 소리치면서 기도하겠습니다.

♣요약
제자 됨이란 우리가 제자는 개인적인 이익이 아닌 순종으로 나아가야 하고, 주님께 전적으로 나아가 죽는 것이어야 하며, 제자 됨이란 권력이나 지위가 아닌 섬김인 것이, 우리의 소명과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섬기고, 순종하며, 희생하는 것임을 확신해야 한다.
-믿음의 4대가 7천 기도용사가 되어서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함께 기도하고 5천만이 다 복음이 되어지는 ‘2033-50 비전’을 책임져야 한다. 21세기 하나님 나라의 천상의 군대가 되어서 사랑글로벌 아카데미가 스탠다드의 수준이 되어서 거룩한 영적 플랫폼으로 4차 산업혁명시대와 통일시대를 선도하길 간구하며, 내일 주일 예배에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여 이 땅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소명자로 부흥의 르네상스를 경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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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03월 06일)
제목: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는 공동체"
말씀: 사도행전 9:19~31
찬양인도: 쉐키나( 오준석 부목사님)

설교자: 임병영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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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19~31,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28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30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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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예수님을 잘 믿고 살아간다면 잘 믿는 자들이 모여 있는 가정과 공동체가 늘 평안함과 든든함으로 서 일 수 있을까요? 저와 여러분들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각 가정마다 평안함, 다시 말하면 살롬이 가득하다고 느껴지십니까? 여러분이 속한 다락방은 어떻습니까? 든든히 세워져 가고 있는 것을 여러분들이 다락방을 할 때마다 경험하고 계십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을 말씀은 바울의 회심 직후의 이야기입니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나고 또 회심 직후 그 예수님을 만난 그 일생을 통하여서 그의 인생이 바뀐 강력한 이야기가 그다음 이야기 다음에 기록되어 있어서 어쩌면 쉽게 지나치거나 주의 깊게 살펴보지 못할 본문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의 몸 된 교회,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편안하고 든든히 서가는 비결을 얻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속한 모든 공동체가 평안하고 든든히 서가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본문의 앞부분을 살펴보면 바울은 예수님의 제자를 잡아 가두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던 중에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는 그 예수님을 만나고 그 즉시 그 앞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바울에게 한 제자를 보내셔서 그의 눈을 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세례까지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바울은 예수님의 제자를 잡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왔지만, 예수님을 만난 경험 이후에 몸을 회복한 후에는 그 다메섹에서 즉시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20절 말씀을 보면,
 
*사도행전 9:20,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은 그곳에 있던 유대인들을 무척 놀라게 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바울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잡으러 예루살렘에서부터 오고 있다. 라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바울은 다메섹에 도착해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체포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제자들의 증언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무척 놀라고 당혹스러워했습니다. 바울에게서 예수님에 대한 이러한 호칭,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고 나오는 그 호칭은 결코 쉬운 호칭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호칭은 단순하게 예수님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참된 대표자이시고,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심을 인정하는 표현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이란 존재는 감히 사람과 비교할 수 없거나 연관 지을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사람으로 오신 그 예수님을 바울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니까, 이것은 그동안 바울이 배우고 익혔던 내용과는 완전히 다른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바울의 입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가 나오니 다메섹에 있는 유대인들도 당혹해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러나 이러한 유대인의 반응에도 바울은 더욱 힘을 얻어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거 하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게 된 이유는 아마도 다메섹 도상에서 다시 말하면 다메섹으로 가던 그 길 위에서 예수님을 직접 만남을 통해서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그가 확신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 29절 말씀을 우리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갈라디아서 3:23-29,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아멘. 바울은 오랫동안 하나님 앞으로 가려고 하는 유대인의 노력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사람. 바울 자신도 율법을 통하여서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 무척이나 노력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그 길 위에서 예수님을 만난 그 즉시로 자신이 개시될 믿음
때까지 율법에 갇혀 있었다. 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율법이 아닌 계시된 믿음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다. 라는 사실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음으로 자신도 하나님 앞에 양자의 특권을 얻게 되었다. 라는 사실을 예수님을 만나는 그 현장에서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확신은 바울로 하여금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죠. 이제는 어느 곳을 가든지, 어떤 환경이든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사실을 담대히 말하고 증거 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갑작스럽게 변화된 바울이 적응되지 않아서 당혹해 했던 유대인들은 계속해서 바울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라고 증거 하는 그 모습을 견딜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바울의 입을 막고자 죽이기를 계획했고, 바울은 그들을 피해서 밤중에 광주리에 몸을 실어서 성벽을 내어 달려 도망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죽음의 강력한 위협에 바울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 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또한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서도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때도 여전히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변론하는 가운데에 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죽음의 위협이 있었지만, 그는 곳에서도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사실을 모두 죽음을 멈추지 않았고, 바울을 예루살렘에서부터 다소로 보내어 그 죽음으로부터 피하게 하는 사실을 우리는 기록을 통하여 이렇게 바울이 핍박 가운데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은 교회로 하여금 우리 주님을 경외하고 자기 위로로 가득 드리고 있어 제가 더 많아지게 될 것입니다.
