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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1월 25일)
제목: "광야를 장막으로 바꾸시는 은혜"
말씀: 출애굽기 13:17-22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사회: 문진호 부목사님

설교자: 설성환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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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애굽기 13:17-22,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20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우리가 운전을 하게 되면 우리의 길을 안내 해 주는 네비게이션이 있다. 네비게이션은 우리가 길을 안내 받게 되면 때로는 평소에 다니지 않았던 생소한 그러한 길을 안내하는 경험을 종종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생소한 길로 우리를 안내하게 되었을 때, 그 네비게이션에 따르지 않고 내가 평소에 가던 길을 고집하면서 그렇게 가고자 할 때가 우리 가운데 분명하게 있다. 그렇게 내 고집대로 내가 지금까지 운전했었든 길로 우리가 가게 될 때, 어떠한 경험들을 했는가? 제 개인적으로는 내가 익숙한 대로 그 네비게이션을 따르지 않고 갔더니 어김없이 공사 현장이 나온다든가 때로는 접촉 사고로 인하여 차량이 상당히 막혀져 있는 그런 상황이 놓여 져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의 길을 안내해주는 이 네비게이션은 도로의 상황과 도로의 환경들과 여러 가지 데이터를 취합해서 그렇게 안내자 역할을 보게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더 편하게 갈 수 있는 길로, 더 쉬운 길로 이 네비게션이 안내를 해주지 않게 되면 때로는 어떤 생각이 들게 되는가?


여러분, 우리는 그 마음 가운데 그 네비의 말을 듣기보다는 그냥 내가 운전했던 길로, 내가 익숙한 대로, 이렇게 운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들의 모습일 때가 더 많다. 이와 비슷하게도 오늘 본문 말씀에도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나오게 하시고 약속의 땅, 그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때, 더 편한 길, 그 지름길로 인도하셨던 것이 아니라, 결코 예상할 수 없었던 그 홍해의 광야의 길로 돌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고 계시는 모습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실적인 상황을 봤을 때, 눈앞에 보이는 그 바닷길을 따라가는 것이 어찌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좋은 길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 길이 오늘 본문 말씀의 17절에 말씀하고 있는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이었다.


* 출애굽기 13:17,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이 길은 상업도로였다. 가는 길이 험하지 않고 잘 닦여진 그러한 길이었다. 그래서 대략 빠르게 걸으면 5일정도 소요가 되기도 하고 조금 천천히 이렇게 걷는다고 할지라고 대략 7일 정도의 소요가 걸린다고 한다. 그러한 짧은 지름길이었다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했을 때, 이 지름길은 어떠한 길로 보였을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러한 길이다. 라고 분명히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러한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왜 그러한가? 하나님께서 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라고 말씀하신 그 가나안 땅으로 최대한 빨리 갈 수 있는 길이 어디인가? 바로 이 지름길이었다. 그런데 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기대와는 다르게 본문 말씀에서는 이렇게 17절에 말씀하고 있다.


* 출애굽기 13:17,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그 지름길로 인도하지 않으신 것인가? 누가 보더라도 이 지름길로 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가나안 땅으로 빨리 들어갈 수 있는 그러한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길로 인도하지 않고 왜 광야 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도하셨던 것인가? 마치 네이게이션이 도로의 상황을 다 파악하고 막히는 길로 인도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상황과 모든 형편을 아시는 그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지름길로 인도하지 않으셨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저와 여러분들은 이 시점에서 광야를 장막으로 바꾸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 첫 번째로 주목해야 할 것을 발견할 수 있다.


