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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5312)
제목: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말씀: 사도행전 1:6-11, 7:55-56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사님)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설교자: 윤현수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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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11, 7:55-56,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7:55-56,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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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를 불러주셔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게 하시고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무릎 꿇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의 말씀을 묵상할 때 성령님께서 조명하여 주시고 간절히 기도할 때 주님께서 예비하신 은혜와 응답을 받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수요 저녁 기도회에 참여하신 모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수요 저녁 기도회를 통해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경험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도행전 16절에서 11절과 755절에서 56절 말씀입니다.주신 말씀 16절에서 11절과 755절에서 56절 말씀을 저와 함께 교독 하시겠습니다.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도행전은 땅에서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지만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순간마다 하늘이 등장합니다. 오늘 봉독하셨던 사도행전 제일 첫 부분도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장면, 즉 승천 사건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승천(昇天)은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하나님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만율을 통치하심을 보여주시는 영광스러운 사건입니다.

사도신경에서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 오시리라. 하며 저희들이 믿음 가운데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 짧고 간단한 본문과 신앙 고백에는 성도가 인내하고 헌신하고 살아내야 하는 엄청난 무게와 시간의 현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다시 오시겠다. 라고 한 시간이 무려 2천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다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1절에 주님께서 떠나실 때 제자들이 주님이 사라질 때까지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이러한 음성이 들립니다.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성도 여러분 과연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일까요?

*사도행전 1:11,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저는 이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제자들의 심정을 먼저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저는 제자들의 심정이 아마도 부모 잃은 어린 아이와 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을 믿고 젊은 생애(生涯)를 바쳤습니다. 그랬는데 주님께서 사망과 죄악과 죽음의 권세를 완전히 멸절시키시고 영원한 생명을 아직 도래(到來)하지 않은 시점에서 주님께서 하늘로 올라가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무거운 사명을 맡기시고 주님께서 떠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아직 믿음이 연약(軟弱)한 상태였습니다.

한마디로 저는 제자들의 심정은 이제 어떡하나 이제 큰일 났다. 저는 제자들이 그러한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더하여 본문은 이런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사도행전 19절에,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사도행전 1:9,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요? 예수님이 이제 우리 육안(肉眼)으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17절에,

*사도행전 1:7,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참으로 제게 있어서는 가장 힘든 이야기입니다. 저는 기다림이 가장 힘든데 주님께서 때와 시기는 너희가 알 수 없다고 말씀하시며 하늘로 가심을 그대로 본 그대로 오시리라. 오실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 그 사랑하던 예수님, 제자들의 모든 것 대신 예수님께서 이제 안 보이시고 언제 오실지 모른 채 제자들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 이것은 매우 힘듭니다. 하늘을 바라보던 제자들의 심정은 우리도 쉽게 경험하는 심정입니다.

새 학기가 되어 교구 개강 모임을 하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지난 주일 여자 직장인 교구 순장님들이 모여서 서로 인사를 나누는데 나누시는데, 순장 연차 이제 2년 차에 접어드시는 분 중 한 분이 본인을 소개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이제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초보 순장이라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자 3년 차 접어드시는 순장님께서 저는 2년을 했는데 저도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셨습니다. 그랬는데 정말 놀랍습니다. 3년 하시면 잘하실까요?

어제 이제 여자 교구 순장님들이 모이셨는데 어느 순장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순장 사역 20년 된 순장입니다. 그런데 올해 우리 다락방의 상황이 정말 기도할 것이 많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1년 차 2년 차 되신 순장님들 순장 사역이 힘드시다고 하시는데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20년이 되어도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순장님께도 힘을 주시고 다락방 순원들, 우리 주님께서 성령 충만한 예수님의 제자로 세워주실 줄 믿습니다.