 
본문을 가만히 묵상해 보면 바울이 복음을 증거 하던 현장에 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바울을 죽이기 위해서 밤낮으로 성문을 지켜서 바울이 어쩔 수 없이 한밤중에 광주리를 타고 도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있었고, 심지어는 자신의 회심을 믿지 않아 의심하던 사람들도 만나게 됩니다. 또한 그곳에서도 복음을 증거 하다가 죽음의 위협도 당하게 되죠.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만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오직 게시된 믿음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다. 라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에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바른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그의 열정은 교회들로 하여금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열매를 낳게 했습니다. 우리 함께 31절 말씀을 읽어볼까요?
 
*사도행전 9:31,
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참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놀라운 일이죠. 정말로 많은 고통과 위협 앞에서도 복음을 전했던 바울, 그 한 사람을 통하여 그 영향력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갈릴리 모든 지역의 교회가 평안하고 든든히 서가는 역사가로 나타났다는 것은 너무나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31절 이 말씀을 계속 묵상하다 보면 상식적으로 이러한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평안하고 든든히 설 수 있는지, 어떻게 주님을 더 경외하고, 성령의 위로가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죽음의 위협이 어떻게 평안함과 든든함의 결과를 낳게 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되는 겁니다. 아마도 여기서 말하는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것이 우리가 생각해왔던 문제가 없고 안정되었다. 라는 의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여기서 평안했다라고 하는 말, 그때 그 말로는 ‘에이레네’ 라고 하는 의미는 문맥적으로 볼 때 스데반이 순교 이후 시작된 박해가 끝나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이제 더 이상 유대 지도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이러한 정치적인 의미의 평안뿐만 아니라 히브리어에서의 ‘살롬’ 이라고 하는 의미처럼 약속의 땅에서 개인적인 만족감과 복음을 받아들이고,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시고 구주이신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비롯된 기쁨과 만족감을 모두 말하는 것으로 쓰여 진 것 같습니다. 좀 쉽게 얘기하면 평안하다고 하는 것이 또 든든히 세워져 간다는 것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도 온전함을 포함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평안하고 관계가 잘 되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도 샬롬이 일어나고 든든해져가는 의미도 담고 있다. 라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온전함을 말하고 있으니까 내 삶의 의심과 오해와 핍박과 위험 등 어떠한 어려움이 가득하더라도 평안함을 말할 수 있다. 라는 겁니다. 삶의 수많은 아픔과 고통을 통해서 정말로 그것이 아프고 힘들어서 너무나 절절 매워지는 그 마음을 갖고 있더라도 그 현장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복음이 선포되고 그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환경, 어떤 상황, 어떤 감정 속에서도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복음을 증거하며 어려움과 고난, 아픔과 절망을 경험할 수 있지만 그곳에 선포된 복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평안하고 든든히 세워져 가는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증거하며 아픔과 절망을 경험할 수 있지만 그곳에 선포된 복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관계 속에 평안하고 든든히 세워가는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이 있는 곳은 어떤 의심과 오해와 위협과 절망에도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그리고 그것을 이기는 힘이 있는 줄 믿습니다. 상황이나 환경과 때론 감정에 휘둘리지도 않고 더욱 주님을 경외함으로 성령의 위로를 받아 누리는 능력이 말씀 속에 있는 줄 확신합니다. 심지어 안 될 것 같아 보이는데 도리어 그 수가 많아지고 부음이 되어 지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가득 넘쳐나는 결과를 낫는 줄도 믿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복음을 중심으로 복음이 증거 되는 현장이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 한번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복음을 중심으로 복음이 증거 되는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속한 가정과 다락방과 훈련반 등 모든 신앙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선포되는 말씀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그 말씀의 능력은 우리의 가정과 다락방, 훈련반 등 모든 신앙 공동체에 참된 변화와 부흥을 이룰 힘이 있어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게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말씀이 가진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우리가 함께 기억하면서 우리는 어떠한 적용을 해볼 수 있을까요? 말씀이 선포되고 말씀이 중심이 된 삶을 위해 저 여러분들은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속한 모든 공동체마다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갈 수 있도록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먼저 첫 번째로 우리가 우리의 공동체가 말씀이 중심이 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I. 첫 번째로, 우리가 우리의 공동체가 말씀이 중심이 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분명하고 확실한 복음이 증거 되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주일 강단에서부터 수요 기도회와 토요일 비전, 새벽 예배에 이르기까지 모든 예배 강단에 참된 복음이 증거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참된 복음이 증거 됨을 사모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때로는 마음을 흡입하고 찌르고 날카로운 칼에 썩어 문드러진 살이 도려내는 그 아픔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대하고 사모하며 듣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와 여러분들 모두가 말씀이 중심이 되는 공동체를 사모하고 소망해야 될 줄 믿습니다. 함께 말씀을 읽어볼까요? 잠언 8장 17절 말씀입니다.
