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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9월 20일) 제목: "주 여호와는 나의 힘" 말씀: 하박국 3:16-19 찬양인도: 쉐키나(유재원 부목사님) 설교자: 문진호 부목사님 --------------- *하박국 3:16-19,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 ▶오랜만에 중고 서점을 갔습니다. 시선을 끄는 제목의 책을 보았습니다. 책 제목이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입니다. 내용이 좋아서 한 대목을 소개하겠습니다. -청춘의 시기가 아프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어른이 된 지금보다는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말하자면 수족관 속의 행복입니다. 한결같은 조명, 따뜻한 온도, 함께 생활하는 친구와 가족, 때맞춰 주어지는 먹이 그렇지만 그 평안의 대가는 두꺼운 유리벽입니다. 적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어쩌면 그것은 가족과 학교라는 보호막 안쪽에서 바라본 세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어른이 됩니다. 유리벽이 깨졌습니다. 수족관 밖으로 던져진 헐떡이는 물고기가 된 것입니다. 읽다가 문득 예수님 제자의 삶이 어떠한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처음 믿고 수족관 속에 행복을 경험하다가 어느 순간 유리벽이 깨져버립니다. 내 계획이 실패하고, 내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힘이 빠지는 경험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신앙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보니까 여기 계신 성도님들 대부분은 이미 인생의 유리벽이 깨져서 수족관 바퀴에 던져진 헐떡이는 물고기들이신 것 같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인생의 유리벽이 와장창 깨어져 버리는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의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여러분, 이런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우리 식으로 말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녀가 모의고사 성적이 안 나오고, 예상치 않은 세금 고지서가 날아오고, 집을 내놓았는데 빠지지가 않고, 몸에 암이 발견되고, 부부 간의 오랜 갈등이 폭발하여 우리 결혼 생활은 여기까지라고 말하고 힘 빠지게 만드는 이런 사례들은 얼마든지 나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요. 답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이런 상황에서 하바국이 보인 믿음의 반응이 놀랍기만 합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할렐루야! 언제라도 나를 지켜줄 것 같은 인생의 유리벽이 와장창 다 깨어져버리고 내 인생의 개혁 계획표가 망가져버릴 때, 우리도 하박국 선지자처럼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이렇게 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어떻게 하면 이런 극한의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는 찬송과 믿음 고백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하박국 선지자가 놓인 상황을 보겠습니다. 선지자는 그가 받은 부르심 때문에, 꿈 때문에 대가를 단단히 치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면 보지도 듣지도, 경험하지도 않았을 일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하박국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자료가 많지 않아서 정확하게 잘 모릅니다. 확실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름을 받고 그에게 묵시, 즉 미래에 관한 일이 주어집니다. 선지자는 그 부르심 때문에 매우 고통스럽고 힘 빠지는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우기 위해서 먼저 하시는 하나님의 힘 빼기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갈대야 사람들이라 불리 우는 바벨론을 일으켜서 유대 민족을 심판하시겠다는 계획을 듣게 됩니다. 선지자는 이렇게 반문하죠.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 데도 잠잠하시나이까?” 선지자는 하나님이 불의한 자들을 일으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이 일이 못내 못마땅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길이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길과는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은 이해할 수 없는 부르심일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이 있는데요. 그것은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르심의 믿음에 반응을 보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하면, 믿음이 아닌 반응을 보여준 인물들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구약에는 요나가 있고 신약에는 바울 되기 이전에 사울이 있습니다. 