제자 반에서 함께 훈련했던 집사님들 다수가 이제 순장 파송이 된 저희 제자반이 있어서 우리 집사님들께서 모이셨는데 이제 훈련할 때와는 전혀 다른 고민을 털어놓으셨습니다. 어떤 순장님께서 순원이 저 말고 다른 순장님을 좋아해요. ㅎㅎㅎ~~ 또 다른 순장님께서 순원이 마음을 잘 열지 않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한 분은 신혼부부 다락방을 섬기시는 순장님이신데, 수원이 이런 이러한 문제로 아파하고 힘들어합니다 하며 눈물 끼 있는 얼굴로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목양 사역은 쉽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쉬워지지 않습니다.

저는 많은 말씀을 드리며 순장님들과 우리 제자반 집사님들을 권면하고 격려해 드렸지만 솔직한 저의 심정은 이렇습니다. 저도 신학교를 나오고 거의 10년이 넘도록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은 성경과 하나님과 교회와 성도와 관련된 생각만 하고 살아왔지만 사실 저도 잘 몰라요. ㅎㅎㅎ~~

순장님 성경책 붙들고 무릎 꿇어 하나님 앞에 처절하게 물어보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온 힘을 다하여 권면하였습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님 믿는데도 여전히 이 땅에 가시와 엉겅기가 있고 우리 발은 아직도 피투성이가 될 때가 많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주님을 힘써 섬겼는데 주님께서 보상해 주실 줄 알았는데 병원에 갔더니 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주님이 옆에 계시면 예수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질문이라도 할 텐데 주님은 하늘에 오르셔서 구름이 그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이 상태입니다. 저희의 위치가 그리고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 응답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기다리지만 오늘 본문을 말씀하십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기다림의 사인을 주님이 주셨습니다.

제자들의 심정이 바로 우리가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고 때로는 가정과 일터에서 힘써 소명을 감당하다가 넘어지고 쓰러지고 가시와 엉겅퀴에 우리 발이 상처나서 피 흘릴 때 우리가 고통스러워하며 주님 어디 계십니까? 주님 도와주옵소서. 라고 하는 그러한 우리의 탄식이 나올 때와 우리 제자들의 심정이 아마 같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었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지만 사도행전 18절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때문에 저희는 희망이 있습니다. 저도 교구 목회자로서 신방을 갈 때마다 그 어떤 신방도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매번 갈 때마다 힘듭니다.

예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 도와주세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래서 아침에 출발할 때부터 우리 사랑의 교회 찬양 대 찬양 틀어 놓고 운전하고 가면서 하나님 도와주세요. 제가 죄 지은 게 있으면 또 용서해 주시고 이렇게 기도해서 갑니다. 그렇지만 성령님께서 도와주시면 우리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하시고 변화되게 하시고 고쳐주심을 믿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는 목회자를 진작 그만두었을 텐데, 하나님께서 10년간 여기까지 오게 해 주신 것은 저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성령님께서 모든 주님의 백성들을 양육하시고, 인도하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임하시면 어떤 은혜를 주시는지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기를 두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먼저 너희가 권능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II.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먼저 너희가 권능을 받고.

-너무너무 기쁘고 감사한 소식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고 권능을 받는다. 라고 하는 것에 성경적 의미를 잠시 살펴보고 싶습니다. 출애굽기 40장에 광야의 성막이 완성되고 나서 구름이 가득했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에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나서 열왕기상 8장에 보면 성전이 완공되었을 때에도 구름이 성전에 가득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구름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셰키나라고 합니다. 우리 사랑의 교회는 쉐키나가 충만하게 임하여 있습니다. 예배 전에 찬양하셨던 분들 찬양팀 이름이 쉐키나입니다.