 
 
*잠언 8:17,
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아멘 말씀이 중심이 된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나 자신이 하나님을 사모하며 간절히 찾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의 우선순위에 두고 그 말씀대로 살겠다. 라는 강력한 의지가 있는 것이 말씀이 중심이 되는 삶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살을 도려낸 듯한 아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듣기 위해서 예배의 자리에 끊임없이 찾아가는 것이 바로 말씀이 중심이 되는 삶입니다. 감사하게도 사랑의 교회에서는 담임 목사님을 통해서 매주 주일 강단에 예수님은 누구신가 강의 시리즈가 선포되고 있습니다. 요즘 예배를 함께 드리다 보면 예배를 참여하는 성도님들이 말씀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갖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왜냐하면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통해서 우리 안에 평안함과 든든함이 회복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주일 예배를 참여하는 성도님들 중에 아픔이 절망과 낙심과 고통이 없이 앉아 계시는 분이 계십니까? 분명히 그들 가운데에 앉아 있는 많은 분들 속에 육체적인 아픔과 감정적인 동요와 삶의 많은 문제들과 염려와 근심과 눈물을 가지고 그 자리에 앉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더 굳건해지고 단단해지니까 그 마음속에 참된 회복이 있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죠. 매주 선포되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통해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음이 감사하고, 여전히 삶의 문제가 내 안에 켜켜이 쌓여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듣는 그 순간 마음의 평안함과 든든함이 가득하게 되는 것이고, 주님을 경외하며 성령의 위로를 받게 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주일 말씀을 사모하며 말씀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예배에 참여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면 복음으로 인하여서 세상의 유혹과 시험, 유혹과 도전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계속해서, 계속해서 힘을 더 얻어 복음을 증거 하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든 현장에서 세상을 당혹하게 만들어주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는 줄 믿습니다. 아직까지도 이런 복음의 현장, 말씀의 현장을 나오지 못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어서 빨리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매주 마다 선포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예수님만이 참된 구원자 되시며, 예수님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연결시킬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자이심을 선포되는 그 말씀의 현장에 계속해서 나오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번 주부터 시작되는 다락방, 여러분 다락방도 말씀 중심이 되어야 되는 줄 믿습니다. 사랑의 교회 다락방은요 단순히 교재에 치우친 모임이 아닙니다. 말씀의 주제를 가지고 깊이 고민하면서 하나님의 진리를 함께 공유하고 도전하며 변화를 도모하는 자리인 줄 믿습니다. 때론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하는 생각과 의식 때문에 서로에게 불편한 마음을 주지 않기 위해서 말씀 중심보다는 관계 중심으로 다락방을 진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상대방을 위로해 주고 또한 보듬어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변화를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죄인을 어쩔 수 없는 죄인을, 스스로는 도저히 변화될 수 없는 그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로 온전히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오직 복음의 말씀에만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도전하고, 선포하면서 그것이 그것을 위해서 간절함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다락방 자리가 된다면 여러분 그 자리에 복음의 역사가 나타날 줄 확신합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통해 아닌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는 다락방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번 주부터 시작되는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라는 다락방 교재를 통해서 이번 상반기 다락방 말씀이 우리 가운데 가득가득 녹여지고 그 행하는 모든 다락방마다 말씀이 중심이 되어서 다락방마다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은혜가 있는 그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아직까지 다락방에 들어오지 못한 분들이 있다 면은 그 놀라운 말씀의 능력이 가득가득 담아져 있는 다락방으로 속히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 다락방에 참여하셔서 그 다락방을 통해 말씀의 역사를 깊이 경험하시고 그 말씀의 능력을 다시 시작하는 능력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II. 