요나는 적극 앗수르에 가서 회개의 복음을 선포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요나의 반응은 도피입니다. 앗수르족은 죽은 사람의 머릿 가죽을 벗겨서 가져가고 노예를 끌고 갈 때에 꼬챙이에 꽂아서 줄줄줄줄 꿰어서 데리고 갑니다. 야만의 극치를 보여준 아슬로 사람들에게 회개를 선포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요나의 반응은 스스로 온 힘을 다해 세상 끝, 지금의 스페인을 향해 도피해 버리는 일이었습니다. 사울에게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다.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다스림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임했다. 예수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죄인이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다는 이 복음 선포였습니다. 어떻게 인간 예수가 하나님이 될 수 있는가? 어떻게 예수가 메시아라며 십자가 형틀에서 마침내 죽임을 당해버리는가? 만약에 하나님이었다면 피했어야 마땅한데 사울은 예수를 통해 주신 복음의 방식을 철저히 배척하고 저항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기 위해 예수의 제자들을 잡아 죽이고자 했습니다. 자신의 온 힘을 다해 칼을 사용합니다. 요나와 사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다 이해되지 않을 때 믿음이 아닌 반응을 보였습니다. 둘의 공통점은 자신의 힘을 다해, 전심을 다해 도피하거나 저항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이런 부르심 앞에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일을 다 이해할 수 없을 때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반응은 무엇일까요? 여러분 저를 따라합니다. “전율하며 찬송합니다.” 한 번 더요. “전율하며 찬송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이성으로 다 이해할 수 없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반응이 바로 전율하며 찬송합니다. 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하박국 선지자의 첫 번째 반응은 전율하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반응은 전율하는 것이었다. *하박국 3:16,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하박국이 하나님께 들은 소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파르르 떨리도록 두렵고, 공포스러운 말씀입니다. 선지자는 이 말씀을 듣고 뼈가 썩고 온몸이 떨리도록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리고 만문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성도의 삶이 바벨론에 의해서 왜 무너져야만 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이해할 수 없을 때라도 다만 하박국은 전율합니다. 전 존재가 흔들흔들하면서도 요나처럼 도망가지 않습니다. 사울처럼 칼을 들어 저항하지 않습니다. 16절 우리 다시 한 번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장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우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란 날을 내가 기다림으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 도다.“ -하박국은 그 두려움과 공포를 오롯이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처소에 머뭅니다. 뼈가 썩는 고통 속에서도 그 환란 날을 스스로 기다린다. 라고 말합니다. 도피하거나 저항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두려움에 전율하며 이처럼 기다림으로 반응할 수 있을까? 여러분 우리가 실패할 때 전율합니다. 하나님의 힘 빼기 작업대에 올라가게 되는 순간이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성공적으로 김치를 담그게 할 때 첫 번째 단계 다 아시죠? 배추의 숨죽이기입니다. 이건 남자들도 다 아는 것입니다. 배추 이파리를 소금에 절여서 물도 빼고 숨도 죽여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배추 숨죽이기의 달인이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사람들을 부르셔서 일을 시키실 때, 숨죽이기를 먼저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쓰기 위해 40년 동안이나 미디안 광야에서 그를 숨죽여 놓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실 때 그가 얼마나 숨이 죽었는지 바보처럼 서 있는 모습을 여러분 다 보셨을 것입니다. 저 아무것도 못하는데요. 아마 웃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기가 막히고 너무 황당하니까 아마 이런 실수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을 합니다. 말 잘하는 제 형 아론을 보내십시오. 제가 뭘 할 수 있어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그는 실수를 금할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더라는 것입니다. 자기는 하나님이 불러 세우는 일을 못한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어렵게 설득해서 이제 모세의 가족이 애굽으로 돌아가는 장면입니다. 