그런데 구름으로 상징된 이 하나님의 쉐키나, 하나님의 임재가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죄악으로 인해 이스라엘을 떠나십니다. 그것이 에스겔서 1011장에 기록되어 있기도 하는데요. 여호와의 영광이 예루살렘과 이스라엘과 성전을 떠나고 나서 이제 여호와의 영광, 하나님의 영이 다시 이스라엘과 성전으로 돌아오는 것이 유대인들의 소망이요, 모든 구약 성경의 예언들은 여호와의 영이 다시 성전으로 돌아오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捕虜)에서 돌아와서 이 성전을 재건하고 헤롯이 성전을 증축했는데도 출애굽기 40장과 열왕기상 8장에서 나타났던 여호와의 임재의 구름은 두 번째 성전에 전혀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오실 당시 그 두 번째 성전은 하나님의 영이 없는 성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쉐키나가 인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많은 고민을 신학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2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것은 여호와의 영, 아버지와 아들이 보내신 하나님의 영이 그 구약 성경에 수많은 예언서가 예언한 대로 다시 임하시는 위대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영의 임재가 이제 건물 성전이 아니라, 예수님 믿는 성도들을 성전 삼고 임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1절에서 4절 말씀에,

*사도행전 2:1-4,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여기서 불의 혀는 출애굽기 시내산에서 불과 연기가운데 임하셨던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임하셨던 것처럼, 오순절날 성도들에게 임하신 것입니다.

또한 미국의 리폼드 신학교회 신약학자 그레고리 빌이라고 하는 교수님께서는 당시 유대인들은 하늘나라에 모세의 성막이 예시했던 것보다 더 참되고 영광스러운 하늘의 성전이 있다고 믿었는데, 그 하늘 성전의 외벽과 지성소의 휘장이 모세 후 성막의 휘장은 흰 세마포(細麻布)였지만, 유대인들의 묵시 문헌에서 유대인들이 믿었던 하늘 성전 지성소의 휘장은 불의 혀라고 그들이 믿었다는 그러한 증거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머리에 임하여 있었다. 라고 하는 성령 강림의 이 사건은 바로 이제 하나님께서 예전에는 모세의 성막과 솔로몬의 예루살렘 건물 성전 지성소 안에 임재하셨는데, 이제는 그 건물 성전이 아니라 예수님 믿고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 된 자기 백성을 성전 삼고,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영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께서 임하여 계신다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것을 더 확실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고린도전서 316절에,

*고린도전서 3:16,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저희에게 사도 바울이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임하신 성령님은 그 옛날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던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찾아오셔서 그들을 이끄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심과 같은 은혜와 축복과 보호를 저희에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광야 이스라엘을 어떻게 인도하셨습니까?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아말렉과 같은 이스라엘의 대적(對敵)을 물리쳐 주셨고, 반석에서 샘물이 나게 하셨고, 하늘에서 하늘의 양식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오신 성령님께서 그 옛날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던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을 가지고 오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길을 인도하시며 우리 앞을 막고 있는 홍해와 같은 문제를 갈라 주실 능력이 성령님께 있으십니다. 그리고 성령(聖靈)님께서는 하늘의 양식을 날마다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쓴 물을 마라의 쓴 연못물을 달게 만들어 주셨던 것처럼, 성령님께서는 우리 마음과 환경과 우리 인간관계와 우리 삶의 모든 쓴물을 등에 달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물이 없어 갈()할 때, 반석에서 샘물이 나게 하셨던 우리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교회 가운데 인도하시며 성도들의 인생 가운데 반석에서 샘물이 나게 하실 것입니다.

물이 없어서 헤매던 주님의 백성들을 물샘 열둘과 종려나무, 이른 그루가 있는 오아시스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성령님께서는 오늘 우리 성도님들을 물샘 열둘과 그 시원한 그늘이 있는 오아시스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아말렉과 같은 대적을 만나고, 우리를 저주(詛呪)하려는 발람과 같은 대적들을 만난다 할지라도,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셨던 하나님께서는 이제 성령님을 교회 가운데 보내셔서 우리 인생이 혹 시험과 죄악으로 정말 저주스러운 문제를 품고 있다 할지라도 그 저주를 바꾸어 축복으로 만들어 주실 능력이 성령님께 있으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順從)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만 一片丹心(일편단심) 信賴(신뢰)하고 따라가기만 한다면 저는 이러한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律法(율법)을 어겨서 하나님께 심판을 받았지만, 이제 우리는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찾아오셔서 우리 마음 판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주심으로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도록 引導(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임하신 결과 사도행전 2, 4, 6장에서는 베드로와 스데반과 같은 사도들과 집사들이 주님의 말씀을 전할 때 큰 말씀의 능력이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3장과 6장에서는 성령 충만한 베드로와 요한과 스데반이 障礙人(장애인)治癒(치유)하고 큰 하나님의 奇事(기사)表迹(표적)을 행합니다.