두 번째로, 우리는 말씀이 중심이 되는 공동체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커다란 포부를 가지고 시작했다가 시시하게 끝나버리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곤 합니다. 말씀을 듣고 그렇게 살고 싶어서 야심차게 도전했지만 짧으면 하루 정도 넘기기 쉽지 않고 길어도 몇 년을 지속하여 지속하는 것이 쉽지가 않음을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내 삶의 중심으로 세워서 세상과 치열하게 싸우는 삶을 살고는 있지만 그런 삶에 지쳐서 내려놓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어요.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나 자신만 봐도 그렇습니다. 다락방을 야심차게 시작했다가 내려놓는 분들도 계시고요. 주의 말씀을 정말로 현장에서 듣고자 시간이 늦지 않게 다가왔다가도 어느 날은 늦게 말씀만 듣는 그 시간에 겨우겨우 참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분을 찾아보지 않고 저를 바라봐도 똑같습니다. 한때는 하나님의 말씀 큐티를 훈련반이나 이렇게 올리기 위해서 사실은 제가 살기 위해서 말씀을 계속 올렸다가 한 5년 정도 올리다 보니, 이것이 익숙하고 나의 능력이 되는 것 같아 정말로 쉽게 말씀 큐티를 하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큐티를 하는 게 너무 힘겨워지는 시간이 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루를 쉬었습니다. 하루가 한 주가 되고, 한 주가 한 달이 되니 한 달이 몇 년이 되더라고요. 익숙해짐이 내 안에 있었고, 습관이 되었다라고 생각했는데도 불구하고 이것들을 내 삶에 온전히 나타내는 것들을 지켜내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다는 것들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올해 사역 반에 선포를 했습니다. 매일 아침 제가 큐티를 올리겠습니다. 그 약속을 오늘만 빼고 계속 지키고 나가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오늘 말씀 준비하느라고 치열한 삶을 살다 보니 아직 올리지 못했는데 올릴 겁니다. 오늘 저녁에 가서 오늘의 큐티 말씀을 가지고 치열한 씨름의 흔적들을 나누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무언가를 이루어가고 지켜나가는 것들이 쉽지 않다. 라는 것을 제 이야기를 통해서도 확인하는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은 주변을 돌아볼 필요 없이 나 자신만을 봐도 얼마나 부족하고 우리는 말씀 앞에 자신을 내려놓는 순간을 절절히 느낄 때가 참 많이 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에서는 어떻습니까? 다 함께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아침마다 치열한 영적 전쟁을 벌이고 있지 않습니까? 그때마다 이 영적 전쟁을 언제까지 치러야 하나라면서 힘겨워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여러분, 가정 예배를 시작했다가도 어느 순간 가족의 비유를 맞추느라 환경과 상황에 억눌려서 멈춰버리는 경험은 없으신가요? 여러분들의 훈련 반은 어떻습니까? 말씀이 중심이 된 나 자신과 공동체를 만들어 보겠다고 모여서 기도하며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지만 그 공동체가 평안하고 든든히 서가고 있다. 라고 느끼십니까? 그리고 그러한 공동체를 지금도 잘 유지하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의 다락방도 마찬가지겠죠. 대부분 복음이 증거 되고 말씀의 중심의 공동체에 늘 의심과 오해와 위협과 절망과 실망과 낙심이 뒤따릅니다. 왜냐하면 각자의 가치관과 기준이 다르고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다른 관점과 기준을 가진 죄인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인들이 모였기 때문에, 그래서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그 시대에도 그랬는데 하물며 우리의 시대도 피할 수 있을까요?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우리의 공동체 안에 말씀을 우리의 삶의 중심으로 온전히 세워야 되는 줄 믿습니다. 또한 계속해서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기대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매주 나에게 주시는 말씀 앞에 서면 삶의 많은 문제보다 더 큰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 앞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우리 함께 시편 121절 1절에서 2절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121:1-2,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 로다.