I. 하나님의 인도하신대로 순종해야 한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애굽에서 탈출하고 난 후에 그들 스스로 길을 정하여 갈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다면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코 그 광야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선택권이 있었다면 그들은 광야의 길을 선택하지 않고, 당장 누가 보더라도 가기 편한 길, 가기 평탄해 보이는 그 지름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발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빨리 가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선택하고 나아갈 수 있는 그 선택권이 없었던 것이 오히려 은혜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때로는 저와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우리의 선택권이 없는 것이 오히려 더 은혜의 순간인줄로 믿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 뜻으로 내 경험으로 내 생각으로 그 길을 선택했다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길로 가지 않을 확률이 더 높았을 것이다. 우리의 본능이 그렇다. 더 좋은 길, 더 편한 길로 가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연약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저는 목회자 자녀로 소위 PK로 태어났다. 부모님께서 교회를 개척하셨기 때문에 실제로 교회는 저의 집이었고, 저의 놀이터였다. 저는 살면서 이 교회를 빼놓고는 절대로 저의 삶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교회는 저에게 특별한 그런 장소였다. pk로서 어렸을 때부터 목회자에 준하는 그러한 신앙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예배에 빠짐없이 필수적으로,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것이 저의 가정의 모습이었다. 사실 복음을 완전히 깨닫기 전의 저의 모습은 모든 예배를 빠지지 않고 드리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특별히 주일 날 낮 예배드리고, 청소년부서 예배를 드리고, 저녁예배를 드리고, 심지어 부흥 예배가 있는 날이면 예배를 네 번이나 드렸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마음 가운데 만약에 선택할 수 있다면 예배를 이렇게 많이 드리지 않았을 텐데, 라는 그러한 부끄러운 마음이 그때 저의 마음이 들었었다. 예배를 자율적으로 드릴 수 있는 선택권을 부모님이 저에게 주셨을까? 절대로 주시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이 복음의 능력을 완전하게 깨닫고 난 저의 모습은 목회자 자녀로서 이 예배에 드릴 수 있는 그 환경이 너무나도 은혜였다는 것을, 너무나도 감사의 조건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적이 있었다. 우리가 선택권이 있는 선택권이 없어서 심지어 억지로 하는 것이어도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순종하게 될 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줄로 믿는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저와 여러분들의 삶의 현장 가운데서 그 어떠한 선택권 없이 하나님이 전적인 인도하심을 받아 우리가 전진하며 나아갈 때에 광야와도 같은 그 장소에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놀라운 은혜가 우리의 삶 가운데 있게 될 줄 믿는다.


* 출애굽기 13:17-18,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아갈 길을 선택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름길이 아닌 그 광야 길로 인도해 주셨기 때문에 그 광야를 장막으로 바꾸시는 그러한 은혜를 맛볼 수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이 그 광야 길로 인도해 주시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은혜를, 그 기적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다 지름길이 아닌 홍해 광야 길로 인도하셨을 때에는 그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과 목적이 있으셨다. 오늘 본문 말씀 17절에 보면,


* 출애굽기 13:17,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하나님께서 그 길로 인도하시지 않은 이유가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지름길로 가게 되면 어떻게 된다고 말하는가?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하게 될 텐데, 애굽 땅에서 힘겹게 탈출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그런 전쟁을 하게 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명히 마음을 돌이켜서 애굽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않았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간다.’ 라는 이 말씀에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시금 노예(奴隸)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인도함을 받는 그러한 인생이 아니라 애굽에서 종살이 했던 그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것을 영적인 의미로 보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그런 인생에 머무르지 않고, 죄의 종노릇하며 살던 그런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애굽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광야 길로 인도하셨다는 것은 고난의 길처럼 보이는 그 험난하고 그 힘든 광야의 길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더라도 죄의 노예로는 결단코 다시금 돌아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그 하나님의 선한 마음이 담겨있다. 라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 애굽의 노예, 그 죄의 노예로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원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지 않은 우리의 눈에 좋아 보이는, 빠르게 갈 수 있어 보이는 길은 결코 주님께로 가까이 가는 길이 아니라 결국 과거의 애굽으로, 다시 죄의 노예 상태로 돌아가게 만드는 그런 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저와 여러분이 분명하게 기억하길 소원한다. 신명기 8장 2절 말씀을 보면,


