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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새(주후 2021년 3월 27)
제목: ''서로, 각각 짐을 지는 공동체''
말씀: 갈라디아서 6:2~6
설교자: 김도훈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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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6:2-6절)
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는 내용이다. 우리가 이 시대의 연약함으로 인해서 두 가지 면에서 우리 마음이 불편할 수 있다.

*첫째는 짐이란 단어이다.
-짐을 진다는 것은 어떤 사람도 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전에는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해 챙기는 것을 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짐은 임무나 책임, 수고로운 일, 그리고 귀찮은 일이라고 포함된 단어이다. 정말 짐은 무겁고 수고롭고 일생 가운데 가져가야 할 짐들이 우리 마음에 떠오르곤 한다.

*둘째는 서로라는 단어이다.

-지금이 어떤 시기인가? 1인 시대이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혼자 있으려고 하고 또 혼자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모든 처소에서 혼자 놀기 향연이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서 더 가중되었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전과는 다르게 서로는 간섭하지 않는 상황에서, 부담되지 않는 상황에서, 쓰는 단어가 되었다. 누구나 함부로 다가서면 안 되고, 간섭하면 안 되고, 개인적인 취향도 절대 판단하면 안 되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 이러할 때 서로라는 말은 서로서로란 단어 자체가 굉장히 불편할 수 있다. 짐을 진다는 것이나, 서로 진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상황에 오히려 이 편지를 받은 이 지역 교회들은 이 말씀을 더욱 익숙하게 받았을 수 있다. 왜냐하면 갈라디아에게 보내는 서신의 전반적인 내용은 다른 복음에 대해서 다른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사도의 엄중한 경고가 있었다. 그렇게 보면 갈라디아 교회의 주축이 되는 교회의 멤버들은 이전 유대인이 유대교에서 개종을 하였거나 이방인이라 하더라도 율법에 정통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일 것임을 추측해 본다. 그런데 율법의 전체적인 구조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므로 공동체가 살고 개인이 살게 되는 그런 구조이긴 하지만, 롯기에서 보아스가 우리에게 보여 주었던 기업 무를 자에게 섬김, 헌신, 고아나 과부나 객에 대한 나그네에 대한 배려와 재정적 지원들, 연약한 이웃을 위하여 애쓰게 된 부분들이 율법에 잘 기록되어 있다. 그렇기에 서로서로 짐을 지는 마음이 이들이 우리보다 더 편안하고 쉬웠을지 모른다. 그들이 잠깐 의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면, 바로 말씀 중에서 서로 짐을 짐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는 말씀이다. 유대인들은 서로 짐을 짐으로 율법을 성취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율법대로 열심히 하면 율법이 성취되고 자기의 수준이 올라가는 것을 생각했을 것이다. 오늘 본문은 너희가 서로 짐을 짐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말씀하신다. 법이란 여기서 구약에서 신약으로 번역할 때에 율법을 번역하는 노무스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리스도의 법은 그리스도의 율법이라고 말씀할 수 있다. 서로 짐을 진다는 것은 이전 모세의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율법을 성취하라고 말씀한다. 그리스도의 율법이 무엇인가? 여기서 완벽하게 가르쳐 주신 두 분이 있다.

*첫 번째 (마태복음 22:37-40절),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이것이 첫째 되는 사랑이다. 둘째도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선지자의 강령으로 말씀하신다. 율법을 우리 주님께서 온전히 해석을 해주신 것이다.

 

*두 번째 (요한복음 13:14절),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우리 주님께서는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고 오셨다고 말씀 하셨다. 그렇다면 온 율법과 강령인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율법을 새롭게 온전히 해석을 해주시면서 또 새 계명으로 무엇을 주셨는가? 서로 사랑하라이다. 결국은 그리스도의 법, 그리스도의 율법은 바로 하나님 사랑, 이웃을 위해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주신 법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라고 하셨는가?-서로 짐을 져야한다고 하신다.
- 새 계명으로 주신 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이루려면 우리는 서로 짐을 져야 한다. 구약 백성이 짐을 지는 것을 어떻게 이해를 했느냐면 그들은 가문이 책임을 지고 구제하고 재정적으로 돕고 헌신하는 것을 이해했다. 그렇다면 새롭게 짐을 지라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6:2절의 말씀을 보면, 배경을 살펴보니 5장, 6장, 1절까지의 내용에서 이렇게 가문적 책임을 지고 재정적 후원을 하라고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5장에 사랑으로 종노릇 하는데 육체의 일들,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주술, 분냄, 시기, 투기 육체의 일에 관해서 엄청나게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대신 무엇을 해야 하냐고 말한다.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성령의 아홉 가지를 말하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법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라고 되어있다. 항상 오래 참음을 네 글자여서 네 번째 나온다. 지금 육체의 일을 하지 말고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하고, 성령으로 씨를 뿌리고 성령으로 행하여 된다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범죄 하거든 바로 잡아주고 네 자신도 살펴보라고 하신다. 시험 받을 지를 주의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나서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고 말씀을 하신다. 서로 짐을 지라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인가?