출애굽기 4장 20절, 21절입니다. *출애굽기 4:20-21, 20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내 손에 쥔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여기까지는 굉장히 좋은 그림 아닙니까?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하나님의 소명을 따라서 이제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근데 문제의 구절입니다. 출애굽기 4장 24절에 보니까 *출애굽기 4장 24 24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이르되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여러분 이해가 안 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는 모세 외에 대안이 없었습니다. 40년 동안은 하나님은 그를 숨죽여놓기까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하나님의 지팡이로서 쓰임 받도록 하나님은 그를 숨죽여 놓으시고 그를 마침내 하나님의 비밀 편지로 쓰시기 위해 그를 이제 세상 앞에 드러내놓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습격하여 죽이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해되십니까? 이스라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유일한 대안 모세를 하나님이 죽이려 하셨다는 것. 여러분,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하나님의 숨죽이기입니다. 다 죽었다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하나님은 여전히 모세가 죽을 것이 있다. 죽어야만 한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숨죽이기가 잘 되어야 훌륭한 김치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의 특징은 숨죽이기 과정이 반드시 있었다. 라는 것입니다. 요셉도 있었습니다. 다윗도 베드로도 바울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와 같은 숨죽이기 작업대 위에 다뤄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숨죽이기가 시작되면 반응은 예외가 없습니다. 전율을 하게 됩니다. 떨리게 됩니다. 두려워합니다. 저도 하나님의 숨죽이기에 작업대에 자주 올라보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늘 새롭습니다. 늘 새삼스럽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목회자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총신대 신학과에 들어가니 그곳에 또 다른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지성사회의 복음화 아이에프 선교 단체로 인도하셨습니다. 전공은 아이에프, 부전공은 신학과 그렇게 말할 정도로 이 선교단체 활동을 지나치게 열심을 내었습니다. 일주일에 4번을 모이는데 월요일에는 학년 모임, 화요일은 소그룹 모임, 목요일은 전체 모임, 토요일은 전도 모임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8시에 dpm 데일리 프레이어 미팅이라고 해서 기도모임이 있습니다.방학 때면 더 바빴습니다. 신앙강좌 챕터 캠프 mt 전체 수련회 리더 수련회 국내 아웃리치. 제가 살던 집이 부천이었는데 사당동까지 1시간 반을 오고 가며 하루에 3시간 새벽차 타고 나가서 막차 타고 집에 들어갈 때가 많아져 남들은 대학 생활이 다 낭만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저는 지금 생각해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대학생활이 너무 고된 생활이었어요. 진짜 문제는 뭐냐면 남들 다 하는 아르바이트 할 시간이 없다는 거예요. 좀 용돈도 벌고 학비도 마련해가면서 좀 대학생활을 좀 여유 있게 보낼 만도 한데 저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수년 전 아버지를 천국 보내드린 상황에서 향토장학금은 기대할 수도 없었습니다.등록금을 제 힘으로 마련해야 되는데 이렇게 전공이 imf고 부전공이 신학이다 보니까 등록금을 마련할 시간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매 학기 등록금 마련할 때가 되면 다른 방법을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엎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아시죠? 하나님 주실 때 언제 주신다고요. 미리 주시면 좋은데 미리 안 주세요. 등록 마감일이 돼도 소식이 없습니다. 이 등록금 하나님이 주신다는 소식이 와야 되는데 그러면 어떨 때는 등록 연장을 학생과에다가 부탁을 하고 또 계속 기도하는 거예요. 엎어져 있는 마지막 마지막 3차쯤 가가지고 하나님이 그때 주시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보내주신 까마귀의 공급이 있은 뒤 2년 동안을 저는 학교생활을 나름 열심히 잘 지내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스스로의 힘으로 등록금을 마련할 기회가 온 겁니다. 군대였습니다. 군대 다녀오면 나이와 경력을 인정받아서 교육 전도사로 교회를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니까 그렇게 교회가 등록금을 지원받아서 학교를 마치면 되겠다. 당시에 신학과 선배들이 대부분 그렇게 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런데 imf 관사님이 막아서는 것입니다. 왜 군대를 가려고 해? 왜라니요? 남들 다 가는데 저도 가야지요. 2학년 마치고 다 군대 가버리니까, 선교단체에 남자 리더십들이 한 명도 안 남아 있어요. 캠퍼스에 남아 줄 수 없겠니? 제가 이 부르심에 응답하게 되면 미래의 내 시간표가 어그러지게 되었습니다. 