*신명기 8:2,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지름길로 인도하지 않으신 것에 대해서 넓은 의미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그 광야 길로 인도하셨다고 하시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며 시험하시려고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셨다는 것은 그들을 겸손(謙遜)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또한 시험(試驗)하셨다는 것은 훈련(訓練)의 시간을 의미하고 있다. 40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그 광야의 삶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선택들을 내려놓고 전적으로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님을 붙들게 되는 그러한 훈련의 시간이었다는 사실이다. 주님만을 의지하는 이 훈련의 과정들을 통하여서 내 주장과 내 생각은 철저히 낮아짐은 통하여서 겸손하게 되고 주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따르는 그런 겸손함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시간들을 통하여서 이 40년이란 광야의 시간들을 통하여서 배우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우리들의 상황과 환경이 끝까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광야와도 상황이 우리의 현장 가운데 펼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하셨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그곳에서 망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광야와도 같은 그 상황과 그 환경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게 하시고 하나님과 우리의 영적인 추억으로 가득한 그러한 추억의 장소로, 그러한 은혜의 장소로, 그 광야의 자리를 만들어 가실 줄로 믿는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저와 여러분이 붙들어야 할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대한 전적인 신뢰이다.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그 신뢰와 그 믿음 가운데 우리가 있을 때, 그 광야를 장막으로 보게 되고 험난하고 어려움으로 가득한 그 광야를 하나님이 인도하심으로 가득한 은혜의 장소로 고백하게 되는 놀라운 믿음의 고백이 우리들의 삶의 현장 가운데 경험되고 고백되어지고 회복되어 질 줄로 믿는다. 광야를 장막으로 바꾸시는 그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II.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늘 경험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 우리는 그 모습을 오늘 본문 말씀 21-2절 말씀에서 확인하자.

*출애굽기 13:21-22,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 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매순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결코 떠나지 않으시고 그들과 함께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한 순간도 1분 1초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혼자 버려두지 않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그런 홍해 길을 만났을 때에도 그 광야 길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 막혀버린 바닷길이 갈라지게 되었고, 그 막다른 길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명의 길이 되었고, 구원의 길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 순간 여러분들 각자에게 허락하신 그 바닷길은 무엇인가? 그 광야의 길은 무엇인가? 그 바닷길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서 막막해 보이지만 결국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기적을 경험하는 자리가 될 줄 믿는다. 저와 여러분이 마주하게 될 막혀버린 것 같은 그 홍해 바닷길은, 그 광야의 자리는 우리가 주님을 더욱 더 간절하게 찾아야 되는 그러한 자리인 줄 믿는다. 사방이 막혀버린 것 같은 그런 환경 가운데서 오히려 그 상황이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되고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그러한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저와 여러분들이 분명하게 되기를 소원한다. 인간적인 눈으로 이 광야를 보게 되면 광야라는 공간은 수시로 야생동물을 만나게 되는 너무도 위험한 공간이다. 의식주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그런 정착되지 못한 그런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일 수밖에 없다. 인간적인 눈으로 이 광야라는 공간을 보게 되면 절대로 우리들이 머물면 안 되는 그런 공간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믿음으로 눈으로 그 광야를 보게 되었을 때, 오히려 그 광야가 위험한 곳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광야가 사람이 정착하여 살 수 없는 그런 환경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과 함께 해야만 하는 그러한 장소가 되게 된다는 사실이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광야를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로 해석되는 그런 믿음의 눈이 날마다 경험되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광야로 해석되는 히브리어 단어는 ‘미드바르’ 히브리어 단어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되어지는 히브리어 단어는 ‘다바르’ 단어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지성소로 해석되고 있는 히브리어 단어는 ‘드비르’ 단어이다. 광야와 또 하나님의 말씀, 또 지성소라고 해석되어지고 있는 이 세 가지 히브리어 단어의 어근이 모두 같다라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을 통하여서 영적으로 깨달음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살게 하신 광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신 그런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는 장소였고, 하나님을 만나는 지성소와 같은 장소였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아니 하나님께서 광야라는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주하고 있는 그 홍해 바다로 막혀버린 그 광야 길은 애굽 군대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무덤이 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물렀던 그 광야는 먹을 음식을 찾지 못해 굶어죽거나 마실 물이 없어서 목말라 죽을 수밖에 없는 죽음의 장소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부재는 아무리 좋은 환경도 죽음의 광야로 만들게 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아무리 열악한 광야의 환경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자리 가운데 함께 하시면 생명의 샘으로 바뀌어 지고 구원의 방주로 바뀌어 지게 되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로 믿는다. 시편 4편 8절 말씀을 보면