68, 911장에서는 성령님의 역사를 따라 교회가 크게 復興(부흥)되는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에 이 성령님의 권능을 주시는 역사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성령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강력하게 증거하게 만들고 그리고 연약한 사람들을 회복시키시고, 특별히 교회를 든든하게 세우시는 역할을 하시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몸된 교회를 든든하게 세우고 병약한 자, 고통받는 자, 그리고 우리 사람과 개인을 넘어서 우리 공동체와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모든 특별히 나라와 민족을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시고, 능력 있게 치유할 그 일을 우리를 통해 행하시려고 성령님께서 오셨기 때문에, 우리가 기다림과 또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 날마다 하늘을 바라보았던 저희가 이제는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충만하게 일하시도록 기도하며 주님을 의지하고 힘써 使命(사명)堪當(감당)하셔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이제 신학적인 점검을 해보자면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개혁주의 신학에 따르면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교회를 설립하시는 단회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 날 임하신 성령님께서는 이제 모든 교회 가운데 항상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중생과 더불어 성령의 세례를 받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믿는 또한 정통신학은 성령님께서 말씀과 福音(복음) 證據(증거)에 더욱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그 사명을 잘 감당하게 만들도록 성령 충만함을 우리 보고 저희가 구하라고 우리의 신학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님들께서도 오순절 날 임하셨던 성령님께서는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렇지만 또한 우리가 주님의 사명을 더 잘 온전히 잘 수정되기 위하여 성령 충만을 힘써 간구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또 저희가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와 스데반과 바울, 그리고 우리 교회에 어느 순장님, 어떤 집사님, 어떤 장로님은 성령 충만하실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까지는 안 될 것 같아요.

나는 그냥 예수님 믿고 천국 가는 그 턱걸이 하나님 보시기에 나는 그렇게 부족한 사람일 것 같아요라고 생각하시는 성도님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연 나도 우리도 성령님의 큰 도우심을 받을 수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여기와 관련하여 이 사도행전은 누가 복음과 연결된 책입니다. 사도행전을 쓴 저자가 누가 복음도 썼습니다. 그런데 이 사도행전을 썼던 저자가 누가 복음에서 이런 말씀을 합니다. 누가복음 1111절에서 13절에,

*누가복음 11:11-13,
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그러므로 이 말씀이 약속하신 바 성령 충만은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주시는 것이냐면 죄 없는 사람, 특별한 사람, 특별히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 종교적으로 고귀한 직분을 가진 사람에게 성령 충만함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 자녀 된 자에게 누구에게나 주시는 것이 성령 충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여 우리 주님의 큰 충만한 은혜를 힘입어서, 성령님을 힘입어서 우리 가정과 다락방과 일터와 특별히 너무나 혼돈과 다툼과 갈등 속에 있는 이 대한민국을 치료할 사명을 힘 있게 감당하시는 우리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II. 두 번째로 성령님께서 임하시면 예수님의 증인이 되리라

주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예수님의 증인이 바로 교회를 부흥케 만들고 주님의 말씀을 힘있게 전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예수님의 증인은 어떤 정체성을 가진 사람일까요?