2년간 더 수업 등록을 위해 금식하며 엎드리는 시간을 더 해야 된다는 그 생각도,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캠퍼스에 남아달라는 말은 당시 믿음이 작은 책에 전율케 하는 저를 두려워 떨게 만드는 도전이었습니다. 제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뒤에 다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잉태하게 하시며 반드시 해산하게 하실 것이다. 여러분 저는 100% 신뢰합니다. 그런데 해산의 고통은 생각보다 강했습니다. 전율하게 됩니다. 네가 나의 유일한 대안이야. 그렇게 말하시고 불러 놓으셔놓고 동시에 죽을 것처럼 달려드는 하나님을 보면서 우리는 전율합니다. 하나님은 부르시고 부르신 사람을 왜 전율케 하시는가? 왜 두려움에 떠는 그 밤을 지새우게 하시는가? 여러분 이것입니다. 숨을 조여 오는 상황에서 우리는 전율할 때에만 깨달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율하지 않으면 결코 얻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 앞에 철저하게 전열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그 무엇을 얻은 인물 한 명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야곱입니다 야곱, 여러분 아셨는지 모르겠는데요. 야곱이 라반 삼촌의 집에서 20년간을 지내고 이제 귀향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 귀향의 결정은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창세기 31장 3절입니다. *창세기 31:3, 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내 조상의 땅 내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분명히 야곱의 귀한 길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 라고 하는 약속의 말씀이 주어졌어요.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귀한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강력한 복병을 만납니다. 400명의 칼 찬 군대와 함께 오는 형, 에서를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시는 길은 항상 안전하고 언제나 괜찮은 길일 것이야 이런 착각을 거두실 때가 됐습니다. 성경은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였다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해서 갔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 라고 해서 그 약속 믿고 가는데 두려움에 심히 답답하고 전율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진실로 형 예수의 손에 죽게 되었구나. 죽을 것 같은 상황 앞에서 야곱은 전율합니다. 전율할 때, 두려워 떨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인 줄로 믿습니다. 야곱의 이 전율하도록 그를 두렵게 만드는 이 상황 앞에서 반응은 요나처럼 도망치거나 사울처럼 칼을 들어서 싸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머물러서 밤새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32:11, 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형의 칼에 반드시 죽음을 당하겠구나. 두려움에 덜덜 떨며 전념하던 그 밤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에서보다도 하나님이 먼저 야곱을 기습해 오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라고 내가 너를 지켜주겠다. 라고 내가 너를 붙들어주겠다. 라고 약속받은 그 귀한 길 아닙니까? 근데 에서보다도 지금 하나님께 붙들려서 먼저 죽을 상황에 처해버린 것입니다. 그냥 싸움이 아닙니다. 치열하게 싸움이 벌어집니다. 칠 흙 같은 어둠이기 때문에 누군가 자기에게 자기를 죽일 수 있다. 라고 하는 그 두려움이 엄습해서 전심으로 싸움 걸어온 자와 함께 싸움하기 시작한 거예요. 목숨을 건 혈투였습니다. 그리고 싸움의 결과는 야곱의 힘의 근원이 끊어져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몸을 지탱하는 골반뼈 이 고관절 부위를 끊어버리십니다. 야곱은 이제 지팡이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야곱이 누굽니까? 싸움의 규제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마저 발목 잡은 자, 이 말은 기억하면 사바 잡는 자예요. 씨름에 능한 자예요. 하나님의 사자가 내 이름이 무엇이냐 축복하기에 앞서 물었을 때 그가 이렇게 대답하지 않습니까? 내 이름은 야곱입니다. 이 말의 뜻은 제가 그동안 싸움 좀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그의 삶 가운데 아버지 이삭, 형 에서 삼촌 라반과 겨루어서 언제나 승리했던 사람입니다. 싸움의 귀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하나님이 그를 기습하여 싸움을 걸어오실 때, 그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 싸움의 결과 싸움하는 자로서 힘의 근원이 사라져 버렸다라고 하는 것은 사형 선고와 다름이 없습니다. 내 평생 싸우는 자로 삿바 잡는 자로 남의 발목 잡아 넘어뜨리는 자로 살아왔는데, 늘 승리했는데, 하나님과의 싸움 앞에 그는 힘의 근원을 상실해버리고 말아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가장 잘하는 특기,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거, 그것을 하나님과의 싸움에서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힘의 근원을 끊어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는 전율합니다. 