*시편 4:8,
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다윗의 평생의 삶에서 그의 고백은 어떠한 고백인가? 나를 안전하게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하나님 밖에 없다. 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다윗이 이 시를 썼을 때가 언제인지를 우리는 주목해 보아야 한다. 이 순간은 바로 다윗의 셋째 아들이었던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서 이 아버지를 죽이려고 쫓아오고 있는 그 때에 다윗이 자신의 아들의 반란으로부터 도망가면서 이 시가, 이 고백이 바로 이 하나님을 향한 이 고백이었다. 다윗이 지금 마주 하고 있는 그 상황은 누가 봐도 암울해 보이는 상황이다. 누가 보더라도 절대로 안전해 보이지 않는 그러한 환경이다. 인간적인 눈으로 수백 번 보아도 다윗은 현재 상황은 절대로 안전하게 볼 수 없는 그러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고백은 무엇인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내가 안전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친 아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오는 그때에 다윗은 자신을 안전하게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것을, 이 놀라운 고백을 주님 앞에 올려드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윗의 그 고백처럼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모드 어려움 가운데서 안전한 길로 인도하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의 입술로 날마다 고백하게 될 때, 다윗이 경험했던 그 진정한 평안, 그 진정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저와 여러분의 삶의 현장 가운데서 경험하게 될 줄로 믿는다.


사람은 편한 길, 그리고 빠른 길을 선택해서 가려고 하는 것이 어찌 보면 본능적인 모습일 것이다. 왜 그러한가? 편한 길과 빠른 길이 우리들의 인생 가운데서 가장 좋은 길이다. 라고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편한 길로만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우리들에게 편한 길이 아닌 불편한 길로, 때로는 울퉁불퉁한 그러한 길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때가 있다. 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선하신 그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 우리에게는 가장 좋은 길이라는 그 믿음으로 그분을 신뢰함으로 그분을 따라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현장 가운데 늘 베풀어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할 줄로 믿는다. 어떻게 하면 내가 빨리 갈 수 있고, 성공하는 길로만 갈 수 있을까? 내가 가야될 길에 상태와 그러한 길이를 보는 그러한 인생이 아니라 나의 길을 인도하시는 분이 누구이신지, 내가 함께 하시는 분이 누구이신지, 그 질문을 날마다 내 삶 가운데 되새겨 보면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우리의 길 위에서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을 끝까지 붙잡고 의지하며 나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요약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맡겨진 그 값진 삶을 하나님의 자녀답게 온전히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 말씀이 우리의 삶에서 실재가 되므로 예수님의 흔적을 드러내어 살며, 어떠한 선택권도 없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은혜임을 깨달아서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는 믿음의 선택을 하며 광야와도 같은 인생의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끝까지 보호해 주시고 버리시지 않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야 할 길을 선택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의 인도자이셨다. 직접적으로는 모세가 그들을 지휘하였지만 그는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그대로를 지시하였던 것이다.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는 데에는 두 가지의 길이 있었다. 하나는 애굽 북부에서 가나안의 남쪽을 향해 가는 지름길로서 아마도 4,5일 정도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다른 하나의 길은 광야를 통해서 가는 훨씬 먼 길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실 때 바로 이 길을 선택하셨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실 때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않으셨다. 이런 인도 방법은 사막을 행진할 때 꼭 갖추어야 할 조건이다. 즉 하나님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기 백성을 돌보시며, 어려울 때마다 힘이 되어주시고, 슬플 때 위로해 주시며, 기쁠 때 함께 기뻐해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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