하늘로 떠나가신 예수님을 물꾸러미 바라보기만 하던 제자들에게 너희가 어찌 바라기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라고 어찌 보면 책망 적으로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보내신 것은 교회와 성도들로 하여금 권능을 받아 땅 끝까지 예수님의 증인 되게 만드시려는 것인데, 예수님의 증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오늘 그 점을 마지막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말하는 증인은 법정에서 진술하는 자를 의미하는 법률 용어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증인 된다는 것은 법정에서 증언하듯,

III.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

-우리 성도님들께서 참 최근에 국가적으로 큰 사건이 있기 때문에 헌법재판 절차라고 하는 굉장히 특이한 절차를 TV에서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거기 증인 신청을 하고 재판관이 증인으로 이렇게 부르면 그 증인이 증언을 하는데 그 증인이 말하는 증언이 옳은지 그른지 우리는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 여러분 증인의 증언 중에 확실한 증언이 하나가 있습니다. 그 증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그 증인이 자기 목숨을 내어놓고 하는 증언입니다. 죽음으로써 자신의 증언의 진실성을 드러내놓고 하는 증언이 가장 확실한 증언입니다.

그런데 바로 사도행전에서도 예수님의 증인들이 많이 나오고 사도행전은 그리스도의 증인들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자신의 증언에 참됨을 증언한 증인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사도행전 7장의 스데반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7장의 스데반의 지금 사도행전 755절에서 56절 말씀을 한번 먼저 읽어보겠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사도행전 7:55-56,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스데반은 사도행전에서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證人(증인)이면서 예수님의 증인이란, 특히 성령 충만을 받은 예수님의 증인이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어떤 정체성을 가진 사람인지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님들도 우리는 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 부름을 받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 가정 생활, 우리 교회에서의 여러 사명들, 일터에서의 사명들, 나라와 민족과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는 어떤 일도 할 수가 없는데, 참으로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예수님의 증인 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스데반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스데반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스데반은 사도행전 7장에 스데반의 긴 설교가 나와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보여주는 스데반의 특징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처럼 여기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처럼 여기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자신이 먼저 그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고 그 말씀을 증언하는 자가 스데반이었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은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스데반의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예수님의 증인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을 거는 자가 예수님의 증인의 특징이요. 또한 예수님을 닮은 자가 예수님의 증인입니다. 스데반이 예수님을 닮았다라고 하는 증거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2334절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 운명하실 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복음 2334,
34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그런데 사도행전 760절에 스데반도 하나님 앞에 그 목숨이 끊어지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도행전 760,
60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스데반은 그 죽음의 현장에서 예수님과 똑같은 용서와 사랑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2346
*누가복음 2346,
46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스데반도 예수님과 똑같습니다. 주 예수여 이제 아버지가 아니라 예수님께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누가 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스데반의 죽음이 매우 유사하다고 하는 것은 스데반이 온전히 예수님을 닮았다라고 하는 말입니다. 온전한 닮음은 죽음까지 함께하는 닮음입니다. 그러므로 스데반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 걸고 증거했고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히 스데반이 이 예수님을 닮아서 나타낸 것은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을 증거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 예수님의 증인은 하나님을 담습니다. 성경에서 성령님을 지칭하는 표현은 여호와의 영, 하나님의 영, 아들의 영, 그리고 사도행전 16장에 예수의 영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 아들의 영, 예수의 영을 받으신 우리 성도님들께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의 특성과 성품을 당연히 드러내실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이와 같이 예수의 영을 보내셔서,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시는데, 스데반을 통하여 보여주신 예수님 닮음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하나님 말씀을 생명처럼 여기는 것이었고, 예수님을 온전히 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닮아서 사랑과 용서를 주님처럼 죽게까지 드러내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이러한 특징을 스데반을 통하여 보여주신다면 성령님의 역사를 대적하는 사탄의 영, 미혹의 영, 악한 영은 그 반대의 성품이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악한 영은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것처럼 머리 풀어 헤치고 귀신처럼 소복 입고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생명처럼 여기고 생명을 걸고 주님의 말씀을 증거 하게 하는데, 그렇다면 악한 영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망각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게 만들고, 하나님 말씀에 무지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입을 벙어리로 만드는 것이 사탄의 역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성령님께서는 오셔서 우리가 예수님의 그 사랑과 용서의 삶을 드러내게 하시는데, 우리의 삶 속에서 사랑과 용서가 아니라, 만약 내가 가는 곳마다 分裂(분열)이 일어나고 다툼이 일어나고 갈등이 일어나고 내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일이 진행되는 데 있어서 장애물이 발생하고 나로 인하여 주님의 일이 전진 되지 못하게 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나는 누구를 닮은 것일까요?