 

바로 새 말씀을 주신다. 바로 짐을 지는 것은 연약한 부분을 보충해 주고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도록 서로 격려하고 그렇게 서로 함께 씨를 뿌리고 함께 경작하고 서로 열매를 만들어가며 서로 짐을 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육체의 일은 그만하고 성령의 일은 서로 함께 하자는 것이다. 서로 성령으로 짐을 진다는 것 북돋아서 서로 짐을 지라는 것이다. 새롭게 주시는 온전한 계명에 따라서 우리가 짐을 지는 것도 새로운 차원으로 서로 구제와 헌신이 아름답게 정령이 되고 그 안에서 녹아서 피어나는 것이며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에서 이러한 모든 것이 안에 함께 들어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법이 성취하기 위해 바로 이렇게 서로가 짐을 져야 한다. 그래서 그런 일이 어디에서 일어나겠는가? 바로 우리교회 다락방, 청년들은 GBS 모든 주일하교 등에서 모든 소그룹 공동체 안에서 아름답게 서로 짐을 지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가장 핵심이 되는 주일예배 말씀으로 선포되는 말씀과 그 귀한 말씀을 받아서 실천하고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말씀으로 우리가도 도전받고 한주가 살아가게 된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고 권면하고 바로 잡으며 서로 짐을 지기를 원하신다. 그렇게 주님의 법을 성취하기를 원하고 계신다. 설교로 인해서 바로 다락방으로 준비되고 준비된 것이 서로를 격려하고 말씀으로 결단하고 변화받기를 소망하며 나아가고 있다. 실천하고 간증하는 아름다운 일들이 우리의 다락방이다.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다. 물론 짐이 무겁고 쉽지 않는 것처럼 천국잔치와 동일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인생들이 모이고 말씀의 중심에서 놓고 몸부림치는 현장이기에 기쁘고 감사하고 감격적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치열하고 때로는 아픔도 있고 때로는 상처가 있기도 한다. 주님은 그래서 자고하지 않고, 교만치 않고 연약한 자를 세우고 사랑하라고 하신다. 자고 교만치 말라.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 각각 자기의 짐을 져야한다. 공동체 안에서 해야 한다.

 

*3절에, 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교만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랑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서 찾지 말고,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
각각 자기의 짐을 지라는 것이다. 이러한 경계의 말씀은 공동체 안에서 말씀으로 인도하며 책임이 많은 분들만이 아니다.

 

*6절에,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말씀을 인도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모든 좋은 것으로 함께 하라는 것이다. 가장 좋은 길은 성령 충만으로 서로 마음을 합하여야 한다. 바로 다락방에서 다른 사람에게 권면 격려하고 나를 돌아보고 함께 기도하여 서로 섬기는 일들이 바로 다락방에서 일어나야 한다. 서로 존중하고 함께 기도해야 한다. 우리 주님께서는 소그룹 공동체를 통해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길 원하신다. 기적의 역사를 체험하라. 소그룹 공동체를 통해 주님의 법을 우리가 성취해 가길 원하신다. 가장으로서, 어머니로서 자녀로서 지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너희가 서로 서로 짐을 지라하신다.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기 위해서 서로 짐을 져야한다. 울고 웃으며 결단하여 온전하여 지려고 그리스도 안에서 짐을 져라. 감사함으로 하기를 소원한다.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짐을 서로 지는 것이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하셨듯이 우리가 그 짐을 서로의 짐을 지고자 하면 오히려 가볍게 하실 것이며, 인생의 모든 짐들을 현저히 축소시켜 주실 것이며, 무거움을 없이 하여 주실 것이다. 그 고백으로 이 명령을 지켜 나아가야 한다.

 

요약

다락방마다, 소그룹마다 생명의 말씀과 은혜를 우선으로 삼아서 서로 각각 짐을 지고, 순장님의 인도함을 순종하고, 서로 격려와 사랑 안에서 보듬어 주고, 연결해 가며, 연약한 부분을 기도로 돕고 서로 헌신하며 섬기며, 교회에서도 예배와 찬양으로 말씀을 받아 더욱 주님을 닮아가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각각 짐을 지고 겸손하게 주님을 경외하여 자신을 돌아보는 삶이 되어야 한다.
-자기기만과 자신을 남과 비교하려는 심리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기 위해서 끊임없는 내적인 성찰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에게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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