에서를 만나면 도망치기라도 해야 되는데, 도망칠 능력도 상실해버린 것입니다. 기습으로 싸움을 걸어오신 하나님을 야곱이 만나 이 사건에서 깨닫게 되어 주는 놀라운 진리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야곱의 힘의 근원이 사라지던 그 밤, 새로운 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내 생명을 보존하느님이 내 허리에서 나오고, 내가 가진 재주와 경력을 통해서 이길 수 있고, 내가 가진 기회 포착의 능력에서 나는 생명을 보존하며 이길 수 있으며, 남과 잘 싸워 이기는 데에서 나는 내 생명이 유지된다. 라고 생각했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힘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알고 복 받았다. 라고 생각했다는 것이에요. 야곱은 분명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32장 10절입니다. *창세기 32:10, 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때나 이루었나이다. -누가 누구의 지팡이로 힘쓴 결과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내가 내 지팡이로 이룬 결과가 이 많은 업적들입니다. 그런데 전율의 밤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이 힘 빼게 하신 후에 야곱의 고백이 달라집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창세기 32장 30절입니다. *창세기 32:30,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 -그동안은 내 힘으로, 내 겨루기 잘하는 실력으로 내 생명이 보존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구나! 하나님이 내 생명을 보존하고 계셨구나.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삶을 영혼부터 영혼까지 보존해 주시는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전율의 밤을 지나며 자기 힘의 근원이 사라지니 내 생명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 레리 크랩은 우리를 실망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 앞에서 전율하는 것은 그분을 경외하고 의지하는 신뢰 속에서 선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도록 우리 영혼을 열어주는 문이다. 전율하는 그 밤이야말로 하나님이 내 삶 가운데, 새로운 빛 가운데로 찾아오심을 깨닫게 되어진다. 는 그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고난길에서 하나님의 숨죽이기, 하나님의 힘 빼기 작업대에 오르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반드시 브니엘의 하나님으로 여러분 모두를 만나주실 줄로 믿습니다. 내 생명을 보존하시는 분은 내 지팡이의 힘도 내 힘의 근원에서도 나오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기도로 엎드리고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붙드는 전율의 밤을 지나면서 그것이 우리에게 새로운 힘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집사님이 신방 중에 간증하신 일을 소개합니다. 그 집사님이 알고 지내던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 교수님의 가정은 그분의 표현이 이래요. 돈으로 자녀 키운 집안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아들과 딸이 있는데 둘 다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명문대를 나왔고, 딸은 일찍 결혼을 했고, 지금은 이혼을 했고, 아들은 좋은 대학 여러분 말은 굉장히 좋은 대학입니다. 좋은 대학, 좋은 과를 나왔는데 지금은 무직 상태라는 겁니다. 그 아들은 부모와 완전히 관계마저 단절된 상태라는 거예요. 그 집안이 왜 이렇게 풍파가 많나? 그 집사님이 그 가정을 위해서 불쌍한 마음에 그 가정을 위해서 계속 기도를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주님의 음성이 들리더랍니다. 내가 버렸니 내가 버렸니? 마치 돈으로 그 과정을 일으키기 위해서 열심으로 자기 힘을 다해서 살았지만 결과가 풍파가 많고, 남이 볼 때 망한 것처럼 보이는 그 상황 앞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더랍니다. 내가 버렸니? 이 집사님이 긍휼의 마음을 거두고 정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 가정을 위해서 기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그 가정의 소식을 들었답니다. 딸이 먼저 신앙이 회복이 돼서 방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정말 정말 사랑하는 딸의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는 그러면서 부모님이 함께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은 그 아들도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전율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망한 것과 같은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예수님도 겟세마네의 그 밤에서 전율의 밤을 통과하셨다는 것을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 스스로의 바램과 계획, 자기 힘을 완전히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고난의 잔, 전율의 잔을 마실 수 있도록 하나님의 힘이 들어오는 순간인 것입니다. 