그러므로 저희가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그때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생명처럼 여기고, 증거하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진실로 예수님을 닮아서 사랑과 겸손과 온유와 용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하셔야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님들께서는 스데반의 삶은 너무 힘들어서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생명을 걸고 말씀을 증언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었던 스데반에게 신약 성경 그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는 영광스러운 장면을 보여주시는데 하늘이 열리고 자 인자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십니다.

예수님은 보통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데 이 본문에서만 유일하게 예수님이 서 계십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도대체 예수님이 왜 서 계시는지를 연구했습니다. 예수님이 서 계시는 것은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하나는 너무너무 스데반을 사랑하고 예수님께서 감동하셔서 주님이 벌떡 일어나셨다. 라고 하는 겁니다.

너무 극진한 환대를 주님이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해석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그리스 로마 세계에는 재판정에서 법정에서 변호사가 자신의 자신의 辯護(변호)해 주는 사람을 변론할 때 辯論(변론)할 때 서서 변론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재판장은 보통 앉아 있다가 판결할 때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법정 장면을 가지고 이 본문을 해석해 보면 예수님께서 보좌에서 일어나 계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스데반이 옳다 변론하시는 것이고, 온 우주의 재판장이신 예수님께서 스데반 너가 맞다. 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목숨을 걸고 주의 말씀을 생명처럼 여기고 증거하고, 또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매우 힘들지만 저희들이 그 주님의 성품을 드러내고 주님의 말씀을 진실로 생명처럼 여기는 그리스도의 증인을 힘써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하늘이 열리고 주님의 寶座(보좌)에서 일어나셔서 환대하시고 인정해 주시는 역사를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이 순교한 후에 사도행전 8장에서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서 드디어 이방으로 전파되게 됩니다. 충성된 증인의 증언과 희생과 헌신과 사랑이 있은 이후에 복음은 비로소 지리적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 제자 훈련과 사역 훈련, 그리고 다락방에서 그리고 여러 사역 부서에서 순장반에서, 권사회에서 힘써 수고하시고 애쓰시는 그 수고 힘들고 어려우시지만 우리 성도님들의 그 땀 흘리시고 피 흘리시는 섬김과 헌신과 사랑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역사를 지리적으로 확장시키실 것입니다.

정말 스레반과 같이 주의 말씀을 사랑하시고, 예수님 닮은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세계 복음주의 교회를 살려내시고, 다시금 온 인류가 하나님 앞에 돌아와서 悔改(회개)하게 하는 대부흥의 역사를 우리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이 펼쳐주실 줄 믿습니다.

주님 안에서 수고가 헛되지 않은 줄 믿습니다. 하늘로 올려지신 주님께서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실 때까지, 이러한 주님의 증인 되는 사명 힘써 감당하여 땅 끝까지 주님의 복음이 증거되는 일에 영광스럽게 쓰임 받으시는 예수님의 증인 되시기를 간절히 권면드립니다.

요약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의 정체성과 사명을 깨달아, 주님 다시 오실 날을 간절히 사모하며 늘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하여 신실하게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스데반과 같이 생명을 다해 복음을 증언하며, 그리스도의 심정과 사랑을 온전히 드러내는 주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성령님을 의지하여 땅 끝까지 주님의 증인 되고, 변치 않은 믿음과 소망으로 주의 사명 잘 감당하며,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여 개인, 가정, 일터, 교회, 나라와 민족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遍滿(편만)케 되는 일에 쓰임 받아야 한다. 주님을 닮아 전심으로 복음을 증언하는 자, 주님의 심정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자가 되기를 간구하며 실천하는 자로 주님을 증거하며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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