-저와 여러분들이 믿는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세상에 그 어떤 문제보다 더 크신 분이신 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정과 공동체 속에서 말씀을 기준 삼는 것을 놓치지 말고 계속해서 말씀을 붙드는 것들을 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요즘 사육 훈련을 하면서 훈련생들의 고민이 있습니다. IBS를 어떻게 할 수 있지? 하는 것입니다. IBS를 강의를 마치고 함께하는 훈련생들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는지는 알겠는데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이해하셨어요? 어떻게 하는지는 알게 됐는데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거야라는 그런 표정이었어요. 그러나 여러분 이러한 과정이 없이 말씀 사역자로 설 수 없겠죠. 지금은 비록 서툰 모습이지만 말씀 하나하나를 연구하고 묵상하고 계시면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말씀과 씨름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는 자를 만나주신다라고 하셨사오니까 간절함으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치열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고 그 말씀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넉넉히 이길 힘과 능력을 주실 줄 믿습니다. 훈련뿐만 아니겠죠. 우리의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말씀 중심이 되는 공동체를 만들려는 여러분들의 노력을 멈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시작했다가 멈춰버린 가정, 예배, 온 가족이 함께 나누었던 규티 시간, 냉장고 위에 그날의 말씀을 붙여놓았던 수고, 100대 기도 제목을 가지고 가족에서 함께, 가정에서 함께 붙들고 기도하는 그 시간, 불신자 가족들을 위해서 카톡방에 생명의 말씀을 전하려고 하는 그 애끓는 마음 등 여러분들의 가정에서 말씀이 중심이 되는 일련의 노력을 멈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시도했다가 멈춘 상황이라면 지금 다시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을 향한 유대인의 공격은 아주 집요했습니다. 어디를 가나 복음을 증거 하는 바울을 향해서 죽음의 위협을 가했던 것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가 확신한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가 다메섹의 도상에서 만났던 그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나를 연결 지어진 유일한 구원자라는 사실들을 확신했기에 그는 어떠한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그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복음을 증거 하니 온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님을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가 가득하여서 성도의 수가 더 많아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가정을 절대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바울 같은 사람을 통해서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섰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의 수고를 통해서 저와 여러분들의 가정도 말씀 중심의 공동체가 될 줄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속한 가정과 다락방과 훈련반과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힘은 참된 복음이 선포되고 그 복음이 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것에 있습니다. 말씀이 아니라 다른 것을 붙드는 것은 결국 그 공동체의 영적인 능력을 고갈시키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한 삶은 참된 변화를 꿈꿀 수도 없고, 겉치레에 빠져서 공동체를 떠나거나 계속 반복된 연약한 일상을 살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우리가 속한 모든 공동체가 말씀이 중심이 되고 말씀을 기준 삼는 수고를 포기하지 않고 감당하게 된다면 참된 변화를 기대하고 의심을 거두고 오해를 풀어주며 서로 용납하고 사랑하며 인내하는 은혜의 공동체가 될 것을 확신합니다. 오늘 말씀처럼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공동체가 될 줄 믿습니다. 이번 상반기 모든 사역 중에 이러한 은혜로 가득한 사랑의 교회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요약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공동체가 복음 중심의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을 결단하고, 우리의 가정과 다락방, 훈련 반을 비롯한 모든 신앙 공동체가 말씀을 중심으로 기준 삼아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공동체에 참된 변화와 온전한 회복을 위해 먼저 말씀을 사모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을 포기하지 않고 붙들어서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는 공동체로서 실천하는 복음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다메섹에서 사울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유대인들을 굴복시켰다. 유대인들로서는 그리스도인 박해자로 소문난 사울을 믿을 수 없었을 것이나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증명하는 그의 변화된 모습이 유대인들을 굴복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갑자기 돌변한 사울을 죽이기로 공모한 후 사울을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을 지켰다. 즉, 사울의 전도는 유대교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핍박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사울은 이 기회를 장차 올 모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호기로 삼았다. 바나바는 사도들에게 사울의 회심과 그가 복음 전한 일을 증거 했다. 바나바는 관대하고 포용적인 사람이었으나 후에는 마가에 대한 문제로 인해 생긴 바울과의 의견 대립으로 전도 여행 중에 결별하기도 했다. 하나님 말씀이 중심이 되는 삶의 기준을 지켜내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삶을 우리는 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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