너무나도 아이러니하게 십자가에 버림받음으로 인해 세상에 빛을 잃고 어둠이 임할 때 온 땅도 전율합니다. 진동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도들이 고난 앞에 힘 빼기를 할 때 세상도 그것을 주목하고 전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고난 받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의 힘 빼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힘이 우리 안에 들어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사람들을 살리고 세우는 일에 쓰임 받을 수 있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제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캠퍼스에 남기로 했습니다. 캠퍼스에 남아 하나님께만 바라보고 엎드리는 그 시간, 내 힘을 빼는 시간 속으로 다시 이끄셨습니다. 간사님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합니다. 네가 하나님이 부르셔서 신학과에 들어왔는데 하나님이 공급하심이 없다면 하나님이 힘 주시지 않는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가야 되겠니? 한 방 먹었습니다. 내가 성공하려고 내가 잘 살아보려고 신학과에 들어온 것이 아닌데 하나님 나 서주십시오.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뜨거운 마음 가지고 왔는데, 내 살 길을 내 힘으로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방식에 부합하지 않았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뒤에는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죠? 제가 지금 이렇게 서 있고 무사히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군대 문제도 하나님이 더 좋은 방법으로 해결해 주셨어요. 예 너는 병사로 가서 고생하니까 너는 고문관이 될 자질이 충분하니까 장교로 가라. 그래서 장교로 가서 조금의 자본을 마련해서 그걸로 결혼까지 허락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그 대학교 2학년 그 학생이 그 믿음이 부족해서 군대를 지금 가야 되나요 나중에 가야 되나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전율하며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엎어지는 그 순간을 맞이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앞에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엎어지는 자를 하나님은 붙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쓰시는 줄로 믿습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전율케 하는 시간을 우리 앞에 두십니다. 그 시간에 우리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부활의 능력에 참여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전율케 하시는 것입니다. 야곱의 삶, 예수님의 삶에 우리에게 주신 교훈은 이것입니다. 전율의 밤은 우리에게 있는 내 힘을 빼고 하나님의 힘이 임하게 하는 은혜의 시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은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바벨론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멸망되어질 그 상황 앞에서도 그는 전율하며 찬송합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내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하나님을 끝까지 찬송하리로다. 이 믿음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지막에 여러분 기업을 좀 돕기 위해서 제가 사랑하는 선배 목사님이 라이센스를 저에게 주셨습니다. 써도 된다고,“주 여호와는 나의 힘” 이시라고 고백할 때 그 힘은 능력도 되지만 찬송도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영어로 힘이 찬송입니다. 그래서 “저는 내 힘이 빠지면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시며 나의 찬송이 되십니다.” 아멘. 여러분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내 힘이 빠지면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시며 나의 찬송이 되십니다. ♣요약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가 나의 믿음의 고백이 되어서 하바국이 고백했던 것처럼 그 어떤 상황을 만나도, 전율케 하는 고난의 상황 앞에서도 주님 앞에 엎어지고 기도하는 자가 되면, 반드시 승리하고, 반드시 다시 일어설 회복의 능력과 은혜를 입을 것이니, 인생의 유리벽이 무너져서 세상에 던져지는 그 순간, 고난의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의 권능의 힘으로 붙드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심을 믿어야 한다. 야곱처럼 고통과 두려움에 전율하는 밤이 찾아와도 하나님께 엎어져서 오직 주님만 구하는 담대함을 가져야 한다. 내 힘이 빠져나가고 그 자리에 주 여호와가 나의 힘이 되시고 주 여호와가 나의 찬송이 되시는 믿음의 고백을 올려드리고, 내 삶에 비록 무화과나무, 감람나무의 열매와 외양간 송아지가 없어도 전율하면서 강력한 주님의 손에 붙잡히는 은혜의 인생이 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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